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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삼성그룹 ⑤-금융 계열사 CEO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삼성그룹 ⑤-금융 계열사 CEO

    지난 2002년 5월24∼25일 경기도 용인에 있는 삼성그룹 연수원 ‘창조관’에 삼성의 금융사 7인의 ‘수장’들이 긴장된 표정으로 속속 모여 들었다. 직전 전자사장단 회의에서 “현재 실적에 자만하지 말고 미래를 대비하자.”고 주문했던 이건희 회장이 무슨 말을 던질지 모르는 상황. 오후 3시부터 시작된 회의는 삼성생명, 삼성화재, 삼성카드, 삼성캐피탈, 삼성증권, 삼성투신운용 등 업종별로 중장기 전략을 발표한 뒤 새벽 1시까지 토론이 이어졌다. 회의를 함께 한 이 회장은 “문제가 있는 경영방식은 즉각 고쳐 금융사들도 삼성다운 ‘일류경영’을 해야 할 것”이라면서 “해외 선진 금융사들의 본격적인 진출에 대비해 핵심 금융전문인력을 확보하고 벤치마킹해 상품·서비스 개발 능력을 향상시켜야 한다.”고 주문했다. 토종 대 외국자본의 한판 승부가 벌어지고 있는 현 상황을 미리 대비한 것이다. 이 회장은 2001년 회의때도 “사고가 난 뒤 보험료율만 올리지 말고 교통사고를 줄이기 위한 연구개발(R&D)에 노력하라.”고 주문해 삼성화재가 최초로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를 설립하는 계기가 됐다. 이 회장이 전자계열에 이어 금융사 사장들과 전략회의를 가진 데서 나타나듯 금융업은 전자와 함께 삼성의 양대축이다. 삼성은 지난 세월 현대·LG 등과 늘 수위를 다퉈왔지만 금융만큼은 독보적인 지위를 유지했다. 현재 자산기준으로 삼성생명이 90조원을 넘어섰고 삼성화재 14조원, 삼성증권 6조원에 육박한다. 웬만한 시중은행과 맞먹는 수준이다. ●자산 90조, 삼성의 ‘젖줄’을 일군 사람들 삼성생명은 57년 4월 강의수, 전중윤, 윤삼영, 강일성, 김용수, 강화두 등 7인의 경제인이 57년 공동으로 세운 동방생명이 전신이다. 초대 사장과 회장을 지낸 고 강의수 회장은 권영길 민주노동당 국회의원의 장인이다. 당시 동방생명 마산지부장이 효성그룹 창업주인 고 조홍제 회장이었다. 동방생명은 설립 2년 만에 국내 생보업계 1위로 뛰어오른 데 이어 62년에는 동남증권(현 하나증권) 설립, 동양화재 주식 매입, 동화백화점(현 신세계백화점) 인수 등 사세를 넓혀 나갔다. 하지만 63년 1월 강 회장이 운명하자 곧바로 어려움에 빠졌고 그해 7월 삼성의 일환이 된다. 삼성생명은 삼성의 지배구조를 지탱하는 ‘대들보’로서 그만큼 부담도 안고 있다. 삼성생명은 삼성자동차 채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건희 회장이 삼성생명 주식 400만주를 내놓으면서 해외 및 국내여론의 집중적인 주목을 받았다. 그때 일부 해외언론은 이 회장을 가리켜 ‘책임을 질 줄 아는 유일한 경영인’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이재용 상무가 최대주주인 삼성에버랜드가 갖고 있는 삼성생명 주식 19.34%도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다. 에버랜드는 지난해 말 삼성생명 지분 6%를 제일은행에 5년간 신탁하면서 금융지주회사로 지정되는 것을 피하려고 하는데 당국의 결론이 주목된다. 참여연대가 지난해 4월 이수빈 회장을 비롯한 경영진을 배임혐의로 고발한 것도 걸려 있다.99년 회사가 손해를 봐 가면서 우리은행과 주식을 맞교환해 지배주주에게 ‘이득’을 안겨줬다는 주장과 삼성자동차 ‘우회지원 대출’ 등이 고발 사유였다. 이같은 경영외적인 비중을 제외하고도 삼성생명은 국내 생명보험 시장의 35%를 점유하고 있는 선두업체로 올해 자산 100조원 돌파가 예상되는 등 화려한 실적을 자랑하고 있다.2003년 미 포천지가 선정한 세계 500대 기업가운데 생보사 부문 19위에 랭크됐다.2010년까지 자산 200조원, 매출액 47조원을 달성하여 ‘글로벌 종합금융서비스회사’로 거듭나는 것이 목표다. 과거 삼성의 계열사 가운데 삼성생명 돈을 빌리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였다. 삼성생명빌딩과 중앙일보빌딩, 종로타워, 강남의 하이닉스빌딩 등 수많은 빌딩이 삼성생명 소유다.1116개 지점의 영업용 부동산의 장부가만 3조 5158억원에 달한다. ●생명의 산 증인, 이수빈과 배정충 삼성생명의 경영은 99년 12월부터 배정충(60) 사장이 책임지고 있다. 전북 전주생인 배 사장은 전주고와 고려대 경영학과를 마치고 69년 삼성생명(당시 동방생명)에 입사했다. 입사 당시 삼성생명의 자산은 30억원(현재 90조원)에 불과했다. 생명보험시장이 급격히 성장하던 70∼80년대를 영업 현장에서 보낸 배 사장은 삼성화재 대표를 거쳐 99년 ‘친정’의 대표이사로 금의환향했다. 취임 직후 가장 먼저 한 일이 한달에 걸쳐 전국의 영업현장을 순회한 일일 정도로 현장을 우선시한다. 한번 본 숫자는 거의 잊어버리지 않을 정도로 ‘수리’에 밝다.4년 만에 삼성생명에 돌아왔을때 사장실에 불려 간 간부들이 업무와 관련된 통계숫자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자 일일이 수정해주며 ‘불호령’을 내린 일화는 유명하다. 반면 아무리 바빠도 회사 임직원이나 거래처, 지인들의 상가에는 빠지지 않고 참석할 정도로 인간적인 면도 강하다는 평이다. 이수빈 회장도 삼성생명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다. 65년 삼성그룹 공채 6기로 입사,13년 만에 제일모직 대표이사로 초고속 승진한 그는 25년간 제일합섬, 제일제당, 삼성항공, 삼성생명, 삼성증권의 CEO와 삼성 금융그룹 회장을 맡아 ‘직업이 사장’으로 불린다. 보험 경영에 손익과 효율을 중시하는 경영 방식을 접목했고 생명보험 경영의 핵심인 영업소장과 설계사의 위상 강화를 통해 업계 1위의 기반을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삼성생명은 그 역사만큼이나 거쳐간 인물들의 면면도 화려하다. 2대 사장을 지낸 이호씨는 20대,31대 내무부장관과 8대,20대 법무부장관을 역임했다.63년 삼성으로 넘어 오면서 새로 구성된 경영진에는 LG그룹 구인회 창업주의 3남이자 이병철 회장의 둘째 사위인 구자학 아워홈 회장이 포함돼 눈길을 끈다. 이명희 신세계 회장의 시아버지인 정상희씨는 71∼78년 회장을 지냈고 김만제 전 포철회장도 경제부총리를 마치고 91∼92년 회장을 맡았다. ●사돈과 사위가 맹활약한 삼성화재 삼성화재는 1951년 3월 경남 함안 출신의 구진현씨가 세운 재단법인 ‘훈세사(勳世社)’에서 출발한 안보화재와 한국일보 창업주인 고 장기영 회장이 초대사장을 지낸 안국화재가 전신이다. 안보화재와 안국화재는 63년 합병으로 한 회사로 태어났고 93년 말 삼성화재로 이름을 바꿨다. 삼성화재의 사사에는 유난히 ‘인척’들의 활약이 돋보인다. 이맹희씨의 장인인 손영기 전 경기도지사는 삼성에 인수된 직후인 61년 안국화재 사장을 맡은 뒤 운명(76년)하기까지 사장을 지냈다.CJ그룹 이재현 회장의 외삼촌이자 손영기씨의 아들인 손경식 CJ 회장은 93년 7월 당시 제일제당 부회장으로 자리를 옮길 때까지 경영을 맡았다. 이병철 회장의 4녀 덕희씨의 남편인 이종기씨와 자리를 맞바꾼 것이다. 이종기씨 역시 2000년 3월 경영에서 물러날 때까지 삼성화재를 국내 대표 손보회사로 키워놨다. 안국화재 지분이 많던 이맹희씨도 65∼67년 임원을 지냈고 부인 손복남씨도 85∼93년 상무로 일했다. 삼성화재 역시 긴 역사만큼이나 거물급 인사들을 많이 배출했다. 동부화재 김순환 사장은 2001년까지 부사장을 지냈고 조용철 CJ홈쇼핑 사장도 99년까지 삼성화재에서 일했다. 박해춘 LG카드 사장, 박종익 전 손보협회 회장도 삼성화재 출신이다. ●신경영으로 이끈 이학수와 이수창 이학수 삼성 구조조정본부장이 실질적으로 삼성화재 대표를 지낸 것은 94년 12월∼96년 8월로 1년 8개월밖에 되지 않지만 삼성화재의 ‘경영체질’을 혁신적으로 바꿔 현재의 고도수익을 낳는 경영시스템을 만들어 놓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본부장은 94년 초 제일제당 대표로 잠시 나갔다 돌아오고 나서 바로 삼성화재 CEO로 부임하자마자 17%였던 시장점유율을 30%까지 끌어 올리겠다고 공언했다. 당시 삼성화재 임원들은 ‘불가능한 목표’라며 주저했지만 “삼성이 명색이 ‘영남기업’으로 알려져 있는데 대구에서 4위, 부산에선 3위, 경북은 7위라는게 말이나 되느냐? 전부 1위로 끌어 올리자.”는 이 본부장의 격려에 설득당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 94년 17.6%였던 삼성화재의 점유율은 96년 23.6%로 급등,2,3위와의 격차를 10%이상 벌렸고 2001년 대망의 ‘30%’를 달성하는 데 성공했다. 이 본부장은 또 자동차보험의 공격적인 확대, 설계사 수당 100% 인상, 품질보증제 시행 등 ‘신경영’을 도입하며 삼성생명에 비해 뒤처져 있던 삼성화재의 위상과 직원들의 사기를 크게 높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배구단 창설, 삼성화재배 세계바둑대회 등을 통해 회사 이미지 개선에도 기여했다. 이 본부장, 배정충 현 삼성생명 사장의 뒤를 이어 99년 대표이사로 취임한 이수창(56) 사장의 경영성적도 눈부시다.99년 26.9%였던 점유율을 지난해 32%로 끌어 올리며 2,3위업체와의 격차를 더욱 벌렸다.2003년,2004년 세계적인 신용평가기관인 S&P로부터 국내 민간기업 중 최고등급인 A+를 받았다. 매월 마지막주에는 영업점과 보상 현장을 깜짝 방문하는 등 ‘현장경영’에 철저한 이 사장은 2002년 업계 최초로 ‘삼성애니카’라는 브랜드 경영을 도입했고 2001년 진입이 까다롭기로 유명한 중국시장에 진출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은행의 손해보험업 진출이 예정된 올해는 향후 10년간 회사의 명운을 좌우할 중대한 시기”라며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경북 예천의 대창고를 졸업한 이 사장은 독특한 전공(서울대 수의학과)으로도 유명하다. 한때 사법시험을 준비했지만 결국 경영인으로 성공했다. ●아직 꺼지지 않은 카드의 ‘불씨’ 삼성의 금융사업 가운데 가장 고전하고 있는 분야는 신용카드다. 삼성카드는 지난해 1조 5000억원의 유상증자를 단행한데 이어 올해도 1조 2000억원의 증자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46%), 삼성생명(34.5%), 삼성전기(4.7%), 삼성물산(3.1%) 등 삼성 계열사들은 지분만큼 증자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삼성카드의 적자로 인한 지분법 평가손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건희 회장은 이미 2002년 “신용카드가 신용사회 저변확대에 기여했지만 과열 경쟁으로 인해 사회·경제적인 부작용이 일어날 수 있다.”며 ‘주의’를 당부했지만 카드사태는 현실화됐다. 유석렬(55) 사장은 신용카드 부실이 불거진 2003년 대표이사를 맡아 그동안 삼성캐피털과의 합병, 유상증자, 해외자산유동화증권(ABS) 발행 등으로 숨가쁜 시간을 보냈다. 경기고와 서울대 경영학과를 거쳐 74년 제일모직에 입사한 유 사장은 입사직후 회사의 권유로 한국과학기술원(KAIST) 산업공학과에 진학한 ‘드문’ 케이스다. 삼성전자 반도체 미국법인 근무를 거쳐 91년부터는 비서실 재무팀에서 일했다. 미국법인 관리부장 시절 동료가 최광해 현 구조본 재무팀장이다.97년 삼성캐피털 대표이사로 CEO 생활을 시작한 유 사장은 삼성증권 사장, 삼성생명 자산운용부문 사장을 역임했다. ●‘투자은행’으로 변신중인 삼성증권 92년 국제증권을 인수하면서 출범한 삼성증권은 98년 수익증권 판매고 최단기간내 10조원 돌파 등 짧은기간에 업계 선두권으로 도약했다. 일찍부터 ‘약정경쟁’을 지양하고 자산관리형 영업으로 변신을 시도, 현재 투신수탁고가 20조원에 달해 자산관리부문에서 은행 등과 경쟁을 벌이고 있다. 조흥은행, 국민은행 지분 매각 작업에 공동주간사로 참여하는 등 외국계 대형 증권사들이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투자은행(Investment Banking) 부문에서도 이들과 경쟁할 수 있는 유일한 토종증권사로 평가받고 있다. 우리금융지주 회장으로 영입된 황영기 전 사장에 이어 지난해 5월 삼성증권 사장에 취임한 배호원(54) 사장은 삼성그룹 내에서도 대표적인 자산운용 및 재무 전문가로 꼽힌다. 배 사장은 경남고와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77년 제일합섬 경리과를 시작으로 비서실 재무팀 부장, 삼성생명 자산운용본부장, 삼성투신운용 사장, 삼성생명 자산·법인부문 총괄 사장 등 해당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아왔다. 금융전문가답게 깔끔한 이미지지만 직원들과 ‘해장국 미팅’을 즐기는 등 소탈한 모습도 갖고 있다. ●벤처투자, 투신운용, 선물 등으로 확장되는 금융사업 삼성은 삼성물산의 벤처사업팀을 확대,99년 유망 벤처기업을 발굴·육성하는 삼성벤처투자를 설립했다.2003년 대표이사로 부임한 김상기(55) 사장은 대구 출신으로 경북사대부고와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 삼성생명, 삼성증권에서 주로 일했다. 지난해 말 현재 수익증권 22조 2000억원, 뮤추얼펀드 1000억원, 투자자문 38조 1000억원 등 60조가 넘는 자산을 관리하고 있는 삼성투자신탁운용은 2003년부터 삼성화재 부사장을 역임한 황태선(57) 사장이 맡고 있다. 경북 상주생으로 김천 성의종고와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선물 관련 제품의 판매·컨설팅, 정보 수집 등을 담당하는 삼성선물은 지난해 3월부터 정주영(57) 사장이 맡고 있다. 정 사장 역시 황 사장의 고향인 경북 상주 출신으로 상주고와 서울대 농업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삼성생명을 거쳐 삼성증권 리테일 사업본부장을 역임했다. ukelvin@seoul.co.kr ■ 삼성의 금융비화 삼성은 삼성물산을 시작으로 제일모직, 제일제당, 삼성전자 등 거의 모든 회사를 손수 일궜지만 오늘날 100조원이 넘는 자산을 운용하고 있는 금융사업은 대부분 인수한 것이다. 묘하게도 인수한 금융사는 승승장구하고 있는 반면 삼성이 직접 설립한 금융관계사는 어려움에 처해 있다. 지난해 삼성증권 황영기 사장이 우리금융지주 회장 후보로 추대되자 재계에서는 곧바로 삼성의 우리은행 ‘인수설’이 불거져 나왔다. 우리은행이 삼성자동차의 주 채권은행인데 삼성에서 잘 나가던 황 사장이 굳이 자리를 옮길 필요가 있었느냐는 것이다. 삼성의 부인이 아니더라도 삼성이 은행을 소유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인다. 하지만 한때 시중은행의 대부분을 소유했고 이후에도 끊임없이 제1금융권 진입을 노렸던 삼성인지라 의혹의 눈길은 쉽게 거둬지지 않는다. 고 이병철 회장은 50년대 중반 이승만 정부가 추진한 시중은행 주식 공매에 참가해 12억 9000만환에 흥업은행(구 한일은행) 주식 83%를 소유하게 됐다. 이어 조흥은행주 55%를 매입했다. 흥업은행 신탁부에서 상업은행주 33%를 갖고 있었으므로 삼성은 당시 4개 시중은행 가운데 3개 은행을 직간접적으로 지배했던 것이다. 황영기 회장이 맡고 있는 우리은행이 한일은행과 상업은행이 합친 것이므로 삼성과 우리은행의 인연이 질기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5·16 쿠데타로 삼성이 소유하고 있던 은행 지분은 정부 소유로 돌아갔다. 삼성으로서는 한국비료(한비)와 대구대·은행을 박정희 정권에 뺏긴 셈이다. 하지만 삼성과 금융사업의 인연은 58년 안국화재 인수로 재개된 뒤 63년 동방생명 인수로 본격화된다. 금융사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던 고 이병철 회장은 63년 봄 동방생명 임원이 찾아와 회사를 인수해달라고 부탁했다고 회고했다.5월22일 당시 동방생명 임원 대부분의 주식이 먼저 삼성으로 넘어왔고 강의수 회장의 유족들도 7월16일 지분을 넘겼다. 강 회장의 유족이 권영길 민주노동당 국회의원의 부인 강지연 여사다. 삼성과 민노당의 ‘악연’도 역사가 긴 셈이다. 삼성은 92년 11월 배현규씨 등 국제증권 대주주로부터 영업권을 양도받아 삼성증권을 탄생시켰다.96년에는 국제선물(현 삼성선물)을,98년에는 동양투신(현 삼성투신운용)을 인수했다. 반면 88년 설립한 삼성카드는 현재 그룹의 ‘뜨거운 감자’로 전락했고 95년 설립한 삼성캐피탈도 부실을 줄이기 위해 지난해 삼성카드와 합병해야 했다.99년 설립한 삼성벤처투자도 ‘벤처 붐’이 사그라지면서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ukelvin@seoul.co.kr ■ 생명·화재 역대 대표이사 ●삼성생명 강의수(57.4∼62,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 장인) 이 호(∼63, 전 내무부·법무부 장관) 조우동(∼69, 전 삼성중공업 회장) 이겸재(∼71) 원종훈(∼78) 고상겸(∼83) 배상욱(∼84, 전 체신부 장관) 박태원(∼85) 이수빈(∼91) 황학수(∼95, 전 삼성카드 부회장) 이수빈(∼99, 현 삼성사회봉사단장) 배정충(∼현재) ●삼성화재 손영기(∼76, 이맹희씨 장인) 손경식(∼93, 현 CJ회장) 이종기(∼2000, 이병철 회장 넷째 사위) 강경수(∼93) 홍종만(∼94, 전 삼성자동차·삼성코닝정밀유리 사장) 이중구(∼94, 현 삼성테크윈 사장) 이학수(94∼96, 현 삼성 구조조정본부장) 배정충(∼98, 현 삼성생명 사장) 이수창(∼현재)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최광숙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7개 과거사 진상규명] 7개 과거사 개요·쟁점

    [7개 과거사 진상규명] 7개 과거사 개요·쟁점

    1. 정수장학회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이름에서 한자씩 따온 장학회다.5·16 군사 쿠데타 이듬해인 1962년 부산의 유력 사업가이던 김지태씨의 부일장학회를 모태로 5·16 장학회로 출범했다. 삼화고무와 부산일보를 운영하던 김지태씨는 재산해외도피 혐의로 중앙정보부로 끌려가 두달정도 구금생활을 했다. 부일장학회와 부산일보 등의 운영권 포기각서를 쓰고 며칠뒤 풀려났다. 서류상으로는 김씨가 자진납부한 것으로 돼 있으나, 유족들은 부산군수사령부 법무관실에서 수갑을 찬 채로 운영권 포기각서에 서명하라고 도장을 찍었다면서 명백한 강탈이라고 주장해 왔다. 특히 지난해 8월에는 “서류상은 자진납부로 되어 있는지는 모르나 실재와 다른, 물목(物目·물건의 목록)조차 보지 못하고 있다.”는 김씨의 비망록이 발견돼 이런 의혹은 증폭됐다. 군부세력이 김 사장으로부터 부일장학회를 강탈했는지, 아니면 헌납과정에서 강제력이 동원됐는지에 조사의 관건이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장학회 이사장을 맡고 있으며, 장학회는 문화방송 주식의 30%와 부산일보 주식의 100%를 소유하고 있다. 2. 동백림 사건 1967년 7월8일 당시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은 동베를린을 거점으로 한 반정부 간첩단사건이라며 이른바 ‘동백림사건’을 발표했다. 고 윤이상씨와 재 프랑스화가인 이응로씨 등 194명이 동백림을 거점으로 대남적화 공작을 벌이다 적발됐다는 것이다. 동독주재 북한대사관을 왕래하면서 이적활동을 했고, 일부는 평양을 방문해 밀봉교육을 받았다고 발표됐다. 몇몇 독일 유학생들이 북한 또는 동베를린을 구경하고 돌아온 것을 두고 북한의 배후 조종에 따른 어마어마한 간첩단인 것처럼 조작됐다는 게 의혹의 골자다. 당시에는 3선 개헌을 앞두고 총선에서 부정선거가 저질러졌다며 대학가 등에서는 부정선거 규탄시위가 끓어오르던 시기였다. 이런 점과의 연계성도 조사대상이 될 것 같다. 3. 인혁당·­민청학련 사건 1975년 4월8일 대법원이 도예종, 여정남 등 민청학련 사건 관련자 8명에 대해 사형을 확정한 이후 불과 20여시간 만인 4월 9일 오전 6시에 이들의 사형은 전격적으로 집행됐다. 이른바 ‘인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박정희 정권이 반 유신체제 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긴급조치 4호를 선포한 상황에서 저질러졌다.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국제법학자협회는 이날을 ‘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규정하며 엄중하게 항의했다. 이 사건으로 구속된 253명 중 유인태 의원, 이철 전 의원 등 민청학련 관계자들에게 사형, 징역 15년∼무기징역 등 중형이 선고됐지만 국내외적인 압력에 못이긴 박정희 정권은 1975년 2월 대부분을 석방했다. 사건 진실규명의 핵심은 박정희 정권에 의한 용공 조작여부에 있다. 구타, 물고문, 전기고문 등 가혹행위를 통한 사건 조작, 군사법원 재판부의 공판조서 허위 작성 의혹 등도 진실규명이 필요한 대목들이다. 당시 중앙정보부로부터 사건을 넘겨받은 공안부 검사들마저도 피의자들의 혐의를 인정할 수 없다며 기소장 서명을 거부하는 ‘항명파동’이 일어났고 그 중 3명은 사표를 던졌다. 4. 김대중 납치 사건 1973년 8월8일 일본 도쿄에서 당시 야당 지도자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납치된 사건. 신병 치료를 위해 일본에 체류중이던 김대중씨는 유신체제가 선포되자 국내로 들어오는 것을 포기하고 해외에서 반유신 활동을 벌였다. 사건 당일 도쿄에서 통일당 당수 양일동을 만나러 그랜드 팰리스 호텔에 간 김씨는 한국 정보기관원에 의해 납치됐다가 129시간 만에 서울 자택 부근에서 풀려났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시여부가 가장 큰 쟁점이다. 미국이 이 사건을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느냐도 밝혀져야 할 부분이다. 또 배를 이용해 한국으로 데려오는 과정에서 김씨를 수장시키려 했다는 의혹도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5.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 실종사건 ‘청와대 근처 지하실에서 사살됐는지, 센강에 던져졌는지, 아니면….’1979년 10월 7일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이 프랑스 파리에서 실종된 사건이다. 김 전 부장은 1979년 10월 7일 파리 ‘르 그랑 세르클’ 카지노를 나선 이후 행방불명됐고 프랑스측이 함께 수사했음에도 아직까지 미제사건이다. 김 전 부장은 박정희 정권 역대 정보부장 중 최장수인 6년 3개월을 역임하는 등 정권의 핵심 인물이었으나 내부 권력 투쟁으로 밀려난 뒤 73년 미국 망명길에 올랐다. 이후 1977년 박동선 로비 사건을 조사중이던 미 의회의 프레이저 청문회 등에 나가고, 회고록을 집필하는 등 ‘반(反)박정희’ 행보를 계속했다. 6. 대한항공(KAL) 858기 사건 1987년 11월29일 승객 115명을 태우고 이라크 바그다드를 출발해 서울로 향하던 KAL 858기가 미얀마 상공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13대 대선 투표일을 불과 하루 앞둔 12월 15일 북한 특수공작원인 ‘폭파범 김현희’가 김포공항으로 압송돼 왔다. 대선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당시 정부는 북한의 지령을 받은 특수공작원 김현희, 김승일이 기내에 라디오 시한폭탄을 설치, 아부다비에서 내렸으며 김승일은 체포직전 자살했다는 내용의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7. 중부지역당 사건 1992년 10월 대선을 두 달 남짓 앞두고 터진 ‘초대형 간첩단 사건’. 중부지역당 총책으로 지목된 황인오씨가 구속되는 등 62명이 구속되고 300여명이 수배됐다. 단순한 남한내 조직이 아니라 북한 권력서열 22위라는 ‘남파 여간첩 이선실’이 등장했고 전국적으로 노동계, 학생, 단체 등에서 300여명의 조직원을 확보한 지하조직으로 발표됐다. 이는 최근 이철우 의원의 ‘간첩 논란’을 통해 다시 한 번 부각된 사건이지만 사건 연루자들은 “안기부의 고문에 의해 조작된 것”이라고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어 고문, 사건 조작 여부 등이 풀어야할 부분들이다.
  • [신통방통 운세볼까] 재미로 보세요 닭해 운세 “꼭이요”

    쥐띠주변사람과 대인관계 원만하게 유지하면 어려울 때 도움 받아서 의외의 수확을 얻을 수 있겠다. 사업의 무리한 확장이나 개업은 자제하는 게 좋을 듯. 전체적인 건강운은 양호한 편. 신경질환에 주의만 한다면 큰 걱정은 안해도 되겠다. 36년생:남의 재테크 성공에 영향 받아 무작정 따라하다가는 낭패 볼 수 있다. 욕심을 버리고 안정된 투자처를 찾는 것이 현명. 48년생:자기 분야에 최선을 다해야만 좋은 성과 기대할 수 있다. 순간적인 감정 참지 못하면 일을 망칠 수 있으니 유의. 60년생:굳은 의지와 끈질긴 승부욕으로 정진한다면 새 사업도 추진할 만하다. 가까운 사람과의 금전거래는 삼가는 게 좋다. 72년생:숨은 실력을 윗사람에게서 인정 받게 된다. 어렵고 힘들었던 과거는 다 지나가게 되고 활기찬 미래가 펼쳐지겠다.84년생:줏대를 갖지 못하면 갈등 많이 생기겠다. 타인에 대한 배려 태만히 하지 않도록 신경 써라. 맡은 일에는 최선 다하도록. 소띠 근심이 사라지고 땀 흘린 노력에는 반드시 알찬 결실이 있겠다. 매사 소극적인 자세보다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매매는 때를 잘 맞춰야 이루어지나 대체로 만족스러운 결과 나오겠다. 순간적인 감정 참지 못하여 일을 망칠 수도 있으니 유의하라. 25년생 뚜렷한 목적 없이 새 사업에 손대거나 변동 꿈꾸다가는 손실 따르겠으니 주의하라. 아랫사람 실수에는 관대하라. 37년생 : 심신을 편하게 하고 매사 흔들리지 않는 계획을 세워야 일의 해결이 쉽다. 급한 성미로 인한 실수 없도록 항상 조심.49년생 : 인정에 끌려 바른 판단을 하지 못할 우려 있다. 공과 사를 분명히 해야 뒤탈 없겠다. 건강 관리도 게을리 하지마라. 61년생 : 보다 넓은 시각으로 사물을 보아야 하겠다. 독선적이 되지 말고 가까운 사람과 마음을 열고 협력하면 성과가 크겠다. 73년생 : 작은 것이 쌓여 큰 결실을 얻겠다. 경솔한 말과 행동으로 오해를 사게 돼 가까운 친구와 멀어질 수 있으니 주의. 호랑이띠 대체로 금전운이 열려 있어 주머니 사정 좋아지겠다. 신중하지 못하면 새 사업 추진하는데 어려움에 부닥치겠다. 신경성이 속병으로 전이되어 고생할 우려 있으니 건강에 주의. 항상 여유로운 마음을 가지고 일에 대처한다면 큰 염려는 없겠다. 26년생:지나치게 독선적으로 밀어붙이다 타인과 의견 충돌로 일을 망치게 될 수 있으니 자기절제를 생활화하는 것이 좋겠구나. 38년생:마음을 활짝 열고 가까운 사람과 협력하면 성과가 크겠다. 실리보다 체면치레에 지나치게 치중하면 곤란해진다. 50년생: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예의 지키는 것을 잊지 않도록. 사사로운 일이나 대인관계에 많은 시간을 낭비하지 마라. 62년생:돈과 명예에만 연연해하지 말고 건강부터 추스르는 것이 좋겠다. 믿을 만한 사람과 협력하고 원리원칙을 추구하라. 74년생:패기만으로 성공하기 어려우니 윗사람의 조언 구하라. 재테크 정보를 얻게 되고 투자에 관심을 갖게 되지만 결정은 신중히 하라. 토끼띠 금전운과 사업운이 대체로 양호하다. 간혹 불쑥 튀어나오는 경솔한 언행으로 공든 탑을 허물어 뜨리지 않을까 우려 된다. 언제든 맡은 분야에서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실력을 갖춰놔야겠다. 특히 건축업과 경영학 분야는 뛰어난 활약이 기대된다. 27년생:매사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자세가 필요. 타인에 대한 따뜻한 배려도 아끼지 마라. 건강 관리에 많은 신경을 쓰도록. 39년생:금전운과 명예운이 모두 왕성. 항상 검소하게 생활하라. 남을 위해 봉사하는 것도 큰 복을 쌓는 일임을 명심하라. 51년생:사업은 순조롭고 승진의 행운도 따르겠다. 자존심을 너무 내세우면 대인관계에 어려움 생기고 고립 부르니 주의. 63년생:계획했던 일마다 어렵지 않게 성취하겠다. 횡재운이 넘쳐나고 가정 또한 화목하다. 자녀에게도 좋은 일이 있겠다. 75년생:한 눈 팔지 말고 정진해야 만족할 만한 성과 얻을 수 있다. 허영에 취해 연초의 각오가 흐지부지하게 될 수도 있으니 주의. 용띠 대길한 운세가 찾아드니 승진, 합격 등으로 희망 찬 일년을 보낼 수 있겠다. 윗사람에게는 칭찬을, 아랫사람에게는 존경을 한 몸에 받는다. 눈앞의 즐거움에만 빠져 더 큰 행운을 보지 못한다면 뒤늦게 후회할 일 생긴다. 새로운 분야에는 함부로 뛰어들지 마라. 28년생:집안이 화기애애하고 자녀에게 뜻밖의 경사가 생기겠다. 이웃에게 베푼 작은 온정이 크나큰 기쁨이 되어 돌아오겠다. 40년생:자기중심적인 생활방식은 마이너스가 된다. 심신이 허약해지기 쉬우니 철에 맞는 보신 필요. 고혈압 환자는 특히 주의. 52년생:주위 사람들이 부당한 비난을 하여도 개의치 말고 올바르게 행동하라. 과민 반응을 보인다면 커다란 낭패가 있겠다. 64년생:하는 일마다 결실 크다. 작은 투자로 짭짤한 수익 볼 수도 있을 듯. 사소한 일에 얽매이지 말고 시야를 넓혀 행동하라 .76년생: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자세를 가져야 내 몫 확실히 지키는 한해가 된다. 매사 지나친 욕심 버리고 언행을 조심하라. 뱀띠 혼자만 안고 있는 남모르는 번민이 생길 수 있겠으나 상반기가 지나고 중반기에는 근심거리를 말끔하게 덜어 버리게 된다. 동업을 추진하는 경우는 주위 사람들과 화합해야 유익한 합의점을 찾을 수 있겠다. 부동산 매각은 이익이나 매입은 불리할 듯. 29년생:변화보다 안정을 취하는 게 좋고 대인관계에 신경 써라. 매사 정면 승부보다 우회적인 대응이 효과적일 수도 있다. 41년생:지나치게 소심하면 오히려 심신만 피곤해진다. 상황에 따라 자신감 갖고 적극적으로 나서야 삶에 활력이 넘치겠다. 53년생:가까운 사람의 도움으로 정신적인 압박과 금전적인 어려움도 풀리겠다. 중간에 서서 선후배간의 화합에 힘써라. 65년생:지난 일은 잊고 재충전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새롭게 출발하라. 대립은 피하는 것이 무난. 계약은 신중히 해야 실수 없겠다. 77년생:맺고 끊는 게 분명하지 않으면 주위사람에게 불신 받고 구설수에 오르기 쉽다. 건강진단은 미루지 말고 받아보도록. 말띠 모든 일이 순조롭게 시작되어 마무리되는 해. 하지만 의욕이 너무 넘치면 오히려 일을 망칠 수 있도 있으니 주의. 매사에 경솔하기 쉽기 때문에 항상 자신을 점검하는 신중한 태도가 필요. 중반기에 여행운도 있으니 심신의 피로를 풀 기회로 삼도록 하라. 30년생:신변에 변화가 생겨 인생의 전환점 맞는다. 원칙 고수가 난관 극복하는 길. 신중한 판단으로 후회 없는 선택을 하라. 42년생:무리하다 금전적인 어려움 발생할 수 있으니 분수에 맞게 생활하라. 친구를 함부로 대하다가는 낭패 있으니 주의하라. 54년생:항상 공정하고 꼼꼼하게 일을 처리할 때 성과를 얻을 수 있음을 깨달아라. 동료와 승진 놓고 선의의 경쟁 예상된다. 66년생:사업운이 상승하고 가정에는 화목이 가득. 돈을 충동적으로 쓰게 되면 후일 후회하게 된다. 또한 오기로 투자하면 손해 보기 십상.78년생:계획했던 일들 순조롭게 진행돼 결과도 만족할 만한 수준 되겠다. 남의 일에는 간섭하지 말고 공직자는 금전 유혹 조심. 양띠신변에 변화가 끊이지 않고 심신을 건강하게 하는 호재가 만발하니 유익하기만 하다. 생활이 안정되면서 의욕도 넘쳐난다. 일과 교제가 활발해지며 그에 따른 이익도 커지겠다. 단 생활이 사치스러워질 수 있으니 수입과 지출에 균형을 맞춰라. 31년생:결정한 일은 망설임 없이 실행에 옮겨야 효과 보겠다. 무심코 지나친 작은 일 때문에 오해 있겠으니 세심한 주의 필요. 43년생:독불장군에게 미래는 없다. 주위 사람 의견에 귀기울이는 자세가 중요. 겉치레보다 내실 다지기에 신경 많이 쓰도록. 55년생:신상의 변화가 오더라도 오히려 득이 될 수 있으니 당황하지 말고 순리에 따르는 것이 상책. 하반기에 길운이 오겠다. 67년생:허황한 일에 열성 쏟는 모험은 피하라. 과욕 부리면 가지고 있던 것마저 뺏길 수 있다. 명분에 벗어나는 일은 삼가도록. 79년생:과감하게 새로운 변화를 꾀하면 삶의 질을 한 단계 높일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겠다. 실력 배양에 힘쓰도록 하라. 원숭이띠 금전운이 들어오니 부동산에 투자하면 이익 많이 볼 듯. 불우이웃에게 선심 베풀도록 하라. 간혹 신경성 두통이나 위장질환이 올 수 있으니 주의하라. 중반기에 사업에 굴곡은 있겠지만 전체적인 운과는 거리가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다. 32년생:열심히 노력해도 헛수고인 때도 있겠으나 인내하면 반드시 좋은 결과 있겠다. 가급적 해외여행은 삼가는 편이 좋다. 44년생:공덕 쌓으면 뒤늦게라도 빛을 보게된다 . 자신의 부귀영달에만 급급하다가는 마지막 남는 것은 껍데기뿐임을 깨달아라. 56년생:섣불리 성과 내려다가는 낭패보기 쉽다. 대외 활동에 주력하는 것도 좋지만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내도록 노력하라. 68년생:장애물과 부닥치게 되면 조금은 손해본다는 마음으로 한 걸음 물러 서도록. 사고나 질병 등에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80년생:지나친 겸손은 자만으로 비춰질 수도 있음을 명심. 매사 분명하게 자신의 의견을 밝혀 시비에 휘말리지 않도록 조심하라. 닭띠 의욕이 넘쳐 목표 이상의 성과를 기대해도 좋을 정도로 운기가 왕성한 한해. 작은 일에 연연해하지 말고 큰 일을 계획하여 추진해도 좋다. 손해를 보게 되고 친구도 잃게 되는 아픔이 생길 수 있으니 어떤 경우라도 주위 사람을 너무 믿지 않도록 하라. 33년생:자신의 몫은 절대로 양보하지 말고 철저하게 챙기도록 하라. 사소한 실수로 인해 구설수가 우려되니 주의. 45년생:자신의 지위가 높아질수록 겸손하게 처신하고 주위 사람들에게 베풀어라. 과거에 얽매이면 얻을 것도 잃게 되겠으니 조심. 57년생:본업과 부업을 겸하면 수입이 좋아지겠지만 대신 건강에 무리가 따른다는 것을 명심. 책임질 일 생기면 회피하지 마라. 69년생:새로운 분야로 진출을 고려하고 있다면 신중하게 계획을 세운 뒤 추진하라. 이상과 현실 분별 못하면 후회하게 된다 .81년생:작은 이익에 만족하고 주저앉는다면 더 이상 발전은 없다. 능력의 한계에 도전해 보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개띠 자기분야에 정열을 가지고 임하면 명예와 더불어 금전운도 높아진다. 토지 매매는 가능하나 주택 매매에는 다소 어려움이 따르므로 가능한 한 피하는 것이 좋겠다. 직장인은 승진의 기회가, 미혼자들에게는 좋은 인연을 만날 수 있는 한 해가 되겠다. 34년생:나의 마음을 몰라준다고 탓하기 전에 상대방을 신뢰하는 것이 우선. 속전 속결하려는 급한 성격은 될 수 있으면 고치도록 노력하라. 46년생:스스로 만족하며 살아가는 자세도 생활의 지혜. 상대방에게 의심받을 행동은 삼가라. 친인척들과 유대관계 다지도록. 58년생:현실을 직시하고 분수를 지키도록. 남의 사정 봐주다 난처한 지경에 이를 수 있으니 매사 잘 살펴야 손해 보는 일 적겠다. 70년생:대인관계는 대립이나 경쟁을 지양하고 상생의 길을 모색토록 하라. 능력외 일은 무리하게 맡지 말고 과감하게 거절하라. 82년생:실패하더라도 낙담하지 마라. 젊은 패기로 무슨 일이든 의욕적으로 나서서 개성을 마음껏 발휘하면 소기의 성과 거두겠다. 돼지띠 운영하는 사업에 활기가 있겠고 직장인은 동료와 상사에게 실력을 인정 받겠다. 주변사람 말만 따르지 말고 나름대로 신중하게 판단해야 실수 적다. 대가 없이 베푸는 사람은 드문 법. 과도한 친절을 보이는 사람은 조심하고 불로소득은 꿈꾸지 않는 게 좋다. 35년생:여러 가지 일 벌여만 놓고 뒷짐지고 물러나 있으면 주위 사람에게 원망 듣기 쉽다. 무책임한 약속 남발하지 않도록 절제. 47년생:내 것이 아니면 무엇이든 탐내지 마라. 자신의 일은 힘들더라도 스스로 처리하는 습관 기르도록. 59년생:선배나 주변 사람 조언 귀담아 듣지 않으면 좋은 기회 흘려 버릴 수 있겠다. 수동적이기보다 능동적 자세가 필요. 71년생:젊다고 건강을 과신하지 말고 체력 증진에 힘써라. 순간적인 감정에 휘말리지 말고 이성적인 판단 내려야 실수 적다. 83년생:뚜렷한 소신 없이 주위 사람의 말에 솔깃해 부화뇌동한다면 낭패 볼 수도. 이성 문제로 오랜 우정에 금이 가지않도록 주의하라.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공공의 적2’ 모델된 심재륜 전 고검장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공공의 적2’ 모델된 심재륜 전 고검장

    사건의 서곡은 ‘석양의 폭탄주’에서 시작됐다. 무림의 고수들이 만났다. 전직 고검장 출신의 검객(檢客)과 스크린의 마술사. 술잔을 거푸 들이킨다. 시계바늘을 돌린다. 고민에 빠진다. 마침내 생각의 나무, 그 뿌리에서 뭔가 나온다. 느낌표와 마침표. 마술사가 무릎을 탁 친다. 얼마후 영화 ‘실미도’가 개봉됐다.1000만 관객을 훌쩍 돌파했다. 아무도 예상못했다. 사람들은 전대미문(前代未聞)이라고 했다. 사건은 계속됐다.‘공공의 적’이라는 이름으로. 심재륜(61) 전 고검장. 늘 따라붙는 수식어만 해도 간단치 않다.‘항명파동1호 검사’‘조폭과의 전쟁’‘현직 대통령 아들 구속’‘한보사건’‘장영자 어음사기사건’. 또 있다.“검찰이 이 지경이 된 것은 대통령 책임이오.”라는 직격탄을 날린 통제불능의 사나이. 우리나라 검찰수사의 대표적 ‘강력통’이며 ‘특수통’이다. 별명은 ‘심통’이다. 고집이 센 데다 성이 ‘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있다. 다름아닌 대박을 조언하는 ‘영화 코치’라는 점이다. 그렇다. 강우석 감독작품인 ‘실미도’와 ‘공공의 적’ 시리즈에서 적극적인 자문역할로 대형사고(?)를 터뜨렸다. 영화 ‘실미도’에서는 실미도 사건 의 현장 상황을 생생하게 전달했다. 심 전 고검장은 사건 당시 인천시 부평의 특전사에서 군법무관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사건이 나던 날인 주말 오후, 외출을 나가던 중 불과 몇십미터 지근거리에서 실미도를 탈출한 병력의 차량을 목격하게 됐다. 아울러 군병력과의 총격전도 직접 지켜볼 수 있었다. 때문에 정래혁 국방장관이 발표한 ‘무장공비’ 운운은 믿지도 않았다. 최근에 개봉된 ‘공공의 적2’에서는 사실상 전편에 걸쳐 자문역할을 했다. 이 영화에는 꼴통검사(설경구)에서 검사장까지 등장한다. 영화의 주인공이 검사라는 점도 최초이지만 서울중앙지방검찰청 내부를 처음으로 공개한 것도 심 전 고검장의 역할이 컸다. 특히 영화의 주된 흐름인 사학재단의 비리를 파헤치는 것과 조폭검거 등의 장면에서는 그의 냄새가 풀풀 난다. ●실미도 등 강우석감독 영화 자문 서울 서초동의 ‘심재륜 변호사 사무실’에서 심 전 고검장을 만났다. 최근 개봉된 영화 ‘공공의 적2’에 대한 얘기가 가장 먼저 나왔다. “원래 ‘공공의 적’이란 해방직후에 등장한 단어지요. 좌익쪽에서는 ‘인민의 적’으로 표현했습니다. 현대적 개념의 공공의 적은 사회전체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사람, 즉 사회적으로 타도해야 할 대상을 말하지요. 영화 시사회를 봤는데 강우석 감독이 스토리구성을 잘한 것 같아요. 관객 500만명은 족히 넘지 않을까요.(웃음)” 강우석 감독과는 어떤 인연이 있는지 궁금했다. 강 감독은 평소 “심 전 고검장을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라는 표현을 자주해왔다. 이에 심 전 고검장은 “항명파동 직후 (자신은) 정부와는 부정적 이미지였지만 강 감독은 (영화사의)고문을 맡아달라고 선뜻 제의해왔다.”면서 “이 과정에서 폭탄주를 마시며 서로 더욱 친해졌다.”고 대답했다. 아울러 “실미도 사건 때의 현장목격담,‘공의 적1,2’를 제작할 때 강력부장과 중수부장 시절의 경험담 등을 많이 들려주었다.”고 부연했다. 그렇다면 ‘공공의 적2’에 등장하는 꼴통검사와 강력부장은 심 전 고검장의 모델이냐고 물었다. 그는 “(내가)초대 강력부장 출신이다. 그렇게 봐도 틀린 것은 아니다.”며 웃었다. 또 강 감독뿐만 아니라 설경구 등 제작진들과도 여러차례 저녁자리를 가지면서 조언을 해주었다고 덧붙였다. 시나리오를 쓴 작가도 검사장의 태도를 잘 파악하고 있었다고 말했다.(심 전 고검장은 술자리에서 강 감독을 ‘강간독’으로, 설경구를 ‘경구피임약’이라고 농이 섞인 별명을 지어주었다며 웃었다. 어느정도 친하게 지내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폭탄주는 가득 채워야 부정부패가 없거든요. 칠부니 팔부니 하면 형평성이 어긋납니다. 술자리에선 선배와 후배를 평등하게 대접해야 합니다. 또 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마시기 때문에 탁자 밑에 쏟지 못하지요. 폭탄주는 투명하고 정직합니다.” 그는 “폭탄주를 마시고 2차 술자리를 하게 되면 주사를 할 수 있기 때문에 후배들에게 1차에서 끝내도록 권유한다.”고 말했다. 폭탄주가 널리 보급된 것은 85년 이후이며 원조는 박희태 의원이라고 귀띔했다. ●개혁은 기본과 근간 흔들지 말아야 이번에는 사법개혁에 관한 질문을 했다. 그는 ‘개혁’이라는 말은 위정자들이 합리화하기 위한 단어에 불과하다고 전제했다. 아울러 개혁에는 ‘제도개혁’과 ‘인적개혁’이 있지만 제도 자체가 잘못된 것은 없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개혁을 하려면 기본과 근간을 흔들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장기간 실험을 거치면서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우리나라 사법시험은 소수의 합격자들만을 일생동안 편하게 지내게 한다는 지적을 받기도 하지만 해방이후 오늘날까지 국가가 버틸 수 있는 지주대로써의 역할을 해온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다.”면서 최근들어 1년에 1000여명씩 법조인이 양산되다보니 선비정신이 갈수록 퇴색되가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가 사법시험을 치를 때는 달랑 5명만 뽑았다고 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플리바게닝 도입과 관련, 그는 “우리나라 법체계상 정당한 방법이 될 수는 없다.”면서 “배신논리가 법으로 보장받아서는 안 된다. 동양적 윤리로 볼 때 아들이 아버지를 배신하는 꼴이 나올 수도 있는 것이 아니냐.”고 주장했다. ●박종철고문 조작 등 대형사건 지휘 그는 1944년 1월 충북 옥천 읍내에서 4남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그가 두 살 때 세상을 떠났다. 선친은 교장으로 퇴임한 교육자였다. 그는 어린 시절 대부분을 대전에서 보냈다. 대전중학에서 3학년 1학기까지 다니다가 2학기때 보험회사에 취직한 형을 따라 서울로 올라왔다. 상경후 그는 동성중학을 졸업한 뒤 서울고에 진학했다.5·16의 영향으로 62년 서울대 법대를 진학할 때 정원이 300명에서 160명으로 줄어들어 더욱 좁은문을 통과했다. 졸업 이듬해에 제7회 사법시험에 차석으로 합격했다. 연수과정인 서울대 사법대학원은 수석으로 졸업했다. 이후 1972년 정식으로 서울지검 검사로 발령받아 1993년 검사장으로 승진할 때까지 우리 사회의 굵직굵직한 사건을 다뤘다. 박종철군 고문치사 은폐조작사건, 비행선 부정도입사건, 오대양집단자살사건, 부산 초원복집사건도 그가 진두지휘한 사건이었다. 이밖에도, 서방파의 두목 김태촌씨, 양은이파의 두목 조양은씨,OB파의 두목 이동재씨를 비롯한 폭력조직 3대 패밀리를 소탕한 것도 그였다. 그는 1978년 서른네살 때 결혼했다. 주례는 민복기 대법원장이 맡았다. 신부는 큰 누님 친구의 딸인 공혜경(55)씨. 서울대 음대에서 피아노를 전공했으며 10년간 한양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심 전 고검장은 음악과 미술도 좋아하고 촌철살인의 농담실력은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 지난 2002년 33기 사법연수원생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가장 존경받는 법조인으로 뽑히기도 했다. 그의 투명성과 인자함, 불의에 굴하지 않는 성격 등이 각인돼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소외되고 억울한 편린들을 많이 봅니다. 인간생명의 존중함, 신체의 자유 등에 대해 새삼 배우고 반성하고 있지요.” 검찰생활 30년, 그는 “수사는 한마디로 종합예술”이라고 표현했다. 아울러 후배검사들에게 ▲피의자를 굴복시키지 말고 ▲조그마한 절차는 상사에게 양보하고 ▲외압이 들어올 것을 대비해 속도조절을 할 필요가 있으며 ▲집착하거나 너무 서둘러서도 안된다는 등의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그의 좌우명은 思無邪/德不孤必有隣/和而不同이다. 즉 생각함에 사악함이 없고, 덕을 베풀면 외롭지 않고 반드시 이웃이 있다. 또한 화합하되 뇌동하지 않아야 한다의 뜻이다. ■ 그가 걸어온 길 ▲1944년 충북 옥천 출생 ▲1962년 서울고등학교 졸업 ▲66년 서울대법대 졸업 ▲67년 제7회 사시합격(차석) ▲69년∼72년 육군법무관(대위) ▲69년 서울대법대 대학원 졸업 ▲72년 서울지검 검사 ▲82년 밀양지청장 ▲90년 서울지검 강력부장 ▲92년 서울지검 3차장 검사 ▲93년 대검 강력부장 ▲94년∼97년 대전·광주·인천지검 검사장 ▲97년 대검 중앙수사부장, 대구고검 검사장 ▲2001년 대검 고검장(본부근무) ▲2001년 부산고검 검사장▲2002년∼변호사심재륜법률사무소 ■ 저서=사법대학원제도와 운영 km@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삼성그룹 ④-무역·중화학·서비스 CEO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삼성그룹 ④-무역·중화학·서비스 CEO

    “삼성물산의 역사는 삼성그룹의 역사입니다.” 삼성그룹의 모태기업인 삼성물산의 지난해 매출은 9조 6963억원으로 주력인 삼성전자 57조 6324억원의 6분의 1에 불과하다. 하지만 삼성물산은 삼성전자 지분 4.0%를 비롯해 삼성석유화학, 삼성정밀화학, 삼성카드, 삼성SDS, 제일기획 등 숱한 관계사의 지분을 갖고 있다. 이건희 회장이 주식 1.38%를 보유하고 있고 등기임원(회장)으로 직접 챙기고 있는 데서도 그 비중을 짐작할 수 있다. 이 회장이 등기임원으로 활동하는 삼성 계열사는 삼성전자, 삼성SDI, 삼성전기, 삼성물산, 제일모직, 호텔신라, 삼성에버랜드뿐이다. 국내 종합상사 1호인 삼성물산은 84년 3위,1998∼2000년,2002년에 2위를 기록했던 것을 제외하면 종합상사의 매출기준이 달라진 2003년까지 줄곧 매출 1위 기업 자리를 지켜왔다. ●‘그룹의 역사’ 삼성물산과 인재들 고 이병철 회장이 28세였던 1938년 3월1일 대구시 서문시장 인근 수동(현 인교동)에서 250여평 규모로 출발한 삼성상회가 삼성물산의 전신이다. 이 회장은 이에앞서 경남 마산에서 정미소사업으로 큰 돈을 벌었지만 ‘부동산 투자’에서 다 날리고 자본금 3만원으로 상회를 시작했다. 삼성(三星)의 삼은 우리민족이 가장 좋아하는 숫자로 크고 많고 강한 것을, 성은 밝고 높고 영원히 깨끗이 빛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첫 사업은 대구일대에서 생산되는 사과 등 청과물과 포항의 건어물 등을 만주와 중국으로 수출하는 일이었다.‘라면부터 미사일까지’ 취급한다는 종합상사의 70년전 버전인 셈이다. 삼성물산은 삼성의 대표기업답게 거쳐간 인물들의 면면이 화려하다. 초창기 삼성상회의 지배인으로 영입된 이순근씨는 이병철 회장의 와세다대 동문이다. 그는 정계에 투신했다 월북, 농림상까지 지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은 거의 모든 경영을 이순근씨에게 맡겼는데 오늘날 ‘전문경영인’ 체제를 일찌감치 시험한 것이다. 서울로 거처를 옮긴 지 1년 만인 1948년 종로2가 ‘영보빌딩’ 근처 2층건물에 삼성물산공사로 간판을 걸 당시에는 효성그룹 창업주인 조홍제 회장이 전무를, 김생기씨가 상무를 맡았다.1949년 11월 마른오징어 3만근을 배에 싣고 홍콩으로 떠난 조홍제씨가 교포무역상과 챤넬양행으로부터 오징어를 담보로 각각 면사 50근을 외상매입한 것이 국내 최초의 D/P(Document against Payment Base) 거래로 꼽힌다. 조홍제 회장은 62년 효성물산, 한국타이어를 갖고 삼성을 떠난다. 김생기씨도 삼성에서 독립, 영진물산·영진식품·혜성개발 등을 일궈냈다. 삼성물산 창립멤버로 60∼61년 사장을 역임한 고 허정구씨도 눈에 띈다.LG그룹 구인회 창업주의 사돈인 고 허만정씨의 장남인 허씨는 이후 삼양통상을 설립했다. 허남각 삼양통상 회장, 허동수 GS칼텍스정유 회장, 허광수 삼양인터내셔널 회장의 아버지다. 70년에 대표이사를 지낸 정상희 사장은 3·5대 국회의원과 삼호무역 회장을 역임했고 신세계 이명희 회장의 남편인 정재은 명예회장의 아버지다. 이병철 회장과 고 홍진기 전 중앙일보 회장을 이어준 신현확 전 국무총리는 86년 이병철 회장의 요청으로 삼성물산 회장으로 영입됐다. 홍 회장의 공백을 메우며 이건희 회장 체제가 자리를 잡은 91년까지 물산 회장과 삼성미술문화재단 이사장을 지냈다. 이필곤 전 부회장도 삼성물산 대표이사를 두차례(85∼93년,95∼97년)나 지낸 대표적인 ‘물산맨’이다. 이 부회장은 삼성의 자동차사업 진출을 진두지휘하다 사업진출 차질에 대한 ‘책임’을 지고 중국으로 물러난 뒤 삼성을 떠났다. 서울시 부시장을 거쳐 현재 알티전자 회장과 삼성 CEO 출신들의 모임인 ‘성대회’ 회장을 맡고 있다.93∼95년 사장을 역임한 신세길씨는 현재 서울반도체 회장이다. 현명관 부회장은 아직도 물산의 비상근 회장 직함을 갖고 있다. 삼성물산은 2001∼2004년 배종렬 사장을 끝으로 공동대표체제가 굳혀졌다. 건설부문의 이상대(58) 사장은 충남 서천생으로 경복고와 고려대 정외과를 졸업했다.73년 제일합섬으로 입사한 뒤 대부분 삼성건설에서 일했다. 건설이 삼성물산에 합병되면서 97년 삼성물산 전략기획실장으로 일했고 2000년부터 주택부문 대표를 맡았다. 이 사장의 경복고 2년 선배인 상사부문 정우택(60) 사장은 서울대 금속공학과를 졸업하고 포항제철을 거쳐 77년 삼성물산에 입사했다. 휴스턴 지점장, 카자흐스탄 법인장 등 줄곧 상사부문에서 전성기를 구가했다. ●이병철의 세번째 회사 제일모직 1954년 9월 설립된 제일모직은 삼성상회, 제일제당(53년)에 이은 삼성의 세번째 회사다. 긴 역사만큼이나 숱한 인재들을 배출했는데 이학수 구조조정본부장, 김인주 구조본 차장, 최도석 삼성전자 경영총괄 사장, 김징완 삼성중공업 사장, 안복현 삼성BP화학 사장, 유석렬 삼성카드 사장 등이 제일모직에서 잔뼈가 굵었다. 지난해 제일모직 대표이사로 부임한 제진훈(58) 사장은 경남 산청생으로 진주고와 부산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제일모직에 입사한 ‘모직맨’이다. 제일모직에는 올초 상무보로 승진한 이건희 회장의 차녀 서현씨와 남편 김재열 상무가 같이 일하고 있다. ●‘봄날’을 기다리는 화학·중공업 80년 유공 인수 실패,90년대 중반 자동차 사업의 좌절 등으로 자동차·중공업∼정유·석유화학·화학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중화학그룹’을 도모했던 삼성의 꿈은 사실상 좌절됐다. 오늘날 삼성을 대표하는 업종은 전자와 금융이다. 하지만 화학·중공업 계열사들의 ‘절치부심’이 예사롭지 않다. 화학·중공업 계열사 CEO가운데 비교적 많이 알려진 CEO는 허태학(61) 삼성석유화학 사장이다. 경남 고성생으로 진주농림고와 경상대 농학과를 졸업한 뒤 69년 중앙개발(현 삼성에버랜드)에 입사했다. 허 사장은 중학교와 고등학교 진학마저도 조부의 강한 반대에 부딪힐 정도로 보수적인 농촌출신으로 한때 덴마크의 달라스나 그룬트비히 같은 농촌 계몽자를 꿈꾸었다고 한다. 호텔신라 총지배인, 삼성에버랜드 사장, 호텔신라 사장을 거쳐 2003년 삼성석화에 자리를 잡았다. 에버랜드 사장시절에는 ‘캐리비안베이’라는 테마파크를 조성, 리조트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대표이사로 재직하던 93∼2002년 삼성에버랜드는 이재용 상무에게 경영권을 넘겨주기 위한 ‘징검다리’로 부상하면서 구설수도 따랐다. 허 사장은 96년 에버랜드의 전환사채(CB)를 이 상무에게 저가로 발행한 것과 관련, 최근 징역 5년을 구형 받았지만 지금도 공공연히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이건희 회장을 꼽을 정도로 삼성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삼성 CEO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개인 홈페이지를 운영할 정도로 ‘자기 PR’에도 열심이다. 삼성과 고 이병철 회장에게 큰 상처를 줬던 삼성정밀화학(옛 한국비료)은 제일합섬, 에버랜드, 삼성전자, 삼성종합화학, 삼성중공업, 삼성카드, 삼성자동차 등 가장 많은 회사를 옮겨 다닌 것으로 유명한 이용순(59) 사장이 2003년부터 맡고 있다.64년 8월 27일 설립된 ‘한비’는 유명한 ‘사카린 밀수사건’을 계기로 67년 10월 삼성이 주식의 51%를 국가에 헌납한 회사다. 한비는 이후 산업은행이 대주주로 공사형태로 운영됐지만 방만한 경영 등으로 위기를 맞자 94년 다시 삼성의 품으로 돌아왔다. 고홍식(58) 삼성토탈 사장은 삼성 사장단 가운데 몇 안되는 호남 출신으로 광주일고와 한양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했다. 유난히 영남출신 CEO가 많은 삼성에서는 전주 출신의 배정충(60) 삼성생명 사장, 전남 구례생인 양인모(65) 삼성엔지니어링 부회장과 고 사장이 호남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LG전자 김쌍수 부회장이 기계공학과 1년 선배다. 72년 삼성에 입사한 고 사장은 줄곧 제일합섬에서 일하다 92년 비서실 경영팀장,93년 신경영실천위원회 팀장 등을 맡으며 그룹 전반의 일을 익히기 시작했다.95년 삼성종합화학 소속으로 화학소그룹 전략기획실장을 맡으며 화학계열에 본격적으로 발을 담갔다.2001년부터 삼성종합화학 CEO를 맡으며 97년 당시 부채비율 800%로 ‘회생불능’이었던 삼성종합화학을 프랑스 토탈과의 합작과 고효율 경영으로 지난해 매출 2조 8000억원, 영업이익 5700억원(이익률 21%)이라는 ‘알짜기업’으로 변신시켰다. 순차입금 비율은 20%로 뚝 떨어졌다. 스스로 “화학이 곧 내 인생”이라는 고 사장은 2010년 이익 1조원 돌파를 목표로 삼성그룹 내에서 비교적 위상이 처지는 화학 사업의 ‘중흥’을 노리고 있다. 2006년 세계 1위 조선업체를 목표로 하고 있는 삼성중공업은 ‘현장경영’,‘극한원가’,‘질적인 1위’를 부르짖는 김징완(59) 사장의 지휘하에 부활을 꿈꾸고 있다. 경북 달성생인 김 사장은 현풍고와 고려대 사학과를 마치고 73년 제일모직에 입사했다. 중공업과는 88년부터 인연을 맺어 2001년 대표이사로 부임했다. 세계에서 가장 크고 생산성 높은 조선소를 만들고 싶었던 이병철 회장은 일본 IHI사와의 합작을 통해 경남 통영시 안정리에 150만평 규모의 조선소를 세울 계획이었다. 하지만 오일쇼크의 여파로 계획은 차질을 빚었고 썩 내키지 않던 거제의 우진조선을 인수하는데 만족해야 했다. ●또 하나의 ‘초일류’, 삼성 서비스 삼성에버랜드가 언론에 크게 부각될 때는 대부분 삼성그룹의 지배구조와 관련돼 있다. 그도 그럴것이 에버랜드는 이건희 회장(3.72%)은 물론, 이재용 상무 25.10%, 이부진 호텔신라 상무, 이서현 제일모직 상무보, 이윤형씨 등 세딸이 나란히 8.37%의 지분을 갖고 있다. 고 이병철 회장의 4녀인 덕희씨의 남편인 이종기 전 삼성화재 회장(0.48%), 맏딸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의 남편인 조운해 전 고려병원장도 0.08% 지분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 회사는 국내 최대, 세계 6위권의 테마파크와 골프장, 빌딩관리 등 자산관리, 단체급식 등 유통, 조경 등 환경사업을 영위하며 지난해 매출 1조원 1600억원, 순이익 800억원대를 거둘 정도로 탄탄한 경영을 자랑한다. 박노빈(59) 사장은 보성고와 서울대 수학과를 마치고 74년 제일제당으로 입사,91년 삼성중공업을 거쳐 93년부터 에버랜드에 발을 담갔다. 사업 구상이후 무려 7년이 지난 79년 개관한 호텔신라는 초기 경기하락과 오일쇼크까지 겹쳐 적자에 허덕였다. 이병철 회장은 호암자전에서 “홍진기 회장의 총 지휘하에 손영희 사장이 경영을 맡고 장녀 인희가 고문이 돼 음식조리 등 안살림을 챙기고나서부터야 경영이 호전됐다.”고 회고했다. 경복고와 서울대 응용화학과를 졸업하고 줄곧 삼성물산에서 해외영업을 담당한 이만수(55) 사장이 2003년부터 경영을 맡고 있다.2001년 호텔신라로 들어와 지난해 상무보 승진에 이어 올초 상무로 승진한 이부진씨도 각별한 애정을 쏟고 있다. 삼성의 서비스 사업 가운데 가장 독특한 영역인 보안업체 에스원은 2002년부터 이우희(58) 사장이 맡고 있다. 삼성가의 고향인 경남 의령 출신으로 삼성내 거의 유일한 이건희 회장의 친척이다. 이 사장은 부산고와 부산대 법학과를 마치고 제일제당에 입사했다.94년부터 계속 비서실 인사팀장으로 일해왔다. 국내 최대 광고회사인 제일기획 배동만(61) 사장은 보성고와 고려대 축산학과를 졸업하고 73년 중앙일보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제일제당, 호텔신라를 거쳐 비서실 홍보팀장, 에스원 대표이사를 역임한 뒤 2001년 제일기획 사장으로 부임했다. 지난해부터 건국대 언론홍보대학원에서 겸임교수를 맡고 있다. ■ 초창기 사업동지 이병철·조홍제 세간에는 삼성 창업주인 고 이병철 회장과 효성 창업주인 고 조홍제 회장이 경남 진주의 지수보통학교를 다녔고 삼성을 공동 창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조 회장은 지수보통학교를 다니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1910년생인 이 회장은 서당을 다니다 1922년 3월 지수보통학교 3학년에 편입했다. 이 회장의 고향은 의령군 중곡면 중교리지만 진주시 지수면과는 인접해있다. 지수에는 이 회장의 둘째누이 분시씨가 결혼해 살고 있었다. 알려진 것과 달리 이 회장은 지수보통학교를 졸업한 것이 아니라 그해 9월 서울의 수송보통학교로 전학했고 25∼29년에는 중동학교를 다녔다. 1906년생으로 이 회장의 형인 병각씨와 동갑인 조 회장은 서당에서 한학을 배우다 상경,1922년 중동학교 초등과 1,2,3학년 과정을 이수하고 이듬해 협성실업학교 초등과 4,5,6학년 과정을 마쳤다. 효성 관계자는 “언제부터인지 선대회장과 삼성 이병철 회장,LG창업주인 고 구인회 회장이 지수보통학교 동문으로 소개됐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또 29년 도일,30년 와세다(早稻田)대 전문학부 정경과로 입학했고 조 회장은 27년 와세다대 공업전문학부에 입학했지만 29년 일본 호세이(法政)대 경제학부에 다시 입학한다. 둘의 동업관계에 대한 회고도 조금씩 다르다. 이 회장의 자서전인 호암자전은 48년 서울 종로2가에 삼성물산공사를 세울 당시 전무가 조홍제 회장, 상무가 김생기 전 영진약품 회장이었으며 설립자본금의 75%는 이 회장이, 나머지 25%는 조 회장, 김 회장, 이오석, 문철호, 김일옥씨가 분담했다고 밝혔다. 반면 조 회장의 회고록 ‘나의 회고’에는 48년 말 평소 안면이 있던 이 회장이 명륜동 조 회장의 집을 찾아와 사업얘기를 하던 차에 조 회장이 사업자금 800만원을 빌려준 것으로 나온다.2개월 뒤쯤 조 회장은 200만원을 더 투자해 1000만원을 채웠다. 이 회장이 이미 투자한 돈은 700만원이었다고 나와있다. 한국전쟁으로 잠시 헤어졌던 둘은 51년 이 회장이 당시 가족이 피난가 있던 마산에 들렀다가 조 회장을 만나 부산에 새로 차린 삼성물산에 와서 일하기를 권하면서 다시 이어졌다. 조 회장 역시 이와 비슷하게 기억했다. 호암자전은 또 조 회장과의 결별에 대한 별도 언급없이 63년 3월 2일 효성물산과 한국타이어, 한일나일론을 양도했다고만 명시했다. 나의 회고는 60년 3월초 일본 도쿄에서 골프를 치던 도중 이 회장이 결별 의사를 밝혔다고 소개한다. 이날 두 사람은 서로의 지분에 대해 언쟁을 가졌다. 둘의 재산분배는 62년 8월 이 회장의 자택에서 다시 논의된다. 조 회장은 “내 지분이 삼성 전체의 3분의 1쯤 되니 제일제당을 떼어달라.”고 제의하고 이 회장도 이를 받아들였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지분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고 갈등이 점점 커지다 64년에야 결론이 난다. 조 회장은 자신이 분배받은 재산(한국타이어와 한일나일론의 삼성 지분 50%, 효성물산)은 3억원 정도로 자기 몫의 10분의 1도 안됐다고 밝혔다. 분가하면서의 불화는 한동안 재계 인사들에게 회자됐었다. 그러나 지난 84년 먼저 세상을 떠난 조 회장의 빈소를 이 회장이 찾아와 한참동안 머물며 ‘앙금’이 없었음을 내외에 알렸다.3년뒤인 87년 이 회장도 영면했다. ukelvin@seoul.co.kr ■ 삼성물산 역대 대표이사 1938년 이병철 회장 1960년 허정구 사장(LG창업주 구인회 회장의 사돈 허만정씨의 장남, 삼양통상 창업주) 1961년 박도언 사장 1963년 김선필 사장 1966년 안동선 사장 1967년 김진하 전무 1967년 박태암 사장 1967년 성상영 사장 1968년 정수창 사장(전 두산그룹 회장) 1970년 정상희 사장(이명희 신세계 회장 시아버지) 1971년 김정렬 사장 1974년 이은택 사장 1977년 손상모 사장(전 동부그룹 부회장) 1978년 송세창 사장(전 나산그룹 부회장) 1981년 경주현 사장(전 삼성종합화학 회장) 1984년 배상욱 사장 1985년 이필곤 사장 1993년 신세길 사장(현 서울반도체 회장) 1995년 이필곤 부회장(현 알티전자 회장) 1997년 현명관 부회장(현 전경련 부회장) 2000년 이상대 사장(현 건설부문) 2001년 배종렬 사장 2004년 정우택 사장(현 상사부문)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최광숙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박수근 그림 ‘노상’ 경매 국내최고가 5억에 낙찰

    서울옥션이 26일 실시한 경매에서 박수근의 ‘노상’이 5억 2000만원(수수료 별도)에 낙찰돼 박수근 작품의 국내 최고 경매가 기록을 세웠다.‘노상’은 1962년에 그려진 3호 크기의 작품으로 박수근의 조형적 특징과 감수성의 진수를 보여준다. 종전 박수근 작품의 국내 경매 최고가를 기록한 작품은 2002년 경매에서 5억 500만원에 낙찰된 ‘아이 업은 소녀’다. 해외 경매에서는 ‘앉아 있는 아낙과 항아리’가 지난해 3월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약 14억 6200만원에 거래돼 한국 현대미술품 중 최고가를 기록했다.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조훈현 국수 ‘사라진 6년’ 되찾나

    ‘바둑 황제’ 조훈현(53) 9단. 그가 자신의 ‘잃어버린 역사’를 다시 찾을 수 있을까. 한국기원이 올해 시행 예정인 프로기사 랭킹제를 앞두고 소속 기사별 전적을 재정비하기로 한 가운데 조훈현 국수가 소년 시절, 일본으로 바둑유학을 떠나 그곳에서 기록한 전적을 다시 찾을 수 있을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랭킹제를 앞두고 한국기원은 프로기사 개인별로 빠지거나 중복된 기록을 보완하기로 했으나 일본 유학 중 일본기원 소속 기사로 6년여 동안 활동한 조 국수의 전적에 대해서는 그동안 한국기원 소속 기록이 아니라며 인정하지 않았던 것. 이에 따라 바둑팬들은 조 국수의 통산 기록에 주목, 그의 개인적 숙원이자 한국기원의 역사를 바꿀 수도 있는 그의 ‘사라진 6년’을 되찾을 수 있을지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1953년 전남 목포에서 태어나 1962년 아홉살에 입단한 조 9단은 한국기원 자료로는 통산 2025국의 공식 대국을 치러 1455승 4무 566패를 기록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지난 95년 9월 통산 1000승, 지난해 6월 통산 2000국 달성 등 전대미문의 기록을 수립했으나 일본에서 수립한 164국의 전적이 빠진 까닭에 이 기록은 모두 서봉수 9단에 약간씩 뒤졌다. 조 국수는 한국에서 입단한 이듬해인 63년 일본으로 바둑유학을 떠났고,67년 일본기원에서 다시 입단,72년까지 6년 동안 일본기원 소속으로 활약했었다. 당시 일본에서 가장 주목받는 천재기사로 손꼽혔던 그는 일본에서만 164전 118승 5무 41패(승률 73.5%)의 전적을 기록했으며,70년에는 33승 1무 5패 승률 85.9%의 경이적인 성적으로 일본기원 기도상 신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당시의 기록을 인정받게 되면 그는 통산 1000승 및 2000대국을 돌파한 한국 최초의 기사가 되며, 한국바둑의 역사가 다시 쓰이게 된다.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 ‘노상’ 박수근作 최고가 경신할까

    ‘노상’ 박수근作 최고가 경신할까

    (주)서울옥션이 26일 오후 5시 평창동 서울옥션하우스에서 제93회 근현대 및 고미술품 경매를 실시한다. 근ㆍ현대미술품과 고미술품 130여 점이 나온 이번 경매에서 특히 관심을 모으는 작품은 박수근의 ‘노상’.1962년에 그린 이 작품의 추정가는 4억5000만∼5억원으로 박수근 작품의 국내 최고 경매가 기록을 깰 수 있을지 주목된다. 기존 박수근 작품의 경매 최고가는 ‘아이 업은 소녀’로 2002년 경매에서 5억500만원에 낙찰됐다. 고미술품으론 한국불교문화 전성기인 통일신라시대 금동보살상의 우수성을 보여주는 ‘금동여래입상’과 큰 벼슬을 지낸 인물들의 일생의 단면을 그린 ‘평생도’ 등이 출품됐다. 이번 경매에는 1951년 미공보원 미술과에서 열린 이준·박성규 2인전 방명록도 나와 눈길을 끈다. 이중섭의 미공개작과 월북시인 김용호의 즉흥시 6점이 실린 이 방명록은 1950년대 예술인들의 교류를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로 꼽힌다.(02)395-0331.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일본 한국 韓·日 로봇기술 들여다보니

    일본 한국 韓·日 로봇기술 들여다보니

    로봇산업이 급속히 진화하고 있다. 단순하고 반복적인 기능만 수행하는 산업용 로봇에서 인간의 모습과 행동을 닮은 지능형 로봇으로 옮겨가고 있는 것.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진 ‘아시모’(ASIMO)를 비롯, 일본이 주도하는 지능형 로봇시장에서 최근 정보기술(IT)로 무장한 우리나라가 도전장을 내밀었다. ●로봇은 진화한다 로봇이라는 용어는 지난 1921년 체코슬로바키아의 극작가 카렐 차펙의 희곡 ‘롯섬의 만능로봇’에서 처음으로 등장했다. 이어 1962년 미국 제너럴모터스(GM)에서 자동차 조립라인에 산업용 로봇을 최초로 도입한 이후 현재 세계적으로 100만대 이상의 산업용 로봇이 보급된 것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최근에는 기능이 제한적인 산업용 로봇에서 인간의 일상생활에서 활용가능한 지능형 로봇으로 빠르게 바뀌고 있다. 그 중심에는 일본이 있다. 지난 2001년 일본 혼다사가 공개한 아시모는 지금까지 공개된 로봇 가운데 가장 인간에 근접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아시모는 평지뿐만 아니라 계단 등에서도 자유롭게 걸을 수 있고, 관절이 움직일 수 있는 범위도 커 다양한 동작이 가능하다. 일본 소니사가 만든 엔터테인먼트용 로봇 ‘큐리오’(QRIO)는 인식이 가능한 단어 수가 5만∼6만개에 이르고,10명가량의 사람 얼굴을 기억할 수 있다. 도요타자동차가 만든 ‘파트너’는 걷고 뛰는 것은 물론, 입술이 사람의 입술과 가까운 구조로 만들어져 트럼펫 연주도 가능하다. 이밖에 일본 과학기술진흥사업단이 장애물을 피할 수 있도록 고안한 ‘피노’(PINO), 도쿄대학과 가와다공업이 작업용으로 공동개발한 ‘이사무’(ISAMU), 촉감을 느낄 수 있도록 제작된 일본 첨단통신연구소의 ‘로보비’ 등도 대표적인 지능형 로봇이라 할 수 있다. 일본이 이처럼 로봇기술(RT) 분야에서 주도권을 쥐게 된 까닭은 꾸준한 투자에 있다. 특히 일본은 지난 2000년 5000억엔(5조원)에 불과하던 RT 시장이 오는 2007년 8조엔(80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 올해부터는 377억달러(4조원) 규모의 ‘휴먼로이드 로봇 프로젝트’(HRP)를 추진키로 하는 등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국의 지능형 로봇 4인방 이처럼 지능형 로봇시장은 일본이 주도하고 있지만, 최근 우리나라가 맹추격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한국과학기술원(KAIST) 오준호 교수가 국내 최초로 두 발로 걸을 수 있는 휴머노이드(Humanoid·인간형 로봇)인 ‘휴보’(HUBO)를 개발한 데 이어 이달 초에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유범재 박사가 네트워크 방식으로 얼굴 등을 인식할 수 있는 ‘NBH-1’을 공개했다. 이에 앞서 지난 1998년에는 KIST 김문상 박사가 ‘센토’를,2001년에는 KAIST 양현승 교수가 주인을 알아보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아미’를 각각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오 교수는 “인간형 로봇을 비롯한 지능형 로봇에 대한 기술력은 일본의 80% 수준”이라면서 “하지만 특히 정보기술(IT)을 활용한 인공지능과 인식기술 등 소프트웨어적인 측면에서는 일본에 전혀 뒤지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양 교수는 “우리나라의 로봇 기술력이 외형적으로는 성장했지만, 모터와 감속기 등 핵심 부품 대부분은 일본으로부터 수입에 의존하기 때문에 원천 핵심기술을 확보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면서 “특히 로봇산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현재 대학과 연구소 중심으로 이뤄지는 개발작업에 일본처럼 기업들의 참여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는 지난 2003년 8월 지능형 로봇산업을 10대 차세대 성장동력산업으로 선정,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이어 오는 2010년까지 상품화한 뒤 2013년에는 세계 3위의 로봇 강국으로 발돋움한다는 구상이다. 산업자원부 관계자는 “2013년에는 지능형 로봇 생산 규모가 30조원, 수출액 200억달러(20조원), 고용 효과 10만명에 이를 것”이라면서 “특히 현재 로봇시장에서 산업용 로봇이 차지하는 비중은 80% 이상이지만, 오는 2020년에는 지능형 로봇이 그 자리를 차지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문서공개로 본 韓日협정] ① 협상 전모와 문제점

    [문서공개로 본 韓日협정] ① 협상 전모와 문제점

    1차부터 7차까지 13년여에 걸친 한·일협정 과정에서의 분수령은 지난 62년 김종필 중앙정보부장과 오히라 마사요시 일본 외상간에 이뤄진 이른바 ‘김·오히라 메모’의 교환이었다. 일제강점 기간의 구체적 피해 내용을 근거로 대일 청구권 총액을 산출하려던 접근방식이 ‘정치적 타결’로 귀결되는 순간이다. ●김·오히라 ‘정치적 타결’ 매듭 협상에서 일본은 “청구권인 이상 법적·사실적 관계를 엄격히 따져야 하며 증거가 확실해야 하는데, 입증책임은 한국에 있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일본측의 증거인멸과 6·25동란 등으로 인해 증거불충분 부분에 대해서는 조리에 의한 판단에 의해야 한다.”고 맞섰다. 수년간의 줄다리기 끝에 “결국 이러한 근본적 대립상태에서 ‘합의’에 도착하는 방법 외에는 해결 방법이 없었다.”고 외교문서는 ‘정치적 해결’의 불가피성을 적고 있다. 당시 일본은 “국회에서 합의문서 존재를 부인할 테니 한국도 신문기자 등이 물으면 없다고 말해주기 바란다.”고 요구, 제안은 수용된다. ●일부 피해자만 배상금 지급 아울러 이 일은 일본으로 하여금 “한국측의 대일 청구권은 완전, 최종적으로 소멸하기로 돼 있다.”는 태도를 갖게 하는 계기가 된다. 이후에는 ‘개인관계 청구권의 소멸’을 규정한 양국 외무장관간의 합의, 즉 ‘이동원-시이나’ 합의가 뒤따른다. 이와 관련, 일본 측은 “대단히 중대한 일이므로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 소멸됐는지를 확실히 해둬야 한다.”고 했으나, 우리는 “각종 청구권이 덩어리로 해결됐는데 그것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는 결국 각각 국내 문제로 취급돼야 한다.”고 답했다. 당시 일본으로부터 받았던 돈에는 피해자들의 개인관계 청구권이 포함돼 있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그간 일제 강점 피해자들이 일본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개인배상 청구소송에서 번번이 패소한 것도 이런 데서 기인한다. 또한 우리 정부가 이를 일괄 수령한 뒤, 이를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음도 거듭 확인된 셈이다. 우리 정부는 청구권에 대한 표현에 있어서도 제대로 매듭을 짓지 못했다. 협상 막바지인 65년 5월 일본은 “우리측의 제공은 어디까지나 경제협력이라는 기본사고를 갖고 있다.”고 강변했다. 나아가 “한국측에서 ‘일본이 일방적인 의무에 입각해 제공한 돈으로 우리가 받아야 하는 것이니, 마음대로 해야겠다.’고 하면 곤란하다. 일종의 정치적인 협력이라는 의미에서 제공하는 것”이라고까지 말했다. 협정 이후 한국은 ‘청구권’에, 일본은 ‘경제협력’에 무게를 두어 자국민에게 설명해온 것도 양국간 역사인식의 차이를 불러온 이유 중의 하나로 꼽힌다. 이지운기자 jj@seoul.co.kr
  • [부고]

    ●고재필 前의원 보건사회부(현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낸 고재필 전 국회의원이 17일 오전 숙환으로 별세했다.92세. 전남 담양 출생인 고 전 의원은 일본 주오(中央)대를 나와 지난 49년 법제처 법제관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한 뒤 62년 정계에 입문해 7,8,9,10대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다. 73년 보건사회부 장관과 77년 제2무임소 장관을 역임했고, 저서로는 ‘하남(河南)회고록’이 있다. 유족으로는 미망인 이청환씨와 장남 영석씨 등 3남. 19일 오전 7시 발인, 빈소 삼성서울병원 (02)3410-6915. 장지는 전남 담양 창평 선영. ●이기우(제17대 국회의원)씨 모친상 17일 수원 연화장장례식장, 발인 19일 오전 9시 (031)217-7111 ●안석기(한전 대구지사장)씨 별세 16일 대구 파티마병원, 발인 19일 오전 8시 (053)350-2400 ●장종호(강동가톨릭병원 이사장)성호(강화병원 이사장)광호(아산섬유 대표)씨 부친상 17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9일 오전 7시30분 (02)3010-2295 ●한완용(동신약국 약사)수용(SKT 경영경제연구소 상무)병용(자영업)씨 부친상 17일 서울대병원, 발인 19일 오전 8시 (02)2072-2022 ●손영호(신명닛시건설 소장)영수(진아건축 이사)영자(백두약국 약사)씨 모친상 김판균(외환은행 팀장)씨 빙모상 17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9일 오전 7시30분 (02)3010-2238 ●김인한(전 동국실업 부사장)씨 별세 용동(전 쌍용 감사)미란(숙명여대 교수)호동(가곡사랑 대표)정훈(한섬건축 소장)씨 부친상 이현숙(숭실대 겸임교수)씨 시부상 오택길(장건축 대표)씨 빙부상 16일 서울대병원, 발인 18일 오전 9시 (02)2072-2016 ●김현준(전 세명대·대원과학대 사무처장)씨 별세 선형(전 코오롱건설 과장)지연(도트트레이딩 차장)씨 부친상 박경덕(주식회사 ADIT 대리)씨 빙부상 16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8일 오전 9시 (02)3010-2262 ●민병태(정보보호기술 대표)병구(삼성화재 대리점)씨 부친상 17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9일 오전 6시30분 (02)3410-6920 ●곽선부(애국지사숭모회장·평화통일정책자문위원)씨 별세 김병수(애국지사숭모회 이사)씨 모친상 17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9일 오전 9시30분 (02)3010-2294 ●유동욱·성엽(자영업)씨 모친상 강처목(변호사)김지호(아름다운오늘피부과 원장)홍지일(한국방송광고공사 이사)씨 빙모상 17일 부산대병원, 발인 19일 오전 7시 (051)240-7848 ●조원군(국민연금관리공단 홍보실 차장)씨 모친상 17일 고대안암병원, 발인 19일 오전 6시 (02)921-5699
  • ‘독도 폭파’ JP 아닌 日서 제안

    ‘독도 폭파’ JP 아닌 日서 제안

    “JP는 과연 독도 폭파 발언을 했는가.” 17일 공개된 한·일회담 문서에서도 이런 의문은 확인되지 않았다. 이 문서만으로 보면 폭파문제를 제안한 것은 분명히 일본측으로 명시돼 있다. 협상 주역이던 김종필(JP) 당시 중앙정보부장을 비롯해 우리측이 폭파문제를 언급한 내용은 없다. 공개된 문서에 따르면 양국은 1962년부터 시작된 제6차 한·일회담 2차 정치회담 예비절충에서 독도를 둘러싸고 팽팽히 줄다리기를 펼쳤다. 우리측은 ‘제3국에 의한 조정’을 타협안으로 제의했지만 일본측은 ‘국제사법재판소를 통한 해결’을 주장했다. 일본은 그 해 9월3일 제6차 한·일회담 제2차 정치회담 예비절충 4차회의에서 독도 문제를 계속 거론했다. 일본측 이세키 국장은 이 자리에서 “사실상 독도는 무가치한 섬이다. 크기는 ‘히비야’ 공원 정도인데 폭발이라도 해서 없애버리면 문제가 없을 것”이라며 ‘폭파’문제를 언급했다. 이에 우리측은 12월21일 20차 회의에서 “독도는 원래 한국 영토임이 분명하고 한·일회담 현안도 아니다.”며 “최근 일본측이 기회마다 이를 제기,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면서 유감을 표명했다. 이어 “일측이 국내 정치를 이유로 (독도문제) 해결없이는 회담 타결이 어렵다고 주장, 국교 정상화를 위한 대국적 견지에서 지난번에 김종필 정보부장이 제3국에 의한 조정안을 언급하였던 것”이라며 제3국에 의한 거중조정을 거듭 제의했다. 이처럼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을 명쾌하게 차단하지 못하면서 한·일협정이 ‘미완의 협정’이라는 평가를 받는 요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한편 JP가 협상 당시 ‘독도 폭파’를 일본측에 제안했다는 일부 외신보도가 1996년에 불거져 나와 한때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으나 JP측은 이를 전면 부인했었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환경·생명] ‘한국 귀신고래’ 돌아올까

    [환경·생명] ‘한국 귀신고래’ 돌아올까

    ‘한국귀신고래(Korean Gray Whale·쇠고래)’를 동해안에서 다시 볼 수 있을까. 선사시대(후기 신석기∼청동기)에 새겨진 것으로 추정되는 울산시 울주군 대곡리의 반구대 암각화(국보 285호)에는 귀신고래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귀신고래가 먼 옛날부터 동해안에 출몰했다는 증거지만, 실제 자취는 사라진 지 오래다. 전 세계 84종의 고래 가운데 ‘한국’이란 이름이 들어간 유일한 종으로,1914년 한 미국학자가 한반도 동·남해안을 2년여 조사한 뒤 논문에 발표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겨울철 동해안을 따라 남하해 출산한 뒤 봄부터 북상했다고 하니 한반도 해역은 귀신고래의 고향인 셈이다.“1900년 초까지만 해도 울산 장생포 앞바다 등 동해안에 풍부했다.”(국립수산과학원 김장근 박사)는 귀신고래가 고향을 떠난 건 1960년대부터다. 일본을 비롯한 세계 각국이 한반도 인근까지 진출하면서 대형고래를 경쟁적으로 남획하자 회유 항로를 아예 바꿔버린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최근 울산MBC 취재팀이 러시아 추코트 앞바다에서 촬영에 성공했지만 동해안에서의 출몰이나 포획 기록은 1960년대 이후론 없는 상태다.1962년 정부가 장생포 앞바다를 ‘귀신고래 회유 해면’(천연기념물 126호)으로 지정, 부랴부랴 보존에 들어갔지만 별다른 효과가 없는 실정이다. 현재로선 한국귀신고래가 회향하기엔 환경위해 요인이 너무 많다는 지적이다.“공업단지와 항만시설이 들어서고 원자력·화력발전소의 열 오염으로 인한 서식생물과 생태계 변화, 잠수함 등 선박의 탐지기 음파와 소음 등 울산주변 연근해 환경이 전반적으로 크게 달라졌다.”(울산대 신만균 교수)는 것이다. 동해에 광범위하게 깔린 어망과 불법 포획도 악조건으로 작용한다. 환경운동연합에 따르면 어망에 걸려 잡히거나 불법포획되는 소형고래류는 1999년부터 2002년까지 연평균 150마리에 이르다 2003년엔 280마리까지 올라간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이 때문에 이번 울산 IWC 총회를 계기로 동해에 고래가 살 수 있는 안전하고 깨끗한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환경운동연합 최예용 실장은 “고래도 살고 사람도 사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면서 “단순비교하기는 어렵지만 고래잡이에서 고래관광으로 전환한 뒤 더 많은 수입을 올리고 있는 호주의 사례가 적극 참고돼야 한다.”고 말했다. 박은호기자 unopark@seoul.co.kr
  • 서울 빗물 스며들 곳이 없다

    서울시 전역이 지난 40년동안 급격한 도시화과정을 겪으면서 물순환 체계가 심각하게 왜곡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도로가 콘크리트로 뒤덮여 빗물이 스며들지 못하자 열섬현상, 물부족, 침수피해 등이 발생할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서울시는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빗물침투·저장을 위한 시설물을 확충하기로 했다. ●40년전에 비해 증발량등 절반으로 서울시가 12일 시정개발연구원에 의뢰해 1962년과 2002년 중랑천, 탄천, 안양천 등 9개 하천의 물순환을 비교분석한 결과 연평균 강우량 1266mm 가운데 대기로 증발하는 빗물은 1962년 648mm에서 2002년 384mm으로 감소했다. 이는 토양이 물기를 머금고 있는 양이 줄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도시 열섬화’를 부채질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지하수로 흘러가는 빗물도 1962년 505mm에서 2002년 286mm로 219mm 감소해 하천이 점점 메말라가고 있음을 나타냈다. 반면 땅에 흡수되지 못하고 콘크리트, 아스팔트 도로 등으로 한꺼번에 빠져나가는 빗물은 1962년 113mm에서 2002년에는 연 강우량의 절반정도인 596mm로 늘었다. 이는 여름철 집중호우 때 저지대 침수 피해를 일으키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2015년까지 침투량 100만t으로 이에 따라 시는 오는 2015년까지 빗물 침투량을 100만t으로 늘리는 한편 빗물저수조에 저장되는 물도 100만t으로 늘리기로 했다. 이를 위해 내년부터 학교, 공원 등 공공시설에 매년 50억원씩을 투입, 빗물침투시설을 확충하고, 민간기업이 대지면적 2000㎡ 이상, 연면적 3000㎡ 이상의 건물을 신축할 때 환경영향평가에서 빗물침투시설 설치를 의무화할 계획이다. 시는 앞서 대지면적 5000㎡이상 학교, 공원, 주차장, 광장과 대지면적 2000㎡이상, 연면적 3000㎡ 건축물에 대한 건축허가시 빗물저수조 설치를 의무화했다. 현재 시가 추진중인 뉴타운사업과 서울숲 조성공사의 경우 빗물침투시설과 저수조 설치가 설계에 반영돼 있으며 서울시내 대형건물 34곳에도 빗물저수조가 설치되고 있다. 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 구대성 왜 메츠 택했나?

    구대성 왜 메츠 택했나?

    ‘구대성 메츠행 왜?’ 뉴욕 양키스 입단이 확실시되던 구대성이 뉴욕 메츠로 급선회한 것은 양키스 내부의 파워 게임과 메이저리그 자리 보장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구대성의 입단에 관여한 사람은 탬파 훈련캠프의 마크 뉴먼 부사장. 하지만 실제 업무에 대한 권한과 최종 결정권을 가진 사람은 브라이언 캐시먼 단장이다. 그런 캐시먼 단장이 구대성을 보기도 전에 입단 소식이 전해졌고, 구단주의 오른팔 격인 뉴먼에 캐시먼이 제동을 걸어 구대성 입단이 엿가락처럼 늘어졌다는 것. 또 구대성측이 당초 양키스에 집요하게 요구한 것은 메이저리그 마운드였다. 그러나 현재 양키스 불펜에는 구대성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마리아노 리베라-톰 고든을 비롯해 마이크 스탠튼과 펠릭스 로드리게스 등 정상급들이 꿰차고 있다. 롱맨 태년 스태츠까지 합치면 중간계투 7자리 모두 주인이 있다. 이 탓에 구대성의 ‘마이너리그 출발’설이 흘러나왔다. 이에 견줘 메츠에는 우완 마이크 드잔(34)과 좌완 펠릭스 헤레디아(29) 정도가 실력이 검증된 불펜요원. 이들마저도 정상급 셋업맨이라고 부르기는 힘들다. 구대성으로서는 경쟁이 치열한 양키스보다는 성적에 대한 부담도 덜하고 엔트리 진입도 수월한 메츠를 적극 고려한 셈이다. 더 이상의 외부영입이 없을 경우 구대성은 불펜 1순위 셋업맨까지 노려볼 만하다. 여기에 “선발도 충분히 가능한 선수”라고 추켜세운 오마 미나야 단장의 말 대로라면 메츠는 구대성에게 대체 선발까지 가능한 ‘기회의 땅’이 될 수도 있다. 한편 1962년 창단한 메츠는 69년과 86년 월드시리즈 우승 이후 정상 등극에 실패해 올시즌 페드로 마르티네스 등 대어를 잇달아 영입,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이젠 사람입국이다] 2. 평생학습이 가져온 제2의 삶

    [이젠 사람입국이다] 2. 평생학습이 가져온 제2의 삶

    |프랑크푸르트 장택동특파원|“의지만 있다면 배움의 기회는 항상 열려 있습니다. 끊임없이 배우는 것만이 자신과 조직을 발전시키는 유일한 길입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공항 관리를 맡고 있는 프라포트(Fraport)의 화물통제센터에서 만난 페터 케른(43) 화물관리국장은 자신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고졸에 화물노동자로 회사 생활을 시작했던 케른 국장이 600여명의 직원을 지휘하는 지금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학습의 힘’ 때문이다. 케른 국장은 1979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6년 동안 가게 점원 등으로 일하다 86년 화물창고 노동자로 프라포트에 입사했다. 그는 “사무직으로 회사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자리가 없었다.”면서 “일단 입사해서 기회를 찾아보려 했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기회는 빨리 찾아왔다.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한다는 점을 인정받았고, 직속 상사로부터 1대1 현장교육을 받으면서 회사의 운영시스템을 익힐 수 있었다. 급기야 그는 87년 수출문서를 다루는 부서에서 문서수발을 하는 업무를 맡았다. 사무직으로 직종을 바꾸는 데 성공한 것이다. 하지만 겨우 첫걸음을 떼었을 뿐. 고학력자들이 즐비한 사무직에서 승진은 쉽지 않았다. 그는 “대졸자들이 바로 수영을 시작한다면 나는 발장구를 치는 법부터 배워야 했다.”고 비유했다. 그동안 그가 사내교육을 통해 배운 과목은 공항경영, 일반경영, 국제경영 등 경영과목을 비롯해 재정회계, 성인교육, 문화차이 인식,MS오피스를 비롯한 컴퓨터 소프트웨어 사용법, 영어(토플) 등 20여개에 이르고, 국제경쟁력 강화 프로그램(KIM)을 이수했다. 이렇게 많은 양의 학습을 소화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더욱이 회사업무를 집에까지 들고 가서 해야 할 때에는 일을 마치고 밤새 책과 씨름하기도 했다.‘어떻게 어려움을 이겨냈느냐.’고 묻자 그는 “나보다 많이 배운 다른 직원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그들보다 더 열심히 뭔가를 배워야만 한다는 점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고 이것이 동기가 됐다.”고 말했다. 이같은 노력에 힘입어 90년에는 수출문서관리 및 화물창고의 담당관으로 승진했고,99년 수출입문서 및 위험화물관리 부장을 거쳐 지난 2003년 화물관리국장 자리에 올랐다. 16살짜리 딸을 둔 가장에다 중견간부 대열에 들어선 케른 국장이지만 그의 공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자기계발을 계속해야 하고, 열심히 공부하는 부하 직원들을 통솔하려면 나도 공부를 계속할 수밖에 없다.” 프라포트의 사내교육시스템은 독일 내에서도 우수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2002년에는 독일 상공회의소(DIHT)가 주관하고 대통령이 후원하는 ‘교육·훈련 솔선수범상’까지 받았다. 루츠 지베르트 조직발전국장은 “실직자 훈련프로그램부터 시작해 중견간부가 된 직원도 있고, 여러차례 직장을 옮겨다니다 직업안정성 교육을 받고 프라포트에 자리를 잡은 뒤 승승장구하는 간부도 있다.”고 귀띔했다. 프라포트는 ‘프라포트 아카데미’와 ‘프라포트 칼리지’ 등 2개의 사내교육기관을 운영하고 있다. 아카데미는 400여명의 임원진을 대상으로 하며 위기상황 대처방법, 직원과의 관계 등을 중점 교육한다. 칼리지에서는 1만 2600여명의 일반직원을 가르치는데 신입 직원교육, 기술향상 및 자격증 획득 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필요에 따라 외부교육기관과 연계한다. 다음해 실시할 교육을 기획하기 위해 해마다 9∼12월에는 철저한 평가과정을 거친다. 일괄적으로 전사원에게 같은 과목을 듣게 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별 적성과 필요에 따라 ‘맞춤형 교육’을 제공한다. 또 칼리지에서는 외국어, 컴퓨터 등 직무와 직접 관련이 없는 분야의 교육도 실시한다.‘미래에 닥칠 수 있는 다양한 상황에 대비하고 직원들의 배우고자 하는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라는 게 프라포트측의 설명이다. 직원들은 ‘Q카드’라는 제도를 통해 교육비를 해결한다.2000년부터 운영 중인 이 제도는 회사에서 1년에 600유로(약 84만원)를 Q카드 계좌에 적립, 직원들에게 교육비로 제공하면 직원들은 Q카드를 이용해 과목별로 등록하는 것이다. 과목당 수강료가 150∼450유로 정도이기 때문에 가격에 맞춰 2,3개 코스를 수강해도 되고 남은 돈은 다음해로 이월해도 된다. 물론 교육비 외의 용도로는 쓸 수 없다. 지베르트 국장은 “회사는 돈을, 직원은 시간을 투자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교육을 강화한 결과 생산성이 높아지고 이직률이 낮아지고 있다.”면서 “교육 부족으로 발생할 수 있는 사고 등을 감안한다면 직접적인 이익도 적지 않다.”고 덧붙였다. 케른 국장은 욕심이 많다. 언제까지 직장에서 일할 수 있을 것 같으냐고 묻자 “앞으로도 20년은 문제없다.”고 밝게 웃으며 말했다. 이어 KIM 과정에서 배운 국제감각과 토플 수업을 통해 익힌 영어를 바탕으로 언젠가는 해외지사에 나가서 일을 해보고 싶다고 밝혔다. 프라포트는 중국, 페루, 벨기에 등 10여개국에 지사를 갖고 있기 때문에 그의 꿈은 실현될 가능성이 높다.“한국에 프라포트 지사가 생긴다면 한국에서도 꼭 한번 일해보고 싶다.”고도 했다. 하지만 그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은 자기처럼 어렵게 회사 생활을 시작한 비슷한 처지의 후배들을 가르치는 일이라고 한다. 케른 국장은 “더 나이가 들면 승진을 욕심내기보다는 인력개발 분야로 가서 후배들을 교육시킬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면 좋겠다.”면서 “그동안 회사에서 배운 것을 그들에게 꼭 돌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taecks@seoul.co.kr ■ 유럽의 평생학습은 평생교육’(Lifelong Learning)이란 단어는 유럽 사람들에게 좀 생소하지만 낯선 개념은 아니다. 이 용어가 본격적으로 쓰인 것은 19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정상들이 모여 ‘모두를 위한 평생학습(Lifelong Learning for All)’을 제창하고, 유네스코(UNESCO)가 삶의 내면적 가치를 가꿔가는 새로운 차원의 학습을 권고하면서부터다. 그러나 내용적으로 보면 유럽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생애 전반에 걸친 다양한 학습과 교육이 이뤄지고 있어 평생학습이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유럽 평생교육의 기원은 루소가 1762년에 쓴 ‘에밀’에서 찾을 수 있다.‘교육에 대하여’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주입식 지육(知育)에 편중된 형식적 교육에 반기를 들며 자연주의적 전인교육을 중시했다. 틀에 짜여진 교육이 아니라 순수한 자연성을 추구하는 자유로운 교육, 열린 자기주도적 학습을 강조한 것이다.‘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루소의 유명한 말도 이런 취지에서 비롯됐다. 르네상스 자연주의·자유주의 사상을 계승·발전시켜 근대적인 인간교육의 이념을 제공한 루소는 칸트, 페스탈로치 등을 통해 근대 유럽 교육철학에 커다란 영향을 줬다. 유럽의 지식인들은 21세기를 ‘네오 르네상스’의 시대라고도 한다.‘다시 인간중심으로 되돌아가자.’는 네오휴머니즘 운동, 인간에게 편리함을 제공하는 휴먼테크 등의 추세도 이와 부합된다. 첨단기술의 시대에도 역시 사람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인간중심의 사회는 결국 사람을 가꾸는 것으로 귀결된다. 일하는 것도 노동생산성 향상 차원이 아니라 삶의 가치실현이란 차원으로 바뀐다. 유럽에는 주어진 틀 속에서만이 아니라 일과 생활 속에서 학습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고, 자기 스스로를 끊임없이 계발하는 사회적 풍토가 조성돼 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벼룩시장에는 온갖 물품들이 나오지만 그곳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붐비는 곳은 책 앞이다. 시대를 달리한 옛 서적들 앞에 중년 신사들이 모여들고, 추억을 더듬는 노부부와 한 권의 책을 들고 한껏 즐거워하는 주부, 할아버지 손을 잡고 따라나온 귀여운 손자. 벼룩시장도 자연스럽게 또 하나의 평생학습장이 된다. 점점 사라져가는 청계천의 헌책방들, 노령화사회라고 하면서도 노인들이 갈 곳은 탑골공원밖에 없는 우리의 현실과 대비된다. ‘영국 대영박물관은 세대가 교차하는 학습장이다. 유치원생부터 중년, 노년층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세대들이 이곳에서 뭔가 나름대로 배움과 깨달음의 느낌을 안고 간다. 런던 템스강 옆 벤치에 앉은 사람들도 책과 함께 있었고,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가는 열차 안에서도 유럽 사람들은 그런 모습을 보여줬다.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는 셸 러닝 센터에서는 자유롭게 토론하며 문제를 찾고 스스로 해결해 나가는 학습방법이 눈에 띄었다. 틀 속에 갇힌 학습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일상 속에 녹아 있는 교육과 자기 스스로를 가꾸는 것이 배움이고, 지속적인 자기계발을 통해 삶의 가치를 실현하는 것, 이것이 유럽 평생학습의 정신이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석철진 경희대 유럽통합연구소 부소장 아태국제대학원 교수 cjsuk@khu.ac.kr
  • SK 수출 100억弗 돌파

    SK그룹이 1962년 첫 수출을 시작한 이후 지난해 처음으로 수출실적 100억달러를 넘어섰다. SK는 지난해 53개 계열사중 13개 수출기업의 실적을 잠정 집계한 결과, 총 수출액이 131억달러를 기록했다고 4일 밝혔다.2003년(총 수출액 80억달러)보다 60%가량 늘어난 것이다. 또 SK의 지난해 수출규모는 우리나라 전체 수출액(2542억달러)의 5.1%에 달하는 것이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광복60주년 여론조사] (1)한국형 뉴프런티어십

    [광복60주년 여론조사] (1)한국형 뉴프런티어십

    일제의 암흑기를 벗어나 빛을 되찾은 광복(光復)의 기쁨도 잠시, 곧바로 형제가 총부리를 겨누는 동란을 겪어 잿더미 위에서 절망했던 우리 국민들은 지난 60년 동안 산업화로, 근대화로, 민주화로 가쁜 숨을 몰아쉬며 앞으로만 내달려왔다. 광복 60주년을 맞는 2005년은 한반도의 역사가 새 분수령을 맞는다는 점에서 의미깊은 시기가 될 것이다. 그러나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듯 새로운 시대는 참신한 역사정신을, 획기적인 리더십을 갈망한다.21세기를 살아가는 국민과는 동떨어져 자꾸 과거로 회귀하는 정치권은 서울신문이 광복 60주년을 맞아 한국사회과학데이터센터(KSDC)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철퇴를 맞았다. 그리고 정치권을 향한 국민의 쓴소리는 고스란히 역동적인 개척정신을 새 리더십으로 찾는 키워드로 연결되고 있다. 묵묵하게 척박한 땅을 일궈나가듯 뚜벅뚜벅 역사의 새 장을 개척할 수 있는 강인한 리더십이 필요한 시점이다. 국민을 우울하게 만드는 정치를 그만두고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한국형 ‘개척정신’은 바로 이 점에서 필수적이라 하겠다.F학점조차 주기 아까운 현재의 정치 풍토는 국민들의 열망과는 한참 벗어나 있다는 것이 바로 이번 설문조사의 핵심이다. 국민들은 정치 지도자에 대한 형편없는 신뢰도를 근거로 도전적이고 진취적인 개척정신에 대한 목마름을 표현했다. 여야 관계없이 정치 지도자를 신뢰하느냐는 질문에 응답자 1000명 중 385명이 0점을 매긴 것이 대표적이다. 현재의 정치를 결코 신뢰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신뢰도 1점 31명(3.1%),2점 119명(11.9%),3점 136명(13.6%),4점 66명(6.6%),5점 178명(17.8%) 등 F학점을 준 응답자가 전체의 91.6%였다. 반면 정치 지도자를 ‘매우 신뢰한다.’는 의미로 10점 만점을 준 응답자는 12명(1.2%)에 불과했다. 이를 바탕으로 책정한 정치 지도자 신뢰도 평균 점수는 10점 만점에 2.4점. 대학 성적표라면 졸업이 영영 불가능한 낙제점이다. 연령별로는 30대가 정치를 가장 불신하고 있었다.‘매우 불신’을 가리키는 0∼1점을 준 응답자는 20대에서는 33.9%를 차지했지만,30대는 46.4%나 됐다. 지역색이 강한 광주와 전남·북, 그리고 부산·울산·경남에서 ‘매우 불신’은 각각 39.4%와 34.5%에 그쳐 전국 평균 41.6%보다 낮았다. 그렇다면 국민은 왜 정치 지도자를 믿지 못하는가. 바닥으로 추락한 신뢰도를 회복하기 위해 어떤 덕목이 필요한가. 가장 손쉬운 답은 자고 일어나면 말이 바뀌고 행동이 180도 변하는 정치인의 ‘철새 근성’을 고치는 게 요체로 분석됐다. 이를 반영하듯 정치 지도자들이 공익을 우선시하고 일관성 있게 행동하는가를 물었더니 최종 성적은 10점 만점에서 평균 1.88점에 그쳤다. 일관도가 매우 낮다고 답한 응답자가 1000명 가운데 540명으로 54%를 차지한 것도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 초당적으로 협력한다더니 날마다 몸싸움을 벌이느라 국민과의 약속은 공허한 폐휴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처럼 정치 지도자의 숱한 거짓말과 일관되지 못한 언행이 정치 불신을 부추기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관용·상생의 정신이 부족한 것도 한국 정치판이 발전하는 데 큰 걸림돌로 지적됐다. 정치 지도자가 관용과 상생의 정신을 갖고 있느냐는 물음에는 평균 1.99점의 형편없는 성적이 나왔다. 정치인들이 말로만 ‘상생’을 외치고, 실제로는 ‘상쟁’에 바쁘다는 것이다. 상생의 정치를 하고 있다는 답변이 전체의 2.4%에 불과했다는 점을 우리 정치 지도자는 명심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60년을 이끌어갈 새로운 리더십은 어떤 덕목을 필수적으로 요청할 것인가. 다가올 앞날을 비춰줄 ‘비전’을 구체적으로 제시할 수 있고, 이를 추진할 수 있는 능력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이 이번 설문의 취지다. 전체 응답자의 77.5%가 우리의 정치 지도자들은 구체적인 비전을 제시할 능력이 ‘아주 부족’하거나 ‘대체적으로 부족’하다고 답했기 때문이다.10점 만점으로 평가하면 평균 2.24점에 불과한 초라한 성적표로는 쉬지 않고 바쁘게 변해가는 현대를, 그리고 국민의 행복을 이끌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정리 박지연기자 anne02@seoul.co.kr ■ 중요 역사사건 조사 광복 60년동안 아찔한 속도의 경제 성장을 이뤄내면서도 폭력과 억압으로 물든 시대를 견뎌온 국민들은 공과(功過)에 관계없이 지난 세월을 대체적으로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60년 역사를 객관적으로 평가해달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27.8%만 부정적인 의견을 보였다. 반면 응답자의 39.4%가 ‘매우 잘 가고 있다.’거나 ‘대체로 잘 가고 있다.’고 응답했다. 그렇다면 지난 세월 동안 한국의 역사 흐름을 바꾼 가장 중요한 사건은 무엇일까. 응답자 1000명 가운데 16.6%가 선택한 1962년의 5·16이 단연 1위로 꼽혔다.2위를 차지한 1950년의 6·25 한국전쟁은 이보다 8.7%포인트 낮은 7.9%에 그쳤다. 5·16이 중요한 사건 1위로 선정된 사실은 함축하는 바가 크다. 당시 육군 소장이던 박정희 전 대통령이 무력으로 제2공화국을 무너뜨리고 정권을 장악한 이 사건에 대한 평가가 워낙 크게 엇갈리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60년동안 무엇보다 세상을 한꺼번에 바꿔버린 6·25 한국전쟁보다 5·16이 1위에 올랐다는 점은 의미가 남다른 것으로 분석됐다. 사건 자체의 긍정, 부정적 의미를 평가하기 전에 5·16의 주역인 박 전 대통령의 딸인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2004년 정치권의 돌풍으로 등장했던 것도 이번 조사 결과와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분석됐다.5·16이 한국 근대사의 중요한 분수령이 됐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일이지만, 이 자체가 곧 ‘박정희 향수’ 내지는 ‘한나라당 옹호’,‘박근혜 대망론’으로 연결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라는 풀이다. 이러한 해석을 뒷받침하는 것이 지역별 분포도다. 단적인 예로 광주·전라 지역에서는 역사상 중요한 사건으로 6·25(15.3%)가 1위를 차지했다. 뒤를 이어 1980년 5·18 광주 민주화운동이 12.6%를 기록했다. 이 지역에서 5·16사건은 11.7%로 3위에 그쳤다. 반면 대구·경북 지역은 5·16사건이 14.6%로 1위를 차지했고,2위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향수에 힘입어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9.7%에 올랐다. 또 부산·울산·경남 지역에서는 5·16 사건이 1위를 기록한 가운데 5·18 광주 민주화운동도 2위를 차지해 눈길을 끌었다. 또 주목할 점은 역사적인 사건 TOP-10 가운데 1990년대 이후에 일어난 비교적 최근의 일은 ▲IMF구제금융(6위,1997년) ▲대통령 탄핵사건(8위,2004년) 등 2건에 불과했다는 점이다. 정리 박지연기자 anne02@seoul.co.kr ■ 아직 극복하지 못한 과제 격변의 세월을 겪으면서 아직도 우리 사회가 극복하지 못한 과제로는 부정부패가 33.8%로 1위를 차지했다.2위는 28.9%가 응답한 빈부 격차가 차지했고, 이어 이념 갈등(12.2%), 지역 분열(10.3%), 학벌·지역 차별(9.6%)등의 순이었다. 그러나 미극복 과제에 대해서는 연령별로는 조금씩 차이가 있었다.20대의 경우는 빈부 격차(34.7%)를 부정부패(27.9%)보다 많이 지적했다. 또 이념 갈등(9.8%)이나 지역 분열(9.6%)보다는 학벌·지역 차별(14.9%)을 먼저 꼽았다. 그러나 30대는 20대와 달리 부정부패(39.7%)를 빈부격차(25.7%)보다 더 많은 비중으로 응답했다. 이런 추세는 40대(32.4% 및 28.%)와 50대 이상(34.3% 및 27.4%)에서도 비슷했다. 세번째 미극복 과제로 꼽힌 이념 갈등을 놓고 20대(9.8%)와 50대 이상(9.9%)은 비교적 낮은 비중을 차지한 반면 30대(12.9%)와 40대(17.0%)는 상대적으로 더 많았다. 또 이를 가정 소득별로 보면 150만원 미만 7.5%,150만∼300만원 13.9%,300만원 이상 18.0% 등으로 소득이 높을수록 이념 갈등에 관심을 더 보이고, 낮을수록 관심을 덜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부정부패를 가장 큰 미극복과제로 꼽는 데는 남성과 여성이 모두 33.8%로 일치했으나 2위 요인인 빈부격차에서는 여성(32.9%)이 남성(24.7%)보다 응답이 많아 경제문제에 훨씬 더 민감함을 반영했다. 학벌 차별에 대해서는 예상과 달리 고졸 이하보다는 대재 이상의 고학력층에서 문제점을 지적하는 경우가 많았다. 대재이상 고학력층에서 학벌·지역 차별을 지적한 응답자의 ‘명문학교’를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를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 여론조사 방법·필진 서울신문은 광복 60주년을 맞아 한국사회과학데이터센터(KSDC)와 공동으로 한반도의 현재를 진단하는 설문 조사를 실시했다. 숨가쁘게 달리기만 했던 지난 60년 세월을 돌아보면서 다시 역사의 새 장(章)을 여는 원동력을 찾아보자는 것이 이번 조사의 취지다. 언젠가부터 사회를 가르기 시작한 보·혁 갈등의 틀을 봉합해 새 시대로 함께 나갈 수 있는 공감의 리더십을 구해보자는 것도 이번 조사의 또 다른 숨은 취지였다. 이를 위해 지난 12월22일부터 이틀간 전국의 만 20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전화 설문조사를 실시했다.95% 신뢰 수준에 최대 허용 오차는 ±3.1% 포인트다. 이번 조사의 설계와 분석, 집필에는 ▲이남영(숙명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KSDC 소장 ▲김형준(국민대 정치대학원 교수) KSDC 부소장 ▲김욱 배재대 정외과 교수 ▲김영태 목포대 정외과 교수가 참여했다. ■ 이남영 KSDC소장 총평 많은 국민들은 광복 이후 지난 60년동안 역사의 흐름을 바꾼 가장 중요한 사건이 5·16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지난 역사에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앞으로 우리 사회가 좋아질 것이라고 긍적적으로 전망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절대 다수의 국민은 한국 경제가 최소 5년 이내에 회복될 것이라고 응답했다. 우리 국민은 우리 역사와 미래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런 긍정적인 국민의 에너지를 어떻게 결집하여 국가 발전으로 연결시켜 나가느냐의 문제가 한국 지도자들이 풀어야 할 최대 과제다. 그러나 한국 정치 지도자들에 대한 국민 불신은 한계에 이르고 있다. 한국 정치 지도자들의 자질은 매우 낮게 평가되고 있다. 특히 작은 이익보다는 공익을 우선시하는 일관성 있는 자세의 결핍, 미래비전 제시능력 부족, 그리고 관용과 통합을 중시하는 상생정신 결여의 문제는 심각한 수준이다.21세기 한국이 지향해야 할 목표는 선진국 진입이다. 선진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한국형 프런티어십이 필요하다. 특히 정치지도자들 스스로가 자질 향상을 위해 노력을 경주해서 국민 에너지를 결집해 국가 발전을 이룩해야 한다. 이것이 광복 60주년을 맞아 국민이 정치권에 요구하는 강력한 주문이다. 설문조사 내용 ■ 우선 통일에 관한 사항입니다. 통일은 상당한 사회적, 경제적 비용이 수반하는 민족적 과업입니다. 통일에 대한 의견을 0∼10점 사이의 점수로 말씀해 주십시오. 적극 동의하실 때에는 10점을, 전혀 동의하지 않으실 때에는 0점을 주시면 됩니다. 1)통일은 반드시 민주적이고 남한에 의한 흡수 통일이어야 한다. 2)남북한이 합의하면 북한이 주장하는 연방제에 의한 통일도 무방하다. ■ 다음은 북한 핵문제 및 대북 지원에 관한 사항입니다. 현재 남북한 관계는 개성공단 추진, 금강산 관광 등 협력 분위기가 있는 반면, 북한이 미사일과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고, 서해 교전 등 위험 요소가 상존하고 있습니다. 3)북한의 위협에 대해 어떻게 느끼십니까?위협을 매우 크게 느끼면 10점, 전혀 위협을 느끼지 않으면 0점으로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4)북한이 비록 김정일 공산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더라도 북한 동포를 위해 민족적 차원에서 북한에 대한 지원은 가능한 한 많이 해야 한다는 의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적극 동의하실 때에는 10점을, 전혀 동의하지 않으실 때에는 0점을 주시면 됩니다. ■ 다음은 외교 및 국방에 관한 사항입니다. 5)노무현 정부는 주한 미군 철수와 주한 미군 재배치 등의 문제에 대해, 더 이상 미국에 일방적으로 의존하지 않는 협력적 자주 국방의 원칙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한국과 미국과의 동맹관계가 잘 유지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매우 잘 유지되고 있다고 생각하시면 10점을, 전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시면 0점을 주시면 됩니다. ■ 다음은 경제에 관한 사항입니다. 6)현재의 수입이 일한 것에 비해 얼마나 적당하다고 생각하시는지 점수로 말씀해 주십시오. 매우 적당하다고 생각하시면 10점을, 전혀 적당하지 않다고 생각하시면 0점을 주시면 됩니다. 7)현재 우리 사회에서 열심히 일하면 지금은 어렵고 불이익을 당하더라도 나중에 보상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매우 그렇다고 생각하시면 10점을, 전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시면 0점을 주시면 됩니다. ■ 다음은 이념성향에 관한 질문입니다. 한 개인의 이념 성향을 논의할 때, 사회의 잘못된 것을 될 수 있는 한 빠르게 바꾸고 변화를 지향하는 것은 진보라고 하고, 사회 변화보다는 현재 상태를 유지하는 것을 더 중요시하는 것을 보수라고 합니다. 8)응답자는 진보와 보수 중 어느 쪽에 더 가깝다고 생각하십니까?아주 진보면 0점, 아주 보수면 10점으로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 다음은 성장과 분배(효율의 문제)에 관한 사항입니다. 9)사회 일각에서는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정부의 정책이 분배보다는 성장에 우선을 두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고 다른 쪽에서는 “경제가 어려운 만큼 성장보다는 분배에 우선을 두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성장과 분배는 상호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성장과 분배를 동시에 할 수 있다는 견해에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전적으로 동의하실 때에는 10점을, 전혀 동의하지 않으실 때에는 0점을 주시면 됩니다. 10)우리사회에서 요즈음 자주 언급되고 있는 ‘평등’이라는 말을 들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무엇인지 말씀해 주십시오. ■ 다음은 정치 지도자 및 정당 평가입니다. 11)노무현 대통령이 대통령으로서 역할을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매우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면 10점을, 매우 잘못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면 0점을 주시면 됩니다. 12)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야당 대표로서 역할을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매우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면 10점을, 매우 잘못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면 0점을 주시면 됩니다. 13)여야를 막론하고 정치 지도자에 대해 어느 정도 신뢰하십니까?매우 신뢰하시면 10점을, 전혀 신뢰하지 못하시면 0점을 주시면 됩니다. 14)현재 어느 정당을 지지하고 계십니까? (1) 열린우리당 (2) 한나라당 (3) 민주노동당 (4) 민주당 (5) 자민련 (6) 기타정당 (9) 모름/무응답 15)우리 같은 사회에서는 “나 같은 사람이 정치문제에 대해 가타부타 의견을 표시하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다.”는 견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전적으로 동의하실 때에는 10점을, 전혀 동의하지 않으실 때에는 0점을 주시면 됩니다. ■ 광복 60주년 평가 16)광복 이후 60년 기간 동안 우리 역사의 흐름을 바꾼 가장 중요한 사건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17)광복 60년 기간 동안의 우리 사회에 대해 객관적으로 평가해 주십시오. 아주 잘 가고 있다 100점, 아주 잘못 가고 있다 0점 , 그런 대로 잘 가고 있다 50점으로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18)지난 60년을 회고해 볼 때,○○님께서는 우리 사회가 앞으로 점점 더 좋아질 것으로 생각하십니까?아니면 더 나빠질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매우 좋아질 것으로 생각하시면 10점을, 매우 나빠질 것으로 생각하시면 0점을 주시면 됩니다. 19)우리나라 경제가 앞으로 언제쯤 회복될 것으로 예상하십니까? (1)1∼2년 이내에 회복될 것이다. (2)5년 이내에 회복될 것이다. (3)10년 이내에 회복될 것이다. (4)회복되기 어려울 것이다. (9) 모름/무응답 20)광복 이후 60년 동안 한국사회가 변화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과정 속에서 아직도 우리 사회가 극복하지 못한 것이 있다면 다음 중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한가지만) (1)진보·보수간 이념갈등 (2)지역분열구도 (3)빈부격차 (4)부정부패 (5)학벌·지역 차별 (9)모름/무응답 ■ 21세기 한국이 지향해야 할 목표는 선진국 진입입니다. 그런데, 한국의 정치 지도자들은 국가 발전을 오히려 저해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습니다. 다음의 지적사항에 얼마나 공감하십니까?전적으로 동의하실 때에는 10점을, 전혀 동의하지 않으실 때에는 0점을 주시면 됩니다. 21)우리 정치 지도자들은 국민이 공감하고 함께 노력할 수 있는 구체적인 비전을 제시하는 능력이 부족하다. 22)우리 정치 지도자들은 관용과, 대립보다는 통합을 중시하는 상생의 정신이 부족하다. 23)우리 정치 지도자들은 작은 이익보다는 공익을 우선시하는 일관성 있는 자세가 부족하다.
  • [임영숙 칼럼] 이젠 사람입국이다

    [임영숙 칼럼] 이젠 사람입국이다

    묵은 해를 보내며 새해를 생각한다. 흔히 2004년을 갈등이 넘친 사회로 정리한다.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 행정수도 이전, 국보법 폐지 등 4대 개혁입법 등을 둘러싼 논란 때문이다. 그러나 일반 서민들에게는 그런 정치적 싸움보다는 내수경기 침체와 고용시장 왜곡으로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에 짓눌렸던 한해가 아니었나 싶다. 내년에도 그 불안이 쉽게 해소되진 않을 것 같다. 새해 경제는 올해보다 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다.2005년에는 일자리 창출이 국정 최고 어젠다가 되어야 할 것이다. 정부는 내년에 5% 경제성장 목표를 달성하고 40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 상반기에만 100조원의 예산을 조기집행하기로 하는 등 새해 경제운용방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산업화시대의 낡은 패러다임을 바꾸지 않는 한 어떤 방안도 성공하기 어려울 것이다. 계획대로 40만개의 일자리가 만들어진다 해도 그것이 저임금 비정규직처럼 단순히 밥만 해결해 주는 것일 뿐 자기 성취와 꿈과 희망을 안겨주지 못한다면 이미 위험수위에 도달한 우리 사회의 안정성은 회복되기 어렵다. 올해 우리 수출산업은 30%이상 성장하며 수출 2500억달러를 달성했다. 그럼에도 경제·사회적 양극화 속에서 한국경제는 위기로 진단되고 있다. 수출입국을 내세우고 제1차 경제개발5개년 계획이 시작된 지난 1962년 우리 국민소득은 78달러였다. 그리고 산업화와 수출입국 33년만인 1995년 국민소득은 1만달러를 돌파했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를 겪은 이후 우리 경제는 계속 비틀거리고 있다. 수출입국을 떠받쳐준 저임금 노동집약, 물량 위주 산업화의 패러다임이 중국 경제의 급부상으로 한계상황에 부딪쳤다. 대통령 자문 사람입국신경쟁력특별위원회 문국현 위원장은 엊그제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사단법인 뉴패러다임포럼 주최 토론회에서 향후 10년 이내 600만개 일자리 창출방안을 발표했다. 초과근로 해소를 통한 일자리 창출로 건강한 근로자 150만명, 평생학습 시스템 구축을 통한 평생학습조의 지식근로자 100만명, 지식시장의 효율화로 지식산업을 육성해 전문서비스직 200만명, 사회적 서비스 시장 육성을 통한 사회적 일자리 100만명, 여가 문화서비스 혁신을 통한 문화산업 육성으로 여가·문화전문가 50만명이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과로해소를 위한 일자리 나누기는 물론 고용구조 변화를 감안, 선진외국과 한국의 고용비중을 비교해 예측하는 등 나름의 과학적 근거를 지닌 그의 셈법으로는 1000만명에 가까운 일자리 창출도 가능하다. 향후 10년 이내에 600만∼1000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것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만 가능하다. 과로해소를 통한 안전혁신으로 건강사회를, 직장내 학습조 확보를 통한 평생학습으로 지식사회를, 새로운 여가 문화 서비스를 창출하는 서비스 혁신으로 문화사회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국민개개인의 삶의 질 향상과 함께 일자리를 만들고 신경쟁력을 확보해야 하는 것이다. 즉 사람이 국정운영의 중심가치가 되는 사람입국이 추진되어야 한다. 그래서 1인당 국민소득 2만∼3만달러 시대를 열어가야 한다. 이같은 총체적 혁신, 패러다임의 전환에는 대통령이 직접 나서야 한다. 박정희 대통령이 수출입국으로 우리 경제를 일으켜 세웠다면 노무현 대통령은 사람입국으로 우리 사회가 지식경제를 감당할 학습사회, 더불어 사는 사람중심의 사회가 되도록 해야 한다. 참여정부의 지난 2년이 부패청산, 시스템 혁신을 위한 것이었다면 이제부터는 노동구조 혁신과 사회통합을 이루어내야 한다. 그래서 2005년이 우리 국민의 저력을 이끌어 낸 희망의 원년이 되도록 해야 한다. 이제는 사람입국이다. 주필 ysi@seoul.co.kr
  • [논술이 술술] 과학혁명의 구조

    보통 자연과학은 다른 학문들과는 달리 과학자들이 주관적인 생각이나 사회적 요인의 영향을 받지 않는 가치 중립적인 것이라고 받아들여진다. 그리고 과학의 발전은 과학자들의 발견과 발명이 하나하나 쌓여 가며 발전한다고 생각한다. 그 결과 과학에 의해 입증된 것은 합리적이고 객관적이며 믿을 수 있다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으며, 과학적인 것은 곧 진리라고 생각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이 책에서 토머스 쿤은 과학의 발전에 대한 그러한 생각이 잘못되었다며 비판하며, 과학 지식의 변천이나 발전도 혁명적으로 이루어진다고 밝히고 있다. 그에 따르면 과학의 진보란 하나의 이론 구조의 포기와 그 자리를 양립 불가능한 다른 이론이 대체하는 혁명적 과정이며, 이 다른 이론의 수용은 마치 종교적 개종처럼 일어난다. 또한 과학은 반드시 객관적이거나 합리적으로만 진행되는 것이 아니며, 과학자 사회와 과학자 개인의 ‘주관적’인 신념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쿤은 이러한 과학의 발전을 패러다임이라는 독특한 개념을 중심으로 ‘전 과학-정상과학-위기-혁명-새로운 정상 과학-새로운 위기’가 되풀이되는 과정으로 설명한다. 이러한 새로운 과학관을 담은 ‘과학 혁명의 구조’는 1962년에 발표되자마자 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으며, 과학자들 뿐 아니라, 역사, 철학, 정치학, 사회학 등에도 매우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마찬가지로 패러다임이라는 개념도 과학사 뿐 아니라, 여러 학문에서 매우 폭넓게 쓰이게 되었다. 쿤이 이 책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과학도 인간의 여타 활동과 유사한 방식으로 변화하는 것이며, 보통 과학의 특성이라고 간주되었던 객관적 논리적 가치 중립적 성격들이 다른 분야보다 정도가 더한 것은 사실이지만 본질적으로는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다. 이를 통해서 그는 근대 과학을 떠받치고 있었던 두 가지 신화, 곧 ‘가치중립성’과 ‘객관성’의 신화를 근본적으로 뒤집고 있다. 과학은 우리가 가져온 통념처럼 사회로부터 독립된 가치 중립적이고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지식이 아니라, 사회의 다른 부문과 밀접한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전해 온, 인간 사회의 주관적이고 상대적인 지식 체계의 한 부분임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물론 쿤의 이러한 상대주의적 과학관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게 제기되었다. 특히 패러다임들은 동일 기준으로 비교할 수 없으며, 낡은 패러다임이 버려졌다는 이유만으로 새 패러다임보다 열등하다고 평가할 수 없다는 주장은 많은 과학자들에게 과학에서 ‘진보’라는 개념을 포기해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이런 점에서 출간된 지 벌써 40여년이 지났지만, 이 책은 여전히 논쟁의 한가운데에 있다. 유니드림 대학입시연구소 (www.unidream.co.kr) ■ 생각해보기 △쿤이 제시하고 있는 ‘과학혁명’의 과정을 ‘천동설’과 ‘지동설’체계의 변화 과정을 예로 들어 설명해보자. △‘패러다임’의 개념을 하나의 사회 문제를 예로 들어 적용해보자. △근대 이후의 과학적 패러다임을 보통 ‘뉴턴 패러다임’으로 일컬으며 ‘기계론적 세계관’으로 규정하기도 한다. 이러한 세계관의 특징을 근대 이전의 세계관과 비교, 그 장단점에 대해 밝혀 보자. △‘과학적 세계관’과 ‘신화적 세계관’의 차이를 비교 설명해보자. △최근 카오스 이론이나 프랙탈 이론처럼 기존의 과학적 인식과는 다른 새로운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이들의 특징과 현대 사회에서 갖는 의의를 생각해보자. ■ 독서 지도시 참고사항 -대상 학년:고1∼고3 -관련 교과:고등 사회, 윤리와 사상, 사회문화 -함께 읽어 볼 책과 고전:과학철학이란 무엇인가(박이문), 부분과 전체(하이젠베르크), 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프리초프 카프라), 작은 것이 아름답다(슈마허) -기출논제:1998학년도 한양대·부산대 자연계 논술,2004학년도 고려대 정시 논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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