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7년 연속
    2026-08-06
    검색기록 지우기
  • SNS 확산
    2026-08-06
    검색기록 지우기
  • 재정 TF
    2026-08-06
    검색기록 지우기
  • 어보
    2026-08-06
    검색기록 지우기
  • 협약
    2026-08-06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9,112
  • [솔하임컵] 미셸 위 美 에이스

    미셸 위(20·나이키골프)의 만점 활약을 앞세운 미국이 솔하임컵에서 3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미국은 24일 미국 일리노이주 슈거그로브의 리치 하비스트 팜스 골프장에서 열린 대회 마지막날 12명 싱글 매치플레이에서 6승4무2패를 거둬 16-12로 승리를 확정지었다. 미국과 유럽의 여자프로골프 대항전인 솔하임컵은 1990년 시작된 이후 2년에 한 번씩 열리는 대회. 미국은 2005년과 2007년에 이어 3연승을 거두며 역대 전적에서 8승3패로 우위를 지켰다. 전날까지 유럽과 8-8로 박빙의 승부를 펼치던 미국에 승리를 안긴 것은 미셸 위였다. 위는 이번 대회에서 미국이 딴 16점 중 팀내 최다인 3.5점을 쓸어 담았다. 시즌 내내 줄곧 “솔하임컵에 꼭 출전하고 싶다.”고 밝히더니 결국 단장인 베스 대니얼의 초청선수(와일드카드)로 합류했고, 빼어난 활약으로 미국 승리의 견인차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첫날 모건 프레셀과 짝을 이뤄 나선 포볼경기(두 선수가 각자의 볼로 플레이한 뒤 좋은 스코어를 채택)에서 무승부를 거둔 위는 둘째날 포볼과 포섬(2명이 1개의 볼을 번갈아 치는 방식)을 휩쓸며 2승을 수확하더니 마지막 날 싱글 매치플레이에서 헬렌 알프레드손(44·스웨덴)을 한 홀차로 따돌렸다. 위는 “경기 내내 빨간 점수(앞서는 표시)를 스코어보드에 올리자는 생각만 했다.”면서 “이기게 돼 너무 흥분되고 감격스럽다.”고 기뻐했다. 크리스티나 김(25·김초롱)도 3점을 보탰다. 그는 첫 날 나탈리 걸비스와 함께 포섬에서 1승을 획득했고 다음날 포볼에서 위와 짝을 맞춰 5홀차 압승을 거뒀다. 마지막 날 매치플레이에서도 타니아 엘로세기(스페인)를 2홀차로 제압하며 3전 3승. 미국은 이날 싱글매치에서 브리타니 린시컴, 위, 프레셀, 폴라 크리머 등 영건들이 모두 승리했다. 2011년 대회는 아일랜드 미스의 킬린캐슬 골프장에서 열린다.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 코리아오픈 탁구 여자복식 박미영·김경아조 첫 우승

    여자탁구 ‘수비수 콤비’ 박미영(삼성생명)-김경아(대한항공) 조가 2009 대한항공배 코리아오픈에서 대회 첫 우승을 일궜다.박미영-김경아 조는 23일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공원 내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대회 여자복식 결승에서 홍콩의 티에야나-장화준 조를 4-1(7-11 13-11 11-6 11-3 11-5)로 물리쳤다. 지난해 대회에서 4개 종목 모두 중국에 타이틀을 내줬던 한국은 2007년 대회 이후 2년 만에 챔피언을 배출했다. 박-김 조는 끈질긴 수비와 빠른 공격 전환으로 찰떡 호흡을 이뤄 역전승을 따냈다. 첫 세트를 내준 박-김 조는 8-10으로 끌려가던 2세트 후반 상대의 연속 범실을 이끌어내며 듀스를 만든 뒤 접전 끝에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기세가 오른박-김 조는 든든한 수비를 바탕으로 공격에서도 압도하며 내리 네 세트를 따내 경기를 마무리했다.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열린세상] DJ의 ‘도전과 응전’/박준철 한성대 역사문화학부 교수

    [열린세상] DJ의 ‘도전과 응전’/박준철 한성대 역사문화학부 교수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영면의 세계로 떠났다.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으로 향하는 길가에 운집한 추모행렬은 그가 겪은 격동과 영욕의 세월만큼이나 길고 길었다. 국민들의 마음속에 일렁이는 애도의 물결은 그가 태어난 작은 섬 하의도에까지 다다를 듯하다. 불꽃 같은 삶을 살았던 그는 이제 하나의 역사로 남게 되었다. 역사학자 아널드 토인비가 무려 27년 만에 완성한 ‘역사의 연구’는 ‘도전과 응전’이라는 근사한 테제로 잘 알려져 있다. 26개 문명의 흥망성쇠를 다룬 이 역작에서 그는 인류의 역사를 ‘도전과 응전의 역사’로 규정하였다. 문명의 태동과 발전은 고통과 시련이 없는 사회가 아니라 척박한 환경과 당면한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는 사회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거듭되는 난관과 시련이 오히려 의지와 저항력을 키우고 직관과 분별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것이 토인비 문명사관의 요체다. DJ는 자신의 인생을 ‘도전과 응전의 연속’이라고 표현했다. 노회한 정치가의 식상한 수사가 아니다. 2009년 5월2일 그가 작성한 일기를 보자. ‘불행을 세자면 한이 없고, 행복을 세어도 한이 없다. 인생은 이러한 행복과 불행의 도전과 응전 관계다.’ 또 다른 지면에서 그는 도전과 응전의 관계를 ‘나의 사상과 역사관을 단련시킨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회고했다. ‘대응에 따라 행복과 불행이 결판난다.’는 DJ의 인생철학은 그가 걸어온 험난한 정치역정의 한복판에 자리하고 있다. 결국 DJ를 한국 현대사의 주역으로 성장시킨 요소는 역설적이게도 군부독재정권이 가한 시련과 핍박이었다. DJ를 눈엣가시로 생각했던 군사정권은 그를 제거하려 했지만 역사의 수레바퀴는 ‘007 소설에나 나올 법한 죽음의 문턱들’에서 그를 생환시켰고, 역경에 굴하지 않는 DJ의 결연한 응전은 그를 더욱 강력한 지도자로 부상시켰다. 납치와 고문, 그리고 사형판결은 반려자의 눈에는 ‘너무 쓰리고 아픈 고난의 생’을 의미하겠지만, 그 풍상과 질곡의 시간들은 DJ에게 민주화의 당위성과 시급성을 보다 명료하게 각인시키고 나아가 그의 대내외적 인지도를 제고시키는 결정적 기제로 작동하였다. 수감생활은 엄청난 독서로 이어지면서 안목과 논리를 배가시켰고, 가택연금은 영어능력을 키우면서 지도자의 국제적 소양을 숙성시켰다. ‘나를 키운 건 팔할(八割)이 바람이다.’ 잘 알려진 대로 미당 서정주가 읊은 ‘자화상’의 한 대목이다. 누추했던 성장기의 험난한 어려움을 ‘바람’으로 은유한 이 소절은 불굴의 의지로 갖은 고난을 극복한 인간 김대중에게 더욱 적절한 표현으로 다가온다. DJ의 도전과 응전은 때로는 일탈된 방향으로 흐르기도 했다. 그는 우리사회를 유린해 온 고질적 지역감정의 최대 피해자였지만, 한편으로는 이에 편승하는 우를 범하면서 분열과 반목의 확산에 장단을 맞췄다. 권력에 대한 그의 집착은 1987년 대통령 선거에서 야권의 단일화를 무산시켰다. 그는 ‘그때 일을 후회한다. 국민 염원을 최우선에 두고 내가 양보했어야 했다.’며 자신의 과오를 인정했다. 한편 국민과 약속한 정계은퇴를 번복하면서 ‘민주주의는 목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수단과 방법에 있다.’는 평소의 소신을 저버리기도 했다. 평생 맞닥뜨린 도전과 그에대한 응전에 있어서 이따금 적절치 않은 방식을 택했다는 사실이 어쩌면 DJ에게는 가장 큰 시련이었을 것이다. 육체의 쇠약과 엄습하는 고통은 DJ에게 다가온 최후의 도전이었다. 그러나 이 어려움과 고통에 그는 ‘인생은 아름답고, 역사는 발전한다.’며 멋지게 응수하였다. 자신이 걸어온 파란만장한 인생이 오히려 아름다웠고, 대한민국의 역사는 발전한다는 인생관과 신념은 남은 자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이제 도전과 응전이 없는 편한 곳에서 편히 쉬시기를 기원한다. 박준철 한성대 역사문화학부 교수
  • 오가사와라, 그가 진정한 ‘검객’ 인 이유

    오가사와라, 그가 진정한 ‘검객’ 인 이유

    오치아이 히로미쓰(현 주니치 감독)가 현역시절 마지막으로 몸담았던 팀은 니혼햄 파이터스다. 1998년을 끝으로 은퇴한 오치아이의 부재는 일본야구가 늘 그렇듯 ‘스타와 이슈’에 대한 걱정은 당연했을터. 니혼햄 구단 역시 오치아이의 부재는 팀 마케팅 차원에선 심각한 타격이었다. 하지만 이듬해인 1999년 바로 오가사와라 미치히로(현 요미우리) 라는 검객의 진가가 발휘되면서 니혼햄의 이러한 걱정은 사라지게 된다. 타격부분 4개 타이틀을 노리는 오가사와라 미치히로. 오가사와라는 니혼햄 시절 ‘홈런치는 2번타자’로 한때 포수는 물론 내, 외야를 맡아보던 멀티플레이어였다. 2006년 퍼시픽리그 MVP 수상을 마지막으로 이듬해 요미우리로 이적한 오가사와라에게 올시즌이 갖는 의미는 특별하다. 팀의 3년연속 리그우승과 지난 2002년 이후 7년만에 일본시리즈 우승이란 두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목표 외에 개인 타격 타이틀 획득이 바로 그것. 오가사와라는 일본프로야구 역사상 양대리그에서 연속(2006-2007) MVP를 받은 최초의 선수다. 하지만 요미우리로 이적한 후에는 아직 개인타이틀과는 인연이 없다. 올시즌도 막바지에 접어든 지금 현재 리그 홈런왕은 주니치의 토니 블랑코(홈런 34개)의 차지가 확실해졌다. 25개의 홈런으로 2위를 달리고 있는 오가사와라가 쫓아가기엔 너무 멀다. 하지만 타율과 타점 그리고 출루율과 장타율 부분에서는 충분히 타이틀을 차지할수 있는 페이스다. 현재(24일)까지 센트럴리그 타율 1위는 .319의 우치카와 세이치(요코하마)다. 우치카와는 작년시즌(.378)에 이어 올시즌도 이부분 2연패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데 오가사와라의 타율은 .318로 우치카와와는 단 1리 차이다. 타율 1위를 놓고 신구 대결이 펼쳐지고 있는 것. 만약 올시즌 오가사와라가 타율 1위에 등극하게 되면 니혼햄 시절 2년연속(2002-2003년) 타이틀을 차지한 후 6년만의 일이다. 타점 역시 홈런 1위를 달리고 있는 블랑코가 87타점으로 2관왕을 향해 달리고 있지만 오가사와라 역시 84타점으로 마지막 경기까지 가봐야 주인공이 판가름 날듯하다. 출루율 또한 박빙이다. 오가사와라가 .393 으로 1위를 달리고 있지만 ‘명품’ 유격수로 유명한 주니치의 이바타 히로카즈가 .392로 그 뒤를 바짝 뒤쫓고 있다. 출루율은 이바타 외에도 와다 카즈히로(주니치 .391), 아오키 노리치카(야쿠르트 .381)도 언제든지 1위자리를 빼앗을만한 실력이 있는 선수들이다. 장타율은 홈런 1-3위인 블랑코, 오가사와라, 와다의 싸움이다. 아직 오가사와라가 .562로 1위를 달리고 있지만 블랑코(.559)와 와다(.547) 역시 호시탐탐 1위를 넘보고 있다. 앞으로 남은 경기에서 홈런은 그렇다 치더라도 타격에서 보다 정교함을 발휘하는 타자가 이부분 타이틀 주인공이 될 가능성이 클것으로 전망된다. 오가사와라, 그의 타격이 존중받아야 하는 이유. 올시즌도 변함없이 맹타를 휘두르고 있는 오가사와라는 우리나이로 37살이다. 프로 통산 331개의 홈런을 쏘아올린 오가사와라는 앞으로 2개의 홈런을 더 기록하게 되면 마쓰이 히데키(현 뉴욕 양키스)의 일본시절 통산 홈런(332개)을 넘어서게 된다. 하지만 무엇보다 오가사와라의 타격이 존중받는 이유는 그 꾸준함에 있다. 4년연속 3할-30홈런(2000-2003년)을 기록했던 오가사와라는 부상으로 잠시 주춤했던 2004년을 제외하고 2005년부터 작년까지 다시 4년연속 30홈런을 기록중이며 올시즌 역시 특별한 변수가 생기지 않는 이상 그 기간을 5년으로 연장하게 된다. 또한 일본프로야구 통산 타율 4위(.318)에 올라와 있을정도로 장타력은 물론 정교함까지 갖춘 그는 현역 최고의 선수라 해도 지나친 표현은 아닐듯 싶다. 그와 동갑인 마츠나카 노부히코(현 소프트뱅크)가 한때 일본 최고 슬러거라 불렸지만 2005년을 깃점으로 전성기 시절의 기량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지금 오가사와라와 비교될만한 베테랑선수는 없다. 오가사와라는 2006년 니혼햄을 일본시리즈 우승으로 이끌 당시 홈런-타점-장타율 타이틀을 차지했었다. 올시즌 역시 그의 손에 쥐게 될 공격부분 타이틀이 요미우리 우승으로 이어질지 ‘미스터 풀스윙’을 지켜보는 것이 흥미롭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일본프로야구통신원 윤석구 rock7304@hanmail.net@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인간 버핏’을 만나다

    ‘인간 버핏’을 만나다

    ‘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79) 하면, 2008~09년 연속 잡지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 최고의 부자이자 코카콜라와 맥도널드 햄버거가 생각난다. 그는 주식투자, 특히 정보통신(IT)주가 나스닥에서 초고공행진을 하던 1999년 7월 IT버블을 경고하며 굴뚝산업에 투자해 명성을 얻은 세계 최고의 투자자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한적한 시골마을에서 근검절약하며 살고 있는 마음씨 좋은 할아버지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2007년 10월 한국을 방문했을 때 그는 코카콜라와 맥도널드 햄버거를 먹고 마셨는데, 아무도 대놓고 이야기는 못했지만 “세계 최고의 부자이면서 먹고 마시는 게 고작 정크푸드라니….”하며 아연실색했다. 사람들은 그가 젊은 날 저평가된 코카콜라와 맥도널드사의 주식에 투자해 큰 부자가 된 덕분에 관련 주가를 부양하기 위해 그런 행동을 한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실제 버핏은 ‘내가 코카콜라를 마시는 모습을 보고 한 명이라도 더 사먹으면 좋겠다.’는 말도 했다. 정말 버핏은 투기장의 일부로 보이는 주식시장에서만 부를 늘렸을까. ●투자 귀재 버핏의 인생·가치관 총정리 워런 버핏의 투자기법만이 아니라 인생과 가치관을 총정리한 ‘스노볼 1·2’(앨리스 슈뢰더 지음, 이경식 옮김, 랜덤하우스 펴냄)는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지금까지 버핏은 직접 쓴 회고록도 없고, 그의 투자기법이 아닌 인생과 가치관을 총체적으로 다룬 책이 없어 그의 사생활은 베일에 싸여 있었다. 그런데 버핏은 모건 스탠리 이사였던 앨리스 슈뢰더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쓰도록 하고 그동안 모아둔 자료를 제공했다. 필요할 때마다 무제한적인 인터뷰를 해줬으며 가족과 친구들은 물론 사업상의 파트너들도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저자는 직장에 사표를 쓰고 5년간 버핏만을 분석해 이 책을 내놓았다. 그 나름대로 공식 전기라고 할 수도 있겠다. 버핏은 저자에게 사람들 사이에서 자신에 대한 평가가 엇갈릴 경우에는 “아첨이 덜한 쪽으로 써달라.”고 부탁까지 했다는데, 막상 이 책이 나온 뒤로 버핏과 저자의 관계는 소원해졌다고 외신은 전한다. 사춘기 소년 무렵부터 버핏이 처세술의 대부로 삼았던 데일 카네기의 ‘비판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원칙이 입증된 것일 지도 모른다. 워런 버핏은 부모로부터의 상속 없이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부를 이룬 사람이다. 한국적 정서에 따르면 버핏을 한미한 집안에서 난 귀재, 즉 ‘개천의 용’으로 상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버핏은 네브래스카 4선 하원의원의 아들이자 미국에서 대졸자도 찾아보기 쉽지 않았던 1950년대에 미국 최고의 경영대학인 필라델피아 와튼스쿨에 입학하는가 하면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수재였다. 대공황기 직장을 잃은 은행원의 아들로 태어난 버핏은 여섯 살 때부터 껌을 팔아 돈을 벌고, 열 한 살 때 주식투자를 시작하면서 “열 한 살 이전의 삶은 낭비됐다.”고 말해 세인들을 경악시켰다. 그렇게 돈을 모아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1947년 그의 수중에는 5000달러(인플레이션을 감안하면 2007년 기준으로 5만 3000달러, 한국돈 6900만원 수준)가 모였다. 이제 그는 그 돈을 굴리기만 하면 됐다. 이 책의 제목 ‘스노볼’처럼 그는 눈송이조차 소중히 여기며 잘 간직하고 작은 눈덩이를 만든 뒤 젖은 눈을 찾아서 살살 굴리기 시작해 어마어마한 크기로 만들어 냈던 것이다. 전기에 따르면 그는 몹시 수줍어하는 남학생이었지만 돈에 관련된 일에는 절대로 소심하게 굴지 않았다. 가짜 동전을 주조하는 범죄적 행위를 서슴지 않았고, 고교 때 수학 C, 영어 D학점으로 성적이 떨어졌다. 그의 아버지는 “계속 그렇게 하겠다면 신문배달을 하지 말라.”고 협박했다. 돈을 벌지 못하게 된다는 것은 버핏에게 최대의 징계였기 때문에 자신의 잘못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돈에 관한 집중력이 이 정도였다. 그는 좋게 말하면 근검절약했고 나쁘게 말하면 수전노였다. 자기 손 안의 1달러를 미래의 10달러로 여겼기 때문에 아무리 적은 돈, 일테면 1센트(한국 돈으로 13원)라도 낭비할 생각이 없었다. 그는 숫자와 돈을 버는 일에는 천재적이었지만 사회성은 대단히 떨어졌다. 그의 어머니 레일라가 버핏의 어린 시절에 언어폭력, 일테면 ‘나의 부단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너희들은 전혀 쓸모 없는 아이’라고 몰아붙이는 등 학대가 적지 않아, 버핏은 제대로 된 자존감 형성에 실패했던 탓이다. 그것은 평생을 두고 그를 괴롭힌다. 주식과 돈에 관해서는 천재적이지만, 사회성이 부족해 인간관계 형성에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다. . ●평범한 우리 모습과 닮은 버핏의 인생 버핏의 법적 아내는 수지 톰슨 이지만, 현재 오마하 집에 함께 사는 여성은 1982년 수지가 소개해준 금발의 미인 애스트리스 멩크스다. 당시 버핏의 나이 52세, 멩크스의 나이 32세 때다. 버핏이 일간지 ‘워싱턴 포스트’의 이사로 재직하며 캐서린 그레이엄에게 몰두하는 사이 수지가 그의 곁을 떠난 것이다. 저평가된 주식을 찾기 위해 평생을 노력해온 버핏은 그러나 자신의 성공이 ‘난소 로또’에서 비롯됐다는 생각도 잊지 않는다. 자신의 성공이 주식시장이 최고로 발달된 미국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부시 행정부 시절 부자를 위한 정책에 반대하고, 상속세 폐지 등에 반대한 이유다. 또한 그는 2006년 자신이 소유한 버크셔 해서웨이 주식의 85%를 기부하는데, 이 중 빌 앤드 멜린다 게이츠 재단에 6분의5를 기부해 ‘책임있는 부자의 상’을 보여주기도 했다. 책을 읽다 보면 홀딱 벗고 서있는 꼬마와 소년, 장년, 중년, 노년의 버핏을 만나게 되는데 평범한 우리와 닮은 모습도 적지 않다. 재미난 소설책 같다. 주요 대목에서 본문보다 작은 글씨로 쓰인 버핏의 육성을 들을 수 있다. 1권 3만 8000원, 2권 3만 5000원.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버냉키 “경제 단기간내 성장세로”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21일 와이오밍주 잭슨 홀에서 열린 FRB 연례회의에서 “지난 1년간 미 경제가 급격히 위축된 뒤 경제 활동이 미국과 해외에서 다시 개선되기 시작했다.”며 “경제가 단기간 내 성장세로 돌아설 전망”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금융회사들이 상당한 추가 손실을 입고, 많은 기업과 가정들이 신용을 얻는 데 어려움을 계속 경험하고 있다.”면서 “이런 요인들로 인해 경기회복은 처음에는 상대적으로 느리게 시작될 것이며 실업도 매우 높은 수준에서 점진적으로 줄어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 부동산중개인협회(NAR)가 이날 발표한 7월 기존주택 판매는 연율기준 524만채로 전달보다 7.2% 증가했다. 낮은 가격과 세금 환급 등에 힘입어 4개월 연속 증가세다. 2007년 8월 이후 가장 높은 수치며 예상치를 훨씬 웃돈다. 부동산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과 버냉키 의장의 긍정적 발언 등에 힘입어 이날 뉴욕증시는 오름세로 출발했다. 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
  • 팬택 부활조짐 보인다

    팬택이 부활할 것인가. 기업구조개선작업 중인 팬택이 금융기관들의 채무출자전환으로 자본잠식 상태에서 벗어날 것으로 보이는 등 다시 살아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산업은행 등 팬택계열 채권은행들은 2200억원의 보유 채권을 출자전환하는 데 동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2금융권의 동의를 받으면 팬택의 채무는 2100억원으로 줄어들어 자본잠식 상태에서 벗어난다. 팬택계열의 전체 채무는 지난해 말 금융권 총 채무는 6500억원이었다. 앞서 팬택계열은 약 7600만달러(약 950억원) 규모의 기술사용료를 갚지 못해 채권을 가지고 있던 미국 퀄컴을 주주로 받아들였다.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원천기술을 보유하기도 한 퀄컴은 휴대전화에 들어가는 반도체인 모바일 반도체에서 세계 1위 업체다.채권단과 퀄컴이 팬택에 호의적인 데는 팬택의 눈부신 성과 때문이다. 팬택은 2005년 SK텔레텍을 인수할 때까지만 해도 잘 나가던 벤처1세대 기업이었다. 하지만 스카이를 앞세운 프리미엄 이미지로 잘나갔지만 외형 확장에만 주력하고 2006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모은 미국 모토롤라 ‘레이저’ 휴대전화에 눌려 1000억원대의 적자를 냈고 끝내 기업구조개선작업까지 밟게 됐다. 30% 이상의 인력감축과 급여삭감 등 뼈를 깎는 노력으로 2007년 3·4분기에는 흑자로 전환했고 지난 2분기까지 8분기 연속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최근 선보인 ‘큐브릭’폰은 하루 평균 200대가 넘게 팔리기도 했다. 일본과 미국 등 해외시장에서도 호평을 받고 있다. 올 2분기 국내에서는 97만대를 팔았지만 해외에서는 127만대를 파는 등 수출물량이 더 많을 정도다. 팬택 관계자는 “좋은 분위기를 하반기에도 이어가 국내에서는 10% 중반대의 시장 점유율을 유지할 계획”이라며 “해외에서도 기존 주력시장인 미국·일본·멕시코 등에서 내실을 다지면서도 다른 나라도 추가로 진출하는 해외시장 공략도 강화할 방침”이라고 말했다.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세계육상선수권 2題

    남자를 연상시키는 밋밋한 ‘I라인’ 몸매의 10대 여자 선수와 무려 10번째 출전한 ‘철녀’들이 제12회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20일 끝난 여자 800m 결승에서 1분55초45로 우승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캐스터 세메냐(18)에 대해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은 “남아공 연맹에 성별검사를 요청해놨으며 결과를 보려면 몇 주 걸릴 것”이라고 밝혔다. 여자 원반던지기의 프랑카 디치(41·독일)와 여자 20㎞ 경보의 수산나 페이토(34·포르투갈)는 대회 사상 최다 출전을 뽐냈다. ■ “여자야 남자야” 800m 우승 세메냐 성별 논란 근육질 외모 기록 비약적 향상 세메냐는 영국 텔레그래프와 로이터 통신 등 유럽에서 따가운 시선을 받고 있다. 짧은 머리에 남성 못지 않은 근육질인 외모로 보아 의구심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세메냐는 베를린 올림피아 슈타디온에서 끝난 800m 결승에서 시즌 최고기록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지난 18일 준결승에서 세메냐가 2조 1위(1분58초66)로 결승에 오르자 IAAF는 여자로서는 힘든 비약적인 기록향상에 주목했다. 세메냐는 지난달 31일 아프리카주니어선수권에서 1분56초72로 올해 주니어와 시니어를 통틀어 가장 빠른 기록을 찍었다. 지난해 10월 기록한 2분04초23보다 무려 8초나 빠른 것. 1500m에서도 4분33초25였던 기록을 지난 2일 4분08초01로 25초나 앞당긴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성별 검사에서는 100% 여자라는 점을 증명해야 한다. 여자는 염색체 구조가 ‘XX’여야 하지만 간혹 남자에게 보이는 ‘Y’ 염색체가 섞였으면 인정받지 못했다. 2006년 카타르 도하 아시안게임 여자 800m에서 은메달을 딴 인도의 산티 순다라얀(당시 25세)은 염색체 이상으로 메달을 박탈당한 뒤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다. ■ 10회 개근 철녀 원반던지기 디치·경보 페이토 남녀 통틀어 대회 최다 출전 옛 동독 볼가스트 출신인 원반던지기의 디치는 1985년 포환을 동시에 잡은 뒤 1991년 도쿄 대회부터 원반던지기에 전념했고, 경보의 페이토는 1만m 달리기와 10㎞ 경보를 거쳐 20㎞ 경보에 출전했다. 말할 필요도 없이 빼어난 기량 덕분이다. 183㎝, 92㎏의 당당한 체구를 갖춘 디치는 독일 투척의 간판. 1999년 대회에서 처음 정상을 밟은 그는 2005년과 2007년 통산 3개의 금메달을 안았다. 이번엔 홈에서 3회 연속 우승에 도전했지만 흐르는 세월 앞에서 힘을 잃었다. 19일 예선에서 자신의 최고기록(69m51)보다 10m 이상 짧은 58m44를 던져 결선에 오르지 못했다. 3차 시기에서 겨우 성공한 뒤 “이건 내 기록도 아니다.”라며 크게 실망했다. 16세 때 세계선수권 무대를 밟은 페이토는 17일 끝난 20㎞ 경보 결승에서 1시간32분42초로 10위에 올랐다. 지난해 베이징올림픽에서는 레이스 도중 기권했지만 1999년 스페인 세비야 대회에서 4위, 2005년 핀란드 헬싱키 대회에서 3위, 2007년 일본 오사카 대회에서는 5위를 차지한 실력파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열린세상] 어떤 대통령으로 남길 것인가/윤성이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열린세상] 어떤 대통령으로 남길 것인가/윤성이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김대중 전 대통령, 그는 분명 현대 정치사에 한 획을 그은 불세출의 인물이었다. 그의 이름을 거명하지 않고서는 해방 후 한국정치를 설명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가 남긴 커다란 족적만큼이나 그의 정치인생은 고난과 역경의 연속이었다. 1963년 6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후 30년을 군사정권과 맞서 싸웠다. 그 사이 몇 차례 죽을 고비도 넘겼다. 숱한 가택연금과 투옥, 그리고 해외망명에 이르기까지 온갖 고초를 다 겪었다. 1997년 마침내 그는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네 번째 도전 만에 얻어낸 대권이었다. 1987년 야권 후보 단일화 실패와 1995년 정계은퇴 번복이라는 오점을 남기면서 성취한 그의 대통령 당선은 한국정치에서 몇 가지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우선 한국정치 역사상 처음으로 여당에서 야당으로 수평적 정권교체가 이뤄진 것이다. 1987년 직선제 쟁취로 민주화를 이뤘다고 하나 정권은 또다시 군부세력에 넘어갔고, 1992년 김영삼 대통령의 당선은 3당 합당을 통한 것이어서 진정한 의미의 정권교체는 아니었다. 김대중 대통령의 당선이 갖는 또 다른 의의는 35년간의 영남정권을 종식하고 호남정권을 출범시킨 것이다. 해방 후 첫 진보정권을 탄생시킨 것이 그 세 번째 의의다. 해방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국정치는 민주세력 대 반민주세력, 영남 대 호남, 그리고 보수세력 대 진보세력 사이의 갈등으로 점철돼 왔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대변해 왔던 민주화 세력, 호남, 그리고 진보세력, 이 세 집단 모두 정권교체 이전까지는 핍박받는 소수집단이었다. 소수세력을 대표하는 그는 항상 투쟁과 저항의 한가운데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의 정치역정이 고단했던 것은 당연지사였다. 민주화를 향한 그의 집념, 남북화해 협력에 대한 그의 신념은 굳건했다. 그랬기에 그는 버틸 수 있었고 뜻을 이룰 수 있었다. 한국사회 갈등의 한 축에 서 있었기에 그를 지지하고 따르는 세력이 많았으나, 그 반대편 역시 적지 않았다. 그의 정책이 모든 국민의 공감을 자아내지도 못했고, 한국 정치의 한계를 그대로 보여주어 국민들을 실망시키기도 했다. 재임기간 중 가장 아쉬운 점이 ‘동서화합’이라던 그의 고백처럼 지역주의의 담을 허물지 못했다. 한국정치의 가장 큰 병폐 가운데 하나인 패거리 정치와 측근정치의 벽도 뛰어넘지 못했다. 세 아들이 모두 정치비리에 휘말리는 상황을 막지도 못했다. 그는 우리에게 어떤 대통령으로 남을 것인가? 아니 우리는 그를 어떤 대통령으로 남길 것인가? 그가 한평생 지향한 민주주의와 민족화해에 대한 신념을 기릴 것인가, 아니면 그 사이 얼룩진 흠결을 기억할 것인가? 올해는 미국 링컨 대통령의 탄생 200주년이 되는 해라 한다. 링컨은 미국 국민들은 물론 전 세계로부터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 가운데 하나이다. 그의 묘소에는 200번째 생일을 축하하는 어린 학생들의 생일카드가 장식되어 있다. 그는 과연 100점 만점의 대통령이었을까? 재임 당시 링컨은 그다지 사랑받는 대통령이 아니었다. 그의 전기를 보면 많은 과오도 저질렀다. 남북전쟁 기간 중 언론을 통제했고, 남부 연합에 동조하는 1만 8000명을 재판 없이 감옥에 가두기도 했다. 젊은 시절 사생활도 그리 깨끗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는 노예를 해방하고 국가통합을 이룩한 최고의 대통령으로 기억되고 있다. 수많은 흠집보다는 그가 이룬 가장 큰 업적을 기렸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모든 정파가 입을 모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하고 있다. 그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야 어떻든, 그가 우리 역사에 드리운 무게감은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역사가 다양한 관점으로 그를 평가할 것이다. 그에 앞서 그를 어떤 대통령으로 남길 것인가는 우리 몫이다. 그의 흠집 대신 그가 지향한 가치와 이루어낸 성과를 후손들에게 들려주어야 한다. 링컨이 아닌 우리 대통령의 위인전을 남겨주고 싶기 때문이다. 윤성이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신설법인수 7년만에 최고치

    어음부도율이 2개월 연속 0.02%의 낮은 수준에 머무는 가운데 새로 문을 여는 회사 수가 7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경기가 좋아질 것이란 기대가 반영된 결과다. 하지만 정작 자금줄을 쥔 은행들은 중소기업 대출을 대폭 줄이고 있다. 상반기 보증을 대폭 강화했던 국책 중소기업 보증기관들이 하반기에 들어서자마자 보증 규모를 줄이고 있는 것도 한 원인이다.한국은행이 20일 발표한 ‘7월 중 어음부도율 동향’에 따르면 신설법인 수는 5501개로 6월 5393개에 비해 108개 늘었다. 2002년 10월 이후 6년 9개월 만에 가장 많은 수치다. 신설법인 수는 올 1월 3664개를 기록한 이후 매월 증가 추세를 보였다.7월중 전국 어음부도율(전자결제 조정후)은 0.02%로 6월과 같았다. 부도업체 수(법인+개인사업자)는 129곳으로 6월에 비해 4곳 늘었지만 올해 1∼6월 평균치 202곳을 훨씬 밑도는 수치다. 지역별로는 서울(51→45개)은 줄었고 지방(74→84)은 늘었다. 한은 주식시장팀 이범호 과장은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과 더불어 6월부터 소규모 회사에 대한 규제가 완화되면서 신설법인이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한편 금융업계에 따르면 18개 은행의 7월 말 기준 중소기업 대출잔액은 438조 8000억원으로 6월 말에 비해 2200억원 늘어나는 데 그쳤다. 올 상반기 은행의 중소기업 월 대출순증 규모는 평균 2조 7000억원대였지만 7월 들어 증가세가 10분의1 이하로 떨어졌다. 감독당국 관계자는 “일부 은행들은 중소기업 지원 목표를 이행하지 않고 있지만 제재할 수단이 마땅치 않다.”고 말했다.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셔틀 퀸’ 라경민 현역복귀

    ‘셔틀 퀸’ 라경민 현역복귀

    ‘셔틀 퀸’ 라경민(33)이 2년 만에 선수로 복귀한다. 대교눈높이 여자배드민턴단은 20일 “라경민이 친정팀인 대교눈높이로 복귀해 다음달 6일 강원 화천에서 열리는 가을철종별선수권에서 복귀무대를 갖는다.”고 밝혔다. 라경민은 김동문과 배드민턴 혼합복식에서 찰떡호흡을 과시하며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세계 최강으로 군림했던 특급 스타. 혼합복식에서 국제대회 70연승과 14개 대회 연속 우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하지만 뛰어난 실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지는 못하는 ‘비운’을 맛보기도 했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과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어이없이 8강에 머물렀다. 아테네 때는 이경원과 여자복식에서 동메달을 땄지만 아쉬움은 컸다. 2007년 2월 은퇴식에서는 꿈을 이루지 못한 것에 눈물을 흘리며 안타까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김동문과 코트 안에서 싹튼 애정으로 2005년 결혼에 골인한 라경민은 이후 김동문과 함께 캐나다 유학길에 올라 현지에서 ‘김동문 인터내셔널 배드민턴 아카데미’를 열어 선수들을 지도해왔다. 2007년 아들 한울, 이듬해 딸 한비를 출산해 단란한 가정도 꾸몄다. 선수로서 미련이 남았던 라경민은 코트 복귀를 염두에 두고 올 초부터 개인훈련을 해왔다. 3월 캐나다에서 캐나다 국가대표와 합동훈련을 하던 대교눈높이의 성한국 감독에게 현역 복귀의사를 전했고, 성 감독은 국내에서 기량을 점검해 보라는 조언을 던졌다. 라경민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지 못한 것이 계속 아쉬웠다.”면서 “가을철대회와 전국체전에서 뛰며 기량을 점검해본 뒤 올림픽에‘ 도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다음달 3일쯤 국내에 들어와 친정에 아이들을 맡기고 본격 담금질에 들어갈 계획. 가을철선수권에서 복귀전을 마치고는 대교눈높이팀과 함께 합숙훈련에 돌입한다. 서명원 대교스포츠단 단장은 “국제대회 출전 여부는 불투명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라경민이 복귀함으로써 ‘결혼=은퇴’라는 관행을 깼다. 후배들에게 귀감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 한신, ‘헤어진 연인’ 김태균 왜 못잊나?

    한신, ‘헤어진 연인’ 김태균 왜 못잊나?

    ’한때 포기했던 연인’ 김태균(한신)을 향한 한신 타이거즈의 관심은 변함이 없는듯 하다. 아직 시즌이 진행중인 상황에도 불구하고 오지랖이 넓은 일본답게 이택근(히어로즈)에 대한 오보성 해프닝을 선사했던 한신의 마음에는 아직도 김태균이 있는듯 하다. 7월 중순 라쿠텐 골든이글스의 요네다 쥰 총괄본부장은 뇌진탕 부상으로 주춤하던 김태균을 보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이미 4월에도 한국을 다녀갔던 라쿠텐 구단은 부상 이후 김태균의 상태를 한번 더 확인하기 위해 찾았다는 것이 중론. 올시즌이 끝나면 FA가 되는 김태균에 대한 일본의 관심은 이처럼 겉으로 드러난 것 이상으로 대단한듯 보인다. 하지만 한신의 팀내 상황, 그리고 김태균의 주포지션인 1루쪽으로 눈을 돌려보면 이해할수 없는 부분도 존재한다. 한신의 1루는 지난 베이징 올림픽에서 일본대표팀의 4번타순을 맡았던 아라이 타카히로(한국명 박귀호)다. 아라이는 히로시마 도요카프 시절엔 3루수를 봤지만 한신 이적 후 고질적인 잔부상으로 인한 수비불안으로 포지션 전환을 한지 오래다. 수비부담을 줄이고 장타력을 더욱 살리겠다는 의도였다. 히로시마 시절에는 팀내에 마땅한 3루자원이 없었기에 어쩔수 없이 기용됐었지만 한신은 히로시마와 다른 팀이다. 2005년 센트럴리그 홈런왕이기도 한 아라이는 2007 시즌후(FA) 한신으로 이적할 당시 4년계약(총액 10억엔)을 맺었다. 적어도 2011년까지 한신의 1루 주인은 아라이라는 뜻이다. 만약 한신에서 김태균을 데려간다면 1루 수비외엔 맡을 포지션이 없는 김태균과 아라이의 경쟁이 불가피하게 된다. 잔부상과 수비불안으로 1루로 전향한 아라이를 다시 3루로 돌릴수도 없는 일이다. 한신의 3루는 노장 이마오카 마코토와 2루와 3루를 번갈아 볼수 있는 세키모토 켄타로가 있다. 세키모토는 팀내 3할타자가 전무해진 올시즌 타율 .276로 최고 타율을 기록중이다. 올시즌 한신은 현재(20일) 43승 4무 55패로 리그 4위에 머물고 있는데 3위 야쿠르트와는 9.5게임차, 1위 요미우리와는 19게임차로 벌어져 있어 사실상 시즌을 접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태균에 대한 한신의 관심이 진정성이 있을까 하는 의문점에 한가지 다행(?)스러운 점은 올시즌 아라이의 성적이다. 아라이는 한신으로 이적한 작년시즌 규정타석을 채우진 못했지만 타율 .306를 기록했다. 하지만 그의 전매특허인 홈런은 고작 8개에 불과했을 정도로 장타력이 실종된 상태다. 올림픽 출전 이후 부상으로 시즌을 조기에 마감했던게 원인이었다. 올시즌도 부진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아라이는 현재 .239의 타율과 13홈런에 그치고 있다. 히로시마 시절 2년연속(2006-2007년) 100타점을 달성했던 그는 한신으로 이적한 이후 돈값을 전혀 못하고 셈. 비록 한일 양국의 수준차이를 감안하더라도 온전한 몸상태의 김태균이라면 아라이보다 못할게 없다. 내년이면 우리나이로 34살이 되는 아라이의 나이역시 미덥지 못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한신에서 정말로 김태균을 노리고 있다면 아라이의 부진과 그의 나이에 그 해법을 찾을수 있을듯 싶다. 올시즌 한신의 부진은 투수력은 차치하고서라도 아라이를 비롯한 중심타선에서 한방을 쳐줄수 있는 타자가 전무했다는게 냉정한 평가다. 시즌 초반 반짝 페이스를 끌어올렸던 ‘전설’ 가네모토 토모아키는 타율이 .266까지 떨어져 있는 상태이며 폭풍질주가 예상됐던 홈런 역시 15개에 그치고 있다. 큰 기대를 걸고 영입한 메이저리그 출신 케빈 멘치는 성적 부진으로 사실상 방출된 상태다. 이처럼 한신이 김태균에 대한 관심을 갖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하지만 수비포지션이 겹치는데도 불구하고 그를 영입할지는 미지수. 만약 일본 ‘데일리 스포츠’ 온라인판에 올라온 기사처럼 김태균 영입에 따른 ‘한국 TV 중계 판매권 중계 등의 부수입’을 기대한다면 김태균의 일본진출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에 대한 관심이 부차적인 부분에서 한신이 노리는 이익이 아닌, 당당히 실력을 인정받고 일본에 진출하는게 많은 팬들의 바람이기 때문이다. 한국야구의 자존심이 걸려 있는 문제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일본프로야구통신원 윤석구 rock7304@hanmail.net@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주식형펀드 23일간 순유출

    국내 주식형 펀드에서 자금이 꼬박 한 달 동안 빠져나갔다. 역대 최장 기간 순유출 기록을 갈아치웠다. 펀드 환매 행렬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19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17일 상장지수펀드(ETF)를 제외한 국내 주식형 펀드에서 1204억원이 순유출돼 지난달 16일 이후 23거래일 연속 자금이 빠져나갔다. 이로써 2006년 5월 관련 통계 작성 이후 기존 최장 순유출 기록(2007년 3월30일~4월30일 22거래일 연속)이 깨졌다. 순유출 규모는 1조 7097억원으로 통계 작성 이후 세번째로 크다. 앞서 2007년 3~4월 22거래일 연속 순유출 때는 2조 9878억원, 같은 해 2월 18거래일 연속 순유출 때 2조 7989억원이 각각 빠져나갔다. 다만 ‘펀드런(대량 환매 사태)’을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아직 아니다. 통상 하루 평균 1000억원 이상 자금이 순유출될 때 펀드런으로 간주하지만, 이달 들어 순유출액은 하루 평균 862억원이다. 하지만 코스피지수 1600선 이상에서 전체 펀드 자금의 54%인 44조원이 유입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증시 추가 상승에 따른 대량 환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오성진 현대증권 WM컨설팅센터장은 “코스피지수 상승이 한계에 다다른 가운데 대부분의 펀드가 수익이 난 상태라 환매 욕구가 강한 상황”이라면서 “환매는 연말 이후까지 지속될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그러나 환매 규모가 크지 않고, 외국인들이 주가 상승을 주도하는 만큼 증시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지적이다. 박현철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연초 이후 증시 견인 주체는 14조 8000억원을 순매도한 투신권이 아니라, 18조 7000억원을 순매수한 외국인”이라면서 “환매가 우려스러운 정도는 아니며, 오히려 중장기적 균형을 위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이공계출신 공무원 우대 ‘말로만’

    이공계출신 공무원 우대 ‘말로만’

    이공계 출신 공무원들이 여전히 공직에서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정부는 19일 오는 2013년까지 공직 내 이공계 출신 공무원 인력을 늘리고 우대하는 2차 5개년 계획을 확정, 발표했다. 하지만 내막을 들여다보면 지난 1차(2004~08년) 때와 별반 차이가 없다는 지적이다. 이공계 출신 공무원들은 지난 5년간 이공계 정책이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아 인력 채용에 있어 부진했다고 입을 모은다. ●임용 비율 등 진일보한 내용 안보여 행정안전부는 이날 이명박 대통령 주재로 열린 제31회 국가과학기술위원회에서 ‘공직 내 이공계 인력 지원 종합계획안’을 보고했다. 보고서에는 이공계 전공자의 고위공무원단 임용 비율을 현재 26%에서 30%까지 확대하고, 5급(행정고시) 신규 채용시 기술직 채용 비율을 40%까지 유지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하지만 이 같은 발표에 대해 이공계 공무원들은 형식적인 수치 발표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며 크게 기대하지 않는 눈치다. 실제 서울신문이 입수한 행안부의 ‘이공계 전공자 공직진출 확대방안 관련 현황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2~3년간 공직 내 이공계 공무원의 입지는 늘기는커녕 오히려 줄어든 부분이 많았다. 일반직 고위공무원 가운데 기술직·이공계 비율은 2006년 24.8%, 2007년 24.7%, 지난해 4월 말 29.5%까지 올라갔으나 정부조직개편이 끝난 지난 연말 25.5%로 수개월 만에 과거로 회귀했다. 당시 이공계 인력이 직격탄을 맞았다는 기술직 공무원들의 하소연이 사실로 입증된 셈이다. ●5급 기술직 신규 채용 3년 연속 하락 신규 채용은 퇴행 정도가 더욱 심각하다. 정부는 당초 1차 5개년 계획에서 지난해까지 5급 기술직 신규 채용을 40%까지 확대하기로 했으나 ▲2006년 34.7% ▲2007년 29.2% ▲지난해 26.8%로 해마다 채용 비율이 하락했다. 이는 이공계 공무원 확대 계획을 처음 수립하기 전인 2003년 41.4%보다도 떨어진 수치다. 지난해 5급 기술직 채용은 공채 65명을 포함, 104명으로 행정직 3분의1 수준에 그쳤다. 아울러 국·과장급 개방형 직위도 2005년 52.2%에서 지난해 36.5%로 4년 연속 자리가 줄어들었다. 현재 4급 이상 기술직·이공계 공무원은 지난해 말 기준 1947명으로 전체 4급 이상 일반직 공무원 6303명 가운데 30.9%였다. 한 기술직 공무원은 “이공계 공무원은 승진 등에서 2~3년 정도 늦는 등 보이지 않는 차별이 많다.”면서 “형식적인 방안을 마련하는 것보다 실행에 옮기는 게 중요하다.”고 꼬집었다. 한편 이번 2차 방안에는 과학기술 분야 공무원을 확보하기 위해 기술계 고교, 전문대학 출신자를 추천받아 특별 채용하는 ‘기능인재 추천 채용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또 인사·예산·조직 등의 부서에 이공계 출신 공무원의 보임 비율을 확대하고 이공계 인력의 역량을 높이기 위해 교육 훈련도 강화하기로 했다. 강주리 임주형기자 jurik@seoul.co.kr
  • “꾸준히 선수 믿는 지도자 되고 싶다”

    “꾸준히 선수 믿는 지도자 되고 싶다”

    “은퇴는 또다른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프로야구 최고참이자 ‘영원한 회장님’인 송진우(43·한화)가 굳은 표정으로 기자회견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 21년 간 걸어온 프로야구 외길 인생을 마치는 순간. 그는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애쓰는 표정이었다. 송진우는 18일 대전 유성구의 한 호텔에서 공식 기자회견을 열고 “21년 동안 앞만 보고 달렸고, 시간이 흘러서 은퇴를 결심했다. 열심히 선수생활을 한 만큼 후회는 없다. 은퇴하더라도 선수생활만큼 열심히 해 좋은 지도자가 되고 싶다.”며 말문을 열었다. 송진우는 당분간 깨지기 힘든 대기록을 보유한 프로야구의 ‘살아 있는 전설’이다. 통산 최다인 210승(153패 103세이브), 사상 첫 2000탈삼진(2048개)뿐 아니라 통산 3000이닝(3003이닝)을 돌파한 유일한 투수다. 지난 4월26일 최고령 출장(43세2개월10일) 등 국내 최고령 기록도 그의 몫이다. 그는 “기억에 남는 기록은 데뷔전이던 89년 4월12일 대전 롯데전에서 첫 완봉승을 거뒀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 중에서도 가장 소중한 기록은 역시 사상 첫 3000이닝을 달성한 것이다. 그렇게 꾸준히 던졌다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강조했다. 가장 감격스러웠던 순간으로는 1999년 한화가 한국시리즈 우승을 했던 당시를 떠올렸다. 그는 “선수생활하면서 기록 때문에 눈물을 흘렸던 적은 없다. 하지만 한화가 빙그레 시절부터 항상 준우승에만 머물러 아쉬웠는데, 99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할 때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고 돌아봤다. 불혹이 넘는 나이까지 힘들었던 순간도 많았을 터. 송진우는 1997~98년 2년 연속 6승에 그치며 슬럼프도 경험했다. 그는 “당시 상대 타자들이 내가 던지는 공이 뻔히 보여 치기 싫다고 얘기했을 때 가장 큰 좌절을 느꼈다. 야구를 그만둘까 하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시즌을 마치고) 미국 애리조나로 교육리그를 가서 체인지업을 익혔다. 경기에서 잘 활용할 수 있었고 선수생활의 고비를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며 힘들었던 때를 회상했다. 송진우는 오랫동안 선수생활을 할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 “대학을 졸업하고 프로에 입문하면서 선수생활을 7년 정도 생각했다. 그런데 그 세 곱절을 했다. 슬럼프 이후 승부보다도 경기장에 있는 시간을 즐기려고 했고, 항상 타자를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다. 자신감은 꾸준한 훈련과 노력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40대 중년 남성들이 저를 보고 힘을 얻는다는 얘기를 들을 때면 큰 힘이 됐다.”고 덧붙였다. 송진우는 지도자의 길을 걷기 위해 몇년 간 해외연수를 떠날 계획이다. 그는 “일본으로 연수를 떠나려고 한다. 한국야구도 이제 외국에서 무시못할 정도로 성장했다. 일본 야구의 운영과 훈련 방식을 익히면서 한국야구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는 역할도 하고 싶다.”고 각오를 밝혔다. 그는 “꾸준히 선수를 믿는 지도자, 선수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지도자가 되고 싶다. 또 팬들에게는 화려함보다는 꾸준함을 가지고 선수생활을 오래한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며 아쉬운 작별인사를 마쳤다. 대전 황비웅기자 stylist@seoul.co.kr
  • 日 경차 ‘쌩~쌩’

    日 경차 ‘쌩~쌩’

    │도쿄 박홍기특파원│일본에선 2가구당 1대꼴로 경자동차를 탄다. 경차는 660㏄ 이하의 배기량을 가진 소형차다. 17일 전국 경자동차협회 연합회에 따르면 지난 3월 현재 상용차를 포함한 경‘차의 보급대수는 100가구당 49.5대로 지난해에 비해 0.8대 늘었다. 지난 1977년 100가구에 15.9대에서 2000년 40.8대, 2005년 45대 등 33년 연속 증가, 최고치를 기록하면서 2가구당 1대에 육박했다. 지난 3월 기준, 보급된 경차는 2617만 3248대로 지난해보다 2.7%인 71만 1581대가 늘었다. 연합회는 “가구수는 늘어나지 않는 데다 경차의 보유기간이 길어진 가운데 경차의 판매가 늘었기 때문에 보급률이 올랐다.”면서 “싼 유지비와 세제 혜택에다 휘발유값의 상승 등 영향으로 경차의 인기가 여전하다.”고 분석했다. 또 “운전자의 고령화와 함께 경기 악화의 탓에 경차로 바꾸는 경향도 강하다.”고 설명했다. 특히 도시에 비해 지방의 보유율이 높았다. 대중교통편이 부족하기 때문에 경차가 ‘생활의 교통편’으로 자리잡은 셈이다. 돗토리현은 100가구당 97.2대, 사가현은 96.3대, 시마네현은 95.5대, 나가노현은 94.9대, 야마가타현은 94.6대를 보유했다. 반면 대도시일수록 경차 보유 대수가 적은 편이었다. 도쿄는 10.9대로 최저였다. 가나가와현은 19.8대, 오사카는 26.1대, 사이타마현은 35.1대, 지바현은 35.8대에 불과했다. 도시의 경우 주로 가정에서 시장보기나 자녀 통학용 등 세컨드 차로 활용했다. hkpark@seoul.co.kr
  • 이적 헤드라이너로 무대 오른다

    대표적인 가을 음악 축제로 자리매김한 그랜드민트 페스티벌(GMF)의 ‘민트 브리즈 스테이지’ 헤드라이너로 싱어송라이터 이적이 나선다. GMF는 17일 이적을 포함해 2차 라인업 12팀을 공개했다. 50팀 안팎의 아티스트들이 출연할 예정인 가운데 현재까지 33팀이 확정됐다. 약 80분 동안 무대를 꾸릴 이적은 거의 2년 만에 단독 라이브 공연으로 팬들과 만나는 셈. 이적의 단독 무대는 2007년 6월부터 9월까지 1만 3000명의 관객을 동원했던 소극장 공연이 마지막이었다. 지난해 말에도 콘서트를 열었으나 김동률과 프로젝트 듀오를 이뤘던 카니발 공연이었다. ‘디트로이트 메탈 시티’의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통해 국내에서도 널리 알려진 일본의 스웨디시 팝 아티스트 가지 히데키도 처음 내한한다. 롤러코스터 출신 여성 싱어송라이터 조원선과 월드뮤직 그룹 앨리스 인 네버랜드, 김정범의 프로젝트 밴드인 푸디토리움도 포함됐다. 페퍼톤스도 3년 연속 GMF에 나선다. 이밖에 서울전자음악단, 보드카레인, 짙은, 몽니, 굴소년단, 흠도 이름을 올렸다. 부드러운 팝적인 감성이 강한 뮤지션들을 주로 초대하며 다른 페스티벌과 차별성을 두는 GMF는 10월24일과 25일 이틀에 걸쳐 서울 올림픽 공원 잔디마당을 비롯한 3개 무대에서 동시에 펼쳐진다. 예매 등 자세한 정보는 홈페이지(www.grandmintfestival.com)와 티켓링크(www.ticketlink.co.kr)에서 확인이 가능하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올 2월 대학졸업 여성 59.4%가 취업… 임시·일용직이 절반 ‘슬픈 선전’

    올 2월 대학졸업 여성 59.4%가 취업… 임시·일용직이 절반 ‘슬픈 선전’

    경기 침체 직격탄에도 대학을 갓 졸업한 20대 여성의 취업이 크게 늘었다. 대졸 남성의 취업이 줄어든 것과 대조된다. 하지만 이는 여성들이 눈높이를 대폭 낮춰 상용직보다는 임시·일용직에 대거 취업한 결과로 풀이된다. ‘슬픈 선전’이라는 자조섞인 표현이 나오는 이유다. 노동부가 해마다 2월 대졸자를 대상으로 그 해 7월 말까지의 취업자 수를 조사해 17일 내놓은 분석결과에 따르면 올해 여성 취업자 수는 15만 5000명으로 지난해보다 1만 6000명 늘었다. 올 2월 졸업 여성의 59.4%가 7월까지 일자리를 구해 ▲2007년 46.4% ▲2008년 54.7%에 이어 3년째 취업률 증가세를 기록했다. 같은 조건의 남성 취업률은 2007년 46.3%(15만 2000명), 2008년 45.3%(11만 5000명), 2009년 40.6%(10만 6000명)로 계속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여성 취업률 증가와 달리 일자리의 질은 오히려 뒷걸음질친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취업한 여성 대졸자 가운데 임금근로자는 15만 2000명이었다. 이 중 상용직 취업자는 절반 남짓(7만 7000명)에 불과했다. 나머지 절반은 임시·일용직(7만 5000명)이었다. 여성 대졸자의 상용직 취업률은 2007년 64.3%, 2008년 56.5%, 2009년 50.9%로 3년 연속 내리막이다. 동시에 임시·일용직 취업률은 같은 기간 35.7%→43.5%→49.1%로 오르막이다. 노동부 관계자는 “임시·일용직 취업자 수가 늘고 상용직은 줄어 일자리의 질이 급격히 악화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경주기자 kdlrudwn@seoul.co.kr
  • 양용은 아시아인 첫 PGA 메이저대회 제패

    “최근 수년간 메이저대회에는 헤살꾼(짓궂게 훼방 놓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가운데 양용은이 가장 큰 대형사고를 쳤다.”(AP통신) 웨이터 출신의 한국인 골퍼 양용은(37·테일러메이드)이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34·미국)를 침몰시켰다. 이제까지 ‘잡초’ 같은 인생을 살아와 ‘야생마’란 별명도 붙었던 터. 그런 그가 17일 미국 미네소타주 채스카의 헤이즐틴골프장(파72·7674야드)에서 벌어진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시즌 마지막 메이저대회인 PGA챔피언십에서 3주 연속 우승을 노리던 우즈를 제치고 우승하는 대이변을 일으켰다. 최종합계 8언더파 280타로 우즈와 3타차. 지난 3월 혼다클래식 우승에 이어 통산 두 번째 우승이자 아시아인 첫 메이저 우승의 쾌거다. 양용은은 한국 골프의 역사를 통째로 바꾼 주인공이 됐지만 이전까지 그의 인생은 잡초와 다름없었다. 제주도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한때 나이트클럽 웨이터로 일하는 등 한창 자랄 나이에 혹독한 인생을 겪었다. 제주관광산업고를 졸업한 뒤 근처 오라골프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골프와 인연을 맺었다. 이후 중장비 기술을 배우라는 부친의 성화에 건설회사에 들어갔지만 사고로 왼쪽 무릎을 다치는 바람에 2개월간 병원 신세를 지다 보충역으로 군에 입대했다. 1991년 다시 오라골프장 연습장에 들어간 양용은은 프로들의 스윙을 어깨 너머로 익히기 시작했다. 조명시설도 갖춰지지 않은 연습장에서 밤부터 이튿날 새벽까지 연습한 뒤 아르바이트 일을 하는 등 고된 생활이 계속됐다.‘투잡’으로 나이트클럽에서 쟁반을 나른 것. 이런 우여곡절 끝에 1996년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 프로 테스트에 합격, 이듬해 상금랭킹 9위로 신인왕을 차지했지만 상금은 1200만원에 불과했다. “골프선수 생활을 계속하다가는 식구들 입에 풀칠도 못하겠다.”는 생각에 골프와 인연을 끊을까도 생각했다. 그러나 궁핍한 생활 속에 고행의 길을 계속 걸었다. 풀리기 시작한 건 2002년 SBS 최강전에서 생애 첫 우승을 일궈 낼 때부터. 이듬해 일본프로골프투어(JGTO) 퀄리파잉스쿨에 수석합격한 뒤 2004년 통산 4승으로 일본 무대를 휘어잡았다. 그리고 2006년 11월 유러피언투어 개막전으로 상하이에서 열린 HSBC챔피언스 마지막 라운드에서 우즈를 꺾는 ‘대박’을 터뜨렸다. 그러나 여세를 몰아 응시한 PGA 투어 Q스쿨에서 스코어카드를 잘못 적어 제출하는 바람에 실격했다. 시련은 거푸 찾아왔다. HSBC챔피언스 우승으로 유러피언투어 시드를 받았지만 컷탈락을 밥 먹듯 했다. 2007년 ‘2전3기’ 끝에 PGA 투어 Q스쿨을 통과한 양용은은 지난해 8월 대대적인 스윙교정 작업에 들어가는 ‘대모험’을 단행했다. 그립부터 스윙, 퍼팅까지 골프의 기초를 새로 다졌다. 7개월 만인 지난 3월 혼다클래식에서 첫 우승을 한 데 이어 이날 메이저대회 우승이란 ‘초대박’을 터뜨렸다. 영국의 텔레그래프지는 “양용은의 PGA 챔피언십 우승은 마치 아시아의 복싱 영웅 매니 파퀴아오가 무하마드 알리를 15회 KO시킨 것과 같다.”고 떠들어댔다. 그러나 그들은 알까. 고된 인생이 꽃으로 활짝 피어나는 데 ‘필요충분조건’은 자신에 대한 끊임없는 채찍질이라는 걸. 그것을 양용은은 온 몸으로 보여 줬다.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다른기사 보러가기] 현회장 “김위원장 원하는거 다 말하라며… “ 해외포르노 저작권 처벌은 ‘복불복’ 21년만에 빛보는 춘화들 ”최진실 묘위치 찾던 50대 전화 단서” ’파리대왕’ 골딩 15세소녀 겁탈하려 했다 신종플루 치료병원 의사도 환자도 몰라 ”KT 테스트서비스 프라이버시 침해 우려” 이슬람 수영복 ‘부르키니’ 논쟁
  • 국내 복귀?…이병규 ‘마지막 승부수’ 던져라

    국내 복귀?…이병규 ‘마지막 승부수’ 던져라

    오치아이 히로미쓰 감독의 러브콜을 받고 일본으로 건너간 이병규(주니치)는 올해 계약기간이 끝난다. 지금 현재 주니치는 62승 1무 41패로 선두 요미우리에 1.5게임 뒤진 리그 2위. 올시즌 거의 대부분을 2군에서 보낸 이병규는 지난 8일 1군에 복귀했다. 2군에서 개막전을 시작한 후 6월 한때 잠시 1군에 올라왔었지만 3경기만을 뛰고 내려간 뒤 두달만의 1군 복귀였다. 오치아이 감독은 남은 경기에서 역전우승을 노리고 있다. 2군에만 머물던 이병규를 다시 1군으로 불러들인 것은 공-수-주를 갖춘 이병규의 활약이 필요하기 때문. 하지만 오치아이 그 자신이 선택해 데려온 이병규를 언제까지 2군에 만 있게할 수 없는 이유도 존재한다. 이병규에게 기회를 줘 시즌 끝난 후 혹시 제기될수도 있는 외국인 선수 영입실패에 따른 책임감을 비켜가겠다는 의도도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만약 남은 경기에서 이병규가 좋은 모습을 보인다면 팀성적에 보탬이 될 것이며, 반대의 상황이 연출되더라도 기회를 줬는데도 어쩔수 없었다는 변명거리가 오치아이에게 생긴다. 하지만 무엇보다 후반기 대공세에 이병규가 필요한 것은 포스트시즌을 대비한 선수기용이란 측면도 강하다. 일본진출 후 이병규는 비록 정규시즌에선 뚜렷한 성과를 보여주진 못했지만 큰 경기에 강한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한 전력이 있는 선수다. 지난 2007년 한신과 맞붙은 클라이맥스 제1스테이지에서 팀 승리에 발판을 만들어냈던 3점 홈런, 그리고 리그 1위 요미우리와의 경기에선 우에하라 코지(현 볼티모어 오리올스)를 상대로 홈런을 터뜨리기도 했었다. 막강 요미우리를 물리치고 일본시리즈 진출을 결정짓게 했던 한방이었다. 이병규는 니혼햄과의 일본시리즈에서도 홈런을 쏘아올리는 등 맹타를 터뜨리며 주니치가 일본정상에 오르는데 있어 결정적인 활약을 펼친바 있다. 주니치의 우승으로 작년부터 포스트시즌 경기방식이 바뀐(제2스테이지에선 리그 1위팀에 미리 1승을 주는)것도 이병규의 활약 때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록 작년에는 주니치가 요미우리에게 무릎을 꿇었지만 제2스테이지 첫경기에서 선두타자 홈런을 뽑아냈을만큼 큰 경기에 강한 사나이란 것을 오치아이 감독에게 강하게 어필했다. 올시즌 이병규는 첸 웨인과 넬슨 바야노, 막시모 넬슨 그리고 야수들인 데라로사와 현재 센트럴리그 홈런 1위를 달리고 있는 토니 블랑코 등에 가려 1군보다는 주로 2군에 머물렀다. 1군 등록 외국인 엔트리 4명에 들지 못했던 것. 이병규는 1군 복귀 후 요코하마와의 경기부터 5경기 연속 안타를 때려내며 .281까지 끌어올렸던 타율을 야쿠르트와의 주말경기에서 2경기 연속 무안타에 그치며 .225까지 추락해 있는 상태다. 아직 경기 출전횟수가 적어 한경기 성적에 따라 급락폭이 큰 타율변동이다. 16일 야쿠르트와의 경기에선 임창용과 대결해 병살타를 치며 경기중 교체됐었다. 이병규를 대신해 2군으로 내려간 바야노는 주니치의 좌완 불펜투수로 팀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1군에 올라올수 있는 선수인지라, 지금부터의 활약이 올시즌 이병규의 운명을 좌우 할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만약 이대로 시즌이 끝나게 된다면 지금 이병규의 성적을 감안할 때 타 팀으로의 이적 역시 불가능하다. 항간에 떠돌고 있는 국내 복귀설을 잠재우며 일본 잔류를 위해서라도 이젠 마지막 승부수를 던져야 할 시점이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일본프로야구통신원 윤석구 rock7304@hanmail.net@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