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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용순(사업)용암(네오틱스 감사)지희(치과 의사)씨 부친상 박영준(금융감독원 부원장보)씨 장인상 24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발인 26일 오전 7시 (02)2227-7547 ●조숙희(전 남원교육장)씨 별세 24일 전북대병원, 발인 26일 오전 10시 (063)250-2441 ●김익진(YTN 경영기획실장)씨 부친상 24일 일산 동국대병원, 발인 26일 오전 5시 (031)961-9415 ●이영배(OCI 사회공헌추진단 고문·㈜유니온 감사)씨 모친상 24일 서울대병원, 발인 26일 오전 8시 (02)2072-2022 ●김종원(경희대 사무부처장)종구(만리현감리교회 담임목사)씨 부친상 24일 경희의료원, 발인 26일 오전 7시 (02)958-9545 ●박진표(LG유플러스 차장)정익(굿모닝정보통신 대표)준성(소니코리아 차장)준석(SKF LBU 한국소장)씨 부친상 김준성(삼성전기 과장)씨 장인상 24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6일 오전 6시 (02)3010-2293 ●박종현(신동양건설 대표이사)씨 별세 재영(GS건설)재휘(농협중앙회)씨 부친상 24일 진주 경상대병원, 발인 26일 오전 9시 (055)750-8651 ●최철국(전 국회의원)씨 부친상 24일 경남 김해 조은금강병원, 발인 27일 오전 (055)330-0411 ●최용승(동부엔지니어링 전무)동우(서초우체국 실장)용구(전북농협 경영지원부본부장)씨 모친상 임정은(임정은꽃예술원 대표)씨 시모상 24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6일 오전 5시 30분 (02)3010-2000 ●장용석(전 정화여고 교사)씨 부친상 최병석(삼성전자 부사장)최현수(자영업)전우헌(삼성전자 전무)씨 장인상 24일 대구전문장례식장, 발인 27일 오전 7시 30분 (053)965-7301 ●윤정석(변호사·서울지방변호사회 감사)씨 장인상 24일 서울성모병원, 발인 26일 오전 9시 30분 (02)2258-5940 ●조동갑(전 경동 사장)씨 부인상 찬구(삼성SDS 차장)씨 모친상 김정훈(전 OB맥주 수출팀장)씨 장모상 24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6일 오전 10시 (02)3010-2263 ●서용석(전 일간스포츠 사진부장)씨 별세 24일 전북대병원, 발인 26일 오전 11시 (063)250-2443 ●신경섭(연합뉴스TV 영상취재팀 기자)씨 부친상 24일 서울의료원, 발인 26일 오전 9시 (02)2276-7698
  • 그의 숨결·호흡 그대로 ‘현대사 질곡’ 투영하다

    그의 숨결·호흡 그대로 ‘현대사 질곡’ 투영하다

    20대에 연좌제에 좌초돼 한국 사회를 쓸쓸하게 또는 필사적으로 떠돌아다닌 그는 소영웅주의자일까, 아웃사이더일까. 한국의 대표적인 번역자, 저자, 소설가로 살다간 이윤기(1947~2010)의 이야기다. 그는 ‘그리스 로마 신화’ 시리즈(2000년)의 저자로,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1986년)과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1981년)의 번역자로 잘 알려져 있지만, 그의 삶은 유명세만큼이나 화려(?)하다. 그는 별스러운 사람이었다. 경북 군위 출신인 그는 대구 칠성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경북중에 이어 경북고에 진학했으나 들어간 지 3개월 만에 그만뒀다. 이후 검정고시로 대학 진학 자격을 얻어 1967년 신학대학에 진학하지만 역시 도중에 그만뒀다. 그 후 유학 자격시험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기회를 얻었지만, 재일교포였던 그의 큰아버지가 조총련계로 재일교포 북송단 모집책이었던 탓에 연좌제에 걸려 포기해야만 했다. 연간 1만 5000장을 번역하는 고달픈 번역 노동자로 생계를 꾸려나가야 했던 이유이자, ‘온갖 똥폼을 다 잡는 스타일리스트’였지만 죽는 날까지 학력 콤플렉스에 시달렸던 이유였다. 2010년 8월 27일 심장마비로 사망한 이윤기 사후 2주기를 맞아 그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던 출판사 열린책들이 그의 첫 소설 ‘하늘의 문’을 재출간했다. 원래 3권으로 나왔던 책인데, 읽다가 졸리면 목침으로도 쓸 만한 1085쪽 두께의 한 권으로 내놨다. 1994년 펴낸 이 책은 권당 5500원으로 3권이면 액면가가 1만 6500원이지만, 중고책 시장에서 7만 5000원의 고가에 거래된다. 이번 신간은 2만 8000원이니, 더이상 중고책을 구하려 애쓰지 않아도 되겠다. 이윤기의 첫 소설을 재출간하려고 애쓴 책 디자이너이자 이윤기의 경북고 3년 선배인 정병규(66)는 지난 22일 기자간담회에서 “소설처럼 윤색됐으나 그의 삶을 아는 나로서는 이 책이 소설로 읽히지는 않는다. 다만, 그의 삶을 잘 모르는 독자들에게는 한국 현대사의 묘한 얼룩이 삶에 스며든 근대인의 삶으로 이 소설이 읽힐 것이므로, 이른바 ‘한국 현대사 교양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다.”고 재출간의 이유를 말했다. 가난한 어린 시절과 철저한 양반의식, 연좌제로 좌절된 유학, 베트남 파병 군인의 삶과 공사판을 전전하며 노동자로 살아간 이윤기의 이야기들이 들어 있다. 이어 정병규는 “이 소설에는 사전에 안 나오는 말들이 많은데, 노동자들의 현장의 목소리, 지방의 사투리 등이 고스란히 들어 있어 한국 밑바닥의 진솔한 삶을 직접 만날 수 있다.”고 했다. 친구이자 문학평론가였던 황현산 고려대 불문과 명예교수도 이날 “이윤기가 서사가 뛰어난 작가라고 할 수는 없지만, 문장에 대한 자부심이 강했고, 이 소설은 ‘자기 자신을 번역했다’고 할 만한 책”이라고 말했다. 이윤기는 197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서 단편 ‘하얀 헬리콥터’로 등단했지만 번역일에 휘둘리다가 이 책을 내놓고서야 비로소 본격적인 소설가의 길로 들어섰다. 문단 데뷔 20년 만의 ‘중고 신인작가’였던 셈이다. 정병규는 “자신의 속살을 다 드러낸 뒤에야 스스로 본격 소설가로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고 했다. 이런 의미들이 부여된 까닭에 재출간된 ‘하늘의 문’은 원본을 그대로 살렸다. 강무성 열린책들 편집주간은 “출판 당시의 오자만 바로잡았지, 사전에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새로 교정하거나 국문법상으로 쉼표가 올 수 없는 부분에 놓여 있는 쉼표라고 해서 없애거나 하지 않고, 이윤기의 숨결과 호흡 그대로 살려 놓았다.”고 말했다. 180㎝ 가까운 키에 터무니없이 큰 발, 그리고 큰 체구를 지닌 이윤기는 건강이 나빠진 말년에도 하루에 조니워커 레드를 2병씩 마실 정도로 술도 셌다. 심장마비를 일으키기 전에 몸이 비쩍 말라갔지만, 병원에 다니며 병명을 찾고 몸에 주삿바늘을 꼽는 것은 인위적인 삶이라며 거부한 이가 이윤기다. 정병규는 “파커 만년필의 촉이 닳아 날카로운 칼처럼 돼 수북이 꽂혀 있고, 손바닥에 굳은살이 박일 것 같아 손가락 부분을 잘라낸 골프장갑을 낀 채 번역하는 그의 모습이 징그러우면서도 그립다.”면서 “문학적 감수성을 가지고 삶을 기록한 이윤기의 모습과 느낌을 ‘하늘의 문’ 표지를 통해 고스란히 살리고 싶었다.”고 했다. 이번 책표지를 그가 디자인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4050 야권성향↑·지역주의 약화… ‘세대별 투표율’ 최대 변수

    4050 야권성향↑·지역주의 약화… ‘세대별 투표율’ 최대 변수

    대선 후보 캠프마다 세대별 투표율이 초미의 관심사다. 현재까지의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실제 대선 투표율에 적용할 경우 승패가 뒤바뀌는 현상이 속출하고 있다. 세대별로 천차만별인 ‘투표 탄력성’ 때문이다. 야권 성향인 젊은 층의 경우 지지율은 높지만 정작 투표장에는 가지 않아 투표율이 저조한 반면 보수 성향의 고연령대는 지지율과 투표율이 일치하는 이른바 ‘투표 안정성’이 상대적으로 높다. 20·30대의 투표율이 2002년 16대 대선 때보다 5,10% 포인트씩 높아져도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가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에게 모두 진다. 안철수 무소속 대선 후보만 10% 포인트 높아질 때 0.6% 포인트 차이로 이기는 것으로 조사됐다. 최근 20대의 성향이 탈이념과 실용으로 흐르고 있다는 점도 반영된 듯하다. 야권 측에서 보면 후보 단일화가 되더라도 결코 대선 결과를 낙관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준다. 윤희웅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조사분석실장은 “투표탄력성이 세대별로 달라 투표율이 높아지면 야권 후보들의 분위기는 좋아지겠지만 결과를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반면 박 후보에게 유리한 상황만은 아니라는 분석도 만만치 않다. 우선 40대가 달라졌다. 16대 대선 때 노무현·이회창 두 후보에 대한 지지율은 거의 차이가 없었다. 2002년 대선 때 7만명을 대상으로 한 출구조사 결과 40대는 노 후보 48.1%, 이 후보 47.9%의 지지율을 보였다. 윤 실장은 “지난 4월 총선에서는 여당이 승리했지만 40대에서는 야권성향이 높아졌다.”고 분석했다. 50대도 달라졌다. 386세대가 50대에 진입하면서 보수후보만 바라보던 이전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특히 이들이 10년 전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열광했던 세대였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지역주의가 약해지고 있는 점도 주요 변수다. 2002년 대선 당시 부산에서 이 후보는 65%, 노 후보는 29.8%의 표를 얻었다. 하지만 올 대선에서 여권 후보인 박 후보가 부산·경남·울산(PK)에서 65%의 지지율을 얻기는 힘들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역주의가 약화되면서 대구·경북 등에서도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세대별 투표 경향을 보일 것이라는 전망도 이런 분석에서 출발한다. 김형준 명지대 정외과 교수는 “단순히 20·30대 투표율이 낮아 박 후보가 유리하다는 가설은 성립되기 어렵다.”면서 “지난 4월 총선투표율(54.3%)이 17대 대선 투표율(63.2%) 수준이 되려면 세대별로 20~40대 투표율은 28% 포인트, 50~60대도 13% 포인트 정도 더 높아져야 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20대부터 40대까지 투표율을 하나로 묶고 50대 이상 투표율을 하나로 묶어 비교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특히 올 대선은 야권 후보 단일화 등에 따라 여론이 요동치며 크게 출렁일 것이기 때문에 결국엔 49대51의 싸움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각 후보 캠프도 이런 상황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새누리당이 최근 서해 북방한계선(NLL) 문제 등에서 강공을 펼치는 것도 지지표를 결집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정수장학회 문제를 이슈화하고 있는 민주당은 여기에 투표시간 연장과 20·30세대 투표 독려 등의 전략을 더했다. 안 후보 측도 최근 청년자문단을 만들어 세대별 공략을 하고 있다. 청년자문단이 20대 청년들의 정책제안을 받는 동시에 50~60대를 찾아다니며 상대적으로 취약한 고령층도 공략한다는 계획이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이영준기자 apple@seoul.co.kr
  • [선택! 역사를 갈랐다] (31)서재필 vs 윤치호

    [선택! 역사를 갈랐다] (31)서재필 vs 윤치호

    서재필(1863~1951)와 윤치호(1865~1945) 두 사람은 개화파의 막내들로서 10대 후반부터 일본 유학을 거쳤고, 1884년 갑신정변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했다. 당시에 거의 유일하게 미국에서 정식 대학교에 진학해 근대 서구문명의 영향을 직접 받았다. 근대적 지식인의 대표적 인물들인 두 사람에 대한 평가는 오늘날 크게 엇갈린다. 서재필은 독립유공자로서 국립묘지에 안장된 반면 윤치호는 친일파의 대표로 친일인명사전에 올랐다. 무엇이 두 사람을 극단적으로 다르게 만들었을까. ●갑신정변 행동대장 vs 美 공사관 통역관 서재필은 19세였던 1882년 별시 문과에 합격했으나 무관으로 과감히 변신해 일본의 도야마(戶山) 육군학교를 나온 후 갑신정변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정변 과정에서 고위 대신들을 살해하는 행동대장이었다. 따라서 정변이 실패하자 일본 망명 길에 올랐다. 한편 윤치호는 16세였던 1881년 일본에 파견된 조사시찰단의 수행원으로 파견되었다가 남아서 도진샤(同人社)에서 수학하였다. 이때 그는 영어 공부를 시작한 지 4개월 만에 미국공사 푸트의 통역관으로 발탁돼 귀국하였다. 윤치호는 갑신정변 주도세력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지만, 정변에 반대했고 참여하지 않았다. 하지만 윤치호는 당시 김옥균 일파로 인식되고 있었기에 중국으로 도피성 유학을 떠났다. 정변 실패 후 일본에서 냉대를 받고 미국으로 떠난 서재필은 홀로 서기를 감행하였다. 그는 워싱턴 DC에서 야간 의과 대학을 나와 마침내 1893년에 의사 면허를 받았다. 1890년에는 미국인으로 귀화해 이름을 필립 제이슨으로 바꾸고, 4년 뒤에는 미국인 여성과 결혼하였다. 그는 미국 주류사회에 완전히 편입되어 살아가는 아메리칸 드림의 원조였다. 한편 윤치호는 1885년 초 중국 상하이 중서학원에서 유학을 시작했으며 1887년 세례를 받았다. 그는 1888년 미국 남감리교의 후원으로 밴더빌트와 에모리 대학에서 신학과 인문학을 공부했다. 그는 미국 생활에 잘 적응하였지만, 시민권 취득이나 국제결혼을 생각하지는 않았고 유학을 마친 후 중국 중서학원으로 돌아가 교사가 됐다. ●서재필, 의사 되며 ‘원조’ 아메리칸드림 이뤄 서재필은 1894년 갑오개혁 정권의 귀국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다가 마침내 1895년 12월 귀국했다. 그는 미국인으로서 중추원 고문관에 취임하였고 1896년 4월 7일 ‘독립신문’을 창간했다. 또한 그해 7월에는 독립협회를 조직하는 데 고문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서재필은 1897년 후반 러시아의 만주 침략과 조선 진출 정책이 강화되자 반러적 입장을 드러내다가 중추원 고문에서 해고됐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는 당시 철저하게 미국인으로 행세해 이름을 서재필이 아닌 필립 제이슨으로 사용했다. 굳이 한글로 표현할 때는 제손 박사 또는 피제선(皮堤仙)이라고 하였다. 한편 윤치호는 갑오개혁 이후 귀국하여 학부협판이 되었다. 그는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려고 노력했으나 ‘정동파’로 분류됐고 을미사변으로 미국 선교사와 공사관에서 피신 생활을 해야 했다. 그러던 중 아관파천이 일어나자 그는 고종의 특사로 러시아의 니콜라이 2세 대관식에 다녀왔다. 따라서 독립협회 창립에 참가할 수 없었지만, 귀국 후 부회장에 취임하면서 독립협회를 계몽단체로 개조했다. 그는 서재필이 떠난 후 독립신문을 운영했고, 이완용에 이어 1898년 8월부터 독립협회 회장을 맡아 이후 전개되었던 정치개혁 운동을 실질적으로 주도했다. 하지만 자신의 의도와 달리 만민공동회가 폭력화되어 결국 강제 해산되자 지방관으로 떠남으로써 독립협회 회원들로부터 비난을 받기도 했다. 서재필은 미국으로 돌아간 후 대한제국으로부터 받은 자금을 바탕으로 필라델피아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그 후 20년 동안 조선 문제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서재필은 국내에서 3·1운동이 일어났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필라델피아에서 한인연합대회를 개최하고 의장직을 수행하였다. 그 후 일본의 만행을 폭로하며 독립 의지를 표현하는 잡지, 책자를 발행했다. 1921년 11월 워싱턴에서 열리는 태평양 군축회의에서 조선 문제를 상정하려고 노력하였다가 실패하자 항일활동을 마감하였다. 윤치호는 대한제국이 보호국으로 전락한 후 다시는 관직에 나가지 않고 계몽운동에 나섰다. 그는 대한자강회의 회장이었고 개성에 한영서원을 설립했으며 안창호와 협력해 대성학교 교장과 청년학우회 회장을 맡았고 YMCA 운동을 주도하였다. 그는 1912년에 105인 사건으로 투옥되어 3년간의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당시 윤치호에 대한 조선인들의 기대는 매우 컸다. 그러나 그는 3·1 운동을 전후하여 파리 강화회의 대표, 임정 참여, 워싱턴 군축회의 참가, 미국 망명 등 모든 요청을 거부했다. 그는 열강이 조선을 도와 일본과 싸울 의사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따라서 3·1 운동이 일어났을 때는 이를 반대하기까지 하였다. 그는 일본의 통치정책에 대해서는 반감을 품었지만 조선인들이 독립을 쟁취할 능력이 없다고 보았다. 설령 독립되었다 하더라도 이를 유지해 나갈 수 있는 능력이 없는 민족으로 간주하고 있었다. 그는 모든 형태의 독립운동을 부정하고 민족성 개조를 통한 민족역량을 기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미국인으로 산 서재필 vs 일본인 된 윤치호 서재필은 1922~1927년 갑자기 국내 일간지와 잡지 등에 다시 등장하여 식민지배에 순응할 것을 권유했다. 그는 식민지화의 책임을 전적으로 대한제국 지배층의 무능과 민중의 무지에서 찾았고, 독립운동과 같은 정치적 활동보다는 경제적 활동에 주력할 것을 권고했다. 아울러 그가 1937~1938년에 미주 한인 2세를 위해 ‘신한민보’에 영문으로 기고했던 ‘MY DAYS IN KOREA’(나의 조선 시절)를 보면 대부분 조선왕조의 무능과 부패를 비판하고 개화파를 정당화하면서 오히려 일본을 매우 높이 평가했다. 그러던 그는 태평양전쟁이 일어나자 일본과 맞서 싸우는 미국 시민으로서 반일로 돌아섰다. ●윤치호, 日전쟁 승리를 백인인종차별 극복 간주 한편 윤치호는 일본의 대륙 침략이 시작되고 내선일체 정책이 강화되는 시기에 적극적인 친일 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는 자신이 ‘일본 국민’이라는 전제하에서 한국 기독교의 ‘일본화’를 주도했으며 대표적 친일단체의 핵심 인물로 활동했다. 1945년에는 마침내 일본 귀족원 칙선의원에까지 선임되었다. 그의 친일은 일제의 탄압에 의한 강요라기보다는 당시의 조건 속에서 조선 민족의 현명한 선택이라는 확신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일본이 구미 열강에게 승리하는 것을 황인종이 백인의 인종차별주의를 이긴 것으로 열광하였다. 그는 철저한 반공주의자로서 일본이 소련에 승리하기를 기원하였다. 나아가 내선일체를 통해 민족차별 정책이 철폐될 것이라 기대하고 있었다. 1945년 해방이 되었을 때, 서재필은 점령국 미국의 시민으로서 미군정 고문으로 극진한 대우를 받았다. 대한민국이 수립되는 과정에서 그를 대통령으로 추대하는 세력도 있었다. 그는 이승만의 단정 노선에 대해 반대하면서 통일국가 수립을 주장하였다. 하지만 결국 고국에 머무르기보다는 미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택했다. 하지만 윤치호는 더는 공적 활동을 하지 않았지만 죽기 몇 달 전에 미군정과 이승만에게 ‘한 노인의 명상록’이라는 편지를 보냈다. 거기서 그는 한국에는 민주주의가 불가능하며 공산주의에 대해 반대한다는 것, 그리고 조선의 해방은 항일민족운동의 결과가 아니라 연합국의 승리를 통해 이루어진 것이며 친일파를 사면하여 민족단결을 이루자고 호소하고 있다. 윤치호가 1945년 12월 사망하여 1947년 7월 미군정 고문으로 귀국한 서재필과의 재회는 영원히 이루어지지 못했다. ●말년 볼 것인가 vs 인생 전체 평가할 것인가 서재필은 전 생애에 걸쳐 새로운 도전에 대해서 열정적으로 대응하였다. 그는 어느 누구도 따라 하기 힘들 만큼 도전과 성취를 이루어낸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항상 자신은 안전지대에 머물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투쟁과 희생을 요구하던 사람이기도 했다. 그에게서 민족의 지도자가 지녀야 할 희생적 자세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사실 서재필이 서재필로 산 것은 불과 27세까지였고 나머지는 필립 제이슨으로 살았다. 그는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스스로 버린 사람이었다. 심지어 그는 해방 후 부모의 묘소조차 참배하지 않았다. 그의 묘지명에는 분명히 필립 제이슨이라고 적혀 있다. 따라서 그가 스스로 택한 필립 제이슨의 유해를 억지로 국내로 모셔와 국립 현충원에 안장하는 것은 분명히 그가 원하지 않았던 일이었다. 반면에 윤치호는 모든 판단을 함에 지나치게 신중했고 근대 시민윤리를 실천하려고 노력했다. 많은 고난을 겪으면서 국내에서 교육과 종교 활동을 통해 조선인들의 민족성을 개조하여 근대 국민으로 발전할 것을 희망했다. 그는 안창호를 누구보다 아끼고 후원했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당시 조선인들이 필요로 한 민족 저항의 지도자가 되는 길을 거부하고 본격적인 친일 활동을 통해 결과적으로 친일파를 대표하는 인물이 되었다. 두 사람은 함께 활동했던 기간이 합해서 5년이 안 되지만 대체로 비슷한 문제의식을 느끼고 같은 입장에서 행동하였다. 서로 다른 공간에서 살았지만, 두 사람이 식민지 조선을 바라보는 시각과 일본에 대한 선망과 동경도 비슷했다. 그러나 서재필은 긴 세월을 자의에 의해 미국인으로서, 윤치호는 타의에 의해 일본인으로 살았다. 그 결과 오늘날 서재필은 과분한 대우를 받고 있으며 반면에 윤치호에 대해서는 매도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윤치호의 친일을 옹호할 마음은 없지만, 그것만으로 그의 인생을 단죄하기에는 안타까운 연민의 심정이 든다. 하지만 그의 친일을 ‘협력’ 또는 ‘친일 민족주의’라고 정당화하는 데는 동의할 수 없다. 한 인물의 굴곡에 찬 긴 인생을 한마디로 규정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역사학자로 살아가면서 점점 마음속으로 느끼게 된다. 주진오(상명대 역사콘텐츠학과 교수)
  • [특파원 칼럼] 일본은 방사능을 극복할 수 있을까/이종락 도쿄특파원

    [특파원 칼럼] 일본은 방사능을 극복할 수 있을까/이종락 도쿄특파원

    지난 15일 도쿄 특파원으로 구성된 공동 취재단이 일본 후쿠시마 제1원자력 발전소의 상황을 보도한 뒤 기자에게도 여러 문의가 잇따랐다. 과연 일본은 괜찮은 것인가, 왜 이렇게 원전 사고 수습이 늦어지느냐, 후쿠시마에서 사람이 살 수 있느냐 등의 질문이다. 결론을 먼저 얘기하면 후쿠시마 제1원전은 현재 멜트다운(노심융해)이 발생했던 1∼3호기의 압력용기 하부 온도가 38∼68도의 추이를 보이며 냉온 정지 상태에 있다. 방사성물질의 비산도 억제돼 원전으로부터 20㎞ 내 구역도 대부분 일반인의 연간 피폭 한도인 1밀리시버트(mSv)를 오르내리고 있다. 원전에서 230여㎞ 떨어진 도쿄 등에서는 평상시의 활동이 가능한 상태다. 도쿄는 사고 이전의 방사능 수치인 시간당 0.047마이크로시버트(μ㏜) 수준으로 되돌아왔다. 서울(0.11μ㏜)의 절반 수준이다. 그럼 왜 이렇게 사고 수습이 늦을까. 성격 급한 한국인 같아서는 특공대라도 동원해 당장 원전 주변을 말끔히 치울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다. 더디기만 한 일본을 이해할 수 없다는 의견이 많다. 실제로 1986년 우크라이나 체르노빌에서는 폭발한 원자로를 콘크리트로 묻어 버리는 걸로 사고를 수습했다. 사고 당시 옛 소련 정부는 체르노빌 원전(당시 이름 레닌 원전) 4호기에서 나오는 방사상물질을 막기 위해 원전을 가로·세로 100m, 높이 165m의 콘크리트(5000t)로 매장하는 ‘석관’(石棺) 처리를 했다. 내년까지 2만t의 철제 덮개로 낡은 콘크리트 석관을 다시 덮는 2차 작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하지만 인근을 폐쇄해 ‘죽음의 땅’으로 만들었다. 원전 반경 30㎞ 내는 일반인들이 살 수 없는 소개구역이자 출입통제구역으로 지정했다. 체르노빌 원전에서 불과 3㎞ 떨어진 인구 5만명의 계획도시인 프리퍄티는 폐허가 됐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30년이 걸리든 40년이 걸리든 후쿠시마 원자로를 해체해 안전을 확보하려 하고 있다. 원자로를 안정적으로 냉각시키고 방사성물질의 외부 방출을 봉쇄한 뒤 오염된 물질을 제거하는 제염 작업과 건물 해체 작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땅이 좁은 일본으로서는 원전 주변에서도 사람들이 다시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방안이다. 언제쯤 사고 수습이 완전히 이뤄질까. 일본 정부는 내년 말까지 4호기의 사용후 핵연료 저장조에 있는 1500여개의 연료봉을 꺼낸다는 계획이다. 멜트다운으로 원자로 내 핵연료가 격납용기에 녹아내린 1∼3호기의 핵연료는 향후 25년간에 걸쳐 회수할 예정이다. 일본 정부와 언론은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핵연료를 회수하고 원자로를 해체하는 데 최장 40년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 사고 수습 작업의 시사점은 무엇인가. 방사능 오염 지역을 어떻게든 복구해 사람이 살게 만들겠다는 노력이다. 실제로 원전 인근을 포함해 후쿠시마 전역에서는 방사능 오염 물질 제거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마을 구석구석에 가라앉아 있는 방사성물질을 최대한 제거해 주민들이 다시 돌아와 살 수 있는 터전으로 만들겠다는 꿈을 버리지 않고 있다. 이런 차원에서 요즘 일본 정부와 경제·산업계는 방사능을 제거하는 장비를 개발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방사능 제거용 로봇 개발도 한창이다. 일본이 방사능 오염 제거 작업을 성공적으로 마쳐 인근 마을에 사람들이 다시 살게 된다면 이것은 세계 최초의 일이 된다. 일본인들이 원전 사고의 아픔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가지 않는 어려운 도전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 이후 냉각된 한·일 관계로 일본을 살갑게 볼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역사의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리고 있는 우익들의 행태를 볼 때마다 부아가 치밀어 오른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방사능과 싸워 이기려는 일본인들은 평가해야 한다. 우수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방사능 오염 제거 장치를 개발해 싸우는 우직한 모습을 말이다. jrlee@seoul.co.kr
  • ‘민주화 항쟁 겪은 386’ 50대초반 표심 새 변수로

    ‘민주화 항쟁 겪은 386’ 50대초반 표심 새 변수로

    ‘이번 대선에서는 50대 초반 꽃중년을 주목하라.’ 12·19 대통령 선거를 두 달 앞두고 50대의 ‘꽃중년 표심’이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2002년·2007년 대선 때까지 주로 보수로 분류되던 50대가 재편되고 있기 때문이다. 50대 초반의 선택이 40대와 함께 대선 승패의 키를 쥐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18대 대선의 유권자 구성은 16·17대 대선과 판이하게 달라졌다. 세대 대결이 본격적으로 표출된 2002년 16대 대선 이후 이번 대선은 세대 간 분열이 가장 극명해질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기존 세대 간 균형추 역할도 대체로 ‘몸은 보수, 머리는 진보’로 불리는 50대 초반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올 대선의 두드러진 표밭 변화는 50대 이상 유권자가 확대되고, 지역적으로는 수도권인 경기도와 부산·경남(PK)이 확장됐다는 점이다. 17일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주민등록상 예상 선거인 수는 4043만 6231명. 이 중 50대는 769만 5382명으로 17대의 581만 1899명보다는 32.4%가, 16대(452만 7243명)와 비교하면 70.0%가 늘어났다. 올해 60대 유권자도 833만 1718명으로 17대 680만 4126명보다 22.4%가 늘었다. 저출산 고령화로 50대 이상 유권자는 17대보다 341만 1075명 증가했다. 이번 대선의 20대(만 19세 포함)와 30대 유권자는 각각 736만 2194명, 819만 6987명으로 17대와 비교해 각각 56만 8185명(7.2%), 43만 878명(5.0%) 감소했다. 대체로 진보 성향을 띠는 20·30세대는 16대 이후 계속 줄어드는 추세다. 정치권은 18대 대선에서 몸집이 커진 50대에 갓 진입한 50대 초반 유권자의 변화에 주목하고 있다. 기존의 이념 구도에서 동떨어진 ‘젊어진 50대’라는 점에서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이번 대선은 50대 중반 이전과 이후를 획일적 기준으로 판단할 수 없게 됐다.”며 “보수로 보던 50대가 분열되면서 세대 표심이 야권에 유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50대 초반을 ‘확장된 40대’로 정의했다. 대선 지형도 지역주의 구도의 영향력이 상당 폭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새누리당·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후보가 모두 영남을 기반으로 하는 만큼 지역주의가 완화되고 세대 간 표심 경쟁이 최대 변수가 될 것이라는 예측이다. 윤희웅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조사분석실장은 “50대 초반은 민주화 항쟁을 경험한 386세대가 50대에 새로 진입했다는 점, 2002년 진보·중도층이던 이 세대가 노무현 후보를 선택했다는 점에서 과거 50대와는 다른 세대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윤 실장은 “20~30대의 진보 성향과 60대 이상의 보수 표심이 갈리는 지점에 있는 40대와 50대 초반의 지지를 누가 더 끌어오는지에 승패가 달린 선거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다른 변화는 수도권인 경기도와 PK 유권자 확대로 요약된다. PK는 박·문·안 세 후보가 모두 지지율 전쟁을 벌이는 최대 승부처다. 경기도 유권자 규모는 16대 694만 4934명에서 17대 822만 2124명, 올해는 1000만명(주민등록 기준) 이상으로 늘고, PK 유권자도 기존보다 200만명 가까이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 민주당은 신규 유입된 경기도 유권자의 상당수가 도시민이고 화이트칼라라는 점에서 야권에 유리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부쩍 몸집을 키운 PK에 공을 들이고 있다. 여야 모두 이번 대선 판세를 50만표 안팎의 초박빙 접전으로 점치고 있어 최대 변수는 또다시 투표율로 귀결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빅3’의 세대별 지지율이 아직은 요동치고 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리얼미터가 지난 4일과 16일 실시한 다자구도의 세대별 조사에서 박 후보는 50대와 60대에서 상승 국면을 보였다. 4일 조사에서 50대 44.9%, 60대 54.6%를 기록한 박 후보는 16일 조사에서는 50대 56.6%, 60대 63.6%로 크게 늘었다. 문 후보는 30대와 40대에서 반등세를 보인 게 특징이다. 문 후보는 30대 30.0%, 40대 23.3%(4일 여론조사)에서 16일에는 30대 32.2%, 40대 27.0%를 기록했다. 20대에서 47.0%(4일 조사)로 여야 후보보다 월등히 높은 지지율을 기록한 안 후보는 16일 조사에서도 20대 42.0%, 30대 41.9%로 세대 표심을 선점하는 양상을 나타냈다. 안동환기자 ipsofacto@seoul.co.kr 이영준기자 apple@seoul.co.kr
  • 亞 3국, 200조원 군비경쟁… 中 날고 日 뛰고 韓 걷고

    亞 3국, 200조원 군비경쟁… 中 날고 日 뛰고 韓 걷고

    지난해 한국, 중국, 일본 등 동북아시아 3국이 200조원대 군비 경쟁을 벌인 것으로 나타났다. 영유권 분쟁 등으로 동북아가 새로운 화약고로 급부상하는 상황에서 치열한 군비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한국의 국방비 지출은 일본의 절반, 중국의 3분의1 수준이어서 중국과 일본 등 인접 강대국들에 압도당하고 있는 형국이다. 미국 워싱턴의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가 15일(현지시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 일본, 인도, 한국, 타이완 등 아시아 전체 국방 예산의 87%를 차지하는 ‘빅5’ 국가의 2011년 국방비 지출 총액은 2240억 달러(약 248조원)로 10년 전에 비해 2배나 증가했다. 보고서는 올해 처음으로 아시아의 군사비 지출이 유럽을 추월할 것으로 전망했다. 아시아의 군비 지출 증가는 특히 최근 5년간 집중됐다. 보고서는 최근 들어 한국, 인도, 일본이 모두 고성능 전투기를 집중적으로 사들이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중국의 군비 증가세가 무섭다. 중국의 공식 국방비는 2011년 899억 달러로 2000년(225억 달러)보다 4배가 늘었고 이 중 신형 무기 연구·개발(R&D) 비용이 73억 달러에서 258억 달러로 증가했다. 5개국의 전체 국방 예산 중 중국의 비중은 2000년 19.9%에서 지난해 40.2%로 치솟았다. 보고서는 특히 중국의 실제 국방비 지출은 연구소가 인용한 수치보다 클 수 있으며 5개국 전체 국방 예산의 60%에 이를 수도 있다고 밝혔다. 실제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는 중국의 지난해 국방비가 1422억 달러인 것으로 추정했다. 중국은 아시아 국방비 지출 1위였던 일본을 2005년 처음 추월한 이후 갈수록 격차를 벌리고 있다. 특히 2008년 금융위기 때 다른 4개국의 국방비 지출은 감소했으나 중국만은 증가세가 누그러지지 않았다. 이제 세계에서 중국보다 국방비 지출이 많은 나라는 올해 6700억 달러를 사용한 미국뿐이다. 일본은 2000년 400억 달러에서 2011년 582억 달러로 45.5% 늘었다. 한국은 2000년 171억 달러에서 2011년 286억 달러로 67.3% 늘어 증가폭은 일본에 비해 컸다. 최근 2년간 국방비 증가도 중국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군비 총액 면에서 여전히 중국과 일본에 한참 뒤처져 있는 처지다. 인도의 국방비는 2000년 251억 달러에서 370억 달러로 같은 기간 47.4% 증가했고 타이완은 83억 달러에서 101억 달러로 21.7% 늘었다. CSIS 연구원 가이 벤아리는 “아시아·태평양의 불확실한 안보 상황과 해상 영토 분쟁이 각국의 군비 지출을 가속시킬 수 있다.”고 전망했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수도권 서남부 광역철도 ‘급제동’

    수도권 서남부지역의 교통난 해소를 위해 추진 중인 신안산선과 인덕원~수원 복선전철 등의 내년도 사업예산이 기획재정부로부터 전액 삭감돼 사업차질이 불가피해졌다. 9일 경기도에 따르면 도는 수도권 서남부지역의 광역교통망인 신안산선(700억원)과 인덕원~수원(40억원), 신분당선 연장선(광교~호매실·120억원) 복선전철 사업과 관련해 국비 860억원을 내년도 정부예산에 반영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한푼도 반영되지 않았다. 신안산선은 2018년까지 3조 1293억원을 들여 안산축(중앙~광명~여의도) 27.75㎞, 시흥축(시흥시청~광명) 9.48㎞, 송산차량기지~원시 3.98㎞ 등 총연장 41.2㎞에 15개역이 건설될 예정이다. 2단계 사업인 여의도~서울역(5.47㎞) 구간은 9688억원을 투입, 2022년 완공 예정이었다. 2019년까지 2조 4735억원을 들여 인덕원과 수원시 장안구 파장동, 광교를 거쳐 화성시 동탄을 잇는 총연장 35.3㎞의 인덕원~수원 복선전철 역시 사업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신분당선 연장선(2014~2019년) 2단계 사업인 광교~호매실(11.14㎞) 구간도 공사기간이 최소 1년 이상 늘어나게 됐다. 도 관계자는 “정권 말 신규 사업의 억제 분위기 때문에 경기도가 신청한 내년도 국비 예산 모두 삭감된 것으로 알고 있다. 국회 본회의 때 지역구 의원들의 도움을 받아 예산 심의과정에서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주말 박스 오피스] 광해, 800만 돌파… 4주째 정상

    [주말 박스 오피스] 광해, 800만 돌파… 4주째 정상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가 관객 800만명을 돌파하며 4주째 박스오피스 정상을 이어갔다. 8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이병헌 주연의 ‘광해’는 지난 5~7일 전국 867개 상영관에서 84만 9657명을 동원해 흥행 순위 1위를 지켰다. 지난달 13일 개봉한 이 영화의 누적관객수는 822만 665명으로 ‘도둑들’에 이은 또 한편의 1000만 돌파 영화가 나올 것인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어 할리우드 액션 영화 ‘테이큰2’가 지난 주말 전국 507개 관에서 27만 1536명을 모아 전주에 이어 2위를 지켰다. 지난달 27일 개봉한 이 영화는 11일 만에 누적관객수 209만 4450명을 기록했다. 지난 3일 개봉한 김수로 주연의 코믹 호러 ‘점쟁이들’은 479개 관에서 26만 4857명을 모아 3위에 올랐다. 현재까지 누적 관객수는 61만 7356명이다. 이어 할리우드 애니메이션 ‘메리다와 마법의 숲’이 478개 관에서 18만 8319명을 동원해 전주에 이어 4위를 지켰으며 현재까지 총 96만 3045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김명민 주연의 첩보극 ‘간첩’은 295개관에서 7만 3398명을 모아 전주보다 두 계단 떨어진 5위를 기록했다. 지난달 20일 개봉한 이 영화의 누적관객수는 125만 5736명이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열린세상] 응답하라, 종편/김성철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

    [열린세상] 응답하라, 종편/김성철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

    케이블 TV 채널인 tvN이 제작 방영한 드라마 ‘응답하라 1997’이 이른바 ‘응답하라 신드롬’을 일으킨 채 얼마 전에 종영됐다. 드라마의 시대적 배경인 1997년 전후에 젊은이였던 지금의 중년들뿐만 아니라 현재의 젊은이들도 ‘응답하라’는 주문에 엄청나게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드라마의 최고 시청률이 케이블 TV 자체 드라마로서는 전무후무한 기록인 9.47%를 달성했다. ‘응답하라 1997’이 만들어 낸 90년대 복고 열풍도 90년대에 인기가 있었던 가요, 영화, 책 등 대중문화 전반으로 확산됐다. 케이블 TV 채널의 이런 성공과 달리 2010년 말 화려하게 출범한 TV조선, 채널A, JTBC, MBN 등 4개의 종합편성채널은 시청자나 정부의 기대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글로벌 콘텐츠 시장을 개척하고 미디어 다양성을 제고한다는 취지에서 방송통신위원회는 종편 허가와 함께 종편의 연착륙을 지원하는 정책을 대대적으로 펼쳤다. 상업방송임에도 불구하고 종편에 지상파 채널과 가까운 10번대 채널을 배정했고, 종편이 광고를 직접 판매하고 중간광고를 편성할 수 있게 했고, 국내 제작 프로그램을 40%만 편성해도 되도록 했다. 그러나 이런 지원책에도 불구하고 출범한 지 10개월이 지난 종편의 성과는 매우 초라하다. 시청률 조사회사 AGB닐슨 미디어리서치에 따르면 종편 4사의 평균 시청률이 모두 1%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9월의 경우 MBN이 평균 시청률 0.86%를 기록하여 지상파를 포함한 전체 채널 가운데 5위를 차지했으나 다른 종편 3사의 시청률은 이보다 낮은 수준이었다. 종편의 시청률 부진은 곧 광고 부진으로 이어졌고 이는 바로 프로그램 제작비의 감소로 연결되었다. 1991년에 개국한 SBS가 ‘모래시계’라는 대박 드라마를 통해 자리 잡았던 경험을 재현하기 위해 종편이 제작했던 몇몇 대작들은 조기에 종영하거나 실패했고, 결국 종편에서는 재방송 비율이 상승하고 생방송 또는 본방송의 대부분은 제작비가 상대적으로 적은 뉴스와 시사보도물에 집중되어 사실상 종합편성의 모습을 상실하는 상황을 초래했다. 신문사를 대주주로 하는 종편이 방송시장에서 사업적으로 성공하지 못한 것보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종편이 미디어의 공적 가치나 사회적 책임에도 소홀하다는 것이다. 종편이 창의적이거나 의미가 있는 프로그램을 통해 미디어 다양성에 기여하는 것은 언감생심이고 오히려 지나치게 선정적인 소재로 비판의 대상이 된 경우가 많다. 실제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방송심의 의결 현황자료에 따르면 종편은 올해 상반기에 연예오락 부문에서 시청자 사과 조치를 포함해 모두 14건의 법적 제재를 받았고, 행정지도는 10건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종편은 뉴스보도에서도 신문의 정치적인 편향성이 그대로 나타난다는 지적도 있다. 또한 종편이 외주제작사와의 관계에서 상생적인 거래를 추구하기보다는 불공정 계약이나 제작비 후려치기 등의 잘못된 관행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불만도 많다. 융합 미디어 환경에 부적합한 칸막이 규제를 지양하고 글로벌 콘텐츠 기업을 육성하기 위해 방송통신위원회가 시도하고 있는 방송법시행령 개정도 대형 PP를 견제하기 위한 종편의 반발로 난항을 겪고 있다. 그런데 종편이 방송법시행령 개정에 반대하는 것은 결국 글로벌 콘텐츠 기업으로 성장한다는 스스로의 목표를 부정하고 미디어 시장의 변화에도 역행하는 이기적인 행태라고 할 수 있다. 종편은 석연치 않은 출범 배경이나 심사과정, 출범 후 주어진 정책적인 혜택을 고려할 때 정부나 시청자의 기대에 120% 부응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현재 종편은 방송사업적인 성과나 미디어의 사회문화적인 역할 측면에서 공히 제대로 응답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종편이 조만간 환골탈태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정부는 종편에 주어진 정책적인 지원을 회수하고 종편이 시장원리에 따라 자연스럽게 처리되도록 해야 한다. 변화하느냐 아니면 죽느냐, 종편의 응답을 촉구한다.
  • [서울 플러스]

    12일까지 예비사회적기업 모집 중랑구(구청장 문병권) 12일까지 ‘서울시 예비사회적기업 지정 희망 업체(단체)’를 모집한다. 지정 기업에는 일자리 창출 사업 및 사업개발비 지원사업의 신청 자격이 부여되고 경영컨설팅 및 공공기관 우선구매 권고 등 혜택이 주어진다. 일자리창출추진단 2094-2923. 中 비파 연주자, 해외교류 홍보 구로구(구청장 이성) 중국 중앙민속악단 비파 연주가인 자오충(37·여)을 5일 해외교류 홍보대사로 위촉한다. 중국 1급 연주가로 미국 카네기홀, 일본 삿포로홀, 그리스 아크로폴리스극장, 이탈리아 로마극장 등 국제무대에서 실력을 뽐낸 주인공이다. 지역경제과 860-3417. 5일 ‘가족과 함께하는 별보기’ 양천구(구청장 추재엽) 5일 오후 6시~9시 30분 양천공원에서 ‘가족과 함께하는 별보기’ 행사를 갖는다. 별자리를 살펴보는 시간과 천체망원경 관측, 스펙트로스코프 만들기 등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이화여대·양정중학교 동아리의 협조를 받는다. 교육지원과 2620-3110. 식당 남은 음식 한접시에 모으기 영등포구(구청장 조길형) 스스로 먹은 음식, 마지막 한 접시에, 일(하나)로 모으자는 ‘스마일 운동’을 펼친다. 남은 음식 재사용에 대한 주민들의 불안감을 해소하고 누구나 안심하고 음식점을 이용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서로 얼굴을 찌푸리지 않도록 하자는 취지다. 위생과 2670-4717.
  • [위기의 전세 유랑객] 서울서 수도권으로 밀려난 전세난민… 다음엔 또 어디로

    [위기의 전세 유랑객] 서울서 수도권으로 밀려난 전세난민… 다음엔 또 어디로

    서울 용산에 직장이 있는 조성태(37) 과장의 출근 시간은 오전 6시 30분. 경기 김포 장기동 전셋집에서 회사까지 승용차로 출근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1시간 30분 정도다. 퇴근 시간은 대략 오후 6시 30분~7시. 집에 도착하면 시계 바늘은 얼추 밤 9시를 가리킨다. 업무상 승용차를 탈 수밖에 없는 김씨는 출·퇴근에만 서너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셈이다. 조 과장이 앞서 전세를 살았던 강서구 공항동 아파트의 주인은 지난 3월 전세계약이 끝나자 보증금을 2억원에서 2억 5000만원으로 올렸다. 7000만원의 빚이 있던 조 과장은 결국 같은 보증금으로 전셋집을 찾다 보니 서울 밖으로 쫓겨날 수밖에 없었다. 조 과장은 일단 위기를 넘겼지만 생활비가 더 들어간다. 직장이 멀어진 탓에 승용차 기름값 지출이 3배 가까이 많아졌다. 조 과장은 “한번 차를 끌고 나가면 기름값이 3만원쯤 드는 것 같다.”면서 “야근이나 회식을 하는 날은 택시비로 3만원이 나간다.”고 말했다. 그는 “귀가가 늦어지면서 늘어난 외식비까지 합치면 한 달 생활비로 30만원 이상 더 지출한다.”며 씁쓸해했다. 그는 “아내가 올해 둘째를 갖겠다던 계획을 포기했다.”며 한숨을 지었다. 경기 부천에서 서울 강남구 논현동으로 출근하는 이대용(37)씨는 전셋집이 2년마다 회사와 더 멀어졌다. 2007년 11월 동작구 사당동에서 1억 1000만원 전세로 신혼생활을 시작한 김씨는 2009년 구로구 아파트(전세 1억 4500만원)를 거쳐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1억 7500만원)로 옮겨 왔다. 돈을 모아도 시원찮은데 길에다 뿌리는 비용만 자꾸 늘고 있다. 이씨는 “부천도 전셋값이 오르고 있어 걱정”이라면서 “2년마다 이렇게 쫓겨다니느니 확 집을 사버릴까 생각도 들지만 아이들이 커가면서 드는 돈이 한두 푼이 아니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며 말했다. 한꺼번에 수천만원의 전세 보증금을 올려 줄 수 없는 서민들이 서울을 벗어나면 경제적 여건이 나아질 것이라는 생각은 오판이다. 이들처럼 직장을 서울에 두고 장거리 출·퇴근을 하다 보면 피곤함은 그만두고 월 생활비가 40만~50만원은 더 들어간다. 출·퇴근을 맞추지 못해 일자리를 잃는 경우도 허다하다. 28일 ‘닥터아파트’에 따르면 2년 전 2억 2234만원이던 서울 평균 전셋값이 올해는 2억 6591만원으로 4357만원이나 올랐다. 월급쟁이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전셋값 폭등으로 ‘전세 난민’이 증가했다는 것은 통계가 뒷받침한다. 2010년 1월 서울 시민은 1021만 3153명에서 지난달에 1006만 3258명으로 13만 8398명 감소했다. 반면 이 기간 경기 성남의 인구는 95만 3606명에서 97만 7243명, 고양은 92만 6283명에서 96만 3502명, 부천은 86만 5376명에서 87만 848명으로 늘었다. 고양시 덕양구 행신동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하고 있는 강경희(47·여)씨는 “지난해부터 마포와 서대문, 여의도에서 살던 사람들이 많이 옮겨 오고 있다.”면서 “2010년 1억 3000만원이면 구하던 85㎡ 아파트 전세가 요즘에는 1억 6000만~1억 6500만원까지 올랐다.”고 전했다. 수도권으로 옮긴 세입자들은 구직난에 직장을 옮기지 못하고 장거리 출·퇴근을 감수해야 한다. 서울시 산하 서울연구원에 따르면 15㎞ 이상 장거리 출·퇴근자가 강남권의 경우 2006년 31만 2717명에서 2010년 39만 5184명, 광화문 등 도심권은 25만 3762명에서 27만 515명으로 증가했다. 통상 거리가 15㎞가 넘어가면 출·퇴근에 1시간 이상이 소요된다. 경기도에서 서울로 들어오는 사람수도 늘었다. 출근 시간대(오전 7~9시)에 경기도에서 서울 강남권으로 들어오는 사람의 수도 2006년 하루 19만 9988명에서 2010년 22만 7689명으로 2만 7000여명이나 증가했다. 이 시간대 경기도에서 광화문 등 도심권으로 들어오는 사람 수는 2006년 13만 7577명에서 2010년 14만 5917명으로, 여의도로 들어오는 사람은 1만 9769명에서 2만 4835명으로 증가했다. 윤혁력 서울연구원 교통시스템연구실장은 “경기에서 서울로 출근하는 사람이 늘어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면서 “전세 난민의 증가는 개인의 경제적 비용과 생활 불편의 증가는 물론 교통·환경문제 등으로 이어져 결국 국가·사회적 비용을 키우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고 지적했다. 무엇이 이런 현상을 낳았을까. 2010년 이후 서울 지역 집값 변동은 급격한 하락세를 그리고 있지만 전셋값은 급한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집값에 비례해 전셋값이 움직이던 기존 주택시장 양상과는 사뭇 다르다. 집값 상승을 기대할 수 없다는 심리가 팽배해지면서 집을 사는 것보다 전세를 선호하는 세입자가 크게 증가하고, 전세의 ‘수요·공급 균형’이 깨지면서 보증금만 큰 폭으로 오르는 이상 현상이 널리 퍼진 탓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집주인은 집값이 떨어져 세입자를 구하지 못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융자를 끼고 구입한 집값이 큰 폭으로 떨어져 보증금을 빼주지 못하는 ‘역(逆)전세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소형 아파트나 연립주택 중에는 설령 집을 처분하더라도 융자금을 상환하고 남은 돈으로는 보증금을 빼주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서울 구로구 신대방동 연립에 전세를 살고 있는 최재훈(38)씨는 전세 기간이 끝나고도 2년째 같은 집에서 살고 있다. 집주인이 너그러워서가 아니다. 세 들어 사는 집이 가격 하락으로 은행 융자금과 보증금을 빼주지 못하는 ‘깡통주택’이 돼 버렸기 때문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은 대출금과 전세보증금이 집값의 80%를 넘는 깡통주택이 전국적으로 18만 5000가구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전세를 옮길 생각을 못 하기는 세입자도 마찬가지다. 지난달 전국 평균 아파트 매매가 대비 전세보증금 비율(전세가율)은 61.7%까지 올랐다. 전체적으로 전셋값이 오르면서 ‘렌트 푸어’들은 어디로 이사 가도 부담되기는 마찬가지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차라리 보증금을 올려주고라도 기존 전셋집에 눌러 사는 세입자가 증가했다. 당장 전세보증금을 올려 주지 못할 경우 인상분만큼 월세를 내는 ‘반전세’도 유행하고 있다. 경제 사정 변화에 따라 집을 갈아 타는 이른바 ‘필터링 효과’가 사라지면서 전세 물건이 동이 나고 동맥경화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문헌 중앙공인중개사 대표는 “가을 이사철임에도 도봉구 쌍문동 1800가구 단지의 월 이사 건수가 손에 꼽을 정도”라며 “전세가 실종되고 시장 기능이 마비돼 서민들만 두 번 울고 있다.”고 말했다. 여유 있는 집주인들의 얄팍한 심리도 전세난을 불러왔다. 낮은 금리가 계속되면서 전세를 월세로 돌리는 집주인이 늘어났다. 전세보증금을 받으면 금융소득이 연 3~4%에 불과하지만 월세로 돌리면 수익률은 두 배 이상 커진다. 월세는 전세보증금의 0.6~1% 금리를 적용해 받는다. 월세로 돌리면 수익률이 적어도 7% 이상 된다. 이래저래 무주택자들의 허리만 휘고 있는 것이다. 그럼 과연 대안은 없는가. 경기 성남 판교신도시 봇들마을에 살고 있는 신상수(49)씨. 신씨가 살고 있는 집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공급한 10년짜리 공공임대 아파트(59㎡)이다. 신씨를 만족시킨 것은 저렴한 보증금만이 아니다. 적어도 10년간 이사 걱정 없이 살 수 있다는 게 큰 기쁨이다. LH에 따르면 신씨의 임대 조건과 주변 일반 주택 임대료를 비교하면 공공임대 아파트 임대료가 얼마나 저렴한지 구분된다. 이 아파트는 임대보증금 5880만원에 월 임대료 40만원이다. 월 임대료는 법정 인상 범위에서 결정된다. 주변 전세 시세의 70% 선에 불과하다. 무엇보다 2년마다 마음 졸여 가며 전셋집을 옮겨야 하는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 ‘전세 난민’의 증가는 주거생활 불안은 물론 안정적인 직장 생활도 어렵게 한다. 특히 도심 일용직 근로자는 서울에서 수도권으로 쫓겨나면서 일자리까지 잃는 경우가 많아 자활을 어렵게 한다. 전문가들은 전세 난민을 막고 서민들의 주거안정을 위해서는 장기 공공임대주택 공급 확대가 해답이라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전국의 임대주택은 총 145만 9513가구에 불과하다. 이 중 공공임대 아파트는 101만 9195가구이고, 10년 이상 장기임대주택은 91만 가구뿐이다. 장기 공공임대주택 확대의 걸림돌은 재원 확충이다. LH와 서울도시개발공사(SH)의 자금 사정이 여유롭지 않다. 단기간 대량 공급도 불가능하다. 또 공공임대주택에 들어갈 수 없는 차상위 계층에 대한 주거복지도 고민해야 한다. 남상오 주거복지연대 사무총장은 “서민들을 전세 난민으로 내몰지 않기 위해서는 공공임대주택 공급 확대가 시급하다.”며 “지금은 주택 문제를 경제적 논리, 공급만으로 해결하기보다 복지 차원으로 접근할 때”라고 말했다. 아울러 지방자치단체의 공공임대주택 공급 확대 인식 변화도 요구된다. 류찬희 선임기자·김동현기자 moses@seoul.co.kr
  • [프로야구] 핵잠 떠오르자 롯데 무너졌다

    [프로야구] 핵잠 떠오르자 롯데 무너졌다

    김병현(넥센)이 갈 길 바쁜 롯데를 5연패의 수렁에 몰아넣었다. 김병현은 20일 목동에서 벌어진 프로야구 롯데와의 경기에 선발 등판해 6이닝 동안 삼진 5개를 솎아내며 7안타 1실점으로 막았다. 지난달 1일 문학 SK전 이후 불펜에서 뛰다 50일 만에 선발 등판한 김병현은 모처럼의 호투로 6월 26일 목동 두산전 이후 86일 만에 선발승(시즌 3승)을 일궜다. 김병현은 최고 구속 147㎞를 찍었고 투구 수는 87개에 불과했다. 무엇보다 사사구가 없는 제구력이 돋보였다. 넥센은 3-1로 이겨 3연승을 달렸다. 넥센은 KIA를 끌어내리고 5위로 올라섰다. 반면 플레이오프(PO) 직행을 노리는 3위 롯데는 지난 14일 광주 KIA전부터 올 시즌 팀 최다인 5연패의 늪에 허덕이며 2위 SK에 1경기 차로 밀려났다. 또 4위 두산에도 0.5경기 차로 쫓겼다. 넥센은 0-0이던 2회 2사 후 장기영의 시원한 우월 2점포로 기선을 제압했다. 넥센은 4회 선두타자 오윤의 안타에 이은 2루 도루와 포수의 송구 실책으로 맞은 3루 찬스에서 박헌도의 희생플라이로 1점을 보탰고 5회 1사 1·3루에서 강정호의 희생플라이가 터져 3-0으로 달아났다. 롯데는 1-3으로 뒤진 8회 무사 만루, 9회 다시 2사 만루의 천금 같은 찬스를 잡았지만 후속 타자들이 병살타와 삼진으로 무기력하게 물러나 땅을 쳤다. 삼성은 광주에서 배영수의 역투와 조동찬의 3타점 2루타에 힘입어 KIA를 5-0으로 완파했다. 삼성은 정규리그 우승을 향한 매직넘버를 9로 줄였다. 선발 배영수는 6이닝 동안 삼진 5개를 낚으며 4안타 2볼넷 무실점으로 틀어막아 11승째를 챙겼다. 5연승을 질주하던 KIA 선발 김진우는 7이닝 동안 삼진 8개를 솎아내며 5안타 3볼넷 1실점으로 역투했으나 타선의 불발로 5패(8승)째를 당했다. 5회 이승엽의 적시타로 귀중한 선취점을 뽑은 삼성은 8회 2사 만루의 찬스에서 이지영의 밀어내기 볼넷에 이은 조동찬의 ‘싹쓸이’ 2루타로 4득점해 단숨에 승부를 갈랐다. 잠실에서는 한화가 유창식의 호투를 앞세워 LG를 3-1로 누르고 2연승했다. 김민수 선임기자 kimms@seoul.co.kr
  • 아동·청소년 상대 ‘청소년 성범죄’ 10년새 11배↑

    아동·청소년을 상대로 성범죄를 저질러 보호 처분을 받은 만 19세 미만 청소년의 수가 10년 전의 11배로 늘었다. 또 형사사건 불구속 재판이 늘면서 피의자 구속 상태의 재판 비율이 10년째 하락했다. 19일 대법원이 발간한 ‘2012 사법연감’에 따르면 지난해 19세 미만 아동·청소년을 성폭행 또는 성추행한 혐의(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로 소년재판에 넘겨져 보호 처분을 받은 청소년은 모두 690명으로 집계됐다. 같은 범죄로 보호 처분을 받은 청소년은 2002년만 해도 60명이었으나 2004년 108명, 2008년 189명 등으로 꾸준히 늘다가 2010년에는 532명까지 증가했다. ●청소년 범죄 최다 건수는 ‘절도’ 여기에 성폭력특별법, 성매매방지특별법이 더해진 3대 성범죄 관련 특별법 위반으로 지난해 보호 처분을 받은 청소년 수는 모두 1836명이었다. 600명이었던 2002년보다 200% 이상 증가했다. 성폭력특별법 위반으로 보호 처분을 받은 청소년은 지난해 1005명으로 2002년(477명)의 2.1배, 성매매방지특별법을 위반해 보호 처분을 받은 청소년은 141명으로 2002년(63명)의 2.2배가 됐다. 지난해 소년 보호 처분 사건 중 청소년이 가장 많이 저지른 범죄는 ‘절도’였다. 소년보호재판을 받은 전체 청소년 4만 6497명의 40.7%인 1만 8947명이 이에 해당된다. 이어 ‘폭력 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이 21.5%(9986명)이고 무면허 오토바이 운전 등 ‘도로교통법 위반’이 6.4%(2963명)였다. ●형사 공판 10명 중 1명 구속기소 지난해 형사공판 접수 인원은 모두 27만 7744명으로 이 가운데 2만 8326명(10.2%)이 구속 기소됐다. 10명 중 1명꼴로 구속된 상태에서 재판에 넘겨진 셈이다. 접수 인원 대비 구속 인원을 뜻하는 구속 기소 비율은 2002년 41.4%였으나 2004년 31.1%, 2006년 20.3%, 2008년 14.4%, 2010년 11.8% 등으로 10년째 하락하고 있다. 지난해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사람은 32명으로 전년(70명) 대비 절반 이상 줄면서 2002년 이후 최소를 기록했다. 박성국기자 psk@seoul.co.kr
  • OECD 34개국 통계로 본 한국의 고용·과학기술의 현주소

    OECD 34개국 통계로 본 한국의 고용·과학기술의 현주소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우리나라 취업자 수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7번째로 많이 늘어났지만 노동생산성은 여전히 하위권에 그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근로시간 역시 가장 길지만 임금은 중간 정도에 머물고 있다. 우리나라 고용의 ‘빛과 그림자’를 여실히 드러내주는 통계다. ●주당 평균 근로시간은 ‘최장’ 기획재정부가 16일 내놓은 ‘한국 고용의 현주소: OECD 국가와 주요 고용지표 비교’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의 주당 평균 근로시간은 44.6시간으로 34개 OECD 회원국 중 최고 수준이었다. 금융위기 이후인 2008~2011년 취업자 증가 수는 41만 5000명으로 터키, 멕시코, 독일 등에 이어 7번째였다. 우리나라보다 생산가능인구가 많은 일본이나 영국, 프랑스 등보다 증가 폭이 더 컸다. 실업률(3.5%)과 6개월 이상 장기실업자의 비중(6.8%)은 OECD 회원국 중 낮은 편이었다. 연평균 실질임금은 3만 5406달러로 OECD 회원국 가운데 중간 정도다. 반면 2010년 기준 취업자당 노동생산성은 23번째에 불과했다. 바꿔 말하면 ‘긴 노동시간으로 낮은 생산성을 메우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경제활동참가율 역시 66.2%로 OECD 평균(70.6%)에 못 미쳤다. 특히 청년층과 25~54세 여성의 참가율이 저조했다. 경제성장률 대비 취업자 수 증가율을 뜻하는 고용탄성치도 0.29로 독일(0.93), 호주(0.86), 프랑스(0.47) 등보다 낮았다. ‘고용 없는 성장’ 추세가 선진국들보다 더 심각하다는 얘기다. ●과학기술 질적역량은 낙제 과학기술산업 평가에서는 전자정부와 무선 브로드밴드 가입자 수에서 1위를 기록했다. 반면 국제공동연구나 국제공동특허 등에서는 최하위권으로, 질적으로는 여전히 미흡한 것으로 드러났다. OECD가 지난 13일(현지시간) 공개한 ‘2012년 OECD 과학기술산업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회원국 중 한국과 프랑스만이 연구개발(R&D) 투자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한국의 기업 R&D 지출은 2001년부터 10년간 연간 9.5%씩 증가했다. 한국은 22개 지표 중 전자정부와 무선 브로드밴드 가입자 수에서 1위를 차지하는 등 5개 지표에서 OECD 회원국 중 상위 5위 안에 포함됐다. 반면 해외 공동연구 논문 비율은 39위, 해외 공동특허 비율은 42위, 총고용 중 과학기술직 비율은 33위로 최하위권에 머물렀다. 이두걸·박건형기자 douzirl@seoul.co.kr
  • [일본통신] ‘재일교포의 별’ 철인 가네모토의 퇴장

    [일본통신] ‘재일교포의 별’ 철인 가네모토의 퇴장

    ”히로시마가 이기면 환호성이 들리는 곳은 히로시마현 뿐이었다. 하지만 한신이 이기면 일본 열도가 들끊는다.” 2003년 히로시마 도요 카프에서 한신 타이거즈로 이적한 가네모토 토모아키(44)는 새로운 팀에서 뛰는 느낌을 이렇게 말했다. 한신이 가네모토를 데려온 것은 그의 출중한 실력도 실력이지만 ‘타도 거인’의 선봉장에 상징적 인물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일본 프로야구는 동쪽과 서쪽에 숙명의 라이벌 팀이 있다. 간토 지역을 대표하는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간사이 지역을 대표하는 한신 타이거즈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하지만 요미우리가 21회의 일본시리즈 우승 기록과 전국구 인기 구단으로 명성을 유지하고 있는 반면, 한신의 일본시리즈 우승 횟수는 고작 1차례에 불과하다. 하지만 인기라면 막상막하를 다툴 정도로 이 두팀의 라이벌 의식은 대단하다. 올 시즌 전반기 63경기까지 홈경기 관중수를 보면 요미우리의 평균 관중은 39,826명 그리고 한신이 37,740명으로 그 뒤를 잇고 있다. 하지만 팀에 대한 충성도에 있어서는 한신이 요미우리를 압도한다. 올해 한신은 12개 팀 가운데 유일하게 최소 관중 경기에서 2만명(21,851)을 웃도는 관중 동원력을 자랑했다. 요미우리의 한 경기 최소 관중은 13,181명이다. 올해 한신의 성적이 좋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경기장에 항상 2만명 이상은 들어왔다는 말이다. 가네모토가 한신으로 이적한 첫해(2003) 한신은 만년 하위권이라는 불명예를 벗어던지며 센트럴리그 우승을 차지하는 감격을 맛봤다. 이적 첫해 우승을 차지한 가네모토에게 ‘서쪽의 대장’이라는 화려한 수식어가 붙은 것도 이쯤이었다. 히로시마 출신의 촌놈이 재일교포가 가장 많이 밀집해 있는 오사카의 심장으로 우뚝선 것이다. 말 그대로 가네모토는 재일교포의 별이었다. 그 자신이 재일교포 3세(가네모토의 한국 이름은 김지헌)이기도 했지만 간사이 지역을 대표 할 만한 카리스마와 타의 모범이 되는 경기력은 한신의 큰 자랑거리였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하면 가네모토의 국적은 일본이다. 히로시마 시절이었던 2001년 일본 여성과 결혼해 일본 국적을 취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류상의 국적은 피의 색깔은 바꾸지 못한다. 가네모토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철인’과 ‘근성’이다. 연속 경기 풀 이닝 출전(1492경기=13,686이닝) 기록은 한미일 통틀어 최고이며, 880경기 연속 4번타자 출전(일본 기록) 그리고 가네모토가 가장 자랑스러워 하는 기록중 하나인 1,002타석 무병살타 기록 역시 일본 기록으로 남아 있다. 젊은시절 거의 무명에 가까웠던 가네모토는 아마추어 때부터 유명했던 기요하라 가즈히로(은퇴)를 동경해왔다. 고교시절 가네모토는 1년 선배격인 기요하라와 구와타의 PL학원(오사카 가쿠엔고교)이 고시엔대회에서 상종가를 달리며 인기몰이를 하고 있을때 기요하라의 모습을 구경하러 갔을 정도로 엄청난 팬이었다고 한다. 또래들에 비해 야구에 소질도 없었을뿐더러 힘든 훈련을 소화하지 못하고 야구를 그만 두기를 거듭했던 가네모토 입장에서는 고시엔 스타로 명성이 자자했던 기요하라가 동경의 대상이 된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프로지명을 받지 못했던 가네모토는 지인의 도움으로 어렵게 대학(동북복지대학)에 들어간 후 뼈를 깎는 자기 성찰을 통해 일취월장한 기량을 선보이게 된다. 일본대학 야구선수권에서 3년연속 팀을 준우승으로 이끌었던 그는 마지막 기회였던 4학년때 관서대학을 결승에서 물리치며 결국엔 우승을 차지한다. 별볼일(?)없었던 그의 야구인생에 있어 터닝포인트가 되었던 순간이었다. 1992년 고향팀인 히로시마 도요 카프에 입단한 가네모토는 탄탄대로를 달릴것 같던 기대와는 달리 공격과 수비 모든면에서 함량미달이란 평가를 받는다. 하체를 이용하지 못하는 타격폼, 그리고 부정확한 송구 능력은 외야수로서 매리트가 없었던 선수였기 때문이다. 이 당시 관련자료를 찾아보면 그때 가네모토의 별명이 ‘두더지 죽이기’ 였다고 한다. 송구만 하면 어깨에 힘만 들어가 공을 땅바닥에 패대기쳤기 때문이다. 프로의 높은 벽을 실감한 그는 이후 하체의 근력강화는 물론 타격시 하체를 이용하는 방법에 온 힘을 쏟았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1994년을 기점으로 히로시마의 주전선수가 된 가네모토는 이후 에토 아키라(히로시마의 전설적인 강타자)의 요미우리 이적을 기회 삼아 2000년부터 팀의 4번자리를 꿰찼다. 그리고 이해에 생애 처음으로 30홈런-30도루를 달성하기도 했다. 2001년에는 1,002 타석 연속 무병살타의 일본신기록까지 작성한 그는 공수주 3박자는 물론 찬스에서 가장 믿음직스러운 타자로 우뚝서게 된다. 2002년을 끝으로 FA(자유계약선수) 자격을 얻어 한신 타이거즈로 이적한 가네모토는 이적 첫해인 2003년에 한신을 18년만에 리그 우승으로 이끄는 등 맹활약을 펼쳤다. 비록 다이에 호크스(현 소프트뱅크)에게 일본시리즈 패권(3승 4패)을 내주긴 했지만 3경기 연속 홈런포를 쏘아올리며 총 4개의 일본시리즈 홈런을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영원할것 같았던 가네모토의 전성기는 2005년 리그 MVP를 끝으로 기록이 하향세로 접어든다. 물론 연속 경기 풀이닝(1,492경기)출전이란 대기록을 수립하며 기네스북에도 그 이름을 올리는등 ‘철인’으로서 존경의 대상이긴 하지만 말이다. 2010년 야쿠르트와의 개막전에서 어깨부상을 당한 가네모토는 결국 4월 18일 경기(요코하마전)를 끝으로 연속 경기 무교체 출전기록도 중단됐다. 가네모토는 2010년 전경기에 출전했다. 하지만 144경기를 뛰고도 규정타석에 들지 못한 것은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12년연속 전경기 출전 기록을 이어가기 위해 대타로 출전한 경기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한 시대를 풍미했던 가네모토가 12일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내년에 한신은 팀 리빌딩을 통해 새로운 팀 컬러로 변신 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깨부상을 늘 안고 사는 가네모토가 팀 전력에 있어 도움되지 못하며 그 자신 역시 후배들에게 길을 터줘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었을거라 추측된다. 2005년 정규시즌 MVP에 올라 최고의 한해를 보냈던 가네모토는 올해까지 21년을 뛰며 현재까지 통산 타율 .287(8829타수 2532안타) 474홈런 1517타점의 대기록을 남겼다. 안타까운 것은 통산 500홈런을 눈 앞에 두고 은퇴, 그리고 일본시리즈 우승 감격을 한번도 맛보지 못했다는 점이다. 가네모토 역시 은퇴 발표 기자회견에서도 이 점을 현역 생활의 아쉬움으로 언급했다. 일본야구통신원 윤석구 http://hitting.kr/
  • 삼성전자 3분기 매출 51조·영업익 7조 전망

    삼성전자 3분기 매출 51조·영업익 7조 전망

    삼성전자가 갤럭시S3의 판매 호조에 힘입어 올 3분기에 역대 최대인 ‘매출액 50조원, 영업이익 7조원’을 달성할 것으로 보인다. 9일 재계와 금융정보업체 애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3분기 영업이익 추정치는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78% 증가한 7조 5679억원이다. 2분기 영업이익도 6조 7241억원으로 역대 최대였지만, 7조원을 넘지는 못했다. 3분기 매출액 전망치도 24.5% 늘어난 51조 3703억원으로 2분기 기록(47조 5969억원)을 뛰어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송종호 대우증권 연구위원은 “갤럭시S3의 3분기 판매량을 애초 1500만대 이상으로 예상했는데 더 잘 팔리고 있다.”고 평가했다. LG전자도 새 스마트폰 옵티머스G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면서 3분기에 2586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둘 것으로 예상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흑자전환을 하는 것이다. 다만 매출액은 12조 9786억원으로 0.6% 증가하는 데 그칠 것으로 추정됐다. 한편 현대자동차는 계절적 비수기에다 파업 후유증이 더해져 기대보다 부진할 것으로 예상됐다. 3분기 영업이익 추정치는 2조 262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3.4% 증가, 매출액도 20조 6463억원으로 8.9% 각각 늘어날 것으로 예상됐다. 반면 철강과 조선, 화학 업종은 3분기에도 실적 부진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포스코의 3분기 영업이익 전망치는 1조 1510억원으로 10.6% 줄어들 것으로 예상됐다. 류지영기자·산업부 종합 superryu@seoul.co.kr
  • [부고] 원로가수 조미미 ‘바다가 육지라면’ 남기고 하늘로

    [부고] 원로가수 조미미 ‘바다가 육지라면’ 남기고 하늘로

    ‘바다가 육지라면’을 부른 가수 조미미(본명 조미자)씨가 9일 오전 11시 서울 구로구 오류동 자택에서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65세. 1960~70년대 트로트 황금시대의 주역이었던 고인은 한두 달 전까지도 KBS ‘가요무대’에 출연했다. 이 때문에 갑작스러운 부음 소식을 듣고 빈소가 차려진 경기도 부천 성모병원으로 달려온 지인들은 믿기지 않는다며 안타까워했다. 유족 측에 따르면 고인은 한 달 전 급성 간암 말기 판정을 받고 입원 치료를 받아왔다. 1947년 전남 목포 출생인 고인은 1965년 동아방송 주최 민요가수 선발 콩쿠르인 ‘가요백일장’에서 김세레나, 김부자씨와 함께 발탁돼 데뷔했다. 1965년 ‘떠나온 목포항’으로 데뷔한 뒤 1969년 ‘여자의 꿈’으로 이름을 널리 알렸다. 이후 50여장의 앨범을 통해 ‘바다가 육지라면’ ‘선생님’ ‘먼데서 오신 손님’ ‘단골손님’ ‘눈물의 연평도’ ‘개나리 처녀’ 등 수많은 히트곡을 남겼다. 애수 어린 정조를 아름다운 음성에 담아내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고인은 1973년 6월 당시 재일교포 사업가인 안성기씨와 서울에서 결혼한 뒤 일본으로 건너가 가정을 꾸렸다. 결혼 후에도 틈틈이 귀국해 1976년 ‘연락선’ 등을 발표하며 MBC 10대 가수에도 선정됐다. 이후 가수 활동은 접고 두 딸을 키우며 가정주부로 지내왔다. 그러다 1986년 긴 공백을 깨고 이산가족을 소재로 한 노래 ‘임진각에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2010년 일본에서 귀국해 그해 KBS ‘가요무대’ 25년 특집 방송에 출연해 옛 팬들의 향수를 달래기도 했다. 현재 경주 나정해수욕장에 ‘바다가 육지라면’, 서산 왕산포구에 ‘서산갯마을’, 서귀포시에 ‘서귀포를 아시나요’ 등 고인이 부른 히트곡 세 곡의 노래비가 세워져 있다. 태진아 대한가수협회 회장은 “불과 한두 달 전에 ‘가요무대’에 함께 출연했는데 투병 중인지 전혀 몰라 갑작스럽다.”면서 “1970년대 초 서대문 영등포 등의 극장쇼 무대에서 자주 뵌 선배로 대한가수협회를 이끌어가느라 애쓴다고 격려해 주던 따뜻한 선배였다.”고 안타까워했다. 유족으로는 안애리·애경씨 등 두 딸이 있다. 발인은 11일 오전 6시. (032)340-7301.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부고]

    ●이환수(전 상업은행 이사)씨 별세 주영(새누리당 국회의원)주홍(인하대 교수)성애(약사)씨 부친상 6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8일 오전 7시 (02)3010-2631 ●구본건(언론인회 원로회원·전 대한여행사 대표이사)씨 부인상 관모(미국 거주)인모(〃)정모(〃)씨 모친상 6일 분당 서울대병원, 발인 8일 오전 7시 (031)787-1507 ●이정의(해병 중령)선의(목사)씨 모친상 6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발인 8일 오전 8시 (02)2227-7572 ●이영수(신우회계법인 전무)씨 부친상 6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8일 오전 6시 (02)3010-2237 ●최혁재(NH농협 과장)효영(SUONO 대표)씨 부친상 오중석(SK텔레콤 매니저)박종문(삼성 미래전략실 커뮤니케이션팀 차장)씨 장인상 6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발인 8일 오전 7시 30분 (02)2227-7547 ●장용규(자영업)용화(경북 칠곡상공회의소 사무국장)용휴(자영업)씨 모친상 6일 칠곡 혜원성모병원, 발인 8일 오전 9시 (054)972-1405 ●박완규(기호일보 중부권취재본부장)씨 모친상 6일 산본 원광대병원, 발인 8일 오전 8시 (031)394-4438 ●김태진(전 한국농업유통법인중앙연합회 고문)씨 별세 6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발인 8일 오전 9시 (02)2227-7550 ●임창균(한국건설기술인협회 상근부회장)씨 부친상 6일 서울성모병원, 발인 8일 오전 8시 30분 (02)2258-5940 ●박부옥(안산시청 과장·안산도시공사 파견)씨 장인상 6일 안산장례식장, 발인 8일 오전 9시 (031)438-4546 ●김재교(삼연엔지니어링 부사장)재형(춘천MBC 사장)씨 모친상 유외숙(서울여대 겸임교수)봉현숙(MBC미술센터 국장)씨 시모상 6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8일 오전 8시 (02)3010-2265 ●전복수(KBS 해설위원)경록(장수산업 대표)경식(장수산업 대표)경삼(명문부동산 대표)씨 부친상 서형원(주 일본대사관 경제공사)박광재(파티마의원 원장)김병호(제일포장중기 대표)씨 장인상 6일 순천의료원, 발인 8일 오전 8시 (061)759-9186
  • 개포주공 4단지 재건축 확정

    재건축 소형평형 비율을 놓고 논란이 됐던 강남구 개포주공 4단지 재건축안이 소형주택을 30% 확보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는 ‘강남구 개포주공4단지 재건축정비계획(안)’을 조건부 통과시켰다고 5일 밝혔다. 이에 따라 3329가구 중 60㎡ 이하의 소형주택을 999가구(장기전세 210가구) 공급하게 된다. 시는 개포지구의 역사성을 보존할 수 있도록 주민들을 위해 제공될 공원과 도서관 부지에 기존 아파트 일부를 철거하지 않고 그대로 남겨 주민편의시설 및 개포역사관으로 활용한다. 앞서 개포주공 4단지 재건축추진위원회는 소형주택을 854가구로 계획했으나 도시계획위원회 소위원회 자체 권한으로 30%까지 끌어올렸고, 주민들도 이를 수용했다. 시는 또 지난달 보류했던 강남구 상아3차아파트와 서초구 삼호가든4차아파트의 재건축안을 조건부 가결했다. 구역면적 1만 6447.9㎡의 상아3차는 용적률 299.99%, 최고층수 31층, 총 370가구(임대 49가구)로 재건축된다. 구역면적 2만 7429㎡의 서초삼호가든4차는 용적률 299.86%, 최고층수 35층, 총 746가구(임대 120가구)로 계획됐다.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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