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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소룡 상징 노란 츄리닝·쌍절곤 경매 나온다

    이소룡 상징 노란 츄리닝·쌍절곤 경매 나온다

    전설의 액션스타 리샤오룽(이소룡·브루스리)이 사망유희에서 입었던 노란색 점프슈트가 오는 5일 홍콩 경매에 등장한다. 사망유희는 이소룡의 유작으로 이소룡은 사망유희의 완성을 보지 못하고 1973년 의문사했다. 2일 홍콩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스핑크 경매사 부사장 애나 리 씨가 이소룡이 썼던 쌍절곤·노란색 운동복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 쌍절곤과 노란색 운동복은 오는 5일 브루스 리 사망 40주년 기념 경매에 출품된다. 예상 낙찰가는 각각 20만∼30만 홍콩달러(약 2,700만∼4,100만 원), 25만∼30만 홍콩달러(약 3,400만∼4,100만 원). 이소룡의 점프슈트는 한 홍콩의 재단사가 주문제작한 것이다. 영화 촬영 후 세탁을 하면서 현재 점프슈트는 처음 만들어졌을 때보다 15㎝가량 길이가 준 것으로 알려졌다. 스핑크 측은 이소룡이 이들 물품을 친구이자 제자인 타키 키무라에게 줬고 키무라씨가 이를 자신들에게 팔았다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부고] 세계 최대 선교방송 설립자 크라우치 목사

    [부고] 세계 최대 선교방송 설립자 크라우치 목사

    미국에서 세계 최대의 선교방송을 세운 폴 크라우치 목사가 지병으로 사망했다. 79세. 1일(현지시간) 로스앤젤레스타임스 등에 따르면 크라우치 목사는 지난달 30일 캘리포니아주 자택에서 오래 앓아 온 심장병으로 숨졌다. 그의 손자 브랜든은 “할아버지는 뛰어난 기업인이자 개척자였고 먼 미래를 내다보신 분이었으며 이 세상에 엄청난 영향을 남겼다”고 고인을 추모했다. 크라우치 목사가 1973년 아내 잰과 함께 세운 선교트리니티방송은 84개 위성방송 채널과 전 세계 1만 8000개 계약 방송사를 거느린 ‘방송제국’으로 군림하고 있다. 신앙을 위해 신심으로 희생하는 삶을 살면 신은 반드시 물질적으로 보상해 준다는 내용의 트니리티 선교방송이 미치지 않는 곳은 남극대륙뿐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미경 기자 chaplin7@seoul.co.kr
  • 독립운동가 구익균 선생 국립묘지 안장 결정

    과거 조세법 등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국립묘지 안장이 취소됐던 독립운동가 구익균 선생이 국립묘지에 안장된다. 구익균 선생은 도산 안창호 선생의 비서실장으로 국내외에서 20여년간 독립운동을 한 애국지사다. 1929년 신의주 학생 의거를 일으킨 뒤 중국으로 건너가 한국독립당의 한국유학생 지도책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지난 4월 8일 105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은 선생은 대전현충원에 모실 예정이었지만 국가보훈처가 발인을 하루 앞두고 돌연 안장을 취소했다. 선생이 1972년 사문서 위조로 징역 10개월, 집행유예 2년, 1973년 조세범처벌법 위반으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받은 것이 문제가 됐다. 선생의 막내딸 구혜란(57)씨는 지난 5월 국민권익위원회 소속 중앙행정심판위원회에 국가보훈처의 처분을 취소해 달라는 행정심판을 청구했다. 이에 대해 행정심판위는 29일 “도산 안창호의 비서실장 등을 지내며 독립운동가를 양성하고 일제에 항거하다 징역 2년, 집행유예 4년의 형을 받는 등 고인의 생전 공적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고인이 국립묘지의 영예성을 훼손한다며 안장을 거부한 국가보훈처의 처분은 부당하다”고 결정했다. 최여경 기자 cyk@seoul.co.kr
  • 사막에 우물 파는 것이 빈곤 퇴치 기술

    사막에 우물 파는 것이 빈곤 퇴치 기술

    국경 없는 과학기술자들/이경선 지음/뜨인돌/384쪽/1만 8000원 ‘국제사회가 빈곤 퇴치를 위해 천문학적 규모의 원조를 하고 있는데도 왜 빈곤국가 사람들은 가난에서 헤어나지 못할까.’ ‘첨단 과학이 판을 치는 21세기에 왜 인류의 절반 이상은 최소한의 기술혜택조차 누리지 못할까.’ 빈곤국가의 궁핍한 삶과 그곳에서 확인되는 과학기술의 불모현상에 고개드는 의문들. ‘빈곤은 저들의 숙명’이란 말로 그 원인을 찾는 이들도 있지만 세상엔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향상시키기 위해 고민하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국경없는 과학기술자들’(SEWB)은 바로 그 빈곤국가 사람들의 열악한 삶을 바꾸기 위해 뛰는 사람들을 소개한 책이다. SEWB에 몸담아 실무자로 활동했던 저자가 ‘적정기술’이야말로 빈곤 퇴치와 과학기술의 균형잡힌 혜택의 첩경임을 사례를 들어 풀어낸 보기 드문 책이다. ‘적정기술’이란 ‘현지의 자원과 노동력을 이용해 현지인들의 필요에 맞게 친환경적이고 지속가능한 방법으로 운용되는 기술’로 요약된다. ‘빈곤은 대량생산에 의해서가 아니라 대중에 의한 생산을 통해서만 해결된다’는 마하트마 간디의 ‘손물레 운동’(1920년)이 그 기원이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1973년)고 주장했던 E F 슈마허의 ‘중간기술’이나 폴 폴락의 ‘소외된 90%를 위한 디자인’(2007년)이 모두 ‘적정기술’을 표방한 실천적 대안운동으로 꼽힌다. 책은 그 ‘적정기술’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통해 대안적 방향을 보여준다는 점이 특징이다. 식수난을 겪는 남태평양 섬에 빗물탱크를 설치해 준 대학교수, 아프리카 사막에 우물을 파는 비정부기구(NGO),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히말라야 오지에 태양열 발전기를 설치해 준 대학생 봉사단…. 특히 지금까지 각국 기업과 국제사회의 원조가 번번이 실패했던 가장 큰 이유를 ‘지속가능성의 무시’라고 꼽은 대목이 눈길을 끈다. 비록 책 속에 소개된 ‘적정기술’의 방향과 성격은 천차만별이지만 그 정신은 또렷하게 하나로 모아지는 듯하다. ‘시장가격의 높은 장애물 뒤에 놓인 기술이 아니라 누구나 넘을 수 있는 낮은 울타리 뒤의 기술을 추구해야 한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대덕특구·KAIST… 박정희가 만든 산업화 상징공간

    박근혜 대통령이 부친인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토대를 닦은 산업화의 상징적 공간을 잇따라 찾고 있어 눈길을 끈다. 박 대통령의 핵심 국정과제인 ‘창조경제’를 구현하기 위한 기반이라는 점에서도 눈여겨볼 행보다. 박 대통령이 29일 방문한 대덕연구개발특구는 1973년 11월 박 전 대통령의 지시로 조성된 곳이다. ‘과학입국’ 기치 아래 지난 40년 동안 과학기술의 중심이자 경제발전의 동력 역할을 해왔다. 박 대통령은 “야산과 구릉지, 배밭이 전부였던 대덕은 세계적인 과학기술도시가 되었고 오늘날 대한민국은 과학경쟁력 세계 7위의 반열에 올랐다”고 평가했다. 박 대통령이 대덕특구에 이어 방문한 한국과학기술원(KAIST)도 박 전 대통령의 지시로 만들어졌다. 우수 과학기술 인재 양성을 위해 1971년 설립된 한국과학원(KAIS)이 모태가 됐다. 이공계 출신(서강대 전자공학과)인 박 대통령은 2008년 KAIST에서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명예박사 학위를 받기도 했다. 박 대통령이 전날 국민경제자문회의를 주재한 장소인 서울 홍릉 한국개발연구원(KDI)도 박 전 대통령의 ‘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KDI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할 당시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전문경제연구소가 필요하다는 박 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1971년 3월 설립됐으며, 지금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싱크탱크’로 자리매김했다. 앞서 박 대통령은 지난 8월 취임 후 첫 여름휴가를 박 전 대통령과의 추억이 서린 경남 거제시 저도에서 보내고, 박 전 대통령이 추진했던 새마을운동을 저개발 국가들에 적극 보급하는 등 ‘오버랩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장세훈 기자 shjang@seoul.co.kr
  • “대덕특구, 중소·중견기업 R&D기지로”

    “대덕특구, 중소·중견기업 R&D기지로”

    박근혜 대통령은 29일 “대덕 연구개발 특구를 중소·중견기업의 연구개발(R&D) 전진기지로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대전 국립중앙과학관에서 열린 ‘대덕특구 40주년 기념행사’에서 축사를 통해 “(정부)출연연구원은 민간에서 수행하기 어려운 연구개발에 집중하고, 중소·중견기업이 필요로 하는 기술을 중점 지원해야 한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박 대통령은 또 “출연연구원의 미활용 특허를 일반에 공개하고, 이를 사업화하는 과정에서 응용기술을 제공해 중소·중견기업을 적극 지원하는 창조경제의 허브 역할을 해주시기 바란다”면서 “정부도 대덕특구를 창조경제의 핵심 거점으로 육성하기 위해 최대한 지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과학기술인 연금을 단계적으로 확대하고, 과학기술 유공자를 예우하기 위한 법률도 제정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덕특구는 1973년 과학기술 분야 연구단지로 조성되기 시작했으며, 2005년 특구로 지정됐다. 서울 여의도 면적의 8배 크기(67.8㎢)에 1399개 기관과 기업이 입주해 있다. 박 대통령은 이어 과학기술 인재 양성의 요람인 한국과학기술원(KAIST)을 방문했다. 박 대통령은 세계적인 디자인전을 석권한 조명기기 ‘딜라이트’ 개발자 심지은(산업디자인랩 재직)씨와 학교용 스마트 정보기술(IT) 기기를 개발하는 카이스트 연구소기업 1호를 만든 김성진씨 등 젊은 과학자들을 만나 격려했다. 한편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국회 파행과 관련, “안팎의 여러 분야에서 많은 도전을 받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차질 없이 국정을 수행할 수 있도록 국회가 국민을 위해 대통령을 도와주실 것을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장세훈 기자 shjang@seoul.co.kr
  • [씨줄날줄] 장군의 묘/정기홍 논설위원

     30년 전 우리 군(軍)에 탱크와 장갑차로 무장한 기계화사단은 딱 하나였다. 맹호부대로 불리는 수도기계화보병사단이다. 당시 북한에는 같은 급의 부대가 3개나 된다는 말도 있었다. 1980년대 중반에 기계화부대는 더 생겼다. 수도기계화사단의 탄생이 월남(베트남)전 참전에 대한 미국의 답례였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1973년 기계화사단으로 바뀐 이후 한동안 월남전에 투입됐던 탱크와 장갑차가 주류를 이뤄 기갑병의 고민이 이만저만 아니었다고 한다.  이 부대에는 월남전을 겪은 간부가 많아 전장의 일화도 여럿 전한다. 애송이 소대장에게 목숨을 맡길 수 없다며 소대원들이 명령을 거부했다든가, 정글의 수풀 속에 매복한 베트콩의 총탄에 부대원을 잃었다는 꽤나 슬픈 얘기들이다. 반면 참전 선임하사(부사관)들이 “왕년엔 베트콩 몇 명은 죽였다”며 으스대는 모습도 어렵잖게 볼 수 있었다. ‘그 이름 맹호부대 용사들아~가시는 곳 월남 땅~’으로 불린 ‘맹호부대는 간다’란 노래에는 이같은 파월장병의 정서가 오롯이 녹아 있다. 월남전의 전사(戰史)는 끝이 없다. 맹호부대 외에도 청룡부대(해병2사단)와 백마부대의 전투사는 지금도 자주 입에 오르내린다. 청룡부대는 짜빈동전투를 승리로 이끌면서 ‘신화를 남긴 해병’이란 애칭도 얻었다.  월남전에 파병된 한국군은 31만명을 조금 넘는다. 국군의 ‘양민학살’이 한때 논란이 된 적도 있지만 월남전은 낙후된 우리 경제에 크나큰 활력을 불어넣었다. 1965년 3월 비둘기부대(비전투부대)가 파병된 이후 미국의 경제지원액이 9억 2700만 달러에 달하고, 우리 기업들이 월남에서 벌어들인 금액도 5억 3700만 달러에 이른다고 한다. 이 돈의 상당수가 경부고속도로를 놓는 데 쓰였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월남전의 영웅’ 채명신 장군이 “파월장병이 묻힌 사병묘역에 안장해 달라”는 유언을 남겨 새삼 군인정신을 일깨우고 있다. 그는 월남 파병 당시 맹호부대장이었고, 초대 주월 한국군사령관을 지냈다. 세계 전투사에 게릴라전으로 유명한 월남전에서 그가 보여준 ‘적과 주민 분리 전술’은 당시 미군이 채택했을 정도로 탁월한 것이었다. 월남전 내내 ‘민심이 70%, 전투는 30%’라는 지론을 갖고 명령을 내렸다고 한다. 민심을 장악해야 민간에 숨은 베트콩을 색출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채 장군을 게릴라전술의 대가로 부르는 이유다. 월남전의 상처는 아직도 아물지 않고 있다. 우리의 장병 5000여명이 죽었다. 고엽제 피해 파월장병 1만 6579명이 미국의 고엽제 제조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도 했었다. 사병묘역을 택한 채 장군의 뜻이 월남전 전우들의 아픈 마음을 조금이나마 치유했으면 한다.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 모예스 “긱스는 여전히 성장중” 극찬

    모예스 “긱스는 여전히 성장중” 극찬

    40세 생일을 앞두고 치른 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서 풀타임 활약한 라이언 긱스(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대해 데이비드 모예스 감독이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모예스 감독은 지난 27일(현지시간) 챔피언스리그 레버쿠젠 원정경기에서 5-0 대승을 거둔 뒤 경기 내내 중원에서 활발한 플레이를 펼친 긱스에 대해 찬사를 보냈다. 모예스 감독은 “축구선수로서 긱스의 능력을 의심하지 않는다”면서 “그는 40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전혀 체력적으로 문제를 보이지 않고 있다. 믿기지 않는 일이다. 그와 함께 할 수 있다는 건 나에겐 행운”이라면서 존경심을 표했다. 그는 이어 “긱스의 나이에 대해 문제를 삼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축구선수로서의 능력에 대해서만 생각한다”며 “긱스는 믿을 수 없는 선수다. 그는 지금도 성장하고 있다. 특히 나니의 골을 도운 건 대단히 훌륭했다”고 밝혔다. 이날 경기에서 팀의 대승을 이끈 긱스는 1973년 11월 29일생으로 40번째 생일을 눈앞에 두고 있다. 1990년부터 맨유에서 뛴 그는 지금까지 13번의 리그 우승과 두 번의 챔피언스리그 우승 등을 이끌며 맨유의 찬란한 역사를 함께 해오고 있다. 긱스는 지난 10월 챔피언스리그 샤흐타르 도네츠크전에 나서며 챔피언스리그 145경기 출전으로 대회 최다 출장 기록을 갱신하는 등 ‘살아있는 역사’로 극찬 받고 있다. 김동혁 스포츠 통신원 hhms786@nate.com
  • 시국미사 논란…박창신 신부는 누구

    지난 22일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을 옹호하는 듯한 발언을 하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사퇴를 요구한 천주교 전주교구 박창신 원로신부는 지역 천주교계의 원로다. 신학대를 나와 군 제대 후 1973년 사제 서품을 받은 박 신부는 39년간 익산, 정읍, 전주 성당 등에서 사제로 부역하다 2012년 8월 은퇴했다. 전북지역에서는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고 부당한 권력에 맞서면서 문정현·규현 형제 신부와 함께 대표적인 ‘강성 신부’로 꼽힌다. 특히 광주민중항쟁을 신자들에게 알리던 박 신부는 1980년 6월 25일 괴한들로부터 테러를 당해 하반신이 마비되기도 했다. 당시 익산 여산 성당 주임 신부있던 그는 가톨릭 전주교구사제단이 발표한 ‘전두환 광주살육작전’이라는 유인물을 신자들에게 나눠주다 괴한들의 습격을 받았다. 사제관에서 신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박 신부가 초인종 소리에 현관으로 내려가자 괴한 여러 명이 칼과 쇠파프이를 휘둘렀다. ‘영원한 미제 사건’으로 끝난 당시의 테러로 그는 지금도 한쪽 다리를 절고 있다. 역대 정권과의 악연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1995년 민주주의민족통일전북연합의 공동의장을 맡았던 박 신부는 도내 대학생들이 이른바 ‘자주대오’ 사건으로 구속되자 이들의 석방을 촉구했다. 박 신부는 당시 국군 기무사와 전북경찰청의 잇단 대학생 구속을 전북지역 민족민주운동 세력에 대한 탄압행위로 간주했다. 또 1997년 국회에서 노동법이 개정되자 ‘노동법·안기부법 개악철회와 민주수호를 위한 전북대책위’ 상임대표를 맡았던 박 신부는 “노동자들의 삶의 질과 국제노동기구의 기준에 맞도록 노동법을 재개정하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박 신부는 평소 강론에서 “선을 행하도록 명령받은 사제들로서는 피할 수 없는 사명이 있다”며 자신의 선택과 행동에 떳떳했다. 이번 시국 미사 발언에 대해서도 “어떤 비판에도 박근혜 대통령 퇴진 운동을 하겠다”면서 “이번에 크게 국민이 일을 해야 한다”며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CML과 필라델피아 염색체

    CML을 말할 때 빠뜨릴 수 없는 ‘필라델피아 염색체’는 전체 환자의 95%에서 확인될 만큼 CML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유하고 있다. 1960년 미국 필라델피아대학의 피터 노웰 교수가 CML 유발 유전자라고 확인한 22번 염색체를 지칭하는 필라델피아 염색체가 백혈병을 유발하는 기전은 DNA의 기형적인 자리바꿈에 있다. 유전학에서 전좌(轉座)라고 부르는 이 현상은 1973년 미국 시카고대학의 재닛 라울리가 처음으로 확인했다. CML 환자의 9번 염색체에 엉뚱하게도 다른 염색체의 DNA가 붙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이다. 역사적인 CML의 발병 경로가 이로써 전모를 드러내게 됐다. CML 환자의 경우 9번 염색체에 붙어 있어야 할 유전자의 꼬리(Abl)가 22번 염색체의 머리(Bcr)와 자리를 바꿔 정상적인 사람에게서는 존재하지 않는 암 유전자인 ‘Bcr-Abl’을 만들어 낸다. 9번과 22번 염색체 사이에 전좌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엉뚱한 머리(Bcr)의 지배를 받게 되는 꼬리(Abl)는 자신의 본래 기능을 망각한 채 분자생물학적 세포 단위에서 정상 범주를 벗어난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즉, 필요없이 세포가 분열하도록 부추기거나 다른 곳으로 이동하게 하는 등 통제 불능의 상태로 몰아간다. 이런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가장 나쁜 결과가 바로 CML이다. 의료인들은 이 과정을 간단히 줄여 “CML은 염색체 이상에 의해 발생하는 대표적인 혈액암”이라고 설명하곤 한다. 김동욱 교수는 “9번 염색체와 22번 염색체의 일부 유전자가 서로 자리를 바꿔 앉는 교란 상태에 빠지면서 정상적인 체내에는 존재하지 않는 유전자를 만들게 되고, 여기에서 비정상적인 암 단백질(Bcr-Abl)이 생긴다”면서 “이렇게 만들어진 단백질이 혈액세포 내에서 인산화 작용을 촉진해 악성 혈액암이 발생하게 된다”고 말했다. 기형적인 필라델피아 염색체의 ‘난동’이 CML을 유발한다는 설명이다. 심재억 전문기자 jeshim@seoul.co.kr
  • “北 김정은체제 핵문제·경제개혁 올바른 방향으로 가는 신호 없어”

    “北 김정은체제 핵문제·경제개혁 올바른 방향으로 가는 신호 없어”

    21일 서울 중구 정동 대사관저에서 마주한 성 김(53) 미국 대사는 매우 적극적으로 한국과 미국 간 현안들과 논란의 중심에 있는 일본의 집단권 자위권에 대한 미국의 입장을 밝혔다. 성 김 대사는 이날 서울신문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특히 “일본의 집단권 자위권에 대한 한국의 우려를 너무도 잘 알고 있다”면서 “한국민이 걱정할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여러 번 강조했다. 지난 10일로 부임 2년을 맞은 성 김 대사는 한·미동맹 60주년을 맞아 기존의 군사·경제적 동맹 관계에서 재난 지원, 기후변화, 테러, 해적 퇴치 등 한반도를 넘어 세계로 협력의 지평을 확대하는 데 기여하고 싶다고 소회를 밝혔다. →한·미 관계에 대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는 얘기들을 했다. 하지만 방위비 분담 협상,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미 미사일방어체제(MD) 편입 여부,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등 산적한 현안으로 한·미 동맹이 새로운 국면을 맞는 게 아니냐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올해는 한·미 동맹 60주년이자 주한 미국상공회의소 설립 60주년이 되는 해다. 한국에서 60년은 환갑으로 양국 간에도 중요한 이정표가 되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한·미 관계는 매우 중요하면서도 복합적이고 다방면으로 폭넓게 형성돼 있다. 주요 현안마다 긴밀하게 협력하고 조율해 왔다. 양국 다 만족할 수 있는 결론이 날 것으로 자신한다. →먼저 이슈가 되고 있는 일본의 집단권 자위권 문제에 대한 질문이다. 미국이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을 용인한 것이 한국의 안보 상황에 어떤 영향을 줄 것으로 보나. -일본에 대한 한국 국민의 우려를 잘 이해하고 있다. 나도 역사를 알고 일본에 대해 무엇을 걱정하는지 잘 이해하고 있다. 한국에 있지만 (미국과) 일본과의 대화 등 진행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미·일 동맹 차원의 협의가 한국의 국익에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일은 없을 것이다. 미·일 협의는 양국 관계의 균형적 발전을 위한 것으로 한·미 동맹을 현대화하고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미국은 한국에 부정적인 영향이나 한국의 이익에 피해가 가는 것은 결코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미·일 협의에 대한 잘못된 정보도 많은데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 미·일 동맹을 통해 지역 안정과 평화에 기여하기 위한 것이다. 한국을 어렵게 만들고 피해를 끼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미국은 미·일 간 협의 내용을 한국에 충분히 설명하고 있다. →‘잘못된 정보’란 무엇을 말하나. -일본의 군사적 능력 강화가 한국에 위협이 될 것이라는 추측은 적절하지 않다. →한·미 동맹과 미·일 동맹은 한쪽이 강화되면 다른 한쪽은 약화되는 역학구조가 아니냐는 우려가 있다. -한·미 동맹과 미·일 동맹은 동반 성장하는 관계이지 제로섬의 관계가 아니다. 일본과의 관계 강화가 한·미 관계를 약화시키는 게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5월 성공적으로 한·미 정상회담을 마쳤고 척 헤이글 국방장관과 마틴 뎀프시 합참의장, 새뮤얼 로클리어 미국 태평양군사령관 등 미군 최고 책임자 3명이 동시에 사흘 동안 한국을 방문한 것은 유례가 없다. 그만큼 한·미 관계가 중요하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지난 18~19일 워싱턴에서 제7차 주한 미군 방위비 분담 협상이 열렸다. 분담금 제도 개선에 미국이 난색을 표하는 등 입장 차가 큰 것으로 전해진다. 연내 타결 전망은. -10년 전쯤 국무부에서 군사·정치 분야를 담당하면서 이 문제를 다뤄 본 적이 있다. 매우 어렵지만 중요한 협상이다. 주한 미군 주둔 비용은 양국이 공평하게 분담하도록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 과거 협상을 볼 때 양국이 현 협정이 만료되기 전인 올해 12월까지는 합의를 도출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 분담금 총액과 그 돈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에 대한 양국의 이해를 높이고 우려를 해소하는 방향으로 결론이 날 것이다. 한국은 분담금 지출의 투명성을 염려하는데 이 문제를 다루기 위해 미국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 →북한이 4차 핵실험을 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에 대해 어떻게 보나. 집권 2년째인 북한 김정은에 대한 미국 내 평가는. -북한의 핵실험 등 핵 활동은 유엔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에 따른 의무와 그동안 해 온 6자 회담의 합의 사항을 위반하는 활동으로, 결코 용납할 수 없다. 북한은 핵과 미사일 발사 등의 도발이 아닌 주민 삶을 개선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6자 회담 당사국 모두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해야 한다는 데 합의하고 있다. 북한 내부에 대한 정보는 제한적이다. 평양의 지도부가 교체되면서 긍정적인 변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아직은 김정은이 핵 문제나 경제 개혁에 있어서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신호는 아직 없다. → 한국·미국·중국·일본 4개국 수석대표들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언제쯤 6자 회담이 재개될 것으로 전망하나. -서울, 미국 워싱턴, 중국 베이징, 일본 도쿄 등 6자 회담 관련 4개국은 6자 회담이 재개되면 이번에는 긍정적인 성과가 있을 것이라는 점을 북한이 보여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한다. 미국은 충분히 준비해서 협상을 재개하고 비핵화 진전이 있기를 원한다. 중국도 그런 준비 없이 북한과 대화를 시작하면 안 된다는 점에 공감하고 있다. 북한이 언제쯤 준비가 될지 예측하기 어렵지만 현재는 그런 조짐이나 징후가 없다. →헤이글 국방장관이 한국형 MD인 킬체인과 미 MD의 연동성을 강조하면서 한국의 미 MD 체제 편입을 우려하는 시각이 많다. 미 MD의 전략적 목표는. -헤이글 국방장관이 한국을 방문해 이미 밝힌 것처럼 미국은 한국에 대해 미국의 MD 체제를 강요하거나 압박하지 않고 있다. 한국이 자체 MD 시스템을 개발하는 것을 환영한다. 하지만 강력한 억지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미사일 방어 체제가 효과적으로 작동하는 게 중요하다. MD는 북한의 위협에서 한국과 일본을 방어하는 것이 주요 전략적 목적이며 중국(군사력) 부상과는 전혀 다른 사안이다. →미국이 한국 정부에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협상 참여를 공식 요청했나. -TPP 협상 참여는 한국이 스스로 결정해야 할 사안이다. 한국이 TPP에 참여하면 미국은 환영하겠지만 한국에 대해 TPP 참여를 공식적으로 요구한 바는 없다. →미국 국가안보국(NSA) 도청 파문과 관련해 한국 정부가 도청 여부에 대한 확인을 공식 요청했는데 향후 미국 내 절차는 어떻게 되나. 만약 도청한 사실이 확인된다면 한·미 동맹에 미칠 파장은. -매우 민감한 문제다. 현재 한국 정부와 대화 중이며 한국의 우려를 잘 알고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정보를 수집하는 방식들을 검토하라고 지시했고, 이에 대한 후속 조치를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이 사안이 한·미 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 →대사로 부임한 지 만 2년이 지났다. 보람 있었던 일과 아쉬운 일, 앞으로 꼭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 -한국계 미국 외교관으로 주한 미국 대사로 부임한 것은 놀라운 경험이었다. 부임 직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사망하면서 한·미 양국이 북한 상황에 어떻게 대응하고 조율하는지를 경험하는 좋은 기회가 됐다. 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이행된 것도 의미 있다. 이에 못지않게 개인적인 경험들이 특히 마음에 많이 남는다. 주한 미국 대사로서 부친의 고향인 충북 충주를 처음 방문했는데 매우 감동적이고 특별한 경험이었다. 광주 5·18민주화묘역과 부산 등 되도록 여러 지역을 방문하려 노력했다. 보통의 한국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을 만나기 위해 대학을 찾았다. 지금까지 15개 대학을 방문했다. 남은 기간 동안 양국 관계를 글로벌 협력 단계로 확대 발전시켜 나가는 데 기여하고 싶다. 한국계 주한 미국 대사로 부임하면서 기대와 우려를 한몸에 받았는데 이는 부담이라기보다는 매우 큰 영광이다. 진행 : 김균미 부국장 정리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성 김 대사는 역대 美대사 중 첫 한국계…0여회 방북 한반도 전문가 성 김 대사는 한국과 미국이 수교한 이래 서울에 부임한 역대 22명의 미국 대사 중 최초의 한국계다. 한국에서 태어난 그의 한국 이름은 김성용이다. 부친인 고(故) 김재권(본명 김기환)씨는 1973년 김대중 전 대통령 납치 사건 당시 주일 공사를 지냈고, 이듬해인 1974년 가족이 모두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검사 출신으로 2006년 국무부 한국과장에 임명됐고 크리스토퍼 힐 전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 후임으로 6자 회담 미국 수석대표를 지냈다. 2008년 북한 영변 핵시설의 냉각탑 폭파를 현장에서 목격하는 등 북한을 10여 차례 방문한 ‘한반도 전문가’다. 이화여대를 졸업한 부인 정재은씨와의 사이에 두 딸이 있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사설] 한·일 공동 역사교과서, 관계정상화 계기 되길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4일 제안한 동북아 공동 역사교과서 발간에 일본이 환영의 뜻을 밝혔다. 일본은 당초 박 대통령의 제안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으나 하루 만에 입장을 바꾼 것이다. 박 대통령의 발언 직후에는 시큰둥하더니만 15일 주무장관인 시모무라 하쿠분 일본 문부과학장관이 “한·중·일의 담당장관들이 대화할 수 있도록 박 대통령이 한국 내에서 지시해 주면 (일본도) 적극 대응하겠다”면서 “대환영”의 뜻을 밝힌 것이다. 박 대통령이 한·일 간 역사 인식 문제는 물론 중·일 간 영토 분쟁 등으로 그 어느 때보다 동북아 지역에서의 갈등의 골이 깊은 시점에 공동 역사교과서 카드를 들고 나온 것은 상호 대화와 협력을 이끌어 내기 위한 조치일 것이다. 과거에도 일본 정치인들의 역사 관련 망언이 터져 나오자 1996년 당시 김영삼 대통령과 무라야마 도미이치 일본 총리가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하자며 한·일 역사공동연구를 합의한 바 있다. 2002년에도 한·일 정상 간 합의로 한·일역사공동위원회를 발족시켜 두 차례 공동보고서를 내는 등 일부 성과도 거뒀다. 박 대통령의 제안에 일본이 화답하고 나선 것에 주목하는 이유는 바로 아베 정권 출범 이후 노골적인 국수주의로 인해 한·일관계가 국교정상화 이후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을 정도로 냉랭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번 공동 교과서 발간 논의 자체가 양국 간 본격적 대화의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일본의 자세 변화에 숨은 의도는 없는지 잘 살펴야 할 것이다. 어제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이 안중근 의사를 ‘범죄자’라고 폄하했듯 일본 측의 퇴행적 역사 인식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펼쳐놓은 장(場)에서 일본은 외려 위안부 문제 등에 “법적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됐다”는 기존 주장을 반영하려 들지 모른다. 어제 주일 대사관 자료에서 한·일 청구권 협정에 따른 배상에 포함되지 않은 관동대학살 피해자 등이 확인됐는데도 일본은 이를 무시하려 할 개연성도 있다. 특히 공론화하면 오히려 손해인 독도 문제까지 교과서에 기술하려는 시도 등도 반드시 경계해야 한다. 독일·프랑스, 독일·폴란드 간 공동 역사교과서 발간에 각각 73년, 30년이 걸렸다고 한다. 한·일 공동 교과서 발간은 더 긴 시간이 걸릴 뿐더러 일본의 과거사 반성이 전제되지 않으면 한걸음도 나가기 어려운 지난한 작업이 될 수도 있다. 까닭에 양국 간 교과서 논의도 중요하지만 이를 통해 두 나라 간 꺼졌던 대화의 불씨를 살리는 데 방점을 두었으면 한다. 박 대통령 취임 이후 우리 외교의 중심축인 4강 외교를 펼치면서 러시아까지 정상회담을 했는데 일본만 빠져 있다. 두 나라 관계가 ‘빙하기’마냥 꽁꽁 얼어붙게 계속 놔둬선 안 될 것이다.
  • [김문이 만난사람] 제빵인생 50년 권상범 제과명장

    [김문이 만난사람] 제빵인생 50년 권상범 제과명장

    빵은 오래전부터 서양 사람들의 식탁에 단골로 등장한 대표적인 메뉴다. 큰 덩어리의 빵을 손으로 찢은 뒤 버터와 잼을 발라 먹는 장면은 영화에도 자주 등장한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쌀을 주식으로 소비하는 우리 사회에서도 최근 들어 빵 중심의 식문화가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빵집에서 만나 데이트를 하고 케이크로 파티를 하며 빵으로 끼니를 때우는 문화가 확산되면서 빵은 어느새 일상에서 친근한 존재가 됐다. 배고플 때 빵집 앞을 지나노라면 다양한 모양의 예쁜 빵과 막 구워낸 빵의 향기에 입 안에서 침이 절로 넘어간다. 밀가루와 발효를 통해 환상의 하모니를 빚는 대한민국 제과명장 권상범(68)씨. 그는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50년간 빵을 만들어 와 제빵 업계에서 일가를 이루고 있다. 단돈 2000원이라는 월급으로 제빵 인생을 시작해 지금은 연간 20억여원의 매출을 올릴 정도로 성장했다. 특히 그가 서울 홍대 앞에서 30년 가까이 운영했던 ‘리치몬드제과점’은 여전히 ‘추억의 빵집’으로 남아 있다. 그의 학력은 초등학교 졸업이 전부다. 요즘 번듯한 대학을 졸업하고도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있는 젊은이들과는 분명 다른 점이 있을 터. 지난 13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성산동에 위치한 리치몬드제과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입구 벽에는 그의 부인이 직접 그린 ‘제빵명장’이라는 제목의 그림이 걸려 있었다. 최근에는 어떤 일로 바쁜지 물었더니 “끊임없이 연구하고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중요하다. 남보다, 다른 나라보다 뒤떨어지면 결코 안 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제빵에 관해 배울 것이 있다면 어느 나라든 가서 견학하고 연구하고, 필요하면 우리의 기술도 전수해 준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제빵 기술이 어느 정도인지에 대해서는 “빵 분야에서는 경제 선진국 주요 7개국(G7)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요즘 들어 외국에서 우리 기술을 배우러 오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얼마 전에는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국가에서 온 연수생들에게 한 수 가르쳤다며 웃었다. “우리나라 제빵 수준은 1990대 이후 상당한 수준으로 올라섰습니다. 그만큼 소득 수준이 높아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경제적 수준이 올라가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제과와 빵을 선호합니다. 따라서 기술도 그 입맛에 맞게 더욱 발전하게 되지요.” 제빵 업계의 미래는 국민소득이 높아지면서 미국이나 유럽, 일본과 유사한 형태로 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한 프랜차이즈에서 생산된 빵이 아니라 직접 손맛으로 만든 수제 빵이 소비자들의 구미에 맞게 될 거라고 장담했다. 최근 들어 기존의 빵집이 프랜차이즈에 밀리는 현상에 대해서는 “우리 제빵인들이 노력하지 않아 어느 정도 원인을 제공한 측면도 있다. 앞으로 빵의 소비가 늘어나는 것을 감안할 때 연구 개발을 통해 이를 극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취업을 하지 못한 젊은이들도 제빵 분야를 ‘3D’ 업종으로만 여길 것이 아니라 한번쯤 진지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지난 7월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열린 국제기능올림픽에서 한국 대학생이 빵을 주식으로 하는 유럽을 제치고 처음으로 금메달을 딴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는 제빵 기술의 선진화를 위해 20년 전부터 제빵기술학원 학생들에게 제빵 교육을 하며 후진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어떻게 하면 명장이 되느냐고 물었더니 “제빵 업계에 20년 이상 종사해야 하며 발명특허 관련 논문, 신제품 개발, 대회 입상 경력 등이 종합적으로 반영돼 결정된다”면서 “누구나 명장에 도전할 수 있지만 아무나 되는 것은 아니다. 각고의 노력과 정성, 꾸준한 연구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의 제빵 인생은 올해로 50년째다. 경북 봉화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 아버지를 따라 강원 영월군으로 이사했다. 당시 부친은 텅스텐 광산으로 유명했던 영월 상동광업소 내 국립의료원 원무과에서 일했다. 1949년 어느 날 북한에서 내려온 군인들이 병원에 들이닥쳐 부상자 치료를 요구했다. 병원 직원들은 상황을 따져볼 겨를도 없이 사람들부터 살리고 보자며 부상자를 치료해 줬다. 며칠 뒤 누군가가 ‘병원에 빨갱이가 있다’고 당국에 신고하는 바람에 부친을 포함한 23명이 몰살되고 말았다. “25살의 젊은 어머니, 어머니 배 속에 있던 막내 여동생, 어린 첫째 여동생과 저를 남겨두고 아버지는 그렇게 떠났습니다. 이때부터 어머니는 삯바느질을 해 가며 우리 식구들을 키웠지요. 저는 종가 할아버지에게 한문을 배우며 봉화초등학교를 다녔고, 졸업한 뒤에는 집안일을 돕느라 상급학교 진학은 엄두도 못 냈습니다.” 산에 가서 땔감을 해 오고 상점에서 점원 일 등을 하다가 16살 때 외갓집이 있는 경북 의성으로 갔다. 당시 외가는 다과점을 운영하고 있었다. 초등학교 방학 때마다 외가의 다과점에서 일을 거들다 보니 빵 만들기에 이미 재미를 느끼고 있던 터였다. 그래서 그 길로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던 것이다. 1년쯤 외갓집에서 일을 하다 17살 때 좀 더 큰 곳에서 일을 배우고 싶어 대구 광월당에서 1년 정도 기술을 익혔다. 그런 다음 단돈 2000원을 들고 서울로 왔다. 일자리를 찾아 헤매다가 종로 5가에 있는 성림제과에 먹여 주고 재워 주는 조건으로 우선 취직을 했다. 조그마한 제과점이라 공장장과 둘이서 일을 했고 잠은 주로 작업대에서 잤다. 하지만 온갖 고생으로 신경성 위장병을 앓아 몸무게가 20㎏가량 줄어들자 무작정 제과점을 나왔고 추운 겨울날 노숙자와 마찬가지 신세가 됐다. 그래도 열심히 직장을 찾아다녔다. 보름쯤 뒤 당시 조흥은행 본점 앞에 있던 풍년제과에 들어갈 수 있었다. “돌이켜 보면 그때가 제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던 같아요. 돈 한푼 없었고 갈 데도 없었고…. 직장을 찾아 종로에서 영등포까지 걸어다녔습니다. 배는 고픈데 날씨는 춥지요, 아마 그때 기차 탈 돈만 있었으면 어머니가 계신 고향으로 내려갔을 겁니다. 그때 뼈저리게 다짐한 것이 ‘옮길 직장을 잡아 놓지 않고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풍년제과에서 받은 첫 월급은 2000원이었다. 그러나 일이 끝나도 쉬지 않고 혼자 남아 열심히 청소를 하는 등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이런 모습을 본 지배인이 한달 만에 월급을 3000원으로 올려 줬다. 처음에는 빵 반죽을 주로 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다음 단계의 기술을 전수해 줄 법도 한데 그럴 기미가 도저히 보이지 않자 눈치껏 어깨너머로 배우는 수밖에 없었다. 이때 그는 ‘나중에 돈을 벌면 꼭 후배들에게 아낌없이 기술을 가르쳐 주겠다’고 다짐했다. 그 무렵 반죽 온도 계산법을 스스로 익혔다. 아울러 당시 대표적인 제과 기술자로 평가받았던 김충복 선생에게 케이크 데코레이션 기술을 배웠다. 이와 함께 혼자 연구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크리스마스 시즌 때 사진사에게 돈을 주고 제과점을 돌며 케이크 사진을 찍어 오도록 부탁하기도 했다. 몸과 마음 고생이 심했지만 나름대로의 실력을 쌓아 나갔다. 1972년 10월 김충복 선생의 소개로 풍년제과 수련 생활 7년 만에 삼선동에 있는 나폴레옹제과점 공장장으로 옮기게 된다. 당시 나폴레옹제과점은 생긴 지 2년밖에 안 된 상태였지만 직원 5명과 함께 아침 7시부터 밤 12시까지 쉬지 않고 일한 덕택에 비교적 빠른 성장을 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1973년 제과학교를 수료하고 전국 빵·양과자 품평대회에 나가 6개 부문에서 1등을 휩쓸어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내친김에 1975년 나폴레옹제과점 사장의 권유로 일본 유학을 떠났다. “당시 도쿄제과학교에는 300여명의 학생이 있었는데 외국인은 제가 유일했어요. 낮에는 양과자, 밤에는 화과자(和菓子) 만드는 걸 배웠습니다. 현지 제과점에서 실습하는 동안 유럽 제품을 익힐 수 있었던 것이 가장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유학에서 돌아온 뒤인 1979년 9월 그는 아현동 마포경찰서 옆에 ‘나폴레옹제과점’이라는 상호로 가게를 내 독립하게 된다. 이때 내세운 철학이 ‘오늘 만든 빵은 오늘 팔아야 한다’였다. 팔리지 않고 남은 빵은 마포경찰서 전경들에게 간식용으로 돌렸다. 그만큼 자신감과 정성으로 ‘권상범식 빵’을 만들어 나간 것이다. 1992년 상호를 ‘리치몬드제과’로 바꿔 성산동에 본점을 세웠고 이듬해 제과기술학원을 설립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권상범식 빵’은 우리 밀과 유기농 계란 등을 사용해 건강식품을 만들어 내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제빵도 유행을 타기 때문에 고객의 취향을 앞서 파악하고 연구하는 노력은 필수다. 지금도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빵 굽는 일을 마다하지 않으며 빵의 앞날을 고민한다. 슬하에 2남 1녀를 뒀으며 두 아들은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제빵 업계에서 일하고 있다. 선임기자 km@seoul.co.kr ■권상범 대한민국 제과명장은… 1945년 경북 봉화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18세 때부터 빵 굽는 일을 했다. 서울 삼선동 나폴레옹제과점 공장장(1972~1979)을 지낸 뒤 1979년 리치몬드제과 마포점 창업을 시작으로 자신만의 ‘빵 인생’ 길을 걸었다. 학력은 초등학교 졸업이 전부지만 일본 도쿄제과학교 졸업(1975년) 스위스 리치몬드 국립제과학교 수료(1993년), 서울대 보건대학원 외식산업 최고경영과정 수료(1997년) 등의 이력을 쌓았다. 주요 수상으로는 노동부 장관 표창장(2001년), 대한민국 제과명장(2002년), 대통령 표창장(2002년), 서울시장 표창장(2005년), 재정경제부 장관 표창장(2006년), 국민훈장 목련장(2006년) 등이다. 이 밖에 프랑스 리옹 세계 페이스트리컵 대회 한국대표 심사위원 3회(1997, 1999, 2001년), 사단법인 대한제과협회 중앙회 회장(2000년), 제36회 국제기능올림픽대회 제과·제빵 한국대표선수 정지도위원 및 심사위원(2001년), 대한민국 최초 프랑스 요리·제과협회 해외자문위원(2003년), 제40회 전국기능경기대회 제과제빵 심사위원(2005년) 등으로 활동했다.
  • “케네디 암살에 거대 배후있다”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 암살 50주년(11월 22일)이 임박한 가운데 미국인 10명 중 6명은 케네디 암살에 배후가 있다고 믿는 것으로 나타났다. 갤럽이 15일(현지시간) 미국 성인 남녀 103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케네디 암살은 범인으로 지목된 리 하비 오즈월드의 단독 범행이 아니라 거대한 배후가 있다고 믿는다는 응답이 61%에 달했다. 오즈월드의 단독 범행이라는 답변은 30%에 그쳤다. 그러나 지난 50년을 돌이켜 봤을 때 암살에 배후가 있다는 시각은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다. 암살 10년 뒤인 1973년에는 배후설 지지 응답이 81%에 달했고 이후 계속된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 배후설은 70%대를 유지해 왔다. 한편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빌 클린턴 전 대통령 내외가 케네디 암살 50주년 추모 대열에 동참하기로 했다. 16일 백악관 등에 따르면 오바마 대통령과 부인 미셸, 클린턴 전 대통령과 부인 힐러리 전 국무장관은 오는 20일 알링턴 국립묘지의 케네디 전 대통령 묘지를 찾아 참배할 예정이다. 특히 오바마 대통령은 추모일 당일인 22일 저녁 스미스소니언 미국사박물관에서 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 가수 아레사 프랭클린 등 역대 자유훈장 수상자들을 초청한 가운데 케네디 전 대통령 추모행사를 개최할 예정이다. 추모행사에는 케네디 전 대통령의 외손자이자 캐럴라인 케네디 신임 주일대사의 외아들인 존 슐로스버그 등 케네디가(家) 인사들도 다수 참석할 것으로 전해졌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와 별도로 케네디 전 대통령이 뉴프런티어 정책의 일환으로 1961년 창설한 ‘평화봉사단’의 지도부 및 자원봉사자들을 백악관으로 초청해 환담하기로 했다. 일각에서는 최근 건강보험개혁 정책(오바마케어)의 난맥상으로 집권 이후 최대 위기를 맞은 오바마 대통령이 권위 회복을 위해 케네디 이미지를 적극 활용하려 한다는 관측도 나온다. 워싱턴 김상연 특파원 carlos@seoul.co.kr
  • ‘응답하라 1994’ 삼천포엄마 알고보니…배우 고창석 아내 이정은

    ‘응답하라 1994’ 삼천포엄마 알고보니…배우 고창석 아내 이정은

    폭발적인 인기를 모으고 있는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서 삼천포(김성균 분)의 엄마로 등장했던 배우가 고창석의 아내 ‘이정은’으로 밝혀져 눈길을 끈다. 16일 방송된 ‘응답하라1994’에서는 삼천포의 고향 삼천포로 일출을 보러 떠난 신촌하숙 멤버들의 모습이 전파를 탔다. 이날 방송에는 삼천포의 어머니인 이정은이 출연했다. 그런데 이정은은 배우 고창석의 부인으로 뒤늦게 알려져 화제가 되고 있다. 이정은은 1973년생으로 부산이 고향이다. 그래서 극중에서 자연스럽게 맛깔나는 사투리 연기를 했다. 이정은은 1991년 영화 ‘하얀 비요일’을 통해 데뷔한 뒤 ‘좋지 아니한가’, ‘사랑’ 등에 단역으로 출연했으며, ‘시선 너머’와 ‘니마’에서는 주연을 맡았다. 2010년 개봉한 ‘혈투’에서는 고창석과 극중 부부로 출연해 관심을 모았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테소로 창간 한·일 대담] “위안부·강제징용 문제 등 현안 각각 분리해 해법 찾아야”

    [테소로 창간 한·일 대담] “위안부·강제징용 문제 등 현안 각각 분리해 해법 찾아야”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월,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해 12월 취임한 뒤 1년이 다되어가도록 양국 정상회담이 성사되지 않고 있다.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있는 한·일관계는 출구를 찾을 수 있을까. 종합일간지 최초로 서울신문이 일본 현지에서 창간한 일본어판 타블로이드 신문 ‘테소로’(Tesoro)가 창간 특집으로 한·일관계를 다뤘다. 이들 기사중 한·일관계 악화의 원인과 현실 진단, 향후 비전을 제시한 박철희(50)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와 기미야 다다시(53) 도쿄대 한국학연구센터장의 지상대담을 싣는다.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전 총리가 1998년 10월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을 위한 공동선언’을 발표한 지 15년이 지났다. 그 때를 1965년 국교 정상화 이후 한·일관계의 황금기로, 지금을 최악의 시기로 꼽는 사람이 많다. -기미야 다다시(이하 기미야) 지금이 최악은 아니다. 1973년 김대중 납치사건이나 1974년 문세광 사건을 둘러싸고 일·한 단교 직전까지 가는 등 더 나빴던 시기도 있었다. 다만 박근혜 정부와 아베 정권이 새로 들어섰음에도 양국 관계가 좋아지는 기미는 보이지 않고, 민간 차원에서조차 “저 나라는 믿을 수 없다”거나 “협력할 수 없다”는 인식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 걱정스럽다. -박철희(이하 박) 한국은 2011년 12월 교토에서 열린 한·일정상회담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한 양국의 시각이 너무 다르다는 것을 인식한 이후, 일본은 지난해 이명박 전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하고 일왕에 대한 사과 요구 발언을 한 이후부터 감정이 악화됐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봤을 때 한·일관계를 최악이라고 볼 수는 없다. 특히 1998년 공동선언 이후 상호 문호개방을 하는 등 전반적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했다. →한·일관계가 악화된 이유가 여러 가지 있겠다. 각각 한국과 일본의 입장에서 본 관계악화의 이유는. -기미야 지난해 8월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에다 일본군 위안부나 강제징용문제에 대한 대법원 판결, 후쿠시마 등 8개현 수산물 수입금지 등 한국의 반일감정이 필요 이상으로 부각되면서 보통 사람들의 한국에 대한 감정도 나빠졌다. 일본 정부로서는 보수 성향의 박근혜 정부와 협력적 관계를 구축할 것으로 기대했으나 박근혜 정부가 아베 정권의 모든 정책을 우경화라고 비판하기 때문에 협력하기 힘들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박 관계 악화의 출발점은 위안부 문제다. 일본은 고노 담화, 무라야마 담화, 아시아여성기금 등을 통해 위안부 문제 해결에 대한 자신들의 노력을 강조하고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에 의해 위안부 문제가 해결됐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한국의 입장에서는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은 할머니들이 만족할 만한 사과를 받지 못한 데다 일본 대사관 앞에서 1994년 이후 20년 가까운 세월을 1000번이 넘도록 집회를 하는 데도 일본이 듣는 척 마는 척하고 있으니 과연 일본이 여성 인권을 존중하는 나라인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비록 일부이지만 한국의 반일감정과 일본의 반한감정 때문에 양국 지도자들이 선뜻 다가서지 못하는 듯 보인다. -박 그 반대다. 국민감정은 고정된 물체가 아니다. 2002년 월드컵 공동 개최 이후 10여년간 일본 국민들의 한국에 대한 감정이 놀랄 정도로 좋아졌다. 우리나라 국민 역시 반일감정이 앙금처럼 남아 있지만 일본에 대해 늘 나쁘게만 생각하지 않는다. 국민의 감정을 어느 방향으로 주도하는 것은 지도자에게 달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치인들이 자꾸 ‘국민감정이 좋지 않기 때문에 못한다’는 식으로 국민들에게 짐을 넘기려고 한다. -기미야 한국에서는 한국의 반일감정은 당연한 것이고, 일본의 반한감정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보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한·일관계가 과거보다 상대적으로 대등해짐에 따라 예전에는 관대한 눈으로 봤던 한국의 반일감정을 매우 민감하게 보게 됐다. 이처럼 한·일 간 힘의 관계의 변용에 따른 과도기적 현상으로서 양국이 서로의 적대적 감정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는 상황이다. →양국 관계는 정상이 만나서 풀 수밖에 없는 상황까지 오지 않았나 하는 우려가 많다. 연내 한·일 정상회담이 열릴 가능성이 있다고 보나. -박 연내 정상회담이 열리기는 어렵다고 본다. 주요 20개국(G20),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동남아국가연합(ASEAN)+3 등 다자회담에서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모두 지나쳤다. 양자 회담을 열기 위해서는 어떤 모멘텀(계기)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상태에서 회담을 여는 것은 리스크(위험도)가 크다. 해를 넘기면 양자회담은 더욱 힘들어질 것이다. 몇 번의 기회를 놓치면서 양국 정상이 서먹서먹해진 데다 2014년에 다자회담의 장이 열리는 것은 후반기에 집중돼 있다. -기미야 나 역시 연내 개최에 대해 낙관적으로 볼 수 없다. 아베 총리는 역사문제에 대해 고노 담화나 무라야마 담화를 포함해 역대 내각의 역사인식을 답습하겠다고 약속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아베 총리가 역사문제에 대해 전향적 자세를 보여주면 역사문제와 다른 문제를 연계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것이 필요하다. →최근 한·일 간에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 일본 수산물 수입금지, 쓰시마 불상 문제 같은 크고 작은 문제가 산적해 있다. 어디부터 해결의 실마리를 풀어야 하나. -기미야 문제를 구별해야 한다. 예를 들어 한국은 위안부 문제와 강제징용 피해자 문제를 같은 역사인식 문제로 보는데, 이것을 따로 봐야 한다. 한국 정부는 위안부 문제는 1965년 한·일수교에 따라 해결되지 못했지만 강제 징용 피해자 보상은 해결됐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한국 정부는 위안부 문제는 일본정부에 함께 해결안을 생각해보자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런데 강제징용 피해자 보상 문제는 한·일 간에 법적으로는 이미 해결된 문제로 봐야 한다. 이것을 건드리면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을 무효화시키게 된다. -박 현안들의 성격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각각 분리해서 해결해야 한다. 위안부 문제는 한국이 적극적으로 해결해 나가야 한다. 위안부 문제는 일본이 부정하면 할수록 짐이 될 뿐이다. 문제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돌아가시기 전까지 풀어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서둘러야 한다는 것이다. 2011년에 8월에 69명이었던 위안부 할머니는 현재 56명이다. 2년간 13명이 숨진 걸 감안하면 시간이 없다. 쓰시마 불상 문제는 일본이 먼저 훔쳐갔으니까 우리가 훔쳐와도 괜찮다는 식의 논리는 선진국이 할 행동이 아니다. 국격이 있는 나라로서 성숙된 모습을 보이려면 국제적 상식과 보편적 원칙에 맞게 행동해야 한다. →중국이나 북한 핵문제라는 변수를 갖고 있는 동북아 안에서 바람직한 양국관계의 미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이를 위해 양국에 제언을 한다면. -박 일본은 한국이 일본 대신 중국에 너무 가깝게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 중국으로 세계적인 권력이동이 발생하면서 경계심도 증가하고 있는데 막연히 적대시해서는 안 된다. 도발하는 북한을 저지하기 위해서는 중국의 레버리지(지렛대)가 없어서는 안 되고 북한의 비핵화 역시 중국의 협력 없이 달성하기 힘들기 때문에 중국은 한국에 중요한 국가다. 한·중·일이 평화적으로 공존하고 서로 득을 보면서 번영을 하는 체제를 만드는 게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의 과제다. -기미야 중·일 간의 영토분쟁이나 북핵 문제는 사실 한·일 간의 협력을 요구하는 것이다. 중국을 동북아에서 책임 있는 대국의 역할을 하게 만드는 데 공통적 이익을 갖고 있는 것도 양국이고, 북핵 문제에 대해서도 가장 위협을 느끼는 것이 양국이다. 이런 문제에 합리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한·일 양국이 서로를 신뢰해 협력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라도 역사문제나 영토문제에 관해서는 서로 자극하지 말아야 한다. 도쿄 김민희 특파원 haru@seoul.co.kr 서울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케네디 암살 50주년…미국인 60% “거대한 배후 있을 것”

    케네디 암살 50주년…미국인 60% “거대한 배후 있을 것”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 암살 50주년(11월 22일)이 임박한 가운데 미국인 10명 중 6명은 케네디 암살에 배후가 있다고 믿는 것으로 나타났다.  갤럽이 15일(현지시간) 미국 성인남녀 103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케네디 암살은 범인으로 지목된 리 하비 오스왈드의 단독 범행이 아니라 거대한 배후가 있다고 믿는다는 응답이 61%에 달했다. 오스왈드의 단독범행이라는 답변은 30%에 그쳤다. 그러나 지난 50년을 돌이켜 봤을 때 암살에 배후가 있다는 시각은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다. 암살 10년 뒤인 1973년에는 배후설 지지 응답이 81%에 달했고 이후 계속된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 배후설은 70%대를 유지해왔다.  한편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빌 클린턴 전 대통령 내외가 케네디 암살 50주년 추모 대열에 동참하기로 했다. 16일 백악관 등에 따르면 오바마 대통령과 부인 미셸, 클린턴 전 대통령과 부인 힐러리 전 국무장관은 오는 20일 알링턴 국립묘지의 케네디 전 대통령 묘지를 찾아 참배할 예정이다.  특히 오바마 대통령은 추모일 당일인 22일 저녁 스미스소니언 미국사박물관에서 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 의장, 가수 아레사 프랭클린 등 역대 자유훈장 수상자들을 초청한 가운데 케네디 전 대통령 추모행사를 개최할 예정이다. 추모행사에는 케네디 전 대통령의 외손자이자 캐롤라인 케네디 신임 주일대사의 외아들인 존 슐로스버그 등 케네디가(家) 인사들도 다수 참석할 것으로 전해졌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와 별도로 케네디 전 대통령이 뉴프런티어 정책의 일환으로 1961년 창설한 ‘평화봉사단’의 지도부 및 자원봉사들을 백악관으로 초청해 환담하기로 했다.  일각에서는 최근 건강보험개혁 정책(오바마케어)의 난맥상으로 집권 이후 최대 위기를 맞은 오바마 대통령이 권위 회복을 위해 케네디 이미지를 적극 활용하려한다는 관측도 나온다.  워싱턴 김상연 특파원 carlos@seoul.co.kr
  • [화제의 포토]‘왕년의 액션스타’ 지금은

    [화제의 포토]‘왕년의 액션스타’ 지금은

    할리우드를 주름잡으며 인기를 모았던 ‘왕년의 액션스타’ 3명의 근황이 화제다. 미국 연예매체 스플래시뉴스닷컴은 14일(현지시간) 멜 깁슨이 할리우드 부스티 벨로우즈 나이트 클럽에서 팬사인회를 가진 뒤 나오는 모습을 포착했다. 멜 깁슨은 세월의 무상함을 보여주듯 깊게 패인 주름살과 희끗희끗하게 센 머리카락을 그대로 보였다. 1980년대 ‘매드 맥스’ 시리즈와 ‘리썰 웨폰’ 시리즈로 일약 액션스타로 떠오른 멜 깁슨은 ‘전선 위의 참새’, ‘컨스피러시’, ‘왓 위민 원트’ 등 다양한 장르의 영화에 출연해 전세계 팬들 의 사랑을 받았다. ‘브레이브 하트’,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아포칼립토’ 등 흥행 영화 감독으로도 명성을 높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불륜 사실이 들통나 2011년 아내 로빈 무어와 이혼하면서 재산의 절반에 해당하는 4500억원이 넘는 위자료를 넘겨주는 등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기도 했다. 액션스타에서 정치인으로, 또 다시 영화인으로 화려하게 복귀한 아놀드 슈왈제네거(66)는 같은 날 베버리힐즈 로데오 거리에서 지인과 거리를 걷는 모습이 포착됐다. 늠름한 풍채는 과거와 별반 다름이 없었지만 과거와 비교해 좀 더 벗겨진 앞머리와 주름살로 덮힌 목에서 세월의 흔적이 드러났다. 아놀드 슈왈제네거는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보디빌딩 분야 역대 최다 우승 타이틀을 거머쥔 인물. 1973년 기네스북에 ‘지구상에서 상체 근육이 가장 발달된 사람’으로 기록되기도 했다. 이후 ‘터미네이터’ 시리즈로 액션 스타로 부상, 악역과 코미디 등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미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배우 중 한명이 됐다. 또 2003년과 2006년 두차례 캘리포니아 주지사로 당선된 유력 정치인이기도 하다. 올해 김지운 감독의 할리우드 진출작 ‘라스트 스탠드’로 다시 할리우드 배우로 복귀했으며 ‘할리우드 최고의 갑부’, ‘미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액션 스타’라는 별명을 얻으며 현재도 맹활약하고 있다. 마치 약속이나 한 듯 이날 실베스터 스탤론(67)도 베버리힐즈에 나타났다. 실베스터 스탤론은 지인과 점심을 먹고 나오는 모습이 언론에 포착됐다. 선글라스를 쓴 모습은 60대에도 왕성하게 배우로 활동하는 그의 인생을 요약한 듯 보였다. 실베스터 스탤론은 한때 감독으로 데뷔하기도 했지만 거의 줄곧 액션 배우의 길을 걸었다. 무명 배우에서 ‘록키’와 ‘람보’ 시리즈로 일약 스타가 됐고 아놀드 슈왈제네거와 함께 쌍벽을 이루는 액션스타로 현재도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극동대, 한동규 전 LS전선 대표이사 초청 강연

    극동대, 한동규 전 LS전선 대표이사 초청 강연

    극동대학교(총장 김범중)는 한동규 전 LS전선 대표이사를 초청해 특강을 개최했다고 밝혔다. 이번 특강은 산업디자인학과, 시각디자인학과, 환경디자인학과, 사회체육학과, 광고콘텐츠디자인학과 학생을 비롯해 교원, 교직원 등 학교 관계자 17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약 1시간 20분 동안 극동대 소강당에서 열렸다. 이 강연은 극동대 리더십센터의 주관으로 ‘어려움을 넘는 지혜(직장 및 삶에서 닥치는 어려움을 극복하는 방법)’를 주제로 진행됐다. 한 전 대표이사는 직장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그 문제를 해결하는 효율적인 방법과 어려움을 극복한 사례를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한 전 대표는 “인생에 어려움은 파도처럼 계속 밀려오는데, 어려움이 닥쳤을 때 피하지 말고 빠져 죽더라도 타고 넘어야 하고 이를 넘다 보면 어려움이 잔잔한 물결로 여겨질 때가 온다”면서 “어려움을 피해 도망간 사람과 어려움을 이겨낸 사람은 분명 인생에서 차이가 난다”고 말했다. 이어 한 전 대표는 ▲언젠가 인생에서 한 번은 중대한 결심을 해라 ▲끈기와 인내를 가진 궁둥이가 무거운 사람이 돼라 ▲연필만이 믿을 것이고 끊임없이 학습해야 한다 등 특강을 듣는 학생들에게 그만의 성공 인생 노하우를 강조했다. 한 전 대표이사는 연세대학교 전기공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최고 경영자 과정과 서울대학교 경영대학원 최고 경영자 과정을 마쳤다. 1973년 LG전선(현 LS전선)에 입사해 사장, 고문을 역임했다. 2003년에는 전기산업 기술혁신 및 세계화 공로로 금탑 산업훈장을 받은 바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완벽 몸매’ 정소림 캐스터, 알고보니 아들이 중2

    ‘완벽 몸매’ 정소림 캐스터, 알고보니 아들이 중2

    지난 13일 부산 영화의 전장 하늘연 극장에서 열린 ‘2013 대한민국 게임대상’에서 41세라는 나이가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날씬한 몸매를 자랑한 정소림 온게임넷 캐스터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지고 있다. 전용준 온게임넷 캐스터와 함께 이날 행사를 진행한 정소림 캐스터는 긴 웨이브 머리에 금색 롱드레스를 입고 등장했다. 특히 가슴선이 깊게 파인 의상으로 풍만한 몸매를 드러내 많은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1973년생으로 올해 41살인 정소림 캐스터는 지난 2000년 iTV ‘게임스페셜’로 데뷔한 13년차 베테랑 캐스터다. 그동안 e스포츠의 시초로 불리는 스타크래프트1은 물론 스타크래프트2, 워크래프트3, 서든어택, 스페셜포스, 던전앤파이터, 월드오브 탱크등 거의 모든 게임 리그에서 능수능란한 진행을 선보여 게임팬들 사이에서는 전용준 캐스터 못지 않은 실력자로 인정받고 있다. 지난달 1일 인천 삼산체육관에서 열린 실내무도&아시아경기대회에서는 최근 가장 각광을 받고 있는 온라인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 종목의 중계를 맡아 첫 진행이라고 보이지 않는 깔끔하고 안정적이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40대답지 않은 동안과 몸매로 여전히 게임팬들 사이에서 ‘원조 여신’이라고 불리는 정소림 캐스터는 현재 중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아들을 둔 ‘워킹맘’이다. 정소림 캐스터가 비교적 단명하는 게임업계에서 보기 드믄 장수 여성 진행자로 자리잡은데는 꾸준한 게임 공부가 뒷받침 됐다는 것이 게임업계 종사자들의 설명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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