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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포럼] 말이 앞서는 반부패

    “부패방지는 무엇보다 (정치지도자들의) 정치적 신념이 기초를 이뤄야 성공할 수 있다.” 추아 싱가포르 부패조사청 청장의 말이었다. “호주의 부정부패는 갈수록 영리해지고 있다.유·무선 전화통화를 이용하다가 발각되니까,최근 공식 문서의 형식을 갖춰 메시지를 주고받는 수법이 등장했다.” 폴튼 호주 뉴사우스웨일스 부패방지청 교육국장이 전한 자기나라 고위공직자의 부정 실태였다. “부패방지기구가 조사권을 갖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그러나 홍콩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한국도 절대 쉽지 않을 것이다.국민의 지지와 성원,그리고 정치인들의 책임의식이 있어야 가능하다.” 윙 홍콩 염정공사 집행처 부처장이 ‘한국의 부패방지위가 조사권을 가질 수 있는 묘책을 알려달라.’는 질문에 대해 내린 진단이다. 우리보다 먼저 부패방지기구(ICAC)를 운영해온 국가들의 고위관계자가 그동안 축적해온 경험을 털어놓은 내용들이다.공교롭게도 국회 법사위를 통과한 부패방지법 개정안이 본회의에 상정조차 되지 못하고 붕떠버린 다음날인 지난 15일,부패방지위원회가 주최한 제1차 국제 부패방지기구 포럼에서 논의된 얘기였다.멀게는 1973년,가깝게는 1980년 반부패기구를 창설한 반부패선진국과 이제 갓 돌을 지난 우리와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일지 모르겠다. 대선이 겹친 올해는 반부패시스템 구축에 대한 기대가 여느 때와 달리 매우 높았던 게 사실이다.특히 대통령의 두 아들들이 구속되는 등 임기말 권력형 비리가 잇따라 터지면서 대선주자들이 저마다 부패방지프로그램을 앞다퉈 발표한 때문이다.‘대통령 친인척 비리 전담 감찰기구’ 설치를 약속하는가 하면,후보 수락연설에서 ‘고위공직자 비리 조사처’ 신설을 확약한 이도 있었다.반부패에 대한 국민감정을 지지표로 연결시키려는 ‘속이 뻔히 드러나보이는’ 공약들이었으나,그래도 뭔가 구체적인 방안이 마련될 것이라는 기대가 팽배했었다. 그러나 우리 정치지도자들은 역시 말이 앞섰다.‘반부패 제도화를 우리 당이 주도했다.’라는 것을 국민에게 보여주려는,명분싸움으로 개정안은 상정조차 되지 못한 것이다.마치 반부패의 현주소를 보는것 같아 씁슬하다.누가 뭐래도 음성적인 정치자금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정치권이 부패의 중심에 서있다고 할 수 있다. 몇달전 일이다.분당 백궁·정자지구의 특혜 분양의혹이 연일 신문지면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을 때였다.틀림없이 엄청난 정치자금이 조성됐을 것이라는 한 친구의 물음에 “이젠 모든 부패가 대통령의 통치자금과는 전혀 관계가 없기 때문에 액수가 엄청날 수가 없다.”고 딱 잘라 말한 적이 있다.굳이 사족(蛇足)을 붙이자면 한국형 부패도 이제 과거와 달리 ‘구멍가게처럼 영세해지고,수법만 다양해질 뿐’이라는 설명을 해주고 싶었다.사실 통치권 차원에서 접근했던 5·6공때와 달리 문민정부·국민의 정부는 대통령 친인척과 그들의 측근,그리고 이들과 친분있는 정치브로커들이 ‘호가호위(狐假狐威)한 부패’들이다. 이처럼 한국형 부정부패도 정체되어 있지 않고서 호주처럼 변하고 지능화되어 간다.그런데도 어찌된 일인지 정치인들의 반부패에 대한 의지만은 매양 제자리에서 한결같다.인간의 탐욕이 없어지지 않는 한 지구상에서 부패는 사라질 수 없다고 한다.‘언젠가는 발각되어 처벌을 받는다.’는 확실한 믿음을 심어줘야만 유혹의 언저리에서 다시 한번 옷깃을 여미게 된다는 것이다.제도는 그래 필요한 것이고,부패방지법개정안은 그 기나긴 장정의 겨우 첫발걸음일 뿐이다.첫걸음을 옮기자. 양승현 논설위원 yangbak@
  • “이라크전 미리 대비” 각국 석유비축 분주

    (도쿄 황성기·서울 김균미기자) 유엔 무기사찰단 선발대가 18일 오후 7시30분(한국시간) 이라크 바그다드에 입성했다.지난 1998년 12월 내쫓긴 지 4년만의 일이다. 사찰단은 오는 27일부터 700곳에 대한 무기사찰을 실시하게 된다. 최근 유가 안정세에도 불구하고 세계 각국은 이라크의 유엔 무기사찰 수용은 출발에 불과하며 사찰과정에서 마찰의 소지가 크다고 판단,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석유수급 대책 마련에 나섰다. ◆미국 미국은 이라크전 돌입에 대비,유사시 발생할 수 있는 중동원유 수입 차질 및 유가상승을 우려,현재 5억 9200만배럴의 석유를 비축하고 있다.이는 미국이 지난 77년 오일쇼크 이후 석유비축제도를 도입한 이래 25년만에 최대의 비축물량이라고 미 에너지부가 16일 밝혔다. 유사시에 대비한 전략석유 비축은 9·11테러 이후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전략비축유를 최대한 확보하라는 지시에 따른 것이다. 백악관은 미국의 이라크 군사행동이 개시되면 이라크의 중동 원유공급 차단으로 인근 쿠웨이트와 사우디아라비아의 원유생산 및공급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비축물량의 긴급 방출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91년 걸프전때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으로 국제 원유가격이 치솟자 석유시장 안정을 위해 처음으로 그해 1월 전략비축 물량 중 1700만배럴을 긴급방출한 바 있다.미국의 중동산 원유 도입물량은 국내 소비량의 12%를 차지하고 있다. 미국은 2000년에도 에너지 위기로 휘발유와 가정 난방유 값이 오르자 두번째로 전략비축유 3000만배럴을 방출했다. ◆일본 일본 정부는 미국의 이라크 공격이 시작되면 석유공단이 국내에 비축하고 있는 석유 일부를 즉시 방출할 방침을 세웠다. 미국과 독일 등 국제에너지기구(IEA) 가맹국과 협조해 석유를 시장에 공급,개전 직후 예상되는 원유가격 급등을 억제하는 것이 목적이다.일본은 걸프전때 민간비축분의 방출을 인정했으나 실제로는 방출이 이뤄지지 않았다.따라서 이번에 방출이 이뤄지면 1978년 석유비축 시작 이후 처음이 된다. 일본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IEA는 이라크 공격 개시 직후 가맹 26개국이 협조해 비축 석유를 방출하는 등 긴급시 대응 조치를 취한다는 성명을 낼 것으로 보인다.성명이 나오면 일본도 히라누마 다케오(平沼赳夫) 경제산업상이 석유공단에 국가비축분 방출을 지시하게 된다. 공단은 국내 석유회사 등을 대상으로 한 입찰을 통해 매각처를 결정하고 방출 결정 2주일 뒤에는 석유를 인도한다. IEA의 비축분 방출량은 이라크 원유생산량의 30일분에 해당하는 6000만배럴 정도로 어림된다.일본은 이 가운데 12.3%를 분담할 예정으로 국내 소비량으로 환산해 1.8일분인 700만배럴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IEA 가맹국은 이라크 공격이 단기간에 끝나 제3차 석유위기는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으나 개전 직후 원유시장의 혼란을 방지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이처럼 석유 방출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의 총 비축량은 172일 소비량인 6억배럴로 석유공단이 국내 10곳의 기지에 보유하고 있는 국가 비축 91일분,석유회사 등 민간비축 81일분이다. 73년의 제1차 석유위기때 민간의 68일분밖에 없던 것이 91년 걸프전때는국가비축을 포함해 142일분으로 늘어났으며 해마다 일본정부는 국가비축을 늘리고 있다. ◆유럽연합(EU)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이라크전이 발발,유가가 급등할 경우에 대비해 회원국간에 공동대응 지침을 마련했다. EU 집행위는 지난 9월 회원국들의 전략비축량을 확충하고 이를 이용해 시장에 개입할 수 있도록 하는 두가지 지침을 채택했다.유럽의회와 15개 회원국들이 이번 지침을 승인하게 되면 역내 국가들은 현재 90일분 수준인 전략비축 석유물량을 120일분으로 의무적으로 확충해야 한다.추가로 늘어난 비축분은 오는 2007년까지 확충키로 했다.공동지침이 승인되면 전략비축유에 대한 통제권은 회원국에서 EU 집행위로 넘어오게 된다. ◆러시아·중국 등 러시아는 지난해 석유수출량의 3분의1에 해당하는 5000만t의 석유를 전략적으로 비축하는 방안을 본격 검토하고 있다.중국도 에너지 안보차원에서 전략비축유 확보를 위한 준비작업에 착수했다.우선 2005년까지 600만t을 확보할 것으로 알려졌다.그러나 이들 나라는 비축시설을 건설하는 데 막대한 투자가 필요해 순조롭지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marry01@ ■한국 석유비축 현황 - 1억4700만배럴… 103일간 사용 우리나라는 현재 103일분(1억4700만배럴)의 석유를 비축해놓고 있다.민간이 56일분(7800만 배럴),정부가 47일분(6900만배럴)을 각각 보유하고 있다.산자부는 미국이 이라크에 대한 군사공격을 감행할 경우 석유비축과 관련해 3가지 정도의 시나리오를 상정하고 있다.우선 전쟁이 단기전으로 끝나고 유가가 30달러를 넘기지만 곧 안정을 되찾는 경우다.두번째는 6개월이상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유가가 40달러에 육박하지만 국내에는 큰 영향이 없는 경우다.세번째는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국내 수급에 7%이상 문제가 생기며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우다.현재로서는 첫번째 가능성이 제일 높은 것으로 보고있다. 전쟁발발 초기단계에는 유가가 자유화된만큼 시장에서 자율적으로 충격을 흡수하도록 하고 이후 상황이 나빠지면 절전고시 등을 통해 10부제실시 등으로 에너지수요를 억제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사태가 더 심각해지면유가완충자금(현재 4617억원)을 풀어 가격통제에 나설 수도 있다.최악의 경우,수급조정명령을 통해 지역별 배급제를 실시하는 방안도 있지만 전쟁이 6개월까지 끌 가능성은 희박하기 때문에 이런 극단적인 조치는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김성수기자 sskim@
  • 일요영화/ 암흑가의 두사람 外

    ◆암흑가의 두사람(KBS1 오후11시20분) 조세 지오바니 감독의 1973년작.알랭 들롱과 장 가방 콤비의 전형적인 프랑스 누아르.“그건 내 뜻대로 되는 일이 아니지.”라는 유명한 대사를 통해 영화는 살면서 맞닥뜨리는 예기치 않은 사건들을 ‘삶의 소관’이라 부르며 자조한다.10년만에 출소한 은행강도지노는 이제 손을 털고 싶지만 ‘삶의 소관’은 그를 내버려두지 않는다.어느날 아내가 교통사고로 죽고,옛 친구들이 경찰서를 털다가 잡혀가면서 상황은 점점 악화한다. ◆공동경비구역 JSA(SBS 오후10시50분) 박찬욱 감독,송강호 이병헌 이영애 주연.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둘러싼 휴먼 드라마.최단 기간(15일) 서울관객 100만 돌파,통일부 공식 반출승인 후 북한에 간최초의 한국영화,사상 최고가 해외 수출(일본 200만달러) 등 다양한 기록을 보유한 2000년산 화제작.JSA 북측 초소에서 북한병사(신하균)가 살해되자 북한은 남한의 기습 테러를,남한은 북한의 납치를 각각 주장한다.중립국 감독위원회에서는 수사를 위해 한국계 스위스인 소피(이영애)를 파견한다.소피는 남북한 당국의 비협조와 중립국위의 미온적인 태도에 부딪히는데…. ◆책상서랍 속의 동화(MBC 밤12시30분) 중국 산간 벽지의 초등학교를 배경으로 한 다큐멘터리식 영화.배우는 모두 현지에서 캐스팅한 아마추어들로,실제 캐릭터와 이름 그대로 출연했다.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가오 선생이 병든 노모를 돌보느라 학교를 잠시 떠나야 하자,촌장은 13살짜리 웨이를 대리교사로 임명한다.가오 선생은 웨이에게 ‘단 한명의 이탈자도 없게 하라.’고 신신당부한다.며칠 후 말썽꾸러기 장휘거가 돈을 벌려고 도시로 떠나자,웨이는 장휘거를 찾아나설 것을 결심한다. 채수범기자 lokavid@
  • 2002 한국시리즈/ 마해영, 기적의 ‘굿바이 홈런’

    10일 대구에서 열린 삼성-LG의 프로야구 한국시리즈(7전4선승제) 6차전.6-9로 뒤진 삼성의 9회말 마지막 공격.선두타자 김재걸이 중월 2루타로 포문을 열고 강동우가 삼진으로 물러난 뒤 2번 브리또가 볼넷을 골라 1사 1,2루의 찬스를 잡았다.다음 타자는 이승엽.하지만 관중들은 물론 두 팀 선수들조차 머릿속으로 7차전을 생각했다. 이승엽이 한국시리즈 들어 앞선 타석까지 20타수 2안타의 부진을 보였기 때문.이날도 4타수 무안타.그러나 이승엽은 LG 마무리 이상훈의 2구째를 통타,오른쪽 담장을 넘는 3점 홈런을 뿜어냈다.9-9 동점. 대구구장의 떠나갈 듯한 함성 속에 타석에 들어선 마해영은 LG의 바뀐 투수 최원호로부터 우월 끝내기 홈런을 뽑아냈다.10-9.삼성이 LG를 4승2패로 뿌리치고 20여년에 걸친 ‘한국시리즈 망령’을 떨쳐내는 순간이었다.한국시리즈에서 끝내기 홈런이 터진 것은 94년 1차전 김선진(LG)에 이어 두번째이며 시리즈 끝내기 홈런은 마해영이 사상 처음이다. 시리즈 최우수선수(MVP)에는 마해영이 뽑혀 상금 1000만원을 받았다.마해영은 이날 끝내기 홈런을 비롯해 한국시리즈에서 타율 .458(24타수 11안타),3홈런,10타점의 맹활약을 했다. ‘7전8기’로 불리는 삼성의 한국시리즈 도전은 프로야구 원년인 지난 82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당시 OB(현 두산)에 1승1무4패로 무너지면서 ‘징크스’는 시작됐다.2년 뒤인 84년 전기리그에서 우승,한국시리즈에 다시 진출한 삼성은 껄끄러운 상대인 OB의 한국시리즈 진출을 막기 위해 ‘고의패배’ 의혹을 받으면서까지 2패를 당해 롯데가 후기우승을 하는 데 일조를 했다.그러나 롯데와의 한국시리즈에서 3승4패로 져 ‘만년 준우승’이라는 달갑지 않은 꼬리표가 붙었다. 85년 전·후기 모두 우승을 차지해 정상에 무혈입성했지만 한국시리즈를 통한 진정한 챔피언에 오르겠다는 삼성의 도전은 계속됐다.86,87년 2년 연속도전했지만 모두 해태(현 기아)의 벽에 막혔다.이후 지난해까지 세 차례나 더 정상을 노크했지만 ‘악몽’을 떨쳐내지 못했다. 삼성이 마침내 ‘비원’을 푸는데 결정적인 밑바탕이 된 것은 역시 과감한 투자.번번이 쓴잔을 들면서도 공격적인 투자를 멈추지 않았고 결국 꿈을 이뤘다. 지난해 김응용 감독을 영입한 데 이어 올해 23억여원의 거금을 투입해 거포 양준혁을 데려오고,멕시코 출신 나르시소 엘비라를 스카우트하는 등 전력보강에 온힘을 쏟았다.덕분에 시즌이 시작되기 전부터 “투·타에서 모두 한수 위”라는 평가를 받았고 이것은 결국 그라운드 안팎의 대세를 휘어잡는 데 결정적 도움이 됐다. 대구 박준석기자 pjs@ ■통산10승 김응용감독 “이번 우승 가장 힘들었다” “감독으로서 10번째 우승이지만 처음 우승했을 때 기분입니다.이번이 제일 힘들었습니다.” 김응용(61) 감독은 경기가 끝난 뒤에도 흥분이 가시지 않는 듯 연신 물을 들이켰다.마해영의 끝내기 홈런으로 우승이 확정되자 김 감독은 조용히 감독실로 가 한잔의 커피로 벅찬 감격을 가라앉혔다. 지난해 18년동안 몸담은 해태(현 기아)를 떠나 삼성으로 옮긴 김 감독.그가 세운 챔피언시리즈 10회 우승은 한국보다 역사가 훨씬 긴 미국과 일본 프로야구에서도 아직 아무도 수립하지 못한 대기록이다.미국은 조 매카시와 케이시 스탱걸 감독이 7회,일본은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가와카미 데쓰 감독이 9회 우승을 기록했을 뿐이다.평남 평원 태생으로 73년 은퇴할 때까지 한국을 대표하는 거포로 활약했으며,한일은행과 국가대표 감독 등을 지냈다. ◆삼성에 첫 한국시리즈 우승컵을 안긴 소감은. 솔직히 그동안 너무 부담스러웠다.스트레스가 크다 보니 경기도 힘들었는데 정상에 오르니 한국시리즈에서 첫 우승한 것 만큼 기쁘다.한번 길을 텄으니 내년부터 더욱 쉽게 우승할 수 있을 것이다. ◆4점차까지 뒤졌을 때 심정은. 내일 경기를 대비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믿었던 노장진이 무너졌기 때문에 7차전도 힘들지 않겠는가 하는 심정도 있었다. ◆9회말 이승엽이 동점 3점홈런을 쳤을 때 기분은. 이제는 이길 수 있다고 보고 엘비라를 마운드에 준비시켰다.이승엽은 시리즈 내내 부진했지만 역시 스타였다.스타이기 때문에 제 몫을 할 것으로 믿었다. ◆어떤 선수를 칭찬하고 싶나. 마해영이 가장 돋보이지만 모두 잘해 줬다.특히 4점차로 뒤진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한 선수들을 칭찬하고 싶다. ◆개인통산 10번째 우승인데 얼마나 더 우승하고 싶은가. 감독이라면 유니폼을 입는 날까지 우승하고 싶은 것이다.내년에는 투수력을 강화시켜 2연패에 도전하겠다. 대구 박준석기자 ■패장 LG 김성근감독 “선수들 능력 200% 발휘 시합 졌지만 승부 이겼다” 마지막까지 멋진 경기를 펼쳐 사랑을 많이 받았고 후회는 없다.능력의 200%를 발휘한 선수들에게 고맙다.시합은 졌지만 승부는 이겼다고 생각한다. 이번 시즌을 계기로 우리 팀이 재탄생할 수 있었다.물론 4차전이 가장 아쉽다. 이상훈이 60개 가까이 던진 것이 무리였다.그때 잡았더라면 우리가 이길 수도 있었을 것이다.선수들이 너무 지쳐 있었다. 오늘 경기에서도 8회에 두 점을 뽑은 다음에도 4점의 리드 가지고는 안될 것이라는 예감이 들어 번트작전으로 점수를 더 뽑으려 했는데 타자들이 너무 빨리 공격을 하는 바람에 작전 시기를 놓쳐 아쉽다.
  • 獨 ‘슈피겔’ 창간인 아우그슈타인 사망

    독일 최고 권위의 시사주간지 ‘슈피겔’의 창간인이자 2차대전 이후 가장 뛰어난 언론인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 루돌프 아우그슈타인이 7일 폐렴으로 사망했다.79세. 1947년 1월 창간된 슈피겔은 독일 정치와 사회의 민감한 문제를 파헤치는 특종과 권력에 대한 비판적 논조로 지도자라면 반드시 읽어야 하는 권위지의 상징이었다.아우그슈타인은 발행부수 110만부의 성장을 이끌어냈다. 23년 하노버에서 태어난 그는 지방신문 견습기자로 일하다 종전 뒤 23세 때 영국군 공보장교들이 운영하던 주간지를 인수해 제호를 ‘슈피겔(거울)’로 바꾸어 발행했다. 아우그슈타인과 슈피겔이 유명해진 것은 62년 10월호에 게재했던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군의 작전 ‘팔렉스 62’ 기사와 관련,103일 동안 투옥되면서부터다.핵전쟁 땐 영국과 독일에서만 1500만명이 희생될 것이며 대책마련에 옛 서독 정부가 골몰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국가기밀 누설 혐의로 그가 투옥되자 언론인·지식인들이 들고 일어났고 법원은 결국 그를 무죄석방했다. 그는 72년 자민당 의원으로 ‘외도’했지만 44일만에 접고 본연의 길로 돌아왔다.80년대 헬무트 콜 총리시절 정당 비자금 문제를 들춰내 콜의 미움을 산 것도 유명한 일화다. 그는 지난 73년 ‘이익분배제’를 도입해 개인 주식 절반을 직원들에게 나눠주었고 최근에는 경제전문 잡지,TV,인터넷 등으로 사업을 다각화하는 경영수완을 발휘했다. 임병선기자 bsnim@
  • 외국기업 이례적 공채

    소니코리아는 신입사원을 공개 채용키로 하고 29일부터 다음달 6일까지 모집절차를 밟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회사가 신입사원을 공개 채용하는 것은 90년 법인 설립이후 처음이다.대부분 경력직 위주로 수시 채용해 온 외국계 기업의 관행에 비춰 소니코리아의 신입사원 공채는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명우 사장은 “장기적인 관점의 인력운영이 절실하다는 판단에 따라 신입사원을 공개 채용키로 했다.”고 말했다.선발 인원은 30여명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모집대상은 전공과 성별에 관계없이 75년 1월1일이후 출생자(대학원은 73년 1월1일 이후)로,2003년 3월 4년제 대학(원) 졸업예정자 또는 졸업생이다. 입사지원서는 소니코리아 홈페이지(www.sony.co.kr)에서 다운로드받아 e메일(hr01@sony.co.kr)이나 우편(소니코리아 인사본부 인사과 채용담당)으로 접수하면 된다.문의전화는 (02)6001-4023. 박홍환기자
  • [씨줄날줄] 스톡홀름 증후군

    지난 1973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는 은행 무장강도들이 남녀 4명을 인질로 잡고 6일간 경찰과 대치했다.총격전이 거듭되는 상황 속에서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인질들이 경찰의 구출작전에 협조하기는커녕,경찰을 향해 총을 쏘기도 했다.구출된 뒤에는 인질범에게 불리한 증언을 거부했다.한 여성은 약혼자와 파혼하고 인질범과 약혼했다.극한 상황에서 나타난 이같은 이상심리에 ‘스톡홀름 증후군’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1974년 미국의 신문왕 상속녀인 패티 허스트는 공생 해방군(SLA)이라는 좌파 테러리스트들에게 납치됐다.허스트는 납치된 동안 이들의 사상에 매료돼 함께 강도행각을 벌였는가 하면,테러리스트의 아이를 임신해 세상을 놀라게했다.미국 FBI가 다룬 인질사건 중 가장 이상한 변화를 보인 인질피해자로 기록됐다. 페루 좌익반군 투팍아마루혁명운동(MRTA)은 1996년 12월17일 페루의 수도 리마의 일본대사관에서 연회 참석자 500여명을 인질로 잡고 126일 동안 정부군과 대치했다.인질사태가 1주일을 넘기면서 인질들이 인질범들에게 동감하고,일부 석방된 인질들이 인질범에게 기념서명을 요청하는 스톡홀름 증후군이 광범위하게 확산되기 시작했다.인질의 78%가 인질범들에게 동정적이었던 것으로 드러나 ‘리마 증후군’으로 명명되기도 했다. 이같은 증후군을 소재로 한 영화가 올해 개봉된 김기덕 감독의 ‘나쁜 남자’다.사창가 깡패 한기(조재현)에게 납치돼 창녀로 전락하면서도 여대생 선화(서원)는 한기와 얽혀진 애증의 사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최악의 비극으로 끝난 모스크바 인질사태에서도 진압군보다 인질범 체첸 반군들이 더 인간적이었다는 증언이 나오고 있다.인질사태 당시 상연된 뮤지컬 ‘노르트-오스트’(동북지방)의 연출자 게오르기 바실리예프는 “여자 인질범들이 이웃을 사랑하라는 이슬람 교리를 전파할 때 일부 인질들이 감복한 듯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고 전했다.그는 특히 “인질범들은 가스가 주입되기 전까지 단 한명의 인질도 살해하지 않았다.”며 ‘인질들이 살해돼 진압작전에 들어갔다.’는 당국의 발표를 정면 부인했다.그의 발언이 스톡홀름 증후군이건 아니건 과잉진압 논란은 계속될 것 같다. 우득정 논설위원 djwootk@
  • 건설공제조합이사장 박동화씨

    건설공제조합은 25일 서울 논현동 건설회관에서 제81회 총회를 갖고 박동화(朴東華) 전 건설교통부 차관보를 신임 이사장으로 선임했다. 박 이사장은 전북 고창 출신으로 지난 73년 기술고시(토목직·7회)로 공직에 발을 들여놓은 뒤 건교부 도로국장,대전지방국토관리청장,광역교통정책실장 등을 역임했다.
  • [예산으로 본 우리부처 새해 업무] (1)총리실

    대한매일은 ‘예산으로 본 우리부처 새해 업무’시리즈를 시작합니다.이를 통해 현재 국회에서 심의중인 내년도 정부 예산안의 주요 내용과 특징,각 부처에서 시행할 핵심사업 및 이색사업,신규사업 등을 알기 쉽게 설명할 예정입니다. 총리실의 내년 예산은 비서실과 국무조정실을 합해 7571억여원에 이른다.하지만 국무조정실 예산에 포함된 정부출연 연구기관에 대한 정부출연금 7325억원을 빼면 순수예산은 238억여원으로 다른 부처에 비하면 ‘쥐꼬리’ 수준이다.정책 집행기관이 아닌 정책 조정기관인 특성상 큰 규모의 사업이 별로 없다. 총리 비서실의 내년 예산은 78억여원으로 이중 인건비가 41%,경상적 기본사업비가 47.9%,신규사업비(총리공관 수리비 등)가 5.1%이다. 국무조정실의 순수예산은 168억원으로 이 가운데 인건비와 기본사업비가 126억원으로 75%를 차지한다.다음은 국무조정실의 내년도 주요 사업이다. ◆정부업무 평가 각 부처의 업무에 대해 점수를 매기는 정부업무 평가는 계속된 작업이지만 앞으로는 보다 체계적이고 객관적인 평가가 이뤄지도록 한다는 방침이다.▲중앙행정기관에 대한 기관평가 ▲특정과제 평가 ▲지방자치단체 평가 ▲국정과제 점검 ▲평가기법 조사·개발 ▲심사평가 보고회 등의 사업에 7억 700만원의 예산이 책정됐다.기관역량 평가의 경우 그동안 전자정부 구현,부패척결 등과 같은 큰 주제를 갖고 접근했으나 내년에는 각종 정책 등에 대한 현장중심의 평가를 강조할 생각이다. 심사평가조정관실 차의환(車義煥) 과장은 “각종 정책을 평가하면서 국민에게 얼마나 혜택이 돌아가는지 등의 파급효과를 챙기고,기관장의 리더십과 조직관리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여부도 평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정부업무의 평가에 관한 기본법’에 따라 정부 업무 심사평가를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각 분야의 민간전문가들로 구성되는 ‘정책평가위원회’를 보다 내실있게 운영할 방침이다. 현재 30명으로 구성된 이 위원회의 전문성 확보를 위해 위원들 밑에 실무 전문위원 30여명을 추가로 배치·운영한다는 계획이다. ◆공공부문 기강확립 대책 새 정부가 출범하는 내년에는 어느 때보다 공직사회의 기강잡기가 강조될 전망이다.공직사회의 비리 등 부조리 문제를 근원적으로 뿌리뽑기 위해 공직기강 확립에 박차를 가할 방침이다.감찰활동을 통한 비리 적발에도 비중을 두지만 비리 예방차원에서 각종 행정제도 개선도 강조하고 있다. 감찰활동과 기강점검 활동의 강화를 위해 활동하는 공무원들의 활동비를 현실화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이 때문에 올해 예산보다 2억여원이 늘어난 5억 4000만원으로 증액됐다. ◆기후변화협약 대책 현재 기후변화협약 문제는 환경부에서 챙기고 있지만 범정부적 차원에서 접근해야 하는 만큼 총리실은 이 부문에 지난해보다 7000만원이 늘어난 2억 2300만원의 예산을 책정했다.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한 유엔기후변화협약과 교토의정서 이행협상의 진전에 따라 기후변화협약 대책을 총괄·조정해야 하기 때문에 용역비 등이 필요한 상황이다. ◆국가정책정보관리시스템 구축 각 부처의 정책조정과 각종 업무수행 등을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4억 4900만원을 종합 정보화사업비로올렸다.내년까지 정보화시스템의 안전화·고도화 사업을 마무리할 계획이다.▲심사평가 ▲규제개혁 등 4개의 업무시스템과 전자결재 등 구축사업도 추진한다. ◆30주년 기념사업 지난 1973년 국무총리 행정조정실로 창립돼 국무조정실로 승격된 지 30주년이 되는 해를 맞아 1억여원의 각종 기념사업비를 책정했다.역대 국무총리,국무조정실장 등 관련 인사들을 초청하고 국무조정실 창립 30년사 발간 등 각종 기념행사를 열어 국정 총괄기관으로서 발전방향을 모색할 예정이다. ◆국가이미지 제고 월드컵 대회의 성공적 개최로 상승된 국가이미지를 제고하기 위해 ‘국가이미지위원회’의 활동을 계속 추진한다.2억원의 예산으로 각종 세미나 개최 및 선진국 국가이미지 실태조사,국가 정체성 확산을 위한 상징물 개발 등의 사업을 펼친다. 기획심의관실 이호영(李浩永) 과장은 “다른 정부 부처 예산규모에 비해 총리실의 예산은 턱없이 적지만,고유업무뿐 아니라 각 부처에서 챙기지 못하는,사각지대에 있는 정책들에 예산을 쓸 계획”이라고 밝혔다. 최광숙기자 bori@
  • 군인·공무원·사학연금 인상률 보수인상률의 ±2%서 조정키로

    정부는 2003년부터 군인연금,공무원연금,사학연금 등 3대 공적연금의 수령액 인상률을 보수인상률의 ±2%에서 조정하기로 했다.다만 군인연금의 경우 군의 특수성도 감안하고 문제가 되고 있는 계급간 연금수령액 역전현상을 개선하기 위해 +α를 더 인상해주기로 했다. 정부는 23일 재정경제·행정자치·국방부,기획예산처 등 관계부처 차관회의를 열어 이같은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관계자는 “국회 국방위에 상정된 ‘군인연금법 개정안’대로 보수인상률과 최종보수 기준으로 연금인상률을 정할 경우 재원부담이 너무 크고,퇴직연도에 따른 계급간 연금수령액 역전현상이 발생해 이같은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다만 군인연금의 경우 구체적으로 얼마를 더 인상해 줄지,어떤 방식을 택할지는 국방부와 기획예산처 등이 협의해 결정하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한편 군인연금은 1973년 처음 적자가 발생하기 시작해 일반 회계에서 지원하는 보전액이 올해 이미 6000억원을 넘은 상태여서 앞으로 인상률이 어떤 형태로결정되든 재정부담은 갈수록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최광숙기자 bori@
  • “흑인·여성權 어머니가 일깨워줘”美 첫 흑인총장 시몬스 브라운대 총장

    “내 어머니는 가난하고 비천한(humble) 하녀였지만 지금껏 그분보다 더 자식들에게 ‘흑인과 여성’의 시민권을 당당하게 교육한 사람은 보지 못했습니다.” 지난해 7월 미국 동부지역 8개 명문사립대학을 일컫는 ‘아이비리그’의 첫 흑인 총장이자 두번째 여성 총장이 된 브라운대학의 루스 시몬스(Ruth J.Simmons·57) 총장이 18일 오전 10시 이화여대(총장 신인령)에서 명예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대 국제교육관에서 진행된 학위수락연설에서 시몬스 총장은 “‘인종과 성별이란 이중차별을 뛰어넘기 위해서는 배움만이 최선이다.’라고 하신 어머니의 말씀이 나를 이 자리로 이끌었다.”고 말했다.또 “사회적 성공을 위해서는 여성 스스로 교육 기회를 찾고 주어진 여건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면서 “대학교육도 여성들이 사회변화를 주도할 수 있도록 최대한 많은 기회를 주는 방식이 돼야 한다.”고 피력했다.시몬스 총장은 “한국에 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처음이자 마지막’은 아니다.”고 말해 참석자들의 폭소를 자아내기도 했다. 이번행사는 한국의 브라운대 동문회 초청으로 내한한 시몬스 총장이 ‘한국의 대표적인 여자대학인 이대를 방문하고 싶다.’고 전해와 이뤄지게 됐다.이대 신 총장은 “시몬스 총장이 여성과 소수 민족의 교육증진과 권익신장에 기여한 바 크기 때문에 학위를 수여했다.”고 밝혔다. 미국 남부의 가난한 소작농의 딸로 태어난 시몬스 총장은 가난과 차별을 딛고 지난해 명문대학 총장에 올라 미국내에서도 ‘교육이 이뤄낸 인간승리’로 화제가 된 바 있다.시몬스 총장은 지난 73년 하버드대학에서 중세어문학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 프린스턴대학 등에서 교수로 재직했고 92년 프린스턴대학 부총장에 취임한데 이어 95년부터는 미국 명문 여자대학인 스미스대학 총장으로 재직하기도 했다. 17일 방한한 시몬스 총장은 이날 서울에서 예정된 동문 모임에 참석한 뒤 19일 다른 일정을 위해 홍콩으로 떠난다. 황장석기자 surono@
  • 서울대 ‘최종길 추모교실’ 만든다

    1973년 중앙정보부에서 조사받다 숨진 고(故)최종길(당시 42세) 교수를 추모하는 ‘최종길 교실’이 서울대 법대에 생긴다. 한인섭 서울대 교수는 17일 서울 을지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관에서 열린 최종길 교수 29주기 추모식에서 “그동안 진상규명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한 점을 반성하는 차원에서 추모교실과 고인의 얼굴을 담은 동판을 제작해 설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한 교수는 이어 “내년 30주기 추모행사는 서울대 법대가 주도적으로 나서 과거 독재정권에 의해 희생된 사람들을 함께 기리는 합동 추모제 형식으로 치르기로 했다.”면서 “이같은 방안을 최근 법과대 교수회의를 통해 확정했다.”고 덧붙였다. ‘최종길 교수를 추모하는 사람들의 모임’(대표 이수성)과 ‘최종길 교수명예회복 추진위원회’(공동대표 김승훈)가 마련한 이날 행사에는 아들 최광준 경희대 교수 등 유가족과 국민대 이광택·서울대 안경환 교수 등 제자 20여명,한상범 의문사진상규명위 위원장과 박형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민주당의 김근태·조순형의원 등 지인들이 참석했다. 추모식 직후 열린 추모문집 발표회에서는 최 교수를 애도하는 제자와 지인들의 글과 지난 5월 의문사진상규명위가 발표한 결정문이 공개됐다. 김수환 추기경은 발간사를 통해 “의문사진상규명위의 조사에도 불구하고 완전한 진실은 드러나지 않았다.”면서 “진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관련자들의 양심의 목소리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세영기자 sylee@
  • 조치훈9단 日 최다 65회 우승 위업

    (도쿄 황성기특파원) 조치훈(趙治勳·46) 9단이 일본 바둑계에서 최다 타이틀 획득·우승(65회) 기록을 세웠다. 조 9단은 13일 교토(京都)에서 열린 아곤·기리야마배 제9기 전일본 조기(早碁) 오픈전에서 조우 7단을 216수만에 눌렀다. 조 9단은 지난 8월 퇴역기사 사카다 에이주(坂田榮壽·82·은퇴)가 갖고 있던 최다 우승 기록과 동률을 이룬 뒤 2개월 만에 단독 최다 우승이라는 위업을 달성했다. 1973년 제5기 신예 토너먼트에서 첫 우승한 이후 일본 바둑계에서 맹활약을 펼쳐 온 그는 10연패를 포함한 본인방(本因坊) 12차례 우승,명인(明人) 9차례 우승,기성(碁聖) 8차례 우승 등의 기록을 달성해 왔다.현재 조기전 외에 왕좌(王座)전 타이틀도 갖고 있다. marry01@
  • [CEO 탐구] 美 경량철골 1위 ‘패코스틸’ 백영중 회장

    ‘영어도 못하던 무일푼 한국 시골청년이 미국 철강왕이 됐다.’ 어언 40여년이 흘렀다. 유색인종에게 진입 장벽이 높기로 소문난 미국 철강산업에 뛰어들어 회사를 업계 1위의 반석위에 올려놓은 패코스틸 백영중(白永重·72) 회장. 그는 어떻게 미국을 점령했을까. 서울 롯데호텔에서 열리고 있는 제1회 세계한상대회에 참석한 그를 만나 성공비결을 들어봤다. “노 머니,노 잉글리쉬의 고통을 아십니까.돈도 없고 영어도 못하던 청년이 미국 사회에서 내세울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정직과 성실함 뿐이었습니다.” 정직과 성실은 백회장의 생활신조다.자신이 창업한 패코스틸을 미국 경량철골업계 1위 업체로 키운 비결이다.60%의 시장점유율을 차지하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그는 평남 성천 출신으로 한국전쟁 당시 월남했다.부산에서 군밤장사를 하다가 연희전문학교(연세대 전신)에 들어갔다.1956년에는 교수 추천을 받아 흥사단 장학생으로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흥사단미주위원장이던 한시대씨를 찾아갔다.미국에서 처음 만난 한인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서였다.그에게 “노잣돈을 아끼기 위해 정부에서 빌린 달러를 암시장에 내다팔아 4배로 불렸습니다.비행기표를 마련하고도 남았습니다.”하고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한위원장의 호통 뿐이었다. “젊은 학생이 사회와 정부를 속이면 나라가 어디로 가겠느냐며 노발대발하시더군요.그러면서 성인은 10계명을 지켜야 하지만 사람은 3계명만 지키면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는 3계명을 아직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거짓말하지 말고 신용을 쌓아라.’ ‘책임감을 갖고 부지런히 일하라.’‘봉사와 양보로 사람을 사랑하라.’ 그는 이를 미국 생활속에 고스란히 녹였다.지난 59년 인디애나대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하고 교수 추천으로 오하이오주정부에 토목기사로 취직하면서 사회 첫발을 디뎠다.베트남 전쟁으로 철제구조물 수요가 크게 늘면서 그의 능력이 빛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철제구조물을 운반하기 쉽게 철골의 티자 연결을 용접에서 볼트방식으로 바꿨다.그의 이름을 따 ‘팩스 니(Paik’s Knee)’로 불린이 기술은 미 국방부에서 채택했다.유능한 엔지니어로 인정받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세일즈 경험을 쌓은 뒤 74년 패코스틸을 창립했다.자신의 방을 사무실로 만들어 책상과 전화기 2대를 들여 놓았다. “당시 동양 사람은 믿을 수 없다는 분위기가 팽배했습니다.특히 한국 사람에 대한 불신은 상당했습니다.” 그래서 거래방식을 바꿨다.한달동안 거래를 하고 만족하면 대금을 받되,그렇지 않으면 돈을 받지 않겠다는 식이었다.재고가 없으면 다른 곳에서 물건을 사서라도 거래처와 약속을 철저히 지켰다.이러한 그의 경영방식은 거래처로부터 높은 신뢰를 얻었다. 이어 코카콜라를 보고 개발한 ‘주름잡이 빔’을 선보여 세계적 상품으로 인정받았다.창립 25년만에 패코스틸은 연평균 1억 5000만달러의 매출을 기록하며 미국 경량철골 판매 1위 업체의 자리를 꿰찼다. 성실과 정직으로 쌓아올린 신용과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빛나는 그는 인종차별을 극복하며 99년에는 미국 최우수 기업인상을 받기도 했다. 패코스틸은 현재 LA에 본사를 두고 아칸소에 4만평 규모의 생산공장,미국전역에 8곳의 물류기지를 두고 있다. 기업인으로서 30여년의 세월을 보낸 그가 후배 기업인들에게 던지는 충고는 간단하고 명쾌하다. “장사는 신용입니다.이번만 잘 넘기면 앞으로 거래가 편해지고 쉬워질 것이라는 생각은 실패를 부릅니다.정직과 성실만이 세계 경제를 장악할 수 있는 지름길입니다.” 최여경기자 kid@ ■백회장 이력 ▲1930년 평안남도 성천 출생 ▲52년 연희전문학교 입학 ▲56년 흥사단 장학생으로 미 유학 ▲59년 인디애나 공대 토목과 졸업 ▲59∼70년 오하이오주 밴위트카운티 토목기사.슐레스틸사 엔지니어 ▲72∼73년 마크 크레스트 기술 부 사장 ▲74년 패코스틸 창립 ▲80년 ‘주름잡이 빔’ 개발,미국 등 해외특허 ▲90년 미 경량철골 매출 1위 기업 달성 ▲94년 아시안 커뮤니티대표로 미 대통령과 백악관 면담 ▲95년 미 경제대표단으로 북 방문 ▲99년 미 최우수기업인상 제조부문 수상. 자서전 ‘나는 정직과 성실로 미국을 정복했다’ 발간 ▲현 패코스틸 회장,흥사단 미주위원장, 서울대 등 초청강연
  • 30년만에 귀국전 여는 도예가 이영재씨 “그릇은 아름다움보다 기능이 중요”

    “1인분인 250g의 스파게티가 딱 들어가는 개인접시,2㎏의 배추김치를 담을 수 있는 항아리들이에요.1360도 이상의 고온에서 구운 자기들이라서 오븐이나 디시워셔(식기 세탁기)에 넣고 사용해도 끄떡 없어요.” 이영재(51) 독일 마가레텐회(Magaretenhoe)공방 대표는 들뜬 목소리로 찻잔·사발·술병·접시 등 식기가 요즘의 포장단위와 딱 맞다고 설명한다.목소리 끝이 흥분으로 떨린다. 그가 대표로 있는 ‘마가레텐회 공방 도자기’는 독일과 미국·일본에서 이미 식기의 ‘명품’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국내에는 처음 소개되는 것이고,이번 소개는 그에게 30년 만의 귀국 보고회 같은 성격이기 때문이라고 짐작이 됐다. 그가 도자기를 만든 지 올해로 34년째.1968년 수도여자사범대학(현 세종대학) 생활미술과에서 도자기를 만났다.간호사로 서독으로 들어간 어머니를 따라 73년 비스바덴 대학에서 도자기를 더 공부했다.78년 개인 공방을 열었고 84∼87년 독일 카셀대학 초빙교수로 일했다. 그가 독일의 유서 깊은 마가레텐회 도자 공방의 공동 책임자가 된때는 86년이다. 1924년 독일 마가레테 그룹이 탄광지역에 세운 공방으로,80여년간 실용성을 강조한 도자기를 만들어왔다.93년에 비로소 단독 대표가 됐는데,그는 이때부터 조선시대 도공처럼 완전 수공예로 도자기를 만들기 시작해 유럽에서 유일한 수공예 공방으로 명성을 얻게 됐다.97년에는 헤센 주립 공예부문에서 공방 제품으로 대상을 받았는데,예술가 개인의 ‘작품’이 아니라 공방의 ‘제품’이 대상을 차지한 기록은 전무후무하다. 그는 ‘그릇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기능이다.’는 철학에 맞춰 도자기를 만든다.영국의 디자이너 윌리엄 모리스가 1920년대 주창한 문화운동,‘바우하우스 이념’에 근거하고 있다.실용성과 단순한 형태 등을 강조한 운동이다. 그는 “도자기는 끊임없이 쓰여야 하며,접시는 먹기에 편리하고,그릇은 담기에 좋아야 한다.유약은 해가 없이 견고하고,식기 세척기에도 견딜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이 철학은 유럽 상류층 식탁에 한국형 도자기를 올려놓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공방에서 만들어 내는 제품은 조선의 막사발이나 백자풍의 달항아리를 닮아 조촐하고 우아한 분위기를 풍긴다.흰색,무광 녹색,광택 녹색,진녹색,고동색,홍시색 등 6개 색깔로 빚은 한국적인 도자기이다.완전 수공예로 만들기 때문에 소량 생산한다.하지만 공방 식기를 사용하는 독일·일본 사람들의 명단만으로 추천서가 될 만큼 품질을 보증받는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고국에서 늘 전시회를 열고 싶었지만,도자기의 나라에 와서 보여주기에는 부끄럽다고 생각해 미루다 보니 30여년이 지났어요.제 작품은 아니지만 공방 제품은 제 분신이나 다름 없습니다.” 그의 작품은 이달 말 베를린의 화네만 갤러리를 통해 쾰른 아트페어에 출품된다.도예가로서는 처음있는 일이라는 자랑이다.현대갤러리는 제품을 20일까지 전시하고 위탁판매한다.(02)734-6111. 문소영기자 symun@
  • 아시안게임/ 북한 여자 탁구 최강 中꺾고 金

    북한 여자탁구가 사상 처음으로 세계 최강 중국을 꺾었다. 북한은 4일 울산 동천체육관에서 열린 부산아시안게임 탁구 여자 단체전 결승에서 세계랭킹 58위인 김향미(23)가 세계 1위 왕난(24)을 꺾는 파란을 일으키며 중국에 3-1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고 ‘금빛 눈물’을 뿌렸다. 북한이 탁구 단체전에서 중국을 꺾은 것은 한국과 단일팀을 이뤄 출전한 91년 지바세계선수권대회 이후 11년만이며 단독으로는 이번이 처음이다.세계최강을 자랑하는 중국이 단체전에서 무너진 것은 73년 사라예보 선수권대회에서 한국에 패한 것을 포함해 이번이 세번째다. 한국 남자도 타이완과 준결승에서 막내 유승민의 활약에 힘입어 3-2 역전승을 거두고 결승에 올라 5일 중국과 금메달을 다툰다. 한국은 이날 체조 레슬링 펜싱에서 2개씩의 금메달을 수확하고 사격이 ‘노골드'의 부진에서 탈출한 데 힘입어 7개의 금메달을 추가,금 22개로 승마와 비치발리볼 수영에서 금 4개를 더하는 데 그친 일본을 2개차로 바짝 추격했다.중국은 71개로 단독선두를 질주했다. 북한은 금 6개로 카자흐스탄과 동률을 이뤘지만 은메달 수에서 앞서 종합 4위로 올라섰다. 한편 이날 남북한 체조가 금 4개를 합작한 데다 밤늦게 북한 여자탁구가 난공불락으로 여겨져온 만리장성을 무너뜨림으로써 부산에 ‘코리아 합창'이 울려 퍼졌다. 울산 이두걸기자 douzirl@
  • [대선후보 부인에 듣는다] (1)노무현후보 부인 권양숙씨

    오는 12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대한매일은 종합일간지 중 처음으로 주요 대선후보 부인들의 본격 인터뷰를 포함,특집시리즈를 시작합니다.대선후보들의 인간적 면모를 제일 잘 아는 사람은 바로 후보 부인들입니다.또한 각종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들은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있어 퍼스트레이디의 역할을 중요시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대선후보 부인들의 이야기는 또 하나의 중요한 후보 평가 요소가 될 것입니다.인터뷰는 대한매일 신연숙(辛然淑) 문화에디터와 본사 명예논설위원인 김경애(金慶愛) 동덕여대 교수가 함께 주관했습니다.게재 순서는 특별한 기준 없이 인터뷰 요청에 응한 시점에 따라 결정했음을 알려드립니다. 노무현(盧武鉉) 민주당 대통령 후보 부인 권양숙(權良淑·55)씨는 ‘나서기를 좋아하지 않는 성격 탓에’ 언론 인터뷰를 안 하기로 유명하다.4일 오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먼저 사진 촬영부터 하자고 하자 “선거운동은 하겠는데 사진 찍는 것은 정말 어렵다.”며 어색해 했다.그러나 1시간30분 동안 진행된 인터뷰를통해 조심스러우면서도 뚜렷하게 생각을 털어 놓았고 안정감 있는 태도로 분위기를 부드럽게 이끌었다.다음은 일문일답. ■남편평가 및 자녀교육 ◆노 후보께선 평소 부인께 60∼70점짜리 남편밖에 안돼 부인이 무섭다고 하던데요. 그냥 평범한 가정이면 남편이 가정에 시간을 많이 할애할 텐데 남편은 지금까지 생활 그 자체가 힘든 선택의 연속이었기 때문에 가정에 많은 시간을 내거나 인자하고 자상할 여건이 못됐습니다.가족들은 서운할 수밖에 없고,노후보는 항상 그 점을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 자기 점수가 형편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실제로 저는 점수를 후하게 안 주는데,아들과 딸은 아버지에게 후하게 줍니다.(노 후보에게는)원군(援軍)이 두 명이 있는 셈이죠.(웃음) ◆자녀들에게 인기가 많은 것을 보니 노 후보께선 좋은 아버지였나 봅니다. 아이들이 학교 다닐 때 아침식사는 꼭 함께 했습니다.아침을 같이 먹으면서 식탁에서 아이들의 얘기를 들어주고,본인 얘기를 하면서 많은 대화를 했습니다.아이들은 제가 공(功)을 많이 들였는데도제 편이 안되더라고요. ◆부부간에 호칭은 어떻게 하십니까. “여보”“당신”이라고 합니다.처음에는 친구처럼 이름을 그냥 불렀습니다.같이 자랐으니까요.“여보”“당신” 소리가 잘 안 나와서 약간 반말로 ‘어∼’라고 할 때도 있었죠.(웃음) ◆노 후보께선 집에서 가사를 도와주거나 쇼핑을 같이 하는지요. 노 후보가 재야활동을 하기 전에는 저 혼자 나가서 쇼핑한 일이 별로 없습니다.하지만 재야활동을 시작하면서 평범한 삶과 가정을 꾸리기가 어렵더라고요.지금은 거의 못한다고 해야 하죠. ◆노 후보께서는 전형적인 ‘경상도 사나이’로 비치는데 집안에서 가부장적이거나 그런 여성관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까. 노 후보가 여성문제에 보수적이라는 얘기를 듣기도 하고 질문도 받는데 사실은 아닙니다.어쩌면 그것은 순전히 제 탓이기도 합니다.제가 활동을 많이 안 하니까 ‘혹시 노 후보가 부인의 사회활동을 못하게 막는 것 아니냐.’는 오해를 사는 것이죠.하지만 제 성격이 어려서부터 나서서 하는 것을 잘 못합니다.실례로 지난 88년부터저희들 선거만 여섯 번을 치렀는데,저는 후보와 같이 움직이면서도 소리없이 표나지 않게 했습니다. ◆노 후보께서 부인에게 사회활동을 해보라고 권유한 적은 없나요. 결혼 당시 경희대 한의대가 설립 초기였습니다.그때 노 후보가 제게 “한의대를 가볼 생각이 없느냐.”고 물었습니다.또 다른 쪽으로도 공부를 해보라고 했습니다.그런데 아이는 어리고 항상 다른 식구들이랑 같이 살다 보니까,주부가 제 시간을 내서 공부를 한다는 게 어렵더라고요.집념과 의지도 있어야 하는데 제 능력이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딸이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으면,손자·손녀를 봐줄 의향이 있습니까. 아들하고 딸에게 “며느리 될 아이와 딸이 계속 일을 할 것 같은데 내가 다 키워주겠다.”고 했습니다.지금도 허락이 된다면 아이는 키워주고 싶습니다.제가 가장 잘하는 분야거든요. ◆자녀들이 바르게 잘 커준 것 같은데요. 아이들이 아주 밝습니다.특출나게 우수하진 않지만 아이들을 밝게 잘 키웠다고 칭찬받은 적이 있습니다. ◆자녀들에게 체벌을 한 적은 있습니까.저는 가끔씩 야단을 칩니다.용돈을 끊기도 하고,큰아이의 경우 밥을 먹지 않기에 굶기기도 하면서 버릇을 고쳤습니다.그러나 노 후보는 (아이들을)큰소리로 야단치는 것을 못 봤습니다.그런데도 아이들은 아버지를 무서워하더군요. ◆시댁 일은 많지 않았는지요.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는 아무래도 항상 마음을 많이 쓰고,가능하면 어머니와 시간을 많이 보내려고 했지만,(노 후보가)정치인이 돼 서울에 오고부터는 제대로 못했습니다.노 후보도 (이 점을)가슴 아프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노 후보께서 변호사였을 때는 고소득자였는데,정치인이 된 이후에는 경제적 변화가 많았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한테 점수를 못받는 것입니다.(웃음)한번 늘린 것을 줄이는 건 힘듭니다.경제소비 규모도 그렇고,키운 것을 줄이려고 하면 고통이 따릅니다.그렇게 풍족한 것은 아니었지만 고생은 안 하면서 살았던 것 같습니다. ◆젊었을 때 두 분께서는 “작은 별장을 갖고 멋있게 살아보자.”고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그 꿈은 안 이뤄진 셈인데요. 변호사를 계속 했더라면 그런 희망을 남편에게 많이 닦달했을 것입니다.(웃음)그러나 남편이 재야활동에 들어서면서부터 식탁에 앉으면 정치·사회 얘기를 계속했고,저도 들으면서 은연중에 물이 들었나 봐요. ■정치관 ◆노 후보께선 사실상 정치적으로 순탄한 길을 걷지는 못했습니다.좌절의 고비 때 심정은 어땠습니까.남편이 정치를 그만뒀으면 하는 생각은 없었는지요. 처음 시작할 때는 두렵기도 하고,정치하는 분이 주위에 없었기 때문에 제가 좀 반대를 했습니다.그런데 낙선한 이유가 사람의 자질이 모자라서기보다 민주당 간판으로 부산에 가니까 ‘호남당’이라고 안 찍어주는 것이었습니다.그래서 (선거 때마다)‘만약에 이번에 낙선하면 정치를 그만두면 되지 않는가.’란 각오로 선택을 따랐습니다.솔직히 선거에서 떨어지면 나는 더 편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고요.(웃음) ◆지난번 국민경선에서 노 후보가 승리했을 때 기분은 어땠습니까. 노 후보가 1등을 하리라고 생각해서 시작한 건 아니었습니다.그런데 경선기간 동안 민주당원들의 마음,노사모의 마음,일반 국민들이 정치권을 바라보는 마음을 보게 되면서 벅찬 감격을 느꼈습니다.‘우리 남편이 정치 개혁에 큰 몫을 하고 있구나.’란 생각 때문에 힘들어도 힘든지 몰랐습니다. ◆지금은 노 후보의 지지율이 많이 떨어졌는데요. 저는 (지지율이 치솟을 때도)인기가 끝까지 최상으로 가리라고 생각하진 않았습니다.민주당이 보궐선거,지방선거에서 일반 유권자들에게 지지를 받지 못했고 노 후보의 실수도 있었기 때문에 어려움이 있지만,노 후보를 중심으로 한 대선 본 게임이 시작되면 노 후보를 바라보는 마음들이 다시 돌아오리라 생각합니다. ◆노 후보의 대선 출마를 만류한 적은 없었습니까. 노 후보는 제 남편이기도 하지만,그 이전에 많은 분들과 이념과 정치성향을 같이하는 정치인이기 때문에 제가 ‘하라,하지 말라’는 생각은 접었습니다.이제는 남편이 결정한 대로 따르고 협조할 것입니다. ◆노 후보의 책 가운데 제목이 ‘여보 나 좀 도와줘.’가 있던데요.남편의 정치에 무관심한 것이 아닌가요. 사실은 지금도 책 제목 때문에 “사모님 지금도 안 도와주시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습니다.제가 안 도와줘서 도와달라는 뜻으로 제목을 그렇게 한 것이 아니고,94년 당시 재정이 어려워 책 제목이라도 재밌게 하면 책이 좀 팔릴까 해서 노 후보가 그렇게 정한 것입니다.역시 그 예상이 적중해서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웃음) ◆노 후보에게 영향을 주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우리 집에서 제 별명이 ‘뉴스 중독자’입니다.하루종일 방송뉴스와 신문을 보거든요.노 후보에게 필요하면 스크랩은 아니지만 그날그날 내용을 전하기도 하고,노 후보 관련 기사나 좋은 사설이 있으면 보여주기도 합니다.대중연설 때에는 청중들의 반응을 살펴 전하기도 하고,노 후보의 제스처를 모니터해 주기도 하지요. ◆바람직한 퍼스트 레이디로 육영수(陸英修) 여사를 꼽았는데요.어떤 이미지가 맘에 와 닿았습니까. 우리 국민들 가운데 거의 대부분이 육영수 여사에 대한 향수나 그리움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육 여사’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게 ‘청와대 안의 야당’이고,그 다음 봉사활동 아닙니까. ◆앞으로 퍼스트 레이디가 되면 어떤 일을 하고 싶으십니까. 기본적으로는 남편이 초심을 잃지 않고 국정을 잘 다스리도록 내조를 잘해야 하지만,거기에만 머물러 있어선 안된다고 생각합니다.여러 학자나 여성계에서 제게 모델을 줬으면 고맙겠지만,기본적으로 영·유아 탁아문제,방과후 어린이 프로그램,노인문제 등 약하고 소외된 쪽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노 후보께서 대통령이 된다면,자녀 관리는 어떻게 할 계획이십니까. 노 후보는 제도나 감시보다 문화가 바뀌어야 된다고 말합니다.저도 전적으로 동감합니다.대통령 아들에게 생길 것이 없다면 (부정부패의)연결고리가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다행히 아들이 평범한 직장인으로 사회생활을 출발했고,딸도 그냥 예전대로 직장생활을 할 것 같습니다. ■가정생활 - 가족들 모두 독서 즐겨 ◇가족끼리 평소 즐기는 문화생활은 무엇입니까. 아들이나 남편이나 저나 주로 책을 많이 봅니다.운동도 좋아합니다.등산도 좋아하고….예전에 부산에 있을 때는 제가 수영을 굉장히 잘 했습니다.◇노 후보의 건강을 위해 특별히 챙겨주는 것이 있나요. 별로 없습니다.노 후보는 식사를 안 가리고 골고루 잘 합니다.생활도 규칙적으로 참 잘 합니다.자기관리가 철저한 분이죠.아침 5시면 일어나서 맨손체조하고 과식을 절대 안 합니다.건강의 비결인 것 같더라고요. ◇어려웠던 성장기가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지요. 자기가 몸소 체험한 부분하고 그냥 밖에서 사물을 봤을 때 하고는 느낌과 판단에 차이가 난다고 생각합니다.노 후보는 사법시험이라는 관문을 통과해 신분은 상류층에 속한다고 할 수 있지만,성장기나 자신의 관심분야는 일반대중의 삶입니다.다른 분보다 대중의 정서와 생활상,어려움을 이해하는 데는 가장 많은 자산을 갖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노 후보께서 국민경선에 참여한 이후 사생활이 낱낱이 공개됐는데요. 머리에서 발끝까지 노출되는 느낌이었습니다.본인이나 가족뿐만 아니라 죽은 사람들까지….몰랐던 사실까지 알아내 주고,그런 부분이 힘이 들었습니다.하지만 그렇게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그러나 막상본인의 일이 되니까 견디는 과정이 아주 힘들더군요. 정리 김소연 홍원상기자 purple@ ■권양숙씨는 누구 - 평범한 주부… 독실한 불교신자 권양숙씨는 ‘그림자 내조’를 해온 평범한 가정주부다. 집안은 평범하다 못해 불우한 편이었다.어린 시절 아버지 권오석(權五石)씨가 좌익 혐의로 구속돼 할아버지와 어머니의 손에서 자랐다. 1971년 아버지가 옥사하면서 어머니 박덕남(朴德南·82)씨는 일찍 혼자가 됐다. 권씨는 경남 김해시 진영 대창초등학교,부산 혜화여중을 거쳐 부산 계성여상 3학년 때 중퇴했다.수업료를 못 낼 정도로 가세가 기울었기 때문이었고,곧 부산서 직장생활에 들어갔다. 노무현(盧武鉉) 후보와는 고향 친구사이로 직장생활 중 할아버지 병간호를 위해 고향에 갔다가 군에서 막 제대한 노 후보를 다시 만나 연인사이로 발전했다.연좌제를 걱정한 노 후보 집안이 완강하게 반대했으나 두 사람은 2년간 열애 끝에 1973년 결혼식을 올렸다.이때 4년여 다닌 직장을 그만두고 고시공부하던 노후보를 도와 함께 합격의 기쁨을 나누게 된다. 슬하에 아들 건호(建昊·30·LG전자)씨와 딸 정연(靜姸·28·주한 영국대사관)씨가 있다.둘 다 미혼으로 권씨 명의로 돼있는 서울 종로구 명륜동 45평짜리 빌라에서 모두 함께 살고 있다. 권씨는 독실한 불교신자다.어려서부터 절에 다니는 모친의 영향으로 불교와 자연스럽게 인연을 맺었다. 김해 봉화산 정토암을 자주 찾았으나 1988년 서울에 올라 온 뒤 삼성동 봉은사,능인선원 등을 가끔 찾는다. 권씨의 언니 창좌(昌左·57)씨는 남편과 일찍 사별했다.남동생 기문(奇文·48)씨는 부산지역 모은행 간부이며,여동생 진애(珍愛·52)씨는 가정주부다. 이춘규기자 taein@
  • 회갑 기념展 여는 간송미술관 학예실장 최완수씨

    “촌스럽게 무슨 회갑연입니까.‘회갑’이라는 말도 꺼내지 말라고 했는데…” 9일까지 서울 인사동 백악예원에서 열리는 ‘최완수 회갑기념전’의 개막식이 열린 3일 가헌(嘉軒) 최완수 간송미술관 학예연구실장은 얼굴을 붉히며 어렵게 말을 꺼냈다. 이번 전시회는 ‘간송학파’인 김천일(목포대) 오병욱(동국대) 조덕현(이화여대) 장지성(전주교대) 이태승(용인대) 교수 등 10여명이 회갑연 및 저서‘한국 불상의 원류를 찾아서 1’ 출판기념회를 겸해 마련한 자리.제자들은‘가헌 선생 19세 진영(조덕현 작)’ 등 그의 초상화를 비롯해 한민족의 정신이 살아 있는 탱화·불상·한국화·서양화 등을 출품했다.모두 최 실장의 정신을 반영하는 작품들이다. 이 전시회는 지난 73년 서울대에서 처음으로 한국미술사를 강의한 이래 30여년 동안 한국 전통문화 연구와 후진양성에 힘써온 그에게 제자들이 해줄 수 있는 최대의 ‘헌사’일 것이다.그는 서울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국립중앙박물관에서 1년간 일한 뒤 66년 사립 박물관인 간송미술관으로 옮겨 학예연구실장으로 지금까지 일해왔다. 한국 불교미술사학계의 강력한 학맥인 이른바 ‘간송학파’는 쉽게 말해 그를 추종하는 세력이다.70년부터 지금까지 서울대·연세대에서 그의 강의를 듣고 학문적 토대를 닦은 이들이 자연스레 구성했다.‘식민사관에서 탈피해 우리 전통문화를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민족적 자긍심을 갖자.’는 그의 사상에 공감한,미술계뿐만 아니라 사학 분야 등의 인문학자들을 포괄한다. 그는 “나에겐 전수할 학문이 있고,스승의 색깔을 이어갈 수 있는 뛰어난 학생들이 있어 학통이 이어진 것뿐”이라고 자부심을 드러낸다. 최 실장은 “학문에는 고전에서 이어지는 수직적인 지식과 동시대의 수평적인 지식이 있다.요즘 교육은 검증작업이 완료되지 않은 수평적인 학설만 요구하는 것 같다.그러나 문화의 주체자가 돼 외래문화를 수용하려면 수직적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그래야 지식인들이 태어날 풍토가 마련된다.”며 전통문화에 대한 교육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문소영기자 symun@
  • 구자홍 LG전자부회장 ‘총력구원’

    ‘영국신사’구자홍(具滋洪·57) LG전자 부회장의 부쩍 잦은 행보가 눈길을 끈다. 그는 1일 서울에 온 오텔리니 미국 인텔사장과 오찬을 함께 했다.저녁에는 쇼야마 일본 히타치사장을 만나 현안을 논의했다. 신제품 발표회와 사업설명회에도 빠지지 않는다.지난달 12일 ‘홈시어터’발표회와 지난 1일 ‘시스템에어컨 설명회’를 직접 주관했다. 언론과 만남도 적극적이다.그는 지난 1일 ‘시스템에어컨 설명회’가 끝난뒤 취재진 30여명의 손을 일일이 잡았다.평소 언론과 접촉을 자제하던 것과 매우 대조적이었다.그런가 하면 가정은 물론 직장에서도 즐겁게 일해야 생산성이 올라간다는 이른바 ‘펀(fun) 경영’을 새로운 화두로 던지기도 했다. 구 부회장의 이같은 행보는 경영환경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많다. 사실 LG전자는 요즘 고민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올초 주당 6만원을 웃돌던 주가는 이라크전 발발 우려와 경기침체에 따른 불안감 때문에 3만원대로 반토막 났다.지난 4월 지주회사로 출범한 LGEI는 상장당시 15만원이었던 주가가 1만 3000원대로 곤두박질쳤다.더욱 속이 쓰린 것은 라이벌 삼성전자와의 위상격차가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회사 관계자는 “안팎 경영환경이 불투명해지자 부회장의 움직임이 분주해지고 있다.”고 귀띔했다. 구 부회장은 LG그룹 창업주 구인회(具仁會) 선대 회장의 동생인 구태회(具泰會) 그룹 고문의 장남.미국 프린스턴대를 나와 지난 73년 LG상사에 입사,LG와 인연을 맺었다.오늘의 LG전자를 키운 전문경영인 같은 오너경영인이다. 박건승기자
  • ‘한국현대문학사’ 펴낸 서울대 권영민교수/“독립신문창간일이 근대문학 기점”

    “70년대 이후 우리 문학이 생산해 온 주요 쟁점을 포괄했을 뿐 아니라 그동안 금기시해 온 북한문학을 우리 문학사에 포함시켰다는 점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습니다.” 서울대 권영민 교수가 최근 ‘한국현대문학사’(민음사,전2권)를 펴내 우리 문학사에 새 틀을 제시하고 나섰다.‘백철-조연현-김현·김윤식’으로 이어지는 우리 문학사 연구의 계보를 잇는 ‘한국현대문학사’에서,권 교수는 이전의 학자들이 근대문학의 기점으로 잡은 조선조 영·정조대 대신 한문체제가 국문체제로 바뀐 시발점이 된 1896년의 독립신문 창간을 근대문학의 기점으로 설정했다. 그런가 하면 지난 73년에 출간된 김현·김윤식의 ‘한국문학사’가 다루지 못한 그뒤 29년 동안의 문학적 성과를 집적했다는 점,해방후 세대가 쓴 첫 문학사론이라는 점에서도 문단과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권 교수는 일반 역사학에서 항상 쟁론의 여지를 남기는 시대구분에 대해 “이전 연구자들은 새로운 양식의 출현을 근대의 기점으로 보고 실학적 전통을 문학사에 접맥시키고자 영·정조 대를 근대문학의 시발점으로 규정했으나,이 경우 전통문학과의 단절이 문제가 된다.”면서 “이런 점을 보완하기 위해 한국문학이 문화적 기능을 발양한 전환점이자 특정 문학코드,즉 한문 체제가 붕괴되고 국문이 일반화하는 서막이기도 한 1896년을 근대문학의 기점으로 삼았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별도의 문학적 공간으로 이해하고자 한 해방후 분단까지의 시기를 포함,현재까지를 ‘분단문학 시대’로 설정하고 이 시기의 문학에 대해 적극적인 해석을 시도하기도 했다.세부적으로는 이 시기를 ▲민족문학이 제 기능을 수행한 시기 ▲전쟁으로 문학이 분열되는 시기 ▲산업화로 문학의 사회적 기능이 확대되는 시기 등으로 구분했음에도 불구하고 해방 이후를 통칭 ‘분단시대의 문학’으로 따로 묶어 낸 것. 이에 대해 “문학사에서 해방은 민족어를 회복한 동시에 분단의 시작을 의미하는 역사적 전환점이 됐다.”면서 “이후 남북의 문학이 확연하게 갈려 지금에 이른 점을 감안하면 결과적으로 ‘분단문학’이라는 규정이 옳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해방후 한국문학의 결정적인 변수는 분단이었으며,분단이 계속될 경우 문학의 이질화 역시 심해져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조건으로 통일이 거론되는 것”이라며,이런 시대상황과 문학을 동일한 시각으로 해석하기 위해 ‘역사적 통합주의’라는 새로운 방법론을 저서에 제시하기도 했다. “북한의 경우 이념에 치중했으되 6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대하소설과 장편 서사시가 주류를 이뤄,내면적 표현에 주력하고 단편소설과 실험시를 양산해 온 남한 문학에 비해 미덕적 요소가 많은 것도 사실”이라는 견해를 밝힌 그는 “이후 남한에서는 문학적 지평을 크게 확장해 오늘에 이른 반면 북한에서는 주체사상에 치우쳐 문학의 영역을 되레 협소하게 한 측면이 두드러진다.”고 진단했다. 그는 ‘분단시대의 남북문학은 양식 개념보다 정신적 단위 개념으로 파악해야 한다.’는 통합론적 입장을 강조하고 “따라서 시대구분에 있어서는 문학과,문학을 형성하는 주변의 주요 조건을 동시에 고려하는 입장이 바람직하다.”고 역설했다. 결과적으로 우리현대문학의 가장 두드러진 특성은 분단문학이며,분단문학의 지향점이 통일문학이라는 점에 비춰볼 때 ‘역사적 통합주의’란 남·북한의 문학을 하나의 제도 혹은 틀안에서 용해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문학적 생산능력을 얻어내자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권 교수는 “이 저서를 발간하려고 지난 78년 이후 각종 자료를 모아왔으며 10년 전부터는 새로운 문학사의 골격을 세우는 연구를 줄곧 수행해 왔다.”고 밝히고 “우리 현대문학사의 공백을 메꾸고 이후의 문학사 정리에 다소나마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특히 근대의 기점을 새로 설정하는 문제와 기존 문학사가 제대로 조명하지 못한 1920년대의 사회주의 문학을 정리하는 작업이 힘들었다.”는 권 교수는 이런 일련의 문제가 학계 안팎에서 폭넓은 검증을 거쳐 우리 문학사의 기름진 토양이 됐으면 하고 바랐다. 심재억기자 jesh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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