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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가 본 파랑도(서울신문 50돌 특집)

    ◎한국해양연구소 이동영 박사는 말한다/“「태풍의 길목」 기상관측의 최적지”/기상예보 정확성 높여 태풍피해 최소화/대륙붕 개발·어업전진 기지로도 활용 『파랑도는 해양기상 연구와 구난활동·어업 전진기지로서의 활용은 물론 지구환경 변화 감시에도 이상적인 장소입니다.과학기지를 건설해 한국 해양연구의 일류화와 국제사회에 공헌하는 초석을 마련했으면 좋겠습니다』 미국 플로리다대에서 해양공학박사 학위를 받고 조교수로 재직하다 85년 귀국 직후부터 파랑도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해양공학자 이동영박사(46·한국해양연구소 해양환경공학실장).87년부터 4차례나 격랑속의 파랑도 현장을 답사하면서 기지건설 기초 조사등을 벌여온 이박사를 만나 그간의 연구 성과와 바람직한 파랑도 이용 방안등을 들어 보았다. ­개인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 동기는 무엇입니까. ▲귀국후 폭풍에 의한 재해방지 관련연구를 하게 됐는데 현장 관측자료가 전혀 없는 것입니다.태풍이 지나가는 동지나 해상에 고정 관측소가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간절히 하게 됐습니다.미국에서의 경험에 의하면 해양 한복판에 고정구조물이 있으면 해양과 대기의 경계면에서의 와동에 의한 운동량이나 열,수증기,각종 가스등의 이동량을 직접 측정할 수 있기때문에 해양및 기상예측을 더 정확히 할 수 있거든요.그러던 차에 87년 「전설의 섬 이어도」라는 방송 프로그램에 초대돼 현지를 방문하면서 「이거다」 싶은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동안 연구성과는 어떻습니까. ▲해양과학기지 건설에 필요한 설계조건 도출을 위한 기초조사와 각종 관측연구를 했습니다.정부간 해양위원회(IOC)가 「하나뿐인 지구를 살리자」는 목표로 세계 해양관측 시스템(GOOS) 구축을 제안해 와 90년부터 「국가 종합해양 관측망 구축」을 국책연구과제로 수행하면서 동북아 지역에서의 고정연속 관측소의 필요성이 현실화됐기 때문이지요.97년까지 구조물 완공을 목표로 94년부터 파고 조위계 설치 암석채집 정밀수심 측량등을 했지요.과거 태풍 자료와 7년간의 파랑자료,위성자료등을 모으고 시뮬레이션해 설계 조건을 구했어요.섬주변에 등부표를 설치해 제한된 관측도 시도해 봤습니다. ­과거에도 파랑도 개발계획이 있었지요. ▲파랑도의 최초 이용계획은 1938년 일제시대때 일본인들에 의해 구체적으로 작성됐습니다.당시 일본은 나가사키에서 상해를 연결하는 해저케이블 부설계획을 세웠는데 거리가 너무 멀어 중간 지점인 파랑도에 인공섬을 건설키로 했어요.2차대전으로 인해 실현되진 못했습니다.그후 개발계획은 87년 어업전진기지로 활용하기 위해 부두 물양장등 대형시설을 갖춘 축구장만한 크기의 인공섬 건설계획을 세웠으나 이 역시 수조원이 소요되는 무모한 계획으로 판단돼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파랑도 인공섬,혹은 연구기지는 어떻게 추진되는것이 바람직하다고 보십니까. ▲파랑도는 태풍에 의한 큰 파도로 구조물의 설계 시공이 어렵고 경비가 많이 들므로 철저한 사전 조사와 연구를 거쳐 기본 설계,실시에 들어가야 합니다.우선 해양 기상 부이를 설치해 운영하면서 자료에 의한 기초연구를 수행해 나가고 고정 구조물은 최소한의 규모로 설치해 시범 운영하면서 충분한경험을 쌓은 후 규모를 키우는게 바람직하다고 봅니다.정보화 사회와 우주개발시대에 걸맞게 통신과 지구환경 모니터링에도 활용할 수 있도록 국제 위성 프로그램과 연계하면 큰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활용도가 넓은 만큼 국내에서는 여러 관련부처를 망라한 기획위원회가 발족돼 부처간 업무분담과 사업추진및 활용 운영방안을 협의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파랑도 과학기지는 어떻게 활용됩니까. ▲정확한 해양예보와 기상예보,조류등 해양학적 연구측면은 물론 환경 감시,해상교통 안내,구난기지로서의 활용과 나아가서는 대륙붕 개발을 위한 전초기지등 다양한 활용이 기대됩니다.사실 우리나라는 육상에는 매 14㎞마다 하나씩 조밀한 자동 기상관측망을 유지하고 있지만 해상에는 기상관측소를 하나도 제대로 운영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편서풍대에 있는 우리나라는 서쪽 지역의 기상 관측자료가 중요한데 여기에 기상관측소를 설치할 경우 기상예보의 정확성을 크게 높여 국가 산업,경제에 파급효과가 클것입니다.파랑도에는 이미87년부터 해운항만청에서 등부표를 설치해 국제적으로 공표했는데 등대를 설치하면 매년 10만척이 넘게 이지역을 지나가는 선박들의 항해지표로서 국제사회에 크게 공헌할수도 있습니다.제주도 전설에 나오는 「전설의 섬」에 대한 국민적 정서와 환태평양 시대를 맞아 전세계로 활동 무대를 넓히려는 세계화 추진 차원에서도 상징적인 계획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97년 완공계획이 지연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성수대교 사고 이후 구조물의 안전성 문제가 재삼 제기됐고 예산상의 문제점도 있어 그렇습니다.우리나라는 각종 연안문제가 많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관측시스템 개선이 시급한데 해운항만청,수로국,기상청등 관련부처에서 이를 위한 예산 확보가 어려운 것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그밖에 파랑도 건설에 장애가 있다면 어떤 것이 있습니까. ▲규모에 따라 인접국가와 영토 분쟁 소지가 있고 또 환경감시를 행할 경우 인접국들을 자극할까 하는 점입니다.따라서 초기에는 규모를 최소화해 국제 분쟁을 피하면서 실익을 추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획득된 자료들을 국제사회에 제공해 지구환경 문제에 한국의 역할 수행으로 국위를 선양할 수 있게 추진하는것도 방법입니다.건설이후 유지 운영도 과제가 되겠지요. (결론적으로 이박사는 충분한 사전 준비와 국가의지,기상연구자들의 적극적 자세가 파랑도 사업의 열쇠가 됨을 강조했다) ◎파랑도 전설/폭풍만나 표류하던 한 선원이 도착… 과부들만 모여사는 환상의 외딴섬에 파랑도가 곧 「이어도」인지 과학적으로 규명할 길은 없으나 제주도의 대표적 부녀노동요인 「이어도 허라…」의 가사내용을 음미해 보면 파랑도와 그럴싸하게 맞아 떨어지는 부분이 많다. 특히 파랑도가 한국 최남단 마라도에서 서남쪽으로 81해리,중국 동도에서 북동쪽으로 1백35해리에 위치한 제주도와 중국사이의 수중 암초라는 사실과 노래가사중의 「강남가는 남해항로의 절반지점에 이어도가 있다」는 내용이 부합됨을 들어 「이어도전설」을 허구로만 볼수는 없다는 주장도 있다. 파랑도가 설사 이어도가 아닐지라도 제주사람들 특히 제주여인들에있어 이어도는 상상의 섬이요,사후에 돌아갈 피안의 섬이다.그것은 바다로 나가 돌아오지 않는 아들이나 남편이 이어도에 있으며 자신들도 결국 그곳으로 떠날것을 굳게 믿고있기 때문이다. 혹자는 「이어도」는 바다로 나간 남편을 잃은,과부들만 모여사는 기쁨과 슬픔이 교차되는 환상의 섬이라고도 일컫는다. 향토사가인 제주민속박물관 진성기 관장(60)은 이에 관계되는 전설로 다음과 같은 내용이 구전돼 내려오고 있다고 말한다. 『먼 옛날 지금의 제주도 북제주군 조천리 마을에 고동지라는 젊은남자가 살고 있었다.어느 해인가 중국으로 국마진상을 가게돼 고동지는 동료들과 함께 수십척의 배에 말을 가득 싣고 조천포구인 「수진개」를 떠났다. 배가 수평선쯤에 이르렀을때 갑자기 폭풍이 몰아치기 시작했다.폭풍이 점점 심해지면서 배는 표류하기 시작했고 몇날을 떠다니다 마침내 어느 한 섬에 도착하게 됐다.동료들을 모두 잃은채 고동지가 도착한 곳은 바로 「이어도」였다. 이어도는 고기잡이 간 어부들이 태풍을 만나 수중고혼 되는 바람에 남자어른이 없는 이른바 과부섬이었다.고동지가 도착하자 과부들의 환영은 대단했다.이집 저집에서 다퉈가며 고동지를 묵도록해 고동지는 밤낮없이 이 과부 저 과부를 전전해가며 꿈같은 나날을 보냈다.그러나 그 즐거움도 잠시뿐,날이 갈수록 무엇인가 허전해지는 자신을 느꼈다. 비가 몹시 내리던 어느날 고동지는 처마에서 낙숫물이 뚝뚝 떨어지는것을 보게됐다.마치 고향집 처마밑에서 떨어지는 낙숫물 소리처럼 들렸다.불현듯 고향에서 밭을 갈고 멧돌을 돌리고 있을 아내와 부모형제가 그리워졌다.아내를 만나고 싶은 생각이 불길처럼 솟았다. 고동지는 바닷가를 배회하며 멀리 수평선 너머에 있을 아내의 이름을 부르고 또 불렀다.이후 달밝은 밤이면 더욱 고향이 그리워졌고 고향이 그리워지면 늘 바닷가를 찾았다. 초승달이긴 해도 달빛이 유난히 밝던 어느날 밤.고동지는 밀려왔다 밀려가는 파도를 보며 저도 모르게 노래를 읊조렸다.자신의 신세를 달래는 구슬픈 노래가락이었다. 이어도허라 이어도허라. 이어 이어 이어도허라. 이엇말 허민 나 눈물난다.이엇말랑 말앙근 가라. 강남을 가난 해남을 보라. 이어도가 반이엥 해라. 여기서 「강남」은 중국이며 「해남」은 바로 남해항로인즉,강남가는 길목 절반쯤에 있는 「이어도」에 내가 있으니 불러달라는 애절한 내용이었다. 이어도사람들은 이 고동지의 노래를 듣기 위해 모여들었고 많은 여인네들이 그의 처지를 동정하게 됐다.고동지의 노래를 듣고는 잃어버린 남편을 그리며 우는 과부들도 많았다.이윽고 「이어도노래」는 파도에 실려 멀리 퍼졌으며 그 누구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가 됐다. 그후 고동지는 뜻밖에 중국상선을 만나 그 배의 도움으로 고향으로 돌아오게됐다.이어도에서 고동지를 섬기며 사랑했던 한 여인도 함께 따라왔다. 고향 사람들은 태풍으로 죽은줄 알았던 사람이 살아 돌아왔다며 큰 잔치를 벌였다.고동지의 아내는 남편을 극진히 보살펴준 이어도여인을 받아들여 한 가족이 되게했다.
  • 「무역전쟁의 첨병」주요기업 해외진출 러시(서울신문 50돌 특집)

    ◎세계시장 야심찬 도전… 코리안 발길 바쁘다 세계 교역규모 11위에 걸맞게 국내 기업들이 외국에 투자하거나,외국의 기업이나 공장을 사들이는 해외투자가 줄을 잇고 있다.아프리카의 오지에도,중남미에도,동구 유럽에도 우리의 공장이 들어선 지 오래다.선진국의 통상마찰 압력과 개발도상국의 자국시장 보호장벽을 넘기 위해서다.국내 인건비도 오르는데다,국내에서는 사양산업인 일부 경공업을 후진국에 옮기기 위한 것도 이유다.자동차·전자·철강 등 한국의 주력산업은 물론,식음료·의약품 공장도 들어서고 있다.중국과 베트남·인도·이집트 등 새로운 시장으로 떠오른 곳에 대한 투자가 크게 늘고 있으며,미국·영국 등 대선진국 진출도 증가하고 있다.최근에는 10억달러가 넘는 대규모 투자도 이뤄지고 있다.해외진출은 선택의 문제가 아닌 「생존」의 문제가 된지도 오래됐다.4대그룹의 중요한 해외투자와 투자계획 등을 짚어본다. ◎현대/세계 10대 자동차메이커 진입 채비 현대자동차는 지난 89년 캐나다에서 승용차를 생산한 이후 지금까지 보츠와나·태국·말레이시아·이집트·짐바브웨·인도네시아·필리핀·네덜란드 등에서도 현지공장을 준공,승용차·트럭 등을 생산하고 있다. 내년 하반기에는 베트남과 파키스탄·베네수엘라의 공장을 준공할 예정이며,97년 10월부터는 터키에서도 승용차와 상용차를 생산할 계획이다.이렇게 되면 연 42만대의 승용차와 상용차를 외국에서 생산하게 된다.오는 2000년대의 세계 10대 자동차 업체로 도약하기 위한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서다. 현대전자는 파키스탄의 하산사와 합작해 파키스탄에 저궤도 위성사업(글로벌스타 사업)을 하기 위해 「글로벌스타 파키스탄사」를 세워 56개의 저궤도 위성을 발사할 계획이다.위성체와 휴대용 단말기를 접속시켜 98년부터 전세계적으로 음성­데이터 등을 송수신하는 위성통신 서비스사업을 할 계획이다. 현대전자 뿐 아니라 현대그룹에서 최대의 관심을 기울이는 해외투자는 13억달러를 투자해 미국 오리건 주에 세울 반도체공장이다.모두 97년부터 생산한다는 계획이다. 현대정공은 지난 9월 청도와 상해에서 컨테이너공장 준공식을 갖는 등 중국에서 스틸 컨테이너를 본격 생산하는 시대에 들어갔다.현대정공은 세계냉동 컨테이너 중 45%를 공급하고 있으며,중국에 컨테이너 공장을 설립함으로써 종전에 중국 광동공장을 포함,중국 생산거점을 늘리게 됐다.내년부터는 상해와 청도공장에서 냉동 컨테이너도 생산한다. 중국공장 외에 멕시코·태국·인도·인도네시아에도 컨테이너 공장을 가동 중이다.앞으로 동유럽에도 컨테이너 공장 설립을 추진하기로 했다. 현대강관은 최근 베트남과 중국에서 강관공장을 착공한 데 이어 오는 20 00년까지 해외 4∼5곳에 철강생산기지를 건설할 방침이다.중국 대련과 무한에 자동차 조립공장을 건설하는 것을 비롯해 훈춘에 강판공장,상해에 에스컬레이터 공장을 건설한다는 계획이다. ◎삼성/영 윈야드전자단지 유럽공략 선봉 작년초 일본 도쿄에 해외본사를 개설한 데 이어 북경·싱가포르·뉴욕·런던 등에도 해외본사를 설치하는 등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지난 달 말 현재의 해외투자 규모는 35억달러,해외거점수는 3백14개다.65개국에 1천2백여명이 외국에 나가 있으며 현지채용자는 2만7천명이다. 현재 삼성의 최대 관심사는 미국 텍사스 오스틴에 건설할 메모리 반도체공장이다.13억달러를 투자,오는 97년에 완공해 16메가 D램과 64메가 D램을 함께 생산할 계획이다.8인치 웨이퍼를 월 3만장 가공할 수 있는 대규모 시설을 갖춘다. 최대의 잠재적인 수요시장으로 떠오른 중국에 대한 투자를 늘릴 방침이다.이건희 회장은 지난 4월 오는 2000년까지는 전자·반도체 분야를 중심으로 45억달러를 중국에 투자할 것이라고 발표했었다.천진에 VTR·컬러TV·카메라공장 등 전자단지를 조성 중이며,소주에는 12만평의 규모에 전자단지를 건설 중이다.삼성전자는 베트남에 연 25만대 규모의 컬러TV 공장 및 연 3만대 규모의 냉장고 공장을 세웠다.인도에는 반도체사업에 8억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다. 삼성그룹이 자랑하는 해외공장은 지난 달 준공된 산업혁명의 발상지인 영국 윈야드의 전자복합단지.준공식에는 이례적으로 엘리자베스 영국여왕이 참석할 정도였다.이 곳에서는 연 1백만대의 전자레인지와 1백30만대의컬러모니터를 생산해 영국은 물론 유럽에 공급한다.앞으로 컬러 TV와 팩시밀리도 생산하는 등 품목을 확대해 복합단지의 면모를 갖춰 나갈 계획이다.윈야드단지는 현지인 중심의 조직과 인력관리체제로 국내기업의 해외투자로는 처음으로 현지인을 사장에 선임했다. 삼성전자는 내년에는 런던에 연구소 분소도 설립해 1차적으로 컬러TV를 현지에서 연구개발하는 체제를 갖추고 점차적으로 전자레인지·모니터 등에 적용해 정착시킨다는 전략이다.5년 내에 서유럽에 1개,동부 및 중부유럽에 1개의 복합단지를 조성해 윈야드의 복합단지와 함께 유럽에 복합단지를 3개 만들어 2000년 이후의 유럽전략의 축으로 삼을 방침이다. ◎LG/미래 최대시장 중국·동남아 집중투자 지난 달 말 현재 1백개의 해외현지 법인(공장)과 1백60개의 해외사무소가 있다.21세기의 최대 전략시장으로 떠오른 베트남·인도네시아를 비롯한 동남아시아와 인도·중국을 성장잠재력이 큰 시장으로 꼽고 이 지역 진출을 최우선한다는 전략이다. 동남아와 인도에는 오는 2000년까지 45억달러를투자하기로 했다.이 곳에서 90억달러의 매출액을 올릴 계획이다.지난 달 현재 이 지역에는 인도네시아의 전자부품공장(2억3천만달러투자)을 비롯해 25개의 생산 및 판매법인이 있으나 오는 2000년까지는 70개로 늘릴 계획이다. 인도네시아에 핵심부품을 포함하는 신규 복합생산기지 건설 및 증설에 6억달러를 투자하고,인도에는 1억8천만달러를 투자해 전기 및 전자제품 생산기지를 건설한다는 계획이다.인도에는 4억달러를 투입,PVC 등 화학제품을 만드는 공장을 세우기로 했다.베트남과 인도·인도네시아에는 주거시설 및 공단부지 등을 조성하는 부동산개발 사업도 펼칠 계획이다. 내년까지는 인도·인도네시아·베트남 등에 금융회사를 세워 동남아와 인도지역의 현지금융 및 중장기자금 조달창구로 운영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중국을 제 2의 내수시장으로 개발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대규모투자를 구체화하고 있다.오는 20 00년까지는 중국에서의 매출액을 60억달러로 올릴 계획이다.지난 3월에는 미쓰비시상사와 홍콩의 리엔풍그룹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광동성에 10억달러를 투자해 70만평의 유통단지를 조성하기로 했다. 이달부터는 LG전자가 3억5천만달러에 인수한 미국 3대 가전업체인 제니스사의 경영에 본격 참여하고 있으며,내년 쯤에는 미국 정밀화학 업체 3∼4개를 인수하는 등 미주지역 시장을 적극 공략할 방침이다.LG전자와 제니스사의 컬러TV와 VTR 생산규모를 연 5백50만∼6백만대로 늘려 3년 내에 미국시장 1위업체인 RCA사를 따돌리고 최대의 공급업체로 떠오른다는 전략을 세웠다. ◎대우/650개 기지서 연57조 매출 “대야망” 올해 해외투자 규모를 작년보다 10억달러 많은 25억달러로 정했다.오는 2000년까지 6백50개의 해외 산업기지를 구축,해외 현지 매출 57조원을 포함해 모두 1백38조원의 매출목표를 세웠다.지난 달 말 현재 68개국 1백38개지사와 2백46개 단독 및 합작투자법인이 있다.현재까지 총투자액이 약 17억달러이다. 67년 창립이후 경쟁그룹보다 해외시장에 주력했다.특히 동구권과 중국 인도·베트남·중앙아시아에 집중투자,동서냉전으로 낙후된 이들 지역에 개발붐을 조성한다는 계획이다.북미에는 무역과 전자,중공업,건설,증권 등 전분야가 골고루 진출해 있다.멕시코를 전자 거점으로 삼는다. 중남미에서는 페루와 아르헨티나,브라질 등에 전자와 자동차를 중심으로 진출하고 있다.내년 5월에는 브라질에 월 2만대 규모의 세탁기 합작공장을 건설할 계획이다. 대우자동차는 지난 7월 첫 해외생산기지인 인도의 승용차 공장을 준공했으며 8월에는 중국의 대형 버스공장을,9월에는 인도네시아의 승용차공장을 잇따라 준공했다.내년에는 우즈베크공화국·이란·필리핀·루마니아·베트남에도 승용차와 상용차 생산라인을 갖춘다.올연말에는 폴란드 최대의 자동차사인 파브리카 사모호토프 오소보비치사(FSO)를 11억달러에 인수했다. 지난 달에는 오스트리아의 대표적 자동차 제조그룹인 슈타이어그룹의 자동차 및 자동차 부품관련 계열사 4개사의 지분 65%를 인수했다.앞으로 이들 4개사에 3억달러를 투자,엔진과 승용 및 상용차 개발부문을 집중 육성할 계획이다.대우의 해외생산능력은 연 1백만대 수준으로 대폭 늘어난다. 베트남에 종합운송업 및부대사업을 하기로 했다.하노이를 거점으로 시내외버스·택시·트럭 등 종합운송망을 구축할 계획이다. 대우전자는 베트남에 브라운관 공장을 설립하는 등 3억5천만달러를 투입할 계획이다.대우통신은 올해 중국 천진에 대우통신 천진유한공사를 세워 내년부터 연 30만대 규모의 팩시밀리를 생산한다. ◎포철/10개국에 현지법인 「철의 왕국」 구축 중국과 베트남 등 후발개도국에 해외투자가 집중됐다.전세계적으로 10개국에 24개 현지투자법인이 있다.이 중 베트남에 6개,중국 4개 등 2개국에 절반 가까이 모여있다.철강업이 많은 인력이 필요하므로 인건비를 고려한 입지 선정이다.경제개발이 가속화될 경우 철강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에 대비한 포석이기도 하다. 베트남 투자는 지난 92년 4월 가동을 시작한 포스비나가 대표적이다.아연도금 강판 연 4만6천t을 생산하고 있다.포철이 40%의 지분을 갖고 있는 VPS사는 봉강과 철근 및 선재를 연간 20만t을 생산한다. 중국은 천진 코일 센터(포스코­텐진 코일사)가 대표적이다.포철이 1천84만달러를 단독투자했다.냉연제품을 연 10만t 가공하고 있다.올 2월에 착공,연말에 완공할 예정이다.중국 대련의 연속 아연도금 합작공장(CGL)은 4천7백만달러를 투자,아연도금 강판을 연 10만t을 생산할 계획이다.지난 9월 착공,96년 3월에 준공한다.중국 대련에는 4천7백만달러를 투자,연산 10만t 규모의 아연도금강판 합작공장을 건설할 계획이다. 신일본 제철과의 동반진출도 검토하고 있다.내년 양산을 목표로 연 91만t 생산할 수 있는 냉연합작사업을 태국에서 벌일 계획이다.태국 4개 현지사가 60%,신일본제철 등 4개사가 37%,포철이 3%를 갖는다.인도네시아와 베트남에 일괄 제철소 냉연공장을 세우는 방안도 현재 신일본 제철과 함께 검토하고 있다. 중국 흑색금속재료총공사와 합작으로 대련경제 개발구 진붕공업성 공업구에 대련 포금강판유한공사를 설립,내년 상반기 공장 건설에 들어간다.97년 하반기부터 가동한다. 지난 9월 브라질 CVRD와 공동으로 펠렛(철광석을 직접 고로에 넣도록 덩어리형태로 만든는 것) 합작공장을 착공했다. ◎선경/종합에너지·화학사업수직 계열화 세계화를 통한 세계 일류기업으로 도약한다는 전략아래 해외부문에 집중 투자할 계획이다.지난 86년 국내 처음으로 미국에 미주 경영기획실을 설립했다.세계 투자전략은 종합에너지 및 화학사업을 주력으로 미주지역 및 중국과 동남아에 집중돼 있다. 91년 폴리에스테르사의 제조를 위해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근교 탕그랑지역에 현지 섬유재벌인 바티크리스 그룹과 합작,SKKI(선경 크리스 인도네시아)를 설립했다.1억3천5백만달러를 투자,하루 평균 90t의 고급원사를 생산하고 있다. 인도 남부(구잘라트 등 6개주)에 모토롤라사 중심의 컨소시엄에 참여 지분 5%(7천만달러 투자)를 갖고 무선호출 사업에 참여를 추진 중이다.중국 시장은 수직계열화라는 독특한 전략으로 뚫고 있다.섬유에서 석유에 이르는 수직계열화 체계를 완성하기 위해 5대 주력계열사 임원으로 구성된 중국위원회를 통해 대중국 투자를 추진하고 있다. 중국에다 원유에서 합섬에 이르는 제 2의 수직계열화 체계를 구축한다는 방침이다.유공이 하루 10만배럴 규모의 정유공장,스티렌모노모(SM)를 비롯,중간원료와 합성수지 공장 등을 착공할 계획이다.
  • 김철수 WTO 사무차장(세계속의 한국인:1)

    ◎국제통상분쟁 조정자역 훌륭히/관료출신으론 국제기구 첫 고위직 맹활약/“우리나라도 전문성 갖춘 인재양성 힘쓸때” 스위스 제네바의 세계무역기구(WTO)에 새로운 변화가 일고 있다. 하루에도 수십건씩 각종 회의가 열리는 WTO의 자료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는등 사무혁신이 잇따르고 있다.각국에서 온 회의 참석자들은 WTO의 자그마한 변화와 개혁의 모습에 찬사를 보내고 있다. WTO 사무혁신은 지난1월 WTO 출범부터 이뤄진 것이 아니다.바로 지난 7월1일 사무차장으로 부임한 김철수전상공장관(현 통상산업부)의 첫작품이다.각국의 회의참석자들은 『진작에 이렇게 했으면 좋았을 걸…』이라고 WTO의 변화를 반긴다.제네바의 외교가와 WTO본부내에서는 김사무차장의 일처리 능력만을 반기는게 아니다. 김차장은 WTO내에서 「김박사」로 통한다.인터뷰를 하기위해 제네바의 본부를 찾아 「김철수 사무차장」의 방을 물었을때 WTO직원들은 「아! 닥터 킴」이라며 3층 집무실로 안내해줬다. ○외교무대서도 신망 그의 집무실 문앞에도 「사무차장 김철수」라는 직함 아래는 「닥터 킴」이라는 자그마한 명패가 함께 붙어있다.「닥터 킴」은 김사무차장이 지난70년대 제네바를 비롯한 국제통상 무대에서 일하면서 불려온 별칭이다. 제네바의 한 외교소식통은 『WTO뿐 아니라 제네바의 외교가에서는 권위를 내세우지 않는 김차장의 성품을 높이 사고 있다』고 전한다.한국의 장관을 지냈으면서도 전혀 권위적이지 않고 아랫사람을 편하게 해주는 특유의 소탈한 성격이 높이 평가받고 있다는 얘기다.때문에 김차장은 제네바에서 근무를 시작한지 4개월여밖에 되지 않았으면서도 인기는 상당히 좋다. 김사무차장의 WTO 4개월은 눈코 뜰새없는 하루 하루의 연속이었다.우선 제네바에서 생활을 하려면 불어를 해야한다.미국에서 대학을 다닌데다 수많은 국제회의 참석으로 영어실력은 본토인 못지않게 유창하다.그러나 제네바는 불어권이어서 일상생활에는 불어를 사용해야 하고 불어를 한적이 없는 그는 WTO 본부 근처의 학원에서 한주일에 3시간씩 불어를 배운다. 그의 제네바 생활을 쉽지 않게 만든 것은 언어에다 한국과 다른 분위기 탓이다.김차장은 『한국에서는 결과를 중시하는 행정을 했다면 이곳에서는 관계국의 이해를 조정해 합의를 이끌어내는 어려운 과정을 겪어야 한다』며 『그런 점에서 한국과 다르다고 할수 있지만 그동안 많이 익숙해졌다』고 말했다. 1년 가까이 된 WTO에 대한 평가는「국제 통상문제의 분쟁해결」에 집중된다. 『WTO는 우루과이라운드(UR)협상의 결과가 충실히 이행될수 있도록 보장하는 활동을 주로 하고 있으며 회원국들도 그런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금융협상이 마무리됐고 통신분야의 협상이 내년 4월말 종료를 목표로 진행중입니다.WTO 출범이후 19건의 나라간 통상 분쟁이 제소됐습니다.따라서 WTO는 분쟁해결기구로서 제역할을 하고 있는 것같습니다』 그러면서 김사무차장은 『내년12월 싱가포르에서 열릴 첫 각료회의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할수 있다』며 『UR에서 다루지 못했던 독과점등 경쟁정책과 외국인 투자문제등의 새로운 분야들에 대한 협상이 싱가포르 각료회의를 계기로 본격적으로 논의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차장이 맡은 일은 회원국 신규가입,무역정책검토,섬유,번역·문서등 4가지 분야.이가운데 섬유는 그의 전공분야라고도 할수 있을 정도로 20여년간 다뤄온 분야이다. 또 회원국의 신규가입문제는 WTO의 가장 중요한 일중의 하나로 꼽힌다.세계의 기업들이 무역을 하면서 비슷한 통상규칙을 가져야 하는데도 중국·러시아등의 국가는 여전히 WTO 체제밖에 있기 때문이다. ○일벌레 「닥터 킴」 지금까지 가입신청을 한 나라는 베트남·우크라이나등 26개국.몽고·불가리아·파나마·에스토니아·라트비아등의 국가들이 가입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그러나 중국등의 가입전망에 김차장의 전망은 조심스럽다. 『10년전인 지난 86년 가입신청서를 제출한 중국의 가입문제는 WTO출범이후 협상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데 문제는 가입조건입니다.중국은 속도와 시한을 두면서 WTO의 규칙을 지키려하고 있고 모든 나라들은 중국의 가입이 바람직스럽다는 입장을 보이면서도 중국이 더 많은 규칙을 지키면서 가입을 하라는 것이지요.그래서 중국의 가입시기를 전망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는 또 『중국의 가입조건은 지난7월 처음으로 가입작업반 회의를 가진 러시아의 가입에 결정적인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은 WTO체제 출범후 2건의 제소를 당했다.식품유통기한 표시와 농수산물검사문제에서 미국이 한국을 제소한 것이다.한국도 당하기만 할것이 아니라 WTO체제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외국의 불공정 관행에 공세를 펴야 한다는 주장이 외교가에서는 강하게 일고 있다. 이에 대한 김사무차장의 입장은 단호하다.『WTO체제에 맞게 한국의 제도와 관행을 고쳐 나가면서 적극적으로 대처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그는 적극대응 사례의 하나로 최근 브라질의 자동차 쿼터제 도입에 대한 한국등의 강한 반발로 WTO로부터 쿼터제 철회권고를 받아낸 것을 들었다. ○“협상엔 신뢰가 생명” 그러면서 김차장은 『한국도 WTO협상에 적극 참여하고 있지만 아직도 전문가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예를들면 투자분야나 무역과 환경등 새로운 분야에서 유창한 외국어 실력과 전문성을 갖고 협상을 벌일수 있는 인력이 양성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국제통상계에서 상당히 두터운 신뢰를 받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거짓말을 해서는 안되고 자신의 말이 1년후에도 같아야 하며 특히 외국과의 협상에는 신뢰를 쌓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이 김사무차장의 행동지침이자 신념이다. 3년의 임기를 마치고 다시 사무총장직에 도전할 의사가 없느냐는 질문에 그는 『사무차장직을 잘 수행해 WTO발전에 기여할수 있었으면 하는게 관심사항이고 너무 바빠 3년후에 어찌 될지 생각할 겨를도 없다』고 웃어 넘겼다. 그의 웃음속에는 가능성이 배어 있었다. 그는 3년후 WTO사무총장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현지에서는 예상한다. □약력 ▲41년1월26일 서울 출생 ▲58년 경기고 중퇴 ▲64년 미 터프츠대졸 ▲69년 정치학박사(미 매사추세츠주립대) ▲69년 미 세인트로렌스대 조교수 ▲72년 외교연구원 전문위원 ▲73년 상공부 시장3과장 ▲77년 〃 수출1과장 ▲79년 〃 통상진흥관 ▲80년 〃 통상진흥국장 ▲81년 민정당 정책국장 ▲82년 〃상공담당 전문위원 ▲84∼90년 상공부 제1차관보 ▲84년 우루과이라운드 다자간무역협정 협상그룹 의장 ▲89년 한미통상협상대표 ▲90년 특허청장 ▲91∼93년 대한무역진흥공사사장 ▲93∼94년 상공자원부장관 ▲95년 7월 세계무역기구(WTO)사무차장
  • 한국의 안보리 진출 의미와 전망

    ◎“안보이사국 코리아”… 외교 새 지평 열다/남북 대결 청산… 아주이익 대변자로/미·일 편중 대외정책 탈피의 시험대 올라 한국이 유엔총회에서 안보리 비상임이사국에 피선된 것은 한국외교사의 새 지평을 연 사건으로 기록될 만하다.이로써 우리나라는 유엔무대에서 보다 적극적 발언권행사를 통해 주요 국제문제에 대해 우리의 「독자적」 시각을 제시하고 해결책을 모색,국가의 위상을 한단계 높이는 결과를 가져올 것으로 에상된다. 우리나라가 안보리 진출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수확은 한반도의 평화유지확보다.이는 남북대결외교에 종지부를 찍을 수도 있다는 의미를 갖는다.북한이 분단국이란 이유로 우리의 안보리 진출을 끈질기게 방해한 것을 생각하면 이를 극복한 것 자체가 남북외교에서 사실상 최종 승리를 거둔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미·소중심의 냉전구도하에서 기능이 마비됐던 시절과는 달리 근래에 들어 국지적 분쟁 중재자로서의 역량을 발휘하고 있는 안보리이기 때문에 한국의 활발한 안보리 활동은 한반도의 안정에 주도적 역할을 기약하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는 거부권이 행사되지 않는 일반안건에서는 아시아 대표로서 아시아권의 공동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대부역할」도 수행하게 된다.우리나라는 아시아 대표로서뿐아니라 선진국과 개도국을 연결하는 중간자적 위상을 지니고 있다.따라서 이같은 위상을 활용,서방국들과 비동맹권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균형자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보인다.이에따라 외교정책의 방향전환을 요구하는 사례도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안보리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특별히 우리나라 입장을 내세울 필요가 없었지만 각종 안건에 입장을 공개해야 하기 때문이다.유엔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지닌 미국과 사안에 따라 입장이 배치될 가능성도 예견되고 있다.너무 친미일변도로 나갈 경우 득보다는 실이 많을 것이 분명하다.결과적으로 한국의 안보리 진출은 우리 외교의 역량을 새롭게 평가받는 시험대가 될 것이다.외무부에서는 이미 이에대해 모든 사안에 있어 항상 미국과 같을 수 없다는 입장을 정리한 것으로 알려졌다.특히 안보리 진출이 외교다변화를촉진시키고 있는 이상 지금까지의 미·일중심의 시각에서 탈피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분석하고 있다. 물론 이사국으로 선출된다 하더라도 비상임이사국이어서 거부권을 갖는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등 5대강국처럼 막강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그러나 안보리의 결정은 1백85개 회원국들에 구속력을 갖고 있으므로 우리가 그 구속력있는 결정에 이사국의 일원으로서 참여한다는 것 자체가 세계평화와 안전유지에 상당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내년 1월1일부터 2년동안 안보리 이사국으로 활동하면서 국제평화 유지과정에서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게 되면 총체적 국가이미지가 그만큼 제고되는 효과가 있다.이는 정치뿐아니라 경제·통상등 여러 분야에서 보이지않는 효과를 가져올 전망이다.벌써부터 「유엔총회의장」을 배출할 기회를 보고 있는 것도 국가위상이 상당히 변화할 것이라는 판단때문이다. 우리의 안보리 진출을 계기로 한반도안보에 대한 후속대비책,국제사회에 봉사하는 이미지구축,범세계적 이슈에 대한 지식개발,외교전문가 양성등이 시급한 과제로 떠오른다.안보리 이사국이 됨으로써 우리나라는 유엔의 재정부담도 어느정도 안게 됐다.한국은 올해 전체 유엔분담금중 0.8%(17위 수준)를 부담하고 있으나 내년에는 0.81%,97년에는 0.82%수준으로 그 비율을 높여 나가면서 유엔이 역점을 두고 있는 분야인 PKO에도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할 계획이다. ◎안전보장이사회 구성과 운영 어떻게/상임 5국·비상임 10국으로 구성/비상임국 임기 2년… 해마다 5개국씩 선출 유엔안전보장이사회는 국제평화및 안전유지에 대한 1차적 책임을 지며 유엔회원국에 대해 구속력을 갖는 결정을 할 수 있는 유일한 기구이다.거부권을 가진 5개 상임이사국과 10개 비상임이사국을 포함,모두 15개국으로 구성된다.이 가운데 임기 2년의 비상임이사국은 아프리카(3개국),아시아(2개국),서유럽(2개국),동유럽(1개국),중남미(2개국)등 5개 지역그룹에 할당돼 있으며 총회에서 3분의2이상의 다수결로 매년 5개국씩 선출되나 연속해서 재선될 수는 없다. 안보리는 지난 45년창설된 이래 지금까지 모두 1천17개의 결의를 채택했는데 창설후부터 89년까지 6백46개 결의안을 채택한데 비해 90년들어서는 5년동안 그 반이 넘는 3백71개를 채택했다. 안보리는 시급한 사태발생시에는 월례일정에 추가하여 수시로 공식,비공식회의를 개최하는데 비공식 협의위주로 운영되고 있다.의제마다 결의,의장성명 또는 기타방식등 의제처리방식 결정도 비공식협의에서 이뤄진다.처리방식이 결정된후 결의 또는 의장성명 초안에 대한 제의,협의등 모든 실질적 논의도 비공식으로 진행된다.이에따라 투명성이 부족하다는 여론도 있으나 비공식협의과정에서는 통상 미국·영국·프랑스등 핵심상임이사국이 주도한다.비동맹국들은 나름대로 매월 자신들의 입장을 반영하는 집단노력을 하고 있다.안보리는 결의·의장성명·공개토의·안보리 연례보고서채택을 위해 본회의를 개최한다.본회의에서 결의 또는 의장성명채택은 절차적 조치에 불과하다.결의채택시 이사국들은 표결과 관련된 각국입장을 발언할 수 있으며 의장성명은 비공개협의시 합의로 작성된 것이므로 발언이 생략된다. 올해로 임기가 끝나는 5개이사국은 오만·나이제리아·체코·아르헨티나·르완다인데 이중 아시아몫인 오만의 후임국에 한국이 선출된 것이다.아시아권에 속한 유엔회원국들은 모두 47개국,이들 국가 가운데 지금까지 모두 19개국만이 안보리에 진출했다.그러나 일본이 7회,인도 6회,파키스탄이 5회나 역임했을 정도로 일부 국가가 독점해왔었다.사우디·싱가포르 등은 아직 한번도 진출하지 못했다.내년에는 인도와 일본,97년에는 바레인,98년에는 말레이시아,99년에는 싱가포르가 출마할 예정이다. ◎박수길 주유엔대사 일문일답/“한반도 평화유지에 큰 기여”/우리 발언권­예우 상당한 변화/세계적 안목의 일관정책 필요 박수길 주유엔대사는 8일 한국의 유엔안보리진출과 관련,『우리나라로서는 좋은 기회요 도전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안보리에서의 활동은 우리의 국가위신·경제적 실익·미국과의 안보관계·대북한관계등을 고려,국익증진을 위하는 방향으로 해나가야겠다』고 말했다. 안보리 진출 첫 유엔대사로서 개인적 감회가 깊다는 박대사는 『우리의 안보리진출은 한반도의 평화유지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남북통일에도 긍정적 도움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말하고 『즉각적 안보리의 반응을 일으킬 수 있는 안보리이사국을 누가 무력침공을 생각할 수 있겠느냐』면서 안보리이사국진출이 비록 한시적일지라도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에 심리적 억지력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먼저 우리나라의 안보리 진출에 대한 평가는. ▲우선 비상임이사국으로서의 충분한 자격에 대한 국제사회의 평가를 들 수 있다.91년 9월 우리의 유엔가입이후 4년만에 비상임이사국 피선은 이례적이다.이는 그동안 우리가 PKO(평화유지활동)에 활발히 참여하는등 세계평화와 안전유지에 직접 기여해왔다는 국가라는 인식과 선발개도국으로서 남남협력에 적극적이었다는 국제사회의 평가를 반영하는 것이다. ­안보리진출에따라 달라질게 있다면. ▲외교다변화에 크게 기여할 것이 틀림없다.국제여론 형성과정에 직접 참여하게됐으며 따라서 지금까지의 미국과 일본중심의 시야 탈피가불가피하다.국제무대에서 우리의 발언권,대우및 예우에도 상당한 변화가 올 것이다. ­우리나라의 위상에는 어떤 변화가 오나. ▲안보리는 세계평화와 안전유지를 하는 주된 기구다.안보리의 결정은 다른 회원국에 구속력을 갖고 있다.1백85개국의 회원국을 구속하는 결정에 우리가 안보리 이사국의 하나로 15분의1 몫을 하거나 그 이상을 하게 된다.또 내년에는 유엔사무총장선거가 있는데 유엔사무총장은 안보리이사국들의 추천에 의해 총회에서 선출된다.우리나라가 유엔사무총장선거에도 본격 관련될 만큼 위상이 제고되는 것이다. ­한반도의 평화유지에는 어떤 효과가 있는가. ▲일부에서는 우리의 안보리이사국진출은 남북간의 격차를 더 크게 해 긴장을 고조시킨다고 우려하는데 이는 설득력이 약하다. ­특히 미국과의 관계에서 우리나라의 안보리에서의 활동방향에 관심이 많은데. ▲미국이 하자고 할 때 경우에 따라서는 할 수도 없고 안할 수도 없고,어려움이 예상된다.유엔대사에게 어느 정도의 권한을 주느냐는 것도 문제다.미국과 모든 문제에있어 같이 행동할 수는 없으며 그것이 미국에도 이롭다는 사실을 미국에게 이야기하고 있다.한반도안보와 관계되지 않은 부분까지도 미국과 똑같이 할 수는 없다고 본다.전세계적인 이해관계와 지역적 이해관계를 모두 고려해야 한다.정부가 일관된 정책을 추구하지 않을 경우 자칫 오해받기가 쉬워진다. □안보리 진출 일지 ▲93.4.13=스리랑카,아주그룹에 안보리비상임 입후보 공식통보 ▲93.5.4=정부 안보리 진출 추진방침안 확정 ▲93.9.2=안보리 진출 추진방침 김영삼대통령 재가 ▲93.9.29=외무장관,유엔총회 기조연설때 안보리 진출희망 피력 ▲94.2.22=스리랑카 외무장관,한국 입후보 재고요청 서한 발송 ▲94.3.19=전재외공관 통해 안보리 입후보 통보및 지지교섭 개시 ▲94.5∼95.6=아주·유럽·중남미등 43개국에 대통령 특사 파견 ▲95.3.11=김대통령,한·스리랑카 정상회담(덴마크 코펜하겐) ▲95.5.19=유엔 아주그룹회의에서 추천 획득(스리랑카 사퇴발표) ▲95.10.21∼25=김대통령,유엔특별정상회의때 각국원수에 지지요청 ▲95.11.8(현지시간)=유엔총회에서 안보리 비상임 이사국 피선 ◎79년 1개 이사국 선출에 투표 1백55번 “진기록” 유엔안보리 비상임이사국선거도 다른 선거양상만큼이나 치열하고 2차투표에서는 역전극이 벌어지는 양상도 많다.간혹 득표수가 예상보다 적어 망신을 당해 국가체면을 손상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가장 치열하고 지루했던 선거는 79년 쿠바와 콜롬비아가 나선 중남미 몫의 비상임이사국 선거였다.지역그룹의 추천에 의해 총회에서 단1번의 투표로 선출되는 경우가 81%로 나타나고 있지만 이때는 무려 1백55번의 투표끝에 제3국 멕시코가 선출되는 진풍경이 연출됐다.당시 총회 1백54번째까지의 투표에서도 양측이 한발도 물러서지 않아 어느 쪽도 총유효투표의 3분의2이상을 득표하지 못했다.결국 양측이 사퇴하고 멕시코가 단일「대타」로 나와 1백55번째 투표에서야 당선됐다.80년에는 코스타리카가 입후보했으나 비동맹국이 아니라는 쿠바의 반대로 가이아나등에서 산표가 나와 당선표에서 1표가 모자라는 89표만을 얻어 10차 투표까지 갔으나 허사였다.11차 투표부터 파나마가 입후보했는데 결국 23차 투표에서 코스타리카가 사퇴,비동맹국가의 지지를 받은 파나마가 당선됐다. 일본은 86년 선거에서 아시아그룹의 지지를 받았으나 입후보하지 않은 인도의 표가 36표나 무더기로 나오면서 당선표 1백3표보다 4표가 많은 1백7표를 얻어 간신히 당선된 적도 있었다. 아시아에서는 비상임이사국 7회로 최다진출국인 일본은 78년 방글라데시에 져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 “홍콩의 모자” 차이나 은행(세계의 명소/걸작건축 감상:25)

    ◎기하학적 형상… 이집트 오벨리스크 연상/아래층은 정방형… 상단은 삼각 프리즘 형태/강철·콘크리트 합성골조… 내태풍성 뛰어나/70층에 높이 360m… 홍콩의 스카이라인 상징 홍콩의 차이나은행 정치적으로는 「식민지」,경제적으로는 아담스미스의 꿈을 실현한 「자본주의 천국」이라는 표현은 홍콩의 양면성을 잘 나타낸다.아편전쟁(1841년)과 99년 조차협약(1898∼1997)에 의해 영국의 식민지가 된 홍콩은 내후년 1997년7월에는 중국에 반환된다.「세기의 부동산 인계인수」날짜를 카운트 다운하는 북경 천안문 광장의 대형시계가 멈추는 날 우리는 자유방임의 시장경제가 부패와 통제의 계획경제로 편입되는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일을 보게 될 것이다.이것이 홍콩의 운명이다. ○중국계 미국인이 설계 차이나은행(중국은행,중국계)은 홍콩섬 빅토리아의 금융지구 중심에 위치하며,한블록을 사이에 둔 홍콩샹하이은행(향항상해은행,영국계)과 함께 홍콩의 노른자위 산업금융을 대표한다.이들은 각기 중국과 영국의 파워를 상징하는 건물이기도 하다.설계를 담당한 건축가도 전자는 중국계 미국건축가 이오밍 페이(IM.Pei),후자는 영국건축가 노먼 포스터(Norman Foster)다.건물의 높이는 정치적 의도를 잘 말하고 있다.건물은 360m 높이에 70층으로서 영국계은행의 2배,아시아에서는 가장 높고,세계적으로 5위다.이 건물의 완성직후에 50층을 상한으로 하는 조닝규제가 신설됨으로써 이 차이나은행은 「홍콩의 모자」로서 먼 장래에까지 스카이라인을 지배할 것을 보장받았다. 순수기하학 형상의 이 건물은 다면체 오벨리스크를 연상케 한다.고대이집트의 기념첨탑인 오벨리스크는 유럽 열강이 이집트 침공시 전승기념물로 약탈하여 본국에 운송함으로써 현재 여러곳에 퍼져있다.(파리의 콩코드광장,로마의 포폴로광장). 건물은 본체 65개층(13개층 기본단위의 5단적층),기단 4개층,꼭지의 펜트하우스 1개층으로 합계 70층이다.이 오벨리스크는 정방형평면으로 시작하지만 위층으로 갈수록 4분할 삼각형이 하나씩 떨어져 나가면서 4분의 1크기 삼각프리즘만 남게 된다.모서리 날림은 17층(북면,항구쪽),38층(서면),51층(동면)등에서 생기며,대각선으로 상향연속하여 이룬 꼭지점에는 2개의 마스트를 두고 있다. ○“무주공간”의 내부처리 기본단위를 묶는 X자 가위형태는 중국에서는 불운을 의미했기 때문에,이 부분이 다이아몬드형의 수직적 결합으로 읽혀질 수 있도록 조정하였다. 은행본사로서의 아이덴티티를 파격적 저렴비용으로(약900억원)태풍지역 가운데 고층빌딩으로 구현하는 것은 커다란 도전이었다.홍콩은 풍하중이 뉴욕과 시카고의 2배를 필요로 하는데 강철과 콘크리트 합성거대골조에 의해 이 문제를 해결하였다.건물은 모서리기둥 4개와 중앙기둥 1개가 있고,내부에는 기둥이 일체 없다.중앙기둥은 꼭대기부터 25층까지 외부기둥으로 내려와서는 대각선재를 통해 4개 모서리기둥으로 연결되어 사라진다.이렇게 연직하중을 바깥으로 흘려보냄으로써 내풍력을 확보하며,내부에는 넓은 무주공간을 만든다.공사는 경우 17개월만에 완공되었는 데,종래와 비교해서 용접공사는 4분의 1 철골공사는 2분의 1만 소요되었다.내태풍성을 위한 지하층의 내력벽은 0.9m 두께 철판인데 은행 금고실이 설치되었다. 건물은 경관을 지배하려는 의도를 잘 나타내고 있다.70층 펜트하우스 라운지는 유리 피라미드로서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경관장소가 된다.이 공간은 알루미늄 튜브골조에 은색유리와 광선조절 루버로 장치되었는데,대각선폭의 창은 고층건물군을 지나 내항,외항,구룡반도,용솟음치는 산맥,섬 너머 수평선 저쪽의 중국대륙까지를 바라볼 수 있다.회의테이블 상부에서 좁아지는 피라미드는 시야를 확장시켜 하늘을 끌어들이고 있다.비행기 조정석,또는 사원의 첨탑과 같은 이 투명 피라미드는 자신이 지배하는 파노라마 가운데서 거대하고 간결한 아름다움을 나타내고 있다. 행정당국은 건물의 도시적 중요성을 인식하여 부지가 정형을 갖추고 차도를 확보하게끔 도시설계상의 조정을 함으로써 특별한 도움을 주었다.건물 전후로의 탁월한 경관,주입구와 중심가로의 연결도 그 덕택이다.건물은 넓은 물정원과 산책로로 둘러쌈으로써 도로의 번잡함과 소음으로부터 격리를 얻고 있다. 부지는 2천4백평,연면적은 4만평인 내부는 은행업무용 40%,나머지는 임대용이며 45대의 고속 엘리베이터와 저층,중층,고층용으로 구분된 6개 탑승장이 있다. ○바닷가의 염해도 고랴 홍콩에서는 제한급수와 바다로부터의 염해를 고려하여 공냉방식을 채용하며,옥상냉각탑은 미관을 해치므로 채용되지 않았다.층고는 3모듈(3×1,333m)로 하여 건물에 통일감 조성의 논리를 부여한다.유리창의 청소관리를 위해 8대의 곤돌라를 요소요서에 숨긴 플랫폼에 두고 있다. 유리와 알루미늄 피막의 오벨리스크는 태양광에서는 푸른하늘을 반사하고 홍콩 상공이 구름으로 덮여 있을 때에는 회색으로 변한다.그것은 잘 깎여진 보석이며 고층빌딩군에서 솟은 은색 칼날과 같이 홍콩의 스카이라인에서 뛰어난 수직축을 이룬다.다면체이므로 도시 어디에서나 반짝이는 면을 볼 수 있으며,빅토리아산을 배경으로한 70층이기에 더욱 두드러진다. 오벨리스크 다면체는 빛을 반사하다가도 하늘색속으로 사라지는 변화무쌍을 연출하는데,이 변덕에서 불길한 예감마저 들기도 한다.강력한 형태에서 유래하는 갖가지 의미는 무엇으로 해석해야 할까.이것은 억압의 징후인가 또는 해방인가.아마도 1997년 이후의 홍콩이 맞이할 정치적 전기에서 드러나게 될 것이다.
  • 산악 레포츠 오리엔티어링 가을야산 누비며 모험 즐긴다

    ◎지도·나침반 이용… 목표지점 찾아 “기쁨 만끽”/기업체들 사원연수·가족단위 놀이로 각광 「막바지 가을정취를 만끽하며 숲속을 누빈다」 산과 계곡을 벗삼아 지도와 나침반만 갖고 미지의 지점을 찾아 달리는 「오리엔티어링」(OL)은 사계절 레포츠지만 해마다 이맘 때면 더욱 각광받고 있다.요즘 대도시근교 산에는 주말을 이용한 동호인과 직장인이 몰려 위세가 한풀 꺾인 단풍과 낙엽 등으로 어우러진 막바지 가을정취 속에서 오리엔티어링을 즐기고 있다. OL은 대자연속에서 지도와 나침반만 이용,보물찾기하듯 지도위에 표시된 몇개의 지점(포스트)을 순서대로,가능한 한 빨리 찾아가야 하는 「생각하며 달리는 산악레포츠」. 거추장스러운 장비나 전문적인 기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경기방법·독도법·나침반사용법 등 간단한 이론을 1시간정도 배우면 실전에 들어갈 수 있다. 출발 이후에는 오직 지도와 나침반에 의지한 채 산야에서 외롭고 힘든 자기와의 싸움을 전개해야 한다.숲속에 숨겨진 목표지점을 하나하나 찾을 때마다 단순산행과는 비교할 수 없는 짜릿한 성취감과 희열을 맛보게 된다. 출발점을 중심으로 반경 2㎞내에서 1시간정도 혼자 또는 짝을 지어 이뤄지나 가족단위 등 참가자의 형태에 따라 다양하게 즐길 수 있다. 뛰면서 즐기기 때문에 높은 산보다도 표고 1백∼2백m이하의 야산이 좋다.우리나라는 구릉지가 많아 전국 어느 곳에서든지 즐길 수 있다.수원 원천유원지,우이동 밤나무골,세곡동 구룡산,경기도 삼송리일대 등이 서울 인근에서 알려진 OL장소다. 레저이벤트업체 코니언의 우정균씨는 『OL은 미지의 지형에서 방향탐지능력을 익히고 정확하게 활동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줘 기업체의 신입사원 연수과정과 보이스카우트와 걸스카우트의 교육프로그램에도 도입돼 있다』고 말한다. 유럽에서 군사훈련의 하나로 시작된 오리엔티어링은 제2차대전이후 급속도로 전세계에 보급됐으며 국내에서는 87년 「한국OL연맹」이 창설되면서 본격화됐다.현재 동호인은 50여만명. 오리엔티어링은 포인트OL,스코어OL,라인OL 등이 있는데 포인트OL이 전통적인 방식이다. 최근에는 스키·패러글라이딩·보트·자전거·자동차 등을 이용한 신종 오리엔티어링을 즐기는 사람도 크게 늘고 있다.한국OL연맹(928­3940)·레저연합회(720­9575)·레저이벤트협회(722­8811)
  • 앨런 사이나이 박사 세계경제연 초청 강연

    ◎저금리·저인플레·유류공급 안정/“세계경제 3∼4년간 호황 지속”/정보화시대 맞아 인프라투자 서둘러야 경기예측과 자본시장 동향분석에 관한 세계적 권위자인 앨런 사이나이 박사가 세계경제연구원 초청으로 19일 힐튼호텔에서 「최근 국제금융시장의 동향과 96년도 세계경제 전망」이란 주제의 특별강연회를 가졌다.사이나이 박사는 현재 미국 투자자문회사인 「리먼 브러더스」사의 수석경제분석가로 거시경제,재정,금융,주식시장등 광범위한 분야에 걸쳐 영향력있는 논문을 주요 학술지와 언론매체에 발표하고 있다.다음은 강연내용의 요약이다. 세계경제가 90년대들어 역사상 전례가 없을 정도로 호황세를 보이고 있다.물론 내년 세계경제도 높은 경제성장률과 낮은 인플레를 기록할 것이며,이러한 추세는 앞으로 3∼4년간 경기확장 국면을 지속할 것으로 예측된다.특히 미국경제는 올해 5년 연속 성장세를 유지한데 이어 내년에도 미국의 경제성장률이 2.3%∼2.4%를 웃돌며 97년에는 이보다 높은 2.8%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인플레율도 내년에는 2∼3%에 그쳐 60년대 이후 최저치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서유럽국가들도 미국과 비슷한 상황으로 내년에도 고성장에 저인플레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특히 독일은 수출주도에 의해 강력한 경기회복세를 맞고 있으며 그 주변국가들은 현재 2∼3%의 성장률을 나타내고 있다.영국의 경우는 전년도의 4%라는 고율에서 올해에는 초기 인플레에 대한 대책으로 금리를 높였기 때문에 성장률이 다소 둔화될 것이다.동유럽 국가들도 올해에는 4%정도의 경제성장률을 나타내고 특히 구동독 지역이 8∼9%라는 놀랄만한 성장을 기록하고 있다.다만 러시아경제가 아직 바닥권을 헤매고 있으나 내년부터는 서서히 회복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높은 인플레에 시달리고 있는 남미국가들은 내년에는 인플레율이 한자리수로 낮아질 것으로 보이며 화해기류가 감도는 중동지역의 경제는 최근들어 역동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한편 아시아·태평양지역의 경우 무역·생산등 여러 분야의 경제활동에 걸쳐 「영속적인 번영」을 구가하고 있다.이 지역에는 높은 성장률,낮은실업률과 매우 활발한 무역·금융 및 기업활동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한국·대만·싱가포르·태국·인도네시아등의 경제성장률은 대체로 5∼8%의 경제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이에따라 인플레율이 높은 일부 국가들은 금리를 높여야 할 것이다. 호주와 뉴질랜드도 높은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이들 국가는 경기과열을 막기위해 금리를 크게 높였지만 성장률은 약간 둔화되는데 그치고 내년까지는 경기확장세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세계경제 전망이 밝은 것은 대규모 세계전쟁이 없어 유류공급이 안정적인데다 금융시장 상황이 양호하고 저금리가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또한 인플레 현상이 나타나기 전에 금리 인상조치를 취하는등 미국 통화정책의 새로운 접근법이 성공하는 한편 획기적인 「기술의 발전」도 한몫을 하고 있다.따라서 각 국가들은 첨단 정보화시대를 맞아 비용절감과 경쟁력 향상을 위해 전세계적인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인프라투자를 서둘러야 할 것이다.
  • 영화백년 안방극장 특집풍성/KBS·SBS,다큐·수상작시리즈 방영

    ◎KBS­일 「스크린」 현주소·아카데미상 작품 소개/SBS­스포츠물 성공작 「불의 전차」 15일 내보내 올해는 프랑스 르미에르형제가 대중들에게 영화를 선보인지 1백주년 되는 해.대학마다 영화동아리가 생기고 저마다 영화매니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느는 등 영화는 최근 우리사회 큰 문화줄기를 이루고 있다.이를 의식한듯 각 방송사들은 다양하고 유익한 영화정보를 제공하는 특집 영화다큐멘터리및 해외수상 명화를 반영하는등 기획프로로 영화팬들을 유혹하고 있다. KBS는 2TV를 통해 본격 영화다큐멘터리 「세계영화기행」을 지난달 24일부터 방영,일요일마다 20부작에 걸쳐 선보인다.「세계영화기행」은 KBS가 다큐전문제작사인 「인디컴」(대표 김태영)에 의뢰,16개국을 돌며 2년여동안 제작한 대작.1백명이 넘는 유명 영화감독과 배우 등을 만나고 생생한 영화현장의 밀착취재를 통해 영화와 사회,영화와 인간이라는 다각적인 관계를 시청자들에게 제시한다. 지난달 24일과 31일 영화의 종주국 프랑스와 미국 할리우드편에서 영화탄생의 배경,영화원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갖고 있는 저력등을 살펴본데 이어 8일과 15일에는 국내 최초로 일본영화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방영한다.제목은 「비상구 찾는 일본영화」(8일)와 「영상의 사무라이들」.우리 관객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일본영화에 대한 이해를 돕는 시간이다.야마다 요지,와카마스 고우지,소마이 신지,하라 가즈오등 일본영화를 이끄는 감독들과 한국국적의 재일영화감독 최양일씨 등이 나온다. KBS는 또 매주 목요일 1TV를 통해 「용서 받지 못한 자」(12일)「크레이머 대 크레이머」(19일)「시네마천국」(26일)등 주옥같은 아카데미수상작들을 연속 방영할 계획이다. SBS는 몬트리올·베를린영화제 등 해외 영화제수상 명화 4편을 영화1백주년 기념 시리즈로 10월 한달동안 선보인다. 지난 1일 92년 베를린영화제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한 「그랜드 캐년」(낮12시10분)을 방송한데 이어 8일에는 87년 칸영화제 최우수감독상과 몬트리올영화제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한 「베를린 천사의 시」(낮12시10분)를 방영한다.「베를린…」은 영상과 문학성의 조화가 뛰어나다는 평을 듣는 작품으로 「파리 텍사스」의 빔 벤더스가 감독했다. 15일에는 스포츠영화로선 드물게 81년 아카데미상의 작품·각본·의상·음악상을 수상한 「불의 전차」(상오11시30분)가 방영된다.24년 파리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영국출신 육상선수 에릭과 해롤드의 집념을 다룬 전기영화이다. 22일에는 중국 제5세대 감독중 한사람인 첸 카이거의 작품으로 92년 싱가포르영화제와 이스탄불영화제 대상을 수상한 수작 「현위의 인생」이 22일 낮12시10분 방송된다.
  • “중국이여 노벨 과학상을 잊지 말아다오”/조홍주(해외논단)

    중국관리 과학연구원 조홍주 부원장(53)은 최근 중국 「과기일보」에 「중국이여 노벨과학상을 제발 잊지 말아다오」란 제목의 글을 기고했다.중국인으로 노벨상을 받은 과학자는 리 숭다오(이정도),양 첸닝(양진령)등이 있으나 이들은 국적이 모두 미국이라 필자는 중국의 성과로 인정하지 않고 건국이후 47년간 노벨상 수상자가 없는 중국 과학계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있다.우리에게도 시사점이 많다고 생각돼 이를 싣는다. 오늘날 2개의 상이 국제사회의 중추신경을 크게 자극하고 있다.하나는 체육올림픽상이고 다른 하나는 노벨과학상이다. 흥미로운 것은 2개의 상에 대한 국민들의 태도가 판이하다는 점이다.중국 축구팀이 아시아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데 대해서는 크게 관심을 갖고 있으며 마음 아파한다.하지만 중국이 건국 47년간 노벨과학상을 받지 못한데 대해서는 담담하다.한 조사에 의하면 20∼30세의 국민들 가운데 겨우 21%가 노벨상에 대해 알고 있다. 하나의 민족은 도대체 자기의 노벨과학 인재가 있어야 하는가,아니면 없어야 하는가.이에 대해서는 역사가 회답한다.노벨과학상은 인류사회 최고단계 지역활동에 대한 평가와 장려방식으로 세계 최고급 단계의 상이다. 노벨상을 수여받은 사람은 지력,의지및 지식누적면에서 모두 매우 높은 수준에 달했다.이 수준은 수세대 사람들이 노력한 결과이다.1900년 노벨상이 제정된 이후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노르웨이 일본이 노벨상을 석권했고 세계 각국이 모두 크나큰 열정으로 자기 민족의 획득상황에 관심을 쏟고 있다. 역사적으로 볼때 신흥국가는 건국 50년내에 노벨상을 탔다.구 소련은 건국 39년만에,체코슬로바키아는 41년만에 노벨과학상을 받았다.심지어는 개발도상국인 파키스탄과 인도도 건국 30년 안에 노벨상을 탔다.중국은 과학영재들이 없는 것도 아닌데 무엇때문에 노벨과학상이 「0」을 돌파하지 못하는가. 여기에는 심각한 역사적·사회적 원인이 있다.첫째,과학 지식의 누적이 모자란다.중국의 근대 과학기술은 역사적인 원인으로 서방국가에 비해 무척 뒤떨어져 있다.특히 기초과학 지식의 누적이 모자란다. 미국의 역대 노벨상 수상을 분석해 보면 과학세대 사이의 연속성이 노벨인재 성공의 중요한 요인임을 알수 있다.지식량의 누적은 선배들의 노동과 관련될 뿐만 아니라 또한 세대간의 지역릴레이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한명의 노벨수상자를 양성하는 데는 적어도 3세대의 지식누적이 있어야 효과를 볼수 있다.여기에는 교육,과학연구환경,특히 가정교육의 기초역할이 포함된다.학문을 연구하는 태도,연구방법,사유관습은 은연중의 감화작용으로 「유전」된다.그러나 중국은 아직도 많은 면에서 노벨과학인재 양성의 사회기초를 닦지 못했다. 둘째,과학연구시간이 모자란다.과학자의 노동은 보통의 노동과는 다르다.어떤 때는 하루종일 침식을 잊고 실험실에 붙어 있거나 컴퓨터앞에 앉아 있다.어떤 때는 휴식하며 세계각지를 돌아다니며 교류하고 학술강연을 해 두뇌가 다시금 충전되게 한다.때문에 전시작업이 필요하다. 미국의 과학자수는 1백만명도 되지 않지만 전부가 전시 과학자이다.반면 현재 구소련의 과학자수는 1백만명이라고 하지만 전시 과학자수로 환산하면 겨우 수십만명 밖에안된다.「회의도 하고 학습도 하고 기타활동에도 참여하는」 중국식 작업은 과학연구시간의 지속성을 보장할 수 없다. 셋째,과학자 군락이 모자란다.과학은 개인의 능동성 뿐만 아니라 동료간의 협력도 중요하며 집단의 창조력을 발휘하는 것이 필요하다. 과학에서 서로 다른 분야 연구자들의 「잡교」는 늘 노벨급 과학연구과제 성공의 관건이 돼왔다.현대의 과학자는 자기분야의 「전문가」이면서 다른 분야의 「능수」가 돼야 한다. 한 통계에 따르면 대부분의 노벨과학상 수상자가 서로 다른 전공을 한 과학자이며 그래야만 과학연구의 선두에 설수 있고 과학교류의 주요한 루트로 들어설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중국 과학계는 노벨과학 인재의 「온상」과 이에 따른 과학자 군락이 없고 연구생들은 교차분야에서 작업하는 능력이 모자라 세계수준의 과학연구 프로젝트가 아직도 많지 못하다. 넷째,과학 인재에 대한 식별과 선발메커니즘이 부족하다.노벨과학인재는 보통과학인재와는 다른 특징들이 있다.초기나 중기에 「싹」을 선발,양성해 계획적으로 그들의 과학능력을 제고시키며 노벨상의 목표를 향해 나가게 해야 한다. 축구는 어릴때 공을 쥐어 주어야 한다고 말한다.내 견해로는 노벨과학인재 양성은 할아버지로부터 시작해야 한다.중국 과학계에서 더욱 더 많은 1세대 과학자가 「3세대의 지역릴레이」를 감안하고 「국가 노벨과학 인재계획」을 세운다면 오래지 않아 노벨과학상 「0」의 수치를 씻을 수 있을 것이다.
  • 타이슨의 표리(외언내언)

    뉴욕의 빈민가에서 태어나 편모슬하에서 어렵게 자라난 12살의 흑인소년 마이크 타이슨은 비행소년 교도소인 트라이언학교로 끌려간다.사람을 두들겨패고 돈을 뺏었기 때문.그곳에서 전직 프로권투선수였던 보비 스튜어트라는 카운슬러를 만나 권투에 몰입한다. 타이슨이 프로무대에 데뷔한 것은 18살때.이후 1년만에 19연속 KO승이라는 놀라운 주먹을 과시했고 86년 11월23일 WBC헤비급 타이틀전에서 챔피언 트레비 버빅을 KO로 눌러 최연소 헤비급 세계챔피언(20살4개월22일)의 신화를 창조했다.그 이듬해인 87년 9월2일에는 헤비급통합챔피언에 등극,「핵주먹」으로서의 명성을 드높였다.90년 2월11일 제임스 더글러스에게 챔피언 벨트를 뺏기기까지 타이틀전 파이트머니로 벌어들인 돈만 7천8백50만달러.우리 돈으로 6백20억원이 넘는다. 화려한 명성과 엄청난 부를 한손에 쥔 그가 몰락의 구렁텅이에 빠져든 것은 방탕한 생활때문.91년 7월 18살의 미인대회 출전 흑인소녀를 강간한 혐의로 기소된 타이슨은 92년 3월 6년 징역의 실형을 선고받고 3년동안 복역한뒤 지난 3월25일 가석방됐다.그는 지난20일 다시 핵주먹을 휘두르면서 화려하게 링에 복귀했다.경기결과는 1회 89초만의 실격승.4년만에 링에 오른 타이슨이 이날 챙긴 파이트머니는 2천5백만달러(약2백억원).1초에 2억2천만원을 벌어들인 셈이다. 타이슨이 재기전을 갖든 말든,또 얼마나 받았건 상관할 바 없지만 강간죄로 실형을 산 그의 재기를 위해 이처럼 요란한 쇼를 펼쳐야 했는지 우리 정서로는 잘 납득이 가지 않는다.미국에서도 그의 재기를 반대하는 움직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경기가 열린 라스베이거스 MGM호텔앞에서 여성인권단체 회원들이 「강간은 스포츠가 아니다」라는 구호를 외치면서 시위를 벌였고,LA타임스지는 18일자 1면 톱으로 타이슨의 재기전을 강력하게 비난했다.스포츠스타의 도덕성문제를 되새겨 보게 된다.
  • 크라스노야르스크(시베리아 대탐방:30)

    ◎절경의 스탈브이 자연공원… 기암 40개/일군 포로가 지은 스탈린식 건물 곳곳에/19세기 화가 「수리코프」는 이 고장의 자랑/예니세이강 유역에 목재 콤비나트 줄이어 목재산지 예니세이강의 도심 선착장 대합실은 49년 당시 소련에 억류돼있던 일본군 전쟁포로들을 동원해 지었다는 전형적인 스탈린식 건물이다.시베리아 전역에서 전쟁포로들을 동원해 지은 건물들을 많이 볼수 있었다.치타·연해주 등 동시베리아쪽에서는 일본군 포로들이 동원됐고 서부지역에서는 독일군 포로들이 동원됐다. 일제때 학병으로 끌려간 우리나라 사람들중에도 소련군포로가 돼 러시아땅에서 강제노역을 당한 사람들이 많다.김영삼대통령의 단골 러시아어 통역인 유학구씨도 학병으로 끌려갔다가 포로로 잡혀 하바로프스크에서 무려 4년여 강제노역을 했던 사람이다.그는 그곳에서 좌익활동을 해 전후 일본으로의 송환을 거부하고 소련시민이 됐다.이후 그는 소련의 연구소에서 한반도관계 일을 맡다가 한소수교 뒤 다시 한국국적을 취득해 지금 서울에서 살고 있다. ○유학구씨도강제 노역 그와는 달리 학술원회원인 동완 선생은 하바로프스크에서 유학구씨와 함께 포로생활을 했으나 일본으로 되돌아간 경우다.그는 어릴 때 부친을 따라 만주에서 성장하며 배운 유창한 러시아어 때문에 관동군 통역장교로 참전했다고 한다. 귀국 후 그는 오랫동안 한국외국어대 러시아어학과에서 후학을 가르쳤다.이 두 사람의 인생유전도 우리 근대사의 한 비극을 압축해 보여준다. 크라스노야르스크 동쪽의 이르쿠츠크는 시베리아 유형자들의 종착지였다.그래서 유형자들의 수도라고 불린다.따라서 그 직전 도시인 크라스노야르스크는 유형자들의 마지막 중간 기착지였던 셈이다.그리고 많은 유형자들은 이곳에서 유형생활을 마감하기도 했다.「파크로프스크(첫눈)」라는 이름의 18세기 사원을 지나면 시립 공동묘지가 있는데 데카브리스트(12월당원)들을 비롯,유형자들의 묘지가 대거 눈에 띈다.「파크로프스크」라는 이름은 첫눈 내리는 10월1일에 착공됐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보통 10월1일 첫눈이 내리면 이듬해 4월까지 겨울이 계속되고 1월 평균기온이 지금도 영하18∼20도로 내려간다.지난 겨울에는 예전같은 혹한은 줄어들었지만 대신 폭설이 많이 내렸다고 한다. 크라스노야르스크의 가장 자랑거리는 뭐니뭐니해도 자연공원 「스탈브이」봉이다.수력발전소로 가는 길 중간에 있는 약 40개의 기암 봉우리로 이루어진 자연공원이다.우리의 설악산에 비할바는 못되지만 산이 귀한 시베리아인들은 이 스탈브이를 한번 가보는 게 평생 꿈이라고 할 정도로 유명한 산이다.산세도 산세지만 사회주의 나라들의 공원은 역시 사람의 발길이 뜸해 오염되지 않은 게 제일 장점인 것같다.무료한 표정으로 앉아있던 공원입구 매표소 여직원은 엽서·안내책자 등을 종류대로 다 사고 싶다는 말에 신이 나서 먼지가 뽀얗게 쌓인 서랍을 이리저리 뒤졌다.이곳의 안내책자들은 사진기술은 괜찮은데 하나같이 종이질과 컬러 인쇄술이 조잡한 게 흠이다.얼음같이 찬 계곡물에 잠시 발을 담그니 쌓인 여행의 피로가 말끔히 씻겨지는 기분이다. ○유형자들 중간 기착지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특히 「클레시」라고 부르는 해충을 조심해야한다.작은 벌 모양으로 생겼는데 한번 물리면 뇌·신경조직에 치명적인 해를 가한다고 한다.공원 입구는 물론,크라스노야르스크 시내 곳곳에 클레시를 조심하라는 경고판이 나붙어 있다.스탈브이를 내려오면 예니세이강을 끼고 시내 초입까지 내내 목재 콤비나트가 줄줄이 들어 서 있다.뗏목으로 이동해온 목재들을 이곳에서 가공해 시베리아철도를 이용해 각 도시로 공급하는 것이다. 이곳 사람들의 문화적 자랑거리로는 19세기에 활동했던 이곳 출신 화가 수리코프를 빼놓을 수 없다.시내 한복판에 있는 전형적인 동시베리아 목재집을 박물관으로 꾸며 그가 쓰던 가구와 그림들을 전시해 놓았다.시베리아의 자연풍경과 여인·가족,특히 자연속의 사람을 즐겨 그린 수리코프에 대한 이곳 사람들의 자긍심은 대단하다. 크라스노야르스크가 우리에게 비교적 낯설지 않게 들리는 이유중 하나는 지난 88년9월 고르바초프가 이곳에서「크라스노야르스크 선언」이라는 새 아시아 군사외교노선을 천명한 때문이기도 하다.아시아에 탈냉전의 바람을 불어놓는 선언이라며당시 우리 언론들도 대서특필 했었다.고르비가 당시 이 선언을 발표했던 주당위원회 건물은 지금 주정부·주의회가 입주해 있고 정작 거리의 시민들은 이 선언에 관해 기억하는 사람이 없었다.하기야 고르비마저도 거의 잊혀진 인물이 됐으니. ○고르비 “탈냉전” 천명한 곳 시베리아에서 5월말은 졸업시즌이다.크라스노야르스크의 중심가인 칼 마르크스거리의 불러바르(도보)에는 졸업을 앞둔 여중생들이 들뜬 기분에 10여명씩 무리를 지어다니는 모습이 눈에 띈다.11학년제이니까 15∼16살쯤 되는 나이들이어서 화장도 짙게 하고 모두 숙성한 모습들이다.우리를 보더니 『우리는 졸업한다』『사진을 찍어달라』는 등 명랑하게 재잘거리며 지나간다. 러시아는 지금 학제도 큰 변혁기에 있다.지금까지는 국민학교 5년에 중학교는 6년,합쳐서 11년제였다.우리와 달리 국민학교·중학교가 따로 있는 게 아니고 같은 학교에 있으며 제도만 분리돼 있을 뿐이다.국민학교는 담임교사가 학급을 책임지고 모든 과목을 다 가르치는데 중학교로 가면 과목별 교사가 따로 있다.가장 큰 차이는 국민학교에는 시험이라는 게 전혀 없다가 중학교로 가면 과목별로 시험이 생겨난다는 점이다. 요즈음은 이 공립학교 대신 김나지움이나 리세라는 엘리트학교가 많이 생겨나고 있다.일명 「뉴(new)러시안」이라 불리는 신흥 부자들의 자녀들이 다니는 곳이다.시설도 좋고 교육의 질이 매우 좋지만 월학비가 5백∼1천달러에 이르니 일반국민들에게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이들 학교학생들과 일반 공립학생간의 위화감이 사회문제로 언론에 종종 등장하기도 한다. 중학교를 졸업하면 취직을 하거나 아니면 대학으로 진학한다.요즈음은 너도나도 취직하는 게 유행이다.대학은 우리같이 학부 4년,대학원 2년이 기본이다.그러나 의대의 경우는 예과 2년,인턴 2년을 합쳐 모두 7년제이고 공대 6년,법대 5년등 다양하다.이를 모두 미국·유럽학제로 일원화하는 문제가 요즘 큰 논란거리다.
  • “한민족 기맥 끊기”… 경복궁에 터잡아/총독부청사 약사

    ◎14년 걸려 1926년 완공… 전각 4백칸 훼손 조선왕조의 정국 경복궁앞에 버티고 선 옛 조선총독부건물은 우리민족의 「정수리에 박힌 말뚝」.일제가 북악에서 종로 남산으로 이어지는 맥을 끊으려는 의도에서 건축했다.작약꽃송이 모양의 명당에 위치한 경복궁을 가로막고 있다.일제는 공사를 위해 건축학자와 사학자들로 구성된 고건축조사단을 파견해 조선의 궁성을 모두 조사한뒤 조선의 궁맥을 끊을 수 있는 최적지로 경복궁을 선택했다. 이 건물이 들어선 것은 지난 1926년10월1일.1911년 초대총독 데라우치(사내)의 지시로 4년간의 설계와 10년간의 공사끝에 완공됐다.기초설계는 독일인 게오르그 라란데가 맡았고 세부설계는 대만총독부를 설계한 노무라(야촌)와 구니에다(국지)가 했다.설계에만 4년이 걸린 것은 영국의 인도총독부나 네덜란드의 보르네오총독부보다 크고 웅장해야 한다는 점이 강조됐기 때문이다.공사도 예정보다 2년이나 늦어졌다. 총독부건물의 규모는 대지 4만7천평에 동서로 2백42칸,남북으로 1백42칸.이 공사로 인해 경복궁의 강령전교태전 등 전각 4백여칸이 헐렸다.이는 경복궁 전체면적의 4분의1에 해당하는 것이다. 총독부건물은 「일」자 형태를 띠고 있다.일부 학자들은 『「대」자형인 북악산과 「본」자형인 서울시청건물과 아울러 공중에서 보면 「대일본」의 형상을 나타낸다』고 말한다.위치선정과 설계등 모든 점에서 우리 민족사의 기맥을 절단하고 식민통치를 영구화하려는 치밀한 의도를 엿볼 수 있다.총독부건물은 10대총독 아베(아부)에 이르기까지 20년간 잔혹한 일제의 사령탑으로서 군림했다. 일제는 총독부건물과 함께 1927년 경복궁내 과거장등을 허물고 총독관저(구 청와대)를 지었다.풍수지리로 보면 총독부자리는 인체의 「입」,그리고 총독관저자리는 「목」에 해당한다.따라서 경복궁을 허물고 총독부와 총독관저를 지음으로써 왕조와 민족의 숨통을 억압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광복후 총독부건물은 미군정청사로 사용됐다.과도 입법의회가 사용하기도 했으며 이승만대통령 정부출범이후 정부청사로 사용됐다.제헌국회 개회식,초대대통령 취임식,9·28수복 등 역사적 사건들이 이 건물에서 이루어졌다.중앙청이라는 이름은 과도 입법의회가 중앙홀을 사용하면서부터 비롯됐다. 이 건물은 6·25때 대파된후 그대로 방치돼 「유령의 집」으로도 불렸다.제대로 복구돼 정부청사로 다시 활용된 것은 5·16후인 지난 62년11월부터. 그러나 건물을 철거하자는 주장이 줄기차게 제기돼 왔다.아예 폭파하자는 강력한 주장도 있었다.하지만 재정형편이 감당할 수 없었다. 이 건물에 정부기관이 철수하고 국립중앙박물관이 들어선 것은 5공때인 지난 86년.정부청사 이전과 총독부건물 철거여론이 거세게 일자 정부는 3년여에 걸쳐 2백77억원의 개조비를 들여 박물관 개관을 일방적으로 강행했다.철거주장은 6공때도 제기됐으나 1천억원에 이르는 철거및 박물관 이전비용 부담때문에 무산됐다. 이같은 우여곡절끝에 50주년 광복절에 비로소 중앙돔 첨탑부터 철거가 시작된 것이다.총독부건물은 약 68년10개월간 서울 한복판에 버티고 서있었던 셈이다. ◎총독부 첨탑 철거 지휘 유원우씨/“준비해온 2개월 긴장의 연속… 무사히 들어내려 다행” 『일제잔재 청산의 상징적인 작업인 구 조선총독부 건물 중앙돔 첨탑 해체를 무사히 끝내게 돼 감회가 새롭습니다』 조선총독부 철거작업을 2개월전부터 총지휘해온 철거현장 소장 유원우(44)현대건설 건축부장은 15일 아침 첨탑이 들어내려져 국립중앙박물관 광장에 안착되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영남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지난 78년 현대건설에 입사한 유씨는 아랍토후국 유전시설 공사장 근무등 해외근무 2년간을 빼놓곤 줄곧 국내 공사장에서 17년간을 보낸 현장통.건축과장 시절인 지난 86년 경희궁 개보수 공사를 관리하면서 유적지 현장 공사와 인연을 맺게 됐고 지난해 8월 조선왕궁역사박물관 신축공사를 현대건설이 맡으면서 현장 총책임자가 됐다. 『조선왕궁 역사박물관이 완공되는 내년 상반기에는 구 조선총독부 건물전체에 대한 철거가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약 6개월이 소요될 이 작업은 첨탑해체보다 더 중요하고 위험한 만큼 신중한 준비작업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첨탑 해체작업이진행되던 지난 2개월간은 긴장의 연속이었다』는 유씨는 『최근 다발하는 건축사고는 비양심적인 건설인의 소치』라며 조선왕궁역사박물관 완공과 구 조선총독부 건물이 완전철거되는 내년말까지 양심있는 건설인으로 현장을 지킬 것이라고 다짐했다.
  • 원로 연극인 장민호(이세기의 인물탐구:78)

    ◎평생을 연극으로 살아온 연기자의 대명사/파우스트 간판배우… 별명은 “파우스트 장”/이순신서 햄릿까지 어떤 배역도 무난히 소화/칠순이 눈앞에… 식을줄 모르는 열정으로 연기생활 『배우가 해야 할 최대 문제는 관객을 계속 끌고 나가는데 있다』고 뉴욕 메트로폴리탄 가수로 활약한 샬리아핀은 말한다.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연기에 대한 끝없는 욕심과 집념어린 정열을 불태우는 이가 있다면 국립극단의 원로배우 장민호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그는 평생을 연극으로 일관한 연기자의 대명사다.양심적이고 본질적인 그의 연기가 우리에게 주는 감동은 일시적인 경이감이나 전율만은 아니다.연기를 통한 인간정신의 승화를 그는 무대 곳곳에서 증명해 내고 있다.예의 「배우가 해야 할 최대 문제인 관객을 이끌어 나가는데」 한번의 실수나 실책이 있을 수 없다는 주의다. ○솔직하고 직선적 성격 그는 언제나 의욕적이다.성격은 명쾌하고 성급하며 솔직하고 직선적이다.항상 모범생과도 같은 이런 유의 성격이란 한가지 일에 몰두하면 끝장을 봐야만직성이 풀리게 마련이다.또한 철두철미하고 다혈질적인 기질로 인해 곧잘 흥분하거나 저항하거나 마찰을 빚기 십상일 것이다.그러나 「칼날처럼 날카롭고 정의감에 넘치건만」 막상 결단을 내려야할 순간에는 흑백을 가리거나 정면으로 대결하기보다 우회적인 유연성을 지니는 것이 남과 색다르다.이는 아마도 오랜 세월 어지러운 세파에 시달린 나머지 자신도 모르게 터득한 「삶의 지혜」일지도 모른다.또는 이북에서 혼자 월남해온 그로서는 사방의 적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해야 한다는 당연한 견제일 수도 있다.그래선지 국립극단에서 40년이 넘게 한 솥밥을 먹은 동료들도 『그의 속마음을 모르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다만 무대에 서면 「온몸의 연기로 관객을 압도」하기 때문에 「배우가 연기를 잘한다면 모든 것은 침묵」일수밖에 없다. 그는 해방직후 황해도 신천에서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서울에 왔다가 연극배우가 된 케이스다.20세되던 해 원예술좌가 공연한 성극 「모세」에서 타이틀 롤을 맡으면서 연극에 입문,그로부터 10년후 하유상의 「딸들자유연애를 구가하다」로 「노역」을 완성시키면서 「성공적인 연기자」의 반열에 올라섰다.이후 「대수양」「세종대왕」「성웅 이순신」에서 완곡하며 기질이 장대한 성군,「오델로」「맥베스」「줄리어스 시저」의 다이내믹한 개성,「밤으로의 긴 여로」「안네 프랑크의 일기」「햄릿」에서의 차분하고 섬세한 내면 연기 등 그에게 돌아오는 모든 배역을 「생생한 극중 인물」로 부각시키는데 한치의 허술함을 보이지 않았다.그중에서도 「역을 최후로 완성시키는 것은 디테일이 아니라 전체적인 진실성」이라고 믿는 그가 평자들에게 어필된 것은 단연 괴테의 「파우스트」를 들수 있다. ○66년에 파우스트 초연 66년 서항석 역 이해랑 연출로 초연된 「파우스트」에서 그는 학문과 지식에 실망한 노박사 파우스트가 현세적 향락에 침몰되는 과정을 고뇌에 찬 연기로 그려내었고 두번째는 8년후인 74년,순결한 헬렌과의 사랑에서 미마저 구하지 못한채 이상향을 꾀하는 허탈한 파우스트,또다시 84년 한독 1백주년 기념공연에서 독일의 저명한 기싱이 연출한 세번째「파우스트」에서는 지금까지 축적된 파우스트의 진면목을 함축하여 관객은 감전된 듯 박수갈채를 멈추지 않았었다.그때 이 연극을 연출한 기싱은 『그는 인물을 스스로 움직이되 얼굴 표정이 아닌 눈빛만으로 이미 단숙을 성립하고 있다』고 했다.즉 「고정된 것이 아니라 움직이는 것을 붙들지 않으면 안된다는 긴박감에서 그는 감정을 절제하거나 적절히 노출하여 역이 가리고 있던 사상의 베일을 한장 한장 벗겨내고야만 것」이다. ­이것이 수많은 배를 띄우고 그리고 끝없이 높은 탑들을 불태운 얼굴이었던가.사랑하는 헬렌이여 단 한번의 키스로 불멸케 해다오.오! 그대는 무수한 별들의 아름다움으로 치장한 밤하늘보다 더 아름답구나­ 가슴속에 박힌 사랑을 고백하는 이 장면은 「드라마틱한 다이너미즘과 명쾌한 표현적 리듬,응축된 긴장감과 생명의 맥박이 충만」하여 이를 앞서 연출했던 이해랑씨는 『중진 장민호의 연기가 폭풍같은 성공을 거둔 근본 요인은 이러한 관념을 최후까지 지킨 지치지 않은 탐구의 결과』라고 못밖았다.이는 50년대 후반국산 영화붐으로 연극계가 부진하자 전 연극인이 분발하여 만든 「대수양」(김동인 작 박진 연출)을 보고 『그곳에 군계일학이 있었다』고 한 이진순씨의 지적과 맥을 함께하는 찬사이기도 하다.이로써 그는 「파우스트」간판 배우로서 평생동안 영광스러운 「파우스트 장」의 별명을 갖게 되었다. 배우는 무대위에서 기왕에 정해진 다양한 운명을 우리에게 보여준다.따라서 짙은 분장속에 감추어진 배우의 모습은 다시 그 자체가 그의 얼굴일수도 있다. 더구나 그의 묵직한 바리톤의 음색은 푸짐한 볼륨과 풍부한 음조의 변화,감정의 뉘앙스가 격하게 풍겨나와 어느 대목에서도 무기미를 느낄수 없는 것이 특징이다.마음속 깊이 스며드는 중후한 음의 압력은 라디오 드라마에서도 특출난 개성을 돋보여 67년부터 그가 해설자로 등장한 대하드라마 「광복20년」은 10년 장기 연속방송으로 장안의 성가를 높인바 있다. ○연출가로도 한때 활동 그는 배우일 뿐만 아니라 유치진의 「소」,체호프의 「봐냐 아저씨」를 무대에 올린 창조적 상상력이 풍부한 연출가이며연극적 감각과 지성을 겸비한 영화배우·TV탤런트이기도 하다.한때는 경화 프러덕션을 설립,그가 제작한 영화 「저 하늘에도 슬픔이」는 60년대 초반 전례없는 흥행을 기록하기도 했으나 「인생만사 만능은 없다」는 교훈과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한다」는 진리를 절감하고 그는 고향에 돌아오듯 무대로 돌아왔다. 그후 그는 하고싶지 않은 일에 참여한 적이 없다.간혹 주변에서 자서전을 내라거나 대학에서 강의를 부탁해 오거나 방송 대담프로그램등에서 초청하면 일언에 외면한다.「배우는 무대에서 말할 뿐」,연기와 무관한 일은 그에게 모든 것이 무의미하기 때문이다.가족은 산행 동반자인 부인 이영애(63)씨와 출가한 남매가 있다. 지금도 젊은 후배 연극인들 사이에서 대사를 가장 잘 빨리 외우고 「내가 만약 저 역할을 맡으면 어떻게 소화할 것인가」를 간파하여 선명하고 강렬한 생명체를 그때마다 새롭게 탄생시킨다.또 주역에서 차츰 비켜나고 있지만 역이 크든 작든 「연기자는 계급이 없는 무관의 제왕」이라는 자부심과 열의로 자신의 위상과 예성을 의식하는 도도함으로 일관하고 있다. 다양한 인생편력을 체험하면서 자기의 가능성을 무한히 확대하려는 생의 충동은 그가 맡았던 파우스트의 일면이며 결국 「연극은 눈과 귀를 통해서 영혼까지 도달해야 된다」는 연극예술과 미와 환희를 이 세상에 가져다준,우리 연극사상 그는 투철한 한 존재에 틀림없다. 그리고 더이상 열띤 대사를 읊조리지 않아도 「오델로」의 이야고나 브루터스의 배반의 이미지를 물흐르듯 되살리는 경지에서 오늘도 그는 그만의 적광의 광채를 어두운 객석에 뿌리고 있다. 기 자 입 력 □연보 ▲1927년 황해도 신천 출생 ▲45년 월남,조선배우학교 졸업 ▲46년 서울중앙방송국 제1기 성우 ▲47년 원예술좌 입단,성극「모세」의 타이틀 롤로 데뷔 ▲50년 국립극장산하「신협」입단,유치진 작 연출「원술랑」 조우 작「뇌우」출연 ▲53년 국립극단 입단,오상원 작 「녹슬은 파편」이후 해마다 출연 ▲62년 드라마센터 개관 기념 셰익스피어 작 「햄릿」출연 ▲66년 괴테 원작 서항석 역 이해랑 연출 「파우스트」초연서주역,일본 일생극장 개관기념공연 참가 ▲67∼71년 국립극단 단장 ▲68∼89년 한국 연극협회 이사 ▲78년 세종문화회관 개관 기념 김의경 작 이진순 연출「북벌」 ▲79∼90년 국립극단 단장 ▲88년 조우 작 이해랑 연출「뇌우」 38년만의 재공연 주역 ▲현재∼예술원 회원,국립극단 원로배우,연극협회 자문위원 제1회 방송문화상(58년) 서울시문화상(63년) 한국연극영화예술상(68·73·78년) 연극평론가 협회상(79년) 대한민국예술상(81년) 목련장(82년) 대한민국 예술원상(88년) 예총예술문화상(89년) 연극­유치진 작 「자명고」(54년)를 비롯,「박쥐」「오델로」「느릅나무 그늘의 욕망」「딸들 자유연애를 구가하다」「인생차압」「시라노드 벨주락」「붉은 장갑」「세자매」「안네프랑크의 일기」「나의 고백은 끝나지 않았다」「뜨거운 양철지붕의 고양이」「빌헤름 텔」「죄와 벌」「결혼중매」「베니스의 상인」「이순신」(신명순 작 66년)「갈매기」「북간도」「수전노」「인종자의 손」「남한산성」「전쟁과 평화」「성웅 이순신」(이재현 작 73년)「세종대왕」「허생전」등 1백70여편과 영화 TV드라마 다수 출연.8월2일부터 「눈꽃」(11일까지 우봉규 작 김석만 연출 국립극장 대극장공연 예정).
  • 홍콩주민 불안·희망 교차/「중국 반환」 2년 앞으로

    ◎“자유보장 의심”… 이민신청자 늘어­회의론/“아주 금융중심지 불변… 번영 지속”­낙관론 얼마전 국내에서도 개봉된 홍콩영화 「이연걸의 보디가드」는 반환을 2년 앞둔 요즘 홍콩의 분위기를 의미심장하게 전달하는 장면으로 끝난다.본토 출신의 특수경호요원 이연걸이 악당으로부터 홍콩의 부유한 상속녀를 지켜주고 본토로 돌아가는데 그의 환한 웃음 뒤로 중국 공산당을 상징하는 붉은 오성홍기가 화면전체를 뒤덮으며 펄럭이고 있다.홍콩사회가 중국에 서서히 빨려들어 가고 있음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장면이다. 중국에 대한 귀속의식은 그러나 97년 7월의 반환을 앞두고 약간은 혼란스런 양태로 전개되고 있다.홍콩주민의 마음속에는 미래에 대한 불안과 희망이 부침을 거듭하고 있는 것 같다. 홍콩 슈로더증권사의 경제연구원인 타오 덩씨는 희망에 무게를 싣는 쪽이다.그는 홍콩이 지난 20년간 아시아의 서비스산업 중심지로 발전해 왔다고 전제하면서 이 움직임은 반환 후에도 계속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중국의 특별행정구가 되더라도 홍콩은 금융중심지로서의 자기위치를 확고히 지켜나갈 수 있으리라는 것이 타오씨의 생각이다. 홍콩 경제대학 교수인 켈리 부시씨도 경제 영역에서 홍콩의 연속성을 주장하는 사람이다.그는 홍콩이 오래전부터 중국에 통합되어 왔다고 본다. 따라서 반환 후에도 홍콩에 큰 변화는 없을 것으로 믿고 있다.나아가 그는 홍콩이 본토가 배출하는 젊은 고학력자들에게 앞선 자본주의적 경영기술을 가르치는 적극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는 견해를 제시한다. 불안에 무게를 두는 쪽은 주로 정계와 문화계 인사들이다.상당수의 사람들은 현재 홍콩이 누리는 민주주의,언론·출판의 자유가 통합후에도 계속 보장될 것인지에 대해 의심하고 있다.특히 「법의 지배」가 중국 공산당이나 당우두머리의 지배로 바뀔지 모른다는 우려를 내보이고 있다.중국에서 도망나온 반체제인사,친영국적인 정치인·관료·언론인들이 이런 부류에 속한다. 중국은 이런 우려를 일찍부터 간파하고 지난 90년에 이미 지금의 자본주의적 제도와 생활양식을 반환후 50년간 보장한다는 「기본법」을 발표했다.홍콩의 자본주의경제와 본토경제를 묶어 서로간에 더 나은 번영을 이루는 것이 「1국2제도」통일을 실현하는 지름길이라는 것이 기본법에 실린 중국의 생각이다. 이런 중국의 태도를 믿느냐,믿지 않느냐에 따라 희망과 불안이 갈리고 있는 것이 지금의 홍콩모습이다.반환일이 성큼성큼 다가오면서 불안을 느끼는 쪽의 조급함도 커져 올초부터 이민이 다시 늘어나고 있다.지난 3년간 2만5천∼3만건 정도였던 이민신청이 올해는 3만5천건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볼 때 홍콩주민의 대다수는 본토의 지배를 피할 수 없는 운명으로 보고 있다.다만 이런 분위기 속에서도 여러 분야의 민간인들이 원만한 통합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홍콩의 회계사·경제학교수들이 본토에서 자본주의를 가르치고 본토의 록밴드가 홍콩에서 공연을 갖는 것이 그런 예이다.
  • 고향방문과 정치 재개/백문일 지방자치기획취재팀(오늘의 눈)

    김대중 아태재단이사장이 12일 고향을 찾았다.지난 87년 9월 이후 8년만에 전남 신안군 하의도 본가를 방문한 것이다. 김 이사장과 측근들은 아태재단의 지방강연 일정에 따른 「순수한」 방문이라고 강조했다.또 지방선거와 맞물린 것은 「우연」이라고 덧붙였다.오히려 고향을 방문한게 뭐 그리 대수로운 일이냐고 천연덕스럽게 물었다. 맞는 말이다.고향을 찾는 것은 이상할 게 없다.오히려 당연한 일이다.그러나 문제는 고향을 찾는 게 주목적이 아니었다는 점이다.「고향가는 길」을 되짚어 보면 더욱 뚜렷해진다. 김 이사장은 3박4일의 일정으로 지난 9일 호남 방문길에 올랐다.민족통일을 주제로 한 지방강연이 명분이었다.그러나 대전을 거쳐 김제와 전주 등 호남권에 접어들면서 강연은 조금씩 궤도를 이탈하기 시작했다. 지방선거 후보등록을 하루 앞둔 10일 김제에서는 느닷없이 옥외집회로 강연회를 가졌고 이어 전주에서는 정부의 노동정책을 강도높게 비난하고 나섰다.명동성당에의 공권력 투입을 노사관계가 아닌 노정관계로 빗대며 현정권을 신랄히 비판했다.이날은 민주당 김인곤 의원이 구속된 날이기도 했다. 후보 등록일인 11일 호남의 심장부 광주에서는 예정에도 없던 거리에서의 즉흥연설회를 잇따라 가졌다.나주에서도 그랬고 함평·무안에서도 똑같았다.게다가 민주당 후보를 지원하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선거법을 의식,특정 후보를 지칭하지는 않았지만 『민주주의를 위해 싸운 후보』라는 표현으로 민주당 후보를 지칭했다.목포에서는 현정권을 규탄하는 대규모 집회까지 가졌다. 목포에 가까워질수록 김 이사장의 발언에는 선거 열기가 가득차 올랐다.민주당 후보에 대한 지지는 노골적으로 변했고 정부에 대한 비판의 수위는 높아졌다.반면 서울을 떠날때 그처럼 강조했던 통일과 관련된 내용은 점점 뒷전으로 밀렸다. 한마디로 이번 방문은 강연이 아닌 유세의 연속이었다.선장(KT)을 대신해 선주(DJ)가 직접 키를 잡은 형국이었다.민주당측도 이를 부인하지 않는다.오직 김이사장측만 아니라고 잡아뗀다.문제는 여기에 있다.변죽을 실컷 울리고선 딴전을 피우는 것이다. 정계복귀를 하고,하지 않고는 김 이사장 마음이다.굳이 정치도의를 따지자는 것도 아니다.단지 솔직했으면 한다.가면은 훌훌 털어버리고 맨얼굴로 국민앞에 나서는 게 낫지 않을까.
  • PC모니터 월 매출/삼성 1천억 돌파

    삼성전자는 지난 5월 한달간 PC모니터 매출 1천20억원을 달성,지난 81년 10월부터 모니터를 생산한 이래 처음으로 월간 매출 1천억원을 돌파했다고 7일 발표했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는 모니터 부문에서 7년 연속 세계시장 점유율 1위가 가능할것으로 전망했다.
  • 정문연,길림성 사회과학원 양소전 교수 「중국에서…」1권 번역

    ◎중국인이 쓴 한국독립운동사 곧 출간/국내학자 접근 힘든 중 정부 사료 활용/중서의 독립운동 배경·전개 방식 규명 중국인이 한국의 독립운동사를 추적한 연구서가 한국어로 번역돼 출간될 예정이다.중국 길림성 사회과학원 양소전 교수가 쓴 「중국에서의 한국 독립운동사」를 한국정신문화연구원(번역 박성수 정문연 도서관장)에서 오는 8월중순 펴내게 된 것. 국내 학계에서 한국의 독립운동사 연구는 꾸준히 계속되고 있고 그 성과도 많지만 중국 학자가 이 분야의 책을 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특히 「중국에서의 한국 독립운동사」는 중국 학자가 쓴 최초의 독립운동사 연구서란 점 말고도 한국 학자의 접근이 막혀있는 중국 정부기록보존소인 당안관의 사료들을 담고있어 주목되고 있다. 이 「독립운동사」는 우선 오는 8월 1권이 발간되고 내년부터 연차적으로 2·3권이 계속해서 나올 예정이다.1권은 1910년부터 1927년까지의 독립운동사를 짚어냈고 2권은 28∼37년,3권은 38∼45년까지의 투쟁사를 연속적으로 싣게된다. 이번 출간될 1권은 중국 동북지역에서 한국 독립운동이 일어나게 된 배경과 그 전개방식을 총괄적으로 규명하고 있다.양교수는 이 책에서 우선 중국에서 한국인들의 반일 독립운동이 줄기차게 진행될 수 있었던 것은 양국이 지리적으로 가깝고 고대로부터 밀접한 정치 경제 문화적 교류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짚었다.양국은 근대 이래로 일본 제국주의의 야만적인 침략을 받았고 일제에 맞서 싸우는 친밀한 전우로 되었기 때문에 두나라 국민이 서로 지지하고 상호 협조해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투쟁을 전개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양 교수는 1910년부터 45년 해방직전까지 중국에서 활약했던 한국의 반일 독립운동지사는 수만명에 달하며 그 단체나 정당도 수백개나 된다고 밝혔다.그 파벌은 봉건주의와 민족주의 공산주의,혹은 무정부주의로 분류되지만 이들은 모두 일제의 식민통치를 뒤엎고 한국의 독립쟁취라는 공동목표를 갖고 있었고 중국의 항일투쟁에 참가해 중국 해방투쟁을 지원한만큼 양국은 공동의 운명을 갖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양 교수는 또 중국에서 한국인들이 전개한 독립운동을 5개 시기로 구분해 1910년부터 19년까지를 그 발단시기로 보고 이 시기에는 한국이 일본에 의해 멸망한후 지사들이 망명,반일 독립운동을 시작해 이 시기에 벌써 학교를 운영하면서 교육 계몽활동을 벌였다고 주장했다.양교수는 또 중국에서 5·4운동이 일어나고 한국에선 3·1운동이 발발하던 1919년부터 1927년까지는 독립운동의 발전시기로 일제의 반일 독립운동 탄압에 맞서 반일 무장투쟁이 시작된 시기로 봤다.또 1927년부터 31년까지는 중국 국민당이 일제의 침략정책에 대해 온건한 정책을 펴 한국 독립운동이 침잠해진 시기로 봤으며 1932년부터 37년까지는 일본이 중국 동북을 침략해 중국에서 전국적인 반일운동이 전개되면서 한국인들의 독립운동도 부흥했던 시기로 평가했다.또 1937년부터 45년까지는 일본이 중국 침략을 전면적으로 도발한 시기로 중국 국민당 중앙정부와 공산당 모두가 한국 반일 독립운동을 적극 지지한 시기로 봤다.양교수의 이번 저서는 1910∼27년까지를 다루면서 중국 국민당과 공산당이 제1차 협력을 전후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활동을 중심으로한 이 시기의 중국에서의 독립운동 상황을 집중적으로 짚어냈다. 번역을 맡은 박성수교수는 양교수의 저서에 대해 『국내 연구성과엔 못미치지만 중국인이 한국인들의 중국에서의 독립운동을 연구한 첫 보고서로서의 의미가 크다』면서 『이번 연구를 토대로 이 부분에 대한 양국 학자들의 교류가 더 활발해지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한국독립운동사 집필 첫 중국인 양소전 교수/“중국서의 독립운동 남북학자 공동연구를”(인터뷰) 『출간을 계기로 양국 학자들의 연구교류가 더 진전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중국에서의 한국 독립운동사」의 저자 양소전 교수(60)는 『한국인의 독립투쟁 부분에서 한국과 중국의 견해차가 적지않다』면서 특히 남북한 학자들의 공동작업을 촉구했다. 『북한은 북한 나름대로 중국에서의 독립운동 과정을 정권 수립의 전초단계로 이용하고 있는만큼 양국의 통일된 접근노력이 시급하다고 봅니다』 중국 북경대학에서 조선어를 전공하면서부터 한국 근대사에 관심을 갖게 됐다는양 교수는 「김일성 선집」「조선통사」「조선전사」등의 저서를 내며 한국관계 특히 남북한 연구에 전념해온 한국통.당안관 등 중국 정부기록보존소의 자료와 한국 학자들의 연구성과를 집약해 펴낸 이번 저서를 통해 「한국 독립운동사」관련 연구서를 낸 최초의 중국인으로 기록되게 됐다.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중국 경내에서 한국인들이 벌인 반일 독립운동사는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구성부분입니다.이 시기의 한국 반일 독립운동사는 또 중·한 현대관계사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만큼 양국에서 연구를 꾸준히 해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내년과 후년 계속해 「중국에서의 한국 독립운동사」2·3권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펴낼 양 교수는 『한국 학자들의 질타를 받을 각오가 돼있다』면서도 『한국 학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자료를 폭넓게 확보해 연구자료로서의 가치를 높이겠다』고 말했다.
  • 독 슈투트가르트 미술관 신관(걸작건축감상:16)

    ◎70년대 포스트 모던 건축양식의 대표작/예술과 대중의 격의없는 접촉공간 창출/외부와 전시실을 유기적으로 연결시켜/84년 개관… 7개월만에 관객 1백만 넘어 한 사회의 문화수준은 예술적 수준과 비례한다.예술이 특정 계층의 전유물이던 시대는 이미 오래 전에 막을 내렸고,현대는 예술과 일반 대중들과의 친밀도에 따라 그 사회의 문화적 수준을 알 수 있다.한편 예술의 사회화는 각 분야의 예술성을 대중에게 전달하는 건축환경을 매체로 한다.따라서 문화시설의 건축 양상은 그 사회의 예술상을 그대로 표현한다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여기서 소개하는 독일의 슈투트가르트 주립미술관 신관은 19 70년대 포스트 모던 건축양식의 씨를 뿌려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으며,미술의 대중화를 선언하는 듯한 건축형태로 미술관 설계개념에 새로운 획을 긋게 한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현대건축물이다.이 미술관이 위치하고 있는 독일의 슈투트가르트는 벤츠 자동차공장과 포르쉐 자동차공장이 있는 산업도시이지만 주립미술관의 신관 건축으로 독일 현대미술의 주목받는 도시로 부각되었다.이렇듯 슈투트가르트 「슈타츠 갤러리」는 미술을 담는 건축환경이 한 도시의 이미지에 얼마나 큰 영향을 부여하는지를 알 수 있게 하는 동시에 예술의 발전과 건축환경과의 밀접한 관계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건축물이다. ○산업도시 이미지 바꿔 미술관 신관은 1877년에 세워진 기존의 미술관과 인접하고 있으며,전후 현재까지 남아 있는 건축물들을 보존하고 있는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주변은 국립극장과 도서관·음악학교 등으로 조성된 문화의 거리며,뒤쪽으로는 주택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신관의 건축형태는 구관의 조형성이나 인접한 전통 건축의 형태언어에 따르기보다는 매우 독특하고 강한 형태의 건축물을 통해 도시의 새로운 질을 확립하고 있다. 아우토반으로 느껴질 정도로 차량통행이 빠른 도로변에 면해 있는 미술관이지만 주차후 원색으로 채색된 난간의 강한 시각적 자극으로 이끌리는 경사로를 통해 미술관 전정에 도달하게 되면 빠른 속도의 도로면과는 완전히 분리되어 미술관의 세계로 빠져들게 된다.유연하게 연속되는 경사로는 건축물을 감싸고 돌아올라가며 건축적 산책을 경험하도록 유도한다.여기서 미술관은 단지 전시품을 담고 있는 배경적 환경으로보다는 직접적인 체험을 제공하는 하나의 전시된 작품으로 경험된다.경사로를 통한 수직 이동은 미술관의 접근에 대한 용이성을 강조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부지내의 중정을 거쳐 뒤편의 주택가로 연결되는 보행로를 함께 제공하고 있다.이러한 공공 보행로에 대한 배려를 통해 보면 보행자 중심의 독일의 도시계획에 대해 다시 한번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전통과 현대 어우러져 석재로 마감된 미술관은 강한 보수성을 전달하고 있다.그러나 군데군데 사용되고 있는 원색으로 채색된 금속재로 이루어진 장난스러울 정도로까지 느껴지는 유아적 표현의 건축 요소들은 미술관이라는 신성시되던 기념비적인 장소가 마치 오락 공간처럼 경쾌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한다.시선을 집중시키는 원색의 출입문들과 캐노피,밝은 녹색의 자유곡선적인 창틀,종래의 미술관에서는 볼수 없는 강한 녹색바닥재로 마감된 현관홀,노출된 기계부속을 강한 색상으로 채색한 주출입구 홀의 엘리베이터 등은 육중하고 보수적인 미술관의 모습에서 탈피하게 한다. 이것은 미술관이 너무 심각하지 않게,예술을 쉽게 즐길수 있는,격이 없고,친숙한 공간임을 의식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건축적 제스처라 본다. 이곳에 들어서면 건축환경 자체가 친근감을 불러 일으키고 긴장을 푸는 여가공간으로 와 닿는다. 이러한 매우 실험적인 건축형태의 사용이 거부되지 않고 전통성과 함께 극적으로 융화된 미술관을 보며 독일인들의 예술에 대한 일상생활적 친밀성을 다시 한번 확인케 해주는 것 같다. 슈투트가르트 미술관 건축이 더욱 매력적으로 느끼게 되는 것은 외부에는 노출되지 않고 서서히 진입하면서 마주하게 되는 건물중심부에 위치한 외부 중정 때문이다. 전시실과 외부공간을 유기적으로 연결시켜 산책하듯 쉬엄쉬엄 관람할 수 있도록 해주는 거대한 원행외부 중정을 방문한 관람객들에게 표피적 경쾌함 뒤에 숨어있는 건축공간의 진지함으로 오랫동안 기억될 수 있는 고귀한 공간경험으로 남는다.외부의 경사로를 따라 이곳에 도달하면 시간여행을 거슬러한 것과 같은 착각속에 빠져들 정도로 오래전 역사속의 한 공간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듯함을 느끼게 된다. 로마의 판테온을 연상하게 하는 원형중정은 야외조각을 전시하고 있다. 지붕이 없는 중정에서는 하늘의 구름은 일시적인 천장의 역할을 하기도 하고 열주량과 아치는 말로 나타낼 수 없는 의식을 위한 기념비적 틀을 제공하고 있다. 열려있는 외부공간의 형성은 시시각각 변화를 거듭하는 공간을 제공하기도 하며,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하나씩 사라져가고 잔재만 남아있는 건축적 유적을 상징하는 것 같아 더욱더 시간을 거슬러 간 느김이 강해지기도 한다. 전통성을 표현하는 이치,열주,석재와 함께 공존하는 강한 채색의 금속난간은 마치 신성한 것을 모욕하는 듯하면서도 전통과 혐대의 보다 당당한 융화를 선언하고 있는 듯히다. ○미술관설계 새로운 획 영국의 건축가 제임스 스털링에 의해 설계된 이 미술관은 1977년 현상설계의 당선작으로 발표되었을 당시만 해도 형태적 표현이나 미술관기능의 해석 드으로 심한 논쟁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1984년 개관과 함께 첫 7개월만에 1백만의 관람자들이 방문할 정도로 성공을 거두었다. 이것은 기존의 슈투트가르트 미술관이 관람객 순위 56위에서 1위로 올라서게 되었을 정도로 미술관의 건축적 형태의 중요성을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한다. 미술관이 단순한 수집품의 집적이라는 의미에서 벗어나고 전문가 대상에서 일반대중 대상으로 확대되고,대중과의 부담없는 접촉을 통해 예술보급에 적극성을 도모하는 장소로 제공되어 미술의 사회 문화적인 역할에 적극성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대중화를 도모하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 종래의 보수적인 미술관 개념에서 벗어나 대중성을 선언하는 장소로 변모되고 있는 현대미술관의 역할 변화를 슈투트가르트 미술관 신관의 건축적 형태가 그대로 표현하고 있어 건축적 가치가 높다. 도심에 위치한 미술관이기에 이러한 형태적 표현이 필연적일 수 밖에 없었다는 지금은 고인이 된 건축가의 표현대로라면 이건축물이 지니는 진지함과 해학적 표현이 경쾨한 융합은 한 건축가의 형태표현의 무용담으로 보기보다는 변모하는 미술관의 역할에 따른 건축적 진화가 박학하게 표현된 결과물이라 볼수 있다. 현대 예술의 활기찬 발전은 이를담아 대중에게 전달하는 건축환경의 발전과 병행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예술의 발전이 대중과의 친숙도와 병행한다면 권위주의적인 형태의 문화시설보다는 대중들이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친숙감을 부여하는 건축형태를 지니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을 슈투트가르트 「슈타츠 갤러리」의 신관 건축은 말해주고 있다.
  • 48년 UN임시위원단 활동(새로쓰는 한국현대사:17)

    ◎소군이 입북막아 남북한 총선거 계획 무산/「단독선거」 이승만 적극환영… 김구·김규식은 반대/단정수립 5·10선거 감시 1948년 1월8일 군용 비행장인 김포공항에 비행기 한대가 착륙했다.이윽고 유엔 한국임시위원단(UNTCOK)위원인 KPS 메논 인도대표를 비롯한 오스트레일리아·시리아등 3개국 대표가 트랩을 내려 한국땅에 첫발을 디뎠다.위원단 일행은 서울로 들어오는 동안 길가에 늘어선 25만∼30만명의 한국인들에게서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가능하면 3월31일까지 남북한 전지역에서 총선거를 실시,국회나 중앙정부를 수립하도록」감시하는 역할을 맡은 유엔한국임시위원단 활동이 시작된 것이다. ○대표환영 시민대회 열려 이어 캐나다·프랑스·필리핀·엘살바도르 대표가 29일까지 모두 한국에 왔다.중국대표는 호세택 서울총영사가 그 임무를 맡았다.당초 유엔총회가 선정한 위원국에는 우크라이나사회주의공화국이 포함됐으나 소연방국인 우크라이나는 참여를 거부했다. 서울 수도호텔에 숙소를,덕수궁에 사무실을 정한 위원단은 12일 첫회의를 열어 메논을 의장으로 선출했다.이틀 뒤 이들을 환영하는 시민대회가 서울운동장에서 열렸고 밤에는 덕수궁에서 리셉션이 개최됐다.극진한 환대 분위기 속에서 위원단 활동은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처럼 보였다.당시 메논 의장은 『우리 위원단은 38선을 인정하지 않으며 한국은 결코 분단돼서는 안될 나라』라고 강조하고 『미·소의 양 제도를 체험한 한국인은 그 장점만을 살려 한국적인 정치체제를 육성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자신만만하게 피력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난관은 곧 닥쳤다.위원단은 1월30일 미군정 연락장교를 평양에 보내 소련군정측에 입북(입북)을 신청했다.이에 대해 소련군사령관 참모장인 샤닌소장은 『우리는 위원단을 인정할 권한을 갖고 있지 않다』고 딱 잘라 거절했다.소련정부의 입장은 유엔총회 토의과정에서 분명히 밝혔으므로 위원단 입북을 주둔군으로서는 허락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임시위원단은 입북에 실패하자 유엔 사무총장에게 소련측의 비협조를 제소했으나 돌아온 대답은 소련정부의 「부정적 입장」뿐이었다.위원단은북한지역에 들어갈 수 없음을 2월6일 공식발표한다. ○“식민지화 음모” 매도 이에 앞서 김일성은 유엔임시위원단을 극렬하게 비난함으로써 애당초 위원단 입북을 허용치 않겠다는 의사를 명확히 했다.1월12일 발표한 이 성명에서 김일성은 『유엔한국임시위원단은 조선을 식민지화하려는 미 제국주의자들의 심부름꾼으로 왔다』고 매도하고 『한덩어리로 뭉쳐 열렬히 투쟁하자』고 선동한 바 있다. 소련의 거부로 「남북한 전역에서 총선거를 실시한다」는 처음 계획이 틀어지자 위원단은 남한에서만이라도 단독선거를 실시해야 하는지를 놓고 미군정,남쪽의 정치지도자들과 연속회담을 벌였다.우파들은 대부분 적극 환영하며 즉시 선거를 실시하라고 요구했다.그러나 우파인 김구의 한국독립당과 좌파세력,김규식을 비롯한 중도파는 통일을 가로막는다는 이유로 맹렬히 반대했다.미군정은 물론 단독선거 실시에 찬성했다. 이를 계기로 이승만과 김구·김규식은 정치적으로 완전결별한다.결과는 물론 실패로 돌아갔지만 김구와 김규식은 남북협상에 정치적 운명을 걸었다.해방공간에 돌아온 직후부터 미군정과 마찰을 빚어가면서 공산주의를 통렬히 비난한 이승만은 우파진영을 이끌고 단선 참가로 나아가는 발빠른 움직임을 보였다. 위원단 내부에서도 「남한 단독선거」가 유엔 결의에 부합되는지를 놓고 의견이 엇갈렸다.결국 위원단은 단독선거 실시에 대한 결정을 유엔 소총회에 넘겼다.2월19일 열린 소총회에서 미국대표는 『예견하지 못한 사태가 아니다』라고 전제한 뒤 위원단은 접촉이 가능한 지역(남한)에서만이라도 그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또 『한국인 가운데 3분의2가 선거에 참여해 중앙정부를 성립하면 북한도 이에 참여하기 위해 협상에 나설 것』이라고도 주장했다. 소총회 투표에서는 미국의 입장이 찬성 31,반대 2,기권 11로 채택됐다.반대표를 던진 오스트레일리아 대표는 『남한에 수립되는 정부는 북한과 대립하게 될 위험성이 짙다』고 지적했다.그는 만약 북한이 한국정부에 위협을 가하게 되면 유엔은 스스로 수립한 한국정부에 대해 적극 원조하든가,모든 책임을 포기하는 난처한 처지에 빠질 것이라고 경고했다.소련은 이 회의에 아예 불참했다. 유엔 소총회에서 단독선거의 합법성을 인정하자 한국임시위원단은 선거준비에 박차를 가한다.2월28일 위원단은 『접촉이 가능한 지역에서 늦어도 5월10일까지는 선거를 실시하겠다』고 성명서를 발표했다.그러나 임시위원단에게는 선거를 주관할만한 능력이 현실적으로 없었으며 스스로도 선거를 감시하고 그 결과를 총회에 보고하는 정도를 가능한 일로 받아들였다.이는 곧 선거를 관리하는 주체가 미군정임을 인정한 것이었다. 미군정은 위원단 발표에 이어 『총선을 5월10일 실시하겠다』고 공표했고 위원단은 이를 추인했다.선거는 1947년 8월 과도입법의원이 통과시킨 선거법에 따라 시행하기로 했다.위원단은 선거기간동안 30명의 인원으로 전국을 돌며 선거과정을 감시했다.「5·10선거」가 끝나고 위원단은 6월25일 선거결과를 평가하는 회의를 열었다.그들은 『1945년 5월10일의 선거결과는 한국민의 3분의2를 차지하는 주민들이 자유의사를 합법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만장일치로 결론을 내렸다. ○북도 서둘러 단정 구성 위원단은 이같은 내용의 보고서를 그해 9월 파리에서 열린 총회에 보고했다.회기 막바지인 12월12일 총회는 보고서를 승인,대한민국의 합법성을 인정했다.이와 함께 한국의 통일을 달성하기 위해 임시위원단의 업무를 대신 수행할 「유엔 한국위원단」을 설치한다고 결정했다.이로써 유엔 결의에 따라 남한의 단독선거를 감시·평가한 「유엔한국임시위원단」활동은 1년여만에 막을 내렸다. 한편 북한은 임시위원단 입국후 단독정부 구성을 서둘렀다.1948년 5월1일 조선인민위원회는 「헌법」을 발표하고 8월25일에는 최고인민회의 의원을 선출하는 선거를 치렀다.이어 9월7일 북조선인민공화국 수립을 선포,스스로 전한국을 대표하는 정부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유엔한국임시위원단이 한국내 활동을 개시한 뒤 정국은 「유엔 감시아래 남한 단독선거­남한 단정 수립­이에 대응하는 북한정권 등장」이라는 예정된 수순을 밟아나갔다.이는 한반도를 점령한 미·소의 첨예한 대립 속에서 일찍부터 예견된 이데올로기적 정치구도를 그대로 드러낸 것이었다. ◎북,인민정부 세우려 민의조작/「유엔한위문서」가 밝힌 단선저지 움직임/“남한단독선거 반대 349만 시위” 주장/“「소련식 헌법」추천서 4만건 접수” 선전 「유엔 한국임시위원단」이 한국에 들어와 본격적으로 활동에 나서자 북한정권은 이를 저지하려고 안간힘을 썼다.1948년 미군 정보부대가 작성,기밀문서로 보관돼 오다 지난 85년 비밀해제된 「유엔 한국임시위원단 관계문서」는 당시 북한 내에서 벌어진 일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북한당국의 의도는 임시위원단으로부터 주도권을 빼앗고 남한 단독선거 실시를 막자는 것이었다.이에 따라 한반도 전역에 소련식 인민정부를 수립하고자 조작된 민의를 총동원했다.평양방송이 3월 한달동안 대남방송한 내용을 보면 ▲남한 단독선거에 반대해 이북에서 3백49만9천4백63명이 시위등 항거에 나섰고 ▲항의편지가 1만6천3백57통 전달됐다고 주장했다. 그런가 하면 「한국의 자유와 독립을 달성하는 유일한 길은 전국에 걸쳐 소련식 인민위원회를 구성하는 것」이라는 주장 아래 소련것을 본떠 마련한 「헌법」에 대한 추천서가 4만건이나 접수됐다고 선전했다.이밖에 인민군이 「임시위원단 반대」행진을 벌였다거나,남한에서 단독선거를 반대한다는 단체 그리고 북한에서 「헌법」을 토의·찬성했다는 집회 명칭을 쉴새없이 늘어놓기도 했다. 그러나 이 문서 끝에 붙은 미군 971방첩대(CIC)보고서는 이같은 선전들이 북한주민의 일반적인 정서와는 크게 다르다고 보았다.이 보고서는 『북한 사람 대부분은 임시위원단에게 큰 기대를 가졌다.이 기대는 비록 위원단의 입북이 거절된 뒤 많이 사라져가긴 했다.그러나 일부에서는 아직도 유엔임시위원단 또는 남한 단독정부가 한국 전체를 통일하리라는 신념을 갖고 있다』고 분석했다.
  • 방콕/대북/상해/싱가포르/콸라룸푸르/「포스트 항공」을 노린다

    ◎중·영 갈등 틈타 아주관문 “야심”/국제 금융·상업센터 유치 안간힘/“임대료·인건비 싸다”… 다국적 기업 진출 잇따라 중국에 귀속된 후에도 홍콩은 아시아 관문도시의 영예를 유지할 것인가.오는 97년 중국 반환을 앞두고 금융·상업중심지인 홍콩이 동남아지역의 여러 도시로부터 강력한 도전을 받고 있다. 최근들어 중국당국과 홍콩의 영주 영국간의 정치적 갈등을 비집고 금융·통신·하이테크센터 역할을 해온 홍콩의 우월적 지위를 넘보는 아시아의 거대도시는 상해·싱가포르·콸라룸푸르·대북·방콕 등 5개 도시.주변정세의 불안,높은 임대료 탓으로 홍콩의 외국기업체들이 값싼 사무실을 찾아 인근도시로 너도나도 짐보따리를 싸고 있으며 94년 한햇동안 홍콩주민 5백30만명중 17%가량이 해외로 빠져나갔다. 「남의 불행은 나의 기회」 요즘 성장과 번영을 구가하고 있는 이들 「슈퍼도시」는 다양한 채널을 통해 막대한 홍콩의 자산을 끌어들이는가 하면 외국업체들을 유치하기 위한 물밑작업이 치열하다.신생 「슈퍼도시」의 꿈은 아시아판의뉴욕·할리우드·실리콘 밸리,그리고 디트로이트로 발돋움하는 것. 이를 위해 싱가포르는 오는 2000년까지 도시국가 전체를 신경조직처럼 텔레콤이 둘러싼 「하이테크 인공섬」으로 조성할 계획이다.이곳에는 미국 로스차일드·모터롤러,일본 소니등 세계유수의 회사들이 이미 몰려들어 사무실을 물색하거나 확장하고 있다.싱가포르당국은 특히 의욕적인 외국투자가들의 편의를 돕기 위해 동일한 장소에서 한꺼번에 일상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원 스톱 쇼핑」시설물 설치를 서두르고 있다.인구 2백70만명의 싱가포르는 동남아의 길목으로 외국기업인들에게 자국의 정치적 안정과 관료조직의 효율성을 앞세운다. 싱가포르에 맞선 말레이시아 수도 콸라룸푸르의 야심도 만만치 않다.마쓰시타에 이어 맥도널 더글러스회사가 동남아지역 본부사무실를 최근 이곳으로 옮겼다.싱가포르에 비해 인건비가 절반정도로 싼데다 임대료도 3분의 1수준이기 때문이다. 현재 콸라룸푸르에 건설중인 동남아 최대규모의 국제공항이 오는 98년에 마무리되고 새로운 초고속도로가 완공될 경우 싱가포르까지의 자동차 소요시간은 종래의 절반인 3시간으로 단축된다. 한편 요즘 각종 개발붐으로 교통체증에 시달리고 있는 방콕은 아시아 최대의 자동차부품 조립센터를 꿈꾸고 있다.방콕에는 이미 80년 중반이래 일본의 주요 자동차메이커인 도요타·닛산·혼다·이스쓰 등이 진출,자동차부품 공급기지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대북의 장미빛 꿈은 더욱 원대하다.방콕의 자동차산업을 넘어서 최첨단하이테크산업 유치가 표적이기 때문.대북의 하이테크는 첨단컴퓨터산업의 기반이 취약한 홍콩보다는 싱가포르에 더 위협적이다.대북에는 이미 3억달러를 들여 소프트웨어개발단지를 조성,이곳에 우주항공·반도체분야등 10개의 주요산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하고 있다. 또한 아시아판의 월 스트리트를 꿈꾸는 대북은 유출되고 있는 홍콩달러 유치에 안간힘을 쏟고 있으나 내부규제가 심해 결과는 미지수다. 아시아의 후발 「슈퍼도시」 상해도 공산화되기 이전의 상업도시로 옛 명성을 되찾을지 주목된다.상해는 특히 경제특구인 포동지역에 수십억달러의 외국자금이 몰려들어 3년 연속 14%의 경이적인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과거 라이벌관계이던 홍콩과는 앞으로 보완적인 역할이 더욱 돋보일 것으로 전망된다.상해는 양자강을 중심으로 하는 개발붐이 활기를 띨 것이고 홍콩 역시 중국에 반환된 뒤에도 자본주의 창구역할을 할 게 분명하다.왜냐하면 홍콩의 마지막 카드인 「지리상 이점」은 어쩔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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