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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행연합회장에 신동규씨 내정

    은행연합회장에 신동규씨 내정

    제10대 전국은행연합회장으로 신동규(57) 전 수출입은행장이 내정됐다.18일 업계에 따르면 은행장들은 19일 오전 은행연합회에서 이사회를 열고 현 유지창 회장의 후임으로 신동규 전 행장을 추대할 예정이다. 신 전 행장은 오는 24일 연합회 총회에서 최종 확정되면 25일부터 3년간 임기를 시작하게 된다. 신 전 행장은 경남고와 서울대 경제학과 출신으로 1973년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옛 재무부 자본시장과장, 재정경제원 금융정책과장, 재경부 공보관 등을 거쳤다. 이후 2003년부터 2006년까지 수출입은행장을 역임하고 퇴직 뒤에는 UBS 증권 싱가포르 고문과 법무법인 율촌 상임고문 등을 지냈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씨줄날줄] G20시대/함혜리논설위원

    1973년 1차 석유파동은 2차 세계대전 이후 30년간 지속적인 경제성장과 번영의 시기를 구가하던 선진 공업국들에 치명적인 쇼크였다. 미국·영국·프랑스·독일·일본의 고위급 경제관료들은 선진 5개국(Group of 5) 모임을 만들어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공동 대응방안을 논의하기로 했다. 첫 정상회의가 1975년 프랑스의 랑부이예에서 최초의 G5에 이탈리아가 합류한 가운데 열렸다. 이 모임은 이듬해 캐나다가 추가되면서 G7로 확대된다. G7은 매년 정상회담과 재무장관 회의를 개최, 세계 경제의 향방과 각국 간 경제정책을 조정하고 협의하면서 세계 경제를 주도했다.1997년 러시아의 참여로 G8이 되면서 초기 경제문제에서 정치·외교문제까지 협의의 폭을 넓혔다. 러시아는 정상회담과 외무장관 회의에만 참여하고 재무장관 회의에서는 빠진다. 세계 경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면서 G8에 중국을 가입시켜 G9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으나 일본의 저지로 성사되지 못했다. 대신 G8에 신흥 경제 5개국(중국·인도·브라질·멕시코·남아프리카공화국)을 더해 G13으로 확대하자는 논의는 활발하다.G8이 유럽과 북미 국가 중심으로 이루어져 아시아와 중남미 등지의 목소리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 때문이다. 지난 주말 미국 워싱턴에서 G20 정상회의가 열렸다. 아시아 외환위기 당시 선진국과 신흥공업국이 함께 난국 타개책을 논의하기 위해 만들어진 G20은 G13에 한국·호주·터키·인도네시아·사우디아라비아·아르헨티나 등 6개국과 유럽연합(EU)을 더한 선진·개도국 모임이다. 세계 경제력의 85%를 차지하는 만큼 G20이 기존의 G7을 대체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신흥개도국들이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급증하는 상황에서 이들을 빼고 세계 경제 질서를 논의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것을 모두가 인정한 결과다.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대통령은 “G20이 세계의 정치 지형을 새로운 차원으로 발전시킬 것”이라고 했다. 한국은 교역규모 세계 10위, 국내총생산(GDP) 세계 13위로 G20내에서의 위상이 결코 가볍지 않다. 세계 경제의 권력 이동을 상징하는 G20시대에 한국의 주체적 역할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까. 함혜리논설위원 lotus@seoul.co.kr
  • 삶을 즐겁게 하는 숨겨진 수학의 법칙

    삶을 즐겁게 하는 숨겨진 수학의 법칙

    ‘1+1=2’와 같은 산수라면 몰라도 미적분 등 수학은 세상을 사는 데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는 당신, 정말 그럴까. 초등학교 5학년 이상의 수학은 학교 선생이나 학원에서 가르치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면,‘생활 속 수학의 기적’(알브레히트 보이텔슈프라허 지음, 황소자리 펴냄)을 꼭 읽어봐야 한다. 수학 문제를 푸는 일은 즐거울 뿐만 아니라 자연과 세상을 이해하는 등 행복하게 해준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매미가 애벌레로 지내는 연수는 왜 홀수인가 현대 금융의 기본도 수학이다. 이를 테면 100유로(원으로 생각해도 무방)를 2% 이자로 저축한다면 10년 뒤 받게 되는 이자는 얼마일까. 일반적으로 금융권에서 ‘복리의 마술’로 불리는 이것은 이자가 이자를 낳게 된다는 공식이다. 100유로를 은행에 넣으면 1년째에는 102유로가 되고,2년째에는 102유로에 2%의 이자가 붙는다. 즉 100유로×1.02의 10제곱이 된다는 의미다. 따라서 100유로는 100년 후에는 724.46유로가 된다. 따라서 2%금리로 1000년이면 1.02의 1000제곱으로 약 398억 2646만 유로가 된다. 엄청 많아 보인다. 아이에게 저축의 중요성을 가르치려면 꼭 알고 있어야만 한다. 물론 물가상승률이 계산되지 않았다는 점도 가르쳐야 한다. 물가상승률도 같은 방식으로 계산할 수 있다. 여름철 귀를 따갑게 하는 매미의 짧은 인생에도 수학이 숨어있다. 생존의 세레나데다. 매미는 종류에 따라 애벌레로 땅 속에서 지내는 시간이 7년,13년,17년 등이다. 공동점은 무엇일까. 애벌레로 지내는 시간이 홀수다. 왜 그럴까. 포식자들을 따돌려 매미의 멸종을 막기 위해서 그런 것이다. 만약 포식자가 2년마다 등장한다면 7년 만에 애벌레 시절을 끝내는 매미의 경우는 14년이,13년만에 애벌레를 끝내면 26년,17년이면 34년이 돼야 매미와 포식자가 만날 수 있게 된다. 가을 들판을 가득 채우는 해바라기는 수학과 관련이 있을까. 그렇다. 뭐지? 해바라기 씨들의 배열은 우연한 것이 아니라, 정교한 규칙을 따르고 있다. ●해바라기씨 배열에도 정교한 규칙 있어 요즘 초등학교 고학년이면 대부분 알고 있는 있는 ‘피보나치 수열’이다. 해바라기 내부를 주위 깊게 들여다보면 씨들이 중점으로부터 바깥쪽으로 굽어지는 나선형으로 배열돼 있는데, 이 수들을 세어보면 1,2,3,5.8,13,21,34,55 ···등이다.55 다음의 숫자는 무엇일까. 피보나치 수열은 앞의 두 숫자의 합이기 때문에,34 +55로, 89가 된다. 이같은 피보나치 수열의 현상은 파인애플 껍데기, 전나무 열매, 선인장 가시가 있으므로, 시간이 난다면 꼭 확인보도록. 저자는 독일, 아니 유럽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수학자이다.1950년 투빙엔에서 태어난 저자는 1973년~1985년 마인츠 대학에서 강사와 객원교수로, 2002년 수학 박물관장으로 활동했고,25권의 수학 관련 책을 썼다. 아무튼 수학과 관련해서는 전문가다. 고학년이 된 자녀의 수학을 가르치는 일이 힘에 부친다면, 이 책을 읽고 두뇌를 두들겨 깨우면 아이 앞에서 체면이 설 수도 있다.1만 2800원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부고] 박춘호 국제해양법재판소 재판관 별세

    [부고] 박춘호 국제해양법재판소 재판관 별세

    해양법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인 박춘호 국제해양법재판소(ITLOS) 재판관이 12일 오전 8시 노환으로 별세했다.78세. 박 재판관측은 “올해 초 혈액암이 발병해 항암치료를 받아왔는데 최근 병세가 악화됐다.”고 말했다. 전북 남원 출신인 박 재판관은 서울대 정치학과 재학시절 한·일간 어업분쟁이 격화되는 것을 보고 해양법 연구를 시작,40여년간 해양법 연구에 전념하며 국내 해양법 학계를 이끌었다. 영국 에든버러대학에 유학해 ‘아시아지역 어업의 국제적 규제에 관한 법과 국가관행’이란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 미국 하버드대, 하와이대 교수를 거쳐 1982년부터 고려대에서 법학(국제공법)을 강의하다 1995년 정년퇴임했다. ●한국인 첫 국제법학회 회원 국가간 해양관련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독일 함부르크에 설립된 국제해양법재판소 초대 재판관으로 1996년 당선됐고,2005년 9년 임기의 재선에 성공했다. 또 한국인 최초로 1997년 세계 최고 권위의 국제법단체인 국제법학회 회원으로 등재되기도 했다. 박 재판관은 1973년 제3차 유엔 해양법회의에 한국대표단으로 참가했으며 1977년부터 ‘해양정책’,‘해양개발과 국제법’ 등 국제해양법 관련 학술지의 편집위원으로도 활동했다. 특히 동북아 해양법 연구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1984년 발간된 ‘동아시아와 해양법’이라는 영문 저서는 미국과 중국 등지의 대학 교재로 채택되고 중국어와 러시아어로 번역판이 나올 정도로 인정받았다. 영어와 일어, 중국어, 독어, 불어가 능통해 이들 언어로 30여개의 논문과 저서를 발표했다. ●해양정책 입안에 큰 기여 박 재판관은 그동안 대한민국 학술원상(1989년),‘바다의 날’ 금탑산업훈장(2001년), 한국법률문화상(2006년) 등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절대로 아무것도 아닌 사람’(1996년),‘지리산골에서 세계의 바다에서’(1998년),‘해양법’(1986년) 등이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박춘호 재판관의 유족에게 조전과 조화를 보내 위로의 뜻을 전달했다. 이 대통령은 조전에서 “세계 법학계의 저명한 석학으로 해양법재판소 재판관으로 봉직해온 박 재판관의 타계에 애도를 표한다.”면서 “박 재판관의 타계는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세계 국제법학계의 커다란 손실”이라고 말했다. 유족으로는 김필례 여사와 2녀.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발인은 16일이다.(02)3410-6915.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노벨상 수상자 9명 국내 대학 강단에

    노벨상 수상자 9명 국내 대학 강단에

    내년부터 노벨상 수상자 등 해외 유명 석학들이 국내 대학에서 학부생과 대학원생들을 상대로 직접 특별강의를 하고 국내 교수진과는 연구도 함께 하게 된다. 강의는 인터넷으로도 공개돼 대학생뿐만 아니라 산입체 전문가 등 일반인들도 원하면 들을 수 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노벨상 수상자 9명 등 세계석학 81명이 내년부터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등 국내 30개 대학에 초빙교수 등으로 5년간 임용된다고 9일 밝혔다.81명에는 노벨상 수상자 9명 이외에 미 과학한림원 회원 12명, 미 공학한림원 회원 18명 등이 포함돼 있다. 이들은 앞으로 5년간 강의는 물론 국내 교수진과 79개 과제를 놓고 공동 연구도 한다. 1년내내 국내에 머무르는 것은 아니고 연평균 두달씩 특별강의 형식으로 국내 학생들을 만나게 된다. 과거 연세대나 건국대 등 일부 대학들이 자체적으로 노벨상 수상자 등 해외석학들을 초청한 적은 있으나 정부가 예산(200억원)을 배정, 국내에서 강의 및 연구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교과부 박주호 학술연구진흥과장은 “세계 수준의 연구중심대학’(World Class Un iversity,WCU) 을 육성한다는 방침에 따라 ‘세계적 석학 초빙’ 지원사업을 추진, 이번에 30개 대학 79개 과제를 선정했다.”면서 “일단 5년 사업으로 시작하나 성과가 좋으면 계속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서울대의 경우,1995년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파울 크루첸 박사를 지구환경과학부 석좌교수로 임용하기로 했다. 크루첸 박사는 오존층의 두께에 영항을 미치는 화학적 메커니즘을 규명, 노벨화학상을 받았다. 연세대는 2002년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쿠르트 뷔트리히 미국 스크립스연구소 교수를 초빙했다. 건국대는 2006년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로저 콘버그 스탠퍼드대 교수, 1998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루이스 이그나로 UCLA(미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 의대 교수 등 2명을 뽑았다. 한양대는 2006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앤드루 파이어 스탠퍼드대 교수를, 경원대는 1973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노르웨이 출신 이바르 예이베르 박사를 각각 초빙한다. 이화여대는 2005년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그럽스 박사, 1996년과 2006년 각각 노벨평화상을 받은 호세 라모스 호르타 동티모르 대통령과 무하마드 유누스 그라민은행 총재 등 3명을 임용할 예정이다. 동티모르 대통령은 적극적 평화로 가는 길:직접적, 구조적, 문화적 평화와 한국의 역할에 대해 연구하게 된다. 한편 선정된 과제 건수로는 서울대, 고려대, 성균관대, 연세대, 이화여대, 한양대, 건국대가 각 5개로 제일 많다. 이어 부산대, 서강대, KAIST, 경희대가 각 4개, 경북대와 경상대, 울산대, 인하대 등이 각 3개다. 교과부의 박 과장은 “해외석학들의 강의와 연구를 통해 교수들은 연구경험을 전수받고 학생들은 학습동기를 부여받는 효과가 기대된다.”면서 “강의 내용은 인터넷에 올려 학생들은 물론 산업체 전문가들도 볼 수 있게 하고 초빙된 석학들로 이른바 ‘노벨 포럼’도 구성, 학생이나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연회 등도 갖기로 했다.”고 밝혔다. 박현갑기자 eagleduo@seoul.co.kr
  • 가장 기억에 남는 유작을 남긴 배우 10은?

    가장 기억에 남는 유작을 남긴 배우 10은?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배우는 죽어서 작품을 남긴다… 사망하기 직전까지 작품 활동에 매진했던 배우들이 있다. 지병, 자살, 사고 등 사망원인은 각각 다르지만 이들은 공통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될 만한 유작을 남겼다. 야후 사이트는 최근 이들 배우 중 ‘죽기 전 가장 기억에 남는 유작을 남긴 배우 10’을 선정해 눈길을 끌고 있다. 가장 먼저 거론된 배우는 히스 레저. 지난 1월 약물 과다 복용으로 사망한 히스레저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다크나이트’에서 ‘조커’역을 맡아 열연하면서 ‘역대 영화 최고의 악역’으로 꼽히기도 했다. 그는 영화 ‘파나수스 박사의 이매지너리움’의 마지막 촬영분량을 남긴 채 사망했으며 조니뎁, 주드로, 콜린파넬 등의 배우들이 그의 유작을 마무리 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세계적인 액션배우 리샤오룽(이소룡·브루스 리)도 리스트에 올랐다. 1973년 제작된 영화 ‘용쟁호투’는 그가 사망한 이후에도 오랫동안 ‘가장 많은 수익을 거둬들인 영화’로 거론됐으며 이후 홍콩영화의 발전에 큰 영향을 끼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할리우드의 영원한 꽃미남 스타 제임스 딘(James Dean)도 기억에 남는 배우로 꼽혔다. 1955년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그는 짧은 배우 활동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 영화 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 배우로 유명하다. 유작이 된 ‘자이언트’(Giant·1955)는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감독상을 수상하며 ‘걸작’으로 인정받았다. 다음은 야후가 뽑은 ‘죽기 전 가장 기억에 남는 유작을 남긴 배우 10’ ▲히스레저 (다크 나이트·Dark Knight) ▲제임스 딘(자이언트·Giant) ▲올리버 리드(글레디에이터·Gladiator) ▲리샤오룽(용쟁호투) ▲브래던 리(더 크로우·the Crow) ▲스펜서 트레이시(초대받지 않은 손님·Guest Who’s Coming to Dinner) ▲애드리안 쉘리(웨이트리스·Waitress) ▲피터 핀치(네트워크·Peter Finch) ▲투팍 샤커(Gridlock’d) ▲클라크 게이블(어울리지 않는 사람들·The Misfits) 사진=히스 레저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김성호 선임기자의 한국서 길찾는 이방인] (28) 예수고난회 노인조 수사

    [김성호 선임기자의 한국서 길찾는 이방인] (28) 예수고난회 노인조 수사

    한국을 택해 이 땅에서 살아가는 외국인 성직자와 수도자들은 나름대로의 소명과 사명을 위해 하루하루 자신을 바친다. 그들이 가슴에 새기고 사는 그 소명과 사명이 중생 구제이건 선교이건 지향점은 한결같다. 나보다는 남을 먼저 생각하고 위한다는 것이다. 이 땅에서 길을 찾는 숱한 이방인들이 그런 것처럼 노인조(60·본명 로렌스 핀·캐나다) 수사(修士) 역시 남을 위해 철저하게 나를 버리는 인물이다.“아픈 사람을 만날 때 내가 살 길과 살아 있음을 더욱 절실하게 새기고 느낀다.”는 노 수사. 그는 이역 만리의 생경한 한국 땅을 밟은 이래 줄곧 에이즈(후천성면역결핍증) 환자의 아픈 몸과 마음을 보듬어 살겠다며 ‘나’를 거듭 거듭 확인해가는 생활 속의 수도자이다. ●아픈 사람들과 만날 때 가장 편해 서울 강북구 우이동 245-4 천주교 예수고난회 명상의 집. 우이령으로 향하는 산행 길에 들어 1.8㎞를 오르다보면 만나게 되는 아담한 집이다. 천주교 신자와 성직자들의 피정과 기도가 끊이지 않는 공간. 예수고난회 한국관구 소속 신부, 수사 38명중 7명이 함께 살아가고 있으며 노인조 수사는 그 가운데 유일한 외국 출신이다. 오후 늦게 명상의 집 접견실에서 기자를 맞은 노 수사는 첫 대면부터 큰 웃음을 보여주었다. 오랜 세월 아픈 이들과 함께 해온 종교인의 의례적인 배려일까? ‘조금은 부담스러울’만큼의 잦은 ‘웃음 병’(?)에 어느 순간 전염된 ‘나’를 문득 본다. 서울 돈암동의 예수고난회 신학원 원장에서 물러나 1년간의 안식을 마치고 이곳에 온 게 지난 3월. 평일, 주일 줄곧 이어지는 피정은 물론 예수고난회 아시아태평양 지역 장상들의 모임에서 총무격인 행정 비서를 맡아 이런저런 국제 행사며 모임을 총괄하느라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공동체에 속한 수사이니 맡겨진 소임에 충실해야지요. 흔히 수사는 닫힌 곳에서 혼자만의 수행과 기도에 빠져 살아가는 사람으로 인식됩니다. 하지만 수사들은 나름대로 엄연한 공동체의 일원으로 각자의 중요한 일을 합니다.” 공동체에 매인 몸인 만큼 조직의 일원으로서 어쩔 수 없이 해야 할 일이 많다는 귀띔이다. 그러면서도 못내 안타까움을 털어놓는다. “아픈 사람들과 만날 때가 가장 편안합니다. 줄곧 함께 해온 아픈 사람들과 떨어져 있을 때 뭔지 모를 불안감이 밀려들곤 해요.” 수사의 말은 괜한 말이 아니다. 지금도 오랜 세월 만나고 인연을 맺어온 에이즈 환자들과의 만남이 생활의 큰 부분.“살기가 힘들다.”며 수시로 걸어오는 에이즈 환자들의 전화 상담이며 “만나 달라.”는 요청에 서슴지 않고 달려 나간다. 노출을 꺼려한 탓에 대부분 으슥한 곳에서 마주한 환자와의 만남을 마치고 돌아설 때마다 안쓰러움을 떨칠 수 없다고 한다. ●간호·교육·신학 공부한 뒤 33년째 한국생활 그가 이토록 애달파하고 챙기는 에이즈 환자들은 어떻게 그의 인생행로에 들었고 또 무엇일까. 캐나다 온타리오에서 아일랜드인 아버지와 프랑스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노 수사는 중학교 시절 만난 봉사에 몸을 바친 한 수녀의 모습을 보며 ‘하느님의 부름’을 느끼기 시작했다고 한다. 예수고난회가 운영하는 학교를 다니며 자신도 모르게 종교적 분위기에 빠져들던중 수녀의 헌신적인 이타행에 소신을 다졌고 고등학교 졸업후 1년간 은행에 몸담았다가 고향을 떠나 미국 세인트루이스 수도원을 통해 예수고난회에 입회했다. “노인들의 요양시설에서 봉사하고 싶다.”는 생각에 들어간게 켄터키주립대학 간호학과. 낮에는 공부하고 밤에는 루이빌시내 병원에서 간호사 일을 하며 중학교 시절 큰 좌표로 있었던 그 수녀의 길을 따라 걷기 시작한 것이었다. 루이빌 천주교구 대학인 벨라민대학에서 교육학과 신학을 공부하고 졸업하자마자 곧바로 한국으로 들어와 올해로 한국생활 33년째. 처음 한국에 와 정동 명도원에서 한국말을 배우면서도 강릉 갈보리병원과 광주 성요한병원을 찾아다니며 간호사 일을 했다고 하니 이 땅에서의 그의 소임은 애초부터 정해져 있었던 셈이다. “예수고난회에 입회한 지 얼마 안돼 회원들을 대상으로 해외 선교사 희망자를 골랐는데 이상하게도 당시 내가 속한 시카고 관구의 회원 320명 중 나를 빼놓곤 아무도 나서지 않았어요.” 초창기 한국에 들어와 활동하고 귀국한 선교사를 통해 한국 이야기를 자주 들었고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한국에 가야한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 한국행을 자원했다. “계획을 세울 때마다 번번이 예상치 못한 일이 맡겨져 언제부터인가 계획을 만들지 않는다.”는 말대로 한국생활도 처음엔 뜻대로 되지 않았다고 한다. 서울 세검정에서 다른 미국인 신부들에게 얹혀 살다가 지금 이곳의 명상의 집이 생기면서 옮겨와 5년여를 살고 광주 명상의 집 원장을 맡아 피정·신학생 지도며 광주가톨릭대 영어 강사로 활동하던중 예수고난회 로마 본원 총장신부의 개인 비서 소임이 떨어져 한국을 떠나야 했던 것이다.“아픈 이들과 함께 한다.”는 애초의 계획에선 아주 먼 나날들이었다. 하지만 길은 정해져 있었던 것일까. 로마에 살면서도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고 런던 에이즈 환자 쉼터에서 만난 에이즈 환자의 고통을 바라보며 초심을 굳게 다졌다. ●에이즈 환자 쉼터 전국 6곳 만들어 운영 “에이즈 환자들이 힘을 모아 세운 대규모 쉼터였어요. 병원과 호스피스 병동, 장례장까지 갖춘 큰 쉼터였는데 그곳의 고통받는 환자들을 보면서 종교인이 이런 쉼터를 운영한다면 환자들에게 훨씬 더 큰 도움을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이후 쉼터의 의사며 환자들을 쉼없이 만났고 아일랜드 쉼터와 파리 에이즈병원을 찾아 환자들과 어울려 살았다고 한다. 물론 한국에 돌아와 무엇을 할지를 마음에 점찍어둔 채였다. 이렇게 ‘에이즈 공부’에 매달려 살다가 한국에 돌아와 청주의 외딴 수도원에 살던 중 에이즈 환자를 돕는 고미리암 수녀를 만나면서부터 본격적인 에이즈 환자와의 삶이 시작되었다. 고 수녀와 서울에서 첫 에이즈 환자 쉼터를 만들었고 그 이후 천주교계가 운영하는 비슷한 쉼터가 서울 두 곳과 원주, 광주, 대구 등지에 모두 6개가 생겨났다. 2002년부터 3년간 가톨릭에이즈협의회 회장으로 있으면서 전국의 쉼터에 살고있는 70여 명의 환자들을 모두 만났다고 한다. 환자의 임종은 물론, 시신의 마지막을 돌보는 염이며 장례까지 가리지 않았다. “처음 한국에 올 무렵을 돌이켜보면 에이즈 환자를 보는 시선이 많이 달라졌어요. 그래도 에이즈 환자들이 겪는 고통과 불편한 대우는 여전합니다. 병으로 인해 겪는 육체의 고통은 정신적인 아픔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지요.” 수용시설에 들어 사는 에이즈 환자가 점점 줄고 대신 아프면서도 사회 속에서 활동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추세. 그래서 그들을 돕는 방식도 달라져야 한단다. 종전의 쉼터들을 묶어 사회 전체의 차원에서 돌보기 위한 협의체를 천주교주교회의 산하에 두어 활동하기 시작했다. “2003년 본의와는 달리 신학원 원장을 맡으면서 에이즈 환자들과 조금씩 멀어진 것 같아 미안합니다. 마음은 여전히 그들과 있지만 항상 몸이 함께 할 수 없는게….” 말 끝을 흐리는 노 수사가 말 대신 시편을 펼쳐 보인다.‘주님 당신께서는 저를 살펴보시어 아십니다.’(시편 139) 비록 내 맘과 같지않게 몸이 멀어도 나를 보고 알아주는 하느님의 뜻으로 위안을 삼는단다. “나의 노출로 에이즈 환자들의 신변이 노출될까 걱정한다.”는 말대로 사진 찍기를 완강히 거부하다 마지못해 고개를 숙인채 성모자상 앞에 선 수사가 겸연쩍은 얼굴로 말을 맺는다. “살아가면서 만나는 사람과 인연은 모두가 서로에게 큰 선물입니다. 그것이 작건 크건. 수도자인 내가 택한 길은 그중에서 아픈 사람들을 통해 하느님과 만나는 것뿐이겠지요.” kimus@seoul.co.kr ■ 노인조 수사는 ●1948년 캐나다 온타리오 출생 ●1968년 예수고난회 입회 ●1971년 종신서원 ●1973년 켄터키주립대학 간호학과 졸업 ●1975년 루이빌 ‘벨라민대학’졸업, 한국 입국 ●1977∼1982년 우이동 명상의 집에서 사목 ●1982∼1988년 광주 명상의 집 원장 ●1988∼1995년 로마 본원 총장신부 개인 비서 ●1995년 한국 귀환 ●1998년 서울서 에이즈환자 쉼터 시작 ●2002∼2005년 가톨릭에이즈협의회 회장 ●2003∼2006년 예수고난회 신학원장 ●현재 우이동 명상의 집에서 사목
  • [녹색성장을 말한다] 세계 지도자 포럼 석학 좌담

    [녹색성장을 말한다] 세계 지도자 포럼 석학 좌담

    “녹색성장의 근본은 기초과학이다.” “신재생에너지는 우승자가 많은 게임이다.” “녹색성장과 신재생에너지가 만화만큼 쉽고 친근하도록 교육시켜야 한다.” 서울신문은 30일 열린 세계 지도자 포럼에서 녹색성장 분야의 주제발표와 토론을 담당한 학계·정부·기업의 전문가들을 초청, 별도의 좌담회를 가졌다. 참석자는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앨런 히거 UC샌타바버라 교수와 최근까지 미국 에너지부 에너지 효율 및 신재생에너지 담당 차관보를 지낸 앤디 카스너 어플라이드머티리얼스 이사, 러시아 최대 투자은행인 투로익 다이얼로그의 루벤 바르다니안 회장이다. 좌담은 이도운 기자의 사회로 신라호텔 6층 비즈니스룸에서 열렸다. ▶녹색성장의 요체는 무엇인가. 환경인가, 에너지인가, 경제인가, 안보인가, 아니면 비즈니스인가. 앤디 카스너 모두 다라고 할 수 있다. 어떻게 하면 보다 안전하고, 경제적 경쟁력을 유지하며, 환경적으로 건강할 수 있는가를 추구하는 것이다. 그동안 관련 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했지만 이를 속도감 있고, 규모 있게 국민생활에 적용하는 데는 실패했다. 따라서 정부는 신재생에너지 기술 등을 좀 더 빨리 상업화할 수 있는 분야 등에 투자해야 한다. 앨런 히거 화석연료에 기초한 경제에서 신재생에너지에 기초한 경제로 옮겨가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말한 것처럼 녹색성장은 경제적으로 중대한 기회이다. 테크놀러지는 이미 나와 있다. 어떻게 효율성을 높여 활용하느냐의 문제다. 루벤 바르다니안 두 분의 의견에 동의한다. 다만 최근의 경제위기 상황을 해결하는 과정과 마찬가지로, 녹색성장 분야도 어떻게 정부와 기업들간의 상충되는 이해관계들을 조율하고 추진 시기를 조정하느냐가 중요하다. ▶최근 발간된 도이치뱅크그룹의 보고서는 경제난을 조기 해소하기 위해 각국 정부가 녹색성장과 관련된 투자를 대폭 늘리라고 제안했다. 동의하나. 바르다니안 물론이다. 경제위기가 아니더라도 녹색성장과 관련된 투자 수요가 갈수록 늘고 있다. 기후변화를 이용해 돈을 벌 수 있는 새로운 아이디어들이 계속해서 시장에 나오고 있다. 1. 가장 전망 좋은 분야는 ▶태양광, 풍력, 지열, 조류 등이 동시다발적으로 개발되고 있다. 가장 전망이 좋은 분야는 어디인가. 히거 이 게임(신재생에너지)의 승자는 한 명이 아니다. 많은 우승자가 나올 것으로 본다. 덴마크와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은 풍력을 이용해 많은 에너지를 생산한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서는 태양광과 태양열 에너지를 이용한다. 또 뉴욕시는 허드슨 강물 속에 바람개비를 넣어 전기를 생산한다. 이처럼 새로운 아이디어들을 통한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들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유가가 50달러 밑으로 떨어지면 신재생에너지는 경제적으로 효율성이 없다는 지적이 있다. 바르다니안 신재생에너지의 발전이 현실적으로 석유나 석탄 가격 등과 연계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기는 하다. 히거 바로 그것이 나의 가장 큰 두려움이다. 유가가 하락하면 사람들은 더 이상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맞지 않다. 기후변화 문제는 분명 존재하고, 자원이나 석유 매장량의 감소도 현실이다.1973년 오일위기가 닥친 이후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관심이 고조됐지만, 다시 유가가 하락하자 관심은 사라졌다. 그런 잘못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 신재생에너지 개발에 대한 지원을 계속해야 한다. 우리가 현재의 경제위기를 극복하더라도 (석유의) 수요·공급 문제는 다시 한번 불거질 것이다. 바르다니안 정부의 정책이나 기업의 투자가 너무 단기적인 것이 문제다. 카스너 펀더멘털이 변화한 것을 모르고 하는 얘기다. 예를 들어 태양광 발전소를 건설하는 비용은 일단 화석연료 발전소보다 많이 들지 모르지만, 에너지원인 태양빛을 공짜로 사용한다. 따라서 운용비용이 제로라는 얘기가 된다. 그리고 기술 발전에 따라 초기 투자 비용도 매우 가파른 속도로 떨어지고 있다. ▶언제쯤 신재생에너지가 정부 보조금 없이 화석연료와 가격 경쟁을 할 수 있을까. 히거 풍력 에너지를 만드는 비용은 이미 화석연료 가격과 비슷하다. 태양광은 계산에 따라 다르지만 5배 정도 비싸다. 그러나 기술개발과 함께 가격이 ‘드라마틱‘하게 하락하고 있다. 또 새롭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들과 기술이 계속 나오고 있다. 재생에너지 기업들이 곧 부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 2. 화석연료와 가격 경쟁은 ▶신재생에너지 개발이나 녹색성장과 관련한 정부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보나. 히거 우선 인프라스트럭처를 만드는 일이다. 예를 들어 어떤 기업이 사우스다코타 주에 풍력발전소를 만들 수 있다. 그런데 그곳에서 생산한 전기를 캘리포니아로 보내려면 송전선이 있어야 한다. 그런 대규모 송전선 건설은 정부만이 할 수 있다. 두번째는 정부 보조금이다. 현재 세계 최대의 태양광 시장은 독일이다. 미국에 비해 일조량이 적은 독일이 1위에 오른 것은 정부의 보조금 때문이다. 카스너 햇빛이 비치는 곳에 태양광을, 바람이 부는 곳에 풍력 발전기를 설치할 수 있도록 하는 것, 말하자면 적재적소의 투자를 유도하는 것도 정부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할 수 있다. 바르다니안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은 그런 정책이 이른바 부자 정부에서만 가능한 일이라는 점이다. 아마 G-20 정도의 정부에서만 가능할 거다. 경제 규모가 작은 나라들, 예를 들어 동유럽 국가들은 경제를 발전시키고 규모를 키우는 것이 우선 과제가 될 수 있다. ▶대학이나 기업에서 연구한 결과를 실제로 상품화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히거 기초과학의 육성이 우선 중요하다. 기초과학에서 새로운 발견이 나오고, 이를 기초로 상품이 개발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내가 15년 전에 초고속전자이동을 연구할 당시 태양광 발전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도 없다. 그저 기초과학의 연구결과물로 발표했다. 그러나 결국 이것이 태양전지의 원리로 응용되고 상품화된 것이다. 3. 연구결과 상품화하려면 ▶신재생에너지 분야에서는 미국이 유럽에 뒤처진 것 아닌가. 카스너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태양광·풍력·지열 분야에서 총생산량만 놓고 보면 미국은 이미 독일을 제치고 세계 1위가 됐다. 현재 미국 정부가 국제적으로 인기가 없고 메시지 전달에 약하기 때문에 뒤처진다는 인식을 주고 있지만, 미국은 신재생에너지 강국이다. 관련 분야의 기초 및 응용과학도 앞서 있고, 현재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정부의 예산도 유럽보다 훨씬 많다. ▶러시아처럼 원유 매장량이 많은 나라는 신재생에너지 개발에 관심이 없는 것 아닌가. 바르다니안 러시아는 면적이 넓지만, 햇빛이나 바람을 많이 이용해온 나라는 아니다. 그러나 신재생에너지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우리도 장기적으로는 석유의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 정부에서 관련된 펀드를 조성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미국의 차기 정부는 조지 부시 행정부와는 다른 기후변화 정책을 채택할까. 카스너 누가 새 대통령이 되든 새 정부에서는 이 분야에서 더욱 많은 혁신이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부시 정부 시절부터 이미 중요한 변화가 시작됐다. 사상 처음으로 자동차 연비 기준을 높이는 법률이 의회를 통과하기도 했다. 신재생에너지는 지난 몇년간 300~400%씩이나 성장했다. ▶태양광을 포함한 신재생에너지 분야의 발전이 기대만큼 빠른가. 히거 기대만큼 빠른 발전이 어디 있겠는가. 새벽 3시에 일어나 집안을 어슬렁거리다 위스키 한 잔을 마시며 생각한다. 어떻게 에너지 효율을 높일 수 있을까 하고. 나는 좀더 빠른 진전을 원한다. 정리 이도운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사진 이언탁기자 utl@seoul.co.kr
  • 해외 건설 외화획득 최초… 올 목표액 2배 넘어

    해외 건설 외화획득 최초… 올 목표액 2배 넘어

    대림산업은 이달 현재 해외에서 40억달러의 공사를 수주했다. 올해 목표(20억달러)와 지난해 실적(19억 5200만달러)의 두 배에 달한다. 현재 협상 중인 공사들을 감안하면 45억달러 수주도 가능할 전망이다. 이렇다 보니 수익성 위주로 공사를 따내는 선별 수주를 택했다. 무리하게 목표를 높여 일만 하고 수익이 나지 않는 공사는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대림산업의 해외진출은 지난 1966년 1월28일 미 해군시설처(OICC)에서 발주한 베트남 라치기아 항만 항타공사(87만 7000달러)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 중국, 인도, 태국, 필리핀 등 세계 24개국에서 모두 328건 173억달러의 공사를 수주했다. 공사의 종류도 초기 단순 토목에서 벗어나 플랜트 수출, 댐, 도로, 항만, 공공주택 등으로 다양화됐다. 해외수주는 현대건설(65년 12월)이 가장 빨랐지만 공사선수금은 대림산업이 먼저 보냈다. 해외건설 외화 획득 최초 기업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대림산업 관계자는 “사우디아라비아에 1973년 11월 지점을 설치하고 아람코사가 발주한 정유공장 보일러 설치공사를 16만달러에 수주, 국내 최초로 중동에 진출(동아건설 74년, 현대건설 75년)하는 쾌거도 이뤄냈다.”면서 “화려하지는 않지만 해외건설에서 대림산업의 뿌리는 굳건하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김성곤기자 sunggone@seoul.co.kr
  • 중국 갑옷 입고 일본도 쥔 국회 이순신 장군상 30년만에 제 모습 찾는다

    중국식 갑옷을 걸치고 일본도(刀)를 쥔 국회의사당내 이순신 장군상이 30년 만에 제 모습을 찾게 된다. 한나라당 홍준표 원내대표는 28일 국회에서 열린 당 원내대책회의에서 “이순신 장군상이 중국식 갑옷에 일본식 칼을 들고 있다는 지적이 있는데 이것이 사실이라면 참 부끄러운 일”이라며 “복식고증을 통해 반드시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국회 운영위원장인 홍 원내대표는 운영위 간사인 주호영 원내 수석부대표에게 국회 사무처측과 복식 고증을 협의한 뒤 30일 열리는 국회사무처에 대한 운영위 국정감사에서 시정을 요구하도록 당부했다. 전문가들은 1973년에 설치된 국회내 이순신 장군상의 갑옷이 어깨, 몸통, 하체의 보호대가 각각 분리된 피박(披膊)형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조선의 전통 갑옷은 두루마기처럼 한 벌로 이뤄진 포형(袍形)인 반면 이 동상은 유난히 어깨 보호대가 강조돼 있다. 투구도 각이 없는 원통형으로 조선시대의 것과는 차이가 난다는 설명이다. 특히 이순신 장군상은 날을 뒤쪽으로 잡는 전형적 일본식 검법을 따르고 있다. 우리나라의 전통검법은 날을 아래나 앞쪽으로 향하게 잡는다. 칼 자체도 이순신 장군이 실전에 사용했던 조선의 ‘쌍룡검’이 아닌 일본식 양날검으로 판명됐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昌, 안기부장 업무보고 요구에 YS 불쾌”

    김영삼 전 대통령 총재 비서실장을 비롯해 비서실장만 다섯번을 지낸 신경식 전 의원이 27일 정계 비사를 엮은 회고록 ‘7부 능선엔 적이 없다.’를 출간했다. 군사정권 시절 정치부 기자로 시작해 13·14·15·16대 국회의원을 지낸 신 전 의원은 이 책을 통해 30여년간 공개하지 않았던 정계의 뒷얘기를 밝혔다. 이 책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부분은 김 전 대통령과 15·16대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였던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와의 악연이다. 신 전 의원은 두 사람의 갈등은 지난 1993년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타결 직후 문민정부 초대 황인성 전 국무총리가 사임하고 이 총재가 후임 총리로 오면서부터라고 소개했다. 그는 “청와대에 올라오는 보고에 의하면, 이 총리가 김 대통령과 독대한 장관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자신에게 보고하라.’고 지시했다.”면서 “대통령이 단독으로 받는 것이 관례인 안기부장 정세보고도, 대통령이 외유 중일 때 총리가 안기부장에게 업무보고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밝혔다. 이를 전해들은 김 전 대통령은 자신의 영역을 침범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불쾌해했다는 것이 신 전 의원의 설명이다. 이후 우루과이라운드 이행 계획서 수정 파동 당시 이 총재가 김 전 대통령이 지시한 내각 사과 성명을 거부했고, 김 전 대통령이 통일안보조정회의체를 만들도록 지시한 것에 대해서도 이 전 총재가 “통일안보조정회의에 상정되는 안건은 총리의 승인을 받도록 하라.”고 지시하며 둘 사이는 파국을 맞았다고 신 전 의원은 적었다. 이밖에 신 전 의원은 지난 73년 정일권 당시 국회의장 비서실장 재직 당시, 정 전 의장을 수행해 미국 워싱턴을 방문했을 당시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을 마지막으로 만났던 사실 등 여러 정계 인사들과의 인연도 상세히 공개했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Best CEO 열전] (10) 신헌철 SK에너지 부회장

    [Best CEO 열전] (10) 신헌철 SK에너지 부회장

    뜻밖의 수확이었다. 신헌철 SK에너지 부회장에게서 35년 직장생활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은 것은. 상고(부산상고)를 나와 4대그룹 최고경영자(CEO)에 오른 그는 ‘샐러리맨의 좌표’로 꼽힌다. 그런 그도 두번이나 사표를 썼다. 첫번째는 별 의미 없는 사표였다.1977년 말단 대리 시절,“과장 승진이 요원해 보여” 이직(移職)하려다가 선배의 만류에 사표를 접었다. 두번째 사표는 심각했다.27일 청계천이 내려다 보이는 서울 서린동 SK사옥 25층 집무실에서 만난 신 부회장은 “이 얘기는 처음 한다.”며 호기심을 자극했다. 고향(포항) 떠난 지 한참인데도 아직 경상도 억양이 구수하다. 1990년대 초반의 일이다. 지방의 모 도시가스 회사가 부도나 매물로 나왔다. 당시 임원이었던 그는 인수를 강력 주장했다. 그러나 다른 임원들은 “부실회사를 덜컥 인수했다가 숨겨진 수표떼기라도 나오면 어쩌려고 그러느냐.”며 반대했다. 믿었던 사장마저도 끝내 그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땐 엄청난 충격이었던 기라. 내가 원체 촌놈이다 보니 죽으라는 거 빼고는 물불 안 가리고 열심히 하니까 다들 내를 이뻐했거든. 그런데 내 의견이 거부되니까 나가라는 말로 들리는 기라.” 그 길로 사표를 썼다. 당시 상사였던 최 모 전무가 사표를 건네받고는 다짜고짜 그를 서교동의 한 호텔 사우나로 데려갔다. “샤워기를 트는데 어찌나 눈물이 쏟아지는지 엉엉 울었다. 그런데 그분(최 전무)이 ‘바보 같은 놈이 바보 같은 짓 한다.’며 쥐어박는 기라. 내 인생에 처음으로 머리(이성)보다 감성이 앞섰던 순간이었다.” ●“성공은 실패의 옆집에 산다” 사표 이야기의 동기는 ‘경영철학’이었다. 흔히 말하는 ‘입지전적 삶’ 을 살아온 그이기에, 뭔가 남다른 철칙이 있을 것 같아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였다. 그 상대는 회사일 수도, 상사일 수도, 고객일 수도 있다고 했다.“그렇게 해도 실패와 좌절이 끊임없이 찾아든다.”는 그는 “인생이든 직장생활이든 마라톤과 같아서 오르막길(위기)이 있으면 내리막길(기회)이 있다.”고 했다. 그는 초등학교(부산 해운대초등학교) 1학년 때 아버지를 여의었다.28살에 혼자 된 그의 어머니는 남편이 남기고 간 유일한 집 한 채로 하숙을 시작했다. 어린 그는 여객터미널에 나가 호객행위를 했다.“그때는 너무 어려 부끄러운 줄도 몰랐다.”는 게 신 부회장의 회고다. 상고를 간 것도 집안형편 때문이었다.“성태(부산상고 동기인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는 서울상대에 떡하니 수석으로 붙었는데 나는 두번이나 떨어졌다. 세번째 원서를 낼 때는 다리가 덜덜 떨려 서울대를 포기하고 부산대(경영학과)를 선택했다.” 삼수로 까먹은 시간을 조금이라도 벌충해 보려고 복무기간이 2개월 짧은 해병대(179기)를 자원했지만 제대 직전인 1968년 ‘김신조 청와대 습격사건’이 터지는 바람에 8개월을 더 복무해야 했다. “남들은 지름길로 가는데 나는 번번이 둘러갔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둘러간 게 아니었다. 남들이 간 지름길이 지름길이 아니었던 거다.” 이때부터 그가 곧잘 하는 말이 바로 “성공은 실패의 옆집에 산다.”이다. 그의 성공담에 감초처럼 따라다니는 1973년의 ‘해인사 주유소 쟁취사건’(정유 4사가 맞붙어 유공 승리로 귀결)과 1981년의 ‘300일 전쟁’(호남정유에 시장점유율을 역전당했다가 300일만에 재역전)도 실패 끝에 얻은 성공이었다. ●최태원 회장,“창조적 긴장감의 명수” 입사해서는 줄곧 영업쪽에 몸담았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장돌뱅이’다.1995년 어느날 느닷없이 이동통신사(SK텔레콤의 전신인 한국이동통신) 전무로 발령났다.‘기름이나 팔던 놈이 첨단통신을 알겠어.’라는 주위의 냉소를 물리친 것도 바로 이 장돌뱅이 근성이었다. 그렇게 그는 011 가입자수를 2년만에 700만명으로 늘려놓고 ‘00700’(SK텔링크 사장)을 거쳐 2002년 친정(SK가스)으로 돌아왔다.2004년 지금의 SK에너지를 맡고 나서는 취임 첫 해 영업이익 1조원 돌파라는 기록을 냈다. 안방 장사(주유소 영업)에 의존하던 SK에너지를 수출기업(9월 말 현재 수출비중 58%)으로 변모시킨 것도 그다. 그는 최태원 그룹 회장을 두고 “창조적 긴장감의 명수”라고 했다.“보고 중간에 끼어들거나 말을 끊는 법이 결코 없다. 나는 작은 부분까지 꼼꼼히 챙기는데 회장께서는 권한과 책임을 철저히 일임한다. 거기서 오는 창조적 긴장감이란 실로 엄청나다.” ●이학수 전 실장과 인문학 ‘열공’ 그는 어렸을 적 “동지 지나 열흘이면 팔십노인이 십리를 간다.”는 어머니의 채근이 몸에 배어 지금도 새벽 4시면 일어난다. 바쁜 와중에도 매주 월요일에는 성공회에서 하는 인문학 강좌에 참석하려 애쓴다. 부산상고 1년 후배인 이학수 전 삼성 전략기획실장(현 고문) 등 언제 봐도 반가운 얼굴들이 있어서다. 이 실장은 부인과 함께 나란히 수강,‘열공’(열심히 공부)이란다. 글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사진 손형준기자 boltagoo@seoul.co.kr
  • [씨줄날줄] 찬드라얀 1호/노주석 논설위원

    1957년 10월4일 옛 소련이 인류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발사한 이후 미국과 소련의 우주 선점전이 장군멍군식으로 치열하게 진행됐다.58년 1월 미국이 인공위성 익스플로러 1호로 응사하자 소련은 61년 한걸음 나아가 사상 첫 유인우주선을 쏘아올렸다. 첫 우주인 유리 가가린이 108분 동안 지구를 한 바퀴 돈 것이다. 이에 질세라 미국은 68년 유인 달 탐사선 아폴로11호를 발사했고 닐 암스트롱은 달 표면을 밟은 최초의 인간으로 기록됐다. 70년대 이후는 우주공간을 확보하는 우주정거장 개발시대였다. 소련이 71년 최초의 우주정거장 살루트를 선보이자 미국은 73년 스카이랩을 지었다.86년 발사된 소련의 2세대 우주정거장 미르시대를 거쳐 98년 이후 미국과 러시아, 일본, 유럽 등 16개국 합작의 국제우주정거장(ISS)이 2010년 완성을 목표로 지어지고 있다. 미국 주도의 초대형 우주개발 국제협력 프로젝트이다. ‘그들만의 리그’였던 우주개발은 65년 프랑스의 위성발사로 몇몇 나라로 확대됐지만 무인 인공위성 수준에 머물렀다.2003년 선저우5호를 성공적으로 발사한 중국은 세계 3번째 유인 우주선 개발국가로 이름을 올렸다. 지난달 선저우7호가 우주유영에 성공하는 등 우주강국의 대열에 합류했다. 인도가 무인 탐사선 찬드라얀 1호의 발사에 성공했다.2007년 가구야와 창어1호를 각각 쏘아올린 일본과 중국에 이어 아시아에서 3번째 달 탐사위성을 발사한 나라가 됐다. 찬드라얀이란 산스크리트어로 ‘달 탐사선’이란 뜻이다. 우리의 현주소는 어떨까.92년 최초의 인공위성 우리별 1호를 시작으로 아리랑2호 등을 보유하고 있다.2017년까지 300t 급 발사체를 자력발사하는 것이 지상목표다. 위성을 자력으로 발사하는 나라는 8개국뿐이고 군사 첩보위성은 다른 나라의 발사체를 이용하는 것이 불가능하다.2020년 달 탐사위성 1호를 쏘아올리고 2025년쯤 착륙선을 달에 보낸다는 로드맵이 정해져 있다. 늦었지만 실망할 일도 아니다. 우리는 1448년(세종 30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로켓병기 신기전(神機箭)을 만들었던 ‘과학민족´이 아니던가. 노주석 논설위원 joo@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고품격 한식 전도사 조태권 광주요 대표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고품격 한식 전도사 조태권 광주요 대표

    음식은 ‘사람’이고 그릇은 곧 ‘옷’이다. 하여, 곱게 단장된 밥상 위의 음식은 당연히 ‘스타’처럼 멋있게 보일 터. 그렇다면 우리의 것으로 세계적 ‘슈퍼스타’를 만들어봄직 아니한가. 바로 영원불멸의 진정한 ‘한류’말이다. 조선시대의 명품 도자기 맥을 잇는 조태권(60) 광주요(廣州窯) 대표. 그는 20년째 우리 음식문화의 ‘슈퍼스타’ 발굴에 고집하고 있다. 최고의 도자기는 물론이요 이에 걸맞은 음식과 술은 꾸준히 만들어내고 있는 것. 2년 전이다. 중동 두바이 왕자와 일행들이 한국에 왔다. 이들은 조 대표가 운영하는 서울 강남의 식당을 찾아 저녁메뉴로 홍계탕을 주문했다. 홍삼과 닭, 버섯, 전복 등의 재료가 들어간 이 홍계탕은 한 그릇에 30여만원에 달하는 고가로 외국인을 겨냥, 최고품으로 개발된 것. 이들은 이날의 맛을 잊지 못했던지 다음날 숙소인 호텔에서 다섯 그릇을 주문했다. 지난해였다. 이들은 또 한국을 잠시 방문했다. 바쁜 일정 때문에 식당에 들르지 못했다. 돌아가던 날 “타고온 자가용비행기가 있는 곳으로 홍계탕 13그릇을 배달해줄 수 있느냐.”고 했다. 식당에서는 기꺼이 응했고 공항에서 540만원을 결제했다. 이후 두바이 부호들이 한국에 올 때면 홍계탕을 찾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런 소문이 났던지 2007년 ‘뉴스위크지’와 ‘뉴욕타임스지’에 한국의 홍계탕을 파격적으로 소개했을 정도로 홍계탕은 세계적 ‘슈퍼스타’로 떠올랐다. 홍계탕 외에 전복갈비찜, 랍스터떡볶이, 랍스터잡채 등도 세계화를 위해 조 대표가 직접 개발해낸 스타급 메뉴로 한국을 찾는 고급 바이어들에게 선호도가 높다. 그가 3년 전 개발해낸 전통 증류식 소주 ‘화요’도 세계적 인기반열에 올랐다. 지난해 영국 런던에서 열린 2007국제주류박람회(IWSC)에 ‘화요’를 출품, 동상을 수상했다. 또 지난 5월 벨기에에서 열린 2008몽드셀렉션(주류·식품 경연대회)에서 우리의 전통주로는 처음으로 ‘화요’가 금상을 차지했다. 출시 3년 만에 수상한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국내에서도 일식과 한정식당, 골프장 등에서 양주 대신 ‘화요’를 찾는 고객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는 기회 있을 때마다 ‘그릇-음식-술’을 들고 외국에 자주 다니면서 한국의 고품격 음식문화를 전도하기에 여념이 없다. 국내에서는 1998년부터 매년 ‘아름다운 우리 식탁전’을 개최하면서 우리 식문화 발전에도 기여하고 있다. 서울 양재동 aT센터에서 ‘코리아푸드엑스포 2008’이 한창 열리던 지난주, 때마침 한승수 국무총리가 ‘한식 세계화 선포식’을 하던 날 서울 삼성동에 위치한 광주요 서울사무실에서 조 대표를 만났다. 자리에 앉으면서 요즘에는 어떤 일로 바쁘냐고 했더니 강의 때문에 정신없이 지낸다면서 한 30여분 동안 다른 질문을 할 틈도 없이 계속 목소리를 높여나간다. “이제는 식생활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의식수준이 변해야 합니다. 생계형 음식도 중요하지만 세계를 지배할 한국적 명품음식을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 미래성장의 원동력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IT산업인가요? 그건 다른 나라도 다 하는 겁니다. 우리만이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음식문화입니다. 또 그걸 하루빨리 국가적 브랜드화해야 합니다. 일본은 최근 국가적으로 다시 ‘기모노’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결국 미래 국가경쟁력의 상품은 문화상품인 것이지요. 요새 우리가 말하는 한류는 반짝했다 사라지는 감성적인 것입니다. 선진국에 가보면 대부분 그들만의 음식문화를 아주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일본의 스시, 프랑스의 코냑, 미국 나파밸리의 포도, 스코틀랜드의 밸런타인 등도 마찬가지이지요. 다행히 이제야 우리도 ‘한식 세계화 선포식’을 가졌지만 음식과 술의 가치를 높이면 포장이 달라지고, 이럴 때 우리나라를 찾는 손님들은 진한 감동을 안고 가게 됩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나라는 일제 강점기를 겪으면서 전통 음식문화가 단절되고 한국전쟁 이후에는 그저 잘 살아보자는 꿈밖에 없었습니다. 한식당을 운영하는 사람은 술장사로 터부시했고 그러다보니 돈있는 사람들은 투자를 안 했지요. 우리나라는 지금도 대부분 생계유지를 위해 음식장사를 합니다. 옆집, 앞집 식당과 경쟁을 하게 되다 보니 강한 조미료를 쓰고 가격은 내려야 하지요. 우리나라는 인구 67명당 식당이 한개씩 있고 1년에 10만개의 식당이 문을 닫고 있는 실정입니다. 가치경쟁이 아닌 가격경쟁을 하다 보니 음식발전이 더디지요. 식구들과 외식하려면 집에서 먹는 것보다 가치가 높아야 찾게 되거든요. 이젠 우리의 미래를 위해 대기업들이 이에 뛰어들어야 하고 국책사업으로 지정돼야 합니다.” 그는 한식을 말할 때 이제는 ‘전통’이란 말을 빼자고 했다. 우리의 요리방법에 외국인들이 먹기 좋게, 외국인들이 즐길 수 있는 코스요리 만들어 세계화로 나가면 그게 바로 우리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 뿌리가 ‘코리아’라고 불리면 된다는 것이다. ▶시장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요. “20년 후 세계 자동차 시장은 1320여조원,IT산업은 2700여조원이지만 외식시장은 5000조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됩니다. 음식이란 한번 각인되면 아주 오래갑니다. 다른 산업처럼 리스크가 거의 없어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우리 음식이 세계화하려면 꼭 전통에만 얽매이지 말고 현재의 우리 재료로 세계의 눈높이에 맞춰 ‘퀄리티업’을 하자는 것이지요.˝ 그는 경남 남해에서 6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사업을 해 어린 시절 비교적 부유하게 지냈다. 경기중 2학년때 5·16이 나자 아버지가 부정축재자로 몰리는 바람에 집안은 풍비박산이 됐다. 가족들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간 그는 고등학교를 다닌 뒤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미주리대학을 다닐 때 그는 학비는 스스로 벌어야만 했다. 선배의 도움으로 프랑스 식당에서 ‘버스보이’를 했다. 버스보이(busboy)는 웨이터의 심부름꾼으로 웨이터가 월급을 받으면 그중 15%가량 받는 것이었다. 냅킨접기, 접시닦기 등의 일이었지만 정직과 신뢰를 인정받아 곧 웨이터로 승격했다. 이후 방학 때는 웨이터로, 개강때는 공부에 전념했다. 대학을 졸업한 직후 ‘메릴랜드 오션시티’의 한 스테이크집에서 3개월 동안 일해 5000달러를 벌어 부모가 계시는 일본에 들렀다. 당시 부친은 맥이 끊긴 조선 도자기 부흥을 위해 경기 이천에 광주요를 창업한 뒤,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도자기를 판매하고 있었다. 1974년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대우에 취직했다. 입사 후 얼마 안 돼 아프리카와 유럽 지사장에 발탁되는 등 승승장구를 거듭했다. 이어 김우중 대우회장의 특명을 받아 방위산업 영업을 맡기도 했다. 퇴사한 뒤에는 직접 무기거래사업을 벌였다. 이때 세계 최고의 부호들과 어울리면서 나름대로 돈을 벌었다. 그러던 1988년 부친이 타계하자 모든 것을 그만두고 광주요 운영에 매진했다. 이후 도공들과 함께 선진 여러 나라를 돌아다녔다. 박물관을 순례하면서 질 좋은 도자기가 어떤 것이지 새삼 깨달았다. 결국 산화와 환원을 번갈아 시도하는 ‘중성기법’으로 붉은색, 푸른색을 함께 띠는 상감기법의 도자기를 개발해내기도 했다. 그가 우리 음식문화의 세계화를 부르짖게 된 계기는 도자기를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면서 느낀 바가 컸기 때문. 도자기 강국이 정치, 경제, 문화, 사회가 균형있게 발달된 선진국이라는 걸 실감했고 그릇과 음식, 술 등이 등급별로 만들어져 어울리는 ‘명품’을 보게 됐던 것이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10년 후에는 세계인이 좋아하는 1병당 1000달러짜리 술을 반드시 만들어내겠다.”면서 우리 것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인물전문기자 km@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조태권은 누구 ▲1948년 경남 남해 출생 ▲1966년 일본 도쿄 미국인 고등학교(ASIJ) 졸업 ▲1973년 미국 미주리대학 공업경영학과 졸업 ▲1973~1974년 일본 도쿄 마루이치상사 근무 ▲1974~1982년 (주)대우 섬유부· 철강부 특수물자부 근무. 그리스지사장 역임 ▲1988년 (주)광주요 대표 ▲1996년 재단법인 광주요 도자문화연구소 설립 ▲1998~2004년 아름다운 우리식탁전개최 ▲2003년 한식전문 ‘가온’ 1호점 개점 ▲2005년 증류식 소주 ‘화요’ 출시 ▲2006년 중국 베이징에 ‘가온’ 개점, 한식요리 전문 ‘낙낙’과 ‘녹녹’오픈 ▲2007년 런던 개최 국제주류박람회 ‘화요’ 동상 수상 ▲2008년 벨기에 개최 2008몽드셀렉션(주류·식품 경연대회) ‘화요’ 금상 수상 ▲2008년 현재 (주)광주요·화요 대표
  • [물은 미래다] 물은 잘 다스려야

    [물은 미래다] 물은 잘 다스려야

    해마다 물난리가 되풀이되고 있다. 여름에는 홍수가 휩쓸고 지나가고 봄·가을에는 가뭄으로 국토가 타들어 간다. 주요 하천유역에서는 15개 다목적댐이 수공(水攻)의 안전판 역할을 하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기후변화에 따른 돌발·집중호우가 잦아 다목적댐 홍수조절 능력도 과부하가 걸리고 있다. 물난리를 막기 위한 사전 투자와 효율적인 물관리 시스템이 재해를 줄이는 지름길이다. ●충주댐 덕 한강 중하류 수해 면해 2007년 여름 한강수계에 국가적인 위기가 닥쳤었다. 장마철 평균 강우량이 898.8㎜로 예년(322.3㎜)에 비해 3배 가까이 불어났다.7월10∼22일 충주댐 유역에는 619㎜가 쏟아졌다. 예년보다 3.3배나 많았고 1973년 기상관측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상·하류 따질 것 없이 한강 유역은 비상사태가 발생했다. 특히 남한강 유역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다. 북한강 유역은 5개 댐이 홍수피해를 단계적으로 줄여줬지만 남한강 유역은 북한강 유역에 비해 수역이 2∼3배 넓어 상대적으로 홍수에 취약함에도 불구하고 충주댐이 전부였다. 충주댐 상류 충북 단양 지역은 도시와 논밭이 침수되기 시작했다. 도담삼봉까지 물에 잠길 정도였다. 경기 여주 지역과 한강 하류도 금방 집어삼킬 것만 같았다. 충주댐(저수용량 27억 5000만㎥)이 버티고 있었지만 한계에 다다랐다. 계획홍수위(145m)를 불과 0.1m밖에 남겨두지 않을 만큼 최소한의 물만 내려보내고 들어오는 물을 가두면서 시간을 끌었지만 비는 쉽게 그치지 않았다. 댐 상류 단양 주민들은 도시가 물에 잠긴다며 수문을 열라고 아우성이었다. 반면 댐 중·하류 주민들은 수문을 닫으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토해양부 한강홍수통제소와 한국수자원공사 물관리센터는 충주댐 운영 이후 최대인 2만 2650㎥/s(초)가 유입됐지만 그중 40% 수준인 9050㎥/s만 조절 방류하고 있었다. 그러나 더 이상 수문을 닫아둘 수도 없었다. 계획 수위를 넘으면 댐 안전에도 문제가 생겨 일시에 더 큰 피해를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상류지역 피해도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었다. 다행히 북한강 유역은 5개의 댐이 홍수를 조절해 주고 유입량도 줄어들고 있었다. 물관리센터는 한강유역 기상을 확인한 뒤 소양강댐을 비롯한 북한강 유역 댐 수문을 닫는 대신 남한강 댐 수문을 서서히 열기 시작해 방류량을 추가로 3000㎥/s 늘렸다. 댐은 곧 계획홍수위에서 0.9m의 여유를 보이면서 위급상황에서 벗어나고 단양지역도 완전 침수 위기에서 벗어났다. 충주댐으로 유입된 28억㎥ 가운데 13억㎥만 하류로 흘려보내고,15억㎥를 묶어두었다. 충주댐 하류는 하천변 378ha(113만평)의 침수를 막아 2조 1000억원의 홍수피해를 줄일 수 있게 됐다. 결국 충주댐이 버텨준 덕분에 서울 등 한강 중·하류 지역 도시는 물에 잠기는 피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복구보다 예방사업 투자에 비중을 16일 한국수자원공사에 대한 국회 국토해양위원회 국감에서 의원들은 한결같이 홍수와 가뭄을 막기 위해 다목적댐의 효율성을 강조했다. 수자원공사가 전국 15개 다목적댐을 관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상 기후다. 홍수 빈도가 커지고 피해도 늘어나고 있다.2002년 8월 집중호우와 태풍 루사가 한반도를 강타하면서 강원 강릉에는 하루 870.5㎜나 내렸다. 사망 209명, 실종 37명,6조원 이상의 재산피해가 났다.8조원이 넘는 복구비를 쏟아부었다. 다음해 태풍 매미도 예외 없이 큰 피해를 몰고왔다.118명이 사망하고 13명이 실종됐다. 재산피해도 4조 2000억원, 복구에 6조 5500억원이 투입됐다.2006년 7월 태풍 에위니아와 집중호우도 62명 사망에 1조 8000억원의 재산피해를 가져왔다. 피해복구비만도 3조 5125억원을 들여야 했다. 그런데도 물관리는 엉망이다. 예방 사업보다 복구비가 많은 비효율적인 투자가 되풀이되고 있다. 치수 관련 예산은 ‘치수사업비)복구비’ 구조로 돼야 하는데 우리는 거꾸로다. 댐 건설도 환경파괴, 수몰지역 주민대책 등으로 한계에 직면해 있다. 심명필(한국수자원학회장) 인하대 사회기반 시스템공학부 교수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어리석음을 저지르기 전에 치수 관련 투자를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심 교수는 “자연 재해를 모두 막을 수는 없지만 최소화할 수는 있다.”면서 “재해 관련 예산을 늘리되 복구보다 예방사업에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기후변화로 홍수 피해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다. 홍수와 가뭄을 동시에 막는 비결은 다목적댐이라고 입을 모은다. 윤석영 한국기술연구원 책임연구원은 “기후변화로 강우 규칙성이 사라지고 비 내리는 일수는 줄어드는데 강우 강도는 커져 특정 지역 홍수 피해가 자주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국토가 좁고 산악지형이라서 홍수 피해를 많이 입지만 지리적 여건을 이용하면 되레 물을 자원으로 개발하고 홍수도 막을 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 있다.”며 중소 규모 댐 건설 투자를 강조했다. 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 “숙원 풀었다”…칠레, 아르헨 1대 0 제압 이변

    “숙원 풀었다”…칠레, 아르헨 1대 0 제압 이변

    칠레 축구가 숙원을 풀었다. 칠레 전국이 약속이나 한 듯 거리로 쏟아져 나온 축구 팬들로 넘쳐 났다. 칠레가 16일 산티아고에서 벌어진 남아공 월드컵 남미예선 10차전 홈경기에서 아르헨티나를 1대0으로 제압했다. 칠레가 월드컵예선 공식 경기에서 아르헨티나를 누른 건 이번이 사상 처음이다. 친선경기까지 따져봐도 아르헨티나를 꺾은 것도 이미 추억이 된지 오래로 35년 전인 1973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칠레 현지 일간지 메르쿠리오는 “친선경기 승리의 기억마저 가물해지며 역사에 묻혀가고 있는 가운데 칠레 대표팀이 역사적인 승리를 거뒀다.”고 전했다. 현지언론은 “자살골로 이긴다고 해도, 오판으로 얻은 패널티킥으로 승리한다고 해도 감격스러울 판인데 칠레가 아르헨티나를 완전히 제압했다.” , “점수 차를 더 벌리지 못한 게 아쉽다.” , ”90분 내내 견고한 게임내용으로 아르헨티나를 완전히 제압했다.” 등 감동에 흠뻑 젖은 보도를 쏟아냈다. 거리엔 축구 팬들로 홍수를 이뤘다. 산티아고 이탈리아 공원에는 경기가 종료된 직후 수천여 명이 몰려나와 대표팀의 첫 아르헨티나전 승리를 자축했다. 칠레 현지 언론은 “운집한 축구 팬들이 국가를 합창하며 자정을 넘겨 새벽까지 흩어지지 않았다.”고 전했다. 칠레는 이날 승리로 5승 1무 4패를 기록, 남미 조 4위로 올라섰다. 남미에 배당된 월드컵본선 직행 티켓은 모두 4장이다. 한편 이날 경기는 아르헨티나 명장 간의 대결로도 관심을 끌었다. 칠레 국가대표팀을 이끌고 있는 마르셀로 비엘사 감독은 2002년 한일월드컵 때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을 맡았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남미통신원 임석훈 juanlimmx@naver.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백제 부흥운동 16년째 연구 고고학박사 최병식

    [김문기자가 만난사람]백제 부흥운동 16년째 연구 고고학박사 최병식

    너무나 슬픈 운명이다. 통곡과 한(恨)도 많다. 비록 현장을 보지 못했을지라도 그들의 삶과 죽음이 어떠했는지 1300여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여전히 살아 있는 숨결로 다가온다. 한 남자가 ‘백제의 마지막’을 끌어안은 까닭이다. 역사기록에 의하면 삼국시대 백제는 660년에 멸망한 것으로 돼 있다. 하지만 ‘아니다’라는 주장이다.3년 뒤인 663년이라는 것. 어째서? 백과사전에서 ‘주류성’이란 단어를 일단 찾아본다. ‘660년 7월18일 백제의 의자왕이 신라·당(唐)의 연합군에게 항복했다. 이후 백제사람들의 부흥운동이 일어났는데, 흑치상지(黑齒常之)와 복신(福信)이 웅거한 임존성(任存城)과 도침(道琛)이 이끄는 주류성(周留城)을 중심으로 부흥운동 세력이 통합됐다. 그리하여 주류성을 공격하는 나당연합군을 크게 이겼으며, 이러한 기세로 부흥군은 200여성을 회복했다. 나당연합군이 고구려 공격에 전념하고 일본에 있던 왕자 풍(豊)이 돌아와(662년 5월) 부흥운동을 이끌면서 더욱 활기를 띠었다. 그러나 부흥운동 세력의 지휘부 내에 분란이 일어나 복신이 도침을 죽이고, 다시 풍이 복신을 죽이는 데에 이른다. 더욱이 부흥군을 돕기 위해 왜(倭)가 보낸 병사 2만 7000명이 백강(白江)에서 궤멸되고 풍이 고구려로 달아나자 백제의 부흥운동은 이내 막을 내리고 말았다.’ 주류성과 관련, 다음과 같이 기록한 문헌도 있다. 백제 멸망 후 복신과 승려 도침 등이 부흥운동을 펼친 근거지로, 신라 문무왕 1년(661년)에 나당연합군을 물리치고 전세가 유리했으나 부흥군 지휘자 사이의 반목으로 663년 9월 성이 함락돼 백제 부흥운동은 끝이 나고 말았다. 이 성의 위치에 대해서는 충남의 한산과 홍성·연기, 전북 부안 등 여러 설이 분분하다. ‘일본서기’에는 ‘주류성이 백강에서 가깝고 농사짓는 땅과 멀리 떨어져 있으며, 돌 많고 척박해 농사지을 수 없는 곳이다. 싸움이 길어지면 백성들이 굶주리기 쉽다.’고 적혀 있어 위치 추정의 주요 근거가 되고 있다. ●“백제 멸망은 660년 아닌 663년으로 고쳐야” 이와 관련, 흥미로운 ‘삼천굴의 전설’도 있다. 당시 나당연합군은 백제 부흥군들이 숨은 굴을 찾아냈다. 병사들은 보이지 않았지만 청솔가지를 잔뜩 쌓아 놓고 무조건 불을 질러 쳐들어 갔다. 굴 속 깊숙이 숨었던 3000병사들이 모두 죽었다. 그들의 피가 계곡으로 흘러들었다. 그 골짜기는 지금도 ‘혈적곡’ 또는 ‘피숫골’로 불린다. 충남 연기 운주산에 올라보면 이같은 슬픈 역사의 현장을 떠올릴 수 있다. 당시 주류성 일대에서 나당연합군과 백제·일본 등 동북아 4개국이 사생결단의 전투를 벌였다는 것은 우리 역사에서 흔치 않은 일임은 분명하다. 전쟁 드라마를 쓴다면 흥행요소는 다 갖춘 셈이다. ●“백제 부흥의 근거지 주류성은 운주산 일대에” 지난 11일 운주산 고산사에서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제15회 백제고산대제를 개최하면서 백제 의자왕과 부흥군들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삼천범종’ 타종식을 가진 것. 지역 주민은 물론 여러 고고학자들이 참석했다. 이 행사를 주관한 사람은 최병식(57) 고고학박사. 비운의 주류성과 삼천굴을 찾기 위해 16년째 미치도록 한우물을 파는 인물이다.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한 그가 어느날 무역업을 냅다 팽개치고 ‘백제 부흥운동’에 뛰어들었다.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 논문도 ‘백제부흥’이었다. 국내에서 이런 내용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은 그와 서울역사박물관의 김영관씨 등 단 2명이다. 최 박사의 명함에는 계간 ‘한국의 고고학’ 발행인, 도서출판 주류성 대표, 운주문화연구원장 등이 적혀 있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 사무실에 들어서자 ‘백제의 언어와 문학’‘백제산성의 이해’‘백제토기 탐구’ 등 백제 관련 서적으로 가득했다. 최 박사가 직접 저술한 ‘최근 발굴한 백제 유적’도 눈에 들어온다. 지난 16년 동안 오로지 주류성을 만나기 위해 백제문고 33권을 완간했고, 관련 고고학 서적만 100여종을 발간했으니 간단치 않은 고집이다. ▶왜 주류성에 천착합니까. “여러 문헌에 보면 백제 의자왕이 항복한 이후 3년여 부흥운동이 주류성을 중심으로 펼쳐지는데 그 부분을 우리가 간과하고 있습니다. 백제멸망은 660년이 아닌 663년 9월이라고 기록해야 합니다. 반드시 주류성을 찾아 역사를 다시 써야지요.1971년 무령왕릉을 발견했듯이 말입니다.” ▶어떻게 해서 주류성과 인연을 맺게 됐습니까. “16년 전, 그러니까 1992년 봄이지요. 우연히 운주산에 올랐습니다. 정상에서 석비(石碑)를 보게 됐지요. 거기에는 ‘백제 부흥운동의 근거지인 주류성이 있던 곳으로 추정되지만 그 정확한 역사를 알 길이 없다.’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순간 온몸에 전율 같은 것을 느꼈지요. 며칠 뒤 서울로 돌아와 미국을 가게 됐습니다. 비행기 안에서 최인호의 ‘잃어버린 왕국’을 읽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하던 사업을 접고 주류성이라는 출판사를 설립하면서 이쪽으로 계속 연구를 하게 됐지요.” ▶전자공학을 전공했는데 나중에 고고학 박사가 됐습니다. “사실 백제에 대해서는 잘 몰랐습니다. 계백장군과 의자왕 정도만 알았지요. 하지만 그때 운주산에 오르면서 전생의 업보 같은 걸 느꼈습니다. 어떤 운명처럼 1994년 한양대에서 문화인류학 석사과정을 마쳤고 상명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으면서 백제에 관한 깊은 애정과 지식을 쌓게 됐습니다. 역사는 이긴 자의 몫이기 때문에 의자왕이나 삼천궁녀 등에 대해 잘못 기술한 것이 많습니다. 의자왕은 당나라에 잡혀 가기 전에 3년 동안 백성들이 먹고 살 수 있는 금괴 등을 몰래 숨겨놓는 등 방탕하지도 않고 백성들을 많이 사랑했습니다. 부흥운동도 의자왕에 대한 안타까움과 존경심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합니다.” ▶주류성이 운주산 일대에 있다는 근거는 무엇인가요. “운주산에는 당시 처절한 전투를 벌였던 산성이 있습니다. 또 아직 발견은 못했지만 3000병사가 몰살당한 삼천굴이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일본서기’에도 이같은 기록이 일부 나오고 신채호 선생도 운주산 주변이 주류성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다시 말해 운주산성에는 삼천굴, 여기에서 공주쪽으로 3㎞ 정도 떨어진 비암사에 주류성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673년 백제의 후손들이 만든 불비상(佛碑像)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지요.” ▶삼천굴 발굴작업은 어느 정도 진척이 되고 있나요. “일주일에 한번씩은 꼭 운주산엘 갑니다. 운주문화연구원이 거기에 있거든요. 그동안 연기군청과 함께 12군데를 시추했는데 아직 결정적인 근거를 찾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을 불러 지표면 조사와 연구를 한 결과 동굴이 있을 법한 석회질 등을 발견했습니다. 제가 추정하기엔 삼천굴은 쌍굴일 가능성이 아주 큽니다.” 그는 1997년에는 운주산 고산사 어귀에 ‘백제국 의자대왕위혼비’를 세웠다. 해마다 음력 9월8일 ‘고산제’를 열어 의자왕과 3000병사들의 넋을 달랜다. 백제학회 회원으로 1년에 한번씩 관련 세미나와 학술강연회를 갖는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살아 있을 때 반드시 주류성과 삼천굴을 찾는 것”이라는 대답이 지체없이 돌아온다. 돈 되는 일도 아니고, 학술단체에서도 못하는 사라진 역사의 흔적을 외롭게 한 개인이 찾는다는 점에서 문득 경외심이 느껴졌다. 인물전문기자 km@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최병식은 누구 ▲1951년 충북 음성 출생 ▲69년 경동고 졸업 ▲76년 한양대 전자공학과 졸업 ▲92년 운주산성 일대 백제 부흥군의 마지막 근거지인 주류성 및 삼천굴 발굴작업 시작, 주류성 출판사 설립 ▲97년 운주산에 백제 부흥군을 위한 절 고산사 세움 ▲99년 한양대 대학원 문화인류학과 고고학 석사 ▲03년 대한문화재신문 발행 ▲06년 상명대 대학원 사학과 고고학(백제부흥) 박사학위 취득, 계간지 ‘한국의 고고학’ 창간 ▲08년 현재 백제사문고 33권 완간. 출판사 주류성 대표,‘한국의 고고학’ 발행인, 운주문화연구원 원장
  • [NOW포토] 김해숙 ‘레드카펫서 눈에 띄는 푸른색 드레스’

    [NOW포토] 김해숙 ‘레드카펫서 눈에 띄는 푸른색 드레스’

    임권택 감독이 9일 오후 부산 해운대 그랜드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부일영화제’ 시상식 레드카펫 행사에 참석했다. 국내 최초의 영화상으로 알려진 부일영화상은 1973년 제 16회를 마지막으로 중단됐다가 이번 제13회 부산국제영화제 기간 제17회로 재탄생했다. 서울신문NTN 조민우 기자(부산) blue@seoulntn.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NOW포토] 임권택 감독 ‘레드카펫 입장’

    [NOW포토] 임권택 감독 ‘레드카펫 입장’

    임권택 감독이 9일 오후 부산 해운대 그랜드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부일영화제’ 시상식 레드카펫 행사에 참석했다. 국내 최초의 영화상으로 알려진 부일영화상은 1973년 제 16회를 마지막으로 중단됐다가 이번 제13회 부산국제영화제 기간 제17회로 재탄생했다. 서울신문NTN 조민우 기자(부산) blue@seoulntn.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NOW포토] 곽경택 감독 ‘깔끔한 옷, 가벼운 미소’

    [NOW포토] 곽경택 감독 ‘깔끔한 옷, 가벼운 미소’

    임권택 감독이 9일 오후 부산 해운대 그랜드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부일영화제’ 시상식 레드카펫 행사에 참석했다. 국내 최초의 영화상으로 알려진 부일영화상은 1973년 제 16회를 마지막으로 중단됐다가 이번 제13회 부산국제영화제 기간 제17회로 재탄생했다. 서울신문NTN 조민우 기자(부산) blue@seoulntn.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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