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8·15
    2026-08-16
    검색기록 지우기
  • 40대
    2026-08-16
    검색기록 지우기
  • 80대
    2026-08-16
    검색기록 지우기
  • 6·25
    2026-08-16
    검색기록 지우기
  • 불법
    2026-08-16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5,127
  • 「세계를 빛낸 한국 음악인」 한자리

    ◎문체부,광복50주년 기념 대향연 마련/정명훈·장영주·백건우·조수미 등 24명 출연/8월15일부터 서울·지방·미 LA서 공연 「95년도 최고의 음악이벤트」로 기대되는 범국가적인 음악축제가 오는 8월15일부터 30일까지 서울과 지방 주요도시에서 펼쳐진다. 문화체육부가 광복50주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마련한 이 행사는 「세계를 빛낸 한국음악인 대향연」이란 이름아래 음악 각분야에서 최고 기량을 빛내고 있는 국내외 한국음악인 24명을 초청했다. 초청인물들은 ▲지휘=금난새 원경수 정명훈 ▲바이올린=강동석 김남윤 김영욱 장영주 정경화 ▲피아노=김혜정 백건우 백혜선 신수정 이경숙 한동일 ▲첼로=정명화 조영창 ▲비올라=최은식 ▲성악=고성현 김영미 박세원 신영옥 조수미 최현수 홍혜경씨 등이다. 정명훈이 지휘하고 KBS교향악단이 협연하는 이번 대향연의 첫 공연은 8월15일 하오8시 서울 잠실올림픽 주경기장 특설무대에서 열린다.이 무대는 초청인물들이 모두 등장하여 각자의 기량을 선보이는 대형 축전음악회가 되며 이어 8월18일부터 30일까지 4∼5명씩 그룹을 구성하여 부산 대구 대전 광주 등 지방 주요도시를 순회한다.또 10월에는 유엔창설 50주년을 기념하는 미국 뉴욕 유엔홀에서의 특별공연과 재미동포들을 위한 LA공연도 준비되고 있다. 한편 연주 레퍼터리는 음악전문가들로 구성된 자문위원회와 출연 아티스트들이 사전 협의과정을 통해 가장 조화로운 화음과 선율을 선보일 수 있도록 현재 구체적인 선곡 작업중이다. 또한 잠실 주경기장에서의 축전음악회는 정상급 음악인들의 기량이 제대로 발휘될 수 있도록 조명 음향등 기술적 부분에서도 국내 최고수준의 스태프와 장비가 총동원되며 일부 특수분야는 외국의 일급 스태프와 장비를 가세하여 입체적 사운드를 마련할 계획이다. 이번 행사는 예술분야중에도 국제무대 진출에 가장 뛰어난 성과를 보이고 있는 한국 음악인들의 자질을 한눈에 가늠해 볼 수 있는 자리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 8·15 판문점 집회 일체 불허/통일장관회의

    ◎「북한인권 대책회의」구성키로 정부는 앞으로 남북간 단기적인 대화국면조성에만 연연하지 않고 남북관계의 실질적 개선과 북한주민의 인권과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장기적 대북정책의 초점을 맞춘다는 방침을 정했다. 정부는 16일 상오 통일원 회의실에서 나웅배 부총리겸 통일원장관 주재로 열린 통일관계장관회의에서 이같이 결정하고 대북접촉·교류허용 및 민간통일논의행사 추진을 위한 세부지침을 확정했다. 정부는 이날 회의에서 광복 50주년을 계기로 활성화조짐을 보이고 있는 남북간 종교등 사회문화교류와 관련,판문점에서의 공동행사를 비롯해 전국규모의 옥외 및 정치성 행사는 일체 불허키로 했다. 정부는 또 북한주민의 인권보장과 삶의 질을 향상하기 위한 정부차원의 종합대책을 강구키로 하고 통일관계장관회의 산하에 「북한인권대책실무조정회의」(위원장 송영대 통일원차관)를 구성키로 의결했다. 송 차관은 회의를 마친 뒤 민간차원의 대북교류는 정치성이 배제된 가운데 단체의 대표성이 인정돼야 할 뿐아니라 국내 법질서가 존중되고남북간 관계개선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추진되는 경우에 한해 허용키로 했다고 발표했다. 한편 회의는 대북경수로공급협정에 반드시 한국표준형이 명기돼야 하며 한국의 중심적 역할이 보장돼야 한다는 기존입장을 재확인했다. ◎북,집회불허 비난 【내외】 북한은 16일 한국정부가 8·15를 전후해 종교계등 사회문화단체가 판문점에서 북한과 공동집회를 개최하는 것을 불허키로 한데 대해 맹렬히 비난했다. 북한 중앙방송은 이날 논평을 통해 『한국정부가 판문점 공동집회를 불허키로 한 것은 앞으로 북과 남의 그 어떤 사소한 접촉도 차단하고 북과 남을 완전히 격폐시키겠다는 것을 공공연히 선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 무분별한 남북연계행사 사전 차단/대북교류지침 왜 나왔나/

    ◎북의 대남교란 술책 봉쇄에 주안/정치성 배제한 종교인 순수선교 방북 등은 허용 『올해는 민간차원의 각종 통일논의와 교류 움직임이 그 어느 때보다 활발히 분출될 것으로 보인다』 16일 상오 열린 통일관계장관회의에서 내린 나웅배 부총리겸 통일원장관의 전망이었다.올해가 광복 50주년임을 염두에 둔,우려와 기대가 뒤섞인 관측이었다. 사실 종교분야를 포함한 남북간 사회·문화 교류 움직임이 이미 연초부터 봇물처럼 터져 나올 조짐을 보였었다.지난 4월초 대종교 안호상 총전교 일행의 불법방북 사건이 단적인 사례다. ○우려반 기대반 관측 이날 통일관계 장관회의는 이같은 상황이 확대재생산될 가능성에 대비,「대북 교류 및 통일관련 행사에 관한 지침」을 확정했다.올해들어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이는 민간차원의 다양한 통일행사와 인적교류 움직임에 대한 정부차원의 사전 교통정리인 셈이다. 요컨대 북 접촉·교류 허용기준은 우리측 당국과 민간을 이간시키려는 북한의 통일전선전술에 말려드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이다.즉 종교계의 경우정치성을 배제한 채 분명한 선교목적을 가진 대표성있는 단체나 개인에 한해 방북등을 허용키로 한 것이 대표적 실례다. 또 ▲정치성 행사불허 ▲전국규모 옥외행사 불허 ▲판문점 행사불허 등 민간 통일논의를 위한 행사 추진기준을 마련한 것도 마찬가지 맥락에서 이해된다.우리측 민간 통일운동이나 종교행사가 북한이 오는 8·15를 전후해 국가보안법 철폐투쟁 등을 이슈로 삼아 준비중인 대민족회의나 「통일대축전」행사와 연계될 가능성에 미리 쐐기를 박은 것이다. ○판문점 행사 불허 특히 판문점에서의 남북공동행사를 불허키로 한 것은 북한이 최근 줄곧 정전협정 무력화를 기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한 대응책이다.판문점 행사를 허용할 경우 북측이 행사참가자들에 대한 미군측의 신변안전보장등을 이유로 미­북 군사당국자회담을 요구하는 등 미국과의 직거래 공세를 가속화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북한은 올들어 중립국감독위 북측 사무실을 폐쇄하는 등 미국과의 평화협정 체결을 겨냥한 집요한 공세를 펴왔다. ○민간단체 반발 예상 여하튼 이번 조치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가 추진하고 있는 판문점 공동예배행사 및 남북인간띠잇기대회 등 몇가지 남북 사회·문화교류행사는 성사되기가 어렵게 됐다.이에 따라 일부 해당 민간단체들의 반발도 예상된다.그러나 정부로선 예상되는 더 큰 부작용을 막기 위해 이를 감수할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 서대문 독립관 원상복원/서울시/강제철거 50년만에

    ◎8월 15일 착공… 내년 광복절 개관 서울시는 일제가 강제 철거했던 서대문 독립공원 안의 독립관을 광복 50돌을 맞아 원상 복원키로 했다.오는 7월 말까지 설계를 마치고 광복절인 8월15일에 착공,내년 광복절에 문을 연다. 7백40평의 터에 지상·지하 1층으로 복원한다.외벽은 전래 벽돌로 치장하고 지붕은 전통 기와로 처리해 옛 모습을 살린다.1층에는 전시실과 위패 봉안실을,지하에는 회의실과 자료실,관리실을 설치한다. 독립관은 조선시대 중국 사신의 영접과 전송을 위해 잔치를 하던 모화관을 1896년 독립협회의 윤치호·서재필 박사 등이 사대주의를 청산한다는 취지로 이름을 바꾸고 전국 각지에서 들어온 기부금으로 시설을 고쳐 독립협회 회관으로 사용한 곳이다. 일제는 독립관을 철거한 뒤 형무소를 세워 독립투사를 가뒀으며 독립문도 함께 철거했었다.
  • 일 총리/“과거침략 반성”표명키로/일지보도

    ◎「8·15」50주년 집회때/정부차원서 평화결의 【도쿄 연합】 무라야마 도미이치(촌산부시)일본 총리는 12일 정부가 오는 8월15일의 종전기념일에 개최할 예정인 「전후50년 기념집회」에서 과거침략행위에 대한 반성등이 포함된 「정부호소」를 표명키로 했다고 마이니치(매일)신문이 13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정부고위당국자의 말을 인용,무라야마총리의 이같은 방침은 종전 50주년에 즈음한 국회결의와 병행해 「정부판」결의를 함으로써 평화 결의를 보다 분명히 하려는 것이라고 전했다.
  • “김일성 시신 매장뒤 김정일 주석직 취임”/미지,북한발 보도

    【워싱턴 연합】 북한의 김정일은 현재 주석궁 이웃에 건설 중인 것으로 전해진 묘소가 완성돼 김일성의 시신을 매장하는 절차가 끝난 후 주석직을 승계할 것으로 보인다고 미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지가 12일 북한발로 보도했다. 모니터는 평양의 외교관들을 인용해 『주석궁 인근에서 진행 중인 건설 공사가 장차 북한의 영묘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모니터는 「북한의 불가사의한 주석 대기자」란 제목의 분석 기사에서 북한의 막강한 군부도 김정일의 주석 취임을 위해 「상징적인 날짜」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김일성 사망 1주기 ▲일제에서 해방된 8월15일 ▲북한창건일인 9월9일 또는 ▲10월10일의 로동당 창건 50주년 등이 주석 취임일로 선택될 가능성이 있다고 관측했다. 모니터는 평양거주 외국인과 외교관들의 발언 등을 근거로 『김일성 사후 쿠데타들과 내란 얘기가 있어왔음에도 불구하고 김정일이 실제 놀랄 정도로 부드럽게 권력이양 과정을 거쳐왔다』고 분석했다.
  • 남·북 8·15합동법회 수락/송월주 스님,23일 북경 실무접촉제의

    조국평화통일추진불교인 협의회장 송월주스님은 1일 북한의 조선불교도연맹 박태호위원장이 제의한 「8·15 판문점 남북해외불교도 조국통일기원합동법회」를 수락하고 법회 성사를 위한 절차를 논의하기 위한 실무접촉을 오는 23일 중국 북경에서 갖자고 제의했다. 송월주 스님은 8·15판문점합동법회를 마치는 대로 『정부의 승인을 받아 북한을 방문,금강산과 보현사 등 불교 유적지를 찾아 실상을 살펴보고 문화재보수 등 남북 불교 교류협력에 노력하겠다』며 『그러나 방북과 귀국은 제3국이 아닌 판문점을 통해 하고싶다』고 말했다.
  • 고종,러시아에 파병 요청했었다/서울시립대 친서3종 발굴… 첫 공개

    ◎러시아와 연합,일 축출 모색/청게천 준설 기념 영조의 「준천계첩」도 대한제국이 러일전쟁 직전 러시아와 연합해 대일전쟁을 준비했고 러일전쟁중 일본을 한반도에서 몰아내기 위해 러시아 군대의 파견을 요청한 사실을 입증하는 고종황제의 친서들이 국내 최초로 공개됐다. 서울시립대 부설 서울학연구소(소장 안두순)는 25일 러일전쟁 직전인 1903년부터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직전인 1907년까지 고종황제가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에게 보낸 비밀친서 3건을 공개했다. 서울학연구소가 모스크바 제정러시아 대외정책 문서보관소에서 발굴한 이 비밀친서들 가운데 1903년 8월15일 고종황제가 러시아 니콜라이 2세에게 보낸 친서는 『근일 일본신문에 의하면 장차 개전할 것이라 하는데…일본수비대가 우리나라 서울에 있은 즉 개전 초일부터 우리나라는 반드시 일본인에 견제를 받게될 것이다.짐은 당연히 사자로 하여금 일본군의 수와 거동및 의향여하를 탐지할 것이고 귀국의 군려에게 명확히 알릴 것이다』라는 내용으로 전쟁이 발발하면 러시아군을 도와일본을 물리치겠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또한 러시아의 여순함락 직후인 1905년 1월10일 한성 경운궁에서 작성한 친서는 『현재 일본의 우리나라에 대한 무례는 도를 지나친 극심한 것으로 나라의 세가 도탄에 빠지게 됐다.이를 막기 위해서 러시아 대군을 경성에 대거 입경시켜 일본의 악을 소제함으로써 독립의 권리를 공고히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고 해 러일전쟁 기간중 러시아 병사의 경성파견을 요청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와함께 공개된 1907년 친서는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서 을사보호조약의 무효와 일제의 잔학상을 알릴 조선 밀사를 러시아 대표가 도와줄 것을 요청하는 내용의 것이다. 서울학연구소는 미국 버클리대 동아시아도서관 아사미콜렉션에서 발굴한 「준천계첩」도 이날 함께 공개했다.이 「준천계첩」은 영조말년인 1760년 4∼5월 이루어진 청계천 준설공사를 기념한 책자로 영조가 친필로 신하들의 노고를 치하한 글과 영조가 공사현장을 돌아보는 장면,공사완공후 신하들과 가진 연회장면등 채색 목판그림 4점이 들어있다.
  • 종교계/대북접촉 신중론 대두

    ◎대종교 안호상씨 불법입북계기 우려의 목소리/불교인 협의회·종교인 평화회의 등 신청 잇따라/북한,“위장평화 공세 이용” 노려 북한이 올해초부터 비공식루트를 통해 기독교·불교·천주교 등 한국종교계와 접촉을 시도하고 있는데다 대종교의 안호상 총전교와 김선적 종무원장의 불법입북사건으로 종교계의 대북접촉이 주목되고 있다. 현재 대북접촉신청을 낸 곳은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위한 종교인협의회」와 「조국평화통일추진 불교인협의회」 「한국종교인평화회의」등이고 중국과 일본 등지에서 북한의 기독교지도자들과 접촉을 해온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는 곧 방북신청서를 제출할 방침이다. 천주교 김수환 추기경도 아직 방북신청은 내지 않고 있으나 북한의 천주교교구장으로서 북한신도를 보살펴야 된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위한 종교인협의회」의 방북신청은 오는 8월15일을 전후해서 서울이나 평양에서 종교인회의를 열기 위한 것.이 회의을 통해 종교인의 단결과 의지로 남북분단현실에 평화를 앞당겨 가져올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겠다는 것이다. 종교인협의회는 불교의 실천불교전국승가회(대표 청화 스님),개신교의 전국목회자정의평화실천협의회(대표 유원규 목사),가톨릭의 정의구현전국사제단(대표 김승훈 신부),원불교의 사회개벽교무단(대표 신명국) 등 각 교계의 진보적 단체가 지난 93년6월 결성한 범종교적 협의기구다. 한편 조국평화통일 불교인협의회는 이달중이나 오는 8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제2차 남북한해외불교지도자간담회를 열고 불교인정례교류방안,불교문화재공동조사,북한 불교성지복원방안 등을 논의할 방침이다. 평불협은 이 모임을 위해 통일원으로부터 북한주민접촉승인을 이미 받고 북한측에 예비실무접촉을 제의했다. 「한국종교인평화회의」의 원불교측 인사인 원광대의 김영두교수(원불교학과)는 학술대회를 위해 지난달 방북신청서를 제출,오는 6월쯤 북한을 방문할 예정이다. 또한 KNCC는 지난달 28일 일본 교토(경도)에서 열린 한반도평화와 통일을 위한 제4차 기독교국제협의회에서 북한측 대표와 만나 오는 8월15일 판문점 공동예배등에 합의했다. KNCC는 오는 8월15일 판문점에서 남북한 희년공동예배를 올리기로 함에 따라 이달중으로 실무접촉을 가질 계획을 세우고 곧 통일원에 대북접촉승인서를 제출할 방침이다. 대부분의 종교단체는 합법적인 절차에 따라 정부와 충분한 협의을 갖고 대북접촉에 나서겠다는 입장이지만,종교단체들이 경쟁적으로 방북의사를 밝힐 경우 북한의 위장평화공세에 말려들 공산이 크다는 점에서 종교계의 성급한 대북접촉 움직임은 우려를 자아낸다.따라서 종교인의 대북접촉은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 2차 미·소공위 결렬(새로쓰는 한국현대사:14)

    ◎소,「임시인민위」 북 대표로 즉각 승인/3상회의 결정 휴지화… 남북분단으로 치달아/이승만 도미외교… 단정수립·유엔가입 등 추진 □특별취재반 ▲황규호 문화부 부국장급 ▲이용원 〃 기자 ▲김성호 〃 〃 ▲김경운 조사부 〃 미국과 소련의 한반도분할점령은 그 자체가 남북 두개의 한국으로 향할 수밖에 없는 숙명 같은 것이었다.미·소공동위원회도 사실상 허상에 불과했다.1947년의 2차미·소공위는 한반도를 더욱 절망의 구렁으로 몰아넣었다.1946년의 1차공위가 좌우대립을 부추겨 분단의 자두를 제공했다면 2차미·소공위는 남북이 서로 갈라져 영원한 평행선을 달려야 할 지미를 의미했다. ○10월 62차 본회의 끝으로 제2차미·소공위는 1947년10월18일 제62차 본회의를 마지막으로 결렬되었다.자국의 이데올로기 옹호론에 빠져들기 시작한 2차미·소공위는 그해 여름부터 불투명한 조짐을 보였다.소련이 먼저 미군정의 공산당및 좌익계 검거를 비난하고 나서자 미국은 북한에 감금된 주요인사의 석방을 요구했다.그해 8월 평양에 간 미국 수석대표 WC 브라운소장은 고려호텔에 연금된 조만식을 면회한 바 있었다.그리고 10월 미군정 정치고문 랭던이 한차례 더 면회한 이후 조만식을 만났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미국과 소련은 미·소공위 결렬과 함께 한반도정책을 곧바로 바꾸었다.이는 한반도에 이념이 다른 두개의 정권탄생을 예고했다.미국의 정책전환에는 대전이후 소련군이 진주한 동유럽 여러 나라의 사회주의정권 출현이 자극제로 작용했다.더구나 소련의 절대적 영향력을 받고 있던 북한에서는 이미 1946년2월9일 임시인민위원회가 공식출범한 상태였다.그리고 광복1주년을 맞아 8월15일에는 대규모 행사를 열어 임시인민위의 존재를 대내외에 과시하고 소련을 찬양했다(별도기사 참고). 미군정은 북한의 재빠른 임시정권성립에 위협을 느꼈다.평양에서 북한 임시위원회가 성립된 1946년2월9일은 제1차 미·소공위 첫모임(1월16일∼2월5일)이 서울에서 막 끝나고 다음 예비회담(3월20일)을 기다리는 시기에 해당한다.마침 남한에서는 공산당을 중심으로 조선민주주의민족전선(민전)이 결성되었다.당시 미군정의 위기상황은 하지의 2월말 보고서에 잘 나타난다.「소련은 앞으로 탄생할 조선임시정부의 지배권을 공산주의자들이 장악하도록 북한임시인민위원회를 북한의 대표로 받아들이고 남한공산주의자대표를 더 늘리라고 강요하고 있다」(미 대외문서철·1946년) 그렇다고 해서 미군정이 모스크바 3상회의 결정에 따른 통일임시정부수립노력을 일찍 포기한 것은 아니다.19 45년10월 환국한 이승만의 소련과 공산주의 매도발언(미 국무성이 일본 정치고문서리 애치슨에게 보낸 전문·1945년10월)에 제동을 걸면서 「말썽꾼」으로 몰아붙였다.한반도문제는 미·소공위를 통해 소련과의 협조하에 해결하는 것은 물론 그 가능성이 남아 있는 한 이승만을 경원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미국의 입장이었다.특히 단정을 주장한 1946년6월 이승만의 정읍발언에 주목한 미군정은 그해 12월 미국을 방문한 그의 워싱턴행적에 대해서도 내내 신경을 곤두세웠다(주한미24군 G­2 주간정보·1946년12월).하지는 1947년7월까지도 이승만을 싫어했다. 이승만의 도미외교의 성과는 당시로서는 판단하기가 일렀다.미국내에서도 대전 직후부터 논의되던 대소외교정책이 뚜렷한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화평파와 강경파로 나누어져 있었기 때문에 이승만은 미국내 대소강경파에 가세,미국의 정책을 반소·반공으로 전환시켜보려는 노력을 기울였다.당시 이승만의 대미외교활동을 도운 사람은 임병직이었다.임병직은 뒷날 국무차관보 J R 힐드링이 이승만을 지지한 반면 동아시아국장 H 보튼과 극동국장 J K 빈센트는 반대입장이었다고 회고했다. ○하지,이승만을 따돌려 미군정은 임시정부수립노력의 하나로 좌우합작위원회에도 기대를 걸었다.1946년8월26일 하지장군은 우익대표 김규식,좌익대표 여운형에게 격려서한을 보낸 데서도 이런 기대를 반영하고 있다.이무렵 공산당의 활동도 만만치 않았다.테러리즘으로 전술을 바꾼 공산당의 활동은 미군정이 8월28일과 29일 청주와 부산지역 공산당비밀회합에서 압수한 1급비밀문서를 통해 드러났다.이들 문서는 공산당원들의 자기희생을 요구하면서 앞으로 임시정부가 수립되었을 때 한 정부에서로 다른 정치체제가 있어서는 안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었다. 역사에는 우연이 없다고 한다.그런데 공교롭게도 이승만이 미국에서 반소·반공노선을 주창하는 정치활동을 펼치던 1947년3월 트루먼 독트린이 발표되었다.이를 직접발표한 트루먼은 「소수파가 독재정치를 강요하는 공산주의와 대항,자유민주주의제도 보전을 위해 싸우는 세계 모든 국민을 원조하는 것」이라고 선언했다.소련에 대한 미국의 강경정책은 이승만의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그러나 이승만 같은 대소강경파에게는 아주 유리했을 뿐 아니라 또 그런 반소·반공주의자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했다. ○48년 분단고착 구체화 이승만은 귀국을 서두르면서 자신의 주장이 관철된 것처럼 보이는 발언을 했는데 그 내용은 국내에 곧바로 보도되었다.「미국은 30∼65일이내에 남한에 단독정부수립을 허용하고 UN가입을 지원하는 동시에 서울에 대사격의 고등판무관을 파견할 것이다.미군은 소련군이 북한에서 철수할 때까지 남한에 주둔할 것이다」(서울신문 1995년3월25일자).미국은 국무성 대변인을 통해 남한의 단정수립추진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부정했다.그러나 4월초 귀국한 이승만은 자신과 미국무성 차관보 힐드링장군과 협의한 사안임을 다시 환기시켰다. 이에 대해 하지장군은 미 국무성이 그런 양해를 한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다.그리고 5월에 제2차 미·소공위가 열려 한반도의 통일임시정부가 수립될 것처럼 보였다.따라서 이승만의 도미외교는 실패한 인상이 짙었다.그러나 일련의 발언이 미·소공위가 결렬되었을 경우를 미리 생각한 대안이었음을 곧 알게 되었다.미국은 제2차 미·소공위가 공전하는 가운데 한반도문제 해결에 아무 도움을 줄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그리고 나서 미국은 한반도문제를 국제연합(UN)에 넘겼다.소련외상 N Y 비신스키의 반대발언에도 불구하고 미 국무장관 G C 마셜의 이 제안은 2차미·소공위가 결렬되기 약 한달 전인 9월21일 UN총회 운영위원회를 통과했다.이로 인해 최소한 5년의 신탁통치를 전제로 한반도에 임시정부를 세운다는 모스크바 3상회의 결정을 뒷받침하는 미·소공위야말로 무의미한 만남에 불과했다.그래서 미국 수석대표 W C 브라운의 제의로 제2차 미·소공위는 막을 내렸고 1947년은 순탄치 않게 저물었다. 그러나 민족의 운명을 분수령에 세울 1948년은 복잡한 양상을 띠고 다가왔다.북한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가는 예정된 수순을 밟는다.남한에서는 유엔 한국위원회가 지켜보는 총선을 거쳐 대한민국시대를 맞는다.그것은 분단고착을 구체화한 두개의 국가였다. ◎「해방1돌 기념식 북조선계획안」 발굴/서울신문 특별취재반 미 국립문서국 통해/스탈린 예찬·기념비건립 추진… 소 예속 드러나 북한 공산주의사회가 오늘날까지도 체제유지를 목적으로 동원하는 대규모 선전선동수단은 이미 해방과 더불어 시작되었다. 이는 서울신문 특별취재반이 미 국립공문서보존관리국(NARA)에서 발굴한 1946년의 북한문서를 통해 밝혀졌다.이름은 「해방 제1주년 기념식준비에 관한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계획안」.6쪽분량의 등사물로 이루어졌다. 이 문서는 남한에 앞서 19 46년2월9일 사실상의 북한정권으로 등장한 임시인민위원회 성립을 경축하기 위해 마련한 기획안이라는 점에서도 주목을 끌고 있다. 특히 김일성이 발표한 20개 정치강령을 널리 선전,정치사업을 강화하라는 지시는 김일성 중심의 북한정권성격을 일찍부터 드러낸 대목이다.그리고 모스크바삼상회의 결정에 맞서는 반대파와의 투쟁을 부추긴 내용은 사뭇 선동적이다. 이와 더불어 소련 스탈린대원수에게 인민의 명의로 선물과 축하문을 보내기로 결정하고 이를 소련군과 협의할 것을 지시했다. 또 스탈린을 조선의 친우·해방자·승리자로 예찬하면서 주요도시에 기념비 및 기념관건립을 계획하는 등 소련에 철저하게 예속되었다는 사실도 나타났다.여기에는 붉은 군대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도시의 가로명과 공원·광장이름을 모두 바꾸는 계획안도 포함되었다. 조직사업·선전 및 군중사업으로 나누어 30개항의 기념사업내용을 담은 이 문서는 8월15일에 각 도시와 농촌이 모두 나서 경축 군중집회를 열도록 다그치고 있다.임시위원회 위원장 김일성과 서기장 강양욱 명의로 작성했는데 내로라는 공산주의자 15명이 중앙준비위원회 위원으로 참여했다.위원명단에는 월북문인 이기영과 한설야의 이름도 보인다.
  • 「저달러·엔고 행진」 계기로 본 환율 전쟁사

    ◎2차대전후 4차례… 미 적자가 주인/투기성 자금·선진국 불협화도 한몫 달러화에 대한 엔화의 환율이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여겨지던 85엔선마저 무너지면서 세계경제는 미국과 일본의 환율전쟁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해까지 외환시장 관계자들의 관심사가 「누가 엔고를 멎게 할 것인가」였다면 올해에는 「엔고가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로 바뀌었다.그만큼 예측도 어렵다. 80년대 들어 미국의 재정적자와 무역적자(쌍둥이 적자)가 지속되면서 불붙기 시작한 미·일간의 환율전쟁은 양국의 보호주의정책과 맞물려 좀체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이를 차세대 경제리더를 차지하려는 미국과 일본의 헤게모니 쟁탈전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2차대전 이후 지금까지 70년대 두번,80년대 한번,90년대 한번 등 모두 4차례 엔고가 있었다. 1차 엔고는 닉슨 쇼크로 명명된 71년 8월15일부터 세계의 통화체계가 변동환율제로 바뀐 73년 2월23일까지다. 닉슨은 베트남 전쟁수행을 위해 과다하게 찍어낸 달러화가 미국의 대외수지 악화·대외 단기채무 누적 등으로 나타나자,「더이상 대내균형을 희생하면서 달러본위 체제유지에 노력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이때부터 달러화에 대한 주요국의 통화가 모두 강세로 반전된 가운데 엔화는 1달러당 3백60엔에서 1년반만에 2백65엔까지 36%가 절상됐다. 2차 엔고는 75년말 3백엔대까지 올랐던 엔화가 카터대통령이 달러화 방위를 선언한 78년 11월1일 1백71엔까지 떨어졌던 기간이다. 변동환율제 이후 달러가치 방어라는 책임에서 해방된 미국이 고금리 정책과 함께 거의 무제한으로 달러화를 살포하면서 무역적자가 급속히 확대되고 미국을 비롯한 세계경제가 인플레에 시달렸던 시기다.카터는 전후 두번째로 두자리 숫자를 기록한 인플레를 억제하기 위해 강력한 긴축정책을 통한 달러화 가치회복을 선언한 것이다. 3차 엔고의 시기는 달러화의 평가절하에 합의한 선진국들의 플라자 합의(85년 9월22일)이후 엔화가 1백20엔선으로 절상된 88년까지이다. 80년대 들어 미국은 세출삭감·국방비 증액·대규모 감세 등 공급측면을 중시한 「레이거노믹스」를 추진한 결과재정적자와 고금리로 인해 수출경쟁력이 약화됐다.쌍둥이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대외 순채권국에서 순채무국으로 전락할 위기에 직면했다. 반면 일본은 엔화약세와 국제원유가 하락 등에 힘입어 국제수지 흑자폭이 급격히 늘며 세계최대의 채권국으로 부상했다. 이에 주요 선진국간의 대외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정책협조를 통해 과대 평가된 달러화의 환율을 조정하기로 한 것이 플라자 합의다.이 기간중 엔화는 무려 1백4%나 절상됐다. 지난 93년 클린턴 행정부출범과 함께 지금까지 계속되는 4차 엔고도 3차 때처럼 미국의 쌍둥이 적자 심화와 일본의 국제수지 흑자 확대가 직접적인 원인이다. 클린턴 정부는 국제경쟁력 강화로 무역적자를 줄이고 일본시장 개방을 유도하기 위해 취임과 동시에 엔고를 용인하겠다는 입장을 취했다.여기에 유럽 외환시장의 불안,멕시코의 페소화 폭락사태,국제적인 투기성자금 유입,주요 선진국간의 정책불협화음 등이 가세,엔고를 부채질하고 있다.클린턴 정부 출범이후 8일까지의 엔화는 31.5% 절상됐다. ◎국내업계 대응/대일 의존 축소… 개도국 등 시장 넓히기 전력 원화값이 사상 처음으로 1백엔당 9백원대를 넘어서자 대기업마다 긴급회의를 여는 등 대책에 부심하고 있다.원화의 대엔화 가치의 절상폭은 올들어 이미 14%를 넘어섰다. 업계에서는 엔고가 장기화될 것으로 판단,우선 「큰 비는 피하자」는 전략으로 환리스크를 관리하고 있다. 선수금을 빨리 받기 위해 선적서류의 네고 기일을 단축하고 신용판매기간도 단축키로 했다.해외의 외상대금은 조기 회수하고 연불조건의 해외구매를 추진하며,수입대금의 결제는 가급적 늦춘다는 전략이다. 또 수출은 원화로,수입은 달러화로 결제한다는 방침을 정해 실무자들을 독려하고 있다. 장기대책은 두가지이다.부품의 지나친 대일 의존도를 줄이고,엔고로 유리해진 가격경쟁력을 활용해 선진국은 물론 개도국의 시장점유율을 높이는 방안이다. 대일 부품의존도가 높은 중장비 등의 기계 및 VCR 등의 가전업체들은 수입선 다변화와 부품국산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대우중공업과 현대정공·삼성중공업 등의 기계업체들은 일본업체들과의 가격인하 협상이 여의치 않을 경우 수입선을 미국이나 독일로 바꾸는 것은 물론 기술도입선도 다른 국가로 바꾸는 방안을 적극 검토중이다. 대우전자는 최근 시티즌사 등 일본의 부품조달업체로부터 오디오와 냉장고 등의 부품값을 10%이상 올리겠다는 통보를 받고 동남아 등에서 새로운 거래선을 찾고 있다. 자동차와 반도체·철강·조선업계 등은 엔고를 호기로 삼아,미국시장 및 개도국시장을 파고든다는 전략이다.수출가격도 올려,채산성도 개선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자동차의 경우 5%선까지,반도체는 10%까지 올려도 시장확대에 무리가 없다는 판단이다. 업계의 관계자는 『엔고를 활용하지 못한 지난 86∼88년의 경험을 되풀이해서는 안된다』며 『부품의 국산화를 추진하고 엔고로 경쟁력이 약화된 일본 부품산업의 국내유치 및 일본업체와의 제3국 공동진출 등을 모색해야 한다』고 밝혔다.
  • 남북 기독교인 8·15 공동예배/KNCC·KCF합의

    남북한의 기독교인들이 광복 50주년 기념일인 8월15일 판문점에서 공동예배를 올린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의 오충일회장과 조선기독교도연맹(KCF)의 강영섭중앙위원장은 28일부터 31일 일본 교토(경도) 간사이세미나하우스에서 열린 「한반도평화와 통일을 위한 제4차 기독교국제협의회」에서 이같이 합의하고 「통일 희년을 맞는 KNCC와 KCF의 공동합의문」을 발표했다.
  • “3개항 양도” 북한비준서의 뜻/이용원 문화부 기자(오늘의 눈)

    북한이 구소련에 청진등 3개 항구를 양도한(조차해 준)사실이 양국간 협정서와 북한측 비준서 발굴로 확인됐다.이는 한국 현대사 연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공식 외교문서를 통해 북한정권 초기의 대소 관계가 드러나면서 정권의 성격도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3개항 양도」가 이번에 처음 알려진 것은 아니다.한림대 아시아문화연구소는 이같은 내용을 담은 「북조선인위 지시 제74호」를 지난해 10월 초 공개한 바 있다.그러나 이 지시공문은 「협정에 따라 항구 양도를 지시한다」는,1백여자 정도의 간략한 내용뿐이어서 실상파악에는 한계가 있었다.더구나 이 문서는 북한정권의 내부용에 불과해 이를 근거로 북·소관계를 가늠하기는 어려웠다. 따라서 사안의 중대함에도 불구하고 심층취재가 불가능했기에 당시 서울신문(94년 10월6일자)을 비롯한 언론은 이 기사를 작게 취급할 수밖에 없었다.그러던 참에 북·소 양국이 체결한 「3개항 양도·양수 협정서」전문과 이를 비준한 북한측 문서를 입수한 것은 대단한 행운이었다.지시공문에서 알 수없었던 「항구 양도」의 내막이 자세히 들어 있어 현대사의 한 부분을 복원하는 일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협정서를 보면 사회주의 형제국임을 주장하는 북한­소련이 당시 어떤 관계였는지 명백해진다.남의 항구를 30년간 빌린다는 발상은 우선 영국의 홍콩점령을 연상케 한다.또 합작이라는 명분 아래 북한은 3개 항을,소련은 배 4척을 같은 값으로 쳐서 내놓았다.소련이 3개항을 제외한 다른 항구도 얼마든지 조차할 수 있도록 명문화했다든지,항만의 수리및 준설비용은 북한측이 일방적으로 부담한다든지 불평등조항이 한두가지가 아니다.결국 북한은 소련의 종속정권이었던 것이다.이번에 발굴된 협정서말고 양국의 관계를 이처럼 적나라하게 보여준 자료는 없었다. 「북조선인민위원회 위원장」 김일성의 직인이 찍힌 47년10월7일부 비준서의 가치도 못지않다.비준이란 국가대 국가 사이에서 벌어지는 외교행위로,북한은 47년에 이미 「국가」로서 행세했음이 입증된 것이다.북한은 그동안 48년9월9일 「건국」했음을 내세워,같은해 8월15일 출범한 대한민국정부에 분단 책임을 전가해 왔다. 협정서와 비준서가 갖는 사료적 가치는 엄청나다.그래서인지 「북한 청진등 3개항 소에 30년간 양도」기사가 나간 27일 서울신문에는 관련자료를 구하려는 학자들의 문의전화가 빗발쳤다.
  • 네팔 룸비니동산에 한국사찰 선다

    ◎조계종 대각사,부처님 태어난 성지에 건립키로/광복50돌 기념 8월15일 기공식 갖기로/대웅전·선원·석탑 등 전통양식으로 건축 부처님이 태어난 네팔의 룸비니 동산에 한국의 절이 처음으로 설립된다. 대한불교 조계종 대각사는 최근 네팔의 룸비니사원구역에 한국사찰을 건축하기로 네팔 정부와 계약을 맺었다고 발표했다. 대각사 주지 불심도문 스님은 최근 기자회견을 갖고 부처님이 태어난 룸비니 성지의 대지 7천여평을 네팔정부와 99년간 임대차 계약을 하고 앞으로 5년 동안 10억원을 투입,건평 1천5백여평의 한국 사찰을 짓기로 국제계약을 맺었다고 말했다. 계약서에 따르면 한국 사찰은 룸비니동산 국제사원구역 서쪽에 가로 1백60m,세로 1백60m의 정방형 대지에 건설되며 대지의 임차료는 매년 3백 달러씩이다. 대각사는 오는 8월 15일 광복 50주년을 기념해서 기공식을 가질 예정이며 공사는 삼부토건이 맡게된다고 밝혔다. 한국사찰의 설계는 동국대 조경학과 홍광표 교수가 맡았다. 홍교수는 한국사찰의 설계기본 계획은 ▲우리 전통사찰 형식을 살리고▲불교의 만다라형을 도입해서 ▲현대적인 기능과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짓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사찰에 포함될 건물들은 ▲대웅전 ▲설법전 ▲선원 ▲강원 ▲스님과 신도용 요사 ▲종각 ▲고루 ▲회랑 ▲석담 ▲정문과 측문 ▲연지 ▲석탑 ▲석등 등이다. 현재 일본·베트남·태국·중국 등이 룸비니 개발 계획에 참여해서 자국 사찰 건설 공사를 하고 있으며 한국은 이번에 19번째로 계약을 체결했다. 룸비니성지 개발계획은 지난 1978년 세계의 가장 위대한 정신이 태어난 이곳을 세계 형제애의 상징으로 가꾸기 위한 유엔의 개발계획의 하나로 국제위원회 산하 15개국이 참여함으로써 시작됐다. 당시 설정한 국제 사원구역 40여개의 부지에 각국의 사찰이 건설될 예정이며 한국 절이 착공될 부지는 일본·중국과 함께 가장 큰 규모이며 위치와 전망도 좋은 곳이다. 대각사 주지 도문 스님은 『부처님이 태어난 성지에 한국 절을 지음으로써 한국 불교의 위상을 세계에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될것으로 본다』며 『절이 완공되면 우리 신도들의 성지순례와 군승등 우리 스님들의 해외교육 현장으로도 활용되게 될것』이라고 말했다.
  • 도쿄 출근길 비명… 신음… “대혼란”/지하철 독가스 테러

    ◎역 26곳 폐쇄… 화학부대 긴급 투입/범인 직접운반 않고 시한장치 한듯 ○헬기 앰뷸런스 동원 ○…죽음의 독가스 사린 테러사고가 발생한 20일 아침 도쿄시내 16개 지하철역 주변에는 앰뷸런스의 사이렌 소리와 구조헬기의 요란한 엔진음속에 중독된 사람들이 쓰러져 공포의 화학 전쟁터를 방불. 역마다 수십대의 앰뷸런스가 구조활동을 벌이고 헬기들이 도쿄 상공을 저공비행하는 가운데 사린과 독극물 아세토니트릴에 질식된 사람들이 거리 곳곳에서 얼굴을 가린채 신음소리를 내며 쓰러져 있었으며 구조대원들과 피해 시민들의 절박한 비명이 뒤섞여 일대 아수라장을 이루었다. 죽음의 공포가 독가스와 함께 도쿄 중심가 지하철로 퍼지며 그렇지않아도 혼잡한 아침 러시아워시간의 일본 지하철은 대혼란에 빠졌다.적어도 26개의 지하철역이 일시 폐쇄되고 도심을 통과하는 히비야선등 3개의 지하철의 통행이 중단됐다. 사고직후 쓰키지(축지)역 역장인 카쿠라이 요시오씨는 『독가스 냄새가 워낙 강해 구조할 엄두를 낼수 없었다』면서 『지하철 안에 있던 시민들은 플랫폼에 그대로 쓰러지거나 그래도 약간 정신이 있는 사람은 비틀거리며 겨우 역을 빠져 나왔다』고 사고 당시를 설명. ○일반환자 진료 중단 ○…사건직후 성루가국제병원 등 도쿄시내 주요 병원들은 「대형사고로 인해 일반인의 진료를 중단한다」는 안내문을 내건채 독가스 중독환자들의 치료에만 전념. 한쪽 눈에 얼음주머니를 댄채 치료를 받던 마사하타 아키오씨(21)는 『갑자기 숨을 쉴수가 없었다.그것이 독가스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내 위로 쓰러졌으며 나도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고 말하며 울부짖었다. ○…가스미가세키역에서는 상오8시15분쯤 전동차 맨 첫번 차량에서 비닐주머니가 있는 것을 역무원 다카하시 가즈마사씨(50)가 발견하고 들어냈으나 다카하시씨는 그 자리에서 졸도해 곧 숨을 거두었다. 약 10분후에는 같은 차량의 8번째 칸에서도 신문지로 싼 약품이 들어 있는 병이 발견됐다. 이와관련,한 회사원은 『맨 뒷좌석에 앉아있던 남자가 내린뒤 의자밑의 신문지에 싼 상자에서 악취를 풍기는 액체가뿜어져 나왔다』고 말했다. ○미서 테러 이미 경고 ○…미국의 한 전문가가 지난달 테러리스트들이 도쿄의 지하철을 대상으로 독가스테러를 준비할 수 있다는 경고를 한 사실이 밝혀져 화제.지난해 6월 일본 마스모토에서 발생한 독가스 누출사고 현장조사 지원을 위해 일본을 방문했던 워싱턴 생화학무기 군축연구소 설립자 카일 올슨씨는 지난 2월 일본의 마르코 폴로지에 기고한 글에서 (마스모토의)범죄자들은 더 큰 규모의 참극을 준비하고 있다며 도쿄의 지하철역 신주쿠나 오사카의 중심가 지하철역에 독가스를 살포하고 웃음짓는 범인들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고 경고한 것. ○교포 간호사도 질식 ○…도쿄 독가스 테러사건에서 전문가들이 가장 의아해하는 것은 사린을 어떻게 운반했느냐는 것. 이와 관련,규슈대의 이노우에 교수(위생학)는 사린을 합성하기 전에 유기인계 화합물과 알코올의 일종을 용기안에 따로따로 칸막이를 설치해 비치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두가지 물질을 분리해 두면 그 자체는 아무 해가 없으나 일정 시간이지나면 칸막이가 썩으면서 양자가 섞여 저절로 사린이 된다는 것. 또 독극물의 권위자인 구로이와 유키오 쇼와대병원 약제부장은 독성이 강하기 때문에 범인이 현장에 사린을 운반했을 가능성은 적으며 스위치를 누르면 작동하도록 장치해 자연히 구멍이 열려 밖으로 사린이 누출되도록 시한장치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기도. 이밖에 전문가들은 일부 전차안에서 검출된 아세토니트릴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이 물질은 사린 생성 자체에는 직접관계가 없으나 아세토니트릴에서 사린의 원료가 되는 약품을 녹여 그것에 알코올등을 합성하면 간단하게 사린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날 독가스 테러사건이 발생하자 일본방위청은 즉각 산하 화학부대 요원 1백40명과 화학처리차 15대를 투입,가스미가세키역 등에서 오염제거작업을 벌였다. 일본 자위대 화학부대는 사린가스 중화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방위청은 이날 출동한 1사단과 2사단의 화학부대외에도 전국에 배치된 다른 13개 화학부대에도 대기명령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사린은 어떤 가스인가/독 나치정권때 개발… 1백m내 사람 구토·실신 사린(Sarin)은 중추신경을 마비시키는 화학물질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이 개발했다.유기인제를 응용한 무색무취의 독가스로 「사상 최강의 독가스」로 불린다.이라크군이 쿠르드족을 제압하기 위해 사용한 적도 있다.비교적 제조가 쉬워 「빈국의 핵무기」로도 불리고 있다. 사린가스를 흡입할 경우의 증상은 신경전달물질인 효소 코린에스트라제를 방해해 동공이 축소돼 앞이 안보이게 되거나 정신을 잃게 되며 전신 경련이 일어난다.따라서 제네바협약에 의해 전쟁중 사용이 금지되고 있다.체중 1㎏당 치사량은 0.01㎎으로 독성이 극히 강한 물질이다.미군이 지난 걸프전당시 이라크군이 사용할지도 모른다면서 해독제인 황산아트로핀,PAM등을 휴대토록 하기도 했다.일본 국내에서는 공식적으로는 제조된 기록이 없지만 지난해 6월 나가노현 마쓰모토시에서 주민 다수가 죽거나 다친 중독사건 당시 이 사린이 사용됐었으며 당시 현장에서 1백m 떨어진 곳에 있었던 사람과 가축도 구토나 실신하는 등의 피해를 입을 정도였다.
  • 「억류정국」타개 「대화싹」 보인다/“막후협상 모색”여야의 물밑기류

    ◎여 “감금해제” 야 “단독처리 포기” 요구/이 총재 오늘 새제안… 정상화 고비로 민자당의 현경대 원내총무와 민주당의 신기하 총무가 8일 비공식 접촉을 가졌다.민주당 의원들이 황락주국회의장 공관과 이한동부의장 자택을 점거하면서 극한대치 국면으로 치달은지 사흘만이다. 이날 만남은 그러나 서로 강경일변도에 변화가 없음을 확인하는 데 그쳤다.민자당은 민주당의 「우선 철수」를 요구했고 민주당은 민자당이 통합선거법을 단독처리 않겠다는 보장을 하라고 맞섰다.서로 선결조건만 고집,의견차를 좁히는 데는 아무런 진전을 보지 못했다. 그렇지만 이날 만남을 계기로 여야간에 대화를 추진하려는 기류가 엿보이는 것도 사실이다.민주당이 여야 동수의 정치특위를 구성하자고 제의할 움직임을 보이면서 대화국면이 싹트고 있는 분위기다. 민자당의 이춘구 대표는 이날 아침 『지난번 제의한 3역회담은 아직도 유효하다』고 민주당에 메시지를 보냈다.이대표는 그러면서 『민주당이 수용한다면 대화의 실마리가 풀릴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김덕룡 사무총장도 『민주당이 불법감금만 풀고 국회를 정상화시키면 대화를 환영한다』고 말했다. 민자당 지도부의 이같은 언급에 맞춰 유화제스처도 나오고 있다.민자당은 기초자치단체 선거의 정당공천 금지와 관련,선거법 개정안에 이를 어기고 공천을 하는 정당에 대해 지도부까지 처벌하는 방안을 검토했으나 이를 포기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여기에 현총무는 민주당의 이기택총재 측근과 접촉을 시도할 뜻을 비추고 있다.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이미 만났다는 얘기도 나돌면서 막후협상이 가동되기 시작한 것이 아니냐 하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민주당도 박지원 대변인을 통해 『조심스럽게 대화를 해야 한다는 쪽으로 선회하고 있다』면서 비공식대화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이러한 분위기의 반전이 곧바로 협상으로 이어질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여야가 협상의 전제조건을 놓고 상대쪽의 양보만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더욱이 공천문제를 둘러싸고는 어느 쪽도 포기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결국 여야간의 격돌은 불가피하며 그 책임을 떠넘기기위한 명분축적용의 대화가 될 공산이 더욱 커보이는 것이다.이러한 상황에서 민주당의 이기택대표가 9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보다 진전된 제안을 하고 나설 것으로 알려져 정국정상화를 가름짓는 최대 고비가 될 전망이다. ◎억류 사흘째… 의장공관 주변/한화갑 의원 황 의장 단독면담 “눈길”/공관측,식사제공… 불쾌감 표시 민주당의원들이 황낙주 국회의장과 이한동 부의장을 8일로 사흘째 억류하고 있는 가운데 여야는 9일 제173회 임시국회 개회를 앞두고 이른바 「억류정국」을 대화로 풀겠다는 뜻을 밝혀 주목되고 있다. ▷의장공관◁ ○…한광옥 부총재를 조장으로 하는 10여명의 민주당 의원들이 새로 파견돼 밤을 샌 일부 의원들과 교대하며 황 의장의 출근봉쇄를 3일째 계속. 민자당의 현경대 원내총무는 상오 8시15분쯤 공관에 들러 접견실에서 황의장과 잠시 귀엣말.황 의장은 현총무에게 여야 대화와 민주당의원들의 공관철수 필요성을 강조했다고 소개. 황 의장은 이날 하오 내실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날치기 가능성은 대화가 막히는 데서 생기는 것이며 여야는 그런 사태를 조장해서는 안된다』고 국회안에서의 협상과 토론을 촉구. 황 의장은 『의장으로서 정정당당하게 국회일정을 진행할 생각』이라고 말해 9일 임시국회 본회의에 출석할 뜻임을 강조. 이날 의장공관측은 전날까지 제공해 온 야당의원들에 대한 식사를 중단하는등 불편한 심기를 표출. 한편 전날밤 김대중 아·태재단이사장과 만난 동교동계의 한화갑 의원이 이날 황 의장을 5분 남짓 단독으로 면담했으나 한의원은 『의장님과 개인적 친분이 있어 인사차 만났을 뿐』이라고 「특사설」을 일축. ○…이 부의장의 서울 염곡동 자택에는 조세형 부총재와 홍사덕·오탄·이철·장기욱·박광태·박정훈·강수림·김장곤 의원이 밤을 새운데 이어 이날 상오7시쯤 권로갑·이부영 부총재와 이규택·김원길·유인학·신계륜 의원이 「임무교대」. ▷민자당◁ ○…민자당은 의장단에 대한 민주당의 「선억류해제」를 대화의 전제로 내세우면서도 화해분위기로 이끌려는 태도가 역력. 김덕용사무총장은 이날 아침 민주당이 토론을 제의한데 대해 『유괴범이 아이를 납치해놓고 대화하자는 것』이라고 비난하며 『먼저 불법감금을 풀고 대화 테이블로 나와야 할 것』이라고 일단 강경자세. 그러면서도 김총장은 『전쟁을 하면서도 협상은 이루어지는 것 아니냐』고 여지를 남겨두는 모습. 당무회의에서도 이같은 분위기는 이어져 이민섭의원은 『현재 의장단을 불법연금하고 있는 야당의원들은 위기의식 속에 민주당지도부가 협상에 나서야 한다는 분위기가 고조되어 있다』고 말하고 『우리당 지도부는 너무 때가 늦지않도록 소신껏 (대화노력에) 박차를 가해주기 바란다』고 주문. 김 총장은 『실력행사는 예기치 않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면서 의장단을 실력으로 「구출」하지는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뒤 야당에 대해 억류를 푸는 결단을 내리라고 촉구. ▷민주당◁ ○…강경기류 속에서도 「협상모색」등 변화의 움직임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민자·민주 양당 3역을 포함,여야 동수로 12명의 정치특위를 구성하자는 구체적인 얘기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물론 특위 운영방식은합의제다. 박지원 대변인은 『여당과 대화를 해야 한다는 쪽으로 조심스럽게 선회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소개.이기택총재의 TV공개토론 제의나 양당 사무총장,원내총무,대변인의 TV및 라디오 대담프로 출연등은 이런 흐름의 하나라는 것.이와 관련,이총재는 9일 기자간담회를 갖고 「선거전이라도」 국회 정치특위를 구성,선거법 문제를 논의하자고 정식 제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 자전거 도로 주·정차/범칙금 3만∼5만원/7월4일부터

    오는 7월4일부터 지정,운용되는 자전거도로에서 차량 등이 주·정차하면 3만원(오토바이 등)에서 5만원(자동차)까지 범칙금을 물게 된다. 내무부는 8일 「자전거이용활성화에 관한 법률 시행령」을 마련,입법예고했다. 시행령은 자전거전용도로 등에서 손수레·경운기·우마차·오토바이·승용차·화물차 등이 무단횡단할 경우 3만원에서 8만원까지 범칙금고지서(스티커)를 발부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자전거전용도로를 보행하거나 물건 등을 방치해 자전거통행을 방해할 경우에도 각각 3만원과 5만원의 범칙금이 부과된다. 내무부는 「지구의 날」인 오는 4월22일과 광복절인 8월15일 각각 대대적인 자전거타기행사를 마련키로 했다.
  • 과거청산의 허구성(일본 「21세기 야망」:10·끝)

    ◎가해자 아닌 “원폭 피해자”부각/우익세력 「부전·사죄결의」극력 저지/과거 되레 찬미… 정치·군사대국 “집념”/진솔히 과거청산한 독과 대조… “위험한 역사의 시작”우려 일본 히로시마(광도)에 있는 평화공원.원폭의 비극을 통해 역설적으로 평화를 기원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공원.그 자료관에는 8시15분에 멈춰 있는 부서진 시계가 전시돼 있다.원자폭탄이 히로시마에 떨어진 시각을 마지막으로 알리고 더 이상 가지못하고 있는 시계.일본은 그 정지한 시계와 뼈대만 앙상하게 남은 돔건물등을 원폭피해의 상징물로 보존하고 있다. 평화공원은 인류역사상 처음인 원폭피해의 처참함을 증언하고 있다.그러한 원폭피해는 일본뿐만이 아니라 온 인류의 비극이 아닐 수 없다.히로시마에 평화공원을 만든 것은 원폭피해의 참담함을 보여줌으로써 다시는 그러한 비극이 없기를 기원하기 위한 것이라고 일본은 말한다.그러나 그 이면에는 또다른 뜻이 있다.원폭피해의 비극을 강조하며 아시아에서의 가해자 일본을 세계의 피해자 일본으로 바꾸려는 저의가 있는것이다. 평화공원에서의 일본은 피해자라 할 수 있다.그러나 일본은 아시아에서 온갖 만행을 저지른 광기의 가해자였다.일본 아사히신문의 와다 다카시씨는 『아우슈비츠와 히로시마는 20세기 비극의 기념비이다.그러나 아우슈비츠와 히로시마의 커다란 차이점은 히로시마가 피해자 중심의 기념관을 만든 데 비해 아우슈비츠는 피해자와 가해자를 전체로 보존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하며 피해자 중심의 평화공원을 비판했다.그는 『일본이 가해자 의식을 갖지 않으면 역사인식의 전체성을 상실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본에도 이같이 일본의 가해자 인식을 말하는 양심적인 사람들이 적지않다.그러나 연세대의 최정호 교수는 『가해자 일본을 피해자로 둔갑시키려는 일본의 집요한 「히로시마 캠페인」은 어느덧 양식있는 지식인의 사고조차 현혹시켜 히로시마와 아우슈비츠를 동격의 사건으로 대칭시키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최 교수는 『연합국이 가해자가 되고 추축국이 희생자가 된 히로시마의 비극에 대비되는 유럽의 비극은 아우슈비츠가 아니라 독일의 드레스덴이며 아우슈비츠의 대학살과 비교되는 범죄는 군국주의 일본이 저지른 남경대학살』이라고 말했다. 드레스덴의 비극은 연합국 폭격기 편대가 1945년 2월 피란민들이 집결한 평화의 도시 드레스덴을 저공비행하며 융단폭격,30여만명이 희생된 대참사였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은 드레스덴의 비극으로 아우슈비츠의 범죄를 중화시키려 한다든가 스스로를 피해자로 바꾸려하지 않았다고 최 교수는 강조했다.독일은 나치가 저지른 범죄를 마음으로부터 사과·반성하고 성실히 손해배상을 해왔다. 그러나 일본은 과거 침략에 대한 사죄와 배상에 매우 인색했다.그들은 역사적 사실을 은폐하거나 왜곡해 왔다.일부 세력은 아시아 침략의 「정당성」까지 주장,태평양전쟁은 「아시아 해방전쟁」이었다고 미화하고 있다.그러나 역사를 지우고 고쳐 쓴다고 해서 있었던 일이 없었던 일이 될 수는 없다.슈미트 전서독총리는 지난 1월7일 아사히신문의 전후 50주년 기념 특집 인터뷰에서 『일본은 독일과 같이 침략과 범죄에 대한 반성과 보상을 하지않았다.한국에 대해서도 중국에 대해서도 오히려 점령시대의 범죄를 부정하고 종군위안부에 대한 보상도 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은 전후 50주년이 되는 올해 과거청산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출발을 하려하고 있다.일본여당은 「전후50년문제 프로젝트팀」을 만들고 정부와 함께 종군위안부문제 등의 해결방안으로 「평화교류기금」의 창설을 검토하는 등 과거청산작업을 추진하고 있다.무라야마 도미이치(촌산부시)총리는 국회의 부전·사죄 결의를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무라야마 총리의 국회결의 움직임은 보수·우익 세력의 강력한 저항을 받고 있다.자민당의 「전후50주년 국회의원연맹」과 야당인 신진당의 많은 의원들이 국회결의 반대운동을 적극화하고 있는 가운데 우익세력들은 태평양전쟁은 침략전쟁이 아니었음을 강변하고,국회의 부전결의를 저지하며 전몰자를 추모하는 범국민운동을 조직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범국민운동에는 「일본유족회」,「전후50주년 국회의원연맹」,「일본을 지키는 국민회의」 등 30개 이상의 단체들이 참여하고 있으며 「5백만명 서명운동」이 진행되고 있다.지난 22일에는 도쿄에서 대규모 부전결의 반대집회가 열렸다.집권 자민당은 선거공약서에서 과거반성부분을 삭제해 버렸다. 일본의 보수·우익세력은 이같이 과거반성을 통한 새로운 출발이 아니라 오히려 과거를 「찬미」 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일본의 이러한 움직임은 히로시마의 원폭이 일본의 양심까지도 마비시켰고 과거 침략에 대한 반성·사죄 의식은 평화공원의 정지된 시계처럼 정지하고 있는 느낌을 주고 있다.오히려 거꾸로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일본사회의 이러한 현상은 전후 50주년을 맞아 과거로부터의 「자유」를 선언하며 새로운 출발을 하려는 「과거청산」 전략의 위험성을 말해주고 있다.그러한 위험성은 강한 집념을 보이고 있는 정치·군사대국화의 야망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일본은 지금 전후 축적한 경제력을 정치·군사력으로 전환하는 실험을 하고 있다.경제력을 배경으로한 정치·군사강국은 일본의 21세기 국가전략이다.그러나 진정한 과거청산없는 대국주의 지향은 또다시 가해자가 되는 「위험한 역사」의 시작일지 모른다.일본의 21세기 국가전략을 냉정한 이성적 판단으로 인식하고 대응하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서울신문 연재 「새로 쓰는 한국현대사」를 읽고

    ◎미 기밀문서 입수… 비사공개 “큰 성과”/「한반도 4국분할 점령」 미시도 최초로 밝혀 올해로 광복 반세기를 맞는다.일제 35년이라 했는데 8·15 이후의 역사는 그보다 15년이나 더 지났다는 이야기다.두 시대를 다 살아본 우리 세대는 한마디로 『고생했어!』라는 말밖에 할 말이 없다. 지독하게도 시대를 잘못 태어나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지 못하면서 반세기를 살아온 셈이다. 그것도 요즘의 젊은 세대에게 『우리는 이렇게 살았어…』라고 설명해도 이해해주지 않을 정도로 급격한 전환기를 살아왔던 것이다.뿐만 아니다.어느 정도 세월이 지나면 그때 그시절의 일들이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지 알게 된다고 하는데 우리가 겪은 과거사는 50년이 지난 이 시점에 와서도 아리송하다.다가오는 21세기도 짙은 안개로 덮여 있지만 지난 50년의 세월에도 안개가 끼어 시계(시계)가 어두운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신문이 광복 50년사를 재조명하기 위한 「새로 쓰는 한국현대사」를 연재하는 것은 그 의의가 자못 크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한국 현대사는 두가지 점에서 쓰기가 어렵다고 한다.첫째는 사료의 제약이요,둘째는 시각의 격차다.첫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자료가 발굴되고 침묵하던 인사들의 증언을 청취하여야 한다.불행하게도 우리 현대사 특히 8·15에서 대한민국 정부수립까지의 3년간 미소 양군에 의해 분할점령당함으로써 기본자료가 워싱턴과 모스크바에 사장되어 있다. 이것을 입수하여 역사로 써야 하는데 이번 시리즈에서는 미국립공문서관리국에 소장된 기밀문서가 백일하에 공개되고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새 사실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그 중의 하나가 백범 특무대가 발표한 성명서이다.이 일종의 극우단체는 19 45년 11월 29일 해체되었다고 하나 지금까지 그 존재조차 까맣게 잊어버렸던 단체이다. 한국 현대사에 있어서의 최대 관심사는 왜 남북으로 분단되었으며 그 책임은 어느 나라에 있는가 하는데 있다.이번 시리즈 중에서는 「남북분단의 전말」이라 하여 미국이 당초 4개국 한반도 분할점령안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밝히고 그것이 미국의 진의였다고 시사하고있다.미국의 역사가 브루스 커밍스도 38도선을 그어 한반도를 남북으로 자른데 대해 미소 양국은 물론 죽은 김일성까지 책임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한국 현대사의 모든 문제는 이 분단에서 시작되어 분단으로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그러나 분단의 책임이 외세에 있다고 해서 6·25남침이라든지,남한이 경제대국이 된 반면 북한이 세계 제일의 빈국이 된 사실들에서 북한 공산정권의 책임이 덜어진다고는 볼 수 없다.이 문제에 대해서도 심도있는 검증이 뒤따를 것으로 기대해 본다. 그리고 현대사를 보는 남북 학계의 시각차에도 문제가 있다.아무리 새 자료,새 증인이 나온다고 하더라도 한반도를 4강의 사각지대로 보는 제국주의적 시각이나,현대사를 사회주의 혁명단계로 착각하는 이른바 수정주의 시각은 올바른 역사 해석을 저해할 것이다.
  • 덕산·고려시멘트 자금차입/매출액의 4배까지

    ◎금융권 대출외 어음발행 많아/부도액 3일만에 천5백억 넘어 덕산과 고려시멘트가 한해 매출액보다 최고 4배나 많은 외부자금을 쓴 것으로 확인됐다. 3일 한국은행과 금융계에 따르면 작년 매출액이 4백70억원인 한국고로시멘트의 경우 은행대출금 4백77억원,제2금융권 대출금과 지급보증 3백38억원 등 금융기관 여신 8백15억원 외에도 진성어음 54억원·융통어음 49억원어치를 발행했다. 또 매출액이 37억원인 여천레미콘도 은행 대출금 53억원 외에 진성어음 35억원어치를 발행했으며,매출액이 3백55억원인 홍성산업은 역시 1·2금융권의 대출금(지급보증 14억원 포함) 1천2백69억원 외에 진성어음 90억원어치를 발행했다. 지난해 1백3억원의 매출을 올린 무등일보도 금융기관 여신 2백15억원 외에 36억원어치의 진성어음을 발행했다. 한편 덕산과 고려시멘트 계열사의 부도액은 3일만에 1천5백억원을 넘어섰다.이날까지 덕산 계열 9개사가 8백2억원,고려시멘트 계열 3개사가 7백5억원 등 12개사가 모두 1천5백7억원의 부도를 냈다. 덕산에 지급보증을 섰다가2일 부도를 낸 고려시멘트에 대한 은행권의 여신은 대출금 1천6백21억원,지급보증 26억원 등 모두 1천6백47억원이나 담보는 이보다 3백50여억원이 많은 2천14억원으로 집계됐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