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디 오페라 ‘팔스타프’(명반과 함께하는 음악여행:8)
◎주세페 베르디/희극,일상과 노년의 과정/호색한 팔스타프卿 계교에 빠져 망신살/세익스피어 원전으로 비극 극복의 오페라화/더 우월한 삶의 亂場 일상스민 죽음의 미소/83세 토스카니니 지휘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1.여인숙 술집. 응축한 음악이 웃음을 폭발시킨다. 그리고 ‘응축과 폭발’이 시작부터 의인화(擬人化),따아,따아,딴,단 세 음(音)으로 딴전을 핀 후 씩씩하게 돌아다닌다. 뚱보에다 배불뚝이,모주꾼에 호색한인 팔스타프가 그렇게 소개된다. 소개는 반복되고 장면이 진행된다.
정작 팔스타프는 술에 쩐 상태. 게으르게 퍼져있다. “팔스타프!” 박사가 문을 박차고 들어오며 그렇게 눈을 부라리지만 그는 대꾸가 없다. “팔스타프경!” 박사가 그렇게 고함을 질러도 소용이 없다. “왜 내 하인들을 두들겨 패고 그러나.” 그렇게 다그치는 박사를 그는 아예 무시해버린다. “주인장! 세리주 한 병 더!” 음악은 팔스타프 대신 돌아다니고…. 희극 오페라(오페라 부파) ‘팔스타프’는 그렇게 시작된다. 가장 빠른 시간에 가장 적절한 웃음
의 축제를 위한 무대가 그렇게 마련된다.
팔스타프는 유부녀를 꼬셔 재미도 보고 재정문제도 풀어보려 한다. 그러나 어림도 없는 일이다. 그는 오히려 그 여자와 자기 주변사람들이 꾸민 계교에 빠져 지독하게 골탕먹고 호되게 망신당한다. 그것도 두 번 씩이나. 팔스타프는 실의에 빠지지만 끝내는 술과 웃음으로 낙천적이다.
해피엔딩도 있다. 젊은 딸이 ‘완고한’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젊은 연인과 결합에 성공한다.
2.오페라 ‘팔스타프’의 이야기장(場)은 이렇듯 매우 평범하다. 대본 자체가 셰익스피어 희극 ‘윈저의 유쾌한 아낙네들’과 사극 ‘헨리 4세’를 원전으로 하고 있다. 음악의 장은? 다르다. 의인화한 음악=웃음이 오페라가 진행되는 동안 내내 응축,폭발과정을 심화확대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두 장의 관계 속에서 ‘과정’이 결론을 극복하는 광경. 일상을 매개로 웃음이 성(性)의 온습(溫濕)과 음탕을 포괄한다. 그리고 바로 그 과정속에 다시 젊고 청아한 사랑이 탄생한다.
“내 황홀의 노래가 내 입을 떠나 깊은 밤멀리 여행한 후 다른 사람의 입술을 만나고 그 입술이 단 한마디 대답해준다면 음악은 더 이상 홀로 있지 않고 은밀한 조화의 기쁨에 떨고 동틀 무렵 사랑으로 온 공기를 채우며 원래 입술로,다른 목소리와 함께 돌아오리니 돌아와 다시 소리를 얻고 그러나 노래의 목적은 자신을 가르는 것을 통합시키는 것 뿐 그렇게 나는 연인의 입술에 입맞추었네…”
그(가사와 선율의 겹침이 자아내는) 청아함은,낭만주의와 달리,문명의 나이를 아는 청아함이다. 그것은 비비꼬이지만 비비꼬임 자체를 순정성(純正性)의 자양분으로 전화한다. 그리고 육체의 순정순결성보다 우월한 역사적 순정성을 일상 속에 창조한다.
이것은 상부구조의 반영인 비극을 하부구조의 반영인 희극이 극복하는 ‘과정’ 그 자체의 음악오페라화에 다름아니다.
3.고대 그리스비극에서 일상인은 전령,보초 등 미미한 역할 뿐이었다. 그들의 우스갯소리가 하부구조의 유일한 반영이었다.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에서 웃음은 ‘음탕을 동원한’ 정치 풍자였다. 그렇게 시작된 연극에서 하부구조가 상부구조를 극복하는데는 2천년 이상이 걸렸다. 오페라 부파는 연극의 극복과 더불어,특히 이탈리아 희극과 춤에서 탄생한다.
그리고 다시 200년 이상의 발전 과정을 거쳐 베르디의 ‘팔스타프’에 달한다. 그토록 허랑방탕했던 웃음이 음악을 매개로 총체보다 더 우월한 삶의 난장(亂場)을 펼친다. 아니,난장으로 펼쳐진다.동시에 난장을 포괄하는 새로운 총체가 예감된다. 매우 강력하게. 이때,무엇이 보이는가. 아,음악이 죽음을 매개한다.
일상에 스며든 죽음. 그 죽음이 음악의 모습을 띠면서 모종의 미소를 흘린다. 마침내 검은 가면도 없이. 삶과 죽음이 살을 섞는 성(性)과 성(聖). 세속의 종교화. 그 속에 바리톤과 테너가,남자와 여자가,선율과 가사가,아리아와 레시타티브가 각각 완벽하면서도 더 큰 총체를 구성한다.
페르골레시로시니를 계승한 오페라부파 테너 청아성(淸雅聲)의 경지가 절정에 달하면서 그 모태(母胎)인 바리톤 영역과 완벽하게 한 몸으로 겹쳐진다. 아니 그것은 이미,새로운 총체의 음악화이다. ‘팔스타프’에는 여느 오페라작품을 능가하는 아리아와 중창이 수두룩하지만 따로 분리되어 불리는 경우는 드믈다.
비극은 일상을 끝내지만 희극은 죽음을 일상속으로 ‘연장’시킨다. 희극이 낭만적일 수는 있어도 낭만주의적일 수는 없는 까닭이다. 이탈리아 부파 음악은 독일프랑스음악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것은 그날그날의 이름없는 일상으로 존재하면서 모차르트바그너를 비롯한 오페라 대가들에게 ‘열등감의 교과서’로 작용했다.
‘팔스타프’는 그 과정을 역전시킨다.베르디로 하여 이탈리아는 대망하던 일상의 이름을 갖게 된다.
4.베르디는 1893년,즉 80세 때 ‘팔스타프’를 무대에 올렸다. 출세작 ‘나부코’(1841),대 히트작 ‘리골레토’ ‘라트라비아타’등을 거쳐 ‘아이다’(1870)를 끝으로 무대 은퇴를 선언한지 장장 23년 만의 일이었다. 아 그랬던가. 체념과 노년의 과정조차 이 작품은 요했던 것인가.
대본작가 보이토는 베르디와 예술적으로 대립했던 사람. 그렇다. 이 작품은 화해의 과정조차 요했다. 그 모든 과정들이 ‘팔스타프’의 과정으로 응축폭발,수천년 문명의 나이를 먹은 웃음을 노년화하면서 동시에 일상 속에 낯익은 죽음의 모습을,웃음으로 형상화 한다.
그렇게 과정이 과정화하고 그 총체를 능가하고 죽음은,허망한 채로,위안에 가깝다. 이 위대한 ‘과정의 미학’을 전설적인 지휘자 토스카니니가 83세의 나이로 연주한다. 그는 27세 때,즉 ‘팔스타프’ 초연 1년 후 이 작품을 직접 지휘했다. 그후 둘 사이에 깊은 예술적 교감이 오간다. 그렇다. ‘팔스타프’는 토스카니니의 과정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팔스타프’를 통해 토스카니니의 뿌리 깊은 바그너 취향이 극복된다. 그런 그의 83세 노년 연주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1950.4&8 녹음. 1990. BMG602512RG
바리톤 주세페 발뎅고 외(外)
로버트 쇼 합창단(지휘:로버트 쇼)
NBC 심포니 오케스트라
지휘:아르투로 토스카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