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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집중취재/ 외국인근로자 고용허가제

    *2002년 도입… 남은 쟁점은. 외국인력의 고용허가제 도입을 둘러싼 갈등이 3년만에 재연되고 있다.민주당이 지난달 당정회의에서 올해중 법 제정을 통해 2002년부터 고용허가제를 도입하기로 결정한 가운데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등 중소업계가 도입저지를 위해 3년 전과 마찬가지로 장외집회 등으로정부와 여당에 압력을 가하고 있다. 3년 전에는 고용허가제를 도입하려는 노동부가 산업연수생 제도를유지하려는 산업자원부,법무부,중소기업청,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등 ‘연합군’을 상대로 고군분투했다면 이번에는 여당이 노동부의입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도 고용허가제 도입에 긍정적인 시각을 지닌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고용허가제 도입을 속단하기는 어렵다는 게 실무자들의 판단이다.기협중앙회 등 중소기업계의 반대가 필사적인데다,정치권과정부내 보수층 인사들도 내심 고용허가제 도입에 소극적이기 때문이다. ◆인권침해의 주범?-고용허가제 찬성론자들은 지난 7월 말 현재 국내 외국인력 25만9,000여명 가운데 불법체류자가 세계 최고수준인 64.1%(16만6,000여명)에 이르는 것은 ‘근로자’임에도 ‘연수생’으로위장한 산업연수생 제도 탓으로 돌리고 있다.찬성론자들에 따르면 정부가 이처럼 편법을 정책으로 채택한 결과 불법체류자를 양산,임금체불·송금사기·여권압류·인신구금·산재처리 기피 등 인권문제를 야기시켰다.또 송출기관이 연수생을 선발함에 따라 1인당 최고 1,000만원의 과다한 수수료를 징수,연수생들이 수수료 납부로 진 빚을 갚기위해 높은 임금을 찾아 연수업체를 이탈토록 부추겼다. 반면 반대론자들은 산업연수생의 이탈비율은 20% 남짓하며,인권문제의 경우 대부분 관광·방문비자로 입국한 불법체류자로 인해 발생한다고 항변한다.따라서 인권문제와 산업연수생 제도와는 무관하다고강조한다. ◆고용허가제가 도입되면 임금이 오르나-찬성론자들은 지난해 중기청의 실태조사 결과를 근거로 제시한다.연수생의 월평균 수령액은 60만9,000원으로 내국인 월평균 급여액 76만9,000원의 79.3%이나 외국인의 노동생산성이 내국인의 87.5%에 불과한 점,외국인근로자에게 별도의 수당이나 숙박시설을 제공하는 점 등을 감안하면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근로관계법을 적용,연월차수당·퇴직금 등을 보장하더라도 실제 업체의 부담은 그리 크지 않다고 말한다. 그러나 기협중앙회는 고용허가제가 도입되면 연수생 1인당 월평균비용이 64만7,000원에서 112만5,000원으로 무려 47만8,000원이나 늘어나 영세업체의 부담증가와 함께 경쟁력 약화의 요인이 될 것이라고 지적한다.또 고용허가제로 외국인근로자의 임금이 오르면 불법체류자의 유입을 가속화시킬 수 있다고 강조한다. ◆노사불안 가능성은-찬성론자들은 고용계약을 1년 단위로 최장 3년까지 체결토록 하면 집단행동 가능성을 막을 수 있다고 장담한다.또근로계약 체결시 계약연장이나 고용중지 철회를 요구하는 집단행동을 금지하는 조항을 삽입하면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반대론자들은 고용허가제의 도입취지가 외국인과 내국인의동등대우에 있는 만큼 이들의 단체행동권을 제한하면 국제노동기구(ILO)는 물론,송출국가로부터도 또 다른 비난에 직면하게 된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우득정기자 djwootk@. *연수제와 허가제 차이. 민주당이 ‘외국인근로자 고용·관리에 관한 법률안’을 통해 추진중인 고용허가제는 그동안 운영돼온 외국인 산업연수제도와 많은 차이가 있다. 고용허가제의 가장 큰 특징은 외국인 노동자에게 ‘근로자’의 신분을 부여,국내 근로자와 동등한 대우를 받게 하는 것이다.따라서 근로기준법·임금채권보장법·노동조합법 등 노동관계법이 적용되며,근로기준법에 따라 국내 근로자와 같은 기본급 외에 연월차수당·상여금·퇴직금 등을 추가로 지급받게 된다.또 국내 근로자와 고용비용의차액범위에서 고용분담금을 사용자가 내게 된다. 외국인력의 모집·선발권은 해외 송출기관이 아니라 사업주에게 줌으로써 ‘외국인력 도입 및 관리를 위한 공적기구’를 통해 외국인력을 선택하게 된다. 이밖에 계약기간은 1년 단위로 최장 3년까지 취업할 수 있으며,한기업의 외국인근로자 총 사용기간은 총 2회 6년 등으로 설정된다. 반면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등 중소업계가 고수하고 있는외국인산업연수제도는 94년 도입된 ‘산업연수생제’와‘연수취업제’두가지로 운영되고 있다. 연수취업제는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등의 관리아래 1년6개월 이상 연수를 받은 외국인 노동자가 중소기업청이 주관하는 연수 자격시험을 통과하면 1년간 정식 근로자로 인정받는 제도다.97년 말 도입된뒤 2년간의 유예기간을 거쳐 올해 4월부터 시행에 들어갔다.지금까지 총 1,724명이 합격,772명이 연수취업자로 전환됐다. 한편 중국 인도네시아 등 14개 국가에서 온 연수생 규모는 1만여개중소업체에 5만7,645명.생산성에 따른 이들의 월급수준은 평균 64만9,000원으로 내국인 초임근로자 월급(94만9,000원)의 70% 정도다.이밖에 각종 권익보호제도를 통해 의료보험을 비롯,체불이행보증·산재·상해보험을 적용받고 있다.또 질병·부상·사망시 200만원의 재해위로금을 받는다. 김미경기자 chaplin7@. *‘외국인 노동자의 집’운영 金海性목사. “한국이 ‘인권탄압국’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려면 반드시 고용허가제를 도입해야 합니다” 경기도 성남에서 ‘외국인 노동자의 집’을 운영하고 있는 김해성(金海性·41) 목사는 “경제대국에 걸맞게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인권시비는 반드시 해소돼야 한다”면서 이를 위해 고용허가제를도입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외국인 노동자의 인권실태는.=현재 국내에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력은 25만9,000여명으로 국내 임금노동자의 2%에 가까운 수치다.외국인 근로자는 3D업종으로 일컬어지는 영세 사업장에서 일하면서 인력난해소에 도움을 주고 있지만 일한 만큼 대가나 최소한의 인권도 보장받지 못한 채 고통을 겪고 있다. 이들은 작업도중 죽거나 다치는 산업재해를 당해도 불법체류자라는낙인 때문에 보상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도리어 강제출국을 당하는실정이다. ◆고용허가제가 도입돼야 하는 이유는.=고용허가제의 핵심은 외국인노동자의 지위를 ‘연수생’에서 법의 보호를 받는 ‘근로자’로 바꾸는 것이다.이들은 엄연히 근로를 제공하고 임금을 받는 근로자임에도 ‘연수생’이라는 신분때문에 임금을 착취당하고 있다. 둘째,불법체류 노동자들은 밀린 급여를받으려 해도 ‘신고하겠다’는 협박때문에 추방이 두려워 임금체불을 신고조차 못한다.마지막으로 송출비리 문제를 꼽을 수 있다.외국인 노동자들은 한국에 올 때 500만∼1,000만원을 브로커들에게 주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그러나연수생 월급으로는 도저히 갚을 수 없어 연수업체를 이탈,불법체류자로 전락한다. ◆중소업계가 고용허가제 도입에 결사 반대하는데.=중소업계는 연수생을 활용하면 저임금으로도 인력난을 해소할 수 있어 고용허가제 도입에 반대한다.그러나 이제 우리기업도 임금착취로 버티겠다는 발상을 버려야 한다. 이동미기자 eyes@. *외국의 운용 사례. 외국도 유사한 외국인력 운용제를 도입하고 있다.중소기업청이 밝힌 외국사례를 알아본다. ◆일본=우리나라와 가장 비슷한 제도를 시행중이다.80년대까지 외국인력의 취업을 허가하지 않았으나,90년 노무직의 수요증가에 따른 불법체류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외국인연수제를 도입했다.93년부터는 제도를 보완해 기능실습제(1년 연수+2년 취업)를 운영중이다.80년대 말 고용허가제 도입문제가 제기됐으나 외국인 장기체류로 인한 사회·문화적 부작용 발생 등을 이유로 채택하지 않았다. ◆싱가포르=90년 ‘외국인근로자고용법’을 제정,숙련된 전문직 외국인력을 대상으로 고용허가제를 시행하고 있다.외국인력의 장기체류로 인한 민족동질성 훼손 및 사회문제 발생을 막기 위해 오랜 기간동안 말레이시아 인력만 도입했다.비숙련 외국인력의 유입을 규제하고 있으나 고용조건이 좋아 외국 노동자들이 몰려들어 불법체류자가 상존하고 있다.이들의 강제추방으로 주변국과 마찰도 빚고 있다. ◆대만=92년 ‘외국인고용허가 및 관리방법’을 제정한 뒤 고용허가제를 시행중이다.고용허가를 받은 해당기업이 해외 인력중개회사 등을 통해 외국인력을 모집한다.그러나 고용허가제를 통해 입국했다가이탈하거나 불법체류중인 근로자가 2만명에 이르고 있다.이들 중 1만3,000명이 체포돼 강제출국 또는 억류된 실정이다.또 인력중개회사의 고용주에 대한 금품제공 등도 문제가 되고 있다. ◆독일=50년대 주변국 노동인력을 도입하기 위해 고용허가제를실시했지만 경기가 악화되면 고용관계를 종료하고 귀국시키는 한시적 근로자 순환정책으로 방향을 바꿨다.석유파동 등 경제사정의 악화로 73년부터 외국인력의 신규도입을 중단했다.80년대 고실업 문제에 봉착하자 ‘외국인 귀국준비촉진법’을 제정,귀국지원금제도를 실시했지만 효과는 미흡했다.90년대들어 중·동부 유럽국가들을 대상으로 노동시장을 일부 개방하고 있으며,본국 귀환을 의무화하는 연수생 이주제도 및 초청근로자 협약에 의한 연수생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김미경기자
  • 국제유가 급등/ 유가 국제정세 따라‘요동’

    산업혁명 이후 인류의 제1에너지원으로 등장,막강위력을 떨치고 있는 ‘검은 황금’석유.지구촌 경제를 쥐락펴락해온 국제원유가격 변동의 뒤에는 중동 전쟁,산유국인 중동지역과 서방세계의 갈등,석유수출국기구(OPEC)회원국내 갈등 등 다이나믹한 국제정세 요소들이 포진해 있다. 원유가가 가장 안정을 유지했던 시기는 전후복구기인 1948년부터 70년 사이다.이때까지는 석유가는 2.5∼3달러선.96년 달러가치 기준 배럴당 14∼16달러로 수에즈운하를 둘러싼 긴장이 조성된 56,57년 소폭상승하긴 했으나 대체로 인플레 상승 분을 쫓아가는 수준이었다. 급격한 유가상승이 시작된 것은 1974년.1973년 10월5일 이집트와 시리아가 이스라엘을 공격,욤키푸르 전쟁(제4차 중동전쟁)이 발발했다. 아랍권은 이스라엘을 지원한 미국 등 서방에 대해 석유수출금지조치를 단행,72년 배럴당 2.6달러이던 유가는 74년말 11.7달러로 4.5배급상승했다. 아랍국은 이때 하루 500만 배럴 감량에 들어갔는데 100만 배럴 감량은 서방세계 생산력의 7%씩의 감소로 나타났다.78년 이란내회교혁명 시위가 거세지고 유정노동자들의 파업이 잦아지면서 유가는 13달러에서 20달러선까지 치솟았다.이후 79년 이란 회교혁명,80년 이란·이라크 전쟁 발발 등 중동의 긴박한 상황은 유가에도 그대로 전이돼 80년 11월,41달러를 넘어섰다. 이후 OPEC가 고유가 정책을 유지하기 위해 하루 1,800만 배럴로 생산쿼터제를 실시했으나 회원국간 시장쟁탈전이 벌어지면서 10달러 이하로 떨어지는 하락세가 지속됐다. 90년.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석유공급이 불안해지면서 그해 11월,38달러까지 치솟았다.98년 산유국들이 아시아 경제위기를 과소평가,수요가 있을 것으로 보고 증산에 나서면서 73년 이전 수준인 10달러이하로 다시 떨어졌다.99년 말부터 산유국들의 감산정책과 수요급증,재고분 부족으로 원유가 초강세가 이어지고 있다. 김수정기자 crystal@
  • 귀환 국군포로 3명 비공개 퇴역식

    지난 7월에 귀환한 국군포로 3명이 이달중 환영 및 퇴역식을 갖는다. 국방부는 5일 강상권(70)·허형직(68)씨의 환영 및 퇴역식을 6일과7일 수도사단과 3사단에서 각각 갖는다고 밝혔다.김인준(71)씨의 퇴역식은 9월 중순쯤 따로 잡혔다.이들의 퇴역식은 비공개로 치러진다. 국방부 관계자는 “이들이 가족들의 안전 등을 고려해 신분 및 행사를 공개하지 말아 줄것을 요청,모든 행사를 비공개로 갖게됐다”고설명했다. 강씨는 지난 51년 국군 3사단에 입대,53년 금화지구 전투에서 포로가 돼 함경남도 단천시 검덕광산 광부와 경비원 등으로 일한 것으로조사됐다.허씨는 지난 52년 수도사단에 입대,53년 금화지구 전투에서 포로가 돼 함경북도 아오지탄광에서 광부로 일했다. 김씨는 49년 8사단에 입대한뒤 50년 횡성전투에서 포로가돼 평양 승호구역에서 공원으로 일한 경력을 갖고 있다.이중 허씨와 김씨는 지난 62년과 73년 각각 노동당에 입당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는 포로가 될 당시 각각 병장,상병,일병인 이들의 계급을 모두 하사로 진급시켰다.또 그동안 밀린 임금 및 주거지원금으로 각각 3억5,000만원씩을 지급키로 결정했다.전사자로 처리돼 국립현충원에 봉안됐던 이들의 위패는 철거된다. 노주석기자 joo@
  • 신임 주한 영국대사 찰스 험프리

    “지금처럼 중요한 시기에 한국대사로 부임하게 돼 기쁩니다.영국은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적극 지지하며 지금 시작한 여정이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와 화해로 이어지길 바랍니다” 지난달 17일 부임한 찰스 험프리(Charles T W Humfrey·53) 신임 주한 영국대사는 4일 기자회견을 갖고 향후 계획을 밝혔다. 험프리 신임대사는 “한국 국민들이 영국을 진정한 친구,값진 사업동반자,여행 및 유학 대상국 그리고 유럽으로 가는 관문으로 생각하길 바란다”며 “재임기간동안 경제협력 강화 못지않게 미래 한-영관계의 근간이 될 젊은 층의 인적교류 확대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주한 외교사절단 중 ‘통상외교’에 유달리 강한 면모를 보여온 영국대사 답게 양국 경제협력문제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상반기중 영국의 대한(對韓) 수출은 전년도 같은 기간보다 14%,한국의 대영(對英)수출은 28% 증가하는 등 양국교역과 투자는 성장세를유지하고 있고 계속 확대시켜 나가야 한다”며 “이밖에 양국이 상호보완성을 지닌 건설 등 분야에서 제3국에 공동진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한-영간 금융서비스분야 협력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16일부터 클라이드 마틴 런던 금융시장이 서울을 방문한다고 소개했다. 북한과의 국교정상화와 관련,“영국은 북한에 적대감이 없다는 점을분명히 밝히며 북한이 국제사회에 참여하길 원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북한과 국교가 정상화되기 위해선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무기확산,인권문제 등 국제사회의 우려가 분명하게 해소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북한과 외교관계는 수립되지 않았지만 수년간 비공식 접촉이이어지고 있고 5월 평양에서 양국 실무자들의 비공식접촉이 있었다고공개했다. 영국은 이달중 영어교사 2명을 평양에 파견키로 북한과 합의했고 양국 대학,박물관간 교류 등 문화분야의 교류를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1973년 업무차 잠깐 들른 뒤 27년만에 다시 서울에 온 그는 일본통으로 부임전 6개월간 배운 한국어로 인사말 정도는 능숙하게 구사한다. 전국을 여행하며 한국을 자세히 알 기회를 갖고 싶다고 말했다. 김균미기자 kmkim@
  • 제2개청 1년 평가…국세청 변신선언 성공작

    국세청이 제2개청을 선언한지 1일로 한돌을 맞았다.대대적인 조직개편과 운영시스템의 민주화를 통해 안팎으로부터 몰라보게 달라졌다는반응을 얻고있다.안정남(安正男)청장체제가 안착했다는 평가다. 국세청은 이 기간 본청 1개국,지방청 1개,세무서 35개를 통폐합하는획기적인 구조개혁을 단행했다. 또한 일제시대부터 73년간 유지되어온 세목별 조직을 납세자 중심의 기능별 조직으로 전면 개편했다. 특히 납세자와의 유착 빌미를 줘 부정부패의 원인이 된 지역담당제를 폐지했다.덩달아 비리발생이 1년전보다 62.2% 감소하는 성과를 거뒀다. 또한 납세자편에 서서 ‘조직속의 야당’ 역할을 하는 납세자보호담당관제도를 도입,대민서비스 관련부처의 귀감이 됐다.신용카드복권제를 시행해 자영업자의 과표를 현실화한 점도 눈에 띈다.국세청은이같은 구조개혁의 성과에 힘입어 지난해 공공부문 혁신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차지하기도 했다. 국세청의 2단계 개혁은 지속적인 개혁추진과 납세환경 개선,선진세정 구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국민과 세무서간 신뢰풍토를 조성,납세자의 자발적인 성실신고를 유도하겠다는 것이다.이른바 당근과 채찍의 논리다. 납세실적이 뛰어난 사람이 나중에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될 경우 공적부조시스템으로 지원하겠다는 것이다.또한 전자신고,전자납부를 확대 실시하고 e메일 통신관리시스템을 구축,신고안내를 전산으로 할계획이다. 관건은 인사의 편향성 등이 낳은 개혁피로감을 씻고 실질적인 납세서비스를 향상시키는데 달려있다. 박선화기자 psh@
  • ‘저서 100권 출간’문학평론가 김윤식 교수

    문학평론가 김윤식교수(서울대 국문과)가 최근 현장비평서 ‘초록빛 거짓말,우리 소설의 정체’를 펴내 100권째 저서출간이라는 의미깊은 기록을 세웠다.번역,편저,감수 저서까지 합하면 130권이 넘는 김교수를 찾아 책쓰기,문학작품 읽기,그리고 문학 등 여러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언제부터 100권 째 책저술을 의식하게 되셨나요. 내가 일일이 세어 본 것은 아니고 홋데이란 일본 서지학자가 리스트를 만들어 알려줬어요.이미 90권이 넘어섰을 때였습니다.책 숫자가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이처럼 많은 책을 쓸 수 있는 비결이라도 있는지. 다른 사람보다 시간이 많았던 탓입니다.왜 시간이 많았던가.사람은대체로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눠볼 수 있는데 첫번째는 자기 일만 하는,자기 일에만 몰두하는,‘고약한’ 유형이며,두번 째는 자기 일은 내팽개치고 남의 일,사회에 온갖 열정을 갖고 달려드는 사람으로 이도고약한 유형입니다.대부분의 사람은 이 두 유형의 중간을 적당히 걷고 있는데 나는 첫번 째 고약한 타입으로 자기 일에만 몰두했기 때문에 시간이많았고 그 시간을 책보는 데 쏟았던 것입니다. ◆책에다 남달리 많은 시간을 쏟았던 것을 별로 달갑게 여기지 않는인상입니다만. 그렇습니다.처음 하는 이야기는 아닙니다만 사르트르의 말을 인용해야겠군요.‘문학이란 무엇인가’란 책에서 학자나 비평가 ‘종자’들을 공동묘지에서 시체나 지키는 신세로 꼬집고 있습니다.책은 관이고 도서관은 공동묘지로 남이 쓴 책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시체지기에불과하다는 것이죠.현실을 모르고,시체와의 대화라고 할 수 있는 공부나 하고 있는,인간 축에도 못드는 형편없는 사람이라고 비꼽니다. 사르트르만큼 책을 많이 읽었던 사람은 없다고 할 수 있는데 그 스스로 여기서 뛰어나오려고 이렇게 책과 관련된 것을 비하하면서 참여문학의 기치를 높이 쳐든 것입니다.사르트르의 말에 나를 비쳐볼 때꼼짝없이 들어맞는다는 생각,평생을 그렇게 살아왔다는 생각이 드는것입니다. ◆그래도 책을 쓴다는 건 대사회적인,적극적인 어떤 태도 아니겠습니까. 그렇지요.간접적으로 뛰어나온다고나 할까.극도로 자기 일에만 몰두했다고 스스로 평가하는 나도 알고보면 ‘문제있는’ 카프(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문학 연구가 출발점입니다.1930년대의 카프 활동은 우리의 진정한 근대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73년에 나온 본격적인 첫 책에서 이를 집중적으로 파헤쳤는데 당시는 반공 이데올로기 절대우위의 유신 시절이었습니다.금기시되던 프롤레타리아 문학을 연구했으니 판금도 당하고 보안사에서 내 책을 죄 가져갔습니다.그런데 그때 나한테 대단한 일을 한다는 인식이 있었습니다.그러나 이건 착각이었습니다.이론이나 학문은 어떻든 회색의 세계입니다.괴테가 파우스트에서 ‘생명의 황금 나무는 녹색’이라고 말할 때의 녹색과 대비되는 회색입니다.헤겔은 법철학 서문에서 ‘회색에다 회색을더해봐야 회색’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도 아무나 책을 내는 건 아닙니다.자신의 책에 대해 더 말한다면. 내가 쓴 책은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비평사 연구 같은 학술적인 것,창작품에 대한 현장비평 즉 평론,그리고 학술 예술 문학 방면의 기행 등입니다.나는 본래 어려서 작가가 되려고 했는데 그러려면 국문과에 가야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마산에서 서울로 와 대학 국문과에 갔습니다.그러나 대학은 학문,과학하는 곳이었습니다.잘못 온 것이죠.작가가 된다는 생각을 때려치우고 연구의 길로 나섰습니다. 시간이 지나다 보니까 그렇게 된 것인데 창작은 못하고 중간적인 비평을 하게 됐고,창작에 가까이 다가가는 마음으로 많은 기행문을 썼습니다.나름대로 유려한 문장을 실컷 쓰고자 했습니다. ◆책을 많이 썼다는 사실보다 남의 글과 책을 많이 읽었다는 사실을더 마음에 두고 있는 것 같는데 남의 글을 읽는 것에 대해 말하면. 남의 글을 읽는 것이 본업이죠.지난 25년간 소설을 주로 해서 새로발표되는 작품은 거의 하나도 빠트리지 않고 읽어왔습니다.왜 이렇게 열심히 읽어왔나,꼭 직업 상의 이유 뿐일까.아까 말했듯 시간이 많아 투자를 많이 한 것이 한 이유가 되고 또 하나는 문학 창작 작품에는 뭔가,인생이란 무엇인가를 알려주는 어떤 것이 들어있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입니다.작가는 평범한 우리와 비슷한 사람으로 결코 비범하다거나 우리보다 뛰어난 사람은 아닙니다.작가들이 작품을 쓸 때는어떤 의도가 있는데 신기한 것은 완성된 작품은 작가가 처음 의도한그런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작가도 모르는 것이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그래서 문학작품이 인간과 세계를 읽는 텍스트가 되는 것이며이 설명하기 어려운 그 무엇에 매료당해 소설을 끊임없이 읽었다고할 수 있습니다.작가는 보통사람들이지만 그들의 작품은 보통이 아닌 것입니다.가치가 있고 나아가 인류의 유산이 됩니다.작품 속에 내가필요로 하는 의미가 있기 때문에 작가는 내 스승인 것입니다. ◆거기서 찾은 의미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통속적으로 쉽게 이야기하면 문학은,우리 문학은 ‘인간은 벌레가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인간의 기품,인간성,인간다움을 강조하는 것인데 우리 역사는 여러 가지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벌레 취급을 받아오곤 했습니다.이데올로기 분단 계급 문제의 와중에서 싸우고 죽고 부당한 대접을 받아온 예가 수두룩한데 그런 면에서 우리 문학은 위대합니다.인간의 위엄과 기품을 지키는데 대단히 큰 노력을 기울여왔습니다.반공 이데올로기,기관원 시대나 유례없는 경제발전 속에 숱한 노동자가 벌레같이 희생되어 온 노사문제의 시대에 벌레가아니다라는 명제를 끈질기게 물고 늘어져 왔습니다.황석영의 ‘객지’가 그렇고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그렇습니다. 그런데 소련과 동구가 붕괴되고 역사의 종말이 운위되기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우리 문학도 달라져야만 했을 것 같습니다만. 그렇습니다.94년에 나온 윤대녕의 ‘은어낚시통신’에서 뚜렷해지는데 인간은 벌레가 아니다가 아니라 이제 ‘인간은 벌레다’가 됩니다.여기서 벌레는 인간이하의 의미가 아니라 인간을 제한했던 꼬리표가 떨어져 나간,확장의 개념입니다.인간은 이제 연어고 철새고 메뚜기고 게놈인 것입니다.세계문학의 큰 흐름과 궤를 같이 하는 우리 문학의 이런 조류를 나는 생물학적 상상력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비평이란 무엇인가하고 묻는다면. 비평을 학문의 일분야라고 할 때 막스 베버가 ‘직업으로서의 학문’에서 말한 ‘학문은 예술과 달리 언제가 뒷사람에게 추격당한다’는 말만큼 시사적인 것은 없습니다.누구 작품은 어떻고 저떻고 하고수많은 현장비평을 했던 나로서 비평은 ‘남을 창찬하기 위한 교묘한 술책’이라고 정의내립니다.이 말에 대들 사람도 있겠지만 내 생각은 땅처럼 굳건합니다. 김재영기자 kjykjy@. *약력. 김윤식교수는 1936년 경남 진영에서 출생해 서울대 사범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했으며 71년과 80년 일본에서 연구했다.62년 ‘문학방법론서설’로 등단했으며 현대문학 신인상(73년) 대한민국 문학상 문학평론상(87년) 등을 수상했다.평론가 김현과 ‘한국문학사’를 공동집필한 뒤 ‘한국근대문예비평사연구’와 ‘근대한국문학연구’를 냈으며 80년대에는 평전쓰기를 주력해 ‘이광수와 그의 시대’ ‘김동인 연구’ ‘이상 연구’ 등을 냈다.‘우리 소설과의 만남’ ‘현대소설과의 대화’ ‘한국소설의 표정’ 등 현장비평서 외에 ‘한국현대문학사상론’ 등 문학사상사서도 저술했다.
  • 청와대수석 교체 안팎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27일 3명의 수석비서관을 교체한 것은 국정개혁 2기를 맞아 내각에 이어 청와대 비서실 체제를 새롭게 정비하겠다는 포석으로 여겨진다. 특히 유임이 예상되던 외교안보수석의 교체는 남북정상회담 이후 4강 외교의 중요성이 높아진 데 따른 것이다.이제는 외교전문가를 발탁해야 한다는 주변의 건의를 수용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김하중(金夏中) 외교안보수석은 김대통령의 각별한 신임 속에 그동안중국 등 국제관계에 대한 조언을 해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실제 그의 기용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남북한과 미·중이 참여하는4자회담 구상과 깊은 연관이 있다. 또 김유배(金有培)전 복지노동수석의 교체는 노동계 파업,의료계 폐업 사태에 대한 김대통령의 의지를 읽을 수 있는 단초이다.조기해결의지가 함축되어 있다.새로 임명된 최규학(崔圭鶴) 복지노동수석은오랫동안 총리실 행정조정관으로 근무,조정력이 탁월하다는 평가를받고 있다는 점에서 의약계의 의견도 어느정도 반영된 결과이다.조규향(曺圭香)전 교육문화수석 교체 역시 개인적 하자보다는 비서실 분위기 쇄신의 측면이 강하다.‘최장수 수석’이라는 점이 주된 교체이유로,교육현장 경험과 출신지 등에 있어 성격이 비슷한 정순택(鄭淳택)부산시교육감이 낙점된 데서도 이를 알 수 있다. 김대통령은 이번 인사에서 강원 출신 외교안보수석 후임에 강원 출신을,경남 출신 교육문화수석 후임에 같은 경남 출신을,목포 출신 복지노동수석 후임에 역시 목포 출신을 임명하는 등 지역을 배려했다. 이런 점에서 청와대가 집권 초기와 마찬가지로 국민화합의 중심에 서야한다는 주문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프로필. △ 김하중 외교안보수석. 외교부 내 대표적인 중국통.올해 특2급으로 승진했다. 부드러운 인상과 달리 현안이 생기면 끝까지 해결하는 스타일. 대통령의 신임이 두텁다. 97년 황장엽(黃長燁)씨 망명사건 때 장관특보로 중국옷을 입고 다니며 망명을 성공적으로 이끈 일화가 있다.부인 배영민(裵英敏·49)씨와 2남1녀. ▲강원 원주(53) ▲서울대 중문과 ▲외시 7회 ▲동북아 2과장 ▲의전담당관 ▲주중대사관 공사 ▲아태국장. ■정순택 교육문화수석. 평교사에서 출발해 평생을 교육에 몸 바친 부산교육계의 산 증인.민선 1기 부산시 교육감을 지낸데 이어 지난해 3월 단독으로 입후보해재선됐다.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 학자 스타일로,디자인고·자동차고·골프고등 전문분야 고교 탄생에 앞장섰다.부인 홍영혜(洪英惠·52)씨와 1남1녀. ▲경남 하동(59) ▲동아대 ▲한독여자실업고 교사·교감·교장,부산해사고 교장 ▲부산시 부교육감,교육감. ■최규학 복지노동수석. 지난 67년 특채로 재무부에서 공직을 시작한 뒤 73년부터 지난해 국가보훈처장으로 발탁될 때까지 26년 간 국무총리실에서 근무한 총리실의 터줏대감. 지난 92년 남북 고위급회담 때 수석대표 보좌역 및 정치분과 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부인 박영희(朴英熙·60)씨와 2남2녀. ▲전남 목포(63) ▲목포고,고려대 ▲총리실 1,3행정조정관,총괄조정관 ▲국가보훈처장. 양승현 기자
  • 판소리 CD 출반

    지난 82년 국내 처음으로 판소리 다섯마당 전집음반을 냈던 한국브리태니커사가 당시의 LP판을 복각해 23장짜리 CD로 재출반했다. 이번 복각음반은 명창 조상현,한애순 등 판소리 원로 두명과 박봉술,정권진 등 이미 고인이 된 당대 최고 명창의 전성기 소리를 담은 드문 자료라는 점에서 국악계의 관심을 모은다.한국브리태니커사는 73년 판소리학회와 공동으로 ‘브리태니커 판소리감상회’를 시작해 78년까지 100회를 개최한 뒤 이에 대한 결과물로 LP 23장과사설집 6권으로 된 판소리 전집음반을 펴냈었다. 전집에는 춘향가(조상현)심청가(한애순)흥보가 수궁가(박봉술)적벽가(정권진,이상 고수 김명환)등 판소리 다섯마당과 네 명창이 부른 단가가 수록돼있다.한국브리태니커사는 25일 오전11시 서울 63빌딩 코스모스홀에서 조상현,한애순,성현경 판소리학회회장 등 국악관련 인사를 초청해 출반 기념잔치를 연다.(02)2250-5152이순녀기자
  • 남북이산상봉/ 어머니 사망 확인 장이윤씨

    “할머니는 62년 3월25일 돌아가셨습니다” 북한에 109세 어머니가 살아계신 줄 알았다가 뒤늦게 사망사실을 통보받았던 장이윤(張二允·72·부산 중구)씨는 조카들로부터 어머니의사망날짜를 전해듣고 다시 한번 오열했다. “38년전에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존해 계신 줄 잘못 알았다니…”. 장씨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큰형 병택씨의 막내 아들인 조카 준석씨(52)는 73년 부친이 사망한뒤부터 몸이 불편한 둘째형 준관씨(64)를 대신해 자신이 할머니 제사를 모신다고 했다. 장씨는 조카들에게 일일이 친지들의 안부를 묻다가 사망했다는 답변을 들을 때마다 연신 눈물을 쏟아냈다. “처음 봤을 때 얼굴 알아보겠디?”장씨는 지난 50년 헤어질 당시갓난아기였던 준석씨는 알아보지 못했지만 준관씨에게는 어릴 적 추억을 묻는 등 지난 얘기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평양 공동취재단
  • [뉴패러다임 경영 CEO에 듣는다] 삼성화재 李水彰대표

    지난 4월 자동차 보험료 자율화 이후 손해보험업계에 많은 변화가일고 있다.중소형사들은 보상서비스 연합체계를 구축하고,대형사들은은행이나 온라인업체와의 제휴를 통해 사업영역을 넓혀나가고 있다. 수익을 맞추기 어려운 몇몇 중소형사들은 외국사들의 M&A(인수 합병)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보험업계 선도업체로 국내 시장 점유율 27.2%(99회계연도)를 차지하고 있는 삼성화재 이수창(李水彰·51)대표를 만나 손보업계의 전망에대해 들었다. 이대표는 평소 ‘개인이든 조직이든 생존전략은 철저한차별화’라고 강조해왔다. 지난해에는 국내 보험업계 변화를 정확하게 예측,쪽집게 예언가로 불리기도 했다. 서울대 수의학과를 졸업하고 73년 삼성그룹 공채 14기로 입사한 이대표는 삼성생명 중앙개발(현 에버랜드) 제일제당 삼성중공업을 거치면서 수많은 일화를 남겼다.지난 95년 삼성화재로 옮겨왔으며 98년말 49세의 나이로 대표이사 부사장으로 승진,40대 대표이사로 화제를모았었다. ■‘디지털 경영’을 강조하시는데 디지털 경영이 무엇입니까. 과거의기업중심 경영형태로는 빠르게 변화하는 고객의 욕구를 만족시킬수 없습니다.지식네트워킹을 구축하여 정보를 공동소유하고 이를중심으로 고객을 통합관리하자는 것입니다. 고객의 욕구에 즉각적으로 대응할수 있도록 설계사들에게 이미 PDA(개인휴대정보단말기) 1만대를 지급했으며 노트북도 지급하고 있습니다.3만2,000여명의 설계사들을 대상으로 재무설계사 교육도 진행중입니다. ■지난 4월 자동차보험료 자율화이후 무한경쟁이 예상됩니다.이에 대한 대책을 말씀해주십시요. 보험료중 현재는 부가보험료 부분만 자율화됐습니다.(2002년 4월 보험료가 완전자율화될 전망) 대형 손보사들은 사업비용을 줄여 보험료를 더 낮출수 있지만 소형사들은 입지가 좁아질 수 밖에 없습니다.당분간은 출혈경쟁이 심화되어 수익성 확보를 위한 구조개혁 및 이로인한 업계 재편이 예상됩니다.그러나 손해보험의 특성상 가격보다는보상서비스와 지급여력,대외신인도 등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원가절감을 위해 노력하는 한편 서비스 차별화를 위해 심야보상서비스,소액보상전담팀 구성 등의 ‘찾아가는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향후 해외진출 계획에 대해 말씀해주십시요. 현재는 이머징마켓을 중심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가장 기대가 큰곳은 중국시장으로 지난 1월 중국에 보험영업 허가권을 이미 신청했습니다. 중국의 지난해 수입보험료는 63억달러로 GDP의 1.7%입니다.이는 세계평균치 7.3%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으로 세계평균치를 감안하면 700억달러 이상의 규모로 추정되는 거대 시장입니다.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가입에 따른 영업권 획득이 기대됩니다. ■주주중시 경영을 표방하셨는데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십시요. 주가 관리를 위해 지난 4월말 이후 800여억원을 투입,보통주 330만주와 우선주 30만주를 매수하였습니다.국내외 기관투자자와 애널리스트를 대상으로 다양한 기업설명회도 개최하고 있습니다.이미 상반기중 e-buisness분야에 대한 사업전략 설명회를 가졌으며 하반기에는해외주주와 투자자를 대상으로 한 로드쇼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장기보험비중이 커지면서 자산운용부문이 더욱 중요해질 것같습니다. 지난 3월 세계적인 리스크 관리 컨설팅회사인 미국의 카마쿠라사와업무제휴를 체결,자산부문 리스크를 관리하는 시스템을 도입했습니다.올해말까지 부채에 대한 리스크관리 시스템을 도입하여 자산·부채통합리스크 관리(ALM)시스템을 구축할 예정입니다. ■올들어 타법인 출자액이 129억원으로 출자목적에 대해 일부 의혹도있습니다. 저희의 출자목적은 본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전략적 제휴와 효율적인 자산운용을 통해 투자수익을 높이자는 것입니다. 본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전략적 제휴로는 자동차포탈, 의료서비스기타 보험관련 벤처기업에 투자하고 있습니다.투자수익 증대를 위해서는 정보통신 반도체장비 엔터테이먼트 산업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초기 및 성장단계의 기업에 대해 60%,코스닥시장 상장을 앞둔 기업에대해서는 40% 정도의 비중을 두고 투자하고 있습니다. 현재 투자업체는 40여개로 하반기부터 수익이 발생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금융환경이 급격하게 변하고 있습니다.이에 대한 준비는 어떻게 하고 계신지요. 국내특유의 영업환경으로 인해 외국보험사들의 시장점유율은 1%미만으로 미미합니다.그러나 금융시장 재편에 따른 무한경쟁에 대비할수 있도록 업계간 자율경쟁 촉진과 다양한 보험상품 개발을 위한 제도완화 건의 등 업계전체의 발전을 위해서도 노력할 것입니다. ■향후 보험환경의 변화를 어떻게 전망하시는지요. 온라인 보험사의 출현과 단종보험사의 진입,그리고 보험요율 자유화등으로 인해 예년에 볼수 없었던 많은 변화가 예상됩니다. 단기적으로는 어려움을 겪는 업체들이 생겨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경기회복에따라 보험수요가 늘어나고 D&O(임원배상책임보험),상금보험, 인터넷보험에 대한 수요도 증가하는 등 시장규모가 커질 것으로 예상합니다.선도업체로서 고객의 필요에 부합하는 새로운 상품개발과 시장발굴로 파이를 키워나가는 전략으로 공존방향을 모색하겠습니다. ■李水彰대표 약력. ▲49년 경북 예천 출생 ▲67년 경북 대창고 졸업 ▲71년 서울대 수의학과 졸업 ▲73년 삼성생명보험 입사 ▲90년 제일제당 대우이사 ▲92년 삼성중공업 조선부문 이사 ▲93년 1월 삼성중공업 중장비부문이사▲93년 12월 삼성생명보험 상무이사 ▲95년 삼성화재 상무이사 ▲98년 12월 삼성화재 대표이사 부사장강선임기자 sunnyk@
  • 행시14회 차관시대 막올랐다

    지난주 차관급 인사에서 장석준(張錫準) 전 기획예산처 예산실장과정건용(鄭健溶) 전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사업 추진본부장이각각 보건복지부차관과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승진하며 행정고시 14회 차관시대의 개막을 ‘선언’했다. 경제부처 관료 출신으로 행시 14회가 차관이 된 것은 장 차관과 정부위원장이 처음이다.행시 동기인 황용하(黃龍河) 한국전력 감사는지난 96∼98년 차관급인 경찰청장을 지냈지만 경제부처는 보통 비경제부처보다 승진이 늦다. 행시 13회 출신의 경제부처 관료중에도 아직 차관급은 없다.장 차관과 정 부위원장이 1기 선배인 행시 13회를 제치고 차관이 된 것은 그만큼 발탁성격이 짙은 셈이다.행시 13회와 14회는 73년에 같이 시험에 통과했다.1∼2년내 차관급의 주축이 될 가능성이 높은 행시 14회합격자는 모두 116명.인재가 많은 기수로 꼽힌다.주로 경제부처쪽에포진돼 있다.특히 재정경제부와 기획예산처에 많은 편이다. 재경부의 14회로는 이근경(李根京) 차관보,이용섭(李庸燮) 국세심판원장,현오석(玄旿錫)세무대학장이다.재경부의 본부 1급 5자리중 3자리를 14회가 차지하고 있다.유지창(柳志昌) 민주당 정책실장,최경수(崔庚洙) 세제총괄심의관,신동규(辛東奎) 공보관,이용희(李龍熙) 국민경제자문회의 사무처국장도 14회다. 예산처에는 김광림(金光琳) 국회 예결위 수석전문위원과 김경섭(金敬燮) 기획예산처 예산총괄심의관, 변양균(卞良均) 기획예산처 재정기획국장 등이 14회다. 행정자치부의 김주섭(金周燮) 인사국장과 중앙인사위원회의 최석충(崔錫忠) 사무처장도 동기다. 14회 시대 본격개막이 다가오는 것 같다. 곽태헌기자 tiger@
  • 金대통령 ‘생환27주년’ 미사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13일 지난 73년 8월 도쿄에서 납치당했다가 생환한지 27주년이 되는 기념일을 맞아 청와대 관저에서 부인 이희호(李姬鎬) 여사와 김홍일(金弘一) 의원 등 세아들,손자 손녀 등가족과 함께 가족미사를 가졌다. 김 대통령은 생환일을 ‘제2의 생일’로 칭할 만큼 각별한 의미를부여하고 있다. “대통령 스스로 국가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은 피하지 않고 하겠다”는 게 생환일을 맞은 김 대통령의 소회라고 한 관계자는 전했다.또 민주화의 인권신장 등 5대 국정목표를 달성하겠다는 다짐을 새롭게 했다고 덧붙였다. 미사를 주재한 서울 세종로성당 안병철 신부도 “김 대통령의 생환은 나라와 민족을 위해 큰 일을 하라는 하느님의 뜻”이라며 생환의의미를 기렸다. 양승현기자 yangbak@
  • 金대통령 생환 27주년 13일 청와대 가족행사

    오는 13일은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73년 도쿄에서 이른바 ‘구국애국청년단’에 납치됐다 생환한 지 27주년이 되는 날이다.수장(水葬)의 위기에서 벗어난 탓인지 김 대통령은 이날을 ‘제 2의 생일’로 삼을 만큼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대통령에 당선돼 청와대에 들어온 98년에는 효자동 성당에서 미사를 올리는 등 조촐했지만,의미 있게 자축 행사를 벌였다.지인(知人)들도 초청하고 그날의 의미를 되새기는 대화도 가졌다. 김 대통령은 올해도 미사에 참석하는 등 이날을 기릴 계획이다.그러나 외부 미사가 아니고 청와대 관저에서 주임신부를 초청,손자·손녀 등 가족과 함께할 예정이다. 미사가 끝난 뒤에는 가족들과 조촐하게 식사를 준비하고 있다. 다만 제 2의 생일을 그냥 지나치기 아쉬워 푸짐하게 ‘생일떡’을 만들어청와대 직원들에게 돌릴 계획이라고 한다. 양승현기자 yangbak@
  • 피노체트 면책특권 박탈 이후

    칠레의 전 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상원의원(84)에 대한 대법원의 면책특권 박탈결정으로 집권기간 동안 저지른 반인륜범죄에 대한 사법처리 길이열렸다.그러나 그의 건강과 국내상황을 감안할때 법정에서 유죄판결을 받을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피노체트를 지지하는 상원의원들은 8일(현지시간)건강을 이유로 피노체트의재판을 저지하기 위한 법안을 마련중이다.전문가들은 피노체트에 대한 재판은 최소 2년에서 최고 8년까지 끌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향후 절차 피노체트를 상대로 제기된 154건의 각종 소송사건들에 대한 기소절차가 머지않아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후안 구즈만 주임판사는 피노체트에 대한 기소절차를 빠른 시일안에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소돼도 재판까지는 거쳐야 할 단계가 또 있다.사법부가 먼저 그가 재판을받을 수 있는 건강상태에 있는지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칠레법은 70세 이상의 피고인은 신체·정신건강검진을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그는 고령에다 심장병과 당뇨병을 앓고 있으며 앞서 영국 정부도 건강상의 이유로 그에 대한사법처리를 포기했었다. 피노체트의 변호인단은 그가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심약해 재판을 받을수 있는 상황이 못된다는 점을 강변할 것으로 보인다.한편 그의 가족들은 ‘건강상의 이유’ 같은 면책사유를 내세워 재판을 피하기보다 정면으로 부딪치겠다고 밝혔다.전문가들은 그에 대한 재판은 최고 8년까지 걸리는 지리한과정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피해자 가족들의 증언을 빼고는 지금까지 피노체트의 유죄를 증명할 증거가없다. 검찰은 이번 결정으로 피노체트 치하 전직 고위관리들 중에서 그가 살해 및 실종사건들을 알고 있었고 이를 무마시키는데 개입했다고 증언해주길은근히 기대하고 있다. ◆죄명 칠레정부는 1973∼1990년 피노체트의 철권통치기간 자행된 반인권범죄로 3,197명이 살해·실종됐다고 밝혔다.현재 154건의 소송이 걸려있고 이중에는 1973년 ‘죽음의 특공대’가 저지른 정치범 72명의 납치·실종 사건도 포함돼있다. ◆반응 면책특권 박탈결정이 발표된 직후 수도 산티아고 시내에는 피노체트에 반대하는 시민 4,000여명이 얼싸안고 감격에 벅차 눈물을 흘렸다.다른 한편에서는 피노체트 지지자들이 대법원 결정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여 양측간에 긴장이 맴돌았다. 리카르도 이수리에타 칠레 군참모총장과 다른 현역 장성들이 판결 공표직후피노체트의 자택을 방문,그에 대한 지지의사를 밝혔다.피노체트는 이날 집주변에 몰려든 지지자들 앞에 잠시 모습을 드러내 건재함을 과시했다. 한편 미국과 프랑스,스페인,영국 등은 이번 결정은 정의의 승리라며 일제히환영했다. ◈피노체트 면책특권 박탈일지◈◆98.10. 9. 런던 병원에서 탈장수술. ◆ 10.16. 런던법원,피노체트 구금승인,체 포. ◆ 11.11. 스페인 인도요청 접수. ◆ 11.25. 상원,면책부여 거부. ◆ 12. 9. 영 내무,송환절차 개시결정. ◆ 12.17. 상원,11월25일 결정취소. ◆99. 3.24. 상원,면책 거부. ◆ 10. 8. 런던법원,스페인 인도명령.피노 체트측 항소제기. ◆2000.1. 4. 칠레,영국측에 노령이유로 석 방요청. ◆ 1. 5. 피노체트 건강검진. ◆ 1.11. 영국 내무부 석방계획 발표. ◆ 3. 2. 영국 피노체트 석방,칠레로 귀국. ◆6. 5. 산티아고 항소법원,면책박탈 발 표. ◆ 8.8. 칠레 대법원,피노체트 상고신청 기각,면책특권 박탈. 김균미기자 kmkim@
  • 김대통령 납치사건 27주년 회고모임

    지난 73년 발생한 김대중(金大中)대통령 납치사건 27주년을 하루 앞둔 8일일본 도쿄의 참의원 회의실에서 당시 사건을 회고하는 모임이 한·일 의원및 당시 사건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행사에는 납치 당시 일본에서 구성된 구출위원회에서 활동한 덴 히데오(田英夫)참의원 등 일본측 관계자와,우리측에서 민주당 한화갑(韓和甲)지도위원,이윤수(李允洙)·이낙연(李洛淵)의원,최희준(崔喜準) 전의원,‘김대중선생납치사건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시민모임’ 대표인 한승헌(韓勝憲) 전 감사원장 등이 참석,당시를 회고하고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이 행사는 지난 73년 납치사건 발생 이후 매년 납치사건일을 전후해 열리고 있으며 특히 올해는 최근 TV방송을 통해 새롭게 조명된 당시 상황을 분석하고,정확한 진상규명의 필요성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 한 지도위원을 비롯한 민주당의원들은 아울러 일본측 참석자들에게 최근의변화된 남북관계 상황을 설명하는 의원외교활동을 펼쳤다.또 9일에는 재일한국민단본부를 방문,남북정상회담 이후의 남북관계를설명하고,남북장관급 회담에서 합의된 조총련 동포의 고향방문에 대한 의견을 수렴을 할 방침이다. 강동형기자 yunbin@
  • 사형수·입양아들의 짧은 만남

    사형수가 미국으로 입양됐던 핏덩이 아들을 28년만에 만나 뜨거운 눈물을흘렸다. 성모씨(52)는 27일 오후 광주교도소에서 아들 도진철씨(28·미국명 에론 베츠)를 힘껏 껴안으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훌륭하게 자랐구나.나를 용서해 주겠니” “용서라니요.이젠 힘들어 하지마세요” 통역관 사이를 오가는 말이었지만 전혀 낯설지 않았다.성씨가 품속에서 꺼낸 사진 속에는 진철씨의 어릴적 모습이 생생히 남아 있었다. “엄마 사진은 있어요” “미안하다.구하려고 노력했었는데…” 작달만한 키,오똑한 콧날,시원스런 눈매 등 누가 봐도 둘은 영낙없는 부자지간이다. 이어 진철씨는 교무과 시멘트 바닥에서 아버지에게 처음으로 무릎을 꿇고큰절을 올렸다.“아버지 용서합니다.저를 태어나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아들은 미국에 있는 가족들의 사진을 아버지에게 내보이며 양아버지의 안부도 잊지 않았다.미국에서 가져온 선물을 꺼냈다.만년필이었다.“아버지 매일저에게 편지 쓰세요” 성씨는 “말할 수 없이 기쁘다.와줘서 정말 고맙다“며 아들의 등을 토닥거렸다. 그는 군생활중이던 73년초 생후 6개월 된 아들을 면회소에서 본 게 마지막이었다.그후 아내 도진숙씨는 건강악화로 숨졌으며 이후 진철씨는 79년 광주의 한 보육원에서 미국으로 입양됐다.이때 엄마의 성을 따라 도씨로 호적에올려졌다. 진철씨는 96년 부모를 찾기 위해 주한미군으로 근무하면서 1년동안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실패하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성씨는 97년 1월 교도소에서 신문을 보고 아들이 자신을 애타게 찾고 있음을 알았다.지난해 청와대 등에 탄원서를 제출해 마침내 상봉이 이뤄졌다. 성씨는 94년 서울 하월곡동 모녀 살인사건으로 사형을 선고받고 95년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돼 광주교도소에 수감중이다. 광주 남기창기자 kcnam@
  • 英 최초 여성 국회의장 은퇴

    영국 700년 의회 역사상 최초의 여성 국회의장으로 활동해온 거물 정치인베티 부스로이드여사(71)가 12일 올 여름 국회 회기를 끝으로 정계에서 은퇴한다. 노동당 출신인 부스로이드 여사는 지난 92년 하원 국회의장으로 선출된 뒤당파에 치우치지 않는 탁월한 의회운영을 펼치고 평의원편에 서는 자세로 영국 정치인들의 귀감이 돼왔다. 12일 국회의장직을 내놓겠다고 선언했을때 의사당안이 우레같은 박수로 가득찼다.영국 의회에서는 박수치는 행위를 ‘의원답지 못한 행동’으로 여기는 분위기.퇴임선언 앞에서 의원들이 체면을 던지고 그녀에게 경의를 표한것이다.영국 요크셔 태생으로 50년대 미국에서 생활한 부스로이드는 존 F 케네디 대통령선거캠프에서 봉사자로 정치생활을 시작했다.영국에 돌아온뒤 의원보좌관 생활등을 거치면서 73년 의회입성에 성공했다. 그녀의 후임으로 자유민주당의 멘지스 캠벨과 알랜 베이스,노동당의 귀네스던우디 등이 유력시되고 있다. 김수정기자 crystal@
  • 아나톨리 김,판타지 장편소설 2권 국내출간

    조선족 3세로 73년부터 러시아 문단에서 활동하는 아나톨리 김(62)의 장편소설 두 권이 문학사상사에서 나왔다. 작가의 환상문학 시리즈 1,2권으로 나온 이 책들은 소련이 해체된 뒤 야만스럽게 자본주의화하고 있는 러시아의 현실을 환상문학 형식으로 담았다. ‘켄타우로스의 마을’에서는 그리스 신화의 반인반수 켄타우로스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이 반인반수는 진정 인간의 탈을 쓴 ‘짐승’으로 인간적인윤리라든가 지성이 전무하다.오로지 먹고 자고 배설하고 섹스하는 것 밖에모른다.섹스를 방해받으면 친구도 그 자리에서 죽여버린다.신화에서 신의 잘못된 창조물로 나오는 이들은 결국 자기들의 부모들인 셈인 아마존 여인들과 야생마족의 침입을 받아 몰락한다.‘욕망하는 기계’인 인간에 관한 쓰디쓴알레고리인데 추악한 것을 주저없이 그리는 작가의 스케일이 크게 다가온다. ‘신의 플루트’는 예수의 재림과 천년왕국의 도래라는 기독교적 세계관에바탕해 인간의 죽음과 불멸의 문제를 탐구하고 있다.신의 천지창조를 도왔던 천사들은 신이 인간에게 만물의 영장 지위를 주자 질투에 사로잡혀 스스로악마가 된다.이 악마들은 죽음에 대한 인간의 공포를 먹고 산다. 김재영기자
  • 음성 맹동면 ‘父子 면장’ 탄생

    최근 충북 음성군 맹동면 25대 면장으로 부임한 안병일(安秉一·54)씨가 지난 72년 이곳 면장을 지낸 고 안홍준(安洪濬·97년 작고)씨의 아들로 밝혀져부자가 같은 면의 수장으로 봉직하는 이색기록을 세우게 됐다. 신임 안 면장은 73년11월 행정서기보로 공직에 들어와 26년여 내내 군청에서 근무하다 이번에 사무관 승진과 함께 고향인 맹동면장으로 발령받아 금의환향했다. 안씨의 선친도 1948년 맹동면 서기를 시작으로 30년의 공직생활을 거치는동안 25년을 맹동면에서 근무하면서 부면장에 이어 72년부터 1년6개월간 10대 맹동면장을 지냈다. 안 면장은 “아버지가 고향에서 평생 공직생활을 하시면서 새마을운동 정착 등 많은 일을 하신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며 “지역발전이나 주민 융화,청렴 등 모든 면에서 아버지에 뒤지지 않는 아들이 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청주 김동진기자 kdj@
  • 재미언론인 文明子씨, 金正日국방위원장 단독 인터뷰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끝난지 보름쯤 지난 6월 30일 재미언론인 문명자씨가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정상회담 이후 세계 최초로 단독인터뷰를 가졌다.장장 6시간 동안 북한 원산초대소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김 위원장은 정상회담 당시 김대중 대통령 내외로부터 받은 느낌을 비롯해 남북공동선언에관한 평가,미일 관계 등 주요 현안에 대해 시종일관 거침없고 당당한 태도로입장을 피력했다. 이번 인터뷰는 정상회담 당시 TV에서 드러났던 김 위원장의 모습을 좀더 세밀하게 보여주고 있어 그의 품성과 지도자적 자질을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문씨는 인터뷰후 지난 7일 중국 베이징에서 신준영 대한매일 기자를 만나 회견기사와 관련사진을 본지에 보내왔다. [편집자 주] 2000년 6월30일 오전 9시50분 원산초대소.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현관 앞까지 나와 필자를 기다리고 있었다.역사적인 순간이었다.김 위원장과의 ‘세계최초 인터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지난 몇 년간 필자는 계속해서 북측에 김 위원장과의 인터뷰를 요청했다.답변은항상 “때가 되면”이었다.지난 5월27일 필자는 남북정상회담 취재를위해 방북했다.외신중 정상회담 취재를 허가받은 기자는 필자뿐이었다.정상회담이 끝난 후 필자는 회담 이후 북의 표정을 취재하기 위해 계속 평양에머물고 있었다.이번에야말로 역사적인 인터뷰가 성사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적지 않았지만 확신할 수는 없었다.김정일 국방위원장 자신의 결심이 있어야만 가능한 문제였기 때문이다.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로부터인터뷰가 성사됐음을 통보받았을 때 필자는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직감할 수 있었다. 원산초대소는 풍광좋은 바닷가에 위치하고 있었다.전날인 6월29일 김정일국방위원장이 정주영 회장을 접견한 장소이기도 했다.김 위원장은 원산 인근의 해군기지 현지 지도차 원산에 머물고 있다고 했다.평양에서 원산비행장까지 30분,비행장에서 초대소까지 자동차로 20분이 걸렸다. 김 위원장은 특유의 점퍼옷 차림이었다.그는 활짝 웃으며 활달하게 손을 내밀었다.함께 면담실로 들어갔다.CNN이 나오고 있었는데 자리에 앉은후 김위원장은 텔레비전을 껐다.인터뷰에는 김용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위원장이 배석했다. 김용순 위원장과 내 자리에는 ‘성천담배’와 재떨이가 놓여있었는데 김 국방위원장 앞에는 물컵만 놓여 있었다.김 국방위원장은 담배를 끊었다고 했다.그가 말했다. “이 성천담배는 지난 72년 북남회담때 김영주 조직부장이 박정희 대통령에게 선물로 보낸 담배입니다.박 대통령이 즐겨 피웠다고 들었습니다”■외신중 유일하게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 취재를 허가해주시고 이처럼 단독인터뷰를 위해 시간을 내주신 데 대해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내가 외신기자들은 모두 사절해도 문 선생은 부르라고 했습니다.우리 민족으로서 화해와 통일을 위해 정력적인 기자활동을 하고 계신데 마땅히 초청해야 하지 않겠습니까?”■감사합니다.귀한 시간 내주셨는데 전 세계가 궁금해 하는 문제들에 대해한 가지씩 질문드리도록 하겠습니다.우선 6월 정상회담에 대해서입니다.말그대로 전 민족적 열광 속에서 진행되었는데 그 성과를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우리 민족의 힘으로 민족의 염원인 통일을 향해 첫 발을 내디뎠다는데 가장 큰 의의를 두고 싶습니다.이것은 우리 인민들의 간절한 염원이고,나 자신으로선 수령님의 유훈을 계승한다는 의의가 있습니다.우리 속담에 시작이 반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하루빨리 통일을 이룩할 수 있도록 노력할 때가 되었습니다”■지난 6월13일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비행장에 도착했을 때 비행장까지 나가서 맞이하셨는데 이는 외교의전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파격적인 조치였습니다.어떻게 해서 그런 결심을 하셨습니까. “내 스스로 결심했습니다.그동안 통일후에도 미군이 계속 주둔해야 한다는발언이나 통일운동가 구속, 비전향 장기수를 돌려보내지 않는 일 등이 보도되어 사실 김 대통령에 대한 우리 인민들의 인상이 좋지 않았습니다.김 대통령께서 통일을 위해 어려운 결심을 해서 평양까지 오시는데 분위기가 그래서는 안되겠기에 예정에 없이 공항에 나갔습니다”■김 대통령에 대한 인상은? “이번 수뇌급 회담에서 합의된 5대 공동선언은 민족의 통일대헌장이라 할정도의 의의를 가집니다.한꺼번에 다 할 수는 없지만 시간이 걸리더라도 반드시 실천돼야 합니다.나는 김 대통령께서 이를 차근차근 실천해나가려는 의지와 성의를 가진 분이라고 믿습니다” 김 위원장은 “사람의 5대 복 중 하나가 처복이라는데 김 대통령은 처복이있는 분이다”라면서 이희호 여사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체구도 크지않은 분이 여성계 지도자로서, 또 남편의 석방을 위해 그처럼 강인하게 투쟁했다는 데에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6월14일 만찬석상에서 김 위원장께서 이희호 여사를 김 대통령 옆으로 부르셨지요? “그 날은 한국측 초청만찬이었기 때문에 자리배치를 남측에서 했습니다.제가 가보니 남자 여자를 갈라서 앉혔는데 이희호 여사도 여자들과 함께 멀리앉아 있었습니다.그래서 내가 말했지요.‘이거 통일을 하자는 뜻입니까? 안하자는 뜻입니까.가족을 갈라 이산가족을 만들어놓아서야 되겠습니까?’”김 위원장은 다시 물었다. “김 대통령은 가톨릭 신자이신데 이희호 여사는 가톨릭입니까? 기독교 신자입니까?” 남편을 따라 개종을했는가라는 의미인 듯했다.나는 “이 여사는 기독교 신자”라고 답했다. ■그동안 역사를 보면 남북관계가 전향적으로 풀렸다가도 다시 대결구도로돌아간 일이 여러차례 있었습니다.현재도 일각에서는 그런 과거가 되풀이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습니다.김 위원장님께서는 6·15공동선언의 실현 전망을 어떻게 예측하십니까? “이번 5대 공동선언은 반드시 실천되어야 합니다.최근 비전향 장기수 송환시기가 당초 합의보다 늦어지는 등 다소 차질이 발생하고 있는데 앞으로는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될 것입니다.우리는 5대 공동선언의 실천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남쪽에서는 김 위원장님의 서울방문에 대한 기대가 큰 것 같습니다.언제쯤으로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5대 공동선언의 실천 과정을 보면서 결정할 것입니다”■정상회담 직전에 중국을 방문하셨는데 중국식 개방에 대한 견해는? “경제성장에서 긍정적이었습니다.인민들을 잘 살게 해야 할 것입니다”■남북관계에 획기적인 진전이 있는 데 반해 조·미관계는 주춤한 느낌입니다.어떻게 전망하십니까? “미국에서 페리가 특사로 왔으니까 우리가 볼을 던질 차례가 되었습니다. 곧 고위급에서 대표를 파견할 것입니다”■현재까지 서방에서 대미특사로 거론해온 급보다 더 고위급 인사를 보내신다는 의미입니까? “그렇습니다”■김대중 대통령은 이번 남북정상회담 과정에서 “주한미군의 즉각적인 철수는 현실적으로 힘들다”는 점을 설명해서 김 국방위원장께서 완전한 동의는아니나 일부 납득했다고 말했는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동안 미군더러 나가라고 했지만 그들이 당장 나가겠습니까.우선 미국스스로가 생각을 달리해야 합니다.그들은 분단에 책임이 있는 만큼 통일에도책임이 있습니다. 지난날 닉슨도 카터도 미군을 철수하겠다고 했는데,주한미군 문제는 우선 그들 스스로가 우리 민족의 통일을 적극적으로 돕는 방향에서 알아서 결정해야 합니다”■제10차 조·일 국교정상화 회담이 지난 5월로 예정됐다가 취소된 후 아직다음 회담 날짜가 발표되지 않았습니다.조·일관계는 어떻게 풀어나가실 예정입니까? “일본을 흔히‘가깝고도 먼 나라’라고 하는데 우리는 일본과 ‘가깝고도가까운 나라’가 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이웃이 마치 지구 양극에 사는 것처럼 지내는 것보다 가까운 친구로 지내는 것이 좋지 않습니까. 우리는 일본과의 국교정상화를 원하지만 그것은 일본의 결정에 달려 있습니다. 일본인들은 우선 납치니 뭐니 하는 얘기를 치우고 과거청산 등 근본문제를 풀기 위해성의와 진실을 가지고 노력해야 합니다” 12시.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차림표에는 더운 음식에 ‘야자제비둥지상어날개탕’‘소고기 철판구이’‘감자만두 튀기’‘김치무우장’‘잣죽’,찬음식에 ‘게사니 향료 찜튀기’‘꽃게 살라드’‘록두묵’ 등이 적혀 있었다.‘야자제비둥지상어날개탕’은 반 자른 야자에 담긴 수프였는데 김대중 대통령 초청만찬 때도 대접했던 음식이라고 했다. ■94년 대홍수 이후 경제문제가 심각했는데 그 시기를 어떻게 보내셨습니까? “지난 5년간 어려운 시기 속에서 2,000만의 운명에 대해 참으로 고민 많이했습니다. 그때 우리에게 식량을 보내준 한국,미국,일본 등세계 여러 나라사람들의 인도주의에 깊이 감사합니다”■지도자로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덕목은 무엇입니까? “인민이 지지하지 않는 지도자는 있을 수 없다는 점입니다.수령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인민들 위에 군림해서는 안됩니다.그들과 함께 일해야 합니다.인민과 지도자의 단결을 방해하는 것이 관료주의인데 우리는 그것이 없었기 때문에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그는 식사중에 전날 만난 정주영 회장의 건강을 걱정하기도 했다.그간 정회장이 해낸 역할을 높이 평가하면서 “이번에 현대가 많은 일을 할 수 있도록 금강산특구 등 원하는 것을 파격적으로 허용해 주었다”고 했다.남북경제협력의 미래를 확신하는 듯 “통일되면 우리나라는 잘 살게 될 것”이라고역설했다. 인터뷰 내내 ‘김대중 한국 대통령’‘한국’‘한국 국민’이란 용어를 일관되게 쓰는 것도 인상적이었다.단, 김영삼 전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는 여전했다.김 위원장은 “‘김영삼씨만 빼고 전직 대통령들 누구든 초청하겠다’고 김 대통령께 말했다”고 밝혔다.마지막으로 한 가지 물었다. ■정상회담 후 남에서 ‘김정일 쇼크’‘김정일 신드롬’이 일어나고 있다는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그동안 왜곡보도가 많아 인상이 매우 나빴는데 본인이 화면에 나타나니까뿔 달린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나 봅니다” 오전 9시50분부터 오후 3시30분까지 장장 6시간 동안 진행된 인터뷰에서 기자의 눈으로 본 ‘지도자 김정일’은 강하면서도 소탈한 인물이었다.특히 그의 자세와 손짓은 지난 92년과 94년 필자가 두 차례에 걸쳐 인터뷰했던 고김일성 주석을 연상시켰다. 국내외적 현안에 대해 거침없이 답변하는 것은 물론,식사중에는 가톨릭과기독교,고혈압과 유황온천,피자와 녹두빈대떡 등등 다종다양한 화제를 이끌어 갔다. 원산비행장으로 달리는 차 안에서 필자는 생각했다.전 세계가 지금 ‘김정일 쇼크’에 빠져 있다.그런데 과연 누가 변한 것인가.그가 이번에 새로운모습으로 변화한 것일까.그는 원래 그런 모습이었는데 그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 변함으로 인해 그가 다르게 보이는 것은 아닌가.분명한 것은 북의 지도자김정일을 제대로 읽기 위한 연구가 새롭게 시작돼야 한다는 점이다. *문명자는 누구. 문명자(文明子)씨는 올해 71세로 재미 원로언론인으로 미국 ‘US아시안 뉴스서비스’의 주필이며,아직도 미 백악관을 출입하고 있는 현역이다. 61년 조선일보 워싱턴 특파원을 시작으로 국내 여러 언론사의 워싱턴 특파원을 지낸 문씨는 73년 11월 당시 보도 금지사항인 ‘김대중 납치사건’을 보도한 직후 미국에 망명했다.90년 이후 10여차례 방북 취재했고 두 차례에 걸쳐 김일성 주석과 회견했다.그녀는 서방기자중 ‘최고의 북한 소식통’으로불릴 정도로 북한 지도층과 북한 사회에 이해가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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