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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무극 1인자 공옥진(이세기의 인물탐구:76)

    ◎고독을 춤추는 이시대 마지막 광대/타고난 끼와 파격의 몸짓으로 한맺힌 삶 표현/헤살궂은 사설조에 마음을 움직이는 정감이…/부친에게 창배워 유랑극단에… 장애인 동생 조카위해 국수장사도 전라도 광주땅에서 공옥진예인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공옥진」 이름을 대면 「함평군 문장을 지나 40㎞쯤 들어간 영광에 가보라」고 일러준다.영광읍 교촌리 영광예술연구소에 들어서자 그는 찾아간 사람을 얼싸안고 눈물부터 글썽인다.눈물 많고 한 많고 정많은 모습은 예전이나 변함 없다.연구소 마루는 널찍한 20여평인데 비해 뒤꼍에 위치한 살림방은 사람이 둘만 앉아도 비좁은 골방에 불과했다.전국 방방곡곡 이름을 떨치지 않은데가 없건만 그의 생활은 여전히 궁핍을 면치 못하는 분위기다.그러나 자신이 직접 캐온 불갑사 산나물이며 법성포 바닷가에서 주워온 바지락으로 상을 차리면서도 지난해 피땀으로 절약한 1천만원을 중고생 장학금으로 내놓아 주변을 훈훈하게 했다는 얘기다.가난과 한과 고독이 점철된 그의 지나온 생애에 비춰 그는 한푼이라도 돈이생기면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지금도 의탁할곳 없는 동네 노인들을 집에 데려다 함께 밥을 지어먹기도 하고 산에 가서 고사리를 캐기도 한다. ○생활은 여전히 궁핍 지금부터 17년전 중앙대 교수이자 무용평론가인 정병호씨가 「참으로 이 시대 그대로 지나쳐선 안되는 예사롭지 않은 예인」이 있다면서 서울 종로구 청진동에 데려간적이 있었다.그때 공옥진은 하얀 옥양목 치마 저고리차림의 평범한 시골 아낙에 지나지 않았으나 창과 춤뿐 아니라 일인다역으로 「흥보가」「심청가」를 혼자서 몇시간이든 두루 꿰어나간다고 했다.막상 목소리를 가다듬어 그가 「심청이 팔려가는 대목」을 부르기 시작하는데 그 번뜩이는 예살이 범상치가 않았다.「서리서리 한맺힌 구성진 가락은 한여름철 장대비와도 같고 헤살궂은 사설조마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정감」이 담겨있었다.용궁막 황성 맹인잔치대목에 이르러 저고리 뒷섶을 활짝 뒤로 젖히더니 목속에 턱을 깊숙이 파묻고 눈을 사팔로 만들고는 엉거주춤 허리춤을 부여잡고 뒤뚱뒤뚱 휘돌아나갔다.엉덩이 빠진곱사춤,절름발이 곰배팔이 오리발 병신춤을 눈부시게 펼치는 가운데 인물치레 성음치레를 무시한 자재로운 몸짓은 도무지 몸을 사리거나 풍색을 개의치도 않았다.솔직하고 천연덕스러운 그의 춤은 얼핏 보기엔 즉흥적인 신명같지만 하나의 익살스러운 동작에는 반드시 그 시작과 끝을 알리는 회무가 따르고 있었다.경륜 있는 예인으로서의 여유와 능수능란이었다. 그의 성공에 대해 민속학자 심우성씨(문화재 전문위원)의 「고격의 예술에 식상한 관객들이 섬세한 아름다움이기를 거부한 그의 진솔한 인간적 표현을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인 탓」이라는 평은 많은 사람의 공감을 샀다.이후 국악관련 책자나 프로그램에서 그는 「우리나라에 예술가가 있다면 나는 서슴지 않고 공옥진을 꼽겠다」고 당당하게 밝혔고 「공옥진의 타고난 「끼」,철저한 광대기질,총명과 명석은 가히 천재적인 것으로 그는 한번만 힐끗 보고도 상대방의 모든 동작과 표정을 날카롭게 읽어낸다」고 찬사해 마지않았다. 예술사 연구를 하는 김철순은 『일찍이 이동백옹이 이혜구씨에게 말한 것처럼 판소리 뿐 아니라 모든 한국예술의 본질은 기존의 법칙과 양식,고정관념에 사로잡히지 않고 「자기류의 새로운 음악과 춤으로 자연스럽게 창조해내는 것」이라야 한다면 그가 바로 공옥진』이라고 지적한 적이 있다.「공옥진의 춤은 춤사위로 이어진 정제된 춤이 아닌 고통스런 삶의 한풀이이자 아무도 흉내낼수 없는 진짜 고유의 조선춤」으로 호평했고 무언극공연차 한국에 왔던 마르셀 마르소도 「나는 무언극을 하지만 공옥진의 일련의 움직임은 그것이 단순한 움직임이 아닌 독특한 파격의 예술」임을 거듭 강조한바 있다. ○한때 입산… 비구니로 공옥진의 광기랄가,신기랄가.그의 천부적 재질은 연습과 훈련으로 이루어진 격식을 갖춘 전통무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사람을 사로잡는 힘과 정과 한이 일체감을 이루면서 「고통과 슬픔이라는 껍질을 과감하게 깬 살아 있는 몸짓」은 얼마 시간이 걸리지 않아 그만의 독특한 창무극을 무대에 정착시켰고 그는 일약 중앙무대의 주역으로 떠올랐다. 『나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7살때 단돈 천원에 일본에 팔려간 적이 있어요.당대 제일의 무용가인 도쿄의 최승희집에서 종살이를 하다가 다시 일본인집에 넘겨졌지요.5년만에 집에 돌아와보니 아버지는 방랑길을 떠났고 어머니 마저 개가해버려 동생들과 먹고 살기 위해 그때부터 장터에서 춤을 추고 창을 하게 됐답니다』 하얀 옥양목 치마끝에 찍어낸 눈물은 그의 말을 빌리면 「눈물이 고여 바다」가 됐을 정도다.그만큼 그의 지난 세월은 어느 대목을 들어도 고초와 한숨이며 통곡의 파노라마다.그런중에도 국내 구석구석 전국의 대학 캠퍼스에 초대되어 젊은이들에게 「어머니」라 불렸고 미 카네기홀 링컨센터 대공연을 갖는가 하면 일본의 저명한 사진작가 세키네는 그의 공연사진과 데생으로 도쿄 전시회를 열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공옥진은 전남 승주군 송광면 추동리에서 태어났다.남도 인간문화재인 공대일 명창의 4남매중 둘째딸,그의 조부는 광주의 김채만을 사사,서울 협률사 초기멤버이던 공창식 명창이다.그는 일찍이 부친에게 창을 배운후 유랑극단의 소녀주역으로 활약하다가 두번의 결혼 실패끝에 한때는 지리산 천은사에 입산하여 「수진」스님으로 참선,중년에 접어들어 농아인 남동생과 곱사등이인 조카딸을 돌보기 위해 광주 지산면에서 국수장사를 했고 그곳에 공연을 왔던 김연수씨를 만나 우리국악단에 몸담으면서 다시 유랑생활에 나섰다. 파란만장하고 우여곡절로 얼룩진 그의 인생사는 그동안 여러잡지 신문 등에 소개된바 있지만 그 어느것도 그가 돗자리 하나만으로 장바닥에서 펼치는 통한의 눈물과 익살과 한숨에 미치지 못한다.또한 그의 「살풀이춤」은 장탄식과 짙푸른 한의 음영이 깃든 명무지만 「살다보니 어찌어찌하다 희극무인 병신춤 동물춤의 일인자」처럼 되었고 한때는 장애자들로부터 「무엇 할짓이 없어 장애인 흉내로 무대에 서느냐」는 항의를 받기도 했다.그때마다 그는 곱사춤은 옛날부터 각 지방에서 내려오던 사당패들의 자리판 놀음이며 더구나 그 자신이 「하나밖에 없는 남동생과 내손으로 키운 조카아이까지 장애인의 가족으로서,살아있는 여러 삶의 절박한 표현은 춤일수 밖에 없음」을 그때마다 상기시키지 않으면안되었다. ○84년 서울생활 청산 그는 지난 84년 6년여의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노부를 모시고자 그가 자라난 영광읍으로 돌아갔다.그러나 동생과 조카를 앞세웠고 부친마저 90년 세상을 떠난후 지금은 예술연구소에 남아 고향의 「아기」들에게 그의 춤을 전수시키고자 만모의 정열을 불태우고 있다. 요즘은 수년전부터 앓아온 담석증을 세번째 수술하고 아직 건강치 못한 몸이지만 산에 가서 즉흥무를 추거나 산야에 대고 「제비 노정기」를 내지르면 「없던 힘과 신명이 절로 솟아」 아프던 몸이 거뜬히 낫는다고 말한다.지난봄부터 여수 영암공연,크고 작은 경로 효도잔치에 빠지지 않았고 7월에는 광주에 새로 생긴 예술의 전당 개관기념공연을 앞두고 있다. 공옥진은 참으로 한이 많은 예술가다.그리고 그의 춤과 소리를 격조와 품위로 논하기란 어렵다.그러나 무대에 서면 진흙탕에 뒹굴듯 몸을 사리지 않고 인간의 「절대고독」을 춤추는 모습은 「아름다움의 극치 그 이상」이라는 한 평자의 말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누군가 말한대로 「광대가 될때만가장 인간적」이라고 한다면 꾸미지 않은 옛광대의 기질과 체취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공옥진이야말로 이 시대 진정한 의미의 마지막 광대라는 예감이다. □연보 ▲1931년 전남 승주 출생 ▲38∼43년 일본 체류 ▲45∼47년 조선창극단 ▲48년 고창·정읍 명창대회1등 ▲57∼63년 임방울창극단 협률사 입단 ▲61∼63년 김연수 우리국악단 ▲64∼66년 김원술안성국악단 ▲66∼67년 박녹주국극협회 ▲67·68년 일본공연 ▲78년 공간사랑 1인창무극 ▲81년 미 케네디센터 「한국전통무용」공연,전남 영광읍장터 「공옥진놀이판」 ▲84년 일본 공연,서울 결산무대 「공옥진춤판­그의 모든 것」(문예회관대극장),동숭동 마로니에 공원서 「마당놀이 춤판」,낙향 광주서 부친 공대일명창과 「아버지와 춤을」 대공연 ▲85년 런던 국제 연극제 참가 ▲91년 1인창무극(호암아트홀) ▲92년 불우한 소년소녀가장돕기 서울공연(세종문화회관)을 필두로 인천 성남 수원 구미 대구 천안 평택 충주 제주등 15개도시 순회공연 ▲93년 뉴욕(링컨센터) 시카고 LA 하와이 중국 런던 일본등 세계순회 및 부산(KBS홀)공연,「한국의 소리와 몸짓」시리즈(예술의 전당),1인 창무극(미도파 메트로홀) ▲94년 1인창무극 「학녀의 한의 춤」(세종문화회관),그외 전국 50여 대학 초청 「공옥진 한의 춤」공연등 경로위로 잔치 수백여회 ▲95년 여수(진남체육관) 및 영암 정읍 공연,7월9일 광주 예술의 전당 개관기념공연 예정 전남 영광예술연구소 대표
  • 볼링그린공원/뉴욕첫공원…각종조형물의 천국(브로드웨이“새바람”:2)

    ◎맨해튼 남단 1번지… 역사의 자리/각국 문물수용… 스스로 변신추구/북쪽보도 거대한 황소상­배터리파크의 한국전참전비는 관광명소 「볼링 그린」.브로드웨이 대장정의 출발점인 이 물방울 모양의 작은 공원에 서면 브로드웨이는 무성한 가지를 뻗어낸 거대한 나무로 치솟아 있다. 이 수령 3백년의 나무를 키워낸 볼링 그린은 미국민들이 자랑하고 있는 자유와 평등의 시민정신 발상지자 아메리칸 드림의 시발역 이라는 역사의 무게로 오늘날의 브로드웨이를,그리고 맨해튼을,뉴욕을,미국을 떠받치고 있다. 뉴욕 최초의 공원이기도 한 볼링 그린을 중심으로 남쪽의 배터리 파크와 북쪽으로 월스트리트가 갈라지는 곳에 위치한 트리니티 교회를 포함,브로드웨이 1백번지까지 반원형의 도입부는 브로드웨이가 큰 나무로 자랄 수 있는 자양분 역할을 해온 역사의 거리다.부두에서 연결되는 배터리 플라자,스테이트 스트리트,화이트홀 스트리트등 세갈래 길을 통해 겉잡을 수 없이 밀려들어오는 유럽 문물을 볼링 그린이 수용하여 새로운 길 브로드웨이로 쏟아내고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브로드웨이가 오늘날 세계 문화 예술의 수도로 희망의 도시,가능성의 도시로 성장해올 수 있었던 것은 이같이 출발점이 품고 있는 다양한 자양분에서 비롯되고 있다.브로드웨이 또한 스스로의 끊임없는 실험과 변신의 노력으로 갈수록 생명력을 더해가고 있다. ○관광객 필수 코스 볼링 그린 남쪽에 1907년 건립된 대표적 건물인 세관 건물이 지난해부터 아메리칸 인디언 박물관(조지 구스타프 헤이 센터)으로 새출발하게 된 것은 브로드웨이에 풍요를 더해 줄 하나의 사건으로 기대된다.브로드웨이 문화의 출발점을 정면으로 마주보는 이 건물에 이질적인 인디언 문화가 이식되는 것은 브로드웨이에 대한 새로운 도전이기 때문이다. 또 볼링 그린의 북쪽 보도 한가운데는 커다란 청동 황소 한마리가 눈을 부라리며 마천루 사이로 뻗어나간 브로드웨이의 소실점을 응시하고 있다.긴꼬리를 하늘로 치켜세운채 앞다리를 약간 낮추고 금방이라도 들이받을 자세로 서있는 이 황소 역시 새로운 도전을 상징하는 조형물로 유명해지고 있다. 조각가 아투로 미도디카의 작품으로 1987년 10월에 세워진 높이 1·8m에 무게 5t인 이 황소상은 공원당국의 허가를 받지 않고 어느날 밤에 이곳에 가져다 놓은 것으로 도로 가져가라는 당국과 이곳에 기증해야겠다는 작가와의 입씨름이 수년간 계속되는 동안 황소상은 어느새 이 거리의 명물이 되고 말았다. 이곳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이 줄서서 기다려 사진찍는 필수 코스가 됐으며 그 많은 사람들이 뿔에 매달리고 올라타고 두드려도 이 황소상은 우그러지거나 손상되기보다는 더욱 건강한 모습으로 반들거릴 뿐이다. 볼링 그린 남쪽 배터리 파크의 클린턴성(성)옆에 세워진 한국전참전비도 이 지역 또하나의 명물로 되어가고 있다.자유의 여신상을 향해 배 타러 가는 길목에 지난 91년 세워진 이 기념비는 검은 화강암에 총을 메고 행군 하는 병사의 모습을 파내어 뻥뚫리게 만들었다.기단부에는 태극기와 성조기를 비롯,참전(의료지원단 포함) 22개국 국기를 새겨놓았으며 바닥에는 빙둘러서 각국의 참전병사수와 사망자수를 새겨놓았다. 한쪽에서 보면 자유의 여신상과 뉴욕만의 푸른 바다가 병사의 가슴속에 들어와 있고 다른 쪽에서 보면 맨해튼의 마천루가 병사의 온몸에 들어차 있는 이 절묘한 조각품은 새세기를 맞는 브로드웨이와 한국과의 새로운 연계의 상징물로 보여 이곳을 찾는 한국인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고 있다. 이 지역은 원래 17세기초 네덜란드인들에 의해 뉴암스테르담으로 건설되었으나 점차 지배권이 영국인들의 손으로 넘어가면서 1664년부터는 뉴욕으로 이름이 바뀌고 영국의 아메리카 식민지 경영 창구로 발전했다.볼링 그린은 당시 영국의 절대군주 조지 3세가 말을 타고 출정하는 동상이 세워져 있던 식민통치의 상징적인 곳이었다. 그러나 1776년 7월4일 필라델피아에서 전해진 독립선언의 소식은 영국의 압제에 시달리던 이 지역 주민들에게 충격을 주었으며 닷새후인 7월9일 성난 군중들은 볼링 그린 한복판에 서있던 조지 3세의 동상을 무너뜨리고 독립운동의 대열에 참여했다.그들은 이 동상을 녹여 4만2천개의 총알을 만들었으며 이 총알로 맨해튼 전투에서 4백여명의 영국군을 전사시켰다. ○세계적 금융가 형성 볼링 그린의 획기적인 역할 변화와 함께 바로 옆의 브로드웨이 1번지는 당시 영국인 사교클럽 케네디하우스가 있던 곳이었으나 독립선언후 조지 워싱턴 장군의 사령부가 들어서 영국군과의 싸움을 독려했다고 건물 벽면에 크게 붙여진 동판이 말해주고 있다. 이 건물은 1921년 새로 지은 것으로 과거 대서양을 주름잡던 유나이티드 스테이츠 라인사가 자리잡고 있다가 현재는 시티뱅크가 들어있다.또다른 대표적인 건물로는 호화건물의 극치로 1920년대 이 지역의 건축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쿠나드빌딩(25번지,현재 우체국)과 존 록펠러가 자신의 부를 쌓아올렸던 스탠더드 오일 빌딩(26번지,금융역사박물관)등이 15m폭 브로드웨이의 양쪽으로 높게 솟아 있다. 볼링 그린을 출발한 브로드웨이는 오른편으로 골목길인 익스체인지 플라자를 만나고 이어 다음 블록에서 월스트리트를 만나며 그 일대에 세계적인 금융가를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월스트리트 건너편에 위치한 트리니티교회와 교회묘지는 맞은편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나타내고 있다.갈색벽돌의 고딕양식으로 지어진 이 교회의 첨탑은 주변의 마천루숲과 어우러져 기묘한 스카이라인을 이룬다.1693년 영국왕 윌리엄 3세때 처음 세워졌던 이 교회는 1776년 화재로 소실됐고,1839년에는 설계 잘못으로 붕괴된후 현재는 1846년 리처드 업존에 의해 세번째 건축된 것이다. ○묘비문에 역사가 이 교회는 신성모독의 도시로 자리잡혀 가던 초기 뉴욕의 주민들에게는 신성회복의 경고였으며 그후 3백년이 넘도록 뉴욕인들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다.특히 교회를 둘러싸고 있는 교회묘지는 마천루숲 사이의 오아시스 구실을 하고 있으며 명재상 알렉산더 해밀튼,보스턴 티파티의 주역 새뮤얼 애덤스,불후의 해군함장 제임스 로렌스등 수많은 독립투사들이 묻혀 있어 이들의 묘비명을 차례로 읽어 나가노라면 미국 역사의 한페이지 속에 들어와 있는 착각마저 느끼게 된다. 이 지역의 남쪽으로는 배터리 파크가 자리잡고 있다.바다로부터의 침략을 막기 위해 대포를 설치해 놓은 곳이라는 뜻에서 배터리(포대)라고 이름지어진 이 공원은 맨해튼섬의 남단에 위치해 브로드웨이의 뿌리 역할을 하고 있다.중앙부의 클린턴성을 중심으로 많은 기념물들이 이곳저곳에 위치해 있으며 자유의 여신상과 이민국이 있던 엘리스섬으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해 관광객들이 끊임없이 몰려드는 곳이다. 배터리파크 북부의 스테이트 스트리트 17번지는 소설 「백경」의 저자 허먼 멜빌의 출생지로 유명하다.오늘날 그곳에는 뉴욕굴착박물관이 위치해 있어 3백년전부터 뉴욕의 도시계획 지하시설물 설치·철거등 지하공사와 관련된 모든 자료를 소장하고 있다.모든 것이 역사가 되고 그것은 보존되며 현재의 거울로 활용되고 있다. 볼링 그린을 중심으로 한 브로드웨이의 출발점은 이같은 끊임없는 거듭남으로 브로드웨이의 풍요를 약속하고 있다.중앙 분수대에서 뿜어내는 소담스런 물줄기를 감도는 바다 갈매기와 육지 비둘기의 평화로운 만남처럼 브로드웨이 1번지는 소박한 모습으로,그리고 넓은 포용력으로 조용하게 마천루 숲을 향해 그 문을 열고 있다.21세기를 향한 새로운 자양분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 영욕의 세월 역사에 묻고/1994년에 사라진 인물들

    ▷국내◁ 올 한해에도 우리시대를 이끌었던 많은 인물들이 나름대로의 역사적 평가를 남긴채 우리곁을 떠났다. 새해 첫달인 1월18일 동갑나이로 각기 다른 길을 걸었던 정일권 전국무총리와 문익환 목사가 같은 날 별세함으로써 국민들의 색다른 관심을 끌기도 했다. 2월2일에는 국어학계에 큰 족적을 남겼던 이숭령박사(86)가,15일에는 코오롱을 창업한 이원영옹(80)이 세상을 떠났다. 정치인으로는 서수종의원(53)과 심명보의원(59)박상문 전국회사무총장(62)이 5월에,전례용 전공화당의장서리(84)가 7월에,한건수 전의원(73)과 김철 전사회당당수(68)가 8월에 각각 운명을 달리했다. 특히 세계적인 석학이었던 김호길포항공대총장(61)이 4월31일 사망,학계에 큰 충격을 주었고 학자였던 이영호 전체육부장관(59)의 죽음도 세인들을 안타깝게 했다. 올해는 안의섭씨(66)와 신동우(55)등 우리와 친숙했던 만화가들과 TV에서 사랑받던 탤런트 장학수(48)석광렬(24)강민호씨(52)등이 숨지기도 했다. 이밖에 서양화가 박영선(84)김원씨(82),시인 박남수(76)김남주씨(48),작곡가 이호씨(63),가야금산조명인 함동정월씨(77)등 예술·문화계인사들이 사망했다. 우리나라 최초로 화신백화점을 운영했던 박흥식씨(91)의 사망소식도 기억에 남는 일이다. 올해 유명을 달리한 국내 저명인사들을 재정리해 본다. △정일권 전 국무총리(77) 1·18 △문익환 목사(77) 1·18 △김상만 동아일보 명예회장(84) 1·27 △이숭령 국어학자(86) 2·2 △김남주 시인(48) 2·14 △이원영 코롱그룹 창업주(80) 2·15 △장학수 탤런트(48) 3·36 △이호 작곡가(63) 4·1 △김호길 포항공대총장(61) 4·31 △박흥식 전 화신그룹회장(91)5·11 △서수종 민자당의원(53) 5·15 △심명보 민자당의원(59) 5·24 △박상문 전 국회사무총장(62) 5·30 △박영선 서양화가(84) 6·17 △전례용 전공화당 의장서리(84) 7·4 △석광렬 탤런트(24) 8·1 △안의섭 시사만화가(66) 8·4 △한건수 전 국회의원(73) 8·5 △김원 서양화가(82) 8·6 △김철 전 사회당 당수(68) 8·12 △강민호 탤런트(52) 8·24 △박일경 전 문교부장관(74)9·7 △박남수 원로시인(76) 9·17 △전호연 전 극동프로모션 회장(77) 9·23 △이영호 전 체육부장관(59) 10·6 △함동정월 가야금산조 명인(77) 10·12 △신동우 만화가(55) 11·7 ▷국외◁ 94년에도 한시대를 풍미했던 인물들이 하나둘씩 사라져 갔다. 올해 한반도를 강타한 최대 뉴스는 북한주석 김일성(82)의 사망.세계 4대 통신들은 7월9일 정오 김의 죽음이 발표되자 그의 사망뉴스를 일제히 급전으로 타전했다.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나온 김의 갑작스런 사망 소식은 정상회담에 이은 남북 관계개선을 기대했던 많은 사람들을 실망시켰다. 베를린 장벽을 세우고 18년간 동독을 철권통치했던 에리히 호네커 전동독 서기장(81)도 실각 이후 국외를 전전하다 5월29일 칠레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권력무상을 실감케 했다. 케네디 전대통령의 미망인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 여사(64)는 5월19일 임파선암으로 약혼자가 지켜보는 가운데 자신의 뉴욕 아파트에서 조용히 눈을 감았다. 「워터게이트 스캔들」로 사임했던 리처드 닉슨(81) 전미대통령은 4월22일 뇌졸중으로 숨졌고존 스미스(55)영국 노동당 당수도 5월12일 사망,변호사출신의 젊은 정치인 토니 블레어가 그 뒤를 이었다. 배우출신의 그리스 여성문화장관 멜리나 메르쿠리(68),멕시코 집권당 대통령후보 루이스 도날도 콜로시오(44),만프레드 뵈르너 나토 사무총장(59),시아파 회교도의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아라키(106)도 올해 숨진 인물들. 예술·문화계 인사로는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의 저자 칼 포퍼(92),희곡 「대머리 여가수」를 쓴 외젠 이오네스코(84),영화 「지상에서 영원으로」의 버트 랭커스터(80),「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오드리 헵번과 공연했던 조지 페퍼드(65),「드라이빙 미스 데이지」의 제시카 탠디((85),대머리형사 「코작」 텔리 사발라스(70),「콰이강의 다리」의 원작자 피에르 불(81),「문 리버」로 오스카상을 수상했던 영화음악작곡가 헨리 맨시니(70),「쇼군」의 원작자 제임스 클라벨(69),007 시리즈의 감독 테렌스영(79)도 94년에 떨어진 큰 별들이다.
  • 평양방송 “중대발표” 해프닝

    ◎「메가톤급」 예측… “청류다리 건설”에 실소/“김정일 권위 과시·「성수대교」 비아냥” 분석 북한 중앙방송이 9일 상오 돌연 이날 정오 「중대발표」를 예고해 북한의 권력개편과 관련해 비상한 관심을 모았으나 일과성 해프닝으로 종결됐다. 통일원 등 정부당국은 김일성사망 다음날인 지난 7월9일과 마찬가지로 북측이 이날 수차례에 걸쳐 중대발표를 사전고지하는 바람에 긴장속에 주시했다.하지만 막상 방송내용은 대동강 청류다리 및 금릉2동굴 건설과 관련한 김정일의 지시에 불과한 것으로 판명됐다. 정부당국에 따르면 중앙방송은 이날 김정일은 인민무력부와 정무원에 대해 평양 대동강 청류다리 2단계 공사 및 금릉2동굴 공사를 조선노동당 창건 50주년이 되는 내년 10월10일까지 마무리토록 명령했다고 보도했다. 김정일의 이 지시는 인민군 최고사령관 명령 제51호 「평양시에 청류다리 2단계와 금릉2동굴을 건설할 데 대하여」란 이름으로 하달했다. 정부당국자들은 당초 메가톤급 발표가 있을 것으로 예단했으나 이같은 「평범한」 내용이발표되자 실소를 감추지 못했다.특히 일부 통일원 관계자들은 「김정일 당총비서 선출」발표가 있을지도 모른다며 북한방송에 신경을 집중하기도 했다.그러나 정작 어이없는 발표가 흘러나오자 『김정일이 뇌를 다쳤다는 루머가 사실이 아닌가』라며 북한당국의 상식이하의 행태에 혀를 찼다. 다수 정부 관계자와 북한전문가들은 북한이 이번에 「중대발표」소동을 연출한 이면에는 그들 나름의 계산이 깔려 있다고 보고 있다. 정부측은 북한당국이 인민군 병력을 대거 투입한 대규모 토목공사를 앞두고 노력동원 독려 등 경제적 측면 이외에 ▲당정군 최고 지도자로서의 김정일이 권위를 과시하고,북미 협상이후에 평화이미지를 대외적으로 투사하려는 의도로 해석하고 있다.최고사령관 명의로 공사를 담당할 인민무력부와 자재를 공급할 정무원에 이례적인 중대발표 고지까지 하면서 동시에 지시를 내린 점이 이를 말해준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특히 북한 특유의 지능적 심리전의 일환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이날 방송이 대형 다리등의 건설을 통해북한주민의 생활환경 개선 및 복리증진을 강조한 것은 김정일이 내세우고 있는 슬로건인 이른바 「인덕정치」와 「광폭정치」를 부각시키면서 우리측의 성수대교 붕괴와 대비시키려는 전술이라는 얘기다. 한편 평양 대동강에 자리잡고 있는 청류다리는 당초 흥부다리라는 이름으로 지난 90년초에 착공,최근 1단계 공사가 끝난 길이 4백50m의 현수교로 알려져 있다.또 금릉동굴은 대동강 능라다리 입구 해방탑에서 모란봉극장앞을 거쳐 모란봉구역의 안상택거리까지 연결되는 것으로 단군릉 도로와 연결되어 있다는 첩보도 있다.
  • 이달의 독립운동가 조성환선생/서울신문사 보훈처·독립기념관 선정

    ◎임정 무장단체 「광복진선」 결성/중국시찰 가쓰라 일본총리 암살기도/만주서 교포에 문맹퇴치운동도 펼쳐 청사 조성환선생(1875년7월9일∼1948년10월7일)은 일제의 침략으로 국운이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이자 항일구국운동에 뛰어들었다. 25세때인 1900년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에 입교해 군복을 입은 선생은 일부 선배군인들이 주요보직을 차지하기 위해 일제와 야합을 일삼는데 분개,숙군을 외치다 군을 떠나게 됐다. 선생은 『썩은 군대는 나라를 망친다』면서 부패군인의 제거를 주장,사형선고를 받았으나 복역 3년만에 특사로 풀려나온뒤 신민회에 가담함으로써 본격적으로 항일구국운동에 투신했다. 1907년 결성된 비밀결사 신민회에는 선생과 같은 무관출신,양기탁등 언론인,이회영등 교육자,민족자본가,안창호등 해외국권회복 운동가등이 참여하고 있었다. 이동휘·노백린등 다른 무관학교 출신자 14명과 함께 신민회에 가입한 선생은 독립운동의 터전을 확보하기 위해 자주 북간도를 돌아보았으며 1910년 국권침탈을 맞아 민족종교인 대종교를 믿기시작했다. 단군을 숭배하는 대종교는 나철이 창시한 종교로 일제의 탄압을 피해 국내에서 만주 동삼성으로 자리를 옮겨 포교중이었다. 선생은 1912년 중국 동북지방을 시찰하는 일본 총리대신 가쓰라 다로를 암살하려다 사전에 붙잡혀 거제도에서 1년동안 유배생활을 지내기도 했다. 유배를 마친뒤 곧바로 중국으로 망명한 선생은 동료 독립운동가들과 청소년교육에 몰두하던중 1918년 만주길림에서 「대한민족의 자주독립을 선언」하는 대한독립선언서의 서명자 가운데 1명으로 참여했다. 다음해인 1919년 국내에서 발발한 3·1만세운동에 자극을 받아 독립운동가 사이에 임시정부 수립 움직임이 활발해지자 이에 적극적으로 힘을 쏟았다. 선생은 4월13일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출범함에 따라 군무부 총장 이동휘와 함께 군무부차장에 임명됐으며 4개월후 동만주에서 활동중인 중광단에 참가,무장독립운동을 벌였다. 선생은 이와 별도로 대종교도들을 규합,정의단을 조직하기도 했다. 선생은 이어 1920년 청산리 봉오동전투에서 참패한 일제관동군이 추격에 나서자 이를 피해 노령 이만으로 이동,이곳에서 이청천·홍범도·안무등과 함께 고려의용군을 결성하고 의용군을 모집해 훈련을 시켰다. 그러나 선생은 일제의 꾐에 넘어간 소련이 독립군을 무장해제하기 위해 기습해오자 동료들과 다시 만주로 돌아오게 된다. 북만주로 돌아온 독립군단체들은 1923년 재통합에 나서 군정서·의군부·혈성단·독립단·광복단·국민회·신민단·대진단·의민단등 9개 단체로 각 단체의 통합을 위한 군사연합회 준비회의를 열었으며 선생은 이 과정에서 연락책을 맡았다. 선생은 이 모임이 진척을 보이지않자 김좌진을 중심으로 창설된 신민회에 참여,중앙집행위원회 외교부위원장에 임명됐다. 군정서를 모체로 하는 신민부는 백두산에서 흑룡강,장춘에서 구참까지를 활동무대로 정하고 이 지역에서 살고 있는 한족을 대상으로 문맹퇴치운동을 펼치면서 민족반역자의 징계,일본기관 습격등을 주임무로 삼았다. 선생은 이런 가운데 정의부·한국독립유일당촉성회 조직운동등을 통해 흩어져있는 독립운동단체를 통일시키기 위해 수년동안 힘을 쏟았으나 정당의 이합집산이 심해 뚜렷한 진전을 얻지 못했다. 선생은 1938년에 이르러 비로소 뜻이 맞는 이동녕·차이석·엄항섭등과 함께 임시정부의 외곽무장단체인 한국광복진선을 결성하는데 성공했다. 선생은 같은해 이청천등과 함께 독립군 군사학편찬위원회 주임위원으로 임명돼 군사관련 교재를 번역하기도 했으며 1년뒤 1939년 임시의정원 의원과 임시정부 국무위원에 선임됐다. 선생은 1939년 임시정부가 독립운동 3개년 계획을 세우고 본격적으로 광복군을 양성키로 한데 따라 11월 임시정부 군사특파단장으로 서안에 파견돼 광복군설립의 기초를 닦았으며 1940년9월17일 마침내 광복군이 창설되자 최고원수부의 판공처장으로 임명됐다. 선생은 42년에는 임시의정원 의원으로 있으면서 중국측의 광복군 무력화 움직임을 무산시켰으며 43년에는 국무위원에 올라 대일전쟁을 지도했다. 선생은 45년 들어 임시의정원 제4과 군무·교통위원으로 일하다 8·15해방을 맞아 같은해 12월 동료 임정요인들과 함께 환국했다. 선생은 환국 이후 대한독립촉성회 위원장·성균관 부총재등을 지내다 48년 서거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적을 기려 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 공무원 PC경진 열띤 경쟁/컴퓨터 관심도 높아졌다

    ◎28개 기관별 자체심사 거쳐 73명 실력거뤄/행정서비스질 향상에 필수… 지속적 교육 시급 공무원들의 컴퓨터에 대한 관심이 중앙행정부처의 퍼스널컴퓨터경진대회가 열릴 만큼 높아졌다.지금까지 감사원·국가보훈처·국세청등 일부 행정기관에서 자체적으로 경진대회를 실시한 적은 있지만 각 부처 공무원이 참여하는 대회는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13일 총무처 정부전자계산소(소장 최석충)가 개최한 「공무원 PC이용 경진대회」에는 28개 중앙행정기관에서 73명이 참가해 「공무원 컴퓨터왕」을 향해 열띤 경쟁을 벌였다.이들은 자체 경진대회를 통해 선발된 대표선수들로 대통령비서실이 7월2일,내무부가 7월8일,총무처가 7월9일 자체 경진대회를 실시하는등 대부분의 중앙행정기관들은 8월 이전에 경진대회를 모두 마쳤다. 경쟁분야는 문서편집(워드프로세싱)과 통계표 작성(스프레드시트)등 컴퓨터의 기초분야.총무처는 보다 많은 공무원들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컴퓨터의 기초분야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또 일반 사무직원들의 컴퓨터 활용능력 향상을 꾀하기 위해 전산직및 기능직등 전산담당 공무원을 참가대상에서 제외시켰다. 이번 대회에서는 과학기술처의 임승철사무관이 최우수상인 국무총리상을 받았고 구병호(과학기술처 6급) 노동엽(총무처 7급) 공정숙씨(병무청 9급)등 3명이 우수상인 총무처장관상을 받았다.각 부처는 직원들의 PC 이용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 위해 우수 입상자에게 여러 가지 혜택을 줄 방침이다.과학기술처에서는 입상자에게 모범및 우수공무원 표창추천의 우선권을 주고 해외훈련이나 연수대상자를 선발할 때 우대하기로 했다. 총무처는 앞으로 이 대회를 더욱 발전시켜 정보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고 사무실에서 PC에 더욱 친해져 손쉽게 행정업무를 처리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행정의 국가경쟁력과 대국민서비스의 질을 높여나갈 생각이다.최석충정부전자계산소장은 『전공무원들이 컴퓨터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PC 보급과 함께 지속적인 교육이 필요하다』면서 『공무원들의 PC활용능력을 높이기 위한 여러 가지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 미북 핵회담 일지

    ▲93년 3월12일=북한,NPT 탈퇴선언 ▲6월2∼11일=뉴욕서 1단계 고위급회담.북한 NPT 탈퇴유보 발표 ▲7월14∼19일=제네바서 2단계 고위급회담.북한,IAEA와 사찰협의 재개 동의.미국,북한원자로 경수로 전환 지원 시사 ▲11월11일=북한,미국에 핵문제 일괄타결 제의 ▲12월3일=북한,미국에 핵사찰조건 수정제의 ▲12월29일=뉴욕 접촉서 핵사찰 수용합의 ▲94년 1월7∼25일=북·IAEA 사찰협상 ▲2월15일=IAEA,북한핵사찰 수용발표.미·북한,뉴욕실무접촉재개 ▲2월25일=북한,3월1일 사찰개시에 동의 ▲3월3일=미국,팀스피리트 중단 및 3단계회담 발표 ▲3월1∼15일=북한 핵사찰 ▲6월2일=IAEA,『북핵 추후계측 불가능』안보리 보고 ▲6월10일=IAEA,북한제재 결의안 채택 ▲6월13일=북한 IAEA 탈퇴 선언 ▲6월15∼18일=카터 전미대통령 북한 방문 ▲6월22일=클린턴,북·미 3단계회담 7월 재개 발표 ▲7월8일=제네바서 3단계회담 시작.북한 김일성주석 사망 ▲7월9일=제네바회담 잠정중단 ▲8월5∼12일=북·미 3단계 1차회담.북한 핵연료봉처리문제등 합의.
  • 이창복·황인성씨 보안법위반 구속

    서울경찰청은 11일 「범민족대회 남측추진본부」 공동본부장 이창복씨(57·전국연합 상임의장)와 집행위원장 황인성씨(42·전국연합 상임 집행위원)등 2명을 국가보안법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이씨등은 지난 2월20일 전국연합 제3기 정기 대의원대회에서 연방제 방식의 통일방안,국가보안법 철폐,미군철수등을 주장하고 7월9일에는 김일성 사망과 관련,반정부적인 논평을 하는 등 모두 12차례에 걸쳐 정부를 비난하고 북한주장에 동조한 혐의를 받고 있다.
  • 대학총장들 “할말 하겠다”/전현직 4백명,「총장협」 발족 합의

    ◎10월창립… 이념갈등 문제 등 중재노력키로 전·현직 대학총장과 전직 교육부장관들이 학생들의 이념갈등과 같은 학내문제는 물론 사회적 분쟁을 중재하는등 사회참여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이는 최근 박홍 서강대총장의 발언과 주사파 학생운동권의 활동,경상대 교수들의 이적성 교양과목 강의를 둘러싼 파문과 같은 일에 대해 교육계 원로들이 제목소리를 내기로 한 것이어서 주목된다. 9일 교육부와 대학총장들에 따르면 전·현직 대학총장과 일부 전직 교육부장관들은 사단법인 한국대학총장협회(가칭)를 설립키로 하고 오는 10월 창립총회를 갖기로 했다. 이와관련,실무책임을 맡은 박재규 경남대총장은 『이미 지난 7월9일 전북 무주에서 열린 전국대학총장세미나에서 22명의 총장이 참가한 가운데 발기인대회를 가졌으며 발기인에는 전직총장 8명을 포함,모두 30명이 참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협회의 회장에는 서울대총장과 교육부장관을 지낸 조완규씨,사무총장에는 이면영 홍익대총장이 뽑혔다. 경남대 박총장은 『이 협회 회원으로는 현직 대학총장 1백57명과 전직총장 2백∼3백명외에 전직 교육부장관을 포함,4백여명에 달하며 현재 가입원서를 받고있다』고 밝혔다. 특히 전직장관 가운데에는 이미 오병문(33대),조완규(32대),이규호씨(25대)가 참여의사를 밝혔다.
  • 김경옥/신미경/정욱장/개성있는 인체조각전

    ◎여체와 자연미·인물표정 등 형상화/선화랑·서경·조형갤러리서 각각 작품 발표 개성이 있는 인체조각을 줄곧 제작해온 조형작가들의 개인전이 잇따라 열려 눈길을 끈다. 여체와 자연의 작가 김경옥씨가 선화랑(7월2일까지)에서 새로운 조형세계를 소개하고 있는데 이어 신미경씨와 정욱장씨도 서경갤러리(29∼7월5일)와 조형갤러리(30∼7월9일)에서 각각 근작전을 갖는다. 이들 작가들은 복잡하지 않은 조형언어를 택하면서 인체에 대한 일관성있는 해석으로 독특한 이미지를 강하게 드러내는 공통점을 보이고 있다. 이가운데 김경옥씨가 일상의 체험을 다양한 여체와 자연의 조화로 다듬어 내는 서정성 강한 중견작가라면 신미경과 정욱장은 인체의 특성과 인물표정을 간결하고 소박하면서도 깊은 이야기를 담은 이야기조각 형태로 형상화 하는 젊은 작가들이다. 김경옥씨는 주로 자신과 가족의 삶을 중심테마로 일상을 극화하는데 경도 되어온 작가로 비교적 밝은 분위기에 여성고유의 감수성을 잘 살려내고 있는게 특징.이번 전시에는 여체를 기본으로 꽃이나 과일 새등 자연의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소재를 차용해 생명의 근원을 묻는 작품 30여점을 선보이고 있다. 특히 과거와는 달리 작품에 색채를 사용해 회화적인 분위기를 강조하고 있다. 이에비해 신예작가 신미경은 평범한 인물상을 통해 세상사는 이야기를 함축해 보여주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일상에서 흔히 마주치는 보통사람들을 비롯해 작가 자신의 모습,혹은 동화속의 주인공등 자신이 경험하고 관찰한 일상의 인물군을 지나치리만큼 솔직한 형태로 나타내고 있다. 대부분 그의 조각은 정면을 향해 무표정한 모습을 보여주려고 왔으나 이번 전시에서는 간결한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물구나무와 만세등 인체의 대립되는 형상을 한 구조로 보여주는 「물구나무와 만세」와 같은 복합성을 띤 근작 30여점을 내놓는다. 한편 정욱장은 이번 전시를 통해 가장 변화된 면모를 보여주는 작가로서 종전 구상의 형태에서 벗어나 토르소의 형태가 강한 추상적인 이미지의 작품 25점을 내놓는다.
  • 정보위 신설 국회법개정안 의결/임시국회 개회

    ◎28일 의장단·상임위장 선출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국민적 합의와 제14대 국회 후반기 원구성을 위한 제169회 임시국회가 25일 20일의 회기로 개회됐다. 국회는 이날 상오 개회식에 이어 본회의에서 국회 상임위원회의 개편등을 골자로 하는 국회법개정안과 정보위원회의 신설에 따르는 처벌조항을 담은 특정범죄가중처벌법개정안을 의결했다. 이만섭국회의장은 이날 개회사에서 『한반도주변정세가 긴박하게 전개되고 있고 우리 내부의 갈등과 대립이 증폭되는 한편 남북정상회담을 준비하는등 민족사의 일대 분수령을 맞고 있다』고 말하고 『여야는 정파의 이익을 초월,평화정착과 통일을 앞당길 수 있도록 지혜와 역량을 결집시켜줄 것을 바란다』고 당부했다. 국회는 오는 28일 본회의를 다시 열어 개정된 국회법에 따라 국회의장·부의장,각 상임위원장및 예결·윤리·여성특위위원장을 선출한다. 국회는 이어 29일 이영덕국무총리로부터 국정보고를 듣고 30일과 7월1일 김종필민자당대표와 이기택민주당대표의 정당대표연설을 들은 뒤 7월4일부터 8일까지 대정부질문을 벌인다. 7월9일에는 임기가 만료되는 대법관 6명에 대한 임명동의안을 의결하며 7월11일부터 사흘동안 상임위활동에 들어간다. 이번 임시국회에서는 남북정상회담대책이 비중있게 논의될 것으로 보이며 야당의 불참속에 끝난 상무대의혹사건에 대한 국정조사문제,철도및 지하철파업사태등이 집중적으로 다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국회는 이와 함께 정부가 우루과이라운드(UR)협정에 대비해 편성한 3천억원규모의 추가경정예산안을 처리할 예정이다. 국회에서 이날 의결된 국회법개정안은 경과위와 교체·행정위원회를 재조정,행정경제위와 체신과학위·교통위를 신설하고 환경특위를 노동환경위로 바꾸어 상설화하는 한편 정보위원회를 신설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또 특정범죄가중처벌법개정안은 안기부법과 국회법의 개정에 따라 신설되는 국회정보위원회의 위원및 의원보조직원을 포함한 소속공무원이 직무수행중 알게 된 국가기밀을 공개하거나 누설할 때는 5년이하의 징역 또는 5백만원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는 조항을 담고 있다.
  • 비수기 여름호텔/가족휴양객 유치경쟁 치열

    ◎숙박료 할인·수영장 무료이용 혜택/해변연결 휴양소 운영… 미술전열어/PC·팩스 갖추고 회의실 마련… 사업자에 손짓 「올 여름 휴가는 가족들과 함께 호텔에서 지내는 것이 어떨까」. 피서길 교통체증과 바가지요금 등으로 「피서길이 고행길」이 될 것이 우려되고 바쁜 업무로 도심에서 쉬기 원하는이들이 늘어가며 비수기인 여름철 호텔이 각광 받고 있다. 이에따라 전국의 유명호텔들은 가족단위의 휴양객유치를 위해 수영장및 다양한 놀이시설의 무료이용을 확대하고 「서머 패키지」상품을 마련, 손짓하고 있다. 특히 르네상스·신라·워커힐·하얏트등 서울의 특급호텔들은 가족과 함께 피서 온 바쁜 비즈니스맨을 위해 컴퓨터·팩시밀리·통역·번역·컬러복사기·미팅룸등을 갖춘 「비즈니스센터」를 운영하는가 하면 지방의 호텔들은 가까운 해변과 연결,휴양소를 운영하고 미술전시회를 마련해 휴가중에 문화행사에도 참여할수 있게 하는등 특색을 꾀하고 있다. 호텔들은 2인1실,1박2일 기준으로 각종 할인혜택을 주며 7월초순까지 예약을 받는다.■르네상스 서울(27일∼8월31일)=스위트룸 요금을 50%할인해 주고 2인 아침뷔페식사권,수영장과 체련장의 무료이용이 가능하다.1실 3인가족까지 추가요금이 없고 레크리에이션센터 40%,세탁과 제과점 20%등의 할인혜택을 준다. ■신라(7월15일∼8월15일)=A프로그램(16만원)은 2인 아침식사가 무료이고 디럭스실을 제공하는 B프로그램(25만원)은 2인 아침과 저녁식사가 무료이다.제과점 10%,헬스클럽 50%할인과 옥외수영장및 유아휴게실 무료이용이 가능하다.특히 온 가족이 즐길 수 있게 석궁·게이트볼·캐취볼코너를 무료 운영한다.제주 신라호텔은 가나화랑과 함께 7월9일부터 8월15일까지 개관 4주년을 기념,동양화·서양화·조각등 3부문의 비중있는 작가 11명을 초대해 전시회를 연다. ■올림피아 서울(18일∼9월4일)=A프로그램(9만6천원)은 야외수영장 2회이용권과 조식뷔페가 제공되고 B프로그램(13만9천원)은 야외수영장 2회이용권과 조식뷔페,중식 또는 석식뷔페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또한 레포츠클럽·유아놀이방이 무료운영되고 부대영업장 이용시10%할인 혜택을 받는다. ■부산 파라다이스비치(1일∼9월30일)=1인1실 12만원,2인1실 13만5천원.아침뷔페와 사우나·옥외온천·수영장·헬스클럽이 1회 무료이용되고 해운대 관광유람선 30%,해운대 요트·원드서핑·제트스키등 수상스포츠가 40% 할인된다. ■설악파크(7월16일∼8월21일)=1박 14만원,2박 25만원.13세이하 어린이는 무료투숙이 가능하고 저녁식사가 1회 제공되며 사우나 40%,볼링장·가라오케 10%등이 할인된다.가까운 속초해수욕장에 휴게실을 설치,호텔투숙객들이 이용할 수 있다. ■경주 현대(7월26일∼8월28일)=1박2일(15만원)은 아침식사가 무료제공되고 사우나 50%할인,2박3일(28만원),3박4일(42만원)은 아침과 사우나가 무료.동해 감포해수욕장에 휴양소를 설치·운영하며 수영장·테니스장·체력단련장이 개방된다. 이외에 경주힐튼호텔은 선재미술관에서 미국의 작가 키엔홀츠의 설치작품등을볼수 있는 「휴먼 환경,그리고 미래전」을 24일부터 9월2일까지 열어 휴가를 즐기며 문화를 감상할수 있게한다.
  • “UR 이행계획 제대로 알려라”/이 총리(국무회의:28일)

    28일 국무회의는 재무부가 상정한 금융실명거래및 비밀보장에 관한 긴급재정명령 제4조의 시행에 관한 규정 제정안의 의결이 보류되고 대통령의 해외순방기간에 즈음한 이회창국무총리의 지시등으로 2시간이 넘게 진행됐다. ○…이총리는 『한 개인이 어떤 금융기관과 거래를 한다는 사실까지 비밀보장의 대상이 돼서는 곤란하다』면서 「금융실명거래및 비밀보장에 관한 긴급재정명령 제4조의 시행에 관한 규정 제정안」의 제3조 「비밀보장의 대상이 되는 정보등의 범위를 특정인의 금융거래 사실과 금융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거래자의 금융거래에 관한 기록의 원본및 사본과 그들로부터 알게 된 것으로 한다」는 조항에서 이 부분을 제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제시. 또 제5조 2항 「명의인의 동의에 대한 정보등의 제공」 가운데 「동의서의 유효기간은 동의서의 작성일로부터 6개월을 초과할 수 없다」는 조항이 수사목적등의 조사를 저해할 우려가 있고 반드시 유효기간을 못박을 이유가 없음을 들어 홍재형재무부장관에게 재검토를 지시. 이총리는김양배농림수산부장관으로부터 우루과이라운드 농수산물시장개방 이행계획서에 대한 보고를 받은뒤 『국민들이 이행계획서에 관해 이해를 잘못하고 있는 것 같다』면서 『수정경위와 그 내용을 있는 그대로 국민들에게 알려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해달라』고 당부. ○…최형우내무부장관은 동교동 김대중씨 자택 인근 경찰경비숙소 현황과 대책을 보고,『서울시와 경찰공제회가 2채씩 소유하고 있는 경찰경비숙소 4채가 있었으나 지난 87년 7월9일 이후 분식점주인 버스운전사등에게 전세를 주고 사용하지 않고 있다』면서 『28일 김화남경찰청장을 대동하고 현장을 둘러본 자리에서 입주자들을 즉각 내보내고 매각하라고 지시했다』고 설명. 최장관은 『동교동에 이어 상도동 김영삼대통령의 사저를 방문한 결과 과거 경찰의 경비가옥이 있었고 이웃 노인정 지하에도 경비경찰관들이 사용하던 숙소가 있었으나 지금은 모두 철수한 것으로 확인됐다』면서 『이처럼 경찰경비가옥이 남아있었던 이유는 청와대의 안가 철거 지시때 보고에서 누락됐기 때문』이라고 해명. ▲단기금융업법시행령(개) ▲공공자금관리기금법시행령(제) ▲국유재산법시행령(개) ▲신용카드업법시행령(개) ▲군인사법시행령(개) ▲농지의 보전및 이용에 관한 법률시행령(개) ▲농어촌전화촉진법시행령(개) ▲건설공제조합법시행령(개) ▲부동산중개업법시행령(개) ▲행정규제및 민원사무기본법시행령(제) ▲95년도 예산안 편성지침 ▲94년도 일반회계 재해대책 예비비지출 ▲대한민국과 아르헨티나공화국간의 범죄인 인도조약 체결 ▲93회계연도 국민투자기금 결산보고서 ▲대전세계박람회유공자등에 대한 영예수여 ▲75주년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 기념행사 기본계획(안) ▲34주년 4·19의거 기념행사기본계획(안)
  • “재범우려 있다” 치료감호 선고/박지만씨 「히로뽕 투약」공판 모습

    ◎변호인 “가족 모두 결과에 만족”/방청객 백여명 몰려 관심 반영 서울지법 남부지원 형사부(재판장 이정구 부장판사)는 25일 히로뽕 상습투약혐의로 기소된 고박정희대통령의 외아들 박지만씨(36)에 대해 치료감호를 선고했다. 이에따라 박씨는 히로뽕중독증이 완치됐다고 판단될 때까지 공주치료감호소에 수용돼 치료를 받게됐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의 히로뽕 의존도가 중증인 것으로 보이는데다 주변환경으로 볼때 재범의 우려가 있기 때문에 건전한 사회인으로 복귀시키기 위해서는 약물을 차단하고 충동유혹을 사전에 방지한다는 차원에서 치료감호가 필요하다고 판단된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날 상오 9시55분 선고공판이 열린 서울지법 남부지원 1호법정은 1백여명의 방청객들이 입추의 여지도 없이 들어차 이 사건에 대한 세인의 관심이 여전함을 반영. 이날 법정에서는 피고의 둘째누나 근 씨(40)를 비롯,사촌형·당숙등 가족과 친척들도 나타나 뒷줄에 서서 조용히 재판을 관람. ○…푸른 수의 차림으로 피고인 석에서 고개를 떨군채 앉아 있다가 호명을 받고 재판장 앞에 선 박씨는 시종 담담한 표정. 『재범위험이 있어 피고를 마약공급원으로부터 차단시키기 위해 치료감호처분에 처한다』는 내용의 간단한 판결문 낭독이 끝난뒤에도 결과를 예측한듯 박씨는 표정 변화 없이 퇴장. ○…3분여에 걸친 판결문 낭독이 끝난뒤 법정을 나선 근 씨는 소감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동생이 이런일을 저질러 돌아가신 부모님께 죄송하다』고 말하고 『오늘은 그렇게만 말씀드리겠다』며 총총히 자리를 떴다. 그러나 근 씨는 재판 결과에 만족한 듯 비교적 밝은 표정. 변호인 김유후변호사는 『치료받기를 원하는 당사자와 가족 모두가 재판결과에 만족하고 있다』고 귀띔. 김변호사는 『치료감호소에 머무는 동안 치료와 동시에 6개월에 한번씩 사회보호위원회의 검증을 받아 완치됐음이 입증되면 감호소를 나올수 있다』고 말하고 『그러나 2년뒤에도 치료가 되지 않을 경우엔 다시 기간이 연장될수 있다』고 설명. ○…박씨가 히로뽕 투약과 관련해 법원의 치료감호 선고를 받은 것은 이번이 2번째로 89년 10월 코카인 흡입혐의로 불구속입건된데 이어 91년 3월에도 히로뽕투약혐의로 검찰에 구속돼 91년 7월9일부터 같은해 8월31일까지 치료감호를 받았었다.
  • 임병찬(다시 새기는 그 충절/이달의 독립운동가)

    ◎미완의 의병조직 독립의군부 이끌어/12년 고종밀서 받고 대규모 전쟁준비/착수 2년만에 일경에 발각… 수포로 2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된 돈헌 임병찬선생은 경술국치 이후 독립을 되믿기 위해서는 전국적으로 의병이 조직돼야 한다는 생각에서 무장세력인 「독립의군부」의 결성을 추진하다 일제에 붙잡혀 유배중 숨진 애국선열이다. 선생은 44세때인 1895년 을미사변이 발생하기 전까지는 평범한 선비로서 지냈다. 그러나 명성황후가 일제 불량배들에게 시해되는 치욕스런 사건이 일어나자 이를 복수하기 위해 66세를 일기로 숨질 때까지 의병활동에 온 힘을 쏟았다. 선생은 1851년 2월 전북 옥구군 서면 상평리에서 태어났다. 세살때에 천자문을 읽을 만큼 총명을 타고난 선생은 15세때 전주부 감시에 장원으로 합격,관직에 나섰으며 38세때 도내 유림의 천거로 절충장군첨지중추부사겸 오위장의 직첩을 받았다. 다음해 낙안군수에 임명됐으나 벼슬보다는 학문에 힘을 쏟기로 하고 곧 관직을 청산,귀향해 회문산 북쪽 종성리에 거처를 마련했다. 그러나 을미사변이 발생하자 일제를 물리치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고 판단,일제를 물리칠 준비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집안의 남녀종복을 풀어주는등 가산을 정리한 선생은 을사조약이 강제 체결되기 1년전인 1904년 의병을 일으키기 위해 각지에 통문을 보냈으나 정부 대신들이 『시기가 이르다』고 만류하자 거사를 일단 중단하기도 했다. 1906년 면암 최익현 선생을 만나고는 즉시 의기투합,서로 사제의 의를 맺고 본격적인 의병활동을 시작했다. 경기 포천에 살고 있던 면암은 같은해 정월무렵 영호남 사람들과 함께 일어설 것을 도모했으나 호응을 얻지 못하다가 문인들이 『호남의 한 선비가 거사를 준비하고 있다』고 전하자 선생을 믿아왔던 것이다. 선생은 이에 따라 그해 6월4일 의병 80여명을 모아 전북 정읍군 칠보면 무성서원에서 창의의 기치를 높게 들고 일어났다. 이 의병들은 사방에 격문을 돌리고 그날로 태인지방을 휩쓸어 군기와 군량을 확보한데 이어 정읍·순창을 차례로 격파,욱일승천의 기세를 떨쳤다. 거사 5일만인 6월8일에는 순창에서 마주친왜군을 단숨에 물리쳐 곡성을 점령하는등 기염을 토했으며 의병수도 9백여명으로 처음보다 10배 이상 늘어났다. 그러나 면암과 선생은 6월12일 전주와 남원 진위대군사가 반격작전에 돌입하자 동포간의 살상을 피하기 위해 천신만고 끝에 조직한 의병부대를 자진 해산하고 말았다. 전주진위대는 해산과정의 의병들을 공격,중군장 정시해가 전사했으며 선생과 면암등 13명이 전주진위대를 거쳐 일본군사령부에 잡혀가 7월9일 대마도 위수영에 감금됐다. 그뒤 면암이 옥중단식으로 순국하자 선생은 1907년 첫 유배에서 풀려나 귀국했다. 귀국한 이후에도 불매동맹·국채보상운동등을 전개하다가 다시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1912년 9월에는 독립의군부 전라북도 순무대장으로 임명됐다.선생이 순무대장으로 지명된 것은 1906년의 의병활동 때문이었다. 선생은 이 막중한 임무를 감당하기에는 자신이 너무 부족하다고 느껴 수차례에 걸쳐 이 책임을 면해달라는 내용의 상소를 광무황제에게 올려보냈으나 황제는 다시 밀소를 내려보내 그를 신임했다. 선생은 1914년2월 독립의군부를 전국적인 조직으로 확대,대한독립의군부 편제를 구성했다.독립의군부의 활동목표는 일본의 내각총리대신과 조선총독및 주요 관리들에게 한국 강점의 부당성을 깨우쳐주고 대규모 의병전쟁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독립의군부의 이같은 계획은 그해 5월 일경에게 발각돼 실패로 돌아갔다. 이어 일경이 6월3일 총사령인 선생을 체포하고 독립의군부 간부들을 투옥시키자 선생은 자결을 결심하고 칼로 목을 찔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6월12일 금고 1년을 선고받은뒤 거문도에 다시 유배됐다.선생은 2년뒤인 1916년 5월 유배지에서 한많은 생을 마감했다.
  • 화성 연쇄살인누명/김종경씨 손배소송

    【수원=조덕현기자】 지난해 7월 경찰에 의해 화성연쇄살인사건 용의자로 지목돼 조사를 받았던 김종경씨(42·수원시 팔달구 매탄동 196의156)가 같은해 12월8일 자신과 부인 오윤자씨(41)등 가족 4명의 명의로 국가와 서울 서대문경찰서 김상구형사과장등 경찰관 4명을 상대로 1억2천5백만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김씨 가족들은 소장에서 지난해 7월9일부터 5일동안 서대문서 형사과 소속 경찰관들에게 불법감금된 상태에서 물고문과 폭행등 가혹행위를 당했으며 화성연쇄살인사건 피의자라는 누명을 쓰는 바람에 자신과 가족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 율곡사업 59일감사 최장기록/감사원 발간 감사백서 내용

    ◎국세청 지적사항 “최다”… 4년째 불명예/3천53건 적발… 전년비 8백여건 줄어 감사원은 30일 문민정부 출범 이후 10개월 동안의 감사활동을 정리한 감사백서를 발간했다. 지난 1년동안 개혁이라는 사회적 합의 아래 가장 활발한 사정활동을 해온 기관이 감사원이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수치로 나열해 본 올해의 감사실적은 지난해 보다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선 감사적발건수가 지난해 3천9백9건에서 올해는 3천53건으로 8백56건이 줄었다. 또 감사결과 환수된 금액은 지난해의 1천2백94억원 보다 1백34억원이 적은 1천1백60억원이었으며 피감기관에 인사조치를 통보한 건수도 9백77건에서 8백21건으로 감소했다. 이처럼 수치상의 감사실적이 줄어든데 대해 감사원은 『율곡사업과 평화의 댐 감사등에 대규모 인력을 동원하다 보니 감사를 많이 나가지 못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또 과거처럼 경미한 법규위반행위까지 무작정 「법대로」처리하는 대신 적극적으로 업무를 챙기다 일어난 실수는 관대하게 처분한 것도 적발건수가 줄어든 이유라고 덧붙였다. 올해 감사에서 가장 많은 지적을 받은 국가기관은 국세청으로 5백95건이 적발됐다.국세청은 작년까지 4년동안 이 부문에서 계속 수위를 차지해 왔는데 올해도 이같은 불명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어 경찰청이 1백72건,율곡사업 감사를 받았던 국방부가 1백70건,건설부가 1백16건 등으로 나타났다. 지방자치단체 가운데는 역시 서울시가 4백60건으로 가장 많았으며 경기도 1백5건,충남 38건,부산 36건등의 순서로 집계됐다. 정부투자기관 중에서는 한국전력공사가 1백23건으로 가장 많았으며 한국전기통신공사가 37건,담배인삼공사가 27건,평화의 댐 감사와 관련된 한국수자원공사가 26건 등이었다. 감사원으로부터 시정요구를 가장 많이 받은 분야는 행정규제로 3백34건이 지적됐으며 민원및 인허가 2백60건,기획관리 1백1건인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가장 많은 감사요원이 투입된 감사는 지난 6월7일부터 한달동안 진행된 서초·청량리경찰서에 대한 기관종합감사로 연인원 1천1백17명이 감사에 참가했다. 감사기간이 가장 길었던 감사는 율곡사업 감사로 지난 4월27일부터 6월23일까지 59일동안 계속됐다.여기에다 노태우전대통령에 대한 조사문제로 잠시 미뤄졌던 차세대전투기사업 감사결과가 7월9일 발표된 것까지 계산하면 장장 73일에 걸쳐 감사가 이루어진 셈이다.
  • 대마도 아리랑제(일본속의 한국문화:2)

    ◎통신사기념 매년8월 첫주 열려/일행 5백여명 탄 선단 이즈하라외항 도착/정사 선두로 중심가 행진… 구경꾼 연도 메워 통신사일행을 태운 배는 늘 새벽에 부산항을 떠난다.순풍에 돛을 달면 편안하게 그날 오후 4시경에 대마도에 도착하지만 역풍과 격랑을 맞나게 되면 밤늦게 악포 앞바다에 이르러 헤매게 된다.그리고 모두 배멀미에 시달려 일어나지 못하고 뻗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악포에서 몇날을 묵은 뒤 대마도의 행정수도 이즈하라(엄원)로 떠난다.배는 대마도의 서해안(즉 일본측 해안)을 따라가게 되는데 이 항로 또한 만만치 않아서 2∼3일만에야 겨우 목적지에 닿게 된다.이즈하라는 당시 대마도주 슈우케(종가)가 사는 성하정(읍)이어서 부중이라 불렀었고 1천호이상의 민가가 몰려 있는 번화가였다.지금도 대마도의 총인구 4만5천명 가운데 1만5천여명이 살고 있는 섬 제일의 고을이다. 특히 이즈하라에는 우리나라 통신사와 인연이 깊은 유물·유적들이 많이 남아 있는데 통신사일행이 묵은 숙소 서산사라든지 도주의 저택 김석성,그리고 옛 부두,어선강(오후네가와)등이 눈길을 끈다.어선강이라는 옛 부두는 지금의 이즈하라항구로 흘러들어오는 작은 냇물의 하구를 인공으로 넓혀서 만든 도주전용의 선착장인데 네개의 석축선착장이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필자가 갔을 때 마침 밀물이라 항구에는 바닷물이 가득 차 있었으나 물이 빠지면 바닥이 드러난다는 것이며 이 경우 배들이 들어오지 못했다고 한다.당시 통신사일행이 5백명에 이르렀으므로 정사와 부사를 태운 세척의 배만 이 좁은 항구에 들어왔을 뿐 나머지 배들은 외항에 머물렀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무튼 수십척의 통신사 선단이 이곳에 도착하면 잠자듯 조용했던 이 섬은 흥분하기 시작한다.도착을 알리는 나팔소리를 듣고 나온 인파가 연도를 가득 메운 가운데 통신사의 행렬이 약 3㎞에 달하는 부중중심가를 뚫고 가게 되니 절해의 고도 대마도로서는 일대 소란이라 하지 않을 수 없었다.최근 대마도에서는 그날의 열기를 기념하는 아리랑제를 매월 8월 첫주에 거행하고 있는데 단순한 한국관광객유치작전으로만 볼 수 없다. 통신사의 부중도착실황을 자세히 묘사한 기록으로 종사관 이경직의 「임상록」(1617년,광해군9년)이 있다.종사관은 정사와 부사 다음의 벼슬이다. 『7월9일(부산을 떠난 지 5일만)신시(저녁 네시경) 부중포에 당도하였다.정사(오윤겸)이하 4백28명이 모두 관대를 갖추어 위의를 성대하게 벌여 국서를 받들고 행진하였다.대오를 갖춘 위인들이 앞을 인도하는 가운데 부중에 들어서니 구경꾼들이 연도에 담치듯 하였고 남녀가 뒤섞여 시끌법석하였다. 섬안은 지세가 비좁고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였고 민가가 많아 대강 1천여호가 되는듯 보였다.앞바다에는 큰 배 10여척,작은배 60여척이 대어 있었다.선착장에서 신사의 숙소까지 7·8이(약3㎞)가량 떨어져 있는데 좌우의 여염에는 누각이 많았고 소위 양반집 정원에는 송죽이 심어져 있었다.이는 대개 정결에 힘쓰는 이 나라 풍속 때문이라 할 것이다』 지금도 이즈하라거리에서 특히 우리의 눈길을 끄는 것은 돌담을 높이 쌓은 소위 양반집이다.대마도에서는 무가의 저택이라 하는데 아래는 굵은 돌을 쌓고 위로 올라갈수록 작은돌을 쌓은 것이 우리나라의 옛날 시골집 돌담과 흡사하다.이곳 사람들은 돌담을 높이 쌓은 이유를 혹은 방화벽이라느니 혹은 통신사가 지나가면서 안을 들여다보지 못하게 했다느니 설명하고 있으나 통신사기록을 종합해보면 이곳 주택들이 모두 목조건물이라 동네마다 돌담으로 칸을 막아 불길을 막고 출입구를 만들어 이문으로 삼았던 것 같다. 이경직이 대마도를 방문한 1617년만 하더라도 임진왜란이 끝난 지 20년이 채 못된 시점이었기 때문에 풍신수길의 침략군 앞잡이를 한 대마도주에 대한 감정이 대단하였고 아무리 후한 대접을 한다 하더라도 마음속에는 늘 원수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그래서 이경직은 이런 말을 하고 있다. 『그들의 추한 모습을 볼 때마다 또 올빼미 같은 소리를 들을 때마다 마치 뱀이 앞에 나타난 것같이 섬뜻하여 고통스럽기만 하다』 임진왜란 때 그들에게 죽은 사람은 부지기수였고 일본땅으로 끌려간 사람이 30만으로 추산되었다.바로 이 대마도에도 수많은 동포들이 끌려와서 고생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편안할 리없었고 밥먹는 것이 모래를 씹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정부에서는 일본으로 보내는 사절단을 통신사라 이름하지 않고 회답·쇄환사라 했다.7월10일 정사 오윤겸은 대마도로 종의성에게 『이번 행차는 오로지 우리나라 사람을 쇄환하기 위한 것이다』라고 강조한다.그러나 종의성은 음흉하게도 이렇게 변명하고 있다.첫째 임란때 끌려온 조선인들은 이미 장가들고 시집을 가거나 자손을 본 사람까지 있으니 그들을 강제로 귀국시킬 수 없고,둘째로 관백(일본의 실력자 덕천)으로 하여금 전국에 쇄환령을 내리게 하려면 돈이 필요하다. 임진왜란 때 왜놈들이 끌고 간 조선인의 대다수는 젊은 처녀와 10세전후의 어린 소년들이었다.그러니 근 20년이 지난 오늘 그 대다수가 결혼하고 자식을 두었다는 것이다.거기다 이들을 쇄환해가는 데 돈까지 요구하니 기막힌 이야기였다.침략행위에 대한 피해보상을 하지는 못할망정 강제연행한 조선인의 송환까지도 거부한 일본의 교활하고 파렴치한 행동은 이미 3백년 전에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한국과 일본이 가깝고도먼 나라가 된 원인은 바로 이러한 일본지도자들의 무책임한 정책 때문이란 사실을 스스로 반성하여야 할 것이다.
  • 세브란스 병원/소화기 내시경 검사 10만회 돌파

    ◎내과팀,도입 24년만에 “국내 최다” 기록/위진단 70.2% 식도 10.9% 십이지장 9.8%순 세브란스병원 내과팀이 소화기 내시경검사 10만회를 돌파했다.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은 69년 소화기질환 환자에게 내시경검사를 처음 실시한 지 24년만인 지난 7월9일 현재 국내 최대 기록인 10만회의 시술성적을 올렸다고 최근 발표했다. 내시경은 위를 비롯해 식도·십이지장·소장·대장·복강·흉강·자궁·관절등의 질환을 직접 눈으로 관찰할 수 있는 진단장비의 총아.특히 80년대 들어 단순한 진단 뿐만 아니라 질환부위를 직접 치료하거나 수술하는 내시경술이 속속 개발됨에따라 내시경은 이제 의료기관에서 없어서는 안될 장비로 부상했다. 한편 세브란스병원이 발표한 10만회의 내시경실적을 부문별로 보면 위내시경진단이 7만2백건(70·2%)으로 가장 많았고 식도 10.9%,십이지장 9.8%,수술뒤 추적검사 6.4%였다. 위내시경 결과중 가장 흔한 질환은 위염으로 전체 검사건수의 32.9%를 차지했으며 미란(염증으로 위 표면이 문드러진 상태)14·1%,궤양 9.4%,진행성위암 6.9%,조기위암 1.4%순으로 나타났다. 소화기내과 과장 박인서교수는 『내시경은 눈으로 직접 질환부위를 관찰,확인해 확진을 내리는 장비이기 때문에 오진이 있을 수 없다』며 『우리나라 성인에게 가장 많은 위암도 내시경검사로 초기에 거의 1백% 진단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 실명제 수출영향“미미”/상공부 발표/13∼14일 실적 전월과 비슷

    ◎장기적으론 위축 우려 금융실명제가 아직 수출에는 별 영향을 주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17일 상공자원부에 따르면 실명제 첫날인 지난 13일(금요일)의 수출실적은 2억6천만달러로 월별 비슷한 시기의 같은 요일인 7월9일의 2억4천5백만달러,6월11일의 2억6천8백만달러와 비교해 큰 변화가 없었다.토요일인 14일에도 1억9천3백만달러로 7월10일의 1억7천5백만달러와 차이가 없었고 6월12일과는 수출액이 같았다.수출업계 운전자금 조달수단인 무역어음도 17일 아침까지 할인을 받지 못한 사례가 한 건도 없다. 상공자원부는 그러나 무역금융으로 운전자금을 조달해 온 업체의 경우 사채로 조달해 오던 융자단가 초과금액을 마련하기가 어려워질 우려가 있고,무역어음도 전체 할인실적의 68%를 차지하는 제2금융권의 재원이 줄어들어 앞으로 어려움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상공자원부는 무역어음의 할인동향을 보아 할인재원이 모자랄 때는 ▲현행 어음관리구좌(CMA)의20%,채권관리기금(BMF) 수익증권의10%,금전신탁의10%로 돼 있는 무역어음 편입 의무비율을 각각 10%포인트씩 올리고 ▲양도성예금증서(CD)의 무역어음할인 편입비율을 10%에서 20%로 높이는 등의 보완책을 검토키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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