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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 자금성 우리 페인트로 칠한다/대한페인트,재도색 맡아

    중국 북경의 대표적인 문화유적지인 자금성이 우리나라 페인트로 재도색된다. 28일 노루표 대한페인트 관계자에 따르면 대한페인트는 자금성 행정관리실의 요청으로 자금성 개원 70주년을 맞아 실시되는 재도색을 맡아 1차로 오는 8월까지 4개 성문을 새로 칠할 자연색 무광택 페인트를 보내기로 했다.자금성측은 북경시 주최로 대대적으로 열리는 10월 10일의 자금성 개원70주년 기념행사 이후 자금성 전체작업에 대한 재도색도 요청할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페인트와 자금성간의 재도색 작업 계약서 조인을 위해 오는 7월 10일 자금성 부원장 웨이웬차오씨가 방한할 예정이다.대한페인트는 지난해 10월 북경의과대학 건물 도장작업을 마친 바 있다.
  • 대만보유 중국 고미술품/4백여점 70년만에 “햇빛”

    ◎황제 부의가 남긴 70만점중 일부/뉴욕 등 미 전역 13개월 순회 전시 지금부터 70년 전 중국의 마지막 황제 박의가 자금성에서 강제로 쫓겨난 뒤 그가 남겨놓은 70여만점의 진귀한 고대 중국의 예술품들을 바탕으로 중국 국립왕궁박물관이 창립됐다.그러나 중국 고대예술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이들 작품들은 그 가치에 비해 아직까지 대접을 받지 못한 편이었다. 우선 일본군의 진격을 피해 이들 작품들은 1만9천5백57개의 박스에 포장돼 상해와 남경·장사·청도·중경 등 1만2천㎞에 이르는 피난길에 올라야 했다.국·공내전의 전란을 피하기 위해 1949년 대만으로 옮겨진 뒤에야 이들 작품들은 유랑길에서 겨우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대만으로 옮겨진 뒤에도 이들 작품들은 오랜 세월 빛을 보지 못했다.중국이 소유권을 주장하고 나설 것을 우려한 대만 당국이 이들을 전시하는데 주저해 이제까지 일반에 공개됐던 것은 전체의 1%에도 못미치며 대부분의 예술품들이 와이슈앙시 인근의 창고 등지에 사장된채 오랜 세월을 보내야 했다.이 예술품들 가운데4백여점이 박물관 창립 7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뉴욕·워싱턴·시카고·샌프란시스코 등 미국 전역을 도는 13개월에 걸친 순회전시에 나선다.70년만에야 겨우 무덤에서 부활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미국 순회전시에 대한 비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비판론자들은 대만 정부가 미국과의 정치적 관계개선을 위해 그 값을 헤아릴 수 없는 귀중한 예술품들을 놓고 모험을 벌이고 있다고 주장한다.하지만 대만은 미국무부으로부터 이들 예술품들의 소유권이 도전받지 않을 것이란 보장을 받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왕궁박물관의 친샤오이 관장은 중국의 예술은 서방에 비해 결코 떨어지지 않다고 말하면서도 그에 대한 결론은 관람객들에게 맡길 것이라고 웃으면서 말한다. 전문가들은 이들 예술품들이 중국에 남아 있었다면 대부분이 파손됐을 것이라며 이들이 대만으로 오게된 것은 큰 다행이라고 말하고 있다.그러나 이들 예술품들이 언제까지나 대만의 소유로 남을 수 있을지는 확실치 않다. 친 관장은 중국의 박물관들은 현재로선 이들 예술품들을 보존할 기술도 부족하며 이들을 안전하게 지킬 보안도 허술하다고 말하면서도 중국의 기술수준이 향상되면 대만과 중국이 1년씩 이들 예술품들을 교대로 전시하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그러나 앞으로 대만과 중국과의 관계가 개선되면 이들 예술품들이 또다시 멀고먼 유랑길에 다시 올라야할 날이 올 것이라는 전망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 거문고 명인 김영재(이세기의 인물탐구:69)

    ◎흐트러짐 없는 연주… 이론·작곡 밝아/신쾌동씨에 귀사… 피나는 연습끝 정상 올라/정규교육 1세대… 가야금·아쟁에도 일가견/93년 지하실에 상설무대 설치… 발표할곳 없는 동료들에 개방 송강 정철은 거문고 대현을 타는 데 있어 그 소리를 「얼음에 막힌 물 여흘에서 우니는 듯」하다 했고 영조때의 풍류객 송계연월은 「북창송음에 거문고줄을 얹어두니 바람이 줄을 건드려 타지 않는데도 스스로 우는 소리야말로 참으로 듣기 좋다」고 노래한 바 있다. 거문고의 명주실로 꼰 여섯줄 중에서 선율을 타는 유현은 소리가 맑고 부드러운 반면 대현은 줄이 굵고 투박하여 해죽으로 만든 술대를 단단히 거머쥐고 내리쳐야만 짙푸른 소리를 얻을 수 있다.거문고의 고매한 자태와 음률은 남성적인 화평정대와 악기 중의 으뜸인 백악지장에 비유되어 연주자는 아무리 어려운 대목도 고뇌어린 표정을 짓거나 박자를 맞추거나 몸을 흔드는 일이 없어야 한다.귀에 듣기 좋게 하는 것은 저속하며 음악 자체에 몰두하는 것도 금물이다. ○지영희씨에 해금 배워 거문고연주에서 한올 흐트러짐 없이 엄격한 법도를 지켜가는 이가 바로 명인 김영재다. 그는 『음악성이 비범하여 거문고 주자로서 일급일 뿐만 아니라 지영희 문하에서 오랫동안 학습한 해금도 그를 따를 이가 없다』는 평을 받고 있다.백낙준에서 신쾌동으로 이어진 그의 「거문고 산조」는 비감과 청정을 떠나 무념무상의 흐름속에서 극청 극탁을 끌어낸다. 느린 장단인 진양조로 괘를 짚어 먼저 장엄한 우조로 소리를 울리고 슬픈 느낌의 계면조와 화평스런 우조를 교차시키다가 중모리·엇모리,마지막 자진모리에 이르기까지 가슴 한복판을 후빌 듯 두들기는 장탄식은 절묘하다.손과 줄이 얽히고 풀리면서 흥청거리는 기교와 기량으로 천변만화를 농현하면 남자가 울분을 참듯 한을 안으로 다스리듯 듣는 이도 켜는 이도 어느 샌가 눈가에 눈물이 스미는 감동에 젖는다. 우리 음악은 일시에 피어오르는 장미꽃과는 달리 부단하게 변화되기 때문에 그 선율을 일사불란하게 파악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그러나 그의 연주는 『교묘하게 꾸며진 말과 보기 좋게 꾸민 표정에는 인이 드물다』고 한 것처럼 정 가운데 동을 감춘 정중유동의 자세다. ○처음엔 무용으로 입문 또 스승으로부터의 피나는 훈련과 연습으로 전수되던 우리 국악현실에서 처음으로 정규교육을 받은 일세대이며 가야금·양금·아쟁을 고루 다루고 작곡과 이론에도 밝아 우리 고전악기가 갖는 가능성을 다양하게 타진해왔다. 그는 처음엔 「춤추는 사람」이 될 것을 꿈꾸고 있었다.경기도 용인에서 태어났으나 변호사사무실에서 일하던 부친(김세종씨)을 따라 일찍이 서울로 이사,마포구 합정동에 정착하면서 마포 강나루터에 산재해 있던 남사당패들의 굿판에 정신이 팔려 그곳에서 하루해를 보낼 때가 많았다.이런 그를 안쓰럽게 여긴 어머니(차은식 여사)가 부친 몰래 김천흥 전통춤연구소에 보내준 것이 국악에 입문하게 된 동기다.그러나 무용특기자가 되어 국악예고에 진학하자 이번엔 「승무」를 가르치던 벽사 한영숙이 『얼굴이 예쁘고 춤태가 곱긴 하지만 춤보다 악기를 해보라』고 권했다.거문고·해금은 「연잎에 지는 빗소리」처럼 아름다운 가락을 엮지만 『악기 다루기가 너무 어려워 이를 이어갈 인재가 없다』는 것이었다. 뒤늦게 거문고산조 인간문화재인 신쾌동과 해금의 대가인 지영희를 만나 거문고의 유현한 가락과 섬뜩할 정도로 생생한 해금의 음률에 숙명처럼 잦아들어갔다.학교에서 배우는 외에도 스승의 개인연구소에 따라가서 이를테면 「스승들을 모시고 살다시피」하면서 그는 멀고 아득한 음악의 길을 걸어왔다.남성적인 거문고는 특히 연주법이 까다로워 술대(시)끝을 현침 가까이 내려치거나 거슬러 쳐도 원하는 소리를 얻을 수 없었다.무릎이 저리고 손가락에 피멍이 들어도 그는 제소리를 낼 때까지 몸에서 악기를 떼어놓지 않았다. 국악의 「국」자도 모르고 시작한 음악이지만 초기엔 스승의 열성에 감동되어 한음 한가락도 놓치지 않았고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배우는 자세로 자신이 악기가 되기를 주저치도 않았다.특히 남모를 내력이 굽이굽이 숨겨져 있는 해금을 속속들이 파고들어 손아귀의 혈맥이 악기에 이어지고 기맥이 통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런 제자를 기특히 여긴 스승이 하루는 자신이 못 배운 것을 한탄하며 『너희들은 어떤 일이 있어도 대학에 가야 한다』고 충고했다. 『우리 민속악은 무대에서 왕인데 제대로 배운 사람이 없어 서러운 대접을 받고 있다.너희 세대에선 제자리를 찾아 반드시 무대의 주역이 되라』는 절규였다. 행운의 여신이 미소짓기 시작하더니 벌써 고교 2학년때 서울시립 국악관현악단 최연소단원이 되었고 당시 이름을 날리던 리틀엔젤스의 무용반주자가 되어 세계 45개국 순회공연에 따라나섰다.돈을 벌면서 세계무대에 서는 동안 그는 우리 음악만의 특성과 미감에 눈떴고 그때부터 체계적으로 작곡에 손대기 시작했다. 서라벌예대 졸업후 경희대 작곡과에 편입,대학원과정에서 서양음악의 발성법·지휘법·화성악을 공부하고 고전악기와 현대악기를 대비시킨 「거문고와 해금」 「해금과 기타」 「해금과 하프」등 이중주곡·독주곡·관현악곡들을 창작하여 국악의 연주영역을 넓혀나갔다. 82년 국립극장 소극장에서 열린 개인발표회에서 그의 「거문고 즉흥곡」을 들은 황병기(이대교수)는 『마치 진흙의 뿌리에 내린 연꽃의 심도를 느끼게 하는 신기오른 솜씨』라고 호평했고 국악평론가 한명희도 『손끝의 느낌으로 음을 고르고 소리를 찾아내며 활대 아닌 눈짓만으로도 해금을 부리는 귀신 같은 실력』을 찬양해 마지않았다.그의 거문고산조가 심연과도 같은 무변광대를 누빈다면 그의 해금은 장자가 일컫듯이 「하늘의 소리처럼 신기하고 땅의 소리처럼 투박하며 인간의 속소리처럼 즐겁고 애절하여」 희비애락의 인생사를 꾸밈없이 담아낸다. ○“신기같은 솜씨다” 호평 그의 성격은 완고하다 못해 차분하다.어느 자리에서나 나대지 않아 예인 특유의 신기나 광기가 넘쳐 보이지도 않는다.한천의 난처럼 고절한 기상으로 연주에 임할 뿐 연주장이 아닌 장소에서 그를 만나기란 쉽지 않다.『겉으로는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마음이 상할 듯 섬약해 보이지만 참으로 오랫동안 방대한 학습경륜을 쌓아온 사람이라 속을 들여다보면 태산준령 같다』고 한 이보형씨(문화재전문위원)의 말은 과장이 아닐 것 같다. 남과의 번거로운 교류는 외면하지만 연주활동에는 열의가 대단하여 지난 93년 마포구 합정동 그의 집 지하층에 국악상설무대 「우리소리」를 개설,발표장을 구하지 못한 동료들에게 이를 개방해왔고 오는 3월에는 개관 2주년 기념무대를 갖는다.가족은 그의 음악을 이해하고 협조하는 부인 최광희 명지대교수와 남매. 이제 그는 스승들이 물려준 모든 것을 보존하고 계승시키는 위치다.그리고 「단순히 줄을 고르는 것만으로 이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가장 우아한 거문고 연주자는 선비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는 무위자연의 경지에서 검은 학이 날아와 춤을 추었다는 현학금의 대도에 입신하는 일만이 남았다. □연보 ▲1947년 경기도 용인출생 ▲1959년 김천흥 전통춤연구소 입소 ▲1965년 서울시립 관현악단 단원 ▲1967년 서울국악예술학교 졸업,신쾌동 지영희사사,난계예술제특상 ▲1966∼75년 리틀엔젤스와 미국 유럽등 세계45개국 순회연주 ▲1971년 서라벌예대졸업 ▲1972 일본 삿포로 동계올림픽·뮌헨올림픽 세계민속예술제 참가 ▲1977년 경희대 작곡과졸업 ▲1980년 동 대학원졸업,일본 산게이홀과 한국문화원서 독주회 ▲1982년 제1회 국악발표회(국립극장 소극장),대한민국국악제 참가 ▲1985년 제2회 김영재 작곡발표회 ▲1986년 아시안게임 문화예술축전 국악제 해금독주자 ▲1988년 중요무형문화재 16호 (거문고산조)준인간문화재 지정 ▲1990년 동아일보 창사 70주년기념 소련공연 창극 「아리랑」작곡및 연주,미국 링컨센터 연주 ▲1991년 환일본해 국제예술제참가 ▲1993년 「해금명인 김영재의 밤」(국립극장 소극장) 전남대 국악과 교수,도립남도국악단 상임지도위원 「조명곡」「비」「아리랑연곡」「현금곡」「가야금 병창곡」「거문고 즉흥곡」「대금과 가야금을 위한 2중주」,창극 「수궁가」,무용곡 「그날이 오면」등 1백여곡 「현금곡전집」「가야금 병창곡집」 「남도의 창」「줄풍류 거문고 가락의 비교관찰」「한국근현대사의 음악가 열전」 국민훈장석류장(73년)KBS국악대상 작곡부문수상(89)
  • 진로/「금두꺼비 찾기」 부활/이달말까지 20만마리 병마개에 숨겨

    ◎시장고수 고육책 29년만의 판촉행사 진로가 29년만에 「금 두꺼비 찾기」를 다시 벌인다.금 두꺼비가 새겨진 소주의 병마개를 찾아내면 기념품을 주는 행사로,당시 소주업계 1위인 삼학을 따돌리는데 결정적인 기폭제가 된 판촉행사를 리바이벌하는 셈이다. 일반 소주는 물론 최근에 나온 골드·나이스·디럭스 소주 등이 대상이다.기간은 12일부터 이 달 말까지로 병마개 안에 숨겨놓은 금 두꺼비는 총 20만 마리.사은품은 창립 70주년 기념주이다. 「금 두꺼비 찾기」는 65년 8월 삼학과의 일전을 위해 당시 장학형 부사장이 냈던 아이디어.전국을 순회하는 노래 자랑대회까지 곁들이는 등 당시로선 기발한 행사로 인기를 끌었다.보통 병마개도 한개에 2원씩 주었다.당시로는 엄청난 돈인 5천만원이 병마개 회수에 쓰여졌다.「야야야 야야야 차차차­」로 시작하는 CM송도 공전의 히트를 해,지금도 40대 이상은 대부분 기억하고 있다. 이번의 행사의 배경은 당시와는 정반대이다.급속히 시장을 잠식하는 경월과 보해 금복주 등 지방 소주사들의 도전을 막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패기가 넘치던 공격 전략이 방어를 위한 고육지책으로 바뀐 것이다.1천원 미만의 제품은 경품도 1만원까지만 가능해 상품도 별로 푸짐하지 않다.처음 시작했던 65년엔 1등 상금이 지금의 수백만원에 해당하는 20만원이었다.
  • 진로 3일 창립 70돌/작년 국내그룹 순위 25위

    ◎24년 평남용강서 진선양조상회로 출발/88년 제2창업선언… 작년매출 1조7천억 진로그룹(회장 장진호)이 오는 3일 창립 70주년을 맞는다. 그룹의 모체는 고 우선 장학엽씨가 지난 24년 10월3일 평남 용강군에 설립한 진선양조상회. 당시의 자본금은 1천5백원,연생산량은 3백60㎖ 기준 35만병이었다. 장씨는 6·25를 피해 남하,54년 서울에서 서광주조(66년 진로로 변경)를 설립했다. 도약의 발판을 마련한 것은 지난 59년. 국내 최초의 CM송인 「야야야 야야야 차차차」로 시작하는 CM송으로 크게 히트한 데 이어,70년대 초에는 당시 최대의 소주 업체인 삼학을 따 돌리고 업계 선두로 나서며 「두꺼비」신화를 엮어냈다. 그룹의 모습을 보인것은,장학엽씨의 둘째 아들인 진호씨가 지난 88년 회장으로 취임하면서이다. 장회장은 「제2의 창업」을 선언하며 술에 치우친 이미지를 벗어나기 위해 진로유통센터 등을 설립하고,연합전선 세림개발(현 진로건설) 남부터미널 등을 인수하는 등 공격적인 경영에 나섰다. 취임전 6개이던 계열사가 89년 23개로 늘었다. 지난 85년에는 경영권을 놓고 사촌간(장진호회장 형제와 장익용 서광회장),90년에는 형제간(장진호회장과 장봉용 진로발효회장)에 불협화음을 보이기도 했다. 지난해 매출액은 1조7천억원으로,매출액과 자산 등을 종합한 그룹 순위는 25∼27위. 지난해부터 전문화를 위해 일부 계열사를 통합하고,처분해 현재 계열사는 9개사이다. 앞으로는 ▲건설분야의 적극적인 해외진출 ▲편의점 진출을 비롯한 유통사업 강화 ▲맥주(진로쿠어스맥주)및 위스키에도 주력하기로 했다. 장회장은 『오는 2010년에는 30조원의 매출로 10대그룹에 들어설 것』이라는 청사진을 밝혔다.
  • 삼양사/내일 창립 70돌/인촌의 형 김연수씨,삼수사로 시작

    ◎의료·화학분야 진출… 계열사 9개로 면방 업종으로 사업을 시작한 삼양사가 내달1일로 창사 70주년을 맞는다.고려대학의 설립자인 인촌 김성수선생의 형인 김연수씨가 삼수사란 이름으로 출발한 삼양사는 55년 울산에 제당공장을 지으며 본격적으로 제조업에 진출했다. 70년대에는 배합사료와 삼양중기를,80년대에는 선일 포도당과 신한제분을 인수하는 한편 삼남 및 삼양화성 등 화학분야 2개사를 설립했다. 90년대 파키스탄에 합작 회사인 디완살만 파이버사를 세웠고 삼양종합금융를 인수하고 첨단 의료기기 판매회사인 삼양메디케어를 설립하는 등 9개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김상홍삼양그룹회장은 섬유·엔진니어링 플라스틱 등의 기존 사업분야를 활성화 하는 한편 정밀화학·의약·정보처리·금융·환경사업 등 첨단 분야로의 다각화를 통해 오는 97년에 매출 4조원을,2000년에는 10조원을 달성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 구소영화 기둥/설립 70년 「모스필름」 폐쇄위기

    ◎선전도구의 가치 잃고 지원도 끊겨/그간 2천편 제작… 로열티 받고 연명 올해로 창설 70주년을 맞은 러시아의 영화 스튜디오 「모스필름」이 폐쇄될 위기를 맞고 있다. 구소련시절 영화산업의 기둥으로서 막대한 정부자금의 지원혜택을 누리면서 권위를 자랑했던 모스필름의 위기원인은 러시아의 시장개혁에서 찾아진다. 한때 공산주의 이념의 선전도구로서 한몫을 톡톡히 해낸 모스필름이 이제 기존의 존재가치를 잃었기 때문이다. 현재 모스필름의 사운드 스테이지(사운드 필름을 제작하는 방음 스튜디오)들은 일거리가 없어 거의 가동되지 못하고 있다.이 스튜디오들에서는 연간 45편까지 영화를 제작할 수 있으나 현재는 단지 6∼7편 정도를 만들고 있을 뿐이라고 모스필름 사장 블라디미르 도스탈씨는 밝혔다. 운영비나 겨우 벌어들이고 있는 모스필름의 현재수입은 외부제작에 대한 기술제공과 설립이래 만든 2천편의 영화들로부터 나오는 로열티가 전부라고 도스탈씨는 말했다.그는 그러나 모스필름이 지난해 외국으로부터 받은 로열티는 50만달러에 불과했다고 덧붙였다.이는 현재 러시아 영화한편의 평균제작비에 불과한 수준이다. 모스필름이 안고 있는 문제들은 대부분 러시아 영화산업의 전반적인 쇠퇴와도 관련되어 있다.러시아 영화산업은 새로운 자금난과 배급문제 및 해외로부터의 경쟁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러시아 영화제작자들은 어느날 갑자기 검열 대신 상업주의라는 생소한 도전에 직면하게 되었다.그것은 개별적으로 자금을 마련해야 하고 흥행업자의 요구에 대처해야 하는 자본주의식 경쟁상황을 의미하는 것이다.영화의 중앙배급체제도 소련과 함께 붕괴되었다. 영화제작자 게오르기 다넬리아씨는 소련 시절에 만든 「킨­드자­드자」라는 자신의 영화가 제작된 직후 50편이 복사되었고 2주안에 2백만명이 관람했으나 최신작인 「나스티야」는 2개 모스크바 극장에서 상영되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또한 관람객들은 할리우드의 최고급 영화들로부터 3류의 스릴러물이나 에로물·공포물·갱영화에 이르기까지 한때 금지되었던 외국영화들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모스크바 극장들은 요즘 「클레오파트라의 난교파티」「악마의 인질들」「JFK」「나홀로 집에」「적과의 동침」 등 서방영화들을 상영하고 있다. 일부 영화제작자들은 변화하고 있는 취향과 기술에 자신들이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인정하면서 정부의 무관심에도 책임이 있다고 주장한다.이들은 영화산업이 지속적인 제작비와 세금 증가 문제에 직면해 있다고 푸념한다. 원로 영화제작자인 세르게이 본다르추크씨는 『국가의 지원이 없으면 모스필름과 러시아의 영화산업은 사멸되고 말것』이라고 최근 로시이스카야 가제타지에 기고한 글에서 말했다. 『모스필름과 영화제작은 문화의 일부이며 문화란 수익여부로 판단되어서는 안된다』고 솔로브요프씨는 강조했다.
  • 한국무용가 최현씨(이세기의 인물탐구:14)

    ◎절제된 몸짓… “여백의 미” 표현 일품/고고한 기품 넘치는 타고난 재능의 예인/김해랑문하서 승무·태평무 등 두루 이수/완벽주의적 성격… 대선배와의 불화 “천추의 한”으로 갓쓰고 도포입고 부채들고 최현이 무대에 나타나면 이도령이 광한루에 나선듯 화사하고 눈부시다. 뚜렷한 이목구비에 헌칠하고 단정한 매무새,운신의 폭이 조용하면서도 민첩하다.삭풍이 이는 한겨울에도 그의 분위기에는 오월 단오같은 싱그러운 신록이 묻어있다. 부채끝으로 오작교(오작교)를 가리키고 부채를 펴서 얼굴을 가리면 그때마다 한양의 풍류와 선비의 기품이 동시에 엇갈린다. 무용계에서 「푸르름을 몰고다니는 예인」으로 불리는 것처럼 그는 20대 미장부의 멋과 미를 변치않는다.나이와는 상관없이 언제나 젊고 기개에 넘쳐있다.언제 어디서나 누구앞에서나 당당하다. 우선 그의 춤솜씨부터가 그렇다.타고난 재능과 기량으로 그는 빠르고 느린 어떤 곡조에도 절묘한 춤의 경지를 보여준다. 정중동이 절제된 그의 「승무」나 「살풀이」등 그의 춤의 매력은 그 움직임마다에 여백의 미를 살리는데 있다.뿌리치고 내뻗는 손짓하나에도 선과 배경을 치밀하게 계산하여 마치 한폭의 수채화를 그리고 있는듯 하다.힘이 들어가지 않은,몸속으로부터의 흥취가 절로 살아나 어느땐 멈추고 어느땐 다시 흐른다.그리고 조각처럼 푸르고 흰 얼굴에는 한과 슬픔을 자제한 인고가 담겨있다. 그는 춤뿐아니라 춤과 관련된 영화와 연극,창극과 뮤지컬을 두루 섭력한 예술가다. ○춤관련 영화·연극 출연 완벽주의자인만큼 한가지를 알아도 끝까지 파고들어 전문가 못지않은 실력을 쌓고있다.대강대강 그럭저럭은 그에게는 통하지 않는다.사람을 사귀어도 한번 사귄 사람은 절대로 놓지않는다. 이렇게 흑백이 분명하기때문에 무용계에서의 그의 위치는 자칫 외롭기 십상일수가 있다.그러나 서로서로 인맥·학맥,제자 스승으로 얽히고 설킨 속에서 그가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할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타고난 재능,탁월한 춤솜씨 하나뿐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춤추는 사람이 춤잘추는데야 누가 뭐라하겠는가.위로는 막강한 선배들이 기라성처럼 좌정하고 이리저리 끈이 닿는 무용풍토에서 최현자신은 그런 자부심과 오기 하나만으로 고고하게 버티어왔다 할수 있다. 그가 춤으로 무용계에 어필하기 시작한 것은 65년 그가 안무·출연한 무용극 「초라니」에서다.조택원이후 송범 김진걸 이매방으로 이어지는 남자무용수중 수려한 춤과 미모마저 갖춘 그의 출현은 무대에서 단연 돋보이는 존재였다. 51년이후 한때 영화에 심취하여 조미령 김승호 허장강 등 당대 스타들과 영화 「춘향전」「시집가는날」등에서 주연,이후 그가 안무·출연한 무용극 「춘향전」「마의태자」「황진이」등은 노련미 넘치는 춤기교와 함께 영화에서 닦은 연기솜씨로 관객을 사로잡았던 작품들이다. 특히 그의 대표작인 「비상」은 그 자신이 끊임없이 추어왔고 지금도 무용인들에게 사랑받는 작품의 하나다. 소매가 긴 백삼에 상투관 차림,부채 하나만으로 무대를 누비는 이 「비상」은 희로애락의 일상사를 살고있으나 저 하늘을 향한 끝없는 의지,꿈을 잃지않으려는 인간의 끈질긴 열망이 춤속에 담겨져 「마음을 비운 춤」「생의 환희와 승리를 득도의 경지로 이끈 춤」「아무도 비상을 최현만큼 출수 없다는 경계선을 확실하게 그을수 있다」고 시인이며 무용평론가인 김영태가 쓴적이 있다. 영화·연극 못지않게 그의 음악취미또한 광적이다. 76년 호암 이병철회장의 도움으로 독립문쪽에 무용연구소를 개설하고 최현무용단을 창단했을때 그의 연구소는 무용연구소라기보다는 마치 음악연구소처럼 사방벽이 온통 오리지널 디스크로 둘러싸여 있었다.그의 오디오 취미는 「마니아」급으로 오디오전문지들은 걸핏하면 드보르자크에서 수재천에 이르는 그의 음악취미·오디오기기들을 탐방취재하고 있다.이 방면에서는 특히 김영태와 의기투합하여 두사람은 충무로에서 용산전자상가를 곧잘 기웃거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음악취미도 “광적” 최현은 마산에서 성장했지만 본래 부산사람이다.본명은 최윤찬,후에 영화계에 데뷔하면서 최현이란 예명을 가졌다. 16세때 전국가요경연대회에서 특상한 것을 계기로 「천재소년가수」가 되어 지평선 가극단을 쫓아 마산에 정착,마산의부호이자 한량으로 소문난 김해낭문하에 입문하여 그곳에서 궁중무에서 승무·살풀이·태평무·탈춤·기방무를 고루 이수했다. 그러나 스승이 초기엔 장작이나 패게하고 집안청소를 하게 할뿐 도무지 춤을 가르쳐주지 않아 그때도 당돌했던 그는 『왜 춤을 가르쳐주지 않느냐』고 스승에게 항의하곤 했다. 『예술은 배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깨닫는 것이다.네가 보고 느끼고 깨달아라』그는 머리속에 꽉 찼던 안개가 걷힌 듯 스승의 이 말을 단번에 알아들을 수 있었다.그때부터 춤이 몸속에서 피돌기처럼 돌고 흥이 기운처럼 솟구치기를 기다렸다.스승은 그제서야 그에게 춤 한자락씩을 지도해나갔다. 예술의 겸손을 엄숙하게 익히고도 인격수양이 덜 됐거나 춤을 잘 춘다는 주변의 칭찬에 우쭐한 나머지 지금까지도 가슴에 남아 잊히지 않을 큰 「잘못」을 하나 저지른 적이 있다. 58년 서울 명동 시공관에서 스승 김해랑 안무로 「독무」를 출때였다. 당시 명고수인 지영희씨가 장단,그의 부인인 성금련씨가 가야금을 연주,진양조에서 중머리 중중머리로 넘어가는 대목에서 지영희씨가 그만 잦은몰이 장단을 잘못친 것이다. 박자와 호흡,시간조절에 의해 손의 움직임을 감을 수도 펼수도 있는 그로서는 리듬이 맞지않아 크게 당황했고 무대는 막을 내릴 수 밖에 없었다. 그는 물불 가리지 않고 다짜고짜 지영희씨에게 덤벼들었다. 『무대는 생명입니다.단 한번의 실수도 있어선 안돼요.관객에게 손가락질 받으면 나는 이것으로 끝납니다』 지영희씨는 『최선생 내가 정말 잘못했네.큰 실수였다』고 백배사죄했으나 그로서는 이를 용납할 수 없었다.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없는 망발.당대의 명인이자 대선배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자신의 방만함을 후회했다고 탄식한다. 이제 그는 참다운 예술가가 되고 싶다.밖에서 안을 들여다 보고 진지하게 나를 점검하여 「몸짓」하나 「소리」하나에도 자연의 질서가 깃든 지혜와 노의 경지에 이르고 싶다.그리고 내 춤속에 관객을 끌어들여 나의 한과 정취와 풍류의 빛,내가 살아온 춤의 굽이굽이를 함께 향유하고 싶다고 말한다. 최현의 많은 이야기중에서 그가 54세때 27세 연하의 신부를 맞아들인 이야기는 빼놓을 수 없는 화제중 하나다. ○54세때 27세 신부 맞아 84년 12월,일밖에 모르던 까다로운 성품의 최현이 갑자기 결혼을 발표,더구나 신부는 서울예고를 졸업,그가 지도위원으로 있던 국립무용단 단원이라고 해서 주변의 놀라움은 한층 컸다. 신부인 원필녀씨는 나이보다 깊고 의젓한 성품으로 춤추는 스승을 멀리서 지켜보면서 혼자서 그를 사모해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두사람의 결혼은 올해로 만 9년.제자로서 스승으로서 아내로서 남편으로서 결혼초기때의 사랑과 정성과 존경을 변함없이 나누고 있다. 최현씨는 그동안 부인을 한성대와 이대대학원에 다니게 했고 지금은 한성대에 출강.『내가 아프면 밤새 내 머리맡에 앉아 나를 지켜준다』고 자랑한다. 지난해 6월엔 제1회 원필녀개인무용발표회를 주선해 주었다.그리고 그가 사랑해마지않던 그의 춤 「비상」을 부인에게 추게 했다. 그는 88올림픽 폐막식때는 10만군중과 수천명의 출연자들에게 청사초롱 「안녕!」을 추게 하여 방대한 스케일로 각계의 시선을 모았었다.지난해엔 청소년예술제에 「파란풍선」에 이은 「비단안개」를 안무,서울예고 무용단을 이끌고 일본 도쿄 무장야시민문화회관에서 「시집가는날」을 공연,올해는 문예진흥원 창작지원기금을 받아 그의 개인발표회를 준비중이다.작품은 정철의 「사미인곡」. 차범석극본·최종원음악의 이 작품은 그의 춤 60평생을 정리한 집대성의 일환으로 그의 특기인 「춤에서의 여백의 미」를 유장하게 전승시킨다는 집념을 담고 있다. 그는 아무리 춤을 잘추어도 훈련된 춤,숙련된 춤은 단호하게 부정한다.긴 세월 스스로 깨달아 마음속에서 몸속에서 자연스러운 율동으로 우러나오는 극미(극미)에 이르러야 한다고 주장한다.그리고 손가락 마디마디가 기를 축적시키면서 이를 어느 한순간 우주의 무한한 공간속에 힘차게 내뿜는다.장삼자락을 낙화로 흩날리며 탄식의 숨결을 하공에 흩뜨려놓듯,그래서 그의 춤의 한끝은 결국 끝없는 비상임을 그는 알고 있다. □연보 ▲1929년12월 부산 영도 출생.최재용씨와 이말념씨의 2남5녀중 장남 ▲1946년 마산으로 이사 ▲1953년 마산상고졸업 ▲1959년 서울대 사대 체육과 졸업 ▲1988∼1990년 중앙대 사회개발대학원 예술학과 수학 ▲1946∼1953년 마산 김해랑 무용연구소 입문 전통무용 유형과 기법사사 ▲1953년∼ 오광대일인자 장재봉,민속춤의 김숙자씨등에게 승무·살풀이·태평무·탈춤·기방무 등 이수 ▲1955년 최윤찬무용연구소 개설 ▲1961∼1962년 서울대 음대 무용강사 ▲1965∼1985년 서울예고 강사 ▲1967∼1974년 서울대 사대 체육과강사 ▲1976년 최현 무용단 창단 ▲1980∼1981년 중앙대 예대 무용과 강사 ▲1981∼1985년 서울예전 무용과 주임교수 ▲1982년 최현 무용연구실 개설,한국무용협회이사,한국문화예술단체 총연합회(예총)이사,문공부 문화재 전문위원,국립무용단지도위원,한국무용협 부이사장,대한민국 무용제 심사위원 문예진흥원 지원기금 심사위원역임 (영화)「삼천리의 꽃다발」 「시집가는날」 「춘향전」 「불멸의 성좌」 (무용·안무출연)무용극 「초라니」 「춘향전」 「시집가는날」 「마의태자」 「황진이」국립창극 「심청가」 「강릉매화전」 「광대가」 「변강쇠타령」 「시집가는날」 「대춘향전」 「허생전」 「심청」 「서동가」 「이춘풍전」 「놀부전」 「소태산」 「아리랑」 ▲1970년 일본 EXPO70 한국의날 안무·출연 ▲1971년 국립무용단 유럽지역 10개국 순회공연 안무·출연 ▲1975년 국립무용단 일본 10개도시 순회공연 안무·출연 ▲1978년 세종문화회관 개관예술제 「녹」 「비상」안무·출연 ▲1980년 국립무용단 동남아 9개국 순회공연 안무·출연 ▲1982년 시립무용단 「한국 명무전」에 「비상」출연 ▲1985년 호암아트홀 개관 초청공연 「헌화가」안무·출연 ▲1987년 88서울예술단 창단공연 「새불」구성·안무 ▲1988년 서울올림픽 개·폐회식 안무총괄 「안녕」 ▲1990년 국제문화협 주최 일본 지역 공연 창극 「심청전」안무 ▲〃 동아일보창간70주년기념 모스크바지역등 5개국 순회공연 창극 「아리랑」안무·출연 ▲1991년 국립극장주최 청소년예술제 「파란풍선」안무 ▲1992년 국립극장주최 「비단 안개」안무 ▲〃 서울시립무용단 무용극 「춘향전」객원안무 ▲현재 문화부 문화재 보호협회 「한국의집」예술총감독,서울예고 무용과장 서울올림픽 안무총괄 공로 대통령 표창
  • 여성 지위향상 지속적 추진/여성계 새해활동 계획

    ◎여협/신정부 여성정책 실행 감시/여연/성폭력특별법 통과에 주력/각 산하단체도 환경보전·복지향상 등 사업전개 여성계는 여성지위 향상을 위한 지속적인 노력을 펼치는 가운데 환경보호,성폭력추방,남북여성교류등 각 단체별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해 나갈 계획이다. 한국여성단체협의회(회장 김경오)는 지난해 총선·대선을 치르면서 고조된 여성정치의식을 체계화시켜 민자당이 공약으로 내세운 여성정책들이 제대로 실행될 수 있도록 촉구하고 감시해 나가기로 했다.이를 위해 정부여당에 여성정책 실시계획을 제시하도록 요청하고 수시로 정책을 건의하는 한편 여성공무원의 승진·배치에 관한 조사 및 관련세미나 개최를 통해 여성의 정치적 지위향상을 촉구해 나갈 계획이다.또한 근로여성의 지위향상을 위해 직장내 성차별 문제를 상담하는 근로여성고발창구를 연중 운영하면서 여성차별정년·승진배치에서의 문제점·근로여성의 육아지원등에 관한 간담회와 세미나등을 개최,남녀고용평등법과 실제 노동현장의 괴리를 줄여나가기 위한 각종 사업도 전개한다. 한국여성단체연합(회장 조화순)의 경우 지난해 중점적으로 전개해온 성폭력추방운동이 올해 성폭력특별법 제정으로 결실을 맺도록 총력을 기울일 방침이다. 여성계의 요구를 전반적으로 수렴한 성폭력특별법이 국회내에서 통과되도록 노력하고 성폭력 추방을 위한 각 부문별·지역별 과제발굴 및 조직작업,홍보책자 발간도 가속화할 예정이다.이와 더불어 여성복지확대,여성고용불안정 해결,환경이슈제기,정신대문제 해결등을 구체적인 과제로 진행할 계획이다. 지난해 창립70주년을 맞았던 대한YWCA(회장 김숙희)는 기존 단일조직의 전문성을 살릴 수 있도록 「바른교육」,「환경보존」,「평화와 통일」분과로 세분화하고 새로 바뀐 구조를 중심으로 집중적으로 사업을 전개해 나가기로 했다.또한 특별사업으로 성폭력피해여성을 위한 상담소와 쉼터도 개설할 계획이다.아울러 창립7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인 학수관(노인문화관)의 구체적인 건축방안과 모금운동을 전개하는 한편 현재 51개인 지방Y를 60여개로 확장시키고 어린이집,복지관,근로여성회관도 지방으로 확산시켜 나간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대한주부클럽연합회(회장 김천주)는 93년을 「감사하는 해­감시하는 해」로 정하고 모든이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실천하는 한편 각자가 유통질서,공공요금,물가,환경에 대한 감시원의 역할을 충실히 해나가기로 했다. 한국부인회(회장 임명순)는 6월중 남북한 여성교류사업으로 서울에서 토속전통음식경진대회와 전통놀이 한마당잔치를 개최할 예정이고 건전한 혼례혼수 실천과 방안에 대한 교육,미혼모실태와 방지를 위한 교육을 연중실시해 나갈 계획이다.이밖에 여성의 사회진출을 돕기위한 탁아사업활성화,청소년직업학교지원등 사회복지 분야의 사업도 병행해 나간다. 전국주부교실중앙회(회장 이윤자)는 전국 15개 시도지부와 2백60개 시·군·구지회조직을 통해 환경보전운동을 펼칠 계획이다.「쓰레기의 자원화」를 캐치프레이즈로 자원절약 및 쾌적한 환경 되찾기 운동에 힘쓰고 내가정 쓰레기 줄이기,쓰레기 분리수거,비닐봉지 안쓰기,장바구니들기,일회용품 안쓰기,재생용품 사용등 구체적인 사업을 전개해나간다.또 지난 7월 개설한 고령자취업알선센터를 활성화,노인복지에도 지속적인 관심을 쏟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 아시아여성 환경회의 개막/13개국서 YWCA대표 1백여명 참가

    ◎환경개선 위한 협력방안 논의 많은 국가들이 환경문제해결에 비상한 관심을 가지고 활발히 움직이고 있는 가운데 아시아지역 여성들이 한자리에 모여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아시아지역 환경회의가 13일 서울에서 개막됐다.대한YWCA 창립7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17일까지 서울 올림픽유스호스텔에서 열리는 이번 환경회의에는 한국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호주 일본등 아시아지역 11개국을 비롯해 호주 스웨덴등 세계13개국의 YWCA대표 1백여명이 참석,「여성,환경과 지구의 조화」를 주제로 토론을 벌인다.특히 16일 공개토론에서는 세계YWCA회장인 라지아 이즈마일씨가 특별강연을 한다. 이번 회의는 서울대 명예교수인 최기철박사가 기조강연에 이어 각국의 환경운동사례 발표,환경운동의 방향과 과제를 위한 패널토의로 진행된다. 또한 서울 환경회의에 참석한 13개국 YWCA대표들은 폐회에 앞서 환경문제 해결을 위해 공동으로 노력할 것을 다짐하는 결의문도 발표한다. 최박사는 기조강연을 통해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인류는 생태계와 자연을 파괴하며 죽음의 길로 몰아가고 있다』고 지적하고 『국내외 YWCA회원들이 결연한 의지를 갖고 국제적인 연대망을 조직,인류의 과제인 환경문제 해결에 윤활유 구실을 해줄 것』을 당부했다.
  • YWCA 창립70돌/사회봉사활동·여성운동 주도

    ◎김활란씨등이 시작… 이젠 회원 3백만/농촌계몽·생활개선등 시대따라 다양한 사업 전개/70년사 발간·세미나등 기념행사 다채 근대 한국여성운동의 근간을 이룬 대한YWCA가 20일로 창립70주년을 맞았다. ○회원대회 3일간 열어 대한YWCA연합회(회장 김숙희)는 22일까지 중앙및 지방Y,일본·뉴욕의 한인Y대표등 회원대표 6백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서울교육문화회관과 서울YWCA에서 「함께 사는 세계­믿음과 화합으로」를 주제로 창립70주년기념 회원대회를 개최한다.기념사업으로 노인문화관인 학수관건립,「대한YWCA70년사」발간(10월출간예정)을 계획했고 오는 10월에는 「여성,환경과 지구의 조화」를 주제로 동남아지역 YWCA대표 1백여명이 참석하는 국제세미나도 개최한다. ○일제말기 활동 일시중단 초기 YWCA는 기독교 신앙강좌·애국사상 고취·신학문보급은 물론 농촌계몽운동과 국산품장려운동,금주·금연,공창·조혼폐지를 외치는 사회운동을 펼쳤고 양재·요리강습·육아훈련등 생활개선운동도 함께 해왔다.30년대중반부터 일제의 탄압이 심해지면서 잠시 문을 닫았던 대한Y는 46년3월 회관마련과 함께 다시 활동에 나섰고 6·25동란중 전재민구호사업및 전쟁미망인을 위한 사회사업에 힘을 쏟았다.53년 이후에는 여성문제에 접근하기 시작,친족법과 상속법의 남녀평등조항신설,혼인신고강조운동,축첩공무원정비운동과 함께 성인교육프로그램을 운영했다. 60년대 들어 소외계층을 위한 봉사활동과 생활개선운동을 펴나가는 동시에 66년 국내 처음으로 소비자고발센터를 설치,소비자운동을 시작한 Y는 75년 독산동근로여성회관 마련을 계기로 지역사회 여성들의 직업개발프로그램에도 뛰어들었다.90년5월부터는 도덕성 회복으로 밝은 가정과 바른사회를 이루기위한 「바른 삶 실천운동」으로 장바구니들기운동,아나바다장터,바른결혼문화정착캠페인,바른교육과 환경보존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지도급인사 다수 배출 일제치하인 1922년 김활란 김필례 유각경씨등에 의해 가난하고 억눌린 여성들을 계몽하고 깨우치는 기독교 운동으로 시작된 한국YWCA는 지금까지 수많은 여성계 인물과 사회지도자를 배출하며 여성분야뿐 아니라 어린이·청소년·노인·소비자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해온 가운데 전국49개지부 3백만회원을 거느린 국내최대 규모의 여성단체로 성장했다.
  • “여성민간외교 펼치겠다”/YWCA 신임회장 김숙희씨(인터뷰)

    ◎70돌 행사에 북한여성도 초청계획 『70년의 역사를 지닌 여성단체로서 이제는 국제화에도 눈을 돌려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10일 대한YWCA연합회 새회장으로 선임된 김숙희씨(55·이화여대교수)는 『우리나라가 유엔에도 가입했고 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의 위상이 전과 같지 않다』면서 국제화에 발맞춰 여성단체로서 민간차원의 외교임무를 수행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그는 이를 위해 대한YWCA내에 국제부를 신설,국내에 있는 외국인 유학생들과 한국 가정을 연결해주고 국제관계 자료를 수집하는등 활동을 새로이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대한Y를 맡게되고 보니 단체의 역사성에 다시한번 긍지를 느끼게 된다』는 김회장은 『우리나라 YWCA 창설 70주년을 맞아 전국대회에 북한여성대표를 초청하고 북한Y 재건을 위한 모금운동도 계속할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김회장은 정무제2장관으로 전출한 김갑현회장의 후임으로 잔여임기인 94년7월까지 대한Y를 이끌게 된다. 김회장이 대한Y와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72년부터.대한 Y지방조직위원회 위원장이던 김영의씨(당시 이화학당 이사장)의 권유로 지방조직위원회 위원으로 Y활동을 시작,20년간 지방조직위원장과 사회문제위원장등을 거쳐 지난해 7월의 전국대회 이후 제1부회장직을 맡아왔다. 이화여대 가정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텍사스여대에서 영양학 박사학위를 받은 김회장은 김용순(고대교수·화학)·용옥씨(전 고대교수·동양철학)와 자매간으로 노모와 함께 독신으로 살고 있다.
  • 외언내언

    세계 제일의 인구대국은 역시 중국이다.『2000년에 13억,2020년엔 17억,그리고 반세기 후엔 20억이 될 것이다.이 인구폭탄의 뇌관을 제거 못하면 개혁도 소용없고 중국은 폭발하고 말 것이다』 중국과학원 「생존과 발전」보고서의 경고다.중공당 창건 70주년인 작년 7월1일 북경거리엔 인구시계가 등장하고 1인이상 자녀의 부모는 엄벌하는 인구 비상사태가 선포되기도.◆중국인구는 53년조사시 6억1천9백38만에서 64년 7억2천3백7만,82년에 10억3천1백80만,그리고 작년 7월1일 현재 11억5천2백87만3천8백76명.하루 5만여명 출생에 1만4천여명 사망으로 1.44%인 현재의 자연증가율을 1.25%로 끌어 내리는것이 당면의 최대 목적.◆그래서 나온것이 한가정 한자녀 정책.권장의 운동이 아니라 엄격한 법의 제재다.한자녀 부부의 부인이 새로 임신하면 「사회 양육비」를 매달 공탁해야 하고 개인경영자는 영업허가증을 당국에 맡겨야 한다.중절을 하면 반환되나 낳으면 몰수.사회 양육비는 2자가 5천∼5만원,3자이상은 2만∼10만원.중국가정한달 평균수입이 2백∼3백원인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벌금이다.◆공무원들은 출산비·탁아비·의료비전액 본인부담에 승진·표창의 기회도 박탈된다.농민의 경우는 자영지의 확대나 주택건축의 허가도 못받고.그런데도 2자녀 이상의 모험은 줄지 않는다는것.고래의 남예선호습관때문.8천원의 벌금을 내고 낳은 두번째 아이가 여예인것을 비관,자살하는 경우까지 있었다.◆고액의 가짜 피임수술증명서가 난무하고 고향을 떠나는 주거부정의 「게릴라부부」도 늘어나는 새로운 부작용이 골칫거리.그러나 보다 심각한것은 남녀균형의 파괴.초음파 검사로 여예를 유산시키는 경우가 많아 현재도 남자가 2000만이나 많은데 2000년엔 5000만이 장가를 못가게 된다는 것.우리네 인구형편은 어떤지 신경쓰는 사람이나 있는지 모르겠다.
  • 환경 보존·공명선거 실천운동에 주력

    ◎새해 여성단체들 무슨 사업 벌이나/과소비-성폭력 추방·여성고용확대 캠페인/북한여성 초청…남북 여성교류 정예화 모색 올해는 4대선거를 앞두고 있어 어느때보다 많은 변화가 예상되고 있다.이에 따라 92년의 여성권익옹호와 자질향상은 물론 여성의 정치 참여확대와 공명선거풍토조성에 적극 나설 방침을 세웠다.또한 남·북한 화해분위기에 걸맞는 남북여성교류 활성화와 더불어 소비절약캠페인,환경보호운동등 사회운동을 펴면서 성폭력추방운동,여성고용확대등여성전체의 이해를 함께하는 사안에 대해 공동대처키로 했다. 한국여성단체협의회(회장 김경오)는 여성정치참여확대를 올해 중점사업으로 정하고 회원단체를 통해 올바른 유권자 의식교육과 함께 공명선거 캠페인을 벌일 계획이다.이밖에 전국여성대회(9월)에 북한여성대표를 초청,남북여성교류를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광고물등 매스컴에나타난 여성에 대한 편견,남녀차별등의 고정관념을 시정하기 위한 모니터링사업을 실시키로 했다. 한국부인회(회장 박금순)도 올 상반기 부정선거감시단을 전국적으로 조직하고 부정선거 고발창구를 운영,공정한 선거 풍토조성을 위한 캠페인을 벌인다. 한국부인회는 또한 성폭행예방을 위한 무단가출 청소년선도 국민운동을 벌이는 한편 불량만화,비디오등 청소년 유해환경을 추방하는 캠페인도 벌인다. 남녀고용평등법의 정착화를 위해 각 산업체별 고용 실태조사,예비취업여성 의식조사,법률적인 근거조사를 실시할 계획이다. 대한주부클럽연합회(회장직무대행 이헌정)는 올 한해를「행동하는 해」로 정하고 무역 적자없애기,가정교육실천,공명선거실천,쓰레기분리 및 재활용품쓰기,유기농산물 직거래 활성화,저축강화등을 주부회원들이 강럭한 실천의지로 행동에 옮겨 나가기로 했다. 올해로 창립 70주년을 맞는 대한 YWCA연합회(회장직무대행 김숙희)는 올해「함께 사는 사회」를 캐치프레이즈로 ▲바른교육 ▲환경보존 ▲평화와 통일운동을 중점사업으로 펼친다.이를 위해 각 지부별로 부모역할교육을 실시하고 환경감시단 조직, 장바구니 사용하기,쓰레기 줄이기등 환경보존운동에 적극 나서며 창립70주년행사에 북한Y대표를 초청할 예정이다. 전국주부교실 중앙회(회장 이윤자)는 중점사업방향을 「분수에 맞는 생활운동」으로 잡았다.이에 따라 씀씀이 줄이기,과소비와 사치풍조 추방,음식 물낭비 없애기,에너지 절약등 다양한 사업을 펼친다.또 선거철을 앞두고 금권타락선거를 막고 공정한 선거풍토조성을 위해 「깨끗한 한 표 행사하기」운동도 벌인다. 지난해 서울에서 첫 남북여성교류를 성사시킨 한국여성단체연합(회장 이효재)은 올해엔 평양에서 열릴 예정인 제3차「아시아의 평화와 여성의 역활」토론회에 참석,남북여성교류를 정례화시킬 계획이다.그밖에 성폭력대책사업을 올 중점사업으로 정하고 성폭럭실태조사 및 성폭력 특별법제정을 위한 사회여론형성을 위해 앞장설 방침이다. 한편 한국여성개발원(원장 김윤덕)은 한국여성관계법령집편찬과 북한여성의 지위에 관한 연구등 6개 기존연구사업외에 ▲성차별적 고용분쟁처리에 관한 연구 ▲환경과 여성의 역활 ▲성폭행 예방과 대책에 관한 연구등 6개주제를 새로 설정해 여성문제에 관한 연구사업을 펼친다. 그외 교육 행정 보건 지역활동 상담 경제분야의 여성지도자 6백여명과 지역지도자 7백50명을 대상으로한 지도자 연수,저소득층 여성을 대상으로한 컴퓨터교육,여성자원활동을 위한 전문적인 재교육 실시,여성전문도서실 자료관리전산화작업 착수등의 사업계획을 마련했다.
  • 중국,대대적 하방운동 다시 시작

    ◎소 정변에 위기감… 전역에 간부 파견/신강 자치구선1급 전시비상체제 돌입 【홍콩=최두삼특파원】 소련정변으로 위기의식에 사로잡힌 중국 공산당은 60년대 문화혁명때처럼 도시의 주요 간부들을 시골에 내려보내 농민사상교육을 전담케 하는 이른바 하방운동을 다시 시작하는등 대대적인 이념무장강화 캠페인에 들어갔다고 홍콩의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지가 28일 보도했다. 이 하방운동으로 중국 전역에 걸쳐 수천명의 각급 기관간부들이 본래의 직무를 중단한채 약5∼6개월동안 벽촌에 배치돼 농민들을 대상으로 사회주의 우월성을 교육시키고 당세포조직을 강화해 나갈것이라고 이 신문은 전했다. 이밖에도 중공당은 주민들의 이념강화를 위해 ▲6·4천안문사태이후 중지해온 서방과의 이념교류를 앞으로 2년간 추가 중단 ▲의사들의 농촌 무료봉사활동 전개 ▲모택동선집등 「양서」읽기운동 전개 ▲정규교육기관에서 강택민총서기의 당창건 70주년기념 연설문과 서방측의 화평연변(평화적 수단에 의한 체제전복공작)에 대한 토론 활성화 등을 추진할계획이다. 【도쿄 연합】 중국인민해방군은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이 복귀한 지난 21일부터 신강위구르 자치구에서 제1급전시비상 체제에 들어갔다고 일 요미우리신문이 28일 북경 소식통을 인용,보도했다. 이는 소련 각공화국의 독립이 중국의 민족 독립운동에 파급되는 것을 중국정부가 강하게 우려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이 신문은 풀이했다. 신섭은 원래 위구르인이 압도적인 다수를 점하고 있었으나 신중국이 성립된 후 한주의 이주가 계속돼 현재는 자치구 총인구 1천5백만명 가운데 45%를 한족이 차지하고 있다.
  • 이념 자유화/경제 사유화/정치 다원화/군대 국유화

    ◎중국,「신4화」 배격운동/전국에 공작소조… 「물든 당원」 엄벌 【홍콩=최두삼특파원】 중국공산당은 지난 10여년간에 걸친 개혁·개방정책으로 생겨나고 있는 ▲이념의 자유화 ▲경제의 사유화 ▲정치적 다원화 ▲군대의 국유화등 이른바 「신4화」가 중국의 사회주의체제를 위협하는 당면과제로 인식,이를 극복하기 위해 각급 당조직내에 강력한 권한을 가진 공작소조(실무대책반)을 설치,운영키로 했다고 홍콩 스탠더드지가 12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북경소식통을 인용,이같은 「신4화」움직임이 자본주의로 나아가려는 위험한 생각으로 현 사회주의 중국정권을 위협하는 최대의 당면과제로 간주,철저히 배척해 나가기로 했다고 전했다. 스탠더드지는 중국지도부가 소련의 자본주의화에 자극받아 지난7월초 「신4화」방지를 위한 공작소조결성을 결정했으며 그 범위는 중앙당으로부터 각 지역당과 말단의 공장 당조직까지 포함시키기로 했다고 밝혔다. 스탠더드지가 인용한 소식통은 이 공작소조의 기능 및 역할은 당정치국상무위원 교석이 서기직을 맡아이끌어 가고 있는 막강한 당중앙기율검사위원회의 기능 및 역할과 유사한 것이나 그 주임무가 당내 「신4화」추세의 확산을 저지하는 일이라고 밝혔다. 이 소식통은 이에따라 「신4화」의 영향을 받고 있는 것으로 판명된 당원들은 각급 공작소조의 엄중한 처분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소식통은 이 공작소조는 또한 「사회주의 정치교육」을 통해 당의 세포조직을 강화하고 당원들에게 중국식 사회주의에 대한 신념을 고취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소식통은 이어 중국지도부는 소련을 자본주의 경향으로 돌아서게 한 주원인도 자산계급 자유화,경제시장화,정치다원화 및 군대의 국유화 등 「4화」풍조 때문인 것으로 믿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소식통은 당내의 이같은 결정과 병행하여 당중앙통일전선공작부는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의 지도노선을 강력히 비난하는 내부문서를 8개 민주당파에 회람시켰다고 밝혔다. ◎“사회주의체제 고수” 결의 표명/“개방 틈타 들어온 「자본주의 불순물」”/당내 권력투쟁서 보수파 득세 입증 중국공산당이 최근「신4화」노선을 적극 배격해나가기로 결정한 것은 소련·동구등 전세계의 탈공산화 움직임에 아랑곳없이 현 사회주의체제를 기필코 수호해 나가겠다는 결의의 표명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중국은 지난 10여년간에 걸쳐 등소평이 주도한 4개 현대화(경제·농업·국방·과학기술)와 함께 개혁·개방정책을 적극 추진해 오는 과정에서 사회 곳곳에 자본주의적 요소가 적잖이 스며들었다고 보고 있으며 그 대표적인 사건을 6·4천안문사태로 간주하고 있다. 등소평은 당초 경제부문에만 개방·개혁정책을 적용해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을 일부 도입함으로써 국가 현대화를 달성하자는 생각이었다.그러나 정치부문에까지 개혁·개방물결이 스며들어 급기야는 천안문사태등 체제를 위협하는 수준에까지 이르자 이른바 4항원칙(공산당 영도,사회주의노선,프롤레타리아독재,마르크스­레닌주의 모택동사상)을 줄곧 강조해왔다. 이같은 4원칙을 엄격히 지켜오고 있음에도 국외에서는 탈공산화바람이 거세게 불고 국내에서도 자유화불씨가 사그러들지 않자 『이번에 「신4화」배격운동을 펼치게 된 것으로 볼수 있다. 이같은 사실은 당내 보수파와 개혁파간의 권력투쟁에서 보수파가 확고한 우위를 차지했음을 말해주고 있다.천안문사태 직후 주도권을 잃은 개혁파는 올해들어 추가화·주용기등 개혁파의 부총리 등용,조자양 심복들의 정계복귀,개혁위주의 8차5개년계획채택 등으로 다시 보수파를 압도하는 듯했으나 지난7월1일 당창건70주년을 계기로 기세가 꺾이고 말았다.당시 강택민당총서기는 기념사에서 『중국공산당은 결코 권력독점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자본주의식 경제를 추진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등 보수파의 완전승리를 선언하는 듯한 연설을 했다. 개혁파를 이끌어온 등소평 역시 사회주의체제 위협에 대해서는 보수파와 생각을 같이하고 있다.그는 최근 『오늘날 사회주의 운명은 십자로에 서있다.중국공산당의 운명도 마찬가지다』고 말했다.다만 그는 공산당을 살리기 위해서는 경제를 현대화해야 하고 그러자면 개방·개혁이 절실하다고 보는 반면 보수파에서는 개혁·개방보다는 사회주의 방식으로 경제건설을추진해나가자는 것이다. 「신4화」배격운동으로 중국의 개혁정책은 브레이크가 걸린 셈이다.그렇다고 현재와 같은 대외지향적 경제정책이 또다시 자력경생방식으로 되돌아갈 것 같지는 않다.그러기에는 이미 때가 늦었다.중국경제는 이미 국제경제의 한 부분으로 자리를 잡고 있어서 과거로의 회귀는 중국경제의 붕괴를 가져올 수도 있다. 따라서 앞으로 당분간은 적어도 동구사회주의권 붕괴의 도미노위협이 사라질때까지는 집안단속을 철저히 할 것이지만 멀지않아 경제가 제대로 풀리지 않으면 다시 개혁파의 목소리가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 “북경 「보­혁 갈등」 심상찮다”/올 「북대하회의」 취소의 저변

    ◎당 인사·정책등 결정해온 관례 깨져/조자양 복귀·이붕 임기 대립 첨예화/중국통신,「신흑묘백묘론」 거론… “등­강 체제 지지” 개혁·개방노선을 둘러싼 중국 지도층내 강경보수파와 온건파간의 갈등이 최근들어 심각한 국면에 접어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3일자 중국통신(CNS)은 당내파벌문제를 거론하면서 공개적으로 등소평과 그 추종세력을 지지토록 촉구했다.관영통신이 당내 파벌문제를 거론하고 어느 한 파벌의 지지를 공개적으로 내세운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이례적 파벌문제 거론 이 통신은 지난해말부터 발표된 일련의 진보적인 정책들이 올해 86세인 등의 조종에 의해 성안됐음을 지적하면서 최근 그의 어록도 소개했다. 『우리의 정책과 실질 업무수행이 옳고 좋은 것인지는 생산력 향상에 유익한가 여부에 달려있다』 중국통신은 이 어록을 제2의 「흑묘백묘론」이라고 칭했다. 흑묘백묘론은 『검은 고양이든 흰고양이든 쥐를 잘 잡는게 좋은 고양이다』는 말로 등소평의 간판격인 어록이다. 중국통신은 등이 제2의 흑묘백묘론에따라 개혁정책을 과감히 추진하려 해도 당과 정부내 보수세력의 저항 때문에 심기가 대단히 불편하다고 전했다. 이와함께 이 통신은 등소평이 후계자로 키우고 있는 강택민 당총서기가 이제 기반을 공고히 함에 따라 강을 정점으로한 제3세대에로의 권력이양이 결실을 맺을수 있게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같은 보도가 나오기 하루 전날인 지난 2일 이붕총리는 중동6개국 순방에 앞선 기자회견에서 『올 여름에는 중국지도자들의 북대하회의가 없을것』이라고 말해 중국 관측통들을 놀라게 했다. ○이붕총리 발표에 “발칵” 중국의 최고위 원로들과 당지도자들은 지난 10년동안 매년 여름이면 하계휴양지인 북대하에서 인사개편이나 정책노선등 중대문제를 결정짓는 이른바 「하도회의」를 열어왔으며 올해도 7월쯤 이같은 회의를 열고 내년에 있을 제14차 당대회(전국대표대회)를 앞두고 당조직과 인사개편문제 등을 논의할 것으로 전해졌었다.중국소식통들은 특히 현안이 되고 있는 조자양전총서기의 장래문제,이붕총리의 임기연장문제,보수세력의 온상인 당중앙고문위원회(주석 진운)의 폐지문제 등이 북대하회의에서 논의될 것이라고 전망해왔었다. 이같은 중대한 현안이 있음에도 해마다 열던 북대하회의가 열리지 않은데 대해 관측통들은 놀라움을 표시하면서 북경의 정치기류가 한가롭게 휴양지에 당수뇌부 등을 불러들일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게 아니겠느냐고 풀이했다. ○최근 개혁파 기세 꺾여 특히 중국관측통들은 연초부터 주용기 상해시장과 추가화국가계획위원회주임등 개혁파가 부총리로 승진기용되고 호계립·염명부·예행문등 조자양의 심복으로 조와 함께 6·4천안문사태때 권좌에서 물러났던 인물들이 일제히 차관급으로 재기용되는등 개혁파의 승승장구를 지적하면서 그러나 7월1일의 공산당 창당 70주년을 전후해서 이같은 개혁파의 기세가 꺾인 것으로 보고 있다.지난 창당기념일에는 「제2단계의 개혁 개방정책」이 천명될 것으로 전망됐으나 아무런 발표가 없었을뿐 아니라 강택민총서기는 기념사에서 오히려 종전보다 더 강경하고 보수적인 어조로 「사회주의의 고수」를 천명했다. ○보수파,「8·5계획」 반대 이같은 상황으로 미루어 보아 현재의 중국정정은 등소평을 비롯한 강택민·이서환(정치국 상무위원)·주용기(부총리)등 온건파가 올해부터 시작되는 「8·5계획」(8차5개년계획)을 맞아 보다 적극적으로 개혁·개방정책을 추진하면서 경제건설에 매진하자는데 반해 진운·양상곤(국가주석)·이붕등 보수강경파들은 6·4천안문사태이후 실시해온 「정리정돈」의 조정기를 좀더 연장하면서 정치적 안정을 다지고 외부세계의 탈공산주의바람도 막아내야한다고 맞서 갈등과 마찰이 심화되고 있는 것으로 점쳐 볼 수 있다.
  • “중국공산당 독재 고수/사회주의식 경제개혁 지속 추진”

    ◎강택민 총서기,창당70돌 연설 【북경 UPI 로이터 연합】 중국당총서기 강택민은 1일 세계사회주의의 쇠퇴는 일시적 현상에 불과한 것이라면서 중국은 결코 공산당의 권력독점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은 이날 중국공산당 창당 70주년을 맞아 북경의 인민대회당에서 행한 기념연설에서 중국은 「공산주의 독재기능」을 소중히 여기고 있다고 말하고 『오늘날 세계사회주의가 명분면에서 다소 심각한 쇠퇴를 경험하고 있으나 이는 역사상 일시적 현상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중국에서 서구식 민주주의를 부르짖는 것은 공산당의 지배를 종식시키자는 것과 동일한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우리 인민 전체는 결코 이같은 일이 일어나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며 인민의 민주적 독재는 약화되거나 포기돼서도 안될것』이라고 말했다. 강은 2시간 가까이 계속된 이날 연설에서 의례적인 중국의 시장경제개혁의지를 거듭 천명하면서도 『중국은 먼저 국가소유의 사회주의경제를 통합·확대해 나가야하며 결코 자본주의경제를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중국공산당은 이날 관영언론매체들을 동원해 통상적으로 중국인민해방군을 지칭하는 「철의 대장벽」이라는 용어를 사용,서구식민주주의의 침투를 저지하기 위해 「철의 대장벽」을 굳건히 건설해 나갈 것임을 다짐했다.
  • 개혁바람에 고심하는 중국공산당/창당 70돌… 오늘의 위상

    ◎경제비능률 심화·제도적 부패등 만연/체제고수 속 “정치개혁” 국민욕구 외면 7월1일로 창당 70주년을 맞은 중국공산당이 나라 안팎에서 불어오는 심한 역풍에 시달리고 있다. 밖에서는 소련·동구의 탈공산주의 바람이 5천만 당원들의 사기를 꺾고 있는 데다 안에서도 6·4 천안문사태의 망령 때문에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고희를 기념하는 학술대회나 각종 집회에서 예외없이 「당의 위대함」을 애써 강조하고 있으나 뜨거운 호응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오히려 차가운 시선을 보내거나 아니면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게 일반 주민들의 표정이다. 중국공산당이 오늘날 이처럼 사면초가에 빠진 것은 물론 마르크스·레닌주의 사상의 비현실성에서 찾을 수 있다. 볼셰비키혁명 이래 지금까지 세계 수십개국에서 실험해본 결과 이 사상은 인간의 자유를 억압할 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경제의 비능률이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등소평을 정점으로 한 현 집권층이 경제에 관한 한 개혁·개방정책을 추진하면서도 정치개혁에는 극구 반대하고 있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등은 지난 79년부터 이른바 4개의 현대화(농업·공업·국방·과학기술)를 캐치플레이즈로 내세운 후 경제분야의 개혁·개방에 박차를 가해왔다. 그래서 지난 10년간 1인당 국민소득을 2배로 끌어올려 이제는 먹는 문제와 입는 문제는 거의 해결했다고 자랑하고 있다. 이붕 총리도 최근 중국은 최빈곤상태는 벗어났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정치개혁이다. 정치에 관한 한 4개 항의 원칙(사회주의·프롤레타리아 독재·공산당지도·마르크스 레닌주의와 모택동 사상 견지)을 굳게 고수,전혀 양보의 기색이 없다. 동구에서처럼 다당제를 채택,서로 다른 이념을 가진 정당 중에서 주민들이 원하는 정당을 고를 수 있는 선택의 자유란 현재로선 상상할 수도 없다. 그보다는 강도가 훨씬 낮은 공산당내의 개혁을 촉구할 권한도 없다. 고위 당관료가 어떤 부정부패를 저지르든 이를 제지하고 규탄할 통로가 마련돼 있지 않다. 그래서 옳든 그르든 당의 지시에 순종할 수밖에 없다. 지난 89년의 6·4 천안문사태도 이같은 정치제도의개혁욕구 때문에 발생했었다. 당시 학생과 시민들은 좀더 많은 자유와 민주주의 그리고 보다 성숙된 시장경제체제를 요구했던 것이다. 이 당시 좌절을 맛보았던 세력은 이제 지하에서 숨을 죽인 채 등소평 사후를 기다리고 있다. 또 다른 욕구분출을 기다리는 휴화산인 셈이다. 이같은 휴화산이 활화산으로 폭발하는 걸 막기 위해서는 정치분야의 개혁이 필요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동구와 같은 다당제까지는 못 가더라도 최소한 당관리의 부정부패나 과오 정도는 인민의 힘으로 시정해 나갈 수 있는 하의상달의 의사전달체계가 마련돼야 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같은 개혁 역시 현정치체제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는 한도내에서만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등의 사후 급진개혁파가 집권했을 경우 좀더 달라질 수는 있을 것이다. 1949년 공산당 집권 이후 통치형태는 누가 실권을 장악하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져 왔다. 모택동을 비롯한 주은래 임표 등을 거쳐 양상곤 진운 이붕에 이르기까지 이념 중시의 정파가 집권했을 경우와 유소기 등소평 호요방 조자양등 실용주의자들이 집권했을 경우 통치양상은 크게 달랐다. 이념파 집권시대는 대약진운동(58∼60년)으로 수백만 명의 아사자가 발생했고 문화대혁명(66∼70년) 때에는 실용주의파의 대거숙청은 물론 1천6백만명에 달하는 청년 학생과 지식인들을 시골로 내려보내(상산하향운동) 대학기능을 마비시키기도 했었다. 그러나 관용주의자들이 집권해서는 착실한 경제성장을 통해 인민의 생활을 안정시키고 보다 많은 자유를 허용해왔다. 그러나 실용주의자일지라도 자기들이 권좌에서 쫓겨날지도 모르는 동구와 같은 혁명적 사태는 원치 않고 있다. 동구화의 단계에 접어들기 위해서는 주민들의 의식이 좀더 깨우쳐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기 위해서는 좀더 기다리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중국 공산당은 1921년 7월 어느날 50여 명의 당원들이 모여 창당했으며 정확한 날짜를 몰라 7월1일을 창당일로 정해 기념해오고 있다.
  • 강택민 중대연설/내일 창당기념식서

    【홍콩 연합】 중국 공산당 총서기 강택민은 공산당 창당 70주년 기념일 전야인 오는 30일 중국 사회주의의 장래에 관한 전국 연설을 통해 새로운 단계의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할 것이라고 홍콩의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지가 28일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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