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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잘나가던’ 조선, 왜 일본에 역전당했을까?

     ‘일본, 한국병합을 말하다’(열린책들 펴냄)는 한국인이 아니라 일본 학자들이 “일본, 도대체 왜 이래?”라는 질문을 던지는 논문집이다. 지난해 한·일병합 100년을 맞아 병합조약의 불법성을 인정했던 일본의 진보적 학자들이 낸 19편의 글이 실렸다. 일본 잡지 ‘사상’(思想)에 ‘한국병합 100년을 묻다’를 주제로 발간한 특집호와 뒤이어 열린 심포지엄 내용을 정리한 단행본을 번역한 것이다.  가장 눈길을 끄는 논문은 미야지마 히로시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교수의 ‘일본사 인식의 패러다임 전환을 위하여’이다. 미야지마 교수는 일본이 다른 아시아 국가와 달리 고리타분한 유교에 젖지 않아 우뚝 설 수 있었다는 ‘탈아론’(脫亞論) 자체를 겨냥한다. 미야지마 교수가 보기에 이는 거꾸로다. 유교에 젖지 않아 일본이 우뚝 설 수 있었던 게 아니라 유교 문화권이 아니어서 일본은 내내 주변부 외톨이로 지내야 했다.  미야지마 교수는 이토 히로부미가 조선통감으로서 추진한 사법개혁 작업을 한 예로 든다. 일본에 근대 민법과 상법을 도입한 법학자 우메 겐지로를 조선에 불러들였는데 그는 조선을 연구한 뒤 “소유권이라 할 수 있는 권리가 한국의 인민에게는 적어도 수백년 전부터 인정되어왔다는 점은 의심할 수 없다.”고 결론지었다.  쉽게 말해 우매한 조선에게 한 수 가르쳐주려 했더니, 조선은 이미 두세수 앞서 가고 있더라는 얘기다. 조선은 어떻게 근대적 소유권 제도를 수백년 전에 이미 확립했을까. 미야지마 교수는 “그게 바로 (일본이 끝내 거부한) 유교문명권의 특징”이라고 답한다.  1871~1873년 사이 메이지 정부가 단행한 일본의 근대 개혁 작업에 대해서도 미야지마 교수는 평가절하한다. 그때서야 일본에 도입된 호적·징병제도, 토지매매나 직업·이주의 자유, 군현제는 이미 조선에 있었다는 것이다. 미야지마 교수는 “일본이 추진했다는 근대적 개혁의 상당 부분은 조선에는 필요 없었다.”면서 “조선에 이미 있었고, 그 까닭은 유교모델을 수용한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그렇다면 질문은 바뀌어야 한다. 왜 근대화에 한발 더 가까이 다가가 있던 조선이 일본에게 역전당했는가. 미야지마 교수는 “서구와 일본에서 근대에 들어 비로소 실현됐던 상당 부분이 조선에 이미 실현되어 있었다는 조건” 그 자체가 걸림돌이었다고 본다.  즉, 이미 어느 정도 그런 제도가 뿌리 내리고 있다 보니 “근대적 변혁을 실시하기 위한 과제가 무엇인지 불명확해지고, 이로 인해 서구 문명 수용이 절실하게 인식되기 곤란해졌으며, 동시에 서구문명을 상대화하려는 움직임이 필연적으로 등장하게 된다.”는 것이다.  서구문명을 접한 조선·일본 양국 지식인이 남긴 기록을 보면 일본은 ‘매료’가 분명히 드러나는 반면, 조선은 ‘비판적 수용’이 뚜렷하게 나타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봤다. 뒤집으면 워낙 밑천이 없었던 일본은 남의 것을 금세 주워 먹을 수 있었지만, 유교문명권 속에서 오랜 중앙집권적 관료제의 전통을 지닌 조선은 가진 게 워낙 많아 움직임이 굼뜰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미야지마 교수는 이 문제는 아직도 풀리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 한 사례로 “일본 민중운동과 시민운동의 정체”를 들었다. 한국은 1987년 민주화 이행을 계기로 사회제도적 차원에서의 진보가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는 반면, 일본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서구적 전통을 근대화를 목표로 급속하게 수입한 것과 다소간 뒤틀림이 있고 전진과 후퇴가 있더라도 그 이전 사회역사적 경험을 토대로 수용하는 것과의 차이라는 뜻이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전설의 쿵푸스타’ 이소룡 코트, 고가에 낙찰

    ‘전설의 쿵푸스타’ 이소룡 코트, 고가에 낙찰

    “이소룡은 죽지 않았다!” 전설의 쿵푸스타로 불리는 이소룡이 생전 입었던 코트 등 유품 13점이 최근 열린 경매에서 고가에 낙찰돼 눈길을 모으고 있다고 AFP등 해외언론이 7일 보도했다. 지난 6일 홍콩의 완차이섬에서 열린 이번 경매에는 이소룡이 영화 속에서 입었던 코트와 친구에게 보낸 친필 편지, 무명시절 사용한 명함, 그가 미국 시애틀에서 문을 연 무술도장의 회원카드 등 총 13점이 공개됐다. 이중 최고가에 낙찰된 것은 이소룡이 유작 ‘사망유희’에 입고 출연한 뒤 사망 직전까지 즐겨 입은 청색 코트. 이 코트는 60만 홍콩달러(약 8300만원)에 낙찰됐다. 경매 전 예상가보다 9배 높은 가격이다. 낙찰에 성공한 사람은 이소룡의 열혈 수집가인 그레그 매닝. 그는 지금까지 이소룡의 유품을 수집하는데 560만 달러(약 60억 원)을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소룡의 시애틀 무술도장 회원카드는 20만 홍콩달러(약 2770만원)에, 친필 편지는 40만 홍콩달러(약 5540만원)에 낙찰됐다. 그의 유품 13점의 총 낙찰액은 178만 홍콩달러, 우리 돈으로 2억 4700만원에 달해 그의 인기를 새삼 실감케 했다. 한편 1940년 홍콩출생인 이소룡은 ‘당산대형’, ‘정무문’, ‘맹룡과강’, ‘용쟁호투’ 등 쿵푸영화를 연달아 흥행시키며 홍콩영화계 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큰 사랑을 받았다. 쿵푸영화를 하나의 장르로 다지는데 큰 공을 세우기도 한 그는 그러나 1973년 뇌부종으로 사망했다. 정확한 사인을 두고 현재까지 논란이 끊이지 않으며, 홍콩에는 그의 동상이 세워졌을 만큼 여전히 팬들의 관심이 끊이지 않는 스타 중 하나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마릴린 몬로의 신풍(新風)

    마릴린 몬로의 신풍(新風)

      「노만·메일러」의『마릴린·몬로-그 신화와 진실』이 신풍을 일으키고 있다. 흥미있는 것은 그 인기와 더불어 도작 시비까지 곁들여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노만·메일러」는「풀리처」상까지 받은 당대 1급의 대작가이며「논·픽션」저작자-.  『나자(裸者)와 사자(死者) 』『밤의 군대』등 거작으로 유명하다.  그의 최근 저서『마릴린』이라는「논·픽션」역시 심혈을 기울여 쓴 것인데 그것이 화제가 되자 갑자기 표절 시비가 나돌게 된 것이다.「노만·메일러」는 노발대발하면서『어느 놈이건 내 작품을 가지고 시비하거나 나를 도작작가(盜作作家)로 부르거나 한다면 가만 있지 않겠다- 무서운 보복을 받을 줄 각오하라』고 열을 올리고 있다.  이미 발매되기 전부터(10월8일 발매 예정) 평판이 높은「마릴린·몬로」는 이제까지 그의 작품을 읽어 본 일이 없는 사람들까지 앞을 다투어 읽으려 하는 등 이 세계적 작가가 해부할「마릴린」의 모습에 대해 기대가 자못 부풀어 오르고 있는 때에 공교롭게 표절 시비가 나돌게 된 것이다.  「노만·메일러」에게 표절 시비의 도전장을 낸 사람은 영국의「H·아렌」사의「굴덴」회장-.  『「메일러」씨의 책은 우리 출판사에서 발행한「프레드·가일스」저「노마·진」(몬로의 본명)과「모리스·조로토프」의「마릴린·몬로」등 두 작품을 대폭적으로 인용했다』고 한 것이다.  이에 대해「노만·메일러」의 변호사「C·렌버」씨는『「굴덴」씨가 전적으로 사죄하지 않으면 명예훼손죄로 그를 고발하겠다. 소송은 영국에서 벌어질 것이며 우리는 막대한 손해배상금을 요구할 계획이다.「노만·데일러」의 대작가에 대해서 그와 같은 엉터리 비난은 용서받을 수 없다. 속히 사과하는 글을 매스컴에 발표해야 할 것』이라고 반격하고 있다.  『인용했다』는「굴덴」씨의 비난에 대해「메일러」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나는 몇가지를 인용한 것이 사실이다.「논픽션」인 까닭에 같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사전에 두 사람의 작가에게 보통 이상의 사례를 이미 했다』고-. 그러나 그 이후부터 인용에 대해『지불했다』『받은 바 없다』라는 비난이 오갈뿐 아직 이렇다 할 결말이 나지 않고 있다.  그런데「메일러」의 말 가운데『가만히 있지 않으면 무서운 보복을 하겠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에 대해 관심이 높다.  그러나 이런 시비 역시「메일러」의『마릴린』이 워낙 발매 전부터 선풍을 일으키고 있기 때문에 빚어진 듯하다.  문제의『마릴린』은 종전에 볼 수 없을 만큼 책의 판행까지 커서 길이가 11인치, 세로 9인치로 볼륨감이 있다.  이미 미국과 영국을 비롯해 핀란드 프랑스 일본 등지에서 변역하겠다고 계약을 끝마쳤으며 그야말로 세계의 지가(紙價)를 올릴 것이라는 전망이 짙다.  「메일러」의『마릴린』이 화제를 일으키자 온통 세계는「마릴린」이 되살아난 것처럼 야단법석.「메일러」는 자신의 책을 통해『TV시대가 일어나기 전의 마지막 유일한 영화 스타』라고 극찬하고 있다.  흥미있는 것은『「마릴린」이 생존시 그녀와 접해 본 일이 없는 것이 필생의 한(恨)이 되었다』는「메일러」자신의 말인데 도작 시비와 더불어 이래저래 이 책은 공전의 베스트 셀러가 될 것 같다는 평이다. [선데이서울 73년 7월29일 제6권 30호 통권 제250호] ●이 기사는 ‘공전의 히트’를 친 연예주간지 ‘선데이서울’에 38년전 실렸던 기사 내용입니다. 당시 사회상을 지금과 비교하면서 보시면 더욱 재미있습니다.
  • 노벨상 수상자·노벨상 꿈나무 ‘뜻깊은 만남’

    노벨상을 꿈꾸는 서울 성심여중 2년 안병현양, 경기대안중 3년 정연호군 등 중·고교생 5명이 4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그랜드인터콘티넨탈호텔에서 5분 남짓 자신들의 연구 결과를 영어로 발표했다. 150여명의 중·고교생과 학부모들이 함께 자리했다. 행사에는 지난 1973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미국인 이바르 예베르 박사와 1998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탄 루이스 이그내로 미국 UCLA 의대교수가 참석, 안양 등의 주제발표를 듣고 직접 조언을 했다. 또 다른 학생들과 질의응답 시간도 가졌다. 예베르 박사는 이론적으로만 설명되던 초전도현상을 실험을 통해 확인한 공로로, 이그내로 교수는 산화질소(NO)가 혈관 확장과 혈액흐름에 관여해 심혈관질환 치료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발견해 노벨상을 받았다. 예베르 박사 등은 이날 열린 ‘2011 WCU(세계수준의 연구중심대학) 국제 콘퍼런스’ 행사의 하나인 ‘주니어 세션’에서 중·고교생과 만남의 시간을 가진 것이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순결을 주장하는 18살 처제와 형부

    순결을 주장하는 18살 처제와 형부

     어머니는 작은딸을 덮친 사위를「미성년자 간음」으로 고소했다. 응징을 하겠다고 서슬이 퍼렇다. 그러나 피해자인 딸은 사실을 극구 부인. 설상가상으로 공소시효도 이미 소멸됐다. 어린 처녀의 순결을 둘러싼 한 가정의 불협화음을 들어보면-.  사건의 발단은 두 딸을 가진 부모가 사위를 잘못 얻은 데서 비롯됐다.  고소한 백광자(白光子·가명·46) 여인은 슬하에 3남매를 두고 있었다. 맏이가 딸 김옥희(金玉姬·가명·26), 둘째가 아들 동복(東福·가명·23), 그리고 막내딸이 문제의 차희(次姬·18)양.  첫번째 결혼에 실패한 맏딸 옥희(玉姬)양이 다른 남자를 사귀게 됐다.  Y회사 직원 전일권(全一權·가명·30)씨를 우연히 알게 되어 사랑을 속삭이기 시작한 것.  둘은 몇차례 데이트를 한 뒤 바로 동거생활에 들어갔다. 기회를 보아 정식 결혼(식)을 올리기로 하고 여자의 집에서 먹고 자기로 했다.  그렇게 살기를 4년, 별로 다툼없이 화목하게 살았다. 다른 여자를 넘보는 따위의 탈선도 없었고 미더운 남편으로서 이 집안의 대우를 받았다. 그런데 이쯤 해서 전(全)씨는 차츰 빗나가기 시작했다는 것.  아내의 목걸이 팔뚝시계를 팔아 먹고 심지어 장모의 주머니까지 털었으며 하겠다던 결혼식은 차일피일 미루기만 하고, 하는 소행이 날로 위태로와(위태로워) 갔다는 것이 백(白)여인 측의 주장.  71년 9월20일 밤이었다. 밤 12시가 가까와(가까워) 돌아온 전(全)씨는 처남과 처제가 자고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전(全)씨는 밤늦게 귀가하는 날이면 아내의 짜증이 듣기 싫어 처제의 방에서 자기 일쑤였다.  동거생활을 한 4년 동안에 그러한 날이 30여차례나 되었다. 다음 날 날이 밝았다. 다른 때 같으면 일찍 잠에서 깬 전(全)씨가 아내의 방으로 어슬렁 기어 들어왔을 시간이었다. 아침 8시가 되어도 남편이 나타나지 않자 야릇한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동생이 자는 방문을 살며시 열고 들여다 보았다.  참으로 놀라운 사실이 벌어지고 있었다. 함께 자던 남자 동생은 간 곳이 없고, 전(全)씨는 동생의 이불 속에 들어가 있었다. 그녀는 뛰어들어 덮고 있는 이불을 낚아챘다.  이불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동생은 이불을 결사적으로 잡고 있었다. 그때 차희(次姬)양의 나이는 16살이었다.  격분한 언니는 기어이 이불을 젖히고 알몸뚱이에 가까운 두 사람의 잠자리를 목격했다.  『개만도 못한 것들···』언니는 치솟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매질을 하고 다그쳤으나 차희(次姬)양은『아무 일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남편 또한 같은 주장이었다.  어머니도 이 사실을 알았으나 엄한 아버지에게는 비밀로 했다. 그러나 김(金) 여인은 전(全)씨와 더 이상 동거생활을 계속할 수 없었다.  동네가 창피해서 크게 떠들지도 못한 김(金)여인은 병석에 눕게 되었다. 1년동안 병원엘 다니면서 치료를 했다. 전(全)씨는 치료비를 벌어오겠다며 집을 나간 뒤 이내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전(全)씨는 또 다른 여자와 어울리고 있었다. 수소문 끝에 이 사실을 확인한 모녀는 치를 떨었다.  그래서 참다 못한 백(白) 여인은 전(全)씨를 차희(次姬)의 친권자로서「미성년자 간음」으로- 그리고 김(金)여인은「혼인빙자 간음」으로 지난 6월18일 드디어 두개의 죄목을 들어 동시에 고소장을 냈다. 검찰에서 차희(次姬)양과 전(全)씨는『그런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다.  고소인인 언니는『네가 그 사내에게 미친 게 아니냐』며 바른대로 대답해 달라고 애원했다. 아무리 가족들이 타이르고 매어달려도(매달려도) 소용이 없었다. 그뿐만이(그뿐이) 아니다. 사건을 수사한 결과 두 사건(고소) 모두가 공소권이 없는 것이었다.  고소인들은 억울하다고 울고 있다. 아무리 울어도 법으로써는 어쩔 수 없이 끝난 사건이다.  현행 형법은 이같은 친고죄에 있어서「혼인빙자 간음」(2년 이하의 징역)은 고소인(본인)이 사실을 안 날부터 6개월 이내에 고소하지 않으면 공소권이 소멸한다.「미성년자 간음」(5년 이하의 징역)의 경우는 고소할 수 있는 사람이 본인 또는 친권자이다. 그런데 본인은 행위 당시에 이미 사실을 알았던 것이기 때문에 행위 일부터 6개월 안에 고소를 하지 않으면 할 수 없다.  또 친권자가 딸의 의사에 관계없이 고소를 할 수 있으나 이 경우에도 딸이 간음을 당한 것을 안 날부터 6개월 이내에 고소를 해야 한다. 그러나 아직도 이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차희(次姬)양의 아버지가 그의 이름으로 다시 고소를 한다면 고소가 성립된다는 이야기.  어린 차희(次姬)양은 과연 순결을 지켰을까. 아니면 왜 형부편을 들었을까. 공소시효에 걸려 법도 심판을 내리지 못한 사건의 진상은 밝혀질 것인지-.  <찬(燦)> [선데이서울 73년 7월29일 제6권 30호 통권 제250호] ●이 기사는 ‘공전의 히트’를 친 연예주간지 ‘선데이서울’에 38년전 실렸던 기사 내용입니다. 당시 사회상을 지금과 비교하면서 보시면 더욱 재미있습니다.
  • 서강대 김경환 교수 전·월세 상한제 도입 반박

    정치권을 중심으로 거론되고 있는 전·월세 상한선 도입에 대한 정식 반박이 나왔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1일 계간지인 ‘부동산시장 동향 분석 보고서’에 김경환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의 전·월세 상한제 도입에 대한 정책 제언을 실었다. 김 교수는 “임대료 규제는 의도한 대로 세입자를 보호하지 못한다.”며 “저소득층의 주거 안정을 위해서는 전·월세 상한제 대신 서울시에서 도입한 주택바우처제도의 시행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주택임대료 규제는 임대 주택의 수는 물론 품질의 저하도 가져온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임대료 규제를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눴다. 1세대 규제는 실질 임대료를 시장 균형보다 낮은 수준에서 동결하는 가장 단순한 형태로 유럽 각국이 1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이 2차 세계 대전 중인 1942년부터 1950년대 초까지 유지했다. 2세대 규제는 일정 범위 내에서 임대료의 조정을 허용하는 규제로 1973년 오일쇼크를 계기로 물가 관리 차원에서 미국 주요 도시에 도입됐다. 3세대 규제는 기존 임차인에게는 임대료를 올리지 못하도록 규제하지만 새로운 임대는 규제하지 않는 것으로 현재 일본, 미국, 스위스, 스페인 등에서 시행하고 있다. 김 교수는 미국의 1세대 임대료 규제에 대한 연구 결과 주택 유지 비용이 오르는 상황에서 임대료 규제를 적용받는 임대인들이 주택 서비스 공급량을 줄였다고 지적했다. 뉴욕주 5개 카운티의 1942~1949년 상황을 보면 주택 수선 유지 비용이 70% 올랐고 이로 인해 주택 서비스 공급량은 27% 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 임대료 규제의 폐지나 완화는 민간 임대시장의 활성화에 기여한 것으로 분석됐다. 영국은 1910년부터 1964년까지 1세대 임대료 규제를, 1965년부터 1988년까지 임대료 안정화 규제를 시행했다. 이 기간 동안 전체 가구 중 민간임대주택에 거주하는 가구 비중은 1910년 90%에서 1980년대 말 10%까지 떨어졌다. 1988년 신규 임대에 대해 임대료 규제 적용이 배제되면서 이 비중은 75%까지 올랐다. 김 교수는 “대부분의 나라에서 임차인이 상대적 약자, 임대인이 강자로 인식되기 때문에 임대료 규제는 정치적으로 인기가 높은 정책”이라며 “같은 이유로 일단 임대료 규제가 도입되면 철폐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
  • [씨줄날줄] 조지 소로스/주병철 논설위원

    미국 달러를 주거래 통화로 삼고 고정환율제를 골격으로 한 브레턴우즈 체제를 무력화한 건 다름 아닌 미국 대형 은행과 금융기관들로 구성된 금융 세력이었다. 일반인들은 무역과 투자를 위해 외환을 거래했지만 이들 세력은 환투기와 헤지를 위해 외환 거래를 했다. 국제금융의 투기성 단기자본인 핫머니를 운영하는 이들의 유일한 목적은 이익 실현이었다. 핫머니를 이용해 한 국가의 통화를 쥐락펴락하는 국제 금융시장의 돈줄이 헤지펀드다. 소수의 투자자들로부터 자금을 모아 주식과 채권 등 금융자산은 물론 원유와 금 등 다양한 상품에 투자해 실적에 따라 배당하도록 돼 있지만 취약한 통화를 집중적으로 공격해 막대한 이익을 챙기는 게 특기다. 헤지펀드가 무섭다는 이유다. 헤지펀드의 역사는 1940년대 월스트리트의 투자자 앨프리드 존스가 레버리지(차입)와 공매도(空賣渡)를 이용해 위험을 막는 데서 시작됐다. 이후 헤지펀드는 조지 소로스 소로스펀드 회장을 빼고는 얘기할 수 없다. 헤지펀드의 전설이자 대부다. 1969년 퀀텀펀드를, 73년 소로스펀드를 설립했다. 퀀텀펀드는 30년 동안 연평균 수익률이 30%를 넘었다. 소로스의 투기꾼 기질은 헤지펀드와 궁합이 잘 맞았다. 1992년 소로스는 영국 파운드화를 집중 투매해 영국 중앙은행인 잉글랜드은행을 굴복시키고 15억 달러가량의 환차익을 챙겼다. 97년에는 태국의 밧화가 평가절하될 것으로 보고 집중적으로 투자해 1개월 만에 10억 달러 이상을 벌어들였다. 이 과정에서 달러 강세에 베팅해 아시아 통화 하락을 부추겼다며 아시아 외환위기의 주범으로 몰리기도 했다. 98년 8월에는 러시아 금융시장의 붕괴가 최후 국면으로 접어들었다는 그의 기고문이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에 실리자 모스크바는 물론 전 세계 주식시장이 폭락 장세로 돌아서면서 세상이 그의 ‘입’을 주목했다. 헤지펀드의 대부 조지 소로스가 다음 달 현역에서 은퇴한다고 한다. ‘펀드 중의 펀드’라는 헤지펀드에 대한 금융 당국의 끊임없는 규제 강화에 의욕을 잃었다는 전언이다. 파생 상품을 이용한 헤지펀드 운용을 ‘시한폭탄’이라고 비판한 월스트리트의 또 다른 전설적 투자자 워런 버핏은 소로스의 퇴장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소로스가 없는 헤지펀드의 앞날은 어떻게 될까, 제2의 소로스가 혜성처럼 나타날까, 걸음마 단계인 한국형 헤지펀드는 제대로 잘 굴러갈까 등이 벌써 궁금해진다. 주병철 논설위원 bcjoo@seoul.co.kr
  • 해수욕장에 살롱 차린 탤런트 150명

     MBC 탤런트 1백50명이 물장사에 나섰다. 전북 변산해수욕장에 콜라·코피 전문의「엠비시 살롱」을 내고 탤런트들이 마담 겸 레지 겸 주방장으로 활약하는 것. 여름 휴가를 해수욕장에서 일하며 보내는 MBC 탤런트들의 바캉스「바자·세일」작전 만세.  전북 부안군내 변산 해수욕장. 아직은 본격적인 피서 인파가 몰리지 않아 비교적 한적한 변산이 19일부터 갑자기 흥청대기 시작했다. MBC 탤런트 20여명이 찾아와 천막을 치고 의자를 내고 하여 단 2시간만에 훌륭한 살롱이 선 때문. 이날 저녁에는 MBC 살롱이란 플래카드가 쳐지고 MBC 탤런트들이 레지로 활약하는 가운데 물장사가 시작됐다.  1백만원 벌기 목표로 낸 변산 MBC 살롱의 메뉴는 코피·주스·콜라·핫도그·화장품·과자 등. 바닷가의 미니 백화점인 셈이다. MBC 살롱 마담 격인 탤런트 박규채(朴圭彩). MBC 탤런트실 실장직을 맡고 있는 박규채는 바로 이 매머드 바캉스 작전을 꾸미고 지휘하는 등 맨발로 뛰어 다닌 야전군 사령관 격.  『어차피 여름휴가는 가야 하는 것이고 기왕 쉬는 바에야 의미있는 일을 해보자는데 착안을 했어어요. 한달동안 난생 처음 물장사를 해 볼 참인데 이 이익금은 새마을 기금으로 기부할 작정입니다.』  1백50명의 대식구를 거느린 MBC 탤런트실은 여느 TV국과 달리 이런 외도(?)를 유난히 많이 해 온 셈.  72년에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 새마을 위문 공연을 가졌고 거의 정기적으로 지방 도시를 찾아 시민위안의 밤을 갖기도. 자매 결연한 1사단 위문 공연도 자주 하고 25·26일에는 서울 미아동 대지극장에서 새마을 기금 모으기 쇼에도 나섰다. 28일에는 부안군민 위안의 밤을 열기도. 변산의 MBC 살롱 경영도 말하자면 이런 일련의 사회참여 사업의 하나인 것이다.  『탤런트에 대한 일반의 인식을 새로이 하고 싶습니다. 고작 브라운관 속에서만의 탤런트라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직접 시민 농민 군인들을 찾아 함께 노래하고 호흡하는 가운데 탤런트란 이런 사람들이다 하는 것을 피부로 느끼게 해 주고 싶어요. 함께 새마을 기금도 모을 수 있으니 더욱 좋고요.』  사실상 박규채는 TV 출연보다 이런 외도에 더 힘을 쏟고 있는 형편. 다행히 MBC 전속 탤런트들은 다른 TV국보다 선·후배 의식이 깍듯할뿐 아니라 연대 의식이 강해 의외로 아런 일에 손발이 척척 맞아 들어가고 있다.  MBC 탤런트의 바캉스 대작전은 MBC뿐만 아니라 1사단·부안군·낙희화학·해태제과·한국화장품·변산 애향회 등의 합작품. 자매결연 사이인 1사단이 텐트 침구 일체를 대여해 주는가 하면 부안군에서는 전기·수도·전화 일체를 가설. 각 메이커는 무료로 상품을 내놓았고 애향회는 살롱 주위의 경비를 맡기로 했다. 거창한 바캉스,「바자 세일 작전」에 나서면서도 사실상 MBC 탤런트들의 투자액은 전무. 맨손으로 뛰어서 훌륭한 살롱을 마련해 낸 셈이다.  MBC 살롱 경영은 4박5일 단위로 전속 탤런트 전원이 동원되어 꾸려질 예정. 최불암(崔佛岩)·김민정(金珉廷)·송재호(宋在鎬)·김관수 등 MBC의 톱 탤런트들이 교대로「바자·세일」에 나서게 된다.  그러나 실장 주방장이며 레지 역할은 주로 신인 탤런트들이 맡고 톱 탤런트들은 판매 촉진책으로 얼굴 마담역을 맡을 예정.  MBC 살롱에 가면 톱 탤런트를 만날 수 있다는 소문을 내어 손님을 이끄는 작전을 쓰는 셈. 그러고 보면 탤런트들은 무료로 바닷가에서 휴가를 보낼 수 있어 좋고 매상은 매상대로 오를 것이니 그야말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격.  구태여「바자·세일」장소를 변산으로 한 것은 경치가 좋은 데다 다른 해수욕장에 비해 비교적 조용한 곳이기 때문. 더우기(더욱이) 마침 변산 근처가 고향인 탤런트가 많아 음양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28일 변산 해수욕장에서 벌일 부안군민 위안의 밤은 전주(全州)문화방송과의 합작품.  MBC 살롱에서 메뉴의 가격은 콜라 90원, 코피 50원.  변산 해수욕장 종래의 물가와는 엄청나게 차이가 날 정도의 싼 겨격이다. 다른 해수욕장도 마찬가지지만 변산도 해수욕객이 많고 적음에 따라 물가가 오르락 내리락하기 때문.  한창 때는 콜라 1병에 1백50원에도 동이 나는가 하면 2백원 짜리 여관방이 8천원까지 뛴다는 희한한 곳. 이것은 한창 때면 10만원의 인파가 몰리기 때문에 빚어지는 과열 현상. MBC 살롱은 한달 내내 이 가격을 그대로 고수하여 물가 안정(?)의 몫도 차지하리라고. 변산 애향회에서 살롱 주변 경비를 맡았다는 것은 이러한 MBC 살롱의 바자 세일에 불만을 품은 일부 악덕 상인들이 혹 횡포를 부지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 미리 대비한 것.  8월 하순까지 미련될 이익금은 부안군내 모범 새마을 부락에 보낸다. 판매 촉진을 위해 가장 많은 액수를 판 탤런트에게는 푸짐한 상품을 줄 시상 제도까지 마련해 놓고 있다. 가장 극성으로 바자 세일즈를 해낼 탤런트는 과연 누구일지···.  <변산(邊山)에서 신모수(申模秀)기자> [선데이서울 73년 7월29일 제6권 30호 통권 제250호] ●이 기사는 ‘공전의 히트’를 친 연예주간지 ‘선데이서울’에 38년전 실렸던 기사 내용입니다. 당시 사회상을 지금과 비교하면서 보시면 더욱 재미있습니다.
  • ‘亞~’ 멀다… 박태환 男자유형 100m 준결승서 탈락

    ‘亞~’ 멀다… 박태환 男자유형 100m 준결승서 탈락

    박태환(22·단국대)이 세계수영선수권대회 자유형 100m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박태환은 27일 오후 중국 상하이 오리엔탈 스포츠센터에서 열린 국제수영연맹(FINA) 세계선수권대회 준결승에서 48초 86을 기록, 전체 16명 중 14위에 머물렀다. 1위로 결승에 진출한 제임스 매그너슨(호주)의 기록(47초 90)과는 0.96초 차. 오전 예선 때의 기록(48초 91)보단 빨랐지만 지난해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세운 한국 신기록이자 개인 최고기록(48초 70)에는 0.16초 뒤졌다. ●박태환 “런던서는 세계新 깨겠다” 박태환은 “호흡을 한 번만 덜 했더라면 기록을 더 줄일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 하지만 올해 개인 최고기록이고, 이 기록만으로도 감사한다.”고 말했다. 이어 “수영 인생을 끝내기 전에 세계신기록을 꼭 깨고 싶은 욕심이 있다. 런던에서는 (세계기록을) 깰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다부진 결심도 내비쳤다. 세계선수권대회 남자 자유형 100m 사상 아시아 선수로는 처음 결승 진출을 노렸던 박태환은 결국 체격 조건의 불리함을 극복하지 못했다. 이 종목은 오랫동안 ‘그들만의 잔치’였다. 언제나 유럽이나 미국, 호주 선수가 메달을 차지했다. 1973년 유고슬라비아 베오그라드에서 제1회 대회가 열린 이후 14회째가 되도록 단 한 명의 아시아인도 톱 8 안에 들지 못했다. 올림픽에서는 단 한 번, 무려 79년 전 금메달이 나왔다. 1932년 로스앤젤레스올림픽에서 일본의 미야자키 야스지가 처음이자 마지막 금메달을 땄다. ●기술보다는 체격 조건이 큰 영향 가장 큰 이유는 신체 조건의 차이다. 자유형은 빠르게 헤엄치는 종목이라 기술보다는 체격이나 힘이 경기력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일단 신장과 팔 길이, 다리 길이 등 몸의 프레임에서 아시아 선수들은 불리하다. 물을 잡아당겨 추진력을 내는 스트로크에서도 서양인의 체격 조건이 훨씬 유리하다. 체육과학연구원 정진욱 박사는 “세계 정상급 수준에서는 노력이나 훈련만으로는 극복하지 못하는 유전적 한계가 더욱 뚜렷하게 나타나기도 한다. 단거리일수록 체격 조건이 더 큰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근육의 차이도 있다. 유전적으로 완전히 결정돼 있는 것은 아니지만 서양인은 대개 동양인보다 속근이 많다. 속근은 스피드를 내게 해주고, 지근은 지구력을 발휘하는 데 쓰인다. 속근은 두 가지로 나뉘는데, 산소 없이 완전히 백색을 띠는 속근 B타입과 산소가 있어 분홍빛을 띠는 속근 A타입이다. B타입은 완전히 근력 위주의 근육이고, A타입은 근력과 지구력을 적절히 쓰는 데 이용되는 근육이다. 동양인보다 서양인에게 많은 것이 이 B타입으로, 이 근육량은 유전적으로 어느 정도 타고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단거리에서 아시아 선수보다 미국이나 유럽 선수들이 유리하다. 아시아 선수들은 은근하게 지구력을 발휘하는 데 강점이 있다. 박태환 역시 신체적인 열세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러나 부력과 스퍼트, 강한 승부욕으로 이런 단점을 커버해 세계 정상급 선수로 거듭나고 있다. 모든 일정을 마감한 박태환은 폐막식에 참가한 뒤 새달 1일 귀국, 9월부터 마이클 볼(호주) 코치와 함께 내년 런던올림픽을 향한 담금질을 시작한다. ●펠프스·쑨양 이번 대회 첫 한편 ‘수영 황제’ 마이클 펠프스(미국)는 남자 접영 200m 결승에서 1분 53초 34로 우승, 이번 대회 첫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세계선수권 사상 첫 남자 접영 200m 3회 연속 우승이다. 펠프스의 세계선수권 금메달도 총 23개(은 5, 동1)로 늘었다. 쑨양(중국)은 자유형 800m에서 7분 38초 57로 우승했다. 여자 접영 200m에 출전한 최혜라(전북체육회)는 준결승에서 전체 13위(2분 08초 81)에 머물러 결승행에 실패했다.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 27세에 숨진 팝스타 와인하우스… ‘27세 클럽’엔 누가?

    27세에 숨진 팝스타 와인하우스… ‘27세 클럽’엔 누가?

     커트 코베인,지미 헨드릭스,제니스 조플린의 공통점은?  이들은 젊은 나이로 한창 주가를 올릴 때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공교롭게도 사망 당시 나이가 27세다.  미국 CBS 방송은 ”27세로 숨진 대중 음악인들을 칭하는 이른바 ‘27세 클럽’에 영국 출신 가수 에이미 와인하우스가 새로 들어갔다.”고 보도했다. 2006년 그래미상 5관왕에 오른 와인하우스는 23일(현지시각) 북런던의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영미권 유명 뮤지션 가운데 와인하우스처럼 27세에 세상을 뜬 스타가 많았다.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은 1994년 약물 중독에서 회복된 직후 미국 시애틀 자택에서 권총으로 자살했다. 전설적 기타리스트 지미 헨드릭스는 1970년 런던의 호텔방에서 자신의 토사물 때문에 질식해 숨졌다.  여성 록커 제니스 조플린도 같은 해 로스앤젤레스의 모텔방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사인은 헤로인 과용으로 알려졌다. 록밴드 도어스의 리더 짐 모리슨은 1971년 파리에 있는 아파트의 욕실에서 숨졌다.부검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모리슨은 알코올과 약물 중독으로 인한 심장 마비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됐다.  롤링스톤스의 창설자로 약물과 알콜 중독이 심했던 기타리스트 브라이언 존스는 1969년 영국의 한 농장 수영장에서 익사했으며 그레이트풀데드의 키보디스트 로저 맥커넌은 1973년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자택에서 위장출혈로 사망했다.  커트 코베인이 죽은 뒤 그의 어머니 웬디 오코너가 남긴 말은 유명하다.오코너는 그의 아들이 죽기 전 “멍청한 클럽에 가입하지 말라고 했다.”며 한탄했다.  뮤지션들이 일찍 사망한다는 것은 연구 결과로도 입증됐다.리버풀존무어스대학의 2007년 연구에 따르면 북미와 영국의 뮤지션들은 평범한 사람들보다 요절할 확률이 두배로 높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스타의 비밀=안방극장의 민비(閔妃) 김영애 양

    스타의 비밀=안방극장의 민비(閔妃) 김영애 양

    남달리 작고 오목조목한 얼굴, TV 드라머(드라마)『민비』의 히로인 김영애양(23). 얼마 전엔 영화『검개구리 만세』에서 주연하여 배우 겸 탤런트 스타로서의 인기도를 높이고 있다. 그녀와의 61문 61답. 1) 신장은-160cm. 2) 몸무게 및 사이즈 47kg에 34-23-35. 3) 출생지 부산시 영도구 영선동. 4) 성격-차분하면서도 내성적. 5)출연 작품-오직『민비』뿐입니다. 6) 어려서 민비에 대한 이미지는-고약한 여자. 7) 민비를 맡고 나서 그녀에 대한 느낌-본래가 악인이 없듯 그녀도 원천적인 악인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오히려 그녀의 처지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지요. 8) 자신의 성격과 용모로 보아 민비역에 무리는 아닌지-성격은 별로 걸맞지 않지만 차가운 용모가 민비를 그리는데 조금은 맞아 떨어지는 것 같아요. 9) 몸이 좀 약해 보이는데-얼굴이 작아 그렇게 약해 보일뿐 오히려 건강한 편이니 안심하세요. 10) 자신의 매력 포인트-코, 남들도 조각가가 빚어 놓은 듯 귀엽다고 칭찬해요. 11) 남자에 대한 호기심은 언제부터-여고 2년이던 19살때. 12) 그 대상은-영어선생이었어요. 13) 호기심을 갖게 하는 남자의 타이프는-나를 전혀 관심 밖에 두는 듯 거들떠 보지도 않는 남자. 14) 보이 프렌드는-약간명. 15) 처음 데이트는 몇살때 누구와-19살때 이름은 노 코멘트. 27살 난 미남 청년이었지요. 16) 그 후에도 만났는지-꼭 두번. 17) 데이트 코스는-두번 다 해운대. 18) 요즘 특별히 사귀고 있는 남자는- 전혀 없읍(습)니다. 19) 출신 학교는-부산여상(68년도 졸업) 20) 제일 좋아했던 과목은-국어·역사 21) 싫어했던 과목은-수학 22) 즐겨 읽는 책은-「앙드레·지드」의『좁은 문』23) 처음 본 영화는-「헤일리·밀즈」가 1인2역으로 나온『헤어질 때와 만났을 때』. 24) 감명 깊었던 영화는-「오드리·헵번」「그레고리·펙」의『로미의 휴일』. 25) 가장 좋아하는 스타는-「카트리느·드뇌브」26) 존경하는 인물은-고(故)「존· F·케네디」. 27) 좋아하는 가수는-「톱·존즈」. 28) 실연 당해 본 일 있는지-있다. 29) 몇 살때 상대는 누구였는지- 21살때 첫 사랑이었어요. 상대 이름은 곤란. 30)유혹은 자주 있는 편인지-가끔. 31) 유혹의 손을 뻗치는 남자는 주로 어떤 층인지-색안경을 쓰고 보는 청년들. 32) 요즘 결혼을 종용하는 남자는 있는지-네···.(있다는 대답) 33) 무엇하는 사람인가-「노·코멘트」34) 그 남자와 결혼할 생각인가-결혼할 생각 없어요. 35) 잘 먹는 음식은-냉면. 36) 의상은 몇벌-60여벌 정도. 37) 그 중 가장 값비싼 것은-4만원짜리 여름 윈피스. 38) 즐겨입는 차림은-바지에 T샤쓰(셔츠) 차림. 39) 하루 화장 시간은-평소에는 전혀 하지 않고 TV 녹화있는 날만 30분씩. 40) 치한에게 쫓겨 봉변당한 일은-꼭 한번 얻어 맞기까지 했어요. 41) 어떻게 회피했는지-소리소리 지르고 줄행랑쳤지요 뭐···. 42) 결혼은 언제쯤- 한 3년 후쯤. 43)특별한 이유라도-특별한 이유는 없고 직아(아직의 오타) 가정을 원만히 꾸려나갈 자신이 없어요. 44) 배우자의 타이프는-같은 직업이 아닌 과묵한 성품의 남자. 45) 연령 차이는-5~10년쯤 웃(윗)사람. 46) 탤런트 생활은 언제까지-결혼 후라도 남자만 이해해 준다면 끝까지 해볼 생각이에요. 47) 연극을 해 본 경험은-『카라마조프의 형제들』『학마을 사람들』의 두편을 했어요. 48) 담배와 술 실력은- 담배는 전혀 못하고 술은 맥주 한컵 정도(5백cc) 49) 잊을 수 없는 일은-아버지에게 매 맞고 가출하던 일. 50) 어디 갔었는지-친구의 집. 51) 가출한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그저 묘한 반항심 였을 뿐이지요. 52) 며칠이나 가출했는지-꼭 3일. 53) 요즘 속상하는 일은 결혼하자는 그 청년 때문에 약간 골치예요. 54) 월 수입은-약 7만원 정도. 55) 팬은 주로 어떤 층이고 팬레터는-학생과 나이 지긋한 분들. 56) 하루 받는 팬 레터는-평균 10여통. 57) 다음 출연 작품은-아직 미정. 58) 그 많은 대사를 외는 비결은-글을 외기보다는 상황 판단에 주력하면 돼요. 59) 바캉스 계획은- 설악산과 동해안 바닷가로 가볼까 해요. 60) 가족 관계는-3남1녀 중 장녀 61) 현주소-중구 산림동 162 (27-5191 교환 1061) <열(悅)> [선데이서울 73년 7월22일 제6권 29호 통권 제249호] ●이 기사는 ‘공전의 히트’를 친 연예주간지 ‘선데이서울’에 38년전 실렸던 기사 내용입니다. 당시 사회상을 지금과 비교하면서 보시면 더욱 재미있습니다.
  • 가수로 성공한 동두천 혼혈소녀, 38년만에 ‘미군 오빠’ 만났다

    가수로 성공한 동두천 혼혈소녀, 38년만에 ‘미군 오빠’ 만났다

     가수 인순이(54)가 어렵던 어린시절 자신을 도와줬던 당시 주한미군 병사 로널드 루이스(58)씨를 극적으로 재회했다.  미국 매체 ‘델라웨어 온라인’은 지난 16일(현지 시각) 미국에서 순회 공연 중인 인순이가 델라웨어주 윌밍턴에 살고 있는 루이스씨를 38년 만에 만났다고 보도했다.  인순이는 루이스씨를 보자 마자 끌어안으며 울음을 터뜨렸다. 인순이는 “다시 만난 게 꿈만 같다.”고 했다. 루이스씨도 눈물을 쏟았다. 인순이는 이 자리에서 이웃 주민의 제안으로 즉석에서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불렀고, 루이스씨의 가족들을 감동시켰다.  두 사람이 만난 것은 40년 전인 1972년 동두천. 루이스씨가 19세, 인순이는 15세였다. 루이스씨는 “인순이는 혼혈아라는 이유로 따돌림을 당해 늘 집 밖에 혼자 앉아 있곤 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다른 동료들과 함께 옷도 주는 등 어떻게든 돕고 싶었다.”고 말했다. 인순이는 루이스씨를 오빠로 여기며 따랐다고 한다.  루이스씨는 1년 뒤인 1973년 미국으로 돌아갔고, 연락이 뚝 끊겼다. 그러다가 최근 한 주한미군 장군의 도움과 페이스북 덕분에 연락이 닿았다.  인순이는 이 자리에서 루이스씨에게 물결을 헤치고 나가는 일곱 마리 오리 조각을 선물했다. 조각에는 ‘당신없이 나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Without You, I am Nothing)’. 루이스씨는 인순이의 어린 시절을 담은 사진첩을 돌려줬다. 이 사진첩은 인순이가 1973년 한국을 떠나던 루이스씨에게 주면서 다시 만날 때가 돌려받기로 약속했다.  인순이는 이날 루이스씨의 집에서 1시간 정도 머물며 38년간 쌓인 이야기를 나눴다. 루이스씨는 17일 뉴저지주 시코커스에서 열린 인순이의 콘서트에도 참석해 공연을 지켜봤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즉석 애인 죽일뻔한 보트놀이 청년

    즉석 애인 죽일뻔한 보트놀이 청년

     서울특별시 경찰국(현 서울특별시 지방경찰청)은 여름철을 맞아 뚝섬유원지 등 한강 전역 물놀이의 위험을 막기 위해 지난 6월25일부터 한강여름경찰서를 뚝섬에 설치하고 그 밑에 뚝섬직할파출소와 광나루파출소를 따로 두었다. 동부경찰서 보안과장인 문동주(文東柱) 경정이 서장이고 휘하에 38명의 경찰과 민간 구조대원 50여명이 있다. 민간 구조대원은 물론 이곳에 파견된 경찰은 모두가 수영, 수상 구조작업의 명수들. 수중 탐색작업을 벌이느라 에어 크론을 등에 멘 이들의 민첩한 움직임은 마치 물개를 연상케 한다.  이들의 임무는 위험 지역의 경비와 인명 구조.  출입금지 지역에서 놀아나는 술취한 사람을 안전한 곳으로 업어 나르는 일, 물에 빠진 사람의 구조는 물론 유흥객의 풍기 단속, 또는 깊숙히 가라 앉은 사체를 인양하기 위한 수중 탐색 등 하나같이 고된 일들.  여름 한철이긴 하지만 인파가 하루 평균 20만명이 밀리는 이곳의 경찰 업무는 한 사람 앞에 3천명을 담당하는 벅찬 것. 물이 있고 사람이 있는 동안은 일정한 취침 시간도 없는 불침범이다. 그런데도 지난 해에 26명의 인명이 앗겼고 올 들어 벌써 18명이 이곳에서 목숨을 잃었다. 익사 직전에 여름 경찰에 의해 목숨을 건진 사람은 올해만도 죽은 사람의 1백곱에 가까운 1천5백여명. 여름 한철 업무를 맡는 이들이 체험한 이야기를 들어보면 한강은 결코 즐겁고 상쾌한 곳만은 아닌 듯.   제1화=동승(同乘)처녀 물에 빠뜨려 놓고 “구해 주려 했다” 시치미 뗀 사나이  D=만일 아가씨가 죽었더라면 살인죄가 적용될 수도 있었던 사건이 있었어요.  E=아가씨와 보트놀이 하던 남자가 자신의 사랑을 아가씨가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행패부린 박(朴)모씨(34·서울 서대문구 남가좌동) 이야기군.  D=인파가 20만이 밀린 지난 일요일에 있었던 일이지요. 박(朴)은 뚝섬유원지에서 혼자 놀러온 김(金)모양(24)을 꾀어 보트놀이를 했어요.  A=아가씨 헌팅에 재주깨나 있고 돈푼이나 있는 사내였던 모양이지.  D=천만에, 나중에 드러났지만 빈 털터리에 직업도 없는 건달이었어요. 주머니에는 딱 5백원이 있었다는 이것이 그 엉큼한 사업 자금이 된 거지요.  A=아무리 즉석(현지) 조달이라고는 하지만 지독한 얌체로군요.  D=아뭏든(아무튼) 보트를 빌어(빌려) 가지고 흥겹게 노를 저으며 수심이 5m가 넘는 강심에 이르렀을 때였어요. 30분 가량 한 보트 속에서 놀았으니까 웬만큼 무드가 익었든지 사내의 수작이 시작됐어요. E=수영복을 벗기려고 덤벼들었다더군.  D=아니야. 처음에는 함께 물에 들어가 수영을 하자고 꾀었었지. 그러다가 말을 듣지 않으니까 엉뚱한 수작을 부린 거예요.  A=둘 다 수영복 차림이었다던데 물에 들어가는 것을 거절했을까.  D=김(金)양은 한치도 헤엄을 못 치는 맥주병이었거든요. 게다가 처녀인 김(金)양은 수작이 너무 당돌한 박(朴)이 무서워졌다는 거죠. 약 20분을 그렇게 실랑이하다가 끝내 거절을 당하자 기어이 물 속에 끌어들일 속셈으로 보트를 뒤엎고 말았어요.  A=잘못되어 둘 다 죽었더라면 정사했다고 소문날 뻔했군.  D=박(朴)은 수영의 명수였어요. 1km쯤은 단숨에 헤엄칠 수 있는 정도의 실력이었으니까요. 보트가 엎어지는 순간 때마침 그 옆을 순찰하던 우리 경비정이 김(金)양을 건져 내자 『내가 건져 주려고 했는데』라며 뒤따라 오더군요. 즉결에 넘겼는데 29일쯤 구류 처분을 받고 지금쯤은 영창에 있을 거예요.  제2화=물먹은 소녀 구하고 “소녀와 키스했다” 추문 뿌린 구조원  E=키스 소문에 홍당무가 되었던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가 있어요. 지난 10일 저녁 때쯤 직원들이 모두 현장 경비를 나가고 혼자 사무실을 지키고 있을 때 였어요. 한 민간인이 물에 빠져 혼수상태인 최(崔)모양(16·성수동2가)을 업고 들어왔더군요. 워낙 물을 많이 마셔서 위급한 상태였어요.  C=질식한 지 얼마나 되었었는데?  E=약 15분쯤 되었던 모양이에요. 몸이 서서히 굳어지고 있었으니까요. 하는 수없이 혼자서 물을 토해 내게 하고 인공호흡을 시도했어요. 10여분을 계속 했어요. 회복이 되지 않더군요. 비상 수단으로 코와 입을 빨았지요.  C=무언가 잘못된 게 있었던 모양이군.  E=말도 말아요. 배속 물을 토했으나 기관지가 막혀 있었어요. 결국 3컵 가까이 되는 그 물을 제가 입으로 빨아 마신 거예요.  C=『소녀와 키스했다』는 추문은 그래서 생긴 것이었군요.    제3화=5대 독자 잃고 경찰 나무란 시민의 행패  자신의 부주의로 죽은 자식을 경찰의 잘못 때문인 것처럼 행패를 부리는 엉뚱한 시민들도 가끔 나타나서 골치를 썩입니다. 이것도 지난 일요일에 있었던 일인데 죽은 5대 독자를 살려 놓으라고 생때를 쓰는 시민이 있었어요.  C=어린이들끼리 물놀이 나왔다가 물에 빠져 죽은 김(金)군(6·성수동) 이야기군. 아무리 생업에 바쁜 사람이지만 지독하게 뻔뻔스런 친구더군.  B=2살 위인 누나와 무릎에 닿는 물가에서 놀다가 김(金)군이 깊게 파인 웅덩이에 빠졌던 거예요. 신고를 받고 달려갔을 때에는 이미 물 속에 깊이 가라앉아 보이지를 안했어요. 날이 저물도록 그 주변 물 속을 뒤졌으나 나타나지 않았는데 다음 날 새벽에 1km 하류에서 인양했어요.  C=아버지가 나타난 것은 그 뒤였(었)어요. 변사 처리도 끝나지도 않은 아들의 시체를 미친 듯이 자전거에 싣고 달아나려고 하더군요. 내가 덤벼 들어『아직 못가져 간다』고 만류했더니『너희들이 경비를 잘못했기 때문에 죽었으니 살려 놓으라』고 억지를 쓰더군요. 딱한 일이에요.  <정리 배기찬(裵基燦) 기자> [선데이서울 73년 7월22일 제6권 29호 통권 제249호] ●이 기사는 ‘공전의 히트’를 친 연예주간지 ‘선데이서울’에 38년전 실렸던 기사 내용입니다. 당시 사회상을 지금과 비교하면서 보시면 더욱 재미있습니다.
  • “朴대통령 심은 도산서원 금송은 가짜”

    “朴대통령 심은 도산서원 금송은 가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심은 나무로 알려진 경북 안동시 도산서원의 금송이 가짜인 것으로 밝혀졌다. 11일 문화재청은 시민단체 문화재제자리찾기(사무총장 혜문스님)가 도산서원 경내에 심어진 금송이 박 대통령이 심은 나무인지 여부를 묻는 사실조회 신청에 “1973년 4월 새로 구입한 것을 원위치에 재식수한 것”이라고 확인했다. 지금까지 도산서원 경내의 금송은 박 대통령이 청와대 집무실 앞에 심어 가꾸던 소나무로, 1970년 12월 도선서원에 손수 옮겨심은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문화재제자리찾기의 사실확인 요청에 문화재청과 국가기록원도 관련 문서를 공개해 가짜임이 확인됐다. 국가기록원이 공개한 문서에 따르면, 박 대통령이 기념식수한 금송은 2년 만인 1972년 고사했고, 지금의 금송은 그해 안동군이 당시 50만원의 예산으로 사들여 1973년 심은 것이다. 대통령이 심은 나무가 관리소홀로 말라죽자 처벌을 우려해 관련 사실을 은폐한 것으로 드러났다. 도산서원의 금송은 구 1000원권 지폐 뒷면에 등장하기도 했다. 안동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봉소아(bonsoir) 마담(1)…「집시」의 김영희(金英姬·가명) 마담

    봉소아(bonsoir) 마담(1)…「집시」의 김영희(金英姬·가명) 마담

     「로코코」「갈릴레오」등「스탠드 바」시대가 가고「발렌타인」「가스라이트」등 「살롱」시대가 다시 한발 물러서듯 마담들의 얼굴도 많이 바뀌었다. 이른바「칵테일 하우스」또는「스카치 코너」가 판을 치는 서울거리, 그만큼 새 얼굴들이 서울 밤을 빛내고 있다. 새술 새부대에 새마담의 얼굴을 찾아가 보자.  한국은행 뒤 조폐공사 골목을 따라 조선호텔 앞으로 빠지느라면 중간 지점쯤에「집시」라는 간판이 눈에 띈다.  20단이 채 못되는 지하에로의 계단을 밟아 내려가면 온통 백색의 벽과 천장이 우선 산뜻하다.  바닥에는 붉은 주단-. 아직 때가 배지 않아 한결 더 정갈하고 호화롭다.  작년 12월 1일 문을 열었다니까 이제 겨우 8개월째.「집시」의 주인은 김영희(金英姬·가명·28).  눈매가 아름답고, 입가에 맴도는 미소가 좀체로 사라질 줄 모른다. 누가 보아도 90점 이상을 거뜬히 줄 수 있는 수준급 미인임에 틀림없다.  『경험도 없이 시작했는데, 아직은 자신이 없어요』  커다란 에머럴드 반지가 반짝이는 손가락으로 흰 이(齒)를 살짝 가린다.  고향은 충남(忠南) 부여(扶餘). 그러나 학교를 모두 서울에서 나왔기 때문에 고향의 추억은 남은 것보다 잊은 것이 더 많다고.  『여자란 으례(으레) 그렇지 않아요, 좀 이해해 주세요』  아름답든 아름답지 못하든 여자의 과거는 밝히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이 아니냐는 얘기다.  그러나 김(金) 마담은 그 상식을 어기고 스스로 자기의 과거를 털어 놓았다.  잔잔하게 흘러나오는「스메타나」의「몰다우」강이 그의 마음을 움직인 때문이었을까, 어쨌든 김(金)마담은 쟁쟁한 사업가의 1남3녀 중 둘째 딸로 태어나 대학을 음악과 3학년까지 다녔던 자기의 지난 날을 차근차근히 얘기했다.  『학교 다닐 때는 팝송을 좋아했어요. 그래서 방송국에 나가 한때는 노래를 부른 적도 있어요』  모 라디오와 TV 방송국에서 잠시나마 연예활동을 했지만 그것은 수입 때문이 아니고 순수한 자기의 취미 때문이었다는 것.  김(金) 마담은 잠시 말을 멈추고 망설인다. 무엇 때문일까. 말 못할 과거의 어떤 대목이 부딪친 때문인가.  그 예측은 맞았다.  『대학교 3학년 될 때 결혼을 했어요. 그래서 학교를 그만 두고 들어앉았어요···』  다시 말이 중단됐다. 음악도 동시에 멈추어졌다. 마담이라기에는 너무도 앳된 얼굴에 수줍음이 가득한 마담 초년병-.  『이혼을 했어요. 5년만이었어요』  역시 그랬었다.  미모-결혼-파탄-술집 마담. 그런 공식이 김(金) 마담에게도 적용되고 말았던 것이다.  결혼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영업에 조금이라도 지장이 있지 않았겠느냐는 물음에는 오히려 담담하다.  『여자 나이 스물여덟에 아직 결혼을 안했었다면 그게 더 이상하지 않아요. 이 기회에 툭 털어놓는 게 차라리 나을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은 한강에 있는「리버뷰」맨션에서 5살짜리 아들과 3살짜리 딸 남매를 데리고 세식구가 살고 있다고 한다. 자식들의 나이는 어리지만 가장(家長)의 어깨는 역시 무겁다.  이혼한 뒤 1년 동안 마음의 갈피를 못잡던 스스로의 처지를 생각하며 유람과 낭만의 상징인「짚시」라는 간판을 달았을 때 그는 비로소 정착자의 안도감같은 것을 느꼈다고 한다.  실내장치는 모두 김(金)마담이 직접 했다. 4인용 테이블 6개, 6·7명용 별실이 3개, 카운터에는 둥근 의자가 10개, 벽에는「실비아」인가 하는 프랑스 샹송 가수의 사진과 이른바 예술사진이라는 어느 누드 모델의 멋진 폼이 도사리고 있다.  『손님들은 대개 먼 곳에서 오는 분들이 많아요』  먼 곳이란 서울 중구 소공동(小公洞) 이외의 지역을 말한다.  무역회사 증권회사 은행 등 각종 기업체 사무실이 즐비하게 들어선 소공동(小公洞), 그 한복판에 자리잡은 스카치 코너「집시」에는 웬일인지 소공동(小公洞) 손님보다는 다른 곳 손님들이 많이 온다는 것.  아침 9시에 문을 열면 우선 찾아드는 것은 코피 손님들, 이 때는 소공동(小公洞) 손님들이 대부분 자리를 메운다.  11시부터 3시까지는 경양식 시간.  젊은 아베크족들이 시원한 에어컨디션 바람과 라틴 뮤직을 찾아 몰려든다.   저녁 6시부터「집시」는 본격적인 자기 기능을 나타내는 게 된다.  김(金)마담의 지휘로 움직이는 종업원은 남자 6명, 여자 5명, 여자는 모두가 웨이트리스, 일반 살롱의 호스테스와는 그 기능이 조금 다르다.  『그렇지만 서비스만은 아주 친절해요』  역시 장사 때문인가. 김(金) 마담은 자기 집 웨이트리스들의 미모와 재치와 친절을 무척 내세우고 있다.  술값은 보통 3백원에서 5백원정도(스카치 1잔).물론 나폴레옹 꼬냑 같은 것은 1잔에 1천3백원까지 받기도 한다.  『대개는 스카치 3,4잔 마시고 가요』  1인당 1천5백원에서 2천원 정도 마시고 자리를 뜨는 손님이 대부분. 그러나 개중에는 처음부터 병으로 시켜 놓고 3,4만원의 매상을 올려 주는 손님도 있다고.  「집시」에서의 김(金) 마담의 역할은 다양하다. 주방 감독에서 술값 계산, 주문과 안내, 그리고 서비스, 그 가운데 주 업무는 역시 서비스다.  주인 마담이자 유일한 호스테스이기도 한 그는 싫고 좋은 감정을 덮어둔채 어느 손님 테이블에든 한번씩은 가서 인사를 드려야 하기 때문.  여러 층의 손님들에게 한결 같이 웃음으로 대해야 하는「집시」의 얼굴 김(金) 마담은 여전히 입가의 미소를 지우지 않고 소공동(小公洞) 의 한 모퉁이를 지키고 있다.  <宰> [선데이서울 73년 7월22일 제6권 29호 통권 제249호] ●이 기사는 ‘공전의 히트’를 친 연예주간지 ‘선데이서울’에 38년전 실렸던 기사 내용입니다. 당시 사회상을 지금과 비교하면서 보시면 더욱 재미있습니다.
  • 납세 병마개 사업자 경쟁체제로

    국세청이 지난해 25년 만에 신규 술병 마개 사업자를 지정한 데 이어 올해도 추가 업체를 선정한다. 납세 병마개 제조 시장은 700억원 규모이고, 생산량은 연간 55억개다. 국세청은 납세 병마개 제조자 지정 계획을 오는 12일 관보에 공고하고, 9월 중 신규 업체를 지정할 계획이라고 10일 밝혔다. 앞으로 매년 신규 업체를 추가 지정해 납세 병마개 시장을 자율 경쟁 체제로 전환할 방침이다. 납세 병마개 시장은 1973년부터 10년 이상 삼화왕관이 독점해 왔으며, 1985년 세왕금속이 진입하면서 이후 25년 동안 두 업체가 과점하고 있는 상태였다. 오일만기자 oilman@seoul.co.kr
  • 물 가득 찬 백록담 언제 본적 있나요?

    물 가득 찬 백록담 언제 본적 있나요?

    “물이 가득 찬 백록담의 비경을 보셨나요.?” 장마전선이 한반도를 다시 뒤덮은 8일 한라산국립공원 관리사무소에는 전화가 빗발쳤다. 백록담에 물이 가득 찼는지를 물어보는 전화다. 한라산 등산로 입구 가운데 하나인 관음사 야영장은 백록담 만수위의 ‘장관’을 보기 위해 전국에서 몰려든 등산객과 사진작가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백록담에 물이 가득 찬 풍경은 한라산 비경 중의 비경이다. 1년에 물이 가득 찬 신비스러운 풍경을 드러내는 건 고작 5~6일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직접 눈으로 보는 건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잦은 비와 안개 등 정상의 변화무쌍한 기상 때문에 화구호(화산의 분출구가 막혀 물이 괸 호수)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다. 더욱이 화산지질의 백록담은 물을 오래 가두지 못해 평소 물이 가득 찬 만수위의 장관을 구경하기란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렵다. 장맛비가 줄기차게 퍼부은 이날도 이른 새벽부터 어김없이 산행객들이 줄을 이었다. 부산에서 왔다는 아마추어 사진가 김모(56)씨는 “백두산 천지에 물이 가득 찬 것을 보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게 백록담의 만수위”라며 “그동안 여름 장마철에만 10여 차례 한라산에 올랐지만 안개 등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물 가득한 백록담을 보지 못했다. 그래서 오늘 다시 한라산을 찾았다.”고 말했다. 물이 가득 찰 경우 여름 장마철 백록담의 깊이는 4m 정도. 분화구 둘레가 1720m, 깊이는 108m다. 동서 길이는 600m, 남북 길이는 400m로 면적은 21만 230㎡에 이른다. 담수면적은 평균 1만 1460㎡로, 최대 만수시 2만 912㎡에 달해 구름이 끼면 낀 대로, 맑으면 맑은 대로 그야말로 장관이다. 사실, 백록담의 물 깊이는 옛 문헌에 잘 나타나 있다. 1601년 안무어사로 제주에 온 김상헌은 ‘남사록’에서 ‘얕은 곳은 종아리가 빠지고 깊은 곳은 무릎까지 빠진다.’고 적었다. 8년뒤 김치 판관이 부임해 ‘깊이가 한길(2m)남짓’이라는 기록을 남겼고, 1841년 제주목사로 부임한 이원조는 ‘탐라록’에서 ‘백록담의 깊이를 헤아리면 한 장(장은 10척의 길이로 약 3m)’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또 1873년 제주에 귀양왔던 면암 최익현은 ‘유한라산기’에서 ‘얕은 곳은 무릎까지, 깊은 곳은 허리까지 찼다.’고 적었다. 요즘 백록담은 장마와 태풍 메아리가 뿌린 600㎜의 폭우로 3m 정도 수위를 유지하고 있다. 700㎜ 이상의 비가 한라산 정상부에 2~3일 계속되면 백록담은 만수위에 이를 것으로 관리사무소 측은 내다보고 있다. 2005년 제주대와 부산대 난대림연구소 공동연구팀은 ‘한라산 백록담 담수 보전 및 암벽붕괴 방지 방안’이란 연구를 통해 백록담 담수 면적과 수위 높이가 줄어들고, 바닥을 드러내는 원인으로 투수 속도가 빠른 화산암반 퇴적층(토사층)을 첫 손에 꼽았다. 그러나 더 심각한 건 몰려드는 등산객들이다. 한라산국립공원 관리사무소 강성보 소장은 “1960년대 이후 등반객이 크게 늘면서 답압에 의한 사면의 붕괴가 가속화되면서 백록담 물그릇에 토사가 많이 쌓이는 탓에 담수량이 계속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지금처럼 연간 100만명 정도의 등산객은 별 무리가 없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사전 예약제와 등산객 총량제 등을 도입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제주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피플 인 스포츠] 밀리언야드컵 우승 이끈 ‘잡초 골퍼’ 최호성

    [피플 인 스포츠] 밀리언야드컵 우승 이끈 ‘잡초 골퍼’ 최호성

    최호성은 사진을 찍자고 하니 대뜸 몸을 왼쪽으로 돌렸다. “이래야 태극기가 잘 보이죠.” 나이 서른여덟에 처음 단 태극 마크다. 물오른 기량을 선보이며 골프판에서 화제가 된 요즘의 그를 대변하는 것이기도 하다. 2001년 프로 데뷔 이후 ‘잡초 골퍼’라는 소리를 줄곧 들어온 최호성. 잡초가 10년 만에 꽃을 피웠다. 지난 1~3일 열린 한·일 골프대항전 KB금융 밀리언야드컵에서 최호성은 ‘왕자님’ 이시카와 료(20)만큼이나 갤러리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축구선수 김병지를 연상시키는 갈기머리, 예쁜 곳 하나 없이 거칠고 투박한 스윙폼 때문만은 아니다. 곡절 많은 삶을 살아내며 정상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는 인간적 면모가 최호성을 특별하게 한다. 그는 지금 골프계를 주름잡는 20대 초반의 골퍼들과는 한참 다른 삶을 살았다. 그가 본격적으로 골프 클럽을 잡은 것은 골프장 영업사원으로 일하던 25세 때. ‘영업사원도 골프를 알아야 한다.’는 회사 방침에 따라 배우기 시작했다. 20세 때 선반공으로 일하다 오른쪽 엄지손가락 한 마디를 잃었다. 골퍼에게 오른쪽 엄지손가락은 방향타와 같아 치명적인 결함이었다. 사람이라면 인생에서 한 번쯤 승부를 걸어야 하는 때가 오는데, 그에게는 바로 그 즈음이었다. “그 나이 먹을 동안 특별히 잘하는 게 없었어요. 무엇이 내 길인지 몰라 헤매고 있었죠. 그때 골프를 만났어요. 이게 내 운명이고 내 삶을 발전시켜 줄 수 있는 거라면 제대로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때까지 그의 삶은 실패의 연속이었지만 골프만큼은 달랐다. 그를 하염없이 잡아끌었다. “마력이었어요. 자려고 누우면 천장에 골프 코스가 펼쳐지면서 낮에 범했던 더블보기도 생각나고…. 제 승부 근성을 제대로 자극했어요.” 28세에 한국프로골프투어(KGT) 퀄리파잉 스쿨을 통과해 프로가 됐다. 그해 2부 투어에서 상금 1위를 차지하며 기세 좋게 출발했지만 우승과는 인연이 없었다. 2008년 11월에야 첫 우승컵(SBS 하나투어 챔피언십 대회)을 거머쥐었다. 그 이후로 준우승만 세 번 했다. 그동안 그에게는 지켜야 할 소중한 것이 생겼다. 2005년 말레이시아에서 운명같이 만나 결혼한 8세 연하 아내와 아내를 꼭 닮은 두 아이였다. 가족을 위해서라도 우승이 간절했지만 그는 조바심 내지 않았다고 했다. “나를 믿었어요. 저는 화초가 아니라 잡초처럼 살아 왔으니까 어떤 상황이 와도 헤쳐 갈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있었죠.” 그의 자신감은 생활에서 나온다. 술·담배를 전혀 하지 않고, 대회가 없으면 한국보다 연습 여건이 나은 중국 선양에 처박혀 훈련만 한다. 밭을 우직하게 일구는 농부처럼 그는 골프를 쳤고 수확을 거뒀다. 5월 레이크힐스 오픈 우승 등 올 시즌 선전에 힘입어 밀리언야드컵 출전 기회도 뒤늦게 얻었다. 승패가 걸린 마지막날 3라운드 싱글 스트로크 플레이에서 1조로 나서 승리를 거두며 한국의 우승을 이끌었다. “1조가 팀의 분위기를 좌우하니까 엄청 중요했죠. 아무도 손을 안 들길래 내가 하겠다고 총대를 멨는데, 나라를 대표해 하는 경기라 그런지 상금 대회보다 세 배는 힘이 드네요.” 지난 3일 대회가 열렸던 김해 정산골프장에서 경기 직후 만나 그가 처음 한 말이었다. 지금이 ‘제2의 전성기’냐고 물으니 그는 손사래를 친다. 그동안 노력이 결실을 본 것일 뿐 아직 정점은 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남들은 나이를 먹을수록 쇠퇴하지만, 저는 나이를 먹을수록 진화하는 것 같아요. 저더러 불혹 운운하는 말들도 그래서 듣기 싫어요.” 자연스럽게 그의 목표가 궁금해졌다. 뻔한 질문을 했지만 생각지도 못한 대답이 돌아왔다. “프로골퍼이기도 하지만 한 가정의 가장이기도 해요. 딸린 식구들을 책임지는 게 가장 큰 임무죠. 일을 소홀히 하면 밥을 굶잖아요. 그러니까 당연히 연습을 하고 대회에 나가는 거죠.” 애초에 화려해 보이자고 시작한 골프가 아니었다. 그에게 골프는 생활이었다. 세상의 어떤 신념보다 ‘먹고사니즘’보다 강한 것은 없다. 최호성의 다음 행보가 기대되는 이유다. 그는 7일부터 나흘간 강원 정선에서 펼쳐지는 원아시아투어 2011 더 채리티 하이원리조트 오픈(총상금 10억원)에 출전한다.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최호성은 누구 ▲ 생년월일 1973년 9월 23일 경북 포항 출생 ▲ 체격 172㎝, 72㎏ ▲ 경력 2001년 10월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입회/2001년 KPGA 2부 투어 상금 1위/2008년 11월 SBS 하나투어 챔피언십/2011년 5월 레이크힐스 오픈 우승(통산 2승)
  • [부고] 김창희 전 대우증권 사장

    김창희 전 대우증권 사장이 28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74세. 고인은 한국 증권업계 발전을 이끈 주역이자 증권 역사의 증인으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서울에서 태어난 고인은 경기고와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대한증권을 시작으로 한국증권거래소, 한국증권금융 등을 거쳐 1973년 대우증권의 전신인 동양증권에 입사했다. 1984년부터 16년간 대우증권 사장을 지냈다. 1984년 증권업계 최초로 일본 도쿄와 미국 뉴욕에 해외사무소를 열었고 국내 최초 외국인 전용펀드인 코리아펀드를 설립, 외국자본 유치에 앞장 섰다. 유족으로는 부인 양현덕씨와 기원(아즈텍시스템 대표), 기영(대우증권 경영관리부 이사) 등 2남이 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발인은 7월 1일 오전 8시 30분.(02)3410-6917.
  • 美 ‘공천장사’ 철퇴… 前주지사 유죄

    “나는 사실만 들으려고 했어요. 우리는 그의 말을 믿지 않았어요.”(배심원 140호) “그는 매력적인 사람이에요. 그 점을 우리가 배심원으로서 해야 할 일과 분리하는 게 쉽지 않았어요.”(배심원 103호) “보통 사람들의 일상에서도 막후 거래는 있죠. 하지만 국민을 대표하는 사람이 그러는 것은 금지선을 넘는 행위예요.”(배심원 146호) 미국 국민은 끝내 부패한 공직자에게 관용을 베풀지 않았다. 27일 라드 블라고예비치(54) 전 미 일리노이 주지사에 대한 연방법원 재심(항소심)에서 무작위 추첨된 시민으로 구성된 배심원단 12명(여자 11명, 남자 1명)은 20개 혐의 중 수뢰, 금품강요, 갈취, 금융사기 등 17개 혐의에 대해 유죄 평결했다. 유죄 혐의에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당선으로 공석이 된 일리노이주 연방 상원의원직을 돈 받고 판 혐의도 포함됐다. 재판장은 오는 8월 선고공판을 열어 형량을 선고한다. 이 사건은 대법원 재판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실형이 선고되면 블라고예비치는 바로 교도소로 들어가야 한다. 산술적으로는 최대 300년 형까지 선고가 가능하나, 전문가들은 현실적으로 10년 안팎의 형을 예상한다. 지난해 8월 첫 재판(1심)에서 배심원단은 증거 부족과 블라고예비치의 현란한 말솜씨에 밀려 연방수사국(FBI)에 허위진술한 혐의를 제외한 나머지 혐의에 대해서는 유·무죄 판단을 내리지 못했었다. 그러나 항소심에서는 검찰이 블라고예비치의 범죄 발언이 녹음된 기록 등을 제시하면서 상황이 반전됐다. 변호인은 “녹음된 블라고예비치의 발언은 단지 생각이었을 뿐 이를 현실에 옮긴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했으나 이미 FBI에 대한 허위진술 혐의를 스스로 인정한 블라고예비치의 말을 배심원단은 신뢰하지 않았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블라고예비치는 아내의 손을 잡고 법정을 나오면서 기자들에게 “솔직히 충격을 받았다. 집에 가서 두 딸(8살, 14살)에게 이 일을 설명해야겠다.”고 말했다. 패트릭 피저럴드 검사는 “5년 전 전임자가 부패 혐의로 유죄 평결을 받았을 때 배심원단은 더 이상 부패는 용납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인데 블라고예비치는 그것을 무시했다.”고 말했다. 블라고예비치의 전임자인 조지 라이언 전 일리노이 주지사는 6년 6개월 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블라고예비치를 포함해 1973년 이후 4명의 주지사가 부패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는 등 일리노이는 미국에서 대표적인 ‘복마전’으로 꼽힌다. 현 주지사인 패트 퀸은 “더 이상 주지사가 감옥에 가지 않도록 정부를 개혁하라는 사명으로 새기겠다.”고 했다. 공화당 소속 일리노이주 연방상원의원 마크 커크는 “오늘 평결은 누구도 법 위에 군림할 수 없다는 경고”라고 했다. FBI 시카고 지국장 로버트 그랜트는 “미국의 사법 정의는 느리지만 결국 진실을 찾는다.”고 했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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