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7080 공연
    2026-08-04
    검색기록 지우기
  • 9억원
    2026-08-04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321
  • [박성서의 7080 가요 X파일] ‘가을 편지’의 샹송가수 최양숙 (1)

    [박성서의 7080 가요 X파일] ‘가을 편지’의 샹송가수 최양숙 (1)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낙엽이 쌓이는 날/외로운 여자가 아름다워요.’ 시인 고은의 시에 김민기씨가 곡을 붙인 ‘가을편지’다. 선율을 모르는 채 그냥 읽어도 가을의 리듬이 완연히 느껴지는, 이 노래의 주인공 최양숙씨. 최양숙(崔良淑)은 본명이다.‘양(良)’자는 ‘좋다, 뛰어나다, 또는 아름답다’라는 뜻을 갖고 있고 ‘숙(淑)’자는 ‘맑고 깊다, 혹은 정숙하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그래서일까, 그녀는 이 이름 그대로 ‘맑고 깊은, 그리고 뛰어난 가창력으로 아름다운 노래를 주로 부른’ 가수였다. “그저 평범한 할머니로 늙어가고 싶은데 그 것도 쉽지 않아. 이름 석자를 여전히 기억하고 있는 몇몇 사람들 때문에 병원 같은 데서 이름이라도 불려질라치면 누가 보는 것 같아 아직도 불편해. 그저 잊혀져 조용히 늙고 싶은데 말이지.” 서울대 성악과를 나온 음악도로 국내 최초의 샹송가수라 일컬어지며 ‘황혼의 엘레지’ ‘모래 위의 발자국’ ‘초연’ ‘호반에서 만난 사람’ 그리고 ‘꽃피우는 아이’ ‘세노야’ 등을 발표했던 최양숙은 샹송에 관한 한 독보적이라 해도 좋을 만큼 가창력이 뛰어났고 분위기 또한 매력적이었다. 37년 원산에서 태어난 최양숙은 경음악평론가이자 DJ로 활동하던 최경식씨의 동생. 원산 명석보통학교를 다니던 중 1·4 후퇴 때 피란 내려와 부산에서 임시로 문을 열었던 무학여중에 들어간 뒤 환도 후 지금의 서울예고에 진학한다. 당시 노래 실력이 뛰어나 서울대 음대 주최 전국콩쿠르서 ‘시인’을 불러 대상을 차지한 뒤 60년, 서울대 음대 성악과에 진학한 최양숙은 2학년 때 중앙방송국(현 KBS) 합창단원으로 입단해 활동을 시작한다. 그녀가 솔리스트로서의 자질을 주목받기 시작한 때는 이 무렵, 지휘자 이남수의 인솔로 해병대 의장대원들과 함께 한국예술사절단의 일원으로 해외 공연을 떠나던 해군함정 LST 안에서였다. 여흥시간 중 게임에 져 벌칙을 받아야 했던 그녀가 부른 노래는 샹송 ‘고엽’, 이어 앙코르 요청에 의해 부른 노래가 ‘자니 기타’였다. 망망대해 선상에서 반주 없이 부른 이 노래로 함께 동행했던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는다. 특히 당시 방송국 관계자들이 이를 놓치지 않고 눈여겨보았음도 나중에서야 알게 된다. 다음 해, 그녀는 솔로로 마이크 앞에 서게 되는 계기가 마련된다. 대학 3학년 때였다. 무대에 나서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데 음악부장이 찾아와 지금 새로 시작하는 드라마를 녹음 중인데 그 주제가를 한 번 불러보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해왔다. 처음 그녀는 완강히 거절했지만 그냥 연습 삼아 불러보자는 말에 악보를 받아 쥐고 마이크 앞에 섰다. 당시 최양숙은 이 노래가 실제로 녹음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술회한다. 그러나 바로 그날 밤, 첫 방송되는 드라마에 자신의 노래가 주제가로 방송되고 있었다. 이 드라마 제목이 ‘어느 하늘 아래서(한운사 극본)’이다. 이 주제가는 후에 한명숙씨에 의해 ‘눈이 나리는데’라는 제목으로도 발표되었다. 이 드라마는 당시 HLKA 라디오 연속극에 이어 이후 64년도 말부터 동양 TV(D-TV, 채널 7)에서 최초의 TV 일일드라마로 리바이벌, 제작되기도 했다. 이 때 드라마 제목은 ‘눈이 나리는데(황운진 연출)’.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노래가 연속극 주제가로 방송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최양숙은 서울대 음대 학장실에 불려간다. 그리고 당시 학장이었던 작곡가 현제명씨로부터 ‘목소리의 주인공이 아니냐.’는 추궁을 당한다. 특히 노래 중 ‘모두가 세상이 새하얀데’ 라는 후렴구의 고음 부분에서 최양숙의 특징이 확연히 드러났기 때문이었다.(계속) sachilo@empal.com
  • 전남 가을축제 물결 ‘출렁’

    남도의 가을에 축제 물결이 넘친다. 지역의 특색을 살린 축제가 어우러져 추억을 만들기에 더없이 좋은 계절이다. 서남해 청정해역에서 갓 올라온 횟감을 즐기기도 안성맞춤이다.●`깨가 서말´… 광양 전어축제 오는 15∼17일 광양시 진월면 망덕포구에서 열린다.‘가을전어 머리에는 깨가 서말’이란 말이 있듯이 통통하게 살이 오른 전어는 요즘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전어요리 설명회, 전어비빔밥 만들기, 전어썰기 체험과 평양민속예술단 공연, 섬진강 한밤의 음악회, 사물놀이, 불꽃놀이가 이어진다.섬진강의 풍광과 전어의 참맛을 함께 느낄 수 있다.●목포사랑 은빛갈치 축제 이틀간 9∼10일 목포시 평화광장에서 열린다. 갈치낚시대회와 해양레포츠,7080콘서트, 해변댄스 스포츠대회가 이어지며, 싱싱한 은빛 갈치를 맛볼 수 있다. 자연사 박물관, 갓바위 공원, 목포의 눈물 이난영 공원, 유달산 야간조명, 고하도 앞바다 오색등을 즐길 수 있다. 15∼17일엔 영암군 삼호읍 영산호 관광지내 체육공원과 현대삼호중공업 남문주차장에서 ‘무화과·갈치 축제’가 열린다.●곡성 심청축제… 난타등 공연 28일∼10월1일 곡성읍 섬진강 자연생태공원에서 ‘효와 환경이 미래를 연다’라는 주제로 열린다. 효녀 심청전국어린이 예술공모전, 효녀심청 어린이 사생대회, 심청 마당극, 오산 난타공연 등이 마련됐다.●다도해 절경… 장흥 천관산 억새제 30일∼10월1일 장흥군 천관산에서 전국 산악인의 대축제인 천관산 억새제가 열린다. 다도해의 풍광과 기암괴석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천관산은 으뜸 억새 관람지로 꼽힌다. 축제는 다음달에도 그치지 않는다. 나주에서는 10월13일부터 ‘나주로 떠나는 2000년의 시간여행’이란 주제의 나주 영산강문화축제가 시작되며,14일부터 강진 대구면 고려청자 도요지에서 9일 동안 청자문화제가 이어진다. 18일부터 순천시 낙안읍성에서는 남도의 음식이 한자리에 모이는 ‘남도음식문화 큰잔치’가 열리며,21일 보성에서는 서편제 보성소리축제가 이어진다.전남도 홈페이지 관광포털사이트(www.namdokorea.com)나 각 시·군 홈페이지의 프로그램을 확인하면 된다.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Local]울산의 9월은 ‘축제의 계절’

    ‘울산 9월은 축제속으로….’ 울산에서 오는 12∼15일 제 26회 전국장애인 체육대회가 열리고 14∼17일에는 울산 최대 종합문화예술 축제인 제 40회 처용문화제가 개최된다.‘다함께 굳세게, 끝까지’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4일 동안 열리는 전국장애인체전에는 16개 시·도에서 선수 2500여명과 임원 및 보호자 800여명이 참가한다. 울산종합운동장에서 개·폐회식을 비롯해 20개 경기장에서 양궁 등 19개 종목 경기가 열린다. 첫날 남구 황성동 처용암에서 처용맞이로 시작해 울산지역 전통놀이로 불가마를 재현하는 쇠부리 놀이, 남사당 줄꾼 권원태의 줄타기 공연, 부산 아시아 단편영화제 수상작 상영, 월드뮤직 공연,1020콘서트,7080음악회, 실버콘서트 등 다양한 행사가 4일 동안 이어진다.
  •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7080붐의 주역,트윈폴리오 (1)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7080붐의 주역,트윈폴리오 (1)

    악보를 구하기 쉽지 않았던 1960년대 후반, 미8군으로부터 간간이 흘러나오는 악보를 ‘송 폴리오(Song folio)’라 했다. 아울러 ‘트윈폴리오(Twinfolio)’는 ‘두장의 악보’란 뜻이다. 이 ‘두장의 악보’로부터 70년대를 휩쓴 포크송시대, 통기타 붐이 시작되어 현재의 7080붐까지 계속되고 있다. 송창식과 윤형주. 같은 노래를 불러도 서로 느낌이 확연히 다른, 이들은 각각 ‘두 장의 악보’다. 때문에 듀오로서 더없는 조건을 갖춘 셈. ‘흙과 바람으로 빚은 듯한 목소리’라는 평가를 받는 송창식씨와 ‘창공의 맑은 공기 같은’ 미성의 소유자 윤형주씨. 때문에 이 둘의 조우는 멋진 하모니를 구사했다. 둘은 여러모로 상반된다. 서울예고에서 성악을 전공했던 송창식씨가 ‘악보대로 노래하는’ 가수라면 연세대 의대 시절 포크 트리오 ‘라이너스’ 멤버로 활동하던 윤형주씨는 팝을 그야말로 ‘자유자재로 감미롭게 구사했던’ 인물. 또한 윤형주씨가 지극히 가정적이라면 송창식씨는 매우 토속적이다. 이 둘의 주 활동시간대 또한 서로 다르다. 현재 윤형주씨는 CM송 전문회사 ‘한빛기획’을 운영하는 사업가로 변신했다면 송창식씨는 미사리 라이브 카페에서 여전히 노래한다. 때문에 밤낮이 서로 엇갈린 시간대에서 각각 활동하고 있다. 트윈폴리오는 처음 듀오가 아닌 트리오로 시작됐다.60년대 무교동의 음악감상실 ‘세시봉’에서 만나 ‘트리오 세시봉’이란 이름으로 결성된 이들 멤버는 송창식(멜로디), 윤형주(테너), 이익균(베이스).47년생 동갑내기인 이들은 67년 9월,‘트리오 세시봉’을 결성한 뒤 TBC-TV ‘한밤의 멜로디(임성기 PD)’에 출연,‘하얀 손수건’과 ‘안개’를 부르며 대중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후 방송가에서 ‘하얀 손수건’이 제법 히트할 무렵인 68년 1월31일, 멤버 이익균이 군에 입대하자 남은 둘은 듀오로 활동하며 이름을 트윈폴리오로 바꾼다. 이들의 등장은 60년대 후반 새로운 문화의 흐름이 잉태한 산물이다.‘명동시대’라 일컬어지던 50년대식 낭만을 지나 60년대 젊은이들을 변화시킨 키워드는 어떤 것일까. 먼저 첫손가락에 꼽히는 것이 주한 미군들을 위한 방송,‘AFKN 개국’일 것이다. 이어 최동욱의 ‘탑튠쇼’, 비틀스의 ‘예스터데이’, 전석환에 의해 주도된 ‘싱어롱 Y’, 젊은 음악인들이 몰리던 음악감상실 ‘세시봉’, 윤복희의 ‘미니스커트’, 트랜지스터라디오의 등장 그리고 남성포크듀오 ‘트윈폴리오’의 탄생. 바로 이 트윈폴리오의 당시 절대적인 인기가 60년대 젊은이들 변화의 여러 코드를 함축시켜 놓은 ‘최대공약수’이었음을 방증하는 것이다. 팝을 듣고 자란 세대는 이전과 다른 문화를 갈구하고 있었다. 트윈 폴리오의 등장은 팝문화에 젖어있던 대학생들을 위시한 10대들의 감성의 빗장을 열며 급기야 우리나라 가요 팬들을 기존 층과 10대 위주의 젊은층으로 분리, 이등분시켰다. 이들이 68년 12월, 드라마센터에서 가진 첫 리사이틀에는 매회 관객석 600석 매진에 200여명이 더 몰려들었고 1년 뒤인 69년 12월, 해체 선언과 함께 같은 장소에서 가진 고별리사이틀 역시 해체를 아쉬워하는 팬들에 의해 앙코르 공연까지 치러야 했을 정도다. 부산해운대관광호텔에서 가진 ‘트윈폴리오 고별리사이틀 앙코르 1회 공연’이 그것. 이들은 해체한 뒤에도 각각 솔로로 활동하며 ‘통기타 1세대’로서 70년대 청년문화를 주도한다.71년, 송창식은 ‘창밖에는 비오고요’를 타이틀로 한 독집음반을 발표하며 솔로 활동을 재개했고 윤형주 역시 이듬해인 72년, 솔로 데뷔곡 ‘라라라’를 발표하며 활동을 전개한다. 그러나 이보다 먼저인 69년 1월, 송창식씨는 솔로로 음반을 이미 취입한 적이 있었다. 손석우 작곡의 ‘멀어진 사람’이란 곡이다. 시기적으로는 그가 트윈폴리오 멤버로 한창 바쁘게 활동할 무렵으로 얼마 전 윤형주씨는 이러한 사실에 대해 지금까지도 전혀 몰랐던 부분이라 했다. 당시엔 공연과 방송활동 등으로 거의 함께 붙어 다녔기 때문에 이러한 음반의 존재에 대해 선뜻 믿기지 않은 듯했다. 그러다 보니 당사자인 송창식씨의 당시 일화가 한편, 궁금해졌다.(계속) sachilo@empal.com
  • [seoul in] 영등포구 한여름밤의 작은음악회

    영등포구(구청장 김형수) 찜통더위로 지친 주민을 위한 ‘한여름 밤의 작은 음악회’를 개최한다.3차례에 걸쳐 목요일 오후 8시에 실시되는 작은 음악회는 오는 24일 도림유수지,31일 안양천 체육공원 신정교 아래 인라인스케이트장, 다음달 7일 당산공원에서 열린다.7080 통기타 가수공연, 안데스 민속공연, 색소폰 공연이 펼쳐진다. 문화체육과 2670-3143.
  • 록·재즈와 함께하는 가을스케치

    록·재즈와 함께하는 가을스케치

    록, 재즈, 뉴웨이브, 그리고 가요…. 초가을 9월을 맞아 다채로운 음악들이 팬들을 찾아간다. 우선 데뷔 30주년을 맞은 ‘블론디(Blondie)’의 내한공연이 눈길을 끈다.‘Heart of glass’,‘Call me’ 등 소위 ‘롤러장 음악’으로 유명한 뉴웨이브 펑크 록그룹. 원년 멤버 모두가 참여하는 이번 공연은 ‘블론디’란 이름으로 벌이는 첫 내한공연이자 은퇴공연이 될 듯하다.7080세대라면 1970∼80년대의 대표적인 섹스심벌 데보라 해리(보컬)를 만날 수 있다는 것에 가슴설렐 법도 하다. 오는 9월 13일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열린다.(02)6402-4636. ‘타협하지 않는 영혼’ 임재범의 데뷔 20주년 콘서트 ‘비상’이 뒤를 잇는다.9월16∼17일 이틀에 걸쳐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열리는 이번 공연은 파트Ⅰ,Ⅱ로 나뉘어 각기 다른 노래들로 진행되는 것이 특징. 파트Ⅰ(16일)은 1986∼1996년 사이, 파트Ⅱ(17일)는 1997년∼현재까지 발표한 앨범 수록곡 위주로 공연을 펼친다.2일 패키지 티켓을 구입하면 할인혜택을 받는다.(02)527-3950.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는 고란 브레고비치의 집시 오페라 ‘해피엔딩 카르멘’과 포르투갈 민속음악인 파두(fado)가수 마리자의 공연이 각각 2일과 21일 열린다.22일엔 영국의 4인조 남성 아카펠라 그룹 칸타빌레의 첫 내한공연이 마련돼 있다.(02)2005-0114. 야외공연도 줄을 잇고 있다.9월21∼24일 경기도 가평에서는 ‘자라섬 국제 재즈 페스티벌’이 열린다. 재즈 스테이지, 파티 스테이지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031)581-2813∼4.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70년대의 상징,‘아침이슬’의 김민기(1)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70년대의 상징,‘아침이슬’의 김민기(1)

    젊은 시절, 캠퍼스 어느 구석에선가 그의 노래를 숨 죽여 불러본 경험을 가진 이들에게 김민기가 ‘추억‘이라면 지금의 젊은이들에게 김민기는 ‘70년대의 역사’일 것이다. 광주의 경험을 가진 80년대 이후 젊은이들은 ‘산 자여 따르라’라고 외쳤지만 김민기의 노래는 어디까지나 70년대의 노래다. 즉 ‘나 이제 가노라’라고 읊조리던. 70년대 젊은이들에게 김민기는 ‘노래하는 이’였고 지금의 젊은이들에게 김민기는 극단 ‘학전’의 대표이자 연극 연출가, 기획자로 더 익숙해져 있을 것이다. 다시 한 번 ‘인생 2모작’에 몰두하고 있는 그는 이제 더 이상 노래하지 않는다.12년 째 달려오고 있는 ‘지하철 1호선’은 어느덧 공연 3000회를 훌쩍 넘겼다. 70년대 젊은이들에게조차 그의 실체는 가늠이 어렵다. 한동안 ‘금지’에 묶이고 ‘상징’에 가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오랜 동안 ‘구전’의 문화로만 존재해왔고 그래서 그의 존재는 많은 이들에게 ‘신화’에 가까웠다. 자의건 티의건 간에 70년대 문화의 큰 흐름을 주도해온 김민기의 노래 작업들은 우리 현대사의 가장 치열한 기록 중 하나다. 감시와 검열과 통제의 시대, 그러나 당시 금지곡 목록에 올려져 있던 김민기 곡은 ‘아침이슬’ 단 한 곡뿐이었다. 그러나 이마저도 다른 곡들과는 달리 아무런 금지 사유도 명시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그가 만든 노래들은 일순간 방송에서 모조리 자취를 감춘다. 노래가 아니라 이름 자체에 금지의 굴레가 씌어져 있었던 탓이다. ‘우리나라 70년대는 김민기의 아침이슬로 시작되었다.’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대중들과 평론가들로부터 비상한 관심을 모았던 ‘의식 있는 젊은이’ 김민기, 그는 경기중·고교와 서울대 미대를 나온, 속칭 ‘KS 마크’였다. 아울러 그림과 음악을 사랑하던 청년이었다. 비록 발표되지는 않았지만 고교 시절인 67년, 그가 처음 만든 노래가 ‘가세’이다. 그가 기억하고 있는 노랫말은 이렇다.‘비가(눈이) 내리누나/나 혼자 가고프나/함께 어울려 간들 어떠하리/가세 산 너머로 비 개인(눈 그친) 그곳에/저 군중들의 함성소리 들리쟎나’이다. 이어 만든 곡이 ‘친구’. 이 노래는 고교시절 보이스카우트 대원들과 동해안 여름야영에 갔던 68년. 친구 하나가 익사하자 이 사실을 알리기 위해 서울로 돌아오는 야간열차 안에서 자신의 심경을 그린 것이다. 서울대 시절, 동료 김영세씨와 듀엣으로 활동했던 ‘도비두(도깨비 두 마리라는 뜻)’의 목소리에 실려 처음 음반으로 발표되었다. 당시 그가 만든 노래들은 ‘친구’ ‘아침이슬’을 비롯해 ‘작은 연못’ ‘길’ 등 매우 서정적이고 담백하다. 그저 일기 쓰듯 담담하게 노래했다. 때문에 당대 젊은이들로부터 많은 공감을 끌어냈던 것이리라. 그 자신 스스로도 ‘그저 나의 작은 이야기’를 했을 뿐인데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로 지나치게 확대 해석했다고 술회하고 있다. 그렇게 만들지 않았는데, 그렇게 불려진 것이라는 얘기다. 그의 노래들이 금지된 것은 노래 자체 때문이라기보다 그가 관여한 실천적 참여활동 때문이었으리라 짐작된다. 그는 72년 봄, 서울문리대 신입생 환영회에 초대되어 ‘우리 승리하리라’ ‘해방가’ 그리고 ‘꽃피우는 아이’를 불렀다는 이유로 이튿날 새벽, 동대문경찰서에 연행되고 시중에 남아 있던 그의 음반들은 모조리 압수당하기에 이른다. 이것이 그가 후에 수도 없이 되풀이하게 되는 ‘연행’ 행로의 시작이었다. 이러한 일을 겪고 난 후 야학이나 ‘금관의 예수(73)’ 소리굿 ‘아구(74)’ 등 가톨릭 문화운동, 국악대중운동, 마당극 등에 관심을 가지며 이러한 활동에 깊게 관여하게 된다.‘의식 있는 젊은 한국인’이 한층 ‘줏대 있는 삶’을 살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이미 그의 노래는 방송가에서 자취를 감추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더욱 유명해져가고 있었다. 그는 74년 군에 입대한 후 77년 제대하면서 ‘야인’으로 생활을 시작한다. 70년대 김민기에 대한 당국의 시각은 어떠했는가. 그 일화 중 하나. 김민기는 당시 모 수사기관에 연행되어 조사를 받게 되었다. 수사관은 그에게 대외비 책자 한 권을 펼쳐보였다. 그 책자에는 당시에 대학가에서 주로 불려지던 과거 독립군가나 빨치산들이 불렀을 법한 유형의 작자 미상의 노래들이 김민기라는 이름으로 적혀 있었다. 이윽고 ‘아침이슬’ 부분을 펼쳐보였다. 첫 낱말 ‘긴 밤’에 밑줄이 그어있고 ‘유신체제’라는 설명이 붙어있었다.‘풀잎’ ‘이슬’ ‘태양’ ‘묘지’‘광야’ 등등. 단어마다 빨간 주석의 장황한 해설들. 그가 다그쳤다.‘긴 유신체제의 밤을 끝내고 민족의 태양인 김일성을 열렬히 맞이하자.’라는 내용이 아니냐는 거였다. 이 노래를 만든 것이 71년이라는 사실을 주지시킨 김민기는 되물었다.“10월 유신이 몇 년도였지요?” 이에 수사관은 대답 대신 인상을 찡그리며 책을 탁하고 큰소리나게 덮었다.(계속) sachilo@empal.com
  •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하얀 나비’ 가수 김정호와의 마지막 인터뷰(2)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하얀 나비’ 가수 김정호와의 마지막 인터뷰(2)

    그의 재능은 외탁인 듯하다. 서편제의 큰 줄기이자 창작판소리의 창시자로 일컬어지던 월북 소리꾼, 박동실 선생이 바로 그의 외할아버지다. 월북으로 인해 그의 존재는 판소리사에서 한때 묻혀져 있었지만 박동실은 명창 김소희와 박송희 등을 키워냈던 인물로 김정호의 어머니인 박숙자 여사와 함께 ‘아성극단’을 만들어 만주나 상하이 등지로 공연을 다니기도 했던 ‘명인’이었다. 그러나 어머니 박숙자씨는 아들 정호가 6살 때 집안에 있던 국악기를 모두 내다버렸다. 심지어는 가야금 줄까지 모두 끊어버렸다. 그 힘들고 고된 악극단 생활을 자식에게까지 물려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기억이 잡힐 듯 생생함에도 불구하고 김정호는 운명처럼 ‘금지된 길’을 걷는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생의 전부를 걸어 음악에 몰입했다. 여운이 긴 애상적인 바이브레이션을 구사했던 김정호, 노래들이 유독 슬프게 들렸던 것은 그가 노래 속에 ‘모든 것’을 걸었기 때문은 혹 아니었을까. 처음 김정호가 노래 만드는 일을 시작한 것은 대동상고 시절, 밴드부에 합류하면서부터였다. 그리고 졸업 후엔 기타를 둘러멘 채 방랑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그는 종로 낙원상가 주변을 배회했으며, 심지어는 잠자리조차 없어 거리에 내놓은 이삿짐 속 캐비닛에 들어가 잠을 자기도 했다. 이즈음 잠시 미 8군 무대에서 기타리스트로 활동하기도 했으나 얼마 안돼 또다시 떠돌이가 되었다. 어느새 익숙해진 것은 ‘음악’보다 먼저 ‘배고픔’이었다. 당시 한 그릇에 5원하던 노동자 합숙소의 국수, 한 대접에 10원이었다던 남대문 시장의 수제비 등으로 허기를 채우며 일자리를 구하러 다니던 시절도 있었다고 그는 털어놓았다. 한때 가수 백순진씨와 함께 ‘4월과 5월’의 멤버로 잠시 활동하기도 했던 그는 어니언스가 그의 곡인 ‘작은 새’를 히트시키기에 이르자 음악성을 주목받으면서 작곡자에서 가수로 변신, 무대에 선다. 통기타를 멘 채 눈을 지그시 감고 꿈꾸듯이 노래하는 그의 독특한 모습. 그는 76년 3월, 자신의 스물다섯 번째 생일날, 부인 이영희씨와 백년가약을 맺는다. 하나 이 축복도 잠시였다. 건강은 더욱 악화되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방 공연하는 친구를 따라갔다가 방위 소집에 응하지 못해 결국 탈영병으로 군 영창에 갇히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군복무를 마치게 되지만 가정은 이미 어려워져 매번 이사를 다녀야만 했다. 그래도 불평 한마디 없는 그의 부인은 자신에게 ‘늘 따뜻한 사람이었다’고 털어놓았다. 부인은 그가 건강이 나빠져 공기 좋은 곳으로 가자면 그렇게 했고, 친구 곁으로 가자면 또 그렇게 했다. 경제적으로 정 버틸 수 없어 어머니 곁으로 가야겠다고 말하면 또 그의 뜻에 따랐다. 그러나 80년, 끈질긴 투병과 부인의 보살핌으로 완전히 나았다던 그의 결핵은 다시 재발되고 급기야 각혈이 시작되자 결국 인천요양소에 격리되어 요양생활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는 이 시기를 ‘공백’이라고 표현하는 것에 대해 몹시 못마땅해 했다. 비록 그 시기에 대중들 앞에는 나서지 못했지만 스스로는 늘 음악 한가운데에 있었다고 믿기 때문이다. 사실 그동안 그는 많은 곡을 만들었고 악기소리를 연구했으며 음반 또한 취입했다. 그가 타계하기 얼마 전, 담당의사는 그에게 경고했다. 최소한 6개월에서 3년 정도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쉬어야 한다고. 심지어 ‘노래를 다시 부르면 죽게 될지도 모른다’고 까지 경고했다. 결핵환자에게 노래는 호흡기관에 매우 치명적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정작 그는 노래를 부르지 못하면 되레 숨이 멎을 것 같았다. 그는 병보다 더 뜨겁게 달아오르는 음악에 대한 열병을 또 그렇게 앓고 있었다. “꽹배기(꽹과리)소리에 미쳐 삽니다.” 인터뷰 당시 그는 자신의 생활을 이 한마디로 압축해 표현했다. 우리만의 것, 우리만의 맛, 우리만의 흥.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무엇인지 이제서야 비로소 찾은 느낌이라고 털어놓았다. 때문에 그 무렵 뜻 맞는 친구들과 사물놀이 패를 조직하기도 했고 또 항시 꽹과리를 들고 다녔다. 병이 악화돼 병원에 다시 실려 갈 때도 꽹과리를 병실에 까지 가지고 들어가 담당의사의 혀를 내두르게 했다. ‘남은 열정을 모두 국악에 바치겠다.’며 자신에 찬 목소리로 의지를 내보이던 김정호, 오늘 그가 새삼 그립다. sachilo@empal.com
  • 황영조와 함께 뛰는 섬 마라톤 눈길

    본격적인 휴가철을 맞아 섬을 낀 전남 도내 곳곳에서 바다축제가 펼쳐진다. 섬·갯벌 올림픽 축제, 신비의 바닷길 축제 등 다양한 여름축제가 피서객들을 유혹한다.●`모세의 기적´ 올해는 8월에 매년 봄철 열리던 ‘현대판 모세의 기적’이 올해에는 여름철에 재현된다. 오는 8월 10일부터 12일까지 3일간 진도군 고군면 회동∼의신면 모도 사이 2.8㎞ 구간의 바닷길이 열린다. ‘신비! 여름바다! 그리고 체험!’이란 주제로 열리는 이번 축제에서는 락 콘서트, 진도군립예술단 북놀이, 퓨전국악공연, 뽕할머니 만남 기원, 만가행렬, 그룹 ‘사랑의 평화’, 안치환 등 7080 가수들이 참가한다.●제1회 섬·갯벌 올림픽축제 신안군 증도면 우전해수욕장에서 ‘섬과 갯벌에서 한여름의 추억 쌓기’라는 주제로 8월4일부터 6일까지 열린다. 황영조와 함께하는 ‘섬·갯벌 하프 마라톤대회’, 전국 바다낚시대회, 비치사커대회, 아쿠아슬론대회, 바다수영대회 등이 준비돼 있다. 머드씨름, 머드축구(풋살), 모래조각 콘테스트, 머드 닭싸움, 머드 슬라이딩 등도 마련돼 있다.●백도 은빛바다 축제 여수시 삼산면 거문도 일원에서는 8월4일부터 6일까지 야간 백도 라이트 투어 및 선상음악회, 떼배 낚시체험, 야간횃불 고동잡기 등 체험행사와 학생수영대회, 떼배 노젓기대회, 밸리댄스, 품바공연, 노래자랑 등이 이어진다. 무안백련대축제는 오는 8월11일부터 15일까지 5일간 동양최대의 백련자생지에서 ‘생명과 평화의 울림 8월의 연풍연가(蓮風蓮歌)!’라는 주제와 ‘웰빙의 숲, 무안을 만나면 자연이 됩니다.’라는 슬로건으로 열린다. 여수국제청소년축제도 8월11일부터 13일까지 여수시 진남체육공원과 여수 해양공원, 시민회관, 만성리 해수욕장에서 개최된다. 이번 축제에는 국내외 22여 개국 5만여 명의 청소년이 참가하며, 음악·댄스경연대회와 스트릿 베틀공연·전통탈 만들기·해양레포츠 등이 눈길을 끈다.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울산, 음악속으로

    ‘1주일 음악에 빠지는 울산’ 국내 초특급 가수진이 총출동하는 대형 음악공연이 22일부터 1주일 동안 울산에서 펼쳐진다. 한류 관광객 1000여명도 공연을 보기 위해 울산을 찾는다. 울산 MBC는 21일 울주군 진하해수욕장과 동구 일산해수욕장, 남구 문수축구경기장 호반광장에서 ‘2006 울산 서머페스티벌’ 행사를 22∼28일 개최한다고 밝혔다. 시민들과 울산을 찾는 피서객 등에게 수준있는 음악공연 관람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울산MBC가 지난 2003년부터 매년 여름에 마련하는 행사다.해외에서도 관람객이 많이 찾아 올해는 중국·베트남·일본 등에서 1000여명이 콘서트 투어를 예약했다. 출연가수는 버즈,SG워너비,SS501등 신세대 가수를 비롯해 현철, 태진아, 장윤정 등 70여팀 300여명에 이른다. 수도권 관람객들을 위해 행사기간에 서울∼울산을 오가는 KTX 관광열차 2편을 매일 운행한다. 22∼23일은 진하해수욕장에서 힙합·랩뮤직과 7080가수들의 싱싱콘서트가 열리고 24∼25일은 일산해수욕장에서 해변콘서트와 트로트 스페셜 무대가 마련된다.26∼28일은 문수축구경기장 호반광장에서 10대를 위한 영스타 스페셜을 비롯해 퓨전 콘서트, 록 콘스트가 이어진다.울산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절대음’의 하모니 이시스터즈(2)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절대음’의 하모니 이시스터즈(2)

    림보록, 트위스트, 보사노바, 차차차 등,1960년대를 장식한 이 리듬을 국내 무대에서 한껏 펼쳐 보이며 번안곡 전성시대를 열었던 이시스터즈. 이들의 음악성은 국내 가요의 폭을 한층 넓힌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Eb(이플렛)’ 음까지 구사했던 이들의 자극적인 하이 톤의 매력은 국내 작곡가들에게도 매우 구미 당기는 목소리였다. 위로는 높은 음, 아래로는 낮은 음까지 매우 폭넓게 표현되기 때문에 고음, 저음의 제약 없이 어떠한 곡이라도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과 함께 작곡가들의 창작의욕을 자극시켰다. “특히 당시 신세대 작곡가였던 정민섭, 황우루씨의 프러포즈는 대단했지요. 특히 황 선생은 우리가 청파동 택시를 타는 곳까지 일부러 나와 매번 기다렸다가 본인의 곡을 불러달라는 주문을 해오기도 했지요.” 초기멤버 이정자(65)씨의 회고다. 결국 미8군 무대를 통해 번안곡 위주의 레퍼토리로 출발했지만 곧 이들은 국내 창작곡 위주의 레퍼토리로 탈바꿈한다.‘서울의 아가씨(박선길)´ ´목석같은 사나이(정민섭)’ ‘뻐꾸기(정민섭)’ ‘남성금지구역(최창권)’ ‘화진포에서 맺은 사랑(황우루)’ ‘별들에게 물어봐(길옥윤)’ 등, 특히 고음이 매력적인 노래들로 무장한 이들의 레퍼토리는 스테레오가 아닌 모노시대였지만 사뭇 생동감이 넘쳤다. 그리고 20대 중심의 가요 팬 층을 골목 안 개구쟁이들로까지 끌어내린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르는 호박엿’의 ‘울릉도 트위스트(황우루)’까지, 이들의 하모니는 절정을 구가했다. 그러나 67년 1월에 발표된 이 ‘울릉도 트위스트’를 끝으로 멜로디 이정자씨가 솔로로 전향하며 탈퇴한다. 이어 이정자씨는 ‘평화의 나팔소리’ ‘모래 위를 맨발로’ 등을 발표하며 여전히 빼어난 고음의 기량을 뽐냈다. 잠시 해체 위기를 맞은 이시스터즈는 서둘러 65년 KBS 톱싱어대회에서 1등으로 입상한 김상미(본명 김군자)씨를 영입, 제2의 이시스터즈로 재탄생한다. “1년간의 방송국 전속기간을 끝내고 독립하려 할 때쯤 작곡가 이희목 선생의 추천으로 이시스터즈 멤버에 합류했지요. 물론 방송국 측 일부에서는 반대하기도 했지만….” 최근 뒤늦게 솔로활동을 준비하고 있다는 막내 김상미(63)씨의 회고다. ‘목석같은 사내’들의 무딘 감성까지 자극했던 초기 멤버의 섹시한 목소리의 ‘관능코드’는 후기 멤버로 교체되자마자 ‘날씬한 아가씨끼리’라는 노래를 발표, 섹시한 외모로 새로운 이미지를 부각시키며 승부수를 띄웠다. 이어 ‘노가바(노래 가사 바꿔 부르기)’의 원조 격으로 불리는 군대 애창곡 ‘여군 미스리’를 비롯해 70년대 새마을 운동의 주제가처럼 불리는 ‘좋아졌네’ 등이 이들의 후기 히트곡들이다. 이들은 밝고 건강한 이미지, 깨끗하고 탄력 있는 목소리로 정책 캠페인 노래 등을 도맡으며 70년대 초를 장식했다. 그러나 기혼이었던 이들 멤버 셋은 번갈아가며 배가 불렀던 탓에 임신복을 개조한 펑퍼짐한 의상으로 종종 무대에 나서기도 해 ‘날씬한 아가씨끼리’라는 이미지를 무색케 했다. 그렇게 출산 하루 전까지 스케줄이 잡혔을 정도로 이들은 10년을 하루같이 바쁘게 무대에 올랐다. 71년, 마지막 신곡 ‘병아리 데이트’를 취입할 당시 각자 1남1녀를 둔 이들은 73년 ‘이시스터즈 10년 결산’ 독집음반을 마지막으로 활동을 중단한다. 이 무렵 멤버 김명자씨의 세 살 난 딸, 유선양이 뇌성마비 판정을 받아 활동 중단을 선언했던 것. 이후 맏언니 김천숙씨는 새로운 멤버 정숙자씨와 듀엣을 이뤄 워커힐 무대 등을 통해 이시스터즈의 명맥을 유지해오다가 자녀 교육을 위해 미국 동부 버지니아로 이주,81년 미국으로 건너간다. 무대보다 가정에 충실하기 위해 무대를 떠났던 멤버 김명자씨는 최근 ‘뇌성마비 딸을 박사로 키워낸 어머니’라는 감동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지난 2004년 김명자씨의 딸, 정유선양이 뇌성마비장애인으로는 국내 최초로 ‘장애인의 언어소통 보조기구에 대한 사용자들의 시각’을 주제로 논문을 발표, 미국 조지메이슨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것. 이 ‘장애극복 감동스토리’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현재 재미교포 남편과 두 아이의 어머니로 미국 조지 메이슨대 대학원 교육학과 연구교수로 일하고 있는 정유선(36) 박사는 얼마 전 독일학회에서 수여하는 에세이상 수상자로 결정되었다. 아울러 오는 8월, 독일 ISAAC(국제 의사소통 보조기기학회) 시상식장에 선다. 그녀가 쓴 에세이 제목은 ‘부모님과 나, 그리고 내 아이들 간의 사랑에 관한 모든 것’. 이들 이시스터즈의 멤버들은 각각 연예인가(家)를 이루고 있다. 인기그룹 ‘히화이브(He 5)’의 드러머로 활동했던 김용호(61)씨가 김천숙-명자 자매의 남동생, 김상미씨의 올케가 가수 현미씨다. 그리고 해외공연 위주로 활동하며 ‘안젤라현’이라고도 불리던 가수 현란(본명 이명자)씨가 바로 이정자씨의 친동생이기도 하다. sachilo@empal.com
  • [수도권플러스] 새달 4~6일 인천해양축제

    각종 해양 레포츠를 체험할 수 있는 제4회 인천해양축제가 오는 8월4∼6일 연안부두와 영종도 왕산해수욕장 주변에서 열린다. 이번 축제는 경축음악회와 7080낭만콘서트, 해변가요제, 청소년댄스경연대회 등의 공연행사를 벌인다.
  •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밤안개’의 텐더 보이스 가수 현미(2)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밤안개’의 텐더 보이스 가수 현미(2)

    작곡가 이봉조씨와의 19년간의 사랑,13년간의 이별. 이들 커플이 남긴 유독 ‘슬픈 노래’는 한 때 현미에게는 견딜 수 없는 시련이었지만 어느덧 아름다운 보석으로 빛난다. TBC,KBS 악단장을 거치며 연주자로, 또 작곡가로 최희준 남일해 차중락 정훈희 조영남 등 흔히 ‘이봉조사단’이라 불리는 톱스타군단을 거느리고 있던 이봉조씨. 그 ‘이봉조사단’에서도 가장 중요한 위치해 있어 한 때 ‘부부싸움’할 시간조차 없이 바쁘게 지냈던 만큼 ‘연예인 마이카족 1호’라는 영광까지 누리며 인기가도를 질주했던 명콤비 ‘이봉조-현미’ 커플. 그러나 작곡가 이봉조씨가 남긴 노래들의 저작권은 현미씨 몫이 아니다. 그녀는 혼인신고를 하지 못한, 이를테면 이들 노래처럼 법적으로는 호적상 ‘애인이란 두글자‘일 뿐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고인의 제사는 장남 이영곤씨의 몫으로 돌아왔으며 아울러 ‘이봉조 추모가요제’ 또한 현미씨가 도맡아야 할 숙명적 과제이기도 하다. # 평양 초등학생 시절 김일성 앞에서 노래부르기도 현미,38년 1월 21일 평양 박구리에서 여덟 남매 중 셋째로 태어난 그녀의 본명은 김명선. 평양 경림초등학교 시절, 걸스카우트 단장이자 어린이 대표로 당시 인민공산당 대표 김일성 장군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헌화했을 정도로 재주가 남달랐던 그는 평양 정의여중 재학시절 1·4후퇴 때 두 여동생을 남겨둔 채 나머지 가족들과 함께 얼어붙은 대동강, 임진강, 한강을 지나 대구에서 피란생활을 시작한다. 징집을 피해 부친과 오빠가 외부활동을 할 수 없게 되자 가족의 호구지책은 어머니를 비롯해 남은 가족들의 몫. 열네 살의 현미와 두 살 아래 남동생 뽀빠이(김명순씨)는 대구 염매시장에서 떡 장사를 해야 했고 ‘아이스께끼통’을 들고 시장 주변을 돌다가 미군부대 주변에서 깡통을 줍거나 산이나 들에 떨어진 낙하산을 주워 다 여자속옷을 만들어 팔기도 했다. 어린 나이였지만 대가족의 생계를 도맡은 어머니를 그나마 도울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뿌듯했던 시절, 임시로 문을 연 연합중학교 2학년 때 당시 김백봉무용연구소에 들어갔다가 ‘꽃초롱 오페라단(단장 김동진)’의 단원이 된다. ‘백치 아다다’,‘과거를 묻지 마세요’ 등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가수 겸 배우 나애심씨(76)의 회고. “내가 현미를 처음 보았을 때가 대구 피란시절, 이북 출신 예술인들로 구성된 ‘꽃초롱’ 단원으로 활동할 때였어요. 그 무렵 김백봉, 후라이보이 곽규석(MC), 구민(성우)씨 등과 함께 ‘을지문덕’을 공연했는데 이때 무용수로 갓 입단한 현미가 너무 어려서 가슴에 양말 등을 구겨 넣어 만든 ‘뻥브라’를 한 채 무대에 올라 춤을 추던 장면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어린 현미는 예서 그치지 않고 이어 ‘희망가극단’의 뒤풀이 막간가수로 들어가 삼개월간의 부산 공연길에 올랐다가 마침내 서울공연까지 따라나선다. 이내 가족들의 손에 끌려 되돌아오지만 몇 달 간 가출에서 맛본 악극단 무대의 매력은 그녀가 대전종합학교를 거쳐 덕성여대 가정과에 입학한 뒤까지도 내내 그녀를 지배했다. 결국 ‘꿈’이자 ‘생계수단’의 방편으로 55년, 대학을 중퇴한 뒤 무대로 나선다. 학업 대신 무대를 택할 수밖에 없었던 어려웠던 시절, 그녀는 이 젊은 날로부터 40여 년 뒤인 2004년, 덕성여대 측으로부터 명예학사 졸업장을 수여받았다. # 현미씨 ‘스타 기질´ 2세까지 이어져 현미씨 집안은 스타 패밀리를 이루고 있다. 두 아들의 아빠인 작곡가 이봉조씨, 그리고 맏언니 김화선씨는 이북에 살 당시 최승희무용단 단원으로 활동했던 춤꾼, 그리고 ‘울릉도 트위스트’의 3인조 트리오 이시스터즈의 막내 김상미씨가 올케로 오빠 김명준씨의 부인이다. 아울러 74년 한국가요제에 입상해 ‘신중현사단’으로 활동하던 가수 김명희씨가 막내 여동생으로 ‘만남(노사연)’의 작곡가인 최대석씨와는 부부 사이. 이들 스타군(群)은 2세로까지 이어져 ‘사랑은 유리 같은 것’의 가수 원준희씨가 며느리, 가수 노사연씨와 MC로 잠시 활동했던 노사봉씨가 맏언니 김화선씨의 딸들.SBS 9기 탤런트 한상진가 조카, 승무 무용가 양대승씨가 조카사위로 이들 집안은 2대에 걸쳐 화려하게 빛난다. 또한 가족이나 다름없는 동료가 ‘이모’ 같은 캐릭터의 한명숙씨와 ‘고모’같은 캐릭터의 이금희씨. 소문난 개구쟁이였던 이들 셋은 서로 눈만 마주쳐도 웃음보가 터져 나와 함께 무대에 설라치면 NG라도 낼까, 각자 서로의 시선을 피해야할 정도로 ‘죽’이 맞았던 단짝들. 최근 이금희씨 건강이 다시 악화되어 재 입원시켜야 했지만 현미씨에겐 이들 셋과 함께 다시 한 번 무대를 꾸며보는 것이 간절한 바람이다. 우선 ‘이금희 돕기 쇼’라도 해야겠다고 벼르고 있는 중이다. 81년, 한국가수 최초로 레이건 미 대통령 취임식에 특별 초청되어 축가를 부르고 미 의회에서 앙코르 송까지 받았을 만큼 국제적으로 가창력을 인정받았던 현미. 그녀는 현재까지도 방송 활동을 포함, 노래교실 등을 통해 여전히 활발하게 활동한다. 밤무대가 아닌 노래교실을 택한 것은 자신의 노래를 사랑해준 이들을 위한 일종의 ‘은혜갚음’이다. “목소리가 허락하는 한 계속 무대에 설 것이고 또한 노래를 부를 수 있을 때까지 음반을 취입, 찬송가 음반을 10장정도 더 남기겠다.”는 포부를 밝히는 그는 내년인 2007년, 세종문화회관에서 50주년 기념공연을 가질 예정이다. sachilo@empal.com
  •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밤안개’의 테너 보이스 가수 현미(1)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밤안개’의 테너 보이스 가수 현미(1)

    여전히 파워풀한 에너지가 가득 넘치는 가수 현미(68)씨. 그녀의 활달함은 본인만의 세 가지 생활철학에서 비롯된다.‘무던하게 살기’,‘되도록 많이 이해하기’,‘남 앞에서 울지 않기’. 그러나 그녀도 끝내 눈물을 보였다. 지난 6월9일 진주에서 열린 ‘이봉조 가요제’ 무대에서다. 천재의 비범함과 예술가의 파격을 두루 갖췄다고 평가받는 작곡가 고(故) 이봉조(1931∼87년)씨를 기리는 이 추모 가요제에서 그녀는 온갖 회한이 한꺼번에 오버랩되었을 터. 이봉조씨와는 가요계의 소문난 명콤비이자 잉꼬부부. 이들 음악커플의 로맨스는 한편의 영화처럼,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낸 노래들처럼 격렬하고 정열적이었다. 1962년 ‘밤안개’를 시작으로 ‘보고 싶은 얼굴’ ‘떠날 때는 말없이’ ‘애인’ ‘아빠 안녕’ ‘비련십년‘ ‘두 사람’ ‘몽땅 내 사랑’ 등을 잇달아 히트시키며 세간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던 이 커플. 이들의 첫 대면은 59년, 명동 재즈카페 ‘은성살롱’에 출연할 무렵에서였다. 그녀는 ‘벨라’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며 아울러 베리, 바니 등으로 불리던 가수 김정애, 현주와 함께 3인조 여성보컬 ‘현시스터즈’를 결성해 활동했다. 이 무렵 현미씨는 한 달에 40회 이상 부킹(출연 예약)을 받으며 다른 가수들이 12만환에서 많게는 18만환의 월급을 받을 때 25만환의 파격적인 개런티를 받을 만큼 인기를 누렸다. 이들 현시스터즈가 미8군 쇼 단체인 ‘스윙스타’에서 ‘뉴 앤 뉴’ 그리고 ‘퍼스트 나이터스’로 전속을 옮겨 활동하던 때 밴드마스터인 색소폰 연주자 이봉조씨를 다시 만나게 된다. 현미가 나이 스물한 살에 덕성여대 무용과 2학년에 재학 중인 여대생 가수라는 프리미엄과 함께 절대적 인기를 누리던 쇼단의 메인가수였다면, 이봉조씨 역시 스물여섯 살로 아직 무명이었지만 한양공대 출신의 패기만만한 뮤지션. 이들은 처음 서로 ‘소 닭 보듯’ 했다. 현미 입장에서는 자신 월급의 반도 채 안 되는 신출내기 밴드 마스터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이봉조씨 역시 콧대 높은 이 도도한 여가수가 도무지 못마땅했다. # 가요계 명콤비 작곡가 이봉조·가수 현미의 불꽃 만남 쇼의 간판이나 다름없던 마스터와 메인가수가 이러다보니 자칫 사이가 틀어지기라도 하면 좋은 공연을 기대할 수 없을 것 같아 단장은 ‘이봉조-현미 사이좋게 만들기 작전’까지 펼쳤다. 그 작전 중 하나가 바로 나이트클럽에 둘을 데리고 가 분위기 띄우기. “당시엔 남녀가 춤을 출 때 손바닥 사이에 손수건을 끼우는 게 신사숙녀가 갖추어야 할 예의로 여겼던 시절이었죠. 남녀가 유별한데 어떻게 맨 손을 잡고 춤을 출 수 있느냐는 의미로 당연히 남자 쪽에서 손수건을 준비하는 게 상례였죠. 그러나 이러한 관례를 비웃기라도 하듯 이봉조씨는 그냥 손을 덥석 잡고 마구잡이로 춤을 추더군요. 뿐만 아니라 얼마나 춤이 서툴던지 매번 발을 밟기 일쑤였습니다. 하지만 솔직하고 어딘가 순수한 매력이 있는 사람이었죠.” 현미씨의 회고다. 이렇게 시작된 둘 사이는 급격히 가까워지면서 오히려 쇼단의 운영이 위협받을 정도로 늘 붙어다녔다. 결국 단장은 둘 사이를 갈라놓기 위해 밴드 마스터 교체 조짐을 내비치자 아예 둘은 함께 미련 없이 쇼단을 나온다. 이 무렵 작곡가 손석우씨가 현미를 찾아온다. 영화 ‘동경에서 온 사나이’의 주제가 ‘당신의 행복을 빌겠어요’의 취입을 제의해온 것으로, 무대가수 현미에게도 음반을 취입할 기회가 주어진 것. 그런데 놀랍게도 현미 데뷔음반은 독집음반으로 기획되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신인가수가 첫 데뷔음반을 독집으로 발표한다는 것은 이전까지는 전무한 일로 결국 이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기록인 셈. # 1960년대 ‘개성시대´ 질주한 히트곡 제조 커플 더구나 이 음반에는 당시 최고 작곡가인 손석우씨의 곡 ‘당신의 행복을 빌겠어요’를 비롯한 다섯 곡과 이후 한국의 대표적인 작곡가로 자리매김하는 길옥윤·이봉조씨의 곡이 함께 수록된, 이들 작곡가의 작곡 데뷔음반이기도 하다. 일본에서 활동 중 잠시 귀국한 길옥윤씨가 이들 커플에게 헌정한 곡 ‘내 사랑아’와 함께 특히 이봉조씨가 편곡한 번안곡 ‘밤안개(It‘s A Lonesome Old Town)’는 취입 당시 현미의 성량이 너무 커 마이크에서 두 세 걸음 떨어져 취입했을 만큼 대형가수로서의 가창력과 저력을 유감없이 표출하고 있다. 이들의 데뷔곡이자 대표곡이 된 ‘밤안개’의 빅히트를 시작으로 이봉조-현미 커플은 밤무대와 방송활동을 함께 하며 많은 히트곡을 잇달아 발표한다. 아울러 현미씨는 한명숙, 이금희씨와 함께 ‘3대 여성 허스키보이스’ 시대를 열며 60년대 ‘개성시대’를 거침없이 질주했다. 현미는 풍부한 무대 경험만큼이나 감정처리와 테크닉이 매우 뛰어났는데, 이봉조씨는 되레 그것을 경계했다. 때문에 취입할 신곡의 악보를 대부분 녹음 당일에서야 건넸다. 그는 테크닉보다 ‘악보 그대로’ 부르기를 유독 강조했던 것. 현미씨 또한 노래 욕심이 만만치 않았다. 때문에 신데렐라 정훈희양을 일약 국제가수로 급부상시킨 ‘안개’는 줄곧 ‘강짜’의 대상이었다. 왜 이렇게 멋진 곡을 다른 여가수에게 주었냐는 것. “내가 투정을 부리자 봉조씨는 갑자기 결심한 듯, 노래로 우주여행을 시켜주겠다는 약속과 함께 새로운 곡에 몰두하기 시작했어요. 그 무렵 라디오 드라마 ‘빨간 양말의 시인’의 주제가를 당시에는 정훈희양이 불렀는데 음반으로 나올 때는 제목을 ‘바람’으로 바꿔 내게 주었지요. 아울러 그 이후부터 아예 작정하고 곡을 만드는데 제목들이 가관이었죠.‘구름’ ‘하늘’ ‘태양의 유혹’ ‘별’ 등등…. 말하자면 노래로 우주여행을 시켜주겠다던 약속을 하나 둘 지켜가기 시작했던 셈이지요.” 그 중 ‘별’은 71년 제4회 그리스국제가요제 ‘송 오브 올림피아드’에 입상하기도 했다. 이어 이들이 구상하고 있던 곡은 ‘천둥’. 그러나 이들 부부는 19년간의 로맨스를 끝내고 별거에 들어간다.(계속) sachilo@empal.com
  •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한국유일의 남성 재즈 보컬리스트 김준(2)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한국유일의 남성 재즈 보컬리스트 김준(2)

    악보 보는 것을 시작으로 탄탄한 기본기를 갖추어야만 활동이 가능했던 당시 ‘예그린악단’. 이 악단의 합창단원 출신답게 춤과 연기 실력으로 완전무장한 자니브라더스의 등장으로 당시 평면적이었던 TV 쇼가 놀랍도록 화려하고 입체적으로 변신했다. 쇼 프로그램에서의 절대적인 인기 못지않게 이들은 ‘방앗간 집 둘째딸’ ‘아나 농부야’ ‘마포 사는 황부자’ 등에 이어 ‘빨간 마후라’ ‘수평선’까지 공전의 히트를 날리며 정상의 인기그룹으로 급부상했다. 당시 멤버는 김산현(김준)을 비롯해 김현진, 양영일, 진성만. 이들의 힘차고 경쾌한 하모니는 듣는 이들에게 ‘알파파’(※마음이 평온해질 때 나오는 뇌파)가 샘솟게 만드는 노래, 그 자체였다. 그러나 인기가 높아갈수록 멤버 김준씨는 되레 심각한 고민에 빠져든다. 음악적인 불만족에서 오는 갈증이었다.4중창단은 4성, 즉 네 화음이 모여 노래가 구성되어야 하는데 당시에는 ‘유니 송’으로 불러달라는 주문까지 받아야 했던 만큼 중창단이라는 의미가 무색하던 시절이었다. 중창단의 인기에 비례해 본인만의 개성은 죽여야 하는, 이른바 개개인의 능력을 제대로 드러내 보일 여지가 상대적으로 적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점차 이들은 각자 솔리스트로서의 기량을 쌓아나가며 해체 수순을 밟기 시작한다. “한사람, 한사람만으로도 무대가 꽉 차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때문에 자니브라더스는 TV와 워커힐 무대 등에서 화려한 스테이지와 함께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면서도 쇼 중간 중간 쉬는 시간을 이용해 각자 솔리스트로서의 기량을 키우기 위해 경쟁적으로 각자 연습무대에 나섰던 장면들이 생각납니다.” 당시 워커힐악단에서 기타리스트로 활동하며 ‘저녁한때 목장풍경’ ‘비둘기집’ 등의 작곡가로 명성을 날리던 실력자 김기웅(70)씨의 회고다. 그는 당시 이들의 레퍼토리 편곡을 기꺼이 도맡아 주기도 했다. 결국 68년 8월, 그룹보다 각자 솔로로 활동하는 게 더 바람직하다는 결론을 내린 이들은 마침내 TBC-TV ‘쇼쇼쇼’를 통해 ‘자니브라더스 고별쇼’를 갖는다. 솔리스트로의 변신을 위해 피아노 독주부터 빅밴드 곡에 이르기까지 100여 곡을 준비해오며 ‘스타일리스트(Stylist)‘를 꿈꾸던 김준씨가 멤버 중 가장 먼저 독립, 솔로활동을 시작한다.69년 11월, 평소 즐겨 부르던 레퍼토리들을 모아 독집음반 ’김준과 톱송(Top Song)’을 발표한 것. 스탠더드 팝과 재즈의 번안곡이 주를 이룬 이 음반의 수록 곡들은 지금까지도 김준씨의 변함없는 애창곡들이다. 그러나 자니브라더스는 주위의 권유에 의해 또다시 재결성하게 된다. 이들의 재결합을 가장 적극적으로 권유했던 사람이 바로 당시 서울신문사 발행인이던 장태화 사장. 음악애호가이기도 했던 장 사장은 이들의 재능을 아까워하던 끝에 직접 그룹명을 ‘메아리진’(전국에 메아리 친다는 뜻의 순수 우리말)으로 개명해준 뒤 1969년 12월,MBC-TV를 통해 화려한 컴백쇼를 주선했다. 결국 이들 네명은 주위의 강력한 권유에 의해 다시 ‘메아리진 쇼(전우중 PD)’를 시작으로 컴백, 매주 한 차례씩 음악성과 예술성 있는 인상적인 프로그램을 한동안 펼쳐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인기’도 그들 개개인의 ‘끼’와 ‘욕구’를 막기엔 역부족, 결국 이들은 완전히 해체하고 만다. 싱어 송 라이터로 변신한 김준씨는 솔로가수로 그리고 작곡가로도 재능을 한껏 발휘해왔다.‘사랑하니까’(패티김)를 비롯해 84년 TBC 세계가요제 금상 수상곡 ‘나 이제 여기에’(박경희),‘내 마음은 풍선’(장미화),‘그래도 설마하고’(임희숙),‘Blue Smile’(이미배), 그리고 김준 자신의 목소리로 발표한 ‘휘파람 하이킹’ ‘여보소 날보소’ ‘태양의 데이트’(김준 작사, 김학송 작곡) 등. 그는 70년도부터 지금까지 36년간 단 한 차례도 음반을 발표하지 않은 해가 없을 정도로 ‘음악의 생활화’, 그 일관된 삶을 지켜왔다. 김준씨는 1980년에 International JUN Free Art를 설립한데 이어 K.J.C(한국재즈모임)의 창립회장을 맡기도 하는 등 재즈 활동을 위해서라면 모든 힘과 신명을 바쳐왔다. 아울러 주위 동료들의 신명을 돕고 참여하고 앞장서왔던 그는 현재, 평창동에서 부인 김미자 여사와 함께 ‘김준재즈클럽’을 운영하고 있다. 이 곳에 마련된 작은 라이브 무대에는 한국의 대표적 재즈 뮤지션들이 모두 한 번씩은 섰을 정도로 값진 공간이기도 하다. 수많은 공연과 음반작업을 통해 재즈를 생활화하고 있는 김준씨는 올 11월, 자신의 삶을 그린 자서전 ‘타박타박 주절주절 두비두바’를 출간할 계획이다. 그의 이러한 작업이 반가운 것은 재즈처럼 자유스럽고 심오하게 살아온 그의 삶의 윤곽이 이 책을 통해 선명히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sachilo@empal.com
  • 김창완 산울림 데뷔 ‘아니 벌써’ 30년… 연기경력도 20년

    김창완 산울림 데뷔 ‘아니 벌써’ 30년… 연기경력도 20년

    “음악을 아는 데는 10년, 연기를 알기까지는 20년이 꼬박 걸렸죠.”의외였다. 국내 최장수 록밴드인 ‘산울림’의 보컬이자 드라마·영화·CF를 누비며 감초 연기를 선보이고 있는 김창완(52)씨의 고백(?)이다. 관록의 그에게도 음악과 연기는 수십년간 끊임없는 화두이자 도전이었다.1977년 ‘아니 벌써’라는 파격적인 곡으로 데뷔, 올해로 음악활동 30년째인 그는 요즘 MBC 주말드라마 ‘진짜진짜 좋아해’에서 청와대 요리사를 맡아 맛깔스러운 연기를 보이고 있다. 서울 목동 SBS 옆 공원에서 그를 만나 ‘요리사’로서의 생활과, 산울림 30주년 기념공연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청와대 속이 궁금했다” 드라마에서 그는 대통령의 요리사로, 주인공을 가르치는 스승 역할이다. 그동안 보여준 ‘옆집 아저씨’ 같은 푸근함과 서민적인 면모가 오롯이 담겨 있다.“개인적으로 역할이 너무 좋아요. 평소 비빔국수나 볶음밥, 미역국 등을 잘 만들죠.” 청와대 주방장 역할이 들어왔을 때 그는 “정치중심지인 청와대를, 내부에 일하는 주변인물을 통해 어떻게 묘사할지 흥미가 생겨서” 주저없이 받아들였다고. 청와대도 사람 사는 곳인데 그 안에 부는 훈훈한 인정에 대한 궁금증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음식이라는 게, 먹고 초대하고 그러다 보면 식사 이상의 커뮤니케이션, 소통의 채널이 돼요. 청와대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를 전달한다는 차원에서 역할의 비중을 떠나 자부심을 느낍니다.” ●영화서 조만간 악역 맡지 않을까 그러고 보니 그동안 드라마·영화 등에서 감초 조연만 맡았던 것 같다.‘만년 조연’이라는 말에 뜻밖에 손사래를 쳤다.“1985년부터 10년간 드라마 음악을 맡다보니 같이 일했던 감독들이 자연스럽게 출연 제의를 했어요.‘바다의 노래’ 2부작 등 그 당시에는 주인공도 몇차례 했어요. 홀아비나 노총각역 등 주연도 많았는데 다들 조연만 한 줄 안다니까요(웃음).” 그러나 연기에 대한 자기 확신이 생길 때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당시 10년간 계속 출연하면서 ‘이게 맞나?’하고 생각했어요. 다행히 감독들이 나도 모르는 나를 발견해줬고, 동료 연기자들로부터 많이 배웠어요.” 2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보는 눈이 생겨 연기를 조금 알 것 같다고 털어놨다. 그동안 편안하고 서민적인 아버지나 아저씨 역할을 주로 맡았다고 했더니 “변함이 없다는 것 자체로 안심이 될 수는 있지만 원래 성격이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했다. 평상심을 유지하기보다는 기분이 들쭉날쭉하고 예민한 편이라고.“예민하지 않으면 세상을 어떻게 보겠느냐.”며 되레 묻는다. 비밀도 털어놨다. 충무로에서 몇년째 계속 악역 캐스팅 순위에 올라간다는 것. 도시적인 악역 연기도 해보고 싶다는 게 그의 원대한(?) 바람이다. ●산울림, 새달 5일 30돌 기념공연 최근 불고 있는 ‘7080’ 복고바람이나 중년들의 활약에 대해서도 생각이 많았다.“다른 예술장르에 비해 배우나 가수는 소모적으로 이용된다는 느낌입니다. 복고바람도 언제 썰물처럼 빠져나갈지 몰라요. 한 시대의 경향으로 치부할 게 아니라 꾸준히 이어졌으면 합니다.” 산울림은 그런 의미에서 복고가 아닌,‘살아 있는 밴드’로 평가받는다.1997년 13집을 낸 뒤 매년 1∼2회 기획공연으로 팬들과 함께 숨쉬고 노래해왔다. 산울림 멤버인 동생 창훈·창익씨가 각각 미국·캐나다에 살고 있어 자주 모이지 못하지만 ‘개구장이’‘산울림 매니아’ 등 오래된 열성 팬클럽들이 산울림 생명력의 원동력이다. 팬클럽뿐 아니라 산울림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희소식이 있다. 바로 다음달 5∼6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는 ‘산울림 30주년 기념공연’이다. 이달 말 귀국하는 동생들과 함께 첫 앨범과 첫 콘서트의 감동을 팬들이 다시 느끼고 기억하도록 하고 싶단다. 그러나 단지 과거를 회상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경험을 통해 미래를 계획하는 공연으로 만들겠다는 게 그의 포부다. 그러나 30주년 기념앨범이나 새 앨범은 당분간 만날 수 없을 것 같다.“그동안 곡을 쓰면 당연히 음반이 나오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책을 써보니 다 그런 것은 아니더라고요. 음반도 언제 발표할지, 가치가 있는지, 경제적인 이유 또는 홀대받는 중견가수에 대한 반감 등 주저하는 이유가 뭔지 혼란스러워요. 앨범을 낼 수 있는 주위 환경이 중요하죠.” ●“주변 행복하게 하는 게 천직” 2시간쯤 진행된 인터뷰에서 그는 공원에 내리쬐는 햇볕을 즐기는 듯했다. 뜻밖에 “사춘기 때보다 더 마음의 격랑이 일고 있다.”고 털어놨다. 주변의 소중한 것들이 사라지면서 이제는 신록이 더 아름답고, 예전에 퍼부었던 독이 다 차서 이제는 다른 빈 그릇을 찾아 채우려 한다고 말했다. 그가 더 철학적이 된 건, 최근 신부님이 건네준 책 2권을 읽은 덕분이라고 했다. 매일 빽빽한 스케줄에 쫓기는데도 여유로움을 잃지 않는 그의 모습이 부러웠다. 어렸을 때부터 주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다는 그. 그 방법이 연기든, 노래든, 만나서 술을 한잔 하든 그 모든 것이 천직이라고 생각하며 살고 싶다며 환하게 웃었다. 글 사진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월드컵 축제속으로…

    월드컵 축제속으로…

    ‘대∼한민국, 짝짝짝 짝짝∼.’ 잠 못이루는 6월의 축제가 시작됐다.12번째 태극전사인 ‘붉은 악마’의 대규모 길거리 응원이 4년 만에 다시 펼쳐진다.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890만명이 서울광장과 광화문에 모여 응원을 했던 그 장관과 감동, 각본없는 드라마가 오는 13일 토고전을 시작으로 재현된다. 그러나 이번 길거리·야외 응원에는 승리를 향해 뛰는 태극전사들 못지않게 붉은 악마들도 ‘전략’이 필요하다.4년전과 달리 평일 심야시간대에 예선 3경기가 열려 응원이 끝난 뒤 새벽에 귀가를 하거나 곧바로 출근·등교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13일(화) 오후 10시에 열리는 토고전은 새벽 귀가길을 챙겨야 하고,19일(월) 새벽 4시에 열리는 프랑스전은 곧바로 출근·등교를 고려해야 한다.24일(토) 새벽 4시에 열리는 예선 마지막 경기인 스위스전은 그동안 응원으로 쌓인 피로를 푸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신명과 정열이 넘치는 거리로 나서 보자. 그리고 태극전사들에게 힘을 불어 넣어 주자.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의 길거리 응원 명소를 소개한다.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거리 응원의 메카’ 서울광장 일대에는 이번에도 10만명에 이르는 많은 응원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된다. 비록 심야 시간대에 경기가 열리지만 2002년과 비교해 서울광장이 잔디광장으로 새롭게 탈바꿈했고, 청계천이 복원되면서 길거리 응원 환경이 개선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길거리 응원은 심야 시간대에 열리는 만큼 귀갓길과 출근·등굣길 등을 염두에 둬야 보는 즐거움을 배가시킬 수 있다. 각 경기를 알차고 재밌게 즐길 수 있는 응원 ‘전략’에 대해 알아봤다. # 토고전(13일 밤 10시),귀가 길을 챙겨라 ●첫 ‘승전보’는 여기에서 한국팀 첫 경기인 데다 예선 3경기 중 유일하게 새벽이 아닌 밤 시간대에 열려 가장 많은 인파가 모일 것으로 예상된다. 길거리 응원은 경기 시작 5시간전인 오후 5시부터 시작된다. 오후 5∼9시는 ‘서울, 어게인 콘서트 2002’와 애국가 공연, 개그 프로그램 등 월드컵 특별생방송 등이 진행된다. 오후 9시부터 ‘우리는 대∼한민국’과 함께 태극전사 응원이 시작되며, 경기가 끝난 자정부터 새벽 1시까지 승리기원 뒤풀이가 열린다. 메인 무대인 서울광장에 자리를 잡으려면 늦어도 오후 3∼4시 이전에 나와야 한다. 평가전이 열리는 날에도 경기 시작 3∼4시간전에 이미 서울광장 앞자리는 모두 꽉찼던 만큼 조금 늦으면 메인 무대에 자리를 잡기가 쉽지 않다. 대형 양면 전광판이 설치된 시청 뒤편의 서울신문사(한국프레스센터) 앞 광장도 새로운 응원 명소다. 가족끼리 오붓하게 거리응원을 하려면 서울광장을 고집하지 않아도 된다. 어린 아이가 있는 가족들은 자주 자리를 뜨기 쉽고, 화장실 이용이 편리한 서울신문 앞 전광판이 좋다. 흡연자들도 응원석을 쉽게 벗어날 수 있어 다른 눈치를 살피지 않아도 된다. 청계천을 바라보며 시원스레 응원을 즐기려면 청계광장이 좋고, 문화 공연을 즐기려면 세종문화회관 앞도 좋다.13일 오후 5∼7시,9∼10시 세종문화회관 중앙계단 앞 특설무대에서는 B-boy와 힙합 댄스그룹 등의 특별공연이 펼쳐진다. ●버스·지하철 심야 연장운행 경기가 자정에 끝나는 만큼 지하철과 버스 등 연계 교통편과 귀갓길을 챙기는 것이 중요하다. 토고전 당일 서울시는 지하철·버스 연장운행을 할 계획이다. 지하철 전 노선이 새벽 2시까지 연장운행(종점기준)하며, 시청앞과 청계광장 앞을 지나는 17개 버스 노선도 새벽 2시까지 연장 운행된다. 화장실은 지하철 1호선 시청역과 1·2호선 시청·을지로역 개찰구 밖에 있는 화장실과 시청 후정 화장실, 인근 호텔·빌딩 화장실 등을 이용하면 된다. # 프랑스전(19일 새벽 4시),출근을 고려해야 ●밤샘 응원… 근무에 지장없게 프랑스전은 평일 새벽 4시에 열려 직장인과 학생들에게는 가장 고통스러운 응원이 될 것으로 보인다. 경기가 새벽 6시에 끝나기 때문에 응원 후 곧바로 출근을 해야 한다. 때문에 날밤을 세워야 하는 만큼 일상 업무에 지장을 받지 않도록 출근·등교를 고려하는 것이 중요하다. 프랑스전은 새벽시간인 점을 감안해 경기시작 8시간전인 전날 오후 10시부터 행사가 시작된다. 밤 10시부터 다음 날 새벽 1시까지 ‘밤새우며 응원하다-레드 아이 콘서트’를 하며, 새벽 1시부터 축구경기 관람이 시작된다. 경기가 끝난 뒤 새벽 6∼7시에는 승리기원 뒤풀이가 진행된다. 토고전에 비해 응원 인파가 많지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좋은 자리를 선점하려면 역시 서둘러야 한다. 19일 오후 11시부터 새벽 3시까지 세종문화회관 앞 계단에서는 온라인 게임 등 e-게임 스포츠 대회가 열린다. ●찜질방·사우나에서 잠시 휴식 직장이 광화문 근처라면 경기가 끝나자 마자 사우나나 찜질방으로 향해 출근시간까지 1∼2시간 정도 잠시 휴식을 취한 뒤 출근하면 피로를 줄일 수 있다. 가급적 회사 근처로 가서 사우나를 하는 것이 좋다. 광화문 근처에는 뉴서울호텔과 뉴국제호텔, 코리아나호텔 등 남성 전용 사우나 시설이 있다. 또 한국관광공사 뒤편 다동사우나와 종합청사 후문 현대목욕탕, 종로통의 종로온천사우나, 경향신문 앞 정동사우나 등이 있다. 아침 식사는 시청 뒤편 24시간 편의점이나 북어국집이 좋다. 무교동 북어국집(777-3891)은 북어국만 37년 팔아온 집으로 24시간 영업을 하는데다 주문 즉시 북어국이 나와 짧은 시간내에 아침식사를 해결 할 수 있다. 가격은 5000원. 지하철 첫차(평일)는 1호선 시청역의 경우 성북행 오전 5시 19분, 인천행 5시 25분, 병점행 5시 45분이다.2호선 시청역은 을지로입구 방향이 오전 5시 39분, 신촌 방향이 오전 5시 32분이다.5호선 광화문역은 방화행 오전 5시 42분, 마천행이 오전 5시 45분이다. # 스위스전(24일 새벽 4시),부담없이 즐겨라 ●맥주를 마시면서 응원을 스위스전은 한국의 16강 진출을 가름하는 중요한 경기가 열리는 날이지만 두차례의 심야경기로 피로가 누적되는 만큼 예선경기의 쌓인 피로를 말끔하게 씻는 것이 중요하다. 스위스전은 주말에 시작되는 만큼 출근부담이 적어 맥주를 마시며 응원을 해도 부담이 없다. 청계광장 인근 효령빌딩 1층 JS텍사스(774-0804)와 무교동 코오롱빌딩 2층 아사히 오리엔비어 렉스(776-8986), 서울파인낸스 빌딩 지하 2층 벅 멀리건스(3783-0004) 등은 맥주를 마시면서 응원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웨스틴조선 ‘오킴스’는 6월 매주 금요일 오후 9시와 토고와 격돌하는 13일 오후에 ‘꼭짓점 응원 댄스 왕 페스티벌’을 연다. ●호텔서 럭셔리하게 관람 서울광장 인근에 있는 프라자 호텔과 조선호텔, 롯데호텔 등은 심야 응원전의 열기를 느낄 수 있는 패키지 상품을 준비했다. 서울광장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프라자 호텔(771-2200)은 455실 중 서울광장이 내려다보이는 280실을 월드컵 객실로 운영한다. 가격은 39만∼45만원으로 기념품과 조식, 무료 사우나 등을 제공한다. 웨스틴조선 호텔(317-7091)은 30일까지 ‘어게인 2002’ 패키지를, 롯데호텔(759-7311)은 11일부터 7월 11일까지 ‘어게인 2002 사커 패키지’를 운영한다. 한국팀 경기가 오전 4시인 경우엔 체크아웃이 오후 3시로 연장된다. 경기가 끝나는 6시부터는 지하철과 버스가 전노선 운행된다.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현장처럼 생생… 눈·귀·입이 즐겁다 서울 마포구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은 2002년 한·일 월드컵의 영광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다. 올해는 그날의 함성을 재현하는 길거리 응원이 다채롭게 펼쳐진다. 최대 장점은 먹을거리와 잠자리, 응원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다는 것. ●월드컵경기장에서 대∼한민국 독일에서 한국팀 본선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MBC가 주최하는 응원전이 펼쳐진다.13일 토고전은 오후 6시30분부터,19일 프랑스전은 밤 12시부터,24일 스위스전은 새벽 1시50분부터 시작된다. 당일에 무료 입장권을 배포하는 터라 서둘러야 좋은 좌석을 잡을 수 있다. 좌석은 6만 6000석. 13일 토고전 응원특집 방송 ‘가자, 대한민국’에선 개그맨 김제동, 아나운서 최윤영이 사회를 맡고 가수 세븐, 싸이, 윤도현 밴드 등이 출연한다.MBC는 독특한 응원전을 펼치는 단체를 모집, 지정 좌석을 제공할 계획이다. 월드컵경기장은 가족단위 응원단에 더없이 좋은 곳이다. 실내라 안전하고, 힘들면 의자에 앉아 쉴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경기장 스크린이라 생동감이 철철 넘친다. ●CGV 영화관에서 월드컵경기장내 상암 CGV는 SBS와 손잡고 10개 스크린에서 예선전 경기를 생중계한다. 전국 33개 CGV 영화관이 함께 진행하는 행사다. 편안한 의자에 앉아 HD영상으로 선수들의 땀방울까지 선명하게 볼 수 있다. 입체 음향 시스템이라 즐거움이 배가된다. CGV 홈페이지(www.cgv.co.kr)에서 ‘우리는 독일 대신 CGV로 간다’ 이벤트에 응모하면 추첨을 통해 4인 관람 쿠폰을 준다. 휴대전화로 티켓을 다운받아 입장하면 된다. 또 한국전 경기가 있는 날 밤 12시 이후에 상영되는 모든 영화 관람료를 4000원으로 할인한다. ●까르푸에서도 월드컵경기장 1·2층에 위치한 대형 할인매장 까르푸는 한국전이 있는 날 연장영업에 돌입한다.13일은 새벽 1시,19일과 24일은 새벽 2시까지 문을 연다. 열정적인 응원을 위해 배를 든든하게 채워보자. 2층 푸드코트에서는 떡볶이, 라면 같은 분식부터 초밥과 돈가스, 비빔밥까지 다양한 음식을 선보이고 있다. 가격이 저렴하고 양이 많은 게 장점이다. 연인이나 가족을 위한 패밀리세트는 9900원. 간단한 주전부리는 까르푸 1층 카운터 앞에 있는 군것질 코너에서 구입하자. 과일주스, 꼬치구이, 핫도그, 닭강정 등 맛깔스러운 먹을거리가 푸짐하다. 포장도 가능하다. CGV 2층에는 면 전문점 ‘시젠’, 패스트푸드점 ‘롯데리아’, 피자전문점 ‘피자헛’, 커피전문점 ‘스타벅스’ 아이스크림 전문점 ‘나뚜르’ 등이 있다.1층에는 카페 ‘뜨레쥬르’가 새벽까지 영업한다. ●교통편과 잠자리 찌뿌드드한 몸을 풀려면 월드컵경기장내 스포랜드(www.sponspa.co.kr)를 찾아가자. 주중에는 2만원에 헬스와 자유수영, 사우나, 불가마를, 주말에는 8000원에 수영과 사우나를 한꺼번에 이용할 수 있다. 다만 사우나 시설을 정비하는 터라 15일까지 보석불가마를 열지 않는다. 교통편이 편리하다. 월드컵경기장 서쪽에선 버스 7714,7715번이, 남쪽에선 171,271,571,7011,7012,7012,7013번, 마포 08가번, 남쪽에선 6715번이 선다. 서울시는 새벽 2시까지 버스·지하철을 연장 운행할 계획이다. 지하철은 6호선 월드컵경기장역,1·2·3번 출구를 이용하면 된다. 첫차(평일)는 응암행 오전 5시40분, 봉화산행 5시57분.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구청마다 공원마다 응원 경쟁 화끈 4년 만에 반갑게 또 찾아온 세계인의 축제 월드컵. 실내에 있는 작은 TV로 기분을 낼 수 없다면 가족, 이웃과 함께 동네 근처에서 신나는 응원전을 펼쳐 보자. 서울광장이 아니어도 야외 응원 명소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13일.16강을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할 토고와 첫 경기를 치르는 날 ‘뚝섬 서울숲 가족마당’에서도 뜨거운 응원전이 펼쳐진다. 오후 10시 경기 시작 두 시간 앞서 8시부터 인기 가수가 대거 참여하는 음악공연을 통해 분위기를 힘껏 끌어 올린다. 이날 SG워너비와 토니안, 박혜경이 출연한다. 행사장인 응봉교 근처에 세계에서 가장 긴 170m짜리 응원 현수막이 내걸렸다. 성동구청은 이날 1만명 이상의 시민이 모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오는 길은 2호선 뚝섬역 8번 출구 혹은 1호선 응봉역 2번 출구에서 나와 10분 정도 걸으면 된다. 경기를 마치고 새벽 2시까지 지하철 운행이 잡혀 있어 귀갓길도 어렵지 않다. 현재 19일과 24일 새벽 4시에 각각 열리는 프랑스와 스위스 전의 응원전은 잡혀 있지 않지만 우리나라가 16강에 진출해 전국에 응원전 열풍이 불면 불가피하게 응원전을 또 열 수밖에 없지 않으냐고 구청 관계자는 밝혔다. 이날 같은 시간 구로구청 앞 광장공원에서도 대규모 응원전이 시작된다. 마찬가지로 경기 전 두 시간 동안 음악이 응원 열기를 북돋운다.SG워너비와 인순이가 나오고 클래식을 전자 현악기로 연주하는 일렉쿠키 연주단과 비보이 댄스단의 공연도 잡혀 있다. 구로구청은 3000∼4000명이 모일 것으로 예상, 그 규모에 맞춰 200인치 대형 스크린도 준비했다. 광장공원으로 오는 길은 1호선 신도림역 2번 출구로 나와 5626,5629,6411번 버스를 타거나 구로역에서 15분쯤 걸으면 된다. 또 2호선 대림역 4번 출구로 나와 마을버스(구로10번, 구로11번)를 타거나 도보로 15분거리다. 또한 7호선 남구로역에서는 20분 거리다. 구로역 인근에는 먹을거리가 많아 경기 뒤 뒤풀이에도 안성맞춤이다. 만일 뒤풀이로 집에 돌아가기가 어렵다면 신도림역 근처에 모텔 등 숙박업소도 즐비하다. 동대문구시설관리공단도 같은 날 오후 10시 동대문구 체육관에서 월드컵 축구 단체관람 및 응원전을 실시한다. 주민의 안전을 위해 초대권 소지자에 한해 오후 7시부터 입장할 수 있다. 현재 400인치 초대형 스크린을 설치하고 무료로 초대권을 나눠주고 있다. 오는 길은 1호선 제기역 3번 출구에서 버스(2112,720,262번)를 타 한신아파트 입구에서 내리거나 5호선 장한평역 3번 출구에서 2112번을 타고 촬영소 고개에서 하차한다. 중랑구는 6월부터 용마산 폭포공원에서 토요문화 한마당을 여는데 첫 무대는 토고전이 열리는 화요일인 13일을 잡았다. 당초 예정대로라면 토요일인 10일이지만 월드컵 응원전을 위해 일정을 바꿨다. 오후 7시부터 비보이 공연과 3D레이저쇼, 인디밴드 공연이 펼쳐진다. 경기 시작 직전 현대 유니콘스 응원단의 치어쇼와 불꽃놀이로 열띤 분위기를 조성한다. 대형 스크린을 보며 한마음으로 응원전을 펼칠 수 있다. 오는 길은 7호선 용마산역 1번 출구로 나와 걸어서 5분 거리다. 뒤풀이는 동대문이나 강남으로 가는 버스가 많아 유동인구가 많은 사거정 역으로 가면 호프집과 음식점이 많다. 강서구 우장산 근린공원 축구장에서도 13일 10시부터 함께 대형 스크린을 통해 토고전을 볼 수 있다. 이곳에선 경기전 행사는 따로 잡혀 있지 않다. 강서구청 앞에 우장산 방향의 푯말을 보고 10분 정도 걸어가면 된다. 저녁 시간에 축구장과 새로 설치된 트랙에서 운동을 즐기는 주민이 많고 주변에 다수의 아파트가 있어 많은 관람객이 모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박지윤기자 jypark@seoul.co.kr ■ 경기장… 주차장… 휴양림 응원장소가 따로없어요 독일 월드컵 승리를 기원하는 길거리 응원전이 경기지역 곳곳에서 펼쳐진다. 경기도를 비롯한 각 자치단체와 대학등에서는 축구경기장과 공원, 주차장 등을 응원 장소로 선정해 놓고 주민들과 함께 응원전을 펼칠 계획이다. 도 산하기관인 수원월드컵관리재단은 13일 오후 10시에 열리는 토고전과 프랑스전(19일 오전 4시), 스위스전(24일 오전 4시) 3경기 모두 응원전을 마련했다. 축구경기는 수원월드컵경기장 전광판을 통해 생중계되며 각 경기별로 1만여명이 참여하게 된다. 재단측은 축구경기에 앞서 꼭짓점댄스, 슛돌이, 록밴드 공연, 포토존, 스코어 맞히기 등 다양한 이벤트를 준비해 응원 열기를 북돋울 계획이다. 이곳에서 1㎞쯤 떨어진 아주대학교에서도 응원전이 펼쳐진다. 아주대학교 총학생회는 첫 경기 토고전이 열리는 13일 학교 대운동장에서 학생과 지역주민 등 최대 1만명이 모인 가운데 야외응원을 펼친다. 이날 대운동장에는 경기장면을 중계할 300인치 대형화면이 설치되고, 오후 10시에 열릴 경기에 앞서 오후 6시부터는 힙합동아리, 응원단 등 아주대 학생들이 준비한 사전공연을 선보인다. 수원시는 한국대표팀 3경기 모두 응원전을 펼친다. 장소는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영통중앙공원과, 만석공원 등 2곳을 선정했으며 300인치와 200인치 짜리 빔프로젝트와 LCD전광판, 영상차량 등을 준비해 경기장면을 중계한다. 경기에 앞서 다양한 이벤트를 마련했는데 토고전이 열리는 첫날에는 오후 6시30분부터 만석공원에서 응원단 시범공연과 시민들이 참여하는 꼭짓점댄스를 준비했다. 이어 지역밴드와 붉은악마 콘테스트, 통기타가수공연,7080밴드 공연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선보여 참가자들의 열기를 고조시킨다. 새벽 경기가 열리는 19일과 24일에는 각 공원별로 오전 2시30분부터 온 가족인 함께 즐길 수 있는 영화를 70분간 상영해 무료한 시간을 달래준다. 이들 공원외에 성균관대와 인계동 나혜석거리, 수원 역전로 등에서도 자체 길거리 응원전이 펼쳐진다. 화성시는 13일 병점2동 구봉산체육공원에서 인근 아파트 주민 등 5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신명나는 응원전을 벌일 계획이다. 오후 7시부터 풍물패들의 길놀이와 수원대 응원단 적토마의 신나는 공연이 펼쳐진다. 이어 시민들과 함께 하는 꼭짓점댄스 따라하기를 비롯해 음악동아리공연, 육군 제51사단 군악대 공연, 가족꼭짓점댄스 경연대회, 이색분장맨 찾기 등 이벤트 행사도 진행된다. 화성시 축구협회는 기념 티셔츠 3000벌을 제작, 이날 응원전에 나온 시민들에게 무료로 나눠준다. 성남시는 분당구청앞 잔디구장(13일)과 성남종합운동장(13일), 탄천종합운동장(13일), 성남문화재단(19·24일) 등에서 대규모 응원전을 계획하고 있다. 프랑스와 스위스전은 새벽에 경기가 열리는 점을 감안해 성남문화재단 광장에서 마련했다. 이곳 아트센터 광장에서는 오는 30일까지 월드컵 그림전시회를 선보인다. 고양시는 대화동 종합운동장과 덕양 어울누림축구장, 일산문화광장 등에서 2만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응원전을 벌인다. 붉은 악마회원 100명이 나서 시민들의 응원을 리드하는 등 열기를 북돋울 계획이며 2002년 월드컵 영상물 상영과 연예인공연 등 다채로운 이벤트를 준비한다. 응원전은 휴양림에서도 펼쳐진다. 국립자연휴양림관리소는 가평 유명산 휴양림에 단체로 관람할 수 있는 대형 스크린을 설치한다. 숲생태계와 주변 문화유산에 대한 숲해설가의 재미난 설명도 들을 수 있어 가족단위 방문객들로부터 인기를 끌 전망이다. 수원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2002 ‘16강 축포’ 쏜 성지 ‘신화재현’ 氣를 모은다 인천지역 독일월드컵 야외응원전은 전광판 중계료 문제로 문학경기장과 구월동 로데오거리에서만 펼쳐지게 된다. 하지만 2002년 월드컵 당시 우리나라 16강 진출이 확정되었던 한국-포루투갈전이 열렸던 인천시 남구 문학동 문학경기장은 6만명 가까이 수용할 수 있는 대형 공간이어서 ‘일당 백’의 단체 응원장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경기장에서는 인천시 주관으로 오는 13일 오후 10시 열리는 한국-토고전을 비롯해 한국-프랑스전(19일 오전 4시), 한국-스위스전(24일 오전 4시) 등 우리나라 조별예선 3경기에 대해 응원전이 벌어진다. 이 행사는 독일월드컵 공식 후원업체인 현대자동차와 공동으로 주관하기 때문에 별도의 중계료를 지불할 필요가 없다. 경기는 문학경기장 동쪽과 서쪽 스탠드에 설치된 2개의 대형 스크린을 통해 중계되며, 응원전은 ‘붉은 악마’ 인천지부 회원 5000여명이 주도한다. 현대자동차측은 경기장을 찾는 시민들에게 붉은 악마 티셔츠를 나눠줄 예정이다. 시는 관람인원 초과로 5만 5000석 규모의 문학경기장이 응원객을 다 수용하지 못할 경우 바로 옆에 있는 문학야구장(2만 5000석)을 개방키로 했다. 시민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불상사가 일 것에 대비해 경기 시작 2시간 전부터 경기장을 개방하며, 상황에 따라서는 이보다 이른 시각에 개방할 계획이다. 시민들의 교통편의를 위해 우리나라 경기가 열리는 날은 인천지하철을 1시간 연장해 새벽 1시까지 운행하며, 버스를 증편 운행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경찰은 한국전이 모두 심야에 열리는 점을 감안,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주류 반입 및 위험물 사용을 금지키로 했으며, 전경 3개 중대를 동원해 만일의 사고에 대비키로 했다. 또 경기장 주변에 극심한 교통혼잡이 일 경우 승용차로 경기장에 접근하는 것을 통제키로 했다. 별도로 시 공무원, 시설관리공단 직원, 소방본부 직원 등으로 구성된 100여명도 곳곳에 배치돼 안전관리를 맡게 된다. 이와 함께 인천 청소년의 거리로 유명한 남동구 구월동 로데오거리에서 상인연합회의 주관으로 야외응원전이 펼쳐진다. 상인연합회측은 로데오거리 주통로에 대형 멀티비전을 설치해 이곳을 찾는 청소년들이 자연스럽게 응원할 수 있도록 유도할 계획이다. 특히 이곳은 먹을거리와 볼거리가 풍부해 가족 단위 응원객들도 많이 찾을 것으로 보인다. 상인연합회측은 한국팀 전 경기와 주말경기 등을 방영하고, 특히 우리나라 경기에 앞서 치어리더, 꼭지점 댄스와 힙합, 대학응원단 공연 등 다양한 행사를 벌이기로 했다. 한편 인하대는 학생들의 요청으로 대운동장에서 전광판 응원전을 계획했다가 중계료를 감당하기가 어려워 포기했다. 월드컵 부가방송권은 민간이 주관할 경우 경기당 5000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천시 동구도 달동네박물관에서 스크린을 통해 주민들이 참여하는 단체응원전을 계획했으나 중계료 문제로 취소했다. 인천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부드러운 저음의 가수 안다성(2)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부드러운 저음의 가수 안다성(2)

    우리나라 드라마 주제가 제1호인 ‘청실홍실’은 당시 중앙방송국(현 KBS) 전속가수 안다성씨와 송민도씨가 듀엣으로, 그리고 40인조 시온성합창단(단장 이동일)에 의해 취입되었다. 이 과정에서 불려지는 노래는 스스로도 근사했으며 반응 또한 예상 밖이었다. 그러나 정작 음반은 현인씨와 권혜경씨의 목소리로 출반되었다. 이 노래로 실력을 인정받게 된 안다성씨는 곧바로 오아시스레코드사에 전속된다. 당시 오아시스는 일류 작곡가들이 활동하던 메이저 음반사로 그는 전속되자마자 박춘석 작곡의 ‘아주까리 주막집’을 비롯해 이재호, 손석우, 김호길씨의 곡을 고루 받으며 주목받기 시작한다. 모나리자, 비극은 없다, 흐르지 않는 강, 보헤미안탱고, 굿바이탱고, 바닷가에서, 사랑이 메아리칠 때 등. 이미 가요 명곡으로 자리매김한 그의 초창기 노래들은 발표 당시만 해도 이전 가요들과는 사뭇 분위기가 달랐다. 안다성씨는 이 노래들을 통해 자신만의 독특한 창법을 유감없이 표출해 보였다. 안다성씨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당시 내 월급이 아마도 대통령 월급의 다섯 배는 되었을 것’이라고 회고하기도 했다. 그는 이듬해 국민들의 귀를 온통 라디오에 쏠리게 만든 드라마 ‘꿈은 사라지고’의 주제가 역시 취입한다.50년대 말, 이 ‘꿈은 사라지고’는 ‘꿈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꿈이 절실하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강조한 드라마로 영화로까지 제작되었다. 그러나 이 주제가 역시 영화화되면서 남자주인공 역을 맡은 최무룡씨에 의해 음반으로 출반되었다. 안다성씨 입장에서는 ‘청실홍실’에 이어 두고두고 아쉬운 부분이었다. 그는 워낙 철두철미한 성격 그대로 누구보다 연습을 많이 했고 취입에 대비했다. “당시는 단 한 번만에 녹음을 끝내야 했지요. 악단이라든지 가수가 취입 도중 실수라도 하면 가차 없이 처음부터 새로 녹음해야 했기에 모든 경비가 이중으로 든다는 것이 당시 여건에서 가장 큰 난제였습니다. 실제로 가수가 취입 도중 몇 번씩 가사가 틀려 계속 NG를 내자 화가 난 음반사장이 연주인들과 식사를 하러가면서 가수를 안에 가둔 채 아예 밖에서 문을 잠그고 나갔던 일화도 있었던 시절이었지요.” 때문에 안다성씨는 취입할 때 감정에 몰입하다 보면 1,2,3절 가사가 혼동되어 실수할까봐 가사를 각각의 다른 색깔로 구분했다. 이를테면 1절은 검정,2절은 빨강,3절은 파랑 등으로 가사를 악보에 적어 마이크 앞에 섰을 정도다. 때문에 그로 인해 녹음이 중단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전성기 때 그의 별명이 ‘탱고의 왕’이었듯 그에 걸맞게 무려 20여곡이 넘는 탱고 곡을 발표했다. 보헤미안 탱고, 뒷골목 탱고, 나의 탱고, 이별의 탱고 등….‘에레나가 된 순이’ 역시 탱고리듬의 곡. 이 노래는 본래 가수 한정무씨가 취입했으나, 한씨가 교통사고로 타계하자 안다성씨가 재 취입해 60년대 말부터 ‘극장식 술집’에서 십년 넘게 불러 유행시킨 노래이기도 하다. 2005년, 그는 50여년 만에 꿈을 이룬다. 그의 데뷔 초기 취입곡 ‘청실홍실’과 ‘꿈은 사라지고’를 비로소 자신의 육성으로 음반을 출반한 것이다. 우리 가요의 새로운 전형을 제시하며 지금의 한국가요, 즉 ‘K-Pop’을 구축했다고 평가받는 작곡가 손석우 선생의 음악생활을 기념하는 ‘손석우 노래 55년’ 음반에 이 노래가 비로소 수록된 것이다. 이 노래를 첫 취입한 지 무려 50년 만이다. 그는 분위기 있는 노래 위주로 활동했던 만큼 다른 한편으론 분위기를 띄우는, 일종의 신나는 템포의 곡은 거의 없다. 심지어 지나치게 서정적인 노래로 인해 곤혹을 치른 적도 있을 정도다. 전성기였던 50년대 말, 경남 사천비행장 항공대원들을 위한 공연에서 그는 대표곡인 ‘바닷가에서’를 부르는 도중 갑자기 관객석에서 터져 나오는 야유를 받았다. 말하자면 신나고 빠른 노래를 불러달라는 주문의 야유였던 것이다. 그런가하면 다른 한편에선 앙코르가 나오고 또 다른 한 쪽에선 야유가 계속되면서 급기야는 객석을 가득 메운 장병들이 두 패로 나뉘어져 싸움이 났다. 야유가 나오면 무대 뒤로 들어가고 앙코르가 요청되면 다시 나오고. 두세 번 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하는 어색하고 우스꽝스러운 광경이 연출되었다. 지금은 웃으며 회고하지만 당시 가수 입장에서는 식은 땀나는 노릇이었을 터. “얼추 잡아도 그동안 500여 곡은 족히 불렀던 것 같은데 말이지, 이상하게도 아직까지 무대에서 내 노래를 부르는 후배들을 보지 못했어요. 그만큼 내 노래가 너무 어려웠던 것 같아. 안 그런가?” 안씨의 얘기다. sachilo@empal.com
  •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부드러운 저음의 가수 안다성 [1]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부드러운 저음의 가수 안다성 [1]

    ‘바닷가에서’ ‘사랑이 메아리칠 때’가 그렇듯 부드러운 저음, 고즈넉한 시를 읊조리는 듯한 분위기의 노래로 먼저 떠올려지는 가수 안다성씨.‘안다성’은 본인 스스로 지은 예명이다. 세계적인 성악가 마리안 앤더슨의 이름에서 착안한 것으로 대중으로부터 부드럽게 불려지고 싶어 ‘앤더슨’과 비슷한 발음,‘안다성’이라 이름지었다. 본명 안영길(安泳吉).31년, 충북 제천 태생. 지금까지 몇 차례 만나오면서 그에게는 늘 변함없는 것 한 가지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약속장소에 항상 먼저 나와 기다리고 있다는 점과 늘 흐트러짐 없는 차림새였다는 사실이다. “우리 옛날 가수들은 항상 먼저 와 기다리고 있지 않으면 괜스레 불안하지, 허허….” 그는 말한다.“우리나라 초창기 연극배우 이종철씨 알지? 그 냥반(양반) 꽤나 엄했어요. 분장한 채 대기실 밖에라도 나갈라치면 가차 없이 귀싸대기야. 어떻게 연예인이 무대에 서야 할 얼굴을 함부로 내보이느냐고….” 분장한 얼굴을 함부로 남에게 드러내 보이는 것을 금기시 여기고 살았듯 그 이면에는 일상에서조차 맨 얼굴을 그대로 내보이며 ‘책’잡히고 ‘흉’잡힐 일을 되도록 삼가려 함도 그가 연예인으로 살아오는 동안 몸에 밴 것들이리라. 처음 그가 무대와 연을 맺은 것은 51년, 당시 전쟁으로 인해 임시로 청주에 내려와 있던 ‘신흥대학교(현 경희대)’ 영문학과에 재학 중이었을 때였다. 전쟁은 예외 없이 누구에게나 많은 희생을 강요했다. 그 역시 휴학계를 내고 군예대에 지원했다. 그러고는 군예대 지원의 대가로 받은 쌀 두가마니를 집에 메어다 놓고 그는 홀로 군예대로 향했다. 송달협, 고대원, 유춘산 등의 가수들을 비롯해 7인조 악단과 무용수들, 쇼 단원을 모두 합쳐 봤자 고작 25명이 전부였던 ‘1102 야전공병단’ 소속 군예대는 동부전선 강릉 부근에 배치해 있었다. 군용트럭으로 100여 리 길을 두 시간, 혹은 그 이상씩 달려 이동하는 도중에 포격 세례를 받기도 수차례였고 비포장도로의 흙먼지를 뒤집어 쓰며 천신만고 끝에 공연장에 도착하면 도랑물로 흙투성이만을 겨우 털어낸 채 이내 웃음 띤 모습으로 무대에 나서곤 했다. 예고 없는 무차별 폭격은 공연장에도 예외일 수 없어 공연은 수시로 중단되었다. 말 그대로 목숨을 건 공연이었다. 이 전장에서 그는 2년 9개월 동안 무려 100여 차례의 공연을 치렀다. 목숨을 건 사투의 시간에도 일순간이나마 노래가 공포나 두려움으로부터 얼마나 사람들에게 큰 위안이 되어주는가 하는 사실이 생생하게 현실로 다가왔다. 무엇보다 직접적인 이때의 경험이 그의 오랜 가수생활 동안 노래에 대한 ‘신념’으로 자리하고 있었을 것이 쉽사리 짐작되어졌다. 그가 본격적인 가수의 길로 접어들게 된 때는 9·28 수복 이후 서울로 복귀한 대학 3학년 때인 55년. 친구 생일자리에 초대받아 간 곳이 당시 종로의 ‘여정카바레’. 사교춤이 한창 유행하던 무렵 이곳은 풀 멤버 밴드가 있던 일류 카바레로 명성만큼이나 무대 또한 근사했다. 물론 그가 이전에 섰던 야전무대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 이때 돌발상황이 발생했다. 친구들이 그를 무대로 끌고 올라간 것이다. 이 돌발사태를 제지하던 웨이터와 친구들 간에 실랑이가 벌어지고 이윽고 몸싸움까지 벌어지고 있었다. 이러한 와중에도 무대에 오르자 그는 버릇처럼 마이크를 잡았다. 그리고 노래를 시작했다.‘서울야곡’. 야전무대에서 즐겨 부르던 가수 현인의 노래. 노래가 시작되자 아수라장이던 장내가 일순간 잠잠해졌다. 순간 그는 더욱 긴장했다. 그러나 이내 악기들이 하나 둘씩 자신의 노래를 따라오고 있음을 느꼈다. 그렇게 삼절까지 노래를 마쳤다. 무대에서 내려오자 의외로 악단장이 다가와 명함을 내밀었다. 그리고는 방송국 전속가수 시험에 응시할 것을 제의해왔다. 명함에는 ‘중앙방송국 경음악단장 손석우’라고 적혀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당시 대학생 신분에서 대중가요 가수는 썩 매력적이지 않았죠. 하나 방송국의 전속가수 시험제도라는 것이 묘하게 도전의식을 자극하더군요.” 결국 그는 이듬 해, 노래와 악보 테스트를 거쳐 권혜경 등과 함께 전속가수로 발탁된다. 그리고 몇 달 뒤 비로소 첫 취입할 노래의 악보를 건네받는다. 이 노래가 바로 우리나라 연속방송극 주제가 제1호인 ‘청실홍실’이다. 그는 악보를 훑어내려 가면서 난감해졌다. 노래가 지극히 짧고 단순해 감정을 이입할 부분이 도무지 없는 것이었다. 고민 끝에 그는 작곡자 손석우씨를 찾았다.“선생님, 이 노래는 어떻게 불러야 합니까?” 이에 작곡가 손석우씨의 대답은 의외로 간단명료했다.“그냥 쉽게 불러요, 동요 부르듯….” (계속) sachilo@empal.com
  •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엘레지의 여왕’ 이미자의 삶과 노래(2)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엘레지의 여왕’ 이미자의 삶과 노래(2)

    1964년‘동백아가씨’를 시작으로 우리나라 트로트 시대를 ‘완성’시켰다고 평가받는 이미자씨. 그러나 이후 3대 히트곡인 ‘동백아가씨’ ‘섬마을 선생님’에 이어 ‘기러기 아빠’까지 왜색, 비탄조 등의 사유로 금지되면서 한때 가수 생명까지 위협받는다. 이 노래들의 금지 배경에는 아직도 확실히 규명되지 않은 몇 가지 설이 나돈다. 그 중 하나는 정치적 희생양 설. 당시 한·일국교를 맺을 즈음 치닫던 반일감정을 ‘왜색 근절’이라는 의지를 보임으로써 ‘민심 달래기용’으로 이용되었다는 설과 아울러 당시 정책구호였던 ‘재건’에 대한 ‘의욕 저하 설’ 등이 그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다른 하나는 주위 음반사의 작용설. 정작 당사자인 이미자씨는 후자에 더 비중을 두고 있는 듯하다. 그는 99년에 발간한 자전 에세이 ‘인생 나의 40년(황금가지刊)’에서 본인의 심경을 이렇게 적고 있다. ‘65년 한·일국교 정상화에 따른 주체성 확립 차원에서 본보기로 규제한 시대적 희생물이라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되었지만 정작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이 노래를 너무 좋아해 청와대 영빈관에서 만찬이 있을 때마다 나를 불러 이 노래를 부르게 했다.’며 정말로 ‘동백아가씨’가 왜색이어서 정부가 금지시켰다면 일본에 대해 강경자세를 취했던 박 대통령이 그 노래를 내게 부르게 했을 리 없다고 반박했다. 아울러 권력층에서는 정작 이 노래의 금지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며 오히려 연속되는 빅히트로 상대적으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타 음반사가 극에 달한 ‘반일감정’에 편승, 심의실과 결탁해 여론몰이를 통한 ‘마녀사냥’에 나선 것이 아니겠느냐는 주장을 제기하기도 했다. ‘해적판’까지 기승을 부리게 만든 ‘동백아가씨’ 신드롬은 우리 가요계에 하나의 사건으로 기록된다. 미8군 출신가수들이 주축을 이루던 가요계가 트로트 붐으로 급선회했고 아울러 한국 최고의 메이저 음반사로 꼽히던 지구레코드사가 탄생하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피란 시절, 이북 출신 일곱명의 ‘38 따라지’들이 고물을 주워 모아가며 부산에서 설립한 미도파레코드사는 9·28수복 후 서울로 본거지를 옮긴다. 임정수·김능억 공동사장으로 운영되던 미도파는 동백아가씨가 ‘대박’을 터뜨리자 이듬해인 65년 1월부로 결별, 각각 독립한다. “두 공동사장이 분가할 때 그동안 미도파 라벨로 출시된 음원들도 똑같이 분배했지요. 그런데 정작 분가의 불씨를 제공한 선택 1호 ‘동백아가씨’ 만큼은 임정수 사장의 ‘지구’ 몫이었습니다. 미도파 전속 후 별다른 히트곡이 없던 작곡가 백영호씨의 그동안 밀린 월급을 임사장이 개인적으로 주어왔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지구’는 출발부터 돈방석에서 시작했습니다.” 당시 미도파레코드사에 근무하던 현 한국가요작가협회 김병환(68) 이사장의 증언이다. 결국 임 사장은 지구를, 김 사장은 그랜드를 각각 설립, 결별한 이후에도 미도파 당시에 출시한 동백아가씨 판매수익 지분을 놓고 법정싸움으로까지 비화되었다. 지구의 출발과 함께 ‘이미자 시대’는 본격적으로 막을 연다. 게다가 천재 작곡가 박춘석씨가 자신의 곡을 이미자씨에게 취입키 위해 자청, 지구에 전속된다. 작풍도 ‘이미자풍(風)’에 맞춰 트로트로 선회, 스스로 ‘제2의 전환기’를 맞는다. 이렇게 해서 60년대 빅 히트 3대요소인 ‘지구+박춘석+이미자’라는 진용을 갖추고 ‘섬마을 선생님’ ‘그리움은 가슴마다’ ‘흑산도 아가씨’ ‘기러기 아빠’ ‘황혼의 블루스’ ‘한번 준 마음인데’ 등을 잇달아 발표한다. 동시에 이미자씨는 백영호 곡인 ‘여자의 일생’ ‘아씨’ ‘서울이여 안녕’ ‘여로’, 그리고 손석우 곡인 ‘사랑했는데’ 등을 연달아 히트시키며 거침없는 질주를 계속했다. 쉴 새 없는 공연과 취입으로 그녀의 목은 늘 잠겨 있었다. 따로 연습할 시간조차 없어 ‘녹음이 곧 연습’이었다. 그럼에도 ‘타고난 목소리’에 대한 찬사는 끊이지 않았다. 심지어 그녀의 성대를 연구하기 위해 일본의 한 연구기관이 그녀의 성대를 사들였다는 소문까지 전국에 파다하게 나돌기도 했다. 물론 낭설이었지만 이미자씨 역시 이 소문을 접했을 때 그리 나쁜 기분만은 아니었다고 회고했다. ‘백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천상의 목소리’ 그리고 ‘촌스러움’이라는 극단적인 평가를 동시에 받았던 이미자씨 노래는 89년 10월,30주년 기념공연을 기해 세종문화회관무대에 오른다. 처음 이 공연은 ‘공연장의 품위와 관객의 질적 수준 저하’라는 이유로 세종문화회관 운영자문위원회의 결사반대에 부딪혔던 일화로도 유명하다. 그러나 ‘격이 낮다’는 노골적인 멸시를 받으며 막이 오른 이 공연은 정작 시작 첫날부터 세종문화회관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당시 민정당 박태준 대표, 평민당 김대중 총재, 민주당 김영삼 총재, 공화당 김종필 총재, 즉 당시 4당 총재부부가 나란히 관객석에 자리한 것이다. 한국인만의 정서를 대변하고 달래주었던 이미자 노래, 그 실타래 같은 노래 한가닥 한가닥은 서민의 밑바닥 정서부터 한국을 움직이는 최고 수뇌부까지 모두 하나로 묶는 소중한 ‘끈’이었던 것이다. (sachilo@empal.com)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