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73년
    2026-06-17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7,432
  • 윌리엄스 14일 케르버와 우승 다툼, 노리는 기록 한둘 아니다

    윌리엄스 14일 케르버와 우승 다툼, 노리는 기록 한둘 아니다

    세리나 윌리엄스(181위·미국)가 윔블던 결승에 올라 14일 밤 10시(한국시간) 안젤리크 케르버(10위·독일)와 우승을 다툰다. 윌리엄스는 12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윔블던의 올잉글랜드클럽에서 열린 대회 10일째 여자단식 4강전에서 율리아 괴르게스(13위·독일)를 2-0(6-2 6-4)으로 가볍게 따돌리고 지난해 9월 딸 출산 후 처음 메이저 대회 결승에 진출했다. 그녀는 “스스로 조금 더 아기 걸음마를 하자고 생각했다. 이번주 내내 말했듯이 이번이 코트에 복귀한 뒤 고작 네 번째 대회”라며 “(하지만) 대회에 나갈 때마다 커다란 발자국을 앞으로 내딛고 또 내딛고 계속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2016년 대회에서 우승한 윌리엄스는 메이저 대회 통산 24번째 단식 우승 트로피에 도전한다. 메이저 대회 여자단식 최다 우승 기록은 크게 둘로 나뉘는데 시기를 구분하지 않으면 마거릿 코트(호주)의 24회가 기록이다.다만 프로 선수들의 메이저 대회 출전이 허용된 1968년 이후로 한정하면 윌리엄스의 23회가 이미 최다 우승 기록이다. 따라서 이번에 윌리엄스가 우승하면 1968년 이후 오픈 시대뿐 아니라 전 시기를 통틀어 메이저 대회 최다 우승 타이 기록이 된다. 또 181위인 윌리엄스가 우승할 경우 메이저 대회 여자단식 사상 최저 랭킹 우승 기록이 나온다. 여자단식 세계 랭킹이 도입된 1975년 이후 지금까지 아예 세계 랭킹 순위권 밖의 선수가 우승한 것도 두 차례나 된다. 1977년 호주오픈 이본 굴라공(호주), 2009년 US오픈 킴 클레이스터르스(벨기에)가 주인공인데 이들은 올해 윌리엄스처럼 출산 후 복귀해 세계 랭킹 없이 메이저 정상까지 올랐다. 세계 랭킹이 있는 선수 가운데로 좁히면 1978년 호주오픈 크리스 오닐(호주)이 111위로 출전해 우승한 것이 기록이다. 2017년 1월 호주오픈이 끝난 뒤 임신 사실을 밝히며 잠시 코트를 떠났다가 지난해 9월 딸을 낳고 올해 3월 코트에 복귀한 윌리엄스는 첫 메이저 대회였던 프랑스오픈 16강까지 올랐고 이번 대회 결승까지 진출했다. 또 이번에 우승하면 36세 9개월로 메이저 대회 여자단식 역대 최고령 우승 기록도 세운다. 현재 기록은 자신이 지난해 호주오픈에서 작성한 35세 4개월이다. 또 1968년 오픈 시대 이후 통산 네 번째 ‘엄마 메이저 챔피언’이 된다. 코트가 1973년 호주오픈, 프랑스오픈, US오픈에서 이를 가장 먼저 달성했고, 굴라공이 1980년 윔블던, 클레이스터르스는 2009년과 2010년 US오픈, 2011년 호주오픈에서 우승한 뒤 아이와 함께 기쁨을 나눴다. 윔블던 단식 본선에서 최근 20연승을 거둔 윌리엄스는 결승에서 지더라도 16일 발표되는 세계랭킹에서 28위까지 오르게 됐다. 우승하면 19위가 된다. 윌리엄스가 통산 상대 전적에서 6승2패로 앞서 있다. 2016년에는 메이저 대회 결승에서만 두 차례 맞대결을 펼쳤는데 호주오픈 결승에서 케르버가 2-1(6-4 3-6 6-4)로 이겼고, 윔블던 결승에서는 윌리엄스가 2-0(7-5 6-3)으로 이겼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이영미의 노래하기 좋은 계절] 법 안에서 편안한가 - ‘어떤 말씀’과 ‘아, 대한민국’

    [이영미의 노래하기 좋은 계절] 법 안에서 편안한가 - ‘어떤 말씀’과 ‘아, 대한민국’

    70년 전 여름을 상상해 본다. 첫 보통선거로 당선된 제헌의원들이 헌법이란 걸 만드느라 정신이 없었을 것이다. 1948년 7월 17일 대한민국 제헌 헌법이 공포됐다. 이 헌법에 따라 사회를 운용할 실정법들이 만들어졌다. 대중예술을 들여다보면 오랫동안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법이란 존재가 결코 편하지 않았음을 감지하게 된다. 실정법들이 천부인권과 같은 자연권 등을 인정한 헌법의 정신을 구현하지 않았거나 왜곡한 탓이 크다고 할 수 있다. 특히 근대 초기부터 대한민국 탄생 한참 뒤에도 법을 그저 냉혹한 것으로 인식했다.20세기 작품엔 ‘선한 죄인’이 넘쳐난다. 영화 ‘아리랑’의 영진과 연극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의 홍도는 강자에게 몰리고 몰리다 광기를 일으켜 살인을 저지른다. ‘검사와 여선생‘의 여선생은 남편 살해 혐의를 뒤집어쓴다. 1960년대 ‘맨발의 청춘’부터 수많은 영화가 법에 의해 쫓기는 ‘어두운 뒷골목의 자식들’을 주인공으로 설정해 왔다. 대중예술에서 법은 오랫동안 인간의 마음을 돌봐 주지 않는 냉정하고 억압적인 장치로 형상화해 왔다. 법에 앞서 천륜·인륜·진정성을 인정하는 하늘과 왕이 존재하던 전근대와 달리 근대의 법질서에는 인정사정 봐주지 않는 냉정함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게다가 식민지체제와 독재체제 등 비민주적인 정치가 유지되자 대중들은 법으로 보호받기보다는 통제당하고 억압당한다고 느꼈을 것이다. 심지어 그 법은 종종 이해할 수 없는 억압을 합리화해 주는 장치로 악용되기도 했다. ‘어머님’의 말씀 안 듣고 머리 긴 채로 명동 나갔죠 / 내 머리가 유난히 멋있는지 모두들 나만 쳐다봐 / 바로 그때 이것 참 큰일 났군요 아저씨가 오라고 해요 / 웬일인가 하여 따라갔더니 이발소에 데려가 내 머리 싹둑 / 어머니의 말씀 안 듣고 짧은 치마 입고 명동 나갔죠 / 내 치마가 유난히 멋있는지 모두들 나만 쳐다봐 / 바로 그때 이것 참 큰일 났군요 아저씨가 오라고 해요 / 웬일인가 하여 따라갔더니 그다음엔 말 안 할래요 / 여러분도 이런 봉변당하지 말고 어서 머리 깎으세요 / 여러분도 이런 큰일 당하지 말고 어서 긴 치마 입으세요’ - 쉐그린 ‘어떤 말씀’(1972, 백순진 작사·작곡) 남자의 머리 길이와 여자 치마 길이를 규제하기 위해 ‘경범죄처벌법’을 동원하는 세상에 대해 풍자하는 이 노래는 겉으로는 캠페인인 척하는 포즈를 취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1975년에 금지곡이 됐다. 이 정도로 시작한 장난기는 점점 상승해서 1973년 음반에서는 가사를 ‘작두만 한 가위로 내 머리 싹둑’으로 바꾸고, ‘코털 긴 채로 명동 나갔죠’ 부분까지 덧붙이기에 이르렀으니(실제 콧수염을 기른 가수 이장희는 TV 출연이 금지됐다), 삐딱한 태도를 점점 드러낸 셈이다. 법이 우리를 보호해 주고 있다는 생각을 대중들이 실감하게 된 건 언제쯤일까. 1970년 전태일이 ‘근로기준법을 지켜라’라고 외쳤듯 약자를 보호할 법은 제대로 가동되지 않았고, 통제와 억압의 법만 체감됐으니 말이다. 이 노래가 나올 때까지만 해도 그랬다. ‘우린 여기 함께 살고 있지 않나 / 저들의 염려와 살뜰한 보살핌 아래 / 벌건 대낮에도 강도들에게 잔인하게 유린당하는 여자들은 말고 / 닭장차에 방패와 쇠몽둥이를 싣고 신출귀몰하는 우리의 백골단과 함께 / 우린 모두 안전하게 살고 있지 않나 / 우린 모두 평화롭게 살고 있지 않나 / 아 우리의 땅 아 우리의 나라’ - 정태춘 ‘아, 대한민국’ 3절(1990, 정태춘 작사·작곡) 대한민국의 헌법이 제정된 뒤 70년이 지난 지금도 ‘법이 공정한가’에 대해 많은 사람이 의구심을 표한다. 그래도 정태춘 노래에서와 같은 백골단의 시대는 벗어났다. 대중에게 감정으로 호소하는 TV 드라마에서조차 실정법을 위반한 인물은 그의 선함과 무관하게 당연히 법적 처벌이 이루어져야 할 일로 담담히 그려 낸다. 이 수준까지 오는 데 70년이 걸렸다.
  • [박건승 칼럼] 김영주 장관의 경우

    [박건승 칼럼] 김영주 장관의 경우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이 노동운동에 뛰어든 건 은행권의 성차별 때문이었다. 그는 알려진 대로 농구 선수 출신이다. ‘무학여고 14번’ 포워드로 전국대회 우승을 여러 차례 이끌었다. 1973년 당시 실업 명문팀인 서울신탁은행(현 KEB하나은행)에 입단했으나 3년 만에 은행원으로 변신했다. 은행원 6년차 시절에 여성이라는 이유로 신입 남자 행원보다 적은 급여를 받고 있다는 점을 알게 되면서 노동운동을 시작했다. 여성 최초로 전국금융노동조합연맹 상임 부위원장을 지냈다. 그의 이력을 눈여겨봤던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9년 새천년민주당 창당 때 그를 노동계 인사로 영입했다. 그가 문재인 정부의 첫 고용노동부 장관이다. 노동활동가 출신 첫 여성 고용노동부 장관이자 3선 의원이기도 하다. 김 장관은 주 52시간 근무제의 확신론자다. 노동시간 단축이 일자리 나누기를 통한 청년 고용 확대와 일ㆍ생활 간의 균형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믿는다. 지난해 말엔 주당 68시간 노동을 허용한 그간의 근로기준법 행정해석을 공식 사과했다. 고용부 장관에 취임하자마자 저성과자의 해고를 가능하게 했던 일반해고 허용 규정도 폐기했다. 취업규칙을 변경할 때 근로자 대표 과반수 동의가 없어도 효력을 인정한다는 지침도 없앴다. 장관이 된 뒤에도 노조 출신이긴 해도 제법 노사를 아우를 줄 안다는 소리도 들었다. 그랬던 장관이 노동시간 단축의 걸림돌로 낙인찍힌 것은 아이러니하다. 그러나 도마에 오른 데는 분명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터다. 그가 노동시간 단축 준비에 소극적으로 대처한 것은 대체로 맞는 팩트다. 주 52시간 근무제가 코앞에 다가온 상황에서도 구체적 지침 마련을 주저했다. 일단 ‘시행 후 보완’하자는 식이었다. 그에 대한 칭찬은 순식간에 비판 일색으로 바뀌었고,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가 앞장서 포문을 열었다. 요지는 “청와대가 아무리 말해도 듣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최저임금 문제를 국민에게 제대로 설명하라고 여러 차례 지시했는데도 이행하지 않았다고도 했다. “소득주도성장의 모든 것이 최저임금인 것처럼 오해하도록 방치한 것은 반성해야 한다”는 지적도 서슴지 않았다. 지난달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최저임금법 개정안 심사 때는 “원내대표직을 걸고서라도 장관을 날리겠다”고까지 말했다. 여당 원내대표가 같은 당 소속의 장관을 공개 석상에서 드러내놓고 공격한 건 이례적이다. 김 장관은 1년 전까지만 해도 그와 같은 3선 의원으로 일했다. 홍 대표는 과거 옛 대우차 노조위원장을 지냈으니 노동계 출신이란 공통점도 있다. 다만, 노동계에 대한 시각차는 있다. 홍 대표가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 근무제에 대해 속도조절을 하자는 반면, 김 장관은 상대적으로 노동계 입장을 더 대변한다. 최저임금제나 탄력근로제 연장을 둘러싼 시각차 때문에 생긴 사달이라면 얼마든지 소리 나지 않게 조정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래서 홍 대표의 사감이 개입되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추정도 적지 않다. 김 장관을 비호할 생각은 없다. 마음이 급해 바삐 뛰는 청와대와 달리 고용부가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것은 백번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렇다고 해도 여당 원내대표가 같은 당 소속의 장관을 공개 석상에서 ‘핫바지’로 만들어 버리고 나면 남는 게 뭘까. 국민의 눈에 이런 당정 관계가 어떻게 비쳐질까. 최저임금 인상과 일자리 지표 악화, 소득 양극화 문제가 과연 그만의 책임일까. 청와대를 구실 삼아 정부 부처를 공격하는 모양새는 보기에 불편하고 민망하다. 아무리 힘이 센 여당이 당정협의를 주도한다고 해도 그의 대응 방식에선 절차적 정당성을 찾기 어렵다. 지금도 국회 중단 사태는 이어지고 있다. 홍 대표는 최근 “국회만 밥값을 못 한다”고 했다. 국회가 후반기 원 구성을 7월로 넘긴 것은 2002년 이후 16년 만이다. 홍 원내대표나 김 장관, 지금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싸움을 하고 있다면 잠시 쉬어 가도 좋을 것 같다.
  • 파독 간호사 대부 이수길 박사 오는 9일 獨 최고공로상 수상

    파독 간호사 대부 이수길 박사 오는 9일 獨 최고공로상 수상

    한국 간호사의 독일 취업 길을 개척한 이수길(89) 의학박사가 독일 연방정부가 주는 최고공로상을 받는다. 독일 마인츠에 거주 중인 이 박사는 오는 9일(현지시간) 라인란트팔츠주 청사에서 연방정부의 최고공로상을 받게 됐다고 3일 밝혔다. 1959년 당시 서독으로 건너가 유학한 뒤 전문의로 활동하던 그는 당시 간호사 부족현상을 체험하고선 양국 관계자들을 설득해 한국의 간호사 파견이 이뤄지도록 산파 역할을 했다. 그러나 1967년 중앙정보부에 의해 조작·과장된 동백림(동베를린) 간첩단 사건에 연루돼 고초를 겪다가 독일 언론의 도움으로 풀려나기도 했다. 이 박사는 1972년에 사단법인 한독협회를 창설해 회장으로 활동했으며 1973년부터 심장 기형 아동들을 상대로 무료 시술 운동을 전개해 왔다. 그는 앞서 독일 연방 대통령이 수여하는 독일공로십자훈장을 받은 바 있다. 베를린 연합뉴스
  • 맛있‘대’ 신나‘구’

    맛있‘대’ 신나‘구’

    국내여행에 웬만큼 통달한 여행자가 아니라면 대구의 먹거리를 바로 떠올리는 건 쉽지 않을지도 모른다. 대도시 이미지가 강해 여행지로 선뜻 거론되는 곳이 아닌 탓이다. 그러나 알고 보면 다른 곳에서는 맛보기 힘든 특별한 먹거리가 즐비한 곳이 대구다. 조선 후기 평양장, 강경장과 함께 전국 3대 장터였던 대구장(서문시장)은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맛으로, 먹거리 이름을 내건 먹자골목들은 전문성으로 남녀노소의 발길을 이끈다. ‘대프리카’(대구+아프리카)를 잊게 할 시원한 여름 축제도 기다리고 있다.◆칼칼한 매력 가득 든든한 첫 끼 ‘따로국밥’ 먹거리 투어를 작심하고 아침 일찍 대구로 향한 여행자라면 든든한 첫 끼니로 따로국밥만 한 음식이 없다. 이른 아침에는 문을 닫은 식당이 대부분이지만 따로국밥집은 24시간 영업하는 곳이 많다. 중구 전동 ‘국일따로국밥’은 1946년 문을 연 원조집으로 알려져 있다. 동성로 쪽에서 장사를 하다 20년 전쯤 길 건너로 가게를 옮겨 역사를 이어 가고 있다. 8000원짜리 따로국밥을 주문하면 큼직한 선지 덩어리가 듬뿍 담긴 붉은 국물에 흰 쌀밥이 따로 나온다. 부산의 돼지국밥과는 전혀 다른 칼칼한 맛이 매력이다. 밥 대신 국수를 주문할 수도 있다. 아침을 먹고 중구 대신동 서문시장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손님맞이 준비에 분주한 상인들을 볼 수 있다. 오전 10시쯤이면 시장 안 곳곳에서 음식 냄새가 솔솔 풍기며 침샘을 자극한다. 한편에는 순대와 암뽕을 가득 담은 소쿠리가 늘어서 진풍경을 연출한다. 현대식으로 깔끔하게 정비된 시장 내 먹거리 노점들은 분홍색 표지판을 내걸어 쉽게 구분할 수 있다.◆콩나물과 어묵의 매콤한 하모니 서문시장 ‘양념오뎅’ 굵직한 어묵에 콩나물을 잔뜩 얹어 매콤한 고추장 양념으로 볶아낸 ‘양념오뎅’(1인분 3000원)은 서문시장 명물 중 하나다. 시장 안 같은 자리에서만 18년 동안 ‘장여사의 매콤한양념오뎅’을 운영한 양창원(63)씨는 “원래 대구에서는 어묵을 붉은 양념에 찍어 먹는데 거기에 해장국을 응용해서 만든 음식”이라고 소개했다. 간이 밴 어묵과 시원한 콩나물의 매콤한 조합이 색다르다. 함께 파는 나뭇잎 모양의 손만두(1인분 4500원)를 곁들이면 든든한 한 끼로도 손색없다.◆대구 10味 ‘납작만두’와 못생겨서 더 끌리는 ‘삼각만두’ 시장 입구 쪽에서 노점을 편 ‘허둘순 삼각만두’는 40년 역사를 자랑한다. 아이들을 공부시키려고 서툰 솜씨로 못생긴 만두를 빚어낸 게 삼각만두의 시초였다고 한다. 납작한 만두 속에는 당면 가닥만 들어 있을 뿐이지만 노릇하게 구워진 만두피와 찰랑한 감촉의 당면이 이루는 조화가 일품이다. 1인분에 3000원. 대구 10미(味) 중 둘째가라면 서러울 명물 납작만두는 ‘미성당’이 원조다. 남산초등학교 앞에 있는 가게가 본점이지만 서문시장 안에서도 같은 맛을 맛볼 수 있다. 당면만 들어 있는 납작한 만두의 맛이 심심할 것 같기도 하지만 고명처럼 올라간 파, 양파, 고춧가루의 톡 쏘는 맛이 균형을 이룬다. 1인분에 3500원. ◆혼밥도 OK… 푸짐한 한상차림 ‘갈비찜 정식’ 분식보다 따끈한 밥 한 공기가 먹고 싶다면 시장 내 식당골목으로 가 보자. 40년 전통의 ‘삼미갈비찜’은 이 골목에서도 이름난 가게 중 하나다. 소갈비찜과 돼지갈비찜이 주력 메뉴지만 혼자 가도 1인 메뉴인 ‘스페셜 정식’을 시킬 수 있다. 1만원이면 양푼에 먹음직스럽게 담긴 돼지갈비에 푸짐한 밥, 구수한 된장국, 쌈채소, 밑반찬이 한 상 가득 나온다. 곱게 빻은 마늘이 듬뿍 들어가 풍미를 더한 고기를 쌈에 싸 먹으면 밥 한 공기가 눈 깜짝할 새 사라진다. ◆20년 전통의 맛·넉넉한 시장인심 펼쳐진 ‘국수 골목’ 국수노점이 모인 골목에서는 잔치국수 한 그릇에 넉넉한 시장 인심을 느낄 수 있다. 20년간 영업한 ‘7번 국수’에서는 시원한 멸치국물로 맛을 내고 김가루를 듬뿍 얹은 푸짐한 국수가 나온다. 국수에 곁들여 먹는 큼직한 고추는 ‘무한리필’이다. 칼국수, 콩국수 등 모든 메뉴가 3500원으로 시장 상인들이 단골손님이다. 요즘에는 젊은 사람들도 많이 찾는다.◆치맥페스티벌과 함께 즐기는 평화시장 ‘닭똥집골목’ 동구 신암동 평화시장 ‘닭똥집골목’에는 대구에서만 볼 수 있는 먹거리인 닭모래집 요리를 파는 가게 28곳이 모여 있다. 1973년 ‘삼아통닭’을 운영하던 부부가 건설노동자들을 위해 값싸고 맛있는 술안주를 고민한 끝에 탄생한 서민 요리로 원조집은 주인이 몇 번 바뀌었지만 지금도 제자리에서 성업 중이다. 모듬 소자(1만 3000원)를 주문하면 튀김똥집, 양념똥집, 간장똥집 세 가지 맛을 한 번에 맛볼 수 있다. 둘이 먹기에 배부를 만큼 푸짐하게 나온다. ‘닭똥집골목’은 5년 전 시작돼 금세 대구의 대표 여름 축제로 자리잡은 ‘대구치맥페스티벌’에서 빠질 수 없는 축제 장소다. 달서구 두류공원 일원을 주무대로 열리는 페스티벌은 올해 더 풍성해진다. 차가운 드라이아이스 위에서 즐기는 시원한 치맥, 비치존에서 물놀이를 하며 즐기는 치맥 등 치킨과 맥주를 즐길 다양한 이벤트가 마련된다. EDM파티, 치맥 99타임, 맥주칵테일 경연대회 등 즐길거리와 함께 총 3000석인 국내 최대 규모의 치맥 테이블이 펼쳐진다. 올해는 오는 18일부터 22일까지 열린다.◆달콤한 비주얼에 SNS 인증샷 필수 ‘체리빙수’ 맛있는 요리로 배를 채우는 중간에 디저트 타임을 가지면 보다 완벽한 먹거리 투어가 완성된다. 동인초등학교 부근 ‘모모상점’은 생긴 지 2년밖에 안 된 가게지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타고 ‘핫플레이스’로 급부상했다. 인기 메뉴인 체리빙수 가격은 1인 1만 1000원으로 호락호락하지 않지만 맛을 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빙수 속 푸짐하게 들어 있는 체리의 과육이 곱게 간 얼음과 만드는 상큼하고 부드러운 조화가 황홀할 정도다. ◆김광석길·조선 거장들의 회화전으로 감성 충전도 먹거리 투어 이후 산책삼아 돌아볼 만한 곳으로는 중구 대봉동 김광석길이 있다. 약 340m 길이의 골목길에 가수 고 김광석을 기리는 조형물과 아기자기한 카페 등이 늘어서 있어 친구, 연인,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 좋다. 조금 더 시간을 내 대구를 둘러보고 싶다면 수성구 삼덕동 대구시립미술관에 가 볼 만하다. 대구시청에서 차로 20여분 거리에 있다. 서울 간송미술관 개관 80주년을 맞아 신윤복, 김홍도, 정선, 신사임당 등 조선 미술 거장들의 회화 100여점과 간송 전형필 선생의 유품 30여점 등이 대거 전시되고 있다. 대구에 내려온 소장품만 둘러봐도 조선 회화사를 가늠할 수 있을 정도다. 서울 본관에서는 1년 중 보름 정도씩 두 차례밖에 소장품을 볼 수 없지만 대구의 간송특별전에서는 오는 9월 16일까지 여유 있게 감상할 수 있다. 매주 월요일은 휴관. 입장료는 어른 8000원이다. 글 사진 대구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리에또 제공
  • [2018 서울미래유산 그랜드 투어] 양 치던 섬, 인공 도시 되어 한강의 기적 일구다

    [2018 서울미래유산 그랜드 투어] 양 치던 섬, 인공 도시 되어 한강의 기적 일구다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8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8회 여의도(여의도공원의 여름) 편이 지난달 30일 영등포구 여의도 일대에서 진행됐다. 장맛비가 예고돼 있어 전날부터 행사 진행 여부를 걱정했지만 하늘이 도왔다. 서울미래유산을 사랑하는 참가자들은 우산과 비옷으로 무장한 채 단 한 명의 ‘노쇼’도 없이 대기자 10명을 포함, 40명 전원이 출석했다. 간간이 비가 뿌릴 때마다 건물 안이나 다리 아래로 피할 수 있었다. 참가자들은 이날 국회의사당역에서 출발, 제헌 70주년을 앞둔 국회의사당과 헌정기념관을 둘러보고 벚나무가 터널을 이룬 윤중제를 돌아서 순복음교회~한강공원~한국거래소~여의도지하벙커~여의도공원 코스를 2시간 30분 동안 걸었다. 해설을 맡은 황미선 서울도시문화지도사는 건축 전공자답게 박정희 전대통령, 김현옥 전서울시장, 김수근 건축가 등 3인의 여의도개발 주역을 내세워 여의도의 형성과 건축 과정을 중심으로 코스를 꾸려 나갔다.화려한 정치·금융·방송의 도시 여의도에는 숨겨진 내력이 많다. 여의도는 한국 근대산업화의 표상이라 할 만한 도시다. ‘여의도 면적’(2.9㎢·약 87만평)이라는 기준이 모래밭을 인공 도시로 조성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한강의 기적’이란 여의도를 육속화한 한강개발계획의 다른 이름이다. 강남의 원조이자 선두주자인 여의도가 강남보다 뒤처진 것은 한남대교(제3한강교)가 1969년 12월 한발 앞서 놓인 탓이다. 강남을 기점으로 전국을 잇는 고속도로 시대의 개막이 강남시대를 낳았다. 여의도는 1970년 5월 마포대교(옛 서울대교)가 놓일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또 1973년 소양강댐이 완공돼 한강 홍수 피해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전까지 모래도시, 수중도시는 빛을 보지 못했다.여의도와 밤섬은 한몸이었다. 여의도는 지금도 마포 쪽 본류와 영등포 쪽 샛강이 존재하는 섬이다. 여의도를 둘러싸는 윤중로가 인공적으로 쌓아 올린 거대한 둑이라는 사실을 잠시 잊고 있을 뿐이다. 한강하류에 형성된 백사장 중에서 영등포 쪽 양말산과 서강 쪽 밤섬만이 홍수 때 잠기지 않는 언덕이었다. 고산자 김정호는 경조오부도에 여의도와 밤섬을 붙여 그려 놓고 ‘백사주이십리’(白沙周二十里)라고 표기했다. 20리를 면적으로 환산하면 170만평이다. 조선시대 밤섬에 관한 기록은 더러 있지만 여의도에 대한 기록은 거의 찾기 어렵다. 한성부(서강방 율도계)에 속한 밤섬과 달리 여의도는 경기도(금천현 하북면)였기 때문이다. 밤섬은 뽕나무와 약초를 키우면서 배를 만드는 사람들이 사는 풍족한 마을이었지만, 여의도는 제사에 쓸 양과 염소를 키웠다. 그러나 두 섬의 운명은 180도 바뀐다. 여의도가 주 섬이 되고, 밤섬은 폭파돼 여의도를 채우는 비극의 주인공이 됐다. 여의도는 1968년 개발 이전까지 도시의 변방이었다. 일제강점기 경인철도 노선이 최단거리인 남대문~마포~여의도~인천 제물포로 연결되지 않고 남대문~용산~노량진~영등포~제물포로 우회한 게 결정적이었다. 1911년 경성부 연희면 여의도, 1914년 경기도 용강면 여율리, 1936년 경성부 여의도정, 1946년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동으로 행정구역이 계속 바뀌면서 시가지 확장 대상 지역에서 빠졌다. 경마장으로 쓰였으며 대한민국 최초의 비행장이자 공군의 발상지라는 역사가 묻혔다. 오늘의 강남을 영등포의 동쪽에 있다고 영동이라고 부르던 시절 서울은 교통난, 주택난, 급수난에 빠진 ‘3난의 도시’였다. ‘건설이 종교였던’ 김 전 시장에게 여의도에 제방을 쌓아서 택지로 활용하는 방안이 떠올랐다. 여의도와 마포, 영등포를 연결할 다리를 건설하고 한강의 남과 북에 제방도로를 만들어 홍수에 대비하면서 남은 강변에 택지를 조성한다는 아이디어였다. 서울의 얼개가 한강개발 3개년 계획이라는 이름으로 이때 굳어졌다. 여의도의 면적은 126만평이었지만 영등포 쪽 샛강을 33만평 유지하고 한강본류를 1300m 강폭으로 유지하는 계획에 따라 87만평으로 줄어들었다. 샛강은 나중에 복개하기로 했다. 윤중제의 높이는 15.5m, 제방 너비는 21m, 길이는 7.6㎞였다. 한강 강폭 유지와 여의도 둑 쌓기를 위해 밤섬은 희생제물이 됐다. 1인당 국민소득이 150달러이던 시절 110일 만에 모래도시가 탄생했다. 여의도를 중심으로 강남을 포괄하는 제2서울 건설 계획이 세워졌다. 박 전 대통령의 총애와 지원 없이는 가능하지 않았다. 박 전 대통령은 공사가 진행 중이던 1968년 5월 5일, 12일, 21일 세 차례나 여의도 현장을 찾았다. 예고 없이 수행원도 없이 새벽에 나타난 일도 많았다. 김수근이 등장한다. 1966년 세운상가, 1967년 청계고가를 계획하고 설계한 김수근팀에게 여의도 설계를 맡겼다. 여의도를 중심으로 하는 제2서울을 건설하되, 제2서울 도심부에 건립되는 건물은 모두 10층 이상으로 높이고 시가지는 지하도나 육교가 없는 초현대적인 도시를 구상했다. 사대문 안 구도심~마포~여의도~영등포~인천을 연결하는 새로운 도시라인을 그렸다. 국회와 사법부, 시청, 외국공관을 여의도로 옮기려는 계획이었다. 1970년 4월 와우아파트 붕괴로 김현옥이 물러나고, 다음달 마포대교가 준공됐다. 허허벌판 여의도를 남겨 놓고 떠났다. 서울시는 공무원 봉급을 주기 어려울 정도로 재정난에 허덕였다. 새로 부임한 양택식 시장은 여의도 택지를 팔아 지하철을 건설하고자 했다. 명동공원, 서린공원 등 돈이 될 만한 것은 다 팔았다. 대한민국 아파트의 ‘시범’을 보일 여의도시범아파트를 대법원지구와 시청지구에 지었다. 여의도 땅을 팔아서 강남과 잠실, 도심재개발, 지하철 1호선 건설이 속속 이뤄졌다. 뼛속까지 군인이던 박 전 대통령은 김 전 시장의 여의도 계획은 수용했지만 초현대식 입체 수중도시의 꿈은 공유하지 않았다. 중앙부 12만평에 ‘5·16광장’을 조성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비상시 군용 비행장으로 전용하기 위해 조성된 5·16광장은 여의도광장을 거쳐 1999년 여의도공원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여의도는 한국 현대사의 영과 욕이 담긴 기억저장소로 남았다. 글 사진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 문희일 연구위원
  • [단독][커버스토리] 평양의 청춘, 그들도 우리처럼

    [단독][커버스토리] 평양의 청춘, 그들도 우리처럼

    8년간 7회 방북… 7개 도시 등 방문 적대감·색안경 벗고 개인의 삶 담아“무섭고 자유가 없는 전체주의 국가의 이미지가 강한 북한에서도 개개인의 삶의 애환이 있고 희로애락의 감정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적대감의 색안경이 씌워진 상태로는 볼 수 없는, 이웃국가로서의 북한을 제 카메라에 담아내고 싶었던 거죠.”일본 사진작가 하쓰자와 아리(45)는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북한에 대한 일본인의 시선을 좀더 긍정적인 것 또는 객관적인 것으로 바꿔 볼 수 없을까, 그것이 북한 방문의 출발점이었다”고 말했다. 2010년 이후 7차례 북한을 다녀온 그는 북한에서 촬영한 사진 수만 장 가운데 일부를 추려 얼마 전 사진집 ‘이웃, 그리고 38도선의 북(北)’을 펴냈다. 지난 28일 서울신문과 가진 단독 인터뷰에서 하쓰자와는 “8년 전 첫 방문과 올 2월 마지막 방문을 비교했을 때 가장 큰 차이는 북한의 경제적 발전이었다”고 말했다. →처음 북한에 들어간 건 언제였나. -2009년 도쿄의 조선총련을 통해 북한 관광을 신청했는데, 1년을 기다린 끝에야 중국 베이징에서 평양행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평양외국어대 일본학과에 있는 학생들에게 일본어 서적을 전달하는 단체 사람들 틈에 끼어 갔는데, 일행 중에 사진작가인 나만 카메라 소지가 허용되지 않았다. →첫 느낌은 어땠나. -비행기 트랩에서 내리는데 “아, 이 사람들도 뿔은 안 달렸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웃음). 그 정도로 나 역시 북한에 대해 부정적인 얘기만을 듣고 살아왔던 것이다. 공항에서 일행들이 가져온 책을 검사받고 있는 동안 혼자 나와 담배를 빼물었다. 베이징에서 압수됐기 때문에 라이터가 없었다. 인민복을 입은 10여명의 남자들에게 다가가 불을 빌려 달라고 말을 건 뒤 담배를 같이 피웠다. 나에 대한 감시를 맡았던 북측 안내원이 그런 모습들을 보며 차츰 경계심을 풀어갔던 것 같다. →사진 촬영은 두 번째 방북 때부터였나. -그렇다. 2011년 6월 두 번째로 북한에 들어갔다. 1년 전 방북 때 밤에 안내원과 술을 마시며 신뢰를 쌓으려고 노력한 게 어느 정도 먹혀들어 카메라 촬영이 허용됐다고 생각한다.→일본인으로서 비교적 자유롭게 북한을 다닌 것 같다. -평양, 청진, 원산, 회령, 남포, 신의주, 함흥 등 주요 도시를 두루 돌았다. 작은 마을이나 농촌 등도 여러 곳 갔다. 안내원이 주민들에게 ‘이 사람은 우리들에 대한 일본 사람들의 이미지를 좋게 바꾸기 위해 왔다’고 나를 소개하면서 촬영에 도움을 줬다. 그러나 몰래 찍은 사진들도 상당수 있는데, 안내원은 알면서도 모르는 척 그냥 넘어가 주었다. “우리가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 주면 그걸로 족하다”고 말하기도 했다.→2016년 다시 북한에 들어간 이유는. -2012년 네 번째 방북을 마치고 그해 12월 ‘이웃, 38도선의 북’이라는 제목으로 사진전을 열었다. 그러고서 한참이 흘렀는데, 북한 경제가 국제사회의 제재 속에서도 좋아지고 있다는 말을 듣게 됐다. 2016년 12월 다시 북한을 갔다. →방북은 매번 순조로웠나. -봉변을 당한 적도 있었다. 당장 올 2월 방북 때 입국심사 과정에서 스마트폰을 압수당하고 1시간 동안 억류돼 있었다. 나의 스마트폰에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관련된 사진이 있었는데 그걸 문제 삼았다. 솔직히 그때는 오토 웜비어(북한에 억류됐다 사망한 미국인 대학생)처럼 되는 게 아닐까 싶을 만큼 두려웠다. →방북이 크게 2개 시기로 구분되는데. -2010~2012년(4차례 방북)과 2016~2018년(3차례)으로 나눌 수 있을 텐데, 2012년 떠나올 즈음 북한 사회는 사망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한 애도 분위기로 크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러나 4년 후 다시 갔을 때에는 한층 활기 넘치는 모습이었다. →어떤 변화를 느꼈나. -평양 거리의 자동차가 4년 전에 비해 얼추 3배 정도 많아 보였다. 특히 북한산 자동차와 택시가 눈에 띄게 늘었다. 백화점에서도 과거 중국산 일색이던 의류 판매대에 북한산이 많이 보였다. 고려항공 기내 촬영이 허용된 것, 고급 음식점에 부유층이 택시를 타고 오는 것, 남자들의 복장이 과거보다 다채로워진 것 등이 과거와 달라진 점들이었다. →스마트폰은 어느 정도나 보급돼 있었나. -젊은 사람들 중 상당수가 스마트폰을 갖고 있었다. 그들도 역시 다른 나라처럼 시간이 날 때마다 스마트폰 게임을 즐겼고 수시로 폰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다. 세그웨이(1인용 이동수단)를 타는 사람들도 보였다. 2010년 첫 방북 때에는 못 봤던 카페들도 생겨나 예쁜 여성들이 음료와 케이크를 팔았다. 일본에 없는 ‘낫토(콩을 발효시킨 일본 전통음식) 아이스크림’ 제품도 개발돼 팔리고 있었는데, 맛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왜 사진을 찍나. -대학에서 사회학을 전공하면서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형태의 차별 문제에 눈을 뜨게 됐다. 출발점은 여성에 대한 차별이었는데, 그것이 나중에 오키나와와 재일 한국인의 차별 등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북한을 다녀온 것 역시 큰 틀에서 같은 맥락이다. →오키나와 문제에 매우 적극적이라고 들었다. -미군의 일본 주둔에 따른 고통을 왜 오키나와 주민들만 뒤집어써야 하나. 오키나와는 원래 류큐 민족이 살던 곳이었는데, 본토인들이 정복한 뒤 원주민들을 태평양전쟁의 참화로 몰아넣었다. 그러더니 전쟁이 끝나자 주일미군을 집중적으로 이곳에 주둔시키면서 일본 전체 안전보장의 부담을 일방적으로 전가하고 있다. 이젠 그 부담을 본토로 가져올 필요가 있다.(그는 2013년 말부터 1년 3개월 동안 오키나와에 살면서 현지를 촬영했고, 현재 ‘오키나와 미군 기지를 본토로 가져오는 모임’에서 활동하고 있다) →일본의 대북 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나. -일본 정부도, 국민도 어떻게 북한과 마주해야 할지를 생각하지 않고 있다. 북한을 가상의 적국으로 놓고 때로는 무서운 나라로, 때로는 우스운 나라로 만들며 정치에 이용하고 있을 뿐이다. 일본의 학생들 중 태반은 100여년 전 한·일 병합에 대해 전혀 모를 만큼 과거사에 대해 무지하다. 학교에서 안 가르쳤든, 학생들이 열심히 안 배웠든 엄연한 현실이다. 일본은 한반도를 식민지로 삼았던 역사와 그에 따른 남북 분단의 책임에는 눈을 가리고 있으면서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에 대해서만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반도 통일이 이뤄질 수 있도록 일본은 모든 책임을 다해야 한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하쓰자와 아리는 누구 1973년 프랑스 파리 출생. 일본 조치대 사회학과 졸업. 2002년 전쟁 중인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를 촬영하고 2013년 오키나와의 슬픔을 담은 작품집을 내는 등 반전(反戰), 소외 등을 주로 다루는 사회참여형 사진작가. 사진집 ‘바그다드 2003’, ‘이웃. 38도선의 북’, ‘오키나와를 말하세요’, ‘이웃, 그리고 38도선의 북’ 등을 펴냈다.
  • 45년 전 교통사고로 신부 잃은 남편…보험금 노린 살인극?

    45년 전 교통사고로 신부 잃은 남편…보험금 노린 살인극?

    1973년 9월 14일, 신고를 받고 교통사고 현장에 출동했던 경찰은 이미 숨져 있는 아내의 머리를 안고 있는 남편을 발견했다. 결혼한 지 27일 만에 신부가 숨진, 비극적인 현장이었다. 그러나 45년 뒤 비극은 살인극으로 바뀌었다. 남편이 보험금을 노리고 결혼을 한 뒤 한달도 안돼 신부를 교통사고로 위장해 살해한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28일(현지시간) 시카고트리뷴에 따르면 변호사인 도니 러드(76)는 신부 노린 쿠메타(당시 19세)를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전날 시카고 쿡 카운티 법원에서 열린 재판에서 검찰은 “피고인은 쿠메타를 살해할 목적으로 결혼했고, 결혼식을 올린 지 단 27일 만에 목적을 달성했다”고 주장했다. 45년 전 러드는 시카고 교외도시 배링턴 힐스 외곽의 한 도로에서 쿠메타와 함께 자신의 승용차를 몰고 가다가 옆 차선을 빠르게 지나가던 차와 충돌했다. 러드에 따르면 그 충격으로 쿠메타는 차 밖으로 튕겨 나갔고, 바위에 머리를 부딪혔다. 당시 검시소 측은 쿠메타의 머리에 난 상처를 기록으로 남겼지만 따로 부검을 하거나 엑스레이 촬영을 하지는 않았다. 직접 사인은 경추 골절로 추정했다. 세상을 떠난 신부는 웨딩드레스를 입은 채 묻혔다. 그러나 1991년 러드의 의뢰인이었던 50대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자택에서 총격을 받고 살해된 뒤 러드가 용의선상에 오르면서 그는 경찰의 예의주시를 받게 됐다. 러드는 승소로 받은 억대의 돈을 의뢰인에게 넘겨주지 않고 있다가 고소 위협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2013년 쿠메타의 묘지에서 시신을 꺼내 부검을 했다. 부검 결과 쿠메타의 두개골에서는 교통사고로 인한 상처는 발견되지 않았고, 오히려 둔기로 머리를 여러 차례 맞은 흔적들이 있었다. 이뿐만 아니라 러드는 쿠메타와의 결혼식 전날까지 다른 여성과 살았고, 장례식날 바로 다시 이 여성의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8개월 뒤 이 여성과 결혼했다. 그 뒤 러드는 쿠메타 사망에 따른 보험금 12만 달러(약 1억 5000만원)를 타갔다. 이러한 증거와 정황을 들어 검찰은 “러드가 생명보험금을 노리고 벌인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러드의 변호인단은 “러드가 쿠메타의 보험금 수혜 대상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증거가 없다. 또 쿠메타가 교통사고로 숨진 것이 아니라는 증거도 없다”고 반박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이달만 106명…말라리아 환자 급증

    말라리아 감염 환자가 이달 들어 급증, 여름철 집중 발생 시기를 앞두고 철저한 방역이 요구된다. 28일 질병관리본부 질병보건통합관리시스템에 따르면 올 들어 전국의 말라리아 환자 수는 모두 215명으로, 이 중 이달에만 106명이다. 지난달까지 5개월간 발생한 환자 수 109명과 비슷하다. 지난해 1~6월 144명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올해 42% 늘었다. 최근 10년간 가장 많은 말라리아 환자가 발생한 2015년(699명), 2016년(673년)과 비슷하다. 올해 발생한 말라리아 환자는 경기 123명, 인천 31명, 서울 28명 등 환자의 84%인 182명이 수도권에서 발생했다. 국내에서 말라리아 환자는 무더운 7~8월에 절반가량 발생한다. 경기도 관계자는 “2015·2016년과 비슷한 발생 추이를 보여 발생지역을 중심으로 집중 방역하고 있다”며 “외출 때 기피제 사용과 풀숲에서 긴팔 착용 등 개인 예방 수칙 준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발생하는 말라리아는 고열과 오한 등 감기와 유사한 증세가 3일 간격으로 나타나는 삼일열 말라리아로, 열대지역에서 발생하는 열대열 말라리아와는 다르다. 치사율도 높지 않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강진 여고생 추정 시신 찾은 건 특수훈련된 경찰 ‘체취견’

    강진 여고생 추정 시신 찾은 건 특수훈련된 경찰 ‘체취견’

    전남 강진 매봉산에서 실종 여고생으로 추정되는 시신을 발견한 것은 사람 냄새를 맡도록 특수 훈련된 경찰 체취견의 활약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수색 장기화가 우려된 상황에서 경찰견이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푼 셈이다. 경찰은 24일 군견 2마리, 체취견 8마리를 투입해 강진군 도암면 속칭 매봉산 일대를 수색 하던 중 실종된 A(16·고1)양으로 추정되는 시신을 발견했다. 시신은 옷이 상당 부분 벗겨진 상태로 우거진 풀과 나뭇가지 등으로 덮여 있었다. A양이 실종된 지 며칠이 지난 데다 그간 경찰 수색 요원 등 많은 인원이 남긴 체취가 현장에 뒤섞인 상태였지만, 체취견은 이러한 악조건 속에서도 후각으로 A양 흔적을 찾아냈다. A양의 체취를 맡은 체취견은 우거진 풀숲 속에서 희미해진 냄새를 찾아냈다. 체취견은 사람 냄새를 맡도록 전문적으로 훈련된 경찰견의 한 종류다. 범행을 저지르고 도주한 범인 추적은 물론 실종자나 치매 환자 수색, 범죄 피해자 시신 추적 등 각종 실종·범죄 현장 수색에 투입된다. 경찰견은 체취견을 비롯해 마약, 지뢰 등을 찾는 탐지견,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는 인명 구조견 등이 있다. 개의 후각 세포는 인간의 44배로, 냄새 식별 능력에서 인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예민함을 자랑한다. 잘 훈련된 개는 이처럼 고유한 개개인의 체취까지 구별해 내는 수준이다. 범죄 현장에 남은 미량의 체취를 기억한 뒤 냄새를 추적해 증거물이나 용의자를 찾아내고 실종자를 구한다. 현재 전국 10개 지방경찰청에서 16마리의 체취견을 운용하고, 이 개를 통제하고 운용하는 사람인 핸들러(전문요원)가 있다. 한국 경찰이 개를 수사 분야에서 활용한 것은 1973년 당시 내무부 치안국에서 개 13마리를 일본에서 들여와 수사·방범 활동에 투입한 것이 경찰견의 시초다. 체취견은 부모 성격까지 다양한 측면을 고려해 엄선한다. 핸들러에 대한 복종은 기본이고, 부패한 시신과 성분이 같은 인공 시료를 이용해 시신 냄새를 추적하게 하는 연습을 한다. 평지, 산악 등 다양한 지형 조건을 접하게 하고, 군견 훈련소에서 일정 기간 위탁 훈련을 시키기도 한다. 최첨단 장비와 기술을 이용한 과학수사 기법이 계속 등장하는 상황에서도 체취견 활용은 경찰이 주목하는 차세대 기법의 하나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김종필 약력]초대 중정부장에서 ‘영원한 2인자’로

    ▲1926년 1월= 충남 부여군 출생 부여국민학교 공주중학교 서울사대 중퇴 ▲1949년 5월= 육군사관학교 8기 졸업 ▲1951년 2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조카인 박영옥씨와 결혼(슬하에 1남 1녀) ▲1961년 5월= 5·16 군사혁명 참여, 초대 중앙정보부장 ▲1963년 1월= 육군 준장 예편 ▲1963년 2월= 민주공화당 창당 ‘자의반 타의반’ 외유 ▲1963년 11월= 6대 국회의원(부여), 민주공화당 의장 ▲1967년 6월= 7대 국회의원(부여) ▲1971년 5월= 8대 국회의원(전국구) ▲1971년 6월= 국무총리 취임 ▲1973년 2월= 9대 국회의원(유정회) ▲1975년 12월= 국무총리 퇴임 ▲1978년 12월= 10대 국회의원(부여) ▲1979년 11월= 공화당 총재 ▲1980년 6월= 정계은퇴,도미 ▲1987년 9월= 정계복귀 선언 ▲1987년 10월= 신민주공화당 창당,총재 ▲1987년 12월= 13대 대선 출마 ▲1988년 4월= 13대 국회의원(부여) ▲1990년 1월= 3당 합당,민주자유당 최고위원 ▲1992년 3월= 14대 국회의원(부여) ▲1992년 8월= 민자당 대표최고위원 ▲1993년 2월= 민자당 대표위원 ▲1995년 2월= 민자당 탈당 ▲1995년 3월= 자유민주연합창당 총재 ▲1996년 4월= 15대 국회의원(부여) ▲1997년 11월= 15대 대선후보 DJP 단일화 선언, 자민련 명예총재 ▲1998년 2월= 김종필 국무총리 임명(김대중 정부 출범) ▲2000년 1월= 자민련 명예총재로 복귀 ▲2000년 4월= 16대 국회의원(전국구) ▲2001년 9월= DJP 공조 파경(자민련이 임동원 통일부장관의 해임건의안에 찬성표를 던져 가결시킴) ▲2004년 4년월= 17대 총선서 자민련 4석 확보에 그쳐 비례대표 1번 탈락. 정계은퇴 선언 ▲2008년 12월= 뇌졸중 발병 ▲2013년 12월= 운정회 창립 ▲2015년 2월= 부인 박영옥 여사와 사별 ▲2016년 3월= <김종필 증언록> 발간 ▲2018년 6년 23일= 노환으로 별세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씨줄날줄] 114년 만의 귀환 ‘용산’/김성곤 논설위원

    [씨줄날줄] 114년 만의 귀환 ‘용산’/김성곤 논설위원

    주한미군사령부가 용산 시대를 마감하고, 오는 29일 경기도 평택으로 이전한다. 용산에 미군이 주둔한 지 73년, 미군사령부가 창설된 지 61년 만이다. 미군이 용산에 자리를 잡은 것은 해방 직후인 1945년 9월 9일이다. 미 육군 태평양사령관 맥아더 장군의 ‘포고령’에 따라 일본 오키나와에 주둔하던 24군단이 일본군 무장해제와 행정권 장악을 위해 서울에 들어와 자리 잡은 곳이 용산이다. 이후 1950년 1월 12일 미국의 태평양 방위선인 ‘애치슨라인’에서 한국을 제외되면서 한때 482명의 미 고문단만 남기도 했으나, 6·25전쟁 발발로 미군이 다시 투입된다. 1957년엔 미군사령부가 용산에 자리를 잡는다. 미군사령부의 평택 이전은 ‘한국민이 원하기 때문’이라는 명목으로 포장됐지만, 사실은 한국과 미국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결과였다. ‘해외 주둔 미군 재배치 계획’(GPR)에 따라 미국은 2003년 주한미군 재배치에 나섰고, 당시 한국에서는 경제가 발전하면서 수도 서울의 한복판에 외국 군대가 주둔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점차 커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이전 시기와 규모를 놓고 한ㆍ미 양국 간 줄다리기를 하고, 개발 주체 문제로 중앙정부와 서울시가 갈등을 빚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미군 사령부 이전이 갖는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돌이켜 보면 우리에게 안타까운 오욕의 땅이 용산이다. 용산에 외국 군대가 처음 진을 친 것은 임진왜란 때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거느린 왜군이었다. 행주산성 전투에서 권율 장군에게 패퇴한 고니시 군이 지금의 원효로 4가에, 함경도에서 철수한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 군이 갈월동에 각각 진지를 구축하고 반격을 준비했다고 한다. 지금은 배가 많이 난다고 해서 붙여진 이태원(梨泰院)으로 부르지만, 당시에는 항복한 일본인이 많이 산다고 해서 이타인(利他人)으로, 왜군의 만행으로 태어난 2세들이 많이 산다고 해서 이태원(異胎院)으로 불리기도 했다. 구한말에는 청나라 군대가 청일전쟁 때까지 여기에 주둔한다. 1882년 흥선대원군의 청나라 압송도 이곳을 통해 이뤄졌다. 그러다가 러일전쟁 때인 1904년 일본의 강압으로 맺은 ‘한일의정서’에 따라 일본은 용산 일대 땅 300만평을 강제 수용해 군기지화한다. 이렇게 보면 용산이 우리 품에 돌아온 것은 114년 만이다. 성공적인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으로 한반도에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의 전기가 마련된 시점에 114년 만에 온전하게 용산이 우리 품에 돌아온다. 그 자리에는 민족공원이 조성된단다. 새삼 용산을 다시 보게 된다.
  • “검·경은 국민 위해 존재… 존중하고 협업해야”

    “검·경은 국민 위해 존재… 존중하고 협업해야”

    존 최 한인 첫 美 카운티 검사장 서로 다투면 정의·치안 무너져 미투, 목소리 낼 때 문제 해결돼 “검찰과 경찰은 서로 존중하는 문화가 필요해요. 전문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협업해야 합니다. 둘 모두 국민의 안전과 국민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기 때문이죠.”존 최(48·한국명 최정훈) 미국 미네소타주 램지 카운티 검사장은 21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검·경이 다투면 정의와 치안이 무너질 수 있다”며 “우리가 누구를 위해 일하는지 항상 잊지 않고, 또 대의를 잃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사권 조정을 놓고 ‘불화’ 중인 한국 검·경에 조언을 부탁하자 돌아온 말이다. 그는 서울국제형사법 콘퍼런스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전날부터 2박 3일 일정으로 서울 임피리얼팰리스호텔에서 열리고 있는 콘퍼런스는 우리 대검찰청과 한인검사협회(KPA)가 공동으로 여는 행사다. 국내외 검찰 및 수사 관계자 150여명이 참가했다. 2010년 미국 캘리포니아 지역 한인 검사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KPA는 2013년부터 독일, 호주, 캐나다, 브라질의 한국계 검사들까지 뭉치며 글로벌 네트워크로 확장했고, 한국 검찰과 꾸준히 교류하고 있다. 서울에서 태어나 세 살 때인 1973년 부모를 따라 미국에 온 최 검사장은 2010년 한인 최초로 미국의 카운티 검사장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2014년 재선에 성공해 아시안을 포함한 미국 내 소수 인종의 자랑이 됐다. 그가 검찰권을 총괄하고 있는 램지는 미네소타주 87개 카운티 중 하나로 주도(州都) 세인트폴시를 포함해 19개 도시를 관할하는 곳이다. 인구는 55만여명으로 미네소타에서 두 번째로 인구가 많다. 아시아계는 15% 정도다. 로스쿨 졸업 후 10년간 변호사로 활동하던 최 검사장은 2006년부터 4년간 세인트폴 검사장을 맡기도 했다. 그는 마약 범죄자를 감옥 대신 재활원에 보내 사회 복귀의 발판을 마련해 주고 성매매 여성을 범죄자로 처벌하는 게 아니라 사회 구성원으로 보듬는 정책을 추진해 호평을 받았다. 마침 한국의 ‘미투’ 운동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자 큰 관심을 드러냈다. 그도 미국 현지에서 성폭력, 가정폭력 범죄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 위해 애쓰고 있기 때문이다. 미투는 정의, 공공 안전을 위한 기본 원칙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너무 오랫동안 여성들의 목소리가 묻혀 왔어요. 침묵을 강요하는 것도 폭력입니다. 더 많은 피해자들이 부끄러워하지 말고 증언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요. 한편으론 남성들도 문제 해결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독려해야 합니다. 미국에서도 피해자에게 도움을 주고 가해자에게는 확실하게 책임을 묻는 추세지요.” 정계 진출 권유도 받고 있지만 그는 검사장으로서의 소명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올해 말 3선에 도전할 계획이다. “매일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다른 이들을 돕는 일을 하고 있는 게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너무 뿌듯합니다. 자기 일을 하면서 사회의 변화를 만드는 것, 앞으로도 사회를 개선해 나가는 사람이고 싶어요.”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 청년이 몰려온다… 함박웃음 터진 영양

    청년이 몰려온다… 함박웃음 터진 영양

    전국 226개 기초지방자치단체 가운데 섬 지역인 경북 울릉군을 빼고 인구 최소인 경북 영양군에 100명에 가까운 석·박사급 전문가들이 대거 둥지를 튼다. 21일 환경부 등에 따르면 지난해 8월 영양군 영양읍 대천리 부지 258만 3700㎡에 총사업비 841억원을 들인 국립생태원 멸종위기종복원센터가 올해 말 개관한다. 멸종 위기에 놓인 한반도의 야생생물을 보전·복원할 목적으로 설립된 핵심 연구시설이다. 전체 근무자 105명 모두가 4년제 대학 졸업 이상 학력 소지자들이다. 석·박사가 70여명이다. 대부분 20~50대로 알려졌다. 이처럼 많은 젊은 고급 인력들이 영양에 유치될 것으로 알려지면서 군 전체가 벌써 한껏 들뜬 모습이다. 무엇보다 군의 최대 현안인 인구 늘리기에 큰 보탬을 줄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영양군은 지난해부터 인구 늘리기에 사투를 벌이고 있다. 2025년까지 2만명을 회복하겠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45년 전인 1973년만 해도 7만여명이던 군 인구는 지난해 말 1만 7479명으로 줄어들었다. 이마저도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5963명으로 전체의 34.1%를 차지한다. 이번 센터 운영으로 침체된 지역 경제와 사회 분위기를 되살리는 데도 적잖은 활력을 불어넣을 전망이다. 주민 김모(53)씨는 “점점 활력을 잃어가고 있어 안타까움을 사는 도시에 젊고 우수한 인재들로 구성된 대규모 시설을 유치해 큰 축복으로 받아들여진다”며 반겼다. 전종근 영양군 부군수는 “종복원센터 구성원과 가족들을 전입시킬 수 있도록 최대한 지원하고 협조를 구하겠다”고 말했다. 영양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주한미군, 73년 만에 용산 떠난다… ‘평택 시대’ 개막

    주한미군, 73년 만에 용산 떠난다… ‘평택 시대’ 개막

    주한미군이 오는 29일 경기 평택 캠프 험프리스에 신축된 새로운 사령부 건물에서 청사 개관식을 열며 미군의 용산 주둔 73년 만에 ‘평택시대’를 본격화한다. 주한미군 관계자는 21일 “경기 평택 캠프 험프리스에서 29일 신청사 개관식이 열린다”며 “민·관·군 관계자가 청사 앞에서 기념식을 가질 예정”이라고 밝혔다. 오는 28일 방한할 예정인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도 이 행사에 참석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됐지만 당일 방문하는 일정상 행사 참석은 어려운 것으로 전해졌다. 최현수 국방부 대변인은 “매티스 장관은 다음주 중국 방문 이후 28일 오후 한국을 방문해서 한·미 국방장관회담을 가질 예정”이라며 “이날 하루만 머물 예정이기 때문에 29일 행사 참석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미군은 1945년 8월 미 극동군사령관 일반명령 제1호 등에 따라 그해 9월 일본 오키나와 주둔 제24군단 예하 7사단 병력을 한국으로 이동시키며 용산 주둔을 시작했다. 미 7사단은 1945년 9월 9일부터 30일까지 서울과 인천에 있던 일본군을 무장 해제시키고 주요 시설물 보호와 치안 유지를 담당했다. 24군단 사령부가 서울 용산에 설치된 이때가 미군이 용산 주둔을 시작한 시점이다. 이후 1949년 1월 24군단 병력이 철수하고 마지막 남은 5전투연대도 그해 6월 모두 철수했지만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면서 미군이 유엔군의 일원으로 다시 투입돼 1957년 7월 주한미군사령부가 용산에 창설됐다. 평택 신청사 개관은 미군이 용산에 주둔한 지 73년 만이자 주한미군사령부가 용산에 창설된 지 61년 만에 ‘용산 시대’를 마감하는 신호탄이 될 전망이다. 앞서 미 8군사령부는 지난해 7월 평택으로 먼저 이전했다. 주한미군사령부와 유엔군사령부 소속 군인도 올해 말까지 평택으로 옮겨갈 예정이다. 다만 한·미 연합사령부는 국방부 영내의 7층짜리 독립 건물로 이전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합동참모본부 청사의 2개 층도 연합사가 사용할 것이라고 군 관계자는 설명했다.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6월의 강화도… 역사는 흐른다

    6월의 강화도… 역사는 흐른다

    우리나라에서 4번째로 큰 섬 강화도는 고려의 도읍 개성과 조선의 도읍 한양에 가까워 역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몽골 침입 당시 고려의 임시수도 역할을 하는가 하면 개화기 서구열강과 일제가 할퀸 역사의 아픈 상처도 고스란히 품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강화를 ‘2018 올해의 관광도시’로 선정한 것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 호국보훈의 달 6월이다. 아이들의 손을 잡고 강화도로 역사 탐방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경기 김포와 인천 강화를 잇는 강화대교를 건너 차로 25분쯤 달리니 첫 목적지 강화평화전망대다. 강화도 북단에 위치한 전망대에서 북한 황해북도 개풍군까지는 불과 2㎞ 남짓. 2층과 3층 전망대에서 보이는 북녘 땅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500원짜리 동전을 넣고 망원경에 눈을 가까이 댔다. 들녘에 농사일 하러 나온 북한 주민 수십명이 렌즈 너머로 분주히 움직였다. 헤엄쳐 건널 만큼 지척이건만 해안가에는 철조망이 꼿꼿이 서 있다. 두 땅 사이로 유유히 흘러온 한강은 이곳에서 바다가 된다.●비극의 근대사 강화도조약 맺었던 ‘연무당 옛터’ 전망대 1층에는 2010년 천안함 피격 사건 당시 사진들이 전시돼 있다. 전시관 안쪽 기둥과 벽에는 방문객들이 남긴 통일 염원 메시지가 주렁주렁 걸렸다. 전망대로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와 48번 국도로 접어들면 얼마 안 가 강화산성 서문이 보인다. 맞은편은 쓰라린 역사가 서린 연무당 옛터다. 1875년 운요호 사건을 일으킨 일제는 이를 빌미로 이듬해 강화도 연무당에서 조선과 조일수호조규(강화도 조약)를 체결한다. 조선이 외국과 맺은 최초의 근대적 조약이자 불평등조약이다. 아픔으로 점철된 한국 근대사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조선은 이를 계기로 일제에 부산, 인천, 원산을 개항한다. 지금은 새로 놓인 비석과 안내판만 덩그러니 있는 공터지만 강화읍내를 둘러보는 출발점으로 삼을 만하다. 시간을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 보자. 연무당 옛터에서 차로 5분, 도보로 15분 거리에 강화고려궁지가 있다. 야트막한 언덕 위 고려궁지 입구 계단에 서면 남쪽으로 강화읍내가 발아래다. 1231년 몽골이 고려를 침략해 오자 고종은 이듬해 강화로 피란한다. 이후 원종이 몽골과 화친을 맺고 개경으로 환도할 때까지 강화는 38년간 고려의 도읍이었다. 다만 고려의 흔적을 기대하고 왔다면 적잖이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몽골의 요구로 당시 궁궐과 성곽이 모두 파괴됐기 때문이다. 영화는커녕 굴욕의 세월만 보내다 흔적마저 사라진 도읍이었던 탓이다. 현재는 조선시대 행궁으로 쓰일 당시 처음 지어진 유수부 동헌, 이방청, 외규장각 등이 남아 있다. 그마저도 병자호란·병인양요 때 소실됐다가 1970년대 이후 복원했다. ●몽골 요구로 흔적 없이 사라진 고려 도읍 ‘강화고려궁지’ 외규장각에 들어가 의궤 관련 전시물을 둘러봤다. 의궤는 조선 왕실의 중요한 행사와 건축 등을 글과 그림으로 상세하게 기록한 종합보고서다. 이곳에 보관됐던 의궤는 왕이 친히 열람하던 것이지만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에 약탈됐다가 2011년에야 반환이 마무리됐다. 외규장각 뒤편으로는 고려궁지 발굴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400년 세월 동안 고려궁지를 지켜온 동헌 앞 아름드리 나무도 볼만하다. 강화도 동쪽 해안으로 발길을 옮겼다. 섬 전체를 빙 둘러 설치된 5진 7보 53돈대 중 가장 대표적인 유적을 돌아볼 차례다. 강화8경에 꼽히는 갑곶돈대, 광성보, 초지진은 강화대교와 초지대교 사이에 차례로 자리하고 있어 해안가를 따라가며 둘러보기 좋다.강화대교 코밑 갑곶돈대로 향하니 바로 옆 강화역사박물관이 먼저 보였다. 1~2층 전시관에는 선사시대부터 현재까지 강화의 역사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다. 특히 외세 침략기마다 중추적인 역할을 해 온 강화인지라 이곳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나라 역사를 훑어볼 수 있다. 박물관을 나와 해안가 낮은 언덕의 갑곶돈대에 올랐다. 1866년 프랑스 극동함대 병력 600여명이 이곳으로 상륙해 강화성과 문수산성을 점령했다. 건너편 육지와 섬 사이를 흐르는 강 같은 바다 ‘염하’를 바라보다 정자(이석정)에서 쉬었다. 어느덧 따가워진 6월 햇볕을 피해 앉으니 섬을 지나 불어온 바닷바람이 시원했다. 해안동로를 따라 차로 15분 남짓 남쪽으로 달리면 광성보다. 강화도 동해안에서 육지 쪽으로 유독 툭 튀어나온 곳에 위치한 광성보는 1871년 신미양요 때 미국 군대와의 격전지다. 광성보 내 너른 산책로를 거닐며 무명용사들의 무덤인 신미순의총 등을 둘러볼 수 있다.●병인·신미양요 때 함락됐던 뼈아픈 역사 ‘초지진’ 초지대교에 이르기 전 초지진이 있다. 넓지 않은 진 둘레를 옹골찬 모양으로 둘러싼 성벽이 인상 깊지만 한눈에도 새로 쌓아 올렸다는 걸 알 수 있다.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때 함락된 데 이어 일제에 의해 파괴됐다가 1973년 복원됐다.초지진까지 둘러볼 계획이었지만 강화도를 떠나기 못내 아쉬워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전등사로 향했다. 언덕을 오르고 매표소를 넘자 소나무 숲이 펼쳐져 있다. 400년 된 나무 여러 그루 사이로 700살 된 나무까지 보였다. 오솔길을 따라 10여분을 쉬엄쉬엄 오르니 옹기종기 모인 절 건물들이 보였다. 마당 한편 범종은 보물 제393호. 그 너머로 고고한 자태를 뽐내는 건물이 보물 제178호 대웅전이다. 세월이 묻은 현판과 서까래가 운치 있다. 섬을 나설 때는 초지대교를 건넜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낙조에 마음이 끌려 차를 돌렸다. 800년 전 고려의 왕도 강화의 낙조를 바라봤을까. 염해에 비친 석양이 구슬펐다. 글 사진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여행 수첩 →강화군 주요 관광지 11곳 중 3곳 이상 방문 시 할인요금을 적용받을 수 있다. 3곳 이상 15%, 5곳 이상 20% 할인된다. 여행 전 방문할 곳을 미리 정해 놓고 처음 가는 곳에서 입장권을 한 번에 구입하는 게 유리하다. 8곳 이상일 땐 입장권을 이틀간 사용할 수 있다. 전등사는 별도요금을 받는다. 어른 3000원. →평화전망대를 나올 때는 해병대 초소에 ‘민북지역 출입증’을 잊지 말고 반납하자. 무심코 나갔다가 되돌아오는 낭패를 겪을 수 있다.
  • 러시아 월드컵 출전하는 선수 736명…최고령은 누구?

    러시아 월드컵 출전하는 선수 736명…최고령은 누구?

    국제축구연맹(FIFA)가 러시아월드컵에 출전하는 32개국 736명 선수의 리스트를 공개했다. 중남미 언론은 공개된 리스트를 조회해 다양한 1위(?) 기록 보유자를 소개했다. 먼저 개인 최장신 부문. 러시아월드컵에 출전하는 최장신 선수는 크로아티아의 후보 골키퍼 로브레 칼리니치(KAA 헨트)다. 칼리니치는 신장 201cm로 농구선수 못지않은 장신이다. 국가별 평균을 보면 최장신 대표팀은 세르비아다. 세르비아의 평균 신장은 186.5cm로 키다리 군단이다. 반대로 최단신 선수로는 파나마의 알베르토 킨테로(UL), 코소보의 세르단 샤키리(스토크 시티 FC), 사우디아라비아의 야히라 알쉐흐리(레가네스) 등 3명이 공동 1위에 이름을 올렸다. 세 선수의 키는 나란히 165cm다. 러시아월드컵에 출전하는 최단신 대표팀은 평균 신장이 177.3cm인 사우디아라비아, 두 번째로 평균 신장이 작은 대표팀은 아르헨티나와 페루(각각 178.7cm)다. 최고령과 최연소 선수가 누군지도 관심거리. 러시아월드컵에서 만나게 될 최고령 선수는 이집트의 노장 골키퍼 에삼 엘하다리다. 1973년 1월 15일생인 그는 올해 만 45세다. 1996년 대표선수로 데뷔한 그는 A매치 경력 102 경기를 자랑하는 베테랑이다. 엘하다리가 이번 러시아월드컵에서 출전 기회를 잡는다면 역대 최고령 기록은 깨지게 된다. 현재 월드컵 최고령 출전 기록은 2014 브라질월드컵에서 콜롬비아 대표로 출전한 파리드 몬드라곤이 갖고 있다. 당시 그의 나이는 43세였다. 반대로 최연소 선수는 오스트레일리아의 다니엘 아르자니다. 1999년 1월 4일생으로 올해 19살인 아르자니에겐 러시아월드컵이 생애 첫 월드컵이다. 가장 가벼운 선수와 가장 무거운 선수 간 차이가 무려 40kg에 이른다는 점도 재미있는 대목이다. 러시아월드컵에 출전하는 선수 중 가장 가벼운(?) 선수는 네덜란드의 음바크 부수파(알 자지라 SC), 멕시코의 하비에르 아키노(티그레스) 그리고 일본의 이누이 타카시(SD 에이바르) 등 3명. 몸무게는 59kg로 모두 축구선수로선 초경량급(?)이다. 반면 가장 무거운 선수는 파나마의 라몬 토레스(시애틀 사운더스)로 피파에 신고한 체중은 99kg였다. 사진=러시아월드컵에 출전하는 최고령 선수 엘하다리(이집트) (출처=자료사진) 손영식 해외통신원 voniss@naver.com
  • 19세부터 45세까지…패기와 관록, 함께 뛴다

    19세부터 45세까지…패기와 관록, 함께 뛴다

    오는 14일 개막하는 국제축구연맹(FIFA) 러시아월드컵 출전 선수 가운데 가장 어린 선수는 호주의 공격수 대니얼 아르자니(19·멜버른시티FC)로 조사됐다. 최고령은 이집트 골키퍼 에삼 엘 하다리(45·알타운FC)로, 둘의 나이 차는 스물여섯 살이다. 호주 신문 시드니 모닝 헤럴드는 5일 “이번 대회 본선에 출전하는 32개국 736명의 명단이 모두 확정됐으며 아르자니가 유일한 1999년생인 것으로 집계됐다”고 보도했다. 1999년 1월 4일생인 아르자니는 이란계 호주인으로 지난 1일 체코와의 평가전에 교체 선수로 투입돼 A대표팀 데뷔전을 치른 선수다. 아르자니보다 5개월 더 어린 폴란드의 세바스티안 스지만스키가 예비명단에 이름을 올렸지만 최종 23명에서 제외되는 바람에 최연소 자격을 아르자니에게 넘겨줬다. 아르자니에 이어 1998년생 선수는 모두 9명인데 그중 한 명이 한국대표팀의 이승우(20·베로나)다. 이승우는 1998년 1월생으로 1998년생 중에서는 최고령(?)으로 이름을 올렸다. 선수단을 통틀어 최고령은 이집트의 골키퍼 하다리로 1973년생이다. 최연소인 아르자니보다 무려 스물여섯 살이 많은 아버지뻘이다. 골키퍼를 제외한 포지션 중에서는 멕시코 수비수 라파엘 마르케스(39·CF아틀라스)가 최고령 필드 플레이어로 이름을 올렸다. 팀별로 보면 파나마가 평균 나이 29.6세로 가장 관록이 깊은(?) 팀이 됐고 나이지리아는 25.9세로 가장 젊은 팀인 것으로 나왔다. 평균 나이 27.8세인 한국은 32개국 가운데 14번째 젊은 팀으로 집계됐다. 최장신은 201㎝인 크로아티아 골키퍼 로브레 칼리니치(28·KAA 헨트), 최단신은 165㎝인 파나마 미드필더 알베르토 킨테로(31·리마), 사우디아라비아 미드필더 야히아 알세흐리(28·CD레가네스), 스위스 미드필더 세르단 샤키리(27·스토크시티) 등 3명이다. 한편 이번 대회 주전 선수를 가장 많이 배출한 클럽팀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맨체스터시티로 집계됐다. 이날 확정된 최종 엔트리에 따르면 맨시티 소속은 16명으로 전체 출전 선수의 2%를 웃돌았다. 공격수 라힘 스털링과 수비수 카일 워커, 존 스톤스, 페이비언 델프 등 4명이 잉글랜드 최종 명단 23인에 포함됐다. 우승 후보 브라질 대표팀에도 가브리에우 제주스, 다닐루, 페르난지뉴, 골키퍼 이데르송까지 4명의 맨시티 선수가 이름을 올렸다. 지난 시즌 리그 도움왕인 케빈 더브라위너는 뱅상 콩파니와 함께 벨기에 국기를 달고 뛰며 세르히오 아궤로와 니콜라스 오타멘디는 아르헨티나 출신이다. 이 밖에 다비드 실바(스페인), 베르나르두 실바(포르투갈), 일카이 귄도안(독일), 뱅자맹 망디(프랑스)도 각자 대표팀의 주축을 이루는 선수들이다. 맨시티 다음으로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가 각각 15명, 14명으로 뒤를 이었다. 리그별로는 잉글랜드에서 뛰는 선수들이 124명으로 가장 많고 스페인(81명), 독일(67명), 이탈리아(58명), 프랑스(49명) 순이었다. 32개국 가운데 잉글랜드가 23명의 선수 모두 자국 리그 출신인 반면 한국의 조별리그 상대인 스웨덴과 최종 평가전 상대인 세네갈은 전원 해외파로만 구성됐다. 한국 대표팀의 국내파(12명)는 참가국 중 여섯 번째로 많다. 최병규 전문기자 cbk91065@seoul.co.kr
  • 봄 끝에서 만난 아주 오래된 정원

    봄 끝에서 만난 아주 오래된 정원

    습지는 독특한 희귀동식물의 서식지다. 푸름이 더해 갈수록, 습지의 생명력도 왕성해진다. 한국관광공사가 6월에 가볼 만한 곳을 추천했다. 생명을 잉태한 땅, ‘람사르 습지’가 주제다.람사르협약은 물새가 서식하는 습지를 보호하기 위해 1971년 이란 람사르에서 채택된 국제조약이다. 우리나라는 1997년 101번째로 람사르협약에 가입했다. 람사르 습지는 이 협약에 따라 지정된 습지를 말한다.①람사르 습지 1호-인제 대암산 용늪 강원 인제 용늪은 국내 유일의 고층습원(식물 군락이 발달한 산 위의 습지)이다. 대암산(1304m) 정상 인근에 형성됐다. 일찍부터 가치를 인정받아 1973년 용늪을 포함한 대암산 전체가 천연기념물(246호)로 지정됐고 1997년에는 대한민국 최초의 람사르 습지로 등록됐다. 용늪 탐방은 대암산 동쪽 인제군과 서쪽 양구군에서 각각 출발한다. 아이와 함께라면 개인 차량으로 용늪 입구까지 이동할 수 있는 인제 가아리 코스가 좋다. 용늪을 탐방하기 위해서는 미리 방문 신청을 해야 한다. 인제군 생태관광 홈페이지(sum.inje.go.kr)와 양구생태식물원 홈페이지(www.yg-eco.kr)에서 신청을 받는다. 인제군은 방문 2주 전, 양구군은 20일 전에 신청해야 한다. 가장 다양한 생물을 볼 수 있는 탐방 적기는 8월이다. 인제군 문화관광과 (033)460-2081~4.②사구를 지키는 습지의 힘-태안 두웅습지 충남 태안 두웅습지는 국내에서 람사르 습지로 지정된 곳 가운데 강화 매화마름군락지 다음으로 규모가 작다. 데크와 흙길로 된 습지 산책로를 한 바퀴 도는 데 15분이면 충분하다. 두웅습지는 ‘사구 배후습지’라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신두리해안사구의 배후습지라는 지형적인 의미와 희귀 동식물이 서식하는 생태적 중요성을 인정받아 2001년 천연기념물(431호)로 지정됐다. 2007년에는 람사르 습지로 등록됐다. 두웅습지에는 표범장지뱀과 맹꽁이, 노랑부리백로 등 다양한 생물이 서식한다. 대표적인 것은 멸종 위기종 금개구리다. 배 쪽이 황금빛을 띤다. 번식기인 5월 말~6월 중순 관찰할 수 있는 확률이 높다. 인근에 천리포수목원, 만리포 해수욕장, 백화산 등 볼거리가 많다. 태안군 문화관광체육과 (041)670-2762.③생명을 잉태한 청정 갯벌-무안갯벌 전남 무안갯벌은 넓고 비옥하다. 황토를 머금은 갯벌은 언뜻언뜻 붉은빛이다. 침식된 황토와 사구의 영향으로 형성된 갯벌은 우리나라 바다 습지의 상징적 공간이나 다름없다. 지난 2001년 ‘습지보호지역 1호’에 이름을 올렸다. 생태적 가치를 인정받아 람사르 습지와 갯벌도립공원 1호로도 지정됐다. 무안갯벌의 대표 공간은 함평만(함해만) 일대다. 흰발농게를 비롯한 갯벌 생명체의 보금자리이자 물새의 서식처다. 무안갯벌의 중심인 해제면에는 무안황토갯벌랜드가 있다. 갯벌랜드 내 생태갯벌과학관에서 다양한 갯벌 체험을 즐길 수 있다. 해제면 끝자락의 도리포는 서해에서 일몰과 일출을 함께 볼 수 있는 명소다. 최근 도리포와 영광군 염산면을 잇는 칠산대교가 완공을 앞두고 있다. 무안군 관광문화과 (061)450-5477.④자연의 무한 회복 탄력성-고창 운곡습지 자연은 스스로 피어난다. 사람의 발길이 끊기고 30여년이 지난 2011년, 버려진 경작지는 람사르 습지로 등록됐다. 전북 고창의 운곡습지에 필요한 건 사람들의 무관심이었다. 서해안고속도로 고창나들목에서 자동차로 10분이면 생태계의 보고, 운곡습지를 만난다. 고속도로에선 상상할 수 없던 호젓한 숲길과 원시 비경에 감탄이 터져 나온다. 멸종 위기에 처한 수달과 삵이 갈대숲을 헤쳐 물고기를 잡거나, 배설물로 이곳이 자신의 영역임을 알린다. 총 860여종에 이르는 생물이 서식하며 생태관광지역으로 선정된 운곡습지는 자연의 무한 회복 탄력성을 보여 주는 우수 사례다. 습지 주변으로 걷기 길이 조성돼 있다. 고창군 관광진흥팀 (063)560-2458.⑤하늘 정원을 거닐다-제주 1100고지·동백동산 습지 제주 한라산 고원지대에 형성된 1100고지 습지는 대자연이 정교하게 빚은 하늘 아래 정원이다. 초지와 바위, 울창한 숲이 뒤엉킨 습지는 거친 야생에 가깝지만, 자세히 볼수록 인간이 가꾼 인공 정원보다 훨씬 자연스럽고 아름답다. 1100고지 습지는 한라산에서 눈이 녹아 흘러내린 물과 빗물이 고여 형성된 곳이다. 멸종 위기 야생생물인 자주땅귀개와 벌매, 두점박이사슴벌레 등이 서식한다. 1100고지 습지는 특이한 지질구조와 생태 환경을 인정받아 2009년 제주에서 세 번째 람사르 습지로 등록됐다. 동백동산 습지는 제주의 네 번째 람사르 습지다. 곶자왈 지대인 동백동산 안에 크고 작은 습지가 있다. 이 가운데 먼물깍이 대표적이다. 동백동산 주변으로 약 5㎞의 탐방 코스가 조성됐다. 동백동산습지센터 (064)784-9445.⑥걸어서 만나는 세계적인 생태 천국-창녕 우포늪 우포늪은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자연 내륙 습지다. 1억 4000만년 전에 해수면이 급상승해 만들어졌다. 담수 규모는 축구장 210개를 합친 것과 맞먹는다. 끝이 보이지 않는 광활한 늪에 1000종이 넘는 생명체가 서식한다. 특히 국내 수생식물종의 50~60%가 이곳에 산다. 그 가치를 인정받아 1998년 람사르 습지로 등록됐고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잠정 목록에도 올랐다. 우포늪은 목포, 쪽지벌 등 4개 자연 늪과 새로 조성한 산밖벌 등을 포함해 3포 2벌로 나뉜다. 우포늪을 일주하는 ‘우포늪생명길’이 조성돼 있다. 거리는 8.7㎞다. 코스는 30분에서 3시간 30분까지 다양하다. 창녕 읍내에 석빙고, 술정리 동·서 삼층석탑 등 볼거리가 많다. 경치 좋기로 소문난 화왕산 관룡사, 용선대 등도 잊지 말고 찾는 게 좋겠다. 우포늪생태관 (055)530-1551.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한국관광공사
  • [서울광장] 가톨릭 국가 아일랜드의 ‘조용한 혁명’/이순녀 논설위원

    [서울광장] 가톨릭 국가 아일랜드의 ‘조용한 혁명’/이순녀 논설위원

    가톨릭 국가 아일랜드가 지난 주말 헌법 개정 국민투표에서 찬성 66.4%로 낙태죄 폐지를 결정했다. 아일랜드는 1983년 임신부와 태아에게 동등한 생명권을 부여하는 수정헌법 8조가 발효되면서 유럽에서 가장 엄격한 낙태 금지 국가로 꼽혀 왔다. 법을 어기면 최대 14년형이 선고될 수 있다. 2013년 임신부의 생명에 위험이 있을 경우에 한해 낙태가 허용됐으나 영국 등으로 향하는 ‘원정 낙태’ 행렬은 끊이지 않았다. 지난 35년간 약 17만명의 임신부가 국경을 넘었다. 이러한 법과 현실의 괴리가 국민을 움직였다. 지난해 총리 선출 당시 낙태 찬반 국민투표를 공약했던 의사 출신 리오 버라드커 아일랜드 총리가 이번 결과에 대해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조용한 혁명의 정점”이라고 표현한 게 결코 과장이 아니다. 아일랜드의 ‘조용한 혁명’은 어쩔 수 없이 우리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지난 24일 낙태 처벌 형법 조항의 위헌 여부를 가리는 헌법소원 공개변론을 계기로 낙태죄 폐지 찬반 갈등이 재점화됐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 회원국 중 낙태를 허용하지 않는 6개 국가에 속한다. 현행법은 낙태 여성은 1년 이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 벌금, 임신중절을 집도한 의사는 2년 이하 징역으로 처벌하도록 규정돼 있다. 1956년 이후 한번도 바뀌지 않았다. 다만 1973년 모자보건법 개정을 통해 강간, 근친상간으로 인한 임신 등 극히 일부 경우에만 예외를 두고 있다. 법과 현실이 따로 놀기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보건복지부는 연간 낙태 건수를 2005년 34만 2000건, 2010년 16만 8000건으로 발표했다. 하지만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지난해 보고서에서 하루 3,000명꼴, 연간으로 따지면 100만건이 넘는 것으로 추정했다. 게다가 우리나라 낙태율은 1000명당 29.8명으로, OECD 1위다. 낙태 허용 국가인 미국(15.9명), 프랑스(14.5명), 네덜란드(8.5명)보다 훨씬 높다. 낙태 금지법과 처벌 강화가 낙태율을 떨어뜨린다는 낙태죄 찬성론자들의 주장에 부합하지 않는 결과다. 반면 엄격한 낙태 제한 정책으로 인한 부작용은 크다. 안전하지 않은 불법 임신중절로 여성의 생명권과 건강권이 침해된다는 게 가장 심각한 문제다. 원하지 않는 임신과 출산의 부담을 여성만이 짊어진다는 점도 차별적이다. 이런 왜곡된 현실과 변화된 사회 인식을 감안하면 낙태죄 논란에서 태아 생명권이냐, 여성의 자기결정권이냐는 이분법적 접근법은 소모적일 뿐이다. 그런 점에서 이진성 헌법재판소장이 지난해 11월 인사 청문회에서 “태아의 생명권에 가장 큰 관심을 가진 사람은 바로 임신한 여성”이라면서 “임신한 여성이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낙태를 선택하게 될 수도 있는데, 그런 것을 태아의 생명과 충돌하는 가치로만 볼 것이 아니고, 두 가지를 조화롭게 하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개봉한 영화 ‘24주’는 낙태 허용 국가인 독일에서 주인공이 태아 생명권과 자기결정권 사이에서 치열하게 고민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98% 확률로 다운증후군 진단을 받고도 아이를 낳기로 결심한 여성은 그러나 태아의 심장에 구멍이 뚫려 있어 태어나자마자 수술을 받아야 하고, 평생 고통 속에 살 수도 있다고 하자 깊은 번민에 빠진다. “태어나도 행복하지 않을 거야”라고 자신을 다독이며 마침내 수술대에 오른 주인공은 마지막 장면에서 이렇게 말한다. “결정은 내가 내렸지만 옳은지 그른지 모르겠다”고. 낙태를 옳고 그름의 잣대로 볼 수 있는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이 가슴을 짓누른다. 영화에서 주인공이 낙태 결정을 하기까지 충분한 의학적·사회적 상담을 받는 대목도 상당히 인상적이다. 유럽 대다수 국가는 이런 절차를 의무화하고 있다. 2012년엔 낙태죄 합헌 결정을 내린 헌재가 이번에는 어떤 판단을 할지 예단하긴 어렵다. 낙태죄를 손질해야 한다는 필요성에는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됐지만, 위헌 결정으로 원칙을 바꿀지, 아니면 합헌을 유지하고 예외를 늘릴지는 의견이 팽팽히 갈린다. 우리에게도 과연 ‘조용한 혁명’이 벌어질까. coral@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