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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GA챔피언십] 최경주 공동7위 부진 탈출

    ‘이제부턴 전설 따라잡기’ “정말 대단한 선수다. 우즈는 경기를 완전히 지배했다.”‘골프의 전설’ 잭 니클로스(미국)가 21일 자신을 골프 인생의 목표로 겨냥한 타이거 우즈(미국)의 플레이를 지켜본 뒤 던진 말이다. 우즈는 이날 미국 일리노이주 메디나골프장(파72·7561야드)에서 열린 PGA챔피언십(총상금 650만달러) 4라운드에서 4언더파 68타를 쳤다. 최종합계 18언더파 270타로 2위 숀 미킬(미국)을 5타차로 여유 있게 제쳤다. 브리티시오픈에 이어 올해 메이저대회를 2연패하며 상금왕과 올해의 선수까지 사실상 예약했다. 이로써 우즈는 생애 12번째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메이저 트로피를 품었다. 또 메이저 다승 기록에서 월터 헤이건(미국·11승)을 제치고 단독 2위에 올랐다. 침대 머리맡에 니클로스의 메이저 최다승 기록(18승)을 붙여놓고 있다는 우즈로서는 이제 본격 최다승 사냥에 나선 셈. 니클로스는 22세였던 1962년부터 46세였던 86년까지 25년 동안 메이저 왕관을 18번 차지했다. 역시 22세였던 97년 PGA에 데뷔한 우즈는 지금까지 10년 동안 12번이나 왕좌에 앉았다. 어찌 보면 우즈가 더 낫다고 할 수 있다.31세의 우즈가 니클로스를 넘어서는 건 시간 문제라는 말도 그래서 나온다. 역전을 절대 불허한다는 ‘빨간 셔츠의 공포’가 여전히 맹위를 떨친 라운드였다. 공동 1위로 같은 조였던 루크 도널드(잉글랜드)는 2오버파로 무너지며 합계 12언더파 276타로 애덤 스콧(호주), 세르히오 가르시아(스페인)와 함께 공동 3위에 올랐다. 반면 우즈는 전반에만 보기 없이 4타를 줄이며 2위권과 격차를 벌려 갔다.17번홀(파3)에서 유일한 보기를 범해 자신이 보유한 PGA챔피언십 최다 언더파 기록 경신을 놓쳤다는 점이 흠이라면 흠. 워너메이커 트로피를 들어올리며 “정말 달콤하다.”고 미소짓던 우즈는 “아직도 (니클로스가) 멀리 있는 것 같다.20년 넘게 걸려 한 일을 내일 당장 해낼 수 있다고 여기지 않는다.”면서 “계속 열심히 노력해 쌓아가겠다.”고 말했다. 최경주는 이날 버디 5개와 보기 4개를 묶어 1언더파로 다소 주춤했다. 하지만 합계 10언더파 278타로 공동 7위에 올라 최근 잇단 부진에서 벗어났음을 알렸다.2004년 마스터스(3위)와 PGA챔피언십(공동 6위)에 이은 생애 세 번째 메이저 ‘톱 10’. 다음주 신한동해오픈에 출전하는 최경주로서는 귀국에 앞서 국내 팬들에게 좋은 선물을 마련한 셈이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Book Review] 표현 자유의 역사/로버트 하그리브스 지음

    고대 로마시대에 주피터 신전의 계단 꼭대기에서 ‘나는 기독교인이다.’라고 외친 사람은 바로 체포돼 사자밥이 되었다. 그로부터 1500년 후 같은 장소에서 ‘나는 기독교인이 아니다.’라고 외쳤던 사람 역시 체포돼 화형대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한 시대의 이단은 종종 다음시대에는 폭압적인 정통성으로 둔갑해 표현의 자유를 억압했던 것이다. 페리클레스 시대로부터 2500년이 흐르는 동안 서구사회는 사실 관용보다는 권위와 억압 쪽에 더 가까웠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서구 역사는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 역사, 바꿔 말하면 표현의 자유를 얻기 위한 투쟁의 역사라고 정의할 수 있지 않을까. ‘표현 자유의 역사’(로버트 하그리브스 지음, 오승훈 옮김, 시아출판사 펴냄)는 고대 그리스시대부터 인터넷시대에 이르기까지 서구 2500년 역사를 거슬러 ‘말할 자유’의 족적을 짚어본 책이다. 이 책의 원제 ‘첫번째 자유(The First Freedom)’는 표현의 자유가 곧 다른 모든 기본권의 전제조건임을 말해준다. 영국에서 20여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한 저자는 표현의 자유를 위해 시대조류에 맞선 자유인들의 치열한 삶의 여정을 생동감 있게 엮어내고 있다. 책에 따르면 소크라테스는 불경죄를 저질렀다는 혐의로 고발당했지만, 어떠한 법 조항도 인용되지 않았다. 그가 재판에 회부된 이유는 오로지 그의 가르침과 믿음이 젊은이들을 타락시켰다는 것. 진정한 의미에서 이 재판은 소크라테스의 언론 자유의 권리에 대한 시험이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언론자유에 관한 한 전 세기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공헌을 했다고 평가받는 이가 영국의 언론인이자 정치인이었던 존 윌크스이다. 그는 1762년 런던에서 ‘노스 브리튼’이란 신문을 창간하고, 창간호 첫 줄에 ‘출판의 자유는 영국인에게 생득권(生得權)이다. 그리고 이 나라에서 자유의 가장 견고한 보루로 간주된다.”고 선언한다. 이후 그는 국왕을 모욕했다는 글을 게재했다는 이유로 오랜 법적투쟁을 벌이는 등 권력자들에 대한 수많은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이같은 그의 삶은 그 자체가 말할 자유의 질곡을 써내려간 ‘육필원고’로 후세에 전한다. 18세기 중후반 미국과 영국 프랑스를 떠돌았던 토머스 페인은 ‘언론 자유를 위한 순교자’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1774년 영국에서 미국 필라델피아로 이주한 그는 식민지의 독립 선언을 요구한 소책자 ‘상식’을 펴내 미국독립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프랑스혁명 즈음 영국에 돌아온 그는 전제정치와 귀족정치를 비판한 ‘인간의 권리’란 책을 내 법정에서 법익피박탈자 선고를 받았다. 때문에 프랑스에 망명했으나 기독교를 비판한 책 ‘이성의 시대’로 인해 다시 미국으로 추방되는 운명을 맞는다. 하지만 그는 독립된 미국에서조차도 ‘건국의 아버지’ 신전에 이름조차 올리지 못하는 수모를 겪는다. 책은 이밖에도 로마시대 성인과 순교자들, 콘스탄티누스의 개종, 루터의 종교개혁, 종교재판 법정에 선 갈릴레오,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 등 종교와 출판, 언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할말을 다하기 위해 싸웠던’ 인물들의 삶을 생생히 그려내고 있다. 그렇다면 서구적 민주주의가 전세계적으로 보급된 오늘날엔 표현의 자유가 온전히 보호되고 있을까? 저자는 그다지 낙관적이지 않다. 9·11과 이라크 전쟁에서 보듯 현대 시민사회가 지닌 가치가 얼마나 쉽게 야만성에 의해 뒤집어질 수 있는지 명백해졌기 때문이다. 다원주의 사회에서 세뇌나 강요를 통해 반대자들을 배제하려는 전체주의적 이데올로기는 어떠한 이유에서든 용납되어선 안되며,‘반대할 자유’는 어떠한 법에 의해서도 제한되어선 안된다고 저자는 거듭 강조한다.2만원.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타계 강원용 목사의 삶과 신앙

    ▲1917년 함남 이원 출생 ▲1940년 일본 메이지학원 영문학부졸업 ▲1945년 경동교회 설립 ▲1948년 한국신학대학교 졸업 ▲1949년 목사 안수 ▲1949∼1986년 경동교회 목사 ▲1955∼1986년 경동교회 당회장 ▲1956년 미국 유니언신학대 졸업 ▲1962년 한국방송윤리위원회 위원장 ▲1965년 크리스챤아카데미 창립, 한국내 6대 종교지도자 대화모임 개최 ▲1965∼1995년 크리스챤아카데미원장 ▲1966년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 총회장 ▲1966∼1969년 한국종교인협의회 회장 ▲1968∼1983년 세계기독교교회협의회 중앙위원 ▲1973년 아시아교회협의회(CCA) 회장 ▲1974년 민주회복국민회의 대표위원 ▲1980년 국정자문위원회 위원, 한국기독교회협의회(KNCC) 회장 ▲1984∼1991년 아시아종교인평화회의(ACRP) 공동의장 ▲1986년∼ 경동교회 명예목사 ▲1988∼1991년 한국방송위원회 위원장 ▲1994∼1999년 세계종교인평화회의(WCRP) 공동의장 ▲1996∼2000년 크리스챤아카데미 이사장 ▲1998∼2000년 통일고문회의 의장 ▲1998∼1999년 한국방송개혁위원회 위원장 ▲1999년∼ 세계종교인평화회의(WCRP) 명예의장 ▲2000년∼ 평화포럼 이사장 ▲2003년∼ (재)실업극복국민재단 함께일하는사회 이사장
  • 「진실남」구했더니 「사기남」에 걸려

    「진실남」구했더니 「사기남」에 걸려

    공군중령, FBI(미연방수사국)의 한국주재원, 미국인 2세, 청와대 「헬리콥터」 조종사, 기억상실, 성불구, 본처 자살 등을 자작자연(自作自演)-미끼로 삼아 한 여인을 울리고 300여만원을 사기해 먹은 놈팡이가 경찰에 잡혔다. 잡고보니 전과 4범의 「맹렬사기꾼」인데다가 10여개의 얼굴과 이름을 가진 사나이. 광고 보고 전화로 불러내 처음엔 공군 중령 이라고 서울 종로 경찰서는 12월8일 낮 사기전과 4범(전과는 더 있다고 보고 수사 중임) 이재우(李在雨·40·주거부정)을 사기 및 혼인 빙자에 의한 간음혐의로 구속했다. 경찰은 이 사기한의 색(色)과 욕(慾)의 사기행각을 피해자의 입을 통해 듣고 그 빈틈없는 술수에 혀를 내저었다. 조서에 나타난 피해자의 진술을 토대로 그 사기극을 다시 한번 꾸며보자. ▲공군중령 진병용=지난 6월10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S다방에서 「코피」를 마시는 중년신사가 있었다. 큰 키(1백75㎝)에 아랫배가 적당히 나오고 이마가 벗겨진 사장 「타이프」. 그는 거드름을 피우면서 「레지」가 갖다주는 신문을 읽어 가다가 「펜·팰」 광고란에 눈길을 멈췄다. 『진실한 남성과 친하고 싶습니다』라는 내용의 광고에는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사장 「타이프」는 수화기를 들고 「다이얼」을 돌렸다. 전화선 저쪽편에는 20대 여인의 달콤한 목소리. 이편은 바로 이재우(李在雨). 고독한 여인을 노려 사기극의 제1막을 올린 순간이다. 李의 혀끝에 말려든 광고주 박순자(朴順子·28·가명·서울 마포구 서교동)여인은 얼마 뒤에 총총 걸음으로 다방문을 열고 나타났다. 朴여인으로 서는 상대방의 「진실성」을 캐는 탐색전 쯤으로 그 뒤부터 李를 만나기로 약속했으리라. 그러나 朴여인은 숲에 들어가서 나무를 보지 못하게 됐다. 李는 「진병용 공군중령」이라고 자기 소개. 4년 전 일본에서 비행기 사고로 24시간동안 의식을 잃어 기억상실증에 걸려서 혼이 났다느니 이것을 보고 아내가 자살을 해버렸다느니 상대방이 혹할만한 소리를 늘어 놓았다. 대통령 모시고 있다더니 실은 FBI 요원 이라고 ▲청와대 「헬리콥터」 조종사=李는 朴여인을 극장으로 다방으로 끌고 다녔다. 며칠 뒤 『사실은 공개하기를 금재돼 있지만』이라고 큰 비밀하나 털어 놓듯 자기의 현직을 밝혔다. 대통령이 고속도로의 건설현황 등을 시찰할 때 타는 그 청와대 「헬리콥터」의 조종사라고 했다. ▲성불구=李는 朴여인을 정복까지 위해 고차원적인 농간을 부렸다. 6월20일께(사귄지 13일만에) 李는 朴여인을 서울 중구 후암동 서강여관의 2층 특실로 유인하는데 별로 힘들이지 않았다. 朴여인은 李의 말을 믿었는지도 모른다. 李는 전에 말한 비행기 사고로 성불구가 되었다고 말한 일이 있는 것이다. 그는 전후 두차례나 여관에 朴여인을 유인했어도 손하나 건드리지 않았다. ▲당신은 나의 구세주=그러나 세번째로 여관에 갔을 때는 달랐다. 李의 성불구는 기적적으로 나았다. 李는 朴여인을 붙들고 당신은 나의 구세주라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사실 아내가 자살한 것도 자기의 성불구 때문이었다는 양념까지 곁들였다. 죽은 아내가 불쌍하다고 또 울먹였다. ▲FBI 한국 주재원=李는 朴여인의 형부 李병호(가명·36)씨를 알게 됐다. 李씨는 자기의 이름과 직함을 다시 바꿔댔다. 李씨가 李에게 이름이 왜 여러가지냐고 묻자 사실은 자기가 미국연방수사국 한국주재원이고 이 사실은 한국정부에 대해서도 비밀로 되어 있다고 둘러댔다. 집과 땅 넘겨 주겠다고 3백여만원 뜯어 ▲미국인 2세=李는 자기가 또 미국인 2세라고 까지 속였다. 그래서 자기 소유인 서울 중구 충현동 84의9등 네곳에 있는 대지 8천여평과 가옥 4동을 朴여인 앞으로 이전해야겠다고 말했다. 李씨는 미국인 2세의 순정에 탄복했다. 부자 동서를 맞게된 기쁨에 그만 마음에 틈새가 생겼다. 처제의 행복을 비는 형부의 마음도 크게 작용했다. 李씨는 이전등기에 필요하다는 비용 1백51만원을 7차에 걸쳐 두말 없이 내주었다. 李는 다시 朴여인을 통해서 알게된 김모(44·서울 서대문구 남가좌동)여인에게 김여인의 아들 신모(21)씨를 파월시켜 준다고 속여 30여만원을 우려 내었다. 또 지난 9월24일 朴여인의 큰 형부 朴일성(44·가명·부산시 중구 충무로)씨가 서울에 왔을때 부산 항만사령부의 부지매몰공사를 청부맡아 주겠다고 속여 항만국장과 건설부의 朴비서에게 줘야한다고 돈 60여만원을 뜯어 내었다. 더욱이 李씨는 서울자 2-866호 「시보레」를 한 달 5만원으로 전세내어 주로 현직 공군 영관급을 사칭했고 朴여인을 자가용의 사모님으로 「출세」(?)를 시켜주었다. 사취한 돈 유흥에 물쓰듯 정체 알았을땐 이미 늦어 李의 숙소는 지금까지 서울 중구 을지로 3가의 D여관 1호실. 李는 사취한 돈으로 朴여인을 데리고 해운대 「워커힐」등 고급유흥지를 돌아 다니며 물쓰듯 뿌렸다. 수사결과 李에게는 지난 66년 4월16일에 결혼한 본처 김효자(金孝子·30·가명)여인이 있고 지난 59년 3월 대구에서 공군상사(군번98245)로 제대, 문관으로 근무하다가 66년 2월20일에 직장에서 나온 것으로 되어 있다. 그의 사기행각은 62년 공문서위조 및 동행사혐의로, 또 64년 사기혐의로 징역 각각 1년씩을 살았고, 68년 8월 다시 사기죄로 1년 복역중 6개월만인 69년 2월에 가석방된 몸. 朴여인을 등친 것은 가석방 중의 일이다. 朴여인의 형부 李씨는 경찰에서 끝내는 그가 사기꾼임을 알아차렸지만 처제의 장래를 위해 만서를 덮어 두려다가 다른 희생자가 더 나오지 않기를 비는 마음에서 경찰에 고소했다고 말했다. <張錫英 기자>[선데이서울 69년 12/14 제2권 50호 통권 제 64호]
  • 버마의 민주화운동 집중 조명

    버마의 민주화운동 집중 조명

    버마? 미얀마? 헷갈린다. 같은 나라인 것 같은데 어디서는 미얀마고 어디서는 버마다. 자세히 보면 뭔가 공식적으로 말할 때는 미얀마고, 뭔가 소란스럽고 싸우고 다툰다는 느낌이 들면 버마다. 왜? 오랜 군부독재 때문이다.1962년 쿠데타로 집권한 군부는, 친위쿠데타 형식으로 지도부만 바꿔가며 정권을 장악하고 있다. 반발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1988년 피플파워가 분출했지만 실패했다. 그 이듬해 군부는 국명을 버마에서 미얀마로, 수도 이름도 랑군에서 양곤으로 바꿨다. 민주화운동 진영이 미얀마와 양곤을 인정하지 않고 버마와 랭군을 고집하는 이유다. 1990년 실시된 총선에서 버마의 독립영웅 아웅산 장군의 딸 아웅산 수치 여사가 이끄는 민족민주동맹(NLD)이 80% 이상의 의석을 따냈다. 군부는 이를 간단히 무시해 버렸다. 수치 여사는 그뒤 10여년 넘게 가택연금 중이다. 시민방송 RTV는 버마의 민주화운동을 조명하는 버마특집을 마련했다.11일 오후 2시에 방영되는 1부 ‘살라이 박사의 귀환’은 버마민주화운동의 상징 살라이 박사의 귀국 얘기를 다뤘다. 올해 일흔여덟살의 살라이 박사는 버마민주화운동의 상징으로 미국으로 쫓겨났지만 ‘죽어도 고국 땅에서 죽겠다.’며 귀국행을 고집한다. 물론 받아줄 리 없는 버마 정부는 그의 비자를 취소, 입국을 막았다. 비행기를 타고 공항으로 정식 입국하지 않으면 ‘어디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주변 사람들의 만류 때문에 살라이 박사는 아직도 태국에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데…. 2부(18일 오후2시)는 버마-태국 국경 지역으로 내몰린 버마인들의 삶을 담았다. 모두 12만명으로 추정되는 난민들 가운데 1만 5000여명을 수용하고 있는 멜라우 캠프, 양국간 무역 중심지 메솟 지역 등에서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는 버마 사람들의 얘기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세이프 코리아] 수해대책 패러다임 바꿔야

    [세이프 코리아] 수해대책 패러다임 바꿔야

    “다리를 이런 식으로 만드니 장마 때마다 떠내려 갈 수밖에요.” 지난달 집중호우에 마을 앞 다리 주변 도로가 유실되는 바람에 고립됐던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상진부2리 주민들은 “복구 방식을 바꾸어야 한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마을을 가로지르는 하천에 설치된 다리는 큰 물만 나면 어김없이 떠내려 갔다. 주민들은 비가 많이 왔기 때문이 아니라, 다리 설계를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다리를 하천보다 높여 물 흐름이 쉽도록 했으면 물난리를 피해갔을 텐데 부족한 예산으로 서둘러 공사를 하다보니 번번이 수해가 난다는 것이다. ●천재(天災)를 키우는 인재(人災) 실제 이곳을 찾아 보니, 다리는 차량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여서 주민들은 평소에도 추락 위험을 느꼈다. 게다가 다리는 높이 2m 가량의 박스 형태로 지어졌다. 이번 호우 때 다리는 산에서 떠내려온 나무 등이 난간에 걸리면서 물 흐름을 방해했다. 결국 다리 옆 도로가 무너졌고, 다리마저 떠내려가면서 주민들은 고립되고 말았다. 주민 최모(43)씨는 “교각을 높게 만들었으면 나무가 걸리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엉성한 교량 공사가 피해를 키웠다.”고 주장했다. 우리나라는 수해 복구에 해마다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붓고 있지만, 상진부2리 다리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수해 발생→땜질 처방→피해 재발’이라는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다. ●‘다람쥐 쳇바퀴 도는’ 수해대책 소방방재청에 따르면 여름철 집중호우 등으로 1996년부터 지난해까지 10년 사이에 무려 18조 2000억원의 피해가 발생했다. 피해 복구에 들어간 비용은 이보다 훨씬 많다. 예컨대 지난해 풍수해 피해액은 1조 498억원이었으나, 복구비는 1.6배인 1조 6486억원이었다.10년 동안 복구비로만 30조원 가까운 돈을 지출했다.1500만원 상당의 중형 승용차 200만대를 날려버린 셈이다. 방재연구소 심재현 연구1팀장은 “수해복구 체계는 재해 재발을 막는 항구복구보다 단순히 피해 이전의 상태로 돌려놓는 응급복구에 치중돼 있다.”면서 “공무원의 직무유기라기보다 자연재해에 대응하는 패러다임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즉 사후 대책보다 사전 예방을 우선해야 하나,‘공염불’에 그치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은 1961년 ‘치산·치수 긴급조치법’을 제정해 5년마다 수해대책을 세우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 1962년에는 ‘치수회계특별법’을 만들었다. 필요한 예산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특별회계를 편성할 수 있도록해 매년 4조엔(약 34조원)을 수해예방 예산으로 투자한다. 심 팀장은 “일본은 수해관련 예산의 80%를 예방에, 나머지 20%를 복구에 사용하고 있지만 우리는 정반대 지출 형태를 보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제는 수해 대책도 투자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면서 “국민들에게는 투자 개념의 풍수해보험을 들도록 권유하는 정부가 정작 자연재해 예방을 위한 투자에는 인색한 편”이라고 꼬집었다. ●패러다임 전환이 급선무 대도시, 대하천 등 수해 예방대책이 집중되는 지역과 실제 피해지역이 다르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실제 지난달 집중호우 때도 대규모 수해를 입은 지역은 소하천 주변 중·소도시나 농촌 지역이었다. 국가하천은 대부분 정비가 이뤄졌으나, 지방자치단체에 관리권한이 위임된 지방하천은 예산 부족 등을 이유로 그냥 방치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또 하천법에 따르면 10년마다 하천정비기본계획을 수립해야 하지만, 지방하천 대부분은 정비계획을 수립하지 않거나 수립하더라도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심 팀장은 “이재민 구호와 피해시설 원상복구라는 수해대책의 근간을 뿌리째 흔들지 못하는 이상 진전은 없다.”면서 “피해를 예측하고 대비하는 과학 방재 시스템을 구축하려면 연구개발(R&D) 활성화가 뒷받침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방재 관련 지역별 시민단체 활동도 육성할 필요가 있다. 일본 농촌 시민단체의 60% 이상은 방재와 관련을 맺고 있으며, 이들이 펼치는 ‘마치츠쿠리(마을만들기)’운동은 벤치마킹할 대상이다. 게다가 일본의 자치단체들은 이같은 시민단체들이 자생력을 키울 수 있도록 보조금뿐만 아니라, 각종 수익사업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평창 조덕현기자·서울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수해복구 현장의 목소리 “수해가 일어날지 알면서도, 미리 대비할 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한 지방자치단체 방재 담당 공무원은 “자치단체 스스로 확보할 수 있는 예산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중앙정부는 예방보다 복구를 위해 돈보따리를 풀고 있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 공무원은 “수해복구를 피해지역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니, 피해를 입기 이전으로 되돌린다는 원칙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다.”면서 “피해가 발생하지 않은 곳은 피해 가능성이 있어도 정비할 엄두를 못낸다.”고 털어놨다. 특히 수해가 발생하면 공무원 한 사람이 수백∼수천개 현장을 맡아 피해조사를 하다 보니 ‘수박 겉핥기’식으로 이뤄지고,‘방재는 잘해야 본전’이라는 생각 때문에 업무 기피 현상마저 나타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 공무원은 “대부분의 수해시설이 20∼30년에 한번 내릴 수 있는 비에 대처할 수 있도록 지어졌으나, 지금은 이런 비가 1년에도 서너차례나 내린다.”면서 “일선 현장에서는 방재 역량을 높이고, 중앙정부는 법과 제도를 통해 인력과 예산을 확보하는 역할 분담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수해복구에 참여하는 업체들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라고 했다.D기업 조모 사장은 “수해현장에 대한 피해조사와 복구계획 수립과정 등에 20여년 동안 몸담아 왔으나, 나아지거나 달라진 것이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잘라말했다. 그는 “예산이 뒷받침되지 않기 때문에 항구복구보다 응급복구에 치중할 수밖에 없다.”면서 “또 너무 급하게 복구가 이뤄지다 보니 재해의 원인을 없애지 못하고, 부실공사의 원인이 된다.”고 지적했다. 조 사장은 또 정부가 수해만큼이나 자주 되뇌고 있는 예산·인력 타령도 이쯤에서 그만둬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우리나라 국민소득이나 생활수준을 감안하면 수해 예방을 위한 투자를 늘려야 하고, 예방 차원의 투자가 늘어나면 수해도 줄어들기 마련”이라면서 “수해복구에 대한 관리·감독을 제대로 하려면 인력 부족만 탓할 것이 아니라, 유명무실한 감리 제도를 강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국토방재조사 도입 검토 5년마다 실시하는 인구센서스처럼 자연재해 예방 차원에서 전 국토를 정기적으로 조사하는 이른바 ‘방재센서스’가 도입될 전망이다. 소방방재청 관계자는 7일 “자연재해 예측시스템을 갖추려면 관련 데이터베이스(DB) 구축이 선행돼야 한다.”면서 “보다 정확한 DB 구축을 위해 국토방재센서스를 실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이는 피해예측시스템으로 지역별 피해양상을 미리 확인한 뒤 사전 조치를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현재 기상예보처럼 ‘많게는 200㎜에서 적게는 100㎜의 비가 내린다.’는 식의 정보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대신 ‘○○지역은 이번 비로 무릎까지 물이 차니,△△지역으로 대피해야 한다.’는 식으로 정보의 질을 높여야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시스템을 구축하려면 전 국토의 지형도와 토지이용실태, 인공시설물 현황, 인구 분포 등 방대한 정보가 담겨야 한다. 또 비와 바람 등 기상상황에 대한 예측 모델도 만들어져야 한다. 이 관계자는 “조사가 산별적·개별적으로 이뤄지고는 있으나, 조사 자료를 통합하려는 움직임은 현재로선 없다.”면서 “피해예측시스템을 본격적으로 가동하려면 통합전산망을 갖추는 등 3∼4년 정도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빠르면 내년부터 강원도 등 자연재해가 심한 지역을 대상으로 피해예측시스템을 시범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국은 ‘해저스(HAZUS)’라는 자연재해 피해예측시스템을 활용하고 있다.1990년대말에는 지진,2003년에는 홍수에 대한 예측프로그램을 각각 완성했다. 일본도 해저스와 비슷한 ‘홍수위험지도’를 활용하고 있다. 집중호우가 내리면 어느 지역부터 침수가 되는지 등을 상세히 알 수 있다. 타이완은 대형 지진 피해가 발생한 1999년 이후 지진 피해 예측시스템을 도입했다. 이밖에 소방방재청은 최근 10년 동안의 풍수해 자료를 활용해 올해 안에 ‘지역별 안전도 진단 제도’를 도입한다는 계획이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동생에 권력 이양 ‘카스트로 없는 쿠바’

    ‘47년 만의 권력 이양.’ 쿠바의 최고지도자 피델 카스트로(80) 국가평의회 의장이 권좌를 비우게 됐다고 BBC 등이 1일 보도했다. 잦은 해외방문에 따른 피로와 스트레스로 장 출혈 증세를 보여 수술을 받았다는 것이다. 전날 국영 텔레비전은 “(동생) 라울 카스트로 국방장관이 임시로 업무를 대신한다.”는 카스트로 의장의 편지를 전했다. 그러나 카스트로가 언제 수술을 받았으며 상태가 어떤지는 알려지지 않았다고 AP통신은 전했다. 카스트로의 수술과 권력 일시 이양 소식에 미국은 물론 주변 국가들은 “카스트로 시대가 끝난 것이 아니냐.”며 촉각을 곤두세웠다. 그가 지난 1959년 쿠바혁명으로 권좌에 오른 뒤 지금까지 한번도 이를 떠나본 적이 없는 최장기 집권자이기 때문이다. 공식 발표에도 불구, 그의 건강에 심각한 이상이 온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퍼지고 있다. 지난 주 쿠바혁명 53주년 기념 연설에서 “100세에 현직을 떠날 테니 미국은 걱정하지 말라.”고 호기를 부린 것도 오히려 건강 문제를 은폐하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카스트로는 2001년 6월 연설 도중 갑자기 쓰러진 데 이어 2004년 10월 텔레비전 카메라 앞에서 미끄러져 넘어져 건강 문제가 끊이지 않고 입초시에 올랐다. 지난달 중순 베네수엘라 등에선 유고설이 퍼졌을 때 쿠바 관리들이 이례적으로 그의 건재를 강조하는 바람에 오히려 이목을 집중시킨 적도 있다. 눈엣가시처럼 쿠바를 여겨온 미국 정부는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과 쿠바 출신인 카를로스 구티에레스 상무장관이 공동 위원장으로 있는 ‘쿠바지원위원회’를 중심으로 ‘카스트로 없는 쿠바’에 대비하고 있다.2003년 만들어진 이 위원회에선 카스트로의 유고에 대비, 쿠바를 민주주의 체제로 전환할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후계자인 75세의 라울 국방장관은, 지난달 14일 “카스트로 의장 사후 정치체제에 급격한 변화가 없다. 군부가 아닌 공산당을 중심으로 권력이양 절차가 이뤄질 것”을 강조, 승계 작업이 진행되고 있음을 시사했다. 그는 형제 중 막내로 바티스타 정권을 무너뜨린 게릴라전에서 핵심 역할을 담당하며 혁명 초기부터 형을 측근에서 도왔다. 그는 형의 그늘에 가려 대중적 인기를 얻지는 못했지만 혁명 후에는 군을 조직하고 정책을 수립하는 데 실질적인 역할을 했으며 반혁명 세력 처형에 앞장서기도 했다.특히 61년 4월 미국의 피그만 침공때에는 쿠바 지상군을 직접 지휘했으며 62년 쿠바 미사일 위기를 촉발시킨 옛소련제 장거리 미사일 배치를 주관한 강경론자로 알려져 있다. 라울 외에 40대 초반이지만 카스트로의 개인비서 출신 펠리페 페레스 로케 외무장관과 경제 분야를 총괄하는 50대 중반 카를로스 라헤 부통령이 유력한 승계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이석우기자 jun88@seoul.co.kr
  • 美 베이비붐 세대 ‘강한’ 그랜드파파

    美 베이비붐 세대 ‘강한’ 그랜드파파

    1862년 당시 26세의 나이로 미국 남북전쟁에 참전한 오하이오주 해밀턴의 독일계 이민자 발렌틴 켈러. 그는 162㎝의 작은 키에 마른 몸매였다.30대에 관절염과 폐질환으로 고생했고 41세에 수종(水腫)으로 숨졌다. 발렌틴 시대의 미국인은 보통 40∼50대가 되면 만성질환으로 고통받다 50∼60대에 사망했다. 발렌틴 켈러의 5대 손인 45세의 크레이그 켈러. 그는 한 세기 만에 미국인의 ‘삶과 죽음’이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극명하게 보여 주는 ‘베이비붐 세대’(베이비 부머)이다. 법원 집행관인 크레이그 역시 5대 할아버지 발렌틴이 살다가 숨진 해밀턴에서 태어나 살고 있다. 그럼에도 더 오래 살고 있고 기대수명은 할아버지의 2배가 넘을 것으로 예측된다. 뉴욕타임스는 30일(현지시간) 과거 어느 세대보다도 혈기 넘치는 ‘그랜드 파파(할아버지)’ 시대가 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더 건강하며 육체적 고통을 덜 느끼는 강력한 ‘올드 보이’가 오는 것이다. 이 신문은 ‘베이비 부머’가 인류학적으로는 유아기에 백신을 접종받은 첫 세대이며 충분한 영양분과 항생제를 공급받은 신인류라고 소개했다. 시카고대 로버트 포겔 박사는 인류가 진화했다고 설명한다. 심장·폐질환, 관절염 등 성인 만성질환의 발생 시기는 100년전 세대보다 최소 10년에서 최대 25년 뒤로 늦춰졌다. 키와 몸무게의 변화뿐 아니라 평균 지능지수(IQ)도 높아지고 있으며 치매발병률은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미국, 영국, 프랑스, 핀란드뿐 아니라 저개발 국가에서조차 같은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1990년대는 65세 성인의 13%만이 기대수명인 85세를 채웠지만 현재는 절반 이상이 장수하고 있다. 크레이그의 부친인 칼 D 켈러는 폐암으로 65세에 숨졌고 칼의 아버지는 식도암으로 69세에 사망했다. 크레이그의 동갑내기 아내인 샌디의 친정은 유방암 등으로 고통을 겪었다. 그럼에도 베이비 부머인 크레이그 부부는 더 건강하게 오래 살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한다. 과학자들은 유전 요인보다도 어머니의 자궁에서 2살 이전 유아기까지의 기간이 건강과 장수를 결정한다고 분석한다. 1933∼1944년 핀란드 헬싱키에서 태어난 성인 8760명과 스웨덴인 1만 5000명을 분석한 결과가 동일했다. 출생 당시 몸무게가 2.9㎏ 미만으로 생후 2년까지 충분한 영양 공급을 받지 못한 사람이 심장혈관 질환을 더 많이 앓았다. 심혈관 질환은 알츠하이머 발병의 큰 원인이다. 연구에서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 대기근 시대에 태어난 사람도 결과는 같았다. 베이비 부머는 2차 세계대전 종전 후인 1946년부터 1965년 사이에 태어나 혜택받은 유아기를 보낸 첫 세대라는 게 가장 큰 특징이다. 올해 60세가 된 선두 세대는 이제 은퇴를 시작했다. 미국 역사상 가장 부유한 세대로 85세까지의 기대수명이 보장되는 베이비 부머들. 그들 스스로는 “내가 정말 할아버지인가.”라는 의문을 던지고 있다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도 28일자에서 베이비 부머들에게 ‘록밴드 붐’이 부는 등 인생을 즐기길 원한다고 전했다. 신문은 52세로 1년 매출이 52억달러인 케이블 회사의 최고경영자 제임스 돌란, 벌칸사의 폴 앨런뿐 아니라 조슈아 볼튼 현 백악관 비서실장도 틈틈이 밴드에서 베이시스트로 활동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안동환기자 sunstory@seoul.co.kr
  • [스포츠 라운지] 스포츠중재위원회 초대위원장 안동수 前법무

    [스포츠 라운지] 스포츠중재위원회 초대위원장 안동수 前법무

    “이제까지 해 왔던 것처럼 봉사하는 마음으로 스포츠 분쟁 조정에 심혈을 기울이겠습니다.” 27일 출범한 한국스포츠중재위원회(KSAC) 초대위원장을 맡은 안동수(65) 전 법무부 장관이 사무국 현판식을 시작으로 업무를 시작하며 밝힌 각오다. 그는 지난 1962년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 이후 줄곧 ‘판관’ 역할을 수행해 온 법조인이다. 또 1990년 무료법률상담소를 개설한 이후 16년 동안 ‘법’에 문외한인 일반인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준 ‘봉사인’이기도 하다. 그는 지방검찰청 근무를 시작으로 1975년 현역에서 은퇴할 때까지 서슬퍼런 칼날을 휘두른 검사였다. 이후 행정자치부 법률고문 등 탄탄대로를 걸은 정치인이기도 하다.2001년에는 비록 잠깐이지만 제50대 법무부장관까지 지냈다. 그러던 그가 스포츠와 인연을 맺은 건 최근이다. 이전까지 스포츠 분야라면 그가 즐기고 있는 등산과 골프가 전부. 고등학교 시절 유도복을 입어보고, 대학 때 테니스 라켓을 쥐어봤지만 수박 겉핥기였다. 법에는 정통했지만 스포츠에는 ‘문외한’이나 다름없었던 셈이다. 그러나 2004년 대한태권도협회 고문을 맡으면서부터 국내 스포츠계에 눈을 떴다. 이후 아테네올림픽에서의 ‘양태영 사건’과 최근의 ‘쇼트트랙 파동’, 싱크로스위밍의 파벌싸움까지 주의깊게 지켜보면서 미국, 일본 등 스포츠 선진국에 견줘 전무하다시피 한 갈등 조정기구의 필요성을 실감했다. 김정길 대한체육회장의 간곡한 요청을 받아들여 4년 동안 위원장직을 수행하기로 결심한 이유다. 그러면서도 “무쪽 자르듯 판결을 내리는 ‘판관’보다는 중재자로서 국내 스포츠계를 부드럽게 융화시키겠다.”며 “무엇보다 한국 스포츠에 봉사하는 자세로 임무를 수행하겠다.”고 소신을 밝혔다. ‘봉사’를 강조하는 그의 말대로 위원장직은 ‘무보수’다. 자신을 포함해 중재위원 9명이 주요 해당 업무를 수행하지만 법조계와 스포츠법학회는 물론 장애인체육회 등 전문가 50여명 패널들의 조언을 듣게 된다. 중재기구인 만큼 최종 판정에 대한 구속력은 없다. 다만, 이에 불복하고 일반법원 송사에 들어갈 경우 2∼3년의 기간을 허비하는 건 물론 같은 체육인으로서 돌이킬 수 없는 흠만 남길 뿐이다. 안 위원장은 “KSAC의 존재 자체가 분쟁과 갈등을 사전에 차단하는 예방책이 되지 않겠느냐.”며 “이 기구가 유명무실해질 정도로 국내 스포츠 단체와 체육인들의 화합이 이뤄져 스포츠문화가 바로 설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1978년 출범한 미국 스포츠중재기구 AAA나 일본 JSAA에 견줘 경험은 일천하지만 KSAC는 그들 못지않게 중재 역할을 수행할 자신이 있다.”고 강조했다. 다른 건 몰라도 등산만큼은 그가 가장 아끼는 스포츠다.2000년 1월 눈덮인 관악산을 오르다 넘어져 허리를 다쳤지만 그는 지금도 산에 오르길 주저하지 않는다.40년 넘게 ‘법’과 더불어 산과 살아온 그다. 그는 “이제까지 함께한 이 친구 외에 ‘스포츠’라는 새 동무가 생겼다.”고 흡족해하면서 “처음이라 어려움은 많겠지만 산에서 넘어져도 또 그곳에 오르는 심정으로 임무를 수행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글 사진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생년월일 1941년 3월3일 ●출생지 충남 서천군 한산면 ●학교 한산중-중앙고-서울대-서울대 사법대학원-미국 버클리 법과대학원 ●가족 부인 이귀자씨와 3녀1남 ●경력 15회 고등고시 합격(1962) 육군 법무관(1964∼67) 부산 대구 인천지검 검사(1968∼75) 부산대·영남대 법정대학 강사(1969∼71) 사법시험 시험위원(1987) 행정자치부 법률고문(1999∼2000) 50대 법무부장관(2001) 대한태권도협회 고문(2004∼현재) ●현직 변호사(안동수법률상담소) 한국스포츠중재위 초대위원장 ●취미 등산 골프(핸디캡 9)
  • 자갈로 기술고문 ‘퇴장’

    브라질 축구의 ‘살아 있는 전설’이자 기네스북에 세계 최다 월드컵 우승 참여자로 등재된 마리오 자갈로(74)가 26일(현지시간) 국가대표팀 기술고문에서 공식 사퇴했다. 브라질 축구협회는 이날 “자갈로가 더 이상 대표팀의 기술고문을 맡지 않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자갈로 고문의 퇴장은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과 2014년 월드컵을 앞둔 브라질 축구의 대대적인 세대교체를 상징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자갈로는 1958년과 1962년 월드컵에서 선수로 우승컵을 획득했고,1970년 수석코치,1994년 감독으로 우승을 차지했다.1998년 월드컵을 끝으로 사령탑에서 물러났고 2002년 한국과의 경기에서 승리,A매치 통산 100승을 채운 뒤 은퇴했다. 자갈로를 제외하고 선수와 감독으로 모두 월드컵에서 우승한 이는 독일 프란츠 베켄바워가 유일하다.상파울루 연합뉴스
  • 전통무용에 바친 30년

    전통무용에 바친 30년

    문공부(文公部) 제정 제1회 창작활동 지원 대상 선정 기념공연 『수로부인(水路夫人)』의 공연을 끝낸 강선영(姜善泳·45)씨. 한국 고전무용의 「스타」 姜여사는 그러나 죽을 때까지 자기의 예술 활동을 끝내지 않으리라는 뜨거운 말을 담담하게 털어놓는다. 춤을 배우기 시작한 15세때부터 따지면 무용경력 30년. 그동안 무용 영화 『초혼(招魂)』(아시아영화제 작품상 수상), 무대 공연 작품 『산제(山祭)』『장희빈』(태평무(太平舞)·서울시 문화상 수상) 『모란의 정(情)』을 비롯, 국내의 공연 50여회를 「마크」한 姜여사는 인간 문화재 한영숙(韓英淑)여사와 함께 우리의 전통적인 고전무용의 두드러진 계승자. 한영숙씨의 아버지 되는 故 한성준(韓成俊)씨에게 한영숙씨와 함께 사사한 전통 무용의 계승, 보존, 발전의 주역이다. 『저는 우리 고전무용에 대한 일반적인 통념과 의견을 달리 합니다. 우리 무용은 오히려 박력 있고 선이 굵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움직여야 하는 거니까 현대의 「댄스」를 능가하는 거예요. 태평무 같은 건 너무 빨라서 발이 땅에 안 붙어요』 발이 바닥에 붙을 사이가 없을만큼 운동량(運動量)이나 속도가 현대의 춤을 능가한다는 이야기. 물론 표현 방법이 서양보다 유장한 것은 사실이다. 『고된 공연 연습이 마음대로 안되고 의상, 장치, 음악 등 전부 신경을 쓰다보면 내가 왜 이렇게 불행한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그러나 특히 외국에 나가서 우리 국기를 걸어 놓고 우리 무용을 추어서 박수 받으면 참 흐믓해요. 남이 자기의 예술을 알아주는데 보람이 있는 거니까요』 강선영(姜善泳)씨가 무용에 소질이 뛰어나다고 인정 받은 것은 안성(安城)고등보통학교 다닐 때. 학예회에서 춤 추는 모양을 서울에서 온 무용 선생님이 주목, 계속 무용지도를 했다. 서울에 있는 한성준음악·무용연구소 연구생이 된 때가 16세. 10년동안 배우면서 제1회 무용 발표회를 부민관(지금 국회 건물)에서 가졌다. 일제말 일본 「다까라즈까」(예술촌)에 교환교수로 갔다가 폭격이 심해서 귀국, 해방 이듬해 결혼, 7년 전에 부군을 사별(死別)한 뒤 지금까지 줄곧 혼자서 무용만을 해왔다. 1960년에는 민속예술단의 일원으로 「유럽」, 동남아, 일본 등지를 순회 공연, 예술 한국을 펼치기도. 62년에는 일본 「오사까」 무용 연구소를 차리고 교포2세들에게 한국 춤을 가르치기 시작, 큰 성과를 거뒀는데 지금은 연구소를 「도꾜」로 옮겨 일본인들도 많이 가르치고 있다. 『지금 1년에 7~8개월은 한국에 있고 나머지 기간 동안은 일본에 가서 가르치고 있어요』 우리 무용에 있어서 12박자라든가 10박자 같은 형식은 강선영씨밖에 출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게 무용계의 평이다. 『글쎄요, 제가 길러낸 문하생이 아마 수천명은 되지요. 지금은 무용을 버린 사람들을 포함해서요. 이현자(李賢子), 구자운(具滋雲) 같은 사람들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어요』 현재 강선영 무용연구소의 연구생은 50명. 9·28 수복후 서울 을지로 입구에서 시작한 연구소가 지금은 동대문 상가 「아파트」로 옮겨 있다. 『제 생활은 예술을 따라가는 생활이에요. 나이를 먹었으니까 그만 하지라는 말을 듣기도 하고 나도 남에게 할수 있지만 무대에서 넘어지지 않을 때까지 해야죠. 「파리」에서 50세 된 노(老) 「발레리너」가 춤추는 걸 봤는데, 살이 없어서 팔가죽이 흔들흔들해요. 그러나 무용은 육체의 노소(老少)를 떠나 선이에요. 그 유명한 老무용수가 삐딱 넘어졌는데, 우뢰 같은 박수…저는 무대에서 죽어도 좋겠어요 』 취미는「골프」와 「볼링」. [선데이서울 69년 11/23 제2권 47호 통권 제 61호]
  • 한라그룹 창업한 ‘오뚝이 기업인’ 정인영 명예회장 별세

    한라그룹 창업한 ‘오뚝이 기업인’ 정인영 명예회장 별세

    정인영 한라그룹 명예회장이 20일 현대아산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86세. 유족으로는 몽국(개인사업)·몽원(한라건설 회장) 형제가 있다. 발인은 24일 오전 9시. 장지는 경기도 양평군 양수리 선영.(02)3010-2632 정 명예회장은 ‘휠체어의 부도옹’ ‘오뚝이 기업인’ ‘프런티어 기업인’으로 불린다. 고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의 바로 아래 동생이다.14세에 무작정 상경,YMCA 야간 영어과 2년을 다닌 뒤 일본으로 건너가 고학으로 아오야마(靑山)대학 야간 영어과 2학년을 중퇴하고 귀국, 동아일보에 잠시 둥지를 틀었다. 한국전쟁 시절 부산으로 피란갔다가 미군 사령부 통역장교로 들어갔다.1951년 현대건설 전무로 입사,1961∼76년 현대건설 사장을 맡아 ‘왕회장’과 함께 현대건설의 초석을 다진 주인공이다. 62년에 장치산업 부흥을 부르짖으면서 현대양행을 설립, 왕회장과 함께 현대건설의 덩치를 키우면서 우리나라 경제발전을 이끌었다.1976년 현대건설 사장직을 내놓고 현대양행에 집중했지만 80년 신군부의 산업합리화 조치에 따라 공장을 내놓아야 했다. 그 뒤 창원종합기계공장(현 두산중공업)을 건설해 주위 사람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이후 시멘트와 건설, 조선소, 제지, 자동차 부품, 중장비 등을 생산하는 기업을 잇따라 설립하면서 한라를 재계 12위 그룹으로 키웠다. 하지만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알짜 회사였던 만도기계, 한라중공업 등을 넘기고 한라건설만이 겨우 그룹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정 명예회장은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완수하는 것이야말로 경영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출장길이나 차안에서도 영자 신문은 물론이고 경제경영 관련 책이 손에서 떠나질 않을 정도의 유별난 ‘독서광’이었다. 정신력도 대단했다. 중풍으로 쓰러진 뒤에도 의지를 갖고 치료를 받았으며, 경영에 소홀하지 않기 위해 무진 애를 썼던 기업인으로 평가받는다. 한라그룹을 다시 일으키기 위해 정몽원(52) 한라건설 회장과 함께 만도 인수에 매달리는 등 마지막까지 부단히 애를 썼지만 재기를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정 명예회장 별세 후에도 한라건설의 경영권은 변함없이 차남인 몽원 회장 체제를 유지한다. 지난 1997년 1월 차남에게 경영권을 넘겨주고 후계 구도를 마무리지었다. 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 오디오로 배우는 범패세계 어때요

    오디오로 배우는 범패세계 어때요

    중요무형문화재 제50호 영산재 전승자인 마일운(옥천범음대 학장) 스님이 범패의 오디오 의식 교본인 ‘하늘의 소리(梵唄)’를 세상에 내놓았다. 범패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소리에 담은 한국불교문화의 꽃.1600여년간 입에서 입으로 전승되어 왔으며 판소리·가곡과 함께 국악의 3대 성악으로 꼽힌다. 그러나 각 사찰에서 의식이 통일되지 않은 채 제각각 집전되는 탓에 제대로 배울 기회가 적을 뿐만 아니라 올바른 원형조차 정립되어 있지 않다. 일운 스님이 내놓은 ‘하늘의 소리((梵唄)’는 이같은 상황에서 불교의식을 통일해 일반 사찰에서 필요한 의식용 소리를 총 집결한 오디오 범패 교재다. 모든 범패의식을 오디오로 담아 의식 집전은 물론 교육용 교재로도 활용할 수 있다. 우선 재의식을 중심으로 출시했으며 앞으로 약 60여장을 더 제작해 모든 불교의식을 담아낼 계획이다. 일운 스님은 서울 신촌 봉원사를 전통의식 전승도량으로 일군 운파(1971년 입적) 스님의 최연소 제자.14세 되던 해인 1962년 봉원사로 출가,5년여 동안 운파 스님에게 범패를 사사했으며 45년간 범패 외길을 지켜왔다. 김성호기자 kimus@seoul.co.kr
  • 세계 첫 쌍둥이 대통령·총리?

    전 세계에서 처음으로 일란성 쌍둥이 형제가 나란히 대통령과 총리를 맡는 진풍경이 폴란드에서 벌어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동생은 대통령을, 형은 총리를 동시에 맡는 것이다. 폴란드의 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취임한 레흐 카친스키. 그의 일란성 쌍둥이 형이 보수집권당 ‘법과 정의당(PiS)’의 당수인 야로슬라브 카친스키이다. 오른쪽 사진은 1962년 아역배우로 영화에 함께 출연했을 때의 형제들 모습. 오른쪽이 동생인 레흐 카친스키이다. 법과 정의당은 8일(현지시간) 카지미에르즈 마르친키에비츠 총리가 지난 7일 사임하자 야로슬라브 카친스키 당수를 총리로 추천했다. 야로슬라브 카친스키 당수는 총리직 지명을 수락한 것으로 전해졌다. 마르친키에비츠 총리는 오는 11월 바르샤바 시장 선거에 출마할 계획이다. 야당들은 카친스키 형제의 독식에 대해 정치적 불안을 야기한다며 제동을 걸고 나섰다. 형인 야로슬라브 카친스키의 총리 임명은 지난해 9월 총선 승리 이후 제기됐다. 하지만 형은 같은해 대선 출마를 앞둔 동생의 정치적 부담을 고려해 총리직을 거절했다. 바르샤바에서 태어난 카친스키 형제는 바르샤바대학 법학과에서 함께 공부하는 등 ‘일란성 쌍둥이’ 특유의 형제애를 과시했다. 형제 모두가 1989년 공산주의가 붕괴한 폴란드의 첫 자유선거에서 하원 의원으로 당선됐다. 쌍둥이 형제는 2001년 보수 가톨릭계 정당인 법과 정의당 창당을 주도했다. 법과 정의당은 지난해 9월 총선에서 승리해 집권당이 됐다. 안동환기자 sunstory@seoul.co.kr
  • ‘솔직한 성’ 펴낸 긴스버그 역사속으로…

    1960년대 ‘솔직한 성(Of sexual candor)’이라는 잡지를 발간, 성(性)의 금기에 도전했던 미국 출판인 랄프 긴스버그가 6일 뉴욕에서 숨졌다고 현지 언론이 7일 보도했다.76세. 문제의 잡지는 1962년 발간된 것으로 성욕을 자극하는 이야기와 외설 사진 시리즈를 집중적으로 다룬 100쪽 분량의 계간. 잡지는 사진작가 버트 스턴이 찍은 마릴린 먼로의 누드 사진을 실어 악명을 얻기도 했다. 긴스버그는 그의 잡지에서 “성애(性愛)는 시대의 자식이며 모든 매체의 표현의 자유를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잡지는 4차례 발행에 그쳤다. 긴스버그가 외설물을 우편을 통해 배포한 혐의로 기소됐기 때문이다. 긴스버그는 1963년에 4년 징역형을 선고받았으나 8개월만 교도소에서 복역했다. 긴스버그는 생전에 인종주의에 당당하게 맞선 작품인 ‘100년간의 린치(100 Years of Lynchings)’(1962), 자신의 신문사진 모음집인 ‘내가 뉴욕을 쐈다(I Shot New York)’ 등 여러 권의 책을 출간했지만 에로스로 돈을 벌지는 않았다. 워싱턴 AFP 연합뉴스
  • [World cup] 전차군단 “승리의 땅서 멈추다니”

    월드컵 ‘불패’가 도르트문트 ‘불패’를 눌렀다. 독일월드컵 준결승전을 앞둔 독일과 이탈리아는 모두 승리를 자신했다. 믿는 구석이 있었다. 독일은 준결승전이 열린 도르트문트에서 무려 71년간 A매치 불패 행진을 이어오고 있었다.1935년 아일랜드전 승리를 시작으로 13승1무의 경이적인 기록을 세웠다. 이 때문에 독일은 경기 전 “도르트문트는 공기부터 다르다.”면서 결승행의 꿈을 부풀렸다. 그러나 이탈리아도 ‘월드컵 불패’가 있었다. 역대 월드컵에서 독일과 4차례 격돌,2승2무로 단 한 차례도 패하지 않았다.1970년 멕시코(4-3),1982년 스페인대회(3-1)에서 이겼고,1962년 칠레와 1978년 아르헨티나대회에선 득점 없이 비겼다. 결과는 이탈리아의 ‘월드컵 불패’가 강했다. 독일은 ‘승리의 땅’ 도르트문트에서 불패 신화를 마감해야 했다. 또 승부차기 징크스가 있던 이탈리아는 이것을 연장전 행운으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 이탈리아는 역대 월드컵에서 치른 3차례 승부차기에서 모두 패했지만 연장전에서는 3승1무1패로 강했다. 유일한 연장전 패배는 한·일월드컵에서 한국에 당한 것. 일부는 이탈리아 마르첼로 리피 감독의 ‘도르트문트 인연’과 연관시키기도 했다. 리피 감독은 독일이 도르트문트 불패 신화를 들고 나오자, 자신의 도르트문트 불패 전적을 꺼냈다.리피는 유벤투스 감독 시절인 1995년 도르트문트에서 열린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와의 유럽축구연맹(UEFA)컵 준결승에서 2-1로 이겼고, 몇달 뒤 치른 경기에서도 3-1로 완승했다는 것.박준석기자 pjs@seoul.co.kr
  •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절대음’의 하모니 이시스터즈(1)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절대음’의 하모니 이시스터즈(1)

    밝고 경쾌한 하모니에 고음이 특히 매력적이었던 3인조 여성 트리오 이시스터즈. 마치 ‘톡’쏘는 콜라 맛처럼 매우 짜릿짜릿한 하모니를 구사하던 이시스터즈의 등장은 ‘소리의 변화’로 대변되는 1960년대의 상징이기도 하다. 심지어 이들의 화음에 대해 작곡가 이봉조씨는 ‘절대음’이라고까지 표현했다. 세계적인 인기그룹 ‘맥과이어시스터스(McGwire sisters)’의 영향을 받아 출발했던 이들 멤버는 세살 터울의 친자매 김천숙, 김명자씨와 멜로디 이정자씨. 처음 김씨 성을 가진 멤버 둘, 그리고 이씨 성을 가진 멤버 한 명으로 결성되었다. “우리가 데뷔하기 전에 국내엔 이미 대단한 인기를 누리던 김시스터즈가 있었어요. 김해송-이난영 부부, 그리고 이난영씨 오빠인 작곡가 이봉룡 선생의 딸들로 구성된 김시스터즈는 김씨 둘, 이씨 한 명으로 구성되었는데, 그래서 우리 팀은 김씨 성이 둘이었지만 이들을 피하기 위해 이시스터즈란 이름으로 출발했지요. 이 것은 미국의 맥과이어시스터스나 앤드루시스터스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당시엔 성씨를 붙여 그룹명을 정하는 것이 보편적인 추세였던 것 같아요.” # 美 ‘맥과이어시스터즈´ 따라 그룹명 얼마 전 미국에서 잠시 귀국한 이시스터즈의 맏언니 김천숙(68)씨의 설명이다. 이들 이시스터즈는 김천숙씨의 모처럼 고국 나들이에 즈음해 지난 5월, 브라운관을 통해 오랜만에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이 것은 18년 만에 TV에 등장했던 지난 90년부터 또다시 16년만이다. 그러나 이들은 늘 곁에 있었던 것처럼 여전히 친숙한 모습 그대로였다. 이들이 일반 대중들 앞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64년 번안곡인 ‘워싱턴 광장’으로부터이지만 이들의 결성은 이보다 앞서 미8군 쇼 연예인 공급업체 ‘화양’에 들어가면서 시작된다. 먼저 친자매 중 동생인 명자씨가 수도여고를 막 졸업하자마자 미8군 가수 오디션에 참가한 것이 계기가 되어 서울대 출신의 작곡가 겸 연주인 박선길씨로부터 여성보컬그룹을 제의받는다. 그래서 가세한 멤버가 당시 철도청에 근무하던 언니 김천숙, 그리고 그의 직장 후배였던 이정자씨다. 둘은 함께 철도청에 근무하면서 ‘철도의 날‘을 비롯한 교통부 행사 때마다 무대에 섰을 만큼 노래실력에 관한 한 정평이 나 있었다. 충북 영동 출신의 두 자매는 학창시절부터 각종 콩쿠르를 휩쓸던 소문난 재주꾼들. 또한 함흥 태생의 ‘함경도 또순이’ 이정자씨 역시 한국전쟁 기간 중 ‘경찰어린이합창단(단장 정세문)’에서 일찌감치 활동했던 재원이다. 이들은 ‘화양’에 전속되면서 쇼단 ‘어라운드 더 월드’를 거쳐 박선길씨가 ‘쇼 오브 쇼’ 단장으로 독립하자 전속가수로 합류, 미8군 장교클럽을 통해 무대 활동을 시작한다. 이 무렵인 62년, 이들은 당시 서울 중앙방송국(현 KBS) 연말 톱싱어대회 연말 결선에 출전하기도 했다. 월말 예선을 거쳐 최종 결선을 벌인 이 대회에서 예선을 통과한 한 여성보컬 팀이 연락이 두절되자 방송국 측에서 긴급히 박선길씨에게 섭외, 이들의 출전을 요청해온 것. 방송국 전속가수 자격이 주어지는 이 대회서 이들 이시스터즈는 평소 레퍼토리인 ‘신시어리(Sincerely)’를 불러 2위로 입상한다. 이 대회 1위는 이재성,3위는 차도균씨가 차지했다. 하지만 이들 이시스터즈는 이미 미8군쇼단 소속이었기 때문에 방송국 전속가수로 활동하지는 않았다. 미8군 무대에서 출발한 이시스터즈, 그러나 이들의 첫 음반 취입은 63년 두 자매만으로 구성,‘허니-김스’라는 이름으로 먼저 LKL음반사를 통해 이루어졌다. 당시 작곡가 이봉룡씨가 운영하던 음반사 LKL은 이봉룡, 김해송-이난영 부부 이름의 이니셜을 따 지은 이름. # 1964년 ‘워싱턴 광장´으로 급부상 “사실 ‘이시스터즈’로 이미 미8군 무대에서 활동할 때였는데 어떤 연유로 우리가 ‘허니-김스’라는 이름으로 따로 음반을 취입했었는지 기억이 어렴풋해요. 아마도 당시 절친하게 지내던 김시스터즈의 남동생들인 김보이스 멤버 김영일씨가 음반 취입을 제안했고 역시 김보이스 멤버였던 김영조씨가 곡을 만들어줘 우리가 ‘허니-김스’라는 이름으로 음반만을 취입한 것 같아요.”-김명자(65)씨의 회고. 이들은 ‘쇼 오브 쇼’단의 주축이 되어 활동하던 중 이시스터즈 이름으로 64년,‘워싱턴 광장’을 발표하며 급부상한다. 서울대 음대 출신의 작곡가 박선길 단장의 전폭적인 지원을 업은 이들의 성공에는 먼저 결혼한 언니 천숙씨의 부군 장준기(68)씨의 외조도 한몫 했다. 당시 KBS 전속악단의 기타리스트였던 그는 이들 노래에 대한 모니터는 물론,‘워싱턴 광장’의 1절 가사를 직접 만들어주기까지 했다. 그래서 당시 해외로 진출했던 김시스터즈,‘아리랑 목동’의 김치켓,‘새드 무비’의 정시스터즈, 그리고 ‘워싱턴 광장’의 이시스터즈 등장으로 인해 우리나라에도 비로소 여성보컬 전성시대가 개막된다. 이시스터즈는 이후 번안곡인 ‘레몬트리’를 비롯해 ‘울릉도 트위스트’ ‘남성금지구역’ ‘서울의 아가씨’ ‘목석같은 사내’ ‘화진포에서 맺은 사랑’ ‘날씬한 아가씨끼리’ ‘별들에게 물어봐’ ‘모래 위에 적어본 이름’ 등 창작 곡들을 잇달아 히트시키며 전성기를 한껏 구가했다. 아울러 66년, 동갑내기 김명자, 이정자씨가 각각 결혼,9개월 만삭의 몸이 되어 무대 활동을 잠시 접을 때까지, 불과 2년 동안 무려 스무 장이 넘는 음반을 발표했다. 출산과 함께 6개월 정도 휴식기를 가지는 동안 멤버 이정자씨가 솔로로 전향하며 그룹을 탈퇴한다. 이 빈 자리에 65년 KBS 톱싱어대회에서 대상을 받으며 등장한 김상미(63)씨가 1년간의 방송국 전속가수 활동을 끝내고 새롭게 멤버로 가세했다. 이 때가 67년 2월. 이로써 이시스터즈는 김천숙, 김명자, 김상미씨로 구성된, 말하자면 이씨가 한 명도 없는 김씨들로만 구성된 ‘제2의 이시스터즈’가 탄생된다.(계속) sachilo@empal.com
  • [부산에서 서울까지 다시 걷는 옛길] (6) 칠곡·구미길

    [부산에서 서울까지 다시 걷는 옛길] (6) 칠곡·구미길

    대구 옛길은 북구 팔거천을 건너 경북 칠곡 땅으로 들어선다. 지금은 어렴풋이 흔적만 남은 조선시대의 유목정(柳木亭)부터 칠곡 땅이 시작된다. 이곳을 지나 태봉산을 좌측으로 끼고 가면 동명면 소재지가 나온다. 태봉산은 조선시대 중종의 왕자 봉성군의 태(胎)를 이 산에 묻었다 해서 붙여졌다고 칠곡군지는 적고 있다. 옛날에는 왕자가 태어나면 명산에 그 태를 묻는 풍습이 있었다. ●일제이전 정상부근에 태실 담은 석함 존재 칠곡군 향토사학가 이승원(84)씨는 “일제의 강압 이전까지만 해도 봉성군의 태실임을 알 수 있는 석함이 산 정상 부근에 있었다.”며 “그러나 이후 어디론가 사라져 정확한 문헌적 근거마저 잃게 됐다.”고 아쉬워했다. 이 마을 촌로들은 일제가 우리 왕실의 권위를 떨어뜨리고 민족정기를 말살하려 태실을 파괴했다고 확신한다. 면소재지인 금암2리를 거쳐 삼산동을 지난 옛길은 국도 5호선과 겹쳐 소야고개를 넘는다. 이 길 중간에는 평민들이 묵었다는 동명원이 있었으나 정확한 원터는 찾을 길이 없다. 이씨는 이 마을의 유래에 대해 들려줬다. 마을 이름은 원래 독명원(犢鳴院)이었으나 일제 때 개명작업으로 동명(東明)으로 고쳐졌다. 독명은 길손과 함께 짐을 싣고 한양을 오가던 소가 날이 저물어 밤이 되고 젖마저 붓자 집에 떼놓고 온 송아지(犢)를 생각해서 울었다고 해서 붙여졌다고 했다. 야트막한 소야고개를 넘어서면 바로 조선시대의 역과 원이 있었던 가산면 다부리가 나온다. 이 마을 토박이라는 김영학(67)씨는 “어릴 때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이곳을 ‘다부리’라 하지 않고 ‘다부원’이라 했다.”고 소개했다. 이어 이씨는 “조선 전기까지만 해도 이곳엔 관원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는 국가관할의 소야원(所也院)이 있었으나, 후기에는 역으로 기능이 확대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역과 원터는 개간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대신 한국전쟁 당시 최대 격전지 중의 하나였던 이곳엔 다부동 전적기념관이 들어서 있다. 기념관 송길준(60) 소장은 “한국전쟁 당시 55일간에 걸친 다부동 전투에서 아군 1만여명을 비롯해 모두 2만 7500여명이 사상한 곳”이라며 “이곳에서의 전투 승리가 인천상륙작전을 가능하게 했다.”고 설명했다. ●한국전 다부동 전투때 2만 7500명 사상 이어 옛길은 중앙고속도로 가산인터체인지 입구로 난 굴다리를 지난 뒤 국도 25호선 밑을 통과해 조선시대 상림역이 있던 구미시 장천면으로 들어선다. 조선시대 장이 섰던 상장리(웃장터)와 하장리(아랫장터)가 있는 장천면 소재지를 빠져 나온 옛길을 따라 2㎞쯤 가면 상림역에 도착한다. 지금의 상림리 마을회관이 역터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의 상림역에는 역리 227명과 노비 31명, 중마 2마리, 짐 싣는 말(卜馬) 4마리 등이 배치됐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곳을 지나 구미 지방도와 나란히 난 옛길을 가면 도로변에 서있는 대리석 표석 하나가 눈에 띈다. 표석에는 ‘서울 나들이길, 영남 선비 과거(科擧)길’이라고 적혀 있다. 구미시문화원이 지난 2000년 선조들의 한양길을 안내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시 문화원은 당시 이곳부터 상주시와의 경계지역까지 옛길 50여㎞ 구간 40여곳에 표지석을 세웠다. 이곳에서 시멘트로 포장된 농로를 따라 난 옛길은 사창·서울나들 마을로 이어진다. 사창마을은 조선시대 때 곡식을 거둬 저장했던 곳이며, 선산부지도에는 장천면에서 도개면 낙동나루까지 7개의 사창을 표시하고 있다. 동행한 구미문화원 부설 구미향토문화연구소 김홍균(68·전 구미문화원장) 소장은 “낙동강을 낀 사창마을 일대가 곡창지대였음을 잘 나타내 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선산골프장 건설로 끊긴 옛길은 골프장을 벗어나면서 이어져 서울나들마을(지금의 산동면 신당2리)로 향한다. 김 소장은 “2000년 당시 골프장 내에도 서울길 표석을 세웠으나 오늘 와보니 없어졌다.”며 골프장 관계자들을 의심했다. 서울나들마을에 도착하면 마을 입구에 세워진 서울 나들길 표지석을 발견할 수 있다. 토박이 김태준(68)씨는 “마을 복판으로 난 이 길이 옛길이며, 주막들도 있어서 길손들이 목을 축여 갔다.”고 말했다. ●도리사, 아도화상이 창건한 신라 최초 사찰 이 마을 북쪽고개를 넘어 도개면 소재지로 향하는 옛길 오른쪽에는 도리사(桃李寺) 일주문이 자리하고 있다. 도리사는 아도화상이 창건한 신라 최초의 사찰로 화상이 불법을 강론할 때 복숭아꽃과 오얏꽃이 눈속에 만발한 것을 보고 이름을 지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도리사 일주문 앞을 통과한 옛길은 양쪽으로 고분이 거대하게 분포한 낙산고분군(사적 제336호)을 지나 술에 취해 잠든 동안 화재를 당한 주인을 살린 뒤 죽었다는 개 이야기를 간직한 해평면 일선리 의구총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낙산고분군은 신라 또는 가야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205기의 고분이 6만 9000여평에 즐비하다. 옛길은 일선리 삼거리에서 두갈래로 갈라진다. 우회전해 상주로 가는 길을 길손들이 더 많이 이용했다. 상주 땅으로 이어지는 옛길은 낙동나루에서 나룻배를 타고 건너야 했다. 이 나루는 현재의 의성군 단밀면과 상주시 낙동면을 걸쳐 놓인 낙단교가 들어서기 전인 지난 86년대 이전까지 이용됐다. 뱃사공은 사라진 지 오래지만 나루터 나들목은 그대로 남아 있다. 의성 향토사학가 한종수(66)씨는 “조선시대 낙동나루는 부산 동래에서 낙동강을 거슬러 올라온 조공배들로 가득했다.”면서 “낙동장터와 주막도 낙동나루를 끼고 번성했으나 일제시대때 물난리로 없어졌다.”고 말했다. 글 사진 칠곡·구미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의로운 개의 무덤 ‘의구총’ 의구총(義狗塚)은 경북도 민속자료 제105호로 죽음으로 주인을 구했다는 의로운 개의 무덤이다. 의열도(義烈圖) 의구전(義狗傳)에 따르면 지금부터 300여년전 경북 선산군 해평면 산양리에 사는 우리(郵吏·집배원) 김성원 혹은 노성원이라는 사람이 황구 한마리를 길렀다. 하루는 주인이 이웃마을에서 술을 마시고 취해 귀가하던 중 월파정(지금의 해평면 일선리) 북쪽 길가에 쓰러져 잠이 들었다. 이때 길섶에서 불이 나 주인이 위험하게 되자 이를 본 개가 300m쯤 떨어진 낙동강으로 달려가 온몸에 물을 묻혀와 주인의 주위를 뒹굴며 불을 끄고 자신은 탈진해 죽었다. 주인이 잠에서 깨어나 개가 자신을 구하고 죽은 것을 보고 크게 감동해 관(棺)을 갖추어 월파정 인근에 매장하고 무덤을 만들어 주었다. 의구총은 원래 무덤만 있고 의구의 행적이 구전돼 왔다. 이를 조선 인조 7년(1627년)에 선산부사 안응창(安應昌)이 의열도에 의구전을 기록하고 비를 세웠으며,1685년 화공이 의구도 4폭(목판본)을 남겼다. 1962년 무덤이 도로공사로 편입되고 비에 일부가 파괴된 것을 수습하여 일선리 마을 뒷산에 복원하였으나 일선리 마을 조성으로 다시 이장될 처지에 놓였다. 이에 구미시는 지난 1994년 ‘개띠의 해’를 맞아 낙산리 철장마을 입구 사유지 300여평을 매입, 의구총을 새롭게 단장했다. 자연석으로 기단과 봉분을 쌓고 무덤 뒤로 길이 6.4m, 높이 1.6m의 화강석에 의구도 4폭을 새기는 등 말끔히 정비했다. 봉분은 직경 2m, 높이 1.1m 정도. 구미시는 매년 2∼3차례씩 벌초를 하는 등 의구총을 정성껏 관리하고 있다. 한국애견협회는 2002년 봄부터 충견의 넋을 기리기 위해 해마다 이곳에서 ‘의구총 애견제전’을 개최하고 있다. 대회는 진돗개·삽살개·풍산개 등 견공 3000마리가 넘게 참가하는 전국 규모이다. 사람도 죽어 남기기 어려운 이름을 의로운 견공이 남겼기 때문일까. 구미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통계로 본 서울](32)택시

    택시는 버스와 지하철과 함께 시민들의 발이다. 한때 합승을 단속할 정도로 호황을 누리던 택시는 자가용 승용차의 증가와 경기침체, 대리운전 요금 인하 등과 맞물려 침체의 길을 걷고 있다. 최근 들어 택시요금 개선 등 택시산업의 환경변화와 시장변화 등에 대한 개선 방안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서울에 29% 몰려 29일 서울시와 교통개발연구원, 전국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 등에 따르면 택시면허 대수는 지난해 6월 기준으로 개인택시 4만 9147대, 법인택시 2만 2953대 등 모두 7만 2100대에 이른다. 전국의 등록택시 대수는 24만 5924대로 서울에 29.3%가 몰려있다. 택시 중 개인택시가 전체 68%를 차지하고 있으며, 택시 형태별로는 중형택시가 6만 7045대, 모범택시가 3423대, 대형택시가 203대 등의 순이다. 서울의 택시 대수는 1995년 6만 8211대,1998년 6만 9600대,2001년 7만 29대,2004년 7만 1779대 등 매년 평균 0.56%씩 꾸준하게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택시 1대당 인구수는 143명으로 외국 주요도시에 비해 공급률이 높은 수준이다. 외국의 택시 1대당 인구수는 뉴욕 658명, 런던 345명, 도쿄 231명, 파리 148명 등이다. 서울의 택시 한 대당 인구수는 전국 평균 201명보다도 적다. ●법인택시 운행률 매년 감소 법인택시 업체수는 256개로 업체별 평균 84대의 택시를 보유하고 있다. 법인택시 운행률은 2001년 79.3%에서 지난해 4월 53.1%로 크게 떨어졌다. 가동률은 최근 4∼5년 사이에 무려 15%포인트 이상 떨어졌으며, 이런 추세는 2005년 요금인상 후 더욱 가속화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1일 평균 영업거리는 258㎞이며,1회 평균 영업거리는 4.98㎞다. 중형택시 요금은 기본요금은 2㎞에 1900원이며,144m에 100원이 가산된다. 시속 15㎞이하의 속도로 운행하면 35초에 100원의 시간요금이 붙는다. 심야시간(0∼4시)에는 20%의 할증요금이 적용된다. 모범택시 기본요금은 3㎞에 4500원이며,164m에 200원씩 가산된다. 시간요금은 39초에 200원이며, 심야 할증요금은 없다. ●1912년 처음 등장 우리나라의 택시영업은 일본인이 1912년 4월 ‘포드 T형’ 승용차 2대를 도입, 서울에서 시간제로 임대영업을 하면서 생겨났다. 이어 1919년 12월 일본인이 운영하던 ‘경성택시회사’가 생겨났고,1921년에는 우리나라 사람이 운영하는 ‘종로택시회사’가 설립됐다. 본격적으로 미터기를 달고 영업을 시작한 것은 1926년 ‘아사히택시회사’가 처음이다. 1920년대에는 택시 시간당 대절요금은 쌀 한가마(6∼7원)와 맞먹는 6원으로 최상류층들만 이용할 수 있는 교통 수단이었다. 본격적인 택시운송업은 1962년 일본에서 ‘새나라’자동차가 수입되면서부터이며, 개인택시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1967년 7월 4대가 시내를 누비면서부터다.1988년 서울 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중형택시가 도입됐으며, 택시의 고급화를 위해 1992년 12월에는 개인택시를 확대한 모범택시가 등장했다.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주말에 뭘 보러갈까

    ●미술 ■ 저우춘야·류웨이 전 7월10일까지 서울 인사동 아트사이드. 중국의 ‘블루칩 작가군’에 속하는 두 작가의 국내 첫 개인전. 저우춘야는 사람들의 욕망과 행복감을 표현한 ‘초록개’ 및 ‘복숭아밭’ 연작을, 류웨이는 물질화속에서 중국인들이 겪는 소외와 고독을 담아낸 ‘꽃’ 연작을 선보인다.(02)725-1020. ■ 벽-그 너머의 이야기 전 7월30일까지 서울 서교동 갤러리 잔다리. 전시장을 둘러싼 벽과 공간을 소재로 ‘흰 벽의 텅 빈 공간’‘갑작스레 나타나는 문’‘좁은 골목길’ 등을 연출함으로써 흥미로운 공간 이야기를 풀어놓는 전시다. 김미형 김민정 김현지 박성연 등 9명의 작가들이 참여한다.(02)323-4155. ■ 전뢰진 개인전 7월4일까지 서울관훈동 인사갤러리. 원로조각가 전뢰진의 40여년 작품세계를 보여주는 전시.1962년 제작된 작가 소장품부터 2006년 근작까지 석조각 중 시기별 작품 15점과 틈틈이 일기 쓰듯 작은 종이에 메모한 스케치, 작품 구상에 쓰인 에스키스 등 드로잉 100여점을 선보인다.(02)735-2655. ●어린이 ■ 러시아 인형극, 채마단의 듀엣 7월9일까지 화∼금 2시·4시30분, 토·일 1시·3시30분 사다리아트센터 동그라미극장. 냄비, 국자 등 일상의 소재로 절묘하게 만든 인형과 익살스런 마임극의 조화.2만원.(02)382-5477. ■ 목각인형 콘서트 7월15일까지 월∼목 11시, 금 11시·4시, 토 11시·2시·4시 북촌 창우극장. 정통 유럽 마리오네트 인형극.1만 5000원.(02)926-2050. ●클래식 ■ 이성요 피아노 독주회 7월6일 오후 8시 금호아트홀. 슈만·드뷔시·프로코피에프 등 연주. ■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바흐오케스트라 내한 공연 7월 19일 오후 8시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브란덴부르크협주곡 전곡(1번∼6번 BWV 1046∼1051) 연주. ●연극 ■ 따라지의 향연 7월9일까지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나폴리를 배경으로 신분 차이를 초월한 청춘남녀의 순수한 사랑과 귀족사회의 허위의식을 풍자한 코미디극. 극단 자유의 창단 40주년 기념무대로 김금지 박인환 박웅 박정자 등 연륜 있는 배우들이 대거 참여한다. 스칼페타 작·김정옥 연출. 월∼금 8시, 토·일 3시·7시 3만∼5만원.1588-7890. ■ 강신일의 진술 7월9일까지 화∼금 8시, 토 4시·7시, 일 4시 정보소극장. 살인 사건을 둘러싼 한 남자의 진술을 미스터리 기법으로 따라가는 모노드라마. 소설가 하일지의 원작을 무대화했다. 박광정 연출.1만 5000∼2만 5000원.(02)743-7710 ■ 남자가 여자를 사랑할 때 7월2일까지 화∼금 7시30분, 토 3시·7시, 일 3시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뒤틀린 성적 욕망의 상처를 안고 사는 남녀의 파격적인 일탈을 통해 인간 내면에 깃든 욕망의 실체를 파헤친다. 손기호 작·연출, 한경미 홍성춘 등 출연.1만 5000∼2만원.(02)762-9190. ■ 나생문 7월2일까지 화∼금 8시, 토 4시·7시, 일 4시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진실은 과연 존재하는 걸까. 영화 ‘라쇼온’으로 널리 알려진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소설을 각색한 작품. 구태환 연출, 최광일 장영남 등 출연.2만∼3만원.(02)741-3934. ●뮤지컬 ■ 브루클린 8월13일까지 충무아트홀 대극장. 브루클린 뒷골목의 거리 연주자가 들려주는 따뜻한 사랑이야기. 펑크, 하드록, 팝, 가스펠, 솔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음악의 향연이 무대와 객석을 콘서트 현장처럼 뜨겁게 달군다. 브로드웨이 차세대 뮤지컬로 호평받은 최신작. 이나라 연출, 김소현 문혜영 등 출연. 화∼금 8시, 토 3시·7시, 일 2시·6시 3만 5000∼5만 5000원.1544-1555. ■ 밴디트 7월17일까지 화∼금 8시, 토·일 4시·7시30분 동숭아트센터 동숭홀. 여성 탈옥수 4명으로 구성된 록밴드 밴디트의 무법질주. 동명의 독일 영화가 원작인 창작뮤지컬. 김은미 작·성천모 연출, 강효성 이영미 등 출연.3만 3000∼5만 5000원.(02)545-7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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