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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토] ‘반공법 사건’ 재심 속행공판 출석하는 이재오

    [포토] ‘반공법 사건’ 재심 속행공판 출석하는 이재오

    1972년 유신체제 반대 시위 배후로 지목돼 고문을 당하고 유죄를 선고받은 자유한국당 이재오 상임고문이 13일 오후 서울고법에서 열린 재심 속행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이 상임고문은 1973년 북한 사회과학 출판사가 발행한 철학사전을 일본인으로부터 입수하고 이를 세 권으로 나눠서 다른 사람에게 반포했다는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그는 1974년 항소심에서 유죄가 인정돼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과 자격정지 1년을 선고받았고, 상고가 기각돼 형이 확정됐다. 이 상임고문 측은 “당시 중앙정보부가 영장 없이 불법 구금을 했고, 가혹 행위로 허위 진술을 하게 됐다”며 2014년 재심을 청구했다. 2019.6.13 연합뉴스
  • 동상 걸려 잘라낸 엄지 발가락을 칵테일로 맛보게 한다?

    동상 걸려 잘라낸 엄지 발가락을 칵테일로 맛보게 한다?

    지난해 캐나다 유콘 북극 울트라 마라톤 대회에 참가했던 영국인이 동상에 걸려 잘라낸 왼발 엄지 발가락을 캐나다 호텔에 기증했다. 발가락을 기증한 것도 황당한데 쓰임새는 기이하기 짝이 없다. 왕립해군 대위 출신인 닉 그리피스는 도슨시티의 다운타운 호텔 바가 이른바 ‘사우어토(Sourtoe) 칵테일’이란 것을 만들게 하려고 커다란 발가락을 기증했다. 이 호텔의 바에서는 46년 가까이 여행객들과 주민들이 특정인의 발가락이 담긴 칵테일을 주문하는 것이 전통이 돼왔다. 1973년 유콘강을 오가던 증기선을 몰던 딕 스티븐슨이란 선장이 버렸던 선실 안에서 자신의 발가락을 찾아낸 것을 기념해 시작한 것이 지금까지 8만 6000여 잔의 칵테일 서비스로 이어졌다. 지역민들은 “칵테일을 빨리 마실 수도 천천히 마실 수도 있지만 반드시 입술이 발가락에 닿게 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고 BBC는 12일(현지시간) 전했다. 호텔 지배인 애덤 걸리는 성명을 통해 “새 발가락이 돋아난다면 더 기쁜 일이 없겠지만 요즈음에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해서 이 관대한 ‘발가락 기부(toe-nation)’는 전통을 잇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그리피스의 기부를 반겼다. 유콘 북극 울트라 마라톤 대회는 100마일부터 300마일, 430마일까지 달리는 경주로 그리피스는 지난해 대회에 완주도 하지 못한 채 영국으로 후송돼 엄지 발가락을 잘라내는 횡액을 당했다. 그의 발가락은 의학적 알코올 처치를 받은 뒤 이 호텔 바의 ‘토 매스터(Toe Master)’ 테리 리가 6주 동안 암염(岩鹽)에 담가 미라 처리를 한 뒤 술에 담겨졌다. 걸리는 BBC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바에서는 네다섯 개의 발가락이 담긴 칵테일을 제공해왔다고 밝혔다. 또 그리피스의 발가락만큼 “덩치가 큰 것은 없었다”고 말하면서 사람들에게 절단된 발가락을 기증해달라고 홍보했지만 반응이 없었다며 그리피스의 기부가 “쓸 만한 첫 번째 사례”라고 덧붙였다. 더욱 황당한 것은 발가락을 삼키거나 훔치는 이들이 과거에 있었다는 점이다. 호텔측은 올 여름 그리피스가 유콘을 다시 찾으면 사례도 하고 자신의 발가락이 담긴 칵테일도 맛볼 수 있다고 했다. 사진= 닉 그리피스 페이스북 캡처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외로운 사나이가 찾아간 삼각지… 눈물의 비표 새긴 애창곡 되다

    외로운 사나이가 찾아간 삼각지… 눈물의 비표 새긴 애창곡 되다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9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7회 서울의 대중음악1(배호의 돌아가는 삼각지)’ 편이 지난 8일 용산구 한강대로와 원효로 일대에서 진행됐다. 지하철 삼각지역 안 기타를 치는 배호(1942~1971) 좌상 앞에 모인 참가자 40여명은 서울의 5번째 노래비 ‘돌아가는 삼각지’를 둘러보고 배호길을 따라 왜고개 성지~아모레 퍼시픽 사옥~용산전자상가를 걸었다. 임진왜란 때 당사국 조선을 제쳐 두고 명나라 심유정과 왜장 가토 기요마사가 화의를 맺은 심원정 터~유서 깊은 용산신학교와 예수성심성당~범죄심리학의 개척자 장병림 가옥~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원삼탕, 창성옥, 경의선숲길공원까지 2시간 30분의 일정을 마무리했다. 배호의 노래를 포함해 6건의 서울미래유산이 즐비했다. 1978년 타계할 때까지 원효로에 거주한 박목월 시인을 기리는 목월공원과 청노루힐 옛 자택 구경은 덤이었다. 이준섭 서울도시문화지도사는 차분하고 깊이 있는 해설을 들려줬다.대중가요 가사에 투영된 서울은 서울의 이미지를 결정한다. 노랫말은 특정 시대, 특정 장소, 특정 시각에 대한 경향성을 담았기 때문이다. 이영미 성공회대 초빙교수는 ‘대중가요에 나타난 서울의 길’에서 “대중의 경험과 욕망을 통해서 걸러진 서울을 보는 것”이라고 파악했다. 서울을 소재로 한 노래를 통해 서울에 대한 당대인의 꿈과 희망 혹은 불안과 좌절을 엿볼 수 있다. 서울은 선과 악의 이중성을 가진 야누스적 도시다. 서울이라는 도시가 대중가요의 소재로 활용되는 이유는 근대성이 가장 잘 체현된 공간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장유정 단국대 교수는 ‘서울 노래를 통해 본 서울의 풍경’에서 대중가요는 “당대의 삶을 반영하는 거울”이라고 말했다. 대중가요의 가사를 통해 당대인의 시각과 정서를 헤아릴 수 있다.서울을 노래한 대중가요는 몇 곡이나 될까. 대중문화평론가 최규성의 ‘대중가요에 녹여낸 서울 100년’ 자료에 따르면 가수 710명이 1141곡의 서울 노래를 불렀다. 이 중 제목에 ‘서울’이 포함된 노래만 544곡이었다. ‘명동’이 85곡으로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한강 70곡, 서울역 55곡, 남산 40곡 등의 순이었다. 가수별로는 각각 14곡을 부른 나훈아와 이미자가 1위를 차지했다. 작사자로는 31곡을 지은 반야월이 돋보였다. 박춘석이 가장 많은 22곡을 작곡했다. 1930년대 대중가요의 3대 키워드는 ‘서울’, ‘한강’, ‘종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울이라는 지명을 노래 제목에 처음 사용한 최초의 노래는 1929년 발표된 랑소희의 ‘서울마치’였으나, 1932년에 발표된 이애리수의 ‘자라메라’ 노랫말에 ‘종로네거리’가 등장하는 등 내용상 최초의 서울 노래로 평가받는다. 궁궐과 관청 그리고 지배계층과 상권이 몰려 있는 종로는 한양천도 이래 가장 중요한 지역이었지만 일제강점기 들어 위상이 쇠락했다. 1950년대에 나온 현인의 ‘서울야곡’이나 나애심의 ‘미사의 종’이 그렇듯 해방 이전까지 새로운 시가지로 개발된 명동과 충무로 일대 남촌이 대중문화의 주 무대로 주목받았다. 대중가요 가사의 중심지가 1920년대 종로에서 1930~40년대 명동·충무로로 옮겨 갔다가 1950년대 해방과 한국전쟁 시기에 광화문, 종로, 남대문, 서울역 일대로 확장된 것을 알 수 있다.1960년대 대중가요에서 주목할 것은 노랫말이 서울 사대문을 벗어나 사대문 바깥으로 뻗어나갔다는 점이다. 서울의 양적 팽창이다. 1967~68년에 발표된 배호의 ‘돌아가는 삼각지’와 ‘안개 낀 장충단공원’, 은방울자매의 ‘마포종점’이 대표작이다. 이른바 ‘미8군 무대’ 출신 가수들이 가요계에 진출하면서 과장되고 서구화된 서울의 모습이 판치던 시절이었다. 1970년대 명동과 무교동에 머물던 대중문화의 중심지가 종로로 중심 이동했으나 1979년 혜은이의 ‘제3한강교’를 시작으로 윤수일의 ‘아파트’, 주현미의 ‘신사동 그 사람’, 문희옥의 ‘사랑의 거리’ 등으로 흐르면서 1980년대 대중가요의 주 무대는 강남으로 강을 건넜다. 서울 노래는 1973년 패티김의 ‘서울의 찬가’, 1982년 이용의 ‘서울’, 1988년 조용필의 ‘서울 서울 서울’ 등이 맥을 이었다.1968년 서울에서 전차가 사라진 뒤 건설된 입체교차로가 시민들의 눈에 들어왔을 것이다. ‘새 서울’ 건설의 상징물이었다. 전차의 궤도와 전깃줄이 사라지면서 고가도로와 육교가 지어지기 시작했는데 이 중 삼각지 입체교차로가 군계일학이었다. 장르는 트로트지만 세련된 재즈 스타일을 선보인 배호의 창법 때문에 유명해졌다는 게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른다. ‘지하 8층까지 내려가는 공포의 저음’과 ‘바닥까지 끌고 가서 밀어올리는 절절함’이 불후의 곡을 탄생시켰다. 이 노래는 1963년에 만들어졌지만 1967년 입체교차로가 들어선 뒤 창작한 노래라고 오해하는 사람이 많다. 작곡가 배상태는 노량진에서 전차를 타고 충무로로 가던 중 삼각지에서 한 사내가 비를 맞으며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고 영감을 받았다. 취입할 가수를 찾지 못해 애를 먹은 일화도 남겼다. 당대의 인기가수 남일해는 연습만 했고, 금호동은 퇴짜를 놓았다. 유망 신인가수 남진도 여의치 않자 무명가수 김호성이 녹음까지 했지만 음반을 내지 못했다. 배상태는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배호의 허름한 전셋집을 찾았다. 건강이 악화돼 거동조차 힘들던 배호는 녹음을 사양하다가 쓸쓸한 분위기가 자기 처지를 대변하는 것 같다면서 가래를 뱉어 가면서 병상에서 녹음을 강행했다. 5년 묵은 곡이 배호를 만나서 빛을 본 셈이다. 서울에는 모두 9개의 노래비가 있다. 서울 노래비 1호는 패티김의 ‘서울의 찬가’이며 1995년 광화문 세종로공원에 세워졌다. 2호는 반야월 작사, 이해연 노래 ‘단장의 미아리고개’. 성북구 돈암동 미아리고개 예술극장에 서 있다. 3호는 은방울자매의 마포종점인데 1997년 마포구 도화동 마포근린공원에 세워졌다. 4호는 남인수의 ‘애수의 소야곡’이며, 강북구 번동 북서울꿈의 숲에 있다. 5호는 2001년 용산구 삼각지에 세워진 배호의 돌아가는 삼각지다. 6호는 2008년 대학로 학전블루 소극장 앞 벽면에 있다. 7호는 이문세의 ‘광화문 연가’다. 2008년 대장암으로 세상을 등진 작곡가 이영훈 1주기를 맞아 정동길과 정동교회가 바라보이는 덕수궁 돌담길 앞에 세워졌다. 8호는 1965년 발표된 오기택의 ‘영등포의 밤’을 기려 2010년 영등포 타임스퀘어광장에 세워졌다. 9호는 의료사고로 숨진 신해철을 기리고자 2015년 북서울꿈의 숲에 벤치 형태로 건립됐다. 넥스트3집 수록곡 ‘세계의 문(유년의 끝)’이 새겨졌다.배호는 1981년 MBC특집 여론조사에서 ‘가장 좋아하는 가수’ 1위로 선정됐고, 2005년 광복 60주년 기념 KBS 가요무대 여론조사에서 국민에게 가장 사랑받는 ‘국민가수 10인’에 올랐다. 전국 방방곡곡에 배호의 노래비 7개 있다. 서울 삼각지(돌아가는 삼각지)를 비롯해 경기 양주(두메산골), 경북 경주(마지막 잎새), 강원 강릉(파도), 인천 중구(비 내리는 인천항 부두), 충남 보령(두메산골), 전북 정읍(잘 있거라 내장산아) 등이다. 전국에 배호사랑연합회가 활동 중이고, 올해도 제23회 배호가요제가 열려 언제 어디서나 배호의 노래가 애창되고 있다. 혹자는 그 이유를 ‘가난과 병마에 시달린 눈물의 비표(秘標)’가 노래에 새겨진 때문이라고 푼다. 삼각지를 품은 용산은 13세기 몽골군 침입 때 병참기지, 16세기 임진왜란 때 일본군 주둔지를 거쳐 19세기 임오군란 때 청군 주둔지였다. 20세기 들어 전승국 일본인 마을, 철도기지와 군사기지에 이어 해방 이후 미군기지였다. 한반도를 유린한 외세의 각축장이자 침략 통로였고, 150년간 외국 지배세력이 머문 특수한 곳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이 미치지 않는 단절과 망각의 도시다. 이처럼 용산에는 식민지 근대에 대한 불편함이 온존한다. 문학평론가 이광호는 에세이집 ‘지나치게 산문적인 거리’에서 “용산은 애써 지우고 싶은 식민과 이식의 역사와 모욕과 단절의 시간이 폭력적인 개발을 호출하는 기이한 장소”라고 지적하면서 “참담하고 역동적인 모더니티의 장소로서 용산은 다시 성찰의 대상이 될 만하다”고 용산이 가진 과도한 산문성의 이면을 설명했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 사진 문희일·김학영 연구위원 ■다음 일정: 제8회 서울의 문학2(박완서의 나목) ■일시 및 집결장소: 6월 15일(토) 오전 10시 4호선 회현역 7번 출구 ■신청(무료):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futureheritage.seoul.go.kr)
  • SNS 통해 44년만에 해후한 모녀

    SNS 통해 44년만에 해후한 모녀

    자녀와 생이별을 했던 어머니가 경찰 도움으로 44년 만에 둘째 딸과 극적으로 해후했다. 가정형편과 건강 때문에 두딸을 입양보냈던 서안식(69)씨는 가슴속에 묻고 살았던 막내 딸 조민선(47)씨를 끌어안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서씨가 두 딸을 떠나보내야 했던 때는 1973년. 작은딸 미선(47)씨를 힘겹게 출산한 서씨는 전북 전주시의 친정에서 산후조리를 했다. 가정형편이 어려운 데다 산후 후유증으로 도저히 집에서 혼자 몸조리를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5개월 뒤 집으로 돌아왔을 때 두 딸은 이미 위탁기관으로 보내진 뒤였다. 남편은 서씨와 한마디 상의도 없이 첫째 딸 화선(당시 2세)씨와 미선씨를 알 수 없는 곳으로 맡겨버렸다. ‘제대로 키울 수가 없을 것 같아서’가 변명이었다. 충격을 받은 서씨는 두 딸의 오빠인 아들만 데리고 그대로 집을 나와 남편과 별거에 들어갔다. 몇년 뒤 남편이 ‘재결합하자’고 찾아왔지만 서씨는 “화선이와 미선이를 데려오기 전에는 절대 합할 수 없다”고 내쳤다. ‘딸들을 꼭 찾아오겠다’던 남편이 소식도 없이 세상을 떠나버린 사실을 파악한 서씨는 2017년이 돼서야 경찰에 도움을 청했다. 안타까운 사연을 접한 경찰은 수사력을 총동원해 딸들의 행방을 추적했다. 단서라고는 ’첫째 딸은 익산, 둘째 딸은 영아원으로 보냈다‘는 남편의 말이 전부였다. 경찰은 미선씨가 맡겨졌던 전주영아원 기록을 통해 미국 시애틀로 입양된 사실을 확인했다. 기록상 미선씨는 2살이던 1975년에 입양됐으며 영어 이름은 맬린 리터(Maelyn Ritter)였다. 경찰은 페이스북을 통해 맬린 리터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세계어서 2명뿐이라는 사실을 파악했다. 이어 시애틀에 거주하는 한 동명인(Maelyn ritter)에게 메일을 보내 입양 여부를 확인, 미선씨를 찾아냈다. SNS를 통해 흩어졌던 가족을 찾아낸 순간이었다. 미선씨는 서씨와 유전자도 일치했다. 모녀는 지난 10일 서울의 해외입양연대 사무실에서 눈물로 재회했다. 미선씨는 미국에서 어엿하게 성장해 대기업에 다니는 회사원으로 변해있었다. 가정을 이룬 남편도 상봉 현장에 동반했다. 모녀는 12일 전북경찰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둘째 딸을 품에 안은 소감과 첫째 딸을 향한 그리움을 전했다. 서씨는 “찢어지게 가난했던 가정형편과 남편의 독단으로 두 딸과 헤어졌지만 경찰의 도움으로 44년 만에 미선이를 만나게 됐다”며 “처음 보자마자 헤어졌을 당시의 미선이 모습이 겹치면서 눈물만 났다”고 울먹였다. 서씨는 ”큰딸도 찾고 싶다. 엄마에게 빵 사달라는 말을 참 많이 했다. 이제는 양껏 사줄 수 있는데…”라고 말끝을 흐리며 ”많은 분이 도와주면 화선이도 곧 만날 수 있을 것 같다“고 애타는 심정을 밝혔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이희호 여사 별세] 민주화 투쟁·한반도 평화 개척… 여성 정치 확대에 ‘큰 획’

    [이희호 여사 별세] 민주화 투쟁·한반도 평화 개척… 여성 정치 확대에 ‘큰 획’

    美유학파 엘리트女, 반대 딛고 DJ와 결혼 “꾸준히 용감하게 싸워나가달라” 편지 등 DJ 민주화 투쟁 고비마다 버팀목 역할 석방투쟁·옥중 뒷바라지·가장 역할까지 ‘여가부 전신’ 여성특별위 등 출범에 앞장 퇴임 후엔 더 나은 한반도 평화위해 매진고 이희호 여사는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영부인 이전에 여성인권 운동과 민주화 투쟁의 큰 별이었다. 이 여사는 일제강점과 해방, 독재와 민주화, 한반도 전쟁과 평화 시대의 개척자였고, DJ의 영원한 동행자이자 동역자였다. 이 여사는 1922년 9월 의사 부친과 한의사 모친 사이에 6남 2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부친 이용기씨는 세브란스의전을 나온 국내 의사면허 4호로 전북 남원과 경기 포천의 도립병원장을 지냈다. 모친 이순이씨도 한의사집 가정의 독실한 기독교 신자다. 모태신앙으로 태어난 이 여사는 가톨릭 신자인 DJ와 종교적 화합을 이루는 데도 기여했다. 이 여사는 서울 동교동 자택 근처의 창천교회를, DJ는 동교동 성당을 다녔다. 이 여사는 이화여고를 거쳐 이화여자전문학교에 입학했으나 1944년 일제의 교육긴급조치로 학교가 문을 닫아 졸업하지 못했다. 해방 후 1946년 서울대에에서 학업을 이어갔다. 영문학 전공이지만 2학년 때 교육학과로 옮겼다. 졸업 후 미국으로 건너가 스칼렛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62년 5월 마흔이던 이 여사, 서른여덟이던 DJ가 종로구 체부동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두 아들이 딸린 빈털터리 실업자 김대중과 미국 유학까지 하고 돌아온 여성계 엘리트 이희호의 결혼에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 당시 이 여사가 몸담았던 YWCA 선후배들이 반대 ‘공작’을 펼치기도 했다. 그렇게 시작된 두 사람의 여정은 2009년 DJ가 서거할 때까지 47년간 이어졌다. 이 여사는 남편 DJ의 민주주의 투쟁에 가장 든든한 동지였다. DJ가 목숨을 건 민주화 투쟁에서 주춤거리거나 물러서지 않도록 단단히 매어낸 것도 이 여사다. 1971년 대선 때는 직접 연단에 올라 “여러분, 제 남편이 대통령이 되어서 만약 독재를 하면 제가 앞장서서 타도하겠습니다”라는 연설을 하기도 했다. 1972년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10월 유신 쿠데타를 일으키자 일본에 갔던 DJ는 사실상의 망명 생활을 했다. 이 여사는 서슬 퍼런 감시망을 피해 DJ에게 편지를 썼는데 “현재로서는 당신만이 한국을 대표해서 말할 수 있으니 더 강한 투쟁을 하시라”고 적었다. 1973년 5월에는 “꾸준히, 용감하게 싸워나가 달라”는 편지를 썼고, 3개월 뒤 도쿄납치사건이 일어났다. DJ가 지칠 때마다 그를 일으켜 세운 것은 이 여사였다. DJ도 훗날 아내에 관한 글에서 “우스갯소리로 나는 늘 아내에게 버림받을까봐. 나 자신의 정치적 지조를 바꿀 수 없었다고 말하곤 한다”는 글을 썼다. 1977년 ‘3·1 구국선언문’ 사건으로 DJ가 구속되자 이 여사는 석방투쟁으로 1년을 보냈다. 또다시 구속된 남편을 대신해 가장으로서의 책무에 시달렸다. 당시 이 여사는 몸무게 43㎏까지 야위었다. 이 여사는 남편에 대한 그리움으로 밥을 먹다 말고 수저를 손에 쥔 채 울었다고 한다.이 여사는 DJ가 옥중에 있을 동안 매일 편지를 썼다. 아들의 안부 등 일상을 전하는 것뿐 아니라 철학적·신학적 논쟁거리, 남편에 대한 격려 등을 담았다. 면회를 갈 때마다 남편이 청한 책 외에 자신이 직접 고른 책도 한 두 권씩 꼭 전했다. 이 여사가 이때 쓴 편지는 1998년 ‘내일을 위한 기도’라는 책으로 출판됐다.1987년, 1992년 DJ가 대선에서 잇달아 패하자 이 여사도 상심했다. 하지만 1997년 4수를 결심했을 때 이 여사가 앞장섰다. 1997년 12월 18일 남편이 당선됐다. 이 여사는 훗날 “당선이 확정된 직후에 청와대 경호팀이 우리에게 왔다. 오랜 세월 정보기관의 미행과 감시만 받다가 갑자기 경호를 받게 되니 어색하고 낯설었다”고 했다. 시대를 이끈 여성인권·사회 운동가였던 이 여사가 퍼스트레이디가 되자 많은 것이 달라졌다. 현재 여성가족부의 씨앗이 된 대통령 직속 여성특별위원회가 출범했고 대통령이 장관들에게 임명장을 수여할 때 부부가 동반하는 문화가 처음으로 탄생했다. 1999년 발족한 한국여성재단을 탄생시킬 때도 퍼스트레이디가 재단을 만드는 것이 적절한지 정치적 후유증은 없는지 등을 세심히 살핀 후 명예추진위원장을 맡았다. 2002년 5월 셋째 아들 홍걸이 알선수재 혐의로 구속됐고 한 달 뒤 둘째 홍업이 기업체로부터 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이 여사는 감옥에 있는 아들들에게 “잘못을 회개하라”는 편지를 썼는데 항상 “내 잘못을 회개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2003년 2월 퇴임을 앞둔 내외는 청와대에서 민주당, 자민련 인사들고 고별 만찬을 했다. 당시 참석자들에 따르면 이 여사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 최선을 다한 남편”이라며 “남편이지만 저도 찬사를 보내고 싶다”고 인사를 했다고 한다. 그 무렵 대북송금사건이 터졌고 2월 14일에는 DJ가 ‘국민에게 드리는 호소문’을 발표했다. 퇴임 후 동교동 자택으로 돌아온 이 여사는 DJ와 함께 더 나은 민주주의, 더 나은 한반도 평화를 위해 매진했다. 2009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갑작스런 서거에 아이처럼 울음을 터뜨렸던 DJ가 석달 뒤 8월 서거했다. 이 여사는 DJ 장례식 후 2015년까지 매주 두 번씩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을 찾았다. 비가 와도 눈이 와도 매주 화요일에는 가족, 동지들과 묘역을 찾았고 매주 금요일에는 혼자 남편의 무덤을 찾아 기도했다. 이 여사는 보수 정부 시절 두 차례 북한을 방문, 햇볕정책의 맥을 잇고자 했다. 2011년 12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사망했을 당시 이 여사는 6·15 공동선언의 주역이었던 김 위원장 조문을 위해 방북을 신청했다. 육로로 방북한 이 여사는 당시 장례위원장을 맡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조의를 표했고, 김 위원장은 “멀리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고 했다. 당시 정부는 당국 차원 조문단을 파견하지 않았고, 이 여사 일행과 고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 유족인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일행에만 북측 조문에 대한 답례 차원에서 조문을 허용했다. 북측은 2000년 1차 남북 정상회담 때 이 여사가 머물렀던 백화원초대소 101호를 내어주며 극진하게 예우했다. 막 북한의 새 지도자가 된 김 위원장이 처음으로 만난 남측 인사들이라는 점에서 당시 방북의 의미와 상징성은 매우 컸다. 이 여사는 3년 7개월 뒤인 2015년 김 위원장의 초청으로 다시 북한을 방문했다. 남북관계가 경색된 상황에서 김 위원장이 직접 친서를 보내 이 여사를 평양으로 초청하 이뤄진 방북이어서 더욱 주목을 받았다. 북한 어린이들을 돕기 위해 당시 93세의 노구를 이끌고 서해 직항로를 통해 평양을 찾았다. 하지만 3박 4일의 일정 동안 끝내 김 위원장을 만나지는 못했다. 이 여사도 방북 4개월 후인 2015년 12월 김 전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 15주년 기념식에서 ”15년 전처럼 남과 북이 왕래하고 대화하는 시대로 돌아갈 것을 호소한다“며 꽉 막힌 남북관계에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앞서 이 여사는 남편의 정치 인생에서 어느 때보다도 극적인 순간이었을 평양 6·15 남북정상회담도 바로 곁에서 지켜봤다. 당시 이 여사가 평양에서 과거 이화여고 재학 당시 수학선생님이었던 김지한씨와 ‘60년만의 해후’를 한 것도 화제가 됐다.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으로 생을 마감한 이 여사는 생전 인터뷰에서 “여성운동가, 민주화 운동가로 기억되고 싶다”는 말을 남겼다. 손지은 기자 sson@seoul.co.kr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북유럽의 핀란드, 북미 대화에 드러낸 ‘중재 본능’ 왜

    북유럽의 핀란드, 북미 대화에 드러낸 ‘중재 본능’ 왜

    “핀란드는 언제나 (3차 북미정상회담을 위한)외교적 지원을 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사울리 니니스퇴 핀란드 대통령, 10일 한·핀란드 정상회담 공동기자회견).” “제3차 북미정상회담에 대해서는 북미간 대화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제3국의 주선이 필요한 상황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러나 도움이 필요한 경우 언제든지 핀란드에 도움을 청하겠습니다(문재인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이 핀란드를 국빈방문 중인 가운데 사울리 니니스퇴 대통령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및 제3차 북미 정상회담 중재 의지를 거듭 밝혀 관심이 쏠린다. 니니스퇴 대통령은 최근 문 대통령의 국빈방문을 앞두고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북미대화 중재 의사를 밝힌 바 있다. 핀란드는 지난해 6월 역사적인 첫 번째 북미 정상회담 두 달 전쯤인 3월 말에도 남북한과 미국의 정부 관계자·학자들을 초청해 반관반민 성격의 ‘1.5트랙 회의’를 주선해 북핵 문제 협상 분위기를 조성한 바 있다. 당시 한국의 신각수 전 외교부 차관, 북한의 최강일 북미국 부국장, 미국의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미국 대사가 참석했다. 지난해 10월에는 남·북·미·중 4개국이 헬싱키에 모여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 방안을 의제로 한 1.5트랙 회의를 가졌다.이와 관련, 문 대통령도 공동기자회견에서 “핀란드는 작년에 두차례 남북미간의 트랙2(1.5 트랙) 대화의 기회를 마련해서 남북미간 이해가 깊어지도록 도움을 주신 바가 있다”고 평가했다. 핀란드의 이런 ‘중재 본능’은 ‘헬싱키 프로세스’로 동서 냉전 종식에 기여했던 역사와 무관치 않다. 헬싱키 프로세스란 핀란드의 우르호 케코넨 전 대통령(1958~1982년 재임)이 1969년부터 동서진영 간 안보협력을 위한 회의 개최를 각국에 제안한 결과 1975년 8월 헬싱키에서 미국과 소련, 유럽 35개국 정상이 모여 유럽안보협력에 관한 최종의정서에 서명한 냉전시기 동서협력 과정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핀란드와 북한의 관계는 어떨까. 핀란드는 과거 분단국가와 수교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했다. 그러다 1973년 4월 남북한을 동시 승인했다. 북한은 1973년 6월 주핀란드 대사관을 개설했지만, 1976년 10월 밀수사건으로 공관원이 추방당했다. 1983년 4월 헬싱키에서 열린 국제의원연맹(IPU) 이사회에서 제70차 IPU 총회 개최지 변경을 위해 비롤라이넨 전 의회의장(1979~1982년 재직)에 뇌물을 주려다가 유재한 주핀란드 북한대사가 추방되면서 국가 이미지에 타격을 입기도 했다. 북한은 현재 주스웨덴 대사가 핀란드 대사를 겸임 중이며, 핀란드는 2006년 8월부터 주한 핀란드 대사가 북한까지 맡고 있다. 앞서 북한은 1972년 핀란드 메텍스 사로부터 1억 5000만 마르카 상당의 펄프 및 판지 기기를 도입한 뒤 대금 일부를 1986년 12월까지 상환했지만, 약 6000만 마르카(약 2420만 유로·324억원)의 채무액이 남았다. 핀란드 수출보험공사는 매년 북한에 납기만료 연체료가 추가된 채무 변제 독촉장을 발송하고 있지만, 북한 당국은 이에 대한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헬싱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박정희 방탄차·일제시대 소방차까지… 50년간 올드카에 미쳤다

    박정희 방탄차·일제시대 소방차까지… 50년간 올드카에 미쳤다

    1955년 8월 시발 자동차 생산부터 시작된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은 60여년 만에 세계에서 손꼽힐 만큼 발전했다. 생산량에서 세계 5위에 이르며 품질 및 디자인 면에서도 강대국이 됐다. 이런 저력의 밑바닥에는 뚝심과 열정으로 한 분야에서 최선을 다해 온 자동차 장인들이 있었다. 그중 경기 여주시 대신면 옥촌리에 있는 ‘금호클래식카’ 백중길(71) 회장 같은 사람도 있다. 그는 1969년부터 반세기 동안 자동차 수집에 몰두해 왔다. 지난 50년 동안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수집해 온 자동차는 대통령이 타던 방탄차를 비롯해 1000여대에 이른다. 문화재로 등록된 국내 자동차 7대 중 3대를 백 회장이 갖고 있다. 그동안 모아 온 자동차는 영화, TV 드라마, CF 등 제작에 필수품이 됐다. 그의 자동차는 영화 ‘밀정’을 비롯해 TV 드라마 ‘모래시계’ 등 5000여편에 출연해 왔다. 대당 몇십만원에 불과한 대여료만으로는 20명에 가까운 직원들 인건비와 자동차 유지 관리비에 턱없이 부족하다. 모두 처분하고 편하게 여생을 보낼 수도 있었지만 ‘내가 아니면 누가 이 미친 일을 하겠냐’ 싶어 손을 놓지 못한다고 한다. 자동차박물관 건립을 꿈꾸는 백 회장으로부터 지난 얘기를 들어봤다.-많은 비용이 드는 자동차를 수집하게 된 계기는. “아버지가 해방 이후 택시사업을, 6·25전쟁 후에는 운수업을 하셨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핸들을 돌리며 놀 만큼 자동차와 친했다. 1965년 홍천 수송학교에서 4주 교육받고 맹호부대 공병대에 배치되면서 기술을 배우게 됐다. 제대 후 1년 동안 베트남에 기술자로 가서 번 돈으로 서울 신당동에 자동차부품 수입판매회사를 차렸다. 1973년 오일쇼크 사태가 발생하기 전까지 사업이 잘됐다. 이후 유럽으로 건너가 트레일러 운전을 하면서 자동차 튜닝 등에 견문이 넓어졌다. 귀국해 보니 1962년 정부의 자동차진흥정책 발표 이후 새나라, 코로나 등 국산 자동차들이 하나둘 도로 위에서 사라지는 게 안타까웠다. ‘누군가는 모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 1대, 2대 수집하다 보니 어느새 이렇게 많아졌다. 처음에는 100대만 사 모을 생각이었다.” -여주로 오게 된 과정은. “‘자동차를 사 모으는 사람이 있다’는 소문이 나자 전국 각지에서 연락이 왔다. 50~70대로 금방 불어나 서울 장안동에 땅을 빌려서 주차해 놨는데 금세 차 고양 능곡에 500평을 매입해 보관해 왔다. 그런데 1990년 9월 한강둑이 터지면서 큰 피해를 봤다. 정비공 4명을 고용해 고쳤지만 귀한 차를 많이 잃었다. 2년 후 남양주 덕소로 이전했으나 그곳에서도 물난리를 겪으며 많은 차를 잃었다. 이후 안전하고 더 넓은 곳이 필요해 2014년 이곳으로 오게 됐다. 이렇게 힘든 줄 미리 알았더라면 시작을 안 했을 것이다(웃음).”●대기업 회장·연예인 타던 수입차도 모아 -한눈에 봐도 귀한 차가 눈에 많이 띈다. 수집 과정이 쉽지 않았을 텐데. “국내에 문화재로 지정된 자동차가 7대 있다. 내가 일제강점기 때 소방차를 비롯해 3대를 갖고 있다. 1950년 러시아산 가즈트럭, 1955년 최무성과 그의 두 동생이 드럼통과 폐기된 지프 본체를 이용해 만든 시발택시, 1960년산 히노트럭, 1968년 신진자동차가 만든 코로나 등 지금은 구경이 쉽지 않은 차량이 많다. 막상 수집을 하다 보니, 국산차는 정비해도 쉽게 망가졌다. 그래서 대기업 회장이나 연예인들이 타고 다니던 수입차도 모으기 시작했다. 세관에 압류된 차나, 외교관 또는 주한미군들이 타던 차들도 ‘판다’는 소문만 들으면 한걸음에 달려갔다. 판매자 변심으로 몇 년씩 걸린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1960년식 캐딜락과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70년 경부고속도로 개통식에서 탔었던 1968년식 캐딜락은 참으로 어렵게 손에 넣을 수 있었다.”-영화사나 방송국 대여는 언제부터 하게 됐나. “1982년인가 홍콩영화 촬영이 서울에서 있었는데 차를 빌려 달라고 하소연해 대여해 준 적이 있었다. 이듬해 KBS에서 3·1절 특집 프로그램을 만드는데 달리 빌릴 곳이 없다며 방송국 견학까지 시켜 주며 여러 번 부탁을 해 왔다. 어쩔 수 없이 또 빌려줬다. 이후 여기저기 소문나면서 임대업이 됐다. 그동안 국내에서 방송된 TV 시대극이나 영화 대부분에 우리 차가 출연했다.” -모두 운행이 가능한 차인가. 유지 관리가 쉽지 않을 것 같다. “낡을 대로 낡아 운행하기도 힘든 차들도 많지만 대부분 정상 작동된다. 촬영현장에 빌려줄 때는 안전을 위해 밤새워 정비한다. 현장에 정비팀이 항상 대기도 한다. 사실 10만~50만원 받는 대여료만으로 유지 관리가 어렵다. 부품도 조달이 어려워 직접 만들어 사용하기도 한다. 3년 전부터는 큰 건물 2개 동을 영화나 드라마를 찍는 스튜디오로 빌려주면서 경제적 사정이 좀 나아졌다. 문제는 밖에서 비바람을 그대로 맞는 귀한 차들도 많다는 점이다. 자식들을 밖에서 재우는 듯한 아픔을 느끼지만, 축구장 3개 넓이인 지금의 부지도 비좁아 어쩔 수 없다. 이 차들을 제대로 보관할 수 있고, 교육용으로 보여줄 자동차박물관을 만드는 게 마지막 꿈이다.”-오래전부터 박물관 건립을 계획해 온 것으로 알고 있다. “교육·관광 목적 때문만이 아니더라도 정비하고 복원하는 데 수천만원이 드는 차들도 있다. 제대로 된 시설에 보관해야 한다. 한 대기업에서 많은 돈을 준다며 팔라고 했지만 거절했다. 외부에 공개하지 않고, 방송국이나 영화사에 대여도 안 한다는데 어떻게 팔 수 있겠나. 그래서 제대로 복원해서 자동차박물관을 제대로 만들어 운영해 볼 생각을 하게 됐다. 그런데 이게 규모가 규모인지라 나 혼자 힘으로는 역부족이다. 부천시, 강화군, 포천시 등등 여러 곳에서 유치 제의를 해 왔는데 임기제인 시장이 바뀌고 나면 모두 흐지부지됐다. 지금 이곳도 여주시에서 지역 명물로 자동차박물관 건립을 돕겠다고 해서 왔는데 얼마 뒤 시장이 바뀌니까 없었던 얘기가 됐다.” ●“튜닝 규제 완화… 올드카 산업 활성화돼야” -단종된 노후 자동차를 운행 가능한 상태로 보관하려면 어려운 점이 한둘이 아닐 텐데. “우리나라 자동차 제작기술이 세계시장에서 손색이 없을 만큼 발전했지만 20년 이상 된 올드카 운행을 막는 구조적인 문제들이 많다. 가장 큰 문제는 단종 후 몇 년 지나면 부품을 공급하지 않는다. 중고부품을 비싸게 사거나 따로 만들어야 하는데 비용이 많이 든다. 미국, 쿠바, 유럽 등에서는 올드카 가치가 날로 상승한다. 올드카에 대한 정비와 튜닝 등 다양한 부대사업들이 발전하면 일자리가 늘고 관광산업과 지역경제도 함께 성장할 수 있다. 정부 입장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올드카 산업 활성화를 가로막는 규제를 현실에 맞게 완화해야 한다. 미국 등에서는 올드카에 대해서 생산 당시 기준을 적용하거나 아예 면제를 해 준다. 오래된 차를 정비하면서 내외부를 바꿔 보려고 해도 튜닝 규제가 엄격해 어렵다. ‘추억이 깃든 차량이 명차’다. 국민 누구나 ‘클래식카’를 부담 없이 소유할 수 있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판깨스트] ‘노무현 명예훼손’ 김경재 집유 확정…‘삼성 8000억’ 가짜뉴스 왜 나왔나

    [판깨스트] ‘노무현 명예훼손’ 김경재 집유 확정…‘삼성 8000억’ 가짜뉴스 왜 나왔나

    “각 대통령들이 임기 말이 되면 다 얼마씩 모금을 합니다. 노무현도 삼성에서 8000억원을 걷었어요. 그 때 주모한 사람이 이해찬 총리요. (중략) 이 사람들이 다 갈라먹고 살았어요.” 2016년 11월 19일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헌정질서 수호를 위한 국민의 외침’ 집회에서 나온 김경재(77) 전 자유총연맹 총재의 이 발언은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이 맞다며 법원이 유죄 판단을 확정했습니다. 8일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대법원 2부(주심 박상옥)는 명예훼손 및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씨에게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습니다. 대법원 재판부는 “관련 법리와 적법하게 채택된 증거에 비춰 살펴보면 원심이 공소사실을 유죄로 판단한 것은 정당하다”면서 “명예훼손죄 및 사자명예훼손죄의 구성요건, 표현의 자유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는 등의 위법이 없다”고 밝혔는데요. 대법원이 옳다고 판단한 하급심 판결과 김씨의 발언을 다시 짚어봅니다. 김씨가 연설에서 문제의 발언을 한 것은 2016년 11월,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과 ‘비선 실세’ 최순실씨의 국정농단 의혹이 불거져 큰 논란이 일었고 박 전 대통령에게 책임을 묻는 촛불집회가 전국에서 타올랐습니다. 그러자 박 전 대통령의 지지자와 극우 성향 단체 등이 서울역에서 맞불 집회를 벌였고 김씨가 마이크를 잡게 된 것입니다. 김씨는 앞서 소개한 발언을 하며 ‘① 노 전 대통령이 삼성으로부터 8000억원을 받았다 ② 당시 국무총리였던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돈 받는 것을) 주도했다 ③ 돈 관리는 이 대표의 형이 했다 ④ 이학영 민주당 국회의원 등이 이 돈을 함께 받았다’며 “이 사람들이 다 갈라먹고 살았는데 그걸 기술 좋게 해서 우리는 잊어먹었어”라고 말했습니다. 노 전 대통령을 비롯해 4명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게 공소사실입니다. 그러나 김씨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2017년 2월 25일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탄핵반대 국민대회’ 집회에서 그는 또다시 비슷한 발언을 꺼냅니다.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당했습니다. 고소 내용인 즉슨 노무현 대통령 때도 삼성에서 8000억 거두어 가지고 뭘 했다, 허는 얘기인데 그것은 팩트에요. 8000억원이 왔다는 것은 팩트인데 다만 문제는 삼성에서 확정한 거를 거두었다는 말이 기분 나쁘다는 거에요. 삼성이 주니까 받았다는 거에요. 국무총리 이해찬은 8000억원을 받아 가지고 이제 만져야 하는데 삼성 쪽의 책임자가 누구냐면 이해찬의 형님인가 동생인가 하는 이해진을 사장으로 만들었어요.” 거듭 ‘팩트’라고 주장하던 이 허위 발언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요? 법원에서 인정된 사실관계를 정리해 보겠습니다.노무현 대통령 시절이던 2006년 2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에버랜드 전환사채 편법 증여와 이른바 ‘삼성 X파일’ 파문 등으로 잇따라 논란이 일자 대국민 사과를 하고 8000억원의 재산을 헌납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노 전 대통령은 이 회장이 헌납한 이 돈이 양극화 해소를 위해 쓰일 수 있도록 정부가 나서서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당시 국무총리였던 이해찬 대표와 청와대 정책실에 구체적인 관리 방안을 마련하도록 일임했습니다. 그러나 다음달인 그해 3월 이 대표는 총리에서 물러났고 이후 한명숙 총리가 취임했죠. 이후 2006년 10월 ‘삼성고른기회 장학재단’이 설립됐습니다. 사회에 헌납한 재산을 바탕으로 소외계층과 저소득층의 교육기회를 넓히기 위한 장학사업과 학술연구지원사업에 돈이 쓰일 수 있도록 장학재단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초대 이사장은 신인령 이화여대 명예교수로 한 전 총리와 대학 동문입니다. 그리고 한국YMCA 전국연맹의 사무총장을 지내던 이학영 의원은 이 재단의 이사가 됐습니다. 재단은 설립된 뒤 한국YMCA 전국연맹에 7000만원을 지원하기도 했습니다.이 총리의 형은 1973년부터 삼성 계열사에서 근무하며 2000년 삼성서울병원 행정부원장을 지낸 이해진 전 사장입니다. 2006년 삼성사회봉사단장(사장급)으로 임명돼 삼성그룹의 사회공헌 활동을 총괄했습니다. 이 때문에 당시 삼성에서는 “이해진 단장은 삼성의 사회공헌 활동을 전체적으로 총괄 관리하는 역할을 하게 되며 이해찬 국무총리와의 관계가 8000억원의 처리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고, 헌납재산의 용도와 운영에 일체 관여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는 입장도 밝혔습니다. 김씨는 1·2심 재판 과정에서 “발언 내용을 허위사실이라고 보기 어렵고 피해자들에 대한 사회적 가치나 평가를 침해하는 내용으로도 보기 어렵다”며 명예훼손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 사실로 있는 부분들을 말했다는 겁니다. 그렇지만 법원은 “피고인의 연설 내용은 전후 맥락상 피해자들이 8000억원을 개인적으로 착복했다는 의미로 해석될 여지가 많아 사실관계와 일치한다고 보기에 무리가 있다”며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김씨는 특히 이 발언을 하게 된 것이 당시 국정농단 사건에서 논란이 된 미르·K스포츠재단이 법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하기 위해서였고 표현이 다소 과장된 것일 뿐라고도 항변했지만 그것도 법원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앞서 1심 재판부는 “삼성고른기회장학재단과 미르·K스포츠재단은 각 설립 의도와 목적, 재산의 출처 및 출연 경위, 설립 및 재단 운영의 주체, 출연재산의 용처, 설립과정의 적법 여부, 사회에 미치는 영향 등이 상당한 차이를 보이는데 피고인이 의도했던 맥락에서 유사한 사례로 언급하는 것 자체로 사실관계의 왜곡을 쵀했다”고 지적했습니다. 특히 삼성이 8000억원을 헌납한 것이 노 전 대통령도 아니었고 재단에 노 전 대통령이 직접 영향력을 행사한 것도 아니었는데 이 8000억원에 대해 “걷었다”, “갈라먹었다”고 표현한 것은 명백히 사실관계에 반한다는 게 법원의 판단입니다. 2심 재판부도 “피고인의 연설은 사실관계와 맞지 않는 부분이 너무 많아, 피해자나 유족들이 큰 정신적 피해를 입었을 것으로 보인다”면서 “기본적 사실관계를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고, 피고인 자신도 잘못된 것을 알 수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1심에서는 사회봉사명령 80시간 명령도 함께 선고됐는데 2심에서는 김씨의 나이와 가족관계, 그리고 연설 내용 중 “돈을 걷었다”는 내용은 바로 정정하고 사과의 뜻을 밝힌 점 등을 고려해 사회봉사명령은 하지 않았습니다. 김씨는 이해찬 대표와 노 전 대통령의 아들 건호씨가 제기한 민사소송을 통해서도 두 사람에게 각각 1000만원씩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았습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中 ‘희토류 수출 중단’ 히든카드, 무역전쟁에 약 될까 독 될까

    中 ‘희토류 수출 중단’ 히든카드, 무역전쟁에 약 될까 독 될까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달 20일 미중 무역협상 중국측 수석대표인 류허(劉鶴) 부총리를 대동하고 장시(江西)성 간저우(州)시에 있는 장시진리융츠커지(江西金力永磁科技·JLMAG)공사를 전격 방문했다. 시 주석이 찾은 JLMAG는 레이더 등에 사용되는 영구자석용 희토류를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업체다. 시 주석은 “희토류는 중요한 국가 전략적 자원이자 재생 불가능한 자원”이라고 강조했다. 시 주석이 류 부총리와 함께 이곳을 시찰해 희토류가 중요한 전략적 자원이라고 직접 밝힌 것은 희토류를 무역전쟁에서 보복 카드로 쓸 수 있음을 강력히 시사하는 대목이다. 미중 무역전쟁이 격화하면서 중국의 대미 보복 수단으로 희토류 수출 중단 카드가 급부상하고 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해외판 소속 매체 샤커다오(俠客島)는 시 주석이 JLMAG를 시찰한 다음날인 21일 그의 전날 행보에 담긴 의미를 이렇게 해석했다. “중동에 석유가 있다면 중국엔 희토류가 있다.” 덩샤오핑(鄧小平)이 1992년 남순(南巡)하며 장시성을 방문했을 때 했던 이 말은 세계 희토류 생산량의 80% 안팎을 유지하는 중국이 ‘언제든지 희토류를 보복 수단으로 삼을 수도 있다’는 대외 시위용 메시지인 셈이다. ‘희귀한 흙’이라는 뜻의 희토류(稀土類)는 화학원소 번호 57~71번에 속하는 란타넘(La)부터 루테튬(Lu)까지의 란타넘족 15개 원소에다 스칸듐(Sc)·이트륨(Y)을 더한 17개 원소를 총칭한다. 이들 원소는 화학적으로 매우 안정적이고 건조한 공기에서도 잘 견디며, 열 전도율이 우수한 것이 특징이다. 특이하게도 화학적·전기적·자성적·발광적 성질을 모두 가지고 있다. 소량으로도 기기의 성능을 극대화할 수 있는 덕분에 액정표시장치(LCD)와 발광다이오드(LED), 스마트폰과 디지털 카메라 렌즈, 태양전지와 반도체 등 정보기술(IT)산업 핵심 분야에서 안 쓰이는 곳이 없을 만큼 현대 산업의 빼놓을 수 없는 필수 원자재다. 실생활에서 쓰이는 페인트, 배터리, 형광체와 광섬유의 필수 요소다. 방사선을 막는 효과도 우수해 원자로 제어제로도 사용된다. ‘첨단산업의 비타민’, ‘녹색산업의 필수품’이라 불리는 이유다. 희토류는 이름과 달리 매장량이 상대적으로 풍부하다. 다만 희토류가 매장돼 있는 곳이 한정적이고 분리와 정제, 합금화 과정이 어려운 탓에 생산량은 그리 많지 않다. 중국과 호주, 브라질 등 소수 국가에만 생산이 편중돼 있으며 중국이 희토류 생산을 독점하고 있다. 미국의 희토류 수입은 업계 수요에 따라 증가하는 추세다. 미국은 중국의 희토류 수출의 30%를 차지할 정도로 ‘큰손’이다. 특히 2014~2017년 미국의 희토류 대중 의존도는 80%에 이르렀을 정도라고 블룸버그가 전했다. 미중 상호 의존도가 높은 까닭에 희토류는 미국의 관세폭탄을 비껴간 품목이다. 미 무역대표부(USTR)가 자국 필요에 따라 희토류에는 25% 관세를 부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주목할 점은 미국도 세계 2~3위권의 희토류 생산국이라는 사실이다. 미 지질조사국(USGS)에 따르면 지난해 국가별 희토류 생산량은 중국이 12만t(세계 72%)으로 압도적으로 많다. 그다음은 호주(2만t·12%), 미국(1만 5000t·9%), 미얀마(5000t·3%), 인도(1800t·1.1%) 등의 순이다. 국가별 매장량도 중국은 4400만t(세계 37.9%)으로 가장 많다. 그 뒤를 브라질·베트남(이상 2200만t·18.9%), 러시아(1200만t·10.3%), 인도(690만t·5.9%), 호주(340만t·2.9%), 미국(140만t·1.2%) 등이 따른다. 중국이 매장·생산량 모두 압도적인 만큼 중국산 대체 수입국을 찾기도 쉽지 않다. 블룸버그는 “중국산 희토류 수입이 줄어든다면 미국이 부족분을 채울 수는 있겠지만 생산량을 늘리는 데 시간이 걸리고 비용도 많이 들 것”이라고 분석했다. 더군다나 선진국들은 희토류가 있어도 채굴을 꺼리는 경향이 있다. 다른 광물과 뒤섞여 채굴 비용이 비싸고 환경오염에 노출돼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2015년 희토류 정련업체 몰리코가 파산보호신청을 한 뒤 희토류 정제 공장이 한 곳도 없는 탓에 희토류가 미중 무역전쟁 판도를 뒤흔들 하나의 카드로 떠오른 것이다. 이에 미국은 희토류 확보에 나섰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 화학기업 블루라인은 호주 라이너스와 손잡고 텍사스주에 미 최초의 희토류 공장 건설을 추진 중이다. 라이너스는 중국을 제외한 세계 최대의 희토류 생산 업체다. 호주 서부에서 채굴한 광물을 말레이시아 등으로 보내 추출 작업 등을 하고 있다. 블루라인은 라이너스로부터 추출 작업이 끝난 희토류를 사들여 추가 가공한 다음 자동차 및 전자제품 제조업체에 공급해 왔다. 중국에서 희토류를 수입하지 못하게 되더라도 최소한 미국에서 이를 가공할 수 있는 환경만이라도 조성해두면 다른 국가에서 공급받은 희토류를 활용해 피해를 최소화하겠다는 것이 미국의 판단이다. 존 블루멘털 블루라인 최고경영자(CEO)는 “(미국 유일의 희토류 공장이 될 새 공장이) 미국과 전 세계에 희토류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의 희토류 수출 중단 카드가 미국에 얼마나 먹힐지에 대해서는 미지수다. 실제로 중국은 이 카드를 사용해 성공한 선례가 있다. 2010년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에 접근한 중국 어선과 일본 경비선이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해 중국인 선장이 일본에 억류되자 중국은 보복 조치로 일본에 희토류 수출 중단으로 맞섰다. 큰 타격을 받은 일본은 중국인 선장을 석방하며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현재 중국의 희토류 카드는 그만큼 강력한 위력이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의 희토류 생산업체 몰리코프 미네럴스가 에스토니아 희토류 생산업체 사일멧을 인수해 수입처를 다변화했고, 일본의 히타치제작소와 미쓰비시전기 등은 희토류의 일종인 네오디뮴(Nd)을 사용하지 않는 고성능 모터 개발에 착수했다. 희토류 무기화로 국제적인 신뢰도 잃었다. 미국과 일본 등의 제소로 2014년 세계무역기구(WTO)가 중국의 희토류 수출 규제를 조사해 최종 협정 위반으로 판정했다. 유진 골츠 텍사스대 경제학 교수는 “중국의 희토류 지렛대가 2010년보다 더 위협적이라고 볼 근거가 없다”며 “정책 입안자들은 중국의 위협에 성급하게 대응해서는 안 된다. 1973년 석유파동과 같은 일은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더욱이 중국이 희토류 생산을 독점할 수 있었던 것은 느슨한 환경규제 덕분에 추출과 정제 과정이 비교적 손쉬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환경규제가 강화되면서 희토류 생산에 우호적인 환경도 그만큼 감소하고 있다. 중국은 희토류 생산량이 세계 1위지만 중국 역시 첨단산업에 막대한 희토류가 필요한 만큼 2025년이 되면 희토류 순수입국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희토류의 일부 종류는 중국 이외의 지역에서도 매장량이 풍부하다. 일본과 동남아시아, 호주, 아프리카 등지에서도 발견돼 미 기업들은 여러 방법으로 중국산 희토류 의존도를 줄여 가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다 희토류는 석유 등 다른 원자재와 달리 지속적으로 공급할 필요성이 적고 제품 원자재로서 소량만 필요하며, 미국은 이미 희토류를 상당량 비축해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CNN은 “중국이 미국과의 무역전쟁에서 꺼내 든 (희토류) 카드는 생각보다 강력하지 않을 수 있다”고 밝혔다. khkim@seoul.co.kr
  • 부산분뇨처리시설 현대화 청신호...KDI 예타 통과

    부산 분뇨처리시설 현대화사업에 청신호가 커졌다. 부산시는 분뇨처리시설 현대화사업이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했다고 6일 밝혔다. 부산 분뇨처리시설 현대화사업은 1973년 건립된 사상구 감전동 부산환경공단 위생사업소 분뇨처리시설을 를 철거하고, 첨단 분뇨처리시설을 지하에 건설하는 사업이다. 기존 분뇨처리시설이 오래돼 안정성 저하되고 환경오염 가중 등 시설의 현대화가 시급한 실정이다.또 인근 주민들은 악취 등으로 많은 불편을 겪고 있다. 부산시는 오는 2020년 착공에 들어가 2023년 완공 계획이다.시설 건립에는 1139억 원의 사업비가 투입될 예정이다. 부산시 관계자는 “이번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함에 따라 사업이 본격화될 것”이라며, “악취를 근원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첨단시설로 건립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부산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그 배우 뜰 거야” 성공 점치고… 역사 예측하는 수학의 신비

    “그 배우 뜰 거야” 성공 점치고… 역사 예측하는 수학의 신비

    英·伊·오스트리아, 남녀 배우 250만명 경력 분석美·인도, 외교문서 골라내 미래 예측·대응 알고리즘 개발“그것은 사회적, 경제적 자극에 대한 인간 집단의 반응을 다루는 수학의 한 분야가 됐다. … 심리역사학은 통계학이기 때문에 한 개인의 미래를 정확히 예언할 수 없다는 것은 익히 알려져 있다.” 미국의 생화학자이자 세계 SF 3대 거장으로 꼽히는 아이작 애시모브가 20대 초반에 시작해 1992년 72세로 세상을 뜨기 전까지 썼던 ‘파운데이션’ 시리즈에는 해리 셀던이라는 천재 수학자가 만든 ‘심리역사학’이라는 가상의 학문이 등장한다. 해리 셀던이 심리역사학으로 은하제국의 몰락을 예측하고 ‘파운데이션’이라는 집단을 만들어 파국적인 상황을 막고 미래를 대비하도록 한다는 것이 파운데이션 시리즈의 주요 줄거리다. ●“배우의 성공은 연기력보다 환경에 좌우” 애시모브의 심리역사학은 통계물리학을 보고 만들어진 것이다. 통계물리학은 입자가 매우 많거나 복잡한 시스템을 통계적 방법으로 연구하는 분야다. 개별 분자 행동은 예측할 수 없지만 공기 전체 움직임을 설명하고 예측하려는 통계물리학처럼 심리역사학도 사람도 개개인의 행동을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거대한 역사의 흐름을 예측할 수 있다고 설정됐다. 그런데 실제로 최근 수학자들이 수학적 방법으로 역사를 예측하고 쇼비즈니스의 성공 가능성까지 예측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했다. SF 속 심리역사학이 현실로 다가오게 된 것이다. 영국 런던 퀸메리대 수리과학부, 앨런튜링연구소, 이탈리아 카타니아대 물리천문학과, 국립핵물리연구소(INFN), 오스트리아 빈복잡계과학허브(CSHV) 공동연구팀은 배우의 경력을 정량화하고 성공과 경력의 지속가능성을 예측할 수 있는 수학적 모델을 만들어 기초과학 및 공학분야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 6월 5일자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인터넷영화데이터베이스(IMDb)를 이용해 1888년 최초로 만들어진 영화부터 2016년 1월 16일까지 개봉된 영화, TV드라마에 이름을 올린 남자배우 151만 2472명과 여배우 89만 6029명의 경력을 분석했다. 분석 결과 약 70% 배우들의 전체 경력이 1년에 불과했고 주연급이든 조연급이든 일이 끊기지 않고 배우로서 10년 이상 생명력을 이어 가는 이들은 10% 미만으로 나타났다. 연예계에서 경력은 특정 상품에 대한 수요가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는 ‘네트워크 효과’가 강하게 나타난다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유명세를 타는 배우들이 일자리를 더 얻기 쉽고 대부분의 일을 가져간다는 것이다. 공백기가 긴 배우들은 이전의 유명세와는 상관없이 복귀 후 인기를 회복할 확률이 낮아지는 것으로 예측됐다. 연구팀은 이번 예측식으로 일부 배우들의 활동 기간과 흥행 여부를 계산한 결과 비교적 정확하게 계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루카스 루카사 퀸메리대 수리과학부 교수는 “이번 연구 결과에서 흥미로운 것은 임의적인 무작위적 사건들이 증폭되면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나타난다는 점”이라면서 “배우들의 성공과 생명력은 연기력보다는 환경에 좌우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도 새로 알게 됐다”고 말했다. 또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 뉴욕연구소와 MS 인도 방갈로르연구소, 미국 컬럼비아대 역사학과 공동연구팀은 국무부가 공개한 외교 문서와 당시 발생한 중요한 사건들을 연관 분석해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을 암시하는 문서들을 골라내 미래를 예측해 대응할 수 있는 알고리즘을 개발했다. 이 연구 결과는 생물학 및 심리학 분야 국제학술지 ‘네이처 인간행동’ 6월 4일자에 실렸다.●인공지능 문서보관자·미래학자 개발 가능성 연구팀은 미국 국무부가 각종 보고서를 전자문서 양식으로 저장하기 시작한 1973년 자료부터 지난해 기밀 해제된 1979년까지의 기록 195만 2029건을 분석했다. 연구팀은 우선 국무부가 중요하다고 평가해 놓은 보고서들이 이후 벌어진 실제 사건들을 얼마나 정확하게 설명하고 예측했는지를 역사학자들에게 수작업으로 평가하도록 한 다음 인공지능에 기계학습시켰다. 이렇게 학습된 인공지능으로 공문서를 바탕으로 역사적 사건들을 예측하도록 했다. 그 결과 예상 밖으로 출장 일정처럼 주목도가 떨어지는 일상적 보고서도 역사적 사건을 예측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음이 밝혀졌다. 덩컨 와츠 MS뉴욕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아인슈타인 상대성이론 발견, DNA 이중나선 구조의 발견, 달 착륙, 베를린 장벽 붕괴 등 역사적인 사건들도 모두 사소한 사건에서 촉발됐다”며 “이번 연구는 수많은 문서 더미 속에서 역사적 문서를 식별해 낼 수 있는 인공지능 문서보관자나 인공지능 미래학자를 개발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 주고 있다”고 말했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한국 기계산업 연 대동공업, 최초 전자기술은 금성사…어떤 제품이

    한국 기계산업 연 대동공업, 최초 전자기술은 금성사…어떤 제품이

    광복 이후 1960년대가 될 때까지도 우리나라 농가에서는 주로 소나 사람의 힘을 이용했다. 이 때문에 농업생산량에 한계가 있었고 보릿고개를 벗어나지 못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광복 직후인 1947년 설립된 대동공업은 1963년에 국내 최초로 동력경운기 ‘H6E-CT 83’을 생산해 농촌의 근대화를 이끌어 냈다. 국내 전문가들은 대동공업의 동력경운기 개발이 국내 기계산업 분야의 시작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또 현재 세계적인 수준에 이르고 있는 전기전자산업 분야의 최초 기술은 각각 1959년 금성사(현 LG)에서 개발한 국내 최초 진공관식 라디오 A-501, 정보통신 산업 분야에서는 1986년 세계 10번째로 개발한 전전자교환기 TDX-1으로 꼽혔다. 특히 전전자교환기 TDX-1은 한국 과학기술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켰고 통신, 인터넷 분야 강국으로 자리잡게 만들었고 1989년 1가구 1전화 시대를 앞당긴 것으로 평가받았다. 한국공학한림원은 이같은 내용이 포함된 1945년 광복 이후 2015년까지 국내 10대 산업의 기술발전 과정을 총망라한 ‘한국산업기술발전사’를 발간했다고 3일 밝혔다. 한국 경제성장은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릴 정도로 현재도 많은 나라들에서 산업기술 발전의 모델로 국제적 관심을 끌고 있지만 체계적으로 정리된 산업기술사는 없었다.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은 산업혁명이 시작된 이후 18세기부터 기술사 연구가 지속돼 사료정리나 박물관이 만들어져 있고 일본의 경우도 산업기술사자료정보센터를 설치해 19세기 메이지 유신 이후 산업기술발전사를 정리해 연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공학한림원은 국내 산업분야를 11개 분야로 분류해 400여명의 대규모 집필진을 구성해 4년 동안 진행해 이번에 산업발전사를 만들게 됐다. 특히 이번 산업발전사에는 11개 산업별로 첫 기술과 제품을 선정했다는데도 의미가 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건설부분은 1970년 경부고속도로 개통, 바이오의료분야는 1983년 녹십자가 세계 3번째로 B형간염 백신 개발, 소재분야는 1973년 포항제철 고로 1기에서 첫번째 출선, 식품분야는 1952년 대한제분에서 국내 최초 밀가루 출시, 운송장비 산업에서는 1975년 현대에서 포니자동차 개발, 에너지자원 분야는 1950년 연탄화덕 등이다. 섬유분야에서는 1919년 경성방직이 설립돼 민족자본에 의한 최초의 면방직 공장을 세운 것이 국내 섬유산업을 이끌어온 것으로 꼽히기도 했다. 편찬위원장을 맡은 최항순 서울대 명예교수는 “이번에 발간한 10권 분량의 기술발전사는 광복 이후 70년간 산업기술 노하우가 집대성된 귀중한 사료이며 역사를 통해 새로운 혁신 동력을 찾아볼 수 있는 귀중하고 의미있는 저작물”이라고 말했다. 한편 한림원은 이번에 발간한 책자를 대학 도서관과 연구기관 등에 배포하는 한편 전자책 형태로도 만들어 한림원 홈페이지(www.naek.or.kr)에서 내려받아 누구나 볼 수 있도록 했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여동생 10주기 다음날 쓰러져… 끝내 일어나지 못했다

    여동생 10주기 다음날 쓰러져… 끝내 일어나지 못했다

    ‘엘리베이터 사업 전문가’이자 수필가 고(故) 장영희 교수의 친오빠인 장병우 현대엘리베이터 대표이사가 지난 28일 별세했다. 73세. 29일 현대엘리베이터에 따르면 고인은 장 교수의 10주기 행사에 참석한 다음날인 지난 10일 쓰러진 뒤 급성 뇌출혈로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왔으나 회복하지 못했다. 10주기 행사에서 고인은 장 교수의 사진을 보여 주는 등 동생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을 밝힌 바 있다. 장 교수는 장애와 암 투병 등 시련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따뜻한 위로의 글로 감동을 전한 것으로 유명하다. 고인은 평남 남포 출생으로 서울사대부고와 서울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한 뒤 1973년 럭키(현 LG화학)에 입사해 금성사(현 LG전자) 해외영업담당 상무와 럭키금성상사(현 LG상사) 전무 등을 역임했다. 1997년 LG산전 빌딩설비사업본부장을 시작으로 LG-오티스 엘리베이터 대표이사, 현대엘리베이터 상근고문에 이어 2016년 현대엘리베이터 대표이사를 맡는 등 엘리베이터 사업 부문 전문가로 평가됐다. 이달 초 경기 이천시에 있는 본사와 공장을 충북 충주시로 이전하겠다는 계획을 밝히며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는 기업으로 자리매김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회사 측은 김병효·송승봉 부사장이 대표이사직 업무를 대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31일이다. 유족으로는 아내 임숙희씨와 아들 장석환(인제대 서울백병원 정형외과학교실 부교수)·석원(MGM 리조트 인터내셔널 디렉터)씨가 있다. 백민경 기자 white@seoul.co.kr
  • 심리 없이 ‘면피’ 판결… 낙태 논란 기름 부은 美대법

    신체·정신적 장애 ‘낙태 제한’ 심리 않고 태아 잔여조직 처분은 반대파 손 들어줘 일리노이주, 낙태권 강화 법안으로 맞서 넷플릭스 “금지한 조지아주 투자 않겠다” 여성의 낙태권을 폐지하려는 미국 내 보수세력 움직임이 가속화하는 가운데 미 연방대법원이 인디애나주의 낙태법 관련 소송을 심리하지 않고 일부 수용하며 논란이 가중되고 있다. 여성인권단체 등은 이번 판결이 ‘명백한 타협’이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인 가운데 미 언론들은 보수파가 과반인 연방대법원이 낙태 관련 논란을 정면 돌파하기보다 점진적인 해법을 고심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미 연방대법원은 28일(현지시간) 인디애나주가 2016년 제정한 낙태법과 관련한 소송에서 법안의 일부 효력을 인정한 판결문을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인디애나주 낙태법은 배아와 태아의 인종과 성별, 피부색, 다운증후군 등 신체적·정신적 장애 등을 이유로 한 임신중단 시술을 제한한 것으로, 대법원은 이 부분에 대해서는 심리하지 않기로 했다. 지난해 제7 연방항소법원에서 내린 시행 정지 결정이 유지되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시술 후 태아조직을 매장하거나 화장하도록 한 조항에 대해서는 항소법원 결정을 뒤집고 효력을 인정했다. 대법원은 “시술 후 잔여조직 처분을 제한하는 것은 여성의 임신 중단 권리에 과도한 부담을 지우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잔여조직을 ‘인간의 유해’처럼 다룬다는 점에서 낙태 반대론자들의 손을 들어줬다는 지적이 나온다. 워싱턴포스트는 “이번 판결은 명백한 타협이라는 비판이 나온다”면서 “대법원이 낙태에 관한 심리를 공격적으로 진행하지 않는 대신 정부의 제한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라고 지적했다. 판결문에서는 진보와 보수를 상징하는 두 대법관의 의견 차가 극명하게 드러났다. 구체적인 판결 요지는 생략돼 있었으나 대표적인 진보 성향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대법관은 의견서에서 잔여조직 처분 제한에 대한 반대의 뜻을 피력했지만, 보수 성향인 클래런스 토머스 대법관은 20세기 초부터 이뤄진 임신 중단 합법화 움직임은 우생학적 요소가 있었다는 취지의 의견서를 제출했다. 올해 들어 벌써 6개 주에서 강력한 낙태금지법이 통과되며 법안에 따른 부작용이 가시화하고 있다. 미주리주는 임신 8주 이후 낙태를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킨 데 이어 유일한 낙태시술소인 ‘세인트루이스 헬스센터’의 면허 갱신을 거부하고 나섰다. 오는 31일까지 면허가 갱신되지 않으면 미주리는 미국에서 45년 만에 처음으로 주 전역이 합법적인 낙태 수술을 받을 수 없는 지역이 된다. 이런 가운데 민주당이 이끄는 일리노이주 하원이 여성의 낙태권을 확대 보장하는 ‘생식보건법안’을 가결하며 낙태금지법에 맞섰다. 1975년 제정된 일리노이 낙태법 중 배우자 동의, 수술 신청 후 일정시간 대기, 임신 20주 이후 낙태 시술 의사 형사 처벌 등 조항을 폐지하는 내용이다. 법안을 발의한 켈리 캐시디 의원은 “낙태권의 근간이 되는 1973년 대법원의 ‘로 앤 웨이드’ 판결을 성문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온라인 스트리밍업체 넷플릭스는 태아의 심장 박동이 감지된 이후 낙태를 금지하는 일명 ‘심장박동법’을 마련한 조지아주에서 콘텐츠 제작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테드 세런도스 최고경영자는 이날 “조지아 제작현장에서 일하는 많은 여성이 있다”면서 “조지아에서 낙태금지법이 발효되면 전체 투자를 재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지아는 영화·TV 제작에 세제 혜택을 부여해 많은 제작사가 입주해 있다. 민나리 기자 mnin1082@seoul.co.kr
  • “가장 작고 가난한 ‘농민 교구’ 그래서 우린 더 행복합니다”

    “가장 작고 가난한 ‘농민 교구’ 그래서 우린 더 행복합니다”

    신자 5만명… 1969년 대구대교구서 분리 기쁘고 떳떳하게… ‘가난한 영성’ 이어져 초대 교구장 佛 두봉 주교 ‘농민의 대부’ 1979년 ‘오원춘 사건’으로 추방 명령받아 농민과 함께하는 안동교구 변함없을 듯경북 안동교구는 천주교계에서 가장 가난한 교구로 통한다. 5만명 남짓한 신자 규모로 천주교 16개 교구 가운데 가장 작은 교구. 하지만 교구 설정 50주년(29일)을 앞두고 찾아간 안동 외곽의 교구청에서 만난 사제와 신도들은 아주 안정되고 평온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안정과 여유는 무엇 때문일까. ‘기쁘고 떳떳하게’. 교구청 곳곳에 걸린 문구에 눈길이 쏠린다. 초대 교구장인 두봉 레나도(90) 주교가 취임사에서부터 줄곧 강조해 생명처럼 지켜 온 교구 사목 표어. 그 표어의 연원을 귀띔한 교구장 권혁주(64) 주교의 인사말이 예사롭지 않다. “작고 가난한 교구라서 더 행복합니다. 가난을 함께 견뎌내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 신앙을 중심으로 많은 사람이 서로를 도우며 살았다는 데 자부심을 가집니다.” 그 말마따나 안동교구의 지난 50년은 ‘가난한 영성(靈性)’을 실천해 온 역사였다. 1969년 대구대교구에서 분리되면서 두봉 주교가 초대 교구장으로 22년간 사목하다 박석희 2대 교구장에 이어 2001년부터 권 주교가 책임지고 있다. 서울의 웬만한 본당보다 신자수가 적어 ‘가장 작고 가난한 교구’라는 별명이 줄곧 따라붙지만 교회 밖에선 ‘농민 교구’라는 이름이 더 친숙하다. 관할 지역이 문경, 상주, 봉화 등 대부분 농촌인 데다 농촌, 농민과 관련해 숱한 시련을 겪은 탓이다. 지역에 가톨릭농민회를 가장 일찍 설립하고 농민들과 끊임없이 연대했던 역사는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1979년 정부 정책에 반대하던 농민이 끌려가 고문을 당한 이른바 ‘오원춘 사건’은 아주 유명하다. 정부는 농민들과 함께 이에 항의하는 두봉 주교를 강제추방 대상에 올렸지만 교황청의 항의와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으로 철회됐었다. 이 사건으로 초대 교구장 두봉 주교는 한국 사회에서 ‘농민의 대부’라는 별명으로 널리 알려졌다. 1973년 안동교구가 건립한 안동 문화회관도 회자되는 건물이다. 안동 문화회관은 당시 안동에서 가장 높은 6층짜리 건물로, 한 부분만 성당으로 쓰면서 일반 시민들에게 열린 공간으로 개방했던 유명한 일화가 전한다. ‘지역 사회를 도와 함께 성장하는 천주교’를 부임 이후 늘 가슴에 품고 살았다는 두봉 주교의 사목 방향은 한 치의 어김없이 이어지고 있는 듯했다. 지역사회에서 얻은 신임이 가난하지만 함께 나누는 신앙으로 발전했다고 할까. 농촌을 떠나 도시로 이주하는 대세 속에서도 안동교구에는 귀촌, 귀농자들이 적지않이 찾아들고 있다. 교구가 주선하는 생명 공동체 모임이며 유기농업, 식생활 개선, 교육 개선과 관련한 프로그램은 인기가 높다. 그래서 8년 전 관할지역인 봉화군 춘양에 세워진 ‘춘양 본당’ 미사엔 늘 100여명이 빠짐없이 참여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 26일 안동실내체육관에서 열린 50주년 감사 미사의 타이틀도 다름 아닌 ‘기억, 감사, 그리고 다짐’이었다. 교구청에서 기자들과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눈 권 교구장은 “우리 사목 방향의 초점은 전에도 농민이었고 앞으로도 변함이 없을 것”이라며 “두봉 주교의 뜻을 이어 가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에 두봉 주교는 “고맙고 감사드린다. 용기 내시라”고 권 교구장의 어깨를 두드리며 활짝 웃었다. 글 사진 안동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군위 장군 단오제를 아십니까.’

    ‘군위 장군 단오제를 아십니까.’ 경북 군위군은 다음달 7일 효령면 장군리 일원에서 ‘군위 장군 단오제’를 개최한다고 28일 밝혔다. 올해로 3회째다. 군위장군단오제는 매년 음력 5월 5일 효령면 장군리 효령사에서 나당연합군의 장수로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룩한 신라 장수 김유신(595~673년), 당나라 장군인 소정방(592~667년), 당나라에서 신라로 귀화한 이무(?∼?) 장군 등 세 장군의 위패를 모시고 관민이 모여서 단오제를 올리고 단오놀이를 한 것에 유래한다. 올해 행사는 역사자료를 근거로 삼장군 통일로드 행렬 및 김유신 장군 윷놀이를 재현한다. 또 단오북춤·전통무예 공연, 단오부적 뜨기 등 다양한 단오놀이와 예술동아리 공연, 각종 전시, 단오가요제 등으로 진행된다. 이와 함께 효령 장군리 제동서원에서는 김해 김씨와 연안 이씨 문중 주관으로 김유신, 소정방, 이무 장군의 향사를 봉행한다. 김영만 군위군수은 ‘이번 행사가 세 장군의 업적을 돌이켜보는 계기가 되고, 지역 주민의 화합과 전통 세시풍속을 발전시키는 민속 축제로 자리매김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1300년 전 신라 무열왕 때 당나라 소정방은 수륙군(육군과 해군) 10만을 거느리고 백마강을 거슬러 올라오고, 신라 김유신 장군은 정병 5만을 이끌고 백제 도읍지인 사비성을 공격하기 위해 경주, 영천, 신령을 거쳐 군위에 와서 진을 치고 하루를 유숙했다. 이후 고려 말쯤 군위 주민들은 옛 일을 추모하기 위해 사당을 지어 장군당이라 이름 지어 불렀다. 이때부터 동네 이름도 장군동(리)로 전해지고 있다. 군위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만삭 아내에겐 통산 3승… 캐디에겐 클래식카

    만삭 아내에겐 통산 3승… 캐디에겐 클래식카

    최종 라운드 ‘승리의 마지막 버디’ 직후 ‘만삭의 아내’ 배 어루만지며 승리 자축 “골프, 장갑 벗을 때까지 우승 모르는 것” 상금 15억… 세계 랭킹, 52위서 31위로한국계 미국인 케빈 나(36·나상욱)가 27일 미 텍사스주 포트워스의 콜로니얼 컨트리클럽(파70)에서 끝난 미프로골프(PGA) 투어 찰스 슈와브 챌린지 우승을 차지했다. 2004년 PGA 투어에 최연소 데뷔한 케빈 나의 개인 통산 3승 기록이다.케빈 나는 이날 최종 라운드에서 버디 6개를 잡아내면서 단 한 번도 선두를 뺏기지 않았고 마지막 18번홀(파4)에서 3m짜리 챔피언 퍼트를 성공해 합계 13언더파 267타로 정상에 섰다. 그는 마지막 버디를 쓴 직후 만삭의 아내 배를 어루만지며 한국말로 “어우~ 우리 아기”라며 승리를 자축했다. 올해 PGA 투어 16년째인 케빈 나는 통산 392경기에 출전했다. 그는 이번 대회 우승 상금 131만 4000달러(약 15억 5600만원)를 받아 투어 통산 상금 3000만 달러(약 355억원)를 돌파한 34번째 선수가 됐다. 한국 선수로는 최경주(49)가 유일했었다. 2010년 생애 첫 우승 타이틀을 쥐었던 케빈 나는 지난해 7월 밀리터리 트리뷰트를 제패한 지 10개월 만에 3승 고지에 올라 가속도가 붙었다. 그는 8살 때 미국 이민 후 중·고교 시절 미 아마추어 무대를 뛰며 골프 수재로 주목받았지만 PGA 투어 우승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케빈 나는 대회 종료 후 “골프는 장갑을 벗을 때까지 모르기 때문에 마지막 홀까지 마음을 놓지 않았다”면서 “마지막 18홀에서 티샷을 페어웨이에 안착시키고, 두 번째샷을 그린에 올리고서야 마음이 좀 편해졌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더 많은 우승을 하고 싶고, 개인적으로는 더 좋은 아빠가 되고 싶다”고 했다. 케빈 나는 부상으로 받은 클래식 머슬 세단인 1973년형 닷지 챌린저를 즉석에서 지난 11년 동안 동고동락해 온 캐디 케니 함스에게 선물해 눈길을 끌었다. 세계 랭킹 52위였던 케빈 나는 이번 우승으로 31위로 껑충 뛰었다. 타이거 우즈는 지난주 6위에서 한 계단 올라 2014년 6월 집계 이후 4년 11개월 만에 ‘톱5’에 재진입했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김규환 기자의 차이나 스코프> 중국의 대미 ‘희토류 카드’ 藥일까, 毒일까

    <김규환 기자의 차이나 스코프> 중국의 대미 ‘희토류 카드’ 藥일까, 毒일까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20일 미중 무역협상 중국측 수석대표인 류허(劉鶴) 부총리를 대동하고 장시(江西)성 간저우시에 있는 장시진리융츠커지(江西金力永磁科技·JLMAG)공사를 전격 방문했다. 시진핑 주석이 찾은 JLMAG는 레이더 등에 사용되는 영구자석용 희토류를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업체이다. 시 주석은 “희토류는 중요한 국가 전략적 자원이자 재생 불가능한 자원”이라고 강조했다. 시 주석이 류 부총리와 함께 이곳을 시찰해 희토류가 중요한 전략적 자원이라고 직접 밝힌 것은 희토류를 무역전쟁에서 보복카드로 쓸수 있음을 강력히 시사하는 대목이다. 미중 무역전쟁이 격화하면서 중국의 대미 보복수단으로 희토류 수출 중단 카드가 급부상하고 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해외판 소속 매체 샤커다오(俠客島)는 시 주석이 JLMAG을 시찰한 다음 날인 21일 그의 전날 행보에 담긴 의미를 이렇게 해석했다. “중동에 석유가 있다면 중국엔 희토류가 있다(中東有石油 中國有稀土).” 덩샤오핑(鄧小平)이 1992년 남순(南巡)하며 장시성을 방문했을 때 했던 이 말은 세계 희토류 생산량의 80% 안팎을 유지하는 중국이 ‘언제든지 희토류를 보복수단으로 삼을 수도 있다’는 대외시위용 메시지인 셈이다. 희귀한 흙’이라는 뜻의 희토류(稀土類·Rare-earth element)는 화학원소 번호 57~71번에 속하는 란타넘(La)부터 루테튬(Lu)까지의 란타넘족 15개 원소에다 스칸듐(Sc)·이트륨(Y)을 더한 17개 원소를 총칭한다. 이들 원소는 화학적으로 매우 안정적이고 건조한 공기에서도 잘 견디며, 열을 잘 전달하는 것이 특징이다. 특이하게도 화학적·전기적·자성적·발광적 성질을 모두 가지고 있다. 소량으로도 기기의 성능을 극대화할 수 있는 덕분에 액정표시장치(LCD)와 발광다이오드(LED), 스마트폰과 디지털 카메라 렌즈, 태양전지와 반도체 등 정보기술(IT) 산업 전자제품 등 제조업 핵심 분야에서 안 쓰이는 곳이 없을 정도로 현대 산업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필수 원자재다. 실생활에서 쓰이는 페인트, 배터리부터 형광체와 광섬유의 필수 요소고 방사선을 막는 효과도 뛰어나 원자로 제어제로도 사용된다. ‘첨단산업의 비타민’, ‘녹색산업의 필수품’이라 불리는 이유다. 희토류는 이름과는 달리 매장량이 상대적으로 풍부하다. 다만 희토류가 매장돼 있는 곳이 한정적이고 분리와 정제, 합금화 과정 등이 어렵기 때문에 생산량은 그리 많지 않다. 중국과 호주, 말레이시아 등 소수 국가에만 생산이 편중돼 있으며 중국이 사실상 희토류 생산량을 독점하고 있다. 미국의 희토류 수입은 산업계 수요에 따라 증가하는 추세다. 미국은 중국의 희토류 수출 가운데 30%를 차지할 정도로 ‘큰 손’ 고객이다. 미국의 희토류 대중 의존도는 2014년부터 2017년까지 5분의 4에 이르렀을 정도라고 블룸버그가 전했다. 미중 상호 의존도가 높은 까닭에 희토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폭탄을 비껴간 품목이다. 미 무역대표부(USTR)는 자국 필요에 따라 희토류에는 25% 관세를 부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목할 점은 미국도 세계 3위의 희토류 생산국이라는 사실이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에 따르면 지난해 국가별 희토류 생산량은 중국이 12만t(세계 72%)으로 압도적으로 많다. 그 다음은 호주(2만t·12%), 미국(1만 5000t·9%), 미얀마(5000t·3%), 인도(1800t·1.1%) 등의 순이다. 국가별 매장량도 중국은 4400만t(세계 37.9%)으로 가장 많다. 그 뒤를 브라질·베트남(이상 2200만t·18.9%), 러시아(1200만t·10.3%), 인도(690만t·5.9%), 호주(340만t·2.9%), 미국(140만t·1.2%) 등이 따른다. 중국이 매장·생산량 모두 압도적인 만큼 중국산 대체 수입국을 찾기도 쉽지 않다. 블룸버그는 “중국산 희토류 수입이 줄어든다면 미국이 부족분을 채울 수는 있겠지만 생산량을 늘리는 데 시간이 걸리고 비용도 많이 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더군다나 선진국들은 희토류가 있어도 채굴을 꺼리는 경향이 있다. 다른 광물과 뒤섞여 채굴 비용이 많이 들고 환경규제도 엄격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2015년 희토류 정련업체 몰리코가 파산보호신청을 한 뒤 현재 희토류 정련공장이 한 곳도 없는 탓에 희토류가 미중 무역 전쟁 판도를 뒤흔들 또 하나의 변수로 떠오른 것이다. 미국은 희토류 방어전에 나섰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국 화학기업 블루라인은 호주 라이너스와 손잡고 미 텍사스주에 미국 내 최초의 희토류 공장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라이너스는 중국을 빼면 세계 최대 규모의 희토류 생산 업체다. 호주 서부지역에서 채굴한 광물을 말레이시아 등으로 보내 추출작업 등을 하고 있다. 블루라인은 라이너스로부터 추출작업이 끝난 희토류를 구매해 추가 가공한 다음 자동차 회사와 전자제품 제조회사에 공급해 왔다. 중국에서 희토류를 수입하지 못하게 되더라도 최소한 자국에서 이를 가공할 수 있는 환경만이라도 미리 조성해두면 다른 국가에서 공급받은 희토류를 활용해 피해를 최소화하겠다는 것이 미국의 판단이다. 존 블루멘털 블루라인 최고경영자(CEO)는 “(미국 유일의 희토류 공장이 될 새 공장이) 미국과 전 세계에 희토류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을 정면 겨냥한 것이다. . 중국의 희토류 수출중단 카드가 미국에 얼마나 먹힐지에 대해서는 미지수다. 실제로 이 카드를 사용해 성공한 선례가 있다. 2010년 센카쿠(尖閣·중국명 釣魚島)열도에 접근한 중국 어선과 일본 경비선이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해 중국인 선장이 일본에 억류되자 중국은 이에 대한 보복으로 일본에 희토류 수출 중단으로 맞섰다. 큰 타격을 받은 일본은 백기를 들며 중국인 선장을 즉각 석방했다. 당시 이 사건으로 중국의 희토류 생산 독점에 대해 국제사회에 경종이 울렸다. 미국에서는 ‘중국의 희토류 독점: 미국 외교 및 안보 정책에 대한 영향’이라는 주제로 청문회가 열기도 했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중국의 희토류 위협은 그만큼 강력한 위력이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 정부에 희토류에 대해 자문을 하는 유진 골츠 텍사스대 경제학 교수는 “중국의 희토류 지렛대가 2010년보다 더 위협적이라고 볼 근거가 없다”며 “정책 입안자들은 중국의 이러한 위협에 성급하게 대응해서는 안 된다. 1973년 석유파동과 같은 일은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고 밝혔다. 희토류는 추출과 정제 과정의 비용이 비싸고 이 과정에서 환경 파괴 역시 심각하지만, 일부 종류는 중국 외의 지역에서도 매장량이 풍부하다. 일본과 동남아시아, 호주, 아프리카 등지에서도 발견돼 미 기업들은 여러 방법으로 중국산 희토류 의존도를 줄여가고 있는 상황이다. 더욱이 석유 등 다른 원자재와 달리 희토류는 지속적으로 공급할 필요성이 적고 제품 원자재로서 소량만 필요하며, 미국은 이미 희토류를 상당량 비축해두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이 그동안 희토류 생산을 독점할 수 있었던 것은 느슨한 환경 규제 덕분에 추출과 정제 과정이 비교적 손쉬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환경 규제가 크게 강화되면서 희토류 생산에 우호적인 환경도 그만큼 감소하고 있다. 여기에다 중국은 희토류 생산량이 세계 1위지만 중국 역시 첨단산업에 막대한 희토류가 필요한 만큼 2025년이 되면 희토류 순수입국이 될 것이라는 ‘부정적인’ 전망도 있다. 중국이 미국과의 무역전쟁에서 성급히 희토류를 정치 무기화할 수 없는 대목이다. CNN은 “중국이 미국과 무역전쟁에서 꺼내 든 (희토류) 카드는 생각보다 강력하지 않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삶과 죽음 교차했던 서소문역사공원 다음달 8년만에 전면 개방

    삶과 죽음 교차했던 서소문역사공원 다음달 8년만에 전면 개방

    조선 시대 중죄인을 처형하는 형장이었던 서울 서소문근린공원이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해 8년 만에 시민들에게 활짝 품을 내준다. 서울시는 오는 6월 1일부터 중구 칠패로 서소문역사공원을 전면 개방한다고 24일 밝혔다.지하 4층~지상 1층, 연면적 4만 6000㎡ 규모의 공원은 지상엔 역사공원과 다양한 시민 편의 시설, 지하엔 역사박물관, 하늘광장, 주차장 등을 갖췄다. 공원 일대는 조선 시대엔 서소문 밖 저자거리로 국가 형장으로 쓰였다. 조선 후기 때 여러 종교인, 개혁 사상가들이 이 곳에서 희생됐다. 17세기에는 한양의 주요 시장인 칠패시장이 자리하며 상업 중심지로도 활기를 띠었고 일제 강점기에도 수산청과시장이 자리했다. 근린공원으로 변신한 건 1973년이었다. 김태명 서울시 관광정책과장은 “서소문근린공원은 이처럼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역사적 의미가 큰 공간이었으나 그 의미를 살리지 못한 채 단순한 공원으로 머물러 왔다. 이후 서울시가 일대를 역사유적지 관광자원으로 만들기 위해 2011년부터 공원 조성 작업에 나서며 8년만에 개방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공원의 지상에 들어서면 탁 트인 광장을 중심으로 1984년 세워진 순교자 현양탑과 편의시설이 자리해 있다. 인근 주민, 직장인, 국내외 관광객들에게 쉼터 역할을 톡톡히 한다. 수목 45종 7000여주와 화초류 33종 9만 5000본을 심어 수려한 녹지 공간을 꾸몄다.지하에는 사상과 종교의 자유를 위해 희생당한 이들을 기리는 기념전당(하늘광장)을 비롯해 서소문 관련 전시물을 모은 역사박물관, 편의시설, 교육 및 사무공간, 주차장 등이 들어섰다. 지상 공원은 중구청이 관리하고, 그 외 시설 운영은 천주교 서울대교구 유지재단이 맡는다. 서소문역사공원은 지난해 교황청이 선포한 ‘천주교 서울 순례길’ 코스 가운데 하나다. 박원순 시장은 “이 일대는 조선시대부터 일제 강점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이야기와 역사를 품은 장소임에도 그 의미를 제대로 살리지 못해 아쉬움이 있었다”며 “이번에 재탄생된 서소문역사공원은 정동·덕수궁·숭례문·남대문시장·서울로7017 등 인근의 역사문화자원과 함께 국내외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명소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오는 25일 오전 10시 열릴 개관식에는 박원순 서울시장, 문희상 국회의장,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서양호 중구청장, 염수정 추기경 등 200여명이 참석해 공원과 박물관 시설을 둘러본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삼각산 품에 안긴 효자마을… ‘응팔’ ‘둘리’ 덕에 더 정겹네

    삼각산 품에 안긴 효자마을… ‘응팔’ ‘둘리’ 덕에 더 정겹네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9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4회 삼각산과 쌍문동’ 편이 지난 18일 쌍문동 일대에서 진행됐다. 지하철 4호선 쌍문역 3번 출구 앞에 모인 참가자 40여명은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남정현 가옥에서 ‘분지’의 작가 남정현(87) 선생을 만났다. 선생은 참가자들이 미래유산의 현장이자 작가의 집필 모습을 직접 둘러볼 수 있도록 집안까지 개방했다. 2016년 방영 당시 20%대의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인기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무대 쌍문시장과 감포면옥을 기웃거리면서 식지 않는 드라마의 여운을 느꼈다. 함석헌기념관에서 반독재 민주운동가 함석헌 선생의 씨알사상을 곱새겼다. 기념관은 선생이 만년에 6년간 살던 집을 개조한 서울미래유산이다. ‘아기공룡 둘리’의 고향을 증명하는 둘리뮤지엄을 거쳐 덕성여대에서 투어를 마무리했다. 덕성여대 캠퍼스에는 우리나라 1세대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한 자연과학대, 예술대, 중앙도서관이 서울미래유산 목록에 올라 있다. 삼각산을 품은 3채의 붉은 벽돌 건물이 눈부셨다. 서울도시문화지도사 김은선 해설사가 쌍문동의 어제와 오늘을 열정적으로 들려줬다.오늘의 북서울을 이루는 도봉구와 강북구는 한성부 동부 숭신방에 포함된 성저십리(성 밖 십리) 지역이며, 노원구와 중랑구 일부는 경기 양주에 속했다. 도봉구 쌍문동은 경기 양주군 노해면 쌍문리였다. 노해면은 일제강점기 노원과 해등촌을 합쳐 만든 의미 없는 합성 지명이다. 쌍문동이라는 지명은 효자 계성을 기리기 위해 세운 두 개의 효자문에서 유래했다고 전해진다. 지역 내 효문중·고교도 효자마을이라는 지역정체성을 강조하려고 지었다. 2007년 쌍문동이라는 지명이 촌스럽다고 하여 효문동으로 변경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주민투표에서 부결됐다고 한다. 쌍문동은 서울과 강원도~함경도 동북지방을 잇는 길목에 위치했다. 조선시대 한양과 전국을 연결하는 10개의 큰 길이 있었다. 한양~의주 간 1070리길이 의주1대로라면 한양~경흥 간 2110리길은 경흥2대로였다. 이 길을 통해 함경도의 북어와 땔감과 약재가 유입됐고, 함흥차사와 김종서의 여진정벌군이 오갔다. 서울을 중심으로 우리나라 주요 간선도로의 경유지와 거리, 경유 지역을 정리한 고산자 김정호의 ‘대동지지’ 중 정리고(程里考)에 따르면 경흥대로는 동대문에서 15리 떨어진 수유현과 32리길 누원을 지나 금화현~금성현~영흥부~함흥부~북청부~길주목~회령부~경원부~경흥을 거쳐 최북단 서수라까지 장장 2190리길이 이어졌다.동북방을 오가는 길의 한양 쪽 마지막 쉼터는 안암동 보제원이었고 다음 쉼터인 누원점(다락원)에 이르기까지 오늘의 북서울 일대에 역이나 여관은 없었다. 관원이나 상인은 보제원이나 다락원에서 서울을 들고나는 마지막 여정을 챙겼다. 북서울은 사람이 머무는 곳이라기보다 물품과 봉수(熢燧)가 지나가는 곳이었다. 조선 후기 누원점에는 난전 단속을 피하려는 서울상인들이 진을 친 동북방 제일 큰 시장이 열렸다. 정조6년(1782년) “어상이 왕래하는 요충지 누원점의 매점매석이 심해 백성들에게 피해를 끼친다”라는 내용의 보고서가 남아 있을 정도다. 현재의 지하철 1호선과 7호선 환승역 도봉산역이 누원점이 있던 곳이다. 지금은 서울창포원과 평화문화진지(대전차방호벽), 다락원체육공원, 서울YMCA다락원캠프장 등이 옛 영화를 말해 준다. 북서울 일대는 고려 남경(南京)의 후보지였다. 고려 숙종(1101년) 때 오늘의 서울지역에 남경을 설치하려고 후보지를 물색한 결과 노원, 해촌, 용산, 북촌 일대가 꼽혔다. 고려사에 “노원역, 해촌, 용산 등에 나아가서 산수를 살펴봤으나 도성을 건설하기에 합당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삼각산 면악의 남쪽은 산형과 수세가 옛 문서와 부합되니…도성을 건설하기를 청합니다”라는 대목이 나온다. 상계주공아파트가 들어선 노원은 마들평야라고 불리던 노원역 일대이고, 해촌은 창동 일대이며, 면악의 남쪽은 경복궁 뒤 청와대 지역이다. 조선의 도읍지는 고려 남경 터를 계승한 것이다. 일제강점기 북서울에는 경흥대로 노선을 흡수한 경원선 등 세 갈래의 철도궤도가 부설됐다. 1910년 착공, 1914년에 개통된 경원선은 용산역을 출발해 왕십리~청량리~창동~의정부를 거쳐 원산까지 223㎞를 달렸다. 경춘선과 금강산철도도 건설됐다. 기차역이 생긴 창동은 서울교외 관광중심지로 발돋움했다. 봄에는 우이동 벚꽃놀이, 가을에는 도봉산 망월사 단풍놀이가 유행하면서 우이동 관앵(觀櫻)열차와 망월사 하이킹열차가 각각 운행했다. 경성역에서 창동역까지 50분 거리여서 한적한 시골동네에 관광 인파가 북적였다. 해방 이후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북서울 너른 들에는 전재민과 피란민을 수용하기 위한 난민수용소, 이주정착촌, 저소득층 임시거주지가 집중 조성됐다. 1970~80년대 들어 도봉지구와 창동지구에 토지구획정리사업이 시작되고 상계·중계·창동지구의 택지개발사업이 진행되면서 아파트 숲으로 빠르게 변해 갔다. 인구가 폭증하면서 1973년 성북구에서 도봉구가 분구한 데 이어 1988년 노원구, 1995년 강북구가 따로 살림을 차렸다. 노원구 중계동 ‘104마을’은 1967년 도심개발 당시 철거민들의 집단이주 정착지 흔적이다. 1985~1987년 세상을 놀라게 한 상계동 철거민 투쟁은 삶의 터전을 잃게 된 무허가주택 세입자들이 재개발사업자와 건설사, 가옥주인 조합원들과 충돌한 도시빈민 투쟁사로 기록됐다. 삼각산은 서울의 뼈대를 이루는 조상산(祖上山)이다. 백운대·인수봉·만경대를 이루는 ‘세 개의 신령한 뿔’이 삼각산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산을 북한산이라고 부른다. 조선 말까지 멀쩡하던 지명을 일제강점기 경성제국대학 교수 이마니시 류가 ‘북한산 유적조사보고서’를 조선총독부에 제출하면서 지명이 변경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1983년 영문도 모르는 정부가 삼각산을 포함한 서울 북쪽지역을 ‘북한산국립공원’으로 지정한 게 결정타였다. 삼각산을 북한산이라고 지칭하면 안 되는 이유는 삼각산은 산의 이름이지만, 북한산은 산의 이름이 아니라 땅의 이름이기 때문이다. 서울의 옛 지명 한양(漢陽)은 7세기 신라 때부터 이 지역의 지명인 한산(漢山)이라는 땅의 남쪽, 한강(漢江)이라는 강의 북쪽에 있는 양지바른 지역이라는 뜻이다. 이를 풍수지리학에서는 ‘산남수북지’(山南水北地)라고 풀이한다. 북한산이란 한산의 북쪽 지역을 이르고, 남한산이란 한산의 남쪽 지역을 이른다. 산 이름 삼각산을 제쳐 두고 지역 이름을 부르는 것은 산의 영험함과 정기의 상실을 초래한다.삼각산 깊고 너른 품에 안긴 쌍문동은 효자마을이라는 정체성에, ‘아기공룡 둘리’ 애니메이션과 ‘응답하라 1988’ 드라마로 명성을 얻었다. 1983년 쌍문동에 살던 김수정 작가의 손에서 탄생한 둘리는 쌍문동을 넘어 도봉구의 마스코트가 됐다. 지역의 대표 캐릭터답게 둘리뮤지엄, 둘리스토리공원, 둘리미니어처공원이 건립됐다. 거리와 역, 버스정류장, 담벼락엔 온통 둘리 그림과 조형물로 채워졌다. 우이천변엔 둘리가 발견된 곳 표지판도 세워졌다. 도봉구는 2011년 만화주인공 고길동씨와 둘리를 구성원으로 하는 가족관계증명서를 발급했다. 2015년 11월 6일부터 2016년 1월 16일까지 tvN에서 방영된 ‘응답하라’ 시리즈의 3번째 후속작 ‘응답하라 1988’은 조용한 동네 쌍문동을 다시 화제의 전면으로 불러냈다. “너무 잘살지도 못살지도 않는 동네, 한 번쯤 들어봤음 직한 정겨운 이름 때문에 드라마 무대로 쌍문동을 캐스팅했다”고 담당PD는 말했다. 만약 2007년 효문동으로 동명을 바꿨더라면 드라마의 무대가 되지 못했을 수도 있겠다. ‘세 개의 뿔’ 삼각산의 기운이 쌍문동의 뒤를 받치는 듯하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 사진 김학영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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