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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회 정상화… ‘정치권 장마’ 걷힌다

    ◎주초 원구성 매듭·총리 인준… 정계개편 시동/한나라 전당대회체제… 내각제 추진위 발족 기상청은 이번주에도 여전히 소나기 오는 날이 많겠다고 에보했다.북태평양 고기압의 가장자리에서 대기 불안정과 강한 기압골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란다.국회는 늦어도 너무 늦었지만 이번주에는 정상화 될 모양이다.‘설마 이번에는 아니겠지’하는 우리들의 바람이 번번이 바람을 맞기는 했지만 성난 시민들의 분노가 워낙 심상치 않으므로 믿어도 괜찮을 것 같다. 하기야 국회의장 없이 제헌절을 넘기고 국무총리 없는 광복절을 보낸 사람들이니 여·야가 철석같이 약속했다고 누가 그것을 믿으랴.끝났는가 싶으면 난데없이 폭우를 쏟아부은 올 여름 장마처럼,‘이제 되는가 보다’ 싶으면 희한한 명분을 들고나와 ‘닭이 먼저’니 ‘달걀이 먼저’니, 기약없는 입씨름을 해 온 것이 정치권 아닌가. 그래도 제풀에 꺾이기를 기다릴 수 밖에 없는 도깨비 폭우에 비해 정치권 장마는 시민이 들고 일어나면 잠시나마 약효가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그 약효 덕택에 늦게나마 국회 정상화의 길이 열린 것이다. 원구성과 총리인준 숙제로부터 해방된 국민회의는 이번주부터 본격적으로 제2건국 범국민운동에 나선다.오늘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점화를 한뒤 18일 전국 지구당에서 동시다발로 범시민 결의대회를 갖는다.또 소속의원 전원이 위원이 되는 개혁추진위도 금주에 발족 시킨다.한편에서는 국민신당과의 통합 등 정계개편도 서서히 시동을 걸 참이다.金大中 대통령의 8·15 제2건국 선언을 계기로 신발끈을 다시 맨다는 각오다. 한나라당은 본격적인 8·31전당대회체제로 돌입한다.중반전에 접어든 당권경쟁은 李漢東 金德龍 徐淸源 등 反李會昌 연합세력이 집단지도체제로의 당헌개정을 시도할 것이다.그리고 이들의 당헌개정안이 쟁점화 하면 李會昌의 질주에 일단 브레이크가 걸리는 셈이다.李基澤 총재대행의 행보도 변수다.틈새공략의 명수인 李대행이 일정한 지분도 갖고 있겠다,전당대회까지 칼자루를 쥐었으니 흥미를 쫓는 관전자의 심리는 ‘무슨 조화가 일어날지 모른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진다. 자민련은 자당몫의 국회 상임위원장 3석의 배분 문제로 내홍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朴泰俊 총재를 축으로 TK 지역의 영토확장 작업도 암중모색을 시작할 것이다.이 문제는 한나라당 당권경쟁과 맞물려 꽤 복잡한 방정식이어서 해답은 전당대회 이후에나 나올 것이다. 발등에 떨어진 불은 아니지만 내각제 추진위 발족도 예정돼있다.
  • “제2건국 함께 나서자”/金 대통령 건국 50돌 경축사

    ◎남북 장·차관급 대화기구 제의/대통령특사 평양파견 용의 밝혀 □6대 국정과제 참여 민주주의로 전환 시장경제 자율성 강화 보편적 세계주의 확립 정보·지식중심 국가로 노사화합 신문화 창출 남북간 협력시대 개막 金大中 대통령은 정부수립 50주년에 즈음한 8·15 경축사에서 “제2건국은 우리가 역사의 주인으로서 국난에 처한 나라를 구하고,그 운명을 새롭게 개척하려는 시대적 결단이자 선택”이라고 규정하고 “따라서 제2건국은 산업화와 민주화의 저력을 바탕으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완성하기 위한 국정의 총체적 개혁이자 국민적 운동”이라며 ‘제2건국 운동’을 공식 제창했다. 청와대측이 14일 공개한 광복절과 정부수립을 기념하는 ‘제2건국에 동참합시다’라는 경축사에서 金대통령은 “제2건국은 정부가 위에서 일방적으로 끌어가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생활현장에서 지혜를 모아 꾸려나갈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국민의 적극적인 동참을 역설했다. 또 “국민이 생활속에서 주인으로서의 책임의식을 가지고 나라일에 참여하고,서로 협력해 우리의 경쟁력을 세계 최고수준으로 높여야 할 것”이라면서 국민의 국정에 대한 참여의식을 맥풀리게 하는 부정부패에 대한 철저한 척결의지를 천명했다. 이어 “우리는 정치·경제·사회 등 모든 분야에서 효율을 높이는 구조조정 작업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말하고 “저에게 강력한 리더십으로 개혁을 이끌라는 요구가 있는 만큼 기꺼이 신명을 다바쳐 그 명령을 성취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金대통령은 이를 위해 ▲권위주의에서 참여민주주의로 대전환 ▲시장경제의 자율성을 높이는 구조개혁 ▲보편적 세계주의로 나가기 위한 새로운 가치관 ▲정보중심의 지식기반 국가 ▲신(新)노사문화의 창출 ▲남북한 교류협력의 시대 등 6대 국정과제의 세부적인 실천방안을 제시했다. 특히 남북관계와 관련,“국민의 정부는 남북기본합의서에 입각,북한의 안정과 발전을 지원할 용의가 있다”고 강조하고 “공동위원회의 정상운영에 앞서 장·차관급을 대표로 하는 남북상설대화기구 창설 및 성실한 대화의 장을 갖자”고 북한측에 제의했다. 아울러 “북한이 원한다면 이 모든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대통령 특사를 평양에 파견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또 참여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해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 도입 ▲국회제도개혁 ▲인사청문회제도 실시 ▲각급 자치단체별 주민투표제 도입 ▲과감한 지방분권화 및 지방경찰제도 실현 ▲언론의 자율적 개혁 등을 구체적인 방안으로 제시했다.
  • 잔형면제­피선거권 제한/선고실효­실형 없던 일로/특별사면의 유형

    ◎가석방·출소­보호관찰 받아 이번 특별사면은 잔형 면제 및 복권,잔형 면제,형선고 실효 및 복권,형선고 실효,감형,복권,형집행 정지,가석방 및 가출소 등의 유형으로 단행됐다. 잔형 면제 및 복권은 가석방되거나 복역 중인 사람에 대해 남은 형기를 면제해주고 그동안 잃었던 선거권과 공무담임권 등을 회복해주는 조치다. 반면 잔형 면제는 형선고의 효력이 유효해 공무담임권과 피선거권은 제한받는다. 형선고 실효는 통상 집행 유예 또는 선고 유예를 받은 사람에게 형의 선고가 없었던 것으로 해주는 조치다.선고 자체의 효력이 상실되기 때문에 별도의 복권 조치가 필요하지 않다.다만 국가공무원법상 집행 유예기간이 끝나더라도 2년동안 공무원이 될 수 없도록 제한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둘러싼 논란을 없애기 위해 복권 조치도 병행했다. 감형은 말 그대로 현재 복역중인 수형자의 형기를 단축해주는 것이다.복권은 실형의 집행이 종료되거나 집행 유예기간이 끝난 사람에 대해 공민권 등을 회복시켜주는 조치다. 형집행 정지는 수형자의 형 집행을 일시 정지시키는 것이다.가석방 및 가출소는 징역·금고형을 받고 복역 중인 피고인을 형기 만료 전에 석방하는 것으로 통상 보호관찰을 받는다. ◎주요 경축 사면 일지 ▲48.9.27 정부수립 기념 일반사면 20,700명 ▲60.10.1 특별사면 14,429명 ▲63.12.16 민정이양 및 박정희 대통령 취임 기념 일반 및 특별사면 62,014명 ▲67.7.1 제6대 대통령 취임 특별감형 1,476명 ▲71.7.1 제7대 대통령 취임 특별사면 4,311명 ▲72.12.27 제8대 〃 6,220명 ▲78.12.27 제9대 〃 4,075명 ▲79.12.23 제10대 〃 592명 ▲80.9.1 제11대 〃 516명 ▲81.3.3 제12대 〃 3,239명 ▲88.2.27 제13대 〃 6,375명 ▲93.3.6 제14대 〃 41,886명 ▲98.3.13 제15대 〃 5,527,327명(행정처분 특별취소 조치 포함) ▲98.8.15 정부수립 50주년 기념 특별사면 7,007명
  • 8·15 사면 가족·각계 반응/“국민화합·제2 건국 계기로”

    ◎全·盧씨 “5·18 12·12 관련자 포함 잘된 일”/朴노해씨 부인 “8년 수발 짐 벗어 기뻐”/민가협 “양심수 360여명 대상 제외 유감” 모두 7,007명의 사면 대상자 명단이 발표된 14일 국민 대다수는 “사면을 계기로 화합을 다지고 제2의 건국을 맞는 계기로 삼자”면서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張世東·鄭鎬溶·安賢泰씨 등 12·12 및 5·18 관련자와 全斗煥·盧泰愚 전직 대통령 비자금 사건 연루자 등 14명이 특사에 포함되자 두 전직 대통령측은 “잘된 일”이라며 환영. ○…權魯甲 전 의원은 복권사실이 발표되자 “대통령과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드려 죄송하다”는 짤막한 소감만 밝혔다고 측근들이 전했다. ○…‘얼굴없는 노동자 시인’ 朴노해씨(본명 朴基平)의 부인 金眞珠씨(43)는 사면 소식에 “지난 8년동안 옥바라지를 하면서 짊어졌던 무거운 짐을 벗었다”면서 기뻐했다. 金씨는 “최근 면회 때 朴시인이 ‘그동안 고생시켜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이번 국민의 정부는 한번 믿어볼 만한 정부’라는 말을 했다”고 전했다. ○…친딸과 친인척을 상습적으로 폭행해온 남편을 청부살해한 혐의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청주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던 林順蘭씨(46)도 형기를 1년4개월 앞두고 15일 가석방된다. 林씨는 “부모 탓에 불행하게 자란 자식들과 따뜻한 가정을 이루겠다”고 석방소감을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외국인 사면 대상자 중 93년 5월 살인죄로 대법원에서 확정판결을 받은 아미르 자밀씨(30) 등 파키스탄인 2명이 무기로 감형되는 데는 천주교인권위원회(위원장 金亨泰 변호사)의 헌신적인 노력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관심을 끌었다. ○…한편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는 성명을 내고 “정부가 대화합 차원에서 사면을 단행한다면서 455명의 양심수 가운데 최장기수 등 360여명을 사면대상에서 제외했다”면서 “헌정질서 파괴나 비리사범을 사면·복권한 조치는 광복절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반개혁적 행위”라고 주장.
  • 그해 8월15일/潘永煥 경기문화재단 문예진흥실장(기고)

    ◎“탄피 만든다” 숟가락까지 압수/우리말 썼다며 툭하면 체벌/주린배로 모내기 노력봉사/열살 소년에도 광복은 자유 그해,1945년 8월15일은 유난히도 더웠다.샛강에서 미역을 감으며 실컷 놀다가 집에 돌아온 것은 해가 설핏하게 기운 때쯤,어른들의 흥분된 목소리에서 ‘우리나라가 해방이 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해방이라니…’ 해방의 참뜻을 이해하기에는 열살이란 나이는 너무 어렸다. 그러나 국민학교 3학년 철부지의 눈에도 일본인은 미움의 대상이었다.공출을 많이 하지 않는다고 들이닥쳐 헛간을 뒤지고 북데기 쌓아놓은 곳을 대나무칼로 찔러대던 자들.탄피를 만들어야 한다며 제사때면 사용하던 놋그릇·놋대야·촛대와 숟가락까지도 거두어 간 자들이 아닌가. 2학년때부터 노력봉사로 황국신민(皇國臣民)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며 이곳 저곳 끌고 다니면서 모내기 일을 강제했던 그들이 아닌가.허리는 끊어져라 아픈데 못줄은 순식간에 넘어오고 뒤돌아보는 논둑은 아득히 멀기만 하여 주먹밥 하나로 때운 뱃속은 쪼르륵 소리가 나곤했다. 선배들 틈에 끼어 부지런히 모를 심지만 아차하는 순간,내 할당구역에 빈곳이 생기고 만다.허둥지둥하는 내 앞에 ‘텀벙’ 소리를 내며 흙덩이가 떨어진 것은 바로 그때였다.얼굴 가득히 흙탕물을 뒤집어 쓴 채 고개를 들어보니 우리반 담임선생인 ‘나리타’란 여선생님이 화려한 양산을 받쳐들고 논둑에 서 있었다.빨리 심으라는 경고였다. 모심기 말고도 30리나 떨어진 산에 가서 송진 붙은 관솔을 따오던 일,몸에 호박씨 두개를 주고 가을에 늙은 호박 두 덩이씩 가져오게 한 일,노는 시간에 우리말을 썼다 해서 벌을 세우던 일,조선인은 위생관념이 없고 더럽다고 조회때마다 되풀이하던 일인 교장 ‘시라이시’… 쌓였던 악감정이 열살짜리 소년을 집 밖으로 뛰쳐나가게 했다.이웃에 서도(西島)라 불리던 일본인 지주가 살고 있었다.으리으리한 정원에 커다란 기왓집을 요철로 된 함석 울타리가 마치 국경처럼 위세있게 둘러싸고 있었다.그 울타리에다 빨간색 연필로 이렇게 써 갈겼다. ‘다이닛퐁 데이코쿠 와루이 야쓰’. ‘대일본제국 나쁜 자식’이란 일본말이다.대일본제국은 일본을 통칭하던 말이었다.나는 일본의 공립국민학교에 입학하여 일본말로 공부를 했다.강도 높은 군국주의 교육도 결국 평범한 한 조선 소년을 일본 소년으로 바꿔놓을 수 없었던 것이다. 흥분의 열기가 마을에서 수증기처럼 번져나가고 있을 때,나는 친구들과 함께 학교로 달려갔다.뚜렷한 목적을 지닌 것은 아니고 뭔가 희한하고 신나는 일이 있을 것 같은 기대감 때문이었다. 학교 뒤편 우물가에는 교무실 중앙벽면 감실에 신주처럼 모셔져 있던 석고상이 산산조각이 난 채 흩어져 있었다.박살이 난 일본의 군신(軍神) 야마모토 이소로쿠 해군대장의 흉상,누가 내동댕이쳤는지 모르지만 우리도 덩달아 하얀 석고 조각을 밟아 뭉갰다. 해방과 함께 내 이름을 되찾았다.요네다 아오마쓰(米田靑末)라는 이름 때문에 내게는 늘 ‘연예대장’이란 불명예의 별명이 따라다녔다.그 별명이 얼마나 듣기 싫었는지.해방이 내게 가져다 준 실질적 선물인 셈이었다. 이렇게 말과 글과 함께 빼앗겼던 이름을 되찾은지도 어언 53년,우리는 과연 일본에 빼앗겼던 것을 모두 되찾은 것인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 朴노해씨­사노맹 주역… 전향 자세보여/석방 인사 면면

    ◎金洛中씨­진보적 통일운동가 무기수/張玲子­2차례 수감… 건강 악화로 나와 이번 ‘8·15특사’에는 대형 공안사건 등 사회의 이목이 집중됐던 각종 사건의 주인공들이 다수 포함됐다. ◇權魯甲 전 의원=국정감사 선처 명목으로 한보그룹으로부터 2억5,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지난해 12월 대법원 확정판결로 징역 5년이 확정돼 의원직을 상실했다.정치적 부담을 우려,지난 3·13 대통령 취임 사면에서는 제외됐었지만 이번에 잔형 면제와 복권조치로 자유의 몸이 됐다. 지난 1월 지병인 당뇨병과 고혈압이 악화돼 검찰의 형집행 정지로 풀려나 서울 강북삼성병원으로 주거지를 제한받고 있었다. ◇朴基平(필명 박노해),白泰雄씨(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 사건)=자생적 사회주의세력인 사노맹의 양대 주역으로 91년과 92년에 각각 검거돼 무기징역과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朴씨는 시집 ‘노동의 새벽’으로 운동권에서 일약 ‘얼굴 없는 민중 시인’으로 떠오른 인물.수감 중이던 지난해 출간한 수상집 ‘사람만이 희망이다’에서 “시장경제 옹호론자가 아니지만 결코 사회주의자도 아니다”고 공언하는 등 전향적인 자세를 보여 화제를 뿌렸다. 서울대 총학생회장 출신인 白씨는 제헌의회(CA)그룹의 좌파 이론가로 활동하면서 운동권에서 신화적인 존재로 불렸다.지난해 ‘사노맹 결성은 사회주의체제 건설을 위한 것이 아니라 全斗煥·盧泰愚정권에 대한 이념적 저항운동’이라며 사노맹 해체 및 재건 포기를 선언,金壽煥 추기경과 재야인사 등 141명이 사면·석방 청원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黃仁五·仁郁 형제,金洛中씨(남한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사건)=북한의 ‘장관급’ 여간첩 李善實과 연계,남한내에 대규모 지하당 조직을 주도하다 92년 당국의 수사끝에 실체가 드러난 남한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사건의 핵심인물들이다. 전 민중당대표인 金씨는 서울대 사회학과에 입학했다가 55년 월북,북한에 포섭된 뒤 민주개혁과 사회진보를 위한 협의회(민사협)고문 등을 맡으며 진보적 재야인사 및 통일운동가로 활동하다 적발돼 무기수로 복역해 왔다. 중부지역당 총책으로 적발된 黃仁五씨는 사북중 2년 중퇴가학력의 전부로 ,80년4월 사북사태를 주도한 뒤 같은해 6월 부산에서 열린 미스유니버스 대회장 폭파기도사건으로 징역 20년을 선고받았다. 반면 중부지역당 편집국장으로 적발된 동생 仁郁씨는 서울대 서양사학과 대학원에서 아프리카 역사를 전공했으며,87년1월 북한방송 청취내용을 운동권 최초로 교내 대자보로 부착해 징역 3년을 선고받은 바 있는 운동권 출신. 1심 재판 진행중이던 93년1월 서울대 교수들이 선처를 원하는 탄원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張玲子씨=건강악화로 형집행정지로 풀려난 張씨는 82년 이른바 ‘단군이래 최대의 사기사건’에 이어 94년에는 거액의 어음부도 사건을 일으켜 세간을 두번 놀래킨 큰 손.82년 당시 남편 李哲熙씨와 함께 징역 15년을 선고받은 뒤 92년 잔형 5년여를 남기고 가석방됐으나 107억여원을 편취하고 5억원을 부도낸 혐의로 2년여만에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다시 수감됐다. ◇鄭守一씨(무함마드 깐수)=레바논계 필리핀인으로 위장해 국내에서 교수로 활동하며 암약한 고정간첩으로 96년 검거돼 징역 12년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이번에 감형됐다.
  • 故 金始顯 선생 외아들 峰年씨의 착잡한 ‘8·15’

    ◎3代 걸쳐 항일투쟁/훈장없는 독립투사/金九 암살배후 李承晩 지목… 저격 미수/‘나라 위한 외길’ 불구 유공자 지정 못받아 □金始顯 선생 공적 독립군 군자금 조성 5차례 16년간 투옥 상해서 의열단 조직 비밀군관학교 설립 “3대가 독립운동을 하면 목적을 이룰 수 있다는 부친의 단호한 음성이 아직도 귓가에 생생합니다” 8·15 광복절 쉰세돌을 맞는 金峰年씨(76·서울 강남구 개포동)의 감회는 착잡하기만 하다. 독립운동가 집안인 金씨의 일가족 가운데 모친 權愛羅씨(작고)는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았지만 자신과 부친 金始顯선생(1883∼1966)은 아직까지 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金씨 일가의 이력은 조부인 金澤東 선생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구한말 고향인 안동에서 의병을 모집,맹렬하게 활동했다. 金始顯 선생이 독립운동에 뛰어든 데는 이처럼 부친의 영향이 컸다. 1917년 일본 메이지대학 법대를 졸업했으며 1919년 3·1운동에 가담,체포되면서부터 가시밭길을 걸었다. 1920년에는 군자금을 조성하려다 붙잡히는 등 일제 치하에서 모두 5차례에 걸쳐 16년동안 옥살이를 했다. 하지만 어떠한 탄압도 선생의 의지를 꺾지는 못했다. 부인 權씨는 1921년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의열단을 조직해 무장항쟁을 주도하다 만났다. 이어 1922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전 세계 약소민족대표자대회’에 임시정부 대표의 일원으로 참석하면서 독립운동의 평생 반려자로 같은 길을 걷게 됐다. 선생은 1923년에는 폭탄 밀반입사건(일명 黃鈺 사건),1925년에는 난징(南京)에서 비밀군관학교를 설립,독립군을 양성한 혐의 등으로 체포돼 옥고를 치렀다. 외아들 金씨는 1942년 상하이에서 독립군에 편성돼 무장항쟁에 참여했다. 金씨는 “만주에서 모친과 함께 비밀 감옥소에 수용됐을 때 ‘봉년아 잘 있느냐. 어미도 잘 있다’는 모친의 친필을 화장실 기둥에서 발견하고 눈물을 훔치던 기억이 새롭다”며 잠시 회상에 잠겼다. 부친 金始顯 선생은 그러나 2대 민의원(안동)을 지낼 때 金九 선생의 암살배후자로 李承晩 대통령을 지목,6·25 발발 얼마 후 李대통령을 권총으로 저격하려다 미수에 그쳤다. 1952년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무기징역으로 감형된 뒤 4·19혁명으로 석방되면서 복권돼 5대 민의원을 지내기도 했다. 金씨는 “저격 미수 전력 때문에 부친이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면서 “金九 선생의 암살로부터 나라의 비극이 시작됐다는 게 부친의 확고한 신념이었다”고 말했다.
  • 金 대통령 8·15 경축사를 보고/黃台淵 동국대 교수(특별기고)

    ◎제2의 건국과 보편적 세계주의 ○폐쇄적 민족주의 한계 오늘 건국 50주년에 대통령이 선언한 ‘위와 아래로부터의’ 제2의 건국운동은 참여 민주주의,시장경제,보편적 세계주의,지식기반 국가,화합과 협력의 신 노사문화,남북간 교류협력 등 6대 개혁지표를 내걸고 있다. 이 지표들은 모두 국난극복과 세계 속의 선진한국 건설에 본질적 기여를 하는 것들이지만,이 중에서도 닫힌 민족국가에서 열린 국민국가로의 지향을 갖는 ‘보편적 세계주의’는 중심적 위치를 차지한다.우리의 민족국가적 폐쇄성을 타파하고 세계를 향한 완전 개국(開國)을 겨냥하는 이 지표는 나머지 지표의 달성을 보장하기 때문이다.세계 개방 없이는 세계수준의 민주주의,세계무역기구(WTO)체제 하의 세계적 경쟁력,세계의 인본주의적 보편규범에 입각한 공생과 복지,탈공업시대에 맞는 창조적 문화,탈냉전적 남북관계를 창출할 수 없다. 돌아보면 한국인들은 냉전과 분단,반일감정과 반미감정으로 동서남북이 가로막힌 인공섬에서 살아왔다.자연히 신생 한국은 폐쇄적 민족국가를 생존논리로 삼을 수밖에 없었다.그리하여 우리의 정서 속에는 늘 외래문화에 대한 거부감이 자리잡게 되었다.심지어 오늘날 국난 속에서도 사회 일각에서는 IMF 구제조치와 해외자본 유치에 대해서까지 적대감을 보이고 있다. ○능동적 개항만이 살길 극우에서 극좌까지 매우 다양한 스펙트럼을 갖는 이 닫힌 민족정서는 시장과 국제적 쌍방통행을 모르는 관치경제와 한국적 권위주의 체제를 만들어냈다.이 폐쇄적 권위주의 체제는 당연히 세계의 변화를 감당할 수 없었고,세계시장에 노출되자마자 국난을 불러왔다.우리의 생존논리였던 폐쇄적 민족정서가 이제 생존을 가로막는 최대의 시대착오적 걸림돌로 둔갑한 것이다. 100여년 전 우리는 늑장 개항으로 망국의 비극을 겪은 적이 있다.우리의 인공섬도 개국을 지체하면 비극을 되풀이할지도 모른다.바로 이 점이 오늘 광복절 날 각별히 숙고해야 할 대목이다. 이제 과감한 능동적 ‘개항’으로 보편가치를 수용하여 세계로 나아가는 ‘열린 국민국가’를 건설해야 한다.민족국가와 국민국가의 두가지 말을 잘뜯어보면,국민국가는 미국이나 캐나다와 같은 속지주의적 다민족국가를 민족 국가로 지칭할 수 없어 생겨났음을 알 수 있다.이에 반해 독일이나 일본처럼 혈통주의를 택한 나라들은 유보없이 민족국가로 지칭된다. ○열린 ‘국민국가’ 건설을 우리말의 민족국가와 국민국가는 각각 최근에 생겨난 학술적 개념인 ethnic nation state와 civil nation state에 대응한다.민족국가는 본질적으로 폐쇄적·복고적이나,민족국가가 제국주의에 저항할 때는 진보적으로 기능할 수도 있지만,이 한시적 진보성에 오래 안주하면 시대착오를 범하게 된다.이에 반해 국민국가는 본질상 세계시민적·민주적이라서 이질적 문화에 대해 원칙적으로 열려 있다.오늘날 독일 일본 등도 이 국민국가적 요소를 수용하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 따라서 ‘제2의 건국’의 지표로서 ‘보편적 세계주의’가 닫힌 민족국가에서 열린 국민국가로의 구체적 지향을 갖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이러한 세계주의적 시침(時針) 조절만이 민주주의,시장경제,지식중심 발전,인본적 화합과 협력,남북간 탈냉전을촉진하고 보장하기 때문이다.
  • 양심수 석방… 이념 갈등 씻는다/8·15 대사면에 담긴 뜻

    ◎국민역량 결집­대화합 의지/12·12 법적으로 완전 정리 정부가 14일 단행한 건국 50주년 기념 8·15 특별사면의 가장 큰 특징은 ‘양심수’로 불린 공안사범의 대거 사회복귀를 꼽을 수 있다.지난 번 3·13 사면에 이어 ‘구시대의 이념갈등을 씻고 국난극복을 위한 국민 대화합’을 이루겠다는 金大中 대통령의 뜻이 반영됐다. 이를 위해 ‘양심수’ 사면의 전제조건이었던 ‘사상전향제’를 폐지하고 ‘준법(遵法)서약제’를 도입한 점은 획기적인 조치로 평가된다. 법무부는 ‘대한민국의 국법질서를 준수하겠다’는 준법서약서를 낸 공안사범 103명의 행형자료와 검사의 면담 자료 등을 종합 검토해 모두에게 사면 혜택을 줬다.사노맹 사건의 朴노해·白泰雄씨,중부지역당사건의 黃仁五·仁郁 형제 등이 이 과정을 거쳐 사면됐다.남파간첩인 전 단국대교수 鄭一守씨(일명 깐수)도 같은 절차를 밟아 잔여형기의 2분의 1을 감형받았다. 하지만 일부 재야단체로부터는 ‘또다른 사상전향제’,일부 우익단체에게서는 ‘안보의 허점’이라는 비난을 동시에 받는진통을 겪기도 했다. 사면 사상 유례 없이 선거사범 1,404명에게 혜택을 준 것도 두드러진다.95년 6·27 지방선거를 포함,6·27 이전의 선거사범이 대상이었다.상습적인 선거브로커와 벌금미납자 222명과 재판이 진행 중인 4·11 총선 사범은 제외됐다.앞으로 1년6개월동안 선거가 없고 이들을 검증할 만한 시간적 여유가 충분하다고는 하지만 정부의 공명선거 정착 의지가 약해진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IMF의 경제위기의 원인을 제공한 한보그룹 鄭泰洙 총회장,李喆壽·申光湜 전 제일은행장 등은 사면대상에서 제외됐지만 權魯甲 전 의원 등 한보사건 연루 정치인들은 대부분 사면됐다. 12·12 및 5·18사건과 관련,지난 해 全斗煥·盧泰愚 두 전직 대통령이 사면복권된 데 이어 張世東·黃永時 등 12명이 이번에 복권됐다.이에 따라 이 사건은 법률적으로는 완전히 정리됐다. 거액 어음사기의 주범이었던 ‘큰손’ 張玲子씨가 건강상의 이유로 형집행정지 혜택을 받은 것도 주목거리다.
  • 위안부의 恨달랠 예술한마당/역사관 개관준비위 15일 용인 희원서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 개관 준비위원회(위원장 宋月珠스님)가 마련한 ‘광복 53주년 8·15 예술한마당’ 공연행사가 15일 하오 7시 경기도 용인 호암미술관 앞뜰의 전통정원 희원에서 무료로 펼쳐진다. 종군 위안부 할머니들이 함께 생활하고 경기도 광주군 퇴촌면 나눔의 집(원장 혜진 스님) 옆에 세워질 종군 위안부 역사관 운영기금 마련을 위해 열리는 이 공연에서는 시인 高銀이 집필한 창작판소리 ‘접동새’를 명창 안숙선의 창으로 들려주며 대금명인 이생강이 나라잃은 슬픔을 담은 노래 ‘목포의 눈물’을 대금으로 연주한다. 창작판소리 ‘접동새’는 꽃다운 나이에 일본군의 성노예가 돼야 했던 위안부 할머니들의 기구한 사연과 해방후에도 고향과 가족을 찾지 못하고 이역만리를 떠돌아야 했던 망향의 한을 접동새의 피맺힌 울음으로 표현한 작품. 이어 무용가 이정희(중앙대 무용과 교수)가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절벽에서 몸을 던져야 했던 위안부들의 슬픈 사연을 현대무용으로 풀어낸다. 이밖에 서도소리 명창 박정욱씨,바리톤 최현수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최익환과 서울풍물단의 무대도 마련된다.
  • 제2건국으로 21세기를(사설)

    올해는 광복 53주년이자 건국 50주년이 되는 해다.그래서 1998년의 8·15를 맞는 국민들의 감회는 여느 해와 다를 것이다.IMF한파에 수해까지 겹친 상황에서 맞는 8·15는,오히려 더더욱 감회가 진할 지도 모른다.그것은 건국 50년만에 처음 들어선,진정한 민주정부에 대한 신뢰와 기대 때문일 것이다. 金大中 대통령은 이같은 국민들의 뜨거운 신뢰와 기대에 부응하여 역사적인 건국 50주년을 맞는 8·15에,온 국민이 동참하는 ‘제2의 건국운동’을 제창했다.우리 모두가 역사의 주인으로서 우리의 운명을 새롭게 개척하는 시대적 결단으로,총체적 개혁을 통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완성하여 세계 일류 국가로 재도약하자는 것이다.그러면서 金대통령은 그를 위한 지표로서 권위주의에서 민주주의로의 전환,관치경제에서 시장경제로의 전환,보편적 세계주의의 새 가치관,지식과 정보 중심의 지식기반 국가건설 등 국정운영의 6대 과제를 제시하고 그 성취를 다짐했다. ○고난의 憲政 50년사 우리 헌정 50년사는 고난의 역사였다.우리는 독립국가를 건설할만한 자체 역량을 갖추지 못한채 1945년 8월15일 해방을 맞았다.그 결과 동서 이데올로기의 희생물이 되어 국토가 분단되고,6·25라는 동족상잔을 겪어야 했다.그런 와중에서 우리는 친일 반민족세력을 숙청함으로써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는 역사적 과업을 놓쳤다.李承晩 자유당 독재를 1960년 4월 학생혁명으로 무너뜨리고 張勉 내각의 제2공화국이 들어섰으나,朴正熙 소장이 주도한 1961년 5·16군사쿠데타로 길고도 긴 독재의 암흑기에 빠져들게 되었다.한 사람이 제멋대로 제3·제4공화국을 선언하고 18년동안이나 독재의 철권을 휘둘렀으니, 국민들로서는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그러나 朴정권의 독재도 1979년 10월26일 밤 궁정동 안가에서 들려온 총성 몇발로 허망하게 막을 내리고,80년 한때 ‘서울의 봄’이 찾아온듯 했으나 全斗煥 소장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의 5·17쿠데타에 의해 다시 군사독재로 원점회귀하고 말았다. 全斗煥 대통령의 5공과 盧泰愚 대통령의 6공을 거쳐 장군출신이 아닌 金泳三 대통령의 ‘문민정부’가 들어섰으나 외환대란을 남기고 물러났다. ○그러나‘忍冬草’의 저력이 비록 우리 헌정 50년이 고난과 오욕으로 점철되었으나 국민들이 독재에 굴종한 것은 아니었다.아니,우리 헌정 50년은 ‘민주쟁취사’로 기록돼야 옳다.1960년 4·19학생혁명,1980년 5·18광주민주항쟁,1987년 6월항쟁 등이 그 굵직한 발자취다.그리고 민주제단에 스스로 목숨을 바쳤거나 고문 등으로 희생된 민주열사들과 감옥을 제집 드나들듯이 해온 수많은 민주투사들이 우리의 자산이다.그러므로 이름없는 무수한 인동초들이 폭압의 엄동설한을 이겨내고 헌정 50년만에 金大中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를 세움으로써 마침내 민주의 꽃을 피워낸 것이다. 그러나 통일문제에서는 이렇다할 큰 진전이 없이 냉전 이데올로기 대립속에 끝없는 남북대결로 민족의 역량을 소모해 왔고,한반도 평화정착이라는 민족적 과제를 여전히 안고 있다. 그러면서 우리 국민들은 경제건설에도 팔을 걷고 나섰다.개발독재가 밀어붙이기도 했지만,우리 국민들은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땀을 흘려 불과 30여년만에 ‘한강의 기적’을 이뤄냈다.그러나 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세계 11위의 경제대국이라는 자랑도 잠시였을 뿐 전 정권의 국정관리 부실로 IMF구제금융이라는 치욕을 안고 말았다. ○“큰일 맡을 민족의 시련” 그러나 IMF사태는 예정돼 있던 일인지도 모른다.권위주의,부정부패,관치금융,불공정 경쟁 등 과거 우리사회의 잘못된 관행들이 총체적으로 빚어낸 결과이기 때문이다.따라서 우리는 IMF사태를 계기로 우리사회를 선진사회로 끌어올려야 한다.발상의 대전환이 필요하다.우리사회를 옥죄어 왔던 권위주의를 청산하고 사회 각 부문에 민주적 가치를 확산해야 하며,부패구조를 청산해서 투명하고 공정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그렇게 될 때 우리사회는 분열과 갈등에서 벗어나 화해와 통합의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닫힌 민족주의에서 벗어나 범세계적으로 통용되는 가치와 규범을 받아들여야 한다. 세계무역기구(WTO)체제가 말해주듯 지금은 지구촌시대이며 세계전체가 하나의 시장이 되고 말았다.세계의 진운(進運)을 따라가지 못하는 국민은 역사의 낙오자가 될 뿐이다. 21세기와 새로운 1000년대가 눈앞에 다가오고 있다.하늘은 큰일을 맡길 민족에게는 먼저 시련을 준다고 했다.총체적 개혁으로 하루빨리 IMF관리체제를 벗어나 21세기에는 세계 일류 국가로서 역할과 책임을 다하자.우리는 그럴만한 자격이 있다.
  • 7,007명 8·15 대사면

    ◎공안사범 103명­권노갑·정호용씨 포함 정부는 건국 50주년을 경축해 權魯甲 전 의원과 노동운동가 朴노해씨(41·본명 朴基平) 등 7,007명에 대해 특별사면·복권,가석방 등의 조치를 15일자로 단행한다고 14일 밝혔다. 이번 사면으로 석방되는 2,174명은 15일 상오 10시 전국 교도소에서 일제히 풀려난다. 사면대상은 ▲잔형 집행면제 및 복권 2명 ▲형 선고실효 및 복권 3,404명 ▲잔형 면제 8명 ▲형 선고실효 10명 ▲복권 1,402명 ▲감형 13명 ▲형 집행정지 103명 ▲가석방·가출소 2,065명 등이다. 이에 따라 사노맹 사건의 朴노해씨와 白泰雄씨(36·전 서울대 총학생회장),중부지역당 사건의 黃仁五·仁郁 형제와 金洛中씨,구미유학생 사건의 梁東華·金聖萬씨,남파간첩 咸柱明씨 등이 형 집행정지 및 가석방 등으로 풀려난다. 남파간첩 ‘깐수’로 알려진 전 단국대 교수 鄭守一씨가 잔여형기의 2분의1을 감형받는 등 모두 103명의 공안사범에 대해 형 집행정지 및 감형 조치가 내려졌다. 한보비리 사건과 관련된 權魯甲 전 의원을비롯,鄭在哲 崔斗煥 鄭泰榮 河根壽 朴熙富 전 의원이 잔형 집행면제와 형 선고실효 및 복권 혜택을 받았다. 지난 94년 어음부도 사건으로 재수감된 뒤 질병을 앓아 온 張玲子씨도 형 집행정지로 풀려난다. 金基玉 전 서울 동작구청장,崔仙吉 전 노원구청장,李彰承 전 전주시장 등이 형 선고실효를 받거나 복권되는 등 95년 6·27 지방선거 이전의 선거사범 1,626명 중 상습 선거사범 222명을 제외한 1,404명이 사면됐다. 12·12 및 5·18사건에 연루된 鄭鎬溶 張世東 許和平 黃永時 車圭憲 許三守 李鶴捧 崔世昌씨 등 12명과 全斗煥·盧泰愚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의 安賢泰 李賢雨 전 청와대 경호실장도 사면·복권됐다. 그러나 金泳三 전 대통령의 차남 賢哲씨와 새 범죄사실로 수사를 받고 있는 黃秉泰·洪仁吉 전 의원,金佑錫 전 건설부장관,鄭泰守 한보그룹 총회장과 李喆洙·申光湜 전 제일은행장 등은 특사에서 제외됐다.
  • 金 대통령 제2건국 선언­건국 50주년 경축사 전문

    ◎“해낼수 있습니다… 희망·용기를 가집시다”/우리민족은 21세기를 위해 ‘준비된 민족’/‘제2의 건국’ 국민운동 모두 동참합시다/2000년부터는 세계 일류국 대열에 꼭 합류/고생·기쁨 함께하며 영광된 주인이 됩시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오늘은 광복 53주년 기념일이자,대한민국 정부수립 50주년을 맞이하는 역사적인 날입니다.저는 이 자리를 빌려 국민 여러분에게 충심으로 존경과 사랑의 인사를 올립니다.아울러 북한동포와 해외동포들에게도 따뜻한 안부의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이 뜻 깊은 날을 경축하면서 저는, 국민 여러분과 함께 새로운 결의와 각오를 다지고자 합니다.이는 국가의 나아갈 방향을 새로이 정립하고 나라의 기강을 바로 세우며,민족의 재도약을 이룩하기 위해 국민 모두가 동참하는 ‘제2의 건국’을 제창하는 일입니다. ○민족의 재도약 결의 대한민국 건국 50년사는 우리에게 영광과 오욕이 함께 했던 파란의 시기였습니다.국토분단과 동족상잔 그리고 수십년간의 군사독재로 인한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우리는 세계 11위의 경제대국을 이 땅에 건설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50년만에 이룩한 여야간 평화적 정권교체를 통하여 ‘국민의 정부’를 세웠습니다.세계의 모든 민주시민들이 이를 높이 평가했습니다. 그러나 ‘국민의 정부’는 국민과 함께 정권교체의 기쁨을 나눌 겨를이 없었습니다.저는 당선되자마자 6·25 이후 최대의 국난을 극복해야 한다는 무거운 책무를 짊어져야 했기 때문입니다. 지난 6개월은 오랫동안 누적된 병폐를 청산하고 잘못된 관행을 바꾸기에도 짧은 기간이었습니다.본격적인 개혁은 이제 시작입니다.우리가 가는 길은 가혹하고 힘겨운 고난의 길이지만,용기 있는 국민에겐 기회와 가능성을 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정부수립 50주년을 맞이하여 ‘국민의 정부’가 ‘제2의 건국’을 통하여 추구할 철학과 원리,그리고 총체적 개혁의 미래상을 국민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작년 12월 대통령에 당선된 이래 저는 잠시도 쉴 틈없이 국가위기의 극복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다해 왔습니다.국민 여러분의 성원과 협력에 힘입어 외환위기가 일단 수습되었습니다.상당히 많은 외환보유고와 더불어 환율과 금리도 하향 안정되고 있습니다.물가도 어느 정도 안정 추세를 유지하고 있습니다.경상수지 흑자는 크게 늘어났고 외국인 투자환경도 획기적으로 개선되고 있습니다. 노사간 대타협을 위한 노사정 협의기구가 창설되어 착실히 운영되고 있습니다.금융,기업,노동,그리고 공공부문의 4대 구조조정이 강도있게 진행중입니다. 또한 대ASEM 외교와 대미 외교에서도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었다고 생각합니다.이 모두가 국민 여러분의 성원 덕택입니다.깊이 감사를 드리는 바입니다. ○시련의 터널 벗어나야 그러나 국난을 극복하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완성을 향해 나아갈 길은 아직 멀고도 험난합니다.과거의 유산이 계속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그동안 권력을 잡은 사람들은 정경유착과 관치금융 그리고 부정과 부패를 일삼았습니다. 그 결과,경제를 포함한 우리 사회 모든 부문은 총체적으로 부실해졌고,국제경쟁력은 취약해졌습니다.외환위기는 필연적인 인재였습니다.이 원인은 반드시 규명되어 앞날의 교훈으로 삼아야겠습니다. 우리는 ‘제2의 건국’을 추진해야 할 여러 가지 절실한 필요성을 가지고 있습니다.우리는 정치,경제,사회 등 모든 분야에서 방만한 몸집을 줄이고 거품을 빼며,효율을 높이는 구조조정 작업에 박차를 가해야 합니다.물론 이것은 고도성장에 길들여진 우리에게 견디기 힘든 시련임에 틀림없습니다. 안타깝지만 현재의 고통을 달리 피할 길이 없습니다.오직 국민과 정부가 하나가 되어 고난의 현실을 직시하고 이를 극복함으로써,하루빨리 이 시련의 터널을 벗어나는 길 만이 남았을 뿐입니다. 더이상 오늘의 저효율과 고비용의 체제로는 국제경쟁에서 살아 남을 수 없습니다.국가의 생산성과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구조개혁이 불가피합니다.오랫동안 관치경제에 눌려있던 미완의 시장경제를 ‘제2의 건국’을 통하여 경쟁력있는 체제로 완성해야 합니다. 한편,우리는 지적으로 고급능력을 갖춘 인적자원을 크게 육성해야 합니다.우리의 미래는 국민 개개인의창조적 실천능력을 배양하는데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교육혁명,정보혁명,첨단기술혁명,벤처기업혁명,그리고 문화산업을 이끌어 갈 인재양성이 우리의 국운을 좌우할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 국민은 모두가 국난극복에 동참할 태세를 갖추고 있습니다.과감한 개혁과 새로운 출발을 갈망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인 저에게 강력한 리더십으로 개혁을 이끌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국민의 정부’와 여당에게 개혁의 선봉이 될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야당에 대해서도 이 고난의 기간만은 정쟁을 중단하고 정부의 노력을 지원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저는 정부수립 50주년을 맞이하여 한강의 기적을 이룬 국민의 저력을 다시 모아 ‘제2의 건국’을 시작하라는 국민 여러분의 소리를 듣고 있습니다.저는 기꺼이 저의 신명을 다 바쳐 여러분이 명령한 바를 성취하고자 합니다. ○국민 지혜 모아야 성공 ‘제2의 건국’은 우리가 역사의 주인으로서 국난에 처한 나라를 구하고,그 운명을 새롭게 개척하려는 시대적 결단이자 선택입니다.또한 ‘제2의 건국’은 산업화와 민주화의 저력을 바탕으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완성하기 위한 국정의 총체적 개혁이자 국민적 운동을 가리킵니다. ‘제2의 건국’으로 가는 길은 대한민국의 법통을 충실히 계승하면서도 역대의 권위주의적인 통치방식과는 분명히 달라야 합니다. 오직 ‘국민의 정부’가 표방해온 새로운 국정철학인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으로 나아가는 것만이 우리가 지금부터 추구해야 할 국정의 방향입니다.‘국민의 정부’는 이러한 국정철학을 기초로 그 실천 원리로서 자유와 정의 그리고 효율을 중시합니다. 우리는 오늘,뜻깊은 대한민국 정부수립 50주년을 맞이하여 ‘제2의 건국’을 향한 장도의 첫 걸음을 시작합니다.‘제2의 건국운동’은 정부가 위에서 일방적으로 끌어가는 것이 아니라,국민이 생활의 현장에서 지혜를 모아 꾸려 갈 수 있어야 합니다.그래야만 성공할 수 있습니다. 국민 여러분이 생활속에서 주인으로서의 책임의식을 가지고 나라일에 참여하고,서로 협력하여 대한민국의 국제적 경쟁력을 세계최고의 수준으로 높이는 것이 ‘제2의 건국’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우리 다 같이 내일의 승리를 기약하는 ‘제2 건국운동’의 대열에 참여합시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국민의 정부’는 ‘제2의 건국’을 계획하고 추진하고자 다음과 같이 국정운영의 6대 과제를 제시합니다. ○부정부패 철저히 척결 첫째는 권위주의로부터 참여 민주주의로의 대전환을 이룩하여 국민과 정부사이에 쌍방통행의 정치를 만들겠습니다.과도한 중앙집중의 폐해를 도려내고 행정,재정,교육,치안 등 모든 분야에서 지방정부의 권한과 책임을 과감히 확대할 것입니다.지방경찰제도도 실현하겠습니다. 무엇보다 ‘국민의 정부’는 국민의 국정에 대한 참여의식을 저상시키는 부정부패를 철저히 척결하겠다는 굳은 결의를 천명합니다. 특히 모든 국민이 기쁜 마음으로 국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망국적인 지역대립을 반드시 청산할 것입니다.이를 위하여 인사와 지역발전의 공정한 처리가 철저히 이행될 것입니다. 저는 대통령으로서 모든 지역의 모든 국민을 존경하고 사랑하겠습니다.저는 4,500만 국민의 대통령이자 7,000만 민족을 위한 대통령이 될 것입니다.저에게 지역의 차별은 결코 있을 수 없다는 것을 국민 여러분에게 굳게 다짐하는 바입니다. 나아가 모든 정당이 전국적으로 고르게 국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도입하겠습니다.저효율 고비용의 국회제도도 크게 개혁되어야 합니다.인사청문회제도도 공약한대로 실시하겠습니다. 각 자치단체별로 중요한 문제에 대한 주민투표제의 도입도 추진하겠습니다.언론도 스스로의 노력과 국민의 여론에 따라 개혁을 단행해야 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21세기는 참여정치의 시대입니다.국민이 모든 국정분야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최대한 보장되어야 합니다.이것이 ‘제2건국’의 정치적 기본목표입니다. 둘째는 관치로부터 경제를 해방시켜 시장경제의 자율성을 높이는 구조개혁에 전력을 다하겠습니다. 불필요한 정부규제를 과감히 줄이고,기업·금융·노동·공공부문 등 4대 분야의 구조조정을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해낼 것입니다.앞으로는 기업을성공적으로 운영하여 흑자를 내고 세계와의 경쟁에서 승리하여 외화를 많이 벌어들인 기업인만이 애국적 기업인으로서 존경받고 발전할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한편,수출을 늘리고 외국인 투자를 적극 유치하고자 합니다.이를 위하여 수출금융을 과감하게 지원하고 외국인 투자촉진법을 연내에 입법하겠습니다. ‘제2의 건국’아래서는 무엇보다도 정보와 첨단기술 중심의 지식기반 산업국가를 건설하는데 심혈을 기울일 것입니다.유망한 중소기업과 벤처기업을 전략산업으로 육성하겠습니다.또한 농어민의 생산물이 제값을 받을 수 있도록 물류체제를 바꾸기 위해 농업정책을 획기적으로 전환하겠습니다. 이렇듯 관치경제의 폐습을 일소하고 모든 경제활동이 시장경제의 원리에 따라 이루어지도록 여건을 마련하는 것이,‘제2의 건국’이 지향하는 경제적 목표라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자 합니다. 셋째는 독선적 민주주의와 같은 폐쇄적 사고에서 벗어나 보편적 세계주의로 나아가는 새로운 가치관을 가져야 합니다. 이미 시작된 WTO체제는 앞으로 수년내에경제적 국경을 없앨 것입니다.이제는 세계와 더불어 경쟁하고 협력하는 가운데 같이 생존하고 같이 번영해 나가야 합니다. ○지식 기반의 국가 건설 그런데 세계에는 아직도 우리 한국을 ‘접근하기 힘든 나라’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이래서는 안됩니다.세계를 친구삼아 우리 나라의 이미지를 적극 개선하는데 힘써야 합니다.좋은 이미지야말로 수출과 관광 그리고 투자유치를 위한 필수조건입니다.저는 세계주의 시대에 적응할 수 있도록 각종 국제교류를 촉진하고,인재의 양성에도 적극 힘쓸 것입니다. 열린 마음으로 세계를 받아들이고 세계로 나아가는 세계주의야말로 ‘제2의 건국’아래서 우리 민족이 나아갈 길인 것입니다. 넷째는 물질주의의 공업국가를 창조적 지식과 정보중심의 지식기반 국가로 바꾸어야 합니다. 민족의 운명을 좌우할 정보와 과학기술의 수준을 획기적으로 향상시켜야 합니다. 이를 위해 ‘국민의 정부’는 교육입국의 이상아래 오늘의 소모적인 교육을 창조적인 교육으로 바꾸는 데 앞장설 것입니다. 무엇보다 지·덕·체삼위일체의 전인교육을 실시해야 합니다.입시지옥이 없는 대학입시제도를 실현하며 학부모의 과외부담을 대폭 줄이겠습니다.실력있는 학생만을 졸업시키고,학벌주의도 타파할 것입니다.그리고 교육자의 수준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키는 조치를 추진하겠습니다. 학교 가는 것이 즐거운 교육을 실현함으로써,어린이와 청소년 스스로가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을 마음껏 가꿀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이러한 교육개혁을 위한 종합적인 실천방안을,이제 활동을 시작한 ‘새교육공동체위원회’가 수립하고 추진할 것입니다. 창의적이고 다양한 교육과 더불어 21세기의 기간산업인 문화산업을 획기적으로 발전시켜야 합니다.교육과 문화의 창달을 통한 지식기반 국가의 건설이 곧 ‘제2 건국’의 이상인 것입니다. 다섯째는 노사간의 대립과 갈등의 시대에 종지부를 찍고,화합과 협력의 시대를 향한 신노사문화를 창출하는 역사적 대전환을 이룩해야 합니다. 고통과 성과의 공정한 분담에 바탕을 둔 신뢰는 ‘제2 건국’의 기초입니다.특히 저는 종업원지주제와 사회보장제도의 강화 등으로 경제성장의 성과를 공평하게 나누겠습니다. 세계적 추세에 따라 우리도 노사 쌍방간에 화해와 협력의 관계를 이룩하는 것이야 말로 국제적 무한경쟁 속에서 함께 살아남는 길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이러한 신노사문화 창조의 사명을 띠고 노사정위원회가 탄생하였습니다. 공정한 여건속에 서로에 대한 믿음과 양보로 노사간에 대타협을 이루어야 합니다.그래서 적어도 ’99년 말까지 쟁의가 없는 노사협력체제를 성사시킬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 마지 않습니다. 이와 더불어 정부는 지금 10조원에 달하는 거액을 투입해서 실업대책에 모든 힘을 기울이고 있습니다.내년에도 이를 더욱 강화시켜 나가겠습니다.앞으로 모든 근로자는 예외없이 고용보험의 혜택을 받게 됩니다.일용근로자에게도 공공취로사업 또는 생계비 보조금을 지급합니다. 저는 이 자리를 빌려 국민 여러분에게 확실히 약속합니다.앞으로 모든 실업자에 대해 먹을 것과 입을 것,그리고 의료혜택과 초중등학교 교육비에 대한 최소한의 보장을 반드시 실현하여,직업을 갖지 못한 국민의 삶을 지키는데 전력을 다하겠습니다. 이러한 노력이야말로 ‘제2의 건국’이 추구하는 신노사문화 창조를 위한 뒷받침이 될 것입니다. 여섯째는 지난 50년간 한반도를 지배해온 남북대결주의를 넘어서,확고한 안보의 기반위에 남북간 교류협력의 시대를 열어 나가고자 합니다. ‘제2 건국’의 기치아래 ‘국민의 정부’는 남북간의 오랜 불신을 해소하고,정경분리의 원칙에 따라 남북간의 경제적 교류와 협력을 증진하고자 합니다.아울러 남북간에 문화,종교 등 여러 분야의 교류도 촉진할 것입니다. 한편,이미 천명한 대북정책의 3대원칙,즉 ‘북의 어떠한 무력도발도 용납하지 않는다,북한에 대한 흡수통일을 원하지 않는다,남북은 상호 교류협력을 실현한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견지할 것입니다.이를 통해 우리는 한반도에 전쟁의 위험을 없애고 평화통일의 기반을 쌓아 나갈 것입니다. 저는 오늘 8·15 광복절을 맞이하여 북한 당국에게 말합니다.오늘의 냉엄한 국제현실에서 우리 민족이 살아남으려면 무엇보다 한반도에 화해와 교류협력의 새로운 장을 열어야 합니다.우리는 이미 체결된 남북기본합의서의 틀 안에서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공존공영의 관계를 얼마든지 실현할 수 있습니다. ○이산가족 고통 덜어줄것 ‘국민의 정부’는 남북기본합의서의 정신에 입각하여 북한의 안정과 발전을 지원할 용의가 있습니다.우리는 금강산 개발과 농업개발을 포함한 모든 경제협력을 지원하고 권장할 것입니다.특별히 강조할 것은 남북 양측이 모두 인도적 정신과 동포애로서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그리하여 혈육에 대한 그리움속에 애태우고 있는 그들의 고통을 덜어 주어야겠습니다. 이렇듯 지금 남북간에는 서로 협의하고 논의할 일들이 너무도 많습니다.이미 남북간 합의로 구성되어 있는 분야별 공동위원회들을 하루속히 가동시켜야 합니다.공동위원회의 정상운영에 앞서 우리는 장차관급을 대표로 하는 남북상설 대화기구를 창설하여 성실한 대화의 장을 갖기를 제안하는 바입니다.저는 북한이 원한다면 이 모든 문제를 협의하기 위하여 대통령 특사를 평양에 보낼 용의가 있습니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국민의 정부’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기본철학과 자유·정의·효율의 3대 원리 아래,참여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완성,세계주의와 지식기반 국가의 실현,신노사문화의 창조와 남북간의 교류협력 촉진 등 앞서 말씀드린 6대 국정과제의 실천을 ‘제2 건국’의 나아갈 길로 삼고자 합니다. 이를 위한 종합적인 정책과 프로그램의 개발 그리고 그 실천을 위해 ‘제2의 건국’을 위한 국민운동이 국민적 참여속에서 이루어지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제2건국’의 기치 아래 세계 속의 선진한국을 건설하는 과정에는 많은 지식인과 전문가,그리고 깨어 있는 국민의 참여가 요망됩니다.국민 여러분,이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여 국난을 타개하고,다시 일어서는 민족의 내일을 힘차게 열어 나갑시다. ○국민의 저력 굳게 믿어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이제 우리는 ‘제2의 건국’을 위한 힘찬 출발을 시작합니다.고생도 같이하고,기쁨도 같이하는 ‘제2의 건국’을 이룩합시다. 저는 일생을 국민 여러분 곁에서 자유와 정의를 위해 살아왔습니다.그 때문에 이루 말할 수 없는 고난의 세월을 40년 넘게 감내해 왔습니다.저는 반드시 국민 여러분의 기대에 부응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수많은 시련과 고통 속에서도 산업화와 민주화의 위업을 이룩한 우리 국민의 저력을 저는 굳게 믿고 있습니다.21세기가 지식과 문화의 시대라면,조상으로부터 유별난 교육열과 유구한 문화유산을 물려받은 우리 민족이야말로 21세기를 위해 준비된 민족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저는 한때의 인기보다 후세의 평가를 더욱 소중하게 생각하면서,21세기를 향한 ‘제2의 건국’에 혼신의 노력을 경주할 것입니다.그리하여 국민 여러분과 같이 98년은 전면적인 개혁에 총력을 다하고,99년말까지는 IMF관리 체제를 종결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그리고 2000년부터는 우리 한국이 세계 일류국가의 대열에 참여하는 민족의 재도약을 반드시 실현시키겠습니다. 국민 여러분,희망과 용기를 가집시다.우리는 해낼 수 있습니다. 조국의 광복과 민주대한의 수호를 위하여,그리고 이 땅에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하여몸받쳐 싸우다가 먼저 가신 애국 영령들이 우리를 지켜주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 손에 손을 잡고 하나가 되어 ‘제2의 건국’을 향해 힘차게 나아갑시다.이 시대의 영광된 주인이 됩시다.후손들에게 자랑스러운 내일을 물려줍시다. 감사합니다.
  • 내일 7,000명 특사/오늘 閣議 의결

    법무부는 13일 8·15 특별사면 및 복권,가석방 대상은 모두 7,000여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법무부 관계자는 “이번 사면은 14일 상오 8시 임시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상오 10시 발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사면에서는 준법서약서를 제출한 공안사범 103명,95년 6·27 지방선거 등 선거사범 1,500여명,외국인 수감자 100여명,조직폭력 등 민생침해사범을 제외한 일반 형사사범 등 모두 7,000여명이 복권·가석방·형집행정지 등의 혜택을 받게될 전망이다. 사노맹 사건의 朴노해씨(41·본명 朴基平),白泰雄씨(36·전 서울대 총학생 회장),중부지역당 사건의 黃仁五·仁郁 형제등도 풀려난다.
  • 남북한 통일대축전 무산/정부,民和協 행사 허용… 南北 별도 개최

    남북한이 판문점에서 공동개최를 추진했던 8·15 통일대축전 행사를 남북 양측이 별도로 치르게 됐다. 정부 당국은 민족화해협력 범국민협의회(민화협) 준비위원회와 통일대축전 남측추진본부의 축전행사를 허용할 방침이나,범민련 남측본부와 한총련의 통일대축전 행사는 봉쇄할 예정이다. 韓光玉 민화협 상임공동본부장은 13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통일대축전 개막식에 참석,“축전행사가 남북공동으로 열리지 못하게 된 점은 유감스러운 일”이라면서 금세기 내에 민족통일의 물꼬를 터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북한측 주도로 남·북·해외 범민련 대표 9인으로 구성된 8·15 통일대축전 공동위원회는 12일 평양 양각도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오는 15일 판문점에서의 8·15 통일대축전 행사일정을 공개했다.
  • 親日의 군상:1­1/시리즈를 시작하며(정직한 역사 되찾기)

    ◎친일파 청산 ‘참된 역사’의 출발/日帝 앞잡이 기득권층 형성… 反통일세력화/민족자존 위해 더 미룰수 없는 ‘금세기 숙제’ 20세기 우리 현대사에 등장한 용어중 ‘친일파’만큼 불명예스런 것도 없다.‘친일파’로 한번 낙인찍히면 씻을 수 없는 오욕으로 영원히 남아 왔다. ‘친일파=매국노=반민족행위자’라는 등식으로 인식되는 친일파문제는 지금에 와서도 민감한 사안으로 남아 있다.이 문제는 그동안 쉽게 손대기가 어려웠고 학계에서조차 ‘쓰이지 않은 역사’로 방치돼 왔다. ○‘쓰이지 않은 역사’로 방치 친일파문제는 그 죄상(罪狀)에 대해 단죄는 물론 역사적 평가도 없이 오늘에 이르렀다.간헐적으로 친일논쟁이 터질 때마다 우리사회에서 과민반응을 보이는 것은 아직도 불씨가 남아 있다는 증거다.수 년전 매국노 李完用 후손의 ‘땅찾기 소동’은 친일파문제가 얼마나 민감한 이슈인가를 잘 보여주었다. 민감한 이슈를 이 시점에서 다시 거론하는 것은 왜인가?그 이유는 해방 반세기가 지나서도 마치 ‘역사의 미라’처럼 온존해 있는 친일파문제를 금세기내에 매듭짖고 정의가 살아있는 정직한 역사를 만들어 보자는 것이다.그동안 우리 사회는 해방후 친일잔재를 척결하지 못한 탓으로 민족정기가 땅에 떨어지고 가치관의 혼란도 극심했었다.일부 친일파들은 독립유공자로 둔갑해 훈장을 받기도 하고 심지어 독립유공자들의 공적을 심사하기도 했다. 친일 문인의 작품이 최근까지 교과서에 버젓이 실렸는가 하면 국립묘지에는 아직도 친일 경력자가 묻혀있다.친일파연구가 고(故) 林鍾國 선생은 친일파청산의 의의를 “철저하게 짓밟혀 버린 민족자존을 회복하고 자손만대에 민족정기가 살아있음을 증명”하기 위해서라고 지적했다. ○親日 논리·행적 기록 남겨야 일제 앞잡이 친일파들은 해방후 이승만 정권의 비호아래 신생 대한민국의 새로운 지배층으로 변신하였고 다시 군사 독재정권에 와서는 ‘영원한 기득권층’으로 자리잡았다.이들중 대다수는 극우·반공논리로 무장하여 반(反)통일세력을 형성해왔고 또 독재권력옹호자,매판자본가,어용지식인,심지어 한·일 외교무대에서 굴욕외교에 앞장서기도 했다.이런 상황에서는 통일과 민족정기를 논할 수 없다. 이제 친일파 청산문제는 더이상 다음 세기로 미룰 수 없다.이제라도 역사학계와 연구자들은 그들의 친일논리와 행적을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그러나 이같은 작업은 개인에 대한 단죄차원보다는 과거사 청산과 올바른 가치관 확립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다.동국대 법학과 韓相範(64) 교수는 “우리사회의 부패·모순구조는 해방후 친일파 척결을 하지못한데서 기인한 것”이라고 분석하고 “금세기가 가기전에 우리사회가 친일파 청산작업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친일파의 정의와 범주/매국노·식민정책 협력자 통칭/독립신문 7개 부류 첫 거론/제헌국회 反民法 구체 규정 보통명사‘친일파’의 사전적 의미는 ‘일본과 친하게 지내는 개인이나 무리’정도로 풀이할 수 있다.그러나 우리 근현대사에 등장하는 ‘친일파’의 경우 그들이 활동한 시기와 일본과 친하게 지낸 정도 면에서 차이가 있다.후자의 경우 ‘을사조약을 전후하여 해방전까지 일본제국주의와 가깝게 지내면서 매국(賣國)에 가담했거나 또는 일제강점하에서 일제의 식민지 정책에 협력한 자’들을 통칭한 것이다.따라서 이 경우 ‘친일파’는 매국노,반민족행위자,민족반역자 등과 같은 뜻으로 통용되고 있다. 20세기 전반 외세지배를 겪은 나라들은 대개 우리의 ‘친일파’와 유사한 의미의 용어를 가지고 있다.중국은 일제에 협력한 자들을 ‘한간(漢奸)’이라고 부른다.‘중국인으로서 적과 통모(通謀)하여 반역죄를 범한 매국노’라는 뜻이다.프랑스는 나치정권에 협력한 반역자를 ‘나치협력자’로 부르고 있다.이같은 용어들은 ‘민족반역자’라는 의미를 공통적으로 담고 있는데 전쟁범죄자인 ‘전범(戰犯)’과는 의미가 다르다. ‘친일파’는 구체적으로 어떤 자들을 가리키는가.친일파의 범주에 대한 첫 거론은 1920년 상해 임시정부 기관지 ‘독립신문’이 보도한 ‘칠가살(七可殺)’이다.이는 당시 독립진영에서 처단대상자로 지목했던 매국적(賣國賊)·친일관료·밀고자 등으로 7개 부류로 대단히 포괄적인 내용이었다.친일파의 범주가 구체적으로 논의된 것은 해방후의 일이다.미군정하 남조선과도정부 입법의원은 1947년 ‘민족반역자·부일협력자·간상배에 대한 특별조례법’을 만들면서 이를 보다 구체적으로 규정하였다.이 법은 민족반역자와 부일협력자를 따로 구분하고 있으며 8·15 이후의 간상배까지 처벌대상으로 삼고 있다.부일협력자의 경우 악질적인 친일파는 물론 일본인과 결혼한 자,일본말을 상용한 자,또 민족반역자의 경우 만주에서 활동한 경찰관까지 포함하고 있다. 한편 제헌국회가 제정한 반민족행위처벌법(반민법)은 친일파의 범주를 보다 구체적이고 한정적으로 규정하였다.이 법은 제1조∼5조에 걸쳐 친일파의‘죄’를 규정하고 있는데 매국노·수작자·고급관료·악질분자 등을 대상자로 규정하고 있다.서울대 사회학과 신용하(愼鏞厦) 교수는 “반민법에서 규정한 친일파는 제한된 직위와 악질적인 반민족행위자만을 대상으로 했다”고 지적했다. □제헌국회 제정 반민족행위처벌법 조 항 반민족행위자 분류 현 황 제1조 ①일본과 통모(通謀)하여 ①사형또는 무기징역 한일병합에 적극 협력한자 ②그 재산과 유산의 ②한국의 주권을 침해하는 전부 혹은 2분의1 조약 또는 문서에 조인하거나 이상 몰수 모의한 자 제2조 ①일본정부로부터 작위(爵位)를 ①무기징역 또는 5년 받은자 이상의 징역 ②일본제국의회의 의원이 된 자 ②그 재산의 전부 혹은 2분의 1이상 몰수 제3조 ①독립유공자나 그 가족을 ①사형,무기징역 또는 악의적으로 살해,박해한 자 5년 이상의 징역 ②또는 이를 지휘한 자 제4조 ①습작(襲爵)한자 ①10년 이상의 징역 ②중추원 부의장,고문 또는 참의를 ②또는 15년 이하의 지낸 자 공민권 정지 ③칙임관 이상의 관리를 지낸 자 ③그 재산의 전부 ④밀정행위로 독립운동을 방해한 자 혹은 일부 몰수 ⑤독립운동을 방행할목적으로 단체를 조직했거나 그 단체의 수뇌간부로 활동한 자 ⑥군,경찰의 관리로서 악질적인 행위를 한 자 ⑦비행기,병기,탄약 등 군수공업을 책임경영한 자 ⑧도(道),부(府)의 자문 또는 결의기관의 의원을 지낸 자 ⑨관공리로서 직위를 이용하여 민족에게 해를 가한 악질분자 ⑩각종 친일단체의 수뇌간부를 지낸 자 ⑪친일 언론·저작활동을 한 문화계 인사 ⑫개인으로서 일제에 적극 협력한 자 제5조 ①고등관 3등급 이상,혹은 ①반민법 공소시효 훈5등급 이상을 받은 관리 결과전까지 공무원 ②헌병,헌병보,고등경찰을 지낸 자임용금지(단,기술관 은 제외) ◎‘친일의 군상’ 자문위원 12명 위촉/객관·공정성 검증… 반론권 보장합니다 서울신문사는 미래지향적 차원에서 친일파 청산을 위해 기획한 ‘친일의 군상’시리즈를 보다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보도하기 위해 12명의 자문위원을 위촉했습니다. 자문위원은 역사학자·변호사·종교가·언론인 등 관계 분야의 저명한 인사들로 구성됐습니다.모든 글은 자문위원들의 검증과 명예훼손 등 법적 검토를 거쳐 게재됩니다.자문위원은 인물 선정에도 참여하며 정기적으로 만나 시리즈의 내용을 종합 평가하고 앞으로의 방향 등에 대해 조언할 것입니다. 서울신문사는 특히 보도된 내용에 대한 반론권을 보장합니다. 자문위원명단은 다음과 같습니다. ▲金祐銓 전 광복회 부회장 ▲姜萬吉 고려대 교수(한국사) ▲韓相範 동국대 교수(법학) ▲李炫熙 성신여대 교수(한국사) ▲朴鍾淳 충신교회 담임목사(한국기독교총연합회 공동회장) ▲李泰鎭 서울대 교수(한국사) ▲姜昌一 배재대 교수(한일관계사)▲朴元淳 변호사(참여연대 사무처장) ▲朴은慶 광운대 강사(정치학) ▲林大植 외국어대 강사(한국사) ▲金三雄 서울신문 주필(친일문제연구가) ▲崔光一 서울신문 제작이사
  • “설마했는데…” 물바다에 망연자실/충북 보은·경북 상주 폭우현장

    ◎보은­지붕만 남긴채 잠겨 하늘보며 원망.도로·논밭 흔적없는 황토물만 넘실/상주­철도 침수·전기-전화 끊겨 완전 고립.“낙동강 넘친다” 고지대로 맨몸 대피 “원망스런 물,물,물….” 게릴라성 폭우가 갑자기 쏟아진 충북 보은일대와 경북 상주지역은 온통 흙탕물 뿐이었다. 시가지 전체가 물에 잠긴 두 지역 주민들은 서울과 경기지역을 휩쓸었던 수마의 상처를 떠올리며 하늘이 원망스러운듯 치를 떨었다. 외부로 통하는 곳곳의 도로는 물에 잠겨 고립됐으며 수확을 앞둔 농경지는 대부분 물에 잠겨 시름을 더했다. ▷보은◁ 각 면소재지의 농경지는 대부분 황토바다로 변해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고 수한면 율산·광촌·호평리 농가들은 지붕만 남긴 채 물에 잠겼다. 농경지 곳곳에서는 농작물의 피해를 막아보려고 물빼기 작업에 나선 농민들의 모습이 간혹 눈에 띄었으나 손을 써볼 겨를이 없어 한숨만 짓고 뻥 뚫린 하늘만 원망스럽게 바라보았다. 보은으로 통하는 상당수의 도로도 인근 하천 등지에서 범람한 물에 잠겨 형태를 알아보기 힘들었고일부 도로구간은 낙석과 토사유출로 흉칙하게 변했다. 보은읍을 가로지르는 보청천은 살인적으로 불어나는 빗물로 금방이라도 범람할 기세를 보여 주민 1만8,000여명이 고지대로 긴급대피해 시가지는 적막감마저 감돌았다. 대피했던 주민들은 대부분 물이 빠지면서 귀가,복구에 나섰으나 일부는 마을회관 등에 마련된 대피소에서 밤을 보냈다. 군청 지하실에 대피중인 이평리 吳금순씨(47)는 “군청에서 컵 라면을 주었으나 따뜻한 물이 없어 먹지 못했다”고 말했다. ▷상주◁ 최고 500㎜ 가까운 폭우가 쏟아진 상주지역은 도로와 철로가 두절되고 전화와 전기마저 끊어져 외부와 완전히 고립됐다. 김천∼상주 3번 국도와 상주∼보은 252번 국도 등 주요 도로가 침수 또는 유실돼 두절됐고 경북선 상주∼함창구간 등 철로 20곳이 침수되거나 매몰됐다. 낙동강 상류지점인 함창읍과 낙동·중동면 3개 지역은 낙동강 범람에 대비해 긴급 대피령을 내려 주민들은 가재도구 하나 챙기지 못하고 서둘러 대피하는 등 최악의 물난리에 망연자실해 하는 모습들이었다. 12일 하오 1시 낙동강 상류(상주시 낙동면) 지역의 수위가 위험수위인 9m에 육박한 8.15m를 기록하자 상주시는 전 공무원을 동원,이 지역 주민들을 인근 고지대 등으로 대피시켰다. 폭우로 통신이 완전 두절되자 상주시 재해대책본부는 휴대폰을 이용해 각 읍·면에 주민들을 대피시킬 것을 지시하는 등 인명피해를 줄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은척면과 모서면 등 10개지역은 저지대 가옥 600여 가구가 침수돼 2,000여명의 주민들이 긴급 대피했다.
  • 8·15 특사 3,600명선/14일 발표

    ◎준법서약 공안사범 등 포함 법무부는 8·15 특별사면 및 복권,가석방 대상자를 오는 14일 상오 발표키로 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11일 “이번 사면은 14일 상오 9시 임시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상오 11시 발표할 계획”이라면서 “가석방 등은 15일 상오 10시 전국 교도소별로 일제히 실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사 대상은 국민회의가 사면·복권을 건의한 1,650명과 가석방 2,000여명 등 3,600여명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가석방 사범 중에는 준법서약서를 제출한 공안사범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법무부는 金泳三 전 대통령의 차남 賢哲씨는 특별사면 검토대상이 아니라고 공식 발표했다.
  • 與 “국회 정상화 정면돌파” 강경기류/水害정국 어디로

    ◎총리인준­상임위장 선출 院구성 지연/국회 표류 비난 여론업고 영입도 박차 여권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국회대책과 관련해서다.국민회의는 ‘8·15’를 고비로 양단간에 곧 ‘결정’을 낼 태세다.자민련은 ‘여권공조’를 강조하면서도 한나라당과 ‘뒷거래’움직임을 보인다.국회정상화를 둘러싼 여권내의 갈등기류도 엿보게하는 대목이다. 자민련은 11일 간부회의를 열어 “오는 14일까지 총리임명동의안 처리를 반드시 관철시키겠다”는 ‘결의’를 다졌다.정부수립 50주년이 아무래도 마음에 걸린다는 얘기다. 자민련 명예총재인 金鍾泌 총리서리는 이날 趙世衡 총재권한대행등 국민회의 지도부를 만찬에 초대했다.자민련 당직자들도 참석했다.이심전심으로 총리인준안 처리에 각별한 협조를 부탁한 자리였다.이 자리에서는 ‘특단의 조치’로 정국운영의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여야는 이날 비공식 총무접촉에서 국회에 ‘민생법안처리특위’와 ‘예산 결산특위’를 일단 구성키로 했다.하지만 국회표류의 근본적인 이유인 상임위원장 선출,총리임명동의안 처리문제는 여전히 입장차이가 큰 상황이다. 여권은 “총리가 일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원칙이자 당위”라며 선(先)총리임명동의안 처리를 강조하고 있다.반면 한나라당은 상임위원장단 선출을 총리임명동의안 처리와 계속 연계,여권사이의 틈을 넓히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주요 상임위 일부를 나눠 갖고 국회 주도권을 노리려는 계산이 깔려 있다. 국민회의측은 “한나라당 지도부의 계파별 이해관계가 개원의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분석한다.지도부간 당권을 의식한 경쟁이 개원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생각한다.당권재편을 앞두고 의원일부를 ‘퇴출’시켜 ‘야당재편’을 빨리하려는 한나라당 지도부 일각의 전략에서 나온 것이란 시각도 있다. 여권은 애초부터 ‘돌파구’가 총무회담수준에서 풀릴 것으로 보지는 않았다.그렇다면 여당의 해법은 두가지다. 국민회의·자민련이 한나라당 의원을 전격 영입,국민신당,무소속 의원들과 함께 국회를 ‘인위적으로’ 정상화시키는 일이다.여권은 국회정상화에 대한 국민여론이 의원영입으로 인한 비판보다 거세다고 판단할 경우 ‘지체없이’ 의원영입에 나서 정면돌파하는 방법을 강구중이다.하지만 자민련측이 ‘총리서리떼기’를 놓고 한나라당과 주요상임위장의 약속등 ‘뒷거래’하고 있다는 의혹이 커지면서 실현은 미지수인 상태. 다른 하나는 8·31 전당대회를 앞둔 한나라당의 ‘자체분열’을 기다리는 것이다.하지만 이 경우는 “개혁현안처리가 너무 늦어지는 것 아니냐”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한나라당은 국회 운영위원장을 갖는 경우 총리인준안을 처리할 가능성을 내비친다.하지만 이같은 식의 ‘딜’도 여권,특히 국민회의의 강경한 원칙론때문에 성사될 가능성이 희박하다.여권은 한나라당이 국회정상화 여론에 밀려 자발적으로 국회문을 두드릴 가능성에 일말의 기대감을 갖고 있다.
  • 경제분야­주제발표(제2의 건국선언 무엇을 담나:Ⅰ)

    올 8월15일은 정부가 수립된지 50년이 되는 날이다.이처럼 뜻깊은 ‘건국 50주년’ 8·15를 맞아 金大中 대통령은 국정운영의 최고 슬로건으로 ‘제2의 건국’을 선언한다.국제통화기금(IMF) 체제라는 국가적 위기를벗어나 완전한 선진민주국가로 진입하기 위한 국정운영 철학과 청사진을 제시하는 것이다.서울신문은 이같이 새로 정립될 ‘국민의 정부’의 국정운영 비전의 적실성과 바람직한 방향을 전문가들의 집중토론으로 점검했다.전날 정치분야에 이어 11일 경제분야에서는 金有培(성균관대)·金兌基(단국대) 교수 등이 주제발표에,柳莊熙(이화여대)·金仲秀(경희대) 두 국제대학원장이 토론에 참여했다. □주제발표 ◎과거정권 정책 실패 금융·기업개혁 시급/金有培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 경제 개발의 성공사례로 극찬을 받았던 우리경제는 새정부의 출범에 앞서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 금융을 받는 위기에 처했다. 이제 새로운 경제체제로의 변화와 전환이 요구된다.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을 기초로 한 새 패러다임으로 경제 운영의틀을 재구축해야 한다.세계의 보편적 규범과 원칙을 우리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구조개혁이야말로 한국 경제를 회생시킬 수 있는 길이며,제2의 건국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60년대 이후 경제운영을 지배해온 권위주의는 효율성과 공평성이란 양면에서 개혁을 요구받았다.새로운 환경에 맞춰 경제개발 전략을 전환해야 했지만 이에 대한 대응이나 구조조정에 실패해 위기를 맞게 된 것이다.문민정부에서도 부정부패는 여전했고 연이은 정책 실패로 급기야 경제 파탄의 지경에 이르렀다.‘국민의 정부’는 구체제의 정책실패를 딛고 새로운 체제로 이행하기 위해 총체적 개혁을 수행해야 할 역사적 과제를 안고 있다.국민의 정부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을 제시하고 있다. 국정지표로서의 민주적 시장경제는 자유방임적 시장경제가 아니고 시장경쟁 촉진적인 정부간섭과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정부개입이 가미된 시장경제를 뜻한다.정부의 간섭은 시장경제에 민주주의적 요소를 심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입장에서 정부정책의 핵심과제는 △경쟁조건의창출 및 확보 △새로운 기업 경영 및 지배구조와 금융개혁 △사회정책의 관점에 입각한 소득 및 부의 재조정 △중소기업의 견실한 유지를 위한 시장정합적 조치 △지역경제의 육성과 농어업의 지원 △소비자 주권의 강화 △노사정위원회 구성과 노사협약의 추진 △시장 친화적 경제 안정화 등이다. 경제 개혁의 중심 분야는 금융과 기업이다.두 부문의 개혁을 통해 시장경제적 매카니즘이 확립되면 모든 부문의 개혁이 유도되고,외국으로부터 투자 유치가 용이해지며,경쟁력이 되살아나 전체 경제의 회생이 가능해진다. ◎첨단미래업종 육성 일자리 창출해야/金兌基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 건국 50주년이라는 역사적 분기점을 맞고도 실업문제와 수해 등 여러 악조건 때문에 신바람나는 분위기가 살아나지 않고 있다.따라서 우리는 발상의 전환을 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오늘의 모든 문제는 사회적 적응력 배양에 실패한데 기인한다고 본다.노동 분야에 있어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우리 사회구조가 실업문제에 취약하다는 점이다.정부는 실업자 수의 마지노선을 150만명으로 정해 놓고 있다.그러나 실업자 수를 정책방어선으로 제한해 놓으면 안된다. 노동문제의 해결은 일자리 창출이 관건이다.이를 위해서는 기업이 경영을 마음놓고 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줘야 한다.이와 함께 뉴비즈니스(새업종)를 적극적으로 키워야 한다.뉴비즈니스로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첨단 미래업종인 정보·통신,문화·관광,환경산업 등을 들 수 있다.朴正熙 전 대통령은 실업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60년대 경공업 드라이브 정책을 폈고,70년대에는 중화학공업을 정책적으로 육성했다.현 시점에서도 주력산업 육성을 통한 산업 재편과 일자리 창출 같은 근본적인 해결책은 등한히 한 채 땜질식 미봉책만 나열해선 곤란하다. 우리나라는 지방자치제도의 역사가 일천하지만 실업정책에 있어서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은 참으로 중요하다.그러나 지금 우리 지자체에는 이 역할을 수행할만한 권한이 주어져 있지 않다.우리의 실업정책이 겉돌고 있는 원인의 일부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대기업에 경제적·기술적으로 종속된 하청업체들을전문 중소기업으로 전환해야 한다.이 문제도 역시 중앙정부가 손을 대는 것보다는 지자체가 각지역의 경제상황에 맞게 해결책을 강구하는 것이 효율적일 것이다. 어떤 문제든 결국 사람이 핵심이다.지금의 교육개혁은 지난 정권의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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