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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귀화 일본인이 농업상 수상

    경남 양산에서 30여년간 버섯재배에 몰두해 온 귀화 일본인이 농업기술개발상을 수상해 화제다. 9일 양산시에 따르면 지역내 동면 내송리에서 버섯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망절일랑(網切一郞·63)씨가 제11회 세계농업기술상 기술개발부문 특별상 수상자로 선정돼 이날 서울시 양재동 aT센터에서 상을 받았다. 일본인인 망절씨는 8·15 해방 직후 고아가 된 자신을 키워준 한국이 좋아서 지난 70년 귀화한 뒤 30여년간 버섯농사를 지어왔다. 그는 지난해 인삼의 주성분인 사포닌이 함유된 ‘홍삼 새송이’를 개발, 특허를 출원한 점이 인정됐다. 귀화 일본인보다 지역에서는 ‘버섯박사’로 더 잘 알려진 망절씨는 홍삼 새송이 개발 이전부터 버섯재배기술을 인정받아 1999년 신지식인으로 선정됐으며 2000년에는 농협중앙회 선정 제35회 새농민상 본상과 대통령상을 받기도 했다. 망절씨는 “농업도 변화하는 시대와 소비자 기호에 맞춘 상품을 만들어야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며 “버섯농사꾼으로서 우수한 버섯을 만드는 데 연구를 게을리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양산 강원식기자 kws@seouk.co.kr
  • 오만의 5가지 비밀

    오만의 5가지 비밀

    아라비아반도 동남단에 위치한 오만에서는 삶의 여유가 느껴진다. 사막에서 유목 생활을 하는 아랍족인 ‘베두인’ 후손들의 아름다운 미소가 있고, 친절함이 있다. 이라크 사태로 인해 중동 국가의 여행은 모두 위험하다는 우리의 편견과는 달리 오만은 평화롭다. 우리에게 친숙한 ‘신밧드 모험’의 주인공인 뱃사람 신밧드의 출생지 오만. 그러나 우리나라 여행객들이 거의 찾지 않는 미지의 땅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고대 유적들과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 등 다양한 이슬람 문화를 체험할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엄격한 환경 국가로 ‘에코 투어’(친환경적 관광)의 명소로도 유명하다. 오만 여행이 제철을 만났다. 이슬람 금식월인 ‘라마단’이 3일 끝난다.11월에서 내년 3월까지는 30도 안팎의 온화한 기후로 무덥지 않다. 대자연에 순응하며 욕심없이 살아가는 ‘중동의 은둔자’ 오만의 매력에 빠져보자. 글 사진 무스카트(오만)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오만의 5가지 비밀 (1) 남자 화장실에는 소변기가 없다. 남자들도 발끝까지 내려오는 전통적인 치마형 복장을 입는 탓이다. (2) 택시 기사의 상당수는 경찰이다. 오만은 이중직업을 허용하고 있어 경찰들이 업무시간 외에 택시기사 일을 하고 있다. (3) 최고 기온은 49도(?). 오만은 최고 기온이 50도를 넘으면 관공서와 기업 등이 휴무를 해야 하기 때문에 한여름 50도를 넘어도 공식적으로는 49도라고 발표한다. (4) 은행 대출 등이 활성화돼 있지 않다. 이슬람 율법에 이자를 받지 못하게 돼 있기 때문이다. (5) 오만의 한국 교민은 단지 1가족. 오만에는 대사관 직원과 상사 주재원 등 150여명이 거주하고 있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교민은 원양어업을 하는 김점배 라사교역 사장 가족이 유일하다. ●검붉은 바위산과 베두인의 미소 검붉은 바위산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가 숨을 조여온다. 두바이에서 차를 타고 하타지역 국경을 넘어 6시간을 달려 도착한 오만의 수도 무스카트는 뜨거운 태양이 내려쬔다. 거리에는 흰색 사원과 건물들로 가득했고, 차도르를 쓴 여인과 머리에 터번을 한 남자들의 모습이 이채롭다. 무엇보다 국경지대부터 계속된 바위산인 하자르 산맥이 압도한다. 산 사이로 깊게 파인 ‘와디’(우기에만 흐르는 강)가 시원한 느낌을 줄 뿐이다. 처음에는 ‘이 더운 나라에 왜 왔을까.’라는 후회가 밀려왔지만 점차 오만의 숨은 매력에 빠져 찌는 더위는 오히려 여행의 동반자가 됐다. 무스카트는 ‘오일 달러’의 힘을 빌려 거대한 빌딩 숲을 이루고 있는 다른 걸프지역 도시와는 달리 전통적인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었다. 먼저 도착한 곳은 알부스탄 팰리스 호텔. 페르시아만안협력회의(GCC) 정상회담 개최 장소용으로 지난 1985년 건립된 오만 최고급 호텔이다. 화려한 로비는 마치 아라비안 나이트에 등장하는 궁전을 연상케 한다. 딜럭스룸 등 247개의 객실을 보유하고 있는데 최상층인 9층만은 국빈용으로 일반인들에게는 공개되지 않는다. 하루 숙박료는 250달러로 시내에 있는 3성급 호텔의 객실료(40달러 수준)에 비해 비싼 편이다. ●오만을 사랑한 독일여성 타하니 여행은 오만 현지 여행사인 ‘마크 투어’의 여행 가이드인 독일인 여성 타하니와 함께 시작됐다.1년 6개월전 이 곳에 정착한 30대 후반인 그녀와의 여행은 색다른 재미를 불러일으켰다. 먼저 찾은 곳은 ‘이티’(YITI)산. 시내에서 차를 남쪽으로 타고 30분쯤 달려 나무 한그루 없는 바위산 정상에 오르자 주변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강렬한 태양이 내려쬐고 있지만 탁트인 전경 때문인지 더위가 사라진다. 비록 나무 한그루 없는 바위산이지만 그 아래로 펼쳐진 하얀 건물들과 길게 뻗은 한적한 도로는 아름다운 조화를 이뤄냈다. 그녀는 “척박한 대자연에 순응하며 욕심없이 살아가는 베두인 족의 삶에는 배울 것이 많다. 이 곳은 오랜 방황의 시간을 보낸 나에게 새 삶을 주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10대 후반에 멕시코 선원과 결혼해 베네수엘라 등지를 떠돌며 살다 이혼하고 이 곳에 정착했다.20살 난 아들까지 뒀으나 무슬림으로 개종하고 홀로 새 삶을 시작했다고 한다. 다시 시내로 들어섰다. 루이지역의 남부터미널을 지날 때 그녀가 가리킨 곳은 사람 얼굴 모양의 신기한 바위. 눈·코·입은 마치 조각을 해놓은 듯 사람의 얼굴과 똑같다. 오만 다이브센터 인근으로 차를 돌리자 이번에는 시원한 바다 풍광이 반긴다. 짙푸른 바다와 검붉은 바위산이 선명한 대조를 이뤘다. 반다르 지사해안 등 바닷가에서는 2000년 전 사람이 산 흔적이 남아 있는 곳. 바위산을 끼고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이 눈길을 끌었다. 술탄의 궁전이 있는 마트라항에 들어서자 해안가 바위 봉우리마다 흙벽돌로 쌓은 원형 성채들이 이채롭다. 포르투갈 점령기인 16세기 무렵 적군의 침입을 막기위해 세워진 망루다. 오만에만 5000여개에 이르는 성채와 망루가 있다. 인근에는 잘랄리·미라니 성채가 위용을 뽐내며 항구를 지키고 있다. 모두 1580년 당시의 형태를 그대로 지니고 있다. 성채에 들어가려면 잘랄리 성채에서 입장 허가증을 받아야 한다. 인근의 재래시장 마트라 숙에서는 은제 수공예품과 금 가공품, 향료 등 토속미가 물씬 풍기는 물건들을 구입할 수 있다. 오만산 향수는 세계 최고급 고가 향수다.1병에 약 145달러. 이어 인근에 있는 알하자 마운틴에 오르자 아라비아해를 향해 서 있는 향로 조형물 ‘인센스 버너’가 눈에 들어왔다. 향로는 오만의 특산물이자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났을 때 동방박사들이 가져왔다는 선물이다. 이 곳은 1시간 거리의 트레킹 코스가 있다. 마을 뒷산으로 바위산을 걸어 오를 수 있는데 주의할 점은 한낮에는 기온이 높은 만큼 해가 뜨기전에 오르는 것이 좋다. ●화려한 모스크의 불빛에 취해 오만에는 1만 3000여개의 모스크(이슬람 사원)가 있는데 이 중 가장 큰 사원은 술탄 카부스 그랜드 모스크다. 국왕의 이름을 따 2001년 문을 연 이 사원은 1만 6000명이 동시에 참배를 할 수 있다. 세계에서 두번째로 규모가 큰 모스크다. 이슬람을 상징하는 5개의 대형 첩탑은 화려함을 자랑한다. 사원에는 세계 최대 크기의 카펫이 깔려 있다. 가로 60m, 세로 70m의 대형 카펫으로 600여명의 여성이 직접 사원에 들어와 4년동안 손으로 직접 짠 것이다. 무게가 21t에 이르며 58조각으로 나눠 실로 이어붙였다고 한다. 천장 중앙에는 대형 샹들리에가 빛나고, 창문을 장식한 화려한 스테인글라스가 아름답다. 오전에만 관람객들에게 개방한다. 사원안에서도 사진을 찍는데는 제한이 없다. 밤에는 모스크에 화려한 조명이 비춰져 예쁘게 빛난다. 시원한 밤거리를 걸으며 모스크의 불빛을 감상하는 것도 색다른 재미다. 건물들은 대부분 흰색이다 보니 낮보다 밤에 길찾기가 오히려 편하다고 한다. 특히 오만인은 한국사람에 대해 우호적이다. 영국, 호주 등 다른나라 관광객들은 비자 수수료를 내야 하지만 한국인은 무비자다.2004년 양국간 무비자 협정이 체결된 덕이다. 한국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다. 과거 한국의 산업역군들이 중동지역에 수로 건설사업을 한 탓에 ‘사막에 물길을 뚫어준 나라’ 등으로 기억한다. 오만에 다니는 자동차 5대중 1대가 한국 자동차이다. 오만 관광객들의 한국 유치를 위해 이번 여행을 함께 했던 이창용 한국관광공사 두바이 지사장은 “오만은 우리에게는 원유, 가스 공급국이자 자동차, 가전제품의 수출국으로 국제 무대에서는 무척 가까운 나라지만 관광에 있어서는 교류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면서 “오만과 한국의 관광 교류가 확대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신밧드의 고향 소하르 무스카트에서 두바이 국경 방향으로 2시간쯤 차를 달리면 바티나 연안의 인구 11만명이 사는 항구도시 소하르가 나온다. 이곳이 뱃사람 신밧드의 고향으로 알려진 곳이다. 소설과 영화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은 ‘신밧드의 모험’의 출발지. 신밧드는 가상의 인물로 알려져 있지만 이 곳에서는 실제 신밧드라는 선원이 이 곳에서 인도양 건너 동남아·중국으로 이어지는 모험길에 나섰다고 믿고 있다. 신밧드와 관련된 유물·유적은 없다. 해질무렵이면 사람들이 바티나 해변으로 쏟아져 나와 축구를 즐긴다. 축구는 이곳의 국기처럼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좋아하는 스포츠다. 한때는 오만에서 가장 큰 도시 중 하나였다. 현 부사이디 왕조의 발상지로 별궁이 소재하고 있으며, 정부 차원에서 지금은 중화학 공업단지를 만드는 곳이다. 소하르 성채는 크고 하얗게 칠해진 사각형으로 정원에 한개의 탑이 솟아 있다. 특히 오만은 세계에서 가장 엄격한 환경 정부다. 보호구역에는 희귀종인 아라비아 영양과 멸종 위기에 놓인 아라비아 타르(야생 거위), 아라비아 늑대 등이 살고 있다. 때문에 ‘에코 투어’의 명소로 알려져 있다. 민물 호수의 수중동굴인 알후타케이브와 바다거북이 수백마리가 해변에 알 낳고 돌아가는 광경이 장관인 터틀비치, 차로 오를 수 있는 3000m급 산인 자발산 정상의 전망, 북부와 달리 나무와 풀로 덮인 산들이 이어진 남쪽의 살랄라 지역 등이 있다. 기원전부터 유향 무역이 번성했던 남부의 우바르 유적지, 살랄라 부근의 고대 도시 유적인 코르 로리와 알 발리드 등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돼 있다. 이상민 주오만 대사는 “해양민족인 오만인은 흰 옷을 좋아하고 예의가 바른 민족으로 우리나라와는 많은 공통점이 있다.”면서 “오만은 다른 중동국가와는 달리 여자들에 대해서도 개방적인 생각을 지니고 있으며, 여행을 하는데 안전한 나라”라고 강조했다. ■ 미리 알고 떠나세요 오만은 사막성 기후로 여름철인 4∼10월은 50도를 웃돌지만 11∼3월은 30도 안팎의 비교적 온화한 기후로 덥지 않다. 때문에 11∼3월이 여행하기 좋다. 면적은 한반도의 1.6배, 인구는 약 250만명이며,GNP(1인당 국민소득)은 1만 달러를 약간 넘는다. 환율은 1오만 리알(RO)에 2.6달러이며, 시차는 한국보다 5시간 늦다. 전기는 240볼트로 국내 가전제품을 사용할 수 있으나 소켓이 영국식 3핀형이어서 플러그 어댑터가 필요하다. 오만은 한달간 관광 목적의 무비자 입국이 가능하다. 휴일은 안식일인 목요일과 금요일이다. 일반 상점·식당에선 술을 팔지 않지만 호텔의 바에서만 술 판매가 허용된다. 상점의 경우 오전 9시∼오후 1시, 오후 4시30분∼오후 8시까지 영업한다. 산유국 답게 휘발값과 자동차 렌트비가 저렴해 렌터카 여행도 고려해 볼 만하다. 기름값은 ℓ당 300∼400원수준이며, 렌트비는 중형차가 하루 60∼70달러선. 오만 여행은 중동지역 전문 랜드사인 ‘디티티에스’(www.godubai.co.kr)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오만으로 가는길 오만까지 직항편은 없다. 항공으로 가려면 아랍리트 두바이에서 오만행 비행기로 갈아타야 한다. 에미리트항공(www.emirates.com/korea/kr)이 매일 밤 12시30분 두바이까지 운항한다. 최근 대한항공과 코드셰어 협정을 체결, 에미레이트 항공권으로 월·수·금 오후 9시15분 출발하는 대한항공을 이용할 수도 있다. 운항시간은 10시간. 오만 무스카트 공항까지는 두바이에서 에미리트항공이 목요일을 제외한 매일 오전 8시15분 출발한다. 운항 시간은 1시간. 렌터카를 이용할 경우 하타지역에 있는 국경을 통해야 하며 6시간이 걸린다. 유럽과 북미, 중동, 아프리카, 인도, 아시아의 54개국,75개 도시에 취항하고 있는 에미리트항공은 중동의 허브 항공사로 중동지역은 물론 중동을 거쳐 유럽과 아프리카 등지로 떠나는데 편리하다. 세계적인 여행 전문지 ‘비즈니스 트래블러 아시아-퍼시픽’이 발표한 중동·아프리카 지역 최고의 항공사로 2년 연속 선정되었다. 국내에는 지난 5월1일 첫 취항을 시작했기 때문에 동반자 할인 행사와 인터넷 할인, 렌터카 할인 등 파격적인 특가 프로모션을 실시하고 있다.(02)779-6999.
  • 민원처리 베스트·워스트 사례 공개

    최근 전 직원의 전화 친절도를 조사해 순위를 매겨 공개한 행정자치부가 이번엔 인터넷으로 민원처리 회신대응을 잘한 사례와 잘못한 사례를 공개하고 있다. 민원인에 대한 성실한 답변을 유도하는 한편, 고객의 평가점수는 개인별 성과평가에도 반영된다. 1일 행정자치부에 따르면 2주∼1개월에 한번씩 인터넷을 통한 민원인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분석, 우수 사례와 잘못된 사례를 행자부 고객관리시스템에 공개하고 있다. 고객관리시스템이란 행자부가 새로 도입한 평가시스템으로 , 제기된 민원에 대한 접수·처리·회신·민원인 평가 등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장관부터 팀원까지 매일 접근이 가능하다. 고객이 평가한 점수는 연말 성과평가 때 6% 정도 반영된다. 행자부는 고객관리시스템을 통해 인터넷으로 제기한 민원처리가 끝나면 업무처리 형태에 대해 4점부터 20점까지 점수를 매기도록 했다.이 가운데 최고점과 최하점을 받은 사례를 분석해 ‘베스트’와 ‘워스트’를 뽑아 직원들에게 공개하는 것이다. 게시물에는 당사자 이름이 삭제되지만 해당 팀과 업무가 그대로 나타나 있어 누구의 것인지 금방 알 수 있다. 지난 8월15일부터 9월4일까지 인터넷으로 민원을 신청했던 일반인들이 평가한 380건 중 만점인 20점이 170건, 최하점인 4점이 17건으로 집계됐다.행자부는 9월5일 이 가운데 만점 사례 5건과 최하점 사례 1건을 공개했다. 이어 지난달 5일에도 9월5일부터 10월4일까지 평가한 621건 중 최고점 272건과 최하점 19건을 분석, 베스트 6건과 워스트 1건을 공개했다. 한 사례로 경기도 자치단체에 근무하는 공무원이 다른 지역으로 전출을 원하는 데 필요한 절차를 물었다. 이에 해당팀은 자치단체간 교류는 자치단체 상호간 이뤄지는 사안이므로 일률적으로 답변하기 어려우니 해당 지자체로 문의하라고 답변, 최하위 점수인 4점을 받아 나쁜사례로 공개됐다. 이 제도가 시행되면서 해당 공무원들은 민원인의 질문에 대한 답변의 양을 늘리고 질에도 신경쓰는 등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행자부 문영훈 고객만족팀장은 “이전에는 의례적이거나 애매모호한 표현으로 책임회피성 답변이 많았는데, 공개한 후에는 매우 성의있는 답변으로 바뀌는 등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밝혔다.조덕현기자 hyoun@seoul.co.kr
  • ‘49 vs 51’ 의원수 방청객보다 적어… 대정부질문 국회 썰렁

    #장면1.‘본회의장 49명’ 지난달 25일 오후 6시35분쯤 국회 본회의장. 통일·외교·안보분야 대정부질문 마지막 순서로 열린우리당 강성종 의원이 마무리 질문을 던지는 참이었다. 정적이 감도는 본회의장에 앉아 있는 의원은 여야 통틀어 49명. 대부분의 ‘의원님’이 ‘본업’을 나몰라라 할 때 본회의장 뒤쪽 2층 방청석에서는 방청객 51명이 ‘대신’ 대정부질문을 끝까지 지켜봤다. #장면2.‘의원간담회’ 지난달 31일 오전 8시15분쯤. 정세균 신임 당 의장이 ‘범여권 단결’을 주문하며 10·26 후폭풍을 수습하자고 ‘취임’ 소견을 밝힐 무렵,50명도 채 안 되는 의원만이 자리를 지켰다. 애초 8·31부동산 대책 후속입법과 관련해 ‘정책의총’을 소집했지만, 재적의원 144명 가운데 과반수인 72명은 출석해야 한다는 당헌·당규를 충족하지 못해 일단 ‘의원 간담회’로 시작한 상황이었다. “그 많던 ‘의원님’들, 다 어디로 갔나.” 최근 국회 안팎에서 나도는 우스갯소리다. 본회의장은 텅텅 비워 놓고, 정기국회에서 처리할 입법과제를 토론하는 자리에도 지각하거나 결석하기 일쑤다. 10·26재선거가 껴있어 자리를 비운 의원도 많았지만, 지역구를 챙기거나 본회의 도중 토론회·공청회에 참석하는 의원도 적지 않았다. 대정부질문 내내 자리를 지킨 열린우리당의 한 초선의원은 “너무 동료들이 없어서 낯뜨거웠다. 맥빠졌다.”고 전했다. 반면 일찍 의석을 뜬 한 의원은 “배포된 자료를 읽어 보면 다 안다. 자리를 지키지 않아도 할 일이 많다.”고 반박했다. 박지연기자 anne02@seoul.co.kr
  • “아기 고향 평양 자주 갔으면… ”

    “아기 고향 평양 자주 갔으면… ”

    만약 당신이 북한 여행 중 아기를 낳았다면 이름을 뭐라고 지을 것인가. 지난 10일 평양관광차 방북 중 딸을 낳았던 황선(32)씨의 시아버지 윤범노씨는 25일 손녀 이름으로 “‘겨레’나 ‘동명’을 생각 중”이라고 밝혔다. 윤씨는 이날 남쪽으로 귀환한 며느리를 마중 나간 자리에서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동명’은 황씨가 동명왕릉 참관 중 진통이 시작된 데서 착안한 것이라고 한다. 황씨는 이날 오전 9시 평양산원에서 퇴원한 뒤 육로를 이용해 낮 12시10분 아기를 안고 판문점을 통과했다. 황씨는 판문점까지 따라온 북측 간호사로부터 꽃다발을 받으며 작별인사를 나눈 뒤 마중 나온 첫째딸 윤민(1)양, 시어머니, 친정어머니 등과 재회했다. 이어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에서 입국 수속을 밟았다. 황씨는 평양산원이 발급한 ‘해산통지서’를 제시하고 검역과 출입국심사, 세관심사를 거친 뒤 대한적십자사 총재 등이 보낸 축하 화환을 받았다. 해산통지서에는 황씨의 인적사항과 딸의 출생 일시(10월10일 오후 10시), 예방접종 사항, 출산 당시 수술기록 등이 적혀 있었다. 태어난 지 16일째인 아기는 엄마 품에 안겨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밝은 표정의 황씨는 “아기가 고향인 평양에 자주 놀러갈 수 있도록 남북관계가 발전되기를 희망한다.”며 “내년 첫돌엔 아빠(수배중인 남편 윤기진씨)와 함께 평양관광을 갔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딸의 작명에 대해서는 “뜻깊게 지어야 하기에 고민이 많이 된다.”며 “가족끼리 모여 회의를 해봐야겠지만 평양에서 난 첫 아이인 만큼 민족의 소망을 담을 수 있는 이름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황씨는 이어 임진각으로 이동, 통일연대 등 시민단체들이 마련한 환영행사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황씨는 “2주간 세수 한번 못할 정도로 엄격한 산후 관리로 행복한 감금생활이었다. 밤에 간호사가 침대 옆에서 함께 잘 정도로 정성을 다해 준 평양산원 의료진에게 감사한다.”며 “오늘 아침 떠날 때도 간호사들이 눈물 바다를 이룰 정도였다.”고 소개했다. 황씨는 북에서 받은 선물 박스 2개를 가져왔는데, 아기용 이불·베개와 꿀, 경옥고,‘고려장수보약’ 등 보약, 그리고 만수대창작사에서 그려준 황씨 모녀의 초상화가 들어 있었다. 황씨는 1998년 평양에서 열린 8·15 통일대축전에 한총련 대표로 방북했다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전력이 있으며, 현재 민간단체인 통일연대 대변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시론] 용산서 꽃피울 민족문화의 자존심/전보삼 한국박물관협회 상임이사·만해기념관장

    [시론] 용산서 꽃피울 민족문화의 자존심/전보삼 한국박물관협회 상임이사·만해기념관장

    주지하다시피 용산은 한국 근대사에서 우리에게는 질곡의 공간이었다. 내국인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접근이 금지됐던 곳. 그 질곡의 역사는 1905년 러·일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한강과 근접한 교통의 요지인 용산 일대를 점령한 후, 이곳을 대륙침략의 거점으로 삼은 데서 시작된다. 이후 일제의 야욕이 물거품으로 끝난 8·15광복 이후 미군이 이용하게 됐고 오늘에 이르렀다. 이러한 근·현대사의 상징적 공간인 이곳에 우리민족의 자존심을 대변하는 국립중앙박물관이 들어서게 된 과정을 살피면, 굴곡의 역사를 지닌 우리 민족의 역경을 보는 듯하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출발은 8·15 광복과 같이 경복궁에서 시작됐지만, 이후 60년 동안 일곱 번이나 이전(移轉)하면서 당당하게 뿌리내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우리 민족이 시대사적인 아픈 과거를 극복하고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강국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처럼, 국립중앙박물관도 우리의 땅에 우리의 자랑스러운 문화의 중심지로 자리하게 됐다. 박물관 부지 4만 4000여평의 매머드급 규모, 우리의 전통적 건축정신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설계, 리히터 규모 6 이상의 지진을 견딜 수 있는 내진설계, 자외선을 차단할 수 있는 자연채광 도입, 최첨단의 자동화재 탐지설비와 방재시스템 구축, 밀폐형 진열장과 광섬유 조명, 자외선 필터가 설비된 진열장,1만 2000점의 유물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전시시스템, 세계 최초의 유물 내비게이션 시스템 도입 등, 새 중앙박물관은 세계 6대박물관이라는 자랑스러운 수식어에 걸맞은 모습을 하고 있다. 새 박물관은 이러한 외적 규모와 더불어 내실을 기하는 박물관으로 거듭나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박물관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는 연구와 교육에 있다. 직장인들의 주5일제 근무정착과 주5일제 학교수업의 확산은 박물관에 대해 이러한 역할을 요구하고 있으며 박물관 역시 이러한 의무에 부응해야 하는 시점에 도달하고 있다. 이를 통해 그동안 박물관에 대한 국민들의 정확하지 못한 인식을 스스로 바꿔나가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아직까지도 ‘박물관’하면 고답적인 생각을 먼저 하게 된다. 불상과 석탑이 있고 청자와 백자가 있는 케케묵은 곳이라는 생각이 앞서는 공간인 것이다. 그러나 여느 박물관에서나 봐왔던 이러한 유물들은 볼 때마다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이는 박물관들이 국민을 향한 적극적인 연구와 교육을 실천하지 못한 것도 그 원인의 하나가 아닌가 한다. 소장유물에 대한 철저한 연구를 통해 결과물을 도출해 내고 그것을 통해 국민의 교육 마인드를 향상시키는 것은 ‘박물관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학예사들의 몫이라 하겠다. 프랑스·영국 등 박물관이 보다 활성화된 곳들은 학예사(큐레이터)역할이 그만큼 중대하며 지위 또한 대학교수나 유수한 연구기관의 연구원 같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점은 우리 박물관에서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라 생각한다. 이와는 별도로 새 박물관은 종합문화벨트 구축을 모색하고 있다. 특히, 박물관 내부에 들어서는 극장 ‘용’과 온·오프라인으로 운영되는 뮤지엄숍, 거울못 레스토랑 ‘아리수’ 등 문화 편의시설은 우리나라 박물관 중 최초로 들어서는 부대시설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공간들은 분야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박물관의 새로운 영역 확장에 일조하게 될 것이다. 또 이러한 문화 편의공간은 박물관을 또 다른 문화휴양지로 만들고, 나아가 국민의 문화향수 기회증진에 크게 기여해 박물관의 새 지평을 열어가게 될 것이다. 이러한 예만 보더라도 새 국립중앙박물관은 명실공히 아시아를 대표하는 문화의 보고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국립중앙박물관의 개관은 이러한 의미에서 커다란 민족적 자긍심으로 인식될 것이며 우리 국민 모두는 민족·문화적 자긍심의 발로를 용산의 새 중앙박물관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전보삼 한국박물관협회 상임이사·만해기념관장
  • [어떻게 지내세요] 방송기자 1호 문제안씨

    [어떻게 지내세요] 방송기자 1호 문제안씨

    “방송이나 신문에 사용되는 말과 글은 초등학생이나 노인들에게도 쉽게 전달돼야 합니다.” ‘방송기자 1호’를 아시나요? 문제안(86)씨가 바로 주인공이다. 문씨는 8·15 광복과 함께 대한민국 초대 방송기자로 활약하면서 광복의 현장을 우리말로 생생하게 취재·전달해 전 국민의 심금을 울렸다. 특히 이승만 박사의 귀국을 특종보도했으며, 남로당 박헌영 인터뷰 등 격동의 현장을 구석구석 누볐다. 아울러 6·25 당시에는 서울신문 종군기자로 활약하면서 정전협정 과정을 상세하게 보도했다. 또한 한글 타자기 개발로 유명한 공병우 박사와 최현배 박사의 적극적인 권유와 도움으로 ‘한글운동가’로 오랫동안 활동했다. 지금도 일주일에 두 번씩 서울 종로구 신문로의 한글학회에서 미수를 바라보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글 전도사’로 남다른 의욕을 과시한다. 한글학회에서 문씨를 만났다.“마라톤의 손기정 선수와는 양정고 같은 반에 있었지. 당시 한글 말살 정책에도 불구하고 장지영 선생께서는 우리들에게 일주일에 1시간씩 몰래 한글을 가르쳐 주셨어. 숙직실에서 밤새며 책을 만들고….”라고 회고했다. 또 “장 선생님은 강의 마지막날 ‘한글책을 잘 간직했다가 필요한 사람에게 꼭 전해 주라.’고 하시면서 눈물을 흘렸지. 요즘처럼 무슨 개혁이니 혁명이니 하는 것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큰 감동을 받았어.”라고 당시의 한글사랑을 술회했다. 방송기자 1호가 된 사연에 대해 “1942년에 경성중앙방송국 단파방송사건이라는 것이 있었지.” 하면서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경성중앙방송국은 기술과에 근무하는 몇몇 사람이 도쿄방송을 그대로 이어받아 한반도와 만주, 중국 등지로 송출했지. 그러던 어느날 기술과 직원 한 사람이 미 샌프란시스코 방송을 청취하게 됐는데 일본군이 태평양 전쟁에서 미군에 밀리고 있다는, 비밀이나 다름없는 내용이었지. 이런 소문은 기술과 직원들을 뛰어넘어 장택상씨 등 지식인들 사이에도 급속히 퍼졌어. 당연히 일본 경찰이 수사를 했고 기술과 직원 등을 비롯해 200여명이 잡혀 갔어. 그러자 아나운서가 모자라 공채를 통해 방송국에 입사했지. 때마침 광복이 되면서 우리말로 보도하는 방송기자가 필요해 그 1호가 된 셈이지.” 문씨는 45년 9월9일 경성방송국이 “지금부터 우리말로 시작합니다.”라는 감격의 멘트와 함께 첫 방송기자가 됐다. 한 달여 만에 이승만 박사의 귀국을 특종보도하는 행운을 안았다. 이후 조선통신 경향신문 자유신문 서울신문 조선일보 등을 거쳤다. 일본 메이지대학에서 연극영화를 전공한 그는 66년부터 서라벌예대를 시작으로 74년 수도여사대,79년 원광대 교수 등을 각각 지냈다.87∼99년에는 한글문화단체모두모임 사무총장을 역임했다. 종군기자로 금성화랑무공훈장을 받았으며 63년 최우수문화영화상(남대문),96년 제18회 외솔상(한글운동 실천부문) 등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종군기 남북삼천리’ 등 13권을 남겼다. 건강관리를 위해 술과 담배를 전혀 안 하며 대한승마협회 부회장과 스키·요트협회 이사를 지낼 만큼 평소 운동을 좋아한다. 글 김문기자 km@seoul.co.kr 사진 안주영기자 jya@seoul.co.kr
  • [의회] ‘반탁 학생운동’ 공적비 세워주오

    “100만학도의 반탁운동을 기리는 공적비를 보라매공원에 세워주세요.” 11일 열린 제 159회 서울시의회 임시회에 반탁운동을 기리는 공적비를 세워달라는 청원이 접수돼 관심을 모았다. 청원은 (사)한국반탁반공학생운동기념사업회(위원장 유호필) 명의로 서울시의회 교육문화위원회 장영호 의원에게 접수, 소개됐다. 이들은 청원서를 통해 광복과 함께 1948년 8월15일 정부수립이 끝날 때까지 펼쳐진 100만학도의 반탁운동을 이끌었던 전국학생연맹의 자주독립정신과 애국정신을 기리는 공적비를 보라매공원 내 충혼탑 우측에 세워줄 것을 요구했다. 공적비명은 ‘대한민국 건국·호국·애국투사 공적비’로 정했다. 이들이 요구한 공적비의 크기는 너비 10.8m에 높이 3.048m 크기의 입상. 건립에 필요한 재원 3000여만원은 전액 기념사업회가 부담할 계획이다. 이에 대해 서울시의회 장영호 의원은 “반탁반공학생운동에 참여한 애국정신이 수구보수로 치부되고 국가의 정체성마저 흔들리고 있다.”면서 “후세들에게 애국심을 길러주기 위해 공적비 건립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이동구기자 yidonggu@seoul.co.kr
  • [자치센터 탐방/서대문구 이진아도서관] 갤러리 같은 도서관 문화·정보 한자리에

    [자치센터 탐방/서대문구 이진아도서관] 갤러리 같은 도서관 문화·정보 한자리에

    “도서관 맞아?” 서울 서대문구 현저동 ‘이진아 기념도서관’은 갤러리 같다.1층 현관에 들어서면 ‘ㅁ’자형 건물 가운데에 있는 작은 정원이 반긴다.4층까지 올라가면서 보이는 정원의 자작나무는 도서관의 딱딱한 느낌을 없애준다. 복층으로 된 3·4층 ‘종합자료실’은 명당으로 꼽힌다. 통유리 너머로 보이는 인왕산의 풍광 때문에 도저히 독서에만 집중할 수 없는 분위기다. ●아름다운 기부로 만들어지다. 지난 9월15일 개관한 이진아도서관은 한 중소기업 사장이 서대문구에 50억원을 쾌척해 지어졌다. 주인공은 현진어패럴 대표인 이상철(58)씨.2003년 6월 미국 보스턴에서 공부하던 둘째딸 이진아(당시 20세)양이 교통사고로 숨지자 소중한 딸의 이름을 기려 기금을 기탁한 것이다. 서대문구는 구비·시비를 더해 총 85억원을 들여 도서관을 지었다. 고(故) 이양의 생일에 맞춰 개관하기 위해 앞당겨 개관했으며 자료대출·반납 등 실질적인 도서관 이용은 10월말쯤부터 가능하다. 이진아도서관 이정수 관장은 “아름다운 기부로 지어진 도서관인만큼 다른 도서관보다 훨씬 값진 문화공간으로 만들도록 노력하겠다.”면서 “바로 앞에 있는 서대문형무소역사관(사적 제324호)과 더불어 과거·현재·미래가 공존하는 지역 사회의 구심점이 되는 곳으로 꾸미겠다.”라고 말했다. ●친환경적인 문화공간 이진아도서관은 지하1층·지상4층, 연면적 836평으로 총 열람석 300석 규모다. 칸막이가 빽빽하게 쳐있는 수험생 위주의 ‘독서실’의 개념을 벗어나 정보열람실의 개념으로 만든 게 특징이다. 각 열람실별로는 이용 연령층별로 세분화해서 보다 주민들이 보다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1층의 모자(母子)열람실은 36개월 이상의 유아부터 미취학 아동과 어머니가 함께 이용할 수 있다.‘어린이전자정보열람실’(1층)은 초등학생이 CD 및 디지털 자료를 열람하거나 인터넷을 검색할 수 있으며 ‘멀티문화 감상실’(2층)은 중학생 이상의 연령층이 영화·음악·어학 관련 CD나 DVD를 검색하고 비디오 테이프를 볼 수 있도록 꾸며졌다. 문화사랑방·도예방(2층)은 주부와 어린이들이 독서토론, 공예, 창의력 개발 학습, 논술 수업 등을 할 수 있다. 종합자료실(3·4층)에는 일반도서 3만여권과 연속간행물 100여종이 갖춰져 있다. 이진아도서관의 또다른 특징은 공공기관으로는 친환경적인 지열난방시스템을 도입했다는 것이다. 도서관 주변에 지하 150m까지 20여개의 구멍을 뚫어 만든 천공관을 통해 지열(地熱)을 모아서 심야전력을 이용하는 방식이다. 공해를 내뿜는 가스·기름을 사용하지 않을뿐 아니라 에너지 비용도 절감되는 장점이 있다. ●“인터넷으로도 공부해요” 주민들이 직접 책을 빌리고 반납하는 ‘도서 자가 대출·반납 시스템’을 도입한 것도 독특하다. 책에 무선고주파(RF)칩을 부착해 대출·반납기에 대면 저절로 기록이 남는 것이다. 대형 레코드가게 등의 물품에 부착돼 있는 장치로 대출·반납기에 등록을 하지 않고 출입문을 나서면 ‘삑’하는 경고음이 들린다. 사서는 단순반복적인 업무를 벗어나 책 선정작업 등 주민들을 위한 실질적인 서비스에 집중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책의 위치를 파악해 도서관을 보다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게 된다. 다만 이 시스템에 미숙한 어린이·노인은 사서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홈페이지(www.sdmljalib.or.kr)에도 별도의 ‘디지털도서관’이 갖춰져 있다. 구체적으로는 ▲영어·일어·중국어 등을 접할 수 있는 디지털 학습관 ▲1000권의 전자책(e-book)을 열람할 수 있는 전자책 도서관 ▲초등학생 수준의 한자 학습에 게임을 도입한 한자학습관 등을 이용할 수 있다. 이진아도서관은 3호선 독립문역 4번출구로 나와 서대문독립공원 뒤 영천사 가는 방향에 있다. 간선버스는 471·701·702·703·704·720·752, 지선버스는 7019·7021·7023·7025·7712·7737·155·156·157·158·158-2·158-3, 광역버스는 9701·9703·9705·9709·9710·9711·9712번을 이용하면 된다. 문의 (02)360-8600∼3. 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 사막에서 길을 묻다

    사막에서 길을 묻다

    우리는 달렸다. 타클라마칸, 그 죽음의 사막을 향해. 자갈길을 가로지르고 강을 건너 5000여 ㎞를 내달렸다.‘돌아올 수 없는 곳’이라는 뜻을 가진, 살고 싶지 않은 자와 미친 자가 아니면 들어가지 않는다는 말이 전해 내려온다는 그 사막을 향해. 그러나 15박16일을 먼지 구름을 일으키며 달려 간 그 사막 입구에는 ‘황량한 사막은 있어도 황량한 인생은 없다’, 그렇게 씌어 있었다. 붉은 글씨로. 아, 아 그렇지! 황, 량, 한 인생, 은 없지…. 마치 달려오던 가속도를 어쩌지 못해서인 듯, 온 몸이 앞으로 울컥 쏠렸다 가까스로 중심을 잡고 섰다. 등골에서 짜르르 전류가 흐르는 듯하다. 그래…, 그럴지도 모른다. 우리가 홀린 듯 이 먼 길을 내달아 온 것은 이런 글귀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예감 때문은 아니었을까. 사막을 꿈꿔왔다. 아주 오래전부터. 삶의 고비마다 언뜻언뜻 떠오르는 낯익은 영상이었다.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날카로운 햇살이 온 몸에 쏟아진다. 마른 먼지가 콧속을 파고들며 숨을 막고, 입안에선 으적으적 모래가 씹힌다. 갈증은 이미 오래전에 통증으로 바뀌었고, 모래밭은 펄보다 더 힘겹다. 발걸음이 천근만근이다. 나름대로 비장하다. 그러나 나는 이 장면에서 한껏 더 상상력을 부풀려 본다. 마침내는 햇살에 바래고 모래먼지에 찌든 내 신발 코 끝에, 죽은 자의 늑골이 아른아른 겹쳐 보일 때까지. 그런 극한점에 맞서보고 싶었다. 이 여행에 대한 제의를 받은 건 7월 초였다.8박9일 일정의 실크로드 패키지 여행을 준비하던 내게, 여행자들이 한국에서 가져간 지프를 직접 몰아 중국 대륙을 횡단한다는 프로그램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더구나 사막에서의 야영이라니! 앞뒤 생각 없이 큰소리로 “네!”해버렸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더라도 처음부터 28일 전 일정을 참가해야 한다고 했다면 난 감히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세상에! 사나흘도 아니고, 일주일도 아니고, 열흘도 아니고. 난 그렇게 오랫동안 내가 없는 우리 집을, 학교를, 나를 둘러 싼 크고 작은 일상들을 상상조차 해 본 적이 없었다. “전 일정은 한 달쯤 되나 봐요. 하지만 그걸 다 따라 다닐 수 있으시겠어요. 앞 뒤 자르고 한 8박9일 정도면 어떠세요?” 그렇게 시작했지만 출발일이 다가올수록 일정은 길어졌다. “근데 한 보름은 되어야 그 맛을 느낄 수 있지 않으시겠어요?” “보름이나 이십일이나…. 근데 이런 여행 쉽지 않거든요.” “따로 돌아오실 비행기표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네요.” “29일 날 도착한다고 각오를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마지막 말을 들었을 때, 난 이미 말라리아와 장티푸스 주사를 맞았고, 짧은 반바지에서 겨울 점퍼까지를 꾸려 짐을 싸둔 다음이었다. 가슴속에서 소용돌이가 일었다. 심호흡을 한 뒤 대답했다. “좋아요. 가겠습니다.” 전화를 끊으며 내가 살아 돌아올 수 있을까, 하는 엄살기 가득한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여행은 톈진항에서 배를 타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현장법사가 불전을 구하기 위해 간 길, 바리데기 공주가 죽은 자를 살릴 샘물을 구하기 위해 지나간 길, 고선지 장군이 서역 정벌을 위해 나선 길, 실크로드의 아버지라 불리는 장건,‘동방견문록’의 저자 마르코 폴로가 지나간 길, 실크를 비롯한 동서양의 온갖 것들이 교류한 이 길…. 이 길을 다섯 대의 지프가 달린다는 것이다. 오프로드를 포함해서 하루 몇백㎞를 달리고 또 달리다가, 사막을 만나면 사막에서, 바다만큼 큰 호수를 만나면 호숫가에서 야영을 한다는 것이다. 멋지다. 하룻밤을 배에서 자면서 톈진에 도착한 다음, 베이징, 타이위안, 시안, 란저우, 우웨이, 금창, 바단지린 사막, 가우대, 청수, 주취안, 둔황, 하미, 투르판, 우루무치, 쿠얼러를 빠르게 지나쳐 마침내 타클라마칸 사막에 닿았다. 인천항을 떠난 지 열엿새 만이었다. 그러나 타클라마칸은 예전의 타클라마칸이 아니었다. 사막 한가운데로 잘 닦인 아스팔트가 서늘할 만큼 시원스레 뚫려 있고, 몇㎞ 간격으로 물탱크를 포함한 대피소가 줄지어 있었다. 그 옛날, 나는 새도 통과하지 못한다는 그 타클라마칸은 이미 아니었다. 그러나 여전히 녹록지 않은 타클라마칸은 카라부란으로 우리를 맞았다. 그 옛날 죽음의 모래바람이라 불리던 카라부란이다. 타클라마칸에 진입했다는 흥분을 가까스로 가라앉히며 사막 깊숙이 자리를 잡고 서둘러 간단한 저녁 식사를 하려는데, 모래 바람이 일었다. 처음엔 코펠이 뚜르르 굴렀다. 뒤이어 텐트가 뿌리 뽑힌 풀단처럼 힘없이 날아가 버렸다.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아니, 숨을 쉴 수가 없었다. 흙탕물에 빠진 것처럼 시야가 흐려졌다. 서둘러 지프에 달려 올라가 문을 닫았다. 설마 지프는 안 날아가겠지. 그러나 안심할 수는 없다. 나는 눈을 감았다. 솩, 쉬르르 차창에 부딪치는 모래바람의 소리가 여전했다. 대개 중국쪽 실크로드의 시작을 서안이라고 본다.1000여년 동안 중국의 수도였던 도시. 장안이라는 옛 이름을 가진 이 도시는, 농사짓는 것보다 농사짓다 발견한 유물을 내다 파는 것이 더 낫다는 고도이다. 서안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죽은 진시왕의 잔영이었다.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왕.13세의 어린 나이에 진왕에 즉위하였으며 39세에 중국 역사상 가장 거대한 통일 국가를 세운 사람. 자신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스스로를 ‘태황의 황과 오제 제’를 따서 황제라고 칭하고, 자신을 시황제라 부르게 명 한 사람. 그는 선남선녀를 골라 불로장생할 선약을 구해오라는 전대미문의 특명을 내리고, 또 한편으로는 즉위하자마자 죽을 때까지, 자신의 묘가 될 지하궁전을 팠다. 아직 발굴되지 않은 이 무덤은 ‘관은 동으로 주조했고 무덤 내부에는 각종 보석으로 궁전과 누각의 모형을 세웠다. 수은으로 바다와 강을 흐르게 했고 천장에는 진주를 아로 새긴 해와 달과 별들을 만들어 달았다.’고 전해진다.30만명이 석 달 동안 왕릉에 보물을 실어 날랐다 한다. 그는 또 죽은 다음에 자신을 지킬 군사들을 만들어 도열시켰다. 보병, 전차대, 포대로 이루어진 신장 180m안팎의 실물크기 흙 인형 수천명으로 지하군단을 만들어 자신의 능에서 1.5㎞ 떨어진 거리에 배치해 두었다.1호 갱에 약 6000명,2호 갱에 약2000면 3호 갱에 68명의 테라코타 병사가 사열해 있다. 결국 그는 여러 형태의 ‘영생’을 준비한 것이다. 하긴 그렇기도 하겠다. 그 넓은 대륙을 통일한 젊은 왕에게 아쉽고 그리운 것이 그 영화를 영원히 누릴 수 있는 영생뿐, 더 무엇이 있었을까? 하지만 그것들을 만든 진시황의 백성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고, 그의 나라는 3대 15년 만에(항우에게)멸망하였다. 문자, 도량형, 화폐를 통일하고, 그 시절에 전국적인 도로망을 거미줄처럼 짜고, 운하를 파고 만리장성을 쌓고 아방궁을 짓는 등 어마어마한 일을 해낸 이 황제와 관련된 유적은 그러나 아직 다 발굴되지 않았다. 그 이유에 대해 가이드는 그때와 공기가 달라 유물이 상할 염려가 있고, 무덤 안에 함정이 많고 엄청난 양의 수은이 있어 위험하며, 후손들이 먹고 살 관광 자원을 남겨주기 위한 배려이기도 하고, 한쪽으로는 기술이 부족해서 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그에 관한 미확인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려준다. 예전에, 중국을 방문한 일본 총리가 그 유적 발굴을 제안했다 한다. 일본의 기술력을 제공할 테니 발굴한 보물의 3분의1을 달라고. 주석이 껄껄 웃으며 ‘이 안에 든 보물이면 네 나라 전부를 살 수도 있을 거다.’고 대답했단다. 그 조상에 그 후손임을 보여주는 대목이 아닌가 싶다. 벌컥, 차문이 열리면서 남대장이 소리쳤다. “바람 없어졌어요. 나오세요!” 어느새 눈앞에는 사막의 밤이 펼쳐져 있다. 어두운 밤하늘에서 별이 튕겨져 나올 듯 반짝였다. ‘돌아올 수 없는 곳’이 어디 타클라마칸뿐일까. 때때로 살고 싶지 않고 미칠 듯한 기분을 느껴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나는 심호흡을 하며 다시 사막에 발을 내디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량한 인생은 없다.’는 믿음으로. 죽음의 카라부란은 멈췄고, 모래는 아직 따뜻했다. 그리고 사막의 밤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신비로웠다. ●글쓴이 이윤희 교수는 동화작가, 문학박사,‘아침햇살’발행인. 인천재능대 아동문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며, 작품집으로는 ‘네가 하늘이다’‘꿈꾸는 호랑이 우화’를 비롯한 철학동화시리즈 18권 등이 있다. ■ 무선통신, 날아오다 2004년8월2일 11시, 인천항 실크로드 오버랜드 원정대는 8월2일 오전 11시에 인천항 제2부두에 집결했다. 출발 인원은 총 12명, 한국인 10명과 터키인 2명이었으며, 중국에서 터키인 1명과 중국인 5명이 합류할 예정이다. 거추장스럽고 부피스러운 짐은 이미 지프에 실어 앞서 보냈다. 가벼운 마음으로 배에 올랐다. 순조로운 출항이다. 8월3일 13시. 천톈항 서둘러 천톈항 출구에 섰다. 까마득한 멀리에는 인천을, 가까이에는 25시간 동안 우리를 싣고 온 여객선 진천 페리를 등 뒤에 둔 채다. “와!” 거기, 중화인민공화국 천진항 광장에, 먼저 도착한 차들이 늠름한 모습으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 5대였다.4+4 SILKROAD EXPEDITION.TRANS TACLAMAKAN.ROK 스티커 글씨가 도드라졌다. 눈이 부셨다. 그리고 비로소 가슴이 뛰었다. ‘아아, 드디어 시작이다! 이동거리 1만㎞를 훌쩍 넘는 28일간의 여행. 우리차로 실크로드를 달린다! 중국을 횡단한다!’ 나는 사뭇 뛰었다. 지프를 향해. ★중국의 4대미인은 누구?(답? 곳곳에 숨어있어요^^) 8월3일 15시, 베이징을 향해 우리차가 달린다. 중국 고속도로를 시속 100㎞로. 창문을 모두 열어 젖혔다. 나,58년 개띠. 오프로드 여행 경험 전혀 없음. 대학교수. 유부녀…. 그러나 그 순간 이 모든 것을 잊었다.‘우리는 간다, 하늘도 부른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햇살은 유리처럼 투명했고, 살짝 따가웠다. 승차 배치도 진행차:다이장(중국측 여행사 사장), 도용(현지 가이드). 살인미소(중국인 정비사). 여성스태프 1호차: 남대장(38·오버랜드 대표), 나(유니), 비니(34·스태프, 통역). 진피디(29·스태프, 영상담당)·2호차:한·최 안젤라 부부(47,45·사업가)·3호차:최 노익장(67·독일 국적의 CEO), 김원장(50·복지시설 운영)·4호차:임 흑기사 부자(51,29·사업가, 대학생)·5호차:하칸(29·터키인 사업가)등 터키인 일행 ●답(1) 그녀의 자태에 꽃이 부끄러워 스스로 잎을 말아 올렸다는 양귀비(수화·羞花) 8월4일 14시, 베이징 베이징에서 합류하기로 한 터키인 일행 하나가 예정보다 늦어지고 있었다. 그를 기다리는 사이, 캔맥주가 돌았다. 남대장:수도자가 고행을 하는 마음으로 이런 여행을 합니다. 일종의 종교 의식이지요. 한·최 안젤라 부부:모험이잖아요. 꿈꾸는 듯한. 임 흑기사 부자:재미있을 것 같아서요. 최 노익장:중국을 횡단이라, 정말 멋지잖습니까? 더구나 내 차로 직접 운전을 하는데! 김원장:새로운 패턴의 여행이라서요. 하칸:어린 시절부터 실크로드를 꿈꿔 왔습니다. 이번 여행은 그 꿈이 실현되는 것입니다. 가슴이 뜁니다. 그들의 얼굴이 발그레해진 것이 캔 맥주 탓만은 아닐 것이다. 나는 맥주를 홀짝거리며 서유기를 생각했다. 불전을 구하러, 혹은 죽은 자를 살릴 생명수를 구하러 이 길을 지났을 삼장법사와 바리데기 공주를 생각했다. 그리고 수많은 상인과 기술자와 병사와 예술가를 생각했다. 그리고 빌었다. 그들의 꿈과 사랑이 먼먼 후손인 내게도 자지러지도록 생생하게 전해지기를. 그리하여 그로인해 내 삶이 얼마간 풍요롭고 따스해지기를. 브라보! 우리는 다시한번 맥주 캔을 맞부딪쳤다. ●답(2) 그녀가 강변에 서서 강물을 바라보니 그 아름다움에 물고기가 헤엄치는 것을 잊고 물속에 가라앉았다는 서시(침어·沈魚) 8월5일 14시, 시안 가는 길 그러나 정말 쉽지 않았다. 온갖 것들이 우리의 발목을 잡았다. 느닷없이 나타나는 ‘공사중’은 그렇다 치자. 하지만 사실 이것은 그렇다 칠 일이 아니다.‘공사중’이 너무 많았다. 아니 중국 전역이 ‘공사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곳곳에서 공사를 하고 있었다.(더구나 그들은 지나는 차량에 대해서는 아무 배려가 없었다. 아무런 안내나 대안 제시도 없이 길 전체를 막아버린 곳도 몇 군데 있었다.‘우리는 지금 공사를 하고 있으니 너희들이 알아서 가라’는 식이었다.)곳곳에서 만나는 비포장도로도 또 그렇다 치자.(왜냐하면 땅이 너무 넓어서 포장하는데 시간이 걸린다는데 할 말이 별로 없으니까.)그러나 포장도로도 비포장 못지않게 차를 널뛰기하게 만든다는 것은 좀 그랬다. 자세히 보니 아스팔트가 바퀴 자국을 따라 깊게 패었다. 과적 차량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과적을 하지 않은 트럭이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정말 어마어마한 물동량이 움직이고 있었다!(하긴 우리 팀도 과적을 했다. 우리는 짐에 치여 쪼그리고 앉을 수밖에 없었다.‘28일간의 긴 여행’,‘사막에서의 야영’이라는 점에 모두들 긴장한 탓이었다.) 먼지와 매연도 문제였다. 그리고 따끔거릴 만큼 지독한 햇살과 섭씨 40도를 넘나드는 높은 온도, 장거리 주행 등이 엔진을 과열시켰다. 우리는 심통 난 아이 달래듯 차를 달래가며 몰았다. 그래도 어떤 차는 가끔씩 푸쿠쿡, 키다닥 하는 이상한 소리를 내며 속력을 떨어뜨렸다. 아슬아슬했다. 8월6일 15시, 화청지 마침내 일이 터지고야 말았다. 당 현종과 양귀비가 온갖 사치를 즐기며 장안과 화청지를 오가며 세월을 보내곤 했다는 설명을 듣고 있는데, 터키인 일행의 사고 소식이 날아들었다. 한 이틀 다른 곳을 들렀다가 합류하기로 한 사람들이다. 교통사고. 정비 불량과 과속으로 인한 전복 사고란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지만 일행은 모두 할 말을 잃었다. 이제 막 본격적인 시작인데…. 게다가 그중에는 터키의 ‘정주영’이 섞여 있단다. 선박회사를 17개인가 갖고 있고, 보험회사를 또 몇 개 갖고 있고 그리고…. 그런 사람이 우리와 함께 여행을 하려다 사고가 났다는 것이다. 믿기 어려웠다. 터키엔 여행사가 없나? 그런데 알고 보니 그럴만한 사연이 있었다. 중국 서쪽, 우리가 흔히 ‘서역’이라고 부르는 그곳이 터키와 특별한 관계가 있다는 것이었다. 마치 우리나라와 연변 조선족과의 관계와 비슷한. 그래서 터키인들은 그쪽 지방을 여행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터키인들이 그들, 소수민족을 부추겨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예를 들자면 독립운동 같은, 중국정부의 입장에서 볼 때 동의할 수 없는)을 할까봐 여행을 허가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한국인들 틈에 슬쩍 끼어서 그곳을 가려 했는데 그만 사고가 난 것이었다. 첫 번째 대형 사고였다. 8월7일 10시 40분, 란저우 가는 길 막히는 길을 가까스로 통과해 주유소에 도착했다.“날씨까지 꾀죄죄하네요.”기름을 넣고 있는 차들 뒤에서 고개 돌리기를 하며 가볍게 몸을 풀고 있는데, 아들 흑기사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랬다. 하늘빛은 칙칙하고 우리는 기분전환이 필요했다. 이심전심일까?안젤라의 남편 한씨가 장난기를 발동시켰다. 기름을 넣고 있는 자기 차 보닛에 검은 색 보드마커로 ‘갑시다, 실크로드!’라고 휘갈겨 썼다. 그러고는 부인 안젤라에게 펜대를 넘겼다. 안젤라는 ‘타클라마칸을 향해서!’ 썼다. 모두 신났다. 최 노익장은 당신 차 이마에 해골표시를 그려 넣었다. 남대장은 인천에서 출발하여, 다시 인천까지 오는 전 일정을 차에 뺑뺑 돌아가며 써 넣었다. 나는 자꾸만 꾸르륵거리는 차 콧잔등에 ‘잘 달려라, 착하지. 말썽피지 말고!’라고 썼다. 그리고 슬그머니 쓰다듬어 주었다. 8월9일 12시, 무위 ●답(3) 그녀가 비파를 연주하니 기러기가 그 용모를 보느라 날갯짓하는 것도 잊고 땅에 떨어져 버렸다는 왕소군(낙안·落雁) 8월9일 12시, 무위 그러나 차는 여전히 불안 불안했다. 한 팀은 차를 정비하고, 나머지 한 팀은 장을 본 후 점심을 먹었다. 양갈비찜이 나왔다. 찌그러진 넓적한 양은그릇에 큼지막한 살덩이가 붙은 양 갈비 한 개가 담겨있는 것이, 꼭 개밥 같았다. 저녁에 있을 사막에서의 야영을 위해 준비한 음식들이 자꾸만 눈앞에 아른거렸다. 8월10일 12시30분, 바단지린 사막 야영을 잘 끝내고 사막을 빠져나오려는데, 갑자기 2호차 꽁무니에서 검은 연기가 쿨룩쿨룩 쏟아졌다. 또 다른 대형 사고였다. 엔진은 정지했고, 차는 움직이지 않았다. 결국 고장난 차는 1호차가 견인해서 정비소로 가고, 나머지는 사막에서 그들이 돌아오길 기다렸다. 그늘 한점 없는 땡볕아래 햇살은 점점 강해지고, 끼니때가 되었는데도 식당은 멀디 멀었다. 우리는 임시 휴게소를 만들었다. 남은 차 둘을 나란히 대고 , 그 위에 텐트를 덮어 그늘을 만들어 쭈그리고 앉았다. 그리고 라면을 끓이고 커피를 탔다. “죽인다, 커피향!” 우리는 애써 큰소리로 웃어댔다. ●답(4) 그녀의 미모가 너무 아름다워 달도 구름 뒤에 숨었다는 초선(폐월·閉月) 8월11일 20시, 가욕관에서 둔황으로 결국 그들 차 두 대는 돌아오지 못했다. 우리는 차 3대에 짐을 포개고 또 포갠 뒤, 그 사이에 끼어 앉았다. 그리고 일정을 그대로 진행했다.2m앞이 안 보이는 먼지 길 양옆에 아스라한 낭떠러지가 이어져도, 문을 꼭 닫은 차안에서도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기침이 컥컥 나올 만큼 독한 ‘원조황사’가 길을 막아도, 그대로 뚫고 달렸다. 생명 보험을 하나 더 들어놓고 올걸! 나는 콩 튀듯 탕탕 거리는 차 안에서 생각했다. 해를 따라 서쪽으로, 서쪽으로 나아가는 길, 해는 지지도 못하고 저녁 8시가 넘는 시각에도 낮처럼 환하다. 8월12일 17시, 명사산 아름답다. 달밤이면 모래가 우는 소리를 낸다는 산. 해질녘, 그 산을 낙타를 타고 오른다. 출렁출렁, 낙타의 발걸음에 따라 내 몸이 흔들린다. 방울소리도 흔들린다. 8월13일 18시, 하미 주위에 있는 산들이 온통 시커멓다. 철성분이 많아 그렇단다. 그 산 사이에 난 협곡을 달리고 달려 신장 자치주에 닿았다. 무섭게 바람이 불었다. 이 근처는 사철 그렇게 바람이 많은 곳이라고. 이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투르판은 ‘불의 땅’ 외에도 ‘바람의 창고’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20시에 하미과로 유명한 하미에 도착해 저녁 대신 과일로 허기를 채웠다. 배가 봉긋해졌다. 8월14일 18시, 투르판 위구르족 민속쇼를 관람했다. 남대장이 모종의 작업을 한 덕분에 나도 위구르족 아가씨로 분장하고 공연에 잠깐 끼어들었다. 위구르의 전통 악기 소리는 맑고 탱글탱글했다. 우거진 포도 넝쿨 아래서, 붉은 드레스를 입고 춤을 추면서, 나는 잠시 먼 이국의 여인이 되는 꿈을 꾸었다. 한여름, 축제의 밤은 열기를 더해갔다. 8월15일 11시, 우루무치 포도 농원에 갔다. 위구르 말로 ‘아름다운 목장’ 이라는 뜻을 가진 우루무치는 커다란 오아시스 도시다. 야자수가 두어 그루 있는, 우리가 오아시스라고 하면 흔히 머리에 떠올리는 그런 고즈넉한 풍경이 아니라 포도나무가 바다처럼 펼쳐져 있는.20∼30종은 넘어 보이는 건포도가 신기했다. 노랑색, 황금색 외에도 송이째 말린 건포도, 씨가 씹히는 건포도, 달콤한 것, 약간 시큼한 것…. 나는 번개처럼 건포도를 한 짐 싸서 챙겼다.‘아줌마’라 흉을 봐도 어쩔 수 없다. 나는 독하게 맘을 먹었다. 맛보여주고 싶은 고국의 ‘동포’들이 목에 걸리고 눈에 밟혀 어쩔 수 없었다. ■ 지프로 오지를 달리고 싶다면 챌린지 전문탐험 기획사인 ㈜오버랜드 엔터테이먼트(www.overland.co.kr)는 자신의 자동차를 직접 운전해 실크로드 등 세계 오지를 탐험하는 이색적인 여행 상품을 판매한다. 오버랜드를 운영하는 남기환(38)대표는 1999년 런던∼서울 단독횡단과 2002년 유라시아 횡단팀을 이끈 오지탐험 전문가. 그는 실전 경험을 바탕으로 지프를 타고 황량한 들판과 거친 사막, 별이 쏟아지는 초원에서 야영을 즐기는 새로운 형태의 여행 개척하고 있다. 주요 상품은 죽음의 사막 타클라마칸까지 이어지는 ‘트랜스 타클라마칸’, 히말라야의 만년설을 끼고 도는 ‘트랜스 히말라야’, 중국 성도에서 티벳까지 찝차을 이용 ‘천장공로 하늘여행’ 등 다양한 상품을 준비하고 있다. 국내 오지 캠핑 상품도 다양하다. 일반적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국내 산간벽지를 찾아 다니며 캠핑과 야영을 즐기는 1박 2일,2박 3일 오지여행도 정기적으로 진행된다. 비용은 일정에 따라 다른 만큼 오버랜드(02-522-0228)에 직접 문의하면 된다.
  • 남한여성 평양서 딸낳다

    남한여성 평양서 딸낳다

    평양 문화유적 참관차 10일 오전 방북한 남한 주민 황선(31)씨가 북한에서 아기를 출산했다. 분단 이후 처음있는 일이다. 민간단체인 통일연대의 대변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황씨는 북한 노동당 창건 60돌 기념일인 10일 밤 10시 북한 최고의 산부인과 ‘평양산원’에서 제왕절개 수술을 통해 둘째 딸을 낳았다고 민간단체인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관계자가 11일 전했다. 전례가 없는 일에 직면한 통일부는 신생아의 국적 문제 등에 관해 법률자문을 하는 등 분주한 움직임을 보였다. ●2주간 산후조리 체류연장 고려대 법학과 신영호 교수는 “우리나라는 속인주의를 채택하고 있고 북한 국적법도 북한 주민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기한테만 북한 국적을 부여하고 있기 때문에 황씨의 딸은 당연히 한국 국적이다.”고 설명했다. 통일부는 황씨의 산후 조리를 위해 평양 체류를 2주 정도 더 허용키로 했고, 육로로 귀환토록 배려했다. 일각에서는 황씨가 1998년 평양에서 열린 8·15 통일대축전에 한총련 대표로 불법 입북한 혐의로 징역 2년의 처벌을 받은 경력이 있는 데다, 출산일이 임박해 만삭의 몸을 이끌고 방북한 점을 들어 내심 ‘방북 출산’을 희망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황씨는 평양으로 떠나기전 “산통이 오면 평양에서 출산했으면 좋겠다.”는 언급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준비된 출산” “통일둥이” 양론 첫 딸도 제왕절개로 출산한 황씨는 당초 오는 17일 제왕절개 수술 일정을 잡아놔 방북 일정이 무리가 되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고 시부모와 함께 방북 길에 올랐다고 한다. 그러나 비행기로 평양에 도착한 황씨는 가벼운 진통을 느껴 북측 의료진으로부터 진찰을 받았으며 이후 저녁 8시부터 5·1경기장에서 아리랑 공연을 관람했다. 결국 공연 중인 9시30분쯤 다시 진통이 엄습, 평양산원으로 옮겨졌다. 황씨는 지난해 2월 서울 덕성여대에서 경찰의 원천봉쇄 속에 조국통일범민족청년학생연합(범청학련) 남측본부 의장 윤기진(31)씨와 결혼식을 치렀다. 남편 윤씨는 1997년 7기 한총련 의장으로 지명수배된 이래 현재까지 수배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설악·금강산등 전국방방곡곡

    설악·금강산등 전국방방곡곡

    푸른 산하에 붉은 가을 빛이 살포시 내려 앉았습니다. 상쾌한 가을 바람을 타고 단풍 향기가 시나브로 코끝을 간지릅니다. 그래서 가을이면 사람들이 무작정 단풍산에 몸을 맡기나 봅니다. 올해는 단풍이 평년보다 5∼6일 늦게 시작한다고 합니다. 때문에 설악산에서 시작된 오색단풍의 화무(火舞)는 예년보다 조금 늦게 남으로 질주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가장 빠른 강원지역은 이번 주말부터 붉은 기운을 띤 뒤 이달 중·하순쯤 절정을 이루고, 충청·영·호남지역은 10월 말이나 11월 초에 최고조에 이를 전망입니다. 단풍이 찾아와 행복한 가을. 올가을엔 가족들과 함께 단풍의 우아한 자태에 취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단풍명소를 찾아 황홀하게∼ 철마다 형형색색의 옷을 갈아입는 ‘산중미인’ 설악산에는 지난달 말 남한에서 가장 먼저 단풍이 시작됐다. 단풍은 해발 1500m 고지의 대청·중청·소청봉을 물들이고 한계령, 마등령, 대승령, 공룡능선을 거쳐 서북주능, 미시령, 흘림골로 빠르게 하산하고 있다. 이달 중순에는 천불동, 수렴동,12선녀탕까지 단풍이 내려온 뒤 비선대, 비룡폭포, 백담계곡, 주전골, 용소폭포, 장수대 등에서 마무리한다. 노약자들은 케이블카(sorakcablecar.co.kr·033-636-4300)를 타고 권금성에 오르면 단풍으로 물든 설악산 절경은 감상할 수 있다. 권금성은 높이 800m로 걸어서는 1시간 30분 정도 걸리지만, 케이블카로는 10분 남짓이면 오를 수 있다. 아침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행하며 요금은 왕복 7000원(중학생 이상)이다. 국립공원관리사무소(033)636-7700. 오대산은 울창한 숲에서 나오는 은은한 가을 단풍을 즐길 수 있다. 설악산이 남성적인 웅장함을 지녔다면, 오대산은 우아한 자태를 뽐내는 여성에 비유된다. 등산코스는 상원사∼적멸보궁∼비로봉∼상원사 코스(6.2㎞·3시간)와 상원사∼비로봉∼상왕봉 코스(12.7㎞·5시간), 진고개∼노인봉∼소금강 코스(13.4㎞·6시간)가 있다. 입장료는 어른 3400원. 국립공원관리사무소(033)332-6417. 한반도 최남단 국립공원인 월출산은 단풍이 밑으로 내려가면서 마지막으로 불꽃을 태우는 곳이다. 기암괴석들이 봉우리마다 솟아 있는 바위산으로 동서남북 어느쪽에서든 색다른 정취를 느낄 수 있다. 관리사무소에서 천황봉쪽으로 뻗은 계곡이 단풍이 아름답다. 등산코스로는 천황사지∼구름다리∼천황봉∼구정봉∼억새밭∼도갑사 코스가 좋다. 관리사무소(061)473-5210. 금강산은 금강산의 가을 이름은 풍악산(楓嶽山). 이름에 단풍 풍(楓)자가 들어갈 정도로 단풍이 아름답다. 붉은 단풍이 온갖 만물형상의 바위에 물들이는 만물상 코스와 수림과 폭포가 어우러진 구룡연 코스, 호수와 해안절경으로 이루어진 해금강 삼일포 코스가 있다. 지난달 1일부터 시행된 북측의 관광객 일일 600명 제한조치로 예약이 쉽지 않은 것이 흠이다. 문의 현대아산(02)3669-3000. 교통이 편리한 근교에서∼ 서울·수도권 주민들의 녹색 허파인 북한산의 단풍은 오는 18일 정상인 백운대에서 시작된다. 북한산에는 삼각산으로 불리는 인수봉, 만경대, 백운대 등 3개의 봉우리를 포함해 20여개의 봉우리가 이어져 있다. 교통이 편리해 수도권 어디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으며,10여개의 등산코스가 있어 다양한 가을 정취를 맛볼 수 있다. 이 중 우이동∼북한산장∼백운대 코스(8.1㎞)는 최고의 단풍 산행코스다. 다소 한가한 단풍코스는 정릉∼보국문∼용암샘터∼노적봉∼백운대(8.5㎞)코스가 좋다. 입장료는 어른 1600원. 국립공원관리사무소(02)909-0497. 용문산은 용문사의 1000년 넘은 은행나무가 단풍철이 되면 노랗게 물든다. 정상에서 뻗어내린 수많은 바위 사이에서 발달한 계곡은 놓치지 말아야 할 볼거리다. 주차장에서 용문사∼상원사∼윤필암터 코스가 2시간 10분 걸린다. 관리사무소(031)773-0088. 명지산은 북한강 굽이따라 경춘국도를 달리면 만날수 있다. 명지산의 곳곳에는 너럭바위와 소가 적절하게 배치돼있어 작은 천불동계곡으로 불린다. 익근리 입구에서 승천사∼명지폭포으로 오르는 길은 단풍이 일품이다. 가평군청(031)582-0088.명성산은 산정호수를 끼고 있는 아름다운 산이다. 궁예가 왕건에게 나라를 잃자 망국의 슬픔에 산도 따라 울었다고 해서 붙여졌다. 등산로 가든에서 비선폭포∼등룡폭포∼자인사로 돌아내려오는 길이 특히 추천할 만하다. 억새물결도 장관이다. 산정호수 관광지부(031)532-6135. 정겨운 단풍축제와 함께∼지리산의 가을은 피아골 단풍으로 대표된다. 붉다 못해 강렬한 핏빛이다. 단풍은 직전마을에서 피아골 대피소까지의 왕복코스, 또는 연곡사∼임걸령∼노고단의 코스가 좋다. 매년 전남 구례군 토지면 외곡리 기촌솔밭 일대에서 ‘피아골 단풍제’가 10월말 열리는데 남도국악공연과 등반대회를 즐길 수 있다. 구례군청 문화관광과 (061)780-2224. 속리산은 화양·선유·쌍곡계곡 등 이 만산홍엽과 어우려져 장관을 이룬다. 매표소에서 법주사 입구인 금강문에 이르는 숲길이 좋다. 오는 21∼23일 충북 보은군 속리산 잔디공원 일대에서는 ‘2005 속리산 단풍축제’가 열린다. 보은군청 문화관광과 (043)540-3391 전남 장성군 백암산에 위치한 백양사에서는 10월말 ‘백양 단풍축제’가 열린다. 장성군청(061-390-7224). 또 경기 동두천시 소요산은 산이 높지 않고 평탄해 가족 산행지로 적합하다. 관리사무소 (031)860-2065. 단풍열차타고 즐겁고 편하게∼ 단풍열차 안에서는 각종 이벤트가 펼쳐져 오가는 길이 즐겁다. 한국철도공사(www.barota.com·1544-7788)는 지역별 단풍시기에 맞춰 다양한 상품을 선보이고 있다. 대표적인 단풍열차 여행지인 내장산은 가을이면 온통 선홍빛으로 물든다. 불타는 단풍터널과 도덕폭포, 금선폭포은 황홀경에 빠지게 한다. 무궁화는 14일에서 11월4일까지 매주 용산역에서 금, 토요일에,KTX는 용산역에서 20일에서 11월 6일까지 주중 1차례, 주말 2차례 운행한다.5만4900∼5만9000원. 선운산은 선운사 숲길따라 울긋불긋한 단풍이 이어진다.10월21일에서 11월13일까지 매일 아침 6시35분 용산역을 출발한다.5만9000∼6만3000원. 가야산은 산 어귀에서 해인사에 이르는 4㎞의 홍류동 계곡은 단풍이 계곡에 비쳐 물이 붉게 보인다.14일에서 11월6일까지 매일 서울역에서 8시15분에 출발한다.7만5000∼8만2000원.
  • 與 과거사 재심특별법 추진

    열린우리당 이은영 의원은 30일 “군사독재 시절 사법부의 과거사를 바로잡기 위해 재심특별법을 추진, 국정감사가 끝난 뒤 법안을 만들어 국회에 제출할 것”이라고 밝혔다.재심특별법 제정 추진은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8·15 경축사에서 “국가 공권력 범죄 피해자들이 명예를 회복할 수 있도록 확정 판결에 대해 융통성 있는 재심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고 밝힌 데 따른 후속 대책으로 여겨진다.청와대의 핵심 관계자는 사흘전 사법개혁추진위원회와의 모임에서 재심특별법 추진 필요성을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 南송민순·北김계관 얼굴 붉혔던 순간들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6·17면담,8·15 민족 통일대축전 등을 계기로 남북관계가 무르익은 가운데 진행됐던 4차 6자회담 2단계회의이지만 남북이 서로 얼굴을 붉히기도 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13일부터 19일 중국 베이징 댜오위타이에서 열린 6자회담은 9·19 공동성명을 내기 직전까지 경수로 제공 문구를 놓고 팽팽한 신경전을 벌였다. 휴회 또는 결렬이 될 수도 있다는 비관론이 나오던 16일 전후 각국 대표들의 신경이 곤두설 대로 곤두선 상황. 전체회의에서 우리측 수석대표인 송민순 외교통상부 차관보는 무의식 중에 “북한은…”이라고 발언했고, 북측 수석대표인 김계관 외무성 부상이 얼굴을 붉히며 “우리 국명은 북한이 아니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입니다.”고 발끈했던 것. 이에 따라 회의장 분위기가 썰렁해졌다는 후문이다. 지난 2000년 6·15 남북 정상회담 이후 남북한은 서로에 대해 각각, 북측·남측으로 부르며 상대방을 존중하고 있다. 이전에는 각 측의 용어대로 ‘북한’,‘남조선’이라고 불렀다. 이 밖에도 우리 정부는 북측의 결단을 촉구하기 위해 커튼 뒤에서 북측 입장을 존중하면서도 어르고 달래기를 해왔다. 한 소식통은 지난 17일 저녁 다이빙궈 중국 외교부 상무부부장 주최로 달맞이 만찬을 할 때의 일화를 소개했다. 그때 우리 송 차관보는 김계관 부상에게 멀리 있는 미국의 힐 대표를 가리키며 “합리적이고 적극적인 힐을 도와줘야 한다. 힐이 있을 때 합의문을 내고 북·미관계정상화까지 가야한다.”고 주문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이번에 합의가 안되면 뉴욕으로 갈 수도 있다.”며 설득했다는 것이다. 뉴욕은 유엔본부가 있는 곳으로, 북핵 문제의 유엔 안보리 상정을 의미한다. 정부 관계자는 “북한은 항상 경청했다.”면서 과거 남북관계에선 이같은 허심탄회한 대화는 있기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김수정기자 crystal@seoul.co.kr
  • 北·현대 갈등 ‘정부 책임론’ 부담

    정부가 대북 관광사업에 관한 태도를 바꿔 적극 개입으로 돌아섰다. 당초 고수해온 “금강산 관광사업은 현대와 북측 아태평화위간 민간 차원의 영역이므로 당국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는 입장에서 크게 선회한 것이다. 이는 14일 남북 장관급 회담에 참석중인 정동영 통일부장관의 언급으로 확인된, 달라진 정부 기조로, 현정은 현대아산 회장의 김윤규 부회장 경질로 시작된 현대·북한간 갈등이 국면 전환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입장 선회는 정부가 북한·현대간 갈등이 해소될 기미 없이 계속 증폭되고, 특히 북한이 개성관광 사업권을 두고 롯데관광에도 입질을 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국민들의 대북(對北) 여론이 급속히 악화되는 것을 우려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특히 남북 경협 전반에 대한 ‘회의감’이 팽배하면서 여론의 화살이 정부를 향하고 있는 것도 한 요인이다. 북한의 남측 기업을 상대로 한 과도한 ‘생떼’식 인사개입, 신의를 저버리는 행위가 결국 우리 정부의 저자세 대북 협상 내지는 눈치보기 결과 때문이라는 여론이 만만찮은 게 사실인 까닭이다. 북한이 현대에 부여한 독점권을 아예 무시하고 개성관광 사업권을 롯데관광에 제시한 것은 남북경협 질서 자체를 손상시키는 것이다. 정 장관은 북·현대간 갈등을 둘러싼 뒷얘기도 풀어놨다. 정 장관은 평양으로 출발하기 앞서 현정은 현대아산 회장을 만났다고 했다. 그는 “만나 정부가 중재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지 모색했고, 입장을 들었는데 그 다음날 현 회장이 인터넷에 공개적으로 띄웠다.”고 밝혔다. 정 장관은 “7월 현대 내부의 문제가 된 것이 시간이 꽤 되어서 원만하게 처리되기를 기대하면서 중재해 볼까 해서 타진한 것인데 여지가 상당히 죽었다.”며 현 회장의 인터넷 공개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그는 “북에도 이롭지 않고 모두 다 ‘루저’(패배자)가 되는 것인 만큼 금강산 관광이 국민에게 위안과 희망이 됐던 초심을 살려 순조롭게 궤도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정 장관은 지난 8·15 민족대축전 때 현대와 북측의 직접 대화를 주선했다면서 “수습을 바랐는데 그때 직접 대화가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던 것 같다.”고 밝혔다. 이어 회담 출발에 앞서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만난 사실을 밝히고 “남북화해와 경제협력의 상징이고 국제적으로 관심이 큰 사업인데 국민 걱정과 국제적인 시각이 우려스러우니 적극 중재노력을 해달라고 부탁했다.”고 소개하기도 했다.평양 공동취재단·서울 김수정기자crystal@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클래식 전도사 금난새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클래식 전도사 금난새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했던가. 좌절의 쓴 맛을 본 뒤에야 새로운 길이 눈에 들어왔다. 용기를 내어 발걸음을 내디뎠다. 눈덮인 들판에 첫 발자국을 새기듯 그 길을 조심조심 걸었다. 문득 프로스트의 시(詩)가 생각난다.‘훗날에 나는 어디선가/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그랬다. 젊은 나이에 미지의 길을 택했다. 험난했지만 열심히 오르고 또 올랐다.30여년 세월이 흘렀다. 각박한 이 사회에, 가느다란 손끝으로 커다란 감동의 하모니와 가슴 찡한 행복의 향기를 선사하는 거장으로 우뚝 섰다. 클래식 전도사 금난새(59) 교수. 지휘자로 외길을 걸어왔다. 자신의 이름처럼 금빛 날개를 달고 무대와 객석 사이를 훨훨 날아다닌다. 그가 지휘봉을 잡으면 청중이 구름처럼 몰려온다. 항상 대중 속으로 파고들어 아무리 딱딱한 클래식이라도 부드럽게 녹여 청중을 매료시킨다. 그래서 ‘지휘봉의 마술사’라는 얘기를 듣는다. 요즘들어 별칭이 더욱 많아졌다. 지휘자라는 본업 외에 벤처 오케스트라의 CEO로도 확실하게 인정받는다. 즉, 지난 1998년 ‘유라시안 필하모닉오케스트라’를 창단한 이후 가장 성공한 사례로 평가받고 있는 것. 덕분에 청와대와 중앙부처 공무원, 기업체와 대학 등을 상대로 ‘성공한 예술CEO’ 자격으로 강연을 다니느라 분주하다. 올들어서만 벌써 40회를 넘고 있다. 교수, 지휘자,CEO, 초빙강연 등 1인4역을 해낸다. 기획과 아이디어맨이라는 별칭도 있다. 서울 중구 신당역 인근의 ‘충무아트홀’ 6층 사무실에서 금씨를 만났다. 충무아트홀은 중구청이 올 3월 개관했으며, 금씨는 중구청의 지원으로 사무실과 연습실 공간을 무료로 사용하고 있다. 금씨는 때마침 모 기업체 강연을 막 다녀온 직후였다. 우선 강연 내용이 어떤 것이냐고 하자 “오케스트라의 조화와 기업경영의 하모니를 주제로 했다.”면서 요즘에는 대기업 강연을 많이 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요즘 기업의 경영전략이 감동과 하모니 경영을 중요하게 여기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가 식당을 갔을 때 맛있고 행복감이 없으면 다시 찾지 않는 것처럼 음악의 오케스트라도 마찬가지”라고 특유의 레스토랑 경영론을 펼친다. 서비스정신으로 무장하고 관객들에게 행복감을 선사해야 다음 연주회 때에도 표를 예매하고 찾아주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한다. 그런 다음 청중들이 원하는 것, 또 그 수준을 파악해 반발짝 앞선 감동을 던져주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예를 들어 8·15경축사처럼 해마다 항상 비슷한 내용으로 반복되는 것이나, 부모가 아이들한테 늘 공부하라고만 하면 무슨 감동이 있겠느냐는 것. 그래서 많은 감동을 주기 위해 찾아가는 ‘방문 연주회’를 고집한다.‘도서관 음악회’‘베토벤 페스티벌’‘포스코 로비 콘서트’ ‘굿모닝 클래식’‘3군사관학교 방문연주회’‘해설이 있는 오페라’ 등은 신선한 아이디어와 철저한 고객지향 서비스 정신에서 나온 대표적 프로젝트. 이를 통해 민간 오케스트라 운용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평을 듣고 있다. 지난 7일에는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2500명의 대학생을 모아놓고 두 시간 동안 연주회를 가졌다. 차이코프스키 심포니 4번을 해설하며 연주에 들어가자 다들 환호하며 흠뻑 빠졌다. 랩과 팝음악에 익숙한 대학생들이 모처럼 심포니의 선율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던 것. 금씨는 “장차 나라의 기둥이 될 대학생들에게 클래식의 감동을 선사해줬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보람과 큰 기쁨이 아니냐.”고 했다. 올 가을에만 5개 대학을 찾아갈 예정이다. 앞서 지난 94년부터 3년간 ‘금난새와 함께 떠나는 세계의 음악여행’이라는 청소년 음악회를 열어 우리나라 클래식 연주사상 최고의 화제공연으로 뽑히기도 했다. 객석에 있는 청중을 불러 노래를 시키는가 하면, 또 객석의 아저씨들이 남성 합창단으로 갑자기 둔갑하는 광경을 연출, 청소년들을 매료시켰다. “연주회 때마다 지휘자가 맨 나중에 나가는 것을 고집합니다. 마지막까지 관객들과 함께 축하하고 서로의 감동을 나누기 위해서지요. 또 단원들에게는 노력한 만큼 되돌아온다는 점을 늘 강조합니다. 또한 우리 오케스트라는 예술계의 샘플이 되자고 다짐합니다.” 지휘자가 안 됐으면 지금쯤 무엇이 됐을까 하고 물었다. 잠시 생각하더니 “글쎄요. 영화감독이었을 것”이라며 웃는다. 아울러 미술도 좋아하고, 또 연주 때 늘 문학적 철학을 염두에 둔다고 했다. 그만큼 자신의 재능, 즉 장르를 고집하지 않고 예술적 감각을 극대화시킨다는 것이다. 이어 ‘금난새’라는 이름에 얽힌 사연을 물었다. 그의 부친은 한글학회 회원이자 ‘그네’로 유명한 작곡가 고(故) 금수현. 금녕 김(金)가인 부친은 자신의 성을 한글식인 ‘금’으로 먼저 바꿨다. 이후 새로 태어난 아들의 이름을 ‘나는 새’라는 뜻의 ‘금난새’로 지었다. 형제자매들의 이름도 ‘내리’‘누리’ 등 ‘ㄴ’자 돌림으로 했다. 금씨는 “우리 아이들은 ‘ㄷ’자 돌림의 ‘금다다’와 ‘금드무니’ 등으로 이름지었다.”고 귀띔했다. 그는 47년 음악적 환경이 풍부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중학교와 고교 진학때 입시에서 모두 실패했다.“실패는 새로운 에너지를 주는 것.”이라고 회고했다. 중학교 때에는 소심한 성격에다 영어 소문자도 제대로 못써 열등아라는 놀림도 받았다. 오기가 생겨 영어를 집중적으로 파고들어 교내 영어 웅변대회에서 1등까지 차지하는 저력을 발휘했다. 경기고 입시에서 떨어지자 부모의 권유로 결원이 생겨 추가 모집하는 서울예고에 입학했다. 이는 오히려 전화위복이 됐다. 고1때 우연히 AFKN(미8군방송)에서 청소년을 위한 클래식 음악프로그램을 보게 됐다. 레너드 번스타인(뮤지컬 ‘웨스트사이드 스토리’ 작곡자)이 지휘하는 뉴욕 필하모니의 멋진 연주에 감동했다. 이때부터 번스타인은 인생의 모델이 됐다.‘토요음악회’ 등 앞장서서 그룹활동을 주도했다. 또한 늘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각해내곤 실천에 옮겼다. 서울음대 시절엔 오케스트라를 만들어 연주여행에 나서기도 했으며, 음대 학생회장을 맡아 음악캠프 등을 의욕적으로 추진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방위근무를 마친 뒤 모교인 서울예고에서 1년반 정도 교편을 잡았다. 그러나 지휘자의 꿈을 포기할 수 없어 베를린대학으로 유학을 훌쩍 떠났다. 때마침 베를린 오페라좌에서 지휘자로 활동했던 음대의 라벤슈타인 교수를 만나 본격적인 지휘공부를 하게 됐다. 여러차례 콩쿠르에 나갔지만 실패를 거듭한 끝에 서른살이 되던 77년 카라얀 콩쿠르에서 입상하면서 지휘자로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베를린 음대 졸업 후 귀국,KBS 교향악단에서 12년간 활약하게 된다. 이후 수원시향이 없어질 위기에 놓이자 서둘러 달려가 다시 살려내는 데 앞장섰다. 이런 인연으로 6년 동안 수원시향 지휘자로 몸담았다. 98년에는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자본금도 거의 없이 벤처 오케스트라 ‘유라시안 필하모닉’을 만들었다.99년 12월31일 밤 서울 강남의 포스코 빌딩 로비에서 연주를 한 것이 인연이 돼 포스코가 ‘대학교 순회 콘서트’를 지원해주게 됐다. 또한 ‘CJ’측의 후원을 얻어 육·해·공군사관학교에서 연주회를 열었다. 이에 힘입어 창단 첫해 40회 연주를 시작으로 70회,80회,100회 등 해를 거듭할수록 전국 27개도시를 상대로 순회연주가 늘어나고 있다. 올해에는 벌써 130회를 넘었다. “아내와 단둘이 결혼식을 올리고 베개 두 개로 신혼생활을 시작했듯이 유라시안 필하모닉의 시작도 초라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전국에서 우리를 많이 찾고 있습니다. 고전음악은 우리 시대의 창이자 분명 위대한 것입니다.”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47년 부산 출생 ▲66년 서울예고 졸업 ▲70년 서울대 음대 작곡과 졸업 ▲74년 베를린 음대 유학 ▲77년 카라얀 국제 지휘콩쿠르 입상 ▲80년 KBS교향악단 전임 지휘자 ▲89년 KBS교향악단과 국내 최초 오케스트라 녹음 출반. ▲92년 수원시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 ▲94년 ‘해설이 있는 청소년음악회’ 기획·진행 ▲98년 유라시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창단 ▲2002년 주식회사 CJ와 오케스트라 후원 계약 체결, 한국기업메세나협의회 홍보대사 ▲05년 중구문화재단과 협력계약 체결, 유라시안 필하모닉 충무아트홀 상주 ▲현 유라시안 필하모닉 음악감독, 경희대학교 음악대학 교수 ■ 저서 나는 작은새 금난새 (디자인하우스,96년), 금난새와 떠나는 클래식 여행(생각의 나무,03년)
  • 차일석 前서울신문 사장 회고록 펴내

    “인생은 성적순이 아니라 자기의 취미와 적성을 잘 살리고 시대가 요구하는 전문성의 선택여부가 성패의 갈림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차일석(75) 전 서울신문사장. 최근 자신의 회고록 ‘영원한 꿈 서울을 위한 증언’을 펴낸 소감이다. 도시행정 전문가로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와 서울시 부시장 등을 지낸 차 전 사장은 제목에서 시사하듯 책을 쓰게 된 동기에 대해 “서울의 현대화에 못다한 미련과 아쉬움을 글로나마 후학들에게 남기고 싶었다.”고 밝혔다. 15세때 8·15 광복을 맞았던 일,6·25때 미2사단 통역장교로 근무했던 일화 등을 비롯,66년 김현옥 서울시장 시절 부시장에 발탁돼 세운상가와 여의도 개발 등 격동기의 수도 서울 발전사의 비화들을 자세히 공개해 눈길을 끈다. 특히 세종로 네거리의 지하도 건설과 관련,1억원이 훨씬 넘는 공사규모였으나 현대건설의 그늘에 가려졌던 대림건설이 단돈 1원만 받고 선뜻 공사에 참여했던 일 등은 지금도 흥미를 끄는 대목이다. 차 전 사장은 “부시장으로 김현옥 시장과 서울 현대화에 정열을 불태웠던 4년이 인생의 황금기요,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었다.”고 회고할 만큼 어려울 때 서울시 현대화 작업에 같이 고생했던 고(故) 김 전 시장과의 각별한 인연을 강조했다. 또한 서울신문사 사장 시절을 회고하면서 “편집권이 정부의 입김이나 경영진의 의사에 좌우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 98년 10월 편집권 독립을 보장하는 노사협약에 서명한 것도 매우 보람된 일이었다.”고 말했다.김문기자 km@seoul.co.kr
  • 10·26재·보궐선거 2題

    여야가 오는 10월26일 실시될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필승 카드’를 찾느라 부심하고 있다. 지난 4·30 재·보선에서 참패했던 열린우리당은 “이번에도 지면 집권 기반마저 휘청거릴 것”이라는 우려가 큰 만큼 ‘사생결단’의 각오로 나설 태세다. 반면 한나라당은 ‘4·30 대첩’의 기세를 몰아 이번 재보선에서도 완승을 목표로 하고 있다. 아울러 대법원 판결을 앞둔 대구 동을의 경우,‘정권 실세’로 꼽히는 이강철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의 열린우리당 공천이 유력시됨에 따라 지난 4·30 재보선 때 ‘박빙의 승부처’였던 경북 영천에 이어 이번 재보선의 최대 격전지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여야 중량급 정치인 재기하나 각 당은 신인보다는 인지도 높은 중량급 인사들을 중심으로 압승을 안겨다 줄 ‘보증수표’를 찾느라 부심하고 있다. 이번주부터 공천심사위를 가동하는 열린우리당 내에서는 전직 지도부를 지낸 원외인사와 현역 비례대표 의원의 차출설이 끊임없이 나돌고 있다. 지난 대선 당시 선거대책본부장을 지낸 뒤 불법 대선자금 수수혐의로 구속됐다가 지난 8·15 때 특별사면된 이상수 전 의원이 부천 원미갑에서 재기를 노리고 있다. 지난 총선에서 낙마하고도 당 대표까지 지낸 이부영 전 의원의 경기 광주 출마설도 있다. 이에 맞서 한나라당에선 지난 총선 때 서울 강남을 대신 취약지역이던 경기 고양 일산갑에 출마했다 고배를 마신 홍사덕 전 의원이 재기의 칼을 갈고 있다. 홍 전 의원은 최근 금배지를 잃은 박혁규 전 의원과 지역협의회원들의 호응 속에 경기 광주 출마를 결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TK 목장의 결투’ 재연되나 오는 15일 대법원 판결에서 대구 동을이 재보선 지역으로 확정될 경우,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은 지난 4·30 재보선 때 경북 영천에 이어 다시 한번 ‘한나라당의 심장부’나 다름없는 TK(대구·경북)에서 사활을 건 승부를 펼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권력 실세로 꼽히는 이강철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이 ‘사전 선거운동’이라는 야당의 비난을 무릅쓰면서까지 열린우리당의 영남 교두보 확보를 위해 공을 들이고 있다. 한나라당으로서는 버거울 수밖에 없는 상대인데다 지역 여론도 예전 같지 않아 섣불리 후보를 내세웠다가는 자칫 패배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이에 따라 당 지도부가 홍사덕 전 의원을 대구 동을에 내보내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김종대 전 보건복지부 기획관리실장·조기현 전 대구부시장 등도 자천타천으로 거론된다. 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찢긴 태극기… 교민들 발동동

    찢긴 태극기… 교민들 발동동

    |워싱턴 이도운특파원|미국 남부 지방을 초토화시킨 초대형 허리케인 카트리나는 뉴올리언스에 게양됐던 태극기에도 상처를 입혔다. 뉴올리언스 주민 신평일(63)씨는 9일 베테란스 블루버드에 자리잡은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공원에 상시 게양돼 있던 태극기가 카트리나의 강풍에 절반이 찢겨 나갔다고 서울신문에 전해왔다. 신씨 등 한국교민들은 찢겨 나간 태극기를 바라보면 가슴이 찢어지는 듯 괴롭지만 현장 접근이 어려운 탓에 새 태극기로 교체하지 못하고 있다. 뉴올리언스의 하늘에 처음 태극기가 휘날린 것은 지난해 8월15일. 신씨 등 교민들은 20년 전 건립된 한국전 기념공원에 태극기가 없는 점을 아쉽게 생각해 2002년부터 시의회에 태극기 게양을 줄기차게 청원했다. 시의회는 결국 지난해 7월 태극기 게양을 허가했고, 광복절에 맞춰 미 군악대가 참가한 가운데 성대한 태극기 게양 행사가 열렸다. 현재 뉴올리언스 말고 미국 내에서 태극기가 상시 게양되는 곳은 뉴욕주 올버니와 뉴저지주 포트리의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공원뿐이다. dawn@seoul.co.kr
  • [데스크시각] 연정, 그리고 시시포스의 신화/구본영 정치부장

    “스스로의 힘에 겨운 그 무엇을 추구하다 좌절하는 자를 사랑한다.”기자는 7일 노무현 대통령과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의 회동을 지켜보면서 생뚱맞게도 철학자 니체의 말을 떠올렸다. 난해하기만 해 학창시절 읽는 것조차 참을성이 요구됐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에 나오는 구절이다. 니체의 어록을 새삼스레 반추한 것은 대연정이야말로 애당초 타협하기 힘든 의제였으리라는 데 생각이 미쳤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합의문 발표도 없이 헤어지는 뒷모습에서 받은 느낌이다. 물론 니체는 차라투스트라(초인)의 입을 빌려 결과보다는 최선을 다하는 과정에서 삶의 허무를 초극하는 길이 있음을 강조하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신화 속의 시시포스처럼 말이다. 그러나 개인으로서 소신 추구와 국정 어젠다를 추진하는 일은 그 접근방식이 달라야 한다고 본다. 후자는 지도자의 선의 못지않게 실현가능성이나 결과에 대한 평가가 중요하다는 점에서다. 기자는 “망국적인 지역구도를 타파하기 위해서” 선거구제를 개편해야 한다는 노 대통령의 제의에 정치공학적 노림수가 있다는 일각의 의심에 동의하지 않으려 한다. 이를 위해서 “대통령직을 걸고서라도” 한나라당과 연정을 하고 싶다는 제안의 진정성도 믿고 싶다. 노 대통령은 과거 지역주의 타파를 위해 실제로 몸을 던진 적도 있지 않은가. 대연정을 추진하는 이면의 노 대통령의 심경을 역지사지하면 임기중반에 20%대까지 곤두박질한 여론 지지도가 무엇보다 견디기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타고난 승부사인 그로서는 이 상황을 타파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을 터다. 현 여소야대 상황을 깨는 것이야말로 그 첫걸음이라고 판단했을 법도 하다. 올 8·15경축사에서 국정목표를 과거사 정리와 연정 추진으로 선회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그러나 제안의 진정성과 실효성은 별개의 문제일 수 있다. 특히 국정 최고책임자가 잘못 정한 우선순위로 인해 국민이 감당해야 할 기회비용은 결코 적지 않다. 청와대의 연정 제안에 한나라당과 민노당·민주당 등 야권은 물론 여당인 열린우리당 내에서도 볼멘소리가 터져나오고 있기에 하는 얘기다. 게다가 선거구 개편 문제는 각 정당과 여야 정치인 개개인의 이해관계가 종횡으로 얽혀 있다. 때문에 중대선거구제이든, 아니든 대통령이 원하는 방향으로 몰아가기에는 지난한 과제다. 알렉산더 대왕이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단칼에 푼 것처럼 지고지선한 선거구제를 찾기도 쉽지가 않을 뿐더러 단번에 이를 합의하기도 어렵다는 뜻이다. 사실 지역주의 타파는 우리의 오랜 숙제이다. 하지만 1인당 국민소득이 10년째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현실을 보라. 대졸 실업자들이 읊조리는 ‘청백전’(청년백수의 전성시대)이라는 자조섞인 신조어는 또 어떤가. 지역주의가 작금의 총체적 국정 난맥상이 얽혀있는 ‘고르디우스의 매듭’이라고 보는 건 지나친 논리의 비약인 것 같다. 더욱이 엄밀히 말해 지역구도로 말미암든 아니든 ‘여소야대’가 정당한 선거절차의 결과라면 승복하는 게 민주주의일 것이다. 대통령도 그러한 ‘국민의 선택’을 제약조건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가능한 한 그 바탕 위에서 국정 우선순위를 정해 임기말까지 최선을 다하는 게 순리라는 말이다. 반환점을 돈 참여정부가 남은 임기 동안 스스로 친 ‘연정 올인’의 덫에서 벗어나야 할 필요성도 여기에 있다. 거창한 목표보다는 실현가능성 높은 개혁 아이템 위주로 국정의 우선순위를 새로 짜야 한다는 뜻이다. 화려한 구호와 웅대한 비전이 집권과정에는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집권후 국민적 평가는 치세의 결과, 즉 실제로 나타난 성적표를 토대로 매겨진다는 엄연한 현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미국 전직 대통령중 걸프전 승리 등 화려한 외치를 한 조지 H 부시(공화당)나 인권외교라는 거룩한 기치를 내건 지미 카터(민주당)등은 모두 연임에 실패했다. 미국민의 복지를 실질적으로 높이는 데 기여하지 못한 이들을 미국인들은 훌륭한 대통령으로 기억하지 않는다. 남의 산의 거친 돌도 내 산의 옥을 다듬는데 써야 한다는 차원에서 이보다 좋은 전례도 없다. 반환점을 돈 마라토너들도 전반부 기록이 좋지 않을 때는 과도한 목표를 세워 무리한 스퍼트를 하지 않는 법이다. 실제로 기권을 각오한 페이스메이커가 아니라면…. 구본영 정치부장 kby7@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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