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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부의 잇단 대북경고성명 왜 나오나

    ◎“상호핵사찰 수용”… 대북 전방위압력/“IAEA사찰론 「핵면죄부」 못준다”/경협·수교 연계… 한·미·일 3각대응/“대화와 도발”… 북의 2중전략 제동걸기 의미도 최근 경색조짐을 보이고 있는 남북관계와 관련,한반도와 밀접한 이해관계를 맺고 있는 한·미·일 3개국 관계자들의 강력한 대북메시지가 줄을 잇고 있다.고위급회담 우리측 단장인 정원식 국무총리가 1일 북측 단장인 연형묵 정무원총리에게 전화통지문을 보낸 것을 비롯해 1일 저녁 최창윤 공보처장관이 한·미정치학회주최 학술회의 참석자들을 위한 만찬연설에서 강도 높은 톤으로 북측의 2중적 태도를 성토했고,2일에는 고위급회담 우리측 이동복 대변인이 남북대화에 임하는 북측의 불성실한 자세를 비난했다. 또 로널드 리먼 미국무부 군축국장은 2일 북한연구소및 연세대 사회과학연구소 공동주최 한반도 군축세미나에서 행한 주제연설을 통해 북한만이 국제적인 화해무드에 역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나카히라 노보루(중평립)일·북한수교회담 일본측 수석대표도 2일 노창희 외무부차관을 면담한 자리에서 북한은 일·북한수교교섭테이블에서조차 평양쪽을 의식한 발언만을 늘어 놓는다면서 남북관계에 관한한 한국의 입장을 지지한다는 기존의 입장을 재확인했다. 이에앞서 로버트 리스카시 주한미사령관은 전략핵무기의 재배치와 주한미군병력 감축 보류,팀스피리트훈련의 재개를 시사했고 지난달 말 방한했던 척 카트만 미국무부 한국과장 역시 최근의 남북대화 일시중단에 깊은 우려를 표시했다.현홍주 주미대사의 지난달 23일 급거귀국도 최근 북측의 공세적 태도와 전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추측된다. 우리 정부관계자들과 미·일 외교및 안보담당자들의 발언은 한결같이 북한의 핵개발 포기를 촉구하고 있다.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은 이라크의 예가 증명하듯 불충분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남북상호사찰이 필수적이며,북한이 지금까지 누차 강조했다시피 핵무기를 개발할 능력도 의사도 없다면 남북상호사찰을 회피할 하등의 명분이 없다는 것이다.이들은 이와함께 핵문제의 해결없이는 경제협력과 군비축소등 남북관계의 진전이 전혀불가능하다는데 인식을 같이 하고 있다. 이같은 한·미·일 정부관계자들의 발빠른 움직임은 지난달 22일 발생한 북한의 비무장지대를 통한 무장침투조 남파기도,5차례의 전체회의와 3차례의 위원접촉에도 겉돌고 있는 핵통제공동위,북측의 일방적인 불참으로 휴회된 군사정전위등 북측의 갑작스런 공세적 태도에 제동을 걸려는 시도로 풀이된다.특히 국무총리가 직접 대북메시지를 발표한 것은 극히 이례적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끌고 있다. 지금까지 정부는 대북관계에 있어 조심스런 낙관론을 견지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보여왔다.이러한 낙관론은 가깝게는 지난달 5일부터 8일까지 서울에서 개최된 제7차 고위급회담에서 군사·경제·사회문화등 3개 공동위와 연락사무소의 설치에 합의했고 특히 8·15 이산가족 노부모방문단및 예술단 교환을 북측이 아무 전제조건없이 선뜻 수락한 점 등에 고무됐기 때문인 것처럼 보인다.이와함께 멀게는 지난해말 소련의 해체로 북한이 최대동맹국을 잃게 됐다는 점,북한이 대일및 대미 관계개선 전망이 극히 불투명한 가운데연내 한·중수교 가능성이 점쳐지는 점 등으로 미루어볼 때 북한이 이미 남북관계에서 선택권을 상실했다는 분석도 크게 작용한 것으로 관측된다.북한이 곧 전향적인 자세로 협상에 임하지 않을 수 없는 국내외적 분위기조성이 상당히 진척됐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달들어 잇따라 나온 우리 정부관계자들의 성명은 이같은 낙관적인 견해를 수정하려는 시도로 보기에 충분하다. 정총리가 1일 상오 고위급회담 단장자격으로 강력한 대북메시지를 발표했는 데도 정부대변인 최공보처장관이 그날 저녁 북한이 대화와 도발의 2중적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며 강력한 어조로 비난한 점,그리고 고위급회담 대변인인 이동복국무총리특별보좌관이 정총리의 대북메시지와 대동소이한 내용의 성명을 거듭 발표했다는 사실은 이제는 더 이상 북한의 지연전술에 말려들지 않겠다는 정책변화를 강력히 시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정부는 이와함께 1일 정총리의 대북메시지 발표후 곧바로 아세안 6개국,EC 12개국 등 18개국 주한대사를 외무부로 불러 그간의 남북대화내용을 설명하고 북한이 IAEA의 사찰을 받은뒤 남북상호사찰은 더 이상 필요치 않다는 외교공세를 벌일 것에 대비해 사전외교를 펼치는 신속함을 보였다.그동안 느슨해졌던 북한에 대한 국제적 압력의 정도를 다시 높이자는 의도에서다. 한편에서는 한반도 이해당사국들의 급해진 행보를 북한에 대한 일종의 시위로 해석하는 경향도 있다.일과성 경고용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엇갈린 시각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성실한 자세로 나오지 않는한 우리 정부를 비롯한 국제사회의 대응은 강경쪽으로 기울것이란 점만은 분명하다.
  • 「8·15고향방문」논의/5일 남북적십자접촉

    「8·15이산가족 방문단및 예술단」교환과 관련한 실무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남북적십자 실무대표접촉이 오는 5일 상오 10시 판문점 중립국감독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다. 북한적십자회 이성호 위원장대리는 2일 적십자 실무대표접촉을 오는 5일 갖자는 우리측 수정제의에 동의한다는 내용의 전화통지문을 강영훈대한적십자총재에게 보내왔다.
  • 북에 상호 핵사찰 강력 촉구/정 총리,전화통화

    ◎“이행않으면 관계진전 어려워”/대북경협 전면 보류 검토/고위전략회의 고위급회담 우리측 수석대표인 정원식국무총리는 1일 남북 상호 핵사찰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전반적인 남북관계의 진전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강경한 입장을 담은 전화통지문을 북측 수석대표인 연형묵총리에게 전달했다. 정총리는 이 전통문에서 『북측에 대한 핵무기개발의혹을 완전히 해소하기 위해서는 국제사찰과 별도로 남북상호사찰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 우리측의 확고한 입장』이라고 전제,『북측은 남북상호사찰이 이뤄지지 않는한 전반적인 남북관계의 실질적인 진전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을 인식하고 지금이라도 성실하고 합리적인 자세로 핵문제해결을 위한 협상에 임하라』고 촉구했다. 정총리는 또 남북 쌍방이 핵사찰규정을 채택키로 합의한 시한인 5월말을 아무런 성과없이 넘김으로써 7천만겨레의 기대를 저버린데 대해 유감을 표시하면서 『남북 상호사찰은 「비핵화공동선언」제4항에 따라 남북 모두가 성실히 이행할 의무가 있는 것이며 한반도 핵문제해결을 위한필수적 사항』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정부는 이에앞서 정총리 주재로 최호중통일원장관,최각규경제기획원장관,이상옥외무부장관,최세창국방부장관,이상연안기부장,김종휘대통령외교안보수석보좌관등이 참석한 가운데 남북대화관련 고위정책회의를 열어 남북핵통제공동위가 공전되고 있는데 대한 대책을 논의했다. 이 회의에서는 북한이 남북상호사찰에 응하도록 하기 위해 미일과의 기존협력관계를 한층 강화해 북한에 대한 국제적 압력의 정도를 높이고 대우의 남포공단 합작투자등 경제협력을 전면 보류하는등 대북한 대응책을 마련키로 의견을 모았다. 이 회의는 그러나 지난달초 서울에서 열린 제7차 남북고위급회담에서 합의한 8·15를 전후한 남북이산가족 노부모방문단및 예술단 교환은 당초 아무런 전제조건을 달지 않기로 약속한 만큼 예정대로 추진키로 했다. ◎오늘 대북성명 발표 이와관련,남북고위급회담 우리측 이동복대변인은 2일 북한의 남북상호사찰수용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할 예정이다.
  • 이산가족 교환방문/5일 실무접촉 갖자/한적,북적제의 수정

    강영훈대한적십자사총재는 1일 8·15이산가족교환에 따른 실무대표접촉을 오는 6일 판문점에서 갖자는 북측제의에 대해 북측 적십자회 이성호위원장대리에게 전화통지문을 보내 공휴일(현충일)인 6일 대신 5일 만나자고 수정제의했다.
  • 다시 새기는 그 충절/이달의 독립운동가 지청천

    ◎독립군지휘,만주태평령서 일 연대 섬멸/33년 6·10대첩 독립전쟁 최대승리로 기록/무장투쟁 한평생… 40년 광복군사령관 역임/광복후엔 대동청년단 결성,“민족단결” 호소… 제헌­2대의원도 지내 선열들의 애국·애족사상을 길이 본받기 위해 서울신문사와 국가보훈처가 마련한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백산 지청천장군이 선정됐다.6월의 독립운동가 지청천장군은 일본이 대륙침략에 기승을 부렸던 1933년 6월10일 만주의 길림성에서 독립군을 이끌고 일본의 이이즈카연대를 섬멸한 공을 세우고 40년부터는 임시정부의 광복군사령관으로 항일무장투쟁을 지휘했다.해방후 귀국한 지장군은 제헌의원과 2대의원을 지내고 57년1월15일 69세로 별세했다.지장군의 생애와 사상,업적을 되새겨 본다. 1933년 6월10일 만주의 길림성 태평령에서 한국독립군 2천5백명과 중국군 2천명의 연합작전을 지휘하던 지청천장군은 일본군과의 결전을 앞두고 짤막한 훈시를 했다. 『오늘의 공격은 2천만 대한인민의 원수를 갚는 것이다.총알 한개 한개가 우리 조상의 수천 수만의 영혼이 보우하여주는 피의 사자이니 제군은 단군의 아들로 굳세게,용감히 모든 것을 희생하고,자손 만대를 위해 최후까지 싸우라』 비록 몇 마디 되지 않는 짧은 훈화였으나 결전을 앞둔 독립군 병사들의 뼛속까지 사무쳐 대부분의 병사들이 눈물을 흘리며 조국의 광복을 굳게 다짐했다. ○소총등 다량 노획 이날 일본의 정예부대인 이이즈카연대는 한중연합군의 맹렬한 공격에 혼비백산했다. 동서남북으로 완전히 포위된 상태에서 4시간동안의 치열한 전투끝에 일본군은 완전히 전멸되고 말았다. 군복 3천벌,박격포 5문,군용물자 20마차,담요 3천장,평사포 3문,소총 1백50정을 노획해 한국독립사상 가장 큰 전승을 기록했다. 지청천장군의 태평령전투는 독립전쟁사중 20연대의 김좌진장군의 청산리전투와 함께 2대 대첩으로 평가되고 있다. 30년대의 지장군이 지휘한 태평령전투가 규모와 노획물이 더 큰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지장군은 전투부대의 지휘관으로서 뿐만아니라 신흥무관학교 교장으로서 독립을 위한 청년장교들을 양성한 교육자로,광복후에는 제헌의원·청년운동 등으로 평생을 애국·독립운동에 헌신했다. 지장군은 1888년 2월15일 서울 삼청동에서 태어났다. 다섯살때 아버지와 사별하고 홀어머니(이씨)밑에서 자란 지장군은 우리나라에 종두법을 처음 도입한 아저씨 지석영의 권고로 교동국민학교를 거쳐 배재학당에 진학했다. 1904년 한국무관학교에 입학한 지장군은 1907년 일본이 한국군대를 강제해산하자 관비유학생에 선발되어 일본유학을 떠났다. 어머니는 적의 나라로 유학을 떠나는 지장군에게 『나는 너를 죽어 없는 아들로 생각하겠다.구국의 일군이 되지 못하거든 일본에서 돌아오지도 말고 나를 어머니라고 생각하지도 말라』고 엄하게 훈계했다. ○일 정규육사 출신 적도 도쿄에 도착한 지장군은 일본의 눈부신 문물을 보고 놀라면서 일본의 앞선 기술과 제도를 하나라도 더 배워 조국을 되찾는 첨병이 될 것을 다짐했다. 일본 유년육군사관학교를 거쳐 정규육사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지장군은 1914년 1차대전이 일어나자 일본군 제14사단에 배치되어 중국 산동성 청도에서 독일군과 치열한 전투경험을 하게 됐다. 당시의 전투경험이 만주에서의 독립군 전쟁에 큰 도움이 되었다. 일본군 중위로 진급한 지장군은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일본군을 탈출,독립운동의 요람이던 만주 봉천성 통화현에 도착,독립군 양성기관인 신흥무관학교의 교관이 되었다. 당시 만주에는 일본육사출신의 김광서장군과 구한말 군관출신인 신팔균 김창환 이범석 오광선등 쟁쟁한 인재들이 신흥무관학교를 중심으로 독립군을 양성하면서 민족의 힘을 키우고 있었다. 일본 육사에서 정규교육을 받은 지장군은 교성대장(교성대장)에 이어 교장에 선임되었다. 그러나 독립운동의 기반이 공고해질수록 일본의 독립군 탄압도 집요해져 지장군은 신흥무관학교출신을 주축으로 하는 서로군정서군을 이끌고 백두산 부근의 밀산으로 이동했다. 이곳에서 김좌진장군의 북로군정서군,홍범도장군의 대한독립군 등과 합세,대한독립군단을 결성하고 여단장을 맡아 군세를 통합했다. 지장군은 보다 조직적이고 지속적인 독립전쟁 수행을 위해 1921년 러시아 자유시로 이동,독립군부대를 고려혁명군단으로 개편하고 고려혁명군관학교를 설치,교장을 맡아 전열을 정비하고 일본과의 독립전쟁을 준비했다. 그러나 일본의 사주에 의한 소련정부의 배신으로 소련군과 혈전을 벌인 끝에 장군은 체포되어 러시아감옥에 갇혔다가 풀려났다. 구사일생으로 다시 만주에 돌아온 지장군은 국민대표회의 등을 통해 독립운동세력을 규합,1924년 정의부가 조직되자 중앙위원과 산하 의용군 총사령관이 됐다. 정의부소속 군대를 지휘하게 된 지장군은 일본경찰주재소를 소각하고 일본군부대를 습격하는 등 독립투쟁을 전개했다. 1931년 9월18일 일본은 중국침략의 마수를 뻗쳐 만주사변을 도발했다. 지장군은 만주지역의 중국군 이두·정초·고봉림장군 등과 한중연합군을 결성해 쌍성보,경박호,동경성,사도하자,대전자등 만주 각지에서 일본군과 맞서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 지장군은 1919년부터 33년까지 14년간 만주 곳곳에서 항일무장투쟁을 하면서 수많은 독립군을 양성하고 강한 군대를 육성했다. 1933년 8월 일본이 만주를 석권하다시피하여 독립군의 항일투쟁이 어렵게 되자 임시정부의 김구선생은 지장군을 하남성의 낙양군관학교로 초청,한국청년들의 군사교육을 맡아줄 것을 요청했다. ○임정 군무부장에 넓고 넓은 만주땅을 베개삼아 죽으리라던 지장군은 이범석·오광선 등과 함께 낙양으로 내려가 한인청년들을 교육하고 1937년에는 임시정부의 군무부장,40년 9월17일 광복군이 창설되자 총사령관에 임명되어 참모장 이범석과 함께 명실공히 한국군을 대표하게 됐다. 광복군은 중국을 비롯한 연합군과 협력하여 일본군과 직접적인 전투를 벌이는 한편 대적선전·포로심문·선전전단작성·암호해득등 다방면에 걸친 눈부신 활동을 했다. 지장군은 1946년 4월28일 남한에 진주한 미군의 반대로 개인자격으로 중국에서 귀국했다. 귀국후 장군은 혼란한 국내정세를 바로잡을 원동력이 청년에게 있음을 깨닫고 전국적인 청년운동을 일으킬 것을 구상,대동청년단을 구성했다. 지청천단장은 전국청년지도후원회를 결성하고 『뭉치라,길은 하나이다』라는 구호로 민족단결을 역설했다. 1948년 5·10총선과 50년 5·30총선에 출마하여 초대 및 2대국회의원이 된 지장군은 국방위원장 등을 역임하며 건국의 기틀을 다졌다. 지장군은 57년 1월15일 69세의 일기로 서거했다. 정부는 62년 지장군에게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지장군은 달수씨와 복영씨등 남매를 두었는데 남매도 모두 광복군으로 항일활동에 참가했다. 달수씨는 63년 건국훈장 국민장을 받고 69년에 작고했으며 복영씨는 현재 지장군의 일대기를 정리하고 있다. ◎탁월한 전략·순수한 군인정신의 귀감/역사적 평가/이현희 성신여대교수 백산 지청천장군은 70평생을 조국과 겨레의 행복을 위해 보냈다. 8·15이전의 60평생을 조국광복을 위한 무장독립투쟁에 보냈으며 귀국후에는 제헌의원과 2대의원으로 국정에 깊이 관여했다. 한국무관학교 학생으로 입학해서 일본육사를 졸업한 지장군은 평생을 통해 권모술수를 모르는 순수한 참군인의 정신으로 독립운동에 헌신해왔다. 지장군이 일본육사에 진학한 의도는 적을 잡기 위해서는 적의 소굴로 들어가는 용기와 지혜가 있어야 된다는 생각에서 였다. 일본육사에 유학,현대 전략과 전술을 공부한 지장군은 훗날 만주에서 일본군과 무장투쟁을 하면서 일본육사에서 배운 군사학을 활용했다. 열악한 무장,숫적인 열세,보잘것 없는 보급을 받으면서도 지장군은 일본정규군을 자유자재로 유린하는 전술을 구사했다. 일본의 현지 지휘관들은 『지청천이가 일본의 전술과 전략을 너무 잘 알고있기 때문에 우리의 격전이 무색하다』고 격찬 한 사실을 보아도 지장군은 탁월한 지휘관이었다고 생각된다 지장군은 1940년에는 임시정부의 직할무장부대인 광복군의 총사령관으로 5년동안 국내외 청년들을 모아 훈련을 시키고 일본군 후방교란,연합군과의 연합작전,심리전 등을펴 명실공히 독립군의 최고지도자로 역을 다했다. 그는 건국후에도 광복군의 정통성을 의병독립군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역설함으로써 민족정기를 바로잡는데 크게 기여했다.그러나 광복이후의 혼미한 정국에서 지장군의 크고 높은 뜻은 친일파와 민족반역자들의 반대에 부딪혀 별 호응을 얻지 못했다. 지장군이 별세한 35년이 지난 지금 그의 크고 높은 뜻이 마침내 달성되는 듯한 느낌이어서 다행스럽다 하겠다.
  • 경제상담소 설치 의견접근/「8·15방문」합의 못봐/남북교류분과위

    ◎새달 26일 재절충 【판문점=공동취재단】 남북한은 30일 판문점 북측지역 「통일각」에서 고위급회담 교류협력분과위원회 제4차 회의를 열어 「8·15노부모방문단및 예술단」교환에 따른 실무문제 등을 협의했으나 구체적인 합의에는 이르지 못했다. 이에따라 양측은 이 문제와 관련,오는 6월초 열릴 예정인 쌍방 적십자사 실무대표 접촉에 구체적인 대책마련을 일임키로 했다. 양측은 또 이날회의에서 「남북합의서」교류 협력부문 부속합의서와 관련,각각의 수정안을 제시하고 내용절충을 벌였으나 당국 승인제도입 등에 있어 기존의 입장차를 좁히지 못해 오는 6월26일 다시만나 절충을 계속키로 했다. 양측은 그러나 상사와 회사외에 개인도 남북경제교류및 협력사업의 당사자로 참여할 수 있으며 판문점 경제상담소및 자료교환실설치문제를 공동위에서 논의한다는 등에 의견접근을 이뤘다.
  • 남북 교류분과위/오늘 4차회의 개최

    남북한은 30일 상오10시 판문점 북측 지역 「통일각」에서 고위급회담 교류·협력분과위원회 제4차회의를 갖고 「8·15이산가족방문단 및 예술단교환」에 따른 기본적인 원칙을 협의한다.
  • 고향방문 논의/실무접촉 제의/북적,한적에

    북한 적십자회 이성호위원장대리는 28일 대한적십자사 강영훈총재에게 전화통지문을 보내 8·15노부모방문단및 예술단교환과 관련한 쌍방 적십자사 실무대표접촉을 오는 6월6일 상오10시 판문점 중립국감독위원회 회의실에서 갖자고 제의했다.
  • 북한방분단 70세이상 추가신청/새달 1일부터 열흘간 접수

    8·15이산가족고향방문단 구성을 위한 추가신청이 오는 6월1일부터 10일까지 10일동안 전국적으로 실시된다. 대한적십자사와 이북5도청,1천만이산가족재회추진위원회 이북5도도민회등 관련단체들은 이 기간중 각시·도지부에서 재북 직계존비속 또는 배우자를 만날 70세이상 이산가족을 대상으로 방북신청을 새로 접수한다. 대한적십자사는 이번주중 관련단체및 언론관계자들로 고향방문단 구성을 위한 인선위원회를 구성,90년 민족대교류추진시 방북신청을 냈던 3만7천3백50명등 기존신청자 4만3천5백8명과 이들 추가신청자 중에서 생사확인을 위해 북측에 사전통보할 1백30명을 선정할 예정이다.
  • 일 중학교 새 역사교과서 출간/식민통치·정신대부문 증보

    ◎노 대통령의 일 국회연설도 게재 일본의 새로운 중학교 역사교과서는 식민지지배등 일본 근현대사를 보다 상세히 기술한 것으로 24일 밝혀졌다.문부성 검증을 마친 교과서는 정신대등 강제연행,한일합방,노태우대통령의 방일연설등 역사적 사실을 보다 구체적으로 기술했다. 새 교과서는 지난 89년 고시된 신학습지도요령에 의해 개편된 최초의 중학교 역사교과서. 8개 출판사가 교과서를 펴냈으며 내년 신학기부터 4년간 사용된다. 새 교과서 중에는 『과거의 역사를 직시하지 않으면 안된다』라는 노태우대통령의 일본국회연설을 게재한 것도 있으며 한국에서 영웅시되고 있는 안중근의사의 이름을 기술한 교과서는 과거의 3개사에서 6개사로 증가했다고 아사히(조일)신문이 보도했다. 일본의 새 교과서들은 한일합방과 의병활동등 격렬한 저항운동,일본이 무력으로 식민지화를 강화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기록하고 창씨개명등 한국인의 황국식민화정책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변화를 나타내고 있다. 새 교과서 중에서 자기나라 말도 제대로 사용할 수 없었던한국 어린이의 고통을 기술한 것도 있으며 지난 45년 8월15일 종전을 「일본의 식민지로 있던 대만·조선 등의 민족해방일」로 쓴 교과서도 증가했다. 현행 교과서도 남경대학살,한국·중국으로부터의 강제연행등을 다루고 있으나 구체적인 이야기를 게재한 것은 1개 교과서뿐이다.
  • 고향방문 추가 신청 접수/정부,선발기준 확정

    ◎70세 이상자 일부 포함 정부는 22일 「8·15이산가족노부모방문단」의 구성과 관련,「90년 민족대교류」사업추진시 이산가족상봉을 목적으로 방북신청을 냈던 3만7천3백50명,88년 적십자이산가족찾기신청자 4천3백46명,92년 2월 1천만이산가족재회추진위 신청자 1천8백12명등 기존 신청자 4만3천5백8명 가운데서 우선 선발하되 오는 6월초 70세이상 이산가족의 추가신청을 받아 그중에서도 일부를 포함시키기로 했다. 최호중부총리겸 통일원장관은 이날 청와대에서 있은 「8·15이산가족노부모방문단및 예술단교환」사업에 대한 보고에서 이같이 밝혔다. 최부총리는 이자리에서 노부모방문단의 선발대상은 직계존비속과 부부를 방문하려는 70세이상의 노부모와 노부모를 방문하려는 50세이상의 자식을 원칙으로 하되 추가신청및 세부선발기준은 대한적십자사 주관하에 이북5도청과 1천만이산가족재회추진위등 각계대표들로 구성되는 「인선위원회」에서 담당토록 하겠다고 밝혔다.
  • 남북 군사공동위에 바란다/김태우 국방연 연구원(특별기고)

    ◎한반도비핵화 실천길 열어야 제7차 남북고위급회담이 적지 않은 수확을 거두고 막을 내렸다.제한된 숫자나마 8·15 고향방문단 교환이 합의되어 이산가족들의 한을 풀게 되어 무엇보다도 다행스럽다.경제공동위 사회문화공동위 등 실행기구들이 설립되게 되었고 군사분야에서 군사공동위 구성에 합의한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성과였다.이제 군사공동위가 구성되는만큼 남북한 군비통제와 관련한 국민의 기대는 각별할 것이다.그럼에도 우리측 대표들이 넘어야 할 산들은 높고 험준하다. 우선 부속합의서가 만들어져서 군사공동위가 제기능을 발휘하기까지 북한의 「선합의 후번복」협상전술을 상대하기란 무척 곤혹스러울 것이다.남북합의서에서 주한미군 문제를 제외키로 합의해 놓고 막상 군사분과위가 시작되자마자 북한대표들이 외쳐온 것이 『외세의존은 분열의 길』,『외국군에 땅·하늘·바다를 제공치 말것』등이었다.핵통제공동위나 정치분과위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북한이 우리측의 「비핵화」에 합의하여 공동선언에 서명해 놓고는 역외수단에 의한 미핵우산마저 소멸시키는 「비핵지대」를 다시 들고 나오는 것이나,『사상적 제도적 장애제거』 『상대방 소개찬양 자유』등을 외치면서 사실상 보안법 철폐,용공인사 활동보장등을 주장하는 것은 일종의 「오리발」전술에 해당된다.한국의 「균형추진」 「실천성보장」등 현실적 제안이 북한의 「일괄합의」및 「동시실천」등 선언적 주장과 맞부딪쳐 왔다는 점도 걱정스러운 대목이다. 북한의 대남 기본전략이 불변이라는 사실은 산중에도 태산에 해당한다.북한은 아직도 「통일전선」을 『혁명에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여러 정당,단체,개인들이 로동당의 영도하에 공동의 원쑤를 반대하여 싸우는 것』으로 가르치고 있으며 군지휘관들의 충성맹세는 『총구에서 통일이 나온다』『1995년까지 통일이 안되면 상부지시가 없어도 부대를 끌고 남조선 해방을 위해 내려간다』는 등의 섬뜩한 구호들로 채워져 있는 것이다.여기서 우리는 다가오는 신국제질서가 의미하는 바를 곱씹어 보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 국제질서의 변화는 한마디로 「다극화」와 「핵의 남북문제화」로 표현될 수 있다.걸프전이래 미국만이 초강국인 세계,즉 팩스아메리카나가 재현되는 것으로 보는 시각이 없지 않으나 이는 잠정적인 현상일 것이다.걸프전쟁이 미국의 눈부신 승리를 돋보이게 한 사건임에는 틀림없으나,이보다는 국제경찰력 불재를 틈탄 이라크의 지역패권기도,동맹국들의 전비부담,협력적 안보의 중요성등 다극화의 특징들이 부각된 것이 더욱 의미있는 일이다.그렇다면 동북아는 이미 「무증후」핵능력을 갖추고 미래세계에서 「일극」이 되기 위해 착실히 대국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일본이 중국및 러시아와 지역패권을 다투는 「각축장」이 될지도 모른다. 이와 더불어 「핵의 남북문제화」도 급속히 진전되고 있다.미국은 자신의 방위계획서에서 밝혔듯이 소련의 붕괴및 걸프전쟁 승리를 계기로 자신만이 유일 초강국인 단극시대 구축을 꾀하고 있다.독일,일본등 잠재경쟁국의 핵무장을 억제하고 남북한을 포함한 제3세계의 핵및 미사일 확산을 봉쇄함으로써 자신의 패권적 핵군사력을 유지하는데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핵기득권유지차원에서 기존 핵국들이 단합하여 새로운 핵국의 등장을 막는 것은 당연한 홉스적 이치이며,이에 따라 핵을 가진 나라들과 없는 나라들 사이의 「압박­피압박」관계로 정의되는 「핵의 남북문제화」는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소련을 겨냥하려던 미국의 SDI가 미소가 합심하여 제3세계미사일 위협을 잠재우는 「지구방어(GPALS)」개념으로 대체되고 있는 것이 「핵의 남북문제화」추세를 대변한다는 것을 간과해서도 안될 것이다.힘없고 지렛대없는 국가들이 한없이 서러운 시대가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심중에 두어야 할 한반도 군비통제 원칙도 분명해진다.남북한이 무조건 무엇을 줄이고 없애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며,양적인 감축을 실행하면서도 질적인 잠재력은 상호보호하는 「통일후 지향형」군비통제를 추진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문제는 순서이다.상호신뢰없이 통일후를 대비한 군비통제가 가능할 수 없고,북한이 막강한 기습공격력을 유지하며 대남「통일전선」전략을 고집하는 한 그리고 선전차원의 「선감축 후신뢰」주장을 굽히지 않는 한 남북한 신뢰구축은 어렵다.때문에 북한측 군사공동위가 올바른 수순을 밟아 갈길 먼 한반도 군비통제 협상에 물꼬를 터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우선은 신뢰구축 조치들을 서둘러야 하며,상호신뢰속에 과다한 「군살」을 빼는 것이 그 다음의 일이다.남북한이 다투듯 협력하듯 상호 잠재력을 보호하며 통일을 설계하는 것은 그 다음에 가능한 일이다.북한당국은 다극화 시대의 도래나 「핵의 남북문제화」가 한민주에게 요구하는 것이 조속한 신뢰구축과 평화공존이라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반면 한편으로는 부릅뜬 눈으로 우리의 안보를 재차 확인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민주이 나아갈 먼길도 내다봐야 하는 것은 우리의 운명일 것이다.남북한 군비통제와 관련하여 군사공동위에 거는 국민의 기대는 크다.
  • 「합의서」 이행등 3개항을 결의/평통 서울회의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사무총장 송한호)는 12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서울지역회의를 열고 ▲남북기본합의서의 성실한 실천 ▲국제원자력기구(IAEA)핵사찰의 완벽한 수용및 남북상호사찰의 조기이행 ▲북한사회의 개방과 민주화,북한동포의 인권신장등을 촉구하는 3개항의 결의문을 채택했다. 이날 회의는 또 민주평통자문회의 의장인 노태우대통령의 개회사(정원식국무총리 대독)에 이어 최호중부총리겸 통일원장관으로부터 ▲최근의 주변정세와 한반도통일환경 ▲남북기본합의서 발효이후의 통일정책 추진방향 ▲제7차 남북고위급회담 결과등에 관한 보고를 들었다. 최부총리는 이 보고에서 『7차 고위급회담에서 남북합의서 발효이후 첫번째의 구체적 실천사업으로 「8·15」47돌을 기해 노부모 방문단을 상호 교환하기로 합의한 것은 우리의 일관된 방침이 실효를 거둔 참으로 의미있는 일』이라고 평가하고 『우리는 이러한 사업들을 착실히 진전시켜 이산가족들의 자유로운 고향방문과 재결합을 실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 이산가족 고향방문단/90년 신청자 우선 선정

    정부는 8·15이산가족고향방문단의 구성과 관련,그 대상선정을 위해 별도의 대국민 접수과정을 거치지 않을 방침인 것으로 11일 알려졌다. 이에 따라 정부는 지난 90년 「7·20민족대교류」 제의시 이산가족 상봉을 목적으로 방북신청을 통일원에 냈던 3만7천명을 기본대상으로 삼아 북측에 사전통보할 인원 1백50명을 선발할 계획이다. 정부는 이같은 원칙을 토대로 12일 하오2시 관련부처 및 대한적십자사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임동원통일원차관주재 남북교류협력추진협의회 실무위원회를 열어 이산가족방문단 교환에 따른 실무문제를 협의,선정기준을 확정짓는 한편 부처별 지원업무를 분담할 예정이다.
  • 이산상봉 50세이상 직계우선/명단은 1백50명씩 상호교환

    ◎남북,세부사항 30일 확정 정부는 8·15이산가족 노부모방문단의 구성과 관련,쌍방의 생사가 확인된 이산가족중 나이가 50세 이상으로 노부모와 자식간의 직계가족을 중심으로 선정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9일 전해졌다. 임동원통일원차관은 이날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이산가족방문단 교환과 관련,『7차고위급회담에서 남북양측이 방문대상자의 명단을 교환 1개월전에 서로 통보,사전생사확인작업을 거쳐 가족이 상봉이 가능한 이산가족 1백명의 명단을 확정키로 합의했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이에따라 남북양측은 방문단을 구성할 1백명보다 많은 이산가족의 명단을 사전에 통보할 계획인데 정부의 또다른 당국자는 이번 회담에서 이미 쌍방간 각각 1백50명씩의 명단을 교환키로 합의했다고 말했다. 임차관은 또 『방문단이 평양지역만을 방문토록 돼있으나 상봉대상가족이 반드시 평양에 거주하는 사람으로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임차관은 이어 방문에 따른 기본원칙은 오는 30일 판문점에서 열리는 남북교류협력분과위 제4차회의에서 확정되며 쌍방 적십자사가 이 합의를 토대로 6월초 실무회의를 열어 이행에 따른 실무를 처리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7차 남북총리회담과 대화 전망/기자방담

    ◎「부속합의서」 도출까진 진통 예상/교환방문등 합의는 뜻밖의 가시적 성과/판문점 「연락사무소」 역할 상당히 커질듯 ▷참석자◁ 북한부 김인철기자 김수정기자 정치부 최철호기자 문호영기자 사진부 유재림기자 남상인기자 최해국기자 ­남북이 이번 7차회담에서 「남북합의서」의 내용을 실행에 옮길 주체인 부문별 공동위의 18일 구성과 연락사무소의 구성및 활동개시에 합의함으로써 지난해 12월 7천만동포들에게 통일의 희망을 안겨주며 채택된 「남북사이의 화해와 불가침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가 이제 비로소 무엇인가 피부에 와닿는 결과물을 생산해 낼 수 있게 됐습니다. ○“큰줄기만 발표” 동의 ­특히 오는 8·15광복절을 계기로 이산가족 노부모방문단 및 예술단을 교환키로한 것은 북측 안병수대변인이 8일 출발성명에서 강조했듯 『구체적 인 선물을 민족앞에 내놓으려는 노력의 결실』로서 「남북합의서」가 이행단계에 진입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대변하고 있습니다. ­이와관련,당초 남북은 7일의 2차회의가끝난뒤 발표문을 통해 구체적인 교환시기와 기간등을 밝힐 계획이었으나 「쌍방당국이 원칙에 합의하고 구체적인 실행은 적십자사에 맡기자」는데 양측이 동의,큰 줄기만 발표키로 했다는 후문입니다. ­그럼에도 회담관계자들로부터 2백40명씩의 양측 이산가족과 예술단이 오는 8월25일부터 28일까지 3박4일동안 서울과 평양을 교환방문할 계획인 것으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일방 기피 인사 배제 양측은 또 2백40명의 방문단중 이산가족의 몫인 1백명의 선정기준에 대해서도 이미 합의했는데 그 기준은 부모·형제등과 같은 친혈족으로 나이는 50세이상,고향이 각각 상대측 지역이어야 한다는 것 등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그리고 어느 일방이 기피하는 인사는 배제한다는데에도 양측이 동의했다고 합니다. ­이같은 양측의 합의에도 불구하고 우리측 인원선정에 관계하게 될 부서들은 벌써부터 골머리를 않고 있다는 후문입니다.지난 85년 1백51명씩을 교환했던 경험이 있어 실무문제는 어려움이 없으나 「누구를 선정할 것인가」를 두고 숱한 시비가 빚어질 수있다는 우려때문이지요.때문에 우리측 관계자들은 합의가 나오자마자 이문제로 불필요한 오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언론에서 신중히 대처해 달라는 부탁을 하더군요. ○이산가족 막판포함 ­어쨌든 고향방문단과 예술단의 교환합의는 이번 회담이 거둔 「의외의 성과」인데 우리측은 당초 「8·15경축방문단」에 이산가족을 제외했었으나 정원식국무총리의 기조연설이 있었던 6일 새벽의 막후 대표접촉에서 북측이 이산가족과 관련한 모종의 제의를 할 예정이라고 시사,급히 이산가족을 방문대상에 포함시켰다고 합니다. ­결국 북측이 이번 회담에서 강력한 타결의지를 보였던 것으로 평가되는데 한 회담관계자는 이와관련,남북관계를 보는 기존의 인식에 대전환이 필요한 시점에 와 있다는 주장을 펴더군요.다시말해 양측 당국이 남북대화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기에는 역부족이며 남북관계는 이미 화해와 협력의 큰 물줄기에 편승해 「정방향」으로 나아가는 탄력을 받고 있는 만큼 완급은 있으되 꾸준히 진전될 것이라는 관측이지요. ○“꾸준한 진척” 예측 ­이점은 북측도 마찬가지라고 하더군요.한 북측 기자는 8일 호텔을 떠나기전 기자와 작별인사를 하는 도중 『북과 남,온 겨레의 통일열망과 고위급회담에 거는 기대를 생각할 때 고위급회담의 전망은 낙관적이다』라고 한 안병수대변인의 출발성명을 가리키며 잘 음미해 보라고 하더군요.다시 말해 남북당국 모두가 이제는 「말잔치」이상의 실질적인 결실을 국민들에게 내놓아야 하는 부담을 강하게 느끼고 있고 이 결과 남북관계는 실질적인 진전단계로 접어들 수밖에 없다는 지적입니다. ­그러나 남북관계가 진전된다는 것이 곧바로 구체적인 성과물들이 양산된다는 말은 아닙니다.남북이 이번에 공동위의 18일 구성에 합의했지만 「운영」에도 합의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유의해야 합니다.다시 말해 「남북합의서」에 담긴 선언적이고 원칙적인 내용을 구체화해 이행방안을 마련해야 공동위가 할 일을 부여받게 되고 본격 가동하게 되는데 양측은 그 시한을 오는 9월15일 8차 회담전까지로 잡았습니다.부속합의서 작성시한이 9월 중순까지라는 의미는 바로 이런뜻인데 이제까지 「일괄합의 동시실천」(북),「건별 합의 즉시 실천」(남)으로 맞서온 양측이 이 기간중 기존의 입장차를 어떻게 조화시키느냐에 따라 공동위의 가동시기가 결정될 것입니다. ­따라서 양측은 앞으로 합의서 이행대책을 담을 부속합의서를 작성하기 위해 각 분과위 활동에 주력할 것이며 이 논의가 결말날 때까지 외형적인 소강상태를 보일 것으로 전망됩니다. ­이와관련,회담 관계자들은 부속합의서 채택시한인 오는 9월중순까지의 4개월이 결코 긴 시간이 아니라고 설명하면서 최근의 관례로 볼때 그 시한이 지켜지겠지만 내용절충엔 상당한 진통이 따를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영사업무까지 수행 ­다만 쌍방의 제반 연락업무등을 맡을 연락사무소는 공동위와 달리 18일부터 구성·운영되기 때문에 이날부터 곧바로 기존의 쌍방 적십자연락사무소기능을 대행하는등 남북간 연락기능과 영사업무를 수행하게 됩니다.특히 8월에 있을 이산가족방문단교환사업추진과 왕래과정에서 연락사무소는 그 기능을 톡톡히 담당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 “희망의 도시로 복구”/부시,LA도착 성명서 다짐

    【로스앤젤레스=특별취재반】 조지 부시 미대통령이 6일 하오8시15분(현지시간)LA흑인폭동으로 인한 피해지역을 둘러 보기 위해 3일간의 일정으로 참모진들과 함께 현지에 도착했다.로스앤젤레스시에 도착한 부시 대통령은 성명을 통해 로스앨젤레스시를 「희망의 도시」로 복구하기 위해 연방정부가 지원할 것이며 도시빈민문제에 대해서도 획기적인 해결책을 강구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 「고향방문」 더 늘려야한다(사설)

    제7차 고위급회담에서 남북양측은 「기본합의서」를 구체적으로 실천하기 위한 실무기구의 구성을 매듭짓는 한편 오는 8월15일 광복절을 기해 이산가족과 예술단을 교환방문하기로 합의했다.우리는 이를 남북관계개선의 밝은 조짐으로 평가한다.지난 2월19일 평양에서 열린 제6차 고위급회담에서 기본합의서와 비핵화공동선언이 발효된 이후 그 후속조치를 모색하기 위한 판문점접촉이 14차례 열렸으나 쌍방의 견해차이로 답보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이번 회담의 전망도 불투명했었다.그러나 남북의 대표들이 성의 있게 회담에 임하고 서로가 호양의 정신을 발휘해서 이러한 성과를 이끌어낸 것은 반가운 일이다. 남북연락사무소설치와 군사공동위원회·경제교류협력위원회·사회문화교류협력위원회 구성은 5월19일로 시한이 못박혀 있어 이것이 타결된 것은 당연한 것이고 또 예정됐던 것으로 볼 수 있다.그러나 이산가족과 예술단의 교환방문합의는 기대이상의 성과이다.이산가족의 슬픔을 덜어주는 일은 남과 북이 함께 풀어야할 가장 절박한 당면과제이기 때문에우리 정부가 꾸준히 촉구해 왔는데 북한도 이에 호응,합의를 본 것이다. 이산가족의 교환방문은 85년이후 7년만에 이루어진 경사로 기본합의서 발효 이후 첫번째의 실천사업이라는 점에서 큰 뜻이 있다.남북문제는 실천가능한 일부터 차근차근 풀어나가야 하며 인도적인 문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남북대화와 교류를 인도적인 차원에서 접근해 나간다면 다른 현안문제도 쉽게 풀릴 것으로 우리는 믿고 있다. 이번 회담에서는 이산가족의 교환방문을 8·15광복절로 국한했고 규모도 1백명씩으로 제한했지만 앞으로는 이것을 제도적으로 정착시켜야 하며 기회와 규모를 확대해 나가야 한다.광복절 뿐만 아니라 설·한식·추석등 우리민족의 고유명절 때는 많은 이산가족들이 고향을 찾아가 헤어진 핏줄들을 만날 수 있어야 하고 궁극적으로는 누구나 언제든지 오갈 수 있어야 한다. 남북한은 오랜 세월동안 체제와 이념을 달리해왔기 때문에 동질성을 회복하기란 쉽지 않다.그러나 헤어진 가족들이 남북을 오가며 스스럼없이 만날 수 있을때 신뢰는 쌓이게 될 것이며통일도 앞당겨질것이다. 이산가족의 교환방문합의를 기뻐하면서도 한가닥 불안감을 떨칠 수가 없는 것은 북한이 이 경사스러운 일을 통일전선전략에 악용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북한은 8·15광복절을 앞두고 이른바 「범민족대회」와 「전민족정치협상회의」를 추진하고 있다.이것들은 북한이 해마다 획책하고 있는 대남전략의 한고리로 남쪽사회의 혼란을 부채질하기 위한 불순한 목적을 지니고 있다.따라서 정원식국무총리는 지난 5일 북측 대표단을 위한 만찬석상에서 이러한 행사를 중지해 줄것을 강력히 촉구한바 있다. 북한이 이산가족의 교환방문을 「범민족대회」의 일환으로 추진하고 있다면 기본합의서는 휴지가 되고 말 것이며 남북사이에는 다시 먹구름이 끼게 될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이산가족의 슬픔을 덜어주기 위한 인도적인 사업을 정치적으로 악용하지 않기를 바란다.
  • 남북연락사무소 18일 개설/총리회담,합의서 채택

    ◎군사·경제·사회 공동위도 발족/화해공동위 9월까지 구성/핵통제위는 12일 다시 열기로/8차 총리회담 9월15일 평양서 남북한은 7일 남북연락사무소와 군사공동위 경제교류협력공동위 사회문화교류협력위 등 4개의 「남북합의서」실천기구의 구성및 운영에 관한 합의서를 채택하고 양측 총리의 서명을 거쳐 이날 발효시켰다. 양측은 이들 실천기구를 오는 18일 발족시킨뒤 제8차회담 이전에 부문별 부속합의서를 마련,「남북합의서」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양측은 또 오는 8·15 광복절을 기해 각각 2백40명 규모의 이산가족과 예술단을 교환키로 했다. 양측은 이날 신라호텔에서 제7차 남북고위급회담 2일째 회의를 열어 남북연락사무소와 군사공동위,교류협력공동위 구성및 운영합의서등 3개 문건에 차례로 서명·교환,발효시키고 이산가족 상호방문 등 합의사항을 명시한 합의문을 채택,공동발표했다. 양측은 또 제8차 회담을 오는 9월15일부터 18일까지 평양에서 개최키로 했다. 이날 발표된 합의문은 제8차회담 이전에 화해분야의부속합의서를 작성,화해공동위를 발족시키고 불가침분야의 부속합의서는 오는 9월1일까지,교류협력분야의 부속합의서는 9월5일까지 각각 작성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합의문은 이와함께 제4차 핵통제공동위는 12일 「평화의 집」,정치분과위는 19일 「통일각」,군사분과위는 25일 「평화의 집」,교류협력분과위는 30일 「통일각」에서 각각 열기로 규정하고 있다. 양측은 오는 18일까지 판문점공동경비구역안의 자기측지역에 각각 연락사무소를 설치,남북사이의 연락업무와 합의사항의 이행,남북사이의 각종 왕래와 접촉에 따른 안내 등을 맡도록 했다. ◎북대표단 오늘 귀환 한편 북한대표단 90명은 8일 상오10시 3박4일간의 회담일정을 마치고 판문점을 통과,평양으로 돌아간다. ▷남북총리회담 합의문◁ 1.「남북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제1장 남북화해분야의 이행기구에 관하여 다음사항에 합의하였다. ①남북화해분야의 이행을 위하여 남북화해공동위원회를 구성 운영한다. ②남북화해공동위원회 안에 쌍방이 합의하는필요한 수의 실무협의회를 둔다. ③제8차 남북고위급회담 이전에 남북화해분야의 부속합의서를 작성하며 남북화해공동위원회를 발족시킨다. 2.남북 쌍방은 남북군사공동위원회,남북경제교류·협력공동위원회,남북사회문화교류·협력공동위원회를 1992년 5월18일자로 구성함과 동시에 각기 자기측 구성원 명단을 상대측에 통보한다. 3.남북 쌍방은 1992년 5월18일자로 판문점 자기측 지역에 설치할 남북연락사무소 자기측 소장과 부소장및 연락관들의 명단을 상대측에 통보함과 동시에 사무소 운영을 개시한다. 4.불가침분야의 부속합의서는 1992년 9월1일까지 작성하고 교류 협력분야의 부속합의서는 1992년 9월5일까지 작성한다. 5.남북합의서 이행에 대한 첫 선물을 민족앞에 내놓으려는 염원에서 올해 8·15해방 47돌을 계기로 각기 노부모 1백명과 예술인 70명·그리고 70명의 기자·지원인원들로 구성되는 이산가족 노부모 방문단및 예술단을 서울과 평양에서 동시에 교환하도록 쌍방 적십자단체들에 위임한다. 6.각 분과위원회와 남북핵통제공동위원회의다음번 회의날짜와 장소는 다음과 같다. ①제4차 남북핵통제공동위원회는 1992년 5월12일(화)판문점 남측지역 「평화의 집」에서 개최한다. ②제4차 남북정치분과위원회는 1992년 5월19일(화)판문점 북측지역 「통일각」에서 개최한다. ③제4차 남북군사분과위원회는 1992년 5월25일(월)판문점 남측지역 「평화의 집」에서 개최한다. ④제4차 남북교류·협력분과위원회는 1992년 5월30일(토)판문점 북측지역 「통일각」에서 개최한다. 7.제8차 남북고위급회담은 1992년 9월15일부터 18일까지 평양에서 개최한다.
  • “핵사찰 돌파구 마련못해 유감”/정총리/7차 남북총리회담 이모저모

    ◎“우리가 할일은 많고 갈길도 가깝지 않다”/정 총리/“「8·15 방문단」 합의는 온겨레의 큰 기쁨”/연 총리/만찬장 분위기에 도취된 서강대 박총장,「사랑해…」 열창 ▷2차회의◁ ○…7일 상오10시10분 예정보다 10여분 늦게 시작된 제7차 남북고위급회담 이틀째 회의에서 정총리와 연총리는 회의시작에 앞서 간밤의 실무진 접촉결과 날씨,북측대표단 일정등에 관해 6∼7분동안 환담. 대표단끼리 서로 악수를 교환하고 회담장 테이블에 착석한 뒤 연총리가 먼저 『어제 쌍방 대변인과 분과위원장이 많이 수고했습니다』라고 인사말을 건넸고 옆에 앉아있던 안병수북측대변인도 『보람있는 일이지요』라고 거들자 정총리는 『안대변인 말이 맞습니다.보람있는 일을 하는데 고생이랄수 있겠습니까』라고 화답. ▷TV생중계◁ ○…남북한대표단은 이날 신라호텔 2층 다이너스티홀에서 『잠은 못잤지만 보람있는 일을 해서 피곤하지 않다』『기본합의서의 실천의지를 겨레앞에 보여줬다』는등 전날밤 막후대표 접촉의 성과에 만족하는 인사를 교환하며 제7차 고위급회담 2차회의를 시작. 당초의 비공개방침을 변경,공개로 진행된 이날 회의는 교류협력공동위원회와 군사공동위원회의 구성운영에 관한 합의서와 연락사무소의 설치운영에 관한 합의서를 양측의 해당분과위원장이 교대로 낭독한 뒤 이를 양총리들이 서명,문본을 교환하는 순서로 1시간30여분동안 차분하게 진행. 특히 군사공동위원회 구성운영에 관한 합의서는 북측이,교류협력공동위 구성운영에 관한 합의서는 남측이,연락사무소의 설치운영에 관한 합의서는 북측이 각각 먼저 낭독하고 같은 내용을 상대측이 다시 읽는등 「주고받기」식의 상호 호양정신을 발휘. ▷폐회발언◁ ○…고위급회담 수석대표인 쌍방 총리들은 3개 공동위와 남북연락사무소등 실천기구의 구성·운영에 관한 합의서 서명을 끝낸뒤 각각 폐회발언을 통해 이번 회담의 의미와 앞으로의 전망에 관한 입장을 피력. 정원식총리는 발언서두에 『남과 북이 다같이 호양의 정신을 발휘하여 남북기본합의서를 성실히 이행·준수해 나갈 튼튼한 기조를 마련하게 된 것을 온 겨레와 함께 기쁘게 생각한다』고 이번 회담의 성과를 평가. 정총리는 그러나 『핵통제공동위원회가 이번 회담에서 반드시 협의·해결해야 할 과제인 남북상호핵사찰 문제에 아직 돌파구를 찾지 못한데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면서 『한반도 평화정착에 가장 기본적이고 긴급한 과제인 상호핵사찰 문제의 해결을 위해 귀측은 응당 그 책임을 다해야 할 것』이라고 밝혀 이행기구 발족에도 불구하고 핵문제의 해결이 중요한 선결과제임을 강조. 정총리는 『오늘 우리가 이행기구들을 탄생시키게 된 것은 퍽 경하스러운 일이기는 하지만 이로써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된 것은 아니다』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너무도 많으며,가야 할 길도 결코 가깝지 만은 않다』고 부연. 연형묵총리는 정총리의 발언에 앞서 「결속발언」을 통해 『노부모방문단과 예술단을 교환하기로 합의한 것은 실천단계에 들어선 우리 고위급회담의 새로운 면모를 내외에 과시한 것으로서 우리는 이것이 온 겨레에게 커다란 기쁨을 주게 되리라는 것을 확신한다』고 7년만에 재개된 이산가족의 고향방문에 큰 의미를 부여. ▷오찬◁ ○…남북합의서 이행을 위한 공동위구성문제 등을 순조로이 마무리 지은 양측대표단은 이날 타워호텔 「코리아 가든」에서 오찬을 함께 하며 모처럼만에 격의없는 대화를 나누는 등 큰 짐을 벗어던진듯 홀가분한 모습. ▷시내관광◁ ○…북측기자단은 7일 상오 10시47분 숙소인 신라호텔을 출발,1시간동안 차중 관광으로 서울 시내를 둘러 보던중 북악스카이웨이 「팔각정」에서 잠시 차에서 내려 시내 전경을 구경하려 했으나 자욱한 안개로 잘 보이지 않자 몹시 아쉬운표정.한 북측기자는 『이렇게 높은 곳에서 서울 전체를 둘러보는 기회도 드문 일인데 내일까지 비가 온다니 어쩔수 없지』라며 『회담이 잘 되니까 하느님이 시기하는 것 같다』고 농담. ▷영화관람◁ ○…연총리등 북측 대표일행은 비로인해 용인자연농원 방문이 취소되자 김종휘대통령외교안보담당보좌관 등 우리측 대표와 함께 하오3시부터 본 회담장을 급조해 만든 2층 홀에서 「사의 찬미」라는 영화를 관람. 연총리 일행은 이 영화의 주연 남녀배우인 장미희·임성민씨의 안내를 받아 입장,2시간반동안 계속된 영화를 주의깊게 관람. 연총리는 영화가 끝난뒤 장·임씨가 무대로 나와 인사를 하자 다가가 꽃다발을 각각 전달하면서 『잘 봤다』고 인사. 연총리는 영화감상 소감을 묻는 질문에 『좋았다』라고 간단히 대답. ▷만찬◁ ○…7일 저녁 서울 하얏트호텔 그랜드 볼룸에서 열린 이해원서울시장주최 만찬은 양측 대표단 전원과 서울시의회 관계자 언론계 학계 예술계인사등 3백여명이 참석해 3시간여동안 진행. 이날 만찬에서는 특히 막바지에 초청인사로 참석한 박홍서강대총장이 즉석연설과 독창으로 흥을 돋워 분위기를 고조. 박총장은 2부 공연순서에서 마지막 출연자인 조용필씨의 노래로 만찬이 끝날 무렵 예정에 없이 무대에 올라와 『한마디 하겠다』고 말문을 연뒤 『통일을 위해 수고하시는 두 총리께 교육자의 한 사람으로 감사드린다』고 피력. 그는 이어 『남북의 젊은이들도 서로 사랑할 수 있도록 모두가 노력하자』고 말한뒤 쑥스러운듯 『노래 한 곡 하겠다』며 「사랑해 당신을」을 열창했고 참석자들은 열띤박수와 환호로 이에 호응. ○…북한은 7일 제7차 남북고위급회담에서 남북연락사무소와 군사·경제·사회문화교류협력 등 3개공동위 구성에 관한 합의서를 채택,발효시킨 사실을 보도하면서 이번회담이 「성과적」이었다고 논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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