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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 행정] 성북복지관 공개 노인 성교육

    [현장 행정] 성북복지관 공개 노인 성교육

    #1. 할아버지의 고민 할아버지:저기,‘거시기’얘기해요. 상담자:네, 행복한 노후 성(性)상담센터입니다. 할아버지:고민이 있어서…. 할머니가 잠자리를 자꾸 피해. 젊어서 돈 벌어올 때는 금실이 좋았는데요, 요즘에는 곁에 오지도 못하게 하고. 상담자:많이 속상하시겠네요. 할아버지:살맛이 안 난다니까요. 인생이 다 됐구나 싶고…. 내가 쓸모없는 인간이 된 것 같다니까. #2. 할머니의 고민 할머니:물어볼 것이 있어서 전화했는데. 상담자:말씀하세요. 할머니:할아버지랑 잠자리를 할 때 너무 아파서. 젊었을 때는 안 그랬는데…. 병이 있는가…. 무서워요. 상담자:월경이 없어진 이후로 그렇지 않나요. 할머니:음…. 그런 것 같아. 폐경 이후부터 힘들어졌어요. 아프니까 잠자리를 피하게 되고. 할아버지한테 시원하게 말할 수는 없고…. 답답해요. 성북노인종합복지관의 부설기관 ‘행복한 노후 성상담센터’에는 60∼90대 할아버지, 할머니의 성고민이 쏟아진다.2002년 노후 성상담을 시작한 이후 꾸준히 늘고 있다. 지난해 방문·전화 상담은 414건에 이른다. ●10대보다 성을 모른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고민은 깊다. 성지식이 부족한 탓이다. 상담센터 정희원 사회복지사는 “어르신은 인터넷 세대인 10대보다 성에 대해 훨씬 모른다.”고 말했다. 어려서도, 자라서도 성교육을 받을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노후에 잠자리가 소원해져 스트레스를 받는 것도 신체적 변화를 모르기 때문이다. 여자의 경우 생리가 없어지면 잠자리에서 통증을 느낀다. 잠자리를 멀리하는 것은 당연한 일. 그러나 은퇴한 남자는 아내가 잠자리를 거부하면 스스로를 무능하게 여긴다. 잠자리 이야기를 금기시하는 문화 탓에 노년부부의 속병은 깊어간다. ●상담원은 할아버지, 할머니 동년배 상담원이 ‘해결사’로 나선다.60∼70대 할아버지 3명과 할머니 4명이 친구처럼 고민을 들어주고 해결책을 알려준다. “잠자리가 힘든 이유를 상대방에게 솔직하게 얘기하라고 충고하죠. 서로 문제를 알아야 해결방법도 찾으니까요. 충분히 대화를 나누고 윤활액을 활용해보라고 말해줍니다.” 김소향(74)상담원의 조언이다. 그러나 대부분 남우세스러워서 윤활액을 구입할 수 없다고 손사래친다. 그러면 김 상담원는 “부부 금실이 좋은 게 주책이 아니다. 당당해지라.”고 용기를 북돋워준다. 성지식 부족은 때로 질병으로 이어진다. 발기부전 치료제를 남용하거나 성병을 치료하지 않고 방치하기 때문이다. 정 복지사는 “저렴하다며 암시장에서 비아그라를 마구 구입하거나 성병이 저절로 나을 것이라 믿는 어르신이 많다.”고 전했다. 문제파악 즉시 어르신을 보건소로 안내한다. ●공개강좌·미팅 등 다양하게 센터는 성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공개강좌를 진행한다.‘행복한 부부 즐거운 독신:아는 것만큼 보인다’라는 주제로 성북노인종합복지관을 시작으로 도봉·마포·송파 등 복지관 15곳에서 매주 순회강좌를 펼친다. 강좌를 진행하는 성경원 한국성교육연구소 대표는 “노인의 성을 부정적으로 여기는 선입견을 깨는 것이 목적”이라고 말했다. 노후의 성관계는 키스·포옹 등 포괄적 애정표현이며 성관계는 행복한 노후의 필수요건이라고 설명했다. 그래서 홀로 사는 어르신에게는 이성 친구를 사귀라고 권한다. 정 복지사는 “수명이 날로 늘어나는데 노후의 성은 제자리걸음”이라면서 “노후를 즐겁게 보내도록 함께 노력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지하철 구조승객 ‘엇갈린 운명’

    서울과 인천에서 지하철 선로에 떨어진 승객을 연이어 시민과 역무원이 목숨을 걸고 구했다. 하지만 구조된 두 사람의 운명은 ‘생(生)사(死)’로 엇갈렸다. 2일 서울메트로에 따르면 1일 오후 8시쯤 서울 사당2동 지하철 4호선 총신대입구역 당고개 방향 승강장에서 술에 취해 선로에 떨어진 강모(54)씨를 전동차를 기다리고 있던 조모(38)씨가 뛰어내려 구했다. 양쪽 선로에서 두 대의 전동차가 동시에 진입하는 순간이어서 위험한 상황이었다. 조씨는 쓰러진 강씨를 부축해 양쪽 선로 중앙에 있는 기둥에 대피해 사고를 모면했다. 무역회사에 다닌다는 조씨는 “누구나 같은 상황이라면 똑같이 행동했을 것”이라며 “이름이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인천 지하철에서도 이날 역무원이 선로에 뛰어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던 70대 노인을 가까스로 구했다. 하지만 노인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1일 오전 9시23분쯤 인천지하철 부평구청역에서 A(75)씨가 갑자기 철로로 뛰어들었다.노인은 전동차가 들어오는 방향을 향해 뛰었고 이를 본 조봉호 부역장은 선로에 뛰어들어 전동차를 멈추게 했다. 다행히 전동차는 K씨 앞에서 가까스로 비상 정차했다. 그러나 A씨를 병원에 데려다 준 뒤 이날 오후 안부를 묻기 위해 전화했을 때 조 부역장은 A씨 아들로부터 “아버지가 이날 오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말을 전해들었다.A씨는 치매를 앓고 있는 것을 비관해 목숨을 끊은 것으로 알려졌다.조 부역장은 “급한 마음에 위험하다고 느낄 새도 없이 선로로 뛰어들었는데 결국 돌아가셨다니 참으로 안타깝다.”고 말했다.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스무번 찾아가 “담장 허물자” 읍소

    스무번 찾아가 “담장 허물자” 읍소

    공무원 “어르신, 집 담장 허물고 주차장 만들면 불법 주차가 사라집니다. 화단도 꾸미고, 폐쇄회로 TV도 달아드립니다. 또 필요한 것이 있으면 다 말씀하세요.” 집주인 “우리는 생각지 말어. 별스럽게 한데도 나는 몰라. 수고들 하는데 안 되는 것은 안 된다고 해야지. 나는 차 없어.” 공무원 “자식들이 놀러왔을 때 주차장 있으면 좋잖아요. 세입자도 편하지 않습니까.” 집주인 “세입자하고 나하고 뭔 상관이여. 내 귀에는 소용없어. 딴 데 알아봐. 허험∼.” 24일 오전 10시 강동구 성내2동 502번지 주택가 골목. 강동구청 교통관리과 손명신 주임과 집주인이 옥신각신이다. 옆에 있던 다른 공무원은 “그나마 점잖으신 겁니다. 수시로 멱살 잡히고, 욕 얻어 먹습니다.”며 이런 실랑이가 다반사인 듯이 말했다. 만성적인 주차장 부족에 시달리는 자치구들이 주택가 담장을 허물어 주차장을 만드는 ‘녹색 주차 마을(그린파킹)’ 조성에 적극적이다. 하지만 사업 비용과 인센티브를 줘도 멀쩡한 담장을 허물겠다는 집주인들은 거의 없다. 지난해 골목길 주차장 확보 실적에서 최우수구로 뽑힌 강동구청 공무원들의 ‘주민 설득’ 현장에 기자가 동행했다. 성내2동 502의7번지. 손 주임이 수차례 초인종을 눌러도 대답이 없다.“구청에서 나왔습니다.”라는 몇 번의 큰 소리에 한 70대 어르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 어르신도 손 주임의 (그린파킹)설명이 끝나기가 무섭게 “담장 없으면 도둑 들어와서 안돼.”라며 손사래를 쳤다. “골목에 폐쇄회로 TV가 설치돼 도둑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라는 손 주임의 거듭된 설득이 계속됐다. 또 물량 공세(?)가 이어졌다.“계량기를 새롭게 달아드리고, 수도대와 장독대는 새로 만들어 드릴게요.” 주효한 걸까. 실랑이 끝에 “다른 집들이 하면 나도 하겠다.”는 ‘반 승낙’이 떨어졌다. 이 골목에서는 세번째로 그린파킹 참여 집이 생긴 것이다. 손 주임은 “한 집에 20번 정도 방문하는 것은 예사”라면서 “오늘은 그나마 수월하게 한 건 올렸다.”고 했다. 하지만 통계는 속일 수 없는 모양이다. 손 주임의 예언대로 이 골목의 다른 10여집에서는 모두 허탕이었다. 이들의 공통된 주장은 “이대로 살도록 내버려둬라. 편하게 잘 사는데 왜 이렇게 못살게 구느냐.”는 것이었다. 강동구가 ‘그린파킹’ 사업에 심혈을 기울이는 이유는 ‘주차 전쟁’을 줄여보기 위해서다. 밤에는 골목길마다 불법 주차가 난무한다. 이 때문에 주차 민원이 쇄도하고, 주민간 고성이 수시로 오간다. 법대로 처리하면 원성만 높아진다. 주택가 이면도로의 ‘주차장화’는 자칫 대형 화재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다. 손규호 교통정비과장은 “그린파킹 사업은 주택가 이면도로의 기능을 회복하면서 이국적이고 아름다운 골목길을 만드는 데 있다.“고 말했다. 강동구는 지난해 14개 골목 263가구의 담장을 헐었다. 차량 315대가 추가로 주차장을 갖게 된 셈이다. 올해는 고덕1동 등 12개 골목 220가구의 담장을 허물어 차량 270대에 새 ‘보금자리’를 마련할 계획이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檢 “더 밝힐 진실있다면…”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 사건 재심에서 1975년 긴급조치 위반 혐의로 사형이 선고된 8명에게 23일 무죄가 선고되면서 검찰이 항소 여부를 놓고 고민에 빠졌다. 공판 내내 “처벌보다는 진실규명이 우선”이라고 천명한 검찰은 지난해 12월18일 이 사건 결심 공판에서 이례적으로 구형 없는 논고를 했다. 이 때문에 무죄 선고가 나는 즉시 검찰이 항소를 포기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었다. 하지만 안창호 서울중앙지검 2차장검사는 선고 직후 “역사적 사건이기 때문에 항소를 할지 포기할지 결정하는 데도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판결문을 면밀히 검토해 진실을 규명할 부분이 더 남아 있다면 상급심에서 다툴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사건과 관련, 유가족이 국가를 상대로 수백억원대 민사소송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도 검찰이 항소를 검토하는 이유중 하나다. 상급심의 판단을 받아봐야 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 때문이다. ‘사법살인’이라는 비난을 받았던 사법부가 과거 잘못을 털어내기 위해서는 하급심이 아니라 대법원이 판례를 세워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에 대해 김형태 변호사는 “법원 판례는 1심은 1심대로,2심은 2심대로 의미가 있다. 억울한 사정이 있다면 대법원까지 가겠지만 정상적인 판결에 대해 상급심 판단을 구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며 검찰의 항소 포기를 촉구했다. 검찰이 항소를 포기해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대부분 60∼70대의 고령으로 32년간 고통을 받아온 유족들에게 또다시 법정 공방을 펼치게 하는 일은 가혹하다는 것이다. 한편 유신정권 당시 만들어져 역사와 함께 묻힌 대통령긴급조치에 대한 위헌성 문제는 뒤늦게 헌법재판소에서 가려질 것으로 보인다. 고(故) 우홍선씨 등 이 사건 피고인 8명의 변호인인 김형태 변호사는 24일 “피고인들에게 적용됐던 긴급조치 제1호와 제4호에 대해 위헌 여부를 판단해 달라는 소(訴)를 제기하기 위해 전담팀을 꾸릴 예정이다.”라고 밝혔다.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특별하區 ★나區] 캠퍼스 분위기 물씬 ‘실버들의 아지트’

    요즘 들어 자꾸만 노년이 기다려진다. 어이없는 소리로 들리겠지만 정말 그렇다. 되돌릴 수 없는 청춘의 한 때를 그리워하는 대신 앞으로 다가올 제2의 황금기를 멋지게 설계했기 때문이다. 송파구 삼전동의 송파노인종합복지관에 첫발을 내디딘 그 순간부터 난 은발의 멋진 신사를 동경하게 됐다. 노인들의 사랑방을 예상했던 내게 시끌벅적 활기 넘치는 복지관의 모습은 다소 충격적이었다. 깔끔한 강의실에서는 다양한 강좌가 진행되고, 각종 스터디 그룹과 동아리 회원들이 복도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유창한 회화실력을 뽐내는 외국어교실 수강생들, 춤 삼매경에 푹 빠진 춤사랑동아리 회원들, 어르신 컴퓨터 경진대회를 대비해 막바지 연습에 들어간 컴퓨터교실 멤버들…. 대학 캠퍼스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던 모습이었다. 특히 3층 홀에 놓인 당구대를 사이에 두고 큐를 잡고 빙 둘러선 60∼70대 할아버지, 할머니의 모습은 무척이나 신기한 모습이었다. 포켓볼을 가르치는 강사 역시 75세의 할아버지였으니…. 젊은 시절 미8군에서 군복무를 하며 배운 포켓볼로 지금은 멋진 노년을 보낸다는 할아버지 강사님의 시원스러운 샷에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깊게 패인 주름살만 아니라면 누가 그들을 노인이라 부를까. 현재 송파노인종합복지관에서 운영되고 있는 프로그램은 스포츠댄스·차밍디스코 등 건강프로그램과 컴퓨터·외국어·문학 등 교양프로그램, 판소리·클래식기타 등 총 82개다. 여기에 영화상영·문화공연·동아리축제 등 정기적으로 진행되는 각종 문화 행사는 복지관 어르신들은 물론 지역주민들에게도 큰 인기다. 5000∼1만원의 재료비가 드는 심화학습반을 제외하고는 전 강좌가 무료이다.65세 이상이라는 연령 조건과 점심값, 차비만 있으면 이곳에서 하루 종일 마음껏 즐길 수 있다. 은퇴 후 자원봉사로 참여한 강사들도 많아 가르치고 배우는 이들 모두가 친구다. 그야말로 이곳은 ‘실버들의 아지트’다. 늙으면 그 어떤 것보다 사람이 그리워진다는데, 대문만 열면 수많은 친구와 신나는 하루가 기다리는 이곳이 있으니 나는 이미 즐거운 노후를 보낼 최고의 공간을 확보한 셈이다. 내가 꿈꾸는 실버 라이프(silver life). 그 날이 있기에 나는 오늘도 노년을 기다린다.
  • 주상복합 주택비율 90%까지 확대

    서울의 4대문 밖에 들어서는 주상복합 아파트도 주택 90%, 상가 10%의 비율로 지을 수 있을 전망이다. 현재는 4대문 밖인 경우 주택 비율은 70%를 넘을 수 없다. 하지만 서울시가 조례를 변경할 방침이어서 4대문 밖의 주상복합 아파트에 주택 공급 물량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22일 건설교통부와 서울시 등에 따르면 서울시는 주상복합아파트의 주택 비율을 4대문 밖일지라도 계획적 관리가 가능하면 90%까지 확대하기로 방침을 정했다.서울시는 현재 4대문 안에는 주택 90%, 상가 10%의 비율로 주상복합아파트를 지을 수 있게 하고 있다.4대문 밖에서는 70대 30의 비율로 제한하고 있다. 서울시는 주택비율을 확대하더라도 전면적인 확대가 아니라 상업시설 부족 등이 우려되지 않는 지역에 한해 우선 확대할 방침이다. 서울시 이인근 도시계획국장은 “부도심으로 육성하고 있는 5개 권역의 도시환경정비사업구역에 한정해 주택의 비율을 높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5개 부도심은 용산·영등포·청량리·영동·상암권이다. 주상복합아파트의 주택비율 확대는 11·15 대책때 정부가 밝힌 것으로 지방자치단체들은 상업·업무시설 부족 등을 이유로 난색을 표시해 왔다.이기철기자 chuli@seoul.co.kr
  • [도토리뉴스] 자동차 영업사원 118명 작년 ‘억대 연봉’…2005년 보다 30% 늘어

    자동차 영업사원 가운데 지난해 1억원 이상의 연봉을 받은 사원은 총 118명으로 집계됐다.2005년 91명에 비해 30% 늘었다. 현대자동차에서는 52명이 1억원 이상을 받았다. 한해 판매대수는 한사람 평균 170대였다.244대를 판 사원이 1억 5000만원을 받아 ‘최고 연봉 사원’이 됐다. 기아차에서는 29명, 대우차판매는 19명, 르노삼성은 18명에게 1억원 이상을 지급했다. 반면 한달에 한대도 못파는 사원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월드 이슈-세계의 大選 (상)] 시동 건 ‘2008 美 대선’ 주자와 관전 포인트는

    [월드 이슈-세계의 大選 (상)] 시동 건 ‘2008 美 대선’ 주자와 관전 포인트는

    2007년 세기의 대선(大選)레이스가 펼쳐진다. 오는 4월 여성 대통령 탄생 여부를 두고 ‘혁명 선거’의 기운마저 일고 있는 프랑스, 연말 대선을 치를 한국과 인도·베트남·아르헨티나 등 모두 24개국에서 무한 경쟁 시대를 헤쳐갈 지도자를 뽑는다.2008년 11월 치러질 미국의 대선도 유력 대선 주자들의 탐사위원회 출범이 잇따르면서 본격 점화됐다. 국제사회 정치·외교 지형의 방향을 가를 미국의 대선 동향과 ‘21세기 혁명’을 앞둔 프랑스 대선, 그리고 각국 대선 관전포인트를 상·하로 나눠 소개한다. 16일 미 정계의 검은 핵(核) 배럭 오바마(46·일리노이주·민주당) 상원의원이 대선 출마를 위한 탐사위원회 구성을 공식 발표하면서 2008년 11월 제 44대 미 대통령 선출을 위한 전쟁에 불이 붙었다. 같은 민주당의 경쟁자 힐러리 클린턴(60·뉴욕주) 상원의원의 출마 선언도 이어질 전망이다.2008년 미 대선의 화두는 ‘미 국민의 상처난 자존심 회복’. 이라크전 실패 등 조지 W 부시 미 행정부의 대외정책으로 추락한 미국의 이미지를 복원할 지도자가 누구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 넘쳐 나는 ‘최초’의 가능성 여성인 힐러리 클린턴 의원과 흑인인 오바마 의원이 유력 후보로 거론되면서 217년간 지속돼온 와습(WASP·앵글로색슨계 백인 개신교도)출신 대통령 전통이 깨질 것인지가 최대 관심사다. 또 40대의 오바마와 70대의 존 매케인 상원의원(공화당·앨라바마)간 세대간 대결 가능성도 화제의 중심에 있다. 또 1928년 이후 처음으로 현직 정·부통령이 출마하지 않은 채 치러진다. 공화당 후보들의 군웅할거가 예상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빌 클린턴 42대 대통령의 부인인 힐러리가 대통령에 선출된다면 41·43대 조지 부시 가문의 부자 대통령에 이어,42·44대 대통령을 클린턴 가문의 부부가 맡게 된다. ●공화·민주 4강 후보로 압축 지난해 중간 선거 이후 여론 조사 결과로는 민주당의 힐러리와 오바마 의원, 존 에드워드 전 상원의원, 공화당의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 존 매케인 의원, 뉴트 깅리치 전 하원의장 등으로 압축됐다. 민주당내 최대 강자는 지난 1993년부터 2001년까지 8년간 백악관 안주인 역할을 한 힐러리다. 퇴임후에도 높은 인기를 얻고 있는 클린턴 전 대통령의 후원은 큰 자산. 민주당 지지자들은 “힐러리의 당선은 빌의 3선이며, 한표로 두 대통령을 가질 수 있다.”고 호소한다. 힐러리의 장점은 많은 경력과 언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자금 동원 능력이다. 오바마는 그가 가진 신선함 덕분에 날로 힘을 얻고 있다.4년 전 그는 이라크전 표결에서 반대표를 던졌다.“나는 모든 전쟁을 반대하지 않는다.”는 구절을 반복하는 연설은 유명하다. 흑백 통합 이미지로 돌풍을 몰고 있는 오바마는 백인 어머니와 미국에 유학온 케냐 출신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두살때 케냐로 돌아간 뒤 하와이, 인도네시아를 전전하며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하버드 법대학원 졸업 뒤 시카고로 돌아가 빈민 지역민을 위한 인권변호사로 일했다. 주 상원의원으로 7년간 일한 뒤 2004년 연방상원의원에 당선됐다. 힐러리에 비해, 경험 부족이 최대 약점이다. 힐러리 대통령, 오바마 부통령 연대 시나리오도 나오고 있다. 공화당의 최대 강력 주자는 존 매케인 의원과 루돌프 줄리아니(63) 전 뉴욕시장이다. 고희를 맞는 4선 의원 매케인은 베트남전에 참전,5년여 포로 생활을 했다. 가족 대대로 군대에 복무했고, 본인도 23년간 군대생활을 했다. 이라크전에는 부시 정책과 입장을 같이 한다. 이민개혁법안 등에서 좌파적 입장을 취하고, 우파 기독교 지도자들에게 막말을 하는 언행으로 골수 보수파의 불신을 얻기도 하지만 초당파적 드라이브로 힘을 결집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9·11 테러 당시 뉴욕시장으로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미국의 시장’이란 명성을 얻은 줄리아니 전 시장은 동성결혼, 낙태 등에서 공화당 주류와 다른 유연한 태도를 보인다. 하지만 세차례의 결혼과, 도나 하노버와의 결별시 불거진 혼외정사 등 사생활 문제로 정통 보수표 확보에 걸림돌이 될 것으로 분석된다. 이 사이에서 미트 롬니(59)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가 정동 보수의 이미지로 도전장을 냈지만, 모르몬교도란 점에서 한계가 있을 것이란 관측이다. 김수정기자 crystal@seoul.co.kr ■ 美역대 대통령의 주요 외교정책 2008년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가 주목받는 이유는 전 세계의 정치·외교 지형도가 다시 그려지기 때문이다. 냉전부터 베트남 전쟁, 소련 붕괴, 중동 사태와 북한 핵문제까지 미국의 군사·외교 정책의 중심엔 ‘총사령관’인 대통령이 있었고, 미 국익 극대화를 중심에 둔 행정부의 대외 정책은 지구촌 전체에 엄청난 영향을 끼쳐 왔다. 집권 초기인 2001년 일어난 9·11 테러를 계기로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외교 정책은 (對)테러전 수행을 위한 ‘선제공격론’과 ‘일방주의’로 집중됐다.‘네오콘(신보수주의 강경파)’의 노선은 베트남 패전 후 미 외교의 주류가 된 ‘현실주의 외교’에 대한 반발이 그 뿌리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에게는 ‘도덕적 낙인’이 꼬리표처럼 따라 붙는다.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하야한 그는 외교에선 탁월한 전략가라는 평가를 받았다. 닉슨 대통령은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상징하는 ‘핑퐁외교’ 등 실용 노선을 견지했다. 닉슨은 미·소 군축을 통한 ‘데탕트 시대’를 열었다. 경제 분야의 낙제점으로 ‘실패한 대통령’으로 평가받는 지미 카터 대통령은 ‘인권 외교’를 주창했지만 대외 정책에서 큰 성공은 맛보지 못했다. 로널드 레이건은 ‘강력한 미국 재건’을 내세우며 강경일변도의 대외 정책을 구사했다. 그는 소련과의 대결 구도로 신냉전을 열었다는 비난을 받았다. 제3세계 분쟁에 적극 개입했던 그의 외교정책은 집권 후반기 소련과의 관계 개선을 적극 추진, 소련의 개방 정책을 이끌어 낸다. 레이건 행정부의 외교노선은 현 부시 행정부의 네오콘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평가된다. 부시 대통령의 아버지인 조지 H 부시 대통령은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를 외교의 주축으로 삼았다. 전임자인 레이건의 정책을 견지했다. 초강대국 미국을 중심으로 한 다자간 협력체제 구축이 주요 외교전략이었다. 아버지 부시는 아들 부시가 벌인 이라크전의 전초전인 걸프전쟁(1990-1991)을 감행한 주역이다. 빌 클린턴 대통령은 한반도 문제에 깊이 관여한 행정부가 됐다.1994년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등 일련의 핵 위기가 난제가 됐다. 클린턴 행정부는 북한과 제네바 합의를체결했지만, 핵은 제거하지 않은 채 북한 요구에 굴복, 당근(중유와 경수로 제공)만 줬다는 공화당의 비판에 시달렸다. 부시 행정부의 대북 강경 정책은 “클린턴 때 한 것 빼고는 다 한다.”는 이른바 ‘ABC’(Anything But Clinton)에서 출발했다. 안동환기자 sunstory@seoul.co.kr ■ 美대통령 어떻게 뽑나 유권자들이 직접 대통령을 뽑는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은 간접선거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특정후보를 지지하겠다고 선언한 이들을 선거인으로 뽑아 선거인단 숫자로 대통령을 결정한다. 때문에 미국 대선은 각 당이 대선 후보를 결정하는 예비선거와 유권자가 대통령 선거인단을 선출하고, 선거인단이 대통령을 뽑는 본선거 등 크게 두 단계로 나뉜다. 민주, 공화 양당이 대선 후보를 가리는 예비선거는 1월 아이오와주, 뉴햄프셔주를 시작으로 6월까지 각 주에서 전당대회에 참가할 대의원들을 뽑는다. 대의원을 선출하는 방법은 지역에 따라 당직자회의를 통한 당대회(코커스)와 유권자 투표로 결정하는 예선대회(프라이머리)로 구분된다. 이어 각 당은 8·9월중 전당대회를 열어 당의 공식후보를 지명한다. 11월초 대통령 선거일에 유권자들은 대통령 후보가 아니라 각 당이 내세운 선거인단에 투표한다. 여기서 뽑힌 선거인단이 12월 한자리에 모여 대통령을 선출한다. 선거인 538명중 과반수를 얻는 후보가 대통령에 최종 당선된다. 선거인단은 미리 특정후보를 지지하겠다고 선언하기 때문에 사실상 승패는 선거인단 투표일에 결정난다. 미 대선 제도의 또다른 특징은 승자독식제도. 한표라도 더 많이 얻은 후보가 그 주에 할당된 선거인단을 모두 가져간다. 이 때문에 전체 유권자 득표율이 높아도 선거인단 수 확보에서 밀려 패배하는 경우가 생긴다.2000년 대선에서 앨 고어가 조지 W 부시에 비해 전체 유권자로부터 53만여표나 더 얻고도 패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김숙기 가족클리닉-행복만들기] 말기암 아버지… ‘불효’ 떠올라 고통

    Q5남 1녀 집안의 장남입니다.70대 아버지가 시골에서 말기암으로 투병생활을 하시다 서울로 올라와 대학병원에 입원해 계십니다. 아내는 회사 일로 바쁘고 저는 일이 손에 안 잡혀 하던 가게를 접어놓고 병원에만 신경쓰다 집에 오면 파김치가 되어 쓰러집니다. 진작 돌봐드리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과거 부모에게 잘못했던 일들이 악몽처럼 되살아나 하루하루가 너무 고통스럽습니다. -고민남, 가명,49세- A자식으로서 부모님의 투병생활을 지켜보고 계신 마음이 얼마나 안타깝고 무거울까요. 삶과 죽음을 생각하면서 어느 때보다도 마음이 약해지는 때입니다. 더구나 일과 가정에서 업무과다나 스트레스, 가족들의 역할관계가 불분명해지면 더 많이 고통스럽지요. 또 가족 중 암 환자가 생기면 ‘내가 잘못해서’,‘내가 진작 돌봤더라면’이라는 생각을 하며 죄책감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누구 때문이 아닙니다. 죄책감 대신 부모님께 가족들의 관심과 사랑을 느끼게 해 소외감이나 외로움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필요한 때입니다. 암은 20년 이상 한국인의 사망률 1위를 차지하고 있는 흔한 질병입니다. 가족 중 한 사람이 암 진단을 받았을 때 환자와 가족들은 ‘하필이면 왜 우리 가족에게 이런 불행이 닥쳤나.’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그 후유증은 매우 큽니다. 치료방법을 결정하고 치료를 시작하기까지 환자와 가족의 고통은 물론 암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심리적인 거부감까지 작용하여 몸과 마음이 지칠 수밖에 없지요. 치료를 시작한 후에 가족들은 환자의 심리 상태를 편안하게 해주고, 희망을 갖고 환자를 대하는 것이 치료에 도움이 됩니다. 가족들의 역할분담이 필요합니다. 이때 육체적, 경제적인 역할 분담뿐만 아니라 정서적인 역할 분담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어려울 때일수록 가족구성원 상호간에 정서적인 교류와 친밀감이 유지되고 강화될 수 있도록 서로의 입장을 존중해 주고 위로나 지지 공감의 말 한마디가 중요합니다. 가족간 원만한 의사소통으로 위기나 비상상황에 대한 준비가 필요하고 서로의 역할인지에 따른 자발적인 참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몸의 상처를 치료하듯이 그동안 쌓였던 마음의 상처도 치료하세요. 삶의 과정과 가족관계 속에서 응어리진 부정적인 감정이나 상처도 풀어야 합니다. 몸의 상처를 방치하면 기능이 마비되거나 손상되는 것처럼 응어리진 마음도 왜곡되거나 악순환이 대물림될 수 있습니다. 과거 부모에게 잘못하여 응어리진 상처나 원망이 있다면 이번 기회에 용서를 구하고 아버지 품에 안겨 마음으로 하나 됨을 느껴보기 바랍니다. 다양한 환자관리 전문 시스템을 활용하여 도움을 받으세요. 환자와 가족들을 위한 세심한 배려와 전문성을 가진 의료기관에 건강보험 혜택이 확대되었습니다. 노인전문 병원과 시간제 간병, 호스피스나 가정간호제도 활용 등을 적극 고려해 보시기 바랍니다. 인간 생명의 탄생과 성장, 소멸이 진행되는 과정을 겪으면서 삶은 가족과 함께하는 것이라는 것을 따뜻하게 받아들였으면 좋겠습니다. 아버님의 빠른 쾌유를 빌고, 가정의 행복과 삶의 건강이 조속히 회복되기를 기원합니다. <나우미가족문화연구원장>
  • “오늘은 내가 일일 구청장”

    “오늘은 내가 일일 구청장”

    지난 11일 오후 2시쯤 술이 거나하게 취한 50대 한 주민이 중구청 1층 직소민원실(직소실)을 찾았다. 그는 대뜸 “구청에서 모든 것을 해결해 달라. 그렇지 않으면 여기서 나가지 않겠다.”며 떼를 썼다. 이어 웃옷을 벗고 행패를 부리기 시작했다. 고운석(48) 명예민원실장은 “술 깨면 다시 오라. 그때 가서 얘기하자.”며 살살 달랬다. 고 실장을 도와 겨우 정리를 한 채성만 직소실 팀장은 “구청 앞에서 매일 시위하는 흥인·덕운시장의 세입자”라면서 “개발을 (구청이)막아 달라는데 땅 소유주들이 모여서 하는 사업을 우리가 무슨 수로 막을 수 있느냐.”며 답답해했다. 중구청이 올해 첫 도입한 ‘명예민원실장제’의 첫 ‘손님(?)’은 이처럼 막무가내 불청객이었다. ●매주 목요일 명예 구청장 운영 중구에서는 매주 목요일 2시간씩 명예민원실장이 구청장을 대신해 구민 입장에서 민원인을 직접 상담한다. 구민들의 무조건적인 비판이나 불만을 가라앉히고, 현장의 건전한 목소리를 담아 정책에 반영하자는 취지다. 3년 전 시행했던 ‘명예상담실장제’를 업그레이드해 새로운 ‘일일 구청장제’를 내놓은 것이다. 첫번째 명예민원실장을 맡은 고씨는 “2시간 정도 해보니 개인 이해관계 때문에 찾아온 분들이 대부분”이라면서 “특히 소리를 지르거나 강짜를 부리는 경우에는 황당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이어 “이 제도가 구청과 구민간에 ‘역지사지’의 자세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다.”면서 “하지만 무질서하고, 폭력적인 행동은 일을 더 꼬이게 할 뿐”이라고 꼬집었다. 고씨는 현재 새마을지도자협의회 회원이며, 회현동장의 추천으로 첫번째 명예민원실장을 맡았다. 고 명예민원실장은 또 “구민의 한 사람으로서 많은 민원이 잘 해결됐으면 좋겠다.”면서 “다만 구청에서 처리할 수 없는 민원은 서로 조정하고, 이해하는 데 어려운 만큼 자제를 부탁한다.”고 말했다. ●합당한 민원은 바로 처리 이날 들어온 민원들 가운데 담당 부서에서 수용토록 권고된 민원도 꽤 있다. 장충동에 사는 한 민원인은 “장충동 1가 56 일대에 공동 화장실이 매우 낡은 데다 부족해서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면서 “서둘러 수리라도 해줬으면 한다.”고 요청했다. 또 70대의 한 주민은 “황학동 노인복지시설에 신경 좀 써달라.”고 간청했다. 고 명예민원실장은 “화장실 민원의 경우 합당한 민원으로 판단돼 담당 부서로 연결해 처리토록 조치를 취했다.”고 말했다. 명예민원실장제의 민원처리 절차를 보면 타당성 있는 민원은 바로 구청장에게 보고된다. 이어 관련 담당자가 현장 답사를 나간 뒤, 협의를 거쳐 최종 결과를 통보한다. 주민들의 이야기를 구청장에게 전달하는 직소실은 지난해 내방 민원 653건, 인터넷 민원 662건, 전화 민원 621건, 팩스·우편 민원 24건 등 모두 1960건을 처리했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Metro] 서울 장애인콜택시 50대 늘려

    서울시설공단은 오는 3월까지 현재 120대인 장애인콜택시를 50대 늘려 총 170대를 운영할 계획이라고 10일 밝혔다. 공단 측은 “이번 증차로 현재 64%에 그치고 있는 신청자 대비 탑승자의 비율이 3월부터는 최대 85%까지 늘어날 것”이라고 밝혔다. 장애인콜택시는 중증 장애인의 이동편의를 위해 2003년부터 운영됐지만 대수가 부족한 탓에 대기시간이 길어지는 등 불편이 제기돼 왔다. 한편 공단은 증차에 대비, 다음달까지 운전봉사자 60명을 추가로 모집할 예정이다.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그의 삶 그의 꿈] 질곡의 세월에도 단단한 ‘희망’

    [그의 삶 그의 꿈] 질곡의 세월에도 단단한 ‘희망’

    글·사진 최원준 시인 자갈치 아지매 김순이 씨. 우리 나이로 오십 넷이다. 1세대 자갈치 아지매가 6~70대를 훌쩍 넘긴 나이이고 보면, 자갈치 아지매로는 많은 나이가 아니다. 그러나 김순이 씨의 자갈치 아지매 35년 이력을 보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무게가 실려 있다. 거의 자갈치 아지매 1세대급(?)의 인생역정을 걸어왔기 때문이다. 한국동란 이후 홀로 된 여인들의 혹독한 생활현장이었던 자갈치 시장. 이곳에서 자갈치 아지매들은 5~60년대 혼란의 전후 시절을 억척스레 살아왔다. 이들처럼 김순이 씨도 처녀시절, 전쟁을 피한 친정식구들과 함께 자갈치로 흘러 들어왔다. 그리고는 35년이라는 적지 않은 세월의 궤적을, 거친 자갈치 바람과 함께하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그녀의 인생유전도 거칠고 급박했다는 이야기다. 자갈치 아지매, 그 무한한 아름다움 자갈치 아지매. 우리나라 억척 아줌마의 상징. 질곡의 세월 속에서도 희망을 찾던, 우리 시대 대표적 여성상이자 ‘장한 어머니의 대명사.’ 그들에게 부여된 수식어들이다. 자갈치시장의 삶은, 여성의 힘으로 견디기에 녹록치 않은 노동환경을 담보로 한다. 많은 노동시간과 과도한 노동력이 자갈치 아지매들을 괴롭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갈치시장을 이끌어 나가는 그녀들의 힘의 근원은 무엇일까? 자갈치 아지매 중에는 남편과 사별한 이들이 많다. 남은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자갈치시장으로 흘러 들어온 이들이 많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자녀의 학업과 성공의 뒷바라지를 위해, 거친 시장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만큼 절망적인 삶의 환경과 미래에의 희망이 그들을 강하게 만들었다. 그것이 ‘활기차고 인정 많은’ 우리 이웃 자갈치 아지매들의 힘의 원천이자 아름다움인 것이다. 행복했던 시절의 짧은 비망 그런 ‘자갈치 아지매’ 김순이 씨를 만났다. 거친 일에도 불구하고 곱상한 얼굴에 정감어린 미소가 담뿍 묻었다. 그러나 수줍은 듯 다소곳이 맞잡은 두 손에는, 신산했던 세월의 굴곡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얼핏 보니 걷어붙인 팔목 부위에 크게 긁힌 상처자국이 선명하다. 생선상자를 무리하게 옮기다 다친 상처라 했다. 김순이 씨는 남편과 함께 시장 일을 같이한 ‘자갈치 부부’였다. 자갈치시장에서 처녀, 총각으로 만나, 사랑을 키우고 내일의 희망을 같이했다. 남편은 자신의 고향 이름을 딴 ‘거제수산’이라는 수산물 도매회사를 설립하고, 특유의 부지런함으로 회사를 차근차근 키워나갔다. 그만큼 행복도 ‘동전 모이 듯’ 차곡차곡 쌓여졌다. 남편은 자갈치 수협 중매인으로, 아내는 수산물 도매상으로, 호흡을 척척 맞추며 승승장구했었다. 한때는 자갈치 시장의 ‘경매 TOP’의 영광을 누리기도 했었다. 살림 밑천이라는 딸 여섯도 고만고만하게 예쁘게 자라주었다. 밤 10시부터 새벽 6시까지 낮과 밤이 바뀐 고된 생활 속에서도, 서로의 사랑과 가족의 다복함으로 마냥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행복도 잠시. IMF는 그들의 작은 행복을 송두리째 산산조각 내버렸다. IMF-모든 꿈은 산산조각 나고 사업이 잘되면서 회사 규모를 조금씩 키워 나가던 남편은, 소리 없이 불어닥친 IMF의 거대한 격랑 속에서 속수무책 휩쓸려갔다. 갑작스런 자금동결로 거래처 상당수가 도산을 하고, 그 여파로 남편 회사도 심각한 자금압박에 시달렸다. 회사를 살리려고 동분서주하던 남편은, 결국 과중한 업무와 스트레스로 가족들 곁을 떠나고 만다. 남편이라는 큰 기둥이 무너지고, 여자의 몸으로 남편의 뒷수습과 휘청거리는 회사를 지키기엔 역부족이었다. 급기야 회사는 파산하고, 집과 재산 전부는 경매에 붙여졌다. 한마디로 돈 한 푼 없이 길거리로 내몰린 것이다. 그 이후로 김순이 씨의 삶은 ‘뼈를 깎고 창자를 끊는’ 고통 그 자체의 세월이었다. 그 충격으로 혈압병도 얻고, 몇 년 자리보전도 했다. 그러나 마냥 이렇게 나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 짊어진 빚도 빚이지만, 자식들에게 나약하고 실패한 어머니로 남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수십 년을 자갈치 아지매로 살아 온 자신이 아니던가? 자갈치시장에 새로이 좌판 하나를 마련했다. 주로 학공치와 꽁치를 취급하며 조금씩 빚도 갚아나가고, 그 시절의 악몽도 차츰 잊혀져 가는 요즈음을 맞고 있는 것이다. 잘 커준 여섯 딸이 평생의 재산 김순이 씨에게는 장성한 딸이 여섯 있다. 가정이 격랑 속에서 풍비박산 났어도, 아랑곳없이 잘들 커주었다. 첫째, 둘째는 시집가서 다복하게 잘 살고, 셋째 이민 씨는 엄마에 이어 ‘자갈치 아지매’가 되었다. 남포동에서 작은 가게를 내고 억척으로 일한 덕에, 보란듯이 자갈치시장에 횟집을 차렸다. 상호도 부모의 손때 묻은 ‘거제수산’으로 지을 만큼 ‘똑’소리 나는 여장부다. 횟집이 ‘시작’이란 뜻이다. ‘엄마’가 ‘자갈치시장’에서 잃은 것을, 반드시 ‘자갈치시장’에서 되찾겠다는 다부진 생각이, 상호에 오롯이 담겨져 있는 것이다. 넷째는 남포동에서, 다섯째, 여섯째는 국제시장에서 각각 가게를 하고 있다. 자갈치 아지매의 억척스러움을 모든 딸들이 한결같이 물려받았다. 그래서 김순이 씨는 든든하고 흐뭇하다. ‘농사 중에 제일이, 자식농사’라 했던가? 이즈음의 그녀는 자식농사 풍년으로,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를 지경이다. 좌판에서 영그는 내일의 희망 김순이 씨에게는 아직도 안고 넘어가야 할 짐이 많다. 그리고 그 갈 길이 만만하지도 않다. 그러나 그녀의 눈에는 ‘희망’이라는 단어가 단단히 박혀있다. 비록 밤새 좌판에 앉아 있더라도, 몸이 부서지듯 힘들더라도, 그녀는 자갈치 아지매다. 자갈치 아지매는 결코 ‘포기나 실망’ 따위의 단어는 없다. 투박하고 억센 사투리 속에 묻어 있는 ‘내일과 희망’만이 있을 뿐이다. “싱싱한 고기 사이소~ 생선 사이소~” 크게 외치는 목소리에는, 손주들과 손잡고 편안히 마실 다니는 자신의 모습이, 소록소록 부풀어오른다. 온 가족이 모여 깔깔대며 행복해하는 모습도, 가득~한 것이다.     월간 <삶과꿈> 2006.12 구독문의:02-319-3791
  • 신문읽기 ‘평생소원’ 이루다

    신문읽기 ‘평생소원’ 이루다

    “받아쓰세요.‘베짱이는 후회하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뚝뚝’은 소리가 세니까 쌍디귿이죠.” 10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평생학습센터 한글교실 중급반. 심인복(42) 강사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받아쓰기 문제를 낸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어르신 31명이 숨소리도 죽이고 연필을 굴린다. 진지함이 교실을 달군다. “자 이제, 책의 문제를 따라 읽고 답을 적어봐요.‘베짱이가 무엇을 뉘우쳤나요.’” 저마다 손을 번쩍 들고 답을 얘기한다.“배가 고픈 거요.”“노래만 부른 거요.”“일하지 않은 거요.”어르신의 천진함이 교실에 퍼진다. ●우리는 지금 문맹탈출 중 배움의 기회를 놓쳐 반평생을 ‘까막눈’으로 살아온 어르신 120명이 문맹(文盲) 탈출 중이다. 관악구 평생학습센터에서 운영하는 한글교실 초·중·고급반에서다. 남학생은 3명뿐이고 여학생이 압도적으로 많지만, 연령은 5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하다. 이들은 일주일에 2차례씩 등교해 한글과 기초산수, 생활영어·한문을 배운다. 고급반인 이명희(67) 할머니는 “내 이름을 내가 쓸 수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아. 구구단을 외우고 계산기 사용법을 배우는데 얼마나 신기한지. 요즘이 제일 행복한 것 같아.”라고 말했다. 평생학습센터는 2004년 9월 한글교실을 열었다. 지역 주민 1만명이 초등학교 미졸업자로 조사돼 문맹 탈출 방안이 필요하다고 판단해서다. 그러나 수강생은 좀처럼 늘어나지 않았다. 두렵다고, 창피하다고 꼭꼭 숨어 있기 때문이었다. ●주민 1만명이 문맹 그래서 복지관이 네트워크를 형성해 글을 쓸 줄 모르는 성인을 발견하면 한글교실로 이끌었다. 평생학습센터 문예교육담당 오윤나씨는 “문맹을 고백하고 배우기 시작하면 한글교육의 80%가 이루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명희 할머니도 며느리의 손에 이끌려 처음 한글교실을 찾았다.“겁나서 배우지 않으려고 했지. 며느리가 해보자고 용기를 북돋워줘서…. 처음 글씨를 쓰려고 하는데 얼마나 손이 부들부들 떨리던지.” 그러나 용기만 내면 어르신들은 몇 개월 만에 한글을 술술 쓰고 읽었다.“난생 처음으로 학교에 다니는 거잖아요. 그래서 ‘사생결단’을 낼 각오로 공부하세요. 자연스레 실력이 쑥쑥 자랍니다.”심 강사의 설명이다. 한글교실 초급반에선 단어와 문장을, 중급반에선 띄어쓰기와 받침을, 고급반에선 문법을 가르친다. 최근에 관악구의 지원을 받아 성인을 위한 초·중·고교 한글교재도 발간했다. 실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이야기와 그림, 예문, 노랫말로 꾸몄다. 이순재(68) 할아버지는 “신문을 읽고, 내 손으로 은행 돈을 찾고…. 평생 소원을 다 이뤘다.”면서 “다른 까막눈들도 나처럼 용기를 내서 새 인생을 찾았으면 좋겠다.”고 기원했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할머니 시인·작가 댕기머리 처녀 되어

    할머니 시인·작가 댕기머리 처녀 되어

    그들에게 그런 열정이 있을 것 같지 않았다. 40대에서 80대인 열아홉 사람의 시인과 작가들이 지난 9월 29일부터 30일, 이틀 동안 남산자락에 있는 <문학의 집·서울>에서 공연한 문인극 <맹진사댁 경사>에서 자신의 모습을 던져버리고 극중 인물에 빠져 관객들의 흥을 돋우었다. 필자는 이 연극의 스태프로 기획단계부터 마지막 쫑파티까지 참여하면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생각한 연극의 늪 속으로 다시 빠져들었다. 그리고 이번 연극을 통해 새롭게 연극이라는 늪 속에 빠진 문인이 몇 사람 있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문인극은 오래 전에 몇 번 공연된 바 있지만 최근 10여 년 간은 볼 수가 없었는데 지난해 <산림문학관>을 개관하면서 김후란 이사장이 문인극에 관심을 가져 이번 <문학의 집·서울> 개관 5주년 기념행사로 서울시와 유한킴벌리의 지원을 받아 공연이 이루어졌다.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맹진사댁 경사>는 1943년 오영진 작가가 발표한 때부터 60년이 지난 지금까지 계속 공연되고 있는, 대학에서나 기성극단에서 선호하는 작품 중의 하나이다. 돈으로 진사를 산 천민이 더 대접받는 양반이 되고 싶어서 가문에 혹해 사윗감을 보지도 않고 혼사를 결정하고는 그 사돈댁에 어울리는 가문이 되어야 한다며 맹씨네 족보를 거짓으로 바꾸는 등 법석을 뜬다. 그러는 중 사위가 병신이라는 소문을 듣는다. 아무리 가문이 탐난다 해도 하나뿐인 딸을 병신한테 시집보낼 수 없다고 생각한 맹진사는 궁리 끝에 딸의 몸종을 대신 시집보낸다. 그런데 초례청에 나타난 신랑은 외모가 준수했다. 이에 놀라 밤 피신을 시킨 딸을 데려다 놓지만 신랑은 대신 시집온 착한 이뿐이를 진정한 아내로 맞겠다고 공포하여 맹진사 내외와 그 딸은 하늘이 무너지는 허탈감에 빠진다는, 인간의 욕심이 지나치면 화가 됨을 보여주는 풍자극이다. 몇 번을 보아도 새로운 재미로 공감할 수 있고, 가벼운 마음으로 즐겁게 볼 수 있는 내용이어서 <문학의 집·서울> 개관 다섯 돌을 맞는 잔치 분위기에 적합한 작품으로 선정되었다. 연출을 맡은 극단 미추의 강대홍 상임연출가는 출연을 희망하는 문인들이 모인 첫날, 대본을 한 번씩 읽어보게 한 후 사흘 후에 배역을 결정하기로 하고는 걱정에 빠졌다. 문인들이라 감성이 있어 책 읽기는 좀 하는 것 같은데, 나이 드신 분이 많아 대사 외우는 것이 문제가 될 것 같다고 했다. 주최측에서 원래 문인극이란 전문극단 공연과 달리 실수하기 마련이고 관객들도 실수를 애교로 보아준다고 편안하게 생각하라고 했지만, 손님을 초대해놓고 실수하고 장난처럼 공연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며 연출가와 출연자 모두가 열심히 연습들을 했다. 그러기는 해도 으레 대사는 까먹을 테고 실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었는데 막상 막을 올리고 보니 입석까지 꽉 메운 관객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연극에 빠져들어 재미있어 하며 놀라워할 정도로 공연은 성공적이었다. “연극이 어설플 줄 알았는데 너무 잘했다” “얼마나 연습했느냐?” “현실에 맞는 풍자 몇 마디 감칠맛 났다”는 등 칭찬이 줄을 이었다. 맹 노인 역의 황금찬 시인은 여든아홉이며, 열세 사람이 6~70대여서 전체 출연자의 평균 연령은 일흔에 가까웠다. 그리고 주인공 맹 진사 역의 유자효 시인을 비롯해서 상당수의 출연자가 무대에 처음 서는 것이고 보면 그만큼의 성과 뒤에는 부단한 노력이 따랐다고 봐야 할 것이다. 처녀 역을 맡은 박순녀 소설가, 김여정 시인, 박정희 시인, 최금녀 시인, 지연희 수필가도 모두 할머니이다. 이 할머니들이 댕기머리 처녀가 되어 봄놀이 나와 두어 마디하고 퇴장하는데, 그 몇 마디를 위해서 보름 동안 연습을 했다. 처음에는 대사가 입에 붙지 않아 어색했지만 자꾸 연습을 하니 자신이 붙고 욕심이 생겨서 공연이 임박해서는 연출자에게 한 번 더 나오게 해달라고, 그게 안 되면 대사라도 한마디 더 달라고 조르기도 했단다. 누군가가 “연극은 모르핀 같아서 한번 맛을 알게 되면 빠져들지 않을 수 없다”고 했는데, 이번 공연을 통해서도 그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모두 나름대로 무척 바쁜 사람들이 출연료도 거의 없이 겨우 20여 일 연습기간 동안 오가는 교통비 정도인 데도 불구하고 연극에 대한 호기심과 매력 때문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였고, 공동체 작업에 맞도록 서로 위하고 배려하는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연습에 몰두하여 공연의 성공을 가져오게 하였다. 연극이 끝나고 쫑파티라는 것을 했다. 연습하는 동안의 에피소드도 얘기하고 미진함도 털어놓으며 큰 소리로 노래도 부르고, 눈물은 흘리지 않았지만 모두가 아쉬움을 가슴 가득 안은 채 문인극이 계속되기를 바라며 헤어졌다. <맹진사댁 경사>에 출연한 문인 배우들은 다음과 같다. 맹노인 : 황금찬 시인 맹진사 : 전 SBS이사 유자효 시인 맹진사 부인 : ‘시마을문학회‘ 대표 홍금자 시인 갑분이 : 장안대학 교수 김유선 시인 이쁜이 : 박미경 수필가 삼돌이 : 전 한국시인협회장 이근배 시인 미언(신랑) : 국제펜클럽한국본부 부회장 이길원 시인 미언의 삼촌 : 전 한국문인협회 이사장 성춘복 시인 박참봉 : 박정기 희곡작가 김규은 : 김규은 시인 텁석부리 : 장안대학 교수 정승재 소설가 처녀 I : 동남대학 교수 지연희 수필가 처녀 2 : 최금녀 시인 처녀 3 : 전 세륜중학교 교장 김여정 시인 처녀 4 : 박순녀 소설가 처녀 5 : 전 한양여대 교수 박정희 시인 농민1·친척 갑 : 한국희곡작가협회장 김흥우 희곡작가 농민2·친척 을 : 한국시문학연구소 소장 김경식 시인 농민3·친척 병 : 동덕여대 명예교수 조병무 평론가             월간 <삶과꿈> 2006.12 구독문의:02-319-3791
  • 뚱보男 10년새 2배

    뚱보男 10년새 2배

    남성 비만자의 비율이 10년 새 두 배 가까이로 늘었다.1995년에는 100명 중 19명꼴이었지만 2005년에는 35명꼴로 증가했다. 다이어트 등 살빼기 열풍이 과하다고 지적받는 20대 여성들의 실제 비만 비율은 7명 중 1명꼴에 불과했다. 보건복지부가 9일 발간한 ‘보건복지통계연보’에 따르면 2005년 비만(체질량지수 25.0 이상) 남성은 35.2%로 전체의 3분의1을 넘었다. 1995년 18.8%에 비해 16.4%포인트나 증가했다. 여성 비만 인구는 28.3%로 10년 전 22.2%에 비해 6.1%포인트 늘어 상대적으로 증가폭이 낮았다. 특히 여성에 더 높던 비만인구 비율은 2001년을 기점으로 역전돼 점차 차이가 커지고 있다. 남성 비만자는 40,50대에 두드러져 40대 41.2%,50대 41.1%였다. 이어 30대 37.8%,60대 31.5%,70대 이상 28.2%,20대 25.5% 순이었다. 여성은 50대와 60대가 각각 43.9%,46.7%로 비율이 가장 높았다.20대는 14.3%,30대는 19.4%로 20%가 안됐다. 특히 20대는 저체중자가 15.1%,30대는 6.3%로 집계되는 등 지나친 다이어트 후유증이 적지 않은 것으로 분석됐다. ●체질량지수(BMI) 몸무게(㎏)를 키(m)의 제곱으로 나눈 값.18.5 미만이면 저체중이고 25.0 이상이면 비만이다.30을 넘으면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하다.175㎝이고 체중이 80㎏인 사람은 80÷(1.75×1.75)=26.1로 비만이다. 김태균기자 windsea@seoul.co.kr
  • 개인파산 신청 작년 12만건

    개인파산 신청 작년 12만건

    서울 송파구 마천동에서 작은 구멍가게를 운영하던 장모(79)씨 부부는 동네 사람한테 7000여만원을 빌려준 뒤 받지 못했다. 장사마저 안돼 ‘카드돌려막기’로 생활비를 충당해왔으나 빚은 늘어만 갔다. 가게를 처분했지만 5000여만원의 빚이 남아 최근들어 개인파산을 신청하기에 이르렀다. 전북 김제시에서 벼농사를 하던 이모(56)씨는 농약·비료값, 농기계 임대료 등으로 6500만원의 빚을 졌다. 이씨는 서울로 올라와 일용직을 전전했지만 늘어나는 빚을 끝내 갚을 수 없어 개인파산을 신청했다. 이처럼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빚을 감당하지 못해 파산신청을 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7일 대법원에 따르면 지난해 개인파산 신청 건수는 12만 2608건에 달했다.2005년 3만 8773건에 비해 크게 늘어난 것은 물론 2002년(1335건)에 비해서는 4년만에 무려 90배 이상 급증했다. ●왜 이렇게 늘었나 경기침체에 따른 영향이 주된 요인으로 지적된다. 하지만 이보다는 금융기관과 협의해 어떻게든 빚을 갚기보다는 파산 선고를 통해 빚을 청산하려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있다. 도덕적 해이라는 얘기다. 빚잔치를 벌여 채무를 모두 해결하는 개인파산과 달리 소득에서 기초생활비 등을 제외한 빚을 최대 5년간 갚아가고 나머지는 탕감받는 개인회생 신청은 지난해 5만 6112건으로,2005년 4만 8541건에 비해 15%가량 증가하는 데 그친 것이 이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이는 빚 상환 의지를 가진 사람들이 줄어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법원이 개인파산·면책결정을 너무 쉽게 내리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법원의 면책허가율은 2000년 57.5%에서 2003년 90%, 최근에는 98%까지 높아졌다. ●개인파산 적정 범위 논란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서울중앙지법 파산부의 한 판사는 “법원은 법에 정해진 면책결정 사유에 따라 결정한다.”면서 “개인파산 신청자 중 의심이 가는 채무자들은 실사를 벌이기도 한다.”고 말했다. 한 시중은행에서 개인회생 업무를 담당하는 관계자도 “일부에서 개인파산 제도를 악용하는 사례가 있지만 아직 통계로 잡히지 않을 정도로 미미한 숫자”라면서 “이른바 ‘신용불량자’들도 결국 제도를 통해 다시 경제생활을 하도록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한 변호사는 “빚을 확실히 정리할 수 있는 것은 개인파산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개인파산상담자 노인·여성 많아 법률구조공단 배명섭 계장은 “주로 자식이나 남편의 빚을 대신 진 60∼70대 노인이나 40∼50대 여성이 개인파산 관련 상담을 한다.”며 “개인파산자들이 어디에 얼마만큼의 빚을 지고 있는지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큰 어려움”이라고 말했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70대 노부부 “힘 있는 한 이웃사랑”

    70대 노부부가 하루도 쉬지 않고 5년 동안 폐품을 수집해 모은 1000만원을 불우이웃돕기 성금에 쾌척했다. 경남 진해시 경화동에 사는 김영권(75) 할아버지와 배추선(70) 할머니는 2002년부터 한푼씩 저축한 1000만원을 연말연시 모금운동을 하는 언론사에 기탁했다. 노 부부가 사는 집은 마당이 고물상을 방불케 할 정도로 폐지와 고철 등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폐품을 모으기 시작한 것은 10년 전인 19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육군종합정비창에서 퇴직한 김 할아버지는 병을 앓다가 한 스님으로부터 “이웃을 위해 열심히 봉사하라.”는 말을 들었다. 그날부터 길에 버려진 폐품을 주워 모으기 시작했다. 배 할머니는 “처음에는 구질구질한 폐품을 가져와 집 곳곳에 쌓아 놓는데 정말 싫었다.”면서 “나중에 고집스러운 남편의 진짜 뜻을 알고 난 뒤부터는 오히려 함께 돕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쇠약했던 김 할아버지는 매일 폐품을 모으면서 건강을 회복했다. 할머니도 폐품 수집을 거들었다. 노 부부는 2002년부터 적금을 넣듯이 폐품을 팔아 매일 1000∼5000원을 은행에 저금했다. 이렇게 모은 돈이 5년 동안 1000만원. 폐지가 1㎏에 30원인 점을 감안하면 하루 무려 200㎏를 모아야 6000원이기 때문에 모두 1825일을 한결 같이 저금한 셈이다. 동네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전모(65·여)씨는 “할아버지가 얼마나 부지런한지, 모아야 몇 푼 되지도 않을 텐데 그렇게 큰 돈을 모아 어려운 이웃을 도운 것에 감동받았다.”고 말했다. 김 할아버지는 노환으로 난청증세를 보이다 지금은 소리를 듣지 못한다. 그렇지만 그는 “남은 힘이 있는 동안은 가난하고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열심히 폐품을 모아 돕고 싶다.”며 행복하게 웃었다.진해 이정규기자 jeong@seoul.co.kr
  • 비둘기처럼, 호랑이처럼

    비둘기처럼, 호랑이처럼

    스코필드 할아버지를 만난 것은 1960년 4월, 내 나이 열세 살 때였다. 그로부터 정확히 10년 뒤인 1970년 4월, 그는 세상을 떠났다. 내 나이 스물세 살 때였다. 소년에서 청년으로 성장하는 그 10년 동안 스코필드는 나와 동행했고, 그 시절 나는 삶에서 배워야 할 것의 대부분을 배웠다. 스코필드 Frank William Schofield는 3·1운동을 주도한 민족대표 33인에 더하여 ‘제34인’으로 불리는 영국 태생의 캐나다인이다. 1916년 세브란스 의학교수로 처음 이 땅에 발을 디딘 그는 일생 동안 선교와 장학사업을 통해 사랑과 나눔을 설파하고, 우리나라의 독립과 발전에 헌신하였다. 일제 시대에 그는 틈만 나면 카메라를 들고 거리에 나가 일본의 만행을 기록하여 이를 전 세계에 알림으로써 독립에 견인차 역할을 했다. ‘석호필’이라는 우리 이름까지 지었던 그의 한국에 대한 애정은 지극했고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한결같았다. 우리의 인연은 내가 경기중학교에 다니던 시절 시작되었다. 당시 우리 집은 끼니를 걱정할 정도로 형편이 좋지 않았다. 당연히 학비를 낼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그런 사정을 알고 있던 같은 반 친구 아버지의 주선으로 나는 스코필드의 지원을 받게 되었다. 그는 나의 등록금과 생활비를 지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정신적 지주로서 나의 가치관 형성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나이로 보면 할아버지였지만 일찍 아버지를 여읜 나에게 그는 친아버지나 다름없었다. 나는 우리 집과 가까운 곳에 있던 그의 숙소를 내 집처럼 드나들면서 많은 것을 보고 배웠다. 그는 사슴처럼 선한 얼굴로 나를 “운찬~” 하고 부르곤 했는데, 손자뻘인 나에게 한 번도 존칭을 생략한 적이 없을 정도로 예의와 품격을 갖추었던 분이었다. 외국에 나가면 꼭 엽서나 편지로 내게 안부를 전했을 만큼 자상한 분이었다. 몇 달씩 외국에 나갔다 돌아오는 그를 마중하기 위해 공항에 나가는 것이 내겐 큰 기쁨이었다. 특히 내 가슴속에 깊이 뿌리내린 것은 그분의 철학적 신념이었다. 나는 보행이 불편한 스코필드를 부축하여 대학로를 산책할 기회가 많았는데 그때마다 그는 “약자에게는 비둘기 같은 자애로움으로, 강자에게는 호랑이 같은 엄격함으로” 대할 것을 내게 주문했다. 항상 ‘정의로운 사람’이 되라고 하면서, 특히 건설적인 비판정신을 기르라고 강조했다. 또 정치와 거리를 두되, 사회가 어려울 때는 몸과 마음을 바칠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스코필드의 이런 가르침은 훗날 내가 1986년 “체육관 선거를 종식하고 국민들의 손으로 대통령을 뽑자”는 교수 서명운동을 주도하도록 한 원동력이 되었고, 아직도 내 신념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다. 그는 가난한 이들에게는 한없이 베풀고 너그러웠지만, 한국 사회의 부조리에 대해서는 올곧은 비판을 서슴지 않았다. ‘부자는 더 큰 부자가 되고, 가난한 자는 더욱 가난해진다 The rich become richer, the poor become poorer’는 사회현상을 ‘부익부 빈익빈’이라는 용어로 간명화해 우리 사회에 처음 소개한 분도 스코필드이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을 사회 공동체가 보살펴야 한다고 누누이 강조했고, 그런 이유로 내가 대학을 진학할 때도 경제학을 선택하도록 종용하였다. 나는 그를 통해 사회 속에 몸담은 지식인의 길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익히고 배웠다. 1970년 4월 12일 오후, 스코필드는 지금의 국립의료원 별관 32병동 5호실 병상에서 운명했다. 임종 며칠 전에도 나는 그의 병상을 지켰는데, 말 없이 내 손을 잡아주던 모습이 아직까지 선하다. 그는 끝까지 어려운 이웃들과 함께하고자 했다. 마지막 책 한 권, 구두 한 켤레까지 주위의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고, 재산을 모두 보육원과 YMCA에 헌납하고 떠났다. 그리고 빈 몸으로 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 돌이켜보면 백발이 성성한 70대 할아버지와 철없는 열세 살배기 꼬마의 만남이었거늘, 그는 나를 한곁같이 성숙한 인격체로 대했다. 그를 만난 것은 내 생의 축복이자 행운이었음이 틀림없다. 인생의 고비마다 나는 스코필드 할아버지를 생각하며 나를 채찍질한다. 양지바른 서울 동작동 애국지사 묘역에 잠든 할아버지는 오늘도 그 자애로운 미소로 내게 말을 건네시는 듯하다. 더 부지런하게, 더 정직하게, 더 정의롭게 사랑하며 살라고….
  • ‘두 남자와 한 여자’ 30년 동안 기묘한 동거

    “뭐라,두 사내와 한 계집이 화목하게 동거하고 있다구요!” 중국 대륙에 70대와 60대 남자 두 명과 한 여자가 지난 30년 동안을 함께 동거를 하면서 각각 남자로부터 자녀를 낳아 기르며 함께 오순도순 생활하고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중국 동남부 장시(江西)성 징더전(景德鎭)시 왕베이리(旺北里)촌에 사는 한 60대 여성은 40년 전 이웃 마을에 사는 남성과 결혼한 뒤 자녀 4명을 낳은 데 이어,생활이 너무 어려워지자 30년전 또다른 남성과 결혼해 ‘이부일처(二夫一妻)’라는 기묘한 동거를 하면서 또다시 딸 2명을 낳아 오순도순 한가족으로 생활하고 있다고 강남도시보(江南都市報)가 최근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화제의 ‘이부일처’가족은 ‘일처’인 화(華·여·65)모씨와 ‘이부’인 청(程·74)모씨와 천(陳·67)모씨이다.왕베이리촌 주민 쉬(徐)모씨는 “이 얘기는 너무 황당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사실이며,그 집안 식구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며 “특히 이부일처의 기묘한 동거를 해온 지난 30년간 이들 부부 세 사람이 얼굴 한번 붉히는 일이 없을 정도로 화목하다.”고 말했다. ‘일처’화씨는 어릴 때부터 총명하고 능력도 뛰어난 데다 무남독녀인 까닭에 그녀의 아버지가 데릴사위를 들일 작정이었다.당시 남자들은 처가의 데릴사위로 들어가면 너무 유약하다는 인상을 주는 탓에 매우 꺼렸다. 화씨는 워낙 모든 면에서 출중한 덕분에 이웃 마을에 사는 청씨가 데릴사위로 들어올 것을 약속하고 그와 결혼했다.그것이 지금부터 40년전인 1966년의 일이었다.두 사람은 곧바로 혼인신고를 하고 달콤한 신혼생활에 들어갔다. 결혼한지 10년,이들 부부는 2남1녀를 두었다.하지만 청씨가 눈이 아주 나빠 돈을 제대로 벌지 못해 이들의 터수는 나날이 악화됐다(그는 생산대대에 근무했는데,당시 생산대대는 실적이 부진하면 돈을 적게 받는 성과급 형태로 운용됐다). 특히 이때는 중국 사회를 수십년을 퇴보시킨 것으로 유명한 문화대혁명이 시작되는 시기인 탓에 생산력이 크게 낙후해 식량 배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사회 전체가 너무 어려운 시기였지만,총명한 화씨는 집의 터앝에다 야채를 심어 석탄 공장 식당에 내다팔아 생활비에 보태 그나마 조금 나은 편이었다.그같은 생활도 한계가 왔다.결혼한지 10년이 지나 아이들이 크면서 씀씀이도 늘어난 까닭이다.결국 생산대대에 수백위안(약 수만원·당시는 천문학적으로 큰 돈·신문주(註))을 빚지게 됐다. 당시 이웃 마을에 천씨가 살고 있었다.반지빠른 천씨는 생산대대 일이 끝나면 ‘알바’로 구멍가게를 열어 짭짤하게 돈을 벌고 있었다.미혼인 그는 어느날 화씨를 찾아와 당신 부부와 자녀 3명이 성인이 될 때까지 잘돌봐줄테니 결혼해달라고 프로포즈를 했다. 처음에는 화씨 부부가 완강히 반대했다.이에 굴하지 않고 천씨는 여러번 화씨 집을 찾아가 “당신 부부가 이혼할 필요도 없으며 집안을 꾸려나가는데 경제력은 나 혼자 벌어도 충분히 잘 살수 있다.”며 간곡히 설득했다. 천씨의 간곡하고도 집요한 요청과 자녀의 장래를 위해 이들 부부는 결국 받아들이기로 했다.해서 이들 3명은 ‘이부일처’라는 기묘한 동거에 들어갔다.처음에는 이들의 사이가 서먹서먹하기도 했으나,천씨가 워낙 성실하고 살가운 태도를 보여 곧 사이가 좋아지고 애옥살이 터수도 나날이 좋아졌다. 특히 화씨는 두 남편에게 한치의 오차도 없을 정도로 공평하게 대했고,천씨는 청씨 자녀의 학비를 대주는 것은 물론 자신의 아이처럼 곰살맞게 대해 집안 분위기는 항상 화목함 그 자체였다. 이 덕분에 ‘이부일처’의 동거생활에 들어간지 얼마되지 않아 청씨는 막내 아들을 낳았고,이어 천씨도 두 딸을 낳아 9명의 한 집에서 오순도순 생활해왔다.이제는 장성한 아들과 딸 3명은 분가를 하는 바람에 식구 수는 줄어들었다. 지난달 24일 오후,기자가 화씨 집을 찾았다.화씨는 60대 중반이라는 나이와는 달리 키가 크고 말도 시원시원하고 활달하게 했다.하지만 ‘이부일처’를 하게 된 이유를 묻자,화씨는 화를 버럭 내며 “우리 집안의 일이다.다른 사람들이 신경 쓸일은 아니다.”고 일축했다. 천씨는 지난 30년 동안 집안의 화평을 위해 헌신을 하고 있지만,아직까지 화씨와 정식 부부는 아니다.혼인신고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천씨는 “혼인신고를 하지 않아 정식 부부는 아니지만,화씨가 인정하고 자녀들이 인정하고 있는 만큼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부일처’의 기묘한 동거는 멀지 않아 끝날 지도 모른다.기자가 취재를 마치고 집을 나설 때 청씨는 “화씨와 이혼수속를 밟을 예정”이라며 “지난 30년동안 천씨가 명실상부한 남편 역할을 했기 때문”이라고 힘없이 말했다.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내가 죽더라도 양심수들 석방됐으면…”

    하룻밤 사이 수은주가 10도 이상 뚝 떨어진 28일 낮. 서울 종로 2가 탑골공원 앞으로 보라색 스카프를 두른 20여명의 어머니들이 삼삼오오 피켓을 들고 모여들었다. 지난 1993년 9월 첫걸음을 내디딘 뒤 목요일마다 이어진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의 646번째이자 올해 마지막 목요집회다. 대부분의 회원들이 60∼70대의 고령이어서 매서워진 칼바람에 서 있기조차 힘들었다. 추위 탓에 입 주위는 꽁꽁 얼어붙고 손발은 오들오들 떨려왔다. 바람마저 바닥에 깔아놓은 집회 선전물을 번번이 날려보내는 등 심술을 부렸다. “영하의 날씨 속에 지금도 감옥에서 떨고 있을 100여명이 넘는 양심수들을 생각하면서 집회를 진행하겠습니다.” 조미연 간사의 모두 발언으로 집회가 시작됐다. 탑골공원 앞을 지나는 시민들 대부분이 눈길조차 주지 않고 종종걸음을 재촉했지만 양심수 석방과 국가보안법 철폐를 호소하는 민가협 어머니들의 목소리는 떨릴지언정 멈추지 않았다. 플래카드를 맞잡고 서있는 어머니들 곁에 유일하게 앉아 있는 할머니가 눈에 들어왔다. 지난 8일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안경환)로부터 ‘대한민국인권상(국민훈장 석류장)’을 받은 임기란(76) 전 민가협 상임의장이었다.1985년 학생운동을 하던 막내아들이 민정당사 연수원 점거 사건으로 구속된 뒤 양심수 가족을 지원하는 민가협의 창립 멤버로 인권운동에 뛰어든 임씨는 20여년 동안 양심수 석방과 외국인노동자 권리 찾기 등에 힘써온 양심수의 대모다. 퇴행성관절염을 앓던 임씨는 2003년엔 척추 연골 수술을 받아 거동이 불편하다. 하지만 수술과 재활기간 서너달, 후유증으로 인한 통증이 너무 심했던 때를 빼면 언제나 목요집회를 지켰다. 집회를 마친 뒤 탑골공원 뒷골목 식당에선 떡과 설렁탕을 곁들인 민가협 회원들의 조촐한 망년회 겸 뒤풀이가 이어졌다. 임씨는 “(올해) 마지막이라고 해서 특별한 의미는 없어. 그저 13년이 언제 흘렀나 싶지.”라고 말문을 열었다.“올들어 국가보안법이 기승을 부려 답답했어. 특히 대추리에 대한 정부 대처와 양심수 석방이 이전 정부보다 되레 적어 노무현 정권에 실망이 크지.”라며 아쉬워했다. 일단 말문이 트이자 임씨의 날카로운 비판은 계속됐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과, 주한미군 재배치에 따른 평택 대추리 문제, 조작간첩 재심 등 이슈만 조금씩 달라졌을 뿐 변함없는 인권 상황에 대한 답답함을 담아둘 수 없었던 것. 임씨는 “엄마들이 싸울 땐 목숨 걸고 하는 거야. 솔직히 운동 같은 거 잘 몰라. 내가 죽더라도 감옥에 간 우리 아이들이 나오면 된다는 심정으로 다들 나선 거야. 움직일 수 있는 그 날까지 여기를 지킬 거야.”라며 총총히 발걸음을 돌렸다.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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