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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달 중순까지 무더위

    지난달 중부지역에 장맛비가 집중되고 남부지역에는 불볕더위가 이어진 가운데 제주도의 열대야 일수가 1973년 이래 가장 많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또 장마 전선이 완전히 소멸되는 이달에는 평년보다 무더운 날이 많고 다음 달 중순까지 여름철 무더위가 지속될 전망이다. 기상청은 지난달 전국 평균 기온이 섭씨 26.3도로 평년(24.5도)보다 1.8도 높았다고 1일 발표했다. 특히 남부지역과 제주도의 경우 지난달 초순부터 열대야(야간 최저 기온 25도 이상)와 폭염이 두드러졌다. 전국 45개 지점의 평균 열대야 일수는 6.6일로 나타났다. 이는 전국적으로 기상 관측 장비가 갖춰진 1973년 이후 1994년 7월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수치다. 특히 지난달 중부지역은 평균 열대야 일수가 3.7일에 그쳤지만 제주도는 26.5일로 1973년 이래 가장 많았다. 역대 가장 긴 장마에도 불구하고 지난달 전국 평균 강수량은 302㎜로 평년(289.7㎜)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않아 ‘반쪽 장마’임을 보여줬다. 서울의 강수량은 676.2㎜를 기록했고 시간당 30㎜ 이상의 강한 비가 내리는 날도 4일이나 됐다. 중부지역의 강수 일수는 평균 21.2일이었던 반면 제주도의 경우 4일로 40년 만에 가장 적었다. 특히 장마전선이 주로 북한 지역에 위치해 북한의 지난 한 달간 강수량은 592㎜로 평년(238.8㎜)보다 2.5배 많은 것도 특징이다. 기상청은 이달 기온과 관련, 평년(23~26도)보다 높을 것으로 전망했다. 초순에는 대기가 불안정해 국지적으로 많은 비가 올 때도 있겠지만 강수량은 평년과 비슷할 것으로 예측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데스크 시각] 박인비는 이미 전설이다/최병규 체육부 차장

    [데스크 시각] 박인비는 이미 전설이다/최병규 체육부 차장

    ‘골프’(Golf)란 단어는 스코틀랜드의 오래된 말로 ‘치다’는 뜻의 ‘고프’(Gouft)가 어원이다. 옛날, 영국 스코틀랜드 지방 북쪽 해안에는 링크스라 불리는 높낮이가 불규칙한 초원이 널려 있었는데, 멋진 잔디와 잡목이 우거진 작은 구릉이 이어진 모양새가 골프 코스로는 아주 그만이었다. 당시 링크스에 서식하고 있던 수천 마리의 들토끼들이 잔디를 갉아 먹은 뒤 짧고 평평해져 녹색의 풀빛이 뚜렷해진 부분을 ‘그린’이라 불렀고, 이 그린과 그린 사이에 양떼들이 밟고 지나가 평탄해진 넓은 길을 ‘페어웨이’라고 칭했다. 전설 같은 이야기지만, 스코틀랜드의 세인트 앤드루스 링크스는 사실 전설의 땅이다. 특히 이곳에 품은 7개 골프장 중에서도 1552년 만들어진 올드코스는 신비로 가득한 곳이다. 전·후반 각 11개홀의 왕복플레이가 2홀이 줄어 전체 18홀 1라운드의 표준이 된 것은 1764년. 첫 골프대회인 ‘디 오픈’은 우리나라로 치면 조선시대 철종 11년인 1860년에 시작돼 고종 13년인 1873년 올드코스로 옮겨졌다. 잔디 뿌리의 나이만 헤아려도 450년을 넘긴 올드코스에서 지금 또 다른 전설이 쓰여질 참이다. 박인비. 그가 올해 벌써 미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6승을 올리고 이제 7승째로 메이저 4연승, 지금까지 누구도 일궈내지 못한 ‘그랜드슬램’을 눈앞에 두고 있지만 사실 연승 행진에 불을 지핀 첫 승은 ‘전설’처럼 다가왔다. 지난 2월 혼다 LPGA 타일랜드대회. 아리야 주따누깐이 17번홀까지 선두를 달리며 태국인 첫 LPGA 챔피언이 되는 듯했지만 18번홀 벙커에서 3타를 잃어 눈물이 가득한 우승컵을 박인비에게 넘겨줬다. 골프의 절반은 ‘멘털’이다. 칭찬은 골프채도 춤추게 만든다. 올해 박인비가 그랬다. 그러나 그는 2008년 US여자오픈에서 투어 첫 우승 뒤 “이후 끝도 없는 어두운 터널을 지나는 느낌이었다”며 슬럼프를 기억하고 있다. 필드의 초록색만 봐도 겁에 질릴 정도였고, 대회에 나가는 건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의 느낌이었다니 고통스러운 나날이 짐작된다. 그러나 그는 지금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와 그 선대의 남자 선수들조차 일구지 못한 대기록을 정조준하고 있다. 몇 안 되는 골프 영화 ‘지상 최대의 게임’에서 실존 인물이자 1913년 US오픈 첫 아마추어 챔피언이었던 당시 20살 청년 프란시스 위멧이 던진 말이 그에게 딱 들어맞는다. “골프는 교훈을 준다. 그 가운데 첫째는 어떠한 불운도 감수하고 헤쳐나가는 미덕이다.” 올드코스와 박인비의 만남은 두 번째지만 고통의 세월이 있었기에 6년 전과는 사뭇 다르다. 전설은 그냥 만들어지지 않는다. 수백 년 먼지가 켜켜이 쌓였다고 해서 모두 전설이 되는 건 아니다. 거센 비와 바람, 어쩌지 못할 정도의 찌르는 아픔을 견뎌낸 뒤 비로소 전설은 만들어진다. 그런 의미에서 올드코스와 박인비, 이 둘이 가진 전설의 본질은 같다. 8월의 첫날 오후 3시 3분, 박인비가 브리티시여자오픈 1라운드 티박스에 올라섰다. 골프팬들뿐 아니라 국민 전체가 그랜드슬램 달성 여부에 목을 빼고 있다. 그러나 전설은 이미 이루어졌다. 박인비로 하나가 된 대한민국, 이게 바로 올드코스의 잔디 뿌리보다 더 깊고 진한 전설이다. cbk91065@seoul.co.kr
  • [부고] 여권 운동가 린디 보그스

    [부고] 여권 운동가 린디 보그스

    미국 하원의원으로 활동한 18년 동안 여성과 흑인의 편에서 일한 여권운동의 개척자 린디 보그스가 27일(현지시간) 노환으로 사망했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97세. 그는 1916년 루이지애나 초대 주지사를 지낸 정치인의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1938년 남편 토머스 헤일 보그스 전 의원이 알래스카주에서 비행기를 타고 가다 실종된 이후 1973년 3월 실시된 보궐선거에서 승리하면서 정치계에 입문했다. 고인은 1974년 ‘신용기회균등법’ 제정에 참여해 여성이 남성과 균등한 조건에서 금융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기초를 마련하는 등 여성과 소수자를 위한 의정 활동을 했고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민주당 대선 후보로 지명되던 1976년 여성 최초로 민주당전국위원회 의장을 맡기도 했다. 그는 또 1997년부터 2001년 초까지 빌 클린턴 정부에서 바티칸 대사로 활동했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보그스 전 의원의 별세 소식에 성명을 내고 “루이지애나의 첫 여성 의원으로 9선을 거치면서 그녀가 여성과 인권을 위해 싸워 온 위대한 유업은 미래의 세대에게도 큰 영감을 줄 것”이라고 애도했다.
  • [주말 영화]

    ■가케무샤(EBS 토요일 밤 11시) 16세기 중엽 일본의 전국시대. ‘가이의 호랑이’라 불리던 다케다 신겐은 견고하고 신중한 전략을 바탕으로 무적의 기마대를 앞세워 당대의 무장들을 공포에 떨게 했다. 덴쇼 원년 1573년, 50대에 접어든 신겐은 첫 상경전을 시도한다. 그는 오다 노부나가와 동맹을 맺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노다성을 궤멸 직전까지 몰아붙이는 데 성공하지만, 어이없이 저격을 당해 치명상을 입는다. 죽음을 예견한 신겐은 자신의 죽음을 적어도 3년간은 비밀로 하고, 그 기간에 영토 방비에만 힘쓰고 절대로 움직이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고 숨을 거둔다. 그의 유언을 지키고자 측근들은 신겐의 가케무샤, 즉 ‘그림자 무사’를 내세우기로 한다. 좀도둑 출신의 사형수였던 가케무샤는 자신이 신겐의 대역을 해야 한다는 사실에 거부감을 느끼지만, 신겐이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을 접한 후 신겐의 풍모는 물론 위엄까지 드러낼 정도로 변모한다. ■케빈 코스트너의 미스터 브룩스(OBS 일요일 밤 10시 15분) 사랑하는 아내와 딸을 둔 성공한 사업가 미스터 브룩스. 그의 또 다른 이름은 엄지 지문 외에는 흔적을 남기지 않는 예술적인 살인으로 유명한 연쇄살인마 섬 프린트다. 어느 날, 미스터 브룩스가 다시 살인을 저지르는 순간, 살인현장이 이웃에 사는 사진작가에게 목격되고 살인현장을 포착한 사진작가 스미스는 미스터 브룩스를 협박한다. 스미스가 살인현장을 목격했다는 단서를 발견한 강력계 베테랑 여형사 앳우드는 스미스를 미끼로 미스터 브룩스의 존재를 추적해 오고, 앳우드 형사와 미스터 브룩스의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게임이 시작된다. ■독립영화관-굿바이 홈런(KBS1 토요일 밤 1시 5분) 고교야구 경기장에는 프로구단 입단의 문턱 앞에 선 선수들의 사활을 건 승부와 관중석 사이에 앉아 있는 학부모, 몇몇 동료의 열띤 응원소리가 어우러져 묘한 긴장감을 자아낸다. 어느덧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지 오래인 이곳에서, 인생을 건 승부를 펼치는 선수들이 있다. 거듭된 패배 속에서 만년 꼴찌 타이틀을 거머쥔 원주고등학교 야구부. 한편 자조 섞인 푸념만 내뱉는 선수들의 의지를 고양시켜야 하는 감독과 코치 또한 절망감에 휩싸였다. 그렇게 좌절감과 패배의식에 휩싸인 원주고 야구부는 기적 같은 끝내기 홈런을 꿈꾸며 마지막 시합에 도전하는데….
  • [정전협정 60주년] 1993년 NPT탈퇴 등 적대적 관계로

    [정전협정 60주년] 1993년 NPT탈퇴 등 적대적 관계로

    북한과 유엔의 ‘애증’ 관계는 40년 전인 1973년 북한이 국제의원연맹(IPU)과 세계보건기구(WHO)에 가입해 유엔의 옵서버 자격을 얻으면서부터 시작됐다. 이전까지 북한과 유엔은 6·25전쟁에서 교전 당사자로 싸웠던 적대적 대결 관계였다. 유엔은 남한 정부 출범에 결정적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남한 정부에만 국제적 정통성을 부여한 당사자였기 때문에 북한은 유엔의 권능과 결정을 일절 부정하는 대(對)유엔 정책을 견지해 왔다. 하지만 1980년대 후반 사회주의권이 붕괴하면서 북한의 대외 정책에도 변화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북한은 국제사회에서의 영향력이 급격히 떨어지자 유엔 가입을 추진, 1991년 9월 17일 남한과 동시에 유엔 회원국이 됐다.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진입한 뒤 대외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유엔을 교두보로 활용하려는 계산이 깔려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전에도 북한은 두 차례 유엔 가입을 신청했었지만, 이는 가입 자체가 목적이라기보다는 남한만의 단독 가입을 막기 위한 정치적 대응 성격이 컸다. 실제로 북한은 유엔 가입 이후 대(對)서방 관계를 개선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 핵사찰을 수용하는 한편 나진선봉 개방 및 경제특구 정책을 실시하는 등 변화된 모습을 보였다. 국제사회의 인권문제 개선 요구에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북한은 얼마 지나지 않아 1993년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하고 1차 핵위기를 일으키면서 유엔과 적대적 관계로 돌아섰다. 1차 북핵 위기 당시 유엔은 북한의 NPT 탈퇴 선언 재고를 촉구한 결의 825호를 내놓은 데 이어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할 때마다 점차 수위를 높였으며, 2013년 2월 3차 핵실험까지 총 6개의 결의안을 채택했다. 3차 핵실험 이후에는 중국도 이전과 달리 유엔의 대북 제재에 비교적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북한은 유엔 가입 이후 최대 위기를 맞게 됐다. 북한의 유엔 탈퇴 가능성도 종종 거론돼 왔지만, 북한은 고립을 자초하는 대신 국제사회를 향한 항변의 통로로 유엔을 활용하는 쪽을 선택했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사설] 고엽제 피해 보상 미국정부가 적극 나서야

    베트남전에 파병되어 고엽제 후유증에 시달리는 피해자 1만 6579명이 미국 제조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사실상 패소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베트남전이 막을 내린 것이 1973년이니 피해자들은 최소한 40년 이상의 세월을 고통받으며 살아왔다. 고엽제 제조회사인 미국의 다우케미컬과 몬산토를 상대로 국내 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것이 1999년이라 판결을 기다린 세월만 14년이다. 더구나 이번 대법원 판결은 2006년 제조사의 배상책임을 인정한 2심 판결을 뒤집은 것이다. 당시의 희망이 오히려 피해자들에게는 더 큰 절망으로 다가왔을 것으로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다만 재판부가 피해자의 일부지만 고엽제 노출과 질병의 인과관계를 인정한 것은 의미가 없지는 않다. 하지만 이마저도 대상은 39명에 불과해 실망감을 털어버리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숫자가 아닐 수 없다. 한국과 미국, 베트남의 고엽제 피해자들은 그동안 고엽제 제조회사와 미국정부를 상대로 보상을 받고자 노력해 왔다. 하지만 미국법원에 제기한 소송은 대부분 법리에 가로막혀 기각되거나 패소했다. 대한민국고엽제전우회가 1994년 제기한 소송에서 미국 법원은 “외국인은 전쟁 중 발생한 어떤 피해에 대해서도 미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없다”는 자국 법률을 근거로 패소 판결했다. 베트남고엽제피해자협회가 2004년 미국 뉴욕주 연방법원에 낸 소송에서도 기각 논리는 “고엽제가 베트남에서 사용될 당시에는 국제법상 독극물이 아니었다”는 것이었다. 미국 법에 따라 패소하고, 우리 법원에서도 사실상 패소했으니 피해자들은 이제 하소연할 곳조차 사라진 셈이다. 판결과 관계없이, 젊은 시절 전장에서 피흘린 것도 모자라 평생을 질병에 시달리는 피해자들은 존중받아야 한다. 우리 사회가 ‘고엽제후유의증환자지원 등에 관한 법률’로 이들을 지원하는 것도 이런 인식이 공감대를 얻고 있기 때문이다. 소송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면 정부가 나서야 한다. 어떤 방식이든 미국 정부에 고엽제 피해자의 고통에 책임감을 갖도록 촉구해야 한다. 한·미동맹도 상대를 존중할 때 더욱 굳건해지는 법이다. 인도적 차원에서 미국 정부의 성의를 기대한다.
  • 의부가 성폭행, 11살 여아 임신…칠레서 낙태 논란

    칠레에서 낙태를 둘러싼 논란이 일고 있다. 10대 초반의 어린이가 성폭행으로 아기를 갖게 됐지만 낙태를 허용하지 않는 엄격한 법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엄마가 되게 된 때문이다. 낙태 논란에 불을 지핀 사건은 11살 여자어린이의 임신이다. 지난달 칠레에서는 한 노파가 성폭행사건을 경찰에 신고했다. 자신의 손녀가 의부로부터 성폭행을 당해 임신을 했다며 당국에 도움을 요청했다. 경찰은 바로 문제의 남자를 체포했다. 노파의 말대로 소녀는 아기를 가진 상태였다. 벌써 임신 3개월이었다. 충격적인 사건은 바로 낙태논란으로 이어졌다. 칠레에선 피노체트 철권정권 시절인 1973년 제정된 법에 따라 낙태가 금지돼 있다. 예외는 허용되지 않는다. 임신으로 여자의 생명이 위태로워질 수 있어도, 성폭행으로 임신을 한 경우에도 낙태는 불가능하다. 예외적으로 낙태를 허용하자는 주장은 이런 배경에서 나오고 있다. 칠레 사회단체들은 “예외규정을 두지 않고 무조건 낙태를 금지한 현행법은 불의하고 비도적적인 케케묵은 규정에 불과하다”며 개정을 촉구하고 있다. 현지 언론은 “일부 국제단체들까지 나서 낙태규정을 개정하라고 요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사진=자료사진 손영식 해외통신원 voniss@naver.com
  • 기술강국 코리아! 기능올림픽 18번째 우승

    기술강국 코리아! 기능올림픽 18번째 우승

    우리나라가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7일(현지시간) 폐막한 제42회 국제기능올림픽 대회에서 18번째 종합우승을 차지해 기술 강국의 면모를 전 세계에 과시했다. 한국은 46개 종목에 53개국 1027명이 참가한 이 대회에서 금메달 12개, 은메달 5개, 동메달 6개를 획득해 종합우승을 차지했다. 한국은 1967년 16회 스페인 대회에 처음 출전한 이후 1973년 서독 대회와 1975년 스페인 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면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이후 1977년 네덜란드 대회부터 올해 독일 대회까지 모두 27차례 출전해 일본, 스위스 등 전통적인 기능 강국과 경쟁하며 18번이나 종합우승을 차지했다. 특히 2007년 일본 대회부터 이번까지 4개 대회 연속 종합우승이라는 기록도 세웠다. 국가별 종합우승 횟수를 보면 한국이 18회로 압도적으로 많았고 일본 6회, 스위스 3회, 타이완·스페인·서독 각각 1회 등으로 뒤를 잇고 있다. 지난 2일 개막한 이번 대회에 한국은 46개 종목 중 37개 종목에 선수 41명이 나섰으며 참가한 모든 선수가 우수상 이상을 수상했다. 철골구조물 직종에 출전한 원현우(21·현대중공업) 선수가 최고점으로 대회 MVP인 알버트 비달상을 공동 수상했다. 지난 2년 동안 현대중공업 전문훈련시설에서 전담 교사와 함께 하루 14시간씩 훈련에 매진했던 원 선수는 이 종목에서 100점 만점에 98.94점을 받았다. 원 선수는 “밤낮으로 연습하며 수많은 땀방울을 흘렸는데 마침내 오랜 꿈을 이뤄 큰 보람을 느낀다”면서 “앞으로도 기술을 더욱 연마해 대한민국 명장은 물론 세계적인 기술자로 인정받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기능올림픽은 2년에 한 번씩 열리는 만 22세 이하(통합제조 및 메카트로닉스는 만 25세 이하) 젊은 기능인의 잔치로 연구 개발의 성과를 제품으로 구현하는 숙련 기술과 일부 서비스업의 세련미를 겨루는 종합 대회다. 대회 입상자에게는 금메달 6720만원, 은메달 3360만원, 동메달 2240만원 등 상금과 훈장을 수여한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포스코 45년… 그들을 기억합니다

    포스코 45년… 그들을 기억합니다

    포스코가 1968년 창사 이래 함께 근무한 전·현직 임직원 모두의 이름을 하나하나 새긴 조형물을 만들었다. 경기 불황 극복에는 무엇보다 사람을 아끼는 게 중요하다는 취지에서다. 포스코는 3일 경북 포항시 남구의 ‘포스코역사관’에서 개관 10주년을 맞아 임직원 5만 2000여명의 사번과 이름을 새긴 조형물 ‘포스코인의 혼’ 제막식을 가졌다고 밝혔다. 제막식에는 임직원과 지역주민뿐만 아니라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산업시찰단인 대학생 30여명도 참석했다. 참석자들에게는 감사의 떡과 기념품 등이 증정됐다. 역사관 2층 전시실에서 야외전시장으로 이어지는 벽면에 들어선 가로 1m, 세로 1.9m의 금속판에는 수많은 이름이 빼곡하다. 금속판 26개가 길이 26m에 걸쳐 늘어섰다. 여기에는 올해 초 입사한 새내기들의 이름도 포함됐다. 조형물 하단에는 25년 전 포항종합제철 설립과 1973년 제1고로 첫 출선 등 주요한 사사(社史)를 기록한 연혁도 함께 새겨졌다. 주변의 스피커에서는 매일 아침 공장에서 부르는 사가가 은은하게 흘러나온다. 그 앞에 선 퇴직자들로선 감회가 새로울 수밖에 없다. 현직들은 회사에 대한 자긍심을 느낀다. 황은연 포스코 부사장은 “포스코가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철강회사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은 선배들의 많은 노력과 희생정신이 있었기 때문”이라면서 “인재를 아끼는 기업이 위기도 슬기롭게 돌파하는 법”이라고 말했다. 한편 포스코는 본사와 계열사 직원들의 장기근속을 기념하고 포상하기 위해 4440만원 규모의 자사주 150주를 8~9일 장외에서 처분하기로 했다. 김경운 기자 kkwoon@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문단데뷔 40년 영원한 청년작가 박범신

    [김문이 만난사람] 문단데뷔 40년 영원한 청년작가 박범신

    그의 집은 ‘와초문학뜰’이다. 뜰 바로 아래에는 조용히 출렁이는 탑정호(塔亭湖)가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잔디 마당에는 조각가 류훈의 작품 ‘오늘 저녁 술 한잔 어때요’가 있다. 이 조각은 세 명의 인간형상이다. 하나는 담배를 피우며 시름에 빠진 중년의 노동자이고 나머지 둘은 서로 떠들다가 ‘술 한잔 하자’는 자세를 취하며 어른을 바라보는 젊은 노동자이다. 집 뒤에는 작은 정자가 있다. ‘흐르고 머무니 사람이다’(流留亭)라는 문패가 그럴듯하게 걸려 있다. 그가 직접 쓴 글씨로 새겨넣었다. 얼핏 보아도 붓글씨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그의 부인은 10년 동안 서예공부를 했다. 부인이 그가 쓴 ‘흐르고 머무니~’를 보더니 “10년 공부한 사람보다 더 잘쓰면 어떡하느냐”며 한동안 삐쳤다(?)고 한다. 정자 바로 앞에는 앙증맞은 작은 계곡이 있다. 물이 졸졸 흐르고 붕어새끼들이 이리저리 뛰놀기에 딱이다. 정자에서 몇 발짝 걸어가면 텃밭이 있다. 상추와 고추 등 푸성귀들이 자라고 있다. 글을 쓰다가 소일거리로 잠깐씩 들러 자라는 식물과의 대화를 통해 생명의 소중함을 새삼 느끼는 곳이다. 시간과 공간이 흐르는 곳,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홀로 가득 차고 따뜻이 비어 있는 집’이다. 이 집은 팬들을 위해 ‘행복한 만남’이라는 제목으로 1년에 봄, 가을 두 번 공개한다. 그럴 때면 전국 각지에서 200여명이 찾아온다. 글을 써서 인세로 장만한 집일까. “논산시에서 임대해 준 것이고 임대료는 내지 않고 있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집필실은 1층과 2층에 있다. 1층은 정자가 바라보이는 곳이고 2층은 호수가 내려다보인다. ‘영원한 청년작가’ 박범신. 최근 ‘와초문학뜰’에서 문단 데뷔 40년이 되는 해에 40번째 장편소설 ‘소금’을 썼다. ‘은교’ 이후 홀연히 고향 논산으로 내려간 그가 2년여의 침묵 끝에 발표한 작품이다.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와 ‘비즈니스’로 연결되면서 자본의 폭력성에 대한 ‘발언’을 모아 펴낸 3부작 중 마지막 작품이기도 하다. 거대한 자본의 세계 속에서 가족들을 위해 ‘붙박이 유랑인’으로 살 수밖에 없는, 그래서 가출할 수밖에 없는 아버지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지난달 26일 고향에서 첫 작품을 쓴 박씨와 와초문학뜰에서 만났다. 늘 그렇듯이 편하고 허름한 옷차림이다. 마당에서 만남이 이루어지다 보니 정자 얘기부터 먼저 나왔다. “원래는 마음 심(心)자를 써서 ‘심유정’이라고 이름을 지었는데 뻥이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음이 머무는 적은 없어요. 그래서 흐를 유(流)자로 바꿨더니 뻥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지요. 원래 붓글씨를 배워 본 적이 없는데 제가 직접 먹을 갈고 화선지에 쓰고 현판에 새겨 달아놓았습니다.” 머물고 흐르는 것이 곧 마음에 있는 것은 아닐까. 그는 잠시 후 배도 고픈데 식당으로 가자고 했다. 미리 와 있던 두 명의 손님과 함께 인근 민물고기 매운탕집으로 옮겼다. 식당 주인이 그를 단골손님처럼 반긴다. 그는 자리에 앉으면서 주인 아주머니에게 ‘닭도리탕’과 ‘매운탕’을 주문하고 “막걸리 두 병과 소주 한 병 주세요”라고 했다. 주종과 주량을 물었더니 “오늘은 속이 별로 안 좋아 막걸리 두어 잔만 하겠다”고 말한다. 술은 많이 마시지 못하지만 잠자기 전 소주 반 병 정도나 과실주를 주로 마신다고 했다. 2년 동안 고향에서 어떻게 지냈을까. “원래는 고향으로 내려올 생각을 안 했는데 하루는 40대의 젊은 시장이 ‘형님, 고향으로 오시죠’라고 해요. 그 형님 소리가 듣기 좋더라구요. 그래서 결정했습니다. 여기에서 2년 동안 살면서 금강문화권을 다시 공부했습니다. 탑정호수 건너편에 황산벌이 있습니다. 계백이 깨진 곳이지요. 이 금강문화권은 또 백제와 후백제의 멸망, 그리고 동학군이 최후를 맞이한 곳이기도 합니다. 원혼이 많아 한밤중에 귀신이 자주 나타나는 곳이기도 합니다.” 하루는 이런 일이 있었단다. 밤에 술을 마시고 마당에 앉아 있는데 누가 절뚝거리며 다가오더라는 것. 누구냐고 했더니 ‘계백 장군 똘마니 장수’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왜 안 가고 그러고 있느냐고 재차 물었더니 장수는 ‘계백 장군을 버리고 갈 수 없어서’라고 했단다. 얘기를 흥미롭게 듣다가 웃으면서 패망한 군인들의 원혼과 함께 있어서 외롭지 않겠다고 했더니 “뼛골만 있어도 생명을 불어넣고 그런 것이 작가가 아니냐. 너무나 많은 이야기가 묻혀 있는 곳이다. 2년 동안 고향사랑을 많이 했다”고 말한다. 술 한 잔을 마시고 담배 한 대를 입에 문다. “어린 시절 가난했던 추억만 가지고 있어서 고향에 오기가 싫었는데 지금은 아니다”라며 잠시 창밖을 바라본다. 40번째 장편소설 ‘소금’에 대해 얘기한다. “과거에는 어머니들이 희생했다면 요즘은 아버지들입니다. 베이비부머 시대의 아버지들이 쓸쓸하고 외롭습니다. 가부장의 권위도 해체되고, 아버지는 늘 자식을 위해 과실을 따오고 30대의 장성한 자식조차 여전히 아버지 등에 빨대를 꽂아 과실을 빨아들이고 있습니다. 거대한 소비문명이 자식들을 빼앗아 갔습니다. 이것은 건강하지 못한 사회입니다. 이 시대의 아버지들은 어디에서 부랑하고 있는지, 지난 반 세기동안 무엇을 얻었고 잃었는지 묻고 싶었습니다. 아버지들이 젊었을 때에는 자식을 위해 수시로 돈을 뺄 수 있는 통장 역할을 하고 나이 들어서는 보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누군가 말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이 소설은 가족을 버리고 끝내 ‘가출하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자본주의가 만들어 낸 거대한 폭력과 쓸쓸함을 비판하면서 특정한 아버지가 아닌 동시대를 살아온 ‘아버지1~아버지10’을 다루고 있다. 애당초 젊은이들에게 읽히고 싶어 시작한 소설인데 정작 젊은이들에게 반발을 일으킬까 봐 걱정되기도 한다며 웃는다. ‘은교’의 경우 시간의 반란을 그리기 위해 남자 주인공을 원래 77세로 설정했다. 그런데 출판사에서 젊은이들이 읽지 않는다며 65세로 해달라고 했다. 겨우 타협점을 찾은 것이 70세. 뚜껑을 열었더니 예상과 달리 20대 여자들이 책을 많이 본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이번에 쓴 ‘소금’은 그렇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소금’은 지금까지 7만부를 찍었다. “요즘 글을 쓰는 사람은 많고 독서 인구는 그에 비해 적어요. 예를 들어 문학책이 10만부가 팔렸다고 할 때 문학을 알고 사는 사람은 2만명, 나머지 8만명은 사회적 이슈이거나 자극적인 데서 책을 구입합니다. 5만 독자를 유지한다는 것은 행복입니다.” “문학은 작업”이라고 말하면서 우리 수준이 문화적으로 높아져야 잘못된 제도에 압력을 가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아울러 소설이란 마라톤과 같으며 빈틈없는 전략으로 뒤집기를 잘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요즘 작가들은 스타트는 좋으나 체력이 문제라면서 “소설이란 걸어갈수록 강력한 힘을 발휘해야 하며 달의 뒷면, 어두운 면까지 가는 것이 문학”이라고 설명한다. 정신적인 끈기와 투지가 있어야 하며 작가의 뒷심이 약하면 시대를 바라보는 뒷심 또한 약한 것이라고 한다. 요즘 젊은 작가들은 정보에 의존해 쓰다 보니 이야기를 확실히 장악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지적한다. 그는 신문을 잘 안 본다고 했다. 나머지 인생을 굳이 정보에 의존해서 살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한순간 달의 뒷면을 볼 수 있는 직관력으로 살아가려고 한단다. “30대에는 사랑받고 싶어 넓이에 정체성을 두고 글을 썼고 40대를 넘기면서 깊이를 추구했습니다. 치열하게, 그리고 정직하게 글을 써오는 동안 벌써 40년 연애한 것처럼 세월이 지나갔습니다. 저 자신에게 아직도 순정주의 문학이 남아 있습니다. 지금도 연애한다고 생각하니 행복합니다.” 그는 히말라야 등정을 15차례나 했다. 존재의 등반이다. 자신의 내면 속으로 걷기, 초월적인 세계를 실감하기, 인간의 갈망이 있는 그곳에서 불멸과 순간, 현세적 삶과 초월적 삶을 경험한다는 것이다. 그의 작품 ‘비우니 향기롭다’, ‘나마스테’, ‘촐라체’ 등이 이 같은 산악 세계에서 비롯되고 있다. 지금도 걷는 것은 누구보다도 자신있어 한다. 앞으로 그의 ‘문학적 걷기’는 어떻게 될까. “여기 올 때 고전소설 몇십 권을 가져왔는데 다시 틈틈이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밀란 쿤데라 작품도 읽어봤고, 아마 다음은 역사소설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조선 후기 노론의 기반이 되는 곳이 바로 논산이거든요.” 인터뷰를 마치면서 생활의 모토에 대해 물었더니 ‘가난한 밥상’과 ‘쓸쓸한 배회’라고 했다. 달랑 물에 만 밥과 김치를 먹으며 육체와 정신의 기름기를 허용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선임기자 km@seoul.co.kr ■ 박범신은 누구 1946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났다. 원광대 국문과와 고려대 교육대학원을 졸업했다. 197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여름의 잔해’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78년까지 소외된 계층을 다룬 중·단편 소설을 발표하며 문제작가로 주목받았다. 1979년 장편소설 ‘죽음보다 깊은 잠’, ‘풀잎처럼 눕다’ 등이 베스트셀러가 됐다. 1981년 ‘겨울강 하늬바람’으로 ‘대한민국문학상’을 수상했다. 이 밖에 주요 장편소설로는 ‘불의 나라’, ‘더러운 책상’, ‘나마스테’, ‘촐라체’, ‘고산자’, ‘은교’,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 ‘비즈니스’ 등이 있다. 김동리문학상(2001년), 만해문학상(2003년), 한무숙문학상(2005년), 대상문학상(2009년) 등을 수상했다. 현재 상명대 석좌교수로 있다.
  • [씨줄날줄] 한국의 부자 세계의 부자/손성진 수석논설위원

    경주 최부잣집은 조선시대 영남에서 대표적인 부자 가문이었다. 12대 300여년간 만석꾼으로 살았다. 독립운동 자금을 대기도 한 최부잣집은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가문으로도 유명하다. 집 안에는 ‘주변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시집 온 며느리는 3년간 무명옷을 입어라’ 등의 ‘육훈’(六訓)이 적혀 있다. 6·25 이후 기업가들은 거부의 반열에 올랐다. 당시에는 종합소득 신고액으로 부자 순위를 알 수 있었다. 1970년에는 한진 조중훈씨가 1위, 경남기업 정원성씨가 2위, 현대건설 정주영씨가 3위였다. 조중훈씨는 베트남 특수를 타고 1968년부터 내리 4년 1위를 차지했다. 1972년에는 서울통상 대표 최준규씨와 같은 회사 조성곤씨가 일약 1위와 2위로 뛰어올랐는데, 서울통상은 가발제조업체였다. 1973년에는 부산 동명목재 소유주 강석진씨가 1위에 등극했다. 현재 세계 최고의 부자는 누구일까.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 조사에 따르면 1위는 멕시코의 통신 회사 텔맥스 텔레콤 회장인 카를로스 슬림으로, 재산은 690억 달러에 이른다. 2위는 미국의 마이크로소프트 창립자 빌 게이츠(560억 달러), 3위는 미국의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 워런 버핏(500억 달러)이다.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은 106위, 현대차그룹 정몽구 회장은 161위다. 그렇다면, 역사상 최고의 부자는? 미국 ‘셀러브리티 넷워스’라는 곳에서 ‘인류 역사상 세계 최고부자 25’를 발표했다. 1위에는 14세기 아프리카 말리 왕국의 ‘황금왕’인 ‘만사 무사’가 올랐다. 그의 재산은 현재 가치로 약 4000억 달러나 된다. 20년간 통치하며 800여명의 아내를 거느렸다고 한다. 2위는 로스차일드(3500억 달러), 3위는 록펠러(3400억 달러), 4위는 강철왕 앤드루 카네기(3100억 달러)로 매겨졌다. 로스차일드는 독일계 유대 금융자본가다. 로스차일드의 재산은 드러나지 않은 게 많다고 한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와 체이스맨해튼은행이 이 가문에서 만든 은행이다. 미국의 석유재벌 록펠러(1839~1937)는 생시에 미국에서 생산되는 석유의 95%를 손에 쥔 독점으로 엄청난 돈을 모았다. 얼마 전 재벌닷컴이 매긴 올해 국내 개인재산 순위는 1위 이건희 회장을 필두로 정몽구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이 뒤를 이었다. 부자들의 순위와 재산변동을 보면 두 가지가 느껴진다. 경제는 불황 속에서 헤매는데 억만장자는 매년 늘어나고 그들의 재산도 증가한다는 사실이다. 또 하나는 2세, 3세들의 급부상이다. 양극화와 부의 대물림이 읽히는 것이다. 손성진 수석논설위원 sonsj@seoul.co.kr
  • [김희옥 생각과 실천] 국민의 영토권, NLL

    [김희옥 생각과 실천] 국민의 영토권, NLL

    2002년 6월 29일 오전 10시쯤, 북한 경비정 2척이 서해 북방한계선인 NLL을 넘어 우리 해군 고속정을 기습공격했다. 욱일승천의 기세로 월드컵 4강에 오른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의 경기가 예정되어 있는 축제일에 북한의 공격으로 우리의 해군 승조원 6명이 전사하고 18명이 부상을 입었다. 북한 경비정도 30여명의 사상자를 낸 채 화염에 휩싸여 퇴각했다. 꽃다운 청춘의 우리 해병들이 무엇 때문에 희생된 전투였던가. 그들의 피로 지킨 서해 북방한계선이 최근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NLL에 관한 전직 대통령의 남북정상회담 발언이 공개되고, 지난 대선과정에서 여권이 이 발언록을 입수했는지의 진위 여부를 놓고 대립이 심화되는 양상이다. 그러나 어떠한 논의가 있더라도 대한민국의 국가통치권이 현실적·실효적으로 지배하는 NLL의 중요성을 놓쳐서는 안 된다. 우리의 헌법 제3조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는 오랜 역사 위에서 정립된 지리적 개념이다. 원래 국가는 일정한 지역을 지배하는 바탕으로 국민과 국가통치권을 갖추어서 성립한다. 국가인 이상 자국의 영역 안에서는 배타적 지배를 할 수 있다. 이러한 국가영역에 대한 국가권력이 바로 영토고권이다. 대한민국의 영토로 헌법상 규정된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 중 실효적으로 국가통치권이 행사되지 못하고 있는 북한지역도 당연히 우리 영토로 인정할 것인가에 관해서는 의견 대립이 다소 있다. 헌법 제3조는 비록 현재는 대한민국의 국가통치권이 휴전선 남쪽에서만 행사되고 그 북쪽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으나 한국의 헌법과 법률이 휴전선 북쪽 지역에도 적용된다는 점을 규정한다. 대한민국의 영역은 구한말의 국가영역 위에 위치한 것이며, 휴전선 북쪽 지역은 소위 인민공화국이 불법 점령한 미수복 지역이라는 점을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비록 북한이 국제사회에서 하나의 주권국가로 존속하고 있고 평화적 공존과 통일을 위하여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등에서 특례를 두고 있더라도 헌법 제3조 영토조항의 예외라고 볼 수는 없다. 북방한계선에 대해 논의해도 그렇다. 헌법 제3조의 국가영역 규정과 직결되지는 않지만 대한민국의 국가통치권이 실효적으로 지배하는 영역에 관한 논의이므로 모든 국민이 ‘영토권자’의 지위에서 관심을 가진다는 점이 중요하다.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을 체결하면서 유엔군 측과 공산군 측은 육상경계선만 설정하고 해양경계선을 정하지 못하였는데, 이후 클라크 유엔군 사령관이 한반도 수역에서 우발적 무력충돌 가능성을 예방한다는 취지에서 한국 측 해군과 공군의 초계활동을 제한하기 위하여 정한 북방한계선이 바로 NLL이다. 동해의 NLL은 육지 군사분계선의 연장선을 기준으로 하고, 서해의 NLL은 서해 5개 도서와 북한지역과의 중간선을 기준으로 한강 하구로부터 서북쪽으로 12개 좌표를 연결하여 설정한 것이다. 이에 북한은 일방적으로 설정한 것이라고 하면서 NLL을 부정, 재설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북한은 1973년 이후 여러 차례 침범을 하면서 NLL을 부정하고 있으나 좌초된 북한 선박을 NLL상에서 인계받거나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 등에서 NLL을 인정하고 준수해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므로 국민의 영토권 등과 관련하여, 대한민국의 국가권력이 현실적·실효적으로 지배하는 한계선인 NLL의 유지·수호는 대한민국 역사의 책무이자 국민의 소임이다. 11년 전의 전투에서 희생된 6명의 용사를 기리는 영화가 올 하반기에 개봉될 예정이라고 한다. 성금 모금에 참여한 국민이 6만명을 넘어섰고, 인터넷 크라우드펀딩에 참여한 80%가 20~30대라는 보도도 접할 수 있다. 아무리 정치적 논란이 있어도 지혜로운 국민들은 NLL에서 조국의 미래와 희망을 분명하게 보는 것 같다.
  • [씨줄날줄] 수능 로또 베트남어/박현갑 논설위원

    1226년 ‘화산 이씨’의 시조가 된 한 외국인이 황해도 옹진군 화산에 도착한다. 베트남 최초의 독립국가를 세운 리(Ly) 왕조의 왕자인 이용상(Ly Long Tuong)이다. 외척 진(Tran)의 쿠데타로 고국을 떠나 중국으로 가던 중 풍랑을 만나 옹진에 도착한 것으로 보인다. 이용상은 당시 몽골의 침입을 받은 고려를 도와 몽골군과 싸워 공을 세운다. 고려왕으로부터 화산군(花山君)에 봉해진 그는 고려 여인과 결혼해 정착한다. 베트남 정부는 리 왕조에 대한 국민의 여망을 감안해 해마다 리 왕조 건국일인 3월 15일 제사를 지내는데 이때 화산 이씨 종친회장이 참석한다고 한다. 베트남은 우리나라와 닮은 점이 많다. 같은 한자문화권으로 유교, 불교 등 문화와 풍습이 비슷하다. 36년간 일제 지배를 받았던 우리처럼 베트남은 87년간(1858~1945) 프랑스 통치 아래 있었다.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던 한국인과 베트남인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를 지칭하는 ‘라이따이한’은 우리가 가해자가 된 경우다. 1964∼1973년 파병된 한국군, 기술자와 현지 베트남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라이따이한 1만여명은 ‘버려진 자식’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았다. 양국은 수교 이후 활발한 경제협력을 하고 있다. 우리 정부가 국제결혼 분야의 전문성을 보유한 국제결혼 이민관을 베트남에 파견할 정도로 우리나라 남성과 결혼하는 베트남 여성들도 적지 않다. 언어 또한 비슷하다. 베트남어는 한자처럼 상형문자가 아니라 우리말처럼 발음원칙에 따라 형성된 문자다. 음의 높낮이와 굴절을 뜻하는 성조가 있어 힘든 점도 있으나 베트남어 어원의 상당수가 중국 한자어에서 유래돼 발음을 들어보면 사전을 뒤지지 않고도 뜻을 알 수 있는 단어가 많다. 베트남어로 중국은 ‘쭝꾸옥’, 미국은 ‘미꾸옥’, 기숙사는 ‘끼뚝싸’, 음악은 ‘엄냑’이라고 한다. 2014학년도 수능 6월 모의평가 제2 외국어·한문 영역에서 베트남어를 택한 수험생이 15.8%로 일본어(22.3%), 중국어(17.3%) 다음으로 많았다. 베트남어를 가르치는 곳은 전국에서 충남외고 한 곳뿐이다. 지난해 아랍어 인기에서 드러났듯 단기간 공부해도 상위등급을 받기가 쉽다는 점을 노린 ‘로또 수험생’이 많기 때문일까. 베트남어를 가르치는 학원도 성황이란다. 교육부가 2011년 베트남어를 교육과정에 포함시킨 것은 늘어나는 베트남 다문화가정 자녀들에 대한 배려에서였다. 베트남어를 선택한 수험생들이 이를 계기로 베트남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서도 더욱 관심을 갖게 된다면 다문화시대에 바람직한 일일 것이다. 박현갑 논설위원 eagleduo@seoul.co.kr
  • [주말 인사이드] 15년 동안 다섯 번 연임 신화 쓴 박종원 코리안리 부회장의 경영 철학

    [주말 인사이드] 15년 동안 다섯 번 연임 신화 쓴 박종원 코리안리 부회장의 경영 철학

    “내 애인(코리안리)은 앞으로도 잘될 거야.” 코리안리의 사장으로 ‘15년 5연임’의 신화를 쓰고 최고경영자(CEO) 자리에서 물러난 박종원(69) 부회장은 회사의 미래에 대해 이렇게 말하며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박 부회장은 코리안리를 ‘야생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정원’으로 만들겠다는 생각에 15년간 모든 열정과 아이디어를 쏟아냈다. 막상 물러나고 보니 그것은 큰 짐이었다. 28일 서울 종로구 수송동 이마빌딩 사무실에서 만난 박 부회장은 홀가분해 보였다. 박 부회장은 이른바 ‘성공한 낙하산’으로 불린다. 관료 출신으로 이곳에 와 무너지기 직전의 회사를 아시아 1위, 세계 10위의 재보험사로 탈바꿈시켰기 때문이다. 대규모 공공기관장 물갈이를 앞두고 불거진 관치 논란에 대해 박 부회장은 과거와 달리 시장이 민간 주도형으로 바뀌어서 관(官)이 개입할 여지가 많이 줄어들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공직을 떠났거나 떠날 후배들에게는 을(乙)의 입장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기 자신에 대해 자부심을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상대방도 뛰어나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해하고 타협할 대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공무원은 큰 틀에서 정책을 끈질기게 추진하는 훈련이 돼 있으므로 겸허한 자세로 임할 경우 낙하산 논란을 불식시킬 수 있을 만큼 훌륭하게 경영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부회장은 1998년 7월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공보관을 끝으로 공직을 떠나 당시 대한재보험 사장이 됐다. 박 부회장이 사무관 시절 보험을 담당했던 것이 인연이 됐다. 외환 위기가 한창이던 시기였다. 대한재보험은 1963년 정부 소유의 공사로 설립됐고 1978년 민영화됐다. 외환 위기 당시에도 최대 주주는 지금과 같이 원혁희(87) 회장 일가로 10.2%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다. 사장 제안을 받기 전 원 회장과 박 부회장 간의 개인적 인연은 없었다. 1998년 7월 취임 당시 대한재보험은 파산 직전이었다. 첫해 2800억원대의 당기 순손실을 볼 판이었다. 회계연도 결산을 앞두고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8개월뿐이었다. 혹독한 구조조정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그는 취임사에서 “작금의 위기를 헤쳐 나갈 주체는 바로 이 자리에 모인 우리 자신”이라면서 “고통과 희생을 감내하고 앞으로 전진할 것인지, 아니면 그대로 서 있다가 최후를 맞이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앞으로 닥쳐올 전쟁과 같은 고통과 시련에 대응해 전의에 불타는 야전 사령관과 같은 각오로 이 자리에 섰다”고도 했다. 이른바 ‘야성(野性) 경영’의 시작이었다. 취임 두 달 만에 282명이었던 임직원의 3분의1(87명)이 회사를 떠났다. 박 부회장은 “사람이 암에 걸리면 암 덩어리를 찾아내 떼어내야 살 수 있듯이 회사도 생존하기 위해서는 문제점을 찾아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것은 지금도 가슴 아픈 경험이었다. 박 부회장은 구조조정 규모가 워낙 커 조직 내 동요가 컸지만 중심을 잡아준 노조위원장이 있어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당시 노조위원장이었던 이호성 부장은 조직과 회사를 살려야 한다며 구조조정안을 받아들였다. 그 결과 1999년 3월 끝난 1998년 회계연도의 당기 순손실은 20억원으로, 예상치의 140분의1로 줄어들었다. 외환 위기 전 많은 기업이 그랬듯이 코리안리도 방만 경영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구조조정 이전 코리안리의 매출은 1조 1700억원에 세후 당기순익이 37억원으로 1인당 매출 41억 5000만원, 1인당 순익 1000만원이었다. 지금은 1인당 매출 223억 1000만원에 1인당 순익 5억 3000만원이다. 1인당 매출은 5.4배, 1인당 순익은 53배로 늘어났다. 구조조정 이후 조직 효율화와 인력 양성에 모든 것을 쏟은 결과다. 물론 순항만 한 것은 아니다. 회사가 안착하기 시작하자 무사안일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살아났다는 안도감에 “이제는 쉬어 가자”는 목소리가 조직 내에서 확산됐다. 2003년 일본의 재보험사를 제치고 처음으로 아시아 1위로 등극하자 자신감은 점차 자만심으로 변해 갔다. 국내 금융사 가운데 아시아 1위에 오른 회사가 없다는 점에서 그럴 만한 충분한 이유가 되기도 했지만 시장은 이를 허용할 상황이 아니었다. 박 부회장은 “미끄럼틀을 타고 올라가다가 중간에 쉬면 아래로 내려온다”며 전과 같은 업무 강도를 주문했다. 그리고 직원들의 야성을 깨우쳐야겠다는 생각에 고민하다 2004년 백두대간 종주를 시작했다. 임직원이 3개 팀으로 나뉘어 그해 지리산을 시작으로 2005년 덕유산, 2006년 소백산 등을 거쳐 2012년 태백산까지 올랐다. 박 부회장은 늘 첫 번째 팀에 속했다. 리더는 솔선수범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원칙이다. 2박 3일간 40㎞를 행진하는 것은 그로서도 쉽지 않았다. 박 부회장에게 사람들은 왜 산에 가느냐고 묻는다. 그는 대답한다. “원래 산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기업 문화를 바꾸기 위해 산에 올랐을 뿐이지요.” 그의 야성을 더욱 일깨운 사건도 있었다. 대한재보험에서 2002년 코리안리로 사명을 바꾼 뒤 박 부회장은 해외 매출 비중을 늘리려 했다. 베트남 등 외국 각지를 다녔지만 문전 박대만 당했다. 코리안리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로부터 받은 신용등급이 BBB-라 거래 적격업체가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박 부회장은 보험중개회사인 에이온의 제프리 브롬리 부회장에게 이 고민을 털어놨다. 돌아온 답은 “S&P를 찾아가 봤느냐”였다. 박 부회장은 머리에 뭔가를 맞은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문제 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생각에 2006년 9월 미국 뉴욕 S&P 본사를 찾아갔다. S&P는 “코리안리가 성장성은 있지만 담보력이 부족해 신용등급을 올릴 수 없다”고 답했다. 박 부회장은 같이 간 리스크 담당 팀장과 함께 담보력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담보력에 맞춰 어떻게 위험 관리를 하는지가 중요하다며 조목조목 따졌다. 그로부터 3개월 뒤 코리안리 신용등급은 A-로 상향됐다. 그는 ‘15년 임기 중 가장 기쁜 날’이라고 했다. 신용등급 상향은 코리안리가 세계적인 보험사로 성장하는 발판이 됐다. 3800만 달러였던 해외 매출은 현재 12억 달러로 코리안리 전체 매출액의 22%를 차지한다. 국내 금융사 중 가장 높은 해외 매출 비중이다. 이를 2020년까지 50%로 높이겠다는 것이 회사의 목표다. 박 부회장의 성공에는 원 회장의 완벽한 믿음도 큰 도움이 됐다. 박 부회장은 “인사, 조직 관리, 영업 등 모든 분야에 있어 전권을 줬기 때문에 한 번도 부딪쳐 본 적이 없다”고 밝혔다. 원 회장은 박 부회장의 경영 실적을 보면서 자사주를 꾸준히 매입해 지금은 가족들과 함께 20.21% 지분을 가지고 있다. 15년간 앞만 보고 달려온 박 부회장은 당분간 푹 쉬고 난 뒤 무료 경영컨설팅에 나설 계획이다.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성장한 뒤 겪는 애로와 관련해 집중적으로 상담해 줄 예정이다. “CEO는 올라가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해야 하는 사람입니다. 조직 내에 숨어 있는 사람이 없도록 모든 사람에게 역할을 주고 조직이 느슨해지면 긴장도 줘야 합니다. 좋은 말만 해서는 안 되며 자신이 책임진 회사에 목숨을 걸 각오를 해야 합니다.” 그가 생각하는 CEO다. 전경하 기자 lark3@seoul.co.kr ■박종원 부회장 프로필 1944년 경기 화성 출생 1963년 숭실고 졸업 1971년 연세대 법학과 졸업 1973년 제14회 행정고시 합격 1989년 재무부 결산관리과장 1994년 재정경제원 총무과장 1997년 12월 재정경제원 공보관 1998년 7월 대한재보험 사장 2002년 6월 코리안리 사장(사명 변경) 2013년 6월 코리안리 부회장
  • 영어 좀 한다고 막하면 쓰나… 번역도 엄연한 문학인데

    영어 좀 한다고 막하면 쓰나… 번역도 엄연한 문학인데

    “‘프린스’(prince)라고 하면 우리는 다 왕자라고 번역하죠? 하지만 영화나 소설에서 프린스가 왕자인 경우는 10분의1도 안 돼요. ‘벤허’에선 족장이고 마키아벨리 저서에선 군주, ‘전쟁과 평화’에서는 대공이라는 뜻이죠. 미남, 동네왕초라는 뜻도 있고 이렇게 프린스의 의미가 15가지나 되는데 우리는 한 가지만 외워 놓고 10가지를 써먹으려 하는 거지.” 이윤기와 함께 ‘1세대 번역가’로 꼽히는 소설가 안정효(72)의 입에서 오역 사례가 줄줄 나왔다. “번역도 문학”이라고 믿는 그에게 단어의 한 가지 뜻에만 기대어 언어의 깊은 감각을 간과하는 오역은 분통 터지는 일이다. 그래서 40여년 번역 인생을 집대성한 책을 펴냈다. 10년간 수집한 3000여편의 영화 자료, 2000여개의 오역 사례를 모은 ‘안정효의 오역사전’(열린책들)이다. 832쪽에 이르는 방대한 책은 그의 표현을 빌자면 ‘편집자들이 몇명이나 나가떨어진 목침만 한 책’이다. 그는 “영어 조금 한다고 푼돈이나 벌어야지 하고 번역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렇게 좋은 직업을 엉터리로 해서 되나 하는 생각에 진짜 교과서, 성경 쓰는 기분으로 썼다”고 했다. “사람들이 가장 착각하는 게 뭐냐면 난 영어를 잘하니까 번역하겠다는 거예요. 샘 해밍턴이 한국말 잘한다고 번역 잘할 것 같아요? 어림도 없어. 번역은 우리말 잘하는 사람이 해야 하는 거죠.” 그러면서 그는 러시아에서는 ‘닥터 지바고’의 작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가, 그리스에서는 ‘그리스인 조르바’의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소명의식을 갖고 번역에 나섰다고 지적했다. “다른 나라에서는 그렇게 훌륭한 작가들이 번역을 하는데 우리는 그냥 무성의하게 한글로 옮기면 되는 줄 알아요. 번역의 개념이 없던 초창기엔 책 하나를 6~7명에게 나눠서 번역을 시키고, 문장을 마음대로 자르고 고치는 출판사들과 싸움도 많이 했죠.” 1970년대 중후반 영자지 문화부장을 지낸 그를 번역의 길로 이끈 건 당시 ‘문학사상’ 주간이었던 이어령 선생이었다. 그가 대학 시절 영어소설을 7편이나 썼다는 소문을 듣고 1973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패트릭 화이트의 ‘폭풍의 눈’ 번역을 맡긴 것이다. 그는 꼬박 밤을 지새워 하루 만에 원고지 100장 분량의 번역본을 넘겨 이어령을 놀라게 했다. “몇 달 뒤에 문학사상에서 ‘백년동안의 고독’을 연재하기로 했어요. 그런데 원래 하기로 했던 스페인어 번역자가 못하겠다고 나가떨어진 거야. 시간은 촉박하니 나한테 영어책으로 번역해 달라고 한 거죠. 그런데 번역이라는 건 쉬었다가 하면 안 돼. 내친김에 해야 얘기가 연결이 되지. 원고지 3000장짜리를 40일 동안 해서 007가방 2개에 넣어 갖다줬어요. 이어령 선생님이 깜짝 놀라서 직원들한테 ‘야, 그거 앞뒤 줄거리 맞나 읽어 봐라’ 고 하셨죠(웃음).” ‘가시나무새’, ‘캐치 22’ ‘가브리엘라’ 등 그가 먼저 출판사에 출간을 제안해 국내에 소개한 해외 명작도 부지기수다. 그도 그럴 것이 서강대 재학 시절 그는 영문학 교수였던 외국인 신부가 인정하는 ‘원서 킬러’였다. 방학 때면 하루도 빼놓지 않고 도서관에 나가 서가의 책을 모두 읽어 치웠다. 더 읽을 것이 없자 손을 댄 게 영어 원서였다. “학생들이 ‘어떻게 해야 영어를 잘해요?’하고 물으면 신부님은 ‘안정효처럼 하라’고 하셨대요. 저한텐 영어 수업에 들어오지 말라고 했어요. 배울 게 없으니까.”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그는 여전히 자기 관리에 엄격하다. 매일 새벽 3~4시에 일어나 오전 10시까지 일에 매진한다. “자유업이라는 게 사장도 없지, 자기 마음대로 아니에요? 그러니 내가 스스로 통제해야지. 하루 할 일을 정해 놓고 어겨본 적이 없어요.” 재게 움직이는 건 아직도 구상해 놓은 책이 한가득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펴낸 소설 ‘솔섬’에서 갈라진 얘기를 장편소설 ‘선지자’로 낼 계획이고, ‘할리우드 키드’라는 별명을 지닌 영화광인 만큼 세계 명배우 열전도 펴낼 생각이다. 만화가였던 예전 꿈을 살려 만화수상록도 내고 싶다는 그는 문득 빵 얘기를 꺼냈다. “좋은 빵을 만들려고 밀 농사를 직접 짓는 제빵사가 있더군요. 번역도 그렇게 공을 들여야 좋은 문학이 나와요.”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2007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공개] 군사분계선 역할하는 ‘해상 경계선’

    [‘2007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공개] 군사분계선 역할하는 ‘해상 경계선’

    서해 북방한계선(NLL) 논란의 근원은 1951~53년 정전협정 협상 과정에서 육상 군사분계선(MDL) 및 비무장지대(DMZ)에 대해 합의한 것과는 달리 해상분계선 설정에 실패한 데서 비롯됐다. 유엔사령부는 해상분계선으로 육상 군사분계선 연장선 상하 3해리를 주장했지만, 북한은 12해리를 주장해 합의하지 못했다. 전략적으로 특히 중요한 연평도, 백령도 등이 몰려 있는 서해가 문제였다. 1953년 8월 30일 유엔군 철수를 압두고 당시 유엔군사령관인 마크 클라크 미군 대장은 한반도 해역에서 우리 해·공군의 북상을 제한해 우발적 충돌을 막기 위한 목적으로 NLL을 ‘일방적으로’ 설정했다. 북한 해군 전력의 우위가 남한을 넘어선 1970년대부터 논란은 시작됐다. 북한은 1973년 10월부터 한 달간 43회에 걸쳐 NLL을 의도적으로 침범한 서해사태를 유발, 논란을 공식화했다. 같은 해 12월 제347차 군사정전위원회에서 북한은 NLL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한동안 NLL을 존중하는 듯하더니 1999년 9월 ‘조선 서해 해상군사분계선’을 선포하면서 NLL은 무효라고 공표했다. 정부는 NLL을 실효적으로 관할해 왔고 해상 군사분계선의 기능과 역할을 해왔기 때문에 실질적인 해상경계선이라고 못 박고 있다. 국제법에서 말하는 응고의 원칙과 실효성의 원칙, 묵인의 법리가 작용한다는 것이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파사트 수입 중형車 새 강자로

    파사트 수입 중형車 새 강자로

    국내 중형차 시장은 가장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는 곳이다. 지난해 8월 한국에 들어온 폭스바겐의 ‘파사트’는 무수한 경쟁 차종들 사이에서 국내 소비자들의 마음을 얻는 데 일단 성공했다. 파사트는 1973년 첫 출시 이후 전 세계적으로 1500만대 이상 판매된 폭스바겐의 인기 차종이다. 스타일·실용성·주행성능 등 차량 구매자들이 중시하는 조건들을 완벽히 갖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출시 3개월도 안돼 판매 대수 1000대를 넘어서며 돌풍을 일으킨 파사트는 올해 1~5월 판매도 1583대에 달해 수입 중형 세단 가운데 가장 인기 있는 모델로 자리매김했다. 파사트의 인기에 힘입어 폭스바겐코리아는 지난 4월 국내 진출 이후 역대 최고 판매량(2206대)을 기록하기도 했다. 인기 비결은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는 세련된 디자인과 넓은 실내 및 수납공간을 갖춘 실용성, 탄탄한 주행성능에 있다. 특히 4개의 골프백과 4개의 보스턴백이 들어갈 정도로 넉넉한 트렁크 공간은 파사트의 최대 장점 가운데 하나다. 탁월한 연비도 한몫한다. 공인 연비는 복합연비 기준으로 14.6㎞/ℓ에 달해 운전자들을 매혹시키고 있다. 파사트의 국내 판매 가격은 2.5 가솔린 모델 3810만원, 2.0 TDI 모델 4140만원이다. 박상숙 기자 alex@seoul.co.kr
  • [주말 인사이드] “장마철 수자원 확보 가치 2470억”… 오염물질 제거 등 환경 순기능도

    [주말 인사이드] “장마철 수자원 확보 가치 2470억”… 오염물질 제거 등 환경 순기능도

    여름철 장마가 시작되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재난 피해에 신경이 곤두선다. 서울 강남과 광화문 일대 등 도심은 물론 전국 곳곳에서 침수 피해가 해마다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장마철에는 불쾌지수가 최고조에 이르면서 만사가 귀찮아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기업과 상인들에게 있어 장마는 그야말로 ‘불청객’이다. 우리 경제 활동과 산업, 일상 생활에 적잖은 피해를 준다. 그러나 장마의 순기능도 적지 않다. 때때로 천문학적인 금전적 손실과 인명 피해를 낳기도 하지만 수자원 확보와 환경적인 측면에서는 꼭 필요한 존재다. 지루한 장마철에 집 나서기를 꺼려하는 ‘방콕족’을 위해 기업들은 다양한 마케팅으로 이들을 유혹하고 있다. 장맛비를 뿌리는 장마전선은 주로 6월 하순부터 7월 하순까지 한반도를 거쳐 북상한 뒤 소멸된다. 고온다습한 열대기류가 지역적으로 집중호우를 뿌려 곧잘 피해를 준다. 기상청이 1961년부터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가장 짧은 장마 기간은 6일로 1973년 남·중부 지방에서 6월 25일에 시작해 같은 달 30일 끝났다. 반면 가장 길었던 장마 기간은 1969년 남부 지방에서 진행된 48일(6월 25일~8월 11일)로 나타났다. 최근 40년의 장마 중 가장 많은 비가 내렸던 해는 2006년으로 전국 평균 699.1㎜의 강수량을 기록했다. 지역별로 가장 많은 비가 내렸던 곳은 1985년 여름의 제주도로 강수량이 1119㎜였다. 전문가들은 장마로 인한 손실만큼이나 경제학적 가치도 무시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장마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은 주로 집중호우에 따른 인명·재산 피해다. 기상청에 따르면 호우로 인한 재해는 연평균 5회 정도 발생한다. 태풍 피해를 제외하고 가장 많은 호우 피해를 본 해는 1998년으로 2만 4000여명의 이재민과 324명의 인명피해, 1조 2900여억원의 재산 손실이 있었다. 최근 가장 주목할 만한 호우 피해는 2011년 7월 26~28일 장마가 끝난 후 수도권에서 내린 비다. 사흘 동안 서울에 평년 연 강수량의 41%인 595㎜의 비가 내렸고 서초구 우면산 등지에서는 산사태가 발생해 사망 57명, 실종 12명의 인명피해를 냈다. 주택침수, 정전 등으로 인한 재산 손실만도 2500억원에 이르렀다. 김병식 강원대 소방방재학부 교수는 21일 “장마 이후 땅이 포화 상태에 이르고 지반이 약해져 산사태가 많이 일어난다”고 말했다. 여름철에 집중된 장맛비는 막대한 홍수 피해를 일으키지만 수자원 확보와 환경보전 측면에서 그 가치를 과소 평가할 수 없다. 국립기상연구소의 분석에 따르면 최근 30년의 연평균 총강수량은 1343㎜로 이를 전국적인 수자원 확보 측면에서 환산하면 9097억원 규모의 경제적 가치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장마 기간의 평균 강수량은 27.1%인 364㎜로 2470억원 규모에 이른다. 이는 바로 댐에 저장돼 생활 용수나 농업 용수로 활용되거나 전기를 생산할 수 있다. 김백조 국립기상연구소 정책연구과장은 “장마가 없다면 모내기 이후 가장 물을 필요로 하는 시기에 농업용수 확보가 문제가 될 것”이라면서 “장마 기간에 오는 많은 양의 강수는 고갈된 지하수층에 물을 공급해 이후 봄철 가뭄을 해소하는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장마는 환경 보호에 있어서도 많은 역할을 한다. 장마 기간 중에 내리는 비는 공기중에 떠 있는 먼지와 분진, 중금속 등 오염 물질을 제거해 미세먼지 농도를 낮추는 순기능을 수행한다. 서울시와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해 1월에 공기 1㎥당 평균 60㎍를 넘는 미세먼지 농도가 장마철이 지난 7, 8월에는 각각 28㎍, 22㎍으로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장마 기간 중 강수는 이 밖에 수질을 개선하는 역할을 하며 도시의 ‘열섬 효과’를 낮추는 효과도 있다. 장마가 길어지면 이후 이어지는 무더위 기간이 짧아진다. 김 과장은 “미래에 예상되는 국가적 물 부족 사태에 대비하고 대기 질을 개선한다는 점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장마의 긍정적 효과가 그 사회적 비용을 상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워킹맘 진민경(31)씨는 중부 지방에 올해 첫 장마가 시작된 지난 18일 저녁 장을 보기 위해 동네 대형마트에 들렀다가 진땀을 뺐다. 한 손은 어린이집에서 데려온 세 살짜리 아들의 팔목을 붙잡고 한 손에는 우산을 들었다. 커다란 비닐봉투 2개를 팔뚝에 걸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더욱 고역이었다. “장마철에 다시는 혼자 장을 보러 오지 않겠다”고 결심한 진씨는 그날 이후 동네 대형마트의 배달 서비스를 하루가 멀다하고 이용하고 있다. ‘장마철, 발에 물 묻히지 마시고 집에서 시원하게 쇼핑하세요. 배달은 저희가 해 드립니다’라는 광고 문구가 진씨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문자메시지로 품목을 적어 보내기만 하면 집 앞까지 배달되는 데다 비가 오는 날이면 겪어야 하는 교통 체증과 각종 짐의 부담에서 해방된 진씨는 “장마철 장보기가 겁나지 않는다”고 했다. 푹푹 찌는 더위에 습도까지 높은 장마철을 맞아 외식도, 쇼핑도 귀찮다는 ‘장마철 방콕족’이 늘고 있다. 세찬 빗줄기를 피해 집으로, 실내로 파고드는 소비자 때문에 마트와 백화점, 옷 가게 등 업계에서는 “장마철은 곧 비수기”라며 울상을 짓는다. 그러나 최근에는 장마철에 최적화된 다양한 마케팅 기법이 쏟아져 나와 방콕족들의 소비심리를 자극하고 있다. 비가 오면 생각나는 부침개로, 한편으론 ‘그동안 미뤄 왔던 성형 수술을 하기에 적합한 시즌’이란 달콤한 말로 소비자들을 유혹한다. 장마철은 이제 여름 성수기에 못지않은 마케터들의 타깃 시즌이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유통업계는 장마철 방콕족들을 노린 먹거리 기획전을 속속 내놓아 큰 호응을 얻고 있다. 특히 부침개와 각종 전, 막걸리 등 비가 오는 날이면 문득 생각나는 음식을 마케팅의 전면에 내세워 소비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이마트는 오는 26일까지 부침개·막걸리와 관련된 기획전을 진행하고 있다. 부침가루와 호박, 감자, 계란 등 부침개에 들어가는 대표적인 재료 10개 품목 가운데 2개 이상을 동시에 사면 가격의 20%를 깎아 준다. 이마트 관계자는 “지난해 장마철이 시작된 6월 29일부터 1주일간 매출을 한 해 전과 비교해 보면 막걸리, 부침가루 등 관련 제품의 판매량이 20.6%, 26%로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일부 음식점은 비가 내릴 때만 기습적으로 음식값을 깎아 주거나 덤을 주는 ‘게릴라성 이벤트’로 고객의 발길을 유혹하고 있다. 회전초밥 프랜차이즈 전문점 S식당은 비가 내릴 때 매장을 방문하면 특선우동과 따뜻한 커피를 제공하고 패밀리 레스토랑 B사도 기상청 발표를 기준으로 5㎜ 이상 비가 내리면 매콤한 맛의 파스타를 30% 할인해 판매한다. 장마철 특수를 노린 ‘성형 수술’ 관련 애플리케이션(앱)도 쏟아지고 있다. 장마철은 비를 핑계로 외출을 줄일 수 있는 데다 여름휴가 시즌이 이어지기 때문에 성형을 계획한 여성들에게 좋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병원 정보를 얻고 성형 시술비 중 일부를 포인트로 적립할 수 있는 앱 ‘메디라떼’, 눈·코선·가슴 등 가상으로 성형 결과를 볼 수 있는 ‘레알 성형’, 진료비 견적을 비교할 수 있는 ‘병원견적 넘버원’ 등이 출시돼 인기를 끌고 있다. 앱 마켓에서는 날씨 관련 앱이나 장마 시즌에 인기가 많은 ‘혼자놀기’용 앱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T스토어는 테마추천관에 ‘웨더퐁’ 같은 날씨 앱과 심리테스트, 무료 음악감상, 카메라, 각종 유형 테스트 등 장마 관련 콘텐츠를 모아 제공한다. 소셜커머스 업체인 티몬은 ‘장마용품 기획전’을 진행하고 있다. 제습제, 빨래 건조대, 우산, 곰팡이 제거제 등 장마와 관련된 상품들을 30~80% 할인된 가격으로 판매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 같은 가전업체들도 제습기 제품에 대한 마케팅을 공격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윤샘이나 기자 sam@seoul.co.kr 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 도봉구에서 만나는 ‘시대정신’

    도봉구에서 만나는 ‘시대정신’

    초대 대법원장으로 대한민국 법 질서의 기초를 닦은 김병로(1887~1964), 계몽운동가이자 언론인으로 활약했던 송진우(1890~1945), 겨레의 얼을 강조한 민족사학자로 광복절·삼일절 노래 가사를 쓴 정인보(1893~1950), 대하소설 ‘임꺽정’을 발표해 일제 강점기 민초들에게 용기를 준 홍명희(1888~1968)의 공통점은 뭘까. 광복 전 도봉 지역에 거주했다는 점이다. 특히 김병로, 송진우, 정인보는 ‘창동의 세 마리 사자’로 불렸다고 한다. 뿐만이 아니다. 전 재산을 털어 우리 민족문화를 지키려 했던 전형필(1906~1962), 치열한 저항 정신으로 자유와 삶을 노래했던 시인 김수영(1921~1968), 노동자 인권을 위해 몸을 불사른 전태일(1948~1970), 민주화를 위해 한평생을 바쳤던 함석헌(1901~1989), 계훈제(1921~1999), 김근태(1947~2011)에 이르기까지 근현대사를 치열하게 살며 도봉에 흔적을 남긴 인물이 무척 많다. 도봉구는 개청 40주년을 맞아 도봉에 발자취를 남긴 역사적 인물을 조명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시대 정신의 고향, 도봉’이라는 주제로 구민회관 1층 갤러리에서 ‘도봉 역사 인물 사료전시회’를 오는 28일까지 연다. 도봉 지역은 조선 시대에는 경기도 양주목으로, 일제 강점기에는 양주군 노해면으로, 광복 이후 1949년부터는 서울 성북구로 이름을 달리하다 1973년 7월 1일 성북구에서 분리되며 비로소 도봉구라는 이름을 얻었다. 전시회는 조광조, 송시열, 정의공주 등 조선시대 인물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근현대사에 보다 집중한다. 함석헌의 육필원고 및 ‘씨알의 소리’ 창간호, 김수영의 시집, 전태일의 일기장, 김병로의 민법 및 형법 제정 초안, 정인보의 편지와 삼일절·개천절·광복절 노래 가사 원고, ‘임꺽정’을 연재한 신문 자료 등을 가까이서 접할 수 있다. 구는 전시회 첫 날인 지난 18일 김근태 전 민주당 상임고문의 부인 인재근 의원 등 역사 인물 유가족과 각 기념사업회 관계자 20여명을 초청해 홈커밍데이를 열기도 했다. 구는 역사 인물의 옛 집터를 돌아보는 ‘길 탐방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이동진 구청장은 “도봉의 역사문화 뿌리를 찾는 다양한 노력이 김수영 문학관·함석헌 기념관 건립, 전형필 고택 공원화, 도봉서원 복원 사업 등으로 결실을 맺고 있다”며 “이번 기회를 통해 세대 교감과 지역의 역사적·문화적 정체성을 찾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서울 장마, 짧고 많은 비

    서울 장마, 짧고 많은 비

    서울지역의 장마 기간은 짧아지고 내린 비의 양은 많아지고 있다. 18일 서울연구원 도시정보센터에 따르면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최근 5년간 서울시 장마 기간과 강수량 등을 분석한 결과 평균 장마 기간은 28일로, 1990년대 평균인 29일, 1980년대 평균인 32일에 비해 1∼4일가량 줄어든 것으로 분석됐다. 반면 최근 5년간 장마 때 내린 비의 양은 평균 548㎜로, 1990년대 평균인 344㎜에 비해 많았다. 1973년부터 2012년까지 40년간 서울의 평균 장마 기간은 6월 20일부터 7월 20일까지 평균 31일로 나타났다. 평균 강수일 수는 18일, 평균 강수량은 419㎜로 집계됐다. 지난해 장마 기간은 19일로, 40년간 평균인 31일에 비해 많이 짧았지만 강수량은 423.3㎜로 과거와 비슷했다. 김정은 기자 kimj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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