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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크+클래식+국악’ 접목 꿈꾸는 포크계 거장 김의철

    ‘포크+클래식+국악’ 접목 꿈꾸는 포크계 거장 김의철

    “국내 대중음악에서 감동이 사라진 지 오래됐습니다. 우리의 영혼을 울리는 정서를, 다시 음악에 담아야죠.” 포크의 거목 김의철(53)의 말이다. 누구나 할 수 있을 법하다. 혹은 순수를 내건 또 하나의 상업주의적 발언일 수 있음에도, 그의 말이기에 무게감이 더한다. 왜? 그가 걸어온 길을 보면 고개를 주억거릴 수밖에 없다.1970년 YWCA 청소년프로그램 가운데 하나였던 청개구리 음악회. 음악에 소질이 있던 대학생들이 무대에 올라 노래하는 자리였다. 10개월 정도, 어찌보면 짧은 순간이었으나 통기타로 상징되는 청년 문화를 싹틔웠고, 김민기 양희은 서유석 등 한국 포크 1세대의 출발점이 됐다. 국내 대중음악계에 청개구리가 다시 울음을 터뜨린 것은 2003년 여름부터. 상업주의와 타협하지 않는 언더그라운드 포크 뮤지션들이 모였다. 나날이 가벼워지는 가요계 풍토에서 깊이 있는 음악을 찾아가기 위해서다. 이 중심에 바로 김의철이 있었다. 아티스트보다는 엔터테이너가, 음악에 대한 진정성보다는 상혼이 범람하는 현실에서 ‘청개구리’라는 이름 자체가 던지는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 김의철은, 이정선 한영애 이광조 이주호 등을 배출했던 1970년대 또 하나의 청년 문화 산실 해바라기를 이끌었다. 고등학교 때 만든 노래들을 담은 데뷔 앨범 ‘김의철 노래모음’(1974)은 검열 때문에 판매금지됐지만 명반으로 기록됐다.‘저 하늘에 구름따라’(원제 불행아)는 이후 양희은 양병집 고(故) 김광석 등이 다시 부르며 시대를 뛰어넘은 명곡이 됐다. 그가 73년 만들었던 ‘군중의 함성’도 80년대 민중이 모였던 곳이면 언제나 불렸던 노래. 그런 그가 1980년 음악을 공부하러 훌쩍 외국으로 떠난 뒤 16년 만에 귀국하고서는 3년 전부터 청개구리 공연 예술감독을 맡고 있다. 지난달 28일 경기도 파주에서 옆집 아저씨같이 푸근한 인상의 그를 만났다.EBS스페이스가 마련한 기획공연 ‘우리가 그들을 거장이라고 부르는 이유’에 초대돼 이틀간 무대에 오른 직후였다.30일 열릴 이정선과의 공연을 준비하고 있던 김의철은 “최근 인후염에 걸려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는데 공연을 무사히 치러내고 있어 다행”이라고 운을 뗐다. 국내 대중음악에 대한 걱정이 앞섰다. 역사로 따지면 외국 문물이 한꺼번에 밀려와 혼란스럽던 1910년대 상황과 비슷하다고 했다. “지금은 엔터테이너가 넘쳐나 재미있는 것만 찾아다니고 있죠. 돈이 되는 음악만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음악은 감동과 삶이 묻어나야 합니다. 사람들이 음악으로 영혼을 살찌우거나 위로받지 못하고 있어 안타까워요.” 포크와 클래식을, 나아가 국악을 접목시키고 한국인의 한(恨)과 그리움을 담은 월드 뮤직을 꿈꾸고 있는 그는 청개구리 공연을 통해 이성원 김두수 이용복 오세은 등 묻혀버린 포크 가수들을 다시 세상으로 끌어내고 있다.“음악을 위해 고물상을 하고, 약초도 캐는 뮤지션들도 있어요. 고난과 고통은 자양분이에요. 편해지면 예술로서의 음악은 끝나버립니다. 청개구리 무대는 구도자의 길을 걷는 뮤지션들의 안식처로, 음악을 문화 유산으로 남기는 공간으로 만들어 가고 싶습니다.” 가야 할 길은 아직도 멀게만 느껴진다. 그러나 눈빛은 강렬했다. 좋은 음악은 꽃 향기처럼 저 멀리까지 은은하게 퍼져 가고, 듣는 이가 저항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고 강조했다. 언젠가 고등학교를 찾았는데 호응이 좋았단다. 수많은 세월을 살아남았던 노래가 젊은이의 마음과 가슴에도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다시 깨달았다는 그의 미소를 보며 청개구리가 더욱 크게 울어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뿌리 깊은 나무가, 가뭄에 마르지 않는 샘이 깊은 물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다. 글 사진 파주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김성호기자의 종교건축 이야기] ‘한국불교 1번지’ 조계사 대웅전

    [김성호기자의 종교건축 이야기] ‘한국불교 1번지’ 조계사 대웅전

    ‘한국불교 1번지’ 조계사(서울 종로구 견지동 45번지) 대웅전. 일제치하 불교 총본산으로 세워져 지금은 조계종 직할교구본사 본당의 위상을 갖는 건물이다. 조선시대 억불숭유책에 따라 막혀 있던 승려의 도성출입이 허용되면서 불교계의 중지를 모아 건립된 불당으로, 단일 목조건물론 국내 최대 규모. 조선후기 전통사찰 불전과 궁궐 양식이 혼합된 대웅전에는 일제에 시달렸던 우리 민족의 한과 암울했던 시절 불교중흥을 위한 불교계의 염원이 함께 서려 있다. ‘4방에 계단을 둔 단층 석조 기단위 정면 7칸, 측면 4칸의 평면에 외부 22개의 평주, 내부 12개의 고주를 세워 다포계 단층 팔작지붕을 얹은 155.7평 규모의 남향 불전.’ 조계사 대웅전 앞에 서면 법당은 물론, 기단과 공포(拱包, 처마 끝을 받치는 기둥머리에 맞추어댄 나무쪽)의 크기에 압도당한다. 조선후기 불교 건축양식에 충실하려 애쓴 흔적이 역력하며 조선왕조의 궁전보다 더 장대하고 화려한 외양을 갖추고 있다. 우선 대웅전을 받치고 있는 기단. 높이가 160㎝에 이르는 단층 석조인데 경복궁 근정전을 포함해 어느 궁전의 기단보다도 높다. 다음은 공포. 외부 5출목, 내부 7출목으로 짠 다포계로 경복궁 근정전, 창덕궁 인정전, 덕수궁 중화전 등 당시 가장 규모가 컸던 궁전보다 안팎으로 2출목씩이나 더 많을 만큼 장중하다. 대웅전 천장 높이는 자그마치 8.5m. 대웅전 디자인을 비롯해 곳곳에 스며있는 궁궐 양식도 눈길을 끈다. 외벽 큰 기둥을 받친 장초석은 경복궁 집옥재(1873년)의 것과 비슷하며 기단 전면에 일렬로 배치한 석조 동물상 중 해태상도 궁정에서만 볼 수 있는 전통이다. 불전에 궁궐양식을 쓴 것은 당시 불교계가 얼마만큼 이 건물을 중시했는지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대웅전 건립을 맡았던 도편수와 부편수는 모두 궁궐 재건공사를 지휘했던 인물들이다. 특히 도편수 최원식은 1920년대 창덕궁 대조전 재건 공사를 총지휘한 도편수로 대웅전 건립을 위해 경복궁과 덕수궁을 여러 차례 시찰하였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당시 설계 담당이며 관리직들은 모두 이왕직(李王職) 영선과 소속 일본인으로 돼 있었으나 사실상 대웅전 건립은 모두 한국인들의 손에 의해 이루어졌던 것이다. 불상을 모신 불단도 폭 14.57m, 높이 2.3m의 초대형. 지난 2004년부터 대웅전 해체 보수공사를 하면서 강원도 홍송으로 교체했다. 불단 크기에 비해 불상은 왜소한 편. 불전 건립때 도갑사의 것을 개금해 모신 것인데 오는 10월쯤 대웅전 동편에 들어서는 영산전으로 옮겨지며 대신 석가모니불과 아미타불, 약사여래불 등 17자 크기의 대형 삼존불이 봉안된다. 석가불좌상 뒤편, 즉 후불벽에는 1978년 새로 봉안된 천불도와 목각탱이 걸려 있다. 대웅전 정면은 전혀 벽이 없이 모두 장엄한 꽃판문과 꽃판창으로 처리했는데 벽 안쪽에는 천부중·신중, 바깥쪽에는 최근에 그려진 불전도가 장엄되어 있다. 바닥은 원래 다다미가 깔려 있었으나 최근 불단과 함께 강원도 홍송으로 바꿨다. 그런데 조계사의 원래 이름이 ‘태고사’였고 대웅전도 증산도 원류인 민족종교 보천교의 본당인 ‘십일전(十一殿)’을 옮겨지은 것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먼저 태고사는 일제하에서 한국불교를 지켜내려는 당시 불교계의 눈물겨운 노력이 담긴 이름. 일제의 민족말살책에서 불교계도 예외는 아니었다. 일제가 불교계를 통제하려는 사찰령을 시행한 데 이어 본격적으로 칼을 들이댄 게 바로 총본산 건립이다. 식민지 시절인 만큼 불교계의 통일기관인 총본산 설치에 총독부의 입김이 작용했을 터이지만 나름대로 한국불교의 맥을 지키기 위해 불교계가 뭉쳤다.1935년 8월 전국 31본산주지회의 이후 ‘조선불교선교양종종무원’이란 대표기관을 설치한 데 이어 한국불교 1번지의 위상을 갖는 사찰을 세운다는 원칙아래 인근 각황사 교당 개축에 뜻을 모은 것이다. 각황사는 지금의 조계사 옆 수송공원에 있던 한국 최초의 불교 포교당. 이 각황사를 헐어 지금 조계사 자리로 이전한다는 것이었는데 새로 대웅전을 건립하고도 그 명칭을 확정짓지 못하다가 고심끝에 한국불교의 법통을 태고 보우에서 찾는다는 뜻에서 삼각산(현 북한산)의 태고사로 정해 총독부에 신청한 것이다. 태고사는 전국승려대회 이후 소유권 다툼이 법정으로 비화한 끝에 1975년 6월에야 명칭이 조계사로 변경되었다. 그러면 왜 하필 보천교 십일전을 옮겨왔을까. 아무래도 당시 신도가 12만명에 불과했던 불교계 형편상 기존 건물을 옮겨짓는 것이 비용절감에 긴요했고 무엇보다 보천교가 일제에 강하게 맞서 일제에게도 위협적인 종교란 점에 착안했던 것 같다. 조계사 대웅전은 단순히 불교의 한 가람에 머물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보천교는 한때 신도가 200만명에 달할 정도로 교세가 컸다.1928년 당시 전북 정읍의 보천교 본소는 2만평 부지에 지금의 조계사 대웅전, 내장사 대웅전 같은 건축물이 45채나 들어섰을 만큼 엄청난 규모였다. 특히 십일전은 일제가 남산에 설치한 조선신궁(神社)에 대응해 지은 건물이란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교주 차경석이 사망한 뒤 일제는 대대적인 보천교 말살에 나서 결국 십일전을 강제로 헐값(1만 2000원, 당시 쌀 한 가마 값은 5원30전)에 사들였는데 불교계가 이것을 매입해 옮긴 것이다. 대웅전 기둥과 대들보는 십일전의 것을 그대로 옮겨 세웠으며 형태도 사실상 십일전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조계사 대웅전이 낙성된 것은 1938년 10월25일. 건립엔 총 17만원이 소요됐으며 기술자는 목공 7000명, 와공(瓦工) 200명을 포함해 6500명, 인부는 6만 5000명이 동원됐다. 당시 만해 한용운은 ‘총본산건설의 재인식’(1938년 ‘불교’ 신제17집)이란 글에서 대웅전의 규모를 말하면서 “만일 이 건물을 신축하자면 최소한도 100만원은 초과치 아니하면 안 되겠다고 하니 얼마나 훌륭한 집인가.”라고 적고 있다. 그야말로 19∼20세기를 통틀어 한국 최대의 건축불사(佛事)였던 셈이다. 조계사는 지난 2004년부터 대웅전 해체 보수공사를 하면서 “전통사찰 양식에 충실한다.”는 원칙을 세워 기둥과 지붕 등 기본 골격과 구조물은 변형하지 않기로 했으나 실제로는 많은 부분이 바뀌어 전문가들의 지적을 받고 있다. 우선 천장을 민반자로 완전히 바꾸면서 천장에 있던 그림들이 모두 철거됐고 자개 장식의 불단도 완전히 바뀌었는가 하면 새로 봉안될 3존불 위에 전통양식의 닫집을 설치하면서 기존의 장식이 모두 없어져 버렸다. 이강근(48) 경주대 교수(미술사학)는 “전통사찰 양식도 중요하지만 나름대로의 의미를 갖는 문화재의 구조물들을 교체하는 것은 역사인식의 결여를 보여주는 큰 오류”라고 말한다. 이 대웅전 해체 보수공사를 시작으로 4년 안에 조계사에는 종각과 보제루·영산전이 새로 들어서 환골탈태하게 된다. 경내에 있는 여관 현대장도 헐려 그 자리에 24시간 개방형 시민선방이 세워진다. 조계사 주지 원담(48) 스님은 “조계사는 서울 중심에 위치한 대표적인 신중도량으로 한국불교의 견인차 역할을 계속 하게 될 것”이라며 “그러나 한국불교 1번지의 위상에 맞지 않게 사찰 형태가 초라하고 급하게 지은 대웅전도 전통 사찰양식에서 비켜난 부분이 많아 해체보수를 통해 한국불교 고유의 모습을 되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kimus@seoul.co.kr
  • 챔프채널, 최신 애니메이션 편성

    새달 2일 개국 1주년을 맞는 케이블 애니메이션 채널 챔프가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준다는 의미로 새 슬로건 ‘키득키득 ㅋㄷㅋㄷ’을 내세우며 최신 인기 애니메이션을 집중 편성한다.1973년부터 지금까지 방영되고 있는 일본 국민만화 ‘도라에몽’의 최신 에피소드와, 트레이딩 카드게임 애니 ‘유희왕 GX’, 안데르센 동화를 원작으로 데자키 오사무가 제작한 ‘눈의 여왕’, 국내 제작 3D 애니메이션으로 일본과 프랑스에서 먼저 방영돼 호평을 받은 ‘아쿠아 키즈’, 월트디즈니 제틱스 블록의 인기작 ‘마법소녀 위치’ 등이 주요 신규 프로그램이다.
  • [세계대학 경쟁력 탐사보고서-명문대 교육혁명] (2) 영국 옥스포드·케임브리지대

    [세계대학 경쟁력 탐사보고서-명문대 교육혁명] (2) 영국 옥스포드·케임브리지대

    |옥스퍼드·케임브리지 함혜리특파원|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를 사람들은 간단하게 ‘옥스브리지’라고 부른다. 옥스브리지는 섬나라 영국 속의 또 다른 섬과 같은 엘리트 집단으로서 영국 지성계의 양대 축이다. 세계적인 명문으로 전통과 명성을 유지하며 수백년 동안 영국의 ‘인재풀’ 역할을 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학생, 교수, 연구원 등 옥스브리지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튜터(Tutor) 시스템이라고 하는 개별지도 방식이 그 해답이었다. 두 대학은 실체는 다르지만 공통점이 많다. 수도원을 중심으로 한 중세의 학문적 공동체에서 출발한 두 대학은 모두 보수적인 전통을 중시한다. 수많은 칼리지들이 모여 이뤄진 거대한 대학의 형태를 갖추고 있으며, 학생들이 모두 기숙생활을 하는 학료(學寮)제도를 택하고 있다. 특히 튜터 시스템은 이들 두 대학이 오래 전부터 유지해 온 특별한 교육시스템이다. 중세의 학문적 공동체를 그 원형으로 삼아 16∼17세기에 발전된 이 교육방식은 빛의 속도로 정보가 오가는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두 대학의 교육적 토대가 되고 있다. 케임브리지와 옥스퍼드의 학생들은 대학(전공)과 각 칼리지의 소속이 된다. 대학에서 일반적인 전공 강의 커리큘럼을 짜고, 강의를 진행한다. 시험도 대학이 주관한다. 반면 개인지도 수업은 각 학생이 속한 칼리지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지도교수들을 옥스퍼드에서는 튜터라고 부르고, 케임브리지에서는 슈퍼바이저(Supervisor)라고 부르는 차이는 있으나 소그룹으로 진행되는 지도방식은 같다.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의 학생들은 재학 중 에세이 위기(essay crisis)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닌다. 매주 지도교수와 얼굴을 맞대고 수업하는 개별지도 시간을 위해 에세이를 작성해야 하는데 이에 따른 스트레스가 어마어마한 탓이다. 학생들은 담당 지도교수를 포함해 학기당 3∼5명의 개인지도가 있다.1주일에 2∼3차례씩 진행되는 개인 수업에서 교수들은 전공 과목의 진도에 맞춰 학생들에게 관련 서적, 논문을 지정해 주고 다음 시간까지 특정 주제에 대해 4∼5쪽 분량의 에세이를 써오도록 한다. 학생들은 자신이 작성한 에세이에 대해 교수에게 왜 이렇게 썼는지, 무슨 의미가 있는지, 그리고 기존 학설에 대해서는 어떤 견해를 갖는지 등을 논리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옥스퍼드대의 엘리자베스 팔레스 교육담당 실무 부총장은 “학생들은 일찍부터 전공 분야의 최고 석학들과 그들의 수준높은 학문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을 뿐 아니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자연스럽게 연구 그룹의 일원이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튜터 시스템은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 교육시스템의 핵심”이라며 “교수의 숫자가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관리비용이 많이 들어가지만 좋은 학생들을 제대로 교육시키는 가장 좋은 방식”이라고 강조했다. 학생들이 1년에 쓰는 에세이는 평균 50편 정도. 이를 제대로 쓰려면 최소 3권의 책과 2편의 전문 저널을 읽어야 한다. 학부 3년 동안 150편의 에세이를 쓰려면 읽어 치워야 하는 책은 전문저널을 포함해 적어도 750권은 넘는다는 얘기가 된다. 옥스퍼드에서 PPE(철학·정치학·경제학)를 전공하는 김진아(21·세인트 힐다스 칼리지)씨는 “한 문제에 대해 완전하게 이해하고 나름대로의 논리를 갖출 때까지 끝없이 질문을 던지고, 함께 토론하는 식으로 수업이 진행된다.”면서 “적당히 준비했다가는 교수들로부터 면전(面前)에서 엄청나게 공격받기 때문에 심리적 부담이 심하다.”고 토로했다. 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의 장하준 교수는 “실력은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무조건 많이 읽고, 쓰는 훈련을 거듭해야 한다.”면서 “학생들은 죽을 맛이지만 이 수업방식을 따라가는 과정에서 엄청난 양의 지식을 쌓게 될 뿐 아니라 창의성을 이끌어내는 방식을 터득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앨리슨 리처드 케임브리지 부총장은 “개인에게 집중된 교육시스템은 학생들이 스스로 공부하도록 유도하고, 학문적 질문에 대해 자기 나름대로의 결론을 도출해 내는 능력을 키워준다.”며 “이런 방식은 경쟁력이 뛰어난 전문직업인이나 유능한 연구인력이 되기 위한 훌륭한 준비과정”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영국의 대학 입시제도는 선(先)지원·후(後)시험 방식이다.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도 마찬가지이지만 이들 두 대학은 우수한 학생들을 다른 대학보다 먼저 선발할 수 있는 특권이 있다. 학생들은 고교졸업을 1년 앞둔 10월부터 서류 접수에 들어간다. 학생들은 AS레벨 점수, 지도교사의 추천서, 자기 소개서, 수학 계획서 등을 첨부해 대입업무 총괄기구인 UCAS를 통해 응시원서를 낸다. 서류심사에 합격한 학생들은 12월 초 대학에 가서 면접을 치른다. 이를 통과하면 A레벨 테스트에서 좋은 점수를 받을 경우 최종 입학할 수 있다는 ‘조건부 입학허가’를 이듬해 1월에 받는다.8월 A레벨 테스트의 성적이 대학이 제시한 조건에 맞으면 최종으로 입학이 허가된다. 워낙 뛰어난 학생들이 지원하기 때문에 최종선발하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케임브리지와 옥스퍼드에 입학하는 데 A레벨 테스트 점수 외에 중요한 것은 교수들과의 면접이다. 케임브리지의 케이트 프리티 실무 부총장은 “완성된 지식은 중요하지 않다. 지적인 잠재력을 지닌 학생들이 각자 자기 분야에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도록 경쟁력을 갖춰주는 것이 바로 대학과 교수들의 몫”이라고 강조한다. 글 사진 lotus@seoul.co.kr ■ 옥스포드 총리만 25명 배출 ‘정치 지도자 산실’ 케임브리지 노벨상 수상자 80명 ‘자연과학 메카’ |케임브리지·옥스퍼드 함혜리특파원|케임브리지는 자연과학에서, 옥스퍼드는 인문학에서 각각 전통과 권위를 자랑한다. 중세의 분위기를 그대로 간직한 고색창연한 케임브리지의 칼리지들을 둘러보다 보면 ‘현대 과학이 케임브리지 없이 과연 존재할 수 있었을까.’하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케임브리지는 지금까지 모두 80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케임브리지가 자연과학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는 것은 트리니티 학자들의 공이 크다.31개 칼리지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31명의 노벨상 수상자가 나왔다. 자연과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데 큰 역할을 한 또 다른 원동력은 1873년 설립된 카벤디시 연구소다. 세계 최고 수준의 물리학 기초연구소로 정평이 난 카벤디시 연구소는 29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혁신의 전통은 젊은 과학자들에 의해 오늘도 이어지고 있다.1975년 트리니티 칼리지가 설립한 영국 최초의 사이언스 파크는 컴퓨터 공학과 바이오테크닉 분야에서 영국 최고의 중심지로 꼽힌다. 세인트존스 칼리지도 1987년 기술혁신을 위한 이노베이션 센터를 설립해 대학의 기초적인 연구와 기업의 경제적 효용을 하나로 묶는 산학협력을 주도하고 있다. 수백년의 학문적 전통과 미래기술이 결합된 케임브리지의 창조적 환경에 매료된 세계최고의 갑부 빌 게이츠는 유럽의 다른 도시를 제쳐두고 케임브리지에 마이크로소프트 연구소를 설립했다. 소니, 올리베티,AT&T 등 많은 글로벌 기업들이 케임브리지를 유럽 연구거점으로 삼고 있다. 케임브리지에 대한 세계적 기업들의 재정지원은 매년 8% 이상씩 늘고 있다. 현재 4000여개의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39개의 칼리지로 구성된 옥스퍼드는 노벨상 수상자 수에서는 46명으로 케임브리지에는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인문학의 전통과 함께 토니 블레어 현 총리를 비롯해 역대 영국 총리 25명을 배출한 것으로 자존심을 지키고 있다. 영국뿐 아니라 인디라 간디 인도 전 총리, 맬컴 프레이저와 밥 호프 전 호주 총리,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도 옥스퍼드 출신이다. 옥스퍼드의 학생 토론클럽 ‘옥스퍼드 유니언 소사이어티’는 미래 정치지도자들의 역량을 확인하는 데뷔무대 역할을 한다.1823년 귀족출신의 학생 몇몇이 가까운 친구들과 함께 만든 옥스퍼드 연합토론협회가 모태다. 옥스퍼드 유니언 소사이어티에서 윌리엄 글래드스턴 등 5명의 총리들이 정치가의 삶을 시작했다. lotus@seoul.co.kr ■ “하루 일과 오직 공부… 공부” |케임브리지 함혜리특파원|케임브리지의 트리니티 칼리지는 아이작 뉴튼을 배출한 명문으로 수학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한다. 조태준(23)씨는 이곳에서 수학을 전공하는 몇 안되는 한국인 유학생 중 유일한 학부생이다. 다른 케임브리지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칼리지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는 태준씨의 하루 일과는 매우 단순하다. 졸업반인 태준씨는 오전 시간은 전공강의를 듣는 데 모두 할애한다. 오후와 저녁은 밀린 공부와 ‘슈퍼비전’이라는 개인지도 수업 준비로 보낸다. “학생들은 하루를 대개 오전, 오후, 저녁으로 쪼개서 생활하는데 세 부분 중 적어도 두 부분은 공부에 할애합니다. 계획한 대로 마치지 못한 분량이 있으면 나머지 시간에 채워야 하기 때문에 하루를 거의 공부하는 데 보낸다고 할 수 있습니다.” 3학기로 나뉘어 진행되는 한 학년 동안 순수 및 응용수학, 이론물리학, 확률·통계 과목을 10∼12개 수강해야 하는 빡빡한 강의 일정에 슈퍼비전까지 제대로 따라가려면 하루 24시간도 모자랄 형편이지만 밤새 공부하는 일은 많지 않다. 그는 “케임브리지의 신입생들이 가장 먼저 익히는 것은 시간을 잘 활용하는 법”이라며 자신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스타일이라고 덧붙였다. 태준씨는 중학교 3학년때 혼자 조기유학을 왔다. 케임브리지에 있는 고등학교를 거쳐 2001년 트리니티 칼리지의 공학부에 입학했다.1년을 다닌 뒤 순수학문인 수학에 매료돼 ‘뉴턴의 후예’가 되는 길을 택했다. “자연의 현상을 수학적으로 풀어나가는 것이 흥미롭다.”는 태준씨는 “자기 분야에서 확고하게 자리가 잡혔지만 끝없이 연구하는 교수님들과 머리가 비상하면서도 엄청난 노력을 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큰 자극을 받는다.”고 말했다. lotus@seoul.co.kr ■ 명문대로 살아남기 “기부금이 경쟁력” |옥스퍼드·케임브리지 함혜리특파원|옥스브리지가 전통과 권위를 살리면서 미국의 명문대학들 틈에서 톱클래스 대학으로 살아 남기 위해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는 대학의 재정 확충문제다. 옥스브리지는 영국에서는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최고의 명문이지만 하버드나 예일·MIT 등 미국의 명문대보다는 재정이 취약해 21세기에 선도적인 역할을 지속하기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영국대학들의 재정이 취약한 중요한 이유는 기부금 규모가 미국의 라이벌 대학에 비해 턱없이 적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현재 케임브리지와 옥스퍼드의 기부금 규모는 각각 54억달러와 47억달러다. 미국대학 중 기부금 1위인 하버드대(255억달러)의 20% 수준에 불과하다. 옥스브리지 졸업생들은 미국 명문대 졸업생보다 기부금을 내는 데 소극적이다. 기부금을 내는 졸업생의 비율은 케임브리지의 경우 10%다. 반면 미국 명문사립인 프린스턴대는 60%에 가깝다. 케임브리지는 기부금을 내는 졸업생의 비율을 30%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을 세웠다. 개교 800주년을 맞는 2009년까지 기부금 10억파운드(약 1조 7000억원)를 모금하는 ‘케임브리지 개교 800주년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예일대의 재정담당관을 지낸 앨리슨 리처드 부총장이 캠페인 총책을 맡았다. 리처드 부총장은 “케임브리지가 미국의 대학들을 제치고 과학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명성을 유지하려면 연구시설 등 인프라에 대한 집중적인 투자가 필요하다.”며 “기부금은 미래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투자계획을 진행하는 데 안정적인 재정 기반이 된다.”고 강조했다. 케임브리지는 이공계 학과의 연구단지를 구성하는 웨스트캠퍼스 개발계획과 남쪽의 아덴브룩병원을 중심으로 한 생의학 단지조성 계획 등 6억파운드(약 1조원)의 투자계획을 세웠다. 옥스퍼드도 런던 금융가에 진출한 졸업생들을 중심으로 기부금 모금활동을 펼치고 있다. 옥스퍼드의 빌 맥밀런 기획담당 실무부총장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안정적인 재정과 재정적 독립성을 확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옥스브리지는 또 미국대학들보다 낮은 기부금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미국 대학들에 일반화된 최고투자책임자(CIO) 영입도 서두르고 있다. 기부금을 유명 투자회사에 맡겨두고 학내 투자위원회를 통해 감사만 하던 기존의 소극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CIO를 앞세워 헤지펀드 사모펀드(PEF) 등 그동안 관심을 갖지 않았던 고수익 부문에 대한 투자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미국 명문대에 맞서기 위해 옥스브리지는 해외 우수인재들을 유치하는 것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특히 최근 경제력이 커지면서 국제적인 위상이 급격히 높아지고 있는 인도와 중국의 인재들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lotus@seoul.co.kr
  • [우리는 맞수 CEO] 참치·즉석밥 시장 영토확장 ‘陸海戰’

    [우리는 맞수 CEO] 참치·즉석밥 시장 영토확장 ‘陸海戰’

    참치 통조림과 케첩, 마요네즈는 전통 음식은 아니지만 식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식재료로 꼽힌다. 밥·빵 가릴 것 없이 다양한 음식에 널리 쓰이는 ‘팔방미인’이다. 오뚜기와 동원F&B는 외국의 음식을 한국화시키는 데 성공한 1등 공신으로 꼽힌다. 이들 회사는 참치 통조림과 케첩·마요네즈 시장에서 70∼80%에 이르는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다. 유수한 외국 브랜드들이 힘을 못 쓸 만큼 시장을 꽉 잡고 있다. 두 회사는 최근 영토 확장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오뚜기는 “동원의 ‘참치 철옹성’을 깨겠다.”며 참치사업 강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동원F&B도 오뚜기가 후발주자로 나선 ‘즉석 밥’ 시장에 올 하반기쯤 진출하겠다는 계획을 드러냈다. 여기에 두 회사 모두 대림수산 인수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팽팽한 신경전이 가열되고 있다. 강신국(64) 오뚜기 대표와 김해관(55) 동원F&B 대표는 바다와 육지를 넘나드는 식품 라이벌전의 핵심에 서 있다. 강 사장은 33년간 오뚜기에서 외길을 걸으며 기업을 일군 ‘숨은 공신’이다. 함태호(76) 회장의 2세인 함영준(46) 대표이사 사장과 공동으로 회사를 이끌고 있다. 그는 철두철미하기로 소문난 경영인이다. 매달 영업 지점을 일일이 돌아다니며 ‘상담자’를 자처하면서도 “식품에 몸 담는 사람은 청결해야 한다.”며 시어머니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 3월 취임한 김해관 동원F&B 대표이사는 식품업계의 대표적인 마케팅 및 영업 전문가로 통한다. 햇반, 백설식용유, 백설햄, 비트, 엔프라니 등 ‘대작’을 성공시키는 등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다. 김 대표는 평소 ‘음양감식법’이라는 자신만의 건강법을 갖고 있다. 식사 전후 물을 마시지 않고 늘 체온과 비슷한 온도로 만들어 먹는다. 그는 “잘 때 땀을 많이 흘리는 편이었는데 습관을 바꾸면서 증상이 사라졌다.”고 자랑한다. 자신의 생활 스타일처럼 경영에 있어서도 만족과 이익을 강조한다.“직원도 일종의 고객이므로 직원들이 만족할 수 있는 경영을 하겠다.”는 포부를 밝힌 김 대표는 “고객에게 이익(benefit)을 주지 못하는 사업은 포기하겠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두 사장은 최근 새 분야에 개척에 주력하고 있다. 강 사장은 참치 시장에서 동원의 아성에 도전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냈다. 올리브참치·황다랑어참치·후레시참치 품목군 육성, 매장 내 시식행사, 온-오프라인 경품행사 등 적극적 마케팅을 선보일 예정이다. 김 사장도 “단순히 ‘만족’을 주는 차원을 넘어서겠다.”며 신제품 개발에 적극성을 보이고 있다.‘햇반’을 히트시킨 노하우를 바탕으로 즉석 밥 시장에 또다른 바람을 불러올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 강신국 오뚜기 사장 ▲1942년 경북 예천 태생 ▲1964년 고려대 경영학과 졸업 ▲1974년 오뚜기식품 입사 ▲1981년 오뚜기식품 영업담당 상무이사 ▲1996년 오뚜기라면 대표이사 ▲2000년 오뚜기 대표이사 ■ 김해관 동원 F&B 사장 ▲1951년 대구 태생 ▲1973년 영남대 경영학과 졸업 ▲1993년 제일제당 마케팅실 실장 (상무) ▲1999년 제일제당 생활화학본부장 ▲2002년 엔프라니 대표이사 사장 ▲2006년 동원F&B 대표이사 사장 서재희기자 s123@seoul.co.kr
  • 경주교도소 ‘실버교도소’로

    경북 경주남산 자락에 위치한 경주교도소가 고령 재소자를 수용하는 ‘실버 교도소’로 탈바꿈할 전망이다. 17일 경주교도소에 따르면 오는 6월부터 전국 교도소의 65세 이상 고령자를 수용하는 고령자 전문 교도소로 기능을 전환키로 했다. 이에 따라 경주교도소는 현재 수감돼 있는 미결수 100여명을 다음 달 말 문을 열게 될 포항교도소로 이감키로 하고, 업무를 협의 중이다. 법무부는 올 하반기 경주교도소 건물을 리모델링해 수용 거실에 좌변기와 샤워시설, 싱크대 등 편의시설을 설치하는 한편 고령자에 적합한 교정 프로그램을 시행할 예정이다. 특히 현재의 재소자 450여명을 340명으로 줄이고, 재소자 1인당 수용 거실 면적도 지금의 0.75평에서 2.4평 규모로 넓히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1973년 설치된 경주교도소는 그동안 초범 위주의 재소자와 경주지원 및 경주지청 관할 미결수를 수용해 왔다.경주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우금치가 아니라 우금티”

    “‘우금치’가 아니라 ‘우금티’입니다.” 동학군 최대·최후 전쟁터인 국가사적지 387호인 충남 공주 우금치 이름을 바로잡으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동학농민전쟁 우금티기념사업회는 상반기중 ‘우금치 사적지’의 명칭을 ‘우금티 사적지’로 변경해줄 것을 문화재청에 요청키로 했다고 17일 밝혔다. 이를 위해 지난달 23일 열린 총회에서 명칭변경안을 결의했으며 명칭 변경을 위해 고고학자 자문, 문헌자료 및 주민들의 증언 등을 수집중이다. 사업회가 명칭 변경을 추진하는 이유는 원래 ‘고개’를 뜻하는 순수 우리말은 ‘티’나 ‘재’이나 일제가 지도를 제작하면서 한자에 ‘고개 티’자가 없어 ‘치(峙)’를 붙였기 때문. 이 때문에 주민들 사이에서는 지금도 두 이름이 섞여 불리고 있다. 우금치는 옛날 부여에서 공주로 넘어가거나 호남 등에서 서울로 갈 때 반드시 거쳐갔던 고개로 1894년 전봉준 장군이 이끄는 동학군 수만명이 관군 및 일본군과 싸워 전멸한 동학농민 전쟁의 최후 격전지다. 이곳에는 1973년 동학농민군의 영혼을 달래기 위한 위령탑이 세워져 해마다 추모예술제가 열리고 있으며 동학농민혁명 100주년이던 1994년에는 사적지로 지정돼 관리되고 있다. 우금티기념사업회 조동길(공주대 국어교육과 교수) 이사장은 “우금이란 이름은 고개가 험해 도둑이 많으니 ‘소를 끌고가지 마라’는 전설과 공주 곰나루와 비교해 ‘윗곰’이란 말에서 변형됐다는 설 등 유래가 분분하다.”면서 “‘티’로 이름을 변경하려는 이유는 지명의 역사성과 고유성을 되살리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공주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한미경제협의회장 이희범씨

    한·미경제협의회는 13일 무역회관 중회의실에서 정기총회를 열고 이희범 무역협회 회장을 신임회장으로 선출했다. 한·미경제협의회(KUSEC)는 1973년 한·미 양국 경제의 상호이해와 친선증진, 양국간 무역, 투자 및 기술협력 등 경제교류증진 도모를 위해 출범했다. KUSEC는 국내 유일한 미국 전담 상설 민간경제협력기구로 미국의 50개 주정부와의 협력 창구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한국 정부가 직접 상대하기 어려운 주정부와 제휴를 강화하고 한·미 통상마찰을 예방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 [부고]

    ● 원로사학자 이광린씨 별세 서강대 부총장과 중부대 총장을 역임한 원로 역사학자이자 대한민국학술원 회원인 이광린(李光麟)씨가 11일 오후 2시30분 별세했다.82세. 평남 용강 출신으로 아호가 ‘칠리(七里)’인 고인은 해방 직후 연희전문(연세대 전신) 전문부 영문과에 입학했으나 1946년 문과대학 사학과로 옮겨 1950년 5월에 졸업했다. 이후 연세대 사학과 대학원을 거쳐 54년 모교 사학과 교수로 부임한 뒤 64년 서강대 사학과로 옮겨 89년 정년퇴임할 때까지 이곳에 봉직하면서 이기백·차하순 교수 등과 함께 이른바 ‘서강사학’의 전성시대를 이끌었다. 고인은 한국근대사 분야에서 독보적인 업적을 세웠다.1973년 펴낸 ‘개화당 연구’와 79년 ‘한국개화사상사연구’(일조각)는 이 분야의 지평을 연 저서로 정평이 났다. 유족으로 부인 권오경씨, 춘국(신한카드 마케팅 팀장)·춘건(사업)·춘희(국제변호사)씨 등 2남1녀가 있다. 빈소는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13일 오전 8시.(02)392-0299. ●박찬호(환경부장관 비서관)찬희(등지학원 원장)찬혁(캐슬 사장)씨 부친상 홍계완(충남농업기술원)씨 빙부상 정정자 배순희(북토피아 실장)씨 시부상 11일 분당 서울대병원, 발인 13일 오전 6시 (031)787-1506 ●오용무(사업)용국(캐나다 거주)용욱(동방 감사·전 조흥은행 부행장)씨 모친상 여인철(전 대구문화방송 편성국장)씨 빙모상 11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3일 오전 9시 (02)3410-6915 ●이승휘(전 인천시 초대의사회 회장)씨 별세 영근(경기대 교수)형근(일리노이대 〃)씨 부친상 박동국(단국대 교수)최웅렬(썸팜 대표)박일홍(연세가나성형외과 원장)씨 빙부상 10일 인하대병원, 발인 13일 오전 8시 (032)890-3199 ●서병기(전 서울국토관리청장)병태(전 대구은행 여신관리부장)상원(전 쌍용제지 총무부장)씨 모친상 11일 서울 강남성모병원, 발인 13일 오전 7시 (02)590-2660 ●김정남(전 대한주택공사 기획본부장)씨 모친상 11일 분당 서울대병원, 발인 13일 오전 8시 (031)787-1508 ●정병학(전 전기공사협회 동부지부장)씨 별세 근환(동광전업 대표)옥환(서울여대 교수)씨 부친상 오성준(메티스메디컬시스템 전무이사)허수(전 고제 총무부장)민병국(공무원)나병진(한국사이버대 교수)김영호(군산대 〃)김윤중(세방전지 부장)씨 빙부상 11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3일 오전 6시 (02)3010-2291 ●최종협(특허청 국장급 교육파견)씨 모친상 반명환(광주시의회 의장)씨 빙모상 11일 대전 건양대병원, 발인 13일 오전 8시 (042)544-4157 ●황재호(천용운수 사장)재경(세광운수 〃)혜숙(성악가)씨 부친상 김정만(LS산전 사장)김영락(서울치과 원장)씨 빙부상 11일 부산 침례병원, 발인 13일 오전 7시 (051)583-8914 ●김상준(서일전력 대표)상운(남일전력 상무)상교(남일전력 이사)씨 모친상 11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3일 오전 6시30분 (02)3010-2266 ●정선채(제일합판상사 대표)웅채(대성합판상사 〃)호채(보성합판상사 〃)현채씨 모친상 전용대(자영업)이양원(삼일엘텍 대표)씨 빙모상 11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3일 오전 8시 (02)3410-6914 ●박병두(에이스관리)씨 모친상 정달영(평화엔지니어링 전무)씨 빙모상 11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3일 오전 7시 (02)3010-2239 ●김문국(광주 각화중 교사)문선(자영업)문필(무안군청)씨 부친상 정택성(완도고 교감)박현덕(한국은행 전산정보국장)김재천(자영업)씨 빙부상 10일 무안 한국병원, 발인 12일 오전 10시 (061)454-9342 ●나규일(중소기업진흥공단 이사)규성(재미)임순(자영업)정순(한남대학교)씨 부친상 황순호(자영업)공희성(대주회계법인 공인회계사)씨 빙부상 10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2일 오전 9시 (02)3410-6916 ●박명도(자영업)명구(〃)인호(헤럴드경제 생활경제부 차장)씨 모친상 이종철(한국마사회)김학수(자영업)씨 빙모상 10일 신촌세브란스병원, 발인 12일 오전 9시 (02)392-0899 ●김철규(금융결제원 감사)철주(인천시 택시운송사업조합 이사장)철호(내고향꽃게장 대표)씨 모친상 왕길수(자영업)이옥식(〃)씨 빙모상 11일 군산 금강장례식장, 발인 13일 오전 9시 (063)445-4188 ●김태동(현대모비스 베이징사무소 상무)씨 부친상 11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3일 오전 6시 (02)3010-2294 ●김천복(파발마 총무부장)씨 별세 우진(엠오티엑스텍 이사)우영(금강오길비그룹 차장)수지(익산 이리마한초등학교 교사)씨 부친상 김유진(서울아산병원 수출간호팀 계장)김선영(한국씨티은행 인사운용부 과장)씨 시부상 11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3일 오전 9시 (02)3010-2263
  • 삼성 사회공헌위원장 배정충씨

    삼성그룹은 10일 삼성생명 대표이사에 이수창 삼성화재 사장을, 삼성화재 대표이사에 황태선 삼성투신 사장을 각각 내정했다고 발표했다. 또 삼성생명 배정충 사장을 부회장으로 승진시키면서 삼성사회공헌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했다. 삼성투신 대표이사 사장에는 삼성전자 강재영 부사장을 내정했다. ▲배정충 삼성 사회공헌위원회 위원장 1945년 전북 전주 출생,65년 전주고,69년 고대 경영학과 졸업,69년 동방생명 입사,96년 삼성화재 대표이사 전무,2000년 삼성생명 대표이사 사장 ▲이수창 삼성생명 대표이사 사장 1949년 경북 예천 출생,67년 대창고,71년 서울대 수의학과 졸업,73년 삼성그룹 공채 입사,99년 삼성화재 대표이사 부사장,2001년 삼성화재 대표이사 사장 ▲황태선 삼성화재 대표이사 사장 1948년 경북 상주 출생,67년 성의종합고,75년 고대 경영학과 졸업,74년 제일제당 입사,99년 삼성화재 경영지원실장,2003년 삼성투신 대표이사 사장 ▲강재영 삼성투신 대표이사 사장 1952년 경남 마산 출생,72년 경북고,79년 연대 경영학과 졸업,78년 삼성전자 입사,99년 삼성일본본사 경영기획실장,2004년 1월 삼성전자 디지털미디어총괄 경영지원실장
  • ‘王의 힘’

    올해로 즉위 60주년을 맞은 푸미폰 아둔야뎃(78) 태국 국왕은 태국인들의 존경과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으며 막후의 해결사로 통한다.현재 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권좌에 있는 푸미폰 국왕은 태국 정치에서 핵심적 역할을 맡고 있다. 총리를 해임할 권한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정치적 영향력 때문이다. 그래서 위기상황이 발생하면 국왕의 역할이 결정적이다.1992년 민중 봉기 때도 총리를 궁궐로 부른 뒤 TV를 통해 유혈 군사정부의 하야를 요구했다. 당시 총리였던 수친다 장군은 민중의 요구와 국왕의 명령에 결국 사임했다.1973년 방콕대학교에서 시위가 발생했을 때도 국왕은 총리와 총리 측근을 불러 나라를 떠날 것을 요구했고, 그들은 복종했다.재임 중 15번의 정권 개혁과 20명의 총리, 수많은 쿠데타를 거치면서 국왕은 정치적으로 엄격한 중립을 유지, 위상을 높였다. 이번 반 탁신 시위대들도 국왕에게 정치 혼란 해결을 위한 ‘간여’를 애걸했을 정도로 그의 의견은 영향력을 발휘한다. 푸미폰 국왕은 재즈 색소폰 연주가, 작곡가, 사진가, 요트 조종자로도 뛰어난 실력을 과시하는 현대적 국왕이다.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발언대] 공휴일처럼 더 나무를 심자/김종호 국립산림과학원 산촌연구실장

    내가 중학교 다니던 시절인 1973년도에 제1차 치산녹화사업이 시작되었다. 전교생들이 식목일 헐벗은 산에 묘목을 담은 망태와 삽과 괭이를 들고 다니면서 나무를 심던 생각이 난다. 그 당시에는 직장인, 학생, 남녀노소 불문하고 온 국민이 헐벗은 산에 국토를 푸르게 해야겠다는 일념으로 열심히 나무를 심었다. 그런 치산녹화사업과 산지자원화정책 덕에 약 400만㏊에 100억그루 이상의 나무를 심어 민둥산이 어느덧 ㏊당 임목축적이 76㎥에 달하는 푸른 숲으로 변했다. 유엔의 식량농업기구(FAO)는 한국을 세계에서 짧은 기간 동안 국토녹화를 달성한 나라로 평가하고 있다. 국민 1인당 약 200여그루의 나무를 심은 결과 울창한 숲이 된 우리나라 산림은 우리 국민에게 많은 혜택을 되돌려주고 있다. 산림은 목재, 버섯류, 산채, 약초 등의 유용한 임산물을 제공해주는 경제적 기능뿐만 아니라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우리가 숨 쉴 수 있는 산소를 만들어 공기를 깨끗하게 하며, 물을 저장하는 능력이 커서 비가 많이 올 경우 수해가 발생하는 것을 방지해주며 산사태를 막아주는 등 공익적 기능을 갖고 있다. 연구결과에 의하면 우리나라 산림은 연간 182억t의 물을 모아두는데 이는 유효저수량이 19억t인 소양강댐 10개를 건설하는 효과와 맞먹는다. 산림은 뿌리 등에 의하여 비가 오거나 물이 흘러갈 때 토사가 유출되는 것을 막아주는데 토사가 흘러내리는 양은 울창한 산이 나무가 없는 산에 비해 215분의1에 불과하다고 한다. 정부가 그동안 치산녹화사업과 산지자원화정책을 추진하여 우리산은 푸르러졌으나 숲을 경제적 가치가 높은 산림으로 가꾸기 위해서는 숲가꾸기 사업을 확대해야 한다. 지구환경을 보전하면서 산림이 제공하는 경제적, 생태적, 사회적, 문화적 기능이 현세대는 물론 후세대에게도 지속적으로 발휘될 수 있도록 산림경영 기반을 구축하고 실현하기 위해서는 산림사업에 대한 정부의 투자 확대와 산림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식목일이 공휴일로 지정되었던 예년처럼 계속 유지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김종호 국립산림과학원 산촌연구실장
  • 내일 창립 60돌…금호아시아나 어제와 오늘

    내일 창립 60돌…금호아시아나 어제와 오늘

    금호아시아나그룹이 7일로 ‘이순(耳順)’을 맞는다.1946년 4월7일 창업주인 고 박인천 회장이 17만원의 자본금으로 미국산 중고택시 두대를 사들여 광주택시를 설립한 후 한갑자(60년)가 지난 것이다. 박 회장은 여객 운송업으로 확장하고, 금호타이어와 금호석유화학 등을 잇달아 설립해 1973년에는 6개사로 본격적인 그룹체제를 확립했다. 금호아시아나는 90년대 아시아나항공이 국제적인 항공사로서 면모를 갖추고, 금호타이어와 금호고속도 중국시장에 진출하는 등 10대 그룹으로서의 위상을 다졌다. 지난해 말 현재 아시아나항공과 금호타이어, 금호산업, 금호석유화학 등 총 22개의 계열사를 두고 있다. 그룹은 1977년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을 설립한 이후 30여년간 학술 연구와 교육사업에 공헌했다. 음악 영재의 연주기회 확대와 후원, 금호미술관을 통한 다양한 기획전시, 신진 유망작가 발굴 등 한국 문화예술 전반에 걸쳐 폭넓은 지원활동을 펼쳤다. 60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그룹 2세 총수도 세번이나 바뀌었다. 고 박인천 창업회장이 1984년 별세하자 장남인 고 박성용 명예회장이 뒤를 이었고,1996년 둘째 동생인 고 박정구 회장,2002년 셋째인 박삼구 회장으로 이어지면서 ‘형제경영’의 전통을 쌓고 있다. 최근 그룹은 창립 60주년을 맞아 새로운 기업CI 선포와 함께 ‘아름다운 기업’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새로운 도약을 시작했다. 그룹은 금호석유화학과 금호산업을 중심으로 양대 지주회사체제를 확립, 업종별 수직계열화를 통한 지분구조의 단순화를 도모하고 성과 위주의 책임경영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또 대한통운과 대우건설 인수를 준비하는 등 핵심사업 육성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육종학자 현신규 박사 타계 20주기 식목일 맞아 다시 주목

    육종학자 현신규 박사 타계 20주기 식목일 맞아 다시 주목

    ‘현사시’란 나무를 만들어 대한민국을 푸르게 만들었던 고(故)현신규(1912∼1986) 박사를 아시나요. 올해 현 박사 타계 20주기 식목일을 맞아 제자인 서울대 이경준(산림자원학과) 교수는 “현 박사의 업적을 다시 한번 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현 박사는 1960∼1970년대 국내에서 대대적으로 심어졌던 ‘현사시’라는 새 포플러 품종을 만들어낸 우리나라 대표적 임목육종학자다. ●우리나라 지형에 딱 어울리는 수목 현 박사가 만든 ‘현사시’의 원래 이름은 ‘은수원사시나무’다. 이 나무는 은백양(포플러의 한 종류)을 어미나무로, 수원시 여기산 인근에서 자라고 있는 수원사시나무를 아빠나무로 해 현 박사가 만들어낸 것이다. 원래 포플러는 곧게 자라지 못하고 평지에만 심어야 한다. 또 수원사시나무는 곧게 자라지만 생장이 느리고 꺾꽂이가 안 된다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현 박사가 이 둘을 접목해 만든 ‘은수원사시나무’는 부모의 성질 중 좋은 것만 닮고 부모모다 더 우수한 생장을 보이는 ‘잡종강세’ 현상을 보였다. 가장 큰 장점은 가파른 산에도 심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지형에 딱 어울리는 수목이 탄생한 셈. 현 박사의 ‘은수원사시나무’는 1965년 정부가 본격적으로 산림녹화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보급되기 시작했다. 이어 1973년 정부의 치산녹화 10개년 계획에 따라 본격적으로 전국의 모든 산에 식재되기 시작했다. 현 박사의 공을 인정한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1978년 ‘은수원사시나무’의 이름을 현 박사의 성(姓)을 따 ‘현사시’로 바꾸게 했다. ●정화수·환경수로 각광 최근 ‘현사시’는 목재 품질이 좋지 않다는 지적을 받는다. 하지만 빠른 생장력 때문에 쓰레기 매립지의 침출수나 축산 폐수가 나오는 곳 등에서 오염된 토양을 정화하는 ‘정화수’로서 기능하고 있다. 또 산소를 많이 배출하는 ‘환경수’로도 주목받고 있다. 현 박사는 2003년 대한민국 과학 기술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기도 했다. 지금까지 명예의 전당에 오른 우리나라 과학 기술자는 씨 없는 수박의 우장춘 박사, 핵물리학자 이휘소 박사 등 총 19명이다. 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 軍의문사 11건 재조사

    ●사례1 병사 1명이 총기 난사로 동료 15명을 사망케 하고,11명을 부상케 하는 일이 가능할까?●사례2 자동차기능사 자격증 등을 다수 취득하는 등 미래를 착실히 준비하던 사병이 아버지의 빚과 누나의 이혼 등 일부 가정문제만으로 과연 비관 자살했을까? 지난 2월 출범한 대통령 직속 군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이해동)는 올 1월 1∼15일 접수된 12건의 진정사건을 심의한 결과,11건에 대해 재조사를 실시키로 결정했다고 3일 발표했다. 11건 가운데 9건은 1993년 2월25일부터 2005년 12월31일까지,2건은 1993년 2월24일 이전에 각각 발생한 사건이다. 특히 1984년 6월26일 새벽 강원도 동부전선 건봉산에 있는 모 부대 전방 전초(GP)에서 당시 조모 일병이 내무반에 수류탄을 투척하고 총기를 난사한 뒤 휴전선을 넘어 월북한 것으로 발표돼 세간에 충격을 줬던 사건이 재조사 대상에 포함됐다. 이 사건으로 내무반에서 잠자던 한모(당시 23세) 병장 등 사병 15명이 사망하고 11명이 부상했으며 북한은 사건 발생 3일 뒤 대남방송을 통해 조 일병의 월북사실을 발표했다. 그러나 유족들은 한 사람에 의해 26명의 사상자가 나올 수 있는지 등에 대해 의혹을 제기해 왔다. 지난해 6월 경기도 연천에서 발생한 GP 총기난사 사건에서는 8명이 사망하고 2명이 부상했었다. 재조사 사건은 이밖에도 ▲73년 1월20일 3사단 사병 사망 ▲93년 6월30일 37사단 사병 추락사 ▲94년 5월20일 6군단 특공연대 사병 사망 ▲98년 9월28일 해군 1함대 수병 사망 ▲99년 12월23일 50사단 사병 자살 사건 등이다. 또 ▲2002년 7월23일 27사단 사병 사망 ▲2004년 10월17일 2군수지원사령부 사병 사망 ▲2005년 8월9일 1기계화보병사단 사병 사망 ▲2005년 10월26일 30사단 하사 사망 ▲2005년 12월25일 31사단 사병 자살 사건이 재조사 대상에 들어갔다.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공직 초대석] 퇴직앞둔 ‘청사지기’ 강여형 방호실장

    [공직 초대석] 퇴직앞둔 ‘청사지기’ 강여형 방호실장

    “그동안 모두 스물아홉분의 총리를 모셨습니다. 여성부 장관을 하실 때 푸근하게 대해주시던 한명숙 지명자께서 오시면 꼭 서른분째가 되네요.” 33년 동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신새벽이면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의 문을 열어온 사람이 있다. 강여형(57) 방호실장이 그 주인공이다. 강 실장은 1973년 3월 지금은 헐려버린 조선총독부 건물에 있던 옛 중앙청에서 방호직 생활을 시작했다. 그의 업무는 청사 현관에서 총리와 장·차관, 그리고 국가적으로 중요한 국내외 손님들을 맞이하는 일이다. 강 실장은 가장 최근에 떠나서인지 이해찬 전 총리가 아직도 많이 생각난다고 했다. 강영훈 전 총리도 마음에 깊이 각인된 총리였다.“이 전 총리는 퇴임하기 직전 방호실장과 경비대장을 집무실로 부르더니 차를 권하면서 ‘그동안 저 때문에 고생이 많았다.’고 말씀하셨죠. 강 전 총리는 방호실까지 찾아와 직접 격려금을 건넬 정도로 마음 씀씀이가 깊었습니다. 얼마전 청사에서 뵈었는데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더라고요.”방호직으로 처음 모신 김종필 전 총리와 이한동 전 총리도 아랫사람을 부릴 줄아는 분들로 마음에 새기고 있다. 장관으로는 1980년 당시 유일한 여성 국무위원이었던 김옥길 전 문교부 장관이 가장 다정다감했다. 김 전 장관은 청사 방호원과 환경미화원들을 대신동 집으로 초대해 손수 냉면과 빈대떡을 내오면서 ‘음지에서 고생한다.’며 격려했다고 한다. 방호직은 청사 출입자 관리와 보안·방화관리, 의전을 맡는다. 정부중앙청사에만 99명이 있다. 중앙청사의 상주직원은 4000여명, 여기에 하루 평균 내방객도 1000명에 이른다. 강 실장은 30여년 동안 정부청사의 가장 큰 변화는 ‘권위주의’에서 ‘고객 중심’으로 분위기가 바뀐 것이라고 설명했다.1980년대 까지만 해도 중앙청사는 일반인들은 민원이 있어도 감히 찾아올 엄두를 내지 못할 만큼 ‘문턱’이 높았다. 하지만 요즘은 중앙청사를 찾는 민원인은 당당하게 안내를 요구한다. 청사 후문 앞에서는 하루가 멀다하고 시위가 벌어진다. 총리와 장·차관만 이용할 수 있던 정문현관과 전용 엘리베이터도 개방됐고, 군복같던 방호직의 제복도 양복으로 바뀌었다. 강 실장은 매일 새벽 4시30분에 경기도 고양시 오금동 집을 나선다. 출근하는 총리와 장·차관을 영접하고, 퇴근길에도 배웅하려면 근무시간은 다른 직원들보다 길어질 수밖에 없다. 방호직의 수장이지만 현관에서 직접 모시지 않으면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강 실장은 별정직 6급으로 만 57세가 정년. 그의 ‘청사 지킴이 인생’도 오는 12월31일이면 막을 내린다. 퇴직하면 집 근처 텃밭에 야채를 가꾸며 소일할 생각이다. 강 실장은 “청사에서 인생의 절반 이상을 보내면서 결혼하고 아이들도 모두 대학에 보냈다.”면서 “이젠 후배들에게 마음 놓고 자리를 물려줄 수 있을 것 같다.”며 환히 웃었다. 글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이장호 신임 부산은행장“조직 개편 통해 영업력 강화”

    “부산은행을 최고의 지방은행으로 만들겠습니다.” 이장호(59)신임 부산은행장은 30일 “영업력 강화를 통해 부산은행을 최고의 지방은행으로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이 은행장은 취임소감에 대해 “책임감과 사명감으로 어깨가 무겁다.”며 “주주와 고객, 직원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부산은행을 성장, 발전시키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급변하는 금융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신상품 개발팀과 투자금융팀을 신설하고 지역본부장제를 도입하는 등 조직을 개편해 영업력을 강화해 나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지역은행으로서의 역할에 대해서는 “지역 주민 한명한명이 부산은행의 중요한 자산”이라며 “부산시의 10대 전략산업은 물론 기술력 있는 지역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에 대한 자금지원을 확대해 나가겠다.”고 설명했다. 부산은행의 중·장기 비전에 대해 그는 “2010년까지 부산지역 시장점유율을 40%까지 높이고 경남과 울산지역 시장점유율도 20%까지 끌어올려 부산은행을 명실상부한 동남경제권의 중추 금융기관으로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이 은행장은 또 “기업이익의 사회환원을 위해 매년 당기순이익의 일정부분을 공익사업을 위한 기부금으로 지원하는 등 지방은행의 기반인 지역밀착경영을 더욱 활성화시켜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이 은행장은 부산 출신으로 부산상고, 동아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했으며 한국은행과 외환은행을 거쳐 1973년 부산은행으로 자리를 옮겨 국제금융부장, 서울지점장, 부행장 등을 역임했다. 이 은행장은 부행장 재임 중 부산은행의 최대 숙원 사업이던 부산시금고 업무를 유치하는 데 결정적인 공을 세웠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여자학사가수 1호’ 김상희(1)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여자학사가수 1호’ 김상희(1)

    ‘여자 학사가수 1호’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붙는 김상희씨. 또 다른 트레이드마크는 숱 많은 머리카락으로 이마를 가린 헤어스타일, 즉 뱅 스타일이다. 이 ‘김상희식 단발머리 헤어스타일’을 위해 30여년 동안이나 머리를 잘라주는 전속 미용사가 있을 정도다. 본명은 최순강(崔純江). 고려대 법대 61학번. 데뷔곡은 ‘삼오야 밝은 달(61년)’. 풍문여고 재학 시절, 성적 1∼2위를 다퉜던 그녀는 ‘특차시험’을 통해 대학에 합격한 뒤,‘서울 중앙방송국(현 KBS) 전속가수 모집’에 참가, 최고 득점으로 발탁된다.‘구김살 없이 밝고 발랄하면서도 동시에 현명해 보이는’ 이 가수 지망생에게 호감을 느낀 당시 KBS 가요방송 지휘를 맡고 있던 작곡가 손석우씨는 김상희 이미지를 모티브 삼아 노래를 만든다. 바로 ‘삼오야 밝은 달’. 이 노래는 이로부터 한참 뒤인 79년, 한 작곡가에 의해 32소절이 16소절로 바뀐 채 무단 도용되어 ‘십오야(노래 와일드 캐츠)’라는 제목으로 발표, 오히려 대히트하게 된다. 대학에 갓 입학한 김상희가 방송활동이나 가수활동을 집과 학교, 양쪽에 모두 숨겨야 했던 건 유명한 일화다. 이때문에 ‘김상희(金相姬)’라는 예명을 쓰게 된다. 가장 흔한 김씨 성에 친구 이름을 한 글자씩 조합해 만들었다. 이 무렵 얼굴 알려질 게 두려워 공개방송 무대에는 일절 나서지 않았고 녹음방송만으로 가수활동을 해야 했다. 이를테면 ‘얼굴 없는 가수’였던 것이다.‘반쪽 가수’ 김상희는 이 노래를 시작으로 ‘텍사스 루울라’,‘나는 능금’ 등을 연달아 발표하지만 대부분 빛을 보지 못한 채 묻혀버리고 만다.‘얼굴 없는 가수’ 김상희의 반쪽 활동 등이 주요 원인인 것으로 추측해볼 수 있겠다. ‘김상희’라는 이름이 대중들에게 어필하며 제법 인기를 얻게 되는 곡이 ‘처음 데이트(64년)’다. 물론 이 때까지만 해도 김상희씨가 재학중이던 고려대학교에서는 이 가수가 본교생임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고 한다. 워낙 철저하리만치 비밀리에 가수활동을 해왔기 때문이다. “대학 4학년 때 ‘처음 데이트’가 히트되고 있던 어느 날, 공교롭게도 타고 있던 버스가 굴러 가벼운 부상을 당했는데, 마침 학보사 기자가 함께 타고 있다가 신문에 기사화되면서 내가 ‘가수 김상희’였음이 비로소 알려지게 되었다.”고 당시 상황을 털어놓는다. 명문대 여대생이 가수활동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시사하는 대목이다. 65년, 대학 졸업과 동시에 가수로서의 재능을 한껏 펼치기 시작한다.70년대 말까지 매년 히트곡을 꾸준히 발표하며 대형가수로 자리한다. 히트곡들을 대략 꼽아보자면,▲64년-처음 데이트(손석우 곡, 이하 괄호 안은 작곡자) ▲65년-울산 큰애기(라화랑), 오늘같은 날은(손석우) ▲66년-경상도 청년(전오승), 대머리총각(정민섭) ▲67년-코스모스 피어 있는 길(김강섭), 뜨거워서 싫어요(정민섭), 진정 난 몰랐네(김희갑) ▲68년-단벌신사(정민섭), 결혼지각생(김기웅), 빗속의 연가(이철혁) ▲69년-빨간 선인장(김강섭), 당신을 알고부터(남국인), 어떻게 해(신중현) ▲70년-토요일과 일요일 사이(전우중), 홍콩엘레지(김강섭) ▲71년-참사랑(남국인), 사랑의 가족(김학송) ▲72년-팔벼개(민인설) ▲73년-가고 싶어라(김학송), 기다려(남국인) ▲74년-어쩌나(원희명), 황소 같은 사나이(박춘석) ▲75년-나 이제 외롭지 않네(신대성), 행복할 수 있다면(장욱조) ▲76년-주룩비(신대성) ▲77년-즐거운 아리랑(김강섭)등등…. 말하자면 김상희는 당대의 ‘히트 제조기’라 할 수 있는 실력파 작곡가들과 골고루 손잡고 기복 없이 매년 히트곡을 발표해왔다. 그리고 이러한 그녀의 노래들은 비교적 밝다. 그럼에도 방송금지된 곡들도 있다.‘어떻게 해’는 ‘창법 저속’이라는 이유로 금지곡 딱지가 붙여졌다. 또 한곡은 ‘단벌신사’. 이 노래는 당시 북측에서 “지금 남조선에는 ‘단벌옷에 넥타이 두개로 지낸다’는 노래가 불려질 정도로 인민들이 궁핍한 생활을 하고 있다.”고 역선전한 것이 빌미가 돼 방송금지시켰었다. 현재 두 손자를 둔 할머니이자 어느덧 환갑을 훌쩍 넘겼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동안이다. 그녀만의 ‘단발머리’를 휘날리며, 오늘도 TBS 교통방송에서 저녁 8시부터 두 시간 동안 ‘아름다운 서울의 저녁입니다’를 생방송으로 진행하고 있다.(계속)
  • 이스라엘 30년 양당체제 무너지나

    이스라엘 30년 양당체제 무너지나

    이스라엘의 30년 양당체제가 종말을 맞고 있다. 지난 1973년 창당 이래 노동당과 함께 이스라엘 정치의 한 축을 담당해온 리쿠드당의 몰락이 가시화되고 있기 때문이다.28일 치러지는 총선에서 에후드 올메르트 총리 권한대행이 이끄는 카디마당이 1당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극우 성향의 군소정당들이 선전하면서 리쿠드당의 3당 지위마저 위협받고 있다. ●리쿠드,3당 지위도 ‘흔들’ 돌풍의 주인공은 러시아권 이민자 출신의 아비그도 리버만이 이끄는 이스라엘 베이테누(‘이스라엘은 우리집´이란 뜻)당과 극우 종교정당인 국민연합-민족종교당. 이스라엘 베이테누당은 여론조사 공표가 허용된 마지막날인 26일 채널2 텔레비전 조사에서 15석의 예상 의석을 확보,12석에 그친 리쿠드당을 제치고 카디마당(34석)과 노동당(19석)에 이어 3당에 오를 것으로 예상됐다. 국민연합-민족종교당도 또 다른 조사에서 12석을 확보하는 이변을 연출했다. 예루살렘 포스트는 “이스라엘 베이테누당의 상승세가 이어지면서 카디마당과 리쿠드당 모두 지지율이 하락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스라엘 베이테누당의 선전은 전체 유권자의 15%를 차지하면서 빈곤층의 대부분을 구성하는 러시아권 출신 유대인 이민자들의 지지 덕분이다. 예루살렘 포스트는 영토안의 아랍인들을 본국에 돌려보낼 것을 주장하는 이 당의 강령이 정착촌 철수를 추진하는 카디마당과 저소득층 복지 예산을 삭감하려는 리쿠드당에 실망한 러시아권 이민자들의 정서를 파고들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 이들 러시아권 이민자들 사이에서 이스라엘 베이테누당의 지지율은 44%를 기록, 일주일새 무려 9%포인트가 뛰었다. 당의 지지율이 하락하면서 베냐민 네타냐후 리쿠드 당수의 초조함도 극에 달했다. 그는 보수 유권자를 겨냥해 “진정한 대안을 원한다면 이스라엘 베이테누당 같은 ‘위성정당’들에 현혹돼선 안 된다.”며 지지표 결집을 유도했다. ●카디마당 “미사일은 발사됐다” 리쿠드당과 달리 카디마당은 느긋한 표정이다. 당의 선거 운동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아비 디히터 후보는 “미사일은 이미 발사됐다.”면서 “남은 문제는 미사일이 목표물을 명중시키는 것을 지켜보는 일”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혼수 상태에 빠진 아리엘 샤론 총리를 대신해 당을 이끌고 있는 올메르트 대행은 최근의 지지율 하락에 신경이 쓰이는 눈치다. 그는 26일 유권자들을 향해 “2010년까지 국경을 획정하려는 계획이 탄력을 받을 수 있도록 충분한 의석을 달라.”고 호소했다. 영국 BBC방송은 “샤론의 퇴장으로 지지층 일부가 이탈했지만 당 강령인 팔레스타인과의 분리 정책 지속 및 새로운 국경 획정에 대한 합의가 존재한다.”며 카디마당의 승리를 점쳤다. 남아 있는 문제는 카디마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할 파트너가 어느 당이 되느냐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 등은 이스라엘 베이테누당과의 연정 가능성을 점친다. 그러나 AFP 통신은 리버만 당수가 팔레스타인과의 분리 정책을 지지한다는 점에서 올메르트 대행과 일치하지만 요르단강 서안 정착촌 문제에서는 의견이 엇갈린다며 비관적 전망을 내놓았다. 한편 하마스에 의해 팔레스타인 총리로 지명된 이스마일 하니야는 27일 “이스라엘의 어떠한 국경 변화 정책도 거부할 것”이라고 밝혔다. 마무드 아바스 자치정부 수반도 이스라엘의 일방주의는 평화를 지속시킬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외신들은 총선 승리에 고무된 카디마당이 일방적인 국경 획정 계획을 밀어붙일 경우 심각한 갈등이 초래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이건희 회장 활동 재개

    5개월간의 해외체류 끝에 지난달 4일 귀국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오랜 지인이자 사업 파트너인 제임스 호튼 미국 코닝사 회장 일행과 만찬을 함으로써 대외활동을 재개했다고 삼성그룹 관계자가 27일 밝혔다. 삼성그룹에 따르면 이 회장은 지난 24일 삼성그룹 영빈관인 서울 한남동 승지원에서 호튼 회장을 만나 만찬을 함께 하면서 양사간 협력 증진 방안을 논의했다. 코닝사의 한국법인인 한국코닝의 사옥 확장을 축하하기 위해 마련된 이날 만찬에는 이 회장의 장남인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 이윤우 삼성전자 기술총괄 부회장, 송용로 삼성코닝 사장 등 삼성 경영진과 웬델 윅스 사장 등 코닝측 인사들이 동석했다고 삼성 관계자는 전했다. 이 회장과 호튼 회장은 1973년 삼성이 코닝과의 합작으로 삼성코닝을 설립한 이래 수시로 만나 양사의 경영현안을 논의해 왔으며 인간적으로도 매우 가까운 사이인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 관계자는 “이 회장은 발목 부상이 거의 완쾌돼 필요하면 외부 인사들을 만나고 행사 참석도 가능한 것으로 알지만 현재 정해진 일정은 없다.”고 말했다.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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