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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농협사관학교 ‘농협대학’ 아시나요

    농협사관학교 ‘농협대학’ 아시나요

    “오늘 시금치는 다 떨어졌고요, 취나물도 좋아요.” 11일 경기 고양시 관산동 벽제농협. 매장을 누비며 손님을 맞는 직원 중에 앳된 얼굴이 있다. 농협대 2학년생인 정준기(20)씨다. 정씨는 여름방학을 맞아 다른 학생들과 함께 4주간의 조합 현장실습을 나왔다. “현장에 직접 나와 보니 농민들의 고충이 몸으로 다가온다.”고 말하는 정씨에게서 몇 년 후의 듬직한 농촌 일꾼의 모습이 보인다. ‘농협 사관학교’인 농협대학 얘기를 재학생들에게 직접 들어봤다. 농협이 산하에 대학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3년제 특수전문대인 농협대학은 1962년에 문을 열었다. 개교한 지 벌써 48년째다. 건국대가 설립한 농협초급대학을 농협중앙회가 1966년 인수했다. 농촌을 위해 지역에 배치돼 일할 젊은 일꾼을 양성하기 위해서였다. 현재 1학년 99명, 2학년 90명 등 총 189명이 재학 중이다. 농협대생들은 졸업과 동시에 거의 100% 지역 농협에 취직한다. 6급(전문대졸) 정규직 대우를 받는다. 웬만한 4년제 대학 졸업장을 갖고도 취업을 못하는 젊은이들이 부지기수인 요즘 큰 장점이 아닐 수 없다. 2010년 전형에서 평균 14.5대1의 경쟁률을 기록하는 등 최근 5년간 경쟁률은 매번 10대1이 넘었다. 합격생들은 수능 1~2등급을 받고 입학할 정도로 성적도 좋다. 취업이 보장된 덕에 다른 대학생보다 느슨한 대학 생활을 하지 않을까. 2학년 김원윤(27)씨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잘라 말한다. “경북 구미에 있는 4년제 대학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농협대에 다시 들어왔어요. 예전 대학보다 경쟁이 치열해서 1학년 1학기 때 깜짝 놀란 적이 있어요. 상대평가도 엄격하게 적용되다 보니 A학점을 맞기도 어렵더군요. C+학점이 찍힌 성적표를 보고 좌절했던 기억이 생생하네요.”라고 정씨는 말을 이었다. 농협대 학생들은 졸업을 위해 3년간 100학점 이수 외에도 외국어나 한자·컴퓨터·금융실무·유통실무 관련 자격증 네 가지를 반드시 따야 한다. 농협대생들의 졸업 후 목표는 무엇일까. “농부들의 시름을 덜어 주고 싶다.”는 당찬 대답이 나온다. 2학년 권혜림(20)씨다. “어릴 때부터 김포에서 벼농사를 짓는 아버지가 힘들어하시는 모습을 많이 지켜봤어요. 커서 우리 아버지처럼 농사짓는 분들을 도와드리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히 했었죠. 졸업하고 김포 조합에 들어가면 어떻게 하면 쌀을 많이 팔지 마케팅 방법 등을 연구해 보고 싶어요.”라고 권씨는 덧붙였다. 농협에서 활약하는 농협대 출신도 많다. 농협중앙회 이덕수(58) 경제대표이사(1973년 졸업)와 농민신문사 박재근(61) 사장이 있다. 농협중앙회 임원 중에서도 유근원 교육지원 상무, 강홍구 농업경제 상무, 배판규 금융기획 상무, 김유태 투자금융 상무, 문경래 개인고객 상무 등 5명이 농협대 출신이다. 조합장 중에서도 경기 고양 벽제농협 이승엽 조합장, 경기 성남 낙생농협 길철수 조합장, 전남 함평 나비골농협 윤한수 조합장이 농협대를 졸업했다. 농협 밖에도 3선의 장재영(65) 전북 장수군수, 동창회 회장이기도 한 에이원감정평가법인 경응수(58) 대표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 이기태 전 삼성전자 부회장 연세대 교수로

    이기태 전 삼성전자 부회장 연세대 교수로

    ‘애니콜 신화’의 주인공 이기태(62) 전 삼성전자 부회장이 연세대 교수로 부임한다. 삼성전자는 휴대전화 애니콜의 성공에 힘입어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했다. 연세대는 “무선통신 분야의 선구자 역할을 담당했던 이기태 전 삼성전자 대외협력담당 부회장을 정교수로 공식 임명했다.”고 5일 밝혔다. 강의는 다음 학기부터 맡는다. 이 전 부회장은 2007년까지 약 7년 동안 삼성전자 정보통신총괄 사장으로 재직하며 삼성 휴대전화 애니콜 신화를 썼다. 연구·개발(R&D) 혁신을 통한 ‘고급화’ 전략을 고수하며 애니콜을 노키아에 이어 세계 점유율 2위로 끌어올렸다. 지난해 1월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회사 상담역으로 활동해 왔다. 인하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한 이 부회장은 1973년 삼성전자에 입사했다. 박사 학위가 없는 인물이 대학 정교수로 임용되는 것은 국내 대학가에선 이례적인 일이다. 대학 관계자는 “학사 출신으로 공대 교수가 된 것은 연세대 역사에서 전무후무한 사례”라면서 “‘연세대 국제캠퍼스 글로벌융합학부 첫 교수’라는 타이틀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2006년 서울대·한국공학한림원이 선정한 ‘한국을 일으킨 엔지니어 60인’에 포함됐으며, 2005년에는 세계 정보통신 분야의 최고로 꼽히는 전기전자공학협회(IEEE) 산업리더상을 받은 ‘이공계 스타 최고경영자’였다. 이민영기자 min@seoul.co.kr
  • ‘권력사유화’ 의혹 손도 못대… 반쪽 조사 논란

    ‘권력사유화’ 의혹 손도 못대… 반쪽 조사 논란

    국무총리실이 5일 발표한 민간인 불법 사찰 의혹에 대한 자체 조사 결과를 놓고 ‘반쪽짜리’ 부실 조사 논란이 일고 있다. 총리실이 공직윤리지원관실 직원들만 조사해 핵심 의혹과 관련한 진상 조사를 거의 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총리실은 외부인 조사 과정의 어려움을 토로했지만 총리실이 주요 의혹과 관련, 이인규 공직윤리지원관의 답변 등을 거의 공개하지 않고 검찰에 넘겨버린 데는 정치 공세를 막기 위한 총리실의 방어 기제가 지나치게 작용했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총리실은 총리실 직원들만 대상으로 진상 여부를 확인해 불법 판단 자체를 대부분 유보했다. 총리실은 이 지원관의 보고 라인으로 거론된 조중표 전 국무총리실장, 이영호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 등에 대해 총리실 직원이 아니라서 조사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김영철 전 사무차장은 작고했다는 이유를 들었다. 조원동 총리실 사무차장은 기자회견에서 “이 지원관이 당시 사무차장과 국무총리실장에게 구두로 보고했다고 진술했지만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검찰에 이첩해 진위를 파악할 수밖에 없다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인 셈이다. 특히 보고 체계 및 권력사유화 논란의 중심에 있는 ‘영포목우회(경북 영일·포항 출신 5급 이상 공직자 모임)’에 이 지원관이 가입했는지 여부 등을 조사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는 “영포회에 관련해서는 조사대상에 포함시키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게다가 지원관실이 당시 두달 간이나 김씨 업체를 조사하고 나서야 비로소 민간회사라는 것을 알고 수사기관에 이첩했다는 것도 상식적으로 납득되지 않는다는 게 중론이다. 멀쩡한 사기업인 국민은행이 국책기관이라고 제보돼 공공기관 관련자로 민간인 김씨를 조사했다는 점 등 사찰배후와 경찰 재수사 압박도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 조 사무차장은 “검찰 등 수사당국에 어떤 점에서 의문이 될 수 있는지 적시해 전달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총리실이 불법사찰 의혹에 대해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한 지 불과 사흘 만에 검찰 수사 의뢰를 전격 결정한 데는 야당을 비롯한 정치권의 총공세를 막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을 낳고 있다. 7·28 재보선을 앞둔 상황에서 여권 내부에서 흘러나오는 철저한 수사 주문도 검찰로의 신속한 이첩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고 있다. 총리실이 자체 판단한 조사결과 발표로는 이번 사건의 파장을 막는데 역부족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민주당은 이미 불법사찰 의혹을 ‘영포 게이트’로 규정해 세종시에 이어 대대적인 공세를 벌일 태세다. 대신 총리실은 내부적인 후속조치를 세웠다. 야당이 주장하는 지원관실 폐지는 하지 않을 예정이다. 조 사무차장은 “지원관실은 과거 제4조정관실 등 1973년 이래 계속 유지돼 왔으며 그런 점에서 공직사회 기강을 세우는 데 필요한 기능을 할 수 있다.”고 존치에 방점을 뒀다. 다만 보고 체계나 조사대상 확인 등 업무 절차에 있어 보완책을 내놓기로 했다. 강주리기자 jurik@seoul.co.kr
  • 英 리빙스턴 편지 140년만에 해독

    英 리빙스턴 편지 140년만에 해독

    “난 이미 지독할 정도로 기진맥진한 상태이지만 자네에게만 알려주기 위해 이 글을 쓰고 있네. 내가 살아남아서 다시 자네를 볼 수 있을까 모르겠군.” 19세기 영국의 선교사이자 아프리카 탐험가로 빅토리아폭포를 발견한 데이비드 리빙스턴(1813~1873)이 친구에게 보낸 편지가 무려 140년만에 해독됐다고 BBC, 인디펜던트 등 영국 언론들이 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4페이지 분량의 편지는 지난 1871년 나일강 수원 조사 중이던 리빙스턴이 탐험과정의 위험과 어려움에 대한 불안감을 호소하기 위해 친구 호러스 월러에게 보낸 것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내용이 불분명해 ‘잃어버린 편지’로 일컬어졌다. 나중에 리빙스턴의 전기 작가로도 이름을 날린 월러에게 전달된 이 편지는 1966년 런던의 한 경매에 나왔지만 내용을 알아볼 수 없는 상태였다. 편지 작성 당시 리빙스턴이 종이와 잉크가 떨어져, 갖고 있던 책과 신문에 야생 열매의 씨앗에서 뽑은 색소를 사용한 탓에 거의 지워졌기 때문이다. 런던 버크벡대학 연구진은 지난해 초부터 18개월간 분광기, 3900만픽셀의 고성능 카메라 등 첨단장비와 기술을 동원, 원문을 해독하는 데 성공했다. 편지는 아프리카에서 노예사냥을 벌이는 유럽인들에 대한 비난과 자신의 악화된 건강 등을 주로 담고 있다. 리빙스턴은 “이질로 인한 발작, 고열, 폐렴, 손과 발에 나타난 풍토병을 앓고 있다.”면서 “하늘은 이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간생명에 대한 경시와 이곳 사람들의 비통함을 우리의 정치인들이 알아주기를 바라고 있을 것”이라고 썼다. 리빙스턴은 이 편지를 작성한 몇주 뒤 미국의 탐험가이자 언론인 헨리 스탠리에게 구조됐고, 다시 탐험에 나선 뒤 1873년 현재의 잠비아 지역에서 이질로 숨졌다. 이 편지가 언제 어떻게 영국으로 전해졌는지에 대해서는 지금껏 수수께끼다. 해독작업을 이끈 데비 해리슨 버크벡대 교수는 “연구는 역사를 다시 쓰는 기회였다.”면서 “깊이 상심하고 우울증에 시달리면서도 절대 포기하지 않은 리빙스턴의 인간적인 모습을 새로 발견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중남미 속 美 제국주의자, SOA 실상은?

    미국이 중남미에서의 헤게모니 유지를 위해 선택한 것은 군(軍)이다. 전략적 요충지인 중남미에서의 패권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판단한 미국은 2차대전 직후인 1946년 파나마 운하 지대에 미 육군의 훈련기관인 ‘아메리카 군사학교(SOA)’를 설립했다. 이 학교는 중남미 국가들의 군대를 위한 미 육군의 거점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아메리카 군사학교’(레슬리 질 지음, 이광조 옮김, 삼인 펴냄)에서 저자는 SOA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파헤친다. 그가 추적한 SOA는 세계평화의 수호신을 자초했던 미국이 사실은 어두운 얼굴의 ‘제국자’임을 낱낱이 고발한다. 저자는 미 밴더빌트대에서 인류학을 강의하는 교수다. 우리가 알고 있는 2001년 미국 9·11테러 외에 남미에서도 1973년 ‘칠레판 9·11테러’가 있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두 사건에는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하나는 민간인 수천명이 목숨을 잃었다는 것. 또 하나는 이들 사건에 투입된 테러리스트들을 훈련시키는 데 미국이 개입했다는 점이다. 오사마 빈 라덴은 1980년대 아프카니스탄을 장악한 친소련 정권을 전복하려고 미국이 조직하고 훈련시킨 무자헤딘 게릴라 집단에 합류했던 인물이다. 그리고 칠레 아옌데 정부를 무너뜨린 남미 9·11의 주역 피노체트 장군과 칠레 군부 내 동조자들도 칠레 안팎에서 테러를 자행했지만 미국은 그들을 지원하고 부추겼다. 이런 쿠데타의 주역들 대다수가 SOA 출신이다. 아르헨티나의 ‘더러운 전쟁’(1976~1983년) 기간 동안 게릴라 척결 명분으로 반대파를 상대로 살인과 납치, 고문을 저질러 유죄판결을 받은 로베르토 비올라 장군, 파나마의 독재자 마누엘 노리에가, 엘살바도르의 엘모소테에서 1000명에 이르는 민간인을 학살한 아틀라카틀대대의 지휘관 도밍고 몬테로사 대령 등이 악명 높은 SOA 졸업생들이다. SOA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SOA가 그동안 6만명이 넘는 군인과 경찰들에게 가르친 반란진압전 등 군사훈련들이 실제로 반군 진압이나 마약과의 전쟁에 사용되기보다는 가난한 농민과 민간인을 탄압하는 수단이 됐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미군 관리들은 인권 유린에 연루된 졸업생들은 일부일 뿐, SOA는 중남미 군대들과 성공적인 유대를 맺어 왔다고 반박한다. 하지만 SOA에 대한 비난이 더욱 거세지면서 급기야 미군 당국은 SOA에 대한 공개 조사를 허용해야만 했다. 미 국방부는 1984년 미국 조지아의 콜럼버스시 포트베닝으로 이 학교를 옮기면서 ‘서반구안보협력연구소’로 간판을 바꿔 달았지만 중남미를 사실상 파멸시키는 데 일조해 왔다고 저자는 말한다. 1만 8000원.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서울 구청장 새꿈 새구정] ② 신연희 강남구청장

    [서울 구청장 새꿈 새구정] ② 신연희 강남구청장

    “교통 지옥이나 퇴폐·사교육 1번지와 같은 강남구가 갖고 있는 부정적 인상을 떨쳐내는 데 주력하겠다.” 신연희(62) 서울 강남구청장의 취임 일성이다. 신 구청장은 1일 서울신문과의 취임 인터뷰에서 “30여년의 공직 경험에 여성 특유의 섬세함을 더해 강남을 전국 제일의 자치구로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30여년 공직경험 살려 일등 자치구로 먼저 임기 안에 이른바 풀살롱 등 신종 불법 유흥업소가 몰려있어 ‘퇴폐 1번지’라는 이미지에서 탈피하는데 행정력을 집중하기로 했다. 실제로 취임 첫날부터 퇴폐업소 무기한 특별단속을 지시했다. 신 구청장은 “담당 공무원을 주기적으로 교체해 업체와의 유착 가능성을 차단하고, 주민들이 함께 감시활동에 나서는 ‘소비자위생감시원’ 제도를 운영할 것”이라며 구체적인 단속 지침도 설명했다. 강남구가 ‘교통 지옥’이라는 오명에서도 벗어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전임 구청장들이 추진했던 ‘모노레일’ 대신 ‘순환형 지하 경전철’ 카드를 꺼냈다. 그는 “모노레일은 지하 경전철에 비해 건설 비용은 저렴하나 경관을 훼손하는 문제가 있으며, 지상 경전철 역시 오히려 교통혼잡을 가중시킬 우려가 있다.”면서 “지하 경전철 노선에 대한 경제성·타당성 검토에 조만간 착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남구=사교육 1번지’라는 오명도 세탁한다. 신 구청장은 공교육 내실화를 통해 사교육 중심지를 넘어 ‘교육 명문구’로 발돋움시킨다는 구상이다. 그는 “학원 등 사교육 시장에 대한 규제가 공교육 활성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면서 “방과 후 학교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고, 낡은 학교 시설·기자재를 교체하고, 원어민 영어교사 등에 대한 채용도 늘릴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학생들이 마음 놓고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이른바 ‘학교보안관’ 제도를 도입할 계획이다. 학교보안관은 학교에 24시간 상주하며 아이들이 다양한 폭력으로 인한 희생자가 되는 것을 사전 차단하게 된다. 신 구청장은 “학교보안관을 전문업체에 아웃소싱해 일자리 창출과 연계하거나, 은퇴자와 같은 자원봉사자를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소득하위 80% 대상 무상보육 검토 아이와 노인들을 위한 한발 앞선 정책도 준비 중이다. 육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소득하위 80%를 대상으로 무상 보육을 실시한다는 구상이다. 지금은 소득하위 50% 이하에 대해서는 보육료 전액을, 소득하위 50~60%는 60%, 소득하위 60~70%는 30%를 각각 지원하고 있다. 세곡동 보금자리주택단지에는 요양부터 여가 선용까지 한곳에서 해결할 수 있는 신개념 노인복지 인프라도 구축할 예정이다. 신 구청장은 “무상 보육을 확대해 취학 전 아동에 대한 육아 비용이 취학 아동에 비해 훨씬 더 많은 비정상적 구조를 바꾸겠다는 뜻”이라면서 “신개념 노인복지 인프라는 갈 곳도 할 일도 없는 노인들이 저렴한 비용으로 다양한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신 구청장은 가장 시급한 지역 해결 현안 과제로 노후 아파트 재건축과 높은 건물 공실률 문제를 꼽았다. 압구정·청담동 등 한강변 아파트 24개단지 1만 299가구와 개포·대치·도곡·일원동 일대 32개단지 2만 8704가구 등이 재건축이 임박했거나 예정돼 있다. 또 2008년만 해도 1%에 불과했던 테헤란로 등지의 건물 공실률이 최근에는 10%대로 치솟았다. 신 구청장은 “재건축을 요구하는 아파트가 많은 만큼 객관적 기준을 세워 완급을 정하고, 주민 의사를 최대한 존중해 속도감 있게 해결할 방침”이라면서 “건물 공실률을 낮추기 위해 금융기관 본사를 유치하고, 청년 일자리 창출 사업 등과도 연계할 것”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임기 4년을 관통할 핵심 키워드로 ‘신뢰’를 제시했다. 신 구청장은 “주민들의 호응을 얻지 못하는 자치행정은 불필요하다.”면서 “주민들로부터 신뢰받는 행정이 될 수 있도록 공직사회에 뿌리깊은 무사안일과 복지부동을 타파하겠다.”고 약속했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신연희 강남구청장 누구보다 ‘최초’라는 꼬리표가 많이 따라붙는다. 고려대 행정학과를 졸업한 신 구청장은 1973년 7급 공채시험에 합격해 서울시와 인연을 맺었다. 이어 20조원이 넘는 시 살림을 챙기는 최초 여성 회계과장, 1만여명의 시 공무원과 25개 자치구를 총괄하는 최초 여성 행정국장, 여성 정책을 아우르는 여성개발정책관 등 요직을 거쳤다. 빈틈없는 일처리가 장점으로 꼽힌다.
  • 명동은 지금 추억속으로

    명동은 지금 추억속으로

    명동예술극장이 7월2일 오후 2시부터 릴레이 토크쇼 ‘오래된 미래를 찾아서’를 연다. 재개관 1주년을 맞아 기획한 이색 행사다. 교양문화의 중심지에서 1970~1980년대 청년문화의 중심으로 떠올랐던 명동을 재조명 해보자는 취지다. 1934년 ‘명치좌(明治座)’로 지어진 명동극장은 1957년부터 국립극장으로 쓰였다. 1973년 남산 기슭에 지금의 국립극장이 건립되면서 사기업에 넘어갔으나 1990년대 중반부터 원래의 문화공간으로 복원하자는 목소리가 이어지면서 2009년 5월 지금의 모습으로 재개관했다. 토크쇼 첫 주제는 ‘명동문화지도 다시 읽기’. 한국의 첫 연예전문기자로 공연계에 깊숙이 몸담았던 정홍택(74) 한국저작권단체연합회 이사장, 국립오페라단·발레단과 인연이 깊고 세종문화회관과 고양문화재단을 거친 이상만(75) 선생이 무대에 오른다. 두번째 주제는 ‘극장이 뒤집어졌다’. 극단 산울림을 이끄는 연출가 임영웅(74), 원로배우 백성희(85)·이순재(76)·최불암(70), 음향전문가인 홍익대 교수 김벌래(69) 등이 나와 국립명동극장 시절 무대 앞뒤에서 벌어진 다양한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오후 4시40분부터는 ‘노래와 영화 속 명동 풍속도’를 주제로 국악평론가 윤중강(51) 선생이 ‘오빠는 풍각쟁이야’ 같은 옛 노래를 통해 명동의 초기 모습을 재연해 보인다. 5시30분 시작되는 4부에는 드디어 ‘술, 노래 그리고 낭만’이 등장한다. 전유성(61), 김도향(65) 등이 청바지와 통기타, 장발머리, 라이브 카페로 상징되는 당시 명동의 청년문화를 조명한다. 입장료는 없고, 출입에도 제한이 없다. 그 시절 ‘뻔질나게 명동을 드나들며 좀 놀아봤던 사람들’로서는 금요일 오후 한번쯤 부담없이 들러볼 만하다. 1644-2003.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크루그먼 “제3의 불황 진입”

    “세 번째 불황은 이미 시작됐다. 각국 정부가 무조건적인 긴축재정에 나선다면 그 대가는 실업자 양산으로 이어질 뿐이다.” 2008년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가 현재의 경제 상황을 역사상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갈 수 있는 위기라고 강조했다. 그는 28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칼럼을 통해 “경기침체는 흔하지만, 불황은 드물다.”면서 “지금까지 불황이라고 할 만한 역사적 사례는 1873년 공황 이후의 장기 불황과 1929~1931년 금융위기 이후 이어진 대공황뿐”이라고 밝혔다. 이어 “두 불황 모두 경기가 지속적으로 떨어진 것은 아니지만, 중간에 나타난 경기회복세가 불황의 타격을 극복할 정도로 충분하지 않아 결국 더블딥에 빠지게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크루그먼 교수는 현재의 경제 상황을 세 번째 불황의 초기 단계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1929년의 대공황보다는 1873년과 닮아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각국 정부는 대규모 지출을 기반으로 한 정책을 내세워 지난해 여름 경기침체에서 벗어난 것으로 보인다.”면서 “그러나 훗날 역사학자들은 지금의 경기회복기가 제3의 불황의 끝이라고 기록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크루그먼 교수는 각국 정부가 펼치고 있는 정책에 대해 강력히 비판했다. 과거의 정부들이 균형 잡힌 지출과 긴축으로 위기를 극복해 나간 반면 최근 위기를 맞고 있는 국가들은 하나같이 긴축에만 신경쓰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이는 실업으로 이어질 뿐이라는 것이 크루그먼 교수의 주장이다. 특히 그는 “장기 실업이 늘고 있는 미국과 유럽은 긴축재정으로 인해 일본이 겪었던 긴 경기침체를 곧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CEO 칼럼]전략 경영의 힘/강영원 한국석유공사 사장

    [CEO 칼럼]전략 경영의 힘/강영원 한국석유공사 사장

    2008년 취임 이후 필자가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많이 강조한 말은 ‘전략’이었다. 기존의 주간·월간·분기 ‘경영회의’를 각각 주간·월간·분기 ‘전략회의’로 이름을 바꿨으며, 월 초마다 직원들을 만나는 월례조회에서 우리 조직을 전략 집중형 조직으로 전환하자고 거듭 강조해 왔다. 전략이라는 단어를 쓰면서 기존의 틀을 깨고, 일하는 방식과 기업문화도 획기적으로 변화시키고 싶었다. 그냥 열심히 할 것이 아니라 흔히 말하는 전략적인 사고를 통해 일상업무 속에서 우리 회사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를 되새겼으면 하는 욕심에서였다. 그것이 다름아닌 전략 경영이고, 필자는 그 힘을 믿고 있었다. 최근 한 보고서에서 173년간 지속적으로 성장한 P&G의 사례를 접한 적이 있다. 지금까지 그들의 생존을 이끈 핵심 요소는 “고객의 삶을 향상시키고 감동을 주는 것”이라는 기업의 명확한 존재 목적이라고 하는데, 이 목적을 중심으로 한 성장 전략과 목적에 집중한 실행, 목적을 고무시키는 문화가 지금까지의 성장을 견인했다는 문구가 인상적이었다. 또 그들의 전략에는 직원들이 어디서 경쟁하고, 어떻게 이길 것인가 하는 방향이 분명하게 제시돼 빛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 돋보였다. 전략경영의 핵심은 바로 그런 것이다. 직원들의 가슴을 뛰게 하는 명확한 목적과 목표를 제시하고, 그들이 늘 회사의 방향과 전략이 함께 뛰게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기업의 성공에는 단순한 ‘경영 전략’이 아닌, ‘전략 경영’이 반드시 필요하다. 회사의 비전과 전략적 목표를 모든 구성원이 효율적으로 소통하고, 또 그 결과를 서로 원활하게 피드백할 수 있어야 한다. 또 전략적인 경영이라 함은 기업의 운영시스템과 전략시스템의 완벽한 통합을 의미하는 만큼 체계화된 시스템 구현 또한 중요하다. 그런 측면에서 필자는 전사적 자원의 전략적 관리를 가능하게 하는 ‘SEM(Strategic Enterprise Management) 시스템’을 서둘러 도입한 바 있다. 경영의 툴이 변화하는 만큼, 경영시스템도 전략목표를 뒷받침할 수 있도록 선진화할 필요성이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SEM 시스템은 전 구성원들이 자신의 업무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PDCA (Plan, Do, Check, Action) 간의 유기적인 경영을 가능하게 해주는 시스템이다. 물론 시행착오도 있었다. 전사의 전략 목표를 하위 조직으로 합리적으로 분배한다는 것이, 또 전략 과제별로 모든 업무를 지표로 설정해 성과를 도출해야 한다는 것이 영 익숙하지 않았다. 전사 직원들이 한 몸처럼, 전사의 모든 업무가 톱니바퀴처럼 잘 짜여져 돌아간다는 것이 쉽지 않은 작업이었고 소통을 위한 많은 설득의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점차 SEM 시스템이 회사에서 자리를 잡아갈수록 회사의 목표와 전략이 각 실무 조직에 계단식으로 전달되는 데 효과적이었다. 실제로 모든 전략이 빠르게 실행되고, 직원들이 전략적인 관점에서 업무를 추진하게 됐다. 기존에는 직원들이 자신이 속해 있는 작은 조직 안에서 수직적으로 주어지는 역할에만 매달렸다면 이제는 임원, 처·실장뿐 아니라 팀장, 팀원까지 모두 회사의 전체적인 전략 목표 아래 유기적으로 업무를 수행하는 데 익숙하게 됐다. 지금 내가 회사 전체의 목적과 발전의 어느 부분을 맡고 있는 것인지, 어떻게 연결되고 있는지를 인식하게 된 것이다. 기업의 명확한 목적은 지속적인 성장을 견인한다. 그리고 그 명확한 목적은 직원들을 신바람나게 하고, 기업의 전략경영을 발전시킨다. 전략경영이 한 기업에 뿌리 내리기 위해서는 조직과 구성원들이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려는 용기가 전제돼야 한다. 그리고 결과를 직원들이 체험하고, 성과를 공유할 때 전략 경영의 힘은 배가될 것이다.
  • 도롱뇽목 등 21종 멸종위기종 추가

    도롱뇽목 등 21종 멸종위기종 추가

    환경부는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 동·식물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 협약)’ 당사국총회의 결정을 반영해 멸종위기종 목록을 일부 개정·고시한다고 27일 밝혔다. CITES 협약은 불법거래나 과도한 국제거래를 규제해 서식지로부터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을 보호하기 위해 1973년 워싱턴회의에서 채택됐다. 현재 회원국은 175개 나라이고 우리나라는 1993년 7월 가입했다. 개정되는 국제적 멸종위기종 목록에는 카이저점박이뉴트(도롱뇽목), 붉은눈 개구리 등 12종의 동물과, 브라질 장미나무, 유창목 등 식물 9종이 신규로 등재됐다. 반면 가축화된 스위스 회색늑대 등 동물 3종과 푸로테이과 식물 등 3종이 목록에서 제외됐다. 또한 목록에 포함된 식물 칸드릴라는 소매용 완제품에 대해 별도의 허가절차 없이 수출과 수입을 할 수 있도록 개정했다. 그동안 국내 화장품 업계에서는 칸드릴라를 원료로 제조한 완제품의 수출입에 제한을 받았으나 불편이 해소될 전망이다. 국제적 멸종위기종은 중요도에 따라 목록1에 951종, 목록2에 3만 3098종, 목록3에 170종 등 총 3만 4000여종이 등재돼 있다. 등재된 멸종위기종이나 이를 이용한 가공품을 수출·수입하거나 반출·반입하려면 유역(지방)환경청장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위반하게 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게 된다. 국제 멸종위기종 목록1은 호랑이, 고릴라, 밍크고래, 따오기 등으로 상업적인 목적으로는 거래가 불가능하고 학술연구 목적으로만 거래가 가능하다. 목록2는 하마, 강거북 등으로 당장은 멸종위기에 처하지는 않았지만 규제하지 않는다면 사라질 수 있는 종으로 상업적인 거래가 가능하다. 목록3은 캐나다의 바다코끼리나 인도의 북방 살모사처럼 협약당사국이 자국 내 과도한 이용 방지를 목적으로 국제적인 협력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지정한 종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앞으로 불법거래나 과도한 국제거래로 인해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 동·식물을 보호하기 위해 협약국가와의 상호협력과 불법거래 단속을 강화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유진상기자 jsr@seoul.co.kr
  • 정식품 회장에 정성수씨

    두유시장 1위 업체인 정식품은 최근 이사회를 열어 정성수(60) 대표이사 부회장을 회장으로 선임했다고 25일 밝혔다. 정 신임 회장은 창업주 정재원 명예회장의 아들로 1973년 정식품에 입사해 부사장을 거쳐 1998년부터 부회장을 맡아왔다.
  • [씨줄날줄]병역특례/이춘규 논설위원

    징병제(徵兵制)는 주로 성년 남성들에게 국토를 방위할 병역 의무를 지워 강제하는 제도이다. 군대에 일정기간 복무하도록 법으로 강제한다. 우리나라, 타이완, 독일 등이 징병제 나라다. 우리나라는 복무기간이 24개월에서 18개월로 단축되는 과정에 있다. 그 과정에서 내년까지 4만명의 병력자원이 부족한 실정이다. 우리나라는 국민개병제를 실시하지 않으면 국가의 안전과 국민들의 자유를 지킬 수 없기 때문에 징병제를 실시하고 있다. 징병제는 공평성이 생명이다. 공평하지 않다고 느끼는 사람이 늘면 징병제와 국가안보가 위험해진다. 특례가 늘게 되면 국가 운영의 원칙이 흔들리게 된다는 지적을 받는다. 그래서 병역의무를 면제하는 특례제도는 예외적으로, 엄격히 운영되고 있다. 현재 많은 분야에서 병역특례를 운용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스포츠계이다. 산업체 특례도 있다. 바둑, 무용에도 있다. 특례가 늘면 현역 장병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고 한다. 신성한 병역 의무를 징벌로까지 인식하게 된다. 병역특례 논란이 재점화됐다. 축구 남아공월드컵 대표팀 허정무 감독과 조중연 대한축구협회장 등이 16강 진출 직후부터 병역특례를 거론하면서다. 찬반 양론이 있지만, 누리꾼들은 반대론이 압도적이다. 원칙을 흔드는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이 적지 않다. “이름 없고, 돈 없고, 배경 없는 사회적 약자들만 군대에 가란 말인가.”라는 항변도 들려 온다. 월드컵 태극전사들이 국위를 선양했고, 국민들을 행복하게 했지만 법을 바꾸면서까지 특례를 주라는 훈장은 아니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스포츠 병역특례는 1973년 도입됐다. ‘올림픽, 세계선수권, 유니버시아드, 아시안게임, 아시아선수권 3위 이상’이었다가 1984년 엄격해졌다. 1990년 ‘올림픽 3위 이상, 아시안게임 1위’로 더욱 강화됐다. 2002년 한·일 월드컵축구 4강 이후 ‘축구 월드컵 16강, 야구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4강 이상’까지 특례조항이 추가됐지만 2007년 ‘올림픽 3위 이상, 아시안게임 1위’로 원위치됐다. 일본 우파 언론들은 지난 2006년 토리노 겨울올림픽 때 한국 선수들이 금메달 행진을 이어가자 “한국선수들은 병역면제 혜택 때문에 강하다.”고 빈정댔다. 당시 여자선수들의 선전은 외면해 버렸다. 야구나 축구, 그리고 올초 밴쿠버 겨울올림픽 때도 한국선수들의 선전을 병역면제 혜택 덕분으로 폄하했다. 병역특혜 논란 때문에 국민적 영웅들이 국제적 놀림감이 되어서야 되겠는가. 이춘규 논설위원 taein@seoul.co.kr
  • “나는 왜 한국전쟁 연구 뛰어들었나”

    “나는 왜 한국전쟁 연구 뛰어들었나”

    박명림 연세대 교수와 브루스 커밍스 시카고대 석좌교수,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는 24일 연세·삼성 학술정보관 장기원국제회의실을 가득 메운 80여명의 청중과 함께 한국전쟁 연구에 대한 개인적·사회적 경험을 나눴다. 특별강연은 한국전쟁 연구에 평생을 바친 세계적 권위자들이 이 연구에 뛰어들게 된 계기와 개인적 경험 등 진솔한 이야기를 듣는 자리였다. 사회자인 연세대 사회학과 김동노 교수는 “늦은 밤 술자리에서 나올 법한 얘기들이 학회 자리에서 나왔다.”고 말해 청중의 웃음을 이끌었다. 커밍스 교수는 야구선수로 대학에 입학해 심리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 진학해 비로소 한국전쟁에 관심을 갖게 된 사연을 말해 눈길을 끌었다. 커밍스는 “인디애나 대학에서 만난 김일평 교수와 1973년 도쿄에서 벌어진 ‘김대중 납치사건’을 계기로 한국에 관심을 두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또 1987년 북한 방문을 떠올리며 “개성에서 만난 북한군 병사 출신 주민은 1950년 6월25일 새벽의 일을 ‘이전에도 종종 있었던 38선 부근의 게릴라전’으로 기억하고 있었다.”면서 “한국전쟁은 이처럼 시작을 특정할 수 없는 역사 속에서 자라난 내전이었다.”고 주장했다. 와다 교수는 러시아 현대사 연구로 시작해 한국전쟁 전문가로 변모한 이력을 밝히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1968년 도쿄대 대학원에서 ‘현대 러시아 역사’에 대해 강연할 당시 세계적으로 베트남전 반전운동이 일었고 곧 베트남전과 한국전쟁에 대한 연관성을 연구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 자리를 마련한 박명림 교수는 “제주 4·3사건을 연구하기 위해 찾아간 제주도에서 망월동 묘지를 옮겨 놓은 듯한 희생자들의 수많은 묘를 보게 됐다.”면서 “그때부터 한 사람의 생명과 전체의 역사는 분리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가위에 눌려 가며 연구를 하게 됐다.”고 털어놨다. 박 교수는 “독재와 이념대결 등을 직접 겪지 않았기 때문에 순수한 자유와 이성으로 연구할 수 있는 젊은 세대들과 소통하기 위한 자리를 마련하고 싶었다.”고 강연 취지를 밝혔다. 윤샘이나기자 sam@seoul.co.kr
  • 72세 신중현 미국 팝시장 진출

    72세 신중현 미국 팝시장 진출

    한국 록의 대부 신중현(72)이 고희(古稀)를 넘긴 나이에 미국 팝 시장에 진출한다. 신중현은 10월쯤 미국 음반사 ‘라이트 인 디 애틱 레코드(Light In The Attic Records)’를 통해 미국 시장에 음반 두 장을 발표한다고 21일 밝혔다. 음반 발표는 지난해 12월 신중현에게 기타를 헌정한 기타 전문회사 펜더(Fender)의 소개로 이뤄졌다. 한 장은 그의 히트곡을 2장의 CD에 담은 편집 음반이고, 또 다른 한 장은 그가 작곡과 연주를 하고 여가수 김정미가 노래해 1973년 발표했던 음반 ‘나우(Now)’다. ‘햇님’, ‘봄’, ‘바람’이 수록된 ‘나우’는 국내 발매 당시 대중적으로 빛을 보지 못했다. 신중현은 “‘라이트 인 디 애틱 레코드’는 숨어 있는 뮤지션의 음반을 발굴해 전 세계에 소개한다.”면서 “내가 펜더 기타를 헌정받은 후 해외 여러 신문에 보도돼 유명해지니 이 음반사가 나에게 관심을 가졌고 펜더에 문의를 해 왔다.”고 밝혔다. 그는 또 “히트곡이 담길 편집 음반은 트랙을 새로이 구성한다.”면서 “어떤 곡을 넣을지 아직 미국 음반사로부터 전달받지 못했다. 두 장짜리라 곡수도 많아 현재 작업 중인 걸로 안다.”고 덧붙였다. 신중현은 오는 26일부터 이틀간 제주문예회관대극장을 시작으로 새달 4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24일 포항 경북학생문화회관에서 ‘신중현 기타 헌정 기념 콘서트’라는 타이틀로 공연할 예정이다.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부고] 영화 ‘포세이돈 어드벤처’ 로널드 님 감독

    [부고] 영화 ‘포세이돈 어드벤처’ 로널드 님 감독

    해양 재난영화의 고전으로 꼽히는 ‘포세이돈 어드벤처’의 감독 로널드 님이 16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한 병원에서 별세했다. 99세. 부인 도나는 님이 넘어지는 사고로 다친 지 6주 만에 병원에서 숨을 거뒀다고 말했다. 님은 1929년 영국 최초의 유성영화인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의 ‘블랙메일’에 촬영기사로 참여하면서 60년 영화인생을 시작했다. 이후 데이비드 린 감독의 ‘밀회’(1945년작)와 ‘위대한 유산’(1946년작) 제작에 참여하면서 오스카상 후보에 올랐다. 님은 1947년 ‘테이크 마이 라이프’로 감독에 데뷔한 뒤 1972년 ‘포세이돈 어드벤처’를 발표했다. ‘포세이돈 어드벤처’는 1973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특수효과상과 테마곡 ‘모닝 애프터’로 음악상을 받았다. 박건형기자 hkitsch@seoul.co.kr
  • “정체성 섞인 내 삶 궤적 종교화해 주인공과 닮아”

    “정체성 섞인 내 삶 궤적 종교화해 주인공과 닮아”

    ‘현대연극의 거장’ 피터 브룩의 작품 ‘11 그리고 12’가 마침내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 무대에 올랐다. 탄성만 전해지던 피터의 연극이 한국에 소개된 것은 처음이지만, 공연은 20일까지 단 5차례뿐이다. 작품의 주연배우인 마크람 J 쿠리(65)를 17일 서울 논현동 숙소에서 만났다. 그는 지난해 프랑스에서 ‘11’이 세계 초연된 뒤 전 세계를 돌며 순회공연을 갖고 있다. ‘11’은 아프리카 말리 지방의 1930년대 실화에 토대한 작품이다. 기도문을 11번 외우느냐, 12번 외우느냐를 두고 일어난 끔찍한 종교분쟁을 다뤘다. 쿠리는 당초 12번 외우는 파에 속했으나 11번 암기파와 화해하는 종교지도자 ‘티에르노 보카’ 역을 맡았다. 종교 간 화해와 깨달음을 강조하는 핵심인물이다. ●“1930년대 아프리카 종교분쟁 실화 다뤄” →피터의 명성은 한국에도 잘 알려져 있지만 배우들까지는 잘 모른다. 자기 소개를 해달라. -음…. 어디서부터 말해야 하나. 태어난 곳은 팔레스타인, 자란 곳은 이스라엘이다. 1973년 영국 런던에서 연기공부를 했고, 운좋게 이곳까지 오게 됐다. 영어는 물론, 히브리어, 아랍어 등으로 연극뿐 아니라 TV, 영화 등에서 다양하게 작업해왔다. 문화에 헌신한 공을 인정받아 이스라엘에서 상과 작위도 받았다. 이스라엘이 아랍인에게 작위를 준 것은 처음이다. 짐작하겠지만 정치적으로 굉장히 어렵고 복잡한 문제였다. 팔레스타인 태생이지만 집안은 크리스천이고, 국적은 이스라엘이다. 이런 혼합적인 정체성이 다양한 분야를 헤엄쳐 나오는 데 도움을 준 것 같다. (이런 정체성 때문이었는지, 공연을 준비하면서 연출가인 피터가 그에게 요구한 것은 “연기하려 들지 말고, 평소의 당신처럼 하라.”였다고 한다.) →그런 정체성이 티에르노 역할과 잘 맞아떨어지는 듯한데, 피터와의 만남은 어떻게 이뤄졌나. -희곡 각색과 공동연출을 맡은 마리엘렌 에스티엔이 나를 좋게 본 것 같다. 2006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이스라엘 시인 마하무드 다르시 연출의 ‘벽화’(Mural)란 작품을 하고 있었다. 그때 나를 본 마리엘렌이 피터에게 추천했고, 지금까지 그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도 종교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고 들었다. -어릴 적 이스라엘의 크리스천 스쿨을 다녔다. 일주일에 두번 반드시 미사를 보도록 했는데 강요에 의한 것이어서 반발심이 컸다. 이슬람, 유대인과 함께 생활해온 덕분에 다양한 종교와 예배를 모두 지켜볼 수 있었다. 모두들 엄격한 규율을 강조했고 저마다 자기 종교가 더 좋고 다른 종교는 나쁘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공통점은 있었다. 권력이나 정치와 밀접하다는 점이다. 이런 모습들은 신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데 오히려 방해만 될 뿐이라 생각했다. 그런 성장과정이 아마도 내 행동, 말, 외모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났을 것이라 생각한다. 피터 역시 그런 점 때문에 나를 캐스팅한 게 아닐까 싶다. 아무 생각이나 질문 없이 교리나 법률을 따르라고 하는 것, 그리고 ‘종교라는 것은 이런저런 것을 해야 한다.’는 주입은 사실 종교가 해야 할 일이 아니다. ●“종교는 머리가 아닌 몸으로 이해하는 것” →당신의 정체성만큼이나 출연진의 국적도 영국, 미국, 스페인, 말리 등 다양하다. -배우들의 출신지가 다르다 보니 배우들 모두 각자 자신이 경험한 사회의 백그라운드를 끌고 들어온다. 그런 부분들을 서로 설명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 매우 중요하고 의미 깊다. 언젠가 피터에게 “이런 걸 한번 하고 나면 일상의 작업환경으로 되돌아가기는 무척 어려울 것 같다.”고 했더니 피터는 “그냥 전달하라(pass it on).”고 하더라. 그는 자신에 대한 신격화를 무척 싫어한다. 그냥 나름의 작업방식을 전달하고 전달받기를 원한다. →연극 얘기로 돌아가자. 식민지 상황 아래서 전통과 근대의 교차지점을 말하는 장면들이 무척 인상깊었다. 티에르노가 시계를 보고 시간을 말하는 대목 등 말이다. -시계는 일종의 종교와 과학 간의 대립인데, 티에르노는 종교란 모두에게 열려 있어야 한다고 끊임없이 강조한다. 시계 얘기는 굉장히 상징적이고 관객들에게 생각하게 만드는 장치다. 내가 설명하기보다는 관객들이 직접 보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다른 종교지도자들은 식민 지배국인 프랑스에서 들어온 시계를 기괴한 물건 취급하지만, 티에르노는 아무 거리낌 없이 시계를 본다.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제자 암쿠렐에게 신학문을 배우라고, 프랑스정부에 들어가서 일하라고, 또 그들의 장점만 따서 배우라고 말하는 이도 티에르노다.) →신은 뭐냐는 제자의 질문에 “신은 인간의 당황스러운 마음”이라고 답하는 대목도 인상적이다. -안 그래도 피터에게 대본을 직접 읽어 보라고 했다. 이해하기 어려우니 당신이 읽는 걸 들으면 도움이 될 것 같다며…. 그랬더니 피터는 몇 주든, 몇 달이든, 몇 년이든 이해할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더라. 그러고 2~3주쯤 지나니 차츰 이해되기 시작했다. 물론 내가 완벽하게 이해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내 경험과 몸으로 받아들이게 됐다는 것이 중요하고, 피터 역시 그러기를 바랐다. 극 중에서 티에르노가 제자들에게 가르치려 한 것도 바로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이해하라는 것 아니었나. (쿠리는 이런 내용의 인터뷰를 부담스러워했다. 잘난 척하는 것처럼 보일까봐서였다. 그는 “내가 꼭 종교지도자 같다.”고 농담을 던지면서도 “10년 전만 해도 이런 얘기 못했을 텐데, 지금 나이에는 해도 될 것 같기도 하다.”며 웃었다.) →한국 관객에게 하고 싶은 말은. -모든 인간을 공통적으로 묶어주는 매우 보편적인 얘기다. 그렇다고 심각한 내용은 아니니까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다국적 공연팀인지라 여러 국가의 민속악기도 등장한다. 음악이 굉장히 좋다. 유머러스한 장면도 많으니 월드컵 때문에 경황 없더라도 우리 공연을 즐겨달라.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주목받는 사진전 2제

    주목받는 사진전 2제

    美대공황 노동자 삶 포착 -19일~9월4일 ‘워커 에번스전’ 北이 숨겼던 현실 비틀기 -새달 7일까지 백승우 사진전 올 상반기 최고 화제였던 스티브 매커리의 ‘진실의 순간’전에 이어 특색있는 사진전이 곳곳에서 열린다. 다큐멘터리 사진의 새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받는 ‘워커 에번스’전이 서울 방이동 한미사진미술관(02-418-1315)에서 19일~9월4일 열린다. 워커 에번스(1903~1975)는 작가적 관점이 이입된 다큐멘터리 사진으로 유명하다. 1930년대 미국 대공황 시절 농민과 노동자들의 삶을 기록한 시리즈가 대표작이다. 가난하고 척박한 미국 남부를 담은 사진들은 실은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이 뉴딜정책을 위해 설립한 부서인 농업안정국(FSA)에 에번스가 고용돼 찍은 것들이다. 에번스는 1년6개월 동안 FSA에서 일하며 미국의 가장 어두웠던 시기에 농촌의 피폐함을 사진으로 도시 사람들에게 알렸다. 당시 사진은 발명된 지 100년이 채 안 되는 신(新)매체였다. 사진을 직접 인화하는 것을 꺼렸던 에번스는 1973년부터 생을 마감할 때까지 즉석에서 인화와 현상이 되는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2000장 이상의 사진을 찍었다고 한다. 요즘으로 치면 ‘지하철 몰카’쯤으로 불릴 만한 ‘지하철’ 시리즈도 그의 대표작. 대형 카메라를 주로 썼던 에번스는 1938~1941년 소형 콘택스 카메라를 옷 속에 숨긴 채 뉴욕 지하철을 탄 사람들을 몰래 찍었다. 당시 사진 찍힌 사람들이 항의할까봐 발표하지 못했던 작품들은 이후 후대 사진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사진작가 강운구씨는 “인간을 인간의 눈높이로 바라보고 찍은 에번스는 정지된 사람들의 순간을 잘 포착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에번스가 당시에 현상했던 원본 흑백사진들이 전시된다. 일부는 디지털 기술을 사용해 큰 규모로 인화됐다. 백승우(37)는 또 다른 의미로 한국적인 다큐멘터리 사진을 개척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북한의 현실을 담은 그의 개인전이 다음 달 7일까지 서울 서소문 일우스페이스(02-753-6502)에서 열린다. 북한 사진을 찍고 싶었던 그는 2001년 한복 디자이너 이영희씨가 평양에서 패션쇼를 연다는 소식에 같이 갈 수 있게 해달라고 읍소했다. 어렵게 평양에서 4주 동안 사진을 찍었지만 북한 당국은 매일 저녁 그의 필름을 압수해 원치 않는 이미지는 잘라내고 돌려줬다. 백승우는 검열받은 필름 속에서 북한 당국이 숨기고 싶어했던 모습을 찾아낸 뒤 확대해 ‘블로우 업’ 시리즈로 발표했다. 영문 상표나 여승무원, 달리는 여성, 길 위의 행인 등이 그의 손을 통해 빛을 본 작품들. ‘유토피아’ 시리즈는 북한이 선전에 활용하기 위해 첨단 건물과 시설들을 촬영한 사진을 구해 상상을 덧붙여 마음대로 가공한 것이다. 건물을 극적으로 높이거나 웅장하게 변형시키고, 배경에는 다채로운 색을 입혔다. 지상낙원이라 선전하는 북한의 이미지를 과장시켜 비꼬는 사진들이다. 기존의 사진이 진실을 말했다면, 그는 다큐멘터리의 틀만 빌려 대상(북한)을 조작했다. 백승우는 “폭력적 시각을 고발하고 싶었어요. 아프리카에 미국인들이 와서 사진을 같이 찍어주는 대가로 1달러씩 주자 불과 여섯달 만에 그곳의 산업이 사라져 버렸대요. 그건 아프리카에 대한 폭력이었죠. 나와 다른 것을 일방적으로 재단하는 폭력을 사진으로 고발하고자 했습니다.”라고 자신의 작품을 설명했다. 영화 007시리즈의 제작자 마이클 G 윌슨이 ‘블로우 업’ 시리즈 120점을 모두 구매할 정도로 백승우 사진 애호가다. 이 밖에 서울 세종로 일민미술관(02-2020-2060)은 8월22일까지 전국의 경관과 문화재, 풍속 등을 기록한 ‘격물치지’전을,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02-580-1300)은 22일~8월29일 역대 퓰리처상 보도사진 부문 수상작들을 볼 수 있는 전시회를 각각 연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윤정희, 남편과의 풀 러브스토리 공개

    윤정희, 남편과의 풀 러브스토리 공개

    배우 윤정희가 남편 백건우와의 러브스토리를 최초로 공개했다.지난 16일 방송된 MBC ‘황금어장 - 무릎팍도사’에 출연한 윤정희는 남편 피아니스트 백건우와 결혼하기까지의 비하인드 스토리와 함께 1973년 돌연 프랑스 유학을 간 이유까지 솔직하게 털어놨다.윤정희는 “우연히 방문한 독일 뮌헨에서 고(故) 윤이상 작곡가의 소개로 백건우를 만났다.”며 “대화는 거의 나누지 못했지만 갑자기 꽃을 사들고 와서 내게 꽃을 건네더라. 이후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너무 바쁘게 지내다보니 잊고 지냈다.”고 전했다.그렇게 백건우와의 인연이 끝난 줄로만 알았던 윤정희는 2년 후 유학을 간 프랑스의 한식당에서 백건우와 우연히 마주쳤다. 윤정희는 “다시 만났을 때 그와 천생연분일 것 같다는 느낌이 오더라.”고 수줍게 고백했다.그때부터 두 사람의 비밀 데이트는 시작됐다. 백건우 씨의 “지붕 밑 방을 하나 얻어 같이 살자.”는 동거 제안에 윤정희는 처음엔 부담스러워 거절했지만 어느 순간 그와 집을 같이 구하러 다녀 결국 몽마르트 언덕에 낡은 집을 얻었다고 말했다.윤정희는 거절했다가 갑자기 마음을 바꾼 이유를 묻자 “그와 결혼할 생각이었고 정말 사랑했다.”고 설명했다.또 이날 윤정희는 파리 유학에 대해 “나한테는 자연스러운 결정이었다. 데뷔 때부터 5년 활동 후 유학을 가려고 해었다.”고 밝혔다.한편 윤정희는 자신이 출연한 영화 ‘시’가 각본상을 받아 남편 백건우와 함께 제 63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참석해 화제가 된 바 있다.사진 = MBC ‘황금어장’-’무릎팍도사’ 화면캡처서울신문NTN 김민경 인턴기자 cong@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시·도지사 당선자에게 듣는다 (16)끝]우근민 제주지사

    [시·도지사 당선자에게 듣는다 (16)끝]우근민 제주지사

    우근민 제주도지사 당선자는 그동안 관선, 민선 등 모두 4차례나 제주도지사를 지냈다. 다음달 취임하면 다섯번째 제주도정을 이끌게 돼 제주의 구석구석 속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인물로 꼽힌다. 우 당선자는 16일 서울신문과 인터뷰에서 “이번이 마지막 봉사며 다음에는 출마하지 않는다.”며 “4년 동안 오직 도민만 바라보고 제주도정을 이끌어 나가겠다.”고 말했다. →선거 이후 해군이 해군기지 공사 강행 의지를 밝혀 또 갈등이 우려된다. -해군기지 건설 자체를 반대하지 않는다. 해군기지 갈등을 풀지 않으면 제주 사회가 단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한다는 것이 도민 사회의 중론이다. 강정마을 주민, 제주도민, 국방부(해군)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윈윈’ 방안을 찾아야 한다. 지금은 해군기지와 관련된 모든 당사자들이 차분하게 다시 한번 상대방의 입장에 귀를 기울일 때다. 상대방 입장에서 한 번 더 생각하는 마음으로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 해군이 공사 강행만을 강조한 것은 시기적으로 적절치 않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해결 방안을 바라는 도민 여론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취임하면 곧바로 국방부장관, 해군 참모총장 등을 만나 논의를 해 나가겠다. →핵심공약인 기초단체 부활에 도민들의 관심이 높다. -2006년 기초단체 폐지 이후 읍·면지역의 목소리가 도정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고, 도지사에게 모든 게 집중돼 부작용도 있었던 게 사실 아닌가. 기초단체 부활은 지방자치법상 기초단체와 달리 법인격이 없고 기초자치단체의 장은 주민들이 직접 선출하지만 기초 지방의회는 두지 않는 방안이다. 대신 제주도의회에 지역상임위원회를 두어 실제로 기초 지방의회의 기능을 수행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제주특별법을 개정하면 얼마든지 실현이 가능하다. 앞으로 전문가 등으로 연구팀을 구성해 추진해 나가겠다. →현 제주도정이 핵심적으로 추진한 영리병원과 관광객 전용 카지노 도입에 대한 견해는. -영리병원 도입은 시기상조다. 공공의료시설 확충이 더 시급하다. 의료기관이나 시설 부족으로 제대로 치료받지 못해 고통 받는 사례가 많지 않은가. 도민이 의료 서비스에 대해 만족할 때 가서 검토해도 늦지 않다. 관광객 전용 카지노 도입은 재원 확보 측면에서는 도움이 된다. 하지만, 도민이 공감하지 않으면 꼭 할 필요가 없다. →관광 등 제주가 먹고 사는 경제문제는 어떻게 풀어가나. -수출 1조원을 달성하기 위해 ‘수출진흥 4개년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제주공항과 서귀포항 인근에 ‘자유무역지구’를 조성하겠다. 자유무역지구에서 생산과 가공, 포장, 디자인, 유통 및 통관 절차가 원스톱으로 이뤄지도록 할 생각이다. 수출과 마케팅 업무를 전담할 ‘통상마케팅본부’와 도지사 직속의 ‘수출진흥회의’를 설치할 계획이다. 외국인 관광객 연간 200만명 유치를 위해 국내외 항공 노선을 확대하고, 외국인 관광객을 겨냥한 관광상품을 개발하겠다. 승마와 요트, 골프, 낚시, 패러글라이딩을 5대 핵심 레저스포츠로 선정해 전략적으로 육성하겠다. →도민들은 언제든지 도민들과 소통하는 도지사를 원하고 있다. 방안이 있나. -도민의 소리를 많이 듣겠다. 인수위원회 내에 “도민의 소리를 듣는 ‘도민 제안실’을 마련, 운영 중이다. 이를 통해 소외된 지역주민들과 민생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제한 없는 소통을 통해 도민 대통합에 나서겠다. 접수된 사안에 대해선 정책에 반영할 것은 적극 반영하고, 개선이 필요한 부분은 대책을 마련해 나가겠다. 도민들의 적극인 관심을 당부 드린다. →산북(제주시)에 비해 산남(서귀포)이 소외되고 있다는 불만이 높다. -감귤식품산업 클러스터를 서귀포·남원지역에 조성하겠다. 이곳에서 감귤을 활용한 식품·바이오산업을 일으키겠다. 세계적인 국내외 식품기업과 연구소를 끌어들이겠다. 서귀포항 인근에 조성할 자유무역지구 안에서 생산과 가공, 포장, 디자인, 유통, 수출국 통관절차가 원스톱으로 이뤄지도록 하겠다. 산남지역을 아열대 과수농업 전진기지로 만들고, 서귀포의료원의 공공의료 수준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겠다. →선거 이후 공직사회가 불안해하고 있다. 대책은. -선거 때 공무원들이 이랬다 저랬다 얘기를 많이 들었지만, 나는 일로 승부하겠다는 공무원은 편을 가르지 않았다. 떳떳하게 자신있게 일로 승부하라고 당부하고 싶다. 그러나 공무원의 특정후보 줄대기는 이제 제주사회에서 사라져야 할 구태다. 일하는 조직을 만드는게 우선이다. 글 사진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우근민 당선자는 뛰어난 친화력으로 도민들의 지지와 신뢰를 이끌어 냈고, 유연하고 모나지 않은 행정능력으로 그동안 관선, 민선 4차례에 걸쳐 도정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왔다는 평가를 받고있다. 해녀의 아들로 제주에서 태어나 누구보다 서민들의 삶을 잘 알고 있다. 제주의 인문계 고교에 수석 합격했지만 등록금이 없어 실업계에 진학, 장학금으로 공부했고 육군 간부후보생으로 입대, 군 장교로 근무하기도 했다. 1973년 육군 소령으로 근무 중 상관인 심흥선 장군이 총무처장관으로 발탁되자 비서관으로 공직과 인연을 맺었다. 총무처 차관, 남해화학 사장, 한국비료공업협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등산을 좋아하며 주량은 소주 1병 정도로 제주산 소주만을 고집하고 폭탄주도 마다 않는다. 간호장교 출신인 부인 박승련씨와 2남을 두었다.
  • 서울에도 향교·서원 남아있다

    서울에도 향교·서원 남아있다

    “서울에도 향교와 서원이 남아 있다고?” 서울시는 10일 시내에서는 유일한 향교인 양천향교와 도봉서원을 소개했다. 조선시대 지역 인재를 육성하고 유학자의 제사를 올리기 위해 관(官)에서 만든 향교와 사림(士林)이 세운 서원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많지 않다. 지역에서는 흔히 볼 수 있지만 서울에서는 대부분의 향교와 서원이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 산업화 시대를 거치면서 소실됐기 때문이다. 양천향교와 도봉서원은 건립 당시에는 경기 김포군과 양주군 소재였지만 1963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이들 지역이 서울에 편입되면서 서울의 향교와 서원이 됐다. 양천향교는 겸재 정선이 양천현감으로 있으면서 진경산수를 그릴 정도로 풍경이 빼어난 지역인 가양동 궁산 아래에 남향으로 자리잡고 있다. 태종 11년인 1411년 건립됐으며, 1909년 보통학교령이 반포됨에 따라 교육 기능을 잃고 제사나 교화 사업만 담당하게 됐다. 1914년엔 김포향교에 통합됐다가 해방 후 다시 분리됐으며, 1981년 소실된 일부 건물을 새로 세우는 등 복원작업이 이뤄졌다. 서울시는 1990년 양천향교를 시 기념물 제8호로 지정해 보존하고 있으며, 내년 600주년을 앞두고 오는 13일 ‘양천향교 창건 600주년 기념사업단 출정식’을 열 예정이다. 도봉산 계곡에 있는 도봉서원은 양주목사 남언경이 조선 전기의 대표적 성리학자인 조광조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고자 선조 6년인 1573년 세웠다. 1871년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과 6·25전쟁으로 제사가 중단된 적이 있다. 1972년 도봉서원 재건위원회에 의해 복원됐으며, 서원 주변에 당대 명필들이 빼어난 풍광과 학자로서의 이상과 다짐을 새긴 바위 11개가 흩어져 있다. 서울시는 서원과 주변 바위들을 시 기념물 제28호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시 관계자는 “양천향교와 도봉서원은 주변 풍광이 뛰어난 곳에 자리잡은 중요 문화유적”이라며 “서울의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 조선 선비들의 기상과 품격을 느낄 수 있는 역사문화의 장으로서 충분한 보존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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