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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거주 외국인 지문날인 합법”/일 최고재판소

    【도쿄 UPI 연합】 일본 최고재판소는 16일 지문날인을 하지 않은 미국인에게 10년동안 해외여행을 하지 못하도록 한 일본 법무성의 행정조치를 합법이라고 판시했다. 최고재판소는 이날 칼럼니스트인 모리카와 카테린씨(42·여)가 지문 날인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자신에 대한 재입국허가를 거부했던 법무성의 결정을 무효화해줄 것을 요구하며 제기한 소송에 대해 이를 이유없다고 판시했다. 모리카와씨는 미국에서 태어난 미국인으로 지난 73년부터 일본에 거주해 오면서 82년9월 외국인 거주법에 따른 지문날인을 거부했었다.한편 내년 1월부터 발효되는 외국인 거주법은 한국인과 대만인 및 영주권을 갖고 있는 다른 외국인들에 대해 지문날인제도를 생략하고 있다.
  • 신공항청사 설계심사 양승신씨(인터뷰)

    ◎고유미에 현대감각 잘 조화/동북아 중심공항 역할 충분/국내외 38업체 응모… 공정하게 선정 『이번에 당선된 작품은 한국의 전통미와 현대적인 감각이 조화있게 꾸며져 있는 것으로 평가됨니다』 10일 신국제공항 여객청사 설계당선작을 발표한 한국공항공단 신공항건설본부의 양승신건축이사(46)는 신공항 여객청사가 21세기 동북아의 중심공항으로서 역할을 충분히 해낼 것으로 확신했다. 이번 심사의 실무책임을 맡았던 양이사는 『이를 계기로 국내 건축설계업계가 국제무대로 뻗어나갈 수 있는 기초를 마련했다』고 그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이같은 이유를 『내로라하는 미국 프랑스 등 선진 5개국의 설계사들과 컨소시엄을 형성,공동작업을 벌임으로써 우리 기술을 한차원 높이는데 좋은 기회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번 공모에 국내외 38개 건설설계업체가 10개팀의 컨소시엄을 구성,대역사에 도전했다』고 전제,『이때문에 보다 공정하고 효과적인 심사가 될 수 있도록 만전을 기했다』고 말했다. 이들 외국의 건축설계업체들은 세계유수의 공항 건설경험이 풍부하고 첨단 노하우를 축적한 초 일류급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그는 『이전에도 큰 규모의 국내 건설사업에는 국제공모를 실시했지만 이번에는 참가업체들이나 심사위원 등의 수준으로 볼때 명실상부한 첫 국제공모』라고 강조했다. 특히 유럽최고의 건축가인 리카르도 보필(스페인)이나 창이공항을 설계한 츄아 싱가포르건축협회장,미국 건축사협회장인 세실 스튜어트네 브래스카대학장 등은 세계적인 공항건설 전문가들이라고 소개했다. 또 국내의 심사위원 7명도 이광로서울대교수(전 건축학회장),송종석연세대교수(현 건축학회장)등 모두 국내 건축계에서는 일류급이라고 덧붙였다. 이들 심사위원들은 한결같이 우리의 신국제공항사업이 미래지향적이고 세계적인 대역사이므로 자신들이 심사에 참여하게된데 대해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또 『우리의 신공항 사업이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만큼 대역사인탓에 일본등 각국이 경계의 눈초리로 지켜보고 있다』면서 『이들 나라에서도 공항건설 계획을 추진하고 있으나우리와는 비교가 안된다』고 자신했다. 68년 연세대 토목학과를 졸업,건설부 국토계획국에서 공무원생활을 시작한 그는 73년 교통부로 옮기면서 20년동안 공항건설만을 전담해온 공항건설 전문가이다. 『12일 첫 삽질하는 수도권 신공항이 동북아의 명실상부한 중심공항으로서 부족함이 없도록 완벽을 기하겠다』고 그는 다짐했다.
  • 주한 베트남 대표부/초대대표 오늘 부임

    구엔 푸 빈 주한베트남 연락대표부 초대대표가 10일 하오 서울에 부임한다. 빈 대표는 70년에 외교관생활을 시작,73년부터 77년까지 북한주재 대사관에 근무했으며 90년부터 지금까지 외무부 수석국장인 사무총국장직을 맡아왔다.
  • 재미무용가 홍신자/김덕수 사물놀이패/몸짓­소리 한무대서 만난다

    ◎17∼18일 세종문화회관서 「문」주제 공연/데이비드 시몬스의 전자음악도 선보여 세계무대에서 가장 한국적인 몸짓과 소리로 각광받는 재미무용가 홍신자씨와 김덕수네 사물놀이가 한무대에서 만난다.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인의 정서에 닿아 있음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이들은 오는 17,18 양일간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문」을 주제로 한 공연을 갖게 된다.(공연시간은 하오 7시) 인간이 나서 죽기까지 거쳐야 할 온갖 과정과 희로애락의 감정을 문으로 상징해 펼쳐갈 이번 공연에는 세계적인 일렉트릭 뮤지션 데이비드 시몬스와 바이올리니스트 제이슨 황이 함께 출연한다.타악기와 현의 만남,사물놀이의 원시적 소리와 전자음악의 특이한 만남이 공연팬들의 기대를 모으고 있다. 공연시간은 90분이며 제례의식에서 출발해 인간의 희로애락감정을 문을 통해 표현한다.마지막으로 유희와 기쁨의 감정을 축제형식으로 표현한다.문은 열려있는 문,12대문등 구체적인 문에서 추상적인 문의 표현으로 나아가며 무대는 어둡고 엄숙함의 세계에서 밝음과 가벼움의세계로 전이된다. 사물놀이의 폭발적이고 확산적인 음의 세계와 최소한의 동작표현,에너지를 안으로 응집시켜가는등 미니멀리즘을 추구해온 홍신자의 춤의 세계가 어우러져 한국적 감성이 유감없이 펼쳐질 것으로 기대된다. 홍씨는 73년 뉴욕무대에 데뷔할 즈음만 해도 포스트모던계열의 전위무용가로 국내에 알려졌다.76년부터 3년간 인도에서 인도무용과 철학을 공부하는 동안 명상철학자 라즈니쉬와의 만남을 통해 동양적 선사상을 춤과 접목시켜 왔으며 최근에는 원초적 소리와 몸짓의 추구에 주력해왔다.총연출은 공연예술의 교육,기획등을 담당해온 스튜디오 메타의 대표 강순혁씨가 맡았고 조연출로는 극단 「작은 신화」의 대표 최용훈씨가 참여한다.
  • 대학교부설 사회과학연/국제학술교류 창구로 자리

    ◎경남대 극동문제연… 연대 동서문제연·인하대 국제관계연 등/대학교 자체재정 지원… 착실하게 성장/영문저널 발간·국내연구 해외소개 앞장 대학부설 사회과학연구소들이 연구업적을 축적하는 가운데 국제학술교류활동을 활발히 펼치는등 내실있는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정부와 기업의 지원을 받는 자연과학연구소와는 달리 이들은 대학자체의 노력으로 성장해왔다는 점에서 새롭게 평가됐다. 최근 설립 20주년을 맞은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소장 이만우)와 연세대 동서문제연구원(원장 정구현)을 비롯 한양대 중소연구소(소장 유세희),인하대 국제관계연구소(소장 백광일)등은 영문저널발간,저서공동집필및 출판,국제학자들과의 교류등을 통해 외국이론의 국내소개및 국내학자 연구의 해외소개등에 큰 업적을 남겼다.현재 대학연구소 가운데 국제관계 영문저널을 내고 있는곳은 연세대와 경남대 인하대 세곳.봄·가을 두차례씩 국내외 학자들의 논문을 엄선하여 발간,국내외에 유료로 배포하고 있는 이들 저널은 외국학자들이 한국학자들의 연구를 접할수 있는거의 유일한 통로로 간주되고 있다. 이 가운데 가장 오래된것은 19 73년에 창간된 연세대의 「The Journalof Eastand West Studies」(동서연구).그 다음에는 경남대의 「Asian Perspectives」(아시아의 조망)가 77년에 창간된데 이어 85년에 설립된 인하대 국제관계연구소의 경우는 86년부터 「PacificFocus」(태평양의 초점)를 펴내고 있다. 또 외국출판사와의 공동출판은 경남대가 86년 최초로 미국의 웨스트뷰사와 공동으로 「북한의 대외정책」이라는 영문서적을 펴낸후 지금까지 모두 6권을 시리즈로 발행했다.또 인하대 역시 웨스트뷰사와 공동으로 88년 「제3세계 방위산업의 딜레마」라는 영문서적을 낸후 지금까지 3권을 펴냈다.연세대는 이와는 달리 동서연구시리즈라는 영문서적을 자체 출판,모두 22권을 간행했다.이들 영문서적의 경우 국제판매망을 이용,전세계적으로 보급함으로써 영문저널과 함께 우리 연구성과를 세계에 알리는데 큰몫을 하고 있다. 이들 연구소들의 해외학자들과의 학술교류도 단순한 학술세미나 차원을 넘어 다양하게 이루어졌다.경남대의 경우 하기 해외학자초빙프로그램에 따라 한국을 연구하는 해외학자들의 기초자료수집및 연구활동을 지원하고 있다.연세대는 10여개국의 자매 연구소에 70여명의 연구원을 파견하고 10여명의 해외학자를 초빙하는 형식으로 교류하고 있다.또 인하대는 모스크바대학과 미국 메릴랜드대학등에 연구원들을 교류하면서 지난 여름에는 경인지역 기업인 50여명을 3주간 미국 조지워싱턴대학에 보내 국제관리자과정인 「인하­조지워싱턴 프로그램」에 참여케했다.이는 대학연구소가 학내 학문적 교류뿐아니라 사회교육 교류에까지 영역을 확대시키는 본보기가 됐다.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도 일반학자들에게 모든 자료및 시설을 공개,학술자료지원도 다양하게 펼치고 있다.특히 본교출신이 아니더라도 박사학위소지자나 과정중에 있는 학자들에게 연구실및 학술지 발표기회 제공등 실질적인 도움을 통한 학문의 저변확대에 노력해왔다. 이같은 대학연구소들의 다양한 학술교류및 전파 노력은 예산등의 이유로 거의 유명무실한 상태에 있는 많은 대학연구소들에교훈을 줄만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 소설가 황순원씨(이세기의 인물탐구)

    ◎소설을 시의 경지로 승화시킨 “청산의 백학”/작품 끝낼때마다 “마지막 작” 심정으로/문장·단어 하나까지 보석처럼 갈고 닦아/시·소설의 잡문엔 손 안대… 문학박사학위도 거절 서울신문사는 증면과 더불어 새로운 기획물 「인물탐구」를 매주 화요일 1페이지에 걸쳐 연재키로 했습니다.이 와이드 기획물은 사람들이 가장 흥미를 가지고 관심있게 대하는 사람의 이야기 인물평전입니다.그것은 삶의 모습을 담은 인생일 수도 있고 세상살이와 고리를 함께 하는 인간의 진면목으로도 나타날 것입니다.집필은 본사 이세기논설위원이 맡았습니다. 중학교 국어교과서에 실렸던 「산골아이」나 「소나기」「학(학)」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을 것이다. 그리고 투명하게 정제된 청강(청강)의 문체와 명편에 흐르는 별빛같은 이야기는 우리의 정서속에 총총한 감동으로 남아있다. 새삼 황순원문학과 한국문학사에서 그가 점하고 있는 오늘의 위치를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청산의 백학」「소설을 시의 경지로 승화시킨 언어미의 추구」「하명과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절고의 기품」등 이미 잘 알려진 시중의 찬탄을 되풀이 열거하는 것도 무색한 노릇이다. 「소설가는 소설로 말한뿐 더이상 다른말은 하지 않는다」,그래서 독자들에게 책임지고 소설을 내놓기위해 그는 문장 한구절 단어 하나에 세심하게 배려하여 「토씨」 한 자도 잘못 놓인 바가 없다는 정평을 받고있다. 쓴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남에게 읽힐 수 없다는 신념으로 이미 출간된 시집 「방가」에서 27편중 12편을 빼 버리고는 『내가 이렇게 버린 것을 이후에 어느 호사가가 있어 발굴이라는 명목으로든 뭐로든 끄집어 내지 말기를』당부하기도 한다. 작품이 활자화되기 이전까지 그만의 맞춤법과 띄어쓰기를 지켜 초교에서 재교까지 꼼꼼하게 손보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또 넘치는 감정의 뒷받침없이는 작품을 써본적이 없으며 마음속에서 우러나오지 않으면 쓰지 않아야 하는 것도 작가가 해야 할 일이라고 이르고 있다. 일사일언적(일사일언적)인 그의 압축된 문체의 시정신은 「생각나면 시구를 적어두는 운문적 스케치 방식,사전구상에매이지 않고 붓이 생각해서 쓰도록 맡겨두는 데서 온 탄력성」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오늘의 문장은 말하듯이 써야한다고 하지만 귀로 듣는 말과 눈으로 읽는 글이 같을 수 있을까. 그는 언젠가 들은 감명깊은 강연을 후에 속기록으로 살려 글로 옮겨쓴 것을 보고는 그 지리멸렬함에 크게 놀랐다고 말한다. 「역시 말하듯이 말하고 글쓰듯이 써야 한다」고. 이렇게 자신의 작품을 보석처럼 갈고 닦는 언어 탁마(탁마)에도 불구하고 그는 소설을 끝낼때마다 「나는 과연 이것이 마지막 작품이라는 심정으로 최선을 다했는가」를 자신에게 묻기를 잊지 않는다. 이른바 지난 60년 동안 시와 소설외에 단 한번도 잡문을 쓰지 않았고 신문연재소설을 거절해 왔으며 어떤 단체에도,인터뷰에도 응하지 않았다. 그 제자들이 새로 책을 내면서 서문이나 발문을 부탁하면 정중하게 이를 말린다.그자신도 그의 책속에 서문이나 발문을 써본적이 없기 때문이다. 인터뷰나 서문이나 발문은 독자가 소설을 읽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에서다. 그가 재직했던 대학에서 문학박사학위를 수여하려 할때도 「소설가는 소설가 만으로 충분하다」는 이유로 이를 깍듯이 거절했다. 이렇게 표면에 드러난 예만으로는 그가 얼핏 까다롭게만 비치기 십상일것이다. 물론 문학을 하는 길에서는 공정·엄격하고 단호하고 결벽하다.그외엔 인자하고 다감하고 말을 아끼고 술을 즐긴다. 주량은 3년전까지는 소주 한병반,주력은 문단데뷔보다 빨라 13세때부터 체증(체증)으로 소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문학하는 후배들에게 둘러싸여 술마시는 자리에서도 명정(명정)의 모습을 보이거나 비틀거려 누가 댁까지 바랜일도 없다. 아무리 취중이라도 상대방의 이야기를 빛나는 형안(형안)으로 경청하고는 내용이 정확치 않으면 두번 세번 되물어 확인하기 때문에 어설픈 지식이나 주워들은 풍월은 통하지 않는다. 다만 「술」에 얽힌 일화라면 그의 친구이며 번역문학가인 원응서씨와의 총죽지교(총죽지교)를 빼놓을 수 없다. 황순원과 술자리에서의 「마지막잔」이야기가 그것이다. 어느 술자리에서든지 원응서씨는 『그 마지막 잔은날주게』하는 버릇이 있었다.술이 바닥에 이르면 이유도 없이 친구는 이 술을 탐냈고 언제부턴가 마지막 술은 원응서씨의 몫으로 돌아갔다. 73년 낚시갔다가 쓰러져 친구가 타계하자 황순원씨는 술마시는 자리에서 반드시 이 마지막 잔을 친구에게 따라주었다. 잔에 술을 따라 빈그릇에 버리는 이 의식은 지난 20년간 한결같이 지켜져온 그의 친구를 그리는 아름다운 슬픔의 장면이다. 역시 그의 면모를 엿볼 수 있는 이야기라면 77년 서울신문사 신춘문예 심사때의 예가 있다. 그때 최종심에 두편이 남게되자 같은 심사위원인 홍성원씨가 『두편중 선생님이 고르시지요』했다. 아무래도 대선배인 황순원씨가 당선작을 확정하는 것이 옳다고 여겨졌으나 그는 굳이 홍성원씨의 선택에 따르겠다면서 이를 사양했다. 『하나는 군대물로 장래성이 보이고 다른 하나는 뱃사람 얘기로 소설기법상 우수하므로 신춘문예 당선작으로는 장래성 보다 소설로서 완벽한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럼 뱃사람 얘기로 결정하세』 뱃사람 얘기로 결정후 잡담하는 자리에서『군대물을 쓴 사람은 바로 내 제자』라고 했다는 얘기다. 그는 아무리 아끼는 제자라도 작품이상으로 그를 부추기거나 추켜세우지 않는다.또 어떤 경우에도 남을 악평·혹평하는 법이 없다. 그가 문단후배들을 즐겁게 했다면 72년 2월 현대문학사가 주최한 문인극 「양반전」에 특별 찬조출연한 일이다. 유현종 연출로 한국일보 13층 홀에서 공연된 이 연극에서 그는 박영준 최정희씨와 함께 「동네사람」으로 분장해서 모처럼 문단에 훈훈한 화제를 뿌려주었다. 황순원씨는 언제 어디서나 명징·적연할뿐 넘치거나 눙치지 않는다.보기싫은 것·듣기 싫은 것·하기 싫은 것을 명료하게 구분하여 전혀 주저가 없다. 오산중때 남강 이승훈씨의 단정한 풍채와 인품을 보고 『남자가 늙어서도 저렇게 아름다울 수가 있구나』했다는 그는 그때부터 자신도 「늙어서 아름다운 남자축에 들수 있기를」마음속에 그려왔는지도 모른다. 황순원씨는 평남 대동군 재경면 빙장리에서 교육자이며 조림사업을 하던 황찬영씨와 장찬붕여사의 아들 3형제중 장남.숭실학교 출신인부친은 숭덕학교 교사시절 바로 남강과의 기미독립만세사건으로 수감된 적이 있었고 64년 창우사에서 펴낸 「황순원 문학전집」(전6권)제자는 바로 부친의 친필이다. 숭실중으로 전학하여 졸업후 일본 와세다 제2고등학원 재학때 나고야 김성여전에 다니던 양정길여사와 35년 결혼,동갑인 양여사와는 평양 숭의여고 문예반장때부터 교제해온 사이다.자녀는 시인이자 서울대 영문과 교수인 동규씨(54)등 3남1녀. 요즘은 부인과 함께 새벽7시면 사당동 대림아파트 단지내 공원을 1시간씩 산책하면서 처음 문단 출발때처럼 오랜세월 가슴에 담아두었던 시어를 고르고 있다. 삶을 정관하는 절제된 서정과 인간에 대한 근원적 애정,보석을 눈에 띄지않게 장식한 듯한 그의 작품에서 우리가 감동하게 되는 것은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울같은 청휘,또는 고치에서 막 뽑히기 시작한 명주실 같은」바로 그 싱그러운 시와 문득 마주치게 되기 때문인 것이다. 그는 최근 시에 이렇게 쓰고 있다. 밤늦어 플랫폼에 내 긴 그림자를 끌고 섰을때 밀물이 거슬러 오르는 강물을내 저만치서 바라볼때 가을걷이 끝낸 들판을 내 해걸음녘에 거닐때 그러나 나홀로 내버려두지 않고 항상 곁에 지키고 있는 이가 있다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지만 그이가 누구라는걸 나는 안다­.
  • 마광수문학/예술­외설한계 법원판결 주목

    ◎사법대응 검찰의 논리/변태 등 풍속저해 처벌 불가피/문학의 사회적 계도기능 강조 검찰이 29일 단행본 소설 「즐거운 사라」의 저자 마광수교수(40·연세대)를 구속한 것은 예술의 이름아래 범람하는 외설표현물에 대해 사법당국이 실정법을 내세워서라도 본격 대응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풀이된다. 문학작품 외설시비가 이처럼 본격적으로 「사법의 도마」위에 오른 것은 69년 건국대 박승훈교수의 「O년구멍과 뱀과의 대화」(벌금 5만원)및 73년 염재만씨의 「반노」(1심 벌금 3만원,2·3심 무죄)이후 처음으로 「예술표현의 한계」여부를 둘러싸고 문화계·법조계 안팎의 찬반논쟁을 빚고 있다. 검찰은 소설 「즐거운 사라」가 한마디로 『포르노영화를 문자화시켜 놓은 변태적 음란소설』이라고 말하고 있다.미대 3학년 여학생 「사라」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남녀의 갖가지 변태 성행위 및 동성애,사제간의 성관계 등 사회통념을 명백히 벗어난 애정행각으로 일관,작가의 주관적 의도와는 관계없이 실정법에 위반되는 「음란도서」라는 것이다.검찰이 마교수에게 적용한 형법조항 2백43·2백44조는 「음란한 도서·그림·사진 등을 제작·판매·전시한 자는 1년이하의 징역 또는 40만원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현재 마교수는 『성의 리얼리티를 문학을 통해 형상화했을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개인의 가치관·사상도 많은 사람을 상대로 표현되는 외면적 행위는 사회의 미풍양속을 파괴치 않을 본질적 제약을 받는다』는 것이 검찰의 입장이다. 지난 75년 대법원은 「반노」의 음란성 여부에 대해 『무분별한 성행위의 유희와 그 뒤의 허망함을 교차시켜 새로운 자아발견을 모색하려는 주제의식이 인정된다』며 무죄를 확정한 바 있다. 일본 최고재판소는 57년 DH 로렌스의 소설 「채털리부인의 사랑」에 대해 『작품의 예술성만을 강조하고 이에 대한 일체의 도덕적·법적 평가를 거부하는 예술지상주의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유죄를 선고했다. 미국·독일 등 외국의 판례에서도 과도한 성적묘사로 사회의 기본적 윤리가치를 훼손하고 범죄유발의 위험성이 인정되는 한 작가의 예술적 의도도 법적 제재의 대상이 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는게 검찰측의 설명이다. ◎자성분위기 문화계 반응/출판계 자율적기준 마련 시급/“표현의 자유 위축” 시각 표출도 최근 외설시비가 일고있는 장편소설 「즐거운 사라」의 저자인 연세대 마광수교수(41·국문학)와 이 책을 펴낸 청하출판사 대표 장석주씨에 대해 검찰이 29일 구속한 것은 사회·문화적으로 팽배한 퇴폐성에 대해 한계를 긋겠다는 상징적인 의미로 풀이된다. 이에따라 저자가 국내 유명대학교수인데도 문학작품의 내용 및 표현을 둘러싸고 정부의 행정적 제재차원을 넘어 검찰의 구속수사라는 극한상황으로까지 비화됐다.문제의 발단이 된 마교수의 「즐거운 사라」는 가족이 이민을 가고 혼자 남은 한 여대생의 성적 편력을 통해 우리사회가 안고 있는 가치관의 문제를 거침없이 다룬 작품.이 작품은 주인공 사라가 옷과 액세서리를 사기위해 매춘도 하고 고교동창생과 동성애하는 장면,대학교수등과의 성관계등에 대한 묘사가 적나라하게 표현돼 있다.또 이 작품의 문학성에 대해 「성문학의 단계에 이르지는 못한 작품」이라는 평가가 없는 것도 아니다. 일단 문학의 문제에 작가와 독자,나아가 사회·종교단체등 민간단체들의 비판에 앞서 정부가 사법조치를 한 것은 당국이 나름대로 음란기준의 한계를 부각시킨 것으로 보인다.그리고 이는 일본 여배우의 누드집 발매를 비롯해 일부 출판·잡지의 무책임한 퇴폐성이 우려의 범위를 넘어섰다는 지적이 나온 때 행해진 조치라 더욱 관심을 끈다. 법원의 최종판단이 내려지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리겠지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출판계가 자율적인 기준을 마련해야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외국의 경우처럼 아예 외설문학을 위한 제도적 통로를 따로 마련해 무질서한 국내출판 유통구조를 바로잡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는 지적도 있다.이번 사건은 「성」표현에 대한 세대간의 시각차를 드러낸 것으로도 어느 정도 평가돼 「성표현에 대한 문학논쟁」으로 비화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우리 문단이 얼마만큼 자정력을 갖추고 있는가도 이번에 딛고 넘어갈 문제점으로 부각되기도 했다.이와 더불어출판계 및 문단에서는 「검찰의 문학작품에 대한 자의적인 해석으로 표현의 자유가 위축되는 것」아니냐는 시각도 표출됐다.
  • 저축의 날 포상자·유공기관/국민훈장 동백장 대원자동차대표 박병남씨

    ◎생활비만 남기고 대부분 저축/직원들에 1인 2통장 의무화 『가난을 벗기위해 쓰고 놀고싶은 욕망을 억누르고 밤낮없이 일한 지난 50년의 생활에 후회가 없습니다』 저축의 날에 국민훈장 동백장이란 최고영예를 차지한 박병남씨(63·대원자동차공업대표)는 남다른 감회에 젖었다. 대전에서 1백여명의 직원을 두고 자동차 정비업체를 운영하는 박씨는 자신의 근검절약 생활외에 전직원에게 예금통장 2개이상을 갖도록하고 매달 2번의 경제교육을 실시한다. 충남 서산의 벽지에서 태어난 뒤 부모를 따라 인천·강화등지를 떠돌다 국교1학년때 어머니를 잃으면서 시련이 닥쳤다. 끼니를 굶으며 국교를 졸업하고 인천의 금은방에 취직한뒤 『부지런히 기술을 배워 돈을 모으겠다』는 신념으로 낮에는 직장에서,밤에는 야간중학에 다녔던 젊은 시절이 오늘의 밑거름이 됐다. 군복무시절 병기창에서 익힌 기술덕분에 자동차부품업체를 지난 63년 설립한 이후 최저생계비만 남기고 수입의 대부분을 저축했다. 지난 73년부터 중소기업은행과 거래하며 20여개의 통장에수억원을 모을수 있었다. 매일 은행에 나가 자신과 직원의 통장을 관리해주고 있다.
  • M­TV드라마 「제3공화국」연출 고석만PD(인터뷰)

    ◎“3공의 공과 역사적 시각으로 재정리” 『61년 5·16혁명 발발에서부터 72년 유신헌법 제정에 이르기까지 「격동의 11년」을 드라마로 재현,우리현대사를 재조명해보는 계기로 삼고자 합니다』 내년 1월부터 방영될 정통 정치드라마 「제3공화국」(이영신극본)의 연출을 맡은 고석만 MBC프로덕션 드라마담당 부국장. 「제1공화국」「제2공화국」「거부실록」「야망의 25시」등 주로 사회성 짙은 화제작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아온 그는 지난해 4월 15회를 마지막으로 도중하차한 대하드라마 「땅」에 대한 아쉬운 기억탓인지 다소 긴장된 표정이다. 『유신이후 20년의 세월이 흐른 만큼 차제에 제3공화국의 공과에 대한 엄정한 역사적 재정리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역사에의 균형감각을 강조한 고PD는 『인간 박정희의 개인사를 진실에 입각,가감없이 그려나갈 작정』이라고 제작방향의 일단을 내비친다. 11월15일부터 본격 촬영에 들어갈 「제3공화국」은 총26부작 70분물의 주간단막극 형식으로 관련 생존자들의 생생한 육성증언과 함께 각종 미공개 영상자료를 삽입,다큐멘터리로서의 의의를 살린다는 복안이다.체질적으로 「악역」을 자처,「어려운 시절」도 겪었다는 고PD.그는 이번 작품제작과 관련,『어떠한 형태의 「외압」도 단호히 물리칠 각오』라며 끝까지 역사적 소명의식을 갖고 애정어린 눈으로 지켜봐 줄 것을 당부한다. 중앙대 연극영화과를 나와 73년 MTV프로듀서로 입사,올해로 연출경력 20년째인 그는 언젠가는 극영화에도 손을 대고 싶다는 야심이다.
  • 중견시인,가을 시단 새롭게 수놓아

    ◎김영인·임영조씨 등 신작 잇따라 출간/안정된 시세계 추구… 시단에 무게 실어/지금까진 젊은 세대 주도… 새 활력소 기대 중견시인들의 새 시집들이 잇따라 가을시단에 쏟아지고 있다.최근들어 일부 젊은 시인들의 시에 대해 「경박하다」「가볍고 통속적」이라든가 「상업주의에 오염돼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는 가운데 나온 중견시인들의 시집은 시단 경향에 대한 반성으로 받아들여진다. 중견시인들의 시집발간은 올해 소월시문학상을 수상한 시인 김명인씨의 신작시집 「물 건너는 사람들」과 임영조씨의 「갈대는 배후가 없다」(이상 세계사펴냄)로 물꼬를 트기 시작했다.그리고 소설가로도 널리 알려진 윤후명씨의 두번째 시집「홀로 상처위에 등불을 켜다」(민음사펴냄)와 이달말 창작과 비평사에서 나올 예정인 강은교,박경석,김정환등의 시집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들 시집은 사회적 의식과 개인의식이 끊임없이 연관되면서 각기 나름의 안정된 시세계를 추구하고 있다는 평을 듣고있다.이는 시단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면서 재기발랄하고 신선한 감각의 젊은 시인들의 시가 주류를 이뤄온 우리 시단에 무게와 깊이를 부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지난 73년 중앙일간지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김명인씨의 세번째 시집인 「물 건너는 사람」에는 한 세계에 안주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방황하는 유랑민의 강인하고도 슬픈 울림들이 배여있는 시 51편이 실렸다.한편 이보다 2년 앞서 같은 일간지 신춘문예로 등단한 임영조씨는 그의 세번째 시집인 「갈대는 배후가 없다」를 통해 자연현상과 현실에 대한 자신의 솔직하고도 순수한 열정을 그림처럼 담아냈다. 지난 67년 역시 일간지 신춘문예에 시「빙하의 새」로 등단한 윤후명씨가 77년 첫 시집「명궁」을 낸 이후 15년만에 선보인 두번째 시집은 「홀로 상처에 등불을 켜다」.소설뿐 아니라 자신의 본업인 시에도 다시 관심을 쏟고 있음을 보여주었다.이달말쯤 출간될 예정인 강은교씨의 새 시집「벽속의 편지」는 「오늘도 너를 기다린다」이후 3년만에 내놓은 시집.71년 첫시집「하무집」이후 작품속에 일관되게 깔려있는 「작고 낮은데 대한 애정」이 여전히 주조를 이룬다. 60년대에 등단해 주로 70∼80년대에 활동했던 박경석씨도 오랜만에 자신의 세번째 시집「차씨 별장길에 두고 온 가을」을 발표할 예정.「황색예수전」의 시인 김정환씨도 「희망의 나이」라는 제목의 시집을 통해 이데올로기에 편향됐던 기존의 경향과 형식에 대한 반성및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문학평론가 이남호교수(고려대)는 『중견시인들의 시집발간 자체가 시단의 주목을 받는다는 것은 그동안 우리 시단이 젊은 시인들 중심으로 운영돼온 불균형성을 보여주는 실례』라고 지적한다.그러면서 『여기에는 중견 시인들이 제몫을 못한 데에도 원인이 있다』고 비판했다. 그리고 문학평론가 임우기씨는 『김명인 강은교 윤후명씨등은 이제 문단의 장년새대로서 현실사회에 대한 비판적 사유가 삶의 내면에 대한 깊이를 더해주었다』고 말한다.이어 『이들의 왕성한 활동이 중심을 잃고 파편화된 현상에 매몰된 일부 젊은 시인들의 반성적 거울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임씨는 『그러나 신세대 시인들의 시작업은 무조건 비판하기에 앞서 이들에게 파편화된 현실을 그대로 보는 현실인식이 보태져야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 서초동 꽃마을 지주/지도층인사 수두룩(조약돌)

    ○…지난달 철거된 서울 서초동 꽃마을 일대 2만4천8백평의 소유자 1백76명 가운데 국회의원 이명박씨,헌법재판소 재판관 한병채씨,서울시의회 의원 박희주씨등 많은 유명인사등이 포함된 것으로 드러났다. 19일 서울시가 발표한 「법조단지내 토지 소유자현황」에 따르면 이씨가 7백99평,한씨가 93평,박씨가 3백80평을 각각 소유하고 있다. 또 변호사단체 고위간부,대법원 판사출신 변호사,전서울고검검사,전대검검사등 법조계 인사도 많이 포함돼 있다. 가장 많은 땅을 소유하고 있는 지주는 해주정씨 종친회로 모두 7필지 5천77평으로 집계됐다. 이곳은 73년 5월 법원·검찰청사 신축설이 나돈이후 땅값이 폭등,당시 평당 4천∼5천원에 불과하던 것이 지난달 꽃마을 철거전까지 2천만∼3천만원을 호가하다 강제철거뒤 4천만원이상 급등,지금은 7천만∼1억원이나 돼 강남 최고의 금싸라기 땅으로 변했다.
  • 과기원선정 첫 「올해의 동문」 이범천씨(인터뷰)

    ◎“배운 기술 응용… 컴퓨터 국산화 선구”/“교실없는 악조건서 공부에 전념”/81년 최초 한글워드프로세서 개발 『한국과학기술원은 저에게 학문과 산업과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눈을 뜨게 한 곳입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창립20주년을 맞아 동창회가 처음 제정한 「올해의 동문」에 선정된(주)마이크로소프트대표 이범천씨(42). 과기원 1기인 그는 큐닉스컴퓨터사장김용현씨(39),마이크로소프트이사 전용호씨(36)와 심인보씨(36)등 3명과 함께 지난81년 컴퓨터회사인 (주)큐닉스를 창업,국가의 기술개발에 기여하고 동문의 명예를 높인 공로로 과기원 동창회(회장강석중·무기재료학)가 뽑은 「올해의 동문」 명예를 얻었다. 『회사설립할 당시 배운 기술을 실제제품으로 생산,컴퓨터산업을 육성시켜 보겠다는 각오였지요』 그러나 일을 시작하려 하자 가족과 선후배들이 『왜 궂은 일에 뛰어들려 하느냐』는 만류와 함께 『제대로 할수 있겠느냐』는 투의 비아냥거림을 듣기도 했다. 그는 79년 학위를 받은뒤 곧바로 과기원의 조교수로 임용돼 누구보다도 장래가 촉망되는 학자로 인정받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그가 과기원에 입학한 것은 과기원이 문을 연 73년. 박사학위를 받고 후배들을 가르치던 그는 79년 미국IBM사의 연구원으로 1년6개월동안 미국에서 생활하면서 직접 기술을 제품화할 결심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결심을 실천하기 위해 뜻을 같이 할 선후배들을 모았다. 그들이 창업멤버로서 자리를 잡은 후배인 큐닉스컴퓨터의 김사장,제자인 마이크로소프트의 전이사와 심이사등이다. 『가진 자본도 없이 정말 겁없이 머리하나만 믿고 뛰어 들었습니다』 81년 성북구 안암동에 20평짜리 건물을 임대해 엔지니어링분야의 디자인등을 주된 업무로 해오다 그해 10월국내에서는 최초로 8비트한글워드프로세서를 개발,컴퓨터계의 「무서운 아이들」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후 이들은 명조체 레이저프린트기,퍼스널콤퓨터,IBM컴퓨터의 주변기기등을 생산,컴퓨터제품의 국산화에 앞장섰다. 2천5백만원의 자본금으로 출발한 이들은 현재 큐닉스컴퓨터,마이크로소프트,컴퓨터유통을 담당하는 인포텍,정보기술연구소등 5개의 회사를 가진 연간 5백억의 매출실적을 올리고 있는 대기업으로 성장해 있다. 『입학했을 당시의 과기원은 교실조차없어 수업에 차질을 빚을 정도였지만 국비혜택을 받는 1백6명의 동기들 모두 국가에 봉사하겠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공부에 전념했다』고 그는 회상했다. 재학 당시 학생회장을 맡는등 학교에 대한 열정도 대단했던 그는 후배들에게 『생각하는대로 자신을 갖고 두려워 하지말고 행동하라』고 늘 당부하고 있다.
  • 외언내언

    우리 북방외교의 기원을 따진다면 서독의 동방외교로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이다.서독이 동방외교를 시작한 것은 66년무렵부터다.당초엔 동독을 고립시키고 수출시장을 확대하기 위해 동구에 접근한다는 것이 목적이었다.그것을 화해와 통일지향의 동방외교로 본격 발전시킨 이가 8일 별세한 브란트 전서독총리였다.◆69년 10월 집권한 브란트가 아데나워 시절부터의 외교방침이었던 할슈타인원칙(소련외의 동독승인국과는 외교관계를 갖지않는다)의 완전포기를 선언한 것이 동방외교의 공식출범이었다.70년 소련·폴란드등과의 동방조약을 체결했으며 여세를 몰아 마침내 동서독기본조약을 성립시킨 것은 72년 그리고 73년 유엔동시가입도 이룩했다.20년전의 일이다.◆74년 동독 스파이사건으로 브란트는 퇴장했으나 동방외교는 계승되고 발전되었다.74년 동서독상주대표부가 교환설치되고 81년엔 슈미트 서독총리의 동독방문이 이루어졌다.82년 베를린과 함부르크간의 고속도로가 개통되었으며 87년엔 호네커 동독공산당서기장의 서독방문으로 이어졌다.서독의동독흡수통일은 이같은 동방외교의 오랜 축적위에서 가능했던것이다.◆불과 5년의 일천한 역사지만 우리의 북방외교도 중소등 구공산권과의 완전수교,올림픽 성공적개최,유엔동시가입,남북한 화해 불가침및 교류협력선언등 큰성과를 거두었다.브란트의 동방외교에 손색없는 토대의 마련이요 출발이라 할수있을 것이다.중요한 것은 통일외교로의 계승이요 발전이다.◆「유럽의 동방외교」라면 「아시아의 북방외교」라 못할것도 없을 것이다.때마침 노벨상의 계절이다.동방외교에 돌아간 평화상이 북방외교를 못보는 것은 이상하지 않은가.그러나 실망은 금물이다.한반도의 민주평화통일이 달성되면 상황은 달라질수 있다.「서둘지는 않으나 중단하지 말고 인내심 깊게…」이제는 고인이된 브란트가 우리에게 하고있는 충고다.
  • 북한서열 22위… 대남공작 총책

    ◎「남한 조선로동당」 이선실의 실체와 암약상/80년 조총련모국방문단 위장 잠입/서울에 집 3채 구입… 아지트로 활용/교회 침투해 문익환목사 등과 교분 이선실.71세의 그녀는 북한내 권력서열 22위로 지금까지 남파된 공작원중 최고 거물이다. 이화여전 출신의 이는 남한내 북한공작지도부의 총책으로 북한의 장관급 공작원을 포함,직파간첩 10명을 거느리고 20년가까이 북한을 제집 드나들 듯했다. 이는 「신순녀」「이선화」「이옥녀」 등의 가명을 사용하며 71년이후 북한측 공개석상에도 잘 나타나지 않아 「베일속의 여인」으로 알려졌으며 이 때문에 수사당국이 신원파악을 하는데 애를 먹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조사결과 이는 고령임에도 왕성한 활동력을 보여주었으며 66년부터 90년10월 입북시까지 모두 3차례나 남한에 침투,20년 가까이 암약해왔다. 특히 이는 80년부터는 북송된 재일교포 신순녀(74)의 이름으로 위장잠입,합법적 신분을 얻은 뒤부터는 민중당창당에 적극 나섰으며 구속된 사북탄광사태 주동자 황인오(36·중부지역당총책)등 인물들을 적극 포섭,해방이후 최대 간첩망을 구축했다. 이는 8·15광복전 이화여전을 졸업했으며 6·25후 대남 간첩 양성소인 로동당 중앙당 금강학원을 수료하고 당경공업위원회 과장,황해도 여맹간부,평양시여맹부위원장 등을 지낸 관록을 갖고 있다. 63년 이는 김일성에게 직접 『조국통일사업에 일생을 바치고 싶다』고 말해 대남 공작원으로 선발돼 공작원양성소인 「695정치대학」에서 전문교육을 받았다. 이후 66년 1차 남하해 5년동안 암약하다 71년 월북했고 다시 73년 2차로 남파돼 2년뒤인 75년 복귀했으며 76년부터는 북송재일교포 신씨를 가장,일본에 잠시 기거하다 모국방문단에 끼어 국내에 들어온뒤 80년에 영주귀국형식으로 국내에 잠입했다. 신씨를 가장한 이는 전북 전주시에 사는 신씨의 언니 신양근씨 집에 머물다 신씨의 장남 백덕산씨(66)가 전주 평화동사무소 사무장으로 근무하는 점을 이용,백씨형제들에게 집을 사주는등 환심을 사 신순녀란 이름의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아 「가짜인생」을 살기시작 했다. 위장합법잠입에 성공한 이는 바로 주거지를 서울로 옮겨 동작구 대방동344 단독주택을 구입,본적까지 옮긴채 6년5개월동안 활동했다. 신길동 영동교회에 신도로 잠입,여기서 알게된 김옥기(53·보험사원·구속)를 수양딸로 삼아 함께 살면서 권중현(50)등을 포섭,간첩망을 꾸며나갔다. 이는 83년이후 영등포구 신길동 집외에 안양시 비산동 부흥아파트와 동작구 대방동391 단독주택등을 사들여 비밀아지트로 활용했다. 이는 87년 서울 미아리 한빛교회에 침투,자신을 「독립운동가」 「제주4·3사태 희생자유족」 「통혁당사건 관련자가족」등으로 자처하면서 문익환목사등과 친분을 유지하다 신당창당에 가담했다. 89년 마포 서교동 「진보정당건설을 위한 모임」(대표 이우재)에 헌금을 내며 정당결성자들과 친분을 맺은 이는 90년 YWCA에서 열린 민중당창당발기인으로 참가,당기를 이대표에 건네주기도 했다. 이는 구속된 김락중공동대표에게 2백만달러,창당헌금 2천만원,5백만원짜리 복사기등을 기증해 일약 「창당유공자」로 떠오르면서 장기표씨 등과 밀착했고 「민가협」에도 침투했다. 한편이에 간접 포섭된 황인오는 90년 10월 이와 함께 경기도 강화군 양도면부근 해안에서 무장안내원들과 반잠수정을 이용,입북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 잠수정은 83년 부산 다대포앞바다에서 격침된 것과 같은 종류로 몸체길이 8.75m,너비 2.5m,무게 5t에 승선인원 5∼6명 규모로 물위에서는 시속45∼50노트,잠수시에는 6노트정도인 것으로 전해졌다.
  • 60년대 난립기 거쳐 재벌사주도 시대로/한국증권사 43년의 부침사

    ◎5·16후 60개사 성업… 「파동」 이후 몰락/70년대 대기업 참여… 현 31개사 건재 1949년 대한증권을 처음으로 출발한 우리나라 증권사들은 올해현재 31개로 늘어났다.최근 증권시장의 개방과 삼성그룹의 증권업진출로 증권업계는 또 한차례 인수·합병의 변혁을 예고하고 있다.우리나라 증권사들의 43년 부심사는 한마디로 시대상과 경제상황에 따라 변화무쌍했다. ○49년 「대한」 첫 출범 지난 50∼60년대에 우후죽순으로 생겼던 증권사중 10여개사는 대부분 70년대를 전후해 금융계진출을 노리고 있던 재벌그룹으로 넘어갔다.지난해 증권업에 진출한 6개사를 제외한 기존25개사가운데 처음부터 증권사를 갖고 있던 재벌그룹은 럭키김성그룹(럭키증권,전국제증권)대림그룹(서울증권)한진그룹(한진투자증권)에 불과하다.그룹소속이 아닌채 처음부터 증권사로 출발,주인이 바뀌지 않은채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는 증권사는 한양증권이 유일하다. 또한 50∼60년대에 모습을 드러낸 증권사중 30여개사는 인수나 합병이 되지도 못한채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60년을 전후한 증권파동으로 증권사들의 공신력이 떨어진가운데 투자자들도 발길을 돌린데다 잇따른 휴장으로 경영난에 직면한 증권사들이 스스로 문을 닫았다.또한 내외·대창증권등 4개사는 지난58년 투기적인 채권거래로 하여 일어난 1·16국채파동으로 2월에 허가가 취소되어 사라지는등 허가취소도 많았다. 이에따라 5·16후 정부의 주식시장 육성정책및 62년5월 증권파동때까지의 이상적·변칙적인 붐으로 그해 8월에는 증권사가 60개사에 이르렀으나 그후 자진폐쇄및 허가취소에 따라 계속 줄어들게 됐다. 또 삼성그룹이 3백억원의 프리미엄으로 국제증권을,최종현선경그룹회장이 지난해말 56억원의 프리미엄으로 태평양증권(현선경증권)을 인수했지만,70년대까지는 보통 프리미엄없이 증권사를 인수했다. 그때까지는 요즘처럼 증권사의 인기가 높지 않았다는 얘기다.또한 인수는 양쪽의 이해가 맞아 대체로 이루어 진 것이지만 외부의 힘에 의한 경우도 있었다. 지난 49년11월 처음으로 생긴 대한증권은 대주주가 네번이나 바뀌었다.증권업협회 초대회장을지내는등 초창기 증권계에 기여한 송대순씨가 지난 47년에 생긴 증권구락부를 발전적으로 해체한뒤 세운 대한증권은 72년10월 신일기업으로 넘어갔다.그뒤 라이프건설이 중동특수에 따른 호황으로 80년10월 다시 인수했으며,지난 85년 2월에는 서울신탁은행으로 대주주가 또다시 바뀌었다. 현대그룹은 지난 77년11월 국일증권을 인수했으며,대우그룹(대우실업)은 73년9월 동양증권(현재의 동양증권과는 다름)을 사들였다.그뒤 대우증권으로 이름을 바꾼뒤 83년12월 당시 최대의 증권사인 삼보증권을 흡수했다. ○현대,77년 국일인수 효성그룹은 지난 83년 9월 계열 효성증권을 프리미엄 20억원을 받고 쌍용그룹(쌍용양회)에 넘겼다.효성그룹이 증권사를 넘기게 된 것은 당시 부동산을 계속 사들이다 그룹 해체위기를 맞아 자구노력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 통설로 되어있다. 한신증권의 대주주가 바뀐 것은 좀 특이하다.5개시중은행이 공동 출자한 한신증권은 지난 82년 3월 공개입찰을 통해 동원산업으로 넘어갔다.당시 공개입찰에는 동원산업외에 태평양화학과 미륭건설이 참여했었다.동원산업은 71억2천만원의 입찰가를 제안,태평양화학의 71억1천7백50만원,미륭건설 71억1천2백50만원을 제치고 한신증권(당시 자본금 50억원)을 인수하게 됐다. ○삼성진출… 변혁예고 한신증권의 인수에 실패한 태평양화학은 그해 7월 동방증권을 프리미엄 없이 30억원에 인수했으나 지난해말 선경그룹으로 태평양증권을 다시 넘겨주었다. 국제증권을 인수,오랜 숙원을 풀게된 삼성그룹은 과거에도 증권사를 갖고 있었다.삼성그룹은 고리병철회장이 지난 71년 동남(현보람)증권주식의 40%를 갖고 있는등 제일모직 제일제당 동방생명 이창희씨등이 거의 1백%의 지분을 갖고 있었다.당시 삼성그룹은 보험사들이 출자한 대보증권의 대주주이기도 했다.삼성그룹은 대보증권의 대주주였기 때문에 동남증권을 73년 9월 두산·코오롱그룹등에 넘겨주었으나 그뒤 대보증권은 럭키증권에 합병됐었다. 대신증권은 지난 75년 4월 양재봉회장이 중보(전삼락)증권을 인수한 것이며,고려증권은 현재의 오너가 78년 대아(전태창)증권을 인수한 것이다.이밖에신영증권은 71년 7월,유화증권은 63년,신흥증권은 69년 10월,건설증권은 68년 2월 현재의 오너에게 넘어갔으며,한국투자증권은 경방(73년 10월),한국투금(80년 1월)을 거쳐 지난해 3월 장기신용은행이 인수했다.또한 신한은행은 지난 85년 5월 동화증권(현신한)을 인수했으며 한일은행은 85년 10월 한흥증권(현한일)을 인수하는등 은행의 증권업 진출도 두드러지고 있다. 증권업계는 삼성그룹의 진출로 앞으로 또한차례 증권사들의 흡수·합병 바람이 세찰것으로 보고있다.
  • 광양제철소 4기준공 계기로 본 발자취

    ◎포철/대역사 4반세기… 연산 2천만t시대로/총매출액 38조,순이익 1조1천억원/산학연 기반구축… 「포스코2천년」 추진 광양제철소 4기공사가 2일 준공됨에 따라 4반세기에 걸친 포철의 제철 대역사가 완성됐다.이로써 포철은 연간 2천1백만t규모의 조강생산체제를 갖춘 세계 제3위의 철강기업으로 발돋움하게 됐다.또한 세계 제6위의 철강대국인 우리나라는 광양4기가 정상가동되는 내년엔 철강생산이 3천2백만t에 이르고 철강자급률도 93%로 향상되게 된다.이처럼 비약적인 발전을 한 포철은 국내 철강수요산업의 성장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 지난 73년 7월 포철준공 이후 15년 7개월만인 89년 1월 조강생산 1억t을 달성한데 이어 지난 6월 현재 1억6천만t 돌파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건설 대역사 마무리 이는 승용차 2억대,30만t급 유조선 3천5백50척,4백50ℓ급 냉장고 32억대를 만들 수 있고 철도 레일로는 지구와 달을 2회 왕복할 수 있는 엄청난 물량이다. 이에 힘입어 우리나라는 지난해 현재 자동차생산 세계9위,가전 세계6위,조선2위,컨테이너 부문 세계1위의 국가로 성장하게 됐다. 포철은 제조업 부문의 투자도 주도해왔다. 창업이후 광양4기 준공까지 포항및 광양제철소의 설비 신·증설에 단일제조업체로는 국내 최대규모인 14조1백20억원을 투자했다. 이와함께 우리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소요되는 막대한 양의 철강재를 적기에 공급함으로써 관련산업의 수입의존도를 낮추고 수출비율을 높여 막대한 수입대체 효과를 가져왔다. 또 73년부터 91년까지 총 4천1백65만t,1백39억달러어치의 수출을 하여 차관원리금및 원자재 수입대금을 모두 제하고도 83억5천8백만달러의 외화 가득효과를 가져왔으며 여기에다 수입대체효과 2백7억3천만달러를 합하면 이 기간중 국제수지의 개선효과는 무려 2백90억8천8백만달러에 이른다. ○19년 연속흑자 경영 포철은 가동후 지금까지 한해도 적자를 내지 않았다는 자랑을 갖고 있다.포철 1기설비가 준공된 첫해인 73년에 46억원의 흑자를 기록한 이래 그동안 두차례에 걸친 석유파동의 여파로 선진국의 철강업계가 감산조업과 적자를 면치 못하는가운데서도 19년간 연속 흑자경영을 이룩했다. 74년부터 91년사이 연평균 26.7%의 높은 매출액 신장률을 기록하는 등 73년부터 지난 6월말까지 총매출액은 38조5천억원,세후순이익은 1조1천13억원에 이르고 있다.이같은 고속성장을 바탕으로 재무구조도 매우 튼튼해졌다. 68년 4월1일 창업이후 그동안 제철소건설및 설비확장을 위해 정부로부터 출자받은 2천7백37억원의 종자돈으로 시작하여 지금은 총 자산규모가 11조5천7백36억원에 이르는 대형기업으로 성장했다.현재의 자산규모는 73년의 1천3백73억원과 비교할때 연평균 26%의 높은 신장률을 기록하면서 84배나 증가한 것이다. 지난해 현재 총자본금은 4천5백89억원으로 재무부가 9백18억원(20%)으로 최대주주이고 산업은행 6백88억원(15%),제일·조흥·한일·서울신탁등 4개 시중은행이 9백57억원(20.9%),대한중석 1백4억원(2.3%),국민주주 1천5백8억원(32.8%),우리사주 4백14억원(9%)등이다. 외국에서 들여온 빚도 거의 갚았다. 지금까지의 차관도입액은 포항제철소 24억4천9백만달러와 광양제철소 11억2천3백만달러를 합해 총 35억7천2백만달러로 이중 73·4%에 해당하는 26억2천1백만달러를 상환했다. 포철은 또 국내 건설경기의 호황에 따른 각종 기자재의 부족과 건설인력 부족등 숱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포항 1∼4기 및 광양 1∼4기의 공사기간중 6백34일의 공기를 단축하여 2천4백25억원의 공사비를 절감하기도 했다. ○경영다각화도 추진 포철은 이제 21세기를 향한 도전을 하고 있다.앞으로 정보통신·신소재등의 분야로 경영다각화를 추진,오는 2001년에 다각화율 30%,총매출액 2백억달러를 달성한다는 방침아래 중장기 경영전략인 「POSCO 2000」계획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이를 위해 첨단기술 개발과 기술자립을 통한 경쟁력 우위확보를 목표로 산업과학기술연구소 및 포항공대와 완벽한 산학연 협력체제를 구축하고 신기술 및 신강종 개발을 위한 연구개발(R&D)투자를 지속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제철설비의 종합준공으로 포철의 신화는 끝나지 않고 새로운 신화를 계속 창조해 나갈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 포철/조강능력 세계3위/광양4기설비 준공/증설 24년 마무리

    포항제철이 4반세기에 걸친 제철소건설의 대역사를 마무리지었다. 포철은 2일 상오 11시 전남 동광양시 광양제철소 종합운동장에서 노태우대통령과 박태준 포철회장,그레그 주한미대사,국제철강협회 브리이언 로톤회장및 임직원등 1만2천4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68년 창업이래 계속돼온 제철소건설을 마무리짓는 「포항제철 종합준공식」을 가졌다. 내자 1조3천8백49억원,외자 7억5천1백만달러등 모두 1조9천6백86억원을 들여 이날 완공한 광양4기설비로 포철은 연산 2천1백만t의 조강생산능력을 갖춤으로써 일본의 신일본제철과 프랑스의 유지노사실로사에 이은 세계 3위의 철강업체로 부상하게 됐다. 또 광양 4기설비가 정상가동되는 내년에는 철강생산이 3천2백만t에 달해 우리나라의 철강자급도도 93%로 높아질 전망이다. 포철은 지난 73년 7월 포철1기설비준공이후 15년 7개월만인 89년 1월 조강생산누계 1억t의 위업을 달성했으며 지난 6월말에는 1억6천만t을 넘어섰다. 이날 준공식에서 포철 황경로부회장등 3명이 금탑산업훈장을,김종진광양제철소장등 3명이 은탑산업훈장을 받는등 28명이 훈·포장과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 팔당호 준설 94년 첫 실시/환경처,6백억 예산투입… 내년중 설계

    ◎추가오염 막게 진공청소방식 채택/수질BOD 1ppm 수준으로 수도권의 식수원인 팔당호에 대한 대청소및 준설작업이 담수이후 21년만인 94년에 처음 실시된다. 환경처는 27일 팔당호바닥에 3∼7m 높이의 오염물질과 토사가 쌓여 수질악화의 큰 원인이 되고있어 내년중 실시설계를 거쳐 94년도에 호수밑바닥을 준설키로 결정했다. 팔당호준설작업에는 약6백억원의 예산이 투입된다. 지난73년에 건설된 팔당호는 남한강과 북한강,경안천이 합류하는 곳으로 수도권의 식수원으로 이용되고 있으나 그동안 한번도 준설을 하지못해 각종 오물이 침전,수질을 악화시키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중 북한강이 흘러드는 곳은 강의 흐름이 빠르고 오염물질이 적어 침전물의 두께가 3m수준인데 비해 남한강과 경안천이 흐르는 곳은 침전물의 두께가 최고7m에 달하고 이에따라 수심이 20m에도 못미치고 있다. 준설방식은 진공청소기의 원리를 이용,호수밑바닥의 침전물을 물과 함께 호스를 통해 빨아올린뒤 깨끗한 물을 다시 방류하는 방식이어서 준설과정에서의 추가 수질오염은없을 것으로 보인다. 환경처관계자들은 준설과 함께 경안천이 흘러드는 지역의 수초를 지속적으로 제거해나가면 팔당호의 수질은 BOD(생물학적산소요구량)1ppm이상의 맑은 상태를 유지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팔당호의 수질은 1.1ppm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 상무에서 일약 발탁/대림산업 이정국씨(새 사장)

    ◎“조직 활성화… 건설업계 정상복귀” 『기업의 발전은 조직능력의 총화를 전제로 하는 만큼 조직 활성화에 모든 능력을 쏟아 건설업계 최정상의 위치를 다시 찾도록 노력할 계획입니다』 회사내 서열 14위의 상무에서 일약 대표이사에 발탁돼 주위를 놀라게 만든 대림산업 건설사업부의 신임 이정국사장(49)은 『타성에 젖어있는 회사분위기를 쇄신,재도약을 위한 충격요법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인사배경을 설명했다. 『이달말쯤 2천년대에 대비한 장기계획안이 완성됩니다.우선은 건설업계에서 도급 5순위까지 밀려난 회사내의 잘못된 분위기부터 바로 잡아 나가겠습니다』 이사장은 이를 위해 전임직원에게 지난 60년대와 같이 현재의 건설업계에서도 정상을 차지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는데 주력하겠다고 밝혔다. 전임 이원현사장이 건강때문에 갑자기 자리를 내놓자 그룹에서는 당초 계열사나 외부에서 사장을 영입해오는 방안을 검토했으나 건설현장에서 9년간이나 근무했던 경험과 10여년간의 관리능력 그리고 인생을 모나지 않게 살겠다는 평소의 철학등을 인정해 이사장을 발탁했다는 후문이다. 이사장을 임명하자 대림산업건설노동조합은 「노조의 입장」이란 유인물을 통해 「신임사장은 참신한 이미지를 끝까지 지켜나가길 바란다」고 환영의 뜻을 밝히기도 했다. 『지난 87년 4월 강원도 화천 평화댐 건설 현장소장으로 근무할 당시 가장 보람이 있었고 추억에도 남습니다』 이사장은 당시 평화댐의 토목공사공기가 1년으로는 부족하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무시한채 이를 그대로 밀어붙여 1년만에 완공시킨 저력도 지녔다. 이사장은 앞으로 가능한한 간부들보다 현장에 있는 평사원들을 중심으로 많은 대화를 나누어 중지를 모아나겠다고 말했다. 지난 66년 서울대공대를 졸업하고 73년 대림산업에 입사해 19년만에 최고 경영자의 자리에 오른 이사장은 경기고 57회로 이준용그룹부회장의 고교 5년후배이기도 하다. 80년 토목기술사 자격을 취득,81년에는 토목부장으로 승진한뒤 고속도로 댐공사현장과 기획분야에서 두루 경험을 쌓아왔다. 86년 대림산업 이사로,91년 상무이사로 승진했다. 칠순노모를 모시고 있으며 부인 민병위(45)여사 사이에 2남을 두고 있다.
  • 경마부정 은폐 “막다른 선택” 추정/조교사 자살 싸고 의혹 증폭

    ◎구속뒤 「복마전」 비리 들통 우려/“경마인생 먹칠” 자책감 작용한듯 경마 승부조작으로 검찰의 조사를 받아오던 한국마사회소속 조교사 최연홍씨(51)가 26일 자살한 시체로 발견돼 최씨의 자살동기를 둘러싸고 경찰이 다각도로 조사하고 있다. 경찰과 경마장주변 관계자들은 일단 말(마)과 함께 「외길인생」을 살아온 최씨가 경마 승부조작으로 구속될 지경에 처하자 이를 비관,자살한 것으로 보고 있으나 석연치 않은 점도 많아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경마장비리에 대한 검찰의 전면적 수사가 시작되면서 최씨의 드러난 혐의는 경마브로커 김택씨(34·전 영동백화점사장)에게 자신이 관리하는 말의 우승여부를 미리 알려주는 대가로 2천3백만원을 받아왔다는 것이다. 지난 22일 검찰에 소환됐던 최씨는 오랜 부인끝에 범행을 자백했으나 워낙 「충격적」인 부정을 저지른 다른 경마브로커·조교사등에 밀려 「구속 2순위」에 해당되면서 잠시 풀려난뒤 『모든게 끝났다』며 몹시 괴로워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충남 청양에서 국민학교만 졸업하고 무작정 상경,뚝섬경마장 마필관리인에게 배고픔을 호소해 심부름꾼으로 취직하면서 경마장에 발을 들여 놓은 최씨는 56년 꿈에 그리던 정식 기수로 등록,한때는 최고의 전적을 올리는 1등기수로 떠올랐었다. 이후 73년 마필관리인과 기수를 거느리고 출전마를 관장하는 영예의 조교사로 입지한 최씨는 조교사·기수등으로 구성된 「조기단」의 부단장까지 맡아왔다. 최씨의 자살에는 「경마인생」에 먹칠을 했다는 자책감 때문이라는 분석외에도 검찰수사가 조기단 전체로 확산되는데 대한 위기감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강하게 대두되고 있다. 평소 경마장 「대부」로 불려온 최씨는 『나와 같이 생사를 같이 한분,나하나로 이런 일이 끝났으면 한다』『첫째도 단결,단결 외에는 죽음뿐이다』라는 내용의 유서를 통해 이러한 분석을 뒷받침하는 듯한 여운을 남겼다. 조교사는 특히 경마출전신청을 할 말의 선발권을 쥐고 있어 아무리 뛰어난 기수라도 조교사의 눈에 벗어나면 말을 타기 힘든 게 현실이다. 경마장 주변에는 이때문에 자연히 조교사를 매수하려는 유혹이 그치지 않고 있으며 조교사들이 거액의 로비자금에 연루됐다는 진정등이 꼬리를 물고 있다. 경마계주변에서는 이같은 조교사들의 경마비리를 막는다는 명분으로 마사회측이 내년7월부터 시행하려는 「개인마주(마주)제」를 앞두고 비리와 관련된 조교사들을 정리하려는 움직임이 이번 검찰수사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 최씨가 「대항자살」을 한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어 주목되고 있다. 즉 조교사를 개인마주에 소속시키는 「개인마주제」시행을 계기로 마사회가 자신들의 「비밀」을 알고있는 일부조교사들을 비리척결이라는 명분으로 도태시키려고 검찰에 제보한 것으로 최씨가 판단,이를 경고하기위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택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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