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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 시간의 발견 - 인간에게 ‘시간’은 어떤 의미일까

    ‘시간’이라는 말은 지극히 일상적인 용어이지만 동시에 깊이 파고들면 한없이 추상적이고 다의적인 개념이다.일상성과 추상성을 아울러 지닌 만큼 그것은 흥미로우면서도 까다로울 수밖에 없다.‘시간’은 단순히 일상생활에서의 한 단위를 뜻하지만 예컨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같은 작품에서는 인간의 내면적인 진실을 의미하기도 한다. ‘시간의 발견’은 역사적·과학적·심리적·철학적 시간 등으로 나눠 시간의 본질에 접근한다.인류가 시간 측정의 단위를 놀랍도록 정확하게 분류하고 비교하고 생각할 줄 알게 된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또한 인류가 시간을 지배함으로써,다시 말해 동시적인 삶을 실현함으로써 거꾸로 시간이 우리를 지배하게 된 아이러니도 보여준다. 인간의 몸은 날마다 해가 뜨고 지는 데서 생기는 빛과 어둠의 주기에 리듬을 맞추는 복잡한 생물학적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다.이 ‘하루시계(circadian clock)’는 초기의 인류,즉 선사시대 인간이 지구상에 등장해 시간을 의식의 대상으로 삼기 이전부터 존재했다. 선사시대 사람의 시간관념은 어땠을까.선사시대 문화에는 당시 사람들의 시간관을 말해줄 만한 것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고대 이집트에서처럼 해가 뜨는 것을 하루의 시작으로 삼았을까,아니면 오늘날 유대력이나 이슬람력처럼 일몰을 하루의 시작으로 잡았을까. 자연세계의 주기는 날과 달과 해라고 하는 시간단위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그러나 그밖에 다른 시간단위는 전적으로 인간의 발명물이다.예를 들어 밤을 12시간으로 나누고 같은 방식으로 낮도 그렇게 구분한 이집트의 관습은 문화적 환경에 따른 것으로,매일 밤 뜨는 별들을 순서대로 12개나 36개의 그룹으로 묶을 수 있다는 데서 비롯됐다.한시간을 60분으로 나눈 것은 전혀 다른 제도,즉 메소포타미아에서 사용한 60진법의 유산이다. 한편 14세기 기계식 시계가 출현하면서 하루를 측정하는 방식은 24시간으로 고정됐다.이처럼 시간을 균등화한 것은 기계식 시계가 해시계보다 정밀하기 때문이 아니다.그 진정한 원인은 상업 발달에 있었다.1330년대부터 산업계는 노동자들을 시간(60분)단위로 고용하기 시작했고 시간을 알리기 위해 종루도 세웠다.휴대용 시계가 보급됐고 일상생활은 점점 더 동시성의 세계로 접어들었다.한 예로 영국 우편마차의 호위병들은 1780년대 각각 시계를 지급받아 마차를 일정대로 움직일 수 있었다. 순환적 혹은 주기적 시간개념이 선형(線形)시간 개념에 밀려난 것은 역설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역사적으로 볼 때 그리스도교적 시간개념은 선형이다.천지창조에서 시작해 그리스도를 거쳐 재림으로 나아가는 ‘시간의 화살’로 볼 수 있다.17세기 이론가들과 뉴턴도 이같은 선형 구도를 따랐다.천체와 사물의 운동을 설명한 뉴턴의 운동법칙은 돌이킬 수 없는 일방향성(一方向性)시간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그리니치 평균시(GMT)는 어떻게 탄생했을까.미국과 캐나다의 철도회사들은 대륙을 횡단하면서 곧 시간대를 식별할 필요성을 느끼게 됐다.이를 계기로 전세계 산업국가들은 1884년 워싱턴에서 본초자오선 회의를 개최하기에 이르렀다.그 결과 GMT는 세계 표준시로 확정됐고 지구는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것과 같은 여러 시간대로 나뉘었다. 이 책은 오랜 시간의 궤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장소로 미국의 그랜드캐니언을 꼽는다.실제로 그랜드캐니언 만큼 시간의 심연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곳도 드물다.협곡의 가장자리에 서서 1500m 아래 콜로라도강을 내려다 보면 마치 시간의 통행로에서 스냅사진을 찍는 듯한 기분에 빠진다.바닥에 있는 선캄브리아기의 바위들은 20억년에 가까운 세월을 견뎌왔다.그랜드캐니언이야말로 먼시간(deep time),즉 지질학적 시간의 보물창고다.1만8000원. 김종면기자 jmkim@
  • 김준배씨 폭행경찰 고발, 의문사위 “공소시효 남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한상범)는 지난 97년의 김준배(당시 27세·한총련 투쟁국장)씨 사망 사건과 관련,당시 김씨를 폭행해 숨지게 한 것으로 드러난 경찰관 이모(32) 경장을 독직폭행 혐의로 최근 검찰에 고발했다고 26일 밝혔다.규명위가 조사사건 관련자를 검찰에 고발한 것은 처음이다. 규명위 관계자는 “다른 사건들과 달리 이 사건은 공소시효가 남아 있어 고발이 가능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광주고검은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의 독직폭행 혐의로 고발된 이 경장에 대한 사건을 대검찰청으로부터 넘겨받아 조사에 나섰다. 이세영기자 sylee@
  • 고향 간 교황 ‘마지막 인사’

    ‘수백만 고향사람들의 떠나지 말아 달라는 호소에 교황의 눈자위가 눈물로 적셔졌다.노(老) 교황과의 ‘영원한 이별’을 직감한 듯 군중들의 뺨에도 눈물이 흘러내렸다.’ 최근 건강이 눈에 띄게 악화돼 ‘서거 임박설’까지 나도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82)가 19일 마지막 고국방문이 될지도 모르는 나흘간의 감동적인 일정을 마치고 고국 폴란드를 떠나 로마로 돌아갔다.이로써 폴란드 방문을 계기로 고향에 남아,13세기 이후 최초로 서거 전 사임하는 첫번째 교황이 될것이라는 소문은 일단 잠재웠다. 그러나 로마 교황청이 올해 교황의 해외방문 일정을 더이상 잡지 않았다는 점에서 ‘만일의 상황’에 대비하는 인상이 짙다.교황은 고령에 암살 후유증,교통사고,종양제거수술,무릎 관절염,파킨슨씨병 등 질병이 겹쳐 최근 거동은 물론 말도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로 급격히 쇠약해지고 있다. ●감동의 고향방문= 교황의 이번 폴란드 방문은 영원한 ‘작별인사’처럼 비쳐져 전세계인의 감성을 자극했다.해외언론들이 이번 방문을 ‘향수어린 여행’이나 ‘감상적 방문’ 등으로 부른 것도 이같은 정서를 반영한 것이다. 실제 이번 교황의 여행은 자신의 삶의 궤적을 차례로 되짚어가는 일정으로 짜여졌다.교황은 지난 17일 젊은 날의 대부분을 보낸 크라코프에 머물며 자신이 살던 옛 집과 거리 등을 둘러보며 추억에 잠겼다.특히 자신이 독일 나치 치하에서 일했던 채석장을 찾아 “날마다 나무 신발을 신고 이 길을 걸어 일하러 갔던 것을 요즘에도 생각한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이어 1938년 이사해 아버지와 함께 살았던 타이니예카 10번가의 2층짜리 회색 건물을 찾아 이 집에 살고 있는 7살 소년으로부터 꽃다발을 받았다.교황은 78년 교황으로 추대될 때까지 크라코프 주교로서 머물렀던 사제관을 이번에 숙소로 사용했는데,숙소 앞에 청년들이 몰려와 교황에게 “떠나지 말아달라.”고 외치기도 했다. 폴란드인 수십만명은 또 그가 이동할 때마다 연도에 늘어서서 교황을 열렬히 환영했다.교황은 18일엔 부모 묘소를 찾았으며,46년 자신이 사제서품을받고 첫 미사를 올렸던 바벨 성당도 방문했다.가장 감동적인 순간은 폴란드를 떠나기 전날 교황이 집전한 야외미사에 사상 유례가 없이 많은 200만 인파가 몰렸을 때였다.군중들이 교황에게 울면서 떠나지 말아 달라고 외치자교황의 눈시울도 붉어졌다.이때 교황은 군중들에게 “다음에 또….하지만 그것은 전적으로 하느님의 손에 달려있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러나 교황은 폴란드 출국 전 공항에서 행한 고별연설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나를 만나기를 바랐지만,다 만나지 못했다.다음 기회에….”라고 말해희망을 버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를 알현했던 알렉산데르 크바니예프스키 폴란드 대통령은 “교황은 정신적으로는 완벽한 상태”라고 전했다.호아킨 나바로 발스 바티칸 대변인도 “내 생각으로,교황은 폴란드에 다시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왕성했던 교황=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전임 교황들과 달리 바티칸에 머물면서 교회 일에만 매달리지 않고,세계 120여개국을 돌아다니며 인권문제,이념갈등 해결을 위해 왕성한 활동을 벌여왔다.이번 폴란드 방문은 24년 재임기간 동안 98번째 외국 방문이며 조국방문으로는 9번째다. 교황은 건강에 대한 우려에도 불구,중동성지를 순례하고 공산국가인 쿠바를 방문하는 등 전세계에 가톨릭과 자유화의 바람을 일으켰다. 91년 반포한 회칙 ‘100주년’에서 교황은 민주적 자본주의를 종교적으로 승인하는 한편 동유럽 공산권의 몰락을 이끌었다.92년엔 지동설을 주장해 파문당했던 17세기 과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에 대해 ‘교회가 오류를 범했다.’며 교회의 잘못을 공식 선언했다.93년에는 이스라엘과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2000년 동안 지속됐던 유대인과 기독교인 사이의 반목과 갈등을 청산하는 길을 열었다. 교황은 폴란드를 떠나며 후일을 기약했다.그러나 많은 폴란드인들은,그리고 교황 자신도,이번이 그의 마지막 모국 방문이 될 것임을 예감하고 있는지 모른다. 김상연기자 carlos@
  • 일본 北알프스/ 3000m 고봉 “여기가 天界”

    일본은 섬나라이면서 산의 나라다. 해발 3000m가 넘는 험준한 산들이 즐비하다.그 고봉들은 열도의 정중앙에 버티고 있다.남알프스,중앙알프스,북알프스로 이루어진 일본 알프스의 세 산맥중에서도 기타(北)알프스는 일본 최고의 산악 비경 지대로 꼽힌다.중북부 지방의 도야마(富山)나가노(長野)기후(岐阜)현은 그 지붕 아래 자리한 일본의 대표적인 관광명소다.매우 아름다운 곳이지만 의외로 한국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다테야마 구로베(黑部) 알펜루트 알펜루트의 길은 4월에 열린다.11월말부터 다음해 3월말까지는 폭설로 그 누구의 접근도 허용하지 않는다.도야마현 도야마시 서부에 위치한,일본에서 최대인 쇼묘폭포(350m)의 웅장한 교향곡은 그 길의 열림을 축하하는 장엄한 서막이다. 알펜루트는 다테야마(立山·3015m)의 고원지대와 산악풍경을 공개하고자 설벽(雪壁)을 뚫어 만든 길.3000m급 다테산 연봉들을 가로질러 도야마현과 나가노현을 잇는 90여㎞의 산악관광도로다.세계적으로 희귀한 이 도로는 첫눈이 내리는 11월 중순쯤 폐쇄된다.테야마역(立山驛·케이블카)∼비조다이라(美女平·고원버스)∼무로도(室堂·트롤리버스)∼다이칸보(大觀峰·로프웨이)∼구로베댐(黑部·트롤리버스)∼오기사와(扇澤·노선버스)를 다양한 교통편으로 연결,색다른 여행의 맛을 제공한다. 만년설이 녹는 여름철 산기슭에는 희귀한 고산식물과 수줍은 듯 살포시 내려앉은 야생화,울창한 삼나무와 원시림이 펼쳐지지만 고도를 높이면 한겨울 설원의 장관을 볼 수 있다.정상인 무로도(2450m)를 관통하는 높이 20m의 까마득한 설벽도로(snow wall)가 압권.푸른 하늘과 흰눈의 극명한 조화가 현실을 잊게 만든다. 비조다이라의 수호신인 1000년 된 아름드리 삼나무는 영겁의 풍파도 잊은 채 오늘도 정상에서 세상을 내려다 보며 그 기개를 뽐내고 있다. ▲구로베(黑部)협곡·구로베댐 협곡은 안개비에 잠겨 있다.까마득히 내려다 보이는 V자 협곡 사이로는 산정의 만년설이 녹아내린 유백색 물이 엄청난 속도로 흘러간다.구로베협곡은 다테야마와 쓰르기산을 주봉으로 하는 다테야마 연봉과,하리노키산·가시마야리를 잇는우시로다테야마 연봉이라는 2대 설령(雪嶺)사이에 있다.도처에 있는 절벽·폭포와 원생림에 둘러싸인 대협곡이다.게다가 보기 드문 다우(多雨)·폭설지대이면서 급경사진 하천이기 때문에,수력발전에 극히 유리한 조건을 갖추었다.구로베호(湖)왼쪽에는 너도밤나무의 원생림 속에서 삼림욕을 만끽할 수 있는 왕복 1시간 정도의 산책로가조성돼 있다. 험준한 등반로 탓에 구로베협곡은 원래 전문 등반인들만 찾던 곳이다.그러나 40년전 구로베댐 건설공사때 건설자재를 운반하던 협궤 산악열차를 댐 완공후 개방하면서 일반 관광객이 몰리기 시작했다.기타알프스 알펜루트와 이어지는 코스로 일본중부 산악지방 최고의 비경으로서 일본인의 사랑을 받는 곳이다.대자연을 온몸으로 체감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한해 150만∼200만명의 관광객이 찾는 명소가 됐다. 높이 186m,길이 492m 규모에 해발 1454m에 위치한 구로베댐은 시공 7년여만인 1963년 6월에 완공됐다.협곡 사이에 자리한 어마어마한 그 규모가 찾는 이에게 불가사의한 힘을 느끼게 만든다.6월부터 댐의 물을 방류하기 시작하는데 놓칠 수 없는 구경거리다. 글·사진=도야마(일본) 박주목특파원 parkjm@ ■여행 가이드 ▲가는길= 아시아나항공은 주 4회(월·금·토 낮12시5분,수 오후5시)인천공항에서도야마행 직항편을 띄운다.1시간50분 소요.도야마공항에서 도야마역까지는 버스로20분 걸리고,역에서 구로베협곡 탐방을 시작하는 다테야마역까지는 1시간 간격으로 기차가 다닌다.아시아나항공 홈페이지(www.flyasiana.com)와 일본JSS(Japan Support System·0261-72-7765)에서도 안내해 준다. ▲음식·온천= 일본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온천이다.도야마와 그 인근에도 전통 온천지구가 많이 있다.유메노유(나가노현 오마치 온천지구·0261-22-2611·www.yumenoyu.co.jp)고도부기(기후현 오쿠히다온천지구·0578-9-2016)온천여관등 이 유명하다.다다미가 깔린 일본 전통 온천여관의 풍미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1박2식에 10만원 정도. 온천여관에서 제공하는 일본 전통음식은 소박하면서도 정갈하다.여주인의 정성과 손맛이 음식에 그대로 배어나 이국의 맛을 느끼기에 충분하다.보호어종이긴 하나 요즘에는 양식에 성공해 대량 공급되는 이와나 구이도 일품.일본남자의 전통복인 유카타를 입고 하는 온천욕도 분명 색다른 경험이다. ■세계문화유산 가미고지… 곳곳 화산활동 ▲인근 가볼만한 곳= 나가노현 호타카마을의 아트 힐(0263-83-5100)에서는 일본의 지역문화 수준을 엿볼 수 있다.아이맥스영화관,문화센터,퍼팅골프장,식당 등 다양한 편의시설을 갖추었다.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유리공예.공방에서 자체 제작한 수준높은 유리공예 작품은 투명하고 오색영롱한 유리나라의 감흥을 묘하게 불러일으킨다.인근에 있는 다이오 와사비농장(0263-82-2118)은 일왕에게 진상하는 일본 최고 품질의 와사비를 생산한다.전과정을 볼 수 있게끔 관광농장 형태로 꾸며놓았다. 기후현 다카야마시는 17세기 에도시대의 가옥과 풍물이 잘 보존돼 일본 다른 지역과 구별되는 옛 전통을 간직하고 있다.대표적인 축제는 봄·가을에 열리는 다카야마 마쓰리로 일본 3대 축제로 꼽힌다.3층으로 만든 화려한 전통수레 야타이가 동원되고 그 위에서 수동인형들이 다양한 묘기를 보여준다.야타이 가이칸박물관(0577-32-5100)에는 일본 건국신화에 나오는 신들이 타고 다녔다는 야타이가 원형대로 보존돼 좋은 볼거리를 제공한다.무게가 2∼3t이며 축제때는 80∼100명의 사람들이 끈다. 기후현 아즈미마을의 가미고지(上高地)는 가을 단풍놀이 관광지로 손꼽히는 곳이다.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국립공원으로 그 웅장한 산세에 압도당하기 마련이다.가미고지는 기타알프스 등산로의 시발점.등산로 곳곳에 지금도 활동중인 화산작용으로 생긴 수증기 분출장면을 구경할 수 있다.
  • 日학자, 亞유물 251점 한국 기증

    한 나라나 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제대로 파악하려면 그주변 국가들과의 연관성을 파악하는 것이 필수다.또 이를위해서 주변국들과의 문화유산 비교 연구가 선행돼야 함은 물론이다. 이런 점에서 일본인 고고학자 가네코 카즈시게(金子量重·77)씨가 20일 국립중앙박물관에 지난 수천년간 한국과문화교류를 해온 아시아 각국의 유물을 모아 기증한 것은비교문화사적으로 큰 의미를 갖는다.기증유물은 가네코씨가 40년간에 걸쳐 아시아 각국을 답사하면서 수집한 것으로,일본 고대 토기를 비롯해 중국 서아시아 동남아시아 등 총 20개국의 고고·미술·민속자료 251점이다.가네코씨는 오는 7월 250여점의 유물을 추가로 기증할 예정이다. 기증품 종류는 선사시대의 토기·청동기·유리제품 등 고고유물,불상·불화·경전·공양구 등 종교 관련 유물,도자기·칠기·목제품·직물류 등 생활유물,완구·인형·탈·악기 등 기예 관련 유물 등이다. 이중 특히 캄보디아·미얀마 등의 칠공예품,남방 불교미술의 특징을 잘 나타낸 불상과 불화 등이 눈여겨볼 만하다.동남아 칠공예품에는 목재에 주칠(朱漆) 또는 흑칠(黑漆),금칠(金漆)로 색을 입히고,유리나 수정 등으로 장식을 한 것들이 많다.정교하게 조각한 네마리의 사자가 경상(經箱)을 받드는 형상의 ‘주칠금채유리상감경상’(미얀마 19세기),‘흑칠주채유리상감대부상자’(캄보디아 18세기) 등이 대표적이다. 18세기에 제작된 베트남의 ‘청동아미타불상’,사원의 벽이나 화포(畵布)에 석가상을 비롯한 제신,명승(名僧)을 세밀하고 화려하게 그린 티베트의 ‘만다라’(17세기) 등은중국과 우리나라 불교 미술과의 좋은 비교가 되는 유물들이다.이밖에 중국 후한기 묘중에 안치했던 동물상인 ‘가채진묘수상’(加彩鎭墓獸像),3∼4세기에 제작된 시리아의유리병 등도 고대 중국과 서남아시아의 문화를 보여주는대표적 작품들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은 가네코씨가 기증하는 500여점의 유물을 정리가 끝나는 대로 내년중 특별전을 통해 일반에 공개하는 한편,용산에 건립중인 새 박물관에 ‘가네코 기증실’을 따로 설치해 상설 전시할 예정.박물관 관계자는 “새박물관에 설치될 동양실이 한층 충실해지게 됐다.”고 반색한다. 60년대부터 아시아 거의 전 지역을 돌며 유물과 자료를수집,1만점에 가까운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릿쿄(立敎) 대학 등 일본 10여개 대학에서 민족학,박물관학,민족조형학등을 가르치고 있다. 가네코씨는 “일본 고대문화가 백제·신라·가야의 절대적 영향을 받아 형성발전됐다는 것은 웬만한 일본 학자들이 모두 인정하는 사실”이라며 자신을 포함,이름에 ‘金’자가 들어간 일본인들도 금관가야에서 건너온 김해 김씨 후손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임창용기자 sdragon@
  • [제정러시아 외교문서 새 발굴 대한제국 秘史] (3)러 거주 한인들의 수난과 투쟁사

    한인들의 러시아 이주문제가 표면화된 것은 1860년 러시아와 청국이 북경조약을 체결,광활한 우수리지역이 러시아영토로 편입되면서부터였다.이때 비로소 조선과 러시아는두만강유역을 경계로 국경선을 맞댔기 때문이다. 이번에 새롭게 발굴된 러측 극비문서에 따르면 1884년에러시아 거주 한인은 대략 1845가구 9000여명에 달했으며남우수리지방의 포시에트에 15개 마을을 형성하고 있었다.독신으로 넘어와 품팔이를 하던 것이 점차 가족을 동반한집단이주로 본격화됐다는 것이다.물론 러측 문서에 나타난 이같은 한인이주는 이전부터 이곳에 거주하던 발해유민등 한인 원주민은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한인이주문제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1863년 조선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포시에트지역에 가족단위 이주민이옮겨온 이후 이주민 숫자는 매년 증가추세를 보였다.당시상황은 이와 같은 한인 이주민이 크게 도움이 됐다.(1908년 3월8일 아무르 동부지역 총독 운테르베르게르가 내무부장관에게 보낸 보고서) 한인이주문제는 아무르동부지역 총독부에서 내무부장관에게 보낸 보고서에 주로 등장한다.이주의 원인으로 대한제국 북부의 토질이 나쁘고 흉년이 계속된 데다 관헌의 파렴치한 착취에 따른 탈출로 분석했다.또 대한제국 국경에서 가까운 남우수리 지방은 습기가 많고 해양성 안개가 자주 끼어 러시아 농민들은 농지로 적합치 않다며 떠나 버렸지만 한인들은 이곳의 기후와 토질이 한반도와 유사해 벼농사에 적합하다고 여겼다는 것이다. 러시아 행정당국에서도 한인 이민을 호의적으로 받아들였으며 이들은 러시아군대와 도시민들에게 농산물을 재배,공급하는 한편 도로개설과 보수 및 짐마차 부역노동 등에 동원했다.한인 이주가 급증한 것은 1870년 초 조선에 흉년이 겹쳤기 때문이다.많은 국민이 빠져나가자 조선정부에서자주 항의를 해왔다.1884년 한·러수호통상조약체결이전에이주해 온 한인은 러시아국민으로 인정하게 되었다. 이민온 조선인은 러시아국적을 소지하고 있으며 정교회를믿었지만 이들이 러시아인화할 것이라는 믿음은 근거없는추측이다.남우수리에 거주하는한 한인가족은 40년을 살았지만 조선식으로 살고 있다.극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의 한인들이 그렇다.러시아가 청국이나 일본과 전쟁을 하게될경우 한인의 충성심을 믿어서는 안된다.이곳은 적의 소굴이 될 것이다.이때문에 일본은 한인의 러시아 이민을 장려하고 있다.(상기 문서와 출처동일) 러시아 중앙정부나 지방당국은 한인들의 습관이나 생활풍속이 러시아인에 동화되지 않으며 황인종이 극동지방에 많을 경우 해롭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하지만 우선 노동력이 필요했기 때문에 이를 차단하는 정책의 시행을 차일피일 연기했을 뿐이었다.1891년 두홉스키 아무르 총독은 오히려 적극 정책을 폈다.한인의 러시아 동화를 독려하는 한편 2년간 러시아잔류허가를 받은 한인이 만기를 넘겨도 추방하지 않았고 새로 오는 이민자도 거부하지 않았다.그 결과 1904∼1905년 러·일전 기간중 한인수는 ▲남우수리 2500명▲하바로프스크와 우드스크에 7500명▲아무르에 3만 3500명에 달했다. 카자흐부대가 관리하는 지역에 살고 있는 한인 18명의 가옥 8채를 철거하지 말고 한인이 경작하는 농토를 몰수하지 말 것.15년간 병역의무를 면제해주고 고국의 가족을 초청,러시아국적을 취득하게 해 줄 것.(1897년 8월16일 타반트 마을 촌장 이성삼외 18명이 카자흐부대 사령관에게 보낸진정서).가족을 초청,농업에 종사한다면 러시아국적취득에 동의하며 국적취득후에는 이들을 카자크관할 마을로 편입시킨다(카자흐 사령관의 회답) 카자흐란 15∼17세기 과중한 세금과 압제를 피해 러시아의 중앙부에서 남방변경지방으로 도망친 농노 및 그 자손들을 총칭하지만 주로 카자흐인들로 구성된 비정규군 둔병(屯兵)을 지칭한다.이들은 정부로부터 토지를 지급받는 대신 유사시에 징집될 의무를 갖고 있었다.한인 이주자들도카자흐인과 마찬가지 취급을 받았던 것이다. 러시아는 한인들에게 미개간지를 개척하게 한 뒤 또 다른 미개척지로 밀어내고 개척지에는 러시아인들을 이주·안착시켰다.1937년에는 이민족을 국경지역에서 소개(疏開)시킨다는 명목아래 중앙아시아의 오지(奧地)로 강제이주시켰다.러시아가 추진한 한인 이주정책의 정체를 알 수 있게하는 대목이다. 이범윤을 중심으로 대한제국의 정치 이민자들이 노보 키예프스크(두만강 넘어 남우수리지방에 있던 소도시)를 활동거점으로 삼고 있다. 일본이 우리의 우방이 아니기 때문에 어떤 조치를 취해야할지 유보하고 있다.(1908년 4월5일 남우수리지방 국경행정관 스미르노프가 연해주 주지사 플루그에게 보낸 통신문).한인 의병조직에 관심도 갖지 말고 처벌도 하지 말 것.그러나 격려하지는 말 것.(같은해 4월19일 플루크가 스미르노프에게 보낸 답신전문). 러시아 극동지역은 을사늑약이 체결된 1905년부터 러시아혁명이 일어난 1917년까지 항일민족운동의 중심지였다.이후 러시아혁명정부가 빨치산부대를 해체하는 1922년까지는 공산주의운동의 본거지가 되었다.이곳이 항일운동의 근거지가 된 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다.우선 만주와 간도,연해주 등 국경을 맞대고 있어 한·러·청 3국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지리적 이점 때문이었다.이와 함께 간도와 연해주지역에 살고 있는 한인 이주민들의 풍부한 인적·경제적 자원을 활용할 수 있었다. 러시아내 한인들을 한인의용군으로 편성해 러시아에 공헌케 하는 방법으로는 산악지방에서 빨치산활동으로 일본군을 교란하게 하는 등의 방법이 있다.…함경남북도에서 6000명의 모병이 가능하며 소총 2300정이 확보가능하다.…부대는 3개 연대로 구성하며 소대장이상 지휘관은 러시아인으로 한다.(1904년 11월3일 코르프 남작이 제안한 러·일전쟁시 한인의용군 편성계획). 일본 외무성이 다음과 같이 전해왔다.조선정부로부터 간도관리사(間島管理使)라는 직책을 부여받은 이범윤은 200명의 동지를 모아 통감부하의 현 정부를 전복시키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다.이들은 불라디보스토크에서 다량의 무기를구입하고 대한제국으로 침투하기 위해 노보 키예프스크에집결해 있다. 이들중 일부는 육로를 통해 경성(서울)으로 갔으며 또 다른 일부는 선박편으로 대한제국 북부로 떠났다.(1908년 7월9일 도쿄주재 러시아대사 말레비치가 외무부에 보낸 비밀전문). 만주에서는 상인들이 빨치산 대원을 도와 무기와 돈을 지원해 주었다.총대장은 이범윤이며 그는 4000명의 빨치산을 지휘하고 있다.그중 1000명은 총으로 무장하고 있으며 나머지 3000명은 길림과 봉천지방 주민들의 지원을 받아 무장을 획책하고 있다.빨치산의 거점지역은 러시아와 청국국경지대에 일부 있으며 또 다른 일부는 간도에 있다.(1911년 11월11일 하바로프스크 아무르군관구 참보부가 총참모부 관리본부에 보낸 비밀첩보보고서) 1905년 러·일전쟁의 패배로 타의에 의해 대한제국에서손을 떼게 된 이후 한일합병을 전후한 시기까지 러시아의비밀문서에는 이범윤과 관련된 항일투쟁활동이 유독 많이거론되고 있다.유인석·홍범도 등에 대해서는 별로 언급이 없다.러시아는 항일의병을 겉으로는 ‘강도단’‘폭도단’‘빨치산’으로 표현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한반도 북부에 대한 영향력 유지를 위해 활용하거나 일본군의 두만강쪽 국경침범을 저지하는 데 이용하려는 속셈을 갖고 있었다. 노주석기자 joo@ ■이범진·이범윤·이위종 3인의 항일 역정 러시아 문서보관국에서 발굴된 극비문서에는 이범진(李範晋·1852∼1910),이범윤(李範允·1856∼1940),이위종(李瑋鍾·1887∼?) 3인의 이름이 유독 많이 등장한다. 이들이 구한말 한·러관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요 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하지만 세사람의 관계와 비극적인 인생유전에 대해서는 국내에 거의 알려진 바 없다. 세사람은 피로 맺어진 혈연관계였다.페테르부르크주재 대한제국 공사였던 이범진과 헤이그밀사로 파견된 3인중 한명이었던 이위종은 부자지간이었다.만주와 연해주땅을 오가며 평생 항일의병활동을 한 간도관리사 이범윤은 이범진의 6촌 동생이었다.이같은 사실은 이범진의 손자 이원갑(李元甲·65)씨에 의해 확인됐다. 또 고종이 같은 전주이씨인 이범진을 ‘조카’라고 호칭한 점으로 미뤄 이들은 이씨 왕가의 먼 일족이었던 것 같다.이범윤은 일제의 핍박에 시달리던 고종을 연해주로 망명시키려는 시도를 한 사실도 문서 곳곳에서 드러난다. 고종의 측근이었던 이범진은 아관파천의 주역이었다.친러내각이 무너진 뒤 주미공사를 거쳐 주러공사로 부임했다. 고종은 “짐은궁중에서 일본의 포로로 잡혀있지만 북쪽러시아를 바라보며 짐과 백성을 자유롭게 해주리라는 희망을 걸고 있다.짐의 사랑하는 조카,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겠지만 그곳에 남아 니콜라이2세 황제에게 도움을 청하라.짐이 운명한 뒤에도 그곳에 남아있으라.일본이 수입과 지출을 통제하고 있으니 송금할 수가 없다.”(1908년 1월31일)는 서신을 보냈다. 조국으로부터의 재정지원이 끊긴 뒤 이범진은 러시아측이 제공하는 월 100루블의 정치성 생활보조금을 지원받고 연명하면서도 조선정부와 일본의 귀국종용을 거부했다.러시아 외무부차관이 소모프 서울 총영사에게 보낸 1910년 5월의 전문에는 “이범진은 귀국할 경우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있으며 러시아를 떠나지 말라는 고종황제의 어명을 지키느라 귀국을 거부하고 있다.”라고 기술했다. 한일합병이후 ‘친러파’로 낙인찍힌 이범진이 일본에 복수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자살이었다.그는 1911년 1월16일 “우리의 조국은 이미 죽었습니다.전하께서는 모든 권리를 빼앗겼습니다.소인은 적에게 복수할 수도,적을 응징할 수도 없는 무력한 처지에 처했습니다.자살이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라는 내용의 유서를 고종에게남기고 목을 매달았다.그의 시신은 페테르부르크 교외 우즈펜스키 묘지에 안장됐으나 지금은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다. 이범진의 둘째 아들 이위종의 일생은 더욱 기구하다.그는 7살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영국,프랑스,러시아를 전전하면서 3개 외국어를 익혔다.프랑스 샹생 육군사관학교를 중퇴,러시아로 들어가 주러공사관 참사관으로 일했으며 러시아의 귀족 놀켄 남작의 딸과 결혼할 정도로 엘리트 외교관이었다.1907년 고종의 밀서를 지니고 이준,이상설과 함께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하지만 그가 만국기자협회에서 행한 일본규탄 연설은 세계에 일본의 잔학상을 최초로 알린 쾌거였다. 그는 생활고와 울분 등으로 러시아인 부인과 이혼한 뒤여기저기를 떠돌았다.1908년에는 군자금 1만루블을 관리하던 최재형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만났으며 이범윤과 함께독립운동을 꾀했지만 러 당국에붙잡혀 추방당했다.1차대전때 러시아군 장교로 참전한 사실과 1917년 러시아 혁명이후 이름을 바꾸고 시베리아일대에서 살았다는 기록이 조선인국제공산당원의 한 보고서에 나와있다.이후의 행적은묘연하다. 이범윤은 1903년 조선정부로부터 간도관리사라는 직책을부여받은 뒤 한때 5개 대대의 무장병력을 거느렸다. 대한제국으로의 진격계획을 세우기도 했다.그는 니콜라예스크에서 검거돼 이르쿠츠쿠로 추방됐지만 이곳에서도 1925년까지 항일운동을 폈다.연해주와 만주를 오가며 평생을 조국을 위해 투쟁했던 그는 노년에 거의 폐인이 돼 비밀리에입국,쓸쓸하게 생을 마감했다. 노주석기자
  • 이주일의 아동도서/ 12가지소리의 아주 특별한 동화, 꼬마 늑대

    ◆12가지소리의 아주 특별한 동화 ‘열두 가지 소리의 아주 특별한 동화’(파랑새어린이)는 이제는 추억 속에 남아 있는 ‘우리의 소리’를 찾아 기록한 것이다.강원희 외 11인이 글을 썼고 전필식,김옥재가 그림을 그렸다. 지금의 상인들은 인쇄물,인터넷,텔레비전,라디오 등의 방법으로 홍보하지만 예전에는 ‘소리’를 외치는 것이 가장 큰 홍보 수단이었다. “쩔꺼덕쩔꺼덕 엿사려∼.”하며 어린이들에게 단 군것질을 하게 해 주던 엿장수 아저씨,“똥퍼요,똥퍼∼.”하며재래식 화장실을 말끔히 청소해 주던 똥퍼 아저씨,소리에억양을 넣어 “뻔,뻔,뻔데기!”하고 외치던 번데기 아저씨.그 밖에도 많다.“뻥이요.뻥∼”하며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던 뻥튀기 장수,“뚫어요!”를 외치며 막힌 곳을 시원스럽게 뚫어 주던 굴뚝 청소부 아저씨,“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네!”하고 악을 쓰며 온 마을을 떠들썩하게 했던 거지들 등.이제 이들의 소리는 들을 수 없다. 우리의 사라져 가는 소리를 담은 이 책은 부모들에게는아름다운 옛 추억을 되살려주고,어린이에게는 우리 것의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이야기들이다.7500원. ◆꼬마 늑대 오스트리아의 케테 레하이스가 짓고 독일의 피터 쿤스트라이히가 그린 ‘꼬마늑대’(이동용 옮김,청솔)는 5∼7세어린이들이 건강하고 건전하게 자라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어떤 과정을 차례차례 거쳐야 하는지를 늑대의 사냥 방법을 통해 이야기해 주고 있다. 꼬마늑대는 가족 가운데 가장 작은 늑대이다.모든 것에서 꼴찌다. 아빠와 엄마 늑대가 사냥에서 돌아오면 형과 누나들이 가장 좋은 부분들을 다 차지해 버린다. 형들이 “내가 제일 먼저 쥐를 잡을거야!”하고 뽐내며말하면 꼬마 늑대는 아마도 자기가 제일 늦게 쥐를 잡게될 거라고 생각한다.속으로는 가장 먼저 잡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꼴찌가 싫어진 꼬마 늑대는 집을 떠나 낯선 숲으로 길을떠나고 숲속의 여러 동물들로부터 사냥법을 배운다.하지만 결국 진정한 사냥법은 같은 늑대에게서만 배울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도전 정신과 적응력등 독일인들의 전통적 교육 이념이 담겨 있는 이 책은어린이들이 이 시기를 슬기롭게 보낼 수 있도록 하는 안내서 역할을 한다.7800원.
  • 서울 경찰청 ‘뺑소니 검거왕’ 김재홍 경장

    “뺑소니요? 그거 사회의 독약과 같은 범죄입니다.” 서울 동대문경찰서 교통사고조사계 뺑소니 전담반 김재홍(32)경장이 서울경찰청의 1·4분기 ‘뺑소니 검거왕’으로 뽑혔다.이 공로로 ‘참 경찰인’에 선정돼 9일 이대길 서울경찰청장으로부터 상패를 받았다. 김경장은 1·4분기 동안 관내에서 발생한 뺑소니 14건을모두 해결하는 등 99년 3월 이후 80여건의 뺑소니 사고를해결했다. 98년에는 뺑소니 사망 사고를 내고 도주한 범인을 붙잡기 위해 사고 현장 주변에서 15일동안 목격자를 찾는 탐문수사를 벌여 심리적 압박감을 느낀 뺑소니 택시기사가 제발로 경찰서를 찾아오게 만들었다. 김경장은 “뺑소니는 피해자와 가족에게 큰 아픔과 고통을 안겨주는 범죄”라면서 “뺑소니범은 반드시 잡힌다는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김경장은 93년 순경 공채로 입문했으며,96년 대학로 동숭파출소 근무 당시 7세 남아를 유괴한 범인을 검문 끝에 붙잡은 공로로 1계급 특진했다. 이영표기자 tomcat@
  • 이주일의 아동도서/ ‘난 두렵지 않아요’

    ‘난 두렵지 않아요’는 자신처럼 카펫 공장에서 강제 노동에 시달리는 많은 아이들의 권익을 위해 활동하다가 1995년 열세 살 어린 나이에 살해된 파키스탄 소년 이크발 마시흐의 얘기이다.이탈리아 작가 프란체스코 다다모가 짓고 중앙M&B가 펴냈다.이현경 옮김 노희성 그림. 이 책은 그와 같은 공장에서 일했고 함께 활동했던 17세의 소녀 파티마의 회상으로 시작된다.파키스탄의 많은 아이들은 부모의 빚 때문에 카펫 공장으로 끌려와 강제노동으로 하루의 대부분을 혹사당한다.공장 주인은 빚 액수를칠판에 적어놓고 그것을 다 갚을 때까지 일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아이들은 순진하게도 그대로 믿는다. 그러나 이크발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그 빚은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과 이런 노동행위는 부당한 것이므로 주인에게 저항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다.그는 공장 탈출을 시도하지만 부패한 경찰 때문에 결국 다시 돌아오게되고 잔혹한 처벌을 받는다.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이크발을 피하던 아이들이 차츰 마음을 연다. 다시 공장을 탈출한 이크발은 학대받는 어린이 해방을 위해 결성된 단체를 찾아가 실상을 고발하고 도움을 요청한다.결국 카펫 공장 주인은 체포되고 아이들은 각자의 집으로 돌려보내지게 된다.이크발은 잇달아 불법 공장들에 숨어 들어 그 공장의 실상을 파헤치거나 직접 연단에 서서어린이 노동 착취 실태를 고발한다.이 때문에 저임금으로고수익을 올리던 카펫 공장들은 속속 문을 닫게 된다.용기있는 행동들이 알려지면서 미국신문에 그에 대한 기사가실리고 스포츠용품업체인 ‘리복’사가 주는 ‘행동하는청년상’과 대학을 다닐 수있는 장학금도 받게 된다.열세살이 된 부활절날 그는 고향에서 자전거를 타고 가다 괴한의 총에 맞아 죽지만 범인은 카펫업자들과 관련된 마피아들일 것으로 추정될 뿐 아직도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이크발은 비록 죽었지만 남아있는 아이들은 결코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는다.족쇄에 묶여서도 계속 도망쳐 나오기 때문이다.8000원. 유상덕기자
  • 한국망명요구 北送땐 자결

    탈북자 25명이 14일 베이징(北京)의 스페인대사관에 진입,난민 지위를 요청하며 한국행 의사를 밝혔다. 남녀 성인과 청소년이 포함된 이들은 오전 11시(한국시간)직전 중국 경비원들을 밀치고 대사관 정문을 통과해 구내로밀고 들어갔으며 이들중 한명은 진입과정에서 정문의 중국경비원과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이들은 성명을 통해 자신들이 여섯 가족과 개인 3명으로 구성돼 있으며 성인 14명과 7세 된 여자 어린이를 포함한 어린이 11명 등 모두 25명이라고 밝혔다. 중국 정부는 이날 장치웨(章啓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의 브리핑을 통해 “망명 요청자들을 인도주의적으로 대우하겠다. ”고 밝혀 이들을 성급히 북한으로 강제송환하지 않을 것임을 강하게 시사했다. 이와 관련,중국 소식통들은 이 탈북자들이 ‘불법 입국’죄로 이르면 수일 내에 제3국으로 추방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탈북자들의 출국을 주선하고 있는 스페인 소식통들도이들이 수일 내에 제3국으로 가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장 대변인은 “조선(북한)과 중국은 오랜 전통적우호관계를 가진 인접 국가이며 조·중 사이에는 난민 문제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으나 “불법 입국자(탈북자) 등에 대해서는 국제법과 중국 국내법,국제관례 등에따라 처리할 것”이라고 밝혀 우호적인 처리 입장을 밝혔다. 그는 특히 이번 집단 탈북사건에 대해 “중국 정부는 스페인 대사관과의 협력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강조,국제적인 여론을 중시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이들의 탈북 뒤 중국내 생활을 지원하고 대사관 진입을 도운 것으로 알려진 ‘북한난민구원기금’은 이들을 대신해 탈북자들이 한국으로 가기를 원한다는 내용의 성명서와 각개인이 작성한 난민지위 요청서를 배포했다. 영문으로 된 이 성명은 “우리는 지금 엄청난 절망에 빠져있고 처벌의 공포 속에 살고 있다.”면서 이에 따라 “우리의 불행을 수동적으로 기다리기보다는 자유를 위해 목숨을걸기로 결정하기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성명은 또 “우리들중 일부는 중국 당국이 다시 우리를 북한으로 되돌려 보낼 경우 자살하기 위해 독약을 소지하고 있다.”고 말해 결연한 의지를 강조했다. 성명은 이와 함께 자신들은 나이와 이름·고향 등 인적사항을 담고 있으나 많은 이름은 북한에 남아 있는 가족들의 처형 등을 두려워해 익명으로 기재됐다고 밝혔다. 성명은 이들이 왜 스페인대사관을 택해 망명을 요구했는지밝히지 않았으나 “우리 모두에 대해 난민 지위가 허용될 때까지 보호받기 위해” 스페인대사관에 들어왔다고 밝혔다. 베이징 외교 소식통은 스페인이 유럽연합(EU) 순회 의장국을 맡고 있기 때문에 이들이 스페인대사관을 선택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스페인대사관이 다른 대사관들과 달리 평소 정문을 열어놓고 있으며 경비가 비교적 느슨하다는 점도 고려됐을 것이란분석도 있다. 본명이 최병섭이라고 밝힌 한 사람은 성명에서 자신이 52세의 전직 광부로 한때 북한 노동당 당원이었다고 말하고 1997년 부인 및 세 자녀와 함께 중국으로 탈출했다고 공개했다. 그는 후에 붙잡혀 북한으로 송환된 뒤 고문과 구타를 당했다면서 특히 노동당원 출신이기 때문에 “만약 다시 붙잡힐경우 매우 극심한 처벌을 받고 아마 사형당할 것이 틀림없다.”고 주장했다. 베이징 김규환특파원 khkim@
  • 자치 안테나

    ■‘빚없는 날' 생색내기 빈축. 충북 영동군이 최근 ‘빚없는 날’ 선포식을 치른 것과 관련,일부에서 내년 선거를 겨냥한 생색내기용이라는 지적을하고 있다. 군은 지난 9일 읍·면장 및 담당급 이상 간부 공무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자축연을 벌였다. 영동군은 이날 부채 59억800만원을 상환해 부채가 없다는점을 강조했다.군은 자축연에서 사업예산과 경상경비 절감등 허리끈을 조인 예산운영을 통해 빚을 모두 갚았다고 자랑했다. 그러나 군의 자랑과 달리 최근 행자부로부터 103억8,500만원의 보통교부세 정산금을 받아 빚을 갚은 데다 아직 지역개발기금 32억원이 남아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번 선포식은 생색내기용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군수아들 결혼청첩장 남발. 충북 괴산군 김문배(金文培)군수가 맏아들 결혼을 앞두고청첩장을 남발해 현직 단체장으로서 품위를 훼손했다는 지적을 받았다.지난 10일 청주시내 모교회에서 성대하게 치러진군수 아들 결혼식에는 하객 1,000여명이 참석했다. 김 군수는 아들 결혼을 앞두고 관내 일부 주민은 물론기관·단체에 빠짐없이 청첩장과 전화연락을 했으며 얼굴도 모르는 외부 인사 일부에게도 청첩장을 발송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자체노조 “정년연장 투쟁”. 서울시내 고용직 공무원의 정년이 자치구마다 다른 것으로 조사됐다.전국지방자치단체노동조합은 12일 “서울시내자치구별 지방고용직 공무원의 정년현황을 조사한 결과,최하 50∼최고 57세까지 구마다 달랐다”며 “이는 ‘고용직 공무원의 정년을 57세로 하라’는 행정자치부의 지침을어긴 결과”라고 주장했다. 노조는 “이같은 불평등을 고치기 위해 16일 송파구청 지부가 무기한 파업 농성에 들어가는 등 앞으로 전 구청에서정년 연장 투쟁을 벌이겠다”고 말했다. ■모자보건 건강관리서비스. 강북구 보건소는 서울에서 처음으로 영유아의 예방접종일과 임산부의 진료 예정일을 미리 전화로 통보해 주는 모자보건 건강관리시스템을 구축,12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모자보건 건강관리시스템은 보건소에 한번 들른 뒤 잊기 쉬운 영유아의 다음번 예방접종일과 임산부의 산전진료일을1주일 전부터미리 2∼3차례 정도 해당 가정에 전화로 알려주는 자동통보시스템(ACS)이다.보건소는 또 객담 및 간염검사,건강진단서 등에 대한 결과 및 발급 여부를 자동으로 응답해 주는 ARS시스템(02-944-0797)도 24시간 운용중이다.
  • 미분양아파트 이삭줍기

    미분양 물량을 갖고 있던 용인,분당지역의 일부 건설업체들이 용인 죽전·동천·신봉지구 동시분양 모델하우스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동시분양 모델하우스에 들린 많은 수요자들이 옆에 있던 미분양 아파트의 모델하우스를 찾으면서 잔여물량을 손쉽게 처분했기 때문이다. 지난 7월 용인 수지2지구에 648가구를 분양했던 ㈜태영은최근에 미분양 아파트 380가구를 팔아치웠다.모델하우스가죽전 동시분양 아파트 모델하우스와 붙어 있어 큰 힘 들이지 않고 수요자들을 끌어들일 수 있었다.인기가 낮은 저층 아파트,수요층이 두텁지 않은 대형 아파트도 해결하는 뜻밖의소득을 올렸다. 동일건설도 이삭줍기에 성공한 경우.용인 구성읍 원남리에동일 하이빌 2차를 분양하고 있는 이 회사는 최근 한달동안미분양으로 남아 있던 41평형 1,2층 60여가구를 팔았다.분당 오리역 근처에 모델하우스를 설치한 덕에 죽전지구 모델하우스 방문객을 끌어들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밖에 두산건설은 최근 분당 백궁역 두산 주상복합 ‘위브’ 56평형 6∼8층 37세대를 분양했다.금호건설도 수지지구아파트 모델하우스를 철거하지 않고 있다가 죽전지구 모델하우스를 찾은 방문객이 들리는 바람에 14가구를 팔았다. 이들 업체들은 미분양 아파트를 팔기 위해 별도로 분양 조건을 완화하지 않고도 동시분양 모델하우스 방문객을 겨냥,아파트를 쉽게 처분했다. 김경두기자 golders@
  • [김삼웅 칼럼] 뉘라 ‘역사의 가정’을 부질없다는가

    ‘마침내’ 미국의 아프간공습이 개시되었다.지난달 11일무역센터와 펜타곤이 테러공격을 당한 지 28일만에 미국과영국이 아프간공습에 나선 것이다.테러사건과 보복전의 세계적인 전란에도 한반도가 안전지대로 자리잡은 것은 6·15정상회담의 성과라는 평가다. 그동안 소강국면에서 북한상선의 침범과 ‘평축행사’해프닝 등 불상사도 따랐지만 남북정상회담의 큰 틀이 유지되고한반도가 세계적 위기상태에서 한발 비켜선 것은 다행이다. 국제냉전종식 이후에도 이데올로기대립·문명충돌·종교전쟁·영토싸움·자원쟁탈전 등 지구촌의 폭력가능성은 상존한다.여기에 21세기형 ‘추악한 전쟁’으로 불리는 국제테러단의 도발까지 끼어든다.한반도의 안전장치가 필요한 외생(外生)변수들이다. 국제정세가 불안할수록 남북한은 대화와 협력관계에 성실한 자세가 요구된다.국방부는 지난 6일 경의선 관련 군당국간 합의서의 서명·발효를 위해 남북군사실무회담수석대표접촉을 제의했다.경의선철도 연결 및 도로개설 공사를 더이상 늦출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 러시아철도담당 고위 인사가 평양을 다녀가는 등 러시아의 횡단철도와 한반도의 종단철도 연결에 국제적 관심사가 높다.한반도를 중심으로 남북한과 중국·러시아·일본·몽골 등 동북아 심장부를 관통하는 대륙철도 연결은 우리 물류비용 절감은 물론 북한에도 많은 이익이 따르고 남북평화체제 구축에 기반이 된다. 그런데 우리 내부에는 여전히 쌀이 남아 처치곤란해도 나눠줘선 안되고,대통령의 말꼬리나 잡아 색깔론을 펴고,화해협력을 흠집내는 냉전세력이 여론을 좌우한다.맹자는 식자(識者)중 ‘하지하(下之下)’는 “터럭을 불어 흠집을 찾는(취모멱자:吹毛覓疵)무리”라 했다.세계사의 큰 흐름,분단사의 아픔을 외면하는 소인배들을 일컫는 말이겠다. 역사상 남북분열 시대에 남북은 세차례의 중요한 회담을가졌다.과거 두차례 회담은 실패하여 민족사에 엄청난 재앙을 초래했고,최근의 회담은 진행형이라 아직 속단은 이르다. 제1화:서기 642년 이맘때,신라의 강자 김춘추는 선덕여왕의 내락을 받고 단신으로 고구려 수도 평양성을 방문했다.당시 신라는백제의 침공으로 어려운 상황이었다.김춘추는 연개소문과 만나 ‘양국의 오랜 상쟁 중단’을 제안하고백제공격을 위한 군사지원을 요청했다.이에 연개소문은 90년째 점령중인 구고구려 영토인 죽령 이북의 땅을 돌려주면 구원병을 보내주겠다고 딴죽을 걸었다. 결국 ‘제1차 남북회담’은 결렬되고,구금됐다가 귀환한 김춘추는 당나라 군사를 끌어들여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켰다.7세기 중엽 남북의 두 강자가 대륙정세를 꿰뚫고 협력체제를 구축했다면 고구려·신라의 운명은 물론 한국고대사는 크게 달랐을 것이다. 제2화:1949년 4월 백범 김구는 “통일된 조국을 건설하려다가 38선을 베고 쓰러질지언정 일신의 구차한 안일을 취해 단독정부를 세우는 데는 협력하지 않겠다”면서 38선을넘어 북한에 갔다.김규식과 함께 평양에서 김일성,김두봉과 만나 분단으로 찢어지는 민족을 다시 묶으려 노력했지만성공하지 못했다.얼마후 백범은 암살되고 남북은 6·25전쟁에 이어 반세기 넘는 분단사를 겪고있다. 제3화:2000년 6월13일 김대중대통령은 국적기를 타고평양으로 날아가 6·15남북정상회담을 갖고 5개항에 합의했다.적대관계의 두 정상이 평화와 협력문제를 논의한 것 그 자체가 큰 변화이고 획기적인 일이다. 김춘추와 연개소문,김구와 김일성의 회담이 성공했다면 한국사의 흐름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고구려의 광대한 영토를 잃지 않았을지 모르고,6·25동족상잔을 겪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뉘라 ‘역사의 가정(假定)’을 부질없다 하는가.역사는 부단히 다시 해석하고 가정하고 교훈을 도출해야 한다.역사에서 교훈을 찾지 못하면 역사의 보복을 받는다 하지않던가. 남북회담은 진전돼야 한다.민족문제만큼은 정파를 뛰어넘어야 한다.과거 ‘남북회담’의 실패나 이번 미국 테러와보복전의 교훈이라면 남북한이 점점 벌어지는 의식과 사고,이에 따른 문화와 행동양식이 또다른 ‘문명’의 길로 갈라서기 전에 협력과 공존체제를 만드는 일이다. 김삼웅 주필 kimsu@
  • [CLEAN 3D] 인천 서부공단 주물공장 현장

    ***1,500도 쇳물...흐르던 땀도 말라. 숨이 막혀왔다.시뻘건 쇳물이 부글부글 끓고 있는 용광로의 열기와 작업장의 먼지가 뒤엉켜 눈과 코를 압박했다.작업장에 들어선 지 겨우 1∼2분이 지났지만 숨쉬기조차 힘들었다.결국 10분을 못버티고 작업장을 뛰쳐 나와야 했다. 지난 25일 오후 2시,인천 서부공단 내 H주물공장.100여평규모의 어두컴컴한 작업장엔 20여명의 근로자들이 기름때전 작업복 차림으로 일을 하고 있었다. 귀청을 때리는 소음은 대화를 불가능하게 했고 공장 바닥에는 까만 모래(鑄物砂)가 수북이 쌓여 있어 작은 바람에도 흙먼지가 자욱히 일어났다.환기시설이 전무한 상태에서군데군데 구멍이 나 있는 슬레이트 지붕이 통풍구 역할을대신했다. 주물공장에서 30년 이상 일해 온 이모씨(64·상무)는 “직원들 월급 주기도 힘든 상황에서 작업환경에 투자할 여력이 없다”며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클린 3D사업을 통해 열악한 작업환경을 개선하고 싶다”고 기대감을 감추지않았다. 이른바 ‘더럽고, 위험하고, 힘들다’는 3D업종 중에서도주물공장은 최악의 작업환경 때문에 젊은 인력이 외면하는대표적인 작업장이다. 도금·금속 등 다른 영세 제조업체엔 그나마 병역특례자나 산업연수생 명목으로 온 외국인 노동자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주물공장은 이들마저 외면하는 작업장이다. 근로자가 29명인 H주물공장은 55세 이상 근로자가 절반에가까운 13명이나 된다. 최고령자는 67세로 그나마 편하다는 사상공정(주조된 제품의 표면을 다듬는 일)을 맡고 있다. 이 공장의 경우 지난해 여름 어렵사리 3명의 동남아 근로자들을 구했지만 이들은 열악한 작업환경에 질려 그날 밤‘줄행랑’을 치고 말았다.정모씨(65)는 “여름에 용광로앞에서 일을 하다보면 땀이 흐르기도 전에 열 때문에 말라버린다”며 “한 달에 100여만원 받고 일할 젊은 사람들은별로 없을 것”이라고 고개를 저었다. 작업 현장을 잠시만 지켜봐도 왜 젊은 사람들이 외면하는지 금방 알 수 있었다. 공장 구석에 있는 대형 용광로에서 고철이 다 녹았다는신호음이 울리자 50대 직원 3명이 용광로쪽으로 뛰어갔다. 한 명이 손잡이를 돌려 대형 용광로를 기울이는 사이 다른직원은 천장에 매달린 중형 용광로를 움직여 쇳물을 받아냈다. 천장과 쇠사슬로 연결된 중형 용광로가 작업자의 조작에따라 위태롭게 흔들리면서 움직이자 다른 직원이 쇳물통을담은 손수레를 끌고 와 쇳물을 다시 담았다. 수프 같이 걸쭉해진 시뻘건 쇳물이 용광로에서 미끄러져 나와 손수레에담기는 순간, ‘파바박’ 불꽃이 사방으로 튀며 연기가 피어 올랐다. 취재진은 겁이 나서 얼른 몸을 피했지만 정작 눈앞에서쇳물을 붓는 작업자들은 마스크도 없이 맨살을 드러낸 채태연히 ‘빈 담배’를 물고 있었다.얇은 반팔 면티셔츠에바지를 입고 있는 이들을 보호하는건 닳아빠진 목장갑과무릎 보호대가 고작이다.지난해 3건의 산재 사고가 발생한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작업반장을 겸하고 있는 김선회씨(63)는 “30년 전이나지금이나 주물공장 작업방식과 환경은 달라진 게 하나도없다”고 말했다.11년전 서울 구로동에서 일할 때는 석탄으로 용광로를 달궜는데 지금은 전기로 바뀌었을 뿐이다. 작업 공정이 개선된다른 주물 공장들도 안전 환경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3년전 ‘용해-조형-탈사 과정’ 등의 공정을 자동화한 D금속(인천 서부공단 소재)은 업무의 효율을 높여 위험 요소가 다소 줄었지만 분진(먼지)과 용광로고열에 따른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것은 마찬가지다. 황종옥 생산부장(46)은 “용광로가 자동으로 이동돼 위험요인은 많이 줄었지만 주물공장의 특성상 먼지와 소음은어쩔 수 없다”고 털어놓았다.공장 내부는 스펀지로 만든청력보호기를 착용하지 않고는 견디기 힘들 정도로 소음이심했지만 상당수 작업자들은 보호기를 빼고 일을 하고 있었다. 송지태 노동부 산업안전국장은 “산재 발생의 60% 이상이 50인 미만 영세 사업장에서 발생하고 있다”며 “이들 사업장에 대한 근본적 대책을 마련하지 않는 한 산재율을 낮추고 인력난을 극복할 수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인천 특별취재반. ■주물업계 폐암발생률 10배. 주물업계는 영세성과 인력난 때문에 작업환경에 대한 투자와 개선이 이뤄지지 않는 대표적 ‘안전 사각’ 직종이다. 종사자의 평균연령이 50세 전후로 기타 제조업종에 비해10년 이상 고령화 추세에 있다.다른 업종보다 산재율이 높고 근로자들의 건강이 심각하게 위협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전국적으로 1,000여개 사업장에 1만5,000여명의 근로자가종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통계에 잡히지 않는 영세업체도 많다. 주물공장에서 가장 많이 발생하는 것은 분진(먼지)이고,그 다음으로 일산화탄소,이산화탄소,질소 산화물의 유해물질 순이다. 최근 3년간 근로자 건강진단 결과 및 인천지역 의료보험수진자료를 비교·분석한 결과 주물업종의 경우 비주물업종 근로자에 비해 폐암 발생 가능성이 평균 10배(최소 3.9배에서 25.5배)나 높게 발생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산업안전공단 안연순 책임연구원(보건학 박사)은 “주물업 종사자는 주물사 등에 함유된 유리규산,석면,다핵방향족탄화수소 등 발암성 물질에 노출돼 있다”며 “주물업에서 노출될 수 있는 100여가지 이상의 물질이 근로자들의 호흡기,심혈관계,비뇨생식기에 영향을 미쳐 급·만성건강장해를 일으킨다”고 밝혔다. 안 연구원은 우리나라 주물업 남성 종사자의 직접표준화사망률은 10만명당 788.7명으로 비주물업 종사자의 312명에 비해 2.52배나 높다고 밝혔다. 특별취재반 oilman@
  • 의문사 김준배씨 경찰이 구타

    대통령 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梁承圭·진상규명위)는 3일 서울 종로구 수송동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문민정부 시절인 97년 경찰을 피해 달아나던 김준배씨(당시 27세·광주대 무역학과 졸업)가 아파트 4층에서 뛰어내린 뒤 경찰에게 구타를 당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진상규명위는 당시 석연치않게 수사를 종결한 정모 검사(현 Y지청장)에 대해 동행명령장 발부를 결정했다. 당시 경찰은 제 5기 한총련 투쟁국장인 김씨가 97년 9월15일 은신처인 광주시 북구 오치동 아파트 13층에서 경찰의 검거를 피해 아파트 케이블을 타고 내려오다 10층에서 추락해숨졌다고 발표하면서 이틀만에 수사를 종결해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을 받았었다. 진상규명위 김형태(金亨泰) 상임위원은 “김씨가 경찰에게몽둥이와 발로 구타를 당하는 것을 목격한 주민 2명의 증언이 있었다”면서 “김씨 옷의 신발 자국과 일치하는 상흔,우심방 파열이라는 직접 사인이 추락이나 구타 모두에 의한 것일 수 있다는 외상학회의 소견도 있다”고 말했다. 진상규명위는 아직 공소시효가 남아있는 만큼 당시 수사지휘를 맡은 정 검사를 조사한 뒤 직무유기 혐의가 드러날 경우 형사 고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폭행 경찰관 역시 독직폭행 혐의로 형사 고발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진상규명위는 ▲경찰이 김씨를 검거하기 위해 김씨의 선후배에게 1,500만원의 금품을 제공하기로 하고 프락치로 활용했던 점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부검·감정결과 보고서가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사건 발생 이틀만에 추락사로 내사 종결한 점 ▲경찰의 구타 의혹에 대해 조사조차 하지 않은 점등도 함께 밝혔다. 민주화정신계승국민연대(상임대표 吳鍾烈)도 이날 기자회견을 갖고 “당시 경찰의 프락치 공작에 포섭됐던 김씨 선후배들이 곧 양심선언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검사는 이에 대해 진상규명위의 조사에 이미 최대한 협조했기 때문에 동행명령에 응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정검사는 ▲‘이적단체’로 규정된 한총련 간부의 추락사는 진상규명위가 다룰 ‘민주화 운동 관련 사건’이 아니고 ▲진상규명위가 사망자체와 관련이 없는 검사를 부당하게 피진정인으로 규정했으며 ▲당시 공정하고 투명하게 사건을 처리했다고 설명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
  • 여성 절반이상 80세까지 살아

    남자는 37세,여자는 40세면 인생의 절반을 산 셈이 된다. 통계적으로 현재의 나이만큼 앞으로 더 살 수 있다는 얘기다.통계청이 25일 발표한 ‘1999년 생명표’의 주요 내용을 알아본다. ■80세까지 남자는 3명중 1명,여자는 절반이상 생존. 지난 99년에 태어난 아이가 80세까지 살아남을 확률은 각각 남자 33.2%,여자 57.6%다.89년의 남자 22.5%,여자 47. 4%보다 10%포인트씩 많아졌다. 20세 남자가 80세까지 생존할 확률은 33.7%이고 여자 58. 3%다.40세 남자는 34.7%,여자 59.0%,60세 남자 40.5% 여자62.3%다. 15세인 남자는 57.5년,여자는 65년을 더 살고 65세인 남자는 14.1년,여자는 18년의 여생을 더 보낼 수 있다. ■암이 퇴치되면 남자 4.7년,여자 2.5년 더 살아. 지난 99년에 출생한 사람은 위암·간암·폐암이 퇴치된다면 각각 평균적으로 남자 4.7년,여자 2.5년을 더 살 수 있다.뇌혈관·고혈압·심장질환이 사라지면 남자 3.6년,여자3.1년을 더 살게 된다.각종 사고를 당하지 않으면 남자 3.0년,여자 1.2년씩 수명이 길어진다. ■사망원인 1위-남자는 암,여자는 순환기질환. 지난 99년에 45세인 남자와 여자의 수명은 사고사를 당하지 않으면 각각 1.8년,0.6년씩 연장된다.99년 출생 남자의사망확률은 암(23.3%),순환기 질환(22.8%),사고사(8.9%)순이다. 여자는 순환기질환(26.4%),암(13%),사고사(4.5%) 순이었다. ■평균수명 OECD수준에 근접. 한국인 남자의 평균수명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0개회원국의 남자(73.9세)에 비하면 2.2세가 낮고, 한국인 여자의 평균수명은 OECD 평균치(80.3세)에 비해 1.1세가 낮지만 그 격차는 빠른 속도로 좁혀지고 있다. 평균수명이 가장 긴 나라는 남자 77.1세,여자 84.0세인일본.남자의 경우 나이가 높을수록 일본인과 생존비율 차이가 심한 것으로 파악됐다.우리나라 남녀간의 평균수명차이는 7.5세로 OECD 평균 6.4세보다 컸으며 프랑스(7.6세),핀란드(7.3세),포르투갈(7.2세)과 비슷한 수준이다. ■생명표란. 앞으로 더 살 수 있는 기간이 얼마나 남아있는 지에 대한통계학적 기대치(기대여명)를 각 연령대별로 표로 나타낸것이다. ■평균수명. 지금 태어난 아이가 앞으로 더 살 수 있는 기간, 즉 신생아의 기대여명을 말한다. 박정현기자 jhpark@
  • 대한매일 첫 발굴 항일독립운동사 2題

    ■단재 신채호선생 화장터 찾아냈다. [베이징·뤼순 김삼웅주필] 대한매일신보 창간 97주년을맞아 대한제국시대 본보의 주필을 역임한 민족주의 사학자단재 신채호선생의 시신을 불태운 화장터가 처음으로 밝혀졌다. 중국 뤼순(旅順)시 용하서(龍河西)삼리교(三里橋)부근의옛 화장터가 그곳이다. 뤼순감옥에서 시내쪽으로 1Km지점 8천여평부지에 자리잡은 건물에 일제가 감옥전용으로 설치한 화장장이다.당시의 건물이 퇴락한 채 남아있다. 잡초가 무성한 한켠에 세워진 화장장 건물 2동은 지금 건축 자재를넣어두는 창고로 변했다. 기자를 이곳에 안내한 반무충(潘武忠)대련뤼순 감옥 연구원(52)은 최근까지 일제 말기에 화장장에서 일해온 사람(중국인)이 살아 있었다고 증언했다. 일제는 뤼순감옥에서 옥사하거나 처형한 항일지사들을 이곳에서 화장하였다고 전했다. 단재에 앞서 안중근의사는 뤼순감옥에 갇혔다가 1910년 3월26일 형이 집행되어 순국했다. 안의사의 유해는 형무소공동묘지에 매장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현재까지 유해를 찾지 못한 상태이다.안의사가 순국하고 8년후인 1928년 단재선생이 10년형을 선고받고 뤼순감옥에서 옥고를 치르다가 1936년 2월18일 뇌일혈로 의식을 잃고 2월21일 오후 4시20분 의식불명으로 유언을 남기지 못한채 이국땅에서 옥사하였다. 향년 57세. 단재는 다음날 오전 11시 뤼순화장장에서 한줌 재로 변해달려간 부인 박자혜여사와 어린 아들 수범 그리고 동지 서세충(徐世忠)에 의해 고국으로 운구되었다. 박자혜 여사가 1936년 ‘조광’제4호에 쓴 ‘가신 임 단재의 영전에’는 남편을 이국의 화장터에서 불사른 당시의 애틋한 정경이 그대로 전한다.(다음은 글의 뒷 부문) “지난 2월18일 아침이었지요, 아이들을 밥해 먹여서 학교에 보내려고 하는데 전보 한장이 왔습니다. 기가막힙니다. 무엇이라 하리까. 어쨌든 당신이 위급한 경우에 있다는 것이라 세상이 캄캄할 뿐이나 그저 앉아 있을 수가 있어야지요. 어떻게 되든 간에 수범이를 데리고 그날로 당신을 만나려고 떠났습니다. 뤼순형무소에 닿기는 그 이튿날-2월19일 오후 세시 십분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벌써 의식을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15년이나 그리던 아내와 자식이 곁에 온 줄도 모르고당신의 몸은 푸르뎅뎅하게 성난 시멘트 방바닥에 꼼짝도 못하고 누워 있었지요. 나와 수범이는 울지도 못하고 목메인채로 곧 여관에 나와서 하룻밤을 앉아서 새우고, 그 이튿날 아홉시 되기를 기다려 다시 형무소에갔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없다고 면회를 거절하겠지요. 물론 비참한 광경을 우리에게 보이지 않으려는 관리들의 고마운 생각을 모르는 것은 아니나, 세상을 아주 떠나려는 당신의 임종을 보지 못하는 모자(母子)의 마음이 어떠하였겠습니까? 정말 당신은 2월21일 그날 오후 4시20분에 영영 가버리셨다고요. 당신의 괴로움과 분함과 설움과 원한을 담은 육체는 2월22일 오전 열 한시, 남의 나라 좁고 깨끗치 못한 화장터에서 작은 성냥 한 개비로 연기와 재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당신이여! 가신 영혼이나마 부디 편안히 잠드소서-”kimsu@. ■백암 박은식 서거 호외도 입수. 상하이 임시정부에 참여하여 임정기관지 ‘독립신문의 주필과 사장에 이어 임정 제2대대통령을 역임한 백암 박은식선생의 부고를 알리는 독립신문 호외가 처음으로 발굴되었다. 백암 선생은 대한매일신보 창간 직후인 1905년 본보의 주필을 역임하면서 민족정신을 고취하다가 강제합병직전에 중국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과 역사연구에 생애를 바쳤다. 기자는 허중전(許中田) ‘인민일보’주필의 초청으로 중국을 방문중 베이징에서 지인을 통해 ‘독립신문’의 호회를입수했다. 대한민국 7년(1927)11월2일자로 발행한 이 호외는 임시정부 제2대 대통령과 ‘독립신문’의 주필·사장을지낸 백암선생의 부음을 알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일반 신문의 호외판형으로 앞면에 “전 임시 대통령 박은식 각하 서거”란 제목으로 “전 임시대통령 박은식각하께서 수월 전부터 노환으로 요양중에 계시다가 마츰내 약석(藥石)의 효(效)를 진(秦)치 못하야 작일 하오7시 상해 ○○의원에서 문득 서거하시니 향수가 67세시라.”란 부음 기사를 싣고 있다. 특히 이 호외에는 백암선생이 임종때에 남긴 ‘위촉(유언)’을 공개했다. 첫째, 독립운동을 하려면 먼져 전족적(全族的)으로 통일이 되어야 하고 둘째, 독립운동을 최고운동으로 하여 독립운동을 위하여는 어떠한 수단방략이라도 쓸 수 있는 것이고 셋째, 독립운동은 오족(吾族)전체에 관한 공공사업이니 운동동지간에는 애증친소의 별(別)이 없어야 된다는 우국충정의 유훈이 실렸다. 백암 선생의 서거를 맞은 임시정부는 최초로 장의를 국민장으로 할것임을 호외를 통해 밝혔다. 그러나 장례날과 장지는 미처 결정하지 못한 상태에서 호외를 발행했음이 드러났다. 임정은 11월4일 국장으로 장례를 치르고 유해를 상하이 정안길로(靜安吉路)공동묘지 600번지에 안치하였다.(현재 동작동 국립묘지 임정묘역에 안장) 백암 선생의 서거 소식이 전해지면서 ‘독립신문’이 11월11일자 전면에 추모특집을 꾸민 것을 비롯 중국의 ‘중화보(中華報)’, ‘상해화보(上海畵報)’등에서 선생의 죽음을대대적으로 보도하며 애도해 마지 않았다. 국내에서도 이상재·권동진·김성수등이 ‘고 박은식씨 추도발기회’를 결성하고 동아일보에서는 ‘곡 백암 박부자(朴夫子)’란 사설을 싣기도 했다. 1946년 대한매일의 전신서울신문사에서 백암 선생의 ‘한국독립운동지혈사’를 간행하였으며, 현재 대한매일과 도서출판 동방미디어의 공동작업으로 박은식·양기탁전집이 준비되고 있다. kimsu@
  • [클릭 2002월드컵] 벼랑끝 브라질… 비상이냐 추락이냐

    2002월드컵축구대회 개막일이 330여일 앞으로 다가오면서‘꿈의 무대’를 향한 열기가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클라이맥스를 향해 숨가쁘게 질주하는 대륙별 예선 상황과 본선무대를 화려하게 장식할 슈퍼스타들의 동정,각종 신기록과 진기록 등 월드컵과 관련한 모든 소식을 새로 마련한‘클릭 2002월드컵’에 담는다. ****'삼바축구'대표팀 대개편 이후. ‘대개편을 단행한 브라질은 과연 옛 위용을 되찾을 것인가’-. 국제축구연맹(FIFA) 204개 회원국이 5개 지역으로 나뉘어각축을 벌이는 2002월드컵 예선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영원한 우승후보’ 브라질의 본선 진출 여부다.10개국이 한데 어울려 4.5장의 티켓을 다투는 남미예선에서 브라질은 줄곧 4위에 머물러 불안감을 던지고 있다. 16차례의 본선에 단 한번도 거르지 않고 출전한 유일한나라로서 4차례나 우승을 차지한 브라질이 예선 탈락한다면 FIFA는 물론 공동개최국인 한국과 일본도 흥행을 우려해야 할 판이다.브라질이 ‘종이 호랑이’라는 비아냥을듣고 있지만 호나우두(AC밀란) 히바우두(바르셀로나) 호베르트 카를로스(레알 마드리드) 호마리우(바스코다가마) 카푸(AS로마) 등 월드스타들을 대거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6승3무3패(승점 21)로 아르헨티나(승점 32) 파라과이(승점 26) 에콰도르(승점 25)에 이어 4위권에 턱걸이하고 있는 브라질의 월드컵 본선 진출은 누구도 장담하기어려운 게 현실이다. 한팀이 18경기씩을 치르는 남미예선에서 6경기를 남긴 브라질의 4강 진출 여부는 앞으로 열릴 3경기에 달려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그 첫판이 새달 2일 몬테비데오에서열릴 우루과이와의 원정 13차전이다. 조짐은 여전히 좋지 않다.우루과이(승점 18)가 브라질 콜롬비아(승점 19)에 이어 6위를 달리고 있지만 브라질 내부사정이 여의치 않아 승리를 거둘지는 의문이다. 2001컨페더레이션스컵대회에서 4위에 그친 브라질은 에메르손 레앙에서 펠리페 스콜라리로 지휘봉을 넘기기까지 최근 9개월 동안 4명의 감독을 맞이했다.신임 스콜라리 감독이 최근 대표팀을 대폭 교체했으나 여전히 최상의 전력은아니다. 브라질은 지난 14일 ‘베스트11’ 가운데 절반 이상을 퇴출시키는 대수술을 단행했다.새 멤버에는 호베르트 카를로스와 호나우두,마우루 실바(데포르티보) 등이 포함됐다. 그러나 유럽리그에 소속된 히바우두 등 9명이 지난주에야캠프에 합류,조직력을 다지는데 애를 먹고 있다. 또 다른 악재는 수비의 핵으로서 예선전 2골을 기록중인안토니오 카를로스(AS로마)가 부상으로 우루과이전 출전이불투명하다는 것.지난 1년간 무릎 부상으로 선수생활을중단하다시피 했다 합류한 호나우두가 제 컨디션을 발휘할수 있을지도 의문이다.실바도 허벅지 부상으로 출장이 어렵다. 브라질은 이런 저런 이유로 우루과이전에서 히바우두(예선 5골)와 호마리우(8골)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나마 호마리우도 장딴지 부상으로 50% 정도의 컨디션을유지하고 있는 상태다. 역시 예선 탈락을 우려하는 우루과이가 홈에서 배수진을치고 강력히 저항하리라는 점도 스콜라리 감독의 어깨를무겁게 하고 있다. 우루과이는 현재 FIFA 랭킹 40위에 머물러 있지만 월드컵 9차례 출전,우승 1회 등의 화려한 전력을 가진 전통의 강호다.50년대회 결승에서 홈팀 브라질을 2-1로 꺾은 전력이있고 최근 10년간 전적에서도 2승4무3패의 만만찮은 성적을 냈다.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예선 첫 맞대결에서 1-1 무승부를 기록한 여세를 몰아 홈경기 1승을 엮어 내겠다는 의욕에 넘쳐 있다.10개팀 가운데 최소실점(8점)을 기록중인 탄탄한 수비진을 앞세워 ‘수성’에 주력하다 브라질과의 예선 원정경기에서 동점골을 넣은 실바 다리오,올리베라 니콜라스(이상 예선 3골) 등을 축으로 한 역습으로 승부를걸 것으로 전망된다. 박해옥기자 hop@. ****2002 스타예감/ 이탈리아 희망 인자기. 2000년 유럽축구선수권 B조예선 이탈리아와 터키의 첫 경기. 크리스티안 비에리,알레산드로 네스타 등 쟁쟁한 이탈리아의 간판스타 틈바구니에서 그리 크지 않은 체격의 공격수 한명이 그라운드를 휘젓기 시작했다.후반 6분 이 선수가 페널티지역 오른쪽에서 때린 슛이 터키 수비의 몸에 맞고 공중에 튀어 오르자 프란세스코 콘테가 골지역에서 오버헤드 킥으로 골네트를 갈랐다. 몇분 뒤 이탈리아가 터키에 한골을 내주자 이 선수의 몸놀림은 더욱 빨라졌다.후반 24분 그는 페널티지역을 파고들다 터키 수비수의 파울을 얻어낸 뒤 직접 페널티킥을 성공시켜 2-1 승리를 이끌어냈다. 181㎝·74㎏의 이탈리아 공격수 필리포 인자기(28·유벤투스).그가 푸른 빛 선연한 ‘아주리’ 유니폼을 입은 것은 98년. 98프랑스월드컵에서 벤치를 데우며 도움 1개를 기록하는데 그친 그는 2000 유럽선수권에서 복서 출신의 우람한 공격수 비에리와,유벤투스에서 한솥밥을 먹고 있는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가 부상 등으로 들락거리는 틈을 타 주전 공격수 자리를 꿰찼다. 지난해 2월 이탈리아 프로축구 1부리그(세리에 A) 유벤투스와 베네치아의 경기.인자기는 후반 34분 첫골을 넣은데이어 종료 직전 연속골을 터뜨리며 해트트릭을 기록했고전반 35분에는 페널티킥을 얻어내 4-0 승리를 이끌어 냈다. 이런 여세를 몰아 월드컵 예선에서 7골을 기록 중이다. 하지만 인자기에게는 극단적인 두 평가가 엇갈린다.오죽하면 ‘주워먹기의 일인자’라는 별명이 붙기까지 했을까. 이는 다른 말로 하면 천부적인 위치선정 능력을 지녔다는얘기가 된다. 91년 피아센차 클럽에서 선수생활을 시작해 95년 8월 파르마에 입단함으로써 프로무대에 데뷔했다.22세에 프로에데뷔했으니 그 시작은 미미했던 셈이다.96년 아탈란타로이적해 33경기에 출장,24골을 터뜨리는 기염을 토했다.97시즌부터 유벤투스로 옮겨 델 피에로와 함께 팀의 세리에A우승을 이끌었다.지금까지 A매치 출전경력은 32경기 16골에 선발출장만 따지면 6경기 7골이 된다.‘카데나치오’로통하는 이탈리아식 빗장수비진에서 띄워주기만 하면 인자기와 콤비를 이루는 델 피에로가 마무리 짓는 전략을 구사한다.델 피에로 역시 월드컵 예선에서 4골을 기록 중이다. 2002월드컵에서 ‘르네상스’를 꿈꾸는 이탈리아 축구의희망은 인자기 형제라는 말이 있다.동생 시모네(26·라치오)는 지난해 3월 첫 ‘아주리’ 유니폼을 입었다.지난해한때 챔피언스리그 득점왕 선두를 달릴 정도로 재간둥이다. 필리포는 “기술이나 헤딩력은 나보다 한수 위”라고 동생을 치켜 세운다고 한다. 임병선기자 bsnim@. ****신기록 진기록/ 역대 개인 최다골. 월드컵 사상 한 대회 개인 최다골은 58스웨덴대회에서 프랑스의 쥐스 퐁텐이 기록한 13골이다. 퐁텐은 16개국이 참가한 당시 대회 파라과이전에서 해트트릭을 세워 7-3 승리를 이끈 뒤 유고와 스코틀랜드전에서각각 2골과 1골,아일랜드와의 8강전 2골,브라질과의 4강전에서 1골을 넣었으며 마지막 독일과의 3·4위전에서는 4골을 쓸어 담았다.퐁텐은 당시 17세 소년으로 월드컵에 참가,6골을 올리며 브라질 우승을 이끈 펠레 못지 않은 영웅으로 떠올랐다. 퐁텐의 득점은 대회 총득점(126골)의 10%를 넘긴 것으로여전히 대기록으로 남아 있다.가장 최근 열린 98프랑스대회에서는 모두 171골이 터졌고 크로아티아의 다보르 수케르가 6골로 득점왕에 올랐다. 박해옥기자
  • 구센 ‘魔의 서던힐스’ 정복

    호랑이 없는 골짜기의 왕위 다툼에서 레티프 구센(남아프리카공화국)이 감격의 눈물을 뿌렸다.60㎝ 우승퍼팅 실패로 대관식을 하루 미룬 구센이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시즌 두번째 메이저대회인 US오픈(총상금 500만달러) 정상에올랐다. 구센은 19일 미국 오클라호마주 털사의 서던힐스골프장(파70·6,931야드)에서 열린 18홀 연장전에서 버디와 보기3개씩을 기록해 이븐파 70타로 마지막 경쟁자 마크 브룩스(40·미국)를 2타차로 누르고 우승상금 90만달러를 거머쥐었다. 이로써 구센은 개리 플레이어(65년)와 어니 엘스(94·97년)에 이어 US오픈을 제패한 3번째 남아공 선수로 이름으로 올리며 22번째 외국인 우승자,1∼4라운드 내내 선두를유지한 9번째 우승자 등의 기록을 남겼다. 연장 승부가 갈린 곳은 구센의 적시 버디와 브룩스의 어이없는 보기가 교차된 9번홀(파4·374야드).앞서거니 뒤서거니 선두를 다투다 구센이 1타를 앞선 채 맞은 9번홀은 18개 홀 가운데서도 난이도 10번째의 평이한 홀이었다. 그러나 아이언을 잡은 구센이 정확하게 볼을 페어웨이에떨어뜨린 반면 우드를 잡은 브룩스의 티샷은 훅이 나면서갤러리가 운집한 나무 밑둥이에 떨어졌다.브룩스는 페어웨이로 일단 볼을 쳐낸 뒤 세번만에 온그린에 성공했지만 2퍼팅을 추가해 보기를 범했다. 반면 세컨드 샷을 핀 5m에 붙인 구센은 활처럼 휘는 내리막 버디 퍼팅을 성공시켜 3타차로 앞서 나갔다.구센은 10번홀(이상 파4)에서 버디 퍼팅을 거푸 성공시켜 연속 보기로 주저앉은 브룩스를 순식간에 5타차로 밀어내 일찌감치승부를 갈랐다. 12번홀(파4)에서 구센은 보기로 주춤했지만 브룩스도 나란히 보기를 기록한 덕에 편안하게 경기를 풀어갔다.17번홀(파4)에서 브룩스는 회심의 버디를 낚아 보기를 저지른구센과의 격차를 3타로 줄였으나 마지막 이미 대세가 기운뒤였다. 드라이브 샷 비거리가 브룩스보다 20야드나 긴 장타자 구센은 이날 대부분의 파4홀에서 아이언으로 티샷을 하면서페어웨이를 확보하는 등 우승에 대한 강한 집념을 드러냈다.특히 1번홀(파4)에서 벙커샷을 홀 바로 옆에 붙이는가하면 2번홀(파4)에서는 3m 파퍼팅을 성공시키고 3번홀(파4) 벙커샷을 홀 1.2m에 붙이는 등 뛰어난 위기관리 능력도선보였다.8번홀(파3) 키 높이의 깊은 벙커에 빠진 볼을 핀10㎝에 붙인 것은 이날 구센이 보여준 최고의 샷이었다. 96년 PGA선수권대회 우승 이후 5년만의 투어 우승이자 메이저 2승,그리고 생애 첫 US오픈 우승을 노린 브룩스는 이날 비거리,정확도,쇼트게임,퍼팅 등 모든 면에서 한수 뒤졌다. 곽영완기자 kwyoung@. *남아공출신 구센은 누구. 연장전 끝에 US오픈 우승컵을 안은 레티프 구센(32)은 유럽투어에서는 꽤 실력을 인정받은 골퍼. 69년 남아공 피터스버그에서 태어난 구센은 11살 때 부동산중개업을 하는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골프채를 잡았다. 주니어 시절 동갑내기 어니 엘스와 국내랭킹 1·2위를 다툴만큼 유망주로 꼽혔다.그러나 17세때 친구와 연습라운딩 도중 벼락에 맞아 수년간 몸을 제대로 쓰지 못할 정도로시련을 겪으면서 뒤처지기 시작했다. 90년 프로가 된 구센은 남아공 투어에서 6차례 우승한 뒤 96년 노섬벌랜드 챌린지에서 유럽투어 첫 정상에 올랐다.97년 1승을 추가해 제 기량을 발휘하는 듯했으나 99시즌을 앞두고 스키를 타다 왼팔이 부러지는 사고를 당했다. 두 차례의 큰 사고를 겪은 구센은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할만큼 심리적 불안에 시달렸다.하지만 99년과 지난해 1승씩을 보태 통산 4승으로 유럽의 강자로 떠올랐다. 그러나 PGA 투어에서는 97·99년 브리티시오픈 공동10위에 오른 것이 가장 좋은 성적.이번 101번째 US오픈에는 지난해 이 대회 15위 이내 입상자(공동12위) 및 세계랭킹 50위 이내(44위) 등의 자격으로 예선을 면제 받았다. 구센은 당분간 대회 불참을 선언할 정도로 심한 슬럼프에 빠진 엘스를 대신해 남아공 출신의 간판 골퍼로 부상했다.개리 플레이어,엘스에 이어 남아공을 대표하는 골퍼로 우뚝 선 것이다.특히 그가 지난 18일 4라운드 마지막 홀에서 60㎝ 챔피언퍼팅을 실패한 것은 US오픈의 해프닝으로 두고 두고 기억될 전망이다. 183㎝·80㎏의 구센은 평균 드라이브 샷 거리가 292야드에 이르는 장타자.이번 대회에서도 평균 298야드의 장타를 뿜어냈다.아이언 샷 정확도를 반영하는 그린 적중률도 유럽투어에서 평균 73%를 기록할만큼 안정돼 있으나 라운드당 30개를 넘나드는 퍼팅이 약점이다.남아공 요하네스버그와 런던에 집이 있으며 곧 미국에도 거처를 마련할 예정. 지난 4월 결혼해 이번 US오픈 우승은 평생 잊지 못할 결혼선물이 될 것 같다. 문호영기자 alibaba@
  • 국내 첫 리코더 앨범낸 이재만교사

    “리코더는 동요를 연주하는 피리쯤으로 인식되지만,어떤장르의 음악도 소화해낼 수 있는 개방적인 악기입니다.”최근 국내 최초로 리코더 앨범 ‘메모리스’를 낸 이재만(39·경기 고양종고 교사)은 리코더가 대중과 멀리 떨어진 채음악으로 들을 수 없는 ‘잊혀진 악기’로 남아있음을 안타까워했다. 앨범 ‘메모리스’는 리코더로 목가적인 분위기의 뉴에이지사운드 음악 12곡을 연주한 퓨전 앨범. 청아한 음색과 다양한 기교로 리코더에서 나올 것 같지않은 독특한 소리와 분위기를 전한다. “17세기 바로크시대에 번창했던 리코더는 오케스트라가 발달하면서 점차 사라졌지만 최근 세계적으로 다시 붐이 일고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는 오래전 클래식 연주의 한 부분으로만 여겨지고 있지요.”그는 고양종고 교사로 재직하던 1988년 학생들에게 리코더를 쉽게 가르칠 방법을 찾다가 그 악기에 빠져들었다.독일뮌헨의 디미 팔로스 음악원에서 2년간 리코더를 전공했고불가리아의 소피아 국립대로 옮겨 지휘도 공부했다. “쉽게 연주를 시작할 수 있고음계와 주법이 다양해 다른악기에도 쉽게 적응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리코더 예찬론을 펴는 그는 일반인과 전문가들을 위한 리코더 교본과책자를 올해안 발간 예정으로 작업중이다. “지금 나와있는교본들은 서양음악을 그대로 답습한 복사판에 지나지 않아요. 우리만의 독창적인 가락과 멋을 살린 리코더 음악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리코더가 일선 학교에서 교육용 정도로만 보급되는 한정된악기가 아니라 언제 어느 곳에서든 연주할 수 있는 수단으로 활용되기를 바란다는 그는 올 연말 우리 가락과 재즈를함께 담은 2집 앨범을 내놓을 예정이다. 김성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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