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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문술 미래산업대표 사임

    미래산업 정문술(鄭文述·62)사장이 대표이사에서 전격 용퇴,‘경영권 세습’에 찌든 재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정 사장은 4일 열린 이사회에서 “경영권을 세습하지 않고 회사 임직원에게 물려주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겠다”며 사임을 발표했다.후임에는 장대훈(張大薰) 부사장이 선임됐다. “저는 지난 3일 두아들을 불러 앉혔습니다.(미래산업의)경영권은세속의 기준으로 보면 가장 큰 유산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그러나 아들들은 고맙게도 종업원에게 경영권을 돌려주려는 제 생각을 적극 지지해 주었습니다” 정 사장은 “18년간 몸담았던 공직에서 강제해직된 뒤 사업을 시작하면서 시작은 보잘 것 없지만 마무리만큼은 누구보다 멋지게 하겠노라고 다짐했다”면서 “그 해답은 경영권을 종업원에게 물려주는 것”이라고 말했다.그는 올바른 윤리를 갖고 다른 기업과 같이 잘 살아가는 ‘착한 기업’을 만들어달라고 직원들에게 당부했다. “한때 가족동반 자살까지 결심했을만큼 돈에 한이 맺힌 사람입니다.그 지긋지긋한 돈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고싶었고 이를 극복하고싶었습니다” 정 사장은 “지금까지는 돈을 버는 일을 해왔지만 이제부터는 돈을제대로 쓰는 일을 해보고 싶다”면서 “일회성·소모성의 자선·기부가 아니라 지속적이고 항구적인 자선시스템을 만들어 보겠다”고 밝혔다. 전북 임실 출신인 정 사장은 원광대 종교철학과를 졸업한뒤 62년부터 중앙정보부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83년 반도체 장비 전문제조업체인 미래산업을 세웠으며 99년 11월 나스닥에 상장시켰다.정 사장은지난해 라이코스코리아 경영권도 30대 전문경영인에게 넘겼었다.최근엔 자신의 경험을 담은 ‘왜 벌써 절망합니까’라는 책을 냈다. 김미경기자 chaplin7@
  • 가교 2000년 정치/(하)정쟁으로 얼룩진 한해

    2000년 정치권은 정쟁(政爭)으로 얼룩진 한 해였다.4·13총선을 거치면서 지역을 기반으로 한 여야의 이전투구(泥田鬪狗)가 극에 달했다. 총선 결과 여소야대 정국이 된 16대 국회는 현안마다 소수여당이 야당에 끌려다니는 등 정치는 파행으로 치달았다. 과거와는 다른 국회상을 표방하며 출범한 16대 국회도 회기일인 211일 가운데 75일이나 공전돼 국민들의 정치 불신을 가속화했다. 이런 정치권의 잇따른 파행은 지난 5월30일 16대 국회 개원 때부터예고됐다. 국회가 개원하자마자 자민련의 교섭단체화를 위한 국회법 개정안을민주당과 자민련이 공동으로 제출하자 한나라당이 반발했다. 민주당은 이후 6·15 남북정상회담 등 정국의 화해 분위기가 이어지면서 국회법 처리 강행을 유보했지만 여야격돌은 불가피했다. 결국 지난 7월24일 자민련의 원내교섭단체화를 위한 국회법 개정안을 민주당과 자민련이 운영위에서 강행 처리하자 국회법 개정안의 원천무효를 둘러싼 여야의 지루한 대치가 계속됐다. 한나라당은 국회에서 뛰쳐나와 청와대 앞에서 침묵시위를 벌인 것을비롯, 인천·서울·부산·대구를 돌며 장외집회에 몰두했다. 이후 여소야대에 따른 여야의 당리당략적 대립과 마찰은 사사건건이어졌다.특히 윤철상(尹鐵相) 의원의 선관위 선거비용 실사 개입 발언이 터져나오자 야당의 반발은 대단했다. 9월1일 정기국회가 개원됐지만 국회는 공전과 파행을 되풀이하면서정치권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만 가중시켰다. 한나라당은 개원 즉시총선수사에 대한 국정조사권 발동을 주장하고 검찰총장 탄핵소추안을발의했다. 한빛은행 및 동방금고 사건을 둘러싼 공방과 증인채택을 놓고 의원들의 고성과 몸싸움도 이어졌다.이 과정에서 당의 ‘거수기’ 역할을거부하겠다던 정치 신인들도 정쟁에 끼어드는 등 구태(舊態)가 재연됐다. 이어 한나라당 김용갑(金容甲) 의원의 ‘북한노동당 2중대 발언’과같은 당 이주영(李柱榮)의원의 동방금고 불법대출 관련 ‘KKK 발언’ 등이 이어져 국회가 장·단기 공전사태를 빚었다. 여야의 첨예한 대결은 지난 11월17일 검찰수뇌부 탄핵소추안이 민주당 의원들의 이만섭(李萬燮)국회의장 ‘감금’으로 인해 투표가 무산되자 폭발했다.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총재가 1주일만에 ‘전격 등원’을 선언해장기 공전을 모면했지만 국회는 예산안 처리를 놓고 다시 파행으로치달았다.여야는 결국 지난 62년 이후 처음 새해 예산안을 정기국회회기내에 처리하지 못하는 상황을 빚어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아야 했다. 여야는 국회 예산심의의 투명성 확보를 위해 예결특위 계수조정소위를 공개키로 했으나 막판 세부내역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신경전을 벌이다가 결국 주고받기식 ‘밀실담합’으로 끝냈다. 참여연대 양세진(楊世鎭) 시민감시부장은 “올해 국회는 행정부 감시라는 본래의 목적보다는 정치선전의 장으로 악용됐다”면서 “국회는 국회법을 철저히 지키는 가운데 투명한 입법활동을 해야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종락기자 jrlee@. *초선의원의 한마디-민주당 김성순의원. 지난 4·13총선 때 국회의원에 당선돼 국회에 들어와 한 해를 보내다 보니 정치란 참 묘하다는 걸 느꼈다.대학교수,언론인,시민운동가모두 정치인을 욕하다가도 공천이나 비례대표 자리라도 준다면 다 좋다고 한다. 선거 때 그렇게 국리민복을 외치고 정의와 민주주의 투사이던 사람들이 국회에 들어오면 달라진다.출입문과 엘리베이터부터 권위적이다. 본회의장 방청석은 삼엄하다.시민이 민의의 전당에서 오히려 감시의대상이 된다. 민의란 이름으로 민의를 저버린 회의장에서는 세월은 아랑곳없이 정쟁으로 날이 샌다.소신 있다던 젊은 세대가 16대 국회에 많이 들어왔는데 무거운 돔 지붕에 눌려버렸는지 조용하다. 올해 처음 예산심의를 했는데 정말 가관이다.국정을 하겠다고 들어온 사람들이 지역사업에 매달려 나눠먹기식으로 결국 끝을 내고 말았다.더구나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써야 할 사회복지비에서 500억원을떼어내 하이에나처럼 달려들어 뜯어먹었다.참으로 참담하다.내 지역밖에 보이지 않는 눈으로 어떻게 나라를 보겠는가. 폭로하고 발목 잡고 흠집 내고,민원보다는 대권을 향해 정치는 간다. 민생을 짓밟고 벌이는 정쟁 속에 국민은 지쳐 있다.국민은 그런 것은 가려내고 감시해야 한다.
  • 꿈이 있는 우리학교/ 경기대

    ‘우리대학에 오면 세계와 미래가 보입니다.’ 경기대학교(총장 孫鍾國)가 98년부터 운영하고 있는 ‘해외학점교류프로그램(SAP)’은 다른 대학의 세계화 프로그램과는 차별화된다. 국내 대학에서 학생들이 유학이나 어학연수를 떠나려면 일단 휴학을 해야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토플 또는 토익시험을 치러야 하지만 경기대의 SAP를 이용하면 그럴 필요가 없다. 외국의 자매결연 대학들과 학점교류협정을 체결,유학기간 1년간 취득한 학점(24학점)을 인정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학생들은 이에따라1년간 유학을 다녀오더라도 4년만에 정상적으로 졸업할 수 있다. 자매결연 대학은 미국의 롱아일랜드대,조지워싱톤대,미시건주립대등 9개 대학으로 어학연수뿐 아니라 전공과목 수강도 허용된다.특히유학생들이 드는 연간 비용은 1인당 수업료와 기숙사비를 포함해 1만달러정도.이같은 비용은 개인적으로 유학할 경우 연간 2~3만달러 소요되는 것과 비교할 때 파격적이라 할 수 있다. 그동안 167명이 이 프로그램에 따라 유학을 마쳤고 현재 76명이 유학중에 있으며 내년에는 120명이 나갈 계획이다. 학생들의 현지 적응을 돕기 위해 유학전 6개월간 어학연수를 시키고 있으며 현지 대학에 지도교수 1명씩을 상주시켜 학생들을 종합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지난해 미국 롱아일랜드대학을 다녀온 유현영양(23·미술학부 4년)은 “1년여 유학기간동안 힘든 점도 없지 않았지만 꿈과 자신감을 얻은 소중한 시간이었고 ‘세상은 도전하는 사람의 것’이라는 말을 뼈져리게 느꼈다”고 돌이켰다. 경기대학은 최근 인터넷과 미국의 일간지 등에 대학교수 초빙광고를 냈다.대학이나 기업에서 활동하고 있는 150여명의 박사들이 지원했다.손 총장은 부총장과 학장 등으로 면접단을 구성,지난 4일 미국 현지에서 면접을 실시했다. 국내 대학으로선 이례적인 일이다. 대학은내년 학기를 앞두고 교수 20여명을 충원할 계획인데 이중 60%는 미국 현지에서 활동하고 있는 인재들로 채운다는 방침이다. 경기대만의 ‘신학부제’도 눈길을 끈다.기존 학과를 모두 학부로통합·개편하고 전공 필수과목도 완전폐지했다.졸업할 때까지 자신이 입학한 학부내의 해당 전공과목을 35학점만 이수하면 복수로 학위를 취득할 수 있다. ‘신학부제’는 입학할 때 적성에 맞지 않는 학과를 선택했다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도입한 것으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학부가운데 관광학부는 62년부터 실시해온 관광 특성화 사업에 힘입어 이 분야의 독보적인 위치에 올랐으며 국내유일의 대중매체영상학부(연기,멀티미디어,애니메이션,전자디지털음악,정치매체전공)는 경기대학교가 새로운 예술의 중심으로 자리잡는데 크게 기여했다.10대의 우상인 HOT의 장우혁 문희준 이재원과 핑클의 이진,탤런트 송승헌,가수 조성모 등이 이 학부에 다니고 있다. 학생들에게 지원되는 장학금도 다양하다.성적이 우수한 학생에게는입학금은 물론 4년간 등록금과 매월 30만원씩 도서구입비를 지급한다.기숙사도 제공한다.또 10명을 선발해 미국 일본 러시아 등 자매결연대학에 방학중 다녀올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수원 김병철기자 kbchul@. *경기대 최신식 기숙사 2002년 완공. 경기대학의 기숙사는 360명 입실 규모로 넉넉치못한데다 남학생 전용이어서 여학생들의 불만이 높다.그러나 내년에 입학하는 학생들이2학년으로 올라가는 2002년 4월중 최신시설의 기숙사가 들어설 예정이다. 때문에 학교 주변의 하숙집과 원룸을 이용하는 학생들이 많다.하숙비는 1인1실은 20만원,2인1실은 30만원이며 원룸은 1,500∼2000만원의 전세금을 받는다. 교통편은 주간인 수원캠퍼스의 경우 지하철 2호선과 4호선의 환승역인 사당에서 16대의 통학버스가 10여분 간격으로 운행되며 강남역과부평역 등에서도 통학버스를 이용할수 있다.또 지하철을 타고 수원화서역까지 오면 학교까지 가는 버스를 수시로 탈 수 있다. 야간인 서울캠퍼스는 사당역과 잠실,강남,양재역 등에서 버스 등을이용하면 된다. 수원 김병철기자
  • 이종우의 증시 진단/ 500~570P 박스권 마무리

    2000년 주식시장이 거래일수로 6일 밖에 남지 않았다.올해 주식시장은 지난 62년 지수가 산출된 이래 한해 동안 가장 큰 폭의 하락을 한때 기록하는 등 각종 불명예스러운 기록을 남겼다. 연말까지 주식시장이 뚜렷한 변화는 보이지 않을 것 같다.올해 주식시장은 11월부터계속되고 있는 500∼570P대의 박스권에서 마무리될 전망이다. 주가가 크게 움직이지 않을 첫째 요인은 불안정한 미국시장의 동향이다.미국의 정치적 불안이 해소됐지만,주식시장은 기업실적 둔화 압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번주 열릴 미 공개시장위원회(FOMC)는 금리인하보다 통화정책을‘긴축’에서 ‘중립’으로 바꾸는 정도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내년 2월에 금리를 낮춰도 즉각적인 효과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경기가 둔화되고 있어 금리인하 효력이 감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는 주도주 부재다.지난주 일부 블루칩과 은행주가 올랐지만 재료에 의존한 것이어서 근본적인 변화를 기대하기는 힘들다.세째는 경기둔화와 수급불안인데,시장의 가장 근본이 되는 부분은 아직개선되지 않고 있다.이런 요인 때문에 유가 하락 등 일부 긍정적 요인에도불구하고 주가가 당분간은 박스권을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전망된다. 연말까지 선도 종목군은 나오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지난주에는 IMT-2000이나 은행 합병과 같이 재료를 반영하는 주가 움직임이 나타났지만 연속성은 없을 것이다.그동안 하락 폭이 컸던 종목 중심으로낙폭을 줄이는 순환매만 이어질 것이다. 이종우 대우증권 투자전략팀장
  • 韓重연혁·민영화 일지

    ■62년 9월 민간기업으로 설립■76년 11월 발전설비사업 진출 및 창원공장 착공■80년 11월 재무구조 악화로 공적자금 투입,공기업화■88년 9월 경영악화로 자본잠식 심화,민영화 방침 발표(2차례 유찰)■93년 12월 공기업 민영화 방침 발표 이후 유보■97년 10월 ‘공기업의 경영구조 개선 및 민영화에 관한 법률’ 적용대상 기업으로 선정■98년 8월 공기업민영화 추진위 의결로 51% 이상 주식매각을 통한민영화 방침 확정■99년 1월 선(先)사업구조조정 후(後)민영화 추진방침 추가■99년 12월 발전설비 및 엔진사업구조조정 완료■2000년 9월30일 기업공개를 통한 지분 24% 매각방침 결정■10월24일 일반공개(지분 14%)후 증시상장■11월10일 지분 36% 경쟁입찰 제안서 접수■11월17일 두산컨소시엄과 스페코 컨소시엄 적격자 선정■12월12일 최종 가격입찰
  • 신간 맛보기

    ◆북한-중국관계 1945∼2000(이종석 지음,중심 펴냄)항일시기부터 현재까지 북·중 관계사 전반을 다룬 책.양국간 역사를 국공내전기,한국전쟁시기,냉전시기,탈냉전시기 등 4단계로 나눠 변화의 양상을 밀도있게 다뤘다.특히 베일에 가려졌던 국공내전기,62년 북·중 국경조약 체결과정을 조목조목 규명해간다.책에 따르면 국공내전기 북한의중공지원이 양국 혈맹관계의 기틀이 됐으며,국경조약은 세간의 인식과 달리 중국이 대폭 양보한 조약이란 것.1만5,000원. ◆山海經(산해경·이중재 옮김,아세아문화사 펴냄)‘조선’이란 나라이름을 수록한 가장 오래된 책 ‘산해경’을 새로운 시각으로 완역했다.기원전 27∼23세기에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완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중국 고전은 중국과 주변국가의 지리·민족·풍속·생태계를 두루 다룬 지리박물지다.그러나 ‘날개 달린 사람’‘짐승 몸을 한사람’등 기이한 내용을 많이 담아 신화서로도 취급된다.옮긴이는 한국과 중국의 사서들을 동원해 이 고서를 역사서로서 재해석했다.상·하 두권에 총 1,400여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각권 3만원. ◆너희가 홍보를 믿느냐(이옥향 등 지음,YPR 펴냄)30대의 현업 홍보인 27명이 실전 경험을 중심으로 풀어놓은 언론홍보 실무학 개론.악어(기자)와 공생하는 악어새인 홍보맨의 고뇌와 애환,달라지는 위상을 실감나게 보여준다.양문영 세움커뮤니케이션 대리는 백화점 홍보담당 시절 백화점 화장실 몰래카메라 사건의 악몽을 되새기며 공개홍보의 중요성을 강조.한국언론의 현주소와 치열한 미디어 전쟁의 단면도 엿볼 수 있다.조철현 YPR대표는 “초짜나 예비 홍보인들에게 참고서가 되도록 정통파들의 홍보 체험서를 기획했다”고 말한다.9,000원.
  • 金大中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 노벨위원회가 밝힌 수상 이유

    김대중 대통령은 동아시아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기울인 평생의노력, 특히 북한과의 평화와 화해를 위한 노력으로 이 상을 수상하게됐습니다. 이제 막 시작된 것에 불과한 화해의 절차를 위해 상을 수여하는 것이 시기상조가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어 왔습니다.그에 대한 대답으로 김 대통령의 인권을 위한 그 동안의 노력이 최근 남북한 관계의진전과는 별도로 수상후보로서 충분한 가치를 지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그러나 북한과의 화해를 위한 강력한 김 대통령의 다짐 및 이행,특히 지난 1년 동안 이룩한 업적이 이번 수상에 새롭고 중요한 몫을더한 것도 역시 명백합니다. 평화상은 지금까지 이룩해 온 조처에 대해 수여되는 것입니다.그러나 노벨평화상의 역사에서 자주 보아 온 것처럼 올해도 역시 평화와화해를 위한 머나먼 길에 더욱 진척이 있기를 격려하는 뜻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이는 넓은 범위에서 용기의 문제입니다.김 대통령은 고착화된 50년의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아마 세계에서 가장 중무장된 전선 너머로협조의 손길을 뻗으려는 의지를 지녀왔습니다.그의 의지는 개인적,정치적 용기이며 유감스럽게도 다른 분쟁지역에서는 너무 자주 결여되어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현재 김대중씨는 민주한국의 대통령입니다.김 대통령의 집권까지의노정은 멀고도 먼 길이었습니다.수십년 동안 그는 권위주의 독재체제와 승산이 없어 보이는 싸움을 했습니다. 가혹한 교도소 환경 속에서도 김대중씨는 삶을 바쳐서 해야 할 일을찾아내게 되었습니다. 불굴의 낙관적 태도를 가지고 그는 교도소 안에서 발견한 ‘즐거움’에 대해 썼습니다.동양과 서양의 모든 종류의서적 통독이 그것입니다.신학·정치학·경제학·역사 그리고 문학 서적들입니다.가족과의 짧은 면회시간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갖가지방해 시도가 있었음에도,그와 가장 가까웠던 인사들로부터 편지를 받고 답장을 쓸 수도 있었습니다.그리고 마지막으로 정원에서 꽃을 돌보는 일도 허용되었습니다. 김대중씨의 얘기는 몇몇 다른 평화상 수상자,특히 넬슨 만델라와 안드레이 사하로프의 경험과 공통되는 점이 많이 있습니다.상을 받지는않았지만 수상할 자격이 있었던 마하트마 간디의 그것과 함께 말입니다.김대중씨가 간직한 불굴의 정신은 국외자들에게 거의 초인적인 것처럼 보일지 모릅니다.이런 점에서 이번 수상은 보다 진지한 면이 있습니다. 김대중씨는 한국의 전면적인 개혁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며 ‘햇볕정책’을 통해 북한과 적극적인 협조관계를 추진하고 있습니다.‘햇볕’이라는 말은 이솝우화에 나오는 햇볕과 바람이한 나그네의 옷을 벗기는 내기를 한 데서 따온 것입니다.‘햇볕정책’은 바람을 막지 않더라도 남북한이 공동의 이익을 서로 나누고 이를 강화함으로써 최소한 추위를 누그러뜨리자는 것입니다.김대중씨는남한이 북한을 합병하거나 흡수할 의도가 전혀 없음을 분명히 했습니다.시간이 걸리고 아주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목표는 통일입니다. 김대중씨가 현재 진행 중인 해빙과 화해의 주동자라는 점은 의심할여지가 없습니다.아마 그의 역할은 동서독 간의 관계 정상화에 아주중요한 동방정책 추진으로 노벨평화상을 받은 빌리 브란트에 비교될수 있습니다.남북 이산가족 상봉장면은 전세계에 깊은 인상을 주었습니다. 세계 대부분의 지역에서 냉전의 빙하시대는 끝났습니다.세계는 ‘햇볕정책’이 한반도의 마지막 냉전 잔재를 녹이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 과정은 시작되었으며 오늘 상을 받는 김대중씨 보다더 많은 기여를 한 분은 없습니다.시인의 말처럼 “첫 번째 떨어지는물방울이 가장 용감하노라”. ◆ 김대중대통령 연보. ■1925년 전남 신안군 하의도에서 아버지 김운식(金雲植)씨와 어머니장수금(張守錦)여사의 4형제 중 차남으로 출생■1933년 하의도보통학교 입학,목포 북교초등학교로 전학해 수석 졸업■1939년 목포상업학교 입학■1945년 4월 차용애씨와 결혼해 홍일(弘一)·홍업(弘業) 두 아들 둠■1954년 목포에서 민의원선거에 출마해 낙선■1956년 10월 민주당 입당■1959년 6월 강원도 인제 재선거에서 낙선■1961년 5월14일 인제 보궐선거에서 당선됐으나 5·16 쿠데타로 수감■1962년 5월 이희호(李姬鎬)여사와 재혼■1963년 11월 목포에서 6대 국회의원에 당선■1967년 7대 의원 당선■1970년 9월 신민당 대통령후보 당선■1971년 5월 대통령선거에서 박정희(朴正熙)후보에게 패배■1973년 8월 도쿄에서 중앙정보부 공작원에게 피랍■1976년 3월 명동성당 ‘민주구국선언’으로 구속■1980년 5월 내란음모죄로 구속■1981년 1월 대법원에서 상고가 기각돼 사형 확정■1982년 12월 미국 망명■1985년 2월 귀국한 뒤 동교동 자택에 감금■1987년 12월 13대 대통령선거에서 낙선■1992년 12월 14대 대통령선거에서 패배한뒤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유학차 영국으로 향발■1993년 7월 귀국■1994년 1월 아·태평화재단 설립■1995년 7월 정계 복귀■1997년 12월 15대 대통령 당선■2000년 6월 평양에서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정상회담■2000년 12월10일 노벨평화상 수상
  • 朴금성 신임 서울경찰청장 학력 허위기재 의혹

    초고속 승진으로 구설수에 오른 박금성(朴金成) 신임 서울경찰청장이 학력 허위기재 의혹을 받고 있다. 8일 경찰청에 따르면 박 청장 인사카드에는 62년 목포해양고등학고를 졸업한 뒤 64∼66년 광주교육대학,67∼69년 3년 동안 조선대 법률학과에 다닌 것으로 돼 있다. 하지만 조선대에 다닌 부분은 사실과 다른 것으로 확인됐다.박 청장은 이 기간 동안 육군 행정병으로 복무중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또조선대 학적과에 확인한 결과,‘박금성’이란 이름의 학적기록은 한명 있으나 동명이인인 것으로 드러났다. 박 청장은 지난 6일 경찰 수뇌부 인사에서 ‘목포고’ 출신으로 발표됐으나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올해 작성된 경찰청 전산 인사기록에는 8일까지 ‘목포고’로 기록돼 있었고,인사기록카드 원본에도 ‘목포고’로 기재됐다가 출신고부분이 볼펜지우개로 지워진 채 타이프글씨로 ‘목포해양고’가 덧씌워져 있었다.경찰 문서관리 규정에 따르면 인사기록카드를 수정할 경우 두줄을 긋고 담당자의 도장을 찍은 뒤 수정 경위와 증빙서류를 첨부토록 돼있다. 박 청장은 이에 대해 “지난 66년 4월 광주77병원 인사과에 전입하자 소속 부대장이 야간대학이라도 다니는게 어떻겠느냐고 권유해 67년말부터 조선대 야간대 3학년에 편입해 1년여 다녔으나 학력 기록은 없다”고 해명했다.또 인사기록카드에 대해서는 “인사기록이 잘못된 사실을 지난 98년에 발견,수정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조현석기자
  • 독립운동가 강우규의사 80주기 기념식

    평안남도 중앙도민회(회장 禹潤根)와 평안남도(지사 金麟善)는 오는 29일 오전 11시 서울 종로구 이북5도청 강당에서 일우(日愚) 강우규(姜宇奎) 의사 순국 80주년 기념식을 갖는다. 강 의사의 우국충정을 기릴 예정인 이날 행사는 강 의사의 약력 소개,추모사 낭독,이북7도 부녀연합회 합창단의 추모가 합창 등의 순으로 진행된다. 강 의사는 평남 덕천군 태생으로 1919년 예순의 고령임에도 조선총독으로 부임하는 일본 사이토 미노루(齋藤實)를 처단하기 위해 남대문역 앞에서 폭탄을 투척,곧바로 일경에 붙잡힌 뒤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했다. 현재 충남 천안 독립기념관에 강 의사의 시비가 있으며 지난 62년 건국공로훈장이 추서됐다. 정기홍기자 hong@
  • 美 대통령 선거/ 부시 고어 양 진영 2차 법리공방

    미 플로리다주 3개 카운티에 대한 수작업 재검표 산정 여부를 놓고촉발된 공화-민주당의 법정공방은 급기야 연방 대법원으로까지 비화됐다.양측 진영의 율사들은 이번이 마지막 법률 판단이라는 점을 감안,가능한 모든 법리를 들어가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공화당 주장 조지 W 부시 후보측은 플로리다주 대법원의 판결이 헌법을 위배했다고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다.즉 일부 카운티에서만 수작업 재검표가 진행되는 것은 미국민의 ‘평등보호(equal protection)’를 규정하고 있는 수정헌법 제14조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것이다. 이는 ‘1인 1투표’라는 대원칙에도 어긋난다고 지적하고 있다. 또한 주 대법원의 판결은 3권 분립원칙도 깨뜨렸다고 보고 있다.즉플로리다주 의회가 이미 ‘투표결과 보고 마감 시한은 선거일 뒤 7일까지로 한다’라고 입법했기 때문에 주 대법원이 이를 연장하도록 판결할 수 없다는 논리다.이는 사법부가 입법부를 통제하는 조치라며반발하고 있다. 각 카운티의 선거감독위원회가 유·무효표에 대한 판정 기준을 임의대로 바꾸는것도 선거절차 변경을 금지한 연방법을 위반한 것으로보고 있다. ■민주당 주장 앨 고어 후보측은 선거관련 소송은 전적으로 주법원소관이기 때문에 플로리다주 대법원의 판결로 모든 절차는 끝났다고주장한다.연방 대법원은 부시측 상고를 심리없이 바로 기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미국민이 소중하게 행사한 투표의 진정한 의도가 반영되야 한다는 전제 아래 무효표로 분류된 표는 수작업으로 재검표한 뒤 최종결과에 반영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절차를 위해 목적이 훼손돼서는 안된다는 논리다. 투표 결과 보고 시한도 선거인단을 인증해야 하는 12월12일까지는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전망 연방 대법원이 주 법원에 간섭하지 않는 것이 전통이지만 지금까지 연방 대법원은 62년 테네시주 대법원의 판결과 93년 노스캐롤라이나주 대법원의 판결 등 주 대법원 판결을 두차례 뒤집은 전례가있다.특히 이 두 사건은 모두 부시 후보측이 현재 주장하는 수정헌법14조 ‘평등보호’ 규정과 관련된 소송이었다. 때문에 부시 후보측은 대법원이심리를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고보고 있다.게다가 연방 대법원 판사 9명 가운데 7명이 공화당 정부때 임명된 점에 은근히 기대를 걸고 있다. 여하튼 이번 연방 대법원의 결정은 양측이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최종 판단인 만큼,역전이냐 수성이냐를 놓고 양측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강충식기자 chungsik@
  • [각료 에세이] 열린마음으로/ 근거있는 자부심의 힘

    들뜬 마음으로 새 천년을 맞은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12월이 성큼 눈앞에 다가서고 있다.이제 얼마 안 있으면 언론에서는 ‘올해의국내외 10대 뉴스’를 쏟아내기 시작할테고,사람들은 여느 해 못지않게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회고하면서 다가올 새해를 설계할 것이다. 온 인류를 흥분 속에 몰아넣었던 뉴 밀레니엄의 첫해도 한달 남짓지나면 2001년에 자리를 내주고 만다. 시드니에서 전 세계가 스포츠로 인사를 나누고,서울에서 아시아와유럽이 만나고,평양에서 남북한 정상이 악수한 올해는 친선,협력,화해의 한 해였다.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한국인으로서는 처음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올해는 또 우리에게 명예와 긍지의 한 해였다. 이처럼 가슴 뿌듯한 감격의 순간들이 있었던 반면 올해에도 지구촌에서는 예년과 다름없이 비행기가 추락하고 잠수함이 가라앉는 등 대형 참사가 잇따랐으며,적대감과 증오심이 폭발해 서로 총부리를 겨누는 사태가 벌어졌고,그 어느 해 못지 않게 거센 경제 격랑이 세계인의 삶을 흔들었다. 초강대국 미국에서는 대통령 선거를 둘러싸고 전대미문(前代未聞)의재개표 소동이 지금도 진행중이며,우리나라에서는 경제 구조조정이라는 국가적 과제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땀과 눈물을쏟고 있다. 올해의 역사 가운데 특히 주목하고 싶은 것은 한국이라는 동아시아주요국이 국제사회로부터 정밀 신체검사를 받았다는 사실이다.우리가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간에 월스트리트로 대변되는 국제금융(투자)자본은 우리 경제의 속살을 샅샅이 헤집으면서 꼼꼼히 평가하려 들었고,우리는 현미경을 들고 달려드는 외국인 투자자들을 그 어느 때보다 너그러운 자세로 수용하였다.그 뿐 아니라 때론 우리 쪽에서 진단을 자청하기까지 했다. ‘공업화 기반 구축’을 기치로 내걸고 우리나라가 제1차 경제개발5개년 계획을 실천하기 시작한 것은 1962년이었다.이후 우리나라는 40년 가까이 소위 ‘압축성장’ 가도를 부지런히 달려 왔다.이 과정에서 멀쩡했던 다리와 백화점이 무너지는 바람에 선진국 사람들의 경악을 자아낸 것도 우리였지만 ‘한강의 기적’을 일궈 세계인의 찬탄을자아낸 것도 우리였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경제적 진통은 우리 경제가 불혹의 단계로나아가기 위해 치러야 할 통과의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어려울 때일수록 우리는 내세울 것이라고는 사람밖에 없는 힘든 여건 속에서,지난 수십년간 용기와 오기로 뭉쳐 나름대로 번영을 이룩했음을상기할 필요가 있다. 근거 있는 자부심은 힘이 된다. 田允喆 기획예산처장관
  • ‘카운터테너’ 안드레아스 숄 내한공연

    나이 33세,키 190㎝,활짝 웃는 모습이 매력적인 호남형. 그러나 이 멋진 남자가 노래하는 목소리는 영락없는 여성(女聲)이다. 연습을 통해 여성의 음역으로 노래하는 ‘카운터테너’ 안드레아스숄이 12월 2일 부산문화회관,4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첫 내한공연을 갖는다.오후 7시30분. 클래식을 즐겨듣지 않는 이들에게조차 안드레아스 숄은 이미 다가와있다.지난해 국내 자동차 CF의 배경음악으로 그의 자작곡 ‘백합처럼하얀 얼굴(White as lilies)’의 감미로운 선율이 방송을 타면서 ‘도대체 남자냐 여자냐’는 문의가 빗발쳤던 것.숄은 그동안 생소한성악파트중 하나였던 카운터테너 열풍을 불러일으킨 결정적 계기가됐다. 일본 혼혈의 브라이언 아사와,미국의 데이비드 다니엘즈와 함께 ‘카운터테너 빅3’로 꼽히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는 ‘순수한 서정’.화려한 여성미의 아사와,남성적인 영웅성이 돋보이는 다니엘스가 오페라 무대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반면 숄은 아직도 종교음악을 자신의본령으로 유지하고 있다. 1967년 독일에서 태어난 그는 7세 때소년합창단에 들어가 노래하기시작했다.할아버지 역시 소년합창단원이었고,아마추어 성가대 지휘를맡았던 아버지 등 집안 내력이 쟁쟁하다. 16세무렵에는 록과 전자음악에 매료돼 대중음악가수로 활동하기도 했다고. 17세때 만난 성악교사가 카운터테너로서의 자질을 처음 확인했고 26세때 그의 스승인 르네 야콥스의 ‘대타’로 무대에 나서면서 우연히데뷔했다. 숄은 96년 비발디 ‘스타바트 마테르’와 97년 칼다라의 ‘예수 그리스도의 발아래 엎드린 막달레나’로 두차례에 걸쳐 그라모폰상을 받기도 했다. ‘최초의 카운터테너’인 알프레드 델러 이후 지금까지의 카운터테너중 가장 서정적이고 달콤하면서도 풍요로운 음성을 가졌다고 평가되는 숄.다른 카운터테너와 달리 여성적이기보다는 깊이를 지닌 중성적인 카운터테너로서 명성이 높다. 이번 내한공연에서는 류트(하프의 전신)악기의 반주에 맞추어 르네상스 시대로 여행을 떠난다.영국,프랑스,스페인,이탈리아 출신 저명 작곡가들의 작품을 모은 다양한 아리아를 선보인다. 허윤주기자 rara@. *중세때 거세 男성악가 '카운터테너'의 유래. 멀쩡한 남자 성악가가 왜 하필이면 여자 목소리로 노래를 할까?카운터테너의 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카스트라토’의 비극과 만나게된다. 변성기를 거치기 전 거세된 카스트라토는 보이소프라노처럼 투명하면서도 신비로운 목소리를 낸다.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는 성경말씀을 교조적으로 해석한 중세교회는 여자들이 교회에서 노래하는 것을 금한 대신 1562년 로마교황청 시스티나 성가대에 카스트라토를 앉혔다. 얼마전 영화로 선보인 18세기 유럽의 일인자 ‘파리넬리’도 카스트라토였다.이들은 ‘남성’을 잃어버린 댓가로 엄청난 부와 명예를 차지했으나 도덕적인 문제를 야기했다.로마교황청은 결국 1903년 카스트라토를 공식 금지했다. 이들이 사라지자 피나는 훈련을 통해 여성음역에 도전하는 남성가수들이 나타났다.영국의 알프레드 델러(1902∼1979)는 독학으로 ‘최초의 카운터테너’가 됐다.같은 여성(女聲)이라도 큰 폐활량과 남성적인 다이내미즘이 만들어내는 전혀 색다른 음색.21세기에 카운터테너가 더욱 사랑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대한광장] 과감히 변해야 산다

    패러다임 전환이라는 말은 MIT 교수였던 토머스 쿤(Thomas S.Kuhn)이 1962년 저서‘과학적 혁명의 구조’에서 처음으로 사용한 전문 용어로 라틴어에서 유래된‘모형’을 말한다.패러다임은 한 조직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하나의 방도이다.즉 이치가 닿고 뜻이 통하는 하나의 방도로 어떤 문제에 관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통전(通典)적 가정이다.다른 말로 공동체 구성원에 의해 공유되는 신념,가치,기술의전 체계를 말하며 삶을 해석하고 이해하는 가치와 규칙의 골격이라고말할 수 있다. 이처럼 패러다임이 일련의 가정이라고 한다면 패러다임 전환은 어떤개인이나 집단이 보유하고 있는 일련의 가정이 극적으로 바뀌어지는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예를 들면 사회의 경제가 오로지 산업에만의존하던 것이 정보화사회가 되면서 뒤집어진 충격을 최초로 입증한사람은 존 나이스비트(John Naisbitt)였다.그는‘미국 사회의 열가지대변동’이라는 책을 통해 이 사실을 밝혀냈다.앨빈 토플러는 이같은사회적 흐름의 전환을 ‘제3의 물결’이라고 이름짓고 새 문명의 여명이 밝아오고 있음을 선언하였다. 새로운 세기를 맞이하여 지금까지 우리 사회를 지탱해오던 패러다임이 심한 도전을 받고 있음을 몸으로 체험하는 나날이다.밖으로부터오는 도전을 견뎌 내기에 우리 사회를 지탱해오던 가치관의 틀이 역부족인 셈이다.정부,기업은 물론 사회적 가치관까지도 변화된 시대에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 처해 있다. 우리가 겪고 있는 변화는 ‘급변’이라는 말로는 부족해 ‘격변’이라는 말로 표현해야 할 정도이다. 사회뿐만 아니라 많은 기관들과 조직체들이 패러다임의 전환을 경험하고 있다.거대한 사회적 변화가 기업,대학,학교,병원,가정,봉사기관등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이처럼 현대문명은 굴뚝연기들이 파동치던 산업혁명시대를 거쳐 전자파장이 파도치는 정보화시대에 돌입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는 제2의 물결이 빚어낸 옛 패러다임의 옷을 벗어버리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정치권의 낡은 정치 행태와 재벌기업으로 대표되는 한국 경제의 구태의연한 모습은 아직도 청산되지 못한 채 우리 사회의 전진을가로막는 장애물이 되고 있다.기업의 경우 1960년대 존재했던 100대기업 가운데 현재까지 생존하고 있는 기업은 29개뿐이다.격변하는 변화의 소용돌이 가운데 기업도 옛 패러다임의 질곡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우리는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고 과감하게 뼈를 깎는 고통을 감수하고서라도 변화하지 않으면 안된다.현 정부와 채권단이 서두르고 있는 기업 퇴출작업은 시대의 변화에 따른 자체 갱신을 서두르지 않는 기업은 도도히 흐르는 역사의 거대한 흐름에서부터 밀려날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는 실례가 되고 있다. 살아 있는 생명체는 자기 자신을 끝없이 정화하는 자정능력(自淨能力)을 지니고 있게 마련인데 그 자정능력을 잃게 되면 생명력을 상실한 것이나 다름없다.우리가 흔히 쓰고 있는 개혁이라는 말은 한자의개(改)와 혁(革)자에서 나온 말이다.글자 그대로 고친다는 뜻이다.아담과 이브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날 때 하나님은 그들에게 가죽옷을 만들어 입히셨다.인간 최초의 개혁은 이렇게 가죽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인류가 맨 먼저 터득한 기술은 가족을 무두질하는 방법이었다. 무두질이란 뻣뻣한 날가죽을 기름을 뽑아 부드럽게 만드는 것을 의미하는말이다.날가죽(皮)은 60도의 물에서 녹아버리고 말지만 무두질이 잘된 가죽(革)은 끓는 물에 넣어도 끄떡없다고 한다.날가죽을 무두질하면 방부성,유연성,불변성이 생기는데 이 3대 요소는 개혁정신의 원형이라 한다.어떤 조직이나 단체도 새로운 시대의 변화에 대처할 수 있는 세가지 열린 구조를 갖지 못할 때 소용돌이치는 변화 과정 가운데서 살아남지 못한다.종교개혁도 부패한 교회,경직된 종교,변질된 신앙을 썩지 않게 부드럽게 열린 종교,그리고 영원토록 변치 않는 신앙으로 개조하는 데 있었지 않는가.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낡은 패러다임의 망령들이 물러가고 새로운시대에 걸맞은 새 패러다임으로 전환된 새 사회와 새 사람의 모습을기대해본다.이를 위해 개인이나 단체는 부단히 자체 갱신을 통한 거듭남의 변화 가운데 있어야 한다. 김원배 기독교목회자협의회 상임총무
  • ‘司試 복수정답’ 메가톤급 파장

    최근 행정심판위원회가 제42회 사법시험 1차시험 문제가 복수정답임을 인정하자 파장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42회 사시 1차시험에서 단 한 문제 차이로 불합격 처분을 받게 된한 수험생이 행정심판위에 ‘출제오류’를 문제삼아 행정심판 청구를냈고, 행정심판위는 이 수험생의 손을 들어준 것.하지만 주목할 점은이 결정이 당사자 한명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문제의 발단] 이번 42회 사시의 합격점수는 84.44점이었고,김모씨의점수는 84.07점이었다. 딱 한 문제 차이로 불합격된 것이다.이후 지난 6월 김씨는 “헌법 1책형 34번 문제가 복수정답”이라고 주장하며행정심판위에 불합격처분 취소 행정심판 청구를 했다. 이에 대해 행정심판위는 ▲문제에 정부형태를 묻는다는 명시적인 기술이 없고 ▲문제는 수험생의 입장에서 판단해야 하며 ▲확실한 정답이 있다고해서 다른 문항의 정답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면서 김씨의 불합격을 취소하도록 했다. [행자부 입장] 행자부는 난감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모든 전문가들이 판단을토대로 결정한 것을 뒤엎는 일이 벌어져 곤혹스럽다는 것이다.출제위원,외부전문가 등 5명으로 구성된 정답심사위원회의심의를 거쳐 ‘정답은 단 하나’로 결론 내렸었다. 행자부는 “약간 헷갈리기는 했지만 출제자의 의도를 이해하면 충분히 정답을 골라낼 수 있는 문제”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같이 행자부의 입장이 확고하더라도 행정심판위의 의결은법적 구속력을 갖기 때문에 따를 수밖에 없다. [수험생 반응] 일부 수험생들도 어리둥절한 표정이다.행정심판위의결정이 틀렸다고 할 수는 없지만 복수정답 가능성이 짙은 다른 문제에 비하면 이번 헌법문제는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번 결정으로 현재 시험문제 출제 오류와 관련,행정소송 등을 낸수험생들은 큰 힘을 얻은 것만은 확실하다. [행정심판위의 결정이 미칠 파장] 행자부는 김씨에게 합격처분을 내려야 하지만 김씨처럼 단 한문제 차이로 불합격의 고배를 마신 수험생 6∼7명(추정)에게도 같은 처분을 내릴지는 미지수다.이 문제에 대해서는 사법시험위원회를 열어 결정할 방침이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지난 98년 치러진 제40회 사시부터 매해 문제 정답과 관련된 소송이 줄을 이어 현재 40회(3문제) 41회(5문제),42회(4문제)가 대법원 최종판결을 기다리고 있거나 행정소송 중에 있다.이 문제들은 행정심판위에서 거론된 이번 문제보다복수정답 논란이 많았기 때문에 이번 심판위의 결정은 이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소송 당사자가 100여명에 이르고,소송 결과에 영향을 받게 될 수험생은1,000여명에 달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의결이 미칠 파장을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최여경기자 kid@. *출제오류 시비 문제. 무엇이 ‘옳지 않은’ 답항일까? ‘③1948년 헌법과 1954년 헌법에서는 대통령과 함께 부통령을 두었으나 1962년 헌법부터 대통령을 두면서도 부통령을 두지 아니하는 형태를 취한 후 지금까지 부통령을 둔 적이 없다’ ‘⑤대통령은 국가 비상사태시에 매우 긴요한 예외적인 경우에는 대통령령으로 국방부장관을 겸할 수 있다’ 행정자치부는 ⑤번을 정답으로 발표했다.하지만 지난달 27일 국무총리실 행정심판위원회에서는 둘다 ‘옳지 않아’ 답이 될 수 있다고의결했다. 행정심판위에서 ③번 역시 정답이 될 수 있는 근거로 삼은 것은 ▲행자부 주장과 달리 답항에 대통령중심제를 구체적으로 나타내지 않는 상태에서 단순히 부통령제를 두지 않은 헌법개정연도를 묻는 질문으로 볼 수 있고 ▲인도 등에서는 실제로 내각제를 취하면서 부통령을 두고 있는 경우도 있어 청구인의 청구를 인정했다.우리나라가 실제로 부통령을 두지 않는 헌법 개정은 내각책임제 상태이던 60년에이뤄졌다. 이에 대해 행자부는 “대통령중심제에서 부통령을 두는 것이 일반적인데 우리나라는 부통령이 없는 변형된 대통령제를 취하고 있어 이에대한 종합적 이해를 묻는 문제”라며 ⑤번이 ‘명백하게 옳지 않으므로’ ⑤번이 정답’이라는 입장이다. 박록삼기자 youngtan@
  • 2000미 대선/ 부시 “음주운전 어떻게 피하지”

    공화당 진영이 선거 막바지에 돌출한 조지 W 부시 후보의 음주운전전과 불똥 진화에 부심하고 있다. 24년전의 음주운전 전과의 영향 여부를 놓고 정치권 분석이 분분한가운데 부시 후보측은 최소한 ‘호재’는 아니라고 인식,파문축소에진력을 다하고 있다. 선거를 불과 72시간 앞둔 4일 격전지 중의 하나인 미시간주의 디어본 유세에서 부시 후보는 아예 언급을 피한 반면,러닝메이트 딕 체니전 국방장관과 콜린 파월 전 합참의장 등 인사들이 총대를 메고 나섰다. 이들은 24년 전의 과거사를 캠페인 끝 무렵에 폭로한 민주당측을 비난하면서 지지자들에게 이를 무시하라고 촉구했다. 체니 부통령 후보는 “우리는 캠페인의 종점을 향해 다가서면서 과거 여러차례 보아온 반대편의 ‘자포자기 전술’을 또다시 목격하고있다”고 주장하고 “솔직히 우리는 클린턴·고어의 상투적인 행동에염증을 느끼고 있다.이제는 그들이 떠나야 시간이다”고 말했다. 체니도 20대 였던 62년과 63년에 음주운전으로 두차례 체포됐음이 밝혀졌다. 음주운전 전과가 돌출된 뒤 “나는 인생에서 실수를 범했다.그러나나는 그 실수로 부터 교훈을 얻었음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한 부시 후보는 폭스 TV와의 회견에서 “나는 미국인들이 이것이 더러운정치이며 궁지에 몰린 사람들이 하는 정치라는 결론을 내릴 것임을안다”며 공격적 자세를 취했다. 공화당측의 이러한 진화 노력에도 불구하고 부시 진영이 선거유세를벌이고 있는 미시간주 디어본의 변두리에는 “부시는 집으로 돌아가라.운전만은 하지 말라”는 팻말이 길가에 내걸리기도 해 부시진영의속을 태우고 있다. 김수정기자 crystal@
  • 11월 독립운동가 장태수 선생

    국가보훈처는 31일 일제의 회유를 거부하고 경술국치에 항거,단식을벌이다 순국한 장태수(張泰秀·1841∼1910) 선생을 광복회 등 유관기관과 공동으로 ‘11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전북 김제군 금구면 서도리에서 태어난 장 선생은 1861년 과거에 급제해 사간원 정언 등을 거친 뒤 1867년 양산 군수에 임명됐다. 1904년 광무황제를 측근에서 모시는 시종원 부경으로 재직하던 중 1910년 경술국치를 당하자 “개와 말까지도 주인의 은덕을 생각하는데역적 신하들은 어찌 임금을 속이고 나라를 팔 수 있는가”라고 통곡하면서 관직을 버린 채 낙향했다. 선생은 일제가 회유책으로 전한 은사금을 거부하며 “나라가 망하고 임금이 없는데도 적을 토벌해 원수를 갚지 못하고,이름이 적의 호적에 오르게 되는데도 몸을 깨끗하게 하지 못하고 선조를 욕되게 하는죄를 지었다”며 24일간 식음을 전폐하다 1910년 11월27일 세상을 떠났다.정부는 지난 62년 선생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노주석기자 joo@
  • 부시-고어 엎치락 뒤치락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2001년 백악관 주인을 가리는 미 대통령 선거일이 열흘 앞으로 다가왔다. 여론조사결과에서 막상막하의 시소게임을 벌이는 민주당 앨 고어 부통령과 공화당 조지 W 부시 텍사스 주지사의 경합은 대선일을 코앞에둔 지금도 치열한 선두경쟁을 벌여 한치 앞을 예측하지 못하게 한다. ◆부시 박빙 리드= 워낙 경합이 치열해 섣부른 판단을 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밀리던 고어 후보는 지난 23일 한때 1% 앞서더니 다시 선두를 부시에 내줬다.26일 현재 부시 후보가 48대 45(ABC조사결과),혹은 49대 42(CNN-갤럽)로 앞지른 상황이며 상승추세로 볼 때 계속될여지가 있어 보인다. 선거인단 추이에서도 부시는 우세주를 포함해 205대 187로 고어후보와의 격차를 넓힌 모습이다. 마지막 판세를 예측하는 데에는 유권자들이 현재 양 후보를 어떻게보고 있는가를 살펴보는 것이 참고가 된다.단순 여론조사를 떠나 ABC가 심층분석한 최근 여론동향은 부시에 다소 유리한 판세를 예측케한다. 투표에 나설 것이라는 유권자 56%는 부시가 백악관 주인이되면 새로운 정치를 개시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지적한 반면 34%는 고어를 진부한 인물로 보고 있다.또 정직하고 믿을 만한 후보로 65%가 부시를 꼽고 있으며 60%는 그가 복잡한 이슈를 잘 이해하고 있다고 답해 업무 수행능력을 기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녹색당 변수=양대 후보간 차이가 오차범위내를 오가는 구도에서는어느 한쪽의 자그마한 변수라도 곧 결과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현재두 후보앞에는 불행인지 다행인지 중대한 변수가 놓여있다. 바로 여론지지율에서 계속 3∼4%를 유지하는 녹색당 랄프 네이더와1%를 가진 개혁당.92,96년 선거에서 제 3당인 개혁당 펫 뷰케넌 후보는 자신의 의도에도 불구하고 민주·공화 양당 사이에서 변수역할을하지 못했다. 그러나 현재 녹색당 지지자들의 반수 이상인 56%가 앞으로 지지 후보 대상을 바꿀 계획이라고 밝히고 있어 녹색당은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변수로 등장했다. ◆고어 막바지 추격=고어진영은 26일 녹색당 여론을 형성하는 환경단체 지도자들과 회동,이들을 끌어안으려 나섰으며 자신이 한표라도 더 얻을 공산으로 무소속 경향을 보이는 위스콘신주부터 루이지애나주까지 중부지역 공략에 돌입했다. 또 선거인단이 54명으로 가장 많은 캘리포니아주 민심이 공화당쪽으로 기울자 헐리우드 연예인들이 총출동,각종 연회를 급조하는 등 이곳 수호에 총동원된 모습이다.클린턴 대통령도 다음주 이곳에 지원유세를 나서기로 했다. hay@. *녹색당후보 랄프 네이더.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녹색당의 랄프 네이더 후보는 미국에서 명성을 날린 환경전문가.레바논 출신 부모를 둔 그는 55년 프린스턴대와58년 하버드 대학을 졸업한 뒤 줄곳 환경에 관심을 가지고 소비자 운동을 주도,정부의 환경 정책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대응법 연구소와 자동차안전센터,그리고 공공이익연구그룹 등 그가 조직한 단체는환경보호에 엄청난 반향을 일으켜 LA타임스는 그를 미국내 50대 영향력있는 인물로 선정하기도 했다. 환경을 파괴한다는 이유로 자동자는 물론 TV까지 갖지 않은 그는 소비자 안전에 관한한 미국인들의 우상같은 존재다. *개혁당후보 팻 뷰캐넌.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골수 공화당원이었다가 개혁당 후보로 나선그는 정당을 바꾼 뒤 별다른 인기를 얻지 못하고 있다.62년 조지타운대와 콜롬비아대 언론대학원을 졸업했고 신디케이트 컬럼니스트로 언론계에 등장했다.CNN의 인기프로인 ‘크로스파이어’(crossfire)의명앵커로 활동중이다.71년부터 74년까지 닉슨과 포드 대통령의 보좌관을 지냈고 레이건 행정부때 백악관 언론담당으로 활약했다. 이후 NBC,CBS방송등을 오가면서 시사프로에 관한한 명사회자로 이름을 날렸다.92년,96년 공화당 대선후보로 출마했으나 주목받지 못했으며 올해엔 개혁당으로 말을 갈아탔지만 줄곳 1%의 지지에 머물고 있다.
  • 金大中대통령 노벨평화상/ 李姬鎬여사 내조

    한국의 첫 노벨상 수상자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부인 이희호(李姬鎬)여사.이여사는 지난 38년 동안 영광과 절망의 순간순간을 김대통령과 함께 해온 평생 내조자이면서 동지였다. 1922년 서울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이여사는 이화여고와 서울대사범대를 졸업하고 당시로서는 드물게 램버스대,스카렛대 등 미국 유학까지 한 신세대 엘리트 여성이었다.귀국후 YWCA총무로 왕성한 사회활동을 하던 중 국회의원 선거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시고 첫 부인과사별한 채 전셋방에서 어려운 생활을 하던 김대통령과 운명적인‘만남’을 했다.주위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김대통령의 신념과 관용,멋에 이끌려 “내가 도와야 할 사람”이라는 믿음으로 결혼을 결심했다고 회고한 바 있다. 62년 이여사와 재혼한 이후 재선,3선 의원으로 성장한 김대통령은 71년 신민당 대선후보로 선출돼 거물정치인의 반열에 올라섰으나 고(故) 박정희(朴正熙)대통령의 정적이 되면서 납치-망명-투옥-연금으로이어지는 형극의 길을 걷게된다.당연히 이여사의 삶도 암울한 시련의늪으로빠져든다.이여사는 유신의 어두운 장막이 드리워진 72년부터김대통령이 신군부에 의해 사형언도를 받은 뒤 미국 망명길에 오르던82년까지의 기간을 ‘외롭고도 잊혀진 곳에 있었던 세월’로 기억하고 있다. 김대통령이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모진 고초를 받고 있다는 전언을접하고,이여사는 몸서리치는 불면의 밤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이여사는 주저앉아 있을 수 없었다.김대통령이 옥고를 치르는 동안 자식들에게 엄친(嚴親)노릇도 해야 했고,감옥에 간 동지들의뒷바라지와 남은 가족들을 보살펴야 했기 때문이다.남편이 옥중에 있을 때는 거의 하루도 빼놓지 않고 편지를 보냈다. 이여사는 김대통령이 95년 정계에 복귀한 이후에는 측근들이 감히진언하지 못하는 얘기들을 귀띔해 줬고,영부인이 된 뒤에도 신문을자세히 읽고 김대통령에게 민심을 전달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그 뿐만 아니라 여성과 장애자 등 이 사회의 차별받는 사람들에게 각별한관심과 사랑을 바쳐왔다.이여사의 이런 노력이 김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으로 결실을 맺게 됐다고 청와대 관계자들은 말했다. 이도운기자 dawn@
  • [아셈 정상들](3)시라크 프랑스대통령

    ‘정치를 위해 태어난 인물’ 오는 19일 ASEM에 앞서 국빈 방문하는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68)의 프로필에서 드러나는 사실이다.파리 생.프랑스 정치·경제 엘리트 배출 명문 국립행정학원(ENA) 출신이다.기병대 장교로 대 알제리전투에서 부상하기도 했다.62년 조르주 퐁피두 총리 보좌관으로 시작된 그의 정치 인생 38년은 프랑스 정치·행정역사와 함께였다. 67년 드골당 소속 하원의원 당선을 시작으로 6차례 당선됐다.역임한 각료직만 해도 4개.총리도 두 차례 지냈다.77년 부터 18년 동안 파리시장을 지냈다.평균 지지율 52.64%의 인기.95년 대통령 당선은 81년과 88년 두 차례 대권 도전 실패 뒤 얻은 승리다.2002년 재선에 도전할 것이란 관측도 유력하다. 목표 달성을 위해선 물불 가리지 않는 성격.‘무한한 에너지의 소유자’로 불리는 시라크 대통령의 별명은 ‘불도저’다.시라크의 보스였던 퐁피두 전 총리가 ‘나의 불도저’로 애칭을 붙인 데서 유래했다.68년 대학생 데모가 극심할 당시 좌파,노조,정부와의 비밀 협상장소에 권총을 소지하고입장했다는 일화도 있다.특히 95년 대통령에 취임한 뒤 주변국 반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프랑스령 폴리네시아섬에서 핵 실험을 강행,국제 사회로부터 ‘위험한 불도저’란 비난을 받기도 했다. 정치 인생 중 가장 큰 실수는 지금의 동거 정부를 있게 한 97년 5월의 조기 총선.‘민심’을 제대로 파악치 않은 채 선거를 8개월 앞당겨 화를 자초했다.당시 일간 리베라시옹은 “불도저식 스타일에 집착한 결과”라고 평가했다. 헬무트 콜 전 서독 총리와 함께 유럽 통합의 양대 견인차 역할을 해왔다. 지난 3월 김대중 대통령의 프랑스 방문에 대한 답방 형식인 이번 방한 기간 중 외규장각 도서 반환문제,김 대통령이 제시한 유라시아 초고속망 사업문제 등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프로필. ▲1932년 파리 생 ▲59년 국립행정학교(ENA) 졸업 ▲62∼65년 퐁피두 총리보좌관 ▲67∼95년 하원의원(6선) ▲68∼74년 국무·정무·농무·내무 장관 역임 ▲74∼76년 총리 ▲74∼75년 공화국수호연맹(RPR전신)사무총장 ▲76∼94년 공화국연합(RPR)당수 ▲77∼95년 파리시장 ▲86∼88년 총리 ▲95년 제5공화국 제5대 대통령 당선김수정기자 crystal@
  • 中출신 첫 노벨문학상 가오싱젠/중국서 버림받은 중국혼의 문예가

    중국 작가로선 처음이자 아시아 문인으로선 네번 째로 노벨문학상을 탄 가오싱젠(高行健·60)은 극작가이자 소설가일뿐 아니라 연출가미술가 번역가 등 예술 다방면에 걸쳐 재능을 발휘했다.프랑스 시민권을 획득했고 대표작을 중국땅이 아닌 해외에서 썼지만 그는 중국어로 글을 쓰고,중국어로 사고한 중국혼의 작가이다.이는 “문학적 보편성,매서운 통찰력,언어적 탁월함을 통해 중국의 소설과 연극에 새길을 열어줬다”는 한림원의 선정 이유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1940년 동부 장시성 간저우에서 태어났으며 어머니가 아마추어 배우여서 어렸을때부터 연극과 문학, 그림과 음악에 관심을 쏟게됐다.중국 체제 아래서 기본교육을 받기 시작해 62년 베이징 외국어대에서불문학 전공 학위를 얻었다.그러나 문화혁명(66∼76)에 휩쓸려 재교육 하방캠프로 끌려갔으며 그간 쓴 원고 가방을 몽땅 불태우지 않으면 안되었다.39세 때인 1979년이 되어서야 작품을 발표하고 프랑스이탈리아 등 외국에 나갈 수 있었다.87년 프랑스로 망명하기 전까지그는 단편 에세이 희곡 등을 잡지에 발표했으며 소설창작론 등에 관한 책도 냈다.특히 ‘근대소설기법 초론’은 마오쩌둥의 사회주의적리얼리즘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것이어서 큰 논쟁을 일으켰고 당국의탄압을 사 반체제인사로 망명하게된 단초를 열었다.82년 브레히트,아르토,베케트 등의 실험적이며 전위적인 극작법에 영향을 받아 쓴 첫희곡 ‘위험신호’는 베이징 무대 상연에서 대성공을 거뒀으나 83년부조리극 ‘버스정류장’은 당시 당국의 지식인 억압정책에 걸려 크게 비판당했고 85년작 ‘야만인’은 국내외적으로 상당한 논쟁거리가 되었다. 86년 그의 ‘강 건너편’이 판금되고 말았는데 이후 중국에서 그의작품은 일절 무대에 오르지 못했다.이에 가오는 사천성 양자강가의오지를 10개월동안 답파하면서 절망감을 삭였으며 87년 중국을 떠났다.1년뒤 정치적 망명객으로 파리에 정착했는데 고국에서 89년 천안문사태가 일어나자 중국공산당을 정식 탈퇴했다.이 사태를 소재로 ‘도망자’를 파리에서 창작,발표하자 중국당국은 그를 반국가 인사로규정하고 전 작품을 금서로 묶게된다. 그는 82년 여름부터 그의 걸작 소설인 ‘영산(靈山)’을 쓰기 시작했다.이 작품은 중국 산하를 시공간적으로 거대하게 편력하는 구성방식을 취하면서 자신의 근원과 마음의 평정,자유를 찾는 한 개인을 형상화하고 있다.이어 좀 더 자전적인 취향의 수작 ‘한 개인의 성경(聖經)’으로 거대 스케일의 ‘영산’을 보완했다. 여러 작품이 다수 외국어로 번역되었으며 그의 연극작품은 언제나세계 한두 곳에서는 공연되고 있다. 가오는 또 동양화에 일가견을 가진 화가로서 국제적으로 30여 차례의 전시회를 가졌으며 자신의 책표지 그림을스스로 그리고 있다.프랑스 정부로부터 예술 기사훈장 등 많은 상훈을 받았다. 김재영기자 kjykjy@.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 가오싱젠 대표장편소설 ‘영산'. 올해 노벨문학상을 받은 중국 작가 가오싱젠의 대표 장편 소설 ‘영산’(靈山)은 격조 높은 내용과 함께 서사구조에 있어 대담한 시도를 담고있는 작품이다. 전체적으로 등장인물들의 그림같은 여정을 그린 이 작품은 여행기이면서 철학적 여정의 기록이다.또 부분적으로 사랑 이야기와 우화적인 내용도 등장한다. 이처럼 변화 무쌍한 이야기를 끌어가기 위해서 수많은 인물과 이야기들이 작품속에 뒤섞여 있다. 도교와 불교 승려,비구니에서 신비한 원시 인간형 까지 어찌보면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갖가지 유형의 인간이 그들이다.또 치명적인 독을 품고 있는 뱀과 매연을 내뿜는 버스에 이르기까지 자연과 문명이 엇갈린다. 기존의 인습이 도전받고 선입견도 위협받는다.그래서 약함과 강함을 함께 지닌 인간 조건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만다. 그간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테두리에 놓여 있던 기존의 중국 문학과는 전혀다른 면모다.이처럼 동양적인 신비주의와 서구의 모더니즘을융합한 가오싱젠의 작가적 노력이 그의 작품을 세계 무대에서 주목받게 한 것으로 분석된다. *”영광이지만 예상못했다”. 가오싱젠은 12일 스웨덴 한림원의 수상자 발표 소식에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놀라움을 표시했다. 파리 교외 바뇨레에서 살고 있는 그는 이날 AFP통신과의 회견에서“놀랐다”고 소감을 밝힌 뒤자신이 수상 유력자로 거론되지 않았던 점을 들어 “아마 그런 편이 더 좋았을 것”이라며 농담을 던졌다. 지난 88년 중국에서 프랑스로 정치적 망명을 한 가오는 “(노벨상수상은) 영광이지만 아직은 그것을 충분히 음미할 시간이 없었다”고 말했다. 한편 가오의 대표작 ‘영산’은 미국에서도 지난해에야 영문판이 나왔으며 국내에는 소설이나 희곡이 전혀 소개된 적이 없다.국내의 중국문학 전공학자들도 그에 대한 지식이나 관심이 별로 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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