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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EO 탐구] 박삼구 금호그룹 신임회장/금호 ‘보수 옷’ 벗는다

    ■경영철학 재계의 대표적인 보수기업으로 꼽히는 금호그룹이 관리경영을 표방해 관심을 끌고 있다. 지난 2일 그룹 4대 회장에 취임한 박삼구(朴三求·57) 회장이 꾀하는 변화다.‘1등 가치’‘업계 최고’등 금호그룹에서는 생소하다 싶은 문구들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박회장은 기자간담회에서도 ‘관리경영’을 역설했다. 관리경영이 “삼성과 같은 의미의 관리경영이냐.”는 물음에 “그것은 영업능력의 강화를 위한 것”이라며 “삼성이 영업을 잘하는 것도 그 효과 아니냐.”며 굳이 부인하지 않았다. 오는 2010년에는 5대 그룹에 들겠다는 도전적인 목표도 내세웠다.비슷한 규모의 다른 기업들이 기분 나빠할 수도 있을 텐데 개의치 않는다는 투다. 그동안 고리타분하다고 할 정도로 금호그룹은 보수적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그래서 안정감은 있었지만 진취적인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박회장의 취임 이후 이런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이런 움직임은 그의 개인적 캐릭터에서 연유한다. 그는 합리주의자이자 완벽주의자다.적당히 넘어 가고,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아는 척하는 적당주의를 극도로 싫어한다. 그는 또 수치 신봉자이다. ‘수치로 표현할 수 없으면 존재가치가 없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금호 창사이래 처음으로 간부들이 그룹 연수원에서 회계중심의 경영 기법에 대해 합숙교육을 받기도 했다. 박회장이 취임초 삼성을 연상케 하는 관리경영론을 들고 나온 것은 이같은 그의 스타일과 무관치 않다. 실제로 그는 박정구 회장 타계이후 그룹회장 취임을 앞둔 지난달말 삼성그룹 창업자인 고 이병철(李秉喆) 회장의 전기를 구입,탐독한 것으로 알려졌다.그의 관리경영론을 가다듬기 위한 것이라고 주변에서는 풀이한다.그는 기회가 닿으면 다른 기업 인수에 적극 나서겠다고 공언한다.여기에는 올해안에 반드시 금호타이어의 매각 등 구조조정을 마무리짓겠다는 대전제가 깔려 있다. 구조조정과 경영실적을 통해 유동성을 확보,신소재나 생명공학,물류 등 신사업으로 영역을 넓히겠다는 것이다.실제로 그는 지난 1980년부터 4년간 자신이 맡고 있던 금호실업의 무역업 면허를 자진 반납하는 등그룹의 주력기업을 4개로 통폐합하는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이끌어냈다. 그 결과 금호는 30대 그룹 가운데 최우량 재무구조를 갖추게 됐고,이것이 88년 항공업 진출의 발판이 됐다. 그러나 과제도 많다.우선 금호타이어 매각 등 구조조정을 성사시켜 좀처럼 가시지 않고 있는 시장의 불신을 해소시켜야 한다.그룹의 문화를 진취적으로 바꾸는 일도 숙제다.50여년간 지속돼온 문화이기 때문이다.매각대상인 금호타이어 외에 알짜기업이 많지 않다는 점 역시 고민거리다. 김성곤기자 ■인간 박삼구 박삼구 회장은 ‘두 얼굴의 사나이’로 불린다. 아버지처럼 자애로운 측면이 있는가 하면 어떤 때는 엄한 시어머니로 돌변한다.시어머니 이미지는 간부들이 느끼는 이미지다.업무처리가 허술한 간부들은 가차없이 혼낸다. 반면 박회장은 전용 엘리베이터를 갖고 있지 않다.직원들과 같은 엘리베이터에서 평직원들과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눈다.그래서 직원들에게는 자상하고 소탈한 경영자로 통한다.그는 한번 인연을 맺은 사람은 잃지 않는 스타일이다.경영자의 길에들어선 뒤에도 학교 친구들과 관계는 변함없이 유지하고 있다.가끔 친구들과 골프를 치며 스트레스를 풀곤 한다. 그는 관리경영을 추구하는 등 일에는 빈틈이 없지만 대인관계에 있어서는 ‘의리파’로 불린다. 지난 80년대초 고교 선배인 김모씨가 필화사건으로 기자직에서 해직된 후 옥고를 치르고 나오자 살림에 보태쓰라며 당시 1000만원의 거액을 건네준 것은 잘 알려지지 않은 일화다.군부의 서슬이 퍼렇게 살아 있을 때의 일이다. 박회장 주변에는 이렇게 도움을 받은 사람이 많다.이 때문에 너무 주변을 챙기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그는 5형제 중에서 가장 쾌활하다.그는 세째 아들의 특성이라고 말한다. 전임 회장 가운데 박성용(朴晟容) 명예회장이 고고한 학자풍이라면 고 박정구(朴定求) 전 회장은 보스형으로 평가받는다.박회장은 스스로 “두 형의 중간쯤 된다.”고 평한다. 그는 한국은행 총재와 재무부장관을 지낸 이정환(李廷煥) 금호석유화학 명예회장의 딸인 이경렬(李慶烈·52) 여사와 73년에 결혼,세창(世昌·27·연세대 생물학과 졸업)·세진(世眞·24·이화여대 가정학과 졸업) 남매를 두고 있다.재계에서는 인화와 안정을 추구하는 금호에 관리경영의 기치를 든 박삼구 회장이 어떤 변화의 바람을 불러 일으킬지 주목하고 있다. 김성곤기자 sunggone@
  • 활동종료 앞둔 한상범 의문사규명위원장 - “진실규명 막는 惡의 세력 있다”

    “여전히 진실을 감추고 왜곡하려는 세력이 있습니다.” 대통령 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한상범(韓相範·68)위원장은 지난달 29일 서울 종로구 수송동 사무실에서 기자를 만나 “과거 부당한 권력을 행사했거나 권력에 기생해 부와 권세를 누렸던 ‘악의 세력’이 진실 규명을 막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 64년 한일협정반대 교수단 서명을 주도한 이래 40년 가까이 법학자와 불교인권운동가로서 사회 참여에 앞장 섰다.지난 4월 양승규(梁承圭)위원장의 뒤를 이어 2대 위원장을 맡은 그는 “각계 인사를 만나 규명위 기한연장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협조를 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한연장이 왜 필요한가. 기한 내에 모든 사건을 처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의문사처럼 중대한 사안을 미결로 방치하는 것은 의문사 특별법의 취지에도 어긋난다. ◆조사가 지지부진하다는 지적도 있는데. 보통 살인사건 하나가 대법원에서 최종 판결이 내려지기까지 3년이 걸린다.1년 9개월 동안 85건의 사건을 처리하라는 것은 말이 안된다.규명위에 접수된 사건들은발생한 지 상당한 기간이 경과했거나 발생당시 국가기관들이 은폐한 사건들이다.여건을 감안하면 그동안 30건을 해결한 것도 실망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가장 어려운 점은. 국가기관의 비협조도 문제지만,더 심각한 것은 국민의 의식이다.진실규명이 우선이고 화해와 용서는 그 다음이다.하지만 우리 국민은 권력자가 저지른 과거의 잘못을 너무 쉽게 잊는다.‘좋은 게 좋은 것 아니냐.’,‘그 시절엔 어쩔 수 없었다.’는 식의 상황논리를 아무런 비판없이 받아들인다.규명위조사를 거부하는 세력은 이같은 맹점을 잘 알고 있다.규명위의 조사시한까지만 버티면 영원히 진실을 묻어둘 수 있다고 생각한다. ◆허원근 일병 사건 관련 규명위의 발표내용을 부인하는 진술이 일부 언론에 실리고 있는데. 과거 권위주의 정권의 출현과 유지에 협력했던 사람들 중 상당수가 사회 각 부문의 요직에 남아 과거청산을 방해하고 있다.이들은 과거 자신들이 비호했던 권력의 치부가 드러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궁극적으로는 규명위가 고사(枯死)하기를 바란다.하지만 규명위가 200여명의 참고인들을 대상으로 1년 넘게 조사한 사건을 불과 며칠 동안의 취재로 뒤집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의문사특별법이 개정된다면 방향은. 3가지 정도를 생각할 수 있다.첫째,규명위를 해체한 뒤 인권위법을 개정,인권위 안에 의문사 문제를 다루는 기구를 신설,조사를 맡도록 하는 것이다.둘째,의문사뿐 아니라 이에 준하는 모든 미결사건을 조사하는 새로운 기구를 만드는 것도 생각할 수 있다.셋째,규명위를 존속시키되 압수수색이나 강제소환을 가능케 하는 등 권한을 대폭 강화하는 방안이 있다. ◆의문사 규명의 역사적 의의는. 권위주의 정권의 치부를 청산하고 역사의 왜곡된 물길을 바로잡는 것이다.여기에 반발이 없을 리 없다.‘악의 세력’까지도 만족시키는 객관적 잣대란 없기 때문이다.악의 세력과의 비타협적 싸움은 계속돼야 한다. 이세영기자 sylee@ ■의문사규명위 활동 성과 - 故최종길교수 간첩누명 벗어 의문사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에 따라 지난해 1월 공식 출범한 대통령 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지금까지 85건의 의문사 사건을 접수,이 가운데 30건을 마무리지었다. 규명위는 그동안 최종길·김준배 사건 등 베일에 싸였던 사건의 진상을 밝혀냈지만 유족단체와의 마찰,내부의 불협화음 등으로 위원장과 임원들이 교체되는 진통도 겪었다. 규명위는 전국 민족민주 유가족협의회와 추모단체 연대회의 등이 지난 98년 11월부터 420여일 동안 의문사 진상규명을 촉구하며 국회 앞 천막 농성을 벌이는 등 오랜 산고를 거친 끝에 출범했다. 하지만 규명위 조사는 처음부터 벽에 부딪혔다.검·경을 비롯한 국가기관들이 “보존연한이 지나 자료가 폐기됐다.”,“국가기밀과 관련된 사항이다.”며 관련자료 제출과 참고인 조사에 불응했기 때문이다.강제구인과 압수수색등 강제 수사권이 없는 규명위의 한계를 드러낸 것이다. 조사기간이 짧은 점도 계속 문제로 지적됐다.당초 의문사특별법이 규정한 조사기간은 불과 9개월.수사기관들에 의해 의도적으로 은폐됐고,오래전에 발생한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기엔 터무니 없이 짧은 시간이었다. 조사가 난관에 봉착하자 일부 유가족은 국가를 상대로 직접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등 불만을 드러냈다.규명위의 위상 등을 둘러싸고 정부 파견 조사관들과 갈등을 빚던 민간 출신 조사관들이 잇따라 사표를 내는 등 불협화음도 표면화됐다.이로 인해 초대 양승규(梁承圭)위원장 등 일부 위원과 조사관이 교체됐고,조사기간도 두 차례 법개정을 통해 올해 9월까지 연장됐다. 한편 지금까지 종결 처리된 30건 가운데 민주화 운동과 관련해 공권력의 위법한 행사과정에서 사망한 것으로 인정된 것은 박영두·최종길·김준배 사건 등 6건이다.지난 73년 유럽거점 간첩단 사건으로 중앙정보부에서 조사받다 숨진 최종길 전 서울대 교수 사건과 97년 한총련 투쟁국장으로 경찰에 쫓기다 아파트에서 떨어져 숨진 김준배씨 사건은 규명위가 당초 조사결과를 뒤집고 사건의 전모를 밝혀낸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지난달 중간발표에서 군 당국의 자살결론을 뒤집은 허원근(許元根) 일병 사건도 군 의문사에 대한 일반의 인식을 새롭게 한 계기로 인정받고 있다.현재 조사가 진행중인 55건 가운데조사결과 보고가 끝난 것은 최석기·박융서사건 등 23건,보강조사중인 것은 허원근 사건 등 12건이다.그러나 장준하·이내창·박창수 사건 등 18건에 대해서는 관계기관의 비협조 등으로 아직 1차보고 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세영기자 ■민변등 의문사법 개정 촉구 - “권한 강화·활동기한 늘려야” 오는 16일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활동시한을 앞두고 조사기간 연장과 위원회의 권한 강화를 요구하는 각계의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규명위에 접수된 85건의 의문사 가운데 55건이 아직 마무리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이른바 ‘의문사 빅 5’가운데 장준하·이내창·이철규·박창수 사건은 국정원과 검·경의 협조거부로 진상규명 작업이 지지부진하다. 지난달 관련 자료가 남아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규명위 위원과 조사관들이 잇따라 국정원과 기무사를 상대로 실지조사를 시도했지만 이들 기관의 완강한 거부로 조사가 무산됐다. 규명위 관계자는 “현행 의문사특별법이 규명위에 압수수색권,계좌추적권,강제구인권 등을 부여하지 않아 조사에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면서 “과태료 1000만원을 부과할 수는 있지만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한상범(韓相範)위원장은 최근 국회 공청회에서 “현재 진행 상황으로는 기한 내에 사건을 마무리지을 수 없다.”며 기한연장과 권한강화를 위한 3차 법개정을 촉구했다.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이덕우(李德雨)변호사도 위원회의 활동기한 삭제와 특별검사 조항 신설,재심청구 허용과 과태료 인상 등을 담은 의문사법 개정안 시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유가족 및 시민·사회단체도 이에 가세하고 있다.민주화운동 정신계승 국민연대와 의문사 유가족 대책위,민주노총 등은 지난달 20일 성명을 통해 의문사법 3차 개정을 요구했다. 박형규(朴炯圭)목사와 김삼웅(金三雄) 전 대한매일 주필 등 규명위 자문위원들도 최근 전체회의를 열어 기간연장과 권한강화,반(反)인권적 국가범죄의 공소시효 배제 등을 담은 건의문을 대통령과 정당 지도부에 전달했다. 그러나 정작 정치권에서는 김원웅(金元雄)·이창복(李昌馥) 국회의원 등이 긍정적인의사를 밝혔을 뿐,뚜렷한 움직임이 감지되지 않고 있다. 이세영기자
  • TS 해마로 신쾌승 사장/ ‘파파이스’로 중국인 입맛 공략

    “중국에서도 한국과 같은 ‘파파이스 신화’를 일궈내겠습니다.” 패스트푸드 브랜드의 대표적인 성공 케이스로 꼽히는 TS해마로의 신쾌승(辛快承·사진·54)사장은 “파파이스 본사로부터 중국 5개 성의 체인 개발 독점권과 기타 지역 체인 확장시 우선권을 받기로 했다.”면서 “맛과 서비스를 앞세워 중국 시장을 공략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신사장은 1993년 미국의 치킨 전문 패스트푸드 브랜드인 파파이스를 들여와 단기간에 롯데리아·맥도날드·KFC(켄터키프라이드치킨)에 이어 국내 패스트푸드업계 4위로 끌어올린 주인공이다. 파파이스는 지난 94년 서울 압구정동에 1호점을 개점한 이후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지금까지 전국 212곳에 체인점을 확보했다.11일에 1개꼴로 파파이스체인점이 생겨난 셈이다. 이같은 신장세는 파파이스 본사에서조차 ‘믿기 힘든 일’로 받아들이고 있다.파파이스로서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경험하지 못했던 대성공을 거둔 것이다.파파이스가 중국 허베이(河北)·랴오닝(遼寧)·산둥(山東)·헤이룽장(黑龍江)·지린(吉林)등 5개 성의 프랜차이즈 개발 독점권을 중국 현지법인이 아닌 TS해마로에 준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신사장은 “생산·가공·유통체계를 단순화하고 맛과 품질을 차별화한 게 주효했다.”면서 “뭐니뭐니 해도 패스트푸드점의 생명은 가격이나 명성보다 맛과 서비스”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TS해마로는 지난 97년 외환 위기 직후 대다수 패스트푸드업체들이 가격할인과 광고경쟁을 벌인 것과 달리 기존제품의 품질을 높이고 신제품을 개발하는데 힘을 쏟았다. 지난해 선보인 프리미엄 브랜드 ‘케이준’은 그런 노력이 결실을 거둔 단적인 사례다.이 제품은 최고급 닭고기 안심살만을 사용,매콤하면서도 담백한 맛을 자랑한다. 신사장은 서울 토박이로 서울대 축산학과를 졸업하고 지난 73년 부국사료에 입사,79년 대한제당으로 자리를 옮겨 92년 우성사료 부사장을 거쳐 93년 TS해마로 지휘봉을 잡았다. 전광삼기자 hisam@
  • 한국 환상문학 현실과 미래/ “환상성, 문학지평 확대의 도구”

    확실히 환상문학은 독특한 매력을 갖고 있다.‘해리 포터 신드롬’에,영화로 만든 ‘반지의 제왕’이 국내에서 놀라운 바람을 일으킨 데서 보듯 안정적 소비가 담보된 거대한 시장이 형성돼 있어서다.그런가 하면 많은 문학인들이 ‘우울한 문화적 편식현상’이라고 지적할 만큼 순수문학과 대비한 비교선호도도 높다. 반면 “판타지는 변형된 무협소설로,그 성공은 곧 상업주의의 승리”(평론가 정과리)라거나 “허섭스레기”(소설가 김영하)라는 극단적인 평가도 있다.문단의 주류를 이루는 이런 시각에 밀려 “순수와 판타지의 이분법적 구분은 옳지 않다.”는,환상문학을 옹호하는 목소리는 의외로 작다. 그렇다면 이렇게 평가가 엇갈리는 환상성이 한국 현대문학에서는 어떤 위상을 갖고 있으며,그 미래성은 또 어떤가.최근 발간된 ‘문학·판’가을호가 다룬 특집 ‘문학과 환상성’을 토대로 실태와 가능성을 짚어 본다. ■한국문학의 환상성 수용 =‘홍길동전’ 등 고전소설을 제외하면 우리 문학에서의 환상성은 특정한 계보를 형성했다기보다는 ‘텍스트속에 적절히 소화돼 있는’형식을 보여왔다.‘현실과 환상을 잇는 언어를 주조해 왔다.’는 평가를 듣는 소설가 이제하의 경우 지난 73년 첫 창작집 ‘초식’에서 ‘저항으로서의 환상’을 다룬 이래 ‘환상지’에서는 10년 전에 사별한 아내와 하룻밤을 같이 보낸다는,고전적 환상성을 담고 있다. 중요한 것은 그의 환상 지향이 초창기 실험으로 그친 게 아니라 지난해 출간한 ‘독충’에서 보듯 지금까지도 면면한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이다.평론가 박철화는 “이제하에게 환상성은 존재의 자유를 호흡하는 숨길”이라고 진단한다. 윤후명의 ‘돈황의 사랑’은 시적 상상력을 통해 낭만적 환상성을 드러내보인다.그는 ‘꿈’을 환상과 현실을 잇는 연결고리로 삼아 자신과의 대화를 시도한다. 환상성의 계보는 90년대 윤대녕과 배수아로 이어진다.윤대녕은 ‘남쪽 계단을 보라’에서 현실과 신비,사실과 환상을 넘나들며 존재의 깊이를 재려고 든다.배수아 역시 작품 ‘철수’를 통해 ‘우리가 아는 현실이 전체가 아니라 극히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집요하게 환기시킨다.‘피뢰침’과 ‘흡혈귀’의 김영하는 애당초 ‘판타지’라는 꼬리표를 달고 작품을 써낸 경우로 사이버 세대의 대표주자다운 면모를 보여준다는 평가를 듣는다. ■한국 환상문학의 미래= 환상문학에 대한 문단의 평가는 아직 인색하다.평론가 하응백의 지적처럼 ‘문학적 미래가 없는 신종 문화상품’이라는 평가가 우세하다. 그러나 송병선(한국 외국어대 강사)이 ‘해리 포터'를 예로 들어 “문화산업으로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훌륭한 문학작품으로서 문학의 미래 혹은 가능성을 보여주지는 못하고 있다.”고 한 지적도,엄밀한 의미에서는 ‘해리 포터’나 ‘반지의 제왕’등 명백히 상업적 이해에 의해 창조된 외국의 환상문학을 겨냥한 평가이지,우리 문학의 환상성을 지적한 말은 아니다. 우리 문학의 환상성은 아직 정확한 평가가 이르다.박철화는 “우리 고소설의 환상성이 현대로 이어지지 못하고 단절됐으며,국권 침탈-이데올로기 갈등과 한국전쟁-분단과 권위주의 체제 성립 등 파행적 현대사가,사실주의를 벗어난 다른 미학적움직임의 형성을 가로막았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든다. 결국 환상문학이 ‘문학의 전복적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 채 새로운 환상을 빌미로 상업성에 영합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 문학의 환상성은 이런 평가로부터 일단 자유로워 보인다.우리 문학이 드러낸 한계,즉 과도한 현실중시에 대한 반작용의 의미 외에도 문학적 상상력의 지평을 넓힐 수 있는 가능성의 일단을 환상성에서 보기 때문이다. 심재억기자 jeshim@
  • ‘스타 산실’ 소강배 테니스대회 모레 개막

    한국 학생 테니스 최고의 축제이자 국가대표 산실인 소강배 전국 남녀중고테니스대회가 다음달 2일 올림픽공원코트와 그린코트,한강산하코트에서 개막,6일동안의 열전에 들어간다. 민관식(사진·84)씨의 아호를 딴 소강배는 지난 1973년 첫 대회를 시작해 명실상부한 한국 테니스의 요람으로 30회째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학생 스포츠답게 협동과 화합의 정신을 중시한다는 대회 정신에 따라 단체전만 열리는 것이 특징. 2년전 US오픈에서 국내선수로서는 처음으로 남자 단식 16강에 올라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이형택도 춘천 봉의고 시절 소강배에서 두 차례나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됐으며 김봉수 장의종 김재식 김일순 이정명 등 숱한 스타플레이어들이 이 대회를 통해 꿈을 키웠다. 올해 소강배는 남녀 중·고 65개교 500여명의 선수들이 출전해 그간 갈고닦은 기량을 겨룬다. 최병규기자
  • 74·76년 교도소 사망 장기수 3인 전향 공작 과정 폭행 사망

    70년대 전국 4개 교도소에 수감돼 있던 비전향좌익사범들을 대상으로 강제전향공작이 실시됐으며 이 과정에서 전향을 거부하는 수감자들에게 가혹한 고문과 폭행이 가해졌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한상범)는 지난 74년과 76년 대전교도소와 대구교도소에서 숨진 비전향장기수 최석기·박융서·손윤규씨 사건과 관련, “이들이 교도소의 강제 전향공작 과정에서 폭행을 당해 숨졌다.”는 중간조사결과를 29일 발표했다.규명위는 73년과 74년을 전후로 대전,대구,광주 등 4개 교도소에서 비전향좌익사범들에 대한 전향공작전담반을 운영했으며 이 과정에서 폭력 혐의로 수감중인 재소자들을 이용,폭행과 고문을 가했다고 덧붙였다. ◆공작전담반 구성 운영- 규명위에 따르면 법무부가 전국 4개 교도소에 공작전담반을 만든 시기는 73년 8월쯤이다. 규명위는 전향공작이 이 시기에 집중된 이유를 “한국전쟁을 전후로 검거된 좌익사범들이 4·19 직후 20년형으로 감형되면서 74∼75년 출소를 앞두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전향공작이 순조롭지 않자 교도소측은 일반 폭력사범을 활용하기 시작했고 이 가운데 살인 혐의로 구속돼 수감중이던 고모씨는 전향공작에 기여한 공로로 73년 교도소내에서 결혼까지 하고 그해 말 출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무리한 공작으로 희생자 속출- 규명위는 전향을 거부한 좌익사범들에게는 가혹한 매질과 물고문,심지어 전신을 바늘로 찌르는 등의 고문까지 가해졌다고 밝혔다.이 과정에서 최석기씨는 74년 4월4일 일반사범 조모씨 등 2명과 함께 대전교도소 격리사동에 수용돼 전향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수건을 입에 문 채 전신을 폭행당해 숨진 것으로 드러났다. 같은 해 대전교도소에서 사망한 박융서씨는 7월19일 교도관 김모씨와 일반재소자인 이모씨로부터 온몸에 ‘바늘 고문’을 당한 끝에 다음날 새벽 유리파편으로 동맥을 잘라 목숨을 끊은 것으로 확인됐다. 규명위는 76년 3월 대구교도소에서 사망한 손윤규씨에 대해서도 “고혈압,위궤양 등으로 몸이 온전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전향을 거부하며 단식을 하다 교도소측의 무리한 강제급식으로 숨졌다.”고 밝혔다. ◆민주화운동 관련성 인정될까- 규명위는 이 사건이 공권력의 위법한 행사로 발생한 사건인 것은 분명하지만 민주화운동과 관련이 있는지는 밝히기 힘들다는 입장이다.김준곤 상임위원은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인정하고 있는 우리 헌법에 비추어보더라도 이들이 위법한 전향공작에 저항할 근거는 충분하다.”면서 “그러나 최종결정은 위원들의 양심과 가치관에 따라 내려질 것”이라고 밝혔다. 이세영기자 sylee@
  • 다음주 ‘이라크청문회’ 백악관·의회 격돌예고

    한달여의 여름휴회를 끝내고 다음주 회기 재개를 앞둔 미 의회가 백악관과의 대격돌을 예고하고 있다.휴회 직전인 7월31일과 8월1일 이틀간 첫발을 내디딘 이라크 공격을 다룰 의회 청문회가 본격화하는데다 사담 후세인 정권을 전복시키기 위한 대이라크 전쟁선포권을 백악관과 의회중 누가 갖느냐를 놓고 벌써부터 갈등 조짐이 나타나는데 따른 것이다. ◆시비는 백악관이 먼저(?)= 애리 플래이셔 백악관 대변인은 26일 “백악관법률자문단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 ‘이라크를 공격하기로 결정했다면 의회의 승인을 얻을 필요없이 바로 공격 명령을 내릴 수 있다.’는 조언을 건넸다.”고 전했다. 플래이셔 대변인은 그러나 “의회는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부시 대통령은 의회와 협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의회에 대한 유화책이라 할 수 있지만 이것으로 의회의 심기를 건드려 무마되기는 힘들 것같다. ◆의회 반격 거셀 듯= 이라크를 공격하는데 의회의 승인이 필요없다는 백악관 법률자문단의 결론에 의회는 “개회하면 보자.”고 단단히 벼르는 분위기다.대다수의 의원들은 이라크 공격의 정당성 여부에 관계없이 의회가 승인하지 않는 전쟁 개시는 있을 수 없다고 목소리를 모으고 있다. 민주당의 척 하겔 상원의원은 “의회와 미 국민의 지지없이 대통령이 전쟁을 수행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딕 게파트 민주당 하원 원내총무도 “대통령은 이 문제를 공론화하고 의회에서 표결을 거쳐야 할 것”이라고 거들었다.패트릭 레히 미 상원 법사위원장은 “이 문제는 단순히 절차상의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장기적 성패에 관련된 것”이라면서 “부시 대통령은 의회의 승인을 얻기 위해 노력하라.”고 촉구했다.공화당의 헨리 하이드하원 국제관계위원장도 “의회의 지지를 얻지 못한 대통령의 정책 수행은 장기적 성공 가능성이 떨어진다.”고 의회의 승인 필요성을 강조했다. ◆한계로 치닫는 백악관의 인내심= 딕 체니 미국 부통령은 26일 테네시주 내슈빌에서 열린 한 재향군인회 회의에서 “이라크가 생화학무기 등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으며 곧 핵무기도획득할 것으로 믿어진다.”면서 “이를 방관,행동에 나서지 않는다면 그 위험은 행동에 나섰을 때 처할 위험보다 훨씬 크다.”고 경고했다. 체니는 또 “이라크 공격에 반대하는 것은 단순히 미래가 잘 되리라는 근거없는 믿음이나 현실에 대한 의도적 외면에서 비롯된 것이며 이는 국가지도자로서 결코 저질러서는 안될 죄악”이라고 강도높게 비난했다. 체니 부통령의 발언은 이제까지 나온 미 행정부의 대이라크 입장 천명 가운데 가장 강경한 것으로 관측통들은 이라크 공격을 둘러싼 찬반양론이 진전없이 계속 지지부진한데 대한 백악관의 인내가 한계에 도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보고 있다. ◆미 헌법상의 전쟁선포권= 미 대법원은 1800년 대통령에게 군 총사령관의 의무와 권한이 있다고 판결했다.그러나 헌법 제정자들은 대통령의 개인적 전쟁을 막기 위해 의회에 전쟁선포권을 부여했다.이 때문에 백악관과 의회간에 전쟁수행권을 둘러싸고 논쟁과 소송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같은 갈등은 1973년 대통령이 60∼90일간 의회의 승인이 없어도 군사력을 사용할 수 있지만 그 기간이 지나면 의회가 승인해야만 계속 전쟁을 수행할수 있도록 하는 결의안이 채택됨으로써 어느 정도 완화됐다. 유세진기자 yujin@
  • 장대환총리 인사청문회/ 학위취득 “뉴욕대박사과정 76년부터 이수”

    장대환 서리가 단기간에 학위를 취득한 경위와 유학 기간을 둘러싸고도 논란이 벌어졌다. 한나라당 안택수(安澤秀) 의원은 “83년 뉴욕대 국제경영대학원 박사과정에서 불과 1년9개월 만에 석사학위를 받고,귀국 후에는 매일경제신문사 기획실장과 이사로 재직하면서 바빴을 텐데 어떻게 박사학위를 받을 수 있나.”라며 학력위조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장 서리는 “뉴욕대 박사과정은 코스과정이 끝나면 석사학위를 덤으로 준다.”면서 “76년 9월부터 87년 6월까지 박사학위 재적중이었고,그 사이 군대를 장교로 가서 5년을 잡아먹어 재적 기간이 길었다.”고 해명했다. 또 미 조지 워싱턴대에서 5개월만에 국제정치학 석사학위를 받은 데 대해서는 “기록이 틀리다.학적에 하자 없다.나와 함께 조지워싱턴대에 가서 확인해보면 나타난다.”고 반박했다. 법무부 출입국 자료상 73년 9월 처음 미국으로 간 것보다 3년 앞서 70년 로체스터대를 다니게 된 경위에 대해서도 “고등학교 3학년 때 졸업시험을 마치고 당시 에티오피아 대사인 아버지를 따라 그곳으로 간 뒤 6개월간 특별학생으로 다니다 70년 6월 뉴욕주로 건너가 70년 가을학기에 로체스터대에 다녔다.”고 설명했다.그러면서 “당시 에티오피아에서 미국으로 곧바로 갔기 때문에 국내 출입국 기록에는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장 서리는 자녀의 위장전입 사실과 관련,“주민등록법을 어기면 어떻게 되는지 아느냐.”는 질문에 “벌과금을 무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간접 시인하면서도 “초등학교에 보낸 것일 뿐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고 애써 강조했다. 김재천기자 patrick@
  • “환경 중요성 인식 심어 보람”서울대 환경대학원 설립 권태준교수 정년퇴임

    “평범한 사람들도 환경문제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이 가장 흐뭇합니다.” 36년간의 교직생활을 마치고 오는 30일 정년퇴임하는 서울대 환경대학원 권태준(權泰埈·사진·65·환경계획학) 교수는 지난 73년 국내 최초로 서울대에 환경대학원을 설립한 환경문제와 도시계획 분야의 권위자다. 권 교수는 지난 62년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66년부터 3년 동안 행정법을 강의했던 법학교수였다.그러다 60년대 초반 미국 유학 당시 도시계획법을 공부한 인연으로 68년 환경대학원의 전신인 행정대학원 ‘도시 및 지역계획학과’로 옮기게 됐다.권 교수는 환경대학원으로 자리를 옮긴 후 미국 뉴욕주립대로 다시 유학을 가서 75년에 도시개발 정책학박사 학위를 땄다. 권 교수는 “당시는 건물도 여기저기 빌려서 가르치는 등 어려움이 많았다.”고 회고했다.커리큘럼만 해도 당시는 도시와 지역,조경문제 등에 국한됐다가 70년대 말부터 환경문제를 본격적으로 가르쳤다고 한다. 권 교수의 환경에 대한 애정과 관심은 학내에만 머물러 있지 않았다.국내도시를 순회하며개발에 따르는 환경 피해와 지역 불균형 문제를 강의하며 밤낮으로 뛰었다.지난 92년부터 4년간 몸담았던 경제정의실천연합 공동대표직도 잊을 수 없다.권 교수는 “대학교수가 연구성과를 사회에 환원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면서 “시민단체 활동으로 더욱 폭넓은 연구가 가능했다.”고 덧붙였다. 구혜영기자 koohy@
  • 명동 옛국립극장 공연장으로 탈바꿈

    서울 명동의 옛 국립극장(사진)이 공연장으로 다시 태어난다.대지 540평,건평 1500평 규모로 건물 외관은 유지하고 내부만 600∼700석 규모의 중극장으로 바꾸게 된다. 문화관광부는 옛 국립극장을 매입하기 위해 일단 내년도 예산에서 200억원을 확보했다고 23일 밝혔다.현재 사무실로 쓰이는 이 건물은 2005년 10월 공연장으로 재개관된다. 필요한 예산은 건물매입비 400억원과 리모델링 공사비 200억원 등 모두 600억원.정부로서는 1975년 당시 대한투자금융(현 대한종합금융)에 21억4000만원을 받고 판 뒤 28년만에 되찾게 되는 셈이다. 이 건물은 1934년 일본건축가가 바로크 양식 영화관으로 지었다.48년 시공관,59년 국립극장,73년 국립극장 산하 예술극장으로 문패를 바꿔달았다. 48년 베르디 오페라 ‘춘희’와 셰익스피어의 ‘햄릿’이 초연된 공연예술의 산실이었다.56년 당시 민주당 전당대회 때는 장면 부통령이 권총 피격을 받기도 했다. 서동철기자 dcsuh@
  • [강남특구 대해부] (1)어떤 곳인가

    수십억원대의 초호화 아파트,큰 손,부동산 투기,명품,극도의 향락산업,8학군,고액과외….특별한 땅 ‘강남’으로 상징되는 용어들이다.가뜩이나 비싼 강남의 집값이 다른 지역보다 훨씬 가파르게 상승한다.투기꾼들이 발호하는 탓인지,교육여건이 좋아서 사람들이 마구 몰리기 때문인지 원인 분석도 엇갈린다.그래서 대책에 대한 접근도 주택구입자금 출처 조사에서부터 고교 평준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나온다.도시개발 및 주거환경과 교육·부동산 등의 측면에서 강남특구를 4회에 걸쳐 대해부하면서 문제점을 도출하고 대책을 모색해 본다. ■뭔가 특별한 곳… 서울속 ‘서울' 한강 남쪽에 위치한 서울시내 자치구는 11개구다.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강남’은 위치보다 ‘특별하다.’는 경제·문화적 의미로 더 많이 통용된다.돈을 물쓰듯 할 수 있는 부자와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모여 사는 곳이란 이미지가 더 강하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강남권’은 강남·서초·송파구를 지칭하고,때때로 양천구를 포함한다.‘강남특별구’로 더욱 좁혀 불리기도 한다.강남구를 중심으로 ‘강남’이 과연 어떤 곳인지 살펴본다. ●지역특성= 바둑판 모양의 잘 발달된 도로망과 특화된 거리를 갖췄다.무역센터,공항터미널과 아셈센터가 위치한 테헤란로 주변에서는 기존 무역·금융에 더해 벤처·첨단산업이 번성한다.압구정·청담동 지역은 패션·예술·영상·애니메이션·유통,삼성·논현동 일대는 화랑·도예·가구업종 등으로 특화돼 있다.최근에는 포이동 일대가 벤처기업단지로 급부상하는 등 권역별로 균형있게 발전하고 있다. ●인구 및 주민성향= 주민등록인구는 19만 2975가구 55만 2113명(2001년 기준)으로 서울시 전체 인구의 5.32%다.20∼60세 주민의 90% 이상이 대졸 이상 고학력이고 대다수가 아파트,고급빌라 등 공동주택에 살며 풍족한 소비생활을 즐긴다.여기에는 국회의원,기업가,장·차관 이상 고위공직자,재벌총수 등 우리사회의 지도층인사가 대거 포함돼 있다. ●과연 특별한 곳인가= 도로망은 알려진 대로 시원시원하게 잘 갖춰져 있다.도로 면적은 541만여㎡로 최고를 자랑한다. 주택 종류별로 단독주택이5015동으로 서울에서 가장 적은 데 반해 아파트는 9만 5809호로 노원구(11만 3677호)에 이어 두번째,다가구주택은 9482동으로 1위다.하지만 가격은 강북지역과 평균 2배 이상의 차이를 보인다.특히 10억원 이상의 고가주택 70% 정도가 이곳에 집중된 것으로 부동산업계는 분석한다. 의료기관은 무려 1174개가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2위인 동대문구(625개)의 2배에 가깝다.종합·일반병원은 4개,12개씩으로 다른 지역과 비슷하나 개인병원은 596개나 된다.수치상 비교는 어렵지만 진료수준,서비스 등 질적 만족도에서는 몇 곱절의 차이가 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치원과 각급학교는 인구수에 비례해 비슷하고,사설학원 수도 1706개로 강동교육청 산하의 1775개보다 오히려 적어 소문과 달리 수치상으론 다른 지역에 비해 특이한 게 없다.족집게 강사 등 질적 측면의 막연한 우월성을 믿으며 ‘고액과외’ ‘8학군’ 등의 문화를 만들어낸 것으로 보인다.각종 생활편의시설은 소문만큼 잘 갖춰져 있다.대형 백화점과 쇼핑센터는 4개,3개로가장 많다.금융기관은 292개로 서초구(184) 등지보다 훨씬 많다. 강남구에 등록된 업체는 모두 5만 1649개소에 49만 6000여명이 종사한다.경제유동인구는 40여만명에 달한다.건설업과 도·소매업이 각각 2357개소 5만3527명,1만 5010개소 11만 9677명으로 주종을 이룬다.숙박·음식점도 8406곳이나 돼 ‘강남’의 소비문화를 이끈다. 이동구기자 yidonggu@ ■개발 약사 불과 30∼40년 전만 해도 강남은 사람들이 살기 꺼려하던 경기도의 작은 면에 불과했다.채소밭과 양계장이 드문드문 생겨나면서 서울에 농산물을 공급하는 근교농업지 구실을 하던 강촌마을이었다. 1963년 행정구역 확대에 따라 서울시에 편입되면서 도시화의 대열에 합류했다.당시 인구는 1만 2700여명,면적은 43㎢에 불과했다.이후 68년부터 82년까지 진행된 영동제1지구 토지구획정리사업이 강남 형성의 시발점이 됐다.경부고속도로 건설에 의해 배후도시 건설이 필요했고,강북지역의 급속한 도시 팽창에 따른 새로운 택지개발이 요구됐다. 강남 개발의 결정타는 72년 정부의 ‘특별지구 개발촉진에관한 임시 조치법’ 제정.강남을 비롯한 대도시 주변지역 개발을 위해 부동산 투기 억제세,영업세,등록세 등을 면제시켜준 것.이 때부터 강남에 재력가의 돈과 투기꾼이 몰리면서 이른바 ‘땅투기’ ‘큰손’ 등의 용어가 생겨나는 등 급속한 변화의 궤도에 오른다.73년 11월 청담동과 삼성동 개발의 견인차가 된 영동대교가 개통되고 75년에는 인구 26만 1700여명,면적 139.20㎢의 강남구청이 신설된다.이듬해 개포·압구정·청담·도곡지구가 아파트지구로 결정고시되면서 대단위 아파트 건설의 선봉이 됐고 개발과 팽창이 급속도로 이뤄진다.88∼91년 개포지구의 확장과 수서개발로 인구 55만여명을 넘기며 21세기의 세계화된 도시면모를 갖춰가고 있다. 이동구기자 ■'부의 대명사' 청담·압구정동/ 빌라 한채 수십억… 부촌 즐비 22일 서울 강남구에서도 최고급 주택가로 알려진 삼성1동 경기고 주변 H빌라.지난 80년대 초 분양된 30여채의 고급 주택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인근 부동산 관계자에 따르면 대지 150평에 건물 면적 65평 정도인 이 빌라 한채 값은 17억∼22억원.10억원을 훌쩍 넘어버린 아파트 값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저렴’하지만 일반인들은 평생 꿈도 꾸지 못할 ‘저택’이다.최근 들어선 몇몇 집의 ‘청동 지붕’ 값만 1억원이 넘는다.강남구에 대한 질시와 비난이 쏟아질 때마다 많은 강남 주민들은 “사정도 제대로 모르고 일부 부자 주민들의 생활이 전부인 것처럼 매도한다.”며 불쾌해한다.하지만 강남구에 유난히 부촌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80년대 부의 대명사였던 압구정동 현대아파트는 물론 청담·논현동 일대 고급 주택가는 테헤란로 주변 빌딩과 함께 강남의 번영을 상징한다.부동산 업자들은 고급 주택가를 말할 때 장영자씨 집 주변,이명박 서울시장 집 일대등으로 표현했다. 청담동에 ‘패션,유행 1번지’자리를 내줬다고는 하지만 압구정동의 위용도 여전하다.최근에는 압구정로,선릉로,언주로 주변에 들어선 100여개의 성형외과 덕분에 제2의 중흥기를 맞고 있다.대한성형외과개원의협의회 회원 600여명 중 346명이 서울에 있고,이중 절반 가량이 강남구에 있다.1회 50만원이 넘는다는 ‘보톡스 주사’ 열풍 때문에 더욱 바빠졌다. 2000년 말 국세청이 특별 세무조사에 착수하면서 세상에 알려진 로데오 거리의 풍경은 가관이었다.300만∼1000만원짜리 핸드백을 수도 없이 팔아 치운 의류점 사장은 3년간 무려 52억원의 소득을 탈루했다.청담동 명품가의 의류점 가운데는 쇼윈도가 없는 가게가 종종 눈에 띈다.압구정동을 ‘일반인’에게 내준 명품족들의 허전함을 ‘아는 사람들만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 채워주는 셈이다. 반면 강남이 실제 이상으로 부풀려졌다는 견해도 있다.박춘남(朴春南) 압구정1동장은 “부유층,유명인사 등이 많다 보니 다른 지역 주민보다 다소 폐쇄적인 것은 사실”이라면서 “하지만 동사무소에서 실시하는 저렴한 컴퓨터교육 참가율이 다른 동보다 높은 것에서 나타나듯 겉보기 보다는 평범한 면도 많다.”고 말했다. 류길상기자 ■강남의 그늘 '구룡마을'/ 아직도 1000만원대 판잣집 “집이라고 하기는 뭐하지만 서울에서 1000만원으로 집 구할 데는 여기밖에 없어요.” 행정구역상으로 강남구 관내지만 스스로 강남주민으로 불리길 꺼리는 개포2동 구룡마을 8지구 정모(58·여)씨는 22일 최근 강남 아파트 값을 둘러싼 세간의 관심에 대해 “남의 일”이라고 일축했다. 지난 88년 동대문구 제기동에서 이곳으로 ‘쫓겨 온’정씨는 1500만원짜리 12평 판잣집에 산다.물론 땅을 살 수 있는 건 아니고 건물만 구입한 것이다. 아내는 식당으로,남편은 날품을 팔러 나간 이날 오후 구룡마을은 막걸리 잔을 기울이는 노인들과 흙바닥을 뒹구는 아이들이 지키고 있었다.판자와 건축용 보온 덮개를 얼기설기 엮어 만든 초라한 집과 여기저기 세워진 자가용이묘한 대조를 이뤘다.주민들은 “제법 고급차를 몰고 다니는 사람도 있다.”면서 “그 사람들 때문에 우리가 오해를 받는 것 아니냐.”며 억울해 했다. 실제로 강남구청도 구룡마을 주민 상당수를 향후 개발이익을 노린 ‘위장극빈자’로 보고 있다.지난해와 올 봄 두 차례에 걸쳐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를 대대적으로 조사한 결과 149가구 259명만 대상자로 선정된 결과도 이를 뒷받침한다. 현재 강남구 관내에서 비닐하우스나 판잣집에 사는 주민은 2664가구 5810명. 강남구 주민등록증을 받고 싶었던 구룡마을 주민들은 올초 강남구를 상대로 낸 ‘주민등록 전입신고 거부 처분 취소 청구소송’에서 이겼지만 구가 곧바로 항소하는 바람에 현재 2심을 기다리고 있다. 류길상기자 ukelvin@
  • 사우디 자본 美서 대거 회수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의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지난해 9·11테러이후 미국 내 반(反) 사우디 정서에 불만을 품어온 사우디 투자가들이 최근 몇달간 미국 기업에 투자했던 2000억달러의 자본을 회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사우디의 대미 투자액은 약 7500억달러.만약 대규모 자본철수가 일어난다면 미국 경제에 상당한 피해를 입히는 것은 물론 국제유가 등 세계 경제에도 큰 파장을 몰고올 것으로 우려된다. *9·11 이후 관계 악화= 사우디 자본 철수의 배경에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지난 주 9·11테러 희생자 유가족이 사우디 왕족을 비롯해 은행,자선단체를 상대로 제기한 1조달러의 피해보상 청구소송이 결정타가 됐다.사우디는 특히 미국이 현직 국방 장관인 빈 압둘 아지즈 왕자까지 ‘테러 배후’로 몰아붙인 데 대해 격분하고 있다. 파이낸셜 타임스(FT)는 21일 이같은 사실을 보도하면서 “서로에게 최고의 맹방이었던 사우디와 미국의 관계가 이렇게 된 것은 미국이 수십년간 중동정책에서 지켜왔던 균형이 9·11테러를 계기로 깨졌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1973년 오일 쇼크를 겪은 미국은 그동안 이스라엘을 지원하면서도 중요한 석유 공급원인 아랍국가들을 냉대하지 않았다.특히 석유가격의 안정을 떠받치는 사우디를 특별히 취급해 왔다.그러나 9·11테러가 일어나자 상황은 급변했다. 여객기 납치범 19명중 15명이 사우디 국적자로 밝혀지면서 미국인들에게 사우디는 우방이 아닌 테러리즘의 온상으로 비춰졌다.또한 오사마 빈 라덴과그의 테러조직 알 카에다에 재정적 도움을 줬다는 의심의 눈초리를 받고 있는 사우디로서는 자국이 악의 화신으로 여겨지는 데 대해 불편한 심기를 표출해 왔다. *사우디도 반미감정 고조= 미국 내에서 반 사우디 수사가 심심찮게 울리면서 사우디는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단지 테러리즘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아랍권과 이슬람 전체를 반대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더구나 압둘라 왕자가 내놓은 중동평화안이 미국 내에서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한 데다 아랍권의 반대에도 불구,지역안정을 해치는 미국의 이라크 공격이 초읽기에 들어가자 사우디 내에서도반미 감정이 크게 증폭됐다. 이런 가운데 이달 초 사우디를 “악의 축”으로 규정하는 한 민간 싱크탱크의 보고서가 나오면서 사우디 고위층들 사이에 미국이 노리는 것은 ‘사우디의 유전’이라는 음모론이 설득력을 얻는 등 양국의 관계는 악화일로를 걸어 왔다.특히 소송문제가 터져나오자 사우디 일간 알 리야드는 사설에서 “미국이 우리에게 전략적인 선택이며 여기에 어떠한 대안도 없다고 생각한 이들에게 의문을 제기해야 한다.”며 대미 관계의 재고를 주장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사우디의 자본 철수가 단순히 경제적 요인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미국의 경제회복이 둔화되고 달러 약세가 지속되자 자금이 일시적으로 유럽쪽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다.한 전문가는 이러한 개인투자가들의 움직임이 기관투자가들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FT는 이날 사설을 통해 “미국과 사우디의 대립은 미국과 아랍권의 대결구도를 원하는 빈 라덴의 뜻대로 돼 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이어 이란,이라크 등 다른 중동국가들과 이미 불편한관계에 있는 부시 대통령이 사우디마저 적으로 만드는 것이 미국의 이익에 부합하는지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고 충고했다. 박상숙기자 alex@
  • “폭력범 동원 장기수 전향공작”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한상범)는 20일 지난 1970년대 유신정권 초기 중앙정보부 주도로 이뤄진 교도소 내 비전향 장기수에 대한 전향공작 과정에서 수감 중인 폭력사범을 동원한 사실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규명위 관계자는 “당시 정부 차원에서 ‘전향공작 전담반’을 만들어 같은 교도소에 수감된 폭력사범 등을 동원해 장기수들을 고문,전향을 강요했던 것으로 드러났다.”고 말했다. 규명위에 따르면 73년 3월 법무부가 광주·대전·대구·전주의 교도소에 수감된 500여명의 비전향 장기수들을 전향시키기 위해 전담반 50여명을 선발,같은 해 8월 각 교도소에 배치해 장기수들을 조사했다는 것이다. 특히 당시 중앙정보부가 전향공작 과정을 보고받고 이를 토대로 최종 전향여부를 판정해 시달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세영기자 sylee@
  • 조치훈 日 바둑 최다우승 타이 기록

    [도쿄 황성기특파원] 조치훈(趙治勳·사진·46) 9단이 일본 바둑계에서 최다 타이틀 획득·우승 타이 기록을 세우는 위업을 달성했다. 조 9단은 17일 도쿄에서 열린 제35회 조기(早碁)선수권전에서 이시다 요시오(石田芳夫) 9단을 187수만에 눌러 1973년 제5기 신예 토너먼트에서 우승한 이래 통산 64번째 우승을 달성했다. 이로써 퇴역 기사 사카다 에이주(坂田榮壽·82)가 갖고 있던 최다 우승 기록과 동률을 이루었으며 다음달 통산 10차례 우승을 놓고 도전기를 시작하는 명인(名人)전에서 타이틀을 따낸다면 최다 기록을 단독으로 보유하게 된다. 명예 본인방,명예 명인인 그는 전인미답의 10연패를 포함한 본인방(本因坊) 12차례 우승,명인 9차례 우승,기성(碁聖) 8차례 우승 등의 기록을 달성해왔다.현재 조기전 외에 왕좌(王座)전 타이틀도 갖고 있다. 일본 바둑계 통산 우승회수 3위는 기성인 고바야시 고이치(小林光一) 9단의54회로 조 9단과 큰 차이를 보이고 있어 당분간 그의 기록을 깰 프로기사는없을 것으로 보인다.조 9단은 “사카다 선생의 시절과비교할 때 바둑대회숫자가 엄청나게 차이가 나 비교할 수 없으나 존경하는 선생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marry01@
  • 항일투쟁 3형제 건국훈장 애국장

    경남 거창군 출신으로 항일투쟁에 앞장 섰던 3형제가 나란히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는다.형제나 자매들이 독립운동을 벌였던 공적이 인정돼 나란히 훈장을 받는 것은 이례적이다. 13일 마산보훈지청에 따르면 일제때 의병으로 참가했다가 일본경찰에 붙잡혀 희생된 박화기(朴華箕·1871년생)·수기(洙箕·1873년생)·민기(珉箕·1875년생) 3형제 애국지사가 애국장 수상자로 선정됐다.15일 광복절 57주년 기념식장에서 유족들이 훈장을 받는다. 거창군 북상면 월성리에서 태어난 3형제는 1905년 월성리 서당에서 지역민 40여명과 함께 쇠퇴한 국운을 회복하기 위해 ‘월성의병’을 조직,국가의 앞날을 토론하고 의병활동에 나서기로 결심했다. 이들은 덕유산 의병들에게 자금 및 군수물자를 조달해 주다 이듬해인 1906년 9월 호서의병과 합류,전북 장수와 무주전투에서 일본군 수십명을 살상하는 전과를 올렸다.1907년에는 거창읍 일본경찰 주재소를 습격했고,1908년에는 구천동과 삿갓골전투에서 일본군들을 크게 무찔렀다. 그러나 1909년 전북 장수군 계북전투에 참가했다가 친일파의 밀고로 일경에 체포돼 박화기·수기 형제는 총살당했다.막내 민기는 일본 경찰에 체포돼 7년간의 옥고를 치른 뒤 고문 후유증으로 1939년 숨졌다. 창원 이정규기자 jeong@
  • 지방선거 당선자·존비속 병역 분석/ 이명박·조해녕시장등 광역단체장 5명 면제

    ◇시장·도지사- 광역단체장 당선자 16명 가운데 면제 처분을 받은 사람은 이명박 서울시장과 조해녕 대구시장,안상수 인천시장,이원종 충북지사,박태영 전남지사 등 5명이다.박 지사를 제외한 4명은 한나라당 출신이다.질병에 따른 병역면제가 3명,입대 연령을 넘긴 면제가 2명이었다. 이명박 서울시장은 1961년 1급 자원등급인 갑종 처분을 받고 63년 입영했으나 폐결핵 등의 질병으로 일시 귀가조치됐다.이듬해 64년 한차례 징병검사를 기피했다가 재신검 대상으로 분류된 뒤 65년 ‘활동성 폐결핵 경도와 기관지확장증 고도’를 이유로 병종 제2국민역 처분을 받았다. 조해녕 대구시장은 63∼64년 징병검사를 기피하다 65년 갑종 처분을 받았으나 66년과 71년 이번엔 입영을 기피했고 73년에는 질병 때문에 입영 날짜를 연기했다.조 시장은 결국 만 31세가 되던 74년 ‘고령’을 이유로 소집 면제판정을 받았다. 안상수 인천시장은 74년 2을종 처분을 받았으나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징병검사를 미루다 77년 면제됐고 이원종 충북지사는 만성간염으로,박태영 전남지사는 야맹증으로 군에 못 갔다. ◇시·군·구 단체장 및 지방의원- 여성 2명을 제외한 전국의 기초단체장 230명 가운데 병역 면제자는 16.5%인 38명에 이른다. 서울의 이기재 노원구청장은 64년 현역 입영기피를 했다가 69년 두 눈 모두 고도근시로 징집면제 처분을 받았다.박홍섭 마포구청장은 65년 징병검사를 기피하다 보충역 판정을 받았으나 74년 고령으로 소집면제됐다. 안영일 부산진구청장은 61년 1을종 처분을 받은 뒤 67년 입영기피를 하다 82년 병역의무종료 처분을 받은 특이한 사례다.유태명 광주 동구청장은 63년과 65년,67년 세차례나 갑종 처분을 받아 현역입영 대상이었으나 68년 다시 보충역 처분을 받았다가 69년 입영후 귀가했는데,그후 소집면제된 사유가 병적기록부에 없다. 시도 광역의원은 병역의무대상자 618명(여성 64명 제외) 가운데 13.8%인 85명이 병역면제자였으며 직계비속은 대상자 572명(만 19세이하 42명 제외) 가운데 11.5%인 66명이 병역면제됐다. ◇직계비속- 광역단체장의 아들 중 질병으로 병역면제를 받은 경우는 안상영 부산시장과 김진선 강원지사의 아들 2명뿐이다.조해녕 대구시장의 아들은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했다. 기초단체장의 아들은 앞으로 징병검사를 받을 15명을 제외하고 신고대상 291명 가운데 8.6%인 25명이 병역면제를 받았다.갑종 현역 입영대상인 정영섭 서울 광진구청장의 장남은 80년 4월 군에 입대했다가 두달만에 근시로 제대했다.김문곤 부산 금정구청장은 본인과 아들 2명 모두 질병으로 병역면제 처분을 받았다. 김경운기자 kkwoon@ ■논산시·괴산군등 7개 기초의회 의원 모두 현역 복무 ‘눈길' 6·13 지방선거를 통해 당선된 전국 232개 시·군·구 의회 중 7개 의회의의원 전원이 현역으로 복무한 것으로 나타나 눈길을 끌었다. 7개 의회는 인천 옹진군,울산 북구,경기 연천군,충북 괴산군,충남 논산시,경남 함안·남해군 등이다. 특히 육군훈련소가 있는 논산시 의회의 경우 16명 전원이 육·공·해군 등으로 복무했을 뿐만 아니라 아들·손자 등 31명도 현역을 만기로 전역했다.박해영 의원은 지난 61년 육군 병장으로 제대했고,4남이 내리 아버지를 따라 육군 병장으로 제대했으며,손자가 현역 입영을 앞두고 있다.그러나 훈련소를 코앞에 두고 3남만 논산훈련소에서 훈련을 받았다. 또 서길석 의원은 해군 병장으로 제대했으나 장남은 육군 병장,차남은 산업기능요원 복무,3남은 의무경찰로 병역의무를 다해 이채로웠다.문갑래 의원등 3명은 현역으로 복무했으나 아들이 없었다.임성규 논산시장은 60년 현역으로 입대했다가 ‘대학생 귀휴사유’로 상병 제대했고,장남은 육군 병장으로 복무했다. 임 시장은 “논산은 군인의 모태가 되는 지방이라 군 복무를 제대로 하지않으면 면장도 하기 어려운 곳”이라면서 “군 복무는 국민의 의무로 자랑거리도 아닌데 너무 부추기지 말아달라.”고 주문했다. 반면 노인숙 도봉구 의원은 72년 징병검사를 기피하다 74년 보충역 판정을받고 장기대기하다 소집이 해제됐는데,그의 장남과 차남도 모두 징병검사를 연기했다가 행방불명자로 기록됐다.3남은 지난해 의가사 제대했다.같은 도봉구 의원인 박성웅 의원은 본인과 장남이 해병 병장으로 제대했다.김경운기자
  • 전남 행정부지사 오현섭씨

    전남도는 31일 행정부지사에 오현섭(吳炫燮) 한국지방행정연구원 사무국장을 임명했다. 오 부지사는 여수 출신으로 순천고와 경희대를 졸업하고 1973년 행시(13회)에 합격한 뒤 국세청과 내무부를 거쳐 광주 광산구청장,광주시 상수도 사업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광주 남기창기자 kcnam@
  • 張裳 총리 인사청문회…오늘 증인19명 증언/””3차례 위장전입 투기의혹””

    법률에 의한 국무총리 국회 인사청문회가 29일 장상(張裳) 총리서리를 대상으로 처음으로 열린 가운데 장 총리서리가 위장전입을 통해 아파트 투기를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한나라당 심재철(沈在哲) 의원은 “장 총리서리가 지난 80년 6월 서울 서초구 잠원동 한신7차아파트를 분양받은 뒤 주민등록만 이전,실거주 의무를 규정한 주민등록법을 위반했으며,85년 서초구 반포동 구반포주공아파트와 87년 2월 양천구 목동신시가지아파트 등에도 위장전입하는 등 모두 3차례에 걸쳐 아파트 투기를 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장 총리서리는 “투기나 위장전입은 절대 아니며,여러 사정으로 인해 이사를 가지 못했거나 시어머니가 임의로 한 일이어서 당시에는 몰랐다.”고 해명했다. 한나라당 김용균(金容鈞) 의원은 73년 장 서리가 미국 영주권을 취득한 것과 관련,“당시는 유신 직후여서 미국으로의 망명 요구 붐이 일었으며 혹시 미국시민이 되겠다는 예비단계로 영주권을 취득한 게 아닌가.”라고 물었다.이에 장 서리는 “73년 장남이 태어나 장학금만으로는 생활이 불가능해 직장을 갖고 대출을 받기 위해서였는데 귀국 이후 자동 소멸됐다.”고 밝혔다. 장 서리는 또한 호적에서 제적된 장남의 주민등록이 남게된 것을 ‘행정착오’로 표현한 데 대해 “국적을 포기하면서 주민등록을 정리하지 않은 것은 전적으로 나의 불찰”이라고 사과한 뒤 “잘못된 방식으로 혜택받은 건강보험료를 반납하겠다.”고 약속했다. 청문회에서는 이밖에 장 서리의 국정수행 능력과 장남 국적논란,학력표기등 그간 제기된 각종 의혹과 함께 중립내각 운영방안,서해교전 및 대북정책,비리척결 방안,마늘 파문,공적자금,주5일 근무제,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개정 등 정책현안에 대한 장 서리의 시각을 집중 추궁했다. 앞서 장 서리는 모두발언에서 “중립내각을 이끌어야 할 국무총리이며,헌정사상 최초의 여성총리 내정자로서 자식의 국적문제와 학력기재,부동산구입등의 문제로 심려를 끼쳐드린 것 자체가 부덕의 소치”라면서 “12월 대선의 공정관리와 국정개혁 마무리,민생안정,사회통합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역할을 다할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국회는 30일 법무부,보건복지부,건강보험공단 관계자 등 19명의 증인들을 상대로 이틀째 청문회를 실시한 뒤 31일 본회의를 열어 장 서리에 대한 인준여부를 표결 처리한다. 이지운 김재천기자 jj@
  • 장상 총리 인사청문회/ “”시부모가 그동안 재산관리””

    ■부동산 투기·재산신고 ◆(한나라당 심재철의원) 80년 6월 서울 서초구 잠원동 한신7차 아파트,85년 서초구 반포동 구반포주공아파트,87년 2월 양천구 목동 신시가지아파트 등 3곳의 아파트에 실제 거주하지 않으면서 주민등록만 이전한 것은 부동산 투기를 위한 위장전입 아닌가. (청문회)준비를 하면서야 잠원동과 반포에 간 것을 확인했다.잠원동 것은 주소이전을 한 지도 몰랐다.이전에 서대문구 대현동 무궁화아파트에 전세로 살았는데 이것이 부도가 나서 24가구가 길에 나앉게 됐고,어디든 가야 할 상황이어서 시어머니가 그렇게 한 것 같다.3년전까지는 시어머니가 (재산관리를) 총지휘했다.이후 주민들이 힘을 합해 청원서를 냈고,(입주민들이) 은행빚을 떠안기로 하면서 대현동 아파트가 다시 살아나 이사갈 필요가 없게 됐다.그 다음에 (반포동 아파트에) 3개월 가 있었다는 부분은 모르겠다.목동아파트에서는 나와 큰 아들이 큰 수술을 받았고,어머니가 돌아가시는 등 집안에 우환이 있어서 1년간 살 수도 없었다. ◆반포와 목동이 어떤 곳인가.시세차익이 짭짤했던 곳 아닌가. 목동은 미달된 곳도 많았다.목동에 사는 사람들은 다 안다.목동은 미달 분양이었다. ◆(한나라당 이주영의원)장·차남의 정기예금의 원금 출처는. 봉급을 시어머니께 드렸고,시어머니는 20여년간 매월 일정액을 손자들을 위해 적금으로 불입해 줬다.어릴적부터 세뱃배돈이나 용돈 등을 저축해 현재의 금액이 통장에 예치돼 있는 것이다. ◆부부의 예금은. 한 사람의 봉급은 저축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고,재산은 재산신고 사항에 등재된 것이 전부다. ◆예금을 분산 예치한 것 아닌가. 거주중인 아파트와 경기도 양주의 땅을 제외하고 모든 재산을 금융기관을통해 관리해 왔고,금리와 형편에 따라 조건이 나은 계좌에 예치한 것일 뿐의도적인 분산예치는 아니다. ◆(한나라당 박종희의원) 위장전입 등 곤란한 부분은 시모에게 다 떠넘기는데 시모는 당시 70대였다. 시모께서는 초등학교만 졸업했으나 상당히 총명하고 건강한 분이었다.3년전누우시기 전까지는 가계부를 쓸 정도로 건강하셨다. ◆(민주당 전용학의원) 80년 6월∼87년 2월 5차례에 걸친 주민등록 이전은시부모가 한 일이라 모른다고 해서는 해명이 안된다. 저희 두 사람은 밖에서 생활해 시부모께 월급 전부를 맡겼고,아이들도 키워주시는 등 살림을 도맡으셨다. ◆현재 아파트를 개조한 건 불법 아닌가. 3세대가 거주해야 하고 노모를 모시는 입장에서 시공사에 방이 여러 개인 주택을 주문하자 ‘꼭대기층에 입주하면 2채를 터서 출입문을 설치할 수 있으며 위법도 아니다.’라고 해서 입주했다. 이지운기자 jj@ ■이희호여사 친분설 ◆(민주당 전용학의원) 59∼62년 대한YWCA연합회 총무로 일할 때 이희호 여사를 처음 만났다고 했는데 그럼 40년동안 개인적 친분이 없었다는 말은 잘못된 거 아닌가. 그때 처음 만났고 이후 10년동안 미국 유학생활을 했다. 한국 와서도 공적으로 만났을 뿐 개인적 친분은 아니다. ◆(한나라당 박승국의원) 총리 지명후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이나 이희호(李姬鎬) 여사와의 친분을 굳이 숨긴 이유는 뭐냐.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대학총장으로서 공식행사 참석 등을 통해 몇차례 뵌 것이 전부이고,‘사랑의 친구들’은 단체의 설립목적이 좋아서 참여하게 된 것이다. ◆(한나라당 이병석의원)‘사랑의 친구들’ 최초 발기인에 아태재단 상임이사 이수동씨가 들어 있다.이수동씨는 사무실 공동기증자이기도 한데,제2의 아태재단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있다. 금시초문이다.아태재단과 ‘사랑의 친구들’의 관계를 모르고 있어 답변할 수 없다. ◆‘사랑의 친구들’이 각계에서 총 45억원이란 엄청난 기부금을 모았는데 이희호 여사의 영향력이 작용해 거의 강제적인 거 아니냐. 쉽게 말할 수 없다.회비를 정할 때 ‘2만원으로 뭘 할 수 있느냐.’는 얘기가 나온 것은 기억한다. 기부금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장남 이중국적·영주권 ◆(한나라당 김용균 의원)아들이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 국적을 가졌다.부모가 취득해 준 것이 아닌가. 그렇다.77년 2월28일 귀국했다.4월 이중국적을 처리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73년쯤 미국 영주권을 취득했는가. 그렇다. ◆(당시는)유신 직후여서 미국 국적을 요청,망명을 요구하는 붐이 일었다.미국 영주권 취득은 미국시민이 되겠다는 예비단계가 아닌가. 아니다.73년 아이가 태어나 학교에서 주는 장학금으로는 생활이 불가능해 내가 ‘잡(직장)’을 갖고 ‘론(대출)’을 하기 위해서였다. ◆섣불리 국적을 포기한 사람은 총리될 자격이 없다. 77년 귀국 당시는 유신 말기였는데 심각했다.미국 교수들도 가지 말라고 한데 대해 내가 “자기 나라에서 살지 못하면 살 데가 없다.”고 말하고 돌아왔다. ◆(자민련 안대륜 의원)영주권 문제가 불거졌는데. 영주권을 안 가졌다고 한 적은 없다.직원들의 착오라고 생각한다.73년 영주권을 취득했으며 1년에 한번 (미국을) 여행하지 않으면 자동 소멸되는데 여행하지 않아 소멸됐다. ◆(한나라당 박종희 의원)장남이 호적에선 제적됐으나 주민등록이 남아 있는 이유는 행정착오인가.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다.지금은 모르겠다.(주민등록을 정리하지 않은 것은)불찰이다. ■학력 허위기재 ◆ (민주당 전용학 의원)취임승낙서를 보면 프린스턴대 신학대학원 출신으로 돼 있는데. 비서출신도 (내 학력을)제대로 몰랐다는게 안타깝다.(비서)한 사람이 잘못해서 이 문제가 확대재생산돼 물의를 빚어 죄송하다. ◆ (한나라당 김용균 의원)총리서리가 되기 이전의 대부분의 자료는 프린스턴대를 졸업한 것으로 돼 있다.이대 총장이 되면서 신문에 (학력이 잘못)보도된 것도 보았을 텐테. (언론에 보도된 내 학력을)봤을 것이다. 사석에서 지인들을 만났을 때 “장 선생 프린스턴대 나왔지요.”라고 물으면 “프린스턴 신학대학원을 나왔다.”고 답변해 왔다. ◆ 그러면 신문에 잘못 보도된 것에 대한 시정을 요청한 일은 없나. (적극적으로 요청한 일은)없다.(하지만 학력 게재 등)무언가 (신문사로부터 자료가)왔으면 시정했다. ◆ 총리로 지명되는데 예일대와 프린스턴대를 나왔다는 게 큰 영향을 미친것으로 본다.(이번에 프린스턴대를 졸업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지자)대통령내외도 실망했을 것으로 보는데. 프린스턴대나 프린스턴 신학대학원이나 모두 각 분야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 (자민련 안대륜 의원)지난 82년 이대 교학과장 시절 학술진흥재단으로 보낸 이력서에는 프린스턴대를 졸업한 것으로 돼 있는데. 처음 듣는 얘기다.(내가)직접 하지 않았다. ◆ 그 이력서에는 장 서리가 날인한 것으로 돼 있다.조교나 비서가 담당 교수의 승인없이 날인을 할 수 있느냐. (프린스턴대와 프린스턴 신학대학원이)붙어 있어서 오류가 생겼다고 본다.안좋은 관행인데….중요하지 않은 일로 (문서가)나갈 때에는 비서가 한다. ■김활란 추모사업 ◆ (한나라당 이주영의원) 이화여대 총장 재임 당시 김활란 기념사업을 주도한 것은 친일청산에 역행한 것 아니냐. 그 분의 친일행적에 대해선 비판하되 한국 여성의 고등교육 등에 공헌한 부분은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 (민주당 강운태의원) “김활란씨가 본질적인 친일은 안 했고 오히려 반일적”이라고 말했다는데. 총독부가 끌고 다니며 원고를 써서 읽게 했다고 한다. 안 하면 이화여대 문닫는다고.나중에 심각한 안질환을 앓으면서 “죄가 있어 실명해도 마땅하다.”고 본인이 말했다.친일을 두둔하려는 건 아니다. ◆ (민주당 조배숙의원)98년 김활란상 제정 토론회에 참석,“김활란 박사가한국이 낳은 유일한 여성지도자”라고 말했다.후보의 역사관,민족관이 의심스럽다. 99년이 김활란 탄생 100주년으로 기념사업의 여론이 높았다.학술제를 통해 친일을 짚고 넘어가는 자리를 마련,반대자를 다 초청했다. 김활란은 1920년대 이미 세계 무대로 나가 민간외교관 역할을 했다.그러나 이화가 생각하는 것과 사회정서가 거리가 있다는 걸 느끼고 상 제정을 유보하고 모금액은 장학금으로 돌렸다. ◆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청산 활동을 하면서 교수들의 지지서명을 받았는데 서명했나. 나는 서명을 쉽게 하는 사람이 아니다.확신이 설 때만 한다.특히 역사적인 평가 문제에 있어서 얼마나 균형있게 이뤄지느냐를 검토해야 한다. 곽태헌 박정경기자 tiger@ ■국정수행 능력 ◆(한나라당 박승국 의원)금강산관광을 중단해야 한다는 여론이 있는데. 대북화해협력이라는 큰 틀에서 이해해야 한다.매우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하나의 정책이고 방향이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슬기롭게 대처해야 한다. ◆(민주당 정세균 의원)아파트값이 폭등해 서민들이 고통받는 것을 알고 있나.어릴 때 주택 문제로 고통을 겪은 적 있나. 이대 앞에서 자취생활을 하면서 생활비가 떨어지면 고구마만 삶아먹은 적이 있다. ◆총장 시절 어떤 생각으로 주5일제 근무를 추진했나. 노조가 몇년 동안 요청했다.다른 대학들도 많이 하고 있는데다 강의에도 지장없고 난방비가 3억원이 절약된다고 해서 시작했다.하지만 일률적 획일적으로 적용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민주당 조배숙 의원) 국정업무에 대학총장의 경영마인드만으로는 부족한데. 국무총리를 연습한 사람은 없다.조직 장악력이 있으면 가능하다. ◆(민주당 강운태 의원)마늘협상 파문이 발생한 원인은. 피해농가와 국민에게 매우 죄송하다.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가장 중요한데 이를 떨어뜨렸다. ◆대선에서 공직자 중립성은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 방법론은 좀 더 검토해야 하지만 관리하는 사람의 자세와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 ◆(강운태 의원)소득격차 해소방법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성공적으로 병행하려면생산적 복지와 사회통합에 더욱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강운태 의원)공적자금에 대한 생각은. 공적자금을 투입해야 했던 것 자체는 유감이다.하지만 과감한 투입으로 국제사회가 인정할 만큼 외환위기를 단시일에 극복한 효과는 있었다.국민 입장에선 정말 잘 썼는지,미회수분을 어떻게 갚을 것인지 등이 의문이다. 김재천 박정경기자 patrick@
  • 張서리 한때 美영주권 보유

    장상(張裳) 총리서리가 지난 70년대 초 미국 유학시절 미국 영주권을 취득했으나 지난 77년 귀국한 뒤 한동안 미국으로 재출국하지 않아 자동소멸된 것으로 나타났다. 총리실 관계자는 28일 “장 서리가 지난 73년 미 프린스턴신학원에서 유학할 당시 학자금 융자를 받고 도서관에서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영주권을 신청해 발급받은 적이 있다.”면서 “남편 박준서 연세대교수가 먼저 영주권을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나 장 서리는 77년 귀국한 이후 1∼2년 안에 추가로 미국을 방문하지 않아 자동적으로 영주권이 소멸됐다.”면서 “당시 미국 정부는 유학생들에게 수시로 영주 의사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최광숙기자 b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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