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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섶에서] ‘나·無’/최태환 논설실장

    해거름이다. 안국동·북촌길이 고즈넉하다. 은행잎이 후두둑 떨어진다. 이기남 전시회를 찾았다. 나무그림 전시회다. 단순하고 형해화된 나무들이다. 하지만 강렬하다. 사물의 영역보다 혼과 정신의 줄기처럼 다가온다. 이 화백은 어느날 비로소 나무를 나무로 바라보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동안 나무는 복잡하게 얽힌 무의식속에 갖혀 있었단다. 그는 “지독한 몸살을 앓고 난후 나무가 ‘나·無’로 읽힐 수 있음을 알았다.”고 했다. 그는 젊다.386세대다. 하지만 현대회화의 트렌드에 얽매이지 않는다. 전통, 향토의 질박함을 추구했다. 물감에 모래를 섞어 독특한 질감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의식의 시원(始原)에 다가가려는 몸부림이었다. 이번 전시는 그의 성숙한 정신세계의 표현이다. 전시회 준비 막바지때 그의 화실을 들렀다. 작업실 가득 널린 유화와 스케치들, 자유로운 그의 영혼이었다. 머리카락과 손톱 여기저기엔 물감들이 박혀있다. 넉넉한 품성의 잔영처럼 편안하다. 떠나는 가을이다. 스스로 없음(나·無)을 새삼 상기시킨 그가 고맙다. 최태환 논설실장 yunjae@seoul.co.kr
  • [李대통령 취임 6개월] ‘6월항쟁’ 미경험 세대 개헌 찬성률 높아

    [李대통령 취임 6개월] ‘6월항쟁’ 미경험 세대 개헌 찬성률 높아

    ■개헌 찬반여부 물어보니 대학·대학원생 84% “헌법 바꿔야” 서울신문이 이명박 대통령 취임 6개월을 맞아 한국리서치에 의뢰,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국민 대다수가 개헌을 찬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 중 73.3%가 ‘일부 헌법 조항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답해 개헌에 대한 열망이 높게 나타났다. 현행 헌법을 유지하자는 의견은 15.8%에 그쳤다.‘87년 체제’인 현행 헌법이 20년이 넘어 수명을 다했음을 지적하는 대목이다. 개헌에 대한 찬성 입장은 연령·지역·종교·정당 등을 떠나 모든 계층에서 높게 조사됐다. 눈에 띄는 것은 남성(77.2%)이 여성(69.6%)보다 높았고 지역별로 서울(73.8%)과 인천·경기(74.0%) 거주자의 응답 비율이 높았다. 흥미로운 점은 87년 6월항쟁을 경험하지 않은 세대와 계층에서 개헌에 대한 욕구가 강하다는 점이다. 자신의 직업을 학생(대학·대학원)이라고 밝힌 응답자 중 84.0%가 개헌에 찬성한다고 답해 직업군 중 가장 높은 비율을 보였다. 또 연령별로 보더라도 6월 항쟁이 일어난 87년 이후 대학을 다닌 20대(80.7%),30대(84.1%)가 6월 항쟁을 이끌었던 ‘386세대’인 40대(74.2%)보다 개헌 찬성 의견이 높았다. 하지만 개헌 시기에 대해서는 ‘시간을 두고 추진해야 한다.’(77.4%)는 응답이 ‘시기를 늦출 필요가 없다.’(17.8%)는 응답보다 월등히 높았다. 개헌에 대한 공감대는 형성돼 있지만 점진적으로 여유를 가지고 추진해야 한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이는 정치권에서는 18대 국회 개원과 함께 개헌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선호하는 정부 형태는 대통령제 38%·내각제 28% 順 국민들은 우리나라에 가장 적합한 정부 형태로 대통령 중심제를 꼽았다. 응답자의 38.5%가 그같이 답변했고, 뒤를 이어 의원내각제(27.9%), 이원집정부제(23.4%)의 순서였다. 대통령이 국방과 외교를 담당하고 총리가 내치(內治)를 담당하는 이원집정부제를 변형된 대통령제라고 본다면 61.9%가 대통령제를 선호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제2공화국에서 1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 동안만 의원내각제를 경험한 탓에 이 제도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또 남북 대치 상황에서 대통령을 중심으로 하는 강력한 정치체제를 바라는 국민 인식에 따른 것으로도 해석된다. 이와 함께 정치에 대한 불신이 팽배한 가운데 국민들이 의회의 권력을 강화하는 내각제를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대통령 중심제를 선호한 응답은 학력이 높을수록 많았다. 남성(47.9%), 서울 거주자(47.5%), 국정운영 긍정평가자(47.4%), 한나라당 지지자(47.7%)일수록 대통령 중심제에 대한 선호가 높았다. 반면 의원내각제는 광주·전라(32.6%), 국정운영 부정평가자(30.9%), 민주당 지지자(34.8%)일수록 선호했다. 대통령 중심제 중에서는 4년 중임제(57.0%)가 5년 단임제(40.8%)보다 많은 지지를 받았다.1인 장기 독재를 예방하기 위해 5년 단임제를 택한 현행 헌법의 손질이 필요한 대목이다.5년 단임제는 87년 6월항쟁 당시 여당인 민정당의 6년 단임제와 후보단일화를 염두에 둔 야당의 4년 중임제를 절충해 마련된 것이다. 구동회기자 kugija@seoul.co.kr ■대통령 권한 어떻게 “현 권한 유지” “축소해야” 38% 팽팽 우리 국민은 대통령의 권한을 현 수준으로 유지하거나 축소하는 것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 수준이 좋다고 답한 응답이 37.8%,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해야 한다는 응답이 37.3%였다. 대통령의 권한을 지금보다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은 22.1%에 머물렀다. 대통령제를 택한 국가 중 우리나라 대통령의 권한이 상대적으로 강한 점을 반영한 결과로 보인다.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해야 한다는 의견은 이명박 정부의 비판층에서 많이 나왔다. 민주당(48.1%), 민주노동당(56.6%), 진보신당(65.3%) 등 야당 지지자들과 광주·전라(48.3%) 거주자들 사이에서는 대통령 권한을 축소하자는 의견이 우세했다. 반대로 한나라당 지지자(36.6%)와 대구·경북(31.7%) 거주자들은 상대적으로 대통령의 권한을 강화하자는 의견이 많았다. 선거에서 정·부통령을 함께 선출하는 러닝메이트 제도에 대해서는 별다른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정·부통령을 함께 선출하자는 응답은 49.5%, 현재처럼 대통령만 선출하자는 의견은 45.5%였다. 이런 결과는 우리 국민들이 러닝메이트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선진국 중 정·부통령제를 운영하는 곳은 미국이 유일해 마땅한 비교 대상이 없다는 것도 한 요인으로 꼽힌다. 이 문항에 대해서도 여야 지지층에 따라 의견이 갈렸다. 대구·경북(50.2%), 부산·울산·경남(50.4%)은 지금처럼 대통령 한 명만 선출하는 제도를 선호하는 의견이 많았다.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 [서울신문 창간 104주년 특집-세대를 말하다] 인터넷의 힘… 연령초월 ‘P세대’ 등장

    ■ 문화 “서태지가 컴백한다.”는 소식에 ‘서태지 세대’의 반응은 둘로 나뉘었다. 하나는 ‘태지 오빠’의 부활에 대한 감격, 또 하나는 가버린 세월의 무상함에 대한 한탄이었다. 1992년 데뷔와 함께 한국 대중음악에 혁명을 일으켰던 ‘서태지와 아이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신세대로 사회 전면에 등장한 서태지 세대도 어느새 30대 중반의 나이로 접어들었다. “텔레비전 광고에 서태지가 나오기에 아들 앞에서 왕년의 회오리춤 실력을 뽐냈다가 ‘아빠 뭐하는 거야, 쩔어!’라는 핀잔만 들었어요. 그런데 ‘쩐다’는 게 무슨 뜻이죠?(쩐다:‘기가 막히다, 심하다’ 정도로 해석되는 은어로 상대방이나 상황이 아주 좋을 때나, 반어법으로 아주 나쁠 때도 쓰는 말)”아직 아빠가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주려다가 아들과의 세대 차이만 절감했다는 김모(36)씨의 얘기다. 김씨는 “솔직히 그때는 왜 상표 안 뗀 벙거지 모자를 그렇게 죽도록 썼는지 모르겠다. 지금 생각하면 우스울 뿐이지만 당시에는 지저분하다며 타박하는 부모님이 구식으로만 느껴졌다.”고 말했다. 모든 세대는 고유한 문화를 공유한다. 그리고 그 문화는 대개 성인이 될 무렵의 경험이 주가 된다. 기성세대는 언제나 젊은 세대를 별종으로 인식하지만, 그들 역시 그 순간에는 별종이었다. 젊은이들이 본격적으로 “너희 참 유별나다.”라는 말을 듣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청년 문화가 출현했을 때부터였다. 청바지와 통기타, 포크송, 생맥주, 미니 스커트, 장발, 나팔바지 등으로 상징되는 당시 청년 문화는 유별나다 못해 독재정권의 단속과 통제로까지 이어졌다. 71학번인 오현희(56·여)씨는 대학시절을 돌아보며 “지금 보면 촌스럽기도 하지만, 우리는 시위하면서도 낭만이 있었다.”면서 “경찰과 대치하면서도 서로 고생한다는 말도 해주고, 폭력을 쓰지 않았다.”고 말했다. 1980년대의 청년문화는 대학의 운동권 민중문화로 기억된다. 자유분방함은 사라지고 비장함이 앞서던 시기였다. 이우현(48)씨는 “당시는 인권도, 자유도 없는, 저항할 수밖에 없는 시대였다.”면서 “선배 세대처럼 낭만을 찾지도, 후배 세대처럼 물질적 풍요의 혜택을 보지도 못한, 어떻게 보면 불행한 세대지만 온몸으로 우리 역사의 격변기를 겪은 세대라는 자부심도 있다.”고 말했다. 1990년대 들어 ‘오렌지족’과 ‘서태지 세대’ 등 이른바 신세대가 나타났다.90년대 중반에는 ‘X세대’가 등장한다. 전자매체에 의해 양육된 최초의 세대인 이들은 자기중심적이고 관념의 틀에 얽매이지 않는 세대로 완전히 다른 ‘신인류’로 취급될 정도였다. 젊은 세대의 문화와 특성을 규정하려는 노력은 N세대(네트워크 세대)와 W세대(월드컵 세대)를 넘어 P세대(Passion, 열정·힘·참여의 세대)로 이어졌다. 하지만 P세대는 다른 알파벳 세대와 달리 특정 젊은 연령층만을 특정하는 것이 아니라 2003년 이후 한국 사회의 변화를 주도하는 17∼39세를 의미한다. 이 세대는 386세대의 사회의식과 X세대의 소비문화,N세대의 라이프 스타일 등이 융합된 특성을 지닌다. 서지현(27·여)씨는 “X세대 이후로 무슨무슨 세대라는 말로 젊은 세대를 규정하려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 같은데, 사실 20대 젊은이들은 Y세대로 정의되지만 그와 함께 N세대이고, 동시에 W세대이기도 하다.”면서 “인터넷을 다룰 수 있는 세대는 변화에 적응하는 속도도 빠르기 때문에 나보다 어린 친구들에게 큰 세대 차이를 느끼지는 않지만, 반대로 내가 나이가 들어도 기성세대와의 차이는 쉽게 좁혀지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홍성태 상지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세대갈등 문제가 본격적으로 나온 것은 1970년대 초 청년문화가 등장하면서부터인데 최근에는 2002년 대선이 계기가 됐다.”면서 “이로 인해 기성세대가 대표하는 보수와 젊은이들이 대표하는 진보의 대립양상이 격해진 측면이 있지만, 이렇게 차이가 드러나는 방식을 통해 사회가 발전한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서울신문 창간 104주년 특집-세대를 말하다] 전문가들이 말하는 세대간 갈등 원인과 극복 방안

    [서울신문 창간 104주년 특집-세대를 말하다] 전문가들이 말하는 세대간 갈등 원인과 극복 방안

    세대 차이는 당연한 것일까. 동시대에서 같은 경험을 하는 사람들의 인식이 왜 세대에 따라 차이를 보일까. 그리고 이런 세대 차이는 모두 갈등으로 표출되는 것일까. 서울신문은 홍성태 상지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박명호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이동연(국립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학과 교수) 문화연대 문화사회연구소 소장을 초청해 창간기념 좌담을 갖고 세대의 차이와 갈등에 대해 논하고, 이를 사회발전의 원동력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방법 등에 대해 들어봤다. ●세대는 어떻게 구분되는가. 박명호 교수 문화적 차이라는 부분이 정치학적 면에서 보면 정치적 태도나 선택에 있어서 차이로 인식된다. 정치학적으로 보면 10년대로 잘라서 연령효과, 세대효과와 관련해 논의된다. 연령효과라는 것은 나이가 들수록 보수화되는 것이다. 정치사회화를 겪은 시기가 언제냐에 따라서 특정 나이대는 특정 경험을 공유할 수밖에 없고, 공유된 인식이 이후에 연령이 올라감에도 불구하고 계속 유지된다고 하는 것이 세대효과라는 부분이다.386세대가 이전·이후 세대에 비해 진보적인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고 시간이 지나 연령대가 올라가도 이것이 지속되는 것이 좋은 예다. 이동연 소장 세대론에 대한 여러가지 의견이 있지만 정치적·이데올로기적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세대를 관통하는 지점을 놓고 보면 전쟁을 기준으로 나누는 큰 구분이 있다. 전후 세대는 다시 냉전세대와 탈냉전 세대로 구분한다. 유럽으로 보면 1968년, 우리나라로 보면 1987년 민주항쟁과 1992년 서태지의 등장 등 몇가지 중요한 분기점이 세대론의 대상이고 함의로 볼 수 있다. 그것이 세대들을 말하는 데 상당히 중요하다. 홍성태 교수 실증이 더 필요한 부분이긴 하지만 세대를 크게 구분해 보면 ▲50대 후반 이상 ▲30대 후반∼50대 초반 ▲10대 후반∼30대 중반이다. 첫번째 세대는 전쟁과 박정희식 경제성장, 조국경제화 등을 겪었다.1960∼70년대에 특히 한국경제가 굉장히 크게 변화하면서 물질적 변화를 바탕으로 한 청년문화도 나타난다. 한국 사회라는 이름은 같아도 사회의 질이 달라진 것이다.30대 후반에서 40대 후반은 1970∼80년대를 지나면서 접한 고성장 경험이 크다.1990년대 이후의 신세대는 지금의 20대와도 상당부분 유사하다. 사회적·정치적 선택 면에서 3개의 세대가 바탕이 있는 것 같다. ●시대는 변해도 세대문화는 변하지 않는가. 박 교수 전체적으로 보면 연령효과도 배제할 수 없다. 사회전체적으로 중도보수화되면서 386을 중심으로도 중도보수화라는 자리바꿈 현상이 일어났다. 지속적인 변화인지 일시적인 시대효과에 따른 변화인지에 대해 생각해 본다면, 현재로서는 시대효과로 봐야 할 것이다. 정치적 선택이 그때그때 바뀌고 주기가 짧아졌다고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소장 KBS 앞에서 북파공작원들이 난동을 피운 다음날 가봤는데 고등학교 3학년생이 있었다. 처음 왔다고 하는데 전날 난동을 보고 열받아서 나왔다고 하더라. 그런 어르신들, 정치권들이 10대가 보기에는 쿨하지 않은 것이다. 쿨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10대가 착시현상에서 자유롭기 때문인 것 같다. 기대를 하고 있지만 기대를 할 수 없는 부분을 알기 때문에 착시현상으로부터 자유롭고 시야가 넓어졌다는 것이다. 교육적 위압감 등으로 어린 세대이긴 하지만 기댈 곳이 더 이상 없다는 인식을 한 것 같다. ●20대가 보수화되고 있다는 것인가. 홍 교수 지난 대선에서 20대와 60대가 가장 비슷한 형태를 보였다는 점에서는 가장 대립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세대가 비슷했기 때문에 세대개념이 무의미해졌다. 박 교수 총선과 대선 결과만 보면 양극에 속해 있는 세대가 비슷한 양상을 보인 것인데 지금은 요동을 치는 상황이다. 총선이 끝난 지 3∼4개월밖에 안 됐는데 벌써 총선효과가 다르게 나타난다. 홍 교수 똑같이 이명박 대통령을 지지한 20대와 60대가 경제부문에서는 유사하지만 내용 면에서는 차이가 난다.60대는 독재도 좋다는 것이고 20대는 이에 반감이 있다. 경제적인 보수주의를 받아들이는 이유는 합리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떤 부분에선 부합하지만 어떤 면에선 상극을 보이는 것이다. 박 교수 연령대가 아닌 경험이 세대 특성을 구분짓는다. 월드컵 등의 계기가 있다. 홍 교수 사회학적으로 보면 연령효과보다 세대효과가 더 크다. 미국에서 가장 진보적인 세대는 60대 후반의 반전세대다. 오히려 밑으로 내려갈수록 보수적이다. 우리의 20대가 공유하고 있는 세대적인 경험은 고성장 이후 저성장 시대에서 오는 경제적 압박과 그에 따른 좌절감이다. 그래서 20대를 전반적으로 평가할 때 보수화보다는 합리화, 다원화의 관점에서 보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이 소장 20대가 효율성의 원칙에 의해 정치적 선택을 하는 것 자체가 보수적이라는 생각이 든다.1980년대 유럽에서 느꼈던 신보수주의화와 유사해 보이는 것인데, 어제 가르치는 학생이 친구들과 이야기하던 중 촛불집회를 옹호했더니 친구들이 미국산 쇠고기 먹기 싫으면 호주산 먹으면 되고, 컴퓨터와 휴대전화 더 팔아서 경제가 나아지면 되는 것 아니냐고 했다고 한다. 이는 60대가 갖고 있는 것과는 다른 생각이다. 하지만 그 자체가 합리적인가, 합리적 보수인가 생각해 보면 신보수주의로 볼 수 있다. ●세대 갈등을 또 다른 힘으로 만들기 위한 방법은. 이 소장 세대 문화에 대한 연구, 평가라고 할 때 상수와 변수가 있다고 본다. 고정변수로서 세대의 특성이 있고, 변수로서는 세대를 바라보는 관점이 있는데 이것이 세대효과다. 시대가 지나서 평가될 때는 시간적 패러다임 속에서 일반화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 면에서 세대론이라는 것이 정치·경제·사회적인 측면에서 효과를 발휘할 수는 있지만 20∼30년 지나서는 지표로 읽을 수 있다고 본다. 이명박 정부가 20대에 대해 착각하듯이 20대도 이명박 정부를 착각하는 것이다.20대가 착각을 깨닫는 순간 우리 사회의 진보적 발전을 위해 20대가 자기 행동을 할 것이다. 다만 그 깨달음이 이 정권 안에서 이뤄질 것인지는 판단이 필요하다. 박 교수 갈등이 발전의 원동력이라는 것이 세대문제를 보는 기본적 시각이라고 생각한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 세대가 가져야 할 시대적인 가치나 역할이 있다고 본다. 그 세대는 그것에 충실했던 것이고 그런 측면을 인정해야 하지 않나 싶다. 마치 타도의 대상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공존의 미학이랄까. 앞선 세대가 같이 이해하고 이끌어줄 수 있는 것 아닌가. 어린 세대가 윗세대가 되면 또 아랫세대를 포용하고, 그렇게 우리 사회의 발전 원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는 공존의 틀을 마련해야 한다고 본다. 홍 교수 젊은 세대는 문제를 드러내고 강하게 주장해야 한다. 그런데 20대가 합리적인 적응을 추구한다.20대가 개혁을 요구하지 않으면 그 사회는 희망이 없다. 기성세대가 그런 관점에서 조심해야 한다. 젊은이들은 패기를 갖고 있어야 한다. 똑똑한 것이 아니라 영악하고 자기 밥그릇을 잘 챙긴다는 말을 들으면 안 된다. 그 세대를 열어줄 책임이 있다. 정리 유지혜 김정은기자 wisepen@seoul.co.kr
  • [창간 104주년 특집-건국 60년 사회문화 여론조사]“한강의 기적에 민족적 자긍심” 82%

    [창간 104주년 특집-건국 60년 사회문화 여론조사]“한강의 기적에 민족적 자긍심” 82%

    ■역사인식 “세대 갈등 확대” 57% ‘6·25전쟁’ 가장 큰 사건 서울신문 여론조사 결과 우리나라 국민 3명 중 2명꼴은 정부 수립 이후 60년 역사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긍심을 갖는 이유로는 ‘한강의 기적’으로 대표되는 경제 성장이 으뜸으로 꼽혔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지금까지의 역사에 대해 ‘매우 자랑스럽다.’ 15.1%,‘대체로 자랑스럽다.’ 51.4% 등 전체 응답자의 66.5%가 긍정적으로 답변했다. 반면 ‘별로 자랑스럽지 않다.’와 ‘전혀 자랑스럽지 않다.’ 등 부정적으로 답변한 응답자는 각각 28.2%,4.4%에 그쳤다. 자랑스럽다는 긍정응답은 학력이 높을수록, 사무관리·전문직 종사자, 대전·충청 거주자 등에서 상대적으로 높았다. 반면 ‘자랑스럽지 않다.’는 부정적 응답은 생산·기능·노무직 종사자, 서울 거주자 등에서 상대적으로 높았다. 분야별로는 경제적 성장 정도에 매우 또는 대체로 자랑스럽다고 응답한 비율이 82.5%로 가장 높았다. 이어 문화적 다양성 정도 63.0%, 사회적 민주화 정도 62.0% 등의 순으로 긍정 답변 비율이 높았다. 반면 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의 위상 55.6%, 전반적인 삶의 질 55.3%, 국민들의 의식수준 52.2% 등은 긍정답변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았다. 정부 수립 이후 우리 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건으로는 전체 응답자의 31.7%가 ‘6·25 전쟁’을 꼽았다. 또 1980년 ‘5·18 광주민중항쟁’(14.8%)과 1970년대 새마을운동(14.7%)이 ‘3대 사건’으로 이름을 올렸다. 아울러 ▲1988년 서울올림픽 10.0% ▲1960년 ‘4·19 혁명’ 9.2% ▲1961년 ‘5·16 군사쿠데타’ 6.7% ▲1987년 ‘6·10 항쟁’ 4.1% ▲2002년 한·일월드컵축구대회 3.1% ▲1987년 ‘6·29 선언’ 1.9% ▲2000년 남북정상회담 1.6% 등의 순으로 ‘10대 사건’에 포함됐다. 우리 역사에서 가장 아쉬운 점을 묻는 질문(중복응답)에는 전체의 56.8%가 ‘정치권 갈등으로 지역·세대간 갈등이 커진 점’을 꼽았다.‘남북 분단으로 민족이 분열된 점’ 50.2%,‘성장 위주의 경제정책으로 빈부격차가 커진 점’ 44.0% 등을 지적하는 응답자 비율도 높았다. 이어 ‘군사정부의 장기집권으로 민주화가 늦어진 점’ 16.4%,‘지나친 국수주의로 세계화가 늦어진 점’ 14.4%,‘민족 고유의 문화와 정체성이 약해진 점’ 12.4%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시기별 주역 “정보화 원동력은 국민의 자질” 56% ‘박정희 대통령이 주도한 산업화를 바탕으로,386세대가 민주화를 이끌어냈고, 일반 국민들이 선진국 진입을 위한 정보화의 기틀을 마련했다.’ 서울신문의 여론조사 결과 정부 수립 이후 대한민국 역사의 시기별 주역은 이처럼 평가될 수 있다.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지금까지 가장 중요했던 시기를 묻는 질문에 전체 응답자의 47.5%가 ‘60년대 중반부터 70년대까지의 산업화 시기’라고 답했다. 즉 응답자 2명 중 1명꼴로 산업화 시기를 거치면서 우리 사회의 기틀이 마련됐고, 선진국 진입을 위한 초석이 다져진 것으로 간주하고 있는 것이다.‘80년대부터 90년대 초반까지의 민주화 시기’ 32.1%,‘90년대 중반부터 지금까지의 정보화 시기’ 17.9%,‘건국 이후 60년대 초반까지의 건국 시기’ 1.0%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특히 산업화 시기를 이끈 주역을 묻는 질문에는 전체 응답자의 60.1%가 박정희 전 대통령이라고 답했다. 박 전 대통령을 꼽은 응답자 비율은 50대 이상(70.3%), 고졸 이하(67.1%), 자영업자(74.4%) 등에서 상대적으로 높았다. 또 민주화 시기를 이끈 주역으로는 ‘386세대 중심의 대학생’을 꼽은 응답자가 전체의 45.1%에 달했다.386세대는 1960년대에 태어나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니면서 학생 운동의 불을 지핀 뒤 1990년대에는 사회에 진출해 왕성한 활동을 펼친 30대 중반부터 40대 중반까지를 일컫는 표현으로,1990년대 중반에 생겨난 개념이다. 민주화의 주역으로는 386세대 외에 일반 국민(25.4%)과 노동자·농민(11.0%) 등 이른바 ‘민초(民草)’들도 높이 평가됐다. 반면 정치권 내 야당세력(6.8%)이나 정치권 밖 재야세력(6.8%) 등 세력화된 정치권 인사를 꼽은 응답자 비율은 상대적으로 떨어졌다. 이와 함께 90년대 중반 이후 우리나라의 정보화 수준이 높아지게 된 가장 큰 원동력으로 ‘국민의 특성과 자질’을 꼽은 응답자가 전체의 55.8%를 차지했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역사정보 “정부수립일 아예 몰랐다” 63% 서울신문 여론조사 결과, 대한민국 정부 수립일(1948년 8월15일)을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은 전체 응답자의 13%에 불과했다.23.6%는 잘못 알고 있었으며,63.4%는 아예 몰랐다고 답했다. 정부수립일을 정확히 알고 있는 응답자는 연령이나 학력, 소득이 높을수록 많았고 여자(8.3%)보다 남자(17.7%)가 더 많았다. 대한민국 정부수립의 적절한 의미로는 ‘민주주의 국가로의 진정한 독립’이라는 응답이 45.7%로 절반에 가까웠고,‘일본식민통치 해방’(41.9%),‘남북 분단의 시작’(10.5%)이라는 응답이 뒤를 이었다. 민주주의 국가로의 진정한 독립이라는 응답 비율은 연령이 낮을수록, 학력이 높을수록 컸고, 학생(61.3%)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반면 일본식민통치 해방이라는 응답은 연령이 높을수록, 학력이 낮을수록 많았고, 주부(51.4%)에게서 상대적으로 높았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하면 떠오르는 인물로는 김구 선생이 44%로 가장 많았고,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35.7%로 그 다음이었다. 김구라는 응답자 비율은 고학력자, 진보주의자일수록 높은 경향을 보였다. 또 남자,40대, 사무·관리·전문직, 부산·울산·경남 거주자 등에서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반면 이승만이라는 응답은 저학력자이지만 보수주의자,60대 이상, 농림어업종사자, 서울 거주자 등에서 상대적으로 많았다.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최고 대통령 “경제는 박정희… 민주화는 김대중” 국민 4명 가운데 3명꼴은 ‘정부 수립 이후 지금까지 가장 큰 업적을 남긴 대통령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을 꼽았다. 이번 조사에서 박 전 대통령은 73.4%라는 압도적 지지율을 보였고, 이어 이승만 전 대통령이 8.4%, 김대중 전 대통령 7.0%, 노무현 전 대통령 5.1%였다. 김영삼(0.5%) 노태우(0.2%) 전두환(0.1%) 전 대통령은 응답자가 모두 1%에도 못미쳤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연령이 높을수록, 학력이 낮을수록 높은 응답률을 보였으며 월소득 99만원 이하 저소득층에서도 상대적으로 높았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19∼29세 연령층에서 상대적으로 응답률이 높았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29세 연령층과 전문대 재학생 이상의 고학력층, 진보층에서 상대적으로 많은 지지를 얻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라는 응답은 30대, 고학력층, 진보층에서 많았다. 분야별로 보면 경제분야에서는 박 전 대통령이 압도적인 지지율을 보였다. 나머지 분야에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고른 응답을 받았다. 경제분야에 대해 응답자의 무려 82%가 박 전 대통령을 꼽았고, 김대중(5.2%) 전두환(4.6%) 노무현(2.5%) 전 대통령 순으로 지목했다. 박 전 대통령은 응답자 특성에 관계없이 모든 계층에서 70% 이상 높은 응답을 이끌어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남북관계에서 70.4%라는 압도적 우위를 이끌어냈다. 외교와 민주주의 성장 분야에서도 각각 26.7%,27.2%로 가장 높은 지지율을 나타냈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남북관계에서 모든 계층의 높은 호응을 받았다. 김 전 대통령 다음으로는 박정희(5.4%), 노무현(4.7%) 전 대통령이 이었으나 큰 차이를 보였다. 민주주의 성장분야에선 김대중 전 대통령에 이어 노무현(21.6%) 김영삼(15.3%) 박정희(11.4%) 노태우(5.2%) 전 대통령 순으로 업적을 많이 남긴 것으로 조사됐다.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최태환칼럼] 아마추어 정권 vs 아날로그 정권

    [최태환칼럼] 아마추어 정권 vs 아날로그 정권

    정치인 노무현은 인터넷 전문가였다. 일찍 인터넷 정치의 가능성을 내다봤다. 인터넷, 그리고 노사모가 없었다면? 그는 그냥 평범한 정치인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을지 모른다고 했다. 유인태 통합민주당 전 의원의 해석이다. 지난 4월 국회의원 총선에서 낙선한 직후였다. 노 전 대통령은 집권당 원로들이 전하는 여론은 뒷전이었다고 했다. 인터넷을 더 중시하는 것 같았다고 했다. 유 전 의원은 노 정권 초대 청와대 정무수석이었다. 대통령 면전서 누구보다 격의없었던 그다. 노 정권에 대한 혹독한 세평에 회한이 없을 리 없다. 노 전 대통령은 60대다. 하지만 머리와 가슴은 386세대다. 더 앞서 나갔다. 대통령 시절 매일 저녁 2시간씩 인터넷 검색을 했다고 전한다. 이메일로 친노 측근들과 수시로 현안을 논의했다. 해외 순방때도 예외는 아니었다. 청와대의 젊은 비서관들은 인터넷 전도사들이었다. 대통령의 이념과 가치를 전파하고, 지켜 내는 첨병들이었다. 각종 현안에 하나 같이 같은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인터넷 정치는 노 전 대통령의 한계이기도 했다. 오프라인 공간의 입지가 좁아질수록 온라인에 더 침잠했다. 친노·반노의 편가르기를 심화시켰다. 오기와 독선으로 빠져들었다. 외곬의 정치로 나아갔다. 집권 여당을 방기했다. 노사모와 인터넷의 굴레를 끝내 벗어나지 못했다. 소수정권이 포퓰리즘으로 나아가는 길을 보여 줬다. 그의 실험은 어쨌든 인터넷을 ‘쌍방향 정치’,‘참여정치’,‘1대1정치’의 공간으로 확대하는 데 기여했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호불호와 정권에 대한 지지는 별개였다. 익명의 공간에서 든든한 원군을 만들어 냈다. 그는 퇴임 후에도 여전히 주목을 받고 있다. 봉하마을이 연일 문전성시다. 지난 정권 때 청와대에서 근무를 했던 인사를 만났다. 얼마 전 봉하마을을 다녀왔다고 했다. 노 전 대통령의 시민참여운동을 잘 들여다 보라고 했다. 그는 ‘사이트민주주의 2.0’ 개설을 준비 중이다. 새로운 정치토론장이 될지, 직접민주주의의 또다른 실험공간이 될지 궁금하다. 이명박 정권이 휘청댄다. 촛불에 엄청난 화상을 입었다. 인터넷 전사들의 바람몰이에 속수무책이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협상 파동의 초기대응 부실이 화를 불렀다. 디지털 민심을 읽지 못했다. 젊은 세대의 디지털 네트워크에 대한 이해도, 공부도 없었다.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려는 성의도 없었다. 아날로그 정권의 참담한 패배로 이어졌다. 노무현 정권을 아마추어 정권이라 폄하했던 현 정권 담당자들이다. 하지만 아날로그 집권자들은 국민들의 감성을 살피는데 왕초보라는 사실이 확인됐다. 뒤늦게 청와대가 놀랐다. 디지털 무장을 하고 나섰다. 시민사회와의 소통을 내세웠다. 비서실에 직제를 만들어 전문가들을 영입했다. 하지만 시민사회와 인터넷의 바다를 기웃댄다해서, 민심을 담을 수 있는 건 아니다. 감성의 정치시대다. 인터넷은 언제든 정치의 중심으로 뛰어들어, 광장민주주의를 창출할 파워를 갖게 됐다. 정권과 정치가 국민과 멀어질수록 직접민주주의의 욕구는 커진다. 인터넷의 힘은 그만큼 클 수밖에 없다.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일지 모르지만 현실이다. 이들의 눈높이를 헤아리고 제도권으로 흡수하려는 노력 없이는 제2의 쇠고기 파동이 없으란 법이 없다. 국민이 거리로 뛰쳐 나오게 하는 아날로그 정치·일방주의는 이쯤서 접어야 미래가 있다. 최태환 논설실장 yunjae@seoul.co.kr
  • 민주 고위당직자 4인 프로필

    민주 고위당직자 4인 프로필

    ● 이미경 사무총장 - 재야 여성운동 경력 4선의원 여성운동가 출신의 개혁성향의 4선 의원. 고 박홍수 전 사무총장의 뒤를 이어 2주 남짓 사무총장을 역임한 김영주 전 의원을 제외하면 사실상 정당사상 최초의 여성 사무총장. ▲부산(58) ▲이화여대 영문과 ▲15·16·17·18대 의원 ▲한국여성민우회 부회장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 ▲국회 문광위원장 ▲대통합민주신당 최고위원 ● 박병석 정책위의장 - 기자출신 충청권대표 정치인 중앙일보 기자 출신의 3선 의원.1998년 국민회의 수석부대변인으로 정계 입문했다.18대 총선에서 당내 후보 중 대전에서 유일하게 당선, 충청권의 대표적인 정치인으로 자리잡고 있는 중도개혁성향의 정치인이다. ▲대전(56) ▲성균관대 법학과 ▲16·17·18대 의원 ▲중앙일보 경제부장 ▲서울시 정무부시장 ▲새천년민주당 대변인 ▲국회 정무위원장 ● 최재성 대변인 - 대변인만 세 번하는 386세대 동국대 총학생회장 출신의 ‘386 정치인’. 대변인만 이번이 세 번째다.18대 총선에서 386 정치인들이 대거 낙선한 가운데 재선에 성공했다. ▲경기 가평(43) ▲동국대 불교철학과 ▲동국대 행정대학원 석사 ▲노무현 대통령 후보 선대위 청년특보단 리딩코리아 상임부회장 ▲17·18대 의원 ▲열린우리당 대변인 ▲대통합민주신당 원내공보부대표 ● 김유정 대변인 - 행정경험 많은 비례대표 초선 구 민주당계 출신으로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했다. 국민의 정부 시절 청와대 사회복지·교육문화비서실에서 행정관으로 근무한 뒤 2007년 민주당 여성국장으로 당에 복귀했다. ▲전남 광주(39)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서강대 행정학 석사 ▲15대 대선 대통령선거기획단 국장 ▲청와대 행정관 ▲환경분쟁연구소 이사 ▲민주당 원내부대표
  • 386세대 중도·보수화 2배 이상 늘어

    386세대 중도·보수화 2배 이상 늘어

    몇몇 연구들은 2002년의 대통령 선거부터 세대 간의 갈등이 새로운 균열의 축(軸)으로 부상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나아가 2004년의 총선에서도 세대변수는 지역주의 투표행태와 함께 선거결과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세대변수는 정당지지와 관련하여 강한 인과관계를 가진 것으로 입증됐다. ●전 연령대에 걸쳐 중도성향 40%대 유지 2004년 총선과 2008년 총선에서 나타난 정치세대와 이념성향의 관계를 살펴보면, 우선 20대의 중도·진보적 성향이 4년 전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 진보적 성향이 약간 줄며 보수적 성향이 일부 증가한 모습이다. 30대는 보수화 경향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세대의 경우 2004년 총선에서는 전체적으로 중도·진보적 성향이 강하게 나타났다. 하지만 2008년 총선 상황은 4년 전과 정반대의 모습이다. 전체적으로는 중도·보수적 이념성향이 지배적 현상이 나타났다. 40대는 30대보다 중도·보수화 경향이 더욱 강하게 나타났다.2008년 총선의 경우 386세대에서 진보적 이념성향은 4년 전에 비해 절반이하로 줄어들었다. 반면, 보수적 이념성향은 2배 이상 증가했다. 따라서 탈냉전 민주노동운동(30대) 세대와 386세대는 2007년 대선에서부터 시작된 우리 사회의 보수화 경향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은 정치세대라고 할 수 있다 이는 2004년과는 정반대 상황이다.2004년 총선에서는 2002년 대선에서 시작된 한국사회의 진보화(化) 경향이 2004년 총선에서는 탈냉전 민주노동운동 세대와 386 세대에 강력한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동시에 386 세대 이하에서 나타난 중도성향의 우위 현상은 2007년 대선에서도 나타났던 것으로 진보성향의 상당수가 중도화(化)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세대별로 비교해보면,2008년 총선에서는 연령이 높아지면서 보수적 이념성향이 강화되는 추세가 뚜렷했다. 이러한 현상은 2007년 대선에서도 확인됐다. 즉,2007년 대선의 연령대별 이념성향을 보면 연령이 높을수록 보수적 성향이 강화되는 일반적 현상이 나타났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2007년 대선에서는 연령대별 이념성향 분포에서 중도적 성향이 차지하는 비중이 40대 이하에서 각 세대별로 최대인 40%대를 유지하고 있었다면,2008 총선에서는 전 연령대에 걸쳐 중도적 이념성향의 유권자가 40%대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연령대 높아질수록 한나라당 후보 선택 40대 이하의 연령층에서 중도적 이념성향의 유권자 비중이 최소 46%(40대)에서 최대 53.3%(30대)에 이르고 있다. 이는 정치세대 분류에서 386세대에 해당하는 40대와 탈냉전 민주노동 운동 세대의 중도·보수화 경향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중도·보수화 경향은 투표성향에서도 이어진다. 즉,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지역구와 정당투표에서 한나라당 후보를 선택하는 경향이 강화되는 모습이다. 다만 60대 이상의 연령대에서 이전 연령대보다 하락하는 모습이다. 이는 자유선진당과 친박연대 등 기타 보수 세력에 대한 선호가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결국 2008년 총선에서도 2007 대선에서 나타났던 이념성향의 유동적 성격이 지속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2007년 대선의 보수회귀 분위기가 2008년 총선까지 이어진 것이다.
  • [6·10 촛불집회] 386 정치인 6·10 항쟁 소회

    1987년 6월 항쟁과 2008년 6월 촛불집회.21년의 간극을 두고 다시 촛불이 타올랐다. 독재타도·호헌철폐를 외쳤던 광장에,42년의 독재를 끝내겠다며 성공회대 꼭대기 종탑에서 42번 울렸던 타종 소리를 기억하며, 다시 광장에 선 사람들이 있다.386 정치인들이다. 거대 담론에 빠진 무능한 세력, 민주화의 성과를 독식한 기득권 세력,386 정치인들의 현주소나 다름없다. 군부독재의 권력 이양식이 치러졌던 21년전 10일,‘귀환’한 이들의 소회는 그래서 남달랐다. ●“대중과의 간극 메우는 중” 통합민주당 송영길 의원은 고등학생 딸과 중학생 아들의 손을 잡고 집회에 나왔다. 여기저기 모여앉은 386세대 가족들을 보며 민주주의는 결코 물러날 수 없다는 걸 느꼈다고 한다. 송 의원은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한 사회의 모든 문제를 고민하는 세대로서 무거운 짐을 진 것 같다.”며 화두를 던졌다. 어느샌가 주홍글씨처럼 새겨진 이름,386 정치인. 송 의원은 “주도하는 게 아니라 국민들과 공감하며 간극을 메우는 과정”으로 2008년 촛불의 의미를 받아들인다.6월 항쟁이 이룬 민주주의 성과들이 역진할 때, 끝까지 지켜내고 진전시키는 것이 스스로의 임무라고 다짐한다.1987년 당시엔 인천지역 노동자로 집회에 참여하면서, 이한열 열사 장례 추진위원을 지냈다. 당시 동국대 ‘호헌철폐와 민주헌법 쟁취를 위한 애국학생투쟁위원회’위원장이었던 민주당 최재성 의원. 수배 중이었던 터라 서울 노량진 뒷골목 자취방에서 6월의 벅찬 열기를 숨죽여 느껴야 했다. 최 의원은 촛불행진 중에 “국민들은 진보하는데 정부는 여전히 답보 상태”라며 말문을 열었다. 정치권도 진화하는 국민들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는 말도 잊지 않는다. 그러나 386 정치인에 대한 가혹한 ‘평가’엔 단호하다. 최 의원은 “386 정치인들은 태생적으로 탈권위적이다. 국민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경험을 가진 세력”이라면서 “우리 사회에 386을 대신해 진보적인 국민들과 잘 조응할 수 있는 정치세력이 있는지 모르겠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렇지만 대안세력으로 거듭나려면 “스스로 변질되지 않으면서, 정체성을 중심으로 활동할 수 있는 정당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광장 보며 대한민국 에너지 느껴” 한나라당 정태근 의원은 1985년 11월 서울 미 문화원 점거 투쟁으로 구속돼 3년간의 옥고를 치렀다. 때문에 6월의 현장에 동참하지 못했다. 정 의원은 광장에 모인 시민들을 ‘대한민국의 에너지’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정권퇴진을 요구했던 87년과는 차이가 있다.”면서 “국민들은 이명박 정부의 정당성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대통령은 국민이 원하는 것 해야” 우상호 전 민주당 의원은 당시 연세대 총학생회장으로 누구보다 뜨거운 여름을 보냈다. 우 전 의원은 “6월 항쟁으로 민주화를 이루고 나서 다시는 대규모 거리 시위가 없을 거라 생각했다.”며 상기된 표정을 지었다. 대통령과 국민이 직접 부딪히는 현장은 386 정치인으로서 각별한 각오를 다지게 한다. 우 전 의원은 “이명박 대통령은 위기의 원인을 모르는 것 같다. 국민이 원하지 않는 것을 하지 않으면 된다.”고 잘라 말했다. 총선 패배 뒤에도 386을 향한 비판은 여전히 따갑다. 우 전 의원은 “대통령과 정부여당이 양보하지 않는 한 국민과 함께 싸우는 게 야당의 역할”이라면서 “386 정치인들은 더 명확하게 싸워야 한다.”고 다짐했다. 이날 이한열 열사 국민장이 재연되자 일각에선 ‘386이 민주화운동 연장선상에서 촛불민심에 편승하려고 한다.’는 우려가 들려왔다. 우 전 의원은 “무슨 소리냐. 그럴려고 했으면 진작에 우리가 집회를 주도했을 것”이라면서 “6월 광장에서 운동권과 비운동권을 가르는 발상 자체가 정파적이고 불순한 시각”이라고 되받아쳤다.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은 서울대 법대 새내기 때 겪은 6월 항쟁을 ‘신천지’로 기억했다.‘내 삶의 밑바닥 힘’이었다고 한다.386정치인들에 대한 세간의 평가를 인정하면서도 “시대의 주역들이 늘 존중받는 것은 아니다.”면서 “타협하지 않고, 머뭇거리지 않고, 국민들에게 결실이 돌아갈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우리 세대 정치인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구혜영 한상우기자 koohy@seoul.co.kr
  • [6·10 촛불집회] 안치환 “40대에 촛불은 낯선 큰 감동”

    [6·10 촛불집회] 안치환 “40대에 촛불은 낯선 큰 감동”

    쇠고기 파동 이후 가장 많은 인파가 모인 10일 오후 7시50분. 가수 안치환(42)이 서울 태평로에 마련된 무대에 오르자 일제히 박수와 함성이 터졌다. 그는 이날 광우병을 소재로 한 시민의 글에 직접 곡을 붙인 ‘유언’이란 노래와 자신의 대표곡 ‘자유’ 등을 열창했다. “노래란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잇는 정서적인 무기라고 할 수 있는데, 다양한 세대가 함께 부를 수 있는 노래가 부족한 것 같았어요. 그래서 ‘유언’을 만들었고, 촛불을 함께 지키고자 하는 가수의 한 사람으로서 무대에 올랐습니다.” 그룹 ‘노래를 찾는 사람들’ 출신으로 ‘솔아! 푸르른 솔아’‘광야에서’ 등의 노래로 1987년 6·10 항쟁을 이끌었던 안치환. 대표적인 386세대인 그에게도 이번 촛불문화제는 낯선 경험이었다. “우리 때 시위는 돌과 화염병이 날아다니고 깃발이 나부끼는 엄숙한 것이었죠. 하지만 요즘은 하나의 축제 같다고 할까요. 처음엔 길거리를 ‘놀이터’삼아 노는 듯한 분위기가 익숙하지 않았지만, 이내 전세대와 전계층이 함께하는 모습이 감동으로 다가왔어요.” 요즘 시위 참가자들 사이에 인기가 높은 ‘대한민국 헌법 제1조’ 같은 민중가요는 사실 그에게 사뭇 새롭게 느껴진다.“기존의 민중가요들이 비장미를 강조해 경직된 분위기를 풍겼다면, 요즘엔 가사도 발랄해지고 멜로디도 훨씬 경쾌해졌어요. 본래 민중가요는 ‘아리랑’처럼 많은 사람들이 함께 부르는 대중가요적인 성격을 띠는 만큼 꼭 무거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지난해 6·10항쟁 20주년을 맞아 386세대를 초청해 그들을 격려하는 콘서트를 열었던 그는 올해는 거꾸로 ‘100만 촛불대행진’에 시민들의 초대를 받아 무대에 올랐다.“지난 20주년때는 386들이 욕도 많이 먹고,6월항쟁의 정신이 퇴색된 듯해 절망감도 컸죠.1년만에 상황이 이렇게 바뀐 것이 참 아이러니해요. 하지만 이번 촛불집회를 6·10 정신이라는 큰 흐름의 일부로 봐야지 6·10의 의미와 무조건 동일시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옛 히트곡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늘 새롭게 거듭나는 모습으로 세상과 유리되지 않는 가수로 기억되고 싶다는 그는 이번 촛불문화제에서 영감을 얻어 노래 한곡을 더 썼다.‘삶이여, 감사합니다’라는 곡이다. 주춤거리는 386을 비롯한 기성세대에게 새로운 연대와 소통의 의미를 알게 해준 젊은 세대에 대한 일종의 ‘헌사’ 같은 노래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6·10 촛불집회] ‘민주화 동창회’

    한국외국어대 정치외교학과 90학번 조모(38)씨는 10일 밤 1990년대 초반 학생운동을 함께 했던 친구 35명과 10여년 만에 광화문에서 만났다. 대학 때 단과대 학생회장을 지낸 조씨는 이 친구들과 1991년 강경대군 치사 사건으로 촉발된 이른바 ‘열사 정국’을 보냈다. 이후 ‘민주동호회’라는 걸 만들었지만 사는 데 바빠 자주 모이지 못했다. 조씨 일행은 촛불을 들고 민주화운동의 추억을 나눴다.“이번 촛불집회가 뿔뿔이 흩어졌던 친구들을 한자리에 모아줬습니다. 죽을 각오로 거리로 나섰던 동지들을 만나니 가슴이 벅찹니다.” 6·10 항쟁 21주년을 맞아 ‘100만 촛불대행진’이 열린 광화문 곳곳에서는 ‘민주화 동창회’가 열렸다.△△대학 민주동호회,△△학과 87학번 모임,△△노조 동지모임 등 동창회를 알리는 깃발도 많았다. 87년 6월 당시 민주항쟁 지도부였던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국본)를 비롯해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 전국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유가협),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박종철기념사업회 등 각종 민주화 단체들도 대거 촛불을 들었다. 과거 목에 핏대를 세우며 군사정권을 규탄하던 친구들이 이젠 아이들을 둔 평범한 직장인들이 됐다. 중년에 접어들어 머리가 벗겨지거나 뱃살이 출렁이는 친구들도 있었다. 6월 항쟁의 주역들과 386세대 넥타이부대는 ‘젊은 촛불들이여, 미안하고 고맙구나. 늦었습니다. 미안합니다. 우리들의 배후가 너희였구나.’등의 현수막을 들고 행진했다.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전 국본 집행부)는 “이번 촛불집회를 계기로 그동안 못 봤던 제자들이나 민주인사 등 여러 사람들을 만났다.”면서 “그들과 예전 이야기를 나누면서 지금 촛불행진에 나선 대한민국 국민이 다시 한 번 훌륭하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김승훈기자 hunnam@seoul.co.kr
  • 10일 ‘100만 촛불집회’

    6·10 민주화항쟁 21주년 기념일인 10일에는 지난달 2일 촛불집회가 열린 이래 최대 인파인 100만명에 가까운 시민들이 촛불을 들 것으로 예상된다. 파업을 결의한 화물연대를 비롯한 민주노총, 대학생들도 참여할 예정이어서 촛불집회의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과격시위와 과잉진압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으나 시민들은 ‘비폭력 무저항’ 기조를 유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광우병 국민대책회의’ 박원석 공동상황실장은 “예상할 수 있는 모든 충돌을 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행진에는 386세대와 넥타이 부대 등 각계각층의 시민들도 참여해 ‘국민 동창회’를 만들 것으로 전망된다.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와 전국교수노동조합, 학술단체협의회 등 교수단체는 오후 6시부터 서울신문사∼청계천∼시청 등을 자체 행진한 뒤 촛불집회에 참여한다. 보수단체인 뉴라이트전국연합과 선진화국민회의, 국민행동본부 등은 이날 오후 3시부터 서울광장에서 법질서 수호 및 한·미 FTA비준 촉구 국민대회를 개최한다. 보수단체들은 오후 6시부터 열려던 야간집회는 취소했다. 한편 시민 3000여명(경찰 추산·주최측 1만여명)은 9일 오후 7시부터 ‘100만 대행진’ 전야제 성격의 촛불집회를 열고 남대문∼명동∼종로∼세종로를 행진했다. 황비웅기자 stylist@seoul.co.kr
  • 촛불대행진 ‘6·10 충돌’ 비상

    72시간 촛불집회가 큰 충돌없이 8일 막을 내렸지만 10일 6·10항쟁 21주년을 앞두고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10일에는 사상 최대 규모인 ‘100만명 촛불대행진’이 예정돼 있고 화물연대 등도 이날 촛불집회에 참여하겠다는 계획이다. 경찰은 지난 주말 시위대를 연행하면서 강경대응으로 전환했다. 1987년 당시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국본)를 주도했던 유시춘·백낙청 교수 등은 이날 서울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념식을 가진뒤 오후 4시부터 명동성당에서 서울광장까지 3보1배 행진을 할 예정이다. 연세대 이한열 열사 21주기 추모기획단은 고(故)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씨와 대학생, 당시 시위를 이끌었던 ‘386세대’들과 함께 연세대 정문에서 서울광장까지 이 열사의 영정 사진을 들고 행진하는 국민장을 재연한다. 경찰은 7일과 8일 새벽 시민들과 격렬하게 대치하는 과정에서 16명을 연행하면서 강경대응으로 방침을 선회했다. 8일 새벽 일부 시민들이 세종로 네거리에서 각목과 쇠파이프 등을 들고 차벽으로 동원된 경찰버스 창문을 부수고 버스 지붕에 올라가 플라스틱 가림막을 뜯어 내면서 경찰과 충돌이 빚어졌다. “촛불시위에 한총련 학생들이 가담해 우려스럽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과 촛불시위대를 “사탄의 무리”라고 지칭한 추부길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의 발언이 알려지자 네티즌들은 반발했다. 국민대책회의는 “쇠파이프 등장은 경찰이 먼저 시민들에게 욕을 하고 침을 뱉으면서 우발적으로 생긴 일”이라며 평화원칙을 거듭 밝혔다. ●정부 “쇠파이프 등장 우려” 담화 김경한 법무·원세훈 행정안전부 장관은 이날 정부과천청사에서 ‘쇠파이프 동원과 관련한 우려와 당부’라는 긴급 공동 담화문을 발표,“최근 촛불집회에서 쇠파이프가 동원되는 등 폭력시위 양상을 보이고 있어 우려를 금할 수 없다.”며 폭력시위 자제를 당부했다. 경찰은 “각목과 쇠파이프 등으로 폭력을 행사한 극렬 시위자는 엄정 사법처리할 것임은 물론 집회를 주최한 국민대책회의 측에 민사상 손해배상을 청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보수성향 단체인 뉴라이트전국연합과 선진화국민회의, 국민행동본부 등은 10일 오후 3시부터 서울광장에서 5만여명(주최측 예정)이 참가하는 ‘법질서 수호 및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비준 촉구 국민대회’를 개최할 예정이어서 진보와 보수의 충돌가능성도 우려된다. 홍성규 이재훈 장형우기자 nomad@seoul.co.kr
  • “인사실패로 민심 이반…李대통령이 변화해야”

    “인사실패로 민심 이반…李대통령이 변화해야”

    이명박 정부의 출범에 기대를 걸었던 보수진영 인사들의 요즘 심정은 어떨까. 김영삼 정부에 몸 담았던 윤여준 전 환경부장관, 이각범 전 청와대 정책기획수석 등과 제성호 중앙대 교수로부터 현 시국에 대한 진단과 해법을 들어봤다. 보수주의자이지만 3인 모두 촛불시위로 발현된 민심을 존중하는 ‘전향(前向)성’이 인상적이었다. 이들은 인사 실패를 민심이반의 결정적 원인으로 들면서 이명박 대통령의 ‘변화’를 촉구했다. 윤 전 장관은 젊은 세대가 주도하는 촛불시위의 에너지를 사회변혁의 긍정적 동력으로 승화시켜야 한다고 이 대통령에게 조언했다. 이 전 수석은 이 대통령이 단편적 인기영합주의를 지양하고 국정에 대한 종합적 고찰을 해야 한다고 고언했다. 제 교수는 땜질식 개각이 아닌 고강도의 인사쇄신을 주문했다. ▶국민의 압도적 기대를 안고 출범한 이명박 정부가 출범 100일 만에 난국에 처한 이유는 무엇인가. 윤여준 전 장관 인사 잘못이 결정적이다. 개인적 국정 경험에 비춰 보면 민심이 가장 예민하게 반응하는 부분이 인사다. 이각범 전 수석 편파 인사가 문제다. 그토록 지탄받던 노무현 정부의 ‘코드 인사’를 몇 배나 능가하는 파행 인사가 난국을 낳았다. 제성호 교수 강부자 내각, 기업 프렌들리라는 말에서 보듯 서민 프렌들리 정부라는 인상을 주지 못했다. 여기에 쇠고기 문제가 터진 것이다. ●촛불시위자 모두 불순세력으론 안 봐 ▶쇠고기 재협상을 주장하는 촛불시위의 이면에 배후조종 세력이 있다고 보나. 윤 전 장관 개중에는 선동하는 세력도 있고 놀아나는 사람도 있겠지만 모두를 다 불순세력으로 보는 시각엔 동의하기 어렵다. 촛불시위 현장에 가본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그건(배후조종설은) 본질이 아니다. 그렇게 보면 답이 안 나온다. 이 전 수석 그런 요소도 있기는 하겠지만 전적으로 배후조종 세력에 휘둘린다고 보지는 않는다. 민심이 돌아서서 그렇게 된 것이고 쇠고기 협상을 계기로 반(反)이명박 정부 성향 세력이 투쟁양상으로 변했다고 본다. 제 교수 쇠고기 문제는 근본적으로 과학적 전문지식과 관련있는 사안으로 전문가의 견해가 중요하다. 협상이 잘못됐다 하더라도 합리적인 정책토론을 통해 보완할 수 있는 사안이다. 문제가 커진 데는 일반 시민 등 비전문가들의 무책임한 자극적 발언이 급속도로 확산된 측면이 있고, 인터넷 상에서의 교묘한 선동이 있었다는 시각이 유력하다. 문제의 쇠고기가 미국산이 아니라 호주산이라면 이처럼 문제가 커졌을까. ▶촛불집회 민심을 경시하다가 파문을 키웠다는 지적이 있다. 보수가 민심의 변화된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윤 전 장관 이게 이념의 문제인가. 보수가 변화에 둔감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 재협상을 요구하는 사람이 다 진보인가. 이 전 수석 당연히 정부가 민심을 제대로 읽지 못한 데 대한 반감이다. 제 교수 그런 점이 없지 않다고 본다. ▶한나라당을 비롯한 보수진영에서는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집권기를 ‘잃어 버린 10년’이라고 주장해 왔는데, 이런 전면적 부정이 부메랑이 돼 시대변화에 대한 보수진영의 감각을 무디게 했다는 지적도 있다.10년 동안 어쨌든 사회는 더 민주화됐고 국민의식은 더 성장한 것 아닌가. 윤 전 장관 잃어 버린 10년이라는 주장에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공과가 있는데 너무 과만 본 것은 문제다. 잘한 건 잘한 대로 균형잡힌 자세를 보여 줬어야 하는데 아쉽다. 이 전 수석 ‘잃어 버린 10년’은 맞는 말이다.10년 동안 세계사의 진운을 사이비 진보세력이 따라가지 못해 국가 경쟁력이 위축되고 발전할 수 있는 원동력을 상실했다. 이명박 정부가 잃어 버린 10년의 대안이 될 것으로 기대했는데 실망스럽다. 제 교수 10년간 좌파 정부 아래서 국가의 근본이 훼손된 것은 사실이다. 지난 10년의 경험을 반면교사로 삼아 고칠 건 고치고 바로 잡을 것은 바로 잡아야 한다. 물론 잘한 것은 계승해 발전시켜야 한다. ●과거정부 잘한 것은 계승 발전시켜야 ▶386세대 이후 젊은 세대들이 보수화로 기운다는 분석이 있었는데, 이번 촛불시위는 10대,20대들이 주도하고 있다.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윤 전 장관 시대변화가 한국사회의 구조변화를 무섭게 몰고 오고 있다. 모든 권위가 무너지고 있다. 교육, 공권력, 삼성 등 한국사회의 ‘파워센터’들이 차례로 와해됐다. 어린 학생들의 행동은 무서운 동력인데, 한국사회를 수평적으로 바꾸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정치인들과 정부가 깊이 뜯어 보고 고민해야 한다. 새로운 구조와 권위를 어떻게 만들고 저 분출하는 에너지를 어떻게 한 곳으로 모을까를 고민하는 게 이명박 대통령의 자세다. 최근 영국 보수당이 ‘우애’(友愛)를 기치로 내걸고 있는 추세를 본받아야 한다. 과거의 수직적 소통이 아닌 수평적으로 상호작용하는 게 세계적 흐름이다. 이 전 수석 젊은층이 전반적으로 보수화된 것은 맞지만 상당히 현실적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쇠고기 문제도 생활과 직결된 문제니까 젊은이들이 결사적으로 반대하는 것이다. 제 교수 급식 대상인 학생들이 자신의 건강과 안전에 관한 문제이기에 목소리를 냈다고 본다. 이념의 문제가 아니다. ●10대·20대 촛불시위는 독특한 청년문화 ▶투표율은 낮은데 촛불시위 참여열기는 높은 현상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대의민주정치에 대한 불신과 직접민주정치 욕구의 발현인가. 윤 전 장관 민주주의의 장래가 걱정스러운 게 사실이다. 정당이 제 역할을 못하고 정치권에 대한 이 대통령의 시각이 부정적이다 보니 대통령과 국민이 맞대결하는 불상사가 나타난 것이다. 이 전 수석 2002년 월드컵이 촛불시위와 관련이 있다. 붉은색 셔츠를 입은 젊은이들이 시청 앞으로 모이지 않았으면 미선·효순양 촛불집회도 없었을 것이다. 모여서 구호를 외치며 시위하는 걸 즐기는 한국의 독특한 청년문화로 이해한다. 제 교수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불신이 촛불시위 참여율과 관련 있다는 분석은 일리가 있다. 넓은 의미의 직접민주주의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사안에 대해 직접민주주의를 하려는 것은 과욕이다. ▶한나라당은 대선, 총선의 압도적 승리에도 불구하고 이번 6·4 재보선에서는 참패했다. 이명박 정부의 실책이 정권교체 주기를 앞당길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가. 윤 전 장관 한나라당의 승리가 반사적 이득이었듯 이번 민주당의 승리도 반사적 이득이란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 전 수석 그렇다. 이명박 정부는 보수세력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 한나라당이 지금과 같은 국정 혼란을 반복하는 한 지지를 못받을 것이다. 제 교수 100일도 안돼 새 정부가 뿌리부터 흔들리는 상황을 놓고 5년 단임 대통령제의 문제점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4년 중임제나 내각제 개헌이 정치 어젠다로 본격 제기될 것으로 생각된다. ●MB노선은 실용주의 아닌 편의주의 ▶이 대통령이 현재의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윤 전 장관 신뢰 회복이 급선무다. 지금 이 대통령의 노선은 실용주의가 아니라 편의주의다. 취임 전 원점으로 돌아가 뭘 잘못했는지 냉철하게 고민해야 한다. 어떤 나라의 지도자도 다수 국민의 의사에 반해 국가를 끌고 갈 수는 없다. 이 전 수석 사고방식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 기업 최고경영자(CEO) 출신이라 국가정책의 종합적인 고찰은 없이 안건 하나 하나에 단편적·단기적 승부를 본다. 너무 포퓰리즘적이다. 제 교수 쇠고기 문제로 촉발된 성난 민심을 달래야 한다. 고유가, 생활고에 허덕이는 서민의 어려운 삶을 보듬어 줄 대책을 내놔야 한다. 사회복지도 말로만 하지 말고 실효적인 대책을 제시해야 한다. ▶이 대통령이 단행해야 할 인적 쇄신의 방향과 폭은. 윤 전 장관 조선·중앙·동아일보 등 이 대통령을 가장 잘 이해하고 성원하는 신문들이 사설을 통해 국무총리, 비서실장을 비롯한 내각, 청와대 전면개편을 촉구하더라. 이 기준에도 못 미치면 국민이 흡족해 하겠나. 이 전 수석 폭은 문제가 아니다.21세기 시대정신에 맞는 유능한 사람들을 중용해야 한다. 제 교수 땜질식 개각으로는 성난 민심을 달래기 어렵다. 고강도의 인적 쇄신 의지를 보여야 한다. ▶이 대통령의 리더십에 문제가 있다고 보나. 윤 전 장관 CEO 출신이라 ‘정치 과정’에 대한 이해가 없다. 국민 설득 과정을 비효율·비생산으로 보다 보니, 국민교감이나 설득이 없는 것이다. 이 전 수석 여러 세력을 포용하지 못한다. 국가 전체에 대한 견해와 인식이 부족한 것 같다. 제 교수 소통에 문제가 있었다. 국민 눈높이에 맞추는 노력이 필요하다.CEO 리더십의 긍정적 측면은 잘 살리는 한편 소통과 타협의 리더십을 보완하면 좋겠다.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 태우면 안돼 ▶촛불시위를 주도하고 있는 진보진영에 할 말이 있다면. 윤 전 장관 충정은 이해하나 대통령과 정부에 어느 정도 시간은 줘야 한다. 이 전 수석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을 태우지는 말았으면 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밉다고 국가간 협상까지 뒤엎으려고 하면 우리는 국제사회에서 외톨이가 될 것이다. 냉정하게 국익을 생각해야 한다. 제 교수 이제 촛불시위가 의도한 것은 대부분 달성됐다고 본다. 그러니 시위를 중단하는 게 옳다. 시민단체는 본연의 권력감시 역할로 돌아가고, 정부와 정치권은 치열하게 머리를 맞대야 한다. 이종락 김상연 한상우기자 carlos@seoul.co.kr
  • ‘성난 촛불’ 대정부 투쟁 조짐

    ‘성난 촛불’ 대정부 투쟁 조짐

    중·고생들과 네티즌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바탕으로 진행돼 온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문화제가 시민·사회단체는 물론 노동단체들의 가세로 쇠고기 수입 반대를 넘어선 대정부 투쟁으로 번져갈 태세다. 촛불문화제가 신고되지 않은 ‘불법’ 거리시위로 확산되면서 일부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24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17번째 촛불문화제에는 여의도에서 집회를 마친 민주노총 조합원들과 전국교사대회를 마친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소속 교사들이 일부 합류했다. 또 대운하 건설에 반대하는 모임인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도 100일 순례를 마치고 동참했다. ●민노총 지도부 9명 청계광장서 노숙투쟁 정부의 노동·교육·환경정책에 대해 적극적으로 반대해 온 단체들이 촛불시위에 참여하면 정치색이 강해져 순수성이 의심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 하지만 민주노총과 전교조 등은 이명박 정부의 실정으로 인해 대정부 투쟁의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판단으로 적극적인 참여를 결정했다. 이에 따라 민주노총 이석행 위원장 등 지도부 9명은 정부의 미 쇠고기 수입 고시가 있을 때까지 청계광장에서 노숙투쟁에 들어갔다. ●쇠고기 담화 불구 “정권퇴진” 구호 또 10대와 네티즌들이 주도하던 시위에 ‘386세대’와 사회단체들이 합류하면서 시위 양상과 소통방식도 다양해지고 있다.10대와 네티즌들이 주로 인터넷 카페를 통해 촛불시위 참여를 독려하고 현장 동영상을 퍼다 나르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주장을 알린다면 386세대와 사회단체들은 시위현장에서 자연스럽게 민중가요를 부르고, 이른바 ‘8박자 구호’를 외치면서 자신들의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새로운 시위 방식과 기존 시위 방식이 결합되는 셈이다. 뿐만 아니라 주로 미 쇠고기 수입 반대를 외치던 시민들이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에도 불구하고 한발 더 나아가 ‘정권 퇴진’과 ‘독재 타도’ 등의 구호를 외치고 있다. 쇠고기 수입 문제뿐만 아니라 대운하, 교육자율화 조치, 공공부문 민영화 방침 등 현 정부의 정책 대부분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한데 모이고 있는 형국이다. ●“시민들 순수요구 정치적 음모로 매도” 24일 촛불문화제가 밤샘 거리시위로 이어진 것에 대해서도 주최 측은 다수 시민들의 자발적인 행동이었다고 전했다.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한용진 상황실장은 “주최 측이 행사가 끝났다고 계속 전달했지만 시민들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거리로 뛰어 들었다.”면서 “경찰들이 광화문 방향을 막으면 자연스럽게 해산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시민들의 분노는 그 이상이었다.”고 말했다. 상지대 교양학부 홍성태 교수는 “애초에 시민들은 자신들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촛불을 들었다.”면서 “하지만 정부는 시민들의 순수한 요구를 정치적인 음모가 있는 것으로 매도해 일을 키웠다.”고 말했다. 또 “국민에게 사과한다고 하면서도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는 정부의 불성실한 태도에 국민의 불신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고 말했다. 장형우기자 zangzak@seoul.co.kr
  • [집중 인터뷰] MB정권 미래비전 제작소 미래기획위 안병만 위원장

    [집중 인터뷰] MB정권 미래비전 제작소 미래기획위 안병만 위원장

    미래는 예측 불가능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고 미래를 불확실한 것으로만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애매하다. 미래기획위원회는 그런 미래가 어떻게 진전될지 미리 투영해보고 국민에게 그 길을 제시하고자 만들어졌다. 특히 선진국의 문턱에서 우왕좌왕하고 있는 한국이 선진국으로 확실하게 진입할 수 있도록 갈 길을 찾아주는 것이 앞으로 위원회의 주된 할 일이다. 이 작업에 프랑스의 석학 기 소르망 박사, 매킨지 컨설팅사 아시아 지역회장인 도미니크 바튼 등 세계적인 인사와 가수 박진영, 바이러스 연구가 안철수 등 젊은 전문가들도 발 벗고 나섰다. 안병만 미래기획위원장은 사무실 벽 한쪽에 걸려 있는 국정지표 ‘선진 일류국가’를 여러 차례 가리키면서 ‘선진화’를 강조했다. 그는 “정부가 저마다의 재주를 잘 펼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준다면 반드시 선진국으로 갈 것이라고 믿는다.”면서 “선진국의 열쇠는 정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국민에게 있다.”고 말했다. ▶미래기획위원회가 하는 일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구체적인 목표는 ‘선진화’다. 크게 3가지로 작업을 분류할 수 있다. 첫째는 선진국과의 격차를 줄이는 작업이다. 일본, 미국, 영국, 독일, 네덜란드, 스웨덴 등 10개국을 뽑아서 10개국 평균 정도를 목표로 하고 있다. 둘째, 경쟁에서 우리가 이미 앞서는 부분은 격차를 더 넓히는 것이다. 셋째로 미개척 분야를 다른 나라보다 먼저 발굴해 개발시키는 작업이다. 이런 것들을 종합해 성장동력을 찾아 구체화하는 작업을 위원회에서 하고 있다. ▶올 8월15일 정부수립 60주년을 맞아 국가미래비전을 선포할 텐데 어떤 내용이 담기게 되나. -지금 당장 내용이 나오기는 좀 이르다. 앞서 말한 3가지 작업을 통해 자료를 종합해 7월말까지 대통령에게 정리해 제출할 예정이다. 그러면 대통령이 ‘창조적 실용주의’에 입각해 비전을 직접 선택, 개발해 선포할 것이다. 이 비전은 새롭고 또 많이 변화된 내용이 담길 것이다. 그리고 실현 가능한 것을 제시할 것이다. ▶지난 14일 첫 회의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갔나.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온 만큼 다양한 시각의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다. 특히 매킨지 컨설팅 그룹 아시아 회장인 도미니크 바튼이 ‘총체적인 격차’에 대한 얘기를 한 게 기억에 남는다.“한국은 하드웨어는 평균이상인데 소프트웨어가 떨어진다.”면서 “예를 들어 수학성적은 좋은 편인데 실제 동기부여는 낮은 게 맹점”이라고 지적했다. 즉 결과가 나쁘진 않지만 동기부여가 낮으니 창조적이지 못하고 지식의 활용성도 낮다는 것이다. 동기부여가 잘되면 퀄리티가 훨씬 좋은 아웃컴이 나올 수 있는데 장기적으로는 이게 훨씬 더 바람직하다고 본다. ▶위원회는 젊은 세대와의 소통을 강조하고 있다. 쇠고기 파동 이후 젊은 세대와 정부의 소통 부족이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는데. -소통의 중요성은 절대적이다. 국가의 계획도 국민들이 이해하지 못하면 국민적 호응이 없다. 국민적인 호응이 없는 계획은 실행 불가능하다. 정부가 계획을 실행에 옮길 때에는 우리보다 앞서서 국민들이 먼저 나가줘야 계획이 성공한다. 이번 사태에서 가장 중요한 원인은 새 정부가 들어서고 해결할 문제들이 너무나 많이 한꺼번에 들이닥친 것이다.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급급해 여유가 없어 대화를 못했다. 문제는 대통령 자신이 너무 바빠 시간이 없어 정작 소통을 해야 할 사람과 제대로 대화를 못했다는 것이다. 난맥상이 있을수록 소통이 필요한데 필요할수록 더 잊기도 하는 법이다. 지금부터라도 90일간의 경험을 살려 소통할 수 있기를 바란다. ▶첫 회의에서 ‘역사를 정치에 이용해선 안 된다.’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지난 역사를 어떻게 재조명할 예정인가. -과거를 볼 때 부정적인 면을 부각시킴으로써 현재 정치의 이득을 챙기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게 핵심이다. 현재의 잘된 것도 인정하자는 것이다. 과거에 잘된 것을 보지 못하면 현재의 잘된 것도 간과하게 된다. 미래를 볼 때 과거의 공(功)은 살려서 미래의 성장동력을 찾으면 되고, 과(過)는 과대로 시행착오를 줄이는 데 활용해야 한다. 지난 정부와 이명박 정부가 역사를 바라보는 인식의 가장 큰 차이가 이것이다. 지난 정부는 전체를 보지 않고 부분만 부각시켰다.386세대의 경우도 국민 모두가 386세대는 아니지 않은가. 지난 정부는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을 동시에 보는 균형감각을 갖추지 못했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가는 데 가장 발목 잡혀 있는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노무현 정부는 균형발전을 강조했다. 좋은 말이지만 그러다보니 정부가 할 일이 많아지고 세금을 많이 거둬야 했다. 결과적으로 기관도 늘리고 공무원도 늘리고 역사상 가장 큰 정부가 됐다. 성장동력으로 이용될 부분을 떼어서 다른 곳에 붙였으니 성장동력이 움직이지 않는 현상이 생겼다. 노무현 정권 시절 세계경제는 최고 호황이었는데 우리는 기회를 한번 잃었다. 개발 도상국은 10% 이상 성장하는데 우리는 최근 5년간 4% 성장밖에 못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작은 정부, 규제 완화가 옳다고 보고 그쪽으로 간다. 또 참여정부는 민주화를 다지는 데 큰 공을 세웠지만 무책임한 참여가 많았다. 협치가 지나치게 시민사회 쪽으로 기울면 정부의 기능이 부실화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 참여하더라도 책임의식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작은 정부를 지향한다. ▶선진국으로 가기 위한 선결 조건은 무엇인가. -폐쇄된 사고, 폐쇄된 국가관이 우리를 붙잡고 있다. 전세계가 호흡하는 시대인데 (개방을 한다고 해서)우리 정체성을 잃는 것은 아니다. 국민들부터 문을 활짝 열어야 한다. 세계를 객관적으로 보고 좋은 것은 받아들이는 자세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모든 면에서 세계화 측면이 약하다. 기업은 세계로 가려고 하는데 발목 잡히는 측면이 있지 않은가. ▶앞으로 한국사회가 성장할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응집력이라고 본다.6·29 선언 때나 2002년 월드컵, 태안 기름 유출사고 때 몰려든 자원봉사자 등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자랑스러운 부분이다. 옳다고 생각하면 그를 향해 모여드는 국민들의 응집력은 엄청나다. 이런 응집력은 보통 어려울 때 많이 나온다. 국민들이 자각해서 같이 헤쳐나가는 노력이 이성을 초월할 정도로 나타난다. 이건 굉장히 긍정적인 힘이라고 생각한다. ▶10년 후쯤 역사는 이명박 정부를 어떻게 평가할까. -“이 대통령이 확실하게 하나 한 것은 선진화다.”라고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선진국의 문턱에서 미끄러지는 나라는 수없이 많다. 아차하는 순간에 미끄러지면 다시는 회복이 안 된다. 그러나 선진국 문턱을 넘어서면 미끄러지지 않는다. 선진화는 참 시급한 문제다. 경제적으로 윤택한 것뿐 아니라 생활의 양태도 선진화되어야 한다. 남을 배려하는 게 선진국의 마지막 단계다. 글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사진 정연호기자 tpgod@seoul.co.kr ■ 안병만 위원장은 누구 - MB 시장시절부터 브레인 역할 안병만(67) 위원장은 1시간여 동안 진행된 인터뷰 도중에 여러 차례 크게 웃었다. 본인 스스로 “워낙 태생적으로 낙천적이고 긍정적”이라고 말한 것처럼 긍정적인 생각과 웃음이 몸에 배어 있는 듯했다. 안 위원장은 충북 괴산 출신으로 경기고를 나와 서울대 법대에서 행정학을 전공했다. 미국 플로리다 대학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미국 하버드대와 델라웨어대에서 최근까지 특임교수로 행정학을 강의해 왔다. 안 위원장은 한국외국어대학교 총장을 두번 지냈다. 재임 기간 동안 용인에 한국외대 부속 외국어고등학교를 세우고 중국 베이징외대, 일본 도쿄외대와 교류 협정을 체결하는 등 한국외대를 글로벌한 대학으로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명박 대통령과의 공식적인 인연은 2006년 2월 안 위원장이 서울시 시정개발연구원 이사장을 맡으면서부터 시작됐다. 행정에 정통해 이명박 정부 초대 총리로 거론되기도 했으나 본인이 고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4·9 총선 이후] 희비 갈린 경제 관련 상임위 의원

    18대 총선이 ‘여대야소’로 개편됨에 따라 각 상임위원회의 대정부 질의를 주도하는 ‘공격수’의 면모도 바뀔 전망이다. 특히 경제부처 관련 상임위 가운데 정부 정책을 통렬히 비판했던 의원들의 희비가 엇갈려 관심이다. 17대 국회 재정경제위원회의 경우 대표적인 공격수로는 ‘여성 3인방’이 꼽힌다. 통합민주당 박영선·한나라당 이혜훈·진보신당 심상정 의원 등이다. 옛 재정경제부는 국정감사 때마다 이들의 질의에 답하느라 진땀을 흘렸다. 하지만 심 의원이 18대에선 고배를 마셨다. 재정부는 “심 의원의 질의는 논리적이고 날카로웠다.”고 평가했다. 회의 때마다 엄청난 자료를 요구해 담당 공무원들을 난처하게 했던 엄호성 전 한나라당 의원은 금배지를 잃었다.17대에서 여당 의원임에도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것으로 유명했던 박영선 의원이 야당 의원으로 변신한 것에는 해당 부처 공무원들이 벌써부터 부담을 느끼고 있다. 농림해양수산위원회에서는 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이 재선에 성공했다. 강 의원은 한·미 FTA 및 미국산 쇠고기 수입 등에 강력히 반대하는 ‘우리 농축산물 지킴이’의 대표적 주자이다. 때문에 관계 부처는 그의 재선 여부를 예의주시했다. 하지만 정부 관계자는 “법을 통과시켜야 하는 공무원들은 불편하겠지만 국익을 위해서는 강 의원 같은 분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같은 위원회 소속인 이방호 한나라당 의원을 물리친 것도 눈길을 끈다. 금융위원회와 공정거래위원회 등을 관할하는 정무위원회는 대격변을 예고한다. 여야가 뒤바뀐 것은 물론 소속 의원 24명 중 9명만 살아남았다. 공정위 관계자는 “17대에선 여당인 통합민주당은 물론 야당인 한나라당 소속 위원들도 공정위에 우호적이었지만 앞으로는 어떻게 바뀔지 걱정된다.”고 밝혔다. 다만 박병석·원혜영 등 공정위의 역할에 우호적이었던 의원들이 남아 있어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밝혔다. 각당의 중진 의원들이 즐비한 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던 임종석 통합민주당 의원이 낙선했다.386세대의 대표주자였으나 김동성 한나라당 후보에 패배했다. 이에 따라 진보정당의 맏형격인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이 목소리를 낼지 주목된다. 산업자원위원회의 경우 22명 의원 가운데 11명이 교체됐다. 무소속 의원과 친박연대 의원들이 모두 낙선했다. 야당이 된 통합민주당 소속은 이광재·최철국 의원 등 4명만 남아 새로운 공격수가 요구되는 실정이다. 백문일 이두걸기자 mip@seoul.co.kr
  • [4·9 총선-이변의 8곳] 이변의 8곳

    [4·9 총선-이변의 8곳] 이변의 8곳

    ■강기갑 정치거물 급부상 與 실세 잡은 ‘농민대변인’ 경남 사천에 출마한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이 9일 실시된 4·9 총선에서 47.7% 득표율로 한나라당 이방호 사무총장(47.3%)을 200표도 안 되는 차이로 누르고 재선에 성공했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으로 불렸던 두 사람의 경쟁에서 강 의원이 승리한 것은 이번 총선의 최대 파란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으로 한나라당 실세인 이 사무총장을 한나라당세가 강한 경남에서 꺾었기 때문이다.‘농민 대변인’으로 불리는 강 의원은 “사천 시민은 쭉정이를 버리고 제대로 된 종자를 선택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의 당선 배경에는 박근혜 전 대표의 팬클럽인 ‘박사모’가 한나라당 ‘공천 파동’을 주도한 이 사무총장의 낙선 운동을 한 것이 작용했다. 여기에 트레이드 마크인 한복을 벗어 던지고 청바지를 입을 정도로 선거운동에 온몸을 바친 강 의원의 ‘열정’이 더해져 당선이라는 선물을 안겨줬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김무성 복수혈전 완결편 생환 親朴연대 ‘복당투쟁’ 총대 멜 듯 친박(親朴·친박근혜) 좌장인 무소속 김무성(부산 남구을) 의원이 ‘복수혈전’에 성공했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당부대로 살아서 돌아 왔다. 김 의원은 9일 당선이 확정된 후 “옳은 정치로 은혜에 보답하겠다. 중요한 것은 권력이 막강한 실세들이 공천을 잘못하자 국민들이 응징하는 모습을 보면서 민심이 무섭다는 것을 느낀다.”고 당선 소감을 밝혔다. 한나라당 복당에 대해서도 김 의원은 “아무 조건 없이 복당 신청하겠다. 그리고 절대 정치 투쟁하지 않겠다. 대통령이 하루 빨리 경제 회복하는데 적극 뒷받침하겠다.”며 강한 의지를 비쳤다. 이번 선거에서 김 의원의 선전은 부산 지역 무소속 돌풍의 한 요인이기도 했다. 앞으로 그는 친박연대 및 친박계열 무소속 당선자들과 함께 한나라당 ‘복당투쟁’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김성식 리턴매치 성공 전통적 민주 텃밭에 보수정당 ‘깃발’ 서울 관악갑에서는 한나라당 김성식 후보가 ‘리턴매치’에서 승리했다. 김 후보는 통합민주당 유기홍 후보와의 두번째 대결에서 ‘금배지’를 달았다. 지난 17대 총선에서는 유 후보가 김 후보를 이겨 1승 1패를 이뤘다. 관악갑은 호남 출신 유권자가 많아 전통적으로 민주당 텃밭으로 인식돼 온 곳으로 보수 정당의 승리를 좀처럼 허락하지 않은 곳이기도 하다. 지난 15대 총선에서는 한나라당의 전신인 신한국당 후보로 이상현 의원이 당선된 적도 있었지만 이 때는 한광옥(국민회의), 함운경(무소속) 후보가 함께 출마해 표가 갈리면서 신한국당이 덕을 본 경우다. 하지만 몇년 사이 이 지역에 재개발로 아파트 단지가 대거 들어서면서 인구 구성면에서도 변화를 보인 것이 김 후보 승리의 한 요인으로 꼽힌다.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권선택 朴風 꺾어 자유선진당 충북 공략 교두보 확보 ‘창풍(昌風)’이 ‘박풍(朴風)’을 꺾었다. 대전·충남에 불어닥친 자유선진당 바람을 등에 업은 권선택 후보가 6선을 바라보던 한나라당 강창희 후보를 무너뜨렸다. 이번 패배는 한나라당에 ‘공천파동’ 이후 박근혜 전 대표가 유일하게 지원을 벌인 지역이라는 점에서 더욱 뼈아프다. 대전은 ‘박근혜 테러’ 당시 박 전 대표가 “대전은요?”라고 지역을 거론하면서 줄곧 친박(親朴·친박근혜) 기류가 형성돼 왔다. 한나라당은 대전에서 유일하게 당선을 바라보던 중구에서 패함으로써 ‘중원공략’에 빨간불이 켜졌다. 반면 선진당은 비교적 지역 성향이 약한 대전에서도 선전해 ‘지역당’ 이미지를 희석하게 됐다. 또한 상대적 열세를 보인 충북지역을 공략할 수 있는 교두보도 확보하게 되었다. 구동회기자 kugija@seoul.co.kr ■6선 고지 오른 홍사덕 친박돌풍 이끈 ‘쌍두마차’ ‘친박연대’의 야전사령관인 홍사덕 후보가 한나라당 강재섭 후보의 안방에서 6선 고지에 올랐다. 홍 후보는 이번 총선에서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에 대한 저격수 역할을 자처하며 연고도 없는 대구 서구에 출마, 대구·경북 지역의 ‘친박 돌풍’을 주도하며 일찌감치 당선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특히 지난 16대 총선에서 경기 고양 일산갑에 출마해 통합민주당 한명숙 후보에게 2%포인트 차이로 고배를 마셨던 홍 후보가 ‘친박연대’의 야전사령관으로서 강 대표의 안방에서 당당히 승리를 일궈내 ‘대중 정치인’의 면모를 다시금 과시했다. 그럼에도 홍 후보는 당선 직후 기자와 가진 전화통화에서 “박 전 대표를 사랑하는 대구시민들의 뜻을 겸허히 받아들인다.”는 짧은 말로 당선 소감을 대신했다. 한 측근은 “호랑이 잡으러 호랑이굴에 갔더니 호랑이가 도망가는 바람에 대신 여우를 잡았다.”고 자평한 뒤 “민심이 얼마나 무서운 것이냐.”고 되물었다. 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민주화 대부 꺾은 신지호 ‘선진화 시대’ 이끌 뉴라이트 신예 서울 도봉갑의 한나라당 신지호 당선자는 민주화운동의 대부인 김근태 후보를 꺾고 9일 당선됐다. 뚜껑을 열기 전까지 뉴라이트 계열인 자유주의 연대 대표를 맡고 있는 신 당선자의 승리를 예상한 이는 많지 않았다. 그만큼 상대가 거물급이었다. 신 당선자측도 승리를 점치기 어려웠던 듯 당선 확정 소식이 들린 뒤에야 부랴부랴 당선사례를 준비했다. 신 당선자는 “도봉구민들의 지역발전의 염원이 반영된 결과”라고 평가했다. 이어 “김 의원으로 대표되는 민주화 시대가 마감된 것이고, 동시에 이명박 대통령으로 대표되는 선진화 시대가 개막된 것”이라면서 “일하는 정치, 섬기는 정치로 성원에 보답하겠다.”고 했다. 한나라당은 화려하게 국회에 입성한 신 당선자가 당내 ‘브레인’ 역할을 맡을 것으로 기대하는 모습이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재기한 추미애 강력한 리더십… 차기 당대표 예약 통합민주당이 수도권에서 참패를 당한 가운데 추미애(서울 광진을) 후보의 선전은 평가받을 만하다. 추 후보는 이번 총선 내내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한나라당 박명환 후보에게 단 한 번도 뒤지지 않았다. 지난 2004년 총선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해 열린우리당 김형주 후보에게 패배한 이후 절치부심한 끝에 승리한 터라 더욱 의미가 크다. 추 의원의 당선은 향후 민주당의 역학관계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당장 당 내에서 총선 참패에 따른 지도부 책임론이 제기되고, 전당대회에서 새로운 지도체제가 출범할 공산이 크다. 추 후보가 지역구에서 비교적 여유있는 승리를 거둬 ‘차기 대표’ 선출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는 평가다. 지리멸렬 상황에 빠질 당 사정상 ‘추다르크’라고 불리는 추 후보의 강력한 리더십이 요구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이광재 홀로서기 ‘386 심판론’ 잠재운 親盧의 적자 친노(親盧) 세력의 적자 이광재(강원 태백·영월·평창·정선) 후보가 ‘386 심판론’의 바람을 비켜갔다. 이 후보는 한때 참여정부의 국정 실패를 초래한 ‘무능한 386세대’의 대표로 몰려 통합민주당의 공천을 받는 것조차 어려울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탄탄한 지역 기반과 새 정권의 등장으로 ‘친노의 적자’라는 부정적 시선이 상당 부문 희석됐다. 운도 따랐다. 참여연대로부터 부정·부패 후보로 지목됐던 이 후보는 아이러니하게도 김택기 전 한나라당 후보의 ‘돈 봉투’ 살포로 사실상 승기를 잡았다. 그러나 그의 앞날이 순탄치만 않다. 친노 세력이 사실상 와해된 데다 그나마 공천을 받았던 상당수 후보들도 등원에 실패했다.18대는 고립무원에서 출발해야 할 상황인 것이다. 이 후보의 ‘홀로서기’가 주목된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이명박-노무현- 김대중 초기내각 해부] 실용내각이 첫 60代 돌파

    ‘10년 만의 첫 60대 내각’ 실용정부 초대 장관의 평균 나이는 61.6세로, 국민의정부·참여정부 이래 처음으로 60세를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의정부 장관급(20명)은 59.5세, 참여정부 장관급(22명)은 55.9세로 실용정부 장관급(22명)보다 각각 2.1세와 5.7세가 어렸다. 흥미로운 것은 대통령의 나이(74세→57세→67세)에 맞춰 장관급의 나이(59.5세→55.9세→61.6세)도 오르내렸다는 점이다. 차관급에서는 세 정부 모두 나이가 비슷했다. 실용정부 초대 차관(43명)의 평균 나이는 54.5세로, 국민의정부(35명·54.9세)와 참여정부(35명·54.4세)보다 각각 0.6세 감소,0.1세 증가했다. 실용정부의 초대 장관이 처음으로 60대를 돌파한 것은 ‘386세대’가 주축을 이뤘던 노무현 정부에 대한 반대심리가 작용했다는 지적이다. 진보성향의 ‘설익은 386세대’의 부상에 따른 염증에 ‘연륜과 능력’을 중시하려는 성향이 평균 나이의 상승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연세대 사회학과 김호기 교수는 “참여정부 386세대의 아마추어리즘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이번 인사에 반영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 신당 사무총장 신계륜 前 의원

    신당 사무총장 신계륜 前 의원

    대통합민주신당 손학규 대표가 13일 첫 당직 인선을 단행해 향후 지도부 구성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손 대표는 이날 당 사무총장에 신계륜 전 의원, 당 대변인에 우상호 의원, 대표 비서실장에 초선의 이기우 의원을 각각 임명했다. 이번 인선은 당 대표 선출 과정에서 손 대표에게 힘을 실어 준 수도권 386 의원들에게 무게가 실렸다. 여기에다 당내 계파 사이에서 비교적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 온 인사들로 이뤄졌다는 평가가 대체적이다. 손 대표가 단행한 첫 인선은 ‘손학규 호’의 향후 진로를 가늠할 수 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국회의원 3선을 지낸 신계륜 사무총장은 14대 최연소 국회의원으로 정치에 입문해 2003년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 비서실장 및 인사특보로 활약하며 ‘차세대 주자’로서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2006년 2월 대부업체 ‘굿머니’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형이 확정돼 의원직을 상실했다. 같은 해 8·15 광복절 특사로 사면복권돼 절치부심하다가 이번에 사무총장에 임명돼 재기하게 됐다. 우상호 대변인은 386세대 대표격으로 손 대표의 최측근으로 분류된다. 경기도 수원이 지역구인 초선의 이기우 의원은 김근태계로 분류된다. 우 신임 대변인은 “이번 당직 인선은 쇄신이라는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통합형으로 이뤄졌다.”며 “수도권 전면 배치라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손 대표 체제에서는 친위부대격인 수도권과 386 출신 의원들의 약진이 예상된다. 대선 후보 경선 당시 캠프에 합류했던 송영길, 조정식, 정봉주 의원은 물론 대표 선출 공방이 이어질 때 가세한 임종석, 최재성 의원 등도 중용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5명의 최고위원 인선이 주목된다. 수도권 전진 배치라는 측면을 고려하면 재선의 송영길·임종석 의원이 최고위원에 등용될 공산이 크다. 민주당 탈당파의 배려 차원에서 정균환 최고위원의 유임 가능성도 높게 점쳐지고 있는 실정이다. 한편 손 대표는 이날 저녁 전직 지도부를 비롯한 중진·원로들과 만나 “당이 단합하고 화합하는 기초 위에서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고 말해 ‘쇄신’보다는 ‘통합’에 비중을 둘 의중을 내비쳤다. 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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