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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진핑 보좌 핵심 비서 新엘리트 7인방이 뜬다

    시진핑 보좌 핵심 비서 新엘리트 7인방이 뜬다

    중국 최고권력인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을 보좌하는 ‘신 파워 엘리트 그룹’은 누구일까. 지난 3월 권력교체가 마무리된 이후 공산당 중앙의 정책 결정을 주도하는 핵심 브레인이자 베이징 정가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권력 집단인 비서 7인방이 급부상하고 있다. 최근 북핵을 둘러싼 한반도 주변 정세가 요동치는 가운데 이들이 한반도 정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17일 베이징 정가 소식통에 따르면 시 주석의 수석 ‘책사’로 꼽히는 왕후닝(王滬寧) 당중앙정책연구실 주임이 곧 물러나고, 같은 정책연구실 허이팅(何毅亭) 상무 부주임이 그 자리를 이어받을 것으로 알려졌다. 왕 주임은 미국의 국가안보회의(NSC)를 모델로 한 ‘국가안전위원회’ 창설 작업을 주도할 것으로 알려져 실권을 가진 책사로는 더 이상 활동하지 않을 전망이다. 허 부주임은 시 주석이 집권 후 강력히 펼치는 반부패 운동과 허례허식 타파를 구체화한 ‘바탸오’(八條) 등을 입안해 실용 이미지를 극대화한 이미지 전문가로 통한다. 허 부주임을 필두로 시 주석의 새 책사로 활약할 보좌진은 리잔수(栗戰書) 당중앙판공청 주임, 딩쉐샹(丁薛祥) 당중앙판공청 부주임, 중사오쥔(鍾紹軍)·주궈펑(朱國峰)·류허(劉鶴)·리수레이(李書磊) 등 7인이 꼽힌다고 미국에 서버를 둔 중화권 매체 둬웨이(多維)가 보도했다. 이들은 최고지도자를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당중앙판공청·당중앙정책연구실 등을 장악하고 있다고 둬웨이는 덧붙였다. 시 주석의 오른팔로 통하는 딩쉐샹은 시 주석이 2007년 상하이시 당서기로 부임한 당시 조직부 부부장을 맡아 부패 혐의로 낙마한 천량위(陳良宇) 전 상하이 당서기 사태를 처리하고 시 주석의 상하이 장악에 기여한 인물로 유명하다. 1973년생으로 인민대 법대 출신의 주궈펑은 지난 4월 하이난다오(海南島)에서 열린 중국판 다보스포럼인 ‘보아오(博鰲) 포럼’ 기간 내내 ‘시 주석 비서’라는 직함으로 왕 주임과 함께 맨 앞줄에 앉아 있는 모습이 포착되며 새로운 외교 브레인으로 주목받았다. 현재 당 총서기 비서 겸 국가주석판공실 비서 직함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중앙판공청 조사연구실 정치 조장인 중사오쥔은 ‘왕비서’로 통한다. 저장(浙江)성 조직부 부부장 시절 당서기로 부임한 시 주석을 만나 그의 비서로 일하기 시작해 지금까지 시 주석을 그림자처럼 수행하고 있다. ‘베이징대 신동’으로 불렸던 리수레이 중앙당교 부교장은 시 주석이 중앙당교 교장이 되면서 발탁한 인물로 중국 사회문제에 정통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 담당인 류허 당중앙재경영도소조 판공실 주임은 시 주석의 주요 경제 계획인 도시화 및 산업구조 조정을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 [저자와의 차 한잔] ‘나무와 풍경으로 본 옛 건축 정신’ 펴낸 도시학자 최종현

    [저자와의 차 한잔] ‘나무와 풍경으로 본 옛 건축 정신’ 펴낸 도시학자 최종현

    건축에서 주가 되는 것은 궁궐이나 집 등 건축물 자체이지 나무와 풍경은 뒷전이다. 최종현 전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이런 고정관념에 일침을 가한다. 그는 최근 펴낸 ‘나무와 풍경으로 본 옛 건축 정신’에서 “옛 사람들은 인공물을 자연(나무, 풍경)과 조화시키는 경지를 보여 줬다”고 말한다. 서양 건축이 인간과 자연을 분리시켰다면 중화문화권의 건축은 인간과 자연, 인간과 건축이 하나가 됐다는 것이다. 저자가 조경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7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주 보문단지를 설계하면서 일본인으로부터 나무를 모른다고 타박을 받았고, 이게 계기가 돼 조경에 대해 공부를 하게 됐다. 고구려인들은 영원불멸을 믿어 왕이 죽으면 생전의 모습을 벽화로 남겼다. 4세기 무용총 고분벽화는 나무로 인해 수렵도(狩獵圖)와 우교차도(牛橋車圖)로 분할된다. 저자는 “이 나무가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우주목(宇宙木)이자 신목(神木)으로, 국가와 부족 간 활동영역의 경계를 표시하는 장치였을 것”이라고 말한다. 퇴계 이황이 만든 도산서원은 단순히 서당이 아니라 그의 학문세계와 평생의 수도정신이 담겨 있다. 도산서원은 ‘하늘이 명을 내려 부여한 것이 성(性)이며, 성을 따르는 것이 도(道)이며, 도를 수양하는 것이 교(敎)’라는 중용의 경구에 따라 나뉜다. 천연대와 천운대 등은 성, 즉 천리를 깨우치는 장치이고 도산서당과 농운정사 등은 성을 따르는 도의 공간이다. 전교당, 상덕사 등은 도를 익히는 교육의 공간이다. 건축물 주변의 원림은 중요한 요소부터 배치하고 비중이 작은 것을 배치하는 ‘근접성의 사고’를 적용했다. 도산서당에서 정우, 절우, 몽촌 등의 순으로 연못과 뜰, 개울, 나무 등을 배치한 것이 이에 해당한다. 건축에서 조경은 배경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왜 배경에 관심을 가져야 하나. 그는 “주변을 아우르면서 총체적으로 사물을 봐야 건축의 진정한 의미를 알게 된다”며 “폭넓은 시각을 갖게 되면 모든 게 더욱 풍성해진다”고 말한다. 그러나 배경의 철학적 바탕이 된 주역, 논어 등은 우리 것이 아니고 모두 중국에서 전래된 것이다. 이론을 제기하자 그는 “우리나라는 깊이 들어가면 막히지만 중국은 막힘이 없다”면서 “그러나 우리나라는 중국의 문물을 받아들이면서도 취사선택하는 등 변형시켰다”고 답변한다. 도산서원은 주변의 자연을 받아들여 원림을 확장했다. 천연대와 천운대에서 마주 보이는 금계산은 80여리나 떨어져 맑게 갠 가을에만 보일 정도다. 퇴계는 이를 두고 ‘차경(借景)의 의(義)’라고 설명했다. 먼 곳의 경치까지 끌어들이는 차경은 중국에도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더욱 발전했다. 경복궁 경회루나 영주 부석사도 차경법을 활용한 것이다. 문화나 문명이 교류를 통해 더욱 풍성해진다는 것을 말해 준다. 경치는 그 자체로도 아름답지만 주변 것들과 어울려 더욱 빛이 난다. 아름다운 풍광이 아지랑이나 노을, 밤비와 어울려 운치를 더하고, 또 이를 묘사한 시나 글로 묘미가 더해진다. 소동파가 왕유를 칭송했던 ‘시 안에 그림이 있고, 그림 안에 시가 있다’(詩中有? ?中有詩)는 글귀처럼 글과 그림은 서로를 보완하면서 공간을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공간과 지리, 건축을 연구하면서 글과 그림을 가까이 하며 공부해야 하는 이유”라고 저자는 말한다. 임태순 선임기자 stslim@seoul.co.kr
  • “고위공직자 직계비속 철저한 병역관리 필요”

    “고위공직자 직계비속 철저한 병역관리 필요”

    “고위 공직자나 고소득층의 직계비속, 유명 연예인과 운동선수 등이 과연 병역의무를 성실하게 이행하고 있는지, 군 복무를 한다면 어디에서 하는지, 예외 없는 병역이 이뤄지고 있는지 국민은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다. ‘병역 노블레스 오블리주’ 차원에서 이들이 솔선수범해 병역의무를 이행하는지 지속적인 관리를 통해 국민의 의구심을 해결할 필요가 있다.” 박창명 병무청장은 지난 12일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 서울지방병무청에서 서울신문과 인터뷰를 갖고 고위 공직자를 포함한 이른바 ‘사회 관심자원’에 대한 투명한 병역 관리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박 청장은 “현 정부의 장·차관급 고위 공직자 직계비속의 보충역 복무 비율은 14.9%로 동일 연령대 일반 국민(12.5%)보다 2.4% 포인트 높게 나타났다. 공익법무관과 전문연구요원 등이 보충역 사유였다”면서도 “병역 이행은 국가 안보의 근간이자 출발점이다. 국민의 의구심을 최소화하기 위해 이들의 병역 사항을 중점 관리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과거 병무청의 사회 관심자원 중점 관리가 법적 근거 없이 이뤄져 폐지됐던 만큼 국민적 공감대를 얻고 기본권 침해 등의 위헌성을 배제하는 방향으로 입법화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병무청은 1973년부터 1997년까지 내부 지침에 따라 사회 지도층과 고소득층, 연예·체육인 본인과 자식에 대한 병역 사항을 중점 관리했다. ‘중점 관리’란 대상자들이 신체검사를 받는 순간부터 병역을 마칠 때까지 모든 과정을 병무청에서 관리했다는 얘기다. 하지만 국회에서 기본권 침해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면서 1998년 내부 지침이 폐지됐다. 법적 근거가 없어서 문제의 소지는 있었지만 본인과 자식의 병역 이행 내용이 떳떳하지 않은 일부 특권층이 지속적으로 반대의 목소리를 높인 탓이었다. 18대 국회에서 의원입법으로 사회 지도층의 병역 사항을 관리하는 법안이 제출됐지만 회기 종료로 폐기됐다. 19대 국회에서도 민주당 신경민 의원이 대표발의한 병역법 일부개정안이 제출된 상황이다. 법안은 고위 공직자와 직계비속 등에 대해 병역 사항을 중점 관리할 수 있도록 하고,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 의결로 중점 관리 대상자에 대한 병역 사항 공개를 병무청장에게 요구할 수 있도록 했다. 병역 이행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기 위한 정책도 지속적으로 추진할 방침이다. 3대에 걸쳐 사촌까지 모든 남자가 현역 복무를 마친 집안을 시상하는 ‘병역명문가’ 사업은 올해로 10주년을 맞았다. 지금껏 병역명문가 1908가족이 발굴됐다. 병역명문가에는 금융기관 금리 우대와 전국 480여개 시설 이용료 면제 및 할인 혜택이 있다. 특히 올해부터는 군인 외에도 6·25전쟁에 참전한 학도병, 유격군, 노무자, 경찰, 종군기자 등으로 범위를 넓혔다. 입영 현장을 ‘눈물바다’가 아닌 축하의 장으로 만들기 위한 ‘입영문화제’도 같은 맥락이다. 육군훈련소를 비롯해 전국 13개 입영부대에서 열리는 입영문화제는 입대를 앞둔 아들이 부모의 발을 씻겨 드리는 세족식과 축하 공연, 편지 쓰기 등으로 구성된다. 박 청장은 “1990년대 병무 비리의 어두운 이미지를 씻어내려고 뼈를 깎는 노력을 했음에도 병무행정은 여전히 국민과 거리감이 있었던 게 사실”이라면서 “병역에 대한 거부감, 상실감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국민 모두 병역에 직간접으로 참여해 축하하고 병역이 우대받는 문화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박창명 병무청장 경남 진주고, 경상대를 졸업했다. 학군(ROTC) 출신으로는 드물게 중장까지 진급했다. ROTC 12기로 제36보병사단장, 9군단장, 1군사령부 부사령관을 거쳐 국방대 총장을 역임했다. 지난해 대선 때 박근혜 대통령의 국민행복추진위원회 국방안보추진단에서 활동했다.
  • [김문이 만난사람] 남대문 옷장수 출신… 세계 패션무대 누비는 디자이너 박춘무

    [김문이 만난사람] 남대문 옷장수 출신… 세계 패션무대 누비는 디자이너 박춘무

    ‘옷이 날개’라는 말이 있다. 옷에 따라 사람이 달라보인다는 뜻이다. 좋은 인상을 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의식주’(衣食住)에서 ‘의’(衣)가 가장 앞에 놓였을까. 무색무취하다. 흑과 백, 모노톤을 추구한다. 때문에 화려하지 않고 섹시하지도 않다. 어찌 보면 옷도 아닌 것이 아무렇게나 걸쳐 입어도 나름대로 감성이 담긴 옷으로 변한다. 새롭거나, 남들한테 비위를 맞추는 옷이 아니다. 그런데 세계 패션무대에서는 잘도 통한다. 뉴욕과 북유럽, 파리의 패션 무대를 놀라게 한다. 과연 어떤 무기일까. 자유로운 영혼을 위한 옷을 만드는 디자이너 박춘무(59)씨. 1988년 데무(DEMOO)라는 브랜드를 론칭하면서 패션계에 첫 모습을 드러냈다. 이후 국내에서는 1995년 뉴웨이브인서울(NWS) 컬렉션 등을 시작으로 지속적으로 패션 컬렉션에 참여하고 있으며, 2010년에는 ‘콘셉 코리아 디자이너’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는 국내보다는 오히려 국제무대에서 인지도를 더욱 높이고 있다. 1996년 프랑스 파리 프레타 포르테 참가를 시작으로 세계무대를 노크한 그는 1999년 파리 컬렉션 무대에서는 한 장의 천이 몸에 휘감기는 것만으로도 구조적인 코트가 되고 스커트도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 이목을 끌었다. 2009년부터 뉴욕 컬렉션에는 매 시즌 참가하고 있다. 이때마다 가장 투명하고 얇은 옷을 보여주는 컬렉션을 열었고, 한복의 동정이나 깃에서 영감을 얻는 구조적인 옷을 선보이기도 했다. 해외 수출액도 계속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대표적으로 ‘데무 박춘무 블루 라벨’ 등은 2011년 해외 전시회에서 30만 달러 이상의 수출계약을 맺었으며 지난해에는 파리 후즈넥스트(Who’s Next), 트라노이(Tranoi)와 뉴욕 코트리(Coterie)에 참가해 50만 달러의 실적을 올렸다. 또한 릭오언스·지방시·발망 등 유명 브랜드들이 입점해 있는, 명실공히 이탈리아 최고의 온·오프라인 편집매장인 루이자비아로마·안토니올리와 입점계약을 맺는 등 진가를 빛내고 있다. 1999년 뉴욕에 단독 매장을 오픈했다. 2001년 9·11 테러의 여파로 뉴욕 매장을 철수했지만 뉴욕, 파리, 이탈리아, 일본, 중동 등 전 세계 30개국 100여개의 유명 편집매장에 입점한 그의 브랜드는 지속적으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이에 대해 비평가들은 “모노톤, 블랙, 절제된 라인, 아방가르드, 그리고 독특한 라인에 있다”고 평가한다. 또 “그의 패션은 유행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볼수록 매력 있는 것, 볼수록 멋이 있는 것, 자세히 보면 깊이가 있는 것을 만들어 낸다”고 말한다. 겉으로 화려하지 않기 때문에 그저 바라보는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소비자 자신이 만족하는 것에 중점을 둔다는 것이 ‘데무’의 특징 중 하나이다. 유럽의 경우 40, 50대가 주요 소비자라고 박씨는 설명한다. ‘데무’는 자신의 이름 끝자 ‘무’ 앞에 ‘~부터’라는 뜻을 지닌 프랑스어 ‘드’(DE)를 붙여 탄생됐다. 지난 7일 오후 서울 강남구 신사동 작업실에서 올해 데뷔 25주년이 되는 박씨를 만났다. 안에는 완성된 옷과 한창 작업 중인 옷들이 쭉 걸려 있었다. 듣던 대로 흑과 백의 작품들이 눈에 많이 들어왔다. 박씨 역시 검정과 하얀색 옷을 간편하게 입고 있었고 안경테도 까만색이었다. 자리에 앉으면서 ‘데무’라는 이름이 꾸준히 무성하게 이어간다는 뜻이 담긴 느낌이라고 했더니 “처음 오픈할 때 ‘박춘무 패션’이라고 하기도 싫었고 그러다가 프랑스어 ‘De’를 생각해내 제 이름 끝자 앞에 ‘데’를 붙였더니 심플하게 감이 왔다. 그런 이름 덕분인지 프랑스 컬렉션에 많이 참가하게 됐다”며 웃는다. 그에게 유럽 등 해외에서 인기를 끄는 이유가 무엇인지 먼저 물었다. “북유럽 사람들이 더 좋아하는 것 같아요. 그분들의 반응을 들어보면 ‘아방가르드다’ ‘동양적인 느낌이 난다’ ‘서양처럼 섹시하지 않으면서도 멋이 있다’고들 합니다. 유럽에 자주 가다 보니까 유럽사람들은 감성적이며 동양적인 것을 좋아하고 있구나 하는 것을 느꼈죠. 동서양을 아우르는 옷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많아요.” 그는 화려한 것, 진한 화장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의 말대로 “정리가 안 된 옷에 실용성과 트렌드를 플러스하는 것”이다. 치장이 아닌 자연스러움, 그러면서 오래 입어도 질리지 않는 그런 옷을 만들어 낸다. 그래서인지 25년 동안 쭉 무색무취한 옷을 추구해 왔다. 옷을 만드는 철학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저 새로운 선을 만들어 내는 것”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붓을 든 수묵화의 선이랄까. 그는 원래 화가가 꿈이었다. 그동안 그룹전을 두번 했고 지금도 시간이 날 때마다 누드 크로키를 한다. 그는 김제 출신이다. 어린 시절에는 의류공장 근처에서 자랐다. 아버지가 아동복을 만들었다. 아버지는 음악과 멋을 좋아했다. 나중에 아버지는 서울과 부산을 오가면서 아동복 장사를 했다. 그런데 고등학교 때 아버지의 사업이 어려워졌다. 1973년 부산진여상을 졸업한 직후 어머니와 함께 남대문 옷 도매 및 소매시장에서 일을 시작했다. 옷을 떼어다가 명동 소매점에 파는 일 등이다. 학창시절 가고 싶어 했던 미술대학 진학 또한 형편상 포기해야 했다. 먹고살 일이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열심히 일했다. 머리를 남자처럼 자르고 검은 옷이나 군복 같은 카키색 옷만 입고 다녔다. 어렸을 적에는 그러지 않았는데 이때부터 무채색 옷을 좋아했던 것 같다고 술회한다. 옷장사는 비교적 잘됐다. 똑같은 옷도 그의 손을 거치면 더 잘 팔렸다. 어느새 돈이 조금씩 모아졌다. 그러던 어느 날 ‘이게 아닌데, 돈만 벌면 뭐하냐’는 질문을 자신에게 던지기 시작했다. 가슴속의 우물이 텅 비어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옷장사를 한 지 6년째, 홍익공업전문대 도안과에 진학했다. 하루종일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던 어느 날 문득 자신의 옷을 만들자고 다짐했다. 2년 동안 대학공부를 마쳤고 이어 1987년 국제패션연구원을 졸업했다. 새로운 자신감이 생겨났다. 그냥 흔한 옷이 아니라 정말 다른 옷을 만들자고 다짐했다. 이런 생각으로 혼자만의 길을 선언하고 이듬해 브랜드 ‘데무’를 론칭했다. ‘데무’ 오픈 전에 하얏트호텔에서 다른 두 디자이너와 함께 패션쇼를 했다. 준비하는 과정에서 그는 여러 가지 의문을 갖는다. 셔츠는 왜 관습적으로 면 소재나 체크무늬로만 하는지, 또 블라우스는 실크 같은 것으로 해야 하는지 등이다. 다른 사람들이 예쁘다고 하는 옷에 공감이 잘 가지 않았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역발상이었다. 스포티한 느낌에 부드러운 원단을, 그리고 사랑스러운 블라우스에 셔츠같이 라인이 잘 사는 빳빳한 원단을 사용했다. 이러한 디자인은 패션쇼 리뷰에서 ‘옷도 아니다’라는 악평을 받았다. 하지만 소비자에게는 오히려 잘 팔렸다. 그때나 지금이나 정상적인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아방가르드를 바탕으로 항상 무언가 새로운 느낌을 주려고 한다. 그는 작업을 할 때 생각지도 않았던 어떤 선이 나왔을 때 가장 기분이 좋아진다. 그래서 옷을 만들고 나서 거꾸로 입어보고, 잘라도 보고, 틀어서 입어보기도 한다. 가봉하다가 잘못 나온 것도 이런 식으로 다시 입어본다. “요즘 패션은 다양합니다. 하지만 유행에 너무 따라가지 말고 본인 특유의 개성이 있어야 합니다. 그 개성을 위해 오늘도 디자인하고 그것을 입어주면 행복하지 않겠습니까. 어디 이쁘다라는 규정이 딱히 있나요. 길을 가다가 거리의 콘크리트가 한구석에 올라와 있으면 보는 시각에 따라 이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구조적인 느낌이 멋있게 보일 때도 있지요. 또한 잡초가 더 예쁠 수도 있어요. 테크닉은 나중 문제이거든요.” 그의 디자인 영감은 일상 속 우연한 만남에서 비롯된다. 그때그때 자신을 사로잡는 어떤 느낌을 반영하는 것이다. 아울러 빛을 디자인에 많이 도입한다. 소재에 따라, 보는 각도에 따라 빛이 옷에 반사되는 느낌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는 첫 데뷔 때부터 이러한 영감과 빛, 그리고 관습에 반하는 감성 등을 바탕으로 흰색과 검정으로 표현해 왔다. 이는 ‘데무의 상징’이자 그가 추구하는 패션의 철학이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외국에 다녀 보니 세상은 넓고 할 일이 많다”는 것을 느꼈다며 웃는다. 선임기자 km@seoul.co.kr ■ 디자이너 박춘무는 올해 데뷔 25주년… ‘데무’ 브랜드 30개국 100여개 편집매장에 입점 김제 출신이다. 부산진여상을 졸업하고 남대문시장에서 옷장사를 6년 동안 했다. 홍익공업전문대학교와 국제패션연구원을 졸업한 뒤 1988년 ‘데무’라는 브랜드로 패션 디자이너의 길을 걸었다. 이후 1995년 뉴웨이브인서울 컬렉션 등을 시작으로 국내 무대는 물론 매년 유럽과 뉴욕 등 해외 컬렉션에 참여하고 있다. 1999년에는 뉴욕에 단독매장을 오픈했다가 9·11 테러 여파로 철수했다. 현재 뉴욕, 파리, 이탈리아, 일본, 중동 등 전 세계 30개국 100여개의 유명 편집매장에 그의 브랜드가 입점해 있다. 주요 수상으로는 1998년 서울패션인상 올해의 신인 디자이너상, 2001년 제38회 무역의 날 기술 및 디자인 개발 부문 대통령상, 2009년 제18회 한국섬유패션대상 디자이너 부문, 2009년 대한민국 패션품질대상, 2010년 제10회 서울패션위크 헌정디자이너 10인 선정, 2012년 제5회 코리아패션대상 대통령표창 등이다.
  • 이장호 BS금융지주회장 사퇴

    이장호 BS금융지주회장 사퇴

    금융당국으로부터 사퇴 압박을 받은 이장호(67) BS금융지주 회장이 자리에서 물러난다. 이 회장은 10일 오전 성명서를 통해 “BS금융의 안정적인 발전과 성장을 위해 지주 회장직을 사임한다”고 밝혔다. 이 회장은 “최근 거취에 관한 문제가 불거지면서 여러 경로를 통해 지역사회의 의견을 수렴하고 심사숙고한 끝에 지금 시점에 사임 의사를 밝히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후임 인사에 대해서는 “BS금융의 차기 최고경영자(CEO)는 조직의 영속성과 안정적인 발전을 위해 내부 경험이 풍부하고 지역사정에 밝은 내부인사가 돼야 한다”면서 내부 승계를 강조했다. 이 회장은 1973년 부산은행에 행원으로 들어와 2006년 행원 출신 최초의 부산은행장이 됐다. 이후 지방은행 최초의 금융지주사 회장까지 만 39년 8개월 동안 재임했다. 이 회장의 사퇴로 금융당국의 ‘관치’에 대한 논란이 더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5일 BS금융의 종합검사 결과를 토대로 이 회장의 장기집권에 따른 폐해가 크다며 퇴진을 요구했다. 당국이 민간기업의 인사를 좌지우지한 격이어서 관치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부산은행 노조는 이날 성명을 통해 “금융당국은 악의적인 직권 남용을 즉각 철회하라”면서 “당국이 본연의 역할에서 벗어나 합당한 사유나 법적 근거 없이 순수 민간 금융회사 최고경영자의 퇴진을 요구하는 것은 직권 남용이자 명백한 관치”라고 비난했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 73년만에 모습 드러낸 독일 폭격기,영국해협서 인양 성공

    73년만에 모습 드러낸 독일 폭격기,영국해협서 인양 성공

    73년만에 모습 드러낸 2차대전 독일 폭격기. 영국 데일리 메일은 11일(현지시간) 2차 세계대전 당시 1940년 브리튼 전투에서 추락한 독일 폭격기를 영국해협에서 인양하는데 성공했다고 보도 했다.   영국 공군 박물관은 인양되는 순간 환호성을 울렸다. 이번에 인양된 독일 폭격기는 도르니에 17기로 날개와 엔진이 온전한 상태다. 영국해협 밑바닥 바다속에서 73년간을 견더온 것에 비해 비행기 상태가 아주 양호 한 것으로 알려졌다.이 폭격기는 브리튼 전투가 한창이던 1940년 8월 26일 영국 전투 비행단 허리캐인(RAF Hurricane fighters)의 공격을 받고 격추 된 것으로 보인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군과 독일군은 런던 상공의 제공권 장악을 위해 치열한 공중전을 벌였다. 1940년 여름 영국 브리튼 하늘에서 독일의 도르니에를 보는 것은 친숙한 광경이었다. 그후 나찌의 몰락과 함께 이런 종류의 독일 폭격기도 사라졌다.군사 역사가들은 이번에 건져 올린 독일 폭격기는 당시 전투를 벌였던 비행기중 유일하게 하나 남은 것이라고 밝혔다.   이 독일 폭격기는 복원돼 영국 공군 박물관(the RAF Museum)에 전시 될 예정이다. 영국공군 박물관의 한 관계자는 “도르니에(Dornier) 폭격기의 복원과 발견은 국가적으로나 국제적으로 중요하다.이것은 브리튼 전투에 참가한 유일무이 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독일폭격기의 복원과 전시는 1940년 당시 제공권을 장악하기 치열한 공준전을 벌이다 목숨을 바친 영국과 독일의 젊은이들의 희생을 기리고, 역사적 아픔을 되새기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사진=데일리 메일 캡쳐 장상옥 기자 007jang@seoul.co.k
  • [사설] 40년 엔고 버텨낸 일본 기업서 배울 때

    코트라가 어제 ‘일본 엔고 극복사례가 주는 엔저원고 시대의 시사점’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냈다. 결론부터 요약하자면 40년 엔고(엔화가치 강세)를 버텨낸 일본 기업의 생존 비결을 연구해 지금의 원고(원화가치 강세) 시대를 극복하자는 것이다. 원화환율이 조금만 떨어져도 수출 채산성 악화 공식을 들이밀며 외환당국의 환율 방어부터 요구하는 주장에 익숙해 온 터라 코트라의 보고서는 시선을 끌기에 충분하다. 코트라는 공사(公社)이기는 하지만 무역투자진흥이라는 사명에서 보듯 기업 친화적인 조직이다. 따라서 국내 기업들은 코트라의 충고를 원론적인 얘기로 흘려들을 게 아니라 반면교사의 쓴소리로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집권하면서 엔화가치는 달러당 100엔선을 돌파하며 급격한 약세로 돌아섰지만, 그 전에는 1973년부터 40년 동안 무려 400%나 절상됐다. 불과 2년 전인 2011년 10월 31일에는 달러당 75.32엔으로 전후(戰後) 최저치를 찍기도 했다. 이 기간 동안 마쓰다자동차는 소형차와 대형차에 동일한 설계 배치를 적용해 단가를 낮추는 데 성공했다. 지난해부터는 주요 차종의 미국 생산을 중단하고 국내 공장에서 생산·수출하는 체제로 바꿨다. 그럼에도 올 1분기 미국 고객의 자동차 재구매율 조사에서 포르쉐, 캐딜락에 이어 세 번째로 가장 높은 신장률을 기록했다. 토요타자동차는 JIT(Just In Time), 칸반(적시에 상품을 출시하는 스케줄링 시스템) 등 생산시스템 개혁으로 맞섰다. 아사히는 ‘맛있는 맥주’에 집중해 1987년 ‘슈퍼 드라이’라는 히트상품을 만들어 냈다. 맥주에 문외한인 은행원 출신의 최고경영자(히구치 히로타로)가 업계 화두이던 용기 경쟁에서 탈피해 핵심인 ‘맛’에 승부를 건 성공스토리는 지금도 회자되는 유명한 얘기다. 특별히 주목해야 할 대목은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일본 기업들은 단순한 원가 절감에만 주력했지만 그 이후부터는 차별화된 제품과 기술력 강화 등으로 엔고 시대를 이겨냈다는 사실이다. 결국 원고를 극복할 근본적 해법도 신기술, 신상품, 신서비스 개척 등 체질 개선에 있다는 점을 국내 기업들은 다시 한 번 명심하기 바란다.
  • 진화하는 고시제도… 변천사 살펴보니

    1948년 처음 시작된 고시는 당시 선발인원의 5%만 공채였다. 특히 현재의 9급 공무원은 대부분 추천으로 임용됐다. 하지만 1961년부터 현재의 5·7·9급 공채와 같은 형태로 고시가 분류됐다. 1999년엔 민간인도 공무원으로 임용하는 개방형 임용제도가 도입됐다. 2011년에는 민간경력자 5급 채용이 시작되는 등 점점 개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특히 올해 3회째를 맞아 전국의 수험생들에게 공직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는 공직박람회는 여느 기업의 리크루트 못지않은 경쟁과 활기가 넘친다. ☞<정책·고시·취업>최신 뉴스 보러가기 공무원 시험과목도 시대상을 반영해 변화하고 있다. 1961년에는 행정학이 추가됐고, 국민윤리 과목은 1981년 추가됐다가 1996년 제외되기도 했다. 2004년 고등고시에 도입된 공직적격성평가(PSAT)와 모든 공채시험에 도입된 역량면접은 고시도 기업 채용과 마찬가지로 인재들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굴하겠다는 정부의 의지를 반영한 것이다. 5급 고등고시는 처음 시작된 1940년대에는 초급 중학교 졸업자, 1960년대에는 대학 졸업자,1970년대에는 대학 3학년 수료 상당자 등으로 학력에 따른 지원자격이 있었지만 1973년 이후 모든 학력과 경력 제한이 폐지됐다. 행정고시(5급 공개경쟁채용시험)는 사법시험이 폐지되고, 외교관 선발이 국립외교원 외교관 후보자 선발시험으로 대체되면 사실상 학력, 나이 제한이 없는 유일한 고시로 남게 된다. 민간경력자 5급 공채는 현재 3년째 연간 100여명을 선발하고 있다. 개방형 직위제도는 중앙부처에서 모두 306개 직위를 수시로 선발 중이다. 올해는 특히 시간제 공무원제도의 활성화로 공무원의 근무 형태가 더 유연해진다. 하루 3시간 이상, 주 15~35시간 근무하는 시간제 공무원은 경력경쟁채용과 7급 이하 실무직부터 신규채용할 예정이다. 김일재 안전행정부 인력개발관은 “5급 공채는 당분간 특별한 변화는 없지만 장애인, 저소득층, 지방출신 인재 등이 더욱 공직에 많이 진출할 수 있도록 개방적 방향으로 진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남북 장관급회담 실무접촉] 남북 수석대표는 40대 ‘南男北女’

    남북은 9일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개최한 당국 간 실무 접촉의 대표 얼굴로 각각 40대의 ‘남남(男)북녀(女)’를 앞세워 눈길을 끌었다. 북측은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서기국에서 유일한 여성 부장인 김성혜(48)를, 남측은 ‘회담 베테랑’으로 꼽히는 천해성(49) 통일부 통일정책실장을 수석대표로 내세웠다. 김일성대 출신으로 알려진 김 부장은 북한에서도 금녀의 벽을 허문 대표적인 ‘여성 대남(對南) 일꾼’으로 평가된다. 그동안 꾸준히 남측과 접촉 경험을 쌓아왔다. 1964년생인 천 실장보다는 한 살 적다. 두 사람 모두 과거 여러 차례 회담 수행원으로 참여해 서로를 잘 알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김 부장은 2005년 서울과 평양에서 각각 개최된 제15·16차 남북 장관급 회담에 수행원으로 참가했다. 서울에서 열린 15차 회담 때는 강렬한 흰색 정장 패션으로 모습을 드러내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2006년에는 6·15 남북 당국 공동행사의 보장성원(안내요원)으로 활동했고, 2007년 10월 제2차 남북정상회담에서는 남측 특별수행원을 안내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는 2011년 12월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당시 방북해 조문했던 이희호 여사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을 개성에서 직접 영접하기도 했다. 북측이 남북 장관급 회담 준비를 위한 실무 접촉 대표로 여성을 앞세운 건 남측과의 대화를 부드럽게 풀어 나가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천 실장 역시 2005년 제15·16차 남북 장관급 회담을 수행했다. 그후 통일부 인도협력국장, 대변인, 남북회담본부 상근회담대표 등을 두루 경험했다. 온화한 ‘영국 신사’ 이미지가 강한 그는 2년 5개월간 대변인을 맡을 정도로 친화력이 높다. 북측 대표단 일원인 황충성·김명철은 개성공단과 관련한 회담 경험을 갖고 있다. 1973년생인 황충성은 2010년 남북적십자 회담 보장성원, 2009년 개성공단 관련 남북 당국 간 제1∼3차 실무회담 대표로 남북 간 대화에 참여했다. 1960년생으로 북측 대표단 중 가장 연장자인 김명철은 2002년 개성공단 실무협의 대표 등을 지냈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씨줄날줄] 장롱 속의 신사임당/오승호 논설위원

    고액권 발행에 대한 찬반 논란이 있었을 당시, 반대론자들은 불법 증여나 뇌물 제공 등으로 악용돼 지하경제가 창궐할 것이라는 이유를 들었다. 신용카드 사용이 일반화돼 있는데, 굳이 고액권을 발행할 이유가 없다는 논리도 폈다. 반면 찬성론자들은 1973년 만원권 발행 이후 물가 상승과 국민소득 증가 등을 감안해 불가피성을 주장했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결국 5만원권을 발행하기로 결정하고 지난 2009년 6월 23일부터 공급했다. 10만원권 발행은 추후로 미뤘다. 5만원권 지폐의 인물은 한국은행이 여론조사를 거쳐 신사임당으로 결정했다. 우리사회의 양성평등 의식을 제고하고, 여성의 사회 참여에 긍정적으로 기여해야 한다는 시대정신을 반영했다. 5만원권 인기가 폭발하고 있다. 전체 화폐 발행잔액 중 5만원권이 차지하는 비중은 2년 전 49.2%에서 지난 4월 말에는 65.9%로 높아졌다. 그런데 정작 현금자동인출기 등에서는 5만원권이 품귀현상을 빚을 때도 있단다. 일부 부유층들이 5만원권을 뭉치로 인출해 장롱 속에 보관하고 있는 이유가 큰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지난 1분기 5만원권 환수율은 58.6%로 지난해 4분기의 86.7%에 비해 훨씬 밑돈 것에서도 알 수 있다. 골드바 인기도 비슷하다. 올들어 한 시중은행의 골드바 월 평균 판매량은 500㎏ 정도로 지난해 200㎏의 2배를 웃돌고 있다. 1962년 6월 10환을 1원으로 바꾸는 화폐개혁(긴급 통화개혁조치)을 한 목적은 경기 활성화를 위해 장롱 속 현금을 산업자금화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부정축재자나 화교들로부터 회수된 자금이 많지 않아 목적 달성은 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정부는 지난 2008년 중간도매상들이 금을 신고하면 세금의 일부를 감면해 주는 제도(고금 의제매입세액공제)를 시행, 장롱 속 금들이 공식 유통 채널로 나오게 한 적이 있다.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며칠 전 국회 교섭단체대표 연설에서 금거래소 설립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일부 부유층의 재산은닉 수단인 금거래를 양성화하기 위해서다. 이명박 정부 때인 지난 2010년 금거래소 설립 방안을 발표한 이후 교착 상태에 빠진 상황이어서 결과가 주목된다. 같은 목적에서 화폐개혁(리디노미네이션)설이 나돌기도 한다. 하지만 파장이나 비용, 시간 등으로 미루어볼 때 박근혜 정부에서 실행 가능성은 적은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우리 경제가 소비와 투자 부진으로 저성장을 면치 못하고 있다. 부자들은 장롱 속 돈이 쌓이는 한 우리 경제에 희망이 없다는 사실을 인식했으면 한다. 오승호 논설위원 osh@seoul.co.kr
  • 古음악 프리마돈나 임선혜…英 古음악 오케스트라와 만남

    古음악 프리마돈나 임선혜…英 古음악 오케스트라와 만남

    유럽 고음악계가 사랑하는 프리마돈나 임선혜(37)와 영국 고음악 오케스트라 ‘아카데미오브에인션트’(AAM)가 만난다. 오는 18~19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AAM 내한 공연에서다. 18일에는 AAM의 비발디의 ‘사계’ 연주에서 계절이 바뀔 때마다 임선혜가 등장해 헨델, 퍼셀의 가곡, 아리아 등을 부른다. 19일에는 고음악계의 신성 바이올리니스트 보얀 치치치가 AAM과의 협주로 바흐의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 등 바로크·고전주의 음악을 선보인다. 1998년 고음악계의 거장 필립 헤레베헤에 발탁돼 유럽 무대에 첫발을 내딛은 이후 세계 유수의 지휘자들의 러브콜을 받고 있는 소프라노 임선혜. 서울대 음대와 독일 칼스루에 국립음대를 거친 그는 영민한 곡 해석 능력으로 세계 비평가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 특유의 맑고 서정적인 음색이 파블로 베즈노슈크가 이끄는 AAM의 섬세하고 유려한 합주에 녹아든다. 2년 만에 내한한 AAM은 1973년 고음악 붐을 일으킨 크리스토퍼 호그우드가 세운 합주단으로, 1726년 고음악 연주·연구를 위해 세워졌다 해체된 단체를 부활시킨 것이다. 당시 런던은 처음으로 유료 관객을 위한 연주회가 시작되면서 유럽에서 모여든 작곡가들로 고음악의 메카가 됐다. 현재 리처드 이가가 감독을 맡고 있는 AAM은 케임브리지대 상주 오케스트라이기도 하다.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4만~14만원. (02)599-5743.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라디오 국민DJ ‘별밤’으로 떠나다

    라디오 국민DJ ‘별밤’으로 떠나다

    국내 라디오 DJ계의 대부 이종환씨가 30일 폐암으로 별세했다. 76세. 2011년 폐암 진단을 받고 투병생활을 하던 이씨는 서울대병원에서 치료를 받다 열흘 전 서울 노원구 하계동 아파트 자택으로 옮겨 지냈다. 고인은 국내 포크음악이 뿌리내리는 데 산파 역할을 했다. 음악다방 디쉐네의 DJ로 활동하다 1964년 MBC 라디오 PD로 입사한 고인은 1970년대 ‘별이 빛나는 밤에’와 1980년대 ‘이종환의 밤의 디스크쇼’의 DJ로 맹활약하며 대중의 인기를 누렸다. 인기 라디오 프로그램 ‘여성시대’를 진행하는 등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그는 1989년 미국으로 떠나 미주 한인방송 사장까지 지냈다. 1992년 귀국해 MBC FM ‘이종환의 밤으로의 초대’로 국내 방송에 복귀했다. 이후 ‘이종환, 최유라의 지금은 라디오 시대’, ‘이종환의 음악살롱’ 등으로 명실상부한 최고 DJ로 명성을 이어갔다. 1996년에는 MBC가 20년간 라디오를 진행한 DJ에게 주는 골든마우스 상을 최초로 수상했다. 해박한 음악 지식과 특유의 소탈한 입담으로 전국의 청취자를 끌어모으며 김광한, 김기덕과 함께 ‘3대 DJ’로 불리기도 했다. 대중음악계에도 큰 족적을 남겼다. 1970년대 음악감상실 쉘부르를 만든 주인공. 1973년 듀오 쉐그린(이태원, 전언수)과 함께 종로 2가에 쉘부르를 열어 가난한 음악인들에게 무대를 마련해 주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쉐그린, 어니언스, 김세화, 남궁옥분, 신계행, 양하영 등의 스타를 배출해 가수들 사이에서는 ‘대장’으로 불렸다. 돌출 행동 등으로 시련도 있었다. 2002년 ‘지금은 라디오 시대’를 진행하면서 자신을 비난한 글을 올린 청취자에게 폭언을 해 DJ 자리를 내놨고, 이듬해 7월엔 MBC FM 4U ‘이종환의 음악살롱’에서 음주 방송을 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2005년 4월 tbs FM ‘이종환의 마이웨이’로 방송에 복귀한 그는 지난해 11월 건강을 이유로 방송을 떠났다. 한편 그의 별세 소식이 알려지자 방송·가요계는 종일 술렁거렸다. 그와 함께 1995~2002년 7년여간 라디오 프로그램(지금은 라디오 시대)을 함께 진행했던 방송인 최유라는 이날 오전 자신의 트위터에 “어렸을 적 참 무섭고 어려웠던 분이었다. 할아버지 냄새 날까 마이크 돌려놓고 방송하시던 분… 아프실 때도 모습 흉하다며 못 오게 하셨던 분”이라며 고인을 추모했다. 쉘부르의 맏형 격인 쉐그린의 이태원은 “쉘부르는 그에게 사업이 아니라 음악을 정말 사랑했기에 시작했던 일이었다”고 회상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장지는 충남 아산. 발인은 6월 1일 오전 6시 30분. 유족으로는 부인 성성례씨와 1남 3녀(한열·효열·효선·정열)가 있다. (02)2072-2010.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향토기업 특선] (17) 부산 신사복 단일 브랜드 매출 1위 패션전문기업 PARKLAND

    [향토기업 특선] (17) 부산 신사복 단일 브랜드 매출 1위 패션전문기업 PARKLAND

    부산 금정구 서2동에 있는 향토기업 파크랜드는 1973년 창사 이래 지금까지 끊임없는 투자와 노력으로 단일 브랜드 매출 1위를 이룬 우리나라 대표 패션전문기업이다. 파크랜드의 전신은 태화섬유다. 당시 외국 브랜드의 소규모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업체로 출발했다. 피에르 가르뎅, 입생 로랑, 지방시, 크리스찬 디올 등 해외 유명 브랜드가 주요 고객으로 드레스 셔츠가 주 품목이었다. 조그만 무역회사였던 파크랜드는 바이어로부터 번번이 불합격 처리를 받아 선적조차 할 수 없는 때도 있었다. 1980년대 후반 급격한 임금 상승으로 생산 현장을 지켜내기 어려운 과정을 겪기도 했다. 이 같은 위기를 넘기고 1988년 ‘PARKLAND’라는 독자 브랜드로 남성복 시장에 뛰어들었다. 1990년대 말부터 국내외 유명 남성복 브랜드와 치열한 경쟁을 해왔다. 고품질과 합리적인 가격, 브랜드 다양화 등을 통해 현재 중견기업으로 우뚝 섰다. 2001년에는 신사복 업체로는 처음으로 동탑산업훈장을 받는 등 꾸준한 성장을 해왔다. 이후 6개의 국내 생산공장을 추가로 설립하고 부산과 경기 기흥에 대형 물류센터를 설립하는 등 생산과 판매를 함께 하는 국내 유일의 의류업체다. 중국 다롄과 인도네시아 등 해외에도 생산공장을 갖췄다. 이 때문에 거품을 뺀 ‘좋은 옷 좋은 가격’의 밑바탕이 되는 경영 환경의 틀을 마련했다. 파크랜드의 성공 비결은 한마디로 ‘좋은 옷, 합리적 가격’을 통한 고객 지상주의다. 이는 파크랜드의 ‘옷값은 옷을 만드는 데 써야 한다’는 경영철학과 무관하지 않다. 1997년 말 외환위기 당시 옷값의 거품을 뺀 ‘좋은 옷, 좋은 가격’이란 슬로건으로 국내 남성 정장 시장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또 파크랜드는 우리나라 의류산업을 노동집약적 봉제산업에서 고부가가치 패션, 유통업으로 전환한 시발점이 됐다. 이를 통해 패션의 진정한 가치가 외형적 멋이 아닌 옷이 가진 품질과 합리성임을 소비자들에게 각인시켰다. 20~30여년 전 국내 섬유업체들이 인건비 등을 줄이려고 해외로 생산기지를 옮겼지만 당시 파크랜드는 반대로 국내 직영공장을 증설해 모든 생산라인을 한국으로 돌렸다. 인건비를 낮추지 못한 대신 옷감을 자르는 재단센터에 무인자동재단 설비를 도입해 생산성을 크게 끌어올렸다. 또 드레스 셔츠의 단추, 신사복 바지 주머니 만들기 등 자동화가 가능한 부분을 자동화시켜 생산원가를 크게 줄였다. 전국적으로 파크랜드 매장을 확보하고 자체 물류센터에서 물건을 직송하는 시스템도 가격 거품을 걷어내는 데 한몫했다. 여기에다 재고 부담을 본사가 떠안는 위·수탁 대리점 확보, 교외 직영매장 설립 등의 노력도 뒤따랐다. 배은영 홍보팀장은 “파크랜드의 옷은 소비자들에게 우수한 품질과 소재가 돋보인다는 평가를 받는다”며 “의류산업을 노동집약적 봉제산업에서 기술집약적 패션산업으로 발전시키는 데 있어 새로운 경영 모델을 제시했다”고 설명했다. 2000년 들어서는 20~30대 젊은 남성을 겨냥한 브랜드 제이하스, 여성복 브랜드 프렐린을 론칭하는 등 멀티 브랜드 전략으로 공격적인 활동을 펴고 있다. 이와 함께 로드숍과 대형유통매장, 홈쇼핑 등으로 유통채널을 다각화하는 한편 최근에는 신발도 생산하는 등 점차 범위를 넓혀 나가고 있다. 지난해에는 국제구호단체인 월드비전에 성금 3000여만원을 기탁하고 국립공원 북한산에서 환경캠페인을 벌이는 등 사회공헌 사업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파크랜드는 투명하고 성실한 세금 납부, 협력사와의 공정하고 투명한 거래 관계 유지를 통한 상생 경영을 경영철칙으로 삼고 있다. 곽국민 부회장은 “중국과 인도네시아에 생산공장을 설립하는 등 명실상부한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산 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리빙빙 ‘트랜스포머4’에서…

    리빙빙 ‘트랜스포머4’에서…

    중국 인기 여배우인 리빙빙(李氷氷)이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트랜스포머 4’ 출연을 확정했다. 리빙빙이 메간 폭스, 로지 헌팅턴 휘틀리 등 트랜스포머 시리즈에 출연해 톱스타로 부상했던 여배우들처럼 승승장구할 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24일 중국 언론에 따르면 리빙빙은 ‘트랜스포머4’에서 마크 윌버그, 니콜라 펠츠, 스탠리 투치 등 헐리우드 스타와 함께 출연한다. 이로서 트랜스포머 시리즈에 처음 출연하는 중국 출신 배우가 됐다. 트랜스포머4는 미국과 중국 합작으로 제작할 예정이다. 제작진은 중국 배우 6명을 캐스팅할 계획이라고 밝혔으며 리빙빙이 첫번째로 발탁됐다. 마이클베이 감독은 “리빙빙 덕분에 영화가 빛날 수 있을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에 리빙빙은 “마크 윌버그와 한 영화에 출연하게 돼 흥분된다. 국제적 대작에 함께 하게 돼 기쁘고 파라마운트사의 제의에 감사하다”고 화답했다. 1973년생인 리빙빙은 영화 ‘천방지축’, ‘포비든 킹덤’ ‘설화와 비밀의 부채’ ‘레지던트 이블 5: 최후의 심판’ 등에 출연, 중국과 헐리웃을 오가며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길섶에서] 수훈례(垂訓禮)/정기홍 논설위원

    엊그제 초저녁, 한 대학가에서 한 무리 아주머니들이 장미꽃을 들고 섰길래 “밤 행사가 있냐”고 물었더니 ‘성년의 날’이란다. “상술의 촉수가 밤인들 놓칠까”라며 걷는데 학생 두명이 “돈이 없어 못 사겠어”라고 푸념하며 지나간다. 예나 지금이나 학생 호주머니에 돈이 없는 것은 일상사인가 보다. 성년식에서 평생 지녀야 할 삶의 가르침을 받는 수훈례(垂訓禮)를 치르는 스무살 젊은이들의 모습은 아름답고 의젓해 보인다. 그런데 이들은 먼 옛날 성년 의식에 육체적 고행이 뒤따랐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조혼이 흔했던 시절, 열다섯 앳된 나이에 성년식을 치른 ‘사태’는 또 어떻게 이해할까. 인터넷에는 성년의 기준을 놓고 시끌시끌하다. 성년 나이의 기준이 20세니 19세니, 생일이 기준이니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하기야 올해부터 민법상 성년 기준이 만 19세로 바뀌었으니 혼란스러울 만도 하겠다. 성년식은 처음 제정된 1973년에는 4월 20일에 치렀다가 1985년부터 지금처럼 5월 셋째 월요일로 정해졌다고 한다. 성년식을 치르는 나이도 19세로 낮추는 것이 젊은이들의 혼란을 줄이는 것 아닐까.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 “하나님, 왜 광주 몰살을 보고만 계십니까, 당신 종을 빨리 석방해 주소서” 5·18 - 통일운동 ‘노심초사’… 어머니의 삶 오롯이

    “하나님, 왜 광주 몰살을 보고만 계십니까, 당신 종을 빨리 석방해 주소서” 5·18 - 통일운동 ‘노심초사’… 어머니의 삶 오롯이

    “하나님, 왜 광주 몰살을 보고만 계십니까. 광주 죽음을 보상해 주옵소서. 악마의 정치가들은 죄도 없고 의롭게 살려고 하는 하나님의 종들을 자꾸 감옥에다가 가둡니다.”(1980년 5월 28일 한맹순씨 일기 중) ‘5·18 광주민주화운동’ 33주년을 기념해 민주화 운동가인 아들을 40년 남짓 애끓게 지켜봐 온 한맹순(97)씨의 일기가 책으로 출판된다. 한씨는 국내 민주화 운동의 산증인인 이해학(69) 목사의 모친이다. 한씨 역시 이 목사와 함께 1973년 경기 성남에서 주민교회를 세우고 빈민 운동과 정치 투쟁, 통일운동을 했던 ‘민주화 동지’이기도 하다. 일기집 ‘맹순할매 억척 기도일기’는 학교를 다닌 적이 없는 한씨가 비뚤비뚤 써내려간 일기지만, 민주화·통일 운동을 하는 아들을 걱정하며 숨죽여 기도한 어머니의 마음을 오롯이 담고 있다. 1974년 이 목사가 긴급조치 1호 위반으로 구속됐을 때는 “목사님들과 죄 없는 전도사(이 목사)가 구속되었다. 그리고 15년형이 내려졌다고 한다. 너무도 실망이 컸다. 우리 아들은 죄지을 리가 없는데 웬일일까. 울화통이 터진다. 당신 종을 빨리 석방해 주소서”라고 적었다. 또 1987년 7월 20일 일기에는 “민주화가 이뤄졌다고 다들 재미있게 지내는데 이한열이 최루탄에 맞아 죽어서 그 엄마가 얼마나 애통하며 슬플까. 이한열이 엄마를 생각할 때 내 마음도 아프다”라고 안타까워했다. 1980년 광주 민주화운동에 관한 기록도 곳곳에 남아 있다. “광주에서 대학생 50명이 죽고 청년들도 무수하게 많이 죽고 그곳의 시민들도 죽고 한 1000명이나 사람들이 죽었다고 한다”(1980년 5월 21일), “김종태 청년이 광주항쟁 죽음을 보면서 답답한 맘 분을 참지 못해서 자기 몸에 불을 붙였다고 한다”(1980년 6월 21일)는 등 생생한 증언이 빼곡하다. 이 책에는 한씨의 어린 시절과 어린 자식들을 키우며 궂은일을 했던 시기의 일기가 회고문 형식으로 실렸고 1970∼1980년대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 겪은 시국 사건의 내용도 담겼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 될성부른 창작 뮤지컬 골라주세요

    될성부른 창작 뮤지컬 골라주세요

    서울시뮤지컬단은 오는 29일까지 서울 종로구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힘내라, 우리 뮤지컬’을 선보인다. ‘2013 창작뮤지컬 기획개발 공모’에서 선정된 창작 뮤지컬 3편을 제작단계별로 만날 수 있는 시간이다. 19일까지 오르는 쥬크박스 뮤지컬 ‘문나이트’는 정식 공연을 올리기 전에 관객의 반응을 살피기 위해 마련하는 ‘트라이 아웃’ 공연이다. 1990년대 대중문화 전성기에 춤꾼들의 아지트이자 춤의 메카였던 서울 이태원의 나이트클럽 문나이트를 배경으로 당시 유행하던 음악과 춤을 재연했다. KBS ‘유머1번지’, ‘쇼비디오자키’ 등을 만든 이상훈 PD가 연출을 맡고, 비보이 40여명이 출연해 1990년대 문화와 추억을 전한다. 개그맨 심현섭이 나이트클럽 디스크 자키로 변신해 코믹 연기를 펼친다. 이어지는 ‘경성 딴싱퀸’(23~25일)은 1936년 일제강점기의 이야기다. 일본이 경성에서 사교댄스를 금지하고 댄스홀을 폐쇄하자 지식인과 예술가들이 조선총독부에 ‘딴스홀을 허하라’는 탄원서를 제출했던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했다. 극단 아리랑이 내놓은 연극 ‘경성에 딴스홀을 허하라’(2009)의 뮤지컬 버전이다. 주인공들이 조선과 일본의 자존심을 건 댄스 대회를 준비하며 춤을 통해 사랑과 우정, 조국을 알아간다는 내용이다. 음악극 ‘십이야’, 연극 ‘뿔’로 주목받은 연출가 김관과 이민형이 함께 연출한 이 작품은 쇼케이스 형식으로 선보일 예정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을 소재로 한 ‘헤이, 미스터 디제이’(28~29일)는 낭독극 형식이다. 납치사건이 있던 1973년과 2009년을 오가면서 ‘작전명 KT’의 비밀을 풀어낸다. 당시 정치적 이유로 금지곡이던 한대수의 ‘물 좀 주소’와 ‘행복의 나라로’, 이장희의 ‘그건 너’, 양희은의 ‘그날’, 김민기의 ‘아침이슬’ 등으로 시대상을 전한다. 개그맨 김늘메가 출연한다. 서울뮤지컬단은 이번 공연을 통해 전문가와 관객의 의견을 수렴하고 작품을 보완하면서 서울시뮤지컬단의 대표 레퍼토리의 가능성도 점쳐볼 계획이다. 각 공연 1만원, 모든 작품 패키지 2만 4000원. (02)399-1114. 최여경 기자 kid@seoul.co.kr
  • [1달러 100엔 시대] 日 엔저- 주가·경기상승 지속…연말 104엔대까지 떨어질 듯

    [1달러 100엔 시대] 日 엔저- 주가·경기상승 지속…연말 104엔대까지 떨어질 듯

    엔·달러 환율이 10일 도쿄 외환시장에서 2009년 4월 14일 이후 약 4년 1개월만에 100엔을 돌파했다. 본격적인 엔저(엔화 가치 약세) 현상이 언제까지, 어느 수준까지 계속될지 주목된다. 일본의 환율결정시스템이 변동환율제로 바뀐 1973년 2월 달러당 308엔으로 시작한 엔화 가치는 경제성장과 함께 줄곧 올라 2009년 4월 이후로는 달러당 100엔을 밑돌았다. 동일본 대지진 후인 2011년 10월 31일에는 사상 최고치인 75.32엔까지 올랐다. 하지만 지난해 자민당 정권이 가시화되면서 엔저가 시작됐다. 중의원 해산 선언이 나온 지난해 11월 14일 달러당 79.91엔(도쿄 종가)으로 출발한 엔·달러 환율은 일본은행의 ‘2% 물가상승 목표 협정’과 일본은행 총재 교체 등을 계기로 지난달 22일 쯤에는 99엔대 후반까지 올랐다. 환율이 올랐다는 것은 엔화 가치가 약세라는 의미다. 엔화 환율은 달러당 100엔 돌파를 목전에 두고 한참을 머뭇거리더니 결국 이날 미국 경제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면서 100엔을 넘어섰다. 일본은행이 지난달 4일 향후 2년 간 시중자금 공급량을 2배로 늘리는 획기적인 금융완화를 시행키로 한 만큼 앞으로 ‘엔저-주가상승-경기상승’의 흐름이 지속될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세계 주요 금융기관들은 엔화 가치가 연말까지 104엔대까지 떨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도쿄 이종락 특파원 jrlee@seoul.co.kr
  • 윤리는 행복한 삶을 위해 익혀야 할 기술

    반부패든 뭐든, 그러니까 좋은 일 하자는 건데 그게 왜 그리 말처럼 쉽지 않을까. 착착착 해버리면 그뿐일 것만 같은데 말이다. 철학자들이 교과목으로서의 ‘도덕’이나 ‘국민윤리’ 같은 것들을 경멸하는 이유다. 이 교과목들은 현실에서 일어나는 복잡미묘한 문제들에 대한 고민을 유도해야 하는데, 고민은커녕 부모에 효도하고, 나라에 충성하고, 형제 간에 우애 있으면 이 온 세상 우주에 평화만 가득하리라는, 척 들어도 하품 나는 고리타분한 얘기들만 늘어놓을 뿐이다. ‘윤리, 세상을 만나다’(도성달 지음,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펴냄)는 그런 면에서 참고할 법한 책이다. 저자는 윤리를 엄청 대단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 ‘행복하게 살기 위해 익혀야 할 기술’ 정도로 정의한다. 병법 그 자체가 대단한 필승비법이 아니듯, 윤리도 그 자체가 엄청난 비밀을 숨기고 있는 게 아니라 행복의 기술, 즉 ‘아트 오브 해피니스’(Art of Happiness)라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가 세심하게 써나가는 부분은 복잡한 철학적 논의보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행복과 불행의 마찰지점이다. 가령, 1973년 박정희 정권의 미니스커트 단속, 항공사 상의 유니폼이 조금 짧은데서 비롯된 배꼽티 논란, 청계천에서 비키니 입고 일광욕을 즐기는 외국인 문제, 서울시가 쿨비즈를 내세워 민원 파트 이외 공무원들에게 허용한 한여름의 반바지와 샌들 차림 등의 문제가 나온다. 어느 상황에서 어느 정도의 옷차림이 적정한가, 라는 질문이다. 이를 통해 저자는 윤리란 결국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마음 쓰는 것, 이 모든 행위들”이라고 정의한다. 무엇보다 이 책의 장점은 윤리적 삶이라는 것이 타인을 위해 목숨쯤은 가볍게 버려야 하는, 그래서 뭔가 특출 나고 대단한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선입관에서 벗어나게 해준다는 점이다. 또 하나의 장점은 저자가 그 윤리적 삶의 기초를 두고 이러하다라고 정의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저자는 윤리를 두고 “자신이 어떤 삶의 원리에 따라 어떤 유형의 인간으로 살겠다는 삶의 방식에 대한 선택의 문제이며, 그 결단은 이성보다는 의지의 문제”라고 해뒀다. 1만 6000원.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 [부고] 47개월 최장수 육군참모총장 이세호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사 동기(2기)로, 제21대 육군참모총장(1975년 3월∼1979년 1월)을 지낸 이세호 예비역 대장이 28일 오전 노환으로 별세했다. 88세. 고인은 1946년 육사 2기로 임관한 이후 37사단장, 28사단장, 육군보병학교장, 육군사관학교장, 6군단장, 주월 한국군사령관, 제3군사령관 등을 역임했다. 또 1969년 주월 한국군사령관으로 취임해 1973년 철수할 때까지 4년 동안 1100여회의 대대급 이상 대부대 작전, 57만여회의 소부대 작전을 지휘했다. 베트남 철수 이후에는 제3야전군 창설 준비위원장으로 야전군을 창설하고 초대 3군사령관을 지냈다. 고인은 1975년 3월부터 1979년 1월까지 47개월간 육군참모총장을 맡아 역대 최장수 총장직 수행 기록을 남겼다. 재임기간 대전차 방어를 위해 토우중대를 창설했고 적 지하갱도 탐지 능력을 보강할 목적으로 시추 장비를 도입했다. 또 교육참모부를 신설하고 예비군 전력화를 완성하는 등 향토 방위력을 강화했다. 이런 공을 인정받아 태극 무공훈장(1회), 충무 무공훈장(4회), 을지 무공훈장(2회), 화랑 무공훈장(1회)을 수상했다. 육군은 유족들과의 협의를 거쳐 고인의 영결식을 30일 오전 10시 국립 대전현충원에서 조정환 육군참모총장을 장의위원장으로 하는 ‘육군장’으로 치르기로 했다. 유족은 오영숙 여사와 3남 2녀.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발인은 30일 오전 6시. 고인은 국립 대전현충원 장군 2묘역에 안장된다.(02)2258-5940.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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