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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15 광복 65주년] 다시 열린 ‘빛의 문’ 우리가 日보다 더 빛나야 하는 이유

    [8·15 광복 65주년] 다시 열린 ‘빛의 문’ 우리가 日보다 더 빛나야 하는 이유

    8·15 광복 65주년을 맞이하여 광화문이 145년 전 고종 중건(重建) 당시의 제 모습으로 비로소 돌아오는 것을 보며, 나는 우선 1945년 8월15일 그날의 일부터 떠올린다. 그때 내 나이 열네 살, 현 북한의 원산중학교 1학년생이었다. 원산 역 구내에서 우리네 흰 홑적삼 차림의 어른 하나가 무언가를 꺼내서 펼쳐들며 뭐라 뭐라 소리를 지르는 거였는데, 그렇게 그때 처음 본 것이 우리네 태극기였고, 그이가 소리 지른 것이 “조선 독립 만세”였었다. 바로 그 순간을 떠올리면서, 그 뒤 오늘까지 65년을 살아온 자취를 그냥 한 덩어리로 더듬으며, 어찌 감회가 없을 것인가. 그렇다, 이런 경우에는 엄청 무리라는 것은 알지만, 그 65년간을 한순간에 한 덩어리로 떠올려 보는 편이 차라리 시원한 면도 없지는 않다. 그러고 보면 세상만사는 꼭 어느 한 기준으로만 접근해서 죄다 알아지는 것은 아니다. 금년 2010년이 바로 일본이 우리나라를 강권으로 병탄했던 때로부터 꼭 백년을 맞는 해인데, 과연 오늘의 한일 관계는 한마디로 어떻게 이야기될 수 있을까. 그야 일부 설에 의하면 금년의 우리 쪽 무역 적자가 너무 높네, 어쩌네, 하는 소리도 물론 없지는 않지만, 한마디로 딱 잘라 말한다면, 과연 어떤 평가가 가능할까. 온 세계를 통틀어서 본 국제적 위상(位相)에서도 이제 우리나라는 일본을 뒤따르는 형편이 아니라 몇 발짝 더 앞서 가고 있다고 할 정도로 국격(國格)이 높아져 가는 것은 혹시 아닐까. 실제로 이 점을 두고서는 바로 작년 말의 어느 모임에서 일본의 대표적인 지식인 하나는, “현재 한국의 놀랄만한 발전의 동력은 바로 사대주의였다. 이때까지 일본 학자들이 한국을 경멸하면서 노상 써먹은 용어가 바로 사대주의였는데, 그러나 그 용어를 요즘 흔히 쓰이는 말로 바꾸면 바로 글로벌 스탠더드를 열심히 따라가려는 국가 전략이라고 보아야 한다.”고 하면서, “최근의 한국은 글로벌 시스템을 쫓아가는데 일본보다 앞서고 있다.”고 하고 그 구체적인 사례까지 다음과 같이 들고 있었다. 한국의 통신업체들은 일찍부터 세계 표준을 선택해 세계로 나가는 데 성공했지만 일본의 NIT는 그냥 일본 표준에만 집착하면서 국내에 고립되어 버렸고, 인천공항은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공항으로 올라섰지만 나리타 공항은 국내 공항으로 전락해 버렸다 요즘 일본의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한국은 저렇게 매사에 다이내믹한데, 왜 일본은 정체되어 있는가.” 혹은 “한국의 젊은이들은 세계로 나아가는데, 일본 젊은이들은 왜 국내에만 틀어 박혀있는가” 같은 말을 많이 하고 있다. 어떤가. 놀랍지 않은가. 광복 65년을 맞으면서 광화문도 비로소 뒤늦게 본래의 제 모습을 내보이고는 있을 망정, 당장 한일 관계 돌아가는 것들은 기왕의 종속 관계에서는 확 벗어나 있을 뿐만 아니라 바야흐로 우리 쪽이 한 발 앞서 갈 채비에까지 들어섰음을 알아야 한다. 모름지기 세상 흘러가는 진면목인즉 바로 이런 것이다. 바로 이점으로는 곧 9월에 발간될 저의 장편소설 ‘출렁이는 유령’도 2010년을 맞은 지난 1백년의 한일관계와 대북관계 등을 1970년대를 중심으로 하여 오늘의 시야까지 깔고 다루어 본 것임을 이 글의 사족(蛇足)으로나마 밝혀둔다.
  • 수병과 간호사 재현…2차대전 종전 65주년 기념

    제2차 세계대전 종전을 상징하는 ‘수병과 간호사’의 키스사진을 재현하는 행사가 진행됐다. 지난 14일(현지시각) 미국 뉴욕 타임스퀘어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65주년을 맞이한 행사가 벌어졌다. 해병대 모자와 간호사 모자를 쓰고 등장한 수 백 쌍의 커플이 모두 뜨거운 키스를 나눈 것. 이들은 2차 대전의 종전을 상징하는 미국 시사매거진 라이프 지(紙)에 수록돼 화제가 됐던 사진 ‘수병과 간호사’를 모토로 포토타임 행사를 진행했다. 또 현장에는 사진 원작을 모방한 7.29m 높이의 조각상도 세워져 볼거리를 제공했다. 한편 2005년 당시에는 컴퓨터를 통해 ‘해병과 간호사’의 실제 주인공을 찾아내 뜨거운 관심을 일으킨 바 있다. 서울신문NTN 뉴스팀 ntn@seoulntn.com 서울신문NTN 오늘의 주요뉴스 ▶ 2PM 닉쿤, 굴욕은 없다..여권사진도 ‘꽃미남’ ▶ 조권, 가인 민낯에 “앞으로 이대로 다녀” ▶ 이파니 “구애하던 연하남★ 아버지가 모욕·협박” ▶ 보아, 알고보니 ‘땅부자’…”땅값도 많이 올라” ▶ 김제동, 이효리와 등산중 김밥 놓고 티격태격 ▶ 미쓰에이 민, ‘깝민’ 등극..깝권 “여자중 최고봉” ▶ 성은 키스 굴욕 고백…”연인 LJ와 첫 키스중…” ▶ f(x) 루나, 지소연과 허벅지씨름…”만만치 않아”
  • 이명박 대통령, 통일세 신설 제안…“준비할 때”

    이명박 대통령, 통일세 신설 제안…“준비할 때”

    이명박 대통령이 남북통일을 대비해 ‘통일세’ 신설에 대한 논의를 제안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15일 오전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제 65주년 광복절 기념식에서 ‘함께 가는 국민, 더 큰 대한민국’이라는 제목의 경축사를 전했다. 대통령은 “통일은 반드시 온다. 통일세 등의 현실적인 방안을 준비할 때가 됐다. 사회 각계에서 이 문제를 폭넓게 논의해주기를 제안한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언급한 ‘통일세’란 통일을 위해 필요한 자금을 미리 준비해 막상 닥쳤을 때 혼란을 겪지 않기 위한 방안으로 보인다. 또 이 대통령은 지난 3월 26일 북한의 천안함 공격에 대해서는 “평화에 대한 여망을 저버리는 도발이었다. 이제 더 이상 북한의 어떠한 도발도 있어서는 안 되며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신문NTN 뉴스팀ntn@seoulntn.com 서울신문NTN 오늘의 주요뉴스▶ 오나미, ‘신민아 급’ 뒤태인증…“착각했다”▶ ’구미호’ 신민아, ‘여신’ 인증셀카…"진정 베이비 페이스"▶ 2PM 닉쿤, 굴욕은 없다..여권사진도 ‘꽃미남’▶ 미쓰에이 민, ‘깝민’ 등극..깝권 "여자중 최고봉"▶ ’군 입대’ 강인, 슈퍼주니어 콘서트 ‘깜짝 등장’▶ 이파니 "구애하던 연하남의 아버지가 모욕·협박"▶ 박지헌 생활고 소식에 팬들 "하늘이 도울 것"
  • 통일세 신설 등…이 대통령, 광복절 경축사 ‘눈길’

    통일세 신설 등…이 대통령, 광복절 경축사 ‘눈길’

    이명박 대통령은 15일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통일을 대비해 이제 통일세 등 현실적인 방안도 준비할 때가 되었다”며 ‘통일세’ 신설에 대한 각계의 논의를 촉구했다.이 대통령은 이날 오전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제65주년 광복절 기념식에서 “통일은 반드시 온다. 이제 통일세 등 현실적인 방안도 준비해야 할 때가 됐다”며 “이 문제를 우리 사회 각계에서 폭넓게 논의해주기를 제안한다”고 말했다. ‘통일세 논의’ 제안은 막대한 자금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는 통일 재원을 미리 준비해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뜻이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이 대통령은 이날 경축사에서 구체적인 통일방안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남북관계에 새로운 패러다임이 요구되고 있다며 분단상황의 관리를 넘어 평화통일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평화공동체, 경제공동체, 민족공동체로 순차적으로 이행하는 3단계 통일방안을 제안했다.청와대는 이 대통령의 3단계 통일방안에 대해 과거 김영삼 정부 때와 비슷하지만 당시는 평화와 경제공동체가 동시 진행될 수 있는 개념이었으나 이번에는 비핵화의 중요성을 감안, 평화공동체가 반드시 선결되도록 한 점이 다르다고 설명했다.한편 이 대통령은 ‘함께 가는 국민, 더 큰 대한민국’이란 제목의 경축사를 통해 집권후반기 국정운영의 핵심가치로 ‘공정한 사회’를 제시하고 사회 모든 분야에서 이 같은 원칙이 지켜지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사진 = SBS 모닝와이드 화면캡처서울신문NTN 뉴스팀ntn@seoulntn.com 서울신문NTN 오늘의 주요뉴스▶ 닉쿤, 빅토리아 어깨노출 신경…“자상+보수” 눈길▶ 슈퍼박테리아 확산 우려 ‘증폭’…‘항생제 내성’ 문제▶ 보아, 알고보니 ‘땅부자’…“땅값도 많이 올라”▶ 유재석, 생일-아들 백일 겹경사…팬들 이벤트 눈길▶ f(x) 루나, 지소연과 허벅지씨름…“만만치 않아”▶ 이특 “열심히 뛴 내 발”…상처 난 발 사진 공개▶ 이효리-김제동 커플룩 입고 등산…"김밥 먹여주는 사이"▶ 손담비 “고3때 첫 남자친구와 집에서 데이트” 고백▶ ’슈퍼스타K2’ 14세 이재성 노래, 이승철-아이비 녹였다
  • [8·15 65주년] ‘빛의 문’ 공사 4년만에 위용… 미래를 비춘다

    [8·15 65주년] ‘빛의 문’ 공사 4년만에 위용… 미래를 비춘다

    광화문(光化門)이 다시 열린다. 광복절인 15일 현판 제막식과 함께 145년 전 고종 중건(重建) 당시의 모습을 되찾아 우리 곁에 돌아온다. 1395년 조선 왕조 법궁(法宮·임금이 사는 궁궐) 경복궁의 정문으로 우뚝 선 이래 600년 영욕의 세월을 묵묵히 온몸으로 견뎌냈던 광화문. 이제 그 문이 미래를 향한 새로운 빛을 만방에 퍼트릴 채비를 마쳤다. 복원되는 광화문은 육축 240㎡에 문루가 들어서는 형태다. 중층인 문루는 아래층 174.1㎡, 위층 110.7㎡ 규모로 정면 3칸, 측면 2칸 형식이다. 처마를 받치는 장식 구조가 기둥 윗부분뿐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짜여 있는 다포식 공포에, 옆에서 보면 경사가 완만한 사다리꼴 모양의 우진각 지붕을 갖췄다. 겹처마이며 금모로 단청을 입혔다. 박정희 정권이 1968년 복원하면서 철근 콘크리트로 지었던 문루는 금강송 목재로 바뀌었다. 복원공사를 총지휘한 신응수 대목장이 “(좋은 나무 찾는 게) 가장 힘들었다.”고 토로했던 그 금강송이다. 중앙청(옛 조선총독부) 청사에 맞춰 비뚤어졌던 중심축과 위치도 바로잡았다. 고종 중건 당시 경복궁 중심축에 맞췄던 원래 위치를 찾아 남쪽으로 11.2m, 서쪽으로 13.5m 이동하고, 시계 방향으로 3.75도 각도를 틀었다. 광화문 정문 앞의 월대(月臺·궁전 앞에 있는 섬돌)도 8m 길이로 복원했다. 원래는 53m이지만 교통 혼란을 고려했다. 해치상 2기도 제자리에 갖다 놨다. 광화문 외에 용성문, 협생문, 동·서수문장청, 영군직소 등 부속 건물 5동을 함께 복원했다. 광화문 양 옆의 궁장(宮墻·궁궐 담장) 330m와 광화문에서 흥례문으로 연결되는 어도(御道) 100m도 되살렸다. 2006년 12월4일 ‘광화문 제모습 찾기사업’ 선포식과 함께 본격적인 광화문 철거에 들어갔다. 이듬해 9월 철거 이후 진행된 발굴조사 결과에서 원래 광화문 위치가 파악됐다. 광화문이 근정전~근정문~흥례문으로 이어지는 남북방향 직선 축과 정확히 일치한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7m 높이의 기단부 석축 공사는 고종 때와 같이 화강석을 사용했다. 당시 썼던 인왕산 돌과 석질이 가장 유사한 경기 포천산 돌을 공수했다. 석축공사는 2009년에 마무리됐고, 이어 목조 누각 공사가 시작됐다. 2009년 초 강원 삼척 등지에서 벌채한 금강송으로 나무 기둥을 세우고 보를 얹었다. 같은 해 11월26일 여기에 마룻대를 올리는 상량식이 진행됐다. 올 들어 추녀와 서까래를 설치하고 지붕 기와를 잇는 작업과 단청 등이 이어졌다. 지난 7월부터 광화문 현판 각자(刻字)와 단청 작업에 들어가는 등 마무리를 해 왔다. 아직 복원이 끝나지 않은 동십자각 주변의 궁장 설치와 하수암거 이설 등은 연말까지 마무리될 예정이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8·15 65주년] 현판 145년전 그대로 디지털 복원

    광화문 복원 공사의 ‘뜨거운 감자’는 현판이었다. 2005년 문화재청이 교체를 추진할 때부터 한글단체들은 집요하게 한글 현판을 주장해 왔다. 그러나 1865년 중건 당시 모습을 그대로 복원한다는 원칙에서 한자 현판으로 결론 났다. 원래 광화문 현판은 경복궁 중건 당시 책임자였던 훈련대장 임태영이 한자로 쓴 것이다. 1950년 한국전쟁 때 폭격으로 소실되자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68년 이를 복원하면서 자신이 직접 쓴 한글 현판을 달았다. 이번에 복원된 현판은 금강소나무를 사용해 철저하게 전통 방식을 따라 제작됐다. 디지털로 복원해 크기나 재질 모두 원형과 똑같다. 중요무형문화재 제106호 각자장(刻字匠) 기능보유자인 오옥진씨가 현판 제작 및 글자를 새겼고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31호 단청장(丹靑匠) 양용호씨가 단청을 입혔다.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광화문광장서 광복절 경축행사

    행정안전부는 제65주년 광복절 경축행사를 15일 오전 9시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개최한다고 13일 밝혔다. 행안부는 경술국치 100주년을 맞아 고종 때 모습으로 복원된 광화문의 현판 제막식을 위해 행사 장소를 광화문광장으로 정했다. 식전 행사로 복원한 광화문의 현판 제막식이, 경축식 뒤엔 광화문 개문 의식이 각각 치러진다. 경축식에는 애국지사를 비롯해 5부 요인 및 국가 주요인사, 주한외교단, 각계대표, 서울시민 및 인터넷 신청자 등 총 4500명과 행사요원 1000여명이 참석한다. 올해 행사는 200여명의 다문화 가정 어린이를 비롯한 청소년 1000여명의 광복절노래 합창, 만세삼창, 대형 태극기 펼치기 퍼포먼스 등으로 진행된다. 최근 사료 등을 통해 새로 확인된 338명의 독립유공자에 대한 포상도 이뤄진다. 행사를 위해 광화문 삼거리~세종로 사거리구간은 14일 낮 12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차량 진입이 통제된다. 경복궁역 사거리~동십자각 사거리는 15일 오전 6시~낮 12시와 오후 7시~9시에 교통이 통제된다. 경축행사가 끝난 뒤엔 광화문 개문과 함께 경복궁 전 구역이 무료로 개방된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8·15 65주년] 5대 궁궐 日帝 수난사

    일제는 조선 왕실의 권위를 말살하고자 대대적인 궁궐 파괴를 자행했다. 박람회장으로, 동물원으로, 유원지로 전락시켜 조선 백성을 조롱했다. 그 상흔은 광복 65주년이 되는 지금도 온전히 회복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1915년 경복궁 전각 대부분 철거 법궁인 경복궁은 박람회장이 돼 버렸다. 일제는 1915년 조선물산공진회를 경복궁에서 열면서 정전과 편전, 침전 일곽을 제외한 거의 모든 전각을 철거했다. 1920년대 중반에는 남산에 위치했던 총독부 건물이 협소하다는 이유로 광화문을 이동시키고 지금의 흥례문 영역에 조선총독부를 건설했다. 경희궁은 가장 철저하게 파괴되었다. 1907년 일제는 경희궁 안에 통감부 중학교를 세우면서 기존 건물들을 대부분 철거했다. 지형도 높은 곳을 깎아 낮은 곳을 메우는 등 크게 변형시켰다. 이후 숭정전, 회상전, 흥정당, 흥화문, 황학정 등 얼마 되지 않은 건물들마저 다른 곳으로 팔려가거나 이전되면서 궁궐의 면모를 상실했다. 정문인 흥화문은 안중근 의사에게 피살된 이토 히로부미의 사당인 박문사 정문으로 팔렸다가 이후 신라호텔 정문으로 사용되는 수난을 당했다. 1920년대가 지나면서 7만여평의 넓이에 120채가 넘는 전각이 있던 조선 왕조의 서궐 경희궁은 흔적조차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파괴됐다. 1930년대에는 전시 대비용 시설인 벙커가 건립되는 수모까지 당했다. 일제는 덕수궁도 공원으로 만들어 버렸다. 덕수궁은 아관파천 후 고종이 환궁해 대한제국을 선포할 당시 경운궁이라는 이름의 정궁이었다. 덕수궁은 1919년 고종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도 궁역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으나 이후 곳곳이 잘려 나가고 건물이 철거돼 궁궐로서의 수명을 다하고 말았다. 일제는 1931년 덕수궁 부지 2만여평 가운데 1만평을 경성의 중앙공원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듬해부터 많은 전각이 철거됐고, 석조전은 1933년부터 미술관으로 바뀌어 1943년까지 일본 미술품만 전시했다. ●경희궁 전시 벙커 활용 창덕궁은 조선 왕조 500년 역사가 막을 내린 장소다. 1919년 8월29일 창덕궁 인정전에서 한·일강제병합 조약이 이뤄졌다. 1926년 4월25일에는 순종이 대조전에서 승하했다. 1917년 내전 일대에 대화재가 발생하자 일제는 이를 복구한다는 핑계로 경복궁 내전 건물들을 모두 헐어다 이곳으로 옮겨 지었다. 일제는 주인을 잃은 창덕궁의 전각을 헐고 전시장과 각종 편의시설을 지어 일반인에게 개방했다. 창경궁은 동물원으로 전락하는 모욕을 당했다. 1907년 즉위한 순종은 창덕궁을 새로운 거처로 삼았다. 1908년 일제는 창덕궁과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둔 창경궁의 선인문 안에 동물원을 설치했다. 순종 황제에게 위안거리를 제공한다는 구실이었다. 뒤이어 식물원이 설치됐고, 이름조차 창경원으로 격하됐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사설] 광복 65주년… 한·일 새 100년을 생각한다

    내일은 8·15광복 65주년이다. 또 보름 뒤면 한·일 강제병합 100년을 맞는다. 한·일 강제병합 100년이라는 의미도 있어 올해 광복절은 여느 때와는 느낌이 다르다. 광복된 지 65년, 정부가 수립된 지 62년 동안 대한민국은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 위대한 나라로 거듭났다. 미국과 옛소련에 의해 남북으로 분단된 데다 6·25전쟁까지 겹치면서 남쪽은 거의 폐허나 다를 게 없었지만 우리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기적을 일궈 냈다. 60여년 전 최빈국 중 하나였던 대한민국의 지난해 수출액은 전 세계에서 9위였다. 한때 해가 저물지 않는 나라라는 말을 듣기도 했던 영국까지 제쳤다. 내년의 무역규모는 1조달러를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전 세계에서 10번째로 1조달러 무역대국 대열에 합류하는 셈이다.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은 세계 15위로 아프리카 50여개국의 GDP를 합한 것보다도 많다. 1인당 국민소득은 1953년에는 67달러에 불과했으나 2만달러가 됐다. 이러한 경제성장 신화를 일궈낸 것은 ‘하면 된다.’는 믿음과 ‘우리도 한번 잘살아 보자.’는 희망이 어우러져 열심히 앞을 보고 달린 결과다. 국민역량 결집해 선진화 이룩해야 할 시점 중동의 산유국 중에는 석유 하나로 1인당 국민소득이 2만달러, 3만달러를 쉽게 넘는 곳도 있지만 인구가 5000만명을 넘거나 육박하는 나라 중 1인당 국민소득이 2만달러를 넘는 곳은 미국, 일본, 독일, 프랑스, 영국 등 10개국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기대하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꽃 피기를 기대하는 것과 같다.”는 비아냥도 받고 일부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지만 우리는 민주화도 이뤄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식민지에서 독립한 나라 중 산업화와 민주화를 모두 이룬 사실상 유일한 나라라는 찬사까지 받을 정도가 됐다. 빛나는 성공신화를 일궈 냈지만 우리는 아직 선진국 문턱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의 벽은 높기만 하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선진국과의 격차가 10년이 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압축적인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달성한 경험을 바탕으로 국민역량을 결집시켜 선진화를 이룩해야 할 시점이다. 선진화를 위해서는 지역·이념·계층 간 갈등을 줄이는 국민통합이 선결돼야 한다. 광복절을 맞아 자랑스러운 조국, 평화로운 한반도를 후손에게 물려주겠다는 다짐도 필요하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모두 이룬 성공한 나라로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있지만 해마다 특히 8월이 되면 마음이 편치 않다. 일본에 나라를 강탈당해 35년간 수탈당한 역사 때문이다. 특히 올해는 한·일 강제병합 100년을 맞는 해여서 더욱 그렇다. 그러나 과거에만 지나치게 얽매일 수는 없다. 일본도 변하고 있다. 지난 10일 간 나오토 일본 총리는 “식민지 지배가 가져온 다대한 손해와 고통에 대해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표명한다.”면서 “당시 한국인들은 그 뜻에 반해 이뤄진 식민지 지배에 의해 국가와 문화를 빼앗기고 민족의 자긍심에 깊은 상처를 입었다.”는 내용의 담화를 발표했다. 식민지배의 불법성은 언급하지 않았고 일본군위안부 할머니, 한국인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보상문제도 밝히지 않아 유감스럽지만 과거 일본 총리의 사과와 반성보다는 진일보했다고 평가할 만하다. 새로운 패러다임의 한·일 새 100년 준비하자 한·일 관계가 불행한 과거를 딛고 새출발하려면 가해자인 일본의 진솔한 사죄가 말이 아닌 행동으로 나타나야 한다. 심심하면 터져 나오는 일본 우익인사의 망언, 독도 영유권 주장, 사실을 왜곡한 일본 교과서도 정리돼야 한다. 일본 스스로 변했다는 것을 보여 줘야 하지만 우리도 이제는 과거의 속박에서 벗어날 때도 됐다. 일본에 대한 피해의식을 떨쳐 버릴 때도 됐다. 광복 이후의 자랑스러운 우리의 역사에 자부심을 갖자. 우리의 젊은이들은 어디를 가도 주눅 들지 않는 우리의 희망이다. 1988년에는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올림픽을 개최했고 2002년에는 일본과 공동으로 아시아 첫 월드컵까지 개최한 나라가 아닌가. 11월에는 서울에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도 열린다. G20 정상회의가 아시아에서 열리는 것은 처음이다. 한·일 강제병합 100년을 맞아 한·일 관계는 역사의 새로운 페이지를 시작하는 출발선에 서 있다. 과거사의 짙은 그늘이 드리운 ‘아픈 100년’을 매듭짓고 미래를 위해 ‘새로운 100년’을 열어 가도록 하자. 아픈 과거를 잊지는 말되 과거에 얽힌 ‘악순환 고리’를 끊고 한·일 관계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수 있도록 하자. 일본을 감정적으로 몰아세우기보다는 이성적으로 대응하면서 과거사 바로 세우기의 ‘대의’와 관계개선의 ‘실리’를 확보하도록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21세기는 한국·일본·중국이 주도하는 동아시아 시대가 될 것이 분명하다. 급변하는 국제질서를 냉철히 바라보면서 새로운 패러다임의 한·일 새 100년을 준비하자.
  • [8·15 65주년] 훼손 궁궐 제모습 찾기 어디까지

    원형 복원된 광화문이 15일 일반인에게 공개되면 1990년부터 진행돼 온 경복궁 1차 복원사업은 마무리된다. 경복궁 복원사업은 일제 강점기에 변형, 훼손된 경복궁을 원형대로 복원해 민족 정기를 회복하고 문화민족의 자긍심을 고취하는 한편 세계적인 문화유산으로 조성하려는 목표로 시작됐다. 1차 복원사업은 일제 강점기에 철거되거나 훼손된 전각을 새로 지어 정전(正殿), 편전(便殿), 침전(寢殿), 동궁(東宮), 빈전(殯殿) 등으로 이루어진 기본 궁제를 정비하는 것이었다. 1990~1995년 강녕전 등 임금과 왕비의 처소가 있는 침전 권역이 복원됐고, 1995년 동궁 권역 복원을 위해 중앙청(옛 조선총독부) 건물이 철거됐다. 1999년에는 세자의 거처인 동궁 자선당 영역이 복원됐고, 2000년대 들어 흥례문, 건청궁, 태원전 등이 되살아났다. 20년간 총 89동을 복원했다. 일제의 철거를 피해 남아 있던 기존 건물 36동을 포함하면 총 125동으로, 고종 당시 500여동의 25% 수준에 도달했다. 1571억원의 사업비가 들었다. 경복궁은 내년부터 2030년까지 2차 복원 사업이 추진된다. 총 54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궐내 각사와 동궁 권역 등을 중심으로 6개 권역에서 254동의 건물을 복원한다는 계획이다. 경희궁은 1980년 9월 궁터가 사적으로 지정됐고, 1985년에는 공원으로 지정됐다. 서울시는 경희궁 복원과 함께 서울시립박물관과 미술관을 짓기로 하고 경희궁터의 유구 발굴 조사를 실시했다. 발굴 결과와 문헌 고증을 거쳐 1987년 흥화문, 1991년 숭정전, 1998년 자정전과 회랑, 2000년 태령전과 그 일곽을 각각 복원했다. 다만 흥화문은 원래 있던 자리에 구세군회관이 자리해 서쪽으로 100여m 옮겨 복원했다. 창덕궁 인정전 행각은 1917년 화재로 소실된 뒤 일제가 복원하면서 전통 궁궐 건축 양식으로 복원하지 않고 트러스 구조 위에 일본식 널개판과 루핑을 깔고 그 위에 한식 기와를 올렸다. 겉으로는 우리 전통 궁궐의 모습으로 보이나 내부 구조는 서구식이다. 정부는 1990년부터 1999년까지 대규모 복원 사업을 벌여 돈화문 월대, 낙선재 일대, 진선문, 숙장문 등을 복원했다. 창덕궁과 종묘는 원래 담장을 사이에 두고 하나로 이어져 있었으나 1931년 일제가 율곡로를 개설하면서 분리됐다. 서울시는 10월부터 이 구간의 일부를 지하화하는 등 복원계획을 추진 중이다. 덕수궁은 석조전의 내부 원형 복원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2012년 10월까지 고종 당시 원형 그대로 복원해 ‘대한제국 역사관’(가칭)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일제강점기에 최대의 행락지였고 광복 후에도 유원지로 전락했던 창경원은 가장 먼저 복원공사가 이뤄져 1983년 12월 창경궁으로 환원됐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8·15 특별사면] 김원기·변양균·이학수 등 2493명 특사

    [8·15 특별사면] 김원기·변양균·이학수 등 2493명 특사

    정부는 13일 ‘8·15광복 65주년 경축 특별사면’을 단행하고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인 건평씨, 서청원 전 친박연대 대표, 이학수 전 삼성그룹 부회장 등 정·재계 인사를 포함 총 2493명을 특별사면·감형·복권한다고 밝혔다. 이귀남 법무부 장관은 정부과천청사 법무부 대회의실에서 “8·15 및 G20 정상회의를 맞아 화해와 포용으로 국력을 한데 모아 더 큰 대한민국으로 나아가는 전기를 마련하고자 했다.”며 사면 취지를 설명했다.이번 사면에는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을 포함한 선거사범이 2375명으로 대다수를 차지했으며, 경제인 등 일반 형사범이 91명, 외국인 불우 수형자 27명이었다. 참여정부 인사 중에는 노건평씨를 비롯해 김원기 전 국회의장, 박정규 전 청와대 민정수석, 정상문 청와대 비서관이 형집행면제 및 감형 혜택을 받았고,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 등 전직 공직자 22명도 포함됐다. 선거 사범은 제4회 지방선거 관련 1962명과 김현미 전 열린우리당 의원, 박종웅 전 한나라당 의원 등 17대 대선사범 284명, 17대 총선사범 34명이 포함됐다. 18대 총선사범 중에는 서청원 전 대표와 김노식 전 친박연대 의원, 김순애(양정례 전 친박연대 의원 모친)씨가 특별감형을 받았다. 최교일 법무부 검찰국장은 “원칙적으로 이명박 대통령 재임 중에 일어난 비리 사건은 사면 대상이 아니지만 이들은 건강상 문제가 있어 감형 대상이 됐다.”고 설명했다. 이학수 전 삼성 부회장을 포함, 김인주 전 삼성 전략기획실 사장, 유상부 전 포스코 회장 등 경제인 18명도 사면 대상에 포함됐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은 대상에서 재외됐다. 이외 고령 및 신체장애, 중병으로 수감생활이 어려운 수형자들도 혜택을 받았다. 그러나 벌금 미납자, 성폭력·조직폭력 등 국민을 불안하게 하는 범죄, 실형을 선고 받은 자치단체장 등은 사면에서 배제됐다. 정부는 새 정부 출범 이전에 징계를 받은 전·현직 공무원 5685명에 대해 징계면제를 했다. 특별사면과 징계면제는 광복절인 15일자로 시행된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독립유적지 92% 사라지거나 훼손…부끄러운 후손

    독립유적지 92% 사라지거나 훼손…부끄러운 후손

    올해는 광복 65주년, 경술국치 100년인 해다. 치욕스러운 역사에 대한 국민적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런 가운데 국내 독립운동 유적지 10곳 가운데 9곳이 정부와 국민의 무관심으로 방치돼 이미 사라졌거나 훼손된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던지고 있다. 이 같은 사실은 13일 국가보훈처 용역의뢰를 받은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소장 김상기)가 전국에 흩어져 있는 수천 곳(추정)의 독립운동 유적지 가운데 우선 보존 가치가 높은 1585곳을 대상으로 벌인 ‘독립운동 유적지 실태조사’에서 밝혀졌다. 조사는 2007년 8월부터 올 1월까지 이뤄졌다. 전국적인 독립운동 유적지 실태조사는 이번이 처음이다. ●현충시설 지정 1616곳중 독립관련 29곳뿐 조사 결과 조사 대상 유적지 가운데 멸실돼 흔적을 찾기 어려운 곳이 무려 868곳(55%)으로 파악됐다. 521곳(33%)의 유적지는 변형됐고, 9곳도 상당 부분 훼손된 것으로 나타났다. 원형 보존유적지는 125곳(8%)에 불과했다. 나머지 1460곳(92%)이 이미 사라졌거나 심하게 훼손·변형돼 유적지의 기능을 잃었다. 이중 62곳은 그나마 복원됐다. 1920년대 후반 좌우익 세력이 합작하여 결성한 대표적인 항일단체인 ‘신간회 창립본부 터’(서울)와 1914년 독립운동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부산에 설립된 ‘백산상회’ 등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독립운동가 ‘손병희 선생 생가’(충북 청원)와 ‘김좌진 장군 생가’(충남 홍성) 등 9곳은 다시 복원돼 교육·관광자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국무위원 겸 군무부장을 역임하면서 한국광복군 창설의 기틀을 마련한 ‘청사 조성환 선생의 생가’(경기 여주)와 충북 제천의 의병 창의지인 ‘자양영당’ 등은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유적지다. ●광복 65년되도록 정부차원 조사 안해 연구소는 “유적지 훼손은 광복 65년이 지나면서도 정부가 단 한 차례도 실태조사를 벌이지 않은 무관심과 방치에서 비롯됐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국내 항일 독립운동 및 6·25 전쟁과 관련된 전국 1616곳의 시설물 등을 현충시설로 지정했다. 이 가운데 독립운동 관련 유적지는 29곳에 불과할 정도다. 연구소 이정은 책임연구위원은 “이번 조사에서 빠진 미확인 유적지와 1차 조사 대상 가운데 심층조사가 필요한 유적지를 정밀조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정훈기자 jhp@seoul.co.kr
  • 李대통령 8·15경축사 키워드 뭐가 될까

    올해 8·15광복절 경축사의 키워드는 ‘공정한 사회구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대통령은 집권 반환점(8월25일)을 앞두고 맞는 8·15 경축사에서 이 같은 내용을 핵심화두로 강조할 것으로 13일 알려졌다. 이 대통령은 먼저 우리 사회가 공정한 ‘게임의 룰’을 확립해 누구나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거듭 강조할 것으로 전해졌다. 계층 간 이동이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는 ‘이동통로’를 넓힘으로써 경제적, 사회적 지위가 낮은 계층도 공정한 경쟁을 통해 상위 계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사회가 ‘공정한 사회’라는 내용도 포함된다. 이 같은 공정한 경쟁을 통해서만 ‘상생’이 가능하며, 공정한 경쟁이 이뤄지는 사회 분위기를 조성하려면 더 많이 가진 계층의 책임이 요구된다는 점도 강조할 것으로 알려졌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과 관련해서는 대기업이 노블레스 오블리주 의식을 갖고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중소기업도 함께 발전하면서 국내 산업계 전체의 상생이 가능하다는 것이 담길 것으로 전해졌다. 남북문제는 경제공동체를 통한 상호교류라는 기본 원칙의 정책 기조를 강조하는 내용이 담기게 된다. 또 광복 65주년을 맞이해 미래지향적인 한·일 관계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도 포함된다. 이 대통령은 또 집권 후반기에는 친서민 정책 기조를 더욱 강화해 경제회복의 온기가 서민층에게까지 널리 퍼지도록 하겠다고 약속할 것으로 알려졌다. 젊은이들에게 변화와 도전의식을 주문하고 자율과 창의를 통해 미래를 개척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할 것으로 전해졌다. 이 대통령은 이 밖에 녹색산업과 같은 미래 성장동력에 대한 투자를 강화하고 원천기술을 확보해야만 중소기업도 세계로 뻗어나갈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점도 밝힌다. 연설은 전체 20분 정도 분량이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8·15 65주년] 광화문 600년 수난사

    광화문은 조선 건국 직후인 1395년(태조 4년)에 건립됐다. 당시 이름은 정도전이 붙인 사정문(四正門)이었다. “사방에서 어진 이가 오가는 정문”이라는 의미의 보통명사였다. 세종대왕이 1425년 경복궁을 중수(重修)하면서 광화문으로 이름을 바꿨다. 서경(書經)에 나오는 ‘광피사표 화급만방(光被四表 化及萬方·빛이 사방을 덮고 교화가 만방에 미친다)’이라는 구절에서 따왔다. 이후 광화문은 이름에 걸맞지 않게 두 번의 전쟁을 겪으며 숱한 수난에 시달렸다.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 때 처음 광화문이 불탔다. 1865년(고종 4년) 흥선대원군은 세도정치로 인해 땅에 떨어진 왕실의 권위를 회복하고자 경복궁 중건에 나섰고 이때 광화문도 재건됐다. 영광도 잠시. 일제는 조선총독부 청사 신축을 위해 광화문 철거를 결정했다. 조선 문화재를 사랑한 일본 미술평론가 야나기 무네요시의 노력으로 가까스로 위기를 모면했지만 결국 1926년 해체, 이전되는 수모를 당했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엔 폭격으로 목조로 된 다락 부분이 소실돼 축대만 남았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68년 아랫부분인 석축은 그대로 두고 윗부분만 철근콘크리트로 복원하는 ‘반쪽 복원’으로 비난을 샀다. 광화문은 1995년 김영삼 당시 대통령이 실시한 경복궁 복원계획의 하나로 목조 구조로 되살아났다. 일제와 1968년 복원을 거치면서 틀어지고 옮겨진 부분도 이때 바로잡혔다. 드디어 2006년 12월4일 ‘광화문 제모습 찾기사업’이 시작됐다. 용마루 취두 철거로 시작된 4년간의 복원 공사를 통해 84년 만에 제자리로 돌아가는 감격을 누리게 됐다.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독립유공자 후손 인정에 3년 걸려”

    “독립유공자 후손 인정에 3년 걸려”

    “말할 수 없이 어려웠습니다. 중국에서는 10년 전 것이면 사망증명이고 뭐고 자료를 찾기가 어렵습니다. 독립유공자 후손이라는 걸 인정 받는 데만 꼬박 3년이 걸렸습니다.” 이기호(65)씨는 국민회 군사령관으로 항일무장투쟁했던 독립운동가 이명순씨의 손자다. 이씨는 12일 법무부가 8·15 65주년을 맞아 정부과천청사 법무부 대회의실에서 개최한 ‘독립유공자 후손 귀화증서 수여식’에서 한국인 국적을 받았다. 이씨는 소감을 묻는 질문에 먼저 한숨부터 쉬었다. 그만큼 그의 국적 취득 과정은 길고 힘겨웠다. ●한국과 중국 수도없이 오고 가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의 삶이 그랬듯 그의 할아버지도 일신을 조국을 위해 바쳤지만 조국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결국 중국에서 숨을 거뒀고, 후손들도 그렇게 중국에 뿌리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이씨 역시 본인의 뜻과는 상관없이 ‘중국 사람’이 되어야 했다. 하지만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라는 자부심도 있었고, 할아버지가 흘린 피로 지킨 땅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평생 지운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귀화는 생각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었다. 그러다 2006년부터 법무부가 독립유공자 후손을 대상으로 특별귀화를 허가하는 정책을 편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씨에게도 기회가 온 것이다. 그에게 허락된 비자 기간은 3개월이었다. 3개월 한국에 머물다가 다시 중국으로 돌아갔고, 거기서 다시 비자를 받아 한국에 오곤 했다. 이 때문에 최근 5년간은 제대로 된 일을 할 수도 없었다. 건설 현장을 오고가며 일용직 노동을 해야했고, 그렇게 번 돈은 고스란히 국적 회복을 위한 비용으로 들어갔다. 그러다 3년 만인 올해 독립유공자 후손임을 인정받으며, 당당하게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했다. 법무부는 이기호씨와 비슷한 생활을 이어왔던 독립유공자 후손 16명에게 대한민국 국적을 부여했다. 국적증서를 받은 16명은 모두 중국 국적을 가진 채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함에 따라 이들은 1년 내에 중국 국적을 포기하는 절차를 거치면 이후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투표권 등 각종 권리와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됐다. ●법무장관 “다양하게 지원할 것” 이 자리에 참석한 이귀남 법무부 장관은 “8·15 65주년을 며칠 앞둔 시점에서 여러분들이 대한민국 국민의 일원이 된 건 너무 당연하고 다행스러운 일.”이라며 “수시로 국적 부여를 위해 노력하겠고, 다양한 지원도 아끼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법무부는 해마다 광복절을 맞아 애국지사의 나라사랑을 기리고, 후손들에게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자긍심을 고취하기 위해 이 행사를 5년째 이어오고 있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순국선열·애국지사 338명 광복절 포상

    순국선열·애국지사 338명 광복절 포상

    순국선열과 애국지사 338명이 정부로부터 포상을 받게 됐다. 1995년 광복 50주년 포상 이후 최대 규모다. 국가보훈처는 11일 제65주년 광복절을 맞아 안중근 선생의 4촌 동생 안홍근 선생과 유찬희 선생 부자 등 338명의 순국선열과 애국지사에게 훈·포장을 수여한다고 밝혔다. 보훈처에 따르면 포상 받는 독립유공자는 건국훈장 218명(독립장 5명, 애국장 108명, 애족장 105명)과 건국포장 41명, 대통령표창 79명 등이다. 이 가운데 여성은 6명이며 생존자는 없다. ●안중근의사 가문 독립유공자 15명 배출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는 안홍근 선생은 1918년 러시아 하바롭스크에서 한인사회당 조직에 참가하고 그해 여름 독립단의 일원으로 러시아 적위군과 함께 연해주 일대에서 일본군과 교전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수청(水淸)촌 일대에서 독립운동 자금도 모았다. 올해 순국 100주년을 맞는 안중근 의사의 가문은 안홍근 선생을 포함해 안명근(1962·독립장), 안춘생(1963·독립장), 최익형(1977·독립장), 안경근(1977·독립장), 안정근(1987·독립장), 안봉생(1990·애국장), 오항선(1990·애국장), 조순옥(1990·애국장), 안원생(1990·애족장), 안공근(1995·독립장), 안낙생(1995·애족장), 조성녀(2008·애족장), 안태순(2009·애족장) 선생 등 모두 15명의 독립유공자를 배출했다.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는 유찬희 선생은 북간도와 연해주 일대에서 활약한 독립운동 지도자이다. 그의 차남 유기문 선생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게 됐다. 그는 1919년부터 1920년까지 중국 지린(吉林)성 옌지(延吉)와 블라디보스토크 등에서 대한독립기성총회, 한인상무총회, 대한국민회 간부로 활동했다. 1923년 이후 북간도와 연해주 일대에서 동성노농공사와 국민위원회 위원 등을 맡아 독립운동을 이끌었다. 또 유기문 선생은 1930년 이후 중국 상하이와 톈진 등에서 남화한인청년연맹과 흑색공포단에 가입해 일제의 주요시설 폭파, 친일파 처단 등 항일투쟁을 전개했다. 앞서 유 선생의 장남 유기석 선생이 2008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아 3부자가 모두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게 됐다. ●‘성서조선’ 김교신·송두용 건국포장 1927년 ‘성서조선’을 창간하고 주필로 활동하면서 일제 식민통치를 비판해 오다 1942년 3월 책 머리말에 ‘조와(弔蛙)’라는 제목의 글을 쓴 것을 계기로 옥고를 치른 김교신·송두용 선생에게도 건국포장이 추서된다. ‘조와’는 일제의 가혹한 지배로 인해 침체된 조선민족의 영혼을 일깨운 내용으로 지목돼 관계자들이 체포되고 잡지의 폐간까지 불러왔다. 일본제국주의의 가혹한 지배로 인해 침체된 조선민족의 영혼을 일깨운 내용으로 지목되어 관계자 여럿이 체포되고 잡지의 폐간까지 불러왔다. 훈·포장과 대통령표창은 광복절 중앙기념식장과 지방자치단체가 주관하는 기념식장에서 유족에게 각각 수여되며, 국외에 거주하는 유족에게는 재외공관을 통해 전수된다. 이명박 대통령은 15일 중앙기념식장에서 안홍근 선생의 손녀 안기숙(69)씨 등 7명에게 직접 건국훈장과 건국포장, 대통령 표창을 수여할 예정이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독립유공자로 포상을 받은 애국지사는 대한민국장 30명, 대통령장 93명, 독립장 806명, 애국장 3669명, 애족장 4547명, 건국포장 866명, 대통령표창 2198명 등 모두 1만 2209명이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독도의 바다·땅·하늘 생생한 사계

    독도의 바다·땅·하늘 생생한 사계

    광복 65주년과 경술국치 100주년을 맞아 독도를 집중 조명한 자연 다큐멘터리가 방송된다. MBC는 광복절인 15일 오전 8시35분 독도의 사계절을 HD 영상으로 담은 ‘독도野’를 방송한다. 제작진은 방송 사상 처음으로 봄, 여름, 가을, 겨울 등 변화무쌍한 독도의 사계절을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 지난 1년여 동안 현지 촬영에 매달렸다. 이번 다큐에서는 그동안 일반에 알려지지 않았던 독도의 바다와 땅, 하늘의 신비롭고 수려한 경관이 50여분 동안 펼쳐질 예정이다. 먼저 각양각색의 해초와 산호가 신비로운 느낌을 자아내는 바닷속에서는 다양한 수중생물들의 치열한 생존 드라마가 펼쳐진다. 망상어는 알이 아니라 치어 상태로 새끼를 낳아 생존확률을 높이고자 애쓰지만, 출산을 마치고 탈진한 나머지 결국 괭이갈매기에게 잡아먹히고 만다. 또 몇 달째 먹지도 자지도 않고 산란한 알들을 돌보다 하얗게 탈색돼 죽어가는 문어의 모성, 머리와 가시만 남기고 순식간에 먹이를 먹어치우는 돌돔의 먹성, 오징어의 물고기 사냥, 보름달이 떠오를 때만 산란하는 뱀거미불가사리의 신비가 베일을 벗는다. 물 밖으로 나오면 독도는 망망대해를 지나는 수많은 새들의 휴식처이자 산란장으로 변한다. 봄에는 괭이갈매기, 여름에는 바다제비, 가을에는 말똥가리 등이 가장 열악한 환경에서 필사적으로 새끼를 낳고 키우고, 먹고 먹히며 끊임없이 새로운 세대를 이어간다. 땅채송화, 초종용, 해국, 닭의장풀 등 식물들은 거센 해풍에 시달리면서도 기필코 꽃을 피워 독도의 계절을 노래한다. 철따라 끊임없이 독도를 아름답게 수놓는 꽃들과 괭이갈매기가 알을 낳는 장면, 참매가 국제보호종 흑비둘기를 사냥하는 생생하고 치열한 생존의 현장이 공개된다. 제작진은 이와 함께 울릉도와 독도, 안용복해산과 이사부해산 등으로 이어지는 드넓은 해저지형을 최초로 촬영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독도가 동해상의 조그만 섬이 아니라 광활한 영역과 생태계를 거느린 생명의 보물창고임을 일깨운다. 제작진은 “그동안 독도를 다룬 다큐멘터리가 대부분 한·일간 영토 문제와 역사적, 정치적 배경을 다루는 데 초점을 맞췄던 반면 독도의 생생한 아름다움을 기록한 자연 다큐는 만나기 쉽지 않았다.”면서 “정통 자연 다큐를 통해 누구나 알고 있을 것 같으면서도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았던 섬인 독도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일깨우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서울플러스] 제19회 통일기원 남산봉화식

    중구(구청장 권한대행 전귀권) 온 국민의 염원인 통일을 기원하기 위해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중구협의회와 함께 14일 남산 팔각정 앞에서 제65주년 광복절 기념 제19회 통일기원 남산봉화식을 개최한다. 참가자들은 평화통일기원문을 낭독한 뒤 대북을 19회 치는 ‘대북고천식’을 치른다. 이어 국회의원, 구의회 의장 등 내빈들이 횃불을 점화해 봉수대로 이동, 평화통일 메시지 낭독과 만세삼창 후 봉수대에 봉화를 피운다. 자치행정과 3396-4555.
  • 다음, 8·15 광복절 맞아 ‘독도 스페셜’ 오픈

    다음, 8·15 광복절 맞아 ‘독도 스페셜’ 오픈

    [서울신문NTN 김수연 기자] 다음커뮤니케이션은 광복절을 맞아 독도의 모든 정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독도 스페셜’페이지를 오픈했다고 11일 밝혔다. ’독도 스페셜’ 페이지는 독도 지형과 주변 해상 모습을 담은 고해상도 360도 파노라마 지도 서비스인 ‘독도 로드뷰’와 항공사진, 독도 관련 뉴스, 포토갤러리, 독도 관련 ‘실시간 검색’ 등 독도에 관한 상세 정보를 제공한다. 특히 다음과 문화재청이 함께 진행한 첫번째 헤리티지뷰인 ‘독도 로드뷰’는 독도가 한국령임을 입증하는 표석인 ‘독도 영토 표석’, 한반도의 모습을 닮은 동도 ‘한반도 바위’, 56년간 국토지킴이 역할을 한 ‘독도 등대’ 등 사람이 접근 가능한 동도와 서도의 거리, 자연, 시설물, 부속 섬의 경관을 장소검색으로 찾아볼 수 있게 했다. 울릉도와 독도의 로드뷰 촬영 과정과 에피소드를 담은 ‘독도 로드뷰 메이킹 필름’(내레이션: 배우 김우형)도 확인할 수 있다. 이와함께 다음은 HD급 고화질 항공사진 포토갤러리를 통해 독도와 내륙 간 소식을 전달하는 우체통, 괭이갈매기, 사철나무 군락지, 천장굴 등 독도의 경관을 웹 및 스마트폰으로도 제공한다. 다음의 정대중 로컬서비스 팀장은 “광복 65주년을 맞아 ‘독도 스페셜’을 제공함으로써 독도의 소중한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기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국내 최초로 360도 파노라마 지도 서비스인 로드뷰를 서비스한 다음은 독도 로드뷰를 시작으로 대한민국의 모든 영토와 문화재를 웹과 모바일 지도 서비스에 담아 이용자들이 생생하게 경험하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다음은 오는 9월 15일까지 독도 스페셜 페이지 오픈 기념 이벤트를 진행한다. 위치기반 SNS인 ‘플레이스’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독도는 우리 땅’ 브로치를 증정하는 이벤트로 ’플레이스’에서 독도 페이지에 응원메시지를 남기면 된다. 김수연 기자 newsyouth@seoulntn.com
  • 11번가, 광복 65주년 독립유공자 후손 지원

    11번가, 광복 65주년 독립유공자 후손 지원

    [서울신문NTN 이규하 기자] 11번가는 광복 65주년을 맞이해 순국선열의 애국심을 기리고 그 후손을 두루 살피고자 독립유공자 후손을 지원하는 사회공헌 캠페인을 시작한다고 10일 밝혔다. 11번가는 국가보훈처와 비영리재단인 나라사랑재단과 함께 해외에서 거주하다 영구 귀국한 독립유공자들의 손자녀를 매월 선정하는 등 연말까지 3천만 원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이번 캠페인은 고객들에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시키기 위해 사회공헌 페이지를 별도로 제작했다. 이 페이지는 응원댓글 남기기, 11번가 포인트를 활용한 모금 등 다양한 후원 활동을 위한 것. 또한 재정적 지원 이외에도 오픈마켓 창업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한다는 계획이다. 정낙균 본부장은 “독립유공자들의 애국심과 숭고한 희생정신의 뜻을 이어받고자 이번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기획했다.”며 “나라를 위해 헌신한 독립유공자 후손들을 위한 다양한 지원프로그램과 함께 지속적이고 차별화된 사회공헌 활동을 펼치겠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사회공헌 캠페인 추진을 위해 오는 11일 국가보훈처, 나라사랑 재단과 MOU를 체결할 예정이며 오는 15일에는 독립유공자 후손 30여 명을 초청해 선물로 모시한복을 증정하고 조촐한 감사행사를 가진다.이규하 기자 judi@seoulnt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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