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7세 남아
    2026-08-15
    검색기록 지우기
  • 로이터
    2026-08-15
    검색기록 지우기
  • 위령제
    2026-08-15
    검색기록 지우기
  • 70대 남성
    2026-08-15
    검색기록 지우기
  • 소비자
    2026-08-15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332
  • 한화이글스 간판타자 김태균 최연소 3500루타 까지 -5 남아

    한화이글스 간판타자 김태균 최연소 3500루타 까지 -5 남아

    한화이글스 간판 타자 김태균(38)이 개인통산 3500루타 달성을 눈 앞에 두고 있다. 5월 6일 현재 3495루타를 기록하고 있는 김태균은 2012년 2000루타, 2016년 3000루타를 달성한 데 이어 역대 3명만 보유하고 있는 3500루타 기록을 달성할 전망이다. 2007시즌 당시 양준혁(삼성 라이온즈)이 KBO 리그 첫 3500루타를 달성한데 이어 이승엽(삼성)이 2015년, 박용택(LG)이 2018년에 이 기록에 도달했다. 앞서 3,500루타를 달성한 선수는 모두 좌타자로 우타자는 김태균이 최초가 된다. 2001년 KBO 리그에 데뷔한 김태균은 해외에 진출했던 2010, 2011 시즌을 제외하고 줄곧 한화에서 활약하며 매 시즌 세 자릿 수 루타를 기록했다. 2016년 기록한 301루타가 본인의 한 시즌 최고 기록이었다. 2005시즌(252루타)과 2008시즌(255루타)에는 시즌 최다 루타 선수의 영예를 안았다. 최연소 3000루타 기록(34세 4개월 6일)을 가지고 있는 김태균은 5월 6일 기준, 37세 11개월 7일로 종전 최연소 기록 보유자인 양준혁의 38세 2개월 9일보다 약 3개월 가까이 빨리 3500루타를 달성할 전망이다. KBO는 김태균이 3500루타를 달성할 경우 표창규정에 의거해 기념상을 수여할 예정이다. 최영권 기자 story@seoul.co.kr
  • ‘신한맨’ 마침표 찍은 2인자, 흥국생명 부회장으로 컴백

    ‘신한맨’ 마침표 찍은 2인자, 흥국생명 부회장으로 컴백

    위성호 前 행장, 미래경영協 의장 맡아 은행장 연임·회장 도전 연거푸 쓴잔 뒤 35년 신한맨 접고 태광 금융사 자문役 일각 신한 회장 노린 ‘권토중래’ 해석 속 “금융 변화 빨라 올드보이 귀환 힘들 것”위성호(62) 전 신한은행장이 흥국생명 부회장으로 적을 옮겼다. 1985년 신한은행에 입행해 35년간 이어 온 ‘신한맨’ 경력에 사실상 마침표를 찍은 것이다. 2018년 말 은행장 연임에 실패한 뒤, 지난해 말 신한금융지주 회장직에 도전했다가 조용병 회장에게 막혀 연거푸 쓴잔을 마시자 더이상 가능성이 없다고 보고 다른 길을 찾은 것으로 보인다. 흥국생명은 위 전 행장을 부회장급인 미래경영협의회 의장으로 선임했다고 4일 밝혔다. 미래경영협의회는 태광그룹 금융계열사들의 비공식 업무협의체다. 위 전 행장은 흥국생명과 흥국화재, 흥국증권, 흥국자산운용, 고려저축은행, 예가람저축은행의 자문 역할을 맡는다. 흥국생명 관계자는 “금융전문가인 위 전 행장이 풍부한 경험으로 중장기 경영전략 마련을 비롯한 폭넓은 자문 역할을 해 줄 것”이라고 말했다. 위 전 행장은 신한금융에서 최고의 엘리트 코스를 밟아 왔다. 신한지주 경영관리담당 상무에 이어 부사장, 은행 부행장, 카드 부사장, 카드 사장, 은행장까지 승승장구했다. 회장만 빼곤 다 해 본 셈이다. 신한에서 가장 잘나갔던 위 전 행장의 행보는 2018년 말 급제동이 걸렸다.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해 1년 더 연임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지만 진옥동 행장으로 교체됐다. 금융권에서도 ‘이변’이라는 평가가 적지 않았다. 위 전 행장이 연임에 실패한 이유는 금융권을 강타한 세대교체 바람 때문이었다. 당시 신한은 11개 계열사 최고경영자(CEO) 중 7명을 바꿔 CEO 평균 나이를 60.3세에서 57세로 낮췄다. KB금융을 비롯한 다른 금융그룹들도 CEO를 1960년대생으로 물갈이했다. 일각에선 ‘2인자 행보’를 대놓고 드러낸 게 밉보인 것 아니냐는 해석도 있다. 여기에 당시 법무부 산하 검찰 과거사위원회가 2008년 ‘남산 3억원 사건’의 추가 수사를 검찰에 권고한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위 전 행장은 사건 당시 지주 부사장이었다. 위 전 행장은 이후 검찰 조사를 받았고 무혐의 처분이 내려졌다. 이미 연임이 좌절된 위 전 행장으로서는 “의도된 퇴출”이라고 반발했지만 ‘떠난 버스 격’이었다. ‘제2의 신한사태’로 번질 가능성도 우려됐지만 금융당국이 “절차상 문제가 없다”고 판단해 유야무야됐다. 한편에선 위 전 행장이 신한 회장직에서 고배를 마신 지 5개월 만에 금융권으로 돌아온 것을 놓고 권토중래 의지가 있는 것 아니냐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데 무게가 실린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금융사들이 핀테크(금융+기술)로 빠르게 변하는 환경에 맞춰 변화와 쇄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앞으로 위 전 행장을 비롯한 ‘올드보이’의 귀환은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신한 회장후보추천위원회(회추위)의 구성도 그의 복귀 가능성을 낮춘다. 회추위원인 사외이사 대부분의 임기가 5년가량 남아 있어서다. 3년 후 차기 신한금융 회장도 위 전 행장을 떨어뜨린 사외이사들이 뽑는다는 얘기다. 장은석 기자 esjang@seoul.co.kr윤연정 기자 yj2gaze@seoul.co.kr
  • ‘35년 신한맨’ 마침표 찍은 위성호 전 행장…흥국생명 부회장으로 간 이유는

    ‘35년 신한맨’ 마침표 찍은 위성호 전 행장…흥국생명 부회장으로 간 이유는

    위성호(사진·62) 전 신한은행장이 흥국생명 부회장으로 적을 옮겼다. 1985년 신한은행에 입행해 35년간 이어 온 ‘신한맨’ 경력에 사실상 마침표를 찍은 것이다. 2018년 말 은행장 연임에 실패한 뒤, 지난해 말 신한금융지주 회장직에 도전했다가 조용병 회장에게 막혀 연거푸 쓴잔을 마시자 더이상 가능성이 없다고 보고 다른 길을 찾은 것으로 보인다. 흥국생명은 위 전 행장을 부회장급인 미래경영협의회 의장으로 선임했다고 4일 밝혔다. 미래경영협의회는 태광그룹 금융계열사들의 비공식 업무협의체다. 위 전 행장은 흥국생명과 흥국화재, 흥국증권, 흥국자산운용, 고려저축은행, 예가람저축은행의 자문 역할을 맡는다. 흥국생명 관계자는 “금융전문가인 위 전 행장이 풍부한 경험으로 중장기 경영전략 마련을 비롯한 폭넓은 자문 역할을 해 줄 것”이라고 말했다. 위 전 행장은 신한금융에서 최고의 엘리트 코스를 밟아 왔다. 신한지주 경영관리담당 상무에 이어 부사장, 은행 부행장, 카드 부사장, 카드 사장, 은행장까지 승승장구했다. 회장만 빼곤 다 해 본 셈이다. 신한에서 가장 잘나갔던 위 전 행장의 행보는 2018년 말 급제동이 걸렸다.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해 1년 더 연임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지만 진옥동 행장으로 교체됐다. 금융권에서도 ‘이변’이라는 평가가 적지 않았다. 위 전 행장이 연임에 실패한 이유는 금융권을 강타한 세대교체 바람 때문이었다. 당시 신한은 11개 계열사 최고경영자(CEO) 중 7명을 바꿔 CEO 평균 나이를 60.3세에서 57세로 낮췄다. KB금융을 비롯한 다른 금융그룹들도 CEO를 1960년대생으로 물갈이했다. 일각에선 ‘2인자 행보’를 대놓고 드러낸 게 밉보인 것 아니냐는 해석도 있다. 여기에 당시 법무부 산하 검찰 과거사위원회가 2008년 ‘남산 3억원 사건’의 추가 수사를 검찰에 권고한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위 전 행장은 사건 당시 지주 부사장이었다. 위 전 행장은 이후 검찰 조사를 받았고 무혐의 처분이 내려졌다. 이미 연임이 좌절된 위 전 행장으로서는 “의도된 퇴출”이라고 반발했지만 ‘떠난 버스 격’이었다. ‘제2의 신한사태’로 번질 가능성도 우려됐지만 금융당국이 “절차상 문제가 없다”고 판단해 유야무야됐다. 한편에선 위 전 행장이 신한 회장직에서 고배를 마신 지 5개월 만에 금융권으로 돌아온 것을 놓고 권토중래 의지가 있는 것 아니냐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데 무게가 실린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금융사들이 핀테크(금융+기술)로 빠르게 변하는 환경에 맞춰 변화와 쇄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앞으로 위 전 행장을 비롯한 ‘올드보이’의 귀환은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신한 회장후보추천위원회(회추위)의 구성도 그의 복귀 가능성을 낮춘다. 회추위원인 사외이사 대부분의 임기가 5년가량 남아 있어서다. 3년 후 차기 신한금융 회장도 위 전 행장을 떨어뜨린 사외이사들이 뽑는다는 얘기다. 장은석 기자 esjang@seoul.co.kr 윤연정 기자 yj2gaze@seoul.co.kr
  • 77세 아들 “새아버지 안장 한 시간 만에 친어머니 사망 소식”

    77세 아들 “새아버지 안장 한 시간 만에 친어머니 사망 소식”

    부모를 사흘 간격으로 잃은 뒤 내년 부모의 결혼기념일에 자신의 결혼 예식을 준비하는 라만다 렌더(32)처럼 코로나19 감염병은 사랑하는 이들을 한꺼번에 앗아가는 무서운 질병이다. 감염될까 두려워 사랑하는 이를 위로하고 애무하는 일, 죽음을 안타까이 여기고 추모하는 일조차 어렵게 만든다. “부모 결혼기념일에 식 올리려고요” 기사 보러 가기 미국 존스홉킨스 의과대학의 4일 오전 10시 30분(한국시간) 집계에 따르면 전 세계 187개 나라와 지역의 코로나19 감염자는 350만 4129명, 사망자는 24만 7326명인 가운데 얼마나 많은 커플이나 부부가 이 병 때문에 세상을 등졌는지는 통계로 잡히지 않는다고 미국 일간 뉴욕 타임스(NYT)가 3일(이하 현지시간) 전했다. 미국에서의 일만 간략히 전하면 지난달 루이지애나주의 한 커플은 결혼 64년 만에 열흘 간격으로 숨졌고, 밀워키 커플은 65회 결혼기념일을 두 달 앞두고 세상을 등졌다. 플로리다주의 커플은 반세기를 함께 지내다 6분 간격으로 세상과 작별했다. 위스콘신주의 커플은 73년을 함께 한 뒤 침대를 맞댄 상태에서 한날 저세상으로 떠났다. 시카고 남쪽에서 주로 산 델루사 킹 박사와 아내 로이스도 60년을 해로했다. 지난달 초 96세 나이에 델루사는 세상을 떠나 같은 달 10일 안장됐다. 안장식을 마친 뒤 한 시간 만에 아들 론 러빙(77)의 전화 벨이 울렸다.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요양 시설 애버 테라스에 있는 어머니 역시 9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떴다는 소식이었다. 손녀 크리스티 테일러는 “할아버지가 영원한 안식을 누린 날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그 얘기를 듣는 순간, ‘와우 정말, 두 분은 떨어지기 싫어하셨구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1960년 시카고의 칵테일 파티에서 처음 만났다. 치과기공사 출신으로 이혼한 뒤 아들 러빙을 노스캐롤라이나주의 옥수수와 담배 농장에서 혼자 키우던 어머니는 서른여섯 나이에 2차 세계대전 참전 용사이며 워싱턴의 하워드 의대 병원에 비뇨기과 레지던스를 밟던 델루사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6개월 만에 결혼해 델루사가 의사 자격증을 따는 과정을 뒷바라지했다. 로이스는 의사 부인이 된 것을 매우 기뻐했고 남편이 퇴근하면 함께 브리지 게임을 하면서 두 사람이 모두 돌보는 기관을 위해 모금 운동을 하고 밤이면 자니 카슨쇼를 함께 보고 손을 맞잡은 채 신문을 읽는 것을 낙으로 삼았다. 바베이도스 제도와 베네수엘라를 다녀왔고 크루즈 유람선을 타고 파나마 운하를 그쳐 유럽도 다녀왔다. 1990년대 중반 넬슨 만델라가 집권하자 남아공까지 여행을 가 함께 취임식을 지켜봤고 사파리 관광도 했다. 동물학 석사를 딸 정도로 델루사는 모험을 좋아했고 아내는 에어컨을 그리워했지만 남편이 좋아하는 일이라며 참아냈다. 평소 로이스는 “남편이 뭔가를 생각해내면 오랫동안 끈질기게 생각하는데 난 늘 뭔가를 빠뜨린다”고 말하곤 했다. 부부는 애틀랜타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전문직 엘리트에 속해 전직 시장이며 유엔 대사를 지낸 앤드루 영을 비롯한 많은 이들과 어울렸다. 신년 파티를 행크 애런 자택 겸 기념관에서 할 정도였다. 애런은 델루사가 흑인들에게만 나타나는 겸상(鎌狀) 적혈구성 빈혈(sickle-cell anemia) 치료 기금을 모금하는 데 도움을 준 인연이 있었다. 육군 전역자이며 애틀랜타 경찰, 그곳 방송에서 카메라맨으로 일했던 러빙은 부모를 존경했다고 했다. 아내 프레다는 2012년 진지하게 사귀기 시작한 론이 곧잘 “우리 엄마아빠처럼 되고 싶다”고 말하곤 했다고 전했다. 로이스가 치매에, 델루사는 파킨슨씨병에 걸렸다. 아들은 매일 부모를 찾아 간병 보조인을 연락해 붙이는 게 일이었다. 가급적 자신들이 살아온 집에서 여생을 마치게 하고 싶었는데 지난해 그게 불가능해졌다는 판단이 들었다. 애버 테라스로 옮겼는데 그나마 두 분이 함께 지낼 수 있는 곳이어서 좋았다. 본인 나이 77세, 부모 나이가 96세라면 죽음이 다가온다는 것을 누구나 안다. 하지만 코로나19는 삶의 마지막 순간을 앞둔 부모가 서로 다독거릴 시간마저 빼앗았고, 의사 경력에 시민권 운동에 기여한 족적에도 많은 이들이 찾아 추모하는 기회마저 앗아갔다. 아들 론은 “그게 참 황망하게 만든다”고 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中우한 환자 불안한 ‘0’

    中우한 환자 불안한 ‘0’

    코로나19의 발원지로 중국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본 후베이성 우한에서 감염병 입원 환자가 모두 퇴원했다. 지난 1월 말 비상사태를 선언한 뒤 급파된 중앙지도조도 베이징으로 귀환해 감염병 종식 선언을 눈앞에 뒀다. 27일 신화통신 등에 따르면 전날 우한의 코로나19 환자 12명이 퇴원했다. 77세 A씨가 두 차례 검사에서 음성 반응이 나와 귀가한 것을 끝으로 지역 내 입원 환자가 ‘0’을 기록했다. A씨는 “그간 가족이 너무 그리웠다”고 말했다. 중국 국가위생건강위원회 미펑 대변인은 “중국 각지에서 온 의료진의 노력 덕분에 우한 병원에서 치료받는 감염병 환자가 한 명도 남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신화통신은 “중국에서 코로나19 지역 전파가 억제되고 있다는 증거이자 감염병과의 전쟁에서 세운 하나의 이정표”라고 평가했다. 후베이성과 우한의 상황이 안정되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현지에 파견했던 쑨춘란 부총리의 중앙지도조를 이날 베이징으로 복귀시켰다. 우한은 지난 1월 23일부터 76일간 도시를 봉쇄했다가 지난 8일 해제했다. 지금까지 5만명 넘는 환자가 발생해 4600여명이 숨졌다. 지난 2월 18일 입원환자가 3만 8020명으로 정점을 찍었다가 두 달여 만에 모두 퇴원해 ‘코로나 청정지역’이 됐다. 하지만 위험은 남아 있다. 발열이나 기침 등 증상은 없어도 양성 판정을 받은 무증상 감염자가 꾸준히 발생하고 있어서다. 우한에서는 25일 하루에만 19명의 무증상 감염자가 새로 확인됐다. 관찰 대상 무증상 감염자도 500명이 넘는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코로나19 종식 앞둔 중국 우한…입원환자 모두 퇴원

    코로나19 종식 앞둔 중국 우한…입원환자 모두 퇴원

    코로나19가 처음으로 확산돼 도시가 봉쇄됐던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서 코로나19 입원 환자가 지난 26일 모두 퇴원했다. 지난 1월말 코로나19 관련 비상사태 선언으로 중국 중앙정부에서 급파됐던 중앙지도조 역시 우한에서 철수, 베이징으로 귀환하면서 사실상 코로나19 종식 선언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마지막 입원환자 12명, 26일 모두 퇴원 27일 신화통신 등에 따르면 전날 우한의 코로나19 환자 12명이 퇴원했다. 77세 딩모씨가 2차례 검사에서 음성 반응이 나와 퇴원한 것을 끝으로 우한 지역 내 코로나19 입원 환자 수는 ‘0’이 됐다. 딩씨는 “가족이 너무 그리웠다”고 말했다. 같은 날 퇴원한 또 다른 환자 류모씨는 “바깥 공기가 정말 신선하다”고 말했다. 중국 국가위생건강위원회 미펑 대변인은 전날 브리핑에서 “우한과 중국 각지에서 온 의료진의 노력 덕분에 우한 병원에서 치료받는 코로나19 환자는 4월 26일 현재 1명도 안 남았다”고 말했다. 우한이 코로나19 청정 지역이라고 선언한 셈이다. 우한에서는 지난 2월 18일 입원 환자가 3만 8020명으로 정점을 찍었지만, 이들은 두달여 만에 모두 퇴원하게 됐다. 신화통신은 “중국에서 코로나19의 지역 전파가 기본적으로 억제됐다는 또 다른 증거이자 우한에는 하나의 이정표”라고 평했다.이처럼 후베이성과 우한의 상황이 진정되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공산당 지도부는 지난 1월 말 우한 현지에 파견했던 쑨춘란 부총리의 중앙지도조를 27일 베이징으로 복귀시켰다. 중앙지도조의 베이징 귀경은 후베이와 우한의 코로나19 방역 대응이 초비상 상태에서 상시화 방역으로 전환됨에 따른 것이다. ‘무증상 감염자’는 계속 발생…500명 관찰 중 우한은 1월 23일부터 76일간 도시를 봉쇄했다가 지난 8일 봉쇄를 해제했다. 우한에서는 지금까지 5만명 넘는 환자가 발생했으며 이 가운데 4600여명이 숨졌다. 이제 우한 지역에 남은 과제는 외부로부터 환자가 유입되는 것을 막으면서 2차 유행을 예방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한에도 위험 가능성이 남아 있다. 발열이나 기침 등의 증상은 없지만 양성 판정을 받는 ‘무증상 감염자’가 계속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한에서는 지난 25일 무증상 감염자 19명이 새로 확인됐으며, 현재 의학적 관찰 중인 무증상 감염자는 500명이 넘는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아이들에겐 ‘구름빵’보단 ‘알사탕’

    아이들에겐 ‘구름빵’보단 ‘알사탕’

    ‘아동문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추모 문학상(린드그렌상) 수상작들 가운데 이용자들이 가장 많이 빌린 책은 백희나 작가의 ‘알사탕’이었다. 국립중앙도서관은 최근 3년간 전국 1003개 공공도서관의 린드그렌상 수상자 저서 대출량 분석 결과를 20일 발표했다. 한국어로 출판한 수상자들의 저서는 모두 232종이었다. 1위부터 8위까지 모두 백 작가 작품이 휩쓸었다. ‘알사탕’에 이어 ‘장수탕 선녀님’, ‘이상한 엄마’, ‘달 샤베트’, ‘이상한 손님’ 순이다. 이번에 상을 받은 ‘구름빵’은 8위였다. 이 책은 발간 연도가 2004년으로 가장 오래됐다. 지난해 낸 최신작 ‘나는 개다’는 13위였다. 코로나19로 대부분의 도서관이 스마트 도서관, 책배달과 같은 비대면 서비스에 주력하는 가운데 백 작가의 린드그렌 상 수상 소식이 전해진 3월 31일을 기점으로 백 작가 도서의 대출량이 급상승했다. 특히 ‘달 샤베트’는 4월 첫째 주에 전체 도서 가운데 96위로 전주 대비 677위 상승했고, ‘구름빵’ 역시 전체 87위로 전주 대비 651위나 올랐다. 국립중앙도서관 측은 “추세를 볼 때 백 작가의 도서 대출량이 앞으로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외국 작가의 도서로는 베르너 홀츠바르프·볼프 에를브루흐의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가 9위에 올랐다. 이어 모리슨 센닥의 ‘깊은 밤 부엌에서’, 루스 크라우스의 ‘아주아주 특별한 집’이 뒤를 이었다. 성별·연령별로 대출 현황을 분석해 보니, 백 작가의 책은 7세 여아에게 가장 인기가 많았다. 이어 7세 남아, 8세 여아, 6세 여아 순이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면역력 강화에 좋다는 강황의 정체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면역력 강화에 좋다는 강황의 정체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몸살을 앓는 요즘, 자극적인 제목의 영상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내용인즉, 13억 인구의 인도에서 코로나19가 확산하지 않는 이유를 인도 사람들이 주식으로 먹는 카레로 들면서, 그중에서도 강황의 특별한 효능 덕분이라고 했다. 상식적으로도 의아하다 못해 헛웃음이 나오는 이야기지만 의사 가운을 걸친 영상의 화자는 제법 진지했다. 이 영상이 올라온 후 며칠 뒤 인도에 코로나19가 퍼지기 시작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당연히 가짜 정보였던 셈이다. 사람들의 기대와 달리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음식은 치료제가 될 수 없다. 여기서 방점은 오늘을 사는 우리다. 영양 섭취가 극히 제한적이고 불안정했던 과거에는 음식이 약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덜 먹거나 줄이라는 처방을 뒤집어 생각하면 답은 쉽게 나온다. 현대인의 병은 안 먹어서 생기는 게 아니라 너무 먹어서 생기는 거다. 어쨌거나 그 영상의 여파일까, 이번 위기를 기회로 삼으려는 판매자들의 노력 때문일까. 코로나19에 대한 면역력을 강화시켜 준다는 온갖 음식 리스트에 강황이 포함됐다. 대체 강황은 어떤 식재료길래 건강식으로 주목받게 된 걸까. 터메릭, 쿠르쿠마 등으로 불리는 강황은 중국과 인도, 동남아시아에서 사용되는 대표적인 향신료 중 하나다. 향신료는 음식에 맛과 향을 불어넣어 주는 조미료이기도 하지만 약재로도 쓴다. 중세까지 유럽에서 약제사와 향신료 상인은 거의 동일인이었다. 현대 의학이 나타나기 전까지 서양에서는 향신료를 이용한 처방이 흔했다. 말려서 빻거나 가루를 물에 개어 약효성분을 다량 추출해 복용하면 즉효가 나타나는가 하면, 음식에 넣어 일상적으로 건강을 유지하는 민간요법으로도 향신료를 사용했다. 다만 음식에 넣는 경우 약효를 바로 얻긴 힘들다. 중세 유럽 상류층이 그랬듯, 향신료를 음식에 퍼붓는 것이 아닌 이상 조미료 수준으로 향신료를 섭취하면 약효가 더디고 적기 때문이다. 아무튼 강황이 갖고 있는 여러 효능에 대한 언급은 약재로서의 가치 덕분에 생긴 후광효과다.강황은 생강과에 속하지만 생강과는 달리 씁쓸하고 진한 흙냄새를 갖고 있다. 특유의 흙 내음은 다른 향신료들의 맛에 바탕을 깔아 주는 역할을 한다. 독특한 향이 나긴 하지만 자극적이진 않아 유럽에서 값비싼 사프란 대용으로 활용했다. 풍미를 위해서라기보다는 음식을 먹음직스럽게 황금빛으로 물들게 해주는 염료로 더 쓸모가 있었던 셈이다. 향신료 산지인 남인도와 동남아시아에서는 강황을 비롯한 다양한 향신료들을 음식에 활용해 왔다. 향신료의 살균작용으로 더운 기후 탓에 생길 수 있는 식중독을 예방할 뿐만 아니라, 특유의 강렬한 풍미로 더위에 지친 입맛을 돋우는 역할을 하는 기특한 식재료였기 때문이다. 지역마다 수백 가지가 넘는 향신료 소스가 발달해 왔는데 17세기 이곳을 찾은 영국인들은 카레라는 이름으로 통칭해 버렸다. 가짜 정보를 이야기한 영상의 주인공이 모르는 게 하나 있었다. 인도의 카레는 우리가 아는 카레와는 전혀 다르다는 사실이다. 인도인들이 주식으로 먹는 카레 중에는 강황이 전혀 들어가지 않은 것도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카레는 인도에 거주하던 영국인이 자신들이 먹던 스튜에 현지 향신료를 곁들여 만든 퓨전 음식이다. 인도인들의 주식인 카레는 콩으로 만든 죽에 여러 향신료를 더해 만든 모양이다. 알록달록하고 푸짐한 건더기가 있는 카레를 상상하고 현지 카레라고 하는 건 곤란하다.강황은 동남아시아의 카레에 더 많이 들어간다. 옐로, 레드 카레 등의 이름처럼 인도 카레보다는 색이 비교적 선명하다. 코코넛 밀크를 넣어 맛을 달큼하게 중화시키거나 라임 등으로 새콤달콤한 맛을 낸 것도 인도 카레와는 다른 점이다. 강황을 매일 섭취하는 이들은 인도인들이 아니라 인도네시아인들이다. 안타깝지만 인도네시아도 코로나19 감염자가 늘고 있는 걸 보면 강황은 아무래도 바이러스를 막는 데는 효과가 없는 듯하다. 최근 서구에선 슈퍼푸드 마케팅으로 강황이 알려지면서 옐로 카레 파우더를 손수 만들거나 비스킷이나 디저트 등에 활용하는 등 붐이 일었다. 지금도 강황을 갈아 만든 터메릭 주스가 ‘디톡스 주스’라는 이름으로 인기다. 대부분 디톡스 마케팅이 그렇듯 실제로 해독작용을 하는지에 대해선 회의적이지만, 흙 맛이 나는 쓰디쓴 노란 강황 주스는 단언컨대 마셔본 음료 중 가장 끔찍한 맛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몸에 좋을 수도 있다는 희망이 없다면 도저히 먹을 이유를 찾기 힘든 맛이라고 할까. 강황을 다른 음식에 섞어 쓰는 데엔 다 이유가 있다.
  •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할리우드와 한국이 사랑한 작곡가 펜데레츠키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할리우드와 한국이 사랑한 작곡가 펜데레츠키

    스티븐 킹 원작에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 ‘샤이닝’에 삽입된 기괴한 소음이 난무하는 사운드트랙을 기억할지 모르겠다. 잭 니콜슨의 광기 어린 연기, 어린 배우들의 신들린 연기와 어우러져 공포를 한층 배가시켰던 배경음악을 작곡한 폴란드 출신 작곡자이자 지휘자 크시슈토프 펜데레츠키가 어릴 적 음악을 배웠던 크라쿠프에서 87세를 일기로 삶을 접었다. 부인 엘즈비에타가 설립한 루드비히 반 베토벤 협회는 펜데레츠키가 오랜 기간 투병하다가 29일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고 AFP 통신이 전했다. 통신은 펜데레츠키를 “획기적인 종교곡과 교향곡으로 클래식 음악계를 개척한 인물”이라고 평했다. ‘폴란드의 음악 대통령’이라 불리는 펜데레츠키는 1960년 관현악곡 ‘아나클라시스’, ‘히로시마 희생자를 위한 애가‘ 등으로 독자적인 작곡 기법을 확립했다는 평가를 들었다. 전위적이기도 했지만 할리우드가 사랑한 클래식 작곡가이기도 했다. 큐브릭 뿐만 아니라 윌리엄 프리드킨 감독의 ‘엑소시스트’,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셔터 아일랜드’,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트윈 픽스’, 그리고 조금 더 최근에는 TV 드라마 ‘블랙 미러’에도 그가 작곡한 음악이 사용됐다. 폴란드 공산당의 통치가 느슨해진 틈을 타 철의 장막을 넘어 금세 국제적 명성을 누렸다. 간주(인터벌)를 극단적으로 쓰고, 글리산디 기법 등 혁신을 마다하지 않고, ‘히로시마 희생자를 위한 애가’에는 대규모 관악기 오케스트라를 편성하는 등 파격을 구사했다. 휘슬, 유리조각들, 톱, 타이프라이터, 자명종 등 많이 쓰이지 않던 효과음을 과감히 채용했다. 말년에는 전위 음악을 버리고 후기 낭만주의로 귀의해 많은 논란을 일으켰지만 아마추어 동호인 사이에서는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 ‘누가 수난곡’(1963~66년) ‘Stabat Mater’, 안톤 브루크너와 비교됐던 ‘바이올린 협주곡 1번’, 1970년 솔리다리티(연대) 운동의 시발점이 됐던 그단스크 조선소 노동자 투쟁을 기리기 위해 1980년 작곡한 ‘라크리모사’(나중에 ‘폴란드어 레퀴엠’으로 확장) 등이 대표작으로 꼽힌다. 그래미상 클래식 부문 상을 수상하기도 했던 그는“내 음악은 똑같은 채로 남아 있다. 다만 (표현) 수단이 바뀌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2011년에는 영국 록 밴드 라디오헤드의 리드 기타리스트 조니 그린우드, 일렉트로닉 음악 작곡자 아펙스 트윈과 협업해 앨범 녹음과 투어 공연을 함께 했다. 그는 “다른 음악계와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좋다. 그래서 이렇게 열정적인 젊은 청중을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같은 세대 대다수 작곡자들과 달리 그는 종교적 기원에서 영감을 얻은 것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난 늘 외고집 정신으로 행동해 왔다”고 털어놓은 뒤 “내가 학생 때 성스러운 음악은 금지됐다. 그 뒤 세월이 많이 흘러 공산당 정권 아래서도 인정받지 못했다. 심지어 동료들마저 탐탁치 않아 했다.” 1933년 11월 23일 데비카란 남부 도시에서 태어난 그는 크라쿠프 음악아카데미에 입학해 철학과 예술사학, 문학을 함께 공부했다. 전위음악을 작곡하면서 세계 유수의 음악 학교들에서 작곡을 가르쳤다. 지휘자로서도 유럽과 미국 유수의 관현악단과 협연했으며 세계 여러 곳의 음악 아카데미 회원이 됐다. 본인은 자신의 음악 세계를 “아방가르드에서 얻어진 것들을 18세기, 19세기, 20세기 심포니 음악의 위대한 전통에 뒤섞었다”고 돌아봤다. “전통을 알지 못하거나 과거 작품을 소화하지 않거나 오랜 명작을 깊이있게 공부하지 않고선 예술가가 될 수 없다.” 식물 애호가로도 이름 높았던 고인은 루슬라비체 자택 정원에 미로를 심어놓고 이렇게 여가를 보내는 것이 “손주딸들 다음 두 번째로 중요한 것”이라고 털어놓기도 했다. 그는 지난해 10월 개막한 서울국제음악제(SIMF) 무대에 설 예정이었으나 건강이 좋지 않아 방한 직전 일정을 취소했다. 1992년에는 한국 정부에서 위촉받아 ‘한국’이라는 부제를 붙인 교향곡 5번을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KBS 교향악단과 초연하기도 했다. 이 음악에 우리 민요 ‘새야 새야’ 선율이 들어가 화제가 됐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고대 마야문명 도시 잇는 길이 100㎞ ‘하얀 길’ 찾았다

    고대 마야문명 도시 잇는 길이 100㎞ ‘하얀 길’ 찾았다

    멕시코의 울창한 숲에 있는 고대 마야문명의 흔적을 고고학자들이 자세히 밝혀냈다. 미국과 멕시코 연구팀이 1300여년 전인 7세기 초 유카탄반도에 있던 두 마야 도시 코바(Cobá)와 야수나(Yaxuná) 사이를 잇기위해 만들어진 길이 100㎞의 포장 도로길을 지도화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라이다’(LIDAR)로 불리는 최신 레이저 감지 기술 덕분이다. 라이다는 자율주행 자동차에 쓰이는 기술과 같은 것으로, 펄스 형태의 레이저를 발사해 그 빛이 돌아올 때까지의 시간을 측정함으로써 지도화를 한다. 그 결과 나온 자료에는 지표면의 등고선이 나와 있어 인공 구조물이 숲속에 숨겨져 있어도 그 구조를 자세하게 알 수 있다. 이들 연구자는 두 도시를 연결하는 이 길을 분석하는 연구를 위해 라이다 관측장비를 탑재한 항공기를 띄워 그 일대를 스캔했다.그 결과, 이 길은 폭이 약 8m이며 연결된 곳 주변에 최소 8130채의 건물 구조물이 남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면적은 전체적으로 올림픽 수영장 2900여 개분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길은 큰 돌이나 자갈로 땅을 메운 뒤 그 위에 하얀색 석회암 스투코로 덧칠해 완성한 일종의 포장도로인데 석회암색 덕분에 유카텍 마야어로 하얀 길을 뜻하는 삭베(Sacbé)로 불리지만, 오늘날 하얀색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멕시코에는 이런 길이 수십 개 남아있으며 그중 일부는 관광지로 개발돼 있기도 하다. 코바와 야수나를 잇는 삭베는 오래 전 발견됐으며 1930년대 시행된 현지 조사에서 두 도시를 곧게 잇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하지만 이번 조사의 분석에서 이 길은 중간 중간 몇 개의 작은 도시와 마을로 벗어났다가 최종 목적지까지 뻗어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즉 이 길은 각 주거지를 쉽게 오가도록 인공적으로 연결해주는 다리 역할을 하는 것이다.이에 대해 미국의 저명한 고고학자로 이번 연구를 이끌고 있는 트레이시 아드렌 마이애미대 인류학과 교수는 “이 길이 코바의 여왕이자 여전사인 카윌 아하우(K’awiil Ajaw)가 당시 신흥 강국으로 나중에 마야문명 3대 도시로 발전하는 치첸 이트사(Chichén Itzá)의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 건설하도록 지시했을 가능성이 있다”면서 “길이 생긴 시기는 서기 700년이 조금 못 됐을 때로 코바가 영토 확장 정책을 추진하고 있을 때와 일치한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힘을 모아 치첸 이트사에 맞서려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유카탄반도 중심에 확고한 보루가 필요했다”면서 “이 길은 코바가 힘을 유지하기 위한 최후의 발악 중 하나였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코바와 야수나의 경계를 이루는 건물 구조물들의 유적 발굴도 진행했다. 올여름에는 3차 발굴조사를 할 예정이다. 목적은 멀리 떨어진 두 중심 도시에서 쓰이는 일용품의 유사성을 밝혀내는 것이다. 자세한 연구 결과는 고고학 전문지 ‘고고과학 보고 저널’(Journal of Archaeological Science: Reports) 최근호에 실렸다. 사진=마이애미대 제공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위안부 피해 할머니 별세… 18분 남아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 한 분이 또 세상을 떠났다. 할머니의 별세로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 생존자는 18명만 남았다. 3일 일본군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에 따르면 이모 할머니가 전날 향년 92세의 나이로 대구 자택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1928년 포항에서 태어난 이 할머니는 17세 때 베 짜는 공장에서 돈을 벌어 집안을 먹여 살릴 수 있다는 말에 속아 중국으로 갔다. 중국에서 일본군으로부터 모진 고초와 피해를 당한 이 할머니는 해방 후에도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중국에 정착했다. 2000년대에 이르러서야 이 할머니는 국적을 회복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 할머니의 장례 등은 할머니와 유가족의 뜻에 따라 비공개로 진행한다. 이정옥 여성가족부 장관은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 한 분이 또 우리 곁을 떠나셔서 너무 안타까운 마음”이라면서 “남은 한 분 한 분 편안한 노후를 보낼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애도했다. 이어 “피해자들의 명예와 존엄성 회복을 위한 사업도 국내외에서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앞서 지난 1월에도 경남 창원 지역에 살던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 할머니 한 분이 고령으로 세상을 떠났다. 손지민 기자 sjm@seoul.co.kr
  • [달콤한 사이언스] ‘산 넘어 산’… 공기오염도 ‘팬데믹’ 수준

    [달콤한 사이언스] ‘산 넘어 산’… 공기오염도 ‘팬데믹’ 수준

    코로나19(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로 인해 전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도 팬데믹(대유행)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제시하고 있는 등 현재의 상황이 진정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2009년 신종플루로 WHO가 대유행을 선언했을 때 과도한 대응과 대중의 공포로 사회적, 경제적 비용이 늘어났던 경험 때문에 코로나19 대유행 선언에 조심스럽다는 해석이다. 그런데 과학자들이 코로나19가 대유행 상태가 되지 않고 진정세를 보이더라도 대기오염으로 인한 팬데믹이 인류를 괴롭힐 것이라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독일 막스플랑크 화학연구소, 요하네스 구텐베르크대 의대, 마인츠 국립심혈관연구센터, 사이프러스 국립기후대기연구센터, 사우디아라비아 킹사우드대, 영국 런던 위생·열대의학대학원 공동연구팀은 대기오염이 전쟁, 테러 같은 폭력이나 말라리아, 뇌염, 에이즈 등 감염성 질환, 흡연보다 전 세계인의 수명을 줄이는 가장 큰 원인이 될 것이라는 연구결과를 영국심장학회에서 발행하는 국제학술지 ‘심혈관 연구’ 3일자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평균 기대수명을 낮추는 것으로 알려진 각종 요인이 기대수명에 미치는 영향을 예측할 수 있는 수학적 모델을 개발했다. 그 결과 초미세먼지(PM2.5) 같은 대기오염이 전 세계인의 평균 기대수명을 3년 가량 줄이는 것으로 확인됐다. 또 흡연 2.2세, 에이즈 0.7세, 모기나 진드기, 벼룩 같은 곤충으로 인해 전염되는 말라리아, 뇌염 등 감염성질환 0.6세, 전쟁, 테러 등 모든 형태의 폭력 0.3세를 줄이는 것으로 예측됐다. 이 모델을 활용해 분석한 결과 2015년에는 대기오염으로 880만명이 추가 사망한 것으로 조사됐다. 기대수명 단축요인으로 대기오염은 말라리아의 19배, 폭력사태의 9배, 알콜중독의 45배, 약물남용의 60배 이상인 것으로 분석됐다.연구팀은 대기오염이 호흡기 감염, 만성폐쇄성폐질환(COPD), 폐암, 심장질환, 뇌혈관질환, 고혈압과 당뇨 같은 비감염성 질환 6개 질병에 미치는 영향도 분석했다. 그 결과 심장질환과 뇌혈관질환이 수명단축의 주요 원인인 것으로 확인됐다. 연구팀에 따르면 대기오염으로 인한 추가 사망자의 75%가 60세 이상 연령대에서 나타나고 아프리카와 남아시아 같은 저소득 국가에서의 기대수명이 더 많이 줄어드는 것으로 조사됐다. 화석연료 배출량을 제거해 대기오염을 줄이면 전 세계의 기대수명은 1년, 인간이 만든 배출물을 모두 제거하면 2년 정도 늘어날 것이라고 연구팀은 추산했다. 토마스 뮌젤 독일 요하네스 구텐베르크대 의대 교수는 “이번 연구를 통해 대기오염이 공중보건에 미치는 영향이 예상보다 훨씬 크고 전 세계적인 현상이기 때문에 ‘대기오염 팬데믹’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라며 “의학계는 물론 정책입안자들은 대기오염이 심혈관질환의 주요 원인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양산·고성·함양·거제도 코로나19 확진자 “경남 14명”

    양산·고성·함양·거제도 코로나19 확진자 “경남 14명”

    경남 거제에서도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했다. 경남에서만 하루 만에 7명 늘었다. 거제시는 23일 오전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거제도에 거주하는 34세 여성이 코로19 확진환자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시에 따르면 확진자는 미혼의 자영업자로 지난달 30일부터 이달 13일까지 14일간 홀로 말레이시아를 관광한 뒤 미얀마로 이동, 3일간 머물다 베트남 하노이를 거쳐 18일 오전 7시 김해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입국 3일째인 21일 약간의 기침 증세가 있어 대우병원 선별진료소를 찾았다가 검체를 채취해 민간위탁의료기관에 의뢰, 23일 양성 판정을 받았다. 대우병원 방문 후 자가 격리 중이던 여성은 경남마사의료원 음압병동으로 이송돼 입원치료 중이다. 경남도는 전날까지 7명이던 코로나19 확진자가 23일 오전 10시 기준 14명으로 7명 증가했다고 밝혔다. 창원시에서 3명, 거제시에서 1명, 양산시에서 1명, 고성군에서 1명, 함양군에서 1명이 추가 확진자로 판정받았다. 22일까지 발생한 기존 확진자를 추가하면 창원시는 5명, 합천군 3명, 진주시 2명, 거제시 1명, 양산시 1명, 고성군 1명, 함양군 1명 등이다. 한편 중앙방역대책본부(중대본)는 23일 오전 9시 기준 국내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신규환자가 123명 발생했다고 밝혔다. 국내 확진자는 총 556명으로 늘었다. 신규확진자 123명 가운데 신천지대구교회 관련자는 75명으로 집계됐다. 확진자 가운데 사망자도 4명은 늘었다. 4번째 사망자는 57세 남성으로 청도대남병원 관련자다. 방역당국은 사망원인과 코로나19 관련성을 조사 중이다. 이날 중대본 집계에는 3번째 사망자도 포함됐다. 3번째 사망자는 경북 경주 자택에서 숨진 41세 남성으로 사후에 양성 판정을 받았다. 앞서 발생한 1·2번째 사망자는 청도대남병원 입원환자였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38세 부티지지’ 아이오와 1위 확정, 대우가 달라졌다

    ‘38세 부티지지’ 아이오와 1위 확정, 대우가 달라졌다

    부티지지 돌풍 계속될까? YES: 아이오와 코커스 26.2% 1위 확정청년 돌풍 오바마, 시골 출신 클린턴 이미지며칠간 32억원 개인 기부금, 지지세력 늘어 NO: 동성애 결혼에 흑인표 이반 가능성블룸버그 3월 참전 감안, 기부금 너무 부족각성한 바이든과 중도층 두고 한판 승부 남아피트 부티지지(38) 전 인디애나주 사우스벤드 시장이 결국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을 0.1%포인트 차이로 누르고 ‘화이트 오바마’의 기적을 이뤘다. 또 이 직후 불과 3일만에 270만 달러(약 32억원)의 선거자금이 모였다. 이를 두고 ‘깜짝 승리’로 끝날 거라는 예측도 나오지만 정치 신인의 돌풍이 태풍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만만치 않다. 블룸버그통신은 6일(현지시간) 미국 민주당 대선 경선레이스의 풍향계로 불리는 아이오와 코커스 개표 결과 부티지지가 최종 후보별 득표율을 26.2% 얻어 26.1%를 얻은 샌더스를 간발의 차로 누르고 1위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18.0%)이 3위, 조 바이든 전 부통령(15.8%)이 4위, 에이미 클로버샤 상원의원(12.3%)이 5위였다. 애초에 샌더스·바이든 양강 구도가 예측됐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부티지지가 바이든을 끌어 내린 격이었다. 대선 풍향계로 불리는 아이오와에서 승기를 잡은 부티지지는 지지도 상승과 함께 선거자금을 끌어모으고 있다. CNN은 이날 “부티지지 측이 아이오와 코커스 다음날부터 개인 기부자 6만 3841명에게서 선거자금 270만 달러가 모금됐다는 내용을 지지자들에게 알렸다”고 보도했다. 특히 기부자 중 2만 2000건 이상이 처음 참여한 기부자였다. 미국 인디애나폴리스 조 호그셋시장도 부티지지를 지지하고 나섰다.하지만 지난해말 기준 전체 선거자금 모금액은 7680만 달러로 민주당 내 1위 샌더스(2억 3760만 달러)의 3분의1에 불과했다. 이번 아이오와 코커스 캠페인에서 부티지지는 광고 등에 1100만 달러를 쏟아부었지만 역시 샌더스나 억만장자 존 스타이머에 밀렸다. 특히 슈퍼 화요일(3월 3일)부터는 그야말로 돈으로 무장한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이 경쟁에 뛰어든다. 또 아이오와 패배로 각성한 바이든과 중도층을 두고 한 판 승부를 벌여야 한다. 온건파로 분류되는 바이든은 패배 직후 지난 4일(현지시간) 뉴햄프셔 내슈아 유세에서 “사탕발림을 하지 않겠다. 아이오와에서 직격탄을 맞았다. 부티지지는 10만명 이상의 지역을 이끈 경험이 없다”며 공격 태세로 전환했다. 그럼에도 47세였던 오바마 전 대통령이 2008년 힐러리 클린턴 대세론을 꺾고 아이오와에서 돌풍을 일으켰던 상황을 재연할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사우스밴드 시장이 경력의 전부인 부티지지가 변방의 아칸소주지사 출신으로 42대 대통령을 역임한 빌 클린턴의 미지까지 얻을 가능성도 있다. 무엇보다 기존 정치에 염증을 느낀 이들에게 30대의 부티지지는 신선하다. 하지만 2018년 남성 교사인 파트너 체이슨 글레즈만과 결혼한 동성애자라는 점이 특히 흑인 유권자 등에게 감점요인이라는 분석이 많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사회적 약자 ‘21년 옥살이 恨’ 재심에서 풀릴까요?

    사회적 약자 ‘21년 옥살이 恨’ 재심에서 풀릴까요?

    피해 남성 증언만으로 용의자 특정 거꾸로 매달고 물고문에 허위 자백 2살 딸 어른 돼서야 재심 개시 결정 삼례슈퍼 사건 용의자는 ‘지적장애인’ 명백한 증거 재발견 등 재심요건 엄격 1심서 재심 개시 결정은 고작 35%뿐“30년에 걸친 피고인의 고문 피해 호소에 이제야 응답하게 돼 면목이 없습니다. 재심 청구인의 모든 가족에게 늦어진 응답에 대한 사과의 마음을 전합니다.” 지난 6일 부산고등법원 형사1부(부장 김문관)는 경찰 고문에 못 이겨 살인죄 누명을 쓴 채 억울한 옥살이를 한 최인철(59)씨와 장동익(62)씨에 대해 ‘재심 개시 결정’을 내린 뒤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사법부의 사과를 받은 두 사람의 눈에선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법정을 나선 장씨는 딸을 부둥켜안았다. 교도소에 들어갈 당시 2살에 불과했던 딸은 21년을 복역하고서 출소했을 때 어른이 돼 있었다. 최씨는 “같은 하늘 아래 고문 경찰관들과 함께 사는 것이 부끄럽다”며 비통해했다.●‘낙동강변 살인 사건’ 수사의 전말 두 사람은 1990년 1월 4일 부산 북구(현 사상구) 엄궁동 낙동강변 인근 갈대숲에서 한 여성이 강간·살해당한 채 발견된 낙동강변 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돼 21년을 교도소에서 지냈다. 당초 사건이 발생했을 땐 여성과 함께 차에 있다가 괴한의 습격을 받은 피해 남성의 증언 외에는 범인을 특정할 만한 단서가 남아 있지 않았다. 경찰은 이 사건을 미제 사건으로 처리했다. 1년 10개월 후인 1991년 11월 8일 최씨와 장씨가 공무원 사칭 혐의로 부산 사하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게 됐다. 이틀 전 무면허 운전 교습을 하던 한 남성이 자연보호 활동을 하던 최씨를 공무원으로 오인해 3만원을 건넨 것이 화근이었다. 문제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경찰이 두 사람을 낙동강변 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한 것이다. 당시 피해 남성은 “한 사람은 덩치가 크고, 다른 사람은 키가 작았다”고 증언했는데 이는 두 사람의 외형에 들어맞았다. 현장에서 발견된 피해 여성의 손수건에서 나온 정액 혈액형도 최씨의 것과 일치했다. 경찰의 수사 끝에 최씨는 “장씨와 함께 범행을 저질렀다”고 ‘자백’했다. 그러나 검찰로 송치된 두 사람은 경찰의 가혹행위에 따른 ‘허위 자백’이었다며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장씨는 “거꾸로 매단 채 겨자 섞은 물을 얼굴에 들이부었다”며 구체적인 고문 정황을 설명했지만, 검찰은 이 사실을 믿지 않았다. 이들은 재판에서도 일관되게 경찰의 가혹행위에 대해 진술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듬해 8월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두 사람은 당시 변호를 맡았던 문재인 대통령(당시 부산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장)과 함께 항소와 상소를 이어 갔지만 재판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1993년 4월 대법원은 이들에 대해 무기징역 선고를 확정했다. 문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해 “변호사 시절 겪었던 사건 중 가장 한이 되는 사건”이라고 회고했다. 시각장애 1급이던 장씨가 밤에 온통 돌밭이던 범행 장소에서 피해 남성과 쫓고 쫓는 식의 범행을 저질렀을 리 만무하다는 이유를 들었다. 두 사람은 모범수로 복역하다 2003년 광복절 기념 특사로 20년이 감형돼 2013년 출소했다. 이후 누명을 벗기 위해 서울행정법원 등에 세 차례나 행정심판을 요구했지만 법원은 이를 모두 기각했다. 그러다 2017년 5월 최씨와 장씨는 재심 전문 변호사인 박준영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재심을 청구할 수 있게 됐다.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 산하 대검 진상조사단도 재심에 힘을 실었다. ●강압수사 피해자 된 빈곤층·청소년 형사공판 재심 사건 중에는 낙동강변 살인 사건과 마찬가지로 장애인이나 빈곤층, 가출 청소년 등 사회적 약자가 수사기관의 강압 수사로 허위 자백을 한 사례를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영화로 널리 알려진 ‘약촌오거리 살인 사건’(2000)의 범인으로 지목됐던 최모씨도 당시 19세 청소년이었다.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 택시기사가 승객에게 피살되는 현장을 목격한 최씨는 경찰의 구타와 고문 끝에 허위 자백을 하게 됐고 1심에서 징역 15년형, 2심에서 감형을 위해 범행을 시인하면서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사건 발생 3년 후 진범이 체포됐지만 최씨는 만기 출소를 하고도 5년이 지난 2015년 6월에야 재심 개시 결정을 받게 됐다. 검찰의 항고에도 최씨는 이듬해 무죄 판결을 받았고, 진범은 2017년 1심에서 15년형을 선고받았다. ‘삼례 나라슈퍼 사건’(1999)도 마찬가지다. 전북 완주군 삼례읍의 나라슈퍼에 3인조 강도가 침입해 자고 있던 유모(당시 77세) 할머니를 살해한 사건의 범인으로 몰렸던 3명 중 1명은 정신지체 장애가 있었고, 2명은 당시 청소년이었다. 세 사람은 2015년 3월 재심을 청구했고 이듬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수원 노숙소녀 살인 사건’(2007)의 범인으로 지목됐다가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두 사람은 지적장애를 갖고 있었다. 앞서 언급된 주요 재심 사건들을 맡았던 박 변호사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처럼 힘 있는 사람들은 조사 후 조서 열람을 수십 시간씩 하지만 사회적 약자는 자신을 충분히 방어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박 변호사는 최근 맡게 된 화성 연쇄살인 8차 사건(1988)의 범인으로 검거돼 20년간 옥살이를 한 윤모씨 사건에서도 이러한 특징을 찾아낼 수 있다고 봤다. 당시 경찰이 소아마비 장애인인 윤씨를 불법적으로 체포, 감금해 구타와 가혹행위를 저질렀다는 것이다. 윤씨는 진범임을 인정하는 이춘재의 자백 이후인 지난해 11월 13일 법원에 정식으로 재심을 요청했다. ●재심 요건·절차 개선 두고 의견 분분 그러나 억울함을 호소하는 모두가 재심의 기회를 얻는 것은 아니다. 재심 절차는 2단계 심사로 이뤄지는데, 우선 재심을 해야 할 이유를 심사해 그 사건을 다시 심판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재심 개시 절차’가 있다. 여기서 재심 개시 결정이 내려져야만 사건을 다시 심판하는 ‘재심 심판 절차’가 진행된다. 화성 8차 사건 윤씨의 경우 재심 개시 절차가 진행 중이고, 최씨와 장씨는 재심 개시 결정이 내려져 재심 심판 절차를 앞둔 것이다. 대개는 재심 개시 절차에서 ‘기각’되는 경우가 많다. 대법원 ‘2019 사법연감’에 따르면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1심 형사공판에서 재심 청구를 기각 결정한 비율은 평균 64.9%였다. 2015년 56.9%에 그쳤던 기각률은 2018년 70.3%로 정점을 찍은 뒤 지난해 68.4%로 소폭 하락했다. 항소심의 재심 청구 기각률도 지난 5년간 평균 66.6%로 1심과 비슷하게 나타났다. 상고심의 경우엔 98%로 하급심보다 훨씬 높은 수치를 보였다. 법조계에서는 높은 기각률의 원인으로 ‘명백한 증거가 새로 발견돼야 한다’는 등의 엄격한 재심 요건과 절차를 꼽는다. 표창원 의원은 해당 조항을 완화하는 내용이 담긴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바 있다. 해당 개정안에는 법원이 청구일로부터 1년 이내에 재심 여부를 결정하고, 재심 개시 결정에 대한 즉시항고·재항고를 6개월 이내에 결정하도록 하는 내용도 담겼다. 이진국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재심을 할지 말지 결정하는 데 3년이 걸린 사건도 있었다”며 “청구인을 고려하면 더욱 신속한 결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다만 박 변호사는 “재심 사건을 심리하는 재판부의 업무 부담을 고려하지 않고 재심 청구 사건의 결정 기간을 제한하면 재심 청구인에게 오히려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며 우려를 내비쳤다. 민나리 기자 mnin1082@seoul.co.kr
  • 잔혹하도록 달콤한 유혹…모를수록 놀라운 여정

    잔혹하도록 달콤한 유혹…모를수록 놀라운 여정

    “Leave the gun, take the cannoli (총은 놔두고 카놀리나 챙겨)”“부온 조르노! 퀘스토에 시칠리아.”(Buon giorno! Questo e sicilia, 안녕하십니까! 여기는 시칠리아입니다) 이탈리라 로마 테르미니역을 출발한 기차가 밤새 바다를 건너 시칠리아에 닿았을 때 열차에서는 이렇게 안내방송이 나왔다. 드디어 시칠리아였다. 시칠리아를 찾은 이유는 영화 ‘대부’ 때문이었다. 나는 배우 알 파치노와 로버트 드니로의 엄청난 팬이었다. 이들이 출연한 ‘대부’ 시리즈를 보며 언젠가 꼭 한번 시칠리아를 찾겠다는 열망을 가슴에 지닌 채 살아왔다. 드디어 그 꿈이 이뤄지는 순간이었다. 해체돼 배에 실린 기차는 메시나에 도착해 다시 조립되어 철로를 달린 후 시칠리아의 첫 목적지인 카타니아로 내려놓을 것이다. ●“마피아는 관광객들을 건드리지 않는다네.” 시칠리아 하면 많은 사람들이 마피아를 먼저 떠올리나 보다. 시칠리아로 여행을 가겠다고 했을 때 주위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말했다. “마피아를 조심해.” 그럴 만도 했다. 인터넷으로 시칠리아를 검색하면 마피아와 연관된 항목이 주르륵 올라온다. 실제로 시칠리아의 주도인 팔레르모는 이탈리아 최대 마피아 조직의 본부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로마에서 시칠리아로 가는 기차 안에서 옆 자리에 앉은 이탈리아 노인(멋진 감색 양복에 붉은 머플러를 길게 두르고 중절모를 쓴 그 역시 약간 마피아스러웠던 것 같다)에게 “요즘에도 시칠리아에서는 마피아가 길거리 총격전을 벌이기도 하나요?” 하고 물었다. 그는 웃음을 머금고 대답했다. “그렇지 않아요. 가끔씩 일어나긴 하는데 다 옛날 일이죠.” 그리고 덧붙였다. “마피아는 관광객들은 절대 건드리지 않는답니다. 안심하세요.” 고대 그리스의 식민도시가 건설되기도 했고 로마와 비잔틴제국, 아랍과 노르만족의 영향을 받아 왔던 시칠리아. ‘혹시 그리스에 온 게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고대 그리스의 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 사람들은 친절하고 음식도 맛있다. 20일 동안 시칠리아를 여행해 본 후 내린 결론은 유럽 어느 도시보다 친절한 사람들과 아름다운 풍경으로 가득한 곳이 바로 시칠리아라는 것. 2018년 12월의 국내 신문들은 “이탈리아 경찰이 현지시간 4일 시칠리아섬 팔레르모에서 대대적인 마피아 단속 작전을 펼쳐 마피아 고위급 조직원 46명을 체포했으며 우두머리인 80세 세티미노 미네오 등 거물급 조직원들을 조직범죄 연루와 갈취 등의 혐의로 붙잡았다”고 전했다. 아 참, 팔레르모 공항의 정식 명칭은 ‘팔코네와 보르셀리노 팔레르모 공항’이다. 이는 마피아 수사를 지휘하다 1992년에 테러로 사망한 두 판사의 이름을 붙인 것이다. 마피아와 시칠리아는 떼놓을 수는 없는 모양이다. 하지만 시칠리아를 여행하는 내내 그 흔한 소매치기 한 번 만나지 않았다. 기차에서 만난 노인의 말대로 마피아는 관광객들을 ‘건드리지’ 않는 것인가. 아무튼 영화사상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대부’ 시리즈는 이탈리아 장면을 팔레르모에서 촬영했다. ‘대부’는 이탈리아 시칠리아섬에서 부모와 가족을 모두 잃고 아홉 살 때 미국으로 건너가 고생 끝에 뉴욕 암흑가의 보스로 군림하는 마피아 두목 돈 콜레오네의 이야기다.●대문호 괴테가 사랑한 도시 팔레르모 마피아는 마피아고, 관광객들에게 팔레르모는 가슴 설레게 하는 도시다. 대문호 괴테는 그의 책 ‘이탈리아 여행기’에서 팔레르모를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고 극찬하며 “시칠리아를 보지 않고는 이탈리아를 보았다고 할 수 없다”고 했다. 소설가 김영하는 “시칠리아에는 어렸을 때부터 내가 생각해 오던 이탈리아가 있었다”고 썼다. 유럽과 아랍 양식이 어울린 건축물들, 유람선이 정박해 있는 항구, 크고 작은 성당으로 놓인 골목이 도시 곳곳에 가득하다. 팔레르모 여행의 출발점은 프레토리아 광장이다. 광장 주위로 스페인 바로크풍의 집들이 펼쳐진다. 광장 서쪽에 있는 노르만 왕궁은 꼭 찾아봐야 한다. 아랍풍의 천장과 비잔틴식 모자이크가 조화를 이룬 멋진 건물이다. 팔레르모 대성당은 1185년부터 짓기 시작해 약 600년에 걸쳐 건축됐다. 원래는 비잔티움 양식으로 짓기 시작했지만 워낙 오랜 기간에 걸쳐 지어졌기 때문에 여러 세대의 건축 양식을 보여 준다. 여행에서 가장 재미있는 구경거리는 단연 시장이다. 이 중 부치리아시장은 팔레르모에서 가장 유명하고, 시칠리아에서 가장 크다. 갖가지 해산물과 과일, 치즈, 농산물 등 없는 것이 없다. 우리나라의 5일장처럼 떠들썩하다. 팔레르모 사람들은 “만약 부치리아시장 바닥이 마른다면”이라는 말을 자주 쓰는데, 이 말은 “절대 그럴 일이 없다”는 뜻이다.●시칠리아의 자부심 카놀리와 파스타 팔레르모의 거리를 걷다 보면 손에 길쭉한 과자를 들고 있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시칠리아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디저트인 ‘카놀리’다. 밀가루에 와인을 넣어 반죽한 후 튜브 모양으로 얇게 돌돌 말아 튀긴 후 안에 부드러운 리코타 치즈를 채워 넣은 것이다. 시칠리아 사람들이 카놀리를 얼마나 좋아하는지는 ‘대부’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시리즈 3편에서 팔레르모 오페라극장에서 오페라를 감상하며 독이 든 카놀리를 먹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마피아가 등장한다. 그는 도저히 카놀리의 달콤한 유혹을 참을 수 없다는 듯 카놀리를 만지작거리다 한 입 크게 베어 문다. 그러고는 목을 잡고 의자에서 쓰러진다. 그의 발 밑에는 먹다 남은 카놀리가 부서져 있다. 카놀리 사랑을 더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장면이 있다. 배신자를 처단하러 외출하는 행동대장 클레멘자에게 아내가 카놀리를 사오라고 부탁한다. 적에게는 잔혹한 마피아이지만 가족에게는 누구보다 극진한 마피아답게 클레멘자는 카놀리부터 사놓는다. 마침내 조직의 배신자를 제거한 클레멘자는 부하에게 가장 먼저 이렇게 말한다. “총은 놔두고 카놀리나 챙겨.”(Leave the gun, take the cannoli) 긴박하고 심각한 상황 속에도 냉혹한 마피아가 카놀리만은 잊지 않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아마도 영화의 배경이 시칠리아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이왕 음식 이야기가 나왔으니 조금 더 이야기해 보자. 이탈리아 하면 파스타가 떠오르고 파스타 하면 이탈리아에서도 시칠리아다. 시칠리아는 서양에서 최초로 파스타를 전수받은 지역이다. 파스타의 시작은 국수인데, 히말라야산맥 북부 중앙아시아 지역의 유목 민족들이 처음 만들어 먹기 시작한 국수가 중국으로 이동하면서 음식으로 자리잡았고, 이 국수를 13세기 마르코 폴로가 중국을 여행하고 돌아가는 길에 가져가며 이것이 파스타로 ‘변이’를 일으켰다고 한다. 물론 이는 가설에 불과하다. 중세사학자 몬타나리가 쓴 ‘유럽의 음식문화’(새물결·2001)를 보면 생 파스타는 고대부터 지중해 연안, 중국 등에 널리 알려졌으나, 마른 파스타는 근대에 사막을 이동하는 이슬람인들이 발명했다고 한다. 사막을 횡단하는 오랜 기간 운반과 저장이 쉬운 음식이 필요했고 그러던 차에 건조 파스타를 개발해 낸 것이다. 밀가루와 물, 소금을 넣고 만든 반죽을 얇게 밀어서 건조시키는 이 방법은 11세기경 이슬람 상인들이 시칠리아로 건너오면서 이탈리아에도 본격적으로 전해졌다. 시칠리아 파스타는 해산물과 채소를 많이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목축이 발달하지 않아 육류와 치즈는 귀하지만 해산물은 풍부한 섬이어서 그렇다. 파스타 중에서도 정어리의 일종인 사르데 파스타가 유명한데, 올리브 오일과 정어리, 소금으로 맛을 낸다. ‘쿠스쿠스’라는 아랍풍의 파스타도 많이 먹는다. 국수류가 아닌, 좁쌀처럼 생긴 것인데 밀가루로 만들기 때문에 파스타로 분류된다. 시칠리아를 여행하고 온 후 파스타에 대한 생각은 완전히 바뀌었다. 생크림에 면을 담아 주던 수준이었던 한국형 카르보나라는 이탈리아에 존재하지 않았다. 버터와 계란 노른자, 베이컨 약간, 후추와 소금을 뿌린 ‘뻑뻑한’ 카르보나라의 맛에 길들여지고 말았다.●우연히 닿은 18세기 도시 모디카 시칠리아는 한국인에게 다소 낯선 관광지다. 로마, 베네치아, 밀라노 같은 이탈리아 본토의 주요 도시는 배낭 여행과 패키지 여행의 단골 코스가 됐지만 시칠리아까지 가는 여행객은 드물다. 로마에서 기차를 타면 메시나에 닿는다. 그리고 메시나에서 1시간 정도를 가면 카타니아다. 카타니아는 시칠리아 제2의 도시. 기원전 8세기경 그리스인들이 세운 도시다. 카타니아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에트나 화산이다. 유럽에서 가장 큰 화산으로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카타니아에 갔다면 꼭 어시장에 들러 보기를 권한다. 이른 아침 찾아야 제대로 볼 수 있지만 오후에 가도 시장의 정취를 즐기기에 모자람이 없다. 참치와 조개, 새우 등 갖가지 싱싱한 해산물을 파는 시장은 활력으로 넘친다. 생선값을 흥정하는 이탈리아인을 보는 것만으로도 재미있다. 카타니아에서 며칠 머문 후 모디카로 향했다. 모디카는 시칠리아 남동부에 위치한 자그마한 도시다. 팔레르모와 타오르미나, 시라쿠사 등 시칠리아의 큰 도시에 비해 비교적 덜 알려져 있지만 꼭 한번쯤 찾아볼 만한 매력적인 도시다. 이탈리아 여행은 약간의 인내를 필요로 한다. 철도의 잦은 파업, 주먹구구식인 철도와 시외버스 시스템은 끊임없이 여행 계획을 수정하게 만든다. 모디카로 가는 여정 역시 그랬다. 원래 계획은 카타니아의 에트나 화산으로 출발하는 버스를 탈 예정이었지만, 버스정류장에 붙어 있는 버스 시간표가 엉망이었다. 정류장 앞의 바에 들어가 왜 버스가 오지 않냐고 물어보았지만 주인은 “30분 전에 떠났다”며 어깨만 으쓱할 뿐이었다. 아마 이런 뜻이었겠지. “이탈리아에선 원래 이래.” 어쩔 수 없었다. 커피를 마시며 어떻게 할까 고민해보는 수밖에. 멍하니 앉아 있는 동양의 여행자가 안쓰러웠는지 바 주인이 다가왔다. “모디카라는 곳에 가보는 게 어때?” 고개를 들자 그가 말을 이었다. “음… 모디카는 시칠리아의 숨겨진 명소라고 할까? 관광객으로 붐비는 팔레르모나 타오르미나, 아그리젠토보다는 훨씬 멋진 곳이지. 아마 18세기를 걷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거야.”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모디카행 버스가 들어왔다. 그는 얼른 타라는 눈짓을 보내왔고,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버스에 올랐다. 때론 일정에도 없던 여정이 여행을 풍성하게 만들어 주는 법이다. 그리고 2시간 후 바 주인의 말처럼 18세기의 중세도시를 걷고 있었다. 모디카는 BC 400년 무렵 시쿨리족이 건설했다고 한다. 12~17세기에는 매우 부유한 곳이었지만 1613년과 1693년 발생한 지진, 1833년의 홍수로 인해 파괴됐다. 하지만 모디카는 곧 도시를 재건했다. 모디카는 칼타기론, 밀리텔로발디카타니아, 노토, 파라졸로, 라구사, 시클리 등 히블라이아산 기슭에 위치한 이웃 8개 도시들과 함께 ‘발디노토 지역의 바로크 후기 마을’로 불린다. 지진과 홍수로 파괴된 이 도시들은 재건 사업을 하면서 파괴된 도시가 있던 자리나 그 근처에 세워졌는데, 이탈리아에서 시작해 17세기 전 유럽으로 퍼져 나간 바로크 양식이 절정을 이루었던 당시의 건축 양식을 고스란히 보여 준다. 이들 도시의 바로크 후기 모습은 지금까지도 잘 보존돼 2002년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다. 모디카의 옛 영화를 가장 잘 보여 주는 건물은 ‘산피에트로성당’과 ‘산조르조성당’이다. 산피에트로성당은 광장 가까이 있는 것으로 아직도 웅장한 18세기 중세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산조르조성당은 모디카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곳에 위치하는데 이곳에서 바라보는 모디카의 모습이 장관이다. 마치 레고 블록을 정교하게 맞춰놓은 듯한 도시의 모습에 입이 벌어진다. 피렌체, 베네치아, 로마와는 또 다른 이탈리아의 모습이다. 이탈리아에는 예전에 ‘사생활’이라는 말이 없었다고 한다. 지금 이탈리아 사람들이 쓰는 ‘프리바토’(Privato)라는 말은 영어 ‘프라이버시’(Privacy)에서 따온 말이다. 모디카의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집들을 내려다보고 있노라면 ‘프라이빗’이 없는 시칠리아 사람들의 생활을 이해할 수 있다. 이탈리아 사람들 삶의 특징 중 하나는 동네 사람들이 서로서로를 다 알고 지낸다는 것이다.●이탈리아 최고의 염전도시 트라파니 시칠리아를 여행한다면 시간을 내 트라파니에 가볼 것을 권한다. 섬 서북쪽에 위치한 트라파니는 시칠리아의 여느 도시들과는 사뭇 다른 풍광을 보여 준다. 이 도시들이 바로크풍의 건물들과 그리스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유적지로 가득한 반면 트라파니는 이 도시들에서는 전혀 느낄 수 없는 로맨틱한 풍경으로 가득하다. 그것은 끝없이 이어지는 광활한 염전과 염전 위에 서 있는 붉은 기와지붕을 얹은 풍차다. 트라파니로 떠나기 전 시칠리아 모디카에서 만난 미슐랭 요리사 주세페는 자신은 요리를 할 때 반드시 트라파니산 천일염을 사용한다고 했다. “소금이 음식 맛의 절반이지. 이탈리아에서 가장 질 좋은 소금은 오직 트라파니에서만 구할 수 있어. 파스타 역시 마찬가지야.” “한 가지 질문이 더 있어요. 맛있는 파스타를 만들려면 뭐가 가장 필요하죠?”라고 묻자 주세페가 말했다. “큰 냄비를 갖추는 것.” 이런, 신선한 재료도 아니고 좋은 밀가루도 아니고 고작 큰 냄비라니. 주세페는 이렇게 답하며 눈을 찡긋했다. “스파게티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국수 중 가장 딱딱해. 이를 제대로 삶기 위해선 기다란 스파게티가 통째로 담기는 냄비가 필요하지.”■여행수첩 인천에서 로마행 항공은 다양하다. 로마에선 국내선 항공편을 이용해 팔레르모나 카타니아로 간다. 시칠리아의 주요 도시까지 연결되는 항공편은 국영항공사인 알이탈리아 홈페이지(www.alitalia.com)에서 확인할 수 있다. 로마에서 열차로도 갈 수 있다. 이탈리아 국영철도 홈페이지(www.trenitalia.com)에서 시간표를 확인할 수 있다. 12시간 정도 걸리므로 침대칸을 이용하는 게 좋다. 시칠리아를 여행하는 루트는 크게 두 가지다. 섬 북부 왼쪽의 팔레르모에서 섬 왼쪽으로 돌면서 트라파니와 아그리젠토를 보고 로마나 나폴리로 귀환하는 것이 첫 번째다. 두 번째 방법은 섬 오른쪽으로 돌면서 카타니아, 시라쿠사, 라구사, 타오르미나를 여행하는 것. 되도록이면 한 방향으로 도는 것이 시간 낭비를 줄일 수 있다. 시칠리아는 지중해성 기후다. 겨울에도 낮에는 그다지 춥지 않다. 하지만 밤과 아침에는 기온이 뚝 떨어진다. 심한 일교차에 대비하는 것이 좋다.
  • 잔혹하도록 달콤한 유혹…모를수록 놀라운 여정

    잔혹하도록 달콤한 유혹…모를수록 놀라운 여정

    “Leave the gun, take the cannoli (총은 놔두고 카놀리나 챙겨)”“부온 조르노! 퀘스토에 시칠리아.”(Buon giorno! Questo e sicilia, 안녕하십니까! 여기는 시칠리아입니다) 이탈리라 로마 테르미니역을 출발한 기차가 밤새 바다를 건너 시칠리아에 닿았을 때 열차에서는 이렇게 안내방송이 나왔다. 드디어 시칠리아였다. 시칠리아를 찾은 이유는 영화 ‘대부’ 때문이었다. 나는 배우 알 파치노와 로버트 드니로의 엄청난 팬이었다. 이들이 출연한 ‘대부’ 시리즈를 보며 언젠가 꼭 한번 시칠리아를 찾겠다는 열망을 가슴에 지닌 채 살아왔다. 드디어 그 꿈이 이뤄지는 순간이었다. 해체돼 배에 실린 기차는 메시나에 도착해 다시 조립되어 철로를 달린 후 시칠리아의 첫 목적지인 카타니아로 내려놓을 것이다.●“마피아는 관광객들을 건드리지 않는다네.” 시칠리아 하면 많은 사람들이 마피아를 먼저 떠올리나 보다. 시칠리아로 여행을 가겠다고 했을 때 주위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말했다. “마피아를 조심해.” 그럴 만도 했다. 인터넷으로 시칠리아를 검색하면 마피아와 연관된 항목이 주르륵 올라온다. 실제로 시칠리아의 주도인 팔레르모는 이탈리아 최대 마피아 조직의 본부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로마에서 시칠리아로 가는 기차 안에서 옆 자리에 앉은 이탈리아 노인(멋진 감색 양복에 붉은 머플러를 길게 두르고 중절모를 쓴 그 역시 약간 마피아스러웠던 것 같다)에게 “요즘에도 시칠리아에서는 마피아가 길거리 총격전을 벌이기도 하나요?” 하고 물었다. 그는 웃음을 머금고 대답했다. “그렇지 않아요. 가끔씩 일어나긴 하는데 다 옛날 일이죠.” 그리고 덧붙였다. “마피아는 관광객들은 절대 건드리지 않는답니다. 안심하세요.” 고대 그리스의 식민도시가 건설되기도 했고 로마와 비잔틴제국, 아랍과 노르만족의 영향을 받아 왔던 시칠리아. ‘혹시 그리스에 온 게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고대 그리스의 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 사람들은 친절하고 음식도 맛있다. 20일 동안 시칠리아를 여행해 본 후 내린 결론은 유럽 어느 도시보다 친절한 사람들과 아름다운 풍경으로 가득한 곳이 바로 시칠리아라는 것. 2018년 12월의 국내 신문들은 “이탈리아 경찰이 현지시간 4일 시칠리아섬 팔레르모에서 대대적인 마피아 단속 작전을 펼쳐 마피아 고위급 조직원 46명을 체포했으며 우두머리인 80세 세티미노 미네오 등 거물급 조직원들을 조직범죄 연루와 갈취 등의 혐의로 붙잡았다”고 전했다. 아 참, 팔레르모 공항의 정식 명칭은 ‘팔코네와 보르셀리노 팔레르모 공항’이다. 이는 마피아 수사를 지휘하다 1992년에 테러로 사망한 두 판사의 이름을 붙인 것이다. 마피아와 시칠리아는 떼놓을 수는 없는 모양이다. 하지만 시칠리아를 여행하는 내내 그 흔한 소매치기 한 번 만나지 않았다. 기차에서 만난 노인의 말대로 마피아는 관광객들을 ‘건드리지’ 않는 것인가. 아무튼 영화사상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대부’ 시리즈는 이탈리아 장면을 팔레르모에서 촬영했다. ‘대부’는 이탈리아 시칠리아섬에서 부모와 가족을 모두 잃고 아홉 살 때 미국으로 건너가 고생 끝에 뉴욕 암흑가의 보스로 군림하는 마피아 두목 돈 콜레오네의 이야기다.●대문호 괴테가 사랑한 도시 팔레르모 마피아는 마피아고, 관광객들에게 팔레르모는 가슴 설레게 하는 도시다. 대문호 괴테는 그의 책 ‘이탈리아 여행기’에서 팔레르모를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고 극찬하며 “시칠리아를 보지 않고는 이탈리아를 보았다고 할 수 없다”고 했다. 소설가 김영하는 “시칠리아에는 어렸을 때부터 내가 생각해 오던 이탈리아가 있었다”고 썼다. 유럽과 아랍 양식이 어울린 건축물들, 유람선이 정박해 있는 항구, 크고 작은 성당으로 놓인 골목이 도시 곳곳에 가득하다. 팔레르모 여행의 출발점은 프레토리아 광장이다. 광장 주위로 스페인 바로크풍의 집들이 펼쳐진다. 광장 서쪽에 있는 노르만 왕궁은 꼭 찾아봐야 한다. 아랍풍의 천장과 비잔틴식 모자이크가 조화를 이룬 멋진 건물이다. 팔레르모 대성당은 1185년부터 짓기 시작해 약 600년에 걸쳐 건축됐다. 원래는 비잔티움 양식으로 짓기 시작했지만 워낙 오랜 기간에 걸쳐 지어졌기 때문에 여러 세대의 건축 양식을 보여 준다. 여행에서 가장 재미있는 구경거리는 단연 시장이다. 이 중 부치리아시장은 팔레르모에서 가장 유명하고, 시칠리아에서 가장 크다. 갖가지 해산물과 과일, 치즈, 농산물 등 없는 것이 없다. 우리나라의 5일장처럼 떠들썩하다. 팔레르모 사람들은 “만약 부치리아시장 바닥이 마른다면”이라는 말을 자주 쓰는데, 이 말은 “절대 그럴 일이 없다”는 뜻이다.●시칠리아의 자부심 카놀리와 파스타 팔레르모의 거리를 걷다 보면 손에 길쭉한 과자를 들고 있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시칠리아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디저트인 ‘카놀리’다. 밀가루에 와인을 넣어 반죽해 튜브 모양으로 얇게 돌돌 말아 튀긴 후 안에 부드러운 리코타 치즈를 채워 넣은 것이다. 시칠리아 사람들이 카놀리를 얼마나 좋아하는지는 ‘대부’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시리즈 3편에서 팔레르모 오페라극장에서 오페라를 감상하며 독이 든 카놀리를 먹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마피아가 등장한다. 그는 도저히 카놀리의 달콤한 유혹을 참을 수 없다는 듯 카놀리를 만지작거리다 한 입 크게 베어 문다. 그러고는 목을 잡고 의자에서 쓰러진다. 그의 발 밑에는 먹다 남은 카놀리가 부서져 있다. 카놀리 사랑을 더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장면이 있다. 배신자를 처단하러 외출하는 행동대장 클레멘자에게 아내가 카놀리를 사오라고 부탁한다. 적에게는 잔혹한 마피아이지만 가족에게는 누구보다 극진한 마피아답게 클레멘자는 카놀리부터 사놓는다. 마침내 조직의 배신자를 제거한 클레멘자는 부하에게 가장 먼저 이렇게 말한다. “총은 놔두고 카놀리나 챙겨.”(Leave the gun, take the cannoli) 긴박하고 심각한 상황 속에도 냉혹한 마피아가 카놀리만은 잊지 않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아마도 영화의 배경이 시칠리아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이왕 음식 이야기가 나왔으니 조금 더 이야기해 보자. 이탈리아 하면 파스타가 떠오르고 파스타 하면 이탈리아에서도 시칠리아다. 시칠리아는 서양에서 최초로 파스타를 전수받은 지역이다. 파스타의 시작은 국수인데, 히말라야산맥 북부 중앙아시아 지역의 유목 민족들이 처음 만들어 먹기 시작한 국수가 중국으로 이동하면서 음식으로 자리잡았고, 이 국수를 13세기 마르코 폴로가 중국을 여행하고 돌아가는 길에 가져가며 이것이 파스타로 ‘변이’를 일으켰다고 한다.물론 이는 가설에 불과하다. 중세사학자 몬타나리가 쓴 ‘유럽의 음식문화’(새물결·2001)를 보면 생 파스타는 고대부터 지중해 연안, 중국 등에 널리 알려졌으나, 마른 파스타는 근대에 사막을 이동하는 이슬람인들이 발명했다고 한다. 사막을 횡단하는 오랜 기간 운반과 저장이 쉬운 음식이 필요했고 그러던 차에 건조 파스타를 개발해 낸 것이다. 밀가루와 물, 소금을 넣고 만든 반죽을 얇게 밀어서 건조시키는 이 방법은 11세기경 이슬람 상인들이 시칠리아로 건너오면서 이탈리아에도 본격적으로 전해졌다. 시칠리아 파스타는 해산물과 채소를 많이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목축이 발달하지 않아 육류와 치즈는 귀하지만 해산물은 풍부한 섬이어서 그렇다. 파스타 중에서도 정어리의 일종인 사르데 파스타가 유명한데, 올리브 오일과 정어리, 소금으로 맛을 낸다. ‘쿠스쿠스’라는 아랍풍의 파스타도 많이 먹는다. 국수류가 아닌, 좁쌀처럼 생긴 것인데 밀가루로 만들기 때문에 파스타로 분류된다. 시칠리아를 여행하고 온 후 파스타에 대한 생각은 완전히 바뀌었다. 생크림에 면을 담아 주던 수준이었던 한국형 카르보나라는 이탈리아에 존재하지 않았다. 버터와 계란 노른자, 베이컨 약간, 후추와 소금을 뿌린 ‘뻑뻑한’ 카르보나라의 맛에 길들여지고 말았다.●우연히 닿은 18세기 도시 모디카 시칠리아는 한국인에게 다소 낯선 관광지다. 로마, 베네치아, 밀라노 같은 이탈리아 본토의 주요 도시는 배낭 여행과 패키지 여행의 단골 코스가 됐지만 시칠리아까지 가는 여행객은 드물다. 로마에서 기차를 타면 메시나에 닿는다. 그리고 메시나에서 1시간 정도를 가면 카타니아다. 카타니아는 시칠리아 제2의 도시. 기원전 8세기경 그리스인들이 세운 도시다. 카타니아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에트나 화산이다. 유럽에서 가장 큰 화산으로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카타니아에 갔다면 꼭 어시장에 들러 보기를 권한다. 이른 아침 찾아야 제대로 볼 수 있지만 오후에 가도 시장의 정취를 즐기기에 모자람이 없다. 참치와 조개, 새우 등 갖가지 싱싱한 해산물을 파는 시장은 활력으로 넘친다. 생선값을 흥정하는 이탈리아인을 보는 것만으로도 재미있다. 카타니아에서 며칠 머문 후 모디카로 향했다. 모디카는 시칠리아 남동부에 위치한 자그마한 도시다. 팔레르모와 타오르미나, 시라쿠사 등 시칠리아의 큰 도시에 비해 비교적 덜 알려져 있지만 꼭 한번쯤 찾아볼 만한 매력적인 도시다. 이탈리아 여행은 약간의 인내를 필요로 한다. 철도의 잦은 파업, 주먹구구식인 철도와 시외버스 시스템은 끊임없이 여행 계획을 수정하게 만든다. 모디카로 가는 여정 역시 그랬다. 원래 계획은 카타니아의 에트나 화산으로 출발하는 버스를 탈 예정이었지만, 버스정류장에 붙어 있는 버스 시간표가 엉망이었다. 정류장 앞의 바에 들어가 왜 버스가 오지 않냐고 물어보았지만 주인은 “30분 전에 떠났다”며 어깨만 으쓱할 뿐이었다. 아마 이런 뜻이었겠지. “이탈리아에선 원래 이래.” 어쩔 수 없었다. 커피를 마시며 어떻게 할까 고민해보는 수밖에. 멍하니 앉아 있는 동양의 여행자가 안쓰러웠는지 바 주인이 다가왔다. “모디카라는 곳에 가보는 게 어때?” 고개를 들자 그가 말을 이었다. “음… 모디카는 시칠리아의 숨겨진 명소라고 할까? 관광객으로 붐비는 팔레르모나 타오르미나, 아그리젠토보다는 훨씬 멋진 곳이지. 아마 18세기를 걷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거야.”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모디카행 버스가 들어왔다. 그는 얼른 타라는 눈짓을 보내왔고,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버스에 올랐다. 때론 일정에도 없던 여정이 여행을 풍성하게 만들어 주는 법이다. 그리고 2시간 후 바 주인의 말처럼 18세기의 중세도시를 걷고 있었다. 모디카는 BC 400년 무렵 시쿨리족이 건설했다고 한다. 12~17세기에는 매우 부유한 곳이었지만 1613년과 1693년 발생한 지진, 1833년의 홍수로 인해 파괴됐다. 하지만 모디카는 곧 도시를 재건했다. 모디카는 칼타기론, 밀리텔로발디카타니아, 노토, 파라졸로, 라구사, 시클리 등 히블라이아산 기슭에 위치한 이웃 8개 도시들과 함께 ‘발디노토 지역의 바로크 후기 마을’로 불린다. 지진과 홍수로 파괴된 이 도시들은 재건 사업을 하면서 파괴된 도시가 있던 자리나 그 근처에 세워졌는데, 이탈리아에서 시작해 17세기 전 유럽으로 퍼져 나간 바로크 양식이 절정을 이루었던 당시의 건축 양식을 고스란히 보여 준다. 이들 도시의 바로크 후기 모습은 지금까지도 잘 보존돼 2002년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다. 모디카의 옛 영화를 가장 잘 보여 주는 건물은 ‘산피에트로성당’과 ‘산조르조성당’이다. 산피에트로성당은 광장 가까이 있는 것으로 아직도 웅장한 18세기 중세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산조르조성당은 모디카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곳에 위치하는데 이곳에서 바라보는 모디카의 모습이 장관이다. 마치 레고 블록을 정교하게 맞춰놓은 듯한 도시의 모습에 입이 벌어진다. 피렌체, 베네치아, 로마와는 또 다른 이탈리아의 모습이다. 이탈리아에는 예전에 ‘사생활’이라는 말이 없었다고 한다. 지금 이탈리아 사람들이 쓰는 ‘프리바토’(Privato)라는 말은 영어 ‘프라이버시’(Privacy)에서 따온 말이다. 모디카의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집들을 내려다보고 있노라면 ‘프라이빗’이 없는 시칠리아 사람들의 생활을 이해할 수 있다. 이탈리아 사람들 삶의 특징 중 하나는 동네 사람들이 서로서로를 다 알고 지낸다는 것이다.●이탈리아 최고의 염전도시 트라파니 시칠리아를 여행한다면 시간을 내 트라파니에 가볼 것을 권한다. 섬 서북쪽에 위치한 트라파니는 시칠리아의 여느 도시들과는 사뭇 다른 풍광을 보여 준다. 이 도시들이 바로크풍의 건물들과 그리스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유적지로 가득한 반면 트라파니는 이 도시들에서는 전혀 느낄 수 없는 로맨틱한 풍경으로 가득하다. 그것은 끝없이 이어지는 광활한 염전과 염전 위에 서 있는 붉은 기와지붕을 얹은 풍차다. 트라파니로 떠나기 전 시칠리아 모디카에서 만난 미슐랭 요리사 주세페는 자신은 요리를 할 때 반드시 트라파니산 천일염을 사용한다고 했다. “소금이 음식 맛의 절반이지. 이탈리아에서 가장 질 좋은 소금은 오직 트라파니에서만 구할 수 있어. 파스타 역시 마찬가지야.” “한 가지 질문이 더 있어요. 맛있는 파스타를 만들려면 뭐가 가장 필요하죠?”라고 묻자 주세페가 말했다. “큰 냄비를 갖추는 것.” 이런, 신선한 재료도 아니고 좋은 밀가루도 아니고 고작 큰 냄비라니. 주세페는 이렇게 답하며 눈을 찡긋했다. “스파게티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국수 중 가장 딱딱해. 이를 제대로 삶기 위해선 기다란 스파게티가 통째로 담기는 냄비가 필요하지.” ■여행수첩 인천에서 로마행 항공은 다양하다. 로마에선 국내선 항공편을 이용해 팔레르모나 카타니아로 간다. 시칠리아의 주요 도시까지 연결되는 항공편은 국영항공사인 알이탈리아 홈페이지(www.alitalia.com)에서 확인할 수 있다. 로마에서 열차로도 갈 수 있다. 이탈리아 국영철도 홈페이지(www.trenitalia.com)에서 시간표를 확인할 수 있다. 12시간 정도 걸리므로 침대칸을 이용하는 게 좋다. 시칠리아를 여행하는 루트는 크게 두 가지다. 섬 북부 왼쪽의 팔레르모에서 섬 왼쪽으로 돌면서 트라파니와 아그리젠토를 보고 로마나 나폴리로 귀환하는 것이 첫 번째다. 두 번째 방법은 섬 오른쪽으로 돌면서 카타니아, 시라쿠사, 라구사, 타오르미나를 여행하는 것. 되도록이면 한 방향으로 도는 것이 시간 낭비를 줄일 수 있다. 시칠리아는 지중해성 기후다. 겨울에도 낮에는 그다지 춥지 않다. 하지만 밤과 아침에는 기온이 뚝 떨어진다. 심한 일교차에 대비하는 것이 좋다.
  • 호주 산불 피해주민, ‘관 크기’ 가마 속 들어가 목숨 건져

    호주 산불 피해주민, ‘관 크기’ 가마 속 들어가 목숨 건져

    호주 전역에서 산불로 인한 피해가 점차 커지고 있는 가운데 화마에 휩싸인 한 마을에서 한 남성이 미처 불길을 피하지 못해 자신이 만들어둔 가마 안에 들어가 목숨을 건진 기적 같은 사연이 세상에 공개됐다. ABC뉴스 등 현지매체에 따르면, 지난 21일 시드니 남서부 발모럴에서 67세 도예가 스티브 해리슨은 순식간에 덮쳐온 화마를 미처 피하지 못해 차선책으로 가마 안으로 들어가는 기지를 발휘해 살 수 있었다. 무려 30분간 가마 속에 있었다는 해리슨은 원래 트럭을 타고 마을을 빠져 나라려고 했으나 자택 정원은 물론 진입로와 도로까지도 불길에 휩싸여 있어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었다면서 그래서 플랜B를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그는 사실 가마는 내가 전날 직접 만들어 놨던 것이다. 시신을 넣는 관 만한 것으로 나 혼자 들어가기에 딱 좋은 크기였다고 회상했다. 또 그는 만일 자신이 가마 속으로 들어가지 않았다면 죽었을 가능성이 높다면서도 가마 안에는 소화기 1통과 양동이에 담긴 물, 음료수 병 그리고 방화용 담요를 함께 넣어놔서 혹시 모를 비상 상황에 어느 정도 대비한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다음 날, 글레디스 베레지클리언 뉴사우스웨일스주 주지사는 기자회견에서 이제 발모럴에는 거의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게 됐다고 밝혔다.400여명이 거주하던 발모럴에는 건물이 150여채 있었지만, 사흘 만에 또다시 발생한 이번 화재로 이제 폐허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발모럴의 기온은 지난 22일까지 다소 떨어지긴 했으나 다가오는 주말부터 다시 폭염에 휩싸일 전망이다. 한편 호주에서는 지금도 여러 지역에서 산불 피해가 발생하고 있으며, 지난 9월부터 지금까지 산불로 인해 숨진 사람은 최소 9명인 것으로 전해졌다. 사진=ABC 뉴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스물여덟인데 14조 재산 휴 그로스베너, 런던 타워 재개발로 입방아에

    스물여덟인데 14조 재산 휴 그로스베너, 런던 타워 재개발로 입방아에

    이 훈훈한 외모의 청년은 스물여덟 살인데 영국에서 세 번째 부자다. 웨스트민스터 7대 공작 휴 그로스베너다. 외모까지 갖춰 일등 신랑감으로 손꼽히는데 2016년 작위를 승계한 뒤 좀처럼 대중 앞에 나타나지 않고 은인자중하고 있다. 그런데 그와 그로스베너 그룹이 런던에서도 가장 가난한 이들이 모여 사는 런던 타워 부근을 재개발할 계획을 세우고 있어 비판의 도마 위에 올랐다고 블룸버그 통신이 10일(이하 현지시간) 전했다. 제러미 코빈 노동당 당수는 지난 10월 영국의 억만장자들을 싸잡아 공격하며 공작을 “사기꾼 지주”라고 표현했다. 런던 타워 부근의 막대한 토지를 소유한 그로스베너 그룹은 12일 총선 결과에도 상당한 영향을 받는다. 보리스 존슨 총리가 이끄는 보수당이 승리하면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에 속도가 붙어 런던의 오래된 재산을 처분하는 일정도 앞당겨진다. 지난 8일 영국 신문들의 설문조사 결과는 보수당이 상당한 폭으로 앞선다는 예상을 내놓았다. 그러나 만약 노동당이 이겨 정부를 구성하게 되면 이 집안의 재산은 실제 위협에 맞닥뜨린다. 코빈은 부자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걷고 지주들의 재산권을 제한하며 그로스베너 가문과 같은 왕실 피붙이들의 재산을 신탁재단이 공시하게 하는 방안 등을 공약하고 있다. 그로스베너 가문은 노동당 정부의 가장 큰 타깃이 되고 있지만 전쟁과 정치적 격변의 와중에 어떤 역할을 했느냐를 둘러싼 논쟁에도 휩싸여 있다. 1066년 노르망디에서 잉글랜드를 침공한 정복왕 윌리엄의 친척들로 뿌리가 올라가기 때문이다. 이 가문의 초기 부는 탄광과 광물로 축적됐지만, 현대의 재산은 17세기 결혼에 터잡은 것이다. 1대 공작 토머스 그로스베너는 12세 신부를 데려오면서 그녀 부모로부터 지참금으로 런던 서부 500에이커(2.02㎢)의 습지와 과수원을 받아낸 것이 든든한 밑천이 됐다. 이곳이 지금 런던에서도 최고의 명품 가게들과 아트갤러리, 헤지펀드 사무실이 늘어선 메이페어와 벨그라비아로 떠오르는 명소로 자리잡았다. 그로브베너 그룹은 전세계 60개 도시로 부동산 투자를 넓혔고, 지난해 말까지 123억 파운드의 자산으로 키웠다. 하지만 여전히 핵심은 런던에 있다. 휴는 아버지 제럴드가 심장마비로 예순넷에 세상을 떠나자 이 많은 재산을 물려받았다. 유언장에 따르면 6대 공작인 제럴드는 빚 등을 제하고 6억 1600만 파운드를 그에게 물려주고, 세 딸에겐 그로스브너 가족 신탁재산을 통해 추가 수입이 있을 수 있다며 2만 파운드씩만 물려줬다. 제럴드의 총기와 낚시 장비와 차들도 휴에게 물림됐다. 영국 법은 아들에게 절대 유리한 상속 제도를 자랑한다. 블룸버그의 억만장자 지수에 따르면 휴의 개인 재산은 놀라지 마시라, 118억 달러(약 14조원)다. 런던에서도 가장 값비싼 동네 가운데 하나인 벨그라비아의 슬로안 스퀘어에서 몇 블록만 가면 되는 곳에 있는 허름한 아파트 건물을 허물고 새로운 점포와 레스토랑 등 주상복합으로 재건축하면 훨씬 수지가 맞다고 그로스브너 그룹은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시의회의 도움으로 임대료를 내고 이곳에 거주하는 이들은 2023년이 되면 임대차 계약이 만료돼 이곳을 떠날 때까지 재개발을 멈춰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노동당 정치인들까지 가세해 반대 운동에 힘이 실리자 20만명 넘는 이들이 온라인 청원에 가세했다. 지난해에도 그로스베너 그룹이 런던 남동부 버몬세이에 1300 세대를 건축하겠다고 제안한 것도 집을 살 여력이 없는 노동자들을 너무 수입이 많아 사회적 주거 자격을 갖추지 못한 이들로 바꾸겠다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이다. 그 지역의 노동당 지방 조직은 지난 2월 이런 계획을 거부하고 영세 가정들을 집밖으로 내모는 처사라고 비판했다. 이 그룹은 런던 시정부에 새로 신청서를 제출해 연말까지 공청회를 열어 여론을 수렴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계획이 관철되더라도 웨스트민스터 공작과 그의 왕국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남아 있을 것이다. 납세 정의 네트워크의 존 크리스텐센 의장은 “막대한 부와 권력이 영국에는 집중돼 있으며 실제로 견제받지도 않는다. 소수의 엄청난 부자와 파워 엘리트와 나머지 사람들로 나라가 쪼개져 있다. 그리고 모든 조세체계는 엘리트가 아닌 사람들 것을 가져다가 있는 자들의 탈세를 메우는 데 쓰고 있다. 완전히 뒤틀렸다”고 개탄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에티오피아서 고대 악숨 왕국에 속한 ‘잃어버린 도시’ 발견

    에티오피아서 고대 악숨 왕국에 속한 ‘잃어버린 도시’ 발견

    에티오피아에서 기원전 8세기부터 기원후 7세기까지 사람들이 거주한 고대 도시 유적이 발견됐다. 미국 존스홉킨스대 마이클 해로어 박사가 이끄는 국제 연구팀은 에티오피아 북부 티그레이주(州) 예하 인근 지역에서 고대 악숨 왕국의 한 도시를 발견했다고 10일 밝혔다.‘베타 사마티’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 도시는 기원전 2세기부터 기원후 9세기까지 동아프리카와 일부 아라비아 지역을 지배한 악숨 왕국에 속했다. 해상 무역로인 홍해 일부를 끼고 있던 악숨 왕국은 당시 로마와 페르시아 그리고 중국(한나라)과 함께 4대 강대국으로 꼽혔다. 실제로 악숨 곳곳에는 지금도 오벨리크스로 불리는 거대 돌기둥 수백 개가 남아있지만, 이 왕국이 어떻게 번영을 누렸는지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다. 악숨 왕국 이전 시대에도 문명 사회가 존재했지만, 그 이름은 알 수 없다. 그런데 이런 초기 문명이 에티오피아 북부 예하 지역을 중심으로 번영했을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연구팀은 그 주변 지역을 조사했었다고 밝혔다.이들은 지역 주민들과 논의를 마친 뒤 2011년부터 2016년까지 마을 인근에 있는 ‘텔’이라고 불리는 언덕을 발굴했고, 거기서 각종 건물의 잔해인 격자무늬의 석벽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해로어 박사는 “이런 점이 에티오피아가 위대한 이유”라면서 “그리스와 로마에서는 이미 많은 지역에서 발굴 조사가 이뤄져 고대 도시가 발견되는 사례가 별로 없다”고 말했다. 에티오피아의 티그리냐어로 청중의 집이라는 뜻을 가진 베타 사마티는 방사성 탄소연대 측정에서 기원전 771년부터 기원후 645년까지 약 1400년 동안 번성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이 도시가 악숨 이전 시대부터 존재했으며 악숨 왕국이 세워져 발전하는 동안에도 사람들이 계속해서 거주했음을 뜻한다. 특히 도시에는 집이나 일터 외에도 로마의 영향으로 지어진 ‘바실리카’라는 건축물의 잔해가 있다.원래 악숨 왕국은 오늘날 예멘에 있던 사바 왕국의 영향을 받아 다신교였지만, 기원후 4세기 에자나 왕이 기독교로 개종했으므로, 바실리카는 초기 기독교 교회로 지어졌을 가능성이 있다. 심지어 연구팀은 이를 입증하듯 기독교 십자가가 새겨진 석재 팬던트 유물도 발견했다.이뿐만 아니라 바실리카에서는 로마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금박으로 덮인 구리 합금 반지도 발견됐다. 반지에는 월계수와 황소 머리 문양이 새겨진 홍옥수로 불리는 붉은 보석이 박혀 있는데 이는 악숨의 통치자들이 로마의 장인들을 데려와 악숨 문화에 맞게 로마식 디자인을 채택했다는 가능성을 제기한다. 이밖에도 건물 잔해에서는 청동으로 만든 동전과 토우, 주로 포도주와 올리브유를 보관하는 데 쓰이는 앰포라로 불리는 토기 등 많은 유물이 발견됐다. 이에 대해 해로어 박사는 “우리가 발견한 바실리카는 매우 중요하다. 알려진 다른 4세기 바실리카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오래 전 발견됐고 일부는 많은 유물이나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은 채 단지 발견되기만 했다”고 설명했다. 자세한 연구 결과는 영국 고고학 학술지 ‘앤티쿼티’(Antiquity) 10일자에 실렸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