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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기’ 이승엽, 외국인 경쟁자 물리칠까?

    ‘독기’ 이승엽, 외국인 경쟁자 물리칠까?

    ”올시즌도 안되면 유니폼을 벗겠다.” 이승엽(요미우리)이 독한 마음을 품었다. 이미 하라 타츠노리 감독이 결정한 올시즌 주전 3명에는 이승엽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오가사와라, 라미레즈, 아베’ 만이 경쟁자없이 올시즌을 맞이하게 될 것이란 말이다. 굳이 하라 감독의 말이 아니더라도 이승엽 스스로도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겸손하기로 소문난 이승엽이 벼랑끝에 몰려 있는 자신의 처지를 스스로 돌파하겠다는 마음가짐이기 때문이다. 일본 ‘스포츠호치’는 7일 “이승엽이 연습배팅에서 15개의 홈런을 쳐냈다.” 고 보도했다. 비록 프리배팅이었지만 그동안 그를 괴롭혔던 손가락 부상이 말끔히 치유됐다는 반증이기도 해 어느때보다 반가운 소식이다. 최근 요미우리는 메이저리그 출신인 에드가르도 알폰소(36)를 영입할 움직임을 구체화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이승엽은 기존의 일본선수들과의 주전경쟁 외에 외국인 선수들과의 경쟁에서도 살아남아야 한다. 현재 요미우리 외국인 타자는 이승엽, 디키 곤잘레스, 알폰소, 알렉스 라미레즈 4명이다. 그나마 라미레즈가 올해부터 일본인 신분으로 활약하게 돼 한시름을 놓았지만 어찌됐던 1군에 등록될 4명의 외국인선수 엔트리 경쟁은 치열해질수 밖에 없다. 크룬과 그레이싱어가 붙박이 1군 투수들이라면 남은 엔트리 두자리를 놓고 번사이드-이승엽-곤잘레스-알포소가 경쟁하게 되는 구도다. 덧붙여 작년 10월 일본프로야구 드래프트에서 1순위로 요미우리에 입단한 오타 타이시(20)도 결코 만만히 볼수 없는 선수다. 하지만 알폰소와 오타는 이승엽이 제 기량만 되찾는다면 경쟁상대가 되지 못하는 선수들이다. 알폰소는 메이저리그에서 실버 슬러거상(1999년)을 수상할 정도로 타격이 좋았던 선수였다. 실버 슬러거는 각 포지션에서 가장 타력이 뛰어난 타자에게 수여되는 상이다. 알폰소는 2루수로서 그해에 타율 .304 27홈런 108타점을 기록했었다. 하지만 2006년 LA 애인절스와 토론토 블루제이스를 끝으로 최근 2년동안 메이저리그에서 그의 모습을 볼수 없었고 최근 도미니카 원터리그에서 활약한게 전부다. 더군다나 허리 부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평가마저 있는터라 제 기량을 발휘할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한동안 그의 이름을 들을수 없었던 것도 허리부상 치료에 전념했기 때문이란 후문이다. 또한 1973년생으로 더 이상의 전성기를 맞이할수 있는 나이대가 아니라는 점도 이승엽 입장에서는 안심이 되는 부분이다. 알폰소의 주 포지션은 2루지만 3루수비도 가능한 선수다. 일각에서는 그가 예전의 기량을 되찾는다면 3루수 오가사와라를 1루로 돌리고 알폰소가 그 자리를 대신할수 있어 이승엽의 입지가 불안할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지만 ‘보험용’ 이상의 의미는 없다고 본다. 오타 역시 입단 당시 요란했던 ‘괴물 신인’ 이미지에서 차츰 그 거품이 빠지고 있는듯한 느낌이다. 2월 1일부터 일본 미야자키 선 마린 스타디움에서 시작된 요미우리 스프링캠프에서 오타의 문제점들이 하나둘씩 발견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3루 수비가 거칠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는데 요미우리 수비코치인 후쿠오 아키히토(45)는 “오타를 올시즌 당장 1군 무대에서 쓰기엔 무리가 따른다. 개막전 엔트리에 들어갈수 있을지도 미지수” 라며 아직은 더 프로적응을 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스프링캠프 첫날부터 하라감독이 직접 일대일 지도를 할만큼 관심을 모았지만 신인의 한계를 들어낸 것이다. 또한 오타는 선마린 스타디움을 들어가지도 못한채 비주전급들과 함께 보조구장에서 훈련하고 있다. 그동안 이승엽은 외부의 그 어떤 압박이 있을지라도 자신의 몫만 열심히 하면 된다는 입장을 여러차례 밝힌바 있다. 비록 시즌 개막까지는 한참이나 남았지만 지금과 같은 훈련량과 페이스라면 충분히 예전의 모습을 보여줄수 있을것으로 예상된다. 한시즌 부진했다고 아무나 이승엽의 자리를 넘볼수 있는게 아니다. 부상전력이 있는 늙은 알폰소, 그리고 신인의 한계를 들어낸 오타의 현재 기량으로 봤을때 이승엽이 본연의 모습만 되찾는다면 올시즌 1루자리는 경쟁자가 없을것으로 전망된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일본프로야구통신원 윤석구 rock7304@hanamil.net@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사설] 육박전보다는 필리버스터가 낫다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그제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통해 필리버스터(합법적인 의사진행방해) 제도 도입을 제안했다. 민주당 등 야당은 홍 원내대표가 함께 제안한 국회폭력방지특별법에는 반대의 목소리를 냈으나 필리버스터 제도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지난 연말연초 국회에서는 망치와 소화기, 욕설과 몸싸움이 난무했다. 해외 언론들이 이를 자세히 보도함으로써 국제적으로 망신살이 뻗쳤다. 필리버스터 제도가 일부 부작용에도 불구, 험한 육박전보다는 낫다고 본다.미국·영국 등 의회정치 선진국들은 필리버스터를 다수당과 소수당의 갈등 해소방안으로 활용하고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저서 ‘담대한 희망’에서 “필리버스터는 다수의 횡포 위험을 차단하는 방화벽”이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야당인 공화당 소속 저드 그레그 상원의원을 상무장관에 지명했는데 공화당의 필리버스터를 예방하기 위한 결정이라는 논란이 일었다. 그런 관측은 오해에서 비롯된 것임이 밝혀졌지만 필리버스터는 그만큼 다수당이 소수당을 의식하고, 배려하는 제도로 정착될 수 있다.우리나라에서도 1960년대까지 필리버스터 제도가 있었다. 야당 의원이 10시간 발언으로 여당의 일방 안건처리를 지연시킨 전례가 있다. 박정희 정권 시절인 1973년 효율성을 앞세워 의사진행발언 시간을 엄격히 제한하면서 필리버스터가 불가능해졌다. 야당이 필리버스터 제도를 악용해 다수결원칙 자체를 무력화시켜서는 안될 것이다. 미국도 그런 일을 막기 위해 상원 재적 5분의3이 찬성하면 토론을 이어가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보완장치가 마련된다면 필리버스터 제도 도입을 머뭇거릴 이유가 없다. 국회의장실과 회의장을 점거하고,멱살잡이를 하며 싸우고, 국회 경위들이 동원되는 것보다 점잖게 말로 시간을 끄는 게 낫다. 그러면서 막후 협상을 더 하다 보면 접점을 찾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 [자치구 2009 핵심사업] 문병권 중랑구청장

    [자치구 2009 핵심사업] 문병권 중랑구청장

    “상봉 재정비촉진지구를 도시경관과 디자인이 어우러진 고품격 도심으로 개발하기 위해 올 한해 아낌없는 지원을 할 것입니다.” 문병권 중랑구청장은 3일 상봉재정비사업을 통해 상봉1·2동과 망우본동 일대를 상업, 업무, 문화 복합기능을 지닌 서울의 동북권 중심거점지역으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망우묘지공원의 묘지 이전 추진과 중랑 생태문화공원 조성 등 ‘녹색도시 사업’을 핵심과제로 꼽았다. 문 구청장은 “지역 개발과 공원화 사업을 통해 구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일에 매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원산업 부지에 48층 건물 분양 중랑구는 올해 초에 상봉재정비촉진계획을 수립한 뒤 상반기부터 서둘러 도시환경정비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계획에 따라 도로망이나 공원 등 기반시설을 하나씩 확충할 예정이다. 특히 상봉재정비촉진지구의 강원산업 부지에 초고층 복합건물을 짓는 공사가 서울시 건축위원회의 심의를 통과함에 따라 상반기 안에 착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문 구청장은 “초고층 복합건물은 지상 48층 높이 185m에 이르는 1개 동과, 지상 43층 높이 160m인 2개 동 등 총 3개 동으로 이뤄지며 3월쯤 분양 승인이 날 것으로 보고 있다.”면서 “이 건물에 2만 6000㎡ 규모의 대형 학원가를 유치해 교육환경 개선의 디딤돌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또 지하철 망우역은 쇼핑몰과 문화시설이 들어서는 복합역사로 건립하기 위해 한국철도공사와 협의를 거쳐 현재 개발방식과 세부 시행계획을 세우고 있는 중이다. ●중랑생태문화공원 5월 착공 추진 망우묘지공원의 묘지 이전을 계속 추진하면서 중랑생태문화공원 착공에도 적극 나선다. 망우리 공원은 서울 동쪽을 굽이쳐 흐르는 한강과 경기 남양주 일대, 불암삼, 수락산까지 조망할 수 있는 수려한 경관을 자랑함에도 1933~73년에 안치된 묘지 때문에 ‘공동묘지의 대명사’로 인식돼 왔다. 문 구청장은 “부정적 인식을 벗고자 올해 약 1000기 이상의 묘지를 비롯, 2010년부터는 약 4000기의 무연고 묘지를 이전할 계획이다.”면서 “묘지가 이전된 곳에는 다양한 종류의 나무를 심고 산책로를 정비해 역사와 테마가 살아 숨쉬는 시민공원으로 조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망우본동 241의 20 일대에 총 593억원을 들여 중랑생태문화공원도 조성한다. 서울시와 협의를 진행한 결과 5월 착공을 앞에 두고 있다. 14만 7666㎡ 규모의 공원을 가족휴양, 생태학습, 청소년 문화, 숲 탐방존으로 나눠 조성할 예정이다. 백민경기자 white@seoul.co.kr
  • [포스트 김정일시대 어디로] 부자세습+집단지도 ‘과도체제’ 부상

    [포스트 김정일시대 어디로] 부자세습+집단지도 ‘과도체제’ 부상

    “‘포스트 김정일 시대’ 준비, 가속화됐다?”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지난달 23일 왕자루이(王家瑞)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을 만나 건재를 과시했다. 지난해 9월 건강 이상설 이후 첫 외국손님 접견이자 대외적으로 건강한 모습을 처음으로 내보인 것이다. 그렇지만 올해 67세인 김 위원장의 뒤를 이을 후계자 문제는 피해갈 수 없는 숙제로서 부담을 더하고 있다. 김정일의 절대권력을 고려할 때 그의 공백과 후계구도는 북한의 향후 진로는 물론 한반도, 동북아 정세에 큰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3월8일 국회격인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가 6년만에 예정돼 있어 권력 엘리트들의 교체 등 후계구도를 위한 세대교체 움직임이 가시화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소도 지난해 말 펴낸 ‘2008년도 정세 평가와 2009년도 전망’에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를 통해 중폭의 세대교체를 단행하는 등 후계체제 구축을 위한 기반을 조성할 것으로 분석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모두 후계자 선정 등 김정일 이후의 후계체제 정비를 가속화할 것이란 전망이다. 그렇지만 김정일이 당장 자신의 뒤를 이을 후계자를 공식적으로 드러내놓고 지명하거나 공표할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우선 선호하는 후계자를 위한 인적 물갈이 등 조직 정비에 나서면서 후계를 위한 환경을 만들어 나가는 데 중점을 둘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노동당의 움직임도 지적되고 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남북한관계 실장은 2일 “북한의 핵심 권력기관인 조선노동당에서 후계자 영도체제를 준비하는 것으로 보이는 움직임들이 감지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당 조직 지도부가 김경옥 부부장을 전국 시·도 당 지부를 관할하는 제1부부장에 임명, 전국적인 조직망 강화에 박차를 가한 것도 후계 구도 수립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 교수는 “북한은 이미 ‘인민 추대, 수령의 차세대, 수령 생존시 결정’이란 후계자 선정 기준을 갖고 있다.”면서 “후계자가 정통성을 갖기 위해서, 주요 지위에서 일정 기간 역할과 성과를 보여주는 후계 학습의 과정을 거치지 않을 수 없다.”고 분석했다. 김정일도 1973년부터 후계 수업을 받아왔지만 공식적인 후계자로 지명된 것은 1980년 당 조직 지도부장이 되면서였다. 현재 김정일의 세 아들은 모두 김정일과 같은 ‘후계 수업’을 거치지 않아 권력 기반이 약하다. 때문에 당과 군의 연합 성격을 띠는 집단지도체제 시나리오가 설득력을 얻는다. 우뚝한 인물이 없는 상황에서 김정일을 정점으로 한 집권세력들은 기존 체제가 무너지지 않고 연착륙하면서 점진적인 권력 진화를 시도하려 할 것이란 주장이다. ‘포스트 김정일’과 관련, 가장 중요한 고려사항은 부자세습 가능성 여부다. 북한은 건국 이래 수령제 통치체제를 다져왔고 봉건적인 북한의 정치문화와 스탈린주의에 가까운 사회주의적 특성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김일성, 김정일에 이은 3대 세습도 불가능하지 않다는 분석이 많다. ‘수령에게 절대적인 충신과 효자가 되라.’는 가르침이 뿌리박혀 있는 북한 상황에서 부자세습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토양이 만들어져 있다는 것이다. 김정일의 세 아들이 과거 김정일과 같은 치밀한 세습 준비를 받지 못한 데다 누구도 두드러진 역할을 보이지 못하는 상황에서 김정일의 지위를 누가 잇더라도 최소한 과도기적으로는 군과 당의 실력자들로 구성된 집단지도체제에 기대야 하는 상황이란 점에서 부자세습과 집단지도체제의 결합은 유력한 시나리오로 설득력을 갖는다. 양무진 교수는 “당 중심 국가인 북한에서 선군 정치로 군부가 득세했다 하더라도 후계 체제를 구체화하기 위해선 당을 중심으로 한 논의와 공론화가 필수적”이라면서 “군부 실력자들은 과도기적인 권력이양기에 역할을 할 수 있지만 상징적, 실질적인 후계는 당의 정통성을 기반으로 한 인물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절대권력의 김정일이 누구를 낙점하든 일단은 그가 대권을 이어받게 될 것이란 점에는 이견이 적다. 다만 뿌리를 내리고 권력을 장악할지 아니면 잠시 권좌에 올랐다가 밀려날지는 후계자 자신과 둘레 인물들의 능력에 달려 있다. 1976년 사망한 마오쩌둥(毛澤東)은 후계자로 화궈펑(華國鋒)을 내세웠지만 화는 몇 년 버티지 못하고 덩샤오핑(鄧小平) 에게 밀려나면서 과도기적인 인물로 그친 예도 있다. 당시 중국과 달리 북한에는 김정일 친위세력에 맞설 만한 파워 그룹이 없다는 것이 다른 점이다. 이석우 선임기자 jun88@seoul.co.kr
  • 로맨틱 토요일, 특별한 프러포즈

    로맨틱 토요일, 특별한 프러포즈

    최근 3년 동안 제과업체들의 2월 초콜릿 매출은 조금씩 성장해 온 것으로 30일 확인됐다. AC닐슨 조사에 따르면 전년 동기 대비 2월 매출 증가율은 2006년 13.81%, 2007년 18.88%, 2008년 3.87%인 것으로 추산됐다. 초콜릿 시장 자체가 성숙기에 접어든 점에 비춰 보면 2월14일 밸런타인 데이의 영향력이 작용했음을 짐작해볼 만한 대목이다. 이 기간 크레파스 초콜릿으로도 불렸던 ‘카카오 99% 초콜릿’ 등의 제품이 나와 ‘카카오 열풍’을 일으킨 시기를 제외하곤 초콜릿 매출 수준이 매년 비슷했다는데 업계는 동의했다. 그럼 이 통계는 최근 3년 동안 연인의 숫자가 증가했다는 의미가 될까. 가능성이 없지 않지만, 업계는 여기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밸런타인 데이에 가족이나 동료 등 지인에게 초콜릿을 선물하는 분위기가 형성된 게 2월 매출 성장을 이끌었다는 설명이다. 이른바 ‘우정 초콜릿’의 역할이 부각됐다는 것이다. 여성이 연인에게 초콜릿을 선물하는 날인 밸런타인 데이의 원래 의미 자체가 마케팅적인 측면에서는 제약이 된다는 시각도 있다. 롯데제과 관계자는 “제과업계, 특히 규모가 큰 업체들은 이미 빼빼로 데이(11월11일)의 매출과 성장 잠재력이 밸런타인 데이보다 큰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빼빼로를 사서 지인들에게 무차별적으로 줄 수 있는 빼빼로 데이가 ‘특별한 사람에게만’ 선물하는 날인 밸런타인 데이보다 제품을 많이 팔기에 좋은 환경이라는 설명이다. 그런데 올해 밸런타인 데이는 토요일로 주말이다. 지인에게 선물하는 초콜릿의 양이 줄어들 수 있다는 뜻으로 제과업계들이 긴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대신 설 연휴 이후 마케팅 기간이 2주 정도로 다른 때보다 긴 점은 기회로 작용한다. 지난해의 경우 설이 2월7일로 마케팅 기간이 일주일에 불과하기도 했다. 업계는 다시 신제품 출시와 이벤트 개최 카드를 꺼내 들었다. 오리온은 겉의 초콜릿을 베어 물면 안에 다른 초콜릿이 나오는 오리온의 투유 로맨틱 36.5와 초코와 딸기의 2개 층으로 구성한 투유 스윗하트 등을 신제품으로 출시했다. 허쉬코리아는 사랑 고백뿐 아니라 “힘내라.”는 응원의 메시지를 함께 선물할 수 있는 유고걸 패키지 등을 내놓았다. 롯데제과는 카카오 함량을 높인 드림카카오 제품들을 세트로 구성했고, 팬시바구니 세트 등을 내놓았다. 1973년 첫 선을 보인 가나초콜릿의 인기도 여전할 것으로 기대했다. 화이트엔젤 등 화려한 포장의 제품을 내놓은 해태제과는 제품에 맞춰 포장용 금박 상자나 리본 등을 증정하는 행사를 하기로 했다. 이벤트로는 사랑 전달 방법을 사진과 동영상으로 올린 사람을 추첨해 아이팟 터치, 베니건스 마켓오 식사권 등을 증정하는 오리온의 ‘사랑을 전하는 365가지 방법’, 곰TV 홈페이지에 프러포즈 사연을 응모한 고객 가운데 4명을 선정해 커플링 등을 증정하는 훼미리마트의 ‘여우들은 알고 있다’, 프리미엄 피자 주문 고객 중 추첨된 300명에게 2월14일 피자를 배달해 주는 미스터피자의 ‘러브피자 이벤트‘ 등이 있다. 거꾸로 아워홈 다이닝은 싱글족을 겨냥했다. 메짜루나와 루825, GS업타운다이너 등에 비치된 카드로 신청하면 결혼정보업체 듀오가 주관하는 스피드 미팅파티 참가 기회를 준다. 지난해 멜라민 파동의 기억이 남아 있는 점을 노려 ‘초콜릿의 아성’을 파고드는 상품들도 생겼다. 천지양은 “사랑과 함께 건강도 챙길 수 있는 선물”이라며 남성용 홍삼인 천지력과 홍삼청을 추천했다. 한국인삼공사 정관장의 활기단, 한삼인의 6년근 홍삼순액 등이 업계의 추천 상품이다. 브라운은 “(초콜릿처럼) 먹어 없어지지 않고 계속 쓸 수 있는” 10만~30만원대 면도기를 2월 한달 동안 2만~4만원 할인한다. 샴페인 브랜드 돔 페리뇽은 “남들과 다른 특별함을 경험할 수 있도록” 고가의 리미티드 에디션 돔 페리뇽 로제 러브 기프트 박스(66만원) 60세트를 백화점에서 판매한다. 하이네켄은 “초콜릿은 덤으로 받을 수 있게” 다크 비어 2병을 마시는 고객에게 키세스 다크 초콜릿을 증정하는 행사를 다음날 28일까지 전국 600여개 바에서 진행한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김성호 선임기자의 한국서 길찾는 이방인] (34) 멕시코 출신 천주교 자양동 성당 주임 추규응 신부

    [김성호 선임기자의 한국서 길찾는 이방인] (34) 멕시코 출신 천주교 자양동 성당 주임 추규응 신부

    서울 광진구 자양3동 553의 339, 뚝섬유원지역 옆 천주교 자양동 성당은 ‘외국인 성당’으로 더 잘 알려진 본당. 외국인 신자들이 모여 사는 공간이 아니라 주임 신부가 외국인이기 때문에 한국 천주교계에서 유명한 성당 이름이다. 서울지역 217개 천주교 본당 가운데 유일하게 외국인 신부가 주임을 맡고 있는 성당. 이곳에서 신도들과 가족처럼 어울려 나누며 살아가는 주임은 다름아닌 멕시코 출신의 추규응(65·본명 가브리엘 카시자스) 신부이다. 어릴 적부터 선교사의 꿈을 키워 선택한 나라 한국은 이제 추규응 신부에겐 고향이나 다름없는 특별한 인연의 땅. “주님이 원하는 그 날까지 모든 사람과 하느님의 은총을 나누고 살겠다.”는 소신의 선교사제이지만 신앙을 포함한 모든 것에 앞서 사람이 우선이라는 신념과 원칙을 변치 않고 지키며 한국인으로 남아 있는 눈 푸른 신앙인이다. 아파트가 사방에 병풍처럼 휘둘러선 빌딩 숲에 마치 작은 섬처럼 오똑하니 자리잡은 자양동 성당. 허름한 작은 문 턱을 살짝 넘어드니 성당 왼편에 성모상이 손을 벌려 객을 먼저 맞는다. 눈을 들어 성당 구석구석을 훔치고 있자니 성경을 옆에 낀 작달막한 체구의 사제가 총총걸음으로 성당을 들어선다. “손님을 기다리게 해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내미는 손이 차갑다. ‘매일 조금씩이라도 걸으라.’는 의사의 간곡한 주문을 지키려 시간 날 때마다 인근 한강공원을 찾는단다. 6년 전 대장암 진단을 받아 항암치료 중인 사제치곤 건강해보인다. “아무 문제없이 평안하다.”는 환자 사제의 웃음 띤 얼굴. 교적 신자 5000명 가운데 주일 미사 참석률이 60%를 웃돈다는 성당의 면모가 읽힌다. 지난 1월4일 주임 신부가 됐지만 이 성당 보좌신부로 일한 지는 4년째. 전 주임신부가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기는 바람에 주임을 맡게 됐지만 보좌신부나 주임신부나 다를 것이 아무 것도 없단다. “그저 살아온 대로 살아갈 뿐이지요. 오히려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과 멀어질까 두려울 따름입니다.” 쉬는 신자(냉담자) 없는 교회 만들기가 꿈이라는 노 사제. 그래서 자리에 앉아 큰소리만 치는 주임이란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찾아갈 수 있는 모든 곳으로 발품을 판다. 1975년 성수동 본당의 작은 공소로 시작한 성당. 이젠 신도 수 5000의 굵직한 성당으로 우뚝 섰으니 그동안 생겨난 공동체가 오죽 많을까. 보좌신부 시절부터 초등부와 중고등부,청년부를 이끌며 사목해온 사제이니 신자들이 얼마만큼 그를 필요로 하는지 묻지 않아도 뻔할 터. 주임 신부가 되어서도 평일 아침 미사와 주일 미사는 물론 빈첸시오회, 연령회, 요셉회 등 성당의 크고 작은 신행, 봉사단체 모임이며 행사에 빠짐없이 참석한다. 이른 아침 고백성사와 미사부터 시작해 하루종일 이런저런 모임 챙기기에 바쁘다. 1969년 한국 땅을 처음 밟은 추 신부는 어릴 적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 어머니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고 한다. 어머니는 기도할 때마다 “아들 가운데 한 사람을 꼭 하느님의 종으로 불러달라.”는 말을 빼놓지 않았을 만큼 유별난 신앙의 소유자였던 것 같다. 멕시코의 작은 농촌 쿠아우티틀란에서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그는 어머니를 따라다니며 버릇처럼 선교사가 되겠다는 말을 해 고향에서 ‘테로’라는 별명을 얻었다. 테레사 수녀의 이름에서 딴 멕시코식 애칭이다. 그가 멕시코 본국의 교구 사제로 살아가길 바랐던 어머니와는 달리 정작 추 신부는 동양의 선교사가 되길 원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14살 때 동양에서 선교사의 길을 걷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어머니는 “정 뜻이 그렇다면 내가 죽을 때까지 기다려달라.”며 물러서지 않았고 그 말을 남긴 지 6개월만에 사별했다. “나 때문에 어머니가 빨리 세상을 뜬 것만 같아 가슴에 못이 박혔지만 큰 뜻을 이루기 위해 제 길을 가야했습니다. 어머니의 뜻을 따르지 못해 죄송했지만…” 중고등학교 소신학교를 멕시코에서 다녔지만 신학대는 한국에서 마친 독특한 이력의 사제. 멕시코시티 선교회 신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하던 무렵 먼저 한국을 다녀간 선교사들로부터 한국 이야기를 전해듣고는 주저없이 한국행을 자원, 혜화동 서울신학대를 거쳐 광주 대교구 김대건신학대를 졸업하고 사제서품을 받았다. 한국 신학대를 졸업하고 멕시코로 건너가 사제서품을 받는 자리에서 ‘빨리 한국에 갈 수 있도록 해달라.’는 서원을 했다고 하니 한국을 향한 그의 마음이 어땠는지 짐작할 수 있다. “한국의 사람들과 문화는 생각보다 훨씬 더 멋졌어요. 계획한 일을 이루기 위해 자신을 던져 열심히 사는 모습이며 노인 공경, 특히 명절 때 먼 길을 마다않고 고향으로 달려가는 사람들의 훈훈한 정은 아주 인상적이었지요.” 사제서품 후 곧바로 한국 생활을 시작해 거친 본당만도 전남 고흥을 비롯해 서울 자양동, 광주 쌍촌동,전남 순천 조곡동 등 5~6곳. 그동안 멕시코 과달라하라 소신학교 성소 지도신부와 멕시코 선교회 신학대 부학장,로마 우르바노 대학 신학 사목위원, 멕시코 선교회 운영위원장 소임을 맡기도 했지만 마음은 늘상 한국을 향해 있었다고 한다. 결국 멕시코에서의 일을 마친 뒤 간청 끝에 12년 만에 한국 땅을 다시 밟았다. 순천 조곡동 본당 주임을 맡은 지 얼마 안돼 혈변을 보곤 이상하게 여겨 병원을 찾아 대장암 진단을 받았다고 한다. “빨리 수술해야 한다.”는 의사의 말을 들었지만 한국을 떠날 수 없다는 생각에 한국을 고집했지만 결국 주위의 권유에 떼밀려 멕시코로 옮겨 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6개월만에 억지를 부려 한국으로 돌아왔다. 수술 받을 때며, 퇴원 후 멕시코에서 항암치료를 받던 무렵 자신의 쾌유를 위해 한국의 조곡동 성당 신자들이 밤낮 끊임없이 기도를 이어갔다는 소문을 나중에야 전해들었다고 한다. 지난 연말 병원을 찾아 재검사 끝에 “대장암 발병 징후가 없다.”는 소견을 듣고 가장 먼저 한국의 신자들을 떠올렸다는 추 신부. 5년간의 투약 탓에 당뇨, 고혈압 합병증을 얻었지만 두려운 게 없단다.“나를 위해 기도하는 신도들이 있고 내가 있어야 할 존재의 이유, 즉 한국 사람들을 떠올릴 때마다 새로운 용기를 얻게 됩니다.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인터뷰 동안에도 노 사제를 찾아 보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결국 모임에 잠시 다녀오겠다며 신부가 자리를 비운 사이 어려운 고비가 닥칠 때마다 의지하곤 한다는 성경 구절을 찾아보았다. “…내가 그들을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그들을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그들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요한복음 17장) 어느 순간 돌아와, 성경을 읽어내려가는 기자의 뒤에 섰던 노 사제가 말을 보탠다. “사제는 하느님의 부름을 받아 그 부름에 응한 대리인들이 아닐까요. 큰 사랑을 받은 사람이기 때문에 그 사랑을 나누는 것 뿐입니다. 당연히 차별하지 않은 채 사랑하고 사랑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언제 어디서건 봉사할 준비를 해야 하지요. 한국은 제가 그 준비를 하며 살아가는 땅입니다.” 글 사진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추규응 신부는 ▲1944년 멕시코 쿠아우티틀란 출생 ▲1967년 멕시코시티 선교회 신학교 철학과 졸업 ▲1969년 9월 한국 입국 ▲1973년 광주 대교구 김대건신학대 졸업 ▲1974년 멕시코에서 사제서품 ▲1975년 한국 재입국 ▲1975~1978년 전남 고흥본당 주임 ▲1978~1979년 서울 자양동 본당 사목 ▲1979~1982년 멕시코 과달라하라 소신학교 성소 지도신부 ▲1982~1984년 광주 쌍촌동 본당 주임 ▲1984~1988년 멕시코시티 선교회 신학대 부학장 ▲1988~1990년 로마 우라바노대학서 신학사목 ▲1990~2002년 멕시코 선교회 운영위원장 ▲2002년 12년만에 한국 귀환 ▲2003년 대장암 진단, 멕시코서 수술후 한국귀환 ▲2003~2004년 순천 조곡동 본당 주임 ▲2004~2008년 자양동 본당 보좌신부 ▲2009년 1월 자양동 본당 주임신부
  • 조중연 51대 축구협회장 당선 “CEO 수장 되겠다”

    정몽준(58) 회장의 뒤를 이어 대한축구협회를 이끌 새 수장으로 조중연(63) 협회 부회장이 선출됐다. 1928년 조선심판협회를 전신으로 첫 발을 뗀 협회의 총사령탑에 경기인이 오른 것은 처음이다. 협회는 22일 서울 홍은동 그랜드힐튼호텔에서 대의원 총회를 열어 제51대 협회장으로 조 부회장을 뽑았다. 조 후보는 28표 중 18표를 얻어 10표를 받은 허승표(63·피플웍스 회장) 후보를 따돌렸다. 임기는 2013년 1월까지 4년. 정몽준 전 회장은 총회에서 명예회장으로 추대됐다. ●MJ 복심으로 통하는 ‘축구 행정’ 달인 신임 조 회장은 “정치인이나 기업인이 이끌어 온 협회에 처음으로 상근하는 수장이 될 것”이라면서 “그동안 쌓은 행정 경험을 살려 최고경영자(CEO) 스타일로 협회를 운영하겠다.”고 말했다. 허 후보는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결과에 승복하고 어려운 여건에서 10표나 얻어 창피하지 않다.”면서 “일말의 성과도 있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허 후보는 이번 선출 방식에 강한 불만을 털어놓기도 했다. 조 회장은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전무를 맡아 성공적으로 대회를 치렀다. 파주 대표팀트레이닝센터(NFC) 건립과 월드컵 4강을 일군 대표 선수들의 군 문제 해결에도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축구행정의 달인’이라는 평가를 들을 정도로 조정 능력이 뛰어나며, 정몽준 전 회장의 ‘복심’으로 통한다. 조 회장은 당선 기자회견에서 “지난 16년은 월드컵 유치와 개최 등 대외적으로 반경을 넓힌 시대였다면, 이제 사회적으로나 축구발전 면에서 내실을 기할 때”라면서 “시·도협회와의 끈끈한 협조, 사무총장 공채 등을 통한 인적·정책적 통합으로 축구인 화합을 이루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찢긴 축구인 화합 등 산 넘어 산 충북 보은 출신으로 중동고-고려대를 졸업한 조 회장은 1965년 청소년대표팀에 발탁돼 유망주로 떠올랐다. 73년 산업은행을 끝으로 선수생활을 마친 뒤 고려대 코치를 시작으로 프로 울산에서 코치(83~85년)와 감독(85~86년) 등 지도자를 지냈다. 모교 중동고 감독(90~94년)이던 92년 협회 이사로 행정에 첫 발을 뗀 이후 전무(98~2004년)와 기술위원장(98~99년)을 거쳐 2004년 부회장에 올랐다. 그러나 그에게는 난제도 놓여 있다. 표 대결에서 보듯, 갈기갈기 찢긴 축구인들의 화합이 선결 과제다. 협회장이 지명하는 중앙대의원(5명)이 투표권을 행사하는 데 따른 불만 등 제반 문제점을 어떻게 개선하느냐가 관심이다. 특히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예선을 넘어 7회 연속 본선 진출이라는 국민적 염원은 그가 중심에 서서 반드시 해결해야 할 숙제이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만나고 싶었습니다]‘국회의원 역도선수’ 황호동 前 신민당 의원

    [만나고 싶었습니다]‘국회의원 역도선수’ 황호동 前 신민당 의원

    ‘국회의원 역도선수 황호동’을 기억하시나요. 1973년 9대 총선에서 야당인 신민당 소속으로 전남 장흥·강진·영암·완도에서 당선된 황호동(73) 의원. 110㎏에 180㎝의 거구인 그는 이듬해 이란 테헤란에서 열린 제7회 아시안게임에 국회의원 신분으로 역도 선수로 출전해 은메달을 땄다. 그해 서울신문은 9월 6일자 1면 기사에서 “역도 슈퍼 헤비급 黃鎬東선수(국회의원)가 132.5㎏으로…은메달을 보탰다.”고 보도했다. 현역 국회의원이 국제대회 선수로 뛰었던 일이나, 메달을 딴 것은 그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그런 황 전 의원을 전직 국회의원들의 사랑방인 서울 을지로 헌정회 사무실에서 만났다. 박정현 논설위원 jhpark@seoul.co.kr 그를 만나자마자 가장 궁금했던 국회의원 역도선수가 된 배경부터 물었다. “아시안게임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 김택수 당시 대한체육회장으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이 왔어요. 북한이 아시안 게임에 참가하는데, 아무래도 북한과 메달 한두 개를 놓고 순위경쟁을 할 것 같으니 선수로 뛰어달라는 얘기였지요.” 역기를 놓아버린지 10년이 넘었고, 아시안게임이 코앞에 다가와 있었다. 그런데도 김택수 회장에게 “진작에 말하지 그랬느냐.”고 말하는 그의 마음 속에는 이미 출전 결심이 서 있었다. ●슈퍼헤비급 체중 통과하려 맹물 엄청 마셔 황 전 의원은 출전을 하려던 이유에 대해 “내 의지를 테스트해보기 위해서였다.”고 설명했다. 선수생활을 그만둔 10년의 세월과 젊음을 뛰어넘어 국제경기에 출전하는 것 자체가 그에게는 삶의 도전이었던 것이다. 결심은 했지만 국회의원이 아시안게임에 출전한다고 하면 “미쳤나 보다.”는 말을 들을까 봐서 친한 대학 선배 한 명에게만 출전 사실을 알렸다. 그리고는 38세의 노장 역도선수는 태릉 선수촌으로 들어갔다. 유신헌법으로 여야가 첨예하게 대치할 무렵 야당 의원이 정부 측의 요청에 덥석 응했다면 이상한 눈길을 받았을 터. 그는 태릉선수촌에서 합숙훈련을 하다 TV에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나오자 욕설을 하면서 “왜 또 나왔어?”라고 소리를 지르는 강한 야당성향을 보여줬다. 그리곤 그의 모습은 두 차례나 선수촌에서 며칠씩 사라졌다.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가 있는 남산에 끌려갔다 왔던 것이다. 짧은 기간에 가장 어려운 것은 훈련의 강도 보다 몸무게였다. 슈퍼헤비급에 출전했지만 훈련을 해도 몸무게는 늘지 않았다. 아시안게임에서 몸무게를 재기 몇시간 전부터 맹물을 엄청나게 마시고 간신히 통과했다. 그리고 은메달을 땄다. 한국대표팀은 금메달 16개·은메달 26개로 4위, 북한은 금메달 15개·은메달 14개로 5위였다. 냉전이 한창일 당시였기에 남북 승부 결과는 국민적 관심사였던 시절이었다. 중학교 때부터 역도로 다져진 그는 당시로서는 거구였다. 그래서 고려대 경제학과 재학 중인 1956년에 ‘고려대 덩치’ 4명에 선발됐다. 4명은 신익희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호에 투입됐다. 하지만 신익희 후보가 선거를 불과 10일 남기고 유세 도중 돌연 숨지면서 학교로 돌아가야 했다. 그의 큰 덩치는 국회의원이 돼서도 인기를 누렸다. 여야 대치가 있을 때면 전면에 나서달라는 요구는 그에게 돌아왔던 것이다. 1972년의 10월유신으로 8대 국회가 해산되고 실시된 총선에서 탄생한 9대 국회에서는 극심한 유신반대 투쟁이 벌어졌다. 김영삼 신민당 총재는 개헌 추진을 위한 대여 강경투쟁 노선을 선택했다. 공화당은 국회(현 서울시의회) 건물 문을 걸어잠그고 운영위를 열어 야당이 발의했던 개헌특위구성결의안 폐기를 시도했다. 복도에 몰려 있던 신민당 의원들은 “황호동 의원 어디있어?”라고 찾았다. 불려나간 황 의원은 회의장 문짝 아래 위를 두 손으로 잡고 틀었다. 그가 문을 틀어놓는 괴력을 발휘하고 있는 사이에, 다른 이가 틈 사이로 손을 넣어 문고리를 열었다. 문을 부수지 않고도 회의장 진입에 성공한 것이다. 하지만 이미 결의안 폐기가 선언되고 난 뒤였다. 해머와 소화기가 등장한 35년 뒤의 18대 폭력국회 장면을 보면서 소감이 어땠을까. 그는 “요새 정치 싸움은 치열해요. 무슨 시장 깡패들도 아니고….”라고 평가했다. 그는 “당시에는 나를 김두한에 비유하기도 했지만, 나는 비폭력주의자였어요. 김영삼 총재 시절에 여야가 부딪치기는 했지만 의자에 앉아서 말로 싸웠지, 저런 폭력은 쓰지 않았어요. 지금 야당이 너무 지나치다고 봐요.”라고 혀를 찼다. 그리고는 “매우 저질 국회요. 대통령에 국회 해산권이 없으니까 국회가 자진해산해야 할 판이오.”라고 발언의 수위를 높였다. ●여야 대치때 선봉섰지만 난 비폭력주의자 개헌특위구성결의안이 폐기되자 김영삼 총재는 가두시위를 벌이고 청와대까지 쳐들어가자고 했다. 그때 황 의원이 나서 “바깥에 경찰이 쫙 깔려 광화문에도 못갈 판에 무슨 청와대를 가느냐.”고 반대했다. 주변에서 “기운 센 사람이 왜 반대하느냐.”는 핀잔이 쏟아졌지만 황 의원은 “기운이 세니까 반대한다.”고 아랑곳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당시에는 야당 내에서도 파벌 대립으로 폭력 사태가 벌어지곤 했다. 1975년 신민당 옥천·보은·영동지구당 개편대회에서 나선 이용희 후보를 지원하기 위해 중앙당에서 최형우 사무차장이 파견됐다. 최 사무차장은 현지에서 다른 후보를 지지하는 당원들로부터 폭행을 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하지만 적어도 국회 내에서는 폭력이 없었다고 그는 회고했다. 이철승 계보였던 그는 호남출신이면서 김대중보다는 김영삼을 지지했다고 한다. 국회의원 유세장에 갔더니 연설대 위에 김대중을 지지하는 발언을 해달라는 메모가 올라와 있었다. 그는 메모 요구대로 하기는커녕 김대중 욕을 실컷 하고 내려왔다. 그리고 10대 총선에서 낙선했다. 황 전 의원은 인터뷰를 마친 뒤 헌정회 사무실을 나서면서 “지금 국회는 너무 사납다.”면서 “참을성을 키워서 국회와 국회의원의 존엄성을 스스로 지켜나가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 어떻게 지내시나요 1주에 3일 신장투석… 정부 지원금으로 생활 황호동 전 의원은 몇년째 투병 중이다. 신장기능에 문제가 생겨 1주일에 3일을 병원에 가서 투석치료를 받는다. 그래서 인터뷰 날짜도 병원에 가지 않는 날로 잡았다. “건강은 어떠시냐.”는 질문에 “한번에 피를 4㎏씩 투석하고 나면 어지러워서 계단에서도, 길에서도 넘어지기 일쑤요.”라고 말했다. 아시안게임 슈퍼헤비급 은메달리스트여서 장미란 선수를 연상하면서 인터뷰에 나갔지만 황 전 의원은 ‘키 큰 전직 의원’ 모습이었다. 한때 어른 허리만했다는 팔뚝은 여느 70대와 큰 차이가 나지 않아 보였다. 병과 싸우느라 약간 지쳐보였지만 목소리는 정정했다. 요즘도 하루에 담배 한 갑 반을 핀다고 했다. 병원비는 어떻게 감당하느냐는 질문에 “처음에는 일반 병원에 다녔지만 요즘은 종교단체에서 투석을 하기 때문에 돈은 들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돈 얘기가 나오자 황 전 의원은 “집이 워낙 좁아서…. 응접실이 없어서 손님을 집으로 오라고 하지를 못해요.”라고 했다. 나이 등을 감안해서 자택으로 인터뷰를 가겠다던 기자를 굳이 말리고 헌정회 사무실을 고집했던 데 대한 해명인 셈이다. 전남 강진 갑부였던 조부로부터 140여평의 불광동 주택 등 부동산 몇 채를 물려받았지만 남은 것은 30평짜리 아파트뿐이라고 했다. 정부 예산에서 전직 국회의원에게 지급되는 100만원으로 생활을 한다. 이 가운데 자신의 용돈은 20만원, 나머지 80만원으로 부인과 함께 생활을 한다. 생활비가 적지 않으냐고 하자 “우리 사회와 경제가 어느 상황인데, 이 정도면 고마워해야지요.”라고 손사래를 친다. 컨테이너 박스를 개조해서 생활하는 박영록 전 국회 부의장의 사정에 비하면 자신은 낫다는 얘기로 들렸다. 그가 10대 국회에서 낙선하고 나서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고 난 뒤에 정치규제에 묶여버렸다. 그 뒤에 그는 정치계를 떠났다. 떠난 이유를 물으니 “돈이 없어서….”라고 했다. 그의 국회의원 시절에는 낭만과 멋이 있었던 듯했다. 국회의원 시절 월급을 타는 날이면 당시 국회의사당 부근의 무교동 다방에는 대학 후배들이 그득했다고 한다. 월급봉투를 들고 다방에 들어가서 후배들과 만나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월급을 나눠주다 보면 월급 봉투는 금방 비어버렸다. 때로는 집으로 찾아오는 후배들을 빈 손으로 보내지 못해 용돈을 쥐어줬다고 했다. ●황호동 前 신민당 의원 ▲ 73세 ▲ 전남 강진 출생 ▲ 강진 농고 졸·고려대 경제학과 졸 ▲ 9대 신민당 소속 국회의원(전남 강진·장흥·영암·완도) ▲ 3선개헌반대범국민투쟁위 발기위원 ▲ 신민당 중앙당 청년지도국장 ▲ 체육훈장 백마장 [서울신문 다른 기사 보러 가기] 선씨 종부 ‘350년 간장’ 인터넷에 팔았더니 무슨 일이 벌어졌나 뉴타운이 애물단지가 된 이유 또 다른 철거민들…세운상가 떠난 이들의 겨울 29년만에 벗은 ‘간첩 누명’
  • [용산 철거민 강제진압 참사]민간 재개발 문제없나

    20일 서울 용산4 재개발 사업구역에서 발생한 참사는 민간의 재개발 사업장에서 발생한 사고라고 해도 서울시가 추진 중인 뉴타운·재개발·재건축 사업 전반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이날 참사 소식을 보고받은 자리에서 “철저한 경위 파악과 함께 차제에 개별적인 재개발 방식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점검하라.”며 각종 개발사업과 관련된 종합대책 마련을 지시했다. 앞서 서울시 주거환경개선정책 자문위원회는 “세입자 주거대책을 마련하고 원주민 정착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개별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재개발·재건축 사업을 뉴타운 사업과 묶어서 구역에 따라 종합적으로 개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서울시에 제안한 상태다. ●세입자들, 대체상가 마련 요구 철거민 6명이 사망한 용산4구역 재개발 참사는 사업주체인 재개발사업조합과 재개발에 반대해온 일부 세입자들이 이전 비용을 놓고 갈등을 빚으면서 촉발됐다. 재개발조합은 세입자들에게 법적으로 규정된 휴업보상비 3개월치와 주거이전비(집세) 4개월치 외에는 보상금을 더 지급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던 반면 세입자들은 “조합이 지급하는 보상비로는 생계와 주거를 이어갈 수 없다.”며 강력히 반발해 왔다. 특히 상가 세입자들은 대체 상가를 마련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행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에 따르면 재개발·재건축사업 등의 사업주체는 세입자들에게 영업보상비와 주거·동산 이전비 등을 지급하도록 명시돼 있다. 그러나 용산4구역뿐 아니라 거의 모든 재개발·재건축 지역에서 조합과 세입자들이 보상비와 이전비를 얼마나 책정하느냐를 놓고 첨예한 대립을 빚고 있다. 문제는 재개발사업의 경우, 관할 구청장으로부터 관리처분인가만 받으면 보상·이주비 협의가 이뤄지지 않더라도 사업주체가 강제 철거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관리처분인가 전 단계인 사업시행인가를 받으려면 전체 조합원의 75% 이상 동의해야 한다. 조합이나 시공사는 협의가 이뤄지지 않아 사업기간이 길어지면 그만큼 비용이 늘어나기 때문에 단전·단수는 물론이고 철거용역업체를 동원해서라도 강제 철거에 나서는 게 다반사다. 이 과정에서 보상비나 이주비를 받지 못한 세입자들과 극심한 마찰이 불가피한 것이다. ●뉴타운 재개발사업도 차질 우려 현재 서울시에서는 뉴타운 사업 대상지 26개 지구(219개 구역)와 도시환경정비사업(옛 도심재개발사업) 대상지 45개 지구를 비롯해 시내 곳곳에서 다양한 형태의 주거환경 정비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서울시는 시범 뉴타운에서 3차 뉴타운까지 26개 지구의 사업구역(1277만㎡)이 1973년부터 지난해까지 36년간 지정된 전체 재정비 구역면적의 66%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뉴타운의 경우 철거작업이 시작돼 이주 수요가 발생하는 등 사업이 본격화되는 ‘관리처분인가’ 지역이 올해 19개, 내년 48개, 2011년 73개 구역에 이른다. 그러나 이번 참사를 계기로 철거민 등 전체 세입자들의 목소리가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어서 재정비 사업 전반에 대한 재검토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사업추진에 차질도 예상된다. 전국 뉴타운·재개발·재건축 비상대책위원회연합은 이날 “개발사업을 시행하기 전에 반드시 주민 의견을 묻는 작업이 이뤄져야 한다.”며 재개발·재건축조합의 일방적 사업 추진에 반대했다. 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권력기관장 인사] 원세훈 국정원장 내정자

    원세훈 신임 국정원장 내정자는 이명박 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운 측근 인사들 중에서도 핵심으로 꼽힌다. 이 대통령의 서울시장 재직 시절 서울시 행정1부시장에 발탁돼 3년 가까이 서울시 행정을 주도적으로 보좌했다. 이때 쌓은 신임을 바탕으로 이명박 정부의 첫 행정안전부장관에 발탁됐고, 1년도 안 돼 다시 국가 정보를 총괄하는 국가정보원장에 올랐다. 정통 관료 출신이 국가정보원장에 오른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그동안 국정원장 자리는 정보 업무의 특성과 대통령에 대한 충성도 등을 감안해 군출신과 검찰 등 법조인 출신이 독식하다시피 했다. 원 내정자는 관료 출신임에도 충성도와 정보 업무면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셈이다. 서울시 소속 세종문화회관 사장 출신인 김주성 국정원 기조실장과 호흡을 맞춰 본 경험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원 내정자는 언행이 직선적이고 소신이 뚜렷한 원칙주의자로 꼽힌다. 꼼꼼한 일처리가 돋보인다는 평가다. 일하는 선이 굵고 전체 의사결정이 시원시원하다. 반면 성격이 급하고 눈앞에서 직원들을 거침없이 다뤄 미움을 사기도 한다. 1973년 행정고시(14회)에 합격한 원 내정자는 내무부 관료로 강원도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1977년 서울시에 발을 들인 뒤 1995년 서울 강남구청장을 거쳐 서울시에서 보건사회국 국장, 공무원교육원 원장, 시의회 사무처장, 상수도사업본부 본부장, 경영기획실장, 행정1부시장 등을 지냈다. 원 내정자는 이 대통령의 주요 인맥 중 하나인 ‘서울시’ 측근그룹의 핵심으로 분류된다. 이 대통령이 시장에 취임하면서 경영기획실장을 맡아 인사와 재정을 총괄하다가 행정1부시장으로 전격 발탁됐다. 이 대통령이 청계천 복원과 중앙버스전용차로 도입 등에 매달리는 동안 서울시 인사와 재정 등 안살림을 챙겼다. 이후 2006년 6월 퇴임하는 이 대통령을 따라 공직 생활을 접고 대선이 한창이던 2007년 10월 이 대통령의 정책분야 상근 특보를 맡았다. 한나라당 네거티브대책단에서 서울시팀장으로 상암동 DMC 의혹을 방어하는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다. ▲경북 영주(58) ▲서울고 ▲서울대 법학과 ▲행정고시 14회 ▲강남구청장 ▲서울시 상수도사업본부장 ▲시의회사무처장 ▲기획예산실장 ▲경영기획실장 ▲행정1부시장 ▲이명박 후보 상근특보 ▲행정안전부 장관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연못 물까지 식수원으로 활용

    겨울가뭄이 장기화하면서 자치단체들이 연못 물까지 식수원으로 쓰는 등 가뭄극복을 위한 극약 처방에 나서고 있다. 강원 태백시는 지난해 9월 시작된 가뭄으로 광동댐이 폐광지역에 대한 식수와 생활용수를 평소의 30% 수준으로 줄여 내보내자 황지연못 물을 식수원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태백시는 하루 100여t의 황지연못 물을 취수해 백산정수장에서 소독과 여과과정을 거친 뒤 문곡소도동 소롯골 등 고지대에 공급할 계획이다. 황지연못은 둘레 100m의 연못으로 하루 2000t의 물이 솟아나고 있다. 태백시는 가뭄이 3월 말까지 이어지면 광동댐 바닥의 물까지 취수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고 지하관정 개발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153개 마을 2만여명이 제한급수를 받고 있는 전남지역도 가뭄 때문에 ‘물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강진군은 공무원 비상근무 체제로 들어가 소방차량과 관용차량을 이용해 물이 부족한 지역에 비상급수에 나서는 한편 21억원을 들여 강진읍 송현마을 등 20여개 마을에서 관정개발에 나서기로 했다. 신안군의 섬 가운데 하나인 임자도는 하우리마을 보조수원지에서 물을 공급받고 있다. 전남도 관계자는 “이미 마을별로 관정 70개를 파 식수문제를 부분적으로 해결했고 다음달 말까지 123개 마을에서 공사 중인 관정공사를 마칠 계획”이라고 밝혔다. 충북 제천시도 물 부족 마을에 대해 관정을 개발하기로 했다. 제천 덕산면 방학1리의 경우 다음주 중에 관정개발이 시작될 예정이고 제천 봉양읍 공전1리에서도 조만간 관정개발 공사가 진행된다. 제천 덕산면 삼전리는 지방상수도 공사를 하기로 했다. 지난해 전국 강수량은 1973년 이후 5번째로 적은 평년의 78%에 그쳤다. 전국종합 태백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이춘규 선임기자 글로벌 뷰] 소띠해마다 세계 경제위기 소처럼 우직하게 극복하라

    최근의 소띠 해마다 세계적인 경제위기가 반복됐다. 소띠 해의 경제학이다. 1973년에는 제1차 석유위기가 세계를 강타했다. 85년에는 미국의 무역·재정적자 해소를 위한 플라자합의가 있었다. 97년은 아시아 금융위기, 2009년은 미국발 경제 위기다.경제위기 때마다 한국은 도약기반을 다졌다. 73년 1차 석유위기는 각국 경제에 심대한 타격을 가했지만, 한국은 지나친 석유의존 경제에서 탈피하는 기초를 다졌다.85년 플라자합의는 국가별로 다른 영향을 미쳤다. 미국 레이건 정부는 무역과 재정 쌍둥이 적자 위기에 빠졌다. 타개책으로 9월 뉴욕 플라자호텔에서 G5(미국·일본·독일·영국·프랑스) 중앙은행 총재들이 달러화 가치를 하락시키기로 합의, 엔화가치는 급등했다. 1달러당 260엔이던 엔화는 1년도 안돼 120엔대로 급상승했다. 일본은 엔고불황을 우려해 저금리 정책을 시행, 투기붐으로 거품이 끼었다. 일본 경제의 규모는 환율효과로 상대적으로 확대돼 미국자산 사들이기, 해외여행붐이 일었다. 결국 91년부터 경제거품이 붕괴되면서 ‘잃어버린 10년’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상당수 경제학자들은 “플라자합의를 계기로 일본기업의 해외진출이 가속화되고, 국제경쟁력을 강화해 일본경제 체력이 강해졌다.”고 평한다. 미국은 추가조치를 통해 적자를 축소, 위기에서 벗어났다.외채에 허덕이던 한국에는 긍정적이었다. 엔화 급등의 반사이익으로 주력산업 수출품의 국제경쟁력이 좋아졌다. 무역흑자국으로 전환, 국부가 증가했다. 근로자들의 재분배 욕구 등으로 폭발, 87년 민주화로 이어진다.97년 아시아 외환위기 때 한국은 처음 국가부도 위기를 맞았다. 국민들이 금·달러 모으기에 나서 1년도 안돼 외환위기를 극복해 내는 저력을 발휘했다. 올해도 도약을 위한 준비의 해가 될 수 있을까. 미쓰비시UFJ증권 경기순환연구소는 올해의 위기를 “정책실패도, 시장의 실패도 아니다. 3개(단기·중기·장기)의 경기순환 사이클이 만난, 50~60년 경기순환의 골짜기일 뿐이다.”며 상승 전환을 예측했다. taein@seoul.co.kr
  • 겨울가뭄 … 사람도 작물도 ‘아우성’

    전국이 ‘물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지난해 전국의 강수량이 1973년 이후 5번째로 적은 평년의 78%에 그치는 등 가뭄이 지속되고 있는 탓이다. 제한급수가 실시되고 소방차들이 급수지원에 나서고 있다. 저수지 저수율이 뚝 떨어져 봄철 농업용수 공급 차질이 우려되고 겨울철 농사도 망쳤다.전남지역에서는 16개 시·군 153개 마을 2만여명이 제한급수를 받고 있다.신안 흑산도와 임자도, 진도 일부섬 등 7~8개 섬은 지난해 가을부터 제한급수 중이다. 계곡수를 식수로 이용하는 순천과 구례, 곡성 등 일부 산간마을도 제한급수 지역이다. 경북 영덕군은 이달 말까지 가뭄이 계속되면 영덕읍과 남정면 일대의 경우 하루 5시간, 다음달까지 계속되면 12시간 제한급수를 해야 한다. 3월까지 비가 내리지 않으면 격일제 제한급수 및 운반급수까지 들어갈 전망이다.태백, 정선 등 강원 남부지역도 제한급수에 나서기로 했다.지난해 9월 이후 계속된 가뭄으로 광동댐 저수율이 지난해 같은 기간의 30%에 불과해 앞으로 눈이나 비가 오지 않을 경우 생활용수를 1개월 정도밖에 공급할 수 없는 처지다.태백시는 1단계로 오는 11일까지 누수지역 및 동파 예상구간 단수를 통해 광역상수도량의 5%를 감축하고, 12일부터 14일까지 2단계로 아파트단지, 식품위생업소 등에 대한 급수조정을 통해 광역상수도량의 30%를 줄이기로 했다.15일 이후에도 가뭄이 계속될 경우 3단계로 지역별 제한급수를 통해 광역상수도량의 50%를 감축하기로 했다. 충북지역에서는 3개 시·군 196가구 585명이 소방서의 비상급수지원을 받고 있다.겨울가뭄은 농사도 망쳐놨다.한창 출하할 시기인 부산 강서구 명지동 대파 농장에서는 한숨만 나오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남부지역에 가뭄이 들면서 수분 공급이 되지 않아 대파가 제대로 자라지 않기 때문이다. 1만 9800㎡의 밭에 대파를 키우는 최모(60)씨는 “지난해에는 평당 8000원가량의 소득을 올렸지만 올해는 3500원에 그칠 것 같다.”고 한숨지었다.한국수자원공사에 따르면 국내 14개 용수댐의 저수율은 38.8%로 예년 평균 46.7%에 비해 낮다. 15개 다목적댐 평균 저수율도 41.4%로 예년 평균 50.2%보다 떨어지는 것으로 파악됐다.사회2부 종합
  • “가뭄 올 상반기까지 지속”

    겨울 가뭄이 심각해지고 있다. 지난해 여름부터 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시작된 가뭄이 올 들어서도 지속될 뿐더러 중부 지역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가뭄은 올 상반기까지 지속될 전망이다. 기상청은 8일 “지난해 7월부터 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지속되고 있는 가뭄이 올 상반기까지 이어질 것”이라며 “4월 제주도에 고사리가 필 무렵 약간의 장맛비(일명 고사리 장마)가 내리는 경우가 있는데 확률이 극히 낮기 때문에 여름 장마가 시작되는 6월이 돼야 가뭄이 해소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매년 겨울과 봄에는 가뭄이 있었다. 하지만 지난해 여름과 가을, 비가 적게 내린 상태에서 겨울 가뭄으로 연결돼 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극심한 물 부족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기상청은 “통상 연간 강수량의 60∼70%가 여름에 집중되는데 지난해 7∼8월에는 이례적으로 고온건조한 북태평양 고기압이 남부 지역에 오래 머물러 50%도 채 내리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예년에는 통상 2~3개의 태풍이 우리나라에 영향을 미치며 200~300mm 정도의 많은 비를 뿌렸지만 지난해에는 1개만 영향을 끼쳤던 점도 장기 가뭄의 요인으로 작용했다. 지난해 전국 강수량은 1973년 이후 5번째로 적은 평년의 78%에 그쳤다. 올 들어서는 서울과 상당수 내륙 지역에도 단 한 차례의 눈이 내리지 않는 등 가뭄이 확산되고 있다. 김승훈기자 hunnam@seoul.co.kr
  • 목포해양대 총장에 추병직 전 장관

    추병직(60) 전 건설교통부 장관이 제5대 목포해양대 총장으로 선출됐다. 추 전 장관은 8일 목포해양대에서 교직원들을 대상으로 치러진 총장 임용후보 추천 선거에서 결선투표까지 가는 접전 끝에 최주열(57·기관시스템공학부 교수) 후보에 신승을 거뒀다. 추 후보는 오상고, 경북대를 졸업하고 영국 버밍엄대 대학원 주택정책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73년 행정고시(14회)에 합격하면서 공직에 들어섰다.목포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 주대환 그는 누구인가

    ‘네 차례 투옥에 세 차례 낙선’ 주대환 사회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에 따라다니는 이율배반이면서 서로 맥이 통하는 꼬리표다.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의 ‘지적 설계자’ 그리고 정당운동 이론가로서의 삶이 오롯이 담겼다. 1954년 경남 함안에서 태어나 1973년 서울대 종교학과에 입학했다. 민청학련사건 등에 연루돼 네 차례 복역했다.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을 기획했고 2004년 6월 정책위 의장에 당선됐다. 지난해 2월 분당 때 당적을 정리하고 현재는 사회민주주의연대를 만들어 좌파 진보의 새 활로 모색에 열심이다. 지하조직 경력과 달리 그는 부드럽다. 말할 때도 한참 생각한 뒤에 어렵게 한땀 한땀 내뱉는다. 지난해 책 ‘대한민국을 사색하다’를 읽어본 이들이라면 그가 참 오래 생각하는 좌파란 것을 감지할 것이다. 2시간 인터뷰 며칠 뒤 이메일을 세 차례나 보내 말하지 못했던 바를 부연했다. 그런 사람이다. 1982년 이후 정기적으로 월급을 받아본 적이 없어 부인이 생계비를 댔지만 본인은 어떻게든 돈을 마련해 활동했단다. 처남이 이병천 강원대 교수. 아들 둘은 모두 고등학교까지만 학비를 댔고 대학 교육은 ‘대한민국 덕에’ 각기 다른 방식으로 해결했다.
  • “진정한 좌파라면 대한민국을 긍정하라”

    “진정한 좌파라면 대한민국을 긍정하라”

    ■ 왜 진보에 길을 묻나  지리멸렬이다. 좋게 말하면 암중모색이고 거칠게 얘기하면 방향 상실이다. 우리 사회의 개혁과 근본적인 변혁을 갈망해온 진보진영 얘기다. 지난해 초 민주노동당은 종북주의 청산을 놓고 분열했고 대중은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연이은 ‘촛불’로 보수 우파정권은 막다른 골목에 내몰렸지만 이 과정에 좌파나 진보진영의 목소리를 찾기는 힘들었다. 지금도 여의도에서 계속되는 신자유주의 정부 여당과 ‘초록이 동색’인 야당의 틈바구니 속에서도 ‘왼쪽’의 목소리는 찾기 힘들다. 서울신문은 신년 온-오프라인 공동기획 ‘’진보‘에 길을 묻다’ 시리즈를 주대환 사회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전 민주노동당 정책위 의장)와의 인터뷰로 문을 연다. 글로벌 금융위기에 자본이나 노동,시민사회 할 것 없이 할퀴고 상처받는 이즈음,악전고투하는 좌파와 진보진영의 새로운 진로 모색을 지켜보는,흔치 않은 기회가 될 것이다.  15일자에 게재되는 2회에선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교수로부터 글로벌 금융위기의 진단과 전망,다음달 임시국회로 처리가 미뤄진 정부 여당의 금산분리 완화 정책 등에 대해 들어본다. ■ 주대환 사회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 일문일답  -언젠가 인터뷰에서 스스로를 말이 없는 사람,혼자 있고 싶어하는 사람으로 표현하셨는데 선거에 몇번 나가는 바람에 많이 극복이 되신 건가요.  “아마도 지하조직 생활을 많이 해서,지하조직 생활이라는 게 항시 미행이라든지 감시를 당한다고 생각하니까,조직원들끼리도 서로 자주 만나질 못하고 특히 저는 조직에서 중요한 핵심부에서 활동하니까 거의 사람을 많이 못 만나는 생활을 오래 했지요.그래서 습관이 그렇다는 거고.선거를 세 번이나 출마하면서 대중화됐다는 걸 강조하기 위해 그런 말을 한 것 같아요.”  -요즈음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합니다.  “마산이 집이니까 마산에서 살고 제 아내가 생계를 위해서 일을 합니다.저는 말하자면 주부지요.남성주부.글쎄 오래된 것 같은데 전 전업주부라고 주장은 하는데 제 식구들이 전업주부로 인정 안해주고 반업주부로 인정하지요.”(웃음)  -책 같은 것도 사모님 버시는 걸로 사시는 건지  “그런 것까지 얘기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제 처하고 저는 결혼생활 28년 됐는데 돈 만원도 서로 빌리면 반드시 갚습니다.그래서 제가 활동하는 활동비는 한 푼도 제 아내한테서 받지 않았습니다.”  -책을 읽으며 참 생각을 많이 하시는 분 같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때 반장선거에서 당선된 적이 있는데 여자친구들 표를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그때부터도 제 자신의 마음 속에 여성적인 면도 있지 않나,저 자신 그렇게 느끼고 있거든요.여성들과 잘 어울리고 남자친구들이 여자친구들을 괴롭히면 그게 상당히 싫고 그렇더라구요.”  -책을 보신 분 가운데 안 좋은 반응이 있다면.  “책이 나온 지 얼마 안돼서.제가 조금 실망스러운 반응 같은 거는 하루 만에 다 읽었다든지,너무 쉽다,피상적이다 하는,조금 더 깊은 연구를 바란다 이런 것이었습니다.저로선 결코 쉬운 얘기들이 아니다.저로선 굉장히 많은 용기를 내서 오래 생각을 해서 한 얘기인데 예를 들면 비유가 적절할지 모르지만 산은 산이다 물은 물이라고 하더라도 정말 오랫동안 생각하고 평생을 탐구하니깐,한 후에 산은 산이다 물은 물이다라고 할 수 있는 거잖아요.결국 상식으로 돌아온다.이제 상식으로 돌아와서 하는 얘기를 그저 흘려 들으면 듣는 사람 몫이겠지요.”  -책을 쓴 동기를 간략하게 설명하신다면.  “저는 이제 나이도 많고 저와 같이 민주화운동이나 노동운동을 했던 분들도 먼저 가신 분들도 많고 어떻게 보면 제 인생을 정리하고 새로운 뭔가 새롭다기 보다도 더 먼 미래를 생각하고 있는 중인데요.그런 점에서 저는 우리 마음 속에 민주화운동으로부터 유래됐던 좌파 또 노동운동가들 사회주의 운동을 한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의 마음 속에 무엇이 문제인가,잘못됐는가 이런 것들을 깊이 성찰하고 반성하고 새롭게 나갈 어떤 방향이라도 제가 잡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게 제 유일한 관심사고 희망이지요.제가 말하자면 먼 훗날의 세대들을 위해서 우리 세대의 잘못이라든지 한계라든지 반성해서 앞으로 이렇게 나아가는 것이 좋겠다는,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없겠지요.”  -좌파나 진보진영에 몸담은 이로선 “대한민국을 긍정해야 한다.”는 얘기가 쉽지 않을 텐데.  “이 얘기는 굉장히 길 수도,복잡할 수도 있는데요.우선은 대중의 입장에서 국민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답이 나오는 문제라고 생각하거든요.그러니까 국민 대중들은 특정한 사상 이념 이데올로기 등을 기준으로 보는 게 아니잖아요.국민 대중들은 어떻게 보면 얄밉도록 이기적인,대중 자신의 이해관계에 충실하게 보는 거든요.국민 대중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대한민국이란 나라도 건국할 때부터 그 이후 60년의 발전과정 역시 그런대로 괜찮은 나라다.아니 뭐 어쩌면 절대적인 게 없다고 전제한다면 상대적으로 본다면 대한민국 만한 나라도 드물다는 것이 대중의 정서고 관점이고 느낌일 것 같습니다.그런 관점에서 보자.또 대중이 왜 그렇게 보는가를 깊이 이해해야 되겠지요.연구를 해보니까 대한민국이 건국 당시부터 우선 사회경제적 토대에서 건국과 거의 동시에 토지개혁을 했습니다.이 토지개혁이 어떤 학자들에 의해서는 한계가 있다,동기가 그렇다 하지만 그런 건 대단하지 않다.토지를 분배받은 농민의 입장에서 보자 이거지요.이런 일들은 수백년에 한번 일어날 만한,예를 들어 우리나라 같으면 고려에서 조선으로 바뀔 때나 있을 법한 일이다.세계사적으로도 볼 때도 그렇게 흔한 일이 아니거든요.필리핀 같은 데서는 토지개혁이 항시 정치적인 슬로건으로 제시됐지만 아직도 토지개혁을 하지 못하고 있거든요.그만큼 힘든 일이라는 거지요.기득권 저항도 거세고 하기 때문에.전 농민이,국민의 70%가 농민이었는데 조그만 땅덩어리 하나를 나눠 가졌다는 엄청난 거지요.”  정리 인터넷서울신문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주대환 누구인가  ‘네 차례 투옥에 세 차례 낙선’ 주대환 사회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에 따라다니는 이율배반이면서 서로 맥이 통하는 꼬리표다.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의 ‘지적 설계자’,그리고 정당운동 이론가로서의 삶이 오롯이 담겼다.  1954년 경남 함안에서 태어나 1973년 서울대 종교학과에 입학했다.민청학련사건 등에 연루돼 네 차례 복역했다.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을 기획했고 2004년 6월 정책위 의장에 당선됐다. 지난해 2월 분당때 당적을 정리하고 현재는 사회민주주의연대를 만들어 좌파 진보의 새 활로 모색에 열심이다.  지하조직 경력과 달리 그는 부드럽다. 말할 때도 한참 생각한 뒤에 어렵게 한땀 한땀 내뱉는다. 지난해 책 ‘대한민국을 사색하다’를 읽어본 이들이라면 그가 참 오래 생각하는 좌파란 것을 감지할 것이다. 2시간 인터뷰 며칠 뒤 이메일을 세 차례나 보내 말하지 못했던 바를 부연했다. 그런 사람이다.  1982년 이후 정기적으로 월급을 받아본 적이 없어 부인이 생계비를 댔지만 본인은 어떻게든 돈을 마련해 활동했단다. 처남이 이병천 강원대 교수. 아들 둘은 모두 고등학교까지만 학비를 댔고 대학 교육은 ‘대한민국 덕에’ 각기 다른 방식으로 해결했다. ■ 주대환의 못다한 얘기  2시간에 걸친 인터뷰 며칠 뒤 주대환 대표는 기자에게 이메일을 보내왔다.하고싶은 얘기를 다 못했다는 취지였다.해서 그의 못다한 얘기를 정리했다.  책 ‘대한민국을 사색하다’를 쓰면서 돌아보니 저희들 세대는 5.16의 밥을 먹고 4.19의 시를 읽으면서 자랐습니다.5.16과 4.19를 다 취한 것이 현명한, 아니면 똑똑한,아니면 탐욕스런, 아니면 교활한 이 땅의 민중이었습니다.이 민중의, 백성의, 국민의 복잡하고 변화무쌍한 마음을 이해하고 싶었습니다.“”민심은 천심“”이라고 했지만 이 말에는 정치하는 사람이 받들어 모시고 따라야 한다는 뜻도 있지만 바로 복잡하고 변화무쌍하여 알기 어렵다는 뜻도 있다는 것이 저의 독창적(?) 해석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랜 반성과 사색 끝에 “”상식“”으로 돌아가서 “”물은 물이다 산은 산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그러므로 장석준(진보신당 정책실장)은 전혀 헛다리를 짚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정직”“이란 단어를 키워드로 삼고 싶습니다.  저는 다만 정직하게 제가 보고 경험한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정치적 고려나 누구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 혀를 꾸부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그것이 마치 제가 좌파의 내부고발자라고 되는 듯이 비치고 오늘도 조선일보 논설위원 어느 분이 칼럼에 저를 거명했다던군요.  마지막으로 제가 강조하는 사회민주주의는 바로 양극화라는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유럽형 복지국가를 만들지 않고서는,선진국으로 갈 수 없는 현재의 한국에 꼭 필요한 이념입니다.그리고 자본주의를 넘어서니 마니 하는 따위의 ”“공론(空論)”“이나 ”“허언(虛言)”“을 일삼는 좌파가 아니고 당장 생존의 위협에 노출된 영세자영업자와 비정규직 노동자와 청년 실업자의 생존의 문제를 해결할 방법에 몰두하는 좌파의 정치철학입니다.  그리고 오랜 역사로 다양한 경험을 축적하여 풍부한 정책을 가진,국민 대중 모두에게 공신력있는 정치 이념이고,더욱이 해석의 폭이 넓어서 다양한 좌파를 아우를 수 있는 정치철학입니다.  그래서 저는 평생 해오던 노동당을 포기한 저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고 나이도 이미 많은 제가 일체의 정치적 사심을 버리고 순수하게 대한민국의 지식인들과 정치인들과 시민운동가와 노동운동가들에게 이제 자기의 정체성으로 고백하자, 정체성으로 돌아가자,아무런 세속적이거나 정치적 고려없이 자기의 정체성이 ”“사회민주주의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다 모여 보자 라고 제안하는 것입니다.그것이 <사회민주주의연대>를 만들자는 제안입니다.  그것은 바로 대안야당이 되지는 않습니다.그러나 바로 그런 힘이 형성되어야 좌파의 재구성도 이루어지고 대안야당의 올바른 방향이 제시되어 일이 제대로 되리라고 보는 것입니다.즉 뉴라이트의 <선진화재단>이나 <시대정신>이 보수에서 하는 역할과 비슷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유전자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현실의 모든 사물이 그러하듯이 온갖 요소들이 다 있습니다.그런데 새삼 보니 “”평등“”이라는 유전자가 너무나 뚜렷하더라는 것입니다.그리고 그 “”평등“‘이란 유전자는 한강의 기적의 가장 근원적인 원인이라는 것이 저의 주장이니 우파에게는 매우 위협적인 주장입니다.  그리고 좌파는, 만약 민족주의에 포획된 엉터리 좌파가 아니라면 ”“평등”“”이라는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대한민국 속에서 발견하고 또 그것이 가진 힘을 발견하니 매우 반가운 소리인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래서 현명하고 똑똑한 인민이, 백성이, 국민이 대한민국을 긍정하니, 인민이, 백성이, 국민이 긍정하는 대한민국을 좌파도 긍정하자는 것이고,그들이 긍정하는 이유로, 긍정하는 만큼만 긍정하자는 것입니다.“”인민과, 국민과 함께하는 좌파“”가 되자는 말이지요.
  • 새해에는 이런 뉴스만 들렸으면 ③국제

    한국시간으로 4일 새벽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에 진입,박격포로 응사하는 팔레스타인 무장세력 하마스와 치열한 교전을 벌이고 있습니다.2일 제가 써놓은 기사는 정반대 상황을 ‘희망’하고 있습니다.  인터넷서울신문의 신년 기획 ‘새해에는 이 뉴스만 들렸으면③ 외신’을 정리하면서 전 가자지구에 평화가 찾아왔다는 어줍잖은,서푼짜리 희망을 드러내 보였습니다.기사를 쓰면서도 내내 머릿속이 정리되지 않고 어지러웠던 것은 간단찮은 현실 때문입니다.사실 이 기사를 쓰기 시작한 것은 지난달 31일이었습니다.하지만 나날이 전달되는 참상은 제가 이런 희망을 품는 일조차 하릴없는 일로 만들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오늘 아침 이스라엘 지상군 투입 직전에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하마스를 테러리스트 집단으로 규정하고 로켓포 공격을 중단하라고 촉구해 이스라엘을 두둔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습니다.국제사회는 연일 목소리를 높여 이스라엘의 과도한 군사력 동원을 규탄하는데 미국과 이스라엘만 외통수 고집을 부리고 있습니다.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이스라엘은 즉각 지상작전을 중단하라.”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아예 쇠귀에 경읽기 식입니다.  이런 상황 인식에도 저의 이 ‘작문성’ 기사 하나가 차갑고 냉엄한 국제사회 힘의 논리를 부정할 수는 없겠지만 그 현실을 바꾸는 데 자그마한 힘이라도 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이 기사를 띄웁니다.제발 이런 꿈이 실현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 하나로,우리 언론도 제발 이 문제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고취시켜 인류가 그래도 21세기에 살면서 수세기에 걸쳐 내려온 이 문제를 풀 수 있는 단초를 얻었다는 얘기를 후세에 들을 수 있도록 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공간이 무한정 주어지는 게 인터넷의 특성이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양적인 적절성이 확보되어야 하겠기에 ‘희망뉴스’는 세 건으로 그치고 나머지는 표제 정도로만 가는 점 양해바랍니다.  다시한번 강조드리지만 오늘의 참담하고 암울한 현실을 그대로 뒤집으면 희망뉴스가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휴전 3년 연장 지난달 27일 이스라엘의 대대적 공습으로 촉발된 가자지구 사태가 극적으로 타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5일부터 중동을 방문하면서 이 지역 실세 정치인들을 연쇄 접촉해온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10일 이스라엘 정부와 가자지구를 사실상 장악하고 있는 무장단체 하마스가 지난해 6월부터 실시해온 6개월 한시 휴전을 2011년까지 3년 연장하는 협정문에 11일 서명할 것이라고 밝혔다.이에 따라 이날부터 하마스는 로켓포 공격을 중단하고 지난 3일 가자지구에 진입했던 이스라엘군의 지상전력과 탱크 등은 일제히 복귀할 것으로 보인다.  더욱 주목할 것은 양측의 공격행위가 일절 중단되는 것은 물론,이 지역의 평화 정착을 항구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이-팔 협의체를 출범시키도록 했다는 것이다.치피 리브니 외무장관을 비롯한 이스라엘 정부 요원 10명과 마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을 비롯,하마스 최고지도자 등 팔레스타인 지도자 10명이 이집트 수도 카이로에서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의 중재 아래 다음달 2일부터 일주일 동안 회담을 갖고 가자 주민들의 이스라엘 출입을 무제한 허용하고 하마스를 무장해제하는 방안 등을 강구하기로 했다.  지난해 말로 6개월 임기의 유럽연합(EU) 순회의장국 임기를 마친 사르코지 대통령은 이번 협정이 발효되면 캠프 데이비드 협정 체결로 인해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 등이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이래 또다시 이 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게 될 것으로 점쳐진다.  앞서 사르코지 대통령은 신년사를 통해 “프랑스는 앞으로 중동, 아프리카, 아시아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할 것”이라며 국제 이슈에 개입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당시 르몽드는 “사르코지 대통령은 프랑스라는 나라가 자신의 재능을 펼치기에는 너무 작다고 생각하는 야심가”라며 “자신이 주창한 신 브레튼우즈 체제와 지중해연합을 본격 가동하는 등 국제무대에서 영향력을 키워나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오바마 미대통령 집속탄 금지협약 가입하기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말 93개국이 서명했지만 미국과 중국,러시아 등 강대국이 서명을 거부해 빈껍데기 조약이란 비난을 들었던 집속탄 전면 금지를 위한 오슬로 협약에 가입하겠다고 밝혔다.  오바마 대통령은 20일 취임식을 마친 뒤 백악관 브리핑룸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고심 끝에 이 협약에 가입하기로 결심했다.”고 밝혔다고 cnn이 전했다.  집속탄의 사용과 생산, 이동, 비축을 금지하고 피해자 지원을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은 오슬로 협약에는 지난해 말 93개국이 서명했다.30개국 이상의 비준을 받으면 효력을 갖게 되는데 미국과 중국,러시아 등이 서명을 거부하면서 서명을 마친 국가들마저 이 협약을 발효할 만큼 비준 국가를 채울 수 있을지가 불투명했는데 미국의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로 각국 비준 일정이 앞당겨질 것으로 전망된다.  항공기로 투하하거나 포로 발사하는 집속탄은 공중에서 8㎝ 크기의 자탄 수백개를 터뜨리며 불발탄으로 남아 있던 자탄도 시간이 지난 뒤 터져 아프가니스탄,라오스,레바논 등에서 막대한 인명 피해를 불러왔다.  미국은 1964년부터 1973년까지 라오스에 2억 6000만발의 집속탄을 투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짐바브웨 경제 몰라보게 안정,콜레라 차단에도 성공 물가가 한해 동안 23만배가 오르는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에 시달렸던 짐바브웨 경제가 몰라보게 달라졌다고 미국의 경제전문 블룸버그 통신이 (9월)3일 보도했다.  짐바브웨를 29년간 통치해온 로버트 무가베(84) 대통령이 지난 3월 미 달러로 500억달러에 이르는 전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고 미국으로 망명한 뒤 새로 집권한 모건 츠방기라이 정부가 경기부양과 적정한 재정지출을 확대하면서 국제통화기금(IMF)의 국가신인도도 상승했다.  츠방기라이 정부는 자신이 이끄는 민주변화운동(MDC)과 종전 집권당인 ‘아프리카민족연맹·애국전선’(ZANU-PF)의 연립정부로 출범한 지 6개월 만에 정국 안정을 바탕으로 살인적인 물가 인상 압력을 잡아냈다고 IMF는 평가했다.  지난해 1월 국가부도 위기까지 몰렸다가 한해 무려 23만배로 물가가 뛰는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을 경험했던 짐바브웨 경제는 올 1분기에는 물가상승률이 1000%로 진정되더니 2분기 100%를 거쳐 3분기 10%로 안정됐다고 블룸버그 통신은 전했다.  경제가 안정되고 유엔 등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에이즈 감염 상황도 현저히 개선되고 있다.지난해 말 200만명에 이르렀던 감염자 수는 더 이상 확대되지 않고 오히려 환자들의 사망 또는 완치 등으로 150만명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 통신은 덧붙였다.  아울러 지난해 8월 시작돼 50만명 이상이 감염됐던 콜레라도 완벽히 통제 수준에 이르렀다고 외신들은 전했다.지난해 말 유엔 산하 세계보건기구(WHO)는 짐바브웨의 콜레라 사망자가 1518명으로 보고됐으며, 감염의심 환자도 2만 6497명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한편 콩고 키부호 북부에서 지난 2007년 발생한 내전으로 난민으로 전락했던 30만명이 모두 고향으로 되돌아갔다고 유엔콩고감시단(MONUC)이 전했다. ●이밖에 올해 들렸으면 하는 희망뉴스는 ‘세계의 공장’ 중국이 경기부양과 재정 지출에 힘입어 8% 성장에 성공했다는 뉴스  인도와 파키스탄이 오랜 국경 분쟁을 마감하고 화해와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는 뉴스  소말리아 해적이 완전 소탕됐다는 뉴스  이란 핵문제가 완전 해결됐다는 뉴스 등을 ‘상상’해볼 수 있겠네요.물론 중국 경제의 안정은 세계경제를 위기에서 탈출시키고 우리 경제 회복에도 커다란 도움이 되기 때문이란 건 다들 잘 아시겠지요.  이상 ‘희망 뉴스’였습니다.   인터넷서울신문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소띠 공무원들의 새해 희망 들어보니

    기축년 새해가 밝았다.세계적인 경제 침체로 새해 우리 경제는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때보다 힘들 것이라고 한다.이런 때일수록 희망의 불씨가 필요하다.특히 공직자들의 역할은 더욱 중요하다.국민들이 희망의 불꽃을 피워 올릴 수 있도록 불쏘시개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소띠 해를 맞은 소띠 공무원들의 새해 소망과 포부를 들어 봤다. ● 류경기 서울시 디자인서울총괄본부 부본부장 소띠 해를 맞아 중책을 맡았다.소가 가져다준 ‘선물’이 아닌가 싶다.새 업무를 맡은 만큼 소처럼 열심히,우직하게,부지런히 뛰겠다. 우선 디자인총괄본부의 주요 시책인 도시갤러리 프로젝트나 남산 르네상스,공공디자인 개선 등을 중점 추진할 생각이다.서울시는 21세기를 ‘감성을 파는 디자인의 시대’로 보고,문화와 디자인이 중심이 된 소프트시티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수려한 자연경관을 살린 건강한 생태도시,유구한 역사가 숨쉬는 문화도시,세계 첨단의 IT 인프라를 활용한 역동적인 첨단도시를 세우는 것이 바로 ‘디자인 서울’의 비전이다.이런 비전을 살려 누구나 찾고 싶고,살고 싶은 명품 수도를 건설하는 데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마지막으로 올해 중학생과 고등학생이 된 아이들이 그저 송아지처럼 건강하고 성실하게 자라주길 빌어 본다. ● 김기래 충북도청 정책기획관실 며칠 전 우연히 읽은 주철환 OBS 사장의 글 중에 “내 목표는 귀여운 할아버지가 되는 것이다.”는 구절이 있었다.‘앗! 내 인생의 목표랑 같은 사람이 있었네.’ 하는 생각에 새삼 놀랐다.차이라면 할아버지가 아닌 할머니라는 것뿐이다. 1973년 소띠 해에 태어난 여자 아이는 열두 해가 지난 1985년에 열세살 소녀가 되었다.그해 새 학기가 시작될 무렵 나의 꿈을 적는 곳에 ‘선생님’이라고 썼지만 마음속에는 ‘귀여운 할머니’라고 새겨넣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당장 제출해야 할 업무보고에 몸 달아 하는 12년차 공무원이다.동심으로 무장한 귀여운 할머니와는 너무도 동떨어진 듯하다.그렇지만 또다시 맞이한 소띠 해,‘귀여운 할머니’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도민들에게 행복을 주는 얼룩배기 소가 되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해 본다. ● 남기남 경남도청 관광진흥과 1996년 1월 9급 공무원으로 공직에 첫발을 내디뎠다.여자로서는 흔치 않은 토목직 공무원이다.경남 의령군 칠곡면엔 직접 측량·설계·시공한 주차장에서 작은 교량에 이르기까지 나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 지금은 경남도 관광진흥과에 근무하며 이순신 장군 백의종군로를 복원하는 토목 일을 하고 있다.10년 남짓한 공직기간 동안 사직서를 만지작거린 게 한두 번이 아니지만 8급,7급으로 승진하는 기쁨도 있었다. 새해 첫날,남편에게 올해 목표를 얘기했다.우리집 책꽂이에 꽂힌 영어 동화책을 다 외울 만큼 영어 공부를 하겠노라고.그것이 올 한해 내가 키워나갈 ‘희망의 소’다. 옛날 시골에서 소 한 마리는 주인의 희망이었다.논밭을 일궈야 하는 우리 부모님들에게 소는 희망 그 자체였다.소값이 좋으면 재산도 불었다.올 한해 모든 사람들이 마음속에 ‘희망의 소’ 한 마리씩을 갖고 살았으면 좋겠다. ● 최근실 강원도립대 조교 올해는 내 인생 최고의 황금기다.경제난이라는 우울한 소식에 함몰돼 푸념만 하기에는 너무 아까운 시간들이다. 경제위기는 잠시 겪는 어려움쯤으로 여기겠다.생사를 넘나들고 배고픔을 견뎌내며 험난하게 살아 온 우리 부모님들의 굴곡진 삶보다야 더 어렵겠는가. 소띠 처녀답게 소걸음으로 뚜벅뚜벅 인생을 살아가야겠다.호랑이처럼 밝은 눈과 소처럼 우직하게 세상을 살아가라는 ‘호안우보(虎眼牛步)’를 가슴에 새삼 새겨본다.‘행운’을 상징하는 네잎 클로버를 찾기 위해 ‘행복’이라는 의미의 세잎 클로버의 소중함을 모르고 살아가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겠다. 개인적으로 항상 자식부터 챙기시느라 고생만 하시는 부모님,새해에는 자식들이 아닌 자신들을 위한 삶의 여유를 누리며 더 건강하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 [들로어 전 佛재경장관에 듣는다]“각국 개혁·협력 잘되면 내년부터 경제리듬 회복”

    [들로어 전 佛재경장관에 듣는다]“각국 개혁·협력 잘되면 내년부터 경제리듬 회복”

    │파리 이종수특파원│2009년 유럽의 최고 화두는 경제 위기와 유럽 통합이다.경제 위기가 언제까지 이어질지,해법은 무엇인지 등 지구촌 보편의 관심에서 유럽도 자유로울 수 없다.눈을 유럽의 특수성으로 돌리면 유럽 대륙의 정치적 통합이 답보 상태에서 벗어날지도 주요 관심사다.두 이슈에 대해 가장 적절한 지혜를 줄 수 있는 유럽의 ‘큰 정치인’ 자크 들로어(84)를 지난 연말 만났다.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 시절 두 차례 재경부장관을 역임하고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을 지낸 그의 전망과 해법을 들어봤다. ■ 경제위기 해법은 3주 동안의 접촉 끝에 힘겹게 자크 들로어를 만난 곳은 파리 7구 그르넬 113에 있는 ‘고용,수입 및 사회연대 위원회´ 건물.그는 위원장 접견실로 직접 나와 기자를 맞았다.대정객은 세월의 흔적이 무색할 정도로 꼿꼿하게 인터뷰에 응했다.경제장관을 두차례 역임한 지혜를 바탕으로 현재 경제 위기의 원인은 통제 불능에 빠진 광기의 금융 시스템이라고 진단했다.또 주요 해법으로는 ‘경제안전보장 이사회 창설´ 및 ‘세계의 공조´를 제시했다. 기자가 “인터뷰를 녹음해도 되겠냐.”고 묻자 “나도 녹음할 텐테….”라고 말했다.이유를 물었더니 “당신을 믿지만 내가 말한 내용이 제대로 전달됐는지를 확인하고 싶다.”고 말했다.먼저 “경제 위기가 언제까지 지속될 것으로 보느냐.”고 질문했다.그러자 “나는 점쟁이가 아닌데….”(웃음)라며 “커피잔에 몇방울 남은 커피 흔적으로 미래를 전망하려고 시도하는 습관을 갖고 있지 않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각국 정부가 원인을 잘 분석하고 적절한 개혁을 시행하면서 지구촌 차원의 협력이 잘 이뤄진다면 현재의 위기는 제한되고 2010년부터 리듬을 되찾을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고 신중하게 말했다. ●“메이도프 스캔들은 도덕의 문제” 2009년에도 여전히 힘들겠네요라고 물었더니 “물론”이라고 말했다.이어 “지난해 5월에 일간 르 몽드에 실린 헬무트 슈미트 전 독일 총리와의 대담 기사(‘광기의 금융이 우리를 지배해서는 안된다’)에서 국제 금융시스템의 허점을 지적한 바 있는데,최근 소식은 우리(경제 전문가)를 당황스럽게 한다.”며 버나드 메이도프 사례를 지적했다. 구체적인 설명을 해달라고 하자 “메이도프 스캔들은 정치·경제적 비판이 아니라 도덕의 문제”라며 “미국의 증권거래위원회(SEC)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가보지도 않았다는 말인지 참 당혹스럽다.이런 스캔들이 되풀이되면 국민들에게 설명하거나 해결책을 제시하는 게 무척 힘들어진다.”고 우려했다.그는 대안으로 “금융 활동의 성공을 지향하면서 실물 경제 등을 희생하지 못하게 명백한 규율들을 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년에 한번 경제 정상회담 열어야” 경제위기를 낳은 배경과 관련,그의 분석은 막힘이 없었다.“경제 균형이라는 전통적 시각에서 보면 우리는 벌써 위기 상황 속에 놓여 있었다.선진국에서는 상품·서비스뿐 아니라 임금 부문에서의 심한 경쟁 때문에 최근 몇년간 생활수준에 대한 압박이 있었다.이런 상황에서 미국 등은 소비 대출,부동산 대출 등을 활용했고 이로 인해 많은 국가가 부동산시장의 위기를 겪었다.주택 및 건축 부문이 생산과 경제활동에 있어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할 때 매우 심각한 상황이었다.” 이와 관련,현재 경제 위기와 1997년 경제 위기 모두 은행권의 안이한 통화관리 관행에서 비롯했다고 지적했다. 사회주의자인 그는 이번 사태의 원인을 자본주의 본연의 문제로 돌리지는 않았다.“패배를 한 것은 본래의 자본주의가 아니라 이데올로기화된 금융패권 체제와 시장의 군림 체제이다.특히 시장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현재의 터무니없고 비참한 상황을 낳았다.” 구체적인 해법을 제시해 달라고 하자 두가지를 강조했다.첫 대안은 경제안전보장이사회 창설이었다.그는 “1993년 유엔에 경제안전보장이사회를 설치할 것을 제안한 바 있는데 국제통화기금,세계은행,세계무역기구 등의 입장을 청취하자는 취지였다. 1년에 한 차례 경제 정상회담과 경제장관 회의를 열어 경제 상황을 진단· 평가하고 그 결과를 경제안전보장이사회에서 주시하자는 것인데,이 주장은 지금도 유효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다른 해법으로 “G20으로 명명되는 국가들이 모여서 급한 해결책을 찾은 뒤 장기적으로는 더 나은 국제 규율들 속에서 진전을 이뤄 현재 벌어진 위험들을 막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번 경제위기로 보호주의가 강화될 것이라는 우려도 잊지 않았다.“경제 위기 뒤 보호주의가 복귀할 위험이 있는데 첫 희생자는 가난한 국가들이 될 것이다.또 일부 국가가 자국 은행에 특혜를 줘 경쟁의 불균형과 파행을 초래할 것으로 보이는데 이 경우 국가간 갈등이 커질 것이다.1929년 경제 위기 이후 자국 보호주의 경향을 상기해 보라.보호주의가 도래하면 전쟁은 멀지 않다.” ●예산 균형 맞추는 미국 역할론 강조 마지막으로 그는 경제 위기 탈출과 관련,미국의 역할을 강조했다.“미국이 세계 경제 쇄신에 기여하려면 미국인들이 저축을 늘리고 대출을 줄여,예산의 균형이 이루어져야 한다.하지만 경기 부양을 위해 거액을 투입해야 하는 현 시점에 어떻게 이같은 조치를 취할 수 있을지가 딜레마다.미국에 당장 합리적 균형을 찾을 것을 요구할 순 없겠지만 언젠가는 이 문제가 거론될 것이다.” ■ 유럽통합 전망은 경제 위기에 이어 화제는 유럽 통합으로 나아갔다.지난해 아일랜드가 국민투표에서 리스본 조약 비준을 부결시키면서 정치 통합이 지연되고 있다. 그는 “(아일랜드를 비롯한 반대 입장의 국가들에) 원치 않는 행복을 강요할 수는 없다.”며 “EU 소속 27개 회원국이 모두 동참하지 않는다 해도 계속 전진하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고 현실적으로 가능한 대안을 제시했다. 이어 “유로화 사용도 당시 15개의 회원국 중에 10개국만 동의했지만 이를 진행시켰다.”고 덧붙였다. EU의 다른 걸림돌인 터키 가입 문제에 대해서는 열린 정신을 강조했다.“지리적 이유를 들어 터키에 ‘노(no)’라고 말하는 입장에 반대한다.그것은 상대의 존재조차 거부하는 위험한 이데올로기다.또 두 문명간의 몰이해를 심화시킨다.”고 잘라 말했다.이어 “물론 협상은 해야 한다.터키가 EU의 정신,공동 규율,다원주의적 민주주의,경제 운용 방식 등에 부합하지 않는다면….”이라며 여운을 남겼다. 유럽통합의 한 주역인 그에게 지난해 EU 창설 50돌을 맞은 소감을 물었더니 “EU 통합 기준인 로마협약(1957년) 협정에 참석하지 않았는데,저를 더 늙은이로 만드는데요(웃음)….”라며 답변을 이어갔다. “가장 주요한 장면은 1950년 프랑스 외무장관인 로베르 슈만의 호소였다.그는 ‘어제의 적´ 독일에 전쟁의 근원이었던 석탄·철강을 공동 생산하자고 제안했는데,한 사회학자는 이를 ‘용서와 약속´이라고 표현했다.이는 놀라운 제스처였고 유럽이 영혼을 지녔음을 보여준 장면이다.물론 현재 경제 위기와 관련해 긴밀한 협력을 바탕으로 한 계획을 세우지 못하고 있는데 이는 진정한 통합을 위해 넘어야 할 산이다.” vielee@seoul.co.kr ■ 자크 들로어는 자크 들로어는 1925년 파리에서 출생한 프랑스·유럽의 대표적 정치인.소르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프랑스 중앙은행에 입사했다.프랑스기독교노동자연맹(CFTC)의 핵심 멤버로 활동했다.이어 프랑스 중앙은행 이사,사회당의 주요 당직을 맡았다.1973년부터 79년까지 파리9대학 경영학교수로 활동.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 시절 두 차례 재경부 장관을 지냈다.85~94년 EU 집행위원장 역임했고 95년 대통령 선거 당시 여론조사에서 가장 유력한 사회당 대선 후보였으나 출마를 고사했다.지난해 사회당 당수에 선출된 마르틴 오브리가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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