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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천 문화회관장/안영휘씨에 수뢰

    【인천=김학준기자】 인천지검은 16일 인천 북구청 지방세 횡령사건 주범 안영휘씨(53·전북구청 세무1계장)로부터 2천만원의 뇌물을 받은 인천시 종합문화예술회관장 문도식씨(52)를 뇌물수수혐의로 구속했다. 문씨는 인천시 총무과장으로 재직하던 지난 92년 8월12일과 같은해 12월16일 안씨로부터 1차례에 1천만원씩 모두 2천만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있다.
  • 인천세도 38명 오늘 첫공판

    【인천=김학준기자】 인천 북구청 세금횡령사건의 주범인 안영휘피고인(53)등 이 사건으로 구속 또는 불구속기소된 38명에 대한 첫공판이 15일 하오2시 인천지법 103호 법정에서 형사합의2부(재판장 장용국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다. 이날 재판을 받는 피고인은 안피고인등 전·현직 공무원 14명과 법무사사무소 직원 13명,회사원 및 은행원 11명등(구속 31명,불구속 7명)이다. 검찰조사결과 안씨등이 횡령한 국고손실액은 등록·취득·주민·사업소득세등 모두 78억원이며 관련피의자만도 80명(구속 41명,불구속 27명,수배 12명)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이 가운데 ▲영수증 은닉혐의자 7명 ▲수배자 12명 ▲기소만기일이 안된 23명은 이번 재판에서 제외됐다. 한편 검찰은 14일 인천시 총무과장으로 재직하던 지난 92년8월12일과 같은 해 12월16일 1천만원씩 두차례에 걸쳐 모두 2천만원을 안씨로부터 받은 인천시 종합문화예술회관 관장 문도식씨(52·지방서기관)를 뇌물수수혐의로 불구속입건했다.
  • 북­미 제네바 기본합의서 전문

    다음은 21일 제네바에서 북·미간에 서명된 핵관련 기본합의서 전문이다.합의서 내용은 정부가 영문판을 입수,번역한 비공식 번역문이다. 미 합중국(이하 미국)대표단과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하 북한)대표단은 1994년 9월23일부터 10월17일간 제네바에서 한반도 핵문제의 전반적 해결을 위한 협상을 가졌다. 양측은 비핵화된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1994년 8월12일 미국과 북한간의 합의발표문에 포함된 목표의 달성과 1993년 6월11일 미국과 북한간 공동발표문상의 원칙의 준수가 중요함을 재확인했다.양측은 핵문제 해결을 위해 다음과 같은 조치들을 취하기로 결정했다. Ⅰ.양측은 북한의 흑연감속 원자로및 관련시설을 경수로 원자로 발전소로 대체하기 위해 협력한다. ⑴미국 대통령의 1994년 10월20일자 보장서한에 의거하여 미국은 2003년을 목표시한으로 총 발전용량 약2천Mw의 경수로를 북한에 제공하기 위한 조치를 주선할 책임을 진다. ①미국은 북한에 제공할 경수로의 재정조달및 공급을 담당할 국제컨소시엄을미국의 주도하에 구성한다.미국은 동 국제 컨소시엄을 대표하여 경수로 사업을 위한 북한과의 주 접촉선 역할을 수행한다. ②미국은 국제컨소시업을 대표하여 본 합의문 서명후 6개월내에 북한과 경수로 제공을 위한 공급 계약을 체결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경주한다.계약관련 협의는 본 합의문 서명후 가능한 조속한 시일내 개시한다. ③필요한 경우 미국과 북한은 핵에너지의 평화적 이용 분야에 있어서의 협력을 위한 양자협정을 체결한다. ⑵1994년 10월20일자 대체에너지 제공 관련 미국의 보장서한에 의거 미국은 국제 컨소시엄을 대표하여 북한의 흑연감속 원자로 동결에 따라 상실될 에너지를 첫번째 경수로 완공시까지 보전하기 위한 조치를 주선한다. ①대체에너지는 난방과 전력 생산을 위해 중유로 공급된다. ②중유의 공급은 본 합의문 서명후 3개월내 개시되고 양측간 합의된 공급 일정에 따라 연간 50만t 규모까지 공급된다. ⑶경수로 및 대체에너지 제공에 대한 보장서한 접수 즉시 북한은 흑연 감속원자로 및 관련 시설을 동결하고 궁극적으로 이를 해체한다. ①북한의 흑연감속 원자로 및 관련 시설의 동결은 본 합의문 서명후 1개월내 완전 이행된다.동 1개월 동안 및 전체 동결기간중 IAEA가 이러한 동결 상태를 감시하는 것이 허용되며 이를 위해 북한은 IAEA에 대해 전적인 협력을 제공한다. ②북한의 흑연감속 원자로 및 관련 시설의 해체는 경수로 사업이 완료될 때 완료된다. ③미국과 북한은 5Mw 실험용 원자로에서 추출된 사용후 연료봉을 경수로 건설기간 동안 안전하게 보관하고 북한내에서 재처리하지 않는 안전한 방법으로 동 연료가 처리 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기 위해 상호 협력한다. ⑷본 합의후 가능한 조속한 시일내에 미국과 북한의 전문가들은 두 종류의 전문가 협의를 가진다. ①한쪽의 협의에서 전문가들은 대체에너지와 흑연감속 원자로의 경수로로의 대체와 관련된 문제를 협의한다. ②다른 한쪽의 협의에서 전문가들은 사용후 연료 보관 및 궁극적 처리를 위한 구체적 조치를 협의한다. Ⅱ,양측은 정치적·경제적 관계의 완전 정상화를 추구한다. ⑴합의후 3개월내 양측은통신 및 금융거래에 대한 제한을 포함한 무역및 투자 제한을 완화시켜 나간다. ⑵양측은 전문가급 협의를 통해 영사 및 여타 기술적 문제가 해결된 후에 쌍방의 수도에 연락사무소를 개설한다. ⑶미국과 북한은 상호 관심사항에 대한 진전이 이루어지는데 맞추어 양국관계를 대사급으로 까지 격상시켜 나간다. Ⅲ.양측은 핵이 없는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을 위해 함께 노력한다. ⑴미국은 북한에 대한 핵무기 불위협 또는 불사용에 관한 공식 보장을 제공한다. ⑵북한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이행하기 위한 조치를 일관성있게 취한다. ⑶본 합의문이 대화를 촉진하는 분위기를 조성해 나가는데 도움을 줄 것이기 때문에 북한은 남·북 대화에 착수한다. Ⅳ,양측은 국제적 핵비확산 체제 강화를 위해 함께 노력한다. ⑴북한은 핵비확산조약(NPT)당사국으로 잔류하며 동 조약상의 안전조치 협정 이행을 허용한다. ⑵경수로 제공을 위한 공급계약 체결 즉시,동결 대상이 아닌 시설에 대하여 북한과 IAEA간 안전조치 협정에 따라 임시 및 일반사찰이 재개된다.경수로공급계약 체결시까지 안전조치의 연속성을 위해 IAEA가 요청하는 사찰은 동결 대상이 아닌 시설에서 계속된다. ⑶경수로 사업의 상당 부분이 완료될 때,그러나 주요 핵심 부품의 인도이전에,북한은 북한내 모든 핵물질에 관한 최초보고서의 정확성과 완전성을 검증하는 것과 관련하여 IAEA와의 협의를 거쳐 IAEA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모든 조치를 취하는 것을 포함하여 IAEA 안전조치협정(INFCIRC/403)을 완전히 이행한다. 1994년 10월 21일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수석대표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외교부 제1부부장 강석주 미합중국 수석대표 미합중국 본부대사 로버트 갈루치
  • 미­북 합의문 서명/어제 제네바서

    【제네바=박정현특파원】 북한과 미국은 21일 하오3시30분(한국시간 하오11시30분) 제네바 북한대표부에서 북핵동결과 경수로 제공,그리고 궁극적으로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키로 하는 내용의 역사적 「합의문」에 공식서명했다. 이번 합의로 지난해 3월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탈퇴선언으로 야기된 북핵위기를 종결짓게 됐으며 한반도를 둘러싼 냉전요소가 제거돼 남북관계와 주변국제상황에 새 지평이 열리게 됐다. 합의문은 북핵문제해결에 대한 지난 8월12일 북·미간 합의를 구체화시킨 「기본합의문」과 이들 원칙에 대해 세부이행내용을 담은 비공개 「부속합의문」으로 구성돼 있으며 미측은 로버트 갈루치핵대사,북한측은 강석주 외교부부부장이 서명했다. 미국은 합의문서명 직후 경수로및 대체에너지제공에 대한 클린턴 미대통령의 보장각서를 북한측에 전달했다. 한편 클린턴미대통령은 합의서의 『미국은 북한에 대한 핵무기 불위협 또는 불사용에 관한 공식 보장을 제공한다』는 조항에 따라 조만간 대통령친서 또는 정부성명을통해 이를 보장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 미,“한국형경수로 불가피”/베를린 회의/북선 난색… 오늘 2차회의

    【베를린 연합】 미국과 북한은 10일 평양과 베를린에서 상호 연락사무소개설과 경수로지원 등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전문가급 회담 첫날 회의를 마쳤다. 베를린 전문가회의에 참석중인 양측 대표단은 10일 북한 이익대표부에서 개막된 첫회의에서 경수로지원문제를 집중협의,이날 회의에서 제기된 상대측 입장에 대한 세부검토작업 등을 거쳐 오는 12일 미대사관 베를린 분관에서 2차회의를 갖기로 합의했다. 이날 상오10시부터 10여시간동안 계속된 첫날 회담이 끝난 뒤 양측은 회담이 유익했다고 평가,상대측의 구체적 입장을 이해하고 의견수렴방향을 모색하는 데 진전이 있었음을 시사했다. 이날 회담에서 미국측은 대북 경수로지원문제에 있어서 한국측의 주도적 참여가 확보되지 않으면 실현이 어렵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북한측에 설득한 것으로 전해졌다.미측은 특히 경수로건설에 들어가는 막대한 재원을 조달하는 난점을 들어 한국형 원전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기본입장을 북한측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북한측은 한국형 경수로에 대한거부감을 내보였으나 구체적으로 납득할만한 실현성 있는 대안을 제시하지는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최근 일부언론에서 거론된 독일형 경수로문제는 재원조달상 현실성이 없다는 점 때문에 사실상 논외에 부쳐진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연락사무소 협의”/북 중앙방송 【내외】 북한은 11일 미­북한간 연락사무소 설치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전문가 회의가 10일 평양서 시작된 사실을 확인보도 했다. 북한 중앙방송은 11일 미­북한간 연락사무소를 교환 설치하는 문제와 관련해 『우리나라 외교부 대표단과 미국무성 대표단 사이의 전문가 협상이 10일 평양에서 시작됐다』고 보도하고 이 회의가 지난 8월12일 제네바에서 발표된 미­북한간 3단계 고위급회담의 합의성명에 따른 것이라고 보도했다.
  • 한­미 외무,「연락사무소­남북대화 연계」 합의 의미

    ◎한­미 북핵공조 정상궤도 진입 확인/한국 제쳐놓고 북과 협상 배제/정전협정→「평화」 대체 남북해결 강조 한승주외무부장관과 미국의 크리스토퍼국무장관은 7일 하오(한국시간) 미국과 북한의 관계개선과 남북대화를 서로 연계,병행 추진한다는데 합의함으로써 미국과 북한의 회담결과에 대한 우리의 불안감을 일단 제거했다고 볼 수 있다.이는 균열이 생기는 듯했던 한·미 두나라의 공조체제가 다시 정상궤도에 진입했음을 의미한다. 두 장관은 회담이 끝난 뒤 따로 발표한 언론발표문을 통해 『미국과 북한이 관계개선에 맞춰 한반도비핵화 선언의 이행을 위한 남북대화의 재개가 필요하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결국 한국을 제쳐놓고 미국이 몰래 북한과 접촉을 시도하지 않겠다는 약속인 셈이다. 크리스토퍼장관이 발표문 끝머리에 『미국은 북한과 협상시 한·미관계의 중요성을 손상할 수 있는 어떠환 조치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부분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는 대목이다. 이런 점에서 한장관의 이번 방미는 그가 밝힌대로 「매우 시의적절하고유익한 것」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한장관의 이번 방미목적에는 한·미공조체제의 과시가 담겨 있었다.지난달 미국과 북한의 3단계회담 1차회의가 끝난 뒤 우리와 미국 사이에는 경수로의 종류,미·북관계개선의 속도 등 주요 쟁점을 놓고 마치 이견이 있는 것처럼 비친 게 사실이다. 한장관은 크리스토퍼장관과의 회담을 통해 이러한 이상현상을 해소하는데 일단 성공했다. 한장관의 이번 방미 보따리에는 중단된 남북대화의 재개 및 미·북관계개선 속도,특별사찰,한국형 경수로채택,북한의 평화협정 공세 등 줄잡아 5∼6가지의 문제가 담겨 있었다. 한장관은 이들 문제에 대한 우리 정부의 확고한 방침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특히 미국과 북한의 연락사무소 설치에 앞서 핵통제위원회 재개나 한반도비핵화 선언실천을 위한 협의가 있어야 한다는 원칙을 밝히고 경수로도 한국형이 채택되어야 참여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평화체제로의 전환도 남북 당사자원칙에 따라 직접 논의되어야 한다는 뜻을 재확인했다. 두나라 장관의 이날 언론 발표문을보면 이들 쟁점에 관해 두나라의 인식이 일치했음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도 관심을 끄는 것은 미·북 관계개선의 절차와 이에 따른 남북대화의 속도였다고 할 수 있다.미국과 북한의 2차회의는 구속력을 갖는 구체적인 합의를 이끌어 낼 회의이다.두나라 장관은 이번 회담에서 미·북관계개선과 남북대화,경수로 지원,과거핵 규명 등에 있어 그 속도조절에 의견을 같이했다. 그러나 한장관과 크리스토퍼장관의 발표문을 보면 남북대화의 재개와 과거핵 규명에 있어 두나라의 미묘한 견해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또 북한과의 관계개선이 남북관계,나아가 한반도 안정에 도움이 된다는 미국의 전략이 근본적으로 바뀌었다고는 할 수 없어도 언제고 공조의 균열이 재연될 소지는 남아있다고 볼 수 있다. ▷한 외무 발표문◁ ▲본인의 금번 방미목적은 지난 8월12일 미·북 합의이후의 상황진전에 대해 한·미 양국의 인식과 평가를 교환하고 이러한 평가를 바탕으로 9월23일부터 속개될 미·북회담에서의 전반적인 전략에 대해 협의를 갖기 위한것임.북한핵문제와 관련하여 한·미간에는 그간 여러 레벨에서 긴밀한 협의가 계속되어왔으며 본인의 금번 방미도 이러한 협의과정의 일환임. ▲이와 같은 관점에서 금일 외무장관회담은 현상황에 대한 한·미 양국의 공동인식을 도모하고 핵문제해결을 위한 기본목표와 원칙을 재확인하는 한편 9월23일 속개회담의 추진전략과 방향에 대해 고위차원에서 의견조율을 할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시의적절하고 유익한 회담이었다고 평가됨. ▲크리스토퍼장관과 본인은 북한핵문제 대처과정에서 한·미양국이 견지하여온 가장 중요한 원칙중의 하나가 미·북대화와 남·북대화가 상호보완적으로 조화를 유지한다는 것임을 상기하고 따라서 미·북간 연락사무소교환등 미·북관계개선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남·북대화의 진전이 긴요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 하였음.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최근 북한의 대남비방태도가 남·북관계를 경색시켜 핵문제해결을 위한 전반적인 분위기를 저해하고 있는 데 대해 우려하고 있으며 앞으로 상황의 긍정적 진전을 위해서는북한의 대남비방자제와 남북대화에 대한 긍정적 자세가 무엇보다도 필요하다고 보고 있음. ▲한·미 양측은 또한 북한에 대해 경수로를 지원하기 위해서는 제반 현실적인 여건상 한국의 중심적 역할이 필수불가결하며 이를 위해 한국형 경수로가 제공되어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였으며,따라서 경수로지원이 있기 위해서는 북한이 남북대화진전과 특별사찰등을 통한 핵투명성의 확보에 성의있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점이 지적되었음. ▲끝으로 한·미 양측은 한반도평화체제구축문제가 남·북한간의 기존합의에 따라 남·북한간에 협의,해결될 사안이며 미·북한간 협상의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을 분명히 하였으며,남·북한간 합의에 의한 평화체제구축시까지 현정전체제가 준수되어야 하고 이를 저해하는 어떠한 조치에도 반대한다는 점을 재확인하였음. ▷크리스토퍼 발표문◁ ▲한국 외무장관을 다시 맞게되어 매우 기쁨.한장관이 미행정부 고위관리들과 가진 협의는 북한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양국 정부간 긴밀한 협의와 협조의 일환임. ▲북한핵문제는아·태지역의 가장 긴급한 안보현안으로 계속 남아 있어 한국을 비롯한 미국의 핵심우방국들의 안보를 위협하고 있으며,아시아지역에서 불안정을 초래할 군비경쟁가능성을 고조시키고 있음.뿐만아니라 미국은 대량파괴무기확산을 저지할 효과적 국제체제의 유지에 대한 지속적 이해를 갖고 있기 때문에 동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클린턴행정부의 최우선적 정책으로 계속 남아 있음. ▲우리는 이 문제에 있어 한국과 빈번하고 광범위하고 상세한 대화를 가져왔는 바,이는 지난 40년에 걸친 양국간 동맹관계를 특징지워온 공동의 전략적 이해를 반영하는 것임. ▲지난달 미·북한간 제네바 회담에서는 핵문제해결에 다소의 진전이 있었음.동회담에서 우리는 북한이 어떠한 조치를 취할 경우 미국이 북한의 경수로획득을 보장할 것이라는 점에 동의하였음.북한이 취해야 할 조치에는 두개의 신형원자로 건설중단 및 재처리시설의 폐쇄가 포함되어야 함.그러한 조치들을 북한이 대규모의 핵제조능력을 보유하는 것을 저지하게 될 것임. ▲그러나 이러한 조치들은 우리의우려를 불식시키는 데 필요한 조치들 가운데 첫단계에 불과할 뿐임.북한은 기존의 원자로와 동원자로에서 최근 인출된 핵물질에 의해 제기된 위협을 해결하는 데 동의해야 함.동핵물질은 핵무기를 제조하는 데 사용될 잠재력을 갖고 있음. ▲북한이 과거핵활동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를 불식시키는 경우에만 경수로는 제공될 것임.제네바회담 공동발표문은 이러한 요건의 중요성을 분명히 하고 있음.북한이 그들의 과거핵활동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지 않는 한 핵비확산조약(NPT)에 따르는 안전조치협정을 이행할 수 없을 것임. ▲제네바회담시 미국과 북한은 연락사무소설치를 포함하여 보다 정상적인 정치·경제적 관계개선을 지향하기로 합의한 바 있음.이러한 합의는 우리와 우리의 동맹국인 한국이 핵문제해결에 있어서 취해온 「광범위하고 철저한 접근」의 일환임.그러나 이러한 관계가 시작되기 위해서 북한은 앞으로 추가적인 조치를 취해야 함. ▲북한과의 협상에서 우리는 1991년 남·북한간에 서명된 바 있는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의 이행을 위하여한국과 대화를 재개함이 필요하다는 점을 분명하게 밝힌 바 있음.이러한 우리의 입장은 최근 제네바회담 공동발표문에도 반영된 바 있음.본인은 북한이 한국과의 실질적인 대화를 재개하지 않는 한 핵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는 입장을 이 기회를 빌려 다시한번 밝히고자 함. ▲우리의 한국방위에 대한 숭고한 공약은 절대적으로 확고함.3만7천명에 달하는 미군이 휴전선경비를 담당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임.그리고 우리는 핵문제해결을 위하여 한국정부와 계속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할 것임.우리는 북한과의 협상시 한·미관계의 중요성을 손상할 수 있는 어떠한 조치도 하지 않을 것임을 확인함.
  • “96년 10만명에 2조4천억 부과”/금융소득종합과세 어떻게 하나

    ◎합산소득 「원천징수 세율」로 분리과세후/이듬해 종합과세 금액과 차액정산 납부 금융소득에 대한 종합과세 시행을 위한 재무부의 안이 확정됐다.앞으로 민자당과의 당정회의,경제장관 회의,국회 등 세차례의 심의 과정이 남아있지만 그 골격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금융소득에 대한 종합과세는 지난 해 8월12일 단행된 금융실명제의 최종적인 목표였다.실명제와 동시에 시행할 경우 금융기관으로부터의 예금 이탈,종합과세로 세금부담이 대폭 늘어나는 금융고소득 계층의 조세저항 등을 우려해 그동안 시행을 유보해 왔다. 많은 개혁조치들을 너무 욕심을 부려,한꺼번에 해치우려다 감당하기 어려운 부작용을 초래하고 실패로 끝난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이다.이제 종합과세의 기초가 되는 실명거래 관행이 웬만큼 정착됐다고 판단되자 그동안 유보해온 종합과세를 시행하는 것으로,실명제의 완결작업이라 할 수 있다. 금융소득에 대한 종합과세는 언제부터,누구를 대상으로,얼마의 세율로 하느냐가 가장 핵심적인 요소들이다. 우선 시기는 96년 소득분에 대해 97년부터 시행된다.즉 소득이 발생한 시점을 기준으로 하면 96년,세금을 내는 시점을 기준으로 하면 97년부터이다.종합소득세는 1년 동안의 모든 소득을 합산해 이듬 해에 누진세율로 과세하기 때문에 소득발생과 세금 납부 사이에 1년의 시차가 있다.종합과세 대상자는 오는 97년 5월에 이자와 배당금 등의 금융소득과 부동산임대·근로·사업·기타 소득을 모두 더한 96년분 합산소득과 그에 따른 세금을 신고,납부해야 한다. 대상은 부부 합산으로 연간 금융소득이 4천만원을 넘는 사람이다.이 경우에도 4천만원까지는 원천징수 세율로 분리과세하고,4천만원 초과분에 대해서만 종합과세한다.그러나 4천만원 초과분에 대한 종합과세 세액이 분리과세했을 때보다 적은 경우(금융소득 이외의 소득이 거의 없는 경우)에는 세액이 많은 쪽을 택해 분리과세한다. 세율은 분리과세의 경우 15%(97년 이후는 10%)의 단일 세율(원천징수세율)이 적용된다.분리과세는 원천징수로 과세가 끝난다. 종합과세의 경우는 과세표준(과세대상 소득에서 각종 공제액을 뺀 금액)의 크기에 따라 1천만원까지는 10%,1천만∼3천만원은 20%,3천만∼6천만원은 30%,6천만원 초과는 40%로 4단계의 초과 누진세율이 적용된다.초과 누진세율이란 예컨대 과세표준이 5천만원인 경우 5천만원 전액에 30%의 세율이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각 단계별로 해당되는 세율,즉 1천만원은 10%,2천만원은 20%,나머지 1천만원은 30%의 세율을 각각 적용하는 방식이다. 종합과세 대상자도 모든 금융소득에 대해 일단 원천징수 세율로 분리과세하고 이듬 해 4천만원을 넘는 금융소득에 대해 종합과세한 후 차액을 정산하는 절차를 밟는다. 예컨대 비금융 소득이 6천만원 이상이고 금융소득이 세금우대저축 이자 5백만원과 일반저축 이자 4천5백만원을 포함,5천만원인 사람의 경우 먼저 우대저축 이자 5백만원의 10%(세금우대 저축의 원천징수세율)인 50만원과,일반저축 이자 4천5백만원의 15%(97년은 10%)인 6백75만원 등 총 7백25만원을 원천징수한다. 이듬 해 5월 종합소득세 확정신고를 할 때에는 전체 금융소득 5천만원 중 4천만원의 15%인 6백만원(기준금액 이하에 대한 분리과세 세액)과,1천만원의 40%(비금융소득이 6천만원 이상이므로 금융소득 종합과세분 1천만원은 40%의 최고세율이 적용됨)인 4백만원 등 총 1천만원의 세금을 내야 한다. 그러나 전년에 이미 원천징수로 7백25만원의 세금을 냈으므로 이를 뺀 2백75만원을 추가로 내면 된다. ◎문답으로 풀어본 새세제/결혼 30년 상속세 공제 최고 10억원/배우자에 5억증여… 세액 7천3백만원/모든 장애인 승용차 구입때 특소세 면제/농지 상속받은뒤 영농않으면 세금추징/조세시효 차등 적용으로 세제추징 강화/부양가족없는 「맞벌이」 특별공제 못받아 세제개혁안의 내용을 문답으로 간추린다. ­결혼한 지 30년된 배우자와 두 자녀가 상속받을 경우 상속세 공제는 얼마나 되나. ▲기초공제(1억원)·자녀공제(1인당 2천만원)·주택상속 공제(1억원)는 지금과 같다.그러나 배우자 공제액이 종전의 최고 4억6천만원에서 앞으로는 최고 8억원으로 늘어난다.따라서 상속세 공제액도 현행 최고 7억원에서 10억4천만원으로 높아진다. ­이 경우 상속재산이 20억원이면 실제 세부담은 어떻게 되나. ▲지금은 상속재산에서 공제액 7억원을 뺀 13억원(과세표준)에 누진세율최고 50%를 곱한 4억6천5백만원을 상속세로 내야 한다.앞으로는 공제액 7억∼10억4천만원을 뺀 9억6천만∼13억원에 누진세율 40%를 곱한 2억9천9백만∼4억3천5백만원을 내면 된다. ­배우자로부터 5억원을 증여받은 경우에는. ▲지금은 배우자 공제액 1억2천만원을 뺀 3억8천만원에 누진세율최고 45%를 곱한 1억2천4백만원이 증여세이다.앞으로는 공제액이 2억원으로 늘어나 과세표준 3억원에 누진세율 30%를 곱한 7천3백만원을 내면 된다. ­부가가치세의 경우 세액이 적어 세금을 내지 않는 소액 불징수 금액의 기준이 높아진다는데. ▲부가세 과세특례자 1백35만명 중 지금은 63만명이,내야 할 부가세가 너무 적기 때문에 아예 세금을 내지 않는다.앞으로는 이 숫자가 99만명으로 늘어난다.소액 불징수란 과세기간(6개월)의 매출액이 3백만원(세액 6만원) 미만이면 부가세를 내지 않는 것으로,앞으로는 6백만원(세액 12만원) 미만으로 높아진다. ­1∼3급 장애인이 구입하는 승용차도 면세를 받는다는데. ▲지금은 1∼3급 장애인이 직접 운전할 수 있도록 특수 제작된 1천5백㏄ 이하의 자동차를 팔·다리가 불편한 지체 장애인이 구입하는 경우에만 특소세를 면제해 준다.앞으로는 1∼3급의 모든 장애자들이 구입하는 승용차에 면세 헤택을 준다.1∼3급 장애자는 18만명이다. ­납세 병마개 제도는 어떻게 되나. ▲주류는 원칙적으로 납세 병마개 사용이 의무화돼 있다.캔 용기는 자동계수기를,샴페인류는 납세증지를 사용하고 나머지 주류는 납세 병마개만 사용해야 한다.그러나 앞으로는 납세자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어,다양한 용기개발이 가능해진다. ­경정청구권 제도를 도입한 것은. ▲지금은 수정신고 기한이 지난 후에 매매계약이 무효가 되는 등으로 이미 신고한 세액보다 적게 신고해야 하는 사유가 생겨도,납세자가 세액을 줄여 다시 신고할 수 있는 제도가 없다.이런 경우의 납세자를 위해 도입키로 했다.정해진 신고기간 후에 세액을 높여 신고할 때에는 지금처럼 수정신고를,줄일때는 경정청구를 하면 된다. ­조세시효 기간을 현재의 세목별 시효에서 납세자의 성실도에 따라 차등하는 이유는. ▲보통 신고납부일로부터 2∼3년이 지나야 세무조사하는 관행에 비춰 볼 때,현행 조세시효는 너무 짧아 탈세를 해도 추징하지 못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성실신고 분위기를 유도하기 위해 사기 등 부정한 방법에 의한 탈세는 10년,단순한 잘못이면 5년으로 정하는 등 차별화 했다. ­농사를 짓는 상속인이 농지 등을 상속받을 때의 공제액은. ▲지금은 주택상속 공제 등 다른 물적공제와 합해 1억원을 공제받지만,영농상속인은 주택상속 공제와는 별도로 1억원을 공제해 준다.그러나 공제한 재산을 5년 이내에 처분하거나,농사를 짓지 않으면 상속세를 추징한다. ­비영리법인에 대한 과세 체계는. ▲현행 세법은 비영리 법인을 일반 비영리 법인과 비영리 공익법인으로 나눠 학술·장학·문화예술단체 등을 지원한다는 뜻에서 비영리 공익법인을 우대한다.그러나 비영리 공익법인과 일반 비영리 법인으로 구분하는 기준이 명확하지 않을 뿐더러구성원의 이익을 목적으로 설립된 단체가 비영리 공익법인에 포함되는 등 본래의 취지가 사라져 차별을 폐지하기로 했다. ­금융소득이 4천만원이 넘는 사람은 세금우대 저축에 들어도 우대혜택을 누리지 못하나. ▲그렇다.세금우대저축에 대해서는 10%의 저율로 원천징수되나 나중에 종합소득세를 신고하여 정산할 때는 15%의 세율이 적용되기 때문에 금융소득이 4천만원을 넘는 사람은 결과적으로 이득을 보지 못한다. ­세금우대 저축에 대한 원천징수세율을 올리게 되면 근로자의 소득세 부담이 늘어나는 것 아닌가. ▲세금우대 저축의 비중이 큰 일부 근로자의 경우 금융소득에 대한 세부담이 늘어날 수 있다.그러나 근로자에 대해서 20%정도의 근소세 부담을 덜어 줬고 일반저축에 대한 원천세율을 내렸으므로 전체적인 소득세 부담은 늘어나지 않을 것으로 본다.예컨대 월 급여가 2백만원이고 금융소득이 월 평균 20만원인 근로자(4인 가족 기준)의 경우 현재 근소세는 11만2천원,금융소득 원천세는 2천3백원 등 11만4천3백원의 세금을 물어야 한다.96년에는 금융소득 원천세가 2천5백원으로 다소 늘어나나 근소세가 8만7천5백원으로 줄어 총 26.8%의 경감혜택이 있다. ­근로자 재산형성에 크게 기여해 온 재형저축이 폐지된다는데. ▲근로자 재형저축제도는 저소득 근로자의 재산형성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다.이자소득을 비과세하는 외에 저축금액의 15%를 근로소득세액에서 공제해 이를 국민재형저축기금에 붓고 이를 재원으로 저축기간이 끝날 때 이자에 추가해 법정 장려금을 주고 있다.그러나 근로자의 면세점이 계속 올라가 저축가입 대상 근로자의 산출세액이 없거나 매우 적어졌다.따라서 국민저축기금에의 불입액이 점차 감소,현재 누적적자가 1천6백억원이나 돼 더이상 운영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다.그런데 원천징수 세율이 96년에 15%,97년부터 10%로 낮아지면 재형저축은 물론 18종의 세금우대 저축은 별 이점이 없어져 자연적으로 모두 폐지될 전망이다. ­부양가족이 없는 맞벌이 부부도 공제를 받게 되나. ▲아니다.현재는 부양가족이 없는 경우에도 맞벌이부부 특별공제(54만원)를 받을 수 있다.그러나오는 96년부터는 가족 중 장애자,노인,10세 미만의 아동이 있는 경우에만 공제를 받을 수 있다.
  • 삼성주,실명제 “최고 재미”/1년간 평균 98.7% 올라

    금융실명제가 실시된 지난 1년동안 삼성과 롯데,동아그룹 등은 주가가 크게 오른 반면 삼미와 우성건설,벽산그룹 등은 약세를 보였다. 15일 증권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1년간 30대그룹의 주가등락을 분석한 결과 주가가 가장 많이 오른 그룹은 삼성이다.13개 계열사의 평균주가는 4만4천4백9원으로 지난해 8월12일의 2만7천4백52원보다 98.7%가 올랐다.그 다음은 롯데그룹(87.2%),동아그룹(66.9%),동국제강그룹(51.3%),한라그룹(45.9%) 등의 순이다.
  • 금융행태의 변화(금융실명제 1년:2)

    ◎「관치」·담합 틀 벗고 경쟁·자율로/수신늘리기 지양,고객위주경영 정착/현금보다 신용으로… 서명거래 활성화 금융실명제 이후 금융권은 「격변의 시대」를 맞고 있다. 금융거래 방식은 물론이고 금융기관의 경영전략이나 고객들의 이용 행태 등에서도 예전에는 볼 수 없던 현상들이 나타난다.「관치와 담합」에 익숙해 있던 국내 금웅은 실명제의 충격을 극복하고 「경쟁과 자율화」를 향해 줄달음친다.금융인들의 체질 개선이 금융자율화 조치들과 맞물려 금융개혁을 가속화 하고 있다. 지난 해 8월12일 금융실명제가 전격 단행된 데 이어 11월에 2단계 금리자유화가 예상보다 앞당겨 시행됐다.금년 7월에는 수신금리를 자유화 하는 3단계 금리자유화가 부분 시행됐다.이밖에 임원선임과 내부경영의 자율화 등 지난 1년동안 금융 환경과 관련,제도들이 몰라보게 바뀌었다. 가장 핵심적인 금융권의 변모는 역시 실명거래 관행의 정착이다.물론 실명제 실시 초기에는 일부 금융기관들이 가·차명 계좌를 편법으로 실명 전환하는 행위가 적발되기도 했다.그 결과 두명의 현직 은행장을 포함,수십여명의 금융기관 임·직원들이 면직 당하는 등 파문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1년이 지난 현재는 모든 금융거래를 실명으로 해야 한다는 원칙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요즘 각 금융기관의 일선 창구에서 근무하는 직원들 사이에는 하나의 불문율 같은 것이 생겼다.「실명제 관련 업무는 무조건 원리원칙대로 처리하라」는 것이다.예컨대 한 단자사에서는 사장이 한 친구의 예금통장에서 돈을 찾기 위해 실명확인을 부하직원에게 지시했다가 거절당해 한동안 화제가 된 적이 있다.그는 오래 전부터 잘 아는 친구로부터 수억원의 여유 돈을 운용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자기 회사에 그 친구 이름으로 예금통장을 만들어 관리해 오던 중이었다.그러나 창구 직원은 『본인이 주민등록증을 가지고 나오지 않으면 실명확인 도장을 찍어줄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실명제 실시 이후 지급결제 수단이 다양해지고 선진화 하는 경향이다.은행간 자금 자동이체 시스템인 타행환 이용액은 작년 말 현재 1년전에 비해 89.6%나 늘었다.현금자동출납기(CD)와 신용카드 이용액도 각각 전년 대비,57.8%와 59.5% 늘어나는 등 각종 전자방식의 신종 지급결제 수단 이용이 엄청나게 늘었다. 이는 현금으로 무통장 입금을 하거나 온라인 송금을 할 때는 10만원 이상은 반드시 본인의 주민등록증 같은 신분을 확인할 수 있는 증표를 제시해야 하는 등 실명제 실시에 따른 현금거래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전자 자금결제 비중의 증가는 새로운 신용사회의 개막을 예고한다.현금거래에 비해 개인 신용정보의 축적과 관리가 쉽기 때문이다. 서명에 의한 금융거래도 점차 활성화 되고 있다.실명거래가 의무화 됨에 따라 서명으로 도장을 대신하는 금융거래문화가 자리를 잡아가기 때문이다.따라서 금융기관들은 각종 금융거래에 도장을 요구하던 종래의 제도를 서명으로 대신할 수 있도록 앞다퉈 표준약관 등 관련 제도를 재정비 하고 있다.또 전자서명 대조기,사진이 붙은 신용카드 등 실명제의 취지에 맞는 첨단장비와 기법들이 새로이 선보였다. 실명제 실시 이후 금융기관들의 경영전략에도 변화가 일어났다.6대 시중은행의 경우 종래의 경영패턴은 수신 부풀리기 경쟁이 주류였다.「큰손」과 뭉칫돈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거액의 접대비 지출도 서슴지 않았다.그러나 대부분의 은행들이 이제는 더 이상 큰손들을 공략대상으로 삼지 않는다.금리에 민감한 뭉칫돈보다는 조달비용이 싼 가계의 여유자금 쪽으로 눈을 돌리는 경향이다.각 은행들은 도매금융 위주에서 산매금융쪽으로 경영전략을 바꾸는 추세이다. 각 은행 점포마다 대고객 밀착경영과 친절서비스 경쟁이 치열하다.「찾아오는 손님을 친절히 맞이하자」는 표어는 「고객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가자」로 바뀌었다.점포전략도 직원 수가 40∼50명 되는 지점보다는 5명 안팎의 출장소를 선호한다.시장·아파트 단지·지하철역·백화점 등을 찾아 다니며 고객에게 한 걸음이라도 가까이 다가서는 데는 기동력이 우수한 소형점포가 유리하기 때문이다.
  • 가·차명예금 과징금/13일부터 20% 적용/이자소득 97%과세

    금융실명제 실시후 1년이 된 지금까지 실명전환을 하지 않은 가·차명예금에 대한 과징금이 오는 13일부터 금융자산 가액의 20%로 오른다.따라서 이 날부터 실명전환 하는 경우는 이같은 과징금과 비실명 자산에서 발생한 이자와 배당소득에 대한 소득세 96.75%(주민세 포함)를 물어야 한다.가·차명예금에 대한 과징금은 오는 98년까지 매년 10%씩 인상돼 최고 60%까지 부과된다. 3일 재무부에 따르면 실명전환 의무기간(93년 8월13일∼10월12일)이 끝난 작년 10월13일부터 오는 12일까지의 실명전환자는 10%의 과징금을 물지만 오는 13일부터 내년 8월12일까지 실명전환하는 경우는 과징금이 20%로 오른다.이에 따라 가명예금 63만1천계좌,2조8천3백42억원 가운데 지금까지 실명전환을 하지 않은 3만2천9백계좌,5백57억원은 12일까지 실명으로 전환하지 않고 그 이후에 전환하면 20%의 과징금을 물게 된다. 실명으로 전환되지 않은 예금 가운데 1백만원 이상 고액예금은 4월말 기준으로 5천5백13계좌에 4백67억7천9백만원으로 계좌당 평균 8백48만5천원이며 이 중일부는 과징금 징수비율이 20%로 상승하는 13일 이전에 실명으로 전환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 위장분산주식 실명전환 주주/68명에 1천31억

    ◎조명래 한국타이어회장 최다 금융실명제 이후 가·차명으로 위장분산했던 주식을 실명으로 바꾼 주주 중 조양래 한국타이어 회장의 전환금액이 가장 많다. 2일 증권감독원에 따르면 작년 8월12일부터 지난 7월 말까지 위장분산 주식을 실명전환한 주요 주주는 모두 57개사에 68명이다.이들의 실명전환 규모는 7백95계좌에 1천31억7천7백만원이다. 이 중 조양래 한국타이어 회장은 1백32억원어치(지분율 6.63%)를 전환,가장 많다.최순영 신동아화재 회장은 1백5억원(7.27%)으로 2위이다.한국카프로락탐의 이웅렬 주주(10.6%)와 황학구 건설화학 대표이사(17.74%)는 각각 51억원으로 3위이다.
  • 이달의 독입운동가 양세봉장군/압록강 순시한 사이토총독 저격

    ◎조선혁명군 이끌고 만주서 항일투쟁/일군과 2백차례 혈전… 밀정에 살해돼 『나를 따라 생명을 각오하는 동지들은 손을 들어주십시오.조국광복군과 동만백만동포의 생명을 두 어깨에 짊어진 우리는…』 1932년 조선혁명군사령관 벽해 양세봉장군(1896년6월5일∼1934년8월12일)이 만주 흥경현에서 일제 관동군과 대회전을 갖기에 앞서 동료 독립운동가들에게 행한 연설의 일부다. 양장군은 이 전투를 포함,일제와 밀정들에게 붙잡혀 순국한 34년까지 2백여차례이상 혈전을 치른 신화적인 무장항일투사였다. 선생은 30년대 만주지역에서 활약한 최후의 독립군 명장으로 항일독립운동사에서 높이 평가되고 있다. 선생이 독립운동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은 26세때인 22년부터.이전에도 3·1만세 시위운동을 펼치는등 독립운동에 참여했으나 이즈음부터 무장독립운동가로 본격 활약하게 된다.선생은 의주·삭주 경계의 천마산을 근거지로 해 항일투쟁을 전개하고 있던 무장단체 천마산대(대장 최시흥)에 가입,창성군 대유동 경찰서와 금광사무소·영림창을 습격하고군수물자를 빼앗는등 기염을 토했다. 5백여명의 대원으로 구성된 천마산대는 유격전을 능숙하게 구사하면서 일제에 위협을 가하던 단체였다. 선생은 천마산대가 일제의 대대적인 「토벌」로 활동불가능 상태에 빠지자 여러 독립운동단체들이 연합해 구성한 대한통의부등에서 의용군으로 활약했다. 대한통의부 의용군이 발전해 참의부가 결성되자 제3소대장에 임명된 선생은 24년5월 국내진입작전을 전개,평북 초산군·강계군에서 일경과 교전해 수명을 사살했으며 압록강을 순시하던 조선총독 사이토 마코토(재등실)일행에 총격을 퍼부어 일제에 큰 충격을 던져주었다. 선생은 일제의 배후조종을 받은 마적단의 습격으로 통의부 신팔균총사령이 전사한뒤 통의부·대한군정서·의성단등이 정의부로 확대통합되자 정의부 의용군 중대장에 임명돼 일경·친일분자의 처단에 앞장섰다. 정의부는 김동삼선생을 의장으로 지역군사·재정·행정·교육·사법등 모든 부문을 국가체제에 맞춰 틀을 짰다. 선생은 이어 만주지역에서 벌어진 좌우합작운동의 영향으로 정의부를주축으로 여러 독립운동단체들과 연합해 민족유일당 조직동맹을 결성,이 동맹이 다시 조선혁명당으로 발전하자 소속 부대인 조선혁명군 부사령의 중책을 맡게 된다. 조선혁명군은 30년대 적기관을 습격하고 밀정을 처단하는 한편 대중조직및 거점확보를 위해 특수공작원을 국내로 특파하는등 독립운동사에 맹활약을 펼친 것으로 기록돼있다. 선생은 31년 일제가 중국 동북지방을 침략한 만주사변이 일어나자 한·중 공동대응을 위해 중국인 실력자 왕동헌의 요령 농민자위군과 협의해 연합부대를 편성했다. 이런 가운데 32년 조선혁명당은 비밀간부회의를 열었으나 정보를 입수한 일경의 급습으로 간부 83명이 체포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선생은 이 사건을 계기로 조선혁명당의 총사령에 취임하는 동시에 혁명투사 양성을 위해 조선혁명당이 설립한 속성사관학교 명예교장에 추대된다. 선생은 또 중국 의용군 총사령 이춘윤과 요령 민중자위군 결성 협정을 체결,일제와 2백여차례에 걸쳐 혈전을 치렀다.32년3월 신빈현 남쪽에서 벌어진 일제 관동군과의 접전에서선생의 부대는 일군의 주둔지를 빼앗는 전과를 올렸다. 같은 달 하순 일제가 폭격기까지 동원해 반격전을 펼치자 선생은 한중연합군 1만여명을 투입,치열한 전투 끝에 일제를 물리치는 억센 투혼을 발휘하기도 했다. 한중연합군은 그러나 관동군이 두달후 세력을 재결집,대대적인 공세를 가해옴에 따라 10월까지 5개월동안 여러차례 전투를 치렀으나 일제 공군력에 밀려 주공격력을 잃게 된다. 선생은 이에 따라 다음해인 34년1월 조선혁명군 재건을 위해 총사령에 취임,같은해 5월 황해도 사리원경찰서를 습격하는등 유격전에 나선다. 조선혁명군은 이어 장개석의 국민군에 도움을 요청하는 한편 흥경현 진주령에서 일본군 병력수송기차를 습격,수십명을 사살하고 경기관총·대포등을 노획하기도 했다.또 1개 대대병력으로 기습해온 일군을 물리치고 오히려 추격전을 펼쳐 일군 80여명을 사살한다. 선생은 그러나 34년 평소 혁명군을 지원해온 중국인을 만나기 위해 환인현 소광구 골짜기로 나갔다가 일제 밀정등의 총격을 받고 장렬하게 순국한다.이 중국인은일제 밀정의 꾐에 빠져 변절하고 선생을 인적드문 골짜기로 유인한 것이었다. 일제는 후에 선생의 묘를 파헤치고 시신에세 목을 떼어 가져가는 만행을 저지르는등 잔악상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조선혁명군은 선생의 순국이후 급격히 세력이 위축돼 소규모 유격전으로 독립군의 명맥을 유지하는데 그쳤다. 선생은 동지는 물론 주민들로부터도 존경을 받은 명장이었으며 항일무장투쟁사에서 김좌진·홍범도등과 함께 3명장으로 손꼽히고 있다. ▷고침◁ 7월의 독립운동가 이준열사는 1859년1월12일 출생,1907년7월14일 순국했기에 바로 잡습니다.
  • 전반적 성과/얼마나 뿌리내렸나(금융실명제 1년:1)

    ◎가·차명예금 6조2천억원 실명 전환/「익명비리」 추방·세수증대에 기여/차명거래 차단등 대체입법 시급 사람은 제도를 만든다.그러나 만들어진 제도는 다시 사람의 의식과 행동을 지배한다.새로운 제도를 만들어가는 노력은 공동체의 구성원들을 변화시켜 정치·경제·사회 전반의 개혁으로 이어지도록 한다.따라서 제도개혁은 자기개혁의 다른 표현이며 그 성패는 구성원 개개인의 변화의 정도에 따라 좌우된다.금융실명제는 새정부가 추진한 최대의 제도개혁이자,정부와 국민 모두에 대한 자기개혁의 요구였다.실명제가 지난 93년 8월12일 전격 단행된 이후 지난 1년 동안 금융기관과 고객,기업과 소비자,정치인과 유권자들의 의식과 행태가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 살펴보고 이 제도의 조기 정착을 위한 과제는 무엇인지 알아본다. 금융실명제는 모든 금융거래를 거래자의 실명으로 하도록 의무화한 제도이다.따라서 이미 실명으로 거래해 온 대다수의 국민들은 새 제도가 시행됐다 해도 달라질 게 별로 없다.주 대상은 2% 미만의 부유층이다.이들이 남의 이름으로 소유하고 있는 금융기관 예금계좌의 명의를 자기 이름으로 바꾸도록 한 것으로,검은 돈(비실명 금융자산)을 추방하는 조치였다. 실명제 1년에 대한 평가의 1차적인 기준은 비실명 금융자산의 실명전환 실적이라고 할 수 있다.실명제가 단행된 작년 8월12일 현재 전 금융기관에 들어있는 가명예금은 2조8천3백42억원이며,지난 1년간 이 중 98%인 2조7천7백8억원이 실명으로 전환됐다.미전환액 5백57억원은 대부분 10만원 전후의 소액 휴면성 계좌들이다. 문제는 차명예금이다.차명예금은 실명으로 위장돼 있기 때문에 예금주와 이름을 빌려 준 사람 이외에는 차명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때문에 전체 규모를 파악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실명전환율도 집계할 수 없으며 실명전환 금액만 집계된다.이 금액이 3조5천49억원이다.가·차명예금을 합치면 모두 6조2천8백34억원의 얼굴 없는 검은 돈이 제 얼굴을 드러낸 셈이다.이같은 전환 실적은 실명제의 출발이 상당히 양호한 수준이었음을 말해준다. 실명제는 또 「비실명」의 그늘 아래 묵인됐던 불합리한 제도와관행을 개선하는 작업을 촉진시켰다.모든 돈에 주민등록증이라는 꼬리표를 달아 투명성을 확보했다.출처가 감춰짐으로써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더라도 그다지 죄의식을 느끼지 않아도 되고,과거에 관행으로 용인해주던 「익명의 편리성」을 추방했다.이에 따라 실명제는 단지 금융권의 개혁으로 그치지 않고 정치·경제·사회 각 분야의 「총체적 개혁」을 가능하게 하는 토대를 제공했다. 정치 분야에서도 실명제 이후 선거 과정 및 선거자금의 투명화를 위한 노력이 커지고 있다.통합선거법 등 관계 법령의 정비로 정당의 수입과 지출 내역이 공개되고 각급 공직자 선거에서 후보자의 선거비용 실사가 가능해졌다.정치인별 후원회가 조직되는 등 정치자금의 조성 과정도 제도화,양성화됐다. 사회 및 경제 분야에서도 무자료 거래가 위축되고 사채자금이 점차 제도권으로 흡수되는 등 실명화 시대에 부합하는 의식과 행태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특히 무자료 거래로 과표를 줄여 탈세하는 편법이 크게 줄어들고 있다.실명제 1년만에 과표 양성화나 이로 인한 세수증대 효과를 체계적으로 분석하기는 어렵다.경기 변동,세제의 변화 등 다른 요인들이 과표 및 세수에 미친 영향과 정확히 구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표 양성화나 세수 증대에 미치는 실명제의 영향을 어림해 볼 수는 있다.지난 1월 말 마감한 작년도 2기분 부가가치세 확정신고 실적은 1년 전보다 18.1%가 늘어,이 기간의 경상 성장률(11.2%)을 크게 앞질렀다. 또 올해 내국세의 징수목표와 비교한 세수 진도율이 지난 6월 말까지 49.7%로 1년 전(46.8%)에 비해 2.9%포인트 앞서가고 있다.이런 통계들은 실명제가 무자료 거래를 위축시키고 과표 양성화를 촉진시켜 세수증대에 기여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그러나 실명제 도입 초기에 많은 사람들이 잘못 인식했던 것처럼 실명제가 지하경제와 탈세,검은 돈 등 모든 경제악을 일거에 몰아낼 수 있는 「도깨비 방망이」는 아니다.사채 시장은 실명제 직후 한동안 자취를 감췄었다.그러나 요즘 개인이나 중소 상인을 대상으로 1·5배 가량 높은 이자율에 소액 거래가 되살아나는 모습이다. 일부 금융기관에서는 아직도 차명을 이용한 위장 실명거래가 뿌리뽑히지 않고 있다.금년 초에 발생한 장영자씨 사건도 금융기관과 그 종사자들의 실명거래 관행이 아직 확고히 정착되지 못했음을 말해준다. 실명제의 빠른 정착을 위해서는 차명거래 방지 대책이 가장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오는 96년 소득분에 대해 97년부터 시행될 예정인 금융소득 종합과세가 이뤄지면 차명거래 문제는 상당 부분 해결될 수 있다. 그러나 종합과세 이전까지는 차명거래 방지를 위한 다각적인 보완대책을 마련해야 한다.이밖에 현재 긴급명령 형태로 돼 있는 실명제의 대체입법도 서둘러야 할 과제의 하나이다. ◎금융시장/사채시장 위축… 중기부도 늘어/부동산/거래 건수·면적 감소… 가격 안정/주식시장/투기 줄고 기관투자가 장세 주도/실명제 이후 분야별 변화 ▷실명전환 및 확인 실적◁ 지난 6월 말까지 가·차명 계좌에서 실명으로 전환한 예금액은 총 6조2천8백34억원이며 실명을 확인한 예금은 전체 금액의 92.4%,계좌 수의 76.5%이다. 가명 예금의 실명 전환율은98%(금액기준)로 2조8천3백42억원(63만1천계좌) 가운데 2조7천7백85억원(59만8천계좌)이 전환됐다.계좌당 5백80만원이 실명으로 전환된 셈이며 아직 3만2천9백계좌,5백57억원은 가명으로 남아있다. 차명에서 전환한 예금은 3조5천49억원이며,자금출처를 면제받는 조건으로 발행한 10년 만기 장기산업채권에 3백32건·1천1백42억원이 청약됐다.실명 예금 중 1억3천4백17만3천 계좌·3백74조7천7백51억원이 실명 확인됐다. 기관 별로는 투자금융회사의 가명 예금 전환율이 99·8%로 가장 높고 은행 98%,증권 97·8%,투신 91·8%이다.차명에서 전환한 예금은 은행 1조3천7백14억원,증권 3천3백25억원,보험 3천3백77억원,투신 2천7백10억원,투자금융 2천8백74억원이다. ▷금융시장 동향◁ 중소기업의 부도를 막기 위해 통화공급이 늘어나 93년 9월 말의 총통화(M₂)증가율은 평잔 기준으로 21.5%까지 치솟았다.그러나 10월부터 금융시장이 안정을 찾아 11월 말 18.4%,지난 6월 말 15.9%로 안정세이다. 한때 급등세이던 금리는 93년 9월 중순부터 하락세로 돌아서 장단기 금리 모두 실명제 이전보다 낮은 수준이다.하루짜리 콜 금리는 93년 10월 16%까지 올랐으나 지난 6월 말 12%대로 떨어졌다.3년 만기 회사채의 유통수익률도 한때 14.3%에서 지난 연말 12.21%로 낮아진 뒤 지난 6월 말 12.4%를 지켰다. 사채시장의 위축으로 중소기업의 부도율은 93년 7월 0.11%에서 8월 0.12%,10월 0·16%,12월 0.17%로 높아져 지난 6월 말 0.17% 수준이다.93년7월과 올 6월을 비교하면 부도업체는 7백21개에서 8백48개로,부도액은 5천3백억원에서 7천5백42억원으로 늘었다. 사채시장은 소액 가계자금을 위주로 일부 거래가 이뤄지나 크게 위축됐다.큰 손들도 사라졌고 명동의 암달러상도 크게 줄어 거래가 한산하다.금리도 제도권과 연동,지난 해 9월 월 1.46%(연 17.52%)이던 사채금리가 11월 1.25%,지난 1월 1.28%,지난 6월 1.19%로 갈수록 낮아졌다. 환율은 지난 해 8월12일 8백9원10전에서 12월 말 8백8원10전,지난 1일 8백2원60전으로 낮아졌으나 실명제의 영향은 없다.금융기관의 여수신도 2금융권 중심으로 일시 위축되는 듯 했으나 10월부터 정상을 되찾았다. ▷부동산·금값◁ 부동 자금이 부동산과 귀금속으로 몰려 값이 급등하리라는 우려는 완전히 빗나갔다. 실명제 직후 전국의 토지 거래실적은 오히려 크게 줄었다.국세청의 자금출처 조사강화 방침 및 주택전산망의 가동 등으로 시중 자금이 부동산을 기피했기 때문이다. 실명제 직후인 지난 해 3·4분기의 전국 땅값은 전 분기보다 2.64% 떨어졌고 올 들어서도 계속 안정세이다.실명제 직후인 지난 해 9월 한 달 동안의 전국 토지거래 실적도 5만7천4백43건에 44.716㎦로 전년 같은 기간의 5만8천2백15건 66.139㎦에 비해 거래건수와 면적이 모두 줄었다. 주택가격도 매매의 경우 지난 해 8월 전 달보다 0.3% 떨어진데 이어 지금까지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건설부 관계자는 『장기적으로 자금흐름이 투명해져 실명제가 부동산 시장의 안정에 기여할 것』이라고 보았다. 한편 금의 도매 값은 실명제 직전인 7월에 돈쭝당 평균 4만1천2백원에서 8월에 4만1천6백86원으로 4백86원이 올랐다.그러나 두 달 뒤인 10월에 4만4백12원으로 떨어졌고올 7월에도 4만1천2백24원으로 큰 변화가 없다. ▷주식시장◁ 금융실명제 이후 지난 1년 동안 주식시장은 실명제의 영향이 거의 없었다. 시행 직후 사흘간 무려 60포인트가 떨어지기도 했지만 곧 70포인트가 반등,충격에서 헤어났다.올 초에는 연일 폭등세를 보여 당국이 위탁증거금 신설 등 3차례에 걸쳐 안정책을 쓰기도 했으며,2월2일에는 연 중 최고치인 9백74를 기록하는 등 상승세가 이어졌다. 최근 주춤거리는 것은 증시의 주변 여건이 나빠진 탓이지 실명제와는 무관하다.한마디로 증권시장에서는 실명제는 이미 멀고 먼 옛날의 얘기가 돼버렸다. 주식의 양도차익에 대한 과세를 연기한 조치가 증시에는 결정적으로 도움이 됐다.또 은행거래와는 달리 실물 증권을 매매하는 경우에는 실명 확인이 없이 당사자 간에 거래할 수 있는 점도 다르다. 바뀐 것도 있다.장세를 기관투자가들이 이끌어가는 것이 그것이다.검은 돈을 가진 큰손들이 주가를 인위적으로 끌어올린 뒤 차익을 챙기는 음성적 투기는 사라지고 기관투자가들이 장세를 주도하고 있다.지하의음성적 투기꾼은 사라지고 제도권 금융기관의 몫이 커진 셈이다.
  • “새 선거법 효험 컸다”/선관위가 보는 8·2 보선

    ◎3곳서 수사의뢰 2건 뿐… “불법격감”/흑색 선전·인신 공격 규제가 숙제로 새 선거법이 마련된 뒤 처음 치러진 「8·2 보선」은 지난 날의 선거들과 비교해서 얼마나 깨끗해졌을까. 각 후보자나 선거운동원,유권자는 물론 선거감시를 맡은 선거관리위원회까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좋아졌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3개 보선지역에서 선거기간 동안 선관위가 적발한 불법사례는 모두 15건.이 가운데 고발이 2건,수사의뢰가 2건,경고 11건등이다. 단순비교는 어렵지만 지난해 8월12일 치러진 보궐선거에서 대구 동을의 고발 1건,수사의뢰 5건,경고 7건,그리고 춘천에서의 고발 2건,수사의뢰 1건,경고 1건 수사기관이첩 4건등과 비교하면 숫적으로도 줄어든 셈이다. 그러나 위반사례의 내용을 살펴보면 지난 선거들에 비해 엄청나게 달라진 점들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 선관위측의 설명이다. 예를 들어 지난 14대 총선 때 경주시에서 적발된 불법선거운동은 주의 1건 뿐이다.한 후보가 모교 졸업식에서 3백만원의 장학금을 전달했던 것.경주시선관위의 한관계자는 『이번 선거에서 이런 행위가 이루어졌다면 기부행위제한에 걸려 당선되더라도 무효』라고 설명했다. 대구시선관위 지도과의 손병기씨도 『지난해 대구동을 보선 때는 금품살포와 흑색선전이 주된 적발사례였다』면서 『그 때를 기준으로 보면 이번에 수성갑에서 적발된 11건 가운데서 단 1건 정도만이 문제가 됐을 것』이라고 질적인 변화를 강조했다. 중앙선관위의 정일환홍보관리관은 달라진 선거풍토의 원인을 『선거법의 개정과 정부의 공명선거 의지가 확고한데다 국민의 의식이 눈에 띄게 성숙되어 가는데 있다』고 진단하고 『내년의 지방선거에서도 일단 뿌리를 내린 지금의 선거수준이 유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각당 후보들과 선관위 관계자들은 공명선거 정착을 위해서는 아직 몇가지 문제점을 해결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우선 정당및 무소속 후보와 선관위의 자원봉사자에 대한 실비제공 문제다.자원봉사자에게 식사조차 제공하지 못한다는 규정은 현실성이 결여돼 있다는 지적이다. 또 대부분의 후보자가 선거기간 동안『쓴돈이 거의 없다』면서도 자금지출 내역을 정리하지 않고 선거가 끝난 뒤 장부를 만들 예정이어서 짜맞추기의 의혹을 살 수 있다는 점도 시정해야 할 대목이다.이와 함께 민자당의 박희태의원은 『선거운동 과정에서 선관위가 선거법이나 시행령에 규정에 대해 지나치게 입법권적인 해석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또 과거와 같은 금권,관권시비는 사라졌지만 흑색선전과 인신공격은 여전히 남아 이에 대한 적절한 규제책이 마련돼야 할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에 따라 정치권과 선관위에서는 내년의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를 앞두고 선거법을 다시 보완해야 한다는 의견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 “김일성망령 몰아내자”/우익노병들 나섰다

    ◎「민족회의」 결성… “대한민국 정통성 수호” 결의/국론분열 좌익책동 배격 다짐/“김일성의 반민족적 죄과 단죄해야 한국전쟁의 장본인 김일성조문파문이 확대되고 있는 가운데 해방후 좌익들과 싸웠던 「우익노병」과 각계 원로인사들이 16일 「자유민주민족회의(민족회의)」를 결성,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키기 위한 기폭제로 나섰다. 이 모임은 김일성사망과 관련,일부 야당 국회의원의 조문발언과 한총련 대학생들의 분향소 설치등으로 물의가 빚어지면서 자유·민주수호애국연합,한국기독교교회청년협의회등 80여개 민간 단체및 정치·법조·언론·학계·종교계등 저명인사들이 기존의 관변 반공단체들과 달리 자발적으로 대거참여해 구성한 것으로 특히 관심을 끌고 있다. 이철승반탁·반공 건국학생운동기념사업회장과 김점곤평화연구원장·장지양전공군참모총장·오제도변호사등 원로인사 5백50여명은 이날 상오 10시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민주평화통일등을 실현하기 위한 「자유민주민족회의」결성대회를 열었다. 대회에는 채명신예비역중장·김재춘전중앙정보부장·박용만민자당고문·이도형한국논단발행인·양동안교수·정재호전국회의원등과 함께 육사8기를 비롯,원로 반공인사들이 참석했다. 상임공동의장을 맡은 이철승씨는 대회사에서 『최근 김일성 사망과 함께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국론분열양상이 나타나는등 해방 이후 최대의 체제 위기에 직면해 있다』면서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수호하기 위해 모든 애국단체와 자유민주주의 인사들이 힘을 모아 이 난국을 극복하기 위해 이 모임체를 구성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결의문에서 『6·25 전범 김일성은 비록 사망했지만 그가 남긴 반민족적 죄악은 반드시 민족과 역사가 단죄할 것』이라면서 『김일성 독재체제와 반민족 노선을 계승하는 자와의 남북정상회담을 엄중 경계한다』고 선언했다. 참석자들은 또 『북한의 통일전선 동조세력들의 작태를 우리 주변에서 단호히 배격한다』면서 『북한 동포들이 반세기에 걸친 조선노동당의 일당 독재에서 해방될 때까지 투쟁할 것』을 다짐했다. 민족회의는 이날 김일성 사망에 애도를 운운하며 반민족적인 망언을 한 국회의원은 즉각 사과하고 의원직을 사퇴할 것과 일본 무라야마총리의 김에 대한 조의 표명은 우리 국민을 모독한 것으로 납득할 만한 해명이 없을 경우 오는 23일 방한을 저지하겠다는 장수동통일정책개발원장이 내놓은 긴급동의안을 채택,시행하기로 했다. 한편 이들은 이날 이찬혁전노총위원장등 12명을 상임공동의장으로 선출하고 오는 8월12일까지 체제를 완전히 정비,본격적으로 민주평화통일운동을 비롯해 북한 민주화촉진과 자유인권회복·해외동포의 평화통일 역량강화·이산가족 재회및 북한과의 다각적 교류추진 등을 전개하기로 했다. ◎이북5도민,조문 규탄대회 이북도민회 중앙연합회는 16일 하오2시 서울 종로구 구기동 이북5도청내 통일회관에서 실향민등 3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김일성 죄상 규탄및 친북 용공분자 분쇄 궐기대회」를 갖고 김일성에 대한 조문을 주장하는 세력에 대해 엄중처벌할 것을 정부에 촉구했다. 참가자들은 대회를 마친뒤 하오 3시쯤 이북5도청 광장에서 친북 용공세력을상징하는 허수아비 화형식을 갖고 구기삼거리까지 가두행진을 벌였다. 이들은 이날 결의문을 통해 『김일성 사망으로 남한에서 「주사파」를 비롯한 친북 회색분자들이 김일성 빈소를 마련하고 조문하는 등 반민족적·반민주적 망동을 서슴지 않고 있다』면서 『국토분단 등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실향민들로서는 김일성사망으로 빚어진 국민의식의 혼란을 좌시할 수 없다』고 밝혔다. 결의문은 또 『김일성의 죄상을 규탄함으로써 국론분열을 불러 일으키는 친북 용공분자들의 정체와 책동을 단호히 분쇄해 나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 포용하되 말려들지 말아야/정희경(남북정상회담에 바란단)

    애당초 한반도의 분단이 제2차세계대전의 끝무렵에 맞물렸던 국제정치의 힘겨루기의 소산이었고,뒤이은 한민족의 분열과 적개심,그로해서 연유한 무서운 불신등은 두루 정치세계가 빚어낸 것이었다.따라서 한반도의 국토통일과 한민족의 화해및 융합은 결자해지의 원칙에 따라 결국 정치적 영도자의 대좌를 통한 화해없이는 불가능하다.그런 점에서 오는 25일로 예정된 남북정상회담은 지난 45년이후에 있었던 모든 남북회담들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중대한 사건이 아닐수 없다.이번 정상회담을 위해 지난날의 모든 남북 대화들이 있었다고 보아도 좋으리라.「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하여… 먹구름은 그렇게 울었나 보다」란 미당의 시구가 어울릴 만한 느낌을 지금 강하게 느끼고 있다. 71년8월12일 최두선총재가 남북적십자회담의 개최를 제의했을 때의 그 신선한 감동이 일렁이던 우리의 거기에선 남북간의 적대감을 인도주의로 풀어나가고자 하는 희구로 분출되었다.그러나 그 기대가 시간이 흐르면서 차츰 그 무위함을 드러내기 시작했었다.나는 남북적십자본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하여 판문점에서 열렸던 25차에 걸친 예비회담에 참여하면서 정치적문제의 해결이 선행되지 않는 회담이 얼마나 문제의 본질에 접근하기조차 어렵다는 것을 절감할 수 있었다.그리고 어렵사리 시작된 본회담으로 평양과 서울을 오가며 열렸던 남북적십자대표의 대좌도 문제의 변죽만 울렸을 뿐 결국 문제해결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음은 정치적 접근이 두절됐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남북대화에 대한 나의 경험으로 보아 이번 남북정상회담은 그 실현의 경위를 따질것 없이 남북 문제해결에의 첩경일 뿐만 아니라 남북간에 그동안 꼬이고 꼬인 모든 문제의 실타래를 푸는 첫단계로 받아들여진다. 북한의 정권은 두말할 나위없이 지난 45년이후 김일성일인독재에다 이제 김정일로 이어지는 세습정권으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자유민주주의의 원칙에서 보면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정치적 취약성을 가지고 있지만,그것은 또한 무서운 정치력으로 응집력높은 정권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그들이 남북대화에 내세우는 인물만해도 지난 25년간변함이 없다.한마디로 대부분이 구면이고 인도주의적 문제를 다루는 적십자회담이나 고위급정치회담에서나 필요에 따라 역할분배만 달라질뿐 한결같이 그 얼굴이 그 얼굴들이다. 거기에 비하면 우리측은 변화무쌍하다.정권이 그러했고 남북대화참여인사 또한 그러해왔다.거기에도 정권의 정통성시비가 끊이지 않아온 우리나라 정치사속에선 과거의 역사란 흔히 「정권유지적 차원에서」라는 라벨이 붙으면서 거부되고 단절되고 「차별화」되어온 것이 현실이다.따라서 남북의 통일방안도 정권따라 확연히 다르게 변화해왔으며 남북대화에 참여하는 인물도 부지기수로 「물갈이」되어온게 사실이다.이같은 남북의 차이가 과연 남북정상회담에서 어떤 동인으로 작용할 것인가 걱정되지 않을수 없다. 꼭 강조하고 싶은 것은 역사의 단절이나 거부는 결코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괴롭고 부끄럽고 힘겨웠던 역사도 역사임에는 틀림이 없다.그런 역사의 험산준령을 넘으며 와신상담의 인고를 견디며 조금씩 보다 나은 방향으로 나가는데에 자유민주주의적 역사의식의매력이 있는 것이다.더구나 남북대화라는 엄청난 중임을 맡아 보았던 사람으로서 그 진지했던 민족에의 책임감,하늘의 도우심을 간구했던 그많은 헌신의 시간들이 정권유지차원의 도구등으로 표현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역사해석의 결과라고 보며 그런 해석은 엄존하고 있다. 결자해지의 마당에 대좌하는 우리대통령은 45년 이후 우리역사의 모든 것을 껴안는 큰틀의 정치지도자로서의 풍모를 유감없이 보여줄 것을 희구한다.우리사회에 엄존하고 있는 보수와 진보의 연장선상에 북한일인독재정권에의 위험한 동조세력의 끈질긴 준동도 대통령께서는 간과하지 않는 다원화사회의 국가원수로서의 순발력있는 회담의 이니시에이터가 될것을 믿고 그렇게 염원해 본다.
  • 청구 등 6사 오늘 청약/청약자 증거금 20% 증권사에 예치해야

    청구·한라건설·오뚜기식품·경남에너지·신성기업·일정실업 등 6개사가 27∼28일 공모주 청약을 받아 기업을 공개한다. 청약자는 청약액의 20%인 증거금을 청약 당일 각 증권사에 예치해야 한다.나머지 대금은 다음달 12일 청약받은 주식수 만큼 내면 된다.상장 예정일은 오는 8월12일이다.
  • 해외이주자에 「환전인증서」 구입/5백90만불 불법환전

    ◎은행원 등 셋 구속 지난해 8월12일 금융실명제이후 최대규모인 5백90만달러의 외화를 불법환전한 은행원과 암달러상등 3명이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청 외사분실은 22일 해외이주자로부터 사들인 외화환전 인증서를 이용,47억원을 미화 5백90만달러로 불법환전한 서울신탁은행 신대방지점 외환과장 이화종씨(43·성남시 분당구 서현동 96)와 이를 중개해준 암달러상 송순자씨(41·여·종로구 평창동 471의6)등 3명을 외환관리법 위반혐의로 구속했다. 이씨는 지난해 3월31일 서울신탁은행 신사동지점에서 허모씨(35·이민출국) 명의의 해외여행경비 인증서(5만달러 상당)를 구입한뒤 미국 시티은행 송금수표(CRS)로 바꾸는 등 지난 17일까지 1백11차례에 걸쳐 5백90만여달러(한화 47억여원)를 불법환전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조사 결과 이들은 해외이주자들의 현지 정착비 등이 세대당 10만달러에 세대원 1인당 5만달러씩 추가되는 반면 대부분 이보다 적은 액수만을 환전,차액만큼의 환전인증서가 남는 점을 이용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다.
  • KAIST서 「국제 여름학교」 연다

    ◎새달4일부터 6주간… 9개 과목 개설/수강후 과기원 입학하면 학점인정 한국과학기술원(원장 심상철)은 KAIST 국제화추진사업의 일환으로 지난해에 이어 7월4일부터 8월12일까지 6주간 해외동포 및 외국인 학생들을 대상으로 대덕연구단지내 캠퍼스에서 국제여름학교를 개최한다. 개설 교과목은 한국어·사회과학·자연과학 등 9개 학과목이며 국제여름학교에서 이수한 학점은 추후 과기원에 입학할 경우 학점으로 인정된다. 입학대상은 해외동포 및 외국인으로서 고등학교 3학년 이상이거나 대학교에 재학중인 학생이며 신청희망학생은 신청서1부와 사진 4장을 내면된다.신청서는 해외주재 대사관 및 영사관,KAIST 국제협력과에서 얻을 수 있으며 마감은 6월 15일이다. 문의 042­869­2441∼3.
  • 「러」 외교문서서 밝혀진 「6·25전야」

    ◎「웅진반도 점령·삼척해방구 건설」/김일성,당초 국지전 계획/개전직전 소·중지원 약속받고 전면전 선회 김일성은 남침계획을 세우면서 초기에 전면전 대신 옹진반도 점령과 강원도 삼척의 탄광지대에 「해방지구」건설등 국지전 전략을 수립했다가 개전 직전 이를 남침 전면전으로 수정했음이 25일 러시아 외무부 비밀외교문서를 통해 밝혀졌다.다음은 김일성이 남침의사를 굳힌 49년 여름 주평양 소련대사관과 모스크바 사이에 오간 전문 요지. ◇49년8월12일=김일성과 박헌영은 남조선이 자신들의 평화통일 제의를 거부했기 때문에 남조선에 대한 무력공격을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함.두 사람은 무력공격이 남조선 내부의 대규모 인민봉기를 수반할 것이라고 강조.슈티코프소련대사는 북한지도자들의 기도가 실현될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을 표시함.김일성은 이런 「냉담한」반응을 들은 뒤 남조선 강원도 삼척 탄광지대에 「해방지구」를 만드는 계획을 제시함.슈티코프대사는 이에 대해 그런 일은 매우 신중히 준비하고 상황을 분석한 연후에 실행에 옮겨야한다고 말함. ◇8월14일=김일성은 남조선 공격이 가능하다는 점을 재차 강조.아울러 소련으로부터의 무기,기술지원 조속 실행을 요구.김은 옹진반도 점령문제를 제기함.그럴 경우 38도선에 걸친 수비지역이 줄어 적은 병력으로 국경을 수비하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함.슈티코프대사는 김일성과의 이날 면담내용을 전문으로 보고하지 않고 모스크바 귀환후 직접 본부에 보고함. ◇8월27일=슈티코프는 8월12일,14일 김일성과의 면담내용을 스탈린에게 보고.이 자리에서 슈티코프는 다음의 이유로 남침이 불가하다는 의견을 제시함.첫째,남침시 미국이 개입할 것임.미국은 무기,탄약공급 뿐 아니라 일본군대까지 투입할수 있다.둘째,미국은 남침을 소련에 대한 적대적 선전용으로 이용할 것임.셋째,북한군은 남한군에 대해 확고한 전력우위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음. 슈티코프대사는 「해방지구」안과 옹진반도 점령은 군사적 관점에서 긍정 검토할만 하다는 견해를 밝힘. ◇9월3일=평양발.김일성은 자신의 개인비서겸 러시아어 통역인 문일을 임시대리대사 툰킨에게 보냄.문일은 옹진반도 점령에 대한 소련의 입장을 재차 문의.2주내,길게 잡아 2개월이면 남한전역을 점령할수 있다는 김일성의 뜻을 전달함. ◇9월11일=모스크바발.툰킨대리대사에게 본부의 지시.김일성을 가능한한 빨리 만나 다음 사항을 알아볼것.1,김일성이 남한군의 전투능력을 어떻게 평가하는지.2,남조선내 빨치산조직의 활동상황.3,남침시 남한국민들의 반응.4,미국의 대응.5,북한군 전력에 대한 객관적 평가. ◇9월12일∼13일=툰킨대사 김일성·박헌영과 면담.김은 38도선 지역에서의 충돌경험을 근거로 남조선군의 전력을 약하다고 평가.김은 남한에 1천5백∼2천명의 빨치산이 활동중이라고 밝힘.박헌영은 빨치산의 기여가능성을 높게 평가.남한내 주요 건물,지역의 점령계획이 이미 수립돼 있다고 말함. ◇9월13일=김일성은 남한에 대해 압도적 무력우위를 확보하지 못해 일단 옹진반도 일부와 옹진반도 동쪽의 남조선영토 일부(해주까지)를 점령하는 국지전을 시작하겠다는 뜻을 밝힘. 김은▲옹진반도에 위치한 남조선 2개여단을 패퇴시키고 ▲이 거점을공고히 한뒤 ▲이후 상황전개에 따라 확전여부를 결정한다는 3단계 전략을 제시.옹진반도 점령 뒤 남한군의 사기가 크게 저하되면 남쪽으로 추가공격을 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점령지역에서 요새를 공고히 한다는 전략.김일성은 옹진반도 점령시 수비병력의 3분의 1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고 주장. 이후 김일성은 스탈린과의 2차회담 및 모택동과의 회담을 통해 남침에 필요한 적극적인 군사,정치적 지원을 보장받으면서 전면전으로 전략을 수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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