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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보선택권 제한 없애는 대통령 결선투표제 도입”

    “후보선택권 제한 없애는 대통령 결선투표제 도입”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는 27일 ‘대통령 결선투표제’ 도입을 공약했다. 결선 투표제는 1차 투표에서 한 후보가 과반 득표를 하지 못할 경우 상위 1, 2위를 대상으로 재투표를 거쳐 대통령을 선출하는 방법이다. 도입을 위해서는 개헌이 필요한 데다 정치권에서도 찬반 논란이 컸던 사안이어서 적지 않은 파장이 예상된다. 문 후보는 이날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진행된 ‘광화문 유세’에서 “대통령 선거에 결선투표제를 도입해 결선에 나갈 후보를 국민들이 직접 선택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문 후보가 결선투표제 카드를 꺼내든 이유는 1차적으로는 후보 단일화 과정으로 인해 국민들의 후보 선택권이 제한받는 것을 막기 위한 차원으로 해석된다. 문 후보 측 박광온 대변인도 “결선투표제는 자연스러운 후보 단일화를 제도화하는 것”이라면서 “정당에 대한 국민의 대표성과 정당성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1987년 헌법 이후 대통령 선거 직선제의 역사적 경험, 단일화 과정에서 제도적 미비를 체감하고 제안하게 된 것”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또 “이를 위해선 개헌이 필요하며 정치관계법 등을 바꾸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한 걸음 더 나아가서는 안철수 전 무소속 후보와의 연립정부 가능성을 염두에 둔 공약, 더 멀게는 향후 진보개혁 세력의 집권 연장을 노리는 포석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물론 여론조사에서 국민으로부터 25%가 넘는 지지를 받고도 본선에 오르지 못한 안 전 후보에 대한 미안함이 짙게 배어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이날 첫 공식 유세에 나선 문 후보는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를 향해 맹공을 퍼부었다. 그는 광화문 유세에서 “새누리당이 나를 두고 안보가 불안하다고 시기하는 것은 참으로 몰염치하기 짝이 없다.”고 비판했다. 앞서 부산 사상구와 경남 창원에서 잇따라 가진 유세에서는 박 후보의 아킬레스건인 ‘과거사’ 문제를 들고 나와 독설에 가까운 발언을 쏟아냈다. 이번 대선을 “과거 세력과 미래 세력의 한판 대결”이라고 규정한 문 후보는 “과거 독재를 찬양하고 미화하는 역사인식으로 민주주의를 할 수 있는가. 민주주의를 제대로 못하면서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가 가능한가.”라며 박 후보를 쏘아붙였다. 이어 “박 후보는 단 한 번도 서민의 삶을 살아 본 적도 노동으로 돈을 벌어 본 적도 없다. 그가 취직 걱정, 집값 걱정, 빚 걱정, 은행 대출금 이자 걱정, 물가 걱정을 해봤겠나.”라고 지적했다. 박 후보를 향한 문 후보의 ‘십자포화’는 이번 대선이 혈투 양상으로 전개될 것임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두 후보의 여론조사 지지율도 박빙으로 치닫고 있다. ‘누군가 한발 물러서는 순간 벼랑으로 떨어지는 승부’가 된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최대 우군인 안 전 후보의 지지층 포섭에 올인하고 있다. 그는 “사퇴 기자회견 때의 그 눈물이 내가 흘릴 수도 있었던 눈물이라고 생각한다.”면서 “그 심정과 눈물을 잊지 않고, 안 후보가 이루고자 했던 새 정치의 꿈을 제가 앞장서서 이뤄 내겠다.”고 밝혔다. 부산·창원·서울 이영준기자 apple@seoul.co.kr
  • [데스크 시각] 광해(光海)의 정치, 계영배(戒盈杯)의 정치/오일만 정치부 차장

    [데스크 시각] 광해(光海)의 정치, 계영배(戒盈杯)의 정치/오일만 정치부 차장

    문재인, 안철수 두 후보는 지금 야권 단일화라는 벼랑 끝에 서 있다. 그들이 평생에 걸쳐 일궈 놓은 인생과 정치생명이 걸린 건곤일척의 결전이다. 두 후보 모두 사람인지라, 지금쯤은 격렬한 전의를 불사르면서도 마음 한편에는 정치 무대에서 끌려 내려올지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이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문 후보나 안 후보 모두 1년 사이 정치권에서 호출받은 구원투수들이다. 민주통합당 문 후보는 총선에 이어 대권까지 거머쥐려는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의 대항마로, 안 후보는 무당파들의 정치변화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기존 정치권에 이골이 난 수요자들의 입장에선 호기심을 자극할 ‘신상품’이고 이들이 던진 대선 출사표에도 비전 제시와 정치 쇄신의 열망이 가득찼다. 이들의 초심은 거칠고 척박한 정치현실에 착근해 견고한 지지율로 변했다. 야권 단일화의 두 주역이 된 것이다. 그럼에도 누구나 초심을 온전하게 보존하기는 어려운 법이다. 더욱이 대권 주변에 들러붙어 있는 온갖 탐욕꾼에다 강파른 진영논리가 판치는 대선판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정치의 본질은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인데 자기 욕심을 버리면 채워지는 묘한 이치를 갖고 있다. ‘버리면 이기는’ 비상식의 교훈이다. 이른바 계영배((戒盈杯)의 정치다. 계영기원 여이동사(戒盈祈願 與爾同死). “가득 채우지 말기를 바라며, 너와 함께 죽기를 원한다.”는 뜻이다. 소설 상도(商道)의 실제모델인 조선시대 거상 임상옥이 아끼던 계영배(戒盈杯)에 새겨진 문구라고 한다. 잔의 7할 이상을 채우면 모두 밑으로 흘러내린다. 넘침을 경계하고 과욕을 경고하는 잔이다. 대선 본선에 오를 야권 티켓은 단 한 장이다. 문-안 중 누가 야권 단일후보가 되든, 승패를 떠나 한국 정치 발전이란 측면에서는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다. 유효기간이 다 돼가는 1987년 체제 극복과 글로벌 시대의 정치 쇄신 모두 대한민국의 절박한 과제다. 그럼에도 최근 단일화 협상과정에서 두 후보가 보인 정치력 부재와 리더십에 실망하는 국민들이 적지 않다. 결단의 시기를 놓치고 정치공학적 승부근성만 부각되는 모양새다. 자신들이 그렇게 경멸한다던 기득권자의 욕망에 빠져드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든다. 아름다운 단일화는 승자의 몫이 아니다. 기꺼이 패자가 되겠다는 ‘양보의 정치’에서 감동의 정치가 시작되고 승리의 싹이 돋아나는 것이다. 중국 현대사의 주역인 마오쩌둥(毛澤東)과 저우언라이(周恩來)의 사례를 보자. 이들은 애증의 관계다. 저우는 원래 마오의 상관이었고 노선 대립도 심각했다. 중국 공산당이 궤멸 직전인 대장정 도중에 저우는 부하인 마오를 주석으로 옹립한다. 1935년 1월 쭌이(遵義) 회의에서다. 저우는 기꺼이 조연의 역할을 떠맡았다. 두 거두의 화합이 없었다면 지금의 중국은 없었을 것이다. 새 시대의 맏형이 되고 싶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좌절도 두고두고 곱씹을 대목이다. 개혁 추진세력을 통합하지 못했고 스스로 분열의 길을 자초했다. 민주화 세력의 기둥인 고(故) 김근태 전 의원과 결별했고 호남 지지기반의 이탈도 뼈아픈 대목이다. 구시대의 막내로 정치무대에서 내려온 노 전 대통령의 비극은 자업자득적 측면이 있다. 역사적 닮은 꼴은 광해의 정치다. 문 후보가 영화 ‘광해’를 보면서 노 전 대통령을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혔지만 사실 광해의 정치는 분열의 정치로 기록된다. 광해군을 옹립한 동인계열의 대북(大北)은 이후 영창대군을 지지하는 소북(小北) 등의 협력을 거부하며 골수파로 변한다. 이들이 광해의 정치를 주무르지만 아집과 전횡으로 일관했다. 대동법 확대와 명·청 중립외교 등으로 새로운 조선을 염원했던 광해의 비운도 이런 맥락이다. 새 시대 맏형과 구시대 막내의 길이 두 후보 앞에 놓여 있다.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인, 상생과 공멸의 갈림길이기도 하다. 국민들은 묻는다. 당신들은 어느 길로 갈 것인가. oilman@seoul.co.kr
  • [시론] 연평도 불법포격의 의미를 기억하며/유영옥 경기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시론] 연평도 불법포격의 의미를 기억하며/유영옥 경기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23일은 북한의 연평도 불법포격 사건 2주기가 되는 날이다. 당시 북한은 연평도의 우리 군 해병대 부대와 민간마을을 향해 무차별 포격을 가했고, 그 결과 해병대원 2명이 전사하고 16명이 중·경상을 입었으며, 민간인도 2명의 사망자와 4명의 부상자가 속출하는 등 큰 피해를 입었다. 이러한 천인공노할 북한의 만행을 기억하고, 전사자 추모 및 국민 안보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당시의 피폭 현장에 기념관 개관, 위령탑 건설 등 다양한 행사가 진행되고 있다. 또한 국방부와 국가보훈처 및 각 군의 인터넷 홈페이지에서도 연평도 사건을 기억하는 사이버 추모관이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일반 국민들의 관심 속에 연평도 사건은 어느새 사라져 버린 느낌이다. 불과 700여일이 지났을 뿐인데, 마치 700여년 전에 벌어진 역사 속의 한 장면처럼 무덤덤하고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 지속되어 왔던 북한의 무력도발과 이에 대한 우리 국민의 자세를 돌이켜본다면, 이는 그리 이상할 것도 없는 현상이다. 지난 1983년 10월 당시 전두환 대통령과 정부각료들이 해외순방 길에 들른 미얀마(버마) 아웅산 국립묘지에서 각료 4명을 포함한 21명의 목숨을 앗아간 북한의 가공할 폭탄테러에 대해서도,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1987년 11월 미얀마 인근 해상에서 KAL 858기를 폭파시켜 무고한 우리나라의 중동 근로자 115명의 생명을 앗아간 북한의 도발에 대해서도 우리나라의 젊은 세대는 이 사건들의 전말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더욱이 당시 북한 측으로부터 KAL기 폭파 임무를 맡고 파견된 김현희 자신이 모든 범행과정에 대해 자백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에 대한 가짜설 및 사건 자체와 배후에 대한 진실 공방을 이어가고 있는 일각의 시각은 괴이하고 어이없을 따름이다. 김정은 체제의 출범 이후 북한의 대남 도발 협박의 수위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비록 실패로 결론지어지긴 했지만 지난 4월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시도했는가 하면, ‘최고 존엄을 모독한 역적패당 이명박 정권을 처단하자’는 구호를 넘어 한때 구체적인 정부기관, 언론사들까지 거론하면서 “남은 것은 행동뿐”이라고 협박하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안보 불안에 대해 언급하면 과거 주입식 반공사상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한 단순무식한 사람, 혹은 침소봉대(針小棒大)를 즐기는 과민한 사람처럼 받아들여지곤 한다. 2년 전 연평도 불법포격을 경험하고도 눈앞의 선전포고와 다름없는 북한의 협박에 대해 마치 남의 나라 이야기처럼 무심하고 여유롭다. 안보불감증을 넘어 안보 마비 상태가 아닌가 우려될 정도인 것이다. 북한의 대남도발에 대해 여야 구분 없이 일치단결해 국민통합을 이끌어야 할 우리의 정치지도자들은 또한 어떠한가? 북한이 우리 코앞에서 협박과 무력 대남도발 선포를 이어가고 있는데, 국가를 이끌어 가는 정치지도자들이 일심단결해 한목소리로 강력 대응해도 모자랄 판에 오히려 국가안보와 관련된 중차대한 문제를 정쟁의 도구로 삼고 있는 모습이다. 대표적으로 최근 대선 후보들 사이에서 발생한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둘러싼 논란을 들 수 있다. 현재 NLL과 관련된 의혹과 논란은 지난 2007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김정일과의 비공개 대화를 통해 NLL이 무효임을 인정했는가 여부가 관건이다. 만일 현재 일각에서 제기하고 있는 의혹들이 사실이라면, 차후 발생할 수 있는 우리나라의 안보적 문제는 치명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지 않아도 NLL을 무시하는 도발을 상습적으로 일삼아 온 북한군이다. 만일 북한이 의도하는 대로 NLL을 공동어로구역으로 전환한다면, 호전적이고 공격적인 북한이 이를 이용해 무슨 일을 벌일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연평도 사건 2주년을 맞이해 북한의 대남도발의 의미와 실체를 더욱 알리고, 국가안보의 중요성을 확고히 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 선거운동 초반 지지율 1위, 청와대 들어갔다

    선거운동 초반 지지율 1위, 청와대 들어갔다

    역대 대선에서 D-30일, 후보 등록, 선거운동 기간 돌입 시점은 각 후보 간 지지율의 변곡점이 됐다. 흥미로운 건 대선 여론조사가 처음 시작된 1987년 13대 대선 이후 2007년 17대 대선까지 모두 다섯 차례 대선에서 법정 선거운동 기간에 1, 2위가 바뀐 적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는 점이다. 2002년 16대와 2007년 17대는 이번 18대 대선과 정치 일정이 똑같다. 12월 19일 대선이 치러졌고, 11월 27일부터 법정 선거운동이 시작됐다. 2002년의 경우 후보 등록 직전인 11월 23일 갤럽 조사까지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가 32.3%로 줄곧 선두였고, 노무현 민주당 후보 25.4%, 정몽준 국민통합21 후보가 25.1%로 박빙이었다. 그러나 하루 뒤인 24일 노·정 단일화가 되자 전세는 역전됐다. 25일 여론조사에서 노 후보는 43.5%로 올랐고, 이 후보는 37.0%를 기록했다. 노 후보는 단일화 이후 단 한 차례도 역전을 허락하지 않았고, 정 후보의 지지 철회도 최종 결과에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1997년 15대 대선에서는 11월 3일 당시 김대중 국민회의 후보와 김종필 자민련 후보가 후보 단일화에 전격 합의하며 지각 변동을 일으켰다. 같은 달 15일 여론조사까지 김대중 후보는 34.0%로 1위를 달렸고, 이회창 신한국당 후보와 이인제 국민신당 후보가 각각 24.4%, 23.7%로 박빙이었다. D-30일이던 18일을 기점으로 이회창-이인제 후보의 단일화가 최종 무산됐다. 신한국당은 같은 달 21일 민주당과 합당해 한나라당으로 당명을 바꾸는 승부수를 띄우며 추격에 나섰다. 공식 선거운동 개시 후인 11월 29일 조사에서 김대중 후보는 32.8%, 이회창 후보는 29.3%로 양강 구도가 형성됐고, 김대중 후보의 우위는 선거 결과까지 이어졌다. 2007년 대선은 당시 야당인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부동의 1위였다.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와 이인제 민주당 후보, 문국현 창조한국당 후보의 범여권 단일화가 시차를 두고 무산된 후, 이명박 후보는 투표일까지 줄곧 독주 체제를 굳혔다. 안동환기자 ipsofacto@seoul.co.kr
  • 文 “노동이 답이다”

    文 “노동이 답이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는 13일 전태일 열사 42주기를 추모하며 ‘노동’에 화두를 찍고 노심(勞心) 잡기에 나섰다. 첫 번째 공약인 ‘일자리 늘리기’와 이번 대선의 화두인 경제민주화를 엮으며 ‘노동자가 대접받는 세상’을 약속했다. 문 후보는 이날 오후 서울 창신동 청계천 ‘전태일 다리’에 있는 전 열사의 동상을 찾아 참배했다. 그는 “‘사람이 먼저다’를 구호로 삼고 있는데 사람이 먼저인 세상은 곧 전 열사가 남긴 ‘노동자가 대접받는 세상’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정규직, 비정규직 간 불합리한 차별을 철폐하는 것을 다음 정부의 가장 중요한 과제로 삼고 있다.”면서 “임기 내에 비정규직의 절반을 감축할 것”이라고 공약했다. 안철수 무소속 대선 후보 측과의 정책 협의와 관련, “만약 경제복지경제팀 구성원을 한 명 정도 더 늘린다면 노동복지 쪽으로 하려고 한다.”며 쌍용차 문제를 공동의제로 삼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그러면서 문 후보는 참여정부의 노동정책 실패론에 대해 반성의 뜻도 전했다. 그는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 때 IMF 위기에 떠밀려 노동 유연화를 겨우 도입했지만 참여정부 때 바로잡지 못했고, 노무현 대통령도 노동변호사 출신으로 (노동계 문제 해결에) 많은 기대를 받았는데 부응하지 못해 반성할 점으로 남아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저는 노동변호사 삶을 살아왔고 1987년 6월 항쟁 과정을 함께하는 삶을 살아와 내건 공약에 대해선 어느 누구에게도 없는 진정성이 있다.”며 노동문제 해결의 적임자임을 강조했다. 문 후보는 양대 노총도 잇따라 방문해 “경제민주화와 좋은 일자리를 위해선 강력한 노조가 있어야 한다.”며 ‘노동민주화’ 정책도 발표했다. 그는 이날 서울 정동에 있는 민주노총 사무실을 찾아 “정기국회에서 국정조사를 성사시켜 반드시 진상규명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할 것”을 약속했다. 영등포동 한국노총 사무실을 찾은 자리에서는 “노동기본권 확대와 개선, 실노동시간 단축, 비정규직 감축과 차별철폐, 최저임금 현실화, 정년 60세 의무화 등 한국노총이 요구한 5대 노동입법 개정 사항을 공약에 넣었다.”고 강조했다. 이영준기자 apple@seoul.co.kr
  • [위기의 한국호 해법-전문가에게 묻다] 소선거구제 폐지해 지역 정치독점 깨야

    [위기의 한국호 해법-전문가에게 묻다] 소선거구제 폐지해 지역 정치독점 깨야

    ‘2012년 한국’은 각 부문에서 난국에 빠져 있다. 국내적으로는 지역과 이념에 찢긴 갈등 구조가 세대 간, 계층 간 분열로 심화되는 양상이다. 한국 경제는 초유의 2%대 성장에 직면한 가운데 미래를 열 동력 자체가 시들어 가고 있다. 국제적으로는 아시아 패권을 놓고 미국과 중국의 주요 2개국(G2) 대결이 격화되면서 우리의 대외 전략이 뚜렷한 방향 없이 표류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자살률 1위, 출산율 최하위가 상징하는 한국의 부끄러운 자화상이 쉽사리 개선될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다음 달 19일 치르는 18대 대통령 선거는 이런 위기의 ‘한국호’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결정하는 이정표가 돼야 하지만 현재로선 뚜렷한 대안이나 희망을 보여주지 못하는 선거전으로 흘러가는 모습이다. 박근혜 새누리당, 문재인 민주통합당, 안철수 무소속 후보 등 유력 대선 후보들이 분야별 정책을 경쟁적으로 쏟아내고 있지만 차기 정부가 풀어 나가야 할 위기 상황에 대한 현실적인 처방을 충분히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지적된다. 전문가들은 12일 “우리 사회를 이분법으로 가르는 산업화, 민주화 세대의 갈등 구조를 뛰어넘고 21세기 한국호를 이끌어 갈 통합과 다원화라는 시대 정신이 필요하다.”면서 “특히 이번 대선에서 선출되는 차기 대통령과 그 정부에는 현재 우리 사회의 위기 상황을 해결해 나갈 덕목과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우선 우리 사회가 당면한 세대 갈등에 대한 해법으로 전문가들은 베이비붐 세대 구조조정에 따른 사회 안전망 구축과 분배 기능의 효율적 작동, 공공정책 수준의 자영업자 대책 마련 등을 제시했다. 망국병인 지역 갈등 해법과 관련해 전문가들은 평등하고 공정한 지역 균형 개발 발전 전략이 시급하다는 진단을 내놓았다. 정치적 해법으로는 소선거구제·정당추천제 폐지를 통한 특정 정치 집단의 지역 독점 차단을 꼽았고 권역별·거점별 명문대 설립, 지역 자원 활용과 지역별 일자리 창출의 필요성도 역설했다. 전문가들은 세대 간, 지역 간 갈등을 비롯해 저성장과 글로벌 위기라는 복합 경제 불황 속에서의 한국의 생존 전략, 우리 사회를 짓누르는 양극화 문제, 1987년 헌법 체제 속에서 진영 논리에 갇힌 한국의 정치 불신 구조, 미국과 중국의 권력 교체 속에서 중대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는 한반도 정세 등을 차기 정부와 대통령이 풀어 나가야 할 주요 과제로 지적했다. 오일만기자 oilman@seoul.co.kr
  •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 “저로 단일화돼야죠…아니었으면 安에게 벌써 양보했을 것”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 “저로 단일화돼야죠…아니었으면 安에게 벌써 양보했을 것”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는 집권 시 임기 초반에 4년 중임제의 ‘원포인트 개헌’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문 후보는 지난 10일 서울신문과 국회 의원회관에서 가진 단독 인터뷰에서 개헌 구상에 대해 “안철수 무소속 후보의 뜻도 같다는 것이 확인되면 공동으로 개헌을 추진하고, 저와 안 후보가 발표하는 새정치공동선언에 개헌안을 담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문 후보는 “정권 교체뿐 아니라 시대 교체까지 이루려면 변화된 시대 과제들이 헌법에 반영돼야 하고, 권력 구조뿐 아니라 국민 기본권 조항까지 헌법을 제대로 손봐야 한다.”며 전면적인 개헌 의지도 밝혔다. 당선 후 국회 개헌특별위원회 설치도 제시했다. 문 후보는 자신으로의 단일화가 “당연한 것”이라며 “저로 단일화돼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안철수 후보에게) 양보했을 것이고, 애초 민주당 경선에도 안 나갔어야 한다.”고 밝혔다. 서울신문은 문 후보뿐 아니라 박근혜·안철수 후보에게도 인터뷰를 요청했으며, 박·안 후보가 이에 응하면 인터뷰를 게재할 계획이다. 대담 박찬구 정치부장 →문재인 후보로 단일화해야 하는 이유는. -제가 100만명 국민 선거인단이 참여한 (민주통합당의) 완전국민경선을 통해 후보로 선출됐다. 저로 단일화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너무나 자연스럽다. 제가 대통령감으로 더 낫다고 생각한다. →‘아름다운 단일화’가 무엇인가. -과거의 DJP(김대중-김종필) 연합과 노무현-정몽준 단일화는 정체성이 완전하게 다른 분들 간의 결합이었지만 국민 지지를 받고 정권 교체를 해낼 수 있었다. 2012년 단일화는 가치와 정책을 공유하는, 국민에게 새로운 정치, 정권 교체 이후의 새로운 세상에 대한 희망까지 제시하는 단일화다. 각자 자신에게 유리한 단일화 방식에 집착하지 않고, 국민이 바라는 방향에 맞추는 게 감동을 주는 아름다운 단일화다. →상대 후보로 단일화됐을 때 지지율 이탈을 최소화하는 복안은. -역사적 경험을 갖고 있다. 노무현-정몽준 단일화는 서로 다른 세력이었지만 단일화 이후 두 분이 각각 받던 지지도를 합친 것보다 더 높은 지지를 당시 노무현 후보가 받았다. 정권교체가 될 수 있다는 붐이 생기면 더 많은 지지가 가세하게 되고, 상대적으로 박근혜 후보의 지지는 이탈될 것이다. 그것이 단일화 효과 아닌가. 자꾸 단일화되면 지지율이 이탈될 수 있다고 말하는 건 역사가 보여주는 진실을 가리는 것이다. →두 후보 간의 담판, 여론조사, 국민참여경선, TV토론 배심원제 등 룰이 관심인데. -여러 개인적인 생각이야 있을 수 있지만 그 판단을 말하는 건 적절치 않다. 단일화를 위해 협의 중이다. →국민의사가 반영될 수 있는 객관적인 지표는. -구체적인 방식을 얘기하는 건 적절치 못하다. 사실 (단일화 룰) 논의까지 다 열어놓고 하면 좋겠다는 게 제 생각이다. 양 후보나 시민사회, 언론이 자유롭게 논의하면 좋겠지만 우리 토론 문화가 그렇지 않지 않은가. 한쪽이 이렇게 이야기하면 협박한다고 그러시고…. 자유로운 논의가 되지 않으니 생각을 말하는 게 바람직하지 못하게 된다. →민주당에 대한 안 후보 지지자들의 반감 혹은 실망이 적지 않다는 분석도 있는데. -아니 왜 그게 ‘반감’이라고 표현되는가. 그렇게 반감이 있다면 어떻게 단일화를 할 수 있나. 민주당보다 자기들(안 후보 측)이 더 새로운 정치를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상대에 대한 반감이 있으면 마주 앉을 수 없다. →그동안 기득권을 내려놓겠다고 강조했는데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방식은. -지금까지 밝혔던 정당 혁신의 방안은 단순한 주장이 아니다. 민주당의 실천을 전제로 한 방안이다. 이미 발표한 것만 해도 혁명적인 변화다. 대한민국의 정당 구조, 정당 질서, 정당 문화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이다. 민주당 의원들도 의원총회에서 당론으로 받아들이고 실천하기로 결의했다. 이제 새로운 정치선언을 통해 추가할 것이고, (안 후보와) 함께 실천하면 된다. →당 지도부 퇴진론에 대해 ‘제게 맡겨 달라.’고 했는데. -새로운 정치 선언을 지금 협의하고 있기 때문에 따로 얘기하는 건 적절치 않다. 과거 열린우리당 때부터 선거에 실패하거나 국민 지지를 잃으면 수없이 지도부를 개편했다. 근본적으로 정당 구조와 질서, 문화를 바꾸는 게 필요하다. →국민연대는 양 진영의 화학적 결합 방식인가. -어떻게 양쪽이 합의될지는 알 수 없다. 단일화의 기본은 선택된 후보가 단일 후보로 나서고, 다른 쪽은 거기에 승복하는 것이다. 저와 안 후보는 그런 단일화를 넘어서서 민주당과 안 후보를 지지하는 세력들이 온전하게 다 함께 힘을 합쳐 단일화를 하자는 것이다. 그 힘을 합치는 방안을 ‘국민연대’라고 표현한 것이고, 어떤 방식으로 할 것인지는 서로 공통분모를 찾아야 한다. →안 후보로 단일화될 경우 민주당 입당 조건은 유효한가. -연대의 방식으로 앞으로 논의해야 될 문제다. 그런 논의는 맡겨 주셔야 한다. →안 후보에 대한 평가는. -안 후보는 이미 많은 기여를 했다. 박근혜 대세론을 무너뜨렸고, 안 후보 자체가 새로운 정치의 엄청난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제 단일화를 통해 힘을 합치면 대선에서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됐다. →‘새 시대의 맏형’이 되겠다고 했다. 문 후보의 국정운영 구상은. -노무현 대통령은 1987년 체제 속에서 대통령이 됐다. 1987년 체제의 기본 정신이 ‘정치적 민주주의’를 제대로 하자는 것이고, 참여정부는 그 시대정신에 충실했다. 참여정부 기간 동안 정치적 민주주의는 최고도로 발전했다. 그러나 사회경제적 민주화에 대한 요구를 충분히 (수용)하지 못한 게 참여정부의 한계였다. 이명박 정부는 더 후퇴해 버렸다. 이번 대선에서 출범할 정부는 2013년 체제다. 핵심은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 요구다. 2002년 대선 때는 구호로도 쓸 수 없었다. 좌파 소리를 들었다. 10년 동안 국민 의식과 요구가 바뀌었다. “개헌, 임기 초 곧바로 실행… 安후보 동참땐 공동개헌 추진” →1987년 체제의 전환으로서 개헌에 대한 구상은. -시대 교체가 체제 전환이다. 변화하는 시대 과제를 헌법에 제대로 반영해야 한다. 1987년 헌법은 대통령 직선제를 담는 것에 급급했다. 권력구조뿐 아니라 국민 기본권 조항까지 제대로 헌법을 손보는 게 필요하다. 헌법 제도에 관한 충분한 논의를 거치고 여론 수렴이 되면 개헌해야 한다. 국회에 개헌특별위원회를 설치해 연구해야 한다. 우리에게 시급한 4년 중임제나 국회의 대통령과 행정부 견제 강화 등은 합의가 이뤄지면 원포인트 개헌으로 우선해서 할 수 있다. 사전에 선거 공약으로 제시해 국민이 지지하면 임기 초에 곧바로 실행할 것이다. 안 후보도 뜻이 같다는 게 확인되면 공동으로 추진하거나 새정치공동선언에 담을 수 있다. →4년 중임제와 분권형 개헌에 대해 안 후보와 교감이 있나. -총리가 헌법에 정해진 대로 인사 제청권, 각료에 대한 해임 건의권 등을 제대로 행사하면 대통령의 남용을 견제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총리 임명 과정부터 여당과 협의하고, 총리를 중심으로 한 정당 책임정치도 해낼 수 있다. 삼권분립 면에서 국회 기능이 대통령과 행정부를 견제하는 데 치밀하지 못한 부분은 개헌을 통해 확대시켜 나갈 필요가 있다. 미국식으로 법률안 제안권을 국회에 두거나, 예산 편성권도 기본적으로 국회에 두는 방법을 생각할 수 있다. 감사원 기능 중 회계감사 기능을 국회로 이관하거나, 국정감사 상시화로 연중 국회가 가동되게 해야 한다. →경제민주화 관련 차기 정부조직 개편 구상은. -기존 정부부처 기능을 제대로 활성화하려고 한다. 추가한다면, 일자리를 통해 경제민주화를 이뤄야 하는데, 대통령 직속 일자리 위원회를 신설할 필요가 있다. 고용노동부에 일자리청을 두거나 별도로 둘 수도 있다. 재벌 거래질서를 공정하게 하기 위해 공정거래위원회 권한을 대폭 강화하고, 중소기업부를 신설해 중소기업을 적극 육성해야 한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큰 정부가 될 것으로 예측되는데. -‘작은 정부가 선(善)’이라는 미신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명박 정부가 정부 부처들을 폐지하고 통합했다. 그것이 다 실패라고 누구나 생각하고 있다. 심지어 박 후보조차도 그 기능들을 되살리겠다고 하는데, 사실 박 후보와 당시 한나라당 의원들이 폐지법안을 제출하며 다 찬성했었다. 한마디 사과나 반성도 없이, 얼렁뚱땅 선거 때가 되니 부활하겠다고 한다. 큰 정부가 목표는 아니지만 제대로 일할 수 있는 정부, 유능한 정부를 만들겠다는 생각이다. →복지 국가 실현을 위해서는 결국 증세가 필요하지 않은가. -저는 이미 증세를 주장하고 있다. 늘어나는 복지재원 대책으로 증세가 필요하다고 솔직하게 인정해야 한다. 증세가 주는 국민 부담을 피하기 위해 ‘부자감세 철회’라는 표현을 썼다. 참여정부 때 조세부담률이 21%였지만 부자감세로 19% 수준으로 줄었다. 부자감세만 철회해도 조세부담률이 2% 포인트 느는 효과가 있다. 지금 수준보다는 증세가 필요하다. 부자감세를 철회하고, 재벌 기업에 집중된 조세감면을 정비하고 법인세 실효세율도 조금 높여야 한다. 자본소득에 대한 과세도 제대로 하면 서민, 중소상인의 추가적인 세부담 없이도 복지 재원을 감당할 수 있다. →투표율 제고 방안은. -제도적으로 투표시간이 연장되면 많은 분들이 투표할 수 있게 된다. 정치권의 의무다. 단일화가 돼서 대선에 승리할 수 있다면 투표시간 연장에 동의하지 않는 박 후보를 투표로 심판하자는 분위기가 될 것이다. 정리 안동환기자 ipsofacto@seoul.co.kr 황비웅기자 stylist@seoul.co.kr
  • [사설] 문·안 단일화, 겉치레보다 비전으로 말하라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 후보와 무소속 안철수 대선 후보가 어제 단독 회동을 하고 오는 26일 대선 후보 등록 마감 전까지 단일 후보를 정하기로 합의했다. 이와 함께 두 후보 지지자들을 모은 국민 연대를 추진하기로 했다고 한다. 안 후보에 대해 제기되는 무소속 대통령에 대한 일각의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 정권 교체에 성공하면 민주당과 안 후보 지지 세력을 합친 신당을 창당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1987년 민주화 이후 대선에서의 정파 연대나 후보 단일화는 한국 정치의 전형이 되다시피 했다. 13대 대선을 앞두고 이뤄진 1990년 노태우·김영삼·김종필씨의 3당 합당과 1997년 김대중·김종필씨의 DJP연합, 2002년 노무현·정몽준 후보 단일화가 대표적 사례다. 13대 대선과 진보·보수 진영이 각기 따로 후보를 낸 2007년 17대 대선까지 1987년 민주화 이후 다섯 차례의 대선 가운데 세 차례 대선에서 연대가 이뤄졌고 세 차례 모두 연대 세력의 승리로 귀결됐다. 정파 연대나 후보 단일화의 파괴력이 그만큼 막대함을 말해준다. 그러나 그런 높은 승산과 별개로 후보 단일화가 국정의 성공을 담보하는지에는 여전히 의문부호가 따른다. 3당 합당이나 DJP연합 모두 집권 후 권력 다툼 끝에 갈라섰고, 노·정 단일화는 정부 각 부처에 대한 자리 나누기 차원의 물밑 협상을 벌이다 대선 직전 단일화 합의 자체가 파기되는 혼란을 겪었다. 후보 단일화의 첫발을 뗀 문·안 후보는 이런 전례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두 세력 간 연대 수순으로 나아가겠다면 무엇보다 단일화 방식을 따지기에 앞서 비전과 가치의 공유가 선결돼야 한다. 새 정치 선언 같은 겉치레성 구호가 아니라 집권 후 국정 방향에 대한 뚜렷한 비전과 이를 뒷받침할 구체적인 실천 계획들을 제시해야 한다. 이제껏 단일화 논의를 미루다 시간이 부족하니 대선 이후에 구체적 복안을 마련하겠다고 한다면 이는 국민을 우롱하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 대북 정책 현안이나 재벌 개혁, 교육 정책 등에 있어서 드러난 간극부터 조율하고 정리하는 게 책임 있는 자세다. 책임총리제를 고리로 권력을 나누겠다면 이 또한 공개적으로 논의하고 국민의 판단을 구하는 게 당당한 태도다. 두 후보의 단일화 논의에 한국 정치의 격과 장래가 달렸음을 명심하기 바란다.
  • 朴 “국회의원 후보선출 경선 법제화”

    朴 “국회의원 후보선출 경선 법제화”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와 안대희 정치쇄신특별위원장이 6일 오전 발표 전까지 수위를 놓고 밀고 당겼던 ‘박근혜표 정치 쇄신안’은 국민의 눈높이와 실천 가능성을 절충한 방안으로 볼 수 있다. 국민 눈높이와 ‘안철수 현상’을 고려하면 더 강력한 개혁안을 내놓아야 하지만 실천을 담보하자니 ‘깜짝 카드’를 제시할 수 없는 현실적 한계가 있었다는 얘기다. 그렇다 보니 내용 파괴력에서는 약하고 오히려 시간을 끌다가 정치 개혁 주도권을 야권에 빼앗긴 ‘타이밍 실기’만 더 도드라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야권 단일화의 ‘맞불 카드’로 만지작거렸던 개헌론도 ‘집권 후 4년 중임제 논의’라는 원칙만을 제시했다. 이에 대해 이재오 의원은 “분권 없는 4년 중임제는 임기 연장이며 장기 집권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박 후보는 이날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정치가 실망스럽다고 해도 정치를 없앨 수 없다.”면서 “(정치 쇄신은) 정치를 복원하고 정치가 역할을 잘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안철수 무소속 대선 후보와의 차별을 시도했다. 박 후보는 정치 쇄신의 큰 줄기로 정당 개혁과 국회 개혁, 민주적 국정 운영, 깨끗한 정부를 꼽았다. 정당 개혁은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와 안 후보의 ‘낡은 정치’ 공격에 대한 반론 성격이 엿보인다. 박 후보는 국회의원(지역구) 후보를 여야가 동시에 국민 참여 경선으로 선출하는 방안을 법제화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야권의 ‘늑장 후보’ 선출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대선 후보는 선거일로부터 4개월 전, 국회의원 후보는 2개월 전까지 확정하는 내용을 담았다. 기득권 내려놓기에 대한 국민적 요구도 일정 부분 수용했다. 기초자치단체장과 기초의원의 정당 공천 폐지, 국회의원의 면책특권 제한과 불체포 특권 폐지를 추진하기로 했다. 그러나 정치쇄신특위가 지난달 25일 제안한 것으로 알려진 중앙당의 권한 축소와 검찰, 국세청 등 권력기관의 특권 폐지에 관한 내용 등이 쇄신안에 빠져 기득권 내려놓기에 대한 개혁 의지가 다소 약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정치권의 핫이슈로 떠오른 개헌에 대해 박 후보는 “대통령 선거용의 정략적 접근이나 내용과 결론을 미리 정해놓은 시한부 추진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자 친이(친이명박)계 비주류인 이 의원은 이날 트위터에 쓴 글에서 “정당과 국회, 선거, 검찰, 경제 등의 개혁은 현행 헌법으로는 불가하다. 현행 헌법은 5년 단임제만 빼면 유신헌법의 아류”라고 주장했다. 그는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력을 내려놓는 권력 구조의 변화가 시대의 흐름”이라면서 “(박 후보와 내가) 갈수록 생각의 차이가 많아진다.”고도 했다.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도 JTBC에 출연해 “1987년 이후 25년이 지났는데 근본적으로 내각제로 간다거나 하면 모를까 대통령제에서 단임제를 4년 중임제로 가자는 것 자체는 별로 큰 의미가 없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 [이춘규 선임기자의 대선 풍향계] 한쪽 후보의 극적 양보 기대감 속 “이제나 저제나” 국민 단일화 피로감 “역사 죄인 되지 마라” 87년 교훈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후보의 야권후보 단일화 성사는 정권교체라는 측면에서 당연시되는 분위기가 있다. 단일화를 전제로 시기와 방법이 구체적으로 나돌고 있는 이유다. 그런데 누구로 단일화가 되더라도 최소 한 자릿수에서 최대 30%까지 지지표가 이탈할 수 있다는 여론조사가 나오는 등 단일화 만능론을 무색하게 하거나 단일화 무산 가능성도 본격 제기되고 있다. 단일화 무산론은 새누리당에서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와 문·안 후보의 빅3 대결론이 대표적이다. 범야권에서는 여전히 단일화가 당연시되고 있지만 “단일화 무산 가능성이 절반을 넘는다.”는 분석은 물론 70% 이상이라는 주장까지 나온다. 단일화가 난제 중의 난제임을 말해 준다. 역사적으로도 단일화는 난제였다. 1987년 대통령선거 때는 야권의 김영삼·김대중 후보가 재야의 거센 단일화 압박에도 불구하고 ‘3자 필승론’이 나오면서 무산됐다. 그 결과 노태우 민주정의당 후보가 어부지리로 당선됐다. 1997년 대선 때는 김대중 국민회의 후보와 김종필 자유민주연합 총재가 담판을 통해 단일화에 성공, 김대중 후보가 당선됐다. 내각제 개헌을 매개로 했지만 끝내 내각제는 무산됐다. 이인제 국민신당 후보가 여권표를 잠식했지만 불과 39만표 차이였다. 2002년 대선 때는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후보와 정몽준 국민통합21 후보가 여론조사를 통해 단일화를 성사시켰다. 선거 전날 정 후보가 단일화 파기 선언을 해버렸지만 진보진영의 표 결집 현상으로 노 후보가 간신히 이겼다. 2007년에는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와 문국현 창조한국당 후보가 막판까지 티격태격하다 단일화가 무산됐다.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초강세여서 단일화를 해도 승리 가능성이 적다는 판단이 작용했다는 평이다. 돌이켜보면 지지율이나 세력 차이가 크게 날 때 단일화는 성공했다. 1997년 대선이 대표적인 예다. 지지율이나 세가 팽팽하거나 단일화 효용이 없을 때는 실패했다. 1987년과 2007년의 경우다. 지지율이 팽팽했지만 세력 차이가 확연했던 2002년에는 단일화에 성공한 듯했지만 최종적으로 결렬됐다. 단일화가 어렵다는 방증이다. 이런 기준에서 보면 문·안 후보의 단일화 여건은 좋지 않아 보인다. 문·안 후보의 지지율은 팽팽하다. 세력 차이도 크지 않아 보인다. 200명 가깝게 팽창한 안 후보 캠프도 정당 수준으로 커졌다. 후보가 자진해서 양보하려 해도 어려운 구조가 돼 버렸다. 1987년 당시 재야세력은 “역사의 죄인이 되지 말라.”며 양 김씨를 압박했지만 단일화에 실패했다. 상대를 주저앉히려 하기보다는 절박성을 갖고 단일화에 임하라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배경이다. 올해도 25년 전처럼 재야를 중심으로 외부 압박이 고조되고 있다. 국민들의 단일화 피로감이 높아지는 등 상황도 점차 엄혹해지고 있다. 한 후보의 극적인 양보를 기대하는 소리도 나오기 시작했다. 두 후보 진영이 단일화 문제를 냉정하게 되짚어봐야 할 때 같다. taein@seoul.co.kr
  • 문화·학계인사 102명 “단일화는 시대정신” 성명

    문화·학계인사 102명 “단일화는 시대정신” 성명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후보 간의 단일화를 촉구하는 범야권 진영의 압박이 거세지고 있다. 두 후보 간의 단일화 논의가 접점을 찾지 못한 채 자칫 박근혜·문재인·안철수의 3자 대결 구도로 대선이 치러질 경우 야권이 필패할 수밖에 없다는 위기 의식이 강하다. ●인터넷 카페 등서 서명운동 진행 문화계·영화계·미술계·종교계·학계 등 각계 인사 102명은 22일 “정치개혁과 단일화가 곧 민주주의이자 시대정신”이라며 문·안 후보의 단일화를 촉구했다. 소설가 황석영·정도상씨와 화가 임옥상씨는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금 대한민국의 가장 중요한 화두는 정권을 바꾸는 일로 우리는 두 후보를 모두 지지한다.”면서 “두 후보가 내놓는 정치개혁의 출발은 마땅히 단일화가 전제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문 후보에게는 ‘민주당의 개혁’을, 안 후보에게는 ‘정치개혁의 구체적 청사진 제시’를 요구하면서 “후보 단일화 실패로 한국 민주주의와 사회발전 수준을 심각하게 후퇴시켰던 1987년의 실패를 되풀이해선 안 된다.”고 경고했다. 성명에는 소설가 황지우·김연수씨, 영화감독 정지영·송해성씨, 영화배우 박중훈·안석환씨, 명진 스님, 서일웅 목사, 홍창진 신부 등이 참여했다. 이들은 앞으로 인터넷 카페를 통한 서명운동 등을 진행할 계획이다. 소설가 이외수씨와 조국 서울대 교수는 이번 명단에는 빠졌지만 성명서 취지에는 동감을 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야권 원로 모임인 ‘희망2013 승리2012 원탁회의’는 이르면 이번 주 내 단일화에 대한 입장을 표명할 예정이다. 원탁회의는 지난 18일 비공개 회의를 연 뒤 각계 의견을 수렴 중에 있다. 원탁회의 멤버인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와 함세웅 신부 등은 두 후보와 모두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단일화 협상 과정에서 가교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원탁회의’ 이르면 주내 입장 표명 이와 함께 ‘내가 꿈꾸는 나라’ 등 시민단체는 이날 ‘우리는 유권자다’라는 주제로 시민콘서트를 열면서 야권 단일화를 위한 분위기 만들기에 군불을 지피고 있다. 행사에는 조국 교수,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정태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장 등이 패널로 참석했다. 송수연기자 songsy@seoul.co.kr
  • 동지였던 두 여인, 앙숙이 되다

    동지였던 두 여인, 앙숙이 되다

    지난 20일 서울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총회에서 심상정 진보정의당 대선 후보가 청한 악수를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가 외면하는 한 장의 사진(아래)은 한때 ‘동지’에서 ‘앙숙’이 된 두 정치인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 줬다. 지난해 12월 통합진보당을 창당하며 손을 맞잡은 지 불과 1년도 되지 않아 당이 쪼개지며 진보정치를 대표하는 두 여성 정치인은 악수조차 꺼리는 사이가 된 셈이다. 분당의 상흔이 가시지 않은 자리에 진보진영 대표주자 자리를 둘러싼 ‘제2차 혈투’만이 남았다. 심 후보(78학번)와 이 후보(87학번)는 서울대 선후배 사이다. 함께 대학 생활을 한 적은 없지만 심 후보가 1980년 서울대 최초로 결성한 총여학생회에서 10년 뒤 이 후보가 총여학생회장을 하는 등 학생운동을 고리로 한 특별한 인연을 갖고 있다. 심 후보는 1980년 이후 미싱사로 구로공단에 취업해 25년간 노동운동을 했고, 1985년 6월 구로 지역 노조들의 동맹파업 사건의 주동자로 지명 수배돼 1993년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노동 현장에서 잔뼈가 굵었고 금속노조에서 일하면서 ‘철의 여인’으로 불렸다. 이 후보는 1987년 대입학력고사에서 전국 여자 수석을 차지하며 서울대 법대에 입학해 1996년 사법시험(38회)을 거쳐 인권변호사의 길을 걸었다. 너무나 다른 궤적을 걸어온 두 여인은 2011년 통합진보당 창당을 위한 논의 테이블에서 처음 마주 앉았다. 두 사람 모두 민주노동당 출신이지만 이 후보가 입당해 18대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된 2008년 당이 쪼개지며 심 후보가 떠났기 때문이다. 통합진보당 창당 당시 심 후보는 서울대 78학번 동기이기도 한 유시민 전 대표의 국민참여당 합류를 반대했지만, 이 후보는 “과거에 무엇을 했는지를 묻지 않겠다.”며 적극 찬성해 심 후보와 대척점에 서기도 했다. 창당 이후에는 ‘이정희-심상정-유시민’ 3인 공동대표 체제로 당을 운영하며 찰떡 공조를 자랑했다. 이 후보 측은 “당시 이 후보가 심 의원을 깍듯이 선배로 예우했다.”고 했고, 심 후보 측도 “사석에서도 둘은 관계가 좋았다.”고 말했다. 공조는 오래가지 못했다. 분당 이후 대선 주자로 다시 돌아온 이 후보를 향해 심 후보는 “한을 풀기 위한 대선 출마는 곤란하다.”고 직격탄을 날렸고, 이 후보는 진보정의당을 향해 “사기로 진보정치를 할 수는 없다.”며 독설을 퍼부었다. 두 후보가 대선에 출마한 것도 진보정의당과 통합진보당의 진보정당 ‘적자경쟁’ 때문이다. 심 후보는 공식적으로 완주를 목표하고 있지만, 야권연대를 통해 이제 막 출발한 진보정의당이 대선에서 두각을 나타내게 하는 게 보다 큰 목표다. 공약에선 노동 분야에 역점을 둬 차별성을 부각시키려 하고 있다. 이 후보는 연일 새누리당에 대립각을 세우며 진보정치의 선명성을 각인시키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안철수·문재인 후보 측의 반응이 싸늘한 상황에서 야권 연대보다는 당의 재정비에 신경을 쓰는 분위기다. 이현정기자 hjlee@seoul.co.kr
  • “최종길교수 죽음은 중정 고문 때문”

    “최종길교수 죽음은 중정 고문 때문”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독재에 항거하다 1973년 10월 19일 의문의 변사체로 발견된 최종길(사진 오른쪽) 서울대 법학과 교수. 그의 죽음이 당시 중앙정보부에 의해 ‘자살’로 조작된지 1년이 지난 74년 10월 9일 미 워싱턴포스트에는 ‘한국의 우울한 1주년’이라는 칼럼이 실렸다. 칼럼은 최 교수가 정권에 의해 죽임을 당했을 가능성을 처음으로 제기했고, 이는 박정희 정권의 인권탄압 실상을 전 세계에 알리는 거대한 전기가 됐다. 칼럼이 실린 뒤 함세웅 신부는 국내에서도 최 교수의 죽음을 공개적으로 거론해야 한다고 판단했고, 급기야 그해 12월 10일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은 명동성당에서 “최 교수는 자살한 것이 아니라 고문치사됐다. 인권유린의 수부(首府)인 중앙정보부 등은 해체되어야 한다.”며 진상규명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당시 유신체제로 얼어붙어 있던 한국에 ‘의문사 1호’ 최 교수의 억울한 죽음을 알림으로써 민주화의 불씨를 댕긴 이 칼럼을 쓴 사람은 하버드대 법대 교수였던 제롬 코언이었다. 그는 앞서 1973년 8월 김대중 전 대통령 납치사건 때에는 헨리 키신저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게 전화를 걸어 구명 활동을 펼치기도 했던 인물이었다. 19일 최 교수 사망 39주기를 맞아 현재 뉴욕대 법학과에 재직 중인 한국 민주화의 숨은 공로자 코언(사진 왼쪽·82) 교수를 이메일로 만났다. “최종길 교수를 죽인 것은 중앙정보부의 고문이었습니다. 한국사회가 늦게나마 과거사 바로잡기에 나선 것은 기쁜 일이지만 사과의 진정성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국민들의 몫입니다.” ●“최교수 죽음 ‘유신살인’ 중 하나” 코언 교수는 1970년 하버드대 교환교수로 초빙된 최 교수와 처음 인연을 맺었다. 최 교수는 2년 후 한국으로 돌아갔다가 이듬해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최 교수는 죽기 전 유신헌법에 반대시위를 벌이던 서울대 학생들이 연행되자 이에 항의할 것을 제안 했다가 중앙정보부에 간첩 혐의로 연행됐다. 최 교수가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된 뒤 당시 김치열 중앙정보부 차장은 “최 교수가 간첩임을 자백하고 7층에서 투신했다.”고 밝혔다. 2002년 대통령 직속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는 “중정의 고문과 협박 등 각종 불법수사에도 불구하고 최 교수는 강요된 간첩 자백을 하지 않았다.”며 그를 민주화운동가로 인정했다. 코언 교수는 “40여년이 지난 지금도 지적이며 사려 깊고 유머와 겸손함을 함께 갖췄던 최 교수의 모습이 내 마음에 생생히 남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최 교수는 중앙정보부의 고문에 의해 너무나 일찍 세상을 떠났다.”면서 “박정희 정권에서 자행된 수많은 살인 중 하나였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동아시아 국가의 법과 인권 문제에 남다른 관심을 갖고 있던 코언 교수는 한국과 중국 등을 오가며 활발한 연구 활동과 인권 운동을 벌였다. 그는 “엄혹했던 박정희 정권 시절 한국을 자주 찾았던 학자로서 박정희 정권의 잔혹성과 그에 대한 국민들의 두려움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면서 “최 교수뿐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민주 정부를 세우기 위해 투쟁했던 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평생을 법학자로 살아온 그는 올해 40년을 맞은 유신헌법에 대해 “장점도 많았지만 선포 즉시 독재정권에 의해 오용됐다.”고 평가했다. 그는 74년 처음으로 시행된 긴급조치를 예로 들며 “당시 박정희 정권에서 벌어진 독재는 북한에서 벌어지던 독재와 다를 바 없었다.”면서 “주목할 만한 경제 성장을 이루긴 했지만 끔찍한 수준의 부패도 만연했다.”고 했다. 코언 교수는 1972년 북한을 방문한 최초의 미국인 학자였다. ●“독재는 좌·우파 모두 인정 못해” 코언 교수는 “(87년 6월 항쟁 이후) 한국은 25년간 민주적 발전을 이어왔다.”면서 한국의 민주주의를 높이 평가했다. 그는 “한국의 사례는 ‘유교와 불교가 기반인 동아시아에서는 민주적인 정체(政體)를 세울 수 없다’고 주장했던 독재자들의 논리를 반박한 훌륭한 증거”라면서 “이러한 정치적 결사체를 통해서만 민주주의 근간인 법과 시민권을 지켜낼 수 있다.”고 말했다. 민주국가는 구성원 간의 자유로운 토론과 합의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사회가 과거사 문제 해결에 나선 데 대해 반색을 표했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의 과거사 사과에 대해 “내가 박 후보의 진정성을 평가할 수는 없다.”면서도 “한국 국민들이 대선 과정에서 박 후보의 진정성을 판단해 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과거의 잘못을 기억하되 미래를 바라보며 민주주의를 꾸준히 개선해 나가야 한다.”는 그는 “그 길이 최 교수처럼 더 나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희생한 사람들을 기리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독재는 좌파의 것도, 우파의 것도 인정할 수 없다.” 그는 1974년에 쓴 칼럼을 이렇게 끝맺었다. 배경헌기자 baenim@seoul.co.kr
  • [경제민주화 정책 대해부] 재벌개혁 핵심 쟁점은

    경제민주화는 최근 들어 부쩍 많이 거론된 단어이지만 새로운 개념은 아니다. 우리 헌법에 ‘국가는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 남용의 방지를 통해 경제의 민주화를 위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119조 2항)라고 규정돼 있다. 다만 최근 논의의 초점은 재벌 쪽에 맞춰져 있다. 재벌들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저환율 정책에 따른 수출 증가와 감세 등으로 막대한 이윤을 챙겼음에도 덩치를 키우는 데만 급급, 사회적 책임은 등한시했다는 비판이 높기 때문이다. 중소기업과 골목상권 등 서민경제를 망가뜨리는 주범으로도 지목됐다. 이에 따라 경제민주화의 세부 정책은 비대해진 재벌 구조의 재편성을 목적으로 한다. 금산분리 강화, 순환출자 금지, 출자총액제한제도 부활이 경제민주화 정책의 ‘트로이카’로 불리는 이유다. 먼저 금산분리는 말 그대로 금융자본(은행·보험 등)과 산업자본(기업)을 떼놓자는 것이다. 지금도 은행법에 산업자본은 은행 지분을 9% 이상 소유할 수 없도록 규정돼 있다. 금산분리 강화 주장의 주된 논리는 기업이 은행까지 소유하면 경제력 집중이 일어나고, 자금사정이 어려운 계열사나 총수 개인의 비자금 조성 등의 용도에 악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은행 자금이 특정 산업에 쏠렸다가 해당 업종이 부실해지면 고객 예금이 불안해져 뱅크런(예금 인출 사태)까지 야기할 수 있다는 점도 금산분리 강화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금산분리 못지않게 논란이 큰 쟁점은 순환출자 금지다. 순환출자란 한 그룹 안에서 계열사들이 서로 꼬리를 물며 출자하는 방식을 말한다. 순환출자의 가장 큰 맹점은 그룹 총수가 자기 자금이 아닌 계열사 자금을 통해 지분에 비해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연결고리에 있는 한 회사가 망하면 다른 기업도 연쇄적으로 부도가 날 수 있다. 이에 따라 순환출자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C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A기업의 지분을 A기업이 되사야 한다. 대선 후보들 가운데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후보는 신규 순환출자만 막자는 입장이다. 반면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는 기존 순환출자까지 잘라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규모 기업집단이나 계열사가 자산의 일정 범위 이상을 다른 회사에 출자할 수 없도록 제한하는 출자총액제한제도 부활 역시 찬반이 갈린다. 출총제는 계열사 간 과도한 출자로 재벌의 소유지배구조가 왜곡되는 것을 막고, 계열사 간 동반 부실의 위험을 낮춘다는 목적을 갖고 있다. 1987년 4월 도입됐다가 외환위기 때인 1998년 2월 폐지됐다. 김대중 정권 때인 2001년 부활됐으나 2009년 다시 폐지됐다. 다만 출총제가 부활하더라도 그 효과는 미미할 전망이다. 경제개혁연구소 분석에 따르면 10대 그룹의 모든 계열사에 대해 순자산의 40%(2009년 출총제 폐지 직전 기준) 이상의 출자를 금지할 경우 SK(2조 4010억원), 한화(2조 651억원), 한진(1조 5662억원) 등 3개 그룹만이 해소 대상이 된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이춘규 선임기자의 대선 풍향계] ‘단일화 열쇠’ 호남민심은 정중동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지도력 공백 상태에 빠져 있는 광주·전남·전북의 호남. 호남 민심은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노무현 후보를 만들어 내는 ‘전략적 선택’이라는 말을 탄생시키면서 수도권과 충청·강원 등 전국적인 민심 변화의 안내자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이런 호남 민심이 올 대선 정국에선 어디로 귀착될까. 호남 민심은 현재 정중동이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는 추석 연휴 뒤 지지율 상승세를 타던 호남에서 지지율 재하락 징후를 보인다. 안철수 무소속 후보를 턱밑까지 추격하던 문 후보 지지율이 다시 하락했다. 일시적일지, 추세로 굳어질지는 미지수이지만 지난 9일 송호창 의원의 안철수 캠프 합류가 겹치면서 예사롭지 않다. 실제 광주MBC의 6~7일 광주·전남 지역 야권 후보 단일화 여론조사에서 문 후보는 31.0%로 안 후보(55.3%)에게 24.3% 포인트 뒤졌다. 미디어리서치의 5~6일 호남 지역 야권 단일후보 지지도에서 는 문 후보(34.8%)가 안 후보(51.3%)에게 16.5% 포인트 뒤졌다. 지난 1일 이 기관의 조사 때는 문 후보(42.9%)가 4.4% 포인트 밀렸었다. 문 후보 측은 여론조사가 못 짚어 내는 밑바닥 민심에 더 촉각을 곤두세운다. 민주당 한 인사는 10일 “바닥 민심은 여론조사보다 훨씬 나쁘다는 보고도 있다.”고 전했다. 핵심 당직자도 “문 후보가 호남인의 감성에 호소하지 못해 고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고위급 호남 민심 수습단 파견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호남 민심을 얻어야 야권 후보 단일화가 본격화될 경우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 후보가 주창하는 ‘호남 아들론’이 참여정부의 호남 홀대론이나, 부산정권론을 넘어설 수 있다는 기미는 안 보인다. 게다가 유권자들이 안 후보에 대한 각종 의혹 제기를 ‘구태정치’로 치부하는 프레임이 작동하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에 대한 대응책 마련에 부심한다. 호남 민심을 바라보는 민주당 내 사정은 복잡하다. 국회의원들은 지방선거나 국회의원 선거 공천을 의식해 문 후보를 돕고는 있지만 호남 민심이 뜨악하자 주춤거리기도 한다. 호남 민심이 안 후보에게 정권교체 가능성 점수를 후하게 주는 것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호남인들은 후보 단일화 기준으로 정권교체 가능성을 꼽는다는 조사가 있다. 호남 민심 변화의 에너지가 임계점을 넘어 정계 개편으로까지 연결될 수 있을지 예단하긴 이르다. 다른 변수들과 어울려 정치체제 재편의 촉매제가 될지도 모른다. 민주화 결과물로 탄생한 1987년 체제(헌법)는 어느덧 25년이 흘렀다. 그래서 여야를 막론하고 동시에 흘러나오는 각종 개헌론이 예사롭지 않게 들린다. teain@seoul.co.kr
  • 金, 친박 좌장→ 탈박→ 복박 변신

    한때 친박(친박근혜)계의 ‘좌장’이었던 새누리당 김무성 전 의원과 박근혜 대선 후보의 남다른 인연이 다시금 주목을 끈다. 김 전 의원은 친박의 ‘맏형’에서 대표적 탈박(탈박근혜) 인사로, 다시 복박(복박근혜) 인사로 면모가 바뀌어 왔다. 2005년 당시 당 대표였던 박 후보가 김 전 의원을 사무총장에 기용하며 두 사람의 인연은 시작됐다. 김 전 의원은 1987년 통일민주당에서 정치를 시작, 김영삼 전 대통령 밑에서 활약한 대표적 상도동계 인사다. 2인자를 두지 않는 박 후보의 인사스타일에도 불구하고 김 전 의원은 계파에 얽매이지 않은 특유의 포용력과 배포, 오랜 당료 경험을 바탕 삼아 18대 국회 초반까지 친박 진영의 좌장 역할을 했다. 2007년 경선 당시엔 박근혜 경선 캠프 조직총괄본부장을 맡아 경선을 진두지휘했다. 경선 패배 후 해단식에서 그가 탁자에 머리를 찧으며 눈물을 훔쳤다는 일화는 당내에서 두고두고 회자됐다. 그러다 2009년 5월 원내대표 출마 문제를 시작으로 두 사람은 점차 멀어지기 시작했다. 친이(친이명박)·친박 갈등이 극에 이르렀던 당시 박 후보는 미국 방문길에서 “‘친박 김무성 원내대표 추대론’이 당 쇄신에 맞지 않는다.”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이후 세종시 추진안을 놓고도 두 사람은 서로 등을 돌렸다. 관계회복의 물꼬는 올해 4·11 총선에서 터졌다. ‘현역의원 하위 25% 배제’ 기준에 걸려 낙천이 점쳐진 김 전 의원이 “영원한 당인(黨人)인 제가 우파 분열의 핵이 되는 것은 옳지 못한 일”이라며 탈당 가능성을 일축하고 백의종군한 것이다. 낙천자들을 직접 설득한 그의 백의종군으로 새누리당은 총선 승리의 발판을 마련했다. 비상대책위원장이었던 박 후보도 김 전 의원에게 “부산 사나이다움을 보여주셨다.”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의 ‘컴백’은 이미 8월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 예고됐다. 4·11 총선 돈봉투 파문, 비박계 갈등 등 악재가 이어지자 김 전 의원이 대선캠프 선대위원장을 맡아 당 화합을 이끌어야 한다는 의견이 쏟아졌다. 당 안팎에선 “김 전 의원이 당을 두 번 구원해야 한다.”며 그의 행보를 주시하고 있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서울광장] 쇼는 그만 좀 하시지요/육철수 논설위원

    [서울광장] 쇼는 그만 좀 하시지요/육철수 논설위원

    대통령 직선제가 다시 실시된 1987년 대선 때는 분위기가 험악했다. 민주화의 두 축인 김영삼·김대중 후보의 야권 단일화 실패와 지역감정, 군사독재 후유증 등으로 선거판은 전쟁터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5년 단임 대통령’ 개헌안은 선거일(12월 16일)을 두 달도 남겨놓지 않은 10월 27일에야 국민투표를 통과했다. 야권은 통일민주당과 평화민주당으로 갈라져 11월 9일(김영삼)과 12일(김대중) 부랴부랴 후보를 정했다. 그러니 유력 후보(노태우·김영삼·김대중·김종필)들은 국정수행 능력과 정책을 검증받거나 알릴 틈도 없이, 각자 기존의 이미지만 갖고 선거전에 뛰어들었다. 서로 선명성을 내세우고 강성 발언을 쏟아내니 유세장은 폭력으로 얼룩지기도 했다. 김대중 후보는 대구 유세에서 반감이 있는 청중들에게 돌멩이와 달걀 공격을 받았다. 노태우 후보와 김영삼 후보는 광주 유세 때 돌과 쇠붙이가 연단에 날아들어 연설조차 못했다. 요즘 후보들처럼 부드럽고 친밀한 분위기로 아기자기하게 이끌어 가는 선거운동을 지켜 보면 그 당시와 비교가 된다. 벌써 25년이 흘렀고 후보와 유권자도 많이 성숙해졌다. 하지만 후보들의 중량감과 선거의 역동성이 점점 뒷걸음질 치는 느낌을 받는 것은 왜일까. 추석을 지나면서 18대 대통령 선거가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연일 발표되는 여론조사를 보면 박근혜(새누리당)·문재인(민주통합당)·안철수(무소속) 등 ‘빅3’ 후보의 박빙으로 나타난다. 아직 선거전에 본격적으로 돌입한 게 아니어서 후보들은 좋은 이미지를 심기에 정신이 없다. 박 후보는 태풍 피해 현장을 찾아 고무장갑을 끼고 빨래를 하고, 대학생들과 어울려 어설프나마 싸이의 말춤을 추었다. 다문화가정을 대표한 베트남 여성의 발을 씻겨주기도 했다. 문 후보가 논산 육군훈련소를 찾아 얼굴에 위장 크림을 바르고 훈련병처럼 각개전투를 하는 모습도 인상적이다. 어느 여성모임에 참석해 앞치마를 두르고 서툴게 요리 솜씨를 보여주기도 했다. 안 후보도 소방제복을 입고 휴일 근무자들을 격려하고, 태풍 피해 지역을 방문해 어민들을 위로했다. 대학 강연회에도 참석해 젊은이들과 자주 의견을 나눈다. 후보들은 이런 ‘쇼’를 통해 국민과 아픔을 함께하고, 낮은 자세로 섬기며, 세대 간 소통을 하겠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을 것이다. ‘정치는 쇼 비즈니스’라고 했듯, 연출한 이벤트를 탓할 일만은 아니다. 다만 ‘쇼’가 일회성 사진 촬영용으로 끝나지 않고, 거기에 담긴 마음과 열정이 국정에 파묻힐 대통령이 되어서도 변치 않기를 바랄 뿐이다. 이제는 그들의 겉모습을 볼 만큼 봤다. 하루에 한 가지씩 보이려면 후보도 피곤할 테고, 신선하고 눈길을 끄는 행사를 준비해야 하는 캠프 관계자들은 더 고달플 것이다. 형식적인 ‘쇼’는 하면 할수록 식상하고 감동도 식어 버리기 마련이다. 상품은 외관이 좋아야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역시 성능이다. 정치 소비자들은 후보의 성능(국정수행능력과 정책)을 들여다보고 싶어 하는데, 찔끔찔끔 내놓으니 감질이 난다. 박 후보는 ‘하우스 푸어’ 대책을 내놓았다가 시장에서 외면을 당했다. 그래도 대안을 찾으면 되니까 침묵하는 것보다는 낫다. 문 후보는 남북 10·4 선언 5주년을 맞아 대북정책을 밝혔다. 전문가나 언론의 평가·비판과는 별개로 유권자들이 지지 여부를 판단할 근거를 일단 내놓은 셈이다. 안 후보도 “경직된 남북관계를 풀려면 박왕자씨 피격사고, 천안함·연평도 사건에 얽매이지 말고 대화부터 조건 없이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진영논리가 분분하겠지만 그의 대북관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소비자들이 한 가지 성능만 보고 물건을 고를 수는 없는 법. 후보들은 경제민주화, 복지, 동북아 정세 등 집권을 위해 준비한 각자의 보따리들을 좀 더 속도감 있게 풀어야 할 때가 됐다. 그래야 다음 5년 동안에 꿈을 꾸든 미리 희망을 접든 할 게 아닌가. ycs@seoul.co.kr
  • 김종인·이정우·장하성 경제민주화 ‘3각 대결’

    김종인·이정우·장하성 경제민주화 ‘3각 대결’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가 4일 정책 산실인 ‘미래캠프’의 경제민주화위원회 위원장에 참여정부의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이정우 경북대 교수를 임명했다. 이에 따라 새누리당 박근혜, 민주통합당 문재인, 무소속 안철수 후보 캠프의 경제민주화 사령탑 대진표가 확정됐다. 박 후보의 경제 브레인을 맡은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 문 후보의 경제 정책을 책임지는 이정우 경제민주화위원장, 안 후보의 경제정책총괄역을 맡은 장하성 고려대 교수의 삼각대결이 불가피해졌다. 세 사람은 경제주체 간의 조화, 경제력 남용 방지, 적정한 소득 분배 등 경제민주화 총론에는 공감하고 있으나 핵심 의제인 재벌 개혁 방안 등 세부 공약에서는 차별화 전략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서강대 교수 출신으로 1987년 개헌 당시 ‘경제민주화 조항’ 신설에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노태우 정부에서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냈다. 김 위원장은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금융위기를 거쳤음에도 재벌·대기업이 스스로 탐욕을 제어할 수는 없는 만큼 정부가 이를 억제하는 제도적 장치를 만드는 게 경제민주화라고 설명한다. 다만 재벌 개혁을 둘러싼 새누리당 내부 이견이 만만치 않아 김 위원장의 의견이 어떤 형태로 정책에 반영될지가 관건이다. 경북대 교수로 재직하다 참여정부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이 위원장은 지난 5월 출범한 문 후보의 싱크탱크이자 외곽 지원그룹인 ‘담쟁이 포럼’의 연구위원장을 맡아 문 후보의 경제정책을 지원해 왔다. 대구 출신의 이 교수는 경북고,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하버드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 교수는 ‘학현(學峴·변형윤 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의 아호) 사단’의 대표적인 인물이자 개혁 성향의 경제학자로 통한다. 이 위원장은 이날 언론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경제민주화의 핵심은 경제 약자들의 참여”라면서 “성장·복지·일자리·경제민주화가 함께 끌고 가는 4두마차 모델 구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재벌개혁과 관련, “지난 총선 당시 만들어 놓은 금산분리, 출자총액제한제 등을 토대로 재벌 정책을 실행할 예정”이라며 “지난 반세기 동안 성장만 강조하면서 분배는 잊힌 존재였기 때문에 앞으로 성장과 분배가 동행하는 모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장 교수는 안 후보의 싱크탱크인 정책네트워크 ‘내일’에서 외교·안보·통일 분야를 제외한 정책 분야 전반을 총괄하는 좌장을 맡았다. 특히 참여연대 경제민주화위원장을 맡아 소액주주운동을 펼친 ‘재벌 저격수’라는 점에서 장 교수는 재벌 개혁에 초점을 맞춘 경제민주화 공약을 중점적으로 펼쳐 나갈 것으로 보인다. 그는 지난달 27일 안 후보 캠프에 합류하자마자 “공정한 경쟁과 양극화 해결을 위해서는 재벌을 개혁해야 한다.”, “노동자, 서민, 중산층, 중소기업을 희생시키는 경제는 정의롭지 못하다.”고 재벌 개혁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현정·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데스크 시각] 거꾸로 대선승리법/오일만 정치부 차장

    [데스크 시각] 거꾸로 대선승리법/오일만 정치부 차장

    율곡 이이(李珥)는 1569년 갓 등극한 17세 어린 군주(선조)에게 장문의 상소문을 올린다. 조선 건국 177년이 지나 기존 질서가 붕괴되어 과감한 경장(更張)만이 살 길이라는 게 요지였다. 그 유명한 동호문답이다. 그는 조선의 정세를 옛집이 오래돼 대들보가 썩어서 곧 무너지려는 상황으로 진단하고 근본적인 개혁을 설파했다. 어린 선조와 그를 둘러싼 권력 실세들은 “지금은 만백성이 춤을 추는 태평성대”라며 코웃음 쳤다. 꼭 23년 후 조선은 임진왜란의 국난을 맞는다. 이이 선생의 고민은 2012년 대한민국에도 적용된다. 가중되는 서민들의 생활고, 무너지는 중산층, 비생산적인 정치권, 고질적인 지역주의, 절망에 빠진 젊은 세대…. 이것이 우리의 적나라한 현주소다. 단순하게 집을 수리하는 식의 미봉책으로는 출구 자체가 보이지 않는다. 패러다임 자체의 변화 없이 한국병은 도저히 손을 댈 수 없는 중증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원인과 결과에 대한 다양한 논쟁이 진행되고 있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1987년 체제 자체의 변혁을 처방으로 내놓는다. 직선 5년 단임제(대통령)와 소선구제(국회의원)로 요약되는 87년 개헌은 엄밀히 말하면 3김(김영삼·김대중·김종필)과 군부의 타협물이다. 당시 정치적으로 독재-반독재 구도 속에서 경제적으로는 고도성장을 뒷받침하는 체제였지만 25년이 지나면서 노화현상을 보이며 수명이 다해 가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세상은 국내외적으로 급변하고 있는데 우리 정치권은 ‘유통기간’이 지난 과거 시스템에 매달려 있다. 주체사상을 금과옥조로 되뇌는 북한 김정은 3대 세습 정권과 무슨 차이가 있는지 반문하고 싶을 정도다. 우리 역시 이이가 지적한 경장의 시기에 직면한 것이다. 변화를 갈망하는 유권자들은 지금 반란을 꿈꾸고 있다. 다원적 가치를 추구하는 유권자들에게 이분법적 분열의 논리를 강요하는 정치권에 대한 반감과 혐오는 극에 달해 있다. ‘안철수 현상’이 단적인 예다. 지난해 10월 재보궐선거에서 5% 지지율을 보인 박원순씨를 일약 서울시장으로 만든 것은 유례가 없는 선거 쿠데타였다. 정치 소비자인 국민들의 요구가 외면당하는 상황에서 ‘반란의 대열’에 서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정치 변혁이란 측면에서 “큰 혼란 속에 큰 통치가 가능하다.”는 마오쩌둥의 대란대치(大亂大治)식 반어법이 통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이런 맥락에서 12월 대선은 어찌 보면 이미 해답이 나와 있다. 유권자들이 원하는 새로운 정치문법에 충실하게 따르면 된다. 신정치문법은 지난 25년간 작동했던 기존의 정치 행태를 거꾸로 뒤집으면 된다. 멱살잡이 정치에서 상생의 희망 정치로, 눈앞의 표를 손해 보더라도 장기적인 국가 전략을 제시하면 된다. 앞으로 누릴 복지 리스트만 잔뜩 나열하지 말고 국민들의 땀을 요구하는 진정성이 되레 표심을 잡을 것이다. 여야 모두 성장과 복지, 경제 공약 정책에서 변별력이 떨어지는 만큼 솔직한 진정성에 더 무게를 둘 것이다. 네거티브 전략에서 벗어나는 것, 이것도 주요한 키워드다. 여권에서 진행되고 있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에 대한 신상털기식 검증은 반드시 부메랑으로 돌아오게 마련이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에게 가해지는 여당의 ‘유신 공세’ 역시 과거의 덫에 걸려 있는 야권의 밑천만 드러낼 뿐이다. 유권자들은 희망과 미래를 이야기하는 후보에게 박수를 보낸다. 네거티브 전략은 당장은 효과가 있는 것 같지만 결국은 마이너스가 되는 제로섬 게임에 불과하다. ‘바보 노무현’이 대권을 거머쥔 결정적인 동기는 누가 뭐래도 그의 도전 정신이었다. 지역구도의 정치 시스템이 시퍼렇게 작동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의 ‘거꾸로 정신’이 국민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새로운 정치 패러다임을 꿈꾸는 국민들은 상대방에게 박수를 치면서 ‘나는 더 잘할 수 있다’는 긍정의 비전을 제시하는 후보에게 찬사를 보낼 것이다. 이것이 국민들을 감동시킨다. 이것이 새로운 정치를 꿈꾸는 우리 국민들의 밑바닥 민심이다. oilman@seoul.co.kr
  • [씨줄날줄] 남행열차/이도운 논설위원

    남행열차. 1980년 김수희가 발표한 뒤 ‘국민가요’ 반열에 오른 노래. 32년 전통의 ‘KBS 전국노래자랑’에서 가장 많이 불렸고, 노래방 선곡순위에서도 꾸준하게 상위를 유지한다. 정혜경의 가사는 음울한 느낌을 주는 데 반해 김진룡이 만든 리듬과 멜로디는 격정적이다. 2011년 7월 10일 방송된 MBC ‘나는 가수다’ 4라운드 1차 경연에서 ‘가성의 마술사’ 조관우는 완전히 다른 ‘남행열차’를 선보였다. 달리는 관광버스 속의 중년 남녀들을 흥분시켰던 이 노래가 차분한 보사노바 풍의 재즈로 탈바꿈했다. 당시 이 노래를 편곡한 하광훈은 “가사를 자세히 들어보니 매우 슬픈 노래더라.”면서 “남도로 가는 밤 기차가 주는 서정을 담담하게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최근 광화문과 과천 관가에서 ‘남행열차’가 최고의 유행어로 떠올랐다고 한다. 각 부처 회식자리에서 노래가 아닌 건배사로 ‘남행열차’가 애용된다는 것이다. ‘남은 기간 행동 조심하고 열심히 일해서 차기 정부에 발탁되자.’라는 뜻이라고 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한바탕 생존경쟁에 들어가야 하는 공직사회의 불안한 분위기를 자조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1987년 이래 5년 단임 대통령제가 정착되면서 공직 사회도 5년마다 홍역을 앓고 있다. 87년 선거에서 노태우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는 그다지 큰 동요가 없었다. 일단 전두환 정부의 연장선상으로 보는 인식이 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92년 김영삼 대통령이 당선된 뒤 ‘개혁’의 칼을 휘두르기 시작하자 공무원들은 깜짝 놀라 몸을 사리기 시작했다. 이른바 ‘복지부동’이 시작된 것이다. 1997년 김대중 대통령의 당선으로 사상 처음 여야 정권교체가 이뤄지면서 공직사회도 주류와 비주류의 교체를 경험하게 됐다. 2002년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된 뒤에는 정부 고위직을 차지한 386들과 공무원들 간의 신경전이 이어졌다. 2007년 선거에서 다시 정권교체에 성공한 이명박 정권은 전 정권에서 ‘잘나가던’ 공무원들을 홀대했다. 그 때문에 능력 있는 고위 공직자들이 허망하게 떠나는 사례도 적잖았다. 얼마 전 민주당의 문재인 대선 경선후보는 안대희 전 대법관이 박근혜 캠프로 가자 “참여정부 때 승승장구했는데, 인간적 의리도 없이…”라고 힐난했다. 이에 대해 안 전 대법관은 “정권이 아니라 정부를 위해 일한 것”이라고 응대했다. 이상적으로는 안 전 대법관의 말이 옳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고위 공직자가 정권의 변화에 관계없이 소신을 지키며 일하기란 쉽지만은 않은 일인 것 같다. 이도운 논설위원 daw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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