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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린세상] 대한민국 안보 강화와 우주강국으로 가는 길/최기혁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달탐사연구단장

    [열린세상] 대한민국 안보 강화와 우주강국으로 가는 길/최기혁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달탐사연구단장

    지난 6월은 현충일과 6·25전쟁 65주년 기념일이 있었던 호국 안보의 달이었다. 대한민국은 해방과 정부 수립 후 국가로서 걸음마를 떼기도 전에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막대한 희생을 치르면서 적의 침략을 물리치고 신생 대한민국은 유지될 수 있었지만 한민족이 겪은 전대미문의 아픔은 아직도 치유 중에 있다. 대한민국은 6·25전쟁에서 국가를 구하고 1970~80년대 산업화를 일군 아버지 세대의 피와 땀을 바탕으로 10대 경제대국이 됐다. 또한 자주국방 정책으로 다양한 고성능의 현대적인 무기 체계가 국산화되고 있고 한·미 안보동맹을 통해 국가 안보의 바탕이 마련됐다. 그러나 대한민국이 처한 안보 상황은 그리 녹녹하지만은 않다. 북한은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 같은 대량파괴 무기를 가지고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중국은 주요2개국(G2)으로 부상하면서 아시아 전역에서 위세를 과시하고 있다. 일본은 전쟁할 수 있는 보통국가를 외치면서 중국 견제를 핑계로 군비 확장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이에 대한 우리의 대응은 무엇인가. 적극적인 우주 개발과 활용이 현실적인 방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미국은 2001년에 발간된 미국 국가안보 우주 관리 및 조직 평가위원회 보고서(일명 럼즈펠드 보고서)에서 “우주 공간은 하늘, 육지, 바다와 똑같이 중요한 활동 공간이며 우주 공간은 상업적, 군사적, 그리고 정보 수집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밝히고 있다. 21세기에서는 우주 능력이 안보 능력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한반도 비핵화 정책을 준수해 핵무기를 개발하지 않고 있으며 한·미 미사일 협정에 의해 사거리 800㎞ 이상 미사일은 개발하지 않고 있다. 항공우주연구원을 중심으로 1990년대 중반부터 저궤도 아리랑 위성과 정지궤도 위성 개발에 성공했다. 2013년 나로호 발사 성공과 이를 바탕으로 국산 발사체인 한국형발사체 개발이 한창 진행 중에 있다. 2020년쯤에는 완성될 예정이다. 우주 선진국들은 적극적으로 우주탐사에 나서고 있다. 가장 가까운 천체인 달에 대한 탐사는 우주탐사의 첫 번째 관문이 되고 있다. 달에는 미래 지구에서 고갈될 귀중한 자원이 많이 매장돼 있다. 달은 지구와 우주를 관측하는 천혜의 장소다. 미국은 1960~70년대에 아폴로 계획을 통해 우주인을 보냈지만 2000년대 들어서도 4~5년에 한 번씩 탐사선을 보내고 있다. 아시아 국가들인 중국, 인도와 일본도 경쟁적으로 2007년과 2008년에 궤도선을 보냈다. 착륙선의 경우 중국은 이미 2013년에 보냈다. 일본과 인도도 2017년, 2018년에 보낼 계획이다. 아시아 주변국들에 비해 우주 기술이 너무 뒤처지면 안 되기 때문에 우리가 달 탐사를 서둘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달 탐사를 통해 심우주통신·항법, 추진, 유도제어, 과학탑재체, 극한환경소재 기술 등 우주 기술 전반에 걸쳐 진일보를 가져올 수 있다. 탐사선이 달 궤도에 안착하기 위해서는 38만㎞를 날아가 반경 10㎞의 원안에 명중하는 정확도를 가져야 한다. 이는 서울에서 공을 던져 부산에 있는 반경 10m의 원안에 집어넣을 수 있는 정확도를 의미한다. 이 기술은 국산 유도무기 체계의 정확도를 향상시킬 수 있다. 심우주지상국의 안테나는 출력 1㎾의 엑스밴드 레이더로 탐사선 추적 외에도 적국의 위성과 우주 파편 감시에도 쓰일 수 있어 국가 우주자산 보호에도 기여할 수 있다. 또한 달 표면의 환경·자원 탐사를 위한 중성미자, 감마선, 엑스선 분광기는 북한의 핵 활동을 감시하는 센서로도 활용할 수 있다. 달 표면 탐사로버 기술은 전쟁터나 핵발전소 같은 위험 지역을 조사하는 데 쓰일 수 있고, 원자력 전지는 전방의 무인 감시장비와 적 잠수함을 감시하는 해저 소나의 전력원으로 쓰일 수 있다. 다시는 민족적 비극을 겪지 않기 위해서는 변화하는 동북아시아 안보 상황에 효과적으로 적응하는 안보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북한의 대량파괴 무기에 맞서고 주변국의 군사력 강화 움직임에 대응하는 방안 중 하나가 우리의 우주개발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달 탐사는 그러한 국가적 우주기술 개발의 모멘텀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국민을 안심시키고 국가를 위해 몸을 바친 호국 영령들에게 후손으로서 면목이 서는 일일 것이다.
  • “한국전쟁은 잊힌 전쟁 아니라 고귀한 전쟁”

    “한국전쟁은 잊힌 전쟁 아니라 고귀한 전쟁”

    “한국전쟁은 잊힌 전쟁이 아니라 고귀한 전쟁입니다.” 주미 한국대사관은 25일(현지시간) 워싱턴DC 한국전 참전 기념공원에서 21개 참전·지원국 대사와 역대 한·미연합사령관, 국방부·합참·각군 대표, 참전용사 등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6·25전쟁 65주년 기념행사를 열었다. 이들은 희생된 참전용사들을 위해 헌화했다. 안호영 대사는 기념사에서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라는 말의 무게감을 느낀다”며 “수십만명의 젊은이들이 한국전에 참전해 숭고한 희생을 치르지 않았다면 지난 65년간 한국이 경제발전과 함께 민주적 정치체제를 만들고 국제사회에서 입지를 구축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데이비드 시어 미 국방부 아·태 차관보는 “한국전쟁은 오랫동안 잊힌 전쟁으로 여겨졌다”며 “그러나 우리는 절대 잊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시어 차관보는 “참전용사들의 숭고한 희생 덕분에 한국은 동북아 평화와 안정의 린치핀(핵심축)으로 성장했다”며 “한·미는 북한의 위협을 억지하기 위한 연합방위태세를 지속적으로 강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댄 설리번(공화) 상원의원은 “한국전을 잊힌 전쟁이라고 부르는 것은 용사들의 숭고한 희생을 무시하는 것”이라며 “한국전쟁 참전 65주년을 맞아 나는 ‘고귀한 전쟁’이라고 부르고 싶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는 최근 암 투병 사실을 공개한 래리 호건 메릴랜드 주지사의 부인 유미 호건 여사도 참석했다.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 北 “美, 제2 한국전쟁 계획 실전 돌입”

    북한이 25일 6·25 전쟁 65주년을 맞아 “미국의 제2의 조선전쟁 계획이 실전단계에 들어갔다”며 반미투쟁을 강화하겠다고 선언했다. 북한은 유엔 북한인권사무소의 서울 개소도 거론하며 “말로 할 때는 지났다”고 위협했다. 이에 군 당국은 북한의 무력 도발 가능성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북한 최고권력기구인 국방위원회는 성명을 통해 “미국의 제2 조선전쟁 계획은 이미 실전단계에 진입한 상태”라면서 “우리의 전략 대상물을 타격하기 위한 ‘외과수술식 타격계획’으로부터 공화국 북반부의 전 지역을 강점하기 위한 여러 작전계획에 이르는 전면전쟁 각본이 오래전에 꾸며졌다”고 주장했다. 국방위는 “우리 군대와 인민의 거족적 반미 투쟁이 새로운 높은 단계에 진입한다는 것을 온 세계에 공표한다”고 선언했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도 이날 성명에서 “거듭되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괴뢰패당이 인권사무소라는 화근을 남조선 땅에 끌어들여 북남 관계는 더이상 만회할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닫게 됐다”면서 “이제는 말로 할 때는 지나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위협했다. 북한의 입장은 지난 15일 ‘공화국 정부 성명’을 통해 남북 당국 간 대화를 시사했지만 5·24 대북 제재 조치 해제 등 원하는 성과를 얻지 못했고 국제사회의 인권 공세만 거세진 데 대한 불만으로 풀이된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현 남북 관계와 북·미 관계에 대한 불만을 강도 높게 표현한 것으로 남측이 적극적 행동을 보이지 않을 경우 군사적 무력시위도 할 수 있다는 대남 압박”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북한이 지난달부터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 바다에 1m 이하 크기의 해상 부표 10여개를 설치한 것으로 확인돼 군과 정보 당국이 의도를 분석하고 있다. 합동참모본부 관계자는 “북한이 NLL 일대를 정확히 관측할 수 있는 장비가 부족해 NLL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 부표를 설치했을 수 있다”면서 “NLL 인근에서 불법 조업을 하는 중국 어선을 단속하는 기준점으로 삼고 우리 함정의 대비 태세를 떠보려는 의도일 수 있으나 NLL을 인정한다는 뜻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열린세상] 메르스 사태가 한국사회에 던진 과제/김용환 서울대 초빙교수·전 문화관광부 차관

    [열린세상] 메르스 사태가 한국사회에 던진 과제/김용환 서울대 초빙교수·전 문화관광부 차관

    어제는 6·25전쟁이 발발한 지 65주년이 되는 날이다. 전쟁의 참상은 국가의 위기관리 능력이 얼마나 중요하며 국민들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 줬다. 지난 65년간 대한민국은 다소 부침은 있었지만 순국선열들의 고귀한 희생정신이 욕되지 않을 정도의 국가 발전을 이뤄 냈다. 6·25의 잿더미 속에서도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한 유일한 신생국가,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로 거듭난 나라, 한류를 꽃피우는 문화강국, 150만 외국인이 함께 사는 희망 사회로 나아가고 있었다. 우리는 얼마 전까지 이런 모습이 대한민국의 참모습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는 불만, 불신, 불안이라는 3불의 격랑 속에 외부 충격에 쉽게 좌초될 것 같은 난파선의 형국이다. 한국 사회에 대한 자긍심, 나보다 남을 먼저 배려하는 시민의식, 더불어 사는 공동체 정신은 실종되고 있다. 대한민국이라는 운명공동체 자체를 부정하는 듯한 각자도생(各自圖生)이란 단어가 난무하는 참담한 현실이다. 세월호에 이은 국민들의 3불 상처가 쉽게 치유될지 의문이다. 이번 메르스 사태는 그동안 숨겨져 있던 한국 사회의 민낯을 있는 그대로 보여 줌으로써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다음의 과제들을 남겼다. 첫째, 정부 불신은 국민들이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합리적으로 대응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 막연한 불안감은 공포심을 불러일으키고 정부 불신을 증폭시킨다. 특히 위기 초기에 어떻게 정부가 대응하느냐는 위기극복 성패와 위기 전개 과정에서 결정적 영향을 준다. 위기 발생 초기에 어떻게 하면 국민 신뢰를 높이고 국민 불안을 최소화할 수 있는지에 대한 실증적 연구와 검토가 이뤄져야 한다. 둘째, 글로벌 시대에 국가 위험은 안보뿐만 아니라 경제·사회 전반에 상존한다. 최근 발생하는 국가 위험은 여러 분야가 얽히고설킨 복합계 양상을 띠고 있고 짧은 기간에 광범위한 지역에 전파되는 강력한 전염성을 갖고 있다. 따라서 위험 예방이 최선이지만 예방에는 한계가 있다. 이런 상황하에서 위험 발생만을 문제 삼으면 위기 대응보다는 축소, 은폐, 왜곡의 유혹에 빠지기 십상이다. 위기 발생의 불가피성에 대해 어느 정도의 사회적 관용성은 제고될 필요가 있다. 셋째, 다양한 형태의 복합적 위기에 대응하려면 역할과 책임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사전에 마련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는 안보위험 외에 경제의 대외 의존도가 높고 인구 밀도도 높다 보니 다양한 재난 위험, 경제·사회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국가 위험의 범주를 재검토해 안보 분야 외에 파급효과가 크고 복합적이며 위험한 사안은 사전에 국가 위험으로 명확히 분류하고, 위험 발생 즉시 청와대가 책임지고 초기 단계부터 개입하는 컨트롤타워로서의 역할이 위험관리 성패의 관건이 된다. 넷째, 조직 확대, 예산 확충, 매뉴얼 마련 등 외형적인 개혁을 넘어 부처 간 실질적 협업이 이뤄져야 한다. 정부가 진행 중인 정부3.0에 위기관리 협업 구축을 중점과제로 추가해 협업을 일상화하는 방안에 대한 검토가 있어야 한다. 안전한국훈련, 을지훈련 등 기존 국가 위기훈련을 지역 특성과 결합된 맞춤형 훈련으로 전환하고 지역별 반복 순회 훈련을 강화해 전국 단위의 획일적·형식적 훈련을 내실화할 필요가 있다. 다섯째, 언론과의 협력 관계 설정이다. 우리나라에는 인터넷신문을 포함해 1만 4000개가 넘는 언론매체가 취재 경쟁 중이다. 국민의 알권리를 침해하지 않으면서도 오보와 과장 보도를 줄일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 국내 거주 외국인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외신을 통한 국가 이미지 훼손이나 과장 보도를 줄일 수 있는 방안도 강구해야 한다. 끝으로 민간 전문가, 시민단체 등 사회적 역량이 제대로 활용되는 동시에 원활한 협조가 이뤄질 수 있는 거버넌스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훼손된 공동체 의식과 시민정신을 복원하고 정부 불신을 불식하는 문제 또한 어렵지만 해결해야 하는 시대적 과제가 되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은 위기 시마다 보여 줬던 국민들의 자랑스럽고 단합된 저력이 절실히 필요하다. 위기를 피하지 않고 기회로 승화시키는 위험지성이 우리 사회 전역에 만개해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사태로 촉발된 위기가 더 큰 대한민국으로 발전하는 기회가 되길 기원한다.
  • ‘6.25 65주년’ 6.25 전쟁 사진 공개, 상상이상 충격적인 장면 ‘뭉클해’

    ‘6.25 65주년’ 6.25 전쟁 사진 공개, 상상이상 충격적인 장면 ‘뭉클해’

    ‘6.25 65주년’ 6.25 전쟁 사진 공개 6.25 전쟁 사진 공개가 화제다. 24일 6.25 전쟁 65주년을 맞아 행정자치부 국가기록원이 6.25전쟁 관련 사진을 공개했다. 국가기록원은 지난 2013년부터 미국 국립기록관리청에서 6.25전쟁 관련 사진 7000여 점을 수집·정리 중이다. 공개된 사진은 그 중 일부를 국가기록원이 홈페이지를 통해 선보였다. 지난 1950년 6월25일 전쟁 발발 시점부터 1951년 11월까지 가장 치열했던 전쟁 초기 기록사진을 날짜별로 정리했다. 한편 6·25 전쟁은 1950년 6월25일 새벽 북한 공산군이 남북군사분계선이던 38선을 넘어 불법 남침함으로 시작해 1953년 7월27일 휴전 협정을 맺기까지 3년 동안 벌어진 전쟁이다. 1945년 2월의 얄타회담에서 미국과 소련은 한반도의 38도선을 경계로 남한은 미국이, 북한은 소련군이 각각 일본군의 무장해제를 담당하기로 결정했다. 8월 15일 일본이 무조건 항복하자, 이 결정에 따라 38도선 이남에서는 미군정이, 이북에서는 소군정이 시작되었다. 한반도 내의 갈등과 대립이 남과 북으로 나뉘어 지역적 분할 양상을 보이는 상황에서 1948년 8월 15일 남한에 먼저 단독정부가 수립되었고 이어 9월 9일, 북한에도 단독정부가 수립됐다. 남한에서 단독정부 반대운동이 좌익 주도의 폭동으로 치닫는 가운데, 북한의 김일성은 소련과 중국의 동의를 얻어 정부 수립을 착실히 준비했던 것이다. ‘6.25 65주년’ 6.25 전쟁 사진 공개, ‘6.25 65주년’ 6.25 전쟁 사진 공개, ‘6.25 65주년’ 6.25 전쟁 사진 공개, ‘6.25 65주년’ 6.25 전쟁 사진 공개 사진 = 국가기록원 (6.25 전쟁 사진 공개) 뉴스팀 seoulen@seoul.co.kr
  • 65년 전 한반도의 비극… 멈추지 않는 노병의 눈물

    65년 전 한반도의 비극… 멈추지 않는 노병의 눈물

    25일 서울 송파구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6·25전쟁 65주년 행사에 참석한 한 참전용사가 태극기를 들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국가보훈처가 주관한 이날 행사에는 6·25 참전용사와 참전국 주한 외교사절, 정부 주요 인사, 시민, 군 장병 등 3000여명이 참석했다. 박지환 기자 popocar@seoul.co.kr
  • “정부가 병든 호국영웅 외면하면 안 됩니다”

    “정부가 병든 호국영웅 외면하면 안 됩니다”

    “6·25 참전 용사를 방문했더니 장마에 천장이 무너져 내리고 벽지가 너덜너덜해요. 그런데도 어르신은 오랜 병마로 침대에서 꿈쩍 못하더라고요. 치매에 걸린 어르신은 대통령한테 받은 호국영웅기장을 목에 걸고서 그것만 어루만져요. 정부가 이런 참전 용사들을 외면하면 안 됩니다” 고진광(60) 인간성회복추진운동협의회(인추협) 대표는 6·25 65주년인 25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정부의 참전 용사 홀대가 도를 넘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인추협은 6·25 참전 유공자 지원센터를 설립해 국군포로 귀환사업과 한국전 참전 장병 유해를 발굴하는 사업을 해오고 있다. 고 대표는 무엇보다 참전 용사들에 대한 재정 지원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그는 “현재 참전 용사는 전국적으로 18만명 정도 생존해 있고 해마다 2만명이 숨진다”며 “마지막 가는 길을 최소한의 존엄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건 국가 의무”라고 강조했다. 2012년 6·25 참전 용사들에게 매달 최저 생계비의 2분의1을 지급한다는 내용의 참전 유공자 예우 및 단체설립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국회 상임위에도 상정되지 못한 채 3년째 표류하고 있다. 인추협은 2011년부터 북한에 있는 것으로 드러난 미군 7사단 소속 한국인 포로 이동환(92)씨 송환에 총력전을 펴고 있다. 고 대표는 2011년 6월 이씨의 생사를 처음 확인한 뒤 같은 해 12월 이씨를 압록강 인근까지 탈북 시도를 했지만 무산됐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고 대표는 “2013년 박근혜 대통령의 첫 방미 전부터 이씨 송환을 버락 오바마 미국 정부와 공조해 달라고 청와대에 요청했지만 지금까지도 아무 반응도 없다”고 토로했다. 그는 최근 미국을 방문해 직접 오바마 정부에 이씨 송환 노력을 촉구하는 서한을 전달했다. 고 대표는 “그동안 탈북해 귀환한 국군포로 80명 모두 자력 혹은 민간단체의 도움으로 가능했다”며 “탈북한 국군포로에게 우리 정부가 약 10억원을 보상금으로 지급하고 있지만 송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노력은 찾아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고 대표는 독일 분단 과정에서 실행된 것과 유사한 ‘프라이카우프’ 방식, 즉 북한에 현물을 주고 국군 포로들을 송환하는 프로젝트를 현실화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오늘 6·25 65주년] “희생영웅 기려야 나라도 발전” 朴대통령, 참전유공자 위로

    박근혜 대통령은 24일 ‘6·25전쟁 제65주년 기념 국군 및 유엔군 참전유공자 위로연’에서 “우리나라가 역경과 시련을 딛고 일어나 경제성장과 민주주의 발전을 동시에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여러분들의 애국심과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며 “국가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의 애국심을 역사의 거울로 삼아 기록하고, 국민이 그 영웅들을 마음속 깊이 기리는 것이야말로 나라 발전의 토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참전용사 여러분의 헌신에 보답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참전유공자로 미처 등록하지 못한 분들을 직접 찾아내 등록하고, 보상과 예우를 해드리는 사업을 펼쳐 오고 있다”며 “앞으로도 정부는 아직 역사 속에 묻혀 있는 마지막 한 분의 영웅을 찾아내는 그날까지 노력을 멈추지 않을 것이며, 사회적으로 참전유공자를 우대하는 문화가 확산되고 그 공적이 다음 세대에게 온전히 전해지도록 더욱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행사에는 6·25 참전 원로 장성과 참전 유공자, 6·25 관련 보훈단체 회장 및 회원, 유엔군 참전 9개국의 주한 외교단, 한·미 양국의 주요 지휘관 등 480여명이 참석했다. 이지운 기자 jj@seoul.co.kr
  • [오늘 6·25 65주년] “이름만 덩그러니 있는 위패 보면 한없이 눈물만”

    [오늘 6·25 65주년] “이름만 덩그러니 있는 위패 보면 한없이 눈물만”

    국군 1사단 15연대 10중대 김연기 이등상사. 그는 1953년 4월 어느 날 전북 정읍의 고향집으로 ‘총알이 지나가서 개머리판이 하루에도 몇 번씩 깨지고 있다. 내가 사람을 쏴서 죽였다. 하루에도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기는지 모른다’는 내용의 편지 한 통을 마지막으로 60년 넘게 귀환하지 않고 있다. 세 살 터울의 친구 같았던 삼촌 김 상사의 유해를 찾아 달라고 국방부에 호소해 온 조카 김진옥(82)씨는 24일 “6월이 되면 생각이 더 나서 현충원에 혼자 가서 울다 오곤 한다”며 “유해라도 현충원에 모시고 싶다”고 말했다. 김 상사는 유해가 수습되지 못한 탓에 이름 석자가 적힌 위패만 국립서울현충원에 남아 있다. 김 상사는 6·25전쟁의 포화가 정전협정으로 멈추기 꼭 한 달 전인 1953년 6월 27일 경기도 연천 흑석리에서 전사했다. 국군 1사단과 중공군 1사단·7사단이 고지 하나를 더 차지하기 위해 전투들이 이어졌다. 김진옥씨는 삼촌의 유해가 당시 ‘퀸고지’로 불린 250고지 인근에 묻혀 있을 것으로 굳게 믿고 있다. 비무장지대(DMZ) 남방한계선(군사분계선에서 남쪽 2㎞ 거리에 동서로 그은 선)에서 북쪽으로 300m 지점인 흑석리 지역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접근이 불가능한 DMZ 지역이다 보니 전사자 발굴은 60년 넘게 꿈으로만 남아 있다. 현재 DMZ에 있는 미발굴 유해는 1만여구로 추산된다. “정읍 깡촌에서 국민학교를 같이 다녔으니까… 매일 20리를 같이 걸었으니 인연이 깊지.” 그런 삼촌은 전사통지서 한 장으로 세상과 단절됐다. “살기 어려울 때라 사진도 없이 그냥 기다리는 거여. 근데 어느 날 죽었다고 종이가 와. 그럼 시체라도 보내줘야 하는데 종이만 왔어, 종이만.” 그날 이후 죽은 아들의 어머니는 막둥이가 입던 모시옷을 품고 매일 통곡하다 3년 후 눈을 감았다. “나라에서 유해 찾아준다고 들었거든. 그런데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는 건지….” 80대가 된 조카가 맞은 6월 25일도 어느덧 62회째가 됐다. 세월만 무심하다. 국방부유해발굴감식단에 따르면 2000~2014년 12월 현재까지 8400여구의 국군 유해가 발굴됐고 그중 107구는 가족의 품으로 귀환했다. 감식단 관계자는 “비무장지대에만 국군 전사자가 1만명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북한과의 협조 문제에 부딪혀 발굴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글 사진 조용철 기자 cyc0305@seoul.co.kr
  • [오늘 6·25 65주년] 반세기 만에… 노병, 다시 날아오르다

    [오늘 6·25 65주년] 반세기 만에… 노병, 다시 날아오르다

    6·25전쟁 당시 100회 이상 출격한 전투기 조종사 출신 노병이 반세기 만에 다시 조종간을 잡았다. 그 주인공은 김두만(88) 전 공군참모총장(예비역 대장). 공군은 김 전 총장이 지난 23일 강원 원주 기지에서 후배 조종사 한성우(37) 소령과 함께 국산 경공격기 FA50을 타고 50여분간 충북, 경기 일대 상공을 비행했다고 24일 밝혔다. 앞서 김 전 총장은 지난 5월 12일 충북 청주 항공우주의료원에서 젊은이들도 힘들어하는 중력가속도 내성훈련(G 테스트)을 무사히 마쳤다. 김 전 총장은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10월 미국제 F51 프로펠러 전투기를 타고 첫 출격한 이래 1952년 1월 11일 공군 최초로 100회 출격 기록을 세웠다. 6·25 전쟁 동안 모두 102회 출격한 그는 이후 전투비행단장, 작전사령관을 거쳐 1971년 참모총장을 마지막으로 군을 떠났다. 이날 비행장구를 착용하고 FA50기 후방석에 탑승한 김 전 총장은 잠시 지난날을 회상했다. 1952년 1월 12일 당시 25세의 편대장(소령)이던 김 전 총장은 평양 동쪽 10㎞ 지점의 승호리 철교를 파괴하기 위해 F51 전투기 6대를 이끌고 출격했다. 북한군의 주요 보급로인 승호리 철교는 앞서 미국 공군이 폭격을 시도했으나 북한의 대공포 공격 때문에 실패했던 곳이었다. 한국 공군은 이날 첫 공격에 실패했으나 사흘 뒤인 1월 15일 북한군의 치열한 대공포화망을 뚫고 450m 고도까지 급강하해 폭탄을 투하하고 철교를 파괴했다. 당시 미 공군은 정찰기가 승호리 철교의 사진을 찍어 올 때까지 한국군의 작전 성공을 믿지 않았다. 1949년 10월 창설된 한국 공군은 1950년 6·25 개전 초기 당시 20대의 연락기만을 보유했고 전투기는 1대도 없었다. 같은 해 7월 미국으로부터 F51 전투기 10대를 지원받아 전투에 참가할 수 있었다. 공군은 현재 F15K 전투기와 국산 FA50 경공격기를 비롯해 750여대의 항공기를 보유하고 있다. 김 전 총장은 “당시에 비해 놀라울 정도로 현대화된 비행단 시설과 전투기가 자랑스럽다”면서 “최고의 실력을 구비한 정예 조종사가 될 수 있도록 자기 계발에 힘써 달라”고 후배 조종사들에게 당부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6.25 65주년’ 6.25 전쟁 사진 공개, 사진보니?

    ‘6.25 65주년’ 6.25 전쟁 사진 공개, 사진보니?

    6.25 전쟁 사진 공개가 화제다. 24일 6.25 전쟁 65주년을 맞아 행정자치부 국가기록원이 6.25전쟁 관련 사진을 공개했다. 국가기록원은 지난 2013년부터 미국 국립기록관리청에서 6.25전쟁 관련 사진 7000여 점을 수집·정리 중이다. 공개된 사진은 그 중 일부를 국가기록원이 홈페이지를 통해 선보였다. 지난 1950년 6월25일 전쟁 발발 시점부터 1951년 11월까지 가장 치열했던 전쟁 초기 기록사진을 날짜별로 정리했다. 뉴스팀 seoulen@seoul.co.kr
  • ‘6.25 65주년’ 6.25 전쟁 사진 공개, 어떤 사진이길래?

    ‘6.25 65주년’ 6.25 전쟁 사진 공개, 어떤 사진이길래?

    6.25 전쟁 사진 공개가 화제다. 24일 6.25 전쟁 65주년을 맞아 행정자치부 국가기록원이 6.25전쟁 관련 사진을 공개했다. 국가기록원은 지난 2013년부터 미국 국립기록관리청에서 6.25전쟁 관련 사진 7000여 점을 수집·정리 중이다. 공개된 사진은 그 중 일부를 국가기록원이 홈페이지를 통해 선보였다. 지난 1950년 6월25일 전쟁 발발 시점부터 1951년 11월까지 가장 치열했던 전쟁 초기 기록사진을 날짜별로 정리했다. 한편 6·25 전쟁은 1950년 6월25일 새벽 북한 공산군이 남북군사분계선이던 38선을 넘어 불법 남침함으로 시작해 1953년 7월27일 휴전 협정을 맺기까지 3년 동안 벌어진 전쟁이다. 뉴스팀 seoulen@seoul.co.kr
  • 6·25전쟁 승리 재현한 육군 5군단

    6·25전쟁 승리 재현한 육군 5군단

    육군 5군단 장병들이 6·25전쟁 65주년을 하루 앞둔 24일 강원 철원군 문혜리 사격장에서 105㎜ 견인포 사격훈련에 앞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날 훈련은 6·25전쟁 당시 주요 전투에서 승리한 5군단 예하 3, 6, 8사단의 전통을 기억하고 계승하자는 취지로 기획됐다. 철원 손형준 기자 boltagoo@seoul.co.kr
  • 6.25 전쟁 사진 공개, 눈물 나와..어떤 사진이길래?

    6.25 전쟁 사진 공개, 눈물 나와..어떤 사진이길래?

    6.25 전쟁 사진 공개가 화제다. 24일 6.25 전쟁 65주년을 맞아 행정자치부 국가기록원이 6.25전쟁 관련 사진을 공개했다. 국가기록원은 지난 2013년부터 미국 국립기록관리청에서 6.25전쟁 관련 사진 7000여 점을 수집·정리 중이다. 공개된 사진은 그 중 일부를 국가기록원이 홈페이지를 통해 선보였다. 지난 1950년 6월25일 전쟁 발발 시점부터 1951년 11월까지 가장 치열했던 전쟁 초기 기록사진을 날짜별로 정리했다. 뉴스팀 seoulen@seoul.co.kr
  • [오늘 6·25 65주년] “전쟁자료 디지털화 보급…미 교과서엔 없는 한국戰 학교에서 꼭 가르쳐야죠”

    [오늘 6·25 65주년] “전쟁자료 디지털화 보급…미 교과서엔 없는 한국戰 학교에서 꼭 가르쳐야죠”

    “미국 교과서에 한국전쟁은 없습니다. 그게 참전용사 인터뷰 등을 담은 디지털 교과서를 만들려는 이유입니다.” 미국에서 한국전쟁은 ‘잊혀진 전쟁’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미국 중·고교에서 한국전쟁은 거의 다루지 않는 까닭이다. 이런 상황에 반기를 든 서맨사 프레이저(32) 조지아주 우드스톡 리버리지고교 역사 교사는 미국 교사들이 한국전쟁을 제대로 가르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관련 자료를 디지털화해 보급에 나섰다. 그는 23일(현지시간)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전쟁유업재단의 자료를 활용해 교사들에게 커리큘럼 등을 제공하는 ‘한국전쟁 디지털 히스토리 프로젝트’의 웹사이트(www.kwdhproject.org)를 개설했다”고 밝혔다. →프로젝트 참여 계기와 의미는. -한국전 참전용사인 할아버지의 권유로 유업재단 활동에 참여해 미 교과서의 한국전쟁 분석 작업을 하고 있었다. 이런 중에 이 프로젝트의 소장을 맡아 최근 웹사이트를 완성했다. 웹사이트는 유업재단이 보훈처 후원으로 2011년부터 축적한 600여명의 참전용사 인터뷰와 그들이 소장한 사진과 편지, 일기, 문서 등 역사 자료 5000여점을 활용해 교사들에게 필요한 커리큘럼 등을 제공한다. 내가 할아버지로부터 생생하게 들은 한국전쟁의 교훈과 참전용사들에 대한 존경심을 모든 학생들이 배울 수 있도록 돕는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생각한다. →한국전쟁에 대한 평가와 미 교육에서 한국전쟁의 비중은. -미국이 한국전쟁에 개입한 것이 궁극적으로 한국을 지켰으며 오늘날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중대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볼 때 한국전쟁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다른 교사들과 대화할 때 그들이 “우리는 한국전쟁을 가르치지 않는다”고 말할 때 슬픔을 느낀다. →프로젝트를 접한 학생들의 반응은. -주변에서 쉽사리 만날 수 있는 참전용사 할아버지들의 인터뷰와 사진 자료 등을 접하면서 한국전쟁을 생생하게 체험한다는 점에서 학생들의 반응은 폭발적이다. 이들이 직접 참전용사를 인터뷰해서 웹사이트에 올리기도 하고, 관련 포스터 전시회 등도 개최한다. 한국전쟁의 생생한 기록이 교실로 고스란히 옮겨와 살아 있는 학습이 이뤄지고 있다. →프로젝트를 통한 앞으로의 계획은. -웹사이트에 더 많은 자료 등을 축적함으로써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디지털 교과서 기능을 하도록 할 계획이다. 또 휴대전화 애플리케이션(앱)을 만드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학생들은 웹사이트와 디지털 교과서를 통해 한국전쟁에 대한 이해도를 더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 6.25 전쟁 사진 공개, 어떤 모습 담겼나 보니..안타까워

    6.25 전쟁 사진 공개, 어떤 모습 담겼나 보니..안타까워

    6.25 전쟁 사진 공개가 화제다. 24일 6.25 전쟁 65주년을 맞아 행정자치부 국가기록원이 6.25전쟁 관련 사진을 공개했다. 국가기록원은 지난 2013년부터 미국 국립기록관리청에서 6.25전쟁 관련 사진 7000여 점을 수집·정리 중이다. 공개된 사진은 그 중 일부를 국가기록원이 홈페이지를 통해 선보였다. 지난 1950년 6월25일 전쟁 발발 시점부터 1951년 11월까지 가장 치열했던 전쟁 초기 기록사진을 날짜별로 정리했다. 한편 6·25 전쟁은 1950년 6월25일 새벽 북한 공산군이 남북군사분계선이던 38선을 넘어 불법 남침함으로 시작해 1953년 7월27일 휴전 협정을 맺기까지 3년 동안 벌어진 전쟁이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6.25 65주년’ 6.25 전쟁 사진 공개, 어떤 모습 담겼나?

    ‘6.25 65주년’ 6.25 전쟁 사진 공개, 어떤 모습 담겼나?

    24일 6.25 전쟁 65주년을 맞아 행정자치부 국가기록원이 6.25전쟁 관련 사진을 공개했다. 국가기록원은 지난 2013년부터 미국 국립기록관리청에서 6.25전쟁 관련 사진 7000여 점을 수집·정리 중이다. 공개된 사진은 그 중 일부를 국가기록원이 홈페이지를 통해 선보였다. 지난 1950년 6월25일 전쟁 발발 시점부터 1951년 11월까지 가장 치열했던 전쟁 초기 기록사진을 날짜별로 정리했다. 한편 6·25 전쟁은 1950년 6월25일 새벽 북한 공산군이 남북군사분계선이던 38선을 넘어 불법 남침함으로 시작해 1953년 7월27일 휴전 협정을 맺기까지 3년 동안 벌어진 전쟁이다. 뉴스팀 seoulen@seoul.co.kr
  • 6.25 전쟁 사진 공개, 눈물 나오는 사진들..어떻길래?

    6.25 전쟁 사진 공개, 눈물 나오는 사진들..어떻길래?

    24일 6.25 전쟁 65주년을 맞아 행정자치부 국가기록원이 6.25전쟁 관련 사진을 공개했다. 국가기록원은 지난 2013년부터 미국 국립기록관리청에서 6.25전쟁 관련 사진 7000여 점을 수집·정리 중이다. 공개된 사진은 그 중 일부를 국가기록원이 홈페이지를 통해 선보였다. 지난 1950년 6월25일 전쟁 발발 시점부터 1951년 11월까지 가장 치열했던 전쟁 초기 기록사진을 날짜별로 정리했다. 한편 6·25 전쟁은 1950년 6월25일 새벽 북한 공산군이 남북군사분계선이던 38선을 넘어 불법 남침함으로 시작해 1953년 7월27일 휴전 협정을 맺기까지 3년 동안 벌어진 전쟁이다. 뉴스팀 seoulen@seoul.co.kr
  • 6.25 전쟁 사진 공개, 국가기록원 공개..어떤 장면 담겼나?

    6.25 전쟁 사진 공개, 국가기록원 공개..어떤 장면 담겼나?

    ‘6.25 전쟁 사진 공개’ 24일 6.25 전쟁 65주년을 맞아 행정자치부 국가기록원이 6.25전쟁 관련 사진을 공개했다. 국가기록원은 지난 2013년부터 미국 국립기록관리청에서 6.25전쟁 관련 사진 7000여 점을 수집·정리 중이다. 공개된 사진은 그 중 일부를 국가기록원이 홈페이지를 통해 선보였다. 지난 1950년 6월25일 전쟁 발발 시점부터 1951년 11월까지 가장 치열했던 전쟁 초기 기록사진을 날짜별로 정리했다. 한편 6·25 전쟁은 1950년 6월25일 새벽 북한 공산군이 남북군사분계선이던 38선을 넘어 불법 남침함으로 시작해 1953년 7월27일 휴전 협정을 맺기까지 3년 동안 벌어진 전쟁이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6.25 전쟁 사진 공개, 어떤 장면 담겼나?

    6.25 전쟁 사진 공개, 어떤 장면 담겼나?

    6.25 전쟁 사진 공개가 화제다. 24일 6.25 전쟁 65주년을 맞아 행정자치부 국가기록원이 6.25전쟁 관련 사진을 공개했다. 국가기록원은 지난 2013년부터 미국 국립기록관리청에서 6.25전쟁 관련 사진 7000여 점을 수집·정리 중이다. 공개된 사진은 그 중 일부를 국가기록원이 홈페이지를 통해 선보였다. 지난 1950년 6월25일 전쟁 발발 시점부터 1951년 11월까지 가장 치열했던 전쟁 초기 기록사진을 날짜별로 정리했다. 뉴스팀 seoule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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