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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칼럼] 광복 56주년과 남북관계

    올해도 우리 민족이 그토록 갈망하는 통일을 이룩하지 못한 채 광복 56주년을 보냈다.2차 대전 이후 분단된 국가들이 모두 통일을 이뤘는데 우리 민족만이 지구상에 마지막남은 분단의 고통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다.이러한 민족사에서 볼 때 통일을 조속히 실현하는 것은 오늘을 사는 7천만 성원 모두의 한결같은 염원이며 역사적 책무다.따라서 우리는 통일에 대한 회의적인생각이나 막연한 기대에서 벗어나 가까운 장래에 통일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굳은 믿음을 가지고 착실히 준비해 나가야 한다. 우리가 통일을 시급히 성취해야 하는 까닭은 한마디로 분단으로 인해 민족 전체가 겪고 있는 고통과 비극,희생과 속박 속에서 벗어나 우리의 삶을 보다 행복하게 창조해 나가려는 데 있다.분단 때문에 치러야 했던 우리민족의 희생과고통은 6·25 동족상잔의 참화는 제쳐놓더라도 자유와 인권의 제약,민족자존의 손상,민족사의 굴절 등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그리고 헤어진 혈육과 친지에 대한 그리움으로 한맺힌 삶을 살고 있는 이산가족들의 고통은 최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다. 한반도의 불안정한 안보체제에서 보면 통일은 더욱 시급한 과제다.통일이 우리에게 그 무엇보다 절실한 까닭은 통일이야말로 우리 민족의 항구적인 생존과 번영을 보장해 주는 첩경이기 때문이다.통일이 이렇듯 민족의 절실한 과제임에도 불구하고 남북관계는 장기간에 걸친 첨예한 사상적 대립과 심화된 불신을 해소하지 못한 채 반목을 계속하고 있는안타까운 현실이다. 엄밀하게 볼 때 지난해 분단이후 처음 열린 남북정상회담과 6·15공동선언을 높이 평가하는 것은 이를 통해 통일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단초를 마련했기 때문이다.그러나 1년이 지난 오늘 6·15공동선언의 이행이 지연되면서 남북관계가 정체 상태를 맞고 있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올해 광복절 경축사에서 햇볕정책은 반드시 실현돼야 한다는 점을 재삼 강조하고 북한에대해 6·15 남북공동선언의 준수를 촉구한 것도 남북관계진전을 위한 국민적 염원으로 이해된다. 지난해 8·15광복절은 민족화해주간으로 설정하여 남북이 공동으로 축하행사를 치렀고 이산가족의 교환 상봉 등 남북화해·협력 분위기가 충만했던 것을 생각할 때 1년만에다시 행사가 중단되고 갈등을 빚고 있는 것은 참으로 가슴아픈 일이다.오늘날 국제 상황은 과거에 비해 통일에 다소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고 있으며 민족의 자주적 평화통일을실현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도 마련됐다.민족의 통일을 실현하기 위하여 남북이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는 분단에서 오는 유형무형의 고통과 불행을 제거하고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는 일이다.또 오랫동안 단절된 상황에서 만들어진 민족의 이질화를 극복하는 문제다. 그리고 남북분단은 사실상 외세에 의해 주어진 것이지만조국의 통일만은 민족의 자주적 역량과 주체적 노력에 의해 반드시 성취돼야 한다.일부에서는 갈라진 채 반세기 이상을 살아왔는데 앞으로 이대로 살아가는 것도 무방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그러나 현재의 분단상태가 보다 오래 계속되면 남북이 다 함께 더 심한 고통을 받게될 것이며 민족적 손상은영원히 치유·회복할 길이 없게될 것이다. 때문에 우리 민족의 통일은 남북이 힘을 합쳐 조속히 실현해야 할 역사적 과제다.통일은 우리 세대에 기필코 실현시켜 다시는 우리 후손들이 오늘과 같은 민족적 비극의 전철을 밟게 해선 안된다.그런 의미에서 북한은 지난해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서명한 6·15공동선언을 성실하게 이행해 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의 서울답방이 조속히 실현되어 남북관계 진전과 화해협력을 넓혀 민족의 염원인 통일을 앞당기는 데 보다 성의있는 자세를 보여야 할 것이다. 장 청 수 객원 논설위원 csj@
  • 평양 8·15 통일대축전 또 ‘진통’

    [평양 공동취재단·박찬구기자] 평양 8·15 민족통일대축전 폐막식이 열린 16일 남북 양측은 논란이 된 ‘조국통일3대헌장 기념탑’ 주변 행사에 남측 일부 인사가 참석하는문제를 둘러싸고 15일 개막행사에 이어 또 한차례 진통을겪었다. 특히 일부 남측 인사들은 이날 정부의 불참방침과 대표단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폐막 관련 행사에 또 다시 참석을 강행,적잖은 파문이 예상된다. 이날 남측 대표단 가운데 통일연대와 민주노총 소속 80여명은 기념탑 주변에서 폐막식 직후 오후 9시30분쯤부터 뒤풀이 행사로 열린 예술공연 등 야회(夜會)에 참석했다. 이와 관련,정부 당국자는 “이들이 폐막식 본행사에 참석하지 않았더라도,당초 정부가 제출받은 각서에 ‘기념탑 주변 행사에 일체 참석하지 않는다’고 돼 있어 논란의 소지는 여전히 남아 있다”고 밝혔다.그는 “개막식 및 폐막식직후 야회 행사 참가자 가운데 책임질 부분이 있으면 응분의 책임을 져야할 것”이라며 사법처리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방북단이 귀국하는 대로 자세한 경위를파악한 뒤 위법사실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면 남북교류협력법 등 위반 혐의로 사법당국에 고발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이와 관련,남측 대표단의 추진본부 상임집행위원장인 김종수 신부는 남측 기자단과 회견을 갖고 “당초 21일까지 체류할 예정이었으나 서울로 대표단을 철수하는 방안까지 포함해 여러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고 밝혀 조기 철수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남측 대표단은 17일 오전 내부 전체회의와 북측과의 협의를 거쳐 향후 일정을 확정할 계획이다. 남북 양측은 이날 이틀간 행사를 마무리하는 공동발표문을 통해 “지난해 남북정상간 6·15 공동선언의 철저한 이행을 뒷받침하기 위한 민간차원의 노력을 강화할 것”이라고밝혔다. 양측은 또 인민문화궁전에서 ‘일제침략 및 역사왜곡 전시회’를 갖고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의야스쿠니(靖國)신사참배에 공동 대응한다는 내용의 결의문을 발표했다. 한편 이날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남·북·해외 대표들은 91년 창립 이후 처음 한자리에 모여 범민련의 기존 강령을개정,‘연방제 통일’조항을 ‘6·15 공동선언’으로바꾸는데 합의했다.이 자리에서 범민련 대표들은 기존 강령 가운데 연방제 통일을 명시한 관련 조항을 ‘조국통일 3대 원칙과 6·15 공동선언 정신에 따라 범민족적 통일 국가를 수립한다’는 내용으로 바꾸고 8·15 범민족대회 관련 규약을 삭제키로 했다. ckpark@
  • [사설] 방북단 일부의 돌출행동

    평양 ‘8·15민족통일대축전’에 참가한 남측 대표단 일부 인사들이 정부와의 약속을 어기고 15일 저녁 ‘조국통일 3대 헌장 기념탑’앞에서 열린 개막식에 참석해 파문이 일고 있다. 남측 대표단 집행부는 북측과 개막식 문제를 협의하는 과정에서 ‘헌장탑’행사에는 참석하지 않는 조건으로 방북했다며 참석을 거부했다.그러나 북측은 “참석이 어려우면 참관만이라도 해달라”고 요구했다.실랑이가 계속되는 가운데 통일연대 소속 일부 인사들이 개막식 참석을 주장하고 나와 “각서까지 써놓고 무슨 말이냐”며 만류하는 민화협 및 7개 종단 인사들과 언쟁까지 벌였다.남북간,남남간 논란이 몇시간 동안 이어지자 참석을 주장하던 100여명의 인사들이 대기중인 버스를 나눠 타고 행사장으로 갔다고 한다. 우리는 국민들이 우려했던 일이 현실로 나타난 이번 사태를 보고 몇가지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첫째,북한의 태도다.당초 통일부는 ‘헌장탑’앞에서 남북공동행사를 갖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보고 대표단의 방북을 허용하지않기로 했었다.그러다가 “헌장탑 행사에는 오지 않아도 된다”는 북측의 전문을 받고 방북을 허용했다.‘헌장탑’행사에는 참석하지 않겠다는 대표단 집행부의 각서를 받은 것은 물론이다.그럼에도 북한은 “이미 2만명의 군중을 동원해 놓았다”며 남측 대표단을 ‘강박’했다.북측은 결과적으로 우리 정부당국의 신뢰를 저버린 것이다.이러고서야 어떻게 남북간에 신뢰가 쌓이겠는가. 북한의 태도는 그렇다 치고,집행부의 만류를 뿌리치고 행사에 참석한 인사들의 ‘돌출행동’은 사려가 부족했다.“북녘동포들이 뙤약볕 밑에서 몇시간씩 기다리고 있는데 가지 않는 것은 말이 안된다”며 행사장으로 달려간 심경은충분히 이해가 간다.그러나 그들은 너무도 중대한 사실을간과했다.‘헌장탑’은 북한의 고려연방제 주장을 상징하는 축조물이다.그 앞에서 벌어진 행사에 참석한 것을 두고 “고려연방제를 지지하는 게 아니냐”는 국내 보수세력의 색깔공세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정부는 “정황을 명확히 파악한 다음 참석자들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 있으면 묻겠다”며 사법처리 가능성을 비치고있다.참석자들은 ‘통일 염원’이 남다른지라 개인적인 희생을 각오했는지 모른다.그러나 그같은 돌출행동은 결코 통일운동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정부의 햇볕정책을 ‘대북 퍼주기’니 ‘대북 유화정책’이라고 폄하하는 보수세력에게정부를 공격할 수 있는 구실을 보태 준 셈이다.정부는 100명이 넘는 참석자들을 한사람 한사람씩 조사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됐으나,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출행동의 책임자들에게는 마땅히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그러면서 우리는 정부와 국민 모두가 대승적인 차원에서 이번 사태의 파문을최소화하는 데 힘을 모았으면 한다.
  • 8·15특집 한일관계 갈등을 넘어/ 개방 실태·현주소

    정부는 지난달 일본 왜곡교과서 문제와 관련, ‘일본문화추가개방 중단’을 선언했다.당초 올해중 성인영화·비디오,게임 등 5개분야에 대해 4차개방을 단행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한일양국 문화계는 지난 98년 한국이 30여년만에 1차 일본대중문화 개방 조치를 취한 이후 서로 많은 영향을주고 받아왔다.아직도 양국 문화교류는 활발하다.광복 56주년을 맞아 양국 문화교류의 현주소를 알아본다. ■영화= 개방 첫해인 98년 3건에서 지난해 54건으로 수입이급속도로 늘었다.한국 영화 ‘쉬리’가 일본에서 히트한 뒤합작도 증가했다. 올초 개봉한 ‘순애보’는 일본영화사 쇼치쿠가 35%를 투자했다.촬영이 끝나가는 ‘봄날은 간다’도 한국의 싸이더스가 45%,일본의 쇼치쿠와 홍콩의 어플로즈가 각각 40%와 15%를 투자했다.이룩스 엔터테인먼트는 일본의 다이에이와공동으로 ‘새빨간 악몽’을 제작할 계획이다. 싸이더스측은 “‘쉬리’‘8월의 크리스마스’등 수준 높은 한국의 영화가 소개되면서 일본 자본이 합작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연극=개방 전에는 국내 우수 극단 1∼2곳이 일본의 초청으로 일본 무대에 오르는 정도였다.지금은 양국에서 많은극단들이 오간다.공동연출 등 합작품까지 등장하고 있다.일본 공연기획사 4∼5곳은 아예 한국에 상주하고 있다.국제극예술협회 송형종 사무국장(37)은 “최근 한·일 관계가 경색돼 일부 공연이 취소되는 일도 있다”면서 “그러나 교류의 정도와 양상을 볼 때 양국 문화교류를 정치적인 이유로계속 막기란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음반= 대중음악은 개방 폭이 영화 등에 비해 작다.일본어음반은 아직 국내 시장에 유통되지 못한다.일본 뮤지션들은음반 홍보차 라이브 형태의 한국공연을 갖는데 그친다. 따라서 국내시장에 일본의 대중가요가 미치는 영향은 아직 크지 않은 편이다.이에 비해 우리 대중가수들의 일본 진출은활발하다.보아나 SES 등 젊은 댄스풍 가수들이 일본 시장을공략,입지를 굳히고 있다. 문화개혁시민연대 이동연 사무처장(37)은 “예전보다 라이브 공연이 늘었지만 일본 대중가요가 한국시장에 직접 진출했다고 보긴 이르다”면서“양국 정서를 볼 때 대중가요교류는 더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만화= 1차 개방 이후 수입된 일본 원본만화(단행본)는 첫해 143부에서 99년 1만7,123부,지난 해 4만2,251부로 크게늘고 있다.업계는 “일본만화의 수입이 꾸준히 늘고 있지만시장점유율은 올 6월 기준으로 볼때 0.19%로 아직 낮다”면서 “그러나 주요 수요 계층인 10대에 미치는 영향력을 감안하면 무시할 수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방송= TV 오락프로그램은 4차 개방대상이다.따라서 지상파나 케이블TV가 일본 작품을 방영한 적은 아직 없다.반면 한국 프로그램은 3∼4개가 일본에 진출했다.지난해 1월부터일본 최대의 음악채널 ‘스페이스 샤워’에서 방영되는 ‘m.net Korean Wave’는 일본 전체 프로그램에서 항상 5위안에 들 만큼 인기가 높다.방송사는 이에 따라 지난 6월 ‘m. net Korean Wave’전용 페이지를 개설하기도 했다. 김성호 이종수 윤창수 이송하기자 kimus@
  • 여성계 인사 815명 8·15기념 평화 선언

    무용가 이애주,대구 가톨릭대 교수 손이덕수,호주제폐지 시민연대 운영위원 고은광순 등 여성계 인사들은 15일 서울 태평로 세실레스토랑에서 어머니 815명이 서명한 ‘한(韓)민족 평화 어머니들의 8·15 선언’을 발표했다. 이들은 선언에서 “학연과 혈연,지연,성,인종차별 등 온갖치졸한 편가르기를 버리고 민족의 화합을 위해 이름없는 벌레도 생명사랑으로 대하는 어머니의 용서와 화해정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분열과 대결,증오의 감정을 부추기는 국내외 세력들은 반평화적 언행을 중지해야할 것”이라며 “상생(相生)의 신세기를 열어가는데 이땅의 어머니들의 떨쳐 일어설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어 ▲휴전선에 배치된 장거리포의 후방 이동 ▲동북아 핵개발 저지와 군축 실현 ▲남북,영호남 등 이데올로기 갈등의 종식 등 10개항을 결의하고 앞으로 전국의 어머니들을 상대로 지속적 평화 캠페인을 펼치기로 했다. 최여경기자 kid@
  • 근로자 세금 최소 10%경감

    정부는 봉급생활자 600만명의 세부담을 10% 이상 경감하고 세금을 성실히 납부한 자영업자들의 세금도 10∼15%가량 감축해주는 방안을 적극 추진키로 했다. 이와 함께 월 임대료가 10만원 수준인 임대주택 20만가구를 공급하고,서민들의 소형주택 구입이나 전·월세 소요자금의 70%를 장기저리로 지원해주는 방안도 적극 검토키로했다. 청와대 이기호(李起浩) 경제수석은 15일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밝힌 경제활성화 및 중산층·서민 생활안정 대책과 관련,이같은 내용을 중심으로 한 후속조치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근로소득세가 지난해 6조5,000억원정도 걷힌 점을 감안하면 봉급생활자의 세금경감액은 연간 6,500억원,1인당 약 10만8,000원의 부담이 덜어지는 셈이다. 정부는 이를 위해 소득공제폭을 확대하고 세율을 인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며 세목별 감세규모와 구체적인감세방법은 이달말 세제개편을 통해 발표할 방침이다. 이수석은 “연구개발과 설비투자를 중심으로 내수시장을확대하기 위해 기술개발적립금 등 연구개발이나 설비투자에 들어가는 비용에 대해서도 세제혜택을 주기로 방침을세웠다”고 말했다. 대규모 기업집단 지정제도도 합리적으로 개선,설비투자나수출 등 핵심분야에 투자할 경우 출자총액 산출에서 제외하는 방안도 검토중이라고 이 수석은 전했다. 아울러 연내에 국민건강 종합계획을 마련,내년부터 본격시행에 들어가 오는 2005년에는 대부분의 국민이 3대암을조기에 진단받을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오풍연기자
  • 8·15특집 한일관계 갈등을 넘어/ 日움직임과 주변국

    일본의 우경화는 직시하기 싫은 과거는 덮어버린 채 강한미래를 향해 전진하는 꼴이다.1990년대의 ‘잃어버린 10년’에 대한 강한 반발이기도 하다. 문제는 이를 제어할 장치가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한국과함께 비난의 목소리를 높여왔던 중국은 경제적 이해관계를고려,사안별로 조심스럽게 대응하고 있다.반면 미국은 일본의 경제회복을 통해 미·일 안보라인을 구축하기 위해 방관자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의 취임은 우경화에날개를 단 형국이 됐다.그는 병든 일본에 성역없는 구조개혁과 우경화로 특징지어지는 자국 이기주의라는 처방전을내놨다.얼핏 보면 두 개념은 어울리지 않지만 고통을 수반하는 경제개혁을 정신적 위안으로 달래고 있는 셈이다. 일본의 우경화에 대해 한국과 중국을 비롯,아시아 주변국들이 특히 우려하기 시작한 시점은 지난해부터다.극우단체인 ‘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 일본의 아시아 침략사를 대폭 삭제한 역사교과서를 문부과학성에 제출한 것이지난해 4월이다.전쟁 금지와 군대보유금지를 골자로 한 ‘평화헌법’의 개정을 위해 참의원과 중의원에 헌법조사위원회가 설치된 것도 지난해 1월이다. 한·중의 강한 반발에도 불구,일본 문부과학성은 ‘관점의차이’라며 우익측 교과서를 통과시켰다. 한국은 북한과 함께 유엔 인권위원회에서 교과서 문제를 거론,일본을 압박하기도 했지만 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문제의 교과서 채택율이 낮다는 게 그나마 위안이다.일본의 우경화에 대한 제어는 내부자가 가장 잘 할 수 있다는 것의 반증이다.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우경화의 정점에달한다.문제는 고이즈미 총리가 내년,후년에도 참배할 것이냐다.고이즈미의 임기는 2003년 9월말까지로 패전기념일을전후해 두번 더 참배할 수 있다. 앞으로 남은 문제는 자위대 강화 등을 주내용으로 한 헌법개정.헌법조사위원회는 2008년에 개정안을 내놓을 예정이다. 주요 쟁점은 집단적 자위권과 유사법제의 정비다. 집단적자위권은 우방이 적의 침략을 받거나 주변국에서 전쟁이 발생했을 때 이를 일본에 대한 침략으로 간주,분쟁에 참여할수 있는 권리다.유사법제는 일본이 직접 무력공격을 받았을때를 대비한 법 체제다. 전쟁 금지와 군대 보유를 금지한 평화헌법 9조의 개정 논의가 자연스럽게 떠오르고 있다.미국의 일본에 대한 안보책임 분담 증가 요구와 맞물려 군사력 증가의 결론에 도다를가능성이 높다. 전경하기자 lark3@
  • 정치개혁 어떻게 될까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밝힌 ‘정치개혁 단행’ 언급은 내년 지방선거와 대선 등에 앞서 정치판의 새 틀을 짤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정치개혁은 앞으로 열리게 될 영수회담의 주요 의제중 하나될 것으로 보인다.16대 국회는 다양한 현안들이 산적해있다.전국구 배분이나 1인1표제는 헌법재판소의 위헌판결로어차피 손질을 해야한다.여기에 선거자금,지구당 폐지,선거구제 재편 등 정치와 선거·국회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의제들도 함께 논의된다.그런 만큼 여야 영수회담에서 큰 골격을 잡아야한다. 이후 세부사항 추진은 15대 국회가 끝난 뒤 유명무실해진국회 정개특위가 다시 실질적인 역할을 맡을 전망이다. 이번 국회의 정개특위는 교섭단체 구성요건 완화 논란에막혀 그간 활동이 전무하다시피 했다. 민주당 이상수(李相洙) 총무는 “국회,정당,선거 등 정치분야의 개혁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국회 정치개혁특위를 재구성하겠다”고 말했다.이 총무는 특히 “정치개혁에 관한국민적 여론을 수렴하기 위해 국회의장 산하에 여야 의원은물론 각계 전문가들이 참여한 ‘정치개혁 자문기구’를 설치할 계획”이라며 “최근 여야 총무회담에서 여야간 대체적인 합의가 이뤄졌다”고 전했다. 홍원상기자 wshong@
  • 北 ‘헌장탑 행사’ 참석 파문

    남북의 민간인사들이 참여하는 ‘8·15 통일대축전’ 행사가 15일 평양에서 열렸으나 개막식 장소 문제를 놓고 남북 양측이 논란을 벌이는 등 첫날부터 진통을 겪었다. 특히 범민련과 한총련 등 재야·학생운동 단체들로 구성된 통일연대 소속을 중심으로 남측 인사 150여명이 우리정부와의 합의를 어기고 ‘조국통일 3대 헌장 기념탑’앞개막행사에 참석함에 따라 향후 논란이 예상된다. 이날 논란은 북측이 3대 헌장탑 앞 개막행사에 남측 대표단의 참석을 요구하면서 빚어졌다.남측 대표단의 김창수민화협 정책실장은 “헌장탑 앞 행사에는 참석할 수 없다는 뜻을 이미 14일 저녁 북측에 전달했다”며 북측 단독으로 개막행사를 갖거나 다른 곳에서 개막식을 갖자고 제의했으나 북측은 “대규모 군중이 모여있다”는 등의 이유로거듭 행사참석을 요구했다. 이 때문에 오후 3시에 열릴 예정이던 개막행사가 3∼4시간 지연되고,남측 취재진의 기사 송고를 북한 당국이 제지하는 등 파행이 이어졌다. 통일연대 소속 인사들이 정부측에 제출한 각서를 어기고3대 헌장탑 앞 행사에 참석함에 따라 향후 정부의 대응이주목된다. 이에 앞서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와 7개 종단,통일연대 등의 사회·종교단체가 중심이 된 ‘2001 남북공동행사 추진본부’소속 대표단 311명과 취재진 26명 등남측인사 337명은 이날 낮 아시아나 항공편으로 인천공항을 출발,서해 직항로를 거쳐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했다. 행사는 뒤늦게 깅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등 4,0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식전 행진,개막식 행사,경축공연,뒤풀이 행사 등 순으로 진행됐다. 평양 공동취재단·진경호 기자 jade@
  • 김대통령 8·15 경축사

    15일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는 집권 후반기 국정 청사진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된다. 현재 각 분야에 걸쳐 진행하고 있는 개혁을 마무리 짓고,세계 일류국가로 도약하는 기틀을 마련하겠다는 것이 ‘골자’라고 할 수 있다.경축사에서 ▲개혁 ▲화합 ▲경제회생을 메시지로 던진 것도 같은 맥락이다. 김 대통령은 또한 안정을 중시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새로운 일을 벌여나가기 보다는 내치(內治)에 역점을 둔 게그것이다.사회의 기둥이자 초석인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대책을 제시한 것도 이를 위해서다. 무엇보다 ‘경제살리기’가 급선무라고 할 수 있다.경축사의 상당부분을 이 분야에 할애,비전을 제시하면서 경제 회복을 자신한 데서도 알 수 있다. 외환위기를 완전히 극복하고,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지원받았던 195억달러의 차관을 3년 앞당겨 전액 상환하게된 것도 김 대통령이 “하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은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총재와의 여야 영수회담을 제의한 것이라든지,내년 지방선거와대통령 선거도 이 나라 역사상 가장 공명정대한 선거가 될 것이라고 강조한 것 또한경제회생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정국 안정을 통해 경제를살리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내 보인 셈이다. 남북문제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언급 대신 햇볕정책과 함께북 ·미 대화를 거듭 촉구하는 등 원론적인 수준에 머물렀다.그러면서도 “북한은 이미 합의된 사항에 대해서는 계속적인 추진의 책임을 다해야 할 것”이라고 말해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의 답방 등 성의를 촉구했다. 언론사 세무조사와 검찰수사에 대해서도 기존의 입장을 거듭 확인했다.법과 원칙에 따라 진행될 뿐 정치적 의도가 없음을 분명히 한 게 그렇다.언론사주 등에 대한 구속영장이청구되면 야당이 정치공세를 펼 것에 대비,미리 쐐기를 박은 측면도 있는 것 같다는 분석이다. 아울러 이번 경축사는 모든 분야를 망라한 데서 보듯 김대통령이 그동안 추진해온 일들을 결자해지 차원에서 매듭을 짓겠다는 의지를 다짐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오풍연기자 poongynn@
  • 8·15 경축사 분야별 점검

    ■경제분야.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8·15 경축사를 통해 중산·서민층의 생활안정 대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최근 전·월세값 급등으로 가중되고 있는 서민들의 부담을 덜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도 제시됐다. 8조4,000억원을 들여 시중 집세의 절반만 부담하는 국민임대주택 20만가구를 3년동안 짓겠다는 내용 등이 핵심이다. 이는 기존 계획물량 10만가구보다 10만가구가 늘어난 것이다.외환위기 극복과 구조조정을 추진하면서 경제적인 고통을 겪었던 서민층을 실질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가을 정기국회에서 세제개편을 통해 봉급생활자의 소득공제를 확대해 세부담을 줄이기로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경기침체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이미 정부에서 여러 차례밝힌대로 내수진작을 통한 경기활성화로 방향을 잡았다.미국과 일본 등 세계경제가 동반침체하는 등 대외여건이 극도로 악화된 상태에서 추락하는 우리 경제를 뒷받침하기 위한수단은 내수밖에 없다는 판단에서다. 김대통령은 그러나 경기회복이 지연되는 원인으로 국내의개혁부진도 한 가지 요인이라는 점을 지적했다.“튼튼한 경제체질을 갖추기 위해 개혁을 계속 추진하는 것이 유일한대안”이라고 밝힌데서 알 수 있듯 향후 구조조정의 고삐는늦추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지난 9·10일 여·야·정 경제정책협의회에서 논의된 ‘30대 기업집단 축소’등기업규제 완화와 관련해서는 기업경영의 투명성 확보와 연계해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성수기자 sskim@. ■對北정책.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 앞부분에서 소강상태의 남북관계를 언급함으로써 이를 타개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내보였다. 경축사에 담긴 김 대통령의 한반도 정세인식은 크게 세가지로 정리된다. 우선 대북 햇볕정책은 지속적으로 추진돼야 한다는 점이다. 김 대통령은 “햇볕정책은 한반도 주변 4개국을 비롯해 전세계의 지지를 얻고 있다”면서 햇볕정책만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통일을 이끄는 유일한 대안임을 거듭 확인했다. 이런 인식을 바탕으로 김 대통령은 미국에 대해 보다 적극적인 대북(對北)대화 노력을 당부했다.“미국은 북한과의대화재개에 최선의 노력을 다해줄 것을 바란다”고 짤막히언급했지만 상당한 함의(含意)가 담긴 것으로 보인다. 김 대통령은 북한에 대해서도 “6·15 남북공동선언을 준수하고 이미 합의된 사항들에 대한 계속적인 추진의 책임을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미국과의 대화 재개에도 좀더적극적인 자세로 임해 달라”고 당부했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그동안 직접적으로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의 답방을 촉구하던 것과 달리 이번 경축사에서는완곡하게 ‘합의사항 이행’을 주문한 점이다.이는 북미 관계가 개선되지 않고는 남북관계가 정상화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상황 인식과 함께 향후 북미 관계 개선에 우리의 외교역량을 결집할 것임을 예견케 한다. 진경호기자 jade@. ■對日관계.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15일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한·일관계의 복원 의지를 천명함에 따라 향후 한·일간 관계개선 추이가 주목된다. 김 대통령은 경축사에서 일본내 일부 세력의 과거사 왜곡움직임에 유감을 표명하며,한·일 양국간관계 발전을 위한역사인식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 대통령이 “역사 문제는과거 만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의 문제”라며 “확실한 역사인식의 토대 위에 양국관계가 올바르게 발전되어 나갈 것을바란다”고 언급한 대목에서 이같은 뜻이 읽혀진다. 김 대통령은 특히 “가해사실을 잊거나 무시하려는 사람들과 어떻게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으며,미래를 안심하고 같이살아갈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 우리 국민이 갖는 심정”이라며 일본의 보수 우경화 경향을 바라보는 우리 국민의 우려를 가감없이 피력했다. 그러나 김 대통령은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의 야스쿠니(靖國)신사참배 문제에는 “양식있는 많은 일본국민이 우려하는 것을 보았다”며 우회적인 유감 표명에 그치는 등 발언 수위를 조절했다.올바른 역사 인식이 양국관계 발전의 기본 전제라는 원칙을 거듭 확인하면서, 최악의상황을 막기 위한, 일본 정부의 양식있는 조치를 간접 촉구한 것이다.이는 한·일관계가 파국으로 치닫는 것을 막고,지난 98년 ‘21세기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의정신을 되살리겠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일본 정부에 보낸 것으로 해석된다. 박찬구기자 ckpark@. ■민주·인권. 개혁 완성과 함께 민주·인권국가는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취임 이후 줄곧 노력해온 지향점이다. 김 대통령은 8·15 경축사에서도 이 점을 분명히 해 임기마지막까지 민주·인권국가를 완성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일것으로 보인다. 경축사를 낭독할 때도 이 부분을 힘주어 강조,참석자들로부터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정부는 국민의 인권과 나라의 민주주의를 지켜나가는 데앞으로 추호의 흔들림도 없을 것”이라고 말한 데서도 김대통령의 비장한 각오을 읽을 수 있다. 사실 김 대통령은 지금까지 이룩한 것만으로도 이 분야에관한 한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많은 업적을 남겼다.전교조와 민주노총 등 모든 노동운동을 합법화 시켰고,합법적인시위·집회·파업의 자유도 보장했다.모성 보호 3법 제정등 여성의 권리를 전례없이 발전시킨 것도 주목할만하다. 이와 함께 인권위원회법을 제정하고 의문사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과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관한법률을 제정한 것도 큰 업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김 대통령도 “권위있는 국제인권기구는 이미 한국을 미국과 유럽국가에 버금가는 민주인권국가로 인정,발표한 바 있다”고 소개했다. 국민의 정부가 언론자유를 최대한 보장한 것 역시 빼 놓을수 없는 대목이다.일부 언론과 야당에서 ‘언론탄압’ 운운하고 있지만 억지주장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오풍연기자 poongynn@.
  • 김대통령 8·15 경축사 요지

    지구상에서 냉전이 종식된 지 10년이 넘었는 데도 유일하게 한반도에서만 냉전의 유산이 청산되지 않고 있습니다.6·15 남북정상회담은 역사적인 대사건이었습니다.햇볕정책은 반드시 실현돼야 합니다.주한미군의 주둔은 현재의 분단상태에서는 물론 통일 이후에도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안전을 위해서 절대로 필요합니다. 지난 98년 10월 일본을 국빈 방문해 한·일간의 새로운 관계를 여는 데 일본정부와 합의한 바 있습니다.일본 정부는과거를 반성하고 우리 국민에게 끼친 커다란 손해와 고통에대해서 공식적 문서를 통해 ‘사죄’를 했습니다. 우리 국민은 확실한 역사인식의 토대 위에 양국관계가 올바르게 발전되어 나갈 것을 강력히 바라고 있습니다. 여야는 오늘날 국민의 정치불신이 이제 위험수위에 도달했다는 것을 깊이 깨달아야 하겠습니다.여야 정치권은 국회,정당,선거 등의 정치개혁 문제에 대해서 일대 개혁을 단행해야 할 것입니다.우선 경제와 민족문제만이라도 서로 합의해서 해결해 나가야겠습니다.이회창(李會昌) 한나라당 총재와 영수회담을 갖기를 제안합니다. 그동안 진행되어온 세무조사와 공정거래조사는 법과 원칙에 의해 진행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무한경쟁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승자가 독식하는 세계시장속에서 우리의 일류상품 수는 미국,중국,일본,대만 등에 크게 뒤지고 있습니다.그들이 한 발 뛸때 우리는 두 발 뛰는 노력으로 따라잡아야 합니다. 중산층과 서민은 우리 사회의 기둥이며 초석입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간 개혁으로 많은 고통을 받은 것에 대해 충심으로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정부는 서민과 소외계층의생활안정을 위해서 적극적인 대책을 세우도록 하겠습니다. 교육여건도 임기 내에 선진국 수준으로 개선하겠습니다.공교육을 강화함으로써 과외가 줄어들고 학부모들의 사교육비도 크게 줄어들도록 하겠습니다.지금 우리가 처한 어려움을타개하는 길은 과감한 개혁과 국민적 협력입니다. 정치·경제·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필요한 개혁을 단행하고 대화와상호 이해를 통해 공동승리를 위한 협력의 길을 가야겠습니다.
  • 8·15특집 한일관계 갈등을 넘어/ 전문가 대담

    대한매일은 8·15광복 56주년을 맞아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과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의 신사참배 등으로 야기된 한일간 첨예한 갈등을 해소하고 미래지향적 관계를 모색하기 위한 전문가 좌담을 가졌다.좌담에는 정부의일본 역사교과서 왜곡대책반 자문위원을 맡고 있는 이성무(李成茂) 국사편찬위원장과 일본 정치 전문가인 박한규(朴漢圭) 경희대 교수가 참석했다. ■고이즈미 총리의 신사참배로 한일간 위기감이 한층 고조되고 있습니다. ▲박 교수:고이즈미 총리의 신사참배는 역사교과서 왜곡과 같은 맥락으로 이해됩니다.아시아 침략과 식민지배를 미화하고 정당화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죠.야스쿠니(靖國)신사는 A급 전범들이 안치된 군국주의의 상징이라는 점에서 고이즈미 총리의 참배 강행은 일본 정치의 극우보수화 경향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이는 90년대 이후 일본 경제의 장기 침체,개혁 실패,정치 불신 등 정체성 위기가 극우세력의 입지를 넓힌 결과이기도 합니다. ▲이 위원장:과거 중동과 아시아를 두 축으로 여긴 ‘윈-윈전략’과는달리 동아시아를 중시하는 미국의 새로운 외교정책에 주목해야 합니다.최근 급부상하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은 과거 점령국이었던 일본을 동반자로 삼고 있습니다.그러다 보니 일본의 어깨에 힘이 들어가게 됐습니다.또일본 국내에서 자민당이 실패하자 그 자리를 극우세력이 파고 들었습니다.극우세력 중심의 극단적 생각은 일본 국민의인식과도 연계돼 있습니다. 과거 패전국이라는 멍에 때문에경제대국에 걸맞은 대접을 못받고 있다는 것이죠. 이제 자존심을 회복해야 한다고 나선 것입니다.여론몰이에 나서는고이즈미 총리도 이런 정서를 대변하고 있습니다. ■고이즈미 총리가 신사참배와 함께 이웃 국가의 이해를 구하는 담화를 발표했는데요. ▲박 교수:두가지 측면으로 해석됩니다. 우선 ‘외교 음치’고이즈미 총리도 외교관계를 최악의 상태로 몰고 가길 바라지는 않는다는 신중함을 보인 것입니다.한·일,일·중 관계가 회복될 여지를 남겼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싶습니다.하지만 총리 대신의 자격으로 참배를 강행,군국주의부활이라는 우려를 야기시킨 점은 유감입니다. ▲이 위원장:총리는 개인적 자리가 아닙니다.강경 행보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고 느낄 것입니다.그런 점에서 고이즈미총리의 담화 발표가 단순히 요식행위로 보이진 않습니다.‘개인 고이즈미’가 아닌 ‘총리 고이즈미’는 그렇게 나갈수밖에 없죠.어쨌든 일본은 자위대 강화와 평화헌법 개정등을 추진하고 있습니다.동아시아에서 일본과 미국의 이익이 합치돼 일본이 독선적 방향으로 간다면 우려할 상황이발생할 수 있습니다.우리는 추이를 예의주시하면서 사전 예방장치를 마련해야 합니다. ■여러가지 악재가 겹쳐 한일관계가 최악의 시나리오로 치닫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이 위원장:고이즈미 총리가 보수 우경화 정책으로 정치적소득은 어느 정도 챙겼다고 봅니다.그러나 문제는 고이즈미총리가 진정으로 위대한 정치인이 되기 위해서는 일본이 세계속으로 나아가는 길을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일본 국내에도 한·일 월드컵 공동개최나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 문제 등을 감안, 고이즈미 총리의 우익행동을 반대하는사람들이 많습니다. ▲박 교수:2002년 월드컵 공동개최,대북정책 공조, 경제협력문제 등을 고려할 때 악화된 관계가 지속돼선 안된다는 것을 양국이 잘 알고 있습니다.외교적 마찰이 오래 지속되면양국 모두 손해를 입는 셈이죠. ■일본의 근본 인식에 문제점이 있다는 지적인데요. ▲이 위원장:일본에서는 제국주의 시대부터 아시아와 차별화하겠다는 탈아론(脫亞論)이 형성됐습니다.그러나 현재 세계적 추세는 유럽연합(EU),북대서양 자유무역지역(NAFTA) 등블록경제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아시아도 단결할 때입니다.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한·일,일·중이 허심탄회하게얘기를 나누지 못하고 있습니다.일본이 스스로 위상을 자각해야 합니다. ▲박 교수:일본은 과거사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국제사회의 지도국이 될 수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과거사 문제를 해결,아시아 국가들의 지지를 얻은 뒤 비로소 국제사회에서 지도자 구실을 할 수 있다는 것이죠. 이 위원장:극단적인 보수 우경화 현상은 일본 국익에도 맞지 않죠.일본 정부나 여론이 그런 사실을 알고 노력하길 기대합니다. ■향후 한일관계의 해법은 어디서 찾아야 합니까. ▲박 교수:고이즈미 총리의 참배 직후 우리 정부가 미온적 반응을 보였다는 여론도 있습니다.그러나 역사인식 문제는 우리가 항의한다고 풀릴 문제가 아닙니다.일본이 결자해지(結者解之)의 자세를 보여야 합니다.우리로서는 정부와 비정부·민간 등 다양한 차원에서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단기적으로는 중국,대만,동남아 국가들과 공동 대응해야 합니다. 과거사 문제는 아시아 전체의 문제라는 점을 부각시키는 것이죠.역사학자와 전문가간 교류도 적극 추진해야 합니다.장기적으로는 미래의 양국관계를 이끌어 나갈 청소년과 민간차원의 교류를 활성화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 위원장:우리 정부는 일본이 지난 98년 ‘21세기 한·일파트너십 공동선언’의 정신을 어기고 있다는 인식에 따라강경 대응으로 나가고 있습니다.다만 주의할 점은 교과서문제 등 한일간의 문제를 풀어 나가는 과정에서는 정치·외교적 대응뿐 아니라 학문적·논리적 접근도 중요합니다.따질 것은 따지되 흥분하거나 감정적으로 대응하면 안된다는것입니다. ■우리가 반성할 점을 짚는다면. ▲박 교수:정부가 과거사 문제의 대응책을 군사·안보·문화영역까지 확산시킨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과거사 문제와는 별도로 관계개선의 여지와 채널은 유지해야합니다. ▲이 위원장:아쉬운 점은 한국 역사를 연구하는 학자가 한국보다 일본에 더 많다는 것입니다.또 교과과정이나 국가고시에서 한국사를 등한시하다 보니 한국 역사를 제대로 모르는지도층 인사가 많습니다. 역사의식을 스스로 시들게 한 셈이죠.범정부 차원에서 장기적인 국가 운영논리를 구축하고,이에 합당한 역사교육 강화 프로젝트를 정책적으로 실천해나가야 합니다. ▲박 교수:동감입니다.그것은 극일(克日)의 문제와도 연결됩니다.실질적 극일은 군사,경제 등 경성(硬性)국력이 아니라문화, 이념,제도 등 연성(軟性)국력(soft power) 차원에서모색해야 합니다.이는 평화와 협력이라는 시대정신에도 부합합니다. ▲이 위원장:우리 스스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창의력과 비전을바탕으로 전통과 현대를 연결하는 문화 콘텐츠를 개발하는 작업이 이뤄져야 하겠죠.최근 중국,대만,일본 등 아시아 지역에서 일고 있는 한류(韓流)열풍을 주목해야 합니다. 정리 박찬구 이송하 기자 ckpark@
  • 2001 길섶에서/ 와전과 옥쇄

    한 언론인이 최근 어느 글에서 대한제국 말 고종황제가 ‘헤이그 밀사 사건’과 관련해 일본 정부로부터 퇴위를 강요당하는 과정에서 보인 행태를 ‘와전(瓦全)’이라고 표현했다.‘와전’이라는 말은 본디 구슬(玉)로 태어난 사람이큰 변란의 와중에서 기왓장(瓦)처럼 제 한몸만 온전히 보존한다는 뜻이다.아내 명성황후가 왜적에게 죽임을 당했을 뿐더러 명색이 500년 사직(嗣稷)을 책임진 한 나라의 황제가스스로 구슬임을 포기하고 한낱 기왓장으로 살아남는 쪽을택한 것은 후세의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와전’과 정반대로 ‘구슬처럼 깨끗하게 부서진다’는뜻의 옥쇄(玉碎)라는 말이 있다.8·15를 즈음해서 일본 일부 TV가 ‘카미카제(神風)특공대’특집을 내보내고 있다.전쟁 당시 언론은 그들의 ‘자살 특공’을 ‘옥쇄’라고 찬양했었다.일본 청년들이 그네들의 조국을 위해 ‘구슬처럼 부서진 것’은 몰라도 ‘반도 출신’젊은이들이 식민 종주국을 위해 ‘옥쇄’를 강요 당한 것은 억울하지 않은가. 장윤환 논설고문
  • 평양 통일축전 이모저모

    남북의 민간인사가 참여한 가운데 15일 평양에서 열린 8·15 통일대축전 행사가 시작부터 파행으로 치달았다.북측이 당초 개막식 장소로 정했던 ‘조국통일 3대 헌장 기념탑’이 끝내 문제가 됐다. 북측은 우리의 거듭된 거부의사에도 불구하고 3대 헌장탑앞 행사 참석을 요구했고,이 과정에서 일부 남측 인사들이행사참석을 강행,내부 분열상을 보였다.이로 인해 남측 대표단의 귀경 이후에도 상당한 파문이 이어질 전망이다. ■헌장탑 참석 논란= 오후 3시 남측 대표단이 고려호텔에여장을 푼 뒤 양측은 곧바로 개막식 참석문제를 협의했으나 진통을 겪었다.김종수 신부 등 남측 대표단 집행부는“헌장탑 앞 행사에는 참석하지 않는 조건으로 방북했다”며 북측 요구를 거부했으나 북측은 “2만명의 군중을 대기시켜 놓았다”“참석이 아니라 참관만이라도 하라”며 거듭 행사참석을 요구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남측 대표단 내부의 분열상이 노출됐다. 범민련,한총련 등 재야학생단체로 구성된 통일연대 소속인사들이 헌장탑 앞 행사참석을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최규엽 민주노동당 자주통일위원장 등은 “북녘동포들이 뙤약볕에도 불구하고 오랜 시간 기다리고 있는데 안 가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주장,“각서까지 써놓고 무슨 말이냐”며 만류하는 민화협 및 7개 종단 인사들과 고성을 주고받았다. 남북간,남남간 논란이 몇시간 동안 이어지자 통일연대 일부 인사들은 “더이상 기다릴 수 없다”며 헌장탑 행을 주도,결국 150여명의 남측 참가자들이 오후 6시 20분쯤 5대의 버스에 나눠타고 헌장탑으로 향했다. 이와 대해 정부 고위 당국자는 “우선 정황에 대해 명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으며,“참가자들이 책임을 질 부분이 있으면 응분의 책임을 지도록 할 것”이라고 말해 사법처리 가능성을 내비쳤다. ■평양행 안팎= 남측 대표단은 아시아나 전세기 2대로 인천국제공항을 출발,서해 직항로를 거쳐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했다.순안공항에서는 조규일 조국통일민족전선 중앙위서기국장과 김영성,송석환 문화성 부상 등이 대표단을 영접했다.공항에 나온 평양 시민들은 임수경씨를 알아보고는“조선은 하나다”“민족단결” 등의 구호를 외치고 앞다퉈 손을 잡으려 하는 등 반가움을 나타냈다. ■축전 행사= 깅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김용순 당중앙위원회 대남담당비서,김영대 상임위 부위원장 등 4,000여명이 참가했다.김영대 축전 준비위원장인 축하연설에서이번 축전이 민족사에 특기할 대경사라면서 “6·15남북공동선언을 철저히 이행해민족의 주체적인 힘을 더 크게 합쳐 나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평양 공동취재단·진경호 기자
  • 8·15특집 한일관계 갈등을 넘어/ 日·獨 두패전국 다른모습

    1985년 상반된 두 사건이 있었다.독일(당시 서독)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거 대통령은 5월 2차대전 40주년 기념연설에서 “과거에 눈을 감는 자는 현재에도 눈을 감는다”며과거청산 노력을 재천명했다.8월 같은 2차대전 패전국인일본의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총리는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靖國)신사를 공식참배,주변국의 거센 항의를받았다. ‘기억’과 ‘망각’.독일과 일본이 걷고 있는 각기 다른길이다. 두 나라의 판이한 전후 처리 자세는 21세기 들어서도 계속되고 있다. 독일은 철저히 ‘기억’하고 ‘책임’을 져야만 독일의‘미래’가 보장됨을 알고 있다.지난해 7월 독일이 미국이스라엘 폴란드 체코 등과 서명한 ‘나치시대 강제노역배상에 관한 국제협정’제목은 ‘회고,책임,미래’다.세계각지에 흩어진 150만 강제노역 생존자들에게 100억 마르크(약 6조5,000억원)규모의 배상금이 곧 지급된다. 2차대전 종결 후 지금까지 독일 정부가 지불한 배상액은600억달러.홀로코스트의 피해자인 유대인뿐 아니라 점령한주변국들에 대해 현재까지 철저한 보상을 해오고 있다. 독일정부와 기업,시민사회가 적극 동참한 결과. 다임러 크라이슬러,지멘스 등 독일을 대표하는 35개 기업들은 배상금기부를 통해 나치시대에 자신들이 저질렀던 유대인 강제노역등 반인륜 행위에 대한 책임을 행동으로 실천하고 있다. 일본은 어떤가.지난 3월 일본 도쿄 지방재판소는 한국인40명이 제기한 강제연행 피해보상 소송을 기각했다. 해외거주 피폭자들이 제기한 “일본 국내 피폭자와 동등한 대우을 해달라”는 요구도 “검토중”,“가능하면 연내”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국제사회의 압력이 거센 군대 위안부 문제도 마찬가지다.당연히 정부차원의 보상은 제로다. 1970년 12월7일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92년 사망)는 바르샤바 유대인 위령탑에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독일은 국민들에게 나치의 잘못이 무엇이었는지를 알리는데주력한다. ‘집단범죄’에 대한 철저한 반성.나치 독일과 같이 정부가 잘못된 방향으로 나갈 때 이를 저지할 국민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 교육목표다.프랑스 폴란드 등 이웃 나라와 ‘역사편찬위원회’를 구성해서 만드는 역사 교과서에는 나치 만행을 상세히 기술한다. 홀로코스트 등 집단주의 부산물에 대한 역사 부정은 범죄로 취급된다.정치인 등 공인이 나치시대 향수를 거론하면사임하겠다는 뜻이나 마찬가지. 반면 일본은 어떤가.정부는 침략을 미화한 왜곡 역사교과서를 용인하고 이웃국가의 항의를 내정간섭이라고 반발한다.국민들의 우경화 움직임은 오히려 정부가 나서 부추긴다.관동대학살,난징대학살은 모른 체하며 원폭 피해자라는것만 강조한다. 패전 후 경제강국으로 부상한 독일과 일본.독일은 통일을이룩한 뒤 거침없이 유럽 통합을 주도해왔다. 주변국의 협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위업들이다.일본도 과거사를 진심으로 반성하는 독일에서 교훈을 얻어야한다. 김수정기자 crystal@
  • 8·15특집 한일관계 갈등을 넘어/ 주요쟁점들

    ■멀어지는 이웃 쌓이는 ‘惡材’. 한·일관계는 65년 12월 국교가 정상화된 뒤에도 ‘어긋나고 뒤틀린’ 과거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이는일본이 한국과 중국 등 주변 피해국들에게 진정한 과거 청산의 의지와 성의를 보이지 않기 때문인 것으로 지적되고있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98년 일부 반대여론을 무릅쓰고일본을 방문,‘21세기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이끌어 냈다.그러나 21세기 한일 양국의 첫 페이지는 일본의중학교 역사교과서 왜곡과 꽁치분쟁,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의 신사참배 강행 등으로 얼룩지고 말았다. 한국은 ‘20세기의 일은 20세기 내에 청산하자’면서 미래지향적 관계개선을 기대했으나,일본은 역사교과서 왜곡과 신사참배 강행 등에서 드러나듯 여전히 군국주의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65년 한·일기본조약의 발효에 따른 표면적인관계정상화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가 군대위안부 및 교과서왜곡 문제 등 쟁점 처리과정에서 아시아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신뢰감을 주지 않고있다고 꼬집는다. 이는 68년 메이지유신(明治維新) 이후 형성된 탈아론(脫亞論)이 일본인의 무의식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인것으로 풀이된다. 태평양전쟁 당시 미군포로를 학대한 것은 미안하다면서도,한국인과 중국인에게 저지른 가혹행위에 대해선 제대로 반성하지 않는데서 ‘아시아를 벗어나 서구를 지향한다’는일본식 셈법을 적나라하게 읽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군대위안부 문제를 보는 일본 정부의 시각이다.일본은 97년 1월 군대위안부 위로기금의 형식으로한국인 피해자 7명에게 모두 500만엔을 전달하는 것으로사태해결의 실마리를 찾고자 시도했다. 이에 한국은 즉각 한·일외무장관 회담을 통해 일시금 지급에 대한 유감을 표명하고,정부간 협의에 의한 실질적 해결방안을 찾도록 촉구했다. 한국내 민간단체와 피해자들도 일본정부와 국회 차원의 배상과 사죄를 요구하며, 일본의 무성의한 태도를 비판하고나섰다. 하지만 올들어 군대위안부 관련 기술을 누락한 역사교과서가 당당하게 정부의 검정절차를 통과했다. 게다가 51년 요시다 시게루(吉田茂)총리의 재일 한국인 격하발언 이후 일본정부 인사나 정치인의 ‘과거사 부정’망언이 한 세기를 넘어 계속되고 있다.한·일관계의 진정한 정상화를 위한 선결과제가 무엇인지를 곰곰히 되씹어보게하는 대목이다. 박찬구기자 ckpark@
  • [데스크 칼럼] 8·15에 돌아본 한·중·일 민족성

    30여년전,중학교 시절 국어시간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서울 대연각 호텔 화재사건이 화제에 올랐다. 선생님은 투숙객들이 화재현장을 탈출하는 방식을 두고 한·중·일 3국의 국민성을 재미있게 비유했다. 외교관이었던 중국인은창문 앞에 서서 구조될 때까지 기다리다 가망이 없자 홀연히 연기속으로 사라지고,일본인은 재빨리 침대시트를 찢어만든 줄을 타고 내려왔다는 것이다.우리는 침대 매트에 대충 몸을 의지해 창밖으로 뛰어내렸다고 했다. 중국인의 대국 기질과 일본인의 치밀함에 비해 우리나라 사람은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정신’의 표상이었다는 자조섞인 분석도 곁들였다. 기자가 돼 중국과 일본을 취재할 기회를 여러차례 가졌다.그 가운데 지난해 9월 한일정상회담이 열렸던 아타미(熱海)가 인상깊다.숙소인 호텔 고층에서 내려다 본 아타미시가는 조그마한 어촌인데도 그렇게 정갈할 수가 없었다. 어촌 특유의 비릿한 냄새 대신 신선한 바닷바람이 앞섰고,길다랗게 펼쳐진 해변가에는 우리네와 달리 과자봉지나 음료캔을 찾아볼 수 없었다.건물 옥상의 깨끗함에서는 감탄이 절로 우러 나왔다.‘질서와 청결면에서 우리를 앞서 있구나’ 기자생활을 하면서 동북아 3국을 비교할 때면 중학교 시절 들었던 은사의 평가가 원류(源流)가 되어 떠오른다.또다른 차이를 찾으려 무던히 애썼지만,은사의 분석은 너무깊게 각인되어 있었다. 일본이 패전 56년이 지난 오늘,왜곡 역사교과서를 통해극우경향을 강화하고 13일에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가 기습적으로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를 강행했다.어렵사리 일궈낸 ‘21세기 한·일 공동 파트너십’복원은 요원한 일처럼 보인다. 당초 계획했던 15일을 이틀앞당긴 외교적 절충점을 모색했다 하더라도 여기에는 경제강국으로서 일본의 오만함이 깔려있다. 또 분,초를 다투는급박한 화재현장에서 천을 찢어 줄을 만드는 ‘영악함’의다른 표현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중국 개방 초창기에 직장을 그만두고 퇴직금을 털어 중국으로 진출한 사람들이 많다.치밀한 사전 준비없이 넓은 시장만을 보고 무작정 건너갔고,대개가 갖은 고생만을 하다돌아왔다.그러나 척박한 환경에서 우리 특유의 친화력과부지런함으로 성공한 사람도 더러 있다. 당시 주중 한국대사관에 근무하던 한 외교관이 “10명 가운데 2∼3명은 성공했다”며 “일본인은 엄두도 내지 못할일”이라고 말한 것을 들은 적이 있다.그러면서 무모한 듯보이지만 부딪쳐 보고 이를 극복해내는 끈질김이 없었다면,즉 우리가 중국인이나 일본인과 똑같았다면 벌써 역사에서사라졌을 것이라고 했다. 공공질서와 깨끗함에서는 일본에뒤질지 모르지만, 우리 민족을 지탱하는 특장이 있다는 것이다. 불이 난 고층호텔에서 침대 매트를 붙들고 뛰어내리는 저돌성도 그 중 하나라면 지나친 국수주의적 시각일까. 일제 35년 치하에서 단 하루도 쉬지 않고 독립운동을 한민족을 지구상에서 찾기란 쉽지 않다. 우리 아니면 누구도따라 할 수 없는 끈질기고,고난도 마다하지 않은 대장정이었다.‘우리 스스로에 대한 칭찬’-8·15 광복 56주년를맞는 단상이다. ▲양승현 정치팀장
  • ‘8·15 訪北’ 조건부 승인

    정부는 15일 평양에서 열릴 ‘8·15 민족통일 대축전’행사와 관련,당초 방침을 바꿔 우리측 민간인사들의 참석을 조건부로 승인했다. 이에 따라 ‘2001 민족공동행사 추진본부’측 대표단 360여명은 15일 오전 서해 직항로를 이용,평양으로 떠난다. 통일부는 이날 관계회의를 열어 ‘추진본부’측이 제출한방북신청을 심의한 끝에 문제의 ‘조국통일 3대 헌장 기념탑’ 앞에서의 행사에 참석하지 않는 조건으로 대표단의방북을 허용키로 했다. 이에 앞서 북측은 14일 밤 추진본부측에 보낸 전문을 통해 “3대 헌장탑 앞에서 열릴 예정인 통일대축전 개·폐막식은 북측 행사로 하고 남측인사들은 지난해 노동당 창건55돌 경축식 때처럼 단지 참관하는 선에서 방북을 추진해달라”고 요청해 왔다. 통일부 당국자는 “3대 헌장탑 앞에서의 행사는 곤란하다는 것이 정부측 입장이었다”면서 “추진본부측이 3대 헌장탑 앞 행사에 참석하지 않고 고려연방제 지지 등 일체의정치적 언동을 삼가겠다는 약속과 함께 이를 각서로 제출키로 한 만큼 방북을 승인했다”고 밝혔다. 한편 김종수 신부 등 추진본부측 인사들은 이날 오전 통일부를 방문, 3대 헌장탑 앞 행사에 참석치 않는 조건으로방북을 승인해 줄 것을 요청했다. 대표단은 방북기간 북측 민족통일촉진운동준비위원회 인사들과 분야별 토론행사를 갖고 백두산과 묘향산 등을 둘러본 뒤 오는 20일쯤 돌아올 예정이다. 진경호기자 jade@
  • 8·15특집 한일 관계 갈등을 넘어/ 친일논의 현재적 의미

    친일논쟁의 끝은 과연 언제쯤일까. 광복 56년을 맞은 오늘날까지도 ‘친일논쟁’은 그칠 줄모르고 거듭되고 있다.이해당사자간에 치열한 공방을 벌이지만 뚜렷한 결론도 없고,논쟁이 정리되지도 않은 채 끝나곤 한다.겉으로 보기에는 소모적이고 분열적인 양상을 띠고 있는 것이다.그러나 친일논쟁은 ‘청산되지 않은 과거사’에 대한 역사적 논쟁이라는 점에서 이른 시일안에 매듭지어져야 할 사안이라고 역사학자들은 입을 모은다. 친일논쟁중 가장 크게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사안은 박정희 전대통령과 미당 서정주 시인을 둘러싼 논쟁이다.이들둘을 둘러싼 논쟁은 ‘기념사업’을 추진하면서 불거졌다. ‘박정희기념관’의 건립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아직 그에대한 역사적 평가가 제대로 내려지지 않은 상황에서 기념관을 짓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주장한다. 또 중앙일보가 추진하고 있는 ‘미당문학상’의 제정을반대하는 사람들은 미당의 문학적 업적과는 별개로, 그의친일경력 등을 간과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이와 관련,강창일 배재대 교수는 “특정인물의친일행적을 둘러싼 논쟁을특정인에 대한 비방으로 몰아세우는 경향이 있어 논의 자체가 진지하게 이뤄진 경우가 드물었다”면서 “시비를 가리는 과정에서 논쟁은 불가피하며 이를 비난으로 모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지적했다.실제로 박정희 전대통령과미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들의 친일행적을 아예 도외시하거나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역사적 공과(功過)가 교차되는 인물에 대해 일방적으로 평가하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한 현대사 연구자는 “대중적으로 존경의 대상이 되는인물일수록 역사적·민족적 평가는 엄정해야 된다”고 전제하고 “특히 식민지시대를 겪은 현대인의 경우 그가 친일 활동을 했는지 여부는 인물평가에 있어 대단히 중요한잣대”라고 말했다. 거듭되는 친일논쟁에 대해 ‘전국민의 친일파론’을 들고나와 친일논쟁의 논점을 흐리는 경우도 더러 있다.최근 소설가 이문열씨는 조선일보와의 한 인터뷰에서 자신이 일제시대에 태어났더라면 친일파가 되지않았다는 보장이 없다는 주장을 펴,그의 역사인식 자세에 대한 비판이 일어나기도 했다.친일문제연구가인 고 임종국씨가 “친일인사들은친일행적을 희석시키기 위해 친일문제를 전국민적 차원으로 걸핏하면 확대시킨다”고 지적한,그런 현상을 나타내는것이다. 흔히 친일논쟁을 소모적인 ‘비난전’으로 보는 사람들은공정한 평가 잣대가 없다는 점을 이유로 들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주장은 엄격히 말해 적절치 못하다는 게 학계의다수설이다. 많은 학자들은 제헌국회가 제정한 반민족행위자처벌법(반민법)이 하나의 기준이라고 본다.다만 이 법에따라 구성된 반민특위가 활동 도중 와해됨으로써 평가(단죄)의 잣대가 깊게 뿌리내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친일논쟁을 막무가내로 거부하는 시선만 있는 것은 아니다.오히려 자신이나 선대의 친일행적을 사죄하는 경우도있다.홍익대 총장을 지낸 이항녕 박사는 자신이 일제말기군수를 지낸 사실을 수차례에 걸쳐 글과 강연을 통해 민족앞에 사죄했었다.또 친일문인인 파인 김동환 시인의 3남김영식씨는 선대의 친일행적을 공개 사과했었다.2공화국당시 국방부장관을 지낸 현석호도 회고록에서 친일행적을사죄하기도 했다.독립운동가인 조문기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은 “인간에게 과오는 있을 수 있지만 문제는 이를 참회하고 사죄할 줄 아는 것”이라면서 “친일인사 역시 민족앞에 사죄한다면 화해의 마당으로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새천년의 입구에서 과거사에만 매달리는 것은 분명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그러나 이는 우리나라가 중국 등 아시아국가나 프랑스 등 유럽과 달리 ‘역사청산’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탓이다. 전문가들은 “지금이라도 국민적 합의를 통해 친일논쟁을마무리짓도록 노력해야 한다”면서 “단죄의 대상자들이대다수 사망해 법적 청산은 불가능하게 됐지만,대상자들의친일행적을 기록으로 남겨 역사의 교훈으로 삼는 역사적청산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운현기자 jwh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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