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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신문의 반사회성/손주환 서울신문 사장 서강대 언론대학원 특강

    ◎분별없는 증면경쟁… 광고수익 증대만 급급/일 보다 신문면수 많아… 용지난에 연 3천억어치 수입해야/배달 안되는 신문이 발행 부수의 20% 넘어/수백억 흑자 「대기업언론」은 세계화 선도·정보 전달기능 소홀 서울신문사 손주환 사장은 지난 22일 서강대학교 언론대학원(원장 최창섭)주최 「95춘계세미나」에 초청받아 「한국언론의 세계화과제」를 주제로 특강을 실시했다.손 사장은 이 자리에서 현재 일부 언론들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무절제 무한경쟁으로 신문들의 면수는 늘었지만 주임무인 정보전달기능은 오히려 후퇴했다면서 이를 시정하기 위해서는 발행부수공사(ABC)제도를 하루속히 실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다음은 손 사장의 특강내용을 요약한 것으로 경어는 평어로 바꾸었다. 본인은 만26년동안 언론계에서 일했던 전문 언론인으로서,정계와 정부에서 8년여를 봉사하면서 언론을 관찰한 경험을 가진 입장에서 다시 언론계로 돌아와 지난 3개월동안 보고 느낀바가 적지않다.그중 한국언론의 문제점 가운데 바깥의 공개적인 비판을 받아야 할 대목으로 여겨지는 내용에 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87년 11월 언론기본법이 폐지되고 정기간행물등록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다.그러고서,88년 2월 6공화국의 출범과 더불어 신문등 정기간행물의 등록이 완전히 자유화됨으로써 양적인 측면에서 우리 신문들의 경쟁시대가 시작됐다.그것이,다시 93년 2월 문민정부 출범이후 개방화 시책에 편승해서 신문부수의 경쟁,그리고 신문의 증면경쟁에 돌입하면서 지금과 같은 신문계의 무한경쟁시대로 바뀌었다.93년에 중앙일보가 1일발행 면수를 24면으로 늘리고 94년 9월1일에 다시 하루 48면을 최초로 발간함으로써 증면경쟁은 대단히 위험한 수위로까지 높아졌고 중앙일보가 지난 4월15일 조간화 됨으로써 우리나라 신문들은,특히 4개신문의 주도로 걷잡을 수 없는 무절제의 무한경쟁시대에 들어갔다. 신문사간의 경쟁이 시장경제원칙에 부합하고 또 명실상부하게 공정한 페어플레이라면 그것은 권장할 만하다.그러나 현재 이 신문들이 보여주고 있는 무절제하고 무제한적인 불공정 과당경쟁은 국가차원의 부작용과 반사회적 역작용을 가져올 수 있으며 그 폐해는 국가발전과 사회발전에 장애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아야 한다. ○광고점유율 60% 지난 62년에 우리신문의 면수는 8면 체제였다.그후 81년에 언론기본법에 묶여서 12면 체제로 유지되었다.87년 정기간행물 등록의 자유화가 법제화된 이후에 면수의 변동을 보면 88년 4월에 16면,90년에 24면,93년에 32면으로 점차 확대되어 가다가 94년 9월1일 중앙일보가 처음으로 40면대 체제로 발행을 시작했다.이어서 94년말부터 조선·동아·한국이 48면 발행체제에 들어가면서 무한경쟁은 가열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이들 일간지는 페이지수 늘리는 경쟁과 더불어 TV연예중심의 주말부록을 발행해서 현재 각 신문들,특히 4개 신문의 면수경쟁은 브레이크가 고장난 기관차처럼 질주하고 있는 양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면,이렇게 면수를 늘리는 우리 신문들의 질은 어떠한가.우리사회의 정보량과 일반독자의 신문열독률이 하루 10분에서 20분정도밖에 안된다는 통계수치를 종합해 보면 하루 48면은 낭비라고 말할 수 있다.일본의 유력 전국지는 조간과 석간 양간제지만 조간 석간을 합쳐서 40면내외이다.조간으로만 말하면 아사히(조일)와 요미우리(독매)·마이니치(매일)가 다 28면이다.일본과 우리의 국력을 대비해 본다면 GNP가 10분의1,그리고 1인당 GNP는 우리가 8천5백달러,일본은 3만달러를 훨씬 넘는다.무역량도 4대1의 비율이다.어디를 보더라도 우리나라가 일본보다 정보량이 많을 수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정보량이 적은 우리가 일본의 신문 보다도 지면이 더 많다면 이것은 합리성과 타당성이 결여되었다고 일단 지적할 수가 있을 것이다. 신문의 질과 관련해서 우리가 관찰해야 할 대목은 증면경쟁하고 있는 신문들이 독자에게 뉴스의 양과 질면에 있어서 얼마나 서비스를 하고 있느냐 하는 점이다. 우선 기사와 광고량 비율의 변화추이를 살펴보면 동아일보가 88년에 46.2%였던 광고점유율이 94년에 58.4%로 뛰었다.이것은 거의 40면대의 체제가 될 때이다.그리고 금년 1·4분기는 56.6%이다. 조선일보는 88년 45.5%에서 94년에는 60.1%까지 뛰었고 금년 1·4분기는 55.4%였다. 한국일보는 88년 44.5%에서 94년에 55.6%까지 뛰고 금년 1·4분기는 56.1%였다. 중앙일보는 88년 45.5%,94년 50.2%,그리고 금년 1·4분기 48.0%로 되어있다. 참고로 서울신문은 88년 41.2%가,94년 40.7%,그리고 금년 1·4분기에는 41.9%로서 40%대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4개지의 광고점유율은 88년에 45%내외 선에서 지금은 60% 선까지 확대 되었음을 알수 있다.날짜별로 보면 매우 유감스럽게도 65%의 광고점유율을 보인 때도 있다. ○대규모 용지 파동 우리나라 신문들의 광고수입 의존도를 보면 지대수입과 광고수입비율이 3대7로서 광고수입 의존도가 압도적으로 높다.일본은 6대4로 지대수입이 높은 것과 대조적이다. 종합적으로 얘기하자면 신문의 면수는 늘고 주임무인 정보전달 기능은 반대로 후퇴했다고 할수 있다.더구나 광고에 있어서 독자를 우롱하는 처사는 3페이지 연속으로 전면광고를 내는 사례가 다반사가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매우 유감스러운 것은 4페이지까지 전면광고가 연속으로 게재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는 점이다.이것은 신문들이 얼마나 뉴스전달의 기능을 소홀히 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말해준다 하겠다.그러한 3∼4페이지 전면 연속 광고의 효과가 과연 얼마나 있겠는가 하는 것에 대한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조사가 필요하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4개 신문의 증면경쟁은 광고수입증대가 목표이자 목적일 뿐 독자들을 위한 정보전달 기능의 질적향상에는 역행하고 있다고 할수있다. 혹평한다면 신문들은 정보화·국제화시대에 다양한 정보를 공급해야 할 언론의 시대적 사명을 스스로 망각하고 오로지 신문시장의 석권을 통해서 광고수입만 증대해 보겠다는 상업주의에 급급하고 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과연 이렇게 증면경쟁을 해도 좋은가.이같은 4개 신문의 증면경쟁으로 초래되는 신문용지 수요폭등은 벌써 대규모 신문용지 파동으로 나타나고 있다.95년 신문용지 수요는 1백20만t으로 추계된다. 이는 4개 신문이 동시에 48면 경쟁체제로 들어가기 이전의 수치이기 때문에 실수요는 이 보다도 더 높을 것이다.그런데 현재 국내 공급능력은 90만t에 불과하다.1백20만t 그대로본다 하더라도 30만t의 수입이 불가피한 실정이다.수입에 드는 돈은 금년 4월의 수입용지값 기준으로 무려 2천7백억원에 이른다. 그리고 용지 생산에 필요한 펄프와 고지의 국제가격이 계속 상승하고 있기 때문에 30만t의 수입총액은 이 보다도 더 높아질 수 있다.여기에 지난 여름 계속된 가뭄으로 제지업계는 신문용지공급량을 10% 줄였다.거기에 국내 최대 제지회사의 화재로 해서 추가로 15%의 공급감소가 되었기 때문에 신문사는 물론,용지를 사용하는 전 업체가 초비상 상태이다.국내 제지업계는 주로 대수요자인 4개 신문의 용지공급에 주력하고 있으므로 특히 지방지와 특수지들의 용지사정은 사상 유례가 없는 최악의 상태에서 고전하고 있다.이 수치는 신문증면 경쟁이 얼마나 엄청난 액수의 외화를 낭비하는가를 말해준다. 그러면 이렇게 신문 용지의 공급이 달려서,엄청난 외화를 들여서 수입을 해오는 이런 상태에서 면수를 늘린 신문들의 경쟁은 과연 공정하게 이루어지고 있는가.그리고 광고주들은 자신들이 낸 광고료만큼의 대우를 받고 있는가. 48면의 증면과 일부 신문의 조간화로 신문들은 많은 확장지를 살포하고 있고 기존 신문판매망이 교란되고 있는 실정이다.돈은 안받더라도 독자들에게 신문이 배달된다면 그래도 괜찮다고 할수도 있다. 돈을 받느냐 안받느냐는 신문사와 독자와의 관계이기 때문이다.그러나 한국신문의 고질적 병폐는 신문사에서 전국 보급소로 보낸 신문뭉치들이 띠도 풀지않은 그 상태대로,배달되지 않고 바로 제지공장으로 가고 있는 신문들이 엄청나게 많다는 점이다.작년에 어느 국내 한 신문이 다른 여타 신문의 배달상황을 암행조사한 적이 있었다.그 회사의 간부로부터 들은 조사결과는 찍은 신문의 40%가 배달되지 않고 있음을 확인했다는 충격적인 얘기였다. ○ABC제도 시급 이와같은 수치는 과장되었다고 하더라도 우리 신문에 있어서 배달 안되는 신문의 실상이 얼마나 심각한가를 알려주는 한 사례라고 할 수가 있다.인쇄후에 배달되지도 않고 곧바로 제지회사나 고지수집상(으로 폐지로 들어가는 신문이 아무리 적게 잡아도 발행부수의 20%가 넘는다는 것이 신문업계의 공통된 추정이다. 발행부수의 20%만 보더라도 하루에 약3백만부의 신문이 독자 손을 거치지 않은 채 바로 폐지로 제지공장으로 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이것을 94년말 현재의 면수를 기준으로 해서 양으로 본다면 연간 약13만t으로 추산된다.거기에 증면경쟁의 결과 4만t이 추가된 것으로 추계된다.결국 독자들 손을 거치지 않은 채 바로 제지회사로 들어가는 수치는 17만t이 된다. 국내 용지값 기준으로만 해도 무려 1천1백억원이상이나 되는 돈이 낭비되고 있는 셈이다.이것이 우리 신문계의 안타까운 현실이다.막대한 국가적 자원이 낭비되고 있다고 말 할 수밖에 없다.이것이야말로 한국신문이 우리 사회에 저지르는 최대의 죄악이라고 혹평받을 일 아닌가.그렇다면 광고주들은 그것도 모르고,찍히고 있는 신문부수만 보고서 그것이 모두 독자들 손에 전달되는 것으로 알고 광고료를 내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광고주들은 정확한 배달부수를 확인해야 하며 확인해야 할 권리가 있다.따라서 우리나라에서의 ABC제도의 정착은 오늘의 중요한 시대적 과제의 하나라고말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신문이 어떤 내부적 문제점을 안고 있는가를 솔직하고도 정직하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한국신문이 안고 있는 내부적 문제의 가장 첫번째로 꼽을 수 있는 것은 재벌이 소유하고 있는 신문들이 그 재력을 배경으로 불공정 경쟁을 가속시키고 있다는 사실이다. 두번째는 엄청난 광고수익으로 연 수백억원의 흑자를 내는 몇 개의 대기업 신문사가 존재하고 있으며 이들 대기업 신문사와 재벌소유 신문사들이 무절제하고 무제한적인 경쟁을 벌임으로써 여러가지 반작용과 역작용의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이다.이 신문들은 독자를 위한 증면이 아니라 패권주의 경쟁으로 기업윤리마저 망각한채 그들끼리의 다툼에만 열중하고 있다.이런 결과는 언론의 공적기능과 전문직업으로서의 사회적 신뢰에 치명적 타격을 주게 될 것을 우려하지 않을수 없다. ○자율기능도 상실 세번째는 한국 언론계가 자신들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자율기능을 거의 상실하고 있다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한국신문협회가 증면억제권고 결의를 한 바 있다.이 결의를 해놓고 그 결의의 대상이 되는 어느 신문사도 그것을 존중하지 않았다.존중하기는 커녕 오히려 증면경쟁만 가열시켰다.제지회사들이 1년에 무려 25%나 신문용지값 인상을 일방적으로 강행하고 있는데도 그것을 속수무책으로 받아들일수밖에 없을 정도로 신문사들의 결속력은 사라졌다.오로지 동업끼리의 부당경쟁만 기승을 부리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나는 한국신문 1백년사에 오늘만큼 큰 위기의 시대가 있었는지 동업의 언론인들에게 묻고 싶다.한국신문이 언론자유를 만끽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전문직업으로서의 권위와 막중한 시대적 사명,그리고 공적기능을 스스로 포기하고 있다는 비판에 겸허하게 귀를 기울여야 할때라고 생각한다.
  • 뮤지컬 「레미제라블」(브로드웨이 “새바람”:11)

    ◎8년째 공연… “무거운 주제” 첫 성공/“오락요소 있어야 흥행” 통념 깬 기념비적 작품/회전무대 이용 긴박감 넘치는 연출/87년 첫공연… 토니상 8개부문 휩쓸어/신예 연출·작곡가 참여 20국서 막올려 최근 브로드웨이 공연 8주년을 맞은 뮤지컬 「레미제라블」은 화려한 무대,현란한 춤,활기찬 음악등 3요소의 혼연일체라는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기존 방정식에 강력한 도전을 제기하고 있다. 즉 레미제라블은 뮤지컬은 당연히 오락적 요소가 있어야 흥행에 성공한다는 정설을 무너뜨리고 당당히 「캐츠」에 이어 브로드웨이 최장수 뮤지컬 반열에 오름으로써 새로운 뮤지컬의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개막된 해인 19 87년 뮤지컬의 아카데미상이라고 하는 토니상 41회 시상식에서 최우수작품상에서부터 연출상·각본상·남녀주연상·미술상등 모두 8개부문을 휩쓸 정도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고 그 열기가 지금까지 조금도 식지않고 계속되고 있다. 「캐츠」「오페라의 유령」「미스 사이공」등과 함께 브로드웨이 4대 뮤지컬이라고 불리는 이 작품이 공연되고 있는 브로드웨이 45번가의 임페리얼극장은 연일 만원을 이루고 있다.더욱이 이 극은 보통 2시간반인 다른 뮤지컬보다 한시간이 더 길어 관람객들은 자정이 다 되어 극장문을 나서면서도 아쉬움이 가득한 표정이다. 1862년에 간행된 프랑스 작가 빅토르 위고의 대작소설 「레미제라블」을 제한된 공연시간과 극장무대라는 좁은 공간에 압축시켜 놓은 이 극은 장중하고 긴 스토리를 서정적인 뮤지컬로 만드는 데 성공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자칫 지루할 수도 있는 긴 내용을 간결하고도 기능적인 무대전환을 통해서 긴박감 있게 전달해주고 있는 것이다. ○공연시간 1시간 더길어 특히 이 작품은 뮤지컬 제작의 제3세대라 할 수 있는 80년대 이후 대표적인 신예 연출가·작곡가·무대장치가 등이 대부분 참여하고 있으며 세계 20여개국에서 공연되는 등 브로드웨이 뮤지컬사에 남을 기념비적인 작품이라는 평까지 얻고 있다. 당초 프랑스 극작가 알랭 부릴이 「레미제라블」을 뮤지컬로 제작할 의도를 처음 밝혔을 때 이 작품이 이미 원작소설을 통하여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을 뿐만 아니라 19 09년 미국에서 무성영화로 처음 만들어진 이래 전세계에서 70회 이상 영화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뮤지컬을 통한 새로운 감동의 전달은 어느 작품보다도 어려울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를 보면서 예수의 생애라는 널리 알려져 있는 장엄한 스토리가 팝송과 록음악을 통해 대중들에게 새로운 감동으로 전달되는 것을 깨달은 부릴은 레미제라블을 뮤지컬로 만들기로 하고 작곡가 클로드 미▦ 쇤베르그와 함께 각색에 들어갔다. 부릴은 또 당시 영국인 캐머론 매킨토시에 의해 리바이벌돼 런던에서 공연되고 있던 영국소설가 찰스 디킨스의 작품 「올리버 트위스트」를 뮤지컬화한 작품인 「올리버」를 관람하고 「레미제라블」과 비슷한 시대의 비슷한 주제의 무거운 작품이 매끈하게 소화될 수 있다는데 고무되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작품은 19 80년 파리의 스포츠궁전 무대에 올려졌다.이미 쇤베르그에 의해 만들어진 「레미제라블」 음반들이 많은 인기를 모은 후였다.그러나 프랑스 바깥으로는 별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레미제라블」이 세계적인 뮤지컬로 알려지게 되는 전기를 가져온 것은 매킨토시와의 운명적 만남 때문이었다.당시 이미 「캐츠」를 제작,롱런가도에 올려놓고 있던 매킨토시는 쇤베르그의 「레미제라블」곡들을 듣고는 바로 부릴과 쇤베르그에게 영어판 「레미제라블」을 만들 것을 제의했던 것. ○한편의 거대한 서사시 그들의 동의로 일은 급진전돼 영어판 대본이 만들어졌고 런던에서의 공연을 위한 캐스팅,무대장치등 모든 것이 새로 시작되었다.후에 「오페라의 유령」과 「미스 사이공」을 제작,브로드웨이 빅4를 모두 자신의 손을 거쳐 나오게 한 뮤지컬의 귀재 매킨토시는 자신은 총감독을 맡고 「캐츠」에서 호흡을 맞췄던 로열셰익스피어극단의 예술감독 트레버 넌과 존 내피어에게 각각 연출과 무대장치를 맡겼다.내피어는 빅4의 무대장치를 모두 만들었다. 이같은 호화 제작진에 의해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뮤지컬 「레미제라블」은 런던의 브로드웨이인 웨스트엔드 무대에 바로 올려지지 못하고 1985년 10월 변두리인 바비칸 센터에서 개막됐다.그후 이 극은 점차 호평을 받게됨에 따라 웨스트엔드의 팰리스 극장으로 옮겨 공연되었으며 87년 3월에는 뉴욕 브로드웨이에까지 진출하게 되었다. 빵 한조각을 훔친 죄로 감옥에 가고 석방된 후에도 평생을 쫓겨다녀야 하는 장 발장(돈 쿡)과 그를 쫓는 자베르 경감(머윈 포드)의 얘기를 중심으로 하여 그 중간에 코제트(탐라 헤이든)와 마리우스(크래그 루바노)의 사랑,시민혁명등 수많은 얘기들이 삽입되는 이 뮤지컬은 장 발장이 감옥에서 가석방되어 노년이 되어 죽기까지의 전체 스토리를 연대기적으로 표현한 한편의 거대한 서사시다. 막이 오르면 18 15년 한 프랑스 시골마을이 무대로 나온다.19년의 형살이 끝에 가석방된 장 발장은 성당 신부(케빈 맥기어)의 선한 가르침으로 새로운 인생의 다짐을 하게 된다. 거주제한등을 피해 이름을 마들렌으로 바꾼 장 발장은 8년후 한 공장의 주인으로 시장의 지위에까지 오른다.그곳에서 여공인 미혼모 팡틴을 알게 되고 그녀가 죽게 됐을 때 그녀의 딸코제트를 길러줄 것을 약속한다. 그러나 자베르 경감의 집요한 추적에 그는 다시 쫓기는 신세가 되어 여관집에 맡겨두었던 코제트를 데리고 파리로 향한다.18 32년 파리에서는 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공화주의자들의 시민혁명이 일어난다.바리케이드를 쌓고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나 결국 시민군의 패배로 끝난다. ○음반으로도 크게 히트 장 발장은 전투에서 부상을 입은 코제트의 애인 마리우스를 구출,코제트와 결혼시킨다.마리우스는 장 발장의 신분을 알고는 그를 멀리하지만 후에 자신의 생명을 구해준 은인임을 알고는 잘못을 깨닫고 그에게로 온다.장 발장은 코제트 부부가 지켜보는 가운데 조용히 숨을 거둔다. 장 발장이 있던 감옥,코제트가 있던 퀴퀴한 여관집,팡틴이 있던 창녀촌,혁명을 모의하던 작은 카페,장 발장이 마리우스를 구출해 도망가던 파리의 하수구,바리케이드를 사이에 둔 치열한 전투등 극중 무대의 대부분이 어둡고 침울한 배경을 이루고 있다.그동안 뮤지컬이 금기시했던 비극적 상황들의 훌륭한 조화를 통해 휴머니즘의 뜨거운 감동을전해주는 데 성공한 것이다. 특히 이 뮤지컬은 회전무대의 역동성을 충분히 활용,지루함없는 극의 연속이 이뤄지게 했으며 좌우 양측의 구조물을 연결시켜 이뤄낸 시민군이 쌓아올린 웅장한 바리케이드와 조명으로 처리해낸 파리의 하수구는 내피어 무대장치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또한 이 뮤지컬은 음반으로도 히트해 RCA사에서 만든 오리지널과 같은 음반사에서 출반된 오케스트라판,즉 오케스트라 필하모니아의 연주로 반주를 보강한 것 모두 큰 인기를 모으고 있다.쇤베르그 음악의 특징은 무엇보다도 큰 흡인력으로 CD 2장(오케스트라판은 3장)의 전곡을 듣는 동안 무아의 서정성에 푹 잠기게 한다.
  • 1946년 「미·소공위」(새로 쓰는 한국현대사:10)

    ◎「임정수립」 합의… 참여 정당·인물싸고 암투/소,반탁 사회단체 배제… 1차공위 무기휴회/자국세력 구축속셈에 남북은 단정 줄달음/「하나의 정부」 무산… 38선 제거못해 분단 고착화 우리 민족이 맞는 새해는 늘 각별한 것이었다.1946년 새해도 어떤 소망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기대감 속에 다가왔다.지난해 해방원년의 세밑을 찬·반탁 소용돌이 속에 휘말려야 했었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그래서 새해에 열리기로 되어있는 미소공동위원회에 많은 기대를 걸었다. 미소공동위원회에 앞서 예비회담이 그해 1월16일 서울 덕수궁에서 열렸다.미국 쪽에서는 AV 아놀드 소장이,소련 쪽에서는 T E 스티코프 대장이 대표로 참석했다.미소의 첨예한 대립은 예비회담에서부터 노골적으로 표출됐다.거기에는 장차 한반도에 태어날 정부에 자국이 서로 얼마나 세력을 확보하느냐는 속셈이 깔려 있었다. ○소대표단 120명 파견 미국은 먼저 한반도 통일에 방해가 되고 있는 38선 철폐방법을 포함한 경제문제 등 비정치적 분야부터 해결할 것을 제의했다.이에 반해 소련은이보다 정당세력 통합과 같은 정치적인 문제해결이 급선무라는 입장을 들고 나왔다.결국 의견차이를 좁히지 못한채 38선 설정으로 생긴 남북간의 비현실적인 장애요인 제거는 뒷전으로 밀려났다.예비회담은 조선임시정부 수립이라는 과대포장의 정치문제를 토의할 분과위원회 설치를 골자로한 공동성명 채택을 끝으로 2월5일 폐회한다. 예비회담이 열리고 있는 와중에도 반탁데모는 끝이 보이지 않았다.미군정은 반탁세력의 협조를 얻지 못한채 3월20일 덕수궁에서 개막한 제1차 미소공동위원회에 참석한다.그러나 1백20명의 대표단을 이끌고 나온 소련으로 부터 예비회담 때보다 더 도전적인 공세를 받아야 했다.당시의 기록인 「미소공위의 전말」은 회담장 분위기를 아주 적절히 표현하고 있다. 『스티코프는 번번이 연필을 책상에 집어던졌다.미국이 아무 것도 모르니 한수를 가르쳐 주겠다는 식으로 모욕적인 말들을 했다.아놀드장군은 안경을 벗고 일어나 스티코프에게 발언을 취소하라고 요구했다.(중략)아놀드는 가끔 스티코프를 꼼짝하지 못하게 만들었다.스티코프는 39세였다.아놀드가 겸손하게 「나의 33년 군경력에서…」라고 말하면 스티코프는 기가 죽었다』(주한미군사 문서철·19 46년) 소련측은 미소공동위원회의 임무가 조선임시정부수립을 밀어주는데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그래서 회의초부터 임시정부 수립에 따른 협의대상으로 삼을 정당과 사회단체 선정기준을 제시하고 나섰던 것이다.그 기준은 ▲3상회의의 결정을 지지할 것 ▲진실로 민주주의적이어야 할 것 ▲장차 한반도를 대소련침략의 요새지로 만들려는 반소련적 성격을 가진 집단이나 인물이 아닐 것 등이다.모스크바 결정에 반대하는 정당이나 개인과는 협의하지 않을 것이란 원칙도 분명하게 덧붙였다. 미국은 여기서 소련이 미소공위의 가장 어려운 부분인 협의대상자 선정문제에 주목했다.이는 결국 소련이 지배하는 한국임시정부 수립을 획책하고 있다고 판단,강경한 자세로 맞섰다.신탁반대 의견을 내세웠다고 해서 전부 협의대상에서 제외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입장을 고수했다.많은 한국민의 지지를 받고있는 정당및 사회단체의 배제는 곧 숙청을 의미하는 것으로 인식했던 것이다. 이렇게 되자 소련은 「처음에 반대했어도 지금 와서라도 신탁에 동의하고 공위가 결정할 결론에 협력만 한다면 협의대상 자격을 부여할 수 있다」는 타협안을 제시했다.이를 계기로 미소공위는 4월16일 한국의 개인이나 정당이 공위와 협의하기 전 반드시 서명할 것을 명시한 선언서를 채택한다.4월16일 발표한 「코뮤니케 제5호」가 그것이다. ○협의단체 기준 장애로 선언서 내용이 알려지자 좌우익은 심한 견해차를 보였다.조선공산당등 좌익계 정당·사회단체·북조선인민위원회는 즉각 지지 표명의사를 밝혔다.반면 우익및 민족진영은 이 선언서에 대한 서명은 곧 신탁통치에 동의하는 의미 밖에 없다는 이유를 들어 절대로 서명하지 않겠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미국측은 선언서 서명이 신탁에 찬동하거나 지지할 의무를 부과하는게 아니라는 식으로 설득했다.우익과 민족진영도 마지못해 5월1일 일제히 선언서를 공위에 제출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소련은 이 선언서에 대한 미국의 해석에 제동을 걸었다.「선언에 서명하고도 모스크바 결정에 반대할 권리를 보유한다고 선언함은 기만이며 반동분자는 제외돼야 한다」는 완강한 태도를 보였다.미국은 이에 대해 의사표시는 언론자유 보장의 원칙이라는 점을 내세워 옹호하고 나섰다.처음부터 동상이몽격으로 대좌한 1차 미소공위는 5월6일 무기휴회에 들어감으로써 사실상 결렬되고 말았다. 제1차 공위결렬은 남한에서 좌우익간 대립을 더욱 부채질 했고 단독정부 수립론이 서서히 머리를 들었다.또 북한에서는 나름대로 「혁명적 민주기지론」에 입각한 통일민족국가 수립을 차근차근 진행시켰다.미국이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계획을 모색하면서 남한에서의 좌우합작을 추진하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 때다. 미국의 남한 단정수립 계획은 이승만의 단정수립과 관련한 순회연설에서 드러났다.그는 6월3일 이른바 전북 정읍발언을 시발로 이리·서울·개성에서 연속적으롤 단정수립을 주창했던 것이다.미국의 단정수립 의도는 미 육군전략사무소(OSS)요원으로 당시 이승만과 빈번하게 만났던 굿펠로우의 5월24일 도미 발언이 뒷받침 한다.서울신문이 입수한 그의 발언은 『만일 미소공동위원회의 소련대표단이 조속히 돌아오지 않을 경우 미국은 남한 단독정부의 구성을 추진해야 할 것』(미 대외정책문서·19 46)이라는 내용을 담고있다. 그러나 중도적 온건파였던 김규식과 여운형은 모두 민족단합을 통한 통일된 임시정부 수립을 원했다.7월22일과 25일에는 좌우 양쪽이 예비회담을 갖고 29일 덕수궁 석조전에서 정식회담을 갖기로 합의하는 데까지 의견을 도출해냈다.그러나 좌우합작 원칙을 둘러싼 박헌영의 극좌적인 조선공산당과 여운형의 인민당 사이의 갈등으로 좌익진영을 2차회담에 끌어들이지 못했다. ○「입법의원」 극우파 장악 미국은 또 다른 한편에서 임시정부 수립시 당면문제를 자치적으로 처리할 입법의원 설립을 추진했다.이를 위해 민주의원 의장 김규식과 조선인민당 위원장 여운형을 적격인물로 찍었다.좌우합작을 시도한 미국의 대한정책은 46년이 저물어가는 12월12일 김규식을 의장으로 하는 입법의원 개원을 성사시킨다.1차 미소공동위원회 결렬후 자국에동조할 수 있는 세력확보에 고심한 미국은 입법의원 개원으로 얼핏 새로운 전기를 맞는듯 했다.하지만 입법의원도 극우파에게 넘어가 유명무실한 존재로 전락한다. 제2차 미소공동위원회는 해를 넘겨 19 47년 5월21일 서울 덕수궁에서 열렸다.제1차 공위가 결렬되고 나서 다시 모이는데 어언 1년이 걸렸다.두차례에 걸친 공동위원회는 한반도에서 임시정부 수립을 추진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상은 자국 세력구축 무대에 불과한 것이었다.그리고 미·소의 각축 속셈을 읽어내지 못했던 좌우익 양측은 임정수립을 위한 연합체 결성에 실패했다.미소공위는 결국 남북한 단독선거와 단독정부 수립에 이은 분단 고착화 이외에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다. □특별취재반 ▲황규호(문화부 부국장급) ▲이용원( 〃 기자) ▲김성호( 〃 〃 ) ▲김경운(조사부 〃 )
  • 영산강 수계/“농사 젖줄” 4개댐 저수율 24%

    ◎가뭄특별취재반 전남서 책7신/저수지 7곳 바닥… 3천여곳은 절반 그쳐/1백50㎜ 비와도 5만여㏊ 모내기 못해 5개월째 극심한 가뭄에 시달리고 있는 광주·전남지역에는 지금 20여년전에 겪은 「쌍둥이 한해」의 악몽이 되살아 나고있다. 지난 67년과 68년 이 지역에는 연속 가뭄이 몰아닥쳤다.68년에는 벼 재배면적의 4분의1인 5만1천여㏊의 논에서 모내기를 하지 못했다.또 그해 여름내내 비가 오지않아 10만9천2백25㏊의 논은 벼가 말라붙었다.당시 쌀 생산량은 1백70만섬.목표치 3백90여만섬의 절반을 밑돌았다. 비슷한 상황이 올해 또 이곳에 재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68년 강수량은 8백60여㎜.지난해 강수량은 8백97㎜로 평년 평균강수량의 3분의2 수준이다. 전남지역 농업용수는 장성·나주·광주·담양 등 영산강수계의 4대호와 3천2백4개 저수지에서 공급되고 있다. 장성호 등 4개 댐의 저수율은 24%.지난해 같은 기간의 69%에 크게 못미치고 있다.3천2백여개 저수지는 7개가 바닥을 드러낸 것을 비롯,평균저수율은 47%다.지난해 78%의 절반을 약간웃도는 수준이다. 전남도 박재순 농정국장은 4월말까지 3백㎜의 비가 오지 않으면 천수답 1만7천여㏊는 모내기가 불가능할 것으로 보고있다. 또 1백50㎜의 비가 내리면 5만5천여㏊의 논에서 모내기를 할 수 없게된다.68년 가뭄에 버금가는 것이다. 1㏊의 논에서 쌀을 생산하기 위해 5천여t의 물이 들어가는 것을 근거로 산출한 것이다. 이 지역의 1월부터 4월까지의 평균강수량은 2백70㎜.이 정도의 비만 내리면 아쉬운대로 고비를 넘길 수 있으나 상황이 심상치 않다.올들어 내린 비는 35.8㎜로 평년의 42.5㎜에 비해 6.7㎜가 적다. 생활용수의 형편도 여의치 않다.광주·전남지역은 주암·수어 등 2개댐과 47개 저수지에서 식수등 생활용수가 공급되고 있다.공급비율은 주암댐과 저수지가 각각 45%이며 나머지는 수어댐이 차지하고 있다. 저수지의 저수율은 25%로 지난해 64%와 비교하기가 어렵다.주암댐은 아직 여유가 있다.저수율은 53%로 예년 평균저수율 47.9%를 웃돌고 있으며 수위도 98.68m로 발전가능수위 85m에 비해 14m가량 높다.그러나 주암댐은 쓰임새가 많다.전남 공단지역의 공업용수 공급원인 주암댐은 현재 광주지역 식수로 30만t,영산강 하천 유지수로 15만t등 모두 45만t을 초과방류하고 있다. 현재는 이 지역 가뭄을 결정적으로 진정시켜 주고 있지만 가뭄이 장기화되면 힘에 부치게 된다. 농정관계자들도 최악의 경우 주암댐물을 쓰려한다.수어댐도 저수율이 64%로 지난해 46%에 비해 높지만 이 댐은 공단지역을 끼고 있는 광양시 몫이다. 수량부족으로 수질상태도 88년 이후 최악이다.영산강환경관리청에서 채수하는 나주대교의 생화학적산소요구량(BOD)은 지난 1월 평균 6·2ppm.지난해 같은 기간의 5.1ppm에 비해 1.1ppm 높아진 것이다.목포시민의 식수원인 몽탄취수장은 주암댐에서 하천유지수 명목으로 물을 방류하고 있는데도 0.5ppm 상승한 3.8ppm이다. 몽탄취수장의 암모니아성질소농도는 더욱 심하다.원수 농도가 2월 평균 4.72ppm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4.31ppm보다 높다.정수
  • 신문 무분별 증면 문제 있다/정진석 외대교수·언론학(기고)

    ◎자원낭비 비판 듣지 않을지 자문해보길 신문의 지면이 날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이른바 「섹션화」바람도 불고 있다.작년에 한 일간지가 섹션화를 내걸고 하루에 48면을 발행하기 시작한 이후에 신문들이 앞을 다투어 지면 늘리기 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신문마다 차이가 있지만 중앙지의 경우 적게는 하루에 24면에서 48면까지 발행하고 있으며,지방에서도 대구와 부산에서는 32면을 발행하는 신문들도 있다.전국의 1백개 가까운 일간지들이 하루에 최소 16면 이상을 발행해야 할 타당한 이유가 있는 것인지,국가적인 견지에서 냉정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굶주렸던 사람에게는 많은 것을 줄수록 좋을 수도 있다.가난하던 시절에는 많이 먹었느냐는 인사도 있었고,뚱뚱하게 불거져 나온 배를 보고 「사장배」라 하여 좋게 보던 시절도 있었다.그러나 이제는 무엇을 먹었느냐가 중요하다.지면을 늘리기만 한다고 신문·잡지가 좋아지는 것도 아니다.우선 늘린 지면을 알차게 채울만한 기사가 있는지부터 짚어보아야 할 것이다.잡지들 가운데는 지면을줄이는 전략까지 등장하는 상황이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최근의 신문은 늘린 지면을 밀도 있게 꾸밀 수 있는 태세가 갖추어지지를 않았다.모든 신문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급작스럽게 경쟁적으로 늘린 지면을 메울 기사가 없어서 지면이 산만하고 밀도가 떨어지는 느낌이다.늘어난 지면을 주체하지 못해서 아무거나 가리지 않고 닥치는대로 먹은 끝에 천덕스럽게 살찐 여인을 연상하게 만들어서는 안 될 것이다. 둘째로 생각할 문제는 자원 낭비라는 측면이다.근년에 민주화의 바람을 타고 일간지·주간지·잡지 따위의 정기 간행물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거기다 지면도 확대되다보니 신문용지의 부족 현상이 나타나서 일부 신문에서는 수입용지까지 쓰고 있다 한다.쓰레기와의 전쟁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판이다.환경보호를 외치는 언론사들이 한편으로는 지면 늘리기 경쟁을 벌여서 자원을 낭비한다는 사회적인 비판을 듣지나 않을지 스스로에게 물어 볼 일이다.늘려야 할 기사가 있어서가 아니라 남에게 질 수 없다는 경쟁심과 허세로 신문을 만들어서야되겠는가. 한때는 독자와 언론인들이 증면을 절실히 요구한 적도 있었다.신문제작의 책임을 맡은 간부들의 모임인 한국신문편집인협회는 신문의 증면을 요구하는 결의문을 채택했었다.30년전,정부가 신문의 지면을 늘리지 못하도록 발목에 족쇄를 채우고 있던 권위주의 제3공화국 시절인 1967년 11월의 일이었다.그 이유는 이렇다. 국민의 알 권리를 더욱 신장하기 위해서는 일간신문의 주 36면 발행제를 지양하여 조속한 시일안에 대폭적인 증면이 실시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이와 함께 정부는 증면에 따르는 용지확보에 적극적인 협조가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당시에 지면을 묶어두었던 표면적인 이유는 종이가 모자란다는 것이었다.그러나 권력의 속셈은 다른데 있었다.지면이 늘어나면 언론의 목소리가 그만큼 커지고 다양한 편집으로 비판의 기능이 확대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었다.지면을 제한할 때에 언론통제가 그만큼 용이하다는 계산도 숨어 있었다. 그러나 세상은 달라졌다.이제는 하루치 신문이 당시의 1주일분보다 더 많아졌다.지면을 늘리거나 줄이라고 강제할 권력도 없다.오히려 늘어난 지면에는 그 비율보다 훨씬 많은 전면짜리 대형광고가 게재되어 독자들을 짜증나게 만들고 있다. 광고가 늘어났다고 해서 반드시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그러나 대형 광고로 인해 지면의 연속성을 가로막거나,늘어난 지면을 연예·오락기사 따위로 채워서 신문의 품위를 떨어뜨릴 우려가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은 것이다. 우리는 아직도 신문 발행부수공사제도(ABC)를 정착시키지 못하고 있어서 무료로 뿌리는 신문이 많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언론사들은 자율적이고 이성적으로 증면 경쟁을 지양하고 주어진 지면을 더욱 알차게 꾸며서 독자들에게 봉사하도록 노력할 것을 독자의 한 사람으로 당부하고 싶다.이제는 어디선가 지면을 줄이라는 결의문이라도 나와야 할 형편이다.
  • 한국의 대EU 무역적자 눈덩이/대일역조 이어 두번째로

    ◎11월까지/26억4천만달러 기록/수입규제 강화로 수출위축 80년과 82년에 최대 무역수지 흑자대상국이었던 EU(유럽연합)가 일본에 이은 제 2의 적자대상국으로 떠올랐다.70년대부터 80년대 후반까지 최대의 흑자대상국이었던 미국도 올들어 6위의 적자대상국이 됐다. 26일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올들어 11월 말까지 우리나라의 EU에 대한 무역수지는 26억4천1백만달러의 적자를 기록,최대 적자대상국인 일본(1백6억2천1백만달러)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대EU 무역수지 적자는 지난 해에는 7억5천5백만달러로 일본과 사우디 아라비아·호주·오만·이탈리아에 이어 6위였으며 92년에는 3억5천1백만달러로 17위였다. 미국에 대한 무역수지는 83년부터 89년까지 총 3백99억8천4백만달러의 흑자를 기록하는 등 7년 연속 최대 흑자대상국 자리를 지켰었다. EU와 미국이 각각 2위와 6위의 적자대상국이 된것은 90년대 들어 대한 수입규제가 강화되면서 수출이 위축된데다 시장개방 압력으로 수입이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 발레리나 박인자(이세기의 인물탐구:65)

    ◎현란한 율동의 창작무대 쉼없이/82년 「백조의 호수」서 고난도 「푸에테」 24회 선보여/토슈즈 과감히 벗고 출연… 정통발레 변혁 시도/후진 양성하며 항상 공연주역… 내년 4월 「20년 기념작」 준비 박인자 84년 음악전문지 「객석」창간호는 발레리나 박인자를 발레계의 「비범」으로 꼽은 일이 있다.조동화·김영태·채희완등 무용평론가들의 추천이유는 이랬다. 『82년9월 「백조의 호수」3막중 오딜(흑조)에 도전한 박인자는 그동안 갈고 닦은 기량으로 눈이 부시도록 현란한 푸에테를 24회나 도는 저력을 보였다.83년5월 그가 춘 오데드 솔로 역시 에메랄드처럼 빛나는 무대였다.그후 쇼스타코비치의 「아다지오」와 「녹색의 변주곡」에서 그는 지체의 포물선을 감각적으로 금긋는 데 기여했다.개성이 돋보이는 박인자에게서 아직 노련미를 찾긴 어려우나 그의 작업은 신뢰감을 갖고 주시해도 좋을것 같다』는 요지였다. 한 다리로 서서 몸을 완전히 회전시키는 푸에테란 발레리나의 자존심이 걸린 고난도 테크닉의 하나다.최근에는 테크닉 발달로 이보다 긴 푸에테와 필루에트를 성공시키는 예가 흔히 있지만 10여년전만해도 그의 연속 푸에테는 무용계의 화제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후 개인발표와 지방공연·춤작가 12인전·대한민국무용제등 각종 대형행사에서 박인자는 클래식과 네오클래시시즘 창작발레와 재즈발레에 이르기까지 변화되고 발전된 춤의 모습을 정열적으로 펼쳐왔다.91년 국립극장에 올려진 「레이몬다」가 「클래식의 격정과 정확성」을 갖춘 무대였다면 「불새」의 경우는 모리스 베자르의 단순화된 현대발레를 「스트라빈스키 음악의 역동성을 살려 힘있고 치밀한 원형무로 만든 수작」이었다. ○격있는 화려함 과시 지난해 가을 문예회관 대극장에서 선보인 그의 「나비부인」은 긴 부드러운 의상속에서 물흐르듯 유연한 동작을 구사하여 『40대 무용가 중에서 포르드 브라(팔의 움직임)의 정지미를 이만큼 탄력적으로 과시한 발레리나는 드물다』는 평을 받았다.더구나 창작발레 「초록의 환상」에서 토슈즈를 활짝 벗고 산뜻하게 치솟는 도약은 무중력과 부력의 이미지를 꽂으면서발레는 그 「무엇」이 아니라 지속적인 훈련이고 기교이며 동시에 「격있는 화려함」이라는 것을 단적으로 제시했다. 평론가들의 평이 아니더라도 박인자발레의 매력은 댄서의 묘기를 완벽하게 소화한 프로의식과 아름다움이 넘치는 무대의 회화성에 있다고 볼 수 있다.그리고 분홍신을 신은 것처럼 그는 신들린듯 무대를 선회하고 회전하면서 그가 춤추는 공간에 오색찬란한 빗살무늬를 뿌려나간다. 그의 발레는 60∼70년대 국립극장 무대에 올려진 정교한 클래식 발레와는 그 형식면에서 뚜렷한 차이점을 갖고 있다.즉 그의 춤은 이지적이고 극적인 움직임과 육감적인 신선미를 잃지 않는다.이른바 무엇을 추어도 활기차고 선이 선명하며 창작력과 문학성이 뛰어나다.그는 춤출 뿐만 아니라 탁월한 발레조련사이자 매우 두뇌회전이 빠른 안무의 재구성자이고 「그래서 대학권에 두기에는 너무 아까운 재목」이라고 평론가 김태원은 한탄해 마지않는다. 박인자의 유년의 기억은 햇빛처럼 밝고 순탄하기만 하다.서울 충무로에서 약국을 경영하던 박명근씨와 노오례여사의 6남매중 막내로 태어나 어릴 때는 피아노를 쳤고 금란여중에 다니면서 발레리나 서정자의 눈에 띄어 발레에 입문했다.1백62㎝의 크지도 작지도 않은 유연한 몸매를 타고난 그는 임성남 문하에서 본격적인 발레수업을 받았고 서울예고 2학년때인 69년부터 벌써 국립발레단 정기공연에 참가하여 스승·선배들의 기대를 한몸에 모았다. 대학4년때인 74년 동아무용콩쿠르에서 「지젤」솔로로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렵다는 대상을 수상,신데렐라 탄생을 예고받은 그로서는 실은 더이상 아무것도 부러울 것이 없었다.그가 존경하는 선배 김혜식은 이 콩쿠르에서 금상을 받았고 조승미 역시 은상에 머문 데 비한다면 그의 대상은 발레계의 모처럼의 경사이자 자랑이기도 했다.그러나 기쁨은 잠시,그를 아끼는 국립발레단의 임성남씨와 대학의 스승인 김정욱교수 사이에서 그는 프리마 발레리나냐,대학교수냐의 양갈래 길에서 무엇인가 선택하지 않으면 안되는 결정적인 순간을 맞게 되었다.전문 발레리나로 그를 키운 임성남씨는 당연히 국립발레단 입단을 권유했고 대학 발레의 향상을 걱정하던 원로 김정욱교수는 대학에서 발레를 가르치는 일도 공연 못지 않게 중요함을 누누이 역설해왔다.더구나 그는 4년동안 모교인 수도여사대(현세종대)에서 장학금을 받고 공부한 처지였다. ○고민끝에 「대학」 선택 고민끝에 그는 결국 대학을 선택하기로 마음먹었다.김정욱교수의 뒤를 이어 대학에서 후배를 가르치면서 자신의 무대를 만들자고 생각했으나 박인자의 결정에 놀란 임성남씨는 『그러려면 대상수상을 되물리라』는 농담반 비슷한 격노를 나타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예술가중의 어떤 사람들은 위대성을 타고나게 마련이지만 또 어떤 이들은 후천적으로 이를 획득한다.그러나 아무리 타고난 위대성이라도 갈고 닦지 않는다면 한낱 범용에 그치고 말 것이다』 우연이나 요행은 절대로 훌륭한 예술가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그는 자신의 재능을 발전시키기 위해 지금도 「피나는 노력」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말한다. 그동안 그는 미국·일본의 발레학교에 나가 다양한 테크닉을 연마하면서 발레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모든 룰들을 다시한번 생각해볼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그중에서 그에게 영향을 준 것은 윌리엄 포사이드와 모리스 베자르의 파격의 안무였다.특히 리옹발레단의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줄리엣을 감시하기 위해 무대에 경비견까지 끌고 나온 것을 보고 그는 고질화된 형식에서 벗어나 맨발벗은 모습을 발레에 적용하는 과감한 용기를 보였다.타당성이 없이 누군가 고수하려는 것을 「누군가 깨야 한다」는 의지로 작품에 맞지 않으면 토슈즈나 튀튀 클래식 튀튀 로맨틱을 고집하지도 않았고 「나비부인」에서 창살에 비친 그림자춤이나 「피아노」에서의 파도와 달빛타기를 푸른 휘장으로 표현한 것도 같은 맥락의 시도다. 박인자에겐 많은 장점이 있다.평상시의 그는 발레리나의 티는 물론 교수의 티도 내지 않는다.지젤의 분위기를 닮은 해맑은 싱그러움을 간직한 채 일상적인 대인관계를 원만하고 진지하게 풀어나간다.그가 모교를 떠나 발레전공이 없는 숙대 무용과로 옮겨간 것은 그가 지도한 후배들에게 교수자리 하나라도 내어주기 위한 배려였다.그의공연장에 장르를 초월한 수많은 무용인이 찾아들고 그의 춤을 격려하고 환호하는 것만 봐도 그의 후덕함을 엿볼 수 있다. ○무용과 음악을 분리 단지 자신의 올바른 주장은 남의 눈치를 보거나 주위를 의식치 않고 똑바로 관철시키는 주의다.문예진흥원 창작활성화 무용기금속에 음악파트가 포함된 것을 보고 무용과 음악을 따로 분리한 것도 그가 이룬 성과다.가족은 건축가인 부군 함정도(서울산업대교수)씨와의 사이에 1남(고교)1녀(여중). 우리의 본격적인 클래식 발레는 김정욱·임성남·홍정희에서 김학자·김혜식·조승미로 이어지고 이들은 대부분 대학에서 후배를 양성하거나,발레를 지도하거나 안무에 치중하는 시기다.대학에 몸담고 있으면서도 지금도 끊임없이 발레무대의 주역이라는 점에서 박인자는 단연 현역의 톱에 틀림없다.그러나 육체를 매체로 하는 무용의 세계에서 무대예술가의 활동시한은 전보다 길어지는 추세이긴 하지만 「꽃처럼 무섭게 시들어버리는 육체의 언어로 예술적 광채를 영속하기란 좀체로 쉽지 않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다.더더욱 인간의 영혼을 전율케 하는 「사색의 끝」에 치닫지 않고서는 모든 움직임은 무의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그는 바람이나 파도나 봄을 맞는 대지의 꿈틀거림이 인간의 희비애락에 자연스럽게 접목되는 「마음의 춤」을 추구하는 시기다. 그래서 단순하게 허공중에 들어올린 팔 하나라도 가장 자연스러운 바람속의 흐름이기를 원하고 있다. 내년 4월3일 중앙국립극장 대극장무대에 올릴 「박인자발레 20년 대공연」을 앞두고 그는 겨울방학 시작과 함께 짙은 사색에 빠져 있다.그로서는 결국 몇 안되는 별중에서 끝까지 반짝이는 하나이고 싶은 것이다.그리고 그가 춤추고 지나간 자리에 언제까지나 긴 여운으로 불꽃 같은 극미의 항적이 남기를 스스로 기대하려는 것이다. □연보 ▲1953년 서울출생 ▲1966년부터 임성남 사사 ▲1969∼73년 국립발레단단원 ▲1971년 서울예고졸업 ▲1974년 동아무용콩쿠르 대상수상,ASTA총회참가 공연 ▲1975년 수도여사대(현 세종대)졸업 ▲1977년 동대학원 졸업,세종대강사,PATA총회참가 공연 ▲1979년 세종예술원창단 공연 ▲1980년 예무회창단 공연 ▲1982년 박인자발레,대한민국무용제·한국발레협회 창작발레공연 ▲1983년 박인자발레 공연 ▲1984년 일본 도쿄시티발레·아메리카발레센터연수,데이비드 하워드 발레스쿨 수학 ▲1985년 미국 애리조나주립대 교환교수 ▲1986년 김정욱발레페스티벌 출연,86아시아문화예술축전 안무 ▲1987년 박인자발레 공연,숙대교수 ▲1988년 88서울올림픽 문화예술축전·서울국제무용제·현대오페라단 「리골레토」중 「집시의 춤」안무 ▲1989년 박인자발레 공연(대구·서울),발레20 창단기념·임성남 발레45주년기념공연 안무·출연 ▲1990년 세종문화회관 분수대공연,중앙일보사주최「그랜드발레 페스티벌」안무 ▲1991년 박인자발레 공연(부산·서울),춤작가 12인전안무 출연,청룡영화제 오프닝 세레모니 「코러스라인」안무 ▲1993년 박인자 창작발레(창원·대구·여수) 「대지의 소리」「승천」「연습실에서」「해적 2인무」「팝을 위한 바리에이션」「나로부터 멀리」「고귀한 승리」「파키타」「불새」「나는 뭐드라?」「나비」「나비부인」「꼬리기르기」「가을저녁의 시」「피아노」등 다수 한양대 체육대 박사과정 한국발레협회및 한국무용학회 이사 국립발레단 자문위원 숙대무용과 교수
  • 대한뉴스(외언내언)

    연전에 모TV방송 주말연속극 「아들과 딸」이 잔잔한 감동을 안겨주면서 시청자의 인기를 끈 일이 있다.스토리의 전개,개성파 연기자들의 열연등이 시청률을 높인 요인이 되었겠지만 무엇보다도 시대배경으로 설정했던 60년대초 가난하고 고달팠던 시절의 삶의 향수가 진하게 가슴에 와닿았기 때문이었을것이다.궁핍했던 시대의 생활상이 그 당시를 살아왔던 많은 사람들의 추억을 되살리게 했던것이다. 그런 이점을 노려 어느 방송국의 코미디프로에서는 50∼60년대 「춥고 배고팠던 시절」의 을씨년스러운 장면을 방영하기도 했다.「그때를 아시나요」라는 한 특집프로에선 지금의 우리가 연민을 느낄 정도의 궁핍한 생활모습을 보여준 적도 있다.이무렵의 시대상을 재현시켜준 이 필름들은 국립영화제작소(현 국립영상제작소)가 제작한 「대한뉴스」에서 선정한 것들이다. 영화관에서 영화가 시작되기 직전 의무적으로 상영되던 「대한뉴스」는 그 연원이 해방되던 해로 거슬러 올라간다.1945년 「조선시보」란 제호로 부정기적으로 제작한 것이 그 효시.그뒤 「대한전진보」로 제명이 바뀌었고 1953년들어 「대한뉴스」로 개명되었으며 주간단위로 정기제작된 것은 57년부터였다. TV가 본격 보급되기 전인 50∼60년대 「대한뉴스」의 인기도는 높았다.태극기가 펄럭이면서 떠오르는 「대한뉴스」 타이틀백도 인상적이었다.그러나 TV가 널리 보급되면서 「대한뉴스」는 국민의 관심밖으로 밀려나기 시작했다.보름이나 늦은 구문을 봐주려는 영화관객이 있을리 없기 때문이다. 80년대부터 극장의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한 「대한뉴스」는 마침내 올해 연말까지 상영되는 2천40호로 종언을 고하게 됐다. 그러나 「대한뉴스」는 광복50년의 파노라마와 시대상을 증언하는 유일무이한 영상자료이다.현대사의 부침을 필름으로 남겨놓고 「대한뉴스」는 퇴장한다.천수를 다한 셈이다.
  • 외채·인플레 “해방”/중남미경제 되살아난다(현장 세계경제)

    ◎브라질 인플레 월1∼3%로 진정/페루 성장률 12%… 평균3% 상회/통화긴축·무역자유화 주효… 해외자본 유입도 급증 공룡같은 외채와 인플레 압박에 오랫동안 숨이 막혔던 라틴아메리카 경제가 파란 생기를 되찾고 있다. 지난 80년대는 중남미의 30여 모든 나라에게 「절망만이 유일한 희망이었던」 어둠의 시대였다.1950년부터 80년까지 중남미 전지역은 연평균 5.5%의 우수한 경제성장률을 자랑했으나 계속된 정정불안과 국가경제 관리미숙으로 곧 구제할 길 없는 「제3세계」의 상징이 되고 말았다. ○정보불안으로 점철 초 인플레율이 하늘 높을 줄 모르고 치솟았다.80년부터 90년 사이 연평균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보면 브라질 2천7백50%,아르헨티나 3천80%,페루 7천5백%,볼리비아 1만1천8백%,니카라과 1만4천3백% 등이다.또 개도국의 외채는 81년 총 6천억달러에 이르러 10년새 6배로 불어났는데 중남미 제국들의 채무액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따라서 80년대 말경엔 중남미 각국에서 외국 채권자와 투자자에게 원리금상환과 이익배당금으로 흘러나간 돈이무려 연 2천억달러를 넘어설 지경이었다.만성적 경기침체,대량실업,실질임금 감소로 점철된 80년대는 상실의 시대였으며 당연히 90년대 초 라틴아메리카의 1인당 평균소득은 10년 전 수준을 밑돈 형편이었다. 그런 라틴아메리카의 경제가 견실하게 되살아나는 중이다.브라질은 올 상반기까지만 해도 월평균 인플레 증가율이 30∼50%에 달했지만 지난 7월 새 통화단위와 함께 강력한 통화안정정책을 실시한 후 월 인플레가 1∼3%로 낮아졌다.지난해 1년새 물가가 10배 가까이 치솟은 브라질을 제외하고 경제 규모에 따른 가중치를 부여할 경우,올 라틴아메리카의 물가는 12%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경제성장도 만만찮게 이루어지고 있다.중남미 전지역은 올해 3% 이상의 성장률을 4년 연속 기록할 것이 틀림없다.특히 페루는 12%를 웃돌 것이며 아르헨티나는 6% 성장을 장담한다.멕시코의 세디요 새 대통령은 내년 4% 성장을 목표로 하고있고 브라질도 안정화시책이 자리잡히면 현재의 갑절인 7∼8% 경제성장이 확실시된다. ○브라질도 흑자 재정 한때 세계경제의 문제아였던 라틴아메리카가 「제3세계답지 않게」 이처럼 낮은 인플레율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경제성장을 이룩할 수 있는 것은 긴축재정·무역자유화·민영화로 연결되는 개혁시책을 끈기있게 추진한 결과이다.칠레와 콜롬비아가 이같은 개혁의 선두주자이며 브라질,베네수엘라,우루과이,에콰도르 등이 다소 뒤쳐져 있다. 멕시코는 87년 당시 중앙정부의 재정적자 누계가 GDP의 15%에 달했으나 91년부터 긴축예산으로 흑자재정을 달성,적자누계를 반으로 줄였다.아르헨티나가 지난해 이를 뒤따랐으며 브라질도 올해 흑자재정 기록을 세울 것으로 기대된다. 자국산업 과보호와 수입품 고율관세 경향도 뚜렷이 퇴색했다.93년 현재 전지역의 평균관세가 12%로 2년 전의 26%보다 크게 낮아졌다.상호간 교역량 역시 급속히 늘어나 주요 11개국 사이의 무역이 89년 이후 배 이상 불어난 데 이어 전지역간 교역은 83년 70억달러에서 현재 2백60억달러로 급증했다. ○민영화 꾸준히 진행 정부재원을 풍부히 하고 경영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국영기업 매각정책은 중남미 개혁의기치로서 지금도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칠레와 멕시코는 거의 대부분의 국영기업을 민간에 팔았으며 아르헨티나는 원전,우체국,조폐공사,석유화학사 등 마지막 남은 정부기업마저 내년 안에 완전 매각할 계획이다. 해외자본 유입만큼 라틴아메리카의 달라진 모습과 높아진 위상을 반증하는 실례도 없을 것이다.국제채무 상환포기선언의 불명예와 그에따른 외국자본 단절로 압축되는 중남미의 「외채위기」는 4천9백억달러의 외채상존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거의 과거지사로 여겨진다.지난 90년부터 93년까지 라틴아메리카로 흘러온 해외자본의 순액은 1천7백억달러를 웃돌 뿐 아니라 외채적 성격이 짙은 상업차관은 단 5%에 불과하고 각국 유망산업과 기업에 대한 직·간접 투자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아르헨/“옛 영화 되찾자” 힘찬 발진/메넴정부,무역·외환정책 획기적 전환/90∼94년 30%이상 성장… 세계3위 기록 아르헨티나의 근현대사는 「아르헨티나의 역설」이라는 조어를 낳았다. 20세기초 풍부한 광물자원과 농장을 바탕으로 1인당 국민소득 세계 6위,무역규모 세계 10위의 아르헨티나가 근 1백년만에 완전히 피폐한 상태로 전락한 것을 비아냥거리는 말이었다.그러나 1990년대 들어 급속하게 추진된 아르헨티나의 개혁작업으로 「군화발 자객」「고인플레」「보호주의」등의 오명과 함께 이같은 역설도 이젠 실효성을 잃을 것같다. 수도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시민들은 다시 소비열을 느끼기 시작했고 은행들은 달러화시세를 전광판으로 즉시 게시한다.과거 정부와 가격인상을 위한 협의에만 능했던 기업인들은 마켓팅 방법을 논의하는데 여념이 없다. 이 모든 변화가 89년 「메시아」처럼 등장한 메넴정부가 이룩한 공적이다.그의 개혁정책을 떠받치는 3대지주는 수입관세인하와 비관세장벽 철폐로 시작된 경쟁도입이 그 하나요,연간 운영비로 수십억달러를 삼키던 공기업 민영화가 둘째다.메넴정부는 우편,항공,전기 등의 민영화로 2백40억달러를 조달했다.민영화는 외국인투자 러시를 촉발해 90∼93년 사이 무려 2백45억달러의 외자를 거두어 들였다. 세번째는「메네노믹스」로 불리는 외환정책이다.하버드대 경제학자 출신인 카발로를 재무장관으로 등용,자국통화인 페소와 달러의 교환비율을 1대 1로 정한 이른바 「태환 플랜」이 그것이다. 이와같은 개혁정책 덕분에 아르헨티나는 90년 이후 4년동안 30% 이상의 경제성장을 달성,중국,태국에 이어 세계 제3위의 놀라운 성장률을 기록했다.80년대 연평균 4백%를 유지하다 90년 연간 2만%까지 치솟았던 인플레도 수그러들어 올해엔 4%를 맴돌고 있다.노동생산성도 91년 이후 42%나 증가해 메넴은 다른 나라가 20년 걸릴 일을 아르헨티나는 5년만에 해치웠다며 자신에 차 있다. 그는 아르헨티나를 개발도상국으로 보는 시각을 단호히 거부한다.아르헨티나는 「회복하는」국가라는 것이다.물론 이같은 회복은 엄청난 고통을 수반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30년대 대공황과 2차 세계대전을 끄떡없이 견뎌냈던 아르헨티나는 49년부터 74년까지 집권한 후안 페론 정권 하에서 불구가 됐었다. 무모한 반미외교정책으로 국제적인 고립을 자초했고 국내의 계급투쟁으로 국민은 사분오열됐다.기업국유화와 이를 보호하기 위한 관세장벽은 국고를 탕진했다. 또 70년대초 군부와 좌익반군간에 벌어진 「더러운 전쟁」과 뒤이은 군부 쿠데타는 아르헨티나를 부패와 초고인플레 아래 허덕이게 했고 급기야 80년대 5백억달러 재산의 해외도피를 몰고왔다. 메넴정부의 「기적」은 암울한 과거를 딛고 일어섰다는 점에서 높이 살만하다. 다만 아직 부패척결과 공공부문의 개혁이 과제로 남아있고 폐소화의 평가절상으로 올해 60억달러까지 무역적자폭이 확대될 전망이어서 외환정책에 대한 요구도 만만치 않다.게다가 GDP의 17.6%에 불과한 저축률은 기업의 자본부족을 부채질하고 있어 메넴의 승리는 시기상조라는 반론도 무시할 수만은 없다.미완의 혁명인 메네미즘이 「기적」이란 이름값을 할지 국제적 관심사이다.
  • 발전설비 2백93만㎾ 증설/98년까지

    ◎울산등에 9기… 「자율절전 요금제」 도입/상공부 중단기대책 내년에 울산복합화력 등 설비용량이 50만㎾ 증설되는 것을 비롯,98년까지 9기·2백93만㎾의 발전소가 추가로 건설된다.또 건설 및 계획중인 발전소가운데 11기·4백46만㎾는 준공시기를 앞당기며 최대 전력수요가 발생할때 절전하는 업체에 요금을 깎아주는 「자율절전 요금제」가 도입된다. %% 상공자원부는 29일 장기전력수급계획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98년까지 짓기로 한 발전소 29기(1천2백12만1천㎾)외에 이같은 증설계획을 담은 「중·단기 전력대책」을 마련했다.상공부는 『경기추세로 볼때 98년의 최대 수요는 올해보다 1천만㎾ 는 3천6백24만㎾에 달하고 공급예비율은 2∼3%에 머물 전망이어서 수급이 불안하다』고 밝혔다. 따라서 ▲울산복합화력(60만㎾) ▲보령복합화력(60만㎾) ▲서천복합화력(30만㎾) ▲울산 스팀터빈(30만㎾) ▲화천·청평수력(18만㎾) ▲보령·서천 스팀터빈(45만㎾) 울산복합화력 및 경인에너지(74만㎾)의 설비를 신·증설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 대책이 착실히추진돼도 내년과 96년의 예비율은 6%를 밑돌고 올해처럼 이상고온이 나타날 경우 1∼2%로 떨어지게 된다. 따라서 여름 휴가철에 3일 연속 3천㎾이상을 절감하는 업체에 전기료를 깎아주고 수급조정요금제의 실시기간도 현 8월 둘째 및 셋째 주에,7월 셋째 주를 추가하기로 했다. 이처럼 신·증설과 수요관리가 강화되면 공급예비율은 내년 5%,96년 5.9%,97년 9.4%,98년에는 12%로 높아진다.
  • 「오리엔티어링」/등산의 묘미에 사고력 키운다

    ◎지도·나침반만 이용… 미지의 목표 도달/이론수업 1시간이면 누구나 즐길수 있어/지형탐지력 배양… 극기의 성취감 “짜릿” 「높고 푸른 가을하늘을 벗삼아 단풍숲속을 달린다」. 산과 계곡을 무대로 간단한 지도와 나침반만을 갖고 미지의 지점을 찾아가며 희열과 성취감을 맛보는 「오리엔티어링」(O.L)이 제철을 맞고 있다. 휴일인 지난 23일 산자락까지 단풍이 붉게 타올라 절정을 맞고 있는 도봉산·북한산등 서울 근교산에는 코니언등 레저단체나 직장단위로 오리엔티어링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크게 몰렸다. 오리엔티어링은 대자연속에서 지도와 나침반만을 사용,보물찾기하듯 지도위에 표시된 몇개의 지점(포스트)을 순서대로 가능한한 빨리 찾아가야 하는 「생각하며 달리는 레포츠」이다. 오리엔티어링의 종류와 경기방법·독도법·나침반사용법등 간단한 이론은 1시간정도면 배울 수 있으며 출발점을 중심으로 보통 반경 2㎞내에서 40분에서 1시간동안 혼자 또는 짝을 지어 치러지나 가족단위등 참가자의 형태에 따라 다양하게 즐길 수 있다. 도봉산에서 오리엔티어링에 나선 코니언회원 한명훈씨(36·회사원)는 『주말이면 혼자 산행을 즐겨왔는데 단조로움을 벗어나기 위해 새롭게 독도법등을 익혀야하는 오리엔티어링을 배우게 됐다』면서『숲속에 숨겨진 목표지점을 찾을 때마다 단순 산행과는 비교할 수 없는 짜릿한 성취감을 맛볼 수 있다』고 말했다. 「북극성 오리엔티어링클럽」한남진회장(45)은 『오리엔티어링은 미지의 지형에 대해 방향감각과 탐지능력을 익히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정확하게 활동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데 목적이 있다』면서『출발이후에는 오직 지도와 나침반에 의지한 채 산야에서 외롭고 힘든 자기와의 싸움을 전개해야 하는 경기』라고 말했다. 유럽에서 군사훈련의 한가지로 시작된 오리엔티어링은 제2차 대전이후 급속도로 전세계에 보급됐으며 국내에서는 87년 「한국O.L연맹」이 창설되면서 본격화됐다.특히 기업체들의 신입사원 연수과정과 보이.걸스카우트의 교육프로그램에도 도입되면서 대중화돼 현재 동호인은 10만명에 이르고 있다. 오리엔티어링은 크게 포인트 O.L,스코어 O.L,라인 O.L등이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포인트 O.L이다.최근에는 스키·보트·자전거·자동차등을 이용해 오리엔티어링을 즐기는 동호인들도 늘고 있다. 오리엔티어링에 대한 문의는 한국O.L연맹(928­3940)과 북극성O.L클럽(777­6191)코니언(723­7237)등으로 하면된다.
  • 시인 미당 서정주(이세기의 인물탐구:61)

    ◎팔순에도 샘 솟는 시정… 문단의 거봉/새로운 언어­독특한 깊이로 감동의 운율빚어/어릴적 가난­방랑 벽이 창작욕이 밑거름으로/“내 숨결 그칠 때까지 시어 더듬고 또 더듬겠다” 1948년 선문사가 발행한 미당의 두번째 시집 「귀촉도」에서 김동리 발사는 이렇게 쓰고 있다. 「나는 그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나의 유일한 정신상의 재보로서 쌓아왔다. 그의 뇌락불기한 인격과 자유분방한 시혼은 그 처녀시집 「화사집」을 통하여 이미 세상에 그「비늘을 번득인」바 있지만 그를 사랑하는 사람이건 싫어하는 사람이건 적어도 이 땅에서 시를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오늘날 우리들의 머릿속에서 이 혹성의 찬연한 광망과 위치에 등한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는 오늘날까지도 평자들이 미당을 논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인용되는 명평이다. 「뇌락불기」란 「마음이 작은 일에 구애되지 않고 남에게 구속되지도 않는다」는 뜻이다. 그만큼 미당의 문학적 족적은 광활하고 높고 깊다. 그리고 훨훨 나는 그의 두루마기 차림처럼 시에 관한한 무장무애하고 무소불위하다. 지금은 문단의 거봉으로 우뚝 서 있지만 미당의 지난 세월은 가난과 슬픔과 방황과 방랑벽으로 그 인생의 절반이 혹독하게 얼룩져 있었다. 어릴 때는 당시를 배울수 있는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만14세 되던해 서울 중앙고보에 입학해서 광주학생사건에 연루되어 구속된적이 있고 고향의 고창고보에 편입했다가 식민지 교육에 반대하는 집단행동으로 또 한번 퇴학을 당했다.다시 서울로 올라와 극예술연구회 연극배우노릇, 마포 도화동 빈민촌에 입주하여 넝마주이 행색으로 쓰레기를 줍기도 했고 중앙불교전문학교(현 동국대)교장이며 존경하는 스승인 석전 박한영을 만나 안암동 개운사에서 능엄경을 공부하게 되었다. ○어릴때는 당시배워 여기에 그치지 않고 만주로 건너가 만주곡량주식회사 연길지점에서 경리과직원이 되는가 하면 김좌진장군과 이승만대통령의 전기집필,「옥루몽」등 옛소설 번역으로 생계를 잇다가 인촌 김성수 집안과의 인연으로 동아일보 사회부장 학예부장을 지내는 등 그의 인생역정은 파란이 깊고 다양하기만 했다. 이토록이나곡절이 심한 방만한 생활덕분에 한때는 자살을 기도하다 미수에 그치고 생명의 존엄을 체험하고 나서야 미당은 비로소 삶에 대한 의욕과 생명의 활기가 몸속에 용솟음치게 되었다. 그는 마침내 조선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광주 무등산 자연속에서 「난생 처음 보는 찬란하고 아름다운 것」들과 조우하게 되었고 이무렵 「무등을 보며」「학」「상리과원」같은 명품을 연달아 탄생시키기에 이른다. 그의 시들은 끊일줄 모르는 시심과 계류와도 같은 운율의 감동을 자아내면서 마치 가을 한낮 거문고 소리처럼 청랑한 운기로 흥취와 운치를 자아내는 것이 일품이다. 그의 탁월한 시업은 과거로의 관념적 도피나 신비주의에 탐닉한 시절이 있었고 영원의 생명에 대한 명상으로 온자하고 정밀한 내면을 구축하면서 「육체적 인간의 본원적 충동을 순화시켜 어느 순간엔가 숭고한 정신적 표현의 극에 도달」한 것으로 회자되기 시작했다. 최근 「시와 시학」지에서 시인들이 「교과서에 실리고 싶은 시」로 추천한 「무등을 보며」는 명편중의 명편으로 미당이 아직 38세이던 19 53년 「현대공론」에 발표한 것이다. 그때 이 시를 읽은 젊은 이들은 「구구절절 감명을 사로잡는 명구」라든지 「화살처럼 꽂히는 충격」으로 이를 극구 찬양해 마지 않았다. 「가난이야 한낱 남루에 지나지 않는다/저 눈부신 햇빛속에 갈매빛의 등성이를 드러내고 서있는/여름 산같은/우리들이 타고난 살결/타고난 마음씨까지야 다 가릴수 있으랴/청산이 그 무릎아래 지란을 기르듯/우리는 우리의 새끼들을 기를 수 밖에 없다…」 미당의 주옥같은 시들을 일일이 다 열거 할 수는 없다. 단지 그가 낳는 시마다 절륜의 절창으로 평가되는 것은 누구나 아는 일이다. 평론가 유종호는 「창의성 있는 언어구사와 독특한 깊이와 지혜, 상당량의 시편이 그릇 큰 시인의 구비조건이라면 20세기 우리 시인 가운데서 이러한 조건을 가장 보기좋게 구비한 이로 미당」을 드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과연 언어를 부리는 장인적 기술에서나 직관과 상상의 능력에 있어서나 만인이 칭송하는 대가의 반열에 선 그는 한국적 릴리시즘의 탁월한 정형을 만들어냈고 안주를 모르는 시정신으로 한국의 운치와 위엄을 어느 시에서나 감동적으로 증명해 왔다. 해인사 체류시절 미당을 사로잡은 소쩍새 울음소리는 그에게 불치의 슬픔을 느끼게 하는 음향으로 다가와 저 유명한 「귀촉도」와 「국화 옆에서」를 세상에 내놓았다. 그는 국민학교 시절에 벌써 일본여선생을 흠모하는가 하면 불혹의 나이때도 때때로 여난을 겪게 되어 「나 바람나지 말라고/아내가 새벽마다 장독대에 떠놓는/삼천 사발의 냉숫물」은 미당을 엿보게 하는 낭만시인의 일면이기도 하다. ○속과 선을 아는 성품 만년의 그는 인생을 관조하는 허허로운 마음과 가족을 거느린 가부장적 자세를 빌리고 있으나 「속도 알고 선도 아는 복합적인 성격」과 대체로 괴팍과 까다로움이 승한 편이다. 그 한 예로 70년대 초반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초청으로 영국시인 스티븐 스펜더가 한국에 왔을때 그를 환영하는 자리에서 미당은 취중이었는지 한국의 정상다운 자존심 때문인지는 몰라도 지팡이를 휘둘러 「TS 엘리엇이 아니면 돌아가라」고 외친 에피소드를 남기고 있다. 시인 고은이 한때 주란과 폭소버릇으로 위아래없이 오만방자하게 굴자 처음에는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 어지로운 헛웃음으로 바라보기만 하다가 가족회의끝에 그를 공덕동에서 추방하고 「고은출입금지령」을 내린 일도 있다. 그의 풍류는 나무와 돌과 침향(심향)과 글씨 그림외에도 난취미가 으뜸이다. 지난 70년 25년간 살아온 공덕동을 떠나 관악산밑 사당동으로 거처를 옮기고는 택호를 쑥 봉자 마늘 산자를 따서 봉산산방으로 붙여놓고 그는 한동안 나무심기와 난수집에 주력했다. 시암 배길기와의 광동보세며 삼중당 일력에 자필 시를 써주고 받은 제주한란 이야기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여류시인 김양식과의 중국춘란에 얽힌 대화는 난향같은 일화다. 당시만도 그가 지닌 서른분쯤의 난들은 「겨우 여중 2학년 정도의 잎만 여남은게 솟아올린채 꽃필날이 아득하기만 한데」 난화부재의 겨울날 김양식이 불쑥 전화를 걸어 「대만에서 구해온 중국춘란이 아주 썩좋게 한송이 피었다」고 자랑삼았던 모양이다.이때 미당의 대답이 걸작이다. 「이웃하나가 명주바지를 입으면 여러 가호가 두루 따뜻한거라는데 나도 그 푼수니 염려말고 잘 만끽하시라」고 했다. 그러자 김양식은 가족들과 휴가를 가게되니 「그 사이 며칠만 돌보아주시며 즐겨보시는게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미당은 그제서야 눈이 번쩍 띄게 반가워했고 비록 빌렸을 망정 책상위에 난을 놓고 보고 또 보고 난향을 맡으며 「시의 감동이란 것도 내 생애에서 항용 이런 식으로 일어났다. 내가 소유하는 것에서보다 소유하지 못했기 때문에 간절해지는 감동으로 시를 쓴 것이 많았다」고 한 산문에 적고있다. ○커피보다는 맥주 즐겨 그의 정열과 의욕은 식을 줄을 몰라 한때는 영어단어를 하루에 수십개씩 외는가 하면 70년 초반부터는 세계를 두루 일주하며 끝없는 여행길에 오르더니 최근엔 세계의 산봉우리를 높이순으로 1천6백여개나 줄줄이 기억해내는 독특한 취미를 보이고 있다. 미당은 올해 팔순이지만 아직도 그 시작은 그의 방창앞에 심은 소나무처럼 청청한 천뢰의 소리를 잃지 않는 기상이다.요즘도 반가운 사람을 만나면 「커피보다는 맥주」를 권하고 제자들이 마련한 시낭독회나 남을 축하하는 자리에 자주 모습을 나타낸다. 지난 9일에는 송파문화원에서 열린 국선문학회에 나와 「국선(국선)」이란 모임이름을 지어주고 후배들의 회장추대를 극구 사양하여 주변을 송구스럽게 했었다. 이제 자기자신을 홀연히 내쳐버리는 무집착의 상태에서 그의 최근의 시들은 글맛이 한층 무르익어「아무 말이나 붙들고 놀리면 그대로 시가 되는 경지」다. 산다는 것이야말로 사변의 연속이었던 시대를 거치면서 일찍이 김동리가 지적했듯이 미당은 지금도 「내 숨결이 아주 내 육신을 떠날 때까지는 더듬어보고 또 더듬어」 새로운 시에 대한 분방한 광망을 접어두거나 조금도 늦추려들지 않는다. ▷연보◁ ▲1915년 5월18일 전북고창 부안면 선운리 질마재 출생.서광한씨와 김정현여사의 2남2녀중 장남 ▲1929년 부안 줄포보통학교 졸업.서울 중앙고보 입학 ▲1931년 전북 고창고보2학년 편입,권고자퇴,서울 상경 ▲1935년 중앙불교전문학교(현 동국대)입학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시 「벽」당선 ▲1936년 시전문지 「시인부릭」편집인겸 발행인 ▲1941년 처녀시집 「화사집」(남만서고)1백부 한정판 출간 ▲19 48년 동아일보 사회부장 및 학예부장,문교부산하 예술과 초대과장 ▲1949년 한국문학가협회 시분과 위원장 ▲1952년 광주 조선대학 부교수 ▲1954년 대한민국예술원 초대회원 ▲1955년 미국아세아재단 자유문학상 ▲1960년 동국대 부교수 ▲1961년 제1회 5.16문예상 ▲1966년 대한민국 예술원상 ▲1975년 서울 신문회관서 회갑연 ▲1976년 미당시를 주제로한 시화전 서울서 제주까지 6개월간 전시 ▲1977년 한국문인협회 회장 ▲1979년 동국대 정년퇴임,대우교수로 대학원 강의 ▲1980년 동아일보 문화대상 개인상부문 본상 「귀촉도」「서정주시선」「신라초」「동천」「질마재 신화」「안 잊히는 일들」「늙은 떠돌이의 시」「산시」등 시집 14권,「서정주 문학전집」(전5권) 「서정주 시선집」(전2권)등 시 8백여수와 「서쪽으로 가는 달처럼」등 산문집과 여행기가 있음.
  • 세계를 하나로 묶는 위성이동통신/휴대폰으로 북극까지 통화 거뜬히

    ◎다국적 컨소시엄 형성… 개발경쟁 가열/5년내 실용화… 무선호출 등 서비스 다양/한국이동통신­한국통신­데이콤­현대전자 등 국내기업도 참여 운항중인 비행기속에서 국내 은행업무를 처리하고 아우토반을 질주하면서 국제간 화상회의를 할수 있는 꿈같은 첨단 위성통신시대가 눈앞으로 다가오고 있다.지구촌을 하나의 통화권으로 묶는 위성 이동통신망 구축사업에 세계 유수의 통신사및 우주항공사등이 경쟁적으로 가세하면서 빠르면 4∼5년뒤 세계 단일 통신망이 형성될 것으로 전망된다.현재 세계적으로 추진중인 위성이동통신망은 이리듐계획을 비롯해 글로벌스타,프로젝트­21,오디세이,아리에스,엘립소등 7개에 이르고 있다.이중 국내에서는 한국이동통신이 이리듐을,한국통신은 프로젝트­21에,데이콤과 현대전자는 글로벌스타에 컨소시엄 형태로 참여한다. 위성이동통신사업이란 지상 7백∼2천㎞ 정도의 지구상공 저궤도에 수십개의 소형통신위성을 쏘아 올려 세계를 단일 통신권으로 연결한다는 계획.이들 저궤도 통신위성은 지구를 주기적으로 돌면서휴대 단말기와 지구국을 연결한 전파를 통해 세계 각국에 이동통신서비스를 제공하게 된다.따라서 위성통신망이 구축되면 이동전화기를 통해 언제 어디서든 어느 나라의 누구와도 통화가 가능하다.특히 저궤도위성통신은 중계용 접시안테나등 복잡한 기구 없이도 이동전화기만한 단말기만 있으면 여행중인 사람도 자기집은 물론 어떤 업체와도 교신 할 수 있는 매우 편리한 시스템이다.휴대단말기는 1대에 7백50∼2천5백달러로 예상되며 사용료는 1분에 2∼3달러선이 될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빌리지」를 향한 인간의 염원을 금세기안에 실현시켜줄 것으로 기대를 모으는 세계 위성통신망 추진상황을 살펴본다. ▷이리듐◁ 지난 90년 미국의 모터롤러사가 수립한 계획으로 고도 약 7백80㎞ 높이의 저궤도에 무게 3백86㎏의 위성 66개를 띄워 소형 개인휴대용 무선전화기로 세계 어느 곳에서도 통신을 할 수 있게 한 이동체 위성 통신망.이 사업은 오는 98년부터 28만3천2백72채널로 음성전화 무성호출 데이터전송 팩시밀리및 위성 서비스등을 전세계적으로 알릴계획이다. 기존의 이동통신망과 연결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현재 유럽에서 설치하고 있는 범유럽 디지털 이동통신 표준규격(GSM)과도 호환성을 갖게되어 이리듐을 이용한 세계적인 위성체 이동통신망이 이룩되는 셈이다. ○유럽방식과 호환 원소기호 77번인 이리듐에서 이름을 따온 이 프로젝트는 위성들이 북극과 남극을 지나는 7개의 궤도를 따라 선회하며,각 궤도에는 11개의 주위성과 1개의 보조위성이 26도 가량의 간격을 유지한 채 운행된다.시스템 구축에 소요되는 비용 40억달러는 세계 각국의 기업들이 참여하는 국제 컨소시엄을 통해 40%인 16억달러를 조성하고 나머지 60%인 26억달러는 대출로 충당할 계획이다. 세계무선행정회의(WARC)에서 이리듐의 활용주파수 선정이 이뤄지면 올 연말 첫 위성이 발사되고 오는 97년 77개 위성이 모두 궤도상에 진입해 사용자들에게 범세계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게 된다.서비스 요금은 대략 1분에 3달러 정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리듐은 현재의 지상 셀룰러 이동통신에 비해 서비스 내용이 다양하고 전세계적인 통신망을 갖추고 있어 국제적 화물취급자,국제 비즈니스등 사업자를 주로 이용 대상자로 할 예정이다.특히 음성전화서비스 뿐만 아니라 팩시밀리,노트북PC등을 이용한 이동데이터통신 무선호출등에서도 유용하게 쓰이며 위성을 이용해 사용자의 현재 위치를 알려주는 위치검색 트래킹서비스도 제공하게 된다.따라서 이 서비스를 이용하면 항공기및 선박의 사고나 개인이 급박한 재해를 당했을 때 사고지점이나 실종위치를 밝혀낼 수도 있다.이리듐사업은 오는 2002년 1백66만명,2010년 5백만명의 가입자 확보를 목표로 잡고 있다.통신방식은 TDMA(시분할다중접속)의 디지털기술이 채택될 것으로 보인다.국내에서는 한국이동통신이 최근 7천만달러를 투자,납입자본금 5%의 지분참여를 하기로 결정했다. ▷글로벌스타◁ 미국 로럴 에어로스페이스와 퀄컴사가 주체가 되어 총 18억달러를 들여 1천3백89㎞의 상공에 48개 위성을 발사,98년말 우선 북미대륙을 대상으로 첫 서비스에 들어갈 예정이다. 오는 97년6월 최초 4개의 위성을 발사하고 9월 12개,10월 12개를 추가 발사한 뒤 98년4월과 6월에 각각 12개씩의 위성을 발사하게 된다. ○분당 사용료 2$ 모두 14억달러가 투입될 글로벌스타는 위성이동전화,무선데이터,위치확인등의 개인휴대통신 서비스(PCN)를 제공하며 글로벌스타 단말기간의 통신외에 기존 통신망과의 통신도 가능하다.이 시스템은 국내 디지털 셀룰러기술과 동일한 CDMA(부호분할다중접속)방식을 채택,주파수의 활용도및 보안성이 뛰어난 것이 특징이다. 사용료는 1분에 2달러이며 단말기 가격은 5백∼7백달러선에서 결정될 전망이다.오는 2002년 목표 가입자를 78만명으로 잡고 있다. ▷프로젝트­21◁ 각국의 주요 전화회사들이 참여하는 국제해사위성기구(인말새트)가 추진하는 사업으로 총 사업비는 30억달러로 예상하고 있다. 지난 91년부터 정지궤도와 중궤도,저궤도위성을 함께 검토해오던 인말새트는 최근 중궤도위성으로 방향을 최종 확정했다.지구에서 1만㎞ 떨어진 중궤도상에 1천2백㎏의 위성 12개를 쏘아 올려 99년쯤 전세계를 대상으로 음성전화,팩스데이터통신,무선호출등의 서비스를 개시한다는것이다. 단말기는 위성과 셀룰러를 겸용해서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이 연구되고 있다.크기는 3백∼4백50g 정도이며 가격은 5백50달러로 예상된다.그러나 생산기술이 완전하게 확보된 것이 아니어서 이 단말기를 양산하기 위해서는 1억달러 가량의 투자비와 4년정도의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전세계 73개 인말새트회원국의 1백40여개 사업자를 자본출자 형식으로 참여시킬 예정이며 현재 관심을 보이고 있는 나라는 10여개 정도.우리나라의 한국통신을 비롯해 일본국제전신전화(KDD),영국전기통신(BT),프랑스텔레콤(FT),독일텔레콤(DBP)등 세계의 주요 통신사업자들이 적극 참여의사를 밝히고 있다. 통신방식은 글로벌스타와 동일한 부호분할다중접속(CDMA)기술을 채택하고 있으며 요금은 1분에 2달러 정도가 될 것으로 알려졌다. 위성은 중계역할만 하고 기존의 통신망을 최대한 활용한다는 계획 아래 국제위성휴대통신의 표준화 작업을 서두르고 있다.이와함께 기술개발및 장비조달도 회원국 상호간 개방형 시스템도 채택,통신망 구축 비용이 비교적 적게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세계적으로 2백여개의 관문국을 설치하고 오는 2005년에 3백30만명의 가입자를 확보할 예정이다. ▷오디세이◁ 미국의 위성제작회사인 TRW사가 97년 서비스를 목표로 추진중인 중궤도의 글로벌 네트워크. 고도 1만3백70㎞의 중궤도상에 무게 1천1백35㎏ 짜리 위성 12개를 쏘아 올려 세계 주요 지역을 커버한다는 계획이다.총 13억달러의 투자계획을 세우고 있는 오디세이는 96년 위성을 발사한 뒤 97년부터 음성전화,데이터전송,팩스서비스를 제공하게 된다.서비스 초기에는 우선 북미대륙을 대상으로 삼을 예정이다.2000년까지 가입자 2백만명을 목표로 잡고 있다. ○단말기가격 저렴 ▷엘립소◁ 타원형의 비정지위성을 이용한 시스템으로 서비스 개시 목표는 97년. 미국 엘립새트사가 90년11월 「엘립소­1」을 제안했으며 이 안을 개선하여 91년6월 「엘립소­2」를 발표했다.원래는 지상 2천9백3㎞의 타원궤도에 무게 1백75㎏ 짜리 필수 위성 12개를 배치한다는 계획이었으나 그뒤 위성 6개를 추가하고 적도를 커버하는 시스템 6기를 발사,모두 24개의 위성으로 구성키로 했다. ▷아리에스◁ 지구상공 1천㎞지점에 무게 1백25㎏ 짜리 위성 40개를 배치해 지구 전체를 연속적으로 커버한다는 프로젝트.98년 서비스 개시를 목표로 하고 있으며 저위도의 서비스에 대해서는 고도 1천2백50∼1천5백㎞ 지점에 위성 10∼12개로 구성하는 적도 시스템도 검토중이다. 이밖에 러시아는 97년부터 데이터통신과 리얼타임의 전화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으로 「고넷­몰레스트」를 추진하고 있다.또 오비탈도 1억2천5백만달러를 투입,95년 사업개시를 목표로 「오브콤」을 계획하고 있다.이 서비스는 지구상공 9백70㎞ 지점에 26개의 저궤도 위성을 띄워 데이터를 송수신할 수 있도록 했다.단말기 가격이 30∼50달러로 저렴한 것이 장점이다. 한편 소프트웨어의 천재 빌 게이츠 소유인 마이크로소프트사(MS)와 이동전화회사인 메코사는 지난 3월 2001년까지 90억달러를 투자,무려 8백40개의 저궤도위성을 쏘아 올려 전세게통신의 95%를 커버하겠다는 「텔리데식」계획을 발표하여 세계통신업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이 계획은 전화에서 부터 비디오·영상회의나 장거리 의료진단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전자고속도로를 통해 모든 분야의 통신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취지에서 나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북,87년 스커드미사일 양산체제로/연1백∼1백50기 생산 가능

    ◎통일원 국감자료 북한은 지난 87년부터 사거리가 5백㎞인 스커드­B/C 미사일의 양산체제에 돌입,현재 연간 약1백∼1백50기의 생산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6일 통일원이 국회에 제출한 국정감사보고자료에 따르면 북한은 90년대들어 남북간 경제력의 차이로 인해 기존 무기체제로는 대남군사력우위를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아래 장거리유도탄및 화생방무기를 중점 개발해오고 있다. 이에따라 북한은 88년부터 사거리 1천㎞의 스커드­D형 미사일인 「로동1호」의 개발에 착수해 90년 5월 첫 시험발사했으나 실패,다시 3년간의 기술보완을 통해 93년말 함북 대포동 소재 미사일 사격장에서 1백㎞와 5백㎞의 목표물을 명중시켰다. 통일원은 북한이 95년이전까지 사거리 1천5백∼2천㎞의 「로동2호」를 개발한뒤 그 이후 사거리 2천㎞의 「대포동1호」와 사거리 3천5백㎞의 「대포동2호」미사일등을 연속 개발할 것으로 예측된다고 밝혔다. 북한은 이와함께 현재 생화학무기를 약1천t 보유,화생전력이 세계3위로 평가되고 있다.
  • 원화 절상/득인가 실인가/8백원대 붕괴 눈앞… 손익 계산

    ◎원자재 싼값 구입… 국내물가 안정/득/수출채산성 악화… 경상적자 가속/실/「원고시대」 피할수 없는 대세… 체질 강화해야 「원고 시대」가 온다.지난 85년 말∼89년 4월까지 3년4개월간의 제 1차 원고에 이은 두번째의 원고시대를 맞고 있다. 원화의 대미달러 환율은 달러당 7백원대 진입을 눈 앞에 두고 있다.14일의 기준환율은 달러당 정확하게 8백원을 기록했다.작년 말의 8백8.1원보다 달러당 8.1원이 떨어진 것으로,원화의 가치가 8개월여만에 1% 절상된 셈이다. 전문가들의 전망은 원화의 절상추세가 앞으로 3∼4년간 지속된다는 데 거의 일치한다.경제기획원과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이미 작년 말 올해의 경제운용 계획을 짜면서 대미달러 환율이 연말에 달러당 7백90원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측했었다. 조세연구원은 이보다 더 나아가 내년 말에는 달러당 7백50원대로 떨어지고 96년 말이면 7백10원대까지 떨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97년 이후에는 절상 행진이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과,멈춘다는 전망이 엇갈린다. 원화의 환율이 장기간 지속적으로 떨어지는,「원고」가 진행되면 경제에는 「득」과 「실」이 엇갈린다.수출기업들은 채산성이 악화되고 가격경쟁력이 떨어진다.따라서 수출과 경상수지에서는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지금처럼 경상수지가 적자를 보이는 시기에 「원고」가 겹치면 경상수지 적자폭은 더욱 커진다. 득도 많다.해외에서 들여오는 각종 원자재와 첨단 시설재 등을 보다 싼 값에 살 수 있다.그만큼 수출기업들의 경쟁력이 강화된다.해외 여행자들은 보다 적은 비용으로 안락한 여행을 즐길 수 있고 국내 소비자들도 수입품을 훨씬 싼 값에 살 수 있다. 원화의 대외구매력이 커지고 물가도 안정된다.국가적으로는 국부,즉 국가의 경제력이 커지고,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복지가 증진된다.당연히 우리 경제가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목표는 「원화의 절상」이지,「원화의 절하」일 수는 없다. 원화의 대미달러 환율은 지난 85년 말 달러당 8백90.2원에서 89년 4월 말 6백66.3원까지 떨어졌다.원화의 가치가 3년4개월만에 25%나 절상된 것이다. 당시의 원고 때는 경상수지가 3년 연속 대규모의흑자를 냈다.원화가 절상돼 수출이 다소 타격을 입더라도 그 충격을 쉽게 극복할 수 있었다.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경상수지는 올들어 8월 말까지 29억달러의 적자이다.이런 상황에서 원고가 진행되면 적자폭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원고는 피할 수 없는 대세이다.다른 나라들보다 성장률(자본의 한계수익률 또는 실질 이자율)이 높은 데다 향후 5년간은 자본 자유화에 따라 외자 유입이 급격히 늘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게다가 70∼80년대처럼 환율을 인위적으로 높게 유지하는 것도 불가능하다.설혹 가능하다 해도 미국 등으로부터 「환율조작국」으로 낙인찍혀 무역보복을 당하기 십상이다. 경제부처에서는 환율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재무부의 남상덕 자금시장과장은 『우리 수출기업들도 이제 더 이상 환율에 무임승차하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말한다.경쟁력은 생산성 및 품질 향상을 위한 뼈를 깎는 노력으로 생기는 것이지,결코 환율인상(평가절하) 등의 어부지리를 노려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유지창 재무정책과장도 『미국의 압력으로 일본 엔화의 대미달러 환율은 지난 85년 9월 달러당 2백50엔에서 86년 3월 1백25엔으로 급락했지만,결과적으로 일본 기업들의 체질을 강화시키는 계기가 됐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 운동권 제적생 급증 예상/대학 학사관리 강화되면

    ◎88∼92년 5년간 1천6백명 떠나/출석 엄격히 체크… 학점특혜 없애 각대학이 마련중인 학사관리 강화방안은 성적경고(학사경고)제적제를 엄격히 적용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학사경고 제적제란 한마디로 성적이 나쁜 학생에 대해서는 졸업을 보장해주지 않고 중도에 탈락시키는 규제조치.이 제도는 교육법령상 근거가 없으나 각대학이 학칙에 반영,교육부의 인가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행정지도 차원의 성격을 띠고 있다. 제적제는 학교별 차이는 있으나 대체로 학기당 4.3∼4.5점 만점에 평균학점 1.75∼2점 미만을 받을 경우 학사경고를 내리고 연속 3회 또는 재학중 모두 4회이상의 경고를 받은 학생을 퇴학시키는 게 주내용. 교육부에 따르면 88∼92년 5년동안 학사경고로 제적된 학생수는 1천6백10명.미등록·미복학에 의한 제적생을 포함하면 6만4천명을 웃돈다. 특히 한 당국자는 『이중 대부분을 학생운동과 관련된 제적생으로 봐도 무방하다』고 밝혀 주목된다. 그는 또 『지난해에는 강화된 학사경고제에 따른 경고의 누적으로 제적사유에 해당되는 학생이 적을 것으로 추산된다』며 『올 2학기부터는 강화된 학사경고제의 시행과 엄격한 학사관리로 연속경고를 맞은 주사파 중심의 운동권 학생들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더욱 이번 김일성 조문파동을 계기로 한 주사파 학생에 대한 대학별 학사조치는 한총련의 8·15 범민족대회계획이 나올 것으로 보이는 내달 10일쯤 제재윤곽이 드러날 전망이다. 이에따라 각대학은 출·결석관리를 철저히 하고 학점 올려주기 배제,성적평가를 엄격히 하는 세부방안을 마련중이다. 출석의 경우 대리출석을 철저히 가려내고 학기당 최소법정 수업시간인 16시간중 실제수업시간 10∼12시간을 채우지 못하면 예외없이 학사경고 조치할 계획이다. 시험이나 리포트제출등의 일정을 정당한 사유가 없는한 연기해주지 못하도록 하며 학점평가시에도 운동권학생과 운동부학생을 일반학생과 동등하게 하는등 성적관리를 강화하기로 했다. 지금껏 일부대학에서는 운동부원에게 학점의 특혜를 주는 바람에 운동권학생들에게도 그러한 예외를 인정했었다. 또한 교수들이학생들의 인기를 끌기위해 대부분의 학생들에게 학사경고 기준인 59점이상의 좋은 성적을 주고 있는 폐단을 최소화하도록 현행 절대평가제를 상대평가제로 바꿔 면학분위기를 높이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학사경고는 학점미달 이외에도 3과목이 F학점(학점0)이거나 F학점이 6학점에 달하는 경우에도 학사경고를 엄격히 적용할 방침이다. 이밖에 본래의 의미에서 크게 퇴색한 지도교수제를 실질적인 문제학생 지도수단이 되도록 활성화,인성교육과 이념교육등을 강화할 계획이다. 운동권학생을 무마하기 위해 지급하던 일부장학금도 성적에 따라 엄격히 제한하는 방안등도 마련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관련,중앙대 곽동성학생처장은 『보직교수등이 학생회간부를 대상으로 인간적인 대화를 통해 개인지도를 강화할 계획이며 학생회간부에게 지급하는 공로장학금을 성적이 미달되는 학생에게는 현행대로 주지 않을 방침』이라고 밝혔다. 학사경고 제적제는 지난 87년 민주화 조치이후 대부분의 대학에서 유명무실해졌다가 91년 당시 정원식총리의 외대봉변사건을 계기로 다시 강화돼 현재 서울대·전남대·조선대를 제외한 전국 1백28개 4년제 대학에서 시행하고 있다. 지난 70∼80년대 민주화운동 당시에는 주로 운동권 학생들에 대한 제재수단으로 악용되기도 했었다.
  • 모택동 억압정책 20년/중국인 8천만 숨져/WP보도

    【워싱턴 AFP 연합】 중국의 모택동이 집권한후 76년 사망할 때까지의 20여년동안 추진했던 억압적이고도 급진적인 경제정책으로 8천만명이나 되는 중국인이 숨졌다고 워싱턴 포스트지가 17일 보도했다. 포스트지는 서방및 중국학자들과 자체의 조사원들이 발굴한 문서들이 모택동의 27년 통치가 가져온 사망자수가 종전의 추정치보다 수천만명이나 많을지 모른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고 전하고 이것이 확인될 경우 모는 사람을 가장 많이 학살한 20세기의 지도자 부문에서 아돌프 히틀러와 요젭 스탈린을 앞지를 것이라고 말했다. 이 신문은 2부에 걸친 연속기사의 첫회분에서 한 정부문서는 모치하에서 8천만명이 『비자연사』했으며 그 대다수가 1958년에 시작되었다가 실패한 「대약진」공업화계획때문에 사망했음을 밝히고 있다고 말했다.
  • 북한경제 누가 이끌어 갈까

    ◎개방 빨라지면 김달현 재기용 유력/강성산·홍석형도 핵심역할 맡을듯 「북한 경제를 이끄는 실세는 누구일까」 북한은 지난해 12월 경제팀을 새로 짰다.그동안 대외 경제통이던 김달현 국가계획위원장과 박남기 당 경제비서를 각각 퇴진시키고 홍석형 등 실무진들을 대거 기용했다. 중국식 개혁을 본뜬 듯한 3차 7개년 경제계획이 실패한 책임을 물은 것이다.당분간 개방보다 농업,경공업,무역 등 내실에 역점을 두겠다는 포석이다.그러나 북한 전문가들은 현 경제팀을 한시적 체제로 본다. 북한의 경제여건을 감안할 때 개방은 불을 보듯 뻔하며 현 경제팀은 개방을 준비하는 팀이라는 분석이다.김정일이 권력을 순조롭게 이어받으면 개방의 속도가 한층 빨라지며 개방 주도세력의 재부상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측면에서 김달현의 재기용이 유력하게 점쳐진다.강성산 정무원 총리와 홍석형 국가계획위원장 등도 북한 경제의 핵심으로 남고 박남기,전병호의 당측 실세와 이성대,김환 등도 막중한 직책을 맡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강성산은 전총리인 연형묵·이근모와 함께 북한 경제를 진두 지휘해 온 경제 테크너크랫의 선두주자다.1931년생으로 만경대혁명학원을 거쳐 체코 프라하 공과대학에 유학한 2세대 엘리트이다.지난 84년 최고인민회의에서 「자본주의 국가들과의 경제교류」를 강력히 주장,대내외 주목을 받았다.김일성의 이종사촌이자 김정일 권력이양의 일등공신이다. 지난 92년 경제계획의 총수인 국가계획위원장을 맡아 대외개방을 주도한 김달현은 강성산이후의 총리 1순위로 꼽힌다.지난 77년 36세에 과학원 부원장을 맡은데 이어 화학·경공업 위원장,무역부장,대외경제위원장 등 주요 경제부처를 모두 거쳤다.대남 경협의 장본인이며 중국 심천특구를 수차례 방문,개방의 최전선에 나섰음을 보여줬다.김일성의 조카뻘로 김정일의 신임이 두텁다. 김달현의 후임인 홍석형은 강성산의 측근으로 김일성대학과 인민경제대에서 경제학을 공부한 정통경제관료이다. 김달현과 함께 물러난 박남기 역시 실세.김책공대와 레닌그라드공대에서 수학했으며 김정일이 중공업정책은 박남기에게 먼저 보고하라고 할만큼 신임이 두텁다.국가계획위원장을 거쳐 당에서 경제계획,상업,재정을 담당했다. 권력 서열 11위인 전병호도 경제의 막후 사령관으로 통한다.당의 경제·기계 담당비서이며 군출신이 아니면서도 국방위원 7인에 끼는 정도다.이성대 대외경제위원장은 우리 기업과 물밑접촉을 벌이는 개방 인맥으로 김달현이 차세대 주자로 키우는 측근이다. 김일성의 고종사촌이며 허답의 처남인 김정우 대외경제위 부위원장은 나이(51)와 직급에 비해 최근 주목받는 개방 주도 인물이다. 이밖에 최영림 금속공업부장과 무기화학의 전문가 김환 부총리도 진취적인 성향의 인물로 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북한의 무역현황/작년 교역 24억불… 중·일 편중/원유·식량 수입에 의존… 광산물은 수출/남북거래 7.5% 차지… CIS이어 4위 북한의 무역은 지난해 54개국과 수출 9억3천8백만달러,수입 15억3천8백만달러를 기록했다.이를 합친 총 교역액은 24억7천6백만달러.92년보다 1·1%가 줄었다.수출품은 광산물과 비금속류 등 1차 원자재가,수입품은 원유와 식량 및 재수출을 위한 수송기기가 주류이다. 북한 무역정책의 특징은 외화벌이에 총력을 집중,위탁가공 무역 주도의 수출증대 및 외화반출 억제로 인한 수입축소로 요약된다. 대한무역진흥공사가 최근 집계한 「93년 북한의 무역 동향」에 따르면 북한의 수입은 92년보다 2.12%가 줄었으나 수출은 지난 90년 동구권 붕괴 이후의 급속한 감소세(91년 25.3% 감소)에서 0.6%의 증가세로 돌아섰다. 10대 무역국(전체 교역액의 88%를 차지)가운데 중국,일본,독립국가연합(CIS)등 3대 무역국이 전체의 68.8%(17억3천만달러)를 차지한다.편중이 심한 셈이다. 중국과의 교역액은 8억9천9백만달러.중국은 러시아를 제치고 91년부터 3년 연속 북한 제1의 무역국(전체의 36.3%)이 돼 왔다.물물교환 위주의 변경무역(국경무역)이 전체의 80.7%이다. 대일무역은 핵문제에 따른 관계 악화로 수출입이 각각 14.5%가 줄어 총 4억7천2백만달러(전체의 19.1%).엔고로 수입가가 크게 올라 원부자재와 기계류 등의 수입선을 유럽으로 옮기고 있다. 단순 위탁가공 수출에서 벗어나 조총련계와 합작으로 북한에 공장을 세우는 방식이 주로 섬유류에 나타나고 있다. 남북한 교역액은 92년보다 7.6%가 늘어난 1억8천8백만달러(대북반출 1억8천만달러,반입 8백만달러)로 중국,일본,CIS에 이어 4위(전체의 7.5%). 우리의 반입품목은 철강·금속류(전체의 86.6%),농림산물(5.4%),섬유류(5%),광산물(0.8%) 순.반출은 섬유류(40%),화학제품(9.1%),전자·전기(4.9%),농수산물(4.8%) 순이다. 북한은 지난 4월 제9기 7차 최고인민회의에서 「무역 제일주의」를 천명,수출산업 육성에 힘쓰고 있어 올 수출은 5% 정도 늘 것으로 예상된다.
  • 상장기업 영업실적/「이통」 수익·성장성 1위

    ◎능률협,작년 546개사 우량도 분석/삼성물산,13조원으로 7년연속 선두/매출액/한국전력공사,4천여억원 남겨 수위/순이익 상장기업 중 한국이동통신이 수익성·성장성 등 종합적인 영업 평가에서 가장 좋다.삼성물산과 한국전력공사는 매출액 및 순이익 부문에서 1위를 차지했다.한독약품은 1백만원 어치의 상품을 팔았을 경우,77만4천원 상당의 이익을 올려 가장 수지 맞는 장사를 했다. 27일 한국능률협회가 보험 및 금융업종을 제외한 5백46개 상장기업의 영업실적을 분석한 「93년 상장기업 우량도 분석」에 따르면 한국이동통신이 수익성,안정성,성장성,규모 및 활동성 등 4개 부문의 종합 평점에서 1백점 만점에 83.97점으로 1위를 차지했다. 태광산업 계열의 대한화섬이 평점 81.72로 2위,현대그룹 계열의 도료 납품업체 고려화학이 80.73으로 3위에 랭크됐다.삼성전관과 농약 생산업체 한농은 4·5위를 차지했다. 부문별로는 한국이동통신이 자본 이익률,매출 이익률,자본 신장률 등 수익성과 성장성 2개 부문에서 1위로 평가됐으며 향료제조업체인 보락이자기자본 및 유동비율 등 안정성에서,삼성물산은 매출규모 등 활동성에서 각각 최고 점수를 받았다. 매출액은 삼성물산이 13조3천2백억원으로 7년 연속 1위를 지켰으며 현대종합상사 11조4백59억원,(주)대우 9조5천3백35억원으로 2·3위를 달렸다.대성자원(종전 대성탄좌개발)은 석회석 부문의 진출로 매출액 신장률이 1백77%로 가장 높았다. 당기 순이익은 한국전력공사가 4천1백94억원으로 2년 연속 1위를 차지했으나 이익 규모는 92년보다 45% 줄었다.포철이 2천9백46억원,삼성전자가 1천5백46억원으로 뒤를 이었다.한독약품은 매출 이익률이 77.38%로 가장 수지 맞는 장사를 했으며 한주전자 46.94%,삼화페인트 42.37%로 2·3위를 차지했다. 업종별 1위 업체는 운수·창고·통신업의 한국이동통신을 비롯해 ▲사조산업(어업) ▲삼천리(광업) ▲선진(음식료) ▲대한화섬(섬유·의복·가죽) ▲선창산업(나무) ▲신풍제지(종이) ▲고려화학(화학·석유) ▲한일시멘트(비금속광물) ▲한일철강(1차금속) ▲삼성전관(조립금속·기계장비) ▲대일화학(기타제조업) ▲동신주택(종합건설) ▲삼나스포츠(도·산매 및 숙박) 등이다. 상장기업의 총 매출액은 2백1조7백64억원으로 92년보다 10% 늘었으나 당기 순이익은 2조5천5백59억원으로 8·4% 감소,전체적으로 실속없는 장사를 했다.업체당 평균 매출액은 3천6백82억원,당기 순이익은 46억8천1백만원으로 1백만원의 상품을 팔아 1만2천7백원의 이익을 낸 셈이다.
  • 동명이인에 웃고 울고(박갑천 칼럼)

    신문지상이나 텔레비전 화면에 자주 나오는 사람 가운데 자신과 성명 석자가 똑 같은 경우가 있다.아나운서·탤런트·가수·운동선수·언론인·학자·정치인…등등.그럴 때 그 사람에 대한 관심은 남달라진다.하다못해 일일연속극 등장인물의 성명과만 같아도 전개되는 얘기의 귀추에 무심할 수 없는 것이 자연스러운 사람마음이라고 하겠다. 같은 분야 종사자끼리도 성명이 같아 섞갈리게 하는 경우는 물론 있다.얼마전 한신문의 연예면에도 그런 사례가 거론되고 있었다.탤런트 최민수와 가수 최민수,탤런트 이창훈과 개그맨 이창훈,남자 탤런트 오현경과 여자 탤런트 오현경…등등. 이는 연예계만의 얘기일 수 없다.88서울올림픽 때「호세 가르시아」라는 성명은 멕시코 권투선수등 4명이나 되었다.이번 15회 미국 월드컵축구에도「곤살레스」라는 성만 14명이 되어 화제로 된듯하다.국내로 좁혀봐도 그렇다.지지난해 농구잔치 때는 대웅제약의 박진에 외환은행의 박진,국민은행의 김희진에 보증기금의 김희진등 동명이인 9쌍이 코트를 누빈 일도 있다. 동명이인이 있고보면 헷갈리는 일이 안생길 수 없는 것이 세상사.87년 도널드 O.크램이라는 영국 청소부가 느닷없이 노벨화학상 수상통고를 받은 것도 그것이다.그해 수상자 도널드 J.크램과 혼동한 때문이었다.하기야 영악하고 똑똑한 명부의 사자도 그런 잘못은 저지른다.재넘잇골 돌이를 잡아오라는 염라대왕의 명을 잘못듣고 재밑골 돌이를 잡아들이지 않던가. 같은 성명의 사람이 하나같이 선인일수만은 없다.「영자의 전성시대」라 했던가,전화번호부에 나오는「김영자」씨만도 3천명을 바라보는 터에 그많은「영자씨」가운데 반사회적인 일에 관여하는 경우가 어찌 없다 하겠는가.그래서 사정바람이 한창 불때도 성명 석자 같음으로 해서 엉뚱한 피해를 본 사례가 한두건이 아니었다. 『유치장에 있어야 할 사람이 여긴 웬일이야?』따위 말만의 피해로 그치는건 그래도 낫다.법망에 걸려들어 법의 심판을 받는 일까지 생겨나니 문제다.얼마전 폭력범으로 몰려 재판을 받고서야 풀려난 이찬수씨의 경우도 그것이다.폭력범과 성명이 같은「죄」로 해서 받은 곤욕이 너무크잖은가.앞으로라 해서 이런 일이 없으란법없다는그대목이생각돼야할바다. 같은 성명 많다는 것은 당사자나 사회로 보아 좋은 현상은 아니다.하지만 지금과 같이 항렬 따라 한자로 짓는 성명 석자로는 선택의 여지가 적어 동명이인 줄이기는 어렵게 돼있다.토박이말과 한글로 세음절 네음절이 되게 짓는 방법이 더 일반화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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