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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글대장경 37년만에 완간

    최근 동국역경원(원장 월운 스님)이 한글대장경의 마지막 권인 ‘장경음의수함록'(藏經音義隨函錄)을 발간함으로써 한국불교계가 오랜 숙원사업으로 추진해온 한글대장경이 37년만에 총 318권으로 완간됐다. 이에따라 대한불교 조계종은 오는 9월5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완간을 축하하는 회향법회를 성대하게 치룬다. 한글대장경은 조계종이 지난 1962년 도제양성,포교와 함께종단의 3대사업으로 추진해온 불사.조선시대이후 한글대장경은 간헐적으로 시도돼왔지만 대부분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하다 이번에 완간을 보게 됐다. 한글대장경 간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1964년 3월 동국대애 역경원이 설치되면서부터.이듬해 6월 한글대장경 1집‘장아함경’이 첫 선을 보인뒤 매년 8책씩 간행돼 73년까지 총 67책의 한글대장경을 만들어내는 성과를 보였다.그러나90년대초까지 소강상태에 들다가 93년부터 활동을 재개,94년 26권의 한글대장경이 간행된 것을 비롯해 97년까지 4년간총 116책이 간행됐고 마침내 318권의 한글대장경 완간을 보게 됐다. 역경사업에는 조계종 큰 스님들과 불교학자 이종익 김달진씨 등이 번역했으며 조지훈 서정주 시인 등 문인들과 최현배이희승씨 등 국어학자들이 맞춤법과 문장 강의 등에 참여했다. 동국역경원은 앞으로 한글대장경의 전산화 작업에 주력,2010년까지 한글대장경 전체를 인터넷에 띄울 계획이다. 김성호기자 kimus@
  • [사설] 단서 드러난 최교수 의문사

    1973년 중앙정보부(중정)에 연행됐다가 의문사한 서울대최종길 교수가 ‘간첩혐의를 시인했다’는 당시 발표는 조작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20일 “당시 수사관들에 대한 조사와 수사기록 등을 검토한 결과최 교수가 간첩이라고 자백한 사실이 없고 이를 뒷받침할증거가 없었음에도 중정이 ‘최 교수가 간첩이라고 시인한뒤 자책감에 중정 건물 7층 화장실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고 거짓 발표했다”고 밝혔다.진상규명위는 아울러 당시수사관들이 조서를 조작했으며 조사과정에서 최 교수에게가혹행위를 한 사실도 밝혀 내고 엉덩이와 허벅지 등에 피멍이 든 최 교수의 주검 사진을 공개했다. 진상규명위는 그러나 조사과정의 가혹행위가 사망의 직접적인 원인인지는 단정하지 못하고 있다.검시 기록 등을 검토한 결과 ‘최 교수가 살아 있는 상태에서 떨어졌을 가능성이 있다’는 법의학계 주장이 나왔기 때문이다.따라서 진상위는 최 교수의 죽음을 고문에 의한 치사,고문을 피할 목적,모욕적인 수사에 항의하기 위한 자살,고문 수사관들이최 교수를 건물 밖으로 내던졌을 가능성 등 모든 가능성을염두에 두고 조사를 벌이고 있다. 최 교수의 죽음이 진상 규명위가 설정한 4가지 가능성 중어느 것에 해당하더라도 그의 죽음은 넓은 의미에서 타살이라고 할 수 있다.설사 ‘최 교수가 7층 화장실 창틀에서 뛰어 내렸다’는 당시 중정의 발표가 맞는다 해도 궁극적으로 그는 타살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당시 중정이라는 곳이 피의자가 자살할 수 있을 정도로 감시가 느슨했는지는 덮어두고라도 ‘오죽했으면 그가 자살을 선택했겠는가'를 유추해 보면 결론은 자명해 진다. 최 교수의 죽음이 직접 타살이든 간접 타살이든 그의 죽음에 얽힌 진상은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그것은 죽은 사람의명예회복,그리고 그 가족의 한을 풀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역사의 교훈을 위해서다.‘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는 교훈을 현실 속에서 확인할 수 있을 때 우리사회가 이를 신념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사건의 피해자를 최 교수와 그 가족이라고만 생각하지 않는다.국민 모두가 피해자요,그런 일에 동원된 말단 행위자도 따지고 보면 피해자라고 할 수 있다.따라서 최 교수 사건은 물론 유사한 모든 사건의 ‘살아있는 증인들'이 면책 받을 수 있는 길은 지금이라도 진상규명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일이다.그래야 그들은 역사적인 범죄의 ‘가해자’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 美 21일 추가 금리인하

    뉴욕 증시가 추가적인 금리인하로 ‘힘’을 얻을 수 있을까. 월가의 분석가들은 “약간의 반등세가 있을 지 모르나 국면전환은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한다. 21일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금리를 0.25%포인트 내려도 오래전부터 예견된 사항이라 주가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으로 본다.다소 오르더라도 금리인하 때문이 아니라 앨런 그린스펀 FRB 의장이 미국 경제에 대한 낙관적 메시지를 줄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월가는 금리변동보다 달러화 추이와 이번주 말 발표될 7월중 내구재 주문동향 등에 관심을 표명한다.국제통화기금(IMF)이 14일 ‘베이지 보고서’를 통해 달러화 급락을 경고한이후 국제 통화시장에서 달러화 가치는 크게 떨어졌다. 증시 전략가들은 달러화 가치가 떨어지면 환차손을 우려한외국의 투자자들이 자금을 회수하고 주식의 신규매입도 중단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한다.1997년 아시아에 외환위기가닥쳤을 때 국제 투기자본이 환차손을 피해 아시아 주식시장에서 썰물처럼 빠져나간 것과 같은 이치다. 투자자들은 소매판매와 기업의 자본지출이 뚜렷하게 나아지지 않는 한 기업들의 실적은 나아지지 않고 경기회복도 더딜 것으로 예상한다.따라서 당분간 관망세를 유지하며 소비동향과 그린스펀 의장의 추가 금리인하 시사 등 앞으로의 경기부양책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월가의 증시전략가들은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 500지수에 등록된 주요 기업들의 이익이 3·4분기 13.4%,4·4분기 1.1% 각각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91년 이후로 4·4분기 중기업이익이 하락한 적은 한 번도 없다.USA투데이도 20일자보도에서 뉴욕증시가 일본식 장기침체로 빠져들 위험을 경고했다. 그러나 불룸버그통신은 과거 미국 증시의 변동상황을 바탕으로 내년 뉴욕 증시가 크게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73년 석유위기 당시 S&P지수는 17%,74년 30% 폭락했다.그러나 이듬해인 75년에는 32% 올랐다.대공황기인 1929년∼32년,2차대전 직전인 1939년∼41년에도 S&P지수가 3년 연속 떨어진 적은없다고 덧붙였다.지난해 10%,올해는 지금까지 12% 떨어져 내년에는 급등세로 반전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워싱턴 백문일특파원 mip@
  • 최종길교수 中情서 고문 ‘간첩자백’ 사실과 달라

    유신체제의 ‘의문사 1호’로 알려진 고 최종길(崔鍾吉) 서울대 법대 교수가 무고하게 희생됐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대통령 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梁承圭)는 20일“‘최 교수가 간첩이라고 시인한 후 자책감을 못이겨 7층화장실에서 투신했다’는 지난 73년의 중앙정보부 발표와는달리 간첩이라고 자백하지 않았음이 공식 확인됐다”면서 “중정의 수사관들이 최 교수를 고문한 사실도 새롭게 확인됐다”고 발표했다. 지난 1월부터 최 교수 사건을 조사했던 진상규명위는 그동안 중정 조사관 182명을 조사한 결과와 7,000여쪽에 이르는수사기록을 토대로 이같은 사실을 밝혀냈다. 진상규명위는 “최 교수의 직접 사인이 추락사로 밝혀짐에따라 최 교수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거나 가사 상태에서 수사관들이 건물 밖으로 내던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가혹행위에 따른 타살 여부에 대해서는 “아직 구체적으로 발표할 단계가 아니다”면서 “법의학적 접근 방식 등을 통해진실에 다가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최교수는 당시 중정으로부터 50년대 후반 독일 유학시절 공산 치하인 동베를린을 다녀왔고,간첩 용의자인 친구 이모씨(현재 북한 거주)와 안부 서신을 주고 받아 간첩 혐의로 조사를 받다가 자살한 것으로 알려졌다. 진상규명위는 조만간 최 교수 의문사와 관련,당시 중앙정보부 실무책임자와 수사관들을 상대로 대질 조사를 벌인 뒤 최교수의 죽음이 민주화와 관련성이 있는 것인지,공권력에 의한 부당한 죽음인지를 결정해 공식 발표할 계획이다. 박록삼기자 youngtan@
  • 김대통령 ‘도쿄피랍’ 회고/ “”죽음 두려웠지만 타협 안했다””

    “정의와 국민을 위해 목숨을 잃은 사람은 당대에는 패배자일지 모르지만 역사에서는 반드시 승자가 되는 것이다”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도쿄(東京) 납치사건 생환기념 28주년인 13일 청와대 수석비서관들과 조찬을 함께하는 자리에서 “죽음을 두려워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타협을 거부했다”며 이같이 회고했다고 박준영(朴晙瑩) 대변인이 전했다. 김 대통령은 먼저 “28년 전 생환되고,그 후 살아온 여러현실들을 생각하게 된다”며 기억의 편린(片鱗)들을 되살렸다.김 대통령이 73년 8월 도쿄의 한 호텔에서 괴한들에 의해 납치돼 수장을 당하기 직전 미국의 도움을 받아 생환하게 된 과정을 육성으로 들려주자 참석한 수석들도 눈시울을적셨다고 한다. 김 대통령은 “80년대에도 군부가 많은 유혹을 했지만 거절했다”면서 “이는 동서고금의 역사를 막론하고 정의를 위해,국민을 위해 사는 사람은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는 진실 때문이었다”고 말했다.이어 “오늘을 살기 위해 타협을 하는 사람은 역사 속에서 패자가 될 것”이라며 “많은 사람들이 불의와타협하지 않고 옳은 일을 하려는 것은 역사가 있기 때문”이라고 역사의식을 강조했다. 김대통령은 “대통령이 된 뒤 어떠한 부정이나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고,국가와 민족을 위해 바른 선택을 하도록 노력했다”면서 “28년전 하느님이 살려준 목숨을 그 분의 뜻에 따라,가르침대로 살 것”이라고 다짐했다. 오풍연기자 poongynn@
  • 이산가족 상봉 1주년… 짧은 만남뒤 긴 그리움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진지 1년.북녘의 부모형제를 만났던 남쪽의 가족들은 시간이 갈수록 더해가는 그리움에,아직 만나지 못한 사람들은 생사라도 알고 싶은 답답함에 시름만 깊어가고 있다. 지난해 역사적인 6·15 남북 정상회담에 이어 8월15일 서울과 평양에서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진 뒤,금방이라도 이어질 듯했던 이산가족 추가 상봉과 방문소 개설 등이 기약없는 답보상태를 거듭하고 있기 때문이다. 1·4 후퇴 당시 가족과 생이별을 한 경유진씨(66·서울 성북구 정릉4동)는 “반세기만에 형·누나가 꿈에 나타나 혹시나 하는 기대를 버리지 않고 있는데 남북 관계가 좋지 않은 것 같아 걱정”이라면서 “꼭 한번만이라도 형제들을 보고 싶다”며 눈물을 쏟았다.경씨는 전쟁이 끝난 뒤에도 집을 지키며 형 호진(당시 27세),응진(〃 22세),누나 경진(〃30세). 신진(당시 19세)씨를 기다렸지만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73년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자식들을 보고 눈을 감겠다던 어머니마저 96년 96세를 일기로 눈을 감았다. 6·25때 19살의 나이에 의용군에징집된 동생 강신철씨(69)를 애타게 찾고 있는 선웅씨(70·서울 서대문구 홍은동)도“하루빨리 이산가족 상봉이 다시 추진돼 우리들의 가슴에맺힌 한을 씻어줘야 한다”면서 “동생의 생사여부만이라도확인하고 싶다”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반세기만에 서울에서 북녘의 가족을 만난 남쪽 가족들도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지난해 8·15 이산가족 상봉 때 노환으로 입원하는 바람에서울에 온 아들 량한상씨(70)를 만나지 못하다가 마지막 날밤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짧은 해후를 한 김애란씨 (87·서울 마포구 서교동)는 하루종일 아들의 이름만 부른다. 이같은 어머니를 뵈면 자꾸만 가슴이 아프다는 동생 한종씨(65)는 “죽은 줄로만 알았던 형님을 만난 뒤 어머니가 더욱 애를 태우시는 걸 보면 안타깝기만 하다”면서 “조금만있으면 형님이 다시 온다며 어머니를 위로하지만 언제까지계속해야 할 지 모르겠다”고 탄식했다. 전영우 박록삼기자 anselmus@
  • 이산문학상 시인 김명인씨

    시인 김명인씨(55)가 고 김광섭 시인의 문학정신을 기리기 위해 문학과 지성사가 주관하는 제 13회 이산(怡山)문학상 수상자로 뽑혔다.수상작은 ‘길의 침묵’. 김씨는 지난 7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했으며 시집 ‘동두천’,‘물 건너는 사람’‘푸른 강아지와 놀다’등의 시집을 냈다. 꾸준한 작품 활동으로 김달진문학상,소월시문학상,현대문학상을 받았다.
  • 만화로 보는 ‘체 게바라’

    지난 해 출판계의 화제는 단연 ‘게바라 열풍’이었다.97년 유골 발견설로 해외에서 일기 시작한 게바라 추모 열기는 책 영화는 물론 티셔츠 액세서리로 이어졌다.신드롬으로까지 불리는 이런 열기는 ‘일관된 삶’이 지닌 매력에서 비롯될 것이다. 의사,쿠바혁명 성공후 산업자원부장관,국립은행장 등 안락한 길을 거부하고 다시 ‘혁명의 장’으로 찾아간 그의삶이 다시 한 권의 만화로 나왔다.‘체 게바라’(현실문화연구 펴냄) 이 만화는 주인공의 명성에 어울리는 ‘저항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다.아르헨티나 군사정권은 1968년 만화가 나오자 마자 배포를 금지하고 원본은 아예 없애 버렸다. 스토리 작가 엑토르 오에스테르엘드(1919∼?)는 군부 독재가 살벌한 광기를 내뿜던 1973년,네 딸들과 함께 실종돼아직까지 생사가 밝혀지지 않고 있다.또 그림을 그린 알베르토 브레시아 부자(父子)도 숱한 정치적 탄압과 죽음의공포 속에서 나날을 보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작품은 게바라의 삶만큼이나 강렬하게 다가온다. 중간 톤이 없이 흑백 선의 강한 대조로게바라의 삶을 조명하고있다. 남성적이고 강렬한 터치와 다양한 구성으로 한편의다큐멘터리를 보는 느낌을 준다. 게다가 군더더기 없는 오에스테르엘드의 시적인 문장은 독자를 단번에 빨아들여 웬만큼 두툼한 평전이 주는 매력을능가한다. 특히 게바라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는 연대기적 구성 중간중간에 특정 사건과 관계가 있는 기억을 겹쳐 넣어 전기물이 주는 지루함을 덜어준다.오늘의 영웅이 어떤 과정을 거쳐 탄생하는 가를 이해할 수 있다. 옮긴이 남진희씨는 “이 작품은 특히 게바라의 인간적인면모를 강조하고 있다”면서 “억압에 맞서 싸우는 영웅이기 이전에 사랑으로 봉사하는 휴머니스트로서의 고뇌,예컨대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교전 중인 적에 대해서까지 인간적인 연민의 정을 느끼는 모습이나,동지들에 대한 뜨거운사랑,병들고 지친 사람들에 대한 헌신적인 사랑을 전면에부각시키고 있다”고 말한다. 이종수기자 vielee@
  • [자랑스런 공무원] 김홍식 국립박물관 학예사

    “자신의 집이 수해로 침수됐는데도 소장유물 걱정으로 한밤중 박물관에 나온 사람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 유물관리부 김홍식(金弘植·56) 학예연구사의 동료가 귀띔한 말이다.그는 박물관에 소장된 국보급유물의 보관상태를 관리하고,체계적으로 분류하는 일을 맡고 있다.지난 73년부터 28년간 해온 ‘유물 외길’이다.김연구사는 최근 감사원의 문화재 관련 감사에서 모범적 사례로 뽑혔다.유물 운반때 솜뭉치를 채우는 방식이 아닌,박스안에 고리를 만들어 줄로 조이는 ‘띠묶음’ 방식을 고안,유물의 훼손 우려를 줄인 것이 선정의 큰 이유였다. 이 방식은 뒤집어져도 내용물이 손상되지 않아 96년 애틀란타올림픽때의 유물기념 전시회 운반과정에서 성공적으로활용됐다. “국보인 금동미륵보살상을 옮겨야 하는데 혹시 손상이 나면 어쩔가 걱정이 됐지요.동료들과 숙의를 거쳐 이 방법을택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는 이방식이 지금까지 각종 행사때 운반에 활용돼 긍지도 갖는다고 말했다. 김 연구사의 업무는 박물관에 있는 13만점의 유물 등록과정리,대여등 유물들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분야다.요즘에는 공·국립은 물론 사립박물관에서 전시를 위한 대여 건수가 많아져 수요도 부쩍 늘었다.1년에 3∼4회씩의 해외 전시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문화재 발굴이후 노출에 따른 부식방지를 위해 ‘반밀폐식 서랍형’ 청동거울 전용격납장을 개발해 주위를놀라게 했다.금속물과 그림,모직물 등 유물은 습기와 미생물에 약해 이같은 보관법이 절실했기 때문이었다. “유물을 모아놓은 수장고가 지하에 있어 근무여건은 썩좋지않습니다.유물을 훼손하는 해충을 없애기 위한 화학약품 사용으로 냄새도 심한 편이지요.하지만 국보급 유물과함께 하루를 지낸다는 것은 ‘의무이면서도 크나큰 자랑’이란 생각입니다.” 그는 지난 1일에도 경기도 이천·광주·여주 국제도자기축제의 전시와 관련,‘또한번의 애정을 쏟을’ 출장 준비로부산하게 움직였다. 정기홍기자 hong@
  • 소프 5번째 ‘金물살’

    이안 소프(19·호주)가 제9회 세계수영선수권 계영 800m에서 대회 4번째 세계신기록을 세우며 5관왕에 올랐다. 소프는 27일 일본 후쿠오카 마린메세 수영장에서 계속된 대회 남자계영 800m 결승에서 마지막 주자로 나서 7분4초66의 세계신기록(종전 7분7초05·호주)으로 골인,자유형200·400·800m와 계영 400m를 포함해 5개의 금메달을 땄다. 대회 5관왕은 1973년 제1회 베오그라드대회 때 제임스 몽고메리(미국)가 세운 뒤로 처음이다. 그러나 소프는 앞서 열린 남자자유형 100m결승에서 48초81로4위에 그쳐 7관왕의 야망이 좌절됐다.
  • [50대 국가요직 탐구] (8)통일부 남북회담 사무국장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감사원 건물을 끼고 돌면 숲으로 둘러싸인 나지막한 건물이 나온다.남북대화가 열릴 때마다 회담진행 상황을 점검하고 이에 따른 협상전략을 짜내는 남북회담사무국이다.회담 대표들이 전해온 북측 주장을 분석하고 새로운 협상카드와 대응논리를 개발,남북간 치열한 줄다리기를 조율하는 남북대화의 야전사령탑이다.업무의 특수성만큼이나 다양한 인적구성과 변천사를 지닌 회담사무국의 소재지는 그러나 흔히 일컫는 삼청동이 아닌 ‘와룡동’이다. 회담사무국은 71년 8월 이산가족을 찾아주기 위한 남북 적십자회담이 사상 처음 개최되면서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조직(한적 회담사무국)으로 발족됐다.초기에는 반관반민(半官半民)의 조직이라지만 100여명의 직원 대부분이 중앙정보부요원으로,중정의 외곽조직이나 다름없었다.초대 강인덕 사무국장은 중정의 북한국장을 겸직했다. 한적 회담사무국은 73년 12월 남북관계가 교착상태에 빠지면서 변화를 맞았다.부처간 대북사업을 조정하던 중정의 협의조정국과 통합되면서 남북회담사무국으로 확대 개편된 것이다.당시 통일부 전신인 국토통일원 산하기구가 아니라 별도 정부조직으로 설립됐다.와룡동의 ‘용꼬리 부분’에 터를 잡은 것도 이때다.엄밀히 따지면 3대 국장을 지낸 김달술씨가 현 남북대화사무국의 초대 국장이라고 할 수 있다. 역대 사무국장 가운데 지금도 회자되는 인물로는 우선 국회의원을 지낸 이동복씨(5대)를 꼽을 수 있다.한국일보 정치부 기자로 활동하다 72년 남북조절위원회가 구성되면서 사주(社主)인 장기영 남북조절위 부위원장에게 발탁돼 남북회담업무에 뛰어든 인물이다.분석력과 소신,업무추진력이 뛰어난 반면 그 때문에 주위와 의견충돌도 많았다고 한다.81년 회담사무국이 국토통일원 산하로 이관될 때 이범석 당시 통일원장관과 벌인 설전이 한 예다.업무의 특수성을 내세워 이관에 강력 반대하던 그는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하자 이듬해 자리를 박차고 나가 삼성 이병철 회장의 특보로 옮겼다.훗날안기부장 특보로 발탁돼 남북대화의 무대로 돌아온 그는 91년 남북고위급회담 때 또 한번 ‘사건’을 일으켰다.당국의전통문 지시를 어기고 회담을 결렬로 몰아간 이른바 ‘훈령조작 사건’이다.당시 함께 회담대표로 참여했던 임동원 외교안보연구원장(현 통일부장관)과의 이념적 차이로 인해 빚어진 결과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지금도 대표적 보수론자로꼽히는 그는 당시 엄격한 상호주의를 주장,선공후득(先供後得)을 강조하던 임 장관과 사사건건 대립했다고 한다. 중정 출신들로 이어지던 회담사무국장은 93년 구본태씨(8대)가 국장을 맡으면서 처음 통일원 출신으로 바뀌었다.노태우 정권 당시 통일원 통일정책실장으로 있으면서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을 입안한 그를 문민정부 들어 이홍구 장관이 남북대화의 전면에 내세운 것이다.그러나 그는 8개월간 재임하다 다시 통일정책실장으로 자리를 옮겼다.김일성 주석의 사망으로 무산된 남북정상회담 합의서를 입안하기 위해서였다. 지난 5월 통일부 기획관리실장으로 자리를 옮긴 손인교 전사무국장은 남북회담사무국의 산증인으로 꼽힌다.72년 중정에 들어가 협의조정국에 배치된 이후 최근까지 30여년을 회담사무국에서 보냈다.남북당국간 물밑접촉의 한 창구인 판문점 연락부장을 지내는 등 북측 인사들과 오랜기간 접촉,현간부 가운데 가장 현장 경험이 많고 북한 사정에 밝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진경호기자 jade@
  • 해양생태계 정책 ‘뒤죽박죽’

    지방자치단체가 해양생태계에 대한 상반되는 행정을 일삼고 있다.바다에 인공어초를 설치하고 새끼 물고기를 방류,생태계의 보전에 힘쓰는가 하면 모래채취 허가를 마구 내줘 바다를 훼손하고 있다. 충남도는 올해 31억원을 투입해 도내 서해안 일대 714㏊에 인공어초를 설치할 계획이다.물고기의 서식을 돕기 위해서다.도는 73년부터 지난해까지 모두 392억원을 들여 보령시녹도와 당진군 난지도,태안군 가의도 등 일대 1만2,048㏊에 인공어초를 설치해왔다. 충남도는 또 86년부터 지난해까지 대하 1억9,500만마리,우럭 500만마리,꽃게 300만마리 등 모두 2억300만여마리의 종묘를 방류하는데 총 14억원의 재정을 쏟아부었다. 반면 충남도는 최근 ‘공유수면내 바다골재(해사)채취 예정지’를 고시하고 허가를 내주도록 했다.올해 허가량은 760만㎥로 예정 고시된 지역은 보령 효자도와 당진 난지도 등 모두 23곳으로 인공어초 설치지 및 종묘 방류지역과 겹쳐파괴 및 보존행위가 한곳에서 이뤄지고 있다. 충남도는 89년부터 서해안 일대에서 매년 400만㎥ 이상의모래를 채취할 수 있도록 허가해왔다. 도 관계자는 “지사가 예정지를 고시하면 시장·군수가 허가를 내주고 있다”며 “하천모래가 고갈되면서 바다모래가 건축재로 쓰여 해사채취를 불허하면 골재파동이 일어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충남대 해양학과 박철(朴哲) 교수는 “산란장을 파괴,어류 생산량을 줄이는 모래채취와 어족자원을 늘리려는 인공어초 설치·종묘 방류 행위가 악순환되고 있다”며“모래채취 면적을 최소화하고 해사채취장도 산과 같이 돌아가며 쉬게 하는 휴식년제를 적극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전 이천열기자 sky@
  • [50대 국가요직 탐구] (6)행자부 자치행정국장

    “지방출장에 나서면 어떻게 알았는지 시·도지사가 고속도로 톨게이트에서 영접을 했다.”,“출장지마다 ‘봉투’때문에 주머니가 넘쳐났다.” 현 행정자치부 ‘자치행정국장’의 전신인 내무부 ‘지방국장’시절 전해지는 얘기다. 지금도 내무공무원들 사이엔 이같은 ‘전설’이 회자된다. 당시 지방국장은 시·도지사를 비롯,시장·군수·구청장등 전국 일선 기관장에 대한 인사권을 갖고 있어 중요한 자리로 분류됐다.그러다 지난 78년 ‘차관보’직제가 만들어지면서 ‘지방행정국장’으로 직명이 변경됐고,98년 총무처와 내무부가 통합될때 ‘자치지원국장’으로,99년에 현재와 같은 ‘자치행정국장’으로 명명됐다. 지방자치제 이후 시·도지사 임면권이 없어졌지만 아직도권한은 막강하다.지방자치 지원 행정의 종합·조정 역할뿐아니라 자치단체 소속 국가공무원의 임용,자치단체의 인사운용 지원,자치단체간 분쟁 조정 및 광역행정에 관한 연구·운영 등이 주요 업무다. 대통령 및 국회의원 선거 등 각종 투표 사항과 주민등록업무도 자치행정국장 소관이다.최근들어 민간운동단체 활동지원 및 국민의식개혁 프로그램 개발과 자원봉사제도 업무도 총괄한다. 국장을 거쳐간 인물들의 면면에서 자리의 중요성을 알 수있다.지난 49년부터 78년까지 ‘지방국장’을 역임한 인사23명 전원이 시·도지사 이상 장·차관을 지냈다.현 고건서울시장도 73년부터 1년간 재임했다. 차관보 직제가 생긴후 국장을 지낸 인사는 현 장인태 국장까지 모두 26명에 이른다.이들 중엔 장관 경력 5명,국회의원 경력 6명(현역 3명,이재창 윤한도 허태열의원),시·도지사 이상 차관급 경력 9명(현역 이의근 경북지사)이며,정부내 1급 공직자로 근무하는 현역만 5명에 달한다. 이렇게 중요한 자리였지만 90년 이전까지는 비고시 출신이 오히려 더 많았다.90년대 이후에도 현역 재선의원인 윤한도씨와 경북지사인 이의근씨,유호근씨가 비고시 출신이었다.이들은 모두 자타가 인정하는 내무행정통으로 주위로부터신망이 두터웠다.그러나 비고시 출신은 95년 이후 입성하지 못했다.당분간 비고시 출신이 이 자리를 차지하기에는 힘든 분위기다. 지역별 현황은 정권의 성격에 따라 부침이 있었음을 엿볼수 있다.80년 이후 국민의 정부 출범때까지 호남출신은 전석홍씨(전 국회의원)와 전북지사를 지낸 최용복씨가 전부였다.그러나 국민의 정부 이후에는 이만의씨(현 청와대 행정비서관)와 조영택씨(차관보),채일병씨(소청심사위원) 등 3명이나 거쳐갔다. 역대 국장 중 가장 많은 얘기를 듣고 있는 이는 얼마전 작고한 임사빈씨(전 경기지사).비고시 출신인 임씨는 최장수(2년2개월) 국장으로 기록돼 있다.재임기간 동안 ‘사단’을 이끌었다는 평이 있을 정도로 자기 사람을 잘 챙겼고,윗사람도 잘 모셨다. 1년8개월을 역임한 김재영씨(현 대한지적공사 사장)도 장수 국장에 속한다.조용한 성격의 김씨는 차관을 1년만 하겠다고 공언,실천에 옮긴 흔치 않은 내무관료다.덕장으로 소문난 현 장인태 국장은 얼마전까지 공보관으로 있다가 영전했다. 홍성추기자 sch8@
  • 서두칠 前한국전기초자 사장 “‘선택과 집중’이 기업회생 처방전”

    “회사가 단순한 ‘봉급수령처’가 돼서는 희망이 없습니다.경영진은 직원들에게 기업경영에 관한 정보를 낱낱이 공개하고 어려움(위기)을 공감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그러면 직원 모두 각자 해야 할 일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 다음직원들이 믿고 따를 수 있는 구체적인 비전을 제시해야 합니다” 지난 97년 12월 회생불가능할 것으로 여겨졌던 경북구미의 한국전기초자(TV·모니터용 브라운관 생산업체) 사장을 맡아 세계 최고의 우량기업으로 변신시킨 서두칠(徐斗七·63) 전 사장의 기업회생법이다.지난 10일 이 회사의 대주주인 일본의 아사히유리(지분 50%+1주)와의 경영충돌로사표를 던지고 나와 재계에 적잖은 파문을 던진 서 사장을지난 19일 오후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서 만나보았다.사임배경을 묻자 ‘NO라고 당당히 맞설 수 있는 CEO(최고경영자)로 평가받았으면 한다’고만 말했다. ■사임한 뒤 강연요청이 많다고 들었는데. 내년 초까지는스케줄이 꽉 차 있다.강연대상이 주로 임원들이라 CEO의 자질에 대한 얘기가 주류를 이룬다.과거처럼 ‘시키는일만충실히 하는 게 직원이고 경영진은 회사를 꾸려가는 것이라는 생각은 더 이상 하지마라’고 충고한다.기업의 생존은직원과 경영진이 함께 고민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는 얘기다.한국전기초자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열린경영’이강연의 핵심이다. 열린경영은 투명경영과 맥을 같이 하지만질적인 차이는 크다. 재무제표를 공개하는 수준을 열린경영으로 봐서는 안된다.기업의 정보 공개는 물론 CEO의 생활철학·경영철학까지도 숨김없이 내놓아야 상호신뢰가 생긴다. ■회사를 나오게 된 배경은. 대주주인 아사히 경영진은 제품 공급과잉문제가 발생하자 가격을 내리는 대신 ,감산을하자고 요구했다.나는 결단코 반대했다.전 세계에 아사히계열의 현지법인 8곳이 있는데 ‘어려운 곳’도 있고 ‘잘나가는 곳’도 있다.나는 ‘잘 나가는’ 한국전기초자는 감산보다는 다소 값을 내리더라도 생산물량을 유지하는 게 장기적으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선택과 집중’을 하자는 게 요지였다.그런데 아사히측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CEO는 기업의생존을 책임져야 하는 중요한 자리다.대주주와의 충돌이 생길 때 자신의 판단이 옳다면 ‘NO’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그래서 미련없이 사표를 냈다. ■우리나라의 CEO를 평가한다면. 우리 기업들은 오너의 입김이 강하다.오너들의 생각을 받드는 게 CEO의 역할이라고생각하는 한 ‘진정한 CEO’가 자리잡기는 어렵다.CEO들은앞으로 우리 기업의 고질적인 병폐인 차입경영·폐쇄경영·가격유지경영을 뜯어고치는 데 노력해야 한다.차입경영은생산 효율화와 이익창출을 통해 무차입경영으로,폐쇄경영은열린경영으로,가격유지경영은 고객만족경영(좋은 제품을 싼값에 제공)으로 전환해야 한다. ■정부에 대한 기업들의 불만도 많은데. 정부의 역할이 기업경쟁력 제고보다는 관리·통제에 있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물론 기업에도 잘못이 있을 수 있으나 정부는 기업활동이 원활히 돌아가도록 끊임없이 보살펴 줘야 한다.사실기업에 대한 서비스행정이 너무 부족하고,정부가 다소 얕보는 시각도 있다.‘너희 장사꾼들,웃기지 마라.너희들 몫이나 늘리려고 그러지’라며 기업의 활동을 왜곡하거나 폄하하는 경향이 있다.대우전자가 90년대 초 북아일랜드에 VCR공장 준공식 때 있었던 일은 정부-기업간의 관계설정에 좋은 사례가 될 만하다.느닷없이 관할 시장이 준공식에 나타나는 바람에 모두들 긴장했다.그런데 알고보니 종업원들의출·퇴근편의를 위해 버스노선을 변경했다는 사실을 알려주러 온 것이었다.앞선 ‘서비스 행정’의 단면이다. ■대우에 몸담은 경영인으로 대우자동차사태를 보는 느낌은. 해외매각이 능사는 아니라고 본다.우리는 외자유치를 하고 매각을 하면 무조건 좋은 것으로 착각한다.‘남의 돈’이 유입될 때는 그 목적을 잘 점검해 봐야 한다.제너럴모터스(GM)가 대우차를 경쟁력있는 기업으로 키울지는 의문이다.아시아의 생산기지로 활용할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대우차살리기운동’을 전개했으면 한다.민족자본으로 민족기업을 일궈낼 수 있다고 본다.쓰러져 가던독일의 폴크스바겐이 민족자본으로 튼튼한 회사가 된 사례를 새겨볼 필요가 있다. ■앞으로 계획은. 우리 민족은지혜롭고 ‘끼’가 많은 민족이다.우리 민족의 특이한 기질을 살리면서 경쟁력을 높일수 있는 ‘한국적 경영혁신 모델’을 정착시키는 데 노력하고 싶다.나를 필요로 하는 회사가 있다면 그 곳에서 일할생각이다. 주병철기자 bcjoo@. ■서두칠은 누구인가. ‘기적을 이루고도 기적이라고 말하지 않는 사람’‘기업인들이 가장 벤치마킹하고 싶어하는 사람’ 서두칠 전 한국전기초자 사장에게 붙어다니는 말이다. 서 사장이 한국전기초자에 첫발을 디딘 것은 97년 12월6일.그날 새벽 대우전자 부사장으로 있다 한국전기초자 경영을맡기 위해 서울에서 밤 열차를 타고 구미역에 내린 그는 곧바로 공장으로 향한다.그를 맞이한 공장은 세계적인 경영컨설팅사인 부즈알렌 해밀턴도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다고 ‘사망선고’를 내린 부실기업.장기파업으로 지칠 대로 지친근로자들과 불량재고품만 수북이 쌓인 공장이었다. 서 사장의 기적 일구기는 출근 첫 날부터 시작됐다.직원들에게 고용을 보장하고 기업경영을 낱낱이 공개하기로 약속했다.대신 직원들에게는 생산성과 품질향상의 약속을 받아냈다. 마음을 다잡기 위해 장부상으로만 남아있던 불량재고품 200만개를 모조리 깨버렸다.혁신은 자신이 앞서 실천했다.3년간 추석·설 휴일도 없이 회사의 경영정상화에 매달렸다. 작은 아파트에서 손수 밥을 짓고 빨래도 했다.기사도 두지않았다.서 사장의 노력은 사망선고를 받은 회사가 3년만에차입금 제로,부채비율 37%의 초우량기업으로 다시 태어나는기적으로 돌아왔다. ◆ 약력. ■1939년 출생 ■57년 진주고,64년 경상대 농학과,73년 연세대 경영대학원 졸 ■75년 농협중앙회 과장 ■84년 대우중공업 이사 ■93년 대우전자부품 대표이사 ■97년 대우전자부사장. ■저서 ‘우리는 기적이라 말하지 않는다’
  • 駐韓 캐나다대사에 코모

    신임 주한 캐나다 대사에 드니 코모 주일 공사가 임명됐다고 캐나다 외무부가 17일 발표했다. 코모 신임 대사는 지난 73년 캐나다 외무부에 들어가 미국, 프랑스, 스위스,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근무를 거쳐 본부보도과장(대변인), 일본과장을 지냈으며 98년 일본 공사로 부임했다. 도쿄 황성기특파원
  • 21·22일 내한공연 英팝가수 리오 세이어

    “한국에 무척 오고 싶었으나 기회가 없었습니다.한국측 기획사로부터 전화를 받은 그자리에서 출연을 결정했습니다.”1970·80년대 감미로운 발라드 곡으로 세계적인 인기를 끌어 국내 팬들에게도 친숙한 영국 출신 팝가수 리오 세이어(53)가 한국공연을 위해 지난 16일 한국에 왔다.도착 직후서울 힐튼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가진 그는 “책자를 통해 한국의 고궁과 사찰 등 전통적인 풍경을 볼 기회가 많았다”며 “이번 공연을 위해 3개월 전부터 레퍼토리를 꾸며 준비해왔다”고 밝혔다. 그는 “단순하고 따라부르기 쉬운 노래가 오랫동안 사랑받는 것 같다”고 자신의 노래가 꾸준히 불려지는 이유를 나름대로 설명했다.또 “노래를 부르거나 만들 때 다른 사람과의 교감이 가장 중요하며 음악인은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 있는 비슷한 경험을 소중하게 여기고 남을 이해하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지난 73년 ‘더 쇼 머스트 고 온’으로 데뷔한 그는 76년‘유 메이크 미 필 라이크 댄싱’으로 미국 빌보드 차트 1위에 오르며 세계적 팝스타로 떠올랐다.77년 ‘웬 아이 니드 유’,80년 ‘모어 댄 아이 캔 세이’를 연달아 히트시켰다.마치 여성처럼 가느다란 미성을 자유롭게 구사하는 게특징으로 최근 팝계에 복고바람이 불면서 다시 주목받고 있다. “15만명 이상의 관객이 몰렸던 지난 76년 뉴욕 센트럴파크 콘서트 공연을 잊을 수 없습니다.”그는 지금도 세계 각국을 순회공연하며 쉴 새 없이 신곡을발표할 뿐만 아니라 다른 가수들에게 곡도 지어주는 등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다. 내한공연에서는 국내 팬들에게도 잘 알려진 히트곡을 비롯해 신곡 ‘블레임 잇 온 더 나이트’등 15곡을 선사할 예정.21일 오후 7시 힐튼호텔 컨벤션센터 디너쇼와 22일 오후 4시 장충체육관 공연 등 두차례 무대에 선다. 김성호기자 kimus@
  • 피노체트 재판 사실상 중단

    [산티아고 외신종합] 칠레의 군사독재자였던 아우구스트 피노체트(85)에 대한 재판이 사실상 중단됐다. 칠레 산티아고 항소법원은 9일 반체제인사 납치 살해사건과 관련, 기소된 피노체트에 대한 재판을 건강상의 이유로 잠정중단키로 했다. AP통신은 피노체트의 나이와 복잡한 건강상의 문제를 고려하면 재판이 재개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도했다. 지난주 병원에서 퇴원한 피노체트는 당뇨, 관절염, 고혈압 등에 시달려왔다. 피노체트 변호인들은 피노체트가 건강악화로 자신을 적절히 변호할 수 없고 이는 공정한 재판을 받을 헌법상의 권리를 제한하는 것이라며 재판중지를 요청해왔다. 검찰측은 “”이번 판결은 정치적 압력의 결과””라며 “”피노체트가 반(反) 인권혐의로 기소됐다는 사실은 역사에 남을 것””이라고 밝혔다. 검찰은 이번 결정을 번복할 수 있는 수단을 찾겠다고 밝히고 있으나 쉽지 않을 전망이다. 피노체트는 지난 1월 정치범 살해에 관여한 '죽음의 특공대'를 조직, 비밀리에 지휘한 혐의로 기소됐었다. '죽음의 특공대'는 1973년 피노체트의유혈 쿠데타 집권 직후 만들어졌으며 75명의 정치범을 살해한 것으로 알려졌다.
  • 캘러웨이社 창업주, 엘리 캘러웨이 타계

    [란초산타페(미 캘리포니아주) AP 연합] 캘러웨이사를 세계 최대의 골프클럽 제조업체로 키운 창업주 엘리 캘러웨이가 6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란초산타페의 자택에서 타계했다.향년 82세. 캘러웨이는 2개월전 담낭 절제 수술을 받은 뒤 췌장에 암세포가 발견돼 치료를 받아왔다. 캘러웨이는 30년간 섬유업에 종사하다 지난 84년 자본금40만달러로 ‘히코리스틱’이라는 골프클럽 제조업체를 차려 골프계에 뛰어든 뒤 20여년만에 세계 최대의 골프용품업체를 일궈낸 인물이다. 에모리대학을 졸업하고 육군에 입대,조달본부 고위직까지지낸 캘러웨이는 군 경력을 바탕으로 섬유업계에 뛰어 들어 벌링턴사의 사장까지 올랐으나 회장 승진을 마다하고 73년 포도농원을 차려 자체 브랜드 포도주로 1,400만달러의매출을 올리는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이후 10여년 뒤인 84년 골프클럽 제조로 눈을 돌린 그는과감한 신기술 도입과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단시일안에 캘러웨이 골프클럽을 최고로 만들었다.88년 출시한 빅버사드라이버는 98년 8억달러의 매출을 올리며 골프클럽 사상최대 히트 상품으로 아직도 인기를 누리고 있으며 자신의이름(Ely Reeves Callaway) 첫 글자를 딴 ERC 드라이버는반발계수가 지나치게 높아 미국골프협회(USGA)의 승인을받지 못했지만 이런 갈등이 오히려 판매를 부추기는 효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한편 톰 핀첨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커미셔너 등 골프계 인사들은 “세계골프 발전에 큰 획을 그은 인물”이라며 추모했고 특히 프로 전향 이후 줄곧 캘러웨이사의 후원을 받아온 애니카 소렌스탐은 울음을 참지못한 채 “할아버지 같은 분이 돌아가셨다”고 애도했다.
  • [공직인맥 열전](67)산림청

    산림청은 산림자원의 조성·보호와 산불방지를 맡고 있는기관이다. 외환위기 이후인 98년 5월부터 주요 실업대책으로 추진한‘숲가꾸기 공공근로사업’도 산림청이 하는 일이다.숲가꾸기 사업은 가장 생산성이 높은 공공근로사업으로 평가받아올해도 1,200억원을 투입,연인원 313만명의 실업자를 고용할 계획이다. 산림청은 농촌진흥청과 함께 농림부 산하의 외청에 속해있다.67년 농림부 산림국에서 독립해 개청한 이후 여러 차례 소속 부처가 바뀌었다. 국토녹화에 중점을 둔 치산녹화 사업이 진행될 때인 73년에는 내무부로 소속이 넘어갔고,다시 87년 산림정책이 산지자원화로 전환되면서 농림부로 환원됐다. 소속기관으로는 임업연구원·국립수목원·산림항공관리소와 동부지방산림관리청(강릉)등 5개 지방청과 25개 국유림관리소를 두고 있다. 전체 직원은 1,406명으로 임업·연구·행정직으로 나뉜다. 60%가 넘는 847명이 임업·연구직으로 일하고 있다.임업직의 경우,인원수가 많은데 비해 상대적으로 자리가 적어 승진 등에서 불이익을 받고 있다. 농진청과 마찬가지로 청·차장은 주로 농림부에서 내려오기 때문에 올라갈수록 ‘내부승진’의 기회가 적은 데 대한 불만이 크다. 최대 현안은 산불방지 인력을 늘리는 것이다.99년 정부의구조조정으로 폐지된 산불통제관(국장급)을 부활하고 일선지자체를 포함해 지방산림관리청의 현장 산불방지요원을 대폭 확충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같은 숙제를 떠맡고 있는 신순우(申洵雨)청장은 관가에서 입지전적인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중학교때 열차사고로 한쪽다리를 잃어 의족을 하고 있는 장애인.‘능력’만으로 핸디캡을 극복하고 차관급 자리까지 올랐다. 지난 5월 농림부 국제농업국장에서 승진한 최용규(崔龍圭)차장은 UR(우루과이라운드)농산물 협상대표단의 실무수석,WTO(세계무역기구)농산물협상 실무대표 등 국제통상업무만 15년동안 맡은 전문가다. 올해 공개모집으로 선발된 서승진(徐承鎭)임업연구원장은서울대 대학원에서 산림정책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학구파다.산불통제관·산림경영국장·국유림관리국장 등 요직을 모두 거쳤다. 농림부에서 잔뼈가 굵은 손찬준(孫讚俊)기획관리관은 지난 1월 산림청으로 자리를 옮겼다.정책의 기획과 조정·국제통상분야의 경험이 많다.IMF위기가 터진 97년말 주미 대사관 참사관으로 근무하면서 농산물수입자금 도입 교섭활동에서 두드러진 활약을 했다. 산불방지 업무를 지휘하는 정광수(鄭光秀)임업정책국장은94년부터 3년간 주인도네시아 대사관에서 임무관으로 근무하면서 해외진출 국내기업의 현지지원과 국내 목재수요 조달에 큰 기여를 했다.지난해 4월 개방형직위에 공채로 뽑혔다. 백두대간 보전관리대책을 총괄하는 최종수(崔鍾秀)국유림관리국장은 경제기획원(EPB)과 공정거래위원회·농림부 등경제부처를 두루 거쳤다.꼼꼼한 일처리가 장점이다. 산림청의 산증인격인 조연환(曺連煥)사유림지원국장은 산림청이 개청되던 해 9급 공무원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해 80년 16회 기술고시에 도전,최고령으로 합격했다.여러 권의시집을 낸 시인으로 최근 제4회 공무원 문예대전에서 ‘숫돌의 눈물’이라는 시로 전체 대상을 수상했다. 식물자원의 관리를 맡고있는 이원열(李元烈)국립수목원장은 99년 5월 광릉수목원이 국립수목원으로 승격되면서 초대원장으로 임명됐다. 김성수기자 sskim@
  • MLB/ 박찬호 9승 또 좌절

    박찬호(LA 다저스)가 또 9승 달성에 실패했다. 박찬호는 1일 퀄컴스타디움에서 벌어진 미국 프로야구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의 경기에서 7과 3분의 1이닝 동안 삼진 6개를 솎아내며 3안타 4볼넷 3실점으로 호투했다.그러나 박찬호는 찬스마다 팀 타선이 불발한데다 불펜 투수들의 도움도받지 못해 승패를 기록하지 못했다.특히 이날 28번째 생일(1973년 6월30일생)을 9승 달성으로 자축하려던 박찬호에게는아쉬움이 더욱 컸다. 이로써 박찬호는 3경기 연속 승수 보태기에 실패하며 시즌8승5패에 머물렀고 방어율도 2.86에서 2.91로 나빠졌다. 박찬호는 1회와 2회를 삼자범퇴로 깔끔히 처리하는 등 5회까지 1안타 1볼넷 무실점으로 쾌투했다.다저스 타선도 1회 2사1루에서 숀 그린과 에릭 캐로스의 연속안타로 선취점을 뽑은 뒤 5회에는 포수 채드 크루터의 2루타에 이어 박찬호의보내기 번트,알렉스 코라의 스퀴즈번트로 1점을 보태 2-0으로 달아났다. 그러나 박찬호는 6회 2사1루에서 방심하다 라이언 클레스코에게 뼈아픈 우월 2점포를 얻어맞아 2-2 동점을 내줬다.다저스는 8회 그린의 좌월 1점포로 3-2로 다시 앞섰으나 박찬호는 8회말 1사 뒤 제구력 난조로 대타 마크 코세이와 리키 핸더슨에게 거푸 볼넷을 허용,제시 오르스코에게 마운드를 넘겼다.오르스코는 클레스코를 인필드플라이 아웃으로 처리,2사 만루에서 매트 허지스에게 마운드를 넘겼으나 필 네빈에게 빗맞은 내야안타를 맞아 3-3 동점을 허용하며 박찬호의승리를 날려버렸다. 다저스는 9회초 2사 만루에서 뒤늦게 벨트레와 그리솜의 연속 적시타와 상대 실책으로 4점을 보태 7-3으로 승리,원정 5연승을 달렸다.박찬호는 오는 6일 샌프란시스코전에 선발 등판해 9승에 재도전한다. 김민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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