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어떻게/“박상범 前 청와대 경호실장
주말 TV드라마 ‘무인시대(武人時代)’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고려무인 이의방은 직책이 견룡행수(牽龍行首)다.대궐을 지키는 수장,즉 지금의 청와대 경호실장격이다.일부 시청자들은 이 드라마의 시대적 배경을 지난 79년 당시 10·26에서 12·12사건으로 이어지는 파란의 역사에 비유한다.보현원(궁정동) 참살사건후 군인들끼리 좌충우돌하다 중방(30경비단)에서 정치판을 새로 짜는 장면이 흡사하기 때문이다.
10·26사건 때 궁정동에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측이 쏜 M16 총탄 4발을 맞고도 기적적으로 살아나 불사조라는 별명을 얻은 박상범(朴相範·62)씨는 고 박정희 대통령 시절부터 두번의 군사정권과 김영삼 전 대통령 등 5명의 ‘청와대 어른’을 모시면서 최초의 문민 ‘견룡행수’로 한 시대를 풍미한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지난 98년 공직을 떠나 쭉 야인으로 지내온 ‘버릇’ 때문일까.그는 드라마 ‘무인시대’보다 오히려 ‘야인시대(野人時代)’를 즐겨본다고 말했다.
박씨는 야인생활 5년만에 최근 배재대학 겸임교수로 강단에 섰다.과목은 ‘인간관계론’이며 강의대상은 학부 3학년이다. 16일 오전 서울 방배동 평통장학회 사무실에서 만났다(그는 현재 재단법인 평통장학회장직을 맡고 있다).
“매주 수요일 오후 2시간씩 대전으로 내려가 강의를 하게 됩니다.지난 주 첫 강의는 했지만 매 강의때마다 공부하는 심정으로 강단에 섭니다.요즘 젊은 학생들이 얼마나 명석합니까.”
2년전 환갑을 넘긴 박씨는 대통령 경호의 달인답게 머리에 핀 ‘세월의 꽃’을 제외하곤 여전히 흐트러짐이 없는 몸가짐이었다.때문에 주변에서는 대통령 경호를 소재로 한 영화 ‘사선에서’의 냉혈적인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곧잘 비유하곤 한다.
배재대학과의 인연은 지난해 여름 배재대학 초청으로 최고경영자과정에서 2시간 동안 ‘통일론’ 특강을 한 것이 계기가 됐다.강의과목이 ‘인간관계론’이라 처음에는 거절을 했지만 박씨의 ‘경험’만 풀어놓아도 훌륭한 강의가 될 것이라는 학교측의 거듭된 요청을 받아들였다.
실제로 박씨의 경험은 우리나라 현대사의 심장부에서 실타래처럼 무수히 얽혀져 있다.10·26과아웅산 사건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것을 비롯,박정희 대통령 시절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경호실 주변의 비화 등 25년 가까이 대통령을 최측근에서 경호했다는 점에서 유일무이한 산증인으로 꼽힌다.
공직 은퇴 후 5년 동안 어떻게 지냈느냐는 질문에 그는 “욕망을 털어버리려고,또 게으른 자신과 무던히도 많이 싸워왔다.”고 말해 산전수전과 공중전을 겪은 뒤 인생의 특수전을 치르는 달인을 연상케 했다.은퇴 후 골프를 배운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고 부언했다.골프 실력은 핸디13 정도.라운딩 멤버는 영원한 해병동지인 해군 간부후보 33기 동기생들이다.정치섭 고속도로 안성휴게소사장,이석호 서울대교수,정기인 한양대교수,강대인 방송위원장 등과 가끔 ‘필드 회동’을 한다.이때마다 재미를 돋우기 위해 타당 1000원짜리 내기를 한다고 귀띔했다.
최근 임명된 김세옥 신임 청와대 경호실장에 대한 얘기가 자연스럽게 나왔다.그는 “김세옥 실장은 매사에 치밀하고 워낙 경호업무에 밝은 사람”이라면서 그와의 특별한 인연을 잠깐 공개했다.박씨는80년대 중반 청와대 경호처장 당시 22특경대,101경비단,수도방위사령부 관계자 등 경호실무자들의 모임인 ‘기러기회’를 주도했다.코드1(대통령) 행차 때마다 양 옆으로 기러기처럼 차들이 쭉 늘어서 경호를 한다고 해서 박씨가 고심 끝에 명명했다.이때 김 실장은 치안본부 경호경비과장으로 참여했다.
“경호실장 자리는 한마디로 ‘고난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언제 어느 때 예상치 못한 돌발상황이 생길지 모르기 때문에 24시간 긴장해야 합니다.”
그는 현역시절을 잠시 회고하면서 “국가원수 다섯분의 성품이 모두 다르듯 경호 스타일도 조금씩 달랐다.”고 말했다.예를 들어 박 전 대통령은 무장한 경호실장이 늘 옆에 있는 것을 좋아했고 군사정권 때는 2∼3겹의 군경호,김영삼 정권 때는 수행과장 정도만 지근거리에 있게 했다고 귀띔했다.경호실장은 최소 한달 이내에 대통령의 성품을 세밀히 간파한 뒤 그에 맞는 경호기술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불사조’ ‘경호의 달인’ ‘클린트 이스트우드’.역사의 한가운데에 살면서 박씨가 얻은 별명들이다.자세가 워낙 흐트러짐이 없어 인상이 차갑다고 하지 않느냐고 하자 그는 “얼마전 나를 ‘경호하던’ 백구가 죽었을 때 집 앞마당에 직접 염까지 하고 묻었다.”는 말을 꺼냈다.마음은 차갑지 않고 정이 많다는 얘기였다.
박씨는 현재 서울 종로구 청운동에서 83세의 노모와 부인,큰딸(의류디자인 박사과정),막내 아들(스포츠마케팅 박사과정)과 함께 지내고 있다. 하루 40분씩 헬스로 건강을 유지하고 있으며 오래전에 선운동을 그만두어 가부좌 자세에서 공중에 ‘붕’ 뜨는 것은 할 수 없다며 웃었다.
김문기자 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