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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대 취업 ‘뒷걸음질’

    고령화에다 청년 취업난 등이 겹치면서 20대 취업자 수가 17년 전인 지난 1988년 수준으로 줄었다. 8일 통계청에 따르면 올들어 7월까지 20대(20∼29세) 취업자는 월평균 424만 7000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434만 4000명)보다 9만 7000명(2.2%) 줄었다. 이는 지난 1988년 같은 기간의 426만 4000명과 비슷한 수준이다. 1∼7월 월평균 기준으로 20대 취업자는 지난 1984년 396만 7000명이었으나 1987년 430만 9000명,1990년 441만명,1993년 478만 4000명으로 계속 늘어 1995년에는 501만 4000명으로 최고에 달했다. 1997년까지 500만명선을 유지하던 20대 취업자는 1998년 446만 7000명,1999년 427만 8000명,2000년 448만 1000명,2001년 446만 4000명,2002년 450만 6000명 등으로 등락을 하다 2003년 435만 9000명으로 크게 줄었다.7월 한달 통계상의 20대 취업자는 427만 7000명으로 지난해 같은 달의 440만 6000명보다 12만 9000명(2.9%)이 줄었다. 이는 1986년 7월(428만 3000명) 이후 가장 적은 숫자다.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
  • 신들의 땅, 히말라야를 품다

    신들의 땅, 히말라야를 품다

    마음 속의 찌든 때까지 모두 버릴 수 있는 땅, 히말라야에 대한 기대는 여행을 넘어섰다. 그러나 신들이 살고 있다는 거대한 산을 첩첩이 품고 있는 히말라야는 좀체 인간의 발길을 허락할 것 같지 않다. 그래서 더욱 가보고 싶은 곳이다. 그래서일까. 한해 히말라야로 가는 국내여행객도 1만명을 넘어섰다. 자연을 경배하고, 욕심과 분노덩어리인 삶을 돌아보게 하는 히말라야는 트레킹마니아들의 천국이다. 차갑고 날카로운 눈과 얼음, 드넓은 초원과 에메랄드빛 빙하가 흘러내린 호수, 야생화와 문명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사는 셰르파족 등…. 히말라야에서 지낸 20여일은 지난 삶에 대한 반성을 끊임없이 요구했다. 글·사진 히말라야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히말라야는 산스크리트어로서,‘히마’는 빙설(氷雪),‘말라야’는 살고 있는 곳, 즉 ‘눈의 거처’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쿰부 히말라야(KHUMBU HIMALAYA)는 히말라야산맥(약 2800km)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세계의 최고봉 에베레스트(8848m)가 우뚝 솟은 지역 일대를 말한다.원래 에베레스트라는 이름은 영국인이었던 측량국 관리의 이름을 본떠서 붙인 이름으로서 네팔어 정식 명칭은 사가르마타(SAGARMATHA)이다. ■ 마칼루·바룬 - 쿰부히말라야 26일간 대장정에 오르다 에베레스트의 이름에는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산이란 권위가 담겨있다. 높이에 대한 감탄뿐이 아니라 범접하기 어려운, 우러르는 마음을 갖지 않고선 감히 올려다볼 수조차 없는 경외감까지 포함돼 있다. 또한 로체, 마칼루, 초오유 등 8000m이상의 산들이 즐비한 지역으로 더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과 꿈, 그리고 죽음이 실타래처럼 뒤엉켜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히말라야는 전문 산악인들만을 위한 산은 아니다. 이곳에도 초등학생부터 70세의 어르신들까지 히말라야의 신비로움을 느낄 수 있는 트레킹 코스도 있다. 이것이야말로 히말라야의 또다른 미덕이다. 배타적이지 않은, 열려있는 산 히말라야가 오라고 손짓해서, 그래서 떠났다. ‘동네 뒷산처럼 쉽게 갈 수 있다’는 쿰부 히말라야코스, 산에 다녀 본 경험이 많은 사람들이 주로 가는 에베레스트나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까지 가는 코스 등 자신의 능력이나 실력에 맞는 코스를 선택할 수 있다. 전국 대학과 고등학교 산악부원 12명, 해외원정 경험이 많은 단장, 대장, 지도위원 4명. 그리고 1년에 고작 한두번 뒷산에 오르는 나까지 모두 16명으로 구성된 ‘2005 한국청소년오지탐험’ 마칼루팀은 7월23일, 서울을 떠났다. 우리팀은 히말라야 지역을 한바퀴 도는 트레킹을 계획했다. 히말라야에 머무는 날은 20일정도, 오가는 비행길까지 포함해서 26일간의 여정은 시작됐다. 옛날 광부들이 다니던 길로 5000m의 패스(고개)를 2개나 넘어야 하는 준전문가들용 코스인 마칼루와 바룬지역을 지나, 일반인들의 여행코스인 쿰부히말라야쪽으로 내려오기로 했다. 여기에서 하이라이트는 전문가들이라야 갈 수 있다는 6461m의 메라피크 등반이었다. 산을 전문적으로 타는 산꾼들과 함께 히말라야로 떠나게 된 초보의 심정, 막상 떠나려니 가슴이 무겁고 두려웠다. 준비할 것도 많았다. 하지만 내가 가진 장비는 3년된 등산화 하나뿐이었다. 그래도 히말라야를 향한 꿈을 접고 싶지는 않았다. 장비를 구입하고, 빌렸다. 사용법도 모른 채 장비를 카고(등산용 커다란 가방)에 쑤셔넣고 떠났다. ●아름답고 낯선 관문 루클라 히말라야로 가는 가장 편한 방법은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 국내공항에서 비행기를 이용하는 것이다. 날개 양쪽에 프로펠러가 있는 장난감 같은 20인승 경비행기에 올라 루클라로 향한다. 가뿐하게 하늘로 날아 오른 비행기는 몇 번을 날라가다 뚝 떨어지고 옆으로 밀려가는 통에 자이로드롭을 탄 듯하다. 마음을 졸이며 50분을 날아 루클라 비행장에 도착했다. 의 산악지대에 위치한 비행장으로 서울의 편도 4차선 크기의 달랑 하나뿐인 활주로가 눈에 띄었다. 경사가 15도 정도 기울어져 착륙을 돕는다. 반대로 경사면을 미끄러져 내려가며 이륙한다. 활주로 끝은 천길 낭떠러지, 아찔했다. 이렇게 도착한 비행장은 내전 때문에 가 제법 삼엄하다. 아직도 포카라지역은 마오이스트들(마오쩌둥을 추종하는 무리)이 제법 많아 정부군과 교전이 잦다고 한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총멘 군인을 보니 마음이 불편했다. 손에 잡힐 듯한 산들, 어디선가 쏟아지는 물소리, 파란 하늘과 구름들. 히말라야의 첫모습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오후에 접어들자 날씨가 흐려지더니 비가 뿌리기 시작한다. 장맛비처럼 주룩주룩 내린다. 별을 보며 저녁산책을 하리라는 꿈을 접고 롯지(산장)에 앉아 창문을 거세게 때리는 비구경을 했다. 히말라야는 9월말까지 몬순기간이라 거의 매일 비가 온다. 내리는 비를 뚫고 산을 오를 수 있을지 걱정이 밀려왔다. 마침 셰르파가 다가왔다. 이름은 왕추, 나이는 31살.5명의 셰르파와 60여명의 포터의 대장인 ‘사다´로 에베레스트를 무려 8번이나 올라갔단다. 내 걱정을 알겠다는 듯 그는 “내일은 날씨가 좋을 것이니 걱정하지 말고 잠자리에 들라.”고 말해줬다. 산사나이의 말을 믿고 습기로 축축한 침대에 올랐다. 두런두런 사람들의 이야기소리에 잠을 깼다. 먼저 창밖을 내다보았다. 이럴 수가. 간밤의 오던 비는 꿈이었던가. 파란 하늘이 내 눈으로 빨려 들어온다. 아침을 먹고 드디어 히말라야에 첫발을 내딛는다. ●오후만 되면 비내리는 몬순의 고산지대 우리는 쿰부히말라야 일반적인 트레킹코스와 반대로 간다. 마칼루와 바룬지역으로 해서 쿰부히말쪽으로 돌아서 루클라로 다시 돌아오는 일정이다. 마칼루와 바룬지역은 한국사람으로서는 우리가 처음으로 발을 내딛는다. 루클라부터는 을 해야 한다. 휴대전화는 물론 전화, 전기도 들어 오지않는다.(큰 롯지에만 자가발전기를 쓴다.) 자동차, 오토바이, 자전거도 무용지물이다. 가진 자나 그러지 못한 자 할 것 없이 공평하게 오직 자신의 두 다리로 걸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나도 걸었다. 여기서는 우리의 무거운 짐을 머리에 이고 가는 포터나, 집을 고치기 위한 나무를 지고 가는 주민들처럼 우리도 히말라야를 한발 한발 내디디며 마음이 아닌 온몸으로 히말라야를 느껴간다. 루클라를 떠난 지 1시간이 지나자 스티마 쿠알라계곡으로 들어섰다. 그곳의 자연미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집채만한 바위 위를 파랗게 덮고 있는 이끼. 조그만 씨앗 하나가 몇백년동안 저렇게 바위에서 자신의 몸집을 키워나갔을 것이다. 그 세월의 무게가 고스란히 느껴진다.‘콸콸콸’하고 산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엄청난 양의 물에 압도당한다. 그런데 이곳을 건너야 하는데 다리가 없다. 등산화를 벗고 맨발로 스틱에 의지하며 건너간다. 계곡물에 발을 담그자 ‘찌릿찌릿’전기처럼 다가오는 차가움. 몇 발을 떼자 아예 통증이 된다. 루클라를 떠난 지 4시간30분만에 캠프사이트인 추탕가에 도착했다. 첫날인데 벌써 다리가 아프고 힘이 든다. 오늘도 어김없이 오후가 되니 비가 내린다. 몬순기간에 고산지대는 오후가 되면 기온이 상승하며 구름을 만들어 비가 내리고 새벽에는 기온이 내려가 날씨가 맑아진다. 히말라야에 머문 20일 동안 단 이틀을 제외하고는 한결같은 날씨였다. 그래서 히말라야 트레킹은 봄과 가을이 제철이다. 비로 눅눅해진 텐트에 몸을 눕혔다. 무엇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잠에 빠져들었다. ●반갑지 않은 손님, 고소 히말라야 트레킹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이 ‘고소’, 즉 고산병이다. 고도를 갑자기 올리는 것이 원인이며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누구에게나 생긴다. 몸속에 산소가 부족해서 혈액순환이 저하돼 두통이나 소화불량, 불면증, 무기력증, 손발 저림, 실어증 같은 것을 동반하며 심하면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 하지만 고소증세는 단 몇백m만 아래로 내려가도 언제 그랬냐 싶게 씻은 듯이 낫는단다. 그래서 일반적인 트레킹에서는 고소적응 기간을 두며, 서서히 고도를 높여가지만 우리는 짧은 일정탓에 바로 4000m이상 올라 갔다. 4610m의 체트라고개를 넘어 4300m의 틸리 카르카에서 캠핑을 한다.3시간을 걷자 3910m까지 올라갔다. 앞에는 하얀 봉우리를 날카롭게 드러낸 커리륭이라는 7500m의 산과 여기저기 부서져 있는 바위들, 파란 초지, 이름 모를 야생화까지. 히말라야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정신없이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4000m를 넘자 이젠 숨이 목까지 차오른다. 아니 이 숨막히게 한다. 가도 가도 거리가 줄어들지 않는다. 셔터를 누를 때 숨을 잠시 멈추면 바로 ‘헉헉’하고 몇 번 숨을 몰아 쉬고 걸어야 한다. 사진 한장 찍는 것이 고통이다. 그래서 카메라를 배낭에 넣어버렸다.1시간 전에 웃고 떠들던 대원들도 단한마디 말이 없다. 국어시간에 배웠던 양사헌의 시조가 생각난다.‘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그래 가자 가. 그렇게 5시간을 넘게 오르자 체트라정상에 섰다. 발아래로 펼쳐지는 이름모를 산들. 마치 양탄자처럼 떠 다니는 구름들. 눈물이 찔끔 나왔다. 체트라 정상 구석에서 덩치가 제일 큰 원준희(춘천대 3)대원이 하얗게 변한 얼굴로 구토를 한다.“괜찮아?”하고 묻자 손만 내저을 뿐, 말을 하지 못한다. 몇 명의 대원들이 고소로 정신을 못 차린다. 말로만 듣던 고소와의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수천년 이어져온 자연의 힘 너덜지대를 걷는다. 돌들이 바닥에 깔려 있는 지대로 평지보다 걷기가 힘들다. 돌을 밟고 미끄러져 한바퀴 구른다. 아예 일어나지 않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어떻게 4000m가 넘는 곳에 이렇게 돌들이 많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바람에 날려 왔을 리도 만무하고…. “이게 자연의 힘이에요. 여름에 물기를 머금은 바위산이 겨울에 얼면서 갈라져 저렇게 커다란 바위가 생기고 또 바위가 여름에 물기를 머금고 겨울에 팽창을 하는 물 때문에 갈라져 이런 바위 너덜지대가 생겨요. 수 천년동안 이런 현상의 반복으로 바위가 없어지기도 해요.”라고 옆에 있던 서병란(43)지도위원이 대원들에게 설명한다. 자연의 위대함에 머리를 숙였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오후 4시 캠프사이트에 도착했다. 오늘 무려 9시간을 걸었다. 다리에 감각이 없다. 이럴 줄 알았으면 운동 좀 할 걸. 때늦은 후회가 가슴을 친다. 서울 가면 반드시 운동하리라, 지키지 못할 맹세도 했다. 간밤에 내리던 비도 어느덧 멈추고 그토록 괴롭히던 고소도 상당히 좋아졌다. 오늘은 3690m로 내려가 모솜 카르카에서 캠핑을 한다. 변변한 길도 없이 하루종일 계곡을 따라 내려간다. 정말 때묻지 않은 자연이란 말은 이럴 때 어울린다. 커다란 고목이 쓰러져 있고 고목을 뒤덮고 있는 이끼들을 보니 정글에 들어 온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정말 깨끗하고 아름답다. 고도를 내리자 고소가 씻은 듯이 사라진다.4356m의 탕낙을 지나 5045m의 카레캠프까지 걷고 또 걸었다. 이젠 5000m를 넘어서자 기온이 달라진다. 날씨가 초겨울 날씨같다. 이젠 5400m의 메라베이스 캠프다. 가파른 오르막과 험준한 산을 넘는다. 숨을 쉴 때마다 심장이 터져나가는 것 같다. 확실히 산소가 희박해짐이 느껴진다. 호흡을 일정하게 가지고 가야 한다. 간혹 기침을 한번 하면 자리에서 서서 숨을 고르고 가야한다. 사진을 찍는 것뿐 아니라 수통에 있는 물을 마시기조차 힘들다. 아니 0.1초라도 숨을 멈추고 있으면 바로 죽어버릴 것 같다. 모 등산화광고에서 엄홍길씨가 에베레스트를 오르며 숨을 몰아 쉬는 것을 보고 연기인 줄 알았는데,5000m를 넘어서자 비로소 그 장면을 이해하게 된다. 3시간을 걸으니 이젠 거대한 설산이 눈에 들어온다. 이것이 ‘메라라’ 라는 만년설로 덮힌 언덕. 보는 순간 그 거대함에 압도당한다. 안전을 위해 등산화를 벗고 이중화와 안전띠를 착용한다. 난생 처음 신어 보는 이중화. 스키부츠와 비슷하다. 겉면이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져 설산에서 며칠을 있어도 방수가 완벽해 동상을 막아주는 신발이다. 그러나 정말 무겁다. 거기에 아이젠을 끼웠다. 그리고 대원들의 도움을 받아 안전띠를 착용하고 자일을 잡고 메라라를 오른다. 이마에 땀이 흐른다. 숨은 가쁘지만 가슴이 뻥 뚫린다. 몸속에 있는 독소와 스트레스가 히말라야의 기운으로 바꿔 채워진다. 몸은 힘들지만 마음은 날 것 같다. 수천만년 동안 자리를 지켜온 거대한 얼음절벽 위에 서니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다. 베이스캠프에서 메라픽 정상을 가는 길과 홍구를 거쳐 추쿵을 가는 갈림길이다. 어디를 갈지는 자신의 선택이다. ●히말라야의 가장 아름다운 마을 메라 베이스캠프부터 홍구, 판치 포카리까지는 거의 평지이며 바위 너덜지대로 누구나 쉽게 갈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이번 트레킹의 마지막 고비인 5800m의 암푸랍체가 우리를 기다렸다. 더구나 눈까지 내려 생각보다 힘들었다. 산은 오르기보다 내려가기가 힘들다는 말이 실감난다. 길이 좁고 눈이 계속 내렸기 때문에 미끄러운 암푸랍체의 하산길은 두고두고 머릿속에 남았다. 이제부터는 정말 편안한 여정이 우리를 기다리는 쿰부히말라야다. 히말라야 마을 중 가장 오지이며 비경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 4730m의 추쿵. 왼쪽으로 8500m의 로체, 정면에는 6160m의 아일랜드피크, 오른쪽에는 6812m의 아마다블람은 거칠고 황량하며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성스러움을 만들어 낸다. ‘어머니의 목걸이’라는 뜻을 가진 아마다블람은 히말라의 보석으로 불린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길게 늘어선 하얀 허리를 가지고 있는 산. 그 선이 매우 날카롭지만 웅장하고 고왔다. 역시 많은 산사나이들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으로 손 꼽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여기서 보는 일몰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하지만 추쿵은 셰르파족이 사는 마을이 아니다. 몇 개의 롯지가 모여 트레킹족의 안식처가 되는 곳이다. 이제 진짜 사람들이 사는 마을로 향한다. 여기 추쿵부터는 일반인들이 쉽게 트레킹을 하는 곳이다. ●히말라야 하이웨이 추쿵부터 루클라까지를 히말라야에선 ‘하이웨이’라고 부른다. 말 그대로 고속도로란 뜻이다. 길이 잘 이어져 있고 마을을 거쳐가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오갈 수 있다. 일단 여기부터는 롯지가 계속 있고 마을에 가게도 있어 콜라며 맥주, 과자 등을 사서 먹을 수 있다. 천국이 따로 없다. 일단 300루피(약 70루피가 1달러. 한화로 4000원)를 주고 시원한 산미구엘 맥주를 사서 한 모금을 마셨다.‘우∼ 세상에 맥주가 이런 맛이었나. 이렇게 맛있다니’ 히말라야에서 먹는 맥주는 입에 쫙쫙 붙는다. 어제와 오늘은 단순한 하루 차이지만 나의 느낌은 지옥과 천당의 차이처럼 느껴진다. 걷기도 편하다. 집들이 이어지고 돌담이 쳐진 밭에서는 감자와 보리들이 자라고 있다. 정말 즐거운 트레킹이다. 이제 며칠동안 햇빛을 못 본 카메라를 꺼내 사진도 찍을 만큼 마음도 몸도 여유가 생긴다. 히말라야를 다녀왔다는 트레킹족들은 이렇게 행복하고 즐거운 히말라야를 다녀온 것인데, 나는 지옥훈련을 택한 셈이다. 2시간을 걷자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로 올라가는 딩보체가 닿는다. 마을 입구에서 눈길을 끄는 것이 있다. 라마의 문구를 새겨 놓은 돌을 쌓아서 만든 돌탑인 스투파. 포터들은 발길을 멈추고 스투파에서 기도를 하고 지나간다. 셰르파족인 그들은 그렇게 고단하고 힘든 삶을 이겨간다. 우리들이 감히 엄두도 못내는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은 아무 욕심없이 라마교의 가르침을 따르며 살고 있다. 머리에 40㎏의 무거운 짐을 지고 우리를 따라 다니는 락기리(17) 또한 아버지의 직업인 포터를 대물림하며 고단한 삶을 살고 있다. 아무리 고산지대에 사는 셰르파족이라도 그 무거운 짐을 지고 걷는다는 것은 고통일 것이다. 슬리퍼를 신고 무거운 짐을 지고 우리를 따라 오는 락기리를 볼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하지만 그들은 행복해한다. 자연에 순응할 줄 알고 종교의 가르침에 따르는 그들의 인생은 우리의 잣대로 가르는 것은 옳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나는 소년 락기리가 좀더 문명의 혜택을 받으며 살기를 빌었다. ●희망의 깃발이 나부끼는 곳 딩보체, 팡보체를 지나 탕보체 가는 길에 히말라야의 웅장한 산 못지않게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 바로 험준한 계곡을 가로지르는 ‘다리’다. 이 지역을 걷다 보면 하루에도 몇 번씩 길고 짧은 다리를 만난다. 그런데 다리에 여러 색깔의 깃발이 걸려있다. 처음에는 ‘멋으로 했겠지.’하고 지나쳤지만 다리마다 걸려 있는 오색천이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이곳 사람들은 다리를 신성시하여 카타와 룽다(기도 깃발)를 걸어놓는 것은 물론 지날 때마다 ‘부디 하는 일 잘 되고 가족 모두 아무 탈 없게 해달라.’고 기도를 한다. 오늘도 사람들의 희망과 바람을 가득 담은 오색깃발은 바람에 따라 춤을 춘다. 3860m의 탱보체는 라마사원으로 유명하지만 에베레스트, 로체, 아마다블람 등 유명한 산들을 같은 방향에서 조망할 수 있는 히말라야의 전망대이다. 또한 우리나라 조계종에서도 후원을 한다는 티베트사원인 콤파를 만나게 된다. 탕보체의 콤파에는 많은 스님들이 거주하는 콤부히말에서 가장 큰 사원이다. 화재로 사원이 전소되었다가 붉은색 벽돌로 다시 지었지만 중후한 분위기와 차분함이 여전히 매력적이다. 하지만 잔뜩 흐린 날씨에는 제1전망대에서도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일정상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남체 바자르로 향했다. 계곡의 물소리 정겨운 작고 아담한 마을, 우거진 숲.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쿰부히말라야의 명동 쿰부히말라야의 제일 번화가는 당연히 남체 바자르다. 해발 3440m에 위치한 쿰부 히말라야의 상업적 요충지이며 등반과 트레킹의 시작과 끝을 의미하는 곳이다. 또 이 마을은 매주 토요일마다 장이 열린다. 쿰부히말라야에 사는 모든 셰르파족들이 생필품을 여기서 구한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시장과 상점들이 모여있는 지역으로 빵집과 레스토랑, 클럽, 당구장 등이 밀집해 있어 깊은 히말라야의 산중이란 생각을 잠시 잊게 만든다. 이 마을 뒷산 꼭대기에는 히말라야의 설산 풍경을 볼 수 있는 전망대와 네팔의 역사를 알 수 있는 박물관도 있다. ●그래도 새벽은 온다. 이번 탐사의 하이라이트는 메라피크 정상에 서는 것이다. 메라피크는 해발 6461m로 히말라야 트레킹피크 중에서 제일 높다. 윤대장이 은근히 나를 떠본다.“베이스에서 쉬시지?”내가 등반대장이라 해도 걱정이 되겠다. 장비라고는 제대로 된 것 하나 없지, 자일을 타 보길 했나, 설산 경험이 있나. 하지만 나는 큰소리쳤다.“해발 6000m, 자신있습니다.” 큰소리 지만 긴장과 두려움으로 뒤척이다 새벽을 맞았다.5800m의 메라 하이캠프로 올라간다.3명의 대원은 고소가 심해 베이스에 남았다. 눈부신 설원을 밟으며 걷는 대원들을 뒤에서 보고 있노라니 마치 파란 하늘을 향해 걷고 있는 천사들 같다. 하얀 천국의 길은 가도 가도 끝이 없다. 온통 하얀색뿐이라서 그런지 1시간을 걸었는데도 제자리인 것 같다. 힘에 부치기 시작한다. 오를 것인가, 포기할 것인가 일단 하이캠프에서 결정하기로 하고 무거운 다리를 옮겼다. ●젖먹던 힘까지 다해 다음날 새벽 2시.8명이 정상으로 향했다. 서로 몸을 자일로 묶고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하며 오르기 시작했다.8명중 4번째 내가 섰다. 앞뒤 사람과 보조를 맞춰야 걸을 수 있다. 내가 못가면 앞뒤 사람이 다 못간다. 처음 1시간은 잘 걸었지만 본격적인 오르막이 시작되자 나도 모르게 “잠시 대기”라는 외침이 입밖으로 나오기 시작한다.3∼4발자국을 걷기가 힘들다. 얼마나 걸었을까. 뒤로 거대한 설산에 햇살이 비치기 시작한다.“자 이젠 마지막이야. 여기만 오르면 정상이야.”라는 외침에 정말 젖먹던 힘까지 다해 걸었다. 머릿속이 텅 비어간다.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머리속을 가득 메울 때 “정상이야. 메라픽 정상이야.” 하는 외침이 들린다. 나는 정상에 올랐다는 기쁨보다는 앉아 쉴 수 있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바닥에 털썩 주저 앉아 주변을 둘러보았다. 정상은 정상이다. 그런데 표지 하나 없다. 약간 허탈했다. 그때 셰르파가 다가 오더니 저기 보이는 산이 에베레스트라고 가르쳐 준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랬다. 신기루처럼 구름 위로 우뚝 솟은 봉우리가 에베레스트. 불가능 같았던 산이 거기에 있었다. 신기루처럼 구름 사이로 얼굴을 내밀었다가 금방 사라지고 마는 에베레스트, 로체, 마칼루의 얼굴을 마주 대할 수 있다는 것으로 모든 고통이 잊혀진다. 마치 짝사랑하는 연인을 바라만봐도 행복해지듯…. 눈앞에 드러낸 웅장함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하지만 이런 감상도 잠깐, 서둘러 사진을 찍고 하산한다. 햇볕에 눈이 녹으면 발이 빠져 걷기 힘들기 때문이다. ‘잘 있거라. 언제 다시 만나리라는 기약은 없지만 안녕!’ 13시간을 눈밭에서 구르다 베이스에 도착했다. 정말 평생 기억에 남을 길고 힘든 하루였다. ■ 네팔 가려면 네팔은 우리나라의 3분의2 정도 크기의 면적에 인구는 약 2500만명이다. 시차는 한국보다 3시간15분 늦다. 화폐는 인도와 마찬가지로 루피(Rupee).1달러가 69루피 정도. 신용카드가 되는 곳이 드물며 한화는 환전을 할 수 없으므로 출국하기 전에 달러로 바꿔야 한다. 환전은 공항이나 카트만두에 있는 타멜시장의 시설 환전소를 이용하면 된다. 네팔은 비자가 필요하다. 한국에서 미리 네팔 비자를 받고 싶으면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있는 ‘명예 네팔영사관(02-555-9040)’에 전화예약 후 방문하면 된다. 발급은 보통 이틀 걸린다. 비자수수료는 32달러. 카트만두 공항에서도 비자 발급이 가능하다.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으므로 한국에서 준비하는 것이 낫다. 단 비자수수료는 한국보다 2달러 싼 30달러. 비행기는 직항노선이 없다. 홍콩, 방콕, 상하이에서 카트만두로 가는 비행기로 갈아타야 한다.www.nepal.pe.kr,www.nepaltour.pe.kr에서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 트레킹 하려면 혜초여행사(02-6263-3330,www.hyecho.com)는 네팔 트레킹의 선두주자. 한 해에 3500명 이상이 혜초여행사를 통해서 히말라야 트레킹에 나선다. 초등학생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수준에 맞는 코스를 알려주며 네팔 현지 지사에서 셰르파나 포터뿐 아니라 필요한 물품도 공급해준다. 셰르파의 고향 남체로 찾아가는 9일 일정의 에베레스트 하이라이트 트레킹은 205만원, 쿰부 히말라야 트레킹의 완성인 17일 일정의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트레킹은 260만원. 푼힐전망대에서 아름다운 안나푸르나를 바라보는 9일 일정의 로얄 트레킹은 185만원,180도 펼쳐지는 히말라야의 파노라마를 느낄 수 있는 13일 일정의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은 220만원. 또 10월쯤이면 루클라에서 출발, 추탕가와 메라베이스, 암푸랍체를 거쳐 쿰부 하말라야인 추쿵, 남체를 거치는 20일 일정의 히말라야 일주 트레킹 상품도 나올 예정이다. 이밖에도 개인이나 단체의 일정에 맞춘 다양한 트레킹 여행도 가능하다. 네팔 트레킹은 여행기간이 길고 오지로 떠나기 때문에 전문여행사를 통해서 가야 한다.
  • 오염 유발 서울대가 으뜸

    상반기 서울시내에서 물과 연료를 가장 많이 사용한 곳은 서울대인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는 올해 2기분 환경개선부담금으로 시설물 11만 247곳(353억원)과 자동차 85만 6766대(636억원) 등 총 96만 7013건에 대해 989억원을 부과했다고 6일 밝혔다. 이는 올해 1기분(95만 1097건) 966억원에 비해 23억원(2.3%)이 증가한 것이다. 환경개선부담금 제도는 오염물질 발생원인자에게 발생비용을 거둬들여 오염발생을 억제하도록 유도하는 제도다. 현재는 물이나 연료를 많이 사용해 환경오염원인을 유발한 연면적 160㎡(약 48평) 이상 시설물이나 경유 자동차에 대해 매년 3월과 9월 두번 부과된다. 서울시내 시설물 가운데 서울대가 3억 51만여원으로 부담금을 가장 많이 냈으며, 한국종합전시장(COEX·2억 3597만여원), 농수산물 도매시장(2억 447만여원), 센트럴시티ㆍ호텔(1억 9340만여원), 서울 아산병원(1억 8157만여원) 등의 순이었다.자치구 별로는 강남구(86억 6762만원·6만 2519건), 송파구(64억 8407만원·6만 4173건), 서초구(61억 5663만원·5만 1132건) 순으로 부과액이 많았다. 강서구는 24억 1405만원(2만 7030건)으로 서울시내 자치구 가운데 가장 부담금 액수가 적었다.고금석기자 kskoh@seoul.co.kr
  • [이사람] ‘절연체에 전류 흐른다’ 첫 규명 ETRI 김현탁 박사

    3월25일은 ‘발견의 날’이다. 누가 정한 것은 아니지만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의 김현탁(47) 박사팀은 적어도 그렇게 여기고 있다. 올들어 세해째 조촐한 기념행사로 떡을 해서 다른 연구원들과 나눠 먹었다.2003년 이날 ‘모트 금속-절연체 전이(MIT)현상’을 세계 최초로 규명하고 실험에 성공한 것을 자축하는 자리다. 그도 그럴 것이 1977년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영국 이론물리학자 네빌 모트(작고)가 49년 MIT현상을 예견했으나 아무도 56년간 증명하지 못했던 물리학의 난제를 풀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벨상 감’이란 찬사가 나왔다. ●치열한 국제경쟁 김 박사는 “그날 밤 늦게였는데 실험에 성공하는 순간, 번개를 맞은 듯 온 몸에 전율이 흘렀다.”며 “세계 최초임을 알리기 위해 가장 먼저 인터넷에 띄웠다.”고 돌이켰다. 논문 출판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였다. 인터넷에 올린 다음날 물리학분야 인용지수 2위인 영국의 ‘저널(New Journal of Physics)’이 실험 논문을 요청해와 보내줬다. 저널은 10개월간의 심사와 치열한 논쟁을 거쳐 지난해 5월 그의 논문을 게재했다. 또 응용물리학 1위인 미국의 ‘레터(Applied Physics Letter)’는 지난 6월에 실었다. 이 분야는 연구 경쟁이 세계적으로 무척 치열하다. 스웨덴 왕립기술연구소는 지난 1월, 일본 와세다대학은 지난 3월에 각각 MIT현상 규명을 발표했다. 김 박사팀이 실험에 성공하고도 논문발표에 늦었다면 2등으로 처질 뻔했다. 이렇듯 경쟁이 치열한 이유는 전기와 디지털이 쓰이는 곳은 다 쓰일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반도체 부피를 엄청나게 줄일 수 있다. 김 박사의 개가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92년 일본의 국립대학인 쓰쿠바(筑波)대에서 박사과정을 시작하면서 비롯됐다. 이후 논문까지 10년이 걸렸다. 하루 댓시간밖에 자지 않고, 주말을 반납한 덕분이다. 실험을 앞둔 날은 머리를 맑게 하기 위해 일찍 잤다. 주위에선 이런 그를 두고 “미쳤다.”고도 했다. ●MIT는 번개와 비슷한 현상 언론 보도로 들뜰 만한 지난 2일 오후 늦게 연구실에서 테스트 중이던 김 박사를 잠깐 만났다. 김 박사의 연구결과는 해외에서는 수차례 논문이 게재됐지만 국제 특허 출원과 설명 자료를 준비하는 시간이 오래 걸려 국내 발표는 지난 1일에야 이뤄졌다. 그는 “인터뷰하는 것이 물리학 연구보다 훨씬 어렵다.”며 자리에 앉았다. 쉽게 설명해 달라는 요구에 그는 “MIT 현상은 자연에선 번개와 비슷하다.”고 말했다.“하늘에서 번개가 생겨나면 전기가 통하지 않는 절연체인 대기층을 통과해 전기가 통하는 인간이 맞게 되는 것이죠. 이것을 엄청나게 작게 축소해서 실험한 것이지요.” 전자공학을 전공한 임주환 ETRI 원장은 “김 박사로부터 10시간 넘게 설명을 듣고서야 비로소 이해가 됐다.”고 말했다. ●가난한 광부의 맏아들 김현탁은 58년 강원도 삼척시 도계에서 6남매 중 셋째이자 장남으로 태어나 여섯살까지 살았다. 광부였던 아버지 김완규(작고)씨의 건강이 나빠져 외가 동네인 경북 포항시로 이사를 왔다. 포항초등학교 2학년 때인 아홉살에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어머니 안판례(작고)씨가 군밤장사, 떡장사 등의 행상을 하며 6남매를 뒷바라지했다. 어린 그도 어머니를 도왔다. 그는 “차 안에서 닥치는 대로 물건을 팔면서도 ‘다음에 커서 장사는 절대로 안 하겠다.’고 다짐했지요.”라며 기억을 더듬었다. 이후 포항 동지상고로 진학했다. 가족들은 장남인 그가 그 집안을 일으켜 세울 수 있는 은행원이 되기를 바랐다. 은행원은 당시 상고생들에겐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그는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은행에 취직하기 싫습니다.”라며 가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등록금이 싸다는 이유로 국립대학을 결정했다. 여기서 물리학자가 되고 싶다는 꿈을 키웠다. 72년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레온 쿠퍼 교수가 79년 이휘소 박사의 기념강연을 위해 서울대를 방문하자 대학 2학년이던 그는 이를 듣기 위해 부산에서 서울로 달려갈 정도로 물리학에 심취해 있었다.“내용을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대학자에게 흠뻑 빠져 있었든 거죠. 기억나는 말이라곤 ‘슈퍼세미컨덕터(반도체)’뿐입니다.” 자연과학도인 김 박사는 딱딱할 것 같지만 은근히 낭만적인 데도 있다. 대학시절 부인 이은희(원자력연구소 책임연구원)씨를 만났다.“도서관에서 자리잡아주면서 서로 공부를 독려한 캠퍼스 커플이죠.” 서울대 대학원에서 고체물리학 석사를 받았다. 이때 몸이 약해 허파꽈리가 터져 군 면제 판정을 받았다.‘먹고 살기 위해’ 84년 한국타이어 기술연구소와 시스템베이스를 다녔다. 학문에서 떠난 8년간의 외도(外道)였다. ●연구실에서 산 유학시절 직장을 다니던 중에도 그는 ‘훌륭한 물리학자가 되겠다.’는 열망이 수그러지지 않았다.34세인 92년 일본 유학을 결심, 노벨상 수상자 3명을 배출한 쓰쿠바대로 갔다. 공부에 방해가 될까싶어 부인은 데려가지 않았다.“제대로 공부하지 않으면 영원히 기회가 안 올지도 모른다.”며 그는 오전 6시부터 밤 12시까지 연구실에서 살았다. 연구실 최고령 학생인 그는 3년만에 전자재료 및 박막제조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땄다. 그리곤 바로 교수(文部敎官)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학생에서 교수로 신분이 바로 바뀌었다.40세인 98년 귀국,ETRI에 책임연구원으로 들어왔다. 이후 그는 국책연구과제를 수행하면서도 해마다 한 편의 논문을 썼다. ●그래도 연구에 매진하고파 물리학계의 화두는 68년 발견된 고온초전도현상이다. 이를 규명하려면 MIT현상을 먼저 해결해야 한다. 그도 실험할 때마다 전하(물체의 전기 양)는 1,2처럼 정수인데 1/2,1/3처럼 분수를 띠고 있었다. 몇년째 고민 중이던 2001년 어느날 그는 대전 엑스포공원에서 연구실까지 산책하다가 ‘분수전하’라는 영감을 받았고, 이는 측정 때문이라는 ‘측정효과’라는 개념을 더했다. 그의 독창적인 아이디어다. 김 박사는 “물리학은 창조적으로 발상하고 생각하는 학문”이라며 “자나깨나 이것만 생각했다.”고 말했다. “위에선 MIT트랜지스터를 상용화하는 것을 주문하지만 제 꿈은 고온초전도 현상의 메커니즘을 규명하는 것입니다.” 연구를 계속 고집하는 김 박사, 현재의 ‘돈 안되는 이공계 기피현상’은 곱씹어볼 만한 대목이다. 대전 이기철기자 chuli@seoul.co.kr 사진 안주영기자 jya@seoul.co.kr ■ ETRI는 어떤 곳 ETRI는 일반 사람들에게 의외로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우리가 흔히 쓰는 휴대전화의 원천기술인 CDMA를 상용화한 연구기관이다. 이를 돈으로 환산하면 66조 36억원으로 이는 CDMA 개발비 2223억원의 297배에 이른다. 국가경제 기여도는 204조 80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 76년 설립된 ETRI는 과학기술부 산하 산업기술연구회 소관이다.1800명의 직원 가운데 석·박사급이 1600명을 차지하는 고급 두뇌집단으로 정보·통신·전기 분야의 최고급 국책 연구기관이다. 그동안 국제특허 3000여건을 비롯해 1만 5000여건의 특허를 냈다.1386건의 기술을 2700여 기업에 이전해 줬다. 우리나라를 IT 강국으로 이끄는 ‘기술의 젖줄’이라고 할 수 있다.ETRI가 요즘 연구중인 것으론 지능형 서비스로봇, 홈네트워크, 텔레매틱스, 차세대 이동통신, 차세대 PC, 디지털TV·방송, 디지털 콘텐츠 등이다. 최근엔 특히 개발된 기술을 상용화하는 데도 관심이 높다. ■ 그가 걸어온 길 ▲1958년 7월 강원도 삼척 도계 출생 ▲78년 경북 포항 동지상고 졸업 ▲82년 부산대 물리학과 졸업 ▲84년 서울대 물리학과 석사 ▲85년 한국타이어㈜ 연구원 ▲92년 시스템베어스㈜ 개발부장 ▲95년 일본 쓰쿠바대 공학연구과 공학박사 ▲98년 일본 쓰쿠바대 물리공학계 교수 ▲2005년 ETRI 책임연구원(현) ▲한국·미국·일본 물리학회원(현), 세계 3대 인명사전인 미국 마르퀴스 후스후(03∼05년), 미국인명연구소(ABI·02∼05년), 영국국제인명센터(IBC·02∼03) 등에 등재됐으며,IBC 2003년판에는 그의 전기가 기록돼 있다.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금호아시아나그룹(1)-창업주 박인천회장家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금호아시아나그룹(1)-창업주 박인천회장家

    “잠깐이면 될 것이다. 아주 잠깐. 이 쇳줄을 넘어 몸을 던지면 될 것이여. 눈 깜짝할 사이면 저 파도에 휩쓸려 들어가 아주 사라져 버리고 말 것잉게.” 문화부장관을 지낸 작가이자 영화감독인 이창동씨가 지은 금호그룹 창업주 박인천(朴仁天) 일대기인 ‘집념-길위의 길’에는 1923년 당시 23세이던 박씨의 실패담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지금의 초등학교에 해당하는 보통학교 2학년 중퇴가 학력의 전부인 박씨는 어려서부터 이런저런 장사에 손을 댔지만 실패의 연속이었다. 일본 오사카에 돈을 벌러 갔지만 일주일만에 빈손으로 돌아오며 자살을 염두에 뒀을 정도로 그의 젊은 시절은 상처투성이였다. 이창동씨는 박씨의 일대기를 소설 형식으로 묘사하면서 “박인천의 일생은 우리 역사의 엄정한 상징”이라고 평가했다. ●택시 2대로 운수사업 시작 박씨는 나이 30세를 넘어 정규 교육을 이수하지 못했으면서도 독학으로 지금의 행정고시에 해당하는 보통문관시험에 합격하는 등 놀랄 만한 집념으로 인생의 반전을 이뤘다. 이런 그의 의지는 해방 이후 당시로선 노인 취급을 받고 은퇴할 만한 나이인 46세에 광주에서 미국산 중고택시 두 대로 회사를 차려 광주고속이라는 고속버스 회사를 출범시킨다. 박 회장은 이를 기반으로 삼양타이어(현재의 금호타이어), 석유화학으로 사업영역을 넓히며 현재 재계서열 10위 그룹으로 키워 냈다. 특히 금호그룹은 5공시절 예상을 깨고 제2민항사업자로 선정되면서 성장가도를 달리며 대표적인 호남재벌로 자리매김했다. 이처럼 박씨가 택시 두 대에서 아시아나항공까지 키워온 대재벌의 창업주로 성장하기까지에는 뼈아픈 실패들이 밑거름이 되었다. 남달리 고집이 세고 남한테 지기 싫어하는 ‘승부욕’이 오늘날의 금호아시아나그룹을 탄생시킨 것이다. 그야말로 박씨의 삶은 좌절과 성공을 향한 몸부림, 해방 후 맨주먹으로 출발해 한국 굴지의 재벌을 이루는 과정으로 이어지며 한편의 드라마를 연상시킬 만큼 극적이다. 그래서 한국 현대사의 축소판과 닮은꼴이라는 평가가 많다. 아호가 ‘금호’(錦湖)인 박인천 회장은 1901년 7월5일 전남 나주군 죽포면 동산부락 일명 신기(新基)마을에서 태어났다. 빈농에서 태어난 박 회장은 열 살이 될 때까지 별다른 교육을 받지 못하다가 어머니 손에 이끌려 서당에 다녀야 했다. 또래들보다 늦게 시작한 한학이지만 열다섯살 때 팔현강당에서 개최된 강경(講經)시합에 출전해 최우수상을 받는 등 재능을 발휘했다. 그러나 박 회장은 곧 한문공부에 흥미를 잃고 말았다. 자동차가 신작로 위에 먼지를 일으키며 달리는 시대에 한문 공부를 해서 뭘 하겠느냐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결국 열일곱살 되던 해 지금의 초등학교격인 나주 공립보통학교 1학년에 입학했다. 하지만 신식공부에 대한 열의도 2년을 넘지 못했다. 고등학교에 다녀야 하는 나이에 초등학교를 다니며 ‘애늙은이’ 취급을 받는 것이 무엇보다 싫었기 때문이다. 박씨는 공부에 대한 미련을 접어 버리고 열아홉살 때부터 면화수집상, 대금업, 싸전업 등의 장사를 했지만 손을 대는 족족 손해만 입었다. 이처럼 실패만 거듭해온 박씨가 인생의 전환기를 맞은 것은 일본으로 건너간 직후였다. 일본 오사카에서 보았던 어마어마한 공장 굴뚝 앞에서 조선 사람으로서의 무력감과 좌절감이 그를 바꿔 놓았다.“일본놈들이 어떻게 돈을 벌고 공장을 짓는지 알고 싶다.”는 일념으로 일본 순사 시험을 준비해 합격한 뒤 5년 만인 1929년 보통문관시험에 합격한 이후였다. 그리고 같은 해 이순정 여사를 배필로 맞았다. 박 회장은 8·15 해방을 맞자 택시 두 대를 구입해 운수사업에 뛰어들었다.17만원(圓)의 자본금으로 포드 디럭스 세단 5인승 택시 두 대를 사들였다. 그때 이 돈은 80㎏들이 쌀 44가마를 살 수 있는 액수였다.3남인 삼구 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은 창업주의 집념, 도전, 개척정신을 본받는다는 취지로 그룹 창업의 모태가 됐던 택시와 똑같은 모델을 구입해 용인 금호아시아나 인재개발원 1층 로비에 전시하고 있다. 사업수완이 있었던 박 회장은 2년여의 짧은 기간에 어느 정도 자본을 축적,48년에 광주여객을 세워 버스운수업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그러나 6·25전쟁은 탄탄대로를 걷던 그의 모든 것을 앗아가 버렸다. 하지만 박 회장은 온갖 역경을 극복하고 50년대에 광주여객을 전라남도 최대의 여객운송업체로 키워냈다. 이 과정에서 이순정 여사의 내조가 결정적인 힘이 됐다. 올해 95세인 이 여사는 아직도 광주여객을 운영하던 광주시 금남로 212번지에 거주하고 있다. 광주여객을 경영하던 당시 ‘안집’이라고 불렸던 이 집에서 친척, 조카, 버스 차장과 정비공 등 50명의 식솔을 손수 챙길 정도로 남편의 사업을 헌신적으로 도왔다. 1984년 남편과 사별한 이후에도 이 여사는 900명에 이르는 학생들에게 매년 1억원 이상의 장학금을 지급하는 등 사회복지시설에 수용된 불우이웃을 돕고 봉사단체를 육성하는 데 앞장서 왔다. 이 여사는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2002년 대한적십자사로부터 민간부문 최고 권위의 ‘적십자 박애장 금장’을 받기도 했다. ●제2민항 선정 ‘제2 도약´ 광주여객을 업계 최고의 반열위에 올려 놓은 박 회장은 이후 방적회사인 전남제사, 고려도자를 비롯해 금호타이어(전 삼양타이어)를 설립, 금호아시아나그룹 창업의 기틀을 다져나갔다. 그러던 박 회장은 1972년 어느 날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던 큰 아들 성용에게서 중대한 제안을 받는다. 서울 종로구 관철동에 있던 사무실로 찾아 온 아들은 “경영성과를 높이고 효율적 운영을 위해 지주회사 설립이 필요하다.”는 건의를 했다. 박 회장은 이를 받아들였고, 같은 해 10월 10일 박성용 교수 등 7명이 발기인으로 참석해 지주회사인 ‘금호실업’ 설립을 결의했다. 박 회장은 또 박 교수를 금호실업 부사장으로 전격 영입했다. 1973년 1월1일 금호아시아나는 박 회장이 초대 그룹 회장에 취임하면서 금호아시아나그룹을 출범시켰다. 금호는 그룹체제 출범과 함께 계열사별로 경영관리체제를 정비했다. 금호실업은 장남인 성용, 광주고속은 2남인 정구, 금호타이어는 3남인 삼구, 삼화교통은 첫째 사위인 배영환에게 경영을 책임지도록 했다. 1984년 6월6일 타계한 박인천 창업회장의 뒤를 이어 장남인 박성용 부회장이 그룹 2대 회장에 올랐다. 서강대 교수 재직시절부터 자문역으로 그룹경영을 도와온 박 회장은 금호실업 사장과 그룹 부회장을 거쳐 10년 만에 2세 경영시대를 연 것이다. 박성용 회장은 88년 정부로부터 제2민항 설립업체로 선정되는 경영능력을 발휘했다. 계열사간 합병과 비수익 사업정리 등 과감한 구조조정을 진행해 취임 당시 6900억원이었던 그룹 매출을 1995년 4조원으로 끌어올렸다. 이후 박성용 회장은 1996년 4월 바로 아래 동생인 정구 회장에게 회장직을 물려 주었다. 형제간 친족간 경영권 분쟁이 끊이질 않고 있는 작금의 경영계에 교훈이 될 ‘형제간 화합경영’의 모델을 제시한 셈이다. 박정구 회장이 2002년 지병인 폐암으로 세상을 뜨자 3남인 박삼구 회장이 그룹 4대 회장으로 취임하며 금호아시아나그룹은 형제경영의 전통을 이어나가고 있다. 박인천 회장은 슬하에 5남3녀를 두었다. 성용, 정구, 삼구에 이어 4남 찬구 금호석유화학부회장,5남 종구 국무총리 국무조정실 경제조정관 등이다. 딸은 경애, 강자, 현주씨 등 3명이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의 혼맥은 박인천 회장이 생전에 아들딸의 혼사에 매우 신경을 썼기 때문에 정·관·재계 유력 집안과 화려한 혼맥을 맺고 있다. 박 회장은 직접 유력 집안에 줄을 넣어 “사돈을 맺자.”고 청한 적도 있을 만큼 자식들의 혼사를 중요시했다. 특히 호남재벌이면서도 정구, 삼구, 찬구 3형제를 모두 영남 유력 집안에 장가 보냈다. 3세들 결혼도 삼성,LG, 대우그룹과 사돈을 맺는 등 화려한 혼맥이 이어지고 있다. 이처럼 박 회장이 자식들의 결혼을 직접 챙기는 등 혼사를 중요시 여겼지만 유독 큰아들 성용은 부친의 뜻을 어기며 연애결혼을 강행했다. 큰 아들 성용은 미국 예일대에서 유학하던 시절에 미국인 마거릿 클라크를 만나 열애 끝에 1964년에 결혼했다. 박성용 회장은 클라크 여사와 1남 1녀를 뒀다. 장손녀 미영(39)씨는 아직 미혼으로 캐나다에서 머물며 불교 관련 일을 보고 있다. 미국에서 영화 공부를 하고 있는 재영(35)씨는 구자훈 LG화재 회장 3녀인 구문정(30)씨와 결혼해 1남을 두고 있다. 창업주의 큰딸인 경애(71)씨는 제헌의원 출신 배태성씨의 장남 배영환(72) 삼화고속 회장에게 시집을 갔다. 슬하에 배정철·승현·동철·홍철 등 4형제를 낳았다. 2남인 정구 회장은 경북 안동에서 국회의원을 지낸 김익기 전 국회의원의 딸 김형일(59)씨를 배필로 맞았다. 김익기씨는 해태그룹의 창업주였던 박병규씨와 사돈관계이고, 박병규씨는 민병권 전 교통부 장관과 사돈이기도 하다. 정구 회장은 슬하에 은형·은경·은혜씨 등 세 딸과 외아들인 철완씨를 두고 있다. 세 딸은 모두 시집을 갔는데, 재계 유력 집안과 혼사를 맺었다. 장녀 은형(35)씨는 김우중 전 회장의 차남 김선협(포천아도니스CC 사장)씨와 결혼했고, 은경(33)씨는 장상돈 한국철강 회장 차남인 장세홍(한국특수형강 이사)씨와,3녀 은혜(29)씨는 허진규 일진그룹 회장의 차남 재명(일진경금속 영업담당겸 누브인터내셔널 대표)씨와 혼인했다. 아들 철완(27)씨는 국내에 있는 보스턴 컨설팅 그룹에서 경영수업을 쌓고 있다. 금호미술관장으로 있는 2녀 강자(64)씨는 대한전자재료 회장인 강대균(64)씨와 결혼했다. 강씨는 서울대 정치학과를 나와 미국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LSE대 출신인 아들 재원(25)씨와 지은과 지영 등 두 딸이 슬하에 있다. 3남인 삼구 회장의 부인 이경결씨는 한국은행·산업은행 총재, 재무장관을 지낸 이정환씨의 둘째 딸이다. 이정환씨는 금호석유화학 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삼구 회장의 장남 세창(30)씨는 2003년 3월 교육자 집안 출신인 김현정(29)씨와 결혼했다. 세창씨는 지난 6월 MIT공대 MBA 과정을 졸업한 뒤 미국 회사에 취직했고, 딸 세진씨는 유학 중에 있다. 4남 찬구 금호석유화학 부회장은 위창남 전 광주투금 사장 딸인 위진영씨와 결혼했다. 장남 준경(27)씨는 고려대를 졸업한 뒤 중동 관련 무역회사에서 근무하고 있고, 딸 주형씨는 미국에서 공부 중이다. ●3녀 현주씨 삼성과 사돈 금호가(家)의 화려한 혼맥은 3녀인 현주(52)씨에서 절정을 이뤘다. 현주씨는 대상그룹 임창욱(56) 명예회장과 결혼했다. 현주씨는 1998년 큰딸 세령(28)씨를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외동아들인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37)와 결혼시켜 삼성가와 사돈 관계로 맺어졌다. 세령씨와 이 상무가 만나게 된 것은 두 사람의 어머니인 현주씨와 홍라희 여사가 불교신도 모임인 ‘불이회’에서 친하게 지낸 게 계기가 됐다. 연세대 경영학과 2학년에 재학 중이던 세령씨는 결혼과 함께 휴학하고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던 남편을 따라 유학길에 올랐다. 세령씨는 유학 중 2000년 장남 지호를 얻었고, 이듬해 귀국해 이건희 회장 부부와 함께 살면서 지난해에는 딸 원주를 낳았다. 둘째 딸 상민씨는 이화여대를 나와 미국 유학 중이다. 특히 현주씨는 대상그룹의 계열사인 상암커뮤니케이션즈의 지분 75%를 갖고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둘째 딸 상민씨를 2대 주주(17%)로 편입시켜 눈길을 끈다. 5남 종구(47) 국무조정실 경제조정관은 ㈜삼흥복장 사장 이명선씨의 장녀 이계옥(47)씨와 결혼했다. 슬하에 건호, 도윤 등 1남1녀를 두고 있다. 박씨는 미국 시러큐스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아주대 경제학과 교수를 지내다 1998년 기획예산위원회(현 기획예산처) 공공관리단장(별정직 2급)으로 공직을 시작했다.2002년 수질개선기획단 부단장으로 자리를 잠시 옮겼다가 2003년부터 국무조정실 1급인 경제조정관으로 재직 중이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형제경영을 펼치면서도 유독 종구씨만 경영에 일체 관여하지 않는 점도 재계에 비상한 관심거리다. 이에 대해 금호아시아나그룹 관계자는 “박씨는 막내 아들이지만 경제를 전공한 전문가로서 그룹 일에 뜻을 두기보다는 공직에서 자신의 능력을 펼치는 것으로 집안 내에서도 정리가 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 ‘벽안의 맏며느리’ 클라크 여사 ‘벽안(碧眼)의 재벌 며느리’ 박성용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명예회장의 부인 마거릿 클라크 박 여사는 미국인이면서도 한국인보다 더 한국인에 가까웠다. 보수적인 재벌가에서 조용히 남편을 도우며 맏며느리로서 시동생과 동서들을 챙기는 평범한 주부로 살아왔다. ●예일대 수학중 만나 교제 마거릿 클라크 여사는 남편인 박 전 명예회장을 1963년 미국 예일대에서 만났다. 그녀는 대학원 경제학부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던 박 전 회장을 눈여겨봤다. 동양인이면서도 이지적인 이미지에 항상 ‘제니스’ 라디오의 이어폰을 귀에 꽂고 클래식 음악을 듣던 박 전 회장에 대한 호감이 컸다는 게 박 전 회장의 이종 사촌인 서구 금호아시아나그룹 고문 등 친인척들의 전언이다. 박성용 전 회장도 미국인이지만 키도 그리 크지 않고 조신하게 생긴 클라크 여사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그러나 두 사람의 사랑이 커갈수록 고통이 더했다. 당시로선 유교적 전통이 강한 밀양 박씨의 장손으로 외국인을 맏며느리로 들인다는 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번민의 세월을 보내던 박 전 회장은 아버지에게 클라크와의 결혼을 허락해 달라는 편지를 보내면서 그녀와 나란히 찍은 사진을 동봉했다. 그러나 아버지 박인천 회장은 그 사진을 둘로 찢어서 봉투에 넣어 아들에게 다시 돌려보냈다. 그것이 박 회장이 할 수 있는 가장 분명하고 단호한 의사표시였다. 그러나 부모에게 효자로 소문난 박 전 회장은 난생 처음 부모의 뜻을 거역했다.1964년 둘이서 법적 절차만을 갖춘 최소한의 결혼식을 올리고 아버지와 사실상 ‘의절’ 상태에 들어갔다. 물론 박 회장은 두 사람의 결혼을 허락하지도 않았고, 결혼식에 참석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자식 이기는 부모 없는 법. 박 회장은 큰 아들 성용이 결혼한 지 2년이 지난 때에 둘째딸 강자가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결혼식을 올리게 되자 아들 집을 방문하게 됐다. 당시 박 전 회장은 예일대경제학박사를 받은 뒤 클리블랜드시에 있는 케이스 공대 조교수로 재직하고 있었다. 박인천 회장은 클리블랜드 공항에 마중나온 파란 눈의 며느리와 그녀가 품에 안고 있던 장손녀 미영씨를 맞닥뜨린 뒤 얼었던 마음이 녹아 내렸다. 미국인이었지만 수수하면서도 정이 가는 인상을 가진 맏며느리를 보고는 굳게 닫혔던 마음을 2년반 만에 연 것이다. ●자녀들에 한국식 교육 서구 고문은 “성용 형님이 결혼한 뒤 페기(마거릿 클라크의 애칭) 형수에게 집안의 법도 등 예절교육을 많이 시켰다.”면서 “아버님에게 며느리로서 인정받기 위해서는 한국의 며느리가 지켜야할 예절에 대해 귀가 닳도록 얘기를 했다는 말을 형님으로부터 들었다.”라고 회고했다. 실제로 클라크 여사는 미국인이지만 미영씨와 재영씨를 이화여고와 구정고까지 졸업시킨 뒤에야 미국으로 유학을 보냈을 정도로 한국식 자녀교육을 고수했다. 그녀의 한국말은 서툴렀지만 상대방이 하는 얘기를 어느 정도 알아듣는 수준이었다. 클라크 여사는 박 전 회장 사후에 미국 친정에 기거하고 있다. 캐나다와 미국에 있는 미영씨와 재영씨를 가끔씩 만나는 것으로 외로움을 달래고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국내에서 집안의 대소사가 있으면 미국에서 달려와 직접 챙기는 등 아직도 맏며느리로서의 소임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박인천 회장도 한국 집안에 시집온 뒤로 별 탈 없이 큰 며느리의 역할을 해내는 미국 며느리에 대해 뒤늦게 만족감을 표시했다. 박 회장은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제작한 탄생 100주년 기념 영상물에서 한 지인에게 “우리 큰 자부(며느리)가 미국 여자입니다. 나도 잘 이해를 하고 또 역시나 데리고 있어 보니까 똑같아요. 한국 며느리나 외국 며느리나. 그리고 이해심도 있어요. 자기들끼리 좋으면 좋은 것이기 때문에 이해하고 잘 지내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jrlee@seoul.co.kr ■ 창업주 父子 ‘금연 전도사’ ▲ 창업주의 도전정신을 기리기 위해 용인 인재개발원에 전시된 ‘1933년형 포드 딜럭스세단 5인승’ 옆에서 박삼구(왼쪽) 회장과 박찬구 부회장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금호아시아나그룹은 금연운동에 관한 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1986년 금연 캠페인을 시작해 1991년부터는 자체 사업장뿐만 아니라 일선 영업장에까지 금연을 실시하고 있다. 금호아시아나의 이런 금연 노력은 창업주와 2세 경영인들의 건강과 무관하지 않다. 박인천 회장은 1938년 심한 폐병을 앓아 2년 가까이 투병생활을 했다. 지금이야 폐병이 심한 병이 아니지만 당시 폐병을 앓는 환자는 세 명 중 두 명이 죽어나갔다. 경찰이었던 박 회장은 요양을 위해 순천경찰서에서 보성경찰서로 직장을 옮기고, 몸에 좋다는 각종 약과 치료를 받았지만 별반 차도가 없었다. 결국 경찰서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목포에서 개업 중이던 김보형이라는 한의사로부터 1년 동안 녹용을 복용한 이후에야 건강을 되찾을 수 있었다. 박 회장은 이후 장수를 누려 84세에 별세했다. 박성용 명예회장도 폐가 좋지 않았다.1985년까지 하루에 담배 두갑을 피울 정도로 애연가였다. 그러나 담배가 건강에 해롭다고 생각하여 흡연운동을 전사적으로 전개했다. 1986년 8월 박 회장을 비롯한 142명의 임직원들이 금연운동에 동참해 매일 담뱃값 대신 푼돈을 모아 만든 ‘금호건강복지기금’을 조성해 금연 캠페인을 시작했다. 1991년 서울 중구 회현동에 있던 그룹 본사 사옥인 아시아나 빌딩을 포함한 전 사업장에 완전금연을 실시했다. 박 명예회장은 이런 공로로 1991년 8월 세계보건기구(WHO)로부터 금연메달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박 명예회장은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폐암으로 운명을 달리했다. 박 명예회장은 평소에도 허리디스크가 있어서 딱딱한 단화를 신지 못하고 스폰지 단화나 등산화 등을 신고 다녔다. 박정구 회장도 폐병으로 2년여 투병생활을 했다.2001년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 MD앤더슨암센터에서 폐기종 치료를 받아 한때 건강을 되찾아 경영 일선에 복귀했으나 2002년 7월 일산 국립암센터에서 폐암으로 별세했다. 그룹 관계자는 “창업주를 비롯한 2세 경영인들이 공교롭게도 폐가 좋지 않아 고생을 했지만 가족병이라기보다는 경영인으로서 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병을 얻은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회장, 최종건 SK그룹 선대회장과 최종현 회장, 양회문 대신증권 회장 등이 폐암으로 운명을 달리했다. 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 차장 이종락·이기철·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자립형 사립고생 70%가 “과외”

    자립형 사립고생 70%가 “과외”

    자립형 사립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대부분 중류층 이상 자녀들로 10명 가운데 7명 정도가 학교 교육 이외에 별도의 사교육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민족사관고 학생들은 사교육비 1248만원을 포함,1년에 2786만원을 쓰고 있는 것으로 나왔다. 한국교육개발원은 2일 이같은 내용을 담은 자립형 사립고 6곳의 시범 운영실태 평가보고서를 공개했다.6곳은 민족사관고, 현대 청운고, 부산 해운대고, 포항 제철고, 광양 제철고, 전주 상산고 등이다. 자사고는 등록금을 일반고교의 3배 이내에서 책정할 수 있고 학생선발을 자율적으로 할 수 있다. ●민사고 年 2786만원 들어 자립형 사립학교 학생 10명 가운데 7명(68.2%) 정도가 사교육을 받고 있었다. 반면 6개 자사고가 위치한 인근 지역의 일반계 사립고 학생들은 절반선인 54.8%만이 사교육을 받는 것으로 나왔다. 민사고의 경우, 학생 1명이 기숙사비, 현장학습비 등 1년에 학교에 내는 교육비(수익자 비용 부담액)가 1257만원이었다. 등록금 281만 7600원을 더하면 1년간 학부모가 부담하는 공 교육비는 1538만원이었다. 여기에 월 평균 104만원의 사교육비를 쓰고 있었다. 그동안 민사고에 자녀를 보내려는 학부모들 사이에서 나돈 입소문이 사실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기숙사 생활을 하는 자녀를 보기 위해 일주일에 한차례씩 학부모가 학교를 방문할 때, 학원선생을 데려다 과외를 시키거나 주말을 이용, 자녀가 집으로 올 때 과외를 시키는 경우가 있다는 얘기가 나돌았었다. 대부분의 자사고 학생들은 자사고 운영 효과를 파악하기 위해 사교육 감소효과가 있는지 묻는 조사에서 감소효과가 없다는 데 공감을 표시했다. ●저소득 가정 학생 거의 없어 학부모의 월 평균 소득은 537만원으로 도시 근로자 월평균 가계소득 329만원에 비해 훨씬 많았다. 직원 자녀들의 복지차원에서 설립된 3개 학교(광양제철고, 포항제철고, 현대청운고)를 제외한 민족사관고, 상산고, 해운대고의 경우 월 700만원 이상의 소득 비율이 각각 35.4%,21.6%,19.6%에 이른다. 보고서는 학생의 가정배경 분포를 보면 전반적으로 중류층 이상으로 저소득층 학생들이 거의 재학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분석했다. ●학생들 이과계열 진학 많아 자사고 학생들은 공학·자연·의학 등 이과계열 진학이 두드러진 것으로 파악됐다. 포항제철고는 47.5%의 학생들이 이과계열로 진학한 것으로 나왔다. 이밖에 광양제철고는 40.3%, 민족사관고는 45.8%(외국대학 진학은 제외)로 나왔다. 교육부는 이 보고서를 토대로 ‘자립형사립고 제도협의회’를 구성, 정책토론회를 여는 등 각계 의견을 수렴해 11월 말쯤 최종적으로 제도 도입 여부를 결정키로 했다. 박현갑기자 eagleduo@seoul.co.kr
  • 공무원 산하기관 파견 폐지

    공무원 산하기관 파견 폐지

    타 부처에 파견된 속칭 ‘인공위성’ 공무원이 대폭 줄어든다.2007년 총액인건비제 본격 시행에 앞서 ‘별도정원’ 제도를 손질, 파견인력을 대폭 감축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중앙부처의 파견인력 가운데 27.1%인 236명이 줄어든다. 행정자치부는 31일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별도정원 운영 개선방안’을 각 부처에 보냈다고 밝혔다. 별도정원이란 정부조직법에 따라 정해진 정원 외에 파견·휴직·공로연수 등에 따른 장기결원에 대해 정원으로 인정해 주는 제도다. 현재 직무파견(868명)과 교육파견(826명)으로 구분돼 있다. 하지만 직무파견의 경우 해당 정원이 741명인데 실제로는 868명이 파견돼 정원을 127명이나 초과했다.1999년 467명까지 줄어들었다가 2배 가까이 늘었다. ●인건비 수요부처에서 부담 행자부 관계자는 “이번 제도개선은 총액인건비제 시행에 앞서 제도를 정비하는 한편 방만하게 운영된 별도정원을 대폭 줄이는 데 목적이 있다.”면서 “부처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정원은 2007년까지 단계적으로 감축하겠다.”고 밝혔다. 총액인건비제 시행과 함께 별도정원제도도 통제관리방식에서 자율성 강화로 바꾼다는 방침이다. 우선 파견 공무원의 인건비를 파견받는 기관에서 부담토록 했다. 그 동안은 원 소속에서 부담했다. 이럴 경우 인건비 절감을 위해 가급적 파견자를 받지 않을 것이란 예상이다. ●산하기관 파견 원칙적 금지 또한 부처의 산하 및 연구기관 파견이 인사상 편법으로 활용되고 있는 사례가 많다고 보고 원칙적으로 파견을 금지토록 했다. 현재 국내 산하기관 및 연구소에 66명, 국제기구 등 74명을 포함해 140명이 파견돼 있다. 따라서 국내 산하 및 연구기관 파견자도 66명에서 33명으로 절반을 줄이기로 했다. 하지만 파견 기관의 특정 직위를 맡고 있는 등 불가피한 경우는 당분간 파견을 계속하되, 단계적으로 줄인다는 계획이다. 또 행정기관간 파견은 직제상 해당기관 정규정원에 포함된다. 이에 따라 다른 부처에서 국민고충처리위원회, 국가인권위원회 등에 파견 중인 공무원은 위원회 소속으로 바뀐다. 그러나 국회·대법원처럼 파견받는 기관의 직제에 포함시키기 곤란할 경우는 예외로 한다. 반면 국정과제업무 등 여러 부처 합동으로 운영되는 위원회와 기획단 등은 평소대로 허용해 주기로 했다. ●직무파견 27.1% 축소, 교육파견은 ‘실링제’로 직무파견의 경우, 한시적인 국가사무나 특정한 업무를 위해 전문인력을 탄력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반면 원 소속기관의 인사적체 해소를 위한 수단으로도 악용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타 기관에 파견된 공무원들이 원 소속으로 복귀하게 될 때는 원 소속 기관에서 치열한 자리다툼까지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인력감축으로 이같은 현상은 더욱 심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부처별 감축인원은 147명의 파견인력을 가진 행자부가 40명을 감원, 가장 많은 인력을 줄인다. 이어 건교부 22명, 재경부와 과기부가 각각 15명씩 감축된다. 직급별로는 1급 2명,2·3급 35명,4급 67명,5급 90명,6급 이하 42명이다. 중앙부처에서 지자체에 파견된 지역협력관 21명도 단계적으로 축소되고 제도 자체도 재검토된다. 교육파견은 각 부처에 연간 한도를 정해 주고 자율적으로 시행하는 ‘실링제’로 바뀐다. 조덕현기자 hyoun@seoul.co.kr
  • 한국기업 작지만 알차다

    매출은 일본 기업이, 순이익은 한국 기업이 비교 우위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31일 ‘월간 CEO’가 9월호에서 한국과 일본 100대 상장기업의 지난해 매출액과 순이익, 종업원 수, 평균 급여 등의 경영 실적을 비교·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매출액은 일본 100대 기업이 1888조 4824억원(186조 6089엔)으로 한국(476조 3141억원)보다 4배가량 많았다.반면 순이익은 한국 기업이 평균 4209억원으로 일본 기업 평균(3992억원)보다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양국 100대 기업 가운데 매출 1위 기업은 한국에선 삼성전자(57조 6324억원)가, 일본에선 미쓰이물산(105조 4076억원)이 차지했다. 평균 매출액은 한국이 4조 7631억원, 일본이 18조 8848억원이었으며, 평균 경상이익은 한국 5481억원, 일본 8699억원으로 조사됐다. 매출액 대비 순이익률은 한국 100대 기업이 평균 6.4%로 일본(2.3%)보다 높았다. 양국 기업 중 순이익이 가장 많은 회사는 삼성전자(10조 7867억원)와 도요타자동차(5조 3568억원, 연결기준 11조 8532억원)가 꼽혔다. 직원 1인당 매출액은 한국 기업이 평균 15억 1400만원, 일본은 37억 400만원으로 집계됐으며,1인당 순이익은 한국 8670만원, 일본 5768만원이었다. 직원 평균 급여는 한국 4390만원, 일본 7390만원으로 일본이 1.7배 정도 많았다.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증시 유동성장세 끝나나

    증시 유동성장세 끝나나

    ‘유동성 상승장이 무너질 것인가.’ 주식시장에서 거래량과 거래대금이 급속히 줄고 있다. 주식형 펀드에 시중자금 유입은 계속되고 있지만, 외국인투자자가 사상 최대 매도세를 보이면서 그동안 주가상승을 이끌던 국내 기관투자자의 매수세도 힘을 잃고 있다. ●외국인 팔자에 주식형 펀드도 주눅 28일 증권선물거래소에 따르면 이달들어 하루 평균 거래량은 8억 3337만주, 거래대금은 4조 2961억원을 기록했다. 하루 평균 거래량은 지난 5월 8억 9787만주,6월 10억 4593만주,7월 13억 4668만주 등으로 꾸준히 늘며 자금의 유동성에 힘입은 상승장을 이끌었다. 하지만 이달에는 지난주(22∼26일)의 하루 평균치가 8억 8110만주에 그치는 등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하루 거래대금도 계속 증가하다 이달에는 7월의 5조 3259억원보다 3886억원이 줄었다. 증시에서 거래 규모 감소는 투자심리의 위축을 보여주는 지표 중의 하나다. 외국인은 하루 평균 7256억원을 순매도, 하루 순매도액이 1992년 증시 개방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주식형 펀드가 이달에도 1조 160억원 늘었지만 외국인이 주도한 하락장을 뒤집지는 못했다. ●고유가와 부동산대책이 핵 외국인 매도세의 원인은 미국의 정책금리 인상과 지칠줄 모르는 국제유가 상승의 영향이 가장 크다.3개월 이상 주가가 상승한 데 따른 시세차익의 실현 욕구도 함께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특정지역에 투자되는 펀드로는 세계 최대 규모(14조 4600억원)인 ‘코리아펀드’의 환매 사태도 매도세의 직접적인 이유가 됐다. 현대증권은 코리아펀드 투자운영진의 교체 등으로 지난 18일부터 24일까지 총 자산의 32.7%인 4780억원이 한꺼번에 빠져나갔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이는 ‘바이코리아’가 아닌 단기적 환매일 뿐이라고 풀이했다. 전문가들은 증시의 향방에 영향을 미칠 남은 요인으로 ▲국제 유가의 추가 상승 여부 ▲금리인상이 미 경기지표에 미칠 영향 ▲오는 31일 발표되는 국내 부동산정책의 파장 등을 꼽는다. 대신증권 박소연 연구위원은 “거래량 감소는 매수·매도 세력 모두가 심리적으로 위축돼 있다는 증거”라면서 “시장 에너지의 약화로 반등이 있더라도 제한적 수준에 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대우증권 한요섭 연구위원은 “금리, 유가, 부동산 등의 변수들이 국내외 경기회복세에 어떻게 작용할지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면서 “긴 호흡으로 접근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 [부고]

    ●애국지사 박윤옥 선생 항일 애국지사 박윤옥 선생이 23일 오후 11시 노환으로 별세했다. 평남 대동에서 출생한 선생은 평양 숭인상업학교에 다니던 1936년 6월 농민의 계몽지도 및 민족의식 고양을 목적으로 항일결사조직인 일맥회(一麥會)를 결성했다. 이듬해엔 일맥회보다 더 강력한 결사조직인 열혈회(熱血會)를 만들어 회장을 맡았다.1938년 3월 숭인상업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같은해 4월 도쿄에 있는 청산학원 신학부 예과에 입학했다. 이후 열혈회 회원들과 지속적으로 접촉하다가 1939년 11월 일본 경찰에 체포됐다. 1941년 1심에서 징역 5년형을 선고받고 항소,2심에서 징역 4년, 집행유예 5년형을 받았다. 정부는 선생의 공적을 기리어 1980년 건국포장,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수여했다. 유족으로는 아들 문성씨 등 1남 3녀가 있다. 빈소는 대전을지병원에 마련됐다. 발인은 26일 오전 10시, 장지는 대전공원묘원(042)471-1365. ●이승헌(육군대령)인헌(성지치과 원장)필헌(캐나다 거주)씨 모친상 홍현기(청주대 교수)씨 빙모상 23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25일 오전 9시 (02)3410-6909 ●김영만(피자헛 부천 춘의점)선의(화가)선향(선화예술고 교사)씨 부친상 엄원태(청담동 가정연합회장)신인승(선원건설)조형국(선문대 교수)씨 빙부상 22일 건국대병원, 발인 26일 오전 7시 (02)2030-7903 ●이종범(개인사업)김덕수(광남건설㈜ 대표이사)씨 빙모상 24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6일 오전 8시30분 (02)3010-2230 ●유선주(서울 동작교육청 장학사)은주(눈높이교육 강사)경주(오성식 영어학원 강사)현목(동성정보산업고 교사)씨 부친상 이영배(개인사업)이석근(농협 청원경찰)이원용(서울사료㈜ 차장)권오환(유지시스템 대표)씨 빙부상 24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6일 오전 6시 (02)3010-2265 ●이윤주 차주 세주씨 부친상 송석정(코오롱㈜ 중앙기술 원장)김선기(아름툰 이사)이상훈(한빛가정의원장)이재훈(맥섬 대표이사)씨 빙부상 24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26일 오전 9시 (02)3410-6917 ●최재복(월드그린㈜ 과장)씨 별세 24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6일 오전 7시 (02)3010-2253 ●황인만(포스데이타㈜ 부장)인조(대우증권 장한평지점 차장)씨 부친상 유원일(진 음악학원 원장)윤영호(아주택배 중랑지점장)김승식(하나은행 전산본부 부장)씨 빙부상 24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6일 오전 5시 (02)3010-2294 ●박찬조(KT충남본부 홍보팀장)씨 부친상 24일 충남 금산군 새금산병원, 발인 26일 오전 9시 (041)751-4702 ●윤익희(영등포경찰서)준희(비전파워)씨 모친상 24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6일 오전 6시 (02)3010-2264 ●구태건(개인사업)상옥(삼성중공업 홍보팀)씨 모친상 박순주(LG화학 홍보팀)씨 시모상 24일 서울신촌세브란스병원, 발인 26일 오전 8시 (02)392-1099 ●이상철(남해자애원장)씨 별세 이정윤(전 동아일보출판국장)정석, 정화(재미사업)씨부친상 홍형빈(유니온스틸전무)최호선(대진액심이사)씨 빙부상 24일 남해자애원, 발인 27일 오전 10시 (055)864-5097 ●최유성(㈜굿엠넷 대표)유진(㈜허밍텍스 대표)유홍(한국케이블티브이 경기동부)유용(유닉스라바)씨 부친상 박래수(㈜상우)씨빙부상 24일 경희의료원, 발인 26일 오전 7시 (02)958-9549 ●정동철(세무사)경성(용산구청 의회사무국장)씨모친상 24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6일 오전 6시 (02)3010-2238 ●정맹섭(㈜모던패션 상임고문)경섭(자영업)인섭(자영업)재섭(㈜영양종합식품 이사)원섭(미국 거주)홍섭(㈜중국 청운물산 유한공사)씨모친상 배재목(자영업)권영각(자영업)이호일(자영업)배완석(㈜가산디자인 과장)씨빙모상 24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6일 오전5시30분 (02)3010-2239 ●김맹녕(한진관광 상무)훈영(메트라이프코리아 상무)신영(서울 동작교육청 장학사)숙녕(경희의료원 간호팀장)씨모친상 서수원(서울 송파구청 사회복지과장)이대응(고려메카트로닉스 대표이사)씨빙모상 24일 경희의료원, 발인 26일 오전 8시 (02)958-9545
  • 주택대출금리 年 5.18% 5개월만에 0.05%P 올라

    은행간 지나친 경쟁으로 계속 떨어졌던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금융당국의 담보인정비율(LTV) 제한조치로 5개월 만에 조금 올랐다. 한국은행이 24일 발표한 ‘7월중 금융기관 가중평균금리 동향’에 따르면 주택담보대출 금리(신규취급액 기준)는 연 5.18%로 전달보다 0.05%포인트 올랐다.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2002년 연평균 6.67%,2003년 6.21%,2004년 5.86%였다. 올들어서는 1월 5.45%에서 2월 5.53%로 소폭 오른 뒤 3월 5.48%로 내린 데 이어 4월 5.32%,5월 5.15%,6월 5.13%로 내리 석달 동안 사상 최저기록 행진을 벌였다. 한편 저축성 수신 평균금리는 연 3.47%로 전월보다 0.03%포인트 상승했다. 대출평균금리는 연 5.51%로 전월대비 0.01%포인트 올랐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땅값 상승률 둔화

    땅값 상승률 둔화

    전반적으로 땅값 상승률이 둔화되는 양상을 띠고 있다. 그러나 기업도시 예정지와 대규모 개발이 예정돼 있는 지역 땅값은 여전히 월간 상승률이 1%를 넘는 등 국지적인 불안 현상도 남아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23일 건설교통부가 발표한 7월 토지시장 동향에 따르면 전국 지가 상승률은 0.477%로 한달 전(0.798%)에 비해 오름폭이 0.3%포인트 이상 떨어졌다. 상승률이 둔화됐다고는 하지만 1월(0.226%),2월(0.184%),3월(0.348%)과 비교하면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1∼7월 누적 상승률은 3.162%로 지난해 변동률(3.86%)의 80% 수준까지 올라갔다. 전북 무주가 3.632% 올라 전국 최고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미군기지 이전과 평화도시 조성 호재를 안고 있는 평택시, 호남고속철도 오송 분기점 확정으로 주변 개발이 기대되는 충북 청원 등의 오름세가 두드러졌다. 행정복합도시 건설 주변인 연기·공주 땅값 급등세는 일단 잡혔다. 양도소득세가 실거래가로 과세되는 토지투기지역 신규 지정 후보지로는 1.134%의 상승률을 나타낸 부천 소사구가 꼽혔다. 땅값 하락지역은 전남 순천(-0.253%), 광주 동구(-0.076%), 대구 중구(-0.016%), 강원 삼척(-0.006%), 전북 고창(-0.005%) 등이다. 용도지역별로는 녹지지역(0.933%)과 관리지역(0.689%)이, 지목별로는 논(0.831%)·밭(0.976%)·임야(0.622%)가 눈에 띄게 올랐다. 거래량은 25만 3329필지,9401만평으로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필지는 23.5%, 면적은 13.7% 늘었다. 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 中 매출1위 기업은 시노펙

    中 매출1위 기업은 시노펙

    |베이징 오일만특파원|중국의 양대 석유회사 중 하나인 시노펙(중국석유화공집단공사)이 중국 500대 기업 가운데 매출 1위에 올랐다. 500대 기업의 매출총액은 11조 7500억위안으로 중국 전체 GDP(국내총생산)의 86%에 해당된다. 이는 지난해보다 30.60% 늘어난 수준으로 갈수록 거대 기업들의 집중현상이 심각해지고 있다. 중국기업연합회와 중국기업가협회가 21일 발표한 중국의 500대 기업 명단(포천지의 글로벌 500대 기업 선정 기준과 같음)에 따르면 시노펙은 6342억 8709만위안의 매출을 기록해 수위를 차지했다. 국가전망(國家電網·SGCC)이 5900억 5564만위안으로 지난해 1위에서 2위로 떨어졌다. 이어 CNPC(중국석유천연기집단·5712억 5749만위안)와 중국이동통신(1982억 9300만위안), 중국공상은행(1940억 4700만위안)이 3∼5위를 차지했다. 이밖에 중국인수보험, 중국전신, 중국중화집단, 상하이 바오강, 건설은행 등이 10위권에 포진했다. 미국의 석유회사 유노콜 인수를 시도했던 중국해양석유(CNOOC)는 28위(709억 1750만위안)에 기록됐다. 중국기업연합회는 올해의 경우 석유화학 분야의 기업이 선두권에 많이 포진했으며, 세계 500대 기업과 달리 전력이나 철강 등 국가 소유의 독점기업들이 많이 포함된 것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기업연합회 관계자는 “중국 500대 기업 가운데 글로벌 500대 기업에 포함된 기업은 15개에 불과하다.”며 “기업규모나 이윤, 노동생산성, 브랜드 가치, 지적재산권 등의 부분에서 중국기업과 세계 기업간 차이가 많다.”고 밝혔다. oilman@seoul.co.kr
  • 삭막한 세상 구원은 없는가?

    이남희(47)의 장편소설 ‘세상의 친절’(문이당)이 보여주는 세상은 제목과 달리 전혀 친절하지 않다. 오히려 비정하고, 살벌한 풍경들로 넘쳐난다. 이는 ‘차가운 바람 가득한 이 세상에/너희는 발가벗은 아이로 태어났다’로 시작해서 ‘차가운 바람 가득한 이 세상을/너흰 온통 딱지와 흠집에 뒤덮여 떠나간다/두 줌의 흙이 던져질 때는/거의 누구나 이 세상을 사랑했었다’로 끝나는 브레히트의 시 ‘세상의 친절’이 전하는 섬뜩한 현실인식과 맥을 같이 한다. 한가닥 위안이나 작은 희망의 빛조차 기대할 수 없는 삭막한 세상에 대한 직시(直視)다. 소설의 주인공은 다중인격장애를 앓고 있는 기간제 교사 승재와 그를 흠모하는 여고생 유리. 승재는 어린 시절 할머니로부터 끔찍한 학대를 당했고, 학창시절엔 성적인 폭력으로 심각한 정신적 외상을 겪었다.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한 불행한 성장과정은 그에게 지킬박사와 하이드같은 이중 자아를 갖게 했다. 유리 역시 암투병 중인 아버지와 바람난 엄마 사이에서 소외된 존재다. 유리는 신도시 학교로 전학온 첫날 승재가 자신에게 보였던 사소한 친절에 감동해 그를 흠모하게 된다. 우연히 승재의 뒤를 밟게 된 유리는 점점 그의 일상에 가까이 다가간다. 하지만 유리의 친절은 승재가 기억하지 못하는 살인미수사건의 범인임을 증명하는 단서가 되고, 승재는 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이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에 휩싸여 결국 목을 맨다. 미로같은 세상에서 구원의 길은 정녕 없는 것일까. 랭보의 시구를 인용한 작가의 말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그러나 도움의 손길같은 것은 없다. 새로운 시간이란 아무리 작다고 하더라도 엄정한 것이다.’ 1986년 ‘여성동아’ 장편공모에 ‘저 석양빛’이 당선돼 소설가로 데뷔한 작가는 ‘사십세’‘플라스틱 섹스’‘황홀’등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이면의 황폐화된 인간상을 적나라하게 파헤치는 작품들을 선보여왔다.9000원.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Zoom in 서울] 강북 스카이라인 바뀐다

    [Zoom in 서울] 강북 스카이라인 바뀐다

    ‘강북도 한번 솟아보자. 강북의 스카이 라인이 바뀐다.’ 서울 성북구 월곡역 주변에 동북지역에서 가장 높은 지하 5층 지상 40층짜리 주상복합건물 2동이 이르면 2008년 8월에 신축된다. 성북구는 17일 “월곡동과 길음동 일대에 초고층 건축물 14개동을 지을 계획”이라면서 “설계를 공모한 월곡역 주상복합이 첫 신호탄”이라고 밝혔다. 서울 동북지역에 부족한 상업·교육·문화 기능을 확충, 강북 중심지로 발돋움하겠다는 전략이다. ●높아지는 월곡 역세권 40층짜리 주상복합건물이 들어서는 곳은 월곡역 주변 월곡동 46의73 일대. 4240평의 대지에 연면적 3만 7970평 규모의 매머드 복합빌딩이 들어서 이 일대의 랜드마크(이정표) 역할을 하게 된다. 이 일대는 그동안 역세권임에도 불구하고 대형 상권이 형성되지 못하고, 유통·편익시설도 충분치 않아 주민들이 생활에 불편을 겪어왔다. 구는 이에 따라 이 일대를 ‘월곡 특별 지구단위계획’으로 지정했다. 현재 3종 일반주거지역인 용도지역을 준주거지역으로 상향 조정해 시 도시계획위원회에 심의를 요청했다. 랜드마크 역할을 제대로 하도록 공공기관인 구가 건축주와 합의해 설계를 대행하는 현상설계공모를 실시한다. 전국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서찬교 구청장은 “동북지역을 대표할 건물이라 구가 직접 공익성이 높은 개발계획안을 선정키로 했다.”면서 “아름다운 경관 이미지를 갖춘 모범적인 건축물을 건립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달 23일 설계를 접수받아 30일에 당선작을 발표한다. 설계비 44억여원, 총 공사비는 1135억여원이다. 주상복합 1층에 대형 할인점을 입점시키고, 상가와 주거공간 비율을 6대4로 나눴다. ●하월곡동 집창촌 역사 속으로 구는 또 권역별 중심상권 개발 계획에 따라 2009년까지 길음역 주변 길음동 541의1 일대 역세권 4033평에 지하 4층, 지상 30층짜리 주상복합건물 2개동을 세운다.‘트윈타워’로 이름 붙여졌다. 연면적 2만 300평 규모다. 우수 학원 등을 유치, 길음 뉴타운의 중심축으로 만든다는 구상이다. 아울러 길음·월곡 균형발전 촉진지구로 지정된 미아사거리 주변 월곡동 86의198 일대의 계획정비구역(4787평)에는 25층 건물 10개동 이상이 들어선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유류세 급증… 세율은 요지부동

    유류세 급증… 세율은 요지부동

    고유가에 따른 국민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휘발유와 경유 등에 붙는 유류세를 낮춰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세수 감소와 석유소비 증가 등을 이유로 꿈쩍도 않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가 ‘숲’(국가경제)만 보고 ‘나무’(국민생활안정)를 보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기름값 인상률,‘지표 따로 체감 따로’ 정부가 인식하고 있는 지표상의 기름값과 국민들이 느끼는 체감 기름값은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한덕수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지난주말 “올들어 국제유가는 거의 50% 올랐지만 환율하락으로 크게 상쇄돼 원화로는 국내 기름값이 2.7% 올랐다.”면서 “유류세 세액을 조정할 필요성은 없다.”고 밝혔다. 즉 고유가가 국내 기업이나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16일 대한석유협회와 한국석유공사 등에 따르면 전국 주유소의 평균 판매가격은 8월 둘째주 기준 휘발유의 경우 ℓ당 1449.2원, 경유는 1149.5원이다. 연초와 비교해 휘발유(1335.52원)는 8.5%, 경유(930.29원)는 23.6% 각각 올랐다. 이처럼 국민들이 많이 쓰는 휘발유와 경유에는 교통·교육·주행·부가가치세 등 네가지의 세금이 붙는다. 휘발유는 교통세가 ℓ당 535원으로 가장 많다. 이어 주행세 128.4원, 부가가치세 126.56원, 교육세 80.25원 등이다. 이를 합하면 휘발유 1ℓ에 붙는 세금은 판매가격의 60%인 870.21원이다. 주유소에서 5만원어치의 휘발유를 넣으면 세금으로만 3만원을 내는 셈이다. 경유도 소비자 가격의 절반에 가까운 549.59원(47.8%)을 세금으로 떼고 있다. 유류세를 낮추면 국민 부담을 덜어줄 수 있게 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특히 기름값은 앞으로가 더욱 문제다. 세계 경제 호조에 따른 유류 수요 증가, 이란 핵문제 및 사우디아라비아 정치불안 등 국제유가 상승을 부추길 요인들이 널려 있기 때문이다. ●유류세 인하→소비 증가, 연관성 없다? 정부가 2004년에 거둬들인 유류세는 교통세 10조 2000억원을 비롯, 모두 21조 4571억원이다.2003년의 20조 532억원보다 7.0%나 증가했다. 유류세 증가율은 2000년과 2001년에는 각각 2.0%,1.5%에 그쳤으나 2002년 12.7%,2003년 8.4%, 지난해 7.0% 등으로 껑충 뛰었다. 반면 국내 석유 소비는 2000년 7억 4255만배럴,2001년 7억 4366만배럴,2002년 7억 6286만배럴,2003년 7억 6294만배럴,2004년 7억 5232만배럴 등으로 정체 현상을 보이고 있다. 대한석유협회 관계자는 “지난 5년간 국내 석유 소비 증가율은 1.3%에 그쳤지만 유류세는 32.6%나 급증했다.”면서 “유류세 증가는 소비 증가보다 에너지 세제개편 등에 따른 세율 인상의 영향이 크다.”고 분석했다. 이 때문에 정부가 유류세 인하를 반대하는 논리 중 하나인 석유소비 증가에 대한 우려는 설득력이 떨어질 수 있다. 결국 정부가 손쉽게 세금을 거둬들이기 위해 가뜩이나 생활고에 시달리는 국민들의 유류세 인하 요구를 외면하고 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실정이다. 업계 관계자는 “전체 세금에서 소비세인 유류세 비중이 높아질수록 과세 불평등 문제가 심화될 수 있다.”면서 “소득 수준에 따라 공평 과세가 이뤄질 수 있도록 중장기적으로는 유류세를 포함한 소비세 비중을 낮추는 방안을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광복60-한·일 국력 현주소] 日 GDP 7배·수출입 4배…선박·IT는 韓國 우위

    [광복60-한·일 국력 현주소] 日 GDP 7배·수출입 4배…선박·IT는 韓國 우위

    ■1. 경제력은‘잃어버린 10년’을 겪은 일본이지만 세계 무대에서의 평가는 우리나라보다 훨씬 높다. 실제 나타난 경제지표나 사회지표들도 그렇다. 한국이 일본을 앞선 부분은 선박과 정보기술(IT) 분야뿐이다. 인구 수는 우리나라가 4829만명으로 1억 2764만명인 일본의 절반을 밑돈다. 일본의 국내총생산(GDP)은 2004년 기준 4조 6734억달러로 한국(6801억달러)의 7배에 가깝다.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한국이 1만 2720달러로 일본(3만 4192달러)의 3분의1 수준이다. 외환보유액도 일본은 8435억 3700만달러로 우리나라(2049억 8600만달러)보다 4배 가까이 많다. 우리나라의 수출·수입이 크게 늘고 있지만 세계무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일본에 뒤진다.2004년 우리나라의 수출·수입액은 각각 2538억 4500만달러,2244억 6300만달러로 세계 12위,13위다. 반면 일본은 수출·수입액 규모가 모두 세계 4위다. 세계경제포럼(WEF)과 스위스국제경영대학원(IMD)이 평가한 우리나라의 국가경쟁력은 29위.IMD 평가에서는 일본(21)에 근접해 있으나 WEF 평가로는 일본(9)에 한참 뒤져 있다. 이는 국가신용등급에도 나타난다.S&P는 일본 신용등급을 위에서 4번째 등급인 AA-로 평가한 반면 우리는 이보다 2단계 더 낮은 A다. 그나마 최근 한 단계 올린 결과다. 무디스는 일본의 신용등급을 가장 높은 Aaa로 평가했고, 한국은 6단계나 낮은 A3다. 피치는 일본의 신용등급은 AA, 한국은 3단계 낮은 A로 평가했다. 산업별로도 여전히 주요 기간산업은 일본에 뒤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우리나라의 연간 자동차 생산량은 346만 9000대로 일본(1051만 2000대)의 3분의1 수준이다. 철강생산량(조강 기준)도 우리나라는 4750t으로 일본(1억 1270만t)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우리나라의 선박 건조량은 지난 2002년 일본을 추월한 뒤 계속 1위를 지키고 있다.2004년 선박 건조량은 831만 9000CG/T으로 전년보다 14.5% 증가했다. 이에 비해 일본은 17.1% 늘어나 격차가 좁혀지고 있다. 인구 100명당 인터넷 이용자 수나 이동전화가입자 수 등은 우리가 훨씬 앞선다. 삶의 질은 일본에 비해 훨씬 낮은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1인당 보건지출액의 경우 한국은 577달러인 반면 일본은 2476달러로 한국의 4배 이상이다. 유엔이 평균수명, 교육수준 등 주요통계를 통해 인간개발성취 정도를 평가하는 인간개발지수는 한국이 28위, 일본이 9위다. 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 2. 군사력은광복 이후 한·일 양국은 군사력 측면에서 지속적인 신장세를 보여왔다. 1945년 패전(敗戰)으로 인해 군사력 측면에서 사실상 ‘잿더미’를 경험한 일본은 이미 군사 대국화(大國化)의 길로 들어섰다. 동족간 전쟁에 분단까지 겪은 한국도 군사력에서 적잖은 변화를 가져왔다. 특히 남북한이 군사적 대치 상황을 오랜 기간 지속해온 탓에 나름대로 군사력은 크게 확충됐다. 패전 이후 일본은 군은 물론 타국에 파괴적 피해를 주는 무기도 보유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여왔다.‘군대 아닌 군대’로도 불리는 자위대(自衛隊)의 이름도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 자위대의 활동 영역은 이미 전 세계로 확대됐고, 보유 전력도 중국 러시아 남북한 등 주변국 어느 나라에도 밀리지 않을 정도가 됐기 때문이다. 육상·해상·공중으로 나뉘어진 자위대의 병력은 지난해 말 현재 23만 9000명. 중국이나 러시아 한국 등 주변국보다 적다. 하지만 보유 장비 등 전력을 보면 사정은 달라진다. 해상 자위대는 한국이 단 한 척도 없는 이지스함을 4척이나 보유하고 있다. 이지스함은 건조 비용만 해도 1조 2000억원에 달하는 최신예 함정. 또 잠수함 16척 이외에 구축함과 순양함, 호위함 50여척을 갖고 있다. 항공 자위대 역시 공중전에 강한 최첨단의 F-15J 전투기는 200대가 넘는다. 이에 비해 한국은 일제시대 의병과 독립군, 광복군 등으로 활동하다가 광복 당시 ‘국방사령부’로 출범했으며, 정부 수립과 함께 국군으로 정식 발족했다. 정부 수립 당시 5개 여단 5만여명에 불과하던 남한의 병력은 현재 13개 군단,49개 사단에 68만여명으로 늘었다. 물론 북한의 경우 경제난에도 불구하고 남한보다 훨씬 많은 117만명의 정규 병력을 보유하고 있다. 또 재래식 무기이긴 하지만 야포 8700여문, 전차 3700여대 등 만만찮은 육상 전력과 남한보다 우위로 평가받고 있는 해상 전력도 보유하고 있다. 조승진기자 redtrain@seoul.co.kr 15일은 한국이 일본으로부터 국권을 되찾은 지 1갑자(甲子)가 되는 제60주년 광복절이다.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일본이나 당시 독립을 쟁취한 한국은 이후 여러 분야에서 엄청난 변화를 겪어 왔다. 광복 60주년을 맞아 한·일 양국간 국력 변화의 추이를 군사력과 경제력 측면에서 조명해 본다. ■ 민족문제硏 조문기이사장의 ‘광복60년 直言’ 1945년 7월24일. 거물 친일파 박춘금 주최로 ‘아세아민족분격대회’가 열린 부민관(현 서울시의회 건물)에서 다이너마이트를 터뜨렸던 그다. 해방 뒤 남한 단독정부가 수립되려 하자 여기에 반대해 삼각산(현 북한산)에서 봉화를 올리고 폭탄을 터뜨리려 했던 이른바 ‘인민청년군 사건’의 주역이기도 하다. 이리저리 떠돌던 그는 한때 광복회 경기지부장을 맡았지만 90년대 초 민족문제연구소가 출범하자 미련없이 이 자리를 내던졌다. 함께 항일운동을 했던 동지들은 빠짐없이 독립유공자 명단에 올렸으면서도 자신의 이름은 끝내 올리지 않았다. 보다 못해 딸과 사위가 몰래 독립유공자로 등록했다. 그는 그런 사람이다. 민족문제연구소 조문기 이사장. 이런 그였기에 약속 장소인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사업회 사무실을 찾아가는 발길이 그리 가볍지만은 않았다. 습기를 잔뜩 머금은 날씨 때문만은 아니다.8·15를 앞두고 몇 마디 얻어 들을 양으로 찾아가 ‘아이고∼, 그러세요∼.’라고 맞장구치는 것으로 마무리하기엔 우리 같은 후대의 역할이 너무 부끄럽고 자괴스러워서다. 예전 사진으로 봤을 때보다 몸이 많이 축나 보였다. 그래도 힘주어 말할 때마다 눈빛이 형형하게 되살아 난다. 건강을 묻자 최근 다리에 이상이 와서 거동이 불편하다고 했다. 질문을 이어가려 하자 “급해?” 그런다. 숨 좀 돌리자는 뜻이다. 옆에 있던 기념사업회 차영조 상임이사와 셋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광복절 행사 때문에 청와대 등에서 초청을 받았는데 별로 내키지 않는다고도 말했다. 참석 안할 거냐고 물었더니 노한 목청의 대답이 돌아온다.“해방은 무슨 해방, 해방된 건 친일파 놈들이지. 일본 사람들 눈치나 보던 친일파나 일본 사람들한테서 해방된 거지. 해방이란 게 나라를 몽땅 들어다 친일파한테 바친 거요.” 예상대로다.“친일파들이 득세했다는 거, 사실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아.‘반공’과 ‘친미’ 기치 아래에서 기생해 왔다는 것도 다 알아. 그런데 이들이 후계자를 양성해서 각계 요직에 다 앉혀 놨어. 그러니 어쩔 수가 없어. 지하에 계신 선열들이 대로하실 일이지.”손자뻘 되는 기자가 8·15의 의미에 대해 묻자 카랑한 목소리의 대답이 돌아왔다.“8·15라는 게, 그것 때문에 남북이 분단됐잖아요. 그런데 무얼 기념하고 무얼 경축해. 차라리 분단의 날로 정하고 그 날의 의미를 되살리고 각오를 다지도록 해야지.” 그가 광복절만 되면 차고 넘치는 태극기와 ‘경축’‘기념’ 따위의 문구를 피해 산사나 절에 들어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들도 비판 대상이다.“독립운동을 했다는 사람이 더 어쭙잖아. 대통령이 불러주면 밥 한 끼 먹고 그걸 가문의 영광으로 여기는 게 말이 돼? 친일파 청산과 분단에 무관심한 사람들이 ‘민족국가’를 꿈꿨던 독립운동가일 수가 있느냐고?” 매섭게 내려치는 말투, 그러나 이내 누그러든다.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전부 어림잡아 200만명, 만주나 이런 곳에서 활동하신 분들이 최소한 70만명 정도야. 그런데 우리가 이제껏 유공자로 인정했다는 사람이 고작 1만명 정도야. 나머지는 다 잃어버린 거지. 이게 광복하고, 해방된 나라냐고.” 사무실을 빠져나올 때쯤 기온이 다소 내려앉았다. 시원할 만도 한데 등줄기로 땀이 더 흐른다. 후텁지근한 날씨 탓만은 아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조문기씨가 걸어온 길 ▲1926년 경기도 화성 출생 ▲일본강관주식회사 파업주도(42년) ▲부민관 폭파사건 주도(45년) ▲단정반대 시위로 투옥(48년) ▲이승만 암살 조작 사건으로 투옥(59년) ▲광복회 경기지부장(85년) ▲건국훈장 애국장 수상(90년) ▲민족문제연구소 2대 이사장 취임(99년)
  • 美 상반기 무역적자 사상최대

    |워싱턴 이도운특파원|올 상반기 미국의 무역적자가 3429억달러(약 347조원)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고 미 상무부가 12일(현지시간) 발표했다.이는 지난해 상반기보다 520억달러 늘어난 규모다. 미국은 지난해 사상 최대인 6180억달러의 무역적자를 기록했는데 올 상반기에 벌써 이 수치의 절반을 넘어선 것이다. 지난 6월의 무역적자는 588억달러로 전월보다 6.1% 증가, 한 달치로는 역대 세번째 규모다. 무역적자 폭이 커진 원인은 유가 상승에 따른 원유 수입액 증가와 중국산 제품 수입 급증에서 찾을 수 있다. 6월 중 석유 수입은 199억달러로 전월보다 9.8% 늘었다. 특히 6월의 평균 원유 수입 단가는 배럴당 44.4달러로 지난 4월의 44.76달러에 이어 사상 두번째로 높았다. 상반기 대 중국 수출은 190억 9000만달러, 수입은 1091억 8000만달러로 900억 9000만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다. 지난해 상반기보다 216억달러나 늘었다.6월 한 달간 대중 무역적자도 176억달러로 지금껏 월별 적자폭이 가장 컸던 지난해 10월의 168억달러를 넘었다. 한국과의 교역에서도 상반기 84억 8600만달러, 지난 6월 12억 8800만달러의 적자를 각각 기록했다. 한국은 상반기 국가별 대미교역 순위에서 수출입 모두 7위에 올랐다.dawn@seoul.co.kr
  • [주말에 뭘 보러갈까]

    ■ 어린이 ■ 마법전사 미르가온 21일까지 서울교육문화회관 대극장. 마법세계를 구하러 떠나는 어린 전사들의 모험담.(02)764-8760. ■ 꼬방꼬방 28일까지 사다리아트센터 네모극장. 전래동화로 엮은 극단 사다리의 놀이음악극.(02)382-5477. ■ 고양이가 말했어 21일까지 인켈아트홀2관. 초등학생 지영이의 성장기를 그린 인형극.(02)741-3934. ■ 클래식 ■ 광복 60년 경축 대음악회 15일 오후 4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우리나라가 낳은 세계적인 작곡가 안익태, 윤이상, 진은숙의 작품세계를 만나보는 자리. 일제시대부터 현재까지 이들 작곡가 3인의 작품 연주를 통해 광복 60주년의 특별한 의미를 되새기는 무대다. 소프라노 박정원, 베이스 양희준, 오보에 이윤정 등이 협연.(02)580-1135 ■ 클래식 나들이 15일,18∼ 21일 영산아트홀.(02)586-0945. ■ 박진희 이재향 두오 리사이틀 11일 영산아트홀 (02)587-5961 ■ 해설이 있는 청소년 음악회 14일 금호아트홀.(02)302-1533. ■ 한일정상 콘서트 12일 양재횃불회관.(02)2068-8000. ■ 미술 ■ 해피니스(Happiness)전 한전플라자 갤러리 젊은 작가들을 통해 아름다운 개인의 상상을 찾는 작업. 회화, 조각, 설치, 사진등의 장르에서 활동하는 작가 8명과 1팀의 작품 전시. 유승호 홍경택 홍성도의 작품에서는 그들만의 독특한 자유로움이 엿보인다. 강용면과 프로젝트 그룹 옆은 즐겁게 미술과 소통하는 작품들을 선보인다.(02)540-5584. ■ 김관형전 사진과 드로잉의 절묘한 만남. 머릿속 오만가지의 상념과 모습들을 스케치한뒤 이를 사진으로 찍었다. 작가는 말을 하는 순간 모든 것이 거짓이 된다는 사실이 싫어 생각을 그림으로 묘사해낸다는 설명.30일까지 사간동 갤러리 온.(02)733-8295. ■ 김기린전 프랑스에서 오랫동안 작업한 모노크롬 작품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사각의 틀속에 파란색과 분홍색 등으로 수많은 점을 찍어낸 단색 회화는 면에 대한 깊은 사유를 보여준다.23일까지 갤러리 토포하우스.(02)734-7555. ■ 김시연전 자신을 둘러싼 환경, 생활들을 관찰해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상적인 삶을 소금이라는 특수한 물질과 접목시켜 나간 설치미술. 소금을 인간 감성의 정제물로 여겨 작가의 감정에 대입하고 있다. 서초동 세오갤러리.(02)583-5612. ■ 뮤지컬 ■돈키호테 28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셰르반테스의 명작을 뮤지컬로 본다. 삽입곡 ‘더 임파서블 드림’으로 유명한 브로드웨이 뮤지컬. 김성기 류정한 강효성 출연.(02)501-7888. ■ 청년 장준하 15일까지 문예진흥원예술극장 대극장. 독립군이 되려 중경 임시정부로 가는 대장정을 그린 뮤지컬. 조한신 작·연출, 서영주 최성원 출연.(02)722-1467. ■ 밑바닥에서 21일까지 예술극장 나무와물. 막심 고리키의 원작을 세미 뮤지컬로 각색. 왕용범 연출·박용전 작곡, 황태광 이창욱 출연.(02)745-2124. ■ 풋루스 10월16일까지 연강홀. 반항과 억압, 사랑과 고통 등 분출하는 젊음의 열정을 춤과 노래로 풀어낸다. 서지영 이한 김영민 출연.(02)766-8551. ■ 연극 ■ 셜리 발렌타인 13~9월 11일 우림청담시어터 중년여성의 자아찾기 여정을 그린 연극. 배우 손숙의 농익은 연기가 빛나는 모노극으로 강북 산울림소극장에 이어 강남으로 무대를 옮긴다. 글렌 월포드 연출.(02)569-0696. ■ 바람의 아들 11∼13일 한강 둔치 럭비구장. 재일교포 김수진 연출가가 이끄는 천막극단 신주쿠양산박의 내한공연.(02)352-0766. ■ 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다 9월25일까지 산울림소극장. 세상의 모든 엄마와 딸을 위한 작품. 임영웅 연출, 박정자 정세라 출연.(02)334-5915. ■ 왕비,100년 만에 외출하다 12일∼9월11일 상상아트홀. 명성왕후의 일대기를 그린 1인극. 박영 작·이승옥 연출. 박정재 출연.(02)765-4565.
  • 건설경기 전망 ‘안개속’

    건설 경기가 당분간 안개 속을 헤맬 것으로 전망됐다. 건설업체들이 느끼는 체감경기가 갈수록 나빠지고 있으며, 건설경기의 선행지표들도 모두 빨간불을 보이고 있다. 5일 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달 건설기업경기실사지수(CBSI)는 전달보다 12.3포인트 떨어진 74.2를 기록했다.BSI는 100을 기준으로 그 이하이면 체감경기가 전달보다 나아졌음을 의미하고 그 이상이면 좋아졌음을 의미한다. 지난 1월 이후 완만한 상승세를 보이다가 다시 하락세를 기록했으며 특히 서울과 지방, 대형과 중소업체간 격차가 더욱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래경기를 예측하는 종합전망지수 역시 2개월 연속 낮아졌다. 특히 대형 업체 전망지수도 올 들어 처음으로 부정적인 대답이 나왔다. 공사물량지수도 전달보다 12포인트 떨어지는 등 모든 공종에서 일감 부족 사태를 예견했다. 건축허가면적은 상반기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다가 5∼6월 들어 감소세로 반전됐다.2월 562만㎡에서 3월 974만㎡,4월 1007만㎡,5월 1181만㎡로 증가하다가 6월에는 857만㎡로 하락했다. 건축물 착공면적도 2월 473만㎡에서 3월 872만㎡,4월 961만㎡로 꾸준히 증가하다 5월 869만㎡로 하락한데 이어 6월은 715만㎡로 떨어졌다. 이런 사태는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특히 정부의 부동산종합대책 발표 이후 투자부진이 이어질 경우 건설경기는 더욱 침체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건설업체의 외형 매출을 늘리는 주택사업 위축도 예상된다. 부동산 시장이 냉각되면서 분양시장이 위축되면 신규 주택개발 사업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또 장기적으로 공영개발방식으로 추진할 경우 건설사는 단순 도급 업체로 전락, 출혈시공이 불가피해져 수익성도 낮아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업계는 내다봤다. 건설협회는 “하반기 들어 건설경기 지표들이 일제히 적신호를 보이고 있는데다 강력한 부동산투기억제대책이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작용할 것 같다.”고 말했다.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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