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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 69주년 광복절] “한·일 정상회담 개최 필요… 과거사-외교문제 분리 대응을”

    [오늘 69주년 광복절] “한·일 정상회담 개최 필요… 과거사-외교문제 분리 대응을”

    한반도는 2015년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내년은 2차 세계대전 종전으로 벼락같이 왔던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배 해방과 한반도 분단의 비극이 시작된 지 70주년이 되는 역사적 시점이다. 가해와 피해의 역사를 공유하고 있는 한국과 일본은 1965년 국교 정상화로 관계 복원의 반세기를 맞이하고 있지만 양국 간 과거사 문제와 이를 둘러싼 갈등은 청산되지 않고 있다. 70년 전만 해도 세계의 전략적 중심선에서 비켜나 있던 한반도는 이제 글로벌 경제의 주요 축이자 동북아 각국의 이해가 교차하는 전략적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서울신문은 14일 광복 69주년을 앞두고 서희외교포럼(대표 장철균 전 스위스 대사)과 공동으로 ‘한반도 해방과 분단 그리고 극복해야 할 과제’라는 주제의 좌담을 마련했다. 장 대표, 신복룡 건국대 석좌교수, 여인곤 통일연구원 명예연구위원, 도시환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최동주 숙명여대 교수 등 참석자들은 일본군 위안부와 강제 징용 등 역사적 과오에 대한 반성과 시정 조치는 최근까지도 전 세계에서 확인되고 있는 ‘인류의 시대정신’의 발로로 봐야 한다는 데 공감했다. 아베 신조 총리가 추구하는 일본의 우경화와 군국주의는 결코 시대정신이 될 수 없으며,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한·일 양국 관계에 대해서는 과거사와 외교 문제의 분리 대응을 주문했고, 양국 정상회담 개최를 통해 정상화시켜야 한다는 공동의 인식이 컸다. 좌담에서는 한반도 분단의 일차적 책임은 김일성 주석에게 있으며, 향후 그에게 6·25 전쟁 피해뿐 아니라 통일을 지체시킨 역사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견해가 적지 않았다. 정권 교체 때마다 좌우로 흔들리는 우리의 ‘시계추 대북 정책’이 안정적인 남북관계에 부정적으로 작용해 왔다는 점도 제기됐다. →아베 정부 출범 후 한·일관계의 악화 문제는 무엇인가. -도시환 위원(도 위원): 일본군 위안부와 강제 징용 등 현재 진행형의 과거사 문제는 일본의 불법적인 강점에 의한 식민주의 범죄로 반인도적 범죄 행위다. 국제사회의 철학이 인권 등 인류보편적 가치를 중시하고 있고, 2001년 서구 노예제도와 식민지 지배의 반인도적 범죄를 인정한 더반선언에 이어 아주 최근인 지난해 6월과 9월에는 영국과 네덜란드가 각각 식민통치를 사죄하고 배상을 하는 등 역사적 과오에 대한 시정 조치는 21세기의 시대정신이 됐다. -최동주 교수(최 교수): 군 위안부 문제가 국제노동기구(ILO)의 의제로 제시됐다는 건 중요한 문제다. 위안부를 강제 노동의 관점에서 접근한 것이다. 일본은 1932년 11월 강제노동협약을 비준했고, 1944년 11월까지 효력이 유지됐다.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ILO에서 의제로 논의해야 하지만 일본 정부의 강력한 로비로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한국 정부가 ILO에서 위안부 문제를 의제화하는 데 성공하지 못하고 있는 데는 우리 스스로가 적극적인 외교 활동을 하지 못한 이유도 있다. →아베 정부의 독도 영유권 주장이 강화되고 있다. -도 위원: 일본은 1905년 러일전쟁을 통해 독도를 자국 영토로 침탈했다.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카이로 선언(1943년)과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1951년)을 통해 독도는 일본의 행정적 지배 범위에서 제외됐다.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건 한반도에 대한 점령지 권리 즉, 과거 식민지 영토권을 주장하는 것으로 한국의 독립을 부인하는 행위나 다름없다. -신복룡 교수(신 교수): 독도는 일본 국익에 치명적이지 않다. 절박하지도 않으면서 ‘정치적 제스처’만 하고 있다. 한 일본 학자는 “한국은 독도가 한국 영토를 입증하는 일본 측 자료를 갖고 있다고 하지만 우리도 일본 영토임을 입증하는 한국 측 자료를 확보하고 있다”고 말한다. 문제는 이 말이 사실이라는 데 있다. 독도 문제는 한·일 양국 학계 간의 전쟁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과 한반도 분단에 대한 우리 안의 인식 차이도 커 우려된다. -도 위원: 식민지근대화론의 핵심은 일제강점기의 한국 경제가 크게 성장했고, 해방 이후 산업화의 토대가 됐다는 주장이다. 매우 자의적 해석으로 조선 후기의 위기도 과장했을 뿐 아니라 식민 체제에서 우리 경제는 대단히 불평등했다. 생산수단은 소수 일본인이 장악했고, 조선인의 인적 자본 형상은 제한적이었다. -여인곤 위원(여 위원): 한반도의 학교 설립과 신문 창간, 전기·전차·철도 개통, 항만 건설 등 한국의 근대화는 일제의 식민 지배 이전인 19세기 말부터 서양의 투자나 자생적으로 시작됐다. 일제가 경인선, 경부선, 경의선, 경원선 등 철도를 부설하고 항만 등을 건설한 건 한국의 근대화가 아니라 식량과 자원 수탈, 그리고 만주와 중국 침략의 교두보 확보 차원이었다. -신 교수: 한국사학사의 기본적인 함정은 망국에 대한 자기 성찰과 회오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망국의 일차적 책임은 우리에게 있지만 식민지근대화론의 경우 그 용어 자체가 잘못됐다. 친일 사학이 아닌 바에야 식민지 시대가 한국을 근대화시켰다고 말하는 학자는 없다. 다만 식민지 시대를 거쳐 한국의 산업화가 진행되었다고 말할 뿐이다. -여 위원: 해방 후 한반도의 38선 분할은 일본군 무장해제를 목적으로 미국 트루먼 대통령이 제안하고, 소련 스탈린이 동의해 획정된 미·소 양국의 합작품으로 봐야 한다. 하지만 분단의 책임은 김일성 주석과 소련에 있다. -최 교수: 38선은 미국 입장에서 소련의 일본 군정 참여를 저지하기 위해 일본 본토와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소련군 진격을 멈추게 하려는 의도가 작용했다. 결국 38선이 한반도를 지리적, 이념적으로 둘로 나누고 전쟁의 불씨가 된 것으로 평가한다. -신 교수: 김일성 주석은 무력으로 통일할 수 있다고 오판하고 개전한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그의 오판으로 300만명의 인명 피해가 발생했고, 통일은 70년이 지나도록 미뤄지는 어리석은 결과마저 초래됐다. 나는 김 주석에게 6·25전쟁의 일차적 책임뿐 아니라 분단과 통일을 지체시킨 책임도 크게 물어야 한다고 본다. →남북관계와 북핵, 한·일 갈등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여 위원: 북핵 위기가 20년이 됐지만 해결 전망이 매우 어둡다. 박근혜 정부가 북핵 폐기를 목표로 하되 우선 차선책으로 북핵 개발부터 동결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북한의 천안함 폭침 사과 및 핵 동결과 우리의 5·24 대북 조치 해제를 패키지로 다뤄야 한다. -장철균 대표: 남북관계의 안정적 관리가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정권 교체 때마다 대북 정책이 좌우로 흔들리는 ‘시계추 현상’과 이로 인한 ‘안보 공회전’이 반복되지 않는 게 중요하다. 대북 정책은 정권에 상관없이 일관적이어야 한다. -도 위원: 아베 총리가 지난해 ‘침략의 정의’를 부정한 데 이어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려는 건 2차 세계대전 이전의 군국주의 부활의 궤적으로 봐야 한다. 아베 총리의 의도를 경계하며 주시해야 한다. -신 교수: 일본의 우경화는 시대정신이 아니다. 오래 지속될 수 없다. 오히려 오랜 경제 침체와 중국의 부상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한 우경화가 발현되는 측면으로 이해하고, 지혜롭게 대일 접근을 모색해야 한다. -최 교수: 중장기적으로 볼 때 한반도 문제에 대한 중국과 일본의 영향력이 더욱 확대될 개연성이 적지 않다고 본다. 우리가 대일 외교를 정상회담 개최 등을 통해 정상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 -여 위원: 현재와 같은 과거사와 외교 문제를 연계하는 방식으로는 미래지향적인 관계로 갈 수가 없다. 두 문제를 분리해야 한다.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과 관련해서는 자위대의 개입 조건과 범위를 반드시 우리 정부가 미국과도 미리 협의해야 한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북한 김정은 체제 확고하지 못해…잦은 인사·주민 통제로 사회 불안”

    청와대가 대외에 공개되는 책자에 북한 김정은 체제의 불확실성이 지속되고 있다고 평가해 주목된다. 청와대 국가안보실은 13일 박근혜 정부의 국가안보전략지침을 밝힌 ‘희망의 새 시대 국가안보전략’ 책자를 통해 “최고지도자인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권위가 확고하게 정립되지 못했다”며 “잦은 인사 교체와 주민 통제에 따른 사회 저변의 불안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국가안보실은 북한 주민들의 불만이 증대되고 있다고 진단하고 김정은 체제에 대한 주민들의 기대감이 점차 약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청와대가 북 체제의 불안정성을 명시적으로 언급하며 급변 사태의 가능성을 시사한 건 이례적이다. 국가안보전략지침은 역대 정부 중 노무현 정부가 2004년 처음 수립한 후 이명박 정부도 출범 후 별도의 지침을 제정한 바 있다. 정부 관계자는 “일반에 대한 공개를 전제로 한 책자인 만큼 대외 기밀 사항을 뺀 기본적인 안보 정책을 설명한 것”이라고 말했다. 국가안보실은 남북 간 여건 성숙을 전제로 북한과의 평화 체제 구축 문제도 논의할 수 있다고 밝혀 관심을 모았다. 현 정전 체제의 평화 체제 전환은 노무현 정부 때 구체화된 사안이다. 국가안보실은 적절한 시점에 군사적 신뢰 구축과 군비 통제를 위한 남북 간 협의도 추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가안보실이 평화 체제 구축을 언급한 건 최근 통일준비위원회 발족과 드레스덴 구상의 후속 액션 착수 등의 기류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남북 관계 진전에 따라 상업투자 허용 등 경협 확대 계획도 밝혀 향후 5·24 대북제재 조치의 완화 혹은 해제 가능성도 열어 놨다. 한편 정종욱 통일준비위원회 민간 부위원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북한 내부 사정을 볼 때 김 제1위원장이 들어오면서 새로운 지도층이 나와 남북 관계를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할 필요를 갖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분단 70주년인 내년까지 통일 청사진을 담은 구체적인 통일 비전을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중남미 출장 日총리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5일부터 새달 4일까지 11일간의 일정으로 중남미 5개국을 방문한다. ‘자원 외교’ ‘중국 견제’와 함께 오랜 숙원인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출의 포석도 놓으려는 ‘일석삼조’의 효과를 노리고 있다. 아베 총리는 멕시코를 시작으로 트리니다드 토바고, 콜롬비아, 칠레, 브라질을 방문해 각국 정상과 회담을 한다. 일본 총리가 중남미를 순방하는 것은 2004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 이후 10년 만이다. 특히 중남미는 아베 총리의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가 1959년 일본 총리로는 처음으로 방문한 곳이라 아베 총리에게는 의미가 남다르다. 산케이신문은 23일 “아베 총리가 외할아버지처럼 경제정책을 중심으로 관계 강화를 꾀할 방침”이라고 보도했다. 중남미에 대한 경제 지원 확충을 통해 영향력을 확대하는 중국을 견제하려는 목적도 있지만 더 큰 목적은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을 위한 발판 놓기다. 일본은 상임이사국 진출을 희망하는 브라질과 함께 기존 5개국인 상임이사국을 총 11개국으로 늘리는 방안에 동의해 유엔 창설 70주년을 맞이하는 내년에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안보리 개편안을 제안할 방침이라고 마이니치신문이 전했다. 도쿄 김민희 특파원 haru@seoul.co.kr
  • [시론] 시진핑 방한의 외교적 의미/주재우 경희대 교수·브루킹스연구소 방문학자

    [시론] 시진핑 방한의 외교적 의미/주재우 경희대 교수·브루킹스연구소 방문학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지난 3~4일 방한은 한·중 외교사에 이정표를 남긴 고무적인 외교 행보였다. 주지하듯 이번 방문은 중국 최고 지도자가 먼저 북한을 방문하고 한국을 방문하는 중국의 한반도외교의 ‘전통’을 깼다. 일각에서는 이의 지나친 의미부여로 중국이 곤란해질 수 있고 우리는 자칫 미·중 양 대국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당할 수 있다고 자제를 촉구했다. 특히 중국이 일본과의 과거사문제 갈등으로 미·일로부터 우리를 끌어내기 위한 포석에 놀아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러나 우리의 국익과 입장이 분명하고 명확하면 이런 우려가 현실화되기는 어렵다. 시 주석의 방한은 한·중 양국의 지정학적, 지경학적, 전략적 이익에 근간한 자발적 결정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시 주석은 한국을 먼저 방문함으로써 중국의 한반도 외교에서 ‘이념 중심’의 외교적 족쇄를 푸는 데 성공했다. 중국은 개혁개방 이후 국익중심 외교, 선린우호 정책과 실용외교를 꾀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중 수교 이후에도 중국은 북한 요인 때문에 유독 한반도 외교에서만큼은 국익이 아닌 이념이 지배했다. 지금까지 중국의 역대 최고 지도자와 후계자들은 이 전통을 지켰고 시 주석 역시 후계자 당시인 2005년과 2008년에 이를 실천했다. 그랬던 그가 이번 방한을 계기로 중국의 외교목표와 국익이 실질적으로 한반도 외교에 투영되는 계기를 스스로 창출했다. 이로써 중국의 한반도 외교에서 ‘북한 요소(factor)’의 중요성이 상당 부분 평가절하됐음이 방증됐다. 이는 중국의 대북정책의 기조 변화를 의미하지 않으나 한반도 외교를 보다 실용주의적으로 개진하겠다는 의지를 노정했다. 중국의 변화된 한반도 외교 접근법을 어떠한 국익 관점에서 이해해야 하는가. 중국의 북한 요소에 대한 평가절하는 우리와의 공조 필요성 인식이 저변에 깔려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는 박근혜 대통령의 드레스덴선언에 대한 지지와 한반도에서 핵무기 개발의 확고한 반대 입장에서 드러났다. 북핵 관련 중국의 입장이 작년 6월 박 대통령의 방중 때 ‘유관 핵무기 개발’에 대한 위협 인식을 공유하던 수준에서 ‘핵무기 개발’에 대한 확고한 반대 입장으로 더욱 강경해진 사실에서도 입증됐다. 중국은 우리와 일본의 과거사문제를 공동 대응하길 강력히 희망했다. 그 단초로 우리의 위안부문제 공동연구에 합의했다. 우리의 국익은 미·일과 대립각을 세우기 위한 것이 아니고 진실을 밝히기 위한 중국과의 공조에 있다. 안보적 함의를 내포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중국이 제안한 내년의 전승 70주년 행사에 반드시 응할 필요가 없다. 중국에는 전승국으로서 이 행사가 의미가 있겠다. 그러나 우리의 광복과는 거의 무관한 것이다. 경제협력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도 우리의 국익관점에서 보면 미국과의 갈등요소가 적다. 연말까지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의 타결 노력에 합의했고 통화 직거래 시장도 구축하기로 했다. 통화 직거래 시장은 우리와 중국의 대달러 통화가치가 날로 절상되고 있는 가운데 우리의 무역경쟁력을 보호하는 장치가 될 것이다. 우리는 또한 중국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구상을 적극 검토하기로 했다. 이 구상은 미·일 주도의 아시아개발은행(ADB) 견제용이 아니다. 후자가 개도국의 경제개발사업 중심이기 때문이다. 대신 동북아지역의 경제통합, 통일 한반도와 동북아 실크로드 등 한·중 양국의 ‘꿈’을 위한 인프라 구축 사업의 재원을 제공할 것이다. 이번 시 주석의 방한으로 중국의 비정상적인 한반도 외교가 정상화되는 계기로 연출됐다. 명확한 국익관에 입각한 중국과의 정상적인 국익중심의 협력은 한·미동맹과 같은 우리의 상수적인 국익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며, 중국도 바라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미·중 간 경쟁이 악화돼 우리는 물론 중국 내에서의 국익에도 이롭지 않기 때문이다. 명확한 국익관은 우리가 미·중 양국을 날개 삼아 날아오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 “시진핑, 주변국과 단결 日고립화 의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7일 루거우차오(蘆溝橋) 사변 및 인민전면항전 77주년을 맞아 일제의 군국주의와 일본 정부의 역사인식을 작심하고 비판한 것은 중국의 대일 압박이 최고 단계로 격상됐음을 의미한다. 중국중앙(CC)TV 등 주요 언론들은 이날 시 주석의 연설을 생중계하면서 “대형 기념일을 보통 10년 단위를 기준으로 크게 치르는 관행을 깨고 지도자가 77주년을 기해 직접 중국인민항전기념관을 찾아 연설한 것은 중국인과 세계인이 단결해 세계 평화를 지키자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영토, 역사 등의 문제로 일본과 충돌 중인 중국이 역사 문제를 고리로 주변국들과 단결해 일본을 고립시키겠다는 의지를 과시했다는 것이다. 시 주석은 앞서 한국, 러시아 등을 찾아 내년 반(反) 파시스트전쟁 70주년 행사를 함께 치르자고 제안한 바 있다. 시 주석의 연설이 끝난 뒤 참석자들은 일제히 “(세계인은) 역사를 기억해 평화를 수호하자. (중국인은) 국치(國恥)를 기억해 중국 꿈을 이루자”고 큰소리로 복창했다. 런민(人民)대 국제관계학원 진찬룽(金燦榮) 교수는 “시 주석의 발언은 중국인들에게 역사를 잊어선 안 된다고 당부하며 단결을 호소하는 대내용이면서 동시에 일본에 대한 경고는 물론, 일본의 집단자위권 행사 용인 결정을 지지하는 미국과 북·일회담을 계기로 부쩍 일본과 밀착하는 북한에 대한 압박의 의미도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은 일본과 미국이 ‘중국 위협론’을 내세워 일본의 집단자위권 용인을 결정했고, 미·일 동맹을 강화해 중국을 억제하려 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다만 시 주석의 발언이 일본을 구체적으로 거명하지 않는 식으로 여지를 남겼다는 점에서 향후 중·일 간 갈등이 직접적인 충돌 국면으로 악화되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도 있다. 중국은 대신 일제의 침략 만행을 국제 사회에 부각시켜 일본을 고립시킨다는 복안이다. 리커창(李克强) 총리가 지난 6일 방중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를 만나 과거사 인식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일본을 겨냥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중국은 이 밖에도 인민전면항전 77주년을 맞아 일본이 중국에 정식으로 항복을 선언한 20분짜리 풀 동영상 자료를 이날 공개했다. 일제의 중국 침략을 상징하는 난징(南京)대학살기념관의 공공 추모 사이트도 개설했다. 중국은 1972년 중·일 국교 정상화 뒤 양국 관계를 고려해 일제의 역사 만행에 대한 언급을 피해왔으나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국유화 분쟁을 기점으로 양국 갈등이 심화된 뒤 일제 침략 만행을 부각시키며 이웃 국들과의 공조를 시도하고 있다.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 시체더미 사진 옆 “中·韓, 힘 합쳐 일제 타도하자” 글귀 눈길

    시체더미 사진 옆 “中·韓, 힘 합쳐 일제 타도하자” 글귀 눈길

    “일제의 중국 침략 만행을 결코 잊지 말자.” 7일은 중·일 전쟁이 본격화한 ‘루거우차오(蘆溝橋) 사변일’과 일제 침략에 맞서 항일전쟁을 선포한 ‘7·7중국인민전면항전기념일’ 77주년이다. 중국에선 ‘항일 정신을 기르자’는 민족주의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6일 찾은 베이징 루거우차오 인근 중국인민항일전쟁기념관에서도 열기가 그대로 전해졌다. 학교와 기관의 단체 관람으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전시면적만 6000㎡에 달하는 기념관은 일제가 1931년 9·18 사변을 계기로 중국을 침략해 1945년 투항하기까지 중국 전역에서 일삼은 만행과 이에 맞선 중국인들의 항일투쟁사를 보여 주는 곳이다. 루거우차오 사건 50주년을 기념해 1987년 건립된 뒤 애국주의를 고취하는 교육기관으로 자리 잡았다. 중국 지도부도 7일 이곳으로 총출동한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과 리커창(李克强) 총리 등이 참석할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언론들은 이 행사를 동시 생방송할 예정이다. 영토·역사 분쟁 중인 일본을 겨냥한 것이다. 지도부는 일제 침략 역사를 잊지 말자는 메시지를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 용인 결정 등으로 볼 때 일본이 전쟁 이전의 상황으로 되돌아가려 한다며 역사와 현실 정치를 연결시켜 전면적인 대일 공세를 펴고 있다. 기념관에는 일제 만행을 기록한 사진 650여장과 사료 800여점이 진열되어 있다. 벌거벗은 어린아이들의 시체더미, 내장이 밖으로 튀어나온 채 죽은 여성의 시신 등 참상을 생생하게 기록한 사진들은 반일 감정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민간인을 세균 실험에 이용하고 어린이들을 총알받이로 세우거나 부녀자들을 위안부로 강제 동원한 내용도 고발하고 있다. 베이징제일중학교에서 단체 관람을 온 한 여학생(13)은 “일제의 중국 침략 만행은 극도로 악독한 것이었다”며 “이렇게 확실한 증거를 두고도 침략 만행을 부인하는 일본 정부의 모습에 분노를 느낀다”고 목청을 높였다. 1937년 이후 8년간 중국인 3500만명이 죽거나 다쳤다. 재산피해도 5000억 달러에 이르렀다. 특히 한국과 중국이 일본에 맞서 함께 싸운 역사를 도드라지게 전시해 눈길을 끌었다. 한국인 정율성 선생의 이름과 그가 지은 중국군의 공식 군가인 ‘팔로군 행진곡’의 악보 조형물이 인상적이다. 한 병사가 ‘중국과 한국 양 민족이 힘을 합쳐 일본 강점을 타도하자. 조선의용군’이라고 글을 적는 사진이 ‘국제 우호’라는 제목과 함께 전시돼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았다. 시 주석은 지난 3일 방한 때 박근혜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내년은 세계 반(反)파시스트 전쟁 승리와 중국의 항일전쟁 승리 및 한반도의 광복 70주년”이라며 공동 기념행사를 제안했으며 박 대통령도 “한국에서도 의미 있는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고 화답한 바 있다. 기념관은 인터넷에서도 항일 정신을 고취시키는 데 총력을 쏟고 있다. 기념관 측은 “6월 말까지 국민들이 총 5000장의 항일 사진과 3500편의 관련 스토리를 보내왔다”며 7일 기념일을 기해 중국의 주요 포털 사이트에 관련 내용을 공개해 항일운동 역사를 집중 조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7·7중국인민전면항전기념일’ 이후에도 일본군이 투항한 ‘8·15항전승리기념일’, 중국군이 승전을 선포한 ‘9·3중국인민항일전쟁승리기념일’, 일본의 침략을 고발하는 ‘12·13난징대학살 희생자 국가추모일’ 등 기념일이 줄줄이 예정돼 있어 중국의 반일 분위기는 계속 고조될 전망이다. 항일전쟁기념관은 베이징 펑타이(豐臺)구에 위치한 항일 유적지인 루거우차오 인근에 있다. 일제의 중국 침략은 1931년 9·18 사변을 계기로 만주 등 동북지역을 점령하면서 시작됐지만 중국 국민당과 공산당의 내전으로 응전하지 못하다가 본격적인 항일운동은 1937년 7월 7일 발생한 루거우차오 사건을 기점으로 시작됐다. 루거우차오 부근에서 훈련 중이던 일본군 사병 실종사건을 빌미로 일본이 루거우차오를 점령하면서 중·일 전쟁이 본격화됐다. 한편 중국 중앙당안관(기록보관소)은 이날 “일본군이 중국 침략전쟁 때 부녀자 수십 명을 성폭행하고 일반인을 간첩 혐의로 붙잡아 고문한 뒤 살해했다”는 내용의 ‘전범 자백서’ 4탄을 공개했다. 중국은 지난 3일부터 일본 전범 자백서를 매일 한 편씩 공개하고 있다. 글 사진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 [시진핑 방한] 민감한 日 “한·중, 집단자위권·고노담화 훼손 비판”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4일 한·중 정상회담에서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 용인과 고노 담화 검증 보고서 공개 등에 대해 강하게 비판한 것을 두고 일본은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마이니치신문은 이날 인터넷판을 통해 고노 담화 검증 문제를 두고 박 대통령과 시 주석이 “고노 담화를 계승한다면서 실제로는 훼손하려 하고 있다”는 데 일치했다고 비중 있게 보도했다. 이어 “한국은 당초 한·중 정상이 일본 문제를 협의했다고 어필하는 것을 피하려 했지만 언론들의 비판이 쏟아지자 적극적으로 공개하는 쪽으로 돌아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요미우리신문 역시 인터넷판에서 양국 정상이 오찬과 만찬에 걸쳐 일본을 비판했다는 점을 부각했다. 앞서 일본 정부 인사들도 역사문제 거론에 불편한 심정을 나타냈다. 기시다 후미오 외무상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한·중 정상회담 공동성명 부속서에 군위안부 공동연구 내용이 포함된 데 대해 “(군 위안부 문제를) 정치·외교 문제화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 역시 시 주석이 내년 항일전쟁 승리 70주년 행사의 공동 개최를 한국에 제의했다는 보도에 대해 “양국이 협력해 과거의 역사를 쓸데없이 제기하며 국제문제화하려는 시도는 이 지역의 평화와 협력 구축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도쿄 김민희 특파원 haru@seoul.co.kr
  • [시진핑 방한] 아베의 도넘은 우경화에 불쾌… ‘교감된 응징’으로 허 찔렀다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4일 정상 간 오찬에서 일본 아베 신조 정부의 집단적 자위권 헌법해석 변경과 일본군 위안부의 강제 동원을 인정한 고노 담화 검증 등에 대해 강도 높은 대일 메시지를 내놓아 주목된다. 두 정상이 아베 정부의 헌법해석 변경 등에 대해 우려를 표명한 사실을 공개한 것은 ‘전격적’인 결정으로 보인다. 이날 청와대 브리핑이 예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주철기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이 춘추관을 찾아 박 대통령과 시 주석의 대화 내용을 공개했기 때문이다. 두 정상은 전날 발표된 공동성명과 공동 기자회견 등 공식 석상에서는 일본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시 주석이 이날 한국 국민과 직접 접촉에 나선 서울대 강연에서 대일 비판을 쏟아냈고, 청와대도 정상 간의 비공식 오찬 대화를 언론에 설명하는 각개격파 방식으로 대일 포문을 열었다. 전날 비공개 단독 회담에서 일본 문제에 대해 깊이 있게 교감했던 한·중 정상이 공식 문건에는 싣지 않으면서도 매우 강력한 수준으로 비판하는 전략으로 일본의 ‘허를 찌른 셈’이다. 또 다른 측면에서는 한·중 양국이 일본의 도 넘은 도발에 대해 ‘교감된 응징’을 한 것으로도 해석된다. 아베 정부가 한·중 정상회담이 열린 3~4일에 맞춰 대북 제재 해제를 발표하는 등 노골적인 도발 행태를 보였다는 점에서다. 두 정상이 일본의 대북 제재 해제가 국제적인 북핵 공조를 깨뜨릴 우려가 있다고 제기한 배경도 같은 맥락이다. 박 대통령의 대일 메시지 자체가 도발에는 응징으로 대응해 추가 도발을 막는다는 외교 원칙이 적용된 것으로 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럼에도 우리 정부가 중국과 전면적인 대일 공조에 나서거나 한·미·일 3국 공조의 기존 틀을 변형하는 데까지 나간 건 아니라는 분석이다. 박 대통령은 시 주석이 전날 확대회담에서 꺼낸 양국이 광복 70주년과 항일전쟁 승리 70주년 기념행사를 공동으로 열자는 제안에 대해 명확한 동의나 거부를 표명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관계자는 “일본의 역사 도발과 군사적 재무장 등에 대해 한·중 양국이 ‘인식은 공유하되 각자 처한 상황에 따라 각자 방식으로 대응하는’ 기존 기조는 유지될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박 대통령의 수위 높은 대일 비판 공개는 아베 총리 개인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할 필요성에 따른 판단이라는 데 무게가 실린다. 한편으로는 중국이 이번 회담을 통해 한국과의 대일 공조를 최대한 끌어내 일본을 견제하는 게 큰 목표였던 만큼 박 대통령이 정치적 부담을 최소화하면서 중국의 요구에 화답한 ‘외교적 선물’이라는 시각도 있다. 공동성명은 ‘영원히 남는’ 기록이고, 기자회견문 역시 공식적인 문헌이 된다는 점에서 ‘비공식적인’ 식사 자리의 대화 방식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이지운 기자 jj@seoul.co.kr
  • [뉴스 분석] 한·중 ‘북핵 공조’ 진일보… 경제·문화 동반자 관계 가시화

    [뉴스 분석] 한·중 ‘북핵 공조’ 진일보… 경제·문화 동반자 관계 가시화

    동북아 정세가 급변 조짐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이뤄진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간의 이번 정상회담은 서로가 원하는 지점으로 상대방을 일정 부분 근접시켰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한국을 처음 국빈 방문한 시 주석은 중국이 한국과 ‘친구’ 관계임을 미국과 일본에 재확인시켰다. 다만 2015년 2차 세계대전 종전 70주년을 기점으로 한국과 일본을 더 멀리 떼어 놓으려는 뜻은 이루지 못했다. 한·중 공동기념 행사 개최 제안에 박 대통령은 수락도, 거절도 하지 않았다. 한국은 북한 핵 문제에 중국을 일정 부분 활용했다. ‘주석 취임 이후 남한 우선 방문’ 그 자체로 북한에 대한 중국의 이견을 대외적으로 노출시켰다. 그러나 중국은 이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려 하지는 않았다. 정상회담 공동 성명서는 ‘북한’이라는 단어를 담지 못했다. 이 같은 상황은 한국과 중국이 처한 외교·안보에서의 구조적 한계를 그대로 보여준다. 한국에는 한·미·일 안보 체제가, 중국에는 북한과의 혈맹 관계가 존재한다. 그럼에도 두 나라는 이번 회담에서 이 같은 구조적 한계를 두 정상 간의 신뢰로 어떻게 우회할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 두 정상은 ‘비공식적 대화’를 통해 민감한 부분을 다뤘다. 공동성명이나 기자회견문 등의 공식적 기록은 피하면서 ‘대화록’에 공동 인식을 담은 셈이다. 박 대통령은 드레스덴 선언에 대한 시 주석의 충분한 이해와 사실상의 지지를 끌어냈고, 시 주석은 일본에 대한 비판을 공유했다. 나아가 이번 회담은 ‘관계의 성숙’이라는 측면에서 상당한 성과를 보여 줬다. 우선 기존의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에 ‘성숙한’이라는 표현을 추가해 두 나라 관계의 미래상을 제시하고 지향점을 설정한 것은 그것이 비록 선언적이라 할지라도 유의미한 것으로 평가된다. 공동 발전을 실현하는 동반자, 지역 평화에 기여하는 동반자, 아시아의 발전을 추진하는 동반자, 세계 번영을 촉진하는 동반자라는 이른바 ‘동심원 확장형’ 4대 동반자 개념을 제시했다. 나아가 관계의 성숙은 자유무역협정(FTA)의 연내 타결 추진부터 김치 수출에 이르기까지 정치·안보, 경제·통상, 문화·인적교류 등 다방면에서 가시화됐다. 아울러 양국은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설립에 대한 주요 사항도 협의,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은 “시 주석은 확대정상회담에서 한국은 인프라와 관련, 건설·기술·자금·경험에서 우위를 갖고 있으므로 AIIB 창립 회원국으로 참가하기를 희망한다는 의사를 표명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박 대통령은 “한·중 정부 간 양자협의와 다자 간 실무협의가 진행 중이며 우리 정부는 협의 결과를 감안해 참여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고 안 수석은 덧붙였다. 이지운 기자 jj@seoul.co.kr
  • “일본군 총검술 교육 中포로로 살인 훈련”

    “일본군 총검술 교육 中포로로 살인 훈련”

    중국 중앙당안관(기록보관소)는 4일 “일본군이 중국인 포로를 총검술 연마 재료로 사용했다”는 내용이 담긴 일본 전범의 자백서를 공개했다. 전날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국빈 방한에 맞춰 “일본군이 조선과 중국의 부녀자를 군 위안부로 강제 동원했다”는 자백서 1탄을 시작으로 일본 전범 자백서 45편을 매일 한 편씩 공개하겠다고 밝힌 데 따른 것이다. 중앙당안관은 이날 홈페이지에 공개한 일제 전범 후지타 시게루(藤田茂)의 자백서에서 그가 중국에서 1938년 8월 육군기병 제28연대 연대장(사령관)으로 복무하면서 부하들에게 많은 살인행위를 지휘했다고 폭로했다. 1939년 일제는 군인들에게 “살인은 군인이 전쟁에 익숙해지고 용기를 키울 수 있는 빠른 방법”이라고 교육한 뒤 포로 17명을 총검술 교육 재료로 쓰라며 살해할 것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중국이 시 주석의 방한에 맞춰 일제 침략전쟁의 만행을 작심하고 공개하는 것은 일본의 잘못된 역사인식을 상대로 한·중이 공조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영토분쟁, 역사인식 등의 문제로 일본과 충돌 중인 중국은 역사 문제를 고리로 주변 국가들과 연합해 일본에 대항하려는 외교 전략을 펴고 있다. 중국이 지난 3일 이뤄진 한·중 정상회담에서 “2015년 중국의 항일전쟁 승리 및 한반도 광복 70주년을 공동 기념하자”고 말한 시 주석의 제안을 핵심 메시지로 조명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중이 공동으로 일본에 대항하는 모습을 통해 일본을 압박하겠다는 것이다. 중국은 오는 7일 중·일전쟁의 발단이 된 루거우차오(蘆溝橋)사변 기념일을 기해 일본 침략 역사 비난전을 지속적으로 이어 간다는 복안이다. 당국은 이날 올해 초부터 군 위안부 자료 등을 잇따라 공개해 온 지린(吉林)성 당안관을 통해 일제의 각종 만행을 기록한 ‘우정검열월보’(郵政檢閱月報)를 전집 형태로 발간했다. 이미 제1, 2권이 발간됐다. 월보에는 당시 각 지역 헌병대가 검열 결과 등을 정기적으로 관동군 헌병대에 보고한 내용이 담겨 있다.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 한·중 정상 “日 집단자위권 확대 우려”

    한·중 정상 “日 집단자위권 확대 우려”

    박근혜 대통령과 한국을 처음 국빈 방문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4일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헌법해석 변경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두 정상은 이날 서울 성북구 성북동 가구박물관에서 특별 오찬을 하는 자리에서 “일본의 역사수정주의적 태도가 계속되고 있으며 자위권 확대까지 추진돼 우려스럽다는 점에 공감했다”고 주철기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이 브리핑에서 전했다. 또 두 정상은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헌법해석 변경에 대해 여러 나라가 우려를 표명하고 있으며 일본 국민의 절반 이상이 반대하고 있는 현실에 주목하면서 일본 정부가 자국민의 지지도 충분히 받지 못하는 정치를 지양하고 평화헌법에 더욱 부응하는 방향으로 방위안보 정책을 투명성 있게 추진해야 한다는 데 공감했다. 이와 함께 두 정상은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을 인정한 고노 담화 검증 문제와 관련, 일본이 고노 담화를 계승한다고 하면서도 실질적 행동으로는 이를 훼손, 폄훼하려는 시도를 보인 데 대해서도 유감을 공유했다고 주 수석은 밝혔다. 두 정상은 양국이 공동성명 부속서를 통해 위안부 공동 연구와 사료 접근에 협력하기로 한 것은 이런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앞으로 사료 접근이나 공유에 적극 협력해 나가기로 합의했다. 특히 두 정상은 일본의 대북 대화와 관련해 인도주의 차원에서 납북자 문제 해결은 이해할 수 있지만, 북핵을 이유로 부과된 제재 해제가 잘못 다뤄지면 북핵 해결의 국제 공조를 깨뜨릴 우려가 있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 이어 박 대통령은 시 주석이 전날 정상회담에서 2015년 중국의 항일전쟁 승리 및 한반도 광복 70주년을 공동으로 기념하자고 제안한 것과 관련, “내년은 광복·전승 70주년이라는 의미 있는 해로서 아시아나 다른 지역에서도 특별한 해인 만큼 이를 잘 기념하기 위해 한국에서도 의미 있는 행사를 준비하려고 하고 있다”며 확답을 피했다. 두 정상은 북한 및 통일 문제와 관련, 북한을 변화시켜 나가기 위해 우선 비정치 분야에서 변화 촉진을 도모하는 게 좋으며 또한 북한이 국제사회에 나오도록 유도하는 게 필요하다는 점에 공감했다. 앞서 시 주석은 이날 서울대에서 강연을 갖고 “중국과 한국은 일본의 야만침탈 때 서로 도왔다”고 강조했다. 이지운 기자 jj@seoul.co.kr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한·중 정상회담] ‘日 우경화’ 경고 메시지 없었다

    일본 아베 신조 정부의 과거사 도발 등 우경화를 겨냥한 한·중 정상의 경고 메시지는 없었다.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3일 정상회담 공동성명과 기자회견에서 대일 메시지는 전혀 나오지 않았다. 박 대통령이 지난 2일 방송된 중국 관영매체 CCTV와의 인터뷰를 통해 아베 정부의 고노 담화 검증을 “국가 간 신뢰를 저버리는 행위”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는 점에서 두 정상의 대일 입장 표명이 제기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다른 결과인 셈이다. 박 대통령과 시 주석은 지난해 6월 첫 정상회담의 경우 ‘일본’을 적시하지는 않았지만 공동성명을 통해 일본의 역사 왜곡으로 인한 대립과 불신이 심화되는 상황을 우려한다는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박 대통령과 시 주석은 이날 단독·확대 회담에서 일본 우경화 등을 포함한 동북아 정세를 밀도 있게 논의했던 것으로 전해져 공동 기자회견에서 일본에 대한 언급이 전혀 이뤄지지 않은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특히 CCTV가 시 주석이 이날 박 대통령에게 “2015년 반(反)파시스트 전쟁 및 중국 인민의 항일 전쟁 승리 70주년 기념행사와 한국의 광복 70주년 기념행사를 공동 거행하자”고 제안한 것으로 보도하는 등 중국은 한국과의 대일 공조에 적극적인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이날 두 정상의 공동성명에서 이 제안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중국이 한국과의 전면적인 대일 공조를 부각시키고자 했지만 대미 관계 및 한·미·일 3자 안보 협력 등을 의식한 한국과 ‘온도 차’가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된다. 아울러 중국과의 정상회담에서 제3국인 일본을 정면 비판할 경우 심각한 대일 외교 마찰을 우려했다는 관측도 나온다. 한·중 정상은 공동성명 부속서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공동 연구를 명시하며 일본을 우회적으로 비판하는 방식을 택했다. 양국 모두 위안부 피해국이고, 국제사회가 폭넓게 인정하는 여성 인권 문제라는 점에서 부속서에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경고 효과’가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한·중은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역내 안보 논의의 폭을 확대하고 전략적 협력의 내실화 단계에 진입한 것으로 평가된다. 동북아 전후 체제의 구조적 균형이 깨지는 쪽으로 격동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중의 전략적 협력 확대는 북핵 등 한반도 안보와 동북아 정세의 가늠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윤덕민 국립외교원장은 “미국의 힘이 역내에서 후퇴하는 가운데 일본이 무력을 투사할 수 있는 보통국가가 되면서 중·일 간 대립이 심화될 것”이라며 “한반도의 지정학적 안보 환경이 악화되는 상황이 도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서울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 정부 ‘위안부 백서’ 내년 8월 아베담화 발표 전 발간

    정부가 일본의 고노 담화 검증에 대응해 펴내기로 한 ‘일본군 위안부 백서’를 2차 세계대전 종전 70주년을 기념해 내년 8월로 예정된 이른바 ‘아베 담화’ 발표 전에 발간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일본군 위안부 강제 동원을 인정하고 사죄한 고노 담화의 계승을 표명하면서도 내용상으로는 한국과의 정치적 타협물로 폄훼하고 있는 아베 신조 총리의 새로운 담화 내용을 겨냥한 의도로 풀이된다. 정부 소식통은 30일 여성가족부가 최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관련 종합보고서 발간 연구용역’을 발주했다고 밝혔다. 연구용역 제안요청서에 따르면 정부는 내년 7월 말까지 본권 3권, 별권 1권 분량의 백서 형태로 위안부 피해 종합보고서를 만든다는 목표다. 보고서 본권 3권에는 객관적인 위안부 피해 참상과 일본 정부 및 군이 위안부 강제 동원에 관여했는지와 그에 따른 법적 책임, 유엔 등 국제사회 및 우리 정부의 입장 등이 기술되고 별권에는 시각 자료 등으로 구성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우선적으로 연구 용역을 통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 실태에 관한 광범위한 사실관계를 조사하고 피해자 증언뿐 아니라 중국 등 해외에 있는 문헌 및 발굴 자료도 조사한다는 방침이다. 여가부는 제안요청서에서 “고노 담화와 무라야마 담화 등과 관련해 일본의 자체조사로 밝혀진 많은 진실이 있지만 아직 공개되지 않고 있다”며 “이에 따라 피해자 증언과 문헌·사료 분석 등을 통해 일본군의 관여 사실을 분석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남북 교회 한반도 경색 해소 물꼬 트나

    남북 교회 한반도 경색 해소 물꼬 트나

    최근 남북 개신교가 스위스 보세이에서 만난 것을 계기로 한반도 평화와 화해를 향한 남북 교회의 움직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북한 개신교 측이 한반도 평화를 위한 공동노력에 적극 호응한데다 오는 8월 교황 방한 중 한반도 평화를 위한 미사가 예정돼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26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에 따르면 NCCK와 북한 조선그리스도교연맹(조그련)은 지난 17∼19일 보세이에서 세계교회협의회(WCC) 주최로 열린 ‘한반도 정의, 평화와 화해에 대한 국제회의’에서 만나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해 함께 기도하고 연대하기로 선언했다. 회의에는 NCCK에서 김영주 총무와 조헌정 화해통일위원장 등 22명, 조그련에서 강명철 위원장과 리정로 부위원장을 비롯한 4명이 참석했다. 이번 회의는 지난해 10월 WCC 부산총회 이후 처음 열린 WCC 국제회의. 부산총회에서 채택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 관한 선언문’ 후속사업의 하나로 마련된 회의인 만큼 세계 교회 지도자 100여명이 모였다. 특히 지난 1984년 WCC 국제위원회가 일본 도잔소에서 연 ‘동북아 평화와 정의에 관한 국제회의’(도잔소 회의) 3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를 겸해 세계 교회의 관심을 모았었다. 지난해 조그련 위원장에 선출된 강명철 위원장 등은 회의에서 “다양한 국가의 형제 자매들이 참여한 이번 회의는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향한 강한 열망의 표현”이라며 적극적인 입장을 보였다. 강 위원장은 특히 지난해 WCC 부산총회와 관련해 “우리는 비록 참가하지 못했지만 총회에서 채택된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관한 선언을 적극 지지한다”고 밝혔다고 회의 참석자가 전했다. 조그련과 남한 개신교가 회의에서 합의한 향후 행보는 종전 교류와는 사뭇 다르게 실천적인 내용까지 담아 눈길을 끈다. 양측은 우선 내년 8월부터 해마다 WCC와 아시아기독교협의회(CCA), 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 교회와 함께 ‘에큐메니컬(교회일치·연합) 협의회’를 열기로 했다. 남북 정치상황에 상관없이 협의회를 정례화한다는 데 협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NCCK는 광복 70주년을 맞는 내년 첫 협의회를 북한 금강산이나 개성에서 개최하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 여기에 지난해 부산총회에서 채택된 ‘한반도 평화·통일에 대한 성명서’ 중 ‘평화통일을 위한 기도주일 지정’, ‘남북한 젊은이 교류의 장 제공’, ‘남북한 교회방문 프로그램’을 적극 실천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WCC 회원교회는 올해부터 광복절 직전 일요일을 한반도 평화를 위한 공동기도주일로 지키기로 결정했으며 NCCK와 조그련이 이를 위해 영어 등 6개 언어의 공동기도문을 작성해 각국 교회에 전달한다. 남북 교회의 보세이 회동은 8월 방한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미사와 맞물려 향후 경색된 남북 관계를 푸는 데 적지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 개신교계에서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오는 8월 18일 명동성당에서 국내 7대 종단 수장들이 참석한 가운데 ‘한반도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를 집전할 예정이다. 이와 맞물려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가 교황 방한 직후인 오는 8월 25∼29일 인천 송도에서 아시아 종교인평화회의(ACRP) 제8차 총회를 개최한다고 밝혀 북한 종교계의 참여가 기대되고 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日 고노담화 검증 이후] 靑 “日 국격·신뢰 문제”… 아베 불신 팽배

    [日 고노담화 검증 이후] 靑 “日 국격·신뢰 문제”… 아베 불신 팽배

    박근혜 대통령은 일본군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하고 사죄한 고노 담화를 일본 정부 스스로 훼손한 건 국격과 신뢰의 문제라고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2012년 12월 집권 이후 야스쿠니신사 참배와 일본군 위안부의 강제 동원 기술 등을 삭제한 역사교과서 검정 통과, 고노 담화 검증까지 한·일 관계의 근간을 뒤흔들고 있는 아베 신조 총리에 대한 박 대통령의 불신감이 더 깊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팽배하다. 정부 관계자는 22일 “고노 담화 검증은 일본 정부의 신뢰도와 국격을 보여 준 것 아니겠느냐”면서 “우리는 그런 점을 감안해 외교 활동을 할 것이며 일본이 국제사회에서 상당한 부담을 갖게 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청와대와 정부가 일본을 바라보는 시선은 싸늘하다. 특히 일본 정부가 한국과의 외교적 교섭 내용을 일방적으로 공표하며 마치 양국의 정치적 협상의 결과물인 양 고노 담화 훼손에 이용한 건 기본적인 사실관계조차 왜곡한 것이라는 판단이 깔려 있다. 현 정부 출범 후 1년 4개월이 지났지만 시기조차 모색하기 어려운 한·일 정상회담은 동력을 찾기가 쉽지 않다. 박 대통령의 대일 메시지는 지난 15일 이병기 전 대사가 귀국한 후 일주일째 공석인 주일대사 지명을 통해 가시화될 것으로 보인다. 차기 주일대사에는 외교부 일본과장과 아시아·태평양국장 등을 역임한 ‘일본통’인 박준우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 유력하다. 그가 박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던 만큼 대통령의 뜻을 읽고 일본 측에 전달할 복심으로 적합하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정부 관계자는 “박 전 수석이 업무에서는 합리적이지만 외교관 시절 일본 관계에서는 강골 성향도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말했다. 박 전 수석은 지난해 8월 방한한 후쿠다 야스오 전 총리를 비공개로 만나 박 대통령의 뜻을 전하는 등 대일 메시지 작업에도 관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일 국교 정상화 50주년이자 제2차 세계대전 종전 70주년을 맞는 2015년에도 격랑이 예고되고 있다. 고노 담화를 적대시하면서도 국제사회를 의식해 계승을 표명한 아베 총리가 내년에 발표할 이른바 ‘아베 담화’에 어떤 폭탄 내용을 담을지 우려는 더욱 커지고 있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나치 암호책 ‘에니그마 코드북’ 1억 5000만원 낙찰

    나치 암호책 ‘에니그마 코드북’ 1억 5000만원 낙찰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군이 사용했던 암호책 ‘에니그마 코드북’ 이 경매에 나와 우리 돈으로 무려 1억 5000만원에 낙찰됐다. 최근 미국 경매업체 본햄스는 노르망디 상륙작전 70주년을 기념해 열린 2차 대전 기념품 경매에서 나치 암호책이 14만 6500달러에 낙찰됐다고 밝혔다. 수수께끼라는 뜻을 가진 에니그마(Enigma)는 2차 대전 당시 나치군이 쓰던 기계식 암호화 장치로 4만년이 걸려도 해독이 불가능하다고 평가 받았다. 그러나 침몰하는 나치의 U 보트에서 영국군이 암호 기계와 코드북을 입수하면서 정체가 드러났고 이후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이 해독의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하면서 완전히 풀렸다. 이번에 경매에 나온 코드북은 1944년 버전으로 당시 전쟁에서 실제로 사용되던 책이다. 예상 외의 높은 가격에 낙찰된 이유는 이 코드북의 희소성 때문이다. 당시 모든 독일군 잠수함에서 사용됐던 코드북은 물에 던지면 자동으로 녹게 만들어져 있다. 본햄스 경매 톰 램은 “에니그마가 경매에 나온 것은 역대 한 번 밖에 없을 만큼 극히 희귀하다” 면서 “그 이유는 전투에서 패배 시 독일군들은 제일 먼저 에니그마를 바닷속에 던져 버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전문가들이 에니그마의 해독으로 종전이 최소 2년은 앞당겨졌다고 평가할 만큼 가치가 있는 물건”이라고 덧붙였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버그달 병장 구하기 미국의 두 가치 충돌

    버그달 병장 구하기 미국의 두 가치 충돌

    보 버그달 미군 병장과 탈레반 포로 5명의 맞교환을 놓고 미국의 두 가치관이 충돌하고 있다. 한쪽에서는 “적에게 잡힌 우리 병사를 구출하지 않고 어떻게 애국심과 전우애를 말할 수 있느냐”는 전통적인 가치관을 내세우고 있다. ‘세계 경찰’을 자처하는 미국이 전 세계 전쟁터에 젊은이들을 내보내려면 국가가 당연히 마지막 1명까지 구출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한쪽에서는 9·11테러의 교훈을 들어 “인질 교환은 되레 더 큰 희생을 부른다”고 주장한다. 11월 중간선거를 맞아 여야의 정치 공방 성격이 짙었던 논란은 미국 사회 전체를 분열시킬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AP통신은 9일 ‘버그달 문제로 충돌하는 미국의 가치’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지난 2일 포로 맞교환 이후 연일 가열되는 논란과 그 속에서 대립하는 양측의 신념을 조명했다. 우선 맞교환을 옳다고 여기는 쪽은 “적진에 남겨진 전우를 두고 떠나지 않는다”는 가치관을 따르고 있다. 1993년 10월 소말리아의 수도 모가디슈에 파견된 미군 부대가 고립된 전우를 구출하기 위해 사지(死地)로 되돌아갔던 ‘블랙호크다운’ 작전이 대표적 예다. 헬리콥터 두 대가 격추되고 18명의 군인이 사망한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구조 작전이 펼쳐졌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이러한 신념을 “신성하다”고까지 표현했다. 존 커비 미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당신이 해군이라면 물 밖에 있을 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면서 “어떤 이유로 나가게 됐든지 주변 모든 배를 동원해 당신을 구조할 것”이라며 이번 논란에 대한 대답을 대신했다. 탈영병이라는 의혹에도 불구하고 버그달을 구한 원칙에는 변함이 없다는 것을 대변한 것이다. 미국이 북한에 6·25전쟁 참전 미군의 유해 송환을 지속적으로 요구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2001년 9·11테러 이후 맹목적인 인질 협상이 오히려 화를 키운다는 새로운 인식이 생겼다. 9·11 사건 이후 미국은 인질범에게 몸값을 주는 것을 정부 차원에서 금했던 정책을 암암리에 완화했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자국민을 테러에 속절없이 잃는 아픔을 다시 겪지 않기 위한 차원이었지만 결국 더 많은 국민과 돈을 잃게 됐다. 2002년 필리핀 남부에서 게릴라 단체 아부사야프에 납치됐던 미국인 기독교 선교사 마틴 번햄은 구조 작전 속에서 사망했다. 1년이 넘게 정부의 몸값 줄다리기 협상이 진행되는 상태였다. ‘버그달 병장 구하기’ 논란은 최근 열린 노르망디 상륙작전 70주년에 참석한 세계 정상들까지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상륙작전 당시 연합군의 낙하산 부대가 뒤처져 독일 부대에 섞이게 됐는데 공격을 감행한 것이 옳은 것인지, 다른 방법이 없었는지를 두고 정상들이 갑론을박했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을 탄핵 위기로까지 몰았던 ‘이란-콘트라’ 사건도 인질 협상에서 비롯됐다. 1987년 레이건은 이란의 힘을 빌려 쿠웨이트에 잡혀 있던 미국인을 구하기 위해 이란에 무기를 불법적으로 판매했다. 또 그 이익으로 니카라과의 반군인 콘트라 반군을 지원해 ‘테러의 후원자’라는 오명을 쓰게 됐다. 백민경 기자 white@seoul.co.kr
  • “우크라, EU 가입 추진” 새 대통령 험로 불보듯

    페트로 포로셴코(48)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취임 연설에서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을 인정하지 않고 유럽연합(EU) 가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그가 동부 지역 충돌에 대한 해결책을 보여주지 못했고 분리주의자들은 그를 무시해 새 정부 앞에 험로가 예상된다고 AP통신 등이 8일 전했다. 포로셴코의 대통령 취임식 몇 시간 뒤 러시아는 불법적인 밀입국을 단속하기 위해 국경 수비를 강화했다. 러시아가 동부 분리주의자들을 지원한다는 우크라이나와 서방 측의 지적에 따른 조치로 해석된다. 포로셴코는 7일(현지시간) 키예프의 최고 의회에서 진행된 취임사에서 러시아가 합병한 크림반도에 대해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우크라이나”라고 기존의 강경한 입장을 고수했다. 하지만 크림반도를 어떻게 재확보할 것인지에 대해선 밝히지 않았다. 포로셴코는 조만간 친러 분리주의자들이 장악한 동부 지역을 방문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우크라이나어는 유일한 국가 언어”이지만 러시아어의 자유로운 이용과 지방분권도 약속했다. 그는 또한 “최대한 빨리 EU와의 경제 협력 협정을 체결해 유럽으로의 통합을 서두르겠다”고 강조했다. 동시에 2015년까지 유럽과의 비자 면제 협정 체결을 서두르겠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 3월 EU와 정치부문 협력 협정에 서명한 우크라이나는 이달 27일 자유무역협정(FTA) 등의 내용을 포함하는 경제부문 협력 협정을 체결할 예정이다. 우크라이나가 EU에 가입할 것이라고 밝혔을 때 그는 많은 박수를 받았다. 하지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전날 노르망디 70주년 기념식에서 그와 가진 면담에서 “우크라이나가 EU와 FTA 등을 포함한 협력 협정을 체결하면 러시아도 자국의 경제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경제 제재를 단행하겠다는 의미였다. 도네츠크공화국의 지도자라 자칭하는 데니스 푸실린은 “포로셴코가 도네츠크에 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루간스크 지역 분리주의 지도자 발레리 볼로토프는 “그가 ‘사면하겠다’고 말했지만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편 전날 포로셴코와 푸틴은 러시아 대표가 8일 키예프를 방문해 우크라이나 사태 해결 방안을 논의한다는 데 합의했다. 러시아가 ‘불법적으로 탄생했다’던 포로셴코 정부를 현실적으로 대화의 파트너로 삼은 것이다. 이기철 기자 chuli@seoul.co.kr
  • 부국(富國)의 전유물, 상륙작전 이야기(上)

    부국(富國)의 전유물, 상륙작전 이야기(上)

    우리에게는 현충일이자 직장인들에게는 꿈같은 연휴의 시작이었던 지난 6월 6일은 인류 역사를 바꾼 거대한 사건이 일어난 날이기도 하다. 바로 아돌프 히틀러라는 희대의 악마가 일으킨 제2차 세계대전의 판세를 완전히 역전시킨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70주년을 맞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연합국의 일원으로 전체주의의 광기(狂氣)와 맞서 싸웠던 19개국 정상들은 70년 전 바로 그 장소에 다시 모여 상륙작전의 의미를 되새기고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기념식을 가졌다. -노르망디 : 사상 최대의 작전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라이언 일병 구하기」나 「사상 최대의 작전」 등 영화로도 제작되어 흥행에 성공한 바 있었는데,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경우 엄청난 스케일의 상륙작전을 묘사하기 위해 컴퓨터 그래픽이 대거 동원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군복과 군화 등 당시 세계 군장 수집 시장이 휘청거릴 정도로 막대한 물량이 동원되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영화 제작을 위해 당시 군복 3천벌, 군화 2천족을 닥치는 대로 구매했고, 당시 전차와 상륙정 등을 구하는데 엄청난 예산을 썼다”고 회고한 바 있는데, 실제로 이 영화를 제작하는데 들어간 비용은 무려 7,000만 달러, 당시 환율로 약 980억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갔다. 하지만 대부분의 군함과 항공기를 CG 처리한 영화와 달리 실제 병력과 장비가 동원된 실제 상륙작전에는 현재 기준으로도 추산하기 어려운 비용이 들어갔다. 상륙 당일에만 17만 4천명의 병력과 5,300여 척의 함정, 11,000여대의 항공기 등이 투입되었으며, 상륙거점 확보 후 불과 3주 만에 노르망디에는 156만 명의 병력과 33만여 대 이상의 전차와 차량이 양륙되었다. 당시 상륙작전이 실시된 노르망디의 5개 해변에는 독일군 4개 사단이 방어를 맡고 있었다. 불과 4개 사단이 방어하고 있는 이 해안에 상륙하는데 사상 최대의 병력과 장비를 동원한 것은 노르망디 해안 전체가 대서양 방벽이라 불리는 강력한 콘크리트 요새로 덮여 있어 여기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압도적인 화력과 병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연합군은 작전 당일 바다와 하늘을 군함과 항공기로 뒤덮고 노르망디 해안을 불바다로 만들었지만, 가장 먼저 상륙했던 병력이 문자 그대로 녹아 없어지는 등 작전 개시 첫날 5천여 명의 사망자와 그 몇 배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만약 연합군이 이보다 엄청난 함정과 항공기의 지원 없이 상륙작전을 했거나, 독일군에 대한 기만 작전에 실패해 독일군이 파드칼레(Pas-de-Calais)가 아닌 노르망디가 진짜 공격 목표였음을 알고 대비했다면 작전 첫날 상륙작전에 투입된 17만 4천명은 해안에서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하고 모조리 수장(水葬)되고, 역사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조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상륙작전? 돈 없으면 꿈도 꾸지 마라! 상륙작전은 방어하는 입장에서는 미리 견고한 진지를 구축해 놓고 해안을 향해 느릿느릿 다가오는 상륙정에 탄 공격군을 향해 화력을 퍼붓기만 하면 되는 손쉬운 전투지만, 공격하는 입장에서는 사람이 뛰는 속도보다 느린 상륙정에 오밀조밀 탑승해 해안으로부터 쏟아지는 포화를 피해 해안까지 접근해야 하고, 해안에 내린다 하더라도 사방이 탁 트인 해안에 엄폐물 하나 없이 노출된 채 적 진지를 향해 달려야 하기 때문에 문자 그대로 사지(死地)를 향해 몸을 던져야 하는 어려운 싸움이다. 이러한 공자(攻者)의 핸디캡을 극복시켜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방어 측보다 압도적인 화력을 퍼부어 방자(防者)가 고개조차 들지 못하게 하는 방법 밖에 없다. 이를 위해서 상륙부대는 상륙부대를 해안까지 날라줄 상륙함과 화력을 지원해 줄 다수의 전투함, 요청하면 언제든지 불벼락을 내려줄 수 있는 항공기, 그리고 그 항공기를 해안 근처에서 띄울 수 있는 항공모함 등 막대한 자산이 필요하다. 실제로 노르망디 상륙작전 이후 가장 규모가 컸던 인천상륙작전에서 UN군은 1개 연대 안팎으로 추산되는 북한군 방어병력에 대해 항공모함을 포함한 261척의 함정과 7만여 명의 병력을 동원해 월미도와 인천 해안을 초토화시키며 상륙작전을 감행했다. 이러한 공자(攻者)의 핸디캡을 극복시켜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방어 측보다 압도적인 화력을 퍼부어 방자(防者)가 고개조차 들지 못하게 하는 방법 밖에 없다. 이를 위해서 상륙부대는 상륙부대를 해안까지 날라줄 상륙함과 화력을 지원해 줄 다수의 전투함, 요청하면 언제든지 불벼락을 내려줄 수 있는 항공기, 그리고 그 항공기를 해안 근처에서 띄울 수 있는 항공모함 등 막대한 자산이 필요하다. 실제로 노르망디 상륙작전 이후 가장 규모가 컸던 인천상륙작전에서 UN군은 1개 연대 안팎으로 추산되는 북한군 방어병력에 대해 항공모함을 포함한 261척의 함정과 7만여 명의 병력을 동원해 월미도와 인천 해안을 초토화시키며 상륙작전을 감행했다. 역사상 가장 규모가 컸고 성공적이었던 상륙작전을 통해 알 수 있는 분명한 사실은 상륙작전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해안의 방어 병력보다 압도적인 전력을 동원해야 하며, 상륙 해안의 바다와 하늘을 완벽히 장악하고 방어 병력이 머리를 들 수 없을 만큼의 화력을 퍼부을 수 있는 전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력을 갖추는 데는 예나 지금이나 천문학적인 예산이 들어가며, 이 때문에 노르망디 상륙작전 이래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타국의 도움이나 협조 없이 전략적인 의미에서 독자적인 상륙작전을 벌일 수 있는 국가는 사실상 미국이 유일했다. 그러나 냉전이 끝나면서 군사력 강화보다 경제와 국민 생활수준 향상, 복지가 국가 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떠오름에 따라 과거와 같이 막대한 물량을 쏟아 붓는 상륙작전을 구사할 수 있는 국가가 사라지면서 현대의 상륙작전은 과거와는 사뭇 다른 양상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다음편에 계속) 사진= 위에서부터 ▲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 묘사된 노르망디 상륙작전. 170분의 러닝타임 중 불과 30분 안팎의 이 장면을 만드는데 수백억 원이 들어갔다. CG의 도움이 없었다면 재현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연합군의 상륙을 막기 위해 프랑스와 네덜란드, 독일 등 대서양 연안 약 3,860km에 걸쳐 구축해 놓은 대서양 방벽은 해안포와 ‘히틀러의 전기톱’이라 불린 MG42 기관총 등이 갖춰진 강력한 방어선이었다.▲ 인천상륙작전에서 상륙해안을 향해 로켓 공격을 퍼붓고 있는 UN군 LSM 상륙함. 이 작전에서 UN군은 항공모함과 전함, 순양함은 물론 상륙함을 개조한 화력지원함을 동원해 월미도와 인천 해안을 초토화시킨 뒤 상륙했다. 이일우 군사 통신원 finmil@nate.com (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부국(富國)의 전유물, 상륙작전 이야기(上)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부국(富國)의 전유물, 상륙작전 이야기(上)

    우리에게는 현충일이자 직장인들에게는 꿈같은 연휴의 시작이었던 지난 6월 6일은 인류 역사를 바꾼 거대한 사건이 일어난 날이기도 하다. 바로 아돌프 히틀러라는 희대의 악마가 일으킨 제2차 세계대전의 판세를 완전히 역전시킨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70주년을 맞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연합국의 일원으로 전체주의의 광기(狂氣)와 맞서 싸웠던 19개국 정상들은 70년 전 바로 그 장소에 다시 모여 상륙작전의 의미를 되새기고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기념식을 가졌다. -노르망디 : 사상 최대의 작전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라이언 일병 구하기」나 「사상 최대의 작전」 등 영화로도 제작되어 흥행에 성공한 바 있었는데,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경우 엄청난 스케일의 상륙작전을 묘사하기 위해 컴퓨터 그래픽이 대거 동원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군복과 군화 등 당시 세계 군장 수집 시장이 휘청거릴 정도로 막대한 물량이 동원되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영화 제작을 위해 당시 군복 3천벌, 군화 2천족을 닥치는 대로 구매했고, 당시 전차와 상륙정 등을 구하는데 엄청난 예산을 썼다”고 회고한 바 있는데, 실제로 이 영화를 제작하는데 들어간 비용은 무려 7,000만 달러, 당시 환율로 약 980억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갔다. 하지만 대부분의 군함과 항공기를 CG 처리한 영화와 달리 실제 병력과 장비가 동원된 실제 상륙작전에는 현재 기준으로도 추산하기 어려운 비용이 들어갔다. 상륙 당일에만 17만 4천명의 병력과 5,300여 척의 함정, 11,000여대의 항공기 등이 투입되었으며, 상륙거점 확보 후 불과 3주 만에 노르망디에는 156만 명의 병력과 33만여 대 이상의 전차와 차량이 양륙되었다. 당시 상륙작전이 실시된 노르망디의 5개 해변에는 독일군 4개 사단이 방어를 맡고 있었다. 불과 4개 사단이 방어하고 있는 이 해안에 상륙하는데 사상 최대의 병력과 장비를 동원한 것은 노르망디 해안 전체가 대서양 방벽이라 불리는 강력한 콘크리트 요새로 덮여 있어 여기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압도적인 화력과 병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연합군은 작전 당일 바다와 하늘을 군함과 항공기로 뒤덮고 노르망디 해안을 불바다로 만들었지만, 가장 먼저 상륙했던 병력이 문자 그대로 녹아 없어지는 등 작전 개시 첫날 5천여 명의 사망자와 그 몇 배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만약 연합군이 이보다 엄청난 함정과 항공기의 지원 없이 상륙작전을 했거나, 독일군에 대한 기만 작전에 실패해 독일군이 파드칼레(Pas-de-Calais)가 아닌 노르망디가 진짜 공격 목표였음을 알고 대비했다면 작전 첫날 상륙작전에 투입된 17만 4천명은 해안에서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하고 모조리 수장(水葬)되고, 역사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조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상륙작전? 돈 없으면 꿈도 꾸지 마라! 상륙작전은 방어하는 입장에서는 미리 견고한 진지를 구축해 놓고 해안을 향해 느릿느릿 다가오는 상륙정에 탄 공격군을 향해 화력을 퍼붓기만 하면 되는 손쉬운 전투지만, 공격하는 입장에서는 사람이 뛰는 속도보다 느린 상륙정에 오밀조밀 탑승해 해안으로부터 쏟아지는 포화를 피해 해안까지 접근해야 하고, 해안에 내린다 하더라도 사방이 탁 트인 해안에 엄폐물 하나 없이 노출된 채 적 진지를 향해 달려야 하기 때문에 문자 그대로 사지(死地)를 향해 몸을 던져야 하는 어려운 싸움이다. 이러한 공자(攻者)의 핸디캡을 극복시켜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방어 측보다 압도적인 화력을 퍼부어 방자(防者)가 고개조차 들지 못하게 하는 방법 밖에 없다. 이를 위해서 상륙부대는 상륙부대를 해안까지 날라줄 상륙함과 화력을 지원해 줄 다수의 전투함, 요청하면 언제든지 불벼락을 내려줄 수 있는 항공기, 그리고 그 항공기를 해안 근처에서 띄울 수 있는 항공모함 등 막대한 자산이 필요하다. 실제로 노르망디 상륙작전 이후 가장 규모가 컸던 인천상륙작전에서 UN군은 1개 연대 안팎으로 추산되는 북한군 방어병력에 대해 항공모함을 포함한 261척의 함정과 7만여 명의 병력을 동원해 월미도와 인천 해안을 초토화시키며 상륙작전을 감행했다. 이러한 공자(攻者)의 핸디캡을 극복시켜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방어 측보다 압도적인 화력을 퍼부어 방자(防者)가 고개조차 들지 못하게 하는 방법 밖에 없다. 이를 위해서 상륙부대는 상륙부대를 해안까지 날라줄 상륙함과 화력을 지원해 줄 다수의 전투함, 요청하면 언제든지 불벼락을 내려줄 수 있는 항공기, 그리고 그 항공기를 해안 근처에서 띄울 수 있는 항공모함 등 막대한 자산이 필요하다. 실제로 노르망디 상륙작전 이후 가장 규모가 컸던 인천상륙작전에서 UN군은 1개 연대 안팎으로 추산되는 북한군 방어병력에 대해 항공모함을 포함한 261척의 함정과 7만여 명의 병력을 동원해 월미도와 인천 해안을 초토화시키며 상륙작전을 감행했다. 역사상 가장 규모가 컸고 성공적이었던 상륙작전을 통해 알 수 있는 분명한 사실은 상륙작전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해안의 방어 병력보다 압도적인 전력을 동원해야 하며, 상륙 해안의 바다와 하늘을 완벽히 장악하고 방어 병력이 머리를 들 수 없을 만큼의 화력을 퍼부을 수 있는 전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력을 갖추는 데는 예나 지금이나 천문학적인 예산이 들어가며, 이 때문에 노르망디 상륙작전 이래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타국의 도움이나 협조 없이 전략적인 의미에서 독자적인 상륙작전을 벌일 수 있는 국가는 사실상 미국이 유일했다. 그러나 냉전이 끝나면서 군사력 강화보다 경제와 국민 생활수준 향상, 복지가 국가 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떠오름에 따라 과거와 같이 막대한 물량을 쏟아 붓는 상륙작전을 구사할 수 있는 국가가 사라지면서 현대의 상륙작전은 과거와는 사뭇 다른 양상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다음편에 계속) 사진= 위에서부터 ▲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 묘사된 노르망디 상륙작전. 170분의 러닝타임 중 불과 30분 안팎의 이 장면을 만드는데 수백억 원이 들어갔다. CG의 도움이 없었다면 재현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연합군의 상륙을 막기 위해 프랑스와 네덜란드, 독일 등 대서양 연안 약 3,860km에 걸쳐 구축해 놓은 대서양 방벽은 해안포와 ‘히틀러의 전기톱’이라 불린 MG42 기관총 등이 갖춰진 강력한 방어선이었다.▲ 인천상륙작전에서 상륙해안을 향해 로켓 공격을 퍼붓고 있는 UN군 LSM 상륙함. 이 작전에서 UN군은 항공모함과 전함, 순양함은 물론 상륙함을 개조한 화력지원함을 동원해 월미도와 인천 해안을 초토화시킨 뒤 상륙했다. 이일우 군사 전문 통신원 finmil@nate.com (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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