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7주년
    2026-07-17
    검색기록 지우기
  • 빈소
    2026-07-17
    검색기록 지우기
  • 배구
    2026-07-17
    검색기록 지우기
  • 참치
    2026-07-17
    검색기록 지우기
  • 실업
    2026-07-17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282
  • [인천이 원조] (10) 공립 박물관

    [인천이 원조] (10) 공립 박물관

    일제 강점기 인천에는 일본인 수집가들이 다수의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어 ‘문화재의 보고’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었다. 여러 경로를 통해 유출된 문화재를 인천항을 통해 자국으로 가져갈 수 있다는 지리적 이점이 작용한 듯하다. 때문에 해방 후 인천지역 문화인사들은 일본인 소유 문화재 반출을 저지하는 동시에 이를 수장·전시할 박물관이 필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공립박물관인 인천시립박물관을 설립하려는 움직임이 일었는데, 이를 주도한 인물은 일본 와세다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한 당시 27세의 이경성씨였다. 이씨는 동경 유학 시절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미술사학자이자 고고학자인 고유섭(1905∼1944년)씨의 처남 이상래를 만난 뒤 편지로 고유섭 선생의 지도를 받으며 박물관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된다. 2차 세계대전 때 귀국한 이씨는 경복궁내 자경전에서 일하던 1945년 9월 미군정청 교화국장 최승만에게 자신의 포부를 밝힌 것을 계기로 인천 미군정의 홈펠 중위를 만나게 된다. 인천에 박물관을 짓겠다는 이씨의 견해에 의기투합한 홈펠 중위는 만국공원(현 자유공원)내 향토관에 시립박물관을 설립하자는 제안을 한다. 이씨는 곧바로 임홍재 초대 인천시장으로부터 박물관 설립을 허락받았다. 같은해 10월 인천시립박물관장으로 부임한 이씨는 일제 때 기업 세창양행의 사택이었던 향토관 건물을 보수하는 등 개관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하지만 개관 날짜가 1946년 4월 1일로 잡혔음에도 전시할 유물을 확보하지 못했다. 다급해진 이씨는 국립박물관 관장에게 사정해 문화재 19점을 얻었고 민속박물관에서도 60점을 임대했다. 아울러 홈펠 중위의 도움을 받아 패전 후 일본인들이 세관창고에 맡긴 물건 중에서 우리 문화재를 찾아냈다. 문화재 해외 반출을 막는 데 큰 공을 세운 셈이다. 그리고 부평조병창에 쌓아놓은 불상과 종 가운데서도 문화재를 찾아냈다. 장석구 같은 독지가는 자신이 갖고 있던 유물을 기증하고 기금을 제공하기도 했다. 그 결과 개관 직전에는 모두 364점의 유물을 소장하게 되었다. 개관 이후 인천시립박물관은 1947년 서울의 김두승이 소장하던 신라시대 석불상을 기증받는 등 유물을 계속 확충하는 한편 같은해 5월에는 관장인 이경성을 단장으로 경주 고적 현지답사에 나서는 등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하지만 6·25전쟁이 터진 후 박물관에 보유중인 유물은 안전한 곳으로 옮겼으나 박물관 건물은 인천상륙작전 당시 유엔군의 함포 사격으로 소실되고 말았다. 전쟁중 2년 10개월간 휴관상태에 있었던 박물관은 개관 7주년이 되던 1953년 4월 1일 인천시 중구 송학동1가 11번지 제물포구락부로 이전, 복관하게 된다. 고인돌 발굴 등에 주력하던 인천시립박물관이 크게 업적을 남긴 것은 1965년 11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4차에 걸쳐 실시된 인천시 서구 경서동 녹청자 도요지 발굴로, 학계의 큰 주목을 받았으며 녹청자 도요지는 국가지정 문화재 사적 제211호로 지정되었다. 이후 박물관은 인천시 연수구 옥련동 525 인천상륙작전기념관 부지에 새 청사를 지어 1990년 5월4일 이전한 뒤 오늘에 이른다. 인천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美, 이란공격땐 에너지위기”

    이란 최고지도자가 석유 무기화를 경고하면서 이란 핵을 둘러싼 국제적 협상전이 최고조로 치닫고 있다. 이란의 최고 종교지도자로서 실질적 최고권력자인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는 4일(현지시간) “미국이 이란을 공격할 경우 전세계에 에너지 위기가 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이날 열린 이란 혁명지도자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 서거 17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핵개발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며 “미국이 핵 연구시설을 공격하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이 호르무즈 해협을 잠시만 막아도 국제 유가는 배럴당 70달러선을 요동치고 장기화되면 100달러 시대가 올 것이란 얘기도 나오고 있다. 미국이 대화로 대이란 정책을 수정하자 유가가 진정세를 보였고 이란은 이를 즐기기라도 하듯 석유에 약한 미국을 강하게 압박하는 것이다. 박정경기자 olive@seoul.co.kr
  • 국책 금융기관 ‘얼굴 바꾸기’ 바람

    국책 금융기관 ‘얼굴 바꾸기’ 바람

    국책 금융기관들의 ‘얼굴 바꾸기’가 한창이다. 과거 개발시대의 역할이 끝남에 따라 존폐 논란이 일고, 안팎에서 끊임없이 변신을 요구하자 새 기업이미지통합(CI)을 앞세워 이미지 변화를 꾀하고 있다. 신용보증기금은 창립 30주년인 지난 1일 새 CI 선포식을 가졌다. 신보는 기존 삼각형 모양의 CI를 과감하게 버리고 ‘KODIT’라는 영문을 조합한 이미지를 만들었다. 별칭도 ‘신보’ 대신 ‘코딧’을 쓰기로 했다. KODIT은 ‘Korea Credit’의 합성어이다.CI와 별칭을 놓고 보면 전혀 다른 회사가 된 셈이다. 신보의 CI 교체로 지난해 7월 수출입은행부터 산업은행, 기술보증기금에 이르기까지 정부가 100% 지분을 소유한 4대 국책금융기관의 이미지가 모두 바뀌게 됐다. 수출입은행은 29년만에 화살표 모양의 CI를 영문 약칭인 Korea Eximbank에서 Korea의 K와 R,Exim의 E를 활용한 것으로 교체했다. 산업은행도 24년간 유지했던 것을 버리고 소문자 영문 이니셜을 활용한 새 CI ‘(U)bank kdb’를 지난 1월부터 사용하고 있다. 기보도 지난달 창립 17주년을 맞아 ‘Kibo’라는 영문으로 CI를 교체했으며, 사명도 기술신용보증기금에서 ‘기술보증기금’으로, 약칭은 ‘기보’로 공식 변경했다. 국책금융기관들이 줄줄이 CI개선에 나선 것은 관치금융의 이미지를 벗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대부분이 새 행장과 이사장, 총재가 취임하면서부터 돌연 CI를 바꿔 즉흥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더욱이 법으로 정해진 명칭까지 자의적으로 바꾸고, 기존 이미지를 전혀 찾아볼 수 없는 파격적인 변신은 소비자들에게 혼란을 줄 수도 있다. 새 CI 개발과 홍보, 간판 교체 등에는 수십억원의 예산이 들어간다. 금융권 관계자는 “국책은행인 기업은행이 이미지를 자주 바꾸다 보니 요즘은 IBK(Industrial Bank of Korea), 파인뱅크(fine bank), 기업(氣+up) 등으로 제각각 불린다.”면서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 변신도 좋지만 맡은 임무에 충실하고, 변화된 환경에 적극 대응하는 모습을 보여야 국책금융기관으로서 신뢰를 받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이 사람을 기억하십니까?

    |베이징 이지운특파원| 지난 1989년 중국 톈안먼(天安門) 민주화시위 당시 맨몸으로 탱크를 막아서 민주화항쟁의 상징으로 떠올랐던 왕웨이린(王維林)의 생사와 행적이 확인됐다. 톈안먼사건 17주기를 맞아 홍콩 명보(明報)는 4일 왕웨이린이 당시 중국 당국의 체포망을 피해 타이완으로 피신, 현재 타이완 남부에서 타이베이 고궁(故宮) 박물관 고문으로 일하고 있다고 전했다. 왕웨이린은 지난 89년 6월5일 맨몸으로 톈안먼 광장에 진주해 들어오던 탱크 4대를 막아선 사진으로 항쟁의 상징적 인물로 떠올랐으나 이후 종적을 감춰 생사가 불분명했다. 이 사진을 전재한 전세계 언론은 폭압에 맞선 그의 용기를 찬양하며 그에게 20세기의 위대한 영웅이라는 칭호를 붙여주기도 했다. 후난(湖南)성 창사(長沙)에서 중국의 대표적 고분인 마왕퇴(馬王堆) 고고학발굴단 단장으로 일했던 왕웨이린은 당시 톈안먼 광장에서 민주화 시위가 벌어지자 다른 노동자들과 함께 상경해 탱크를 막아서게 됐다는 것이다. 왕은 그 다음날 동료들의 도움으로 베이징을 떠났고 이후 다른 곳에서 3년 7개월 동안 몸을 숨겼다. 왕웨이린이라는 이름도 발굴단으로 일하던 시기에 사용했던 가명. 홍콩을 거쳐 타이완으로 건너간 그는 그곳에서 결혼까지 했으며 현재 건강이 그다지 좋지 않지만 자신의 처지를 공개함으로써 당시 외쳤던 민주와 자유의 이상을 중국 인민들에게 전하고 싶다는 뜻을 피력하기도 했다. 한편 당시 학생운동 막후 지도자로 시위의 주역이었던 왕단(王丹)은 톈안먼 사태 17주년을 맞아 “톈안먼 시위의 기억들이 희미해져 가고 있지만 언젠가는 톈안먼 민주항쟁의 의미가 재평가될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고 말했다.jj@seoul.co.kr
  • [골프소식]

    ●던롭코리아가 ‘젝시오Ⅲ’의 후속 모델인 ‘올 뉴 젝시오’를 출시했다.2피스의 풀티탄 구조로 설계하고 고반발 면적을 확대한 460cc 대용량 헤드가 특징. 중심이 드라이버 아래에 있어 쉽고 편안하게 스윙할 수 있다. 샤프트는 특수 소재를 채용, 초속 상승과 타출각도를 높여 비거리와 방향성을 더욱 배가시켰다.99만원.(02)3462-3957.●테일러메이드-아디다스골프가 온라인 골프커뮤니티(www.tmagzone.com,www.taylormadekorea.com) 오픈 기념으로 오는 12일까지 ‘r7 425가 주는 5가지 행복’ 이벤트를 벌인다.이 기간 동안 모두 425명을 추첨, 활동 누적포인트에 따라 드라이버와 골프 의류 등을 준다.●(주)스위스레저코리아가 창립 7주년을 맞아 ‘로얄패밀리회원권’을 출시했다. 연간 30회에 걸쳐 전국 60여개 골프장에서 주 중 정회원가로 라운드를 즐길 수 있고, 이 가운데 제주 7개 골프장은 주중과 주말 무료다. 골프텔 무료 10박 혜택도 있다. 입회금은 1590만원.
  • ‘꼭지점 댄스’ 추다 만세! 만세! 만세!

    제87주년 3·1절을 맞아 1일 전국에서 각종 기념 행사가 열렸다. 주한 일본대사의 ‘독도 망언’으로 시끄러웠던 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대체로 차분한 분위기였다. 대한민국 광복회는 오후 2시 서울 종로 탑골공원 태각비 앞에서 3·1 만세운동에서 희생된 선열에 대한 추념식을 열었다.●사이버 의병 태극기 들고 플래시 몹 앞서 오전 10시30분 서울 인사동은 흰색 저고리와 검은 치마·바지를 입은 남녀 고등학생 500여명이 흔드는 태극기로 넘실댔다. 북제주군 조천읍, 강원도 삼척 등에서도 만세 행사가 열렸다. 경남 함안군·군북군, 전북 익산에서는 당시 일본군의 무력 진압 현장이 그대로 재현됐다. 국학원과 다음 카페 ‘사이버 의병(cafe.daum.net/cybershinsi)’ 회원 50여명은 오전 11시 청계광장에서 ‘3·1절 태극기몹, 하나되는 대한민국’이란 행사를 열었다. 몹(플래시 몹의 줄임말)이란 불특정 다수가 일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약속된 행동을 하는 것을 말한다. 태극기를 들고 춤추다 오전 11시11분11초가 되자 최근 영화배우 김수로씨가 유행시킨 군무 (群舞)인 ‘꼭지점 댄스’를 추고 만세삼창을 불렀다. 부산 부산역 광장과 대구 대구백화점 앞에서도 같은 행사가 열렸다. 대구, 광주, 화성, 제주도 등에서는 3·1절 기념 마라톤 대회가 열렸다.●독도 수호대 고추장 받아 들고 세계 횡단 출정 독도가 한국 땅임을 알릴 목적으로 ‘독도수호 세계횡단 대장정’을 떠나는 대학생 5명은 오전 11시 대학로에서 출정식을 가졌다. 이들은 고추장, 비타민 등을 전달받고 255일간의 대장정에 올랐다. HID특수임무 청년동지회 소속 30여명은 오전 11시 일본 대사관 앞에 윤봉길·안중근 의사, 유관순 열사 영정이 그려진 가로 2m, 세로 3m 크기의 간판을 부착한 차량 10대를 몰고 대사관 진입을 시도하다 경찰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 통일연대는 낮 12시 서울 광화문 미국 대사관 앞에서 ‘3·1절 기념 2006년 자주선언대회’를 열었다. 한편 오후 6시에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주최로 서울 중구 세종호텔 세종홀에서 1968년에 일어난 ‘3·1 민주 구국 선언사건’ 30주년 기념회가 열렸다. 당시 3·1절 명동성당 기념 미사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 등 민주 인사가 유신 반대 선언문을 발표했다가 구속됐다.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盧대통령 “日, 1년간 달라진게 없다”

    盧대통령 “日, 1년간 달라진게 없다”

    |도쿄 이춘규특파원·서울 박홍기기자|노무현 대통령은 1일 제87주년 3·1절 기념식에서 “(일본은) 먼저 인류의 양심과 도리에 맞게 행동해 국제 사회의 신뢰를 확보해야 한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또 “일본은 지난 1년 동안 신사참배와 역사교과서 왜곡, 독도 문제까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면서 지난해 3·1절에 이어 일본에 강한 유감을 표시했다. 노 대통령은 “우리 국민의 입장에서 아직도 일본이 침략과 지배의 역사를 정당화하고 또다시 패권의 길로 나아갈지 모른다는 의구심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는 “2차대전 후 60년 동안 일본이 걸어온 길을 잘 보고 앞으로도 한·일 우호를 위해 노력해 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야스쿠니 신사참배와 헌법개정 움직임을 비판한 노 대통령의 기념사에 대한 소감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나는 일·한 우호론자”라며 이렇게 반박했다. 일본정부 대변인 아베 신조 관방장관도 기자회견에서 “노 대통령에게도 일본이 자유와 민주주의, 인권을 지켜 세계에 평화를 확립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고 싶다.”며 불쾌감을 표시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이날 기념사에서 “일본은 이미 사과했다. 우리는 거듭 사과를 요구하지 않는다. 사과에 대한 합당한 실천을 요구한다.”고 강조했다. 일본에 사과에 따른 책임있는 실천만이 꼬인 한·일관계를 푸는 열쇠임을 역설한 셈이다. 노 대통령은 특히 “‘주변국이 갖고 있는 의혹은 근거가 없다.’고만 말할 것이 아니라 의심을 살 우려가 있는 행동을 자제해야 한다.”며 고이즈미 총리의 신사참배 등 ‘일련의 망동 및 망언’을 비판했다. 또 “일본이 ‘보통국가’, 나아가 ‘세계의 지도적 국가’가 되려면 법을 바꾸고 군비를 강화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노 대통령은 이어 “이웃 나라에 대해 잘못 쓰인 역사를 바로잡자고 당당하게 말하기 위해서는 우리 역사도 잘못 쓰인 곳이 있으면 바로잡아야 한다.”면서 “진행중인 과거사 정리과정은 이러한 관점을 고려해 진행돼야 한다.”며 과거사 정리 작업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한편 시민·학생을 비롯, 각계 인사 3000여명이 참석한 기념식에서는 이화여고 합창단이 80년대 운동권 노래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를 행사곡으로 불렀다. hkpark@seoul.co.kr
  • [구청장 현장인터뷰] 추재엽 양천구청장

    [구청장 현장인터뷰] 추재엽 양천구청장

    “독도는 우리땅.‘으뜸’ 양천구민 파이팅.” 제 87주년 3·1절인 1일 오전 11시. 추재엽(51) 양천구청장은 ‘제2회 독도사랑 양천마라톤 대회’가 열린 목동교 밑 안양천 변의 출발대에 올라 힘찬 목소리로 참가자들을 격려했다. 아침부터 봄을 재촉하는 꽃샘 추위가 몰아쳤지만 추 구청장은 7000여명의 참가자 모두가 출발할 때까지 태극기를 흔들며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양천구와 독도를 사랑하는 구청장 ‘독도사랑’이라고 쓴 머리띠를 두른 그는 “마라톤은 암울했던 일제시대 손기정옹이 국민들의 절망을 희망으로 바꿔준 스포츠”라면서 “3·1절을 맞아 구민들이 독도사랑과 양천 사랑을 다시한번 되새기는 자리가 됐으면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마라톤 대회는 지난해 일본 시마네현이 ‘다케시마의 날’을 제정하는 등 일본의 역사왜곡이 한창이던 때 이를 규탄하고, 구민들에게 자주 독립정신과 역사관을 심어주기 위해 시작됐다. 양천구를 시작으로 독도사랑 열기가 전국으로 확산되기를 바란다는 취지도 담고 있다. 올해는 3·1절 기념식을 겸해서 열렸다. 추 구청장은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과 애국가 제창, 만세삼창, 규탄사 낭독 등을 참가자들과 함께 했다. 스포츠맨인 추 구청장은 이날 5㎞에 참가해 주민들과 함께 뛰려 했으나 대회 직전에 참가를 포기했다. 쌀쌀한 날씨 때문에 생길지 모를 안전사고에 대비해 참가자들의 안전을 직접 챙기기 위해서다. 그는 “뛰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은데 주민의 안전을 챙기는 게 우선이어서 포기했다.”며 못내 아쉬워했다. ●아줌마 부대에 인기 ‘짱’ 추 구청장은 이날 아줌마(?) 참가자들이 몰려들어 악수를 청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임기동안 여성과 청소년을 위해 양천구를 교육·문화·예술·환경도시로 가꾸는데 주력했기 때문이다. 안양천 변을 생태공원과 청소년을 위한 자연학습장으로 가꿨고, 목동과 신월동에 걷고 싶은 거리를 조성했다. 관내 58개 초·중·고등학교와 45개 유치원에 97억원의 예산을 지원해 보도정비와 체육시설을 신설했다. 최근 3년동안 서울지역 특목고 입학생 숫자에서 양천구가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또 전국자치단체 중 최초로 장수문화대학을 운영하고 있으며, 테마가 있는 실버공원도 조성했다. 그러나 열악한 재정에 비해 주민들의 민원이 많아 애로사항이 적지않다고 전했다. 그는 “재정은 지난해 25개 구청중 18위에 불과하지만 전문직 종사자가 가장 많이 살고 있고, 대외적으로는 강남구보다 살기좋은 동네로 알려져 주민들의 요구사항이 유달리 많다.”면서 “그러나 주민들의 민원은 결국 구의 발전으로 이어지는 밑거름이 된다.”고 강조했다. ●추진력 겸비한 젊은 구청장 젊은 구청장인 만큼 감각도 젊다. 구청장으로서는 드물게 개인 홈페이지(www.powerchoo.com)를 직접 운영한다. 네티즌들과 의견을 나누기 위해서다. 그는 “올해는 컴퓨터를 완벽하게 배워 예쁘고 다양하게 홈페이지를 꾸며보고 싶다.”고 말했다. 올해 마련한 20대 대표사업도 젊은 감각이 빛난다. 낙후된 신월동 지역의 발전을 위해 신월·신정 뉴타운 사업을 추진하고, 교육도시답게 자립형 사립고와 특목고 유치에도 힘을 쏟고 있다. 특히 대중교통 수단이 없는 남부순환도로 주민들의 교통불편 해소를 위해 신월∼신정∼목동∼당산간 경전철 사업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 그는 “구청장은 구민을 편안하고,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도록 열심히 일하는 공복(公僕)”이라면서 “공복답게 올해도 구민들을 위해 열심히 일하겠다.”고 다짐했다.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출생 1955년 충남 보령 ▲학력 서울공고, 홍익대 전기공학과, 한양대 행정대학원(박사과정) ▲약력 서울시의회 사무처 전문의원(4급), 국회 정책연구위원(2급), 한나라당 부대변인, 홍익대 총동문회 부회장, 한나라당 양천을지구당 상임부위원장, 가톨릭대 행정대학원 겸임교수, 제7회 지방자치대상 복지대상, 대한민국 고객만족경영대상 최우수상(CS부문), 자랑스런 향토인상 ▲가족 한정순씨와 1남 2녀 ▲기호음식 김치찌개 ▲주량 마시지 않음 ▲좌우명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자 ▲애창곡 유행가
  • 철거위기 상하이 임정청사 함평군 함정리에 복원된다

    ‘3·1 독립만세’ 87주년을 맞아 나비의 고장인 전남 함평군에 중국 상하이(上海)에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가 복원된다. 이 청사는 연면적 643㎡에 3층짜리 붉은 색 벽돌건물로 상하이의 도시 재개발로 철거 위기에 놓여 있다. 함평군은 “상하이에 있는 임시정부 청사를 국비 등 39억원을 들여 함평군 신광면 함정리에 세운다.”고 밝혔다. 함정리는 독립운동가인 일강 김철 선생이 태어난 곳으로, 함평군은 2004년 6월 이곳에 21억원으로 독립운동가 김철선생 기념관을 세워 청소년들의 역사 체험관으로 이용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국가보훈처로부터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된 김철 선생은 1917년 고향의 천석꾼 살림을 팔아 상하이로 망명했고 자신이 살던 집을 임시정부 청사로 내놨다. 그는 김구 선생 밑에서 초대 재무장과 국무위원을 지내는 등 일평생 조국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이석형 군수는 “철거 위기에 놓인 임시정부 청사를 김철 선생 기념관 옆에 복원해 조국 독립에 몸을 불사른 애국선열들의 숨결과 열정을 느끼는 역사교육의 마당으로 만들겠다.”고 말했다.함평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 [3·1절 발굴] 고려혁명군 2인자 최호림 연해주 항일투쟁기 ‘햇빛’

    [3·1절 발굴] 고려혁명군 2인자 최호림 연해주 항일투쟁기 ‘햇빛’

    3·1운동 87주년을 맞아 러시아 연해주 등 해외 항일무장투쟁을 기록한 독립운동가의 자필문서가 공개됐다. 이를 기록한 사람은 1920년대 독립군 무장투쟁을 이끌었던 최호림(崔虎林·1893∼1960) 선생으로, 그동안 사회주의자라는 이유 때문에 묻혀 있던 그의 활동상도 확인됐다. 독립운동을 하며 언론인·극작가·소설가로도 활약한 최 선생의 기록에는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독립군 및 비밀결사단체의 활동과 조직구성이 상세히 소개돼 해외 독립투쟁사 연구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신문은 27일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 한국학과 반병률 교수로부터 최 선생의 ‘원동변강 고려인 생활역사 초록’(遠東邊疆 高麗人 生活歷史 抄錄) 제1권을 단독 입수했다. 46배판 97쪽 분량으로 된 초록은 러시아 하바로프스크에서 자필로 쓴 것으로 선생이 39세 때인 1932년 9월15일 탈고됐다. 반 교수는 지난해 8월 하바로프스크 국립문서보관소에서 이 자료를 입수, 현재 우즈베키스탄 아쿠르간에 살고 있는 선생의 둘째 동생 최주옥(93) 옹을 통해 진본임을 확인했다. 초록은 1919년 3·1운동 직후 불길처럼 번진 연해주 한인들의 항일무장투쟁을 다루고 있다.1893년 함경북도 경성에서 3남2녀의 장남으로 태어난 선생은 중국 베이징 등지에서 고등교육을 받은 뒤 1919년 5월 연해주 라즈돌리노예에서 허제명·박명천 등과 함께 빨치산 독립의용군을 창설했다. 선생은 당시 자신의 활동상과 함께 혈성단 강국모 군대, 우리 동무군 등 인근에서 활동하던 독립군의 병력규모, 장비, 조직도 등을 초록에 기록했다. 이밖에 북한 김일성이 ‘항일 신화창조’의 모델로 삼았다는 의혹이 있는 김경천 장군의 군대를 비롯해 조맹선의 독립단 군대, 이범윤의 의군부 군대, 안훈의 자유시독립군, 한창길 군대, 황하일 군대, 최 니콜라이 군대, 김병극 군대 등 당대 연해주와 만주를 주름잡았던 독립군들의 활동상도 망라했다. 이 부대들의 일부는 1922년 8월 1542명 규모의 고려혁명군으로 통합됐으며 최 선생은 이곳의 2인자격인 군정위원장을 맡아 사상교육을 담당했다. 이청천 장군이 사관학교장, 이범석 장군이 기병대장을 맡았다. 최 선생이 직접 그린 편제안을 보면 고려혁명군은 사령부 휘하에 ▲정치부(서무과, 통계과, 통신계, 선전선동과) ▲경리부(재무국, 피복국, 재봉국) ▲치중대(전투) ▲기병대(〃) ▲특립대(〃) 등 틀을 갖추고 있었다. 선생이 이끈 ‘최호림 부대’는 처음에 부대원 35명, 장총 35정, 탄약 3000여발로 시작해 석달 만에 부대원 120명, 장총 124정, 탄약 3만여발 규모의 대규모 의용군으로 성장했으며 시베리아에 출정한 일본군을 공격하기도 했다. 이번 초록을 통해 연해주와 만주에서 독립운동 비밀결사단체로 활약했던 광복단(1911년 결성)과 철혈단(1914년)의 주요 구성원 명단도 최초로 공개됐다. 광복단은 이동휘·오주혁·장기영·백규삼·황병길·김동한·이종호·계봉우·김하석·김하구·오영선·구춘선·김립 등 13명을 발기단으로 출범, 이명순·오병묵 등이 핵심역할을 했다. 철혈단의 중요인물로는 김철훈·김진·최의수·최이준·한강일·정순철 등을 꼽았다. 선생은 1920년대 후반부터는 무장투쟁을 일단락하고 사상과 문학을 바탕으로 한 사회주의 활동에 투신했다.1928년부터 3년간 모스크바국립대학에서 저널리즘을 공부한 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지역 한인사회의 구심점 역할을 했던 한글신문 ‘선봉’의 책임주필로 활약했다. 사회주의자이면서도 러시아의 민족주의적 공산주의를 강하게 비판하는 글로 명성을 날렸다. 이때 가극 ‘녀자대표’와 장편소설 ‘시비리 철도행’, 우화소설 ‘숙기거는 토끼’ 등을 창작하며 작가로서 왕성하게 활동했다. 하지만 소련 스탈린정부의 한인 탄압이 본격화하면서 1936년부터 3년,1941년부터 4년,1948년부터 6년 등 3차례에 걸쳐 13년간 옥고를 치렀다. 최 선생은 1960년 가족들이 강제이주된 우즈베키스탄 아쿠르간에서 쓸쓸하게 눈을 감았다.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3·1절 순국선열·애국지사 58명 포상

    정부는 제87주년 3·1절을 기념해 항일운동을 펼친 곽영준·김홍규 선생 등 순국선열 및 애국지사 58명을 포상하기로 했다고 21일 밝혔다. 포상되는 독립유공자는 건국훈장 애국장 1명, 애족장 9명과 건국포장 10명, 대통령표창 38명 등인데, 이 가운데 생존자는 대통령표창을 받는 정귀택 선생 1명이다. 정 선생은 인천상업학교 학생들과 학병반대운동을 펼치다가 체포돼 옥고를 치렀다. 훈·포장은 3·1절 당일 중앙기념식 행사가 열리는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수여된다.◇건국훈장 애국장 곽영준(郭英俊·3.1운동)◇건국훈장 애족장 김홍규(金弘圭·국내항일), 박수명(朴洙命·국내항일), 오우홍(吳宇鴻·국내항일)오종옥(吳種玉·국내항일), 유중식(兪中植·3·1운동), 이호영(李瑚寧·3·1운동) 조훈석(趙薰錫·국내항일), 최월상(崔月上·학생운동), 홍사묵(洪思默·국내항일)◇건국포장 김기현(金基鉉·3·1운동), 김정환(金正桓·국내항일), 박홍섭(朴洪燮·3·1운동)박후도(朴後度·3·1운동), 백춘갑(白春甲·학생운동), 우희원(禹熙元·3·1운동)장연송(張連松·국내항일), 장화진(張和鎭·국내항일), 최대희(崔大熙·국내항일)허원용(許元用·3·1운동)◇대통령표창 권혁수(權赫壽·학생운동), 박제돈(朴濟敦·이하 국내항일), 유쾌동(柳快東), 윤창석(尹昌錫), 김구진(金龜鎭·이하 3·1운동), 김길호(金吉浩), 김명기(金明基), 김병권(金秉權), 김병길(金炳吉)김복식(金福植), 김봉근(金奉根), 김재돈(金在敦)김칠봉(金七峯), 민영식(閔榮植), 박정렬(朴貞烈), 박천근(朴千根), 방기용(方起容), 방화용(方花容), 손문원(孫文遠), 신석범(申錫範)신태복(申泰福), 심종완(沈鍾心+元), 양운칠(梁云七)유남식(劉南植), 유화진(兪華鎭), 윤자벽(尹滋壁)이갑손(李甲孫), 이근복(李根復), 이오정(李吾丁), 이항순(李亢淳), 전우진(田禹鎭), 정귀택(鄭龜澤), 정학조(鄭學朝), 정해득(鄭亥得), 정홍조(鄭弘朝·), 최성심(崔聖心), 최학용(崔學用), 최홍기(崔弘基)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도약 2006-우리는 이렇게 뛴다](13)한국도로공사 손학래 사장

    [도약 2006-우리는 이렇게 뛴다](13)한국도로공사 손학래 사장

    “도로공사는 고속도로라는 기간산업을 담당하는 기업입니다. 민간기업보다 더 높은 수준의 청렴도와 투명성이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손학래 한국도로공사 사장은 창립 37주년을 하루앞둔 14일 도공이 존재하는 이유를 이렇게 강조했다. 도공을 ‘국민과 시민기업’으로 정의한 손 사장은 깨끗한 기업, 즉 ‘클린 컴퍼니’로 태어나지 못하면 도공이 있어야 할 이유가 없다고 단언했다. 손 사장은 윤리경영 외에도 ▲고객중심기업▲화합과 신뢰의 신기업문화 구축▲건강한 노사관계를 올해 도공이 추구해야 할 기업목표로 제시했다. 그는 “지혁균형 발전과 교통수요에 대비한 국가 간선도로망 건설계획에 따라 2020년까지 남북 7개축, 동서 9개축 등 총 6160㎞의 고속도로를 건설할 계획”이라며 고속도로망을 대폭 확충하겠다는 뜻을 강하게 내비쳤다. 손 사장은 ‘7×9’로 불리는 이른바 ‘국가 간선도로망’이 건설되면 전국 어디에서나 30분 이내 고속도로에 접근 가능한 반일 생활권을 실현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손 사장은 구체적으로 “올해는 남북 5개축이 완료된 점을 감안해 동서축 고속도로 건설에 중점투자할 계획”이라고 소개했다. 손 사장은 “고속도로는 건설하는데에만 의미를 둘 수 없다.”면서 “환경친화적이고 도로관리 체계를 과학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건설하는 것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친환경적인 도로건설로 ‘로드킬’을 예로 들었다. “도로를 횡단하는 동물들이 차에 치여 죽는 로드킬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도로공사는 고속도로를 건설할 때 야생동물 생태통로 설치, 동물 유도펜스 설치를 의무화하고 있습니다.” 도로공사는 손 사장의 뜻에 따라 현재 고속도로에 설치된 생태통로 14개 외에 48개를 추가로 설치하고 있다. 손 사장은 고속도로 안전의 중요성도 빼놓지 않았다. 그는 “최근 3년 동안 전국 고속도로에서 모두 9180건의 교통사고가 발생해 4350명이 다치고 839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말했다. 때문에 고속도로 본연의 기능인 빠른 이동을 확보하면서도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 사고 취약구간 및 선형불량을 지속적으로 개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손 사장은 “이같은 노력의 결과로 2002년 이후 해마다 교통량은 늘어났지만 교통사고 건수는 10%가량, 사망자는 15%가량 줄어들었다.”면서 “앞으로도 매년 1700억원의 예산을 투자, 고속도로 사고취약지점을 개선하고 도로안전시설을 확충해 안전성을 획기적으로 높이겠다.”고 말했다. 손 사장은 창립 37주년을 맞아 국민과 더불어 사는 기업을 화두로 던졌다. 세부안으로는 ‘유비쿼터스 하이웨이(U-Highway)’,‘시민기업으로 재무장´,‘사회공헌´을 제시했다. 그는 “올해 설 연휴는 짧은 기간에도 불구하고, 전구간 교통량은 6.6% 늘었으나 소요시간은 단축됐다.”면서 “이는 도로공사가 그동안 지속적으로 추진해온 정보화 고속도로의 효과가 본궤도에 올랐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설연휴기간 동안 첨단교통체계(ITS)와 인터넷방송과의 접목을 통해 고속도로와 우회도로 정보를 신속하게 전달한 도공의 노력이 주효한 것이다. 손 사장은 공기업으로서의 사회적 역할도 강조했다. 그는 “지난해 2월부터 매주 두차례 서울역 노숙자 급식 지원사업을 해오고 있다.”면서 “앞으로도 따뜻한 사회, 살맛나는 사회,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전직원이 돌아가면서 한번씩 사회에 공헌하는 자원봉사 프로그램을 더욱 확대운영하겠다.”고 말했다. 강충식기자 chungsik@seoul.co.kr
  • 베네수엘라·미국 외교 전면전

    베네수엘라·미국 외교 전면전

    “미국 대사관 무관이 스파이짓.” “베네수엘라는 ‘악의 축’과 친구.” 두 나라 관계가 악화일로로 치달으면서 ‘실력행사’ 단계로 접어들었다. 그간 못마땅해하면서도 외교적 설전만을 벌였던 두 나라는 대사관 직원 추방 등 점점 더 서로를 ‘제국주의’와 ‘불량국가’로 못박으며 힘겨루기에 들어간 것이다. ●“美대사관 직원이 무기정보 빼내”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2일(현지시간) 집권 7주년 TV 연설에서 “미 대사관에서 근무하는 ‘존 코레아’란 해군 장교가 간첩 활동을 했다.”면서 공개적으로 추방 명령을 내렸다. 그는 나아가 “무관들이 또 그런다면 구금될 것”이라며 “다음 단계는 미국의 모든 군 파견단을 내쫓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베네수엘라는 최근 자국의 전·현직 해군 장교들이 민감한 국가 기밀을 미 국방부에 전달한 사건에 미 대사관 무관들이 개입했다고 보고 있다. 문제의 기밀은 무기 계약과 관련된 것으로 알려졌다. 베네수엘라가 스페인에서 20억달러 규모의 군용 수송기와 정찰기를 도입하려 하자 미국은 자국산 부품이 포함돼 있다며 제동을 건 상태다. ●럼즈펠드,“차베스는 히틀러 같아” 미국 정부는 간첩 혐의를 부인하면서 외교 채널로 해결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하지만 매파들은 베네수엘라를 향해 강경 발언을 쏟아내 갈등을 부채질하고 있다.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은 이날 바로 차베스를 대고 “걱정스러운 인물”이라며 “히틀러처럼 합법적 선거로 뽑혔지만 막강한 권력을 휘두른다.”고 비아냥댔다. 존 니그로폰테 미 국가정보국장은 베네수엘라가 북한, 이란 등 이른바 ‘악의 축’ 국가들과 친해지고 있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실제로 북한과는 지난해 11월 무역협정을 체결하고 1999년 철수한 상주 대사관 설치에도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또 “베네수엘라와 이란 등 에너지 대국들이 지정학적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며 미국의 ‘특별경계’를 주문했다. 미국은 베네수엘라에서 17%의 석유를 수입하고 있어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공화당을 중심으로 퍼지고 있다. 세계 5위의 석유 부국인 베네수엘라는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원유 감산을 주도해 미국으로선 눈엣가시 같은 존재다. 올들어 유정통제권을 다국적 기업으로부터 환수하기도 했다. 차베스 대통령은 “미국이 침공을 기도한다면 석유 수출을 중단하겠다.”고 위협해 왔다. 일각에선 ‘제2의 이라크’가 나온다면 베네수엘라가 될 것이란 설도 제기된다. 베네수엘라가 스페인과 브라질에서 잇따라 무기 도입을 추진하는 데 대해 미국이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박정경기자 olive@seoul.co.kr
  • [수도권플러스] 3월1일 독도사랑 마라톤대회

    서울 양천구(구청장 추재엽)는 87주년 3·1절을 맞아 자라나는 2세들에게 올바른 역사관을 심어주기 위해 ‘독도사랑 제2회 양천마라톤 대회’를 개최한다고 24일 밝혔다. 대회는 3월1일 오전 10시 안양천 목동교 밑 인라인스케이트장에서 열린다. 코스는 5㎞,10㎞, 하프 등 3가지로 참가 신청은 다음달 15일까지 구 홈페이지(www.yangcheon.or.kr)를 통해 선착순 접수한다. 참가 인원은 6000명이며, 참가비는 5㎞ 3000원,10㎞·하프 5000원이다.
  • [지금 대전청사에선] 金 중기청장 “내 애경사 관심두지말라”

    ●“육십의 좋은 뜻만 새겨야.” 신년사에서 직원들의 전문성을 강조했던 진동수 조달청장이 지난 17일 57주년 개청식에서도 같은 메시지를 반복 전달하며 분발을 거듭 촉구. 진 청장은 논어에 나오는 ‘육십이순(六十耳順)’이란 뜻은 “말을 들으면 바로 이해하는 동시에 새로운 것을 싫어한다는 뜻도 있다.”면서 “좋은 뜻만 새겨서 받아들이라.”고 주문. 시무식에서도 업무매뉴얼을 제대로 만들어 놓지 않은 직원, 보고서 내용에 대해 아무런 의견도 제시 못하는 간부 등을 지적하며 개인의 능력이 인정받는 조직을 만들겠다고 밝히기도. 한 관계자는 “직원들에게 실질적인 성과를 보여달라는 강력한 요구가 담겨있다.”며 “이로 인해 특히 간부들이 더욱 긴장하는 분위기”라고 소개.●아들 결혼식·모친상 미공개로 치러 김성진 중소기업청장이 “공적인 업무외에 개인사는 관심을 갖지 말라.”는 소신을 실천하고 있어 눈길. 김 청장은 지난 15일 서울에서 아들 결혼식을 치렀으나 청 직원들에게 이 사실을 전혀 알리지 않아 아무도 참석하지 못했다는 후문. 지난해 모친상도 공개하지 않고 몰래(?) 치러 나중에 소식을 접한 지인 및 간부들을 머쓱하게 했다는 것. 더욱이 김 청장은 직원들이 성의를 모아 전달한 조위금마저 전액 사회복지시설에 기증했다고. 한 관계자는 “사전에 이같은 사실을 알고 있더라도 청장이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 직원들에게 함구할 수밖에 없다.”고 고충을 토로.●화장실에서 휴식을 “힘들거나, 마음에 안정을 찾고 싶으면 화장실에 가라?” 관세청 공무원직장협의회가 화장실내에 비치하는 명구(名句)들이 직원들로부터 큰 인기를 끌고 있다고. 공직협은 내·외부 고객들이 짧은 시간에 삶의 지혜를 얻고 안정을 찾을 수 있는 이벤트로 화장실 각 칸에 메모형식의 글을 비치. 또한 서울세관 등에서는 이를 벤치마킹하는가 하면 직원들간 글귀를 인용해서 사용하는 사례도 빈번해졌다는 것. 발췌부터 편집, 설치까지 1년간 이 일을 맡아온 정모(39)씨는 “귀찮지만 새로운 글을 기다리는 정기독자까지 생겼다.”고 전언.박승기기자 skpark@seoul.co.kr
  • 107세 우리銀 ‘역사·인물자랑’ 이채

    “영친왕은 2대 은행장이었고, 배우 최무룡씨도 우리 직원 출신이랍니다.” 지난해부터 ‘토종은행’을 강조해온 우리은행이 4일 창립 107주년을 맞았다. 우리은행은 이날 오후 90년 이상 거래고객,4대째 거래를 이어오는 고객 등을 초청해 기념식을 가졌다.“더 강해진 체력과 사명감으로 그동안 못한 장남의 역할을 만회하다.”는 황영기 행장의 말대로 우리은행은 앞으로 ‘역사’를 앞세워 더 공격적으로 나갈 예정이다. 우리은행은 1899년 황실의 내탕금(황실자금)으로 설립된 대한천일은행이 모태가 됐다. 상업·한일·평화은행 등이 합쳐지면서 역대 행장은 68명이나 되고, 이날 기념식에 초대된 행장만 18명에 이르렀다. 초대은행장은 황실재정 담당 대신이었던 민병석이다.2대 은행장은 영친왕 이근이다. 우리은행은 1915년부터 지금까지 서울시금고를 운영하고 있어, 서울시는 우리은행의 91년 고객인 셈이다. 두산그룹도 1919년부터 계속 우리은행과 거래를 하고 있다. 삼양사, 삼성물산 등 9개 기업은 50년 이상 거래고객이다. 개인고객으로는 김종관(75·인천 도화동)씨가 55년째 우리은행과 거래를 해오고 있다. 김씨는 20년째 인천지점의 명예지점장을 맡고 있다. 인천지점은 은행 창립과 동시에 생긴 첫 지점이기도 하다. 파스퇴르유업 설립자인 최명재 전 회장, 영화배우 최무룡씨 등은 이 은행 행원 출신이다. 여자농구계의 ‘살아 있는 전설’ 박신자씨는 상업은행, 삼성 프로야구단 김응용 사장은 한일은행 직원 신분으로 각각 농구단과 야구단에서 활약했다. 축구국가대표팀의 사령탑이었던 김호 전 감독도 한일은행 축구팀에서 뛰었다. 우리은행과 4대째 거래를 하고 있는 김홍석씨는 “은행 거래도 ‘한 우물’만 파면 다른 고객보다 훨씬 많은 혜택을 누릴 수 있다.”고 말했다.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신상품]

    ●유사미 바른손카드는 2006년 병술년 개띠 해를 맞아 ‘개띠 해 수묵화 카드’ 시리즈를 선보였다. 검은 먹으로 한국의 토종 개를 그려 전통적이면서도 품위있는 느낌을 준다. 십이지의 열두 동물을 그린 카드, 김홍도의 미인도 등 한국화를 담은 카드 등도 함께 나왔다.●웅진식품 겨울철을 맞아 아침햇살을 온장음료로 내놓았다. 출시 7주년을 맞아 낡은 제품이미지를 벗고, 세련되고 젊은 느낌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아침식사를 거르는 소비자들이 추운아침에 따뜻하게 마셔 허전한 속을 채우도록 기획했다고.280㎖ 1100원.●롯데리아 파프리카와 토마토를 사용한 ‘파프리카 베이컨 비프’를 새롭게 출시했다. 영양가가 높아 야채의 귀족이라 불리는 파프리카에 고급 쇠고기 패티 2장, 베이컨과 치즈를 넣고, 피클과 양파를 곁들인 전통 햄버거. 달콤한 과육과 화려한 색깔로 미식가의 입맛을 자극한다.3800원.●이롬 제주도에서 자란 무농약 감귤 과실 100%로 만든 ‘제주감귤생즙’을 선보였다. 비타민이 풍부한 감귤 과실 그대로 정성껏 즙을 내어 만들어 진한 맛과 향이 살아 있다고.130㎖ 1300원.●대한펄프 천연 한방 정화 패트 ‘매직스 한비(한방의 비밀)’를 내놓았다. 패드에 쑥 추출물, 숯, 황토, 포공영 추출물의 천연 한방 성분이 들어 있어 생리 후 자궁에 남아 있는 분비물을 좌욕한 듯 정화시킨다고.3600원.●태평양 치아 화이트닝 기능을 강화한 메디안 화이트닝 프로 치약을 선보였다. 일반 치약의 성분에서 화이트닝 기능을 강화한 제품이라 미백제처럼 치아를 마모시키지 않는다. 양치질을 하는 동안 미세한 산소방울이 치아 얼룩과 오염을 제거한다고.100g 4900원.●하나코비 락앤락 원형과 사각형의 중간 형태인 젠(Zen)타입 다지인을 갖춘 ‘네스터블 젠 시리즈’를 출시했다. 겹쳐 쌓기가 가능하다. 반찬통 세트는 밑반찬과 장류 등 소량의 음식을, 샐러드볼 세트는 야채 및 다양한 과일을 넣을 수 있다.2580∼8800원.
  • 간판내린 음악실 세시봉 17년

    간판내린 음악실 세시봉 17년

    서울 종로구 서린동 115에 자리잡은 음악감상실「세시봉」이 간판을 내렸다. 대학생이라면 한두 번 안가 본 사람이 없는 서울의 명물. 17년간 이어온 친근한 이름이 하룻밤 사이에 종적을 감추었다. 가벼운 호주머니의 젊은이, 남녀 대학생들이 음악과 정담 속에 마음을 달래던 안식처 - 멋모르고 찾아왔던 단골 젊은이들은 떨어져버린 간판에 한 가닥 애수마저 느끼는 것 같다. 최초의 경음악 감상실로, 젊은이의 숨결이 젖은 곳 떨어져나간「세시봉」간판에 애수를 느끼는 건 비단 이 집을 찾는 단골 학생들만은 아니다. 「세시봉」이란 이름을 지키며 대학생, 젊은이들에게 안식처를「서비스」하고 있다고 자부해온「세시봉」주인 이흥원(李興元·58)씨 - 그는 거의 허탈에 빠진 모습으로 옛집 주변을 서성거리고 있다. 자기집 간판이 타의에 의해 철거됐다는 사실이 그를 더욱 우울하게 만든 것 같다. 「세시봉」이 문을 닫은 건 5월 2일 아침 7시 집달리에 의해서였다. 당초 2백 30만원에 세든 이 집은 68년 11월에 계약만료 됐고 집주인의 요구대로 집을 넘겨줘야 했다. 그러나 李씨는 새로 이사할 장소를 잡지 못한 채 6개월만 연장해 다라고 애원했다. 5월 25일이면「세시봉」이 문을 연지 17주년 기념일. 그날까지만이라도 기다려 달라고 했다. 그러나 집주인의 고소로 이 문제는 법정에 올랐고 판결은 결국 李씨가 패소, 집을 내놓게 되었다. 『갈 곳을 잡을 때까지만 참아줬어도 좋을 텐데 이제야 어쩔 수 있겠소』비속에 내던져진 탁자들을 멀거니 바라보면서 이흥원씨는 체념의 빛을 띠었다. 「라이트·뮤직」을 상표로 한「세시봉」이 젊은이들의 보금자리를 표방하고 문을 연 건 17년 전 명동에서 당시 육군 준장이던 金모씨에 의해서였다. 그때만 해도「클래식」위주의「뮤직·홀」은「르네상스」「디·쇠네」등이 있었지만「라이트·뮤직」은「세시봉」이 효시였다. 「클래식」에서「재즈」시대로 접어드는 젊은이의 호흡에 맞춰 유행「팝·송」을 주로 들려주었다. 숱한 문인(文人), 정객(政客), 교수들이 대학생들과 어울리더니 이흥원씨가「세시봉」을 인수한 건 63년. 「세시봉」이 명동에서 종로2가 YMCA 뒤로, 그리고 다시 소공동으로 옮긴 뒤였다. 당시만 해도「뮤직·홀」은 일명「무직(無職)·홀」로 사회의 질시를 받았다. 「세시봉」을 인수한 이흥원시는 적어도「뮤직·홀」의 풍조를 개선했다는 점에서 주목해도 좋은 인물이다. 그는「뮤직·홀」을 불량학생의 소굴이란 인상에서 젊은이들의 건전한 휴식처, 사교장으로 바꿔놓는데 성공했다. 이것은「세시봉」을 찾는 고객들로도 입증할 수 있다. 「세시봉」엔 대학생, 젊은이들 뿐 아니라 정치인, 교수, 문인들이 즐겨 여가를 즐겼다. 신동준(申東峻), 김대중(金大中), 김상현(金相賢), 이상희(李相禧)씨 등 현직 국회의원이 얼굴을 보이는가 하면, 서정주(徐廷柱), 박두진(朴斗鎭), 조병화(趙炳華), 김종문(金宗文)씨 등 시인들도 나타나 대학생들과 마주 앉았다. 작고시인 김수영(金洙暎)씨도 단골손님 -『골치 아파서 나왔다』면서 한두 시간씩 앉아있곤 했다. 대학교수로는 양주동(梁柱東), 김은우(金恩雨), 김두희(金斗熙)씨가 나타났었고, 연예인으로는 길옥윤(吉屋潤), 이봉조(李鳳祚), 김광수(金光洙), 김강섭(金康燮)씨 등이 단골손님. 연예인(演藝人)의 산실(産室)·「청춘1번지」도 열려 「밴드·마스터」여대영(呂大榮)씨도 한 달에 2, 3회씩 살그머니 다녀나갔다. 가수 중에는 최희준(崔喜準),「위키」李, 한명숙(韓明淑), 이금희(李錦姬), 최정자(崔貞子), 유주용, 조영남이 단골. 특히 조영남,「트윈·폴리오」는 가수 되기 이전「세시봉」에서 상주하다시피 한「세시봉」가족이다. 그러나 보다 이색적인 건 감상실 안에서 일정한「프로그램」을 가지고 공동의 광장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그곳에서 벌인「선데이 서울」의「청춘1번지」는 젊은이의 공동관심사에 대한 대화의 광장으로 인기를 끌었고 대학생들의「즉흥시 백일장」은 3년 끈 장수「프로」였다. 몇 개의 방송국 또는 TV국이 이「세시봉」의「프로」를 중계하기까지 했다. 좌석 4백석의「세시봉」은 하루 평균 1천명의 대학생, 젊은이들이 출입했다. 그들 중 3분의 1이 집의 단골손님. 그들 단골의 대부분은 주인 이흥원씨를 아저씨라고 부른다. 175cm의 키에 58세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탄탄한 체구를 갖고 있다. 단순한 찻집주인과는 달리 그는 출입학생들의 신상상담을 맡을 만큼 젊은이들과 잘 통하고 있다. 실연한 여학생의 인생상담에서 부모와의 불화를 호소하는 젊은이에 이르기까지 그는 친절하게「카운셀링」에 응한다. 젊은이 따뜻이 살펴주던, 당수(唐手) 초단의 주인아저씨 60년의 인생경력으로 그 나름의 인생문답을 하는 노신사지만 마냥 부드럽기만 한 사람은 아니다. 당수가 초단, 때로는 이 노신사의 주먹에 불꽃이 튀기도 한다. 「세시봉」의 위치가「바」「카바레」의 집결지란 점에서 불량배가 날뛸 요소는 있다. 밤늦게 혼자 돌아가는 여학생은 반드시 큰길까지 바래다 주지만 때론 봉변을 당하기도 한다. 타일러도 안 되는 불량배는 1대 1로 대결, 힘으로 굴복시키기도 했다. 그는 단골 학생들을「우리 아이들」이라 부른다. 그의「아이들」은 현재 전국 곳곳에 흩어져 있고 아직 옛 정을 그대로 유지해왔다. 군에 입대한 병사에게선「세시봉」시절을 그리워하는 편지가 오고 휴가 나오면 꼭 들러간다. 지난해 4월 李씨는「파월장병 시화전」이란 걸「세시봉」에서 열었다. 「세시봉」가족이었던 병사들을 중심으로 18점의 시화를 보내와 제법 풍성한 잔치를 벌였다. 10만원의 자비를 넣고도 흐뭇해 했다. 그리고 10월엔「모범사병 위안의 밤」을 열기도 했다. 수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학생시절의 낭만을 심어준「세시봉」은 이제 아주 없어지는 것일까? [ 선데이서울 69년 5/11 제2권 19호 통권 제33호 ]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전광표 한국 구세군사령관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전광표 한국 구세군사령관

    ‘왜 겨울이지요?’ 이런저런 설(說)이 많다. 재미있는 근거(?) 하나.‘겨’는 지금의 계시다는 말에서 유래했고 ‘울’은 올아비라는 의미란다. 그러니까 오라비, 남자가 집에 있다는 뜻이란다.‘겨울’에는 농사일이 없기 때문에 사내들이 집을 나설 일이 없다는 것이다. 어쨌든 추운 겨울이다. 따뜻함이 기다려진다. 문득 붉은 세 다리와 냄비 모양의 모금통이 보인다. 제복을 입은 구세군의 손에서 울리는 딸랑딸랑 종소리도 정겹게 들려온다. 경쾌한 캐럴송, 금빛 꼬마전구들이 밤하늘을 반짝반짝 수놓는다. 해마다 이맘때, 성탄절을 앞두고 가는 한 해를 아쉬워하는 생각이 들면 어김없이 빨간 자선냄비가 우리들 곁에 나타난다. 어느새 세밑의 풍물 중 하나가 됐다. 산타클로스와 루돌프 사슴처럼 크리스마스의 상징처럼 됐다. 그렇다면 자선냄비의 첫 종소리는 언제 울렸을까. 궁금해진다. 자료에 따르면 1891년 성탄을 앞둔 미국의 샌프란시스코에서 처음 선보였다. 갑작스러운 재난을 당한 도시의 빈민 1000여명이 슬픈 성탄을 맞게 된 것. 이때 구세군의 한 사관(조지프 맥피 정위)은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그러던 중 기발한 생각을 떠올렸다. 오클랜드 부둣가로 가서 그곳 주방에서 사용하던 큰 쇠솥을 빌려 삼각형 모양의 받침대를 만들어 거리에 내걸었다. 그 위에 “이 국솥을 끓게 합시다.”라는 글귀를 써 붙였다. 온정의 손길이 이어졌고 성탄절 불우한 이웃들에게 따뜻한 식사를 제공할 수 있었다. 결국 이웃을 돕기 위해 새벽까지 고민하며 기도하던 한 구세군 사관의 깊은 마음이 자선냄비의 출발점이 됐고, 오늘날 전세계 111개국으로 퍼지게 됐다. 한국에는 1928년 12월15일 당시 한국 구세군사령관이었던 박준섭 사관이 서울의 종로에 자선냄비를 설치하고 “가난한 이웃을 도웁시다.”라는 말을 메가폰을 통해 호소하면서 처음 시작됐다. 이렇게 해서 구세군의 자선냄비가 우리나라에 등장한 지 77년이 됐다. 그러나 아직도 일반인들 가운데에는 깔끔한 유니폼에 모자를 쓴 모습 때문에 군인이 아니냐, 또 자원 봉사자가 아니냐며 오해하는 경우도 많다. 지난주 말 서울 중구 정동에 위치한 서울 구세군교회에서 전국의 자선냄비를 총지휘하는 전광표(65) 한국 구세군사령관을 만났다. 막 지방 출장을 떠나려던 참이었다. 그는 “언론에서 많은 관심을 가져주기 때문에 지난해보다 모금액이 9%가량 늘어 우리 민족의 따뜻한 마음을 실감하고 있다.”고 먼저 감사 표시를 했다. 이어 “작년에는 25억 5000만원을 달성했는데 올해는 조금 높은 27억원을 계획하고 있다.”면서 날씨가 추운데도 따뜻한 성원이 계속 답지하고 있다고 했다. 아울러 “그간 자선냄비의 경험을 보면 우리 민족은 어려울 때일수록 돕는 마음이 더 생기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예를 들어 “2년 전 서울 지하철 시청역에 설치된 구세군 자선냄비 모금함에 50대 초반의 중년 신사가 3752만원 상당의 수표와 현금 뭉치를 넣고 사라진 경우도 있다.”면서 경제가 어렵지만 얼굴 없는 천사의 선행이 추위와 싸우는 자원 봉사자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녹인다고 말했다. 이어 “올해는 지난해보다 19개 늘어난 230개의 자선냄비를 전국 76개 지역에 설치했다.”면서 “종전의 구세군 자선냄비가 기부자들을 거리에서 기다리는 것이었다면 올해는 미니 자선냄비를 만들어 은행 창구에서도 만날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T머니를 통한 기부, 각종 상품권 기부 등을 비롯해 거리, 지하철, 은행, 우체국 창구에서도 만날 수 있도록 했단다. 올해의 경우 명동과 서울역, 백화점 등 사람이 많이 붐비는 곳에서 모금이 잘된다면서 100만원에서 200만원 사이를 기부하는 익명의 시민들도 많다고 귀띔했다. “성금이라는 것은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한다는 말이 있잖습니까.” 전 사령관은 올해의 77주년 의미를 각별하게 생각한다. 민족의 아픔과 더불어 해마다 발생하는 이재민 구제, 빈곤 속에서 고생하는 불우한 이웃, 버려진 아이들과 함께 해왔단다.1928년 당시에는 자선냄비가 명동, 종로, 충정로 등 서울에만 20군데 놓여져 성금도 겨우 몇백원에 불과했다고 회고했다. 예전에는 100원짜리 동전이 많아 계수하는 데만 4∼5시간이 걸렸지만 요즘에는 1000원짜리 지폐가 많다 보니 계수시간이 1시간 정도로 단축됐다고 한다. 이어 “우리가 가진 것을 서로 나눌 때 더 큰 가치를 발휘한다. 나눔은 아픔을 치유하는 시발이며 인격을 고양시켜 주는 것”이라면서 자선냄비는 사회를 건전하게 만드는 철학을 담고 있다고 강조했다. 자선냄비에 얽힌 에피소드를 얘기해 달라는 질문에 “세월의 길이만큼 여러 사연이 있다.”고 전제한 뒤 “어린 아이들이 돼지 저금통을 들고 와 자선냄비에 넣는 일을 보면 눈물이 찡할 정도”라고 말했다. 또한 “며칠 전에는 서울 삼성역에서 어느 장애인이 자신이 모금한 성금을 자선냄비에 기부한 경우도 있다.”면서 따뜻한 커피, 식당 쿠폰, 문화상품권을 기부하는 사람도 더러 있다고 했다. 고사리 같은 손에 들린 코 묻은 동전 몇 닢, 폐품을 수집하는 할머니가 손수레를 끌고 가다 꺼낸 쌈짓돈, 아름다운 처녀와 데이트하느라 돈이 떨어진 탓에 헌혈증서를 내놓는 동네 청년도 있기에 추운 겨울이 그저 훈훈하단다. 전 사령관은 1941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났다.13세 되던 해 충청지방에 속한 덕암 구세군 교회 주일학교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했다.71년 구세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천연 구세군교회, 삼성구세군 교회, 영등포 구세군 교회, 과천구세군 교회 등에서 담임 사관으로 몸담았다. 이후 구세군 전라·충청·서울 지방관을 거쳐 2004년 서기장관에 임명됐으며 올해 1월1일자로 한국 구세군사령관에 취임했다. 그의 부인은 한국 구세군 여성사업총재, 즉 여성 사령관 직책으로 남편과 함께 구세군을 이끌고 있다. 슬하에 아들 둘을 두었으며 식구가 다 구세군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건강관리를 묻자 “학창 시절 탁구선수까지 했지만 요즘에는 통 운동을 못한다.”면서 틈틈이 걷는 일이 유일한 운동이라고 말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구세군의 자선냄비가 왜 빨간색이냐고 하자 “예수님의 보형을 상징하며 인류를 구원하는 사랑의 극치”라면서 사랑의 마음에 빨강을 사용하는 기독교적 문화유산이 내포돼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불우 이웃들에게 나누어 주고 희생하는 사랑이 담긴 선교적 의미가 담겨 있다고 덧붙였다.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41년 논산 출생 ▲71년 구세군사관학교 졸업 ▲71년 서울 천연교회 담임사관 ▲83년 영등포교회 담임사관 ▲90년 국제사관대학 졸업 ▲95년 동양사관대학 졸업, 구세군 전라 지방장관 ▲98년 구세군 서울지방장관 ▲99년 한국기독교협의회(NCC) 실행위원 ▲2000년 대한기독교 서회 이사, 교경 중앙회 부회장 ▲03년 국제종합장기증센터 부총재 ▲04년 NCC 부회장 ▲05년 1월 한국 구세군사령관,CBS방송 이사, 한국기독교연합재단 이사 ●구세군 이란 일반인들도 구세군 교회에 출석하면 누구나 구세군이 될 수 있다. 성직자가 되려면 구세군 사관학교(7년)를 마쳐야 한다. 처음 2년 동안 합숙훈련, 임관 이후 2년간의 논문심사,3년간의 선교신학대학원 과정을 거쳐야 한다. 구세군에 다른 기독교 종파와는 달리 여성 목회자들이 많은 이유는 철저한 남녀평등을 주창했기 때문이다. 구세군은 군대조직과 유사한 상명하달 체계와 계급제를 갖고 있다. 군인처럼 임관 후에 ‘정위’라는 계급을 달고,15년 이상 사역했을 때에는 ‘참령’으로 승격된다. 그 위로는 부정령, 정령, 부장, 대장 순으로 계급이 높아지는데 대장은 세계에서 단 한 명뿐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9개 지방본영에 630여개의 교회가 있으며 총사령관의 계급은 부장이다. 구세군 복장을 보면 붉은 바탕에 황금색 글씨로 ‘S’자 배지가 달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S’자는 ‘Salvation(구원)’,‘Soup(수프)’,‘Soap(비누)’ 등 세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Salvation’은 인간의 영혼을 구한다는 의미이고,‘Soup’와 ‘Soap’는 먹을 것을 주고, 몸을 닦아 준다는 육체적인 구원의 의미를 담고 있다. 한국에는 1908년 영국에서 파견된 로버트 호가드 정령이 이끄는 10여명의 사관이 선교사업을 시작한 이래, 교세를 확장해 왔다. 의료선교 및 고아원, 양로원, 육아원 등을 경영하며 교육기관을 통해 포교에 힘쓰고 있다. 본부는 영국 런던에 있다.
  • “北과 백두산·개성관광 논의”

    “北과 백두산·개성관광 논의”

    금강산 관광 7주년 행사에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참석,‘금강산 남북회담’ 결과가 주목된다. 현대그룹은 현정은 회장 등 계열사 임직원 250여명이 금강산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2박3일 일정으로 18일 방북했다고 밝혔다. 정동영 장관도 지난해 7월 취임 이후 처음으로 금강산을 방문해 현 회장과 함께 이종혁 북한 아태평화위원회 부위원장과 만날 예정이다. ‘김윤규 사태’로 지난 9월부터 관광객이 1일 600명으로 제한됐던 금강산 관광은 18일부터 정상화됐다. 방북단은 이에 앞서 창우리 선영에서 고 정주영 명예회장과 고 정몽헌 회장의 묘소에 헌화하고 묵념을 했다. 현 회장은 “정몽헌 회장의 묘소에 묵념하면서 금강산 관광 7주년을 맞이해 좀 더 금강산 관광을 잘해보겠다는 다짐을 했다.”면서 “이번 방북에서는 금강산 관광 외에도 백두산, 개성관광 그리고 윤만준 사장 문제도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류길상기자 ukelvin@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