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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 육사개교 50돌… 인맥과 약사

    ◎영욕의 역사속 「간성」 1만5천명 배출/2기 박 전 대통령·김재규씨 등 79명 별 달아/8기 5·16주도… 11기 전·노씨 12·12의 핵심 육군사관학교(교장 장창규·육사 21기)가 1일로 개교 50주년을 맞는다.육사출신의 일부군인이 정치에 개입,지난 30여년간 권력을 장악하고 문민정부들어 이들 가운데 11명이 구속되는 불행한 과거를 낳았으나 대부분의 장교들은 야전에서 본연의 임무인 국토방위에 충실하며 우리군을 세계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강군」의 반열에 올려놓는 데 공헌했다.건군에서부터 6·25전쟁,국가건설,5·16쿠데타와 12·12 및 5·18 등 명암의 현대사와 맞물린 육사의 50년을 약사와 인물중심으로 정리해본다. ▷약사◁ 육사는 46년5월1일 창설된 남조선 국방경비사관학교를 모태로 한다.조선 경비사관학교로 개칭됐다가 48년 8월15일 정부수립과 함께 육군사관학교로 확정됐다.1기부터 9기까지는 6개월 이내의 단기교육과정이었다가 49년 선발된 10기생은 2년제과정(입교후 1년제로 단축)으로,이듬해 생도2기생은 4년제과정으로 선발했으나 6·25전쟁 발발로 임시휴교한다. 51년 정규4년제 사관학교로 다시 진해에서 문을 열면서 11기생을 선발하고 미육사의 교육제도를 모델로 정규대학 교육체계를 갖추게 됐다. 54년 서울 태릉으로 복귀하면서 「화랑대」라는 별칭이 제정됐고 55년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등 4년제 첫 졸업생을 배출한다. 63년 미국 군사고문단이 육사에서 철수한 뒤 교수양성,생도 훈육제도개선,외국사관학교 파견 등 자주적인 교육체계 정비를 단행,오늘에 이르고 있다. ▷인맥◁ 육사1기는 군사영어학교에 들어갔다가 폐교되면서 경비사관학교로 넘어온 66명을 포함,88명.서종철 전 국방장관,김점곤 육사총동창회장 등이 있다.2기는 박정희 전 대통령,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 등 임관된 1백96명 가운데 79명이 장군이 됐다. 2기에 이어 눈길을 끄는 기는 5·16의 핵심세력이자 최대 졸업생을 배출한 8기.특별반을 포함,육사사상 최대인 2천42명이 임관했다.초대 중앙정보부장과 국무총리를 지낸 김종필 자민련총재를 비롯,7명의 장관,16명의 국회의원을 배출했다.파리에서실종된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이희성 전 교통·조철권 전 노동,오치성 전 내무장관이 모두 8기다.이들과 함께 5·16 양대 주체세력이었으나 「반혁명세력」으로 대부분 제거된 5기로는 정승화 전 참모총장,김재춘전 중앙정보부장,채명신 전 주월사령관 등이 있다. 12·12의 주역으로 2명의 대통령을 배출한 11기는 5명의 장관,3명의 의원,차관 1명을 배출했다.정호용·이기백·이상훈 전 국방장관과 김식 전 농수산,김성진 전 과기처장관 등이 11기 출신이다. 11기에 이어 두각을 나타낸 기는 17기로 3명의 장관과 4명의 국회의원,2명의 차관을 배출했다. 장관으로는 이병태(국방)·김용갑·이문석(총무처)씨가,국회의원으로는 허화평·허삼수·임복진·정선호씨 등이 꼽힌다.17기는 육사출신의 가장 큰 꿈인 참모총장을 유일하게 2명(김진영 예비역대장·김동진 현합참의장)을 배출했다. 이밖에 체신부장관 등을 지낸 오명씨와 얼마전 작고한 최창윤 전 공보처장관,이학봉 전 의원이 18기이며 19기로는 현역인 윤용남 참모총장과 4선인 서정화 의원이 있다.〈황성기 기자〉 ◎통계로 본 육사 반세기/대통령 3명·장­차관 92명 배출/현역 6천5백명… 1천6백명 전사·순직 육사는 지난 반세기동안 3명의 대통령과 2명의 국무총리,92명의 장·차관,31명의 대사,80명의 국회의원,76명의 교수를 배출했다. 인원비율로 치면 단일 학맥으로는 서울대를 능가하는 인력배출이다. 1기에서 올해 임관한 52기에 이르기까지 졸업생은 1만5천5백70명. 이 가운데 현역은 윤용남 참모총장(19기)을 비롯,6천5백82명이고 예비역은 5천6백58명,전사를 비롯한 사망자는 3천3백30명이다. 동문 가운데 10% 가까운 1천3백22명이 별을 달았다. 6·25나 월남전,공비토벌 작전 등에서 전사하거나 순직한 사람은 모두 1천6백20명이고 이같은 공로로 47명이 영예의 태극무공훈장을 수여받았다. 동문 가운데 육사 교수출신으로는 박세직의원(12기·경북 구미갑),오명 전 건설교통부장관(18기) 등이 있으며 비육사출신으로는 조순 서울시장,공로명 외무부장관,김종운 전 서울대총장 등이 영어교수를,윤형섭 건국대총장이 50년대에 정치학교수를 지냈다.□육사 연표 ▲46년 5월1일=국방경비사관학교 태릉에 창설.1기생(88명)입교 ▲46년 6월15일=1기생 40명 졸업 ▲46년 6월16일=조선경비대사관학교로 개칭 ▲48년 9월5일=건국후 육군사관학교로 개칭 ▲50년 7월8일=6·25로 임시 폐교 ▲51년 10월30일=4년제 육군사관학교 진해에서 개교.11기생 입교 ▲54년 6월21일=진해에서 태릉으로 학교 이전 ▲57년 3월16일=육사 주둔지 태릉을 화랑대로 개칭 ▲61년 5월18일=사관생도 5·16지지 시가행진 ▲69년 11월1일=문과 및 이과로 구분하는 등 교과과정 개편 ▲78년 1월1일=「육사 30년사」간행 ▲81년 7월=화랑대연구소 설치 ▲88년 1월30일=육사회관 준공 ▲94년 4월27일=화랑관 준공식 및 입주 ▲95년 2월23일=군사과학대학원 개원 ▲96년 2월=56기생 입교
  • 남북대학교류 실현시키자(사설)

    전국 4년제대학 총·학장들의 자율협의기구인 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가 남북한 대학교육교류와 협력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남북한 대학총장회담」을 적극 추진키로 한 것은 좋은 발상이다.대교협이 지난 26일 주최한 세미나에서 박홍서강대총장을 통해 제기한 남북대학교육 교류제의는 남북의 실무대표들이 제3국에서 예비접촉을 갖되 본회담은 오는 8월15일 광복절을 전후해 개최하자는 것으로 우리는 이 제의가 실현되기를 기대한다. 지금으로서는 이 회담의 성사여부는 불투명하다.지난 89년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지침이 제정된 이후 지난 2월까지 통일원이 승인한 우리대학 및 학술단체들의 대북교류계획 35건 가운데 북한측이 수용한 것은 단 한건밖에 없기 때문이다.과거의 경험에 비춰 이 회담도 북한당국이 선뜻 허용할 것으로는 보지 않는다.그러나 4자회담의 가능성이 높아지는 등 한반도 주변정세가 대화분위기 쪽으로 흐르고 있을 뿐아니라 최근 미국에서 열린 한 세미나에서 남북학생대표들이 자리를 같이 한 일도 있어 앞으로의 여건변화에 따라서는성사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한다. 남북간의 긴장완화와 평화유지를 위해서는 책임있는 당국간 대화가 선행돼야 한다.그러나 지금처럼 당국간 대화가 단절된 상태에서는 민간차원의 대화로 이를 보완할 수밖에 없다.그런 의미에서 남북대학총장회담이 열릴 경우 남북간의 화해분위기를 고조시키는 한편 사회·문화적 장벽을 허무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회담이 성사된다고 해도 북한측이 정치문제까지 거론하면서 상투적인 통일전선전략을 구사하려 든다면 서로의 사상적인 이질감만 심화시킬 우려도 없지않다.북한당국이 이같은 고식적인 자세를 버리고 이 회담을 순수하게 받아들인다면 공동학술연구와 공동답사,자연과학 및 문화·스포츠분야의 교류,남북대학간 자매결연,교수·학생상호교환 등 남북의 대학교육교류는 크게 활성화될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평화통일에도 기여하게 될 것으로 믿는다.북한 당국의 슬기로운 선택을 다시한번 촉구한다.
  • 남북범청학련 총회 8월15일 서울개최

    「한국대학 총학생회연합」(한총련·의장 정명기 전남대 총학생회장)은 27일 서울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오는 8월15일 서울에서 남·북한 및 해외 청년대표 6백여명이 참석하는 「청년학생 연석회의 및 범민족 청년학생연합 1차 총회」를 개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 “북 4자회담 결국 수용할것”/김 대통령 독 신문 회견

    【베를린 연합】 김영삼 대통령은 북한이 결국 한반도 4자회담 제의를 수용할 것이며 한국도 북한과의 평화협정 체결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독일의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지가 26일 보도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전날 이 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북한은 한·미관계를 이간질할 수 있다는 헛된 희망을 버려야 한다』고 촉구하면서 북한이 현재 지연작전을 펴고있으나 결국 4자회담 제의에 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김대통령은 이 인터뷰에서 대북 원조제공 문제와 관련,기본적으로 도움을 줄 용의가 있으나 북한이 자신과 한국정부에 대한 비방과 폭력혁명 선동을 계속하는 상황에서는 원조제공이 이뤄질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그러나 북한과의 관계를 단계적으로 개선하고 43년전 체결된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강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대통령은 또 4자회담 구상은 오래전부터 계획했던 것으로 당초 지난해 8월15일 광복절때 제의하려 했으나 제의에 무게를 싣기 위해빌 클린턴 미대통령의 방한때로 연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중국과 러시아·일본에 4자회담 제의를 미리 알렸으며 북한에도 제의 이틀전 인도네시아를 통해 사전 통보했다고 공개했다. 그는 4자회담 제의를 검토해보겠다는 북한측의 입장 표명과 관련,시간이 좀더 걸릴 수도 있지만 북한으로서는 이 제의를 수용하는 길 외에는 다른 선택이 없을 것이라면서 클린턴 대통령의 확약에 비춰볼 때 북한이 한국을 배제한 채 미국과 단독협상을 벌이지는 못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김대통령은 또 『고립정책을 펴고 있는 북한의 상황이 어떻게 발전해나갈지 1백% 정확히 알지는 못하고 있다』고 말하고 그러나 모든 상황을 종합해 볼때 북한 경제사정이 극도로 악화돼 있으며 정치도 불안정한 것이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최근 비무장지대에서 있었던 북한군의 도발행위도 북한의 심각한 상황을 은폐할 수 없었다면서 북한의 이같은 도발행위가 지속되는 한 북한에 대한 원조제공은 어렵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한편 김영삼 대통령은 국가보안법 개폐 여부에 대해 정부가 종교지도자들과 기업인들의 방북을 지원하고 있으나 남북한 국민들간의 교류를 통제하고 있는 국가보안법은 계속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공로명 외무장관과 권오기 통일원장관은 북한이 한국내 과격세력,특히 과격학생들에게 폭력혁명을 선동하는 공작을 계속하고 있기 때문에 국가보안법의 유지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또 김대통령의 한 정치보좌관은 한국내에 북한체제에 호감을 갖고 있는 국민이 10∼15%에 이르고 있으나 이들에게 북한의 비참한 실상을 직접 보여주는 것만큼 효과적인 대응수단이 없기 때문에 앞으로 국가보안법 규정을 완화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고 이 신문은 덧붙였다.
  • 최 대통령 하야과정/전씨,내각 무력화·군원로 설득 양면 압박작전

    ◎김정렬씨 수차례 밀사로 파견… 최씨 적극 설득/“「8·15 하야」는 모양새 좋지 않다” 하루 늦추기도 최규하 대통령의 하야는 전두환 보안사령관 등 신군부측의 집요한 양면 압박전술에 따른 것이었다. 최대통령은 외견상으로 지난 80년 8월16일 상오 10시 청와대 영빈관에서 특별성명을 내고 대통령직을 사임했다.최 전대통령은 지금껏 사임과정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다. 22일 검찰의 신문에서 최대통령이 하야하게 된 경위가 두 갈래로 정리됐다.신군부측이 5·18 이후 국회를 해산하고 국보위를 설치함에 따라 내각의 기능이 상실된데다,군 원로들의 최대통령 하야설득이 주효한 것이다. 그러나 전씨는 대부분 부인했다. 전사령관은 사실상 5·17 비상계엄의 확대와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거치며 집권 시나리오를 하나씩 실천에 옮겼다. 6개 항의 시국수습 방안에 따라 국회를 해산하고 주요 정적들을 부정축재 또는 소요배후 혐의로 체포했으며 국보위를 설치했다.특히 국보위 상임위원장으로서 행정부를 장악,권력이 집중됐고 지도자로서의 이미지가국내외에 부각됐다. 이처럼 내각의 기능이 실질적으로 상실되자 최대통령은 7월 하순쯤 사임을 결심하게 됐다. 신군부는 이와 별도로 김정렬 전국방부 장관을 최대통령에게 수차례 밀사로 보내 하야를 설득했다.신현확 총리는 이같은 사실을 김씨로부터 들었다고 검찰에 진술했다. 처음 최대통령은 하야를 거부했다.『지금 국민들은 군인들이 나서는 것보다 나처럼 별 의심이 가지 않는 사람이 과도정권을 끌고 가기를 원하고 있다』는 게 반대이유였다. 김씨의 몇차례에 걸친 설득 끝에 최대통령은 7월30일 하야를 결심한다.그날 하오 6시부터 청와대 접견실에서 5시간에 걸친 김씨와의 입씨름 결과였다. 김씨는 이촌동의 집으로 돌아온 자정쯤 전씨에게 전화를 걸어 그 내용을 알렸다.이튿날인 31일 최대통령이 전씨를 청와대로 불렀다.『내 자리를 대신 맡아달라』며 하야의사를 밝혔다. 전씨는 『생각해 보겠습니다』라고 답한뒤 『휴가나 다녀오시는 게 어떻겠습니까』고 권유했고,최대통령은 강릉으로 휴가를 떠났다. 전씨는 이 사실을 노태우 수경사령관에게 알렸다.7월 초에는 유학성·황영시 장군 등 신군부 장성 10여명이 공군 참모총장 공관에 모여 현수막을 내걸고 전씨를 대통령으로 추대키로 결의했다.벅찬 운명에 전씨는 눈물을 많이 흘렸다. 최대통령은 당초 8월15일 하야하려 했으나 신군부측이 「광복절에 사임하는 건 모양이 좋지 않다」고 말려 하루 늦췄다.〈박선화 기자〉
  • 작년 광복절 「2+2」 제안 검토/한·미 4자회담 추진 뒷얘기

    ◎한때 「2+4」 방식도 고려… 실효성 적어 제외/레이크 보좌관 2월 방한… 본격적 의견조율 김영삼 대통령과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16일 제주도 정상회담을 통해 제안한 남북한,미국,중국간의 4자회담은 현재의 한반도 상황에서 가장 현실적인 평화체제 구축방안이라고 정부 당국자들은 평가하고 있다.이날 4자회담 제안을 발표하기 위해 한미 양국은 이미 지난해부터 물밑 교섭을 계속해왔다. ○…정부내에서 4자회담의 아이디어가 처음 나온 것은 지난해 초여름.광복 50주년을 맞는 8월15일을 앞두고 정부는 남북한간 긴장을 완화하고 한반도의 평화체제를 구축할 수 있는 「획기적」인 대북제안을 구상했다.이에 따라 정부에서는 남북한이 평화체제 구축방안을 논의하고,미국과 중국이 이를 보장해주는 「2+2」방식의 평화안을 마련했다.정부는 당시 러시아와 일본까지 포함하는 「2+4」방식도 검토했으나,6자회담에서는 집중적인 협의가 어렵다는 실효성 등 때문에 일찌감치 제외됐다.그러나 「2+2」안은 사전에 언론에 누설된데다,북한이 받아들일 기미를보이지 않아 무산됐다.당시 무산된 「2+2」안을 좀더 현실적으로 다듬은 것이 4자회담 제안이라고 볼 수 있다. ○…지난해 8월 이후 「2+2」혹은 4자회담 방안이 다시 고개를 든 것은 지난 2월초 앤터니 레이크 백악관 안보담당보좌관이 방한했을 당시.레이크 보좌관은 유종하 청와대 외교안보수석과 제주도 등지를 여행하면서,허심탄회하게 한반도 평화정착 방안을 협의했다고. 이어 지난 3월 공로명 외무부장관의 방미를 전후해 클린턴 대통령의 방한이 결정되면서,정부내에서 양국 정상회담에서 「2+2」회담을 제안하는 방안이 집중적으로 협의됐다.다만 당시도 여전히 북한이 이를 받아들일만한 상황은 아니라고 판단,2+2회담의 전단계로 4자회담을 제안하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양국간에 4자회담 방식에 대한 의견접근이 이뤄지면서,당국자들은 갑작스레 새로운 제안을 하기보다는 북한과 한반도 주변의 관련국들에게 사전에 통보해주기로 결정.이에따라 정부는 일요일인 지난 13일 비동맹의 중심국인 인도네시아를 통해,미국은 기존의 외교적 라인을 통해 북한에 4자회담 방식을 설명. 정부는 또 중국과 일본·러시아에게도 4자회담 제안 방침을 설명했는데,중국은 『한국정부의 노력을 유의하고 이해한다』는 반응을 나타냈다.또 일본은 전폭적인 찬성을 나타냈으나,러시아는 4자회담에서 배제됐기 때문인지 적극적인 지지를 나타내지 않고 6자회담 방식을 제기했다고. ○…한미 정상회담이 열린 16일 직전부터 미국 언론들은 클린턴 대통령이 김대통령에게 4자회담을 제안,수락을 요청한 것으로 보도해 다소 혼선이 생기기도.이에 대해 정부의 한 당국자는 『4자회담은 기본적으로 우리의 한반도 평화구축방안인 「2+2」방식을 실현하기 위한 방법론적인 차원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누구의 제안이냐 하는 것을 따질 필요는 없을 것』이라고 언급.〈서귀포=이도운 기자〉
  • 문민정부 개혁 3년/해외언론이 본 「역사 바로세우기」

    ◎“부정축재 폭로 영웅은 한국 민주주의”/돈을 섬긴 개발독재형 정치체제 막 내려­아사히 AWSJ/법치국가 된 한국… 체질개선 전환점 섰다­비즈니스위크 타임/한국상황은 중 지도자에도 경고메시지­독 안차이거 「청산과 창조의 명예혁명」 역사바로세우기 작업이 추진되면서 한국은 전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5·6공 잔재 및 12·12 등 과거청산,5·18특별법 제정,5·17쿠데타 수괴세력 단죄 등 수소폭탄급 조치가 취해질 때마다 세계는 「깜짝」 놀라는 표정이었다.한국의 역사바로세우기가 세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시작한 것은 노태우 전 대통령이 부정축재에 대해 대국민사죄 성명을 발표한 95년10월27일.노씨의 대국민사죄는 로이터·AFP 등 주요 통신사와 전세계 주요 매체들에 의해 즉각 긴급뉴스로 보도됐다. 로이터는 눈물을 흘리는 노씨의 스케치기사와 함께 해설기사를 싣고 『한국 정치권의 부패실체가 백일하에 드러나게 됐다』면서 『김영삼대통령의 장래는 노씨와 노씨로 대표되는 「더러운 정치」와 어떻게 성공적으로 단절하느냐에 달려있다』고 전망했다. 특히 LA타임스는 같은 달 31일 서방경제학자의 말을 인용,『김대통령이 이번 난국을 수습할지는 한국의 개혁과 시장개방을 원하는 미국의 국익에도 중요하다』고 지적하고 『김대통령은 한국에서 찾아볼 수 있는 몇 안되는 개혁적 지도자중의 하나』라고 말했다. 해외언론들은 11월1일 노씨가 마침내 검찰에 소환되자 해설을 곁들인 주요 면 톱기사로 다루는 등 기사밸류를 한층 높였다. 아시안 월 스트리트 저널지는 「퇴임대통령의 계좌」라는 사설을 통해 노씨가 돈과 국민중 돈을 주인으로 섬겼으며 이는 권위주의 정치체제에 수반되는 위험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지적,한국인들의 수긍을 얻었다. 독일의 권위 있는 시사주간지 디 차이트는 다음날인 2일 한국 정치사의 어두운 이면이 밖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은 민주주의가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며 한국은 이 사건을 한 점 의혹 없이 밝혀 민주주의 성숙도를 세계에 증명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외국의 시선은 이 때까지만해도 비자금사건을 일과성 정치파문으로 보는 측면이 있었으나 같은 달 16일 노씨가 구속되자 한국인들의 단호한 「부패와의 단절 의지」를 확실히 인정했다. 미국 일본 프랑스 등 주요국 언론들은 노씨 구속수감을 1면 머리기사·긴급뉴스·해설·사설 등을 통해 대서특필했다.르몽드지는 『김대통령 집권후 착수한 부패척결운동의 결과』라고 긍정적으로 풀이했으며 아사히신문은 이 사건은 조금 먼 눈으로 보면 한국 경제를 이끌어온 개발독재형 정치체제가 막을 내리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같은 달 24일 김대통령이 5·18특별법 제정을 민자당에 지시했다는 뉴스 역시 주요 통신사에 의해 전세계에 긴급뉴스로 타전됐다.뉴욕타임스는 이와 관련,25일 김대통령이 80년 광주민주화운동 학살사건의 군책임자들을 처벌할 특별법제정을 천명함으로써 15년간 한국을 괴롭혀온 이 사건이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됐다면서 10년전만해도 군책임자 처벌이 거론되면 군사쿠데타가 발생할 여지가 있었으나 지금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 됐다고 덧붙였다.또 월 스트리트 저널은 이번 노씨 부정축재사건이 폭로되는 과정에서 영웅이 있었다면 바로 이 나라의 민주주의라고 극찬했다. 해외의 관심은 12월2일 전두환 전 대통령이 골목길 성명을 통해 검찰의 군사반란 수괴혐의에 정면 반발하고 3일 검찰에 의해 수감되면서 절정에 이르렀다. 외국언론들은 전직대통령이 2명이나 수감된 것이 전례가 없기 때문인지 나름대로 향후 정국전망을 내놓는 등 부산한 움직임을 보였다.이와 관련,미 뉴욕타임스는 전씨 구속은 자유선거와 언론자유가 보장되는 시대가 오면 역사도 달라진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논평했다. 비즈니스위크는 한국이 경제체질개선의 전환점을 맞고 있다고 했으며 타임지는 「한국은 이제 법치국가가 됐다」는 제하의 12월11일자 특집을 통해 한국인들은 자신의 나라가 하루 아침에 깨끗히 정화될 수는 없더라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또 독일 안차이거지는 한국상황은 중국지도자에게도 경고의 의미를 줄 것이라고 지적했고 LA타임스는 한국이 혼돈을 겪고나면 더욱 안정된 정치체제와 강력한 민주주의를 이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지난해 11월 이후 숨가쁘게 진행된 한국의 역사바로세우기는 전씨 구속까지 내내 전세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이들은 놀라운 경제성장으로 다른 국가들로부터 경제성장의 모델로 간주되고 있는 한국이 역사바로세우기를 통해 민주주의 모델로도 자리매김을 할 수 있을지 한국인들의 결정을 지켜보고 있다. ◎문민정부 개혁 3년 일지 ▲2월25일­제14대 대통령취임 ­청와대 앞길과 인왕산 개방 ▲2월27일­대통령 재산공개 ▲3일3일­「신경제 1백일계획」및 「신경제 5개년계획」수립지시 ▲3월4일­일체의 정치자금 안받을 것을 선언 ­안가 12개동 철거 및 개방 ▲3월13일­부산·전남·전북·경북·제주등 지방청와대 폐쇄 ▲3월18일­김포공항등의 대통령 전용귀빈실개방 ­국무위원 첫 재산공개 ▲4월19일­현직 대통령으로 처음 4·19묘지 참배 ▲5월13일­5·18광주민주화운동 관련,특별담화 ▲7월10일­클린턴 미국대통령과 정상회담(청와대) ▲8월9일­옛 조선총독부건물 철거지시 ▲8월12일­금융실명제 전격단행 ▲9월7일­고위공직자 재산공개 ▲11월17∼29일­시애틀 APEC회의 참석 및 미국방문 ▲3월15일­공직선거 부정방지법등 3개 정치개혁입법안 서명 ▲3월24∼30일­일본과 중국 공식방문 ▲4월14일­정부,2015년까지 45조원 투입하는 초고속정보통신망 구축계획확정 ▲5월19일­국방부,경기·강원 북부지역 군사보호구역 5억3천5백만평 해제 ▲6월1∼7일­러시아 및 우즈베키스탄방문 ▲6월28일­판문점서 남북정상회담 예비접촉 7월25∼27일 평양남북정상회담 합의 ▲7월5일­농어촌에 2004년까지 15조원 투자계획발표 ▲7월8일­김일성 사망으로 남북정상회담 무산 ▲8월15일­「한민족 공동체 건설을 위한 3단계 통일방안」천명 ▲11월10∼19일­인도네시아 보고르 APEC 지도자회의 참석 및 필리핀·인도네시아·호주방문 ▲11월17일­시드시방문중 「세계화 구상」천명 ▲12월3일­재정경제원 신설등 대대적 정부조직개편 단행 ▲1월9일­7월1일부터 부동산실명제실시 발표 ▲1월21일­세계화추진위 발족 ▲1월26일­「마틴 루터 킹 평화상」수상 ▲3월2∼15일­덴마크 유엔사회개발 정상회의참석 및 프랑스·체코·독일·영국·벨기에 방문 ▲3월23일­「삶의 질 세계화」를 위한 복지구상 발표 ▲5월31일­사립대 학생선발방식 자율화등 교육개혁단행 ▲6월21일­북경 남북쌀회담서 북한에 쌀 15만t지원 합의 ▲6월27일­4대 지방선거실시,지방자치 34년만에 전면부활 ▲7월22∼29일­미국 국빈방문 ▲8월11일­광복50주년을 앞두고 3천1백69명에 대한 특별사면·복권단행 ▲10월16∼28일­유엔창설 50주년 특별정상회의 참석 및 캐나다방문 ▲11월9일­한국,유엔안보리 비상임이사국 진출 ▲11월14일­중국 국가원수로는 첫 방한한 강택민 주석과 정상회담 ▲11월16일­노태우 전 대통령 구속 ▲11월17∼20일­오사카 APEC 지도자회의 참석 ▲11월24일­「5·18특별법」제정지시 ▲12월2일­건국이래 최대인 7백50만명에 대한 일반사면령 공포안 서명 ▲12월3일­전두환 전 대통령 구속 ▲1월5일­중소기업청 신설지시 ▲1월9일­새해 국정연설,지속적 개혁 등 6대 국정과제 제시 ▲1월15일­무궁화위성2호 발사성공 ▲2월6일­신한국당 제1차 전당대회
  • 위안부문제 일의 이중성/강석진도쿄특파원(오늘의 눈)

    일본정부는 6일 종군위안부문제에 대한 유엔인권위원회의 보고서를 수용하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일본의 정치인들은 지난 한햇동안 망언을 쏟아부어 일본의 침략전쟁으로 막심한 고통을 겪었던 아시아국가들의 분노를 샀었다.이때 일본정부는 과거를 반성한다는 8월15일 총리담화가 정부의 입장이라면서 무마해 왔다.그러나 이날 유엔인권위원회의 보고서 수용을 거부했다.지금까지 쓰고 있던 양의 너울을 훌렁 벗어던지고 해 볼테면 해보라고 가슴을 쭉 내미는 듯하다. 인권위원회의 보고서는 일본정부에 국가가 피해자개인에게 사죄하고 국가배상을 하라는 것이다.또 가해자의 처벌도 권고했다.이같은 내용은 피해자 「할머니」들이 줄곧 요구해 온것과 선을 같이 한다.인류가 금세기 전대미문의 세계대전을 겪기까지 역사를 통해 확립해온 인권보호의 원칙에 비추어 지극히 당연하다.최근 보스니아내전 전후처리 과정을 보면 전쟁중이라고 하더라도 인권 침해행위의 책임은 지속적으로 추궁당하고 있다.또 독일의 전후 처리과정에서 그들은 스스로 유태인학살의 만행을 저지른 전범들을 처벌해 왔고 국가책임을 인정,배상에 인색하지 않았다. 그러나 일본정부는 뚜렷한 법적인,논리적인 근거도 없이 『법적으로 일본정부가 받아들일 여지가 없다』면서 『민간기금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협력해 나가겠다』고 말했다.국가책임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무수한 만행과 인권침해,인종차별,생체실험,경제적 착취,무모한 전쟁도발과 함께 뚜렷한 증거와 증인들로 더 이상 부인할 수 없게 국가책임이 드러난 종군위안부문제에 대해서 끝까지 책임을 외면하는 것은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일본은 언제부턴가 경제거인이 되면서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을 넘보아왔다.경제력에 걸맞게 국제평화와 안정에 기여하겠다는 것이다.그러나 일본이 과거침략사에 대한 반성을 거부하고 있는데 대해 아시아국가들은 줄곧 의심을 버리지 못했다.94년 유엔총회에서 일본의 상임이사국 진입을 지지한 아시아국가는 한 나라도 나오지 않았다. 유엔 기구가 요구하고 권고한,그리고 당연히 그리 했어야 할 일을 거부하면서 국제평화에 기여하는 상임이사국이 될 자격이 있는 것일까.우리는 일본이라는 국가의 지향목표와 미래에 대해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 중앙박물관 유물 12만점 언제·어떻게 옮기나

    ◎「순 우리것」 5천여점 먼저 이전… 9월 재전시/진동없는 특수차 동원… 훼손방지 전담반도 국립중앙박물관의 유물들은 언제 어떻게 옮겨지나.문화체육부가 올해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쓰이는 옛 조선총독부 건물을 완전히 철거할 계획인 가운데 그 안에 담겨진 귀중한 유물 처리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해 8월15일 중앙돔의 첨탑이 철거돼 상투를 잘린 옛 조선총독부 건물은 오는 8월말부터 본격적인 철거에 들어가 올 연말까지 완전히 자취를 감추게 된다.민족정기 회복과 조선 정궁 경복궁 복원의 중차대한 의미를 담고 있는 이 옛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는 그안에 전시중인 국보급보물들을 안전하게 대피시켜야 하는 쉽지 않은 과제를 함께 안고 있다. 철거작업은 압쇄기와 브레이커등을 사용한 기계적 공법으로 완전 폐쇄하는 방식인만큼 박물관의 유물들은 철거작업이 시작되기 전까지 한치의 오차도 없이 박물관 밖으로 안전하게 이전돼야 한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유물은 지방 박물관 대여물을 포함해 모두 12만점.박물관 2·3·4층에 전시중인 유물은 5천5백점이고 지하 수장고에 약 6만점이 보관돼 있다.이 가운데 문체부가 올해 이전할 유물은 현재 박물관에 전시중인 유물 5천5백점중 중국·낙랑등의 유물을 제외한 순 우리 것 5천2백1점.나머지는 박물관 본 건물에서 50m 떨어진 수장고로 옮겨져 격납해 보관하다가 용산에 새 국립박물관이 건립되면 수장고의 유물들과 함께 이전한다. 전시 유물들은 박물관 서편에 연건평 5천4백30평,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로 증·개축중인 조선왕궁역사박물관에 옮겨 전시한다.조선왕궁역사박물관은 분청사기실·영상전시실등 19개 전시실과 강당·수장고·보존과학실·도서실·기계실등으로 구성된다.현재 58%의 공정을 보이고 있으며 박물관의 유물이전이 완전히 끝난뒤인 오는 9월중 개관할 예정이다. 문체부는 본격적인 이전에 앞서 오는 3월부터 6월까지 우선 유물이전을 위한 준비작업을 벌일 예정이다. 문체부는 유물이전을 위해 95년 초 「박물관 유물이전 전담반」을 구성해 놓았으며 전담반은 박물관 4층부터 3층,그리고 2층에 전시중인 유물의 순서로 이전할 방침.유물을 중량과 크기에 따라 포장,이동방법을 구분해 이전할 방침이다.중량급 유물은 박물관 유물 이전 경험이 있는 전문업체에 용역을 줄 계획이며 소형은 얇은 중성지로 일일이 포장한 뒤 한지와 솜포대기로 두껍게 싸서 묶고 유물 운반상자에 개별 격납해 대형 알루미늄 상자에 넣어 무진동 특수차량으로 운송한다. 전담반은 이를 위해 현재 유물을 전시장소와 종류별로 분류해 목록 작성을 하는 한편 포장상자 제작과 전시를 위한 유물크기 실측 작업을 벌이고 있다.전담반은 유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삼아 유물의 안전이동을 위한 리프트와 지게차·오동나무상자·포장재 확보에 나섰다.문체부는 철저한 「안전」이동을 하기 위해 유물을 포장한후엔 개별 유물 겉포장과 외피상자 격납후 이전책임자가 모두 봉인토록 할 방침이다.
  • 중국­대만 꽃배달/양국 전신기관 올초부터 서비스

    ◎설·중추절 등에 이용자 줄이을듯 대만해협 양안에 헤어져 사는 중국인들은 춘절(설),중추절,어머니날 등 명절에 서로 만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육친간의 정을 아쉽게나마 나눌 수 있는 꽃다발은 전달할 수 있게 됐다. 중국 우전부 전신총국과 대만의 중화전뇌공사가 최근 양안에 떨어져 있는 친지들에게 꽃을 배달해 주는 「선화예의전보」의 취급을 개시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아이디어 전보상품이기도 한 생화배달전보는 그동안 중국내 4백여 도시간에서만 시행되다 1일부터 북경∼대만간에도 서비스되기 시작했으며 올들어 지난 10일부터는 호남성과 신강위구르자치구를 제외한 중국의 모든 성·시와 대만간으로 확대됐다. 이들은 또 양력 5월 첫일요일인 어머니날과 음력 8월15일의 중추절이 되면 양안간의 생화배달전보가 붐을 이룰 것이라고 내다보고 중화전뇌공사 북경사무소측이 중국고유의 떡인 월병까지 헤어져 사는 혈육들에게 보낼 수 있는 월병배달전보도 취급하는 문제를 교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꽃다발의 종류는 장미종류와 카네이션을 위주로 해서 바구니에 담긴 것과 바구니가 없는 것등 크게 두가지다.
  • 최후까지 가능조치 총동원 태세/강경대응 치닫는 전씨측 기류

    ◎단식·위헌소송·법리공방 전략 확고 전두환 전대통령의 병원이송 이후 전씨주변 기류가 더욱 강성으로 치닫고 있다.5·18특별법 제정으로 운신의 폭은 좁아졌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법적·현실적으로 가능한 모든 조치를 동원할 태세다.5공의 「정통성 사수」라는 전략에도 변함이 없다. 전씨측이 구사할 카드는 대략 석장 정도로 압축된다.첫째는 전씨의 신병문제다.전씨는 21일 상오 병원을 찾은 법률고문 이양우 변호사에게 『나는 괜찮아』라고 말했다.링거주사를 거부한 채 손가락으로 염주만 굴렸다는 것이다.의식을 잃어 강제로 영양제 주사를 맞을 때까지 단식은 계속될 것이 뻔하다.비자금수사로 전씨의 도덕성에 흠집은 가겠지만 동정여론이 퍼질 가능성도 있다.전씨는 이를 노린듯 하다. 두번째 카드는 헌법재판소에 5·18특별법의 위헌소송을 제기하는 것이다.재판부를 통해 위헌신청을 할 수도 있다.정호용 허화평 허삼수의원 등 관련 피고소인들도 위헌소송에 동참키로 했다고 이변호사는 전했다.시기는 법률 공포직후로 예상된다.그는 위헌소송이나 신청 자체가 재판절차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는 재판부에 달려 있다고 언급했다.그러나 노림수는 따로 있는 것 같다.전씨 구속과정에서 절차의 적법성 시비를 최대한 부각시켜 현정부에 도전해 보겠다는 숨은 의도가 엿보인다. 세번째 카드는 재판과정에서의 법리 공방이다.이변호사를 포함한 변호인단은 법정에서 5·18특별법이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한 형법불소급의 원칙에 정면으로 저촉되는 소급입법이자 정치보복이라는데 변론의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공소시효에 대해서는 최규하 대통령이 하야한 지난 80년 8월16일부터 기산,지난 8월15일 만료됐다는 점을 강력하게 주장할 예정이다.이미 미국과 일본 등지에서 내란이나 군사반란과 관련된 판례들을 구해 분석작업중인 것으로 알려졌다.구체적인 본안에서는 『12·12에서 5·18에 이르는 과정이 사전 모의에 의한 다단계 쿠데타였다』는 검찰측 논리에 사안별로 일일이 반박한다는 전술을 짜놓았다.88년 광주청문회 후 4∼5년에 걸쳐 1백여명에 이르는 관련자 증언을 토대로 6백50여쪽 분량의 변호자료를직접 작성했던 이변호사는 『법정공방에 관한 한 자신있다』고 틈만 나면 강조한다.
  • 「국교정상화 30년」고노 일 외무 본지 특별회견

    ◎“미래지향 한일관계 구축 전력”/한국상품 수입 늘어나 역조시정 낙관/대중문화 개방 이해증진에 도움될 것 한국과 일본은 금세기들어 수천년 역사에 있어 가장 최악의 상태를 맞았었다.해방 뒤에도 20년동안 양국은 정상적 관계를 맺지 못했다.1965년에야 양국은 기본조약을 맺고 국교를 정상화했다.18일은 기본조약이 발효된지 정확하게 30년이 되는 날,즉 국교정상화 30주년이다.그러나 양국은 올해에도 망언파동 등을 둘러싸고 여러차례 마찰음을 냈다.국교정상화 30주년을 맞아 고노 요헤이(하야양평) 일본외상과 단독 인터뷰를 가졌다. 인터뷰가 시작되자마자 『양국 국교정상화 30주년은 기념할 만한 뜻깊은 일』이라면서 『본래대로라면 서울에 가서 함께 이 기념할 만한 날을 맞고 싶었는데…』라고 말문을 연 고노 외상은 18일은 일본으로서는 56년 유엔에 가입한 날일 뿐 아니라 종전 50주년을 맞는 정부의 기념식도 있어 여러가지로 뜻깊은 날이라고 설명했다. ­탈냉전시대를 맞고 있는 때 양국관계의 미래를 전망한다면. ○기본적 가치공유 ▲한·일양국은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라고 하는 기본적 가치를 공유하고 있다.또 안전보장상의 이해를 함께 하고 있다.양국의 우호협력관계는 양국만이 아니라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중요하다.더 나아가 유엔과 아시아 태평양경제협력체(APEC)와 같은 국제사회의 무대에서 한·일양국의 협력이 날로 중요성을 더해 가고 있다.이같은 상황에서 양국간의 긴밀한 관계 구축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고 이를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여 나가고 싶다. ­국교정상화 30주년을 평가하면. ▲65년 국교가 정상화한 이후 30년동안 한·일관계는 우여곡절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발전해 왔다.지금까지의 한·일관계 발전에 힘을 기울여온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리고 싶다.전후 50주년이자 한·일국교정상화 30주년인 올해 지난 30년동안의 한·일관계를 되돌아보면서 과거를 직시한 위에 미래지향의 관계를 구축하는데 전력을 기울이고 싶다는 각오를 새롭게 하고 있다. ­전후처리의 마지막 과제로 북한과의 국교정상화 문제가 활발하게 거론되기도했는데. ▲11월14일 무라야마 도미이치(촌산부시)총리가 김영삼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에서도 분명하게 밝힌 것처럼 일본의 한반도 정책 기조는 한국과의 우호협력관계의 증진에 있다.이런 기본정책 아래 일·북한 국교정상화교섭에 대해서는 제2차 세계대전 후의 일·북한간의 비정상적 관계를 바로잡으면서 동시에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이바지한다고 하는 두가지 관점에 입각,계속해서 한국과 긴밀하게 제휴해가면서 대응해 나간다는 생각이다.지난 3월 여3당대표단의 북한방문시 북한의 노동당과 연립여당 대표단이 국교정상화 교섭의 무조건 재개에 합의하기도 했지만 현재로서는 재개 시기 등에 대해 결정돼 있지 않다.상대가 있기 때문에 앞으로의 전망 등을 명확하게 말하는 것은 곤란하지만 일본으로서는 앞서 말한 방침에 기초해 대응해 나갈 것이다. ○직접 투자 늘릴터 ­한국은 지난 30년동안 한번도 대일무역흑자를 기록하지 못했다.한국의 책임도 적지 않지만 일본으로서도 개선책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 있는가. ▲양국간 무역불균형은 한국의 산업구조 및 한국의 고도성장등 요인에 의한 점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최근에는 반도체등을 중심으로 한국으로부터의 수입도 급증하고 있어 밝은 변화의 조짐도 나오고 있다.일본으로서도 계속해서 내수주도형의 경제운영에 힘써 규제완화 및 시장접근을 개선시키려 하고 있다.또 동시에 한국에 대한 직접투자의 촉진과 산업기술협력을 추진해 앞으로도 한·일양국의 무역이 순조롭게 확대 발전되도록 노력해 나가고 싶다.김 등 농수산물의 수입규제완화등에 대해서는 종래부터 양국간에 협의가 행해지고 있다.특히 올해는 김에 대해서는 양국 민간간의 조정의 결과 수입이 실현됐다.앞으로도 이같은 협의의 장에서 충분히 대화가 이뤄지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한국은 대중가요,연극,영화등 일본의 일부 대중문화 공연을 제한하고 있는데. ▲현재 한국에서는 일본의 이른바 대중문화를 해금하는 데 대해서 여러가지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일본으로서는 이같은 논의를 거쳐 한·일간의 문화교류가 보다 자연스럽게 자유로운 형태로 발전해 나가 양국 국민간의 상호이해가 깊어지기를 기대한다.일본정부로서는 일본문화의 여러가지 측면을 한국민 여러분에게 소개해 폭넓게 이해가 깊어지도록 다양한 문화교류사업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이런 의미에서 지난해 가을 서울에서 열렸던 「일본문화통신사」사업에서 일본어 뮤지컬이 상연되는 등 새로운 시도가 받아들여져 호평을 받은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이런 자연스런 문화교류의 흐름이 한층 더 촉진되도록 한국측의 협력을 기대한다. 올해 한·일양국간 어려운 장면도 여러차례 만났던 고노 장관은 언제 가장 힘들어 했을까.직접 물어 보았다. 『일본국,일본정부의 생각은 지난 8월15일 총리담화에 담긴대로다.무라야마 총리의 담화는 각의에서 논의돼 이해를 얻어 각의의 결정 위에 담화로서 발표된 것이다.무라야마내각의 생각이자 곧 일본의 생각이다.그러나 한 나라에는 여러가지로 생각하고 말하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모두 하나로 생각할 수는 없으나 대다수 사람은 총리의 생각과 같다.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렇지 않은 사람의 발언도 있었고 양국 사이에 첨예한 감정적 마찰이 일어나 나로서는 대단히 괴로웠다.일본정부의 생각이 정확히 이해됐으면 좋았을텐데라고 생각했었다』라고 말해 에토 다카미(강등륭미) 전총무청장관의 망언파동을 직접 지적하지는 않았지만 그 당시 상당히 고통스러웠음을 시사했다. ○대한우호가 우선 30년을 넘어가는 때 한국민에게 하고 싶은 말을 부탁했다. 『지난 14일 TV로 클린턴 미대통령이 보스니아 평화협정 조인식에서 연설하는 것을 들었다.클린턴 대통령은 「우리는 과거는 바꿀 수 없다.그러나 미래는 변화시킬 수 있고 만들어 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나 역시 전적으로 동감이며 우리에게도 중요한 말이라고 생각했다.역사를 직시하고 역사에서 배우는 것이 우리에게 중요하다.최근 공로명 외무장관과 오사카에서 만나 여러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외무장관으로서 협력해 양국관계가 더욱 발전되도록 전력을 기울이고 싶다』고 미래지향적 양국관계를 강조하면서 총총히 자리를 떴다.
  • 서울신문 선정 「올해의 문화인물」 10인

    ◎전수천­베니스비엔날레 수상 이용우­광주 비엔날레 전시 기획 정명훈­금관문화훈장 받아 강수진­독서 발레리나로 활약 김아라­서울 연극제 석권 신경숙­여공시절 작품화해 호평 김종학­「모래시계」를 연출 박광수­노동운동가 전태일 영화화 최근덕­“유교 종교화” 주역 룰라­6회 서울가요대상 영예 「미술의 해」인 95년 우리 문화계는 엄청난 관객을 동원하며 외형적 성공을 거둔 광주비엔날레를 잘 치러냈다. 또한 광복50주년을 맞아 이를 기념하는 뜻있는 공연도 끊이지 않았다. 삼풍백화점 붕괴등 대형사건·사고와 노태우·전두환 전 대통령이 구속되는 정치적 격변속에서 문화계는 사상 유례없는 침체와 불황의 늪속에 빠져들기도 했다. 올해는 또 우리문학의 거장인 김동리선생과 세계적 명성의 원로조각가 문신씨,국악계의 보물 김소희여사,세계가 인정하는 현대음악계의 정상 윤이상선생이 유명을 달리하여 슬픔을 안겨주었다. 그럼에도 많은 문화인들이 올 한해 우리 문화마당의 전면 혹은 이면에서 한국의 문화역량을 확인시키는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올해 문화예술 각 분야에서 이름을 빛낸 10명의 문화인물을 통해 지난 1년간 우리 문화계를 돌아본다. ★전수천(47·설치미술작가) 지난 6월 세계최고의 미술제인 베니스비엔날레에서 한국관 개관 원년행사에 출품한 작품「방황하는 혹성들속의 토우­그 한국인의 정신」으로 특별상을 수상.1백년 전통의 이 미술제에서 한국국적 작가로는 첫 수상의 영예를 안으면서 세계적 작가로 부상했다.올해 국내 최고의 미술잔치인 광주비엔날레에도 특별전「한국 현대미술의 오늘전」에 수만마리의 누에고치를 소재로 한 설치작품을 출품,관람객이 가장 많은 관심을 보인 작품으로 꼽혔다.주로 일본과 미국에서 실험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해오다 지난 봄 국립현대미술관이 선정하는 「올해의 작가」로 뽑혀 국내에서도 역량을 인정받기 시작했고 베니스비엔날레 수상과 함께 올해 국내 미술계의 가장 떠오르는 작가로 부상했다.최근 정부로부터 은관문화훈장을 수여하는 영광을 안았다. ★이용우(46·고려대교수,광주비엔날레 전시기획실장 역임)한국의 문화역량을 빛낸 광주비엔날레 성공에 중추적 역할을 해낸 인물.일간지 미술기자를 거쳐 미술평론가로 등단하고 지난 93년부터 고려대 미술교육과에서 후학을 가르치는 학자로 변신한 그는 국내 미술평론가중 해외 미술무대에 여러 역할을 맡아 가장 진출을 많이 하는 인물로 꼽힌다. ★정명훈(42·지휘자) 명실공히 세계가 인정하는 현존하는 최고의 지휘자.지난해 프랑스의 묘한 정치적 알력에 휘말려 바스티유오페라단의 음악감독직에서 물러난 아쉬움을 만회하듯 고국에 쏟는 열정이 대단했다.지난 8월15일 잠실 올림픽경기장에서 광복50주년을 기념하여 열린 「축전음악회­세계를 빛낸 한국음악인 대향연」에서 지휘봉을 잡아 한국을 빛낸 기라성같은 음악인 20명과 함께 벅찬 감동의 무대를 연출했다.이로 인해 최근 정부로부터 문화인물로는 최고의 영예인 금관문화훈장을 수여하는 영광을 안았다.그는 또 고국에 기여하는 자세로 지난 5월 「음악을 통한 환경보호 캠페인」에 나서 환경뮤지컬 「오션월드」의 기획과 지휘를 맡아 환경보호에 대한인식을 제고시켰다. ★강수진(28·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원) 지난 10월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의 작품 「잠자는 숲속의 미녀」에서 통상 발레단의 최고무용수에게 돌아가는 시즌 첫 공연의 주역을 따내 월드스타로 발돋움했다.선화예고 1년에 재학중이던 82년 모나코 왕립발레학교로 유학을 가 85년 세계 3대 발레콩쿠르의 하나인 스위스 로잔콩쿠르에서 그랑프리를 차지,한국발레의 자존심을 높였다.「마적」「마타하리」「로미오와 줄리엣」등에서 프리마돈나로 이미 뛰어난 기량과 연기력을 인정받았으며 내년에 공연될 빈 국립오페라발레단의 「마타하리」객원스타,슈투트가르트의 내년시즌 공연작 「오네킨」과 「에드워드 2세」에서도 주요 배역을 내정받은 상태다. ★김아라(39·극단 무천 대표) 지난 10월 제19회 서울연극제에서 「이디푸스와의 여행」으로 영예의 대상과 연출상등 4개 부문을 석권,올해 국내 연극계에서 가장 두드러진 활동을 보였다.86년 「장미의 문신」으로 데뷔한 이래 「숨은 물」「메모렌덤」등 잇따른 우수작품으로 90년대 국내연극계를 주도해오고 있다.내년에도 4월 뉴욕에서 「이디프스와의 여행」 공연에 이어 10월에는 덴마크 오페라하우스 초청으로 유럽 및 아시아 3개국 배우들과 「리어왕」을 연출할 계획이다. ★신경숙(33·소설가) 장기적,전반적인 출판계 불황속에서 작가 신경숙씨의 약진이 유난히 두드러졌다.지난해 발표한 단편 「깊은 숨을 쉴때마다」로 올초 현대문학상을 수상했고 몇달 간격으로 펴낸 산문집 「아름다운 그늘」과 두번째 장편소설 「외딴 방」1,2를 나란히 베스트셀러에 올려 여전한 대중적 인기를 실감케 했다.뿐만 아니라 산업체 노동자 시절을 털어놓은 「외딴 방」으로 작품세계의 질적 성숙을 이뤘다는 찬사속에 그간 꼬리표처럼 따라붙던 「소녀취향」이라는 부담에서도 벗어났다.신씨의 부상은 다분히 90년대의 새로운 징후를 반영하는 현상으로 평가되고 있다. ★김종학(44·프로듀서) 올해 방송가 최고의 흥행작 「모래시계」를 만든 장본인.온 국민을 안방TV에 붙들어맬 정도로 인기를 누렸던 「모래시계」는 드라마의 차원을 넘어 「모래시계신드롬」이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킨 하나의 사회현상이 되었다. 지난 77년 MBC에 입사,「영웅시대」「인간시장」「여명의 눈동자」 등 숱한 화제작을 제작한 김PD는 역사와 흥미를 적절히 결합한 작품으로 한국 드라마의 한 획을 그은 인물로 평가받는다. 「여명의 눈동자」로 93년 백상예술대상 연출상,방송대상을 수상한뒤 프리랜서를 선언,작가 송지나·음악 최경식등 「김종학 사단」을 이끌고 SBS와 계약을 맺었으며 이제는 영화쪽으로 본격 진출할 계획이다. ★박광수(41·영화감독) 올해 우리 영화계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을 연출한 박광수 감독을 화제의 인물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노동운동가 전태일 분신 25주기를 기념해 만든 이 영화는 무거운 내용임에도 불구,『진실의 힘을 일깨워줬다』는 평과 함께 매진사례를 보이기도 했다. 지난 88년 「칠수와 만수」로 데뷔한 이래 「그들도 우리처럼」「그 섬에 가고싶다」등 사회성 짙은 리얼리즘 영화를 주로 선보여온 박감독은 이번 작품으로 다시한번 투철한 작가정신을 인정받았다. ★최근덕(63·성균관장) 최근덕 성균관장은 유교를 현대화된 종교로 탈바꿈하기위해 종단을 새로 설립하고 종단의 대표를 총전으로 하는 유교 개혁안을 올해 11월에 확정했다. 지난해 4월 취임한 최관장은 1년 7개월동안 유교의 개혁안을 추진한것은 2천5백년된 유교가 현대에 적응하기위해서는 제사제도와 기구와 조직등을 과감히 현대화해야한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최관장은 지금까지 음력으로 지내던 공자의 탄신일과 기일인 춘계·추계석전제를 양력으로 확정하는등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환을 했다. 최관장은 앞으로 전국 2백30여개 향교와 22만 유림들을 종교단체와 종교인으로 이끌기위한 전문인력을 육성하기위해 충남 천안에 유학학원을 신설할 계획이다. ★룰라(가수·댄스그룹) 김지현·채리나·이상민·고영욱 등 4명으로 이루어진 댄스그룹 룰라는 지난해 「백일째 만남」 「비밀은 없어」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데 이어 올해초 발표한 「날개잃은 천사」가 수록된 룰라의 2집 앨범은 올 한해동안 1백50여만장이 팔리는 엄청난 판매고를 올렸다. 룰라는또 지난 9일 열린 스포츠서울 주최 제6회 서울가요대상에서 영예의 최고가수상을 차지,국내 최고의 댄스그룹임을 입증했다.
  • 야마시타 신타로 주한 일본대사 외교협 초청연설

    ◎“한·일 인적교류 넓혀 협력적미래 열자”/일이 남북분단 고착 바란다는건 오해 야마시타 신타로(산하신태낭)주한 일본대사는 30일 외교협회(회장 전상진)초청으로 신라호텔에서 오찬강연회를 갖고,「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의 일본 외교정책과 한·일관계 전망」이란 제목으로 연설했다.이날 강연에서 야마시타 대사는 한·일 양국이 과거사를 둘러싼 불편한 관계를 떨치고 미래지향적인 협력관계를 위해 노력하자고 거듭 강조했다.연설의 주요내용은 다음과 같다. 65년 국교정상화 이후 30년 동안 한일 협력관계는 양국 모두에게 큰 결실을 가져왔습니다.한쪽 만이 이익을 받는 관계가 30년이라는 긴 세월에 걸쳐 지속될 수는 없습니다. 남북통일에 관해 일본은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원칙에서,평화적인 대화를 통해 단계적으로 통일을 이뤄나간다는 한국정부의 입장을 지지합니다.이를 위해 일본은 지금까지 일·북 국교정상화 교섭,쌀지원 협의 등 모든 기회를 이용해 남북대화의 촉진을 호소해 왔습니다. 일본은 내심 한반도 분단의 고착화를 바라는 것 아닌가라는 견해가 아직도 한국에 있는 것 같습니다.이는 전적으로 오해입니다.오히려 남북의 군사적인 대치상황 해소는 동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에 이바지하는 것입니다.동시에 장래 한반도의 통일국가와 함께 국제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협력해가는 것이 일본으로서도 환영해야 될 일이라 생각합니다. 36년에 걸친 일본의 식민지배는 한국분들에게 잊을 수 없는 과거이며,아직도 일본에 대해 용서할 수 없는 마음이 남아있다는 것도 충분히 인식하고 있습니다.지난 8월15일 김영삼대통령은 광복50주년 행사에서 「한일양국이 미래지향적으로 발전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일본이 과거 침략전쟁과 식민지배에 대한 진정한 반성을 해야한다」고 말했습니다.같은 시기에 무라야마 도미이치(촌산부시)일본총리는 각의의 양해를 거쳐 사과와 반성의 담화를 발표하고,그 내용을 친서의 형태로 김대통령에게 보냈습니다.이 담화가 일본에서 바른 역사 인식을 확립하는 중요한 토대가 될 것입니다. 한일이 미래를 향해 대등한 협력관계를 구축해 나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양국국민의 상호이해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한국의 여러분들도 일본의 현재 모습을 있는 그대로 직시해 주실 필요가 있습니다.때로는 사실 오인과 언론에 의해 만들어진 이미지에 의한 대일비판,대일 불신이 보이는 것은 실로 유감입니다.일본이 「핵무장을 한다」는 등의 오해가 그런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양국간 인적교류,특히 청소년 교류를 통한 상호이해 촉진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봅니다.한국의 많은 젊은이들이 다양한 교류 프로그램에 참가한 뒤 일본을 새롭게 말하고 있는 사실이 그 필요성을 뒷받침합니다.
  • 여·야 헌재 「시효만료」 결정설에 촉각

    ◎강경­신축대응 엇갈려 수위조절 부심­민자/“처벌대상자 제약 소지있다” 재고 촉구­야권 여야는 28일 헌법재판소가 5·18 불기소처분 헌법소원에 대해 내란죄 공소시효가 만료됐다는 쪽으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지자 정치권의 특별법제정 및 관련자처리 방향에 미칠 영향을 예의주시하며 대책마련에 부산했다. ▷민자당◁ 헌재가 전두환·노태우씨의 12·12군사반란죄 공소시효 만이 남아 있다는 의견인 것으로 전해지자 위헌시비를 막기 위해 특별법안 내용과 수위를 조절해야 한다는 의견과 「확실한」 입법을 해야 한다는 적극론이 동시에 표출됐다. 김윤환대표는 『헌재가 해석한 공소시효 범위를 넘는 규정을 특별법에 담았다가는 위헌판정을 받을 위험성이 있고,그렇다고 헌재해석으로도 가능한 전·노씨의 군사반란죄 처벌 만을 규정하는 법이라면 의미가 없다는 지적도 있을 수 있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그럼에도 과거의 헌정파괴에 대한 단죄의지 및 절차를 명확히 하고 재발방지를 위한 내용을 담기 위해 특별법은 필요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강삼재사무총장은 이날 광명갑지구당 대회에서 「회기내 특별법 제정,주동자 의법처리」를 거듭 강조했다. 「5·18특별법 제정 기초위원회」의 현경대 위원장도 『공소시효 기산점에 대한 헌재의 판단 등은 존중해야 겠지만 헌재의 결정이 입법의 무용론으로 비약돼서는 안된다』고 못박았다.이날 열린 기초위에서도 『사실관계에 대한 헌재의 해석과 입법상 미비점을 보완하려는 특별법 추진 움직임은 별개』라는 의견이 다수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같은 맥락에서 전·노씨 뿐 아니라 다른 관련자도 반란죄 공범으로 5·6공때 시효진행이 중단됐고 지금도 기소가 가능하다는 적극론도 제기됐다.헌법부칙에 내란죄 등의 공소시효 중단 또는 시효배제 규정을 넣지 않더라도 특별법에 이를 반영,위헌성 판단을 받아보자는 의견도 있었다. 내란죄에 대해 헌재가 법률적으로는 시효만료 견해를 취하더라도 이를 결정문 본문에 담지는 못할 것이라는 전제아래 「5·6공 때는 내란죄 기소가 사실상 불가능했다」는 점을 특별법에 간접적으로 담아 시효중단 및 기소가능성을 남겨두자는 의견도 제시됐다. 소수이기는 하지만 『형법불소급 원칙은 범죄의 종류와 형을 다루는 실체법에만 적용될 뿐 공소시효 등 절차에는 적용되지 않으므로 헌재의 해석으로 입법을 주저할 이유가 없다』는 의견도 나왔다는 후문이다. ▷야권◁ 공소권 없음이 부당하다는 결정에 『당연하다』는 표정이다.그러나 공소시효가 끝났다는 해석에 대해 국민회의와 민주당은 『대통령 재임 중에는 시효가 정지된다』고 반발하며 헌재가 최종선고를 연기해 줄 것을 신청했다.반면 자민련은 『헌재 결정을 존중하겠다』고 수긍했다. 국민회의는 내란죄의 수괴가 정권을 장악한 5,6공은 공소가 불가능했던 만큼 전·노씨의 재임중 공소시효는 정지된다는 논리다.공소시효가 끝났다는 것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가 아닌 경우 대통령은 형사상 소추를 받지 않는다』는 헌법 84조의 문구에 헌재가 지나치게 집착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국민회의는 또 공소시효의 기산점을 최규하 전대통령이 하야한 80년 8월15일이 아닌 『6·29선언 이후 직선제개헌이 완료된 시점』(변정수 고문)이나 『비상계엄령이 해제된 81년 1월24일』(박상천 의원)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공소시효가 끝났다는 헌재의 결정은 처벌대상을 특정인에 한정시키는 것이라며 관련자 전원의 사법처리를 주장했다.율사출신인 강수림·장기욱 의원은 『내란죄의 공소시효는 끝났고 군사반란죄의 공소시효도 전·노씨만 적용할 수 있다는 결정은 처벌대상을 제약할 소지가 있다』며 『내란죄와 군사반란죄의 공소시효가 관련자 전원에게 아직 유효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민련은 공소시효와 관련,『헌재의 결정을 존중하겠다』는 입장이다.동시에 『소급입법은 절대로 안된다』며 전·노씨를 내란죄로 처벌하지 못해도 군사반란죄로 처벌하면 된다는 입장이다.이경우 나머지 관련자는 공소시효가 완료돼 처벌이 불가능해진다.박준병 의원 등 당내 5·18 관련자를 보호하려는 배려로 풀이된다.
  • “「5·18」 피소 현역군인 9명 내란죄 시효남아 처벌가능”

    ◎대법 관계자/고소인 재정신청일부터 시효정지 김동진 합참의장 등 5·18 피고소·고발인가운데 현역군인 9명은 군사법원법에 따라 내란죄의 공소시효가 아직 남아있어 처벌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주목된다. 대법원관계자는 28일 5·18 고소·고발인들이 이들 현역군인 9명에 대한 군검찰의 불기소처분에 불복해 지난 7월29일 고등군사법원에 재정신청을 제기,현재 대법원에 재항고사건으로 계류중이기 때문에 헌법재판소가 최규하전대통령의 하야일을 공소시효 기산일로 잡아 지난 8월15일로 시효가 완성됐다고 결정하더라도 재정신청을 한 날로부터 공소시효가 정지돼 있다고 밝혔다. 군사법원법 304조는 「재정신청이 있을 때에는 신청에 대한 결정이 날때까지 공소시효의 진행이 정지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대법원이 고소·고발인들의 재정신청이 이유있다고 결정할 경우 현역군인들에 대한 공소가 제기된 것으로 간주돼 이들은 군사법원의 재판을 받게 된다. 그러나 이들 군인들이 5·18당시 영관급에 불과해 상부명령에 따라 단순하게 동원된 것이라는 기존 검찰조사결과가 그대로 받아들여지면 공소시효가 길어야 5년으로 재정신청전에 이미 시효가 종료됐다는 판단이 나올 가능성도 있다.
  • “5·18관련자 재판뒤 사면”/김대중 총재,특검제도입 거듭 주장

    ◎야 헌재선고 연기 요청 국민회의의 김대중 총재가 28일 5·18관련자 처리와 관련,특별검사제 도입을 통한 철저한 진상규명과 관련자들에 대한 재판후 사면조치를 주장해 주목된다. 김총재는 이날 하오 잠실 향군회관에서 열린 당 여성특위 주최 「새정치 여성대회」에 참석,『발포명령자·희생자수 등 5·18사건의 진상은 어떠한 경우에도 철저히 규명돼야 한다』고 전제하고 『그러나 5·18원흉에게 준엄한 법의 심판을 내리되 반성할 경우 반드시 감옥살이를 시킬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최근의 「처벌」주장에서 선회했다. 김총재는 『화해와 인도주의정신을 실현하기 위해 관대하게 처리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부연했다. 한편 야권은 이날 헌법재판소가 5·17군사쿠데타 관련자의 공소시효기산일을 최규하전대통령의 퇴임일인 지난 80년8월15일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지자 헌재에 선고연기를 요청하는 등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국민회의와 민주당은 이날 각각 5·18특별법 관련회의를 열어 30일로 예정된 헌재의 5·18헌법소원에 대한 선고가 5·18의 진상규명과 관련자 처벌에 장애를 초래할 수 있다면서 헌재에 선고연기를 요청했다.
  • 「5·18」 공소시효 내년 1∼3월

    ◎헌재­“계엄해제나 전 대통령 취임일이 기점”/“검찰 불기소는 부당”/오늘 결정문 확정… 새달초 선고할듯 헌법재판소(소장 김용준)는 27일 검찰의 5·18 불기소처분에 대한 헌법소원 사건 제8차 평의를 열고 『검찰은 불기소처분을 취소하라』는 위헌결론을 내릴 것으로 알려졌다. 헌재는 이같은 결론을 바탕으로 이날 최종 결정문을 작성한뒤 내달 초쯤 선고할 예정이다.따라서 민자당의 특별법제정과 관계 없이 5·18고소·고발사건에 대한 검찰의 재수사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에 앞서 헌재는 지난 23일 열린 제7차 평의에서 재판관 9명가운데 대부분이 이같은 결론을 제시했으며 8차 평의에서 최종 결정문 초안을 확정키로 내부방침을 정했었다. 헌재관계자는 『「12·12부터 5·18까지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의 집권과정은 내란죄 뿐만 아니라 군형법상 반란죄로 볼 수 있는 부분이 있다」는 방향으로 재판관들의 의견이 모아진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또 『재판관들의 대부분은 「검찰이 반란죄의 성립여부에 대해 수사하지 않은 것은 「판단유탈」(판단을 빠뜨렸다는 의미)의 잘못이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고 전했다. 헌재는 또 공소시효문제와 관련,공소시효의 출발점은 최규하전대통령의 하야일인 80년 8월16일이 아니라 비상계엄이 해제된 81년 1월24일 혹은 전두환전대통령이 대통령에 취임한 81년 3월3일로 늦춰 잡아야 하는 것으로 내부결론을 내렸다는 것이다. 헌재가 공소시효를 이같이 늘려 잡을 경우 공소시효만료일이 내년 1∼3월까지 연기돼 소급입법이 없어도 5·18관련자들에 대한 처벌이 가능해진다. 이와 함께 5·18 사건을 12·12 사건의 연장선으로 보아 내란죄 이외에 군형법상 반란죄를 인정하게 되면 대통령 재임기간 중에는 공소시효가 정지되므로 검찰은 공소시효 15년 가운데 전·노전대통령의 재임기간을 빼고 앞으로 5∼7년 동안 재수사할 수 있다. 검찰은 지난 7월18일 5·18고소·고발사건에 대한 수사결과발표에서 공소시효를 공식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이 사건의 공소시효는 최규하 전 대통령이 하야한 시점에서 시작,15년이 지난 올 8월15일로 만료된다』고 설명했었다.
  • 구조선총독부 첨탑 독립기념관에 옮겨

    【천안=이천열 기자】 광복 50주년을 맞아 철거된 구 조선총독부 건물의 첨탑이 27일 충남 천안의 독립기념관으로 옮겨진다. 24일 독립기념관에 따르면 이광노 문화재위원을 비롯,독립기념관과 국립중앙박물관 관계자 11명으로 구성된 「총독부 건물 철거 자문위원회」는 첨탑을 비롯,구 총독부 건물 일부를 독립기념관에 이전,보존키로 했다. 지난 8월15일 철거된 이래 국립박물관에서 전시돼 온 높이 8.5m 폭 3.5m 무게 26t의 첨탑은 종합 전시계획이 확정될 때까지 독립기념관 입구 「독립의 다리」 부근에 임시로 보관된다.
  • “일 제국주의 환상 못버렸다”/독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지 보도

    ◎경제대국 되자 “한반도 식민지배 정당” 망언/「미군 성폭행」 분노하면서 정신대문제는 발뺌 일본지도자들의 계속 반복되는 망언은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일본이 아직도 제국주의시대의 환상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증거라고 독일에서 가장 권위 있는 일간지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가 15일 보도했다.다음은 「적대감을 조성하는 일본인들」이라는 제목의 이 기사 요약이다. 지난 6개월 사이 벌써 3명의 일본각료가 일본의 식민지지배를 정당화하는 망언을 해 큰 파문을 일으켰다.에토 다카미(강등륭미)전총무청장관도 그중의 한명이다.그는 일본의 한반도강점이 한반도발전에 긍정적인 기여도 했다는 발언을 했다가 한국의 강력한 항의로 결국 사임했다. 그러나 일본 우파언론과 자민당내 우파세력은 한국측의 민감한 반응에 대해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며 에토장관의 입장을 두둔했다.이러한 현상은 그동안 경제적으로 강대해진 일본이 아직까지도 제국주의시대에 가졌던 강대국으로서의 환상을 버리지 못하고 있음을 나타냄과 동시에 역사적 사실을 제대로 인식하는 데 무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과 일본은 지난 1965년 한·일기본조약 체결로 국교정상화에 성공했지만 진정한 의미의 국교정상화는 아직까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지난 1993년 호소카와 모리히로(세천호희) 당시 총리가 일본의 침략전쟁과 식민지지배에 대해 사과하며 화해의 제스처를 보일 때 일본내에서는 그를 비판하는 여론이 들끓었다.지난 8월15일 무라야마 도미이치(촌산부시)총리가 종전 50주년을 맞아 다시한번 일본의 침략전쟁을 사과할 때도 연정파트너인 자민당으로부터 강력한 비판을 받았다.그이후 한·일관계는 다시 냉각상태로 회귀하고 있다. 한·일관계의 긴장이 고조되던 중 에토장관이 사임했다.그의 사임으로 김영삼대통령은 일본의 오사카(대판)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에 참석할 것이며 무라야마총리와의 정상회담도 예정대로 가질 것으로 예상된다.하지만 양국간에 우호적이고 신뢰적인 분위기는 조성되지 않고 있다. 한·일 양국은 지금 한·일합방의 합법성과 한반도분할에 대한 책임소재를놓고 논쟁을 벌이고 있다.무라야마총리는 1910년에 체결된 한·일합방조약은 당시로서는 합법적인 조약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그러나 역사를 올바로 인식하는 역사가들은(일본인을 포함) 당시의 조약이 일본군의 강압에 의해 체결되었다는 사실에 대해 조금의 의심도 갖고 있지 않다. 오늘날 당시의 한·일합방조약이 한국민의 이익을 위해 체결된 합법적인 조약이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2차대전때 히틀러가 프랑스침공을 정당화하기 위해 당시 프랑스의 비시 꼭두각시정권과 체결한 조약이 정당하고 합법적인 것이었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역사의 왜곡이다. 일본의 한반도 강점기간에 한반도에는 학교·철도·항만등이 건설되었으나 한국인은 강제노동과 강제징집,그리고 한국여성은 정신대에 끌려가는 수모를 당했다.그리고 일본의 한반도 식민지지배는 결국 한반도의 분할을 가져왔다.한반도분할에 일본도 책임이 있다는 것은 무라야마총리도 시인했으나 일본내의 폭발적인 분노의 비판으로 곧 자신의 발언을 취소했다. 일본열도는 최근 주일미군의 국민학생 성폭행사건에 대한 분노로 들끓었다.그러나 일본내 어느 언론도 불과 몇년전까지만 해도 일본정부가 7만여명의 한국인 정신대여성의 비참한 운명에 대해 책임이 없다고 발뺌해온 사실을 지적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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