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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린세상] ‘트랜스 DJ’의 시대를 열어야/김진 울산대 철학과 교수

    [열린세상] ‘트랜스 DJ’의 시대를 열어야/김진 울산대 철학과 교수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해 국민이 비통에 잠겼다. 운명적으로 비슷한 두 분의 전직 대통령을 한꺼번에 떠나보내게 된 충격이 클 수밖에 없다. ‘빨갱이’ ‘좌익 용공분자’ ‘후광’(後廣) ‘인동초’(忍冬草) ‘토머스 모어’ ‘동교동’ ‘행동하는 양심’ ‘아시아의 만델라’ ‘2000년 노벨평화상 수상자’ ‘햇볕정책’ ‘대한민국의 위대한 지도자’ 등은 김 전 대통령을 지칭하는 수사(修辭)들이다. ‘빨갱이’와 ‘좌익 용공분자’는 여운형 선생이 구성한 ‘건국준비위원회’에 일시 몸담았던 인연으로 평생의 꼬리표가 되었다. 그러나 6·25 전쟁 중 오히려 그는 우파 반동세력으로 몰려 복역한 바 있다. 1957년 가톨릭 교회의 영세를 받았으며, 세례명은 토머스 모어였다. 15세기말 영국의 대법관과 하원의장으로 활약했고, ‘유토피아’(1516)의 저자이기도 한 토머스 모어는 헨리 8세가 이혼 문제로 로마 교황청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한 데 불응, 반역죄로 처형된 인물이다. 토머스 모어는 1935년에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시성(諡聖)됐으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그를 정치가의 수호성인으로 선언했다. 우리 역시 김 전 대통령이 한국 민주주의의 수호성인으로 시성되기를 희망한다. ‘빨갱이’에서 ‘제15대 대한민국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김 전 대통령의 인생역정은 파란만장했다. 1971년 선거 지원유세서 그는 의문의 교통사고를 당하여 다리에 부상을 입었으며, 1973년 유신독재 치하 정보요원들에게 납치되어 두 차례의 죽을 고비를 넘겼다. 군사정권이 사형선고를 내릴 때마다 그는 불굴의 투지로 일어섰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인동초’(忍冬草)였고, ‘행동하는 양심’과 ‘아시아의 만델라’가 덧붙여졌다. 그리고 5·18 내란 음모사건으로 전두환 정권에 의하여 또 한 번 사형선고를 받았다. 1987년 ‘서울의 봄’과 6월 민중항쟁으로 얻어낸 민주정권의 수립 기회를 야권의 단일화 실패로 지연시킨 책임은 작다고 할 수 없다. 5년 후 노태우 정권 후계자로 지명된 김영삼 후보에게 패배하고 정계은퇴를 선언한 그를 영국으로 떠나보내면서 지지자들 역시 오열하고 세상을 등졌다. 우여곡절 끝,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는 제15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이후락과 전두환은 죽은 목숨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뇌리에 사무친 정적(政敵)의 이름들을 지우기 시작했다. 그 같은 용서와 화해의 노력은 서거 직전 병상에까지 계속되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우리 역사상 가장 성공한 대통령이었다. 1998년의 외환 위기사태를 3년 만에 극복했으며, 우리나라를 인터넷 강국으로 육성하고 각종 인권정책을 적극적으로 도입하였다. 2000년 6월, 분단 55년만에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였으며, 햇볕정책으로 남북간 화해와 협력의 시대를 열었다. 그리고 노벨평화상을 수상함으로써 대한민국의 이름을 세계에 빛나게 했다. 그러나 햇볕정책에 정권의 명운을 걸었으면서도 북한의 핵 개발을 저지하지 못했던 것은 실책에 속한다. 자신의 햇볕정책을 전방위로 수행했던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을 노무현 정권으로부터 끝까지 지켜주지 못한 것도 실책이었다. 또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이념적으로만 해석하여 민주당을 거리투쟁으로 내몰았던 것도 구시대의 이념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탓이었다. 독도문제를 지나치게 양보하고, 오는 9월3일로 100년이 만료되는 청·일 간도협정에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던 것도 한계가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이제 고(故) 김대중 대통령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계승·발전시키기 위하여 그를 넘어서지 않으면 안 된다. ‘트랜스 DJ’, 그것은 바로 김대중 대통령의 서거를 통하여 그의 유지를 존중하되 그의 실책과 한계를 지양하면서, 내일의 삶에 필수적인 새로운 지혜를 창조하는 ‘희망의 변증법’을 펼치는 일이다. 김진 울산대 철학과 교수
  • [김 전대통령 서거] 내란음모 연루 정동년씨 술회

    “DJ는 올바른 역사관을 지닌 정치 지도자였습니다.” 1980년 이른바 ‘김대중 내란 음모사건’에 연루돼 모진 고초속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을 겪었던 정동년(66·당시 전남대 복학생 대표)씨는 “국민의 정신적 지주로서 더 오래 살아 주시길 바랐는데 안타깝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정씨는 이 사건 이후 DJ와 광주 재야·시민단체의 가교역할을 했다. 정씨는 1980년 5월18일 자정무렵 집으로 들이닥친 5~6명의 남자에 의해 보안사 지하실로 끌려갔다. 시내에서는 시위 군중과 계엄군이 치열한 공방전을 펼치고 있었다. 그는 군인들의 발길질과 각목 세례를 받고 김대중 전 대통령으로부터 500만원을 받은 사실과 사용처를 추궁받았다. 합수부의 계속되는 고문에 상무대 영창 화장실로 들어가 군용 숟가락으로 자해까지 했다. 1주일째 이어진 고문으로 그해 5월 말쯤 DJ로부터 500만원을 받아 박관현 당시 전남대 총학생회장 등에게 나눠 줬다고 ‘진술’하면서 고문은 끝났다. 서울의 봄 기간인 1980년 4월 전남대 복학생 대표 자격으로 정씨는 DJ의 강의 초청을 위해 동교동을 방문했다가 방명록에 이름을 남긴 것이 화근이었다. 이 사건으로 DJ와 함께 내란음모죄로 사형 선고를 받았다. 그런 인연으로 정씨는 재야활동을 하면서 DJ와 광주 지역사회의 가교역할을 했다. 정씨는 “1987년 대선에서 야당후보 단일화 실패로 노태우 후보에게 패배하면서 평민당과 DJ는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졌다.”며 “이 때 광주지역 재야도 이탈 조짐을 보였다.”고 회고했다. 정씨는 “돌이켜 보면 우리가 그분의 큰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많은 쓴소리와 비판을 가했다.”며 “15대 대통령에 취임한 뒤 남북문제와 대미 외교 등을 지켜 보면서 그가 정말 위대한 지도자란 걸 새삼 느꼈다.”고 말했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김대중 前대통령 서거] 사선 다섯번 넘어… 민주주의 유토피아 꿈꿨다

    [김대중 前대통령 서거] 사선 다섯번 넘어… 민주주의 유토피아 꿈꿨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인동초’, ‘행동하는 양심’으로 불리며 반세기 한국 정치사를 풍미했다. 한국 정치사에서 ‘3김(金)시대’의 한 축이었던 고인(故人)은 1997년 겨울, 반세기만에 ‘선거혁명’을 통한 정권교체를 이뤘다. 3전4기로 대통령에 당선된 뒤에는 외환위기를 극복했고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켜 한반도 정세의 패러다임을 바꿨다. 5차례의 죽을 고비와 5년여의 감옥생활, 6년여의 가택연금, 3년의 망명생활 등 고인의 삶은 견디기 어려운 시련으로 점철됐다. 가톨릭 세례명인 ‘토마스 모어’처럼 고행하는 구도자의 삶을 이어온 셈이다. “정이 많은 분이다.” 영원한 비서실장인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김 전 대통령을 이같이 묘사했다. 말년에도 거의 매일 서울 동교동 자택을 드나든 박 의원은 “지난 1월 민주당 정세균 대표가 방문해 용산참사에 대해 말을 꺼내자 이내 김 전 대통령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면서 “평소에도 드라마 속 (비참한) 사람들을 보며 눈시울을 붉힐 만큼 평소 인정도 많으셨다.”고 전했다. 말년에는 미국의 버락 오바마 행정부 등장과 맞물려 케네디 전 대통령과 관련된 책을 탐독하고 여론주도층을 만나 서민과 비정규직을 위한 사회 안전망, 생산적 복지를 강조했다고 한다. 전남 목포에서 뱃길로 150리. 김 전 대통령은 1924년 매서운 바닷바람을 등진 하의도라는 작은 섬에서 3남2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신안군 하의면 후광리에는 지금도 생가터가 남아 있다. ‘후광’(後廣)이라는 호(號)도 여기서 따왔다. 중농의 아들이었던 그는 목포상고(현 전남제일고)에 수석 입학한 수재였지만 반일운동으로 학적부에 ‘시찰계요’라고 적힐 만큼 반골기질을 드러냈다. 1945년 약관의 나이에 ‘건국준비위원회’와 조선 신민당에 입당했지만 8개월 만에 탈당한다. 이어 3단계 통일방안(1972년)과 광주 민주화운동(1980년) 등을 거치면서 색깔론에 휘말렸다. 고인은 1946년 첫 부인 차용애 여사와 가정을 꾸리고 해운회사를 경영, 큰돈을 모은다. 뛰어난 상술로 목포일보를 인수한 뒤 주필을 겸하기도 했다. 자금을 끌어대고 경쟁상대를 꺾으며 사람의 마음을 낚는 장사와 정치는 닮은꼴이다. 1950년 한국전쟁 때는 우익단체 참여를 빌미로 인민군에게 처형될 위기에 몰렸지만 이송 중 극적으로 탈출, 첫 죽음의 고비를 넘긴다. 1954년 3대 민의원 선거에서 목포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하며 본격적으로 정치에 뛰어들었다. 3대를 포함, 4차례 낙선의 쓴잔을 연거푸 마셨다. 1958년 강원도 인제군 민의원 선거 때는 후보등록이 취소됐고, 1959년 보궐선거에선 색깔론에 휘말렸다. 4·19혁명이 일어난 1960년 선거에서도 낙선했다. 1961년 인제군 보궐선거에서 당선의 첫 기쁨을 누린 김 전 대통령. 하지만 사흘 만에 5·16을 맞아 반혁명사건에 연루돼 교도소로 직행한다. 토머스 모어의 교훈은 오히려 고난 극복의 힘이 됐다. “늦어도 100년 뒤면 (토머스 모어처럼) 역사에서 재평가받을 것”이라며 고통을 이겨냈다. 1962년 이희호 여사와 재혼한 고인은 이듬해 목포에서 민주당 후보로 공화당 후보를 제치고 당선됐다. 1964년 5시간20분간 행한 ‘필리버스터’ 발언과 6개월간 13차례 본회의 발언 등은 지금도 기록으로 남아 있다. 1971년 7대 대선은 기회이자 시련의 계기였다. 1970년 45세의 나이에 ‘40대 기수론’의 라이벌 김영삼(YS) 전 대통령을 물리치고 신민당 후보로 나섰지만 이듬해 선거에선 94만표 차로 패배했다. 이후 20년간 혹독한 시련이 밀려왔다. 일본 망명 중인 1973년 ‘김대중 납치사건’을 시작으로 전두환 군사정권까지 55차례의 연금생활, 5년반 동안의 감옥생활, 2차례의 망명생활을 겪었다. 1976년 명동 3·1구국선언으로 구속(긴급조치 9호 위반)됐고, 1981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았다. 훗날 고인은 “솔직히 죽는 것이 두려웠지만 영원히 사는 길을 택했다.”고 회고했다. 가톨릭계의 구명운동 덕에 목숨을 건진 고인은 1982년 도미, 두 번째 망명길에 오른다. 한국인권문제연구소와 민주화추진협의회를 이끌며 민주화 운동의 외로운 무게중심이 됐고, ‘인동초’란 별칭도 얻게 된다. 1985년 12대 총선을 앞두고 전격 귀국한 고인은 김포공항에서 연행돼 가택연금에 처해졌다. 하지만 김영삼 전 대통령과 함께 만든 신한민주당이 2·12총선에서 109석을 확보, 1987년 6월 항쟁의 기틀을 마련한다. 사면복권 뒤 1987년 13대 대선에 출사표를 던졌지만 3위에 머무르며 김영삼 전 대통령과의 후보 단일화 실패에 따른 비난에 휩싸였다. 1988년 총선의 평민당 ‘황색 돌풍’으로 일선에 복귀했지만 1992년 12월 대선에서 패배한 뒤 정계은퇴를 선언한다. 고인은 “40여 년의 파란 많았던 정치생활에 사실상 종막을 고한다고 생각하니 감개무량한 심정을 금할 길이 없다.”며 대선 낙선의 소회를 곱씹었다. 막을 내릴 것 같던 정치인생은 영국으로 건너간 지 6개월만에 다시 불꽃을 살렸다. 1993년 귀국해 아태평화재단을 설립했고, 빗발치는 비판 여론을 무릅쓰고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했다. 이듬해 총선에서 제1야당으로 올라서자 대선 4번째 출마를 선언한다. ‘대통령병 환자’라는 비난이 일었지만 단 1.6%포인트의 표차이로 이회창 후보를 누르고 색깔론과 지역감정의 벽을 넘었다. 보수세력인 자민련과의 DJP연합이 힘이 됐지만, 역설적으로 색깔과 지역의 부조화스러운 조합이기도 했다. 고인의 대표 브랜드는 ‘햇볕정책’이다. 반세기 동안 닫혔던 북쪽의 문을 열게 하는 열쇠로, 서독 빌리 브란트 총리의 동방정책과 궤를 같이한다. 이를 바탕으로 이뤄진 역사적 남북정상회담은 한반도가 ‘레드 콤플렉스’를 벗어던지고 탈냉전체제로 진입하는 촉매제가 됐다. 고인을 한반도 유일의 노벨상 수상자로 만든 일대 사건이었고, 퇴임 뒤에도 논쟁이 있는 사안에 대해 비중있게 언급할 수 있는 유일한 지위를 부여했다. 고인은 대통령 임기말 측근들의 비리가 뒤늦게 터진 데다 아들들이 구속되는 등 마음고생도 적지 않았다. 6·15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북한과 밀거래한 사실은 안타까운 기록으로 남게 됐다. 또 완벽주의와 제왕학적 리더십은 권위주의적 통치라는 오명도 남겼다. 오상도 허백윤기자 sdoh@seoul.co.kr
  • DJ 자서전 곧 출간… “정치보복은 절대 안된다”

    “한국에 민주주의가 정착하려면 반대세력끼리 정치보복만큼은 절대 안 된다.” 곧 출간될 것으로 알려진 김대중 전 대통령 자서전의 한 대목으로 1980년 내란음모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고 법정에서 한 말이다. 2년여에 걸친 김 전 대통령의 자서전 구술작업에 참여한 유시춘 전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은 이를 두고 “김 전 대통령의 한평생을 관통하는 말”이라고 전했다. 오는 13일은 김 전 대통령의 도쿄피랍 생환 36주년을 맞는 날이다. 내년은 6·15 남북정상회담 10주년이다. 김 전 대통령은 해마다 두 기념일을 각별히 챙겼다. 자서전도 모진 역경을 거친 세월에 대해 상당 부분 할애했다고 한다. 김 전 대통령이 1980년 광주 민주화운동의 배후로 지목돼 최종 선고를 앞둔 당시 신군부세력은 “대통령만 빼고 원하는 대로 다 해주겠다.”며 회유한 구절도 있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은 “국민을 속일 수 없다.”며 사형을 택했다. 정적에 대한 소회도 빠뜨리지 않았다. 고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유신 때 차지철 경호실장이 번번이 박 전 대통령과의 대면 일정을 잘라 버렸다.”며 아쉬워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1988년 7·7선언(대북정책 6개항 특별선언)에 대해선 ‘남북관계를 진전시킨 공로’라고 평가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에 대해선 “87년 대선 때 후보 단일화를 못 이룬 게 빚으로 남아 있다.”고 고백했다. 다만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해선 “죽음 직전의 고초까지 안겨준 그를 신앙적으로 용서하려고 노력했다.”며 다소 복잡한 심경을 드러냈다. 자서전은 상하 2권이다. 김 전 대통령은 유 전 상임위원이 하권의 원고를 탈고한 뒤 감사의 뜻으로 몽블랑 만년필을 선물했지만 아직 최종 감수를 보지 못한 상태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다른기사 보러가기] 축구 보여주다 여자 ‘볼일’ 장면 수시1차 논술 이렇게 박지성,호날두 단골임무 맡나 수리점 시계가 늘 10시10분을 가리키는 이유 조각? 그림? 틀 깬 신기한 사진들 국내 인터넷 뱅킹 뚫은 조선족 해커 22조원 투입 38조원 효과…강따라 돈이 흐른다
  • [피플 인 포커스] 오스카르 아리아스 코스타리카 대통령

    [피플 인 포커스] 오스카르 아리아스 코스타리카 대통령

    미국이 7일(현지시간) 온두라스 쿠데타 사태를 중재할 협상 카드로 오스카르 아리아스 산체스(68) 코스타리카 대통령을 내세웠다. 쿠데타로 축출된 마누엘 셀라야 전 온두라스 대통령과 로베르토 미첼레티 과도정부 대통령 권한대행도 아리아스 대통령의 중재자 역할에 동의했다. 그만큼 중남미 지역에서 아리아스 대통령의 신망이 두텁다는 얘기다. 1941년 코스타리카에서 태어난 아리아스 대통령은 코스타리카 대학교에서 법학과 경제학을 공부한 뒤 영국에서 정치학 석·박사를 취득했다. 1977년 국민해방당(PLN)에 입당, 정계에 발을 들여놨으며 국회의원과 당서기장을 거쳐 1986년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의 비상한 협상력은 대통령 재임시절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1987년 과테말라와 엘살바도르 등에서 일어난 내전으로 중미 지역에 전운이 감돌았던 일촉즉발의 상황이 벌어졌지만 그는 탁월한 조율 능력을 발휘, 전쟁을 막았다. 내전 즉각 중단 등을 골자로 하는 45개 항목의 평화안인 ‘아리아스 플랜’을 제의, 중남미 5개국 간의 평화 협정을 성공시켰던 것. 그는 이 공로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고 ‘세계 평화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았다. 소국 코스타리카 정치인의 한계를 극복하고 전쟁으로 얼룩졌던 중남미 지역에 평화를 정착시켰던 이 사례는 이상주의 국제정치학에도 큰 지평을 열었다. 그는 이런 국내·외 인기에 힘입어 2006년 2월 대선에서 40.9%를 득표, 재선에 성공했다. 특히 이번 온두라스 사태에서 그가 어떤 협상 능력을 발휘할지 주목된다. 비록 이번 협상 테이블은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탓에 논의가 어떻게 진행될지 점치기는 어렵지만 일단 시작은 좋다. 미국은 물론 인근 남미국가들과 대화를 거부하던 온두라스 과도정부마저 이날 “아리아스는 세계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인물”이라고 치켜세우며 적극적으로 대화에 임할 의지를 내비쳤다. 물론 “양측이 만나는 것이 셀라야의 귀국을 허용하는 것은 아니다.”고 밝히긴 했지만 온두라스의 전직 대통령과 쿠데타 세력이 아리아스라는 구심점 아래 협상을 시작한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는 평가다.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부고] 조세형 민주당 상임고문 별세

    [부고] 조세형 민주당 상임고문 별세

    국민회의 총재 권한대행과 주 일본대사를 지낸 조세형 민주당 상임고문이 17일 오전 타계했다. 78세. 조 고문은 지난 1일 뇌경색 증세로 수술을 받았으나 의식을 되찾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 고문 측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로 큰 충격을 받았다.”면서 “봉하마을 빈소에 다녀오고 영결식에도 참석했다.”고 전했다. 고인은 전북 김제 출생으로 전주고와 서울대 문리대를 졸업한 뒤 합동통신 정치부 기자와 한국일보 편집국장을 지냈다. 중견 언론인 모임인 관훈클럽 창립대표를 맡기도 했다. 한국일보 편집국장 시절인 1978년 10대 총선 때 이철승 신민당 대표에게 발탁돼 서울 성북에서 전국 최다 득표로 당선, 정계에 입문했다. 고인은 이후 30년 넘게 합리적인 정치인으로, 좌우명인 화이부동(和而不同, 남과 사이좋게 지내기는 하나 무턱대고 어울리지는 않는다.)을 실천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87년 대선 때 김대중 평민당 후보의 선거대책 부위원장으로 활약했고, 13~15대 총선에서 내리 당선되며 민주진영의 핵심 인사로 자리매김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전폭적인 신뢰를 얻어 1996년부터 3년간 국민회의 총재 권한대행을 지냈다. 97년 대선에서는 김대중-김종필(DJP) 연합을 성사시키기도 했다. 16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손학규 의원에게 고배를 마셨지만 2001년 12월 주일 대사로 발탁돼 참여정부 시절인 2004년까지 활약했다. 지난 17대 대선 때는 전주고 후배인 정동영 민주당 대선 후보의 선대위원장을 맡았다. 유족으로는 아들 성훈(하나대투증권 부장)·성주(기아차 미주법인)씨와 사위 문정환(SC제일은행 상무)씨 등이 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장지는 김제 선영이며 발인은 20일이다. 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 김형오의장 개헌론 불지피기

    김형오 국회의장이 11일 “제헌절이 한 달 남았는데 이때부터 헌법개정 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하겠다.”고 말했다. 국회의장이 스스로 나서 개헌 논의에 불을 지핀 것이어서 추이가 주목된다. ●여야, 개헌 필요성에 공감대 정치권은 이미 지난 17대 국회에서 개헌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18대 국회에서 이를 논의하기로 합의했다. 특히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권력의 과도한 집중에 따른,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확산되고 있어 다른 어느 때보다 개헌 논의에 탄력이 붙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여야 의원 186명이 참여한 미래한국헌법연구회는 오는 9월 정기국회에서 개헌특위를 구성해 내년 6월 지방선거 이전에 개헌 논의를 마무리 짓는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이와 관련, 고성학 국회의장 정무수석비서관은 이날 “돌아오는 제헌절을 앞두고 국회의장 직속 헌법 연구자문위원회가 지난 1년간 연구한 결과 보고서를 내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김 의장 취임 직후 출범시킨 것이 헌법 연구자문위원회와 국회 운영 제도개선 자문위원회였다.”며 논의 제안이 즉흥적이거나 단발성이 아님을 강조했다. 김 의장은 이날 오전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인간개발경영자연구회 주최 특강에서 “1987년 헌정 체제를 지금까지 20년 남짓 유지하고 있는데 직선제 이후 대통령 5명 가운데 4명이 불행한 결과를 맞았다.”면서 “이런 부작용이 지금 엄청난 시련으로 느껴지는 만큼 개헌을 통해 국가 시스템을 재정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밝혔다. 김 의장은 “영국과 독일처럼 내각제로 가든, 프랑스처럼 이원정부제로 가든, 방향은 권력의 권한과 책임을 명확히 하는 것이다. 권력의 분리 속에 책임도 명확히 해야 한다.”며 ‘권력분산’이 권력구조 개편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래한국헌법연구회 소속 한나라당 이주영 공동대표도 이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지금의 헌법은 20년 된 헌법으로 시대에 맞지 않은 내용들이 있는 만큼 나라의 미래를 내다보면서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거들었다. 통치구조 개편과 관련, “분권형 대통령제로 가면서 대통령 4년 중임으로 하되 대통령의 권력을 의회, 총리를 수반으로 하는 내각, 지방에 각각 나눠줘 권력의 분점을 이뤄가는 대통령제가 무난하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정치권에 많다.”고 전했다. ●분권형 대통령제 등 논의 활발 앞서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는 지난 9일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제왕적 대통령제 하에서는 대통령이 되면 모든 것을 얻고 지면 모두 잃는 ‘전부 아니면 전무(all or nothing)’ 게임”이라면서 “권력을 분산시켜 (대선에서) 지더라도 다른 기회가 있고 또 권력을 나누니까 괜찮은 구조로 가야 한다. 그런 게 바로 ‘분권형 대통령제’로 프랑스에서 시행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민주당 이강래 원내대표도 “(개헌 논의를) 할 거면 이번 제헌절을 계기로 개헌 논의의 서장이 열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여야 정치권이 서서히 개헌 논의 국면으로 흘러가는 모양새다. 이지운 허백윤기자 jj@seoul.co.kr
  • [6·10 민주항쟁 22주년] ‘행복했던 그 날’ 되뇐 얼굴엔 짙은 그늘이…

    [6·10 민주항쟁 22주년] ‘행복했던 그 날’ 되뇐 얼굴엔 짙은 그늘이…

    1987년 6·10항쟁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22년이 지난 오늘 서울광장에서 착잡함을 토로했다. 서울광장에서 만난 이들은 그날을 ‘행복한 날’로 추억했다. 온 국민이 함께 쟁취한 민주주의의 힘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강산이 두번 바뀌는 동안에도 촛불시위,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 등을 겪으면서 스스로 세운 민주주의가 여전히 살아 있음을 느낀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10일 서울광장을 찾은 그들의 얼굴에는 6월항쟁의 빛만큼이나 짙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어느새 기성세대가 되고… 당시 고려대 87학번 신입생이었던 김영남(41·여)씨는 이제 두 아이의 엄마다. 김씨는 “시청앞 무대 위에서 ‘광야에서’를 부르던 것이 생생하다.”면서 “학생들이 주도하고 시민들이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참여했던 진정한 축제였다.”며 그 때를 기억했다. 운동권 학생은 아니었지만 원하는 것을 스스로 외치면서 실제 성취하는 희열을 맛보았기 때문이라고 김씨는 아스라이 그때를 되돌아봤다. 1987년 “독재타도, 호헌철폐, 직선제 쟁취”를 연호하며 6·10항쟁의 주역으로 섰던 대학생들은 대부분 40대 중년이 됐다. 항쟁에 참여했던 학생들의 모임인 ‘7080 민주화학생운동연대’ 회원들도 이날 서울광장에 섰다. 하지만 경찰이 에워싼 광장을 지켜보면서 “일생을 바쳐 일궈낸 민주화가 후퇴하는 것 같아 참담한 심정”이라고 한목소리로 말했다. ●다시 서울광장에 서게 되다니…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는 송세언(47)씨는 당시 3년차 직장인이었다. 송씨는 “22년 전 오늘 민정당 전당대회에서 노태우 전 대통령이 대선 후보로 지명됐다는 소식을 듣고 국민들이 들고 일어났다.”면서 “그날 오후 6시 광화문을 지나는 시민들에게 항의의 표현으로 경적을 울려달라고 전단을 돌렸는데, 6시 정각 일제히 경적이 울리는 것을 들으며 민주화가 오는 것을 느꼈다.”며 감격스러워했다. 하지만 송씨는 “투쟁은 우리 세대에서 끝내자고 친구들끼리 다짐했는데 다시 서울광장에 서게 되다니….”라며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면서 “광장이 통제되고 정부의 일방통행식 독주가 계속되는 걸 보면서 내가 뭣 때문에 온갖 희생을 치르면서 학생운동을 했나 하는 자괴감이 든다.”며 고개를 떨궜다. ●민주주의 성취감에 젖은건 아닌지 유시춘 6월계승사업회 사무총장은 이날 ‘6월항쟁 계승·민주회복을 위한 범국민대회 준비위원회 결성을 위한 대표자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 정동 대한성공회 대성당을 찾았다. 이원기 한대련 의장이 “현 정부는 권위주의적 치안통치와 사문화된 법과 관행으로 국민들의 권리를 옭죄고 있다. 6월항쟁 정신을 기리며 국민들이 행동에 나서야 할 때”라며 대국민 호소문을 낭독하자 유 사무총장은 잠시 눈을 감았다. 그는 22년 전 같은 장소에서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 집행위원으로서 노태우 민정당 대표의 대통령 후보지명 무효를 선언하는 문안을 직접 작성하고 발표했었다. 유 사무총장은 “22년만에 다시 민주주의를 되찾자는 선언문을 쓰게 될 줄은 몰랐다.”면서 “우리 모두가 민주주의를 얻었다는 성취감에 젖어 있는 동안 상황은 악화됐다.”고 한탄했다. 그러면서도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정국에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분향소를 만들고 수백만명이 질서정연하게 조문하는 모습을 보며 미래는 여전히 희망적이라는 것을 느꼈다.”고 평가했다. 박건형 김민희기자 kitsch@seoul.co.kr
  • [단절과 반목의 정치풍토 끊자] ④ 정치권 과제 좌담

    [단절과 반목의 정치풍토 끊자] ④ 정치권 과제 좌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쇄신과 통합이 화두가 되고 있다. 대통령을 비롯해 정치권 전반에서 소통의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대통령이 제왕적 권력을 지닌 상황에서 정치권이 이를 견제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가 남긴 과제를 정치권에서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 서울신문은 지난 2일 본사 편집국에서 구본영 부국장의 사회로 김민전 경희대 교양학부 교수, 김형준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 나경원 한나라당 의원, 김부겸 민주당 의원이 참석한 가운데 좌담회를 가졌다. 1 추모정국 민심 평가 →노 전 대통령의 서거에 대한 민심을 총체적으로 정리한다면. -김부겸 의원(이하 김 의원) 국민 감정을 미안함과 원망스러움으로 나눌 수 있다. 노 전 대통령을 지키지 못한 데 대한 미안함과 극단적 선택으로 인해 국민이 희망을 잃게 된 데에 대한 원망스러움이다. 국민은 “현 정부가 해도 너무 했던 것 아닌가.”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검찰은 정당하다고 항변했지만 매일 피의사실을 공표하고 사람을 궁지에 몰아넣고 생채기낸 부분이 분명히 있다. 모든 권력을 가진 현 대통령의 국정운영 기조가 서민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사회적 강자의 편만 들었다. 이번에 500만 조문객이 밀려든 것은 또 다른 형태의 국민의 적극적 의사표현이다. 대통령에 보내는 마지막 호소이자 경고다. 소통이든 화합이든 다시 생각해 달라는 경고의 메시지다. -나경원 의원(이하 나 의원) 국민 모두 안타깝고 애석하다는 생각이 많다. 여권으로서는 여러가지 생각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됐다. 국민의 마음이 갑자기 돌아선 것에는 그동안 이명박 대통령을 지지한 분들이 이명박 정부나 여권에 만족하지 못한 부분이 상당수 있다는 점이 반영돼 있다. 여권에도 반성의 기회가 될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에 대해서는 정부여당에 1차적 책임이 있다고 본다. 과잉수사나 보복수사를 떠나 국민에게 그렇게 비쳐진 것 자체가 책임질 일이다. -김민전 교수 노 전 대통령의 서거에 대한 민심은 개인적인 안타까움이 무엇보다 크다는 것이다. 그러나 참여정부를 거치면서 국민의 기대수준이 점점 높아졌는데 이명박 정부가 이러한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국민 반감이 표출된 측면도 분명히 있다. 최근 이명박 정부 들어 민주주의 후퇴를 우려하고 정책도 ‘있는 사람들’ 중심으로 가는 것 같다는 우려가 많았다. 또한 실업률이 높고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개인적 어려움을 이 기회에 같이 아파한 부분도 있다. ‘말없는 다수’라고도 볼 수 있다. 국민 개개인이 마음 속에 뭔가가 잘못되고 있다고 느끼면서 밖으로 드러내지 못하다가 이번 기회를 계기로 밖으로 한꺼번에 표출시킨 것이다. -김형준 교수 미안함과 분노, 성찰 세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노 전 대통령을 지켜주지 못한 데 대한 미안함, 전직 대통령을 죽음으로 내몬 현 정부에 대한 분노, 노 전 대통령이 지키려고 했던 가치의 재발견에 대한 성찰이 종합적으로 반영된 것이다. 한편으로는 한국 정치 문화에 ‘소용돌이 정치’와 ‘온정주의’가 내포됐다고 볼 수도 있다. 2 국민통합의 길 →국민 통합을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나 의원 정치권에서는 이번 일을 당리당략적으로 이용하지 않아야 한다. 사실 야당도 노 전 대통령 서거 이전에 ‘박연차 리스트’에 관련됐다고 하자 노 전 대통령과 차별화하면서 선을 그으려고 했다. 그런데 정국이 바뀌자 야당이 정치적 이해를 따지는 것처럼 보인다. 여당도 마찬가지로 정치적으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 두 번째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대통령 5년 단임제의 한계를 비롯해 개헌으로 접근해야 할 문제가 여러가지 있다. -김 의원 우선 대통령이 진심 어린 사과를 하셨으면 좋겠다. 국정 전반 상황과 노 전 대통령 문제에 대해 국민 마음을 다독여야 한다. 법무부 장관 등 관계자들의 책임도 추궁해야 한다. 대통령이 기본적으로 조치할 수 있는 부분이다. 야당은 전직 대통령을 지키지 못한 점을 감안해 더 겸손해져야 한다. 추모 열기를 정치적 유산으로 여기는 못난 행동은 하지 않아야겠다. 오히려 여당에 호소하고 설득해 법적·제도적 틀을 바꿔야 한다. -김형준 교수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정치권과 언론에서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가 ‘용서·소통·화합’이다. 가장 최상의 통합은 피해자가 관용을 베푸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여권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선 진보의 가치를 배격하지 말아야 한다. 여권에서 끊임없이 ‘잃어버린 10년’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진보정권 10년을 무능과 부패의 역사로 보는데 그런 속에서 통합은 어렵다. 역사는 항상 발전을 향해 간다. 지난 정부에서 잘된 것이 있으면 현 정부에서 인정하고 수용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끝까지 배제와 배격의 정치를 하고 있다. -김민전 교수 역대 정부가 보여주는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가 바로 ‘과도한 차별화’다. 이전 정부는 모두 잘못한 것이라고 치부하다 보니 진행돼 오던 정책 수단을 제한시켜 더 폭넓게 나아갈 수 있는 것을 방해한다. 대북정책도 그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일단 터를 닦아놓은 대규모 국책사업 등 중요한 공공정책들이 다음 정부로 넘어가면 중단된다. 다른 사업을 추진하며 재원과 국가 에너지를 낭비한다. 대통령 임기 5년 동안 시기를 세가지로 구분할 수 있을 것 같다. 첫 번째 시기에는 국민의 지지와 기대가 매우 높다. 이때 대통령은 자기 당 만들기에 나선다. 여기에 국민이 실망하면서 민심 이반이 나타나고 이때 야당을 비롯해 반대 세력에 의해 대선불복 현상이 나타난다. 노 전 대통령 때 탄핵정국과 이명박 정부의 촛불정국과 같은 상황이 그렇다. 2기에 들어선 대통령들은 다른 세력에 대한 불신이 강해진다. 대선 불복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중도진영을 더욱 불신하고 자기 세력만 챙겨 좌경화 또는 우경화로 나간다. 이 상태로 3기에 들어가면 민심 이반으로 지지율이 더 낮아지고 여당은 갈등과 분열을 경험한다. 이러한 불행의 첫 단추가 대통령의 자기당 만들기에서 시작된다. 대통령이 여당 챙기기에만 급급하다보면 민심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는 더 줄어들 수밖에 없다. -김형준 교수 18대 국회 들어 ‘속도전, 입법전쟁, 전투’ 같은 호전적 용어가 남발되고 있다. 여기에는 여당인 한나라당의 책임이 크다. 전투를 하면서 무슨 통합이 있겠나. 6월 임시국회부터는 각 원내대표가 이런 단어를 쓰면 안 된다. 정치는 화합과 통합이다. 통합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권력을 가진 세력이 중요한 정보를 야당에 줘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여당이 독점할 뿐 아니라 여당 내에서도 특정 계파가 독점하고 있다. 당연히 갈등요소가 생길 수밖에 없다. 대통령 역시 야당과 충분히 소통해야 한다. 이 대통령이 후보시절 “이념 과잉을 넘어 실용으로 가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이념 과잉으로 가고 있다. -김 의원 6월 국회부터 여당이 미디어관련법을 비롯해 갈등을 유발할 요소가 있는 무리한 법안을 거둬들였으면 한다. 야당도 추모열기를 이용할 게 아니라 노무현의 가치인 민주주의, 인권, 남북평화 문제에 관한 대안을 내놓고 국민과 여당을 설득하는 성숙한 자세로 가야 한다. 고인의 죽음을 국민 통합의 징표가 되도록 하자. -나 의원 대통령이나 정부는 좀더 국민과 소통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대통령이 정치에 대해 배제하는 부분이 있다. 정치를 배제한다는 것은 역시 소통을 멀리하는 것이다. 결국 각 주체의 역할이 중요하다. 여당과의 관계에서도 정부가 여당의 의견을 수렴해야 하고 야당과 정책 브리핑 제도 등을 도입해 야당이 스스로 협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특정 법안을 떠나 법안을 추진할 때 국민에게 널리 의견을 구해보고 야당과도 미리 소통해보도록 노력해야 한다. 야당도 이제는 정책적 문제로 여당과 논의하는 틀을 가져야 한다. 국회가 이념적으로 싸울 게 아니라 정책적으로 논의하고 어떤 것이 국민에게 좋은 것인지 평가받도록 전환해야 한다. 3 대통령 권한 견제 →제왕적 대통령의 권한을 견제하기 위한 제도는 -김 의원 제도개선을 얘기하기 전에 문제제기하겠다.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한 전문가들의 지적은 맞다. 그러나 그 정도로 수습하기에는 500만 추모 열기가 너무 뜨거웠다. 본질적 원인은 대통령이 국정 전체를 바라보는 데 착오가 있다는 점이다. 이제는 국정운영 기조와 소통방식을 모두 바꾸고 국민 설득에 나서야 한다. 먼저 국민에게 겸손하게 사과한 뒤 제도 개선으로 넘어가면 국민이 동의할 것이다. 현재 나타나고 있는 사회적 갈등을 치유하지 않은 채 덮어두면 더욱 커지기만 할 것이다. -김형준 교수 국회 중심으로 정치가 이뤄져야 한다. 노 전 대통령은 당정분리를 통해 열린우리당을 무력화시켰고 이 대통령은 당을 통해 국회를 지배하려 한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입법부가 행정부를 견제할 부분이 무너지고 있다. 여당이 입법부의 일원으로 행정부를 견제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공천제도를 개선하는 것도 그 중 하나다. 현재 정당이 국회 상임위 중심이 아닌 당정협의회 등 원외 비대조직 중심으로 움직이다보니 국회의원이 무력화됐다. 의원들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단순히 국회법과 정당법을 바꾼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강도 높은 쇄신안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한나라당 쇄신특위는 아주 중요한 책무를 지니고 있다. -김민전 교수 대통령의 권력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공천제도의 민주화가 매우 중요하다. 공천제도가 개정되지 않으면 국회의원은 대통령의 거수기가 될 수밖에 없다.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의 임기를 맞추면 대통령이 국회의원 선거에 개입하기 어려워져 공천제도가 어느 정도 개선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려면 개헌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현재의 헌법 구조는 1987년 민주화 이후 개정된 것이지만, 실질적인 민주주의의 이상을 다 녹여내지 못했다. ‘민주화 2기’에 맞는 형태를 반영할 수 있는 개헌이 이뤄져야 한다. -나 의원 검찰 내부의 개혁도 필요하다. 검찰총장이 직접 지휘하는 대검 중수부를 폐지하면 정치보복이라는 오해를 불식시킬 수 있을 것이다. 국회가 대통령을 제대로 견제하지 못한 것이 문제라는 말에 공감한다. 한나라당의 경우 대통령의 거수기보다는 계파의 거수기로 전락하고 있어 상당히 우려된다. 국회의원이 독립된 입법부로서 권한을 가지려면 상임위 중심의 국회, 원내중심의 정당 등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공천제도가 개선돼야 한다는 전제조건도 포함된다. 4 정치문화 개선 →정치 문화는 어떻게 개선돼야 하나. -나 의원 우리 정치문화를 보면 안 싸워야 될 것을 놓고 싸우는 게 많다. 정책적으로 충분히 타협될 수 있는 것도 이념화하고 정쟁화한다. 원내 중심의 정당이 되고 국회의원 개개인의 입법기관 역할이 보장된다면 자연스럽게 타협하는 문화가 형성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문화가 형성된 이후에야 제도 개선도 효과를 볼 수 있다. 개헌 문제에도 적극적으로 임해야 한다. -김형준 교수 역대 대통령이 크게 착각하는 것들이 있다. 첫 번째는 견제받는 것을 발목잡기라고 생각한다. 미국의 의회 정치가 강하고 능동적으로 운영되는 이유는 행정부가 입법부의 견제를 건강한 국회를 만들기 위한 예방적 차원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역대 대통령 모두 ‘마이웨이’식으로 고독한 결단가의 역할을 자처하는 것이다. 지금은 사람들이 자기의 가치를 몰라주지만 민심은 시간이 지나면 변한다고만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가 하는 일을 모두 옳다고 밀어붙이게 돼 민심과 멀어질 수밖에 없다. 국회와 정당의 정상화가 가장 시급하다. 원외가 당 대표로 있는 체제를 빨리 없애야 한다. 원외 대표가 비대해진 중앙당을 좌지우지하고 대통령과 주례회동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은 곧 대통령의 지시를 받아 당이 무력화된다는 의미다. 당의 운영 체제를 원내 중심으로 다지고 의원들이 자율성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대통령을 엄격하게 견제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김민전 교수 정당이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의 큰 이슈에 따라서 여기저기 휘둘리는 모습도 보인다. 어떻게 하면 정당을 더 건강하게 제도화시킬지를 함께 고민해 봐야 한다. 국고 보조금을 분기별로 나눠주지 않고 선거 당시 얻은 득표율에 따라 준다든지 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김 의원 결국 서로가 공존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적 인식에 동의해야 한다. 현재 한나라당이 대통령 권력과 의회권력, 지방자치 권력까지 독점하고 과잉질주하고 있지만 국민이나 민심이 옛날처럼 순응하고 따라가지 않는다. 돌이켜보면 부끄럽지만 노 전 대통령 탄핵 이후 국민이 줬던 과반의 힘을 열린우리당이 제대로 국민 편에서 발휘해보지 못하고 무너졌다. 이렇게 무서운 민심 앞에서 국회가 국민 공동체를 위해 할 일이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공존하고 상생해야 한다. 민주당은 소수 야당이기 때문에 지금은 격렬하게 주장할 수밖에 없다. 지금의 상황을 풀 힘은 대통령과 정부 여당에 있다. -김형준 교수 우리는 너무 다름만 얘기하고 같음은 얘기하지 않는다. 우리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가치에 대한 논의가 없다. 진보는 항상 진보만 얘기하고 보수는 보수만 고집한다. 다름보다는 같음을 좀 더 많이 얘기해야 할 시점이다. 정리 이재연 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사진 안주영기자 jya@seoul.co.kr
  • [사설] 광장의 열기 의회가 수렴하라

    현대사에서 광장은 종종 나라를 바꿔 왔다. 특히 21세기 인터넷 혁명의 시대에 접어들어서는 온라인에서 응축된 개개인의 에너지가 광장에서 분출되면서 정치를 바꾸고 사회를 변혁시켰다. 1987년 서울시청 앞 광장에 100만명을 불러모은 6·10항쟁은 대통령 직선제의 결실을 일궈 냈다. 2002년 효순이, 미선이의 안타까운 죽음과 이에 따른 반미(反美) 시위 역시 서울광장에서 꽃을 피우며 참여정부를 탄생시켰다. 지난해 쇠고기 촛불시위는 정부가 무엇이며, 어떻게 국정을 펼쳐야 하는지를 새삼 일깨우기도 했다. 그러나 광장이 역사의 영광만을 싹 틔운 것은 아니다. 이념과 계층의 갈등 속에 화염병과 최루탄, 죽창과 물대포가 춤을 추면서 사회를 갈라놓고 경제의 덜미를 잡기도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를 맞아 광장이 다시 꿈틀대고 있다. 2007년 대선 이후 설 땅을 찾지 못하던 야당과 진보진영 일각에서는 고인의 빈자리에서 현 정부에 대한 불만의 조각들을 모아 반정부 투쟁의 동력으로 삼을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와는 별개로 노동계 역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웅크렸던 자세에서 벗어나 이달 초부터 대대적인 하투(夏鬪)에 나설 태세다. 그런 분기(憤氣) 앞에서 정부는 이렇다 할 수습 능력을 보여 주지 못하고 있다. 경찰 버스로 서울광장을 꽁꽁 동여매고 입을 굳게 닫은 채 속수무책의 모습만 보이고 있다. 비판할 것은 비판하고, 요구할 것은 요구해야 하며, 겸허한 수용이 뒤따라야 한다. 그러나 거기에는 질서와 타협이 수반돼야 한다. 고대 그리스의 광장 아고라가 혼돈과 아귀다툼의 각축장이 아니라 직접민주주의의 요람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치열하게 논쟁하고 대립하면서도 상대를 존중하고 한 발씩 양보하는 시민들의 지혜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나라는 경기 침체의 한파 속에 무력도발 운운하는 북한의 위협에 직면해 있다. 어느 때보다 정치권의 역할이 긴요하다. 노 전 대통령 서거로 응축된 광장의 열기를 수용해 그들이 요구하는 바를 제도적으로 펼쳐내야 한다. 여야 정치권은 머뭇거리지 말고 즉각 6월 임시국회를 열기 바란다. 그곳에서 노 전 대통령 서거의 의미를 되새기고, 국민장에서 표출된 민의를 수렴할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국가의 안위와 민생도 함께 논해야 한다. 의회가 바로 광장이 되어야 함을 잊지 말기 바란다.
  • [김형준 정치비평] 섣부른 자신감과 막연한 기대감의 충돌

    [김형준 정치비평] 섣부른 자신감과 막연한 기대감의 충돌

    한나라당의 내홍이 깊어지고 있다. 4·29 재·보선 참패 이후 단합과 쇄신을 위해 청와대와 박희태 대표가 야심차게 추진했던 ‘친박 김무성 의원 원내대표 추대 카드’가 박근혜 전 대표의 싸늘한 반대로 무산되었기 때문이다. 박 전 대표는 ‘김무성 추대론’을 반대하는 이유로 “당헌 당규에 따라 원내대표 경선이 이뤄져야 한다.”는 특유의 원칙론을 제기했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재·보선 패인을 당내 분란 탓으로 돌리는 것에 대한 노골적인 거부로 보인다. “당이 잘해서 국민들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는 박 전 대표의 언급에서 보듯이 ‘김무성 카드’는 재·보선 패배를 서둘러 봉합하려는 주류 측의 임기 응변책에 불과하다고 판단한 것 같다. 민주화 이후 한국 정당사를 살펴보면 집권 여당 내에서 대통령과 유력 대권후보 간의 갈등과 대립은 보편적인 현상이었다. 그런데 과거에는 이러한 갈등이 집권 말기에 분출되었지만, 이명박 대통령과 박 전 대표 간의 갈등은 집권 초기에 노출되고 있다는 점에서 참으로 이례적인 것이다. 이것은 박 전 대표의 자신감과 이 대통령의 기대감이 융합되어 나타난 현상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들과 비교해 볼 때 지역과 이념이 없는 취약한 통치 기반을 갖고 있다. 반대로 한나라당의 전통적 지지 기반인 영남과 보수는 대선 경선과 총선 공천 파동을 거치면서 박 전 대표가 확고한 대표성을 갖게 되었다. 이 대통령은 수도권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지만 지역과 이념에 비해 지지 강도가 약한 것이 특징이다. 따라서 현 정부가 경제 살리기에 대한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면 민심은 급속하게 이반되고 덩달아 정부에 대한 심판은 강해진다. 이런 상황에서 선거를 치르면 치를수록 현재 권력이 미래 권력에 압도당할 수밖에 없다. 또한 친이 주류와 야권에 박 전 대표에게 대항할 만한 대권 후보가 부상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박 전 대표의 자신감을 높이는 요인이다. 한편 친이 주류는 집권 초기부터 권력 배분을 둘러싸고 원로그룹, 이재오계, 소장그룹 등으로 파편화된 반면 친박 비주류는 똘똘 뭉쳐 있는 것도 박 전 대표의 거침없는 행동을 가능케 하는 동인이다. 한마디로 박 전 대표는 현 상황을 92년 대선에서 여당인 민자당의 김영삼 후보가 노태우 대통령을 압박해 정권을 쟁취했던 상황으로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이 대통령은 입법 과정과 각종 선거에서 박 전 대표의 막강한 영향력으로 자신의 권위가 도전받고 있지만 97년 대선 당시 김영삼 전 대통령을 역할 모델로 삼고 있는 듯하다. 집권 여당의 이회창 후보는 대세론을 앞세워 김 전 대통령을 업신여기면서 강하게 압박했지만 결국은 실패했다. 김 전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보복할 것 같은 이회창 후보가 당선되는 것보다 야당인 김대중 후보가 당선되는 것이 퇴임 후에 유리하다고 판단해 이 후보 지지를 철회한 것이 패배의 핵심 이유였다. 친이 측은 한국의 대통령은 대선에서 누구를 당선시킬 수 있는 힘은 없지만 누군가를 떨어뜨리게 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을 굳게 믿는 듯하다. 이는 87년 이후 네 번의 대선에서 현직 대통령과 갈등을 일으킨 여당 대선 후보가 성공한 것은 단 한 차례에 불과했다는 사실에 기대고 있는 것 같다. 여하튼 박 전 대표의 섣부른 자신감이 책임감 결여를 낳고 이 대통령의 막연한 기대감이 정치력 부재를 가져오면서 한나라당 내 화합과 소통을 어렵게 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공멸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는 듯한 친이·친박에게 조기 전당대회 개최나 인적 쇄신은 근본적인 치유책이 될 수 없다. 그보다는 “저쪽이 무릎을 꿇고 망해야 우리가 승리한다.”는 오만과 증오 속에서 독버섯처럼 솟아나는 배제와 어둠의 정치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것이 좋든 싫든 정권 창출에 함께 참여했던 세력으로서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일 것이다. 명지대 정치학 교수
  • 조기 개통 물 건너간 호남고속철

    조기 개통 물 건너간 호남고속철

    정부가 호남고속철도 오송~광주 구간을 당초 목표보다 1년 앞당긴 2014년 완공하기로 기본계획을 수정·고시해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2012년 조기 개통은 물 건너가게 됐다. 14일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호남고속철도 오송~광주(광주송정역) 구간은 2014년, 광주~목포(목포역) 구간은 2017년 완공하는 내용의 호남고속철도 건설 기본계획 변경안을 관보에 고시했다. 이 변경안은 건설교통부가 2006년 8월 고시한 호남고속철도건설 기본계획에서 오송~광주 구간을 2015년 완공하기로 한 내용을 2014년으로 1년 앞당긴 것이다. 공사비도 당초 10조 5417억원(차량비 7535억원 포함)에서 7965억원이 증액된 11조 3382억원으로 늘었다. 또 광주 차량기지는 당초 광산구 유계동에서 같은 구 산정동·장수동 일대로 변경됐다. 현재 광주 송정리역의 이름도 광주송정역으로 변경됐다. 그러나 변경안에는 KTX 무안국제공항 경유 요구가 반영되지 않아 지역민들이 반발하고 있다. 전남도는 국토 서남권 발전을 위해 호남고속철도가 무안공항을 경유해야 한다며 노선변경을 줄기차게 요구해 왔다. 국토해양부는 그러나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이를 반영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호남고속철도의 2012년 조기 개통 무산에 이어 무안공항 경유 문제도 정부의 의지 부족으로 물거품이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실제로 충북 오성~전남 목포를 잇는 호남고속철 건설사업은 기본계획 수립까지 무려 20년이 넘게 걸렸다. 이 사업은 1987년 대선 공약으로 거론된 뒤 이후 총선과 대선 때마다 정치인들의 단골 공약으로 제시됐다. 그러나 새 정부마다 경제성과 우선사업 순위 등 각종 이유를 들어 조기 착공과 완공시점을 결정하지 못하면서 이 문제가 ‘지역 불균형’의 대명사처럼 입살에 오르내렸다. 전남도 관계자는 “정부는 호남고속철 건설이 늦은 만큼 공사를 추진할 때 지역민들의 의사가 적극적으로 반영돼야 한다.”고 말했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윙크왕자’ 이용대 전영오픈 2연패 도전

    ‘셔틀콕 황제’ 박주봉(일본 대표팀 감독)-김동문(캐나다 대표팀 코치)의 계보를 착실히 잇는 후배가 있다. 박주봉의 최연소 기록을 하나씩 갈아치워온 ‘윙크왕자’ 이용대(21·삼성전기)가 주인공. 화순중 3학년(당시 15세) 때 태극마크를 달아 박주봉의 최연소 국가대표 기록을 1년 앞당긴 이용대는 지난해 전영오픈에서 한국선수 최연소(19세5개월) 우승 기록을 갈아치웠다. 종전 최연소 기록은 박주봉의 21세. 내친 김에 이용대는 베이징올림픽에서 한국 배드민턴 최연소(19세11개월) 올림픽 금메달 기록도 세웠다. 이용대가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3일부터 영국 버밍엄에서 열리는 최고 권위와 전통의 전영오픈(총상금 20만달러) 배드민턴 슈퍼시리즈에서 2연패를 노리는 것. 이용대는 지난해 이 대회 남자복식에서 정재성(27)과 짝을 이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의 우상인 박주봉 감독은 남자복식(85~86년, 89~90년)에서 두 차례의 2연패를, 혼합복식(90~92년)에서 3연패를 이룬 것을 비롯해 총 9차례 우승을 차지했다. 쉬운 목표는 결코 아니다. 단짝인 정재성(27)이 군에 입대한 탓에 임시 파트너 신백철(20·한국체대)과 나서는 게 불안한 것은 사실. 하지만 신백철과 첫 출전한 독일오픈에서 단박에 우승할 만큼 둘의 호흡은 기대 이상이다. 이용대는 지난달 2일 입대한 정재성이 상무에 자대 배치를 받으면 다시 짝을 맞출 예정이다. 신백철과의 파트너십은 한시적인 셈. 하지만 정재성의 나이를 감안하면 장기적인 안목에선 이용대의 새 짝도 염두에 둬야 하는 게 현실. 그만큼 이번 대회의 중요성은 크다. 이용대는 또한 올림픽 금메달을 일궈낸 이효정(28·삼성전기)과 함께 혼합복식에서도 우승을 꿈꾼다. 지난해 8강에서 중국의 젱보-가오링(세계 15위) 조에 1-2로 아쉽게 무릎 꿇은 한(恨)을 반드시 풀겠다는 각오다. 남자복식보다 우승 가능성은 외려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둘 중 하나만 우승을 한다면 이용대는 올시즌 3개 슈퍼시리즈에서 연속 우승을 하게 된다. 베이징올림픽에서 은메달을 일궈낸 세계 3위 이경원(29·삼성전기)-이효정 조의 2연패 여부도 기대된다. 대선배인 정명희-황혜영 조(86~87년)와 정소영-길영아 조(93~94년)가 이 대회 여자복식 2연패를 이룬 바 있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씨줄날줄]L자형 불황/우득정논설위원

    노무현정부는 김대중정부 말기 경기부양을 위해 남발한 신용카드 사태를 수습하느라 2년을 허비해야 했다. 노무현 정부는 가계의 부담을 덜어 주기 위해 한국은행을 압박, 저금리정책을 구사했다. 대선 때 공약한 연 7% 성장은 고사하고 5% 성장에도 미치지 못하자 2004년초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경기 논쟁’이 벌어졌다. 우리 경제가 일시적인 성장 후 다시 침체하는 ‘W자형 불황’(더블딥)의 늪에 빠질 것이라는 견해가 있는가 하면 성장동력 상실로 ‘L자형 불황’(일본식 장기불황)에 접어 들었다는 극단적인 견해도 있었다. 그러자 정부는 회복에 다소 시간이 걸릴지 몰라도 머잖아 고개를 치켜들게 될 것이라며 ‘U자형’ 회복곡선을 제시했다. 지난해 9월 미국 리먼브러더스 파산 이후 글로벌 금융위기가 실물경제로 전이되면서 이명박정부는 올 하반기부터 회복세로 돌아설 것이라는 관변단체와 학자들의 예측에 기대어 ‘U자형’ 회복 가능성에 목을 매다시피 하고 있다. 공격적인 금리 인하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재정의 조기집행 등은 이러한 기대와 판단에 근거한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금리를 낮추고 유동성 공급과 재정 투입을 확대해도 각종 경제지표는 끝 모를 추락만 거듭하고 있다. 실질소득 감소로 지갑이 얄팍해진 데다, 가계와 기업의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갈수록 약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디플레의 전형적인 징조인 ‘유동성 함정’에 빠져든 것이다. 정부 일각에서는 국제통화기금(IMF)의 한국경제 올 마이너스 4%, 내년 4.2% 성장 전망을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해 ‘V자형’ 회복을 점치기도 한다. 하지만 1987년 블랙먼데이를 1주일 전에 정확하게 예측한 세계적 투자분석가 마크 파버는 ‘세계 경기사이클을 심하게 타는 경제’라는 이유로 비관적이다. 그는 특히 높은 가계 부채에 주목한다. 미국과 중국 등 주요 교역국이 되살아나지 않는 한 한국의 불황 단독 탈출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다. 2년 전 세계 금융위기를 예견한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지난해 말 최근 파산에 직면한 동유럽권 국가들과 함께 한국 등 아시아 3개국을 금융위기에 직면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지금 휘몰아치고 있는 경제한파의 끝은 과연 어디인가. 우득정 논설위원 djwootk@seoul.co.kr
  • [진보에 길을 묻다 7] “민주노총 위기는 계급연대·사회연대에 소홀했던 탓…비정규직에 따듯한 손 내밀어라”

    [진보에 길을 묻다 7] “민주노총 위기는 계급연대·사회연대에 소홀했던 탓…비정규직에 따듯한 손 내밀어라”

    ”비정규직과 미조직 노동자들을 위한 사업에 민주노총의 예산과 인력 50% 이상을 배정해야 한다.그래야만 그동안 잃어버린 운동성을 회복하고 계급연대와 사회연대를 통해 본연의 위상을 되찾을 수 있다.”  22년을 노동현장에서 활동가로 살아온 한석호(45) 진보신당 확대운영위원은 최근 성폭력 파문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민주노총의 활로를 찾기 위해선 이 방법밖에 없다고 단언했다.’진보에 길을 묻다’ 시리즈 7회 주인공으로 지난 23일 서울신문과 만난 그는 민주노총이 지금의 어려움에 처하게 된 원인을 “일부의 권력화 문제,정파간 갈등도 있고 투쟁력과 협상력이 떨어진 문제도 있겠지만 가장 근본적인 것은 운동성의 상실”이라며 “2000년대 초반부터 노동운동의 위기가 운운될 때 수많은 대책과 논의,대안들이 언급됐지만 그 가운데 10%라도 실행됐다면 작금의 상황에 몰리지 않았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지난해 말부터 인터넷 매체 ‘레디앙’에 ‘한석호의 노동운동과 나’란 제목의 자기 성찰 시리즈를 연재하고 있는 한석호 위원은 성폭력 파문이 현장활동가들에게 가져온 엄청난 심리적 타격을 소개하면서 “민주노총이 대기업 중심의 조직된 노동자(조합원)만을 대상으로 ‘밥그릇 챙기기’에 급급한 조직이란 인식을 바꾸지 않고선 한발짝도 전진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처음 운동을 결심하게 만들었던 아버지와 지금 운동의 동력이 되고 있는 딸 등 내밀한 얘기도 털어놓았다.  그는 사실 민주노동당 분당을 가장 앞장서 주창하고 이를 관철시켰던 인물.분당 기획 문서 ‘진보신당을 창당하자’를 작성했다.그래서 1년이 지난 지금도 민주노동당의 다수파인 자주파로부터 ‘분열주의자’란 숱한 ‘악플’을 받고 있다.그는 끝까지 함께 가야 한다고 했던 노회찬 심상정 진보신당 공동대표 등을 격렬한 논쟁 끝에 돌려놓은 과정을 돌아보며 “자주파가 드러낸 종북주의와 패권주의 문제는 일반인이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이었고 “오랜 시간 누적된 문제”여서 분당이 불가피했다고 설명했다.  또 분당을 통해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영향력이 약화됐다는 다수의 관측과 달리 “오히려 쓸모없는 내부 논쟁에 기진맥진하는 대신 자기 정체성을 찾아나가는 긍정적 측면이 있다.”고 분석해 눈길을 끌었다.  노동운동에 뛰어든 지 22년 동안 민주노조운동과 진보정당운동을 매개하는 데 한몫 했다고 자부하는 그는 “보궐선거 등의 계기를 통해 선거연합 등은 생각해볼 수 있겠지만 먼저 민주노동당이 과거 종북주의나 패권주의에서 탈피했다는 것이 확인되기 전까지 다시 합치는 일은 어렵지 않겠느냐.”고 되물었다.또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반(反)MB 전선 구축에 대한 사회적 압력이 드높아질 것이라고 예상하면서도 민주당과도 힘을 합치는 식의 통합 논의에는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오히려 미조직 노동자와 비정규직,기층 민중 등의 계급연대와 사회연대를 통해 진보정당 건설의 기반 확대에 힘을 집중하는 것이 더 절실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운동권내 지위를 스스로 매긴다면.  대중적으로 유명하지도 않고 내세울 것도 없는 사람이다.추진력 있는 조직가,투쟁 전문가이며 노동운동 진영의 분류법을 따르자면 중앙파의 핵심 참모 중 한 사람이며 정당운동 진영 분류법을 따르면 평등파의 영향력 있는 활동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말할 수 있을 것 같다.중앙파의 핵심 참모 그룹이라면 지금은 지도자급이 됐지만 심상정과 연구자로 돌아선 손낙구,신언직,이근원 등 너댓 사람을 포함시킬 수 있을 것 같다.  ●조직운동가로서 민주노조운동 20년을 평가한다면.  1987년 대파업투쟁 이후 대중적 노동조합운동 시대가 시작돼 민주노조운동의 토대가 구축됐다면 90년에는 전노협 시대가 열려 민주노조운동을 사수하기 위한 선봉대로서 핵심 역량을 구축하던 단계였다.95년 민주노총 시대가 열리면서 민주노조운동이 ‘시민권’을 획득하며 양적으로 확산됐다.  민주노조의 임투와 단협 투쟁은 사회적으로 전체 노동자의 임금을 상승시키는 효과가 있었으며 노조 사수 투쟁은 민주주의를 확장하는 측면이 있었다.  그러나 97년 IMF 체제 이후 형식적 민주주의가 갖춰지고 노조가 시민권을 얻고 자본이 노동자를 정규직과 비정규직,대기업과 중소기업,남성과 여성등으로 분핱통치하면서 조직된 노동자,조합원들만의 투쟁은 ‘자기 밥그릇 챙기기’란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  현재 민주노조운동을 비관적으로 요약하자면 ‘육지와 연결된 다리마저 끊어진 섬’이라고 할 수 있다.따라서 비정규직이나 국민들과 만나려면 헤엄을 치든 쪽배를 타든 택일해야 할 상황이다.80만 조합원을 거느린 조직으로 양적인 면에서 성장했지만 질적으로는 저하됐다고 단적으로 표현할 수 있겠다.  ●성폭력 사건으로 민주노총 위상에 금이 갔다.어떻게 보는지.  한마디로 참담하다.운동한답시고 돈도 못 벌고 가족도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영예를 얻지 못하면서도 단 하나,우리 사회를 살기 좋은 사회로 만드는 데 이바지한다는 자부심 하나로 버텼는데 딸에게도 노동운동을 한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얘기할 수 없도록 만들어버렸다.  이번 사태를 둘러싸고 크게 세 가지로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첫째 조직강화특위장이라는 핵심간부에 의해 성폭력 사건이 저질러졌다는 점,그것도 직장에서 쫓겨나고 감옥에 갈 수 있는 상황에서도 수배 중인 위원장의 도피를 도운 여성 조합원을 대상으로 했다는 점은 그 자체로 용납이 안 된다  더 큰 문제는 그 사건을 접수한 집행부의 태도였다.2차 진상조사위의 조사 결과를 보아야겠지만 피해자측의 기자회견이 사실이라면 피해자들을 더욱 큰 고통으로 밀어넣었던 것은 신속하고 엄격하게 처리했어야 할 지도부가 오히려 사건을 은폐하고 감추려고 했고 그 과정에서 피해자를 찾아가 회유하려 했다는,2차 가해를 가했다는 점이다.운동이나 인권을 떠나 상식적으로 용납이 안 된다.  마지막으로 사건이 처음 언론에 보도됐을 때 그 책임을 언론에 떠넘기고, 집행부 책임을 회피하고 자리를 보존하기 위해 “개인적 문제이므로 조직 차원에서 사과할 것이 없다.”, “상대 정파가 집행부를 몰아내기 위해 사퇴 공세를 취하고 있다.”는 등으로 책임을 회피하려고 했던 것이 민주노총이 ‘막장’ 상태에 이르렀다고 보았다.  ●2005년 강승규 전 부위원장 비리 이후 또 지도부가 총사퇴했다.  입이 백개라도 할 말이 없다.강승규 파문 이후 4년 만에 또 문제가 발생했다.시민권을 획득한 민주노총이 운동성을 상실한 필연적인 결과라고 본다.운동성을 상실한 운동에 권력만 남고 자기 밥그릇 챙기기만 남았다.근본적인 혁신을 하지 않는 다면 민주노총은 또다시 이런 곤혹스러운 상황에 맞닥뜨릴 것이다. ●운동권이 비판하던 정부의 회전문 인사가 민주노총에도 있다는 지적이 있던데.  민주노총이 시민권을 획득한 뒤 운동성을 상실하고 권력화 성향만 일부 남아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아쉬운 점은 많은 활동가들이 묵묵히 헌신하고 있는 점이다.권력의 위치에 올라갈 생각도 없이 노력하는 이들까지 도매금으로 넘어가는 건 가슴아픈 일이다.  우리가 한국노총을 비판할 때 커다란 논거였던 하나가 전임이 해제돼도 한국노총을 기웃거리거나 권력을 좇아 가거나 한다는 것이었다.그러나 한국노총만큼 많거나 일상화되지는 않지만 있다.전임자 역할이 끝나면 사업장,현장으로 돌아가 일을 하고 또 역할이 주어지면 나와야 하는데 무슨 선거다,직책을 맡아야 할 일이 있으면 서로 맡겠다고 다투는 일이 발생한다.  전임이 끝났는데도 현장으로 복귀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성폭력 파문의 당사자도 현장으로 돌아가지 않고 기웃거리다 이런 일을 저지른 것이다.스스로 운동성을 버린 상태였다.  다행인 것은 안 그런 이도 많다는 것이다.금속연맹 위원장을 하면서 2002년 발전파업 이후 지도부가 총사퇴했을 때 백순환 민주노총 비상대책위원장은 전임으로 8~9년 역할을 한 뒤 대우조선으로 내려가 작업복을 입고 그라인더를 잡았다.한화 매각이 논의되자 위원장 출마자가 경험있는 이도 필요하다며 단위 사업장 부위원장으로 도와달라고 하자 민주노총 비대위원장까지 맡았으면서도 기꺼이 응해 돌아왔다.현장 노동자들은 참으로 존경할 만하다고 하고 다른 이도 저렇게 해야 하는데 라고 입을 모은다.  ●일부에선 정파간 갈등이 문제의 본질인 것처럼 보도했는데.  민주노총에 정파 문제 있는 것 맞지만, 원인과 이유를 따지지 않고 모든 것을 정파문제로 치부하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성폭력 사건에 국한하면 정파 문제는 “정파적 이해로 해석한 집행부의 문제”였다고 판단하고 있다.사퇴한 국민파 집행부와 경쟁하는 이른바 중앙파와 현장파는 오히려 공세를 취하지 않고 입조심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총사퇴 공방이 벌어진 시발점은 국민파 안의 세 가지 부류 가운데 한 부류 안에서 였다.정파관계가 작용했다기보다는 사퇴하지 않으려고 하는 이가 그런 식으로 대응했다.  ●과연 무엇이 잘못된 건가.  투쟁력도 없고 협상력도 없고 전노협 시절과 비교하면 내부 조합원들로부터도 신뢰를 얻지 못하고 노사정위를 찬성하든 반대하든 교섭력이 없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지금까지 네 차례 지도부 총사퇴를 동일한 시각에서 접근하던데 엄밀히 분류할 필요가 있다.1998년 1기 노사정 합의,2002년 발전노조 총파업 이후 지도부 총사퇴는 투쟁과정의 오류에 책임을 지는 내부적이었던 것인 반면 2005년 강승규 비리, 2009년 성폭력에 따른 총사퇴는 외부에서 밀려온 거대한 쓰나미였다.  문제의 심각성은 쓰나미가 몰려왔는데도 민주노총은 국민들로부터 고립돼 있고 조직 바깥의 90%가 넘는 비정규,미조직 노동자들에게 자기 밥그릇만 챙기는 조직으로 인식되고 있는 점이다.  ●활로를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민주노총에는 권력화 문제도 있고 정파간 갈등 문제도 있다.투쟁력과 교섭력이 약한 문제도 있지만 가장 핵심적인 것은 운동성을 잃었다는 것이다.  계급연대와 사회연대에 소홀했다는 것이다.또 국민들의 삶을 옥죄고 있는 교육, 의료, 주택, 노후 등의 복지문제, 21세기의 새로운 가치인 여성, 소수자, 생태문제 등 사회 다른 부문에 연대하지 않고 있다.이 지점에서 노동운동 모두의 반성이 있어야 한다.  비정규직, 미조직 사업에 실제 역량을 투입하는 것이다.민주노총 예산과 인력의 절반을 비정규, 미조직 사업에 투입해야 한다.복지와 21세기의 가치와 연대하여 투쟁하는 것이며 그렇게 싸우다 보면 비리,성폭력,권력화의 문제나 정파간 갈등도 해소되는 것이다. ●민주노동당 분당이나 민주노총의 방향 상실 등에 대한 현장활동가들의 소회는. 어제도 노동운동 활동가들과 파주 감악산에 갔는데 “노동운동한다고 말하기 창피하다.”는 반응이 대다수다.”청춘이 아깝다.“조합원들에게 미안하다.”는 반응도 있다.자리를 탐하지도 않고 이름도 없이 열심히 살아온 이들이 왜 이런 고통을 느껴야 하는지 자괴하는 분위기다.그래도 활동가들이라 제 버릇 남 못 준다고 어떻게 이 상황을 극복할 것인지 얘기를 나눴다.  나같은 경우 “딸이 커서 보다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희생하고 헌신했는데 이제 딸이 비정규직이나 실업자가 되는 세상을 물려주게 생겼다는 자괴감이 드는 것이다.  ●지나치게 아파해선 안 될 것 같은데.  지금까지는 그렇다고 해도 앞으로 극복될 수 있다는 희망이 보이면 의욕을 보일 수 있겠다 싶은데 과연 그게 될까.민주노총이 지금은 혁신을 얘기하고 대안을 내놓고 있는데 이게 소나기 피해보자에 그치고 관심에서 멀어지고 나면 언제 우리가 혁신을 고민했느냐는 식으로 나오지 않을가 싶어서다.이 사건 때문이 아니라 그 고통은 더 내적으로 상처를 주면서 스스로를 갉아먹을 것 같다.강단을 길러야겠다.2000년대 초반부터 노동운동의 위기론이 나오면서 혁신하자는 좋은 내용들,수많은 분석들,대책들을 다 내놓았는데 그 중에 10%만 실천했어도 오늘처럼 고립된 상황은 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 많은 과제들을 실천하지 못하고 딱 하나,직선제라도 해보자 했는데 이 직선제가 어쩌면 조직을 초토화,식물 상태에 빠뜨리고,복수노조와 맞물려 치유할 수 없는 분열을 경험하지 않을까,그런 분석들 때문에 아파했던 것 같다.(계속)  인터넷서울신문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진보에 길을 묻다 7] “분당으로 양당 모두에게 도움 됐다”

    ●민주노총 지도부를 사상 처음 직선제로 뽑는다는데도 국민들은 아무도 이를 모르는 사실이 민주노총의 현주소를 대변하는 것 같다.  맞다.규약대로라면 지금 단게에서 조합원들에게 마음의 준비라도 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알리는 일마저 소홀했다.직선제를 도입하는 규약 개정만 해놓고 초래할 상황들에 대해 심도있게 생각하지 못했다.크게 두 가지 쟁점이 있는데 투표권을 전조합원에게 줄 것인지,조합비를 낸 조합원에게만 줄 것인지가 있고 두번째는 투표소 설치 문제가 있다.첫 문제는 조합비를 내야 하는 질서가 무너질 수 있고 두 번째로는 투표소 설치와 감독을 엄밀히 할 것인지,모든 조합원 사업장에 설치할 것인지가 굉장히 심각한 문제다.창피한 얘기지만 경남본부,대전본부, KT노조 등 부정투표 논란 등의 문제가 현재도 불거지고 있는데 투개표에 대해 감독이 제대로 안되면 필히 부정선거 시비로 갈 거다.해답을 못 찾고 이러지도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빚어질 수 있다.  선거를 연기하자,아예 직선제를 없애버리자,직선제는 가되 경선 대신 통합지도부를 구성하자,민주노동당 식으로 임원 후보가 다 나가 1위가 위원장하자 다양한 얘기가 나오는데 지도부 보궐선거 뒤에 본격화될 것이다.보궐선거 지도부가 곧바로 해결해야할 난제 중의 하나다.  ●금속노조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것으로 알고 있다.대기업 노조의 한계가 가장 두드러진 것이 금속노조인데.  민주노총과 같은 맥락에서 금속노조도 똑같은 문제에 봉착해 있다.그러나 그래도 금속노조가 민주노총에서는 가장 건강하다고 할 수 있다.민주노총이 파업하라면 파업하고 비정규직 사업에 관심을 쏟고 있고 사회문제 실천에서 앞서있다.내부에서 논란이 있지만 정갑득 위원장 기자회견에 정부나 자본측에선 콧방귀도 안 뀌었지만 일자리 나누고 지키기에 협력하자는 메시지는 민주노총 바깥에 던진 메시지에 의미가 있다.  그나마 건강성이 확보되는 것은 역사성 때문이다.87년에 주축이었고 전노협 시대 큰 싸움을 어렵사리 계속 해내 노조를 지켜냈다.여기에 정파의 순기능 덕도 있다.서로 조합원 지지를 얻으려고 경쟁하다보면 조직이 발전하는 측면도 있다.  또 체계적으로 훈련되고 학습된 조합원과 활동가들이 상대적으로 많았던 이유도 있다.  ●민주노총 안에서의 정파간 갈등을 풀려는 움직임은.  ‘다름’의 문제를 ‘틀림’의 문제로 대응하고 판단하는 한국적 풍토가 있는 것 같다. 상대방을 향한 비판이 내부를 향해서는 작동하지 않는 문제가 있다.  지난 98년 노사정 합의와 총사퇴 이후 정파갈등이 매우 심각해 대의원대회가 무산되고 유회되는 등의 일이 반복됐다.선거에서의 격렬한 갈등 때문에 민주노총 힘이 반감되는 상황에 이르는 점을 보고 어느 쪽이 집행부가 되더라도 힘을 합치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란 인식이 싹텄다.  사실 성폭력 파문이 터지기 전인 지난 1월21일 대의원대회를 앞두고 정파들의 비공개 간담회가 시작돼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민주노동당 분당은 정말 불가피했나.  분당 뒤에 친한 동지가 ‘같이 운동을 해왔고 앞으로도 함께 운동할 사람에게 종북파란 딱지를 붙였는데 평생 괴롭지 않겠느냐.’고 얘기했을 때 운동하는 사람으로서 평생 안고갈 부담이라 생각했다.  선도탈당파가 내세운 분당의 원인은 크게 두 가지였다.첫째 종북주의 문제다. 2006년 10월 북한 핵실험이 나왔을 때 민주노동당 내의 격렬한 내부 논쟁이 있었다.다수파인 자주파는 미국에 맞선 자위권을 인정해야 한다고 했고 평등파는 모든 핵을 용인해선 안된다는 것이 진보란 이유로 반대했다.일심회 때도 자주파는 이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었고 평등파는 공당의 정보를 북한 정보원에 넘기는 건 해당행위란 일관된 입장을 갖고 있었다.  둘째 패권주의 문제인데 다수파가 선거 때마다 당권을 장악하기 위해 당비 대납, 대리투표, 위장전입 등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상황이 몇년 간 누적된 것이다.이런 문제를 지적하면 그것이 왜 문제냐는 태도를 보이거나 노선을 관철하기 위해 쓸 수 있는 수단 아니냐고 하는 식으로 대응했다.우리로선 맞서서 타락하든가 결별하든가 두 가지 방법밖에 없다고 보았다.난 개인적으로 패권주의에 더욱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보았다.  통합을 하든 할 수 있지만 현재 시점에서 통합이 안된다고 본다.그 이유는 자주파가 패권주의적인 양태를 보여왔던 것이 전혀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지난 1월 민주노동당 최고위원 선거를 보고 다수파가 무섭다는 생각을 했다.  ●이쪽에서 ‘오버’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올 법한데.  겪어보지 않은 이들은 모른다.2001년 용산 지구당을 만들자고 해서 사업을 하는데 어느날 갑자기 인천에서 100여명이 당적을 용산으로 이동하면서 빼앗아갔는데 그들 중에 결혼하지 얼마 안 된 부부에 남성들이 몇명 얹혀 사는 것이 확인됐다.대리 투표 문제가 잦아 징계도 많이 줬는데 고쳐지지 않았다.조승수 전 의원이 당대표 경선 나갔을 때는 그가 당선되면 국고보조금을 받을 수 없다는,사실과 다른 문자메시지를 날린 것이 확인됐다.  종북파란 안 좋은 감정을 갖고 한 표현보다는 자주파가 적절한데 분당 과정에서 그쪽의 핵심 리더를 만나 ‘절망스럽다.한 당에 같이 하려면 룰을 지켜야 하지 않느냐.민주주의가 아니더라도 룰이 지켜질 수 있다는 전제가 없으면 상대에게 나가버려라고 하는 것과 같다.’고 따졌더니 ‘몰상식이라 생각하지 않는다.판단의 차이’라고 하더라.그 때 분당을 더욱 확고히 결심했다.  ●짧은 기간 분당을 밀어붙였다면 반대로 통합할 때도 빨리 할 수 있는 힘이 델텐데.  두 달 만에 (분당을) 밀어붙일 수 있었던 것은 밑바닥에서 용솟음쳐 올라온 힘이 당시까지도 분당은 안 된다는 노회찬 심상정 단병호 시도당 위원장 등의 마음을 돌리게 만들었다.역으로 민주노동당이 혁신하고 이것이 확인되면 각종 선거나 실천에서 연대하고 연합하면 신뢰감이 회복되고 하면 통합하든 상시적인 선거연합을 하든 그 가능성을 부정하지 않는다.  분당했기 때문에 두 당의 영향력이 약화되고 당선자를 못 냈다는 평가가 대세를 이루는데 사실 분당 않더라도 그 수준을 벗어날 수 없었다고 본다.노회찬 심상정이 비록 낙선했지만 나름대로 돌파할 수 있었던 것은 분당 과정에서의 역할을 보고 지지세력이 늘어난 측면도 있다.(분당으로 힘이 약화됐다면) 대선 때 권영길 후보의 낮은 지지율을 설명할 길이 없다.  분당되고 나서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측면도 있다.상대보다 더 잘하기 위해 노력하고 민주노동당도 민생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오고 진보신당 안에서도 최선을 다해 뭔가 만들어내려고 노력하고.  (진보신당은) 밑으로부터의 자발성이 살아났다.민주노동당 같으면 싸우느라고 기진맥진하는데 이제는 자신 소신대로,민주노동당은 민주당과의 논의를 해볼 수 있고 진보신당은 편하게 노선과 흐름에 따라 가는 거다.  우리는 ‘촛불당원’이라 표현하는데 당원 1만 5000명 가운데 60%가 새로 들어온 당원이다.민주노동당 세대 당원은 40%밖에 안 된다.새로 들어온 당원들은 “예전 민주노동당은 맞는 것 같기도 하면서 뭔가 칙칙해 망설였다.”고 말한다.진보신당이 뜨면서 칼라TV 같은 거,과거 같으면 ‘어느쪽에서 하지.(다른 쪽에서 하는 거라는 말 듣고) 그럼 안 되지.’하는 식으로 바로 막혔는데 지금은 제안하고 실천하면 바로 사업이 돼버리는,창의성과 역동성이 발현되는 측면이 있다.  ●앞으로 3~4년 뒤 두 당의 모습을 그려본다면.  동시에 똑같은 문제를 놓고 공방과 고민이 있을 것이다.MB정부가 이렇게 막무가내식으로 밀어붙이는 기조를 계속하면 민주당과 시민사회를 통괄하는 반MB 전선 구축이라는 난제에 어떤 식으로든 입장을 취해야 할 것이다.민주노동당은 반MB 전선 구축에 찬동하는 이들의 숫자가 조금 더 많을 것이고 진보신당 안에선 그런 생각을 가진 이들은 극소수일 것이고 당론으로는 꿈도 못 꿀 얘기인데 대신 강한 압박을 받을 것 같다.반MB 전선에서 왜 따로 나가느냐는 강한 압박을 받을 것 같다.  이미 일부에서는 그런 그림이 그려지고 있다.반대하는 이도 있고.진보신당이 왜 그렇게 어렵냐 하면 87년 민중의 당 시절,독자적인 세력화와 비판적 지지로 갈라졌던 것과 유사한 일이 벌어질 것이다.  진보신당은 독자적 정치세력화에 계속 매달려온 사람들이어서 그런 선택은 어려울 것이다.   ●진보정당 운동의 앞날을 예측한다면.  민주노동당은 민족주의 정당으로,진보신당은 사회주의와 사민주의,자유주의 연합 정당으로 위치지을 수 있다.얼마 전 여론조사에서는 당내 여론의 가장 많은 이가 사민주의로,27% 정도가 사민주의로 가자는 의견이었다.  진보정당운동 재편의 축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통합이 하나이고 사노련과 사회주의정당건설 준비모임 등을 아우른 사회주의 정당으로 갈 것이냐,진보정당으로 갈 것이냐가 두 번째다.사회주의 정당을 건설할 만큼 내용도 실력도 없기 때문에 우회로를 걸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물론 언젠가는 사회주의 정당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데 전적으로 공감한다.민주당과의 반MB 전선에는 절대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다수의 뜻에 따라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절대로 그 안에서 우리 쪽으로 끌어올 수 없다는 것은 역사적으로도 증명이 됐지 않은가.  ●주대환 사회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는 대통합을 외치는데.  대한민국을 긍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데 오늘의 대한민국은 기층 민중의 축과 지배세력의 축이 충돌하고 타협하면서 만들어진 것이다.대한민국을 긍정한다는 것은 민중들이 끌고 가려 했던 축에 대해 인정한다는 것이다.그러나 이승만 박정희 친일파 지배세력이 끌고 가려 했던 대한민국마저 뭉뚱그려 인정하라고 하면 잘못된 얘기라 할 수 있다.근거가 잘못돼 있고 본인이 가고자 하는 운동의 길에 설명이 필요하니까 그런 것 아닌가 외람되지만 그렇게 생각한다.진보정당 실험은 실패했고 미국식 양당제로 가야 한다는 취지에서 진보세력은 민주당과 손잡고 가자,이런 식으로 주장하는데 난 동의하지 못 하겠다. ●한석호가 걸어온 길  경북 예천에서 태어나 용산고를 졸업한 뒤 1983년 서강대 도시행정학과에 입학했다.아버지가 노동자로 힘겨운 삶을 영위하는 것을 보고 아버지 같은 노동자들이 힘들게 살지 않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결심을 하고 학생운동에 뛰어들었다.87년 6월 항쟁 때 처음 구속돼 4개월을 복역했다.박종철이 사망하기 일주일 전 서빙고분실에 끌려가 물고문을 당했다.이듬해 인천에서 노동운동을 시작,22년째 노동운동에 몸담고 있다.인노협 선봉대로 역량을 인정받은 그는 90~95년 전노협 선봉대와 조직 쟁의를 담당했고 96년 민주금속연맹을 조직해 쟁의 담당으로 일했고 98년 금속연맹(민주금속연맹 자동차연맹 현총련) 등에서도 마찬가지 역할을 했다.  서울의 경찰서란 경찰서는 다 가봤다고 할 정도로 각종 집회와 시위 등을 기획하고 주도했다.스스로도 “수만명 앞에서 선동하는 것은 겁이 나지 않은데 카메라 앞에만 서면 잔뜩 긴장한다.”고 너스레를 떨 정도.  1999년 주 40시간 쟁취투쟁과 2001년 대우자동차 정리해고 반대투쟁에도 구속돼 ‘별’이 세 개인 그의 복역 기간은 2년1개월로 상대적으로 짧은 편.  2004년 노조운동 진영 안의 최대 정파로 불리는,평등사회로 전진하는 활동가들의 연대 ‘전진’ 창립을 주도해 임시의장,조직위원장,집행위원장 등을 맡았다.2007년 민주노동당 분당기획 문서 ‘진보신당을 창당하자’를 작성하고 기획자 및 조직자를 차처했다.지난해부터 진보신당 확대운영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노동운동 판에서 초유의 일로 보이는 ‘노동운동과 나’란 제목의 시리즈를 연재하고 있다.1월24일 이후 연재가 끊긴 것은 성폭력 파문으로 인한 괴로움 때문이라고 하면서 조만간 다시 시작해 연말까지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분당 고민하면서부터 진보신당 창당까지 시간대별로 일지를 기록할 정도로 꼼꼼한 면모가 있다.  어딜 가나 무지개 사회주의자라고 자신을 소개한다.평등 자유 민주 생태 여성 소수자 양심적인 기업인까지 아우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다른 사상과 이념을 존중하는 사회주의여야 한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진달래 사회주의를 하고 싶다는 얘기도 곧잘 곁들이는데 진달래처럼 자기를 드러내지 않으면서 가는 그런 모습이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사막에 홀로 떨어져도 운동의 씨앗을 뿌리자.”는 소신을 갖고 있다고 했다.
  • 오바마노믹스 내주부터 본격화

    오바마노믹스 내주부터 본격화

    │워싱턴 김균미특파원│버락 오바마(얼굴)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새해 들어 취임 준비를 본격화하고 있다.오바마 당선인은 4일 가족들과 함께 워싱턴 시내 호텔에 입주하며 5일부터는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과 해리 리드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 등과 만나 경기부양책의 구체적인 내용을 논의한다. 하와이에서 가족들과 13일간의 달콤한 휴가를 마친 오바마 당선인은 1일(현지시간) 시카고 집으로 돌아가 잠시 머물다 워싱턴에 입성한다.오바마 당선인은 두 딸인 말리아와 사샤가 다닐 학교 개학일인 5일에 맞춰 예정보다 일찍 워싱턴으로 옮겨 온다. 오바마 당선인은 오는 15일 백악관 영빈관인 블레어하우스에 입주하기 전까지 백악관에서 가까운 헤이-애덤스 호텔에 임시 거처를 마련했다.1987년 이란-콘트라 스캔들과 관련된 4차례 불법 기부모임이 열린 것으로 유명한 이 호텔 이름은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의 보좌관을 지낸 존 헤이,존 애덤스 대통령의 후손인 헨리 애덤스의 이름에서 따왔다. 한편 오바마 당선인은 5일부터 의회 민주당 지도부와 최대 현안인 경기부양책에 대한 논의를 본격화한다.오바마 당선인과 펠로시 하원의장은 경기부양책 규모와 시기 등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경기부양책 규모는 현재까지 6750억~775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해지나 1조 달러로 늘어날 수도 있다. 경기부양책은 크게 다리와 도로 건설 등 사회간접자본 확충과 세금인하,재정난을 겪고 있는 주들에 대한 지원 등 세 분야로 구성돼 있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1일 보도했다.펠로시 의장은 20일 오바마 당선인의 취임식 때까지 경기부양책 관련 법안을 통과시켜 당선인의 대통령 취임 직후 서명할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다.하지만 공화당과 일부 보수 성향의 민주당 의원들이 천문학적 규모의 경기부양책에 난색을 표하고 있어 낙관할 수는 없다. 민주당 지도부는 오바마 경제팀으로부터 경기부양책의 구체적인 내용들을 기다리고 있다.민주당 의회 지도부는 입법 절차를 서둘러 이르면 12~16일 사이에 관련 법을 처리하길 기대하고 있다.이같은 일정을 염두에 둔 펠로시 의장은 새 의회가 개원한 다음날인 7일 경기부양책 관련,청문회를 여는 것을 필두로 강행군을 시작한다. 청문회에는 존 매케인 전 공화당 대선 후보의 경제자문을 지낸 마크 잔디 무디스닷컴 수석 이코노미스트와 로버트 라이히 하버드대 교수 겸 전 노동부장관,마리아 주버 MIT 교수 등 경제전문가들이 증인으로 참석한다. WP는 지난해 11월 선거에서 21석을 늘려 257석을 확보한 민주당 주도의 하원에서 오바마 취임식전에 경기부양책 관련 법안을 처리한다고 해도 상원 처리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kmkim@seoul.co.kr
  • [신년 여론조사](하) “개헌 필요” 60.6%… 젊고 진보적일수록 더 공감

    [신년 여론조사](하) “개헌 필요” 60.6%… 젊고 진보적일수록 더 공감

    국민 다수가 개헌 필요성에 공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개헌의 필요성에 관한 질문에 과반수인 60.6%가 긍정적 반응을 보인 반면 ‘불필요하다.’고 답한 응답자는 21.7%에 불과했다. 구체적으로는 개헌이 ‘다소 필요하다.’(48.9%)는 의견이 ‘매우 필요하다.’(11.7%)는 응답보다 4배 이상 많았다.반면 ‘다소 불필요하다.’(13.6%)는 의견은 ‘전혀 불필요하다.’(8.1%)는 의견의 2배에도 못 미쳤다. 또 연령대가 낮아질수록 개헌의 필요성에 더욱 공감하는 것으로 확인됐다.50대 이상에서 개헌에 찬성하는 비율(48.9%)은 다소 낮았지만,40대(64.8%)와 30대(67.3%),20대(67.7%) 순으로 점차 높아졌다. 학력별로는 대재 이상(66.5%),고졸(60.8%),중졸 이하(43.9%)의 순으로 개헌 찬성률이 높아 학력이 높을수록 개헌 필요성에 공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출신지별로는 서울(70%),부산·울산·경남(65.2%),광주·전라(64.2%) 지역순으로 개헌의 필요성에 상대적으로 높은 공감대를 갖고 있었다.반면 대전·충청(53.1%)과 인천·경기(56.6%) 출신 응답자 가운데 개헌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비율은 상대적으로 낮았다. 이념성향별로는 진보적이라는 응답자 가운데 개헌에 찬성(68.3%)하는 이들이 중도(61.4%)나 보수(60.1%) 성향 응답자 가운데 찬성한 사람보다 다소 높았다.단적으로 민주당 지지자 가운데는 76%가,한나라당 지지자 가운데는 61%가 ‘개헌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전체적으로는 개헌에 공감하면서도 한나라당 지지자나 중도·보수 성향 일부 응답자들은 현 정치질서의 유지를 바라는 반면 민주당 지지자나 진보성향의 응답자들은 개헌을 통한 정치질서의 변화를 바라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김영태 목포대 교수·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권력구조 개편·경제조항 개정 順 중요 국민들은 우리 헌법에서 중점적으로 손질해야 할 부분으로 권력구조를 꼽았다.이번 조사에서 응답자의 44.8%가 개헌을 할 경우 권력구조 개편이 가장 중요하다고 답했다. 이 같은 응답은 대학재학 이상(48.2%),고졸(46.5%),중졸 이하(31.6%) 순으로 학력이 높을수록 많았다.남성(51.0%)이 여성(38.7%)보다 높았고,지역별로는 서울(53.7%),부산·울산·경남(53.0%),호남(48.2%) 출신자들의 응답이 두드러졌다. 특히 ‘87년 헌법’ 탄생의 주역으로 386세대인 40대의 53.3%가 권력구조 개편을 개헌의 초점이라고 답해 다른 연령대보다 월등히 높은 응답을 보였다.87년 6월 항쟁 당시에는 직선제 쟁취가 큰 목표였지만 지금은 권력구조 개편에 대한 열망이 높은 것이다. 경제 관련 조항을 개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응답자도 20.9%에 달해,개헌 시 중심사안으로 다뤄질 것으로 보인다.경제조항을 고치자고 한 응답은 20대에서 30.2%로 나와 다른 연령대보다 높았다는 점도 흥미롭다. 그 밖에 기본권 조항(7.5%)을 손질하자는 의견도 있었다.기본권 조항은 전문가들 사이에서 반드시 개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은 반면 국민들은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대통령의 사면권 폐지(2.8%),통일조항(2.7%),영토조항(2.2%) 등은 2% 안팎에 그쳤다. 김영태 교수·김지훈기자 kjh@seoul.co.kr ●연내 32.7% 2010년 지방선거후 18.8% 개헌을 할 경우 바람직한 시기에 대해서는 2009년이 적기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전체 응답자 가운데 32.7%가 18대 국회 전반기인 2009년까지 개헌하자고 답했다.이어 2010년 지방선거 직후라고 응답한 사람은 18.8%,19대 국회 초반인 2012년 이후에 개헌하자는 의견은 13.7%,18대 국회 후반기인 2011년이라고 답한 사람은 10.5%였다. 2009년까지 개헌하자는 의견은 30대(38.3%),화이트칼라(38.2%),서울(38.4%)과 부산·울산·경남(37.8%) 출신자일수록 높았다.개헌이 필요하다는 응답자만을 고려할 경우 응답자의 46.4%가 2009년을 개헌의 적기라고 꼽았다.정치권에서 지금의 경제위기를 감안해 2010년 지방선거와 맞추어 개헌하자는 의견이 대두되고 있는 것과는 다소 온도차가 느껴지는 결과다. 2010년 지방선거 직후라고 응답한 비율은 자유선진당(36.7%)과 민주노동당(32.2%) 지지자들 사이에서 높게 나온 것이 눈에 띈다. 한편 2009년과 2010년이 개헌의 적기라고 응답한 비율을 합하면 51.5%로,과반수가 지방선거 직후까지 개헌하자는 의견을 냈다.지난 17대 국회 당시 이미 18대 국회에서 개헌을 논의하자는 여야의 합의가 있었고,20년 이상 지속된 ‘87년 체제’인 헌법의 손질이 시급하다는 여론이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또 정치 일정상 2012년 4월과 12월에 각각 총선과 대선이 있어 혼란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개헌시기를 앞당기자는 의견이 많은 것으로 풀이된다. 김영태 교수·김지훈기자 kjh@seoul.co.kr ●“4년 대통령 중임” 34.9% “의원내각제 선호” 13.9% 바람직한 권력구조 개편방안으로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선거 시기를 일치시켜 4년 대통령 중임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응답이 34.9%로 가장 높은 수치를 나타냈다.현행 5년 단임제를 선호하는 응답이 25.1%로 뒤를 이었다.의원내각제를 선호한다는 응답자는 13.9%,이원집정부제(분권형 대통령제)를 선호한다는 응답자는 4.4% 등으로 나타났다. 4년 대통령 중임제 개헌은 특히 남성(42.6%),40대(40.3%),자영업자(50.6%),화이트칼라(41.0%) 등 여론주도층에서 선호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공론화 과정이 탄력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개헌이 불필요하다는 의견이 21.6%로 나타난 점을 반영하듯 현행 5년 대통령 단임제를 유지하자는 의견도 25.1%로 나타났다. 5년 대통령 단임제는 여성(27.9%),50대 이상(26.1%),주부(28%),한나라당 지지자(32.2%) 등 보수층에서 높은 지지를 받았다. 의원내각제는 20대(23.6%),소득 상위층(22.5%),전문직 종사자(20.7%),학생(28.0%) 등에서 높은 선호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반면 50대 이상(8.2%),한나라당 지지자(9.0%) 등 보수층에서는 낮은 지지를 얻었다.특이한 점은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강세를 보이고 있는 대구·경북(TK)에서는 4년 중임제(33.9%)와 5년 대통령 단임제(31.4%)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지정당별로는 한나라당 지지자의 경우 40.0%가 4년 대통령 중임제를,32.2%가 현행 5년 단임제 유지를 선호했다.9.0%는 의원내각제를 선호한다고 답했다.반면 민주당 지지자의 경우 4년 대통령 중임제 39.5%,현행 5년 대통령 단임제 유지 18.1%,의원내각제 17.0% 등으로 조사됐다. 결국 한나라당 지지자들이나 민주당 지지자들 모두 4년 대통령 중임제 개헌을 가장 선호하면서도,한나라당 지지자들에 비해 민주당 지지자들이 현행 5년 단임제 유지보다 의원내각제 개헌을 더 선호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민주당 지지자들이 한나라당 지지자들보다 5년 단임제보다 의원내각제를 선호하는 것은 대통령 선거를 할 경우의 집권 가능성이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있었을 때에 비해 상대적으로 떨어졌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니냐는 분석도 없지 않다. 김영태 교수·구동회기자 kugija@seoul.co.kr [서울신문 다른 기사 보러가기] ☞지난해 불황을 즐겼던 아이템 7가지 ☞[희망 프리허그]서울 다문화촌 사람들의 새해 소망
  • [개헌 다시 보자] 87년이후 개헌 논의

    1987년 이후의 개헌논의는 ‘통치구조’(권력구조)에 매몰된 비상식적 모습을 보여왔다. 유력 정치인과 정당의 권력 흥정 수단으로 전락해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잠깐 빛을 발하다가 이내 자취를 감추곤 했다.97년 15대 대선을 앞두고 성사된 당시 국민회의 김대중 후보와 김종필 자민련 후보의 단일화는 내각책임제 개헌이 고리였다.DJP연합은 호남권과 충청권 표의 결집 효과로 정권교체를 일궈냈지만 이면에 깔린 뒷거래는 두고두고 회자됐다. 2002년 10월 대선운동 기간에도 후보단일화 과정에 개헌 논의가 끼어들었다.당시 노무현·정몽준 후보간 협상에서 분권형 개헌이 논의되면서다.당시에는 대통령과 총리가 권력을 양분하는 기형적 권력구조가 언급됐다.‘정치 9단’이라는 김종필 자민련 총재는 내각제 개헌을 다시 들고 나왔고,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는 선거 열흘 전 특별기자회견에서 ‘임기중 개헌 마무리’라는 승부수를 꺼내들었다. 2006년 노무현 대통령이 ‘원포인트 개헌’을 꺼내들기 4년 전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당선 직후 별도의 정치개혁연구실을 설치해 2006년 개헌논의를 준비했다.골자는 분권형 4년 중임 대통령제와 권력구조 개편이었다.이후 원포인트 개헌논의가 전면에 부상하기까지 “개헌논의를 시작할 수 있다.4년 중임제와 정·부통령제가 적합하다.”(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2005년 3월),“내년에 개헌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현행 대통령 5년 단임제는 부자연스러운 대통령 무임제다.”(정동영 당시 열린우리당 대표·2005년 12월),“지금 헌법이 87년 민주화 투쟁의 결과물인데 이제 한 20년 됐으니 손볼 때가 됐다.”(문성현 당시 민주노동당 대표·2006년 7월)는 등 개헌 논의가 흘러나왔다.윤현식 진보신당 정책위원은 “통치구조는 원래 국민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하부개념임에도 정치권의 개헌 논의에서는 주객이 전도돼 왔다.”면서 “앞으로 개헌은 기본권에 대한 논의가 전제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개헌 다시 보자-국회의원 설문 조사] 4년중임제 압도적…호남의원 40% “내각제 지지”

    [개헌 다시 보자-국회의원 설문 조사] 4년중임제 압도적…호남의원 40% “내각제 지지”

    ‘87년 개헌’은 민주화를 염원하는 시민운동의 산물이다.하지만 당시 개헌 작업이 아래로부터의 목소리를 담지 못한 채 소수 정치엘리트의 정파적 이해관계에 따라 이뤄졌고,‘87년 헌법’ 자체도 20여년이 지나면서 사회 전 부문의 변화상을 반영하지 못하는 한계를 지니게 됐다.‘87년 헌법’이 절차적 민주주의는 적시하고 있지만,실질적·경제적 민주주의는 결여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 지 오래다.정치권과 시민단체,학계 등의 개헌 논의는 그 연장선상에서 비롯된다.참여정부 당시 여야는 이번 18대 국회에서 개헌을 논의,추진하기로 합의했다.개헌을 위한 정치적 명분과 의무는 이번 국회가 이미 쥐고 있는 것이다.서울신문이 이 같은 개헌담론를 바탕으로 18대 국회의원을 설문 조사한 결과를 분석했다. ■정당별 선호도 여야를 막론하고 18대 국회의원이 가장 선호하는 권력구조는 ‘4년 중임제´로 나타났다.하지만 정당별로는 미묘한 편차를 보였다. 한나라당에서는 개헌이 필요하다고 응답한 의원 112명 가운데 73.2%인 82명이 4년 중임제가 바람직하다고 밝혔다.이어 의원내각제(9.8%),이원집정부제(8.9%),정·부통령제(3.6%),5년단임제 유지(0.9%) 등의 순으로 조사됐다. 민주당에서도 4년 중임제의 선호도가 가장 높았으나,의원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 등을 꼽은 의원도 상대적으로 많았다.개헌을 주장한 50명 가운데 68.0%인 34명이 4년 중임제를 선택했지만,의원내각제를 꼽은 의원비율은 20.0%(10명)로,한나라당보다 두배쯤 높았다.자유선진당에서는 의원내각제(20.0%),이원집정부제(20.0%),양원제(20.0%)를 선호한다는 응답이 골고루 나왔다. 4년 중임제를 선호하는 이유로 여야 의원들은 “현행 5년 단임제로는 대통령의 실적을 평가할 방법이 없어 책임정치를 구현하거나 정책의 지속성을 유지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4년 중임제를 실시할 경우에는 대통령의 권한을 현행대로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과 대통령의 일부 권한을 국회로 넘겨야 한다는 의견도 소속 정당과 상관없이 제시됐다. 한나라당 조윤선 의원은 “4년 중임제에서는 국정을 잘 운영해 재신임을 받으면 그 지지를 기반으로 정책의 연속성을 실현할 수 있지만,현행 5년 단임제에서는 대통령 재임기간에 총선과 지방선거 등이 끼어 있어 대선 공약을 강하게 추진하기 어렵다.”면서 “지금도 대통령의 권한이 제한적이라고 봐야 하는 만큼 중임제로 가더라도 대통령의 권한을 현행보다 축소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민주당 문학진 의원도 “4년 중임제를 원하는 것은 정책 연속성 부재 등 5년 단임제의 폐단이 드러났기 때문”이라면서 “중임제로 가더라도 권한은 현재와 같은 수준으로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반면 민주당 이춘석 의원은 “4년 중임제을 통해 국민의 재신임을 받도록 하되 현재의 대통령 권한은 재분배해야 한다.”면서 “미국처럼 감사원과 예산편성권을 국회로 넘겨 입법부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한나라당 박민식·황영철 의원도 “대통령과 국회의 권한을 합리적으로 조정한 4년 중임제가 적당하다.”고 피력했다. 한편 의원내각제가 바람직하다고 밝힌 민주당 소속의 한 의원은 그 이유를 “현행 제왕적 대통령의 권위주의적인 행태를 견제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자유선진당의 한 의원은 “정국혼돈을 가져올 가능성이 높아 아직은 시기상조”라면서 “중간 단계인 이원집정부제가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지역별 선호도 개헌시 권력구조 개편과 관련해 지난해 4월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강세를 보인 수도권과 영남권에서는 국회의원 10명 가운데 7명 이상이 4년 중임제를 선호했다.반면 민주당의 텃밭인 호남권에서도 4년 중임제가 선두를 달렸지만,10명 가운데 4명꼴로 의원내각제를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나 의원내각제 선호도가 상대적으로 높았다. 수도권에서는 개헌시 권력구조로 4년 중임제를 택해야 한다는 의견이 76.0%로 전국에서 가장 높았다.의원내각제(9.3%),이원집정부제(6.7%)가 뒤를 이었다.이같은 결과는 수도권 의석의 상당수를 차지한 한나라당 친이(친이명박) 진영이 권력구조 개편 방법으로 박근혜 전 대표의 지론인 4년 중임제에 뜻을 같이하고 있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설문자료를 분석한 결과 실제로 상당수의 친이계 의원들이 4년 중임제를 선호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민주당 소속 수도권 의원들도 4년 중임제에 대한 선호도가 높았다. 개헌시기에 대해서는 2010년 하반기가 적절하다는 의견이 30.7%로 가장 많았다.2011년 상반기가 19.6%,2009년 하반기와 2010년 상반기가 각각 18.4%로 뒤를 이었다. 영남권에서도 4년 중임제에 대한 선호도가 71.1%로 높게 나타났다.이는 4년 중임제 개헌을 주장하는 박 전 대표의 영향이 반영된 결과로도 풀이된다. 민주당의 텃밭인 호남권에서는 상대적으로 의원내각제의 선호도가 다른 지역보다 높게 나왔다.4년 중임제에 대한 선호도는 다른 지역보다 다소 낮은 60.0%로 조사됐다.하지만 의원내각제는 40.0%로 수도권(9.3%)과 영남권(11.1%)을 크게 앞질렀다.과거 군사독재 시절 정치적 희생이 컸던 지역의 특성상 권력 분점에 대한 욕구가 강한 것으로 분석된다.또한 대통령제로는 인구가 상대적으로 많은 영남권과 좀처럼 경쟁하기 어렵다는 정치적 판단도 엿보인다. 지난 총선에서 자유선진당이 충남·대전을,민주당이 충북을 석권했던 충청권에서는 4년 중임제 33.3%,의원내각제 26.8%,이원집정부제와 양원제 각각 13.3% 등 여러 권력구조 방안들이 비교적 고른 지지를 얻었다. 다만 자유선진당 출신 국회의원들은 권력구조 개편 중심의 개헌논의보다는 이회창 총재가 주창하는 ‘강소국 연방제’에 기초한 개헌논의에 방점을 둬 이채로웠다.‘강소국 연방제’는 중앙정부가 외교·국방만 관장하고 지방정부는 독립적으로 입법·사법·행정을 관장하는 형태의 연방제를 의미한다. 구동회기자 kugija@seoul.co.kr ■논의 어디까지 김형오 의장 “이달 공청회 본격 공론화” 정치권의 개헌 논의는 항상 ‘현재진행형’이지만,지난 연말부터 유난히 탄력을 받는 분위기다. 김형오 국회의장은 1월 안으로 개헌과 관련된 공청회 개최 등을 시작으로 개헌론을 본격 공론화한다는 계획이다.김 의장은 이미 지난해 11월 “18대 국회의 두가지 소명은 헌법 개정과 국회 운영제도 개선”이라고 밝혔다.지난해 8월부터는 국회의장실에 ‘헌법연구자문위원회’를 설치해 개헌 연구를 진행해 왔다. 김 의장 쪽은 31일 “의원내각제 요소가 가미된 한국형 대통령제,정·부통령제를 포함한 순수 3권 분립의 미국형 대통령제,영국형 순수 의원내각제,프랑스형 이원집정부제 등 4개 권력 형태에 대한 연구·분석을 지난 연말 마무리지었다.”고 밝혔다.이같은 논의는 제왕적 대통령제가 시대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고 한 관계자는 전했다. 이 관계자는 “18대 국회 하반기가 넘어가게 되면 대선주자가 생기기 때문에 대선주자의 유·불리에 따라 개헌 논의가 변질될 수 있다.”면서 “18대 국회 상반기에 개헌을 이룬 뒤 새 제도를 다음 대선 이후 새로운 대통령 임기 때부터 적용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원기 전 국회의장도 지난해 말 국회의원 모임인 ‘미래한국헌법연구회’(회장 이주영)가 마련한 강연회에서 “현재의 제왕적 대통령제는 권력이 과부하돼 부작용이 많다.”면서 “국가 안보와 외교는 대통령이 맡고 내치와 경제,행정은 총리가 책임지는 분권형 대통령제가 바람직하다.”며 개헌 논의에 군불을 지폈다.연구회는 지금까지 10여차례의 세미나를 갖고 지난해 개헌을 마친 프랑스를 비롯,독일·포르투갈·몽골 등 각국의 개헌 사례를 집중 연구하고 있다.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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