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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삼 전 대통령 오늘 새벽 서거

    김영삼 전 대통령 오늘 새벽 서거

    대한민국 제14대 대통령을 지낸 김영삼 전 대통령이 22일 새벽 서거했다. 88세. 김 전 대통령은 이날 오전 0시 22분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에서 패혈증과 급성심부전으로 숨을 거뒀다고 오병희 서울대병원장이 긴급 브리핑에서 밝혔다. 김 전 대통령은 지난 19일 정오쯤 고열과 호흡곤란 증상으로 입원했으며, 상태가 악화돼 21일 오후 중환자실로 옮겨 치료를 받았지만, 상태가 악화하면서 사망에 이르렀다고 오 원장은 설명했다. 서거 당시 김 전 대통령 옆에는 차남 현철씨 등 가족이 자리해 임종했으나 부인 손명순 여사는 곁에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1993년부터 1998년까지 제14대 대통령을 지낸 김 전 대통령은 고령인 데다 체력이 많이 떨어져 종종 서울대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아왔으며, 그때마다 며칠씩 입원했다. 김 전 대통령은 앞서 지난 10일 검진 차 병원을 찾아 17일까지 입원한 뒤 퇴원했다. 1927년 12월20일 경남 거제군 장목면 외포리에서 김홍조와 박부연의 외아들로 태어난 김 전 대통령은 장목소학교, 통영중, 경남고를 거쳐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한 뒤 1954년 3대 민의원 선거에 최연소로 당선된 이후 9선(5·6·7·8·9·10·13·14) 의원을 지냈다. 야권 후보단일화에 실패한 채 통일민주당 후보로 독자출마한 1987년 대통령선거에서 민정당 노태우 후보에게 패해 2위로 낙선했다. 하지만 민정당·신민주공화당과 3당 합당을 통해 탄생한 거대 여당 민주자유당에 ‘호랑이를 잡으러 호랑이 굴에 들어간다’고 합류했고, 박철언 전 의원과 사활을 건 대결 끝에 대선후보를 쟁취했다. 1992년 대선에서 필생의 라이벌 김대중 후보를 물리치고 당선돼 문민시대를 열었다. 김 전 대통령은 야당 당수 세 차례, 야당 원내총무 다섯 차례를 역임하며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박정희 독재정권에 맞섰다. 양김의 ‘상도동·동교동’은 민주화 세력의 양대 산맥으로 역사의 한 획을 그었다. 둘은 1970년대 후반에는 40대 기수론을 내세운 야당 당수로서 유신 체제에 정면으로 맞서다 1979년 총재 직무를 강제로 정지당하고 의원직에서도 제명되는 고초를 겪었다. 신군부 정권 시절이던 1980년대 들어서는 23일간의 단식 투쟁, 장기간의 가택연금 등의 정치적 박해와 고난을 겪으면서도 민주화추진협의회 결성해 87년 ‘6월 항쟁’ 등 민주화 운동을 이끌어 직선제 개헌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 김 전 대통령은 퇴임 후에도 PK(부산·경남)를 지역 기반으로 삼은 민주화 세력을 일컫는 상도동계의 리더로서 오랫동안 현실 정치에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평생 거르지 않다시피한 새벽 조깅과 영문이니셜 애칭 ‘YS’는 그의 트레이드마크였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장례는 국가장으로 거행하고 장지는 현충원으로 하기로 유족 측과 행정자치부가 합의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손명순 여사와 딸 혜영(63), 혜정(61), 혜숙(54)씨, 아들 은철(59), 현철(56) 씨 등 2남 3녀가 있다. 정부는 22일 낮 12시 30분 김 전 대통령의 장례 절차를 논의하는 임시 국무회의를 열고 이를 공식 결정할 예정이다. 임시 국무회의에서는 국가장 진행, 장례위원회 구성, 장지, 영결식과 안장식 등 장례 절차 전반을 심의한다. 국가장 절차는 정부와 유족의 협의 후 행정자치부 장관이 제청하면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현직 대통령이 결정한다. 5일간의 장례 절차가 마무리되면 김 전 대통령은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에 안장될 예정이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김영삼 前대통령 서거]독재정권 시절 민주화투쟁 주도 ‘정치9단’

     86세로 생을 마감한 김영삼 전 대통령은 한국 현대 정치의 산증인이다. YS라는 애칭으로 더 자주 불렸던 김 전 대통령은 김대중 전 대통령(DJ·1926~2009)과 함께 독재 정권 시절 민주화 투쟁을 주도했던 ‘쌍두마차’였다. 김 전 대통령이 정치적 고비마다 보여준 승부사 기질은 그가 ‘정치 9단’이라는 별칭을 얻은 이유이기도 했다.    ●유년기-거제도서 출생, 한인학생 차별 일본인 교장 골탕먹이다 정학 처분  김 전 대통령은 1927년 12월 20일(음력) 경남 거제도 장목면 외포리 대계마을에서 멸치잡이 어장을 소유한 부친 김홍조(2008년 작고)씨와 모친 박부연(1960년 작고)씨 사이에서 외동 아들로 태어났다.  장목초등학교를 나온 김 전 대통령은 당시 경남 지역에서 우수한 학생들이 몰리던 동래중에 응시했다가 낙방했으며, 1년 뒤 통영중에 진학했다. 통영중 재학 시절에는 한인 학생을 차별하는 일본인 교장의 이삿짐을 훼손하는 등 골탕을 먹인 일화가 유명하다. 이로 인해 경찰 조사를 받고 무기정학 처분을 받았다.  이후 김 전 대통령 스스로 모교로 꼽는 경남중으로 전학한 것은 해방을 맞은 1945년 11월이다. 대통령의 꿈은 이 때부터 비롯됐다. 당시 부산 하숙방 책상머리에 붓글씨로 ‘미래의 대통령 김영삼’이라고 써붙이고 뜻을 키운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은 경남고를 거쳐 만 20세인 1947년 서울대 문리대 철학과에 진학했다. 그는 정치학을 부전공으로 선택하고, 우익 학생단체인 ‘순학회’를 결성하는 등 정치 입문을 위한 사전 준비에도 힘을 쏟았다.    ●청년기-한국전때 학도의용대 가담, 동갑내기 손명순 여사와 맞선 한달만에 결혼  정계 진출의 기회는 대학 2학년 때 찾아왔다. 정부수립 기념 웅변대회에서 외무부 장관상(2등)을 수상, 당시 장택상 외무부 장관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은 1950년 5·30 총선에서 경북 칠곡에 무소속 출마한 장택상 후보의 당선을 돕기도 했으나, 6·25 전쟁이 발발하자 대한학도의용대에 가담했다.  김 전 대통령이 손명순 여사를 만난 것도 이 무렵이다. 1951년 2월 ‘할아버지 위독’이라는 전보를 받고 고향에 내려간 그가 만난 사람이 바로 동갑내기 손 여사였고, 선을 본 지 한 달 만에 결혼식을 올렸다. 주례를 하기로 했던 목사가 날짜를 착각해 결혼식장에 오지 못하는 바람에 주례를 즉석에서 구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결혼 당시 이화여대 약학과 3학년생이었던 손 여사는 당시 교칙에 따라 결혼하면 퇴학을 당할 처지였지만, 결혼 사실을 비밀에 부쳐 무사히 졸업했다. 손 여사는 결혼 초기 시댁이 있는 거제로 내려가 멸치 말리는 법부터 배웠다. 당시 익힌 ‘시래깃국에 갈치 한 토막’은 이후 손 여사의 ‘대표 메뉴’가 됐다.  김 전 대통령은 2011년 결혼 60주년을 기념하는 회혼식에서 “내 인생에서 스스로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민주화를 이뤄낸 일이고, 다른 하나는 손 여사를 아내로 맞이한 일”이라고 했고, 이에 손 여사는 “좋아서 살았지예”라고 화답하기도 했다.  ●정치적 성장기-26세때 최연소의원에, 최연소 원내총무 최다선 의원등 숱한 기록  김 전 대통령은 1952년 5월 장택상 당시 국회 부의장이 국무총리에 발탁되면서 총리실 인사담당비서관에 기용됐다. 그러나 같은 해 9월 장 총리가 ‘고시진 사건’으로 물러나자 1954년 3대 총선에 출마하기 위해 고향인 거제로 낙향했다.  그는 3대 총선에서 당시 여당이었던 자유당 공천을 받아 최연소 의원(26세)이 됐다. 이후 최연소 원내총무(38세), 최다선 원내총무(5회), 최연소 총재(46세), 최다선 의원(9선) 등 숱한 기록들을 쏟아냈다.  하지만 김 전 대통령의 정치 행보는 이 같은 화려한 꼬리표와 달리 고난의 연속이었다.  1954년 이른바 ‘사사오입’ 개헌으로 유명한 이승만 대통령의 3선 개헌에 반대표를 던지고 자유당 입당 7개월여 만에 탈당했으며, 이는 야당 정치인으로서 30여년 동안 고난의 길을 걷는 출발점이 됐다.  1958년 4대 총선에서는 고향인 거제를 떠나 부산에서 출마했다 고배를 마셨다. 1960년 4·19 혁명으로 자유당 정권이 무너진 뒤 치러진 5대 총선에서 원내에 복귀했으나, 같은 해 9월 어머니가 무장간첩에 의해 살해된 데 이어 이듬해에는 5·16 쿠데타로 정치 활동이 전면 금지되는 등 시련이 잇따랐다.  1963년에는 국가재건최고회의의 군정 연장 결정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다 수감되는 등 굵직굵직한 정치 현안에 저돌적으로 맞서면서 정치적 영향력을 키워 나갔다.    ●민주화 투쟁기-3선개헌 반대하다 초산테러, 10·26 신군부시절 가택연금 단식투쟁  1965년 통합 야당인 민중당의 최연소 원내총무에 올랐으며, 1969년에는 박정희 대통령의 3선 개헌에 반대하다 상도동 자택 앞 골목길에서 괴한에 의해 ‘초산 테러’를 당했다. 이런 일련의 사건을 거치면서 김 전 대통령은 야당 지도자로서 입지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1970년 ‘40대 기수론’을 내세워 신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뛰어들었지만, 당시 김대중 후보에 밀렸다.  김 전 대통령의 승부사적 기질은 유신 체제에 대한 정면 돌파로 이어졌다. 1974년 5월 신민당 총재로 선출된 후 유신 체제에 맞서다 결국 2년 뒤 ‘각목 전당대회’를 계기로 당권을 내주기도 했다.  특히 1979년 5월 총재직에 재당선되고 2개월 만에 ‘YH무역 사건’이 터졌다. YH 여성 근로자들이 신민당사에서 폐업 반대 농성을 벌이면서 시작된 이 사건은 국내 정당 사상 처음으로 법원에 의해 총재 직무가 정지되고 의원직마저 박탈당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 때 김 전 대통령이 남긴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표현은 지금까지도 회자된다.  1979년 10·26 사태를 계기로 신군부가 등장하자, 김 전 대통령은 가택연금 상태에서 23일 동안 목숨을 건 단식투쟁으로 맞섰다. “이 나라의 민주주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 한발짝도 나가지 않겠다”고 한 그의 결단은 정치 흐름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1985년 2·12 총선 직전 신민당을 창당해 돌풍을 일으키는 등 전두환 정권에 대한 끈질긴 압박을 통해 직선제 개헌을 이끌어냈다.    ●대권 도전과 성공-1990년 3당합당, 1992년 대선 당선 ‘문민정부’ 시대로  민주화 이후 처음 치러진 1987년 대선에 김 전 대통령 역시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러나 이른바 ‘1노·3김(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이 맞붙은 선거에서 야권 후보 단일화에 실패하며 뜻을 이루지 못했고, 이듬해 4월 13대 총선에서는 제1야당의 자리마저 DJ의 평민당에 내줬다.  이런 상황에서 김 전 대통령은 대권을 향한 마지막 승부수를 띄웠다. 1990년 여당인 민정당과 제2·제3 야당인 민주당과 공화당을 합쳐 민주자유당(민자당)을 출범시키는 ‘3당 합당’을 결행했다. 35년 야당 생활을 접고 여당의 대권 주자로 탈바꿈한 것이다.  결국 1992년 대선에서 제14대 대통령에 당선되며 ‘문민정부’ 시대를 열었다. 재임 기간 중 금융실명제 도입, 옛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 하나회 해체,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의 비자금 수사와 처벌 등 굵직굵직한 개혁 조치를 단행했다. 하지만 임기 말 불어닥친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로 비판을 받았다.  김영삼 정부는 서민적인 청와대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했다. 칼국수가 대표적이다. 칼국수가 당시 청와대 대표 메뉴가 되면서 대통령의 영양 관리라는 뜻밖의 고민거리도 생겼다. 청와대 방문객들이 한번쯤 맛보는 별미지만, 대통령 입장에서는 임기 내내 칼국수로 점심을 때워야 했기 때문이다.    ●뚝심과 감의 정치인  김 전 대통령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은 어떤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관철시키는 ‘뚝심의 정치’를 보여줬다. 정치적 고비마다 국민 여론을 읽고 행동으로 옮기는 능력이 탁월해 ‘감(感)의 정치인’으로도 불렸다.  김 전 대통령의 화법은 단순 명료했다. 돌려가며 얘기하는 법이 없다. 직설적인 화법 탓에 ‘말실수의 달인’이라는 별칭이 붙기도 했다. “공정한 인사를 해서 부패 인사를 척결하겠습니다”라고 해야 할 표현을 “공정한 인사를 척결하겠습니다”라고 하거나, ‘결식 아동’ 문제를 언급하려다 ‘걸식 아동’이라고 발음하는 식이다. 루마니아의 독재자 ‘차우세스쿠’의 이름을 잊어버려 회의석상에서 ‘차씨’라고 발언한 사례도 유명하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은 말실수에 핑계나 변명을 하지 않았기에 친근감과 인간미를 느끼게 했다.  김 전 대통령과 DJ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민주화 동지에서 1987년 대권을 놓고 경쟁하기 시작하며 불편한 관계가 됐다. 김 전 대통령은 지난 2009년 DJ의 서거를 불과 일주일여 앞두고 병원을 전격 방문, 22년간의 반복과 갈등에 마침표를 찍었다. 김 전 대통령은 화해로 이해해도 되느냐는 기자 질문에 “이제 그럴 때가 됐지 않았느냐”고 반문하면서 “제6대 국회 때부터 동지적 관계이자, 경쟁 관계로 애증이 교차한다”고 애틋한 감정을 나타내기도 했다.  장세훈 기자 shjang@seoul.co.kr
  • ‘박희태의 맞수’ 박상천 잠들다

    ‘박희태의 맞수’ 박상천 잠들다

    김대중 정부 초대 법무부 장관을 지낸 박상천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이 4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암 투병을 해 온 고인은 지난 4월부터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아 왔다. 77세. 고인은 전남 고흥 출신으로 서울대 법대 재학 중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했다. 2년간의 판사 생활 이후 20년을 검사로 봉직했다. 198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끌던 평화민주당 소속으로 정계에 입문한 뒤 고흥·보성에서 5선(13~16·18대)을 했고, 대변인과 당 대표 등 요직을 섭렵했다. 원내총무(원내대표)를 세 번이나 역임할 만큼 탁월한 협상가였다. 특히 국민회의 원내총무 시절인 1997년 대선을 앞두고 대학 동기로 ‘절친’이자 맞수였던 박희태 당시 신한국당 원내총무와 담판을 벌여 이회창·김대중 대선 후보 간 TV토론을 성사시킨 일화는 여전히 회자된다. ‘60년 지기’의 비보를 접하고 황급하게 빈소를 찾은 박희태 전 국회의장은 “아직 70대밖에 안 됐는데 뭘 그리 빨리 갔나. 나는 한 마리 짝 잃은 거위”라며 안타까워했다. 여야로 엇갈렸지만 둘은 각별했다. 1961년 고등고시 13회 합격, 1988년 13대 총선 당선, 당 대변인, 법무부 장관, 당 대표까지 인생 역정이 겹쳤다. 은퇴도 같은 날이었다. 2012년 2월 9일 박 전 의장은 ‘2008년 한나라당 전당대회 돈 봉투 사건’의 책임을 지고 사퇴했고, 고인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이날 빈소에는 여야 정치인들의 조문 행렬이 이어졌다.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가 떠나는 길에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빈소를 찾으면서 두 여야 대표 간 짧은 만남이 이뤄졌다. 한광옥 국민대통합위원장,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황우여 사회부총리, 박지원 새정치연합 의원, 이부영 전 의원 등도 빈소를 찾아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유족으로 부인 김금자씨와 아들 박유선(SBS), 딸 민선(제일모직), 태희(SK텔레콤)씨 등 1남 2녀가 있다. 박진영 JYP엔터테인먼트 대표는 고인의 5촌 조카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12호실, 발인은 6일 오전 6시 40분. (02)2258-5940.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부고] 박상천 전 민주당 대표 별세

    [부고] 박상천 전 민주당 대표 별세

    민주당 대표를 지낸 새정치민주연합 박상천 상임고문이 4일 오전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77세. 암 투병을 해온 고인은 지난 4월부터 서울대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아왔다. 전남 고흥 출신인 고인은 13대, 14대, 15대, 16대, 18대 등 5선 국회의원을 지냈고 대변인, 원내대표, 당 대표, 법무장관 등 정치권에서 요직을 두루 거치며 의정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서울법대 재학 중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 2년 간 판사 생활을 한 뒤 1966년 광주지검에서 출발해 순천지청장을 끝으로 퇴임할 때까지 20년 간 검사로 봉직했다. 그는 1987년 민주당 비민주법률개폐특별위원장을 맡아 정계에 입문한 뒤 이듬해 13대 총선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끌던 평민당 내 재야 출신 모임인 ‘평민연(平民硏)’ 몫으로 공천을 받았다. 이후 16대까지 고향에서 내리 4선에 성공했다. 국민회의 원내총무 시절인 97년 대선을 앞두고 박희태 당시 신한국당 원내총무와 담판을 벌여 여당 후보였던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와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의 TV토론을 성사시킨 일화는 유명하다. 또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말을 자르고 의견을 관철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인물로 꼽힐 만큼 소신이 분명하고 주관이 강했고, 김 전 대통령이 대통령 취임 후 초대 법무부 장관을 맡길 만큼 신뢰를 받았다. 고인은 물리적 충돌보다 대화와 타협을 추구하는 철저한 의회주의자로도 통했다. 고인은 동갑내기 법조인 출신으로 정당은 다르지만 비슷한 시기 당 대변인, 원내총무를 맡은 박희태 전 국회의장과 ‘영원한 맞수’로 불렸다. 박 전 의장은 자신의 책에서 고인을 “공격적 맞수가 아닌 협력적 맞수”라고 회고했다. 하루 흡연량이 2갑을 넘는 애연가로 유명했다. 유족으로 부인 김금자(65)씨와 딸 유선(SBS)·민선(제일모직), 아들 태희(SK텔레콤)씨 등 1남2녀를 두고 있다. 사위로는 김욱준(검사), 김용철(의사)씨가 있다. 가수 출신인 박진영 JYP 엔터테인먼트 대표가 고인의 5촌 조카이기도 하다. 빈소는 서울 강남성모병원 장례식장 12호실(02-2258-5940)이며, 발인은 6일, 장지는 경기도 광주 시안 가족추모공원이다. 연합뉴스
  • [이슈&이슈] ‘30년 희망고문’ 춘천~속초 철도 이번엔 뚫릴까

    [이슈&이슈] ‘30년 희망고문’ 춘천~속초 철도 이번엔 뚫릴까

    “30년 기다려 온 춘천~속초 간 동서고속화철도, 이번에는 꼭 뚫어 주세요.” 속초·화천·양구·인제 등 설악권과 접경지역을 낀 강원 영북지역 주민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2일 강원 영북지역 주민들에 따르면 동서고속화철도 건설을 놓고 대통령, 국회의원 선거 때마다 실천을 약속하지만 30년 가까이 착공조차 못 해 주민들이 집단 시위에 들어가는 등 반발하고 있다. 춘천~속초 간 철길은 1987년 노태우 전 대통령의 대선 공약에서 처음 나온 뒤 단골 공약이 됐다. 이후 한국개발연구원(KDI) 주관으로 2001년, 2010년, 2012년 등 3차례 예비타당성 조사를 했지만 번번이 비용편익(BC)이 기준치를 밑돌아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사업이 무산됐다. 박근혜 대통령도 강원도 1호 공약사업으로 내세웠지만 여전히 예비타당성 조사에 머물러 있다. 지난해 4차 예비타당성 조사에 들어갔지만 1년이 넘도록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4차 조사는 지난 3차례와 달리 조사 방법을 사업비 축소와 대안 노선, 관광 수요 등을 반영하며 한국교통연구원 등에 의뢰했다. 이는 주민들이 “접경지를 가까이에 두고 있어 당장은 경제성이 떨어지지만 설악권 등 유명 관광지 등이 있어 철길이 놓이면 경제성은 어느 곳보다 뛰어날 것”이라며 다른 지역과 잣대를 달리해 평가해 줄 것을 요구해 이뤄졌다. 30년 가까이 기다려 온 주민들은 용역 결과 발표를 앞두고 또다시 경제성만 따지며 기회를 놓칠까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철길이 지나는 4개 지역 주민 1000여명은 지난 6월 28일 정부세종청사로 달려가 동서고속화철도 조기 착공을 촉구하는 대규모 항의 시위를 벌였다. 도의회 의장단과 설악·접경지역 기초의회 등 강원도 내 정치권도 지난달 14일부터 정부세종청사 기획재정부 앞에서 사업 조기 이행 촉구 1인 시위에 나섰다. 1인 시위는 오는 7일까지 계속된다. 주민들은 이번에도 정부가 챙겨주지 않으면 또다시 대규모 상경 집회를 이어 나가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윤광훈 속초시번영회장은 “기재부는 국가균형발전이란 전제 속에서 예비타당성 조사 결과를 발표해야 한다”면서 “통일 시대 이후를 내다보는 안목으로 추진돼야 마땅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덕후 화천군번영회장과 김현창 양구군사회단체협의회장, 박응삼 인제군번영회장도 이구동성으로 “후손들에게 발전된 강원도를 물려 주고 싶은 주민들의 염원을 더이상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병선 속초시장은 “30년 동안 이어 온 희망 고문을 이제는 끝내야 한다”면서 “선거 때만 되면 해 준다고 했는데 약속을 믿고 기다려 온 설악권의 비애와 설움을 정부는 잊지 말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또 “동서고속화철도는 강원도의 미래와 20만 설악·접경지역 주민의 생계가 달린 현안이란 것을 정부는 알아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선거 때는 정치적으로, 선거 후에는 경제논리로 접근해 무산되면서 도민의 불신이 극에 달했다”고 지적했다. 이 시장은 “동서고속화철도는 정부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조기 실현의 대안으로 수도권에서 최단거리, 최소 시간, 최소 비용으로 북방 물류루트에 접근할 지정학적 비교우위의 경쟁력이 있다”면서 “통일 대비 핵심 철도망이자 국가 미래전략 노선, 낙후한 설악·접경지역 주민을 살리는 노선”이라고 덧붙였다. 김시성 도의회 의장도 “도민들이 이번 대통령선거 때도 60% 넘게 지지했는데 임기 3년차에 접어들었음에도 공약사업이 제자리걸음”이라고 지적했다. 정문헌 새누리당 의원은 “예비타당성 조사에서 세 번이나 낙방하면서 부족했던 점을 보완했다”면서 “대통령이 공약을 이행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기재부 관계자는 “여러 가지 상황들이 겹치면서 예비타당성 검토 결과는 9월 이후에나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예비타당성 결과가 좋게 나오면 곧바로 타당성 조사와 기본 계획 용역에 착수하겠다”고 말했다. 동서고속화철도 사업은 인천공항∼서울 용산∼춘천∼속초를 연결하는 철도를 건설하는 사업이다. 신설 철길은 춘천~속초 간 93.95㎞ 구간이다. 사업비는 철길용량이 포화상태인 용산과 청량리, 망우지역 선로 용량을 늘리는 비용을 포함해 속초 구간까지 모두 2조 2114억원이 소요될 전망이다. 속초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 ‘86그룹 대표주자’ 우상호 의원 “나부터 새롭게 신발끈 묶는 계기 만들 것”

    ‘86그룹 대표주자’ 우상호 의원 “나부터 새롭게 신발끈 묶는 계기 만들 것”

    야당 안팎에서 불거지고 있는 ‘86책임론’과 관련해 우상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나 자신을 시작으로 새롭게 ‘신발끈’을 묶는 계기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86세대에 대한 비판을 수용하지만 ‘적진 차출론’이나 ‘용퇴론’ 등의 요구는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우 의원은 1987년 전대협 1기 부의장 출신으로 이인영 의원 등과 함께 ‘운동권 86그룹’의 대표 주자로 꼽힌다. 우 의원은 26일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이동학, 임미애 혁신위원의 86세대 비판에 대해 “구성원을 돌아보는 마음가짐에서도 혁신은 출발한다”면서 “반성의 계기를 만들어 보자는 취지로 이해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86그룹만이 ‘타깃’이 될 수 없음을 분명히 했다. 우 의원은 2012년 대선 패배 이후 당내 86의원 모임인 진보행동을 해체했던 것을 언급하며 “집단화, 계파화, 권력화되지 않기 위한 문제 제기였다”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 그룹, 우리 세대 정치인에게 해당되는 문제가 아니다”라며 “당이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면 문재인의 문제, 호남의 문제도 아닌 우리 공동의 책임”이라고 덧붙였다. 우 의원은 논란이 확산되는 것을 경계하면서도 ‘하방론’에 대해서는 정치공학적 처방이라는 이유로 분명히 선을 그었다. 그는 “‘지방으로 가라’는 말만 아니었다면 (86 비판의) 진정성을 받아들였겠지만 특정한 방법론(하방론)을 제기하는 바람에 진정성보다는 방법론이 더 눈에 들어오게 됐다”고 반박했다. 당 일각에서는 우 의원이 현 지역구인 서울 서대문갑 대신 고향인 강원 철원에 도전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장진복 기자 viviana49@seoul.co.kr
  • “철도·삭도로 경제 살려야” 들끓는 강원 민심

    “꺼져 가는 강원 경제 정부가 도와주오.” 설악산 케이블카와 춘천~속초 간 고속철도 사업 등이 지지부진해지면서 잇따라 상경 집회를 여는 등 강원 민심이 들끓고 있다. 15일 강원도에 따르면 여주~원주 간 철도 조기 건설 등 지역 최대 사회간접자본 확충사업들이 줄줄이 진척을 보이지 않으면서 주민들의 상경 집회가 이어지고 있다. 설악산 오색 케이블카 사업 승인 결정을 앞둔 양양군 등 설악권 주민 300여명은 지난 14일 정부과천청사에서 정부의 빠른 승인 결단을 촉구했다. 주민들은 머리띠 등을 두르고 대형 현수막을 앞세워 즉각적인 오색케이블카 설치를 요구했다. 군의원 등 주민 16명은 집회현장에서 삭발식을 갖고 오색케이블카 설치를 염원하는 지역주민의 의지를 당국에 전달했다. 오색케이블카는 침체된 설악권 관광 활성화를 위해 2002년부터 논의가 시작됐지만 번번이 물거품이 됐다. 환경부가 2012년 불허 결정을 내린 데 이어 지난해 9월에도 경제성 검증과 환경 문제를 들어 또다시 부결했다. 설악산 케이블카사업은 다음달 환경부가 국립공원위원회를 열어 세 번째 결론을 낼 예정이다. 춘천~속초 간 고속철도와 여주~원주 간 철도 조기 건설을 바라는 시위도 이어지고 있다. 김시성 도의회 의장은 14일 정부세종청사를 찾아 ‘박근혜 대통령 공약 춘천~속초 동서고속화 철도 약속대로 이행하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벌였다. 춘천~속초 간 고속철도는 1987년 대선 이후 선거 때마다 단골 메뉴로 등장하지만 경제성을 이유로 30년 가까이 실천되지 않고 있다. 여주∼원주 전철 사업 역시 예비타당성 검토를 이유로 예산 확보 등이 미뤄져 연내 해결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정부를 상대로 한 1인 시위는 김 의장에 이어 도의회와 강원지역 5개 시·군 의원 28명이 다음달 7일까지 정부세종청사 앞에서 릴레이로 이어갈 예정이다. 김 의장은 “획일적인 경제 논리가 적용돼 인구가 적고 산악지대가 많은 강원도가 항상 피해를 보고 있다”면서 “그동안 쌓인 ‘무대접’을 참을 수 없어 상경집회를 갖는 강원 민심을 읽고 정부에서 적극 해결해 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춘천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 [씨줄날줄] 불공대천지수/문소영 논설위원

    사서삼경과 함께 유가의 기본적 경전인 ‘예기’ 곡례편에 불공대천지수(不共戴天之讐)가 나온다. “아비의 원수와 함께 하늘을 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함께 하늘을 이지 않는다’는 것은 함께 세상에 공존할 수 없으니 상대를 죽이든가 아니면 내가 죽든가 해야 한다는 의미가 된다. 현대사회에서는 큰 원한을 품은 사람이라는 뜻으로 이해한다. 불구대천지원수(不俱戴天之怨讐)나 불공대천, 불구대천이 다 같은 표현으로, 젊은 시절 무협지깨나 본 사람들은 특히 익숙하다. 불공대천지수는 ‘춘추전’에도 나온다. 기원전 487년 기나라 제후가 주나라 이왕에게 제나라의 애공(哀公)을 악한 말로 헐뜯고 고소하는 등 참소(讒訴)해 팽살(烹殺)형에 처하자 제나라 후손들이 기나라는 결코 함께 살 수 없는 흉악한 원수로 반드시 복수하리라고 벼를 때 이 말을 사용했다. 팽살형이란 끓는 물에 처박거나, 불타는 기름 가마에 던져서 죽이는 끔찍한 고대 중국의 형벌이다. 불공대천지수는 따라서 효와 충을 강조하는 수천 년 전부터 내려오던 아시아적 가치를 표현한 것이다. 6주기를 맞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추도식에서 그의 아들 건호씨가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에게 한 발언으로 언론은 물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도 큰 논란이다. 노씨를 ‘친노’라고 낙인찍고, ‘상주가 손님에게 무례했다’고 호통친다. ‘누구도 원망하지 말라’던 노 전 대통령의 유언도 들이댔다. 이날 노씨는 “‘전직 대통령이 북방한계선(NLL)을 포기했다’며 내리는 빗속에서 정상회의록 일부를 피 토하듯 줄줄 읽으시던 모습이 눈에 선한데, 어려운 발걸음을 해 주셨다”고 김 대표를 비꼬는 발언을 해 빌미를 제공했다. 광주에 이어 물병 세례를 받은 김 대표는 현재 대선 후보 여론조사 1위에 올라 있다. 문성근씨의 트위터에 따르면 김 대표는 추도식 참석을 언론에는 알렸으나 추도식을 준비하는 측에는 알리지 않았다. 전직 대통령의 아들이 예의를 갖추는 게 맞다. 그러나 김 대표나 그의 소속 정당은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가 훌륭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노 전 대통령은 뇌물수수 혐의에 대한 검찰의 강압수사 등에 수치심을 씻지 못해 2009년 5월 자살했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고인인 노 전 대통령이 북방한계선을 북한에 포기했다는 등의 종북 이미지를 씌웠고, 정권을 잡은 2013년에는 국가정보원장이 국가 기밀인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공개해 논란을 키웠다. ‘사초실종’ 논란으로 확대했지만 법원에서 무죄가 됐다. 전직 대통령을 근거 없이 비방·비난하는 등 큰 무례를 범하고 국가 기밀을 노출해 국익을 훼손했으며, 허위 사실로 국론 분열을 조장했지만 진정성 있는 사과가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전직 대통령의 아들이 예의를 지키지 않은 것을 비난할 수 있는가. ‘예기’의 정신으로 묻고 싶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직격 인터뷰] “막강한 대통령 아래 총리는 왜소해질 수밖에 없다”

    [직격 인터뷰] “막강한 대통령 아래 총리는 왜소해질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 국무총리는 어떤 자리일까. 박근혜 정부 출범 2년 3개월 만에 여섯 번째 총리 인선을 앞두고 있다. 세간에서는 ‘총리 잔혹사’라는 말도 회자된다. 국정 2인자로 대통령 유고 시 계승 서열 1위인 총리 위상은 ‘가속도가 붙은 채’ 추락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 ‘책임 총리’ 구현이었지만 현실 정치 속의 총리는 ‘하루살이보다 못한 생명’으로 비친다. 이명박(MB) 정부에서 2년 5개월간 재임하며 1987년 대통령 직선제 도입 이후 최장수 총리 기록을 세운 김황식 전 총리를 만나 그의 생각을 듣게 된 이유다. 지난 6일 오후 서울 광화문 인근의 개인 사무실. 인터뷰 5분 전이어서일까. 막 넥타이를 매고 있던 김 전 총리는 시선이 마주치자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지난해 5월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서 고배를 든 후 언론에는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던 그다. 표정은 밝고 환했다. 김 전 총리는 여느 정치인 인터뷰와 달리 사전 질문지를 요구하지 않았다. 70분간 ‘즉문즉답’이 이어졌다. 먼저 ‘장수 총리의 비결이 궁금하다’고 묻자 “운이 좋았다”는 싱거운 답이 나왔다. 스스로 답변이 부족했다고 느꼈는지 “나 자신의 노력보다는 대통령과 주변에서의 지원이 많았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덧붙였다. 얼핏 대통령에게 가린 ‘국정 2인자’의 현실이 느껴졌다. 그는 총리 재임 때 스스로를 “조용히 내리지만 땅속에 스며드는” ‘이슬비 총리’라고 불렀다. 김 전 총리에게 ‘국민들 눈에 총리는 없어도 그만인 자리처럼 보인다’고 하자 “총리직은 결코 가벼운 자리가 아니다”라면서도 “대통령의 권한이 막강한 정치 현실에서 대통령이 권한과 책임을 총리에게 부여하지 않으면 굉장히 왜소해질 수밖에 없는 현실이 그런 생각을 들게 한다”고 말했다. ‘다시 총리직 제안이 오면 뜻이 있느냐’고 묻자 “이미 했던 사람이 다시 하는 건 맞지 않는다. 국민들은 새 사람이 새롭게 잘했으면 하는 기대를 갖고 있다”고 답했다. 김 전 총리는 총리 제도를 넘어 우리 권력 구조의 전반적인 변화를 해법으로 봤다. 그는 “현행 헌법에 간단하게 규정된 것만으로는 총리 역할과 지위가 불안정하다”며 “대통령을 보좌하고 협조하면서도 필요에 따라 견제도 할 수 있는 그런 총리제가 되지 않으면 하나의 장식에 불과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제왕적 대통령제의 여러 폐단이 현실적으로 보이고 있다. 그걸 시정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직설적으로 개헌 필요성을 제기했다. →총리 후보들의 잦은 낙마 원인을 어떻게 진단하나. -누구나 장점과 약점이 다 있다. 그동안 보면 괜찮은 분도 많았는데 본격적인 검증이 이뤄지기도 전에 흠결부터 부각되면서 동력을 잃는 경우가 많았다. 네거티브 쪽에 초점이 많이 맞춰지다 보니 능력이나 자질은 제대로 검증되지 못한 측면도 있다. 아울러 국민들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 인선 문제도 있었다. →어떤 총리가 필요하다고 보는지. -국무총리는 대통령을 보좌해 각 행정부처와 중앙, 지방정부 간 갈등을 조정하는 역할이 많기 때문에 경륜이나 업무 능력은 기본이다. 무엇보다 국민, 언론, 정치와 소통하고 통합할 수 있는 분이어야 한다. →정치권에서 호남 총리론 얘기도 나오는데. -총리를 어느 시점에 호남에서 해야 한다, 충청에서 해야 한다는 건 맞지 않는다. 전체 인사에서는 지역 균형과 탕평이 필요하지만 이 국면에서 특정 지역 출신을 총리 후보자로 물색하는 방식은 적절하지 않다. 오히려 그 시점에서 가장 국가 운영에 도움이 되는 분을 뽑는 게 중요하다.(전남 장성이 고향인 김 전 총리는 정부 수립 후 첫 전남 출신 총리다.) →류길재 전 통일부 장관의 “(장관직에 대해) 아무나 와도 되는 자리 같다”는 말이 도마 위에 올랐다. 국민 눈에 총리가 그런 자리로 비치는 측면이 있다. -대통령 권한이 아주 막강한 우리 정치 현실에 비춰 대통령이 소정의 권한과 책임을 총리에게 부여하지 않으면 총리 제도는 굉장히 왜소해질 수밖에 없다. 대통령과 정치권이 현행 총리제를 어떻게 활용하는 게 국익에 도움이 될지 같이 고민해야 한다. 운영상의 문제도 있지만 헌법의 틀 안에서 안정적으로 작동할 수 있어야 한다. →총리제의 법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보나. -의원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 국가와 달리 우리는 대통령을 보좌하는 기관으로 총리를 두고 있다. 다양한 형태의 권력 구조가 있는데 국가 운영과 관련해 총리가 대통령과 분업하고 협조하며 필요하다면 견제까지도 할 수 있는 제도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 헌법에서는 간단하게 총리 역할을 규정하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총리 역할과 지위가 불안정하다. 막강한 대통령중심제에서 총리가 하나의 장식에 불과할 여지가 분명히 있다. →개헌을 전제로 하는 말로 들린다. -1987년 헌법은 장기 독재를 막는다는 시대적 사명을 담았고, 충실히 이행했다. 지금 시대와 사회에 맞는 권력 구조를 생각해 볼 시점이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제왕적 대통령중심제의 여러 폐단을 현실적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이를 시정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국가의 장기 계획을 갖고 있는 비전 있는 지도자라면 10년이라도 할 수 있고 잘못하면 중간에 바꿀 수 있는 정치 시스템이 필요하다. 지금처럼 권력이 한 사람에게 집중되기보다는 분산된 권력이 타협하고 절충하는 과정에서 국민을 통합하는 힘도 생긴다고 본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구체적으로 꼽자면. -대통령의 생각이 국가 운영에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시스템 자체를 지적하고 싶다. 대통령이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우리 국가와 사회의 방향이 설정되는데 그런 역할은 필요하지만 권한이 너무 집중돼 있다. 사회의 다양한 의견을 모으고 수렴하고 걸러내는 그런 부분보다 한 사람에 의해 좌우되는 건 지금 시대에 배치된다. →정치권 내부에서 개헌 논의 요구는 많지만 잘 발화되지 않는다. -특정 시점을 정해 두고 개헌 논의가 이뤄지는 게 아니라 평시에 정치권에서 자유롭게 논의돼야 한다. 공감을 얻으면 개헌할 수 있고 아니면 늦어질 수도 있다. 일도양단의 문제는 아니다. 국가 장래와 직결된 만큼 후다닥 해치우기보다는 항상 논의가 돼야 한다. →여야, 보수, 진보를 떠나 박 대통령의 소통 노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여전히 나온다. -박 대통령 나름대로 소통 통로가 있을 수 있지만, 본인이 소통하고 있다는 생각보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소통이 된다고 평가하는 게 더 중요하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자살은 해외 자원외교 수사가 결정적이었다. MB 정부 총리로서 해외 자원개발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정부 안에 있었지만 해외 자원외교는 관여하지 않아 잘 모른다. 국가 장래를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하다. 투자를 하다 보면 실패할 수 있고, 그런 걸 문제 삼아서는 안 된다. 투자를 하는 데 비리가 있다거나 부당한 투자가 이뤄진 건 엄중히 밝혀 책임을 묻고 단죄해야 한다. 하지만 확실한 검찰 조사가 나올 때까지 자원외교 전체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 →지난해 7·30재보선부터 차출설이 나오곤 했다. 출마 고려한 적이 있나. -출마 생각을 해 본 적 없고 공식적으로 요청받은 바도 없다. →김두우 전 청와대 홍보수석은 최근 “김 전 총리는 정치적으로 할 일이 있는 분”이라고 말했다. -김 전 수석이 어떤 취지로 한 말씀인지는…. 선의로 해석한다면 내가 정치적으로 어떤 역할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하신 말씀인지, 아니면 뭐라도 할 것 같다 이런 생각인지…(웃음). 지금은 한마디로 정치에 뜻을 두고 있지 않다. →공무원연금 개혁과 국민연금 문제는 어떻게 풀어 나가야 할까. -(이 인터뷰는 6일 밤 국회에서 공무원연금 개혁안 처리가 무산되기 전 이뤄졌다.) 시각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나름대로 진전 있는 합의를 이뤘다고 평가한다. 정치권이 합의를 통해 개혁안을 제시한 것 자체가 큰 의미가 있다. 국민연금 문제는 소득대체율을 50%로 인상한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는다. 논의의 장을 열어 국민 전체의 의사와 사회적 합의를 이뤄 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여야는 국가의 미래를 위해 결정한 것인지, 정치적 이해나 포퓰리즘적 접근은 없었는지 자문해야 한다. 나로서는 최근 노사정 대타협 논의가 결렬된 게 가장 아쉽게 느껴진다. →7월에 열리는 광주하계유니버시아드의 조직위원장을 맡고 있다. 남북 단일팀 가능성은. -이미 시간적으로 불가능해졌다. 북한도 단독으로 팀을 구성하기로 결정했다. 다만 남북 교류 차원에서 백두산에서 채화한 성화를 육로를 통해 남쪽으로 가져오고 무등산에서 채화한 성화와 합화하는 방안을 정부와 협의하고 있다. 북한 선수단뿐 아니라 응원단 방문 문제도 협의할 생각이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新 평판 사회] (13·끝) 좌담회

    [新 평판 사회] (13·끝) 좌담회

    서울신문은 지난 3월부터 ‘신(新)평판사회’ 기획 시리즈를 12차례에 걸쳐 실어 왔다. 사회 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는 잘못된 의식과 관행을 깨트리고 능력 중심의 사회를 만들자는 취지에서였다. 기획을 통해 바라본 평판사회는 예상대로이거나 예상을 뛰어넘었다. ‘돼지엄마’처럼 구(舊)평판에 매달리는 몸부림과 이를 요구하는 풍토가 여전한 가운데 자신의 길을 개척하는 전문대생들처럼 신평판사회를 지향하는 이들의 힘찬 날갯짓도 있었다. ‘평판’이란 무엇이며 앞으로 확산시켜야 할 ‘신평판’은 어떤 것이어야 할까. 시리즈의 마지막 순서로 전문가들로부터 그 해법을 찾아봤다. 좌담은 지난 23일 본사 3층 대회의실에서 박현갑 편집국 부국장의 사회로 김주호 명지대 경영학과 교수, 김형래 경기산업기술교육센터장, 마동훈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 정형근 서울 정원여중 교사를 초청해 1시간여에 걸쳐 진행됐다. →‘신평판사회’ 기획이 이번 좌담을 끝으로 막을 내리게 됐다. 시리즈를 읽어 본 소감은. 정 교사 올해 초부터 서울신문이 다룬 ‘2015 대한민국 빈부 리포트’를 보면서 ‘서울신문이 올해 작정을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대한민국의 비전을 제시하기 위해 언론에서 노력을 하고 있다는 느낌도 받았다. 개인적으로는 이 시리즈가 입시철이 가까운 9~11월쯤 나왔으면 중고등학생들이 진로를 결정하는 데, 진로 지도를 하는 선생님들한테도 참고 자료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김 교수 평판이 무조건 나쁜 것이 아니라 긍정적·부정적인 부분이 있는데 ‘신·구’라는 개념으로 잘 짚어 줬다. 아쉬운 면은 ‘신평판사회’라는 틀에 맞추다 보니 전체적인 맥락에 맞지 않게 조금 억지스럽게 들어간 대목도 있었다는 점이다. 그런 것들이 정리가 됐다면 더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않았을까. 앞으로 다양한 평판의 분야를 카테고리별로 나눠서 기업·학교·사회 의식·구조적 측면에서 다시 한번 접근해도 좋을 것 같다. 마 교수 시의 적절한 문제 제기였다. 신문 기사로 사회의 작은 부분이 개선된다고 해서 전체가 갑자기 한꺼번에 다 바뀌진 않을 것이다. 어렵긴 하지만 조금 더 적극적인 처방과 대안 제시가 있었으면 어떨까 한다. 대안이란 제도적 측면과 소비자 혹은 국민들이 갖고 있는 인식 차원의 대안을 말한다. 그런 것들을 조금 더 다뤄 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김 센터장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성장 위주의 교육을 받고 있다. 제 아이가 고등학교에 입학해 입시 설명회에 갔는데 이른바 ‘스카이’(SKY) 대학에 몇 명 갔는가 하는 것이 고교의 주요 홍보물이더라. 스카이에 가는 학생은 학교에서 10~20% 선인데, 나머지 80% 학생을 모두 포기하는 건가. 전형적인 구평판을 달성하기 위한 모습이다. 제가 하는 업무가 청년 실업자들을 6개월에서 1년 동안 교육해 취업시켜 주는 것인데, 35세 이상인 사람은 같은 교육 과정을 이수해도 취업하기가 힘들다. 기업들 나이가 많은 부하 직원을 꺼리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 능력 위주의 사회를 구현한다는 캐치프레이즈하에 국가직무능력표준(NCS) 기반 교육 개편을 한 것 외에는 구체적인 움직임이 없다. 이렇듯 바뀌어야 하는 부분이 많은데 시의적절하게 화두를 던진 기사라 감명 깊게 봤다. →호의적으로 평가해 주셔서 감사하다. 우리는 ‘구평판’의 가치 기준에 따라 생활해 왔고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다. 미래 세대에는 현재와는 다른 기준이 정립되는 게 필요하지 않나. 각자가 생각한 평판이란 무엇인가. 김 교수 제가 공부하는 분야가 ‘브랜드’다. 평판과 굉장히 유사한 점이 많다. 평판은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이 나를 평가하는 거다. 브랜드 이미지에는 수동적인 부분이 있어서 내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사람들이 나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을 말한다. 그런데 현재 어느 분야든 그것에 대한 관리가 전혀 안 되고 있다. 사실은 그게 나의 정체성에서부터 시작하는 건데 말이다. 사람들이 자신을 표현하는 데 관심이 없고, 다른 사람이 나를 평가하는 것에만 관심을 기울이다 보니 한참 지나 보면 자신에 대한 부정적 평판만 쌓여 있는 꼴이다. 평판은 절대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우리나라에선) 개인이든 기업이든 평판 관리에 약하다. 단적인 사례로 정치인들은 선거철에 했던 얘기를 철이 바뀌면 아무렇지도 않은 듯 바꾼다.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마 교수 평판이 관리의 대상인 것도 맞는데, 전제는 개인이든 조직이든 평판은 ‘사회적 합의가 이뤄질 때’ 붙여지는 이름이라는 것이다. 사회적 합의의 과정에서 ‘관리’는 필요하지만, 그 관리에 비윤리적인 트릭이 들어가면 문제가 된다. 2013학년도에 제가 재직하는 학교에서 논술고사 출제위원장을 맡은 적이 있다. 당시 학생들에게 ‘평판의 윤리적 측면에 대해 서술하라’는 문제를 낸 적이 있다. 그 문제가 중요한 이유는 ‘우리 주변의 평판이 갖고 있는 부정확성과 비정직성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를 물어본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평판 관리의 윤리적 측면들을 잘 고려해 보려면 ‘워치독’(감시견)이 필요한데 그런 역할을 언론이나 시민사회가 할 수 있다고 본다. 평판의 반대는 ‘실재’다. 학교에서 학생을 선발할 때 아예 출신 학교, 지역 등을 다 가리고 ‘블라인드 리뷰’(암맹평가)를 할 수 없을지 고민하게 된다. 평판은 중요한 요소지만, 자칫 평판 자체가 실재를 덮어 버려서 공정한 평가를 방해하기 때문이다. →실제 은행에서는 신입 행원을 뽑을 때 대학 출신 다 가리고 이름만 보고 선발한다더라. 2박 3일 합숙 토론하면서 인간성·전문성 등을 따진다고 한다. 마 교수 그런데 현실적으로 쉽지는 않다. 5~10분 면접 봐서 그 사람을 알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20년 전에 일본 게이오대학에서 분교를 만들었는데 설립하면서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그러다가 지원자들을 대상으로 ‘당신을 뽑아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라’는 문제를 냈다. 교수가 직접 주말에 학생 집을 방문해 2시간가량 얘기도 했다. 학교의 평판보다는 이 학생이 우리 캠퍼스에 정말 필요한 학생인지, 그것만을 보고 평가가 이뤄진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굉장히 성공적이었고, 이후 지금 도쿄에 있는 본교만큼 명성을 쌓아 가고 있다. 김 센터장 대기업 전무와의 식사 자리에서 나온 얘기가 “신입 사원들 면접해 봐야 아무 소용 없다”는 것이었다. 면접하러 오는 지원자들은 다들 나름대로 준비를 해서 온다. 그러다 보니 면접을 보는 5~10분 정도는 연기를 통해 자신의 결점 등을 포장할 수 있다. 원래 자기 모습이 아닌 거다. 현행처럼 단시간 면접을 통해 그 사람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정 교사 학교에서 특목고에 진학하려는 아이들의 자기 소개서를 지도하는데, 첫 수업 주제가 ‘너희들에게 장학금을 주겠다. 너희를 뽑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하라’는 것이었다. 근데 아이들이 나는 누구인지, 왜 장학금을 신청하게 됐는지에 대해 잘 답변을 못하더라. 이른바 특목고 등을 준비하는 아이들은 스펙은 좋은데 자기에 대한 표현을 잘 하지 못한다. ‘어느 정도 평판(스펙)을 갖추면 뽑아 주겠지’ 하는 마음만 갖고 있을 뿐 실제 자기 자신을 보여 주는 것은 약한 거다. 자기 정체성이나 자기에 대한 탐구, 자의식 등이 굉장히 약해서 잘못된 평판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 “실패하면서 도전하는 인재들 포착할 수 있는 시스템 만들자” 김 교수 기성세대의 책임이 크다. 사회적 합의로 만들어지는 평판에도 맹점이 있다. 그런 말들이 다양성을 저해하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몇십만 명을 먹여 살리는 게 요즘 시대다. 평판만 따라가다 보면 개개인이 차별화될 수 있는 요소가 없다. 특목고 학생들이 우수하기는 하지만, 중학교에서 공부를 잘했다는 학생들이 들어가서 (특목고에서) 특수한 교육을 받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대학도 마찬가지다. 좋은 학교에 들어갔다는 평판이 모든 걸 좌우하니 그 다음은 중요하지 않다고 보는 거다. 외국 대학들은 각 대학마다 개성이 있다. 대학마다 분야별로 특화된 부분이 있는 것이다. 수만 명이 동시에 지원하는 ‘아이비리그’라고 하는 곳도 지원자들을 대상으로 면접을 거듭하고, 그 학생의 주변 인물들도 만나는 과정을 거쳐 학생을 선발한다. 그렇게 심혈을 기울인다. →요즘 가면을 쓰고 노래 실력으로만 승부하는 TV 프로그램이 인기를 끄는 등 외모 지상주의였던 연예계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면서 평판에 대해 예전과 달라진 모습을 보이는 것 같다. 그런데 경제나 정치 같은 영역에서는 변화가 더딘 느낌이다. ‘구평판’에 갇힌 사회를 바꾸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나. 마 교수 ‘구평판’이 갖고 있는 문제점을 극복하고 ‘신평판’이 가능하게 하려면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새로운 평가 시스템에는 사회적 비용이 많이 드는데 그걸 감수해야 한다. 정치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전부터 많이 연구했던 주제가 ‘정치인들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인데, 팩트 체킹이라는 영역이 미국에선 1980년대 대통령 선거부터 단골 아이템으로 등장했다. 한국에서도 우리식 모델을 만들자는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제가 자주 가는 ‘폴리티 팩트닷컴’(www.politifact.com)이라는 사이트가 있는데 이곳은 정치인을 평가하는 시스템을 마련해 놨다. 여기에는 ‘오바미터’라고 하는 지표가 있어 오바마가 대선에서 내세운 공약 중 어떤 게 지켜지고 있고 어떤 부분이 지켜지지 않는지 평가한다. 여기서는 오바마의 어머니가 누구인지, 아버지가 어떤 인종인지가 중요하지 않다. 오로지 오바마 자신이 내세운 공약을 지켰는지, 안 지켰는지를 평가 척도로 삼는다. 김 센터장 스포츠나 연예계는 평가 척도가 명확하다. 스포츠 세계는 프로화되면서 나름대로 팀별로 선수들의 고과를 매기는 기술이 발전했다. 그러다 보니까 선수들의 연봉 협상 과정에서 심각한 문제가 야기되지 않는다. 우리도 일반 기업 등 많은 곳에서 연봉제를 도입했지만, 아직까지도 평가 툴이 취약하다. 툴이 제대로 정비돼 있지 않다 보니 평가를 받고서도 스스로 수긍을 하지 못하고 이의 제기를 하다 보니 연봉제가 잘 돌아가지 않는다. 공정한 평가 툴을 만들어야 한다. 일례로 제가 몸담은 경기산업기술교육센터에서는 6개월~1년 정도 공부하면 경기도지사 명의의 수료증을 주지만 따로 학위를 주거나 자격증을 강조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적 취업률 94%를 유지하는 이유는 ‘프로젝트’에 있다. 당신의 업무 수행 능력을 실질적인 프로젝트를 통해 보여 달라고 끊임없이 요구하는 것이다. 이제 기업에 성적, 이력서, 자소서만 가지고는 어필할 수 없다. 4년제보다 전문대가 취업하기 어렵지만, 능력을 보이면 기업에서는 학력으로 차별하지 않는다. 한 가지 더 얘기하자면 이렇게 ‘신평판’ 체제가 수립되는 건 한두 해로 되는 게 아니다. 한 세대 두 세대가 걸려야 하는 일이다. 너무 조급하지 않아야 한다. 사회적으로 교육정책도 장기적 안목으로 조금씩 바꾸어 나가야 한다. 마 교수 ‘신평판’이란 아주 정교한 평가 시스템을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까 스포츠 얘길 하셨는데, 히딩크 감독 같은 명장들이 23명의 국가대표 선수들을 가지고 있다가 결전의 날 11명밖에 못 쓴다. 그걸 어떻게 선발하겠나. 선수들이 갖고 있는 지명도나 평판 따라 선정하면 안 된다. 히딩크 감독이 잘한 건 선수들의 스타일과 운동 능력. 그날의 컨디션과 팀워크를 고려해 선수를 뽑았고 결국 4강 신화를 이뤄 냈다는 거다. 이렇게 평가 시스템이 일반의 평판을 압도해야 ‘신평판’이다. 국내 유명 대기업의 고위 임원에게 들었다. 이른바 명문대를 나온 사람들의 임원 자리까지의 생존율을 따져 봤더니 비명문대에 비해 높지 않더라는 것이다. 최고의 대학을 나왔다는 사람들이 자신들이 생각해서 ‘틀리는 일’에는 도전을 안 하고 정답만 맞히려다 보니 도전 의식이 떨어지는 거다. 반면 더이상 잃을 게 없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실패하면서도 도전할 수 있다. 실패하는 걸 사회가 보듬어 주면서 계속 도전할 수 있는 여지를 주는 것이 필요하다. 대학의 평가 시스템도 마찬가지다. 한국식 수능은 (시험에서) 실수하지 않는 학생을 공부 잘하는 학생으로 보고 있다. 학생들이 창의적인 생각을 할 여지를 없게 만든다. 실수를 하지 않는 사회가 된다는 건 우리 사회를 움츠러들게 만들고, ‘구평판’으로 끌어당긴다.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새로운 평가 시스템에서 포착해 낼 수 있는 인재를 만들어 내는 게 ‘신평판’이라는 개념이 지향해야 할 목적지다. 김 교수 사람들이 정치인들을 뽑거나 대학을 선택할 때 의사 결정을 해야 하는데, 처음에는 신중하게 따지다 자꾸 반복하다 보면 점점 단순화된다. 그래서 생긴 게 평판이다. 평판이라는 것은 애초에 의사결정에 필요한 과정이지만 굳어지면 하나의 고정관념으로 더이상 평판으로서의 역할을 못 한다. 오히려 부정적 영향을 주게 되니까. 나쁜 평판 중 대표적인 게 지역적 평판이다. 근거는 없지만 지역감정이 주는 고정관념은 매우 크다. 그렇다 보니 해당 정치인이 아무리 거짓말을 한들 우리 동네 사람이라고 하면 뽑아 주는 식이다. 그보다 중요한 건 그 사람의 정직성, 발언의 진실 여부다. 미국에서 10여년 살았지만, 미국에서는 당적을 바꿨다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반면에 우리나라에는 7~8번이나 당적을 바꾼 국회의원도 있다. 1987년 미국의 ‘게리 하트’라는 정치인은 대선 후보들 중 압도적 1위였는데, 불륜 사실을 숨긴 게 발각돼 낙마했다. 미국 사람들은 ‘가장 가까운 사람인 아내를 속인 사람을 어떻게 리더로 뽑겠느냐’는 반응이었다. (미국처럼) 정치인이 거짓말하는 건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이런 게 미국을 이끌어 가는 힘이다. 정직함이 정치인에게 요구되는 덕목 아닌가. 우리 사회도 이런 방향으로 바꿔야 한다. 정치인들의 발언은 빅데이터가 많이 있으니 다 정리할 수 있다. 정 교사 개인적 경험으로 서울시교육청에서 ‘진정한 행복은 어디서 오는가’라는 주제로 논술대회를 열어 채점을 한 적이 있다. 1000명이 넘는 학생들 중 990명에 가까운 학생들이 진정한 행복은 정신적 충족감에서 온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 학생들을 따로 불러 ‘솔직하게 대답해 보라’고 했더니 모든 학생이 ‘행복은 물질적 풍요에서 온다’고 말하더라. 그런 걸 보면 중학생 때부터 사회가 요구하는, 채점자가 요구하는 답변이 뭔지 아이들이 다 알고 있고 내면화가 돼 있다는 거다. 여기에는 우리 교육자들의 잘못도 크다. 평판이라고 하는 게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인데 여기서 우리나라 사람들의 이중적 태도가 드러난다. 학생들을 상대로 한 논술대회처럼 채점자가 요구하지도 않았는데 거기에 맞게 답안을 적으며 자신을 드러낸다. 그런데 예비군 군복을 입었다든지, 출근길의 지하철처럼 자기 모습이 대중 속으로 들어가 버리면 남한테 피해를 주고 무례한 행동을 한다. 아는 다국적 기업의 외국인 임원에게 ‘한국 사람 어떠냐’고 물어봤다. 처음엔 ‘열정적이고 성실하다’고 말하더라. 그런데 10년쯤 지나 우리나라를 떠날 때에는 ‘타인에 대한 배려가 없다. 기초질서를 지키지 않는다’고 말을 하더라. 제도적인 측면 못지않게 사람들의 의식 개선도 병행해야 한다. 정리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윤여준-김상곤, 광화문 세월호 농성장 앞에서 세월호 1년, 대한민국을 말하다

    윤여준-김상곤, 광화문 세월호 농성장 앞에서 세월호 1년, 대한민국을 말하다

    자식 잃은 부모의 마음을 헤아린다는 주변의 말은 거짓이다. 250명의 열일곱 살 아들딸을 찬 바다에 묻은 부모의 삶은 지난 1년 내내 온통 짠 내음이었다. 숨이 막혀 가슴에 묻을 수조차 없었다. 시간은 흐르고, 침통하고 황망한 슬픔을 공유했던 세상은 조금씩 바뀌어 갔다. 일상으로 돌아왔고, 문득문득 잊기도 했다. 세월호 참사 이전과 이후의 대한민국은 무엇이 달라졌을까. 세월호 참사 1주년을 맞았던 지난 16일 오전 서울 광화문 세월호 농성장 앞에서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 김상곤 전 경기도교육감이 만났다. 각각 보수와 진보 성향의 두 사람은 세월호 참사를 통한 대한민국 성찰과 반성의 지점, 그리고 남겨진 과제에 대해 고민을 나눴다. 노란 리본을 옷깃에 매단 두 사람은 바삐 오가는 시민들 곁에 서서 어제 일처럼 생생한 ‘1년 전 오늘’을 기억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김 전 교육감(이하 김) 1년 전 그날 저는 지방선거를 준비하는 후보 신분이었어요. 안양에서 유세하던 중 사고 연락을 받았습니다. 엄청난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단원고에 들렀다가 선거운동을 중단하고 곧바로 팽목항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열하루 동안 참사 현장에 머물렀습니다. 선거를 생각할 겨를도 없었죠. 참사로 비화되는 과정을 보면서 유족분들에게 위로의 말조차 건넬 수 없었습니다. 윤 전 장관(이하 윤) 처음 텔레비전에서 소식을 접한 뒤 깜짝 놀랐지만 당연히 대부분 구조될 거라 생각했습니다. 기가 막혔죠. 그 아이들이 바닷물에 잠기면서 느꼈을 공포와 고립감을 생각하고, 자식 잃은 부모들의 마음을 생각하며 망연자실했죠. 그 또래의 손녀가 있어서 더욱 가슴에 맺혔습니다. 뒤늦게 안산 합동분향소를 찾았고, 두 달쯤 지난 뒤 팽목항으로 갔어요. 가서 가만히 바다를 바라보니 저도 모르게 울컥하더라고요. 공직에 오래 있었던 사람으로서 사죄하는 마음이었습니다. 김 저는 그 직전까지 경기도교육감이었잖아요. 팽목항에서 올라온 뒤 100일째 되던 7월 24일까지 매일 안산 합동분향소를 찾았습니다. 어른들이 제대로 이 사회를 만들었더라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한없는 슬픔과 안타까움, 미안한 마음이 들었죠. 과연 국가가 무엇인지, 정부의 역할이 무엇인지 근본적인 회의가 들었습니다. 건강한 사회로 거듭나는 계기가 되도록 만들어야겠구나 하는 의지도 생겼습니다. 윤 단지 배가 가라앉은 게 아니에요. 국가와 사회의 동반 침몰입니다. 선박을 불법 개조하고, 컨테이너를 과적하고, 평형수를 빼고도 허가를 받아 버젓이 출항했다는 것 아닙니까. 세월호 참사의 원인도, 수습 과정도 국가와 사회가 무능, 무책임, 부도덕, 부패의 사슬에 갇혀 있음을 여실히 보여 줬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참사 직후에 ‘국가개조’를 공언했어요. 정말 정확한 문제 제기라고 봤어요.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 아무것도 바뀐 게 없습니다. 김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덧붙여서 노골적인 헌법 파괴 행위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아무리 파렴치한 정부와 국가라도 이렇게까지 국민의 생명을 경시하지는 않습니다. 헌법은 대통령에게 국민의 자유와 복리 증진에 노력해야 한다는 역할을 요구하고,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한다고 규정했습니다. 이러한 헌법 원칙이 모두 무시됐어요. 국가의 근본을 제대로 세우지 않으면 안 되는 시점에 대한민국이 놓여 있습니다. 윤 네. 흔히 헌법적 가치를 얘기할 때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를 이야기하곤 하는데, 그보다 더 중요한 원칙과 정신은 인간 존엄입니다. 그것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음을 말씀하시는 것이죠. 김 게다가 최근 세월호특별법과 시행령, 그리고 세월호 인양과 관련해 벌어지는 논란은 더더욱 이해하기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과연 정부의 의지는 어느 만큼이었을까요. 윤 저는 이제 이해하려는 노력을 그냥 안 해 버립니다. 대통령이 국민들과 유족들에게 공개적으로 약속하셨죠. “여한이 없도록 노력하겠다. 언제든 만나겠다”고요. 그래 놓고 나중에 국회에서 특별법 논란이 이어져 유족들이 간절히 면담을 요청하는데도 “내가 나설 일이 아니다”라고 일축했습니다. 김 참사 직후 대통령께서 팽목항으로 내려와서 유족들을 만나실 때 그 자리에 저도 있었습니다. 모든 것을 책임지고 유족들의 바람대로 조치하겠다, 걱정 말고 맡겨 달라는 말씀을 하시길래 ‘아, 역시 우리 대통령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이후 실망이라는 것은 뭐…. 정부가 현실을 왜곡하고 은폐하겠다는 의도가 다분합니다. 자기 권력을 보존하겠다는 의도이기도 하고요. 헌법의 원칙과 정신에 대한 사유를 새삼스럽지만 깊이 하게 된 계기였습니다. 윤 세월호 참사는 인간보다 물질의 가치를 중시하는 데서 비롯된 일입니다. 인간의 삶 속에는 딜레마 요소가 있습니다. 예컨대 추모의 분위기가 길어지면서 경기가 침체된다는 비판이 그런 것입니다. 물론 정부는 그런 요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경제가 국가의 모든 것은 아닙니다. 한국 경제가 세월호 참사 때문에 어려워진 것인가요. 국가가 솔직해져야 합니다. 김 전 교육감께서는 경제·경영 전문가이시니 저보다 훨씬 더 잘 아시겠지만요. 김 그렇지요. 경기 침체의 책임을 세월호에 뒤집어씌우려 했습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해 더욱 합리적이면서 국민의 생명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대응하는 자세를 안팎에 보여 줬다면 오히려 경제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고 안정적 발전을 꾀할 수 있는 기회가 됐을 것입니다. 윤 그런데 참사 1주년을 맞은 날 대통령은 해외 순방을 떠나네요. 소탐대실입니다. 국민의 마음이 대통령한테서 떠나게 하고, 더 심하게 말하면 국가와 국민을 분리시키는 역효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김 국민이 가장 아프고 서러운 때잖습니까. 국민을 무시하고 아픔을 덧나게 하는 일이라는 것을 대통령께서는 짐작하지 못하셨을까요. 화가 이어질수록 박 대통령과 정부에 대한 비판은 날이 섰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가능한 한 말을 아끼려 했고, 그 빈자리를 씁쓸한 웃음으로 채웠다. 어떠한 비판조차 무망함을 체감해 온 탓이었을까.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여야, 좌우의 사회적 대립 양상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떤 이들은 불편함을 드러내며 그만 좀 하라고 넌지시 혹은 노골적으로 말했고, 또 어떤 이들은 큰 희생에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며 새삼스럽게 분통을 터뜨렸다. 그 와중에 누군가는 보수의 이름을 빌려 희생자와 유족들을 모독하고 조롱했다. 세월호특별법을 둘러싼 논란이 정치권에서 지루하게 전개됐고, 최근 제정된 시행령이 특별법을 무력화시킨다는 비판이 다시 이어지고 있다. 김 진보와 보수의 가치와 지향점이 때로는 엇갈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는 국민의 생명, 인간의 존엄에 관한 문제였습니다. 진보와 보수가 전혀 다름이 없습니다. 일부 보수라고 하는 분들이 저지른 행태는 보수의 가치를 모독하는 일일 따름입니다. 윤 세월호를 어디 진보가 가라앉혔나요. 유족의 슬픔에 공감하는 사람은 전부 진보라서 그런 건가요. 인간의 생명과 존엄을 소홀히 생각하는 게 보수입니까. 아니에요. 그런 반인륜적 사고를 하는 사람들은 보수도 아닙니다. 사실 그동안 한국의 보수와 진보는 가치의 싸움이 아니라 권력투쟁을 벌였을 뿐이에요. 자기편 결속하고, 상대방 공격하기 좋으니까 보수와 진보를 이용했던 거지요. 김 진보와 보수는 그간 가치를 놓고 경쟁하거나 논쟁하는 건강한 관계를 형성하지 못해 왔죠. 그러다 보니 국민들은 건강한 진보와 보수가 가진 건강한 가치에 관심을 기울이기보다는 여야의 정쟁쯤으로 치부했습니다. 진보나 보수나 모두 궁극적으로 지향하고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존엄, 생명, 안전입니다. 윤 물론 때로는 유족의 요구가 합리적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유족들에게 이성적 판단을 요구할 수만은 없을 것입니다. 휴머니즘의 문제이기 때문이죠. 오히려 휴머니즘을 더욱 존중하는 것이 보수였잖아요. 전통, 가족, 인륜 등을 중시하는 게 보수인데, 보수의 이름으로 폭식투쟁 같은 그런 행동을 하다니요. 김 국가와 사회가 성장해 나가는 과정에는 두 가지 핵심 키워드가 있습니다. 변화와 안정입니다. 진보와 보수가 각각 중시하는 가치이기도 하고요. 실은 이 양자는 함께 가는 두 개의 수레바퀴입니다. 국민들은 이 두 가치가 공존하며 상호 침투해 세상이 좋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이에요. 포용적 진보, 합리적 보수가 필요한 세상입니다. 윤 지금은 융합의 시대입니다.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해 필요하다면 보수의 가치면 어떻고, 진보의 가치면 어떻습니까. 정책에 따라 진보의 가치, 혹은 보수의 가치가 더 많이 반영된 정책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예컨대 요즘 한창 복지 논쟁을 패싸움 벌이듯 하고 있는데, 진실로 국민의 복지를 위한 싸움이라고 저는 보지 않아요. 어디 국가의 경제 규모를 뛰어넘는 복지가 가능하겠습니까. 정치인이 바뀌어야 하는데 안 바뀌고 있어요. 그런 정치인을 누가 뽑았나요. 국민들이 뽑았단 말이죠. 제 평소 주장입니다만, 정치는 특히 압축 성장이라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고작 30년입니다. 길게 보면 거쳐야 할 과정이죠. 가능하면 시간을 줄이고, 국민과 국가가 치러야 할 대가를 줄이고자 하는 노력은 필요하겠지만요. 김 네. 우리 사회 역시 포용적 번영이라는 새로운 성장의 패러다임이 필요하죠. 이것은 단순한 경제 발전만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성장, 정의로운 분배, 양극화와 불평등 구조의 개선, 각 가정의 가계부로 상징되는 삶과 민생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윤 맞는 말씀입니다. 우리 국민은 성장이 공정한 분배로 이어지지 않음을 이미 체득하고 있습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이 상태로 갈 수 있겠어요. 안 됩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보수 일각에서는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기라고 얘기합니다. 그 결과 우리가 얻은 것은 극도의 양극화입니다. 비대해진 경제권력이 국가권력을 좌지우지하는 상황이고요. 이렇게 하면 자유민주주의적 시장경제는 지속될 수 없습니다. 보수 세력이 늘 강조하는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등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근본적 혁신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말하면 진보인가요. ‘좌빨’인가요. 김 격렬한 보수시네요.(웃음) 윤 저는 최근에 개량주의자라는 비판을 하도 많이 받아서요. 그나저나 요즘에는 진보에서 ‘애국적 진보’라는 말도 나오던데, 반가운 얘기더라고요. 김 아무튼 포용적 진보, 합리적 보수의 입장이 명확하다면 진보, 보수가 각자의 가치를 갖고 때로는 경쟁하고 때로는 협력할지언정 이해 다툼과 같은 투쟁은 없을 것입니다. 사건건 빚어지는 진보와 보수의 대립과 갈등에 대한 대화를 듣다 보니 조금씩 입장이 바뀐 듯했다. 진보는 보수에 애정을 보내고, 보수는 더욱 혹독하게 일부 진보 및 보수를 몰아쳤다. 대화의 소재는 최근 한국 사회 전반을 충격에 휩싸이게 만든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로 이어졌다. 윤 과거에 비해 우리 사회가 많이 투명해졌지만 부패가 여전함을 보여 줍니다. 이번 일이 더욱 투명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죠. 김 권력의 핵심까지도 부패와 비리의 고리에 걸려 있다는 점, 부패 시스템이 지속되고 있는 현실입니다. 한국의 국제 부패지수 순위가 최근 계속 떨어지고 있는데, 성완종 리스트로 다시 한번 증명된 셈입니다. 문제는 과연 진실 규명이 제대로 될 것인지 많은 국민이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점입니다. 세월호 참사와 성완종 리스트는 닮은꼴입니다. 권력의 부정과 부패라는 같은 뿌리를 두고 있는 거지요. 윤 그래서 세월호 참사의 진상 규명을 흐지부지하게 끝내고, 이번 부정부패 사건도 몇몇 개인의 비리 정도로 축소시켜서 끝내면 결국 국민은 정부가 의지가 없다고 볼 것입니다. 권력의 정당성이 훼손되겠지요. 박 대통령은 개인적으로 부패할 사람은 아니라고 보지만 이 문제를 사회구조에 대한 인식으로 접근해야 하는데, 그 점에서는 저 역시 물음표입니다. 김 한국 사회, 한국 정치에 공공성 강화가 절실한 이유이지요. 국민의 삶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 건강한 가계부를 꾸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제가 헌법에 주목하는 이유 역시 그것이 ‘건강한 가계부’와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죠. 조세 공정성을 통한 복지사회 준비, 공공교육의 강화를 통한 국가 미래 경쟁력 확보, 더 강력한 경제민주화를 통한 사회 양극화 개선 등은 당장의 문제이면서 20~30년 뒤를 준비하기 위한 포석이기도 합니다. 윤 아이들의 죽음을 헛되이 할 건가요. 이보다 더 끔찍한 사고가 필요한 건가요. 지금껏 해 온 국가 운영의 원리를 근본적으로 바꾸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김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오늘 말씀 듣고 배울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윤 저도 그동안 두세 차례 스치듯 뵈었던 김 전 교육감님과 짧게나마 말씀 나눌 수 있어서 아주 좋았습니다. 앞으로 더 많이 뵐 기회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정리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윤여준(76) 전 환경부 장관은 지난 대선 때 야당 캠프에서 활동하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정통 보수 인사다. 박정희 정부에서 시작해 민정당, 민자당, 한나라당, 새누리당으로 이어지는 여당 진영에 오랜 시간 몸담으며 국회의원, 장관 등으로 당과 정부에서 요직을 지낸 ‘보수의 정책통이자 전략가’로 통한다. ■ 김상곤(66) 전 경기도교육감은 박정희 정권 시절 서울대 총학생회장으로 학생운동을 했고, 이후 한신대 교수로서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공동의장, 전국교수노조 위원장 등을 지내며 민주주의를 삶으로 실천해 왔다. 교육감이 된 뒤에는 경기도발(發) 무상급식 태풍을 전국에 휘몰아치게 한 ‘무상급식의 아이콘’이 됐다. 혁신학교를 안착시키는 등 진보적 교육정책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 [서울광장] 역사적 시효가 끝난 ‘1987년 체제’/오일만 논설위원

    [서울광장] 역사적 시효가 끝난 ‘1987년 체제’/오일만 논설위원

    지금 우리의 권력 구조는 너무도 기형적이다. 글로벌 시대의 격한 흐름과 21세기 문명사적 전환기에 적응하기 어려운 구조다. 승자 독식의 선거 구조는 여야 간 극한 대립을 내재화시켰고 우파와 좌파로 나뉜 사생결단의 정치문화는 공존의 패러다임 자체를 파괴시켰다. 이런 귀결은 권력의 핵심인 대통령과 국회의 권력을 만드는 시스템에서 근본적인 원인을 찾을 수도 있다. ‘87년 체제’로 불리는 우리의 권력 구조는 1987년 6·10 민주항쟁에 백기를 든 ‘전두환 군사정권’과 야권의 3김(김영삼·김대중·김종필) 세력이 만들어 낸 작품이다. 군부의 장기 집권 종식과 민주화 실현이란 화두로 1987년 10월 9차 헌법 개정이 이뤄졌다. 유신 선포 이후 17년 동안 지속된 체육관 선거(간접선거)를 종식시키고 국민들이 직접 대통령을 뽑자는 직선제 개헌은 도도한 민심의 흐름을 반영한 것이지만 5년 단임제는 시간에 쫓기면서 당리당략으로 결정된 측면도 적지 않다. 당시 현장을 지켜봤던 원로 정치인들은 5년 단임으로 결정된 배경과 관련해 “장기 집권의 폐해를 막는다는 명분도 컸지만 정치권을 장악한 3김의 대권 야망이 짙게 배어 있었다”고 증언한다. 당시 정치 평론가들도 “3김과 군부 어느 일방의 독주를 막고 견제와 균형 속에서 5년간 대통령직을 나눠 갖자는 의도가 이심전심으로 통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그럼에도 87년 체제, 특히 5년 단임제는 나름대로 시대적 사명을 적절하게 수행했다. 더이상 장기 집권을 걱정하지 않게 됐고 여야 간 정권교체가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대학교 교정에서는 매캐한 최루탄 가스를 맡지 않아도 되고 광화문 네거리에서 독재 타도를 마음껏 외치는 자유도 얻었다. 적어도 87년 체제가 역사적 소명을 충실하게 이행한 것이다. 하지만 딱 여기까지다. 87년 체제가 만들어 낸 권력 구조는 28년의 시간을 보내면서 여기저기서 삐끄덕거리는 소리가 날 정도로 노후화 현상이 확연하다.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문재인 여야 대통령 후보가 소리 높여 대통령 4년 중임 개헌을 공약으로 내걸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동안 우리의 경제 규모는 10배 이상 성장했고 21세기의 변화와 사고를 담기에는 너무도 낡은 그릇이 됐다. 무엇보다 5년 단임제의 치명적 약점은 레임덕 자체가 너무 빨리 온다는 점이다. 숱한 정권을 경험했던 고위 관료의 말을 들어 보자. “보통 정권이 초기 2~3년 정도 힘을 갖고 정책을 집행한다는 말도 이제는 통하지 않습니다. 대통령직인수위가 그 정권의 판을 짜는 작업을 끝내는 순간부터 정점을 찍고 내려온다고 보면 됩니다.” 그는 국정이 5년 단위로 바뀌면서 국가의 장기 전략을 마련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항변한다. 김대중 정부의 지식정보화 육성 정책은 물론 노무현 정부의 국토균형발전 정책,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동반성장 등 심혈을 기울였던 대표적 정책들은 뿌리도 내리기 전에 다음 정권에서 사라졌다. 정권의 명운이 걸린 만큼 막대한 예산과 인력이 투입했지만 지속성을 상실하면서 혼란과 갈등만 증폭시킨 꼴이다. 모든 국가 권력을 대통령 1인에게 집중시킨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는 더 무섭다. 군대와 경찰, 검찰, 국세청, 감사원, 국가정보원 등 모든 권력의 칼자루를 대통령 한 사람이 쥐고 있다. 외교, 안보, 국방과 더불어 경제, 복지, 민생 등에 이르기까지 모든 권한과 책임을 대통령 1인에게 부여하는 것은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주의 근간을 허무는 일이다. ‘브레이크 없는 주행’처럼 위험천만하다. 국가 경영의 효율성 측면에서도 분권형 통치체제 개헌이 필요한 이유다. 3김 정치의 폐해로 꼽히는 지역주의와 우파와 좌파의 구도 안에서 안주하며 기득권을 유지하는 정치권의 행태도 근본적인 수술이 필요하다. 인구 편차를 2대1로 조정하는 선거구 개편 정도로는 별 효과가 없다. 소선거구제를 폐지하고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하는 정도의 ‘판갈이’ 없이는 백년하청일 것이다. 권력의 틀을 정하는 문제는 국정의 방향과 국민 개개인의 사고와 행동에도 영향을 미치는 중대사다. 집권 세력 입장에서 실익도 없는 개헌 논의가 달갑지는 않겠지만 근시안적 시각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시대를 선도하는 권력의 틀을 만드는 것이 최고의 정치 개혁이라고 할 수 있다. oilman@seoul.co.kr
  • [사설] 지역 비하 넘어 왜곡·선동 댓글도 엄벌해야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지역감정 조장 행위를 엄단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인터넷이나 오프라인에서 특정 지역을 비하하고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댓글이나 발언을 하는 경우 최대 200만 원까지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도록 공직선거법을 개정하겠다는 것이다. 우리의 일그러진 현대 정치사가 만들어 낸 지역감정과 이에 따른 지역 분할 구도는 비단 정치에서뿐 아니라 사회 각 영역에 걸쳐 깊고 짙은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념과 세대, 계층으로 갈라지는 대립 구도의 바탕에 지역 갈등이라는 공고한 뿌리가 자리하고 있다고도 할 것이다. 1987년 민주화 이후 두 차례의 정권 교체 과정을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치의 지역 분할 구도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여전히 대한민국 선거를 관통하는 상수(常數)로 작용하고 있다. 권역별 비례대표제와 석패율제를 도입하는 것처럼 선거제도를 바꿔 지역대립 구도를 어느 정도 완화할 수는 있겠으나 사회 저변에 깔린 지역적 편견을 깨지 못하는 한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그런 점에서 선관위가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행위 자체를 적극적으로 억지하겠다고 나선 것은 올바른 현실 진단과 처방이라고 여겨진다. 실제로 지금 인터넷과 모바일을 중심으로 오가는 댓글을 보노라면 대체 이들이 같은 하늘 아래 사는 사람들인지를 의심케 할 만큼 특정 지역을 비방하고 모욕하는 내용이 넘쳐난다. ‘전라디언’이니 ‘경상디언’이니 하는 표현은 그나마 점잖은 축이고, ‘전라도 홍어’나 ‘경상도 문둥이’ ‘멍청도 핫바지’ 등은 아예 특정 지역 사람들을 총칭하는 일반명사처럼 쓰이고 있다. 문제는 이런 비하 발언들이 단순히 특정 지역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담은 차원을 넘어 다분히 정파적 목적에 따라 의도적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전라좌빨’이니 ‘영남수꼴’이니 하며 지역과 이념, 정파를 하나로 묶어 상대를 공격하는 표현들이 대표적이다.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사건만 봐도 ‘좌익효수’라는 닉네임을 사용하는 네티즌이 2011년 1월부터 2012년 11월까지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린 댓글 3460개의 상당수가 호남을 비하하는 내용이었던 것도 지역 비하의 정파성을 보여 주는 사례다. 단속의 기준이나 표현의 자유와의 충돌 소지 등을 놓고 논란이 일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러나 이는 넘어야 할 과제일 뿐 주저앉을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차제에 지역 비하 댓글 단속을 넘어 근거 없는 사실 왜곡과 선동으로 우리 사회를 갈라 놓는 행위를 근절할 범사회적 운동도 함께 고민할 시점이 됐다고 본다. 지금 우리 사회의 소모적 갈등에는 지역 비하뿐 아니라 근거 없는 괴담과 선동이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해외 전문가들까지 참여해 벌인 정부 조사에도 불구하고 천안함 폭침과 세월호 침몰의 진상을 둘러싼 논란이 여전한 배경에는 이런 불순한 의도의 선동도 없지 않다고 할 것이다. 사이버 공간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정보 유통 속도가 날로 가속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진실과 거짓을 가려낼 사회적 기제가 작동하지 않는다면 그 종착점은 혼돈과 분열뿐일 것이다.
  • 남경필 경기지사 “연정(聯政)으로 권한 나누니 정치 잘 굴러가…”

    남경필 경기지사 “연정(聯政)으로 권한 나누니 정치 잘 굴러가…”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준비를 많이 해 왔다. 그래서인지 편안하고 자신감 있어 보였다. 이번 인터뷰는 양측 일정이 잘 맞지 않아 3월 둘째 주 정도로 미뤄질 뻔했다. 그런데 남 지사 측에서 24일 오후를 고집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임기 2년차를 마치고 3년차를 시작하는 시점에 던지고 싶은 메시지가 있었던 것 같다. 남 지사는 인터뷰에서 정치권의 이른바 ‘잠룡’들 가운데 처음으로 2017년 대통령 선거 불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그리고 2018년 경기도지사 재선 도전을 거쳐 2022년 대선에 출마하겠다는 정치 일정도 밝혔다. 남 지사는 생각보다 멀리 보는 정치인이었다. 그는 10년 전부터 미래의 지도자가 될 만한 여야 정치인들과 함께 중국, 일본, 러시아의 차세대 정치인들과 교류하면서 우리나라와 동북아의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이 정치권의 중심세력이 된다면 현재와는 다른 정치를 할 수 있을까. 남 지사와의 인터뷰는 이도운 부국장 겸 정치부장과의 대담으로 서울신문 편집국 회의실에서 한 시간 동안 진행됐다. →경기도의 여야 연정에 정치권의 관심이 크다. 연정을 해 보니 어떤 효과가 있나. -제가 아침 9시 회의 전까지 출근을 안 한다. 9시부터 일하고 6시면 퇴근한다. 그래도 잘 돌아간다. 권한은 나누는 게 좋고 그래야 정치가 잘 굴러간다. 도 의회와 긴장이 없는 건 아니지만 쓸데없는 갈등은 최소화할 수 있다. →연정은 구성이 힘들었나, 이끌어가는 게 더 힘든가. -가장 힘들었던 건 ‘그게 되겠나’ 하는 냉소적인 시선이다. 편견을 깨는 게 가장 어려웠고 그 다음부터는 어렵지 않았다. →경기도의 연정이 국가 차원에서도 가능할까. -연정 자체가 목표는 아니다. 최종 목표는 도민과 국민 행복이다. ‘경기도가 연정을 했더니 정치가 안정되고, 투자자들도 지갑을 열고, 일자리가 늘고, 세금이 더 걷히고, 복지가 탄탄해지는 선순환 구조가 돼서 경기도가 살기 좋아졌다’ 이렇게 효과가 나야 한다. 그럼 국가에도 자연스레 연정이 적용되기 마련이다. 징후는 좋다. 모든 게 연정의 효과라고 할 순 없지만 지난해 경기도는 세수를 1조 5000억원 더 걷었고 전국에서 창출된 일자리의 44%인 24만 6000개가 경기도에서 나왔다. 국회에선 ‘불어터진 국수’를 말하는데 경기도에선 국수 불 일이 없다. 도지사·의회가 추진하고픈 정책을 같이 올려 여야가 합의하고 의회가 예산으로 반영해 주는 식이다. 정무부지사를 사회통합부지사라는 이름으로 바꿔 야당 인사를 기용한 덕이 크다. →서울시와 충돌할 부분도 있다. 박원순 시장과는 갈등 해결 과정이 원만한 편인가. -아직 충돌이라고 할 만한 게 없었다. 예를 들어 2층 버스 문제도 경기도는 서울에 되도록 많이 집어넣고 싶어 하고 서울은 반대다. 하지만 서로 적당한 수준에서 합의하고 소통이 잘 된다. →박 시장과 라이벌 의식은 없나. -없다. 제가 가끔씩 오후 4시에 직원들에게 피자를 쏜다. 경기도는 부처별로 각종 토론회, 협업 아이디어 논의를 매일 하는 편인데 그중 프레젠테이션을 가장 잘한 부서에 쏘는 식이다. 박 시장한테 배웠다. ‘내가 해 봤다’며 이런 팁을 주더라. →지자체 간 연정도 할 수 있는 분위기다. -수도권 매립지 문제만 해도 인천시장에겐 난제다. 소통하면서 같이 풀자는 말을 (인접 지자체장들끼리) 한다. 앞으론 수도권에서 국제대회를 유치하지 말자는 얘기도 나왔다. 무엇 하러 돈을 갖다 때려붓나. 서울·경기·인천 세 지자체가 기존 인프라를 나눠 쓰면 되는데. →1987년 체제가 수명을 다했다는 논리에서 개헌론이 나온다. 찬성하나. -언젠가는 해야 한다. →그 언젠가가 언제인가. -‘ASAP’(As Soon As Possible),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그러나 ‘해야 한다’와 ‘할 수 있다’는 다르다. 청와대가 반대하고 국민도 적극적이지 않으니 쉽지 않을 것이다.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제를 제안한 적 있다. 여전히 생각이 그런가. -개헌을 추진하는 정치권 지도자들께 두 가지를 말씀드리고 싶다. 첫째, 개헌 논의의 방향은 결국 권력 분산이다. 대통령의 권한을 쪼개 국회로 가져가는 것이고, 그러려면 국회의 신뢰성을 높여야 한다. 국회 선진화법 입법 이전과 이후는 다르다. 몸싸움을 안 하고 예산도 제때 처리하는 여야 합의의 선도적 문화가 여야 이완구·유승민·우윤근 원내대표 체제에서 정착되고 있다. 이 계기를 잘 살려야 한다. 또 하나, 개헌은 통일을 준비하는 차원이어야 한다. 지금 같은 정치구조에서 통일을 포용할 수 있을까 생각해 봐야 한다. 권력 분점의 형태는 오스트리아식일 수도, 미국식일 수도 있다. 어쨌건 행정부와 의회, 중앙과 지방의 권력 분점을 동시에 하지 않으면 통일이란 없다. →옛 한나라당 시절 인재영입위원장을 지냈다. 당 대표라면 내년 총선 공천을 어떤 방식으로 하겠나. -저라면 여야 합의부터 빨리 하겠다. 오픈프라이머리를 여야 합의로 해야만 답이다. 합의 안 된 독자적인 오픈프라이머리는 굉장히 위험하다. 인사가 만사다. 국회의원을 뽑는 인사제도가 공천인 셈인데, 과거에 보면 선거하기 3~4개월 전까지도 공천 방식이 결정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공천권자에게) 줄 서게 된다. 최소한 1년 전엔 공천방식을 만들어야 하는데 올해는 이미 물 건너간 것 아닌가. 최소한 6개월 전엔 일관되게 예측 가능한 인사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한다. 그게 오픈프라이머리냐 여부는 두 번째 문제다. →25일로 박근혜 정부 출범 2주년이 됐다. 국정운영은 몇 점 정도 줄 수 있나. -못 매기겠는데…. →청와대 비서실장 인사가 초미의 관심사다. 어떤 인물이 와야 하나. -소통이 잘 되고 시끄럽지 않게 대통령을 설득할 수 있는 분이 좋다. 실장이 나와서 떠들기 시작하면 골치 아프다. →정부가 4월까지 공무원연금개혁을 마무리한다고 했는데. -공무원들의 의견을 최대한 많이 듣는 과정을 거쳤으면 한다. 천천히 가는 게 결과는 더 빨리 낼 수 있다. 사실 지난해부터 급하게 추진됐다. 개혁과제는 이해 당사자들의 동의가 수반되어야 한다. 극렬히 반대하면 못 한다. 동의를 끌어내는 게 관건이다. →경기도도 무상급식·보육을 하고 있다. 현장에서 시행해 보니 무상복지는 이대로 가는 게 나은가. -(고개를 저으며) ‘줄이는 게 옳다’는 것과 ‘줄일 수 있다’는 것은 다른 문제다. 지금 (철회)할 수 있을까? 어렵다. 지금까지 나온 복지를 줄일 것인가를 놓고 논쟁하는 것도 무의미하다. 국민적 합의를 통해 검증받은 제도들을 다시 되돌린다는 게 쉽지 않다. 다만 앞으로 확대될 복지에 관해선 엄격한 기준과 토론을 통해 결론 난 것들만 적용해야 한다. →증세 없는 복지는 가능한가. -사실 무상급식·보육 사태는 (일단 벌여 놓은 뒤에) 세수가 계획보다 줄어들고 보니 결론은 ‘빚내서 하자’가 된 것 아닌가. 일단 경제활성화를 통해 세수를 확보해서 현재 짜놓은 정책까진 증세 없이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앞으로 복지 확대는 증세를 정말로 할지 말지에 달려 있다. 중장기적으로는 조세부담률을 높여야 한다. 이 역시 정부의 예산 집행 능력이 신뢰를 받아야 한다. 납세자가 ‘내가 좀 더 내도 나한테 돌아온다’고 생각할 수 있게 만들면 된다. 세금 내 봤자 뜯긴다는 불신을 받으니 증세가 어렵다. 정치권에 몸담고 있을 땐 옳은 얘기, 좋은 얘기만 했는데 현장에 와 보니 할 수 있는 얘기를 해야 되더라.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유승민 원내대표가 당을 잘 이끌어 가고 있나. -아직은 평가하기 이르다. 정말(을 반복하면서) 잘했으면 좋겠다.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는 긴장관계가 나은가, 화합이 먼저인가. -(한참 생각한 뒤) 적절한 긴장관계가 맞다. 소통이 잘 되는 긴장관계여야 한다. →그럼 당과 청와대 중 누가 리드해야 하나. -아래 위가 따로 있나. 같이 가는 것 아닌가. 저와 경기도 의회는 소통 잘 되는 긴장관계다. 하하. →도정을 맡아 보니 김문수 전 지사의 자취가 느껴지나. -김 전 지사가 무지하게 일을 많이 하셨더라. 열심히 뛰셨고 사심이 없었다는 게 느껴졌다. 대통령이 되려는 사심은 상당히 많았던 것 같다(웃음). 그것도 사적인 이익이 아니라 국가와 민족에 대한 마음이 투철했던 것 같다. →남 지사도 사심이 있나. -2017년(대선)은 없다. (2022년 대선을 보고 뛰냐고 묻자) 그건 뭐 굳이 얘기 안 해도…(웃음). →2018년 경기지사 재선에 도전하나. -아직은 결정한 게 없다. 김 전 지사가 사실 재선 때도, 삼선 때도 출마를 원하지 않았다. 매번 나한테 나가라고 강요해서 ‘형님, 안 나갈 거면 빨리 후계자를 키우고 불출마한다고 공개하라’고 했는데 ‘안 한다고 말하는 순간 아무도 내 말을 안 듣는다. 그래서 미리 얘기하면 안 된다’고 하더라. 그래서 저는 도 공무원들에게 ‘제 임기는 11년 남았다’고 말한다(웃음). →여권에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영입론도 나온다. 반 총장의 정치권 입문을 환영하나. -그분을 위해선 환영하지 않는다. 흔히 ‘국회의원은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신세’라고 말하는데 대통령 출마는 수준이 다르다. 날 선 작두를 타는 것과 같다고 할까.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발이 쪼개지면서 (정치적) 목숨을 빼앗긴다. 아니 가족들 목숨까지 등에 떠안고 작두를 타는 거라서 그동안 명예를 지켜오신 분이 뭐하러 작두를 타려고 하시겠나. 정리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聯政으로 권한 나누니 정치 잘 굴러가…경기지사 재선 거쳐 2022년 대선 출마”

    “聯政으로 권한 나누니 정치 잘 굴러가…경기지사 재선 거쳐 2022년 대선 출마”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준비를 많이 해 왔다. 그래서인지 편안하고 자신감 있어 보였다. 이번 인터뷰는 양측 일정이 잘 맞지 않아 3월 둘째 주 정도로 미뤄질 뻔했다. 그런데 남 지사 측에서 24일 오후를 고집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임기 2년차를 마치고 3년차를 시작하는 시점에 던지고 싶은 메시지가 있었던 것 같다. 남 지사는 인터뷰에서 정치권의 이른바 ‘잠룡’들 가운데 처음으로 2017년 대통령 선거 불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그리고 2018년 경기도지사 재선 도전을 거쳐 2022년 대선에 출마하겠다는 정치 일정도 밝혔다. 남 지사는 생각보다 멀리 보는 정치인이었다. 그는 10년 전부터 미래의 지도자가 될 만한 여야 정치인들과 함께 중국, 일본, 러시아의 차세대 정치인들과 교류하면서 우리나라와 동북아의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이 정치권의 중심세력이 된다면 현재와는 다른 정치를 할 수 있을까. 남 지사와의 인터뷰는 이도운 부국장 겸 정치부장과의 대담으로 서울신문 편집국 회의실에서 한 시간 동안 진행됐다. →경기도의 여야 연정에 정치권의 관심이 크다. 연정을 해 보니 어떤 효과가 있나. -제가 아침 9시 회의 전까지 출근을 안 한다. 9시부터 일하고 6시면 퇴근한다. 그래도 잘 돌아간다. 권한은 나누는 게 좋고 그래야 정치가 잘 굴러간다. 도 의회와 긴장이 없는 건 아니지만 쓸데없는 갈등은 최소화할 수 있다. →연정은 구성이 힘들었나, 이끌어가는 게 더 힘든가. -가장 힘들었던 건 ‘그게 되겠나’ 하는 냉소적인 시선이다. 편견을 깨는 게 가장 어려웠고 그 다음부터는 어렵지 않았다. →경기도의 연정이 국가 차원에서도 가능할까. -연정 자체가 목표는 아니다. 최종 목표는 도민과 국민 행복이다. ‘경기도가 연정을 했더니 정치가 안정되고, 투자자들도 지갑을 열고, 일자리가 늘고, 세금이 더 걷히고, 복지가 탄탄해지는 선순환 구조가 돼서 경기도가 살기 좋아졌다’ 이렇게 효과가 나야 한다. 그럼 국가에도 자연스레 연정이 적용되기 마련이다. 징후는 좋다. 모든 게 연정의 효과라고 할 순 없지만 지난해 경기도는 세수를 1조 5000억원 더 걷었고 전국에서 창출된 일자리의 44%인 24만 6000개가 경기도에서 나왔다. 국회에선 ‘불어터진 국수’를 말하는데 경기도에선 국수 불 일이 없다. 도지사·의회가 추진하고픈 정책을 같이 올려 여야가 합의하고 의회가 예산으로 반영해 주는 식이다. 정무부지사를 사회통합부지사라는 이름으로 바꿔 야당 인사를 기용한 덕이 크다. →서울시와 충돌할 부분도 있다. 박원순 시장과는 갈등 해결 과정이 원만한 편인가. -아직 충돌이라고 할 만한 게 없었다. 예를 들어 2층 버스 문제도 경기도는 서울에 되도록 많이 집어넣고 싶어 하고 서울은 반대다. 하지만 서로 적당한 수준에서 합의하고 소통이 잘 된다. →박 시장과 라이벌 의식은 없나. -없다. 제가 가끔씩 오후 4시에 직원들에게 피자를 쏜다. 경기도는 부처별로 각종 토론회, 협업 아이디어 논의를 매일 하는 편인데 그중 프레젠테이션을 가장 잘한 부서에 쏘는 식이다. 박 시장한테 배웠다. ‘내가 해 봤다’며 이런 팁을 주더라. →지자체 간 연정도 할 수 있는 분위기다. -수도권 매립지 문제만 해도 인천시장에겐 난제다. 소통하면서 같이 풀자는 말을 (인접 지자체장들끼리) 한다. 앞으론 수도권에서 국제대회를 유치하지 말자는 얘기도 나왔다. 무엇 하러 돈을 갖다 때려붓나. 서울·경기·인천 세 지자체가 기존 인프라를 나눠 쓰면 되는데. →1987년 체제가 수명을 다했다는 논리에서 개헌론이 나온다. 찬성하나. -언젠가는 해야 한다. →그 언젠가가 언제인가. -‘ASAP’(As Soon As Possible),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그러나 ‘해야 한다’와 ‘할 수 있다’는 다르다. 청와대가 반대하고 국민도 적극적이지 않으니 쉽지 않을 것이다.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제를 제안한 적 있다. 여전히 생각이 그런가. -개헌을 추진하는 정치권 지도자들께 두 가지를 말씀드리고 싶다. 첫째, 개헌 논의의 방향은 결국 권력 분산이다. 대통령의 권한을 쪼개 국회로 가져가는 것이고, 그러려면 국회의 신뢰성을 높여야 한다. 국회 선진화법 입법 이전과 이후는 다르다. 몸싸움을 안 하고 예산도 제때 처리하는 여야 합의의 선도적 문화가 여야 이완구·유승민·우윤근 원내대표 체제에서 정착되고 있다. 이 계기를 잘 살려야 한다. 또 하나, 개헌은 통일을 준비하는 차원이어야 한다. 지금 같은 정치구조에서 통일을 포용할 수 있을까 생각해 봐야 한다. 권력 분점의 형태는 오스트리아식일 수도, 미국식일 수도 있다. 어쨌건 행정부와 의회, 중앙과 지방의 권력 분점을 동시에 하지 않으면 통일이란 없다. →옛 한나라당 시절 인재영입위원장을 지냈다. 당 대표라면 내년 총선 공천을 어떤 방식으로 하겠나. -저라면 여야 합의부터 빨리 하겠다. 오픈프라이머리를 여야 합의로 해야만 답이다. 합의 안 된 독자적인 오픈프라이머리는 굉장히 위험하다. 인사가 만사다. 국회의원을 뽑는 인사제도가 공천인 셈인데, 과거에 보면 선거하기 3~4개월 전까지도 공천 방식이 결정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공천권자에게) 줄 서게 된다. 최소한 1년 전엔 공천방식을 만들어야 하는데 올해는 이미 물 건너간 것 아닌가. 최소한 6개월 전엔 일관되게 예측 가능한 인사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한다. 그게 오픈프라이머리냐 여부는 두 번째 문제다. →25일로 박근혜 정부 출범 2주년이 됐다. 국정운영은 몇 점 정도 줄 수 있나. -못 매기겠는데…. →청와대 비서실장 인사가 초미의 관심사다. 어떤 인물이 와야 하나. -소통이 잘 되고 시끄럽지 않게 대통령을 설득할 수 있는 분이 좋다. 실장이 나와서 떠들기 시작하면 골치 아프다. →정부가 4월까지 공무원연금개혁을 마무리한다고 했는데. -공무원들의 의견을 최대한 많이 듣는 과정을 거쳤으면 한다. 천천히 가는 게 결과는 더 빨리 낼 수 있다. 사실 지난해부터 급하게 추진됐다. 개혁과제는 이해 당사자들의 동의가 수반되어야 한다. 극렬히 반대하면 못 한다. 동의를 끌어내는 게 관건이다. →경기도도 무상급식·보육을 하고 있다. 현장에서 시행해 보니 무상복지는 이대로 가는 게 나은가. -(고개를 저으며) ‘줄이는 게 옳다’는 것과 ‘줄일 수 있다’는 것은 다른 문제다. 지금 (철회)할 수 있을까? 어렵다. 지금까지 나온 복지를 줄일 것인가를 놓고 논쟁하는 것도 무의미하다. 국민적 합의를 통해 검증받은 제도들을 다시 되돌린다는 게 쉽지 않다. 다만 앞으로 확대될 복지에 관해선 엄격한 기준과 토론을 통해 결론 난 것들만 적용해야 한다. →증세 없는 복지는 가능한가. -사실 무상급식·보육 사태는 (일단 벌여 놓은 뒤에) 세수가 계획보다 줄어들고 보니 결론은 ‘빚내서 하자’가 된 것 아닌가. 일단 경제활성화를 통해 세수를 확보해서 현재 짜놓은 정책까진 증세 없이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앞으로 복지 확대는 증세를 정말로 할지 말지에 달려 있다. 중장기적으로는 조세부담률을 높여야 한다. 이 역시 정부의 예산 집행 능력이 신뢰를 받아야 한다. 납세자가 ‘내가 좀 더 내도 나한테 돌아온다’고 생각할 수 있게 만들면 된다. 세금 내 봤자 뜯긴다는 불신을 받으니 증세가 어렵다. 정치권에 몸담고 있을 땐 옳은 얘기, 좋은 얘기만 했는데 현장에 와 보니 할 수 있는 얘기를 해야 되더라.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유승민 원내대표가 당을 잘 이끌어 가고 있나. -아직은 평가하기 이르다. 정말(을 반복하면서) 잘했으면 좋겠다.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는 긴장관계가 나은가, 화합이 먼저인가. -(한참 생각한 뒤) 적절한 긴장관계가 맞다. 소통이 잘 되는 긴장관계여야 한다. →그럼 당과 청와대 중 누가 리드해야 하나. -아래 위가 따로 있나. 같이 가는 것 아닌가. 저와 경기도 의회는 소통 잘 되는 긴장관계다. 하하. →도정을 맡아 보니 김문수 전 지사의 자취가 느껴지나. -김 전 지사가 무지하게 일을 많이 하셨더라. 열심히 뛰셨고 사심이 없었다는 게 느껴졌다. 대통령이 되려는 사심은 상당히 많았던 것 같다(웃음). 그것도 사적인 이익이 아니라 국가와 민족에 대한 마음이 투철했던 것 같다. →남 지사도 사심이 있나. -2017년(대선)은 없다. (2022년 대선을 보고 뛰냐고 묻자) 그건 뭐 굳이 얘기 안 해도…(웃음). →2018년 경기지사 재선에 도전하나. -아직은 결정한 게 없다. 김 전 지사가 사실 재선 때도, 삼선 때도 출마를 원하지 않았다. 매번 나한테 나가라고 강요해서 ‘형님, 안 나갈 거면 빨리 후계자를 키우고 불출마한다고 공개하라’고 했는데 ‘안 한다고 말하는 순간 아무도 내 말을 안 듣는다. 그래서 미리 얘기하면 안 된다’고 하더라. 그래서 저는 도 공무원들에게 ‘제 임기는 11년 남았다’고 말한다(웃음). →여권에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영입론도 나온다. 반 총장의 정치권 입문을 환영하나. -그분을 위해선 환영하지 않는다. 흔히 ‘국회의원은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신세’라고 말하는데 대통령 출마는 수준이 다르다. 날 선 작두를 타는 것과 같다고 할까.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발이 쪼개지면서 (정치적) 목숨을 빼앗긴다. 아니 가족들 목숨까지 등에 떠안고 작두를 타는 거라서 그동안 명예를 지켜오신 분이 뭐하러 작두를 타려고 하시겠나. 정리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속보]새누리 새 원내대표 유승민 의원

    [속보]새누리 새 원내대표 유승민 의원

    새누리당 새 원내대표에 ‘원박(원조 박근혜계)’으로 분류되는 대구 출신의 3선인 유승민(대구 동을) 의원이 2일 당선됐다. 원내대표 러닝메이트인 정책위의장에는 비박계(비박근혜계)로 간주되는 경기 출신의 4선인 원유철 (경기 평택갑) 의원이 선출됐다. 유 의원은 정책과 정무 능력을 두루 겸비한 3선 중진이다. 2007년 대선후보 경선 때부터 박근혜 대통령을 도운 ‘원박(원조 친박근혜)’으로 분류된다. 현재 친박 주류측과는 상대적으로 소원해 ‘탈박(탈 친박)’ 꼬리표가 붙기도 한다. 정치적 활동기와 칩거기의 명암이 선명하게 대비되는 굴곡진 행보를 이어왔다. 이번 원내대표 경선에선 주류측 지원을 받은 이주영 의원을 제치고 쇄신과 과감한 변화를 내세워 당선, 내년 총선을 앞두고 당청관계를 비롯해 당 전반에 걸친 폭넓은 개혁 작업을 선도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경북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유 의원은 전형적인 ‘TK(대구경북)’ 엘리트 코스를 밟아왔다. 1987년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경제학 박사를 받은 뒤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을 지냈고, 2000년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장에 전격 발탁되며 정치에 입문했다. 한나라당 대선 후보인 이회창 당시 총재의 ‘경제 선생님’이자 최측근으로서 2002년 대선에서 핵심 역할을 맡았고, 대선 패배 후 1년여 공백기를 거쳐 2004년 17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한 뒤 사퇴후 대구 동을에 출마해 지역구로 배지를 갈아다는 진기록을 세웠다. 야당 시절의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 대통령과는 대표와 비서실장 사이로 첫 인연을 맺었고, 2007년 대선후보 경선에선 정책메시지 단장을 맡아 박 대통령 캠프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본선만큼 치열했던 경선에서 박근혜 캠프의 정책 공약을 성안한 것은 물론이고 이명박 후보를 향한 네거티브 공격 전략도 최선봉에서 진두지휘했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장기간 정치적 칩거를 이어가다 2011년 전당대회에서 친박 대표주자로서 홍준표 당시 대표 최고위원 당선인에 이어 2위로 지도부에 입성, 화려하게 활동을 재개했다. 그러나 넉달만에 같은당 최구식 당시 의원 수행비서의 중앙선관위 홈페이지 디도스(DDoS.분산서비스거부) 공격 파문에 대한 책임을 지고 지도부 총사퇴를 유도하며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난 후 특별한 당직은 맡지 않았다. 김무성 대표 취임 후엔 사무총장을 맡아달라는 김 대표의 삼고초려에도 불구하고 끝내 고사했다. 박근혜 비대위원장 체제로 치러진 19대 총선 당시 현재 새누리당으로의 당명 개정에 강하게 반대한 것을 비롯해 복지와 분배 강화를 요구하는 개혁 성향 목소리를 선명하게 내며 박 대통령을 비롯한 주류측과 결정적으로 멀어졌다.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박 전 위원장이 의사결정 과정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 “박 전 위원장을 가까운 거리에서 도울 기회는 없을 것”이라는 등의 비판적 목소리를 낸 것도 비슷한 시기다. 올해 초에는 김무성 대표의 수첩 사진이 공개되며 불거진 청와대 문건유출 ‘KY(김무성·유승민)’ 배후설 파문에 휘말려, 청와대 일부 비서진과 불편한 관계를 드러낸 바 있다. 한때 자신의 휘하에 있었던 청와대 비서진을 향해 “얼라들이”라고 일갈하기도 했다. 그러나 2012년 10월 새누리당 선대위 부위원장을 맡아 박 대통령과 관계를 어느 정도 회복했고, 스스로는 한결같이 박 대통령을 지지하는 마음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고 강조하며 주류측에도 스킨십을 강화한다는 평이다. 유수호 전 의원(13·14대)의 차남. 배우자 오선혜(56)씨와 1남1녀.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사설] 개헌 논의 뺀 정치개혁 의미 없다

    여야 수뇌부가 다음달 임시국회 중에 정치개혁 특위를 구성하기로 합의하면서 본격적인 정치개혁에 나섰다. ‘김영란법’ 처리와 인구수 편차 조정에 따른 선거구 획정 문제 등도 논의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물론 여야의 시각차가 커서 어떤 작품이 나올지 미지수지만 4류 정치라는 혹평을 받는 우리의 정치문화가 일보 전진하는 계기가 된 것은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다. 하지만 관심을 모았던 권력구조 개편을 위한 개헌특위 구성은 합의에 실패했다. 여야가 1시간 가까운 난상토론 끝에 추후 논의하기로 했다고 하지만 사실상 무산됐다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을 통해 ‘개헌 추진은 경제블랙홀’이라는 점을 재차 강조한 것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집권 세력이 늘 그래 왔던 것처럼 경제 회생과 민생 우선이란 논리로 개헌 논의마저 봉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2012년 대통령선거 전 기자회견을 통해 현행 헌법의 폐해를 지적하며 4년 중임제 개헌을 선거 공약으로 내걸었던 만큼 그 진정성에 더 의문이 간다. ‘1987년 체제’로 불리는 현행 헌법은 민주화 투쟁의 산물이다. 군부독재에 시달려 왔던 국민들의 최대 염원인 평화적 정권교체를 달성하는 데에는 기여했지만, 현행 헌법은 당시 핵심 역할을 했던 1노(노태우)·3김(김영삼-김대중-김종필) 정치의 산물이다. 창의를 생명으로 하는 21세기의 변화와 사고를 담기에는 너무도 낡은 그릇이 됐다. 그동안 우리의 경제 규모는 10배 이상 성장했고 국정 운영의 패러다임 자체도 변했다. 국정의 모든 정책이 대통령 5년 단임제에 따라 5년 단위로 바뀌면서 국가의 장기 전략을 마련하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개헌은 국가의 운명을 결정할 중요한 정치 변화라고 할 수 있다. 국가 운영의 모든 틀을 결정하고 국민 개개인의 사고와 행동 규범에도 영향을 미치는 중대사임에도 논의 자체를 외면하는 것은 정치권의 직무유기로 볼 수도 있다. 그동안 여야가 경쟁적으로 정치개혁안을 마련해 왔지만 대통령에게 집중된 제왕적 권력을 분산하지 않고는 정치개혁 자체에 한계가 있다는 의견도 있다. 물론 남북 대치 상황에서는 대통령과 총리로 권한이 나뉘는 이원집정부제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도 일리가 있다. 어떤 체제가 적합한지 논의할 필요가 있다. 또 현재의 대통령제와 이원집정부제에 대한 채택 여부와는 별개로, 5년 단임제를 유지할지 4년 중임제나 6년 단임제를 할지에 대한 활발한 의견 개진도 필요하다. 큰 선거가 없는 올해가 개헌 논의의 적기일 수 있다. 정치개혁 특위에서 선거구 획정 등 선거제도 개편을 논의하기로 한 만큼 개헌을 함께 논의하는 것은 여러 측면에서도 효율적일 수 있다. 개헌 중 권력구조는 차기가 아닌 차차기(2022년 대선)부터 적용하면서 일종의 연착륙을 강구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개헌 논의가 시작되면 모든 국정이 마비될 것이란 주장도 일리가 없지는 않지만 그렇더라도 개헌과 관련한 논의는 할 필요도 있다. 여야가 추후 합리적인 선에서 개헌 특위를 구성하는 문제를 진정성을 갖고 논의하기 바란다.
  • [신년 단독 인터뷰] “예산안 시한내 처리, 가장 큰 성과이자 이정표…매년 이어져야”

    [신년 단독 인터뷰] “예산안 시한내 처리, 가장 큰 성과이자 이정표…매년 이어져야”

    국회 본관 3층 중앙에 자리 잡은 국회의장 집무실은 지난해 6월 정의화 의장이 취임한 이후 세 가지가 달라졌다. 먼저, 집무실 바닥에 깔려 있던 카펫이 걷히고 마룻바닥이 새로 깔렸다. 건강을 중시하는 의사출신 정 의장의 조치다. 둘째, 의장 책상 뒤에 12폭 병풍이 새로 놓였다. 정 의장의 조상이라는 포은 정몽주 선생의 과거시험 답안이 새겨져 있다. 의장실을 찾는 외빈들에게 한국의 미를 강조하기 위한 고려도 있었다. 셋째, 책상 맞은 편 벽에 커다란 글씨로 ‘인’(忍)자를 써 붙여 놨다. 정 의장은 “여야가 하도 싸우는 날이 많아, 여기 와서 협상할 때 보고 한 발씩 양보하라고 걸어 놨다”고 말했다. 의장실 한쪽 벽에는 이른 새벽 소나무 숲을 찍은 대형 사진이 걸려 있었다. 배병우 작가의 작품이냐고 묻자 “의장님이 찍은 것”이라고 이민경 국회 부대변인이 대신 대답했다. →취임 이후 가장 내세울 만한 성과가 무엇인가. -2015년 예산안을 시한 내에 처리한 것이다. 12 년 만이라고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1987년 개헌 이후 최초로 정부 예산안을 헌법 시한 내 통과시킨 거다. 굉장히 중요한 이정표이며 역사를 새롭게 쓴 것이다. →2016년 예산안도 시한 내 처리할 것인가. -물론이다. 이런 전통은 매년 이어져야 한다. →새누리당 이완구·새정치민주연합 우윤근 원내대표와 여러 합의를 이뤄냈다. 두 분과 일하기가 어땠나. -이 대표와는 서로 대화가 되는 친구지간이다. 15대에 함께 국회에 들어온 동기다. 스스럼없이 대화가 된다. 우 대표는 인품이 아주 그윽한 사람이다. 내가 복을 받은 사람이다. 앞서 박영선 새정치연합 원내대표도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이 원내대표는 총리 기용설이 있다. 실제로 총리가 된다면 잘할 것으로 보나. -그렇게 확신한다. 고집이 있는 편이지만 예전이나 지금이나 한결같은 사람이다. →국회선진화법에 대해 말이 많았다. 직접 국회를 운영해 보니 정말 손질할 필요성을 느끼나. -선진화법은 (법적으로) 바꿀 재주가 없다. 그렇다면 보완해야 되는데 그것도 쉽지 않다. 그래서 내 생각은 상시 국회·요일제 국회를 만들어 예측 가능한 국회로 가자는 것이다. 원로회의체를 만들어 문제가 생겼을 때 중진들의 도움을 받는 시니어리티 룰(seniority rule)을 도입할 수도 있다. (선진화법이 허용한) 필리버스터는 사실 필요 없다. 악용되면 (의회 논의가) 옆으로 빠지는 수가 생기기 때문에 난 마땅치 않다고 본다. 또 내년부터는 예산 심사기일을 정해줘야 한다. 올해 처음으로 12월 2일까지 예산안을 처리하다 보니 정부는 ‘무조건 통과된다’고 여유를 부리고, 야당은 ‘우리도 급할 거 없다’고 하고 여당만 안달이더라. 예산 심사기일 지정은 과거처럼 날치기 통과하겠다는 게 아니라 국회가 11월 말까지 국민대표기관으로서 심도 있는 예산 논의를 해달라는 차원이다. 소수당이 다수당의 발목을 잡은 건 가장 큰 문제다. 다수당은 국민이 ‘책임 정치하라’고 만들어준 건데 책임 정치를 못하는 시스템이 돼버렸다. 민생법안 등 여야 무쟁점 법안은 신속하게 처리하게끔 파이프라인을 만들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제가 최근에 무쟁점 법안의 신속처리안(패스트트랙·무쟁점 법안은 상임위 숙려기간이 지나면 법사위 첫 회의에 자동상정하는 안)을 내놨다. 새해 임시국회에서 여야가 통과시켜주길 바란다. →개헌논의는 활화산인가 휴화산인가. -활화산에 가까운 휴화산으로 볼 수 있다. 선거구 획정 문제가 갑자기 이슈화돼 개헌이 상대적으로 관심을 덜 받게 된 상황이다. 그러나 개헌이 블랙홀이 돼선 안 된다. 개헌을 하더라도 권력구조 부문은 차차기인 20대 대선부터 적용되어야 한다. 국회 정치개혁특위 안에 개헌과 선거구획정소위를 따로 만들어 투트랙으로 하는 것도 방법이다. →통합진보당이 해산 선고를 받아 5명이 의원직을 상실했는데. -안타까운 일이다. 대한민국의 정치활동은 대한민국이 추구하는 이상과 목표에서 벗어나선 안 된다. 그 속에서 건전한 정당활동을 하면서 올바르고 합리적으로 가야 된다. 헌재의 판단을 보면 결국 통진당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진보정당이 21세기에 걸맞은 새로운 정당으로 태어나는 발전적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공무원연금개혁이 박근혜 정부 개혁의지의 상징처럼 됐다. 잘될 것으로 보나. -국민 모두 공무원 연금에 문제점이 많다는 걸 알고 있어 분명히 해결은 해야 한다. 그러나 또 다른 갈등 비용의 부담이 생겨선 안 된다. (올해) 4월까지 선을 긋고 하겠다는 입장은 적절치 않다. 한두 달 늦어지더라도 여유를 갖고 국가의 미래를 고민하며 가야 한다. 연금 액수 조정도 중요하지만 이를 기점으로 임금피크제 도입, 노인 기준 재논의 등 우리 사회 전열을 정비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4월을 넘기자면 야당 편을 드는 것 아닌가. -그렇지 않다. 너무 늘어지면 안 되지만 한두 달 더 여유를 갖고 완벽하게 하자는 것이다. →남북 간 국회의장 회담을 제의했다. 성사되면 무엇을 논의하려 하는가. -만남 자체가 가장 중요하다. 처음 만나서부터 ‘이거 하자 저거 하자’는 의미가 없다. 일단 만나서 민족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고민하자는 거다. 정부가 할 수 있는 몫이 있고 국회가 할 수 있는 몫이 있다. 이른 시일 내에, 당장 3월이라도 실무접촉하고 장소는 예컨대 ‘개성에서 하자’ 정도만 나와도 저쪽에서 사전요구가 있을 것 아닌가. 구체적인 의제는 그때 가서 검토하면 된다. →지난해 10월 일본 방문 때 아베 신조 총리를 만났다. 어떤 느낌을 받았나. -그의 우익 행보에 대해선 여러 생각이 든다. 첫째, 외조부가 전범이고 부산과 가까운 야마구치현 시모노세키가 집안인 점 등을 고려해 볼 때 과거 일본이 한국을 강점했다는 우월감이 남아 있을 가능성이 있다. 또 후쿠시마 원전 사고 등으로 위축된 국민들을 북돋기 위한 측면도 있어 보인다. 국제적으로는 중국이 부상하며 일본의 위상이 떨어지는 데서 오는 초조감도 반영된 것 같다. 또 정치적으로 어렵던 시절 우익 그룹에서 받았던 지원에 대한 예우 차원일 수도 있다. 인상 자체는 나쁜 사람이 아니다. →중국 베이징 방문 때는 시진핑 국가주석도 만났다. -믿음직스러운 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대화를 나눠 보니 상당히 내공 있고 통 큰 대국인의 면모도 갖췄다. 예컨대 중국의 대 한국 무역적자가 지난해 약 260억 달러라는데 “나는 무역역조 같은 건 신경 안 쓴다”고 대수롭지 않게 말하더라. 또 한·중 관계를 매우 긍정적으로 보더라. →한·중 관계가 발전하면서 한·미관계와는 충돌하는 측면이 있다. 어떻게 균형을 잡아야 할까.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미국은 6·25 때 우리나라에 파병해 3만명 이상 전사자를 낸 혈맹이다. 중국과는 현재의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더 성숙시켜서 한중 우호연대로 가야 한다. 한쪽에 미국, 한쪽에 중국과 손을 잡고 러시아·일본과도 함께 가야 한다. →한·미 관계가 10이라면 한·중, 한·일 관계는 어느 정도 돼야 할까. -중국도 일본도, 그리고 ·아세안 등 다른 나라들과도 모두 8, 9 이상으로 가야 한다. →얼마 전 박근혜 대통령의 소통 문제를 거론해 화제가 됐다. 계속할 생각인가. -국회의장으로서 대통령을 도와드리고 싶었을 뿐이다. 박 대통령이라고 그 문제를 모르시겠나. 앞으로 일부러 제기할 생각은 없다. →서울신문 신년 여론조사에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대선 지지도가 압도적인 1위를 기록했다. 반 총장이 정치권에 들어오면 환영하겠나. -환영 안 할 이유가 없다. 평소 존경하고 인품을 잘 아는 가까운 분이다. 다만 내가 지지하느냐는 별개 문제다. →지난 대선 때는 경제민주화·복지가 화두였다. 앞으로 우리 사회의 가장 중요한 화두는 무엇이 될까. -누가 뭐래도 일단 경제다. 경제가 받쳐줘야 민생이 해결되고 그래야 복지로 간다. 나 보고 둘을 꼽으라 하면 경제와 통일, 셋을 뽑으라 하면 경제와 통일, 복지다. 성장과 복지는 자동차의 앞, 뒷바퀴처럼 같이 가야 된다. →그동안 야당이 무기력하다는 비판을 면치 못했다. 여야가 균형을 맞춰야 의장이 이끌어가기도 수월하지 않나. -좋은 야당이 있으려면 좋은 여당이 있어야 하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여야는 실과 바늘 같은 관계다. 여야가 예전처럼 첨예하게 싸우는 모습을 보이지 않아서 야당이 무기력해 보이는 것처럼 호도될 수도 있다. 또 진보는 진보다워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진보진영에서 스스로 무기력하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대담 이도운 부국장 겸 정치부장 정리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단독] [커버스토리] 국정 뒤흔든 ‘비선 잔혹사’

    [단독] [커버스토리] 국정 뒤흔든 ‘비선 잔혹사’

    결국 박근혜 정부도 피해 가지 못했다. 박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저는 가족도 없고 자식도 없다”고 말했지만 ‘문고리 권력’에서 동티가 났다.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들어선 우리나라 역대 정권 중에 ‘비선(秘線) 실세 논란’을 피해 간 정권은 이제 단 하나도 없게 된 셈이다. 역대 정부는 모두 한 차례 이상 비선 실세 논란을 겪었다. 논란은 모두 검찰 수사로 이어졌고 대통령의 최측근 또는 가족이 처벌을 받는 수순으로 이어졌다. 더불어 공직 기강 해이 문제가 제기되면서 대통령의 지지율도 폭락했다. 정식 지휘 계통이 아닌 비선 실세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국정 운영의 불투명성, 불합리성을 뜻하는 것으로 국민들이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직전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민간인 사찰’ 문제로 ‘영포회’의 존재가 불거지면서 거센 폭풍이 불었다. 이 전 대통령의 지역 기반인 영일·포항 출신의 고위 공직자들이 공직자 감찰을 하던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업무에 두루 관여해 보고를 받고 민간인까지 사찰했다는 의혹이었다. 영포회 멤버로 당시 ‘왕차관’으로 불렸던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은 물론 공직윤리지원관실 관계자들도 결국 대거 구속됐다. 또 ‘만사형통’(萬事兄通·모든 일은 형을 통한다)으로 통했던 이 전 대통령의 형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도 ‘2선 후퇴’를 했다가 이후 저축은행 비리 사건으로 구속됐다. 노무현 정부 때도 ‘형님’이 말썽이었다. 노 전 대통령의 친형 노건평씨는 ‘봉하대군’으로 불리며 인사 개입 의혹 등으로 주변에 잡음이 끊이질 않았다. 결국 노씨는 농협의 세종증권 인수 과정에 관여해 29억여원을 받은 혐의로 정권 교체 직후 구속됐다. 노 전 대통령의 측근으로 ‘좌희정 우광재’로 불렸던 안희정 충남지사와 이광재 전 강원지사도 불법 대선자금 수수 혐의로 구속됐다. 김대중 정부와 김영삼 정부 때는 아들이 문제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세 아들 홍일·홍업·홍걸씨는 ‘홍삼 트리오’로,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는 ‘소통령’으로 불리며 각 정부 실세로 통했다. 결국 홍업씨는 조세 포탈 등 혐의로, 홍걸씨는 부정 청탁으로 구속됐고, 현철씨는 1997년 한보 사태 이후 기업인들로부터 돈을 받은 혐의로 역시 수감 생활을 했다. 1987년 개헌 이후 처음 수립된 노태우 정부에서는 ‘6공의 황태자’ 박철언씨를 중심으로 한 ‘월계수회’가 실세 중의 실세로 통했다. 박씨는 드라마 ‘모래시계’로 잘 알려진 1994년 슬롯머신 사건으로 구속됐다. 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 [씨줄날줄] 개헌론과 통일/구본영 논설고문

    지난해 도쿄의 일본 국회의사당을 둘러본 적이 있다. 무엇보다 건물이 좌우 대칭이라는 사실이 인상적이었다. 알고 보니 정면을 향해 왼쪽에 하원 격인 중의원, 오른쪽에 상원 격인 참의원이 배치돼 있었다. 그런데도 우리 국회의사당보다 규모가 크지는 않았다. 하긴 단일 의사당 건물로는 우리 국회가 동양에서 제일 크단다. 이는 1966년 5월 박정희 대통령이 새 의사당 건립안에 결재할 때부터 비롯된 일이었다. 즉 “남북 통일에 대비하고, 양원제 실시에 적응할 수 있으며,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역사적 대규모 건물로 하되 국내 기술진이 세울 수 있어야 한다”는 내용의 지침에 따라서다. 여기서 통일과 양원제에 대비하겠다는 대목이 눈길을 끈다. 새 의사당의 규모를 키운 숨은 요인이란 점에서다. 이런 지침에 따라 1975년 준공된 여의도 의사당 2층의 본회의장은 양원제에 대비해 민의원용 300석, 참의원용 100석 등 2개로 만들었다. 참의원용은 현재 예결위에서 사용하고 있지만 말이다. 통일이 요원해 보였던 당시에도 훗날을 내다보며 민의의 전당을 설계한 셈이다. 개헌론이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얼마 전 중국 방문 중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제 등 개헌 방향을 언급한 뒤 여진이 이어지고 있다. 김 대표가 정기국회 중 경제살리기와 개혁법안 처리에 올인하려는 청와대의 불편한 기색을 읽고 자신의 발언을 사과했지만, 불씨는 꺼지지 않고 있다. 여야 개헌론자들이 계속 군불을 지피고 있는 탓이다. 새정치민주연합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은 어제 “이번 골든타임을 놓치면 낡은 권력구조를 (개편하기) 위한 개헌이 어렵다”며 올해 내 개헌특위 구성을 제안했다. 1987년 개정된 현행 헌법의 수명이 다됐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빗발쳐 온 건 사실이다. 대통령을 간선제로 뽑던 5공화국 헌법을 대신해 5년 단임 직선제를 골자로 성안됐지만, 여러 가지 역기능이 빚어지면서다. 그러나 작금의 개헌 논쟁이 한 가지 간과하고 있는 대목이 있다. 이왕이면 통일에 대비하는 헌법을 만들 생각을 해야 하는데도 이런 데까지 눈을 돌리는 정치인들은 눈에 띄지 않는다. 그저 권력구조 개편 과정에서 정파별 유불리만 따지는 계산만 두드러져 보일 뿐이다. 정치사상가 막스 베버는 ‘직업으로서의 정치’라는 저서에서 ‘책임 윤리’가 없는 정치인의 등장을 저어했다. 서울보다 남쪽으로 수도를 옮긴다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 이미 커다란 부작용을 빚고 있지만, 통일시대에는 비효율이 더욱 두드러지리란 전망도 있지 않은가. 통일 한국이란 백년대계를 내다보지 않은 채 경솔히 개헌론을 입에 올릴 때인가 싶다. 구본영 논설고문 kby7@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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