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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나라­신당 병역 공방

    ◎수연씨 키 확인서 공개… 신당 “조작 가능성” 한나라당이 이회창 후보 차남 수연씨의 키가 165㎝임을 입증하는 미국 하버드대 의사의 공증확인서와 사진을 공개하며 국민신당 이인제 후보의 사퇴를 촉구한데 대해 국민신당은 공증확인서의 조작가능성을 제기하고 있어 양당간 병역공방이 가열되고 있다. 한나라당 최병렬 공동선대위원장은 8일 여의도 당사에서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미 하버드의대 부설 매사추세츠 종합병원 내과의사 안나 보러스씨(여)가 수연씨의 키를 재고 공증까지 받은 확인서와 키를 재는 모습이 담긴 사진을 공개하고 “이인제후보가 신장 의혹이 해소되면 후보직을 사퇴하겠다고 밝힌 만큼 앞으로 이후보의 거취를 지켜보겠다”고 말했다.최위원장은 “공증확인서를 믿지 못한다면 추가 조치를 취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구범회 부대변인도 성명에서 “세계적으로 권위있는 미 매사추세츠 종합병원의 진료기록마저 믿지 못하겠다면 도대체 무엇을 믿을수 있다는 것이냐”고 되묻고 “이인제 후보는 의혹이 해소된 만큼 더이상 억지 부리지 말고 즉각 후보직을 사퇴하라”고 촉구했다. 구부대변인은 또 “이후보는 지난 71년부터 73년까지 서울 혜화동과 경기도 광주군 산곡리를 오가며 고시공부를 할 당시 징집 영장을 바지 뒷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함께 공부한 동료들에게 자신이 수배중이라는 사실을 토로하고 경찰에 검거되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썼다”고 입영기피 의혹을 거듭 제기했다.이에 대해 국민신당 김충근 대변인은 논평에서 “병역을 기피한 이후보의 차남이 대선에 아랑곳없이 기말고사만을 위해 외국을 전전하는 것을 보면 이후보 가정이 국가보다는 자신만을 위한 집안임을 보여준다”면서 “병역기록부까지 조작한 판에 미국서 잰 기록인들 믿을수 있겠느냐”고 조작가능성을 제기했다.
  • 경제난국 정도로 풀자(사설)

    정치권과 경제계가 금융실명제를 보완 내지는 유보하고 금융기관대출금 상환연기를 위해 대통령 긴급명령을 발동하라고 건의,이 논쟁으로 인해 경제위기 해결을 위한 본질적 문제가 흐려지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정치권은 한결같이 경제위기의 원인중 하나로 금융실명제의 부작용문제를 꼽으면서 보완을 요구하고 있다.한나라당은 무기명장기채권 발행과 대출금의 상환연기를 주장하고 있다.국민회의는 국제통화기금(IMF) 관리기간동안 금융실명제를 전면 유보하고 금융기관의 대출도 연장해줄 것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국민신당은 무기명장기채권의 발행만을 찬성하고 있다. 정치권과 경제계가 주장하고 있는 두개의 특단의 조치로 한국경제가 살아날 수 있다면 정부는 하루 빨리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그러나 현재 우리경제는 ‘국가부도’ 또는 ‘국난(으로 비유될 만큼 위기에 처해있어 환부를 잘못 건드리면 더 위험한 상황에 접어 들지도 모른다. 한국은 그동안 위기가 있을 때마다 긴급조치를 통해서 위기를 넘겨왔다.그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73년 단행된 8·3조치다.대기업의 부도를 막기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사채동결과 금리인하조치를 단행했던 것이다.이 조치로 인해 금리가 인하되어 은행부채가 많은 대기업은 큰 혜택을 보았다.그러나 은행예금이 급격히 둔화되고 실세금리를 밑도는 저금리의 지속으로 인해 은행의 부실화는 이때부터 시작되었던 것이다.당시 사채를 제도금융권으로 흡수하겠다며 설립을 허가한 단자회사가 죽순처럼 늘어나 오늘날 금융위기의 진원지인 종금사로 바뀐 것이다. 8·3조치는 대기업의 비대화를 가속화시킨 반면 금융산업은 낙후시키는 부작용을 초래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이 조치는 대기업의 일시적 자금난을 해소시켜 경영위기를 극복시켜 주기 위한 것이었으나 결과는 대기업의 차입의존형 경영구조를 정착시켰다. 현시점에서 논의되고 있는 대출금 상환연기는 사채가 아닌 제도금융권 자금의 상환동결을 의미하는 것으로 만약 그것이 시행될 경우 부작용은 8·3조치가 잉태한 오늘의 경제위기이상의 ‘국가부도’를 초래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대출금상환연기 조치가 단행되면 당장 금융기관은 대출된 자금을 회수하지 못하게 된다.한국은행이 연장된 자금만큼을 은행에 빌려주지 않으면 대출여력이 크게 줄어들게 된다.은행대출에 이상온다는 것은 금융위기를 더욱 확산시켜 우리경제를 회생불능상태로 몰고 갈지도 모른다.한은이 상환연장된 자금을 대신 빌려준다는 것도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통화증발로 인한 인플레를 감당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대출금 상환연장을 위한 긴급명령은 한국경제를 담보로 일부 부실기업을 구제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게다가 금융기관의 구조조정을 지연시키는 이런 조치를 단행할 경우 국제통화기금(IMF)이 긴급자금지원을 하지않을 우려마저 있다.IMF는 금융기관의 구조조정을 전제로 긴급자금을 지원해줄 것이 분명하다. 금융기관구조 조정을 지연시키고 산업구조조정마저 지연시키는 긴급명령은 단행되어서는 안된다.다만 지하자금의 양성화를 위해 고려되고 있는 무기명 장기채권발행은 지하자금의 양성화차원에서 검토할 가치가 있다고 본다.무기명 장기채권발행의경우 실명제를 충실히 지켜온 시민들과의 형평성을 고려하여 발행이율을 상당히 낮게 책정해야할 것이다. 우리경제는 지난 62년 경제개발에 착수한 이래 가장 어려운 시련과 도전에 직면해 있다.정부·정치권·국민 모두가 단기간에 경제를 회복시키려는 충동을 자제하고 경제회생을 위한 정도를 걸어가기 바란다.
  • 철강왕국 포항제철:1(우리가 세계최고:1)

    ◎끝없는 경영혁신… 철강메이저로 우뚝/24년간 흑자… 올 불황에도 순익 1조4백억/경쟁력있는 세계40대 투자종목에 선정/“경쟁업체서 모방하여도 최소15년 걸려” 새고 나면 기업들이 무너진다.한보 삼미 진로 대농 기아 해태 뉴코아 등등….연초부터 엄습한 불황의 그림자로 산업계가 유례없이 호된 구조조정을 겪고 있다. 그러나 최대의 불황속에서도 사상 최대의 흑자를 구가하는 기업이있다.포항제철이다.포철엔 더이상 ‘공기업=방만한 경영’이라는 등식이 성립되지 않는다.민영화 논의를 잠재우며 혁신적 경영으로 세계 초일류기업을 일궈가고 있는 포철.민간기업보다 혹독한 체질개선으로 글로벌시대의 초일류기업으로 거듭 나 ‘불황의 벤치마킹’기업으로 떠올랐다.서울신문은 포철의 샘솟는 경쟁력을 심층 조명하는 새로운 기획시리즈를 내보낸다. 포철은 68년 산업불모지였던 이 땅에 ‘제철보국’의 기치를 걸고 출범했다.경북 포항시 동촌동에 위치한 포항제철소 제선공장에서는 지금 이 시간에도 섭씨 1천200도의 뜨거운 쇳물이 쉴새없이 쏟아진다.포철은 30년간 이렇게 하루 24시간,1년 365일 쉼없이 철을 생산해왔다. 철은 바늘에서 우주선에 이르기까지 그 쓰임새가 안미치는 곳이 없다.그래서 “철을 지배하는 민족이 세계를 지배한다”는 속설까지 있다.영국이 제철산업으로 산업혁명을 완성시켰고 미국은 철강왕 카네기가 세계 최대부국의 기초를 다져 놓았다.일본과 독일의 철강산업은 항공 우주 조선자동차 기계분야에서 세계를 제패하는 원천으로 작용했다. 미국 메릴린치증권사 일본법인은 얼마 전 ‘아시아시장,협력에서 경쟁시대로’라는 보고서에서 “포철은 설비확장과 인원합리화로 노동생산성을 향상시킨데다 원화약세가 지속되고 있어 신일본제철 등 일본의 고로업체는당분간 포철의 원가경쟁력을 따라잡지 못할 것”이라고 갈파했다.메밀린치증권사는 일찌기 반도체 폭락을 예언했던 세계적인 투자분석기관.세계 최고의 철강기업을 자부해왔던 신일본제철의 자존심이 땅에 떨어졌음은 물론이다.메릴린치는 원화가 강세로 돌아서 달러당 650원이 된다해도 포철은 흑자를 낼수 있다고 했다.달러당환율이 1천원을 넘나드는 상황이 돼버린 요즈음 포철의 잠재적 경쟁력이 얼마나 위력적인 가를 짐작할 수 있다.심지어 미국의 모건 스탠리증권사는 포철을 마이크로소프트 듀폰 등과 함께 경쟁력있는 세계 40대 투자종목으로 선정하고 “경쟁업체들이 포철을 모방하려면 최소 15년 이상은 걸릴 것”이라고 까지 했다. 73년 조강생산 능력 1백3만t의 포항1기 설비준공으로 시작된 포철의 성장은 광양4기가 완공된 92년 세계 3위로,93년 이후에는 신일본제철에 이어 조강생산량 기준으로 세계2위의 글로벌기업으로 이어졌다.포철은 올해 조강생산(2천6백67만9천t)에서 일본 신일본제철(2천6백만~2천7백)을 마침내 따라잡았다.단일 제철소로도 광양제철소가 세계 1위,포항제철소가 2위.그러나 포철은 이러한 큰 덩지에도 불구,경영혁신이라는 날개를 달고 날렵하게 세계 철강업계의 선두를 질주하고 있다.포철이 그동안 값싸고 질좋은 철강재를 관련산업에 공급,자동차와 조선 등 국가 주력산업을 세계 10위권내로 끌어올리고 세계 6위의 철강국가로 발돋움하는데 견인차역할을 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철을 생산하기 시작한 73년 이후 한번도 적자를 낸 적이 없으며 지난 해에는 8조4천4백억원의 매출과 6천2백억원의 순이익을 냈다.올 매출은 9조5천억원,세후 순이익만 1조4백억원으로 사상최대가 기대된다.이는 기업으로도 최대(이제까지 사상 최대 흑자기록은 95년 삼성전자의 2조5천억원).올 매출증가가 12.5%,순이익증가율이무려 67.6%로 12월 상장법인의 지난 상반기 실적(매출증가 14%,순이익증가율 마이너스 32.2%)과 비교하면 신화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경이적이다. 각종 재무지표에서도 경쟁기업을 앞선다.부채비율만 보자.포철의 그것은 96년말 기준으로 115.4%.30대 그룹은 부채비율이 평균 397.2%다.이 때문에 해외 신용평가기관으로부터 최고의 신용등급을 받고 있다.무디스사 평가에서 A2로 신일본제철(A3)보다 한단계 앞서있다.88년 국민주 1호기업으로 선정돼 국내 증시에 상장된데 이어 94년 11월엔 뉴욕증시에,95년 11월엔 런던증시에 상장됐다.뉴욕증시에 상장됐을 땐 31.5%라는 고프리미엄이 붙었다.김만제회장이 94년 국제철강협회(IISI) 회장에 선임된 것도 높아진 포철의 국내외 위상때문이다.48개국 181개 철강회사와 철강관련단체가 회원인 국제철강협회 회장직은 철강업계에서 가장 명망있는 권위직.김회장의 피선은 67년 협회창립이래 철강후발국 인사로는 처음이었다. 포철은 포항제철소에 열연 냉연 후판 선재 스테인레스 등 다품종 소량체제를,광양제철소에는 열연과 냉연제품 위주의 소품종 대량생산체제를 갖춤으로써 국제 철강가격에 막강파워를 행사하는 철강메이저로 부상했다.일본의 철강업체들은 분기별로 가격조정을 할 때 포철과 협의를 한다.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 모두 만족시켜 주는 회사가 포철이다.열연제품의 가공수율은 일본산에 비해 우수하고 중국산에 비해서도 5~6% 이상 높다.냉연제품도 ‘그레이드 업’해서 사용할 수 있어 중국 수요자들이 포철제품을 선호한다.고급강의 경우 일본이나 서구 회사들은 물건을 인도하고 난뒤에 신경을 전혀 쓰지 않지만 포철은 사후에도 대리상사와 함께 지속적으로 방문하는 등 문제해결에 적극적이다”(삼성물산 북경지사 유홍렬 부장).꼭 우리기업인의 평가라서가 아니다.세계 철강업체의 최대 격전지인 중국에서 이쯤이라면 세계 최고로 손색이 없다.
  • 30년 넘게 우익으로 철저위장/고영복은 누구인가

    ◎보수파학자로 분류… 학생운동 강력 비판/남북적 자문위원 활동 등 요직 두루 거쳐 61년부터 36년간 고정간첩으로 암약한 서울대 사회학과 고영복 명예교수(69)는 좌익사상과는 정반대 성향의 보수파 학자로 불려왔다. 경남 함양 출신인 고교수는 54년 서울대 사회학과,56년 서울대 사회학과 대학원을 졸업한 전형적인 ‘국내파’ 교수로 분류된다.62년 이화여대 전임강사를 거쳐 66년부터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해 온 고교수는 71년 학국사회학회 회장,73년에는 남북적십자회담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며 북한을 방문하는 등 ‘사상성’을 확실하게 검증받기도 했다. 고교수는 특히 81년 현대사회연구소 소장과 국무총리 정책자문위원,84년 보사부 사회보장심의위원을 지내면서 5공 정권의 이데올로기 전파에도 주도적인 역할을 했었다. 평소 학생운동에 대해서도 신랄하게 비판하는 등 고답적이라는 비판을 받을 만큼 보수우익적인 노선을 견지해 왔다. 90년에는 퇴임에 대비,서울 관악구 봉천동에 사회문화연구소를 설립,제자들의 학문을 지원하며 사회문제 전반에 걸쳐 연구를 계속해 왔다. 지금까지 ‘사회학개론’ 등 22권의 저서와 1백여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93년 서울대 교수직에서 물러나면서 국민훈장 목련장을 받았고 94년에는 문화정책개발원 초대 원장을 맡기도 했다. 80년대 말부터 지금까지 3차례에 걸쳐 지병인 고혈압이 발병하는 등 건강이 좋지 않아 최근에는 동료 교수들이나 제자들과의 왕래가 뜸했다. 부인과의 사이에 1남2녀를 두고 있다.
  • “황장엽 소재 파악” 특명받아/간첩단 수사 뒷얘기

    ◎강연정 “김정일 장군 배신못해” 진술 거부/심정웅 “다 털어놔 속 시원하다” 고통 토로 ○…간첩 강연정은 붙잡힌 다음날인 지난달 28일 아침 여자수사관과 함께 화장실에 갔다가 용변을 마치고 질 깊숙한 속에 숨겨두었던 독약앰플을 깨물어 자살을 기도,병원으로 옮겨진 지 3일만에 숨졌다. 당국은 주한 미 8군에서 구입한 해독제를 사용했지만 흡입량이 많아 살리지 못했다.수사 관계자는 “자살을 막기 위해 검거 즉시 옷을 갈아 입히고 체내에 독약을 감추어 두었을 것에 대비,관장까지 하지만 워낙 깊숙한 곳에 숨겨두었기 때문에 발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남편 최정남에게서도 독약이 발견됐다. ‘청산액화가스’로 알려진 이 독약은 깨무는 즉시 기체로 변해 해독이 극히 어려운데 KAL기 폭파범 김현희씨가 지니고 있던 것과 같은 종류이다. 간첩 강연정은 붙잡힌 뒤 “나는 조국통일 사업을 위해 왔으며 김정일 장군을 배신할 수 없다”면서 진술을 완강히 거부한 것으로 밝혀졌다. ○…부부간첩단의 임무중에는 ‘황장엽의 소재를 파악하라’는 것도 있다는 사실을 밝혀낸 안기부는 황씨의 신변보호에 더욱 신경을 곤두 세우는 모습. 안기부의 고성진 대공수사실장은 이날 “이한영씨 피살사건에서도 확인했듯이 북한은 황씨를 반드시 테러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갖고 있다”면서 “황씨를 보호하는 일에 더욱 만전을 기하겠다”고 강조했다. ○…고영복 교수는 6·25전쟁 때 북한 의용군에 자원입대한 사실과 간첩으로 포섭 당한 경위를 자세히 진술하는 등 당국의 조사에 순순히 응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교수는 검거되기 직전 다른 고정간첩으로부터 ‘피신하라’는 연락을 받았으며 기관원들이 덮치는 순간 흉기로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다고 안기부 관계자는 전했다. 당국은 “고교수가 73년 남북적십자 회담 자문위원으로 위촉될 정도로 정부의 신임을 받았기 때문에 고정간첩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하지 못했다”고설명했다. 당국은 얼마전까지 남한에서 활동중인 간첩을 핵심세력 1만여명,동조세력 3만여명 등 총 4만여명으로 추정했지만 고교수같은 고정간첩으로 드러남에 따라 그 수를 늘려 잡았다는 후문. 한편 심정웅은 수사에 협조적이었으며 실제로 “모든 사실을 밝히고 나니 속이 후련하고 계속 활동을 했다면 엄청난 일을 저질렀을 것”이라고 말해 그동안의 간첩생활에 대한 심적 고통이 적지 않았음을 내비치기도. ○…당국은 이날 송치된 고정간첩 외에도 2명을 추가로 적발했지만 뚜렷한 이적행위가 드러나지 않음에 따라 일단 무혐의 처리키로 결정. 한 관계자는 “이들 2명은 60년대에 월북했다 남파된 사람으로 공소시효가 지난데다 뚜렷하게 이적행위를 한 사실을 밝혀내지 못했다”면서 “이들 가운데 한 명은 북에서 가져온 난수표 등을 없애 버렸으며 간첩활동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우리가 볼 때는 그렇지 않다”라고 말해 계속 수사할 것임을 시사.
  • 부부간첩 사건­간첩 고영복 암약상

    ◎60년대 서울대 재직중 공산주의 심취/6.25때 북 의용군 입대… 53년 반공포로로 석방/61년 포섭된뒤 남북적회담전략 등 북에 제공 사회학계의 원로이자 우익 인사로 알려진 서울대 고영복 명예교수(69)는 자신의 사상을 철저히 숨긴채 36년간 북한의 고정간첩으로 활동해왔다. 고교수는 서울대 재학중이던 50년 6·25 전쟁이 발발하자 그해 9월 의용군에 자진 입대했다.같은해 11월 인민군이 후퇴하는 과정에서 국군에 생포돼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갇혔던 고교수는 53년 반공포로로 석방돼 학문을 계속하며 60년을 전후해 마르크스주의에 빠져들었다. 61년 9월 의용군에 함께 입대했던 친구 장내윤(월북)과 삼촌 고정옥이 보내서 왔다는 남파공작원을 만나 미화 1천달러와 난수표 등을 받았다.이때 북으로부터 ‘진보적인 청년학생들 속에서 조직사업을 전개하라’는 지령과 ‘공수산’이라는 공작부호도 함께 부여받았다. 고교수는 동문 출신 중앙정보부 고위간부의 추천으로 73년 3월과 7월 남북적십자회담 당시 북측 자문위원으로 임명돼 2차례 평양을 방문했다.두번째 평양방문 당시에는 북측 자문위원으로 위장한 통일선전부 공작원 강장수로부터 “남측에서 중대한 수정제의를 한다는데 그 내용이 무엇이냐”는 메모를 받고 우리측 회담 전략을 사전에 제보해 주기도 했다. 고교수는 공작원들과 접촉하면서 공작원들에게 은신처와 공작장비 은닉을 위한 ‘드보크’를 제공했다.또 학생운동권 출신 및 재야활동가,같은 사회학과 김모 교수를 소개해주고 핵무기 개발상황 및 정세분석보고서를 작성하라는 지령을 받아 89년6월 남파된 공작원 김낙효에게 보고했다.이때 김낙효가 만들어준 신분 확인용 반쪽 메달 목걸이를 전달받았다. 고교수는 이번에 남파된 최정남부부와 이 목걸이로 서로의 신분을 확인한 뒤 지난 9월10일∼10월22일 서울 관악구 봉천동 사무실에서 4차례 접선했다.그리고 최로부터 북한에서 그간의 공로로 ‘공화국 창건기념 메달’과 노동당 창건기념 ‘조국통일상’이 수여됐다는 사실을 전달받았다. 고교수가 받은 지령은 ▲경북대 김순권 교수가 개발한 우량 옥수수 수원 19·20·21호 종자와 과천에서 시범적으로 실시하는 전자주민증을 구할 것 ▲최근 한국정치 및 대선후 대북정책 전망 평가보고서 작성 ▲한국 경제위기의 심각성 및 수퍼 301조가 한미관계에 미치는 영향 ▲대학생들의 의식구조 특징과 향후 학생운동전망 등 남한 전체정세에 대한 글을 써줄 것 등이다.
  • 주정제조·판매 규제 완화/막걸리 등 주류 알코올도수 제한도 없애

    ◎공정위,내년 상반기부터 빠르면 내년 상반기부터 술의 원료가 되는 주정을 만들거나 판매할 수 있는 면허의 규제가 풀릴 전망이다.막걸리(탁주) 제조 면허도 허용되는 등 주류산업에 대한 진입규제도 대폭 완화되며 막걸리 등 각종 주류의 알콜도수 제한을 없애는 방안도 추진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16일 주류 제조 및 유통 등 주류산업 전 분야에 걸쳐 규제를 완화하는 작업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공정위는 정헌배 중앙대 교수에게 연구의뢰한 주류산업 제도개선 보고서를 토대로 재정경제원 국세청 등 관련 부처간 협의를 거쳐 내년 상반기중 최종 개선안을 확정하기로 했다. 73년 국세청이 수요와 공급 조절을 이유로 주정업체를 통폐합한 이후 신규 주정의 제조면허가 금지돼왔다.현재 12개 주정업체가 출자한 대한주정판매만 주정판매를 독점적으로 하고 있다.막걸리는 76년 이후 신규 제조면허가 허용되지 않고 있다. 주정 95도 이상,막걸리 6도 이상,약주 13도 이하,청주 14도 이상,맥주 25도 이하,과실주 25도 이하 등 주류별로 제한하는 알콜도수규제도 없애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 유럽통합 3대난제와 해결방안/파스칼 세뇨(지구촌 칼럼)

    유럽은 통합을 앞두고 가장 중요한 과제를 해결하여야 하는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중부유럽과 동유럽권의 통합에 대한 도전과 유럽방위의 공백이 바로 그것이다.통합의 추진과정에 있어 불거진 이같은 문제들은 3가지 관점에서 조망해볼수 있다.마스트리히트조약의 실질적인 진행과 유럽의 구조적 문제 해결,유럽의 체계적 통합 등이다.먼저 마스트리히트조약은 정치적인 색채가 강한 유럽국가간의 이익이 얽힌 조약이다.그러나 간단히 말하면 유럽통합 건설에 대해 반대냐 찬성이냐 하는 선택 가운데 특히 정치적 통합을 위한 각 나라의 의견조율을 위한 도구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유럽통합에는 태생적 한계가 있다.그중 하나가 각국들의 관점에서 본 그들의 이익추구가 우선한다는 사실이다.우선 화폐와 경제통합을 위한 기둥으로 만들어진 조약이 그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동시에 유럽각국들의 보호주의·고립주의·자기중심주의에 관한 명쾌한 해답이 포함되어 있지도 않다.이는 유럽통합을 건설하는데 있어 국가들간에 다양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반증이다.그러나 다양한 목소리가 상호 대치적이지 않다면 조약내용 여부를 차치하고라도 충분히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궁극적으로는 프랑스와 독일의 문제다. ○태생적 한계가 엄존 프랑스가 유럽속에 혼자서 또다른 유럽을 추구하는 독일을 끌어들일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데 좀더 노력한다면 독일도 유럽통합에 보다 적극 지지하는 입장이 될 것이다. 그러나 가장 좋은 해결방안은 구조적인 팽창정책이라고 볼 수 있다.방법에 있어서는 수직적이든 수평적이든 모든 방향에서 거대한 통합을 달성해야 한다.예컨대 지난 73년 유럽공동체가 영국에서 아일랜드·덴마크에 이르기까지 통합한 것처럼 지금도 할 수 있다고 본다.대서양에서 우랄산맥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유럽통합이 필요한 것이다.이러한 문제에 대해 현재 유럽연합회원국인 15개국의 의견도 같다.그러나 중부유럽과 동유럽이 관건이다.현유럽회원국들도 원칙적으로 대통합을 말하지만 그 이면에 또다른 면이 공존하고 있기 때문이다.유럽회원국들은 중부유럽국가들이 단지 유럽연합이 강하기 때문에 유럽연합에 들어오길 원한다고 내심 생각하고 있다. 또 이들이 가입을 위한 전제조건을 충족하기가 사실상 어렵고 그들 국가들간에 경제적 격차가 너무 심하다는 면도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중부유럽이 가입조건을 맞추려면 이는 경제적인 자살행위를 하는 것과 다름없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예컨대 헝가리와 루마니아를 비교해보면 극명하게 드러난다.이들 양국간의 경제적 격차는 적어도 프랑스와 포르투갈간에 차이의 3배나 되고 있다.이는 해당국에 정치적인 격변마저 초래할 가능성도 높다는 것을 시사한다. 독일이 독일중심 유럽 건설을 추진하고 있는 점도 통합의 저해요인이다.독일은 통일이후 중부유럽을 뭉치게 하는 중요한 축이 되고 있다.그리고 발칸반도도 챙겨야할 부분이다.이지역을 도외시한다면 그들을 통합유럽의 경제축으로 끌어들일 수가 없게 되는 등 통합유럽의 경계에 있어 많은 문제가 도출될 것이다.이들을 버린다는 것은 결국 이기주의에 지나지 않는다.동유럽과 중부유럽의 통합은 꼭 필요하다.미래의 세계가 태평양시대로 예견되고 있기 때문이다.옛소련의 붕괴이래 이지역도 유럽으로 다시 회귀했다.실제 중부유럽과 동유럽을 포함하지 않고서는 유럽통합이라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을 것이다. ○‘거대한 단일화’ 긴요 유럽의 방위 역시 유럽통합과 관련,다시 한번 생각해볼 문제다.소련의 분열은 유럽에서 미국에게 유럽방위의 부담에서 벗어나게 했다.미·소 양축으로 대변되던 힘의 균형이 중심을 잃었으며 이는 전쟁 억제력을 상실하게 만들었다.최근 국지적인 분쟁이 잦은 이유도 여기에 기인한다.대표적인 희생자가 유고다. 유고내전은 유럽방위의 공백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앞으로 유럽국가들의 유럽방위 정책을 어떻게 정리해나갈 것인가에 큰 교훈을 던져주고 있다.독일은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를 인정하고 있다.그러나 그리스는 세르비아를 돕고 있다.과거 걸프전을 연상시킨다.당시 유럽국가들은 이란과 이라크에 별도의 행동을 보여 왔다.방위력의 공백은 동유럽 연합을 태동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가간 격차 걸림돌 유럽방위 문제는 형식적인 유럽 통합에는 지장이 없을지 모르나 실제 가장 중대한 이슈라고 볼 수 있다.궁극적으로 정치적 통합까지 염두에 두고 있는 이상 간과해서는 안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유럽연합국가들의 통합방위가 필요한 것이다. 유럽의 통합방위를 위해서는 우선 프랑스와 독일간에 가교가 필요하며 여기에 스페인이 가세하고 궁극적으로 그리스까지 참여해야 한다.유럽연합 15개 회원국이 서명한 마스트리히트조약의 공동안보 및 공동외교정책의 추진에 힘을 불어 넣어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결국 보다 많은 국가들의 참여가 과제를 해결하는 단초인 셈이다.거기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과제들의 해결은 표면적으로 쉬워보일 수도 있다.그러나 유럽통합의 틀을 닦는데만 반세기 가까이 걸렸다는 사실을 돌이켜 본다면 그렇지만은 않을 것이다.
  • 해태 어떤 기업/45년 4인동업 출발… 재계랭킹 24위

    해태그룹은 지난 45년 고 박병규 회장 등 4명의 기업인이 해태제과를 설립하면서 출발했다.재계순위는 지난해말 기준으로 24위(자산총액 3조3천9백여억원,매출액 2조7천1백여억원). 설립초기 카라멜로 명성을 얻었고 웨하스 제리 풍선껌 등으로 급성장했다.70년대에는 부라보콘 맛동산을 탄생시키며 전성기를 맞았다.73년 해태음료,78년 해태상사,79년 해태전자를 세워 사업다각화를 시도했다.67년 롯데의 등장으로 제과업계의 경쟁이 치열해지자 다른 부문에서 활로를 모색하기 위한 것이었다. 77년 박병규 회장이 타계하자 현 박건배 회장(49)이 그룹을 이끌어왔다.81년 코래드,82년 해태타이거즈와 해태유통을 잇달아 설립했다.최근들어 탈식품을 선언하고 전자·건설·유통회사를 주력회사로 키웠다.그러나 인켈,나우정밀 인수 등 전자사업에 대한 과도한 투자와 미진금속을 모태로 설립한 해태중공업에서 지속적인 적자가 나 부채가 늘었다.
  • 서울시 재개발 봉천동 500억대 땅/산림청,소유권 확인 소송

    산림청은 1일 서울시가 재개발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서울 관악구 봉천동 임야 40필지 2만여평(시가 5백억원)은 국가 소유로 서울시가 이를 처분한 것은 부당하다며 서울시를 상대로 소유권확인 청구소송을 서울지법에 냈다. 산림청은 소장에서 “서울시는 이 땅이 지난 73년 한시법인 주택개량촉진에 관한 임시조치법에 의해 시측에 무상 양여됐다고 주장하나 문제의 땅은 양여대상이 아니었고 한시법도 81년 효력이 종료된 만큼 땅의 소유권은 국가에 있다”고 주장했다. 산림청 소유였던 문제의 땅은 지난 73년 대규모 무허가 주택 밀집지역을 지방자치단체에 무상 양여한다는 임시조치법에 따라 서울시 관할로 넘어가 현재 아파트 5천3백여가구분의 재개발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 무용가 김말애(이세기의 인물탐구:149)

    ◎혼 깃든 춤사위… 한국춤의 선도자/“한국춤은 얼굴과 체구가 작아야 한다는 종래의 통념을 깨고 그는 후리후리한 키에 긴팔 수려한 용모·풍부한 감성으로 한국춤을 개척하는 타고난 춤꾼이다” 무용가 김말애가 사진집 ‘춤’을 출간했을때 무용평론가 김경애는 이 책을 소개하면서 “김말애는 끝없이 춤추는 이 시대 서정시인”이라고 했다.흑백사진속에서 그는 마치 수평선을 넘나드는 한마리 새가 되어 ‘살을 푸는 떨림과 한을 푸는 흐름’으로 장면장면마다 선명한 춤선을 그려내고 있다.지난 여름 LA예총 초청으로 ‘회귀선’공연을 가졌을때는 그곳에서 활동하는 시인 고운씨가 ‘아득한 꿈길 돌아오는 배’란 즉흥시를 지어 능란한 춤꾼인 김말애에게 헌사했다.‘아득히 끝도없이/꿈이 철철 넘치게/출렁이는 배 하나/지구가 돌아가는 선을 가르고/지금은 어디쯤 어느 물길에/덩실덩실 춤을 굴리나…’로 시작되는 이 장시는 망망대해에 뜬 한척의 배를 인생행로에 비유하여 ‘인간의 삶은 출발도 끝도 없는 원점으로 되돌아간다’는 김말애의 무일물사상을 실감있게 담아내고 있다. ○“끝없이 춤추는 서정시인” 평론가들에 의하면 그는 ‘우리 무용계에서는 흔치않은 대형무용가’다.한국춤은 얼굴이 작고 체구가 작아야 한다는 종래의 통념을 깨고 후리후리한 키에 긴팔,잘생긴 얼굴과 풍부한 감성으로 한국춤에서의 ‘정중수로’와 ‘동중백학’을 성취해 보인다.그중에서도 한국춤의 정신을 되살린 창작무 ‘춤을 위하여’는 ‘무엇이 나를 춤추게 하는가’ ‘왜 춤추게 하며 어떻게 추어야 하는가’를 빠르게 돌아가는 리듬과 함께 가벼운 움직임,강철같은 강인함을 엇섞어 내딛는 보폭마다 절륜의 백태를 연출해낸다.또 누구보다 전통춤을 잘 가꾸고 보존시키는 무용가이기도 하다.음악이 춤을 능가하거나 음악을 따라가기보다 음악을 몰고가는 쪽으로 작품을 구성하여 다른 무용가들이 간과하기 쉬운 현대성과 참신도를 간직하면서 ‘역동성의 균형’을 포착하는 안무실력이 특징이다. 그는 “춤추는 딸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삶의 기쁨과 보람을 느낀다”는 어머니 장종숙여사로 인해 춤추게 되었고 그어머니는 지금도 여전히 딸의 후견인이자 열렬한 열성팬이다.여섯살되던 해 삼척읍에 있던 심덕진무용연구소에 데려갔고 “너는 반드시 훌륭한 무용가가 돼야 한다”는 지상명령에 따라 초등학교 2학년때 서울에서 열린 ‘전국아동무용경연대회’에서 입상,어머니는 너무 좋아서 삼척의 택시들을 총동원하여 딸을 태우고 시내퍼레이드를 벌인 일도 있다.이로 인해 “딸을 광대로 만들거냐”고 춤을 반대하던 부친 김태규씨(수산업·89년 타계)마저 딸의 재능을 인정하게 되었고 초등학교 5학년되던 해 서울로 전학,당대 최고의 무용가이던 조택원·김문숙씨 댁에 머물수 있게 도와주었다.그러다가 김백봉의 ‘부채춤’에 반해 묵정동에 있던 김백봉무용연구소에 찾아갔으나 스승은 “아무도 너를 추천해준 사람이 없는데 내가 남의 제자를 훔쳐온 줄로 알겠다”면서 받아주지 않았다.후에 김문숙씨와 ‘춤’지의 조동화씨가 적극 권하여 상명여중 시절에 김백봉 문하에 정식 입문했다. ‘어찌나 춤을 잘추던지’ 무용계의 거봉 조택원씨는 66년,일본에서 발행되는 ‘문예춘추’에다 ‘나의 사랑하는 제자’제하로 ‘너는 최승희를 능가하는 무용가가 되라’는 격려의 글을 발표한 것으로도 유명하다.김백봉 스승은 공연때마다 그를 언제나 센터에 세워주었고 고교 2학년되던 해 이화여대가 주최한 ‘전국고교무용콩쿠르’에서 특상하여 장학생 특전을 받았으나 ‘김백봉’이라는 거대한 스승의 그늘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스승이 몸담고 있던 경희대에 진학했다. ○6살때부터 무용 배워 그는 우리 무용사의 신화적인 존재들인 최승희와 조용자,그리고 김백봉을 닮았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아마도 외모 이전에 예술에 대한 치열성과 자신감때문일 것이다.편협하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과 타악기·구음 등의 생음악으로 춤의 활력을 작동시키는 능력이 탁월하다.지난 20년동안 대학교수로서 예술현장을 지키는 춤작가로서 그리고 무대에 서기를 서슴지않는 춤꾼으로서 그의 역할은 두드러졌으나 오로지 무대에서만 ‘끼’를 펼칠 뿐이며 ‘예술가는 무대에서 빛나야 한다’는 고집을 굳건히 지킨다.그러나 ‘예술가가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여러 도정에 늘 함정이 도사린다’는 것을 경험할 수 밖에 없었고 ‘나에게는 스승만 있는줄 알았는데 어느틈엔가 나의 제자들이 나와 같은 길을 걷고있음’을 깨달을수 있었다.그래서 제자들이 설 땅을 만들어주기 위해 전에 없이 사회 각층과의 다양한 교분을 트는가 하면 춤공연을 펼칠수 있도록 춤·타래무용단을 만들기도 했다. 그가 무대에서 가장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은 수많은 춤중에서도 김백봉스승에게 전수한 ‘부채춤’을 빼놓을수 없다.전립의 패영을 늘어뜨린 장삼차림에다 두 부채를 편채 열정적으로 춤추고 나서 호흡을 가다듬는 모습은 ‘범접할 수 없는 깨끗한 기상을 보이면서 지음실력으로 인위(인위)와 자연의 극치를 조화시킨다’는 평을 듣는다.지난 8월 LA 윌셔 이벨극장에서 그가 재구성한 일련의 전통춤공연을 펼쳤을때 재미 무용평론가 이병임은 “그의 춤스타일과 그가 구사하는 무용언어가 전혀 새로운 영역의 한국무용이라는 점에서 이런 류의 우리무용을 미국사회에 소개하고 싶었다”고전제하고 “미국의 관객들에게 부채춤이나 장고춤이 행사나 형식무용이 아닌,화려하고 아름다운 동양예술로 재인식됐다”고 극찬했다.가족은 사업을 하는 김효영씨와 남매. ○여중때 김박봉 문하생 입문 그는 때때로 솟구쳐 오르는 흥과 청으로 마치 무당처럼 춤추고 억제할 수 없는 벅찬 감동때문에 춤을 추는 동안 구슬같은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남보기에 행복하고 순탄한 역정을 지나친 것 같지만 모든 고통스러움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을뿐 예술적 파란과 시행착오를 이긴 강인한 정신의 소유자이다.평론가 김태원이 “극적인 연기로 관객의 시선과 환호를 휘몰아갈수 있는 특이한 스타적 재능을 가진 이”라고 지적한 것처럼 그는 자신의 언어로 자신의 춤을 추는 춤의 완결앞에서 어느때보다 당당하고 의연한 의지를 지금 만인에게 과시할 수 있는 시기다. □연보 ▲1950년 강원도 강릉 출생 ▲1971년 경희대 무용과 졸업 ▲1972년 김말애 작품발표회 ▲1973년 경희대 대학원 졸업 ▲1976∼현재 경희대 교수 ▲1983년 김말애 창작무용발표회 ▲1985년부터 대한민국무용제 참가 ▲1986년 뮤지컬 ‘양반전’ 안무 ▲1988년 서울올림픽개막식 ‘차일춤’ 안무,주불대사관 초청 서울올림픽 유럽 홍보공연 ▲1988년 창작무용 ‘애장터’ 안무 ▲1989년 일본 오사카예술대 교환교수,우시마도국제예술제 공연 ▲1990년 춤·타래창단공연 ▲1995년 한국무용제전 참가 ▲1996년 김백봉춤 보존회 열린무대 ▲1997년 ‘아,김백봉무용’ 공연출연,LA한국예총 초청 미주 공연 ▷수상◁ 대한민국무용제 안무상(85년) 서울국제무용제 대상·안무상·음악상(92년) ▷저서◁ ‘춤’(94년)‘한·중·일 궁중무용의 변천사’(96년)외 논문집 ▷현재◁ 대한무용학회 이사·한국무용협회 부이사장·스포츠무용철학회 부회장
  • 교총 새달 반세기 맞는다/오늘 기념리셉션·다양한 행사

    ◎회원 27만명 국내 최대 이익단체로 성장/24일 교육자대회·대선후보 초청 강연도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회장 김민하)가 다음달 23일로 창립 50주년을 맞는다. 22일 역대 회장 등 교육계 인사와 고건총리,김수한 국회의장 등 8백여명이 참석하는 기념리셉션을 시작으로 50돌을 자축하기 위한 다양한 행사와 축제가 이어진다.24일에는 서울 잠실체육관에서 1만3천여명의 교원이 모인 가운데 대선 후보들을 초청,강연을 겸한 교육자대회를 연다. 47년 교육계 중진 1백여명이 참여한 ‘조선교육연합회’를 모태로 출범한 교총은 현재 전체 교원의 3분의 2인 27만명을 거느린 우리나라 최대의 이익단체로 성장했다. 역대 회장들도 오천석,최규동,백낙준,유진오,임영신 선생 등 교육계 원로들이 총망라돼 있다.최근의 윤형섭,현승종,이영덕씨 등은 장관이나 총리로 입각했다. 교총의 반세기는 한마디로 ‘영욕의 역사’이다.해방 직후 정부로부터 유일한 교원 이익단체의 지위를 부여받아 활발한 활동을 펴왔지만 정치권 등 외압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웠던 적은 많지않았다. 교총은 51∼56년 3차례에 걸친 내무부의 교육자치 폐지 움직임 저지,65년 초·중등 교원 단일호봉제 도입,73년 사립학교 교원연금법 제정,75년 교원 옹호기금 설치,81년 교육세법 실현,82년 스승의 날 부활 등굵직한 업적을 남겼다.또 교육환경개선 특별회계법,교장 명예퇴직제,초등학교 교과전담교사 등 66건에 대해 정부와의 합의를 얻어냈다. 그러나 유신체제하에서 평교사의 대의원 쿼터제를 폐지하고 5공화국 시절 예산 사전승인제를 도입하기도 했다. 교총은 89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의 태동으로 ‘어용시비’에 휘말려 그 위상이 크게 위축됐다. 모든 교원들을 한데 묶어 이들의 진정한 이익을 대변하는게 시급하다.
  • ‘경찰의 날’에 더 돋보인 ‘민중의 지팡이들’

    ◎불우이웃 벗으로 청소년 길잡이로/국악인과 함께 14년째 노인위로공연/파출소서 우산·공중전화카드 서비스/헌혈47번·고아된 형제돕기운동까지 21일은 제52회 경찰의 날.여경 1천5백여명을 포함,14만여명에 이르는 ‘민중의 지팡이’의 생일이다. 이들 가운데는 활발한 사회봉사 활동과 예술 활동 등으로 주목받는 경찰관들이 많다. 서울 동부경찰서 중곡2동 파출소 김종태 경사(54)는 우리 민요의 달인.고교 시절부터 장구와 꽹과리 등 국악에 남다른 재능을 보여 73년 국악인 박태년 선생에게서 본격적으로 서도민요를 배웠다.이때부터 국악인들과 함께 14년째 외로이 여생을 보내는 노인들을 위해 위문 공연을 계속해 왔다.내무부장관 표창 등 수상경력만 54회. 서울 성동서 신당2파출소 임채운 순경(24)은 지난 3월부터 신당사회복지관에서 지체장애아들과 오갈데 없는 노인들을 돌보고 있다.어린이들에게 음악과 미술을 가르쳐주고 노인들을 직접 목욕시켜 주기도 하면서 남몰래 선행을 해왔다. 시인이자 복싱사범인 서울 양천서 신동선 경장(42)은 복싱을 통해 불우청소년들을 올바른 길로 이끌어왔다.현 WBA주니어라이트급 세계챔피언인 최용수 선수의 보조트레이너인 신경장은 강력사건 전담 형사로서의 경험을 토대로 시집 ‘할미꽃Ⅰ’과 ‘할미꽃Ⅱ’를 펴내기도 했다. 올해 파출소 부문 평가에서 전국 1위를 차지한 서울 동대문서 동묘파출소(소장 이순영 경위)는 파출소에 우산과 공중전화카드를 비치해 놓는 한편 범죄 예방을 위해 부녀자들에게 구원 호루라기도 지급했다. 인천 강화서 이국형 순경(29)은 지난 1월 화재 현장에 질식해 쓰러진 60대 노인을 불길을 뚫고 들어가 구해냈다. 경찰청 감식과 오세양 경위(54)는 정신 이상으로 이름과 주소까지 잊어버린 30대 산모를 끈질긴 지문대조 작업 끝에 가족에게 인계해주었다. 백혈병을 앓고 있는 어린이를 위해 자신의 헌혈증서 47매를 기증한 서울경찰청 제3기동대 최종산경장,지난 7월 남편 살해 혐의로 어머니가 구속돼 사실상 고아가 된 어린이 2명을 위해 모금활동을 벌인 부산 사하서 김정호 경사(49) 등도 ‘참 경찰’로 기록될 것 같다. 전남여수서 우두파출소 조홍무 경사(54)와 석진례 경사(46) 부부는 고아 7명을 직접 키워 결혼시키는 등 20여년전부터 불우청소년들을 보살펴오고 있다.
  • NYT지 설즈버거 회장 24년만에 일선서 은퇴

    ◎아들에 경영권 이양 【뉴욕 AP 연합】 지난 24년간 뉴욕타임스사(NYT)를 운영해 온 아서 O.슐츠버거 회장(71)이 16일 아들에게 회장직을 물려주고 2선으로 물러났다. 슐츠버거는 앞으로 명예회장으로 남아 이사직을 계속 유지하게 되며 NYT 발행인으로 회장직을 물려받은 아들 슐츠버그 2세(46) 체제의 정착을 위한 과도위원회를 이끌게 된다. 슐츠버거는 지난 73년부터 회장을 맡으면서 보스턴 글로브지 매입과 지역 신문 및 잡지 발행,TV와 라디오 방송사업 진출 등의 사업확장을 주도해왔다. 그가 처음 발행인이 된 63년에 1억1백만달러였던 NYT의 수입은 작년에 26억달러를 기록했다. 슐츠버거는 밀워키 저널에서 1년간 기자생활을 한 것을 제외하고는 평생을 NYT에서 보내면서 기자와 관리자로 일해왔다. 회장직을 물려받은 슐츠버거 2세는 그간 NYT의 1면 컬러인쇄와 주중 섹션발행 확대 등의 지면개혁을 주도해왔다.
  • 노벨 경제학상 수상 머튼·숄스 교수 업적

    ◎스톱옵션 가격결정 모델 개방/파생금융상품 거래 활성화 기여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미국의 로버트 머튼 하버드대 교수와 마이런 숄스 스탠포드대 교수는 ‘스톡옵션(Stock Option)’ 등 이른바 파생상품의 가격결정 모델을 개발한 인물들이다. 스톡옵션제는 지난 해 우리나라에서도 벤처기업 육성차원에서 도입된 제도.벤처기업 등 창업기업이 우수한 인재를 유치할 수 있도록 해당 업체의 주식을 3∼5년 뒤 액면가로 살 수 있는 권리를 주는 제도로 창업기업이 장래에 성공,주가가 오르면 액면가와 시가와의 차액을 챙길수 있는 메리트가 있다.그때가서 주식을 사지 않아도 된다. 머튼과 숄스교수는 이처럼 ‘장래의 특정시점에서 특정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는 권리’를 팔고 사는 옵션 선물 스와프 등 각종 파생금융상품의 가격결정에 이론적 토대를 제공했다. 숄스 교수는 73년 시카고대에 있을 때 피셔 블랙 교수(노벨경제학상 수상자·95년 작고)와 함께 옵션의 현재가치를 구하는 ‘스톡옵션 가격결정 모델’(블랙­숄스 모델)을 처음 개발해냈다.물리학의 열 확산속도를 응용해 개발한 이 모델은 옵션의 가치를 옵션 행사시 가격과 옵션만기까지의 잔여기간 및 이자율,대상주식 가격,일반금융기관의 이자율을 변수로 입력해 계산한다.지금도 전 세계에서 수천명의 증권 중개인들과 투자자들에 의해 활용되고 있다. 머튼 교수는 이 모델을 재무분야가 아닌 일반 경제학의 소비,저축,투자이론으로 응용범위를 확산시켰으며 불확실한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투자위험을 피하는 헷징(Hedging)수단의 개발 등을 통해 파생금융상품의 활성화에 기여했다.캘리포니아대에서 수학을 전공해 석사 학위를 받은 머튼 교수는 최근엔 선물거래 등과 섞어 또 다른 상품을 만드는 재무공학(Finance Engineering) 분야에서 성과를 거두고 있다.한국은행 김성민 공개시장과장은 “머튼 교수는 금융관련 컨설팅 회사를 창설하는 멤버로 활동하는 등 이론 뿐 아니라 파생상품의 실무운용에도 관심이 많았다”며 “증권 등의 옵션거래 이외에 일반 기초자산에 대한 가격결정 모형도 개발했다”고 말했다.
  • 평택호 농업용수 부적합

    ◎폐수 하루 60만t 유입… 60%가 정화 안돼 시화호에 이어 새만금호가 「제2의 시화호」가 될 것으로 우려되고 있는 가운데 평택농지개량조합이 농업용수 공급목적으로 조성한 평택호도 수질이 크게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13일 환경부에 따르면 지난 73년 농업용수 공급목적으로 조성된 평택호의 경우하루 오·폐수 유입량은 60만3천t에 달하나 60%가 전혀 처리되지 않은채 흘러들어 평택호의 화학적 산소요구량(COD)은 지난해 평균 9.8ppm에서 올해에는 지난 8월말까지 10.6ppm까지 수질이 악화된 것으로 집계됐다. 호소 수질을 기준으로 볼때 농업용수는 COD 기준으로 8ppm 이하를 유지해야 하나 이미 이를 초과해 평택호 수질은 사실상 농업용수로 부적합한 수준까지 악화된 것이다. 농업용수로 조성된 평택호는 수원과 오산 천안시 등 경기도와 충남의 9개 시·군을 유역으로 하고 있으며 저수용량은 9천8백만t에 이르고 유입하천으로는 안성천과 오산천 진위천 황구지천 등이 있다. 평택호 수질관리는 농지개량조합이 95년5월 농림부가 제정한 농업용수수질관리지침에 따라 경기도지사의 감독하에 유역내 오염원 조사 등을 실시하고 있으며 수질측정은 한강환경관리청이 매월 한차례씩 하고 있다. 이처럼 평택호 수질이 계속 악화되자 환경부는 지난 5월15일부터 24일까지 평택호 유역의 폐수 배출업소 89개에 대해 집중 단속을 실시,위반업소 4군데를 적발해 행정처분과 고발조치를 취했으나 낮은 하수처리율때문에 평택호 수질악화을 막기에는 역부족하다는 지적이다.
  • 서규용 농림부 농업정책심의관(폴리시 메이커)

    ◎“주곡 자급 안보차원서 고려”/농지 전용 억제·전업농 육성 등 중점 추진 올 농사가 대풍작이다.그러나 풍작의 희열도 잠시….풍년분위기에 마냥 젖어있을 수만 없는 부처가 있다.바로 농림부다. “한 두해 작황에 일희일비 할 수 없습니다.근본적으로 쌀의 자급기반이 확실하게 마련돼야 합니다.시장원리로만 접근해서는 곤란합니다.값싸다고 마구 수입하고 농지전용을 가속화하면 쌀 자급기반이 위협받습니다” 서규용 농림부 농업정책심의관은 “주곡만큼은 안보차원에서 고려돼야 한다”며 “쌀 자급기반이 잠식되면 미국 중국 등지의 쌀 작황에 따라 식량수급이 좌지우지돼 심각한 사태가 올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일본의 경우 2백10만정보만 있으면 쌀 자급이 가능합니다.그럼에도 일본은 2백76만정보의 논을 확보하고 있습니다.농업시설이나 타용도로의 전용이 정책적으로 억제되고 있지요.곰곰 새겨봐야 할 대목입니다” 쌀 자급기반 마련이 21세기 농정의 주된 정책방향이 돼야 하며 총 42조원이 투입되는 농어촌구조개선사업의 종료시점(98년)후에도 식량자급이 되도록 쌀 산업의 경쟁력제고대책이 지속 추진돼야 한다는 얘기다.이의 일환으로 98년 이후 농정의 기본 틀이 될 ‘21세기 농업정책 방향’을 마련중이다. 서국장은 일각에서 농촌투융자의 효율성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보이고 있지만 정상적으로 추진되고 성과도 가시화되고 있다고 했다.3㏊ 이상의 규모화된 생산농가수가 90년 1만7천800호에서 지난해 3만4천200호로 늘어났고 벼농사 기계화율도 같은 기간 78%에서 97%로,농가소득도 1천1백만원에서 2천3백30만원으로,농가저축도 4백20만원에서 1천5백70만원으로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농가부채만해도 그렇습니다.부채가 없는 농가(67%)는 대부분 1정보 미만의 영세농이며 전체농가의 62%는 저축이 부채보다 많습니다.특히 호당 평균부채는 96년 1천1백73만원으로 부채중 78%가 농지·농기계 구입 등 생산성부채입니다.일부에서 주장하는 부채 28조원은 농·축협의 조합원에 대한 대출금에 근거하고 있지만 이중 8조6천억원은 농가가 아닌 조합원(약 50만명)에 대한 대출금이며 5조6천억원은 농가명의로 대출받아 친척 등 제3자에게 빌려준 돈이어서 실제 농가부채는 1백50만 농가의 전수조사결과 나타난 17조원이 맞습니다” 서국장은 “현재의 벼 재배면적 1백5만정보만 제대로 유지돼도 쌀 자급이 가능하다”며 “논면적을 지켜나가고 전업농 육성 등 농지제도의 개혁을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충북 청주출신(50)으로 청주고와 고대 농학과를 나와 73년 농림부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채소과장 농산과장 농업공무원교육원연수부장 종자보급소장을 거쳤다.외모답게 업무추진이 저돌적이다.틈틈이 테니스 수영 탁구를 즐기는 만능스포츠맨.
  • 73년6월 설립한 섬유제조 전문업체/쌍방울 어떤 기업인가

    ◎계열사 16개 거느린 재계순위 97위 부도 위기에 몰린 쌍방울그룹은 73년 6월 설립한 (주)쌍방울을 중심으로 성장해왔다.계열사는 16개로 이중에서도 주력업체인 쌍방울은 메리야스 제조 및 도·산매업으로 잘 알려져 있다.상장사는 쌍방울뿐이다. 쌍방울을 중심으로 건실성장을 해왔으나 종합레저 및 스포츠업 등으로 사업을 다각화하면서 부실의 길로 들어섰다.96년도 매출액은 8천1백22억원,자산총액은 1조4천2백억원이며 섬유부문에서 2백45억원의 당기순이익을 냈으나 리조트 부문에서 3백4억원의 적자를 내 그룹 전체로는 59억원의 적자를 냈다.그룹 종업원 수는 6천200명.거래처는 리조트 회원 6만8천명을 포함,7만4천개에 이른다.자산 또는 여신액 기준으로 30대나 50대 그룹에 해당되지 않으며 매출액 기준으로 재계순위 97위쯤 된다.여신액이 2천5백억 이상인 63개 업체에 적용되는 부도유예협약 적용대상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 이스라엘 필하모니·산타체칠리아/‘세계정상의 앙상블’서울서 즐긴다

    ◎이스라엘 필하모니­거장 주빈메타가 이끄는 ‘문화대사’/산타체칠리아­정명훈씨 지휘 맡은후 첫 아시아순회 중동과 남유럽의 유서깊은 오케스트라 두팀이 처음 내한한다.4일 서울 예술의전당 음악당에서 연주할 산타체칠리아 오케스트라와 25·26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공연을 갖는 이스라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IPO)가 그들.오케스트라의 명문 하면 북유럽이나 미주팀들을 먼저 떠올리지만 두팀도 기량에선 뒤지지 않는다.게다가 자기나라 특유의 음악적 전통위에서 독특한 음악해석을 펼쳐 어느 때보다 ‘색깔’있는 공연을 기대해봄직하다. 첫 내한공연을 갖는 이스라엘 필은 두말 필요없는 아시아지역 최고수준의 오케스트라.1936년 폴란드 바이올리니스트 후베르만이 창단했고 2차대전때 역량있는 동유럽 연주자들이 나치 박해를 피해 대거 몰리면서 정상급 오케스트레이션의 기틀을 닦았다.창단때의 ‘팔레스타인 심포니 오케스트라’에서 48년 이스라엘 건국과 동시에 IPO로 개칭한 이들은 단순한 오케스트라를 넘어 이스라엘 문화대사 노릇을 톡톡히 해왔다.73년 제4차 중동전쟁때는 미사일 포격을 무릅쓰고 저녁마다 음악회를 열어 국민 사기(사기) 높이기에도 앞장섰다 한다.동유럽 망명객들이 기반을 닦은 전통답게 연주는 유럽색이 강하다는 평. 지휘는 68년부터 지금까지 음악감독으로 IPO와 인연을 맺어온 거장 주빈 메타가 맡았다.협연자로 나설 하피스트 곽정(25일),첼리스트 장한나(26일)등도 메타가 직접 골랐다고 한다. 레퍼토리는 25일 베토벤의 ‘레오노레’ 서곡 3번,라이케네의 하프협주곡,베토벤 교향곡 3번 ‘영웅’,26일 시트라우스 교향시 ‘틸 오일렌시피겔의 유쾌한 장난’,차이코프스키 ‘로코코 변주곡’,시트라우스 교향곡 ‘가정’ 등이다.598­8277. 한편 산타체칠리아는 얼마전 정명훈의 상임지휘자 취임으로 우리에게 한층 가까워진 오케스트라.1585년 세워진 산타체칠리아 국립아카데미 소속으로 1886년 창단돼 백돌을 넘겼다.전통적으로 오페라연주가 화려하게 꽃핀 이탈리아에서 교향곡과 현대음악 레퍼토리를 개발하는데 앞장서온 오케스트라.이탈리아 오케스트라답게정열적이고 생동감넘치는 해석에 빼어나다. 이번 무대는 정명훈의 상임지휘자 취임이후 처음 갖는 아시아 순회공연의 일환.선 굵은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과 낭만적인 그리그 피아노협주곡 a단조 작품 16 등 색깔이 다채로운 레퍼토리를 들려준다.협연에는 피아니스트 김혜정씨.518­7343.
  • 치치하얼의 조선족(흑룡강 7천리:6)

    ◎20년대 첫 이주… 1만9천명 ‘공생’/눈강평원 드넓은 초원/서광촌·명성촌·선명촌서 농사일­상업으로 생계 이어 흑룡강 한 지류인 눈강유역의 평원은 장관이다.달리는 열차에서 바라본 차창밖으로 푸른 벌판이 아득했다.하늘을 흐르는 흰 뭉게구름과 초원에서 풀을 뜯는 새하얀 양떼가 어울린 평원은 그야말로 목가적이었다.그 망망한 초원 한 가운데 옹기종기한 마을은 마치 섬처럼 보였다.조선족들도 일찍 눈강평원에 들어와 그 섬같은 외로운 마을을 꾸렸다.눈강유역인 흑룡강성 치치하얼지구의 조선족은 지금 1만9천명을 넘는다니 적은 숫자는 아니다. 눈강평원의 조선족 이주는 1929년에 시작되었다.조선시대 사육신의 한분인 성삼문을 배출한 성씨가문의 22대손이 식솔을 이끌고 첫발을 들여놓았다.오늘의 흑룡강성 용광현 서광촌이었는데,당시 지명은 눈강성 대유수다.그 손자 성영석씨(46)는 지금 서광촌에 살고있다.할아버지가 처음 서광촌으로 들어올때 이끌고 온 식구는 여섯이었다는 것이다.지금은 성씨네 일가가 100명으로 늘어났다는 그는 이주해온 사연을 이렇게 설명했다. “할아버지는 당시 지식인이었던 모양입네다.한일합방이 되자 벼슬할 꿈을 버리고 경상도 청도읍에서 서당을 꾸렸다고 기래요.한학에 능하셨던 할아버지는 일제의 농촌정책에 사사건건 반대를 해서리 관리들의 밉상을 받았디요.그래서리 고향을 등지고 만 것입네다.아들 삼형제와 사촌까지 여섯이 고향을 떠나왔다고 합데다.봉천까지는 기차로 왔으나 더 갈만한 노자가 있어야디요.꼬박 두달을 남부여대하고 걸어서 대유수(서광촌)에 도착했다는 것이디요” ○성삼문 22세계 첫발 그들 일가는 비록 일망무제한 옥토에 짐을 풀었다고는 하지만 막막하기 짝이 없었다.부릴 소나 말은 고사하고 씨앗도 없었기 때문이다.그 할아버지는 당시 눈강성 이몽기 성장에게 글을 올렸다.문장에 감복한 성장은 성소재지 치치하얼로 불러들였다.한주일여를 성장집에 머물면서 필담으로 교유한 두 사람은 서로의 인격을 존중하는 사이가 되었다.성장은 마차 두대에 쟁기며 양식,씨앗을 선물했다.첫해의 농사도 대풍을 이루었다.그래서 사람을 고향 청도로 보내 일가친척들을 서광촌으로 데리고 왔다. ○일제때 강제이주 시작 오늘날 눈강유역 평원에는 서광촌 말고 치치하얼시 메리스구 명성촌과 선명촌에도 조선족이 몰려있다.서광촌이 자생마을인 것과는 달리 이들 명성촌과 선명촌은 일제의 강제이주정책에 의해 형성된 마을이다.당시 눈강성에는 이같은 집단 이주마을이 13군데나 되었다고 한다.한 마을에 100호씩이 자리잡았다.모두가 경상북도 사람들이었는데,이주 초기인 1942년에는 일제가 배급도 주었다.그러다 일제는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이른바 대동아전쟁에 광분한 일제는 뼈빠지게 농사를 지어놓은 쌀을 모두 군량미로 빼앗아갔던 것이다. 그래서 일제 등쌀에 견디다 못해 마을을 등지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경상도에서 온 전병형씨네 일가도 겨우 이태를 살고 도망치다시피 내몽골로 들어갔다.해방을 맞고서도 십수년이 지난뒤 그들 일가는 치치하얼로 돌아왔다.아들 성렬씨가 한국전쟁때 북한 인민군 소대장으로 참전했다가 대퇴하고 식솔 모두를 치치하얼시 메리스구로 데리고 나왔던 것이다.한때 선명소학교 교장을 지낸 아들도 이미 세상을 떴다.지금은 치치하얼시 교육위원회 종교처장으로 일하는 손자 창국씨(49)가 가계를 잇고 있다.창국씨는 1968년 치치하얼 조선족고급중학 재학 당시 반혁명분자로 몰렸다.그는 이듬해 제적되어 선명촌으로 쫓겨났다.반혁명분자이기는 했지만 선명촌에서 촌장 아래 직급인 생산대장으로 올라 온갖 어려운 일을 도맡았다.그가 쫓겨나서 일했던 선명촌은 눈강을 사이에 두고 명성촌과 마주한 마을이다.모두 조선족 마을이지만,한때는 남조선 북조선이라 불렀다.요새는 한국 북조선으로 바뀌었다.그렇다고 다른 뜻을 가진 것은 아니다.단지 강남북에 자리한 마을 위치때문에 그렇게 불렀다. 그가 반혁명분자로 쫓겨났던 선명촌은 말하자면 북한이다.요즘에 와서 보면 두 마을의 별칭에는 유머러스한 구석도 있다.그러나 문화혁명 당시 그의 선명촌생활은 말이 아니었다.1975년 중앙민족대학으로 진학하기 이전까지 옹근 여섯해를 오로지 농촌에 매달렸다.기왕 농촌으로 들어온 바에야 조선족 농민들을 위해 헌신하겠다는각오로 별별 궂은 일을 다 맡았다. “아마 1973년인가 그럴겁네다.그 무렵 여기서는 농사일에 부릴 수 있는 한마리 말값이 3천원이라 싼 말을 사러 내몽골로 갔디요.하라이얼까지는 기차를 타고 가서 다시 자동차와 말을 갈아 타고 우숴무에 도착했수다.거기서는 말 한마리에 550원을 해서리 20마리를 사디 않았갔수.그 말을 끌고 초원을 지나 대흥안령을 넘어오는데 40일이 걸렸디요” 그 시절 총각 전창국은 마을 처녀들로부터 흠모의 대상이 되었다고 한다.처녀들은 아무런 사심없이 일에만 매달린 그의 열정에 흠뻑 반했던 것이다.그러나 20년이 지난 오늘날에는 전통가치관이 사뭇 달라졌다.그런 신랑감이라면 거들떠 보지않는 세월로 변한 것이다.농촌처녀들은 파랑새처럼 도시로 포르르 날아가 버렸다.그래서 힘을 들여 농사일을 하는 총각들이 짝을 못 찾는지가 벌써 오래되었다. 그런데 치치하얼에 머무는 동안 선명촌으로 가는 강가에서 한쌍의 젊은 남녀를 만났다.“옳지,아직은 짝이 있구나!”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하지만 그런 생각은 착각에 불과했다.총각은 치치하얼시에서 소문난 업소 금복문술집(금복문주점)주인 김홍률씨(51)의 외아들이라는 사실을 듣고 이내 실망하지 않을수 없었다.외지 농촌에서 왔다는 예쁘장한 처녀는 바로 금복문주점 종업원으로 주인 아들과 사랑하는 사이라는 것이다. 그날 저녁 2백만명 가까운 인구를 가진 치치하얼시에서 손꼽는 금복문주점을 들렀다.남향으로 나앉은 술집은 칸막이 온돌방에 식탁을 갖춘 홀을 갖추었다.그리고 노래를 부르면서 춤도 출수 있는 또 다른 홀과 별채의 숙소가 있어서 마시고 놀기에는 아무런 불편이 없었다.아가씨가 열둘에 강씨라는 마담 한사람을 둔 금복문주점은 아직 초저녁인데도 제법 흥청댔다. ○시골주점 손님 북적 강마담은 한달에 천원을 받는다고 했다.아가씨들은 아예 월급이 없다는 것이다.숙식을 제공하는 것이 고작이라서 아가씨들은 팁으로 살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다.연변에서 왔다는 미스김은 말이 아가씨였지 사실은 유부녀라고 실토했다.연길시 철남구가 집인 그녀는 한국으로 갔던 남편이 빚 5만원만을 진채 강제 송환되어하는 수 없이 치치하얼로 흘러들어왔다.내가 연길사람이라서 그랬는지 몰라도 시시콜콜한 화류계 속사정을 다 까발려 놓았다. “팁이야 주는 사람 마음에 달렸디요.한국사람들은 보통 백원씩은 줍데다.그것도 침대에 올라가야 백원을 주디요.한국사람은 팁은 꽤 주지만 손이 점잖지 않아서 싫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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