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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 “애달픈 국민 위로한 변사, 문화재로 등록 않으면 크나큰 문화 상실”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 “애달픈 국민 위로한 변사, 문화재로 등록 않으면 크나큰 문화 상실”

    마지막 ‘변사’ 생활 30년 최영준이 말하는 ‘목소리 마술사’“인간문화재 등록요? 좋죠! 무성영화 변사가 우리 고유의 전통문화로 인정받고 계승 발전의 터닝 포인트가 된다면 더 없이 반가운 일이죠. 나라잃은 설움에 가득찬 식민지 백성을 통곡하게 하고 목놓아 아리랑을 노래하며 독립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던 나운규의 무성영화 ‘아리랑’과 변사는 우리의 아픈 역사 속에서 찬란히 빛을 발했던 문화적 횃불입니다. 변사의 역사가 짧다고요? 제가 마지막 변사가 아닌 새로운 시작을 위한 초석이 될 수 있도록, 국가적으로 방법을 모색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30여년 전 무성영화가 단 한편밖에 남지 않던 시절 사명감 하나로 사재를 털어 변사공연을 이어왔습니. 100년 전통을 가진 무성영화와 변사를 하찮게 여겨 이 시대에 소멸시킨다면 크나큰 문화상실이자 후손에게 잘못이 될 것입니다.”변사, 일제시대 탄생한 광대… 무성영화, 관객에 전달애달픈 대사에 심금 올리는 목소리… 관객 울리고 웃겨 스마트폰으로 누구나 동영상을 만들 수 있고, 영화관에 들어서면 선명한 고화질 화면에 서라운드 음향이 펼쳐지는 디지털시대다. 이런 와중에 무성영화를 해설하고 연기하고 관객을 울리고 웃기는 변사(辯士)가 아직도 활동한다는 사실에 반가움이 끓어올랐다. 호기심으로 수소문한 최영준씨. 자신을 광대(廣大)라고 부르는 그는 한국에서는 유일한 ‘목소리 마술사’라는 변사다. 일제강점기에 시작된 한국영화 백년사에서 빠질 수 없는 무성영화 변사. 애달픈 스토리에 심금을 울리는 목소리로 세파에 시달린 관객을 웃겼다 울리는 변사. 그러나 유성영화의 등장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수밖에 없었던 변사가 전국을 다니며 전성기를 누리듯 공연을 이어 간다니 그의 애환과 비결을 듣고 싶었다. 지난 3일 최영준씨를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의 한 커피숍에서 만났다. 그는 “광대의 나이는 늘 철없는 열 살”이라며 굳이 나이를 밝히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30여년전 우연히 본 ‘검사와 여선생’에 꽂혀신파극 ‘이수일과 심순애’ 제작해 변사로 나서새로운 장르여서 ‘무성영화 변사극’이라 명명”- 변사극에 빠지게 된 계기는. “30여 년 전, 모노드라마 1인극 연극배우로, 인천에서 ‘약장수’, ‘팔불출’을 직접 제작하고 출연해 서울로 진출하였죠. 그 당시 연극의 중심이었던 이대입구 소극장에서 한 작품 당 2년씩, 장장 4년간 장기공연을 마치고 차기작품을 준비하다가…. 우연히 5년 전에 작고하신 변사 신출 선생의 무성영화 ‘검사와 여선생’을 보게 됐어요. 무성영화와 변사를 보는 순간 ‘아, 이거다’ 싶었죠. 제 눈에는 변사가 1인극 배우로, 무성영화는 훌륭한 무대장치로 보였던 겁니다.” 이걸 꼭 해야겠다 마음먹고 그 시절의 다른 흑백무성영화가 또 있는지 찾았다. 당시 한국에 ‘검사와 여선생’ 외에는 무성영화가 단 한편도 없었던 상황. 신파극으로 유명한 ‘이수일과 심순애’를 무성영화로 직접 제작해서 변사로 나섰다. 그때가 1986년. 그 때부터 전국 순회공연과 미국 공연도 갔다. 장르에 대한 구분이 필요해서 그는 직접 장르 이름을 ‘무성영화 변사극’이라고 붙였다. - 무성영화 변사극이란 뭔가요. “문화의 다양성 측면에서 시대를 주도하는 문화가 있다면 시대를 역행하는 문화도 있어야 합니다. 무성영화 변사극은 우리나라 식민지 시절의 아픈 역사 속에서 위로 받고 싶었던 대중의 사랑을 받았던 신파극, 악극, 그 시절 대중가요, 흑백 무성영화, 그리고 변사를 새롭게 디자인하여 이 시대의 관객과 함께 어울리고 소통하는 마당극이라는 그릇에 담았습니다. 저의 연출기법이죠. 장르의 융합이랄까, 하이브리드 콘텐츠라고 할 수 있지요. 각기 독립된 장르의 장점을 섞어놓은 비빔밥 같은 장르이니 그 이름을 새롭게 붙인겁니다.” - 다양한 경험을 했는데, 변사 연기에 도움이 되나. “한 우물만 파라는 소리를 참 많이 들었죠. 장르를 넘나드는 ‘크로스 오버’라는 용어가 생소했던 시기에, 저는 늘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며 살아 왔죠. 극단의 허드렛일부터 시작해서 연극배우, 연출, 시나리오 작가, 영화배우, 작사, 작곡, 가수, 개그맨…, 라디오 DJ도 재작년까지 25년간 했습니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노래 ‘한국을 빛낸 백명의 위인들’을 부른 가수가 바로 접니다. 글쓰기, 연기, 연출, 노래, 작사, 작곡…. 발표한 음반도 열장이 넘습니다. 음반 한 장에 제가 만든 신곡이 평균 10곡이니 거의 미친 듯이 열정을 쏟아 붓는거죠. 다양한 분야에 도전하는 것이 말이 쉽지 완전히 맨땅에 헤딩 하는거죠. 전사의 심장으로, 독학으로, 가시밭길을 헤쳐 가는 겁니다. 수많은 시행착오가 저의 학습이고 노하우를 터득하는 방법입니다. 파란만장한 제인생의 이런 모든 것이 자양분이 되어 ‘1인36역’의 변사를 할 수 있었다고 봅니다.” “변사극 매력?…관객과 소통, 무성영화와 호흡마당놀이 형식… 관객 호응 일본 영화사도 놀라주 관객은 노령층… 노인 증가에도 콘텐츠 부족”- 무성영화 변사극의 매력은 무엇인가. “관객과 대화하고 함께 얼싸안고 울고 웃는, 접촉을 통한 소통입니다. 쇼도 보고 영화도 보고, 무성영화와 변사의 환상적인 호흡인거죠. 변사의 연기술과 웃음을 주는 애드립은 젊은 관객도 좋아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어르신을 위한 공연입니다. 또한 마당놀이 형식을 도입해서 관객의 적극 참여를 유도합니다. 지난 2월에 일본 마츠다 영화사를 방문하였는데 무성영화 1000편을 보유하고 있더군요. 그러나 변사는 5명 정도가 활동하고 있지만 대중의 주목도가 떨어져 정부의 지원사업에 의지하는 형편이라고 합니다. 제 공연 영상을 보더니 어떻게 이렇게 관객의 호응을 이끌어 내는지 놀라는 반응을 보이며 9월에 초청공연을 갖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일본의 무성영화 상영이 역사적인 콘텐츠의 재연이라면, 저의 무성영화 변사극은 변사와 관객이 함께 어울리고 즐기는 공연입니다. 제가 이렇게 지극히 한국적으로 변사극을 만들고 틀을 잡아 놓으면 후대에 누군가에게는 초석이 되고 디딤돌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문화 영역이 더욱 확장되는 것이죠.” - 변사극 공연, 지방에서 많이 하던데, 그 이유는. “아무래도 서울 보다 지방이 문화 소외지역이라고 해서 그쪽 문화단체나 지자체에서 많이 초청을 해줍니다. 이게 아날로그 콘텐츠이다 보니 관객층은 주로 저를 알아봐 주시는 어르신들이죠. 그런데, 사실 진짜 문화소외 지역민은 서울에 사는 어르신들이예요. 노인을 위한 구경거리가 없다면서 어쩌다 변사공연을 보시고는 ‘자주 보고 싶다, 많이 아쉽다’고 하시더군요. 우리나라도 노인 인구가 많아지지만 즐길 문화 콘텐츠가 부족하잖아요. 앞으로 방방곡곡 더 많은 공연으로 노인들을 즐겁게 해드리는 것이 사회적으로, 국가적으로 좋은 일이고, 저의 소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두 시간 넘게 계속된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이 썼다는 미발표곡 ‘목포항’도 불렀고, 조금 뒤에는 ‘목포의 눈물’도 구성진 가락으로 읊조렸다. 아이들 같은 목소리로 동요도 여러차례 불렀다. 물론 변사의 역할을 소개하는 과정이었다. 그러나 그는 영화와 유독 인연이 깊다고 했다. 연극배우 시절 극장 개봉영화 ‘엘리베이터 올라타기’, ‘랏쉬’에 주인공으로 출연했고, 개그맨 데뷰 후에는 어린이 영화 십여편에 출연했다. “최근에는 어린이 영화 시나리오 두 편을 썼는데요, 한 편은 지난달에 경주에서 촬영을 마쳤고요, 또 한 편은 8월에 제주도에서 촬영할 예정입니다. 배우들의 대사는 전부 제주도 사투리입니다. 영화음악도 제가 다 작사 작곡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올해가 한국 영화 탄생 100년이 되는 해이다. “변사 배우러 오면 말려…엄청 노력에도 돈은 안 돼그래도 배우겠다면 1인극 ‘팔불출’ 공연하라면 안 와10년 노력해야 제대로 된 변사… ‘노랑목’ 나와야 해”- 변사, 하고 싶다는 사람이 혹시 있나. “가끔씩 찾아옵니다만 제가 말리죠. ‘변사극 쉽지 않다. 떼돈 버는것도 아닌데 노력은 엄청 많이 필요하다.’ 그래도 변사를 해보겠다고 하면 제가 30년 전에 공연했던 모노드라마 ‘팔불출’의 대본과 동영상을 주면서 ‘이 작품, 한번 공연하고 오라’고 합니다. 90분 동안 혼자 공연한 작품이거든요. 그러면 다 기겁을 하고 다시는 찾아오지 않더군요. 변사가 되려면 어느 정도 나이도 있고 타고난 재능에 연기가 익어야 합니다. 부단히 노력해서 한 10년은 해야 제대로 된 변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노랑목이 나와야합니다. 변사 연기의 신의 한수는 노랑목입니다.” - 노랑목?, 이게 뭔가요. “이게 뭐냐하면요, 이난영 선생의 ‘목포의 눈물’을 가만히 들어보시, 모기소리처럼 들릴 듯 말 듯 아주 가녀린 목소리로 노래를 하는데 이 소리가 애달프면서도 심금을 울립니다. 발성이 달라요. 노랑목 연습은 입을 작게 벌리고, 귓가에 속삭이듯 노래하고 말합니다. 그러자면 목구멍을 딱 막아야 합니다. 보통은 목을 열고 말하는데 이건 목구멍을 닫아야 해요. 그래야 비성, 두성 가성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게 됩니다. 변사는 흘러간 옛 노래도 불러야 되고, 모든 배역의 목소리를 연기해야 하는데, 특히 남자 변사가 여자 주인공 목소리를 예쁘게 구사해야 합니다. 노랑목이 가능해지면 실제 여성보다 더 여성스런 목소리, 변성기 이전의 어린아이 같은 예쁜 목소리를 낼 수 있습니다. 물론 오랜 연습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 언제부터 이런 엔터테이너 소질을 보였나. “제가 어릴 때부터 연극을 시작할 무렵인 20대 중반까지는 내성적이고 말도 없었습니다. 남 앞에 나서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연극판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죠. 고등학교 다닐 때 잠깐 연극부에서 활동을 했지만, 처음 극단에서 연기를 시작할 때 연기는 모르고 자의식은 강해서 많이 힘들었죠. 더구나 대학을 조선공학과에 입학했는데 적성이 맞지 않아서 1년 다니다 그만두었으니, 전공이 완전 다른 연극 문외한 이었죠. 그래도 어떻게 하면 연기를 잘할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당시에 최고의 연극배우 이호재씨를 롤모델로 삼았어요. 그때 마침 그 분이 1인극 약장수를 공간사랑 소극장에서 공연했는데, 그 배우의 ‘약장수’ 대사를 전부 몰래 녹음해서 숨구멍은 어디인지, 억양은 어떻게 하는지, 소리는 어떻게 내는지 연구하고 따라했습니다. 그의 공연을 매일 봤고, 그의 대사를 전부 외웠습니다. 그 명배우의 모든 것을 그대로 벤치마킹 한 셈이죠. 그러다가 결국 제가 살던 인천에서 소극장을 만들어서 개관 기념공연으로 최영준 모노드라마를 무대에 올렸습니다. 그때가 20대 후반이었습니다. ‘약장수’에 이어서 ‘팔불출’을 했는데, 한 작품을 2년씩 하루 두번 계속 공연하니 그 작품에 대해서는 도가 트더군요. 그러던 어느날, 서울 서대문 푸른극장에 있는 공연기획사인 ‘태멘’으로 스카우트되어 모노드라마를 푸른극장 지하 말뚝이 소극장에서 계속 했습니다.” - 모노드라마 당시 반응은. “처음 인천에서 할 때는 객석이 텅 비다시피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관객 없이 연습도 하는데 …. 연기 공부를 한다’ 하는 심정으로 독하게 계속하니 나중에는 입소문이 나서 극장이 미어터졌습니다. 그래서 한달에 400만원 줄테니 서울의 말뚝이 소극장에서 하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받고 서울로 진출했던 거죠. 당시 선배들이 저를 두고 ‘너같은 어린 놈이 무슨 일인극이야. 일인극은 베테랑들이 하는 거야’라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러면 ‘형, 나이 먹으면 힘이 없어서, 체력이 딸려서 못하는 게 일인극이예요’라고 받아치면 선배들이 저보고 ‘저런, 당돌한 녀석’이라고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 ” “연극배우 이호재가 롤모델…대사 몰래 녹음해 연습고 강계식 선생의 한마디 충고가 신의 계시처럼 꽂혀‘희극 배우는 웃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울릴 줄 알아야’전유성도 고마운 사람… 인맥 동원해 영화도 만들어줘”- 그래도 격려해준 선배는 없었나. “연극배우로 활동하고 계시는 이민재 형이 약장수 공연 당시에 연출을 봐 주셨는데, 저의 연기 개인지도 교사였죠. 연기에 눈을 뜨게 해주신 은인이죠. 변사를 체계적으로 누구에게 배운 적은 없습니다만 강계식, 고설봉 두 분이 생각납니다. 영화계에선 이향, 이런 분들과 신파극 작업을 함께 했습니다. 80년대 초반이니 당시 이분들이 70대를 넘겼거나 80대에 가까웠습니다. 이분들이 신파시대의 마지막 세대예요. 제가 빨리 같이 작업하지 않으면 이분들이 갖고 있는 신파극의 유산을 놓칠 것 같았어요. 그래서 저는 연기도 연출도 같이 하면서 그분들하고 여러 작품 신파극을 만들면서 ‘이건 뭐예요’, ‘저건 뭡니까’하면서 많이 물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강계식 선생이 저보고 ‘여보게 미스터 최, 자넨 말이야, 희극배우야. 희극을 전문으로 연기를 하라는 거야. 근데, 희극배우는 웃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관객을 울릴 줄도 알아야 돼.’라고 하신 말씀이 신의 계시처럼 제게 팍 꽂혔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저는 하염없이 웃기다가 끝에는 관객을 반드시 울립니다. 슬픔으로 끝나야 그게 예술적이라는 거죠. 카타르시스도 있고. 그 당시 신파극에 대한 것을 많이 배우고 터득했죠. 또 한분은 개그맨 전유성씨예요. 어느 날, 저의 무성영화 변사극 계획을 들으시더니 감독을 맡아 주시고 당신의 인맥을 총동원해서 영화도 그럴듯하게 만들어 주시고 제가 변사로 나설수 있도록 해주신 결정적인 귀인이자 은인이죠.” - 우리나라에 변사극 레퍼토리가 많나. 무성영화가 있으면 변사극이 가능한가. “무성영화라고 해서 다 변사극이 될 수는 없습니다. 찰리 채플린의 무성영화는 변사가 없어도 상영할 수 있습니다. 변사의 개입이 필요 없는 그 자체로도 완벽한 영화입니다. 변사극의 무성영화는 반드시 변사가 개입해야 완벽한 조화를 이룹니다. 예컨대 ‘검사와 여선생’을 변사 없이 무성영화로만 상영한다면 이상하고 싱거운 상황이 될 것입니다. 변사는 영화와 관객을 이어주는 가교역할을 합니다. 변사의 능력이 흥행을 좌우할 정도로 변사극의 핵심입니다. 현재 저의 변사극 레퍼토리는 세편입니다. 1948년작 ‘검사와 여선생(감독 윤대룡) 1986년작 ‘이수일과 심순애’(감독 전유성), 2002년작 ‘나운규의 아리랑’(감독 이두용) 입니다.” - 남기고 싶은 작품이 있다면. “올해안에 신파극 ‘홍도야 우지마라’를 제가 무성영화로 제작, 감독할 예정입니다. 이수일과 심순애 무성영화에서 시도했던 여러 가지 장치들을 한 단계 더 발전시킬 생각입니다. 이수일과 심순애의 경우 예를 들면, 변사가 영화속 배우들의 싸움을 말린다. 영화 속 김중배 얼굴에 두루말이 화장지를 던진다. 이수일이 돈을 뿌리는 장면에서 변사도 같은 동작으로 돈을 뿌린다… 등등. ‘홍도야 우지마라’에서는 변사가 영화 화면 속으로 들어갔다가 나쁜놈을 때려주고 화면 밖으로 나오고, 비맞는 영화 속의 홍도에게 변사가 우산을 건네주고, 화면 속 홍도의 편지를 변사가 받아서 홍도 남편에게 건네주는 등의 가상현실 같은 장치를 할 생각입니다. 그러나 애수를 자아내는 장면을 그대로 살려낼 겁니다.” “올해 신파극 ‘홍도야 우지마라’ 무성영화 제작 예정제작비 구애없이 다음 세대 위해 작품 남기는 게 할일언젠가 무성영화 박물관 설립하고 변사 양성하고 싶어”- 무성영화 제작에 큰 돈이 들텐데 제작비 조달은 어떻게 하나. “1억원정도 예상하는데, 변사극 공연으로 벌어서 영화 제작할 돈을 모으고 있습니다. 제작비용이 부담이 되긴 하지만 한 번 만들어 놓으면 손익 분기점이 올 때까지 계속 울궈 먹을수 있으니 그렇게 무식한 투자라고 생각하진 않는거죠. 많은 분들이 새로운 작품을 선보이면 좋겠다는 요구도 있고요. 다음 세대, 후학들을 위해 제가 살아있는 동안 여러 작품을 남겨놓는 것이 이 시대 마지막 변사로서의 할 일이죠.” -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은. “10년 전, 2009년에 미국 LA에서 공연기획을 하는 이광진씨 초청으로 미국 서부지역 한국교민들을 위해 순회공연을 떠났어요. 서울 촌놈이 샌디에고, 오렌지카운티, LA, 산호세, 샌프란시스코, 시애틀…. 태평양을 따라 죽 거슬러 올라갔죠. 가는 곳마다 대성황이었어요. 마지막으로 미국에서도 오지라는 알래스카에서 공연을 마치고, 공연장 출입구에 서서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하며 관객 배웅을 하는데, 나이 많으신 할머니 한분이 제 손을 꼭 잡으면서 20달러를 차비에 보태 쓰라고 주시는 거예요. ‘마음만 받겠다’고 해도 한사코 주시면서 ‘나, 집에 가고 싶어. 한국에 가고 싶어….’라며 눈물을 글썽이며 돌아가시던 그 할머니의 뒷모습을 잊을 수가 없어요. 그 분들에게는 저의 공연이 고국의 추억이며, 그리움이었던 거죠.” 부산에서 태어난 그는 여섯살 무렵 서울로 왔단다. 함경도가 고향인 부모님이 한국전쟁 통에 부산으로 피난 내려온 것이었다. 서울에선 휘문중고를 다니다 아버지의 실직으로 가세가 기울어 인천으로 이사하면서 인천에서 서울로 통학했다. 대학을 그만두는 바람에 배워야 한다며, 지금도 공부를 멈추지 않는 그는 늘 학생의 정신으로 살아간다. “언젠가는, 때가 되면 무성영화 박물관을 만들어 전 세계의 무성영화를 수집, 보관, 상영하고 변사학교를 만들어서 새로운 시대에 어울리는 변사를 양성하고 싶습니다. 물론 무성영화 제작도 계속할 겁니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살인진드기 조심하세요-SFTS 감염 주의 당부

    “살인진드기 조심하세요” 야외활동이 많은 계절 중증열성혈소판감소증후군(SFTS) 환자가 잇따라 발생해 주의가 요구된다. 전북도는 정읍시에 거주하는 80대 여성이 SFTS에 감염돼 치료중이라고 6일 밝혔다. 이 여성은 전북지역에서 올들어 첫 SFTS 감염 확진 환자이고 전국에서는 충남 50대 여성에 이어 두번째이다. 이 환자는 고열, 근육통 등의 증상을 보여 지난 3일 전북도 보건환경연구원에서 검사를 실시한 결과 SFTS 양성 판정을 받았다. 밭에서 영농작업을 하다 진드기에 물린 것으로 알려졌다. SFTS는 주로 야외활동이 많은 4월부터 11월 사이에 발생한다. SFTS 바이러스를 보유한 작은소참진드기에 물린 뒤 1~2주일 정도 잠복기를 거쳐 38~40도의 고열과 오심, 구토, 설사, 식욕부진 등 감기몸살과 비슷한 증상을 나타내는 감염병이다. SFTS는 현재까지 예방백신과 표적 치료제가 없어 진드기에 물리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이 최선이다. 특히, 올해는 참진드기 지수가 54.4로 지난해 같은기간 35.8 보다 훨씬 높아 감염률이 더 높을 것으로 우려된다. 전북도 보건당국은 “농작업, 등산 등 야외활동을 할 경우에는 긴소매, 긴반지 등을 입어 진드기에 물리지 않도록 하고 집에 들어와서는 즉시 목욕을 하고 옷은 세탁하는 등 예방수칙을 준수해 줄 것”을 당부했다. 또 진드기에 물린 것이 확인될 경우 무리하게 진드기를 제거하지 말고 의료기관을 방문해 진료를 받을 것을 주문했다. SFTS는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866명이 발생해 20% 174명이 숨졌다. 전북에서는 지난해 13명의 환자가 발생해 6명이 사망해 46.2%의 치사율을 기록했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한국인 원폭 피해 2세대 8.6% 장애…“유전 될까봐 결혼·출산도 포기했다”

    한국인 원폭 피해 2세대 8.6% 장애…“유전 될까봐 결혼·출산도 포기했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9.5% 달해 1·2세대 모두 “사회적 차별 경험”“아들 결혼할 때 여자 집에서 내가 원폭(원자폭탄) 맞았다는 걸 알게 된 거라. 그래서 파혼했다. 그다음부터는 원폭 맞았다는 얘기를 안 했고 아들은 다른 여자한테 장가갔다.”(원폭 피해자 1세·80대 남성) “딸은 결혼을 안 한다고 해요. 원폭 피해가 유전될 수 있다고 절대 안 한다고요. 그래서 결혼에 관심도 없어요.”(원폭 피해자 2세·60대 여성) 1945년 히로시마·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에 노출된 한국인 피해자들의 고통이 대물림되고 있다. 원폭 피해자 1세뿐만 아니라 그들의 자녀까지도 피폭의 영향이 유전될 수 있다는 불안감에 결혼을 단념하거나 출산을 포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원폭 피해자의 자녀란 이유로 파혼당한 일도 적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25일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한국인 원자폭탄 피해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피해자 1·2세대 모두 주변 사람들로부터 사회적 차별을 받고 있다는 인식이 높았다. 이 때문에 피해 사실을 노출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세대 피해자의 23.0%는 장애가 있었고, 36.0%가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였으며 이들의 월평균 가구 수입은 138만 9000원이었다. 장애와 가난은 2세대로 고스란히 이어졌다. 2세대 피해자 8.6%가 장애가 있다고 답했고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는 9.5%였다. 이는 우리나라 35~74세 일반인의 장애인구 비율이 5.9%, 전체 인구 대비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비율이 3.5%인 것과 비교할 때 월등히 높은 수치다. 피해자 2세인 70대 남성은 “온몸이 가려워서 병원에 갔더니 ‘상세불명의 피부병’이라고 진단했다”며 “자반증이 온몸에 다 있고, 국민학교 다닐 때부터 다리 피부에 부스럼이 났다”고 토로했다. 원폭 피해 1·2세는 막연한 불안과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서라도 피해자 자녀 등의 피폭 영향에 대한 정부 차원의 역학조사가 필요하다고 했다. 피해자 2세인 50대 여성은 “실태 조사라도 잘돼서 우리의 고충을 알아줬으면 좋겠다”며 “정부에서도 지금까지 무관심했지만 이제부터라도 관심을 두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8월 기준 원폭 피해자로 대한적십자사에 등록된 생존자는 2283명이다. 1945년 당시 한국인 원폭 피해자 규모는 7만명으로, 이 중 4만명이 피폭으로 사망했고 생존자 중 2만 3000명이 귀국한 것으로 추정된다. 정부가 원폭 피해자들에 대한 실태조사를 한 것은 처음이다. 신형철 기자 hsdori@seoul.co.kr
  • 87세가 낸 사망 사고에 들끓는 고령자 운전 제한 목소리

    87세가 낸 사망 사고에 들끓는 고령자 운전 제한 목소리

    고령 운전자들의 자동차 사고가 다시 일본 열도를 들끓게 하고 있다. 이번에는 대낮에 차를 몰던 80대 노인이 횡단보도를 건너려던 보행자들을 치어 2명이 죽고 8명이 다치는 사고가 나면서 촉발됐다. 19일 NHK 등에 따르면 이날 사고는 도쿄 도시마 구의 인구 이동이 많은 히가시 이케부쿠로에 위치한 두 곳의 횡단보도에서 연쇄적으로 발생했다. 사고를 낸 승용차 운전자는 87세 남성이었다. 경찰은 사고 당시 상황을 조사 중이지만, 전문가들은 사고를 낸 고령 노인이 인지 능력이 상당히 저하된 상황이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사고를 낸 차량은 이날 낮 12시25분쯤 횡단보도를 건너려던 행인 1명을 들이 받은 뒤 멈추지 않고 그대로 70m가량 질주해 두 번째 횡단보도에 있는 쓰레기 수거차에 충돌했다. 이 과정에서 길을 건너던 행인들이 부상을 입었다. 경시청 등에 따르면 이번 사고로 총 10명이 부상해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이 가운데 자전거에 타고 있던 모녀로 보이는 30대 여성과 3세 가량의 여자 아이는 사망했다. 일본에서 65세 이상의 고령 운전자들에 의한 자동차 사망사고는 해마다 450건 이상 발생한다. 인지 능력이 많이 떨어진 상태에서 빚어지는 사고라는 특징이 있다. 대부분 교차로에 서 있거나, 보행로를 걸어가던 이들을 들이 덮치는 경우가 많다. 지난 1월 신주쿠 번화가에서 일어난 79세 노인이 7명을 크게 다치게 한 사건도 같은 경우이다. 이번 사건도 평소 통행이 많은 역 근처 교차로에서 일어나 피해가 컸다. 이런 연유로 고령자들의 자동차 사고는 사고 빈도에 비해 사망자 발생의 비율도 높다. 길을 걸어가고 있는 어린이나 부녀자들을 치는 경우도 적지 않아,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일본 정부와 교통 당국은 75세 이상의 면허증 갱신 시 치매 진단 의무화, 고령자의 면허증 반납 유도를 위한 택시권 등 인센티브 지급 등 여러 방안을 강구해 오고 있지만, 여전히 고령자에 의한 자동차 사고는 심각한 사회 문제로 남아있다. 농촌 인구가 줄고, 농촌 거주 노인들이 인적이 드문 곳에서 흩어져 사는 경우도 많아, 이 경우, 생활을 위해 자동차를 가지고 다니지 않을 수 없는 절박한 이유도 있다. 도시의 경우도, 핵가족화로 쇼핑과 생활을 고령자 혼자서 해야 하는 경우도 적지 않아, 위험성을 알고는 있지만 운전면허증을 쉽게 반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고령자의 운전 사고가 사회문제로 대두된 일본이 치매 진단을 의무화하는 등 노인의 운전 자격을 보다 엄격하게 관리해 나가고, 붐비는 시간대에는 운전을 자제해 줄 것을 요청·계도하고 있지만 문제가 쉽사리 풀릴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이날 사고도 많은 이들의 붐비는 점심 시간대에 벌어져서 사상자가 많았다. 쓰레기 수거차의 운전자는 “갑자기 오른쪽에서 차가 부딪쳤다”며 “갑작스러워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쓰레기 수거차는 충돌 충격으로 파손됐으며 옆으로 쓰러졌다. 사고 차량은 쓰레기 수거차에 부딪힌 충격으로 겨우 멈춰섰으며 크게 찌그러지는 등 파손됐다. 사고를 목격한 한 30대 남성은 “(첫 번째 사고 지점인) 횡단보도를 건너려던 자전거 1대가 달려온 승용차에 치었다”면서 “이 차량은 그대로 달려 다음 교차로에서 쓰레기 수거차에 충돌해 횡단보도를 건너려던 사람들이 다쳤다”고 말했다. 그는 사고를 낸 승용차의 속도가 무척 붙어있었다고 덧붙였다. 두 번째 사고 지점인 횡단보도에서 신호 대기하던 한 50대 트럭 운전수는 “조수석에 앉아있던 동료와 이야기를 하던 중 쿵 하는 큰 소리가 나서 봤더니 쓰레기 차가 옆으로 쓰러져 있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횡단보도에는 두 동강 난 자전거가 있었고, 고령의 여성 및 샐러리맨 남성 등이 도로상에 누워 있었다”라고 사고 당시를 설명했다. 이 트럭 조수석에 타고 있던 55세 남성은 “쓰레기 차가 옆으로 쓰러진 것을 볼 때 승용차가 상당한 속도로 들이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또 “승용차 운전자는 고령 남성으로, 사고 직후는 스스로 걸을 수 없는 상태여서, 구조대가 도착해 인도로 끌고 갔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일본에서는 고령 운전자들의 운전을 지금보다 더 엄격하게 규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있어, 또 새로운 규제 장치가 생길지 주목된다. 이석우 선임기자 jun88@seoul.co.kr
  • [문소영 칼럼] 박근혜 정부의 데칼코마니가 안 되려면

    [문소영 칼럼] 박근혜 정부의 데칼코마니가 안 되려면

    4·3보궐선거에서 ‘0대2’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창원 성산에서 범여권 단일후보 정의당 여영국 후보가 504표 차로 막판 역전했기에 간신히 ‘1대1’이 됐다. 이를 두고 ‘민심의 경고’라고 엄중히 지적하는데, 과연 청와대와 여당은 얼마나 수긍할까. ‘0대2가 됐어야 내년 총선의 보약이 됐을 텐데’ 하는 한탄이 들리는 걸 보면 민심의 경고를 무승부로 안이하게 판단할 수도 있겠다. 최근 젊은 학자를 만났는데, 그는 상당히 흥미로운 분석을 내놓았다. 정치권은 김대중·노무현 정부와 이명박·박근혜 정부로 나눠 비교하지만, 그는 김영삼 정부와 김대중 정부가,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가, 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가 데칼코마니 같다고 했다. 김영삼ㆍ김대중 정부는 ‘지역주의 정치의 완성’이다. 대구·경북(TK)이 장기 집권한 한국에서 PK와 호남이 각각 대통령을 배출하며 해당 지역민을 만족시켰다. 노무현ㆍ이명박 정부는 ‘이념화된 욕망의 추구’로 전자는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 후자는 진정한 자본의 축적을 향해 각각 달려갔다. 박근혜ㆍ문재인 정부의 키워드는 ‘복고주의’다. 전자는 김기춘 청와대비서실장 등 ‘아버지 박통’과 관련 있는 인물을 등용해 산업화 시대를 소환했고, 후자는 김수현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대표되는 노무현 정부 인사를 기용해 그 시절 정책을 복원한다는 거다. 간혹 문재인 정부에서 박근혜 정부의 그림자를 만나게 되면, 왜 그런가 하는 의문이었는데, 이 젊은 학자의 분석에서 어떤 개연성을 찾을 수 있었다. 몇 건의 사례를 들겠다. 2016년 3월 박근혜 정부 때 대통령 사진을 ‘존영’이라고 불러서 논란이 일었다. 당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대구 연설에서 이를 두고 “지금이 여왕 시대냐”고 비판했다. 그랬는데 2018년 봄 김의겸 당시 청와대 대변인이 문 대통령 사진을 “존영”이라고 지칭했다. 박근혜 청와대 시스템을 그대로 물려 쓰는 건가 싶었다. 야당과 비타협적인 자세도 닮았다. 정치는 타협이 기본이고 A를 얻으려고 B를 내주게 된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에서는 청와대로 야당을 불러 식사정치를 한 뒤 소통한다는 홍보 효과만 누리고 야당의 요구는 거의 들어주지 않았다. 2015년 3월 ‘국회법 개정안 파동’이 대표적이다. 당시 정부·여당은 야당의 협조로 공무원연금개혁안을 통과시키고 대신 세월호진상조사위 관련 잘못된 시행령을 고치려는 야당의 요구를 수용해 국회법 개정안을 넘겨줬다. 그런데 박근혜 청와대가 거부권을 행사해 국회법 개정안을 무산시키고, 당시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에게 ‘배신의 정치’ 프레임을 씌워 찍어 냈다. 일종의 ‘먹튀’다. 문재인 정부도 ‘최저임금제 속도조절’ 등을 발언하면서도 실제로 야당과 주고받는 정치를 거의 하지 않는다. 대통령의 만기친람도 유사하다. 장관들은 없고 문 대통령이 거의 전면에 나서 발표하고 지시한다. 박 대통령 때도 그러했다. 그러나 대통령과 청와대는 ‘보이지 않는 손’으로 큰 틀에서 관리하고 방향을 바로잡아야지 항상 전면에 나서면 곤란하다. 공무원이 복지부동한다며 울화통을 터뜨릴 것이 아니라 부처가 일하게 해야 한다. 그러려면 장관들에게 인사권을 주고 힘을 실어 줘야 한다. 인사권도 없는 장관에게 공무원들이 충성할 이유가 있겠나. 공기업 인사권 행사에도 장관이 중요하다. 박근혜 정부 내내 공공기관 공석이 제법 많았다. 1년 내내 사장추천위원회를 돌리는 공공기관도 있었다. 이번 정부도 공공기관 공석이 적지 않고 낙하산 인사 논란에 시달린다. 2007년 제정된 ‘공공기관운영법’을 형식적으로 지키면서 낙하산 인사를 남발하는 탓이다. 대안은 여야 합의로 공공기관운영법을 전면 개정하고, 현재 기획재정부가 총괄·관리하는 339개 공공기관을 관련 장관들에게 넘겨주는 방안이 있다. 장관 인선도 바꿔야 한다. 박근혜 정부처럼 70~80대의 초고령 인사를 기용하지는 않지만, 이번 정부도 부패에 덜 물든 40대를 발탁하지는 않는다. 글로벌 리더십을 발휘한 뉴질랜드의 30대 여성 총리나 40대 캐나다 총리와 프랑스 대통령 같은 젊은 리더를 한국도 키워야 한다. 괴물을 들여다보다가 스스로 괴물이 돼서는 안 된다는 니체를 굳이 인용하고 싶지는 않지만, 적폐청산을 하면서 스스로 적폐를 쌓지는 않는지 돌아봐야 한다. ‘강원 산불’을 완전하게 진화한 능력으로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는 ‘젊은 정부’가 돼야 한다. 논설실장 symun@seoul.co.kr
  • “요양원 복도서 노인 기저귀 교체 행위는 성적 학대”

    요양병원 복도에서 80대 여성 노인의 하반신을 노출한 채 기저귀를 교체한 행위는 성적 학대에 해당한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인천지법 형사항소4부(부장 양은상)는 노인복지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요양보호사 A(58·여)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벌금 50만원의 선고를 유예했다고 7일 밝혔다. A씨는 지난해 3월 22일 오후 9시 56분쯤 인천 한 요양센터 2층 병실 밖 복도에서 환자 B(84)씨의 기저귀를 갈아 채우다가 하반신을 노출해 성적 수치심을 준 혐의로 기소됐다. 1심 재판부는 “노인복지법상 노인에게 성적 수치심을 주는 행위는 적어도 성적 언동에 해당하는 것으로 제한해 해석해야 한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검찰은 “피고인이 공개된 장소인 복도에서 가림막 없이 피해자의 기저귀를 교체한 행위는 성적 수치심을 주는 성적 가혹 행위에 해당한다”며 항소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해자의 기저귀를 갈아 채울 당시 주변에는 요양보호사 3명이 더 있었고, 다른 병실에 입소한 노인들도 복도로 나오면 그 장면을 볼 수 있었던 상황”이라며 1심과 다르게 판단했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할머니들은 반세기의 침묵을 깨고 일어섰다”…‘침묵’ 예고편

    “할머니들은 반세기의 침묵을 깨고 일어섰다”…‘침묵’ 예고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침묵’ 메인 예고편이 공개됐다. ‘침묵’은 반세기의 긴 침묵을 깨고 여러 차례 일본을 방문해 일본정부에 사과와 배상, 명예와 존엄 회복을 호소한 15명의 ‘위안부’ 피해자의 이야기로, 30여 년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재일교포 2세 박수남 감독의 작품이다. 예고편은 ‘위안부’ 피해 할머니가 “침략전쟁 안 했다고 자꾸 그러는데 왜 침략전쟁이 아닙니까?”라며 일본 정부를 향해 항의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어 “고향에 못 있겠더라고요…”라며 고향을 떠난 이유를 말하는 이옥선 할머니의 이야기는 오랜 시간 그 누구에도 말할 수 없었던 아픔을 상기케 한다. 예고편의 후반부는 그간의 침묵을 깨고, 일본 정부의 사과와 할머니들의 명예와 존엄을 회복하기 위한 길고 고된 여정을 담아냈다. “우리는 수년간 천황 군대의 포악한 성폭력에 짓밟힌 피해자들입니다”라는 내레이션은 할머니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에 귀 기울이게 한다. 작품은 한국사회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본격적으로 대두되기 시작한 1980년대 후반부터 감독과 주인공이 모두 80대 노인이 된 현재에 이르기까지, 30여 년의 시간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다큐멘터리 ‘침묵’은 제18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를 통해 국내 관객들에게 소개되며 호평을 받았다. 영화는 시민단체, 학교, 동아리 등 각자가 속한 공동체가 원하는 자유로운 방식으로 관람하는 ‘찾아가는 극장’ 공동체 상영으로 만날 수 있다. 다큐멘터리 <침묵> 공동체 상영에 대한 문의는 배급사 시네마달(02-337-2135)로 하면 된다. 영상부 seoultv@seoul.co.kr
  • [책꽂이]

    [책꽂이]

    미투의 정치학(권김현영·루인·정희진·한채윤 지음, 교양인 펴냄) 여성과 소수자에 대한 폭력 문제를 다루어 온 연구 모임 ‘도란스’가 미투 운동을 둘러싼 주요 쟁점과 미투 이후를 모색한다. 여성주의 시각에서 위력에 의한 성폭력, 진보와 보수를 초월하는 한국사회의 남성연대 등을 살펴봄으로써 성차별을 지속시키는 사회 부정의를 파헤친다. 196쪽. 1만 2000원.밀레니얼과 함께 일하는 법(이은형 지음, 앳워크 펴냄) 1980년대 초반~2000년대 초반 출생한 세대를 가리키는 말인 밀레니얼 세대. 조직의 30%까지 늘어난 이들 세대는 이전 세대들과 다른 행동으로 기성 세대를 긴장케 한다. 국민대 경영학부 교수로 조직행동론을 가르치는 저자가 밀레니얼 세대의 특징과 그들과 일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알려준다. 264쪽. 1만 4000원.전쟁과 희생(강인철 지음, 역사비평사 펴냄) ‘전사자 숭배’라는 관점에서 한국 근현대사를 재해석한 저작. 전사자 숭배란 의례, 묘, 기념시설, 서훈·표창 등을 모두 망라한다. 저자는 국가와 지배층이 전사자들의 육신을 전유해 정치화함으로써 전쟁을 미화하거나 신화화하고 국민들을 동원한다고 지적한다. 636쪽. 2만 8000원.채식의 철학(토니 밀리건 지음, 김성한 옮김, 휴머니스트 펴냄) 채식주의자는 육식주의자보다 더 윤리적일까? 반려동물을 키우면서 고기를 먹는 것은 모순일까? 동물 윤리에 관한 가장 핵심적인 질문 7가지를 통해 육식과 채식에 관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 근본적으로 성찰하게 하는 책이다. 260쪽. 1만 6000원.베토벤 심포니(루이스 록우드 지음, 장호연 옮김, 바다출판사 펴냄) 베토벤이 남긴 스케치북과 자필 악보, 수첩을 바탕으로 아홉 개의 교향곡에 얽힌 역사·전기적 사실과 창작 기원을 밝힌다. 미국 보스턴대 베토벤 연구 센터의 공동 책임자인 저자가 80대 중반에 그 동안의 연구 성과를 집대성했다. 372쪽. 2만 5000원.빌딩롤모델즈: 여성이 말하는 건축(여집합 지음, 프로파간다 펴냄) 여성 건축인 집단 ‘여집합’이 지난해 6월 기획한 포럼의 결과물을 엮은 책. 포럼 발표자와 특별 인터뷰에 응한 건축인 등 모두 24명 여성 건축인의 이야기를 담았다.420쪽. 2만원.
  • 41년전 성폭행 저지른 英 84세 전직 경찰, 8년형 선고받아

    41년전 성폭행 저지른 英 84세 전직 경찰, 8년형 선고받아

    전직 경찰인 영국의 80대 남성이 무려 41년 전 저지른 성폭행 범죄로 뒤늦게 죗값을 받게 됐다. 영국 BBC 등 현지 언론의 6일 보도에 따르면 햄프셔주(州)에 사는 전직 경찰 데이비드 로맥스(84)는 41년 전인 1978년 잉글랜드 웨스트요크셔에 있는 도시인 리즈에서 당시 21세 여성을 성폭행했다. 사건 당시 43세였던 로맥스는 근무시간 중 피해 여성을 찾아가 벌금 또는 세금을 납부하지 못한 문제를 해결해주겠다며 집으로 들어간 뒤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피해 여성은 해당 사실을 경찰에 신고했지만, 당시 경찰은 증거 불충분으로 피해 여성의 주장을 묵살했다. 이 사건은 미제사건으로 남아있었지만, 몇 십 년이 흐른 뒤인 2016년 피해 여성이 재수사를 요구했고 결국 DNA 검사에서 꼬리를 잡힌 그는 2017년 경찰에 체포됐다. 현지 법원은 지난해 10월 열린 재판에서 로맥스가 경찰로 일할 당시 직권을 남용해 피해 여성을 성폭행했다는 증거가 명확하다며 징역 4년 9개월 형을 선고했다. 하지만 현지 시간으로 6일 런던에서 열린 2차 재판에서 4년 9개월형이라는 죗값이 지나치게 관대하다는 판사 3명의 의견에 따라, 그의 형량은 3년 3개월이 추가된 8년형으로 늘어났다. 가석방 없이 형량을 채울 경우, 그는 92세가 돼야 다시 자유의 몸이 될 수 있다. 법원 관계자는 “84세라는 로맥스의 나이와 건강 상태를 고려하면 그가 오랜 징역생활을 견디기 어려울 것이라는 것을 인정한다”면서 “하지만 판사들은 그의 죄질로 보아 형량이 8년 이상이어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대 법의학 덕분에 DNA검사를 할 수 있게 됐고 결국 그가 벌을 받을 수 있게 됐다”면서 “그는 경찰관으로서의 신뢰와 직위를 남용하고 오랫동안 자신의 범죄에 대해 묵인했다”고 덧붙였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번화가 한복판 또 ‘고령운전’ 참사 아찔…日신주쿠 인도 돌진 5명 덮쳐

    번화가 한복판 또 ‘고령운전’ 참사 아찔…日신주쿠 인도 돌진 5명 덮쳐

    고령 운전자에 의한 인도 돌진, 역주행, 신호 무시 등 사고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일본에서 또다시 대형 참사로 이어질뻔한 아찔한 사고가 발생했다. 지난 16일 오후 1시 30분쯤 도쿄 시부야구 JR신주쿠역 근처에서 요코하마시에 사는 남성(79)이 운전하는 승용차가 갑자기 인도로 올라와 달리면서 보행자 5명을 차례로 덮쳤다. 이 사고로 20대·50대 여성과 80대 남성 등 3명은 중상을 입었다. 운전자도 허리가 골절되고 조수석에 있던 운전자의 아내(76)도 다치는 등 총 7명이 병원에 후송됐다. 대로를 달리던 승용차는 갑자기 중앙선을 가로질러 맞은편 인도로 돌진해 30m 정도를 주행했다. 운전자는 “운전 중 차를 마시다 기도에 걸려 앞 유리창에 뿜는 바람에 놀라 가속페달인지 브레이크인지를 세게 밟았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갑자기 사레가 들려 겁을 먹은 운전자가 핸들을 놓친 상태에서 가속페달을 밟았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정확한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지난해 처음으로 70대 이상 인구가 전체의 20%를 넘어선 일본에서는 조작능력과 순간판단력 등이 떨어지는 고령자에 의한 교통사고가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2017년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 중 절반이 넘는 54%가 65세 이상이었다. 일본의 65세 이상 운전면허 보유자는 최근 10년 새 436만명이 늘어 2017년 1618만명에 달했다. 이 중 치매를 이유로 면허 취소 및 정지 처분을 받은 고령자는 3084명으로, 전년보다 60%나 늘었다. 일본에서는 고령자의 운전 자체를 줄이기 위해 다양한 대책을 세우고 있다. 2017년 3월부터 75세 이상 교통법규 위반 운전자 가운데 신호위반 등 인지기능 저하에서 비롯된 것으로 의심되는 경우 치매 등 검사가 의무화됐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50대 이상 적정 노후생활비 부부 243만원·개인 153만원

    50대 이상 적정 노후생활비 부부 243만원·개인 153만원

    우리나라 50대 이상 국민은 노후에 안정적으로 생활하려면 부부는 월 243만 4000원, 개인은 153만 7000원의 생활비가 필요하다고 여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연금연구원은 ‘중·고령자의 경제생활 및 노후준비 실태 보고서’에서 지난해 4~9월 50세 이상 4449가구를 조사해 이런 결과를 얻었다고 25일 밝혔다. 50대 이상 중·고령자가 생각하는 ‘적정 생활비’는 나이가 많을수록 큰 폭으로 줄었다. 50대는 부부일 때 적정 생활비로 268만원을 제시해 평균액을 넘었지만 60대는 242만원, 70대 209만원, 80대는 194만원으로 줄었다. 개인도 50대는 169만원, 60대 153만원, 70대 134만원, 80세 이상은 121만원으로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여성보다는 남성, 광역시나 도(道)에 사는 사람보다는 서울 거주자, 고학력자의 적정 생활비가 높게 나왔다. 또 신체적으로 건강한 상태일 때 필요한 ‘최소 생활비’로 부부는 월 176만원, 개인은 월 108만 1000원이라고 답했다. 적정 생활비와 비교해 각각 67만 4000원, 45만 6000원이 적었다. 그러나 올해 9월 기준 국민연금에 10~19년 가입한 수급자의 평균 연금액은 월 39만 7219원에 불과하다. 20년 이상 가입자의 평균 급여액도 월 91만 882원에 그쳐 국민들이 생각하는 최소 생활비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분석됐다. 민나리 기자 mnin1082@seoul.co.kr
  • 비만으로 인한 사회적 손실 11조 4679억원…GDP의 0.7% 달해

    비만으로 인한 사회적 손실 11조 4679억원…GDP의 0.7% 달해

    1인당 의료비 전남 33만 7844원 최고 젊은층 비율 높은 서울은 25만 1762원 연령 50대·질병군 당뇨병 손실 가장 커비만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이 11조 4679억원(2016년 기준)으로 해당 연도 국내총생산(GDP·1642조원)의 0.7%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비만에 따른 의료비를 가장 많이 지출한 곳은 전남으로 1인당 연간 34만원을 썼다.국민건강보험공단이 10일 발표한 ‘비만의 사회경제적 영향’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 비만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은 11조 4679억원으로 2013년(6조 7695억원)보다 69% 증가했다. 이번 조사는 2003~2004년 사이 일반건강검진을 받은 국민 중 비만 관련 질병(45개군)을 경험한 적이 없는 1009만여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연구 결과 비만으로 인해 발생하는 비용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의료비(5조 8858억원·51.3%)로 절반 이상이었다. 이어 비만으로 인해 감소하는 노동력 때문에 발생하는 생산성 저하액이 2조 3518억원(20.5%), 질병 치료를 위해 회사를 결근함으로써 발생하는 생산성 손실액이 1조 4976억원(13.1%)이었다. 이 밖에 조기 사망액 1조 1489억원(10.0%), 간병비 4898억원(4.3%), 교통비 940억원(0.8%) 순으로 지출이 많았다. 비만으로 인한 의료비는 고령자 비율이 높은 전남이 1인당 연간 33만 7844원으로 가장 많았으며, 전북이 32만 4980원으로 뒤를 이었다. 반면 젊은층의 비율이 높은 서울은 25만 1762원으로 가장 낮았다. 소득 구간별 20분위로 나눠 살펴본 결과 소득이 가장 낮은 0분위에서 소득이 올라갈수록 손실 비중이 낮아지다 14분위부터 다시 손실 비중이 증가해 전체적으로 ‘U’자형을 보였다. 성별 비중을 살펴보면 남성이 6조 4905억원(56.6%), 여자는 4조 9774억원(43.4%)으로 남성이 여성에 비해 1.3배 손실이 더 났다. 연령대별로는 50대(26.8%)가 가장 많았으며, 60대(21.2%), 40대(18.2%), 70대(15.9%), 80대 이상(7.3%) 순이었다. 20대 이하는 2.6%로 가장 적은 비중이었다. 질병군별로 보면 당뇨병에 의한 비용이 22.6%(2조 624억원)로 손실 규모가 가장 컸다. 이어 고혈압(21.6%·1조 9698억원), 허혈성 심장질환(8.7%·7925억원), 관절증(7.8%·7092억원) 순이었다. 정영기 보건복지부 건강증진과장은 “비만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손실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특히 진료비가 3년 사이 1조 5000억원 상승했다”면서 “올해 7월 발표한 비만관리 종합대책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민나리 기자 mnin1082@seoul.co.kr
  • [공연리뷰]‘신동’ 보러 갔다가 ‘거장’에 감동하다

    [공연리뷰]‘신동’ 보러 갔다가 ‘거장’에 감동하다

    29~30일 피아니스트 키신·주빈 메타 BRSO 내한공연지팡이 잡고 무대 오른 메타의 노장 투혼에 객석 갈채공연장에서 보는 가장 긴 입·퇴장 시간일 수도 있겠다. 직원 도움을 받아 지팡이에 의지해 어렵게 지휘대까지 올라선 인도 출신의 거장 지휘자 주빈 메타(83). 29~30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있었던 독일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BRSO) 내한공연에서 당초 예정됐던 마리스 얀손스(75)가 건강상의 이유로 내한을 취소해 대타로 나선 그 역시 지난해말 어깨 종양 제거 수술로 주변 도움 없이는 계단조차 오르지 못하는 몸상태였다. 그는 무대 밖에는 휠체어에 의지했다. 29일 연주는 모차르트 교향곡 41번 ‘주피터’와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 현악4중주단의 ‘확대판’을 보는듯했던 소편성의 ‘주피터’에 이은 ‘봄의 제전’은 처음부터 흥분을 기대했던 관객이라면 다소 기대치가 낮아졌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객석의 집중력은 높아졌고, 발군의 팀파니는 무대 위의 역동감을 더했다. ‘봄의 제전’ 1부는 앞서 ‘주피터’에서 느꼈던 따뜻한 앙상블을 이어받더니 2부에서는 메타가 콘서트홀의 제사장(祭司長)으로 돌변해 앞서 남겨놓왔던 에너지를 뿜어냈다. 30일 프로그램은 에프게니 키신 협연의 리스트 피아노협주곡 1번과 슈트라우스 ‘영웅의 생애’였다. ‘봄의 제전’처럼 ‘영웅의 생애’ 1~6부의 ‘전투’도 전·후반전으로 나뉜듯 했다. 무대 뒤에서 트럼펫이 울리는 4부 ‘전장의 영웅’부터 6부 ‘영웅의 은퇴’까지, 80대 거장은 마지막 에너지를 분출했다. 모든 파트의 앙상블이 빛났지만, 안정적인 현악 뒤의 목관 파트는 더욱 듣는 재미를 느끼게 했다. ‘주피터’에서 더없이 따뜻했던 목관은 이튿날에는 영웅을 조롱하는 평론가 등으로 돌변해 얄미운 조소를 던졌다. 바이올린 선율의 애절함은 덜했지만, 영웅의 생애를 묵묵히 밟아가는 전체 연주 속에서는 오히려 조화롭게 들렸다. 사실 이번 공연의 가장 큰 관심은 키신이었을 수도 있다. 10세 때 ‘신동’으로 데뷔해 30년 넘게 전세계적인 티켓파워를 자랑해온 그의 올해 두번째 한국 방문에 대한 관심은 현존 최고의 지휘자 얀손스의 내한 취소로 더욱 무게추가 쏠렸다. 키신의 리스트 피아노협주곡 1번은 ‘트라이앵글 협주곡’이라는 별칭이 붙는 3악장까지 클라리넷, 바이올린, 첼로, 트라이앵글 등 각 악기들이 피아노와 주제를 주고받으며 대적했지만, 결국 그의 완전무결함에 모두 두 손을 들고 물러서는 듯했다. 전날 리허설에서 악절 하나를 두고 2시간 넘게 반복하며 연습했다는 그의 성실함이 무대 위에서 그대로 전달되는 순간이었다. 너무 완벽해서일까. 곡을 쓴 프란츠 리스트가 그를 봤다면 오히려 ‘너무 완벽하려고 할 필요는 없다’고, ‘나처럼 여성 팬들의 환호를 즐기며 살라’고 말하지 않았을까. 황장원 음악평론가는 “30일 공연은 후반부 저역대의 파괴력이 인상적이었고 메타 특유의 개성이 돋보인 연주였다”며 “명반이 많지 않아 국내 음반애호가 사이에서 다소 폄하되는 측면이 있지만, 메타는 분명 아시아 최고의 거장 지휘자”라고 말했다.30일 연주의 마지막 앙코르는 실제 은박지 폭죽이 터지는 가운데 요한 슈트라우스의 ‘폭발 폴카’가 장식했다. 키신을 기대하고 갔던 관객들은 노쇠한 거장이 준비한 담담한 ‘영웅 서사시’와 마지막 이벤트에 오히려 더 감동하지 않았을까. 악단의 수준과 협연자의 인기 등 모든 면에서 올해 가장 관심이 쏠린 이틀간 공연의 주인공은 결과적으로는 무대 위에서 볼 기회가 얼마나 또 있을지 모를 80대 노장 지휘자였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15세 중학생, 길러준 80대 할아버지 살해…범행동기에 일본열도 ‘충격’

    15세 중학생, 길러준 80대 할아버지 살해…범행동기에 일본열도 ‘충격’

    가정과 학교에서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으로 여겨졌던 중학교 3학년 남학생(15)이 자신을 키워준 할아버지·할머니에게 흉기를 휘둘러 이 중 할아버지가 사망하는 사건이 일본에서 일어났다. 손자는 학교에서 어떤 친구를 살해하기로 결심했는데, 이 일로 인해 가족 전체가 살인자의 집안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해 일본을 경악에 빠뜨렸다.지난 18일 저녁 7시 25분쯤 사이타마현 와코시의 한 아파트에서 집주인 남성(87)이 흉기에 마구 찔려 숨지고 그의 아내(82)도 중상을 입고 쓰러져 있는 것을 부부의 딸 A씨가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A씨는 “지금 빨리 좀 와달라”는 어머니의 급한 연락을 받고 집으로 달려와 현장을 목격했다. 경찰은 A씨의 아들로, 피해자 부부와 함께 살고 있던 중학교 3학년 손자가 사건 현장에서 보이지 않자 소재 파악에 나섰다. 경찰은 다음날인 19일 오전 사건 현장에서 20㎞ 정도 떨어진 인근 가와고에시에서 손자를 체포했다. 손자가 소지하고 있던 가방에서는 흉기가 4개 발견됐고, 일부에는 혈액이 묻어 있었다. 경찰은 손자를 살인미수 혐의로 입건했다. 손자는 경찰에서 “학교에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아이가 있어 죽이려고 했다. 그러나 내가 살인자가 되면 우리 가족 전체가 ‘살인자의 가족’이 된다. 그런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우선 가족을 모두 죽이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고 진술했다. 지금까지 가정과 학교에서 가족관계나 친구관계에 별다른 문제가 없는 상태에서 범행이 이뤄졌다는 점에서 일본 사회는 이번 남학생의 범행을 더욱 충격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손자가 다니는 사립중학교의 교감은 요미우리신문에 “자기 주장을 강하게 하는 학생이 아니었다”며 “2주일쯤 전에 학생·학부모·교사가 함께 하는 3자 면담을 위한 사전 설문조사를 실시했는데, 학생의 가정에서 특별히 상담이 필요한 부분은 보고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중상을 입은 할머니와 친하게 지내온 이웃 여성(80)은 “어렸을 때 매일 학교에 배웅을 해주고 시험을 잘 보면 기뻐하는 등 할머니가 손자를 대단히 귀여워 했다”고 전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세종로의 아침] 김창호의 히말라야/임병선 체육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김창호의 히말라야/임병선 체육부 선임기자

    다정다감한 그의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들은 것은 지난 6월 러시아월드컵 출장을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였다. 마침 알래스카를 다녀와 막 활주로에 내렸다고 했다. 그 얼마 전 북한산 인수봉에서 변을 당한 80대 여성 산악인 황국희씨와의 인연을 함께 나눴다. 많이 안타까워하던 그의 목소리가 지금도 생생하다.최근 네팔 히말라야 다울라기리 산군에서 생애 마지막 등반의 첫발을 떼기도 전에 8명의 대원과 함께 스러진 김창호 대장이다. 누구보다 꼼꼼하게 안전한 산행을 준비하던 그를 아는 터라 지난 주말 이틀 동안 원정대가 당한 참변이 믿기지 않아 괴로웠다. 히말라야를 등반하던 한국 산악인 5명이 실종됐다는 1보를 들었을 때도 그의 이름을 떠올릴 수가 없었다. 그 뒤 그의 성향, 준비성과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 참변의 정황이 전해질 때마다 믿기지 않는다는 말을 되풀이해야 했다. 불가항력의 변을 당했다고 믿는다. 그의 얼굴을 마지막 본 것은 지난 2월 신문사 1층 커피숍에서였다. 남들이 만들어 놓은 루트가 아니라 한국인이 왜 ‘코리안웨이’를 앞장서 만들어야 하는지, 작게 효율적으로 해나갈 것인지 다소곳하지만 결연한 눈동자로 들려줬다. 그리고 한 달 뒤 이른 새벽 유명산 등산로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는 코리안웨이 도전에 함께할 후배들과 함께 용문산을 출발해 유명산 아래 부모님 집에 들러 후배들의 영양 보충을 시켜 줄 참이라고 했다. 약속한 시간이 한참 지나도 오지 않아 전화를 걸었더니 생각보다 지체돼 여전히 용문산 근처라고 했다. 미안하다고 어쩔 줄 몰라했다.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미국 서부의 존 뮤어 트레일 간다고 하면 자신이 아끼던 침낭을 빌려주려고 선배 집까지 찾아와 건넸다. 코리안웨이를 진행하면서도 짐을 네팔인 셰르파들과 동등하게 나눠 지게 하고 대장도 대원들과 똑같이 조리 순번이 돌아오게 했다. 대기업 후원을 받으면 원정대를 꾸리기 쉬웠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자신이 선배들에게 받았듯이 자신이 이룬 것들을 후배들에게 물려주면 그 후배들이 새끼치듯 전수하는 코리안웨이를 고집했다. 아니 그래야 한다고 믿었다. 그의 기록은 정교했다. 선배들과 많이 달랐다. 원로 산악인 김영도 선생이 누누이 강조하듯 그 이전 산악인들은 경험과 직관에 의존했지만 그는 철저한 정찰과 준비, 기록을 중시했다. 젊은 시절 그가 6년 동안 머무르며 파키스탄 거벽들을 기록한 자료들은 외국 산악인들이 앞다퉈 빌려 달라고 할 정도였다. 안타까운 것이 둘 있다. 인터넷 댓글이다. 평지에 사는 이들은 고산과 거벽을 오르는 이들을 이해하지 못한 채 폄하한다. 정신과 기상을 잃은 민족은 오래가지 못한다. 함부로 PC방에서 키보드 두들겨 깎아내리지 않았으면 한다. 둘째는 가족이다. 뒤늦게 결혼해 세 살 딸이 있다. 딸이 다섯 살쯤 되면 캐나다 유콘강에 세 가족이 카약 타러 가는 게 꿈이라며 눈을 빛내던 김 대장이었다. 그에게 궁극의 히말라야는 가족의 품이었다. 산행의 목표는 늘 안전한 귀가라고 되뇌었던 이유다. 딸이 아빠의 웅혼한 뜻을 이해하며 씩씩하게 자라길 바랄 따름이다. bsnim@seoul.co.kr
  • ‘50억 땅부자’ 80대 노인 재산 빼내려 가짜 혼인신고한 50대 여성 실형

    ‘50억 땅부자’ 80대 노인 재산 빼내려 가짜 혼인신고한 50대 여성 실형

    치매에 걸린 80대 노인의 재산을 가로채기 위해 허위로 혼인신고를 하고 위조한 출금전표로 예금을 인출한 60대 여성이 법원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다. 16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4단독 엄기표 판사는 사기 및 사문서위조, 위조사문서 행사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베이비시터 송모(57·여)씨에게 지난 12일 징역 1년을 선고했다. 2015년 8월 한 결혼정보업체의 소개로 권모(88)씨를 만나게 된 송씨는 권씨가 경기도 일대와 경북 안동 지역에 합계 50억 8628만원 상당의 토지를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특히 권씨는 2006년 이전에 발병한 혈관성 치매로 인해 예금 인출이나 금전 대여, 증여행위 등 재산 관리나 처분에 대한 이해능력이 거의 없는 상태였고, 판단력 장애로 올바른 의사결정 능력이 없었다. 권씨를 만난 지 사흘 뒤 송씨는 서울 서초구의 권씨 집에서 인터넷으로 혼인신고서 용지를 출력해 혼인당사자에 권씨와 자신의 이름은 물론 두 사람의 부모는 물론 증인들의 주민등록번호와 주소까지 모두 채워넣었다. 권씨와 자신, 증인의 이름 옆엔 각각의 도장을 찍었고 자신의 아버지(86)의 이름 옆엔 송씨가 직접 지장을 찍기도 했다. 송씨는 이렇게 위조한 혼인신고서를 서울 강남구청에 제출했고, 사실이 아닌 내용을 가족관계등록부에 기재하도록 한 혐의(공전자기록등 불실기재 및 불실기재공전자기록등 행사)도 받았다. 송씨는 2016년 2월에는 은행을 찾아가 권씨 명의의 계좌에서 1000만원을 찾는다는 출금전표를 작성한 뒤 권씨의 도장을 찍는 방식으로 5일간 세 차례에 걸쳐 1억 3100만원을 인출했다. 엄 판사는 “혼인신고 및 은행 출금전표 작성 당시 권씨에게 혼인 의사나 출금 의사를 표시할 만한 의사능력이 있었다고 인정되지 않는다”며 송씨의 혐의를 모두 유죄로 판단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건강식품 노인들에게 수십배 비싸게 팔다 덜미

    건강식품 노인들에게 수십배 비싸게 팔다 덜미

    생필품으로 노인들을 유혹한 뒤 원가보다 최고 30배나 비싸게 건강식품을 판 일당이 경찰에 덜미가 잡혔다. 충북지방경찰청은 이같은 혐의로 A씨(41)를 사기와 건강기능식품에 관한 법률 위반혐의 등으로 구속하고, B씨(38) 등 4명을 같은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고 15일 밝혔다.A씨 등은 지난 4월부터 7월까지 청주시 상당구에 홍보관을 차려놓고 노인을 상대로 허위·과장 광고를 하며 건강기능식품을 팔아 1억1600여만원의 부당 이득을 챙긴 혐의다. 이들은 우선 화장지, 계란 등을 매우 싸게 제공한다는 전단지를 뿌려 60~80대 여성 노인들을 홍보관으로 유인했다. 노인들이 찾아오자 홍삼 성분이 15%에 불과한 제품을 홍삼 성분이 90% 함유된 질 좋은 제품이라고 속였다. 당뇨, 고혈압, 고지혈증, 관절염 등 성인병은 물론 암도 예방된다며 과장광고도 일삼았다. 사기행각에 넘어간 노인들은 원가 3만원짜리 물건을 40만원에 샀다. 이들은 이런 방식으로 1만5000원짜리 오메가3를 5만원∼45만원에 팔기도 했다. 피해자는 58명으로 조사됐다. 범죄는 치밀했다. 실장, 부장, 팀장 등 조직적으로 역할을 분담했고, 홍보강사를 고용해 본사 간부로 둔갑시켰다. 제품효능을 보여준다며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실험까지 했다. 경찰 관계자는 “피의자들은 노인들이 건강에 관심이 많고, 경제적 판단이 떨어진다는 점을 악용했다”며 “‘생필품을 싸게 주겠다, 질병이 치료되고 예방된다’는 말에 현혹돼서는 안된다”고 당부했다. 청주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 40년 전 저지른 성폭행으로 법정에 선 80대 남성

    40년 전 저지른 성폭행으로 법정에 선 80대 남성

    영국의 한 남성이 성폭행을 저지른 뒤 무려 약 40년 만에 법의 심판을 받게 됐다. BBC 등 현지 언론의 9일 보도에 따르면 잉글랜드 햄프셔에 있는 워털루빌에 사는 데이비드 로맥스(83)는 웨스트요크셔 지역에서 경찰로 일하던 1978년, 20대 여성을 성폭행했다. 당시 로맥스는 교통규칙을 위반하고도 벌금을 내지 않은 피해 여성의 집을 직접 찾아갔고, 피해 여성이 벌금을 낼 돈이 없다고 말하자 체포를 운운하며 강제로 그녀의 집에 들어갔다. 피해 여성은 로맥스가 성적으로 접촉해오자 거부 의사를 밝혔지만 결국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고 말았다. 뿐만 아니라 로맥스는 피해 여성의 집을 떠나면서 가족에게 성폭행 사실을 알리겠다고 협박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피해 여성은 협박에 굴하지 않았고, 사건이 발생한 지 며칠 후 로맥스의 체액이 묻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증거품인 수건을 들고 경찰서를 찾아가 신고했다. 로맥스는 결국 체포됐지만 증거 불충분으로 처벌받지 않았고, 이후 자신이 저지른 범죄와는 무관한 사람으로 살아갔다. 피해 여성의 사건은 범인이 잡히지 않은 미제 사건으로 남았다. 약 40년이 지난 2016년 경찰은 미제사건 중 일부를 재조사하기 시작했고 이 과정에서 용의자로 체포된 전적이 있던 로맥스의 DNA 샘플을 다시 분석했다. 그 결과 로맥스의 DNA와 40년 전 성폭행 범인의 것으로 추정됐던 DNA 샘플이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 로맥스가 범행 직후 체포됐을 당시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나게 된 정확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해당 미제 사건을 조사한 조사관은 그가 자신의 직권을 이용해 법망을 피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현재 로맥스에 대한 재판이 진행 중이며, 그는 자신의 혐의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특파원 생생리포트] 초고령사회 그늘… 日 간병도우미 74% 성희롱·학대당해

    [특파원 생생리포트] 초고령사회 그늘… 日 간병도우미 74% 성희롱·학대당해

    “돌봄 서비스를 신청한 80대 여성의 집을 찾아가 목욕시킬 준비를 하는데, 갑자기 50대 아들이 나타나 ‘예쁘네. 결혼은 했느냐’며 괴롭혔어요. 현관에 쇠사슬을 걸어 놓고 위협도 했는데, 너무 무서웠어요.” 일본 가나가와현에서 방문 간병 도우미를 하는 30대 여성 A씨는 올 1월의 끔찍했던 경험을 떠올렸다.도쿄의 한 양로원에서 일하는 30대 간병인 B씨는 자신이 담당하는 남성으로부터 수시로 성관계를 요구받았다. 그 노인은 매번 손사래를 치는 B씨에게 “나는 손님이니 내 말을 들으라”며 윽박질렀다. 참다못한 B씨가 자신이 속한 인력공급회사에 피해사실을 알렸지만 “손님이니 참아라”, “노인이니 신경 쓰지 마라”는 말만 돌아왔다. “허점을 보인 당신의 잘못”이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70세 이상 인구 비중이 올해를 기점으로 전체의 20%를 넘어서는 등 돌봄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는 일본에서 돌봄 종사자들에 대한 성희롱, 폭언 등이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서비스 종사자들로 구성된 일본 개호크래프트유니온(직업별 노동조합)이 지난봄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전체 조합원 2411명 중 74%가 “이용자와 가족들에게 성희롱, 폭력 등 학대를 받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30%가 성희롱을 경험했다. 피해자의 90%는 여성이었다. 7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피해가 커지고 있는 배경에는 서비스 사업자들의 문제도 크다. 돌봄 서비스 인력 공급업체들이 대부분 영세해 직원 복지에 신경을 쓰지 못하는 경우가 많을 뿐 아니라 심지어 학대를 조장하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부 업주들은 피해를 호소하는 돌봄 종사자들에게 “고객들 중에는 몸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고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사람이 많으니 그들의 돌출행동을 그냥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며 인내를 강요하고 있다.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개호크래프트유니온은 올 8월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을 지킬 수 있도록 법 정비를 해 달라고 정부에 건의서를 제출했다. 후생노동성은 각종 가해행위에 대한 개인 및 사업자의 대응 매뉴얼을 만들어 배포하기로 했다. 지방자치단체들도 대책 마련을 서두르고 있다. 효고현은 문제를 일으킨 적이 있는 집에는 서비스 인력들이 2인 1조로 방문하도록 했다. 도쿄 에도가와구는 가해행위의 정도가 심한 곳에 대해서는 돌봄 서비스를 가차없이 끊어버리고,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을 경우 집보다는 병원에 입원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태풍 짜미 영향에 일본 초긴장…사실상 열도 전역 영향권

    태풍 짜미 영향에 일본 초긴장…사실상 열도 전역 영향권

    강한 태풍으로 분류된 제24호 태풍 ‘짜미’가 열도를 따라 통과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일본 전역이 초긴장 상태에 들어갔다. 일본 기상청과 NHK 등에 따르면 짜미는 29일 오키나와 아마미에 상륙한 뒤 다음날에는 니시니혼(서일본)으로 올라간 뒤 도쿄 등 중부권을 거쳐 10월 1일에는 훗카이도까지 북상할 것으로 예상된다. 예보대로라면 일본 최남단 오키나와는 물론 일본 열도 서쪽 끝에서 열도를 종단하며 도쿄를 지나 최북단 훗카이도까지 사흘간 일본의 거의 전역을 휩쓸고 지나가게 된다. 사실상 일본 전역이 태풍의 영향권에 그대로 들어오는 셈이다. 이달 초 오사카 간사이공항의 고립 등을 초래한 제21호 태풍 ‘제비’에 이어 한달 사이에 초강력 태풍 2개가 일본 열도를 상륙하는 것은 초유의 일이라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전했다. 일본 기상청은 폭풍과 높은 파도, 폭우에 주의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지난 28일 총리 관저 위기관리센터에 정보연락실을 설치하고 태풍 상황 파악 및 대응 태세에 들어갔다. 태풍이 접근하고 있는 오키나와에서는 이미 우라소에시에서 80대 여성이 강풍에 넘어져 얼굴에 타박상을 입었다. 오키나와현 아마미는 현재 천둥을 동반한 폭우가 쏟아지고 있다. 29일 오후 6시까지 24시간 예상 강수량은 오키나와 최대 300㎜, 아마미 최대 250㎜, 규슈(九州)남부 최대 200㎜, 시코쿠(四國) 최대 150㎜ 등이다.이날 오전 6시 현재 태풍은 오키나와현 나하시 남남서 약 160㎞에서 시속 15㎞ 속도로 북상하고 있다. 중심 기압은 950hPa(헥토파스칼), 중심 부근 최대 풍속은 초당 45m, 최대 순간 풍속은 60m다. 태풍 중심 동쪽 280㎞와 서쪽 220㎞ 이내는 풍속 25m 이상의 폭풍이 불고 있다. 오키나와 지역에서는 이날 초속 70m의 강풍까지 예상되고 있다. 30일부터 다음달 1일까지는 니시니혼(서일본)에서 기타니혼(북일본) 지역에 걸쳐 많은 비가 내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NHK 등 방송은 시시각각 태풍 소식을 속보로 전하며 강풍과 폭우, 토사붕괴 등의 피해에 대비할 것을 당부했고, 기업체들은 주말과 휴일 예정됐던 행사들을 취소하는 등 발 빠르게 움직였다. 10월 1일 신입사원 내정자를 불러 기념식을 하려던 기업들은 속속 행사를 취소하거나 축소하기로 했다. 이달 초 태풍 제비가 할퀴고 지나가면서 활주로와 청사 등에 침수 피해가 발생하고 진입로가 파손돼 한때 고립됐던 간사이공항은 오는 30일 오전부터 2개 활주로를 일시적으로 폐쇄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일본항공과 전일본공수 등 각 항공사는 이날 오키나와, 가고시마 공항에서 이착륙하려던 노선을 중심으로 300편 이상 결항 조치를 내렸다. 이로 인해 승객 3만여명이 불편을 겪게 됐다. 전날도 오키나와 나하 공항 이착륙 편을 중심으로 260여편이 결항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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