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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1세기로 가는 길(정근모 과학평론)

    ◎과학기술 투자는 미래를 보장한다/경제활동의 기본변수·선진화의 지름길 재인식을 과학기술이 국가경쟁력제고와 사회발전에 중요하다는 것은 누누이 강조되고 있다.어려운 재정형편에서도 국가가 과학기술예산을 늘리고 기업이 기술개발사업을 확장하는 것은 미래를 대비한 슬기로운 투자라 하겠다.21세기의 한국이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려면 과학기술에 투자하고 과학기술능력을 길러야 한다.이러한 주장에는 학계뿐만 아니라 정부·기업·사회 모두의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고 이는 미래를 중비하자는 긍정적이요 진취적인 발상이 틀림없겠다. ○사회적 공감대 형성 우리가 한마디로 말하는 「과학기술」은 당초 「과학」과 「기술」이라는 독립개념들이었다.고대문명에서부터 기술은 인간의 생활을 이롭게 하고 인간의 능력을 증폭케 하는 수단으로서 발달되어 왔다.기술은 기능에서부터 시작되었으며 여기에 인간이 고안해 낸 도구와 방법이 복합발전되면서 문명은 급속히 기술에 의존하게 된 것이다.당초의 기술은 과학적인 이론 없이도 창안되었고 많은 경우시행착오 속에서 인간의 지혜로움에 의하여 고안,발명되었다 하겠다.반면 과학은 학문으로서 인식되었으며 사람들은 과학자로 인정받기 전에 우선 학자의 신분으로 과학을 공부해야 했던 것이다.또 사물을 관찰하고 귀납과 추리로서 새로운 원리를 발견함으로써 과학의 기초가 이루어졌다.따라서 대부분의 경우 오늘날의 과학기술문명이전에는 과학과 기술이 별도로 발전되어 왔다고 해도 지나친말은 아니다. 현대과학기술문명의 싹은 인간과 자연에 대한 실사적인 관찰과 독자적인 이론의 가치관을 도입한 16세기 문예부흥에서 찾아 볼 수 있다.문예부흥에서 시작된 인식론의 전환은 지성의 시대인 17세기에 들어와 결정적 인과론의 확립과 더불어 과학적 사고에서 물리적 자연관을 크게 발전시켰다. 18세기의 혁명적인 화학개발과 19세기의 기계혁명으로 시작된 산업혁명은 인류역사상 획기적인 사건이었고 그 영향은 아직도 증폭되어가고 있다. ○「과」·「기」는 동일개념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기술이 과학적으로 설명되기 시작하였으며 과학과기술은 「과힉기술」로서의 발전과정을 밟게 된다는 것이다.과학적으로 설명된 기술은 체계적으로 개선될 수 있었으며 이에따라 기능으로서의 기술은 지적인 내용이 중요한 기술에 의해 압도되기 시작한 것이다.기술이 연구활동의 대상이 되었고 학문적인 뒷받침을 받게 된 기술발전은 획기적인 도약이 가능해진 것이다.과학기술은 과학과 기술로 양분된 개념이라기보다는 연계된 하나의 개념으로서 그 의미가 커지게 된 것이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과학은 새로운 경지를 열기 시작하였다.전자기학및 양자역학의 발전과 상대성원리와 불확정성원리의 발견은 확률론적 인과론을 학문적으로 정립케 했을 뿐 아니라 인간으로 하여금 원자세계와 우주세계를 동시에 탐색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하여 과학기술세계의 획기적인 영역확대를 가져온 것이다.더 나아가 질량과 에너지의 동등성 발견은 원자력의 실용가능성을 예시해 주었고 심층적인 물성구조의 구체적인 이해는 전자혁명,소재혁명을 유도했던 것이다.20세기는 과학기술문명의 발전을 본격화하였으며 우리는 문자 그대로 과학기술사회에 살게 된 것이다. 사회활동의 기본요소로서 과학기술의 역할은 극대화되고 있다.1950년대만 하더라도 경제활동에 있어서 과학기술은 자본과 자원 및 노동에 이어 잉여인자(ResidualFactor)에 불과했었다.60년대와 70년대를 지내면서 과학기술은 잉여인자가 아니라 경제활동의 기본변수로서 뚜렷하게 작용하기 시작했고 경제활동에 있어서 과학기술의 공헌도는 80년대엔 80%에 이르렀던 것이다.일부 첨단산업에선 과학기술의 역할이 압도적이기 때문에 과학기술 자체가 산업이라는 개념이 성립되고 있다. 과거에 볼 수 있었던 기술선도 과학적 설명이 아니라 「과학선도 기술개발」이 거의 모든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으며 이같은 기술개발에 의한 새로운 산업의 창출이 산업발전의 주종을 이루게 되었다.이제 우리는 신기술개발에 의한 첨단산업들을 과학산업으로 부르게 됐으며 과학산업은 바로 두뇌산업인 것이다.과학산업의 부가가치는 월등할 뿐만 아니라 재래산업의 효율을 획기적으로 제고시키기 때문에 모든 선진국들은 과학선도 신기술개발과 신기술개발에 의한 첨단과학산업개발에 인력과 재원을 투입하는 것이다.과학기술의 국가자원 투입률은 바로 미래국력의 척도가 된다는 결론을 얻게 된다. ○새 세기국력의 척도 21세기의 과학기술은 이러한 역사적 배경속에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미래학자들은 모두 21세기 과학기술의 발전형태와 파급효과에 깊은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다.21세기 과학기술을 향하여 도전할 때에 우리는 의례적인 방법론과 총괄적인 의욕만이 아니라 역사적인 흐름을 인식하고 구체적인 과학기술발전특성의 분석에 따른 전문적인 대응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 경제수사 전문 이명재부장검사/미로 해쳐낸 서울지검특수부장

    ◎한때 행원생활… 금융사고해결 주특기/이­장 어음사기·명성사건등 맡아 처리 정보사부지사기사건의 수사팀장으로 검사 8명을 이끌고 사건을 깔끔하게 처리한 서울지검 특수1부 이명재부장검사(49)는 17년동안의 검사생활에서 특히 각종 경제사건에서 출중한 능력을 발휘한 경제수사통. 경북 영주출신으로 경북고교와 서울법대를 졸업한 이부장검사는 27세때인 지난 70년 제11회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72년 사법연수원을 1기로 수료한뒤 군법무관을 거쳐 검사생활을 시작했다. 대학을 졸업한 뒤 한국은행에 입사,3년동안 은행원 생활을 하는 바람에 대학동기들보다 사시합격이 늦었으나 11회 가운데서는 김경한서울지검공안1부장,제갈륭우 대검중앙수사부1과장등과 함께 수사요직을 두루거친 선두주자이다. 대검검찰연구관으로 재직할 때는 이철희·장영자씨의 거액어음사기사건과 영동진흥개발사건,명성사건 등 굵직한 경제사건들을 거의 모두 맡아 빼어난 수사솜씨를 발휘했으며 중앙수사부 3과장으로 자리를 옮겨서는 「5공비리」수사팀으로서 전경환씨의 새마을비리사건을 파헤치고 이학봉전의원을 직권남용혐의로 구속했다. 지난 90년 검찰인사에서 서울지검특수1부장으로 영전한 이부장검사는 서울대 음대와 이화여대 무용학과등의 입시부정사건및 현대상선탈세사건,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뇌물감정의혹사건 등 큰 사건을 처리해 전형적인 수사검사로서의 경력을 쌓았다. 온화한 성품의 소유자이면서도 수사에는 빈틈이 없어 검찰수뇌부로부터도 남다른 신뢰를 받고 있는 이부장검사는 한양여전 산업디자인학과 유근향교수(47)와의 사이에 2남1녀를 두고 있다.취미는 독서.
  • 5·18시민상 수상자 발표(단신패트롤)

    ◇5·18 광주민중항쟁 유족회(회장 윤석봉)는 6일 제2회 5·18 시민상 수상자로 고 김종태씨(80년 사망 당시 22세)와 고 송광영씨(85년 〃27세),이소임씨(38·여)등 3명을 선정,발표했다. 시상식은 오는 18일 상오 5·18 제12주기 추모제가 열리는 광주시 북구 망월동 5·18묘역에서 있을 예정. 수상자로 선정된 김씨(58년생·부산출신)는 근로자로 생활하던 80년 6월 9일 서울 이화여대 정문앞에서 「노동3권보장」「광주학살원흉처단」등의 구호를 외치며 분신사망했다. 또 송씨(58년생·광주출신)는 서울 경신중을 졸업한후 검정고시를 거쳐 84년 경원대 법학과에 입학,85년 9월 17일 군사독재정권과 광주학살에 항의해 분신,같은해 10월 21일 사망했으며 이씨는 80년 5·18 당시 부상당해 정신장애와 반실불구로 12년간 병상생활을 해온 시동생 정방남씨(32,5·18부상자회원)를 간호해 왔다.
  • 27세 최연소 경정/서울 조성훈 형사지도관

    ◎경찰대 출신으론 88년에 첫 사시합격/판검사·고시특채 외면… 일선근무 고수 경찰대학 2기졸업생이 26일 경찰사상 최연소 경정으로 승진했다. 지난 86년 경찰대를 졸업한 서울 경찰청 강력과 형사지도관 조성훈경정(27)이다. 일선 경찰서로 말하면 과장급인 조경정은 지난 86년 경찰대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사법고시에 합격,경감으로 특진한뒤 휴직,2년동안 사법연수원과정을 마쳐 판사나 검사로 임용될 수도 있었으나 오직 한길 경찰로 되돌아와 후배들의 귀감이 됐다.게다가 고시출신 자격으로 특채형식을 밟으면 곧바로 경정이 될 수 있었는데도 원래대로 일반경찰신분으로 복직,27세이하는 경정승진을 금지하고 있는 경찰인사규정의 적용을 받아 4년동안 경감으로 지내는 불이익도 감수했다. 직책 또한 남들이 힘들다고 기피하고 있는 일선 전투경찰 기동중대장으로 근무해오다 지난1월 승진후보자로 현재 자리로 옮겨 26일 정식으로 경정에 승진했다. 이같은 승진상의 불이익과 격무에 시달리는 근무조건에도 불구하고 경찰에 복귀한데 대해 조경정은 『세평에 흔들리지 말고 명예를 지키는 경찰이 되라는 아버님의 유언이 큰 힘이 됐다』면서 『경찰대 출신이 경찰의 길을 걷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니냐』고 되물었다.
  • 37세 국졸 서적노점상/숭실대 수석졸업 영예(조약돌)

    ○…국민학교밖에 못나왔던 37세의 서적노점상이 고입·대입검정고시를 거쳐 대학에서 수석졸업의 영광을 차지했다. 숭실대 사회사업학과 4학년 송원용씨(37).송씨는 대학4년동안 평균 4·5점만점에 4·15점을 얻어 올해 졸업생 1천7백45명 가운데 1등을 차지한것.
  • 일제,국교생도 정신대로 끌어가/서울영복·교동국교 학적부 기록 발견

    ◎12살짜리 5명등 10명 밝혀져/당시 일인 교사/“양심 가책 느껴 추적끝 확인”/본지와 전화통화서 생생히 증언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우리의 나이어린 국민학생들까지 이른바 정신대(정신대)로 동원했던 사실을 기록한 당시의 학적부가 14일 서울 영희국민학교(교장 안중복·강남구 일원동)에서 발견돼 충격을 주고 있다. 서울신문사는 이날 하오 이 학적부를 기록했던 은퇴한 일본인 여교사와 국제전화인터뷰를 통해 문제의 기록이 모두 사실임을 확인했으며 서울 교동국민학교 등에서 같은 종류의 기록을 더 찾아냈다. 영희국민학교가 보관하고 있는 문제의 학적부는 지난 70년 폐교한 방산국민교(당시 경성부 제2부 공립소학교)의 것으로 이학교 어린이들이 정신대로 출발한 날짜와 장소·동원경위·설득과정 등이 생활기록란에 상세히 기재돼 있었다. 이 학적부에 따르면 일본인 여교사 이케다씨(지전정지·68·일본생구시거주)가 담임을 맡았던 6학년4반 어린이 72명 가운데 1명이 44년 2월25일,5명은 같은해 7월2일 각각 일본 도야마(부산)와후지고시(불이월)등의 공장에 정신대로 파견된 것으로 기록돼 있으며 1명은 13살이고 나머지 5명은 모두 12살로 돼 있었다. 이들 어린이는 성적이 과목마다 10점 만점에 7∼9점 정도로 우수한 것으로 나타나 있으며 특히 도덕점수가 모두 높은 것이 특징이다. 또 대부분 『발육및 영양상태가 좋다.품행방정하고 성실하다』고 기재돼 있으며 『부모의 반대를 설득 또는 본인의 의지로 극복했거나 국가를 위해 본인이 희망,정신대에 참가했다』고 기술돼 있다. 당시 12살의 한 고등과 1학년생(현재의 중학교1학년)에 대해서는 『부모의 반대를 알고 있었으나 본인의 희망을 물어 정신대로 가는것을 허가하였다』는 기록과 함께 「소화 19년(44년)정신대 동원」이라고 적혀있다. 이들을 정신대로 보냈던 이케다씨는 제자들을 정신대로 보낸 죄책감으로 이들의 소재를 수소문해오던 끝에 지난해 방산국민교가 폐교한 뒤 그 학적부를 보관해온 영희국민교를 찾아 문제의 학적부를 찾아낸 것으로 밝혀졌다. 이케다씨는 이날 서울신문과의 국제전화에서 『지난해 8월 한국을 방문,수소문해 본 결과 당시 정신대로 끌려간 6명중 1명은 이미 사망했고,1명은 북한에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며 생존해 있는 3명 가운데 한 명을 만났다』고 밝혔다. 이케다씨는 또 『당시 방산국교에서는 내가 맡았던 반 외에도 고등과학생 14∼15명 가량이 정신대로 동원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당시 정신대로 동원된 제자 6명 가운데 5명은 해방되던 해 12월 내가 일본으로 귀국하기 전까지 무사히 귀환했으나 1명만 돌아오지 않아 항상 마음에 걸렸었는데 당시 귀국을 확인하지 못한 그 제자(김모씨)를 지난해에야 만났다』고 말했다. 이들에 대한 죄책감으로 귀국후 한국쪽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한채 독신으로 살아왔다는 그는 『조만간 정신대로 끌려갔던 제자들을 일본으로 초청,조금이라도 위로의 뜻을 전해주고 싶다』면서 『이들에게 사죄의 뜻을 진심으로 전하기 위해 현재 한글을 배우고 있다』고 밝혔다. 서울 종로구 경운동 교동국민학교(교장 유하림·63)문서창고에서도 이날 지난 44년 여학생 4명을 정신대원으로 보낸 자료가 발견됐다. 이 학교의 44년 고등과 제2학년 학적부에는 당시 14살이던 어린학생 4명이 7월에 일본 부산시 불이월공장 여자 정신대원으로 떠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한편 서울중앙여중(당시 경성가정여숙)에서도 지난 43년 여학생 한명(당시 17세)이 정신대로 징발된 사실을 기록한 학적부가 발견됐다.
  • 사시합격보다 더 값진 「인간승리」

    제33회 사법시험 최종합격자 2백87명의 명단이 30일 발표됐다.수석합격은 2차시험 평균성적 64.20점의 김은미씨(31·이화여대 법대 83년졸)로 지난 71년 이후 네번째 여성수석을 기록했다.여성합격자는 모두 18명이나 돼 사법시험 사상 가장 많았다.최고령합격자는 장진호씨(45·방송통신대 법과2년),최연소자는 김진형군(19·서울대 사법학과4년)이었으며 한기준(37·연세대법대 78년졸)김선국씨(29·단국대법대 84년졸)는 신체장애자의 어려움을 딛고 합격의 영예를 안았다. ◎최고령 합격자 장진호씨/학원강사·세일즈맨 전전해온 45세/가정형편 어려워 고대법대 2년 중퇴/“법 몰라 억울함 당하는 사람없게 봉사” 합격자중 최고령자인 장진호씨(45)는 전북 임실군 임실읍 이도리 630의1 삼광슈퍼2층 전셋방에서 만학의 꿈을 일궈냈다.그는 37세때부터 사법고시에 도전,7년여의 각고끝에 오늘의 영광을 안았다. 그는 합격소식을 듣고 『이제 법을 알지 못해 억울함을 당하는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떳떳하게 봉사할 수 있게 됐다』며 그간의 어려움을 잊은듯 함박웃음을 터뜨렸다. 장씨가 맨처음 사법시험에 응시한 것은 지난 82년6월.이때부터 7차례나 연거푸 쓰라린 고배를 마셔야 했던 그로서는 이번 합격이 문자그대로 「칠전팔기」의 기적을 이룬 셈이다. 장씨는 전주고3년 시절이었던 지난 64년 전주에서 문방구점을 경영하던 아버지가 노환으로 별세한뒤 어머니 문남순씨가 떡장사 행상을 나서자 『판·검사가 돼 효도하겠다』며 사법고시에 도전할 뜻을 세웠다. 한마디로 그의 지난날은 역경의 연속이었다. 그는 65년에 고대법대에 합격했으나 가정형편이 어려워 2년만에 중퇴,전주에서 학교선배가 운영하던 입시학원을 인수받아 강의를 하기도 했다. 또 70년 4월에는 세무공무원시험에 응시,합격해 서울중부세무서에 1년6개월동안 근무를 하기도 했으며 한때는 음악테이프판매회사의 상무로 취직,1년여동안 「세일즈맨」으로 일을 하기도 했다. 그는 79년 친구의 소개로 부인 이근자씨(42)와 결혼,이때부터 부인의 고향인 임실에 살면서 사법고시준비를 해왔다. 주변사람들은 책에 매달리는 장씨에게 『너무 늦었으니 현실에 충실하라』는 충고를 여러차례 했으나 그는 좌절하지 않고 오직 한길을 걸었다.그는 한편으로 대학졸업을 못한데다 교수들의 강의도 듣기위해 2년전에 방송통신대학 법학과에 입학했다. 『임실읍에서 분식센터를 하며 뒷바라지를 해준 아내가 고마울 뿐입니다』그는 모든 공을 1남3녀를 기르며 자신에게 헌신적인 뒷바라지를 해준 아내에게 돌렸다. ◎장애인 합격자 한기준씨/“사회편견 이기려 제자신과 싸웠죠”/14번 실패 딛고 15번째 영예/장애인 아내도 “눈물의 격려” 『합격을 기뻐하기에 앞서 장애자인 저에게 격려를 아끼지 않는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불구의 몸을 딛고 15차례의 응시끝에 합격의 영광을 차지한 한기준씨(37)는 그동안 눈물로 뒷바라지해온 역시 장애자인 아내 이회례씨(32)와 낳은지 6개월된 아들 윤석이의 손을 꼭 잡았다. 2살때 소아마비를 앓아 오른쪽 다리를 못쓰는 한씨는 연세대 4학년때인 지난 77년부터 사법시험에 해마다 도전,14번의 낙방을 거듭하면서도 오직 『장애인에 대한 사회의 냉대와 편견은 스스로의 힘으로 극복해야 한다』는 생각을 끝까지 굽히지 않았다. 『장애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없었다면 처음 몇차례 낙방했을 때 다른 직업을 찾았을 것』이라고 했다. 서대문구 북아현동에서 철물점을 경영하는 한장우씨(70)의 3남1녀 가운데 둘째 아들인 한씨는 지난 78년 대학을 졸업했으나 막상 원하는 일거리를 찾을 수가 없었다. 한동안 좌절과 번민속에서 방황하기도 했지만 가족들은 물론 친구와 선후배들이 보내준 따뜻한 격려에 힘입어 이듬해 연세대 법대 재학생과 졸업생들을 위한 기숙사인 「법현학사」에 들어갔다. 10년째 낙방경력만을 쌓던 지난 86년 대학시절부터 참석해 온 연세대 「소화재활원」출신장애자들의 모임인 「흰양모임」에서 부인 이씨와 만나 3년만인 88년에 새로운 가정을 이뤘다. 역시 오른쪽 다리가 불구인 이씨는 시험에 떨어질 때마다 괴로워하는 남편에게 『다른 장애자들을 위해서라도 꼭 합격해야 한다』는 말로 격려를 하면서도 그때마다 마음이 너무 아파 돌아서면 눈물이 나왔다고 했다.
  • 경찰위원 허정훈씨(위장)등 7명 임명/초대 경찰청장 김원환씨

    ◎경찰청차장 김효은씨/서울청장 이인섭씨 정부는 29일 오는 8월1일 발족하는 경찰위원회 위원장에 허정훈변호사(전 사법연수원장)를 임명하는 등 위원회를 구성하고 초대 경찰청장에 김원환서울시경국장을 치안총감으로 승진임명했다. 이와 함께 정부는 8월1일 경찰청발족에 따른 대폭적인 경찰인사를 단행,경찰청 차장에 김효은청와대치안비서관,서울지방경찰청장에 이인섭경기도경국장,해양경찰청장에 이강년부산시경국장을 각각 치안정감으로 승진,기용했다. 이와함께 경찰청 기획관리관에는 김기수강원도경국장,형사국장에는 최남수충북도경국장,정보국장에는 유상식대구시경국장이 치안감으로 승진,발령됐다.대구지방 경찰청장에는 박노영치안본부보안부장,전남청장에는 기세익본부장보좌관이 치안감으로 승진,임명됐으며 경남은 박수영도경국장이 청장으로 승진했다. 서울지방청 차장에는 구본우치안본부 대공1부장이 임명됐다. 경찰청 경무국장은 김종일본부 4차장이,경비국장은 김화남 2차장이,보안국장은 윤정원 5차장이,청와대 치안비서관은 여관구전남도경국장이 맡게 됐다. 또 박일용 본부 3차장은 부산지방경찰청장으로,안윤희 1차장은 경기지방청장으로 임명됐다. 경무관급으로는 장한민 본부 대공2부장이 경찰청 방범국장으로,이승환전북도경국장이 교통지도국장으로,정진규서울시경 5부장이 강원지방경찰청장으로,송해준 본부 대공3부장이 충북지방청장으로,이수일 본부 기획부장은 전북지방청장으로 각각 전보,발령됐다. 이밖에 이기태인천시경국장과 천기호경북도경국장,임우상제주도경국장,최재삼충남도경국장은 그 자리에서 지방청장으로 발령됐다. 한편 7명의 경찰위원에는 허위원장외에 윤영학변호사,강두현단국대 교수(상임위원),김보환동국대 교수,박윤흔경희대 교수,갈천문연합통신 상임감사,김동수바르게살기운동 중앙협의회장이 임명됐다. ◇허위원장약력=▲경남 진양출신(67세) ▲동아대졸 ▲제9회 고시 사법과 ▲서울·부산지법 판사 ▲제주·춘천·인천지법원장 ▲사법연수원장 ▲중앙선관위원 ▲변호사 ◇김경찰청장약력=▲경북 안동출신(56세) ▲동아대졸 ▲학사 경사▲서울 성동경찰서장 ▲치안본부 1·3·4차장 ▲청와대 치안비서관 ▲서울시경국장
  • 퀘일 불신론의 저변/김호준 워싱턴특파원(오늘의 눈)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이 심장 박동의 이상으로 입원했던 지난주말 워싱턴에선 2편의 드라마가 펼쳐졌다. 하나는 부시 대통령의 건강을 걱정하며 쾌유를 비는 인간 드라마였고,다른 하나는 부시 유고시 대통령 권한을 대행할 댄 퀘일 부통령의 자질을 의심하는 정치 드라마였다. 퀘일의 자질을 불신하는 여론과 관련,부시가 내년 선거에서 러닝 메이트를 바꿔야 한다는 문제는 그 동안 부시의 타고난 건강에 묻혀 쟁점화되지 않았을 뿐 공화당과 민주당 안에선 내연하고 있던 불씨였다. 이번에 부시의 건강에 처음으로 적신호가 나타나자 공화당 사람들은 『부시가 퀘일의 지위를 재고할 필요가 있다』는 우려를 넌지시 표명했고 민주당 사람들은 이를 다시 공개적으로 거론하기 시작했다. 민주당 대통령 후보의 한 사람으로 지목되고 있는 빌 클린트 아칸소주 지사는 NBC 뉴스 대담프로에서 『미국은 부시의 회복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고 말한 뒤 이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시간이 지나면 부시는 자신의 유고시 대통령직을 승계할 가장 유능한 사람이 퀘일 부통령이라고 믿고 있는지에 관해 답변해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클린튼의 힐난은 내년 선거에서 민주당이 여론을 업고 공화당을 향해 퍼부을 치열한 공격전의 개시를 알리는 신호이다. 지난주 타임지 여론 조사에 의하면 올해 44세인 퀘일에 대해 대통령 자격이 있다고 답변한 응답자는 19%에 불과했다. 퀘일이 부시를 따라 백악관에 입성한 1989년 1월엔 이 수치가 30%였다. 1988년 선거에서 부시의 지명을 받아 무명의 상원의원에서 일약 부통령 후보로 도약한 퀘일은 월남전 징집을 기피하기 위해 주방위군으로 입대했다는 비난과 함께 정치적 미숙과 관련해 「부잣집 철부지」라는 조롱을 받아왔다. 퀘일 불신론과 더불어 제기된 문제는 다음달에 만67세가 될 부시 대통령이 마라톤 여행과 광적인 운동으로 직무 수행 및 건강에 영향을 미칠 만큼 「과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때 부시는 하루에 워싱턴∼런던을 왕복하는 강행군을 검토했었다. 그의 저돌적인 여행 계획은 수행에 지친 백악관 참모들과 보도진 사이에서 많은 화제가 되고 있지만 그는 「뜨거운 철판 위의 개미들」처럼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 스타일이다. 부시는 이번 사건의 경종에도 불구하고 활동 스케줄을 늦추지 않을 것이며 또 내년 선거에선 퀘일과 함께 다시 뛸 것이라고 백악관 측근들은 예견했다. 6일 아침 병원에서 퇴원해 백악관으로 돌아온 부시는 환호하는 직원들에게 측근들의 예견대로 『돌아가서 일을 하자』고 독려했고 퀘일 부통령문제에 대해선 『그는 나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며 거듭 신임을 표시했다. 근엄하지만 변화무쌍한 한국의 대통령들을 보아온 기자의 눈엔 밝고 의욕에 넘치면서도 「의리있는 두목」의 모습이었다.
  • 새 총리에 노재봉씨/10부 장관 경질·청와대비서진 개편

    ◎부총리 통일원 최호중씨/외무 이상옥/교육 윤형섭/체육 박철언/상공 이봉서/노동 최병렬/교통 임인택/체신 송언종/공보 최창윤/보훈 민경배/비상기획 정진태/서울시장 박세직/청와대 비서진/비서실장 정해창/정치특보 최영철/정무수석 손주환/민정수석 이상연/사정수석 김영일/의전수석 이병기/오늘 차관급 후속 인사 노태우 대통령의 27일 국무총리서리에 노재봉 대통령비서실장을 임명하고 10개 부서 장관과 서울시장,비상기획위원회 위원장 및 청와대비서진을 개편하는 등 대폭적인 개각을 단행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새해부터 부총리로 격상될 통일원 장관에 최호중 외무부 장관,외무부 장관에 이상옥 주제네바 대사,교육부 장관에 윤형섭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회장,체육청소년부 장관에 박철언 민자당 의원(전국구)을 각각 임명했다. 노 대통령은 또 상공부 장관에 이봉서 전 동자부 장관,노동부 장관에 최병렬 공보처 장관,교통부 장관에 임인택 상공부 차관,체신부 장관에 송언종 전 전남지사,공보처 장관에 최창윤 대통령정무수석비서곤,보훈처장에 민경배 전 2군사령관을 각각 임명했다. 서울시장에는 박세직 전 안기부장이,비상기획위원장에는 정진태 전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이 임명됐다. 노 대통령은 이와 함께 청와대비서진을 개편,대통령비서실장에 정해창 전 법무부 장관,정치담당특보에 최영철 노동부 장관,정무수석비서관에 손주환 민자당 의원(전국구),민정수석비서관에 이상연 보훈처장,의전수석비서관에 이병기 의전비서관을 각각 임명했다. 청와대비서실 개편에서는 민정비서실이 민정과 사정비서실로 분리돼 김영일 민정수석비서관은 사정수석비서관으로 자리를 옮겼으며 정치담당특보는 유임된 이홍구 특보를 포함,2명으로 늘어났다. 이번 개각에서 이승윤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안응모 내무,정영의 재무,이종남 법무,이종구 국방,이어령 문화,조경식 농림수산,이희일 동자,이상희 건설,김정수 보사,이연택 총무처,김진현 과기처,허남훈 환경처,김동영 정무제1,이계순 정무제2장관과,최상엽 법제처장은 유임됐다. 또 총리 물망에 올랐던 서동권 안기부장도 유임됐다. 정부는 이번 개각에 이어28일 차관·시도지사 등 차관급 후속인사를 단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수정 청와대대변인은 『노 대통령의 이번 내각개편은 국내외적인 상황에 적극 대처하고 국정을 더욱 효율적이고 강력하게 이끌기 위해 이루어졌다』고 설명하고 『강영연훈 총리는 그 동안 국정분위기 쇄신을 위해 노 대통령에게 사임의 뜻을 표명해왔다』고 밝혔다. 이 대변인은 『노 대통령은 곧 노재봉 총리서리의 임명동의를 국회에 요청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해창 대통령비서실장(대구·53세)=▲서울대 법대졸 ▲고시10회 사법·행정과 합격 ▲서울지검 부장검사 ▲법무부 검찰국장 ▲서울지검장 ▲법무부 차관 ▲대검 차장 ▲법무부 장관 ◇박세직 서울시장(경북 칠곡·57세)=▲육사 12기 ▲서울대 영문과졸 ▲수경사령관 ▲안기부 2차장 ▲총무처 장관 ▲체육부 장관 ▲서울올림픽조직위 위원장 ▲안기부장 ◇정진태 비상기획위원장 (충남 예산·56세)=▲육사 13기 ▲사단장 ▲군단장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대장예편 ◇최영철 대통령정치특보(전남 목포·55세)=▲서울대 정치학과졸 ▲동아일보 정치부장 ▲무임소장관 정무조정실장 ▲9·10·11·12대 국회의원 ▲국회부의장 ▲체신부 장관 ▲노동부 장관 ◇손주환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경남 김해·51세)=▲고려대 법대졸 ▲기자협회장 ▲중앙일보 편집국장대리·이사 ▲13대 의원 ▲민정당 기조실장 ◇이상연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경북 성주·54세)=▲경북대졸 ▲보안사 감찰실장 ▲서울시 부시장 ▲대구시장 ▲안기부 1차장 ▲국가보훈처장 ◇김영일 대통령사정수석비서관(경남 김해·48세)=▲서울대 법대졸 사법고시 8회 합격 ▲부산·서울지검 검사 ▲대통령사정비서관(서울지검 특수2부장·제3차장)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 ◇이병기 대통령의전수석비서관(충남 홍성·43세)=▲서울대 외교학과졸 ▲외무고시 합력 ▲정무장관비서관 ▲민정당 대표위원보좌역 ▲대통령의전비서관
  • 제8회/교정대상 수상… 보람과 영광의 얼굴들

    ◎27년째 봉직… 출소자 결혼식엔 꼭 참석/진익화 52세ㆍ수원교도소 교사/대상 『남달리 뚜렸한 선행을 한 것도 아니고 교정인으로서 평범하게 살아온 제가 이런 큰상을 받게 돼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올해 제8회 교정대상 수상자로 뽑힌 진교사는 짤막하게 수상소감을 대신했다. 63년4월 수원교도소에서 「반징역살이」라는 교도관생활을 시작해 올해로 27년째를 맞은 진교사는 박봉과 열악한 근무환경에도 불구하고 투철한 사명감과 봉사정신으로 교정행정의 산 일꾼으로 일관해왔다. 『앞으로의 교정행정은 재소자들을 격리ㆍ구금하는 것 보다는 이들을 교화ㆍ선도해 사회에 복귀할 수 있도록 돕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는 소신을 펼치는 진교사의 얼굴엔 지난날에 대한 자부심이 어려있다. 재소자들을 위한 직업ㆍ교화교육을 통해 9백50여명의 각종 기능자격자와 59명의 대입ㆍ고졸합격자를 배출해냈다. 박봉을 쪼개 돕고 출소자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취업을 알선하는 일이 진교사의 업무가 된지 오래다. 진교사는 『신참시절인 65년 혼자서 경기도 화성군 간척지조성 새마을사업장에서 6개월동안 재소자 35명과 함께 숙식을 하며 바다막는 일을 아무사고 없이 마치고 온 일이 후배들 사이에 화제로 떠오를 때면 감회가 새롭다』고 활짝 웃었다. 27년의 교도관생활을 통틀어 살인죄로 복역하던 김모씨(50)가 70이 다 된 노모와 어린 두자녀를 남겨두고 빚독촉에 못이겨 부인이 가출한 것을 고민하는 것을 보고 몰래 도와주자 출소후 부인과 함께 찾아와 이마가 땅에 닿도록 감사해 하던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비록 교도관과 재소자 관계지만 그들이 출소한 뒤 검소한 생활을 하는것을 볼때면 교정계에 투신한 보람을 느낀다』면서 『아무리 시간에 쫓겨도 출소자들의 결혼식이나 회갑연에는 빠짐없이 참석하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드러나지 않는 음지에서 사명감이 없이는 견디기 어려운 교정직에 종사하는 진교사는 『교도관에 대한 사회의 몰이해와 냉대,비난을 접할 때 가장 괴롭다』고 밝히고 『다른 행정기관에서 조차 최근까지도 교정기관을 「혐오기관」으로 분류한 것을 접할 때면 참담한 심정까지 든다』고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그는 교정행정에 대한 사회인식의 변화와 정부차원의 뒷받침을 아쉬워하며 『묵묵히 뒤에서 도와주고 교도관직을 자랑스럽게 여긴 아내와 4남매에게 감사한다』고 했다. ◎불우출소자 피복지원운동 전개/우규식(면려상) 54세ㆍ영등포구치소교사(본상) 60년 6월15일 교정계에 첫발을 내디딘이래 30년동안 재소자들을 선도하고 처우를 향상시키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64년 2월 공주교도소에서 근무할때 불우출소자들을 위해 피복지원운동을 시작,3년이 넘도록 계속하면서 옷가지 1백여점을 모아 출소자들에게 나눠줘 새생활을 돕기도 했다. 73년 영등포구치소 의무과에 재직할때는 폐결핵을 비관해 자살을 기도한 최모씨를 인공호흡으로 회생시킨 뒤 지속적인 상담으로 새 생활을 하도록 돕는 등 사경직전의 재소자 2명의 생명을 구했다. ◎무연고자 가족 찾아주기에 앞장/민도영(성실상) 53세ㆍ춘천교도소 교사(본상) 재소자들이 안정된 수형생활을 할 수 있도록 교정교육과 무연고자 가족찾아주기에심혈을 기울이는 한편 출소후 사회복귀를 돕기 위해 취업알선과 사회생활에 대한 상담으로 27년 2개월동안 정성을 쏟아왔다. 73년2월부터 의지할곳 없는 출소자 17명을 지역사회독지가들의 도움을 받아 일자리를 마련해 주는 등 이들의 자립갱생에 남다른 관심을 보여왔다. 86년4월에는 강원대학교와 협조해 사범대학생 6명을 강사로 초빙,남모씨 등 26명을 고입ㆍ고졸자격 검정고시에 합격시키는 등 재소자들의 학과교육지도에 힘썼다. ◎문맹원생 1백여명에 한글 교육/조기선(창의상) 57세ㆍ대전소년원 보도사(본상) 조선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61년1월 보도직에 임용된 이래 소년원생들이 퇴원한 뒤 다시 비행을 저지르는 것을 막기 위해 기술습득과 문맹원생 한글해독ㆍ취업알선 등에 앞장서 이들이 사회에 뿌리내릴수 있도록 열과성을 다했다. 72년부터 80년 4월까지 문맹원생 1백69명에게 한글을 가르쳐 진로선택의 폭을 넓히고 사회적응을 도왔다. 83년부터는 원생들에게 내실있는 직업교육을 실시해 1천4백20명이 각종 기능자격을 취득하고 지방기능경기대회에 출전,은메달 등 19개의 메달을 따내 소년원에 대한 사회인식을 개선하는데 일익을 담당했다. ◎수형자 4백여명 자매결연 주선/김무웅(교화상) 49세ㆍ인천소년교도소 교회관(본상) 의지할 곳 없는 장기수와 문제수형자 4백57명에게 각계인사와의 자매결연을 주선하고 허물없는 신상상담을 통해 갱생의욕을 고취시켰다. 81년 1월부터 교정참여인사들로부터 피아노ㆍ컬러TV 등 2억5백만원어치의 교화기자재 7백54점과 7천여만원어치의 교화용도서 2만8백여권을 기증받아 재소자들의 교정교육과 정서함양에 기여했다. 73년부터 78년까지 광주교도소에 근무할 때에는 좌익수 교화기법을 개발,무기수 허모씨 등 98명을 전향시키는데 공헌했다. ◎신앙통한 교화로 갱생의지 부축/이의정(박애상) 49세ㆍ예장전북노회 목사(특별상)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77년 3월부터 13년이 넘도록 재소자 종교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신앙을 통한 재소자교정교화에 헌신적으로 봉사해온 성직자로 법무부장관표장을 2차례 받았다. 77년 종교위원으로 위촉된 이래 52만3천5백여명의 재소자들을 상대로 8백80여차례에 걸쳐 기독교적 교화를 실시했다. 종교위원으로 봉사하면서 알게된 김모씨 등 출소자 15명을 신학교에 진학시켜 이 가운데 11명이 교육을 이수,전주와 남원 등지에서 목회자 활동을 하도록 지원했다. ◎「출소자들의 어머니」… 취업등 알선/정팔기(자애상) 73세ㆍ서울대교구사목회 회원(특별상) 78년8월 인천소년교도소 소년재소자 교화선도사업으로 인연을 맺은 뒤 11년여동안 매달 2차례씩 영등포ㆍ의정부ㆍ홍성교도소 등을 순회하면서 재소자 교화활동을 한 공로로 88년 법무부장관표장과 89년 「카톨릭대상」을 받았다. 재소자들의 심성순화활동 뿐 아니라 의지할 곳 없는 재소자 28명과 자매결연을 맺고 영치금 2백10만원과 1백30만원어치의 생활용품을 지원하는 등 불우재소자들의 수형생활을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교도소 포교 자원… 20여년간 헌신/서병진(자비상) 39세ㆍ조계종 삼천사주지(특별상) 재소자교화에 깊은 관심을 갖고 교도소 포교법사를 자원해 20년동안 서울구치소와 수원ㆍ강릉교도소 등에서 재소자교리지도ㆍ신앙상담ㆍ사형수와의 자매결연 등 재소자교화선도에 헌신한 공로로 3차례에 걸쳐 법무부장관표장을 받은 성직자. 79년1월 서울구치소종교위원으로 위촉된 뒤 3백70여차례에 걸친 불교모임을 통해 4만6천여 재소자들에게 자비사상을 고취해 심성을 순화했다. 매주 1차례씩 사형수 3백21명에게 신앙상담을 해 과거의 죄를 참회토록 교화하고 해마다 불경암송대회를 열어 재소자들에게 신앙심을 고취시켰다. ◎재소자전용 직업훈련시설 기증/박광식(공로상) 48세ㆍ성보산업주식회사대표(특별상) 부산교도소 교화위원과 부산진구 갱생보호위원을 겸직하면서 재소자의 직업훈련 및 교화기자개기증 뿐 아니라 86년부터는 자신의 신발제조업체인 성보산업에 재소자들을 출퇴근시켜 기술훈련을 시킨뒤 원하는 경우 출소뒤 취업시키는 등 교화사회정착사업에 헌신해왔다. 성보산업 안에 재소자전용직업훈련 시설을 마련,현재까지 1백97명을 훈련시켜 이들에게 9백80여만원의 생활정착금을 지급하고 이 가운데 취업을 희망하는 60명은 정식직원으로 채용해 재소자들의 출소후 자립에 크게 기여했다. ◎재소자 9백명에 직훈/정해원 50ㆍ안동교도소 교사(장려상) 63년 12월 교정계에 투신한 뒤 27년동안 확고한 신념과 성실한 복무자세로 각종 재소자직업훈련과 출소자취업알선 등 교화선도에 헌신했다. 9백여명의 재소자들을 상대로 가구ㆍ미용기술 등 직업훈련과 영농교육을 실시해 근로정신을 함양하는 한편,출소자 17명의 신원을 보증해 취업을 시키는 등으로 사회복귀를 지원했다. ◎소년수형자 취업알선/양택민 52ㆍ군산교도소 교사(장려상) 농촌지도요원으로 8년동안 일하다 지난 66년 교도관으로 전직한 뒤 불우재소자돕기와 취업알선,독서ㆍ서예활동을 지원해 재소자의 정서함양에 남달리 헌신했다. 86년 소년재소자에 대한 수용관리대책을 마련해 직원들과 1대1로 자매결연을 맺고 취업을 알선,자립의 기반을 마련해주는데 힘썼다. ◎장기수에 생필품 지원/정인옥 51ㆍ광주교도소 교사(장려상) 유도2단의 무술교도관으로 21년동안 근무하면서 재소자교정교화 및 수용질서확립 등 각종교정사고방지에 기여했다. 재소자특별할동의 하나로 서예반과 회화반을 만들어 여가선용 및 심성순화에 힘썼다. 장기수 등 재소자 1백여명에게 영치금과 생필품을 지원,갱생의욕을 고취시켰다. ◎수용환경 개선에 힘써/김병윤 48ㆍ제주교도소 교사(장려상) 제주도 출신으로 제주교도소가 개청될때부터 근무해오면서 기반조성에 공헌하고 민원실환경을 이용자들에게 편리하도록 개선하는데 힘썼다. 불우재소자 58명을 종교인들과 자매결연토록 주선해 생활용품을 지원하고 안정된 수형생활을 할 수있도록 상담했다. 교도소 주변의 환경미화작업에 앞장서 수용환경을 개선했다. ◎21년간 교화위원 활동/노지욱 76ㆍ공주제일감리교 장로(장려상) 고령에도 불구하고 21년동안 교화위원으로 활동하며 재소자의 신앙상담ㆍ종교교화ㆍ출소자취업알선 등 불우재소자를 위해 봉사해왔다. 의지할 곳 없는 출소자들을 집에 데려가 돌보며 일자리를 마련해주고 명절때마다 재소자들을 찾아가 격려해왔다. 교도소 선교회를 만들어 신앙활동을 지도했다. ◎출소자 30명 보호선도/김봉래 61ㆍ순천 교화협의회장(장려상) 73년부터 교화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재소자들을 위한 각종 행사를 마련,소외감을 없애고 불우재소자의 자활의욕을 고취시키는데 힘썼다. 불우출소자들에게 취업은 물론 결혼을 주선해주고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하는데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갱생보호위원도 겸직하면서 출소자 30여명을 보호선도했다. ◎재소자 검정고시 교육/김태수 71ㆍ김천 교화협의회장(장려상) 소년재소자의 교화교육과 면학기회를 마련해주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국민학교를 졸업하지 못한 재소자들을 위해 중입검정고시제도를 신설,9백38명의 합격자를 배출했고 김천중앙고 부설 방송통신고등학교 과정을 만드는데 앞장섰다. 84년 화랑소년대 권투부를 만들어 재소자의 체육활동을 활성화시켰다. ◎감호자 정신교육 앞장/안의종 49ㆍ청송 진성중학교장(장려상) 81년 청송교정시설의 개청과 함께 교화위원으로 일해오면서 감호자정신교육과 수용생활을 지원하는데 헌신했다. 진성중학교 교사를 검정고시강사로 보내 3백40명을 고입 및 고졸검정고시에 합격시켰다. 장기감호자와 신체장애자 5백여명에게 7백여만원어치의 생활용품을 지원했다.
  • 이상배 행정수석(차관급 후속인사 새 얼굴 11명)

    ◎판단력 정확,추진력 강해 약관 27세 때 경북 울진 군수를 시작으로 경북지사ㆍ내무부차관등 요직을 두루 거친 정통파 엘리트 내무관료. 판단력이 정확하고 맡은 일에 대한 추진력이 대단하다. 부인 박화자씨(48)와 2남 ▲경북 상주출신ㆍ51 ▲서울대 법대 ▲고시행정과 합격(13회) ▲내무부차관보 ▲경북지사 ▲환경청장
  • 민자당 초대 당3역ㆍ대변인의 “포부”

    ◎박준병 사무총장/대화ㆍ타협으로 당내외 융화에 총력 『화학작용과 용광로 용해작용 등을 통해 다소간의 이질적 요소를 극복,신당이 국민정당ㆍ정책정당ㆍ민주정당ㆍ개혁정당ㆍ통일지향정당으로 국민의 사랑을 듬뿍 받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통합신당인 민주자유당의 초대 사무총장에 선임,민정당에서 두차례 총장을 역임했던 것을 감안할 때 「총장3선」이라는 여권내 보기드문 기록을 가지게된 박준병총장은 인화와 단결,대화와 타협을 거듭 강조했다. 박총장은 88년 4ㆍ26총선직후 여소야대상황에서 또 금년초 5공청산 후유증에서 비틀거리던 민정당을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친화력」으로 다독거렸던 인물. 따라서 3당이 합쳐지면서 예상되는 불협화음 해소에도 적격이 아니냐는 판단이 이번 총장임명의 배경인 듯. 박총장은 『15인 통합추진위원으로 일하면서 3당대표들이 하나가 되고자하는 노력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면서 『그런 마음만 지속된다면 어떤 어려움도 해소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총장은 『일부 국민이 거대여당의 독주 혹은 내부분열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전제,『그러나 정치의 본질이 대화ㆍ타협에 있다는 사실을 잊지않고 있으며 신당은 대내 이질요소 극복뿐 아니라 지역성 타파에도 모든 노력을 경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총장은 또 『가능하면 지금이나 아니면 14대 총선전후해 진보적 정당이 출현했으면 좋겠다』고 말해 보혁구도 정립에 대한 기대를 비췄다. 육사 12기로 4성장군출신이면서도 성품이 온화해 「제복」분위기를 전혀 풍기지 않는다. 서울대 및 국민대대학원 사학과를 졸업했고 요즘도 책을 항상 가까이하는 학구파. 금년초 정계개편작업의 중핵인물로 등장하면서 박철언정무1장관과 업무상 호흡이 잘 맞고 있다. 민정계보에서 중부권 선두주자의 1인이나 『아직은 파벌형태가 바람직하지 않다』며 계보형성은 자제. 부인 김혜정여사(53)와의 사이에 1남1녀 ▲충북 옥천출신ㆍ57세 ▲대전고 ▲육사12기 ▲서울대ㆍ국민대대학원 사학과 ▲국군보안사령관 ▲대장예편 ▲12ㆍ13대 국회의원 ▲국회보사위원장 ◎김용환 정책의장/소외계층ㆍ서민 위한 제도개혁 역점 『국민 모두의 바람과 뜻을 받들면서 시대정신에 뒤지지 않는 정책개발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4당구조의 말석정당정책위의장에서 거대여당의 정책위의장으로 「간택」된 김용환의장은 특히 소외계층과 서민들의 입장을 반영한 정책전개를 강조,성장과 안정을 동시 추구해나갈 것임을 확인했다. 그는 신당의 정책방향의 초점에 관해 『꾸준한 개혁속에 민주적 제도와 관행을 체질화해야 할 것이다. 현재 어려운 국면의 경제상황을 극복하고 성장잠재력을 북돋울 수 있는 정책개발이 시급하다고 본다』고 밝혔다. 김의장은 『법과 제도의 개혁에 앞서 국민의 정치주인이라는 사고의 전환부터 이뤄져야 한다』며 『당면 현안법안 등에 대한 제정ㆍ개정노력과 함께 국민들이 민주시민다운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정책개발고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우리 경제의 침체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대책에 대해 『단기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정을 되찾는 것이며 일단 안정을 회복시킨 뒤 수시로 나타나는 경제변화와 흐름에기민하게 대응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토지공개념과 금융실명제등 정부의 경제개혁정책에 대한 당의 입장과 관련,『경제정의의 실현을 위해 이미 결정된 제도는 계획대로 시행해 나갈 것이며 시행과정에서 역기능이나 문제점이 제기된 경우 그에 대한 보완ㆍ수정은 이후의 문제라고 본다. 당정간에 이 문제에 대한 이견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경제관리로 출발,지난 78년 4년여동안의 재무장관직을 끝으로 정부를 떠났던 김의장은 12년 만에 다시 집권여당의 정책파트 책임자를 맡아 관운만큼이나 정치운도 따른다는 평을 받고있다. 공화당정책위의장 시절 JP의중을 가장 잘 헤아려 5공청산추진 및 정계개편작업 등에서 「JP대리인」 역할을 해냈다. 작달막한 체구에 출중한 지모를 갖추고 있으나 차가운 성격으로 정치인다운 친화력은 다소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춘구여사(52)와의 사이에 2남 ▲충남 보령출신 58세 ▲서울대 법대졸 ▲고시행정과 합격 ▲재무부 이재국장 ▲대통령경제특보 ▲재무장관 ▲13대의원 ▲공화당정책위의장 ◎김동영 원내총무/여야 갈등없는 상호협조체제 유지 『민주자유당내에 유능한 인물이 많은데도 나를 총무로 지명한 것은 당과 나라를 위해 많은 일을 하라는 뜻이라 생각합니다』 원내점유율 73%에 달하는 거대여당의 원내총무로 2백16명의 매머드의원단을 지휘하는 원내사령탑을 맡게된 김동영의원은 『16일 의원총회의 인준을 남겨놓고 있는 만큼 아직은 내정자…』라면서도 중책을 맡아 어깨가 무겁다고 소감을 밝혔다. 『다른 좋은 사람이 많아 처음에는 총무지명을 고사했었다』고 밝힌 김의원은 자신의 카운터파트가 될 평민당 김영배총무에 대해 『참 좋은 사람』이라며 일반의 우려와는 달리 대야관계에 대한 낙관적 전망을 피력했다. 김의원은 『평민당은 옛날에 같은 동지였던 만큼 그들의 마음을 내가 잘알고 있고 그들 또한 내마음을 잘알고 있는 것입니다』라고 말해 대야관계가 갈등이 아닌 상호협조차원에서 유지될 것이란 자신감을 나타냈다. 김의원은 85년 4월19일 당시 1백2명의 의석을 가졌던 신민당원내총무에 임명됐었던때를 회상하며 『그당시 처음 총무를 맡았을 때는 총무가 뭔지,정치가 뭔지를 모르고 했는데 신의 가호로 욕을 먹지 않았다』고 말한 뒤 이번에는 야당이 아닌 여당의 총무가 된 데 대해 『아직 실감이 별로 나지 않는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김의원은 자신이 민자당 전체의석 2백16석의 정확히 4분의1에 불과한 구민주당측을 대표해 총무직에 지명됐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듯 『조그만 일이라도 법테두리안에서 일이 진행돼야 한다는 방침에 따라 최고위원 세분이 지명했지만 인준 전에는 총무가 아니다』며 계속 조심스런 태도를 보였다. 이번 총무지명이 김영삼최고위원의 강력한 지원에 의해 이뤄진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김의원의 정치경력은 김최고위원과 분리시켜 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대학졸업후 부산동성중학교 교사생활을 하다 당시 야당의 원내부총무였던 김최고위원을 보좌하는 국회전문위원으로 정치에 입문했으며 「불곰」이라는 별명이 말해주듯 뚝심과 의리로 뭉쳐져 있다는 평. 12대 국회전반기에 신민당 원내총무로 유성환의원 구속에 책임지고총무직을 물러날 때까지 여당과의 개헌협상을 주도하며 「성가」를 높였다. 부인 신길자여사(47)와의 사이에 1남2녀. ▲경남 거창출신ㆍ54세 ▲동국대 정치과졸 ▲9ㆍ10ㆍ12ㆍ13대의원 ▲신민당 원내총무 ▲민주당부총재ㆍ사무총장 ◎박희태 대변인/다양한 목소리 조율… 여의 참모습 국민에 전달 『어깨를 누르는 무거운 책임감을 느낍니다. 국민의 원하는 밝고 희망찬 내일을 건설하기 위해 민주자유당이 믿음직한 목소리를 내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13일 지역구(경남 남해ㆍ하동)활동도중 거대 여당으로 출범한 민자당의 초대 대변인으로 임명통보를 받은 박희태의원은 『과거 여소야대때 야당측을 공격하는 데 치중했던 구태에서 탈피,국정을 주도하는 여당의 참모습이 국민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정치초년생답지않게 지난 1년2개월동안 중간평가ㆍ공안정국ㆍ5공청산으로 이어지는 어려운 정국상황아래에서 민정당의 대변인을 맡아 때론 맞받아치고 때론 한발비켜서는 「히트 앤 런」작전을 적절히 구사,「명대변인」으로 평가받았던 박의원은 『앞으로 당내에 상존하는 다양한 목소리를 적절히 조화시켜 한목소리로 발표하기까지 어휘선택에서도 상당히 고심해야 될 것 같다』며 대변인의 고충을 미리 예견했다. 그는 『이번 정계개편을 지켜보는 국민들의 시선이 모두 호의적인 것으로 볼 수 없다』고 일부의 오해나 편향된 시각을 인정하면서 『이같은 오해를 빠른 시일안에 불식시키고 민자당을 국민속에 뿌리내리게 하는 일도 대변인에게 주어진 중대한 책무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며 단순한 전달자이상의 적극적인 역할을 떠맡을 뜻을 비췄다. 고시 13회의 선두그룹으로 부산고검장까지 지낸 박의원은 특유의 「판단력과 재치있는 화술」로 정치데뷔 2년 만에 민정당의 원내부총무와 대변인을 거치면서 정치인으로 성공적인 변신을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민정당시절 당총재인 노태우대통령으로부터 유달리 부드러운 눈길을 받았던데다 고검장 출신의 경력으로 인해 「3선급」 중진예우를 받아왔다. 법무부 출입국관리국장시절에 일어난 중국민항기 납치사건때는 중국대표단과의 협상에서 수완을 인정받았으며 원내진출후에는 율사로서 능력을 발휘했다. 국정감사및 조사법ㆍ증언감정법 심의당시 야당이 대통령의 거부권행사에 맞서 강공으로 치달을 때 「동행명령제」란 묘안을 찾아내 대치정국을 푸는 등 법안심의때마다 자문역으로 떠받들어지곤 한다. 박의원은 매주 한차례씩 지역구인 남해ㆍ하동에 내려갈만큼 조직관리에 열성적. 화전주부대학등 두개의 주부대학을 세워 지역구민들에게 학사모를 씌워주고 있다. 김영삼최고위원과는 경남고 동창이어서 인선과정에 불리하게는 작용하지 않았을 거란 관측들. 대인관계가 원만하며 서울시내에 모르는 술집이 없을 정도로 「폭탄도사」라는 별명을 듣는 애주가. 건국대교수인 김행자여사(49)와의 사이에 딸만 둘. ▲경남 남해출신ㆍ52세 ▲서울대 법대졸 ▲고시13회 ▲미버클리 법대수학(법학박사) ▲법무부출입국관리국장 ▲춘천ㆍ대전ㆍ부산 지검장 ▲부산고검장 ▲민정당대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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