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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 문예사조 총체적 정리/민예총,여름방학 특별강좌 오늘 개설

    여름방학철을 맞아 민족예술인총연합 문예아카데미가 현대 문예사조를 총체적으로 정리하는 대규모 여름특별강좌 「문화예술의 새로운 전환점을 위하여」를 마련했다. 8일부터 시작하는 이 특강은 현대철학·문학 등 고전적 아카데미의 문화는 물론이고 현대사회를 비춰보기 위해 영화,성담론,정보매체,록음악 등 대중문화까지 끌어들인 「전위적」 강의목록으로 눈길을 끈다.「문화」에 목마른 이들의 갈증을 채워줄만한 재미있는 강좌들을 소개한다. ▲현대사회의 새로운 문제틀=네그로 폰테,월러스타인,움베르토 에코,마빈 헤리스,들뢰즈­가타리,프리고진 등 최근 각광받는 서구 이론가들의 이론 공부 ▲섹슈얼리티에 관한 여섯가지 이론=최근의 성담론 유행에 맞춰 프로이트,푸코,빌헬름 라이히,마르쿠제,킨제이,보드리야르 등의 성에 관한 담론 소개(이상 8일∼8월11일 매주 월요일) ▲현대작가의 새로운 계보=마르케스,보르헤스,하루키,쿤데라,미루야마 겐지,에코 등 최근의 문제 작가들 집중 분석 ▲미학사로 보는 예술사=칸트,헤겔부터 아도르노,부르디외까지 철학자들의 미학이론과 미학의 역사 및 쟁점을 미술평론가 강성원씨가 강의(9일∼8월12일 매주 화요일) ▲90년대 록음악과 얼터너티브문화=니르바나,펄잼,알·이·엠,서태지와 아이들,넥스트,삐삐밴드 등 얼터너티브 록을 표방하는 국내외 록그룹을 통해 사회적 현상을 고찰(10일∼8월13일 매주 수요일) ▲한국­뉴시네마 감독연구=장선우,강우석,김홍준,장현수,박광수,박철수 등 촉망받는 국내감독의 작품세계 및 전망분석 ▲영화와 프랑스사상=라깡,알튀세르,데리다,보드리야르,들뢰즈 등 프랑스 현대철학자들의 사상으로 현대영화읽기(11일∼8월22일 매주 목요일) ▲테크놀러지와 예술의 운동=테크놀러지가 예술에 끼친 영향을 문학,미술,영화,건축 등 분야별로 고찰(12일∼8월16일 매주 금요일). 각 강좌별 수강료 4만5천∼6만원.문의 745­6471.
  • 어업기지 캄차카(시베리아 대탐방:66)

    ◎산업 70%가 어업… 연어알 최대생산지/외국합작기업 50개… 미·가서 대규모 투자/작년 연어 1천만마리 부화시켜 강에 방류/1m50㎝ 넘는 초대형 게는 특산물로 각광 캄차카주에서 어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전체 산업중 70% 이상이나 된다.연어알 생산은 러시아 최대를 자랑한다. 특히 캄차카 게는 유명하다.다리까지 합하면 1m50㎝ 이상 되는 초대형이다.다리에서 나오는 게살이 게몸통살보다 더 굵을 정도다.캄차카 사람들이 한국의 영덕대게를 보고 『웬 새끼게냐』고 말하는 것도 허풍은 아니다.대부분 게잡이 배에서 직접 가공해 실어온다. 세르게이 티모셴코 캄차카주 어업장관은 『여타산업도 발전시켜야 하지만 아직까지 어업에 치중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그는 캄차카주에 있는 어업관련 외국합작기업이 50개로 그중 미국·캐나다·호주 등은 대규모 투자인 반면 한국측은 소규모이면서 주로 물고기를 사가려고만 한다면서 한국기업의 대규모 합작투자를 촉구했다. ○게다리살 몸통보다 굵어 캄차카 최대규모인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캄차츠키 어물가공공장.19 32년에 설립돼 12ha의 넓은 면적에 60t을 가공하고 40t을 통조림으로 제조할 수 있는 시설을 갖췄다.직원은 4백명.주로 밤에 고기가 도착하면 다음날 새벽부터 가공한다. 95년초 취임한 세르게이 스몰랸코 사장은 『현재는 고기가 적어 통조림 40t만 제조하고 있으나 앞으로는 직원수를 1천명으로 늘려 1백t이상 처리할 계획』이라고 말한다.고기를 잡은 뒤 2시간내에 가공을 시작하기 때문에 외제보다 맛이 좋고,포장이 약한게 흠이지만 외국에서 포장기계를 사오면 좋아질 것이라고 그는 강조한다.통조림에 양념·마늘 등을 넣기를 원한다면 주문대로 생산할 수 있고,앞으로 게가공도 할 생각이란다. 스몰랸코 사장은 『얼마전 가공한 가자미 통조림을 한국에 수출해 한국기업과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면서 『외국으로 수출하려면 기계와 기술이 좋아야 하기 때문에 포장기계와 보일러를 한국에서 사오려고 한다』고 말한다. 5백t짜리 냉장고가 5대 있다.물고기가 소량이면 그대로 가공하지만 많으면 냉동후 찬물에 녹여 가공한다.생선을물에 담가 깨끗이 씻은 뒤 벨트로 올려보내면 톱니날개가 잘라주고 이어 직원들이 내장과 뼈를 빼낸다.그후에는 자동적으로 캔에 담기고 가자미에는 후추와 기름,연어에는 소금이 뿌려진다.완성된 통조림은 큰 통에 넣고 가자미는 1백12도,연어는 1백20도로 70분씩 끓인다.온도가 안맞으면 맛이 달라진다.내수용은 국가규정대로 연어 2백45g당 소금 2.5∼3g을 넣지만 수출용은 외국의 주문대로 한다.갈리나 브류즈기나 어가공부장은 캔 뚜껑을 닫는 기계를 일본에서 사왔는데 고장이 잦다고 불만을 토로했다.새로 개발한 가자미 튀김 통조림은 캔에 담는 일도 수작업으로 한다.튀긴 것이라 기계로 하면 부서지기 때문이다. 연어알을 소금에 절여 숙성시킨 통조림은 끓이지 않는다.보통은 검은 색의 철갑상어알만을 캐비어(러시아어로는 이크라)라고 부른다.카스피해의 검은 이크라는 세계적으로 유명하다.16세기 모스크바대공국이 카스피해를 지배할 당시 캐비어가 러시아귀족들의 사랑을 받았고 19세기에는 유럽 귀족계급에까지 널리 보급됐다.그러나 연어알 등도 캐비어라고 흔히 부른다. ○한국에도 통조림 수출 캄차카 필렌가 고도.러시아와 일본이 연어를 너무 많이 잡기 때문에 줄어든 연어수를 늘리기 위해 설립한 합작회사다.캄차카주 및 어업회사와 일본연어협회가 공동으로 투자,러시아측이 운영하는 이 회사는 91년 설립돼 92년 처음으로 연어를 방류했다.오제르키에 등 양식장 두곳이 완성됐고 또 한 곳을 설립중이다.양식장 내부시설은 일본서 들여오고 벽체와 건물 등은 핀란드에서 사왔다.그러나 너무 멀고 비싸서 한국의 K사와 구입계약을 맺었으나 납기가 늦어지고 규격도 안맞고 숫자도 모자라는 등 어려움이 많다고 발레리 이시첸코사장은 불만을 터뜨린다. 95년에는 연어 1천만마리를 부화시켜 내보냈다.4년후에 돌아오길 기다리며 투자하는 것이다.캄차카에 있는 연어양식장 4곳중 2곳을 이 회사가 운영한다.물론 일본의 2백개,사할린의 20개에 비하면 아직 부족하다.캄차카주는 2천년까지 연어양식장을 9개로 늘려갈 계획이다. 겨울에도 얼지않는 젤레노프스키강변에 위치한 게키노 양식장.8월11일 알을 넣어서 섭씨 4도 상태로 4개월을 유지한다.햇빛이 알에 좋지않기 때문에 필터로 덮어놓는다.붉고 거무스레한 알중에 드문드문 낀 흰색알은 죽은 것이다.4개월만에 부화하는 연어 새끼는 길이 3㎝,무게 0.2g 정도다.5개월정도 다시 키워 길이 4.5㎝,체중 1g이 되면 이듬해 5월쯤 강으로 내보낸다.새끼를 키우는 수조통이 20여개 널려 있다.통당 40여만 마리를 키운단다.이곳서 나간 고기들은 2∼4년 뒤 7∼9월쯤이면 어김없이 돌아온다.98%가 돌아오려고 시도한다.그러나 큰 고기에 잡혀먹히고,중간에 어선에 잡히고 하다 보면 실제로 강까지 돌아오는 회수율은 자연상태에서 0.14%정도.일본 양식장은 2% 이상으로 회수율을 높였고 이 회사도 그 정도를 목표로 하고 있다.부화된지 3년후면 평균 3㎏정도 된다.큰 것은 6∼7㎏까지 나간다.『95년에는 10㎞ 떨어진 다른 강에서 알을 가져와 키웠지만 앞으로는 이 강으로 들어오는 고기에서 알을 빼낼 계획』이라고 유리 바소프 과학담당 사장은 말한다.연어 한마리당 알 2천개정도가 나온다.양식부화장 직원 유리 니콜라예비치는 『국가규정상 연어알 사망허용치가 8%이지만 이곳에서는 평균 3%이내를 유지한다』고 자랑한다. ○연어 수 점차 줄어들어 캄차카 최대 규모인 레닌 어업 콜호즈.1928년 설립된 이 콜호즈에는 직원 3천명이 근무하고 대소형 선박 30대를 보유하고 있다.북베링해로 나가 주로 대구를 잡는다.한번에 3∼4개월씩 두차례 정도 고기잡으러 나가고 나머지는 쉰다.10년된 배인 1천3백50%급 세묜 벨로우소트호를 5년째 타고 있는 안드레 시프코프(27)는 지난번 출어나가서 대구 2백70t을 잡았을 때 월평균 3백20만루블(약 55만원)을 받았지만 배가 서있을 때는 월 70만루블밖에 못받아 생활이 어렵다고 말한다.어로선박들이 촘촘한 그물을 이용,바다밑을 훑기 때문에 고기가 점점 줄어드는 것같단다. 선박 10여대가 정비를 기다리고 있다.고철로 팔아버릴 정도로 낡은 배도 3∼4척 보인다.
  • 문민정부 개혁 3년/해외언론이 본 「역사 바로세우기」

    ◎“부정축재 폭로 영웅은 한국 민주주의”/돈을 섬긴 개발독재형 정치체제 막 내려­아사히 AWSJ/법치국가 된 한국… 체질개선 전환점 섰다­비즈니스위크 타임/한국상황은 중 지도자에도 경고메시지­독 안차이거 「청산과 창조의 명예혁명」 역사바로세우기 작업이 추진되면서 한국은 전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5·6공 잔재 및 12·12 등 과거청산,5·18특별법 제정,5·17쿠데타 수괴세력 단죄 등 수소폭탄급 조치가 취해질 때마다 세계는 「깜짝」 놀라는 표정이었다.한국의 역사바로세우기가 세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시작한 것은 노태우 전 대통령이 부정축재에 대해 대국민사죄 성명을 발표한 95년10월27일.노씨의 대국민사죄는 로이터·AFP 등 주요 통신사와 전세계 주요 매체들에 의해 즉각 긴급뉴스로 보도됐다. 로이터는 눈물을 흘리는 노씨의 스케치기사와 함께 해설기사를 싣고 『한국 정치권의 부패실체가 백일하에 드러나게 됐다』면서 『김영삼대통령의 장래는 노씨와 노씨로 대표되는 「더러운 정치」와 어떻게 성공적으로 단절하느냐에 달려있다』고 전망했다. 특히 LA타임스는 같은 달 31일 서방경제학자의 말을 인용,『김대통령이 이번 난국을 수습할지는 한국의 개혁과 시장개방을 원하는 미국의 국익에도 중요하다』고 지적하고 『김대통령은 한국에서 찾아볼 수 있는 몇 안되는 개혁적 지도자중의 하나』라고 말했다. 해외언론들은 11월1일 노씨가 마침내 검찰에 소환되자 해설을 곁들인 주요 면 톱기사로 다루는 등 기사밸류를 한층 높였다. 아시안 월 스트리트 저널지는 「퇴임대통령의 계좌」라는 사설을 통해 노씨가 돈과 국민중 돈을 주인으로 섬겼으며 이는 권위주의 정치체제에 수반되는 위험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지적,한국인들의 수긍을 얻었다. 독일의 권위 있는 시사주간지 디 차이트는 다음날인 2일 한국 정치사의 어두운 이면이 밖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은 민주주의가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며 한국은 이 사건을 한 점 의혹 없이 밝혀 민주주의 성숙도를 세계에 증명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외국의 시선은 이 때까지만해도 비자금사건을 일과성 정치파문으로 보는 측면이 있었으나 같은 달 16일 노씨가 구속되자 한국인들의 단호한 「부패와의 단절 의지」를 확실히 인정했다. 미국 일본 프랑스 등 주요국 언론들은 노씨 구속수감을 1면 머리기사·긴급뉴스·해설·사설 등을 통해 대서특필했다.르몽드지는 『김대통령 집권후 착수한 부패척결운동의 결과』라고 긍정적으로 풀이했으며 아사히신문은 이 사건은 조금 먼 눈으로 보면 한국 경제를 이끌어온 개발독재형 정치체제가 막을 내리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같은 달 24일 김대통령이 5·18특별법 제정을 민자당에 지시했다는 뉴스 역시 주요 통신사에 의해 전세계에 긴급뉴스로 타전됐다.뉴욕타임스는 이와 관련,25일 김대통령이 80년 광주민주화운동 학살사건의 군책임자들을 처벌할 특별법제정을 천명함으로써 15년간 한국을 괴롭혀온 이 사건이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됐다면서 10년전만해도 군책임자 처벌이 거론되면 군사쿠데타가 발생할 여지가 있었으나 지금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 됐다고 덧붙였다.또 월 스트리트 저널은 이번 노씨 부정축재사건이 폭로되는 과정에서 영웅이 있었다면 바로 이 나라의 민주주의라고 극찬했다. 해외의 관심은 12월2일 전두환 전 대통령이 골목길 성명을 통해 검찰의 군사반란 수괴혐의에 정면 반발하고 3일 검찰에 의해 수감되면서 절정에 이르렀다. 외국언론들은 전직대통령이 2명이나 수감된 것이 전례가 없기 때문인지 나름대로 향후 정국전망을 내놓는 등 부산한 움직임을 보였다.이와 관련,미 뉴욕타임스는 전씨 구속은 자유선거와 언론자유가 보장되는 시대가 오면 역사도 달라진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논평했다. 비즈니스위크는 한국이 경제체질개선의 전환점을 맞고 있다고 했으며 타임지는 「한국은 이제 법치국가가 됐다」는 제하의 12월11일자 특집을 통해 한국인들은 자신의 나라가 하루 아침에 깨끗히 정화될 수는 없더라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또 독일 안차이거지는 한국상황은 중국지도자에게도 경고의 의미를 줄 것이라고 지적했고 LA타임스는 한국이 혼돈을 겪고나면 더욱 안정된 정치체제와 강력한 민주주의를 이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지난해 11월 이후 숨가쁘게 진행된 한국의 역사바로세우기는 전씨 구속까지 내내 전세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이들은 놀라운 경제성장으로 다른 국가들로부터 경제성장의 모델로 간주되고 있는 한국이 역사바로세우기를 통해 민주주의 모델로도 자리매김을 할 수 있을지 한국인들의 결정을 지켜보고 있다. ◎문민정부 개혁 3년 일지 ▲2월25일­제14대 대통령취임 ­청와대 앞길과 인왕산 개방 ▲2월27일­대통령 재산공개 ▲3일3일­「신경제 1백일계획」및 「신경제 5개년계획」수립지시 ▲3월4일­일체의 정치자금 안받을 것을 선언 ­안가 12개동 철거 및 개방 ▲3월13일­부산·전남·전북·경북·제주등 지방청와대 폐쇄 ▲3월18일­김포공항등의 대통령 전용귀빈실개방 ­국무위원 첫 재산공개 ▲4월19일­현직 대통령으로 처음 4·19묘지 참배 ▲5월13일­5·18광주민주화운동 관련,특별담화 ▲7월10일­클린턴 미국대통령과 정상회담(청와대) ▲8월9일­옛 조선총독부건물 철거지시 ▲8월12일­금융실명제 전격단행 ▲9월7일­고위공직자 재산공개 ▲11월17∼29일­시애틀 APEC회의 참석 및 미국방문 ▲3월15일­공직선거 부정방지법등 3개 정치개혁입법안 서명 ▲3월24∼30일­일본과 중국 공식방문 ▲4월14일­정부,2015년까지 45조원 투입하는 초고속정보통신망 구축계획확정 ▲5월19일­국방부,경기·강원 북부지역 군사보호구역 5억3천5백만평 해제 ▲6월1∼7일­러시아 및 우즈베키스탄방문 ▲6월28일­판문점서 남북정상회담 예비접촉 7월25∼27일 평양남북정상회담 합의 ▲7월5일­농어촌에 2004년까지 15조원 투자계획발표 ▲7월8일­김일성 사망으로 남북정상회담 무산 ▲8월15일­「한민족 공동체 건설을 위한 3단계 통일방안」천명 ▲11월10∼19일­인도네시아 보고르 APEC 지도자회의 참석 및 필리핀·인도네시아·호주방문 ▲11월17일­시드시방문중 「세계화 구상」천명 ▲12월3일­재정경제원 신설등 대대적 정부조직개편 단행 ▲1월9일­7월1일부터 부동산실명제실시 발표 ▲1월21일­세계화추진위 발족 ▲1월26일­「마틴 루터 킹 평화상」수상 ▲3월2∼15일­덴마크 유엔사회개발 정상회의참석 및 프랑스·체코·독일·영국·벨기에 방문 ▲3월23일­「삶의 질 세계화」를 위한 복지구상 발표 ▲5월31일­사립대 학생선발방식 자율화등 교육개혁단행 ▲6월21일­북경 남북쌀회담서 북한에 쌀 15만t지원 합의 ▲6월27일­4대 지방선거실시,지방자치 34년만에 전면부활 ▲7월22∼29일­미국 국빈방문 ▲8월11일­광복50주년을 앞두고 3천1백69명에 대한 특별사면·복권단행 ▲10월16∼28일­유엔창설 50주년 특별정상회의 참석 및 캐나다방문 ▲11월9일­한국,유엔안보리 비상임이사국 진출 ▲11월14일­중국 국가원수로는 첫 방한한 강택민 주석과 정상회담 ▲11월16일­노태우 전 대통령 구속 ▲11월17∼20일­오사카 APEC 지도자회의 참석 ▲11월24일­「5·18특별법」제정지시 ▲12월2일­건국이래 최대인 7백50만명에 대한 일반사면령 공포안 서명 ▲12월3일­전두환 전 대통령 구속 ▲1월5일­중소기업청 신설지시 ▲1월9일­새해 국정연설,지속적 개혁 등 6대 국정과제 제시 ▲1월15일­무궁화위성2호 발사성공 ▲2월6일­신한국당 제1차 전당대회
  • 발칸내전 4년만에 종지부/보스니아 평화협정 조인

    ◎신유고련­보스니아 상호 승인/미 의회,지지 결의안 가결 【파리=박정현 특파원】 보스니아 내전 종식을 위한 역사적인 보스니아 평화협정이 14일 파리에서 내전 당사국 및 주요 후원국 지도자들에 의해 정식 서명됐다. 알리야 이제트베고비치 보스니아대통령,프란요 투즈만 크로아티아대통령,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세르비아대통령은 이날 상오 11시43분(한국시간 하오7시43분) 엘리제궁에서 지난달 미국 오하이오주 데이턴에서 합의한 평화협정에 서명했다. 평화협정은 ▲크로아티아­회교및 세르비아계로 구성된 보스니아 연방국가 유지 ▲사라예보를 통합수도로 유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의 지휘를 받는 6만명의 평화협정 이행감시군 배치등을 주요 골자로하고 있다.평화협정으로 나토의 평화이행감시군이 본격적으로 보스니아에 파견된다. 자크 시라크 프랑스대통령,빌 클린턴 미국대통령등 주요국가 지도자들은 조인식 연설에서 보스니아에 평화를 정착시키기위한 발칸지역 국가들의 노력을 촉구했다. 【파리 AFP 연합】 세르비아공화국이 주도하는 신유고연방과 보스니아가 상호승인에 합의했다고 리처드 홀브룩 미 보스니아 특사가 13일 밝혔다. 밀란 밀류티노비치 세르비아공화국 외무장관과 무하메드 사치르비 보스니아 외무장관은 14일 빌 클린턴 미대통령과 세르비아,보스니아,크로아티아 대통령들간의 파리 회담시작 때 상호승인 문서를 교환하기로 합의했다고 홀브룩 특사가 전했다. 【워싱턴 AP AFP 연합】 미상원은 13일 보스니아 평화협정 이행을 감독하기 위해 파견될 미군병력에 대한 지지 결의안을 찬성 69,반대 30표로 가결시켰다. 보브 돌 상원 공화당 원내총무는 이날 이틀간의 보스니아 파병 논의를 마무리하면서 『결의안 통과는 보스니아에 파병될 미군에 대한 의회의 지지를 나타내는 징표』라고 말했다. ◎「협정」 조인 이모저모/미,보스니아에 8천560만달러 원조/시라크 “전쟁과 증오의 페이지 넘기자”/사라예보 협정조인 직후 수류탄 공격 ○…2차대전 이후 유럽 최악의 분쟁인 보스니아내전 종식을 위한 역사적인 평화협정이 14일 TV로 생중계되는 가운데 프랑스 파리의 엘리제궁에서서명됐다. 알리야 이제트베고비치 보스니아 대통령,프란요 투주만 크로아티아대통령,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세르비아대통령은 평화협정에 서명한 뒤 자리에서 일어나 서로 악수를 나누고 서명식에 참석한 주요국가 지도자들과도 악수. ○…시라크 프랑스대통령은 이날 상오 11시38분(한국시간 하오7시38분) 옛유고지역 국가들과 세계 주요국가들의 정상이 모인 가운데 보스니아 내전 종식을 위한 평화협정 조인식의 개막을 선언. 조인식이 개막된 직후 옛유고지역 지도자들이 평화협정에 서명했으며 곧이어 시라크 프랑스대통령,콜 독일총리,빅토르 체르노미르딘 러시아총리,메이저 영국총리 등도 평화협정에 서명. ○…시라크 프랑스대통령은 평화협정 조인식 개막연설에서 『평화협정은 20만명의 희생자와 수백만의 난민이 발생한 보스니아내전을 보상할 수는 없지만 옛유고지역의 분쟁을 최종적으로 해결하는 것』이라고 강조.그는 또 옛유고지역 지도자들에게 「전쟁과 증오의 페이지」를 넘기라고 촉구.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에는 14일 평화협정이 조인된 뒤 보스니아내전의 종식을 축하하는 축포가 울려퍼졌다.그러나 많은 주민들은 평화협정이 보스니아에 안정적인 평화를 가져올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내전발발 당시 건축학을 전공하던 대학생이었던 니나씨(30)는 『나는 피곤하고 지쳤다.사라예보를 떠나 오랜 휴가를 갖고 싶다』고 말한 뒤 『모두가 패자다.세르비아계는 대세르비아 건설에 실패했다.나는 평화가 오래 지속될 것으로 믿지않는다』고 지적. ○…평화협정 조인식은 사라예보에도 TV로 생중계됐으나 오랜 전쟁과 굶주림·추위에 지친 시민들은 큰 관심을 나타내지 않았다.그들은 난방·물·전기가 부족은 하루하루의 생활과 미래를 걱정. ○…세르비아공화국의 수도 베오그라드 시민들은 대체로 평화협정을 환영.평화협정으로 대세르비아 건설의 꿈이 사라졌다는 것을 아쉬워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는 것 같다. ○…보스니아 평화협정이 공식 조인된 14일 사라예보에서 포격으로 추정되는 세차례 요란한 폭발음이 들렸다고 목격자들이 전했다. 보스니아 관리들은 사라예보 시중심가의 유태인 공동묘지부근에 2발의 수류탄이 떨어졌으며 사라예보내 세르비아계 점령지와 정부군 점령지를 분할하는 한 교량에도 수류탄 4발이 떨어졌다고 말했다. ○…빌 클린턴 미대통령은 14일 보스니아의 재건을 위해 미국이 8천5백60만달러의 원조를 즉각 제공할 계획임을 발표했다. ○…유엔 인권위원회는 13일 옛유고연방 지역에서 행해진 조직적인 강간은 「인종청소」 행위로서 대량학살죄에 해당한다는 점을 재확인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91년:▲6월25일=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유고연방에서 독립 선언▲6월27일=크로아티아계와 세르비아계,내전 돌입. ◇92년:▲4월6일=유럽연합(EU),보스니아내 크로아티아계와 회교도의 독립승인.▲5월=유엔,세르비아계를 지원하는 세르비아공화국에 대한 제재 실시. ◇94년:▲2월6일=세르비아계의 사라예보 시내 폭격으로 68명 사망.▲4월10일=나토,고라주데에서 세르비아계에 대한 사상 첫 공습 단행. ◇95년:▲1월1일=보스니아정부와 보스니아 세르비아계,4개월 휴전협정에 서명.▲7월11일∼8월4일=세르비아계와 크로아티아,서로 공격.▲8월11일=클린턴 미대통령,리처드 홀브룩 특사 파견.▲10월5일=클린턴 대통령,휴전 발표.▲11월1일=알리아 이제트베고비치 보스니아대통령·프라뇨 투즈만 크로아티아대통령·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세르비아대통령,미오하이오주 데이턴의 라이트 페터슨공군기지에서 협상 시작.▲11월21일=데이턴 평화협상 타결·가조인.▲12월5일=나토 외무·국방장관회담,보 평화이행군 6만명 파견 승인.
  • 서울신문 이렇게 꾸민다(서울신문 50돌 특집)

    ◎국민과 호흡하는 초일류 정론지로/오늘의 지식인들이 찾는 「지구촌 칼럼」 서울신문 이렇게 만든다.서울신문이 크게 달라졌다.창간 50주년을 맞아 연초에 「제2의 창간」을 선언한 서울신문은 2월15일자부터 지면을 대대적으로 혁신,권위있는 최고의 정론지로 거듭 태어났다.정부와 국민의 충실한 교량역할을 하고 세계화시대를 선도하며 초일류 고급지로 재탄생할 것임을 대외에 천명한 지 불과 9개월만에 서울신문은 명실상부한 「국민의 신문」으로서 정체성을 확립,여타 상업지와는 달리 지면을 과감히 특화·차별화시켜 공익신문의 한 전형을 이룩했다.「제2창간선언」이후 서울신문이 얼마만큼 변모했는지를 다른 신문과 「차별화」「특화」된 지면 및 기획연재물을 통해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특색있는 지면 서울신문은 「정부와 국민의 교량역활」 「세계화에 기여」 「고급지 지향」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정부와 국민의 가교 정부가 어떤 정책을 추진·시행하고 있으며 어떤 법률이 새로 제정됐는지를 가장 정확하고 상세히 알려준다.각종 정책이나 법령은 국민이 꼭 알아야 할 생활과 직결된 중요한 사항이다.서울신문은 이러한 취지에서 「입법예고」 「법령공포」 「정부시책 이렇습니다」 「국정 어떻게 돼갑니까」 「공직자의 소리」등의 지면을 제작하고 있고 이는 다른 상업지들이 전혀 다루지 않는 독특한 것이다. ○오피니언 페이지 신설 다른 신문과의 차별화·특화를 지향하는 서울신문의 대표적인 지면이다. 오피니언니언 페이지는 양과 질의 면에서,기사의 다양성 면에서 다른 신문을 압도한다. 외국의 저명한 석학과 전문가 14명을 필진으로 선정,국제적인 이슈를 분석·논평한 기고문을 연재하고 있는 「지구촌 칼럼」은 「오피니언 페이지의 세계화」를 선도하고 있다. 또한 각국의 전문가들이 집필한 칼럼을 수시로 소개하는 「해외논단」과 권위있는 외국신문의 주요사설을 다루는 「해외사설」란도 인기를 끌고 있다. ○아태뉴스 중점 보도 지금 세계의 시선은 이시아·태평양지역에 쏠려 있다. 이 지역 국가들은 앞으로 21세기를 주도해나갈 것임이 확실시되고 있으며 아시아·태평양지역 18개국으로 구성된 아태경제협력체(APEC)는 세계경제의 주도권을 행사할 전망이다.이에 따라 「아태뉴스페이지」는 세계경제의 중심으로 떠오른 이 지역의 움직임을 미국·일본·중국 등지에 파견된 특파원이 입체적으로 취재·보도해 독자의 요구에 부응하고 있다. ○인물동정 중요성 부각 서울신문의 「사람·일·사람」페이지는 양과 질의 면에서 어느 신문보다 월등하다.완전히 독립된 뉴스면으로 만들어 차별화에 성공했다. 1주일에 월요일을 제외한 6일간 매일 2페이지를 할당하고 있어 정보량이 다른 신문에 비해 2∼3배정도 많다.전체 24면을 발행하는 서울신문이 2개면을 인물·동정페이지로 만든다는 것은 획기적인 일이다.「사람·일·사람」란에는 갖가지 모임·행사·단신·인터뷰 등의 기사가 실려 있을 뿐만 아니라 「국무위원 일정표」와 「광역단체장 일정표」까지 실어 주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지역면 대폭 확대 「지방화」는 「세계화」와 함께 우리 국정의 2대지표다. 서울신문은 지방화시대를 선도하기 위해 지역별로제작하고 있던 지방판 1개면을 2개면으로 확장시켜 「지방정부와 주민간의 교량」역할에 중점을 두고 있다. 지역살림의 방향을 주민에게 정확하게 알리기 위해 광역단체장을 직접 만나 시책을 알아보는 「이달의 도정」 「이달의 시정」란을 신설했다. □기획연재물 기획연재물은 두 가지 성격으로 구분된다.첫째는 우리의 새로운 역사의식과 정체성 확립을 위한 것으로 「새로 쓰는 한국현대사」 「압록강 2천리」 「한국인의 얼굴」 등이 이에 속한다.둘째는 세계를 향해 우리의 시야를 넓혀주는 연재물로서 「시베리아 대탐방」 「세계의 명소와 걸작 건축감상」이 있다. ○시베리아 대탐방 서울신문 창간 50주년 기념으로 한국언론사상 최초로 기획된 특별컬러연재물이다. 이 시리즈는 아직도 미지의 세계로 남아 있는 시베리아현장을 본사 취재팀이 종횡으로 답사해 풍물·문화·역사·경제 등을 소개하고 있으며 독자가 처음 대하는 생생한 컬러사진은 압권이다.이 기획물이 지난 3월2일 처음 연재된 이후 국내에서 화제가 되고 있고 러시아의 중앙방송·지방방송 및 신문이 10여차례나 이를 소개할 정도로 주목을 받고 있다. ○모스크바 새 증언 5월15일자부터 시작해 3개월동안 30회가 연재된 이 시리즈는 서울신문의 고급화·차별화를 더욱 돋보이게 한 기획물이었다. 아직도 우리 사회일각에서 「6·25는 북침이다」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 시리즈는 한국관련 문서를 보관하고 있는 러시아의 「외무성문서소」 「대통령문서소」「당중앙위문서소」 「국방성문서소」 「KGB문서소」등 5곳에서 천신만고 끝에 6·25와 관련된 9백50여건의 극비문서를 입수,그 진상을 보도함으로써 세계언론사상 첫 쾌거를 이룩했다. ○새로 쓰는 한국 현대사 금년 1월1일자부터 시작돼 현재 45회를 맞는 이 대형시리즈는 19 45년 8·15해방에서부터 70년대초 제3공화국까지의 우리 현대사를 심층적으로 재조명하고 있다 새로운 자료와 당시 관계자의 증언을 토대로 해방이후 격변기의 역사를 재해석하고 있으며 특히 미국·독립국가연합·일본 등 외국에 소장돼 있던 각종 자료와 국내 학자의 최근 연구결과를 대거 발굴,보도함으로써 지금까지의 어떤 유사한 신문 연재물보다 깊이가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압록강 2천리 8월11일부터 주1회씩 연재되고 있는 이 시리즈는 이미 연재된 20회짜리 「두만강 7백리」(2월24일∼7월14일)의 후속 컬러물이다. 대변혁의 시기를 맞고 있는 한·중국경지역 조선족의 삶을 「두만강 7백리」를 집필한 연변 동포작가 유연산씨가 심층르포형식으로 다루고 있다.한반도 최대장강인 7백90㎞의 압록강일대를 직접 답사,동포의 실상을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 6억원 채권매입 확인/토지 중도금중 9천만원은 자기계좌 입금

    ◎최 노원구청장 수사 최선길 서울 노원구청장 선거법위반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서울 경찰청은 24일 최구청장이 봉천동 부동산을 매각하고 중도금으로 받은 자기앞수표 8억원에 대한 추적결과,최구청장이 6억7천8백50만원을 채권을 매입하는데 사용한 사실을 밝혀냈다. 경찰은 최구청장이 봉천동 부동산을 매각하고 지난 5월4일 중도금으로 받은 자기앞수표 8억원 가운데 2억7천7백50만원은 닷새뒤인 9일 장기신용은행 압구정지점에서 부인 김모씨(50) 명의로 5년만기 장기채권을 매입하는데,나머지 4억1백만원은 지난 8월11일 자기 이름으로 중소기업 금융채권을 사는데 썼다고 밝혔다. 경찰은 이에 따라 26일 최구청장부부를 불러 6·27 지방선거를 앞두고 거액의 부동산을 팔아 채권을 매입한 경위와 이 채권을 다른사람에게 매각,현금으로 바꿔 사용했는지에 대해 조사할 방침이다. 경찰은 또 중도금으로 받은 나머지 자기앞수표 9천9백여만원에 대한 계좌추적결과,지난 6월5일 1백만원권 자기앞수표 8장과 10일 자기앞수표 8천만원권 1장·1천만원권 1장·1백만원권 1장 등으로 국민은행 노원역 출장소에 개설된 최구청장 계좌로 입금된 것으로 확인했다.그러나 6월5일과 10일에 인출된 1백만원권 자기앞수표 9장등 모두 9백만원은 사용처가 불분명해 계속 추적중이라고 밝혔다.
  • 시도지사 4명 회계자 고발/벌금100만원·징역형땐 당선무효/선관위

    ◎5백97건 고발·수사 의뢰­「6·27」 부정/내년4월 총선때 무더기 재선거 예상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2일 6·27 지방선거에서 선거비용 제한액을 초과했거나 금품을 불법제공하는등 선거법 위반사례 1천9백51건을 적발,이 가운데 5백97건을 오는 5일까지 검찰에 고발 또는 수사의뢰키로 했다고 발표했다. 검찰에 대한 고발은 4백19건,수사의뢰는 1백78건이며 나머지 1천3백54건은 경고조치됐다. 특히 시·도지사 당선자 관련 위법사례가 15건 적발됐는데 이중 4건은 회계책임자를 검찰에 고발조치하고 1건은 수사의뢰키로 했다. 전체적으로 당선자의 위법행위는 모두 6백63건인 것으로 집계됐으며 경고조치를 받은 4백92건을 제외한 1백71건이 고발 및 수사의뢰 조치돼 사법처리에 따른 무더기 당선무효 사태가 빚어질 전망이다. 이와 관련,대법원은 선거법 위반 사범에 대해서는 6개월 안에 재판절차를 매듭지을 방침이어서 선거법에 따라 상당수 지역에서 내년 4월11일 15대 국회의원 총선거와 동시에 재선거를 치를 것으로 예상된다.선거법에따르면 자치단체장은 96년 1월26일부터 3월1일 사이에,지방의회 의원은 오는 29일부터 96년 3월1일 사이에 형이 확정돼 당선이 무효가 되면 총선과 동시선거를 실시해야 한다.선거법은 후보자가 1백만원 이상의 벌금형 이상을 받거나 회계책임자가 선거비용의 초과지출과 관련해 징역형을 받으면 후보자의 당선이 무효가 된다. 선관위는 지난 7월28일부터 8월11일까지 5천6백61명의 당선자 전원과 낙선자 1천18명 등 지방선거 입후보자의 43%에 해당하는 6천6백79명에 대해 선거법 위반사례를 추적·조사한 결과 이같이 적발했다고 밝혔다. 이를 선거별로 보면 ▲광역단체장 62건 ▲기초단체장 1백83건 ▲광역의회 의원 3백88건 ▲기초의회 의원 1천3백18건이며 이 가운데 당선자가 관련된 사례는 광역단체장 15건,기초단체장 44건,광역의회 의원 1백41건,기초의회 의원 4백63건 등이다. 정당별로는 ▲민자당 1백72건 ▲민주당(새정치국민회의 포함) 1백53건 ▲자민련 94건 ▲무소속·기타 1천5백32건이었으며 당선자 관련 건수는 민자당 59건,민주당 77건,자민련 23건,무소속·기타 5백4건 등으로 나타났다. 선관위는 이들 위법사례에 대한 증거보강을 위해 선거비용 수입지출 보고서 열람기간이 끝나는 오는 11월3일까지 선거비용에 대한 추적·조사작업을 계속할 방침이다.
  • 10월 단행예정 일반사면 대상/8월 11일이전 범죄 한정

    ◎법무부 기준마련 법무부는 17일 오는 10월 단행할 예정인 일반사면 대상범죄를 8월11일 이전에 발생한 때로 한정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법무부 관계자는 『일반사면은 범죄의 종류를 지정,형을 실효하고 공소권을 소멸시키는 것인 만큼 법집행에 차질이 없도록 일반사면방침이 공식발표된 지난 11일 이전 발생한 범죄로 대상을 제한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또 『일반사면 대상범죄 기준시점을 8·15 특사조치가 공식 시행된 8월15일을 기준으로 할 것인지 특사를 발표한 11일로 할 것인지 여부를 놓고 이견이 있을 수 있으나 국민 대부분이 일반사면 단행방침을 알게 된 시점을 기준으로 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고 덧붙였다. 법무부는 이와 관련,구류 및 벌금처분을 받은 경범죄처벌법 위반자와 향군법·도로교통법·주민등록법·민방위법 등을 위반한 사범을 중심으로 일반사면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 「한국판 NASA 만들자」/무궁화호 발사에 즈음하여…

    ◎우주개발 충지휘할 범국가적 기관 절실 오늘은 우리나라 국적을 가진 최초의 방송통신위성 무궁화호가 온 국민의 염원을 담고 우주로 발사되는 날이다.지난 90년2월 정부가 한국통신 단독투자에 의한 위성확보방침을 시달하면서 본격적으로 추진된이래 위성이 발사체위에 탑재되어 밤낮으로 준비해온 많은 관계자들과 연구원들의 마음은 매우 설렐 것이다. 지금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지난 92년8월11일 우리별1호의 발사를 앞두고 가슴떨리던 흥분을 생각해보면 이들의 기분을 십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65년 세계최초의 상업용위성 인텔셋1호(INTELSAT­1,일명 EARLY BIRD)가 발사된이래 수많은 통신위성이 지구정지궤도에 올려졌으며 전세계는 이들 위성을 이용한 통신망을 통해 하나의 지구촌으로 연결되기에 이르렀다.우리는 실생활에서 크게 느끼지 못하며 살고 있지만 실상은 모르는 사이에 많은 위성들이 제공하는 서비스를 누리며 살고 있다. 국제전화,국제통신망,방송,기상예보,환경관측 등 그동안 외국의 위성들을 이용해 제공되었던 많은 기능들중의 일부가 이제는 방송용 중계기 3개와 중계기 12개를 탑재한 우리국적의 무궁화호에 의해 제공될 것이다.특히 세계에서 두번째로 디지털방식으로 방송을 전송하는 무궁화위성은 앞으로 화질과 음질면에서 뛰어난 방송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90년대 초부터 우리는 언론매체를 통해 각종 위성에 관한 다양한 기사를 접해왔으며 많은 사람들이 이제는 우리나라도 점차적으로 우주시대에 돌입하고 있다는 것을 조금씩 느껴왔을 것이다.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나라의 우주시대개막이 얼마나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지는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얼마전 대통령이 미국방문중 2015년까지 위성을 20개 발사할 것이라는 계획을 언급했을때 많은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벌써 우리나라가 위성을 20개씩이나 계획할 정도에 이르렀나 하는 생각때문이었다.하지만 이 분야를 잘알고 있는 일부 전문가들은 방송통신,원격탐사,과학실험등 다양한 위성활용분야에 앞으로 20년동안 겨우 20개의 위성을 계획한 것은 너무 적은 숫자라고 말하기도 한다. 한 기관에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 국내에서 위성과 관련,사업을 추진하거나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단체의 수가 20여개나 되는 것으로 밝혀졌다.90년도에 들어서야 국내의 위성사업이 본격화되었던 사실을 감안하면 결코 적은 수가 아니다.문제는 이들 기관사이에 역할분담및 역학관계가 어떻게 성립되고 있으며 좁은 한반도내에서 얼마만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우리가 잘알고 있듯이 미국에는 항공우주국(NASA)이라는 기관이 있다.이 기관은 우주개발에 있어서 범부처적인 소요를 파악한 다음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고 예산을 확보하여 각종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항공우주국을 중심으로 미국의 수많은 연구소와 기업들은 그동안 경쟁적인 관계속에서도 일련의 질서를 가지면서 체계적으로 성장해왔다.유럽의 경우는 나라별로 이런 기관이 있지만 공동으로 유럽우주국(ESA)를 설치해 유럽전체의 우주개발프로그램을 관장하도록 하고 있다. 이처럼 우주개발 선진국들을 보면 범부처적 혹은 범국가적인 주관기관에 의해 향후계획이 제시되고구체적인 역할분담이 이루어지고 있다.이런 제도를 갖추는 것이 체계적이면서도 실용적인 우주개발을 이끌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우리나라의 경우 아직까지는 이러한 기능를 담당하는 범부처적인 기관이 마련되지 못한 상황이다. 앞으로 20개,어쩌면 그보다 더 많은 수의 위성이 발사될지도 모른다.그렇다면 그와 관련된 기술적·경제적인 문제를 비롯한 많은 국가적인 문제를 종합적으로 풀어나갈 담당자는 과연 누구인가.현재로서는 대답하기가 매우 어려운 형편이다. 우리나라의 본격적인 우주개발역사는 이제 5년밖에 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이 짧은 기간동안에 모든 것이 선진국처럼 체계화되길 기대하기는 어렵다.그러나 뒤늦게 시작하는 우리에게 오랜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 만큼 보다 체계적인 우주개발사업을 위한 노력을 늦추어서는 안된다. 우리나라 최초의 방송통신위성 무궁화호의 발사에 즈음하여 장래의 일을 위한 고민을 잠시 해보았다.하지만 오늘 하루는 전국민 모두가 우주로 향한 대장정을 시작하는 무궁화호의 성공을 기원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더욱 중요할 것 같다. 그동안 자신의 시간과 건강을 투자하면서 국내에서,그리고 먼 타국에서 혼신의 힘을 다하여 무궁화호를 탄생시킨 모든 분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아울러 우리의 통신·방송분야가 무궁화호2호,3호로 계속 이어지면서 더욱 발전해 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 올 휴가 8월 1·3일 떠나세요

    ◎도공 지난 3년간 고속도 통행량 분석 안내/출발시간은 오후나 새벽 선택/29·30일엔 차량 22만대 몰릴듯 「오는 26일부터 8월5일사이에 휴가를 떠나려면 화요일과 목요일을 택하세요」 피서객 인파가 다른날 보다 적어 고속도로 정체가 덜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23일 한국도로공사에 따르면 93년과 지난해 휴가가 절정에 달하는 7월26일부터 8월5일까지의 고속도로 교통량을 조사한 결과 화요일과 목요일의 교통량이 가장 적었다.올해도 비슷할 전망이다.따라서 피서 출발은 8월1일이나 3일이 가장 좋다.출발시간도 상오보다는 하오나 새벽이 좋다고 말했다.그렇지 못하면 5∼11일사이가 좋다. 8월1일의 경부·중부고속도로 하행차량은 16만대,3일에는 18만대로 이기간중 가장 적을 것으로 예상됐다.반면 토요일인 29일과 일요일인 30일엔 가장 많은 22만여대가 몰릴것으로 내다봤다.영동고속도로도 상하행선에 3만2천대가 몰릴것으로 예측됐다. 영동고속도로가 가장 혼잡한 날은 7월30일과 8월2일이다.7월30일에는 상·하행선에서 3만6천여대가 몰리며 특히 하행선은 2만2천대로 가장 붐빌 것으로 보인다.반면 3일에는 상행선이 붐벼 이용차량 3만6천대 중 상행선이 2만여대로 예상되고 있다. 경부·중부고속도로를 이용할 피서인파는 8월4일을 고비로 다소 줄어드나 8월11일에 이어 토요일인 12일에 가장 많은 차량이 몰릴 것 같다. 8월11일에는 20만대의 차량이,8월12일에는 25만대의 차량이 몰릴 것으로 내다봤다.영동고속도로의 이용차량도 2만9천대 수준이다. 월요일인 14일 하루만 휴가를 받으면 광복절로 공휴일인 15일까지 이어 3일을 즐길수 있기 때문이다. 도공은 (02)253­0404,(0342)48­0404와 고속도로 정보 자동응답전화 700­2030(전국 동일)을 통해 고속도로 정보를 제공키로 했다. 정체가 특히 심한 영동고속도로는 서울∼속초 구간은 44번 국도,서울∼원주 구간은 42번 국도,서울∼강릉구간은 6번 국도 등의 우회도로를 이용토록 유도하기로 했다.
  • 오늘부터 「삼풍」 국조/여야 합의/이준회장 등 30명 증인 채택

    국회 삼풍백화점 붕괴사건 국정조사특위(위원장 박우병)는 11일 여야 간사회의를 열어 국정조사계획서를 확정짓고 12일 사고현장방문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조사활동에 착수하기로 했다. 특위는 국정조사기간을 12일부터 8월11일까지 1개월로 정하고 이준 삼풍백화점 회장과 이한상 사장등 삼풍백화점 관계자와 전·현직 서초구청장등 관련공무원,설계·시공·감리관련자등 모두 39명을 증인으로 채택했다. 또 서울시 사고대책 본부장,소방서장,서초경찰서장,삼풍백화점 음식점주인등을 참고인으로 출석을 요구키로 하는 한편 사고원인규명을 위해 학계와 업계전문가 8명을 감정인으로 채택했다. 이와 함께 조사대상기관으로 내무부,건설교통부,서울특별시,서초구청,서울 지방검찰청등 5개 기관을 선정하고 18일부터 28일까지 조순서울시장등 조사대상 기관장으로부터 사고원인과 진상에 대한 현항보고를 듣고 문서검증작업과 증인및 참고인에 대한 조사활동을 벌일 예정이다. 특위는 12일 상오 전체회의를 열어 국정조사계획서를 의결,본회의에 회부하기로 했다.증인 및 참고인명단은 다음과 같다. ◇증인 ▲설계·시공·감리관련자=임형재(우원종합건축 사무소장) 문정일(〃 대표) 박수호(〃 기사) 이상철(우성건설 시공관계자) 이중조(삼풍건설 건설본부장) 이평구(〃 현장소장) 「한」건축구조연구소 대표,냉각탑 설치회사사장 및 담당기사 ▲관련공무원=이충우,황철민(전 서초구청장) 조남호(서초구청장) 이승구(서초구청 전도시정비국장) 임채근(전 도시정비국장) 심수섭(전도시정비과장) 김영권(전주택과장) 김재근(전주택과장) 이종훈(전주택계장) 양주환(전주택계장) 정지환 김오성 곽영구 이명수 정경수(전담당직원) 유상열(건설교통부 차관) 허만섭(서초구청 도시정비국장) 민홍기(〃 주택계장) 박동현(〃 산업과 직원) ▲삼풍백화점 관계자=이준(삼풍백화점 회장) 이한상(〃 사장) 이광만(〃 전무) 이한창(〃 전무) 이격(〃 영업전무) 이영길(〃 시설이사) 이규학(〃 이사) 이형철(〃 시설부장) 이용균(〃 관리전무) 박영배(삼풍건설 상무이사) 이학수(〃 구조기술사) ◇감정인=김덕재(중앙대교수) 정재철(국민대교수) 최병은(건설재해예방연구원 전문위원) 삼성건설 현대건설 대한토목학회 대한건축학회 국립시험연구소 소속 전문가 1인 ◇참고인=서울시 사고대책 본부장 소방서장 서초경찰서장 삼풍백화점음식점 주인등
  • 막오른 휴전협상(6·25내막/모스크바 새증언:21)

    ◎모,김일성에 「화·전 2중전략」 제시/공산측,회담초 위약한 공군력 보강에 안간힘/스탈린,부담 피하려 모의 「협상지휘」요청 거절 전쟁이 계속되는 내내 마찬가지였지만 휴전협상에 임하는 마당에서도 김일성은 스탈린·모택동 두 사람의 뜻에 철저히 모든 것을 맡겼다.김일성으로부터 긴급히 휴전협상 전략을 마련해달라는 부탁을 받은 모택동은 일단 두가지 기본전략을 마련해 주었다.한편으로 전투상황을 예의주시하는 동시에 또 한편으로는 상대방이 협상제의를 해올 경우 대표를 보내 협상에 임하라는 이중전략이었다. 그리고 모택동은 이 기본전략을 즉시 스탈린에게 보고해 그의 의중을 물었다.김일성이 협상자문을 구하며 보내온 전문 등을 첨부한 이 전문에서 모택동은 다음과 같이 밝혔다(모택동이 스탈린에게 보낸 6월30일자 전문.전문번호 N21334). 『리지웨이가 제시한 협상조건이 입수되면 그 내용을 검토한 뒤 우리의 입장을 정해야함.일단 협상이 시작되면 스탈린동지께서 직접 나서서 우리가 난처한 입장에 빠지지 않도록 협상 전과정을 총지휘해 주시기 바람』. ○“김에 회담 직접 지시” 같은날 6월30일 리지웨이 장군이 휴전협상을 제의했다.모택동은 곧바로 스탈린에게 전문을 띄어 구체적인 협상전략을 새로 제시했다.모는 이 전문에서 협상장소·시기·구체적인 방안등을 조목별로 열거했다(전문번호 N 21340). 『리지웨이가 협상제안을 해왔음. 본인의 의견은 다음과 같음. 1.김일성동지는 7월2일 혹은 3일중에 리지웨이의 휴전제의에 응하는 답을 보낼 것.그리고 시간·장소·대표자 수를 제시할 것. 2.협상장소로 리지웨이는 원산을 제시했으나 이곳이 북조선의 군기지가 있는 곳이므로 응하지 말것.38도선 부근의 개성을 제의하는 것이 어떨지. 3.협상개시 시기는 7월15일이 바람직하다고 생각됨. 4.시간이 촉박하고 회담의 중요성에 비추어 스탈린동지께서 직접 김일성과 연락을 취하고,회담을 직접 지시해 줄 것을 요청함.동시에 본인과도 연락을 유지해 주기 바람』. 그러나 협상 전과정을 총지휘해달라는 모택동의 이 요청을 스탈린은 일언지하에 거절했다.스탈린은 모택동에게 대신 협상의 모든 책임을 맡으라고 요구했다.그러면서도 회담 장소·시간·기본전략에 대해 스탈린은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다음은 6월30일 스탈린이 모택동에게 보낸 답전(전문번호 N 3917). 『리지웨이의 휴전제의에 대해서는 이를 받아들인다는 답을 라디오방송을 통해 즉시 내보낼 것.이 답신은 김일성과 팽덕회의 이름으로 내보낼 것.만약 중국 의용군 사령관의 이름이 들어있지 않으면 미군들은 관심을 보이지 않을 것임.회담장소는 38도선 개성을 절대 고수할 것. 귀하는 전문을 통해 모스크바가 휴전협상을 지도토록 요청했지만 이는 불가능한 일이며 또한 필요한 일도 아님.협상을 지도할 사람은 바로 모택동동지 당신임.우리는 기껏해야 몇가지 사안에 대해 조언이나 해줄수 있음.김일성과는 직접통신도 안됨.동지가 김일성과 직접 통신을 유지하기 바람』. 이어서 모택동은 7월2일 전선의 팽덕회·고강·김일성 3인에게 전문을 보내 협상시작 전 전선에서의 주의사항을 단단히 주지시켰다.그 주의사항은 첫째로 제1차 방어선 병력을 증강배치시키고 무기·탄약을 충분히 확보할 것.둘째,최상급 비상경계령을 발동할 것.제1차 방어선 부대들은 적의 대규모 공격과 협상을 전후해서 아군 후방에서 있을지 모를 적 공군기들의 치열한 공습에 대비할 것.셋째,서해안에 적이 상륙작전을 벌일 가능성에 대비,이를 격퇴할 준비를 갖출 것등이었다. 모택동은 이 지시문을 이튿날인 7월3일 스탈린에게 그대로 보고했다(전문번호 N 21412). 1951년7월10일 개성에서 마침내 휴전회담이 시작됐다.그러나 협상에 임하면서도 중국·북한군은 우세한 장비를 갖춘 유엔군에 대한 군사적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협상 시작 뒤 군사력강화방안에 대해 모택동은 7월18일 스탈린에게 다음과같은 전문을 보냈다(전문번호 N 21646). ○대공포망 강화 제의 『전선에서 적극공격을 펴지 않고 방어전략만 계속하면 적은 우리에게 군사적 압력을 넣기 위해 계속 엄청난 공습을 해댈 것임.따라서 다음 사항을 제의함. 1.대공포 망을 강화할 것.2.공중전 강화.3.공군 지휘부 강화.4.공군기 작전반경을 압록강에 국한시키지 말고 평양까지 남진시킬 것.5.잘 훈련된 폭격기 편대를 적의 후방에 침투시킬 것,적극적인 공중전을 펼 것,여러 공항·군수창고·적군 막사를 적극적으로 공습할 것. 6.지상에서도 적에게 압력을 가하기 위해 국지전 성격의 공격작전을 여러 지역에서 동시에 감행할 것』. 그러나 이같은 적극적인 군사작전 구상은 오히려 강화된 유엔군의 공습 때문에 큰 차질을 빚었다. 51년 8월11일 모택동은 스탈린에게 전문을 보내 사정이 매우 어려워진다고 호소하고 세만회를 위해 평양북쪽에 비행장 건설과 소련의 추가지원을 긴급요청했다(전문번호 N 22764). 『현재 활주로를 건설하고 있으나 밤낮으로 계속되는 적의 공습 때문에 공사를 마무리할 수가 없음.우리의 대공포는 8천m 상공에 있는 적 폭격기에 미치지 못함.공습을 받아 새로 보수해 놓으면 또 폭격을 받고…이런 식으로 계속 되풀이되고 있음.따라서 중국·조선군 비행단과 소련항공여단 4개 여단을 동시에 조선으로 이동시키기로 한 계획은 수정이 불가피하게 됐음.9월로 예정됐던 이들 비행단의 적전계획은 연기돼야함. 우리는 중·조선군 항공단의 조선진출 전초기지로 평양 북쪽에 비행장건설을 제안 함.이곳은 적공군 기지로부터 멀리 떨어져 적 폭격기가 접근해도 쉽게 격퇴할 수 있음.소련정부에 대해 중국 안동에 주둔하고 있는 3개 대공포 여단을 조선으로 이동시키는 방안을 검토해 줄 것을 요청 함.이는 중국국경 지역 안수에 건설중인 비행장 방어를 위해서 임.동지의 지시를 기다림』. 이 요청을 받은 스탈린은 8월17일 모택동에게 답전을 띄웠다(전문번호 N 4757.대통령문서보관소).스탈린은 이 전문에서 안수지역 비행장건설을 10월20일까지 완공해 늦어도 11월 이전에 중·조 공군이 이곳으로 이동해 작전에 참가할 수 있도록 하라고 지시했다.스탈린은 이를 위해 소련의 2개 대공포 여단을 안수지역으로 보내 비행장 건설을 방어케 하겠다고 약속했다.스탈린은 이 대공포 여단은 안동지역에 배치돼 있는 병력을 빼내오겠다고 밝혔다. 이 무렵 모택동은 미군의 공습에 거의 속수무책이었다.모는 이밖에도 소련군사고문단의 추가파견을 줄기차게 스탈린에게 요구했다.그러나 스탈린은 고문단파견에 동의하면서도 가능한한 숫자를 줄이려고 해 두사람간 줄다리기가 계속됐다.다음은 9월8일 모택동이 스탈린앞으로 보낸 전문(소련군총참모부 제2총국.전문번호 N 23703). 『51년 7월27일자 전문에서 본인은 스탈린동지께 조선에서 싸우는 중국의용군부대에 소련군사고문단을 파견해 줄 것을 요청했음.이 문제와 관련,소련군사고문단장 크라소프스키동지와 협의한 결과,83명의 군사고문관이 필요 함. 1.의용군사령부에 10명의 고문관이 필요.인원내역=고문단장(1)참모총장고문관(1)작전분야(1)정보분야(1)통신분야(1)후방(1)탄약(1)포(1)탱크(1)엔지니어고문(1).이밖에 5개군에 각2명씩 총10명.그리고 21개 병단에 모두 63명. 이들 고문관들은 51년9∼10월 사이 북경을 거쳐 조선으로 보내주면 좋겠음』. ○「고문관 파견」 실랑이 9월12일 스탈린은 모택동의 군사고문단 파견요청을 숫자를 줄여 일부만 충족시켜 주었다.6억 루블의 추가군사차관 요청은 그대로 집행해주었다.스탈린은 중국의용군 사령부에 고문관 5명만 파견하겠다고답했다. 그러나 모택동은 9월20일 스탈린앞으로 전문을 보내 5개군에 각각1명씩 모두 5명의 고문관을 보내달라고 재차 요청했다.당초에는 각2명씩 모두 10명의 고문관 파견을 요청했다.모택동은 이들을 9월말 혹은 10월초순까지 북경에 도착토록 해주면 곧바로 전선으로 투입하겠다고 말했다.군사지원을 둘러싼 두 사람간의 줄다리기는 휴전협상 내내 이런 식으로 계속됐다. ◎새로 밝혀진 사실/중·소 협상장소·날짜까지 지시/김일성에 명령조로 전문 보내 19회에 나간 전쟁중의 김일성의 모스크바·북경방문 사실부터의 내용은 사실상 거의 전부가 새로운 사실이라고 할 수 있다.이러한 새로운 발견사실의 의미를 중심으로 간략하게 검토해 나가보자. 휴전협상이 시작되면서도 김일성은 주요전략을 스탈린과 모택동에게 자문하였고 모택동은 항상 스탈린과 상의하였다.따라서 한국전쟁에서의 휴전협상은 사실상 자본주의 최고 지도부와 사회주의 최고 지도부와의 전체 대 전체식의 협상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스탈린은 사실상의 주도자였으면서도 모택동의 이러한 요구를 거절하였다.그는 상세한 사항까지 깊숙이 개입하면서도 구체적인 협상의 과정에서 오는 책임과 부담을 지지않으려 하였던 것이다.스탈린은 또한 전쟁 진행중 모택동이 요구하는 군사고문단의 배치에 계속 신중하였다. 김일성에 대한 모택동이나 스탈린의 권고사항은 주권국가에서 제안하는 권고사항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철저하고 구체적이고 명령적인 것이었다.즉 그들의 지시는 김일성이 움직이거나 변경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었다.본문에서 볼 수 있듯이 그것은 휴전협상의 응답 날짜,장소,개시시점까지 지시,마치 군대의 상관이 부하에게 내리는 지시와 같았다.(실제로 그들의 용어 역시 「지시」였다)이점에서 오늘에 반추컨대 미국과 유엔의 협상전략이 모스크바와 북경을 향했던 것은 틀린 전략이 아니었다.종전후 김일성이 주창한 주체사상과 제제는 사실상 이러한 극단적인 반주권성과 종속성의 역설적 반발이었다.
  • 미군정의 공과(새로 쓰는 한국현대사:24)

    ◎자국입장 살리며 한국군정 수립에 큰 기여/기득권층 흡수… 일제잔재 청산의 걸림돌로 미군정은 1948년 8월15일 대한민국이 공식출범하는 것으로 사실상 막을 내렸다.1945년 9월9일 미군정이 시작된지 3년여만에 군정이 종식된 것이다.미군정은 이보다 앞서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이승만으로부터 경찰과 해안경비대,국경수비대의 지휘권을 포함한 주한미군사령관이 행사하고 있는 모든 직무에 대한 이양요청을 받았다.주한미군사령관은 8월11일 이에 동의하고 이양절차를 신속히 밟기 시작했다. ○좌우익대립 평정 공헌 그러나 미군의 완전철수는 다음해인 1949년 6월29일에 이루어졌다.5백명의 군사고문단을 남겼으나 한국은 미국의 태평양방위선 밖으로 밀려나 있었다.이렇듯 한국은 미국의 영향권으로부터 멀어졌지만 미군정 3년여는 이 땅에 많은 것을 남겨 놓았다.그렇다면 해방공간에서의 미군정의 공과는 무엇일까.이 물음에 대한 해답은 한국현대사,이른바 해방정국사를 푸는 중요한 키 노트가 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문제이기도 하다. 그평가는 시각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다만 자국의 입장을 최대한 살리는 범위에서 한국의 민주정부 수립을 추진한 미군정은 결국 이승만을 중심으로 한 단독정부를 수립시켰다는 잠정적 결론을 도출해내기에는 별 무리가 없다.이 대목은 매우 중요한 것인데 미군정은 이승만을 전면에 부상시킬 의도를 처음부터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그래서 5·10선거 직전까지도 김규식에 기대를 걸었다.그리고 실제 국회의원 선거(서울 동대문 갑구)에서 이승만을 낙선시키려는 공작도 했다. 어떻든 미군정은 이승만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김규식이 정계은퇴 의사를 분명히 하는 바람에 싫든 좋든 간에 이승만의 등장을 방관할 수밖에 없었다.그래서 이승만과 경선하기 위해 밀었던 전 미군정 경무국장 최능진의 입후보 등록을 취소시켰다.이에따라 5·10선거에서 국회의원에 당선한 이승만은 확고한 정치적 발판을 굳히고 국회의 간접선거를 통해 대통령이 되었다. 이승만이 등장한 마당에서 미국이 그를 굳이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동서대립의 이데올로기 갈등 속에서 그만한 인물을 찾기도 실상 어려웠기 때문일 것이다.그런 의미에서 미군정이 좌우익 대립을 어느 정도 평정한 것은 군정의 공헌쪽에다 비중을 실을 수 있을 것이다.이렇듯 혼미한 해방공간에서 45년 12월 경찰이 창설된데 이어 46년 1월에는 국방경비대가 창군되었다.미군정의 병력과 경찰력의 확보는 정치세력,특히 좌익의 극단적 움직임과 연관성을 갖는다. ○한민당계 인사 큰 혜택 군에는 광복군 출신을 비롯,일본군 및 만주군 출신들이 포진했다.이 가운데 일본군 출신들이 두각을 드러내 군의 주도적 위치를 차지해버렸다.경찰의 경우도 조선총독부 시절의 인물들이 그대로 끼어들었다.이는 미군정이 일제치하의 경찰을 좌익색출에 적극 활용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실제로 경찰은 1946년 9월 총파업과 10월폭동,3·1절 좌우충돌,3월 총파업,4·3사태를 진압하는데 공헌했다.또 일본군 출신을 주축으로 한 군 역시 46∼50년까지 발생한 반란사건 진압과 토벌의 주력이 되었다. 미군정은 정부수립까지 가는 험난한 길을 걷는데 일제시대 기득권층을 그대로 흡수한 측면이 없지 않다.이는 정부수립 후 일제잔재를 청산하는 과정에서 걸림돌로 작용했다.해방 원년 일본인 관리들이 물러난 자리에 7만5천여명의 한국인을 앉혔다.그 과정에 미군정의 인사정책이 그대로 반영되어 영어에 능통한 한국인과 일제하의 관료를 우대했는데,한민당계의 인사들이 큰 혜택을 입었다.미군정이 좌우합작을 지원할 무렵에는 안재홍과 같은 인물이 남조선과도정부 민정장관으로 임명되었으나 한민당계에 밀렸다는 것이다. 미군정은 일본이 침략정책을 강화하기 위해 만든 모든 악법을 19 45년 10월9일 법령11호에 따라 폐기해버렸다.여기에는 정치범처벌법,예방검속법,치안유지법,출판법,정치범보호관찰령,경찰의 사법권 등이 포함되었다.미군정은 이 악법들의 폐지 이유를 「한국인들에게 정의의 정치와 법률상의 균등을 회복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미군정은 소련의 한반도 적화정책의 징후가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많은 자유를 안겨주었다.초기에는 공산주의 활동을 용인한 것은 물론 출판언론의 자유도 열어주었다. 패전국 일본이 남겨놓은 재산은 기업의 경우 전체의 90%,토지는 전 국토의 12·5%나 되었다.이 재산은 일제가 36년 동안 착취한 것이어서 국민들의 관심도 컸다.이른바 적산으로 분류한 이들 재산을 법령 제33호에 따라 우선 군정청 소유로 했다.적산을 한국인들에게 매각하지 않겠다는 조항도 명문화했는데,이는 뒷날 한국에 세워질 정부에 맡긴다는 방침이었다.특히 토지의 경우는 여론조사에 붙였다.그러나 대다수의 의견이 정부수립 이후의 처리를 희망했다. 토지(농지)문제는 특히 북한으로부터 공격적 선전자료가 되었다.북한은 소련의 조정에 의해 1946년 초 토지개혁을 단행한 터여서 미군정을 호되게 비판했다.하지만 미군정은 적산을 대한민국 정부수립과 더불어 재정재산협정에 따라 한국에 넘겨주었다.미군정은 다만 농민을 보호하기 위해 농지 소작인이 수확량의 3분의 2를 차지하도록 규정하는 법령 제9호를 해방 원년에 제정했을 뿐이다.특히 미국의 입장은 재산처분에 관한 한 무리수는 두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미군정은 행정권의 민정이양을 위해 남조선과도정부를잠정적으로 만들었다.1946년 3월 법령 제64호를 적용하여 군정청기구의 국을 부로 바꾸고 군정체계를 확립했다.각 부처장으로 한국인을 채용하여 한미 양부처장제를 실시한 것도 이무렵이다.이해 9월 군정장관 A L 러치는 특별발표에서 행정권 이양의사를 밝혔다.이로 인해 미국인들은 고문자격으로 부결권만 행사하는 가운데 두 나라 국어를 사용한 종래의 모든 문서가 한국어로 단일화되었다. ○적산 한국정부에 이양 남조선과도정부가 한국의 정부수립을 대처한 미군정의 조치였다면 1946년 12월에 개원한 남조선과도입법의원은 민주주의 예행이라 할 수 있다.입법의원은 김규식을 의장으로 한 관선 45명,민선 45명으로 구성되었다.민선의원의 경우 인구비례에 따라 각 도에 정원을 배정했다.이 민선의원들은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선거를 통해 선출되었다.그래서 입법의원은 국민대표기구이자 입법기구로서 초보적이나마 현대적 의회였다. 이 과도입법의원은 미군정의 좌우합작운동을 수용한 측면이 있다.다시 말하면 미군정은 좌우합작운동을 초기부터 지원하는 대신 이를 과도입법의원과 연결시켰던 것이다.어떻든 입법의원은 입법기구로서 남조선과도정부 및 그로부터 분리 독립한 법원과 더불어 3권분립 관계를 이루어냈다.이것이 바로 대한민국의 기틀이 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웨드마이어중장 연설」 벽보/트루먼의 특사 “공가주의 투쟁 자제” 역설/“권리쟁탈의 욕망 제일 큰 문제” 지적/「조선의 인권·재산권 보장」 방침 천명 1947년8월 미군정 당시 한국을 방문했던 미 대통령(H S 트루먼)의 특사 A C 웨드마이어 중장(1897∼1990년)의 연설요지를 실은 벽보가 발견되었다.서울신문 특별취재반이 서울 중랑구 중화2동 김보영씨(67)로부터 제공받은 이 벽보는 한국에 대한 당시 미국 정책의 흐름을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끌었다. 벽보는 서두에 「현 세계의 여러가지 문제중에 권리쟁탈의 욕망이 제일 큰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이는 아마도 동서냉전체제 아래서의 갈등을 비유한 것으로 풀이된다.그가 1947년 8월26일 김포공항을 통해 입국,10여일 한국에 머물렀다는 사실을 고려하면이 벽보는 9월쯤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그가 한국에 머물 무렵은 제2차 미소공동위가 교착상태에 빠진 가운데 남조선노동당(남로당)이 선동하는 군중대회가 열을 올리고 있을 때였다. 이어 그는 「이러한 욕망을 없애려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고 밝히면서 「이 욕망을 군사적이 아니고 화가나 문학가의 붓으로,또 바이올리니스트의 활로 없애면 얼마나 아름답겠느냐」고 아주 낭만적인 표현을 썼다.그리고 「욕망을 없애거나 줄이면 더 좋은 목적을 쉽게 실현할 수 있다」는 간접적인 말로 공산주의 투쟁의 자제를 당부했다. 이 벽보에는 「조선이 완전 자유독립국가를 만들도록 인권과 재산권 보장,자유기업을 장려하겠다」는 내용도 들어있다.그의 재산권보장 발언은 미군정이 토지개혁을 장차 수립될 한국정부에 넘겨주겠다는 확고한 방침으로 나타났다.패전 일본으로부터 환수한 적산도 처분하지 않고 뒷날 한국정부에 이양한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웨드마이어 장군의 조선여행중의 연설」요지를 전제로 한 이 벽보의 크기는 가로 28.5㎝,세로 50.5㎝.그는 한국을 방문한뒤 냉혹한 판단으로 일관한 「웨드마이어 보고서」를 썼다.오하마 태생의 육군중장이었던 그의 보고서는 미국 대한정책의 골격이 되었다.
  • “다양한 장르”… DMZ주제 전시회

    ◎8월1일부터 15일간 전국 50여개 화랑 참여/통일·환경문제 등 미래상 조명/100여 작가 작품 전시… 「토론마당」 개최도 국토 분단의 상징이며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생태환경이 파괴되지 않고 보존돼 있는 비무장지대(DMZ)를 주제로 민족분단과 통일,나아가 인류환경보존의 문제를 다각적으로 살펴보는 대규모 전시회가 광복절을 전후해 열린다. 「비무장지대를 민족대공원으로 만들자」는 문화운동을 펼쳐온 비무장지대 예술문화운동작업전 조직위원회(위원장 이반 덕성여대교수) 실행위원회는 오는 8월1일부터 15일까지 「비무장지대 작업전」(FRONT DMZ)을 개최한다. 지난 91년부터 격년제로 열려 3회째를 맞는 올해 전시회는 광복 50주년과 유엔이 정한 「관용의 해」를 기념하는 의미에서 비무장지대 밖의 50여개 화랑에서 동시다발적으로 1백여명 작가의 작품을 전시하는 전국적인 행사로 치러진다.전시내용도 비무장지대가 상징하는 민족분단·통일·역사·정치·사회·경제등 이념적 주제부터 생태계 및 환경보존에 관한 주제,비무장지대의 미래상에 관한주제에 이르기까지 폭을 넓혔다. 작가선정위원회는 출품작가들을 30∼40대의 젊은 층을 주축으로 구성,다양한 장르에서 왕성한 창조성과 실험정신을 엿볼 수 있도록 했다.고낙범 장문걸 오병욱 배석빈 이강화 도학회 류인 김현근 김재홍 안창홍 최석운 강경구 문봉선 조순호 김아영 박문종 김선두 김호득 오원배 양주혜 임옥상 김병종 오치균 신현중 임영선 조덕현 강요배 박항률 강관욱 성선옥 황창배 안성금 석철주 홍승혜 윤장렬 윤동천 공성훈 이불 전항섭 이인 임정기 민정기 육근병 안필연 이건용 김무기 최정화 한만영 손장섭씨 등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작가들이 많이 포함돼 있다. 특히 이번 전시회를 계기로 비무장지대작업전의 성과를 정리하고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뜻에서 오는 7월 총 7백쪽의 「비무장지대의 과거,현재,미래」라는 제목의 자료집을 발간키로 했다.또 8월11일에는 국내외 학자들이 참가하는 「비무장지대 국제토론마당」을 세종문화회관 대회의실에서 갖는다. 행사 개막식은 8월9일 인사동 하나로빌딩앞 공터에서 열릴 예정이다.개막행사에서는 통일시 낭송회,얄타회담과 천막안에서의 한반도 분할을 다룬 코믹풍자극,독일통일 당시의 비디오모음쇼등으로 꾸며진다. 한편 서울의 참가화랑은 공평아트센터,청남갤러리,덕원갤러리,관훈갤러리,가나화랑,가람화랑,갤러리 동주,상문당,서호,나갤러리,대림화랑,동산방화랑,모인화랑,백송화랑,백악 예원,서경갤러리,선화랑,세계화랑,예성화랑,인데코,조형화랑,토도랑,한선갤러리,갤러리 이콘,인데코,갤러리 이즘,서림화랑,샘터화랑,조선화랑,최갤러리,J&C갤러리등.또 지방에선 맥향화랑(대구),쌍인화랑(광주),스페이스 월드(부산),갤러리 한솔(제주),예인화랑(마산),무심갤러리(청주),아라리오화랑(천안) 등이 참여한다. 주최측은 참가작가들과 함께 오는 7월15일 동해안지역 비무장지대와 판문점을 답사할 계획도 갖고 있다.
  • “만화 위상 높이자”… 잇단 기획전

    ◎「만화산업 진출의 해」맞아 「정예 13인전」 「서울페스티벌」 등 5개 열려 영상산업이 산업자체의 고부가가가치에 의해 국가의 중요정책산업으로 부상함에 따라 영상산업의 핵인 만화산업의 중요성이 크게 강화되고 있다.더구나 올해는 미술의 해 이자 만화산업 진흥의 해.이같은 흐름에 발맞춰 우리 만화의 어제와 오늘을 조망하고 만화에 대한 일반의 인식을 바꿔 문화상품으로서 만화의 발전을 꾀하려는 갖가지 전시가 줄을 잇고 있다. 「우리 만화 가까이 보기­한국정예만화가 13인전」을 비롯,「껍데기는 가라」 「가자 만화의 나라로」 「제1회 서울국제만화페스티벌」 「시사만화를 통해본 해방50년」 등이 그것. 이중 지난 14일부터 전시중인 「한국정예만화가 13인전」(서남 미술관·3770­2672·5월7일까지)은 우리 만화의 현실을 새로 가늠,위상을 높이고자 기획된 전시로 13명의 만화작가가 참여,40m의 벽면에 대표적인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참여작가는 이현세 김수정 박재동 백성민 이두호 이희재 윤승훈 오세영 최정현 허영만 황미나 이용배 등으로 만화원고·캐릭터,그리고 만화원고중 완성직전 연필스케치그림인 콘티 등을 전시하고 있다.또 황순원 원작의 만화영화 「소나기」 등 5∼30분 길이의 중·소형 만화영화 5편도 상영중이다. 4월혁명연구소 역사문제연구소 등이 공동주최한 「껍데기는 가라」(21세기화랑·735­4805·15∼24일)는 4·19와 유신개헌반대 그리고 5·18에 이르는 민주화 투쟁에 관련한 시사만화와 그림 사진작품을 모은 전시.5·18까지의 민주화투쟁을 불러일으킨 한 원인으로서 이승만 독재정권의 실정을 만화에 대한 중요성과 함께 일깨우기 위해 꾸민 전시로 김정헌 신학철 등 작가 10여명의 대작 10편이 전시돼 있다. 오는 5월2일부터 24일까지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 2층(580­1114)에서 열릴 「가자 만화의 나라」는 공공미술관에서 처음 개최되는 어린이 대상의 창작아동만화 큰잔치.한국아동만화의 대표적인 작가 이로마 이재석 이현세 등 40명의 작품이 출품될 예정이다.극작만화 이외 만화일기 코너와 만화영화 코너,우리의 상고사를 그림으로 보는 「대쥬신제국사(대조선제국사)」코너 등도 마련된다. 문화체육부가 오는 8월11일부터 16일까지 서울 삼성동 한국종합전시장에서 개최하는 「제1회 서울국제만화페스티벌」(’95 SICAF)은 저급한 패러다임으로 치부되고 있는 만화의 위상을 바꿔 만화를 예술의 한 장르로 공인받게해 만화산업의 획기적 발전을 다지려는 야심찬 행사.이 행사에는 한국을 포함,미국과 프랑스 등 서구,그리고 일본 등 동남아의 주요만화제작국의 만화잡지와 만화단행본 3백여편이 전시될 예정이다.또 5∼1백분 길이의 국내외 만화영화 1백여편과 만화주인공을 응용한 팬시,PC및 비디오 게임 등 만화산업 전단계의 상품들이 소개될 예정이다. 국립현대미술관(503­7744)이 오는 8월17일부터 9월15일까지 여는 「시사만화를 통해 본 해방 50년」은 1945년 이후 현재까지 한국 현대사의 흐름을 시사만화가의 시각을 통해 보여주는 전시.이 전시에는 서울신문의 「까투리 여사」연재작가였던 윤영옥,「고바우」의 김성환 등 50여 작가의 2백여점이 나올 예정이다.특히 이 전시는 해방 이후 50년 동안 우리사회의 시대정신과 시사만화가 지닌 역사성과 예술성을 접할수있는 좋은 기회가 될것 같다.
  • 「정답 2개」·「정답없음」문제 4∼5개/96수능시험 어떻게 치르나

    ◎암기력보다 사고력 측정에 역점/수리탐구 공동출제 비중 75%로 국립교육평가원이 28일 발표한 올해 수능시험 출제방향의 가장 큰 특징은 영어시험이 어려워진다는 것이다.따라서 특히 상위권학생들은 영어점수의 개인차가 지난해보다 커질 전망이다. 그밖에 출제범위나 배점·문항수·시험시간 등 전체적인 틀은 95학년도 시험과 비교할 때 변동이 없다. ▷영어출제방침◁ 영어의 듣기문제가 50문항중 10문항으로 늘어 난다.따라서 배점도 높아진다.8문항이 출제됐던 지난해의 배점이 총 7.2점이었으므로 올해는 9∼10점 가량 될 전망이다. 변별력을 높이기 위해 전반적인 난이도도 높아진다.95학년도 시험이 다소 쉽게 출제돼 상위권학생들의 실력 판별에 문제가 있었다는 점 때문이다. 따라서 올해는 지문의 길이가 길고 다양한 분야에서 생소하게 느껴질 문제가 출제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이에 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난해 한 문항의 지문은 60∼90개 단어로 이뤄졌으나 올해는 1백단어 정도로 늘어난다.수험생들은 여러 분야의 긴 영문을 빨리 독파하는 연습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출제방향◁ 고교교육과정의 내용과 수준에 맞춰 가능한한 문제상황중심으로 통합교과적 소재를 활용한 문제가 출제된다.단순한 기억력이나 암기력평가를 지양하고 사고력을 측정하는 문제가 출제된다. 5지선다형 객관식에 정답이 2개이상인 문제 3개정도와 「정답없음」답지가 있는 문제도 1∼2문제 나온다.문항별 정답률은 20∼80% 정도 되도록 출제되며 영역별로 상위 50%가 평균 50∼60점을 받도록 난이도를 조정한다. ▷출제범위◁ 출제범위는 전교과과정이다.언어와 외국어는 계열구분이 없다.수리탐구영역은 계열을 분리해 출제하되 75%정도는 공통문제를 낸다. ▷시험시간 및 배점◁ 언어영역과 수리·탐구(Ⅰ)은 90분,수리·탐구(Ⅱ)는 1백분,영어는 80분이다.언어영역의 듣기평가는 시작후 15분,영어듣기는 12분안에 교육방송이 방송하는 내용에 따라 문제를 풀면 된다.농아자는 듣기평가를 지필검사로 대치하고 고난청자는 보청기를 사용할 수 있다.1교시는 9시에 시작되지만 8시30분까지 입실해야 한다. ▷원서교부및 접수◁ 8월11일 조간신문에 시험시행에 관한 자세한 내용이 공고된다.응시원서는 원본과 OMR용을 함께 학교별로 일괄 제출한다.다만 주소를 옮긴 졸업생이나 검정고시출신자는 개별 제출해도 된다. ▷채점 및 성적통지◁ 채점은 평가원이 주관하고 채점위원회가 구성된다.공란이나 이중표기 등은 채점위원회의 원칙에 따라 개별확인한다.채점은 12월20일쯤이면 완료돼 수험생에게 통보될 예정이다. ▷부정방지책◁ 문제지를 A·B 2개유형으로 제작한다.앞뒤자리와 대각선에는 다른 유형의 문제지가 배부된다.같은 학교 학생이 전후좌우에 앉지 못하도록 수험번호를 매긴다.
  • 「95 서울국제만화페스티벌」 일정 확정

    ◎8월11∼16일 한국종합전시장 정부가 주최하는 국제만화전인 「95 서울국제만화페스티벌」 일정이 확정됐다. 문화체육부는 주요 만화수출국인 미국·일본을 포함해 세계 30개국이 참가하는 대규모 만화페스티벌을 오는 8월11일부터 16일까지 서울 한국종합전시장(KOEX)태평양관과 국제회의실에서 연다고 4일 발표했다.문체부는 만화산업 육성과 국산만화의 본격적인 해외시장 진출을 위해 만화출판물·애니메이션 등 만화의 전 부문을 포함하는 국제만화종합전시회를 올해부터 개최키로 했다고 밝혔다. 문체부에 따르면 이번 페스티벌은 각종 만화전시와 판매,이벤트,학술행사및 부대행사 등으로 다채롭게 꾸며진다. 전시는 애니메이션 만화를 위주로 한 기획전시,인형·종이·진흙을 이용한 특수만화기법과 컴퓨터게임 등의 특별전시코너로 구분해 열린다.기획전시코너에는 국내 제작사와 작가가 참가하는 애니메이션 경연에서 선정한 수상작과 주한외국문화원을 통해 모집한 해외우수작,칸·안느·히로시마등 유명 국제만화전 수상작을 초청 전시한다.또 출판만화 쪽으로는 세계최대의 만화페스티벌인 프랑스 앙굴렘만화축제 수상작들을 소개할 계획이다.이와 함께 외국 창작만화를 전시하는 한편 우리 만화역사관을 설치해 만화조각,병풍식 만화,패널등 우리 고유의 분위기를 드러내는 만화와 도서를 전시한다 특별전시코너에는 세계 유명만화의 주인공과 물건등을 재현하는 특별효과실과 컴퓨터게임실을 마련하며 국내 만화관련 6개 학과 학생들의 창작 애니메이션,뮤직비디오등을 모은 코너도 설치한다.또 상품판매코너를 국내외별로 설치해 CD­롬과 게임소프트웨어등 첨단상품과 만화비디오 주제가음반을 판매한다. 이밖에 만화인형극과 컴퓨터음악공연,캐리커처 그려주기,유명만화가 사인회,국내 유명작품 제작과정 실연,캐릭터 공모전등의 행사가 페스티벌 기간중 함께 열리며 외국의 유명 만화작가 특별초청강연,심포지엄등 다채로운 학술행사도 마련된다. 이번 페스티벌에는 국가예산 1억원과 대기업·만화업체의 협찬금 6억원등 모두 7억원이 소요된다. 김수남 페스티벌 추진위원장은 이번 행사와 관련해 『국제시장에서 점차 중요성과 규모가 확대되는 만화산업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을 높이고 그 지원확대를 위한 첫 행사로 의미가 크다』면서 『1회성이 아닌 본격적인 비엔날레 성격의 지속적인 행사로 발전시키기 위해 축제의 수익금중 일부를 차기 전시회 개최에 쓸 계획』이라고 말했다.
  • 합의이행 첫발… 효과보다 “상징”/미의 대북제재 완화 발표문/전문

    94년 10월 21일 합의된 미·북한 기본합의문을 이행하기 위해 우리는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 조치를 완화하기 위해 아래와 같은 조치를 취할 것이다.이같은 최초의 조치들은 ▲핵계획및 시설을 동결하고 ▲동결을 확인하는데 미국및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협력하고 ▲폐연료봉의 안전한 보관을 보장한다는 북한의 결정에 대한 응답에서 나온 것이다. 추가적인 대북한 경제조치들의 완화는 핵문제와 여타 우려 분야에 대한 추가적인 진전에 좌우될 것이다. 1.통신및 정보=북한과 미국간에 전화 통신 연결에 관련된 거래 허용,개인적인 여행과 관련한 크레디트 카드 사용및 여타 여행 관련 거래 허용,언론인들의 지국 개설 허용. 2.재정거래=미국에서 시발되거나 종결되지 않는 거래를 결제하기 위해 미은행 시스템을 사용하도록 북한에 허용한다.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DPRK) 정부의 물권이 아닌 동결 자산에 대한 봉쇄를 해제한다. 3.여타 무역=미제철업소에서 내화 물질로 사용되는 북한으로부터의 마그네사이트 수입을 허용한다.북한과 중국은 세계시장에서천연 마그네시아및 마그네사이트의 주요 공급원이다. 4.기본합의문을 이행하기 위한 여타조치=워싱턴과 평양에 앞으로 연락사무소를 설치·운영하는 것과 관련된 거래를 허용한다.북한 경수로 사업에의 미국회사 참여,대체에너지 공급,폐연료봉 해체 등 미·북한 기본합의문에 규정된 사업에 대해서는 적용 법규에 맞춰 케이스별로 검토한다. ◎미의 대북경제제재 일지 ▲50년 6월28일=대북 금수조치 발효 ▲ 〃 12월17일=미국내 북한자산 동결 ▲51년 9월1일=최혜국(MFN)수혜대상에서 제외 ▲55년 8월26일=무기금수 조치발효 ▲61년 9월4일=대공산권에 적용하는 국제지원 일체중지 대상에 포함 ▲62년 8월1일=미국의 대외지원 금지대상에 포함 ▲75년 1월3일=무역특혜(GSP)적용대상에서 제외 ▲86년 10월15일=미국 수출입은행의 차관보험 및 보증대상에서 제외 ▲88년 1월20일=대북 금수,국제지원금리,무기금수 강화 ▲89년 1월3일=자산동결 일부 완화,학술·스포츠·문화등 비정치분야의 양측간 교류 일부 허용 ▲ 〃 2월2일=자산동결 추가완화,국가안보에 영향이 없는 정보관련자료 및 반출허용 ▲ 〃 4월24일=금수 일부완화,인도적 목적의 교역에 한해 선별허용 ▲92년 3월6일=군수물자 거래금지 대상에 포함 ▲93년 7월16일=미국무부,대북한 민항여행 위험 경고발효 ▲94년 8월11일=미상원 대북한 재정지원을 금지하는 대외활동세출예산법 수정안 만장일치로 통과 ◎미의 대북제재 완화 의미/「마그네사이트 수입 허용」 미이익 반영/관계개선­남북대화 연계 “대북 메시지” 클린턴 미행정부가 21일 발표한 대북한 경제제재완화조치는 「최소한의 합의이행」으로 평가되나 한국전쟁 이후 40여년만에 처음으로 경제관계 개통의 시발점이 된다는 면에서 큰 의미가 있다. 이번 완화조치는 미국이 북한에 대해 가하고 있는 각종 제재나 규제의 1%에 불과할 것이라는 미국관리의 설명에서도 알수 있듯이 미국정부는 매우 신중한 자세로 임했던 것이다.작년 10월 제네바합의후 90일만의 시한을 하루 앞두고 발표한 이번 조치는 ▲미·북한간의 직통전화허용 ▲미여행자의 크레디트 카드사용허용 ▲언론지사 설치허용 ▲미국은행을 경유하는 북한과 제3국과의 금융거래허용 ▲일부 동결자산해제 ▲북한의 마그네사이트 직수입허용 ▲연락사무소설치,경수로 건설,대체에너지등 기타 합의사항을 이행하기 위해 필요한 거래는 허용한다는 것이다. 이같은 내용은 마그네사이트를 제외하고 미­북한간의 직거래무역은 물론 직접투자 등도 아직 허용하지 않는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이는 아직도 북한과는 정상거래나 통상을 할수 없다는 미국의 입장을 단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다만 용광로 내벽의 내구재등 제철과정에 사용되는 마그네시아,마그네사이트의 직수입을 허용한 것은 이 자원의 생산국이 중국과 북한 두나라 뿐인데다 중국이 공급독점을 악용,엄청나게 수출세금을 부과하는 등으로 인해 미국의 철강업계가 큰 타격을 입고 있다는 진정과 함께 이의 직수입은 북한의 외화벌이에도 좋고 동시에 미국의 철강업계도 좋아하게 된다는 점을 높이 산것으로 해석된다. 이번 발표중 언론사 사무소의 개설허용은 어디까지나 상호주의를 적용,북한이 미국언론의 현지 취재활동을얼마나 보장해주느냐에 따라 상응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관계자는 설명하고 있다.미국무성 관계자는 평양에 미국언론의 지국이 생길 경우 북한측이 이들 언론지사에 적용할 예상활동범위는 현행 외교관의 활동영역에 준하는 자격을 줄것으로 예상된다. 금융거래도 미·북한 은행과의 직접거래는 아직 허용되지 않으며 다만 북한측이 제3국과 거래를 할때 미국은행을 활용할수 있도록 한것이다. 북한내 여행자에 대한 1일 경비제한은 현행 2백달러에서 완전히 철폐되었고 크레디트 카드도 사용할수 있게 되었으나 우선 크레디트회사가 북한내 점포들과 일일이 상업계약을 체결해야만 실질적인 거래가 이뤄질수 있다. 미국이 이번에 「최소한의 완화조치」를 취한 이유는 남북한간의 정치적 대화가 이뤄지지 않는한 미·북한관계도 급속하게 진전시킬수 없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볼수 있다.공화당이 이끌고있는 미의회가 남북한관계의 진전이 없이는 대북한규제의 완화는 안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도 이같은 신중한 조치의 배경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뿐만 아니라 미·북한의 합의문을 북한이 얼마나 충실하게 이행하는지를 봐가면서 상응한 조치를 취해나간다는 미국의 입장을 분명히 적시한 것이기도 하다. 미국무부 당국은 추가적인 완화조치는 핵합의이행의 정도와 함께 미사일 수출,테러리즘,재래식 군사력에 의한 남한위협등 「다른 관심분야」에 있어 진전의 정도를 감안,취할 것이라고 설명하고있는 점등으로 미루어 볼때 미·북한간의 완전한 경제관계는 정식외교관계가 맺어질 때나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 남북분단의 전말(새로쓰는 한국현대사:3)

    ◎미 「한반도 점령」 44년초 첫 구상/4국 공동관리→「힘의 진공화」 전략 추진/소의 대일 선전포고에 “양분” 전격 결정/전황 변화 따라 한때 “단독점령” 의지… 대소견제에 역점 □특별취재반 ▲황규호(문화부부국장급) ▲이용원( 〃 기자) ▲김성호( 〃 〃) ▲김경운(조사부 〃) 1945년 8월11일 새벽(미국 시간)미국 워싱턴 맥클로이 전쟁성차관보의 사무실.미 육군 링컨준장과 러스크대령,본스틸대령등 3명은 벽에 걸린 대형 「내셔널 지오그래픽」지도를 바라보며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곧 지도 한 귀퉁이 한반도 지형 위로 붉은 줄 한가닥이 휙 지나갔다.서울과 평양사이를 통과한 이 줄 오른쪽에 누군가가 「북위 38도」라고 썼다.세 사람은 이어 눈길을 중국대륙 쪽으로 옮겨 나직한 목소리로 뭔가를 상의하기 시작했다… 일본이 연합국측에 항복선언을 하기 나흘 앞서,전후 처리를 맡은 미 전쟁성 전략정책단(단장 링컨준장)간부 몇사람에 의해 「38선」은 이렇게 태어났다.이들이 한반도 처리방안을 논의한지 30분이 채 안되서였다. ○30분만에 「붉은 줄」 한민족의 운명을 결정지은 38선이 그려진 배경과 의미를 이해하려면 태평양전쟁 발발이후 미국이 한반도에 대한 정책을 어떻게 바꾸어왔는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일본과의 전쟁에서 연합국을 이끈 미국이 한반도를 포함한 전후처리도 역시 주도했기 때문이다. 「미국이 전쟁 막바지에 이르러서야 한반도 문제를 다루었다」는 오랜 통설과는 달리 최근의 연구성과는 미국이 일찌감치 한반도에 관심을 보였으며 전쟁의 흐름,소련과의 관계변화에 따라 한때는 한반도를 단독점령하려는 의지까지 가졌음을 보여준다.최근 비밀해제된 미 국립공문서보존기록관리국(NARA)의 「국무성 일반자료군」,워싱턴국립기록센터(WNRC)의 기밀문서,국무성 외교문서들에 따르면 미국은 1944년 2월 한반도 점령구상을 처음 마련했다.카이로회담에서 미국·영국·중국의 세 정상이 「적절한 과정에 따라」한반도를 독립시킨다고 합의한지 두달만의 일이다. 44년 들어 전황이 압도적으로 우세해지자 미국은 전후처리 방안을 세우는 기구의 하나로 국무성에 영토연구국을 만든다.이 연구국이 처음 한 일이 「한반도의 해방·점령」보고서를 만든 것이다.국무성은 이 보고서에서 종전후 미·소·영·중등 4개국의 공동점령­일정 기간의 신탁통치,또는 임시정부 수립­완전 독립이라는 3단계 안을 냈다.이 안은 「한반도를 한 국가의 세력권으로 분류하면 소련에게 넘어갈 가능성이 크므로 이를 막기 위해 여러나라가 참여해야 한다」는 의도를 담고 있었다. 최근 발굴한 국무성 메모랜덤(44년 5월 작성)에도 『한반도가 독립에 앞선 신탁통치 기간동안 소련에 의해 관리되는 것은 중대한 정치문제를 야기할 것이며 미국은 한반도가 소비에트화하는 것을 태평양 안전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하게 될 것』이라고 밝혀 소련 견제가 중요한 정책목표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어 한반도 정책의 주도권은 국무성에서 군부로 넘어가 「힘의 공백지대화」전략이 은밀히 추진된다.이 전략도 「한반도 처리문제를 섣불리 꺼냈다가 소련에게 빼앗기느니 차라리 전쟁이 끝날 때까지 논의 대상에서 아예 제외하자」는 구상에서 나왔다.「힘의 공백지대화」는 44년 10월 모스크바에서 열린 스탈린과 주소련 미대사 해리먼의 군사전략회의에서 이미 드러나고 있다.이 회의에서 스탈린은 『만주의 일본군을 효과적으로 격퇴하려면 소련 육해군이 「북부 조선의 항구들」을 점령해 작전을 수행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해리먼은 의도적으로 이에 대한 답변을 회피한다. ○소주장 의도적 외면 이 전략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 유지돼 결국 미국이 별다른 무력동원 없이 1945년 8월 한반도 반쪽을 차지하는데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45년 초 미 군부는 『태평양상에 방위체계를 구축하기 위해』한반도를 비롯한 일본점령 지역을 미국이 단독점령할 것을 정부에 건의했다.그해 2월에는 링컨준장이 이끄는 전략정책단이 새로운 한반도 처리방안을 내놓았다.이 안은 한국을 도계에 따라 넷으로 나눠 미·소·영·중등 4개국이 분할점령하되 서울과 부산·인천등 주요도시는 미국이 맡는다는 구상이었다. 미국 루스벨트대통령이 45년 4월 서거해 트루먼이 그 뒤를 잇자 한반도 정책은 또 한차례 변화를 겪는다.루스벨트가 국제주의자로서 소련과의 협력에 정책 우선순위를 뒀던 것과는 달리 트루먼대통령은 소련에 대한 견제 전략을 적극적으로 펴나간다. 국수주의자 성격이 강한 그는 45년 2월 열린 얄타회담에서 전임자가 만주를 소련 세력권으로 인정한 것 자체를 「지나친 양보」로 보았다.더욱이 원자폭탄 개발로 일본에 대한 승리가 확실해지자 트루먼은 소련이 대일본전에 끼어들기전에 일본의 항복을 받아내려고 서두른다.곧 소련이 참전하지 못한 상태에서 전쟁을 끝내면 전후 처리에 있어서도 소련을 배제시킬 수 있다고 희망했기 때문이다.따라서 45년 7월 열린 포츠담회담에서도 예의 「힘의 공백지대화」전략을 써 한반도문제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하지 않는다. 한편 동유럽의 공산화에 몰두한 소련은 괜히 미국을 자극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에서 한반도문제에 적극성을 보이지 않았다. 1945년 8월6일 미국은 일본 히로시마에 첫 원자폭탄을 투하한다.그러자 소련도 기회를 놓칠세라 9일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고 만주로 진격한다.「소련을 배제한 채 승리를 따낼지도모른다」는 미국의 기대는 물건너 갔다.미국으로서는 이제 「한반도」라는 떡덩어리를 혼자 먹을지,소련과 나눠먹는다면 그 크기는 어떻게 잘라야할지 결정할 순간이 왔다. ○고심끝 정치적 판단 미 정부 고위층은 10일 밤늦게까지 고심하다 「소련측과 나눌 수밖에 없다」는 정치적 판단을 내렸고 구체적인 「줄긋기」는 전략정책단에게 맡겼다.「한반도를 도계에 따라 분할점령한다」는 안을 낸 적이 있을 정도로 한국사정에 밝았던 링컨단장은 망설임없이 북위 38도선을 기준으로 붉은 줄을 그었다.그 줄이야말로 소련이 받아들일 수 있는 북방한계선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소련군은 8월11일 밤 함경북도 웅기를 점렴함으로써 한반도에 첫발을 내디뎠고 미군은 9월8일 인천을 통해 상륙했다.이어 소련은 8월27일 38선을 봉쇄,인적·물적 교류를 차단했다.미국도 9월2일 미국육군태평양총사령관 맥아더가 발표한 「포고령1·2·3호」에서 38선이 일본군 무장해제를 위한 경계선이 아니라 군정관할선임을 분명히 했다. 민족분단의 비극이 시작된 것이다.
  • 일제통치의 해악(새로 쓰는 한국현대사:2)

    ◎한민족 주체 말살… 남북분단 단초로/반일세력 살상·6백여만 강제징발/창씨개명·신사참배로 「정신」 황폐화/「황국 신민화」강요,「친일지식인」양산… 민족갈등의 불씨 남겨 □특별취재반 ▲황규호(문화부 부국장급) ▲이용원( 〃 기자) ▲김성호( 〃 〃 ) ▲김경운(조사부 〃 ) 우리가 일본 제국주의의 질곡으로부터 벗어나 맞이한 광복의 빛은 찰나에 그치고 말았다.1910년 국권을 결정적으로 빼앗겼다가 일제가 2차세계대전에서 패망한 1945년 8월15일 민족해방의 날.그 광복으로 일제의 압제로부터 벗어났지만,환희의 기쁨은 곧 퇴색해버렸다.다만 예측할 수 없는 파란만장한 다른 시대가 민족의 미래로 다가서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우리의 현대사는 어언 50년이 되었다.그 반세기의 역사를 회고하면서 얼핏 떠올려 볼 수 있는 말이 있다. 「미국이 한국에 깊숙이 개입해 온 시기는 일본 식민통치 전체기간을 상응하고도 남는다.팝뮤직등 한국의 잡동사니문화가 미국의 영향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그러나 지속적인 영향은 일본으로부터받았다.전후 한반도에서 두 국가를 건설한 것도 일본의 영향이다」 미국 시카고대 교수 브루스 커밍스(정치학)의 이 말을 음미할 필요가 있다.해방과 더불어 막을 올린 남북분단의 비극을 포함한 격동의 현대사 속에는 일제침략의 유산이 짙게 깔려 있는 것이다.우리가 8·15해방을 맞았을 때 민족은 지칠대로 지쳐 있었다.다시 말하면 일제36년의 파쇼통치를 통해 민족주체가 거의 말살되어 무력화한 상태였다.더구나 대전을 승리로 이끈 연합동맹국의 시각은 한반도에 뚜렷한 초점을 맞추지 못했다. 일본 제국주의는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는가.이 물음에 대답할 자료는 얼마든지 있다.1910년 강제합병 이후 복벽운동 성격의 의병전쟁과 현대정치사상에 입각,독립선언의 의미를 지닌 3·1운동에서 입은 피해는 엄청나다.한 현대사자료는 3·1운동의 경우만도 10만명 이상이 희생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1923년 8월 일본 도쿄 등을 휩쓴 간토(관동) 대지진의 피해를 한국인 폭동에서 비롯된 것으로 날조,무차별 살해한 대학살을 자행했다.당시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산하 「독립신문」은 한국인 6천6백11명이 살해된 것으로 보도했다. 일본 제국주의 정부 비호아래 자경단이름으로 저절러진 만행현장에 대한 당시 경찰관의 증언.『아이들은 줄을 세워놓고 부모들이 보는데서 목을 잘랐다.그 다음은 부모들을 찔러 죽였다.온통 피바다를 이루었기 때문에 장화를 신지 않고는 걸어다니지 못할 지경이었다』 1925년 「치안유지법」을 제정한 일제는 국내에서도 반일세력을 모두 잡아들였다.조선총독부가 각년판으로 펴낸 「조선의 최근 치안상황」에 따르면 1931년 한햇동안 붙잡아 투옥한 인원만도 3만8천7백93명에 이르고 있다.1937년 중일전쟁을 도발한 일제는 육군특별지원령 공포(1938년)를 시발로 징용령(1939년)및 학병제(1943년)실시,여자정신대근무령 공포(1944년)등으로 인명을 수탈했다. 「조선인 강제연행기록」은 모두 6백만명이 끌려간 것으로 밝히고 있다. 일제는 이 기간에 정신적 민족주체성 말살정책을 병행했다.동화정책이라는 이름으로 말과 글을 못쓰게 한 한글교육금지(1938년),고유한 성과 이름을 강탈해버린 창씨개명이 그것이다. 그리고 신사참배를 강요하면서 1940년에는 황국신민화운동을 가속화했다.전통적 씨족관념마저도 앗긴 국민의 정서는 황폐 그것이었다. 일제는 황국신민화운동을 추진하면서 1941년 태평양전쟁을 일으켰다.그리고 한국의 많은 지식인들을 침략을 찬미하고 부추기는 자리에 끌어들였다.이 과정에 반민족적 지식인들이 생겨남으로써 민족내부의 분열을 가져왔다.이는 결국 민족갈등의 씨앗을 뿌려 일제 식민통치가 남긴 가장 큰 악영향으로 남게 되었다.일제하 독립운동이 희석된 까닭도 여기 있거니와 오랜 세월을 두고 민족화해의 장애요인으로 작용했던 것이다. 그래서 대전의 전세를 차츰 유리하게 호전시키고 있던 연합동맹국의 눈에 들어온 한반도는 일본 패전 이후의 전리품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그나마 한국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킨 것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관계를 유지해 왔던 중국 국민당정부의 장개석인 것으로 알려졌다.1943년 11월 미국,영국,중국의 수뇌가 만난 카이로 회담에서다.「조선인민의 노예상태에 유의,적당한 시기에 자유독립시킬 것을 결의한다」는 내용의 관심을 보였다. 우리가 각별히 주목할 것은 포츠담회담이다.카이로회담에서 합의한 「1차세계대전 이후 일본이 탈취한 모든 지역은 반환되어야 한다」는 내용도 재확인했다.그렇다고 한반도가 민족의 손에 들어오는 것은 아니었고,전승국인 미국과 소련이 넘겨받기로 한 것이다.그리고 「적당한 시기에 독립시킨다」는 카이로선언 원칙아래 처음으로 한반도 분할점령이 논의되었다.일본의 강점지역이라는 이유로 한반도와 거기 사는 사람들은 또 다른 운명을 기다려야 했다. 포츠담회담은 미국으로 하여금 다른 전략구상을 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원자폭탄을 이미 보유한 미국은 자국의 전력이 소련보다 우위라는 사실을 감지한 것이다.이에 따라 미국은 한반도에 관한 논의를 의도적으로 지연시켰다.소련 진출을 적극 차단키로 한 미국은 소련이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1945년 7월25일 한반도 점령지시를 내렸다.하지만 미국의 주력병력은 한반도에서 먼 오키나와에 있었다. 그리하여 미국은 8월6일 서둘러 히로시마에 원폭을 떨어뜨렸다.소련은 다급한 나머지 미국이 두번째로 나가사키에 원폭을 투하하기 전날인 8월8일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고 나섰다.그리고 한반도에서 지분을 확보하기 위해 작전계획을 바꾸어 가면서 8월11일 밤 기계화군단을 포함한 소련군 25군 예하의 3개 군단과 2개사단이 황급히 한·소국경을 넘기 시작했다.미국은 소련군이 아직 한·소국경을 넘지 않은 8월11일 북위 38도선을 기준으로 한 분할선을 부랴부랴 그어버렸다. 여러 증언을 종합하면 이날 하오 2∼3시 사이에 분할선을 긋기까지 워싱턴 미 육군성 차관보 부속실 벽시계바늘은 고작 30분을 움직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분단의 역사는 너무 길었다. ◎“16세부터 노역·위안부… 한 어찌 풀까”/종군위안부 강덕경 할머니 증언/「역사의 진상」낱낱이 파헤쳐 사죄 반드시 받아야/민간기금으로 「과거」 무마 시도 일 태도 용납못해 「민간 위로금이 무슨 소용 있습니까.일본찌 정부가 낱낱이 진상을 밝히고 과거의 죄과에 대해 진심으로 사죄해야 합니다.일본 정부가 종군위안부 문제를 민간기금을 가지고 위로금을 지급하는 형식으로 무마하려는 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습니다』 꽃다운 나이에 일본 제국군의 위안부로 끌려갔던 강덕경할머니(66)는 민족자존이 회복되길 바랄뿐 돈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고 분노했다. 『철 모르는 나이에 끌려가 아무 죄도 없이 말로 다할 수 없는 고생을 해야 했던 위안부 피해자들의 50년이 넘는 아픔을 누가 알겠습니까.세월을 탓하며 사라져 간 군위안부 피해자들의 넋을 다소나마 어루만져 주기 위해서도 사죄는 받아내야 합니다』 진주에서 태어난 강덕경할머니는 16세때인 1944년 요시노국민학교(현재의 중앙국민학교) 고등과 1학년 재학중 여자근로정신대 1기생으로 일본에 끌려가 후지코시 비행기공장에서 부품깎는 일을 했다.감옥과 다를 바 없는 생활이 너무 고달파서 한밤중에 도망을 치다 군인에게 붙잡히는 바람에 부대로 끌려가 위안부 생활을 하게 됐다. 위안부 생활이 남긴 급성신우신장염으로 시달리고 있지만 그는 유엔인권위원회,세계인권대회,국제사법재판소등을 통해 반세기 동안 청산되지 않은 군위안부 문제를 국제여론화하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의 활동에 참여해 왔다.『한국 역사의 수치라고 생각하고 덮어 두어서는 안된다』는 강할머니는 민간단체들이 마련해 준 서울 혜화동 「나눔의 집」에서 같은 처지의 할머니 여섯분과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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